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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우주를 외로이 떠돌던 두 사람이 운명처럼 조우했다. 어릴 적 사고로 가족을 잃고 항공우주 과학자가 된 태섭과 평생 원망하던 아버지가 죽은 뒤 방황하는 지희. 이들은 오랜 시간 홀로 견뎌야 했던 서로의 아픔을 들여다보며 사랑을 느낀다. 그러나 같고도 다른 상처는 두 사람을 끌어당기는 한편 밀어내기를 반복하게끔 한다.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U+ 스테이지에서 공연되고 있는 연극 ‘랑데부’의 이야기다. ‘만남’을 뜻하는 프랑스어인 랑데부는 두 개의 우주선이 같은 궤도로 만나 나란히 비행하는 것을 지칭하기도 한다. 연극은 강박적으로 감정과 주변 환경을 통제하는 태섭과 울컥 치솟는 감정을 참지 못하는 지희가 만드는 평행선을 통해 중년의 사랑과 성장을 그려낸다. 태섭 역은 영화 ‘신세계’ 등에 출연한 배우 박성웅과 최원영, 지희 역은 문정희와 박효주가 맡았다. 2인극인 이 작품 속에서 두 주인공은 마치 펜싱 경기를 벌이듯 날카로운 대사를 주고받으며 가까워지고 멀어진다. 이는 가로로 길고 폭이 좁은 런웨이 형태의 무대를 통해 긴장감 있게 연출됐다. 무대 바닥에는 대형 트레드밀 2개를 나란히 붙여 두 사람의 관계를 물리적으로 표현했다. 단출한 무대는 소품 하나 없이 색색깔 조명만으로 채색됨으로써 등장인물의 눈빛과 말투에 대한 집중도를 높였다. 서사는 다소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그러나 박성웅은 약 24년 만에 돌아온 이번 연극 무대에서 천진함과 중후함을 매끄럽게 오가는 입체적인 연기로 작품에 깊이감을 더했다. 문정희는 그와 상반되는 캐릭터의 발랄함을 잘 살려내며 “알고 있는 것과 느껴지는 것이 다른” 사랑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풀었다. 다음 달 21일까지.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스테디셀러 뮤지컬 ‘영웅’의 공연 실황을 담은 영화 ‘영웅: 라이브 인 시네마’가 이달 21일 극장에서 개봉했다. 국내 창작 뮤지컬 사상 두 번째로 ‘밀리언 셀러’에 등극한 인기 공연을 극장에서도 볼 수 있게 된 것. 2009년 초연부터 15년간 안중근 역으로 꾸준히 무대에 선 배우 정성화가 출연한다. 한 관객평에 따르면 “공연 티켓의 반의 반보다 저렴한 값에, 오페라글라스 없이도 배우를 코앞에서 볼 수 있어 매력적”이라고 했다. 국내 창작 뮤지컬의 공연 실황을 찍은 영화가 활발히 제작되고 있다. 원작 뮤지컬을 영화화한 ‘뮤지컬 영화’와 달리 무대 위 연기를 고스란히 담아낸 장르다. 올해 1월 초연된 창작 뮤지컬 ‘키키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는 6월 공연 실황 영화로 관객을 만났다. 공연은 서울 중구 CKL스테이지에서만 이뤄졌으나 영화는 대구, 부산 등 전국 11개 극장에서 상영되며 접점을 늘렸다. 창작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이달 23일 공연에서 일부 객석에 카메라를 설치해 뮤지컬 영상화를 위한 촬영을 진행했다. 공연 실황 영화는 뮤지컬에 대한 대중의 접근성을 높이고, 관객층을 두껍게 하는 역할을 한다. ‘키키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를 제작한 공연제작소 작작의 홍지원 프로듀서는 “초연 당시 총 4주의 짧은 공연 기간 중 절반이 매진되면서 더 많은 관객을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이 컸다”며 “아직 작품이 공연되지 않은 지역의 영화관에서 상영되고 온라인으로도 생중계함으로써 기존 마니아 관객은 물론 그간 공연장을 찾기 힘들었던 새 관객이 많이 유입됐다”고 말했다. 제작사 입장에서는 직접 만든 뮤지컬을 바탕으로 다양한 콘텐츠 사업을 시도해볼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영웅’의 윤홍선 에이콤 프로듀서는 “(제작비를 감안하면) 당장 수익을 실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창작 뮤지컬을 원천 IP(지식재산권)로 삼아 영역을 최대한 확장해 보려는 시도”라며 “뮤지컬 실황 영화가 하나의 새 장르가 될 수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해외 진출에도 유용하다. 한 공연계 관계자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으로 전 세계의 콘텐츠를 손쉽게 볼 수 있는 흐름 속에서 영상물은 공연에 비해 해외 관객과 만나기 수월하다”고 했다. 뮤지컬 팬들도 반기고 있다. 최근 티켓값이 고공 행진하는 가운데 저렴한 가격으로 공연을 즐길 수 있기 때문. ‘영웅: 라이브 인 시네마’는 인당 티켓 가격이 2만 원으로 현재 전국 순회 공연 중인 뮤지컬 ‘영웅’의 티켓가(6만∼17만 원)에 비하면 훨씬 저렴한 편이다. 비록 현장감은 덜하지만 큰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배우들의 연기를 보다 섬세하게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지난해 상영된 뮤지컬 실황 영화 ‘사랑의 불시착’은 무대 주변으로 설치된 총 19대의 카메라로 클로즈업과 롱숏을 오가며 출연진의 연기를 다각도로 전달해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 바 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스테디셀러 뮤지컬 ‘영웅’의 공연 실황을 담은 영화 ‘영웅: 라이브 인 시네마’가 이달 21일 극장에서 개봉했다. 국내 창작 뮤지컬 사상 두 번째로 ‘밀리언 셀러’에 등극한 인기 공연을 극장에서도 볼 수 있게 된 것. 2009년 초연부터 15년간 안중근 역으로 꾸준히 무대에 선 배우 정성화가 출연한다. 한 관객평에 따르면 “공연 티켓의 반의반보다 저렴한 값에, 오페라글라스 없이도 배우를 코앞에서 볼 수 있어 매력적”이라고 했다.국내 창작 뮤지컬의 공연 실황을 찍은 영화가 활발히 제작되고 있다. 원작 뮤지컬을 영화화시킨 ‘뮤지컬 영화’와 달리 무대 위 연기를 고스란히 담아낸 장르다. 올해 1월 초연된 창작 뮤지컬 ‘키키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는 6월 공연 실황 영화로 관객을 만났다. 공연은 서울 중구 CKL스테이지에서만 이뤄졌으나 영화는 대구, 부산 등 전국 11개 극장에서 상영되며 접점을 늘렸다. 창작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이달 23일 공연에서 일부 객석에 카메라를 설치해 뮤지컬 영상화를 위한 촬영을 진행했다.공연 실황 영화는 뮤지컬에 대한 대중의 접근성을 높임으로써 잠재 관객을 발굴 하기에 좋다. ‘키키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를 제작한 공연제작소 작작의 홍지원 프로듀서는 “초연 당시 총 4주의 짧은 공연 기간 중 절반이 매진되면서 더 많은 관객을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이 컸다”며 “아직 작품이 공연되지 않은 지역의 영화관에서 상영되고 온라인으로도 생중계함으로써 기존 마니아 관객은 물론 그간 공연장을 찾기 힘들던 새 관객이 많이 유입됐다”고 말했다.제작사 입장에서는 직접 만든 뮤지컬을 바탕으로 다양한 콘텐츠 사업을 시도해볼 수도 있다. ‘영웅’의윤홍선 에이콤 프로듀서는 “당장 수익을 실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창작 뮤지컬을 원천 IP(지식재산권)로 삼아 영역을 최대한 확장해보려는 시도”라며 “뮤지컬 실황 영화가 하나의 새 장르가 될 수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해외 진출에도 유용하다. 한 공연계 관계자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등으로 전 세계의 콘텐츠를 손쉽게 볼 수 있는 흐름 속에서 영상물은 공연에 비해 해외 관객과 만나기 수월하다”고 했다.뮤지컬팬들도 반기는 추세다. 티켓값이 고공 행진하는 가운데 저렴한 가격으로 공연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영웅: 라이브 인 시네마’는 인당 티켓 가격이 2만 원으로 뮤지컬 ‘영웅’의 티켓가 6만~17만 원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무대 위 배우들의 연기를 보다 섬세하게 감상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지난해 상영된 뮤지컬 실황 영화 ‘사랑의 불시착’의 경우 무대 주변으로 설치된 총 19대의 카메라로 클로즈업과 롱숏을 오가며 출연진의 연기를 다각도로 비췄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빅뱅으로부터 우주가 태동했다는 것은 그동안 상식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그러나 그 굳건한 믿음을 머잖아 폐기해야 한다면 어떨까. 빅뱅이 ‘화이트홀’의 반등으로 형성됐다는 가설이 제기되고 있다. 우주, 다시 말해 ‘우리’는 빅뱅으로 태어나 블랙홀의 종말로 죽음을 맞는 것이 아니라 “다시 화이트홀로 환생하며 끊임없이 순환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것. 세계적인 이론 물리학자인 저자는 양자 이론과 중력 이론을 결합한 ‘루프 양자 중력’이라는 개념으로 블랙홀을 새롭게 규명한 우주론의 대가다. 과학과 철학, 예술을 넘나들며 완급을 조절한 베스트셀러들을 냈던 작가답게 책 전반에 걸쳐 13세기 단테의 ‘신곡’을 물리 이론에 빗댐으로써 우주의 경이를 직관적으로 와닿게 한다.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의 ‘시간의 끝’을 루프 양자 중력 방정식을 통해 넘어서는 부분은 ‘신곡’의 천국편 제1곡과 연결했다. 단테가 연옥의 산 너머 우주의 끝자락을 넘어서는 순간 “여기서 허용되지 않는 것들이 저기서는 허용된다”고 말하는 대목은 블랙홀에서 화이트홀로 전환될 때의 변화를 문학적으로 제시한다. 블랙홀의 지평선에 관한 이론에 철학적 사유를 더해 인생을 바라보는 새 관점도 제공해 준다. 책은 구 모양의 지구에 ‘진짜 위, 진짜 아래’가 없듯 ‘절대적 시간’이란 없다고 강조한다. 우주의 모든 존재에 각자의 고유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일흔을 목전에 둔 과학자로서 터득한 깨달음까지 진하게 담아냈다. 과학은 겸손함과 오만함을 모두 필요로 하는 달콤쌉싸름한 것이며 “진짜 어려움은 새로운 아이디어 자체가 아니라 당연해 보이는 오래된 믿음에서 벗어나는 것”. 친절한 설명으로 물리학에 문외한인 독자는 물론이고 최근 가장 논쟁적인 가설까지 다룸으로써 전문성 있는 독자까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밤 12시가 지난 새벽 2시. 무도회는 끝났고 빛나는 드레스와 설렘 가득한 순간은 오간 데 없다. 현실이 초라하게 느껴질 법하다. 하지만 이 신데렐라는 슬퍼하지 않는다. 두 주먹을 꽉 쥐고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기로 한다. 원작과 다른 흐름에 당황한 건 왕자. 체면을 다 버리고 매달린다. “우리, 제발 다시 만나요.” “백마 탄 왕자님은 내 쪽에서 거절”이라며 동화 속 클리셰를 깨부순 채널A 토일 드라마 ‘새벽 2시의 신데렐라’가 24일 오후 9시 20분 첫 방영 된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완벽한 재벌 3세 연하남 ‘주원’과 헤어지기로 결심한 현실주의자 ‘윤서’, 그녀와 헤어지지 않으려 끊임없이 매달리는 주원의 이야기를 그려낸 로맨틱 코미디다. 동명 웹툰 및 웹소설이 원작이다. 윤서 역은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슬기로운 의사 생활’에 출연하며 대세 배우 반열에 오른 신현빈이, 주원 역은 드라마 ‘슈룹’ ‘방과 후 전쟁활동’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문상민이 연기한다. 드라마는 이별한 연인이 처음부터 다시 사랑을 쌓아 올리는 좌충우돌을 통해 뻔하지 않은 연애 서사를 풀어낸다. 22일 서울 영등포구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신현빈은 “시대가 바뀌며 신데렐라에 대한 인식 역시 변화했다. 자신의 힘으로 이뤄낸 것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윤서는 남자로 인해 겪게 될 상황을 거부하는 ‘이 시대의 신데렐라’로 표현되며 시청자들의 공감을 살 것”이라고 말했다. 문상민이 그간 출연작들을 통해 보여준 연하남으로서의 매력은 ‘새벽 2시의 신데렐라’에서 더욱 강렬하게 드러날 예정이다. 큰 키와 벌어진 어깨로 윤서에게 매달리는 모습은 ‘애교 많은 대형견’을 연상케 한다는 것. 문상민은 “정장 핏을 살리기 위해 촬영하는 동안 허리와 어깨를 더욱 꼿꼿이 폈다”며 “사비까지 들여 정장 15벌을 맞춤 제작했을 만큼 작품에 대한 애정이 어마어마하다”고 웃었다. 신현빈과 문상민은 실제 열네 살 차이가 나는 연상연하 남녀다. 이에 대해 신현빈은 “상민 씨가 나이를 속인 것은 아닐까 싶을 만큼 편하게 지냈다. 아주 솔직하고 밝은 데다, 취향도 어른스러운 편이라 호흡이 잘 맞았다”고 했다. 문상민은 “현빈 누나와의 케미(호흡)는 드라마에서도, 촬영장에서도 100점 만점에 100점”이라고 말했다. 드라마를 연출한 서민정 감독은 “2019년 여름에 처음 문상민 씨를 만났는데 뒤에서 후광이 났다. 해맑고 예의 바른 모습은 촬영장에서도 여심을 저격하는 ‘유죄 인간’이자 그 자체로 주원”이라며 캐스팅 배경을 밝혔다. 이어 “신현빈 씨는 ‘얼굴을 갈아끼우는’ 배우이자 눈물 연기의 대가다. 눈물의 방향과 흐르는 양까지 조절해 연기하는 것을 보며 감탄했다”고 치켜세웠다. 현실적인 이유로 정략 결혼을 한 ‘시원’과 ‘미진’의 이야기도 함께 펼쳐진다. 주원의 형이자 차기 회장인 시원 역은 배우 윤박이, 그와 ‘쇼윈도 부부’로 결혼했으나 어느덧 사랑에 빠져드는 재벌 인플루언서 미진 역은 박소진이 맡았다. 윤박과 박소진이 작품에서 호흡을 맞추는 건 드라마 ‘이로운 사기’ 등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박소진은 “비록 정략결혼이지만 부부가 가장 가깝긴 하더라”라며 “둘이 알아가는 재미가 연애보다 훨씬 짜릿하고, 싸우는 장면에서마저 ‘쿵 하면 짝’이다”라고 했다. ‘새벽 2시의 신데렐라’는 매주 토, 일요일 오후 9시 20분에 방송된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극작가의 스마트폰 메모장에 글감이 금세 100개 넘게 모였다. 이제 이야기의 골격을 세울 때다. 통상 스타트업에서 쓰는 생산성 툴을 켜고, 포스트잇을 뗐다 붙이듯 메모들을 이리저리 배열해 보며 스토리보드를 만든다. 이야기가 관객에게 명료히 이해될지 문득 의구심이 든다. 챗GPT에다 이 희곡의 원형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본다. 유수한 희곡을 숱하게 학습한 인공지능(AI)이 이해 못 할 구조라면 관객도 혼란스러워할 터다. 지난해 제60회 동아연극상에서 데뷔작 ‘그게 다예요’로 희곡상을 품에 안은 극작가 강동훈(28)의 이야기다. 스타 소리꾼 이자람 등이 거쳐 간 DAC(두산아트센터) 아티스트로도 선정되며 큰 주목을 받은 신인 작가다. 그는 연출가와 나눌 법한 대화를 AI와 나누며 작품을 쓴다. 16일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에서 만난 강 작가는 “기술을 지독하게 느껴봐야 내가 쓰는 글이 시대에 뒤처지지 않는다. 과학기술은 시대를 구분 짓고 사고를 전복하는 이정표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의 시대 연극계에선 젊은 극작가가 귀하다.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그 역시 학부 땐 영화를 전공했다. 그러다 갑자기 무대에 발을 디딘 건 역설적으로 연극의 태생적 한계 때문이었다.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서사를 예로 들었다. “영화라면 바다에서 촬영하면 돼요. 하지만 연극은 극작가가 창의력을 총동원해야 하죠. 배우, 연출가가 무대 언어로 바다를 재현할 수 있게끔 고민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꼈어요.” ‘아름답고 유용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그의 문체는 포말처럼 반짝이면서 수평선 너머 감춰진 존재를 조명한다. 오랜 세월 드레스 제작사로 일한 할머니의 기억을 좇으며 3대에 걸친 시간을 교차시킨 ‘그게 다예요’는 연극상에서 “진정한 상생과 연대를 담아낸, 묻히기 아까운 작품”이라는 심사평을 받았다. 좋은 이야기란 ‘동일한 대상을 달리 볼 시선을 진부하지 않은 미학으로 전하는 것’이라는 그는 “이야기에는 뉴스나 칼럼과는 다른 정확성이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기자 출신 작가인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쓴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는 기사체만큼 건조하게 쓰였음에도 전쟁 후의 패배감, 공허감이 온몸으로 느껴지잖아요. 이야기는 사건과 인물, 구조를 동원해 감정을 비롯한 모호한 영역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힘이 있어요.” 강 작가는 자신을 ‘양자역학과 스마트폰의 세계관을 타고난 세대’로 규정했다. 불확정적이면서 탈중심·초연결적 문화가 지배하는 시대란 뜻이다. 그는 “오늘날엔 오디세우스처럼 거창한 시련도, 절대적 구원자도 없다. 삶은 불확실하고 불안하기만 하다”며 “사람들의 감각에 맥락을 만들어줌으로써 삶을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끔 돕고 싶다”고 했다. 청감 문화 스타트업 ‘사운드 울프’에선 아트디렉터로 활동하며 소리에 서사를 더한다. 농구공이 네트를 스치며 골인할 때의 소리로부터 짜릿함의 서사를 발굴하는 식이다. 그는 무언가에 익숙해지고 있다고 느끼면 얼른 새 물을 끌어다 자신의 세계를 희석한다. “우리 세대는 한 우물만 파서는 고여 버리기 쉽다”며 차기작으로 장편 영화 시나리오를 집필 중이다. “좋은 극작가라면 가상현실(VR) 게임 시나리오도, 증강현실(AR) 광고 카피도 잘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작업을 해보고 싶고, 해야 하죠. 노랫말 쓰는 것이 취미라, 언젠간 아이돌 그룹 음악도 작사해 보고 싶어요(웃음).”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램프의 요정 ‘지니’를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목표였어요. 알라딘과의 ‘브로맨스’를 강조하고 싶었거든요. 최첨단 기술을 사용해 변신시키는 대신 춤추고 우스꽝스로운 스탠드업 코미디언처럼 설정한 이유입니다.”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뮤지컬 ‘알라딘’을 연출한 케이시 니콜로 연출가 겸 안무가가 20일 서울 중구에서 화상으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공연 제작 배경에 대해 밝혔다. 브로드웨이 뉴암스테르담 시어터에 모인 제작진과 원격으로 이뤄진 이번 간담회에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알라딘’ ‘미녀와 야수’ 등의 OST를 만든 스타 작곡가 앨런 멩컨, 디즈니 시어트리컬 그룹의 앤 쿼트 총괄 프로듀서가 함께했다. 11월 22일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에서 초연되는 ‘알라딘’은 1992년 개봉한 동명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기반한 대형 뮤지컬이다. 2011년 미국 시애틀에서 초연된 이후 영국, 호주, 일본 등 전 세계 11개 제작사에서 공연하며 관객 2000만 명을 모았다. 한국 공연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라이온 킹’ 등을 공연한 에스앤코가 제작한다. 공연에서는 뮤지컬에 맞춰 새롭게 작곡하거나 편곡한 음악을 들어볼 수 있다. 멩컨은 “자스민의 사랑과 관계에 초점을 맞춘 새 음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디즈 팰리스 월스(These Palace Walls)’를 추가했다. 당시 45분 만에 기본 선율을 완성했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2∼3분 길이인 ‘프렌드 라이크 미(Friend Like Me)’는 약 8분 길이의 화려한 스윙 재즈풍 음악으로 바뀌었다. 니콜로는 “대표곡 ‘어 홀 뉴 월드(A Whole New World)’의 경우 원작보다 로맨틱하고 반짝이도록 편곡했다”고 덧붙였다. 창작진은 ‘알라딘’에 얽힌 뒷이야기도 풀어냈다. 멩컨은 “알라딘이 부르는 ‘어 홀 뉴 월드’는 원래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세상이 내 발밑에 있다’는 설렘을 표현하는 노래였는데 작사가 팀 라이스를 만나 사랑을 노래하는 아름다운 가사로 변화했다”고 말했다. 애니메이션 제작 원안에는 있었지만 불가피하게 빠졌던 캐릭터들도 무대에 등장한다. 알라딘의 세 친구인 카심, 오마르, 밥칵이 조력자로 활약한다. 초연에 참여하는 총 37명의 출연진은 10차례 오디션을 통해 선발됐다. 알라딘 역은 김준수, 서경수, 박강현이 연기한다. 지니 역은 정성화, 정원영, 강홍석이, 자스민 역은 이성경, 민경아, 최지혜가 맡는다. 이성경은 ‘알라딘’을 통해 처음 무대 연기에 도전한다. 쿼트는 “20년 전 뮤지컬 ‘미녀와 야수’를 한국에서 공연했을 때와 비교해 한국 배우들의 역량이 매우 강력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램프의 요정 ‘지니’를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목표였어요. 알라딘과의 ‘브로맨스’를 강조하고 싶었거든요. 최첨단 기술을 사용해 변신시키는 대신 춤추고 우스꽝스러운 스탠드업 코미디언처럼 설정한 이유입니다.”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뮤지컬 ‘알라딘’을 연출한 케이시 니콜로 연출가 겸 안무가가 20일 서울 중구에서 화상으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공연 제작 배경에 대해 밝혔다. 브로드웨이 뉴암스테르담 시어터에 모인 제작자들과 원격으로 이뤄진 이번 간담회에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알라딘’ ‘미녀와 야수’ 등의 OST를 만든 스타 작곡가 알란 멘켄, 디즈니 시어트리컬 그룹의 앤 쿼트 총괄 프로듀서가 함께했다. 11월 22일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에서 초연되는 ‘알라딘’은 1992년 개봉한 동명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기반한 대형 뮤지컬이다. 2011년 미국 시애틀에서 초연된 이후 영국, 호주, 일본 등 전 세계 11개 제작사에서 공연하며 관객 2000만 명을 모았다. 한국 공연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라이온 킹’ 등을 공연한 에스앤코가 제작한다.공연에서는 뮤지컬에 맞춰 새롭게 작곡하거나 편곡한 음악을 들어볼 수 있다. 멘켄은 “자스민의 사랑과 관계에 초점을 맞춘 새 음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디즈 펠레스 월스(These Palace Walls)’를 추가했다. 당시 45분 만에 기본 선율을 완성했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2~3분 길이인 ‘프렌드 라이크 미(Friend Like Me)’는 약 8분 길이의 화려한 스윙 재즈풍 음악으로 바뀌었다. 니콜로는 “대표곡 ‘어 홀 뉴 월드(A Whole New World)’의 경우 원작보다 로맨틱하고 반짝이도록 편곡했다”고 덧붙였다. 창작진은 ‘알라딘’에 얽힌 뒷이야기도 풀어냈다. 멘켄은 “알라딘이 부르는 ‘어 홀 뉴 월드(A Whole New World)’는 원래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세상이 내 발밑에 있다’는 설렘을 표현하는 노래였는데 작사가 팀 라이스를 만나 사랑을 노래하는 아름다운 가사로 변화했다”고 말했다. 애니메이션 제작 원안에는 있었지만 불가피하게 빠졌던 캐릭터들도 무대에 등장한다. 알라딘의 세 친구인 카심, 오마르, 밥칵이 조력자로 활약한다. 초연에 참여하는 총 37명의 출연진은 10차례 오디션을 통해 선발됐다. 알라딘 역은 김준수, 서경수, 박강현이 연기한다. 지니 역은 정성화, 정원영, 강홍석이, 자스민 역은 이성경, 민경아, 최지혜가 맡는다. 이성경은 ‘알라딘’을 통해 처음 무대 연기에 도전한다. 쿼트는 “20년 전 뮤지컬 ‘미녀와 야수’를 한국에서 공연했을 때와 비교해 한국 배우들의 역량이 매우 강력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K뮤지컬 ‘위대한 개츠비’(사진)가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흥행을 거두며 빌보드 차트 ‘캐스트 앨범’ 부문 정상에 올랐다. 공연기획사 오디컴퍼니는 이달 2일 발매한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OST) 앨범이 빌보드 차트 ‘캐스트 앨범’ 부문 1위에 올랐다고 19일 밝혔다. ‘위대한 개츠비’는 뮤지컬 ‘데스노트’ ‘지킬앤하이드’ 등을 만든 오디컴퍼니 신춘수 대표가 아시아인 최초로 단독 리드 프로듀서를 맡은 작품.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동명 원작 소설을 재창작했다. 현재 브로드웨이에서 두 번째로 큰 극장인 브로드웨이 시어터에서 공연되고 있다. 공연의 주요 넘버인 ‘뉴 머니(New Money)’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댄스 챌린지 영상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흥겨운 노래에 맞춰 추는 절도 있는 안무가 특징이다. 브로드웨이의 경쟁 뮤지컬인 ‘백 투더 퓨처’ 배우들까지 챌린지에 동참했는데 유튜브에서 100만 회 이상 조회됐다. ‘위대한 개츠비’는 프리뷰 공연이 시작된 4월 15일 이후 17주째 매주 매출액 100만 달러 이상을 내며 ‘원 밀리언 클럽’을 유지하고 있다. 브로드웨이는 주간 매출액이 100만 달러를 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면 작품성과 별개로 작품을 무대에서 내린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비극적 죽음을 맞은 뒤 이승에 남지도, 저승에 가지도 못하는 ‘도’와 ‘신’. 자신이 누구였는지조차 잊은 이들은 생전 신던 신발을 하염없이 찾는다. 신발에서는 한 사람의 삶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다음 달 1일까지 서울 성북구 놀터예술공방에서 공연되는 극단 ‘놀터’의 연극 ‘나를 찾아 나를 떠나고 나를 지우고 나를 기다린다’의 줄거리다. 배우 겸 연출가 이미숙(47)이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주인공들이 고도를 기다리는 동안 신발을 갖고 노는 데서 영감을 얻어 대본을 쓰고 연출했다. 2021년 초연 이후 3년 만에 재연된다. 16일 첫 공연이 끝난 뒤 극장에서 만난 이미숙은 얼마 전 선물 받은 새 신발을 신고 있었다. 매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와 성북구 동소문동에서 노원구 상계동 집까지 걸어 다니며 작품을 고민하는 그의 신발 밑창에 어김없이 큰 구멍이 나서다. 쉬지 않고 걸어도 왕복 7시간에 달하는 거리. “물집이 나고 터지며 굳은살이 박이기를 반복하는 과정이 인생 아닐까요. 나 자신과 싸우고 패배하면서도 살아내야 하는 삶을 작품에 담아내고자 했어요.” 연극계에서 ‘몸 잘 쓰는 유쾌한 배우’로 정평이 난 이미숙답게 작품에는 배우들의 다채로운 움직임과 입소리, 언어유희로 가득하다. 그는 “뼈대에 살이 붙어야 비로소 살아 숨 쉬는 인간이 되듯, 배우의 움직임은 대사에 생명을 불어넣는 필수 요소”라며 “대사 이외 입소리와 말놀이로 웃음과 운율감을 더했다”고 말했다. 굿판을 접목해 한(恨) 서린 영혼들을 위로하는 과정도 특색 있게 담았다. “작품 속 인물들에게 부끄럽지 않겠다”는 신념을 가진 그는 스무 살이 되던 1997년 극단 ‘미추’에 입단하며 연극 인생을 시작했다. 26년이 흐른 지난해 제60회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품에 안았다. 그는 “연극쟁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상이기에 수상 소식을 듣고 한참 넋을 잃었다”며 “형편이 어려워 연기를 전문적으로 배우지 못했는데 고집스럽게 무대를 지킨 끝에 보상을 받는 듯해 감격스러웠다”고 했다. 어느덧 중견 배우가 됐지만 연극을 향한 고집과 애정은 변함없다. 그에게 연기상을 안겨준 ‘싸움의 기술, 졸’에서 장기 두는 것이 낙인 ‘뒷방 늙은이’ 기봉 역을 연구할 땐 동네 공원을 찾았다. 장기 두는 어르신들의 표정과 몸짓, 말투를 온종일 꼼꼼히 관찰했다. ‘무슨 관심이 그렇게 많냐’며 걱정 섞인 핀잔을 들어도 소주를 나눠 마시며 거리를 좁혔다. “연극은 모방이라지만 가짜를 연기하면 안 돼요. 연출가로서 배우들도 ‘진짜’ 그 인물이 될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하죠. 관객과 단원들에게 극장이 가장 소중한 공간이 되게끔 앞으로도 묵묵히 무대를 지키겠습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나이가 들면 과거의 행복했던 순간을 자꾸만 늘어놓기 쉽다. 자식은 “했던 얘기 또 한다”며 성가신 기색을 내비치고, 부모는 그런 자신의 변화에 스스로도 당혹감을 느낀다. 그러나 책에 따르면 이는 나이가 들어서도 평온과 활기를 지킬 비결이다. 기억 속 보물들을 끊임없이 끄집어냄으로써 걱정과 불행에 압도당하지 않는 것. 심리치료사 겸 베스트셀러 작가인 저자가 72세에 학문적 연구와 경험을 토대로 썼다. 분석심리학의 토대를 만든 스위스 정신의학자 카를 융(1875∼1961)의 이론에 기초했다. 노화에 따른 변화와 다가올 죽음에 익숙해질 것을 7개 장에 걸쳐 꾸준히 강조한다. 자율성과 통제력이 약해지는 것에 대해서는 “받아들여야 한다”고 단호히 다그치며 수용을 넘어선 긍정의 길까지 제시한다. 저자는 “노년기에는 완벽한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다른 사람들의 비판적인 시선에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다면 자신을 새롭게 알아 갈 기회가 생긴다”고 말한다. 불친절한 이론서에 그치지 않고 현명하게 나이 들기 위한 각종 실천법도 담아냈다. 책은 노년층이 작은 모임을 만들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감정적으로 접촉할 것을 권한다. 우리가 과거에 느꼈던 기쁨을 다시 떠올리면 기분이 좋아지고 다른 사람에게 더 다정해지며, 후회되는 상황에 대해서도 더 이상 괴로워하지 않고 그 자체로 남겨둘 수 있기 때문이다. 주름이 늘고 깜박 잊는 것이 많아진 이들만을 위한 책은 아니다. 보다 안정되고 평온한 일상을 꿈꾸는 청년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다. 크고 작은 난관에 쉴 새 없이 맞닥뜨려야 하는 현실은 나이가 많든 적든 매한가지다. “나이가 들면 여러 측면에서 바닥이 흔들린다. 바닥이 흔들릴 때는 유연해져야 한다” “우리는 도움이 필요하고 도움받을 수 있으며, 누군가 곁에 있는 것에 감사하면 된다”는 말들은 적지 않은 울림을 남긴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지난달 24∼31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선 뮤지컬 ‘킹키부츠’의 ‘생일 카페’(카페를 대관해 연예인 등의 생일을 축하해 주는 이벤트)가 열렸다. 복수의 행사 관계자에 따르면 국내 공연 10주년을 맞아 열린 이 행사에 팬들이 몰렸고, 입장 등록을 마치고도 1, 2시간씩 기다려야 실제 입장이 가능했다. 팬들은 작품을 대표하는 색깔인 빨간 옷에 붉은색 음료를 즐기며 포토존에서 ‘인증샷’을 남겼다. 일주일 행사 기간에 이곳을 찾은 이는 3900여 명. 엽서, 홀더 등 일부 굿즈는 사흘 만에 조기 소진돼 급히 추가 제작하기도 했다. 국내 뮤지컬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아이돌과 스타 배우들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주류 팬덤 문화’에 뮤지컬계의 ‘입김’이 거세지고 있다. 방탄소년단(BTS), 에스파, 변우석 등 톱스타들의 이름이 올라 있는 팬 커뮤니티 플랫폼 ‘위버스’에는 지난달 31일 ‘1호 뮤지컬 배우’가 탄생했다. 다음 달까지 공연되는 뮤지컬 ‘시카고’의 주인공 역을 맡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인기몰이 중인 정선아가 뮤지컬 배우 최초로 입점한 것. 내부 심사를 거쳐야 입점이 확정되는 만큼, 뮤지컬계 영향력이 커진 것을 보여줬다는 것이 업계 평가다. 정선아, 김준수 등 뮤지컬 배우들이 소속된 팜트리아일랜드 관계자는 “기존 오프라인 중심이던 소통에서 외연을 넓혀 해외 팬 등과도 적극 교류하기 위해 위버스 입점을 결정했다”고 했다. 특정 작품의 팬들이 배우, 창작진과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티도 생겨났다. 팬 커뮤니티 플랫폼 ‘비스테이지’에는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팬 페이지가 올해 6월 개막 직전 개설돼 14일 기준 가입자 6400명을 모았다. 비스테이지에 뮤지컬 작품이 입점한 것은 처음이다. 윤은오, 박진주를 비롯한 주인공 역 배우들이 프로필 촬영 비하인드컷 등을 공유했다. 좋아하는 연예인과 가상 사진을 찍을 수 있어 최근 팬덤 문화의 필수코스로 꼽히는 포토부스로도 뮤지컬 배우들이 영역을 확장했다.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한 포토부스에서는 이달 18일까지 뮤지컬 배우 박강현과 가상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장당 7000원으로 일반 사진의 2배 가까운 가격이지만 인기 뮤지컬 ‘하데스타운’에 주인공 역으로 출연 중인 박강현과 함께 다정한 포즈로 가상 인증샷을 찍을 수 있어서 호응도가 높다. 국내 뮤지컬 시장은 팬덤 문화와 결합돼 2000년대 이후 급속 성장을 이뤘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에 따르면 지난해 뮤지컬 티켓 판매액은 약 4591억 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냈다. 여기에 공연과 팬덤 산업이 선순환되며 점차 파이가 커지고 있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는 “같은 작품을 여러 차례 관람하는 ‘회전문 관객’이 많고 주요 소비층이 20, 30대로 해외에 비해 젊기 때문에 팬덤 문화가 확산하기 좋은 토양”이라며 “아이돌 출신 배우가 늘면서 아이돌 팬 문화가 흡수된 영향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국립국악원이 여름 야외공연 ‘우면산별밤축제’를 24일부터 9월 21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8시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연희마당 무대에서 연다. 음악성과 대중성을 고루 갖춘 국악 단체들이 출연해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작품을 선보인다.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의 무을농악, 사자놀음 등 생동감 넘치는 무대부터 거꾸로프로젝트, 최재구, 예결 등의 창작 국악 공연, 연희집단THE광대의 관객 참여형 연희극 ‘당골포차’ 등 다양한 무대가 준비됐다. 본공연 전에는 ‘청배연희단’의 풍물 연희공연도 펼쳐진다. 전석 무료이며 공연 일주일 전 수요일 오후 2시부터 국립국악원 홈페이지에서 예약할 수 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무용, 국악 등 다채로운 공연 축제가 잇달아 열려 늦여름에 열기를 더한다. 올해는 젊은 안무가와 소리꾼 등 통통 튀는 신진 예술가를 앞세운 행사가 많아 눈길을 끈다. 유네스코 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가 주최하는 ‘제27회 서울세계무용축제’가 다음 달 1∼14일 서울 시내 곳곳에서 개최된다. 세계적인 공연예술가 로메오 카스텔루치의 자녀들로 이뤄진 ‘듀이 델’이 처음 내한공연을 펼친다. 30대 젊은 무용수 겸 안무가인 3남매는 5, 6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봄의 제전’을 공연한다. 다음 달 11일 같은 장소에서 공연되는 고블린파티와 갬블러크루의 ‘동네북’ 등 총 9개국 작품 16편이 공연된다. 올해 30주년을 맞은 창무국제공연예술제는 세종 예술의전당에서 진행되는 ‘지금 뛰다’를 주요 프로그램으로 앞세웠다. 국내외 젊은 안무가들의 작품 8편을 한자리에 모았다. 실패와 극복에 대해 다룬 메타댄스 프로젝트의 ‘지금은 미끄러지지만’, 군함도의 가슴 아픈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유아 안무작 ‘군함의 자태’ 등이 각각 20, 21일 공연된다. 그 밖에 국내 초청작 19편과 일본, 미국 등 해외 초청작 5편이 이달 21∼31일 서울 중구 서울남산국악당, 종로구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등에서 펼쳐진다. 전주세계소리축제가 이달 14∼18일 전북 전주 시내에서 개최되는 등 국악계도 젊은 소리꾼과 함께 흥겨운 축제를 꾸린다. 총 14개국 800여 명의 예술가가 106회의 공연을 펼친다. 축제의 대표 프로그램인 ‘판소리 다섯 바탕’에서는 ‘올해의 국창’ ‘라이징 스타’ 등의 키워드를 주제로 한 5편이 무대에 오른다. 김영자 ‘심청가’, 왕기석 ‘수궁가’ 등 명창의 판소리뿐만 아니라 이자람 ‘적벽가’, 박가빈 ‘춘향가’ 등 젊은 소리꾼들의 공연도 만나볼 수 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힘껏 바로잡지 않으면 과오는 반복된다. 머잖아 과거가 되고 역사로 기록될 오늘을 향해 연극 ‘장도’는 말한다. “피하지 마. 두려운 마음 그대로 봐.”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 세실에서 8일 마지막 공연으로 막을 내리는 연극 ‘장도’는 ‘잘 사는 것’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친구와 가족을 떠나보낸 고등학생 ‘장도’가 할아버지 ‘장춘’의 유품을 발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작품은 과거 전쟁터 속 할아버지와 현재 장도의 상황을 속도감 있게 교차시킨다. 출연진은 1인 2역 이상을 연기하며 1950년대와 오늘날을 매끄럽게 오간다. 공허한 눈빛과 굽은 어깨의 장도, 공포와 결단이 공존하는 얼굴의 장춘은 배우 지민제가 연기했다. 간소한 무대임에도 조명과 영상을 활용해 전쟁터와 교실을 오간다. 스크린에는 수업 판서와 자욱한 연기가 번갈아 투사되고, 무대 바닥에 놓인 조명은 관객 방향으로 번쩍이면서 포탄과 화재를 표현했다. 6·25전쟁을 배경으로 하지만 이념 갈등이나 분단의 아픔 같은 상투적인 주제에 얽매이지 않는다. 주인공이 상실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것. 이는 개인과 집단의 역사가 어떻게 건설되고 재평가돼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로 확장된다. “다 잊는 게 잘 산다는 거냐?” 등의 대사로 선택과 결과에 대한 생각거리도 남긴다. 장도와 같은 반 친구인 예지, 경훈 등 감초 캐릭터로 자칫 무거워지기 쉬운 이야기를 조절한다. 다만 6·25전쟁에 참전했던 뉴질랜드 마오리족을 캐릭터로 차용한 것은 다소 갑작스럽게 느껴진다. 발을 구르고 가슴을 치며 사기를 북돋는 마오리족의 전통 의식 ‘하카’를 활용하는 등 이야기와 시청각 요소에 입체감을 더하긴 하지만 산만한 전개로 전달력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최근엔 가만히 있어도 식은땀이 흐를 만큼 몸과 마음에 과부하가 왔어요. 그때 뮤지컬 ‘킹키부츠’ 4번째 출연 기회가 주어졌고, 그건 제가 위기에서 벗어날 비상구였죠.” 이석훈(40)에게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그룹 SG워너비로 데뷔한 17년 차 가수이자 뮤지컬 배우, 진행자로서 바쁜 일상. 그에게 ‘킹키부츠’는 비상벨이 울린 마음을 피할 탈출구였다. 5일 서울 종로구의 연습실에서 만난 이석훈은 “후회 없이 사랑하면 미련이 없듯 2022년 공연을 끝내며 ‘더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번 출연을 반년 넘게 고사하다가 마음을 돌린 건 내게 ‘찰리’가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킹키부츠’는 폐업 위기에 놓인 아버지의 수제화 공장을 이어받게 된 찰리가 가업을 다시 일으키려 노력하는 성장기다. 유쾌한 드래그퀸(여성의 성 역할을 연기하는 남성) ‘롤라’를 만나 80cm 길이의 남성용 부츠를 만들면서 겪는 고군분투를 다룬다. 2014년 국내 초연 이후 누적 관객 약 50만 명을 모은 스테디셀러 뮤지컬로, 다음 달 8일부터 11월 10일까지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10주년 기념 공연이 열린다. 작품은 찰리의 성장기인 동시에 이석훈의 성장기다. 2018년 찰리 역으로 뮤지컬에 데뷔한 해에 아들을 얻었고, 이후 2년마다 열린 ‘킹키부츠’에 빠짐없이 출연했다. “저를 꼭 닮은 아이는 마음에 사랑이 참 많아요. 그걸 보며 ‘나도 원래 저랬는데 어쩌다 몇 년 새 예민하고 방어적으로 변했지’ 생각했죠. 대본을 다시 보니 찰리도 여태 가보지 못한 길을 가면서 예민해진 거더라고요. 찰리가 결국 원래의 모습을 되찾듯 저도 돌아가려 애쓰는 중입니다.” ‘킹키부츠’를 통해 배우로서의 성장도 일궜다. 그동안 주역을 맡은 뮤지컬 가운데 그는 가장 연기하기 어려운 배역으로 찰리를 꼽았다. 우리 주변에 한 명쯤 있는 평범한 캐릭터라서 롤라만큼 튀어선 안 되기에 까다롭다는 것. “가수로 공연할 때보다 2배는 더 떨립니다.” 그의 우려와 달리 관객들 사이에선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는 넘버 ‘Soul of a Man’도 “이석훈이 부르면 설득된다”는 평이 오간다. 찰리가 롤라에게 모진 말을 쏟아내며 비수를 꽂은 뒤 이어지는 노래다. “저는 그 대목에서 너무 억울해 눈물이 나는 걸 겨우 참아요.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기분을 전달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번 시즌이 ‘진짜 마지막’이라고 했다. 찰리 역을 빼어나게 소화할 후배들이 줄을 섰다는 이유에서다. “건강 외에 엄청난 목표를 세우고 있지는 않아요. 지금은 최고의 찰리를 보여주고자 ‘킹키부츠’에만 전념하겠습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그동안 열심히 노력한 것이 결실을 맺어서 정말 기뻐요. 항상 저를 믿고 격려해준 가족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어요. 이번 수상을 계기로 큰 국악인으로 성장하겠습니다.” 서울 서초구 정효아트홀에서 3일 열린 제3회 동아주니어국악콩쿠르 본선에서 서용석류 대금산조를 연주해 금상을 수상한 임주하 양(15·국립전통예중 3학년)은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동아일보사와 정효문화재단(대표 주재근)이 주최하고 국악방송(사장 원만식)과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사장 김삼진)이 후원한 이번 콩쿠르는 초·중등부 현악, 관악, 성악, 무용 등 4개 부문에서 지난달 29, 30일 예선을 거쳐 40명이 본선에 올랐다. 이날 본선에선 금상 8명 등 24명이 수상했다. 이번 대회의 최연소 참가자이자 수상자인 박서아 양(9·부산동백초 3학년)은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돼 너무나 기쁘고 다음에도 참가해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특히 올해부터는 ‘국악기 공방 소리숲’의 후원으로 각 부문 금상 입상자에게 단소 또는 소금이 1개씩 수여됐다. 주요 입상자에게는 독주회와 국악방송 출연, 심사위원 멘토링 등 특전이 주어진다. 이달 중 콩쿠르 홈페이지에서 심사 결과와 심사평, 본선 연주 동영상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은 수상자 명단(장려상 명단은 홈페이지 참조). ◇현악 ▽중등부 △금상 강유진(15·국립국악중 3학년) △은상 김유림(14·국립국악중 2학년) △동상 이예랑(15·국립전통예중 3학년) ▽초등부 △금상 김우혁(11·서울대도초 5학년) △은상 황민경(12·서울가락초 6학년) △동상 이다은(11·삼미초 6학년) ◇관악 ▽중등부 △금상 임주하(15·국립전통예중 3학년) △은상 양동재(15·국립전통예중 3학년) △동상 서효우(15·국립국악중 3학년) ▽초등부 △금상 윤하원(12·서울두산초 6학년) △은상 박초은(12·탄벌초 6학년) △동상 이주학(12·서울보라매초 6학년) ◇성악 ▽중등부 △금상 김은채(15·국립전통예중 3학년) △은상 양준모(15·국립국악중 3학년) △동상 김민정(15·국립국악중 3학년) 남하율(14·국립국악중 3학년) ▽초등부 △금상 구민정(12·사천사남초 6학년) △은상 손연재(12·건원초 6학년) ◇무용 ▽중등부 △금상 길도연(14·예원학교 3학년) △은상 김아름(13·온양용화중 2학년) △동상 이단비(14·일신여중 2학년) ▽초등부 △금상 박서아(9·부산동백초 3학년) △은상 이하윤(10·배방초 4학년) △동상 백도이(11·인천한길초 5학년)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관계자 외 출입금지.’ 빨간 경고문이 붙은 문을 열고 제한구역에 발을 내디뎠다. 으스스한 푸른 조명이 깜깜한 복도를 비추고 공포 영화에 나올 법한 음악이 은은하게 깔렸다. 긴 식탁이 놓인 다이닝룸에 들어서자 유령 조사단 관계자가 무겁게 말문을 열었다. “이곳은 공연이 끝난 배우들이 식사하는 곳이자 ‘버나돌이 유령’이 숨어 있는 곳입니다.” 관객들이 증강현실(AR) 모바일 앱으로 내부를 비추자 하늘색 외눈박이 유령이 눈앞에 튀어나왔다. 3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열린 극장 투어 프로그램 ‘극장에 유령이 산다’의 한 장면이다. 여름방학을 맞아 가족들이 몰리며 투어는 온라인 접수 1분 만에 160명 정원이 모두 찼다. 다이닝룸에 이어 둘러본 라커룸에서는 크로마키(특수효과용 푸른 배경)를 활용해 ‘투명 망토’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이날 엄마와 함께 투어에 참여한 장세원 양(10)은 “공연을 한 달에 한 편씩 볼 만큼 좋아하지만 극장 투어는 처음”이라며 “평소에 갈 수 없는 극장 내부 공간을 유령 조사단과 함께 가볼 수 있어 재밌고 신기했다”고 말했다. 공연계가 이색 투어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잠재 관객 개발에 힘쓰고 있다. 극장의 역사나 공간별 기능을 설명하는 기존 방식 대신 몰입도 높은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해 극장 자체를 고유 ‘브랜드’로 만들려는 것. 송수찬 LG아트센터 공연기획팀 매니저는 “극장만이 제공할 수 있는 특화된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창작연희단체와 협업했다”며 “어린이와 부모들이 극장에 친숙하게 드나듦으로써 향후 공연에 대한 접근 가능성을 높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는 극작가 겸 연출가인 강현주가 구성하고 연출한 스토리텔링형 투어 프로그램 ‘고스트 가이드’를 최근 진행했다. 배우 오정택의 연기가 펼쳐지는 가운데 50분간 참가자들이 지하 연습실과 소극장 등을 둘러보는 프로그램이다. 관객들이 경험하기 힘든 ‘고스트 라이트’(극장이 문을 닫은 뒤 공연 재개 전까지 켜두는 희미한 조명)를 보여주고, 그에 얽힌 서정적인 이야기를 풀어내 감성을 자극한다. ‘1993년부터 이곳에 공연을 보러 온 고모부’ 같은 배역을 참가자들에게 즉석에서 맡겨 체험 몰입도를 높인다. 정다운 두산아트센터 교육기획 매니저는 “정보 전달만으로는 극장에 대한 친밀감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을뿐더러 극장 규모 등에서 다른 곳에 비해 변별력을 갖기 어렵다고 봤다”며 “스토리텔링을 통해 극장과 공연에 대한 따뜻한 정서를 이끌어냄으로써 신뢰감을 높일 수 있도록 기획했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 국립극장은 공연예술박물관에서 가상현실(VR) 백스테이지 투어를 진행 중이다. 비치된 VR 기기를 통해 음향조정실 등 평소 관객이 접근하기 어려운 백스테이지 공간을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다. 가상의 소품제작실에서는 초록색 커팅매트와 알록달록한 공구가 즐비한 모습을, 장치제작실에선 경사로 등 무대장치에 쓰이는 합판과 기자재가 놓인 장면을 각각 살펴볼 수 있다. 김연희 국립극장 공연예술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각종 무대장치들이 쌓여 있어 안전상 우려가 있는 장치제작실 등을 VR 투어로 안전하게 둘러볼 수 있다”며 “정해진 시간에 제한된 인원만 참여할 수 있는 일반 투어와 달리 누구나 원하는 시간에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관계자 외 출입금지’빨간 경고문이 붙은 문을 열고 제한구역에 발을 내디뎠다. 으스스한 푸른 조명이 깜깜한 복도를 비추고 공포 영화에 나올 법한 음악이 은은하게 깔렸다. 긴 식탁이 놓인 다이닝룸에 들어서자 유령 조사단 관계자가 무겁게 말문을 열었다. “이곳은 공연이 끝난 배우들이 식사하는 곳이자 ‘버나돌이 유령’이 숨어 있는 곳입니다”. 관객들이 AR(증강현실) 모바일앱으로 내부를 비추자 하늘색 외눈박이 유령이 눈 앞에 튀어나왔다.3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열린 극장 투어 프로그램 ‘극장에 유령이 산다’의 한 장면이다. 여름방학을 맞아 가족들이 몰리며 투어는 온라인 접수 1분 만에 160명 정원이 모두 찼다. 다이닝룸에 이어 둘러본 락커룸에서는 크로마키(특수효과용 푸른 배경)를 활용해 ‘투명 망토’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이날 엄마와 함께 투어에 참여한 장세원 양(10)은 “공연을 한 달에 한 편씩 볼 만큼 좋아하지만 극장 투어는 처음”이라며 “평소에 갈 수 없는 극장 내부 공간을 유령 조사단과 함께 가볼 수 있어 재밌고 신기했다”고 말했다.공연계가 이색 투어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잠재 관객 개발에 힘쓰고 있다. 극장의 역사나 공간별 기능을 설명하는 기존 방식 대신 몰입도 높은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해 극장 자체를 고유 ‘브랜드’로 만들려는 것. 송수찬 LG아트센터 공연기획팀 매니저는 “극장 만이 제공할 수 있는 특화된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창작연희단체와 협업했다”며 “어린이와 부모들이 극장에 친숙하게 드나듦으로써 향후 공연에 대한 접근 가능성을 높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는 극작가 겸 연출가인 강현주가 구성하고 연출한 스토리텔링형 투어 프로그램 ‘고스트 가이드’를 최근 진행했다. 배우 오정택의 연기가 펼쳐지는 가운데 50분간 참가자들이 지하 연습실과 소극장 등을 둘러보는 프로그램이다. 관객들이 경험하기 힘든 ‘고스트 라이트’(극장이 문을 닫은 뒤 공연 재개 전까지 켜두는 희미한 조명)를 보여주고, 그에 얽힌 서정적인 이야기를 풀어내 감성을 자극한다. ‘1993년부터 이곳에 공연을 보러 온 고모부’ 같은 배역을 참가자들에게 즉석에서 맡겨 체험 몰입도를 높인다. 정다운 두산아트센터 교육기획매니저는 “정보 전달만으로는 극장에 대한 친밀감을 높이는데 한계가 있을 뿐더러 극장 규모 등에서 다른 곳에 비해 변별력을 갖기 어렵다고 봤다”며 “스토리텔링을 통해 극장과 공연에 대한 따뜻한 정서를 이끌어냄으로서 신뢰감을 높일 수 있도록 기획했다”고 말했다.서울 중구 국립극장은 공연예술박물관에서 VR(가상현실) 백스테이지 투어를 진행 중이다. 비치된 VR 기기를 통해 음향조정실 등 평소 관객이 접근하기 어려운 백스테이지 공간을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다. 가상의 소품제작실에서는 초록색 커팅매트와 알록달록한 공구가 즐비한 모습을, 장치제작실에선 경사로 등 무대장치에 쓰이는 합판과 기자재가 놓인 장면을 각각 살펴볼 수 있다. 김연희 국립극장 공연예술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각종 무대장치들이 쌓여 있어 안전상 우려가 있는 장치제작실 등을 VR 투어로 안전하게 둘러볼 수 있다”며 “정해진 시간에 제한된 인원만 참여할 수 있는 일반 투어와 달리 누구나 원하는 시간에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진화론에 따르면 우월한 유전자는 ‘자기 씨’를 널리 퍼뜨리려는 본능이 강하다. 그렇다면 오늘날 출생률이 감소한 것은 인류 역사의 퇴보를 의미할까.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환경과학과 인류학을 연구하는 저자들은 인류가 어떻게 오늘날에 이르게 됐는가에 대한 답을 ‘유전자-문화 공(共)진화 이론’에서 찾는다. 인류가 유전적 본성이나 문화적 학습이라는 두 경로 중 하나만을 선택해 진화해온 게 아니라, 두 속성이 상호작용하며 진화를 이뤘다는 것이다. 총 7개 장에 걸쳐 인류 진화에 대한 폭넓은 가설을 펼친 뒤 심도 있는 논증으로 뒷받침했다. 2009년 출간된 ‘유전자만이 아니다’에서 번역의 오류를 바로잡고 주석을 보강했다. 저자들에 따르면 21세기 이전에 발생했던 모든 문화 진화적 사건들은 모두 지금과 연관돼 있다. 우리가 어떤 문화적 변형을 채택하거나, 무시할 것인지를 선택함으로써 진화 과정에 깊이 관여한다는 얘기다. 세계적으로 출생률이 떨어지는 추세에 대해선 ‘이기적인 문화 변형’이 발생했기 때문이라는 시각을 내놓는다. 근대화로 인해 인류는 교육기관 등을 통해 부모가 아닌 사람들로부터의 문화 전달이 일상화됐다. 그런데 높은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해 더 많은 교육을 받는 이들이 점차 결혼과 양육을 미루는 현상이 발생했다. 문화 전달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큰 이들이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확산시키면서 저출생이 심화됐다는 것이다. 당연하게 여겼던 인류의 과거 선택도 치밀하게 분석한다. 과거 나치 독일 치하에서 유대인 친구를 보호하려고 애쓴 독일인이 별로 없었던 사실에 대해 ‘사회적 본능’이라는 키워드를 제시한다. 서로 구분된 집단에서 살아가는 ‘부족 본능’이 극단화되면서 내집단(개인이 규범, 가치 등에서 동지의식을 갖는 집단)에 속하지 않은 유대인들을 의심과 살해의 대상으로 여기게 됐다는 것이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