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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초 오랜만에 대학 동기 A를 만났다. 둘이 식사한 적은 별로 없는 친구였다. 약속에 조금 늦은 내게 A는 진지한 표정을 하곤 메뉴판을 들이밀었다.“넌 먹는 데 진심이야?”당황스러운 질문. 네가 뭘 제대로 먹기는 해? 시원찮은 반응에도 친구는 무서운 얼굴을 하고 나를 노려봤다. 입이 짧은 것과는 다르다고 했다. 자기는 먹는 데 진심이라 어느 하나 허투루 주문할 수 없다고 했다. 마음대로 하라는 대답에 A는 자못 신중한 자세로 하나, 둘, 셋 다 먹지도 못할 음식 목록을 읊었다.처음 나온 메뉴는 미나리 돼지고기볶음이었다. 약간 짠가 싶었지만, 막걸릿잔을 비우며 별생각 없이 먹고 있었다. 이번에는 맛이 어떠냐는 질문. 술과 잘 어울리니 괜찮다고 답했다. 어느새 젓가락을 내려놓은 A는 다시금 무게를 잡더니 말했다. “내가 볼 때 넌, 먹는 데 진심은 아니야.”사실은 몇 달 전에도 비슷한 말을 들었다. 여름 끝자락, 야근을 앞둔 저녁의 한적한 평양냉면 식당. 회사 선배가 추천하는 평냉 맛집 얘기를 듣고 있었다. 나도 그 맛을 좋아한다고 했더니 어디서 먹어봤느냐는 질문이 따라왔다. 음, 집 근처 식당이요. 평냉 ‘애호가’들이 인정할 만한 맛집은 절대 아닌, 그저 접근성이 좋은 냉면집에서 먹어본 기억밖에 없었다.“윤진이는 먹는 거에 진심은 아니야, 그렇지?”처음 들었을 땐 그야말로 당혹스러웠다. 나처럼 잘 먹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아침도 꼬박꼬박 챙겨 먹고, 친구들과 만나면 마지막까지 수저를 붙들고 ‘설거지’를 도맡는 내가? 하지만 다시 한번 같은 말을 들으니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난 진짜 먹는 것에 진심이 아닌 건가?난 정말 먹는 데 진심이 아닌 걸까그 고민을 다시 떠올린 건 먼 유럽 대륙에서다.추석 연휴, 이탈리아 출장을 다녀왔다. 현지 취재에 나선 국내 언론사 기자는 나와 타사 소속 B 두 명뿐. 예상보다 빡빡한 일정에 ‘이탈리아’다운 경험을 할 여유는 없었다. 피로가 쌓인 데다 빨리 기사를 소화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려 둘 다 5일 내내 상태가 좋지 않았다. 밤이면 침대서 기절했고, 뭔가 특별히 먹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그렇지만 나는 그 와중에도 어떻게든 저녁을 먹었다. 반면 B는 배가 부르거나 속이 편하지 않다는 이유로 저녁을 거의 걸렀다. 나는 먹었다. 호텔 룸서비스로 주문한 비싼 파스타는 밀가루 맛이 많이 났고, 미국이 본사인 프랜차이즈 햄버거를 이탈리아에서 사 먹었을지라도 저녁 식사를 했다. 누가 봐도, 이건 내 쪽이 ‘먹는 데 진심’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그러다 출국 전날 마지막 저녁 식사를 같이할 기회가 생겼다. 한 레스토랑에서 ‘밀라노 전통 음식’이라는 고기 요리와 사프란 리소토를 먹어볼 수 있었다. 돈가스랑 똑같다더니 진짜네, 신기해하면서 식사를 마쳤다. 부랴부랴 짐을 정리하고, 다음 날 새벽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경유지 파리 공항에서 B 씨가 물었다.“어제 먹은 밀라노 음식, 어떠셨어요?”‘보통이었던 것 같다’고 답했다. B 씨는 본인 입맛에는 맞지 않았단다. 간이 세고 다른 맛을 느끼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어제 먹은 음식이 어땠는지 떠올렸다. ‘밀라노식 돈가스’는 굵은 소금이 씹히고 기름져서 많이 먹기는 어려웠다. 리소토는 괜찮았지만 이렇다 할 킥은 없고 느끼했다. 맛만 따지면 나도 그렇게 만족스럽진 않았다는 걸 그때 알았다. 이어서 ‘한국에서 김치찌개를 먹고 싶다’는 대화가 이어지자 나는 귀국해 뭘 먹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또렷이 그려지는 음식은 없었다. 그리하여 두 달 만에 질문으로 돌아왔다. ‘먹는 데 진심’이라는 건 무슨 의미일까. 나는 먹는 것에 진심일까?진심이란 무엇인가‘먹는 데 진심이 아니다.’ 친구와 선배는 내가 먹는 것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 먹는 데 큰 의미를 두는 사람이 아니라고 본 거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이 마음에 걸렸다. 아무래도 이건 표현의 모호함이 불러온 오해 아닐까.‘먹는 것’이라는 표현부터 살펴보자. 나는 식사를 한다는 데 의문을 제기해 본 적이 없다. 만족하지 않더라도 그것은 그것대로 식사다. 내게는 먹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당기지 않거나 맛없는 음식을 먹을 바에는 굶겠다고 먹는 게 먹는 게 아니라는 것. 요컨대 이들에게 ‘먹는 것’이란 행위 자체가 아니라 음식의 가치를 살피는 숭고한 일인 것이다.‘진심’이라는 표현은 어떤가. 진심(眞心)이란 ‘거짓이 없는 참된 마음’이다. A처럼 매 식사를 소중히 여기고 메뉴 하나의 가치를 신중하게 고려하는 것도 진심이다. 한편 나처럼 먹었다는 사실과 경험에 만족하는 것도 먹는 것에 대한 ‘진심’이다. 먹는 걸 거짓된 마음으로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래서 혹자는 이 유행하는 표현이 그렇게 싫다고들 한다.무언가에 진심이라는 건 그냥 지금 내가 좋아하고 소중히 여기는 무엇에 대한 마음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너와 나의 진심은 조금 다를 수도 있는 것이다. 스마트폰 지도 앱에 1000여 개의 맛집을 저장해두고도 막상 무엇을 먹을지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나의 마음조차도. 물론 비슷한 의미로 당신의 진심을 응원한다.[소소칼럼]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나 소소한 취향을 이야기하는 가벼운 글입니다. 소박하고 다정한 감정이 우리에게서 소실되지 않도록, 마음이 끌리는 작은 일을 기억하면서 기자들이 돌아가며 씁니다.김윤진 기자 kyj@donga.com}
“스타머 총리가 결국 칼을 빼 들었다.”(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지난달 2일 취임한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보다 높은 연봉을 받을 정도로 ‘문고리 권력’ 의혹에 휩싸였던 수 그레이 전 영국 총리 비서실장(67)이 6일 사퇴했다. 그의 사퇴와 무관하게 12일 집권 100일을 맞는 스타머 총리의 지지율은 계속 하락세다. FT 등에 따르면 그레이 전 실장은 “최근 내 직책을 둘러싼 격렬한 논쟁이 정부의 개혁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게 명확해졌다”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 그는 ‘국가와 지역을 위한 총리 특사직으로 자리를 옮겼다. 새 비서실장에는 집권 노동당의 선거전략을 총괄했던 모건 맥스위니 총리실 정치 전략 책임자가 낙점됐다. 그레이 전 실장은 30년 이상 ‘내각 공직자 윤리’ 전문가로 활동한 공무원 출신이다. 제1야당 보수당 소속인 보리스 존슨 전 총리가 코로나19 기간 방역 지침을 어기고 파티를 벌였다는 이른바 ‘파티 게이트’의 조사를 2022년 주도해 명성을 얻었다. 이를 눈여겨본 스타머 총리가 지난해 9월 그를 영입했다. 이후 스타머 총리의 전폭적인 신뢰를 얻으며 승승장구했다. 노동당이 올 7월 총선에서 승리한 후 스타머 총리의 인사, 주요 정책 설정 등에 깊이 관여했다. 하지만 그레이 전 실장이 다른 관료들의 총리 면담을 막는 등 권력을 과하게 행사한다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최근 BBC방송이 “그레이 전 실장의 연봉이 17만 파운드(약 3억 원)로 총리보다도 3000파운드가 많다”고 보도하며 논란이 커졌다. 17만 파운드는 리시 수낵 전 총리의 비서실장 연봉보다 약 20% 많은 액수다. 스타머 총리와 부인 빅토리아 여사는 최근 축구 경기 및 콘서트 티켓, 고급 의류 등 ‘공짜 선물’을 수수한 사실로 큰 질타를 받고 있다. 2∼4일 일간 가디언의 일요일판 ‘옵서버’와 여론조사회사 ‘오피니엄’의 조사에 따르면 “총리의 직무 수행이 불만족스럽다”는 답은 52%, “만족한다”는 응답은 24%로 반대율과 지지율의 격차가 28%포인트에 달했다. 취임 직후인 올 7월 19일 조사에선 지지율이 반대율보다 18%포인트 높았다. 세 달도 안 돼 46%포인트가 떨어졌다.김윤진 기자 kyj@donga.com}
7일(현지 시간) 발발 1년을 맞은 ‘가자 전쟁’은 그간 전쟁에 투입된 군인은 물론 무수한 민간인 희생자를 낳았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만 약 4만2000명이 숨지는 등 지금까지 총 4만5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파악됐다. 전선이 확대되며 생활터전을 잃은 피란민도 크게 늘어 팔레스타인과 레바논 등지에서 240만 명 이상이 고향을 떠났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과 가자지구 보건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7일부터 이달 6일까지 가자지구에서는 팔레스타인 민간인 포함 4만1870명이 목숨을 잃었다. 8월 31일을 기준으로 신원이 확인된 사망자 3만4344명 가운데 약 33%(1만1355명)는 어린이인 것으로 밝혀졌다. 영국 런던대의 마이클 스파갯 교수는 이스라엘 일간 하아레츠 인터뷰에서 “총사망자 수만 따지면 21세기 벌어진 폭력 분쟁 상위권에 들지 못하지만, 총인구의 사망자 비율로 보면 최상위권에 속한다”고 말했다. 스파갯 교수에 따르면 개전 1년 동안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선 전체 인구 215만 명의 약 2%에 이르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는 2003년 이라크전쟁(약 1%), 발발 2년이 넘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약 0.45%)과 비교하면 그 심각성이 두드러진다. 시리아 내전도 전체 인구의 약 2%가 목숨을 잃었지만, 2011년부터 13년 동안 이어진 장기전쟁이다. 1일부터 이스라엘과 지상전이 벌어지고 있는 레바논에서도 인명 피해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레바논 보건부에 따르면 가자 전쟁이 발발한 뒤부터 5일까지 레바논 내 이스라엘 공습으로 인한 사망자는 2036명에 이른다. 부상자도 9662명으로 1만 명에 육박한다. 이 중 대부분은 이스라엘군이 레바논의 친이란 무장단체 헤즈볼라 근거지에 대대적인 공습을 개시한 지난달 23일 이후 발생한 피해다. 이스라엘에선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 당시를 포함해 약 1195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마스에 억류된 인질 가운데 117명은 귀환했지만 37명은 목숨을 잃었다. 이스라엘 정보당국은 아직 101명의 인질이 하마스에 억류돼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전쟁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이도 점점 늘고 있다. 지금까지 가자지구에서만 약 190만 명이 피란길에 올랐다. 전체 인구의 약 90%가 최소 한 번 이상 전쟁을 피해 이주해야 했다는 뜻이다.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레바논에서도 전쟁 피란민 수가 54만 명을 넘어섰다.김윤진 기자 kyj@donga.com}
세계적인 인기를 끈 K팝과 K드라마에 이어 한국의 ‘힐링(치유)’ 소설이 해외에서 최신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3일(현지 시간) ‘번아웃(Burnout·극심한 피로와 무기력)’을 다룬 한국의 소설들이 해외에서 이목을 끌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한국에서 대세로 자리매김한 ‘힐링 소설’이 온라인에서 인기를 끌며 세계적인 출판사들도 주목하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의 힐링 소설이 소셜미디어상에서 추천 도서를 찾는 젊은 여성 독자층에 인기이며, K팝 스타들의 추천 후기로 관심도가 높아졌다고 전했다. 또 국내에서도 베스트셀러였던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가 미국과 영국에서 번역 출간된 것을 비롯해 블룸즈버리 등 해외 유명 출판사들이 한국 힐링 베스트셀러를 출간하거나 판권을 사들였다. 영미권 최대 출판사 펭귄랜덤하우스에선 4개월 내로 3개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에디터 제인 로손은 “한국 소설은 갑자기 유행을 타며 완전히 (인기가) 폭발했다”며 “여러 작품이 15∼20개 지역에서 판권 계약을 체결할 만큼 힐링 트렌드는 완전히 세계화됐다”고 평했다. 해외 판권 에이전트 조이 리는 다양한 장르의 한국 소설이 있지만 “이제 (외국 출판사들에) 힐링 소설이 곧 한국 소설로 인식되는 듯하다”고 말했다. 힐링 소설은 주인공들이 직장 생활의 스트레스나 구직 실패 등 일상을 뒤로하고 더 의미 있는 것을 찾아 나서는 과정을 묘사한다.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에서 힐링 소설의 유행은 ‘번아웃’이 만연한 경쟁적인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다고 분석했다. 한국인 10명 중 7명이 우울증 등 정신 건강 문제를 토로하고, 서울에서는 ‘낮잠 카페’가 흔히 보인다고 덧붙였다. 올가을 해외 출간을 앞둔 연소민의 ‘공방의 계절’을 영문으로 번역한 클레어 리처즈는 소설 내용에 고양이, 김치, 아이스크림 등 “아늑한 힐링 요소”가 풍부하다고 설명했다. 또 이코노미스트는 상처를 씻어내는 세탁소, 꿈을 살 수 있는 가게 등 힐링 소설에 등장하는 장소들이 ‘현실 도피’의 기능을 한다고도 설명하며 독자들에게 “문학적 치료”의 경험을 제공한다고 평가했다.김윤진 기자 kyj@donga.com}
7일(현지 시간) 발발 1년을 맞은 ‘가자 전쟁’은 그간 전쟁에 투입된 군인은 물론 무수한 민간인 희생자를 낳았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만 약 4만2000명이 숨지는 등 지금까지 총 4만5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파악됐다. 전선이 확대되며 생활터전을 잃은 피란민들도 크게 늘어 팔레스타인과 레바논 등지에서 240만 명 이상이 고향을 떠났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UN OCHA)과 가자지구 보건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7일부터 이달 4일까지 가자지구에서는 팔레스타인 민간인 포함 4만1802명이 목숨을 잃었다. 8월 31일을 기준으로 신원이 확인된 사망자 3만4344명 가운데 약 33%(1만1355명)는 어린이인 것으로 밝혀졌다. 영국 런던대의 마이클 스파갓 교수는 이스라엘 일간 하아레츠 인터뷰에서 “총 사망자 수만 따지면 21세기 벌어진 폭력 분쟁 상위권에 들지 못하지만, 총 인구의 사망자 비율로 보면 최상위권에 속한다”고 말했다. 스파갓 교수에 따르면 개전 1년 동안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선 전체 인구 215만 명의 약 2%에 이르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는 2003년 이라크전쟁(약 1%), 발발 2년이 넘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약 0.45%)와 비교하면 그 심각성이 두드러진다. 시리아 내전도 전체 인구의 약 2%가 목숨을 잃었지만, 2011년부터 13년 동안 이어진 장기전쟁이다. 1일부터 이스라엘과 지상전이 벌어지고 있는 레바논에서도 인명 피해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레바논 보건부에 따르면 5일 기준 레바논 내 이스라엘 공습으로 인한 사망자는 2036명에 이른다. 부상자도 9535명으로 1만 명에 육박한다. 이중 대부분은 이스라엘군이 레바논의친이란 무장단체 헤즈볼라 근거지에 대대적인 공습을 개시한 지난달 23일 이후 발생한 피해다.이스라엘에선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 당시를 포함해 약 1195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마스에 억류된 인질 가운데 117명은 귀환했지만 37명은 목숨을 잃었다. 이스라엘 정보당국은 아직 101명의 인질이 하마스에 억류돼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전쟁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도 점점 늘고 있다. 지금까지 가자지구에서만 약 190만 명이 피란길에 올랐다. 전체 인구의 약 90%가 최소 1번 이상 전쟁을 피해 이주해야 했다는 뜻이다.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레바논에서도 전쟁 피란민의 숫자가 54만 명을 넘어섰다.김윤진 기자 kyj@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겸 전 대통령이 1일(현지 시간) “연방 차원의 낙태금지법을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다음 달 5일 미 대선을 앞두고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 겸 부통령과 지지율이 초접전인 상황에서 낙태 의제에 민감한 여성 유권자를 공략하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트럼프 후보는 이날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어떤 경우에도 연방 차원의 낙태금지법을 지지하지 않겠다. (의회에서 관련 법안이 통과되면) 분명히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가 연방 차원의 낙태금지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뜻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앞서 올 8월 말 그의 러닝메이트이며 보수 색채가 강한 J D 밴스 공화당 부통령 후보는 “트럼프가 전국적인 낙태금지법을 분명히 거부할 것”이라며 태도 변화를 암시했다. 트럼프 후보는 지난달 대선 후보 TV토론에선 “밴스와 이 문제를 논의하지 않았다”며 말을 아꼈다. 줄곧 모호한 답변을 해온 그가 이번에는 ‘전국적 낙태 금지’라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 트럼프 후보는 재임 중 3명의 연방대법관을 임명했다. 이로 인해 종신직인 연방대법관 9명 중 6명이 보수 성향 법관으로 채워졌다. 해리스 대선 캠프와 민주당 측은 “2022년 6월 연방대법원이 연방 차원의 낙태권을 폐기한 판결을 내린 건 이 같은 대법원의 인적 구성 변화 때문”이라며 줄곧 트럼프 후보 측을 공격했다. 해리스 캠프는 이날 성명을 통해 “트럼프는 여성들이 그의 낙태 금지로 목숨이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을 잊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유권자들은 바보가 아니다”라고 직격했다. 해리스 후보 측은 트럼프 후보의 낙태 관련 ‘말 바꾸기’에도 공세를 펼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대선 당일 애리조나, 네바다, 플로리다 등 미 10개 주가 낙태권 찬반에 대한 주민투표를 실시한다. 이 중 애리조나와 네바다주는 대선 승자를 결정지을 주요 경합주로 꼽힌다. 현재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는 두 주 모두 “주 헌법에 낙태권을 명기하는 것을 지지한다”는 응답자가 많은 편이다. 한편 지난달 23∼26일 폭스뉴스가 네바다주에서 실시한 조사에서 트럼프·밴스 후보의 지지율은 48%로 해리스·팀 월즈 후보(50%)보다 2%포인트 낮았다. 반면 같은 달 20∼24일 애리조나주 조사에서 트럼프·밴스 후보의 지지율은 50%로 해리스·월즈 후보(48%)보다 2%포인트 높았다. 양측이 치열한 접전을 벌이는 상황에서 트럼프 후보의 이날 발언이 판세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김윤진 기자 kyj@donga.com}
약 4만5000명의 미국 항만 노동자가 가입한 국제항만노동자협회(ILA)가 1일 0시부터 임금 인상,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1977년 이후 47년 만의 파업이다. 이로 인해 하루 최대 45억 달러(약 5조9300억 원)의 경제적 피해가 예상되는 가운데 이번 파업이 11월 5일 대선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대선이 한 달가량 남은 시점에서 물류 대란이 현실화하면 집권당 후보이자 친(親)노조를 표방해 온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 겸 부통령의 대선 가도에 적지 않은 타격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ILA는 이날 북동부 메인주에서 남부 텍사스주에 이르는 주요 항구 36곳에서 파업에 돌입했다. 지난달 30일까지 회사 측인 미국해양협회(USMX)에 “향후 6년간 임금 77% 인상”을 요구했지만 ‘50% 인상’을 내세운 USMX 측과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파업으로 뉴욕, 보스턴, 볼티모어, 휴스턴, 앨라배마항 등 미 주요 항구의 운영이 모조리 중단됐다. 현재 뉴욕 일대 항구에서 하역을 기다리는 컨테이너만 10만 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식량, 자동차 등 주요 상품의 물류가 차질을 빚어 항만 이용료와 물가가 치솟을 것이란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해리스 후보가 속한 조 바이든 행정부는 진퇴양난의 고민에 빠졌다. 파업에 개입하면 민주당의 주요 지지층인 노조의 반발을 살 수 있다. 대선의 최대 격전지인 펜실베이니아주를 포함해 미시간, 위스콘신주 등 북동부 쇠락한 공업지대(러스트벨트)에는 강성 노조가 특히 많은 편이다. 최근 백악관이 항만 등 국가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장의 파업에 공권력의 개입을 허용하는 ‘태프트하틀리’법을 이번 사태에 적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고 물류 대란을 방치하자니 고물가를 수수방관한다는 일반 유권자의 비판이 커질 수 있다. 해리스 후보가 ‘경제’ 의제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 겸 전 대통령보다 많은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지난달 19∼22일 퀴니피액대 여론조사에서 미 유권자의 52%가 “트럼프 후보가 ‘경제’ 의제를 더 잘 다룰 것”이라고 답했다. 해리스 후보는 45%에 그쳤다. 트럼프 후보는 이번 사안을 해리스 후보를 공격할 도구로 쓰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이번 파업은 해리스-바이든 정권이 초래한 대규모 인플레이션 때문에 발생했다”며 태프트하틀리법을 발동해 서둘러 파업을 종료시키라고 주장했다.김윤진 기자 kyj@donga.com}
멕시코의 첫 ‘여성’ 대통령이자 첫 ‘유대계’ 대통령인 클라우디아 셰인바움(62)이 1일 오전 11시(한국 시간 2일 오전 2시) 취임식을 갖고 6년 임기를 시작했다. 그는 남성 우월주의 성향이 강해 ‘마초 사회’로도 불리는 멕시코에서 1824년 연방정부 헌법 제정 200년 만에 배출된 첫 여성 대통령이다. 대통령으로서 그의 첫 방문지는 최근 홍수 피해를 입은 태평양 연안 휴양지 아카풀코가 될 것이라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다만 셰인바움 대통령 앞에는 치안 안정, 재정적자 감축, 최근 도입된 판사 직선제에 반발하는 우파 다독이기, “재집권 시 멕시코산 차량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주장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겸 전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 등 난제가 산적해 있다. 자신의 정치적 후원자이긴 하나 ‘상왕’ 노릇을 할 가능성이 높은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전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 또한 쉽지 않은 과제다. 이에 워싱턴포스트(WP) 등은 그를 두고 “역사상 가장 강력한 권한을 가진 대통령이자 가장 제약이 많은 상태에서 취임하는 대통령”이라고 평했다. 셰인바움 대통령은 1962년 수도 멕시코시티의 유대계 과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멕시코국립자치대(UNAM)에서 에너지공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0년 당시 멕시코시티 시장이던 로페스 오브라도르 전 대통령이 그를 시 환경장관으로 발탁했다. 이후 2011년 현 집권당 ‘모레나(MORENA·국가재생운동)’ 창당 때 주역으로 참여했고 2018년 멕시코시티의 최초 여성 시장에 올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부인 질 여사는 이날 취임식에 미국을 대표해 참석했다. 11월 5일 미국 대선에서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 겸 부통령이 미 최초의 여성 대통령에 도전하는 터라 그가 축하 사절로 온 것 자체가 해리스 후보에 대한 간접 응원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하루 전 멕시코시티에 도착한 질 여사는 셰인바움 대통령이 올 6월 대선에서 승리한 직후 “나 혼자 이 역사적 순간에 도달한 것이 아니다. 모든 어머니, 딸, 손녀들과 함께 도착했다”고 말한 점을 상기시키며 “셰인바움 대통령의 재임 중 미국과 멕시코가 더 번영할 것”이라는 덕담을 건넸다.김윤진 기자 kyj@donga.com}
1924년 10월 1일생으로 미국 전현직 대통령 중 생존 최장수인 지미 카터 전 대통령(사진)이 1일(현지 시간) 100세, 즉 상수(上壽)를 맞았다.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으로 투병 중인 그는 지난해 2월부터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고향인 조지아주 플레인스에서 호스피스 치료를 받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카터 전 대통령을 두고 “미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인 중 한 명”이라며 “더 나은 세상에 대한 당신의 헌신, 인간의 선함에 대한 당신의 믿음이 우리 모두를 인도하는 빛이 되고 있다”는 생일 축하 성명을 냈다. 바이든 대통령은 델라웨어주 상원의원이던 1976년 민주당의 주요 정치인 중 일찌감치 카터 전 대통령의 대선 출마에 지지를 표했다. 이후 두 사람은 긴밀한 유대 관계를 이어 왔다. 카터 전 대통령도 2020년 대선 당시 바이든 대통령을 “충실하고 헌신적인 친구”라며 지지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11월 5일 미 대선에서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 겸 부통령에게 우편 투표하겠다는 뜻을 미리 밝혔다. 그의 손자 제이슨 카터 전 조지아주 상원의원(49)은 올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 참석해 “할아버지는 해리스에게 투표할 기회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재임(1977년 1월∼1981년 1월) 중 중국과의 ‘데탕트’(긴장 완화)에 앞장섰다. 전쟁을 치렀던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평화 협정 체결도 중재했다. 그러나 제2차 오일 쇼크에 따른 고물가, 이란 혁명세력이 수도 테헤란 주재 미 대사관을 점거하고 52명의 미국인을 444일간 억류한 ‘인질 사태’ 등으로 재선에 실패했다. 퇴임 후에는 다양한 평화 및 인권 활동에 종사하며 ‘가장 훌륭한 전직 대통령’으로 불렸다. 1994년 북핵 위기 당시 직접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북핵 동결을 논의했다. 보스니아 내전, 아이티 대지진 등 때도 민간인 보호에 앞장섰다. 취미인 목공 기술을 활용한 ‘해비탯’ 집짓기 봉사에 열심이었고 각국을 돌며 민주주의, 인권, 기아 퇴치 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김윤진 기자 kyj@donga.com}
한국 정부가 거대 플랫폼 사업자의 반칙 행위를 차단하기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에 나선 가운데, 해당 법안으로 인해 미국 디지털 기업이 피해를 볼 경우 미 정부가 ‘관세 보복’ 등 대응 조치를 하도록 요구하는 법안이 미 하원에서 발의됐다.공화당 캐럴 밀러 하원의원(웨스트버지니아)은 지난달 27일(현지 시간) ‘미국-한국 디지털 무역 집행 법안’을 하원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이 지난해 한국과의 무역에서 511억 달러(약 67조 원) 규모의 적자를 기록했다”며 “이는 부분적으로 한국의 차별적 경제 정책에서 기인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중국의 기술 기업에는 혜택을 주고, 미국 기업에는 지나친 부담이 될 수 있는 차별적인 디지털 규제를 고려하고 있다”고 부연했다.밀러 의원이 제출한 법안에 따르면 미 무역대표부(USTR)는 “한국이 미국의 온라인 및 디지털 플랫폼 기업을 사전 지정하거나 사후 추정해 업체들에 차별적인 규제를 부과할 경우 30일 이내에 미국 플랫폼 기업 및 미국 통상에 대한 영향, 무역협정 위반 여부 등을 의회에 보고하라”고 명시돼 있다.또한 미 상무부 장관은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제소 △무역법 301조 조사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분쟁 해결 △피해 경감을 위한 한국과의 협정 등 미국 무역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무역법 301조는 미 대통령이 다른 나라의 ‘불공정 무역’을 제한하기 위해 보복성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지난달 9일 한국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위원회는 거대 플랫폼 사업자의 반칙 행위를 차단·대응하기 위한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 입법 방향’을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자사우대·끼워팔기 등 반(反)경쟁 행위를 금지하고, 위반한 플랫폼에 대해 공정위가 사후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추정하고 입증 책임을 부여할 예정이다. 적발된 반경쟁행위에 대한 제재로 ‘임시 중지 명령’도 내릴 수 있다.이 같은 개정 방향에 대해 밀러 의원은 “반독점법으로 포장했지만 결국 미국 기업을 겨냥한 것”이라며 “한국 법안은 알고리즘 공개 의무화, 디지털 생태계에서 여러 상품 제공 금지, 불공정 거래 조사 착수 시 문제 행위 발견 전이라도 정부에 (임시) 중지 명령권 부여 등 여러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이어 “한국은 미국의 중요한 경제 및 안보 파트너이지만, 미국 디지털 기업들이 법의 표적이 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볼 수는 없다”며 “(한국 공정거래법은) 중국 기업에 이익을 주고 국가 안보를 위험에 빠뜨리며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윤진 기자 kyj@donga.com}
역대 최장수 미국 대통령의 기록을 쓰고 있는 미국 제39대 대통령(1977년 1월~1981년 1월)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다음달 1일 100번째 생일을 맞이한다.1924년 10월 1일생인 카터 전 대통령은 조지아주 플레인스의 자택에서 100세 생일을 맞게 된다. 지난해 11월 부인 로잘린 카터 여사가 별세한 뒤 맞는 첫 생일이다.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을 투병 중인 그는 지난해 2월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자택에서 호스피스 치료를 받고 있다.카터 전 대통령은 재임 중 미중 데탕트(긴장 완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중동전쟁을 치렀던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평화 협정을 체결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2차 오일 쇼크, 10% 대의 물가 상승률, 이란 혁명세력의 주이란 미국대사관 점거 및 미국인 인질 사건 같은 악재가 연이어 터지며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에게 대선에서 패했다. 재임에 실패한 그는 ‘미국 역사상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이라는 오명도 얻었다. 그러나 퇴임 이후 다양한 평화 및 인권 활동에 종사한 카터 전 대통령은 ‘가장 훌륭한 전직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4년 북핵 위기 당시 직접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당시 주석과 북핵 동결을 논의했다. 이외에도 부인 로잘린 여사와 함께 비정부기구 ‘카터 센터’를 설립하고 아이티·보스니아 등 국제 분쟁 지역에서 평화 사절로 활동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카터 전 대통령의 생일을 앞두고 29일(현지 시간)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미 CBS방송을 통해 “우리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인 중 한 명”이라고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바이든 대통령은 1976년 상원의원 시절 카터 전 대통령의 대선 출마에 지지를 표했는데, 이는 카터 전 대통령이 고향 조지아주 외 지역에서 처음으로 얻은 선출직 정치인의 지지였다. 이후 두 사람은 긴밀한 유대 관계를 유지해 왔다. 카터 전 대통령은 2020년 대선 당시 바이든 대통령을 “나의 충실하고 헌신적인 친구”라고 부르며 지지를 표한 바 있다.바이든 대통령은 “대통령님은 미국과 세계를 위한 도덕적 힘이었다”며 “미국에 대한 당신의 희망적인 비전, 더 나은 세상에 대한 당신의 헌신, 그리고 인간의 선함의 힘에 대한 당신의 확고한 믿음은 계속해서 우리 모두를 인도하는 빛이 되고 있다”며 카터 전 대통령의 퇴임 후 성과를 강조했다.카터 전 대통령은 오는 11월 5일 미국 대선에서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 겸 부통령에게 투표할 것이라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건강 사정상 우편 투표를 할 예정이다. 손자 제이슨 카터는 지난달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그는 신체적으로 매우 쇠약해졌지만 잘 지내고 있다”며 “할아버지는 해리스에게 투표할 기회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김윤진 기자 kyj@donga.com}
일본 홋카이도(北海道)에서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동원 역사를 알려온 ‘사나노보효(대나무 묘비란 뜻) 강제동원 박물관’이 2020년 1월 폭설로 무너진 지 약 4년 만에 다시 문을 연다. 교도통신은 28일 홋카이도 호로카나이정에서 사나노보효 강제동원 박물관의 재개관 기념행사가 열렸다고 보도했다. 박물관은 1995년 설립됐고, 일제강점기 후반 호로카나이정 슈마리나이 지구에서 진행된 댐과 철도 공사로 희생된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알려 왔다. 박물관 이름이 대나무 묘비인 건 희생자의 시신이 묘비도 없이 대나무가 무성한 곳에 묻혀 있었기 때문. 박물관은 댐 건설 과정에서 희생된 이들의 위패와 유품을 보관하고 전시해 왔지만 2020년 1월 폭설로 무너졌다. 이에 일본 시민들로 구성된 ‘사나노보효 전시관 재생 실행위원회’가 모금 활동을 통해 7000만 엔(약 6억5000만 원)이 넘는 돈을 모아 재건을 추진했고 지난달 건물이 완공됐다. 재건에 참여한 덴노 히라 요시히코는 이날 행사 인사말을 통해 “과거를 잊지 않고 국경을 넘어 화해와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 우리의 소망”이라고 말했다. 야지마 쓰카사 신임 관장은 이날 행사에서 “(박물관을) 역사를 전하고 나라로부터 피해를 본 희생자와 만나는 장소로 만들고 싶다”고 취임 소감을 밝혔다. 박물관 개관일은 29일이다.김윤진 기자 kyj@donga.com}
“(하늘에서) 폭탄이 터진 것 같다”. 26일 미국 남동부에 상륙한 초대형 허리케인 ‘헐린’으로 29일 오전까지 최소 65명이 숨지고, 300만 가구 이상이 정전을 겪고 있다고 NBC방송 등이 보도했다. 피해가 집중된 조지아주의 브라이언 켐프 주지사는 곳곳에서 폭우, 강풍 등이 이어져 각종 사회기반시설이 파괴됐다며 헐린을 ‘폭탄’에 비유했다. 시속 225km의 4등급 허리케인 헐린은 26일 오후 11시경 플로리다주 빅벤드에 상륙했다. 4등급은 전체 5등급으로 분류되는 허리케인 분류표에서 두 번째로 높은 등급이다. 이후 조지아, 노스캐롤라이나, 사우스캐롤라이나, 테네시주 등으로 이동하며 막대한 피해를 안겼다. 조지아주 주도 겸 최대 도시 애틀랜타는 최근 48시간 동안 282.4mm의 강우량을 기록했다. 애틀랜타에서 강우량을 측정하기 시작한 1878년 이후 가장 많은 강우량이라고 AP통신은 전했다. 27일 폭스뉴스 기상캐스터 밥 딜런은 애틀랜타의 침수 현장을 생방송으로 전하다가 한 여성의 비명을 들었다. 이 여성은 갑자기 불어난 물에 꼼짝없이 차에 갇혀 있던 상황이었다. 그는 이 여성을 대신해 911에 신고했지만 구조 인력의 도착이 늦어지자 카메라를 향해 “잠시 후 돌아오겠다”고 말한 뒤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딜런은 여성을 차에서 끌어낸 후 등에 업고 물속을 빠져나왔다. 해당 장면은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구조를 마친 딜런은 생방송을 계속했다. 노스캐롤라이나주의 홍수 피해 상황 또한 100여 년 만에 최대 규모라고 미 국립허리케인센터는 전했다. 주 당국에 따르면 28일 오전까지 400개 이상의 도로가 폐쇄됐고 피해가 집중된 주 서부는 사실상 모든 육상 교통이 마비됐다. 일기예보 서비스 ‘아큐웨더’는 헐린에 따른 피해 규모가 최대 1100억 달러(약 144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인명 피해와 손실에 깊은 슬픔을 느낀다”며 연방정부의 지원을 약속했다. 미 연방재난관리청(FEMA)은 피해가 집중된 6개 주에 수색·구조 인력 3200명을 지원했다고 밝혔다.김윤진 기자 kyj@donga.com}
사단법인 한미클럽(회장 이강덕)은 30일 제7회와 제8회 오버도퍼상 수상자로 SBS 김수형 기자와 JTBC 김필규 기자를 각각 선정했다고 밝혔다.오버도퍼상은 한반도 문제에 깊은 통찰을 보였던 미국 워싱턴포스트(WP)의 고(故) 돈 오버도퍼(1931~2015) 기자를 기리고, 외교·안보 분야에서 뛰어난 역량을 보인 한국 언론인을 격려하기 위해 제정된 상이다. 한미클럽은 주한미국대사관과 함께 2016년부터 매년 이 상을 시상하고 있다.시상식은 30일 오후 3시 주한미국대사관 관저에서 진행된다.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와 대사관 관계자, 한미클럽역대 수상자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김윤진 기자 kyj@donga.com}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25일(현지 시간) 취임 후 두 번째로 캐나다를 방문해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회담을 가졌다. 외신들은 양국에서 ‘중도좌파의 새 얼굴’로 각광 받으며 장기 집권에 성공한 두 젊은 지도자가, 현재 지지율 하락과 극우 세력의 부상으로 유사한 국내정치적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회동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AFP통신 등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저녁 캐나다 오타와에 있는 트뤼도 총리의 사저를 방문해 비공개 만찬을 가졌다. 두 지도자는 이튿날 인공지능(AI) 등을 주제로 회담한 뒤 프랑스계 주민이 많은 몬트리올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진행할 예정이다.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유럽판은 캐나다·프랑스 모두 ‘오바마 효과(Obama Effect)’의 가능성에 처해있다고 분석했다. 2008년 최초의 흑인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진보적 의제로 호응을 받아 재선에도 성공했지만, 후임자로 강경 우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돼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이 대거 폐기됐다. 폴리티코 유럽은 “두 지도자는 정반대 성향으로 자신의 업적을 훼손할 수 있는 사람이 자리를 넘겨받을 수 있다는 우려를 공유하고 있다”고 평했다.2017년 ‘실용주의’를 내세워 당선된 마크롱 대통령은 2022년 재선에 성공했지만, 의회 과반 의석 확보는 실패했다.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에 패한 뒤 ‘의회 해산·조기 총선’ 승부수를 던졌지만 결과는 좌파 연합·극우에 밀린 참패였다. 트뤼도 총리는 2015년 취임, 2021년 가까스로 재집권에 성공했으나 높은 생활비와 주택난으로 지지율이 추락한 상태다. 트뤼도의 자유당 정부는 25일 하원에서 야당 보수당이 주도한 ‘내각 불신임안’ 통과를 가까스로 피했다.두 지도자가 고전하는 사이 양국에서는 우파 세력이 힘을 얻고 있다. 프랑스 여론조사 기관 오피니언웨이가 11~12일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대선이 치러질 경우 마린 르펜 RN 전 대표를 지지하겠다는 답변이 35%로 1위였다. 캐나다에선 야당 보수당의 지지율이 약 43%로 집권 자유당(24%)의 두 배에 가깝다. 극단적인 수사로 ‘예의 바른 트럼프’라는 평가를 받는 피에르 푸알리에브르 보수당 대표는 “세금 폐지(Axe the Tax)”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트뤼도 총리의 사임과 정권 교체를 주장하고 있다.캐나다 몬트리올 대학교의 정치학 교수 프레데릭 메랑은 폴리티코 유럽에 “마크롱과 트뤼도는 모두 광범위한 자유주의-진보적 플랫폼을 지지하고 정치적 근대성을 대변하고 싶다는 것 외에, 강력하거나 진지한 이념 없이 정치에 입문한 사람들”이라며 “역설적인 것은 이들이 자유주의 사상이 더욱 강해지고 사회가 더 진보적으로 돼가는 시기에 권력을 떠날 것이라는 점”이라고 지적했다.김윤진 기자 kyj@donga.com}
11월 5일 미국 대선을 40일 앞두고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 겸 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 겸 전 대통령이 초박빙 대결을 펼치고 있다. 두 후보와 소속 정당 간 펜실베이니아, 노스캐롤라이나, 조지아 등 주요 경합주에서 사전투표 규칙 등 선거 제도를 유리하게 바꾸려는 ‘룰(rule)의 전쟁’도 격해지고 있다. 코로나19 기간 중 치러진 2020년 대선의 사전투표율은 69%에 달했다. 당시 민주당 지지 유권자가 대거 사전투표에 참여하면서 조 바이든 대통령의 승리에 기여했다는 평이 많다. 이에 이번 대선에서는 양당 모두 사전투표를 포함한 각종 선거 규칙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기 위한 싸움이 한창이다. 다만 일부 주에선 이미 사전투표가 시작된 터라 규칙 개정 시도가 혼란만 부추긴다는 우려가 나온다. ● 경합주 곳곳서 소송전 이번 대선의 최대 격전지인 펜실베이니아주 대법원은 20일 우편투표 용지를 선관위가 동봉한 봉투에 넣지 않아 무효표로 처리된 것에 반발한 유권자들이 “대선 당일 투표소에서 현장 투표를 허용해 달라”고 요구한 것에 대한 심리를 시작했다. 이들은 자신들을 “‘잠정(provisional) 투표자’에 포함시켜 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잠정 투표는 투표 자격이 불확실한 유권자의 투표를 일단 허용한 뒤, 이들의 투표 자격이 확인되면 유효표로 집계한다. 지지층의 사전투표 참여율이 높은 민주당은 “이들에게 잠정 투표 권한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24일 주 대법원이 현장 투표를 허용하자 공화당측은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 인사가 다수인 노스캐롤라이나주 선관위는 이번 대선에서 채플힐 노스캐롤라이나대 재학생들이 학교에서 발급한 모바일 신분증을 대선 투표 때 신분 확인 도구로 쓸 수 있도록 했다. 공화당은 민주당 지지 성향이 높은 대학생들이 쉽게 투표할 수 있는 것에 반발하며 주 법원에 “모바일 신분증 사용 금지를 명령해 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19일 1심 격인 주 법원이 기각하자 공화당은 즉각 항소했다. 2020년 대선에서 재검표까지 실시했고, 선관위에 공화당 인사가 많은 조지아주는 20일 모든 투표용지를 전자 개표가 아닌 수작업으로 개표하는 규정을 통과시켰다. 개표의 정확성을 높여 재검표 사태를 방지하겠다는 취지지만 개표에 많은 시간이 걸려 혼란이 예상된다. 민주당 측은 공화당 측이 대선 패배 시 ‘선거 부정’을 주장하기 위해 명분 쌓기용 제도를 도입했다고 반발한다.● 초박빙 싸움에 혼란 가중24일 네브래스카주는 트럼프 후보 측이 요구한 선거인단 배분 제도 변경을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 이곳은 5명의 대선 선거인단 중 2명은 승자에게 배분하고, 다른 3명은 하원 지역구별 투표 결과에 따라 배분한다. 승자독식제와 비례배분제를 모두 택한 셈인데 공화당 측은 순수 승자독식제로 바꿔 5명을 모두 가져가겠다는 속내를 보였다. 공화당 소속 짐 필런 네브래스카 주지사는 이 사안을 주의회에 회부해 의결하려 했다. 그러나 역시 공화당 소속 마이크 맥도널 주 상원의원이 “대선이 임박한 상황에서 선거제도 변경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대했다.한편 두 후보의 지지율은 초접전 양상이다. 24일 CNN과 여론조사회사 SSRS의 전국 지지율 조사에서 해리스 후보는 48%, 트럼프 후보는 47%를 얻었다. 같은 날 퀴니피액대 조사에서는 트럼프 후보가 48%, 해리스 후보가 47%였다.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김윤진 기자 kyj@donga.com}
이스라엘과 레바논 친(親)이란 무장단체 헤즈볼라 간 충돌이 심각해지면서 이란의 외교 전략이 난관에 봉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간 이란은 이스라엘을 직접 공격하는 대신에 헤즈볼라, 하마스, 예멘 후티 같은 무장단체를 ‘대리인’으로 앞세워 대(對)이스라엘 전선을 구축하는 전략을 펼쳐왔다. 그러나 대리인 중 핵심인 헤즈볼라가 최근 이스라엘의 집중 공격으로 전력이 크게 약화돼 확전을 무릅쓰고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분쟁에 직접 뛰어들거나, 이스라엘에 대한 견제 기능이 악화되는 것을 감수해야 하는 딜레마에 처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일간 하아레츠는 “이란은 (이스라엘과의) 직접적 분쟁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노력했지만, 중동 지역의 가장 중요한 자산인 레바논에서 영향력을 잃게 될 위험에 처했다”고 평했다. 그러나 서방과의 관계 개선을 꾀하고 있는 이란이 이스라엘과의 확전을 피한다는 원칙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 워싱턴의 싱크탱크 중동연구소(MEI)는 23일 “이란은 정면 대치를 지연시키고 제한적인 대응을 선택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MEI는 “이란 정권은 중동에서 긴장이 고조되면 카멀라 해리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겸 부통령의 캠페인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이는 이란의 핵개발 역량을 파괴하는 데 몰두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 겸 전 대통령의 승리를 이끌 수 있다고 계산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뉴욕타임스와 AFP통신 등은 마수드 페제슈키안 이란 대통령이 23일 기자회견 중 “이스라엘이 똑같이 할 의사가 있다면 우리는 모든 무기를 내려놓을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며 이번 사태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을 사실상 밝힌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란 외교부는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응 없이 지나가지 않을 것이며, 적절한 시일 내에 (보복이) 이행될 것”이라며 관련 보도를 부인했다.김윤진 기자 kyj@donga.com}
이스라엘과 레바논 친(親)이란 무장단체 헤즈볼라 간 충돌이 심각해지면서 이란의 외교 전략이 난관에 봉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그간 이란은 이스라엘을 직접 공격하는 대신, 헤즈볼라, 하마스, 예멘 후티 같은 무장단체를 ‘대리인’으로 앞세워 대(對)이스라엘 전선을 구축하는 전략을 펼쳐왔다. 그러나 대리인 중 핵심인 헤즈볼라가 최근 이스라엘의 집중 공격으로 전력이 크게 약화돼, 확전을 무릅쓰고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분쟁에 직접 뛰어들거나, 이스라엘에 대한 견제 기능이 악화되는 것을 감수해야 하는 딜레마에 처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일간 하아레츠는 “이란은 (이스라엘과의) 직접적 분쟁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노력했지만, 중동 지역의 가장 중요한 자산인 레바논에서 영향력을 잃게 될 위험에 처했다”고 평했다.그러나 서방과의 관계 개선을 꾀하고 있는 이란이 이스라엘과의 확전을 피한다는 원칙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 워싱턴의 싱크탱크 중동연구소(MEI)는 23일 “이란은 정면 대치를 지연시키고 제한적인 대응을 선택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MEI는 “이란 정권은 중동에서 긴장이 고조되면 카멀라 해리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겸 부통령의 캠페인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이는 이란의 핵개발 역량을 파괴하는 데 몰두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 겸 전 대통령의 승리를 이끌 수 있다고 계산할 것”이라고 분석했다.한편 뉴욕타임스와 AFP통신 등은 마수드 페제슈키안 이란 대통령이 23일 기자회견 중 “이스라엘이 똑같이 할 의사가 있다면 우리는 모든 무기를 내려놓을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며 이번 사태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을 사실상 밝힌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란 외무부는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응 없이 지나가지 않을 것이며, 적절한 시일 내에 (보복이) 이행될 것”이라며 관련 보도를 부인했다.김윤진 기자 kyj@donga.com}
“국제통화기금(IMF)과의 국가부채 재협상을 실시하겠다.”2년 전 국가 부도를 맞았던 스리랑카의 새 대통령으로 좌파 정치인 아누라 디사나야케(56)가 선출됐다. 23일부터 5년 임기를 시작한 그는 “IMF의 긴축 정책으로 생활고에 처한 빈민과 농민층을 살리겠다”며 현금 직접 지원 정책 등을 실시할 뜻을 밝혔다. 다만 이런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 정책이 고질적인 경제난을 가중시킬 것이란 우려도 끊이지 않는다. BBC 등은 1948년 스리랑카가 영국에서 독립한 후 최초로 강력한 좌파 이데올로기를 가진 지도자가 권좌에 올랐다고 평했다.좌파 정당 인민해방전선(JVP) 소속으로 출마한 디사나야케 대통령은 22일 대선 결선투표에서 42%를 얻었다. 무소속으로 나선 라닐 위크레메싱게 전 대통령, 사지트 프레마다사 제1야당 국민의힘연합(SJB) 총재를 제치고 대선 ‘재수’에 성공했다.그는 당초 대선 1차 투표에서도 39.5%를 얻어 1위를 차지했지만 과반 득표를 못해 결선 투표를 치렀다.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선관위에서 상위 1·2위 후보만 남겨 다시 개표를 진행한다. 직전 2019년 대선에서 3% 남짓을 득표해 3위에 그쳤던 디사나야케 후보는 라닐 위크레메싱게 현 대통령과 사지트 프레마다사 제1야당 국민의힘연합(SJB) 총재를 제치고 대선 ‘재수’에 성공했다.2019년 11월 직전 대선에서 당선된 고타바야 라자팍사 전 대통령은 코로나19, 경제난 등으로 2022년 5월 국가부도를 선언했다. 직후 시위대에 쫓겨 외국으로 피신했다. 당시 총리였던 위크레메싱게 전 대통령이 같은 해 7월 헌법에 따라 국회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돼 전임자의 잔여임기 2년을 채웠다.위크레메싱게 전 대통령은 지난해 3월 IMF로부터 구조조정 등에 나서는 대신 29억 달러(약 4조 원)의 지원을 얻어냈다. 증세, 에너지 보조금 폐지 등 강력한 긴축 정책을 펼쳤다. 이에 따른 서민 불만이 커지자 디사나야케 대통령이 “증세 및 에너지 보조금 폐지 철회” 등을 거론하며 빈민층의 지지를 얻었다.디사나야케 대통령은 1987년 학생시절 JVP에 입당, 2000년 국회에 입성했다. 1965년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으로 출범한 JVP는 1971년과 1987년 반(反)정부 무장봉기를 일으켰으나 실패하면서 총 8만여 명이 희생됐다. 디사나야케 후보는 2014년 BBC 인터뷰를 통해 “무력 충돌로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많은 일이 일어났다”며 당의 과거 행적을 공개 사과했다.김윤진 기자 kyj@donga.com}
“이게 다 가죽으로 만든 거라고요?”17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밀라노의 국제 컨벤션 센터 피에라 밀라노(Fiera Milano Rho). 세계 최대 가죽 박람회 ‘리니아펠레(Lineapelle)’ 개막 첫날 찾은 전시장에서 밀라노 소재 패션 연구개발(R&D) 센터 디하우스의 부스는 귀걸이, 타일 등 가죽 제품과는 거리가 먼 제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전시장 천장을 둘러싼 폐가죽 조각들만이 가죽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를 떠올리게 했다. ‘스마트 사이클(SMART CYCLE) - 무두질 부산물에서 지속 가능한 혁신으로’라는 프로젝트명만이 이 전시회가 가죽과 관계있음을 알려줬다.이탈리아어로 ‘가죽 라인’을 뜻하는 리니아펠레는 전 세계 가죽 산업 종사자들이 모여 최신 트렌드와 업계의 동향을 논하는 자리다. 신발이나 의류, 가구, 자동차 등 다양한 가죽 제품에 활용되는 재료인 ‘가죽’과 관련 부품·소재가 중심이다. 1981년 밀라노에서 시작된 리니아펠레는 매년 2월과 9월 두 차례씩 각각 3일간 열린다. 이번 리니아펠레에는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43개국 1259개 업체가 참여했다.이번 리니아펠레의 화두는 ‘가죽 산업의 혁신과 지속 가능성’이다. 가죽 산업은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고루하다는 인식을 극복하고, 가죽 생산·가공 과정에서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을 달성해야 한다는 중요한 과제를 안고 있다.디하우스의 ‘스마트 사이클’ 프로젝트는 가죽 ‘기술’ 혁신의 일환으로, 가죽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고 생산·가공 중 발생한 부산물을 재활용하기 위한 연구 프로젝트다. 가죽 생산 후 남은 폐가죽은 재가공을 거쳐 3D 프린팅의 원료인 필라멘트가 돼 귀걸이를 만들었고, 형형색색의 인테리어 타일과 다양한 질감의 자수 카펫으로도 재탄생했다. 표면 마감 중에 발생하는 가죽 가루는 가죽에 자연스럽게 갈라지는 무늬를 넣는 재료로 다시 쓰여 독특한 질감의 가방 원단을 만들어냈다. 이탈리아 현지 무두 공장과 협력해 실제 가죽 생산으로 발생한 폐기물 등을 활용했다.에바 모나치니 디하우스 코디네이터는 “모든 연구는 가죽 생산의 지속 가능성 달성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며 “새로운 미래의 자원으로서 각종 가죽 부산물·폐기물에 주목하고, 개별적인 특성에 맞게 활용할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폐가죽을 필라멘트로 만드는 기술과 타일로 만드는 기술은 현재 특허 출원 중이다.현지 컨설팅 기업 ‘SPIN360’이 참여한 회의에서는 기후변화가 가죽산업에 미칠 영향 등이 논의됐다. 페데리코 브루놀리 SPIN360 CEO는 개회사에서 “인간이 초래한 기후 위기와 환경 변화에 패션 산업이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간 많은 환경단체들은 가죽산업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 동물학대 등에 관한 문제를 제기했는데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뜻을 밝힌 셈이다.신발업체 ‘뉴발란스’ 등도 이 논의에 참여했다. 자신들의 환경친화 전략과 실제 도입 사례 등을 공유했다.이탈리아 가죽업계는 국제 패션학교 등과도 적극 협력하고 있다. 리니아펠레와 협업한 6개 국제 패션 학교는 차세대 디자이너들이 재해석한 가죽 디자인 혁신을 선보였다. 특히 캄파니아루이지반비텔리대학은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새로운 가죽 디자인을 제안했다. 나뭇잎 질감을 구현하거나 파스텔 색상으로 염색된 원단 등 전통적인 가죽과는 다른 참신한 시도들이 눈에 띄었다. 캄파니아루이지반비텔리대의 로베르토 리베르티 조교수는 “AI는 디자이너들이 창의적인 제품을 신속하게 시각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라며, AI 덕분에 디자인부터 제작까지의 전체 과정이 단축됐다고 설명했다. 기존 2~3개월 소요되던 가죽 제작 과정이 AI로 인해 약 2주로 줄어든 것이다.내년 2월 리니아펠레에는 홍익대학교도 참여하기로 했다. 홍익대 이승익 교수 팀은 글로벌 3D 프린팅 솔루션 기업 스트라타시스·이탈리아 가죽 브랜드 다니와 협력해 식물성 가죽 소재에 3D 프린팅을 적용한 패션 프로젝트를 선보일 계획이다. 이강현 교수 팀과 직물 제조업체 코오롱글로텍이 협업한 자율 주행 운송수단의 공간 디자인 프로젝트도 소개된다.풀비아 바키 리니아펠레 최고경영자(CEO)는 동아일보에 “가죽은 다루기 어렵고 가격도 비싸 젊은 디자이너들이 쉽게 접하기 힘들다. 리니아펠레는 젊은 디자이너들이 가죽을 활용한 창의적인 작품을 만들고 시장에 선보일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의 젊은 디자이너, 한국의 패션 관련 학교와 적극 협력하고 싶다”고 했다.밀라노=김윤진 기자 ky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