김선미

김선미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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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선미 기자입니다.

kimsunmi@donga.com

취재분야

2024-10-23~2024-11-22
문화 일반75%
생활/가정10%
사회일반3%
여행3%
미술3%
인사일반3%
환경3%
  • 천리포수목원 목련의 순간적이며 영원한 아름다움[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지난 주말 천리포수목원에서의 한나절은 황홀했습니다. 세상에서 목련의 종류가 가장 많은 수목원에서 눈이 시리도록 목련을 봤으니까요. 컵케이크처럼 생긴 목련을 비롯해 꽃잎이 마흔 장이나 되는 별목련까지…. 4월의 탄생석인 다이아몬드보다 목련이 더 아름다운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이달 21일까지 열리는 천리포수목원의 ‘사르르 목련 축제’에 간 것은 이 수목원을 설립한 고 민병갈 원장(1921~2002·미국 이름은 칼 페리스 밀러)에게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지난해 9월 썼던 ‘고 민병갈 천리포수목원장님에게 보내는 계절 편지[김선미의 시크릿가든]’ 기사()의 맨 마지막은 이랬습니다. ‘내년 봄 목련이 가득 필 무렵에도 가겠습니다. 각별히 아끼셨다는 ‘라즈베리 펀’ 목련, 딸기에 크림을 얹은 색 같다며 ‘스트로베리 앤드 크림’이라고 이름 붙이신 목련도 보고요. 그래서 사람들이 천리포는 계절마다 가봐야 한다고 말하나 봅니다. 천리포수목원을 아끼고 사랑하는 팬들이 많습니다, 원장님.’●민병갈 원장이 사랑한 목련예. 이번에 가서 라즈베리 펀 목련도, 스트로베리 앤드 크림 목련도 눈과 마음에 가득 담아왔습니다. 라즈베리 펀은 천리포수목원 밀러가든의 민병갈 원장 동상 옆에 별 모양의 연분홍 꽃을 풍성하게 피우고 있었습니다. 1987년 민 원장이 큰별목련 ‘레오나르드 메셀’에서 타가 수분된 종자를 파종해 선발(선택)한 재배종입니다. 그의 어머니가 생전에 이 목련을 남달리 좋아했다죠. 그는 천리포수목원 후박나무집에 살면서 집 앞에 라즈베리 펀을 심고 매일 아침 “굿모닝, 맘(Mom)”이라고 인사했다고 합니다. 동상 오른쪽 앞 태산목 ‘리틀 젬’ 아래에는 흰 국화가 놓여 있었습니다. 2002년 4월 8일 타계한 민 원장의 22주기 추모식이 최근 열렸기 때문입니다. 50세에 척박한 천리포에 나무를 심기 시작해 81세에 세상을 뜨기 전까지 민 원장은 ‘나무가 주인인 수목원’을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나 죽으면 묘 쓰지 마세요. 그럴 땅에 나무 한 그루 더 심으세요”라고 했다는데요. 남겨진 사람들은 차마 그러지 못하고 민 원장의 묘를 만들었다가 2012년 10주기 때에서야 리틀 젬 아래에 수목장을 했습니다. 민 원장이 아꼈던 라즈베리 펀도 그 무렵 밀러가든으로 옮겨 심어진 것이에요. 히야신스 향과 연분홍빛 라즈베리 펀이 어우러지는 공감각의 정원에서 어머니의 사랑과 아들의 효심을 느껴봅니다. 스트로베리 앤드 크림은 밀러가든 벚나무집 옆에서 만났습니다. 이름처럼 꽃이 딸기우유 빛입니다. 하늘거리는 모습이 어딘가 동양적인데다 향기가 무척 달콤합니다. 높이 5~8m 정도로 자라는 나무에서 포도주잔 모양의 꽃이 20cm 크기로 핍니다. ●‘불칸’, ‘갤럭시’…926종 목련의 향연천리포수목원이 ‘세계적’ 수목원으로 불리는 건 목련, 호랑가시나무, 동백 등을 집중적으로 육성한 결과입니다. 천리포수목원이 현재 보유한 목련은 무려 926종. 이번 목련 축제에서는 그 목련들이 즐비한 목련정원과 산정목련원을 해설과 함께 둘러 볼 수 있습니다. 특히 1시간 정도 동산을 오르며 보는 산정목련원은 올해 처음 개방됐습니다. 가장 먼저 시선을 잡아끄는 목련은 ‘불칸’입니다. 화산을 뜻하는 ‘볼케이노’(volcano)와 불의 신 ‘불카누스’(Vulcanus) 등에서 유래한 이름답게 크고 강렬한 붉은색 꽃을 자랑합니다. 꽃 속 깊은 곳까지 온통 붉은색이라 정말로 화산 같아요. 궁극의 아름다움은 우주와 통하는 걸까요. 목련정원의 ‘갤럭시’와 민 원장이 살았던 후박나무집 앞 ‘스타워스’는 큰 키와 밝은 분홍빛의 꽃잎이 우람한 위용을 자랑합니다. ‘선듀(Sundew)’는 탐스러운 꽃이 무거워 나뭇가지가 내려앉은 듯한 곡선의 수형이 그림 같습니다. 목련이 이슬처럼 떨어져 내리는 것 같기도 해요. 다른 색상 목련보다 조금 늦게 꽃이 피는 노란색 ‘엘리자베스’와 ‘옐로 랜턴’도 이제 봉오리들을 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살랑살랑한 별목련들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겹벚꽃을 닮은 별목련 ‘크리산세무미플로라’는 상냥하고 발랄한 요정이었어요. 별목련은 높이 4~6m로 자라며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귀여운 여인 같은 목련입니다. ‘투 스톤’도 잊을 수 없어요. 우리 토종인 고부시 목련을 원종으로 해 선발한 목련인데요. 꽃잎이 15장 정도 달리면서도 우리네 함박꽃나무를 떠올리게 하는 은근한 매력이 있더라고요. ●순간적이면서도 영원한 아름다움빨간 동백, 앵초, 꽃댕강나무, 서향, 분꽃나무, 붓순나무 등이 제각기 색과 향을 뽐내는 봄의 정원에서 목련의 아름다움은 독보적이었습니다. 특히 목련과 수선화는 아주 잘 어울리는 식재 조합이었어요. 해외 여느 정원보다 천리포수목원이 아름다웠습니다.저는 목련을 보면서 이탈리아의 ‘국민 화가’ 조르조 모란디(1890~1964)의 정물을 떠올렸습니다. ‘아니, 엄격하고 정교한 구성미를 가진 모란디의 길쭉한 화병들과 목련이 무슨 상관이냐’고요? 모란디가 정물을 그린 건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덧없는 운명보다 영원불변의 가치를 추구했기 때문이에요. 그도 꽃 그림을 그리긴 했습니다만, 곧 시드는 생화 대신 말린 꽃을 그렸죠. 작가가 영원을 추구한 방식이었어요. 개인적으로는 목련에서 모란디의 정물처럼 구도(求道)적이고 강인하지만 한편으로는 처연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목련은 1억4000만 년 전인 백악기 화석에서도 발견될 만큼 오래된 식물이에요. 그 오래된 ‘목련의 청춘’은 왜 이리 짧아야 하나요. 생동하는 젊음을 어떻게든 붙들고 싶은 건 인간의 본성일까요. 천리포수목원의 목련을 감상한 후 아름다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목련은 청순한 봉오리로부터 꽃을 피운 후 곧 퇴장하지요. 그 순간의 아름다움이 애달파서 프랑스 미학자 장 뤽 낭시(84)의 강연집 ‘신, 정의, 사랑, 아름다움’을 꺼내 읽었습니다. 그는 ‘아름다움이 일시적인 것은 아닌가’라고 묻는 학생의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아름다운 질문입니다. 비 온 후 하늘의 무지개를 상상해 보세요. 곧바로 사라져 버리지요. 하지만 아름다움은 순간적이면서 동시에 영원합니다. 화가는 그림으로 그 아름다움을 화폭에 잡아두고 싶어 하지만 화폭은 훼손될 수 있어 영원하지 않아요. 영원함은 오랜 시간 지속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시간에서 벗어난 것을 일컫습니다.”천리포수목원에는 ‘비온디 목련’도 있습니다. 봄비 내린 뒤 피면서 수목원에 봄을 가장 먼저 알리기 때문에 ‘비온뒤 목련’으로도 불립니다. 오랜 기다림 후에 만난 천리포수목원의 목련은 아름다웠습니다. 내년에도, 그다음 해에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 안도합니다. 그래요. 지금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일 거예요. 목련이야말로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운 아름다움인가 봅니다. 태안=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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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원의 정원에서는 누군들 사랑하지 않으리요 [김선미의 시크릿가든]

    남원을 다시 보게 됐다. 춘향전의 무대로만 아는 건 남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서울역에서 KTX를 타면 남원역까지 약 2시간 20분. 알고 보니 우리나라 정원의 과거 현재 미래를 당일치기 여행으로 볼 수 있는 장소였다. 사랑이 뭘까 궁금하다면 남원에서는 나만의 답을 찾을지도 모르겠다. 여러 빛깔의 사랑이 그곳에 있었다.● 이상향을 향한 그리운 사랑봄의 광한루원은 생명이다. 수양버들의 연두색 새잎들이 바람결 따라 살랑살랑. 나무에 봄기운이 오른다는 말뜻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춘향전 완판 84장본 ‘열녀춘향수절가’는 광한루원의 경치를 이렇게 전한다. ‘앞 시냇가 버들은 초록색 휘장을 둘렀고, 뒤 시냇가 버들은 연두색 휘장을 둘러, 한 가지 늘어지고 또 한 가지 펑퍼져 흐늘흐늘 춤을 춘다.’광한루원 앞 연못인 ‘연지’에는 천연기념물인 원앙 수십 마리가 커다란 잉어들과 함께 헤엄치고 있었다. 10년 전쯤 남원시가 잉어와 원앙을 해치던 수달의 접근을 막자 귀한 원앙 무리가 오작교 근처에 터를 잡았다. 원앙의 색상이 워낙 선명해 비현실 세계에 온 느낌이다. 하긴 광한루원은 옥황상제가 사는 천상의 광한전을 재현한 곳이지 않나.1419년 조선의 재상 황희가 ‘광통루’라고 지은 누각 이름을 1444년 전라도 관찰사 정인지가 바꾼다. 달나라 미인 항아가 사는 월궁 속의 ‘광한청허부’를 본떠 ‘광한루’라고 한 것이다. 이로써 광한루는 지상의 누각에서 천상의 궁전으로 격상된다. 광한루는 달나라 궁전, 연지는 은하수다. 돌다리에 네 개의 무지개 모양 구멍이 있는 오작교를 건너 광한루로 향한다. 저 끝에 그리운 견우가 서서 웃고 있을까. 은은한 달빛 아래 만나고 헤어지면 또 1년을 기다려야겠지.광한루가 있는 정원 일대를 통칭하는 광한루원은 조선을 대표하는 관아정원(官衙庭苑)으로 대한민국 명승(名勝)이다. 광한루에 오른다. 광한루의 진가는 내부에 들어섰을 때 확연히 드러난다. 봄바람 드는 광한루에 서면 조선의 뛰어난 문인(文人) 정철이 발의한 세 개의 섬, 즉 삼신산이 시야에 펼쳐진다. 정면 5칸, 측면 4칸으로 내부가 펑 뚫린 본루에서 바라보는 광경은 연지와 오작교 그리고 대나무, 배롱나무, 버드나무가 어우러진 신선의 세계다. 광한루에 걸린 현액(懸額)이 ‘계관(桂觀)’이다. 계수나무가 있는 달나라 궁전을 암시하는 것이다.광한루원에서는 다음 달 10~16일 제94회 춘향제가 열린다. 일제강점기인 1931년 남원 유지와 주민, 권번 기생들이 돈을 모아 춘향사당을 준공하고 제사를 지내면서 시작된 춘향제는 대한민국 대표 축제로 성장했다.광한루원은 이몽룡과 성춘향의 옛날이야기에 머물지 않아 빛난다. 지난해 말 문화재청이 공개한 광한루원 홍보 영상 ‘아름다운 한국의 자연유산, 명승 광한루원’은 충격적일 정도로 참신했다. 국가대표 비보이 ‘윙’이 오작교와 광한루에서 춤을 추고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우나영 작가(활동명 흑요석)의 그림, 안숙선 명창과 남원시립소년소녀합창단의 음악이 어우러졌다. 지금까지 12만 명이 봤다.이것이야말로 K정원 콘텐츠가 나아갈 방향 아닐까. 이상석 문화재위원회 천연기념물분과 위원장도 말한다. “다음 달 17일 국가유산청이 출범하면 명승 전통조경은 자연유산으로 분류된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살았던 한국의 고유한 전통문화와 조경을 알리는 데 정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 자연유산인 전통정원이 국가적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도록 체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아랫사람을 헤아리는 명가(名家)의 사랑남원에는 한국의 아름다운 민가 정원 ‘몽심재(夢心齋) 고택’도 있다. 수지면 호곡리에 있는 국가민속문화재다. 집에 들어서니 대문채 앞에 150년 된 백목련이 탐스럽게 피었다. 홍매와 산수유도 봄을 알린다.몽심재 명칭은 고려 말 박문수가 정몽주에게 충절을 다지며 보낸 시에서 유래했다. “마을을 등지고 늘어서 있는 버드나무는 도연명이 꿈꾸고 있는 듯하고, 산에 오르니 고사리는 백이 숙제의 마음을 토하는 것 같구나(隔洞柳眠元亮夢 登山薇吐伯夷心)”라고 지은 시의 첫 줄 끝 자인 ‘몽(夢)’과 둘째 줄 끝 자인 ‘심(心)’을 따온 것이다. 죽산 박씨가 1700년대 초 호곡리로 집단 이주한 후 박문수의 14대손인 박동식이 이 집을 짓고 ‘몽심’을 당호로 삼았다. 이 집에는 줄기 밑둥과 뿌리가 호랑이 발을 닮아 ‘호족시’로 불리는 감나무도 있다.몽심재를 관리하는 장덕원 교무에 따르면, 집의 터를 잡은 박동식의 부친 박원유는 풍수지리에 뛰어났다. 멀리 견두산이 병풍처럼 두르고 집 앞에는 개울이 흐른다. 경사진 지형을 살려 여러 채 건물이 앞뒤로 높이를 달리해 지어졌다. 개인적으로는 안채의 2층 방이 참 로맨틱해 보였다. 저 방에서 바라보는 밤하늘의 별은 얼마나 예쁠까.이 집은 인간에 대한 배려가 가득하다. 조선 양반의 전유 공간이었던 정자를 문간채 동쪽에 짓고 하인들의 쉼터로 내주었다. 즐거움이 가득하다는 뜻의 요요정(樂樂亭)이다. 정자 앞 연못인 천운담(天雲潭)은 연두색 개구리밥이 포근히 덮었다.놀라운 건 아랫사람들이 편히 쉬도록 사랑채에서는 보이지 않게 이 공간을 설계한 점이다. 안채 여성들의 휴식을 위해 부엌 쪽 지붕도 길게 뺐다. 연달아 대과 합격자를 배출한 만석꾼 박씨 집안은 기근이 들면 소작료를 받지 않았다. 지금 시대에도 필요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다.장덕원 교무는 숨은 가드너 고수였다. 몽심재에는 무려 48종의 꽃이 보존되고 있다. 이제 곧 금영화, 꽃잔디, 아마꽃이 핀다. 5월에는 사랑채 앞에 가득 피는 달맞이꽃이 장관이란다. 그 꽃구경 하러 또 가야겠다.● 자신을 들여다보는 내면의 사랑남원시 이백면에는 ‘아담원’이라는 수목원이 있다. 배경 지식 없이 찾아갔다가 입구에서부터 깜짝 놀랐다. 나무들이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유리 통창을 통해 너른 정원을 바라보는 카페에는 책과 꽃이 가득했다. 더 올라가면 미술관이다. 프랑스 ‘니키 드 생팔’과 미국 ‘로버트 모어랜드’의 작품을 이곳에서 만날 줄이야. 아담원은 ‘나와 대화를 나누는 동산’이라는 뜻이다.알고 보니 ‘고려조경’이 나무를 가꾸던 조경농원이 2018년 정원으로 재탄생한 곳이었다. 고려조경은 LF네트웍스의 전신으로, 아담원은 구본걸 LF 회장 등 오너 일가가 지분을 소유한 LF 특수관계사였다. 현재는 LF의 자회사인 엘앤씨가 운영하는데, 워낙 숲이 울창해 ‘아담숲’으로도 불린다. 고 구본무 LG그룹 선대회장이 조성했던 경기 광주시 ‘화담숲’이 절로 떠오른다.● 지역 명소를 만든 화가의 고향 사랑2018년 문을 연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은 숲으로 둘러싸인 전원형 미술관이다. 남원 출신 김병종 화백이 자신의 작품 400여 점을 고향에 기증해 남원시가 운영하고 있다. 젊은층 중심으로 연간 관람객이 8만 명에 이른다.경관부터 위로의 힘이 있다. 흰색 미술관 건물 앞에 찰랑대는 계단형 수경(水鏡)이 마음을 깨끗하게 한다. 지리산 자락을 바라보면서 새소리를 듣고, 봄기운 가득한 연초록 산수를 노란 송홧가루로 뒤덮은 김 화백의 그림을 보면 살아가는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는 평생 생명을 주제로 작업해 ‘생명 작가’로 불린다.지금 열리고 있는 ‘일상이 우리가 가진 인생의 전부’ 전시는 어머니의 삶과 사랑을 주제로 김 화백과 지역 작가들의 작품이 어우러져 인상적이었다. 지역의 어린이들이 찾아와 자연과 문화예술을 함께 누리는 모습도 희망적이었다. 생명과 일상의 소중함을 남원에서 되새겨볼 수 있었다. 남원은 사랑이었다. 동아일보가 간추린 이 계절 여행 이야기, <여행의 기분>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남원=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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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적 쇼콜라티에 피에르 마르콜리니… “우리의 비법은 특별한 카카오 열매”

    ‘2020 월드 페이스트리 스타즈’에서 우승한 초컬릿 디저트 전문가인 피에르 마르콜리니(사진)가 이달 중순 한국을 방문했다. 벨기에 왕실에서 공식 지정한 세계적인 쇼콜라티에인 그는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를 벨기에, 프랑스, 영국, 일본 등 주요 국가에서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지난달 15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 첫 매장을 열었다.생 로랑 등 럭셔리 업체와 협업해 온 그는 20여 년 간 초컬릿을 예술적으로 만들어 온 장인이다. 그랑 크루, 프랄린, 하트 컬렉션 등의 초컬릿 제품들이 특히 인기다.그는 이 매장에서 국내 고객들과 팬 미팅을 가지며 이들을 대상으로 카카오 농장과 자신의 초컬릿 철학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메종 피에르 마르콜리니의 50번째 매장을 한국에 오픈하게 되어 기쁘다”고 했다.피에르 마르콜리니는 특별한 카카오 열매를 사용한다고 강조한다.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대륙의 농장 10여 곳과 협업해 소싱한 카카오 열매를 직접 가공해 초콜릿을 만든다는 설명이다. 연 3, 4회 카카오 열매 생산 농장을 방문해 생산에서부터 매장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관리한다고 한다. 그는 “여행하며 직접 공수한 카카오 열매로 우리만의 초콜릿을 만든다는 것이 가장 큰 차별점”이라고 강조했다.한국인들에게 특별히 추천하고 싶은 디저트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가볍게 먹기 좋은 쿠모와 에끌레어 등을 꼽았다. 매장에 와서 한두 가지만을 골라야 한다면 머랭 위에 초콜릿 크렘 레제르를 올린 메르베이유와 직접 만드는 아이스크림을 추천했다.그는 “한국인들을 위한 메뉴를 특별히 개발하고 있다”며 “우리의 방식으로 빙수 메뉴를 준비하고 있으니 오셔서 경험해보시기 바란다”고 덧붙였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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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컨셉, 콘텐츠 앞세우니 브랜드 알리고 매출도 쑥쑥

    패션 플랫폼 W컨셉이 콘텐츠를 앞세워 고객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있다. 디자이너 브랜드가 성장해 온 스토리부터 브랜드의 숨겨진 이야기, 패션 트렌드, 스타일링 팁 등 다양한 콘텐츠로 고객에게 다가선다. 고객 경험을 매출로 연결시켜 브랜드와 윈윈(Win-Win)한다는 전략이다.신진 브랜드 발굴 콘텐츠 ‘브랜드위키’W컨셉은 오리지널 코너에서 자체 제작한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이달까지 선보인 신규 콘텐츠만 5개다. 올해 초에는 ‘브랜드위키’라는 정기 큐레이션 콘텐츠를 오픈했다. 브랜드위키는 W컨셉이 큐레이션한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를 짧은 글과 사진 위주로 소개하는 정보성 콘텐츠다. 브랜드 이름의 의미부터 설립 배경, 디자이너 철학, 대표 상품 등 브랜드의 최신 정보를 담아 매월 2∼3회 선보이고 있다.현재까지 소개한 브랜드로는 로우(L‘EAU), 더 웨이브(THE WAVE), 씨타(CITTA), 누아누(nuuanu), 로제프란츠(Rose Frantz), 쏘이르(soir) 등 6개다. 이들의 공통점은 론칭 3년 미만의 신생 브랜드로, 올해 W컨셉에서 처음 선보인다는 점이다. 이처럼 W컨셉이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 발굴에 주목하는 이유는 ‘동반성장’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패션 트렌드 속에서도 차별화된 경쟁력을 가진 원석을 발굴해 소개함으로써 고객에게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플랫폼 차별화를 꾀한다는 취지다.실제로 이 6개 브랜드 매출은 최근 한 달(2월 17일∼3월 17일) 매출이 직전 한 달(1월 18일∼2월 16일) 대비 60% 늘었다. W컨셉에서 브랜드를 소개하는 콘텐츠가 고객에게는 낯설지만 새로운 브랜드를 찾을 수 있는 기회이자 매출 상승을 돕는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정기 큐레이션 콘텐츠 첫 선W컨셉은 쇼핑 룩북 ‘15 LOOKS’ 콘텐츠도 선보였다. 매월 트렌드 키워드를 선정하고 이에 맞는 15가지 스타일링을 제안하고 있다. 1월에는 청룡의 해 테마로 블루 스타일링을 선보이는 썸띵 블루(SOMETHING BLUE), 2월에는 밸런타인데이를 기념해 데이트룩 콘셉트의 룩을 소개하는 썸띵 러블리(SOMETHING LOVELY) 콘텐츠를 선보였다. 3월에는 새학기, 오피스 룩을 소개하는 프레시 스타트(FRESH START)를 소개했다. 한 콘텐츠당 50여개 브랜드에서 대표 상품을 큐레이션해 제안한다. 이를 통해 고객은 브랜드에 얽매이지 않고 트렌드에 맞춰 스타일링 할 수 있는 노하우를 얻을 수 있고, 브랜드는 고객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이외에도 입점 브랜드 오프라인 매장 스태프의 추천 스타일링을 제안하는 ‘프로스태프’, 인플루언서 연계 콘텐츠 ‘퀵스타일링 클래스’, 온라인 매거진 ‘W이슈’ 등을 선보이고 있다.W컨셉 관계자는 “지금은 글로벌 브랜드로 발돋움한 잉크, 모한 등은 W컨셉과 초창기부터 함께 성장해 온 대표적인 브랜드”라며 “더블유컨셉은 패션 시장을 이끌 차세대 브랜드를 발굴하고,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주는 인큐베이팅 플랫폼 역할을 강화해 브랜드와 윈윈하고자 한다”고 말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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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텔 디저트에 벚꽃 내려앉았네∼”

    《벚꽃 시즌이 찾아왔다. 호텔 업계가 핑크빛 설렘을 담은 다채로운 ‘꽃캉스 프로모션’을 선보인다. 벚꽃 모티브의 디저트와 음료 등이 오감을 즐겁게 한다. 》그랜드 하얏트 제주미쉐린 스타셰프의 벚꽃 테마 디저트제주 드림타워 복합리조트 내 그랜드 하얏트 제주는 4월 7일까지 미셰린 3스타 레스토랑 출신의 조나단 총괄 파티시에가 벚꽃 테마 디저트를 선보인다. 제주의 탁 트인 뷰를 자랑하는 라운지 38에서 벚꽃 애프터눈 티 세트를 즐길 수 있다. 벚꽃 테마의 마카롱과 롤케이크 등 7종류의 디저트와 트러플을 곁들인 브리 치즈 등 고급 식재료를 활용한 메뉴를 차와 함께 내놓는다. 델리와 갤러리 라운지에서도 벚꽃을 주제로 한 케이크와 페이스트리를 선보인다.롤링힐스호텔벚꽃 감성 ‘핑크 롤링 이벤트’실시!해비치 호텔 앤드 리조트가 운영하는 경기 화성의 롤링힐스 호텔이 이달 30일과 4월 6일에 벚나무 산책로가 조성된 호텔 정원에서 핑크 롤링 이벤트를 진행한다. 롤링힐스 호텔은 벚꽃 터널 산책로 및 50여 종의 꽃과 나무로 가꿔진 야외 정원이 조성돼 있어 봄꽃 호캉스를 즐길 수 있는 장소로 유명하다. 더 키친 레스토랑 앞 잔디광장에서 펼쳐지는 핑크 롤링 이벤트는 분홍빛 꽃들로 장식된 핑크 포토 부스, 다양한 디저트와 음료가 준비된 테이스티 부스 등으로 구성된다.위(WE)호텔제주벚꽃 차와 칵테일 프로모션위(WE) 호텔 제주는 로비 라운지 아잘리아에서 피부 미용에 좋은 벚꽃 차와 벚꽃 칵테일 등 벚꽃 프로모션을 4월 15일까지 선보인다. 벚꽃 프로모션 메뉴는 벚꽃 차 세트(벚꽃 차 한 잔과 약과 두 개), 화이트 블라섬 칵테일, 아잘리아 칵테일 등 세 가지로 각 1만 원에 즐길 수 있다. 벚꽃 차를 즐긴 후 벚꽃이 만발한 호텔 주변 숲 곳곳을 산책하면 벚꽃 힐링이 된다.시그니엘 서울봄 내음 가득한 벚꽃, 로맨틱한 휴식서울 벚꽃 명소로 손꼽히는 석촌호수의 동호 쪽에 위치한 시그니엘 서울은 벚꽃 시즌 한정으로 4월 20일까지 조이풀 스프링 패키지를 선보인다. 객실 1박과 벚꽃 칵테일 바우처 2매로 구성됐다. 특히 석촌호수가 내려다보이는 객실이 우선 배정돼 객실 내에서도 만개한 봄꽃을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다. 칵테일 바우처로 시그니엘 서울 79층에 위치한 ‘더 라운지’에서 블라섬 마티니와 블라섬 하이볼 등을 마실 수 있다.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봄의 달콤함 담은 패키지 출시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는 이달 31일까지 러브 블라섬 패키지를 선보인다. 클래식 룸 또는 주니어 스위트 1박, 그랜드 델리 수제 초컬릿 8구 세트, 로비 라운지&바의 딸기 음료 두 잔으로 구성된다. 인터컨티넨탈 코엑스는 4월 30일까지 객실 안에서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스위트 블라섬 패키지를 준비했다. 클럽 클래식 룸 1박과 조식, 애프터눈 티 등으로 구성됐다.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몽상클레르, 벚꽃 시즌 한정 디저트 출시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은 베이커리 브랜드 몽상클레르에서 체리블로섬 쇼트케이크를 선보인다. 분홍빛 벚꽃을 형상화한 한정판 디저트로, 통팥 앙금과 바닐라 크림 브륄레가 들어가 쫀득한 식감에 라즈배리 잼의 상큼달콤한 맛을 더한다. 아기자기한 벚꽃 초컬릿 장식을 더해 눈과 입을 모두 즐겁게 해 주어 선물용으로 제격이라는 설명이다. 일본 도쿄에 본점을 둔 몽상클레르는 국내에서는 반얀트리 서울에서 만날 수 있다.호텔 나루 서울-엠갤러리봄 시즌 애프터눈 티 세트 선보여호텔 나루 서울-엠갤러리는 5월 31일까지 라운지 앤 데크에서 체리 블라섬 애프터눈 티를 선보인다. 바닐라 판타코타, 팡도르, 벚꽃 마카롱 등 화사한 봄의 색을 입은 8종의 디저트가 나온다. 입맛을 돋워줄 메뉴로는 치킨 타코와 로제 떡볶이 등이 준비된다. 체리 블라섬 애프터눈 티는 총 3부로 운영된다. 1부는 낮 12시∼오후 2시, 2부는 오후 2시 반∼4시 반, 3부는 오후 5∼7시다. 3부에는 스페셜 선셋 칵테일 두 잔이 추가된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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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美)의 역사’를 식물과 전시로 읽는다

    연분홍색 서향(瑞香)이 피어나 미니 온실을 그윽한 향기로 가득 채웠다. 봄의 전령사인 노란색 풍년화도 피었다. 조만간 목련과 작약도 만발할 것이다. 이곳은 경기 오산시 가장산업단지 아모레 뷰티파크 안에 있는 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이다. 공장, 식물원, 아카이브…아모레 뷰티파크식물원을 둘러보면 ‘아름다움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아모레퍼시픽의 믿음을 체감하게 된다. 올해는 아모레퍼시픽 창업자인 서성환 선대회장(1924∼2003)의 탄생 100주년이다. 팩토리(공장), 원료식물원, 아카이브로 구성된 아모레 뷰티파크는 예약자 대상으로 투어를 진행하는데 연말까지 ‘아모레퍼시픽 서성환 100년 | 1924-2024’라는 기획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설화수’ ‘마몽드’ ‘이니스프리’ 등 소비자들에게 친숙한 화장품을 만드는 아모레퍼시픽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아모레 뷰티파크는 팩토리 앞 야외에 설치된 높이 5m 폭 9m의 파란색 대형 조각상이 가장 먼저 강렬한 인상으로 관람객을 맞는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현대 미술가 자비에 베이앙의 ‘스케이터’(2014년)라는 작품이다. 한 손으로 바닥을 짚고 질주하는 쇼트트랙 선수의 역동감이 생생하게 전해온다. 서성환 선대회장은 프랑스를 사랑한 기업인이었다. 그가 1960년 첫 프랑스 방문길에 들렀던 남프랑스 그라스의 라벤다 밭에서 받은 감동이 지금의 아모레퍼시픽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세계적 향수 산지인 그라스에서 식물이 경제, 나아가 문화와 만나는 것을 목격했다. 식물의 가능성에 주목하면서 식물을 활용한 화장품을 생산하고 수목원과 녹차 밭 조성을 향한 꿈을 키웠다. 아모레퍼시픽 팩토리 투어는 팩토리, 원료식물원, 아카이브 순서로 진행된다. 1층 팩토리 스테이션에는 화장품 제조·포장 공정에서 포착한 이미지를 감상할 수 있는 미디어 월이 있다. 2층 팩토리 아카이브에서는 1945년 ‘태평양화학공업사’ 설립 초기부터의 발자취를 살펴보고 3층 팩토리 워크에서는 다양한 제조·생산 과정을 체험해 볼 수 있다.식물로 역사를 말하다, 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은 18개의 주제 정원으로 구성돼 있다. 이 회사 화장품 원료로 사용되는 1640여 종의 식물을 만나볼 수 있다. 식물원 입구 마당에는 150년 된 향나무가 있다. 서 선대회장이 특별히 아끼던 나무를 옮겨 심은 것이다. 다음은 이 회사를 대표하는 동백나무와 차나무가 있는 시원(始園). 아모레퍼시픽은 서 선대회장의 어머니인 고 윤독정 여사가 동백기름을 만들어 팔던 개성의 ‘창성 상점’을 모태로 한 기업이다. 차 나무도 이 기업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서 선대회장이 제주의 척박한 땅을 사들여 녹차 밭으로 일궈낸 것은 ‘한강의 기적’에 버금가는 기업인의 집념이었다.기능성 식물 정원을 거치면 장미원이 나온다. 아모레퍼시픽의 최초 브랜드 화장품인 ‘메로디 크림’(1948년)의 상표 중앙에 바로 장미가 있었다. 라벤다원은 서 선대회장이 감명받았던 그라스의 라벤다 밭을 구현한 정원이다. 샤넬의 ‘넘버 5’와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자도르(J’ador)’ 등 세계의 유명 향수들이 그라스에서 탄생했다. 그라스는 장미와 제라늄 등 원료 식물들이 재배되고 그 식물을 가공하는 기업들이 생겨나면서 향료 산업을 꽃피울 수 있었다. 서 선대회장은 그라스 방문을 계기로 식물에 관심을 키워 우리 식물에 대한 사랑으로 발전시켰다. 세계 최초의 인삼 화장품인 ‘ABC 인삼 크림’(1966년)을 만들고, 1997년에는 한방화장품 ‘설화수’를 내놓았다.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은 곳곳이 비밀의 정원이다. 침엽수원에 들어서 오솔길에서 만나는 편백나무와 구상나무는 제주의 곶자왈에 온 느낌을 준다. 암석원도 지형과 식재가 제주 오설록 티하우스 뒤편의 경사지와 흡사하다. 삼지구엽초, 눈개쑥부쟁이, 깽깽이풀…. 작지만 강한 생명력을 가진 우리 풀들이 땅을 포근하게 덮고 있다. 정원 조경은 정영선 조경설계 서안 대표와 박승진 디자인스튜디오 로사이 대표가 맡았다. “1970년대 초 독일에 가든 쇼를 보러 갔는데, 온통 우리나라 꽃 천지였다. 정작 국내에서는 꽃 취급도 안 하는 꽃들이 어엿하게 ‘코리아’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우리 꽃이 중요한지 모르고 외국 꽃만 찾던 게 민망했다. 식물을 향한 진정성을 바탕으로 앞으로 아모레퍼시픽이 한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좋은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정 대표) “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은 과거 수원 사업장에서 이식해 온 단풍나무와 은행나무들로 과거의 기억을 재생하는 공간이다. 화장품에 사용되는 원료 식물 중에서 뽕나무, 밤나무, 대추나무 등 키 큰 교목을 비롯해 산수유와 매화나무 같은 과수들, 구기자와 닥나무 등 키 작은 관목들을 섞어 심었다.” (박 대표)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의 비밀의 정원은 맨 마지막에 있다. 정원 갤러리다. 유리 통창을 통해 멀게는 자작나무 숲, 가까이로는 연못이 펼쳐진다. 연못에 연밥이 떠다니는 풍경이 꼭 오리가 헤엄치는 모습 같다. 여름에는 이 연못이 연꽃으로 가득 찬다.아모레퍼시픽의 정원들에는 늘 물이 있다.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건축을 맡은 서울 용산 아모레퍼시픽 본사 사옥 5층의 야외 정원에도, 제주 오설록 티 뮤지엄인 티스톤 옆에도 네모난 연못에 물이 찰랑거린다. 아모레퍼시픽, 그전의 태평양화학공업사라는 사명(社名)에도 가장 큰 바다(태평양)라는 물이 들어있다. 부드럽고 푸른 물의 이미지를 좋아했던 창업자의 꿈은 그렇게 정원에 구현돼 있다.아카이브 전시의 힘1980년부터 기업 사료 수집을 시작한 아모레퍼시픽은 2015년 오산 아모레 뷰티파크 내에 아카이브 독립 건물을 신축했다. 아모레퍼시픽이 그동안 생산한 화장품을 비롯해 기계 설비, 광고물, 직원 유니폼 등 8만여 건의 기업 자료가 소장돼 있다. 기업 활동의 결과물인 아카이브의 다양한 소장 자료들을 확인할 수 있는 전시형 수장고도 운영하고 있다.이번 기획 전시에서는 1955년 국내 화장품업계 최초로 신문광고를 시작해 ‘산소같은 여자’ 등 여러 화제작을 남긴 광고 포스터들, 1964년 새로운 화장품 유통경로로 선보인 방문판매 제도 관련 사진들, 서 선대회장의 집무실을 재현한 공간, 전·현직 아모레퍼시픽 임직원의 증언을 담은 기업 영상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자연의 이치와 식물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첨단 기술을 접목해 소비자와 문화적으로 소통하는 기업의 노력을 담아냈다. 가히 아카이브 전시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겠다.오산=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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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美)의 역사’를 식물과 전시로 읽는다[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연분홍색 서향(瑞香)이 피어나 미니 온실을 그윽한 향기로 가득 채웠다. 봄의 전령사인 노란색 풍년화와 수선화도 피었다. 조만간 목련과 작약도 만발할 것이다. 이곳은 경기 오산시 가장산업단지 아모레 뷰티파크 안에 있는 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이다.●“아름다움이 세상을 변화시킨다”식물원을 둘러보면 ‘아름다움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아모레퍼시픽의 믿음을 체감하게 된다. 올해는 아모레퍼시픽 창업자인 서성환 선대회장(1924~2003)의 탄생 100주년이다. 팩토리(공장), 원료식물원, 아카이브로 구성된 아모레 뷰티파크는 예약자 대상으로 투어를 진행하는데 연말까지 ‘아모레퍼시픽 서성환 100년 | 1924-2024’라는 기획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설화수’ ‘마몽드’ ‘이니스프리’ 등 소비자들에게 친숙한 화장품을 만드는 아모레퍼시픽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아모레 뷰티파크는 팩토리 앞 야외에 설치된 높이 5m 폭 9m의 파란색 대형 조각상이 가장 먼저 강렬한 인상으로 관람객을 맞는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현대 미술가 자비에 베이앙의 ‘스케이터’(2014년)라는 작품이다. 한 손으로 바닥을 짚고 질주하는 쇼트트랙 선수의 역동감이 생생하게 전해온다. 서성환 선대회장은 프랑스를 사랑한 기업인이었다. 그가 1960년 첫 프랑스 방문길에 들렀던 남프랑스 그라스의 라벤다 밭에서 받은 감동이 지금의 아모레퍼시픽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세계적 향수 산지인 그라스에서 식물이 경제, 나아가 문화와 만나는 것을 목격했다. 식물의 가능성에 주목하면서 식물을 활용한 화장품을 생산하고 수목원과 녹차 밭 조성을 향한 꿈을 키웠다. 아모레퍼시픽 팩토리 투어는 팩토리, 원료식물원, 아카이브 순서로 진행된다. 1층 팩토리 스테이션에는 화장품 제조·포장 공정에서 포착한 이미지를 감상할 수 있는 미디어 월이 있다. 2층 팩토리 아카이브에서는 1945년 ‘태평양화학공업사’ 설립 초기부터의 발자취를 살펴보고 3층 팩토리 워크에서는 다양한 제조·생산 과정을 체험해 볼 수 있다.●식물로 역사를 말하다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은 18개의 주제 정원으로 구성돼 있다. 이 회사 화장품 원료로 사용되는 1640여 종의 식물을 만나볼 수 있다. 식물원 입구 마당에는 150년 된 향나무가 있다. 서 선대회장이 특별히 아끼던 나무를 옮겨 심은 것이다. 다음은 이 회사를 대표하는 동백나무와 차나무가 있는 시원(始園). 아모레퍼시픽은 서 선대회장의 어머니인 고 윤독정 여사가 동백기름을 만들어 팔던 개성의 ‘창성 상점’을 모태로 한 기업이다. 차 나무도 이 기업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서 선대회장이 제주의 척박한 땅을 사들여 녹차 밭으로 일궈낸 것은 ‘한강의 기적’에 버금가는 기업인의 집념이었다.기능성 식물 정원을 거치면 장미원이 나온다. 아모레퍼시픽의 최초 브랜드 화장품인 ‘메로디 크림’(1948년)의 상표 중앙에 바로 장미가 있었다. 라벤다원은 서 선대회장이 감명받았던 그라스의 라벤다 밭을 구현한 정원이다. 샤넬의 ‘넘버 5’와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자도르(J’ador)’ 등 세계의 유명 향수들이 그라스에서 탄생했다. 그라스는 장미와 제라늄 등 원료 식물들이 재배되고 그 식물을 가공하는 기업들이 생겨나면서 향료 산업을 꽃피울 수 있었다. 서 선대회장은 그라스 방문을 계기로 식물에 관심을 키워 우리 식물에 대한 사랑으로 발전시켰다. 세계 최초의 인삼 화장품인 ‘ABC 인삼 크림’(1966년)을 만들고, 1997년에는 한방화장품 ‘설화수’를 내놓았다.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은 곳곳이 비밀의 정원이다. 침엽수원에 들어서 오솔길에서 만나는 편백나무와 구상나무는 제주의 곶자왈에 온 느낌을 준다. 암석원도 지형과 식재가 제주 오설록 티하우스 뒤편의 경사지와 흡사하다. 삼지구엽초, 눈개쑥부쟁이, 깽깽이풀…. 작지만 강한 생명력을 가진 우리 풀들이 땅을 포근하게 덮고 있다. 정원 조경은 정영선 조경설계 서안 대표와 박승진 디자인스튜디오 로사이 대표가 맡았다. “1970년대 초 독일에 가든 쇼를 보러 갔는데, 온통 우리나라 꽃 천지였다. 정작 국내에서는 꽃 취급도 안 하는 꽃들이 어엿하게 ‘코리아’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우리 꽃이 중요한지 모르고 외국 꽃만 찾던 게 민망했다. 식물을 향한 진정성을 바탕으로 앞으로 아모레퍼시픽이 한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좋은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정영선 대표) “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은 과거 수원 사업장에서 이식해 온 단풍나무와 은행나무들로 과거의 기억을 재생하는 공간이다. 화장품에 사용되는 원료 식물 중에서 뽕나무, 밤나무, 대추나무 등 키 큰 교목을 비롯해 산수유와 매화나무 같은 과수들, 구기자와 닥나무 등 키 작은 관목들을 섞어 심었다.” (박승진 대표)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의 비밀의 정원은 맨 마지막에 있다. 정원 갤러리다. 유리 통창을 통해 멀게는 자작나무 숲, 가까이로는 연못이 펼쳐진다. 연못에 연밥이 떠다니는 풍경이 꼭 오리가 헤엄치는 모습 같다. 여름에는 이 연못이 연꽃으로 가득 찬다. 아모레퍼시픽의 정원들에는 늘 물이 있다.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건축을 맡은 서울 용산 아모레퍼시픽 본사 사옥 5층의 야외 정원에도, 제주 오설록 티 뮤지엄인 티스톤 옆에도 네모난 연못에 물이 찰랑거린다. 아모레퍼시픽, 그전의 태평양화학공업사라는 사명(社名)에도 가장 큰 바다(태평양)라는 물이 들어있다. 부드럽고 푸른 물의 이미지를 좋아했던 창업자의 꿈은 그렇게 정원에 구현돼 있다.●아카이브 전시의 정석1980년부터 기업 사료 수집을 시작한 아모레퍼시픽은 2015년 오산 아모레 뷰티파크 내에 아카이브 독립 건물을 신축했다. 아모레퍼시픽이 그동안 생산한 화장품을 비롯해 기계 설비, 광고물, 직원 유니폼 등 8만여 건의 기업 자료가 소장돼 있다. 기업 활동의 결과물인 아카이브의 다양한 소장 자료들을 확인할 수 있는 전시형 수장고도 운영하고 있다.이번 기획 전시에서는 1955년 국내 화장품업계 최초로 신문광고를 시작해 ‘산소같은 여자’ 등 여러 화제작을 남긴 광고 포스터들, 1964년 새로운 화장품 유통경로로 선보인 방문판매 제도 관련 사진들, 서 선대회장의 집무실을 재현한 공간, 전·현직 아모레퍼시픽 임직원의 증언을 담은 기업 영상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자연의 이치와 식물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첨단 기술을 접목해 소비자와 문화적으로 소통하는 기업의 노력을 담아냈다. 가히 아카이브 전시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겠다.동아일보가 간추린 이 계절 여행 이야기, <여행의 기분>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오산=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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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대, 봄을 품은 창덕궁으로 가보라

    겨우내 굳게 닫혀 있던 창덕궁의 창과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창덕궁관리소가 5∼16일 궁궐에 자연 채광을 들이고 통풍을 시키는 ‘창덕궁 빛·바람 들이기 행사’를 열었다. 봄바람이 솔솔 드나드는 창호(窓戶)를 통해 그림 같은 전각 내부가 들여다보였다. 봄을 맞은 창덕궁은 평소 보기 힘들던 모습을 관람객에게 보여주고 있다. 인정전(仁政殿) 내부가 대표적이다. 1985년 국보로 지정된 인정전은 창덕궁 중심 건물로 즉위식을 비롯해 조선 조정(朝廷)의 공식 행사가 열렸던 곳이다. 문화재청은 31일까지 매주 수∼일요일 인정전 내부를 관람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인정전 내부에 들어서면 위아래가 확 트인 통층 형태를 실감할 수 있다. 천장 중앙에는 나무로 된 봉황 모양 조각이 왕의 권위를 보여준다. 평소 밖에서는 도저히 관람할 수 없는 천장 장식도 볼 수 있다. 인정전 안쪽 깊숙이 자리 잡은 어좌(御座·임금 자리) 위 봉황 부조다. 봉황 한 쌍이 구름 속을 날고 있는 모습이다. 해와 달, 다섯 개 산봉우리, 폭포, 소나무, 파도를 그린 어좌 뒤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도 찬찬히 관람할 수 있다. 이명선 창덕궁관리소장은 “인정전은 아파트로 치면 11층 높이에 해당하는, 250년 된 목조 건물”이라며 “샹들리에와 커튼 같은 외래 문물도 받아들여 조선부터 근대까지 이어지는 스토리를 볼 수 있는 귀한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창덕궁 후원 부용지(芙蓉池)도 봄맞이가 한창이다. 16년 만에 연못 속 나뭇잎과 뻘을 걷어내고 석축을 손보는 작업을 하고 있어 물 빠진 부용지를 볼 기회다. 22일부터 28일까지는 ‘봄을 품은 낙선재’ 관람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낙선재(樂善齋)는 조선 24대 임금 헌종 13년(1847년)에 왕의 사적 공간으로 지어졌다. 낙선재 건물을 기준으로 우측에는 석복헌과 수강재, 뒤편에는 각종 화초와 화계(花階·계단식 화단)가 있는데 이를 통칭해 낙선재라고 부른다. 덕혜옹주를 비롯해 조선 왕실 후손들이 생을 마감한 곳이기도 하다. 봄을 품은 낙선재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평소 개방이 잘 안 되는 석복헌과 수강재 일원 봄꽃 핀 뒤뜰을 둘러보며 해설을 들을 수 있다. 화려하게 치장한 다른 건물들과 달리 낙선재는 단청을 생략해 단정하고 격조 있는 기품으로 봄꽃들을 빛낸다. 낙선재는 화계 모란과 주변 매화가 특히 유명하다. 낙선재 후원 담장 서편 만월문에서 보이는 상량정과 취운정 동편 작은 문에서 보이는 창경궁 정경이 아름답기로 소문나 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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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을 느끼고 싶다면 창덕궁으로… 월말까지 인정전 내부공개[김선미의 시크릿가든]

    겨우내 굳게 닫혀 있던 창덕궁 건물의 창과 문이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창덕궁관리소가 이달 5~16일 궁궐에 자연채광을 들이고 통풍을 시키는 ‘창덕궁 빛·바람들이기 행사’를 열었기 때문입니다. 봄바람이 솔솔 드나드는 열린 창호(窓戶)를 통해 전각 내부가 들여다보였습니다. 이토록 살아있는 풍경 액자가 있을까요. 바람이 통하는 궁궐은 ‘아, 이곳에 사람이 살았었지’라는 사실을 일깨웁니다.봄을 맞은 창덕궁은 평소 보기 힘들었던 모습을 요즘 관람객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인정전 내부입니다. 1985년 국보로 지정된 인정전은 창덕궁의 중심 건물로, 왕위 즉위식 등 조선의 공식 행사가 열렸던 곳입니다. 문화재청은 이달 31일까지 매주 수∼일요일 인정전 내부를 관람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인정전 내부에 들어서면 위아래가 확 트인 24m 높이의 통층 형태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천장 중앙에는 봉황 목(木) 조각이 있어 왕의 화려한 권위를 보여줍니다. 평소 밖에서는 도저히 관람할 수 없는 천장 장식도 볼 수 있습니다. 인정전 안쪽 깊숙이 자리 잡은 어좌(御座·임금의 자리) 위의 봉황 부조입니다. 봉황 한 쌍이 구름 속을 날고 있는 모습이지요. 해와 달, 다섯 개의 산봉우리, 폭포, 소나무, 파도를 그린 어좌 뒤 일월오봉도도 찬찬히 관람할 수 있습니다.이명선 창덕궁관리소장은 말합니다. “인정전은 현대 아파트로 치면 11층 높이에 해당하는 250년 된 목조 건물입니다. 샹들리에와 커튼 등 외래문물도 받아들여 조선부터 근대까지 이어지는 스토리를 볼 수 있는 귀한 공간입니다.”창덕궁 후원 부용지도 봄맞이가 한창입니다. 16년 만에 연못 속 나뭇잎과 뻘을 걷어내며 석축을 손보는 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물 빠진 부용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보입니다. 누군가는 “공사 중이네”라고 지나칠 수 있지만, 발상을 전환하면 16년 만에 부용지 연못 속을 보는 기회랍니다. 창덕궁관리소 관계자들과 주합루에 올라가 보았습니다. 조선의 왕은 부용정을 내려다보면서 어떤 생각을 품었을까요. 22일부터 28일까지는 ‘봄을 품은 낙선재’ 관람 프로그램이 진행됩니다. 낙선재는 조선 24대 임금인 헌종 13년(1847년)에 왕의 사적인 공간으로 지어졌습니다. 낙선재 건물을 기준으로 우측에는 석복헌과 수강재, 뒤편에는 각종 화초와 화계(花階·계단식 화단)가 있는데 이를 통칭해 낙선재라고 부릅니다. 덕혜옹주 등 조선 왕실 후손들이 생을 마감한 곳이기도 합니다. ‘봄을 품은 낙선재’를 통해서는 평소에는 잘 개방이 안 되는 석복헌과 수강재 일원의 봄꽃 핀 뒤뜰을 둘러보며 해설을 들을 수 있습니다. 낙선(樂善)은 ‘선을 즐긴다’는 뜻으로 헌종의 마음이 깃든 곳입니다. 낙선재로 들어서는 대문인 장락문(長樂門)은 신선이 사는 선계를 은유하는 것으로, 중국 설화에 등장하는 서왕모의 거처인 장락궁에서 이름을 따왔습니다. 현재는 매화가 막 피기 시작했지만 조만간 매화가 흐드러지면 장관이 펼쳐지게 됩니다.석복헌은 헌종이 순화궁 경빈 김씨의 처소로 지어준 곳입니다. 그는 경빈 김씨를 후궁으로 맞아 낙선재에서 함께 지냅니다. 하지만 이들의 애틋한 사랑은 이 생에서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헌종이 경빈 김씨를 맞은 후 2년 뒤에 23세의 나이로 승하했기 때문이죠. 슬하에 자식이 없어 홀로 지내던 경빈은 1907년 76세에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긴긴 세월 그리움의 강(江)이 얼마나 깊었을까요.낙선재 영역은 집들이 담장으로 나뉘어 독립된 공간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하지만 나지막한 동산과 맞닿아 서로 드나들 수 있어 하나의 후원을 이룹니다. 뒷동산이 집을 아늑하게 감싸는 지형적 특성에 계단식 석축을 쌓아 후원으로 연결시킵니다. 석축에는 옥잠화, 앵두, 모란, 작약, 진달래, 철쭉, 조팝나무, 섬개야광나무 등이 괴석과 어우러진 화계가 조성돼 있습니다. 이 꽃담이야말로 한국 궁궐의 최고 수준을 보여주는 비밀의 정원이지요. 헌종과 경빈 김씨가 낙선재에 앉아 창을 열면 액자처럼 감상할 수 있던 사랑의 정원이지요.낙선재 영역에는 부속 건물이 각각 자리합니다. 석복원 후원에는 ‘한가하고 조용하다’는 뜻을 지닌 ‘한정당(閒靜當)’, 수강재 후원에는 푸른 구름이라는 뜻의 ‘취운정(翠雲亭)’이 각각 있습니다. 취운정은 숙종 12년(1686년)에 세워져 ‘동궐도’에서도 그 모습을 살필 수 있습니다. 낙선재 뒤뜰 높은 언덕에는 육모 정자인 ‘상량정’이 있습니다. 상량정의 원래 이름은 평원루(平遠樓)로, 평원은 ‘먼 나라와 사이좋게 지낸다’는 의미입니다. 여러 나라와 친선을 도모하고자 한 의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상량정은 장수·부귀·다산을 상징하는 박쥐·복숭아·청룡·쌍학 등의 문양이 장식된 정자입니다. ‘창덕궁 달빛 축전’ 때 정자에서 대금을 연주하는 모습이 많은 사랑을 받습니다. 낙선재 후원은 담장으로 구분되며 둥근 만월문(滿月門)을 통해 승화루 후원과 연결됩니다. 화려하게 치장한 궁궐의 다른 건물들과 달리 단청을 생략해 단정한 아름다움을 전하는 낙선재의 봄은 특별합니다. 꽃담에 화사한 꽃이 피어나고, 좋은 의미를 품은 바람이 깃들어 소박하면서도 격조가 흐릅니다. 특히 화계의 모란과 작약, 주변의 매화가 유명합니다. 낙선재 후원 담장 서편 만월문에서 보이는 상량정과 취운정 동편 작은 문에서 보이는 창경궁 정경이 아름답기로 소문나 있습니다. 왕의 시선과 걸음으로 봄의 궁궐을 걸어보시죠.동아일보가 간추린 이 계절 여행 이야기, <여행의 기분>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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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도의 세월 품은 비밀의 정원, 길손을 반긴다 [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시냇물을 건너니 낙원이었다. 차밭을 품에 안은 월출산 옥판봉 기세가 상쾌했다. 이런 세상이 있었나. 전남 강진군 백운동 원림(園林)은 그야말로 비밀의 정원이었다. 다산 정약용과 친구들이 은거와 유배의 삶에서도 땅을 읽어 자리를 잡고 경관을 즐긴 기상이 깃들어 있었다. 해남에서는 고산 윤선도의 정신을 따르는 정원 문화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곧 개장을 앞둔 ‘산이정원’은 오랫동안 방치돼 있던 척박한 간척지에 정원 도시를 만드는 꿈을 담고 있다. 생명의 혼(魂)이 깃든 강진과 해남 비밀의 정원에 다녀왔다.●다산도 반한 백운동 원림백운동 원림 주변에는 월출산에서 발원한 시냇물이 흐른다. 초록 이끼를 포근하게 덮은 돌 위로 흐르는 물길을 따라가면 정원 담장 앞에 다다른다. 한국 정원의 야트막한 담장은 볼 때마다 참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릴 건 적당히 가리면서도 내부를 드러내 방문객을 편안하게 해 주는 환대다.담장 아래에는 자그맣게 네모난 구멍이 파여 있다. 정원에 들어서면 구멍의 쓸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구멍으로 바깥 물이 들어와 정원 안 기다란 수로와 네모꼴 연못을 거쳐 굽이굽이 돌아 흐르는 것이다.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한 다산 정약용은 당시 백운동 주인이던 이덕휘와 교류하면서 백운동 12경(景)을 노래하고 초의선사에게 그림을 그리게 해 20쪽짜리 시화첩 ‘백운첩’을 남겼다. 이 책에서 다산이 꼽은 백운동 제5경이 유상곡수(流觴曲水)다. ‘담장 뚫고 여섯 굽이 흐르는 물이 고개 돌려 담장 밖을 다시 나간다. 어쩌다 온 두세 분 손님이 있어 편히 앉아 술잔을 함께 띄우네.’ 다산, 초의, 남종화 대가인 소치 허련 등이 이 정원에 모여 학문을 논하고 예술을 즐겼다.백운동 원림은 담양 양산보 소쇄원, 완도군 보길도 윤선도 부용동과 함께 호남 3대 정원으로 꼽힌다. 조선 중기 이담로가 1660년대에 조성한 후 대대로 장손이 물려받아 살면서 가꾸고 있다. 2012년 제12대 백운동 주인이 된 이승현 씨(65)가 2015년에야 이 정원을 일반에 개방했으니 그전까지는 정말로 비밀의 정원이었다. 2019년에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이 됐다.이 씨와 함께 백운동 원림을 둘러봤다. 신선이 머무는 곳이란 뜻의 정선대(停仙臺)에 오르니 월출산 봉우리들이 한눈에 조망된다. 동쪽 뜰 운당원은 왕대나무밭에 눈이 쌓이면 그렇게 아름답다고 한다. 본채인 자이당 마루에 앉으니 홍매화가 피어난 정원이 평온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무심한 듯 놓여 있는 몇 개의 커다란 돌은 잠시 근심을 내려놓으라고 마당에 찍은 점(點)일까. 정원을 만든 이담로의 묘소 뒤로는 오래된 동백나무가 있다. 조만간 붉은 동백이 만개해 묘 위에 소복하게 내려앉는 장관이 펼쳐질 것이다.●고산의 정신이 담긴 정원 문화 해남은 천혜의 풍광과 더불어 차(茶)와 걷기 같은 정원 문화가 두루 발달한 곳이다. 3월 초 황토와 청보리가 어우러진 해남 들녘은 생명의 기운이 가득했다. 달마산 기암절벽 위 신비로운 암자인 도솔암을 향해 걸어보았다. 미황사에서부터 능선 따라 올라가도 되지만 도솔암 주차장에서 30분 정도 걸어도 다다를 수 있다. 바위 병풍이 화창한 날씨를 만나 바다 전망과 어우러지니 이곳이 왜 해남 제1경인지 알겠다. 도솔암이야말로 진정한 암석원(rock garden)이었다. 도솔암 오가는 길에 ‘봄 처녀’라는 꽃말을 가진 토종 꽃 산자고와 봄까치꽃을 만나 반가웠다.해남읍 연동리에 있는 고산 윤선도 고택 사랑채인 녹우당은 효종이 고산에게 내려준 경기 수원의 집을 현종 9년(1668년)에 해남으로 옮겨온 것이다. 해남 윤씨 19대 한경란 종부에 따르면 고산의 고조부 어초은 윤효정이 지었던 원래 집터에 사랑채를 옮기다 보니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을 이루게 됐다. 어초은 사당 옆에는 동백꽃이 피었고, 뒷산에는 500년 넘은 비자나무숲(천연기념물 제241호)이 우거졌다. 사물의 이치를 탐구해 지혜에 이르는 격물치지(格物致知)를 고산은 정원에 구현했다. 담장 옆 매화 향기가 너무도 은은해 한참동안 발을 뗄 수 없었다.해남에서 발견한 새로운 비밀의 정원은 두륜산 자락 ‘설아다원’이다. 차 마시며 힐링하는 젊은 감성의 한옥 스테이 뒤편으로 3만3000㎡(약 1만 평) 규모 유기농 차밭 정원이 펼쳐진다. 녹나무, 삼나무, 소나무가 둘러싼 그림 같은 풍경이다. 방문객이 찻잎을 직접 따서 덖으며 차를 만들어 볼 수 있다. 프랑스 쇼몽 가든 페스티벌에 온 듯 정원에 위트와 철학을 담은 ‘포레스트 수목원’, 호수와 정원 산책로가 호젓한 해남 민간 정원 1호 ‘문가든’도 들러보자.●미래 세대를 위한 ‘산이정원’이제 새로운 명소를 여행 리스트에 올려야 한다. 해남군 산이면 구성리에 5월 초 문을 여는 산이정원이다. ‘산이 정원이 된다’는 뜻을 담은 정원형 식물원이다. 30여 년간 경기 가평 아침고요수목원을 일군 이병철 산이정원 대표(서남해안기업도시개발 부사장)가 새로운 경관을 만들고 있다. 2025년까지 조성할 52만3000㎡(약 16만 평) 중 16만5000㎡(약 5만 평)가 이번에 문을 연다. 산이정원은 보성그룹, 전남도, 전남개발공사 등이 세운 특수목적법인(SPC) 서남해안기업도시개발의 ‘솔라시도(태양을 뜻하는 solar와 바다를 뜻하는 sea의 합성어)’ 프로젝트 중 하나다. 솔라시도는 민간이 이끄는 국내 최대 규모 신(新)환경 스마트시티 사업이다. 산이정원은 이 도시의 상징이 될 예정이다.미리 가본 산이정원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바닷물이 호수가 된 물이정원이었다. 시냇물을 지나 백운동 원림에 들어서듯 호수를 건너 미래 세대를 위한 공간에 들어서게 된다. 물이정원에는 어른들의 잃어버린 꿈과 아이들이 찾는 꿈을 동시에 담은 이영섭 작가의 ‘어린왕자’ 작품도 설치돼 있다.산이정원은 정원이 어떻게 생태와 미래를 담아야 하는지 보여준다. 일년초로 화려한 꽃밭을 꾸미는 게 아니라 여러해살이 야생화와 수목으로 사계절 지속 가능한 아름다움을 전한다. 높은 곳에서 조망하면 나무들이 해남향교에서 문양을 딴 연꽃과 붉은 홍가시나무 형태를 이룬다. 사이프러스를 죽 심어 이탈리아 토스카나 정원을 연상시키는 드넓은 ‘하늘마루 정원’에서는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다.산이정원은 정원도시포럼과 손잡고 기후위기를 비롯한 미래 이슈에 대응하는 정원 도시를 모색한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미래 세대를 위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탄소 저감나무 2050그루를 기부받아 심은 ‘약속의 정원’, 청띠제비나비 서식처인 후박나무 군락지를 보존해 명상을 이끄는 ‘나비의 숲’, 인생 최고의 서약을 위한 ‘웨딩 가든’…. 언덕 위 커다란 동백나무는 마을의 어르신이 100여 년 전 선조가 후손을 위해 심어주신 뜻을 담아 정원 측에 전달했다. 우리 정원의 원류와 미래를 함께 본 여행이었다. 땅을 잘 읽어내 한국의 아름다움을 물려주는 백운동 원림과 녹우당의 정신을 산이정원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바닷물 염분을 차단해 간척지의 기적을 이뤄내는 산이정원에서 동박새 소리를 듣고 오색기린초와 바위솔을 보았다. 그 작은 생명체들이 참 귀하고 감사했다. ●강진과 해남 별미⓵다산밥상=강진 대표 관광지인 사의재 주모가 차려주는 아욱된장국과 바지락전 맛집.⓶원조 해남고구마빵 피낭시에=해남 대표 특산물 해남고구마 모양과 색깔을 그대로 살린 빵이 인기인 곳.⓷해남 성내식당=된장 육수 한우 샤부샤부 전문점. 반찬으로 나오는 김국이 별미.⓸땅끝정인숙칼국수=진한 국물에 도톰한 면이 어우러진 팥칼국수와 동지죽이 유명한 해남 맛집.강진·해남=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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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주바위솔 같은 자생식물 살려 지역 소멸 막겠다”

    “진주바위솔, 정선국화, 울릉제비꽃은 원산지 명칭을 이름에 담은 아름다운 우리나라 자생식물입니다. 지역의 명칭을 딴 한반도 특산식물이 전국 45개 지방자치단체에 57종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심각하게 훼손돼 사라지고 있습니다. 국내 최고의 자생식물 증식 기술을 갖춘 국립수목원이 이 식물들을 잘 보존해 지역의 브랜드 경쟁력을 높이고 지역 소멸을 막는 데 기여하겠습니다.” 취임 50일을 맞은 임영석 국립수목원장(47)을 만났다. 국립수목원은 연간 40만 명이 방문하는 국민의 녹색 쉼터이자 다양한 산림생물종을 연구하는 기관이다. 우리 자생식물에서 미래를 찾는 그는 ‘미스김라일락’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야생화인 북한산 백운대의 털개회나무가 1948년 미국으로 넘어가 미스김라일락으로 개량돼 세계적 관상수가 되었습니다. 자생지가 한국인데 지금은 우리가 역으로 수입해 로열티를 내고 있으니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그는 “지역 자생식물이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지역 소멸을 극복할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국립수목원이 각 지역의 자생식물을 증식하고, 지자체들은 농업기술센터를 통해 생산하면 자생식물로 지역의 스토리를 풀어내는 ‘지역 브랜딩’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울릉제비꽃을 보기 위해 울릉도 여행을 떠나면 그것이 곧 ‘가든 투어리즘’이다. 지역 자생식물은 정원의 식물 소재나 반려식물로 활용할 수 있고 추출물이 항노화 기능 등을 갖기도 해 산업화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식물을 통해 국가와 지자체가 상호 협력하는 ‘식물 거버넌스’를 구축하겠습니다. 벌써 몇몇 지자체장이 관심을 보입니다. 순천만국가정원처럼 지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지역 발전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주인도네시아 한국 대사관과 유엔식량농업기구 등 해외 근무 경험이 풍부한 임 원장은 식물 통일에 대한 열망이 각별하다. “외국인들에게 가장 신비로운 장소가 비무장지대(DMZ)입니다. 세계적 생태연구 보고(寶庫)죠. 국립수목원은 2016년 강원 양구군에 국립DMZ자생식물원을 열고 북방계와 북한의 식물까지 두루 연구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남과 북이 같은 식물을 두고 다른 이름을 부르지만 지금 연구해두면 통일이 됐을 때 식물을 통해 우리 민족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될 수 있을 겁니다.” 2000년대 중반 산림 치유 개념을 국내 행정에 도입하고 지난해 산림청에 정원 조직을 신설하는 실무를 맡았던 그는 정원 치유에 주목하고 있다. “정원은 청소년 등 현대인의 마음의 병을 위로하는 데 효과가 있습니다. 다양한 전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지속 가능한 생물 다양성의 중요성을 알리겠습니다.” 올해 5월 우주항공청 발족을 앞두고 기존의 우주 농업과는 차별되는 식물 연구에도 시동을 걸고 있다. 우주의 극한 환경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우주 식물, 우주선 안에 반려식물이 공존하는 정원 환경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 느티나무로 만든 손목시계를 차고 다닌다. “나무는 자꾸 봐야 정이 들기 때문”이란다. 올해 식목일 무렵에는 ‘어린 왕자 프로젝트’도 펼칠 예정이다. 국립수목원에서 마음에 드는 나무를 골라 ‘내 나무’로 삼는 캠페인이다. 우선은 직원들을 대상으로 시작한다. “어린 왕자가 장미꽃과 관계를 맺듯 내 나무를 정해 이름을 지어 불러주고 돌보는 것입니다. 잘생긴 나무를 좋아할 수도 있지만 연약한 나무에 마음이 향할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나라에는 72억 그루의 나무가 있습니다. 우리 국민이 삶 속에서 ‘내 나무’를 가졌으면 합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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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주바위솔 등 우리 자생식물 살려 지역소멸 막겠다”[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진주바위솔, 정선국화, 울릉제비꽃은 원산지 명칭을 이름에 담은 아름다운 우리나라 자생식물입니다. 지역의 명칭을 딴 한반도 특산식물이 전국 45개 지방자치단체에 57종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심각하게 훼손돼 사라지고 있습니다. 국내 최고의 자생식물 증식기술을 갖춘 국립수목원이 이 식물들을 잘 보존시켜 지역의 브랜드 경쟁력을 높이고 지역소멸을 막는 데 기여하겠습니다.”취임 50일을 맞은 임영석 국립수목원장(47)을 만났다. 국립수목원은 연간 40만 명이 방문하는 국민의 녹색 쉼터이자 다양한 산림생물종을 연구하는 기관이다. 그는 ‘미스김라일락’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야생화인 북한산 백운대의 털개회나무가 1948년 미국으로 넘어가 미스김라일락으로 개량돼 세계적 관상수가 되었습니다. 자생지가 한국인데 지금은 우리가 역으로 수입해 로열티를 내고 있으니 안타까운 노릇입니다.”●“지역 식물 통해 지역 브랜드 만들자”유전자원을 사용하며 생기는 이익을 공유하기 위한 국제협약인 나고야의정서(2014년)가 발효되면서 생물자원의 주권 확립에 대한 국가 간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생물자원 무기화에 따른 생물 주권 활용 발굴과 실용화 기술개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임 원장은 국립수목원의 자생식물 증식기술에서 이런 상황을 헤쳐갈 해법을 찾는다. “지역 자생식물이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지역소멸을 극복할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국립수목원이 각 지역의 자생식물을 증식하고, 지자체들은 농업기술센터를 통해 생산하면 자생식물로 지역의 스토리를 풀어내는 ‘지역 브랜딩’이 됩니다. 울릉제비꽃을 보기 위해 울릉도 여행을 떠나면 그것이 곧 ‘가든 투어리즘’입니다. 지역 자생식물은 정원의 식물 소재나 반려식물로 활용할 수 있고 추출물이 항노화 기능 등을 갖기도 해 산업화도 가능합니다. 식물을 통해 국가와 지자체가 상호 협력하는 ‘식물 거버넌스’를 구축하겠습니다. 벌써 몇몇 지자체장이 관심을 보입니다. 순천만국가정원처럼 지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지역 발전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국내에 ‘국립’이라는 명칭을 쓰는 수목원은 여럿 있지만 국가 공무원이 운영하는 수목원은 국립수목원이 유일하다. 1987년 광릉수목원으로 개원해 1999년 국립수목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광릉숲은 조선의 제7대 왕 세조의 능(陵)인 광릉이 조성된 후 부속림으로 지정돼 엄격하게 관리돼 광릉요강꽃과 장수하늘소 등 희귀특산생물이 사는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이다. 국립수목원은 이런 광릉숲뿐 아니라 경기 양평의 유용식물증식센터, 강원 양구 펀치볼 일대의 국립DMZ자생식물원, 강원 인제 점봉산과 경북 울릉도의 시험림 관리도 맡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생태적 가치가 가장 우수한 곳들이다. 20여 년간 산림청의 엘리트 공무원 코스를 밟아온 그가 국립수목원을 이끌게 되자 조직에 신선한 긴장감이 돌고 있다. “취임해서 국립수목원 직원들에게 질문했습니다. 우리 국립수목원이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가치가 무엇이냐고요. 그 명확한 답을 찾는 게 우리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기초연구는 수목원 관리 운영과 함께 국립수목원의 중요한 한 축이되, 그 연구가 국민 생활과 동떨어지면 안 됩니다. 우리 조직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려 나가겠습니다.”●식물통일 준비와 정원문화 확산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관과 유엔식량농업기구 등 해외 근무 경험이 풍부한 임 원장은 식물통일에 대한 열망이 각별하다. “외국인들에게 가장 신비로운 장소가 비무장지대(DMZ)입니다. DMZ는 70여 년간 인간의 간섭이 최소화한 세계적 생태연구의 보고(寶庫)입니다. 국립수목원은 2016년 강원 양구군에 우리나라 최북단 식물원인 국립DMZ자생식물원을 열고 북방계와 북한의 식물까지 두루 연구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남과 북이 같은 식물을 두고 다른 이름을 부르지만 지금 연구해두면 통일이 됐을 때 식물을 통해 우리 민족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식물 보전과 복원을 통해 가장 아름다운 ‘식물통일’을 준비하겠습니다.”2000년대 중반 산림치유 개념을 국내 행정에 도입하고 지난해 산림청에 정원 조직을 신설하는 실무를 맡았던 그는 요즘 정원치유에 주목하고 있다. “정원은 청소년 등 현대인의 마음의 병을 위로하는 데 효과가 있습니다. 다양한 전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지속가능한 생물다양성의 중요성을 알리겠습니다.”지난달에는 경기 광주시 곤지암리조트에서 전국 지자체 정원업무 관계자 200여 명을 불러모아 ‘2024 대한민국 정원네트워크 워크숍’ 행사도 열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정부와 지자체, 민간이 함께 노력해 모두가 정원이 풍부한 도시에서 삶의 질을 높여나가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임 원장에 따르면 이달 초 국립수목원 숲생태관찰로가 25년만에 새단장돼 선보였다. 숲의 천이과정을 볼 수 있는 460m 데크길로 조성된 공간으로, 동선의 경사를 낮춰 보행이 불편한 이용자도 편안하게 숲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요즘 구근식물이 싹을 내밀고, 큰산개구리가 우는 국립수목원에는 새들을 관찰하러 오는 관람객들도 눈에 많이 띈다.●미래를 향한 식물 연구와 교감국립수목원의 미래를 향한 식물 연구는 우주에도 눈을 돌렸다. “미 할리우드 영화 ‘마션’에서 주인공이 우주선 안에서 감자를 키웠듯, 그동안 우주 환경에서 먹을 수 있는 작물 재배 연구가 있었는데요. 저희는 우주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우주 식물 연구, 우주 선체에 반려식물이 공존하는 정원환경을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다행히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교감이 시작돼 새로운 접근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임 원장은 경기 용인 자연농원(현 에버랜드) 사택에서 태어나 원예, 조경, 산림자원학을 두루 공부했다. 국내 1세대 조경가로 삼성래미안 아파트 조경을 담당했던 임삼춘 전 삼성물산 고문이 부친이다. 나무로 만들어진 그의 손목시계가 궁금했다. “인도네시아에서 흑단으로 만든 시계가 있는 걸 보고 우리 나무로 시계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싶어 5종류의 수종을 테스트해봤습니다. 이건 느티나무로 만든 시계에요. 나무는 자꾸 보고 만져봐야 정이 듭니다.”그는 올해 식목일 무렵 ‘어린 왕자 프로젝트’를 펼칠 예정이다. 국립수목원에서 마음에 드는 나무를 골라 ‘내 나무’로 삼는 캠페인이다. 우선은 직원들을 대상으로 시작한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반려식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졌습니다. 흔히 ‘내 나무’를 갖는다고 하면 나무 심기부터 생각하는데, 이 생각을 바꿔보면 어떨까요. 어린 왕자가 장미꽃과 관계를 맺듯 내 나무를 정해 이름을 지어 불러주고 돌보고 안아주는 것입니다. 잘생긴 나무를 좋아할 수도 있지만 위태로운 환경에 심어진 연약한 나무에 마음이 향할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나라에는 72억 그루의 나무가 있습니다. 우리 국민이 삶 속에서 ‘내 나무’를 가졌으면 합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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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상에 들어온 가드닝…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 가보니[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3월 3일까지 열리는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 다녀왔습니다. 올해가 벌써 29번째인 이 박람회는 매년 30만 명 이상이 찾는 국내 최대 규모의 리빙 전시회입니다. 올해에도 450여 개 브랜드가 참여했는데요. 특히 가드닝 부스들이 꾸려져 관람객이 몰린 모습을 보니 확실히 우리나라에 정원문화가 확산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가드닝 라이프 스타일을 콕 찍어 보고 싶다면 코엑스 3층 D홀로 직행하셔도 좋습니다. 가드닝 라이프 스타일 편집숍 ‘그린무어’가 가장 먼저 시선을 잡아끕니다. 서울 서초구 신원동에 매장을 둔 이 회사는 김민경 공동대표(31)와 그의 영국인 남편 벤자민 피셔 공동대표(30)가 함께 이끄는 곳이었습니다. 영국에서 아내는 패션, 남편은 약학을 공부하다가 만나 서울에서 가드닝 회사를 차리게 됐다고 합니다. 남편의 고향이 영국 런던 근교의 동화같이 예쁜 마을 코츠월드이고, 아내의 부모님은 경기 과천과 서울 서초동에서 오랫동안 조경 농장을 하셨다니 운명적 만남이 아니었을까요.이곳의 전시 부스에는 영국에서 직수입한 가드닝 제품들이 확실히 많습니다. 전 세계 가드너들이 선망하는 영국왕립원예협회(RHS)의 사슴 가죽 가드닝 장갑을 비롯해 캠브리지대학 식물원의 일러스트 엽서, 각종 꽃무늬 티 타월 등은 보고만 있어도 흐뭇해집니다. 다알리아, 수선화, 개나리재스민, 수염패랭이 등의 식물 화분도 살 수 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영국의 자연보호 민간단체 내셔널트러스트가 펴낸 ‘시크릿가든’이라는 책도 샀습니다. 같은 제목의 기사를 연재하는 입장에서 얼마나 반갑던지요. 넋 놓고 예쁜 제품들을 탐하다가는 가산 탕진할 수 있으니 주의 바람입니다!‘정원생활 바이 오랑쥬리’ 부스에서 주례민 대표도 만났습니다. 정원생활 바이 오랑쥬리는 지난해 9월25일 ‘김선미의 시크릿가든’을 통해 소개했던 경기 용인의 가든센터입니다(). 주 대표는 말합니다. “라이프스타일에 식물이 빠질 수 없어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 나왔습니다. 정원에 쓸 수 있는 수반, 가드너들이 직접 손으로 그린 그림, 국내에서 제작한 호미와 가방 등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정원 설계 시공에 대한 협업 제안도 환영합니다.”‘송버드(Songbird)’라는 업체도 흥미로웠습니다. 플랜테리어(plant+interior·식물 인테리어)에 빠질 수 없는 게 화분인데요. 이 업체는 개성 넘치는 화분마다 이름을 붙여 화분의 존재감을 묵직하게 합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이 절로 떠오릅니다. 화분 위쪽에 식물을 담는 ‘큐피드’와 ‘버그 라이프’ 같은 화분은 곁에 두고 보면 자주 얼굴에 미소를 짓게 될 것 같아요.도시의 사무실과 아파트에서 한 뼘 실내 정원을 가꿀 수 있는 플랜테리어 모듈을 판매하는 ‘서울 가드닝 클럽’, 수경 식물을 선보이는 ‘메이크 정글’, 가드닝 앞치마와 장갑 등 각종 가드닝 용품을 선보이는 ‘세븐가드너스’, 토분을 파는 ‘그로브팟’ 매장도 들러보세요. 1층에 있는 제주 ‘스누피가든’ 매장에서는 각종 스누피 관련 상품을 판매합니다. 캠핑존과 상담존 등 스누피 캐릭터들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들이 특히 인기네요.가드닝 매장이 아니어도 확실히 요즘의 리빙 트렌드는 식물과 함께 하는, 심신의 고요한 평화를 꿈꾸는 삶을 지향합니다. 서영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임태희 디자이너는 ‘집: Sweet Home’이라는 주제로 기획관을 선보이면서 행복이 가득한 집을 10개의 공간으로 구현했습니다. 요리가 취미인 아빠의 방, 식물을 아끼고 사랑하는 섬세한 아들의 방…. 버려진 등을 뜨개질한 천으로 감싸서 만든 리사이클 새장 등을 보면 우리 시대가 원하는 따뜻함과 다정함이 무엇인지 느껴집니다.이 행사를 마련한 이영혜 디자인하우스 대표는 말합니다. “그린 문화로서, 환경을 위해서라도 정원문화와 정원산업은 앞으로 더욱 퍼져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가드닝은 우리 삶에 위로를 주니까요.”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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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I가 나만의 맛을 추천해주는 SPC ‘워크샵 바이 배스킨라빈스’

    인공지능(AI)이 나에게 맞는 아이스크림 맛을 추천해주는 공간이 생겼다. SPC 배스킨라빈스가 최근 문을 연 ‘워크샵 바이 배스킨라빈스(이하 워크샵)’이다. AI를 포함해 차세대 제품 연구개발(R&D) 역량을 선보이는 실험과 창조의 공간이다. ‘와사비’나 ‘크림브륄레’ 맛도 새로 만들었다. 서울 강남구 논현로 배스킨라빈스 본사 사옥 ‘SPC 2023’ 1층에 위치한 330㎡ 규모의 워크샵은 배스킨라빈스 기술력이 담긴 제품들을 비롯해 이 회사 기획자와 연구원들의 혁신적인 제품들을 가장 먼저 선보이는 곳이다. 소비자 반응을 확인해 가맹점 확대 적용을 테스트하는 등 R&D 센터로서의 기능을 수행할 계획이다.특히 오픈AI가 개발한 챗GPT를 통해 신제품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생성형 AI로 제품 비주얼까지 그려내는 차세대 상품 개발 모델인 ‘배스킨라빈스 AI NPD(New Product Development) 시스템’을 최초로 시범 운영한다. 워크샵 매장에서만 접할 수 있는 제품 라인업으로서 빅데이터 딥러닝 기술 기반 AI를 접목해 신제품 ‘딥 플레이버(Deep Flavor)’도 매달 선보이게 된다.워크샵 매장은 차별화된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브랜드 스토리텔러 ‘닥터’를 운영한다. 소비자들에게 취향에 맞는 아이스크림 맛을 추천하고, 배스킨라빈스 브랜드 스토리를 일대일로 설명해준다. 배스킨라빈스는 올해 상반기 중 닥터와 함께하는 ‘아이스크림 도슨트’ 프로그램을 선보여 소비자들에게 아이스크림에 대한 전문적이고 프라이빗한 경험을 선사할 예정이다.배스킨라빈스는 SPC그룹의 마케팅 솔루션 계열사 섹타나인과 협업해 2300만 명의 회원을 보유한 멤버십 서비스 ‘해피포인트’의 빅데이터를 토대로 고객들이 선호하는 맛을 분석해 반영한 제품을 워크샵 매장에 새롭게 내놓았다. ‘와사비’와 ‘크렘브뢸레’ 등 창조적인 맛을 포함해 기존의 ‘그린티’ 맛을 다양하게 변주한 ‘그린티 오렌지 자스민’과 ‘그린티 얼그레이’ 등의 맛도 만나볼 수 있다. 동물, 과일, 캐릭터 등을 달걀 모양의 케이크로 형상화해 케이크의 무궁무진한 변신을 담은 워크샵 매장만의 시그니처 ‘에그 케이크’ 라인업도 최초로 공개한다.워크샵 매장은 3가지 콘셉트의 공간으로 구분해 브랜드 체험을 강화했다. △워크샵에서만 만날 수 있는 맛을 포함해 총 48종의 플레이버가 스토리와 함께 준비된 스토리 존 △ 매장에서 셰프가 직접 제조한 프리미엄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선보이는 케이크 존 △이탈리안 정통 스타일의 젤라또 12종과 나만의 토핑을 조합해 즉석에서 즐길 수 있는 ‘젤라또 라이브 스테이션’이 마련되어 있는 버라이어티 존 등이다.배스킨라빈스 관계자는 “워크샵은 AI와 빅데이터 분석 등 차세대 기술을 접목한 혁신적인 신제품을 가장 먼저 선보여 소비자 반응을 확인하고 배스킨라빈스의 미래를 제시하는 R&D센터 기능을 담당할 것”이라며 “워크샵 매장에서 아이스크림을 매개로 소비자들에게 보다 전문적이고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겠다”고 설명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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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식과 휴식으로 봄을 맞는 호텔 패키지

    《곧 봄이다. 봄기운 맞으러 멀리 떠나볼 수도 있지만 서울 시내 호텔에서 미식과 휴식을 누리는 것도 봄을 편안하고 화사하게 맞는 방법이다. 다채로운 패키지 프로그램들을 소개한다.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스트로베리 딜라이트(Strawberry Delight)’ 패키지서울 남산에 위치한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은 ‘스트로베리 딜라이트(Strawberry Delight)’ 패키지를 선보인다. 객실의 풀에 몸을 담그며 프라이빗한 휴식을 즐기고, 오후에는 달콤한 디저트와 따뜻한 차를 맛보며 여유로운 시간을 즐길 수 있도록 구성됐다. △객실 1박 △그라넘 다이닝 라운지 조식 2인 △그라넘 다이닝 라운지 애프터눈 티 세트 ‘스트로베리 에디션’ (2인) △실내 수영장, 피트니스 클럽 2인 무료 입장의 혜택이다.그라넘 다이닝 라운지에서 즐기는 애프터눈 티 세트 ‘스트로베리 에디션’은 제철 딸기를 활용한 디저트와 차를 제공한다. ‘딸기의 제왕’으로 불리는 신선한 킹스베리 생딸기를 비롯해 딸기 크림 브륄레, 딸기 피낭시에, 레드벨벳 케이크, 딸기 다쿠아즈 등 아기자기한 비주얼의 디저트와 크리스피 새우, 모르타델라 파니니 등 한입에 먹기 좋은 메뉴들이 음료와 함께 나온다. ‘스트로베리 딜라이트’ 객실 패키지는 3월 28일까지 공휴일을 제외한 매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이용 가능하다.비스타 워커힐 서울 ‘슈퍼 비스타(Super Vista)’ 패키지비스타 워커힐 서울의 ‘슈퍼 비스타(Super Vista)’ 패키지는 최상급 유기농 말차와 천연 재료만으로 블랜딩된 슈퍼 말차 홈카페 세트를 제공한다. 슈퍼 비스타 Ⅰ패키지는 비스타 딜럭스 룸과 슈퍼 말차 홈카페 세트로 구성됐다. 슈퍼 비스타 Ⅱ 패키지에는 더 뷔페 조식도 포함돼 있다.르메르디앙 서울 명동‘세이버 더 고메(Savour the Gourmet)’ 패키지르메르디앙 서울 명동은 ‘세이버 더 고메(Savour the Gourmet)’ 패키지를 선보인다. △디럭스 킹 또는 디럭스 더블 1박 △르메르디앙 & 목시 서울 명동 총 4개의 레스토랑 & 바 내 이용 가능한 5만 원 상당의 크레딧 △실내 수영장 및 △피트니스센터 무료 이용 혜택이 제공되며 △르메르디앙 서울 명동 시그니처 비치타월 1개도 선물로 증정된다. 서울드래곤시티 ‘프리미엄 딤섬 코스’ 패키지신개념 라이프스타일 호텔플렉스(HOTEL-PLEX) 서울드래곤시티가 3월 30일까지 ‘프리미엄 딤섬 코스 패키지’를 운영한다. △노보텔 스위트·노보텔 객실 1박 △페이 프리미엄 딤섬 코스 2인 △부대시설 이용으로 구성된다. 컨템포러리 차이니즈 다이닝 페이(FEI)에서 대표 딤섬 메뉴인 샤오룽바오, 하가우, 구채교, 샤오마이, 차슈바오를 비롯해 해물 누룽지탕, 깐풍기 등의 특선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식사 메뉴와 후식, 보이차도 제공된다. 소피텔 앰배서더 서울 ‘르 봉 디망쉬(Le Bon Dimanche)’ 선데이 디너 패키지소피텔 앰배서더 서울은 석촌호수 조망의 객실 투숙과 프렌치 뷔페로 주말의 재충전을 만끽하는 선데이 디너 패키지 ‘르 봉 디망쉬(Le Bon Dimanche)’를 선보인다. △석촌호수 전망의 럭셔리 레이크 객실 1박 △주말 프렌치 뷔페 르 봉 마르셰(Le Bon March) 일요일 디너 2인 식사 △오후 2시 레이트 체크아웃 △시크 비스트로 페메종(Fait Maison) 조식 20% 할인 혜택이 포함되어 있다. 계절에 어울리는 프랑스 지역 가스트로노미와 프랑스 장인의 치즈 셀렉션을 즐기며 여유로운 일요일을 만끽할 수 있는 르 봉 디망쉬 패키지의 예약은 6월 27일까지, 숙박은 일요일 체크인에 한해 6월 30일까지다.안다즈 서울 강남‘식음 크레딧(F&B Credit Package)’ 패키지서울 강남구 압구정역에 인근에 위치한 하얏트 체인의 럭셔리 라이프스타일 호텔 안다즈 서울 강남은 호텔 내 다양한 미식을 즐길 수 있는 ‘식음 크레딧 패키지(F&B Credit Package)’를 선보인다. △객실 1박 △식음 크레딧 10만 원 △주류를 제외한 미니바 무료 이용 △실내 수영장과 피트니스센터 무료 이용 등 혜택이 포함된다. 제공되는 식음 크레딧은 조식과 룸서비스는 물론 모던 한식 다이닝을 선보이는 ‘조각보 키친’, ‘미트 앤 코 스테이크 하우스’, ‘바이츠 앤 와인’, 갓 구운 빵을 즐길 수 있는 ‘아츠’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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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트캉스, 호텔을 감각하는 우리 시대의 방식

    호텔은 여행의 공간이자 쉼의 공간이고 감각의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기꺼이 비용을 부담하고 고급 호텔에 들어서는 건 그에 아깝지 않은 만족감과 행복을 얻기 위해서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새하얗고 푹신한 침구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오감을 일깨우는 식사일 수도 있겠다. 천장이 높은 수영장, 시야가 탁 트인 피트니스룸, 향이 좋은 보디클렌저와 로션, 어마어마하면서도 세심한 꽃꽂이…. 우리는 취향에 따라 호텔을 고르기도 하지만 호텔에서 취향을 습득하기도 한다. 사랑받는 호텔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전략과 노고로 구석구석 공간을 채워 우리의 감각을 깨운다.호텔에서 경험하는 낯선 감각 중의 최고는 아트가 아닐까 한다.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거나 식사할 때 우리는 평소보다 느긋한 태도를 갖게 된다. 하루쯤은 호강하겠다는 마음이기 때문에 모든 감각을 열고 벽에 걸린 아트 작품을 들여다보는 여유가 생긴다. 요즘 호텔의 아트는 세계적 미술관이나 갤러리급이다. 홈페이지에 작품 소개를 상세히 해 두고, 원하는 투숙 고객에게는 아트 투어도 해준다. 공간의 모퉁이마다, 식사 대기 장소에도 아트 작품들이 있다. 400여 점의 아트 여행‘아트캉스’(아트+바캉스)로 입소문이 난 서울 강남구 역삼동 조선팰리스에 다녀왔다. 신세계그룹 조선호텔앤리조트의 최상급 브랜드 호텔로 2021년 5월 문을 연 조선팰리스에는 400여 점의 아트 작품이 곳곳에 비치돼 있다. 로비에 들어서면서부터 펼쳐지는 아트 여행의 시작은 미국 미술가 대니얼 아셤이다. 높이가 260cm에 달하는 ‘풍화된 푸른 방해석 모세상’(2019년)은 언뜻 보면 십계명을 든 모세상이지만 조각상의 벗겨진 부분에 푸른 수정들이 반짝인다. 미켈란젤로의 3대 조각으로 꼽히는 모세상과 똑같은 크기로 제작해 과거의 유물에서 새로움이 반짝이며 돋아나는 걸 표현했다. 신세계는 그룹의 자존심을 건 최상급 호텔을 브랜딩하면서 로비의 아트 작업을 얼마나 고민했을까. 그 선택이 아셤이었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면서도 흥미롭다. 1980년 태어난 아셤은 요즘 전 세계 명품 브랜드들이 손을 잡고 싶어 열광하는 예술가 중 한 명이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무려 143만 명. 최근에는 보석 브랜드 티파니와 ‘포켓몬 컬렉션’을 내놓았고, 크리스티앙 디오르와는 스니커즈와 가방, 포르쉐와는 ‘대니얼 아셤 포르쉐 911’을 선보였다. 그가 ‘미래의 유물’이라는 콘셉트를 갖고 발전시킨 세계관은 ‘허구의 고고학’이다. 구형 카메라 같은 사물들을 석고로 제작해 고고학 발굴현장에서 찾아낸 것처럼 펼쳐낸다. 그의 전시를 감상하다 보면 우리는 ‘미래의 과거’에 발을 딛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오토니엘의 구슬 꽃, 정해나의 책가도…조선팰리스는 해외 명품 브랜드 관계자들이 출장 와서 자주 찾는다. 스위트룸에서는 이들 브랜드의 홍보 행사도 종종 열린다. 서울 테헤란로 한복판에 위치해 고층빌딩 숲과 선정릉, 시그니엘 타워까지 바라보는 전망을 갖춰 한국의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이 호텔의 아트 컬렉션은 세계적 작가들에서부터 한국의 신진 작가들의 작품까지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지난해 프랑스 최고의 영예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은 현대 미술가 장 미셸 오토니엘의 ‘국화(Chrysanteme)’는 은박 위에 검은 잉크를 찍어 국화꽃을 표현했다. 파리 팔레 루아얄을 비롯해 국내에서 서울시립미술관과 덕수궁 연못 작품을 선보였던 그는 꽃 작품을 통해 생명력과 부활의 의미를 전한다. 벨기에 출신의 도예가이자 미술가인 요한 크레텐의 ‘글로리 스프링(Glory Spring)’은 황금빛 구슬들로 낙관적 미래에 대한 설레는 빛남을 담았다. 도서관과 궁전 같은 공적 장소를 촬영하는 라인하르트 괴르너의 대형 사진 작품들, 로버트 모어랜드의 미니멀리즘 패널 작품, 흑백의 대비와 질감의 극대화로 꽃을 추상화하는 조셉 스타쉬케베츠의 꽃 시리즈…. 세계적 거장의 작품 이외에 김지원, 양주혜, 장인희, 박민하 등 국내 중견작가와 신진 작가 작품들도 눈에 많이 띈다. 특히 정해나의 책가도는 전통 장식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점이 돋보인다. 가로, 세로 60cm의 정방형 작품은 집에 들이고 싶을 정도다. 실제로 젊은 고객들이 호텔의 작품을 구입할 수 있는지 종종 문의한다고 한다.‘이타닉 가든’에서의 아트 런치조선팰리스 36층에 위치한 한식당 ‘이타닉 가든’은 미셰린 1스타 레스토랑이다. 아름다운 한국의 식물을 새롭게 바라보고 나누기 위해 식당 이름을 ‘먹다(eat)’와 ‘보타닉 가든(botanic garden·식물원)’을 결합해 지었다. 이곳에 걸린 이정진 작가의 사진 작품 세 점은 수묵화 느낌이어서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준다.오픈 주방을 바라보는 U자형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테이블 중앙에는 이끼와 돌로 구현한 작은 정원이 있고, 각자의 자리 앞에는 세밀화로 그린 한식 재료 카드가 꽂혀 있다. 군고구마, 주전부리, 머위, 콩, 장, 대추, 매생이, 블랙 트러플, 한식 디저트가 담긴 자개함…. 카드마다 담긴 식재료에 대한 설명이 앞으로 다가올 식사에 대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예를 들어 머위에 대한 설명은 이렇다. “조선 정조 때 이만영의 글에 ‘백 가지 풀 가운데 머위만이 겨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머위는 강릉이 고향인 저에게는 어릴 적 ‘머구대(머위대의 방언) 나물 먹어봐’라고 하시며 숟가락 위에 얹어 주시던 할머니와의 추억이 담긴 소중한 식재료입니다.” MZ세대인 손종원 이타닉 가든 셰프는 이 추억을 머위 냉채로 풀어 가져왔다. 숯에 구워낸 머위와 절여낸 머위장아찌를 곱게 간 잣과 감을 함께 버무리고 대하, 관자, 북장 조개를 곁들여 다양한 식감을 갖게 한 냉채였다. 파래김을 종이학처럼 접어낸 주전부리도 감동이었는데, 한식 코스의 마지막 자개함은 한국의 미(美)의 결정판이었다. 나비와 모란 문양을 새긴 나전칠기함 서랍을 열 때마다 탄복이 터져 나왔다. 막걸리로 속을 채운 초콜릿 봉봉, 들깨 가나슈, 청 겨자 사과 젤리, 햇생강 찹쌀 약과, 도라지 정과, 곶감 단자…. 눈 속에 입속에 한국의 꽃 작품이 피어났다. 주변을 둘러보니 혼자 와서 점심 한식 코스를 즐기는 젊은 남성 몇몇이 보였다. 요리사들이 호텔에 찾아와 시식해보는 것일까 궁금해 호텔 측에 확인하니, ‘나만의 여유’를 찾아오는 MZ세대 고객이 많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젊은 여성이 혼자 와서 식사했는데, 원거리 연애를 하는 남자친구가 예약해줘서 온 것이었다. 천천히 음식을 음미하며 영상통화로 남자친구에게 그 과정을 전하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고 한다. 그렇다. 요즘 세대는 호텔을 감각한다. 호텔은 우리가 사는 하나의 방식이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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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즘 뜨는 아트를 보려면 호텔로 가라… ‘아트캉스’의 시대

    호텔은 여행의 공간이자 쉼의 공간이고 감각의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기꺼이 비용을 부담하고 고급 호텔에 들어서는 건 그에 아깝지 않은 만족감과 행복을 얻기 위해서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새하얗고 푹신한 침구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오감을 일깨우는 식사일 수도 있겠다. 천장이 높은 수영장, 시야가 탁 트인 피트니스룸, 향이 좋은 보디클렌저와 로션, 어마어마하면서도 세심한 꽃꽂이…. 우리는 취향에 따라 호텔을 고르기도 하지만 호텔에서 취향을 습득하기도 한다. 사랑받는 호텔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전략과 노고로 구석구석 공간을 채워 우리의 감각을 깨운다.호텔에서 경험하는 낯선 감각 중의 최고는 아트가 아닐까 한다.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거나 식사할 때 우리는 평소보다 느긋한 태도를 갖게 된다. 하루쯤은 호강하겠다는 마음이기 때문에 모든 감각을 열고 벽에 걸린 아트 작품을 들여다보는 여유가 생긴다. 요즘 호텔의 아트는 세계적 미술관이나 갤러리급이다. 홈페이지에 작품 소개를 상세히 해 두고, 원하는 투숙 고객에게는 아트 투어도 해준다. 공간의 모퉁이마다, 식사 대기 장소에도 아트 작품들이 있다. ●400여 점의 아트 여행‘아트캉스’(아트+바캉스)로 입소문이 난 서울 강남구 역삼동 조선팰리스에 다녀왔다. 신세계그룹 조선호텔앤리조트의 최상급 브랜드 호텔로 2021년 5월 문을 연 조선팰리스에는 400여 점의 아트 작품이 곳곳에 비치돼 있다. 로비에 들어서면서부터 펼쳐지는 아트 여행의 시작은 미국 미술가 대니얼 아셤이다. 높이가 260cm에 달하는 ‘풍화된 푸른 방해석 모세상’(2019년)은 언뜻 보면 십계명을 든 모세상이지만 조각상의 벗겨진 부분에 푸른 수정들이 반짝인다. 미켈란젤로의 3대 조각으로 꼽히는 모세상과 똑같은 크기로 제작해 과거의 유물에서 새로움이 반짝이며 돋아나는 걸 표현했다. 신세계는 그룹의 자존심을 건 최상급 호텔을 브랜딩하면서 로비의 아트 작업을 얼마나 고민했을까. 그 선택이 아셤이었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면서도 흥미롭다. 1980년 태어난 아셤은 요즘 전 세계 명품 브랜드들이 손을 잡고 싶어 열광하는 예술가 중 한 명이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무려 143만 명. 최근에는 보석 브랜드 티파니와 ‘포켓몬 컬렉션’을 내놓았고, 크리스티앙 디오르와는 스니커즈와 가방, 포르쉐와는 ‘대니얼 아셤 포르쉐 911’을 선보였다. 그가 ‘미래의 유물’이라는 콘셉트를 갖고 발전시킨 세계관은 ‘허구의 고고학’이다. 구형 카메라 같은 사물들을 석고로 제작해 고고학 발굴현장에서 찾아낸 것처럼 펼쳐낸다. 그의 전시를 감상하다 보면 우리는 ‘미래의 과거’에 발을 딛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오토니엘의 구슬 꽃, 정해나의 책가도…조선팰리스는 해외 명품 브랜드 관계자들이 출장 와서 자주 찾는다. 스위트룸에서는 이들 브랜드의 홍보 행사도 종종 열린다. 서울 테헤란로 한복판에 위치해 고층빌딩 숲과 선정릉, 시그니엘 타워까지 바라보는 전망을 갖춰 한국의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이 호텔의 아트 컬렉션은 세계적 작가들에서부터 한국의 신진 작가들의 작품까지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지난해 프랑스 최고의 영예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은 현대 미술가 장 미셸 오토니엘의 ‘국화(Chrysanteme)’는 은박 위에 검은 잉크를 찍어 국화꽃을 표현했다. 파리 팔레 루아얄을 비롯해 국내에서 서울시립미술관과 덕수궁 연못 작품을 선보였던 그는 꽃 작품을 통해 생명력과 부활의 의미를 전한다. 벨기에 출신의 도예가이자 미술가인 요한 크레텐의 ‘글로리 스프링(Glory Spring)’은 황금빛 구슬들로 낙관적 미래에 대한 설레는 빛남을 담았다. 도서관과 궁전 같은 공적 장소를 촬영하는 라인하르트 괴르너의 대형 사진 작품들, 로버트 모어랜드의 미니멀리즘 패널 작품, 흑백의 대비와 질감의 극대화로 꽃을 추상화하는 조셉 스타쉬케베츠의 꽃 시리즈…. 세계적 거장의 작품 이외에 김지원, 양주혜, 장인희, 박민하 등 국내 중견작가와 신진 작가 작품들도 눈에 많이 띈다. 특히 정해나의 책가도는 전통 장식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점이 돋보인다. 가로, 세로 60cm의 정방형 작품은 집에 들이고 싶을 정도다. 실제로 젊은 고객들이 호텔의 작품을 구입할 수 있는지 종종 문의한다고 한다.●‘이타닉 가든’에서의 아트 런치조선팰리스 36층에 위치한 한식당 ‘이타닉 가든’은 미셰린 레스토랑이다. 아름다운 한국의 식물을 새롭게 바라보고 나누기 위해 식당 이름을 ‘먹다(eat)’와 ‘보타닉 가든(botanic garden·식물원)’을 결합해 지었다. 이곳에 걸린 이정진 작가의 사진 작품 세 점은 수묵화 느낌이어서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준다.오픈 주방을 바라보는 U자형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테이블 중앙에는 이끼와 돌로 구현한 작은 정원이 있고, 각자의 자리 앞에는 세밀화로 그린 한식 재료 카드가 꽂혀 있다. 군고구마, 주전부리, 머위, 콩, 장, 대추, 매생이, 블랙 트러플, 한식 디저트가 담긴 자개함…. 카드마다 담긴 식재료에 대한 설명이 앞으로 다가올 식사에 대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예를 들어 머위에 대한 설명은 이렇다. “조선 정조 때 이만영의 글에 ‘백 가지 풀 가운데 머위만이 겨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머위는 강릉이 고향인 저에게는 어릴 적 ‘머구대(머위대의 방언) 나물 먹어봐’라고 하시며 숟가락 위에 얹어 주시던 할머니와의 추억이 담긴 소중한 식재료입니다.” MZ세대인 손종원 이타닉 가든 셰프는 이 추억을 머위 냉채로 풀어 가져왔다. 숯에 구워낸 머위와 절여낸 머위장아찌를 곱게 간 잣과 감을 함께 버무리고 대하, 관자, 북장 조개를 곁들여 다양한 식감을 갖게 한 냉채였다. 파래김을 종이학처럼 접어낸 주전부리도 감동이었는데, 한식 코스의 마지막 자개함은 한국의 미(美)의 결정판이었다. 나비와 모란 문양을 새긴 나전칠기함 서랍을 열 때마다 탄복이 터져 나왔다. 막걸리로 속을 채운 초콜릿 봉봉, 들깨 가나슈, 청 겨자 사과 젤리, 햇생강 찹쌀 약과, 도라지 정과, 곶감 단자…. 눈 속에 입속에 한국의 꽃 작품이 피어났다. 주변을 둘러보니 혼자 와서 점심 한식 코스를 즐기는 젊은 남성 몇몇이 보였다. 요리사들이 호텔에 찾아와 시식해보는 것일까 궁금해 호텔 측에 확인하니, ‘나만의 여유’를 찾아오는 MZ세대 고객이 많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젊은 여성이 혼자 와서 식사했는데, 원거리 연애를 하는 남자친구가 예약해줘서 온 것이었다. 천천히 음식을 음미하며 영상통화로 남자친구에게 그 과정을 전하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고 한다. 그렇다. 요즘 세대는 호텔을 감각한다. 호텔은 우리가 사는 하나의 방식이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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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시의 라운지로 변신한 오목공원 회랑의 마법[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서울 양천구 목동 오목공원에 갔던 건 오후 네 시쯤이었다. 35년 된 이 공원은 최근 리모델링 되면서 가로·세로 50m, 폭 8m, 높이 3.7m의 정사각형 회랑이 생겨났다. 그 회랑 위를 산책하는 느낌이 꽤 신선하다. 회랑 위에는 고등학생쯤 돼 보이는 남학생이 등받이가 있는 1인용 의자에 앉아 회랑이 둘러싼 잔디마당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시민들이 의자에 앉아 호수나 분수를 바라보며 쉬는 유럽의 공원들이 생각났다. 시선의 향방이 중요한가. 우리가 공원에서 바라는 건 부대낀 마음을 고요하게 내려놓는 일일 것이다.새 단장 된 오목공원의 의자는 가벼워서 쉽게 이동시킬 수 있었다. 공원에서 마음껏 의자를 움직여 쉴 자리를 잡는 건 엄청난 자유의지의 발현이다. 게다가 이 의자는 편안하게 몸을 파묻을 수도 있다. 롱 패딩을 입고 있던 그 학생은 무슨 생각을 그리 곰곰이 했던 것일까. 부디 편안한 마음을 얻으셨기를….●“사람을 생각하니 회랑이었다”이 공원을 변신시킨 ‘회랑의 마법사’를 만났다. 박승진 디자인스튜디오 로사이(loci) 대표(59)다. 한국을 대표하는 조경가인 정영선 조경설계 서안 대표와 함께 아모레퍼시픽의 서울 본사와 경기 오산 원료식물원, 서울 아산병원, 대구 사유원 등의 경관을 만들었던, 요즘 가장 잘 나가는 조경가 중 한 명이다. 오목공원 리모델링은 그의 첫 공원 프로젝트였다. 그를 만나기 전에 이전 조경작업들에 대해 질문하느라 통화한 적이 있다. 으스댐이나 꾸밈없이 나지막하게 설명하는 태도가 잘 깎은 단정한 연필 느낌이었다. 만나보니 그 느낌이 다르지 않았다. 대화를 나누다가 그의 아버지(고 박원근 전 경인일보 부사장)가 동아일보 수습기자 1기 출신의 사회부장을 지낸 사실도 알게 되었다. 어떻게 회랑을 생각해낸 걸까. 그는 2021년 어느 날 서울 양천구청 온수진 공원녹지과장으로부터 느닷없이 연락을 받았다. 오목공원 리모델링 운영위원회가 지명공모를 결정하면서 그의 참여를 부탁한 것이다. 다른 프로젝트들로 바쁘던 박 대표는 “며칠 생각해 보겠다”고 한 뒤 현장을 방문해봤다. ‘힌트가 잡히면 지명공모에 참여하고, 영 오리무중이면 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면서…. 그가 처음 와 본 오목공원은 어릴 적 부모님과 살던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단독주택 마당을 떠올리게 했다. “제가 화곡동에 살 당시에는 강서구, 양천구 구분도 없을 때였어요. 왠지 목동이 낯설지 않더라고요. 저희 화곡동 집은 대지 100평에 건물은 20평이 채 안 되고 나머지는 마당이었어요. 아버지가 아들 셋을 마당에서 키워야겠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아버지는 바쁜 와중에도 이런저런 꽃들을 심으셨습니다.” 공원 프로젝트는 의미가 있지만, 리모델링이란 건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를 새롭게 해야 하는지 고민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날 제법 내린 비가 그의 마음을 오목공원으로 이끌게 된다. “햇볕을 가리는 오두막 같은 데에서 장기를 두던 할아버지들이 비가 들이치니까 허겁지겁 떠나더라고요. 갑자기 공원이 휑해졌어요. 사람들이 공원에서 마음껏 머물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나온 오목공원 리모델링 콘셉트가 ‘어반 퍼블릭 라운지(Urban public lounge·도시의 공공 라운지)’였다. 로비는 서서 떠도는 공간이지만 라운지는 편하게 앉아서 차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다. 그렇게 도시인이 행복하게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상정하고 김희정 모스건축사사무소 대표와 회랑을 설계했다.“지명공모에 부탁을 받고 참여한 거니까 오히려 떨어져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과격한 방안을 낸 것 같아요. 과격하다는 건, 오래된 공원에 회랑이라는 건축물을 새로 넣는 게 부담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에요. 전통적으로 조경은 녹지 위주이고 기껏해야 정자 같은 시설을 배치하는 정도로 여겨졌거든요. 그런 기존 문법을 벗어나 회랑의 2층도 산책할 수 있게 하고, 공원의 가구도 고급으로 넣자고 했는데 덜컥 공모에 당선됐어요.”이 지점에서 서울 양천구청 온수진 공원녹지과장의 말을 들어보지 않을 수 없다. 오목공원의 변신은 박 대표가 3년 전 지명공모에서 발표한 계획과 크게 다르지 않게 구현됐다. 조경학도 출신으로 ‘2050년 공원을 상상하다’와 ‘공원주의자’ 책을 펴낸 온 과장의 말을 나중에 따로 들어봤다.“오목공원 지명공모 할 때 위원회 내부에서 가급적 원로 말고 중견 조경가에게 맡겨보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요즘 최고 인기인 박 대표님이 승낙을 안 하실 것 같아서 제가 직접 전화를 드렸던 것입니다. 저희가 한 일은 그저 최대한 설계자의 의도대로 조성되게 한 것뿐입니다. 양천구 입장에서는 박 대표님의 첫 공원 작품을 맞게 되어 영광입니다.”●“없애야 하는 이유가 없다면 남긴다”이제 오목공원에서는 비가 내린다고 쫓기듯 공원을 떠나지 않아도 된다. 회랑에서 공원을 바라보며 느끼면 된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계절의 감각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맛있는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을 수 있는 카페, 꽃집, 서점을 회랑 안에 들였으면 했는데 상업 시설이라 주변 상권과 부딪히더라고요. 대신 식물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공간,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어요.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을 수 있는 곳은 오목공원이 리모델링 한다니까 ‘스타벅스’와 ‘쉐이크쉑 버거’가 발 빠르게 공원 앞에 문을 열더라고요(웃음). 하긴 미국 쉐이크쉑 버거 본점도 뉴욕의 공원인 ‘메디슨 스퀘어 파크’ 안에서 시작했네요.”그의 말을 듣다 보니 캐나다 도시계획 전문가 찰스 몽고메리가 썼던 ‘우리는 도시에서 행복한가’라는 책이 떠오른다. 그는 이 책에서 세계의 주요 도시들이 도심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여 위로하는 사례들을 소개한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시에나 캄포 광장에서는 카페, 박물관, 원형극장이 어우러져 사람들을 광장에 머물게 한다. 17세기 초에 건립돼 프랑스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광장인 보주 광장은 처음부터 도시의 거실 역할을 하도록 설계됐다. 지금도 잔디와 분수, 광장을 둘러싼 카페들이 도시인의 행복한 머무름을 유도한다.박 대표는 의견을 더한다. “목동만 해도 도시의 편의시설들이 많은 지역이잖아요. 원룸주택이 많거나 소외된 동네에 더 많은 공원과 녹지가 필요합니다.”오목공원은 30년 넘은 공원이라 높이 10m가 넘는 나무들이 많다. 하지만 그 나무들 밑은 썰렁했다. 오랫동안 공원에 쉴만한 그늘이 없어 사람들이 나무 밑으로 몰렸었고, 키 큰 나무의 잎들이 햇빛을 가려 다른 식물들이 자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박 대표의 조경 원칙은 “없애야 하는 뚜렷한 이유가 없다면 남긴다”이다. 예전의 공원 돌담도 그대로 뒀다. 기존의 나무들은 남겨두고 팥배나무, 산딸나무, 황매화 같은 중간 키의 나무들과 맥문동 같은 초본류를 심어 숲을 다양한 층으로 구현했다. 이렇게 되면 숲의 밀도가 높아지고, 단위 면적당 배출 산소도 많아지게 된다.●창조적 활용이 기대되는 네모난 공간박 대표와 회랑에 의자를 나란히 두고 앉아 안쪽의 잔디마당을 바라보았다. 회랑은 바깥의 숲과 내부공간을 구분하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내부가 40cm 낮아 굳이 의자에 앉지 않아도 회랑 주변으로 많은 이들이 걸터앉을 수 있다. 실제로 점심시간 때 인근 회사원들이 그렇게 공원을 이용한다고 한다. 도시의 숲속 라운지는 밤에 또 얼마나 로맨틱할까. 비어있는 그 네모난 공간이 굉장히 창조적으로 활용이 가능한 장소란 사실을 알게 됐다.“제가 상상했던 쓰임새 중 하나는 오케스트라 공연이었어요. 사람들이 여기 앉아 감상할 수도 있고 회랑 위에 올라가서 볼 수도 있고요. 벼룩시장을 열어 공원이 지역사회 사람들을 모으는 기능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도시의 라운지 정원을 표방한 곳이니까 이 구조물을 잘 활용하면 많은 사람이 재미있게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아직은 날이 춥지만, 이제 곧 꽃 피는 봄이 오면 그 공간이 사람들의 어떤 일상으로 채워질지 기대가 되었다. 박 대표가 헤어지면서 ‘도큐멘테이션(DOCUMENTATION)’이라는 비매품 책을 건넸다. 2007년부터 10년간의 작업을 글과 사진으로 담은 책이었다. 천천히 탐독한 그의 글은 깊은 사유에 기반해 간결하고도 단단했다. 이 책에는 2015년 경남 클레이아크김해 미술관에서 열렸던 그의 작가정원 프로젝트 ‘아버지의 정원’도 실려 있다. 어릴 적 화곡동에 살았던 아버지의 정원을 소박하게 구현했던 작업이다. 책을 덮으며 생각했다. 오목공원에 사람들이 모여 꿈을 꾸고 희망을 품을 때 하늘에 계신 그의 아버지가 대견해 하실 것 같다고. ‘사람’을 생각하며 오래된 공원을 ‘숲이 있는 도시형 공공 라운지’로 바꾼 어느 조경 건축가의 꿈은 그 옛날 아버지의 정원에 핀 꽃과 풀에서 비롯됐을 것이라고.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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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가든’은 무엇을 담아야 하나[김선미의 시크릿가든]

    “K-가든을 너무 어렵게 접근하기보다 한 번도 한국 정원을 못 본 외국인들을 생각하면서 만들면 좋겠습니다. 다만 K팝이 우리 민요 형태가 아니듯 K-가든도 현대 감각으로 풀어야 합니다.” (최재혁 오픈니스 스튜디오 소장)“비무장지대(DMZ) 같은 한국의 분단 현실도 ‘K-’ 콘텐츠입니다. K-가든은 형태와 사상을 포함해 현대의 재료와 기술을 활용해 전통을 재해석한 한국의 정원입니다.” (정미애 국립수목원 연구사) 정원은 소득 3만 달러 시대의 여가문화로 꼽힌다. 정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요즘 ‘K-가든’이란 말이 자주 들린다. 지난해 10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국제원예박람회에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이 한국 정원을 조성한 이후 K-가든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다.K-가든은 당초 산림청에서 추진하는 정원 진흥사업에 명기된 용어다. 하지만 K-가든이 무엇인지 아직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했다. 외국에 조성하는 한국 정원인가, 한국 전통 정원을 구현한 정원인가. K-가든은 무엇을 담아야 하는가. 이런 고민 속에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이 6일 국립세종수목원 대강당에서 ‘한국의 정서와 개성을 담은 K-가든 워크숍: 정원, 한국을 담다’를 마련해서 다녀왔다. 시의적절하고 뜻깊은 행보였다고 생각한다.사회를 맡은 노회은 국립세종수목원 정원사업센터장이 이날 행사의 포스터를 가리키며 객석에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 이 포스터가 마음에 드시나요. 요즘 어린이들도 알만한 존재가 디자인했는데 말이죠.” 챗GPT가 30초 만에 뚝딱 만든 포스터였다. “포스터에서 일본 정원 느낌이 난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저희가 아무리 챗GPT에게 K-가든에 대해 새로운 명령을 내려도 일본 정원이나 중국 정원 같은 이미지가 계속 나옵니다. 그동안 일본과 중국 정원이 한국 정원보다 축적된 데이터가 많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죠. K-가든이 널리 퍼지면 그때에는 저희 마음에 쏙 드는 포스터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개회사를 맡은 류광수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이사장은 말했다. “K-가든은 급조된 개념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국립세종수목원은 ‘K-가든’과 ‘도시 속’을 키워드로 2020년 문을 열었거든요. 그런데 많은 분들이 해외에 조성하는 정원만 K-가든이라고 오해하는 것 같아요. 이런 오해를 불식시키려면 국내에서 무엇이 K-가든인지 모델을 제시해야 하는 거죠. K-가든은 기존의 한국 전통 정원과는 다릅니다. 전통 한복이 아니라 개량 한복을 어떻게 국민 생활 속에서 잘 보급하고 현대화시킬 것인가, 이게 K-가든 논의의 시작점이 돼야 할 것 같습니다. 반려식물 키트부터 스마트 가든, 정원도시, 정원박람회에 이르기까지 정원산업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해 K-가든이 진화해야 합니다. 정원의 형태와 디자인 등이 잘 정리돼 K-가든의 범위가 정립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가장 먼저 ‘국가별 대표정원 사례와 시사점’을 발표한 황주영 서울대 환경계획연구소 박사는 영국 프랑스 등이 정원을 문화유산으로 다뤄온 역사적 흐름을 소개했다. 황 박사는 “정자 놓고 소나무 심는 등 몇 가지 가시적인 오브제를 갖고 한국 정원이라고 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나라의 정체성과 문화를 어떻게 정원에 담는가”라고 했다. 영국다움, 프랑스다움처럼 한국다움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해외에서 한국적 요소를 재현할 수 있는 식물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너무 식물에만 치중하면 정원이 갖는 의미가 축소될 수도 있다고 했다.최재혁 오픈니스 스튜디오 소장은 카타르 도하에 조성한 1200㎡ 규모의 한국 정원 사례를 소개했다. 이 정원은 한국 전통 별서 정원의 공간 구성방식을 차용해 산수(山水)정원, 주택정원, 원림 정원 등 3개 공간으로 구성됐다. 한국 처마의 단아한 선과 물에 비치는 자연을 표현했다. “켜켜이 쌓인 산수를 지나 원림에 다다라서 조용히 머무는 정원의 이미지를 외국인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소쇄원이나 병산서원을 보면 자연에 터를 잡고 주변 자연을 정원의 일부로 끌어들인 선조들의 지혜를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의 검박한 아름다움을 생각하며 도하의 한국 정원은 마당에 여백을 뒀습니다. 세계 어디에서든 구할 수 있는 철 재료를 사용해 현대적 느낌으로 첩첩산중을 나타냈습니다. K-가든은 역사적 맥락 뿐 아니라 현대 조경을 포용력 있게 담아야 할 것입니다.”경기 가평 아침고요수목원에서 30여 년간 정원총괄 이사를 맡았던 이병철 보성그룹 부사장은 한국 정원의 미의 특성으로 곡선과 비대칭의 균형, 사계절이 분명한 다채로움을 꼽는다. 그는 K팝을 통해 K-가든의 발전방안을 찾아볼 수 있다고 했다. “요즘에는 한국인이 없거나 구성원이 다국적인 K팝 그룹이 많이 생기고 있잖아요. K팝처럼 수용성이 커져야 K-가든도 저변이 넓어질 것 같습니다. 그 점에서 일본 정원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계 유명 관광지에 가면 꼭 일본 정원이 있지요. 일본은 정원 문화 콘텐츠를 굉장히 단순하게 프로그램화시키고 현지 식물과 문화를 접목시켜 그 나라에 맞는 일본 정원으로 재탄생시키거든요. 전통을 어떻게 재현할 건지 근시안적으로 매달리지 말고 세계인의 마음을 훔칠 수 있는 우리 정원의 매력적인 요소들을 찾아야 합니다.” 정미애 국립수목원 연구사는 ‘K-가든 실증 기반 개념 정립과 적용 연구’를 발표했다. 국립수목원은 완전성(채와 마당으로 이뤄진 공간 구조), 역사성(조선 중·후기~근대), 보존성 등의 기준으로 민가 정원의 현황을 조사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다. 민가라는 공간을 통해 원형을 추적해 현대적으로 해석하기 위해서다.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현대 정원을 살펴보니 카페와 레스토랑에 실내 정원이 구현된 곳이 많습니다. 정원이 과거에는 개인의 영역이었지만 공공이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또 식물과 정원이 미술 공연 사진 음악 등 다양한 문화와 결합하는 추세를 보입니다. K-가든의 개념을 정립할 때 도움이 되도록 계속 자료를 구축해 K-가든의 대중화 방안을 모색하겠습니다.”김명회 산내식물원 대표는 3만 종에 가까운 조경식재용 식물을 재배하고 보급해왔다. 그는 ‘한국 정원 식물 소재 트렌드’를 소개하며 지역 특성에 따른 수종을 선정하고, 디자인 소재로서 식물 데이터화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우리 자생식물이 K-가든의 중심 소재가 되기 위해서는 한국 기후와 토질에 적합한 식물을 잘 선발해야 합니다. 하나하나의 식물 데이터도 절실하고요. 뇌성목, 노각나무, 당단풍나무, 팥배나무 등이 좋은데 제가 가장 관심을 갖는 건 분꽃나무입니다. 꽃, 향기, 단풍 등이 완벽한 자생식물이거든요. 개나리도 외부에 알리기 좋은 K-가든의 소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개나리를 너무 하찮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한국 전통 정원을 중심으로 한 K-가든의 재발견’을 발표한 박원순 국립세종수목원 전시원실 실장은 세종수목원 내 한국 전통 정원을 소개했다. 창덕궁 후원을 재현한 이 정원은 궁궐정원, 별서 정원, 민가 정원으로 구성돼 있다.“세종수목원 솔찬루는 창덕궁 후원 주합루, 세종수목원 도담정은 창덕궁 후원 부용정을 거의 똑같이 재현했는데요.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창덕궁 후원 같은 정원을 중부 지방에서도 즐겼으면 했기 때문입니다. 재현에 그치지 않고 ‘한국 전통 정원에서 무엇을 즐길까’를 고민했습니다. 일례로 부용정에서 빠질 수 없는 게 연꽃이죠. 경남 함안군에서 발견된 700년 된 씨앗을 발화시켜 만든 아라연꽃을 지난해 전시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한국전통문화대학교와 손잡고 꽃담 전시를 하면서 꽃담의 패턴을 만드는 체험도 진행했습니다.”그는 “요즘 MZ세대들이 갈구하는 ‘풀멍(풀 보며 멍때리기)’ ‘꽃멍(꽃 보며 멍때리기)’ 같은 힐링이 반려식물 문화와 접목되면 훌륭한 K-가든 콘텐츠가 될 것”이라며 “자연스러움의 미학이 있는 K-가든의 콘텐츠들을 발굴해 세계인이 공감하는 한국의 인상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네 시간 동안 진행된 이 날의 주제 발표 및 토론은 시종일관 진지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토론 맨 마지막에 신창호 국립세종수목원장의 정리 멘트가 간결하면서도 명쾌했다. “K-가든도 K팝처럼 먼저 우리 국민이 좋아해야 할 것입니다. 그게 세계로 나가 세계인의 공감을 얻어야 ‘K-가든’이란 용어를 붙일 수 있겠죠. 서두르지 말고 공론화 기회를 자주 만들어 튼튼한 배경을 세워야 K-가든이 성공할 것입니다. K-가든을 통해 세계관을 발전시키고 개념을 하나씩 잡아가면서 즐거움을 찾고, 그 즐거움 속에서 ‘아, 이게 K-가든이구나’ 하는 때가 올 것입니다.”세종=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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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에 꽃 피네, 동백에 매화 피네 [김선미의 시크릿가든]

    폭설이 지나간 후에 방문한 제주에는 곳곳에 눈이 쌓여 있었다. 그래도 남쪽 섬이라 겨울에도 초록색 지피식물들이 땅을 덮고 있었다. 그 위에 눈이 내려앉으니, 마치 흰 생크림을 얹은 녹차 셰이크 형상이었다.원래는 동백을 보러 떠난 여행이었다. 그런데 따뜻한 겨울 날씨 때문에 평년보다 46일이나 일찍 만개한 매화를 보았다. 일찍이 조선의 원예 백과사전인 화암수록은 ‘스물여덟 가지 벗의 총목록’에서 봄에 피는 매화인 춘매는 예스러운 벗, 동백은 신선 같은 벗이라고 했다. 지금 제주에는 이들 벗만 있는 게 아니다. 유채꽃, 제주수선화, 제주백서향도 만발했다.●백설(白雪)과 붉은 동백제주는 지난해 12월부터 동백꽃 대궐이었다. 우리나라 토종 동백은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눈물처럼 후두둑 (통째로) 지는 꽃’이지만 요즘 제주의 동백 성지들에서는 애기동백의 꽃잎이 한 장 한 장 나비처럼 흩날려 진분홍 카펫을 펼쳐낸다.제주의 동백 명소들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그날그날의 동백 상황을 중계한다. 여행을 준비할 때 참고하라는 뜻에서다. 그만큼 제주 겨울 여행의 백미가 동백이다. 전통의 ‘카멜리아힐’과 ‘동백수목원’을 비롯해 최근 생긴 ‘가시림’과 ‘동백포레스트’ 등이 동백 명소로 꼽힌다.이번 여행에서는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에 두 달 전 문을 연 ‘가시림’에 가봤다. ‘생각하는 정원’, ‘베케’ 등을 잇는 제주의 새로운 민간 정원이다. 시간을 더한 마을이라는 뜻의 가시리(加時里)는 말을 키우던 목장이 넓게 자리하던 곳이다. 조경 사업을 하던 강남춘 대표(57)가 1만4000m²의 땅을 사들여 ‘시간을 더한 숲’이라는 뜻의 가시림을 가꿨다.제주는 봄같이 따뜻한 겨울 날씨였다. 그러다가 폭설을 맞았으니 동백꽃이 얼고 상했다. 제주 자생나무인 구실잣밤나무가 기후위기로 고사하는 일이 생겨나는 가운데 이젠 동백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동백나무는 동박새가 꽃가루를 운반해 주는 조매화(鳥媒花)다. 날씨가 따뜻해져 동박새가 점점 북상하고 있다니 걱정이다.설탕처럼 반짝이는 눈 위에 떨어진 동백은 애련해서 아름다웠다. 동백의 꽃말은 진실한 사랑, 겸손한 마음이다. 꽃 한 송이 전체가 뚝뚝 떨어지는 토종 동백의 기개와 살랑살랑 꽃잎을 날리는 애기동백의 퇴장은 느낌이 크게 다르다. 사랑의 형태가 다를 뿐, 속마음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어디에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까.가시림에는 300여 그루의 동백나무만 있는 게 아니었다. 60여 그루의 황금 메타세쿼이아 터널, 카페 앞 삼지닥나무와 금감자…. 이끼볼 등 반려식물을 판매하고 인스타그램을 통해 제주의 자생식물을 소개하면서 정원의 향유층을 젊은 세대로 넓히는 모습이었다.정원 안쪽에 병풍처럼 둘러싼 동백나무들 뒤로는 제주 자생나무인 멀구슬나무, 종가시나무, 후박나무가 이끼들과 어우러져 있었다. 곶자왈을 걷고 있나 착각이 들 정도였다. 흰배롱나무 밑에 산수국과 목수국이 섞어 심어진 모습을 보니 다가올 계절들의 꽃 피는 정원이 마음속에 그려졌다.3년 전 문을 연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 그랜드조선제주의 오름 정원(6600m²)도 잘 알려지지 않은 동백 명소다. 햇볕이 잘 들어 중산간보다 동백이 여전히 싱싱한 모습이었다. 제주의 오름을 형상화한 오름 정원에는 물 없이 돌을 배치한 일본식 고산수 정원도 있다. 여름철에는 ‘수국 맛집’이라고 한다.●봄꽃들의 인사제주로 향하기 직전에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 소장이 매화 개화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려놓은 걸 보고 연락해 봤다. “벌써 매화가 피었습니까.” “서귀포 걸매생태공원에 가면 쉽게 볼 수 있을 겁니다.”제주에 자주 가 봤지만, 걸매생태공원은 초행이었다. 중문에서 천지연 폭포 근처의 이 공원으로 향하는 1132번 도로 양옆은 온통 빨간색이었다. 제주의 겨울에는 동백만 있는 게 아니었다. 먼나무의 빨간 열매가 도로를 환히 밝힌다. 멀리에서 보면 열매가 아니라 빨간 꽃 같다. 그래서 먼나무의 이름 유래 중에는 ‘(나무와 열매가) 멋(스러운) 나무’라는 설도 있고 ‘멀리에서 보아야 제격인 나무’라는 뜻도 있나 보다.걸매생태공원은 관광객보다는 도민들의 일상 공간인 듯했다. 아침 조깅족들이 “저기에 매화가 있어요”라고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알고 보니 우리나라에서 가장 빨리 매화꽃 향기를 전하는 장소 중 한 곳이었다. 대개는 2월 초순 꽃망울을 터뜨리는데 역시나 올해는 빨랐다. 연분홍색 ‘꽃 팝콘’이 풍성했다. 아치형 다리 밑 물가에는 오리들이 헤엄치고, 노란색 유채꽃도 피었다.매화까지 봤으니 오설록 티하우스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시간이 없는데 딱 한 곳, 제주를 느끼러 간다면 어디로 갈까”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추천하고 싶은 장소 중 한 곳이 서귀포시 안덕면의 오설록이다. 전면에 유리 통창을 배치해 제주의 돌과 식물을 감상하며 한라봉과 녹차 음료를 마실 수 있게 한 공감각적 공간이다.오설록에는 봄을 알리는 구근식물인 제주수선화가 만발했다. 그 옆 제주백서향의 은은한 향기는 너무도 황홀해 온종일 코를 대고 있고 싶을 정도다. 땅을 덮은 보라색 해국도, 겨울에도 싱그러운 초록 기운을 전하는 서광차밭도 반가웠다. 봄은 그렇게 고양이처럼 오고 있다.●스토리를 담아가는 제주제주에는 꽃이 주인공이 아닌 정원도 지난해 말 문을 열었다. 서귀포시 남원읍의 ‘담소요’다. 오롯한 쉼을 내세운 이곳에서는 현재 ‘헬로, 윈터’라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정원 분야 명저 중 하나인 카렐 차페크 작가의 ‘정원가의 열두 달’ 책을 주제로 한 작은 전시다. 꽃보다는 풀을 많이 심어 사색의 정원을 표방한 이 정원에는 ‘모짜’ ‘렐라’ ‘체다’라는 이름의 오리 세 마리도 산다.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안돌오름 비밀의 숲은 가뜩이나 아기자기 예뻤는데 요즘 드라마 ‘웰컴투 삼달리’에 나오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내비게이션 안내대로 가다 보면 비포장도로를 만나는데 그 또한 여행의 즐거움이다. 흰 눈이 남아 있는 비포장도로 주변 풍경은 제주의 야생을 고스란히 전한다.이곳의 트레이드마크는 매표소를 겸한 민트색 푸드트럭이다. 표를 사서 들어서면 청량한 비밀의 숲이 펼쳐진다. 드라마 ‘박하경 여행기’ 제주 빵지 순례편에 등장했던 동네 빵집 ‘송당의 아침’도 차로 불과 10분 거리다. 우유 큐브 식빵, 제주 우도 땅콩 식빵, 얼그레이 크랜베리 식빵을 사서 나오는데 왠지 드라마 주인공 이나영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서귀포시 안덕면 본태박물관은 한국 전통공예의 미래가치를 탐색하는 품격 있는 공간이다. 서양인 관광객이 눈에 많이 띄어 반가웠다. 조선 시대 양반가 부녀자가 신던 당혜에도, 옛 베개에도, 책가도에도 꽃자수와 꽃그림이 있었다. ‘아, 여기에도 꽃이 피었구나.’ 이곳에서는 상설 전시 외에도 이달 말까지 현대미술의 거장 구사마 야요이 특별 전시가 열리고 있다.제주는 갈수록 본연의 스토리를 담아내고 있다.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의 ‘해녀의 부엌’도 좋은 예다. ㈜해녀의 부엌은 2019년부터 지역 공동체(해녀)와 청년 문화인들이 합심해 식사가 있는 공연을 펼치고 있다. 이번에 관람해 보니 87세 제주 해녀 김춘옥 할머니의 인생 스토리를 청년 예술인들이 펼치는 연극, 해녀들이 잡은 뿔소라와 군소 등 해산물 뷔페, 김 할머니에 대한 관객 인터뷰로 진행됐다. 청년 손님들이 해녀에 그토록 관심이 많은 줄 몰랐다. 노쇠한 공동체가 어떻게 살길을 모색해야 하는지 하나의 답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이틀 동안 제주의 하늘빛이 수십 번 바뀐 것 같다. 그때마다 바다와 숲, 꽃잎의 색도 따라 일렁였다. 알 수 없는 인생, 그래서 겸허함을 배우게 되는 것이 여행의 가장 큰 묘미가 아닐까.서귀포·제주=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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