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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쓰이는 총알을 만들던 탄약정비공장에서 예술가들이 미래 꿈나무들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워줄 ‘아트탄약’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한젬마 강원키즈트리엔날레 예술감독) 올해는 6·25전쟁이 발발한 지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접경지역인 강원도에는 전쟁과 분단의 긴장감이 여전하다. 하지만 철책과 철조망이 뒤엉켜 있는 이곳에 곧 예술의 꽃이 활짝 피어날 전망이다. 22일 개막해 다음 달 8일까지 열리는 국내 최초의 어린이 시각예술축제 ‘강원키즈트리엔날레 2020’이다. 옛 군부대 탄약정비공장과 와동분교, 홍천미술관 일대에서 무료로 열리는 이번 행사의 주제는 ‘그린 커넥션’이다. 자연과 환경, 동심을 의미하는 ‘그린(Green)’과 경계를 넘는 평화를 의미하는 ‘연결’(Connection)의 합성어다. 총 11개국 110명의 국내외 작가(어린이 작가 포함)가 참여하고, 350여 작품이 전시된다. 대표적인 전시인 ‘아트탄약전’이 열리는 곳은 강원 홍천군 결운리에 있는 제11기계화보병사단의 옛 탄약정비공장. 1973년 준공 당시부터 놓여 있던 폭발 방호벽, 컨베이어벨트와 탄약도장용 회전기계 등의 시설물들을 그대로 전시장 인테리어 소품으로 재활용했다. 이곳에는 ‘행복을 그리는 화가’로 유명한 스페인 출신의 에바 알머슨을 비롯해 50여 명의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과 온라인 영상콘텐츠를 볼 수 있다. 작가가 직접 작품을 설명하고 예술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한 ‘아티스트 박스’ 동영상은 인터넷으로도 공개돼 어린이 예술교육을 위한 ‘아트탄약’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외부 마당에는 임옥상 화백의 ‘평화의 나무’와 순례길이 설치되고, 최정화는 탱크에 현충원에 헌화됐던 조화(造花)를 입혀 화해와 평화의 메시지를 전한다. 또 다른 주목할 만한 전시장은 와동분교. 1954년 개교한 후 62년의 역사를 끝으로 2015년에 폐교돼 잡초가 무성했던 곳이다. 유관순, 이순신, 방정환 선생의 동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와동분교는 어린이들을 위한 ‘예술학교’로 다시 태어났다. 와동분교의 외부 벽과 벤치, 의자, 교실은 비주얼 아티스트 빠키(박희연) 작가의 알록달록한 문양의 작품으로 단장됐다. 운동장에는 이 학교 졸업생인 박대근 작가의 ‘해피 버블버블’이 설치됐다. 비눗방울이 퍼져나갈 때 행복과 안도감을 표현한 작품으로, 수많은 타일조각으로 색이 입혀졌다. 능평리 마을주민과 와동리 동네 아이들, 와동초교 동창생들까지 자유롭게 조각을 붙이며 참여했다. 독일과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설치미술가 한석현 작가의 작품 ‘다시, 나무’도 인상적이다. 과거 이 학교에 심어져 있던 아름드리나무를 되살려낸 이 작품은 아이들이 안에 들어가 노는 ‘예술 놀이터’가 되기도 한다. 교실 내부에는 자연, 환경, 평화, 동심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전시돼 축제가 끝난 후에도 ‘아트스쿨’로 활용될 예정이다. 세 번째 전시장인 홍천미술관은 1956년에 지어진 구 홍천군청 건물(등록문화재 108호)을 문화시설로 활용하는 것으로, 노후 공공시설의 모범적인 재활용 사례로 꼽힌다. 만 6∼13세 미술영재, 자폐 및 발달장애 미술영재, 국제미술공모전 당선 어린이 등 총 51명의 어린이 작가 작품이 전시된다. 강원키즈트리엔날레는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을 기념해 강원도 전역에 문화올림픽 유산을 확산시키기 위해 마련된 행사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도 축제가 차질 없이 열리도록 온·오프라인으로 동시에 진행된다. 매일 오전 11시와 오후 1시에 작가들이 직접 참여하는 어린이 예술체험 아트클래스가 인터넷을 통해 공개된다. 또 디자이너 이상봉, 배우 윤석화, 이광기, 아나운서 손미나, 보자기 예술가 이효재, 유튜버 대도서관 등 어린이 예술교육에 관한 명사들의 토크도 온·오프라인으로 펼쳐진다. 1호 미술전문 MC, 방송미술인으로 이름을 날렸던 한젬마 예술감독은 ‘그린 커넥션’이란 주제에 맞춰 초록빛으로 머리카락을 염색한 채 매일 MC로 나선다. 3곳의 전시장을 모두 체험하고 스탬프를 받은 어린이들에겐 ‘강원키즈트리엔날레 예술교육 수료증’을 줄 예정이어서 학부모들의 관심도 높다. 한 예술감독은 “축제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 예술놀이터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겠다”며 “일회성 축제에서 벗어나 어린이는 물론 연인, 친구, 가족들이 즐겁게 찾을 예술명소를 지역의 자산으로 남긴다는 생각으로 준비했다”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2일 개막하는 강원키즈트리엔날레2020“전쟁에 쓰이는 총알을 만들던 탄약정비공장에서 예술가들이 미래 꿈나무들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워줄 ‘아트탄약’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한젬마 강원키즈트리엔날레 예술감독) 올해는 6·25전쟁이 발발한 지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접경지역인 강원도에는 전쟁과 분단의 긴장감이 여전하다. 하지만 철책과 철조망이 뒤엉켜 있는 이 곳에 곧 예술의 꽃이 활짝 피어날 전망이다. 22일 개막해 다음달 8일까지 열리는 국내 최초의 어린이 시각예술축제 ‘강원키즈트리엔날레 2020’이다. 옛 군부대 탄약정비공장과 와동분교, 홍천미술관 일대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의 주제는 ‘그린 커넥션’이다. 자연과 환경, 동심을 의미하는 ‘그린(Green)’과 경계를 넘는 평화를 의미하는 ‘연결’(Connection)의 합성어다. 총 11개국 110명의 국내외 작가(어린이 작가 포함)가 참여하고, 350여 작품이 전시된다.대표적인 전시인 ‘아트탄약전’이 열리는 곳은 강원 홍천군 결운리에 있는 제11기계화보병사단의 옛 탄약정비공장. 1973년 준공 당시부터 놓여 있던 폭발 방호벽, 컨베이어벨트와 탄약도장용 회전기계 등의 시설물들을 그대로 전시장 인테리어 소품으로 재활용했다. 이 곳에는 ‘행복을 그리는 화가’로 유명한 스페인 출신의 에바 알머슨을 비롯해 50여 명의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과 온라인 영상콘텐츠를 볼 수 있다. 작가가 직접 작품을 설명하고 예술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한 ‘아티스트 박스’ 동영상은 인터넷으로도 공개돼 어린이 예술교육을 위한 ‘아트탄약’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외부 마당에는 임옥상 화백의 ‘평화의 나무’와 순례길이 설치되고, 최정화는 탱크에 현충원에 헌화됐던 조화(造花)를 입혀 화해와 평화의 메시지를 전한다. 또 다른 주목할만한 전시장은 와동분교. 1954년 개교한 후 62년의 역사를 끝으로 2015년에 폐교돼 잡초가 무성했던 곳이다. 유관순, 이순신, 방정환 선생의 동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와동분교는 어린이들을 위한 ‘예술학교’로 다시 태어났다. 와동분교의 외부 벽과 벤치, 의자, 교실은 비주얼 아티스트 빠키(박희연) 작가의 알록달록한 문양의 작품으로 단장됐다. 운동장에는 이 학교 졸업생인 박대근 작가의 ‘해피 버블버블’이 설치됐다. 비눗방울이 퍼져나갈 때 행복과 안도감을 표현한 작품으로, 수많은 타일조각으로 색이 입혀졌다. 능평리 마을주민과 와동리 동네 아이들, 화동초교 동창생들까지 자유롭게 조각을 붙이며 참여했다. 독일과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설치미술가 한석현 작가의 작품 ‘다시, 나무’ 도 인상적이다. 과거 이 학교에 심어져 있던 아름드리나무를 되살려낸 이 작품은 아이들이 안에 들어가 노는 ‘예술 놀이터’가 되기도 한다. 교실 내부에는 자연, 환경, 평화, 동심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전시돼 축제가 끝난 후에도 ‘아트스쿨’로 활용될 예정이다. 세 번째 전시장인 홍천미술관은 1956년에 지어진 구 홍천군청 건물(등록문화재 108호)을 문화시설로 활용하는 것으로, 노후 공공시설의 모범적인 재활용 사례로 꼽힌다. 만 6세~13세 미술영재, 자폐 및 발달장애 미술영재, 국제미술공모전 당선 어린이 등 총 51명의 어린이 작가 작품이 전시된다. 강원키즈트리엔날레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기념해 강원도 전역에 문화올림픽 유산을 확산시키기 위해 마련된 행사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증에도 축제가 차질 없이 열리도록 온·오프라인으로 동시에 진행된다. 매일 오전 11시와 오후 1시에 작가들이 직접 참여하는 어린이 예술체험 아트클래스가 인터넷을 통해 공개된다. 또 가수 인순이, 디자이너 이상봉, 배우 윤석화, 이광기, 아나운서 손미나, 보자기 예술가 이효재, 유튜버 대도서관 등 어린이 예술교육에 관한 명사들의 토크도 온·오프라인으로 펼쳐진다. 1호 미술전문 MC, 방송미술인으로 이름을 날렸던 한젬마 예술감독은 ‘그린 커넥션’이란 주제에 맞춰 초록빛으로 머리카락을 염색한 채 매일 MC로 나선다. 3곳의 전시장을 모두 체험하고 스탬프를 받은 어린이들에겐 ‘강원키즈트리엔날레 예술교육 수료증’을 줄 예정이어서 학부모들의 관심도 높다. 한 예술감독은 “축제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 예술놀이터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겠다”며 “일회성 축제서 벗어나 어린이는 물론 연인, 친구, 가족들이 즐겁게 찾을 예술명소를 지역의 자산으로 남긴다는 생각으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한젬마 강원키즈트리엔날레2020 예술감독 인터뷰강원키즈트리엔날레2020의 한젬마 예술감독은 베스트셀러 ‘그림 읽어주는 여자’의 작가이자 미술전문 MC, 미술방송인, 아트콜라보 디렉터로 유명하다. 선화예고와 서울대 미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후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치는 화가이기도 하다. 한 감독은 “화가로서 방송에 나와서 미술전문 MC로 활동할 때 화단에서 ‘딴따라’라고 욕을 많이 먹었는데, 강원키즈트리엔날레를 준비하면서 내가 방송일을 했던 경력에 새삼스럽게 감사하게 됐다”고 말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사태로 현장을 찾는 관객이 줄어들 수 밖에 없는 상태에서 현장에서 라이브 방송을 하며 온라인 콘텐츠를 크게 늘렸기 때문이다. 한 감독은 ‘그린 커넥션’이라는 주제에 맞춰 머리카락을 초록색으로 염색하고, 그린색 재킷과 치마, 구두까지 온통 그린 패션으로 무장한채 전시장을 오간다. ―코로나가 바꾼 미술전시장 풍경은 어떤 것인가. “코로나 이전에는 좀더 작가, 생산자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소비자 중심으로 변해가고 있다. 예전에는 작가의 작품제작에 관객이 참여하는 것이 가장 큰 박수를 받았다. 그런데 그 조차도 어려운 상황이다. 임옥상, 최정화 작가도 아이들과 함께 작업을 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100명의 아이들이 한꺼번에 모여서 작업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신 15명씩 7,8회에 나눠서 작업을 해야 한다. 작가 입장에서 볼 때는 훨씬 힘들어진 상황이지만, 소비자나 관람객 입장에서는 더 좋은 기회다. 100명 중의 한명으로 참여하는 것과, 15명 중의 한명으로 작가와 만날 때 질적인 차이는 크다.” ―예술감독의 역할은 어떻게 변화했나. “예전에는 미술전시회가 개막을 하면 감독이 전시기간 내내 행사장을 지킬 필요는 없었다. 예술감독은 작가선정과 설치까지가 주 임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행사장으로 관람객이 오는 것으로 행사가 진행되지 않는다. 행사 내용을 촬영해서 인터넷으로 공개해 외부에서 소비되도록 해야 한다. 사람들은 비엔날레 감독이 직접 도슨트로 설명해주는 것을 기대하는데, 도슨트 정도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다가서는 스킬이 필요하다. 3주간 매일 홍천으로 출퇴근하면서 MC를 보게 됐다. ‘미술 MC’라는 타이틀도 다시 쓰게 됐다.” ―코로나 속에서 전시는 어떻게 진행되나. “관람객은 1시간에 30명으로 제한된다. 하루에 8회 입장 가능하다. 전시장이 3군데니까 하루 관람객은 720명이 최대다. 매일 오전 11시와 오후 1시에 작가들의 아트클래스가 진행된다. 작가들의 작품 체험프로그램인데, 교육청을 통해 수업 대용으로 사용하라는 공지가 나갈 예정이다. 전세계의 50명의 작가들이 20개씩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예술체험 도구인 ‘아티스트 박스’를 만들었다. 총 1000개다. 이 중 매일 5개씩 인터넷 이벤트를 통해 온라인 관람객에게 제공할 예정이다.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갖고 직접 만든 도구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작품감상과 놀이, 체험, 교육이 한꺼번에 이뤄질 수 있다.” ―행사가 펼쳐지는 와동분교는 어떤 곳인가. “62년간 운영되던 학교가 2015년 폐교돼 폐허가 될 위기였다. 여기에 ‘다시 나무로’라는 한석현 작가의 죽은 나무로 다시 나무를 세운 설치작품을 통해 학교의 부활을 선포하고 있다. 그외 여러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운동장은 예술놀이터, 교실은 작품화된 아트클래스로 재탄생했다. 감상의 대상이었던 공공조형물은 관람에서 놀이기구로 그 몫을 확대한 예술가의 노력이 담겨 진정한 예술놀이터의 현장을 탄생시켰고, 신관 교실에서는 단지 예술 수업이 이루어지는 곳으로서의 공간개념을 넘어서 천장 벽 바닥이 작품으로 입혀지고 설치됨으로써 그 자체가 예술품이 된 교실로 재단장됐다. 운동장의 이순신, 거북선, 유관순, 이승복, 방정환 선생 등의 옛 교정의 동상들 사이로 현대 작가의 작품들을 함께 배치함으로써 과거 현재의 소통을 전시화하고, 구관의 교실은 옛 교실의 모습을 그대로 살려, 어린이 창조교육의 자료를 제공하는 아트키즈플랫폼과 아트키즈 오픈 스튜디오를 마련하여 한껏 창작을 할 수 있는 어린이 아틀리에로 재편했다.” ―군부대 탄약정비공장이 전시장으로 탈바꿈했는데…. “총알을 정비하던 공장을 교육컨텐츠 정비소로 개념을 바꿨다. 예술가의 작품을 탄약으로 비유하고, 예술가의 작품을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콘텐츠로 정비시켜 미래의 꿈나무들의 창의성과 상상력을 키워줄 수 있는 교육의 무기로 전환해 선보이는 전시장인 셈이다. 일명 ‘아티스트박스’로 명명한 온오프 디지로그 비대면 자율 학습이 가능한 예술의 도구를 탄생시켰다. 이번 축제를 통해 진정 예술의 몫이 무엇인가. 예술가는 이 시대에 어떤 기여를 해야 하는가, 이 시대적 질문의 답처럼, 본 행사는 시대 맞춤형 교육 콘텐츠 탄생을 이끌어낸 것이다. 예술가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모티브로 참여형 프로그램을 개발했고, 영상화시키고 아티스트의 개성이 넘치는 도구 박스를 선보임으로서 단지 도구나 놀이를 넘어선 예술이 줄 수 있는 다양한 상상의 세계를 꺼내고 연결하는 징검다리와 같은 ‘아트탄약전’을 마련한 것이다. 고미술에서 현대미술까지.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에바 알머슨과 같은 스타작가에서 국내 최고 아티스트 최정화, 임옥상, 홍승혜, 빠키, 한석현, 이진경, 아트놈, 박대근 등을 비롯한 10개국 50명의 국내와 작가들로. 게다가 탄약정비공장 앞마당에 한국 대표 민중 설치예술가 임옥상의 ‘평화의 나무’설치작과 설치예술가 최정화의 현충원에 헌정되었던 꽃을 수거하여 재사용한‘플라워 파워’ 탱크 설치작품은 평화를 향한 염원과 발현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이번 축제를 준비한 과정은. “예술감독으로 선정된 올해 3월 말은 참혹했다. 코로나 19로 학생들은 등교가 금지됐고, 온라인수업조차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 시국에 어린이 미술축제 감독으로 선정됐고, 세상 밖에 그 소식을 알리기도 조심스러웠다. 시대는 바뀌는데 축제에 대한 관념은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언택트’라는 신종용어가 급습했고, 비대면, 온라인, 초연결, 안전과 방역이 강조됐다. ‘그린’은 환경을 넘어서 우리 미래꿈나무들을 위한 구원의 방향성이 돼야하고, ‘컨택트’(접촉)는 불가하지만 ‘커넥션’(접속)이 방향성이 된 것이다. 행사개최는 최악의 설정을 가상하고 준비했다. ‘전시장에 사람들을 모으기 힘들다. 아니 위험하다. 어쩌면 상황에 따라서는 전시장인 폐쇄될 수도 있다.’ 축제에 사람들이 못 오는데 개최한다는 것은 사실상 말이 안 되는 상상이지만, 그 어떤 시점일지라도 당분간은 코로나 19 대응 단계를 예측할 수 없으며, 최악을 설정하고 준비하는 게 안전한 상황이었다.” ―이번 전시회가 기존의 비엔날레와 다른 점은. “개막과 폐막의 개념이 파기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행사의 개막을 기대하며 준비하지 않았다. 5월 5일 어린이날은 ‘내가 그린 그린’이라는 챌린지로 온라인으로 어린이 참여의 숨통을 트이게 했고, 공모전, 자문단 모집등의 프로그램으로 행사준비자체의 여정을 축제의 컨텐츠로 오픈했다. 행사는 이미 시작했으며, 끝나도 끝나지 않는 전시로 주제와 행사 준비 방향을 설정하였다. 둘째, 온라인 활용을 통한 초연결 접속으로 더욱 폭넓은 관객확보로 계획했다. 행사장 콘텐츠를 외부로 내보낼 온라인 프로그램 편성을 통한 축제 기간 내내 방송을 활용한 교육프로그램 중심의 유용한 행사로 준비했다. 코로나 시국 전이었다면 물밀듯 밀려왔을 어린이들의 장소였겠지만, 장소성 대신 콘텐츠 중심의 실어나르기 전략을 모색한 것이다. 셋째, 행사의 콘텐츠는 폐막 후의 상용화 용도가 극대화되어서 의미와 가치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행사가 끝나면 전시물이 철거되고 비게 되는 전시장의 모습이 되지 않도록 했다. 행사비용으로 제작된 예술가 상자와 같은 교육 영상 및 꾸러미 콘텐츠는 행사 이후 더욱 폭넓게 상용화할 기회를 열게 될 것이고, 행사장의 공공미술품은 놀이기구로서 영구히 자리매김 될 것이고, 특히 폐교였던 학교가 본 기회로 아트스쿨로 재탄생되고, 의미 있는 어린이들을 위한 관광지가 될 것이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독일 베를린 중심가에는 홀로코스트 기념관이 있다. 물결치는 파도처럼 2700여개의 콘크리트 비석이 2차대전 당시 나치 독일정권하에서 자행된 유태인 학살을 기억하고 반성하게 한다. 9.11테러가 발생한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진 곳인 그라운드제로(ground zero)에는 ‘9.11테러 희생자 기념비와 박물관’이 있다. 비극적인 사건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함과 동시에 생명의 소중함, 종교간 갈등, 인류애와 평화에 대한 희망을 성찰하기 위한 공간이다. 전세계에서 106만 명이 넘게 사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희생자를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한 공간도 기획되고 있다. 남미의 우루과이의 건축 디자이너가 설계한 ‘세계 팬데믹 기념관’(World Memorial to the Pandemic)이다. 코로나19 희생자를 기억하는 세계 첫 대규모 기념건축이다. 지난해 말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코로나19’는 현재까지 218개국에서 3600만 명의 확진자를 발생시켰고, 휴교와 공공시설 폐쇄, 여행금지 등 지구촌 도시를 락다운(lockdown)으로 몰고갔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최고등급의 전세계적 유행병인 ‘팬데믹’의 무시무시함을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세계 팬데믹 기념관’은 우루과이 수도 몬테비데오 인근 해변에 설치된다. 건축회사인 고메즈 플라테로가 공개한 디자인에 따르면 이 기념시설은 직경 40m 크기의 오목한 원형 접시 모양이다. 해안으로부터 이어진 기다란 보도는 기념물의 갈라진 틈으로 인도한다. 틈을 통해 오목한 원형 접시 모양의 플랫폼에 오르는 순간 도시의 소음과 풍경이 사라진다. 관람객들은 침묵 속에서 오로지 바람과 파도와 같은 자연에 둘러싸인다. 콘크리트와 코르텐강(내후성강판)으로 만들어지는 원형 플랫폼 위에서는 서로간의 안전한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300명의 사람들이 모일 수 있다. 설계를 맡은 건축 디자이너 마틴 고메즈 플라테로 씨는 “코로나19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공간이지만, 인류가 더 이상 지구 에코시스템(생태계)의 중심이 아니며, 자연에 종속된 존재라는 집단적인 자각을 일깨워주는 반성과 성찰의 기념물”이라고 설명했다. “팬데믹의 글로벌한 충격은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지도를 탄생시켰다. 코로나19는 우리의 라이프스타일과 습관, 서로간에 연결되는 방식을 바꿨다. 둥근 원형은 전지구의 통합과 일치, 커뮤니티를 상징하며, 깨어진 틈은 ‘코로나19’로 인한 충격이자 단절을 상징한다.” 원형 플랫폼의 깨어진 틈은 ‘Before 코로나’(BC)와 ‘After 코로나’(AC)로 나뉘듯이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시대의 흔적이다. 이 기념관에서 또 하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오목한 원형 플랫폼의 가운데 부분에 뚫린 직경 10m 가량의 텅빈 허공이다. 빈 공간의 밑으로는 바닷물과 파도가 드나들고, 울퉁불퉁한 해변의 바위도 모습을 드러낸다. 이 때문에 관람객들은 중심부에 설 수 없으며, 둥근 원형의 주변에 서서 온통 자연에 둘러싸인 채 시간을 보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지구 에코 시스템의 중심은 인간이 아니며, 인간은 자연에 종속된 주변적 존재’라는 코로나19의 교훈을 그대로 형상화해낸 건축물이다. 텅빈 공(空)의 상태에서 자연이 생겨났으며, 우리도 언제든 깨어져 공(空)으로 돌아갈 수 있는 연약한 존재라는 진실을 겸허하게 전달해주는 은유가 아닐까. 팬데믹 기념비가 세워지는 장소가 해변가 바다 한 가운데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디자이너는 “기후변화로 이 기념물은 언젠가 수평선 밑으로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인류가 지구의 중심이라는 오만함에서 비롯된 플라스틱 문명이 파괴해 온 자연의 모습을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는 곳이 바다다. 작은 환경적 충격만으로도, 우리의 삶이 언제든 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코로나19’는 확인해주었다. 디자이너 플라테로 씨는 “건축은 세상을 바꿀 강력한 도구”라며 “비극적인 사건에 대한 기억과 감각을 활성화시킴으로써, 시대를 뛰어넘는 집단적이고, 역사적인 진실을 담아내는 것이 기념비 건축의 의미”라고 말했다. 코로나19를 기리기 위한 건축가들의 또 다른 기념시설 아이디어도 이어지고 있다. 이탈리아 건축가인 안젤로 레나는 밀라노의 산시로 축구경기장에 3만5000그루의 나무를 심자고 제안했다. 1926년부터 AC밀란과 인터밀란의 홈구장으로 쓰이고 있는 유서깊은 산시로 스타디움은 현재 철거되고 새로운 경기장 신축이 예정돼 있다. 안젤로 레나는 1934년과 1990년 월드컵 경기가 펼쳐진 이탈리아 축구를 대표하는 역사적 명소인 산시로 경기장을 철거하는 대신, 이탈리아에서 코로나19로 희생된 3만5000명을 상징하는 사이프러스 나무를 그라운드 주변과 관중석 곳곳에 심어 새들과 자연이 살아 숨쉬는 친환경이고 영적인 공원으로 만들자고 제안했다.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지난봄 아내가 갑자기 해녀학교에 다니겠다고 했다. 뭐라고? 해녀가 되겠다고? 귀를 의심했다. 영화 기획자이자, 배우 매니저, 드라마 홍보마케팅 관련 전문가로 평생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잔뼈가 굵어 왔던 아내가 갑자기 웬 해녀? 아내는 올 4월 제주 한림읍에 있는 한수풀 해녀학교에 지원해 합격했다. 전국에서 지원이 몰려 경쟁률이 수십 대 1에 이를 정도로 치열했다는데, 작년에 낙방의 고배를 마신 아내가 올해는 재수를 해서 기어코 들어간 것이다. 합격의 비밀은 자기소개서였다고 한다. “저를 붙여 주신다면 해녀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를 기획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해녀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리겠습니다. 블라블라~.” 아내는 5월 초부터 주말마다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비행기 요금은 평균 2만 원가량으로 쌌다. 아내는 처음에는 토요일 새벽에 가서 일요일 오후에 올라왔다. 그러더니 점점 금요일 오후에 퇴근하고 내려가서 토, 일요일을 꼬박 바다에서 살았다. 궁금증이 일기 시작했다. 자기 숨만으로 물속 깊이 잠수해서 소라, 전복 등을 따오는 해녀의 험난한 삶을 배우겠다는 21세기의 여성들은 대체 누구일까. 해녀학교는 왜 매년 입학경쟁률이 높아지는 것일까. 지난달 근속휴가를 맞아 일주일간 제주에서 해녀학교 생활을 직접 체험해 보았다. 잠수복을 입고, 오리발을 끼고 바닷속에 들어가 보니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 해녀학교의 ‘바당’ 교실제주 사람들은 거칠지만 아름다운 바다를 ‘바당’이라고 한다. 해녀학교 앞에는 방파제로 둘러싸여 있는 잔잔한 바당이 있었다. ‘교실’로 불리는 이 바다의 물속에는 미소를 짓고 있는 해녀상이 가라앉아 있었다. 안전요원이 지키는 방파제 인근에는 돌돔이 살고, 노란색과 검은색 줄무늬가 예쁜 범돔이 헤엄치고, 수천 마리의 에메랄드빛 멜떼(멸칫과 물고기)가 반짝거리며 몰려다녔다. 숨을 참고 4, 5m 물속에 잠수해 보면 갯민숭달팽이, 돌문어, 광어, 숭어들이 손에 잡힐 듯 오갔다. 토요일 오후. 해녀학교 학생들은 테왁 망사리를 들고 수업을 들으러 간다. 테왁은 해녀들이 물 위에 떠 있을 때 붙잡고 있는 부력장비로, 밑에 그물이 달려 있어 채취한 해산물을 넣을 수 있다. 물질을 가르쳐주는 강사는 귀덕2리 어촌계에 소속해 있는 31명의 60, 70대 해녀 삼촌들. 제주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나이 많은 분에게 ‘삼촌’이라는 존칭을 쓴다고 한다. 수업이 시작되자 학생들은 조별로 나뉘어 바다로 나아갔다. 출발하자마자 10m쯤 나갔을까. 한 조에서 ‘와!’ 하는 탄성 소리가 들려왔다. 물속에서 나온 해녀 삼촌의 손에 커다란 돌문어가 감겨져 있었다. 해녀 삼촌들은 호맹이(호미)로 바위를 뒤집어 채취하는 법, 물속에 센 조류가 있을 때 바위를 잡고 버티는 법, 뾰족한 가시가 있는 성게를 손으로 잡는 법 등 바다에서 살아가는 노하우를 학생들에게 자세히 전수해 주었다. ● 해녀가 연봉이 억대라는 소문이? 현재 4000명가량 남아 있는 제주 해녀의 대부분은 60, 70대 고령층이다. 고된 작업 때문에 해녀의 맥이 끊길 것을 우려한 제주도는 2008년부터 한수풀해녀학교에 예산을 지원해 신입생을 모집했다. 2017년부터는 전문 직업해녀 양성반도 개설했다. 이 학교 졸업생 중에 정식 해녀로 활동하는 사람은 50여 명에 이른다. 12일 한수풀해녀학교에서는 13기 졸업식이 열렸다. 4개월간의 고된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직접 바느질을 해서 만들어 입은 전통 해녀복인 흰색 물적삼(상의)과 검은색 물소중이(하의)를 차려입고 졸업장을 받았다. 제주 한림읍 협재리에서 온 서지원 씨(26)는 해녀의 손녀다. 올해 77세인 할머니는 비양도까지 가서 물질을 했던 상군(上軍) 해녀였다고 한다. 비양도는 협재리에서 3km 해상에 있는 화산섬. 주위 바다에는 80여 어종이 서식하고 각종 해조류와 수산자원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쇼핑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서 씨는 미용사인 이모와 함께 해녀의 대를 잇기 위해 해녀학교에 등록했다. “해녀의 매력은 ‘자유롭다’는 점인 것 같아요. 회사 생활과 달리 체력만 되면 나이 들어서도 제한 없이 할 수 있지요. 바닷속에 들어가면 더 자유롭죠. 협재해녀회에는 현재 해녀가 15명 정도 계신데, 대부분 연로하셔서 젊은 해녀학교 졸업생을 환영하는 분위기예요.” 서 씨처럼 직업반을 졸업하면 각 마을의 어촌계에서 1, 2년간 인턴 해녀로 일할 수 있다. 이후 어촌계원 80% 이상의 동의를 얻게 되면 수협에서 ‘해녀증(해녀 활동을 할 수 있는 자격증)’을 받는다. 연간 의무 조업일수를 채우는 해녀들은 제주도로부터 의료비 혜택, 잠수복 지원 등을 받는다. 제주 해녀는 고된 일을 하면서도 자식 대학 보내고, 결혼시키는 강인한 생활력을 자랑해왔다. 이 때문에 ‘감귤나무 가진 사람이 부럽지 않다’ ‘연봉이 억대다’라는 소문이 났다. 이동렬 해녀학교 사무국장은 “예전에는 바다에 씨알이 굵은 물건들이 많아서 10~15m 이상 깊은 바다에서 잠수하는 상군 해녀들은 연간 6000만~7000만 원 이상씩 벌었다고 한다”며 “요즘엔 바다에 백화현상 때문에 수확량이 줄어 다른 일도 함께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백화현상은 산호처럼 생긴 석회질 성분의 홍조류가 퍼져 바다 밑바닥을 하얗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 경우 해조류를 먹는 어패류도 사라지고 어장 황폐화 가능성이 커진다. ● 이직(移職)과 코로나… ‘한 달 살기’가 해녀학교 열풍으로 제주 사람들이 대부분인 전문해녀 양성 직업반과 달리 입문반의 풍경은 달랐다. 절반은 제주 이외 지역에서 지원한 사람들. 아내처럼 주말마다 비행기를 타고 오거나, 제주에서 집을 빌려 한 달 살기, 석 달 살기 등을 하면서 해녀학교를 다니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직업은 의사, 요리사, 마케팅 전문가, 심리상담가, 작곡가 등 다양했다. 소설가나 방송작가, 유튜버 등 해녀와 제주를 소재로 콘텐츠를 만들려는 이들도 적잖았다. 해녀는 물에 들어갈 때 혼자 들어갈 수 없고, 반드시 ‘물벗’이라고 부르는 파트너가 필요하다. 즉 2명이 한 조가 돼 서로의 안전을 챙겨줘야 한다. 아내의 물벗은 총각 의사 선생님 이하은 씨(31)였다. 전공의 수련을 마치고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일하게 된 그는 제주도에 한 달 살기로 놀러 왔다가 우연히 ‘해녀학교 신입생 모집’이라는 플래카드를 보았다고 했다. 그는 “이직하는 과정에서 4.5개월간 시간이 비어 재충전과 휴식을 하고 싶었다”며 “원래 허리가 좀 아팠는데 여름 내내 바다에서 잠수하고, 채취하는 재미에 흠뻑 빠지다 보니 건강해졌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금속공예디자인을 전공한 김연주 씨(36)는 화장품 회사 마케팅부에서 10년간 근무했다. 지난해 퇴직 후 태국 발리, 푸껫 등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면서 스쿠버다이빙과 프리다이빙을 배웠는데,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태국으로 갈 길이 막히자 제주해녀학교에 등록했다. 그는 “제주에 정착해서 언젠가 해녀를 하고 싶은 게 꿈”이라며 “그 전까지는 제주에서 다이빙 강사를 하거나 금속공예 전공을 살려 해녀를 소재로 한 콘텐츠 디자인 작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인형 씨(38)는 바다가 좋아서 아예 직장을 제주도에서 구한 경우. 2015년 숙명여대에서 심리학 전공 박사과정을 수료한 그는 제주지방경찰청에서 범죄피해자 심리상담사로 근무하며 박사논문을 쓰고 있다. 그는 “피해자 상담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경미한 우울증 같은 게 생기곤 하는데, 생명력 넘치는 해녀들의 삶에서 에너지를 받고 치유가 됐다”며 “수업 중에 해녀 삼촌이 직접 잡은 성게를 까서 입에 넣어주시던 따뜻함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제주도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 조윤정 씨(36)도 2018년 퇴사 후 한 달 살이를 하러 왔다가 눌러앉은 케이스다. 서울에서 스포츠마케팅 관련 일을 했던 그는 바다수영과 마라톤, 사이클을 겨루는 ‘철인3종(트라이애슬론)’ 마니아다. 매일 바다수영을 할 수 있고, 총연장 223km인 제주 해안도로에서 사이클을 타고, 한라수목원과 올레길에서 마라톤을 즐길 수 있는 제주도는 그에게 환상 그 자체다. 그는 “해녀란 직업은 달리기나 자전거처럼 기계적 장치의 도움 없이 오롯이 자기 숨만으로 잠수하고 채취하는 일이어서 커다란 매력을 느낀다”고 말했다. ● 해녀를 꿈꾸는 해남(海男)들해녀학교에는 남학생 비율도 10%가량 된다. 하지만 해남이 되는 길은 더 어렵다. 마을의 해녀회에서 받아주는 절차가 여성보다 훨씬 까다롭기 때문이다. 다만 아내가 해녀인 경우에 남편이 함께 물질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커진다. 2014년 해녀학교를 졸업한 김은주 씨(53)와 남편 김형준 씨(53)는 서귀포시 공천포에서 부부 해녀로 활동하고 있다. ‘해남’을 꿈꾸는 황태원 씨(36)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인터컨티넨탈호텔 메인주방 셰프 출신이다. 5년 전 제주에 온 그는 한경면 용수리에서 숙박업과 식당을 하고 있다. 지난 4개월간 해녀학교 수업이 있는 토요일엔 식당 문도 닫고 물질을 배웠다. “해산물을 이용한 요리를 좋아하는데 제가 직접 채취한 해산물로 하면 시너지 효과가 나지 않을까요. 내년에 직업반까지 마치고 해남이 돼서 아침엔 물질하고 저녁엔 식당을 하는 삶을 꿈꿉니다.” 또 다른 ‘해남’을 꿈꾸는 강혁주 씨(35)는 서울 강남구의 순대국밥집을 운영하며 프랜차이즈 본사를 꾸리고 있는 CEO다. 해녀 학교 생활의 전반에 대해 영상을 찍고 사진을 담아서 졸업영상을 만들었다. 그는 이번 해녀 학교 졸업과 동시에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고 한다. 직접 잡은 해산물로 샤브샤브 매장을 운영하는 꿈이 생겼다고 한다. 육지에서 온 이주민들의 경우는 카페나 식당, 게스트하우스를 5~10년씩 하더라도 배타적인 제주의 마을 공동체에 온전히 녹아들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해녀학교를 졸업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해녀가 갖는 상징성 때문에, 어촌계에 가입되는 순간 이른바 마을의 ‘인싸’(인사이더)가 될 수 있다. 이학출 한수풀해녀학교 교장(귀덕2리 어촌계장)은 “해녀학교 졸업생 중에 실제 해녀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은 50여 명 정도”라며 “해녀가 되기 위해선 물질 실력보다 우선적으로 마을 공동체에서 인정을 받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내는 졸업 후 서울로 돌아와서도 한동안 푸른 바닷물이 눈앞에 아른거린다고 했다. 해녀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물뽕 맞았다’라고 표현하는 증상이었다. 아내는 선언했다. “나 내년에도 직업반에 또 지원할 거야.”해녀학교 사람들 이야기●서지원(26·제주 해녀의 손녀) 제주 한림읍 협재의 쇼핑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다. 할머니(77)가 협재에서 해녀생활을 하셨다. 비양도까지 가서 물질을 하실 정도로 상군(上軍) 해녀였다. 비양도는 물건이 엄청 크고 좋다. 할머니는 딸만 여섯인데 엄마를 비롯해 딸 아무도 해녀를 하지 않았다. 미용실을 하는 이모랑 제가 해녀를 하기 위해 함께 해녀학교에 등록했다. 할머니가 계신 협재 어촌계의 추천서를 받아 해녀학교 직업반에 등록할 수 있었다. 협재 해녀회에는 15명의 해녀가 있는데 대부분 연로하신 분들이 많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을 많이 찾고 있다. 70세 이상이 되신 해녀분들은 물질을 잘 못한다. 이모는 미용실을 하면서 해녀를 겸직하실 계획을 세우고 있다. 저는 직업반에서도 제일 나이가 어리다. 그래서 ‘애기’라고 불린다. 어릴 적부터 바다를 좋아했는데, 수영은 못한다. 그러나 수트를 입고, 테왁을 들고 있으면 물에 뜰 수 있다. 예전에는 바다 속에 물건이 많아 해녀도 돈을 잘 벌었다고 한다. 요즘인 바다가 오염돼 물건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 물질만으로는 생계가 힘들다고 한다. 그래도 해녀가 좋은 점은 자유롭다는 것이다. 회사 일은 시간이 제한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해녀는 체력만 되면 나이들어서도 할 수 있다. 바다에서도 자유롭고, 땅 위에서도 자유롭다. 해녀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어촌계에 가입할 자격이 주어진다. 마을마다 다르지만 그 마을에서 2,3년 이상 살아야 하는 경우도 있고, 가입비로 200~300만원을 내는 마을도 있다. 한달에 평균 16일 이상 조업하면 해녀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 양식장에서 해물을 채취하기도 하고, 성게 톳 소라를 손질하는 작업을 돕기도 한다. 지난해 해녀학교 직업반을 졸업한 사람 중에 협재 분들 5명이 있었는데, 모두 협재에서 해녀생활을 하고 있다. ●강혁주 씨(35·프리다이빙 강사·평안도 식당 운영) 20대 청춘에 원양어선에 몸을 맡겨 벌어들인 수익으로 운 좋게 서울 강남역 부근 순대국밥집을 인수 했다. 29살에 순대국밥집 사장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24시간 영업을 매장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5년간 매달렸다. 직영 2호점을 내고 결국 프랜차이즈 본사를 설립해 10여개의 가맹점들과 함께하고 있다. 숨도 안쉬고 일했다. 유일하게 숨쉴 수 있는 시간은 수영장 가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살던 어느 날 제주도 친구에게 ‘한수풀 해녀학교’ 입학 공고 소식을 듣게 됐다. 순대국밥집을 인수할때와 같은 촉이 딱 왔다. ‘이것은 내 인생을 뒤바꿀 수 있는 일이구나!’ 주저 않고 자기소개서를 써 냈고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해녀학교 입문반에 입학했다. 4개월간 사업에, 코로나에, 등교에 정말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그 와중에 영상과 사진은 내 역사에 길이길이 남기기 위해 손에서 카메라와 액션캠을 놓지 않았다. 수영을 하며 프리다이빙 강사 자격증을 취득했었는데 이곳 해녀학교에서 이렇게 요긴하게 쓰일줄 또 누가 알았겠는가? 교장선생님과 사무국장님의 지도 하에 제주도 5미터 다이빙 풀(자이언트다이브)에서 해녀학교 학생들을 트레이닝했고, 해양 실습까지 마치며 자격증 발급까지 완료했다. 지난 4개월 매주말 심호흡을 크게 할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제주도행 비행기에 몸을 맡기는 순간 우주로 가는 여행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인생에 다시 오기 힘든 날들을 뒤로 하고 다시 사업에 매진할 수 있는 힘이 생겨 오늘을 살아간다. ●조윤정 씨(36·게스트하우스 운영) 서울에서 스포츠마케팅 일을 했다. 마라톤대회, 사이클대회, 지역축제같은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이었다. 제 자신도 운동을 좋아해 철인3종(트라이애슬론) 경기대회에 참가해왔다. 2018년에 퇴사하고 제주도에 ‘한달살기’로 놀러왔다가 그냥 눌러 앉았다. 제주 바다에서 수영하고, 올레길에서 마라톤하고, 해변도로에서 사이클을 타다보니 올라가지 않아도 되겠다 싶어서 정착을 해버렸다. 서울에 살 때는 강원도까지 고속도로 타고 가려면 최소 2~3시간이 걸리는데, 제주도는 집에서 10분만 나오면 모든 게 가능했다. 바다수영은 이호테우, 삼양해수욕장, 함덕해수욕장에서 허리에 부이를 묶고 1~2km 정도 한다. 사이클은 제주 해안도로를 한 바퀴 크게 돌면 223km다. 제주시에서 서귀포로 넘어가는 1100도로에는 꼬박 20km를 오르막으로 오르는 최고의 업힐구간 훈련지다. 마라톤은 예전에 이봉주 선수가 훈련했다고 하는 한라수목원에서 한다. 올레길에서 뛰기도 한다. 제주가 좋아서 계속 살고 싶다. 현재 게스트하우스를 대리운영하고 있다. 제주에는 생각보다 혼자 여행오는 여성들이 많다. 혼자 오는 것도 큰 용기지만, 혼자서 오름을 등반하고 자전거를 타고, 스노쿨링을 하는 것을 무서워하시는 분들이 많다. 스포츠를 즐기는 분들에게 코스를 짜주고,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다. 해녀는 가장 제주도를 상징하는 일이다. 지금 제 나이에는 좀 벅차지만, 나중에라도 해녀를 하고 싶다. 제가 자전거, 달리기를 좋아하는 이유가 오롯이 제 힘으로 하기 때문이다. 해녀도 마찬가지다. 오롯이 내 숨만으로 소라, 보말과 같은 물건을 잡는 것이다. 물론 바다가 허락을 해야지 들어갈 수 있다. 자연이랑 이렇게 함께 할 수 있는 직업이 없는 것 같다. 내 숨만큼 참고, 그만큼의 물건을 갖는 것. 욕심내지 않고, 최소한의 장비로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해녀의 삶이 너무나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김인형(38·제주 경찰청 심리상담사) 바다에 관심이 많아 제주도에 살고 싶었다. 2015년 숙명여대 심리학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일부러 제주도에 있는 직장을 찾았다. 마치 신의 계시처럼, 채용사이트 가장 위에 제주도 직장이 떠 있었다. 한국 법무보호복지공단에서 보호대상자 심리상담을 하는 일이었고, 이어서 제주경찰청에서 범죄피해자 상담을 하면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일도 하고 논문쓰는 연구를 하러간다’는 명분이 있으니까 집에서도 제주도행을 허락했다. 제주 해녀는 제주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아닌가. 올 때부터 관심있었다. 그러나 안전에도 직결되는 문제이고, 경외심만 갖고 섣불리 다가서지 못했다. 올해 코로나 때문에 국내외 여행도 자유롭지 않아, 제주에서 해녀학교에 도전했다. 해녀학교 입학해보니 지원자들의 열정에 다시한번 놀랐다. 육지에서 주말마다 내려오고, 공항에서 카풀을 해서 학교까지 오면서 진지하게 수업하는 걸보고 자극을 많이 받았다. 피해자 상담을 하다보면 경미한 수준의 우울증이 생길 수 있는데, 여기서 정말 열정적인 사람들을 보면서 삶의 에너지를 받고, 치유받는 느낌을 받았다. ●이하은 씨(31·의사) 전공의 수련기간이 끝나고 지난 3월말에 병원을 퇴사하고, 새로운 병원으로 가기로 돼 있었다. 이직기간 중 제주 한달살기를 하며 올레길을 걷다가 우연히 ‘해녀학교’ 간판을 봤다. 원래 바다에서 수영하고, 서핑하는 것을 좋아했다. 4월말에 해녀학교에 등록하면서 아예 몇 개월간 쉬며 재충전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잠수를 하다보니 몸도 건강해지고 폐활량이 늘어났다. 처음에는 숨참기가 1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2분30초가량 숨을 참을 수 있다. 제주에 있으면서 올레길도 거의 다 걸었다. 순수하게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해녀학교 생활은 다시는 얻지 못할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 김연주(36) 대학에서 금속공예디자인을 전공하고, 쥬얼리와 화장품 업계 마케팅 부서에서 10년 정도 근무했다. 25살부터 34살까지 10년간 트렌드를 쫓아다니는 마케팅 일을 했으니, 35살부터 10년간은 다른 일을 하고 싶었다. 퇴직 후 ‘제2의 삶’에 대한 고민을 하던 중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해외도 못가는 상황에서 해녀학교에 도전해보기로 결심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해녀를 하면서 제주에서 사는 삶도 멋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변에서 부모님과 친구, 직장동료들이 걱정하고 난리였다. 해녀학교에 입학해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자기소개를 듣는 순간 저랑 비슷한 고민을 하고, 찾아 온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눈물이 났다. 내가 백조의 세계에 살고 있는 외톨이, 보랏빛 미운 오리새끼인 줄 알았는데, 여기에 와보니 보라색 미운 오리들 천지였다. 굉장히 동질감을 느끼게 됐고, 빠르게 친해졌다. 능력치나 조건같은 껍데기보다, 내면적으로 있는 그대로 서로를 받아주고 인정해주는 해녀학교 생활이 좋았다. ●황태원(36·셰프) 5년 전 제주로 내려와 한경면 용수리 신창해안도로에서 식당과 숙박업을 하고 있다. 서울에서는 삼성동 인터콘티넨탈호텔 메인 주방에서 3년간 일했다. 제주도에 5개월간 여행하면서 스노클링하고, 문어도 잡으면서 제주 바다의 매력에 푹 빠졌다. 차츰차츰 프리다이빙, 스쿠버다이빙 자격증도 땄다. 허름한 바닷가 농가주택을 개조해 해산물을 컨셉으로 요리하는 식당과 숙박업소를 운영했다. 해녀학교는 3년간의 준비 끝에 입학했다. 첫해에는 접수 날짜를 놓쳐서 떨어졌고, 작년에는 지원했는데 불합격했다. 올해에는 삼수 끝에 입학했다. 현직 해녀로부터 물 속에서 현장실습을 하다보니까 해녀만의 노하우를 배울 수 있었다. 해남이 되어 식당을 하는 게 꿈이다. 제가 직접 채취한 물건으로 요리하는 것은 매우 좋은 시너지를 낳을 수 있다. 내년에 직업반 수업을 듣고, 어촌계에 가입하는 절차를 차근차근 밟으면 해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촌계 해녀회에서 남자도 받아줄까 모르겠지만, 회원 80%의 동의를 받으면 된다고 한다. 답은 없다.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제가 마을에서 5년간 살았지만, 주변 분들로부터 ‘저 사람이 해녀가 되면 마을발전에 도움을 줄 것 같다’는 평판을 들어야 한다. 제주에서 실제 활동하는 해남은 많진 않다. 현직 해녀에게 들었는데, 남녀는 인체의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갈 수록 여자보다 남자가 조금 더 못 버틴다고 한다. 4개월간 해녀학교에 다닐 동안 수업이 있는 토요일엔 아예 식당 문을 닫고 손님을 받지 않았다. 수업에 오롯이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바닷 속을 배우는 것도 재밌었고 행복했다. 1주일 동안 토요일을 너무나 기다렸다. ●이동렬 해녀학교 사무국장(61) 2014년도에 29년간 일했던 공직에서 정년퇴직하고, 2016년에 해녀학교를 졸업했다. 당시에 남자 졸업생이 12명이었다. 남자들도 매년 5~10명씩 해녀학교에 다닌다. 지금까지 남자 졸업생만 100명 가까이 될 것이다. 남자들도 졸업 후 해남(海男)으로 활동하려고 노력을 하는데, 실제로 해녀회 가입에 성공하기란 극히 어렵다. 그러나 마을에 따라 아내가 해녀인 경우에는 해남으로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바다를 좋아해서 퇴직 후에는 제주도에 살고 있다. 해녀학교의 세 번째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해녀학교 입학기준은 자기소개서에 나타난 열정을 많이 본다. 입문반의 50%는 제주도 이외의 육지 지역에서 지원한 사람들을 뽑는다. 비싼 비행기값 주고 주말마다 오는 사람들의 열정은 대단하다. 외국인은 정원 외다. 지원하는 사람은 대부분 뽑는다. 필리핀에서 온 사람도 있고, 러시아에서 온 사람도 있다. 진짜 해녀로 활동하려면 직업해녀 양성반을 졸업해야 한다. 직업반 사람들은 어촌계의 추천을 받아서 입학한다. 해녀학교를 졸업하면 어촌계에 가입해서 인턴 해녀생활을 거친 후 받아들여지면, 해녀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인턴해녀 생활은 1년에 60일 이상 조업하고, 자신이 잡은 해산물을 수협에 180만원 어치 이상 납품해야 한다. 조업일수를 채우는 것이 중요하다. 제주시에서 해녀증을 받으면 의료혜택 등을 받을 수 있다. 해녀들은 예전에는 귤나무를 가진 사람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돈을 벌어 애들 학교 보내고, 대학도 보내고, 결혼도 시키고 했다고 한다. 씨알이 굵은 물건도 많아서 상군 해녀들은 약 6000~7000만원 정도 벌었다고 하더라. 그런데 요즘에는 바다가 백화현상 때문에 물건이 많이 줄었다. 요즘도 성게철에는 1인당 600~700만원의 수입을 얻는다. 그러나 연간으로 치면 예전보다 수입이 크게 적은 게 현실이다. 해녀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쉽지 않다. 해녀를 하고 싶으면 ‘곰처럼 굴지 말고, 여우처럼 굴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가입비를 많이 내고, 물질을 잘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마을에서 공동작업을 해야할 때 무뚝뚝하게 나오라고 해도 안나오고 하면 안된다. 적극적으로 마을일에 참여하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뽑게 된다. 제주=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지난봄 아내가 갑자기 해녀학교에 다니겠다고 했다. 뭐라고? 해녀가 되겠다고? 귀를 의심했다. 영화 기획자이자, 배우 매니저, 드라마 홍보마케팅 관련 전문가로 평생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잔뼈가 굵어 왔던 아내가 갑자기 웬 해녀? 아내는 올 4월 제주 한림읍에 있는 한수풀 해녀학교에 지원해 합격했다. 전국에서 지원이 몰려 경쟁률이 수십 대 1에 이를 정도로 치열했다는데, 작년에 낙방의 고배를 마신 아내가 올해는 재수를 해서 기어코 들어간 것이다. 합격의 비밀은 자기소개서였다고 한다. “저를 붙여 주신다면 해녀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를 기획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해녀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리겠습니다. 블라블라∼.” 아내는 5월 초부터 주말마다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비행기 요금은 평균 2만 원가량으로 쌌다. 아내는 처음에는 토요일 새벽에 가서 일요일 오후에 올라왔다. 그러더니 점점 금요일 오후에 퇴근하고 내려가서 토, 일요일을 꼬박 바다에서 살았다. 궁금증이 일기 시작했다. 자기 숨만으로 물속 깊이 잠수해서 소라, 전복 등을 따오는 해녀의 험난한 삶을 배우겠다는 21세기의 여성들은 대체 누구일까. 해녀학교는 왜 매년 입학경쟁률이 높아지는 것일까. 지난달 근속휴가를 맞아 일주일간 제주에서 해녀학교 생활을 직접 체험해 보았다. 잠수복을 입고, 오리발을 끼고 바닷속에 들어가 보니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해녀학교의 ‘바당’ 교실 제주 사람들은 거칠지만 아름다운 바다를 ‘바당’이라고 한다. 해녀학교 앞에는 방파제로 둘러싸여 있는 잔잔한 바당이 있었다. ‘교실’로 불리는 이 바다의 물속에는 미소를 짓고 있는 해녀상이 가라앉아 있었다. 안전요원이 지키는 방파제 인근에는 돌돔이 살고, 노란색과 검은색 줄무늬가 예쁜 범돔이 헤엄치고, 수천 마리의 에메랄드빛 멜떼(멸칫과 물고기)가 반짝거리며 몰려다녔다. 숨을 참고 4, 5m 물속에 잠수해 보면 갯민숭달팽이, 돌문어, 광어, 숭어들이 손에 잡힐 듯 오갔다. 토요일 오후. 해녀학교 학생들은 테왁 망사리를 들고 수업을 들으러 간다. 테왁은 해녀들이 물 위에 떠 있을 때 붙잡고 있는 부력장비로, 밑에 그물이 달려 있어 채취한 해산물을 넣을 수 있다. 물질을 가르쳐주는 강사는 귀덕2리 어촌계에 소속해 있는 31명의 60, 70대 해녀 삼촌들. 제주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나이 많은 분에게 ‘삼촌’이라는 존칭을 쓴다고 한다. 수업이 시작되자 학생들은 조별로 나뉘어 바다로 나아갔다. 출발하자마자 10m쯤 나갔을까. 한 조에서 ‘와!’ 하는 탄성 소리가 들려왔다. 물속에서 나온 해녀 삼촌의 손에 커다란 돌문어가 감겨져 있었다. 해녀 삼촌들은 호맹이(호미)로 바위를 뒤집어 채취하는 법, 물속에 센 조류가 있을 때 바위를 잡고 버티는 법, 뾰족한 가시가 있는 성게를 손으로 잡는 법 등 바다에서 살아가는 노하우를 학생들에게 자세히 전수해 주었다. ○ 해녀 연봉이 억대라는 소문이? 현재 4000명가량 남아 있는 제주 해녀의 대부분은 60, 70대 고령층이다. 고된 작업 때문에 해녀의 맥이 끊길 것을 우려한 제주도는 2008년부터 한수풀해녀학교에 예산을 지원해 신입생을 모집했다. 2017년부터는 전문 직업해녀 양성반도 개설했다. 이 학교 졸업생 중에 정식 해녀로 활동하는 사람은 50여 명에 이른다. 12일 한수풀해녀학교에서는 13기 졸업식이 열렸다. 4개월간의 고된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직접 바느질을 해서 만들어 입은 전통 해녀복인 흰색 물적삼(상의)과 검은색 물소중이(하의)를 차려입고 졸업장을 받았다. 제주 한림읍 협재리에서 온 서지원 씨(26)는 해녀의 손녀다. 올해 77세인 할머니는 비양도까지 가서 물질을 했던 상군(上軍) 해녀였다고 한다. 비양도는 협재리에서 3km 해상에 있는 화산섬. 해녀는 상·중·하군으로 계급이 나뉘는데, 상군은 수심 10∼15m까지 깊이 들어갈 수 있는 노련한 해녀다. 현재 쇼핑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서 씨는 미용사인 이모와 함께 해녀의 대를 잇기 위해 해녀학교에 등록했다. “해녀의 매력은 ‘자유롭다’는 점인 것 같아요. 회사 생활과 달리 체력만 되면 나이 들어서도 제한 없이 할 수 있지요. 바닷속에 들어가면 더 자유롭죠. 협재해녀회에는 현재 해녀가 15명 정도 계신데, 대부분 연로하셔서 젊은 해녀학교 졸업생을 환영하는 분위기예요.” 서 씨처럼 직업반을 졸업하면 각 마을의 어촌계에서 1, 2년간 인턴 해녀로 일할 수 있다. 이후 어촌계원 80% 이상의 동의를 얻게 되면 수협에서 ‘해녀증(해녀 활동을 할 수 있는 자격증)’을 받는다. 연간 의무 조업일수를 채우는 해녀들은 제주도로부터 의료비 혜택, 잠수복 지원 등을 받는다. 제주 해녀는 고된 일을 하면서도 자식 대학 보내고, 결혼시키는 강인한 생활력을 자랑해왔다. 이 때문에 ‘감귤나무 가진 사람이 부럽지 않다’ ‘연봉이 억대다’라는 소문이 났다. 이동렬 해녀학교 사무국장은 “예전에는 바다에 씨알이 굵은 물건들이 많아서 10∼15m 이상 깊은 바다에서 잠수하는 상군 해녀들은 연간 6000만∼7000만 원 이상씩 벌었다고 한다”며 “요즘엔 바다에 백화현상 때문에 수확량이 줄어 다른 일도 함께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백화현상은 산호처럼 생긴 석회질 성분의 홍조류가 퍼져 바다 밑바닥을 하얗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 경우 해조류를 먹는 어패류도 사라지고 어장 황폐화 가능성이 커진다. ○ 이직(移職)과 코로나… ‘한 달 살기’가 해녀학교 열풍으로 제주 사람들이 대부분인 전문해녀 양성 직업반과 달리 입문반의 풍경은 달랐다. 절반은 제주 이외 지역에서 지원한 사람들. 아내처럼 주말마다 비행기를 타고 오거나, 제주에서 집을 빌려 한 달 살기, 석 달 살기 등을 하면서 해녀학교를 다니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직업은 의사, 요리사, 마케팅 전문가, 심리상담가, 작곡가 등 다양했다. 소설가나 방송작가, 유튜버 등 해녀와 제주를 소재로 콘텐츠를 만들려는 이들도 적잖았다. 해녀는 물에 들어갈 때 혼자 들어갈 수 없고, 반드시 ‘물벗’이라고 부르는 파트너가 필요하다. 즉 2명이 한 조가 돼 서로의 안전을 챙겨줘야 한다. 아내의 물벗은 총각 의사 선생님 이하은 씨(31)였다. 전공의 수련을 마치고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일하게 된 그는 제주도에 한 달 살기로 놀러 왔다가 우연히 ‘해녀학교 신입생 모집’이라는 플래카드를 보았다고 했다. 그는 “이직하는 과정에서 4,5개월간 시간이 비어 재충전과 휴식을 하고 싶었다”며 “원래 허리가 좀 아팠는데 여름 내내 바다에서 잠수하고, 채취하는 재미에 흠뻑 빠지다 보니 건강해졌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금속공예디자인을 전공한 김연주 씨(36)는 화장품 회사 마케팅부에서 10년간 근무했다. 지난해 퇴직 후 태국 발리, 푸껫 등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면서 스쿠버다이빙과 프리다이빙을 배웠는데,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태국으로 갈 길이 막히자 제주해녀학교에 등록했다. 그는 “제주에 정착해서 언젠가 해녀를 하고 싶은 게 꿈”이라며 “그전까지는 제주에서 다이빙 강사를 하거나 금속공예 전공을 살려 해녀를 소재로 한 콘텐츠 디자인 작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인형 씨(38)는 바다가 좋아서 아예 직장을 제주도에서 구한 경우. 2015년 숙명여대에서 심리학 전공 박사과정을 수료한 그는 제주지방경찰청에서 범죄피해자 심리상담사로 근무하며 박사논문을 쓰고 있다. 그는 “피해자 상담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경미한 우울증 같은 게 생기곤 하는데, 생명력 넘치는 해녀들의 삶에서 에너지를 받고 치유가 됐다”며 “수업 중에 해녀 삼촌이 직접 잡은 성게를 까서 입에 넣어주시던 따뜻함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제주도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 조윤정 씨(36)도 2018년 퇴사 후 한 달 살이를 하러 왔다가 눌러앉은 케이스다. 서울에서 스포츠마케팅 관련 일을 했던 그는 바다수영과 마라톤, 사이클을 겨루는 ‘철인3종(트라이애슬론)’ 마니아다. 매일 바다수영을 할 수 있고, 총연장 223km인 제주 해안도로에서 사이클을 타고, 한라수목원과 올레길에서 마라톤을 즐길 수 있는 제주도는 그에게 환상 그 자체다. 그는 “해녀란 직업은 달리기나 자전거처럼 기계적 장치의 도움 없이 오롯이 자기 숨만으로 잠수하고 채취하는 일이어서 커다란 매력을 느낀다”고 말했다.○ 해녀를 꿈꾸는 해남(海男)들 해녀학교에는 남학생 비율도 10%가량 된다. 하지만 해남이 되는 길은 더 어렵다. 마을의 해녀회에서 받아주는 절차가 여성보다 훨씬 까다롭기 때문이다. 다만 아내가 해녀인 경우에 남편이 함께 물질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커진다. 2014년 해녀학교를 졸업한 김은주 씨(53)와 남편 김형준 씨(53)는 서귀포시 공천포에서 부부 해녀로 활동하고 있다. ‘해남’을 꿈꾸는 황태원 씨(36)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인터컨티넨탈호텔 메인주방 셰프 출신이다. 5년 전 제주에 온 그는 한경면 용수리에서 숙박업과 식당을 하고 있다. 지난 4개월간 해녀학교 수업이 있는 토요일엔 식당 문도 닫고 물질을 배웠다. “해산물을 이용한 요리를 좋아하는데 제가 직접 채취한 해산물로 하면 시너지 효과가 나지 않을까요. 내년에 직업반까지 마치고 해남이 돼서 아침엔 물질하고 저녁엔 식당을 하는 삶을 꿈꿉니다.” 육지에서 온 이주민들의 경우는 카페나 식당, 게스트하우스를 5∼10년씩 하더라도 배타적인 제주의 마을 공동체에 온전히 녹아들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해녀학교를 졸업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해녀가 갖는 상징성 때문에, 어촌계에 가입되는 순간 이른바 마을의 ‘인싸’(인사이더)가 될 수 있다. 이학출 한수풀해녀학교 교장(귀덕2리 어촌계장)은 “해녀학교 졸업생 중에 실제 해녀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은 50여 명 정도”라며 “해녀가 되기 위해선 물질 실력보다 우선적으로 마을 공동체에서 인정을 받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내는 졸업 후 서울로 돌아와서도 한동안 푸른 바닷물이 눈앞에 아른거린다고 했다. 해녀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물뽕 맞았다’라고 표현하는 증상이었다. 아내는 선언했다. “나 내년에도 직업반에 또 지원할 거야.” 제주=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지난봄 아내가 갑자기 해녀학교에 다니겠다고 했다. 뭐라고? 해녀가 되겠다고? 귀를 의심했다. 영화 기획자이자, 배우 매니저, 드라마 홍보마케팅 관련 전문가로 평생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잔뼈가 굵어 왔던 아내가 갑자기 웬 해녀? 아내는 올 4월 제주 한림읍에 있는 한수풀 해녀학교에 지원해 합격했다. 전국에서 지원이 몰려 경쟁률이 수십 대 1에 이를 정도로 치열했다는데, 작년에 낙방의 고배를 마신 아내가 올해는 재수를 해서 기어코 들어간 것이다. 합격의 비밀은 자기소개서였다고 한다. “저를 붙여 주신다면 해녀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를 기획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해녀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리겠습니다. 블라블라~.” 아내는 5월 초부터 주말마다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비행기 요금은 평균 2만 원가량으로 쌌다. 아내는 처음에는 토요일 새벽에 가서 일요일 오후에 올라왔다. 그러더니 점점 금요일 오후에 퇴근하고 내려가서 토, 일요일을 꼬박 바다에서 살았다. 궁금증이 일기 시작했다. 자기 숨만으로 물속 깊이 잠수해서 소라, 전복 등을 따오는 해녀의 험난한 삶을 배우겠다는 21세기의 여성들은 대체 누구일까. 해녀학교는 왜 매년 입학경쟁률이 높아지는 것일까. 지난달 근속휴가를 맞아 일주일간 제주에서 해녀학교 생활을 직접 체험해 보았다. 잠수복을 입고, 오리발을 끼고 바닷속에 들어가 보니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 해녀학교의 ‘바당’ 교실제주 사람들은 거칠지만 아름다운 바다를 ‘바당’이라고 한다. 해녀학교 앞에는 방파제로 둘러싸여 있는 잔잔한 바당이 있었다. ‘교실’로 불리는 이 바다의 물속에는 미소를 짓고 있는 해녀상이 가라앉아 있었다. 안전요원이 지키는 방파제 인근에는 돌돔이 살고, 노란색과 검은색 줄무늬가 예쁜 범돔이 헤엄치고, 수천 마리의 에메랄드빛 멜떼(멸칫과 물고기)가 반짝거리며 몰려다녔다. 숨을 참고 4, 5m 물속에 잠수해 보면 갯민숭달팽이, 돌문어, 광어, 숭어들이 손에 잡힐 듯 오갔다. 토요일 오후. 해녀학교 학생들은 테왁 망사리를 들고 수업을 들으러 간다. 테왁은 해녀들이 물 위에 떠 있을 때 붙잡고 있는 부력장비로, 밑에 그물이 달려 있어 채취한 해산물을 넣을 수 있다. 물질을 가르쳐주는 강사는 귀덕2리 어촌계에 소속해 있는 31명의 60, 70대 해녀 삼촌들. 제주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나이 많은 분에게 ‘삼촌’이라는 존칭을 쓴다고 한다. 수업이 시작되자 학생들은 조별로 나뉘어 바다로 나아갔다. 출발하자마자 10m쯤 나갔을까. 한 조에서 ‘와!’ 하는 탄성 소리가 들려왔다. 물속에서 나온 해녀 삼촌의 손에 커다란 돌문어가 감겨져 있었다. 해녀 삼촌들은 호맹이(호미)로 바위를 뒤집어 채취하는 법, 물속에 센 조류가 있을 때 바위를 잡고 버티는 법, 뾰족한 가시가 있는 성게를 손으로 잡는 법 등 바다에서 살아가는 노하우를 학생들에게 자세히 전수해 주었다. ● 해녀가 연봉이 억대라는 소문이?현재 4000명가량 남아 있는 제주 해녀의 대부분은 60, 70대 고령층이다. 고된 작업 때문에 해녀의 맥이 끊길 것을 우려한 제주도는 2008년부터 한수풀해녀학교에 예산을 지원해 신입생을 모집했다. 2017년부터는 전문 직업해녀 양성반도 개설했다. 이 학교 졸업생 중에 정식 해녀로 활동하는 사람은 50여 명에 이른다. 12일 한수풀해녀학교에서는 13기 졸업식이 열렸다. 4개월간의 고된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직접 바느질을 해서 만들어 입은 전통 해녀복인 흰색 물적삼(상의)과 검은색 물소중이(하의)를 차려입고 졸업장을 받았다. 제주 한림읍 협재리에서 온 서지원 씨(26)는 해녀의 손녀다. 올해 77세인 할머니는 비양도까지 가서 물질을 했던 상군(上軍) 해녀였다고 한다. 비양도는 협재리에서 3km 해상에 있는 화산섬. 주위 바다에는 80여 어종이 서식하고 각종 해조류와 수산자원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쇼핑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서 씨는 미용사인 이모와 함께 해녀의 대를 잇기 위해 해녀학교에 등록했다. “해녀의 매력은 ‘자유롭다’는 점인 것 같아요. 회사 생활과 달리 체력만 되면 나이 들어서도 제한 없이 할 수 있지요. 바닷속에 들어가면 더 자유롭죠. 협재해녀회에는 현재 해녀가 15명 정도 계신데, 대부분 연로하셔서 젊은 해녀학교 졸업생을 환영하는 분위기예요.” 서 씨처럼 직업반을 졸업하면 각 마을의 어촌계에서 1, 2년간 인턴 해녀로 일할 수 있다. 이후 어촌계원 80% 이상의 동의를 얻게 되면 수협에서 ‘해녀증(해녀 활동을 할 수 있는 자격증)’을 받는다. 연간 의무 조업일수를 채우는 해녀들은 제주도로부터 의료비 혜택, 잠수복 지원 등을 받는다. 제주 해녀는 고된 일을 하면서도 자식 대학 보내고, 결혼시키는 강인한 생활력을 자랑해왔다. 이 때문에 ‘감귤나무 가진 사람이 부럽지 않다’ ‘연봉이 억대다’라는 소문이 났다. 이동렬 해녀학교 사무국장은 “예전에는 바다에 씨알이 굵은 물건들이 많아서 10~15m 이상 깊은 바다에서 잠수하는 상군 해녀들은 연간 6000만~7000만 원 이상씩 벌었다고 한다”며 “요즘엔 바다에 백화현상 때문에 수확량이 줄어 다른 일도 함께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백화현상은 산호처럼 생긴 석회질 성분의 홍조류가 퍼져 바다 밑바닥을 하얗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 경우 해조류를 먹는 어패류도 사라지고 어장 황폐화 가능성이 커진다. ● 이직(移職)과 코로나… ‘한 달 살기’가 해녀학교 열풍으로제주 사람들이 대부분인 전문해녀 양성 직업반과 달리 입문반의 풍경은 달랐다. 절반은 제주 이외 지역에서 지원한 사람들. 아내처럼 주말마다 비행기를 타고 오거나, 제주에서 집을 빌려 한 달 살기, 석 달 살기 등을 하면서 해녀학교를 다니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직업은 의사, 요리사, 마케팅 전문가, 심리상담가, 작곡가 등 다양했다. 소설가나 방송작가, 유튜버 등 해녀와 제주를 소재로 콘텐츠를 만들려는 이들도 적잖았다. 해녀는 물에 들어갈 때 혼자 들어갈 수 없고, 반드시 ‘물벗’이라고 부르는 파트너가 필요하다. 즉 2명이 한 조가 돼 서로의 안전을 챙겨줘야 한다. 아내의 물벗은 총각 의사 선생님 이하은 씨(31)였다. 전공의 수련을 마치고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일하게 된 그는 제주도에 한 달 살기로 놀러 왔다가 우연히 ‘해녀학교 신입생 모집’이라는 플래카드를 보았다고 했다. 그는 “이직하는 과정에서 4.5개월간 시간이 비어 재충전과 휴식을 하고 싶었다”며 “원래 허리가 좀 아팠는데 여름 내내 바다에서 잠수하고, 채취하는 재미에 흠뻑 빠지다 보니 건강해졌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금속공예디자인을 전공한 김연주 씨(36)는 화장품 회사 마케팅부에서 10년간 근무했다. 지난해 퇴직 후 태국 발리, 푸껫 등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면서 스쿠버다이빙과 프리다이빙을 배웠는데,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태국으로 갈 길이 막히자 제주해녀학교에 등록했다. 그는 “제주에 정착해서 언젠가 해녀를 하고 싶은 게 꿈”이라며 “그 전까지는 제주에서 다이빙 강사를 하거나 금속공예 전공을 살려 해녀를 소재로 한 콘텐츠 디자인 작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인형 씨(38)는 바다가 좋아서 아예 직장을 제주도에서 구한 경우. 2015년 숙명여대에서 심리학 전공 박사과정을 수료한 그는 제주지방경찰청에서 범죄피해자 심리상담사로 근무하며 박사논문을 쓰고 있다. 그는 “피해자 상담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경미한 우울증 같은 게 생기곤 하는데, 생명력 넘치는 해녀들의 삶에서 에너지를 받고 치유가 됐다”며 “수업 중에 해녀 삼촌이 직접 잡은 성게를 까서 입에 넣어주시던 따뜻함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제주도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 조윤정 씨(36)도 2018년 퇴사 후 한 달 살이를 하러 왔다가 눌러앉은 케이스다. 서울에서 스포츠마케팅 관련 일을 했던 그는 바다수영과 마라톤, 사이클을 겨루는 ‘철인3종(트라이애슬론)’ 마니아다. 매일 바다수영을 할 수 있고, 총연장 223km인 제주 해안도로에서 사이클을 타고, 한라수목원과 올레길에서 마라톤을 즐길 수 있는 제주도는 그에게 환상 그 자체다. 그는 “해녀란 직업은 달리기나 자전거처럼 기계적 장치의 도움 없이 오롯이 자기 숨만으로 잠수하고 채취하는 일이어서 커다란 매력을 느낀다”고 말했다.● 해녀를 꿈꾸는 해남(海男)들 해녀학교에는 남학생 비율도 10%가량 된다. 하지만 해남이 되는 길은 더 어렵다. 마을의 해녀회에서 받아주는 절차가 여성보다 훨씬 까다롭기 때문이다. 다만 아내가 해녀인 경우에 남편이 함께 물질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커진다. 2014년 해녀학교를 졸업한 김은주 씨(53)와 남편 김형준 씨(53)는 서귀포시 공천포에서 부부 해녀로 활동하고 있다. ‘해남’을 꿈꾸는 황태원 씨(36)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인터컨티넨탈호텔 메인주방 셰프 출신이다. 5년 전 제주에 온 그는 한경면 용수리에서 숙박업과 식당을 하고 있다. 지난 4개월간 해녀학교 수업이 있는 토요일엔 식당 문도 닫고 물질을 배웠다. “해산물을 이용한 요리를 좋아하는데 제가 직접 채취한 해산물로 하면 시너지 효과가 나지 않을까요. 내년에 직업반까지 마치고 해남이 돼서 아침엔 물질하고 저녁엔 식당을 하는 삶을 꿈꿉니다.” 또 다른 ‘해남’을 꿈꾸는 강혁주 씨(35)는 서울 강남구의 순대국밥집을 운영하며 프랜차이즈 본사를 꾸리고 있는 CEO다. 해녀 학교 생활의 전반에 대해 영상을 찍고 사진을 담아서 졸업영상을 만들었다. 그는 이번 해녀 학교 졸업과 동시에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고 한다. 직접 잡은 해산물로 샤브샤브 매장을 운영하는 꿈이 생겼다고 한다. 육지에서 온 이주민들의 경우는 카페나 식당, 게스트하우스를 5~10년씩 하더라도 배타적인 제주의 마을 공동체에 온전히 녹아들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해녀학교를 졸업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해녀가 갖는 상징성 때문에, 어촌계에 가입되는 순간 이른바 마을의 ‘인싸’(인사이더)가 될 수 있다. 이학출 한수풀해녀학교 교장(귀덕2리 어촌계장)은 “해녀학교 졸업생 중에 실제 해녀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은 50여 명 정도”라며 “해녀가 되기 위해선 물질 실력보다 우선적으로 마을 공동체에서 인정을 받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내는 졸업 후 서울로 돌아와서도 한동안 푸른 바닷물이 눈앞에 아른거린다고 했다. 해녀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물뽕 맞았다’라고 표현하는 증상이었다. 아내는 선언했다. “나 내년에도 직업반에 또 지원할 거야.”제주=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그림책은 어린이만을 위한 책일까? ‘하루10분 그림책 질문의 기적’(마더북스)을 펴낸 최진희 작가는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다보면 엄마 아빠가 더 눈물을 흘리게 되는 때도 있다”고 말한다. 최 작가는 이 책의 서문에서 자신이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된 경험담을 소개한다. 어느날 작가는 남편과 심한 말다툼을 하고, 혼자 있고 싶은 마음에 아이의 방으로 갔다. 아이 침대 옆에 쭈그려 앉아 있다가 눈 앞에 있던 그림책이 눈에 들어왔다. 후세야스코가 지은 ‘달라서 좋아요!’(대교)란 책이었다. “너랑 나랑은 닮은 데라곤 요만큼도 없네!” 그림책에서 데굴데굴 잘 굴러다니는 동그라미는 세모를 번쩍 들고 신나게 빨리 달린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급경사를 만나 당황하고 만다. 그 때 세모가 폴짝 뛰어 내려와 동그라미를 막아서며 말한다. “뭘, 나는 멈춰 서는 건 아주 잘해.” 최 작가는 그림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오늘 남편과 싸운 걸 어떻게 알았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특히 ‘너랑 나랑 닮은 데라곤 요만큼도 없네!’라는 구절이 부부의 모습인 것 같아 가슴이 콕 박혔다. 동그라미와 세모, 둘은 확연히 다르게 생기지 않았는가. “저는 항상 기분따라 굴러가는 동그라미에 가까워요. 반면 남편은 계획대로 움직이고 때로 브레이크를 걸기도 하는 세모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모는 내가 보지 못하는 위기를 살피고 조언을 해주는 조력자일 수도 있는 셈이죠. 우린 서로 다르지만 어쩌면 달라서 서로의 덕을 보며 살고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 작가가 ‘그림책을 아이에게 읽어주기 전에, 엄마가 먼저 제대로 읽어야 하는구나’하는 깨달음을 얻었던 순간이었다. 그림책에는 아이의 성장과정에서 느끼는 심리와 고민이 어떤 책보다도 잘 표현돼 있다. 그래서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 모르는 초보 엄마와 아빠들의 ‘부모 교육’을 위한 맞춤형 교재이기도 하다. 국문학을 전공하고 방송 구성작가로 10년을 일했던 최 작가는 결혼해서 아이가 태어난 후 동화구연을 배웠다고 한다. 2011년 색동회 대한민국 어머니동화구연대회에서 대상(여성가족부 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처음에는 아이에게 재밌게 읽어줄 요량으로 동화구연을 배웠는데, 그만 자신이 그림책의 스토리텔링 매력에 흠뻑 빠지고 말았다. 이 책은 부모가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방법을 소개하는 책이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삶에 지친 워킹맘이었던 작가의 육아체험에 대한 진솔한 고백이기도 하다.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지만 될 수 없어서 늘 헤메고, 울부짖고, 허무해했던 작가의 기록이다. 그는 ‘고함쟁이 엄마’(유타 바우어 지음)란 책에서 엄마 펭귄이 소리를 지를 때 아기 펭귄의 몸이 세상 곳곳으로 산산히 흩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을 돌아본다. 내가 왜 고함쟁이 엄마가 됐는지, 아이에게 시도때도 없이 버럭소리를 지르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엄마들은 육아도 힘들지만, 상대적으로 초라해보이는 내 삶에 대한 창피함이 있어요. 독서는 말할 것도 없고, 문화예술과 담쌓고 산지 오래인 나의 일상…. 두툼한 교양서는 물론 소설을 읽거나, 극장에서 영화나 공연을 보는 것도 쉽지 않았죠. 그런데 어느날 엄마인 나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예술영역이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지요. 바로 그림책이었습니다.” 최 작가는 “그림책을 통해 엄마인 나의 자존감을 바로 세우고, 아이를 키우는 일까지 위로와 지혜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이를 위해 그림책을 ‘읽기’ 대신에 ‘감상하기’를 해보자고 제안한다. 이렇게 표현을 바꿔보면 그림책을 바라보는 시각, 나의 태도가 달라진다. 그림책은 글 뿐 아니라 이미지로 전하는 감흥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그림책의 시각 자극은 매우 빠르게 정서적인 반응을 일으킨다. 그런 과정을 통해 어른들의 마음 속 깊이 덮어두거나 눌러두었던 무의식을 건드려 수많은 감정과 연상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 “그림책을 깊이 들여다 볼 때 부모가 얻는 지혜와 감동이 아이보다 훨씬 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부모가 가진 삶의 경험치가 훨씬 크기 때문입니다. 또한 살아오면서 갖게 된 편견, 선입견 또한 부모가 더 많기에 감흥도 더 크게 느낄 수 있어요. 철석같이 믿었던 생각이 바뀌고 가치관이 뒤바뀌는 경험을 그림책을 통해 하게 되는 것이죠.” 그는 그림책은 ‘느리게’ 읽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구석구석 숨은 그림의 의미 하나하나가지 찾아가며 아이와 대화를 하고, 나뭇잎 색깔의 변화를 통해 그림에 담긴 시간의 흐름을 느끼고, 등장인물들의 크기와 목소리 톤까지 생각하며 읽어보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후에는 엄마가 아이와 함께 10분 동안 질문과 대답을 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무엇일까’, ‘주인공에게 물어보고 싶은 말’,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주인공과 나와 닮은 점, 다른 점’과 같은 질문을 주고받으며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엄마가 질문하면 아이만 답하는 일방통행이 아니라, 똑같은 질문은 아이가 던지고 엄마도 솔직하게 느낌을 이야기하는 쌍방향 대화여야 한다고 작가는 강조한다. “아기와 엄마가 질문에 대한 대답에 다시 되묻기를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게 하는 과정을 통해 그림책 읽기를 하다보면, 엄마인 나조차 모르고 있거나 나도 모르게 숨기려 들었던 문제를 마주하게 됩니다. 어른이나 아이나 내 속내를 확인하는 것이 마음 편하지만은 않은데 그림책을 통해서라면 다행히 비교적 안전하게 마주하게 되죠. 타인에 의해 들춰지거나 그로 인한 수치스러움을 겪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최 작가는 이러한 ‘그림책 질문 놀이’를 수없이 많은 국공립어린이집과 유치원, 도서관 문화센터 등에서 아이와 부모들에게 함께 체험하도록 했다. “그림책을 읽고 아이와 질문과 되묻기를 하다보면 부모인 내가 왜 유독 그 부분에 화가 났는지, 아이의 행동 중에 나는 왜 그 모습이 눈에 거슬리는지, 내가 생각하는 것이 정말 내 아이의 문제인지, 나의 문제인지 성찰하게 됩니다. 바로 나 자신에 집중하고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죠. 그림책을 통해 나와 내 아이에 대해 깨닫는 통찰은 곧 그 자체로 ‘부모교육’의 효과를 줍니다. 아이의 성장과 함께 부모의 성장도 얻는 기회죠. 그리고 무엇보다 힘겹고 외로운 육아 중에 엄마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위로와 환기의 방법이기도 합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사람들의 관심이 옷(패션)에서 음식(요리), 요즘엔 집(인테리어)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다음 순서는 바로 일상 속 공예품이 라고 생각합니다.” 김태훈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 원장은 18일 개막하는 ‘2020 공예주간’의 주제인 ‘생활 속 공예 두기’의 의미에 대해 “코로나19 사태로 타인(他人)의 시선보다 자기 개인의 삶이 더 중요해졌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그동안엔 멋진 집과 자동차, 옷 등 외면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에 신경을 썼다면, 이제는 집에서 자신을 위해 즐길 수 있는 공예품에 마음을 두게 됐다는 의미다. ―‘생활 속 공예 두기’는 어떤 의미인가요. “신영복 선생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란 책에서 자신은 여름이 제일 싫다고 했습니다. 더위 때문에 곁에 있는 사람을 혐오하게 되는 계절이라는 이유죠. 사회적 거리 두기 시기에 공예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혀주는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집콕’ 생활이 길어지다 보니 나를 귀하게 대접하는 데 관심을 갖게 됩니다. 냉장고에서 반찬을 통째로 꺼내 먹는 대신 예쁜 접시에 덜어 먹고, 물과 와인, 맥주도 별도의 잔에 마시다 보면 공예생활에 좀더 친숙해지게 됩니다.” ―공예란 무엇인가요. “서울옥션 공예전의 주제가 ‘The Beautiful & The Useful’이었습니다. 생활 속에서 실용적으로 쓰이면서도 심미성을 추구하는 것이 공예입니다. 법정 스님이 쓰신 ‘무소유(無所有)’란 책에서 자신은 책을 포함한 모든 소유욕을 버렸는데, 차를 마실 때 쓰는 다기 한 벌은 꼭 갖고 싶다고 하신 말씀이 인상 깊었습니다.” ―요즘 일반인도 도자, 염색, 한지 공예를 배우는 데 관심이 많은데요. “저도 중장년 남성의 로망인 목공예에 관심이 많습니다. 올해 ‘공예주간’에 전국 425개 공방이 참여합니다. 백화점이나 구청의 문화센터처럼, 전국의 공방 클래스를 동네마다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소책자와 온라인으로 제공하려고 합니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역점을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공예의 생활화, 산업화, 세계화입니다. K팝과 한국영화가 지난 20년간의 노력 끝에 세계시장에 진출했듯이, 공예도 국내시장으로는 협소해 해외로 나가야 합니다. 한국공예가 유럽과 미국에는 많이 소개됐는데, 내년부터는 상하이, 베이징 등에서 열리는 박람회에도 참가해 중국 공예품과 정면으로 겨뤄볼 작정입니다.” ―젊은 세대에게 공예를 알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최범 미술평론가는 우리가 계승할 것은 ‘전통 공예’가 아니고, ‘공예 전통’이라고 말했습니다. 고려와 조선시대 공예품을 똑같이 만드는 장인도 필요하지만, 요즘 세대에게도 매력적인 공예 전통을 만들고, 젊은 공예인들이 맘 놓고 활동할 수 있는 산업구조를 만들어주는 게 중요합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집에서 나만의 분청사기를 만들 수 있을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안전한 ‘비대면 택배형 공예체험’이 눈길을 끌고 있다. 경기 의정부시 도자기 공방 ‘고고공방’이 선보인 ‘분청사기 DIY키트’다. 공방에서 반건조된 분청사기 접시를 택배로 보내주면 신청자는 접시 위에 꽃, 물고기, 캐릭터, 반려견 등 원하는 모형의 도안을 올려놓고 뾰족한 도구로 조각한다. 이를 다시 택배를 통해 공방으로 보내면 공방에선 1250도의 전기가마에서 구운 뒤 완성된 분청사기를 신청자에게 다시 보내준다. 유튜브 ‘공예TV’의 ‘슬기로운 공예생활’ 코너에 소개돼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는 영상의 내용이다. ○ 일상 속 공예문화 ‘생활 속 공예 두기’ 이달 18∼27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이 주최하는 ‘2020 공예주간(Korea Craft Week 2020)’의 주제는 ‘생활 속 공예 두기’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는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공예문화를 즐길 수 있는 기회로 만들자는 취지다. 김태훈 KCDF 원장은 “재택근무, 화상강의가 일반화되고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크게 늘면서 ‘몸에 좋고, 보기에도 좋은 물품’으로 내 공간을 꾸미는 산업과 예술이 각광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9년 조사 결과 국내 공예산업 전체 매출 규모는 4조2537억원으로, 2016년 조사 대비 19.7% 증가했다. 대량 생산된 플라스틱 제품보다는 원목으로 만든 테이블, 찻장, 서랍, 흙으로 만든 도자기와 나무에 옻칠로 만든 공예품, 크리스털로 만든 컵과 주전자, 은으로 만든 다구 등이 관심이 끌고 있다. 올해로 3회째인 ‘공예주간’은 전국 425개의 공방에서 816개의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펼쳐진다. 지난해는 전국 359곳에서 34만 명이 참여했는데, 올해는 규모가 더 커졌다. 또 코로나19로 5월에서 9월로 행사가 연기되면서 비대면으로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대폭 늘었다. 서울 남산골 한옥마을에서는 여성들의 삶과 노동에 쓰였던 공예품을 감상할 수 있는 ‘여가생활(女家生活)’ 전시가 열리고, 서울 종로구 예올북촌가에서 현대 장신구와 스카프 작품을 선보이는 ‘장식하다’가 관람객을 기다린다. 전주한옥마을, 수원화성 공방거리, 보령공예문화예술연구소의 석공예, 군산 예깊미술관의 한국현대공예 울림전, 광주 가가스페이스의 빗자루 공예 등 색다른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다. 10월 중순에 서울 종로구 인사동 KCDF 갤러리에서 열리는 ‘일일유람: 공예의 터전을 찾아서’는 과거와 현재, 산과 바다를 넘어 전국의 공예 장인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다. 서울의 자수, 경기의 도자, 강원은 옻, 경상은 나전과 두석(목가구를 장식하는 금속공예), 충청은 모시, 전라는 한지, 담양은 채상(죽세공품), 제주의 말총 등 현대 작가 20여 명의 작품이 전시된다. ○온라인으로도 즐길 수 있는 전통공예 전시장 방문과 체험은 코로나 방역지침에 따라 인원이 제한될 수 있지만, 공예주간 홈페이지에서 온라인으로도 즐길 수 있다. 이곳에선 5월부터 사전행사로 진행된 ‘다함께 차차茶’(전남 장성), 강릉 선교장의 ‘고택향연(古宅饗宴)’, 안동포(삼베) 공예품을 즐기는 ‘풍류정원’(안동) 등도 볼 수 있다. 유튜브 ‘공예TV’에서는 마스크 매듭 만들기, 분청사기 DIY뿐만 아니라 도자기 명장의 작업 풍경을 ASMR(뇌를 자극해 심리적인 안정을 유도하는 영상)로 보여주기도 한다. 물레 돌리는 소리, 가마에서 꺼낸 균열이 간 도자기를 깨는 청아한 소리가 일상에 잔잔한 여유를 던져준다. 최재일 KCDF 공예본부장은 “‘생활 속 공예 두기’는 재난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삶에서 우아함을 잃지 않는 방법이자 ‘생존의 희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사람들의 관심이 처음엔 옷(패션)에서 음식(요리), 요즘엔 집(인테리어)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다음 붐을 일으킬 순서는 바로 일상 속 공예품라고 생각합니다.” 김태훈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 원장은 18일 개막하는 ‘2020 공예주간’의 주제인 ‘생활 속 공예두기’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코로나19 사태로 타인(他人)의 시선보다 자기 개인의 삶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그동안엔 멋진 집과 자동차, 화려한 옷 등 외면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에 신경을 많이 썼다면, 이제는 집 안에서 자신을 위해 즐길 수 있는 공예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 ‘KCDF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컵(Cup)’ 전시회에서 만난 김 원장은 “늘 보고, 만지고, 숨 쉬고, 입을 대고 사용하는 것이라면 대량생산된 플라스틱 용기보다, 내 몸을 해치지 않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물건들로 채우고 싶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이번 공예주간의 주제인 ‘생활 속 공예두기’는 어떤 의미인가요. “국민공모 통해서 선정된 슬로건입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이 ‘사회적 거리두기’ 잖아요. 우리는 역으로 ‘생활 속 공예두기’로 정했습니다. 신영복 선생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란 책에서 자신은 여름이 제일 싫다고 했습니다. 더위 때문에 옆에 있는 동료 재소자들끼리 떨어져 있어야 하고, 사람이 사람을 혐오해야하는 계절이라는 이유죠. 따뜻한 온기를 담은 공예가 사람과 사람사이의 거리를 좁혀주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일상 속에서 ‘생활 속 공예두기’를 실천하는 방법은. “제대로 된 그릇과 컵을 쓰는 데서 출발하는 겁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냉장고에서 반찬통째로 거내서 먹고, 물은 생수병을 들고 마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집에서 있는 시간이 오래되다 보니 내가 나를 귀하게 대접하는 데 관심을 갖게 되는 거죠. 물은 컵에, 와인은 와인잔에, 막걸리는 호리병에 담아 마시고, 반찬도 접시에 담아 먹는 게 공예생활의 첫걸음이죠. 우리의 전통 막걸리도 플라스틱 비닐통에 마시기보다는 청자로 된 호리병에서 따라마시면 훨씬 술맛이 좋게 느껴지는 것이 용기의 마법입니다.” ―공예란 무엇인가요. “최근 서울옥션에서 하는 공예전시회를 갔더니 주제가 ‘The Beautiful & The Useful’이었습니다. 실용적으로 쓰는 것이면서 심미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이 공예라고 생각합니다. 미술품의 경우는 미술관에 전시되는 것인데, 공예는 곁에 두면서 즐기는 것이죠. 공예란 우리의 삶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요즘 성수동과 한남동에 있는 편집숍에 가보면 외국산 테이블, 식탁, 접시 뿐 아니라 국내 작가들의 공예품도 많이 팔리고 있습니다. 서울옥션, K옥션같은 경매시장에서도 공예품을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 점점 ‘생활 속 공예두기’ 문화가 번져나가고 있습니다.” 김 원장은 생활 속 공예품을 사랑했던 사례로 법정스님을 기억했다. “법정 스님이 쓰신 ‘무소유(無所有)’란 책에 보면 자기는 모든 물욕을 버리고, 책에 대한 욕심까지도 극복을 했는데, 다기(茶器)에 대해서는 욕심만은 버릴 수 없다고 했어요. 당신이 해결한 방법은 새로운 다기가 생겼을 때는 꼭 하나만 유지를 하는 것이었어요. 그동안 자신이 쓰던 옛 다기는 주위에 선물하면서, 다기는 꼭 하나만 소유를 하면서 본인의 물욕을 경계하셨다고 해요. 그런데 누구보다 책을 많이 읽고, 글도 많이 쓰신 법정스님이 책보다 다기를 더 사랑하고 갖고 싶어 하셨다는 사실이 굉장히 감명 깊었습니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공예주간이 봄에서 가을로 연기됐는데요. 코로나19 방역지침에 따른 행사진행은 어떤 변화가 있습니까. “오프라인, 온라인 둘 다 준비 중입니다. 지역에서 공예주간에 참여하는 425개 공방은 개별적으로 행사를 진행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많이 오는 곳은 비대면 온라인 전시로 바꾸거나 인원을 제한할 예정입니다. 공예주간 행사를 위해 홈페이지에 온라인 영상을 제공하는 플랫폼을 만들고, 유튜브에도 ‘공예TV’를 개설해 관람객들이 직접 방문을 못하더라도 다양한 공예주간 행사를 즐길 수 있도록 준비했습니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에는 지역에서 공방을 겸하고 있는 예쁜 카페도 소개합니다. 경남 산청군에 ‘파란홍차’라는 공방이 있는데, 인스타그램에 예쁜 카페와 공방으로 소문이 자자한 곳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인스타그램에 예쁜 찻잔, 도자기 사진을 찍어서 올리는 걸 좋아하는데, 이것도 또한 ‘생활 속 공예두기’ 문화가 확산되는 한 이유입니다.” ―요즘에는 일반인들도 도자나 목공, 염색, 한지공예 등을 배우는 데 관심이 많습니다. 일반인을 위한 공예 클래스를 확대시킬 방안은. “요즘 여성들 뿐 아니라 남자들도 공예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특히 목공예는 색소폰 연주와 함께 장년층 남자들에겐 로망이죠. 그런데 일반인들이 어디에서 공예를 배울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이번에 공예주간에 참여하는 공방이 전국 425개인데, 대부분 공방에서 공예 클래스도 진행합니다. 백화점이나 구청의 문화센터처럼, 각 지역에 산재해 있는 공방에서 공예를 배울 수 있는 정보를 좀더 쉽게 제공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습니다. 전국에 있는 공예 클래스를 조사해서, 동네마다 찾아볼 수 있도록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해서 소책자 형태와 온라인 정보로 제공하려고 합니다.” ―직접 배워보고 싶으신 공예가 있으시다면. “목공예를 배워 의자를 만들고 싶습니다. 목공예 중에서는 의자가 가장 어렵다고 합니다. 탁자는 그냥 두고 쓰는 것이지만, 의자는 사람이 수없이 앉았다 일어서기 때문에 정말 잘 만들지 않으면 금방 무너진다고 해요. 그래서 의자는 설계하고, 만들 때 더욱 더 정밀성이 필요합니다. 목공 장비를 개인적으로 장만하려면 돈이 많이 듭니다. 그래서 경기도 여주에 전문적인 장비를 갖춘 공예창작지원센터 1호인 경기창작지원센터가 생겼습니다. 그곳엔 전문적인 작가도 이용하지만, 일반인들도 시설을 이용해 배울 수가 있습니다.” ―현재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방향은 어떤 것입니까. “공예의 생활화, 산업화, 세계화입니다. ‘생활화’는 사람들이 대량생산된 플라스틱 용품보다는 멋스러운 공예품을 가까이 두자는 것이고, ‘산업화’는 공예품의 유통망과 판로를 만들어 공예작가들이 맘놓고 창작할 수 있도록 선순환구조를 만드는 작업입니다. ‘공예의 세계화’는 아무래도 국내 시장으로는 협소하기 때문에 해외로 가야한다는 절대적인 명제입니다. 한때 K팝 가요계나 한국영화, 문학도 국내시장이 협소해서 아무리 잘 만들어도 시장의 한계가 있다는 숙명론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해외로 진출하기 위한 노력을 20여 년 정도 하다보니까 요즘 결실을 맺으면서 무한대로 시장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우리 공예도 해외로 진출해야 인력도 소화되고, 발전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마련될 것입니다. 세계화로는 우리 공예가 이탈리아 밀라노 위크, 프랑스 메종 오브제, 영국 런던 콜렉트 등 유럽과 미국에는 소개가 많이 됐는데, 정작 전통공예의 본산인 중국에는 진출한 사례가 별로 없습니다. 내년부터는 상하이, 베이징 페어에도 적극 나가서 중국 공예하고도 겨뤄보고 싶습니다.” ―공예산업화 측면에서 국내 공예시장의 규모는. “2018년 공예시장은 4조2537억원 규모로 매년 커지고 있습니다. 공예산업에 참여하는 인구도 많아지고 있죠. 반면 공예인들의 사업규모가 영세한 데다, 50~60대 이상이 많고 젊은이가 적다는 점이 단점입니다. 젊은세대들에게도 우리 공예품이 고루하기 보다는 매력있게 다가서는 제품으로 인식돼야 합니다. 미술평론가 최범 선생은 우리가 계승해야 하는 것은 ‘전통공예’가 아니고, ‘공예전통’이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조선시대, 고려시대의 공예품을 똑같이 만드는 장인도 필요하지만, 공예전통을 이어받아 요즘 세대들에게도 시크하고, 핫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죠. 그래야 보다 많은 젊은 인력들이 공예산업에 뛰어드는 산업구조로 개편이 될 수 있습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18일 개막하는 ‘2020 공예주간’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증 예방을 위해 안전한 ‘비대면 택배형 공예체험’이 눈길을 끌고 있다. 경기 의정부시 도자기 공방 ‘고고공방’이 선보인 ‘분청사기 DIY키트’다. 공방에서 반건조된 분청사기 접시를 택배로 보내주면, 신청자는 접시 위에 꽃, 물고기, 캐릭터, 반려견 등 원하는 모형의 도안을 올려놓고 뾰족한 도구로 조각한다. 이를 다시 택배를 통해 공방으로 보내면, 공방에선 1250도의 전기가마에서 구운 뒤 완성된 분청사기를 신청자에게 다시 보내준다. 유튜브 ‘공예TV’의 ‘슬기로운 공예생활’ 코너에서 소개돼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는 영상의 내용이다. ● 일상 속 공예문화 ‘생활 속 공예두기’ 이달 18~27일까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주최하는 ‘2020 공예주간(Korea Craft Week 2020)’의 주제는 ‘생활 속 공예두기’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공예문화를 즐길 수 있는 기회로 만들자는 취지다. 김태훈 KCDF원장은 “재택근무, 화상강의가 일반화되고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대폭 늘어나면서 ‘몸에 좋고, 보기에도 좋은 물품’으로 내 공간을 꾸미는 산업과 예술이 각광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8년 전체 공예산업의 매출액은 4조2537억 원으로, 2014년에 비해 4년 만에 1조 원 가까이 성장했다. 대량 생산된 플라스틱 제품보다는 원목으로 만든 테이블, 찻장, 서랍, 흙으로 만든 도자기와 나무에 옻칠로 만든 공예품, 크리스털로 만든 컵과 주전자, 은으로 만든 다구 등이 관심이 끌고 있다. 올해로 3회째인 ‘공예주간’은 전국 425개의 공방에서 816개의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펼쳐진다. 지난해는 전국 359개소에서 34만 명이 참여했는데, 올해는 규모가 더 커졌다. 또 코로나로 5월에서 9월로 행사가 연기되면서 비대면으로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대폭 늘었다. 서울 남산골 한옥마을에서는 여성들의 삶과 노동에 쓰였던 공예품을 감상할 수 있는 ‘여가생활(女家生活)’ 전시가 열리고, 서울 종로구 예올북촌가에서 현대장신구와 스카프 작품을 선보이는 ‘장식하다’가 관람객을 기다린다. 전주한옥마을, 수원화성 공방거리, 보령공예문화예술연구소의 석공예, 군산 예깊미술관의 한국현대공예 울림전, 광주 가가스페이스의 빗자루 공예 등 색다른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다. 10월 중순에 서울 종로구 인사동 KCDF갤러리에서 열리는 ‘일일유람:공예의 터전을 찾아서’는 과거와 현재, 산과 바다를 넘어 전국의 공예장인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다. 서울의 자수, 경기의 도자, 강원은 옻, 경상은 나전과 두석(목가구를 장식하는 금속공예), 충청은 모시, 전라는 한지, 담양은 채상(죽세공품), 제주의 말총 등 20여 명의 현대작가 작품이 전시된다. ● 온라인으로도 즐길 수 있는 전통공예 전시장 방문과 체험은 코로나 방역지침에 따라 인원이 제한될 수 있지만, 공예주간 홈페이지(www.kcdf.kr/craftweek)에서 온라인으로도 즐길 수 있다. 이곳에선 5월부터 사전행사로진행된 ‘다함께 차차茶’(전남 장성), 강릉 선교장의 ‘고택향연(古宅饗宴)’, 안동포(삼베) 공예품을 즐기는 ‘풍류정원’(안동) 등도 볼 수 있다. 유튜브 ‘공예TV’에서는 마스크 매듭 만들기, 분청사기 DIY 뿐만 아니라 도자기 명장의 작업풍경을 ASMR(뇌를 자극해 심리적인 안정을 유도하는 영상)로 보여주기도 한다. 물레 돌리는 소리, 가마에서 꺼낸 균열이 간 도자기를 깨는 청아한 소리가 일상에 잔잔한 여유를 던져준다. 최재일 KCDF 공예본부장은 “‘생활 속 공예두기’는 재난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삶에서 우아함을 잃지 않는 방법이자 ‘생존의 희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백화점의 얼굴은 건물 외벽이다. 외벽에 어떤 이미지를 걸어 놓느냐에 따라 백화점의 첫인상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에는 고급스러움을 강조하기 위해 백화점 외벽을 고가의 명품 브랜드나 패션모델들로 꾸몄지만, 최근에는 귀엽고 재미있는 표정의 캐릭터들이 차지하고 있다. 브랜드의 정체성을 나타낼 수 있는 캐릭터를 앞세워 고객과의 친밀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전국 15개 현대백화점 외벽을 차지하고 있는 익살스러운 표정의 강아지 캐릭터 ‘흰디(Heendy·사진)’가 대표적이다.》○ 세계적 일러스트 작가와 콜라보로 탄생한 ‘흰디’ 흰디는 지난해 3월 현대백화점 디자인팀 디자이너들이 기획해 만든 강아지 모양의 캐릭터다. 디자인에는 독일 일러스트 작가 크리스토프 니만도 참여했다. 니만은 디자인계에서 세계적인 권위가 있는 ‘뉴욕 아트 디렉터스 클럽 어워드’를 여러 차례 수상할 정도로 작품성과 독창성을 인정받고 있는 작가다. 그가 에르메스 등 글로벌 명품 브랜드와 협업을 진행한 적은 있지만, 국내 기업과 협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대백화점의 영문 이니셜 초성인 ‘H’와 ‘D’를 활용해 이름을 지은 흰디는 영국이 원산지인 웨스트 하이랜드 화이트 테리어 견종을 모델로 만들었다. 흰디는 모든 일에 끼어들기를 좋아하며, 천진난만하고 유머러스한 캐릭터다. 흰디를 기획한 박이랑 현대백화점 영업전략실 디자인팀 총괄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친근함을 줄 수 있도록 강아지를 활용한 캐릭터를 만들게 됐다”며 “이름에서 연상되는 것처럼 천진난만함과 순수함을 표현하고자 흰색으로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요즘 백화점을 비롯한 유통업계의 화두는 이미지와 동영상 중심의 커뮤니케이션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발달로 고객들이 브랜드를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는 비주얼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박 총괄은 “흰디는 SNS로 적극 소통하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1980∼2004년생)를 겨냥해 만들어졌지만, 친근한 반려견 이미지여서 아이부터 중장년층까지 모든 세대에게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백화점을 ‘흰디 테마파크’로 현대백화점은 흰디를 활용한 다양한 콘텐츠를 온오프라인을 통해 선보이고 있다. 핵심 메시지는 ‘재미’와 ‘힐링’이다. 올 5월에는 ‘피크닉’을 주제로 흰디와 친구들이 백화점에서 나무 그늘 아래서 책을 읽거나 꽃구경을 하는 모습을 익살스럽게 표현했다. 7월에는 바닷가에서 휴가를 즐기는 흰디로 백화점을 꾸몄다. 9월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지친 고객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 콘텐츠를 선보일 예정이다. 흰디를 활용한 굿즈(상품)에 대한 고객들의 반응은 좋다. 현대백화점은 흰디 론칭 이후 동전지갑, 에코백, 손 선풍기, 행주 등 20여 종의 굿즈를 선보였다. 품목별로 1만 개가량 만들어 사은품으로 증정하거나 판매했는데, 대부분의 물량이 3일 안에 소진됐다. 수익금은 유기견 지원에 사용됐다. 현대백화점은 흰디를 활용한 영상 콘텐츠 제작에도 나선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사회 분위기가 침체돼 있는 상황에서 고객들에게 즐거움과 긍정의 에너지를 전파하겠다는 취지다. 올 10월 흰디가 춤을 추는 15초짜리 짧은 영상을 시작으로, 흰디의 일상을 재미있게 들여다보는 ‘페이크 다큐’, 흰디의 모험을 담은 장편 애니메이션 등을 순차적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흰디 디자인에 참여한 독일작가 니만은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코로나19’로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며 “흰디를 통해 사람들에게 위로와 힐링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게 돼 매우 뜻깊은 작업”이라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백화점의 얼굴은 건물 외벽이다. 외벽에 어떤 이미지를 걸어 놓느냐에 따라 백화점의 첫인상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에는 고급스러움을 강조하기 위해 백화점 외벽을 고가의 명품 브랜드나 패션모델들로 꾸몄지만, 최근에는 귀엽고 재미있는 표정의 캐릭터들이 차지하고 있다. 브랜드의 정체성을 나타낼 수 있는 캐릭터를 앞세워 고객과의 친밀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전국 15개 현대백화점 외벽을 차지하고 있는 익살스러운 표정의 강아지 캐릭터 ‘흰디(Heendy)’가 대표적이다. ●세계적인 일러스트 작가와 콜라보로 탄생한 ‘흰디’흰디는 지난해 3월 현대백화점 디자인팀 디자이너들이 기획해 만든 강아지 모양의 캐릭터다. 디자인에는 독일 일러스트 작가 크리스토프 니만도 참여했다. 니만은 디자인계에서 세계적인 권위가 있는 ‘뉴욕 아트 디렉터스 클럽 어워드’를 여러 차례 수상할 정도로 작품성과 독창성을 인정받고 있는 작가다. 그가 에르메스 등 글로벌 명품 브랜드와 협업을 진행한 적은 있지만, 국내 기업과 협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대백화점의 영문 이니셜 초성인 ‘H’와 ‘D’를 활용해 이름을 지은 흰디는 영국이 원산지인 웨스트 하이랜드 화이트 테리어 견종을 모델로 만들었다. 흰디는 모든 일에 끼어들기를 좋아하며, 천진난만하고 유머러스한 캐릭터다. 흰디를 기획한 박이랑 현대백화점 영업전략실 디자인팀 총괄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친근함을 줄 수 있도록 강아지를 활용한 캐릭터를 만들게 됐다”며 “이름에서 연상되는 것처럼 천진난만함과 순수함을 표현하고자 흰색으로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요즘 백화점을 비롯한 유통업계의 화두는 이미지와 동영상 중심의 커뮤니케이션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발달로 고객들이 브랜드를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는 비주얼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박이랑 총괄은 “흰디는 SNS로 적극 소통하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1980~2004년생)를 겨냥해 만들어졌지만, 친근한 이미지여서 아이부터 중장년층까지 모든 세대에게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백화점을 ‘흰디 테마파크’로현대백화점은 흰디를 활용한 다양한 콘텐츠를 온오프라인을 통해 선보이고 있다. 핵심 메시지는 ‘재미’와 ‘힐링’이다. 지난 5월에는 ‘피크닉’을 주제로 흰디와 친구들이 백화점에서 나무 그늘 아래서 책을 읽거나 꽃구경을 하는 모습을 익살스럽게 표현했다. 7월에는 바닷가에서 휴가를 즐기는 흰디로 백화점을 꾸몄다. 9월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지친 고객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 콘텐츠를 선보일 예정이다. 흰디를 활용한 굿즈(상품)에 대한 고객들 반응은 좋다. 현대백화점은 흰디 론칭 이후 동전지갑, 에코백, 손 선풍기, 행주 등 20여 종의 굿즈를 선보였다. 품목별로 1만개 가량 만들어 사은품으로 증정하거나 판매했는데, 대부분의 물량이 3일 안에 소진됐다. 수익금은 유기견 지원에 사용됐다. 현대백화점은 흰디를 활용한 영상 콘텐츠 제작에도 나선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사회 분위기가 침체돼 있는 상황에서 고객들에게 즐거움과 긍정의 에너지를 전파하겠다는 취지다. 오는 10월 흰디가 춤을 추는 15초짜리 짧은 영상을 시작으로, 흰디의 일상을 재미있게 들여다보는 ‘페이크 다큐’, 흰디의 모험을 담은 장편 애니메이션 등을 순차적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흰디 디자인에 참여한 독일작가 크리스토퍼 니만은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코로나19’로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지내고 있다”며 “흰디를 통해 사람들에게 위로와 힐링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게 돼 매우 뜻 깊은 작업”이라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영문학 수업시간에 수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있다. 고려대 영문학과 남호성 교수(48)다. 그는 미국 예일대 해스킨스 연구소 시니어 과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수업시간에 행렬과 벡터, 미분과 통계를 가르친다. 왜 이런 일을 할까. 문과대생들은 대학 입학 후 수학을 공부한 적이 없다. 심한 경우 고교 때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들)인 경우도 많다. 그는 이에 대해 “인공지능(AI)에서 가장 핫한 분야가 음성인식 분야”라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음성학을 연구하고, 인지심리학을 연구하는 문과대생들도 이제는 반드시 수학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도 고교시절 수학을 못해서 문과를 택했고, 영문과는 시험점수에 맞춰 선택한 진로였다. 그런 그가 대학원에서 언어학에 매료됐다. 석사과정을 마치고 학원에서 코딩을 배워 대기업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기도 했다. 그는 다시 미국 예일대로 유학을 떠났다. 그가 속한 해스킨스 연구소는 언어학, 뇌과학, 컴퓨터공학 등을 융합한 세계적인 음성학 연구소. 이곳의 연구원들은 분야에 상관없이 수학과 코딩을 익힌다. 그도 독학으로 수학을 처음부터 배워 나갔다. 14년간 해스킨스 연구소에서 근무한 뒤 모교의 교수가 된 그는 언어공학연구소(NAMZ)부터 꾸렸다. NAMZ는 ‘Novelty at MediaZen’(미디어젠의 새로움)이라는 뜻으로, 자신처럼 수학을 배워 새로운 길을 걷는 문과생들이 더 많이 생기길 바라는 마음에서 지은 이름이다. 연구원은 영문과 국문과 등 100% 인문계생들로 채워졌다. 처음에는 일대일로 학생을 앉혀놓고 수학을 가르쳤다. 음성학 수업시간에도 수학과 코딩을 가르쳤다. 그 결과 NAMZ는 음성인식기술 분야에서 국내에서 독보적인 특허를 여러 건 보유하게 됐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내비게이션에 탑재된 음성인식 시스템이 이 연구소가 개발해 미디어젠이 상품화한 제품이다. 그는 “인문계 학생들이지만 어떤 컴퓨터공학자들보다 기술 수준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자랑했다. ―문과생이 왜 수학을 배워야 하나. “지금은 수학과 코딩을 모르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다. 두 눈이 있는 사람에게 수학은 세 번째 눈을 준다. 미국 통계를 보면 수학을 활용하는 직업이 연봉도 더 높다. 디지털디바이드가 현실화하고 있다. 인문계에는 수학이 적성에 안 맞아 온 여학생이 많다. 여학생이 수학과 친하게 해주는 것은 남녀 불평등을 해소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는 귀국 후 인문계의 처참한 현실에 안타까웠다. 학생들은 전공과 관계없이 모두 로스쿨, 고시, 공사, 공무원 시험에만 매달려 있었다. 그런데 그가 수학과 코딩을 가르친 후 인문계 졸업생들도 다양한 진로를 택하고 있다. 삼성SDS, 일본 미쓰비시 AI연구소에 취직한 친구도 있고, 매사추세츠공대(MIT), KAIST에서 인공지능을 공부하는 학생도 많다. ―수학은 인문학 자체의 발전에도 도움이 될까. “심리학, 사회학, 한문학, 국문학 모두 코딩과 AI를 응용하면 전에 볼 수 없던 획기적인 연구성과가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이오 분야다. 미생물, 암 연구 분야는 원래 수학이나 코딩과 전혀 관계없는 분야였다. 그런데 요즘 네이처 사이언스에는 바이오 분야에 AI와 머신러닝이 적용된 훌륭한 논문이 쏟아지고 있다.” ―학교 수학은 왜 어려운가. “우리의 수학교육은 수학이 어디에 쓰이고, 어떻게 필요한지 말을 안 해준다. 내 삶에 유용하고 필요한 수학을 해야 흥미를 느낀다. AI에 필요한 행렬과 벡터, 미분, 통계의 개념은 6개월만 공부하면 누구나 다 이해한다. 그런데 학교교육은 줄 세우기 위해 비비 꼰 수식계산에만 얽매여 있다. 예일대에서 14년 동안 공부했고, 요즘에도 최신 수학을 매일 2시간씩 공부하는 나도 수능 수학시험을 보면 20∼30점밖에 못 맞힐 정도다.” 남 교수는 “한 우물을 파야 하는 시대는 끝났다”며 “한 사람이 ‘여러 우물’을 파야 한다”고 말했다.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가 협업을 하면 융합이 잘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란다. 그는 “융합은 한 사람 안에서 이뤄져야 제대로 성공한다”며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 딥마인드 대표는 심리학, 인지과학, 컴퓨터공학을 배웠고 이제는 경영까지 한다. 우리도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넘나드는 인재를 키워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8월초 제주도로 간 여름휴가 기간 중 제주 구좌읍 송당리에 오픈한 ‘스누피 가든’을 방문했다. 한라산 중산간 지역에 생긴 또하나의 테마공원이겠거니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뜻밖의 위로와 힐링을 얻고 왔다. 스누피는 미국의 작가 찰스 M 슐츠(1922~2000)가 1950년부터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신문 잡지에 무려 50년간 연재됐던 네 컷짜리 만화 ‘피너츠’(Peanuts)의 주인공이다. 주인공인 찰리 브라운과 그의 반려견인 스누피, 그리고 여러 친구들이 일상생활의 소소한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스토리다. 오프라 윈프리도 “내 어린시절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작품”으로 꼽을 정도로 현대 미국인들의 삶과 문화 속에 스며든 만화다. 약 7만9000여편이 나와 있으며, TV드라마 영화로도 제작됐고 75개국에 약 2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돼 전파됐다. 제주 ‘스누피 가든’은 천연의 자연환경에 더한 컨텐츠 스토리텔링의 힘이 얼마나 강한 것인가를 다시한번 깨닫게 해준다. ●“일단 오늘 오후는 쉬자!”(Rest this Afternoon)스누피가든은 전시장 입구부터 스누피 그림과 함께 커다란 판넬에 쓰여진 글귀가 손님을 맞는다. ‘어제로부터 배우고, 오늘을 즐기고, 내일을 바라보며. 일단 오늘 오후는 쉬자’(Learn from Yesterday, Live for Today, Look to Tomorrow, Rest this Afternoon) 이 글귀에서 가장 반전 위로를 주는 것은 맨 마지막 문장이다. 인생은 배우고, 즐기고, 준비하는 일상의 긴장과 노력의 연속인데 ‘일단 오늘 오후는 쉬자!’는 것이다. 일상 뿐 아니라 여행도 마찬가지다. 해외여행을 간다하면 그 지역의 유명 박물관, 역사 유적지, 뒷골목, 시장, 카페를 순례하며 사진을 찍다보면 그야말로 정신이 없다. 국내 휴가지에서도 밀린 업무생각, 장마·태풍 걱정, 코로나 걱정에 TV뉴스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제주로 휴가 왔으면 오늘 오후는 스누피 친구들이 툭툭 던지는 인생 위로의 말을 음미하면서, 자연 속에서 쉬는데 집중해보자는 슬로건이 맘에 와 닿았다. ‘Rest this Afternoon’은 한국에 최초로 정식으로 라이센스 계약을 맺고 7월에 오픈한 ‘스누피 가든’의 주제이자 모티브다. ●“행복은 따뜻한 강아지야!”(Happiness is a warm Puppy)찰리 브라운의 반려견인 스누피는 비글 품종의 개로, 귀여운 외모 뿐 아니라 솔직하고, 위트있는 인생의 철학을 툭툭 던지는 게 매력이다. 쉽고 단순한 말이지만 곱씹어 생각할 수록 인생의 지혜가 느껴지는 스누피 친구들의 대화는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와 힐링을 주는 인용구로도 인터넷에서 인기다. 찰리 브라운이 스누피를 꼭 안고 있는 그림 밑에 “행복은 따뜻한 강아지야!”(Happiness is a warm Puppy)라는 문구가 씌여져 있다. 쌀쌀한 날에 강아지를 안아본 사람은 안다. 그 따뜻한 체온이 내 가슴을 덮혀주고, 행복을 느끼게 해준다는 사실을. 작가인 슐츠는 “행복은 복잡하고 어려운 철학이 아니라, 그냥 포근한 강아지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스누피는 소설가인데다, 화가, 마술사, 야구선수이자 만능스포츠맨으로 다재다능하다. 그런 스누피의 개집 안 풍경은 어떻게 생겼을까? 실제 피너츠 만화 속에는 개집 속이 한번도 그려지지 않았다. 스누피가 던지는 말로 유추할 뿐이다. 그런데 스누피가든의 전시장 안에는 세계최초로 스누피 집 안의 모습을 상상해서 재현해놨다. 책상에는 스누피가 소설을 쓸 때 사용하는 타자기가 놓여 있다. 타자는 스누피의 비서인 우드스탁이 대신 쳐준다. 방 안에는 미니 당구대도 있고, 야구방망이도 있다. 스누피가 그림을 그리는 화실 바닥에는 형형색색의 물감이 묻은 귀여운 강아지 발자국으로 가득하다.●“나는 여행의 위대함을 믿어!”(I‘m a great believer in travel)스누피는 종종 일상을 탈출해 탐험을 즐기고, 때로는 저 머나먼 우주까지 날아다닌다. 자그맣고 사소한 행복과 커다랗고 무한한 우주는 스누피가 상징하는 특별한 주제다. 미항공우주국(NASA)의 마스코트인 스누피는 실제로 달에 처음 간 만화 캐릭터다. 1969년에 미국의 우주선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기 전 리허설을 위해 아폴로 10호가 먼저 달로 떠났다. 아폴로 10호의 달 착륙선 이름은 ’스누피‘였고, 사령선 이름은 ’찰리 브라운‘으로 명명됐다. 당시 우주조종사들은 “여기는 스누피, 찰리 브라운 나와라 오버”라고 콜사인(call sign)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우주선 스누피와 찰리 브라운은 만화 속 주인공들처럼 낯선 달에 가서도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외로움도 무서움도 느끼지 않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스누피가든 전시장에는 스누피가 빨간색 지부의 개집을 타고 우주로 여행가는 모습이 스크린에 펼쳐진다. 달나라에서 귀환하는 스누피의 시선으로 보는 지구가 환상적이다. 이 때 스누피가 외치는 한마디. “나는 여행의 위대함을 믿어!”(I’m a great believer in travel). 강아지도 여행의 위대함을 알다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가 다시 기승을 부려 방콕하며 재택근무, 화상수업를 해야하는 시대에 더욱 그립고 절절한 스누피의 명언이다. ● “길을 잃었을 땐 너의 나침반을 따라가”(When Lost, Follow your compass) 스누피는 늘 개집 안에서 잠을 자지 않고 지붕 위에서 잠을 잔다. 뾰족한 빨간색 지붕 위에 누워 있는 스누피가 그렇게 편안해보일 수 없다. 실제로 작가인 슐츠가 키우던 반려견이 폐소공포증이 있어 사다준 개집에서 안 자고, 늘 밖에서 잠을 잤다고 한다. 그런데 제주 ‘스누피 가든’ 로고 속의 스누피는 제주의 초록색 오름 위에서 누워서 잠을 잔다. 제주 한라산 중산간 지역의 2만5000평 대지에 자리잡은 ‘스누피 가든’ 주변에는 아부오름, 안돌오름, 백약이오름, 비자림과 같은 천연 야생의 제주의 자연이 둘러싸고 있다. 안개와 같은 구름이 수시로 몰려왔다가 비가 내렸다가, 햇볕이 나기도 하고, 겨울에는 눈으로 뒤덮이는 변화무쌍한 기후가 특징이다. 만화 속 스누피는 ‘비글 스카우트’의 대장으로서 낙엽과 물, 바람을 좋아하고 나침반을 들고 산과 들을 탐사하고, 캠핑하는 것을 즐긴다. 스누피가든의 야외정원으로 나서면 스누피가 제주의 나무와 숲, 돌과 연못, 날씨 속에서 탐험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야외에 조성된 11개의 에피소드 정원에는 피너츠 사색 들판, 찰리브라운의 야구광장, 비글 스카우트 캠핑장, 호박대왕의 호박밭, 루시의 가드닝 스쿨 등의 이름이 붙여져 있다. 관람객들은 숲과 호수에서 피너츠와 함께 걸으며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관람객들은 비글 스카우트처럼 작은 폭포를 따라 숲속을 지나고, 나무로 된 어드벤처를 오르고 다리를 건넌다. 스누피 일행이 쉼직한 아기자기한 텐트와 수많은 스누피의 페르소나 인형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그 중에서 사진찍기 좋은 명소 두군데를 꼽으라면? 첫 번째는 스누피 레이크다. 잔잔한 호숫가에 스누피와 단둘이 어깨를 기대고 앉아 있는 뒷모습을 사진을 찍으면 그렇게 정다울 수가 없다. 또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스누피 돌하르방’도 커플끼리 사진찍기 좋은 명소다. ●“정원을 가꾸는 것은 내일을 믿는 것”(To plant a garden is to believe in tomorrow) 스누피 가든을 기획한 남해종합건설의 자회사 에스엔가든의 김우석 대표(46)는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에서 조경학 박사학위를 딴 조경전문가다. 남해종합건설 창업주 김응서 회장의 아들인 그는 수년 전부터 제주 10만 평의 땅에 조경용 나무를 심어왔는데, 그 중 2만5000평 규모의 수목원에 스누피 테마파크를 조성했다. 제주 스누피가든에서 만난 그는 요즘 “외모까지 스누피를 닮아간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제주에 자연생태 테마파크를 조성하게 된 계기는. “제가 조경사업을 하기 때문에 수목원을 하려고 가꿔온 숲이었다. 경기 가평의 ‘아침고요 수목원’이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때부터 나무를 심었다. 그런데 제주에 오름, 곶자왈과 같은 천연숲 걷기가 유행하면서, 단순히 수목원만으로 관심받는 시기는 지났다고 생각했다. 수목원에 스토리텔링 콘텐츠를 접목하면 어떨까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스누피 가든을 만들게 된 계기는. “2017년 일본 도쿄 롯본기에 열린 스누피 뮤지엄 전시에 가보고 너무 좋았다. 내가 꿈꾸던 수목원에 스누피 콘텐츠를 접목시키고 싶었다. 피너츠 만화의 IP(지적재산권) 계약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고 일본 소니엔터테인먼트에 연락했더니 홍콩에 있다고 해서 무작정 찾아갔다. 처음엔 중국계 자본이 이미 진출해 있어 안된다고 거절당했다. 포기하지 않고 미국의 피너츠 재단 측 관계자를 소개받아 끊임없이 친분을 쌓고, 작가의 유가족도 접촉한 끝에 공식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 작가인 슐츠의 부인이 정원을 매우 좋아하시는데, 제주의 환상적인 자연환경에 스누피가든이 잘 어울릴 것이라고 설득했다. 핀란드의 유명한 무민 캐릭터를 활용한 ‘무민밸리 파크’가 일본의 한 호숫가에서 세워져 성공한 사례도 참조했다.” ―스누피의 매력은 무엇인가? “전세대를 아우르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아이들은 귀여운 강아지만 봐도 좋아한다. 또 취업 경제난 등으로 힘들어하는 젊은 세대는 피너츠에 나오는 친구들의 솔직하고 과하지 않은 인용구에 열광한다. 인터넷에는 위로와 공감을 던지는 ‘스누피 명대사’가 수없이 많이 올라와 있는데, 젊은이들이 열광한다. 피너츠 인용구 1만5000여 편이 실린 두꺼운 책이 있는데, 정말 한 문장도 허투루 넘길 수 없다. 30~40대 부모 관람객도 ‘아이들 놀게 해주려고 왔다가 내가 위로받고 간다’고 피드백을 남긴다. 50대 이상의 세대들은 피너츠를 단순한 만화로 보지 않고, 인생의 철학과 문화적인 메시지와 의미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 이렇게 스누피는 모든 세대에 어울리고, 받아들여지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란 매력이 있다. 스누피 캐릭터는 아동용 문구나 팬시점 뿐 아니라 백화점에서 파는 일상용품에도 잘 어울린다. 할아버지부터 아이들까지, 심지어 아저씨인 내가 스누피 옷을 입어도 과해 보이지 않는 느낌이다.” ● “인생은 한 길만 있지 않아” (Life is rarely all one way)―외국에는 스누피 테마파크가 얼마나 있나. “스누피 IP(지적재산권)를 활용한 사업으로 보통은 캐릭터 상품을 많이 하는데, 우리같은 경우는 로케이션 비즈니스다. 로케이션 IP로는 세계적으로 2,3군데 정도 있다. 미국 미네소타에 ‘캠프 스누피’라는 테마파크가 있다. 또한 미국 캘리포니아의 센타로사시에 작가인 슐츠 뮤지엄이 있다. 작가가 쓰던 물건이랑 원작을 보관한 박물관이다. 이걸 본따서 일본 도쿄에서 롯폰기에 ‘도쿄 스누피 뮤지엄’이 2년간 열리기도 했다. 홍콩에 찰리브라운 카페가 있고, 일본에는 피너츠 호텔, 카페, 아이스크림 가게, 전통찻집 등이 있다. 피너츠는 아니지만 핀란드에는 ‘무민밸리 파크’가 있다. 핀란드의 한 섬에서 여름 3개월만 열리는 데 40만 명이 올 정도로 인기다. 캐릭터 문화에 익숙한 일본이 ‘무민밸리 파크’를 들여와 호숫가에 재연했다. 그걸 보고 ‘IP랑 최근 자연과 엮은 새로운 테마파크 장르’의 구상을 구체화하게 됐다.” ―피너츠와 제주는 어떻게 연결시켰나. “제주 스누피가든은 테마파크랑 수목원을 결합한 새로운 장르의 로케이션 IP다. 원래 피너츠 타운의 주인공들은 미국 중서부 지방의 교외지역에 사는 아이들이다. 그래서 야생자연이 살아 있는 제주의 환경에는 ‘피너츠보다는 스머프 캐릭터가 맞지 않나?’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래서 스누피와 제주를 연결시킬까 많은 고민을 했다. 결국에는 피너츠 안에 ‘자연’이라는 답이 있었다. 제주를 자연으로 해석했다. 피너츠 가이드에도 ‘눈, 비, 바람, 낙엽 등에 주위 자연환경과의 인터액션을 통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고 명확히 쓰여져 있다. 해안과 산간지대가 섞여 있는 제주도 전체를 고려하기 보다는 스누피가든이 자리잡은 이 지역의 특색을 살리려고 노력했다. 여기는 한라산 정상에서 가까운 중산간 지역이다. 아부오름, 비자림 등 오름과 곶자왈의 야생자연이 살아 있고, 기후가 변화무쌍하다. 오늘도 비가 왔다가 햇볕이 쨍했다가, 수시로 안개가 끼었다 사라진다. 겨울에는 눈도 많이 내리고, 바람도 많이 분다. 비자나무, 육박나무, 팽나무, 하귤나무 등 특색있고 울창한 숲이 있다. 어차리 제주에 오는 사람들은 부산처럼 화려한 곳에서 놀기보다는, 자연을 보면서 힐링하려고 오는 사람들이다. 특히 제주 동부지역은 더 그렇다. 제주 서남권은 가족 중심의 휴양지, 애월은 카페촌이라면 제주 동부 중산간지역은 숲과 자연을 보러오는 곳이다. 화산지대에 넓은 초원과 목장이 펼쳐진 뷰가 있고, 기후가 만들어낸 돌과 흙과 나무가 제주를 느끼게 한다.” ―야외 체험공간은 어떻게 설계했나. “스누피는 낙엽을 좋아하고, 페퍼민트는 담장 그늘에 앉아 있길 좋아한다. 피너츠의 아이들이 소통하는 장소는 항상 언덕과 담장, 나무 밑과 같은 자연이다. 그곳에서 인생 이야기를 한다. 언덕, 야구장 등 피너츠 모티브 컷 속에서 나오는 장면을 재현해 11개의 ‘에피소드 가든’을 만들었다. 그걸 제주 자연 속에 섞어서 테마파크를 만들어, 진짜로 피너츠의 세계에 들어와 있는 느낌을 갖게 하고 싶었다. 미국 피너츠 재단에서도 제주는 자연이니까 ‘비글 스카우트’가 제일 최적화된 아이템이 아니냐고 조언했다. 비글 스카우트는 도시를 벗어나서 하이킹하고, 나침반을 보고 트레킹하고, 야영하면서 자연을 탐험하는 아이들이다. 스누피는 비글 스카우트의 대장이고, 스누피의 타자치는 비서인 우드스탁이 끌고 다니는 6명은 대원이다. 캠핑장에는 나무로 된 어드벤처 시설과 텐트를 설치하고, 호박밭에는 파밍(농사짓기) 전시를 하고, 루시의 가드닝 센터에는 정원관련 전시가 예정돼 있다. 학생들이나 직장인들을 위한 필드 트립, 서머캠프 등의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다.” ●“사랑은 이상한 행동을 하게 만들지”(Love makes you do strange things.)―피너츠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이상형이 바뀌듯이 계속 변한다. 처음에는 루시가 좋았다. 직설적인 성격이지만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다. 주변에 누나든, 동생이든, 친구든 그런 사람은 꼭 있기 때문에 눈에 띄였다. 그 다음에는 패퍼민트 패티가 좋았다. 초록색 스트라이프 패턴 옷이 좋아서 그런 것 같다. 남자답고, 운동도 잘하는데 왠지 불쌍해 보인다. 샐리 브라운은 정말 예쁜데 4차원 같은 엉뚱한 소녀다. 아무리 못돼 보여도, 4차원이어도 예쁜 것은 예쁜 것이다. 그래서 공감이 간다. 엊그제 샐리 조형물을 막 세워놨는데, 어린 소녀가 사진을 찍고 있었다. 예쁜 샐리랑 정말 잘 어울렸다. 피너츠에서 하나도 버릴 만한 캐릭터는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다 주변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공감이 간다.” ―피너츠 캐릭터가 공감이 가는 이유는. “작가인 슐츠는 50년 동안 매일 신문에 피너츠를 연재했다. 평일에는 4컷, 주말판엔 10컷을 그렸다. 하루도 빼먹지 않았다. 자신의 아버지가 이발사이니까, 찰리브라운의 아버지도 이발사로 나온다. 자기 옆 동료 이름을 따서 루시를 만들었다. 발렌타인 데이에는 자기가 짝사랑 하던 사람의 이름과 얼굴을 그리고, 야구팬이라 야구장면을 그리고, 겨울에는 아이스하키를 좋아하니까 하키 장면을 그렸다. 50년 동안 그리다보니 일상과 문화가 다 녹아있다. 그렇다보니까 우리에게 와 닿는게 많을 수 밖에 없다. 피너츠 만화를 연도별로 모아놓은 책이 있는데 오프라 윈프라가 서문을 썼다. 피너츠가 미국 문화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자신이 어릴 적에 슐츠 작가 덕분에 비뚤어지지 않고 얼마나 좋은 사람이 됐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였다. 미국인들은 50년간 자신의 삶에 녹아든 문화로 피너츠를 생각한다. 피너츠 캐릭터는 밝고, 솔직하고, 위트가 있다. 피너츠는 2~3세대가 돌면서 우주선의 이름이 되기도 하고, 뮤지컬이 되고, 첫 번째 포드광고를 스누피가 하기도 했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히어로 만화가 아니라, 수많은 사춘기 청소년들과 똑같이 인생을 고민하는 스누피의 솔직함 덕분에 많은 이들이 공감을 했다. ―피너츠 IP는 어떻게 활용하고 비용을 지불하나. ”‘피너츠’ 아카이브에는 엄청나게 광범위한 소스가 데이터베이스로 정리돼 있다. 예를 들어 검색어에 ‘마스크’ ‘안경’을 넣으면 마스크를 쓰고 어딜 가는 에피소드, 안경을 잃어버린 에피소드 컷이 나온다. 키워드 검색이 가능한 것이 디지털 아카이브 IP의 힘이다. 우리가 필요한 에피소드의 검색어를 넣어 원화 이미지를 얻고, 사용한 만큼의 로열티를 지불한다. 피너츠 재단이 각종 캐릭터 IP(지적재산권)사업만으로 버는 돈이 연간 5000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스누피가든의 전시기획은 무브먼트서울과 브랜드아키텍츠(BRAND ARCHITECTS)가 공동으로 진행했다. 김하윤 무브먼트서울 대표는 ”50년간 소소한 일상주변의 일들을 그린 슐츠의 피너츠 콘텐츠는 다양한 세대의 관람객들이 공감하는 요소를 뽑아내는 테마파크 IP로는 최강의 힘을 갖고 있다“며 ”특히 공격적이거나 강요스럽지 않은, 부드럽고 솔직하게 풀어내는 피너츠의 철학적 인용구를 중심으로 남녀노소를 다 어우르는 전시 포인트를 잡았다“고 말했다. ● ”걱정하는 것은 나쁜 일을 일어나는 것을 막는 것이 아니라, 단지 좋은 일을 즐기는 것을 멈추게 할 뿐이예요“ (Worrying won‘t stop the bad from happening, it just stops you from enjoying the good.) ―스누피 개집 안의 모습을 재현한 것은 처음인가. ”일본 도쿄에서 스누피 뮤지엄 전시를 할 때 일본 잡지에 스누피 집안의 풍경을 상상한 그림이 있었다. 그걸 보고 실제로 재현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미국 측에 프리젠테이션을 했더니 재밌겠다는 반응이었다. 다른 나라에 있는 피너츠 테마파크에는 외형을 재현한 곳이 많은데, 개집 안의 모습을 실제로 구현해본 것은 처음이다.“ ―얼굴이 스누피를 닮았다는 소리를 듣는다고 하는데. ”어릴 적부터 나는 남들이 안하는 걸 하고 싶다는 성향이 있었다. 그런데 남들과 아예 다른 것은 쉽지만, 다르긴 한데 티가 안나게 조금 다른 느낌을 주기가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스누피가 무척 세련된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스누피처럼 과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느낌을 원했다. 예전엔 스누피와 전혀 안 닮았었다. 그런데 스누피가든에 몇 년동안 집중하면서 나도 모르게 점점 변해가는 것같다. 나이가 들면서 눈가가 쳐지면서 더 닮아가는 것 같다. 스누피는 자연을 사랑한다. 조경을 전공한 나도 자연의 위대함을 안다. 평소 비염이 있는데 숲에만 들어가면 코가 뻥뚫리는 느낌을 받는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고, 몸이 아프면 알아서 자연을 찾아간다. 진짜 신기한게 암에 걸리면 다 강원도 산 속으로 가지 않느냐. 자연 속에서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면 놀랍게도 내 몸이 달라진다. 피너츠 만화도 정신적으로 휴식하게 만들어주는 기능을 한다. 나뭇잎을 관찰하고, 열매를 주워보다보면 나무들이 서로 공생하고, 살아가는 모습이 우리네 삶같다는 생각이 든다. 유명한 작가들이 자연을 보고 글을 쓰고, 예술가들이 자연에서 영감을 얻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제주=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원래 수목원을 하려고 조성한 숲이었습니다. 경기 가평의 ‘아침고요 수목원’이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때부터 나무를 심었죠. 그런데 제주에서 오름, 곶자왈과 같은 천연숲 걷기가 유행하면서, 수목원에도 스토리텔링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스누피 가든’을 기획한 남해종합건설의 자회사 에스엔가든의 김우석 대표(46·사진)는 조경학 박사학위를 가진 조경 전문가다. 남해종합건설 창업주 김응서 회장의 아들인 그는 수년 전부터 제주 33만여 m²의 땅에 조경용 나무를 심어 수목원을 만들었다. 그 안에 8만3000m² 규모로 실내외 전시관과 체험시설을 갖춘 스누피 테마파크가 자리하고 있다. 어릴 적부터 스누피 팬이었던 김 대표는 2017년 일본 도쿄 롯폰기에서 스누피 뮤지엄 전시를 보고 자신의 수목원 꿈을 살릴 콘텐츠가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무작정 일본 소니엔터테인먼트사와 홍콩, 미국에 거주하는 작가의 유가족에게 직접 전화하고 수차례 찾아간 끝에 국내 최초로 공식 라이선스 계약을 맺는 데 성공했다. 스누피의 세상을 깊이 연구하면서부터 그는 “얼굴도 스누피를 닮아간다”는 소리도 듣고 있다. 찰리 브라운이라는 소년이 키우는 반려견인 스누피는 외모가 귀여울 뿐 아니라 밝고 솔직하고 위트 넘치는 유머로 인생의 철학을 툭툭 던진다. 스누피 친구들이 나누는 대화는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와 치유를 주는 인용구로도 인터넷에서 인기있다. 제주 ‘스누피 가든’ 입구에 걸려 있는 “일단 오늘 오후는 쉬자(Rest this Afternoon)!”는 대표적인 모티브. 원래 만화 속 스누피의 대사는 “어제로부터 배우고, 오늘을 즐기고, 내일을 바라보며, 일단 오늘 오후는 쉬자!”다. 어제, 오늘, 내일로 이어지는 일상의 수고를 잠시 내려놓고 제주의 자연 속에서 진정한 휴식을 가져보자는 뜻이다. “행복은 따뜻한 강아지야!”와 같은 인용구에 공감하고, 스누피가 타자 치며 소설을 쓰는 개집 안 풍경을 재현한 전시룸을 구경하다 보면 2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스누피는 1950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미국의 작가 찰스 슐츠가 7개 신문에 게재한 4컷 만화인 ‘피너츠(Peanuts)’의 캐릭터. 50년간 드라마, 영화로도 제작되고, 미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 개발 모델이 되는 등 현대 미국인들에게 녹아든 문화가 됐다. 전 세계 75개국에서 번역돼 캐릭터 상품 지식재산권(IP) 수입만도 연간 5000억 원이 넘는다. “50년간 연재된 피너츠 디지털 아카이브에는 ‘마스크’ ‘안경’ 등 관련 키워드 검색만 하면 수많은 일상의 에피소드가 나옵니다. 책에 실린 유명한 인용구만 1만5000편이 넘어요. 이 때문에 강아지를 좋아하는 아이부터, 위트 있는 인생 이야기에서 힐링받는 어른들까지 전 세대가 공감하는 것이 스누피의 매력입니다.” 만화 속에서 스누피는 항상 개집의 빨간색 지붕 위에 누워 잠잔다. 작가가 키우던 반려견 비글이 폐소공포증이 있었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제주 ‘스누피 가든’의 로고 속에는 스누피가 제주의 초록색 오름 위에 누워 있다. 비글 스카우트 탐험대장인 스누피가 아부오름, 안돌오름, 백약이오름, 비자림 등 한라산에서 가까운 중산간 지역의 청정지대에서 뛰어노는 듯한 모습이다. 야외에 조성된 11개의 에피소드 정원에는 피너츠 사색 들판, 찰리 브라운의 야구잔디 광장, 비글 스카우트 캠핑장, 호박대왕의 호박밭, 루시의 가드닝 스쿨 등의 이름이 붙어 있다. 관람객들은 숲과 호수에서 피너츠 캐릭터와 함께 걸으며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스누피 모양의 돌하르방도 사진 찍기에 좋은 명소다. 김 대표는 “스누피는 캠핑을 좋아하고, 찰리 브라운과 패티는 나무 아래에서 인생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등 피너츠 친구들은 늘 자연 속에서 서로 소통한다”며 “전 세계에 스누피 카페, 호텔, 놀이공원은 있지만 수목원과 결합된 테마파크는 처음이기 때문에 제주 중산간 지역의 기후와 생태를 그대로 살리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글·사진 제주=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세계 곳곳에는 700만 명의 우리 동포들이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리말을 지키고, 우리 춤, 우리노래를 하고 있는 어린이들, 예술가들에게 힘을 주고 싶었습니다.” 전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재외 한민족 동포와 예술인들을 초청하는 ‘세계한민족공연예술축제’가 올해도 8월18일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열린다. 이 축제는 지난해 광복절에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우면당, 남산국악당, 정효아트센터에서 기념식과 초청공연, 축하공연, 강습 등 3박4일 동안 열렸다.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5개국에서 활동 중인 40여 명의 전통예술인들이 참여했다. ‘세계한민족공연예술축제’를 개최해 온 주인공은 정효국악문화재단의 주재근 대표(48)다. 주 대표는 국립국악고등학교에서 대금을 전공하고, 국악이론을 가르치는 대학 교수(박사), 21년간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무원으로 경력을 쌓은 후 현재는 민간예술단체 운영자로 활동하고 있다. 공연현장과 이론, 행정경험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전통문화예술의 대중화를 이루는 데 힘써왔다. ―세계한민족공연예술축제를 기획하게 된 동기는. “전 세계에 살고 있는 700만 명의 우리 동포들 중에는 19세기 조선이 힘이 없어 이주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아픈 역사도 있습니다. 고국을 떠난 우리 민족은 고려인, 조선족, 제일교포 등으로 불리우며 100년이 훨씬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우리 문화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들을 고국이 잊지 않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우리 문화를 더 잘 지키고 발전시켜나갈 수 있도록 힘을 주고 싶었습니다.” 올해 이 축제는 ‘신종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 19)’로 인해 8월18일 하루만 열리며 국내에서 거주하고 있는 재외동포 예술가들과 국내 명인 명창 등이 무대에 오른다. 재일동포인 민영치(타악), 쿠라시케 우희(무용), 김보경(가야금), 쿠와히로유키(타악), 조선족 예술가인 최민(대금), 윤은화(양금), 북한출신 무용수 최선아, 미국교포 서훈정(판소리)이 출연한다. 또한 국내 명인으로는 문정근(춤), 김영동(대금), 이수현(춤), 산유화어린이민요합창단(민요) 등이 참여한다. ―앞으로 세계한민족공연예술축제는 어떻게 발전해나갈 것인가. “전세계 한민족 예술가들의 네트워킹을 위해 상설적인 ‘한민족공연예술센터’ 건립도 추진할 계획이다. 이 센터를 거점으로 전세계 한민족공연예술가들이 커뮤니티를 형성하도록 도움을 줄 것이다. 전세계 태권도 도장을 통해 태권도 보급이 세계화 됐듯이 세계한민족공연예술센터를 통해 국악과 클래식 등 우리 한국음악의 세계화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 목표이다. 지금은 전통공연예술에 국한하고 있지만 점차적으로 서양음악을 하는 해외 한민족 공연예술가로도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다.” 한양대 국악과에서 음악인류학 박사학위를 한 그는 문화체육관광부 공연전통예술과, 국립국악원 등에서 문화예술 진흥정책을 담당해 온 공무원으로 21년간 일한 뒤 퇴직, 우리 음악의 대중화를 연구하고 기획하는 이를 해왔다. 그는 정효아트센터에서 국악계 신인연주자들과 원로급 예술인과의 소통의 장을 만드는 한편, 전통음악은 물론 서양의 클래식까지 한국의 공연문화 발전을 목표로 하는 (사)공연전통예술미래연구원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그는 문체부 공무원 시절 ‘궁궐에서의 국악공연’을 처음 시도하고, 파리만국박람회에 전시됐던 국악기를 112년만에 고국에 귀환시키는 전시를 기획하고, ‘만파식적’ 3D 입체영상을 만드는 등 국악계에 영향을 끼친 굵직한 사업을 추진해왔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예산을 마련해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그의 특기다. “2006년 우리 음악을 외국인이나 시민들에게 어떻게 하면 좀더 친근하게 느끼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때였다. 문득 고종이 100여년 전 주한외교사절들과 연회를 베풀었던 덕수궁 정관헌에서 주한 외국대사와 부인들을 위한 행사를 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런데 보다 많은 주한 외교사절이 오기 위한 유인책이 필요했다. 그때 외국대사와 부인들에게 맞춤 한복을 선물해 주면 모두들 오지 않을까 생각을 했는데 결과는 대박이었다. 독일, 일본 등 40개국 60명의 주한 외교사절이 참여했고 이들은 우리의 전통음악과 궁중무용감상과 사물놀이 체험, 전통차와 다과를 즐기고 마지막 순서로 덕수궁 정전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이날 행사는 당일 저녁 9시 메인뉴스에 중요하게 보도됐다. 이를 계기로 2008년부터는 덕수궁은 물론 창덕궁 연경당에서 상설국악공연을 열게 됐다. 그런데 당시에는 궁에서 행사를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사회분위기였다. 문화재청에서도 일회성 행사는 몰라도 상설공연에는 난색을 표했다. 그래서 고궁활용심의위원회에 참석해 직접 PT를 하며 설득한 끝에 겨우 허가가 떨어졌다. 매주 목요일 오후 2시와 4시에 창덕궁 깊은 곳에 위치한 연경당 공연은 입소문을 타고 최고 감동의 공연 무대로 소문이 났다. 한 영국 회사 임원은 서울에 출장을 수십번 왔지만 갈 곳이 없었는데 대낮에 이렇게 멋진 공연을 본건 본인 인생에서 생애 최고였다고 찬사를 보내주었다. 이렇게 시작된 고궁공연은 문화재청의 ‘고궁달빛기행’ 사업으로도 이어졌다. 또한 고궁공연의 성공에 이어 지역마다 문화재로 지정돼 있는 고택(古宅)에서도 공연이 열리게 됐다. 예전 조선조 선비들이 풍류음악을 즐겼던 것처럼 고택에서 우리의 음악과 무용을 즐기는 것이다. 이에 각 지자체와 협력해서 전국의 고택을 선정하여 음악회를 열었는데 주5일제와 맞물려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를 얻게됐다.” ―대금 연주자에서 공무원이 된 계기는. “국립국악고등학교에서 대금 연주자를 꿈꿨다. 그런데 전문적인 대금 연주자로 국립국악원이나 KBS국악관현악단 단원으로 가는 것보다 대학에서는 국악이론을 전공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우리 전통음악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널리 알리는 일이 연주 한번 하는 것 보다 더욱 가치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졸업 후 1994년 교학사 음악편집 담당으로 입사해 교육과정 개편에 따른 중학교 음악교과서를 새롭게 제작하는 임무를 맡았다. 국악 이론을 전공한 사람으로써 서태지와아이들로 대변되는 시대적 감각에 맡는 신선한 국악을 교과서에 넣을 수 있게 돼 마음이 설렜다. 당시 교과서에 국악과 양악의 비율은 10:90 정도였는데 국악비율을 30%까지 끌어 올렸다. 국악대중가요로 인기를 얻고 있던 ‘꽃분네야’, ‘산도깨비’ 등을 작곡자 허락을 직접 받고 국악관련 사진들로 세련된 사진들로 모두 교체했다. 음악교과서의 혁신이라 할 정도로 바꾸었는데 당시 교과서 저자 중 서양악 전공 교수분이 최종본을 보고 왜이리 국악이 많냐며 자기는 승인 못하겠다고 교과서를 바닥에 내팽겨쳐 버렸다. 그 분이 돌아가자마 마자 담당 과장님께 사직서를 내고 화장실에 가서 세상에서 가장 서럽게 울었다. ‘이것이 지금까지 국악을 대하는 우리 사회였구나’ 생각을 하니 모든 전통국악을 하는 사람들이 불쌍해 보였다. 그때 다짐하였던 것이 앞으로 국악이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대접받기 위한 일들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주 대표는 1997년 9월 문화체육관광부 국가공무원 특채로 학예연구사로 임용됐다. 21년 동안 국립민속악원, 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 국악진흥과, 장악과, 국립부산국악원 등 공연, 연구, 진흥 등의 국악의 전반적인 일을 맡았다. 그는 “특히 2006~2008년 문화체육관광부 전통예술팀에서의 근무는 국립국악원만이 아닌 국악계와 문화예술계 전반을 살펴보는 계기가 됐다”며 “당시 만들어낸 국악정책과 예산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으며 문화예술정책의 필요성을 실감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동아일보와도 인연이 깊다. 2005년 9월27일자 동아일보에 났던 ‘1900년 파리만국박람회에 전시됐던 국악기가 발견됐다’는 기사를 보고, 이 국악기를 112년 만에 프랑스에서 고국으로 귀환하는 전시를 기획했다. “당시 국립국악원 국악박물관 운영을 맡고 있었는데, 동아일보 기사를 보고 언젠가는 프랑스에 있는 국악기들을 가져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2011년 프랑스국립도서관에 소장하고 있는 조선왕실 의궤 297권이 돌아와 국가적 이슈가 됐는데, 2012년에 파리만국박람회에 출품된 국악기를 가져오는 것도 또 다른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저하지 않고 무작정 파리 음악박물관으로 달려가 동아일보 사진에서 가야금을 들고 서 있던 필리프 브뤼귀에르씨를 만났다. 국악기 13점을 한국으로 가져가 전시하고 싶다고 하자 흔쾌히 승낙해 주었다. 막상 승낙을 받고 보니 예산이 문제었다. 당해연도 예산은 작년에 기획재정부를 통과해 확보해야 하는데 급작스럽게 이루어지다 보니 예산은 전무했다. 일은 저질렀고 포기하면 국제적 신뢰도가 무너지고 해서 협찬을 받으러 뛰어 다녔다. 좋은 일에는 다 길이 있다는 것을 몸소 실감했다. 아시아나항공에서 화물운송을 협찬해 주었고, 우리은행, 프로비스타호텔, 고흥곤국악기등에서 협찬금을 내준 것이다. 공무원이 일을 만들어 땀을 흘려가며 뛰어다는 것을 보고 프로비스타호텔 회장님이 주의깊게 보고 계시다 후에 당신이 설립한 정효국악문화재단에 대표이사를 내게 맡아달라고 부탁하였다. 1900년 파리만국박람회 출품 국악기의 국내전시는 모든 언론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으며 YTN에서는 인천국제공항에서 악기 환영식을 실시간으로 생중계 방송을 했다. 2012년 파리만국박람회 전시 성공은 2013년에 1894년 시카고만국박람회에 출품됐던 국악기의 국내전시로 이어졌다. 이번 전시 예산 확보는 수월하게 이루어졌는데 신세계에서 지난해 전시를 보고 매년 2억원을 협찬해 주기로 한 것이다.” 그는 2003년 국악박물관에서 신라 ‘만파식적’ 설화를 소재로 한 3D 입체영상을 만들기도 했다. 예산확보에 어려움을 겪던 그는 기획재정부 예산 담당관을 10번 이상 찾아가 읍소한 끝에 1억8000만원의 예산을 받아 ‘만파식적’을 제작할 수 있었다. 이후 국립국악원 국악박물관에서 3D 입체영상을 만든 것을 보고 국립중앙박물관 어린이박물관, 국립진주박물관 등에서도 3D 입체영상을 만들게됐다. ―공무원에게는 예산을 따내는 일이 가장 중요한데, 노하우는. “2018년 10월 국립부산국악원 장악과장으로 근무를 하면서 가장 큰 상을 받았다. 문화체육관광부 전 직원이 매년 투표하여 직급별로 바람직한 관리자상을 선정 수여하는데 2019년에 바람직한 관리자상을 수상한 것이다. 당시 국립부산국악원에서 심각한 현안이 있었는데 계약직 단원 약 30여명이 2년 경과돼 정규직 전환을 요구한 것이다. 문제를 푸는 방법은 두가지였다. 내가 있을 때 위반한 것이 아니니 그냥 시간끌기 하다 서울로 발령받아 가는 것, 아니면 적극적으로 대처하여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는 것이었다. 물론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와 같이 절대적으로 어려운 것이었다. A안, B안등을 마련해 우선 개인적으로 아는 변호사에게 상담을 하여 법적 검토를 끝내고 실행에 들어갔다. 기획재정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있는 세종시를 부산에서 하루가 멀다 찾아가고 기획재정부 담당자 카톡으로 매일 같이 메시지를 남겼다. 부산의 오늘 날씨가 어떻고, 재미있는 콩트도 보내고 스토커처럼 매달렸다. 그리고 해당되는 단원들을 앞세워 기획재정부로 찾아가 눈물로 절박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2018년 말 기획재정부 담당자에게 카톡이 왔다. 국립부산국악원 단원 15명 증원하기로 했다는 문자였다. 그대로 심장은 멈추었고 눈물은 하염없이 흘렀다. 정말 세상은 노력하면 안되는 것이 없구나 라는 인생의 진리를 새삼 알게 됐다.” ―대금을 전공하게 된 계기는. “전남 여수의 시골 마을 여선생님 자취방에서 본 베토벤 석고 두상은 아직도 내 인생의 강렬한 이미지로 남아 있다. 한 학년에 30명 남짓의 한 반밖에 없는 전교생 300여명의 아주 작은 초등학교로 첫 부임한 여선생님은 시골 어린이들에게 연극과 리코더를 가르쳤다. 수많은 별빛이 고요하게 출렁거리는 여수 밤바다 앞에서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등 리코더 합주단의 연습은 각종 대회에서 상으로 이어졌다. 초등학교 6학년때 서울로 전학을 오게 된 뒤 낯설음을 적응하는데도 리코더가 제격이었다. 쉬는 시간 교실 한편에서 시작된 리코더 연주는 장기자랑 때마다 단골로 불려졌고 그 인기는 중학교까지 이어졌다. 당시 진로는 국사 선생님이 되는 것이 목표였는데 음악선생님이 국립국악고등학교 진학을 권해주었다. 국악이라는 거부감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일반 인문계고등학교 보다는 예술계 고등학교에서 즐겁게 청춘을 보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국립국악고등학교가 학비도 없고, 매월 장학금을 준다는 것은 매력적이었다. 입학 후 전공 악기 선택을 하게 되는데 가야금 거문고 등 현악기는 관심이 전혀 없었고 작은 피리 보다는 가로로 비켜 부는 커다란 대금이 근사해 보였다. 대금을 전공으로 선택하고 선배들의 궁중음악부터 민간의 산조음악까지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음악들은 클래식이나 가요와는 다른 묘한 매력적인 음악으로 청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세계한민족예술축제를 기획하게 된 데 대해 대학에서 국악학을 전공하면서 해외의 음악교류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학에서 본격적으로 국악학의 세계를 가르쳐주신 권오성 교수님은 국악만이 아닌 서양음악학, 인류학, 종교학, 민속학, 언어학 등으로 사고를 넓고 깊게 해 주었다. 제자는 스승이 가는 길을 뒤따르는 경우가 많은데 은사이신 권 교수님은 중국, 일본, 몽골,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들의 음악의 학문적 교류에 이바지하신 분이다. 교수님의 해외 출장이나 세미나, 뒷풀이 자리에서 세계 여러나라의 음악가와 학자들과의 만남은 국제음악교류의 필요성과 안목을 키우게 되었다.” ―가장 안정된 직장으로 꼽히는 공무원은 왜 그만두었나. “2019년 강사법이 통과되자 출강하고 있던 이화여대 한국음악과에서 겸임교수는 9시간 이상 맡아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공무원 규정상 4시간 이상 외부출강은 금지돼 있었다. 오랜 고민 끝에 21년간의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고, 이제는 사회에서 뜻을 실행하는 시점이라 생각됐다. 2019년 4월30일자로 명예퇴직하고 5월1일자로 민간 최초 국악문화재단인 정효국악문화재단 대표 이사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침체 위기의 정효국악문화재단이 지금은 여러 기획공연으로 화제의 중심이 되고 있다. 2020년부터는 국내 최고 권위의 동아국악콩루르가 열리는 장소가 됐다. 앞으로도 여러 기관과 협업하는 문화재단을 지향하고 있다. 2학기부터는 이화여대 초빙교수 외에 한양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로 공연기획론, 홍보마케팅론, 국악학연구방법론, 국악사특강, 국악문헌특강등 여러 강의를 맡고 있다. 국악을 전공하는 대학원생들이 사회경험을 쌓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고 공연문화예술정책 마련 및 대안 제시를 위한 사단법인을 지난해 7월에 설립했다.” 주 대표는 올해 5월부터는 문화재청 무형문화재전문위원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국제교류자문위원, 서울시남산국악당 예술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엘리트 체육에서 생활체육으로 정책이 변함으로써 체육이 활성화 됐듯이 ‘엘리트 음악에서 생활음악으로’라는 모토를 내건 ‘대한민국생활음악축제’를 계획하고 있다”며 “21년간의 문화예술행정경험을 바탕으로 국가문화브랜드 상승과 온 국민에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문화예술정책 개발 및 활용, 그리고 지역의 균형적 문화발전에 모든 힘을 쏟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한 “음악의 강국인 우리나라에 아직 국립음악박물관이 없는 것이 아쉽다”며 국립음악박물관 건립 추진에 대한 필요성도 제기했다.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1970년대 최고 인기를 구가했던 고교야구부터 1982년 출범한 KBO 프로야구, 이만기 강호동이 모래판을 뒤집던 천하장사 민속씨름 전성기 시절까지…. 야구와 씨름 중계 전문 캐스터로 활약해 온 이규항 전 KBS 아나운서실장(82)은 유려한 말솜씨와 정확한 우리말 구사로 팬들에게 목소리가 익숙한 ‘전설의 아나운서’다. 그런 그가 35년간 재직해왔던 KBS를 퇴직한 후에 뜻밖에도 불교의 선(禪)과 중도(中道)를 ‘수학의 0’과 ‘음식맛’으로 풀어낸 ‘부처님의 밥맛’(동아시아)이란 책을 펴냈다. 이 책은 일본에서 ‘0의 행복’이라는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가톨릭 신자인 그가 불교에 빠져들고, 활발한 저술과 강연활동에 나서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그가 인생에서 고비를 맞은 것이 50대 초반이었다. 술을 즐기던 그는 어느 날 음주 도중 심장에 극심한 고통을 느끼고 쓰러졌다. 병원에서 심장수술을 받고 회복하던 중 그는 갑자기 ‘아, 이것이 바로 0의 행복이구나!’ 하고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법열(法悅·깨달음의 황홀한 기쁨)이 온 것이었다. 그는 “살았구나! 다시 술을 마실 수 있겠구나 하는 기쁨이 아니었다”며 “‘0의 평상심’을 느끼게 해준 병상은 깨달음의 보리수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30년간 불교의 중도, 유교의 중용(中庸) 등 동서양의 종교와 과학, 수학을 연구해 ‘중도’와 ‘중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이 책을 펴냈다. 그가 내놓은 ‘염불(念佛)’에 대한 해석은 흥미롭다. ‘염(念)’자를 풀어보면 ‘지금(今) 마음(心)’이란 뜻으로, 염불은 바로 시시각각 변화하는 마음자리의 위치를 ‘처음 본래의 마음’으로 이동하는 행위라는 것. “부처님이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은 ‘공(空) 사상’의 본질이 바로 숫자 ‘0’과 같습니다. 수학시간에 배운 x, y 좌표 평면이 있다면, 우리 마음자리는 시시각각 양수(+)와 음수(―)를 오가고 있지요. 내 경우 음주와 쾌락의 생활에서는 플러스(+)에 있었고, 병으로 죽음의 문턱에 있을 때는 마이너스(―)에 있었습니다. 병상에서 내 마음자리가 ‘0’이 되었을 때 비로소 최상의 평안함과 행복감을 느끼게 된 거죠.” 그는 인도 카필라국의 태자였던 석가모니 부처가 깨닫는 과정도 숫자 ‘0’으로 설명한다.“붓다는 29세에 출가한 후 5년 6개월간 몸을 극도로 괴롭히는 고행(苦行) 수행을 합니다. 그러나 깨달음을 얻지 못하죠. 이후 고행 수행을 포기하고, 우유죽으로 기운을 차리고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선정에 들어갑니다. 이른바 ‘재수(再修)’를 해서 40일 만에 깨달음을 얻게 되죠. 태자 시절 세속 최고의 ‘단맛’(+)을 보고, 출가 후 고행하며 최고의 ‘쓴맛’(―)을 본 다음, 제3의 세계인 중용(中庸)에서 최고의 행복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중도란 단순히 평균적인 중간값이 아닙니다. 양극단의 플러스와 마이너스 생활을 체험한 자만이 얻을 수 있는 깊은 깨달음입니다.” 그는 책에서 일상생활에 밀접한 ‘음식의 맛’으로도 중도를 설명한다. 밥맛, 물맛을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최고의 ‘0의 맛’으로 설정하고, 플러스(+) 쪽에 붉은 살 생선, 과일, 해산물을 넣고, 마이너스(―) 쪽에는 김치, 고추, 씀바귀, 고수까지 도표로 꼼꼼하게 정리한 도표는 매우 흥미롭다. “호박 맛을 알게 되면 인생의 철이 든다고 합니다. 호박보다 더 맛없는 인생의 맛을 경험했다는 뜻이죠. 씀바귀나 고추, 보리밥이 마이너스(―) 성질을 갖고 있지만 좋아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맛과 취향에는 우열이 없죠. 우리 인생에도 플러스의 1세계, 마이너스의 2세계, 0의 제3세계를 무차별심(無差別心)으로 받아들이고 즐길 줄 알아야 진정한 0의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불교는 바로 일상의 철학인 셈이죠.” 그는 현직에 있던 시절 KBS한국어연구회 회장으로 활동했고, 퇴직 후에도 올바른 우리말 발음법 관련 책 저술과 강의를 계속해오고 있다. ‘표준 한국어 발음사전’(공저) 편찬에 참여한 그는 지금도 ‘걸어다니는 발음사전’으로 불린다. 그는 “TV 예능프로그램에서 진행자들이 너무 공격적인 말투가 많아 듣기 괴로울 때가 많다”며 “세종대왕이 창제하신 ‘훈민정음’이란 새로운 문자를 가르치고(訓民), 올바른 발음(正音)을 가르친다는 뜻이었는데, 요즘 방송에서는 정확한 우리말 발음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1970년대 최고 인기를 구가했던 고교야구부터 1982년 출범한 KBO 프로야구, 이만기 강호동이 모래판을 뒤집던 천하장사 민속씨름 전성기 시절까지…. 야구와 씨름중계 전문캐스터로 활약해 온 이규항 전 KBS아나운서 실장(82)은 유려한 말솜씨와 정확한 우리말 구사로 팬들에게 목소리가 익숙한 ‘전설의 아나운서’다. 그런 그가 35년간 재직해왔던 KBS를 퇴직한 후에 뜻밖에도 불교의 선(禪)과 중도(中道)를 ‘수학의 0’과 ‘음식맛’으로 풀어낸 ‘부처님의 밥맛’(동아시아)이란 책을 펴냈다. 이 책은 일본에서 ‘0의 행복’이라는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가톨릭 신자인 그가 불교에 빠져들고, 활발한 저술과 강연활동에 나서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그가 인생에서 고비를 맞은 것이 50대 초반이었다. 술을 즐기던 그는 어느날 음주 도중 심장에 극심한 고통을 느끼고 쓰러졌다. 병원에서 심장수술을 받고 회복하던 중 그는 갑자기 ‘아, 이것이 바로 0의 행복이구나!’하고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법열(法悅·깨달음의 황홀한 기쁨)이 온 것이었다. 그는 “살았구나!, 다시 술을 마실 수 있겠구나 하는 기쁨이 아니었다”며 “‘0의 평상심’을 느끼게 해준 병상은 깨달음의 보리수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30년 간 불교의 중도, 유교의 중용(中庸) 등 동서양의 종교와 과학, 수학을 연구해 ‘중도’와 ‘중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이 책을 펴냈다. 그가 내놓은 ‘염불(念佛)’에 대한 해석은 흥미롭다. ‘염(念)’자를 풀어보면 ‘지금(今) 마음(心)’이란 뜻으로, 염불은 바로 시시각각 변화하는 마음자리의 위치를 ‘처음 본래의 마음’으로 이동하는 행위라는 것. “부처님이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깨달은 ‘공(空) 사상’의 본질이 바로 숫자 ‘0’과 같습니다. 수학시간에 배운 x,y 좌표 평면이 있다면, 우리 마음자리는 시시각각 양수(+)와 음수(-)를 오가고 있지요. 내 경우 음주와 쾌락의 생활에서는 플러스(+)에 있었고, 병으로 죽음의 문턱에 있을 때는 마이너스(-)에 있었습니다. 병상에서 내 마음자리가 ‘0’이 되었을 때 비로소 최상의 평안함과 행복감을 느끼게 된거죠.” 그는 인도 카필라국의 태자였던 석가모니 부처가 깨닫는 과정도 숫자 ‘0’으로 설명한다. “붓다는 29세에 출가 후 5년6개월간 몸을 극도로 괴롭히는 고행(苦行) 수행을 합니다. 그러나 깨달음을 얻지 못하죠. 이후 고행수행을 포기하고, 쌀로 지은 우유죽을 먹으며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선정에 들어갑니다. 이른바 ‘재수(再修)’를 해서 40일만에 깨달음을 얻게 되죠. 태자 시절 세속 최고의 ‘단맛’(+)을 보고, 출가 후 고행하며 최고의 ‘쓴맛’(-)을 본 다음, 제3의 세계인 중용(中庸)에서 최고의 행복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중도란 단순히 평균적인 중간값이 아닙니다. 양극단의 플러스와 마이너스 생활을 체험한 자만이 얻을 수 있는 깊은 깨달음입니다.” 그는 책에서 일상생활에 밀접한 ‘음식의 맛’으로도 중도를 설명한다. 밥맛, 물맛을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최고의 ‘0의 맛’으로 설정하고, 플러스(+) 쪽에 붉은살 생선, 과일, 해산물을 넣고, 마이너스(-) 쪽에는 김치, 고추, 씀바귀, 고수까지 도표로 꼼꼼하게 정리한 도표는 매우 흥미롭다. “호박 맛을 알게 되면 인생의 철이 든다고 합니다. 호박보다 더 맛없는 인생의 맛을 경험했다는 뜻이죠. 씀바귀나 고추, 보리밥이 마이너스(-) 성질을 갖고 있지만 좋아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맛과 취향에는 우열이 없죠. 우리 인생에도 플러스의 1세계, 마이너스의 2세계, 0의 제3세계를 무차별심(無差別心)으로 받아들이고 즐길 줄 알아야 진정한 0의 행복을 느낄수 있습니다. 불교는 바로 일상의 철학인 셈이죠.” 이 전 아나운서는 “0을 발견한 붓다는 위대한 사상가이자 수학자”라고 설명했다. 우리가 기호를 말할 때는 ‘공일공(010)’으로 읽고, 숫자를 말할 때는 ‘영점일’(0.1)로 읽듯이 부처의 ‘공(空)’사상과 숫자 ‘영(0)’은 같은 말이라는 뜻이다. “석가모니 부처가 득도한 시기는 B.C 6세기입니다. 그로부터 1000년 뒤인 A.D6세기 경에 인도에서 숫자 ‘0’이 발견됩니다. 부처의 ‘공/중도 사상’이 인도인들의 사유를 지배한 결과 0이란 개념이 잉태된 것입니다. 0이 발견된 후 현대수학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인도에서는 건물의 가장 아랫층을 0층으로 부릅니다. 0층이란 개념은 영국, 프랑스 등 유럽으로 퍼져나갔죠. 0은 다른 숫자가 감히 뺄 수도 나눌 수도 없고, 아무리 큰 숫자도 0에 곱하기만 하면 없어지고 말죠. 이런 연유로 0은 수학의 세계에서 가장 뒤늦게 편입됐으면서도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적인 숫자의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수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발견인 0은 불교적 세계관으로 가능했습니다.” 이 전 아나운서는 재직시절 KBS한국어연구회 회장으로서 퇴직 후에도 올바른 우리말 발음법 관련 책과 강의도 계속해오고 있다. ‘표준 한국어 발음사전’(공저) 편찬에 참여한 그는 지금도 ‘걸어다니는 발음사전’으로 불린다. 그는 특히 표의문자로서 동음이의어가 많은 한글의 경우 장단음(長短音) 구분을 잘 해줘야 명확하게 뜻을 전달하고, 리드미컬한 우리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요즘 TV뉴스에서 ‘일본에게 과거사에 대한 사과를 받아야 한다’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이럴 때는 ‘사’자를 장음으로 발음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를 단음으로 짧게 발음하면 일본에게 ‘먹는 사과’(apple)를 받아야 한다는 뜻이 돼 우스꽝스럽게 돼버리고 말죠. 전세계 공영방송에서는 국민들에게 교육용으로 표준어 발음을 하는 원칙을 지키고 있는데, 요즘 우리 TV 예능프로그램에서는 진행자들이 너무 공격적인 말투, 거친 비속어를 많이 써 TV소리가 듣기 괴로울 때가 많습니다.” 이 전 아나운서는 “세종대왕이 창제하신 ‘훈민정음’이란 새로운 문자를 가르치고(훈민·訓民), 올바른 발음(정음·正音)을 가르친다는 뜻”이라며 “한글이란 말에서 ‘문자’만 가르치고, 정확한 우리말 발음과 음악성 교육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은 한국어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말했다.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대자연의 위대함을 담다.’ 삼성전자의 셰프컬렉션 냉장고는 미슐랭 스타 셰프들의 인사이트를 반영한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삼성전자는 최근 셰프컬렉션의 외관과 내부를 완전히 바꾼 ‘뉴 셰프컬렉션’ 제품을 새로 내놨다.》뉴 셰프컬렉션은 밀레니얼 감각의 명품 디자인을 완성하기 위해 유럽지역 전문업체와 협업을 진행하고, 소비자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마레 블루, 세라 블랙, 혼드 네이비, 혼드 베이지, 혼드 라이트 실버 등 5가지 도어 패널을 선보였다. 개인의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디자인을 선택할 수 있어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예술작품을 빚는 장인 정신을 추구했다는 평가다. 특히 ‘마레 블루(MARE BLUE)’는 명품 자동차 브랜드인 ‘마세라티’, 유명 주방가구 브랜드 ‘보피’ 등과 협업하는 것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금속 가공 전문업체 ‘데카스텔리’와 컬래버레이션(협업)한 작품이다. 심해의 고요한 울림과 밝은 생명력, 해수면에 내려앉은 빛의 아름다움으로 가득 채웠다. 인상파 화가의 작품처럼 빛이 반사되는 정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섬세한 터치로 일상 속에서 다양한 영감을 선사한다. 데카스텔리가 글로벌 가전제품과 협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데카스텔리의 장인들이 패널 하나하나를 수작업으로 완성했기 때문에 같은 패턴이 하나도 없다. 마레 블루 컬러의 셰프컬렉션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바위의 질감을 세심하게 구현한 ‘세라 블랙(CERA BLACK)’은 자연의 풍경을 집 안으로 고스란히 들여온 느낌이다. 차별화된 편안함과 묵직함이 느껴지는 세라 블랙은 스페인 발렌시아산 100% 천연 세라믹으로 제작됐다. 천연 재료로 만들었기 때문에 친환경적인 것은 물론이고 스크래치에 매우 강한 탁월한 내구성을 자랑한다. 입체적인 질감이 느껴지는 ‘혼드 시리즈’는 메탈 특유의 서늘함은 덜고 따뜻함을 더했다. 우아한 베이지, 신비로운 네이비, 모던한 라이트 실버의 세 가지 폭넓은 컬러로 원하는 감성을 담아 주방 공간을 연출할 수 있다. 셰프컬렉션은 5가지 다채로운 패널 소재는 물론이고 냉장고 도어 모서리에 있는 ‘엣지 프레임’까지 원하는 대로 조합할 수 있다. 패널을 액자 속 예술작품처럼 담을 수 있는 엣지 프레임은 황금빛 코퍼와 다크 크롬 중 소비자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뉴 셰프컬렉션은 도어 패널뿐만 아니라 더 깊고 넓어 보이는 ‘블랙 글라스’로 내부 디자인까지 새롭게 업그레이드했다. 기존의 복잡한 선반 구조를 과감히 제거한 여백의 미가 돋보인다. 도어를 여는 순간 자연광이 반사되면서 시원한 공간감을 경험할 수 있다. 외부 패널뿐 아니라 내부 수납 구조까지 보관 식품과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맞춤형으로 선택할 수 있다. 특히 ‘비스포크 수납존’은 195만 건의 소비자 식품 구매 패턴을 빅데이터로 분석해 사용자에 따라 보관 식품이나 방식에 차이가 있다는 점에 착안해 개발됐다. 이재승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장(부사장)은 “뉴 셰프컬렉션은 보다 진화한 개인 맞춤형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비스포크 개념을 외부에서 내부까지 확장한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뉴 셰프컬렉션은 비스포크 냉장고, 그랑데 AI(인공지능) 세탁기·건조기에 이어 삼성전자의 세 번째 프로젝트 프리즘(맞춤형 가전) 제품이다. 뉴 셰프컬렉션은 도어 패널(5종)과 엣지 프레임(2종), 비스포크 수납존(5종), 정수기 등 편의 기능 구성(3종)에 따라 소비자가 선택 가능한 조합이 총 150가지에 이른다. 양혜순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상무는 “기존 셰프컬렉션이 중장년층을 겨냥했다면 뉴 셰프컬렉션은 밀레니얼 세대의 마음을 뺏을 수 있도록 연구했다”며 “일반적인 양산 제품이 아니라 예술적 개념을 냉장고에 들여온 것”이라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