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민

김소민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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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소민 기자입니다.

somin@donga.com

취재분야

2024-10-22~2024-11-21
문학/출판71%
인사일반13%
문화 일반7%
국제인물3%
역사3%
사회일반3%
  • [책의 향기]‘선량한 약자’ 탈 쓴 악의 얼굴… 스릴러 거장의 귀환

    “내 휠체어를 좀 밀어줄 수 있겠소?” 인적 드문 놀이터 앞 주차장에 밴 한 대가 서 있다. 뒷문을 열고 아스팔트 위에 휠체어 진입판을 연결한 채 80대 남자가 휠체어에 앉아 있다. 그 옆엔 그의 부인이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휠체어 배터리가 나가 수십 분째 진입판을 못 올라가고 있단다. 누군들 모른 척 지나갈 수 있을까. 동네에서 조깅을 하던 젊은 남성이 기꺼이 나선다. 휠체어 손잡이를 잡고 진입판 꼭대기에 다다를 무렵 난데없이 청년의 뒷덜미에 주삿바늘이 꽂힌다. 눈앞이 흐려지고 팔에서 기운이 빠진다. 순간 휠체어에서 뛰어내려 남자를 내려다보는 노인. 이들은 대체 누구인가. 반세기 동안 거의 매년 신작을 발표해 온 미국 추리소설 거장 스티븐 킹의 ‘홀리’가 16일 국내 번역 출간됐다. 1974년 데뷔작 ‘캐리’를 시작으로 ‘샤이닝’, ‘미저리’, ‘쇼생크 탈출’, ‘돌로레스 클레이본’ 등을 쓴 그는 미국 작가 중 가장 많은 작품이 영상화될 정도로 대중의 사랑을 받아 왔다. 작품마다 인상적인 악당 캐릭터를 만든 저자는 신간에선 누구든 도움의 손길을 건넬 만큼 연약해 보이는 80대 교수 부부를 내세웠다. 이들은 납치한 이들을 저택 지하실에 가두고 부패한 생간을 먹이는 엽기적인 고문을 벌인다. 의문의 연쇄 실종사건 해결에 탐정 홀리 기브니가 뛰어든다. 중년 여성이 한 달 넘게 실종된 딸을 찾아달라고 의뢰한 것. 홀리는 비슷한 실종자가 더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이들 사이에 관련이 있다고 확신한다. 선량한 약자의 얼굴로 희생양을 끌어들이는 노부부 악당을 추적하는 홀리의 이야기가 팽팽한 긴장 속에 전개된다. 미국 언론으로부터 “스티븐 킹의 소설 중 가장 정치적”이라는 평을 받은 신간에는 인종차별과 동성애 혐오, 미 의사당 공격 등 최근 미국 사회를 흔든 첨예한 이슈들이 소재로 다뤄진다. 예컨대 작품 속 노부부는 극렬한 인종차별주의자이자 동성애 혐오주의자다. 2021년의 코로나19 팬데믹이 배경으로 설정돼 백신 접종과 마스크 쓰기를 거부하다 죽음을 맞는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이 나온다. ‘2024년에도 트럼프를 볼 일이 없을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라는 홀리의 독백이 의미심장하다. 각자의 집에서 온라인으로 조의를 표하는 조문객 등 팬데믹으로 달라진 미국 사회에 대한 묘사가 생생하고 재미있다. 스티븐 킹 팬이라면 올해 그의 데뷔 50주년을 맞아 함께 출간된 ‘스티븐 킹 마스터 클래스’(황금가지)도 읽어볼 만하다. 생활고로 세탁일 등을 하며 글을 쓰던 킹이 쓰레기통에 버린 데뷔작 ‘캐리’ 원고를 아내가 출판사에 보내 스타 작가가 된 과정 등이 담겼다. 무엇보다 대중적 장르소설에 대한 문단의 편견에 맞선 킹의 모습이 흥미롭게 그려졌다. 미국 국립도서재단이 킹에게 공로상 메달을 수여하자, 저명 문학평론가로 미국 예일대 교수였던 해럴드 블룸은 “스티븐 킹은 문장 단위, 문단 단위, 책 단위 모든 측면에서 심히 미숙한 작가”라고 비난했다. 이에 언론을 통해 밝힌 킹의 응수는 역시 그답다. “블룸이 진실을 자백할 수 있도록 정맥마취제를 주사한 뒤 ‘자, 해럴드. 실제로 스티븐 킹의 작품을 몇 개나 읽어보셨소?’라고 묻고 싶어요. 그러면 아마 채 한 권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다는 대답이 나올 거로 생각합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4-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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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들 유관순 알지만, 독립운동 가르친 김란사 몰라”

    “많은 분들이 제 책을 보고 김란사에 대해 더 알고 싶다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고종 아들 의친왕 이강(1877∼1955)의 일생을 그린 장편소설 ‘마지막 왕국’(김영사·사진)을 내놓은 영국인 작가 다니엘 튜더는 22일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모두가 유관순은 아는데 유관순에게 독립운동 정신을 가르쳐준 김란사는 모른다. 의친왕, 김란사 등 잊혀진 인물들에게 빛을 비추고 싶은 마음으로 썼다”며 이렇게 말했다. 김란사(1872∼1919)는 독립운동가로 조선 최초의 여성 미국 유학생이다. 한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인물을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아는 외국인’으로 불리는 그가 신작 소설에 등장시킨 것. 그는 전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으로, 한국 사회에 대한 비평 에세이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문학동네),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문학동네)을 펴냈다. 신간은 그의 첫 소설로, 영어로 쓴 뒤 한국어로 번역했다. 이르면 내년 영어판이 출간될 예정이다. 그는 기자 시절 의친왕의 아들인 이석 황실문화재단 이사장을 인터뷰한 뒤 소설 집필을 결심했다고 한다. “이석 선생은 미국 불법 체류 경험에 사업에 실패하고, 노래를 발표해서 스타가 되기도 했어요. 이런 내용들을 기사화했는데, 그분과 가문의 이야기를 소설화하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소설은 조선 왕실의 비참한 상황을 이강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어머니의 죽음을 겪은 불우한 어린 시절, 방황하던 미국 유학 생활, 조선 총독 데라우치 암살 시도 후 가택연금 등이 그려진다. 그는 “이강은 주변 독립운동가들과 얘기하면서 목표가 생겼고 상하이 임시정부 망명 작전에 참여했다”며 “여러 약점에도 성장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1시간 10분가량 이어진 간담회 내내 한국어로 답했지만 한글 책을 읽는 데는 모국어인 영어보다 5배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자료 조사와 집필에 꼬박 5년이 걸린 이유다. 그는 취재 과정에서 이강의 자녀 중 한 명인 이해경 여사를 미국에서 인터뷰했다. 그는 “구한말 왕실에서 왕자나 공주는 김치의 하얀 부분만 먹을 수 있었는데 이 여사는 초록색 부분을 가장 맛있어 했다고 한다”며 “작품에서 왕자나 공주가 상궁들에게 ‘제발 초록색 김치 주세요’라고 말하는 대목은 그렇게 탄생했다”고 말했다. 한국 여성과 결혼해 생후 10개월 된 딸을 둔 그는 “아빠가 되고 나서 저출산 이슈에 관심이 생겼다”며 “차기작으로 한국의 저출산 문제에 대한 논픽션을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4-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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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국인의 눈으로 재구성한 조선의 마지막 날들

    “많은 분들이 제 책을 보고 김란사에 대해 더 알고 싶다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고종 아들 의친왕 이강(1877~1955)의 일생을 그린 장편소설 ‘마지막 왕국’(김영사)을 내놓은 영국인 작가 다니엘 튜더는 22일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모두가 유관순은 아는데 유관순에게 독립운동 정신을 가르쳐준 김란사는 모른다. 의친왕, 김란사 등 잊혀진 인물들에게 빛을 비추고 싶은 마음으로 썼다”며 이렇게 말했다. 김란사(1872~1919)는 독립운동가로 조선 최초의 여성 미국 유학생이다. 한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인물을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아는 외국인’으로 불리는 그가 신작 소설에 등장시킨 것.그는 전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으로, 한국 사회에 대한 비평 에세이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문학동네), ‘익숙한 절망 불평한 희망’(문학동네)을 펴냈다. 신간은 그의 첫 소설로, 영어로 쓴 뒤 한국어로 번역했다. 이르면 내년 영어판이 출간될 예정이다.그는 기자 시절 의친왕의 아들인 이석 황실문화재단 이사장을 인터뷰한 뒤 소설 집필을 결심했다고 한다. “이석 선생은 미국 불법체류 경험에 사업에 실패하고, 노래를 발표해서 스타가 되기도 했어요. 이런 내용들을 기사화했는데, 그분과 가문의 이야기를 소설화하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소설은 조선 왕실의 비참한 상황을 이강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어머니의 죽음을 겪은 불우한 어린 시절, 방황하던 미국 유학생활, 조선 총독 데라우치 암살시도 후 가택연금 등이 그려진다. 그는 “이강은 주변 독립운동가들과 얘기하면서 목표가 생겼고 상하이 임시정부 망명 작전에 참여했다”며 “여러 약점에도 성장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사람”이라고 말했다.그는 1시간 10분가량 이어진 간담회 내내 한국어로 답했지만, 한글 책을 읽는 데 모국어인 영어보다 5배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자료조사와 집필에 꼬박 5년이 걸린 이유다. 그는 취재 과정에서 이강의 자녀 중 한 명인 이해경 여사를 미국에서 인터뷰했다. 그는 “구한말 왕실에서 왕자나 공주는 김치의 하얀 부분만 먹을 수 있었는데 이해경 여사는 초록색 부분을 가장 맛있어 했다고 한다”며 “작품에서 왕자나 공주가 상궁들에게 ‘제발 초록색 김치 주세요’라고 말하는 대목은 그렇게 탄생했다”고 말했다.한국 여성과 결혼해 생후 10개월 된 딸을 둔 그는 “아빠가 되고 나서 저출산 이슈에 관심이 생겼다”며 “차기작으로 한국의 저출산 문제에 대한 논픽션을 준비 중”이라고 덧붙였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4-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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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년만에 장편 내놓은 김애란… “성취가 곧 성장은 아니라는 이야기”

    “전작 ‘두근두근 내 인생’의 다크 버전, 가족과 성장에 대한 다른 해석으로 신작을 이해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21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이중 하나는 거짓말’(문학동네)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소설가 김애란은 이같이 말했다. 신간은 ‘두근두근 내 인생’(창비) 이후 13년 만에 그가 내놓은 장편소설이다. ‘달려라 아비’ 등으로 문단과 대중으로부터 주목받는 작가인 만큼 신간은 13일 예약 판매가 시작된 직후 알라딘 주간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신작에는 고등학교 2학년인 세 아이(지우, 소리, 채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화목하고 풍족해 보이던 채운네 가족은 1년 전 ‘그 사건’으로 어머니는 교도소에 수감되고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한다. 세 아이의 시점을 오가며 진실이 밝혀지는 구성으로, 인물의 다면성을 김애란 특유의 간결하고 여운 있는 문장으로 그린다. ‘두근두근 내 인생’에 이어 다시 한번 청소년 이야기를 들고 온 이유를 묻는 질문에 그는 “같은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두 번, 세 번 쓰는 것을 좋아한다”며 “어떤 이야기를 하나 썼으면 시간이 지나 그것의 ‘다크 버전’을 쓴다”고 했다. 가령 단편 ‘칼자국’에서 모성의 건강함, 세 끼를 먹이는 일의 미덕에 대해 쓴 후 단편 ‘가리는 손’에선 세 끼를 먹이는 일의 끔찍함을 다루며 가족 중심주의를 뒤집어 보는 식이다. 그는 신작이 일반적인 의미의 성장과는 다른 시각을 담고 있다며 청소년보다 어른들이 읽어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신작에) 성취나 성공을 이루는 게 아니라 반대로 무언가를 하지 않으려는 친구들, 그만둔 아이들이 나온다. 재능이 구원이 되는 이야기는 되지 않았으면 싶었다”며 “무언가를 그만두는 과정에서 자기 이야기에 몰두하다 종래에는 타인의 이야기에 관심 갖게 되고 내 고통만큼 다른 이의 슬픔도 상처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더불어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첫 장편에서 익히 알고 있는 가족 이야기를 그렸다면 이번에는 피가 섞이지 않은 ‘유사 가족’, 사람 못지않게 친밀감을 주는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등장시켰다. 그는 “오랫동안 한국에서 이상화된 4인 가족, 다인 가족 모델은 무너진 지 오래”라며 “어려운 순간 힘이 돼준 반려동물, 나랑 피는 안 섞였지만 진심으로 걱정하고 도와주려고 하는 ‘어떤 아저씨’ 또한 이제는 가족의 이름으로 불려도 되지 않나 하는 생각으로 이야기를 써봤다”고 말했다. 올해로 23년차 작가가 된 그는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할까. 그는 이 대목에서 어린 시절 검은 개에 놀라 자신이 터뜨린 울음소리를 듣고 근처 칼국숫집 주방에서 일하던 어머니가 식칼을 들고 쫓아 나온 일화를 들려줬다. “나이가 들어 엄마에게 서운한 감정이 들 때 그때 칼을 들고 뛰어나온 엄마를 생각하면 덜 서운한 마음이 듭니다. 제가 나이를 먹으니까 아픈 부모를 간병하는 내용의 단편들을 종종 쓰고 있는데, 이젠 내가 부모 앞에서 검은 개를 쫓아내 줘야 하는 상황이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앞으로 쓸 소설은 그런 식으로 변화하지 않을까요.”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4-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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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년의 순수한 광채가 핵융합 발전으로… “책으로만 상상 가능한 게 소설이 할 일”

    김홍(38·사진)의 신작 소설집 ‘여기서 울지 마세요’(문학동네) 속 인물들은 변신의 귀재다. 야구공, 불상(佛像), 갤럭시폰 등 하나같이 인간이 아닌 것들로 몸을 바꾼다. 영상화를 하더라도 책을 읽으며 상상한 것들을 넘어서기는 어려울 듯하다. 16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김홍은 “영상으로 표현이 안 되는 상상을 보여주는 것, 그게 요즘 시대 소설이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작의 표제작 ‘여기서 울지 마세요’는 성격유형지표(MBTI) ESFP로 에너지가 넘치는 빵집 알바생 산해 씨가 빛이 되는 판타지다. 산해 씨는 밝게 일하는 만큼 급여를 인상해 주겠다는 빵집 주인의 말을 철석같이 믿는다. 그의 밝음은 조도를 측정하는 단위인 ‘럭스(lux)’로 수치화된다. 3000럭스로 시작한 그의 밝기가 2만5000럭스를 돌파하자 주인은 약속을 지키는 대신 그를 해고한다. 그런데 그의 엄청난 광원을 미국 핵융합 연구소가 탐낸다. 기상천외한 설정에 쿡쿡 웃다가도 돌연 씁쓸한 마음이 찾아온다. 항상 밝은 표정을 지어야 하는 감정노동의 무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모든 소설에 슬픔 한 스푼을 넣으려고 한다”는 작가의 말마따나 코미디로 위장한 소설 곳곳엔 현실에 대한 뼈아픈 풍자가 숨어 있다. 제목이 ‘여기서 울지 마세요’길래 등 두드려 주는 힐링물인 줄 알았는데, 반전이 있는 블랙코미디다. 이런 엉뚱한 발상은 어디서 나올까. 그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수시로 휴대전화 앱에 메모를 한다. 그리고 일견 상관없는 이야기들을 이어붙여 새로운 서사를 만든다. 그는 “별이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의미를 부여하면 사슴도 되고 곰도 되듯, 별을 최대한 많이 띄워놨다가 별자리로 만드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상상력의 끝은 어디일까. 급기야 소설에선 한국야구위원회(KBO)가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쳐서 한국에서 프로야구가 사라져 버렸다는 이야기로까지 나아간다. ‘어디까지 가나 보자’ 하고 읽게 만드는 힘이 있다. 차기작 역시 사물로 변해 버린 인간을 그린 이야기라고. “소설 안에서 허용되는 이야기의 최대 경계까지, 끝까지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4-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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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구공-불상-핸드폰으로 변신하는 인물들…쿡쿡 웃다가도 씁쓸한 마음이

    김홍(38)의 신작 소설집 ‘여기서 울지 마세요’(문학동네) 속 인물들은 변신의 귀재다. 야구공, 불상(佛像), 갤럭시폰 등 하나같이 인간이 아닌 것들로 몸을 바꾼다. 영상화를 하더라도 책을 읽으며 상상한 것들을 넘어서기는 어려울 듯하다. 16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김홍은 “영상으로 표현이 안 되는 상상을 보여주는 것, 그게 요즘 시대 소설이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신작의 표제작 ‘여기서 울지 마세요’는 성격유형지표(MBTI) ESFP로 에너지가 넘치는 빵집 알바생 산해 씨가 빛이 되는 판타지다. 산해 씨는 밝게 일하는 만큼 급여를 인상해주겠다는 빵집 주인의 말을 철석같이 믿는다. 그의 밝음은 조도를 측정하는 단위인 ‘럭스(lux)’로 수치화된다. 3000럭스로 시작한 그의 밝기가 2만5000럭스를 돌파하자 주인은 약속을 지키는 대신 그를 해고한다. 그런데 그의 엄청난 광원을 미국 핵융합 연구소가 탐낸다.기상천외한 설정에 쿡쿡 웃다가도 돌연 씁쓸한 마음이 찾아온다. 항상 밝은 표정을 지어야하는 감정노동의 무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 “모든 소설에 슬픔 한 스푼을 넣으려고 한다”는 작가의 말마따나 코미디로 위장한 소설 곳곳엔 현실에 대한 뼈아픈 풍자가 숨어있다. 제목이 ‘여기서 울지 마세요’길래 등 두드려주는 힐링물인 줄 알았는데, 반전이 있는 블랙코미디다.이런 엉뚱한 발상은 어디서 나올까. 그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수시로 휴대폰 앱에 메모를 한다. 그리고 일견 상관없는 이야기들을 이어붙여 새로운 서사를 만든다. 그는 “별이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의미를 부여하면 사슴도 되고 곰도 되듯, 별을 최대한 많이 띄워놨다가 별자리로 만드는 식”이라고 설명했다.그의 상상력의 끝은 어디일까. 급기야 소설에선 한국야구위원회(KBO)가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쳐서 한국에서 프로야구가 사라져버렸다는 이야기로까지 나아간다. ‘어디까지 가나 보자’ 하고 읽게 만드는 힘이 있다. 차기작 역시 사물로 변해버린 인간을 그린 이야기라고. “소설 안에서 허용되는 이야기의 최대 경계까지, 끝까지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4-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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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북극곰, 반달가슴곰, 안경곰… 다시 못 부를 수도

    극지방부터 온대지방까지 폭넓게 서식하는 곰은 여러 나라 신화들에 자주 등장하는 등 인간에게 친숙한 동물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개체군이 급감하는 등 멸종위기에 직면했다. 기후 변화와 서식지 소실로 전 세계 곰 개체군 대부분은 크게 줄고 있다. 현재 지구상에 남아 있는 곰은 8종에 불과한데, 과학자들은 이마저도 금세기 말을 넘기면 단 3종(대왕판다, 미국흑곰, 불곰)만 남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책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8종의 곰 이야기를 담은 과학서이자 탐사 보고서다. 로이터통신 세계기후 및 환경 분야 특파원인 저자는 지구 곳곳을 다니며 곰들의 서식지를 관찰하고 이들이 처한 환경을 탐사했다. 남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종을 찾아 안데스산맥에 오르고, 인도 아라발리 산맥에서 먹잇감을 먹고 있는 느림보곰도 만난다. 생생한 현장 탐사 기록과 함께 곰의 생태와 역사, 신화 이야기를 교차해 서술한다. 현존하는 곰 8종은 대왕판다(중국), 미국흑곰(미국), 북극곰(캐나다), 불곰(미국), 느림보곰(인도), 반달가슴곰(베트남), 안경곰(에콰도르, 페루), 태양곰(베트남)이다. 갯과 동물이 35종, 고양잇과 동물이 41종, 고래목이 90종, 영장류가 500종인 것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수다. 전 세계 서식 범위에 걸쳐 생존이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곰은 미국흑곰뿐이다. 개체 수가 90만 마리에 달해 다른 7종을 합친 것보다 많다. 저자가 야생에서 만난 곰들은 대체로 생존을 위해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었다. 우뚝 솟은 산과 연어가 뛰노는 세찬 개울 속 대신 캐나다 횡단 고속도로 옆 공사현장 근처에서 나무뿌리를 파내고 있었다. 인간은 곰을 경제적 수단으로 이용하기 위해 좁은 철장이나 우리에 가둬 생활하게 했다. 재갈을 물리려고 주둥이를 뚫거나 이빨을 뽑았고 덫에 걸린 곰의 발을 잘랐다. 배에 주사기를 수십 번 찔러 넣으며 웅담즙을 채취했다. 곰 8종은 생김새와 습성이 다양하지만 모두 저마다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안경곰과 미국흑곰은 배설물로 씨를 퍼뜨리는 숲의 정원사다. 미국 콜로라도주 로키산맥 국립공원에서는 곰의 똥 한 더미를 온실에 옮겨 심는 실험을 했는데 약 1200개의 묘목이 여기서 자라났다. 고기를 많이 먹는 곰은 사슴과 말코손바닥사슴의 개체 수를 균형 있게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곰의 서식지를 보전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먹이사슬에서 곰 하위에 있는 모든 종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저자는 곰 8종을 보존하는 일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인간 역시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곰이 생존할 수 없는 생태환경이라면 인간도 마찬가지라는 것. 곰이 안전하게 길을 건널 수 있도록 생태 육교를 설치하고, 서식지 내 인공 수원과 흰개미 둔덕을 조성하는 등 세계 각지에서 곰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에 대한 취재기도 눈길을 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4-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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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간 10년 지난 책들, 줄줄이 ‘베스트셀러 역주행’

    ‘꺼진 불도 다시 보자.’ 수년 전 출간됐지만 시대 흐름과 맞는 책들을 다시 펴내는 출판사들이 늘고 있다. 출간된 지 10년이 넘은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역주행’ 현상이 벌어지고 있어서다. MZ세대의 레트로 선호 등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14일 교보문고에 따르면 올 상반기(1∼6월) 소설 부문 상위 30권 중 출간된 지 10년이 넘은 책은 11권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상반기 6권, 2022년 상반기 4권에 비해 크게 늘어난 수치다. 올 상반기 기준 교보문고 소설 1위는 1998년 출간된 양귀자의 ‘모순’(사진)이다. 이 책은 2022년 25위, 지난해 7위에 이어 올 들어 1위로 급상승했다. 역주행 현상과 맞물려 절판된 도서를 재출간하는 움직임도 늘고 있다. 넥서스북은 ‘엔드리스’ 시리즈란 이름 아래 지난달 31일 김미진의 ‘모짜르트가 살아 있다면’(1995년), 한지수의 ‘나는, 자정에 결혼했다’(2006년), 정영문의 ‘겨우 존재하는 인간’(1997년)을 재출간했다. 민음사는 1990년 초판이 나온 박완서의 장편소설 ‘미망’을 9일 다시 펴냈다. 젊은층이 읽기 쉽게 한자어, 일본어 등을 우리말로 풀어 썼다. 박지영 창비 문학출판부 차장은 “판매량 등에서 어느 정도 검증된 작품들을 다시 선보이는 게 리스크가 적은 선택”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출판계는 올해 들어 ‘달러구트 꿈 백화점’(2020년)이나 ‘불편한 편의점’(2021년) 같은 신간 베스트셀러가 드문 데다 젊은층의 레트로 선호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온라인 서점 알라딘에 따르면 양귀자 ‘모순’의 20대 구매 비율이 38.5%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다. 한기호 출판평론가는 “현실과 몽상 사이를 저울질하다 현실을 택하는 내용(‘모순’) 등이 젊은 세대에도 유효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 영상화도 재출간으로 이어지고 있다. 창비는 올 하반기(7∼12월) 공개되는 공유, 서현진 주연 넷플릭스 드라마의 원작인 김려령의 ‘트렁크’(2015년) 개정판을 준비 중이다. 앞서 창비는 송중기 주연 넷플릭스 영화 ‘로기완’ 개봉을 맞아 조해진의 ‘로기완을 만났다’(2011년) 개정판을 올 2월 펴냈다. 하지만 올 하반기에는 이런 흐름이 변할 수도 있다. 기대작들이 줄줄이 나올 예정이기 때문. 이달 말 김애란 작가가 13년 만에 발표하는 신작 장편소설 ‘이중 하나는 거짓말’(문학동네)에 이어 김금희의 ‘대온실 수리 보고서’(창비), 황석영의 ‘할매’(창비), 정유정의 ‘영원한 천국’(은행나무) 등이 연내 출간을 앞두고 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4-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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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꺼진 불도 다시 보자? 10년前 책이 베스트셀러로 역주행…무슨 일?

    ‘꺼진 불도 다시 보자.’ 수년 전 출간됐지만 시대 흐름과 맞는 책들을 다시 펴내는 출판사들이 늘고 있다. 출간된 지 10년이 넘은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역주행’ 현상이 벌어지고 있어서다. MZ세대의 레트로 선호 등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14일 교보문고에 따르면 올 상반기(1~6월) 소설 부문 상위 30권 중 출간된 지 10년이 넘은 책은 11권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상반기 6권, 2022년 상반기 4권에 비해 크게 늘어난 수치다. 올 상반기 기준 교보문고 소설 1위는 1998년 출간된 양귀자의 ‘모순’이다. 이 책은 2022년 25위, 지난해 7위에 이어 올 들어 1위로 급상승했다. 역주행 현상과 맞물려 절판된 도서를 재출간하는 움직임도 늘고 있다. 넥서스북은 ‘엔드리스’ 시리즈란 이름 아래 지난달 31일 김미진의 ‘모짜르트가 살아 있다면’(1995년), 한지수의 ‘나는, 자정에 결혼했다’(2006년), 정영문의 ‘겨우 존재하는 인간’(1997년)을 재출간했다. 민음사는 1990년 초판이 나온 박완서의 장편소설 ‘미망’을 9일 다시 펴냈다. 젊은층이 읽기 쉽게 한자어, 일본어 등을 우리말로 풀어썼다. 박지영 창비 문학출판부 차장은 “판매량 등에서 어느 정도 검증된 작품들을 다시 선보이는 게 리스크가 적은 선택”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출판계는 올해 들어 ‘달러구트 꿈 백화점’(2020년)이나 ‘불편한 편의점’(2021년) 같은 신간 베스트셀러가 드문 데다 젊은 층의 레트로 선호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온라인 서점 알라딘에 따르면 양귀자 ‘모순’의 20대 구매 비율이 38.5%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민음사)’이나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민음사)’도 20대 구매 비율이 가장 높았다. 한기호 출판평론가는 “현실과 몽상 사이를 저울질하다 현실을 택하는 내용(‘모순’) 등이 젊은 세대에도 유효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 영상화도 재출간으로 이어지고 있다. 창비는 올 하반기(7~12월) 공개되는 공유, 서현진 주연 넷플릭스 드라마의 원작인 김려령의 ‘트렁크’(2015년) 개정판을 준비 중이다. 앞서 창비는 송중기 주연 넷플릭스 영화 ‘로기완’ 개봉을 맞아 조해진의 ‘로기완을 만났다’(2011년) 개정판을 올 2월 펴냈다. 하지만 올 하반기에는 이름 흐름이 변할 수도 있다. 기대작들이 줄줄이 나올 예정이기 때문. 이달 말 김애란 작가가 13년 만에 발표하는 신작 장편소설 ‘이중 하나는 거짓말’(문학동네)에 이어 김금희의 ‘대온실 수리 보고서’(창비), 황석영의 ‘할매’(창비), 정유정의 ‘영원한 천국’(은행나무) 등이 연내 출간을 앞두고 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4-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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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빈칸처럼, 자기계발서도 직접 채운다

    지난달 말 국내 출간된 자기계발서 ‘섀도 워크 저널’(푸른숲)은 언뜻 보면 메모장 같다. 전체 240쪽 중 불과 30쪽에만 글이 쓰여 있고, 나머지는 독자가 직접 채워야 하는 빈칸으로 돼 있다. 첫 장엔 ‘나 ○○은 오늘부터 개인적인 성장과 수용을 위해 노력하기로 맹세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서명란이 있다. 이어 ‘내게 나의 행복은 얼마나 중요한가?’ ‘나는 나를 아끼는 마음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는가?’ ‘어떨 때 화가 눈 녹듯 사라진다고 느끼는지 써보자’ 등의 질문에 대해 독자가 답을 쓰도록 돼 있다. 이는 스위스 정신분석학자 카를 융의 ‘그림자’ 개념에 따라 독자가 무의식을 기록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하도록 하기 위한 취지다. 이 책은 미국에서 2021년 출간 후 100만 부 이상 팔려 아마존 종합 순위 1위에 올랐다. 최근 독자가 스스로 빈칸을 채우는 독특한 자기계발서가 속속 출간되면서 관심을 끌고 있다. 베스트셀러 ‘거인의 노트’(다산북스)의 저자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가 최근 펴낸 ‘마인드 박스’(다산북스)도 독자들이 직접 채우는 문답지가 포함돼 있다. 나만의 인생관을 만드는 6단계 ‘생각 정리법’을 소개하면서 독자가 이를 실천할 수 있도록 유도한 것. 이 책은 출간 2주 후 온라인 서점 알라딘의 자기계발서 부문 2위에 올랐다. 문답지만 따로 빼서 만든 부록은 하루 만에 완판돼 추가 제작에 들어갔다. 배드민턴 선수 안세영, 프로게이머 페이커 등의 심리상담을 맡은 김미선 박사의 신간 ‘실패를 생각하지 않는 연습’(쌤앤파커스)엔 ‘실전 멘털 강화’ 기록지가 들어갔다. 뇌 구조를 묘사한 그림에 떠오르는 단어들을 적으며 내용을 익히도록 한 것. 문답형 자기계발서의 원조로 2015년 출간된 ‘5년 후 나에게 Q&A’(토네이도)는 최근 3년 동안 한정판 에디션이 완판됐다. 이 책은 매일 그날의 질문에 답을 하는 일기장 형식이다. 5년간 같은 질문에 각기 다른 5개의 답을 적을 수 있어 어떤 성장과 변화를 거쳐왔는지 한눈에 볼 수 있다. 출판계는 문답형 자기계발서가 느는 것은 체험형 콘텐츠를 선호하는 추세를 반영한 것으로 보고 있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요즘 독자들은 저자가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주입식보다 스스로 체험하고 효과를 깨우치는 걸 선호한다”며 “문장과 책의 구성이 독자 친화적으로 바뀌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김단비 다산북스 콘텐츠사업7팀장은 “자기계발서 애독자들은 직접 기록한 결과물을 통해 자신의 성장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4-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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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어소설이라 되레 자기검열 없이 마음 가는대로 썼죠”

    “드디어 아버지가 제 책을 읽을 수 있어서 기뻐요.” 노예, 탈출 전문가, 살인자, 테러리스트, 스파이….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전후를 카멜레온처럼 변신하며 헤쳐 온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첫 장편소설을 영국, 이탈리아 등 10여 개국에서 출간하며 주목받은 신인 작가 이미리내(41)를 7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영문으로 쓰인 데뷔작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위즈덤하우스)은 미국에서 억대 선인세를 받으며 계약되는 등 해외에서 먼저 반향을 일으켰고 최근 한국어로 번역 출간됐다. 그는 “아무런 배경 설명을 하지 않아도 이 책을 그대로 이해할 수 있는 한국 독자들에게 선보이는 것이라서 더 떨린다”고 말했다. 2021년 하퍼콜린스가 이 작가의 데뷔 소설을 2억 원에 사들인 것은 출판계 큰 이슈였다. 하퍼콜린스는 ‘앵무새 죽이기’, ‘모비딕’ 등 영미문학 고전을 다수 낸 출판사다. 아시아계 등 외국인 작가의 작품을 주로 내는 하위 브랜드가 아니라 본사 브랜드로 출간됐다. 이 씨는 서울에서 태어나 초중고교를 한국에서 마쳤다. 미국 한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후 가족과 홍콩에서 13년째 거주 중이다. 한국어로도 소설을 써 봤지만 잘 안 됐단다. 이 씨는 “영어가 공용어인 곳에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어로 소설을 쓰게 됐다”며 “모국어가 아니어서 오히려 자기 검열 없이 쓰고 싶은 대로 쓸 수 있었다”고 했다. 경기 파주에서 대인 지뢰로 한쪽 다리를 잃은 친할아버지, 탈북자였던 이모할머니 등 실존 인물에서 영감을 얻었다. 20대 초반까지 한국에서 자란 토종 한국인이 영어로 쓴 소설의 장점은 작품 곳곳에서 드러난다. 동서양의 정서를 넘나들며 자유자재의 문장을 구사한다. 민들레 홀씨를 ‘묽게 쑨 흰쌀죽을 토해놓은 것 같다’고 표현하는가 하면 지뢰가 터지는 순간은 ‘네온빛 페이즐리 문양이 시야를 채웠다’고 썼다. 이 작가는 “어느 카테고리에도 들어가지 않는 특이한 작가들이 많이 나오는 게 (다양성 면에서) 좋은 신호인 것 같다”고 말했다. ‘판문점’, ‘비무장지대’ 등 외국인에게 낯선 지명과 용어가 많지만 한국 문학에 대한 해외의 관심이 높아져 출간에 장벽이 되지 않았다. 이 씨는 “한국 역사를 잘 모르는 서양 에디터들도 이전에 맡은 한국 작품이 인기를 끌어서인지 한국 작가들에게 열려 있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 영국에서는 김언수 작가의 ‘설계자들’ 출간을 담당했던 에디터가 이 씨의 책을 맡았다. 최근 미국 유명 에이전시와 영상화 가능성도 검토 중인 그는 “책을 쓰던 중 ‘한공주’를 봤다”며 “아직은 혼자만의 상상이지만 주인공 역할에 천우희 배우가 어울릴 것 같다”며 웃었다. 발표와 동시에 지명도를 얻게 된 이 작품은 마흔을 넘긴 그의 데뷔작이자 첫 장편이다. 그는 “아주 천천히, 조용히 발전하는 예술가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4-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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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이 책]눈 떠보니 이곳은 수성… 태양계 끝까지 떠난 여행

    눈을 뜨니 수성에 있다. 나는 갓난아이의 모습이다. 뜨거운 해가 떠오르고 진다. 나는 자란다. 금성을 지나 지구에 다다르자 소년이 되었다. 한 소녀를 만난다. 달빛 아래.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 같다. 겨울, 그녀가 떠났다. 나도 떠난다. 타오르는 듯한 화성, 태풍이 부는 광활한 목성, 그리고 신비한 고리가 있는 토성. 어느덧 중년이 넘은 나의 여정은 태양계 끝 행성들로 이어진다. 태양과 멀어질수록 더 춥고 혹독하다. 별이 태어나고 지듯, 나도 져가는 것일까. 이것은 마지막일까. 아니면 새로운 시작일까. 태양계를 돌아다닌 어떤 존재의 일생을 그린 책. 끓어오르는, 때론 얼어붙은 행성들을 표현한 감각적인 그림들이 상상력을 자극한다. 별의 일생과 인간의 일생이 놀랍도록 닮았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만든다. ‘이 책은 외계의 한 존재가 태양계 행성들의 표면에 불가사의한 방식으로 새겨 넣은 기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기묘한 설정이 몰입감을 배가시킨다. 마지막 여운도 짙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4-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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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스마트폰 끼고 사는 아이들… 불안-무기력 함께 자란다

    스마트폰에 혼을 뺏긴 듯 눈도 깜빡이지 않는 아이를 둔 부모라면 눈여겨볼 책이다. ‘디지털 세계는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병들게 하는가’라는 부제를 단 신간은 디지털 기기가 1996년 이후 태어난 Z세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파헤친다. 미국 퓨연구센터가 2022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10대의 46%는 ‘거의 항상’ 온라인에 접속해 있다고 응답했다. Z세대 중 연령이 가장 높은 층은 2009년 무렵부터 사춘기가 시작됐는데, 이때는 마침 정보기술(IT)의 생활화가 본격화된 때다. 2007년 아이폰이 출시된 데 이어 2010년 스마트폰에 전면 카메라 기능이 추가됐다. 2012년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을 인수한 이후 개인 계정에 자신의 사진을 게시하는 이들이 크게 늘었다. 흥미진진하고 중독성이 강한 ‘알라딘의 램프’를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면서 사춘기를 보낸 역사상 첫 세대가 된 것. 미국 사회심리학자인 저자는 Z세대가 처한 새로운 성장 방식을 ‘아동기 대재편(Great rewiring of childhood)’이라고 일컫는다. 놀이 등 소규모 공동체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라온 기성세대와 달리 IT 기기가 그 역할을 대신했다는 것. 동물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놀이는 어린 포유류의 뇌 회로를 연결하고 완성하는 작업으로, 어른이 돼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술을 배울 수 있는 핵심 수단이다. 이런 기능을 수행하는 놀이를 잃으면 사회적, 인지적, 정서적 손상이 불가피하다. 실제로 성장 과정에서 놀이 대신 IT 기기를 택한 Z세대는 지나치게 예민하고, 만성적으로 불안하며, 무기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불안세대’가 됐다. 청소년 우울증이나 자해, 자살, 온라인 성착취, 사이버 집단 따돌림 등도 늘고 있다. 영국에서 2000년에 태어난 아동 1만9000명을 추적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평일에 소셜미디어에 5시간 이상을 쓴다고 답한 여자아이는 소셜미디어에 시간을 전혀 쓰지 않는다고 답한 여자아이보다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3배나 높았다. 저자는 아동기 대재편을 초래한 원인이 IT뿐 아니라 자녀에 대한 과잉보호에도 있다고 말한다. 특히 미국, 영국, 캐나다에서 어린이를 부모 감시 없이 밖에 돌아다니게 하면 범죄자의 표적이 되기 쉽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아이들을 밖으로 내보내 놀게 하는 대신 스마트폰을 쥐여준 부모의 선택이 ‘불안세대’를 부추겼다는 얘기다. IT 기기로 촉발된 아이들의 정신 불안을 막으려면 가정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고 정부, 회사, 학교, 부모가 함께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교 이전 스마트폰 사용 금지 △16세 이전 소셜미디어 사용 금지 △학교에서 휴대전화 사용 금지 △어른의 감독을 받지 않는 놀이와 독립적 행동 확대라는 네 가지 핵심 지침을 제시한다. 현실적으로 이런 것들을 모두 실천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IT 기기 사용 시간을 확 줄이는 ‘담대한 결정’이 필요한 때인 것만은 분명하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4-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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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장인물 집 평면도까지 그려 놓고 집필… 캐릭터 개성 살려”

    《영화나 소설을 볼 때 내 마음에 든 신인이 활동하는 걸 보면서 마음속 응원을 보낸 적이 있나요? 문화예술계의 미래는 작가, 미술가, 연출가, 배우 등 다양한 분야의 젊은 예술가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달려 있을 겁니다. 한국 문화계를 이끌 MZ세대 크리에이터들을 조명합니다.》“제 안에 아저씨가 좀 있는 것 같아요.” 2일 동아일보와 만난 성해나 작가(30)는 “제 소설을 읽은 분들이 ‘당신은 아저씨나 할머니를 참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며 씩 웃었다. 50대 베이비부머 남자 교사부터 문신으로 상처를 덮는 위안부 할머니, 유튜브 영상을 편집하는 시골 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 속 인물들에는 장년이나 노년층이 적지 않다. 그는 “할머니 손에 자라서 그런지 어른들한테 좀 더 애틋한 시선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온라인 서점 예스24가 최근 선정한 ‘한국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1위에 올랐다. 앞서 201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오즈’로 등단할 당시 ‘정형화된 인물을 탈피해 개성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낸다’(구효서·은희경 소설가)는 호평을 받았다. 번아웃이 온 30년 경력의 스타 무당 등 작품마다 다양한 나이와 직업의 인물들이 등장해 독자들의 눈길을 끈다. 그는 “다른 몸이 돼 보는 것, 그런 전이의 체험이 정말 재밌다”고 했다. 같은 2030세대 여성 작가들이 주목하지 않는 인물을 등장시키는 건 ‘세대 간 이해’라는 주제의식의 영향이 크다. 왼팔을 잃은 아버지와 왼다리를 잃은 아들이 함께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하근찬의 ‘수난이대’와 같은 이야기에 어릴 적부터 마음이 끌렸다고. 그는 “한 인간을 보려 하지 않고 세대, 젠더 식으로 묶어버리니까 갈라치기나 갈등, 혐오가 더 심해지는 것 같다”며 “제 소설 안에서라도 서로 불신이 쌓이지 않게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개성이 넘치는 다양한 캐릭터들은 어떻게 세상에 나올까. 그는 단편소설 한 편을 쓸 때 구상과 취재에만 두 달을, 집필에 한 달을 쓴다고 한다. 등장인물의 리얼리티를 높이기 위해 그가 사는 건물의 평면도까지 그려 놓고 글을 쓴다. ‘구의 집’ 작업 당시 그린 주인공 집 평면도에는 화장실과 출입구 위치 등이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 빼곡히 표시돼 있었다. ‘벽면 마감: 고급 흡음 벽지, 유공 합판 위에 비닐페인트로 칠함’ 같은 깨알 메모는 건축가의 도면을 방불케 했다. 젊은 작가답게 몸으로 부닥치는 ‘체험형 취재’에도 종종 나선다. 청년들이 농촌 어른들에게 유튜브 편집을 가르치는 내용의 단편소설 ‘당춘’을 쓸 땐 충남 홍성군 홍동면의 농장을 찾아가 감자를 캐고 보리를 밟았다. 당시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때라 농촌 분위기가 울적할 거라고 지레짐작했는데, 농작물의 인터넷 판매가 늘면서 실제는 반대였다. 그 덕분에 처음 구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작품을 쓰게 됐다. 그는 “역시 뭐든 직접 겪어봐야 안다”며 “현장 르포는 디테일하게 쓰려고 가는 면도 있지만 제 편견을 바꾸러 가는 것이기도 하다”고 했다. 신인 작가들이 대개 그렇듯 등단 직후 그도 힘든 시기를 보냈다. 3년 반 동안 원고 청탁이 한두 건에 불과해도 ‘뭐라도 쓰자’는 각오로 매일 일정한 분량의 글을 썼다. 낮에는 공공기관 아르바이트, 글쓰기 강의 등의 부업을 하면서 주로 밤에 글을 썼다. 이 시기 독자들의 응원이 큰 힘이 됐다고. 그의 휴대전화에는 ‘나를 살게 해주는 것’이라는 제목의 폴더가 있다. 캡처한 독자 리뷰를 폴더에 보관해 놓고 두고 두고 꺼내 읽는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 유튜브 등 영상 콘텐츠가 범람하고, 책 읽는 이가 줄어드는 시대에도 그는 “글의 힘을 믿는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번 생에선 글을 쓰며 살게 될 것 같습니다. 쓰다 보면 힘들 때도 있겠지만 초연하게 해나가려고요.”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4-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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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화성 개척 꿈꾸는 인류 야심, 공상과학에 그칠 것”

    유감이다. 지구 바깥에 제2의 정착지를 만들겠다는 인류의 야심 찬 시나리오는 현실 가능성이 없다는 게 책의 주된 내용이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물리적 한계를 피할 순 없다는 것. 스페이스X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가 흔드는 화성행 탑승권이 잘해야 ‘편도’ 탑승권이라는 얘기가 실망스럽긴 하지만 한번쯤 이런 의견도 눈여겨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적어도 지구라는 요람을 돌아볼 기회는 될 테니 말이다. 이탈리아의 천체물리학자로 로마 토르 베르가타대 물리학과 교수인 저자는 우주 식민지 건설이라는 오랜 꿈과 이로 인해 직면할 현실적인 한계를 과학적인 관점에서 들여다봤다.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는 게 가능한지, 기술적·생물학적·윤리적 문제는 없는지, 더 나아가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지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지난해 과학 출판물에 주는 이탈리아 최고 권위 상인 갈릴레오상 대상에 선정된 책이다. 스페이스X 등 민간 우주기업들은 이번 세기 안에 화성에 도시를 세울 수 있다고 공언한다. 머스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화성에 인구 100만 명 규모의 자급자족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승객 1명당 화성 여행 비용을 20만 달러(약 2억7000만 원)로 낮추기 위해 기술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스페이스X의 스타십 프로젝트에는 사람을 화성으로 보내는 방법만 있을 뿐, 장기간의 우주비행에 따른 방사선 노출이나 무중력 상태를 해결할 실질적인 안전장치가 빠져 있다. 숱한 어려움을 뚫고 화성에 도착했다고 하더라도 그 다음이 문제다. 화성의 극지 얼음을 녹이려면 수천 개의 고출력 핵탄두를 며칠에 걸쳐 폭발시켜야 하는데, 이때 오늘날 전 세계에 비축된 것보다 더 많은 핵무기가 필요하다. 폭발로 인해 방출된 막대한 양의 핵 먼지가 태양 빛을 가려 화성을 지금보다 더 냉각시킬 수도 있다. 결국 화성 기후를 지구처럼 만들겠다는 ‘테라포밍(Terraforming)’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만약 화성을 테라포밍할 기술이 있다면 지구 온난화를 먼저 해결하는 게 훨씬 쉽지 않겠느냐”는 저자의 지적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이유다. 그렇다고 저자가 우주 탐사 전체를 회의적으로 보는 건 아니다. 꾸준한 관심과 투자는 이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다만 몇몇 사업가가 우주 진출에 대한 사람들의 낭만적인 꿈을 이용해 경제적 이윤 추구에 몰두하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처럼 포장하는 것은 우주 탐사에 장기적으로 독이 된다는 것. 그러면서 한때 전 세계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달 탐사에 매달렸다가 1972년 이후로는 아무도 달을 방문하지 않고 우주 개발 역시 기약 없이 중단된 역사를 되짚는다. 무엇보다 저자의 주장은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푸른 지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1968년 달 표면 촬영 임무를 띠고 우주로 갔다가 인류 최초로 지구 밖에서 지구 사진을 찍은 아폴로 8호 우주인들의 말에는 울림이 있다. “곧, 달은 지루해졌다. 마치 더러운 모래밭 같았다. 그러다 불현듯 지구를 봤다. 그곳은 우주에서 유일하게 색이 있는 곳이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4-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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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이 책]찾았다, 울 엄마 일기장… 추억여행 같이 떠날까?

    “엄마, 엄마는 여름 방학 때 뭐 했어?” “글쎄, 엄마는 뭐 했나 찾아볼까.”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집에서 보내던 아이의 여름 방학. 엄마의 어릴 적 일기장을 찾았다. 1995년 8월 일기를 열어 보자 엄마는 추억 여행을, 아이는 엄마가 어릴 때로 같이 들어간 듯하다. 엄마와 이모가 단둘이 찾아간 외갓집에서 보낸 사흘. 사촌들과 다락방을 아지트 삼아 놀고, 저녁을 먹은 뒤 담력 훈련을 한다고 텅 빈 초등학교를 찾는다. 별것도 없는 그곳이 왜 그렇게 무서웠는지. 큰 모기장 안에서 자는 손주 네 명을 할아버지, 할머니는 지극하게 살피신다. 할머니는 손주를 씻기며 말씀하신다. “이제 쑥쑥 커서 중학생 되고 고등학생 되고 대학생 되고 어른 되면 할머니가 이렇게 씻겨 준 거 다 잊어버리겠지?” 잊고 살았던 ‘나의 여름 방학’을 아련하게 떠올리게 만드는 책. 아이들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옛 방학 모습을 신기해할 것 같다. 수채화로 그린 정겨운 그림들은 우리를 그때, 그 시절로 되돌아가게 만든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4-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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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끔은 달아나는 것도 필요하다’ 문구 표절 논란

    “인생의 난제가 풀리지 않을 때면 달아나는 것도 한 방법이죠.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일 겁니다.”(뉴스레터 서비스 ‘롱블랙’의 7월 22일 레터 중) “풀리지 않는 삶의 난제들과 맞서기도 해야겠지만, 가끔은 달아나는 것도 필요하다.”(김영하 작가가 2019년 출간한 ‘여행의 이유’ 중) 김영하 작가(사진)가 본인이 쓴 책의 문구와 롱블랙의 최근 레터 문구의 유사성 문제를 제기하자 롱블랙 측이 “명예훼손”이라고 반박하며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김 작가는 지난달 31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롱블랙의 문구를) 보는 순간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어떤 책의, 가장 많이 인용되는 구절이 바로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롱블랙 측에 문의를 하니 우연이라고 합니다. 전혀 잘못이 없어 사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답해왔습니다”고 적었다. 논란이 일자 롱블랙 측은 같은 날 SNS에 “(해당)소개글을 작성한 콘텐츠팀 리드와 에디터는 모두 해당 책을 읽지 않았다”면서 “글을 작성한 에디터와 리드가 정말로 ‘여행의 이유’를 읽고, 소개글에 작가님의 글을 활용하고자 했다면 출처를 밝히고 인용했을 것”이라고 했다. 온라인에서는 무단 도용 가능성을 지적하는 의견도 있는 반면 문구에 사용된 단어들이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쓰이는 만큼 표절 가능성이 낮다는 시각도 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4-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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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로 가는 K문학, 부커상 영광 잡으려면 번역 더 지원해야”

    “부커상의 파급력을 알기에 더 신중하게 심사에 임할 겁니다.” 최근 세계적 권위의 문학상인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심사위원으로 지명된 안톤 허(허정범·43) 번역가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는 2022년 정보라의 ‘저주토끼’,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에 올린 실력 있는 번역가다. 한국인으로 부커상 심사위원을 맡은 건 그가 처음이다. 그는 어렸을 때 부친을 따라 9년간 미국 등 해외에서 살면서 영어와 친숙해졌다고 한다. 26일 그를 만나 부커상 심사 과정과 한국 문학의 경쟁력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시상식은 내년 5월 20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다. 이보다 앞서 내년 2월 25일 1차 후보작(12, 13권), 4월 8일 최종 후보작(6권)이 각각 발표된다. 후보작 접수는 이미 이달 10일 시작됐다. 작가의 국적과 상관없이 영어로 번역돼 영국 및 아일랜드에서 출판된 작품이 대상이다. 노벨 문학상,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부커상의 인터내셔널 부문에는 지금까지 페르시아어, 베트남어, 아르메니아어 등 63개 언어로 원작이 쓰인 작품들이 심사 대상이 됐다. 부커상이 ‘문학계 올림픽’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후보작 접수가 시작되자 심사위원들에 대해 함구령이 내려졌다. 내년도 후보작이 되는 올 5월 1일부터 내년 4월 30일 사이에 출간되는 번역서에 대해 어떤 논평도 할 수 없는 것.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언급하는 것도 금지이고, 추천사도 쓸 수 없다. 허 번역가는 “지금도 추천사 제안 메일이 계속 들어오는데 ‘죄송하지만 할 수가 없다’고 답장하는 게 일”이라며 웃었다. 이번 심사위원단은 그를 비롯해 소설가, 시인, 편집자, 작곡가 겸 가수 등 총 5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매달 20∼30권씩 같은 책을 읽고 토론한 뒤 합의제로 후보작을 정한다. 지난번 수상작을 정했던 심사위원단은 모두 149권을 읽었는데, 매년 대상 작품 수가 늘고 있다고 한다. 허 번역가는 2021년 전미번역상 심사위원으로 활동할 당시 250권의 출품작을 읽었다. 책이 좋아서 한다지만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보수를 묻자 그는 “적당히 주는 수준”이라며 말을 아꼈다. 최근 몇 년 새 부커상과 한국 문학은 ‘궁합’이 좋다. 2016년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수상한 이후 2018년 한강의 또 다른 소설 ‘흰’, 2022년 정보라의 소설집 ‘저주토끼’, 2023년 천명관의 장편 ‘고래’, 그리고 올해 황석영의 장편 ‘철도원 삼대’가 최종 후보에 올랐다. 그는 이런 한국 문학의 부상에는 번역 스타일의 변화가 큰 몫을 차지했다고 설명했다. 영국인 데버라 스미스의 ‘채식주의자’ 번역을 계기로 영미 독자들에게 읽히는 ‘의역’이 본격화됐다는 것. 이전에는 영문학자들 위주로 딱딱한 직역이 이뤄져 영미 등 시장에서 외면을 받았다는 얘기다. 부커상 후보에만 올라도 판매량이 크게 늘어 외신에선 ‘부커 바운스(Booker bounce)’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2007년 출간 후 10년간 국내에서 2만 부가 팔렸는데, 2016년 부커상 수상 직후 2주 만에 50만 부 넘게 판매됐다. 현재 ‘채식주의자’는 타밀어, 네팔어, 우르두어 등 40개 언어로 번역 출간됐다. 허 번역가는 더 많은 한국 작품이 해외에서 주목받기 위해선 번역에 대한 지원 확대가 중요하다고 했다. 영문으로 번역되는 한국 작품이 1년에 10∼20권에 불과하다는 것. 그는 “한국 문학 작품을 해외에서 팔려면 번역가가 그 작품을 더욱 돋보이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커상영국에서 출판된 영어 소설을 대상으로 매해 최고 소설을 가려내는 문학상이다. 노벨 문학상,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힌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4-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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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 한국인 부커상 심사위원 안톤 허… 그가 말하는 부커상과 한국문학, ‘궁합’ 좋아진 이유

    “부커상의 파급력을 알기에 더 신중하게 심사에 임할 겁니다.” 최근 세계적 권위의 문학상인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심사위원으로 지명된 안톤 허(허정범·43) 번역가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는 2022년 정보라의 ‘저주토끼’(정보라),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에 올린 실력파 번역가다. 한국인으로 부커상 심사위원을 맡은 건 그가 처음. 그는 어렸을 때 부친을 따라 9년간 미국 등 해외에서 살면서 영어와 친숙해졌다고 한다. 26일 그를 만나 부커상 심사 과정과 한국문학의 경쟁력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시상식은 내년 5월 20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다. 이보다 앞서 내년 2월 25일 1차 후보작(12~13권), 4월 8일 최종 후보작(6권)이 각각 발표된다. 후보작 접수는 이미 지난 10일 시작됐다. 작가의 국적과 상관없이 영어로 번역돼 영국 및 아일랜드에서 출판된 작품이 대상이다. 노벨문학상,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부커상의 인터내셔널 부문에는 지금까지 페르시아어, 베트남어, 아르메니아어 등 63개 국어로 원작이 쓰인 작품들이 심사 대상이 됐다. 부커상이 ‘문화계 올림픽’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후보작 접수가 시작되자 심사위원들에 대해 함구령이 내려졌다. 내년도 후보작이 되는 올 5월 1일부터 내년 4월 30일 사이에 출간된 번역서에 대해 어떤 논평도 할 수 없는 것.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언급하는 것도 금지이고, 추천사도 쓸 수 없다. 허 번역가는 “지금도 추천사 제안 메일이 계속 들어오는데 ‘죄송하지만 할 수가 없다’고 답장하는 게 일”이라며 웃었다. 이번 심사위원단은 그를 비롯해 소설가, 시인, 편집자, 작곡가 등 총 5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매달 20~30권씩 같은 책을 읽고 토론한 뒤 합의제로 후보작을 정한다. 지난번 수상작을 정했던 심사위원단은 모두 149권을 읽었는데, 매년 대상 작품 수가 늘고 있다고 한다. 허 번역가는 2021년 전미번역상 심사위원으로 활동할 당시 250권의 출품작을 읽었다. 책이 좋아서 한다지만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보수를 묻자 그는 “적당히 주는 수준”이라며 말을 아꼈다. 최근 몇 년 새 부커상과 한국 문학은 ‘궁합’이 좋다. 2016년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수상한 이후 2018년 한강의 또 다른 소설 ‘흰’, 2022년 정보라의 소설집 ‘저주토끼’, 2023년 천명관의 장편 ‘고래’, 그리고 올해 황석영의 장편 ‘철도원 삼대’가 최종 후보에 올랐다. 그는 이런 한국 문학의 부상에는 번역 스타일의 변화가 큰 몫을 차지했다고 설명했다. 영국인 데버라 스미스의 ‘채식주의자’ 번역을 계기로 영미 독자들에게 읽히는 ‘의역’이 본격화됐다는 것. 이전에는 영문학자들 위주로 딱딱한 직역이 이뤄져 영미 등 시장에서 외면을 받았다는 얘기다. 그는 “한국 문학이 갑자기 대단해진 게 아니다. 한국 문학은 항상 대단했다. 다만 어떻게 번역해야 영미권에서도 통할지 이제 스타일이 각인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부커상 후보에만 올라도 판매량이 크게 늘어 외신에선 ‘부커 바운스(Booker bounce)’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2007년 출간 후 10년간 국내에서 2만 부가 팔렸는데, 2016년 부커상 수상 직후 2주 만에 50만 부 넘게 판매됐다. 현재 ‘채식주의자’는 타밀어, 네팔어, 우르두어 등 40개 언어로 번역 출간됐다.허 번역가는 더 많은 한국 작품이 해외에서 주목받기 위해선 번역에 대한 지원 확대가 중요하다고 했다. 영문으로 번역되는 한국 작품이 1년에 10~20권에 불과하다는 것. 2021년 전미번역상 심사위원 당시 읽은 250권의 번역서 중 한국 작품은 5권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는 “한국 문학 작품을 해외에서 팔려면 번역가가 그 작품을 더욱 돋보이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허 번역가는 황석영의 ‘수인’, 강경애의 ‘지하촌’, 백세희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방탄소년단(BTS) 회고록 ‘비욘드 더 스토리’ 등을 영어로 번역했다. 직접 쓴 영문 소설 ‘투워드 이터니티’(Toward Eternity)는 미국에서 지난 9일 출간됐다. 그는 BTS의 리더 RM(본명 김남준)을 언급하며 “RM 씨를 한번 만나게 된다면 큰절하고 싶다. RM이 추천한 책은 해외에 있는 독자들도 일단 한 번 더 본다. 한국 문학을 위해 가장 큰 공을 세운 분이 아닐까 싶다”며 치켜세웠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4-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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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곡의 재발견’… 낭독회 열고 오디오북-웹소설로

    “그만해!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왜 왔어? 왜 왔냐고! 여기서 다 잘살고 있는데, 도대체 왜 와서 다 망가트리는데?” 이달 중순 찾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한 희곡 전문서점 ‘인스크립트’. 저녁 시간 희곡 낭독회가 한창이었다. 물론 전문 연기자들은 아니다. 그냥 ‘희곡이 좋아서’ 일반인들이 역할을 나눠, 대본 들고 낭독에 몰두하고 있는 것. 이날 낭독 작품은 황정은 작가의 SF 희곡 ‘노스체’. 지난해 연극 ‘노스체’에서 ‘현’ 역을 맡았던 배우 윤정로가 참석해 중간중간 ‘낭독 지도’를 했다. “대본 읽을 때 서로 눈을 쳐다봐 주세요. 희곡은 상대가 있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소개 땐 수줍어하던 참가자도 낭독이 무르익자 몰입도가 높아졌다. 본인도 모르게 판소리처럼 손짓을 추가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날은 20∼40대 8명이 참가했는데, 2시간 동안 160쪽짜리 대본 한 권의 리딩을 마쳤다. 황선영 씨(46)는 “다양한 목소리로 들으니 희곡이 훨씬 입체적으로 읽힌다”고 했다. 희곡은 눈으로 읽을 때보다 말로 읽을 때, 더 나아가 여러 사람이 역할을 나눠 읽으면 재미가 배가 된다. 읽는 사람에 따라 전혀 색다른 매력이 분출되기도 한다. 이렇기에 최근 ‘희곡 낭독회’도 열리고 있는 것이다. 희곡에 대한 관심은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의 출시로 이어지기도 한다. 알라딘의 콘텐츠 창작 플랫폼 ‘투비컨티뉴드’는 안톤 체호프의 4대 희곡 중 세 작품인 ‘벚꽃동산’ ‘갈매기’ ‘바냐 아저씨’를 지난달부터 무료 연재 중이다. 웹소설 형식을 빌려온 게 특징. 올해 타계 120주년을 맞은 체호프가 웹소설 작가로 환생해 매일 1막씩 푸는 설정이다. 이름이 길고 복잡한 러시아 희곡 특성상 등장 인물마다 글자색을 달리해 가독성도 높였다. 셰익스피어 작품은 오디오북을 통해 ‘듣는’ 희곡으로 재탄생했다. 대사로 전개되는 희곡은 특히 오디오북과 상성이 좋다. 파가니니 음원 등을 삽입해 실제 연극을 감상하는 듯한 몰입감을 주는 것도 특징이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4-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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