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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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송평인 논설위원입니다.

pisong@donga.com

취재분야

2024-10-24~2024-11-23
칼럼94%
사설/칼럼3%
문학/출판3%
  • [횡설수설/송평인]삐라의 추억

    난 어릴 적 대구 근방에 살았기 때문에 삐라는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보지 못했다. 어린 시절을 서울 근처나 서울 이북에서 산 친구들 얘길 들어보면 삐라를 주워 파출소에 갖다 주면 경찰 아저씨가 기특하다고 연필도 한 자루씩 주고 그랬던 모양이다. 살을 에는 듯한 추운 겨울에도 아이들은 삐라를 줍는다고 산으로 들로 돌아다니기도 했다. 연필 한 자루가 귀하던 시절, 삐라를 보고 북한을 동경해 월북하는 사람도 간혹 있었다. ▷삐라를 신물 나게 본 것은 1980년대 후반 군 복무할 때다. 그때는 KAL기 폭파범 김현희가 조작된 인물이라고 선전하는 삐라가 주로 뿌려졌다. 김현희의 사진과, 김현희가 어린 시절 자기 모습이라고 주장했다는 사진의 귀 모습을 비교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삐라만 보고 있으면 김현희가 가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중에 노무현 정권 시절인 2003년 MBC PD수첩은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의 남편 심재환 변호사를 출연시켜 김현희는 가짜라고 주장하는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그 내용이 삐라에 나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삐라는 영어로 전단을 뜻하는 빌(bill)에서 나왔다. 미군이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에 뿌린 빌에 일본 사람들이 자기네 말로 조각을 의미하는 히라(片)를 결합해 삐라라고 불렀다는 설이 가장 그럴듯해 보인다. 삐라는 정보가 차단된 상태에서 상대편의 무지를 이용해 선전 선동을 하는 데 쓰이는 게 대부분이다. 그러나 정보가 차단된 상대편에게 진실을 알리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미군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기 전에 일본 주민에게 대피하라고 알린 빌이 그랬다. ▷북한은 이제 삐라를 뿌릴 필요도 없다. 인터넷을 통해 얼마든지 남한 사회에서의 심리전이 가능하다. 하지만 북한은 온라인에서조차 외부와 차단돼 있다. 여기에 심리전에서 남북한의 비대칭이 발생한다. 북한이 우리 군도 아니고 민간단체가 살포하는 삐라에 대해 선전포고 행위라고 주장하고 총으로 위협한다. 과거 북한이 그렇게 뿌려대던 삐라는 다 무엇이었는가.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4-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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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손석희만 오보한 환풍구 사고

    손석희 씨는 지난주 금요일 오후 8시 JTBC 뉴스를 다음과 같은 앵커 멘트로 시작했다. “경기도 성남 판교 테크노밸리에서 걸그룹 공연 도중 환풍구가 붕괴하면서 25명이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대부분이 안타깝게도 학생이었는데요.” 난 손석희 뉴스의 애청자는 아니다. 손석희 뉴스를 본방송으로 본 것은 아니고 트위터에서 “손석희 뉴스는 성남 참사 소식으로 1시간 반을 온통 채웠다…박근혜 소식으로 뉴스를 치장한 공중파보다 더 재난방송 같다”는 글을 읽고 관심이 가 스마트폰에서 ‘다시 보기’로 봤다. 손 씨가 뉴스를 시작한 오후 8시는 사상자 중 단 한 사람의 신원도 밝혀지지 않았던 시간이다. 그는 희생자를 학생으로 볼 어떤 근거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희생자가 학생이라고 단정하면서 뉴스를 시작했다. 학생으로 추정된다도 아니었다. 그는 젊은 학생들이 희생됐다는 점을 이후에도 수차례 강조했다. 뉴스가 한 15분쯤 흐른 뒤 분당차병원에 나가 있던 기자가 35세 남성, 29세 여성, 40대로 추정되는 남성이 사망했다며 사망자의 인적 사항을 처음으로 전했다. 손 씨에게서 “사망자가 학생이 아니네요. 안타까운 죽음이 더 있습니다”라는 멘트가 나왔다. 학생이 대부분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망자도 있다니 안타까움이 더하다는 그런 반응이었다. 이후 일부 부상자 신원도 밝혀졌는데 10대는 없었다. 뉴스가 50분쯤 흐른 뒤 한 목격자가 전화를 했다. 목격자는 손 씨가 학생 피해를 중심으로 언급하는 게 불만이었던지 “학생들도 있긴 했지만 학생들보다 회사원들이 많았다”며 “수정해 주고 싶어 전화했다”고 말했다. 그 전에 환풍구 주위에는 버스 정류장이 있어 퇴근길에 들른 직장인이 많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손 씨는 그제야 어린 학생들의 피해가 많다는 예단(豫斷)을 버린 것으로 보이는 멘트를 하기 시작했다. 사망자 16명과 부상자 11명의 신원은 사고 당일 밤 12시쯤 돼서야 다 밝혀졌다. 10대는 사망자는 물론이고 부상자 중에도 없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많은 방송사가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냈다. 그것이 수정되기까지는 약 20분이 걸렸다. 손 씨가 잘못된 예단을 수정하는 데는 40∼50분이 걸렸다. 전원 구조 오보는 경찰 교신과 경기도교육청의 문자메시지 내용이 근거라면 근거다. 손 씨의 예단에는 그런 근거도 없다. 난 집이 분당이다. 사고 당일 오후 7시가 조금 넘어 걸그룹 공연 중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아이 걱정이 돼 전화를 걸었더니 다행히 집에 있었다. 포미닛이 온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고 했다. 혹시 카톡에 학교 친구들 중 다친 사람이 있다는 얘기가 도는 건 없냐고 하니까 없다고 했다. 그러고는 학생들이 공연에 간다면 몇 시간 전부터 가서 앞자리 차지하고 기다리지 환풍구 같은 데 올라가서 보지는 않을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누구나 걸그룹 공연 중 사고가 났다면 학생들이 다쳤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기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은 예단을 갖고 현장에 접근한다. 그러나 제대로 된 기자라면 예단은 머릿속에만 갖고 있지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취재에 들어가 보면 예단을 뛰어넘는 일이 늘 있기 때문이다. 그날 희생자를 학생이라고 단정한 방송사는 손석희 뉴스가 유일하다. 아나운서 출신인 그가 취재를 해본 경험이 많지 않다는 것도 한 이유일 것이다. 다만 그는 뉴스 끝부분에 환풍구 붕괴 ‘사건’이라고 말했다. 분명 말실수다. 붕괴는 보통 사고이지 사건은 아니다. 그러나 말실수에 숨은 진심이 드러나기도 한다. 사고를 사건으로 보고 싶었던 마음에 섣불리 예단을 말해버린 것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4-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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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가톨릭과 동성애

    성경에 ‘남색(男色)하는 자’라는 말이 나온다. 동성애를 뜻하는 남색은 영어로는 소도미(sodomy)다. 이 단어의 기원은 성경에 나오는 타락한 도시 ‘소돔과 고모라’의 소돔에 있다. 성경에 동성애를 한 자는 ‘죽일지니라’라고 돼 있다. 사도 바울은 동성애를 타락의 극치로 봤다. 중세 가톨릭교회의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도 동성애는 중죄로 취급했다. 종교개혁가 루터와 칼뱅은 물론이고 계몽된 칸트도 마찬가지였다. ▷기독교에서 동성애에 대한 관용은 20세기 들어와 개신교에서 시작됐다. 1916년 게이들을 위한 교회가 세계 최초로 호주 시드니에 생겼다. 게이를 처음 성직자로 임명한 것은 1964년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교단이다. 레즈비언은 1977년 영국 성공회에 처음 성직자로 임명됐다. 미국 최대 교단인 미국장로회가 2007년 동성애자의 성직을 허용하자 일부 교회가 탈퇴했다. 개신교는 뜻이 다르면 갈라설 수 있다. 그것이 단점이자 강점이다. 동성애를 인정하는 교회가 계속 늘겠지만 그렇지 않은 교회도 살아남을 것이다. ▷가톨릭은 개신교와 달리 하나의 보편 교회를 지향한다. 교황이 결정하면 모든 나라 모든 교구의 주교가 따라야 한다. 결정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톨릭 역사상 최초로 동성애 논의의 물꼬를 텄다. 아직 동거와 이혼도 허용하지 않은 가톨릭이 동거, 이혼과 함께 동성애까지 패키지로 다룬다는 것이 상당히 의외다. 일단 동거 이혼 동성애, 모두 포용하고 인정하자는 취지에서 논의가 시작된다고 한다. ▷가톨릭이 동성애를 인정한다면 동성애자에게 영세를 거부하는 제한부터 없애야 한다. 동성애자에게 영세를 줄 수 있다면 동성 간 혼례성사와 동성애자 신부 수품을 금지할 근거도 희박해진다. 보수파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된다. 가톨릭이 동성애자를 죄인 취급하지 않겠다는 정도의 극히 온건한 결론이 날 수도 있다. 그래도 진전이다. 성에 대해 과거와 달리 많은 것을 알게 된 오늘날, 교회도 천성적인 동성애와 천성과 무관한 동성애를 구별할 때가 됐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4-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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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역사 入社시험

    현대자동차가 올 하반기 입사(入社) 시험에 또 까다로운 역사 에세이를 출제했다. ‘로마제국과 몽골제국의 부흥 사례가 현대차에 시사하는 글로벌 전략 방향’과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조선시대 인물과 그 이유’라는 문제다. 명색이 신문사 논설위원인 나도 답하기 만만치 않다. 첫 번째 문제에 대해서는 로마제국이나 몽골제국이 가는 곳마다 현지 문화 포용정책으로 성공한 제국이라는 점을 부각시킬 수 있겠다. 두 번째 문제는 광해군처럼 군(君)으로 격하된 왕의 현실주의적 외교를 재평가 사례로 들어볼 수 있겠다. ▷그제 삼성 입사시험인 삼성직무적성검사(SSAT)에도 난도가 높은 역사 문제가 많이 출제됐다. ‘개화기 조선을 침략한 국가를 순서대로 나열한 것을 고르시오’ ‘급진개화파 김옥균과 온건개화파 김홍집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을 고르시오’ 같은 문제다. 삼성이 점점 더 이공계 출신을 선호한다는 얘기가 나오지만 이런 문제는 이공계는 말할 것도 없고 문과 출신도 풀기가 쉽지 않아 상대적으로 문과 학생들이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요새 회사 신입사원 중에는 “논개가 여자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만큼 최근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이 역사를 모른다는 얘기다. 현재 고교 1학년 이하로는 한국사가 대학수학능력시험 필수과목이 돼 역사를 공부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이들 입사하고 싶어 하는 삼성 현대차 같은 대기업에서 입사시험에 역사를 출제하면 역사를 배우지 않고 대학에 들어간 현재의 대학생들도 역사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상당수 대기업이 최근 1, 2년 사이 입사시험에 역사 문항을 앞다퉈 도입했다. 대기업 회사원이 역사적 안목까지 갖추는 건 바람직한 일이다. 다만 이런 추세가 수능에 한국사를 필수과목으로 도입한 박근혜 정권의 구미에 맞추려고 몇 년간 하다 마는 것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삼성은 내년 하반기부터 SSAT를 폐지하고 서류전형을 도입한다니 역사 문제가 나오는 것은 내년 상반기까지다. 현대차가 역사 에세이 문제를 박 대통령이 퇴임한 이후에도 계속 내는지 지켜볼 일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4-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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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국사 교과서는 진지전이다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에 반대한다. 현재 한국사 검정교과서들이 갖고 있는 문제를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나도 고등학교 자녀를 둔 학부모로서 내 아이가 배우는 한국사 교과서를 보면서 걱정이 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필수화하지 않았다면 차라리 배우게 하고 싶지 않다. 교학사 교과서의 사실상 실패는 안타까운 일이다. 좌파 역사학계의 공격이 다양성 확보라는 검정체제의 취지를 거스르는 부당한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그렇다고 좌파 역사학계만 탓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교학사 교과서가 적지 않은 결함으로 공격의 빌미를 제공한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라도 최대한 결함이 적은 교과서를 만들어 극복하는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가 앞뒤 재보지도 않고 덜컥 한국사를 필수화 해놓고 마땅한 교과서가 없으니까 이제 검정을 국정으로 바꾸려고 한다. 이 정부는 국정화를 하면 교학사 교과서 실패를 뛰어넘는 최종적 승리를 얻는다고 여길지 모르겠다. 그러나 누구나 알다시피 다음 정권이 그것을 뒤집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 한 그 승리는 결코 승리가 될 수 없다. 교과서를 둘러싼 싸움은 그람시식으로 말하자면 진지전이다. 단번에 승패를 결정짓는 섬멸전이 아니라 조금씩 영토를 넓혀가는 진지전이다. 한 사회는 군대와 경찰만이 아니라 체제를 정당화하는 논리가 있어야 유지된다. 교과서는 그런 논리를 전파하는 주요한 수단 중의 하나다. 정당화는 설득으로 되는 것이다. 억지로 주입시킨다고 되지 않는다. 좌파 역사학계는 오랫동안 이런 진지전에 공을 들였다. 그들의 토대를 마련해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박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이 민족정신을 강화한다며 국사를 필수화하면서 역사 전공자를 위한 많은 자리가 만들어졌다. 그런 자리가 나중에 야금야금 ‘해방전후사의 인식’류의 역사의식을 가진 사람들 차지가 됐다. 오랜 기간에 걸쳐 빼앗긴 것을 다시 빼앗아 오려면 역시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교과서를 둘러싼 싸움은 단기간만 내다봐서는 안 된다. 박 대통령이 임기 내에 이 싸움을 끝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진지전의 승리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대통령 퇴임 후에도 필생의 임무로 여기고 할 생각이 있다면, 그렇다면 해보라. 내 책꽂이에는 1996년 김영삼 정부에서 발간된 한국사 국정교과서가 있다. 한국사 국정교과서는 이후로는 새로 나오지 않았다. 한국사 국정교과서를 검정교과서로 바꾸는 결정은 김영삼 정부가 내렸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그 결정을 번복하지 않고 따랐을 뿐이다. 우파 정부가 채택한 정책이 좌파 정부에서 번복되지 않고 이어질 때, 또 좌파 정부가 채택한 정책이 우파 정부에서 번복되지 않고 계속 이어질 때 그런 것을 합의라고 부른다. 한국사 교과서 검정화는 교육정책에서 보기 드문 합의의 사례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2012년 새누리당 원내대표로서 국회선진화법을 주도한 사람이다. 그때 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그 통과를 추인한 사람이 박 대통령이다. 그들은 합의의 정치를 위해 국회선진화법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선진국에서도 사례를 찾아볼 수 없는 족보 없는 합의 정치를 하려고 하지 말고, 있는 합의나 잘 지키라고 말해주고 싶다. 민주주의 사회에 하나의 올바른 역사는 없다. 하나의 올바른 역사, 즉 정사(正史)는 엄격히 말해 왕조시대에나 가능하다. 대한민국의 건국과 발전을 긍정하는 한국사 교과서가 사실상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국정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검정체제의 합의를 통해 이룩한 진보를 되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4-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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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여배우 김부선의 생활진보

    여배우 김부선은 영화 ‘애마부인’으로 이름을 얻었다. 애마부인은 1982년 야간 통행금지가 없어진 해의 분위기 속에서 만들어져 전 시대와 다른 과감한 성 표현을 시도한 영화다. 영화 1000만 명 동원 운운하는 오늘날에는 우습게 보일지 모르지만 개봉 당시 10만 명 이상을 동원했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애마부인은 인기에 힘입어 시리즈로 제작됐고 김부선은 ‘애마부인 3’에서 여주인공을 맡았다. ▷왕년의 애마부인이 최근 같은 아파트 주민과 주먹을 주고받으며 싸우는 모습이 찍힌 폐쇄회로(CC)TV 동영상이 공개됐다. 단순 폭행 사건인 줄 알았더니 아파트 관리비를 둘러싼 싸움이었다. 해당구청이 이 아파트의 겨울철 난방비 부과내용을 조사했는데 난방비가 제로(0)인 경우가 300건이나 있었다. 경찰은 상당수 가구가 열량계를 의도적으로 조작한 단서를 확보하고 조사 중이다. ▷김부선은 2008년 총선 당시 홍세화 진중권 등과 함께 진보신당의 홍보대사로 활동했다. 그가 진보신당과 인연을 맺은 건 대마초 때문이다. 전인권이 대마초 흡연으로 구속돼 있을 때 정치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진보신당의 노회찬 전 의원만이 응답을 해왔다고 한다. 김부선 자신이 대마초로 2번 구속된 바 있고 대마초 금지가 위헌이라고 주장하며 헌법소원을 낸 적도 있다. 대마초로 수감생활을 하면서 재소자와 전과자의 권리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여배우여서 성 상납 제의를 받은 적도 있다. 그가 정치에 눈을 뜬 계기라고 한다. ▷그는 지금은 배우직을 생계수단으로 해서 살아가며 겨울철이면 자기 집만 많이 나와 보이는 난방비에 속이 상하는 소시민이다. 방송에서 제 성격을 참지 못해 마구 쏟아내는 말 때문에 아빠 없이 키운 딸마저 창피하다며 집을 나가버려 혼자 사는 불쌍한 엄마다. 그러나 그는 아파트 경비원에게 따뜻한 국 한 그릇을 나눠주면서 느낀 행복감을 페이스북에 글로 올리는 사람이기도 하다. 대리운전기사에게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호통치며 갑질 하는 입만 살아 있는 진보들은 김부선의 생활진보에서 배워야 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4-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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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정종섭의 기이한 침묵뒤 궤변

    나는 2년 전 국회선진화법 통과 직후 헌법학자의 의견을 들어보기 위해 김철수 명지대 석좌교수와 정종섭 서울대 교수에게 전화한 적이 있다. 김 교수는 이 법을 마뜩지 않아 하는 게 확연히 느껴졌으나 “제자가 주도한 법”이라며 답변을 피했다. 정 교수는 그 문제라면 대답하기 곤란하니 끊었으면 좋겠다는 기색이 말은 안 해도 역력히 전해졌다. 그러고 나서 보니 김 교수는 국회선진화법 통과를 주도한 황우여 교육부 장관, 즉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서울대 법대 은사이면서 그의 박사학위 논문까지 지도했다. 정 교수는 황 원내대표의 서울대 법대 후배가 되면서 그 얼마 전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황 원내대표 체제에서 새누리당 공천심사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다. 김 교수는 올 들어 국회의장 직속 헌법개정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나서야 “자문위에서 국회선진화법이 헌법이나 다수결의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는 말이 나왔다”고 말했다. 우회적이지만 본인의 생각도 들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 교수는 사실상 침묵했다. 그가 신문에 누구 못지않게 많은 기고를 한 사람이었기에 그 침묵은 기이했다. 그런 그가 지난주 세월호 특별법을 두고 국회가 마비된 상황에서 안전행정부 장관으로서 논평을 부탁받고 입을 열었다. “헌법이론적으로 봤을 때 국회선진화법은 긍정적이다. 다수결이 아닌 합의적 민주주의를 추구한 것이다. 다만 부분적인 기제만 합의적이라 작동을 안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의원)내각제 같으면 국회 해산이다. 내각제는 합의제, 대통령제는 다수결제에 기반한다. 국회 처리 과정에 합의제 모델만 집어넣고 반드시 있어야 할 국회 해산 제도가 없어서 그렇다.” 내가 놀란 것은 그가 느닷없이 국회 해산을 끌어들여서가 아니다. 총명했던 헌법학자가 궤변을 늘어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에서 합의제가 예외적으로 다수결제를 보완하는 경우는 있지만 원칙은 다수결이다. 게다가 내각제야말로 다수결에 기반한다. 내각제에서 제1당은 독자적으로든, 연정을 통하든 과반을 확보하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내각제에서의 국회 해산은 과반을 확보하지 못해서이지 합의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가 헌법이론적으로 긍정 운운한 합의적 민주주의가 실제 어떻게 반(反)민주적으로 작동하는지 보여주는 데 19대 국회보다 더 좋은 실례는 없다. 야당이 과반의 지지도 얻지 못하는 법을 ‘법안 연계 처리’라는 방식으로 통과시키는 것을 보라. 이것은 다수의 지배가 아니라 소수의 지배다. 이렇게 처리된 법안까지 합산해서 ‘식물국회가 동물국회보다 낫다’고 말하는 한심한 언론인도 있다. 국회선진화법은 되돌아올 다리를 불살라버린 법이다. 이 법의 통과는 과반으로 이뤄졌으나 되돌리려면 5분의 3의 동의가 필요하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어떤 정당도 5분의 3의 의석을 가져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 법은 이론적으로는 되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려 있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이것이 이 법의 진짜 고약한 점이다. 차라리 의심할 여지없이 명백한 위헌이면 낫겠다. 그러면 헌법재판소에 제소해서 무효화하는 길이라도 있지 않은가. 국회선진화법으로 국회 마비는 만성이 되고 국회가 국가위기 상황에서 제대로 작동할지도 확신할 수 없게 돼버렸다. 정 교수는 박근혜-황우여 조(組)의 근접거리에 있던 인연으로 장관까지 됐다. 그가 메피스토펠레스처럼 그들의 귀에 대고 국회선진화법은 문제없으니 통과시키라고 속삭였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가 그 법을 제지하지도 않고 또 비판하지도 않음으로써 헌법학자가 꼭 필요할 때 제대로 경고음을 울리지 못한것은 틀림없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4-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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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惡에 참수되는 기자들

    스마트폰으로는 미국 NBC 뉴스가 보기 편하다. 어제 출근하다 NBC 뉴스를 보니 앵커 브라이언이 테러집단 이슬람국가(IS)의 두 번째 미국 기자 참수 소식을 전했다. 담당 특파원은 스티븐 소틀로프 기자가 참수당했다는 짧은 리드를 전한 직후 부연 설명을 하기에 앞서 이렇게 말했다. “브라이언, 이 말을 꼭 해야겠다. 그는 끝까지 매우 용감했다.” ‘용감했다’는 말 뒤에 소틀로프가 견뎌야 했던 참수의 공포가 더 생생히 전해지는 듯했다. ▷소틀로프의 나이 겨우 31세. 타임지 등을 위해 활동했던 프리랜서 기자로 시리아에서 취재 중 1년 전에 실종됐다. 그의 처형은 2주 전 미국 프리랜서 사진기자 제임스 폴리가 참수될 때 예고됐다. 지난주 소틀로프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언론을 통해 IS에 간청했지만 소용없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역겹고(disgusting) 야비한(despicable) 행위”라고 비난했다. ▷미국 언론인보호위원회(CPJ) 집계에 따르면 1992년 이후 현재까지 취재 중 피살된 기자의 수는 1073명. 가장 최근 피살된 기자가 2주 전에 참수된 폴리다. 소틀로프가 곧 명단에 오르면 그 수는 1074명이 될 것이다. 피살되는 기자는 대부분 분쟁지역에서 취재하다 죽는다. 우리나라 기자들은 분쟁지역 취재를 잘 가지 않아 1074명 중에 우리나라 기자는 한 명도 없다. 일본인 기자는 6명이 포함돼 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부끄럽다고 해야 할까. ▷외신 뉴스를 오랫동안 지켜봤지만 최근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영역을 넓히는 IS처럼 극악무도한 테러집단을 보지 못했다. 탈레반과 알카에다도 잔인하지만 그들은 민간인에게 저지른 만행을 최대한 외부 세계에 숨기려 한다. 반면 IS는 민간인을 집단으로 총살하는 장면을 아무렇지도 않게 공개한다. 그리고 게임하듯 잔인함의 강도를 높여간다. 지금도 곳곳에서 제네바협정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전례 없이 악랄해지고 국가만큼 강력해지는 테러집단을 상대하는 기자들에게 존경과 위로를 보낸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4-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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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조희연, 블레어에게 좀 배우라

    얼마 전 여름휴가 때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의 회고록 ‘여정’을 읽었다. 영국 노동당을 현대화한 그가 교육에서도 노동당의 평준화 집착에서 벗어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잘 나타나 있다. 영국 런던 첼시에 ‘런던 오러토리 스쿨’이라는 학교가 있다. 요새 말로 런던에서 가장 핫한 학교 중 하나다. 사립학교(public school)도 아니고, 시험 쳐서 들어가는 그래머스쿨(grammer school)도 아니고, 평준화 학교인 종합학교(comprehensive school)인데도 그렇다. 특색이 있다면 가톨릭계 학교라는 점이다. 영세를 받은 학생에게 우선적으로 입학 자격이 주어진다. 가톨릭계 학교는 정부 예산만 아니라 지역 가톨릭 공동체로부터 기부를 받기 때문에 일반 종합학교보다 예산이 풍족하다. 일반 종합학교와는 달리 엄격한 교육 전통이 살아있어 학습 분위기도 좋다. 무엇보다 예술 체육 교육이 충실하다. 이 학교에 자녀를 보내려고 자녀가 유아일 때 영세를 줘놓고 대비하는 학부모도 적지 않다는 가디언지(紙)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블레어는 1994년 노동당 당수가 되던 해 첫째 아들을 이 학교에 보냈다. 당시 노동당원들은 자녀를 일반 종합학교에 보내는 것이 의무처럼 돼 있었다. 1960년대 학교 선택제를 폐지하고 종합학교를 도입한 것이 바로 노동당이었다. 블레어는 “가톨릭계 종합학교일 뿐”이라고 했지만 받아들이는 쪽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머스쿨은 보수당 교육구에만 남아있는데 오러토리는 노동당 교육구의 그래머스쿨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블레어는 위선적이라는 논란에 휩싸였다. 그러나 블레어는 “나는 아이들을 실망시킬 수 없다고 결심했다. 아이들을 좋은 학교에 보낼 수 있음에도 교육수준이 낮거나 보통인 일반 종합학교에 보내는 것은 너무도 무책임한 일”이라며 결국 오러토리에 보냈다. 블레어가 이 일로 난처했을 때 그의 섀도 내각에서 장관직을 맡은 해리엇 하먼은 한수 더 떠 둘째 아이를 그래머스쿨에 보냈다. 해리엇은 이미 첫째 아이를 오러토리에 보냈다. 블레어는 “그래머스쿨에 보내기로 한 것은 부모로서 그녀가 선택할 일”이라고 변호했다. 블레어는 후에 둘째와 셋째 아이도 오러토리에 보냈다. 영국은 독일 프랑스에 비해서도 교육 평준화를 강력히 추진한 나라다. 그런데도 노동당 지도부에서조차 이런 균열을 막지 못했다. 독일은 초등학교 4학년 때 대학에 갈 능력이 있는 아이와 직업교육을 받아야 할 아이를 나누는 나라다. 사회민주당은 대학준비학교인 김나지움(Gymnasium)과 직업학교를 통합한 게잠트슐레(Gesamtschule)를 도입했지만 사실상 실패했다. 프랑스는 공립학교 일색일 것 같지만 반(半)공립 반사립(priv´e sous contrat)학교가 의외로 많다. 좋은 반공립 반사립학교는 상당한 학비를 받는다. 교육열이 있는 학부모들은 자녀를 좋은 반공립 반사립학교에 보내려고 애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박정희 대통령에 비판적인 사람이다. 그런 그가 박정희의 평준화 정책만은 높이 사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박정희를 칭찬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자신을 합리화하고 싶은 것이겠지만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말이라도 박정희식 평준화 정책을 들먹이다니 정말 세상물정 모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 교육감은 자녀를 외국어고에 보냈다. 블레어나 조 교육감이나 자녀를 좋은 학교에 보냈다는 점에서는 같다. 다만 블레어는 자기가 보내고 나서 그 학교를 없애거나 하지 않았다. 조 교육감은 자사고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그는 ‘자사고는 외고가 아니다’라고 변명할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교육관이 일관성 있어 보이는 것은 아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4-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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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애국가 낮춰 부르기 음모론

    안익태의 애국가는 본래 가(A)장조다. 가장조 애국가의 최고음은 높은 미(E)다. 높은 미만 돼도 따라 부르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 특히 초등학생들은 성대가 채 발달하지 않았고, 중고교생들은 대개 변성기여서 더욱 그렇다. 서울시교육청이 애국가를 장3도 낮춰 바(F)장조로 보급하고 있다. 바장조 곡의 최고음은 높은 도(C)가 된다. 높은 도는 웬만하면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다. ▷애국가의 고음부가 내려오는 것은 좋은데 저음부도 같이 내려온다는 게 문제다. 가장조에서는 최저음이 도(C)#인데 바장조로 낮추면 낮은 라(A)까지 내려온다. 적지 않은 음들이 낮은 음계에서 움직여 곡이 처진다. 어느 음악가가 “원곡의 기백이 사라진 맥 빠진 애국가가 됐다”면서 “애국가를 운동권 노래보다 아래에 두려는 음모가 깔려 있다”고 주장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애국가 낮춰 부르기가 조희연 현 서울 교육감이 아니라 문용린 전 교육감 시절에 추진된 것으로 드러나 그 주장은 근거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음모론까지 가지 않더라도 애국가 낮춰 부르기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꽤 있다. 애국가 선율은 안익태의 ‘코리아 환타지’에 들어 있다. 작곡가가 곡을 가장조로 썼으니 그 조로 연주해야 곡의 느낌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지만 그것이 꼭 가장조를 고집해야 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코리아 환타지 속의 애국가는 현대적인 기악곡 속에 들어있는 합창곡이다. 그런 곡을 일반인에게 음높이까지 그대로 따라 부르라는 것은 교조적 태도다. ▷애국가를 불러본 사람이면 대부분 낮춰 부를 필요성을 느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왜 서울시교육청이 굳이 두 음을 낮췄는지는 이해하기 어렵다. 사실 한 음만 낮춰 사(G)장조로 불러도 애국가는 수월하게 부를 수 있다. 이 경우 최고음은 높은 레(D), 최저음은 낮은 시(B)가 된다. 사람들이 가장 부르기 좋은 음역이다. 시중에 돌아다니는 애국가 악보에는 사장조 악보가 많다. 불러보면 바장조처럼 처지지 않으면서도 가장조의 밝은 느낌이 살아 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4-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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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동력 떨어진 유민 아빠의 단식

    경기 안산 단원고 고(故) 김유민 양의 아버지 김영오 씨는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났을 때 자신과 세월호 유가족의 편지를 전하고 꼭 읽어 달라고 부탁했다. 세월호 유가족의 편지에는 ‘이혼 이후 두 딸을 어렵게 키우던 유민 아빠’라는 말이 나온다. 일반 국민들은 유민 아빠가 이혼하고 직접 키우던 두 딸 중 하나를 잃은 줄 알았다. 교황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김 씨가 얼마 전 단식을 하다 병원에 실려 갈 때 마음이 얼마나 아프면 저렇게까지 할까 모두 동정했다. 그런데 이혼 이후 두 딸을 키운 것은 유민 아빠가 아니라 유민 엄마라는 사실이 유민 엄마 남동생의 폭로를 통해 뒤늦게 드러났다. 김 씨는 자신이 가난해서 양육비는 매달 보내지 못하고 몇 달에 한 번씩 보낼 때도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10년간 보낸 양육비가 고작 수백만 원에 불과하다는 말도 있다. 이래서야 ‘이혼 이후 두 딸을 어렵게 키우던 아빠’라고 하기는 어렵다. ▷김 씨가 교황을 만날 때 보여준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그는 교황과 대화하던 중 갑자기 교황의 가슴을 향해 손을 뻗더니 삐뚤어진 세월호 추모 리본을 바로잡아주는 여유까지 부렸다. 단식 중 여러 대중 행사에서 보여준 주눅 들지 않는 태도를 보면 직장 일이나 가정밖에 모르는 순진한 아빠는 아닌 듯했다. 그가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의 조합원이라는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다. ▷김 씨가 보상금을 노리고 단식을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세월호에서 “기다리라”는 말만 믿다가 죽어간 학생들을 생각하면 생면부지의 사람도 눈물이 난다. 1년에 한두 번 보는 게 고작이었다고는 하지만 딸 잃은 아빠의 마음이 왜 아프지 않겠는가. 평소 딸에게 잘 못해준 것이 생각나 더 마음 아팠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생전에 아빠 역할을 잘 못한 사람이 사후에 아빠 역할 제대로 하겠다고 나서니 순순히 믿어지지 않는다. 유민 엄마 남동생의 말처럼 “다른 세월호 유족들이 단식하면 이해하겠지만 김 씨 당신이 이러면 이해 못하지”의 분위기가 되고 말았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4-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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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불체포 특권 없애야 할 이유 보여준 비리의원 숨바꼭질

    비리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여야 의원 5명이 어제 검찰과 숨바꼭질을 벌였다. 이들은 법원의 영장 실질심사에 출두하라는 통보에 응하지 않다가 검찰이 강제구인에 나서자 신학용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을 뺀 나머지는 어딘가로 숨어버렸다. 신 의원도 출두를 약속하기 전 2시간 반가량 실랑이를 벌였다. 여론의 비판이 빗발치자 오후가 돼서야 김재윤 신계륜 새정치연합 의원이 출두 의사를 비쳤고 이어 조현룡 박상은 새누리당 의원도 결국 백기를 들었다. 새정치연합은 19일 7월 임시국회 종료를 불과 10여 분 앞두고 8월 임시국회 소집요구서를 제출했다. 겨우 48시간 차이를 두고 22일 시작되는 8월 임시국회는 9월 정기국회를 거쳐 연말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비리 의원들의 체포를 막는 ‘방탄국회’라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임시국회 소집을 요구한 것이 새정치연합인지라 새정치연합이 주로 비난받았지만 그 당 의원들이 출두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부랴부랴 자기 당 의원들의 출두를 재촉한 새누리당도 별 다를 바 없다. 법원의 영장 심사는 본래 오전 9시 반부터 순차적으로 하기로 계획돼 있었으나 이들이 뒤늦게 출두에 응하면서 오후 2시부터 시작됐다. 구인장은 자정까지만 유효했고 자정을 넘기면 임시국회가 시작돼 국회의 체포 동의 없이는 의원들을 구속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영장 전담 판사는 시간에 쫓겨 가며 이들의 구속 여부를 심사해야 했다. 출두하지 않은 것보다는 나았지만 뒤늦게 출두한 것 역시 비난을 면하기는 어렵다. 선진국에는 불체포 특권 같은 것이 없다. 많은 헌법학자는 오늘날 우리나라에도 불체포 특권은 더이상 필요치 않다고 말한다. 헌법에 규정돼 있기 때문에 당장 고치기는 어렵지만 이미 여야는 대선과 총선 과정에서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바 있다. 그럼에도 구속이 눈앞에 닥치자 다시 방탄국회의 유혹에 빠졌다. 어제의 볼썽사나운 숨바꼭질은 왜 불체포 특권을 없애야 하는지 그 이유를 잘 보여줬다. 검찰은 어젯밤 철도 납품비리에 연루된 송광호 새누리당 의원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오늘부터 시작되는 임시국회에 제출될 것이다. 여야는 불체포 특권 포기 공약을 실천으로 보여줘야 한다.}

    • 2014-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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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송혜교의 세금탈루

    연예인이 세금을 탈루했다 들킬 때 빠져나오는 방법은? 당황하지 말고, 몰랐다고 잡아뗀 뒤, 세무대리인의 잘못으로 돌리면 끝. 여배우 송혜교가 2009∼2011년 3년간 약 25억 원의 소득을 줄여 신고했다가 미납세금과 가산세를 추징당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송혜교 측은 3년간 137억 원을 벌었다고 신고했다. 이 중 필요경비로 신고한 67억 원 중 55억 원을 영수증 없이 신고했다가 조사를 받았다. 송혜교의 소속사는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반성한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정치권에선 송혜교에 대한 국세청의 봐주기가 더 관심이다. 미납세금은 5년 전의 탈세까지 추징할 수 있지만 국세청은 3년 치 미납세금과 가산세를 내게 하는 것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감사원이 나중에 감사에 나서 2008년 누락분까지 1년 치를 더 추징하도록 한 것을 보면 국세청이 봐주긴 봐줬나 보다. 봐주기의 배후가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라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한 전 청장이 송혜교 세무대리인의 신세를 크게 졌고 그 신세를 갚았다는 주장이다. ▷세무대리인이란 좋게는 절세를, 나쁘게는 탈세를 도와주는 사람이다. 1999년 가수 김건모와 신승훈의 탈세가 적발됐는데 그때도 세무대리인 회계사가 끼어 있었다. 2007년 MC 강호동과 여배우 김아중이 탈세를 했을 때도 세무대리인의 신고에 착오가 있었다는 이유를 댔다. 검찰은 지난달 가수 비와 배우 장근석 등 중국에서 활동하는 한류 연예인들의 역외탈세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을동화’ ‘올인’ ‘풀하우스’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 연기한 송혜교는 쌀쌀맞은 역할을 해도 보호 본능을 일으키는, 최고의 여배우다. 국세청이 송 씨를 가장 많이 봐준 것은 탈루 사실이 공개되지 않도록 해준 것일 게다. 톱스타들을 동경하면서도 그들이 드라마 한 회 출연에 받아가는 막대한 돈에 심한 박탈감을 느끼는 것이 대중이다. 세무대리인 잘못으로 돌린다고 믿어줄 대중도 아니다. 송 씨가 사랑받는 연예인으로 남으려면 ‘돈 번 만큼 낸다’는 마음가짐을 확실히 가져야 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4-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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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박 대통령, 종교 관계부터 정상화하라

    난 지난 주말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천주교 시복식을 KBS TV로 지켜봤다. 처음에 다소 흥미가 가던 시복행사가 미사로 연결되면서 지루해졌다. 채널을 돌렸다. SBS와 MBC는 이미 중계를 중단했다. KBS만 그 후로도 1시간 더 넘게 미사를 중계했다. 시복식은 그 자체로 구경거리다. 그러나 끝까지 중계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민영방송이 스스로 손해를 감수하고 끝까지 중계했다면 시비 걸 이유가 없다. 하지만 KBS는 국민의 시청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다. 국민 중에는 천주교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개신교인도 있고 불교도도 있고 종교가 없는 사람도 있다. 더 절제 있게 중계를 끊어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공영방송이다. KBS를 보던 적지 않은 시청자들이 채널을 돌렸을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적자에 시달리는 KBS가 시청률을 무시하면서까지 시복식을 끝까지 중계할 이유가 없다. 더 정확히 말하면 특정 종교에 대한 편파적 배려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에 공영방송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종교적 공정성에 대한 KBS의 둔감함은 정부와 서울시가 시복식 장소로 광화문을 내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광화문을 내준 것은 천주교가 원했고 또 광화문을 배경으로 교황이 진행하는 시복식이 세계적으로 보도될 경우 한국을 선전하는 효과도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선례가 될 경우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등장한다. 천주교 행사에 광화문 거리를 내줬으니 불교가 달라이 라마 강연을, 개신교가 빌리 그레이엄 초청 집회를 광화문에서 열겠다고 하면 또 광화문을 내줘야 하는 것인가. 시복식 경비를 위해 막대한 국가 예산이 지출됐다. 그 비용을 천주교 측이 사후 정산해 줄 리 없다. 물론 어느 행사든 큰 행사면 경찰이 동원된다. 경찰의 임무 중에는 그런 일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시복식을 광화문이 아니라 대형 운동장에서 했다면 경비비용은 훨씬 적게 들었을 것이다. 그런 행사는 대형 운동장에서 여는 것이 보통이다. 국민의 세금은 천주교인들만 내는 것이 아니다. 개신교인도 내고 불교도도 내고 종교가 없는 사람도 낸다. 개신교인과 불교도는 왜 자신들이 낸 세금이 천주교 행사를 위해 쓰여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박 대통령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외쳐 온 사람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정상화해야 할 것은 대통령 그 자신의 종교와의 관계다. 박 대통령은 올해 석가탄신일에 조계사 법요식에 참석했다. 현직 대통령이 석탄일 법요식에 직접 참석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 전례를 만든 것은 후임 대통령들에게 큰 부담이 된다. 물론 박 대통령은 명동성당 미사와 명성교회 예배에도 한 번씩 참석해 균형을 맞춘 듯한 인상을 주려 했다. 세 모임 모두 명목은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추모였다. 그러나 석탄일 법요식 참석이 유독 특별했다는 것은 대통령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박 대통령을 비롯한 역대 대통령들은 개신교의 연례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해 왔다. 우리나라가 미국처럼 성경에 손을 얹고 대통령 서약을 하는 나라도 아닌데 대통령의 국가조찬기도회 참석이라는 것도 이상하다. 다만 대통령의 국가조찬기도회 참석은 오랜 관행이어서 묵인됐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종교, 특히 불교가 가만있지 않는다. 대통령이 이 관행부터 끊어야 다른 것을 끊을 수 있다. 박 대통령의 석탄일 법요식 참석은 대선 과정에서 자신을 이명박 전 대통령과 달리 대해준 불교계에 대한 보답의 성격이 짙다. 교황 방한 행사에 대한 적극적 지원은 방한준비위원장을 맡은 강우일 주교 등 천주교 내 반박(反朴)세력의 환심을 사보려는 의도도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박 대통령은 남들에게 주문만 하지 말고 본인부터 비정상을 정상화하라.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4-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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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진중권의 영화 ‘명량’ 시비

    “영화 명량은 솔직히 졸작이죠.” 문화평론가 진중권이 해서 논란이 되고 있는 말이다. 모두가 본다고 명작은 아니다. 누군가는 졸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문화는 취향에 따라 평가가 극단으로 갈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디워’ 때 그의 평과는 달리 과도한 시비처럼 느껴진다. 영화 같은 대중문화는 팝콘과 콜라를 먹고 마시면서 기분전환으로 감상하는 문화다. 재미있게 보면 그만이지 명작인지 졸작인지 따지는 것 자체가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 ▷진중권은 명량의 성공이 이순신 덕분이라고 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이순신 리더십을 갈구하는 사회 분위기가 있다. 그럼에도 ‘성웅 이순신’ 같은 따분한 과거 영화와 비교해보면 영화 덕은 없고 이순신 덕만 있다고 말하긴 어렵다. 명량의 성공은 이순신을 그의 인간적 고뇌까지 담아 형상화한 데다 후반부의 스펙터클한 전투 장면이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전반부를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념 과잉의 비평가에게는 대중의 눈에는 뻔히 보이는 이런 것이 잘 안 보이는 경우가 있다. ▷진중권의 비판에는 오히려 그의 비꼬인 심리가 엿보인다. 디워 비판은 한국 사람이 만든 것이니까 무조건 다 칭찬해주고 본다는 식의 맹목적 애국심(쇼비니즘)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됐다. 그가 명량에 괜한 시비를 붙는 데서도 영화가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데 대한 적개심 같은 것이 느껴진다. 모든 애국심이 쇼비니즘은 아니다. 진중권의 시비는 한 번도 건전한 애국심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 특유의 심리상태의 표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진중권이 한 말은 아니지만 명량의 성공은 배급사인 CJ의 힘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순신도 위대하지만 더 위대한 것은 CJ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CJ의 마케팅이 뛰어난지 영화 개봉 전부터 설모 교사의 명량 해설 강의가 인터넷에 쫙 나돌았다. 개봉 후 영화의 메인관은 다 명량이 잡고 있어 다른 영화는 보고 싶어도 못 볼 지경이라고 한다. 진중권의 반골적 시비조차도 노이즈 마케팅처럼 흡수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4-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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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서울대의 6·25 추념

    서울대에 가면 추모비가 많다. 인문대에는 박종철 김세진 이재호, 자연대에는 조성만 조정식, 공대에는 황정하, 농생대에는 김상진 추모비가 있다. 모두 박정희 전두환 군사정권에서 민주화운동을 벌이다 희생된 서울대생이다. 4·19혁명 때 희생된 김치문 등 6명을 기리는 4·19기념탑은 사회대 근처에 있다. 관악산 기슭 외진 곳에 있던 것을 20년 전 정문 가까운 이곳으로 옮겼다. 매년 4월 19일이면 교수와 학생 대표들이 이 앞에서 기념식을 갖는다. ▷서울대에서 6·25전쟁 때 희생된 재학생을 기리는 기념물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서울대는 1996년에 와서야 6·25에 참전했다 숨진 서울대생 27명을 찾아내 문화관 대강당 벽에 명단을 새겨 넣었다. 2009년 19명의 명단이 새로 발견돼 현재까지 확인된 전사자 수는 46명으로 늘었다. 서울대가 부산으로 피란하는 난리통에 학적부 등 관련 기록이 많이 없어져서 그렇지 전사한 서울대생이 수백 명은 될 것으로 추산된다.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어느 학교를 가나, 어느 소도시의 시청사를 가나 눈에 잘 띄는 곳에 그 학교 졸업생과 그곳 출신 중 제1, 2차 세계대전에서 목숨을 바친 전몰자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침략국이었던 독일이나 일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기념물이다. 6·25 때 북한의 침략에 맞서 싸우다 죽은 이들이야말로 바람 앞의 등불 같은 나라를 구했다.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 서울대에 학문과 교수의 자유는 남아 있지도 않을 것이다. ▷성낙인 서울대 신임총장이 취임 후 첫 공식 일정으로 서울대 4·19기념탑을 찾았다. 대통령과 총리, 여야 대표는 취임하면 국립현충원을 찾는데 서울대에는 찾을 만한 6·25 관련 시설이 없다. 서울대 출신 시인은 “누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눈을 들어 관악을 보라”고 했다. 조국의 미래를 물을 수 있는 대학이라면 민주화만이 아니라 애국을 말해야 한다. 서울대가 내년 6월까지 서울대생 6·25 전몰자 기념 시설을 만들기로 했다. 늦었지만 반가운 일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4-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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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새누리도 친노도 증오한 ‘새정치’

    7·30 재·보궐선거에서 김한길-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는 두 개의 헤게모니로부터 양면 공격을 받았다.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수사의 촉발점이 된 권은희를 새누리당이 공격하는 것이야 그렇다 치더라고 친노세력이 가세해 비판하고 나옴으로써 김한길-안철수 지도부는 침몰했다. 권은희가 공천감이면 공천감이고 아니면 아니지 7·30 선거에는 차례가 아니고 다음 선거에는 차례라는 것은 무슨 논리인지, 권은희로 인해 그 자리에서 친노인 천정배가 밀려났다는 게 반발의 원인일 것이다. 2012년 대선 과정에서도 안철수는 두 개의 헤게모니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박근혜를 지지하는 세력만이 아니라 문재인을 지지하는 친노세력으로부터도 공격을 받았다. 난 2012년 대선에서 안철수가 문재인에게 후보를 양보했을 때 박근혜 지지자들의 어두운 얼굴에 돌아온 희색을 기억한다. 그때 그들은 정권을 이미 잡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들이 무서웠던 상대는 안철수였지 문재인이 아니었다. 그들은 친노세력을 상대로는 언제든지 싸워 이길 수 있다는 자신에 차 있었다. 새누리당은 대선 승리 이후에도 안철수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새누리당이 원하는 것은 새정치연합이 새정치를 배제하고 친노세력 주도의 도로 민주당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새누리당과 친노세력은 서로 싸우면서도 서로에게 기대 살아가는 적대적 공생관계에 있다. 새누리당의 일부 세력은 이 적대적 공생관계를 타협의 정치라고 부르면서 국회선진화법을 통해 그 관계의 지속 가능한 토대를 마련해줬다. 1등이면 좋고 2등이어도 상관없는데 최소한 2등은 가능할 때 새누리당도 친노세력도 새정치를 원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두 헤게모니 진영의 협공 속에 안철수는 실패했다. 그게 안철수라서 실패했는가.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분명히 안철수는 변명의 여지가 없이 실패했다. 그는 야권 대선 후보 단일화, 신당 창당, 그리고 합당을 통한 야당 주도권 장악까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도전해봤지만 실패했다. 그러나 안철수가 아닌 다른 누구라도 그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새누리당과 친노세력이 공동의 적으로 삼은 것은 두 진영 사이에 어른거리는 무엇이지, 그 무엇인가가 안철수인지 다른 누구인지는 부차적일 뿐이다. 안철수가 새정치였는지는 논란이 많으므로 새정치에 괄호를 치자. 다만 안철수의 ‘새정치’에 대한 비판에는 정치 신참에 대한 텃세라고 볼 수 있는 것 이상의 감정이 느껴진다. 안철수가 항의한 것이지만 안철수가 누구를 공천하면 자기 사람을 심는다고 비판하고 누구를 배제하면 자기 사람도 못 심는다고 비판하는 것은 누가 봐도 불공정하다. 비판은 하나의 관점을 취해야지, 관점을 정반대로 옮기면서 비판하는 것은 비판이 아니라 노골적인 증오의 표출일 뿐이다. 기초공천만 해도 과거에는 여야 할 것 없이 앞다퉈 폐지를 주장해놓고도 안철수가 주장하니까 현실 모르는 주장이라는 딴소리를 했다. 눈앞의 정치적 이익 앞에 공약이고 뭐고 다 팽개친 적반하장이었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가 노동당을 개혁할 당시 이런 말을 했다. “노동당에는 세 가지 유형의 세력이 있다. 첫째 절대 승리할 수 없는 낡은 세력, 둘째 인기 없는 보수정권에 대한 반발로 한 번은 승리할 수 있는 평범한 세력, 셋째 승리를 이어갈 수 있는 신진 세력이다.” 야당은 지금 절대 승리할 수 없는 친노세력을 중심으로 보수정권이 인기가 없을 때나 승리를 기대하는 어부지리 세력의 정당이 돼 있다. 야당의 미래를 위해서도, 정치 전체의 미래를 위해서도 새정치의 시도는 계속돼야 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4-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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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박 대통령, 게으른 지도자가 돼라

    대동(大同)은 요즘 말로 지도자의 소통을 의미한다. 옛 중국 주나라에서 나라에 결정하기 어려운 큰일이 있을 때 임금은 우선 자신에게 묻고, 다음 신하에게 묻고, 그 다음 백성에게 묻고 그래도 의문이 풀리지 않으면 점을 쳐서 하늘의 뜻을 구한다고 했다. 임금과 신하와 백성과 점괘가 일치하면 이를 대동이라고 했다. 언젠가 한 청와대 수석비서관과 식사를 하면서 그가 박근혜 대통령을 너무 어렵게 여긴다는 인상을 받았다. 박 대통령이 수석이나 장관도 잘 만나지 않는다는 얘기가 최근에 나왔다. 만기친람(萬機親覽)의 박 대통령은 직접 수많은 보고서를 검토한다고 하니 자신에게는 많이 묻는 모양이다. 그러나 수석이나 장관도 잘 만나지 않고, 여론에도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는 듯하다. 하늘의 뜻을 구하는 따위의 일은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부하(신하)에게 묻고 국민(백성)에게 묻는 것은 대동의 시대로부터 이어져오는 지도자의 자세다. 만기친람의 박 대통령이라고 했지만 만기친람이 높은 자리로 올라갈수록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19세기 비스마르크 총리와 함께 독일 통일을 주도했던 폰 몰트케 장군은 지도자를 똑똑하면서 부지런한, 똑똑하면서 게으른, 우둔하면서 부지런한, 우둔하면서 게으른 등 4가지 유형으로 나눴다. 몰트케가 최선으로 여긴 것은 똑똑하면서 부지런한 지도자가 아니라 똑똑하면서 게으른 지도자다. 몰트케가 최악으로 여긴 것은 우둔하면서 게으른 지도자가 아니라 우둔하면서 부지런한 지도자다. 몰트케는 장교의 유형으로 분류한 것이지만 황제의 간섭에 대한 우회적인 경고도 있었다고 본다. 지도자의 만기친람이 권위주의와 연결되는 사례는 많다. 중국 청나라의 황제들은 근면성만큼은 역대 어느 왕조의 황제들도 쫓아갈 수 없었다. 특히 옹정제가 부지런했다. 엄청나게 많은 상주문을 일일이 읽고 의견을 다느라 잠도 4시간밖에 자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죽음은 과로가 원인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는 황제란 모름지기 완전한 독재자가 돼야 하며 그러기 위해 스스로 부지런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는 자신에게 대드는 자를 용서하지 않았고 ‘문자(文字)의 옥(獄)’으로 불리는 처절한 사상 탄압을 행했다. 만기친람 한다는 것은 부지런하지 않으면 할 수 없다. 그러나 몰트케는 똑똑한 쪽이든 우둔한 쪽이든 상관없이 지도자로서는 부지런한 쪽보다는 게으른 쪽을 더 높이 평가했다. 박 대통령도 부지런하기보다 게으른 지도자가 돼 보라. ‘똑똑한’ 대통령이 보기에 맘에 안 드는 것이 있어도 수석이나 장관에게 맡겨 보라. 수석이나 장관이 반드시 옳아서가 아니다. 자신이 믿고 뽑은 수석이나 장관이라면 곧 옳은 결정을 찾아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그들 사이에는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 대통령 자신이 항상 옳을 수는 없을뿐더러 대통령 눈에 옳지 않은 것처럼 보였던 수석이나 장관의 판단이 옳은 것으로 판명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야 게으를 수 있다. 나라든 기업이든 어느 조직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우둔하면서 부지런한 지도자다. 그런 지도자 밑에서는 새벽부터 한밤까지 노력은 노력대로 하면서도 성과를 내지 못한다. 설혹 똑똑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사람은 자신이 이런 유형의 지도자는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스스로는 똑똑하다고 여기지만 남들 보기에는 우둔할 수 있다. 지도자가 게으르다는 것은 논다는 것이 아니라 보고서에서 눈을 떼고 한발 물러서서 세상을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책이든 인사든 결정권을 다 움켜쥐고 있지 말고 수석이나 장관의 말을 듣고 여론에도 귀를 기울이라. 게으른 지도자가 대동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4-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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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브라질 축구와 대통령

    축구에서 2점 차는 어려워도 해볼 만하다. 3점 차가 되면 싸울 의욕이 없어지기 시작한다. 우리나라도 얼마 전 알제리에 전반 3-0까지 져봐서 느낌 안다. 브라질은 전반 24분 독일에 세 번째 골을 허용했을 때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4-0, 5-0, 6-0, 7-0의 행진. 후반 종료 휘슬이 울리기 직전 브라질이 한 골을 넣었으나 별 의미는 없었다. ‘축구의 나라’ 브라질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1950년 월드컵도 브라질에서 열렸다. 그때만 해도 세계가 아직 제2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로부터 4년 뒤 스위스 대회 때부터 비로소 축구강국 대부분이 참가한 월드컵이 시작됐다. 우리나라는 그 대회에 사상 처음으로 출전했다. 그리고 다시 4년 뒤 1958년 스웨덴 대회에서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한 선수’ 펠레가 등장해 브라질에 첫 월드컵 우승을 안겼다. 이후 월드컵 3회 우승으로 쥘리메컵을 영구히 차지한 브라질의 축구신화가 쓰였다. ▷펠레 이후 호마리우 호나우두 히바우두 등 제2의 펠레로 불린 선수는 많았다. 하지만 모두 그 별명에는 뭔가 미치지 못했는데 이번에야말로 진짜 제2의 펠레가 나타났다는 말이 무성했다. 네이마르 때문이다. 그런데 네이마르가 직전 콜롬비아전의 척추 부상으로 뛰지 못하게 됐다. 처음에는 천재를 시샘하는 신의 저주라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천만다행이었다. 네이마르라고 무자비한 독일 전차군단을 막아냈을 것인지는 알 수 없는데 모두 네이마르가 없어서 졌다고 생각한다.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이 월드컵 개막식에 모습을 보였을 때 관중은 야유를 보냈다. 전임 룰라 때 4%를 넘던 경제성장률이 2% 미만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브라질이 선전하면서 비난은 잦아들었다. 올 10월 재선을 위해 뛸 호세프 대통령에게 청신호가 켜지는 듯했다. 하지만 브라질은 사상 최악의 참패로 정국마저 혼미에 빠져들었다. 상파울루에서는 시위대가 버스를 불태우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고 곳곳에서 폭동이 일어날 조짐마저 보인다는 소식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4-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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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시진핑 강연의 황당함과 친근함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최근 서울대 강연에서 한중우호를 상징하는 인물로 처음 든 것은 서복(徐福)이다. 서복이 누군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기자들도 잘 모르는 이름이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적당하지 않다고 봐서 그런 것인지 서복이 거론되지 않은 관련 기사도 많다. 진시황 때 불로초를 찾아 동방으로 갔다는 도사라고 설명하면 ‘아, 그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시진핑은 ‘바다를 건너 제주도로 간 서복’이라고 소개한다. 서복의 얘기야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것이니까 그렇다 치자. 그러나 ‘사기’에도 그가 제주도에 갔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제주도에 서복이 와서 문물을 전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을 뿐이다. 그것이 서복의 얘기에 꿰맞춘 전설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어떤 역사학자도 그걸 진지하게 여기지 않는다. 시 주석은 2006년 저장 성 서기로 있을 때 제주도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이세기 한중친선협회장의 안내로 서복기념관을 방문했다. 서복기념관은 서귀포시가 2003년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만든 곳이다. 당시 이 회장이 서복기념관에 가자고 했더니 시 주석은 “왜 그게 중국에 있지 않고 한국에 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 일이 시 주석에게 무슨 깊은 인상을 남겼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중국의 서복’이 아니라 ‘제주도의 서복’은 관광업 진흥을 위해 만들어진 인물이다. 그것을 역사 속의 인물인 것처럼 언급하는 것은 대학에서 할 소리는 아니다. 게다가 한국인이 아니라 중국인이, 서복이 제주도에 간 것처럼 말하면 어딘가 제국주의적 냄새가 난다. 시 주석은 또 한중 양국이 환란에 서로 도운 사례로 임진왜란(정확히는 정유재란) 때 명나라 장군 등자룡(鄧子龍)이 이순신 장군과 함께 노량해전에서 싸우다 전사한 사실을 들었다. 등자룡의 상급자인 명나라 제독 진린(陳璘)의 후손이 진씨 성을 갖고 한국에 살고 있다는 사실도 덧붙였다.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의 승리에 중국이 큰 도움을 줬다는 듯이 말하는 것은 아무래도 듣기 거북하다. 진린은 전투에는 소극적이고 공적에 욕심이 많았던 인물이다. 그는 이순신 장군이 자신의 전과를 몇 차례 양보한 후에야 이순신 장군과 화해할 수 있었다. 그가 중국에서 끌고 온 배는 작아서 전투에 쓸모가 없었고 조선 수군의 판옥선을 빌려 타야 하는 신세였다.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은 왜적과 싸우는 데 써야 할 병력의 일부를 왜적에 포위된 진린을 구하는 데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시 주석이 거론한 인물 중에서 또 한 명 거슬리는 것은 정율성(鄭律成)이다. 정율성이 한국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이름을 날린 몇 안 되는 근현대사의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를 한중우호의 상징적 인물로 거론하는 데 전혀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시 주석이 그를 한국인들 앞에서 ‘중국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한 정율성으로 소개한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 한중이 지금은 평화를 모색하고 있지만 중국인민해방군은 6·25전쟁 때만 해도 우리 측에 많은 피를 흘리게 한 적군이었다. 정율성이 중국인민해방군가를 작곡했다고 소개하지 않아도 달리 소개할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중국은 사실 한국을 잘 모른다. 잘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나 중국을 알려고 야단이지 중국에서 한국은 국경을 인접한 많은 나라 중 하나일 뿐이다. 중국 정치인의 외교적 수사만 듣다가 역사 강의 같은 강연을 들으니 그것이 확실해졌다. 중국 지도자의 한국 대중 강연은 처음이다. 친근해지려는 의지는 전달됐다. 다만 친근함이 의지만으로 되지 않는다. 남이 어떻게 느낄지 미리 알아서 배려해 말할 수 있어야 진짜 친근한 것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4-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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