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호

신석호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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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신석호 전무입니다.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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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04~2024-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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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을 대하는 경이원지의 지혜[오늘과 내일/신석호]

    천안함 폭침 사건으로 꽃다운 나이의 젊은 46용사가 숨을 거두기 직전인 2010년 3월 초. 북한에 다녀온 인사가 북측 당국자의 경고를 기자에게 전했다. “8일부터 시작되는 키리졸브 한미 연합 군사훈련 기간 동안 남한과 미국의 전투기가 비록 공해상일지라도 북측을 향해 기수를 돌릴 경우 이를 공격으로 간주하고 대응할 것이다.” 머지않아 군부가 할 일을 정반대로 재구성해 귀띔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3월 26일 밤 전투기가 아니라 해군 초계함인 천안함이 침몰했다. 동쪽 하늘이 아니라 서쪽 바다였고, 키리졸브 연습이 끝나고 독수리훈련이 시작된 때였다. 북한 당국자는 최고지도부가 왜 화났는지도 설명했다. “우리는 금강산과 개성 관광 재개를 위해 노력하고 개성공단 근로자나 동해상으로 월경한 ‘800연안호’를 석방하는 등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남측은 필요한 것들만 얻어 위기만 모면하려고 진정성 있는 대화를 진행하지 않았다.” ‘진정성 있는 대화’란 2009년 가을 정상회담 논의였다. 2008년 8월 뇌혈관계 질환으로 쓰러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죽기 전 아들 김정은의 권력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돈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2009년 8월 김대중 대통령이 서거하자 김양건 통전부장 등을 조문단으로 보내 ‘대남 수금 작전’에 돌입했다. 이어 당국 간 정상회담 논의가 시작됐다. 돌이켜보면 이명박 정부는 ‘북한을 끌어냈다’고 기뻐할 일이 아니라 정중히 거절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싱가포르에서 김양건을 만난 임태희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국군포로 일부의 고향 방문과 대북 인도적 지원을 골자로 한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양해각서’에 덜컥 서명했고, 보고를 받은 이 대통령이 국군포로 관련 요구는 더 키우고 인도적 지원 요구를 거절했다. 김정일에게 양해각서를 보고하고 재가를 받은 김양건은 “대기업이 중소기업 후리듯이 하느냐”며 거세게 항의했다고 한다. 북한과 대화의 샅바를 잡았다가 오히려 군사공격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불편한 시나리오는 10년 뒤인 지금 반복되고 있다. 애초에 비핵화 의지가 없었던 북한이 먼저 ‘미국과 대화하고 싶으니 다리를 놔 달라’고 했는지, 문재인 정부가 먼저 ‘미국과 대화하게 해 주겠다’고 공작을 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모든 외교적 춤판(fandango)은 한국이 만든 것이었고, 이는 김정은이나 우리(트럼프)의 진지한 전략보다는 한국의 통일의제에 더 연관된 것’이었다며 두 번째 가설에 무게를 실었다. 볼턴의 인식이 ‘통일의제’이지 사실은 문재인 정권의 생존이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 탄핵 파동으로 준비 없이 정권을 잡은 뒤 북한과의 화해무드는 좋은 통치 카드였다. 남북관계를 국내정치에 이용한 것은 역대 정부가 모두 같지만 이번엔 부작용이 좀 심한 것 같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도 못한 ‘평양 연설’의 호사는 문재인 정부의 발목을 잡는 형국이다.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생전 북한을 대하는 태도로 강조했던 ‘경이원지(敬而遠之·겉으로 공경하는 체하면서 멀리함)의 지혜’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황 전 비서는 “진짜 공경하라는 게 아니라 외견상 국가로 대접하는 척은 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헌법상 우리 영토요 국민이지만 김씨 일가가 지배하고 있고 우리를 괴롭힐 수 있는 군사력도 보유하고 있는 점은 인정해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은 피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신격화된 김씨 일가의 시대착오적인 수령 절대주의 세습 독재 체제를 가까이하면 반드시 화를 당한다”고 경계했다. 이명박 정부는 멀리하려 했지만 자존심을 건드린 경우라 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자존심까지 버리고 너무 가까이 간 ‘죗값’을 치르고 있는 것 아닐까.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 2020-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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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갑작스런 대남 도발 보류…김정은의 속셈은? [신석호 기자의 우아한]

    이달 4일부터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대남 공세의 전면에 나섰을 때, 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할 일을 김여정이 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이 제기됐습니다. 당시 채널A 방송에 나가서 두 가지 측면을 이야기했습니다. 우선 김정은이 하노이 북미회담 결렬 이후 미국과 남한에 대해 화가 날 때까지 났고, 김여정과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등 참모들이 이 화를 풀고 살아 남기 위해 대남 공세 카드를 집어 들었을 가능성이었습니다. 다음은 협상론의 측면입니다. 공세에는 끝이 있기 마련인데 김정은이 공세를 하고 김정은이 돌아서는 모양새는 보기에 좋지 않기 때문에 공세는 김여정이, 돌아서기는 김정은이 하기로 역할분담을 했을 것이라는 추정이었습니다.오늘 김정은이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예비회의라는 것을 열어 군이 추진하고 있는 대남 군사행동계획을 보류하는 결정을 내렸다는 보도가 나온 뒤 그럼 왜 김정은은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북한 내부의 사정을 정확하게 알 수 없기 때문에 앞에서 말씀드린 두 가지 측면에서 그 원인도 추정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우선 김정은의 화를 풀고 살아남기 위해 김여정과 김영철이 대남 도발을 진행했다면 이를 지켜보던 김정은이 ‘어, 수고했는데, 너무 나가진 마라’는 사인을 보낸 것일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김정은의 화가 어느 정도 풀렸기 때문인지, 아니면 남한에 대한 도발이 가져 올 여러 가지 비용을 생각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요.두 번째로 협상론의 측면에서 보자면, 이 또한 사전에 잘 계획된 수순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김여정과 김영철은 도발을 하는 흉내를 내고 남한과 미국의 반응을 살핀 뒤 김정은이 어느 수준에서 숨을 고르는 연출을 미리 준비했을 가능성입니다. 안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보류’이기 때문에 아주 안할 것인지, 아니면 한국과 미국의 반응을 본 뒤 다시 사용할 것인지도 논의가 되어 있거나 논의할 것으로 보입니다. 전형적인 북한의 2중 전술(도발과 긴장완화를 번갈아 주도권을 유지하는 전술)이요 살라미 전술(수단을 잘게 쪼개 긴장을 고조시키거나 완화하는 수법)이라는 이야깁니다.오늘 노동신문 보도를 보면서 새로운 가능성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북한 지도부의 계산법 속에 대남 공세는 대미공세에 비해 한 단계 급이 낮은 것이기 때문에 대남공세는 김여정이, 대미공세는 김정은이 맡기로 역할이 분담되어 있을 경우입니다. 김여정이 주도하는 대남공세의 숨을 고르면서 김정은이 직접 나서 대미공세를 시작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오늘 노동신문 보도에는 “예비회담에는 제5차 본회의에 상정시킬 주요 군사정책 토의안들을 심의하였으며 본회의에 제출할 보고, 결정서들과 나라의 전쟁억제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국가적 대책들을 반영한 여러 문건들을 연구하였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만일 이것이 미국을 자극하기 위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을 포함한 전략무기 시험이나 공개 등을 의미할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북한이 대남 도발을 보류했다고 안심하거나 좋아할 것이 아니라 더 큰 싸움이 벌어질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kyle@donga.com}

    • 2020-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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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적은 적이다… 아직도 모르는 척하나?[오늘과 내일/신석호]

    2012년 대통령선거 전 이명박 정부를 이을 새 정부의 남북관계를 전망하는 글에서 북한의 김정은이 한동안 남북관계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썼다. 아직 미숙한 젊은 지도자가 남한과 샅바를 섣불리 잡았다가 잘못되면 갓 출범한 3대 세습 독재정권 자체에 위기가 올 것쯤은 알리라는 게 근거였다. 박근혜 정부 내내 남북관계가 지지부진했고 전망은 맞는 듯했다.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에 그의 특사 자격으로 김여정이 내려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김정은의 대남 구애는 외견상 전격적이고 파격적이었다. 김정은이 집권 6년 만에 ‘대남사업’의 샅바를 잡은 데는 여러 요인이 있었다. 2016년부터 2년 동안 최고로 끌어올린 핵능력을 대충 보유하면서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를 풀기 위해서는 한국과의 평화 코스프레가 필요했다. 출범 초기 정치도 경제도 되는 게 없었던 문재인 정부는 그런 북한을 다양한 방법으로 유인했을 것이다. 둘의 공생은 성공하는 듯했다. 2019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을 내치기 전까지는. 이런 불편한 진실을 상기한다면 ‘역사상 가장 좋았던’ 남북관계가 최근 갑자기 ‘대적관계’가 된 것이 아니다. 최고지도자들의 동상이몽 속에 겉으로만 좋아 보였을 뿐이다. 김여정과 탁현민의 현란한 이미지 정치 속에 실질적인 관계는 크게 진전된 것이 없었다.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은 김정은과 문 대통령 그리고 측근 일부만이 반복해 등장하는 연속극처럼 보였다. 이산가족 상봉은 한 차례에 그쳤고 민간 교류는 거의 진전되지 않았다. 국제정치학의 신기능주의가 말하는 ‘낙수 효과’, 즉 당국 간의 좋은 관계가 민간 차원의 교류와 협력으로 확산되는 현상이 없었던 것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와의 결정적인 차이다. 북한의 핵개발과 켜켜이 쌓인 대북제재 때문에 정부도 민간도 북이 원하는 것을 해줄 수 없었다. 김정은의 대남 평화 공세는 위선적이었다. 트럼프에게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며 제재를 푸는 데 남쪽을 활용했고 이젠 포기한 것 같다. 트럼프의 생각이 변할 것 같지도 않고 문 대통령에게 그럴 능력이 없다고 제 입으로 질타하지 않았는가. 김여정은 그러면서 남측을 향해 ‘적은 적이다’라고 했는데, 그걸 지금 알았나? 할아버지 김일성의 권력욕으로 민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을 치른 남과 북은 기본적으로 대적관계다. 하나가 죽어야 끝날 것 같은 체제 경쟁은 70년이 된 지금도 끝나지 않고 있다. 소련과 중공이라는 외세를 등에 업고 동족에게 총부리를 겨눴던 김일성의 과오를 감추기 위해 전후 북한 지도자들은 미국을 제국주의로, 남한을 신식민지 파쇼 국가라 낙인찍은 뒤 주기적으로 대미, 대남 도발을 하며 체제의 정당성을 유지하려 했다. 이런 제도화된 적대관계에 기생하는 권력자들이 있었다. 정치군인으로 평생 남측을 골탕 먹이는 데 전문성을 쌓아온 김영철 당 부위원장이 대표적이다. 그런 자들의 권유와 설득 속에 김정은이 집권 10년 가까이 할아버지, 아버지 때와 같은 대형 대남 도발을 자제해온 것 자체가 오히려 비정상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김일성과 김정일에겐 남한을 잘못 건드리면 미국에 얻어맞는다는 지혜라도 있었다. 젊은 김정은과 김여정 남매에게 그럴 자제력이 있을까. 북은 적을 적이라 하며 속내를 드러내는데 문재인 정부는 여전히 친구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김여정의 한마디에 말도 안 되는 법 조항으로 대북전단을 불법화하며 국제적인 망신을 무릅쓰고 있다. 1980년대 군부 권위주의와 맞서는 과정에 대안체제로 잘못 받아들인 김일성 북한의 환상을 아직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김정은을 판문점과 싱가포르, 하노이로 끌어내는 과정에 말 못 할 약점이라도 잡혔기 때문일까?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 202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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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 김씨 일가가 핵에 집착하는 이유[오늘과 내일/신석호]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가 제7기 제4차 확대회의를 열어 “나라의 핵전쟁 억제력을 더 한층 강화하고 전략무력을 고도의 격동상태에서 운영하기 위한 새로운 방침들”을 제시한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당 최고 기구인 중앙위원회가 지난해 12월 28일부터 31일까지 열린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세상은 곧 머지않아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기 때문에 후속 조치는 당연히 나와야 할 터였다. 확대회의 발표문에 미국에 대한 언급이 없는 점은 지난해 12월과 다르다. 전원회의 때는 “앞으로 미국이 시간을 끌수록, 조미 관계의 결산을 주저하면 할수록 예측할 수 없이 강대해지는 위력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며 미국의 양보를 요구하는 대목이 있었다. 미국과의 대화 기대를 버리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실험 등 전략 도발을 하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읽히는 대목이다. 24일 조선중앙통신 보도로 회의가 알려진 것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이 시진핑 주석의 중국에 사실상의 신냉전을 선포하는 ‘미국의 대중국 전략보고서’를 20일 의회에 제출했다는 소식이 전 세계에 타전된 직후였다. 보고서는 중국에 대해 ‘약탈 경제’ 등의 비난을 퍼부으며 전략핵무기 3축 체계의 현대화로 힘을 통한 평화를 유지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강조했다. 지난해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북한은 10월 2일 SLBM 발사 실험을 했는데, 역시 미중이 핵 탑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능력을 뽐내며 갈등하던 참이었다. 북한의 도발은 중국이 10월 1일 둥펑-41을 선보이고 미국이 2일(현지 시간) 미니트맨3 발사 실험을 한 직후에 이뤄졌다. 북한은 그동안 미국에 맞서며 ‘강대국 코스프레’를 해왔다. 이번에도 ‘당신이 핵무력을 강화하는데 우리도 가만있을 수 없다’는 명분을 들어 SLBM 발사 실험에 따르는 정치적 저항을 최소화하려 했을 가능성이 있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지만 북한이 ‘미국에 얻어맞을 위험’을 피해 틈만 나면 핵무력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북한의 김씨 일가는 왜 대를 이어 핵에 집착하는 것일까. 학자들은 세 가지 차원에서 원인을 찾고 있다. 최고지도자 개인의 인식과 선호(개인 차원), 수령 절대주의라는 북한 체제의 특수성(국가 차원), 세계정부가 없는 국제 체제에서의 안보 딜레마(국제정치 차원)가 그것이다. 고 케네스 왈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가 전쟁의 원인을 탐구해 쓴 고전 ‘인간, 국가, 그리고 전쟁(Man, the State and War)의 분석 수준이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왈츠는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정부적 국제 체제라고 보았지만 김씨 일가의 핵 개발은 다른 것 같다. 모든 국가들이 아노미적인 국제 질서 속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국가 안보를 추구하지만 모든 국가들이 핵 개발에 집착하지는 않는다. 비슷한 조건의 독재정권이 모두 정권 안보를 위해 핵 개발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이보다는 ‘개인’ 나아가 ‘개인들’에 답이 있다. 김일성은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려는 권력욕에 6·25전쟁을 일으킨 뒤 미국의 핵 공격 위협에 시달렸다. 전쟁 직후인 1950년대 중반부터 핵 개발을 시작했고 미국이 소련을 해체시키고 유일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1993년 1차 핵 위기라는 도박을 시작했다. 같은 경험을 한 북한의 전쟁세대들을 ‘미국은 우리를 핵으로 공격하려 한다. 좀 가난해도 핵을 가져야 너도 나도 살 수 있다’고 선동해 비정상적인 독재 체제를 구축하고 유지했다. 아들에게는 ‘핵을 들고 미국과 대치해야 권좌를 지킬 수 있다’는 진짜 유훈을 남겼을 것이다. 북한의 핵 보유 야욕을 정당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3대 세습 후계자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기대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지적하려는 것이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 2020-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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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19가 바꾼 ‘김정은 스타일’[오늘과 내일/신석호]

    집권 직후 김정은은 활발한 현지지도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무뚝뚝했던 아버지 김정일과는 달리 청년과 여성 등 주민들을 끌어안고 웃으며 ‘애민정신’을 가진 새로운 지도자임을 홍보했다. 그렇게라도 대중의 지지를 얻어 부족한 정통성을 보완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다 얼마 후엔 군부대를 찾아 나이든 군 간부들을 옆에 불러 세우고 삿대질을 하며 고함을 치는 모습을 연출했다. 주민에겐 자상하게, 권력자들에겐 엄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김정은 스타일’이었다. 두 유형의 현지지도엔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밀접 접촉형’이라는 것이다. 조선중앙TV를 보고 있자면 ‘김정은이 보통 사람 냄새 좀 맡았겠구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주민들과 밀접하게 접촉하는 장면이 이어졌다. 방송을 통해 보는 다른 주민들이 마치 최고지도자와 대면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려는 이미지 정치였다. 방송을 보는 군 간부들이 자신도 혼쭐이 나는 느낌을 주는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김여정과 같은 선전선동 전문가들은 ‘가까이 더 가까이’를 요구했을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이 권력을 공고화해 가면서 ‘밀접 접촉형 현지지도’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엔 완전히 사라졌다. 미국 CNN 보도로 확산된 신변 이상설을 잠재우려 급히 준비된 것으로 보이는 1일 비료공장 방문이 대표적이다. 최고지도자는 일단의 최고위 간부들의 수행을 받으며 테이프 커팅을 하고 공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지만 공장 근로자들과의 접촉은 일절 없다. 마스크를 쓴 근로자들은 단상 아래 줄지어 서 박수를 치는 구경꾼일 뿐이다. 장소가 확인된 공개 활동으로만 보자면 김정은은 벌써 한 달 이상 수도 평양을 비우고 있다. 지난달 11일 평양의 노동당 중앙위 본부청사에서 당 정치국 회의를 주재했다고 보도된 것이 마지막이다. 북한은 아직 코로나19 확진자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김정은이 코로나를 피해 원산의 집무실에서 장기 체류하고 있다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만일 정치국 회의를 평양이 아닌 원산 집무실에서 했다면 3월 17일 평양종합병원 착공식장에 나타난 뒤 두 달 가까이 평양을 비우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접촉의 정도와 지역을 막론하고 현지지도 자체가 크게 줄었다. 국가정보원은 올해 김정은의 공개 활동이 17회로 예년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고 6일 밝혔다. 14일까지 13일 동안 공개 활동 보도가 없었다. ‘수령 결사옹위’를 생명으로 하는 북한 체제에서 김정은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은 지고의 가치다. 최고지도자의 권위 때문에 마스크를 쓸 수도 없고 아예 현지지도 자체를 줄이는 것으로 분석된다. 현지지도는 김씨 3대 세습 독재가 대를 이어 구축해 온 독특한 통치행위다. 김일성 주석은 1956년 12월 11∼13일 열린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사회주의 건설에서 혁명적 대고조를 일으키기 위하여’라는 연설을 한 후 그달 28일 강선제강소(현 천리마제강기업소)를 방문했다. 최고지도자가 현장에서 지시한 내용은 당군정의 간부들에게 공유되고 노동신문 등 매체를 통해 일반 주민들에게 알려진다. 해당 사업에는 국가의 자원이 우선 배분되고 그 성과는 지도자의 국정 수행 능력으로 다시 홍보된다. 현지지도가 줄어든다고 국정이 마비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60여 년 동안 수령이 현장에 떠야 일이 돌아가도록 길들여진 북한 체제의 특성을 감안하면 최고지도자의 리더십과 국정 능력의 약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김정은 신변 이상설은 진화됐지만 북한도 코로나19가 촉발한 ‘언택트(비대면)’ 격변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 2020-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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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떻게 ‘평양의 봄’을 앞당길 것인가[오늘과 내일/신석호]

    “김씨 왕조 이외의 것을 생각한 이들은 대부분 죽거나 정치범 수용소에 보내졌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이들은 대대로 현 체제의 혜택을 받아 현상 유지가 실질적인 이익이라 생각하거나 불만이 있어도 ‘공연히 나섰다가 내 목숨만 날린다’고 침묵하는 사람들이죠.” 워싱턴 특파원으로 일할 때 현지 한반도 전문가들이 “북한 사람들은 왜 김씨 일가 세습 독재에 ‘역심(逆心)’을 품고 변화를 위해 행동하지 않느냐”고 질문할 때마다 이렇게 설명해줬다. 전자의 적극적인 부역자들은 소수일 것이다. 문제는 후자와 같은 다수의 소극적인 패배주의자들이다. 수령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도록 짜놓은 정교한 밀고의 시스템과 이를 통한 주기적인 숙청의 경험은 엘리트와 대중에게 ‘헛된 죽음보다는 비굴한 생존이 낫다’는 지혜를 터득하게 했다. 학자들은 이를 ‘정치적 효능감(political efficacy)’이 낮은 상태라고 말한다. ‘내가 나서면 정치가 바뀔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다는 것이다. 우리 정치사의 4·19혁명, 6월 민주항쟁 등과 같이 혁명은 정치적 효능감을 가진 다수가 모여야 이뤄진다. 언제나 소수의 엘리트가 횃불을 들지만 침묵하던 다수가 책을 덮고 와이셔츠를 걷어 올리고 도서관과 사무실에서 거리로 뛰쳐나올 때 비로소 기존 질서가 무너지는 것이다. 평양 노동당사 앞에서도 청년들이 다양한 정치적 미래를 토론하던 때가 있었다. 이들이 김씨 독재의 철퇴를 맞아 하나둘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북한 엘리트와 대중의 정치적 효능감은 ‘0’에 수렴해 왔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이들을 ‘독재가 만들어낸 청맹과니(눈은 뜨고 있으나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라고 불렀다. 그를 포함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북한을 떠나온 이들은 그나마 ‘생각이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3대 세습 독재자인 김정은이 지난달 11일 노동당 정치국 회의를 주재한 뒤 공개 활동을 하지 않자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매스미디어에 등장해 ‘김정은 이후’를 논했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를 비롯한 다수 고위급 탈북자들은 일단 김정은의 동생인 김여정이 실권을 잡겠지만 여성인 그가 권력을 공고화하지 못하면 김정일의 배다른 동생 김평일이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2014년 탈북해 미국에 체류하고 있는 리정호 씨도 김여정이 수령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김평일 세력을 탄압하고 엄청난 공포정치를 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는 한발 더 나아갔다. 김정일 김정은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노동당 39호실 간부 출신인 그는 지난달 26일 동아닷컴에 보내온 특별기고에서 “일부 사람들이 김정은 사후에 김여정과 김평일에게 (권력이) 넘어간다고 예측을 하고 있는 것은 김일성 가문의 왕조체제를 정당화해주는 매우 옳지 못한 생각”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지금 북한 고위층들도 김정은 체제의 잔인한 공포 통치와 억압에 증오와 분노를 느끼고 있다. 그래서 나는 북한 엘리트들이 올바른 결정과 선택을 하도록 적극 지지하고 지원해주며 고무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호소했다. 기고문에 ‘김여정·평일 후계론은 북한 주민에 대한 모독이다’라는 제목을 달면서 반성과 각성을 했다. 칼럼을 쓰고 방송에 출연하면서 북한 사람들이 ‘청맹과니’임을 전제로 한 ‘백두혈통 승계론’을 무비판적으로 전달한 것은 아닌가. 김여정이냐 김평일이냐, 김정은 후계 점치기가 아니라 김씨 세습독재를 어떻게 끝낼지 고민할 때가 아닌가. ‘평양의 봄’을 이끌 북한 엘리트들의 정치적 효능감을 높이기 위해 나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김정은 은둔 소동이 가져다준 값진 소득이었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 2020-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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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년 김정일 건강 이상과 비교한 ‘김정은 중태설’[신석호 기자의 우아한]

    2008년 동아일보의 통일부 출입기자로 일하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 건강 이상설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당해본 기억이 다시 떠오릅니다. 김 위원장은 직전까지 평양과 북한 전국을 현지지도하며 활발한 외부 활동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그 해 8월 중순 이후 외부활동을 하지 않자 마치 21일 현재처럼 다양한 추측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돌이켜보면 청와대와 국가정보원 등의 당국자들은 비교적 일찍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 징후를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확인됐지만 프랑스의 뇌혈관계 전문의가 베이징을 통해 평양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했고, 그가 찍어 나온 김 위원장의 뇌사진도 확보했습니다. 이명박 정부 내 극소수 당국자만 이 사실을 공유했지만 당국자들은 이런 저런 방법으로 기자들에게 뭔가 벌어지고 있음을 암시했습니다. 한 당국자는 기자들에게 가정하듯 “이럴 때 김정일 뇌사진이라도 입수하면 참 좋을텐데…”라고 사실상 정보노출을 했습니다.하지만 기자들은 이를 확인할 수 없었고 북한 정권 수립 기념일인 9·9절 열병식에 김 위원장이 나타나지 않는 것을 확인한 뒤 그의 건강 이상설을 기사화할 수 있었습니다. 정보 당국도 ‘뇌혈관계 질환’ 정도로 확인을 해주었습니다. 8월에 스트로크가 있었고 프랑스 의사 주도의 수술을 받았지만 왼쪽 손과 다리에 마비 증상이 있는 것으로 나중에 확인되었습니다. 북한 당국도 김 위원장이 10월 수술 후 처음으로 군부대의 축구경기장에 나타나 관람하는 사진을 보도하는 것으로 이 사실을 확인했습니다.당시와 비교할 때 20일 밤 데일리NK와 21일 오전 미국 CNN의 보도로 확산된 ‘김정은의 수술 후 중태설’은 사실과 차이가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청와대가 오전부터 사실을 부인하다가 오후에 “정상적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확인한 것이 2008년과 크게 다른 점입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대북 정보기능이 크게 약화되었다고는 하지만 북한의 동향을 휴민트(대인정보)와 감청 등으로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것은 역시 대한민국 정부일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4월 15일 태양절에 김정은이 금수산기념궁전을 참배하지 않은 것으로 볼 때 가벼운 스텐트 시술이나 다리 골격 수술 등을 받았을 수는 있지만 곧 회복해 지도력에 지장이 올만한 신체적 정신적 문제는 없을 가능성이 큽니다.하지만 김정은의 건강 문제는 언제라도 북한 체제의 변동을 초래할 수 있는 변수입니다. 심혈관계 질환 등 가족력이 있는데다 후계자로 지명된 이후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의 분위기를 내기 위해 일부러 살을 찌웠고, 정치적으로 홀로서기를 하는 가운데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고모부 장성택과 이복형 김정남을 처형하고 암살한 정치적 만행의 기억, 지난해 2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협상이 깨지고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가 풀리지 않는 외부 환경에서 내부 권력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은 현재 그의 스트레스 지수를 더 높이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입니다.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 2020-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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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여정은 김정은의 후계자가 될 수 있을까[오늘과 내일/신석호]

    동아일보 부설 화정평화재단은 북한 노동당의 제7차 당대회 개최를 앞둔 2016년 4월 통일연구원 등 4대 안보 싱크탱크 연구위원 102명을 상대로 한 전문가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여러 문항 가운데 ‘당대회 이후 북한의 2인자로 떠오를 인물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23%가 당시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던 김여정을, 21.2%가 국가안전보위부장이던 김원홍을 꼽았다. 1면 기사의 해설과 전망은 이랬다. “김정은이 ‘백두혈통’인 여동생 김여정과 집권 전부터 자신의 체제 공고화를 도우며 이른바 ‘숙청 권력’을 행사해 온 김원홍을 전면에 내세워 친정체제 구축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김정은의 2인자가 모두 숙청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숙청하는 자’로 몸을 낮춰 온 김원홍이 향후 최대의 숙청 대상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예측은 맞아떨어졌다. 김정은의 특사 자격으로 2018년 3월 한국을 방문해 외교무대에 얼굴을 드러낸 김여정은 11일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에서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다시 올라서며 2인자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김원홍은 2017년 초 허위보고 등의 혐의로 국가보위상에서 물러난 뒤 인민군 총정치국 1부국장으로 재기했다가 재차 숙청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처형됐다는 보도도 있다. 이승열 국회입법조사처 연구위원은 지난달 31일 발표된 보고서에서 “올해 2월 해임된 리만건 당 조직지도부장과 박태덕 당 부위원장(농업부)을 최룡해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의 측근으로 분류할 수 있다”며 “최룡해의 정치적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인사”라고 풀이했다. 최룡해는 김여정에게 2인자 자리를 내주고 경제위기의 속죄양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덧붙였다. 김원홍도 최룡해도 제친 김여정이 북한의 2인자로 부상하고 있다면 논리적으로 이런 질문이 뒤따른다. 김원홍처럼 김여정도 언젠가는 오빠의 눈 밖에 나 숙청될 수 있는가? 아니면 이른바 백두혈통임을 근거로 김정은 유사시 권력을 물려받는 북한 4대 세습 후계자로 군림할 수도 있을 것인가? 북한 김씨 독재의 미래를 전망하느니 차라리 동전을 던지는 것이 낫다. 하지만 김정일의 후계를 전망할 때 사용했던 ‘사회주의 독재국가의 후계자 결정 이론’의 도움을 받아 학문적인 추측(academic guessing)을 할 수는 있다. 비교사회주의 정치학자 레슬리 홈스 박사의 ‘3Ps+X’이론이 대표적이다. 소련과 중국 등 사회주의 독재국가에서 최고지도자가 권력을 잃을 경우(X), 권력기반(Power base)과 인격적 자질(Personal qualification), 정책능력(Policy making ability)을 가진 인물이 후계자로서 권력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일단 김여정에게는 확실한 권력기반이 있다. 바로 오빠 김정은이다. 아버지 사후 오빠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문고리 권력’을 행사하는 과정에 따르는 측근 그룹도 형성됐을 것이다. 정책능력에 대한 검증도 진행 중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2018년 이후 북-미, 남북대화 과정에 개입해 온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에 모종의 역할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여기까진 하기 나름이다. 문제는 인격적인 자질이다. 최고지도자의 인격적 자질은 엘리트와 대중의 인정이 필수적인, 즉 상대방이 있는 영역이다. 여성의 권리는 그저 법조항일 뿐, 유교적 유산에 더해 김일성 김정일 독재를 위해 의도적으로 구축된 가부장적인 북한의 정치문화가 ‘여성 수령’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미 여성 대통령을 배출했던 우리의 양성평등 수준과 비교하면 잠정적인 대답은 ‘쉽지 않을 것’이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 2020-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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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 경제의 질곡, 박봉주의 위기[오늘과 내일/신석호]

    북한은 지난달 10일 대남 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관련한 경제적 손실을 처음으로 언급했다.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초특급 방역 조치를 취한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결심하고 실천에 옮길 일이 아니다”라는 대목이다. ‘인민의 생명 안전을 위한 국가적인 중대사로 내세우시고’라는 기사 제목처럼 김정은과 노동당이 이번 사태에 적극 대응하고 있음을 홍보하려는 게지만 코로나19가 불러온 글로벌 경제위기 광풍에 북한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대외경제 관계를 최소화하는 폐쇄적 북한 경제의 특성을 감안하면 코로나19의 파장은 미국과 한국 등의 개방경제보다 상대적으로 작을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이 수년 동안 국제사회의 고강도 경제제재를 받아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최근까지 북한 경제가 지탱하고 있는 것은 당국이 그동안 축적해 온 보유 달러를 풀어 수입을 계속한 결과라는 관측이 나온다. 대북제재로 인한 경제 동요를 막기 위해 보유 외환을 풀어 쓰던 차에 코로나19 사태가 덮친 형국인 셈이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박봉주 국무위원회 부위원장과 김재룡 내각 총리가 최근 여러 지역을 돌며 경제를 챙기는 모습이 노동신문에 자주 보도되는 것은 상황이 그만큼 좋지 않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나란히 마스크를 쓰고 평양종합병원 건설현장을 찾았다. 지난달 17일에도 마스크를 쓴 채 사리원 유기질 복합비료 공장과 남포 의료기구 공장을 방문하는 장면이 보도됐다. 현재 박봉주는 노동당의 경제정책 수장, 김재룡은 내각의 경제실무 수장으로 역할 분담을 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박봉주가 다시 현장에 나온 것은 상징적이다. 2019년 3월 내각 총리 자리를 김 총리에게 물려준 그는 지난해 12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 건강 이상설이 돌았다. 지난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정은의 경제정책을 관료정치의 관점에서 비교한 ‘북한의 경제개혁과 관료정치’를 출간한 한기범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은 “김정일 시대에 내각의 수장으로 시장화를 추진하다가 당과 부딪쳤던 박봉주가 지금은 당을 위해서 뛰고 있는 셈”이라고 평가했다. 박봉주는 김정일에서 김정은 시대로 이어지는 북한 경제위기의 정책 사령탑이다. 김정일의 제한적 경제개혁 조치인 ‘7·1 경제관리 개선’(2002년)과 종합시장 도입(2003년) 조치가 제대로 실행되지 않자 2003년 9월 내각 총리에 발탁됐다. 이후 과감한 시장화와 분권화 조치를 추진했지만 노동당 내 보수파의 역풍을 맞았다. 당 간부들은 “시장이 번지면서 김일성 주석의 항일운동 신화인 구호나무가 중국으로 밀거래되기에 이르렀다”고 공격했다. 결국 2005년 하반기를 정점으로 박봉주의 개혁조치는 막을 내렸고 김정일은 2007년 4월 그를 순천비날론연합기업소 지배인으로 강등시켰다. 박봉주는 김정은 체제 출범 후인 2013년 4월 다시 내각 총리로 재기했다. 김정은은 그를 앞세워 시장화와 분권화 개혁정책을 조용히 추진했지만 무모한 핵·미사일 정책을 강행해 지금의 경제봉쇄를 자초했다. 지난해 말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는 당시까지의 개혁정책에서 후퇴해 ‘위기상황의 정면돌파’를 강조하며 제한된 자원과 시장에 대한 당과 국가의 통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좌경화했다. 최근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선 “심각한 자금난으로 북한 관리들이 돈만 주면 기밀문서라도 밀수출할 판”이라는 말이 나온다. 잘못된 정책이 경제난을 악화시키고 주민들의 불만이 폭발하면 박봉주가 이번에는 시장의 이름으로 희생양이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 2020-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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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영호가 상기시킨 대한민국 헌법정신[오늘과 내일/신석호]

    1997년 한국으로 망명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는 10년 동안 이어진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의해 입과 발의 자유를 제한당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상황은 나아졌지만 ‘경계인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보수 진영 내에서도 그의 정책과 철학을 공격하거나 의심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중국식 개혁개방론’은 대표적인 시빗거리였다. ‘한국이 중국과 잘 지내면서 북한을 중국식으로 개혁개방시켜야 한다’는 황 전 비서의 주장에 ‘중국공산당처럼 조선노동당을 존치하자는 뜻이냐’는 반박이 뒤따랐다. 일부는 그가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의 조화를 강조하는 주체사상을 버리지 못했다고 비난했다. 이달 12일 시작된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공격도 처음에는 새로운 게 아닌 듯했다. 미래통합당의 러브콜을 받던 김 전 대표가 태 전 공사의 지역구 공천을 두고 “국가적 망신”이라고 말했을 때 첫 의문은 ‘뭐가 문제라는 것인가’였다. 태영호의 정책인가? 철학인가? 나중에 드러난 답은 ‘출신’이었다. 태영호는 이를 ‘뿌리론’이라 했다. 김 전 대표는 자신이 지핀 논란이 커지자 “태영호가 문제라는 게 아니라 그를 지역구에 공천한 것이 문제”라고 물러났다. 과거 새누리당의 조명철 의원처럼 비례대표 정도면 족하지 탈북자를 지역구에 공천한 것은 문제라는 취지였다. 이에 대해 태영호 캠프는 대한민국 헌법을 무기로 들고나와 반격에 나섰고 김 전 대표는 결국 미래통합당 선대위원장 자리를 맡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태 전 공사는 12일 오후 첫 반박 보도자료에서 “나는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헌법과 법률에 의해 선거에 출마할 수 있고 정당의 공천을 받을 수 있다”며 헌법을 처음 언급했다. 이어 “자유와 시장경제의 고귀한 가치를 찾아 사선을 넘은 저는 자유시장경제의 상징인 강남갑을 위해 다시 한번 죽음을 각오하고 도전하고 있다”며 헌법이 담은 가치를 선거운동에 활용했다. 김 전 대표의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13일 페이스북 성명에서도 “대한민국 헌법 혹은 선거법 조항을 읽어보아도 어떤 사람은 지역구 의원에 적합하고 어떤 사람은 비례대표가 적합하다는 규정도 없고 기준도 없다.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전 세계에 알리고 통일한국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다”고 호소했다. 애초에 탈북자인 그를 현실 정치에 들여놓은 계기도 헌법 논쟁이었다. 그는 11일 출마 선언을 통해 “북한에서 여기에 내려왔던 청년들이 범죄자냐 아니냐에 앞서 그들을 북한에 돌려보낸 사실을 보며 큰 좌절감을 느꼈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 의정 활동을 해야겠다는 뜻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우리 헌법에 따르면, 송환된 북한 어부나 태 후보나 이미 태어날 때부터 대한민국 국민이다. 어부를 수사나 재판도 없이 사지로 돌려보낸 것이나, 탈북자를 지역구에 공천한 것은 잘못이라는 주장은 헌법 정신과 맞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3년 동안 헌법 3조의 영토 조항과 4조의 통일 조항(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은 사문화되어 가는 분위기다. 2018년 이후 김정은의 위장 평화 공세에 ‘남과 북이 각각의 나라로 평화롭게 공존하자’는 평화공존론이 통일당위론을 압도하고 있다. ‘김종인의 뿌리론’이 일부 유권자들의 정서일 수는 있다. 그것이 얼마나 일반적인지는 선거 결과로 밝혀질 것이다. 이에 상관없이 김종인과 태영호의 이번 논쟁은 ‘분단 상황과 헌법 정신’이라는 주제를 다시 공론장에 올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 2020-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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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진핑 뜨끔하게 했을 북한의 도발[오늘과 내일/신석호]

    박근혜 정부가 미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반도 배치에 대해 ‘요청도, 협의도, 결정도 없다’는 ‘3NO’ 정책으로 일관하던 2015년. 워싱턴에서 만난 한국 군 인사들은 “이 문제를 어찌 했으면 좋겠느냐”고 은밀하게 묻곤 했다. ‘미국은 하고 싶어 하는데 중국과 여론의 반발을 우려한 청와대가 주저하고 있으니 어쩌면 좋겠느냐’는 취지로 읽혔다. “북한이 기회를 주지 않겠어요? 2013년 2월 3차 핵실험 이후 3년 가까이 추가 전략도발이 없었으니 좀 기다리면 국면 전환을 할 겁니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들여놓으면 중국도 한국 여론도 크게 반대하지 못할 겁니다.” 북한은 2016년 1월 4차 핵실험을 시작으로 2년 동안의 전략도발 국면을 시작했다. 한국과 미국은 그해 7월 사드 한국 배치 결정을 공식 발표했다. 중국은 지금도 이 결정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미국이 북한을 핑계로 한반도에 사드를 배치해 중국과의 전략적 군사경쟁에서 이점을 취하려 한다는 것은 중국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다. 자신들이 북한이라는 동맹이 주는 ‘연루의 위험’에 노출됐다는 이야기다. 힘이 센 동맹국이 힘이 약한 동맹국 때문에 국가안보에 불이익을 받는 경우를 말한다. 북한이 2일 대남 타격용 단거리미사일(사거리 240km 추정)을 발사하며 새해 미사일 도발에 시동을 걸었다. 온 지구촌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지에 정신이 없는 틈에 이뤄진 도발의 의도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지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내심 뜨끔했을 것이다. 북한은 지난해 12월 노동당 전원회의를 마친 뒤 2020년에 미국을 향한 새로운 전략무기를 내놓겠다고 선언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부형욱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김정은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 레드라인을 넘는 도발을 하면 미국은 조만간 중거리미사일을 배치하려 할지 모른다. 동맹국과 미 본토와 주한미군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을 들고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과 중국의 전략경쟁은 경제에서 군사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중국은 핵과 미사일 전력 개발로 미국을 상대로 한 ‘반접근·지역거부전략(A2·AD)’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아시아 지역에 중거리 지상발사 미사일을 배치해 전략적 군비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 한다. 사거리 800km가량의 미사일을 평택 미군기지에 배치하면 중국도 사정권 안에 들어오게 된다. 이에 대해 베이징 외교 소식통은 “명분도 없고 논리에도 맞지 않는 이야기”라며 펄쩍 뛰었다. 중국 지한파 학자들도 한국 친구들에게 “그런 일이 벌어지면 사드 보복은 우스운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방어용 무기인 사드와 공격용 무기인 중거리미사일은 다르다. 동맹국 미국의 요구라지만 한국에 공격 의사를 밝히지 않은 중국이 위협을 느낄 수 있는 공격 무기를 배치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우리 국내 정치적으로도 어려운 일이다. 미국은 지난해 러시아와의 중거리핵전력조약(INF)에서 벗어났을 뿐이며 의회는 올해 예산에 중거리미사일의 아시아 지역 배치에 관한 비용을 배정하지 않았다. 부 위원은 “중국 공산당은 사드 배치 당시를 떠올리며 평양이 섣부른 결정을 하지 않도록 설득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김정은이 마음대로 추가 전략도발을 실행하기 어려운 구조적 환경”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지난해 말 러시아와 함께 대북 제재를 실질적으로 완화하자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내주기도 했다.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잠깐 숨을 돌리자마자 코로나19 진원지가 되었다. 이런 ‘맏형’의 처지를 북한도 모를 리는 없다. 2일 미사일 발사 이후 북한이 계획대로 전략도발까지 갈 것이라는 관측들이 나오고 있지만 중국 변수를 고려한다면 그리 쉽지 않은 결정이 될 것이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 202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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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은, 이래도 중국에 올인 할 건가[오늘과 내일/신석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대하는 중국과 북한의 행보는 사뭇 달라 보인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이끄는 중국은 사건 초기부터 지금까지 방관과 은폐, 늑장 대응으로 일관했다는 국제사회의 지적을 받고 있다. 반면 북한은 지난달 말,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중국을 포함한 전 세계인의 입국을 막는 과감한 방역 조치에 나선 것만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한국 등 보통 나라들이 확진 및 의심 환자를 병원이나 자택에 격리하는 데 비해 북한은 나라 전체를 격리했다고나 할까. 이른바 ‘동원형 정치체제’로 분류되는 두 나라의 다른 대응은 사실 한 가지 핵심적인 공통점에서 나온다. 자유로운 언론, 그리고 약자의 목소리가 권력층에 전달될 언로의 부재 또는 빈곤이다. 초기에 사태를 직감한 의사들을 유언비어 유포자로 낙인하고 언로를 막은 것은 최고지도부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무시한 원인 중의 하나다. 북한이 ‘국가 격리’라는 초강수를 둔 것도 변방에서의 바이러스 확산을 중앙이 감지하기 어려운 취약한 정치적 소통 메커니즘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도 바른말을 못할 테니 코로나19라는 글로벌 보건 이슈가 북한 체제에 미치고 있는 정치 경제적 파급효과를 최고지도부가 제대로 인식하고 있을까? 북한 당국은 거듭 부인하고 있지만 중국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는 관측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과의 공식 비공식적 물동량이 끊어지면서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아랑곳 않던 기름값이 오르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중국발 바이러스가 중국이 그토록 우려했던 ‘대북 제재 효과성’을 키우고 있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꼭 1년 전인 지난해 2월 말 베트남 하노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영변 핵시설과 대북 제재를 맞바꾸자는 ‘씨도 안 먹힐’ 제안을 할 때, 김정은의 속셈은 ‘중국이 뒤를 봐줄 것’이었을 게다. 한국무역협회 통계에 따르면 실제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최고 수준으로 강화된 2017년부터 북한의 대중국 무역 의존도는 90%를 넘고 있다. 중국과의 공식 무역과 밀무역, 중국인 관광 등 세 가지 축은 북한이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 속에서 그럭저럭 핵을 들고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어 왔다. 핵을 포기하고 정상 국가로서 여러 나라들과 두루 교류하는 정답을 외면한 결과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스스로 초래한 형국이다. 모두 김정은의 자업자득이다. 이번 사태의 원인이 된 중국의 숨겨진 후진성과 공산당 정부의 대응 태세를 보았다면 김정은도 ‘아차’ 싶을 것이다. 정상적인 지도자라면 이런 생각에 이르지 않을까. ‘아, 미국과의 대화가 잘 안된다고, 남한에 실망했다고 중국에만 너무 의존하면 안 되겠구나. 믿을 건 동맹밖에 없다지만 지금 북조선은 중국에 너무 민감하고 또 취약하구나.’ 자신의 깨달음이 상호의존(interdependence) 이론의 핵심이라는 것까지 안다면 그야말로 스위스 유학파라 할 만하다. 국제정치학의 자유주의 계보에 속하는 이 이론은 국가 간의 관계를 민감성(sensitivity)과 취약성(vulnerability)이라는 개념으로 이야기한다. 민감성은 의존관계에 있는 한 나라의 변화가 다른 나라에 미치는 마이너스적 영향을 말한다. 취약성은 일방이 상호의존 관계를 단절할 때 발생하는 비용을 일컫는다. 상대방에 비해 민감성과 취약성이 높을수록 의존적이라는 말인데 지금 북한이 딱 그 꼴이다. 대대로 북한 김씨 일가는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양다리 외교를 하면서 어느 한쪽에 완전히 줄서는 것은 피했다. 하지만 든든한 후원국 소련의 ‘퍼주기’ 원조에 방탕하고 게을러졌고 1990년대 초 소련의 체제 전환과 함께 ‘고난의 행군’이라는 경제위기를 피하지 못했다. 혹시 생전의 아버지가 말하지 않았나?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고.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 2020-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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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바이러스가 소환한 대북지원 논쟁[오늘과 내일/신석호]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창궐했던 2003년 봄은 ‘김정일식 개혁개방’의 바람을 타고 남북 교류도 활발하던 때였다. 전년부터 100명 이상의 기부자를 대규모로 평양에 실어 나르던 국내 인도적 지원단체들의 방북 모니터링 활동도 한동안 중단됐다. 북한 내각(한국의 행정부) 산하 보건성이 중심이 된 방역 당국이 4월 중국 베이징을 통한 외국인 입국을 전면 차단하자, 일부 단체들은 부랴부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 들어가려 했지만 그마저 이내 막혔다. 한국 단체들을 초청한 북측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는 노동당 통일전선부 소속으로 남북관계의 활황을 타고 끗발을 날리고 있었다. 남측 인사들의 방북은 국가안전보위부 등 최고 권력기관들의 관심사이기도 했다. 이들은 러시아에서 발이 묶인 한국 단체들에 “보건성이 절대 안 된다고 한다. 들어와도 14일 동안 격리되기 때문에 활동이 불가능하다”고 우는소리를 했다. 실권이 없는 내각, ‘고난의 행군’ 경제난 당시 국가 의료 시스템이 거의 허물어져 껍데기만 남은 보건성이 최고 권력기관들 앞에서 말발을 세우는 보기 드문 순간이었다. 그해 몇 달 동안, 그리고 2014년 에볼라 바이러스,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창궐 당시에도 보건성은 오랜만에 권력을 휘둘렀다. 하지만 힘없는 북한 주민들의 삶은 그렇지 못했다. 윤여상 북한인권정보센터 소장은 “위기 상황에서 방역과 치료라는 비싼 혜택은 정확하게 ‘권력과의 거리에 비례하여’ 배분됐다”고 말했다. 김 씨 최고지도자 일가와 특권층이 모여 사는 평양에, 지방에서도 좀 더 권력 자원을 확보한 지역과 사람들을 중심으로 바이러스를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메르스 사태로 국경이 통제된 2015년 북-중 국경 도시에 살았던 이모 씨(여·2017년 탈북)는 “당국이 ‘물 끓여 먹어라’ ‘외부인 접촉하지 마라’ ‘중국 음식 먹지 마라’라고 한 것은 기억이 나지만 거의 무방비 상태로 쏘다녔다. 방역이나 치료의 기억은 없다”고 말했다. 중앙에서 제대로 된 장비도 약품도 지원받지 못하고 ‘검병’(檢病·우리의 검역) 활동을 해야 하는 지방의 의료진은 노심초사였다. 자신의 담당구역에서 환자가 나오면 책임을 질까 두려워서다. 최근 조선중앙TV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의 심각성을 강조하며 철저한 방역 태세를 대내외에 홍보하고 있지만 ‘정치적 지리적 변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다르다.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주민들은 치솟는 물가와 부족한 보건 서비스로 이중고를 치르고 있다. kg당 3위안 하던 쌀값은 두 배가 넘는 7위안으로 치솟고 당국이 마스크를 안 쓰면 외출금지를 하는 바람에 가족이 마스크 하나를 돌려쓰고 있다고 전했다. 의심환자 두 명이 나왔다는 소문이 떠돈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나온 정부의 대북 방역 협력 추진 소식은 인도적 지원에 대한 해묵은 논쟁을 다시 불러내고 있다. 정부와 민간을 막론하고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목적과 조건이 없어야 한다는 게 글로벌 스탠더드다. 과거 한국 정부가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 남북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인도적 지원을 활용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이 정부 또한 그럴지라도 그건 남북 관계가 단절된 현 상황에서 어쩔 수 없다고 치자. 하지만 사회적 약자도 혜택을 받아야 하고 투명한 모니터링이 가능해야 한다는 실무적인 글로벌 스탠더드는 양보하기 힘들다. 평양이 아닌 지방, 당 간부가 아닌 시장 꽃제비도 ‘검병’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충분하게 주라. 하지만 지원 물자가 제대로 쓰이는지 사후에라도 반드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는 ‘북한이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라며 ‘하지 말란 말이냐’고 할 것이다. 그래도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 2020-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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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 관광, 그 아찔했던 순간들[오늘과 내일/신석호]

    2002년 6월 29일 오후. 서해에서 제2연평해전이 벌어진 것도 모른 채 중국 베이징에서 고려항공을 타고 평양 순안공항에 내렸다. 인도적 지원단체의 모니터링을 명분으로 얻은 첫 평양 취재이자 북한 내륙 관광. 입국 전 휴대전화를 인솔자에게 맡긴 뒤 외부 세계와의 연결이 완전 차단된 3박 4일 일정이 시작됐다. 무슨 일이 터지면 오로지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취재 환경이었다. 아리랑 공연을 관람하고 평양 시내와 백두산, 묘향산 등을 돌아보는 동안 북한 당국자들은 남한 기자를 밀착 감시했다. 통일전선부 소속 안내원이 바로 옆에 따라붙었고, 5m 근처를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안내원이 빙빙 돌며 우리 둘을 지켜봤다. 기자를 포함해 100명이 넘는 남한 관광객 전체를 어디선가 최고책임자가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3중으로 감시당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당신에게 말을 거는 북한 사람은 모두 고도의 훈련을 받은 대남 공작 요원들이요, 당신이 하는 말과 행동은 모두 상부로 보고될 것’이라는 교육을 단단히 받고 간 터였기 때문에 2007년 11월 마지막 일곱 번째 평양 방문 취재까지 ‘큰일’을 당하지 않고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정말 관광하듯 북한 땅을 찾은 일행 중에는 각종 리스크에 노출되어 어려움에 처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북한 당국자들에게 김씨 세습 독재 체제를 비판하다 쫓겨날 뻔한 인사들이 대표적이다. 1960년대산 러시아제 고려항공 여객기가 기류를 만나 급전직하하고, 인민대학습당의 낡은 엘리베이터가 내려앉는 장면도 목격했다. 겨울에 무리하게 백두산에 오르던 버스가 벼랑길을 뒷걸음칠 때의 오싹함이란. 2008년 7월 11일 북한군의 총탄에 사망한 박왕자 씨 사건은 가장 심각한 경우였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다는 개성과 금강산 관광이 성사될 경우 과거의 내륙 관광보다는 ‘개인 신변 안전 위험’이 크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핵을 가진 북한과의 관광 재개가 대한민국에 미치는 ‘체제 안전 위험’은 전보다 더 큰 상황이다. 2000년 10월 금강산 관광으로 시작해 2008년 5월 개성공단 취재를 마지막으로 북한을 아홉 차례 방문하는 동안, 함께했던 보통 한국인들이 처음 북한을 방문한 뒤 생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관찰할 수 있었다. 북한의 부정적인 면을 강조하는 보수 인사들과 북한의 긍정적인 면만 보려고 하는 진보 인사들은 방북 후 생각이 달라질까? 아니었다. 보수 인사들은 더 보수가 되고, 진보 인사들은 더 진보가 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함께 금강산을 올랐던 공안검사에서 종교인과 의료인 등 하는 일과 나이에 큰 차이가 없었다. 정부가 추진하는 북한 개별관광이 실제로 이뤄진다면, 아마도 북한과 대화하고 협력해야 평화롭게 번영할 수 있다는 이 정부 대북정책을 찬성하는 이들이 선두에 설 것이다. 과거의 관찰대로라면 이들은 ‘미국의 고립 압살 정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핵을 가지게 되었다’는 북한 당국자들의 거짓말에 ‘격하게’ 공감하고 ‘우리라도 그들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강한 결심을 하고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지금으로선 정부의 제의를 수용하지 않을 것 같은 북한이 만약 전격적으로 이를 수용한다면 자신들이 핵을 가지고도 평화롭게 살고 있다는 점을 최대한 선전하기 위해서일 게다. 남한 사회에 남남갈등의 불꽃을 키우는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제재의 유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워싱턴을 무시할 경우 가뜩이나 삐걱거리는 한미관계에 추가 균열이 우려된다. 신변 안전 위험은 잘 교육해 방지하면 된다. 하지만 체제 안전 위험은 둑이 터진 것처럼 되돌릴 길이 없다. 이 정부엔 그것이 위험이 아니라 바라는 바인지 모르지만 말이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 2020-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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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화를 기대하지 말라”는 김정은[오늘과 내일/신석호]

    1일 조선중앙TV를 통해 보도된 북한 노동당 전원회의 참석자 단체사진 앞줄 정중앙. ‘혁명 선배’들의 것보다 20%는 커 보이는 붉은색 의자에 비딱하게 앉아 인상을 쓰고 있는 서른여섯 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나에게 변화를 기대하지 말라”고 말하는 듯하다. 1990년대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식 개혁과 개방을 거부하며 남긴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이 말의 뉘앙스는 이번 전원회의 보도문에도 고스란히 배어 있다. 우선 김정은은 경제난의 책임을 고스란히 내각(한국의 행정부)에 돌렸다. 각 공업부문에 “산적되어 있는 폐단과 부진 상태”를 지적하며 “경제사령부로서의 내각이 자기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심각한 실태”를 질타했다. 지난해 8월 건설공사가 늦어지고 있는 수산사업소를 방문해 “이런 문제까지 내가 나와서 대책을 세워야 하느냐”며 불호령을 내린 것과 같은 맥락이다. 김정일 시대에 이어 김정은 시대에도 그 내각을 책임졌던 박봉주는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 김정은의 왼쪽 옆자리에 얼어붙은 듯 앉아 있다. 북한의 경제난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김일성 주석 시절부터 이어져 온 세습 독재의 파행적 경제 운용과 대미 강경 정책이 핵심 원인이라는 진단도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김정은은 그러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잘못된 행태를 답습하고 있다. 실제로 생전의 김정일도 내각의 경제적 책임을 누구보다 강조했다. 하지만 뒤로는 노동당과 군 등 권력집단에 특권을 주고 상납을 받는 기형적인 ‘수령경제’를 확장시켜 내각을 속 빈 허수아비로 만들었다. 최고지도자가 말단 경제현장을 찾아가 이런저런 지시를 하고 이를 관영매체로 홍보하는 독특한 통치 수단인 ‘현지지도의 정치’ 역시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이 시원이다. 회고록 등에는 그가 농수산 사업소 등 현장을 방문해 촘촘히 수치를 읊어대며 현장 반장이 해야 할 만한 구체적인 지시를 늘어놓는 장면이 홍보된다. 북한 말로 ‘위에서 내려 먹인다’고 하는 통치 관행은 최고지도자 이하 간부들의 자율성을 앗아가고 국가 자원을 비효율적으로 배분시키는 정치적 자충수로 기능했을 뿐이다. 지난해 12월 28일부터 무려 4일 동안 이어진 전원회의 결과 김정은은 핵능력을 강화하면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맞서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낡은 길’을 택했다. 경제 분야에 대해서도 선대와 마찬가지로 계획과 시장 사이에 어정쩡한 태도를 드러냈다. ‘자립과 자강’ ‘국가의 집행력과 통제력’을 강조하며 인민과 엘리트에 대한 내핍의 강요, 중앙집권적 계획경제의 회복을 암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의 경제개혁 브랜드인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의 지속적인 실시를 주장하고 있다. 양문수 북한대학원대 부총장은 “경제정책 기조의 연구와 실행을 담당해야 할 실무자들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의 사망과 함께 그가 북한의 최고지도자로 등장했을 때, 많은 전문가들이 그가 ‘스위스 유학파’라는 점을 들어 변화의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럴까?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도 민주주의의 고향인 영국에서 유학했지만 귀국 후 변화보다는 아버지가 물려준 독재 권력의 유지에 몰두했다. 문제는 독재라는 구조다. 그 구조 안에서는 개인의 다양성과 자유의지가 실질적으로 제약된다. 그런 의미에서 최고지도자 개인의 생각을 바꿔서 북한을 바꾸겠다는 진보 정권들의 대북정책은 ‘희망적 사고’였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북한을 변화시키려는 어떠한 노력도 3대 세습 독재정치 균열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냉전으로 크렘린 궁전의 금고를 바닥나게 해 소련을 무너뜨린 미국이 대북 경제제재 완화를 거부하는 진짜 이유가 아닐까.신석호기자 kyle@donga.com}

    • 2020-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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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비핵화 놓쳤어도, 교훈은 건지자[오늘과 내일/신석호]

    요즘 송년회에서 만난 한반도 전문가들의 화두는 단연 김정은의 ‘새로운 길’이 무엇이냐다. 스스로 미국에 선포한 연말 시한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지만 그 사이에 북-미 정상회담이 ‘짜잔’ 하고 열릴 가능성은 없는 듯하다. 미국도 북한도 그렇지 않을 가능성을 향해 따로 놀고 있기 때문이다. 2018년 6월 싱가포르와 2019년 2월 하노이, 6월 판문점에서 김정은을 직접 대면하고 비핵화 진정성이 ‘1도 없음’을 파악한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당국자들은 ‘달랠 수 없다면 흔들어야 한다’는 지혜를 터득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 내부 움직임을 샅샅이 파악하며 체제의 빈틈을 찾는 데 열심이라는 전언이다. ‘레짐 체인지’와 ‘한국에 의한 통일’이 북한 비핵화의 근본적인 해법이라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대북정책의 비전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북한은 “생존권과 발전권을 보장하라”며 시위만 하고 있다. 미국이 요구하는 완전한 비핵화는커녕 ‘비핵화 로드맵’도 내놓을 생각이 없으면서 한미 군사 동맹을 말하는 적대시 정책 폐기와 제재 완화를 요구하며 급기야 “크리스마스 선물”까지 운운했다. 김정은이 백마를 타고 백두산에 오른 장면이 노동신문에 공개된 10월 16일을 전후해 ‘새로운 길’로 가기 위한 액션 플랜이 시작됐을 것이고 3일 김정은의 삼지연 방문도 그 일환일 것이다. 그 ‘새로운 길’이 뭔지 아직 정확히 알 수 없다. 인공위성을 빙자한 장거리 로켓부터 발사해 재선에 도전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자극한다는 ‘무력시위 재개설’에서부터, 중국 및 러시아 등 우방들과 밀착해 살길을 모색한다는 ‘다자외교 강화설’ 등 다양하다. 그 무엇이든 잘될 것 같지 않다. 대화하다 안 통하면 도발하는 버르장머리를 알아버린 트럼프 행정부가 맞장구쳐줄 것 같지 않다. 미국의 압박 앞에 제 앞가림도 벅찬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이라는 리스크를 들고 춤을 출 리도 없다. 분명해진 것은 2018년 1월 1일 김정은의 신년사로 시작된 2년 동안의 비핵화 북-미 대화 국면이 종언을 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애당초 김정은의 지고지순한 목적은 ‘핵을 가지는 것’이었다는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됐다. 그가 가려는 ‘새로운 길’이 무엇이든 ‘핵을 가진 채 제재 해제를 추구한다’는 쉬운 길이 막히자 ‘핵을 가진 채 제재 속에서 살아남는다’는 어려운 길로 돌아가는 큰 틀 안에 있을 것이다. 사건의 흐름은 북한 비핵화를 믿고 기대했던 이상주의자들의 판정패 쪽이다. 반면 권력과 안보를 추구하는 인간, 국가의 숙명을 이야기하는 냉담한 현실주의자들은 이번에도 승리를 거두고 있다. 스위스 유학파 김정은이 비루한 국가 경제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개발한 핵을 슬기롭게 포기할 것이라는 ‘희망적 사고’를 유포한 당국자들과 전문가들은 내년엔 또 무슨 궤변을 늘어놓을까. 지난해 3월 평양에 다녀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전 세계에 홍보하고 다닌 대통령 특사단은 “상대의 말을 믿지 말고 의도는 모르는 것으로 간주하라. 그 대신 상대방이 처한 상황과 능력에 주목하라”는 현실주의의 가르침을 몰랐거나 아니면 무시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무정부적 국제정치 구조가 제기하는 ‘안보 딜레마(security dilemma)’ 속에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기만과 사기도 서슴지 않을 수 있는 것이 국가의 특권이라는 것을 몰랐단 말인가. 미국 시카고대 존 미어샤이머 교수는 저서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에서 “정치적인 계산은 경제적인 계산을 압도한다. 생존하지 못한다면 번영할 수도 없다”고 갈파했다. 시대착오적인 1인 독재정치를 유지하기 위해 핵을 ‘체제 수호의 보검’이라 부르는 김정은 체제가 경제 발전을 위해 핵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애초부터 말장난일 뿐이었다는 이야기다.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 2019-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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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씨 독재가 돼지열병을 만났을 때[오늘과 내일/신석호]

    지난달 말 인천의 한 북한 음식점을 찾아 두부밥, 명태식해, 언감자떡 등 서민들이 즐겨 먹는 현지 음식들을 맛봤다. 주인도, 종업원도, 단골손님도 탈북자 출신인 허름한 이 식당의 대표 음식은 단연 ‘인조고기밥’이었다. 콩깻묵으로 만든 얇은 피에 밥을 싸서 먹는 것으로 생김새는 유부초밥과 비슷했다. 주인은 “‘고난의 행군’(1990년대 초중반 북한의 경제위기) 당시 북한 사람들을 먹여 살린 고마운 음식”이라며 회상에 잠기는 듯했다. 국가의 배급이 끊어지고 먹을 것이 줄어들자 주민들은 마을을 떠돌던 개, 협동농장에서 키운 돼지와 닭, 오리들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배를 채워야 할 가축을 총으로 통제했고 하층민들은 단백질을 섭취할 길이 끊겼다. 그래서 누군가 개발해 장마당에 내놓은 게 바로 인조고기다. 재간 있는 요리사들은 돈도 제법 벌었고, 몇 푼이라도 돈이 있는 자들은 인조고기를 먹고 경제위기를 건넜다. 1990년대 후반부터 경제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면서 주민들이 어려웠던 시기를 추억하며 먹는 간식인 인조고기가 다시 ‘생존을 위한 눈물의 음식’이 될 우려가 나온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중국을 통해 전염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 ASF는 이미 전국에 퍼진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 돼지 씨가 말랐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ASF는 치사율이 100%여서 한때 북한의 장마당에 이 병으로 죽은 돼지고기가 식용으로 쏟아져 나왔다고 소식통들이 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달 13일 “북한은 ASF로 인한 대재앙에 진입하고 있다”며 “단백질의 80% 이상을 돼지고기에서 얻는 주민들의 영양 공급원이 막힐 것”이라고 우려했다. 비단 주민 건강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 소식통은 “돼지를 키워 생계를 유지해 온 주민들이 한둘이 아닌데 ASF가 돌자 민심이 크게 흉흉해졌다고 한다”며 “과거 한국 농민들이 소를 길러 자식들을 공부시켰는데 소들이 한꺼번에 병사했다고 상상해보라”고 말했다. 북한에서 이런저런 경로로 넘어온 것으로 보이는 ASF로 우리도 비상이다. 휴전선 아래 민통선(민간인통제선) 안에서는 ASF 확산을 막기 위한 돼지 처치 작전이 연일 벌어지고 있다. 드론과 열감지기 등 최첨단 장비가 동원되고 민관군이 힘을 모은 70여 개 팀이 전쟁을 벌이는 형국이다. 방역 당국은 언론을 통해 실시간으로 상황을 공개하며 국민들의 협조를 구하고 있다. 이에 비해 북한 당국의 자세는 ‘폐쇄적’ 그 자체다. 한 당국자는 “남북이 손잡고 공동 방역을 하자는 제의를 여러 차례 북한에 했지만 답이 없는 상태”라며 혀를 찼다. 국제기구에도 솔직하게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청하지 않고 있다. 올해 5월 30일 세계동물보건기구(OIE)에 첫 발생 통보를 한 게 전부다. 북한 당국 자체가 정확한 실태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고난의 행군 과정에 ‘자력갱생’이 몸에 익은 북한 주민과 협동농장, 심지어 군대까지 당국의 눈을 피해 몰래 돼지를 키워 생존자금을 조달해 왔다. 당국엔 10마리라고 신고하고 실제로는 30마리를 키우는 식이다. 당국이 방역을 하고 싶어도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알아야 할 것 아닌가. 폐쇄성과 무능은 20여 년 전 북한 지도부가 소련의 체제 전환으로 인한 고난의 행군 경제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수십만∼수백만 명의 주민이 굶어 죽도록 방치하게 된 핵심 원인이다. 22일 금강산에 올라 “너절한 남측 시설들을 싹 들어내라”고 호기를 부린 김정은은 죽어가는 돼지로 주민들의 마음에 못이 박히는 현실을 아는지 모르겠다. 폐쇄적이고 무능한 체제를 만든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20년 전 굶주림에 죽어간 주민들의 비통한 삶을 한동안 몰랐던 것처럼 말이다.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 2019-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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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핵심 외면한 북한의 잇단 헌법 개정[오늘과 내일/신석호]

    1990년대 초 후원국 소련의 체제 전환으로 경제위기에 빠진 쿠바의 카스트로 정부가 제한적이지만 신속한 개혁과 개방을 통해 역설적으로 기존의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과정은 드라마틱하다. 특히 중앙집권적인 사회주의 계획 경제의 수선이 카스트로 형제와 공산당 독재 정치의 개혁과 병행되었다는 점은 오늘날 북한에 시사하는 점이 많다. 1989년에 시작해 대략 1994년에 끝나는 한 사이클을 10단계로 나눠보면 이렇다. ①최고지도자가 위기임을 인식(1989년 7월) ②위기임을 엘리트와 인민들에게 천명(1989년 12월) ③관광 등 대외부문을 제한적으로 개방(1990년 1월) ④위기 극복을 위한 인민들의 의견을 수렴(1990년 3월) ⑤공산당 개혁(1990년 5월) ⑥당 대회를 열어 정치 경제 개혁 조치 입안(1991년 10월) ⑦부패한 당 간부들을 숙청(1992년 6월) ⑧헌법을 개정해 정치제도를 개혁(1992년 7월) ⑨분권화 경제 개혁 조치 단행(1993년) ⑩시장화 개혁 조치 단행(1994년). 생산성을 높이고 부족한 달러를 확보하려는 노력과 함께 비대해진 공산당을 개혁하고 당 간부들을 숙청하는 이유는 지극히 정치적이다. 사회주의 국가의 최고 정치기구인 공산당은 경제가 위기에 빠져 자본주의적 시장 메커니즘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작금의 사태에 당연히 먼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읍참(泣斬) 공산당’을 통해 자본주의적 개혁과 개방에 따르는 내부 분란을 막자는 것이다. 헌법의 개정은 공산당 대회의 결의를 제도화하는 핵심적인 과정이다. 1992년 7월 개정된 쿠바 헌법은 종교적 차별을 금지하고 국가와 종교의 분리를 선언했다. 또 전국과 주 단위 대표 선거에 비밀 직접 선거를 허용해 국가 정책 결정에 대한 대중 참여를 확대했다. 이렇게 시작된 쿠바 정치의 개혁은 2018년 4월 동생 라울이 국가평의회 의장(행정수반)직에서 물러나 카스트로 형제 독재가 끝날 때까지 계속됐다. 1990년대 초 똑같은 이유로 ‘고난의 행군’이라는 이름의 경제위기에 빠진 북한은 쿠바와 비교할 때 더딘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쿠바보다 정치 소통 능력이 떨어지고 권력에 따른 불평등이 심했던 탓에, 북한 최고지도부는 위기의 인식부터 뒤처지기 시작했다. 국가의 대응이 늦어지는 사이 수십만∼수백만 명이 굶어 죽었다. 2002년 ‘7·1 경제관리 개선조치’와 2003년 종합시장 도입은 쿠바보다 10년이 늦었고 이에 앞서야 할 7차 노동당대회는 2016년 5월에야 열려 25년 뒤처졌다. 김정은의 경제 개혁 브랜드인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는 올해 4월 개정된 헌법 33조에 비로소 삽입됐다. 32조에 삽입된 ‘실리를 보장하는 원칙을 확고히 견지한다’는 내용은 시장 활동을 보장한다는 의미라고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설명했다. 아버지 김정일이 시장과 사회주의 계획 경제를 오락가락한 것과는 달리 김정은은 2009년 11월 화폐개혁 실패 이후 시장 메커니즘의 확대를 점진적으로 제도화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문제는 정치다. 1980년 이후 36년 만에 열린 당 대회는 현실 사회주의의 기본인 공산당 집단지도체제의 회복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김일성에서 시작된 김씨 일가 세습 독재를 정당화하고 3대인 김정은의 무소불위 개인 독재 권력을 강화하는 거수기였다. 지난달 29일 최고인민회의 제2차 회의에서 올해 두 번째 개정된 헌법 역시 국무위원장 김정은의 권력을 강화하는 데 그쳤다. 3대를 이은 정치와 경제 실정을 반성하기는커녕 개인 독재 절대 권력을 조금이라도 더 강화하려는 행태는 위기 이후 북한이 쿠바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김정은과 노동당이 사반세기 전 쿠바 지도부가 했던 것처럼 인민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읍참’하는 모습을 언제쯤 볼 수 있을까.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 2019-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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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일 지소미아 논란, 청년들의 생각은?[한반도를 공부하는 청년들]

    “표결 결과 찬성 53표, 반대 4표, 기권 6표로 본회의에 상정된 9개 항목의 독트린이 최종 합의되었음을 선포합니다.” 17일 오전 경기 양평 블룸비스타호텔 국제회의실. 한반도 문제를 소통하는 비영리 청년 단체인 한반도정책컨센서스 정우진 대표(서울대 정치학과 석사)가 이렇게 선언하자 장내에 모인 청년 80여 명이 큰 박수를 쏟아냈다. 14일부터 3박4일 동안의 릴레이 토론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4년째를 맞는 한정컨의 올해의 주제는 ‘2040, 청년이 그리는 한반도의 미래’였고, 합의된 독트린은 최근 외교안보 현안부터 정부의 대북정책까지 다양한 이슈를 다뤘다. 독트린의 내용은 ‘중립적이고 탈정파적인 회의’를 지향한다는 단체의 정체성을 반영하고 있었다. ‘한일간 군사비밀보호협정(GSOMIA)을 지속시켜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라는 독트린 3항은 유지를 권고하는 가운데 독자적인 군사력 확보 방안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 배치 요구를 수용해야 하는가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독트린 4항은 ‘역내 안보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으로 수용할 수 없다’는 견해를 명확하게 밝혔다. 독트린의 내용은 ‘4단계 상향식 회의’의 결과물이다. 올해 4월 1차 본회의에서 시작된 논의와 토론이 4차 본회의까지 이어지며 독트린의 형태로 구체화 된 것. 4차 본회의에서도 소위원회와 분과위원회, 상임위원회, 총회를 거치며 발제와 표결이 이어졌다. 18건의 안건이 소위원회에서 발제됐지만 13건만 총회에 올라왔고, 총회에서도 4건이 기각됐다. 사실과 어긋난 주장을 거르기 위해 자체적으로 구성한 ‘팩트체커’들이 각 위원회에서 활동했다. 토론위원(총 62명)으로 참석한 송민석 씨(명지대 정외과 18학번)는 “이번 회의의 절차와 내용에 만족한다. 상향식 합의제도와 숙의방식이 철저하게 적용되었고 내용도 청년이 알아야 할 한반도 이슈 전반을 다루고 있어서 앞으로 진로결정에 큰 도움이 될 것같다”고 말했다. 특정 이슈에 주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참석자들도 자신의 의견을 지속적으로 개진할 수 있어서 결과에 승복하는 분위기였다. 총회에서 지소미아 유지 독트린에 반대표를 던진 한 참석자는 “한일간 역사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 북핵 저지를 이유로 한-미-일, 북-중-러 대결구도를 강화시키는 것은 일반 국민들의 생각과 맞지 않는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상향식으로 합의된 독트린’의 형태를 강조하는 것은 이름 그대로 1회성 토론이 아니라 구체적인 정책 제안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합의된 독트린은 당장 시행할 수 있는 액션플랜으로 통일부를 비롯한 정부 기관에 제출될 예정이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사회적 소통을 강조하고 있는 통일부도 큰 관심을 나타냈다. 14일 개막식에는 서호 통일부 차관이 직접 참석해 격려사를 했다. 서 차관은 정부의 지난해 이후 남북관계 개선 성과와 평화경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청년들은 ‘정부가 경제를 낙관하는 근거’ ‘북한 인권 문제에 침묵하는 이유’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도발’ 등 현안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정 대표는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가 이룬 것들을 누리고 있고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압축적으로 해왔던 일들 때문에 놓쳐왔던 부분들을 청년들이 메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한반도 문제 담론과 소통에서 청년의 역할을 강조했다. “지금까지 한반도 문제 담론을 ‘갈등과 대립’이 장악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이념적으로 사상적으로 다뤄져 정쟁의 대상이 되었고 청년들은 이런 현상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청년들은 보다 분명한 수준의 결과물을 원하지요. 그래서 우리 청년들은 기성세대보다 합리적인 의사소통을 해보자, 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더라도 합의 수렴의 정신을 견지해야 하는 논의구조를 발전시켜 가고 있습니다.” 행사에는 동아미디어그룹의 청년을 향한 한반도 플랫폼인 우아한(우리 아이들의 아름다운 한반도)에 참여하고 있는 청년들도 다수 참가했다. 부의장을 맡아 팩트체커로 활동한 이수빈 씨(서울대 경영학과 14학번)는 “미래 세대의 주역인 청소년들 또한 주가 되어 남북 교류를 진행해야 한다는 합의 하에, 접경 지역으로의 남북 청소년 캠프 추진, 남북 청소년 교류의 날 지정 등 다양하고 창의적인 방안들이 제시되었다”고 소개했다. 박기범 씨(서울대 정치외교학부 15학번)는 “다양한 소속의 다양한 청년들의 의견을 들어볼 수 있는 기회였다”며 “청년들이 생각하는 민족담론이 기성세대의 것과 다르다고 생각해 왔는데 어떻게 다른지, 민족담론을 넘어서는 국익 우선의 통일정책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을 기회였다”고 말했다.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kyle@donga.com서현희 우아한 사무국 인턴기자}

    • 2019-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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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옆집의 탈북 가족은 안녕하신가요?[오늘과 내일/신석호]

    “기자 학생 양반. 거저 내 한글 쓰기 공부 좀 도와 주시라우. 나만 알고 있는 북한 정보를 조선말(북한말)로 써 드릴 테니 특종으로 내시고 대신 여기(서울 표준말) 표현으로 좀 고쳐 주면 서로 도움이 되지 않겠습네까?” 2000년대 초 북한학 석사과정에서 동문수학하던 한 탈북자 학생 A(당시 40대 남성)가 ‘따끈한 북한 정보’와 ‘현직 기자의 글쓰기 코칭’을 서로 맞교환하자며 이렇게 제안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든든한 북한 출신 정보원을 두게 된 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을 받아 보고 기대가 실망으로 변했다. 기사로 쓸 만한 새로운 정보는 없었던 반면, ‘조선말’을 고치는 데는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걸렸다. 첫 번째는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임했지만 거래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가 나에게 줄 것은 별로 없었고 생업과 가사, 학업의 3중고는 나에게 계속 자선을 베풀 여유를 주지 않았다. A가 느꼈을 막막함을 10여 년 뒤 미국 워싱턴 특파원 부임 초기 간접적이나마 체험할 수 있었다. 어려운 일을 말 한마디에 도와주던 지인들이 곁에 없는 조건에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막막함이란? 사회학자들이 말하는 ‘존재론적 안정감’이 저하된 상태는 정착 초기 탈북자들이 훨씬 심했을 것이라는 공감이 밀려왔다. 탈북자들이 한국 생활에 적응해 가는 과정에는 불편한 진실도 있다. 자유를 찾아 고향을 버린 그들을 굳이 구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지만 대체로 더 잘 정착하는 이들은 북한에서도 권력과 경제력을 누리던 부류다. 노동당 간부 부모를 만나 평양소년학생궁전에서 예술과 스포츠를 배운 이들은 한국에서도 예술가와 체육인으로 잘나갈 수 있다. 변방에서 굶주리던 보통 사람의 자제들은 한국에서도 하층민 신세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인도의 아마르티아 센은 ‘왜 세상은 불평등하고 사람이 굶어 죽느냐’는 질문에 평생을 바쳤다. 1940년대 인도의 대량 아사(餓死·굶어 죽음) 사태를 연구한 그는 그저 ‘먹을 것이 부족해 굶어 죽는다’는 기존 경제학 통념을 깨는 결론에 이른다. 국가적으로 먹을 것이 충분한 상황에서도 정치 경제적 불평등 때문에 일하고 식량을 얻을 권리(entitlement)를 박탈당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적게는 수십만에서 많게는 수백만 명이 굶어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1990년대 초중반 북한 경제위기 ‘고난의 행군’도 대표적인 경우다.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사회주의 나라들이 자본주의로 체제 전환을 하면서 달러와 에너지, 식량난에 처한 당시 북한의 변방에는 국가의 배급이 끊어졌다. 시장에서 돈을 벌 능력도 없는 말단 하급 공무원들은 김일성과 김정일 초상화만 쳐다보다 굶어 죽었다. 경제 실정의 책임이 있는 공산당 간부들은 고기를 구워 먹다 남아서 버렸다는 증언들이 있다. 센도 북한 경제난과 기아에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자유와 풍요를 찾아 고향을 버리고 남한행을 택했다 관악구 임대아파트에서 굶어 죽은 한모 씨(42·여)와 아들 김모 군(6)의 죽음에 대해서는 뭐라 할지 궁금하다. 분명한 것은 한 씨 모자가 센이 말한 ‘생존을 위한 인타이틀먼트’에서 배제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이 고난의 행군 시절 같은 경제위기에 빠진 것도 아니고, 드물게 나오는 아사자들이 북에서 온 사람만은 아니다. 하지만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의 지적처럼 평양은 이 사건을 내부 선전에 적극 활용할 것이 분명하다. 센은 ‘풍요 속의 아사’라는 비극을 최소화하기 위해 개개인의 역량(capability)을 키우는 사회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도 이번 사건이 국가에 기대서도, 시장을 통해서도 먹고살 길이 막막한 탈북자들이 없는지 주변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충고할 것이다.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 2019-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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