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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AI가 이 글을 썼단 말인가?” ‘사피엔스’(김영사) 저자인 이스라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46)는 최근 ‘사피엔스’ 출간 10주년 기념 특별판 서문을 보고 놀랐다. 해당 글은 AI 가운데 최고 수준의 자연어처리 모델로 꼽히는 ‘GPT-3’가 하라리의 책, 논문, 인터뷰를 모아 작성한 것. 수정이나 편집은 하지 않았다. 하라리는 글을 읽는 동안 충격으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며 “정말 깜짝 놀랐다”고 그 역시 ‘사피엔스’ 특별판 서문에서 고백했다. “글 자체는 잡동사니를 조합해 만든 잡탕이다. 하지만, 어차피 모든 글이 다 그렇잖은가? 내가 ‘사피엔스’를 집필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책, 논문, 인터뷰 글을 다 끌어 모아서 서로 다른 아이디어와 사실을 결합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으니 말이다.” 언뜻 보면 AI가 쓴 글은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를 파고드는 ‘사피엔스’의 요지를 담은 것처럼 느껴진다. ‘과거 우리는 국민국가와 자본주의 시장이라는 상상 속의 질서 덕분에 힘을 가질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전례 없는 번영과 복지도 이뤘다. 하지만 그 상상 속의 질서가 오늘날 우리를 분열시키려 하고 있다.’ 다만 하라리는 AI가 쓴 글에 대해 부족한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나라면 결코 글로 쓰지 않았을 아이디어가 많이 포함됐다. 납득하기 어렵거나 명백하게 우스꽝스러운 부분도 보였다. 그 결과물은 문학적이면서 지적인 잡탕처럼 보인다. 일단 안심이 된다. 적어도 몇 년간은 GPT-3이 내 일자리를 빼앗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라리는 AI가 앞으로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AI 혁명은 ‘우리가 알던 방식의 인류 역사가 끝났다’는 신호”라며 “역사상 처음으로 힘의 중심이 인류의 손아귀에서 벗어날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한편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김영사) 2022년 특별판 서문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밝혔다. 그는 “만일 푸틴의 도박이 성공한다면 결국 세계 질서가 붕괴하고 평화와 번영의 시대는 막을 내릴 것”이라며 “교사 간호사 사회복지사를 위해 써야할 돈이 탱크 미사일 사이버 무기에 쓰일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새로운 지옥이 어떤 모습일지 생각하는 것을 미루다 보면 출구 없는 곳에 갇혀버릴지도 모른다”며 “우리 인간이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30세 여성 ‘슬아’는 생활형 작가이자 “출판계는 불황”이라는 말을 수시로 듣는 작은 출판사 대표다. 매일 출판사 업무, 글쓰기 강의, 언론 인터뷰에 쫓기면서 고군분투한다. 그런 슬아가 어느 날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엄마 아빠를 출판사 직원으로 채용한다. 집안의 경제권을 쥔 슬아는 좌충우돌 여러 사건을 마주하게 되는데…. 가부장이 아닌 ‘가녀장’(家女長) 슬아는 과연 가장의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까.7일 출간된 장편소설 ‘가녀장의 시대’(이야기장수)는 에세이인지 소설인지 그 경계가 모호하다. 이 작품을 쓴 이는 에세이 작가이자 헤엄 출판사 대표인 이슬아(30)다. 가족들과 함께 일했던 경험을 기반으로 처음 소설을 썼는데 반응이 폭발적이다. 온라인 서점 알라딘 10월 둘째 주 종합 순위 5위를 차지했고, 출간 열흘 만에 1만 부가 팔렸다. 이연실 이야기장수 대표는 “한 달 1만 원에 매일 글을 받아보는 에세이 시리즈 ‘일간 이슬아’로 팬덤을 형성한 이슬아 작가에게 20, 30대 여성들이 지지를 보내고 있다”며 “비유나 수사 없는 간결한 문체, 현학적이지 않고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주제로 쓰는 에세이 작가의 장점이 독자들을 사로잡았다”고 말했다.최근 에세이나 교양서로 화제를 끈 작가들이 펴낸 소설이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이들은 신춘문예 등 정식 등단 절차를 거치지 않았음에도 유명 소설가들 못지않은 팬덤을 바탕으로 서점가를 휩쓸고 있다.7일 출간된 단편소설집 ‘언러키 스타트업’(민음사)은 에세이 작가인 정지음이 펴낸 첫 소설집이다. 정 작가는 지난해 6월 자신의 정신질환을 고백한 에세이 ‘젊은 ADHD의 슬픔’(민음사) 펴냈는데 이 책이 2만 부 팔려 ‘핫한’ 작가로 떠올랐다. 올 2월 에세이 ‘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빅피시)까지 단 2권의 에세이를 출판한 신인이지만 ‘언러키…’는 출간 직후 각종 서점 소설 부문 베스트셀러에 올랐다.‘언러키…’ 역시 에세이 작가의 특성이 짙게 묻어난 작품. 박혜진 민음사 문학2팀장은 “작가가 자신이 겪은 황당한 에피소드를 블로그에 에세이로 써뒀던 것을 소설로 개작해 출판했다”며 “진짜 현실에서 벌어질법한 사건이 담겨서인지 독자들에게 와 닿는 것 같다”고 했다.2014년부터 2020년까지 펴낸 인문교양서 시리즈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지대넓얕)이 300만 부 팔려 화제에 오른 작가 채사장은 지난해 12월 자신의 첫 장편소설 ‘소마’(웨일북)를 펴냈다. ‘소마’에 대해 문학적인 평가는 엇갈리지만, 가독성이 높고 일상적인 언어로 쓰인 점이 대중을 사로잡았다. 올 5월 리커버북이 출간됐을 정도로 독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표정훈 출판평론가는 “소설을 영화 드라마 웹툰 등 여러 ‘이야기’ 중 하나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커지면서 과거보다 ‘문학성’에 대한 잣대가 덜 엄격해졌다”며 “읽기 쉬운 문장과 시대 흐름을 파고드는 기획력을 지닌 에세이, 교양서 작가들의 소설 전성시대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1860년 중국의 항구도시 샤먼(廈門). 영국 선교사 존 맥고언 목사의 부인은 끔찍한 광경을 목격했다. 이웃집에서 비명소리가 들려 뛰어가니 어머니가 딸의 발을 조여 매고 있었다. 발을 헝겊으로 싸매 인위적으로 작게 만드는 전족(纏足)이었다. 맥고언 부인은 말리려 했지만 어머니는 크게 화를 냈다. “전족은 우리가 과거부터 물려받은 기구한 운명”이라며 “만약 전족을 하지 않는다면 딸은 비웃음을 당하고 경멸의 대상이 된다”고 강변했다. 충격을 받은 부인은 집으로 돌아와 남편에게 이를 알렸다. 15년 뒤인 1875년 맥고언 목사는 이른바 ‘반(反)전족 운동’을 펼쳤다. 전족은 낡은 관습이고, 여성을 옭아맨다며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전족은 중국 지식인들에게도 많은 비판을 받았고 차츰 사라져 갔다. 물론 1999년에야 중국에 전족 신발을 생산하는 마지막 공장이 폐쇄됐을 정도로 그 고통의 역사는 길고 지난했다. 미국 컬럼비아대 버나드칼리지 역사학과 교수인 저자가 초점을 맞춘 건 바로 이 시점부터다. 홍콩계 미국인인 그는 전족을 무조건적으로 비판하지 않되, 1000년 가까이 보편화됐던 전족 문화가 왜 어떻게 사라졌는지를 담담하게 추적한다. 고전문학은 물론이고 신문이나 정부 문서, 서양인의 회고록 등을 두루 훑으며 퍼즐을 맞춰 간다. 전족은 참혹한 전통이지만, 반전족 운동이 성공한 배경에는 ‘오리엔탈리즘’이 작용했다는 걸 간과해선 안 된다. 아편전쟁 후 문호를 개방한 중국에 들어온 서양 세력이 자신들의 침략을 정당화하며 전족을 대표적인 중국의 악습으로 규정한 것이다. 반전족 운동에 앞장선 선교사들은 전족의 반대 개념으로 ‘천족(天足)’이란 신조어도 만들어낸다. “하느님이 준 자연스러운 발”이란 뜻으로 자신들의 기독교적 가치가 옳다는 의도다. 이 과정에서 전족에 반대한 중국 지식인들의 행동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저자가 보기에 그들은 서양의 시각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 당시 대표적 중국 개혁운동가였던 캉유웨이(1858∼1927)는 1898년 상소문을 올려 전족을 국가에서 금지하길 촉구해 다른 지식인들의 동참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전족의 진짜 피해자인 여성들의 목소리는 배제됐다. 물론 그렇다고 저자가 전족을 옹호하는 건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는 작은 발이 아름답다는 그릇된 환상은 권력자였던 남성들이 만든 ‘에로티시즘’이라 정의했다. 옛 중국의 남성 문인들은 독서와 글쓰기를 할 때 늘 애첩의 작은 발을 쥐고 있었다고 한다. 양갓집 규수들도 남성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소족회(小足會)’를 운영했을 정도다. 모든 게 남성의 취향에 맞춰져 있었다. 저자가 주목하는 건 반 전족 운동 이후 여성들의 삶이다. 중국 명절인 청명절(淸明節)이면 정성껏 작은 발을 단장해 내보이는 게 당연한 줄 알았던 이들. 전족이 폐지되며 그들의 삶은 나아졌을까. 그렇지 않았다. 제대로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갑자기 전족을 없애자 이미 작아진 발은 기형적으로 변했다. 전족을 할 땐 힘들어도 걸을 수 있었지만 전족을 풀자 걷기 힘들 정도로 발이 뒤틀려 버려 더욱 고통을 받았다. 전족이란 관습도, 반전족 운동도 여성들을 위한 게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원제인 ‘신데렐라의 자매들(Cinderella‘s Sisters)’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왕자는 예쁜 구두를 찾은 뒤 거기에 ‘발이 맞는’ 신데렐라를 찾아 헤맨다. 이젠 발이나 들여다보고 있는 왕자의 엉덩이를 걷어차 내쫓아야 할 때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1860년 중국의 항구도시 샤먼(廈門). 영국 선교사 존 맥고언 목사의 부인은 끔찍한 광경을 목격했다. 이웃집에서 비명소리가 들려 뛰어가니 어머니가 딸의 발을 조여 매고 있었다. 발을 헝겊으로 싸매 인위적으로 작게 만드는 전족(纏足)이었다. 맥고언 부인은 말리려 했지만 어머니는 크게 화를 냈다. “전족은 우리가 과거부터 물려받은 기구한 운명”이라며 “만약 전족을 하지 않는다면 딸은 비웃음을 당하고 경멸의 대상이 된다”고 강변했다. 충격을 받은 부인은 집으로 돌아와 남편에게 이를 알렸다. 15년 뒤인 1875년 맥고언 목사는 이른바 ‘반(反) 전족 운동’을 펼쳤다. 전족은 낡은 관습이고, 여성을 옭아맨다며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전족은 중국 지식인들에게도 많은 비판을 받았고 차츰 사라져갔다. 물론 1999년에야 중국에 전족 신발을 생산하는 마지막 공장이 폐쇄됐을 정도로 그 고통의 역사는 길고 지난했다. 미국 컬럼비아대 버나드칼리지 역사학과 교수인 저자가 초점을 맞춘 건 바로 이 시점부터다. 홍콩계 미국인인 그는 전족을 무조건적으로 비판하지 않되, 1000년 가까이 보편화됐던 전족 문화가 왜 어떻게 사라졌는지를 담담하게 추적한다. 고전문학은 물론 신문이나 정부문서, 서양인의 회고록 등을 두루 훑으며 퍼즐을 맞춰간다. 전족은 참혹한 전통이지만, 반 전족 운동이 성공한 배경에는 ‘오리엔탈리즘’이 작용했다는 걸 간과해선 안 된다. 아편전쟁 후 문호를 개방한 중국에 들어온 서양세력이 자신들의 침략을 정당화하며 전족을 대표적인 중국의 악습으로 규정한 것이다. 반 전족 운동에 앞장선 선교사들은 전족의 반대 개념으로 ‘천족(天足)’이란 신조어도 만들어낸다. “하느님이 준 자연스런 발”이란 뜻으로 자신들의 기독교적 가치가 옳다는 의도다. 이 과정에서 전족에 반대한 중국지식인들의 행동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저자가 보기에 그들은 서양의 시각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 당시 대표적 중국 개혁운동가였던 캉유웨이(1858~1927)는 1898년 상소문을 올려 전족을 국가에서 금지하길 촉구해 다른 지식인들의 동참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전족의 진짜 피해자인 여성들의 목소리는 배제됐다. 물론 그렇다고 저자가 전족을 옹호하는 건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는 작은 발이 아름답다는 그릇된 환상은 권력자였던 남성들이 만든 ‘에로티시즘’이라 정의했다. 옛 중국의 남성 문인들은 독서와 글쓰기를 할 때 늘 애첩의 작은 발을 쥐고 있었다고 한다. 양갓집 규수들도 남성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소족회’(小足會)를 운영했을 정도다. 모든 게 남성의 취향에 맞춰져 있었다. 저자가 주목하는 건 반 전족 운동 이후 여성들의 삶이다. 중국 명절인 청명절(淸明節)이면 정성껏 작은 발을 단장해 내보이는 게 당연한 줄 알았던 이들. 전족이 폐지되며 그들의 삶은 나아졌을까. 그렇지 않았다. 제대로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갑자기 전족을 없애자 이미 작아진 발은 기형적으로 변했다. 전족을 할 땐 힘들어도 걸을 수 있었지만 전족을 풀자 걷기 힘들 정도로 발이 뒤틀려버려 더욱 고통을 받았다. 전족이란 관습도 반 전족 운동도 여성들을 위한 게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원제인 ‘신데렐라의 자매들(Cinderella‘s Sisters)’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왕자는 예쁜 구두를 찾은 뒤 거기에 ‘발이 맞는’ 신데렐라를 찾아 헤맨다. 이젠 발이나 들여다보고 있는 왕자의 엉덩이를 걷어차 내쫓아야 할 때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놉펀’ ‘끼라띠’ ‘아티깐버디’. 지난달 30일 국내에 출간된 장편소설 ‘그림의 이면’(을유문화사)은 등장인물의 이름이 꽤나 생경하다. 내용은 그리 낯설지 않다. 놉펀은 아버지 친구인 아티깐버디, 그의 부인 끼라띠와 친밀해진다. 놉펀은 갈수록 아름다운 끼라띠의 치명적 매력에 젖어드는데…. 놉펀과 끼라띠가 불륜에 빠지며 세 사람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소설의 무대는 바로 태국. 동남아시아 대표 작가로 대접받는 씨부라파(1905∼1974)가 1938년 발표한 작품이다. 현지에선 대중적 인기 속에 고전 반열에 올랐고, 영화나 드라마로도 여러 차례 만들어지며 인기를 이어 왔다. 그간 국내에서 비주류로 여겨지며 다소 주목받지 못했던 동남아 문학이 최근 주목받고 있다. 출판계에선 서구 문학이나 중국 일본에 편향됐던 세계 문학의 저변이 넓어지고 있다며 반기는 분위기다. ‘그림의 이면’이 을유세계문학전집의 122번째 작품이 된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을유세계문학전집은 1959년 시작해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세계문학 시리즈지만 동남아 문학이 포함된 건 처음이다. 김경민 을유문화사 편집장은 “태국어를 전공한 교수가 번역을 맡아 원문의 정확성과 매력을 최대한 살리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인터넷서점 예스24를 운영하는 한세예스24문화재단도 올해 1월부터 ‘동남아시아 문학 총서’를 펴내고 있다. 지금까지 총 3권을 출간했다. 조영수 재단 이사장은 “국내 독자들에게 익숙지 않은 동남아 문학을 소개하려고 기획부터 4년을 투자했다”며 “총서란 이름에 걸맞게 꾸준하게 소개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베트남 작가 도빅투이(47)의 ‘영주’는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지도자와 이에 맞서는 민중의 갈등을 그려냈다. 인도네시아 작가 함카(1908∼1981)의 ‘판데르베익호의 침몰’은 네덜란드 식민시대에 차별받던 민초의 삶을 다뤘다. 태국 작가 아깟담끙 라피팟(1905∼1929)의 ‘인생이라는 이름의 연극’은 여성의 취업을 불허하던 근대 상류사회의 민낯을 드러냈다. 동남아 문학의 영역도 조금씩 다양해지고 있다. 올해 2월 출간된 베트남 작가 응우옌녓아인의 ‘내 이름은 베또’(오십구분북스)는 청소년 소설이다. 지난해 11월 국내에 소개된 미얀마 작가 띳싸니의 ‘나비’(안녕)는 단편소설집이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국내에 동남아 연구자들과 이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늘면서 동남아 문학을 소개할 인프라가 만들어지고 있다”며 “현지에서 한국 문화의 인기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만큼 문화 교류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다”라고 평가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놉펀’, ‘끼라띠’, ‘아티깐버디’. 지난달 30일 국내에 번역 출간된 장편소설 ‘그림의 이면’(을유문화사)엔 낯선 이름의 주인공이 나온다. 하지만 내용은 그리 낯설지 않다. 놉펀은 아버지의 친구 아티깐버디와 그의 아내 끼라띠를 돕다 친해진다. 그런데 놉펀은 끼라띠의 아름다운 외모와 치명적인 매력에 반하게 되는데… 놉펀과 끼라띠의 사랑이 시작되면서 세 사람의 삼각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태국 작가 씨부라파(1905~1974)가 1938년 발표한 이 작품은 동남아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위험한 사랑을 다뤄 대중의 사랑을 받았고 드라마와 영화로 수차례 만들어졌다. 이 작품이 한국에선 을유세계문학전집 122번째 작품으로 처음 소개됐다. 김경민 을유문화사 편집장은 “1959년 시작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을유세계문학전집에서 동남아시아 문학을 펴낸 건 처음”이라며 “낯선 나라의 작품인 만큼 태국어 전공 교수를 역자로 삼아 원문의 매력을 최대한 살리려 노력했다”고 말했다.그동안 비주류로 취급됐던 동남아시아 문학이 최근 국내에 속속 출간되고 있다.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 서양 문학에 치우친 세계문학의 저변이 넓어지고 있는 신호다. 인터넷서점 예스24를 운영하는 한세예스24문화재단은 올 1월부터 ‘동남아시아문학 총서 시리즈’를 펴내고 있다. 베트남 작가 도빅투이(47)의 장편소설 ‘영주’는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는 지도자와 이에 맞서는 민중의 갈등을 섬세하게 그려낸 수작이다. 인도네시아 작가 함카(1908~1981)의 장편소설 ‘판데르베익호의 침몰’은 네덜란드 식민시대 차별받았던 인도네시아 국민들의 삶을 다뤘다. 태국 작가 아깟담끙 라피팟(1905~1929)의 장편소설 ‘인생이라는 이름의 연극’은 여성이 직업을 갖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근대 태국 상류사회의 민낯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조영수 한세예스24문화재단 이사장은 “한국 독자들에게 낯선 동남아 문학작품을 소개하기 위해 기획부터 출간까지 4년을 투자했다”며 “총서라는 이름에 걸맞게 동남아문학을 꾸준히 소개할 계획”이라고 했다.지난해 11월 출간된 미얀마 작가 띳사니의 단편소설집 ‘나비’(안녕), 올 2월 출간된 베트남 작가 응우옌녓아인의 청소년 소설 ‘내 이름은 베또’(오십구분북스) 등 종류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국내 연구자들의 저변이 넓어지면서 동남아시아 문학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며 “동남아시아에서 한국 대중문화와 문학의 인기가 치솟고 있는 만큼 상호 문화 교류가 커지는 경향은 지속될 것”이라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우리는 문학을 통해 다른 이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고요. 문학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대죠.” 레바논 출신 프랑스 작가 아민 말루프(73·사진)는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12일 열린 제11회 박경리문학상 수상 기자간담회에서 전쟁, 핵위협 등 세계적 혼란 상황에 대해 묻자 이렇게 말했다. 박경리 선생(1926∼2008)을 기리기 위해 2011년 제정된 박경리문학상은 토지문화재단과 원주시가 공동 주최한다. 상금은 1억 원이다. 레바논에서 태어난 그는 레바논에서 일간지 기자로 활동하다가 내전이 발발하자 1975년 프랑스로 이주했다. 십자군 전쟁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보여준 장편소설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1983년·아침이슬)처럼 첨예한 역사 문제를 파고드는 작품을 써왔다. 레바논 민족의 수난을 담은 장편소설 ‘타니오스의 바위’(1993년·정신세계사)로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프랑스 공쿠르상을 받았다. 시대를 관찰하고 평화를 노래하는 작가로 불리며 매년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된다. 전쟁이 벌어지는 이유를 묻자 그는 “기술 발전으로 물리적으론 서로 가까워졌지만 정신적으로는 거리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인간은 즉각적이고 단기적인 해결에 만족해 (평화를 위한) 장기적인 방안을 찾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을 “가능성을 현실로 만든 기적의 나라”라고 평가했다.“1960년대 경제 상황이 비슷했던 중동 여러 나라와 달리 한국은 번영을 이루고 세계적인 위상을 갖게 됐습니다. 어떤 나라는 어떤 시점에서 전진하고 후퇴하는지 답을 구하고 싶어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마음속 스크린이 불을 켜면/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사람들이 손짓을 해요/ (중략) 시간은 해일처럼 눈앞에 다가와/ 현실의 문을 자꾸 두드리는데/ 아! 어떡하죠/ 이제야 재미를 알아 버렸는데’(시 ‘작은 도서관’ 중) 충남 당진시 ‘원당꿈초롱 작은도서관’ 이용자 홍정임 씨(55)는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잠시 도서관이 문을 닫자 집에서 홀로 시를 썼다. 도서관에서 책에 푹 빠지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창작을 시작한 것. 그는 17편의 작품을 출품해 ‘당진 신진 문학인’에 선정됐고 65편의 시를 모아 지난해 11월 시집 ‘익숙함과의 이별 후’(책과나무)를 펴냈다. 5일 찾은 원당꿈초롱 작은도서관은 194m² 규모로 아담하지만 약 1만8000권의 책으로 가득했다. 홍 씨는 자신의 시집을 들어올리며 시에 담은 마음을 수줍게 고백했다. “책에 푹 빠져 있는데 도서관 문을 닫을 시간이 된 거예요. 얼마나 아쉬워요. 책 속에서 만나야 할 사람과 가야 할 곳이 아직 남았는데 떠나야 하는 제 기분이 시에서 느껴지시나요.” 작은도서관은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대표 김수연 목사)이 KB국민은행 후원을 받아 전국 각지에 짓고 있다. 2008년 경기 부천시 도란도란도서관으로 시작한 작은도서관은 전국 곳곳을 채워 100개에 달한다. 2008년 5월 문을 연 원당꿈초롱 작은도서관은 7호 작은도서관이다.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은 2019년 이 작은도서관의 전면 리모델링을 했다. 제주가 고향인 홍 씨는 2000년 결혼과 동시에 당진에 자리 잡았다. 15년 동안 전업주부로 남편 뒷바라지와 두 아들의 육아만 하고 살다가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에야 여유가 조금 생겼다. 남편과 두 아이를 아침에 챙겨 보낸 뒤 텅 빈 집에서 헛헛한 마음을 달래던 차에 지인에게 “작은도서관에서 독서 토론 동아리 회원을 모집하니 가입해 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전업주부로 지내며 책 한 권 제대로 못 읽었던 그였지만 2015년부터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원당꿈초롱 작은도서관에 드나들면서 인생이 달라졌다. “7년 동안 1주일에 1번씩 책을 읽고 토론하면서 시야가 넓어졌어요. 같은 책을 읽어도 내 생각과 남의 생각이 다르다는 걸 깨달았죠. 책 한 권 안 읽던 제가 독서 토론 동아리 회장까지 맡게 됐습니다.” 그는 독서를 시작한 뒤 좋아하는 문장을 필사하다가 2016년부터 캘리그래피를 배우기 시작해 캘리그래피 준전문작가 자격증까지 땄다. 올 8월 수필 창작 동아리 회원들과 시화전을 열기도 했다. “책은 의식을 확장하고, 영혼을 성장시키는 최고의 도구예요. 책을 빌려 읽은 덕에 사유하는 힘이 생겼죠. 난생처음 시를 쓰게 된 뒤 일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뀐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2010년)의 주인공 미자(윤정희)처럼 인생이 달라졌어요.” 그는 최근 수필 창작 동아리에 가입해 에세이를 쓰고 있다. 올해 3월부터는 일주일에 두 번씩 초등학생들에게 시를 가르치고 있다. “시바타 도요(1911∼2013)라는 일본 시인이 있어요. 평범한 할머니였지만 92세에 시 쓰기를 시작하고 98세에 첫 시집 ‘약해지지 마’를 펴냈는데 일본에서 150만 부가 팔려 화제가 됐죠. 저 역시 나이가 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만 했는데 작은도서관을 만난 뒤 하고 싶은 일이 많아졌습니다. 제 세상이 아주 넓게 확장됐어요!”당진=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마음속 스크린이 불을 켜면/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사람들이 손짓을 해요/ 마치 꿈속 같아요 … 시간은 해일처럼 눈앞에 다가와/ 현실의 문을 자꾸 두드리는데/ 아! 어떡하죠/ 이제야 재미를 알아 버렸는데’(시 ‘작은 도서관’ 중) 충남 당진시 ‘원당꿈초롱 작은도서관’ 이용자 홍정임 씨(55)는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잠시 도서관이 문을 닫자 집에서 홀로 시를 썼다. 도서관에서 책에 푹 빠지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창작을 시작한 것. 그는 이 시 등 17편의 작품을 출품해 ‘당진 신진 문학인’에 선정됐고 65편의 시를 모아 지난해 11월 시집 ‘익숙함과의 이별 후’(책과나무)를 펴냈다. 5일 찾은 원당꿈초롱 작은도서관은 194㎡ 규모로 아담하지만 약 1만8000권의 책으로 가득한 ‘책의 천국’이었다. 이날 만난 홍 씨는 자신의 시집을 자랑스럽게 들어올리며 시에 담은 마음을 수줍게 고백했다. “책에 푹 빠져 있는데 도서관 문을 닫을 시간이 된 거에요. 얼마나 아쉬워요. 책 속에서 만나야 할 사람과 가야할 곳이 아직 남았는데 떠나야하는 제 기분이 시에서 느껴지시나요. 호호.” 작은도서관은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대표 김수연 목사)이 KB국민은행 후원을 받아 전국 각지에 짓고 있다. 2008년 경기 부천시 도란도란도서관으로 시작한 작은도서관은 전국 곳곳을 채워 100개에 달한다. 2008년 5월 문을 연 원당꿈초롱 작은도서관은 7호 작은도서관이다. 홍 씨가 원당꿈초롱 작은도서관을 처음 찾은 건 2015년이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독서 토론 동아리 회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도서관을 찾았다. 자가용으로 30분이 걸리는 시립도서관과 달리 작은도서관은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어 방문이 편했다. 처음 동아리 회원들과 서먹했지만 책이 매개체가 돼 친구도 여럿 생겼다. 지금은 독서 토론 동아리 회장을 할 정도로 열심히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7년 동안 1주일에 1번씩 책을 읽고 토론하면서 시야가 넓어졌어요. 같은 책을 읽어도 내 생각과 남의 생각이 다르다는걸 깨달았죠. 코로나19로 모임을 열지 못했을 땐 줌으로 토론했죠.” 그는 매일 오전 10시 작은도서관을 찾고, 1년에 50여 권의 책을 빌려 읽는다. 독서하다 뜻 깊은 문장을 필사하다 캘리그라피를 하게 됐고, 독서 후 마음속에 담긴 생각을 풀어내다 시를 쓰게 됐다. “책은 의식을 확장하고, 영혼을 성장시키는 최고의 도구에요. 책을 읽은 덕에 사유하는 힘이 생겼죠. 또 글쓰기를 하면서 무심코 지나가던 일상을 자세히 관찰하게 됐습니다. 남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고 공감을 하게 됐고요. 난생 처음 시를 쓰게 된 뒤 일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뀐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2010)의 주인공 미자(윤정희)처럼 인생이 달라졌어요.” 그는 최근 수필 창작 동아리에 가입해 에세이를 쓰고 있다. 올해 3월부터는 1주일에 2번씩 초등학생들에게 시를 가르치고 있다. 그에게 작은도서관의 의미를 물으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일본 시인 중에 시바타 도요(1911~2013)라는 분이 있어요. 평범한 할머니였지만 92세에 시 쓰기를 시작하고 98세에 첫 시집 ‘약해지지 마’(2010·지식여행)를 펴냈는데 일본에서 150만 부가 팔려 화제가 됐죠. 저 역시 나이가 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만 했는데 작은도서관을 만난 뒤 하고 싶은 일이 많아졌습니다. 작은도서관은 제 세상을 확장시켰어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제36회 인촌상 시상식이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11일 열렸다. 인촌상은 일제강점기에 동아일보를 창간하고 경성방직과 고려대를 설립한 민족 지도자 인촌 선생의 유지를 이어 나가기 위해 1987년 제정됐다. 재단법인 인촌기념회(이사장 이용훈)와 동아일보사는 인촌 선생의 탄생일인 10월 11일에 맞춰 매년 시상식을 열고 있다. 이날 수상자는 △민족사관고등학교(교육) △이수지 그림책 작가(언론·문화) △김인환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인문·사회) △권성훈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과학·기술)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특별상)로 각각 상장과 메달, 상금 1억 원을 받았다.▶ 수상자 공적은 9월 6일자 A8면 참조 이용훈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나라를 빼앗겨 어려웠던 시기에 주저하지 않고 행동에 나선 인촌 선생처럼 수상자들은 새로운 길을 개척한 선구자들이다”라며 “인촌상 수상을 계기로 더 빛나는 별이 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김도연 인촌상 운영위원장은 수상자 선정 경위를 보고했다. 운영위원회는 외부 심사위원 16명을 위촉하고 후보군을 추린 뒤 6∼8월에 수차례 회의를 열고 최종 수상자를 확정했다. 강원 횡성군 민족사관고등학교는 입시 위주가 아닌 자율에 기반한 교육을 추구하면서도 다수의 학생들을 명문대에 진학시켰다. 한만위 교장(62)은 “민족주체성 교육과 융합영재 교육을 중심에 두고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민족을 가슴에 새기고 세계를 품 안에 담을 진정한 지도자를 계속 양성해 나가겠다”고 했다. 이수지 작가(48)는 올해 3월 한국인 최초로 ‘어린이책의 노벨 문학상’으로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그림 작가 부문을 수상했다. 이 작가는 “인촌상이 가장 근본적이고 열려 있는 태도를 담고 있는 예술 장르인 그림책에 주목하고 공헌을 인정해줬다”며 “멋진 그림책의 세계를 꾸준히 넓혀가는 노력으로 상에 보답하겠다”고 밝혔다. 김인환 명예교수(76)는 기존 문학이론에 기대지 않고 한국 문학 작품을 구체적으로 분석해 문학의 4가지 개념인 운율과 비유, 구성, 문체를 정립했다. 김 교수는 “문학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삶을 향해 나아가는 수행”이라며 “인촌 선생의 공선사후(公先私後)와 동일한 의미인 극기복례(克己復禮)는 사심을 극복하고 공동선을 실행한다는 뜻으로, 이를 위한 노력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권성훈 교수(47)는 개인별 맞춤의학용 진단 기술을 개발해 온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권 교수는 “전 세계 병원에서 우리 장비를 써서 매일 많은 환자들이 위기를 넘기고 살아나는 미래를 생각하면 행복하다”며 “더 많은 후배들이 연구하고, 창업에 도전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항우연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는 올 6월 누리호 발사를 성공으로 이끈 주역이다. 고정환 본부장은 “누리호 개발은 온갖 역경을 넘어서며 진행했다. 지난해 1차 발사의 아쉬운 실패에도 많은 국민의 응원으로 더 힘을 낼 수 있었다. 앞으로 더 잘하라는 숙제를 받은 것 같다”고 했다. 이날 시상식 전에 항우연 연구진 4명을 인터뷰했던 어린이과학동아 어린이 기자 박예지 양(8)은 단상에 올라 “우리나라 연구원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누리호를 발사한 것이 너무 자랑스럽고 제가 연구원이 된 것처럼 기뻤다”고 말했다. 박도윤 군(8)은 “제가 어른이 됐을 때는 우리나라 기술로 만든 탐사선을 타고 다른 행성을 연구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날 시상식엔 안병영 전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정성진 전 법무부 장관, 유욱준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 김진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축하 공연은 동아뮤지컬콩쿠르 수상자인 뮤지컬 배우 장윤석 정예은 씨가 펼쳤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오징어게임’이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주최하는 ‘제4회 아시아 콘텐츠 어워즈’에서 각각 2관왕에 올랐다.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8일 열린 시상식에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작품상에 해당하는 ‘베스트콘텐츠’로 선정됐다. 주인공 우영우를 연기한 배우 박은빈은 여자배우상을 수상했다. 박은빈은 “우영우를 사랑하며 보낸 시간은 제게 특별하다. 우영우를 제 안에 잘 담아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큰 사랑을 보내준 국내외 시청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오징어게임’은 베스트콘텐츠 기술상을 수상했으며, 조상우를 연기한 배우 박해수는 남자조연상을 받았다. 박해수는 “항상 능력보다 더 많은 운이 따랐고, 해왔던 것보다 많은 영광을 얻고 있다”며 “한국 콘텐츠 발전에 기여하는 배우가 되겠다”고 했다. 베스트 아시아 애니메이션은 일본의 ‘지구 밖 소년소녀’가, 베스트 아시아 다큐멘터리는 필리핀의 ‘아톰아라울로 특별전: 어린 일꾼들’이 받았다. 남자배우상은 일본 드라마 ‘달리는 응급실’의 스즈키 료헤이, 여자조연상은 싱가포르 드라마 ‘디스 랜드 이즈 마인’의 소라 마에게 돌아갔다. 2019년 제정된 아시아 콘텐츠 어워즈는 영화관에서 개봉하지 않는, 아시아에서 제작한 TV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온라인 콘텐츠를 대상으로 한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네이버웹툰에서 연재하고 있는 뉴질랜드 출신 작가 레이철 스마이스의 웹툰 ‘로어 올림푸스’(사진)가 만화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미국 하비상을 2년 연속 수상했다. 네이버웹툰은 “로어 올림푸스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하비상 ‘올해의 디지털 북’으로 선정됐다”고 9일 밝혔다. 2018년 신설된 이 부문에서 2년 연속 수상작이 나온 건 처음이다. 로어 올림푸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저승의 신 하데스와 여신 페르세포네의 사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하비상은 미 만화가이자 편집자인 하비 커츠먼을 기리기 위해 1988년 만들어졌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종종 서울 용산구 노들섬 복합문화공간에 있는 서점 ‘노들서가’를 찾곤 한다. 노들서가는 1인용 소파와 책이 가득하다. 날씨가 좋으면 통유리창으로 한강 풍경이 펼쳐져 애서가들의 천국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최근 노들서가를 찾았다가 씁쓸한 광경을 마주했다. 노들서가가 있던 기존 공간이 현대미술 전시장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노들서가는 다른 건물로 옮겨졌는데 이전보다 협소해졌다. 어쩐지 책보다 그림이 인기인 현 세태가 반영된 듯해 괜히 슬퍼졌다. ‘브루클린 책방…’은 제목처럼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사는 한국인 번역가의 에세이다. 저자는 틈만 나면 아이와 함께 서점에 가는 독서광. 브루클린에 있는 서점 주인들을 인터뷰해 50년 넘는 세월 동안 한자리를 지켜 온 비결을 들여다봤다. 월세가 어마무시하다는 뉴욕 한복판에서 서점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까닭은 뭘까. ‘테라스 북스’는 “단골 집중 공략”이 키워드. 특정 고객이 좋아할 만한 책이 나오면 직접 연락해 알려준다. 주말마다 아동 독서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파워하우스 온 에잇스’는 “동네 작가 발굴”에 중점을 뒀다. 인근에 사는 작가들이 자주 서점으로 와서 독자들과 직접 만나도록 주선했다. ‘센터 포 픽션’은 “글쓰기 공간 대여”로 유명하다. 작가들에게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을 저렴한 비용으로 빌려준다. 독자가 책을 사러 들렀다가 우연히 좋아하는 작가라도 만난다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서점마다 특색을 지녔지만 공통점도 눈에 띈다. 브루클린 서점 직원 중에는 본업이 소설가나 극작가, 시인인 이들이 많다고 한다. 고객은 이들에게 무슨 책을 읽으면 좋을지 직접 물어보기도 하고, 잠시 짬을 갖고 책에 대한 수다를 떨기도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서점 운영이 쉽진 않았을 땐, 작가이자 서점 직원인 이들이 온라인으로 서점을 살리기 위한 자금을 모으기도 했다. 저자는 “브루클린 서점이 커피 한 잔 팔지 않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힘은 결국 사람에게서 나왔다”고 강조한다. 미국도 아마존이 서점에 위기를 불러왔지만, 한국 상황은 더 심각하다. 책을 주문하면 매장에 가지 않아도 책을 받을 수 있는 배송서비스가 시작된 이래 동네서점은 찾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대안적으로 생겨난 북카페도 막상 가보면 책을 읽기보단 노트북으로 작업하는 고객이 훨씬 많다. 어떻게 하면 우리도 브루클린처럼 근사한 문화적 향취를 지닌 서점들을 만들 수 있을까. 물론 지금도 여러 작가들이 직접 서점을 운영하는가 하면, 다양한 행사를 통해 작가와 독자가 만날 기회가 없진 않다. 하지만 누군가 “일상적인 풍경이냐”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하기 힘들다. 물론 이런 문화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씩 책방에서 작가와 편안하게 수다 떨고 책을 추천받는 세상을 꿈꾸는 이들이 늘어나면 분명 한두 곳씩 생겨날 수 있다. 언젠가 서울에 ‘브루클린 책방’처럼 자연스레 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서점이 생긴다면 꼭 단골이 되고 싶다. 이번 주말, 아이의 손을 잡고 노들서가에 가보길 추천한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프랑스 여성 소설가 아니 에르노(82·사진)가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스웨덴 한림원은 6일(현지 시간) “개인적 기억의 근원과 소외, 집단적 구속의 덮개를 벗긴 용기와 꾸밈없는 예리함을 보여줬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프랑스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것은 2014년 소설가 파트리크 모디아노 이후 8년 만이다. 프랑스 릴본에서 태어난 에르노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로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루앙대에서 문학을 전공했고 1974년 자전적 소설 ‘빈 옷장’으로 등단했다. ‘남자의 자리’ ‘사건’ 등 개인적 경험을 통해 사회 구조를 파헤친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상금은 1000만 크로나(약 12억8000만 원)다. 에르노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17번째 여성 작가가 됐다. 국내에는 ‘빈 옷장’을 비롯해 ‘탐닉’ ‘집착’ 등 주요 작품이 20권 가까이 출간됐다.허구 아닌 체험한 것만 글로 써… 낙태-빈곤 등 날것 그대로 ‘폭로’ 佛 여성작가 에르노의 삶과 작품세계소상인 딸로 태어나 교직 거쳐 등단…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는 주제에 천착폭력-성적 억압 등 파격적 문학실험… 기성 문단 ‘문학 아닌 노출증’ 비난도생존작가 첫 갈리마르 총서로 출간 “자신의 가면 파헤친 용기 평가받아” “우리는 (사회적 문제가 아닌) 작품 자체와 문학적 질에 집중한다. 지난해 수상자는 비(非)유럽인이었고 올해 수상자는 여성이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의 범위를 넓히는 것도 중요하다.” 스웨덴 한림원은 6일 프랑스 여성 작가 아니 에르노(82)를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발표한 직후 이렇게 설명했다. 문학적 성취를 강조하면서도 페미니즘, 성 문제에 천착해온 여성 작가를 선정한 이유를 명확히 밝혔다. 지난해 수상자는 아프리카 탄자니아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하는 소설가 압둘라자크 구르나(74)였다. 신수정 문학평론가(명지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는 “한림원이 80세가 넘은 여성 작가를 수상자로 선정한 건 자신의 가면을 가차 없이 파헤치는 작가의 용기를 높게 평가한 것”이라며 “젠더와 계급에 대한 억압, 차별을 폭로한 작가를 선정한 한림원 발표에 ‘용감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평가했다. 에르노는 1940년 프랑스 소도시 릴본에서 카페 겸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소상인의 딸로 태어났다. 루앙대를 졸업하고 중등학교 교사가 됐다. 1971년 현대문학교수 자격시험에 합격한 뒤 2000년까지 문학교수를 지냈다. 1974년 자전적 소설 ‘빈 옷장’으로 등단한 뒤 소설 ‘남자의 자리’로 1984년 프랑스 4대 문학상 가운데 하나인 르노도상을 수상했다. 2003년에는 그의 이름을 딴 ‘아니 에르노 문학상’이 프랑스에서 제정됐다. 2011년 선집 ‘삶을 쓰다’로 생존 작가 최초로 갈리마르 총서로 출간되는 기록도 세웠다. 그는 스스로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단언했다. 실제 2001년 펴낸 대표작인 장편소설 ‘탐닉’에는 허구가 없다. 작가는 자신이 연인과 만나고 헤어지기까지인 1988년 9월부터 1990년 4월까지의 일기를 공개했다. 이 일기를 쓸 당시에도 에르노는 이름난 작가였으며, 연인은 35세의 파리 주재 소련대사관 직원이었다. 에르노는 작가들의 소련 여행을 수행하던 연인과 레닌그라드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파리로 돌아왔고, 연인이 소련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내연 관계를 이어갔다. 그는 사회적으로도 금기시되는 주제에 천착했다. 임신 중절 경험, 노동자 계층의 빈곤, 문화적 결핍, 가부장제적 폭력, 부르주아의 위선, 성적 억압 등에 대해 문학적 실험을 이어갔다. 2002년 출간한 장편소설 ‘집착’에서 그는 감정의 밑바닥까지 내려간 추한 모습까지도 솔직하게 드러낸다. 이 작품에서 ‘나’는 스스로 연인을 떠났다가 곧 연인에게 새로운 애인이 생기자 집착을 하기 시작하는데 이를 고백한 것. 2020년 발표한 단편 선집 ‘카사노바 호텔’에서도 폭로는 이어진다. 이 작품에서 현실에 지친 ‘나’는 오랜만에 옛 애인을 만나 근처의 카사노바 호텔로 향한다. 어머니의 병이 나날이 심해지고 있지만 ‘나’는 애인과 카사노바 호텔에서 사랑을 나누는 파격적인 서사가 펼쳐진다. 폭로를 통해 그가 그려내려 한 건 구원이다. 소상인의 딸로 태어나서 열등감과 자기혐오부터 내면화해야 했던 자신을 구원해준 것이 바로 문학이었다. 이런 자기 폭로를 통해 독자에게 공감과 연대감을 불러일으키려 했다. 모든 버림받고 소외당한 이들을 살아 있게 해준 것이 글쓰기라고 그는 고백한다. 처음 기성 문단은 “에르노의 작품을 과연 ‘문학’이라 부를 수 있느냐”고 비판했다. 폭로로 점철된 ‘노출증’이라고 치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에르노의 문학적 도전은 멈추지 않았고, 결국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내면적인 것은 여전히, 그리고 항상 사회적이다. 왜냐하면 하나의 순수한 자아 속에 타인, 법,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에르노)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이호재 기자 hoho@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평생 서울에 살다 11년 전 괴산에 왔어요. 그런데 청년들이 도시에만 희망이 있다며 떠나는 걸 보고 안타까워 방법을 고민하다 잡지를 생각해 냈죠.” 백창화 숲속의작은책방·괴산책문화네트워크 대표는 충북 괴산군 일대를 다룬 잡지 ‘툭’을 펴낸 이유를 지난달 29일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서울에서 출판, 도서관 관련 일을 한 그는 2011년 괴산군에 온 뒤 2014년 ‘숲속의작은책방’을 열었다. 괴산의 다른 동네책방과 괴산책문화네트워크를 운영하며 지난달 ‘툭’을 창간했다. 백 대표는 “지역에는 아름답고 의미 있는 것이 남아 있다”며 “지역에도 미래가 있다는 걸 보여줄 것”이라고 했다. ‘툭’ 창간 논의가 시작된 건 지난해 봄. 숲속의작은책방의 백창화 김병록, 열매문고의 엄유주, 문화잇다·정한책방의 천정한 박희영, 쿠쿠루쿠쿠의 임희선, 목도사진관·자루북스의 이영규 대표가 모여 얘기하다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을 방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들은 모두 서울에서 출판, 사진, 영화 등 예술 분야에서 일하다 2∼11년 전 귀촌했다. 각자 인터뷰할 이들을 찾고 취재해 잡지를 완성했다. 기획부터 출간까지 1년 6개월 걸렸다. 제작비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지원받은 1000만 원으로 충당했다. 200쪽에 달하는 창간호는 괴산군 토박이들과 이곳에 터를 잡은 이들을 조명했다. 때가 되면 열리는 장날, 오래된 구멍가게와 이발소, 목공소 등 정겨운 풍경을 실었다. 오랜 가게를 취재하자 주민들은 “이런 평범한 일을 하는 우리를 정말 잡지에 실을 수 있냐”며 깜짝 놀랐다. 취지를 설명하자 주민들은 쑥스러워하면서도 자신의 일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백 대표는 “외지 출신인 우리를 편견 없이 대해 준 괴산 주민들 덕에 잡지를 만들 수 있었다”고 했다. 솔맹이골 작은도서관의 한승주 관장, 김현숙 마을문화디자이너, 문화교육을 하는 문화학교 숲의 임완준 대표, 나무 인형을 만드는 한명철 작가도 인터뷰했다. 유기농업을 하는 조희부 눈비산마을 이사장, 청년농부인 김성규 괴산군 4H 연합회장도 조명했다. 2000부를 찍은 창간호 초판은 거의 다 팔려 2쇄를 준비하고 있다. 8일 ‘괴산 북페어’에서는 툭 출간기념회도 열린다. 천정한 문화잇다·정한책방 대표는 “여건이 되면 매년 한 권씩 잡지를 낼 계획”이라며 “약 3만8000명이 사는 인구소멸지역인 괴산이 살아나고 문화 콘텐츠도 가득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전 평생 서울에 살다가 11년 전에 희망을 찾아서 충북 괴산군에 왔어요. 그런데 이곳 청년들이 도시로 희망을 찾아 떠나는 걸 보고 안타까워 방법이 없나 고민하다 ‘잡지’를 생각해냈죠.” 백창화 괴산책문화네트워크 대표는 괴산군 일대를 다루는 지역 잡지 ‘툭’ 창간호를 펴낸 이유를 지난달 29일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서울에서 잡지 출판, 도서관 관련 일을 하던 그는 2011년 괴산군으로 귀촌한 뒤 2014년 동네책방 ‘숲속의작은책방’을 열었다. 지난달 8일엔 괴산군의 다른 동네책방과 힘을 합쳐 ‘툭’을 창간했다. 백 대표는 “요즘 지방은 몰락하는 공간처럼 여겨지지만 여전히 이곳엔 아름답고 의미 있는 것들이 남아있다”며 “지역에도 미래가 있다는 걸 잡지로 보여줄 것”이라고 했다.‘툭’ 창간 논의가 시작된 건 지난해 봄이다. '문화잇다ㆍ정한책방' 박희영 천정한, '쿠쿠루쿠쿠' 임희선, '열매문고' 엄유주, '숲속의작은책방' 백창화 김병록, '목도사진관ㆍ자루북스' 이영규 대표가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 지역에 활력을 부여할 방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표들은 모두 서울에서 출판, 사진, 영화 등 문화예술 분야에서 일하다 2~11년 전 귀촌했다. 대표들이 각자 시간을 들여 인터뷰할 이들을 찾고 취재해 잡지를 완성했다. 기획부터 출간까지 1년 6개월이 걸린 프로젝트였다. 제작비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지원 받은 1000만 원으로 충당했다. 200쪽에 이르는 창간호는 괴산군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이들을 조명했다. 솔맹이골 작은도서관의 한승주 관장, 사라지는 마을을 꾸미는 김현숙 마을문화디자이너, 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문화교육을 펼치는 문화학교 숲의 임완준ㆍ이애란 대표, 나무 인형을 만드는 한명철 작가 등 문화예술가들을 인터뷰했다. 유기농업에 앞장서고 있는 조희부 눈비산마을 이사장, 청년농부인 김성규 괴산군 4H 연합회장처럼 생업에 종사하는 이들도 바라봤다. 때가 되면 돌아오는 장날, 마을에 오랫동안 자리 잡은 구멍가게처럼 정겨운 괴산군의 풍경도 실었다. 대표들이 정성을 들인 글과 사진에선 지역에 대한 애정이 물씬 묻어난다. 창간호 초판은 2000부를 찍었는데 거의 다 팔려 2쇄를 준비하고 있다. 여건이 허락된다면 앞으로 매년 한 권의 잡지를 낼 계획이라는 게 창간 멤버들의 생각이다. 인구가 약 3만8000명으로 인구소멸지역인데다 문화예술적으로 소외된 괴산군을 살리는 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무료 노동’을 감수하겠다는 것이다. 대표들은 8일 ‘괴산 북페어’에서 툭 출간기념회와 각종 문화예술 행사도 연다. 천정한 문화잇다ㆍ정한책방 대표는 “잡지를 만드는 이들 중 괴산군에서 태어나 자란 이는 없지만 이곳을 살리고 싶다는 마음은 모두 같다”며 “잡지 창간을 시작으로 괴산군에 문화 콘텐츠가 가득해지길 바란다. 소멸 위기에 처한 농촌을 잡지로 살리겠다”고 다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직장 다니느라 15년 동안 시를 한 편도 안 쓴 적이 있어요. 저는 한때나마 시를 버렸던 시인인데, 시는 저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처럼 제 손을 잡고 50년이나 이끌어준 시에게 감사 인사부터 드립니다.” 정호승 시인(72)은 9월 29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등단 50주년 기념 북토크’에서 시란 존재에 고마움부터 표했다. 1972년 등단해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창비·1979년),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열림원·1998년) 등으로 한국 서정시에 큰 획을 그은 시인이지만 가정을 이루고 생업에 쫓기면서 시 쓰기를 놓았던 지난날부터 고백했다. “시를 50년 썼다는 것보다 나이가 일흔 살이 넘었다는 게 더 충격입니다, 하하. 특히 최근 10년 동안 뭐했나 싶은데, 시집 몇 권 쓴 것 말곤 매일 밥 많이 먹은 것뿐이네요.” 농과 달리 시인은 여전히 시에 진심이다. 9월 23일 14번째 시집인 ‘슬픔이 택배로 왔다’(창비)를 펴냈다. 2020년 ‘당신을 찾아서’(창비) 이후 2년 만이다. 이날 정 시인은 직접 시집에 담은 시를 차분히 낭송했다. 머리가 희끗한 중년 독자는 눈을 감은 채 시를 음미했고, 젊은 여성 독자들은 스마트폰을 들고 촬영했다. 나이도 성별도 달랐지만 시인의 목소리로 시를 듣는 순간만큼은 모두가 하나였다. “슬픔이 택배로 왔다/누가 보냈는지 모른다/보낸 사람 이름도 주소도 적혀 있지 않다/서둘러 슬픔의 박스와 포장지를 벗긴다/벗겨도 벗겨도 슬픔은 나오지 않는다.”(시 ‘택배’에서) 이번 시집엔 유독 눈에 띄는 글자가 하나 있다. ‘내가 땅에 떨어진다는 것은/책임을 진다는 것이다’(시 ‘낙과’에서) 등 시 6편에 ‘떨어질 락’(落) 자가 들어 있다. 시인은 “아파트 단지를 산책하다가 바닥에 떨어진 채 향기를 내며 썩어가는 모과를 보고 썼다”고 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내 인생은 어떻게 져야 하는가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여러분, 시를 찾고 싶으면 인생을 찬찬히 들여다보세요. (직접 쓰지 않아도) 삶 속에 시가 있습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2008년 데뷔 때만 해도 일부가 즐기는 콘텐츠로 여겨지던 웹툰이 이제는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어 무척 기쁩니다. 코스튬까지 하고 온 만화 마니아들의 열정이 축제를 더욱 신나게 만드네요.” 30일 경기 부천시 한국만화박물관에서 개막한 제25회 부천국제만화축제(BICOF)에서 만난 구아진 작가(36)는 수많은 관람객이 몰린 축제 현장을 보고 놀라워했다. 구 작가는 웹툰 ‘미래의 골동품 가게’로 올해 부천만화대상을 받았다. 부천국제만화축제는 1998년부터 시작된 국내 최대의 만화축제다. 2019년 축제가 열린 뒤 신종 코로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줄곧 비대면으로 개최되다가 3년 만에 다시 오프라인으로 개최됐다. 올해 축제의 주제는 ‘이:세계’. 판타지만화 장르의 주요 키워드인 이(異)세계와 웹툰을 의미하는 e세계의 의미를 동시에 담았다고 한다. 축제 현장은 주제처럼 별천지였다. 만화가 원작인 미국 영화 ‘트랜스포머’에 나오는 범블비가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관람객들과 손바닥을 마주치며 흥을 돋웠다. 슈퍼마리오와 스파이더맨 등 남녀노소에게 친숙한 캐릭터들이 관객을 맞았다. 부천국제만화축제 관계자는 “3년 만에 열린 축제다 보니 개막일에만 1000명 이상 몰리는 등 분위기가 뜨거웠다. 앞으로도 모두가 함께 즐기는 축제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했다. 축제는 3일까지 이어진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남자는 여자를 보고 한눈에 사랑에 빠졌다. 남자는 여자에게 다가갔지만 여자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기만 했다. 남자의 속은 부글부글 끓었다. 분노가 밀려왔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는 여자를 칼로 수차례 찔러 죽였다. 남자는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사랑에 빠진 남자, 칼로 저지른 살인, 우발적 범행 주장…. 독자들은 이 이야기를 읽고 ‘신당역 스토킹 살해범’ 전주환(31·구속)을 떠올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사건은 영국에서 26년간 100여 건의 살인 사건을 조사한 법정신의학자 리처드 테일러 박사가 참여한 ‘자비에르 살인사건’이다. 남자는 영국에서 일하는 건축가 자비에르(가명)다. 런던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난 수지(가명)에게 반해 스토킹을 지속해 왔다. 자비에르는 수지를 살해한 뒤 자수하면서 “사건 직후 썼다”며 경찰에 자신의 유언장을 건넸다. 하지만 경찰이 자비에르의 컴퓨터를 조사한 결과 자비에르는 사건 일주일 전에 이미 유서를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계획적 살인이었던 셈이다. 법원은 자비에르에게 종신형을 선고했다. 테일러 박사는 스토킹 범죄를 ‘사랑의 병적인 확장’이라고 부른다. 사랑하는 이에게서 사랑을 받지 못할 때 배신감, 질투, 시기 등 여러 감정을 복합적으로 겪는다. 대부분은 이 감정을 잘 소화하지만 일부는 그러지 못한다. 자존감에 깊은 상처를 입는다. 이들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어떻게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어? 난 거절할 수 없는 매력을 지녔는데….” 결국 “넌 나한테만 충실해야 해” “난 널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어”라는 합리화를 통해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다. 저자인 테일러 박사는 살인자의 동기를 주목한다. 수사기관이 ‘누가 범행을 저질렀는지’를 찾는다면 테일러 박사가 파고드는 건 ‘왜 범행을 저질렀는지’다. 특히 살인자의 약 30%가 감형을 위해 범행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사법체계에서 법정신의학자의 역할은 중요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캠든 리퍼’ 사건이다. 영국 연쇄살인마 남성 앤서니 하디는 2003년 성매매 종사자 등 3명의 여성을 성폭행한 뒤 죽였다. 하디는 시신을 절단해 검은색 플라스틱 쓰레기통에 버리는 등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다. 수사기관 조사에서 그는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경찰은 연쇄살인에 초점을 맞췄지만 테일러 박사는 성폭행에 주목했다. 하디의 집에서 포르노 비디오테이프, 다양한 체위를 묘사한 그림이 발견돼 왜곡된 성적 인식을 지녔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테일러 박사는 하디에겐 특히 성적인 갈망뿐만 아니라 여성을 욕망의 대상으로 평가절하하는 마음도 있었다고 분석한다. 법원은 이 결과를 바탕으로 하디에게 종신형을 선고한다. 말 못 하는 어린 자식을 죽인 부모, 푼돈을 노리다 엉겁결에 살인을 저지른 강도, 종교적 믿음에 빠져 끔찍한 테러를 저지른 테러범,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을 살해를 한 정신이상자…. 테일러 박사는 끔찍한 사건들을 책에 담은 건 “살인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라고 고백한다. ‘사람을 죽이는 사람들’을 만든 건 사람들이라는 뼈아픈 지적이다. 특히 스토킹 범죄의 배경으로 ‘여성 혐오’와 ‘가부장 문화’를 짚는 테일러 박사의 말을 오래 곱씹게 된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제가 만화를 그리게 된 건 다른 세계를 그리고 싶어서였어요. 2008년 데뷔 때만 해도 일부가 즐기는 콘텐츠로 여겨지던 웹툰이 이제는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어 무척 기쁩니다. 코스튬까지 하고 온 만화 마니아들의 열정이 축제를 더욱 신나게 만드네요.” 9월 30일 경기 부천시 한국만화박물관에서 개막한 제25회 부천국제만화축제(BICOF)에서 만난 구아진 작가(36)는 수많은 관람객이 몰린 축제 현장을 보고 놀라워했다. 구 작가는 웹툰 ‘미래의 골동품 가게’로 올해 부천만화대상을 받았다. 부천국제만화축제는 1998년부터 시작된 국내 최대의 만화축제다. 2019년 축제가 열린 뒤 신종 코로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줄곧 비대면으로 개최되다가 3년 만에 다시 오프라인으로 개최됐다. 올해 축제의 주제는 ‘이:세계.’ 판타지만화 장르의 주요 키워드인 이(異)세계와 웹툰을 의미하는 e세계의 의미를 동시에 담았다고 한다. 축제 현장은 주제처럼 별천지였다. 만화가 원작인 미국영화 ‘트랜스포머’에 나오는 범블비가 거리를 돌아다니며 관람객들과 손바닥을 마주치며 흥을 돋웠다. 슈퍼마리오와 스파이더맨 등 남녀노소에게 친숙한 캐릭터들이 관객을 맞았다. 부천국제만화축제 관계자는 “3년 만에 열린 축제다보니 개막일에만 1000명 이상 몰리는 등 분위기가 뜨거웠다. 앞으로도 모두가 함께 즐기는 축제로 만들어나가겠다”고 했다. 축제는 3일까지 이어진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