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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집권하면 (대통령 배우자를 보좌하는) 청와대 제2부속실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 직원의 30%를 줄이고 수석비서관을 없애겠다며 청와대 개혁 방안도 밝혔다. 윤 후보는 21일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대통령 부인은 그냥 대통령의 가족에 불과하다. 대통령 부인에 대해 법 바깥의 지위를 관행화시키는 것은 맞지 않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외교 등에서 상대국 정상을 부부동반으로 만날 경우 국제 프로토콜(외교 의전)에 맞게 해야 할 일은 청와대 비서실에서 지원해주면 되고 가족들 경호도 (경호실이) 하는 것이니 제2부속실이 필요 없다”는 것. 그는 “(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2018년 11월) 인도에 공군2호기를 타고 갔을 때 우리 국민들이 쇼크를 받았다. 그런 일이 있으면 안 된다”고도 했다. 집권 시 부인 김건희 씨의 역할을 묻자 “영부인이라는 말을 쓰지 맙시다. 무슨 영부인”이라고 잘라 말했다. 또 윤 후보는 “(청와대 직원이) 450∼500명 되는데 일단 30% 감축하는 것이 목표”라며 “수석(비서관)을 없애 청와대를 기구 중심이 아니라 일 중심, 어젠다 중심으로 바꾸겠다”고 말했다. 윤 후보가 청와대 개혁의 구체적 목표를 제시한 건 처음이다.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 할 어젠다에 대해서만 정책실에 정책을 추진할 참모를 두고 그 외 정책은 비서실 참모들이 대통령과 장관 간 소통을 연결, 보좌하도록 하겠다”는 것이 윤 후보의 구상이다. 윤 후보는 집권하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자영업자들에게 1인당 최대 5000만 원까지 현금으로 직접 손실보상을 해주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와 관련해 윤 후보는 코로나19 방역과 손실보상, 이를 위한 재정지출 구조조정 등을 위해 정부를 부처 간 빅데이터가 융합된 ‘디지털 원(One) 플랫폼’으로 통합하겠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그는 “코로나19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 구제에 50조 원을 투입하기 위해 지출 구조조정을 하려 해도 정부가 디지털 플랫폼화돼야만 어떻게 돈이 나가는지 확실하게 볼 수 있다”며 “피해 정도를 등급화하고 보상 액수를 배분하기 위해, 정치방역이 아니라 데이터에 근거한 과학방역을 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했다. 집권 시 장관 등 내각 인사에 대해서는 “(민주당 출신) 그런 것을 가릴 생각 없다”며 “자유민주주의 사고와 헌법 가치만 정확하게 받아들이면 (민주당 출신이라도) 상관없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상임선대위원장인 이준석 당 대표가 조수진 선대위 공보단장과 정면충돌하는 등 선대위가 내홍에 빠져든 것에 대해 윤 후보는 “저게 저럴 일인가 싶다. 몇 달 지나고 (대선이 끝나고) 나면 없어질 조직인데 무슨 파워게임이 있을 수 있느냐”며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이 대표는 이날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내에서의 모든 직책을 내려놓겠다”고 선언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DJP연합으로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됐다. 이번에도 충청과 영남이 연합했다. 선거는 이긴 것이나 다름없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인사는 최근 당내에서 “이런 얘기까지 들린다. 걱정이 된다”고 했다. 호남의 김대중, 충청의 김종필은 1997년 대선을 앞두고 후보 단일화를 했다. 김대중 후보는 충청권 표를 흡수하며 여당 후보인 이회창을 누르고 정권을 교체했다. “이번 대선엔 충청(윤석열)과 영남이 함께한 것이니 선거 결과는 이미 뻔하다는 말이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대선 승리를 당연시하니 너도나도 당 선거대책위원회에 어떤 식으로든 들어가려 한다고 한다. 선대위에서 한자리를 해야 집권 뒤 청와대든 정부 어느 부처든 공공기관이든 ‘일자리’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러니 “내가 아니면 안 된다” “누굴 챙겨줘야 한다”며 선대위에서 자리다툼이 일어난다. 일부 의원은 “지방에 내려가 지역 민심을 훑어 달라”는 윤석열 후보의 요청에 손사래를 쳤다는 얘기도 들린다. 당은 움직이지 않고, 의원들은 벌써 대선 이후 당권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말도 흘러나온다. 당권을 잡는 데에만 관심이 있지 당권을 잡아 당을 어떻게 발전시킬지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고 한다. 중진 인사는 “윤 후보에게 노란불이 켜졌다”고 말했다. 윤 후보는 기성 정치의 주류가 아니다. 그의 등장은 ‘여의도 정치’에서 탈피해 새로운 정치 비전을 보여 달라는 시대 조류의 흐름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윤 후보가 그런 구태 정치에서 벗어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러지 못했다”는 게 이 인사의 답이다. 많은 국민들이 바라는 또 다른 리더십은 사회 격차와 양극화를 해소하는 온기가 느껴지는 정치다. 나아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생존하기 위해 산업은 물론이고 교육 시스템까지 전면적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많은 이들이 요구하고 있다. “1960년대 산업화, 1980년대 민주화, 2000년대 세계화에 이어 2020년대의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시대정신”이라고 얘기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많은 이들의 눈에 국민의힘은 지금까지 이런 미래 비전으로 서로 싸우지 않았다. 대선 승리가 기정사실화한 것처럼 ‘집권하면’이라는 전제로 대선 이후 자신들의 이익을 어떻게 챙길지, 그 이익을 챙기기 위해 지금 어떤 자리를 차지해야 할지 싸우는 것으로 비쳤다. 중진 인사가 ‘옐로카드’를 꺼낸 뒤 며칠 안 돼 이준석 당 대표의 잠적 사태로 당내 갈등이 폭발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자신을 내려놓고 집권 이후 어떤 직도 맡지 않겠다는 윤 후보 측근들의 백의종군도 찾아보기 어렵다. 지금 국민의힘 인사들이 대선 승리의 근거로 거론하는 DJP연합 때 ‘동교동 가신’이라 불리던 권노갑 등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 7명은 “집권할 경우 청와대와 정부의 정무직을 포함해 어떤 임명직 자리에도 결코 나서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국민들의 삶과 상관없는 이익을 둘러싸고 아귀다툼을 벌이는 야당을, 정권 교체를 원하는 여론이 높다는 이유로 유권자들이 선택하려 할까. 윤완준 정치부 차장 zeitung@donga.com}
“이젠 외교관도 이공계 출신들이 해야겠더라. 4차 산업혁명 신기술을 이해하지 못하면 외교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청와대에 근무하는 한 외교관이 최근 주변에 한 얘기라고 한다. 경제·기술과 안보가 한데 얽히며 급변하는 세계 질서 속 한국 외교가 처한 고민이 숨어 있다. 요소수 부족 사태는 외교가 글로벌 공급망 문제에 둔감할 때 국가 경제에 얼마나 치명적인지 드러냈다. 당장에는 중국의 요소 수출 통제 관련 고시에 정부가 뒤늦게 움직여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중국에서 요소의 원료가 되는 석탄이 부족할 때부터 사태는 예고됐다. 중국의 석탄 부족은 지난해 10월 중국이 호주의 석탄 수입을 금지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중국은 호주가 미국의 중국 견제에 동참하자 석탄 수입을 금지했다. 중국이 국제사회의 탄소중립 움직임에 따라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지난해부터 석탄 채굴을 규제한 것도 컸다. 미중 갈등과 세계의 기후변화 대응이 연쇄 반응을 일으켜 요소수 부족 사태로 이어진 것이다. 한중 관계에도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지나치게 높은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는 언제라도 안보 리스크가 될 수 있다. 정부 당국자는 “이번엔 중국이 한국을 괴롭히겠다고 한 건 아니다. 하지만 중국이 의도하면 언제라도 한국을 꼼짝 못 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고 했다. 이전까지 경제와 무역은 비용의 문제였다. 경제성만 생각해 공장을 다른 나라로 옮기고 수입했다. 정부 당국자들은 “이제 비용만으로 경제 정책을 세울 시대는 지났다”고 말한다. 경제가 곧 안보의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과 국경 문제 등으로 분쟁을 겪고 있는 인도 정부는 중국과의 갈등을 대비해 중국으로부터 수입하는 모든 상품의 리스트를 점검했다. 최악의 경우 중국이 수출을 끊더라도 수개월 이상 견딜 수 있도록 수입처를 다변화했다는 것. 미국의 장관급 인사가 우리 정부 당국자에게 한 얘기는 4차 산업혁명 시대 신기술의 주도권 확보에 사활을 걸어야 할 이유를 설명해준다. 그에 따르면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이윤 극대화를 위해 첨단 기술의 원천 기술만 보유하고 생산은 중국과 베트남 등에서 하는 국제 분업을 해 왔다. 미국 정부는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첨단 기술 공급망에 손을 대지 못했다. 그 장관급 인사는 “그러다 실리콘밸리의 첨단 기술이 중국으로 다 넘어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기술은 실리콘밸리가 개발하고 그 기술을 산업과 군사안보에 활용하는 건 중국이라는 걸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인공지능(AI)과 반도체, 양자컴퓨터 기술 등 4차 산업혁명 시대 신기술 제조업의 공급망을 얼마나 주도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지가 국가 미래를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 전직 고위급 외교관은 “이 사활을 건 국가 간 경쟁이 앞으로 외교안보 전략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진흙탕 싸움 대신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생존을 가를 미래 비전을 놓고 토론하는 장면을 볼 수 있을 것인가. 윤완준 정치부 차장 zeitung@donga.com}
92세 강중현 씨. 6·25전쟁이 일어난 1950년 7월 부산에서 입대했다. 그가 배속된 8사단 21연대 1대대 화기중대는 그해 10월 38선을 넘어 평안북도까지 진격했다. 하지만 그해 11월 평안남도 영원전투에서 중공군의 포로가 됐다. 중공군은 국군포로들을 폐광이나 마구간에 가둬 놓았다. 전투 때는 총알받이로 내몰았다. 전쟁포로에 대한 대우를 규정한 제네바 협약을 위반했다. 강 씨는 1951년 2월 강원 횡성에서 국군 진지로 내달려 탈출했다. 그는 오히려 월북자 취급을 받으며 거제포로수용소에 수감됐다. 북한으로 강제송환을 당할 처지에 놓이자 필사적으로 송환을 거부해 반공포로로 석방됐다. 강 씨는 1999년 국방부로부터 참전용사 증서를 발급받았지만 포로 기간을 군 복무 기간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군 미필로 처리됐다. 그는 인권단체 물망초의 도움으로 20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 규명과 명예 회복을 요구하는 신청서를 냈다. 북한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청하는 여러 신청서들이 이날 함께 위원회에 접수됐다. 6·25전쟁으로 인한 각종 피해의 상당수가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채 남아 있다. 6·25전쟁 뒤 유엔이 발표한 국군포로의 수는 8만2000명에 달한다. 하지만 북한이 휴전협정으로 돌려보낸 국군포로는 8300명뿐이다. 북한은 국군포로의 존재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다. 6·25전쟁 때 납북된 피해자는 10만 명에 이른다. 이들의 존재 역시 북한은 단 한 번도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 없다. 정부는 임기 말 종전선언 논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작 종전을 위해 반드시 들어가야 할 요소들이 빠져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한다. 법학자인 박선영 물망초 이사장은 “누가 전쟁을 일으켰는지, 전쟁 동안 가해자와 피해자가 누구이고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확실히 규정하고 법적 책임을 묻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부는 종전선언이 법적 구속력이 없는 정치적 선언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 때문에 종전선언이 정치적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된 것 같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종전선언 추진에 6·25전쟁 피해자들에 대한 인식과 고려가 빠져 있다는 것이다. 22일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이미일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장(72)의 목소리는 파르르 떨렸다. “71년이 지났지만 우리에겐 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현재진행형입니다. 북한은 납치 피해자 10만 명의 생사 확인에 한 번도 협조한 적 없어요. 수많은 전쟁 피해자 문제에 대해 아무런 해결이 이뤄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피해자들에게 묻지도 않고 종전을 선언하겠다는 것인지…. 전쟁 피해자에 대한 고려 없는 종전은 허상이고 그림자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요.” 흐느끼던 그는 “그런 종전선언은 피해자들에게 새로운 전쟁이 될 것”이라고 했다. “진상 규명도 없고 가해자들에게 책임을 묻지도 않고 ‘전쟁이 끝났다’ 하면 우리는 완전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이잖아요. 납치 피해자 가족들한테는 생각하기조차 싫은 끔찍한 일이에요….” 윤완준 정치부 차장 zeitung@donga.com}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가보니 우리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더라.” 6월 문재인 대통령을 수행해 영국에서 열린 G7 정상회의를 다녀온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직원들에게 한 얘기라고 한다. 일부 외교부 직원은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포함해 4년간 문재인 정부 외교를 지휘해 온 분이 처음 외국에 가본 것처럼 이제야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실감했다니…”라는 반응을 보였다. 정 장관은 2월 취임 이후 유독 말로 인한 구설이 잦았다. 주요 외교안보 현안에 대한 인식을 의심하게 하는 발언도 있었다. 장관의 말을 부처가 나서서 수습했다. 4월엔 지난해 5월 우리 군 감시초소(GP)에 북한군이 총격을 가한 것을 “사소한 합의 위반” “절제된 방법”이라고 말했다. 논란이 일자 정 장관은 다른 당국자들에게 “찜찜하다”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물었다고 한다. “의도한 게 아니라고 수습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그날 저녁 외교부는 “적절한 용어 선택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그 전날에도 국회에서 “한미 백신 스와프를 미국 측과 진지하게 협의하고 있다”고 했다가 논란이 됐다. 당국자들은 “발언 시점에 이미 미국의 난색으로 어려워진 상태였다”며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했다”고 지적했다. 정 장관은 다음 달에는 ‘한반도 비핵화’가 북한이 주장하는 ‘비핵지대화’와 “큰 차이가 없다”고 했다.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한 ‘비핵지대화’를 비핵화와 같은 말로 쓰자 정부 안팎에서 “북핵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냐”는 자조까지 나왔다. 그런 그가 최근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했다가 중국의 공세적 외교를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중국은 경제적으로 강해지고 있다. … 우리는 그들이 하려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정 장관은 “중국 대변인이냐”는 비판이 나오자 발끈했다. 하지만 그의 발언은 중국 외교가 공세적으로 변하던 2019년에 나온 중국 외교부 대변인 논리와 똑같다. 화춘잉 대변인은 “중국이 세계무대 중앙에 진입했지만 마이크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다. … 주도적으로 발언권을 쟁취해 당당하게 중국 공산당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발언권의 핵심은 국가 이데올로기이고 국가 가치관 이념을 구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장관은 “여러 나라가 중국이 강압적이라고 우려하지만 우리나라에는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고도 했다. 하지만 한미 정상은 5월 “규범에 기반한 국제 질서를 저해, 불안정 또는 위협하는 모든 행위를 반대한다”고 했다. 중국의 강압적 외교에 대한 공동 대응을 한미 정상이 약속한 마당에 “우리는 상관없다”는 논리로 읽힐 수 있다. 정부 내 정 장관에 대한 평가는 갈린다. 뚝심 있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청와대에서 손을 맞춘 극소수의 고위 당국자들만 챙긴다는 지적도 있다. 이 때문에 웬만한 외교부 고위급도 장관과 제대로 소통하기 어렵다는 것. 정 장관은 직원들에게 “처신을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귀를 열고 신중해야 할 사람은 오히려 자신일지 모르겠다.윤완준 정치부 차장 zeitung@donga.com}
국민의힘 대권 주자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대권 도전을 설득했던 정의화 전 국회의장이 23일 최 전 원장에 대해 지지를 철회한다고 공식 선언했다. 지지율 정체로 캠프가 동요하자 14일 캠프 해체를 선언했던 최 전 원장은 “최재형 전도사”를 자처했던 정 전 의장까지 돌아서면서 위기를 맞게 됐다. 최재형 캠프 공동 명예선대위원장이었던 정 전 의장은 23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 캠프 해체 전후 최재형 후보의 ‘(여권 지지층) 역선택 방지 포기’ ‘낙태(반대)’와 ‘상속세 폐지’ 등 제 생각과는 전혀 다른 정책 발표를 보고 크게 실망했다. 이것은 내가 생각한 최재형다움이 아니다”라며 “오늘 가덕도 신공항 전면 재검토 발언을 접하고는 아연실색했다. 더는 최 후보에게 대한민국을 맡기기는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그는 “대통령이 되기 위한 준비가 부족한 것은 채워나가면 된다. 그렇지만 정치철학의 문제, 한국 사회의 방향성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며 “당장의 인기와 표를 생각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정 전 의장은 최 전 원장이 정치에 입문한 7월만 해도 지인들에게 “ 하늘이 보낸 훌륭한 지도자를 발견했다”고 했다. 정 전 의장의 지지 철회는 이날 최 전 원장이 “대통령에 취임하면 가덕도 신공항 전면 재검토를 정식으로 공론화하겠다”고 밝힌 것이 결정적인 것으로 풀이된다. 정 전 의장은 부산 지역구 의원 출신이다. 최 전 원장의 정치 입문 첫 일정에 동행하며 적극적인 지지 의사를 밝혀온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부산 해운대구을)도 이날 “가덕신공항 전면 재검토 주장은 절대 수용할 수 없다”며 “최 후보를 지지하고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도왔던 입장이지만, 이 주장은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조아라 기자 likeit@donga.com}
국민의힘이 9일 당 대선 경선 후보를 상대로 연 ‘국민 시그널 면접’. 면접관으로 참석한 박선영 물망초 이사장이 홍준표 의원에게 물었다. “가장 중요한 수권 능력과 관련해 분단국가에서 외교안보가 중요합니다. 북한 문제를 어떻게 풀 생각입니까.” 홍 의원은 “대통령이 되면 제일 첫 번째 할 일이 남북 불간섭주의를 천명하겠다”고 했다. “상호 간섭하지 말자. 너희는 너희끼리 살아라. 우리는 우리끼리 산다”는 것이다. 10일까지 12명 국민의힘 후보들이 모두 면접을 마친 뒤 기자는 박 이사장과 통화했다. 박 이사장은 자유선진당 의원 시절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활동했다. 이후 북한 인권 단체인 물망초를 이끌고 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와 김준일 뉴스톱 대표가 국내 현안에 집중했다면 박 이사장은 외교안보 관련 질문을 던졌다. 박 이사장은 “남북이 상관없다는 식으로 말하니 더 질문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했다. “듣기엔 시원해 보이지만 불간섭주의는 현실적이지 않다”고도 했다. 북한의 핵개발에도 눈감을 수 있다는 뜻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이사장은 최재형 전 감사원장에게는 “북핵 폐기 로드맵”을 물었다. 최 전 원장은 “대북 제재가 제대로 이행되도록 해 핵 보유가 부담이 된다는 걸 깨닫게 하고 북핵을 포기하면 평화적 남북관계를 유지하고 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최 전 원장의 말이 끝나자 박 이사장은 “문재인 정부 정책과 비슷하다”고 했다. 기자와 통화에서는 “새로운 대안이 없었다”고 했다. “집에서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른다니 국가관은 튼튼할지 몰라도 구체적 안보관은 부족해 보였다”고도 했다.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는 10일 면접 시작부터 박 이사장으로부터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또라이’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았다. 2018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당시 두 사람을 “또라이”로 불러 논란이 됐다. 원 전 지사는 이날도 “그렇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박 이사장이 “동맹국 정상을 또라이라고 부르는 건 대통령 후보로서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하자 원 전 지사는 웃으며 “표현이 과했던 것 같다”고 물러섰다. 박 이사장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고발 사주 의혹 관련 질문들 때문에 외교안보 구상을 물을 시간이 없었다”고 했다. 윤 전 총장은 앞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문제와 관련해 언론 인터뷰에서 “방사능 유출이 기본적으로 안 됐다”고 해 논란이 됐다. 박 이사장은 “그간 언론에 나온 것으로 봐도 외교안보에 대한 생각이 무르익지 않았다.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내치는 국무총리와 장관에게 전권을 줘서라도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남북관계 등 외교안보 현안은 대통령 본인이 외롭게 결단해야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게 박 이사장의 지적이다. 박 이사장은 “국제 정세를 꿰뚫는 후보가 안 보인다”고 했다. 수권 능력을 주장하는 야당이라면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지적이 아닐까. 여권 주자들이 북핵 해법은 물론 미중 갈등의 복잡한 국제 정세를 헤쳐 나갈 비전이 없다고 비판해 온 야당이기에 더욱 그렇다.윤완준 정치부 차장 zeitung@donga.com}
올해 1월 외교안보 당국자들에게 함구령이 떨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의 2018년 북-미 싱가포르 공동성명 계승을 조 바이든 행정부에 직접 요구하지 말라는 것.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적폐청산’이 이뤄지던 그때 바이든 행정부는 싱가포르 성명을 “정책적 실패”라 했다. 그런 상황에서 “싱가포르 성명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고 말하는 자체가 역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고 외교안보 고위 당국자들은 판단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대북 실무협상을 총괄한 스티븐 비건 전 국무부 부장관을 통해 싱가포르 성명 계승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1월 18일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외교안보 당국자들이 깜짝 놀랐다. “싱가포르 선언에서 다시 시작해 보다 구체적 방안을 이루는 대화 협상을 해나가야 합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성과를 계승해 발전시켜야 합니다.” 문 대통령이 직접 바이든 대통령에게 싱가포르 성명 계승을 요구한 것. 문 대통령의 기자회견 원고에도 없던 내용이었다. 정부 내부에서 우려가 나왔지만 문 대통령은 물러서지 않았다. 4월 뉴욕타임스(NYT)와 인터뷰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폭넓은 목표를 설정한 싱가포르 합의를 폐기하는 것은 실수가 될 것이다.” 외교안보 참모들은 조마조마했다.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얘기했는데도 ‘트럼프 지우기’에 한창인 바이든 행정부가 새 대북정책에서 싱가포르 성명을 빼놓는다면? 한미 관계가 삐거덕댄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5월 초부터 바이든 행정부가 싱가포르 성명을 언급하자 당국자들의 마음이 놓였다. 한미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싱가포르 성명에 기초한 대화”를 확인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싱가포르 회담을 “사진 찍기용”이라고 비판했던 걸 떠올리면 극적인 변화였다. 우리 정부는 “바이든 행정부가 한국의 대북 구상을 반영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 당국자는 “미국도 속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정책이더라도 한국 정상이 강하게 의지를 내보인 것은 받아들인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한미 관계에 역효과가 될 수 있다는 부담을 무릅쓰고 참모들의 만류에도 결기를 보였다. 싱가포르 성명이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원칙과 직결된다고 봤던 것이다. 외교안보 정책의 원칙을 대통령이 직접 밝히는 건 그만큼 중요하다. 국방부가 “연례적이고 방어적”이라고 해온 한미 연합훈련도 문재인 정부 대북정책의 원칙을 보여주는 중요한 잣대다. 싱가포르 성명 계승과 달리 한미 훈련에 대해서는 문 대통령의 생각이 들리지 않는다. 북한은 2일 한미 훈련을 이유로 남북 통신연락선을 다시 차단했다. 이번엔 주한미군 철수 주장까지 나아갔다. 주한미군 철수는 문 대통령이 강조해온 종전선언의 힘을 뺄 수 있는 민감한 주장이다. 문재인 정부는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미국에 설득하면서 주한미군 철수와 상관없을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한미 훈련을 빌미로 통신선을 끊은 북한 행위에 대해 일언반구가 없었다. 대통령 결기가 북한에는 통하지 않는다고 보는 걸까. 윤완준 정치부 차장 zeitung@donga.com}
1993년 윤여상은 스물일곱 대학원생이었다. 탈북민 정착 과정을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있었다. 전국을 돌며 탈북민들을 인터뷰했다. 탈북민들이 그에게 들려준 얘기는 예상과 달랐다. 그들은 북한에서 겪은 참혹한 인권 유린을 증언했다. 그는 탈북민들의 표정이 조금이나마 편안해지는 걸 봤다. 공포로 입 밖에 꺼내지 못한 일들을 어느 젊은 연구자가 기록함으로써 언젠가 진실이 규명될 수도 있다는 한 줄기 희망을 얘기했다고 한다. 1994년 윤여상은 북한 인권 침해를 기록하는 일에 뛰어들었다. 의기투합한 연구자들은 5명. 1999년부터는 그해 처음 문을 연 탈북민 정착기관 하나원에 입소한 탈북민을 직접 인터뷰했다. 이들은 불행한 과거를 정의와 존엄이라는 이름으로 청산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객관적이고 공정한 기록이라고 생각했다. 북한의 인권 침해를 체계적으로 기록하지 않으면 통일 이후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구제하는 역사적 단죄도 어렵다고 여겼다. 2003년 북한인권정보센터(NKDB)가 설립됐다. 한국 최초의, 북한 인권을 기록하는 비정부기구(NGO)였다. 2007년, 13년간 축적된 기록을 바탕으로 첫 북한인권백서가 나왔다. 당시 NKDB가 기록한 북한 인권 침해 데이터베이스는 6878건. 14년 뒤인 현재 NKDB가 확보한 데이터베이스는 12만7620건에 달한다. 한국에 입국한 하나원 입소 탈북자들을 매년 꾸준히 인터뷰해 기록한 결과다. NKDB의 설립 모토는 ‘정치적 중립’이다. 오로지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인권 실태를 기록하겠다는 것. 정권에 따라 북한 인권 실태를 정치적으로 해석하지 않겠다는 것. 그래야 국제사회에서 가치 있는 자료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NKDB에는 연구원들이 ‘정치 활동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내부 규정이 있다. 연구원들은 서약서를 써야 한다. 마이클 커비 전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위원장은 NKDB 백서에 대해 “단순한 통계 조사가 아니다. 북한 주민의 인권을 옹호하고 보장하는 소명”이라고 했다. 그런 NKDB가 9일 보도자료를 내고 “올해 북한인권백서를 내지 못한다”고 밝혔다. 14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지난해 하나원 입소 탈북민 조사를 못 했기 때문이다. 통일부는 지난해 NKDB에 조사 대상 탈북민 수를 줄이라고 요구하다가 조사를 막았다. 그 과정이 석연치 않다. 통일부 소속 북한인권기록센터는 2017년 출범 이래 올해까지 단 한 번도 인권 침해 기록 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NKDB의 북한인권백서는 2014년 COI 보고서는 물론이고 매년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 서울 유엔 북한인권사무소 등의 북한 인권 실태 조사에 인용돼 왔다. NKDB 윤여상 소장은 “남북 관계에 장애가 된다는 이유로 정치 권력에 따라 북한 인권이 정치화되는 모습에 연구원들이 충격을 받았다”며 “북한 인권 문제를 정부가 독점하면 안 된다는 점을 더더욱 깨닫고 있다”고 했다. “북한 주민의 인권을 옹호하고 보장하는 소명”의 백서가 내년 다시 세상에 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윤완준 정치부 차장 zeitung@donga.com}
문재인 정부에서 2차례 북-미 정상회담 실무 협상에 깊숙이 관여한 이도훈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윤석열 캠프에 깜짝 합류해 눈길이 쏠리고 있다. 북핵 문제를 총괄하며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이 전 본부장이 반문(반문재인) 기치를 내걸로 대선에 출마한 윤 전 총장 캠프에 전격 합류하자 여권에서는 당혹스러운 분위기도 감지됐다. 이 전 본부장은 10일 윤석열 캠프가 공개한 정책자문 전문가 외교·안보·통일 분과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윤 전 총장 캠프 총괄간사인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은 동아일보와 통화에서 “이 전 본부장은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의 최근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고, 대북정책은 정파·정부를 초월해 일관성 있어야한다는 차원에서 함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캠프 외교안보통일 분과 간사인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동아일보와 통화에서 “이 전 본부장은 문재인 정권에서 북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했지만 자신의 의사와 다르게 상황이 악화된 것에 대해 좌절감을 느꼈던 것 같다”며 “허물어진 외교를 어찌해서든 정상화시켜야한다는 생각으로 최근 한두 달 사이 캠프에 들어오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윤 전 원장이 윤 전 총장과 개인적 인연이 없는 이 전 본부장을 윤 전 총장에게 소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본부장은 현 정부의 초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으로 발탁돼 북핵 수석대표로 2018년 싱가포르,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실무 협상 과정에서 한미 간 협의를 주도했다. 3년 3개월이라는 ‘최장수 본부장’ 기록도 세웠다. 당시 미국의 북핵 수석대표인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이 속내를 털어놓는 당국자로 꼽혔다. 그런 그가 정의용 외교부 장관 임명 직전인 지난해 12월 본부장에서 물러난 뒤 올해 3월 발표된 춘계공관장 인사에서도 배제돼 옷을 벗었다. 주요국 공관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던 상황에서 정권이 교체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외교부가 탈락 배경에 침묵하자 뒷말이 무성했다. 복수의 소식통은 정 장관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시절부터 대북 접근법을 놓고 충돌하는 등 정 장관과 불편한 관계였던 이 전 본부장이 청와대의 눈 밖에 난 것이라고 전했다. 정 장관은 미국과 협의 과정에서 이 전 본부장이 청와대와 다른 얘기를 한다고 인식이 강했다고 한다. 반면 이 전 본부장은 미국이 우리 입장을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여권은 이 전 본부장이 수석대표를 맡았던 대북 제재 면제를 논의하는 한미 워킹그룹이 남북관계의 발목을 잡는다는 인식도 강했다. 이 전 본부장이 문재인 정부의 대북 협상, 이를 위한 한미 협의의 내막을 가장 잘 아는 인사로 꼽히는 만큼 그의 윤 전 총장 캠프행에 여권이 부담을 느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자문단에는 이 전 본부장의 전임인 김홍균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도 참여했다. 김 전 본부장은 박근혜 정부 임기 말 본부장을 지낸 뒤 현 정부에서 보직을 받지 못한 채 퇴임했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일 가석방된 데 대해 청와대는 이날 “법무부가 규정과 절차에 따라 진행하는 것”이라며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참모진 회의에서 이 부회장의 가석방 가능성을 보고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 가석방 결정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은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당 대선 주자들은 입장이 엇갈렸다. 민주당 이소영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법무부가 가성방의 요건과 절차 등을 고려해 심사 판단한 것에 대해 그 결정을 존중한다”며 “삼성이 백신 확보와 반도체 문제 해결 등에 더욱 적극적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캠프 명의의 입장문에서 “재벌이라는 이유로 특혜나 불이익을 주어서는 안 되고 공정해야 한다는 것이 이 지사의 평소 생각”이라면서도 “조건부 석방인 만큼 이 씨(이 부회장)가 국민 여론에 부합하도록 반성, 쇄신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했다. 반면 박용진 의원은 “재벌 총수에 대한 0.1% 특혜 가석방은 공정한 일이 아니다”라고 밝혔고, 김두관 의원은 “오늘은 재벌권력 앞에 법무부가 무릎을 꿇은 치욕의 날로 기록될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전주혜 원내대변인은 “의미 있는 결정이다. 미래를 준비하며 경제 살리기에 매진하는 새로운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대변인실 명의의 논평에서 “정해진 요건과 절차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다. 그 결정을 존중한다”고 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 캠프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가석방은 국가경제에 대한 기여로 이어져야 한다”고 했다.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 가능성에 대해 청와대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이 내년 3월 대선 후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박효목 기자 tree624@donga.com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이윤태 기자 oldsport@donga.com}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포용적 비즈니스 솔루션(IBS·Inclusive Business Solution)’ 프로그램을 활용해 LG전자, 포스코건설과 함께 에티오피아 등에서 직업훈련사업을 추진한다. IBS 프로그램은 민간 기업의 사업을 바탕으로 개발협력 프로젝트 사업을 진행해 현지의 경제성장과 주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사업이다. KOICA와 민간 기업이 함께 마련한 재원으로 진행된다. 21일 KOICA에 따르면 LG전자와 에티오피아 및 캄보디아에서, 포스코건설과는 방글라데시에서 직업훈련 분야 사업을 추진한다. 두 기업은 협력 대상국의 수요에 맞는 산업인력을 양성하고, 현지 인프라와 네트워크를 활용해 훈련생들에게 취업과 창업의 기회를 제공해 현지 실업 문제 해소에 기여할 계획이다. LG전자는 에티오피아에서 국내 비정부기구인(NGO)인 월드투게더와 함께 4년 동안 약 24억 원을 투입해 ‘에티오피아 직업기술대학 운영사업’을 수행한다 캄보디아에서는 굿네이버스와 협력해 3년 동안 약 13억 원을 투입해 ‘캄보디아 전자·전기·ICT 분야 청소년 직업훈련을 통한 가치사슬 강화 사업’을 진행한다. 포스코건설은 방글라데시에서 인하대와 자체적으로 진행하던 청년층 건설기능인력양성 프로그램을 확대해, 올해부터는 KOICA와 ‘방글라데시 마타바리 취약계층 청년 대상 직업역량강화를 위한 건설기능인력 양성 사업’을 수행한다. 손혁상 KOICA 이사장은 “IBS 협력 모델은 KOICA가 개발도상국에 진출한 국내 유수의 기업들과 협력하는 민관협력 모델”이라며 “KOICA는 협력국 현지 산업인력 역량 강화라는 개발협력 목적을 달성하고, 우리 기업은 현지에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자사 숙련인력을 확보할 수 있게 돼 양측의 수요를 동시에 충족할 수 있는 의미 있는 협력사업”이라고 밝혔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글로벌 사이버 안보 레짐(체제)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한국과 논의하고 싶다.” 주한 미국대사관 관계자가 3일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을 만나 한 얘기라고 한다. 북한의 해킹 공격과 대응 방안을 논의하던 중에 나왔다. 국가 차원의 해킹 공격을 통제할 국제 체제를 만들어야 하고 여기에 북한도 가입시켜야 한다는 취지였다고 하 의원은 전했다. 5일 뒤인 8일 국가정보원은 우리 군 최초 전투기인 KF-21 설계도면 등이 유출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원전과 핵연료 원천 기술을 보유한 한국원자력연구원에 대한 해킹 공격이 북한 연계 조직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정작 이에 대해 북한에 경고할지, 항의할지, 어떤 대응 조치를 취할지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미 국무부는 다음 날 “북한의 해킹은 중대한 사이버 위협이다. (이를 막기 위해) 국제사회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북한으로부터 전력 등 국가 기반시설이 해킹 공격을 당해 서울이 며칠간 정전됐다고 생각해 보라. 핵무기로 공격한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기자와 만난 정부 당국자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사이버 공격은 핵무기 같은 위력을 가진 무기로 등장했다”고 했다. “더 무서운 건 핵무기와 달리 이 무기를 억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라고도 했다. 핵은 ‘네가 공격하면 나도 죽지만 너도 죽는다’는 억지이론으로 핵전쟁 가능성을 줄였다. 핵군축 협상이 있었고 핵확산방지조약(NPT) 같은 국제 조약도 있다. 사이버 공격의 위력을 믿기 어렵다면 스턱스넷이 있다. 2009년경 미국이 이 컴퓨터 바이러스로 이란의 우라늄 농축 원심분리기 공장을 공격해 운영을 중단시켰다. 러시아는 사이버 공격으로 에스토니아 정부 전산망, 우크라이나 송전망을 마비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5월 미국 남동부의 8851km 길이 송유관 ‘콜로니얼 파이프라인’이 러시아에 기반을 둔 것으로 알려진 해킹 집단의 랜섬웨어 공격을 당해 6일간 가동이 중단됐다. 미국 에너지 보급의 핵심 인프라가 공격받자 유류 가격이 폭등했다. 지난달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간 첫 정상회담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진 의제도 사이버 안보였다. 정부 당국자는 “이미 전 세계가 사이버 전쟁의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했다. 세계가 인터넷 인프라가 강한 한국을 주목한다고 한다. 사이버 공격은 보통 6, 7개국을 거쳐 목표를 향한다. 그 경로에 한국이 반드시 포함된다는 것이다. 언제 국가 기반시설이 무력화될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당국자는 말했다. 북한은 공공과 민간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로 해킹 공격을 가하고 있다. 우리는 이를 국가안보 차원에서 다룰 컨트롤타워도 없다. 오히려 KAI와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서버 관리자 등이 비밀번호를 바꿔야 하는 기본적인 보안 수칙을 지키지 않아 해킹 공격에 뚫리는 한심한 수준이다.윤완준 정치부 차장 zeitung@donga.com}
한국국제협력단(KOICA)은 지난달 28일 롯데장학재단과 6·25전쟁 해외 참전용사 후손 장학금 지원에 대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두 기관은 6·25전쟁 해외 참전용사 후손 장학생 추천과 선발, 장학금 지급과 관련해 유기적인 협력 체계를 구축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올해 대한민국의 공적개발원조(ODA) 협력국인 에티오피아, 필리핀, 콜롬비아 참전용사 후손 약 150명에게 총 6만7500달러(약 7647만 원) 상당의 장학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KOICA는 그동안 6·25전쟁 참전국과 참전용사에 대한 보은을 위해 △에티오피아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해결을 위한 긴급 지원 프로그램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후손 직업역량 배양사업 △한-필리핀 인력개발센터 건립사업 △ 한-콜롬비아 우호재활센터 등을 운영해왔다. 롯데장학재단은 2017년부터 6·25전쟁 참전용사 후손을 지원하기 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 에티오피아, 터키, 태국, 콜롬비아, 필리핀 등 6개국 800명에게 약 4억 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손혁상 KOICA 이사장은 “롯데장학재단과 민관연대를 통해 참전용사 후손 장학금 지원사업에 도움이 될 수 있어 기쁘다”며 “참전국의 향후 발전을 위해 지원하는 것 역시 6·25전쟁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에 보은하는 길이라 생각하고 앞으로도 참전국들과 협력을 지속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허성관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은 “이번 기회를 통해 참전용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릴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며 “그 후손들의 자긍심을 높일 수 있도록 앞으로도 진취적인 장학사업을 내실 있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부동산 투기 의혹이 불거진 김기표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을 사실상 경질했다. 전날 경기도 광주 송정지구 개발 사업이 본격화되기 1년 전 인근의 송정동 땅을 매입한 것으로 드러나자 김 비서관이 “투기가 아니다”라고 해명한 지 하루 만이다. 특히 청와대가 인사검증 과정에서 김 비서관의 재산 문제를 일부 파악했음에도 김 비서관을 3월 말 임명을 강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의 부실한 인사검증 시스템이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비서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김 비서관이 문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고 문 대통령이 수용했다”며 “김 비서관은 투기 목적으로 부동산을 취득한 게 아니더라도 국민이 바라는 공직자의 도리와 사회적 책임감을 감안할 때 더 이상 국정운영에 부담이 돼서는 안 된다는 뜻을 밝혔다”고 밝혔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청와대의 검증 시스템이 완전하지 않다는 비판을 겸하게 수용한다”면서도 “추가로 제기된 부분에 대해 불완전한 청와대 검증시스템이 알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고 했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25일 전자관보에 공개한 고위 공직자 재산 등록 현황에 따르면 김 비서관은 본인 명의로 경기도 광주시 송정동에 ‘맹지(盲地)’인 임야 2필지(1578㎡·4907만 원)을 신고했다. 김 비서관이 2017년 6월 이 땅을 사들인 뒤 1년여 만인 2018년 8월 광주시가 이 땅 부근에 대규모 주거단지와 상업·업무시설을 조성하는 개발 계획을 승인했다. 김 비서관이 다른 토지를 재산신고에서 누락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김 비서관이 신고한 2필지는 송정동 413-166번지(1448㎡)과 413-167번지(130㎡)이다. 하지만 부동산등기부등본에 따르면 김 비서관은 이 땅과 붙어 있는 413-159(1361㎡)도 소유하고 있다. 공직자윤리법 22조에 따르면 고위 공직자가 재산신고를 누락하면 공직자윤리위원회가 해임이나 징계 의결을 요구할 수 있다. 또 김 비서관은 신고한 부동산 91억2623만 원 가운데 부채가 54억6441만 원에 달해 ‘영끌 빚투(영혼까지 끌어모아 빚내 투기)’ 의혹까지 제기됐다.●인사검증 때 확인, 문제 되자 뒤늦게 경질 주말 사이 여론이 심상치 않자 청와대는 27일 회의에서 “김 비서관이 투기가 아니라고 항변하더라도 국민 눈높이에서 납득시킬 수 없다면 경질이 불가피하다”고 결론 낸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도 전날 청와대에 민주당의 부동산 투기 의혹 12명 의원 탈당 조치를 거론하며 김 비서관에 대한 신속한 신속한 거취 정리를 건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 비서관을 임명한 3월 말만 해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청와대가 김 비서관의 재산 현황이 공개된 뒤 여론이 악화된 뒤에야 부랴부랴 수습에 나선 것. 문재인 정부의 최대 아킬레스건인 ‘부동산 내로남불’가 다시 불거지면 국정운영에 부담이 된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비서관은 임명된 지 3개월도 안 돼 옷을 벗게 됐다. 하지만 결격사유를 파악하고도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하거나 결격사유를 발견하지 못한 데 대해 “검증의 한계”라고 발뺌하는 청와대의 태도가 더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27일 “인사 검증 때 부동산 내역을 확인했고 각각의 취득 경위와 자금조달 방식 등을 구체적으로 점검했지만 투기 목적의 부동산 취득은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며 “김 비서관도 취득 부동산에 대해 향후 처분할 계획을 밝혔다”고 했다. 김 비서관을 임명하기 불과 20일 전인 3월 11일 청와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으로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 전원에 대한 전수조사를 벌여 문제가 없다고 발표했다. 그럼에도 부동산 검증을 더 강화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청와대는 김 비서관이 송정동 필지 재산신고를 누락한 데 대해서도 “청와대가 확인할 수 있는 수준에 있지 않았다”고 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청와대의 인사검증을 거쳐 언론 검증이 시작되고 청문회를 통해 국회 검증도 시작된다”며 “이런 일련의 과정이 모두 검증의 기간”이라고도 논리도 폈다. 김외숙 청와대 인사수석비서관 책임론에 대해서도 “개인의 책임보다 검증 시스템의 문제가 크다”며 선을 그었다. ●野 “검증 부실 반성보다 꼬리자르기”이 때문에 야당에서는 “청와대가 부실 검증에 대한 반성이나 개선보다 당장의 여론 악화를 모면하려는 꼬리 자르기로 끝내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황보승희 수석부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투기 의혹 대상자에게 공직자들의 비리와 부패를 감시할 업무를 맡겼으니 사실상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라며 “청와대가 인사 검증과정에서 투기 의혹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무능이고, 알고도 임명을 강행한 것이라면 국민 기만”이라고 했다. 그는 “자진사퇴로 끝나선 안 된다”며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과 정부 장·차관급 이상 고위공직자에 대한 감사원의 부동산 전수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박효목 기자 tree624@donga.com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지난해 말 한국 주최로 열린 국제회의. 중국 측은 한사코 ‘글로벌 데이터 안보 이니셔티브’를 회의에서 정식으로 거론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이니셔티브는 미국이 화웨이 등 중국 기업들의 5G(5세대 이동통신) 장비를 배제하는 데 맞서 중국이 내놓은 구상이다. 중국의 5G 기술 표준을 존중하는 글로벌 규칙을 만들겠다는 것. 그러자 일본이 “그 이니셔티브를 회의에서 정식 의제로 제기하면 안 된다”고 반발했다. 회의 당일까지 “거론하겠다”는 중국과 “절대 안 된다”는 일본이 평행선을 달렸다. 중간에 낀 한국이 난감해졌다고 한다. 중국은 기어코 그 얘기를 꺼냈고 일본은 정식 의제가 아니라며 무시했다는 후문이다. 트럼프 미 행정부의 중국 견제는 동맹 경시와 맞물려 실체 없이 좌충우돌했다. 정부는 미중 사이 모호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외교의 달인’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다르다. 쿼드(미국 일본 호주 인도의 4개국 협의체) 정상회의에 이어 일본 한국을 차례로 규합하더니 주요 7개국(G7),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무대 삼아 유럽을 중국 포위를 위한 동맹으로 복원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런 바이든 대통령에 대해 “패권적”이라고 했다. 미국의 힘을 내세워 동맹들에 미국의 지위를 위협하는 중국을 함께 압박하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그게 세계 질서의 현실”이라고 했다. “한국도 미국에 궤도를 맞추면서 중국에 한 대 맞더라도 우리가 할 말을 하는 방향으로 점진적으로 나아갈 때가 됐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중이 극한 경쟁을 벌이는 5G와 반도체 등 첨단기술은 미중이 결국 공급망을 디커플링(단절)할 가능성이 크다. 다른 제조업 공급망은 미국도 중국 시장에 의존도가 큰 만큼 디커플링하기 어렵다. 이런 정교한 전략적 판단에 따라 원칙을 결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차이나 리스크’를 지나치게 키우지 않는 선에서 보편적 가치인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입장을 낼 때가 됐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금 정부의 모습은 그런 치밀함보다 당장 중국의 반발을 무마하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중국 견제에 동참한 성격이 분명한 한미 정상회담이나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G7 정상회의 일부 세션에 “특정국을 겨냥하지 않았다”고 하는 식이다. 중국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중국 정부 소식통은 기자에게 “‘중국’ 표현이 없어도 우리를 겨냥한 걸 다 안다”고 했다. 우리 정부는 한미 정상회담 뒤 “불장난하지 말라”는 중국 외교부의 주장에 미일 정상회담 성명 때보다 수위가 낮다는 점만 강조했다. 하지만 정부의 다른 관계자는 “중국은 우리가 다음에 어떻게 나올지 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G7 참석 직전 중국 왕이 외교부장이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의 통화에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결연히 반대한다”며 “편향된 장단에 놀아나지 말라”고 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통화 뒤 양국이 결과 발표 내용을 조율할 때 한국은 공개를 원하지 않았던 대목이다. 그 ‘경고’가 중국 발표의 가장 첫머리에 들어갔다. 정상이든 고위급이든 다음 한미 회담 뒤 정부가 발표할 자료에 “인도태평양”을 다시 강조할지 지켜볼 일이다.윤완준 정치부 차장 zeitung@donga.com}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 뒤 5개월 만에 미국이 아시아와 유럽에서 동시에 중국 포위망 구축을 시도하자 정부가 한국 외교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발 국제질서 지각변동이 시작됐는데도 정부가 한미 정상회담 이후 중국이 반발하자 다시 미중 사이에서 어정쩡한 태도로 돌아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은 첫 번째 해외 순방인 이번 유럽 방문에서 서방의 동맹들과 함께 주요 7개국(G7),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공동성명을 통해 중국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3∼5월에는 쿼드(미국 일본 호주 인도의 4개국 협의체) 정상회의와 미일, 한일 정상회담을 잇따라 열어 아시아 동맹들과 협력을 통한 중국 견제에 시동을 걸었다. 정부 관계자는 17일 “바이든 행정부가 아시아와 유럽의 동맹을 규합해 동쪽의 아시아와 서쪽의 유럽에서 중국을 전방위로 협공하려는 움직임이 분명히 드러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 포위를 위한 태평양-대서양 벨트를 구축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 “美, 아시아와 유럽서 중국 동시 협공” 바이든 대통령이 4월과 5월 워싱턴에서 미일, 한일 정상회담을 차례로 개최할 때만 해도 정부는 바이든 행정부의 아시아 동맹 중시 기조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봤다. 바이든은 이에 그치지 않고 이달 G7, 나토 정상회의를 주도해 중국 견제를 핵심 이슈로 끄집어낸 것. 중국과 밀착하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까지 만나면서 아시아와 유럽의 주요 국가 가운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만 바이든 대통령과 만나지 않은 셈이 됐다. 정부의 다른 관계자는 “바이든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 무너진 미국 동맹관계를 차례로 복원하는 체계적인 세계 전략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 돌아왔다”는 구호를 말뿐이 아니라 미소 냉전 종식 이후 역할이 약화되던 나토에 “중국의 구조적 도전”에 대처하는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는 등 실제 외교 전략으로 실행하고 있다는 것. 정부의 또 다른 관계자는 “한마디로 아주 치밀하고 영리한 행보”라며 “이런 전방위 공세에 중국이 대응하기 쉽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한미-미일-G7-나토 성명 중국 내용 비슷” 특히 정부는 한미, 미일 정상회담과 쿼드, G7, 나토 정상회의로 이어지는 일련의 중국 관련 내용들이 모두 비슷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도 한미 관계 차원을 넘어 동맹들과 함께 중국을 동서에서 포위하려는 세계 전략에 한국을 편입시키려는 바이든 행정부의 계획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14일(현지 시간) 발표된 나토 정상회의 성명에는 중국의 행동이 “규칙에 기반을 둔 국제질서와 동맹 안보와 관련된 분야에 구조적 도전을 야기한다”고 했다. 한미 정상회담 성명에 “중국” 표현은 없었지만 “한미는 규칙에 기반을 둔 국제질서를 저해, 불안정 또는 위협하는 모든 행위를 반대한다”고 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언급된 대만, 남중국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기원 조사 문제 모두 G7 정상회의 성명에 포함됐다. 실제 외교 소식통은 회담 준비 과정에 대해 “미국이 먼저 한미 공동성명 초안을 한국에 제시했고 정부가 수용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는 방식이었다”고 했다. 한미 정상회담 직후만 해도 청와대 관계자는 브리핑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진행되는 세계질서의 변화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준비해야 한다는 구상에서 공동성명을 협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한미 정상회담 성명에 대해 중국이 “불장난하지 말라”며 불만을 표시하자 “성명이 특정국을 겨냥한 게 아니다”라며 진화에 나섰다. 미중 사이 모호한 태도로 돌아가는 모양새다. 김성한 전 외교통상부 2차관은 국익에 바탕을 둔 분명한 원칙을 제시하지 않으면 미국이 주도하는 전 세계적 네트워크에 끼지 못하면서 중국과도 불신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일대일로 대응 목적으로 G7 정상회의 성명에 명시된 글로벌인프라 계획인 ‘더 나은 세계 재건(B3W)’에 미국이 협력을 요청해 오는 시점부터가 시험대가 될 수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과 주파수를 맞추면서 보편적 인권 문제 등에 대해서는 중국의 반발에도 할 말을 해야 하는 쪽으로 점진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윤완준 zeitung@donga.com·최지선·권오혁 기자}
열일곱의 김성태는 대한민국을 지키겠다는 부푼 기대를 안고 1948년 입대했다. 국군이 창설된 해였다. 경기 동두천의 7사단 1연대에 배치됐다.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 전방에서 고립된 채 북한군과 전투를 벌이다 포로가 됐다. 좁은 감방에서 굶주림과 사투를 벌였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직전인 그달 18일. 강원도 바다를 통해 탈출을 시도하다 붙잡혔다. 휴전협정 이틀 전인 25일 13년형을 선고받았다. 스물두 살의 그는 교도소에서 두들겨 맞았다. 죄수들이 죽어 나가는 걸 봤다. 1954년 평양 복구 건설에 동원됐을 때 탈출하려다 실패했다. “짐승보다 못한 대우를 받으며” 강제노역에 동원됐다. 1966년 함경북도 온성의 추원탄광으로 끌려갔다. 서른다섯 청년은 그로부터 27년간 시커먼 석탄가루를 삼켜 가며 버텼다. 일흔이 다 된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에 왔다. 북한 선전매체의 보도에 잠시 희망을 가졌다. “국군포로 생존자를 돌려보내 달라는 말 한마디 없었다.” 다음 해 아들과 함께 몰래 중국으로 갔다. 50년의 탈출 시도 끝에 드디어 한국 땅을 밟았다. 올해 아흔이 된 김 씨는 24일 다른 국군포로 2명과 함께 정부에 북한의 송환 거부와 강제노역, 가혹행위에 대한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신청서를 냈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간 정상회담 이틀 뒤였다. 28일 그와 통화했다. “역시나 우리 얘기는 없더군요….” 지난달 미일 정상회담 공동성명엔 일본 납북자 얘기가 담겼다. “바이든 대통령이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를 즉각 해결하겠다는 미국의 약속을 재확인했다”는 것이다. “짧은 표현이었지만 이 문구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과 대화할 때 납북자 문제를 반드시 꺼낼 겁니다.” 국군포로들의 진상 규명 요구를 돕고 있는 박선영 물망초 이사장의 말이다. 그는 “방미에서 6·25전쟁 때 피를 같이 흘린 동맹을 강조했으니 립서비스라도 문 대통령이 국군포로 얘기를 꺼냈다면 어땠을까”라고 했다. 올해 3월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채택된 북한인권결의안에 처음으로 국군포로들의 인권 침해에 대한 우려가 포함됐다. 2011년 미 하원은 처음으로 국군포로 송환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바이든 대통령이 부통령이었던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이다. 문 대통령은 방미 때 국회의사당에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을 만났다. 하원이 10년 전 국군포로 송환 결의안을 통과시킨 바로 그곳이다. 유엔이 발표한 국군포로 수는 8만2000명이다. 북한이 휴전협정으로 돌려보낸 국군포로는 8300명뿐이다. 현재까지 북한을 탈출한 국군포로는 80명. 대부분 진폐증, 폐암 등으로 세상을 떠났다. 18명이 생존해 있다. 김 씨가 생존자 중 가장 ‘젊다’. 최고령자는 99세 이원삼 씨다. 한미 정상회담 직전 문 대통령은 6·25전쟁 참전용사 랠프 퍼킷 주니어 예비역 대령의 명예훈장 수여식에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국군포로들과 나이가 비슷한 95세의 이 용사 옆에 무릎을 꿇었다.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이를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았다. 국군포로들과도 그런 장면을 기대한다면 지나친 걸까. 윤완준 정치부 차장 zeitung@donga.com}
한미 정상은 21일(현지 시간) 워싱턴에서 연 정상회담과 공동 기자회견, 이후 발표된 공동성명과 별도의 한미 파트너십 자료에서 한미동맹이 기존의 ‘대북 중심 군사안보동맹’에서 인도태평양, 나아가 글로벌 차원의 경제동맹, 첨단기술동맹으로 확대될 것임을 분명히 했다. 특히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백신 공급 협력, 미국 주도의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등 글로벌 공급망 재편 협력, 반도체와 5G(5세대 이동통신), 6G와 인공지능(AI)등 미국과 중국이 극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분야에서 한미 협력을 명시했다. 안보 분야에서도 중국이 민감해하는 대만, 남중국해 문제가 회담, 공동성명, 공동 기자회견에서 모두 거론됐다. 중국 견제 성격의 쿼드(미국 일본 호주 인도의 4자 협의체)에 대해서도 “중요성을 인식한다”는 문구가 공동성명에 포함됐다. 안보·경제·기술 분야 전반에서 동맹국으로서 중국 견제에 동참하는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요구에 문재인 정부가 호응하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대북정책에서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성 김 미 국무부 차관보 대행을 북한과 협상을 담당하는 대북정책특별대표로 임명하는 등 북한과 대화에 나설 준비가 있음을 보였지만 비핵화 문제에 대해 “환상은 없다”고도 강조했다. 비핵화 조치를 하지 않는 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날 계획이 없다고도 했다. 조속한 대화 재개를 바라는 문재인 대통령과 온도차가 드러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 한미 스와프 대신 한미동맹 차원서 장병들에 백신 지원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군 장병 55만 명에게 백신을 제공하겠다고 밝힌 것은 백신 지원을 통해 한미동맹의 공고함을 재확인하는 한편 한국보다 상황이 더 어려운 국가들에게 백신을 우선 지원해야 한다는 미국 국내 여론도 감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젠 사키 미 백악관 대변인은 한미 정상회담 전인 20일(현지 시간) 브리핑에서 세계에 대한 미국의 백신 지원 계획에 대해 “(어떤 나라에 먼저 지원하는 것이) 공평하고 지역적으로 균형 있을지 검토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한국처럼 경제적으로 발전한 나라에게 백신을 지원할 때 더 높은 허들이 있느냐’는 질문에 나온 답이었다. 한국이 상반기 백신 수급에 차질을 빚고 있지만 인도 등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한 다른 나라들보다 상황이 좋은 만큼 일반 한국인들에게 백신을 지원하는 것보다는 한미동맹 차원에서 군 장병들에게 지원하는 것이 명분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먼저 백신을 빌리고 나중에 되갚겠다는 한미 백신 스와프에 대해서는 미국이 결국 거부한 것으로 보인다.● 인도태평양 백신 지원 한미 백신 파트너십, 쿼드 백신협력과 일치특히 한미 정상은 미국의 백신 관련 선진 기술과 한국의 생산 역량을 결합한 ‘한미 백신 글로벌 포괄적 파트너십’을 구축하기로 했다고도 밝혔다. 이를 통해 인도태평양 지역 국가들에게 백신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대규모 백신 지원을 앞세운 ‘백신 외교’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미국이 견제하는 데 한국이 참여하기로 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특히 이 같은 협력은 미국 일본 호주 인도 4개국 협의체인 쿼드의 백신 파트너십 방향과 같다. 쿼드는 이를 위한 백신 워킹그룹도 만들었다. 중국을 의식한 문재인 정부가 쿼드에 명시적으로 가입하지는 않지만 백신과 같은 비군사 분야에서 쿼드와 협력하기로 한 셈이다. 실제 문 대통령은 한미 백신 파트너십이 인도태평양 지역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양국의 협력이 전 세계 백신 공급을 늘려 코로나19의 완전한 종식을 앞당기는 데 기여할 것”이라며 “특히 인도태평양 지역의 백신 공급에 더 많은 기여를 하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 한국도 백신의 안정적인 확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바이든 대통령은 “문 대통령을 내가 칭송하는 것은 단순히 미국, 한국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태평양, 그리고 세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우리는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역량을 결집해 전 세계에 대해서 보호를 제공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 “북한 비핵화에 대해 어떤 환상도 없다”는 바이든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이후 4개월간 공석이던 대북정책특별대표에 성 김 미 국무부 차관보를 임명한 것은 대북정책 검토를 끝낸 바이든 행정부가 일단 북한과 비핵화 협상에 나설 준비는 됐다는 메시지를 북한에 보내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바이든 행정부에 대북정책특별대표를 임명하면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봐 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북한 비핵화라는 말 대신 “한반도 비핵화”라는 말을 썼다. 한반도 비핵화는 2018년 남북 판문점 선언과 북-미 싱가포르 선언에 있는 표현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처음으로 공식 문서로 비핵화를 약속한 선언에 있는 표현인 만큼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을 써 김 위원장에게 비핵화 협상 테이블에 돌아올 명분을 주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문 대통령은 “앞으로 한미 양국은 소통하며 대화·외교를 통한 대북 접근법을 모색할 것이다. 북한의 긍정적인 호응을 기대한다”며 “아울러 바이든 대통령은 남북 대화와 협력에 대한 지지를 표했다. 미국과 긴밀한 협력 속에 남북관계 증진을 촉진해 북미대화의 선순환을 이루겠다”고 말했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로드맵과 시간표에서 두 정상의 생각이 일치하는지 묻는 질문에 문 대통령이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정책을 굉장히 빠르게 재검토를 마무리한 것은 그만큼 대북정책을 외교정책에서 우선순위로 두고 있다는 것이다. 비핵화의 시간표에 대해서 양국 간에 생각의 차이가 있지 않다”고 하자 바이든 대통령은 “나도 문 대통령에 동의한다”며 “우리의 목표는 완벽한 한반도 비핵화하다. 실질적으로, 실용적으로 진전을 이뤄 미국과 우리 동맹국들의 안보를 높이길 원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비핵화 약속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기 위한 선제 조건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의 핵무기고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는 약속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은 “과거해 행해졌던 일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처럼 섣불리 김 위원장과 정상회담에 나서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김정은)가 바라는 것을 다 주지 않을 것”이라며 “국제사회에 합법 국가로 인정받는 건 쉽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우리가 어떻게 진행할지 윤곽이 잡히지 않는 한 (김 위원장을) 만나지 않겠다”고 말했다. 북한 비핵화에 “환상을 갖고 있지 않다”며 “지난 4개 행정부가 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이것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실현이) 어려운 목표”라고도 말했다. 문 대통령이 조속한 대화 재개에 방점을 찍고 있는 반면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원칙론을 강조한 것이어서 한미 정상 간 온도차가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 ‘5G 중국’ 견제 6G서도 한미 협력, 첨단기술동맹으로 확대한미 정상은 반도체와 배터리, 바이오 분야 등 우리 기업들이 강점을 갖고 있는 이른바 BBC(Bio Battery Chip) 분야 등 첨단기술 분야에 대해서도 공동의 목표를 위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안보 중심의 한미동맹이 경제동맹, 특히 첨단기술동맹으로 확대되는 계기를 마련한 것. 특히 문재인 정부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분야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나타낸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는 미국과 중국이 첨단기술 분야에서 디커플링(단절)할 수 없기에 미국의 공급망 재편 협력이 중국과 단절하겠다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공급망 재편이 중국 견제 성격이 있는 점도 분명하다. 이 때문에 중국 견제를 위한 동맹의 역할 확대를 강하게 주문해온 바이든 행정부에 문재인 정부가 호응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기술적인 진보에 있어서도 한국과 미국이 같이 협력해 부상하는 과학기술을 같이 다듬어 나가 공동의 목표를 향해갈 수 있다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양국 간의 협력을 좀 더 증대시켜 5G 이동통신 네트워크도 보다 더 잘 구축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5G는 미국이 중국을 배제하는 가장 대표적인 분야다. 바이든 대통령은 44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한 삼성전자와 SK, LG 등에 감사를 표시하면서 기자회견장에 참석한 우리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에게 일어설 것을 부탁한 뒤 “앞으로 협력이 더 기대된다. 이런 투자로 인해 정말 좋은 고용이 많이 창출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한미 양국은)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의약품의 안정적 공급망 구축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며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이 가속화해 첨단 신흥 기술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한미는 6G 민간 우주탐사, 그린에너지 등 협력을 강화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6G 이동통신은 중국이 선점한 5G를 대체하기 위해 미국이 연구와 투자를 집중하고 있는 분야다. 지난달 미일 정상 공동성명에도 6G 협력이 명시된 데 이어 한미일이 중국의 5G를 견제하기 위한 6G 개발에 협력하기로 한 셈. ● 중국 극도 민감 대만 문제까지 한미 정상 논의안보 분야에서도 문 대통령이 중국을 견제하는 바이든 행정부 기조에 보조를 맞추려는 기류가 엿보였다. 대북정책에서 협력을 얻기 위해 바이든 행정부의 중국 견제에 어느 정도 호응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방침이 선 것으로 풀이된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 문제든 북한 문제든 동맹 간 협력, 특히 한미일 3각 협력이 중요하다고 문재인 정부에 강조해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문 대통령 앞에서 한미동맹이 쿼드와 관련 있다고 강조했다. “한미동맹 파트너 관계는 한반도의 문제만을 아우르는 것이 아니라 지역적인, 또 글로벌한 문제를 아우르고 있다”며 “그리고 아세안과 쿼드와 그리고 일본과의 한미일 3자 협력 관계까지도 다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한 것. 쿼드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성격이 강한 미국 일본 호주 인도 간 4자 협의체다. 특히 “문 대통령과 지역 내 안보와 안정에 대해, 예를 들어 남중국해의 자유로운 항해를 보장하게 한다면 대만과 남중국해의 평화와 안정을 추구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데 뜻을 같이했다”고 했다. 중국이 극도로 민감하게 생각하는 대만과 남중국해 문제에서 한미가 협력하겠다고 공식화한 것. 문 대통령도 ‘바이든 대통령이 대만 문제 강하게 압박했느냐’는 질문에 “다행히도 그런 압박은 없었다”면서도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데는 인식을 함께했다. 양안 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하면서 한미 양국이 그 부분에 대해서 함께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우리 군 탄도미사일의 사거리를 제한한 한미 미사일 지침이 해제됐다는 사실도 직접 밝혔다. 현재 800㎞로 제한돼 있는 탄도미사일 사거리 제한이 사라지면 중국을 사정권으로 하는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할 수 있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워싱턴=공동취재단}
2019년 초만 해도 평양 옥류관에 ‘문재인 냉면’이 있었다. 문 대통령이 2018년 9월 그곳에서 먹으며 ‘평양냉면 맛의 극대치’라 했던 그대로 재현한 것이라 했다. 이 냉면을 직접 맛본 중국인 학자 A 씨가 기자에게 전한 얘기다. “옥류관에서 파는 다른 냉면보다 양념이 더 들어갔다”고 했다. 당시만 해도 문 대통령이 평양에서 꽤 인기가 있었다는 것.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북한 간부들은 문 대통령을 “문 목사”라 부르고 “남측 때문에 광대놀음을 했다”고 비난한다. 9일 북한 내부 사정에 정통한 대북 소식통이 전한 얘기다. 중재자 역할을 자임한 문 대통령을 믿고 미국과 비핵화 협상에 나섰지만 얻은 게 없다는 주장이다. 문 대통령이 목사가 설교하듯이 말을 잘했지만 말대로 된 게 없다는 논리다. 지금 북한 간부들은 “남측이 민족끼리 문제를 풀기보다 핵 폐기처럼 미국 입장을 대변하는 행태만 계속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고 한다. 우리 정부가 미국 눈치를 본다는 그들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북-미 협상 결렬 이후 문재인 정부를 대하는 김정은 정권 내부 분위기는 잘 보여준다. 올해 초 남북은 별다른 소통이 없었다. 정부 고위 당국자들은 조 바이든 미 행정부와 대북정책에서 긴밀히 협의하는 게 남북대화 동력을 되찾을 힘이라고 했다. 미 대북정책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보여주면 다시 대화 상대로 인정할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당국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미국 대북정책에 한국 입장이 꽤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포스트(WP)는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 합의가 아니라 스몰딜을 추구할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도 스몰딜을 강조해 왔다. “한미 간 조율이 남북대화의 힘”이라고 당국자들이 말해 온 만큼 21일 한미 정상회담 전에라도 정부가 남북대화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종전선언을 바이든 대통령에게 직접 요청하겠다며 북한과 접촉을 시도할 수도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처럼 다시 협상에 나올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정부 당국자들에 따르면 2018년 3월 우리 특사단에 미국과 대화 의사를 밝힐 때 김 위원장은 자신이 국면을 주도할 수 있다고 믿는 모습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원칙적인 바이든 행정부에 대해서도 김 위원장이 지금도 그렇게 생각할지는 불확실하다. 외교안보 당국자들은 대북정책에서 미국과 같이 가는 게 중요하다고 보지만 북한은 미국 눈치를 보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다. 북한은 임기 말 문재인 정부의 마음이 바쁘다는 점을 파고들어 어떻게 해서든 한미 관계의 틈을 벌리려 할 수 있다. 그것이 현 정부의 딜레마가 될 것이다. 2018년처럼 ‘우리가 미국에 잘 얘기할 테니, 우리만 믿으라’는 방식은 다시 먹히기 어려울 것이다. 북한을 대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원칙과 협상 방식이 무엇인지 있는 그대로 전하고 현실적으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북한에 할 말은 해야 할 때가 됐다. 그러지 않고 낙관적으로만 접근했다가는 “문 목사”니 “광대놀음”이니 하는 말을 또 들어야 할지 모른다. 윤완준 정치부 차장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