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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자 심수관 14대의 인터뷰 기사가 나간 뒤 많은 이메일을 받았다. 그중 10여 분은 심 옹의 한국 방문을 본인이 직접 안내하고 싶다며 자기소개와 연락처를 보내주셨다. 심 옹은 이 소식에 감사해했다. 대신해 설명하자면 만 90세를 넘긴 심 옹이 방한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선 몸이 불편해서다. 하지만 더 깊은 이유는 1995년 한국의 78세 지인이 가고시마 방문 중에 갑자기 세상을 뜬 기억과 관련이 있다. 당시 뒷일을 도맡아 고생도 했지만 타향에서 불의의 일을 당한 지인의 황망함을 생각하면 기가 막혔다. 그래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사람은 멀리 움직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독자 중에는 심 옹의 실상이 알려진 것과 다르다는 지적을 해 온 분도 있었다. 6시간 정도 대화하면서 기자도 느끼는 바가 없지 않았다. 그간 매체들이 다뤄 온 것 같은 ‘민족애로만 가득 찬 도공의 후예’는 어차피 미화된 얘기일 수밖에 없다. 그는 일본인이고, ‘오사코(大迫)’라는 일본 이름을 갖고 있다. 1999년 세상을 뜬 부인도 일본인이다. 다만 그는 한 번도 이를 감추려 하지 않았다. 그는 인터뷰 중에도 “난 일본인인데 한국분들은 내가 뼛속까지 한국인이라고 전제하고 말을 하곤 해 당혹스러울 때가 많다”며 이 또한 유머로 넘긴다. “난 실은 고(古)조선인인데….” 그런데 그가 일본인이라 해도, 조선에서 끌려온 심씨 일가가 일본에 정착해 ‘친주칸(沈壽官)’이라는 조선 이름으로 된 브랜드를 키워 나간 얘기는 감동적이지 않은가. 특히 이런 일이 왜 일본에서는 가능했고 한국에서는 불가능했는지를 곰곰 돌아본다면 말이다. 검색을 하다 보니 그가 일본에서도 ‘배싱’의 대상이란 점을 알게 됐다. ‘심수관은 그의 본명이 아니라’거나, 그를 주인공으로 한 시바 료타로의 소설 ‘고향을 어찌 잊으리’도 공격 대상이 됐다. 소설에는 그가 중학교 입학 직후 ‘심’이란 진기한 이름을 발견한 상급생들로부터 흠씬 두들겨 맞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에 대해 “그 학교 동창회 명부에 ‘심수관’은 없었다”고 고증하며 비판하는 식이다. 소설이란 점을 잊은 지적이겠지만 시바 료타로가 ‘심’이란 이름 때문에 맞은 것으로 쓰고 있기는 하다. 다만 그 좁은 지역에서 조선식 이름이 아니었으면 조선인 출신이란 걸 몰랐을까? 지면에는 다 쓰지 못했지만 14대 심수관에게, 혹은 그의 선조들에게 고향이란 일종의 잃어버린 이상향 같은 존재였다는 게 솔직한 감상이다. 그들은 삶이 고되고 힘들 때, “우린 훨씬 훌륭한 핏줄을 가졌어” “우리 한강은 세상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강이야”라고 자식들에게 가르치며 이를 악물었을 것이다. 그들의 이상향인 조선이 지금의 한국을 의미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한국분들 참 따뜻합니다. 400년 전 끌려간 도공의 후예라고 하면 노동으로 거친 손을 한 촌로가 고생 많았다며, 불쌍하다며 안아 주세요. 암만 봐도 내가 더 잘살고 고생도 덜한 것 같은데…. 그런데 그게 참 좋았습니다.” 결국 깎아내릴 필요도, 우러러볼 필요도 없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는 어떻게든 조그만 흠집을 찾아내고 공격해 모든 것을 가치 없는 것으로 바꿔 버리는 질병이 만연하고 있는 건 아닐까. 누구나 잘한 것도, 잘못도 있다. 잘못은 고치되 잘한 것을 키우고 남겨야 무언가가 축적된다. 문화에도, 역사에도 자랑할 만한 자산이 생겨나는 것이다.서영아 도쿄 특파원 sya@donga.com}
22일 일본 구마모토(熊本) 시의회에서 한 여성 의원이 아이를 안은 채 회의에 참석하려다 동료 의원들의 거센 항의를 받자 결국 아이를 회의장 밖 친구에게 맡겼다. 스페인 뉴질랜드 등에선 가능했던 ‘아기 동반 등원’이 일본에선 벽에 부딪힌 것이다. 23일 도쿄신문에 따르면 오가타 유카(緖方夕佳·42) 시의원은 이날 생후 7개월 된 아들을 안고 회의장에 착석했다. 그대로 회의에 참석하려 했지만 곳곳에서 다른 의원들의 항의가 터져 나왔다. 아기 동반 등원에 찬성하는 의원들과 반대하는 의원들 사이에 입씨름까지 벌어졌다. 혼란이 이어지자 결국 오가타 의원은 아이를 회의장 밖에 있던 친구에게 맡겼다. 회의는 예상보다 40분가량 늦게 시작됐다. 초선인 오가타 의원은 임신 중이던 지난해부터 아기를 데리고 회의장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의회 사무국에 문의했지만 긍정적인 대답이 나오지 않자 이날 아기 동반 등원을 감행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여성이 활약할 수 있는 의회가 되길 바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구마모토 시의회에는 ‘의원 이외는 방청인으로 한다’ ‘방청인은 어떠한 이유가 있더라도 의회 회의장에 들어올 수 없다’는 규정이 있을 뿐 의원이 자신의 아기를 안고 들어갈 수 있는지에 대해선 명확하게 규정돼 있지 않다. 의회 사무국은 아기를 방청인으로 봤다. 오가타 의원의 시도는 결국 실패로 끝났지만 일과 육아의 병립이라는 과제에 대한 논의가 일본 사회에서 활발해지는 계기가 됐다고 신문은 평가했다. 특히 전문가들 사이에서 오가타 의원의 행동에 대해 “일본 사회를 바꿀 계기가 됐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서구 사회에서는 여성 의원이 회의장에서 수유할 권리를 인정하는 등 아이를 가진 여성이 정치에 참여하기 좋은 환경 만들기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이에 비해 일본에서는 여성 의원이 늘어나고는 있으나 서구에 비해 아직 적은 것이 현실이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일본이 북한 핵·미사일 위협을 내세워 미국과의 군사적 동맹관계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미국도 중국 견제를 위해 일본의 안보 역할 확대를 원하고 있어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사실상 인정하는 분위기다. 일본 유력 정치인들의 자체 무장 강화 발언도 점차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19일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미 공군 전략폭격기 B-52(사진)가 8월 일본 열도 상공을 횡단 비행한 뒤 동해 공역에서 항공자위대 전투기와 공동훈련을 했다고 전했다. 북한과 가까운 해상에서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B-52와 자위대기가 공동훈련을 한 것이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다만 일본 정부는 ‘비핵 3원칙(핵무기의 보유, 제조, 반입 금지)’을 견지하고 있는 만큼 사전에 B-52가 핵무기를 탑재하지 않고 비행한다는 점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B-52의 동향이 북한에 주는 정치적 군사적 의미는 상당히 크다”며 “미일 간 강한 연대를 보여주기 위해 공표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미국의 의향에 따라 비공개했다”고 말했다. 이 신문은 B-52와 항공자위대의 공동훈련을 북한이 파악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 일본 방위상이 이르면 내년 1월 상순 미국을 방문해 백악관에서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과 회담한다고 산케이신문이 19일 보도했다. 오노데라 방위상은 미국에 가는 길에 하와이에 들러 방위성이 2023년 도입을 추진하는 육상형 이지스 시스템 ‘이지스어쇼어’도 시찰할 예정이다. 양국 국방장관은 회담에서 대북 군사적 압력 및 미일동맹 강화책을 논의하며 비전투원 대피활동과 선제공격 등 군사옵션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할 것으로 알려졌다. 적 기지 공격 필요성을 제기해온 오노데라 방위상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이후 북한 정세가 긴박해질 것이라는 견해를 가져왔다. 18일 자신의 지역구 강연에서 “유사시 북한의 미사일 기지에 대해 미국이 공격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상대(북한)가 쏘는 곳을 공격해, 공격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일본은 전수방위(專守防衛·공격을 받은 경우에만 방위력 행사가 가능)를 택하고 있으므로, 대신 공격해 주는 것이 미국의 역할”이라고 주장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후계주자 가운데 한 명인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장은 일본의 핵무기 제조 능력 보유론을 제기했다. 그는 18일 도쿄에서 가진 강연에서 “우리 주변은 모두 핵 대국”이라며 “일본은 핵무기를 만들 생각은 전혀 없지만 여차하면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억지력이 되고 있는지는 잘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한국도 가을이겠네요. 한 번만 더 볼 수 있다면….” 90세를 넘긴 14대 심수관(沈壽官) 옹은 기자가 찾아간 이틀 동안 10번도 넘게 한국의 가을 얘기를 꺼냈다. 그 맑고 청명하면서도 쓸쓸함이 느껴지는 가을 날씨가 그립다고, 꼭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데 잘될지 모르겠노라고…. 지난달 30일 찾은 심수관 도요는 일본 서남단 규슈(九州)에서도 남서쪽 미야마(美山)에 자리하고 있다. 1598년 정유재란 때 전북 남원에서 끌려온 도공의 후예들이 400년 넘게 이곳에서 마을을 이뤄 살아왔다. 요즘도 가고시마(鹿兒島) 공항에서 두 시간마다 떠나는 버스를 타고 1시간 반, 거기서 다시 택시를 타야 도착하는 구석진 곳이다.“제가 이룬 모든 것은 아버지의 꿈” 그는 400여 년 전 조선에서 끌려온 심당길의 14대손이다. 심수관가는 사쓰마(현 가고시마)번에 소속돼 사족(士族·사무라이) 대접을 받으며 대대손손 도자기를 빚어왔다. 지금은 일본에서 손꼽히는 도자기 명가다. 메이지유신 시기 가업을 빛낸 12대 심수관의 업적을 기려 이후 자손들이 그 이름을 계승하고 있다. 1926년생인 14대는 요즘도 거의 매일 도요를 찾는다. 1999년 부인이 먼저 세상을 뜬 뒤 도요에서 가까운 자택에서 애견 고타로와 함께 생활한다. 장녀 기요하라 마사코(淸原正子·61) 씨가 매일 들러 식사와 생활을 돕는다. 14대는 작가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의 소설 ‘고향을 어찌 잊으리’(1969년 간행)의 주인공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자신이 평생 한 일이 실은 아버지 13대의 꿈을 이뤄가는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저 노보리가마(산비탈에 계단 모양으로 만든 도자기 굽는 가마)도, 수장고도, 공방도 모두 13대의 염원이었습니다. (아버지가) 1964년 세상을 뜨기까지 형편이 어려웠거든요. 돈만 있다면 이걸 할 텐데, 저걸 할 텐데…. 그런 얘기를 곁에서 들으며 자랐습니다.” 당대 일본 최고의 지식인이자 작가인 시바 료타로의 호의와 조언은 심수관도요를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작가는 그에게 보통 사람 한 달 월급 정도 되는 가격대의 작품을 만들라고 조언했다. 여유가 생긴 1970년 초 그는 맨 처음 일본식 다실(茶室)부터 지었다. 제대로 된 다실을 만들기 위해 다도의 종가 우라센케(裏千家)에 설계를 맡겼다. 시바가 이를 언론에 알린 뒤 일본 다도계에서 “심수관 다실에서 차를 마시고 오지 않으면 다인이 아니다”라는 얘기가 돌 정도로 큰 화제가 됐다. “그렇게들 오면(차를 마시러 오면) 그냥 가지 않습니다. 당시 제가 만든 다완(찻그릇) 가격이 3만 엔 선이었는데 너도나도 사려 하는 바람에 가격이 9만 엔까지 올라갔습니다.”도자기도 브랜드 마케팅 일본 유수의 문화인들과의 교류를 늘려가면서 심수관 도자기의 가치는 갈수록 상승했다. 그렇게 해서 선대의 빚을 갚고, 가마를 늘려 짓고, 공방을 짓고, 조상 대대로 물려온 작품들을 보존 전시하기 위한 수장고(收藏庫)까지 완성했다. 2층으로 된 수장고 건물은 막대한 돈을 들여 어떤 지진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튼튼하게 지어졌다. 초대 심당길의 ‘히바카리(火計り·흙과 기술은 조선 것이고 오로지 불만 일본 것이라는 의미) 다완’을 비롯해 조상들이 만든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그가 말해준 일화는 1980년에 완공된 수장고에 이 집안의 염원이 얼마나 담겨 있었는지 잘 보여준다. “공사가 80% 정도 진행됐는데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해 오늘내일하고 있었습니다. 의사 몰래 어머니를 제 차에 태워 모시고 와 공사 중인 건물에 업고 올라갔습니다. 어머니가 갑자기 내려 달라고 하시더니 후들거리는 다리로 버티고 서서 만세를 세 번 외치셨습니다. 그러고는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의 꿈도 아버지의 꿈과 같았거든요. 다시 병원으로 모셔 가는 차 안에서 우리 모자는 아무 말 없이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마음을 나눴습니다.” 아버지 13대는 교토(京都)대 법학부를 졸업한 뒤 도공의 삶을 이어갔다. 시대는 전쟁으로 혼란스러웠다. 전쟁 말기 혈기왕성한 아들이 “친구들처럼 사관학교에 가고 싶다”고 말하자 아버지는 마당의 나무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나무들이 스스로 원해 여기 심겨 있는 건 아니다. 산과 들에서 자유롭게 자랐겠지. 하지만 지금은 심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목숨 다할 때까지 노력한다. 우리도 저 나무와 같다.” 이 일은 그가 도공의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계기가 됐다.“아들아, 1998년을 잘 부탁한다” 아버지가 1964년 세상을 뜨며 남긴 유언은 “1998년이면 이곳에 온 지 400주년이다. 그때를 잘 부탁한다”였다. 그는 그 뒤 30여 년간 사쓰마야키 전래 400년 기념제를 어떻게 성공시킬 것인가 궁리하고 준비하면서 보냈다. 첫 번째 꿈은 ‘조선의 불씨’를 미야마에 가져오는 것. 초창기 조상들이 조선의 흙과 기술로 일본의 불만 빌려 빚은 그릇을 히바카리라고 불렀지만 이번엔 고향의 불을 가져와 일본의 흙과 기술로 도기를 빚고 싶어서였다. 결국 1998년 남원에서 채취한 불씨를 미야마에 가져왔다. 불씨는 지금도 미야마도유칸(美山陶遊館)에서 불타고 있다. 또 하나가 귀향 전시회였다. 단 한 번도 가고시마를 벗어난 적이 없던 수장고의 도자기들도 고향이 그리울 거라 생각해 서울에서의 전시회를 기획했다. 이 꿈은 1998년 7월부터 동아일보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400년 만의 귀향―일본 속에 꽃피운 심수관가(家) 도예전’으로 결실을 맺었다. 약 5주간 5만여 명이 관람하는 성황을 이뤘다. “전시회는 사실 제게 엄청난 모험이었습니다. 행사 전에는 몇 달을 잠도 제대로 못 잘 정도로 걱정이 많았습니다.” 한국 전시 계획이 알려지자 지역 언론들이 엄청나게 반대했다. 수장고의 140여 점은 사쓰마야키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컬렉션인데 자칫 사고라도 나면 그것을 통째로 잃을 수 있다는 우려였다. 심수관가 선조들이 만든 도자기들이 통째로 미야마를 벗어난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400년제를 성공적으로 끝낸 날 밤, 행사 전까지 끊었던 술을 마시며 옆에서 밥을 먹는 아들을 바라봤다. 당시 아들의 나이 39세. 자신도 38세에 당주를 이어받았다. “내년 성인의 날 당주를 물려주고 일선에서 은퇴하겠다”고 선언했다. 그의 나이 72세 때였다. 요즘 그는 “90을 넘긴 지금 평생의 숙제는 다 했다”고 말한다. “손자인 16대까지 도요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 이후를 어떻게 준비할지는 15대에게 맡길 뿐입니다.”문화는 알아주는 이가 있어야 빛난다 한국 도자기가 일본에서 꽃핀 이유를 그에게 물으니 “일본에 다도(茶道)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다도 덕에 도예를 다이아몬드로 여기는 문화가 일본에 생겨났고 도예가 꽃을 피울 수 있었다는 설명이었다. 차 문화는 중국에서 시작돼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갔지만 일본은 이를 도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다도의 전성기이던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다완은 성(城) 하나와 바꿀 정도의 가치를 가졌다. 임진왜란이 ‘도자기 전쟁’이라 불리는 이유다.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출품된 조선 도공들의 작품이 서양인들을 놀라게 했다. 이후 사쓰마야키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으며 수출돼 나갔다. 조선이 천시했던 도공들을 일본은 사족으로 모시며 대접했고 그런 환경에서 기술을 갈고닦은 장인들은 서양사회에 자포니즘(19∼20세기 초 유럽에서 일본 미술과 문화를 즐기고 선호한 현상) 바람을 불러일으키며 일본의 근대화에 영향을 끼쳤다. 이렇게 이뤄진 일본의 근대화와 부의 축적은 결국 제국주의로 이어지게 되니 아이러니한 순환이 아닐 수 없다.사토의 휘호 ‘묵이식지’ 의미는? 14대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가문이 한반도에서 건너온 도래인임을 추정케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1964∼1972년 총리를 지낸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에게서다. 지금도 그의 거실에는 사토 전 총리가 써준 휘호가 걸려 있다. ‘묵이식지(默而識之)’라는 글씨 곁에 ‘심수관 선생에게, 갑인년 봄 에이사쿠’라는 서명이 적혀 있다. 갑인년은 1974년을 뜻한다. 14대는 사토 전 총리가 이 휘호를 써준 날을 어제처럼 기억한다. 사토 전 총리는 차를 대접받은 뒤 “좋은 차였습니다”고 인사하고는 “수관 씨, 몇 대째입니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14대입니다”라고 하니 “저는 좀 더 짧을 겁니다. 당신네는 게이초(慶長·1596∼1615년) 때 왔는데 우리 선조는 그 뒤에 온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붓과 벼루를 청해 글씨를 써줬다는 것이다. 묵이식지는 말로 하지 않아도 알아줄 것은 다 알아주고 통한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14대는 “그 말의 진위를 따져보지는 않았지만 사토 총리의 고향인 야마구치(山口)는 예로부터 조선반도와의 교류가 가장 활발했던 지역이라 가능한 얘기일 것”이라고 말했다. 사토 에이사쿠는 아베 현 총리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의 친동생이다. 1975년 세상을 떴다.뿌리에 대한 긍정은 발전의 에너지 낳아 그는 첫 한국 방문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1965년 11월경 배를 타고 부산으로 가 대구 대전 등에서 1박씩 하며 서울로 향했다. 가는 길에 허름한 대포집에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 모두가 그의 사연을 들으면 “400년 만에 돌아왔다니, 불쌍해서 어쩌나…. 환영한다”며 술잔을 권하곤 했다. 그리고 처음 본 한강. 가슴이 벅차올랐다. “어렸을 때부터 한강은 세상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강이라고 들으며 자랐거든요. 선대로부터 고국에 대한 자부심과 집안에 대한 긍지를 물려받으며 자랐는데 자신의 뿌리에 대한 강한 긍정이 자부심을 낳는 것 같습니다.” 당시 서울대에서 강연도 했다. 한일 국교정상화 반대로 대학가가 시끄럽던 때였다. 14대는 계란을 맞을 각오를 하고 “당신들이 36년의 한을 말한다면 나는 360년의 한을 말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미래로 나아갈 수는 없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강연장이 일순 고요해졌습니다. 그런데 조금 지나니 누군가가 일어서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를 부르기 시작하더군요. 그러더니 모두가 일어서서 노래를 부르며 무대를 향해 걸어왔습니다. 저를 초청한 교수가 눈물을 글썽이며 다가와 껴안아 주더군요. 학생들도 그 위에 포개어 껴안았습니다.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2013년 2월 마지막 방한 이후 거동이 불편해져 더 이상 한국에 가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최후의 여행’을 꿈꿉니다. 일본어를 할 줄 아는 기사가 모는 택시를 하나 빌려 전국 곳곳을 돌며 고향 산하에 이별을 고하고 싶어요. 늘 생각하지만 마음뿐입니다.”미야마(가고시마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14대 심수관 ● 1926년생● 일본 와세다대 정경학부 졸● 1964년 심수관 당주 계승● 1989년 일본 가고시마현 대한민국 명예총영사● 1999년 한일 문화교류에 기여한 공로로 문화훈장(은관) 수상● 2008년 남원 명예시민}
유엔 인권이사회가 16일(현지 시간) 위안부 문제에 대해 “성의 있게 사죄하고 보상하라”는 권고를 내렸다. 14일 열린 보편적 정례 인권 검토(UPR) 회의 결과에 따른 것이다. 내년 2월 26일∼3월 23일 열리는 총회에서 이번 권고에 대한 일본의 수락 여부를 반영한 최종 권고를 채택한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 대표는 현지에 있던 일본 기자들에게 “부끄러울 것이 하나도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오카무라 요시후미(岡村善文) 일본 정부 대표는 이날 스위스 제네바에서 기자들에게 “한국과 중국이 제기한 위안부 문제 항목 등에 대해 검토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무엇도 부끄러워할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권고 내용을 하나하나 자세히 조사해 내년 2∼3월 인권이사회 개최까지 수락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도 17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위안부 한일합의를 강조하며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설명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인권이사회 권고 보고서는 (최종적인 것이 아닌) 잠정적인 것”이라며 “내용을 정밀히 살펴보고 확실하게 대응해 가겠다”고 말했다.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일본 한국 중국 순방이 10일 막을 내렸다. ‘미국 우선주의’를 부르짖는, 예측 불가하고 충동적인 미국 정상을 맞은 3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경쟁적으로 의전에 많은 공을 들였다. 모두가 다 국익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었다. 우리나라는 동서양의 조화를 꾀하는 절제된 의전과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통하는 ‘진심 의전’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멜라니아 여사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했다. 특히 멜라니아 여사는 백악관 관계자들이 “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 것을 처음 본다”고 했을 정도로 3국 중 한국에서 가장 많이 말하고 웃었다는 평이 뒤따랐다. 이번 아시아 순방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가장 먼저 맞이한 일본은 특유의 ‘오모테나시(극진한 대접)’ 외교를 선보이며 정상 간 친밀감을 끌어올리는 데 주력했다. 특히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5일 골프광인 트럼프 대통령을 위해 세계적 골퍼 마쓰야마 히데키를 섭외해 황제 골프 접대를 펼쳤다. 중국은 8일 오후 미국 대통령 부부만을 위해 자금성을 통째로 휴관하는 ‘황제급 의전’과 284조 원짜리 돈 보따리를 내밀어 껄끄러웠던 미국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전환하는 성과를 거뒀다. ‘총성 없는 전쟁’이 펼쳐졌던 한중일 의전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품격과 절제취타대-사물놀이 가락에 트럼프 어깨 들썩… 청와대 만찬땐 술 대신 다이어트 콜라 준비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름다웠다.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극찬한 전통 의장대의 환영 퍼레이드는 사실 작은 실수와 함께 시작됐다. 7일 오후 미 대통령 전용 리무진인 ‘캐딜락원’이 청와대 인근 분수광장에 다다르자 조선시대 ‘왕의 위엄’을 세웠던 취타대가 아리랑 연주를 시작했다가 이내 멈췄다. 의전팀이 탄 차량을 트럼프 대통령이 탄 차량으로 착각한 것. “아! 아니었네.” 짧은 탄식이 흘렀지만 취타대는 긴장하지 않고 트럼프 대통령 내외가 도착하자 힘차게 연주를 시작했다. 캐딜락원은 조선시대 어가행렬처럼 호위를 받으며 청와대 본관으로 들어서 ‘국빈방문’의 서막을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방한 기간 내내 이 장면을 여러 차례 언급하며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을 맞았던 한국 정부의 마음가짐을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이렇게 표현했다. 트럼프 대통령 취향에 맞추려고 했던 일본이나 화려함을 앞세운 물량공세로 나온 중국과 달리 한국적 색채를 담은 절제된 의전을 선보였다는 것이다. 특히 국빈만찬은 동서양의 조화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물이었다. 메인 메뉴인 가자미구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좋아하는 생선요리인데, 문재인 대통령의 고향인 거제도 가자미로 만들었다. 미국은 6월 백악관 만찬에서 문 대통령을 위해 가자미구이를 내놓았다. 만찬 공연에서 연주자 정재일 씨와 유태평양 씨는 ‘축원과 행복’을 기원하는 비나리를 사물놀이 가락 위에 현대적으로 재구성해 연주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리듬을 타면서 어깨를 들썩거렸고, 공연 후 손을 높게 들어 박수를 치며 호응했다. 청와대 의전비서관실은 술을 마시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을 위해 ‘다이어트 콜라’를 내놓는 세심한 의전을 준비하기도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참가자들이 서로 술을 따라주다 보면 트럼프 대통령도 잔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의전팀이 직접 만찬 초반 트럼프에게 콜라를 담은 잔을 서빙했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화려함보다는 정성스럽게 우리 색채를 충실히 전함으로써 한미동맹을 강조할 수 있는 의전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절제된 의전 속에서 의외의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7일 김정숙 여사와 멜라니아 여사는 청와대 경내를 산책했다. 자연스러운 대화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통역 없이 걷는 구간을 준비한 것인데, 김 여사가 적극적으로 영어로 대화에 나서자 멜라니아 여사가 편안함을 느꼈던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멜라니아 여사가 그렇게 웃는 것을 백악관 관계자들이 처음 본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중국 베이징으로 향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출국이 다소 지연되자 인도네시아로 가는 자신의 출국 시간을 15분가량 늦출 만큼 트럼프 대통령 예우를 끝까지 챙겼다. 미국 언론의 방한 취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부 차질이 생겼지만 양측의 협조로 잘 마무리된 일도 있었다. 미국 대통령이 방한할 때 백악관은 청와대에 풀기자단(전체 기자단 중 대표로 행사에 들어가 취재하는 기자) 명단을 방한 일주일 전에는 보내는 게 관행이다. 하지만 이번에 백악관은 명단을 방한 당일인 7일 제출했다. 미국 측의 실례였지만 청와대는 빠른 행정처리로 업무 공백을 메웠고, 차후 백악관 측으로부터 “미안했다. 진심으로 감사했다”는 인사를 들었다. ● 위엄과 과시황제 건륭제 걸었던 동선따라 자금성 안내… 베이징 동물원 문닫고 멜라니아에만 개방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맞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외교 코드는 ‘극진한 대접 속에 감춘 역사적 우월감 과시’로 요약된다. 2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미국의 대통령에게 수천 년간 세계 최강국으로 군림했던 중국의 찬란한 역사를 보여줌으로써 중국은 결코 만만한 나라가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주려는 계획이었다. 여기에는 2050년 미국을 뛰어넘는 세계 1위 국가를 꿈꾸는 시 주석의 ‘중국몽(中國夢)’을 은연중에 과시하려는 의도도 숨어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 부부만을 위해 8일 베이징(北京) 자금성을 휴관해 통째로 비우는 ‘황제급 의전’을 베푼 것도 이런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철저히 계산된 것이었다. 시 주석은 청나라 최전성기 황제 건륭제의 전용 동선을 그대로 따라 걸으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자금성 구석구석을 안내했다. 그러고는 문물보존센터에 들러 화려하고 정교한 도자기와 서화 등을 보여줬다. 시 주석은 대뜸 트럼프 대통령에게 황금색 종을 가리키며 “들어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게 때문에 들지 못하자 시 주석은 그제야 “(실은 들지 못할 정도로) 정말 무겁다”며 웃었다. 9일 오전 베이징 인민대회당 앞에서 펼쳐진 화려한 의장대 사열에 감동한 트럼프 대통령은 인민대회당에 들어서며 또다시 놀랐다고 한다. 전통악기 연주가 울려 퍼지며 장중한 분위기를 연출했기 때문이었다. 베이징 외교 소식통은 “자금성은 중국의 최전성기 황제의 공간이다.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은 미국 대통령에게 이를 보여준 것은 ‘현재는 미국이 강하지만 중국이 역사 문화적으로 유구하고 강력한 국가였다’는 사실을 말하려 했던 것”이라고 풀이했다. 실제로 중국은 중화민족 부흥을 내세울 때마다 아편전쟁 이후 100여 년 동안 서방으로부터 당한 굴욕을 딛고 굴기하고 있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AFP통신에 따르면 8일 자금성에선 미중 정상 사이에 흥미로운 대화가 오갔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역사가 5000년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고 하자 시 주석이 “기록된 역사는 3000년”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러면 8000년의 이집트가 더 오래된 것이군요”라고 하자 시 주석은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단일 문명이다. 우리는 스스로 ‘용의 자손’이라 부른다”고 받아쳤다. 중국의 ‘역사 우월감’ 의전 코드를 극대화하는 장치는 비밀주의다. 중국 정부는 외신들이 시 주석과 트럼프 대통령이 방중 첫날(8일) 만찬을 자금성에서 함께한다고 잇따라 보도해도 트럼프 대통령의 자금성 방문 때까지 이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7일 테리 브랜스태드 주중 미국대사가 관영 중국중앙(CC)TV 인터뷰에서 “Forbidden City(자금성)”라고 말한 대목을 ‘명승고적’이라고 번역해 자막에 넣었을 정도였다. CCTV는 10일 멜라니아 여사의 만리장성과 베이징 동물원 방문 계획 역시 애써 감췄다. 8일 저녁 보도에서 두 곳이 10일 하루 개방하지 않는다고 공고했다는 사실만 전하는 방법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분위기만 풍겼을 뿐이다. 중국은 자국에 비판적인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자 트럼프에게 영향력이 큰 것으로 알려진 장녀 이방카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의 환심을 사기 위해 상당한 공을 들였다. 중국은 이방카만을 위해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와의 행사까지 준비했지만 이방카의 중국 방문은 이번엔 성사되지 못했다. ● 배려와 감성골프-햄버거로 ‘정상 대 정상’ 친밀함 강조… 트럼프 딸 이방카의 지난 생일까지 챙겨줘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정상외교는 ‘정상 대 정상’의 개인적 친밀함을 강조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왔다. 가장 많은 공을 들여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는 사실상 ‘절친’ 사이가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중일 순방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 방문 첫날인 5일 아베 총리와 느긋하게 골프를 즐기며 장시간 환담을 나눈 것이 대표적이다. 2월 미국 마러라고에서 첫 골프를 친 뒤 두 번째 라운드였다.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 일본 측은 트럼프 대통령의 첫 방문국을 일본으로 할 것과 주말을 낀 일정을 잡아 달라고 미국에 거듭 요청했다고 한다. 아베 총리는 6일 만찬에선 자신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와 골프를 쳤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미국 대통령이 남긴 “골프는 좋아하는 사람하고만 칠 수 있다”는 발언을 소개하며 “두 번이나 함께 골프를 치는 건 굉장히 좋아하는 사이가 아니고는 어렵다”고 특별한 관계를 강조했다. 일본 의전의 특징은 세심한 배려와 철저한 준비로 요약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2박 3일 일정으로 일본에 머물면서 아베 총리와 4차례 함께 식사했다. 쇠고기를 좋아하는 트럼프의 식성을 고려해 5일 점심은 미국산 쇠고기 햄버거를, 만찬은 와규 철판구이를 내놓았다. 순방 기간이 기니 친숙한 음식(햄버거)을 대접하기로 했다거나, 굽기 정도로 ‘웰던’을 좋아하는 트럼프를 위해 눈앞에서 고기를 구워주는 철판구이를 골랐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쇠고기도 낮에는 미국산, 밤에는 일본산을 대접해 양국 간 균형을 맞췄다. 사실 트럼프에 대한 접대는 아버지에 앞서 2일 ‘국제여성회의 2017’ 참석차 일본을 찾은 장녀 이방카에서부터 시작됐다. 트럼프에 대한 영향력이 큰 이방카의 마음을 사기 위해 아베 총리가 직접 만찬을 대접했고 나흘 전에 지나간 생일까지 챙겨주기도 했다. 아베 총리가 ‘이방카 기금’에 5000만 달러 출연을 약속하자 이방카는 연설에서 “아베노믹스는 우머노믹스(여성이 주도하는 경제)”라고 화답했다. 아베 정부의 외교력이 제대로 발휘된 예는 2016년 11월 미 대선 직후 뉴욕 트럼프 타워를 방문했을 때였다. 주미 일본대사관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당선을 예상하면서도 공화당 후보로 나선 트럼프 쪽에도 네트워크 만들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사사에 겐이치로(佐佐江賢一郞) 주미 대사는 개표 당일 트럼프 당선이 확실해지자 즉각 ‘막후 실세’로 불리던 트럼프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 인맥을 동원해 트럼프와 아베 총리의 면담 일정을 잡았다. 아무리 철저히 준비해도 돌발 상황은 발생하기 마련이다. 5일 골프 중에 아베 총리가 벙커에서 나오다 구르는 장면, 6일 두 정상이 잉어에게 먹이를 주다 트럼프 대통령이 먹이를 한꺼번에 쏟아붓는 장면 등이 취재 카메라에 포착됐다. 일본 정부는 행사의 홍보를 생각하고 방송 취재를 허가했겠지만 예기치 않은 망신살이 뻗친 꼴이 됐다. 극진한 대접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의 불공정 무역을 비판하고 방위장비 구매를 종용한 것에 대해 비판론도 적지 않다. 9일 발간된 한 주간지 제목은 ‘아베 총리, 트럼프 부녀의 발을 핥았다’였다. 또한 아베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다걸기(올인)’하는 것에 대해서도 일본 내에서 “위험하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 베이징=윤완준 / 도쿄=서영아 특파원}
지난달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집권 자민당이 그간 주춤했던 개헌 스케줄에 다시 시동을 걸고 있다. 8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자민당은 전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속한 호소다(細田)파의 회장인 호소다 히로유키(細田博之) 의원을 헌법개정추진본부장에 임명했다. 호소다 본부장은 다음 주부터 당 차원의 개헌 논의를 재개할 계획이다. 아베 측근인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자민당 간사장 대행도 같은 날 기자회견에서 “연말까지 개헌 관련 4개 항목을 밀도 있게 살펴볼 것”이라며 “내년 정기국회를 목표로 개헌안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4개 항목은 자민당이 중의원 선거에서 공약으로 내건 개헌 항목을 말한다. 헌법 9조 개헌, 교육무상화, 대규모 재해 등의 경우 국회의원 임기를 연장하는 ‘긴급사태 조항’, 참의원의 선거구 조정 등이다. 아베 총리와 자민당은 이 중 헌법 9조의 개정에 공을 들이고 있다. 5월 아베 총리는 헌법 9조의 기존 1항(전쟁 및 무력행사 포기)과 2항(전력 보유와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을 그대로 둔 채 추가로 자위대의 존재를 명기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이를 두고 일단 개헌을 성사시킨 뒤 2항을 없애는 2단계 개헌으로 자위대가 교전권을 갖게 해 전쟁 가능한 국가로 변신시키려는 구상이라는 분석들이 많다. 올해 안에 자민당 내 개헌안을 정리하고 내년 정기국회에 제출한다는 일정은 아베 총리의 개헌 스케줄과 일치한다. 아베 총리는 7월 도쿄도의회 선거에서 참패한 뒤 “개헌 일정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반복해 말해 왔으나, 결국 자민당은 아베 총리의 스케줄에 충실히 따르는 형태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자민당은 내년 6월 이후 개헌안을 발의해 자민당 총재 선거가 끝난 뒤인 가을 무렵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개헌안 발의가 2019년으로 넘어간다면 여름으로 예정된 참의원 선거와 국민투표의 동시선거가 될 가능성도 있다. 한편 중의원 헌법심사회는 7월 영국 등을 방문해 헌법 개정과 국민투표 제도를 조사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는 이들에게 국민투표에서 찬성을 얻는 일의 어려움을 설명하고 “사전 조사 등에서 적어도 60% 정도 찬성자를 확보해 둬야 한다”고 조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취임 첫 아시아 순방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 한국을 방문한다. 올 1월 취임 이후 처음이며 1992년 조지 부시 대통령 이후 25년 만의 국빈방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도착 후 경기 평택시 주한미군 기지인 ‘캠프 험프리스’ 방문을 시작으로 청와대에서 열리는 공식 환영식과 한미 정상회담, 공식 만찬 등에 참석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6일 “일본이 (미국에서) 대량의 방위장비를 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쿄 모토아카사카(元赤坂)에 있는 영빈관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진 뒤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이 북한 미사일을 요격하지 않았다’는 최근 언론 인터뷰 내용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또 미국은 국제 무역시장에서 매우 불공정한 취급을 당해 왔다며 일본과 중국, 다른 국가들에서도 불공정 무역은 해소돼야 하며 이를 위해 미국은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아시아 순방의 최우선 목적이 ‘미국 우선주의’임을 분명히 한 것으로 내일부터 시작되는 한국 방문에서도 경제 문제가 북핵 문제와 함께 우선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 상공을 북한 미사일이 지나간다면 요격해 떨어뜨릴 수 있어야 한다. 미국에는 F-35 전투기, SM-3 등 훌륭한 방위장비가 많다”며 아베 총리에게 무기 구매를 요청했음을 시사했다. 이어 “미국 대통령으로서 나는 공평하고 자유로우며 호혜적인 무역 관계를 원한다”며 “만성적인 무역 불균형 및 적자를 없애기 위해 미국 수출품이 일본 시장에 공평하게 접근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날 골프 회동을 하며 경제 관련 주제를 피하는 데 주력했던 아베 총리는 “일본은 거의 모든 방위장비를 미국에서 구매해 왔다”며 “앞으로도 이지스어쇼어, F-35, SM-3블록A 등을 미국에서 구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미 무역역조 해소와 관련해서는 “기존 경제대화의 틀 안에서 논의를 심화시킬 것”이라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총리가 제안한 ‘인도 태평양’이란 용어를 직접 사용하면서 향후 일본의 대중국 견제 정책에 대한 지지 의사를 드러내는 것으로 화답했다. ‘자유롭고 열린 인도 태평양’은 미국과 일본, 호주, 인도의 4개국 간 협력 강화를 통해 중국의 팽창주의를 견제한다는 내용으로 한국의 대중외교 공간을 좁힐 소지가 크다.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 문병기 기자}
6일 오후 도쿄(東京) 모토아카사카(元赤坂) 영빈관에서 열린 미국과 일본의 정상회담 뒤 공동기자회견장.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에 이은 모두발언이 끝나고 양국 기자들의 질의가 시작되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기다렸다는 듯 세일즈 외교에 나섰다. 일본의 환대는 환대고, 무기 판매와 무역 질서 개선을 통해 대일 무역적자를 줄이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선 “아베 총리가 미국으로부터 많은 양의 군사장비 구매를 마치게 되면 북한에서 날아오는 미사일을 요격할 것이다. 아주 손쉽게 하늘에서 맞힐 수 있을 것”이라며 노골적으로 대일 무기 판매 의사를 드러냈다. 그간 북한을 이유로 첨단 장비 구매를 늘려왔던 아베 총리는 북한 미사일 요격 의사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우리는 요격할 필요가 있다면 요격한다. 다만 어떤 경우든 미일이 긴밀한 협의하에 하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앞서 이날 오전 도쿄 미나토(港)구의 주일 미국대사관에서 열린 미일 기업 경영자 대상 간담회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경제 압박을 가했다. 푸른 넥타이에 미국 국기 배지를 단 트럼프 대통령은 대사관 내 회의실에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등 미일 재계 인사들에게 “일본과의 무역은 공평하지도, 열려 있지도 않다. 하지만 곧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재계 인사들의 표정이 굳어졌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자동차’를 특정하며 “실질적으로 미국에서 대일본 자동차 수출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6일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일본은 미국을 상대로 올해 1∼9월 511억3430만 달러의 무역흑자를 달성했다. 같은 기간 중국, 독일에 이어 3번째로 큰 규모다. 다만 트럼프는 기자회견 내내 일본을 극찬하고 아베 총리에게 친근감을 표시했다. 일본에 대해서는 “믿기 어려운 역사와 문화를 지닌 놀라운 나라”라며 “장엄한 나라(majestic country)”라는 표현까지 썼다. 이어 “일본은 번영하고 있고, 도시는 활기가 넘친다.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국가 중 하나다. (아베를 바라보며 속삭이듯) 우리 경제만큼 좋은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당신(일본)이 두 번째는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대통령으로서 인도 태평양 지역을 찾는 것은 처음이다. 그 첫발이 나의 굉장한 친구와 함께여서 기쁘다”며 아베 총리가 제안한 ‘인도 태평양’이란 용어를 사용해 중국 견제를 중시하는 일본을 지지하겠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북한 핵·미사일 개발 대응 방안에 대해서는 양국의 의견이 일치했다. 아베 총리는 “양국은 중국 러시아 등의 협력을 얻어 북한에 대한 압력을 최대화해야 한다는 데 100% 의견 일치를 봤다”고 소개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내일 방문할 한국과 일본, 미국 3개국의 협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재확인했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대북 독자 제재 대상을 확대해 35개 개인과 단체에 대한 자산 동결을 내일 결정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전략적 인내의 시대는 끝났다”며 “북한이 체제로부터의 위협을 계속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각에서는 나의 어조(rhetoric)가 강하다고 하지만 약한 어조로 지난 25년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라”고 강조했다. 또 “북한은 위험한 체제다. 억압적인 정권 밑에서 살아가고 있는 위대한 사람들이 있다”고 김정은 정권을 비난했다. 이날 기자회견 직전 북한에 의한 납치 피해자 가족들을 만난 것과 관련해서는 “정말 슬픈 일”이라며 “혹 김정은이 이들을 돌려보내 준다면 특별한 무언가가 시작될 수도 있다”고 말해 북한이 성의를 보일 경우 모종의 대가가 있을 것임을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통상과 관련해 언제든 작심 발언을 내놓을 가능성이 확인된 만큼 한국 통상당국도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통상교섭본부 관계자는 “10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을 위한 공청회도 예정된 만큼 한국의 상황을 제대로 알리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 세종=이건혁 / 한기재 기자}
미국 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첫 아시아 순방을 전후해 ‘아시아-태평양’ 대신 ‘인도-태평양’이란 용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5일 요코타(橫田) 공군기지 연설에서 인도-태평양을 직접 언급했다.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2일 대통령 순방 브리핑에서 “대통령이 취임 후 인도-태평양 지도자들과 43차례 전화통화를 했다”고 말했고,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지난달 18일 인도와의 전략적 관계 확대를 강조하는 연설에서 인도-태평양을 15차례 언급했다.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의 ‘아시아-태평양’을 대신하는 개념으로 지난해 8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케냐 아프리카개발회의 기조연설에서 제안한 개념이다. 미일 동맹을 바탕으로 미국의 영향권을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등 공통의 가치관을 가진 인도와 호주까지 넓혀 중국의 팽창주의에 대항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일본 언론은 6일 열리는 미일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이 이를 공동 외교전략으로 표명할 것이라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일 베트남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구상에 대해 연설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아베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은 6일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유사시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과 미국인을 피란시키는 대책에 대해 협의한다고 요미우리신문이 5일 보도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지금보다 우리가 일본과 더 가까웠던 적은 없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양국) 관계는 정말로 대단하다. 나와 아베는 서로를 좋아하고 두 나라도 서로를 좋아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5일 저녁 도쿄 긴자의 한 식당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비공식 만찬을 갖기 전 기자들과 만나 “(아베 총리와) 북한과 무역, 그리고 다른 문제들을 포함해 다양한 주제들을 토론할 것”이라며 이렇게 강조했다. 트럼프가 좋아하는 와규(和牛) 스테이크와 새우구이로 양 정상 부부와 극소수만 참여한 만찬은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아베 총리는 9시 10분경 만찬이 끝난 뒤 기자들에게 “트럼프 대통령이 매우 기뻐했다. 의미 있는 만찬이었다”고 말해 상당한 성과가 있었음을 시사했다. 아베 총리는 오후 7시 반경 트럼프 대통령을 숙소인 도쿄(東京)의 데이코쿠(帝國)호텔로 마중 나가 대통령 전용차에 동승해 음식점으로 안내했다. 아베 총리의 ‘트럼프 모시기’는 이에 앞서 진행된 통산 두 번째 골프 라운드였다. 아베 총리는 이날 라운드를 위해 3일 오후 짬을 내 도쿄 근교 골프장을 찾아 몸을 풀었다는 후문이다. 일본 최고의 프로 골퍼인 마쓰야마 히데키(松山英樹) 선수가 동행한 이날 라운드에서 두 정상은 스코어를 기록하지는 않았다. 백악관 고위 관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파’와 ‘보기’를 반복하는 가운데 ‘파’가 많았던 반면 아베 총리는 초기에 3차례 벙커에 넣었다가 후반에 회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총리는 평균 90타 수준이고,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68타를 기록한 바 있다. 백악관 관리는 이날 두 정상이 골프 중 대북 대응이나 무역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고도 전했다. 미국 측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골프장에서 카트를 사용하지 않고 걸어가는 것을 처음 봤다”고 NHK방송에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플레이가 끝난 뒤 아베 총리에게 “정말로 즐거웠다. 매우 멋진 코스였다”고 말했다. 트위터에도 “아베 총리와 마쓰야마 히데키 선수 등 멋진 2명과 골프를 하고 있다”는 코멘트를 올렸다. 함께 올린 동영상에는 마쓰야마 선수가 지켜보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페어웨이에서 아이언을 사용해 샷을 하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골프를 마친 뒤 양 정상은 각기 헬기를 타고 도쿄로 돌아갔다. 오후 3시 37분 트럼프 대통령은 숙소인 데이코쿠호텔에 전용차인 ‘비스트’를 타고 도착했다. 비슷한 시간 총리관저에 도착한 아베 총리는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만면에 미소를 띠고 “날씨가 정말 좋았고 클럽에서도 따뜻한 환영을 받아 트럼프 대통령도 크게 즐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골프장에서의 대화는 좀 들뜨게 된다”며 “서로 편안하게 속내를 말할 수 있어 어려운 화제도 가끔 섞으면서 느긋하게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2박 3일 방일 기간에 골프는 물론이고, 4차례에 걸쳐 함께 식사를 하면서 돈독한 스킨십을 과시한다. 5일 점심 저녁에 이어 6일 점심도 워킹런치를 함께한 뒤 정상회담에 들어가게 된다. 이날 밤 아베 총리가 주최하는 만찬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손녀 아라벨라가 좋아한다는 일본의 개그맨 겸 DJ ‘피코타로’도 초대됐다. 피코타로는 동영상 ‘펜 파인애플 애플 펜(PPAP)’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일본을 방문한 멜라니아 여사는 이날 오후 아키에(昭惠) 여사와 함께 도쿄 긴자(銀座)의 진주 전문 보석점을 찾았다. 미에(三重)현에서 해녀로 일하는 여성들이 직접 진주의 종류나 채취 방법에 대해 설명해주자 멜라니아 여사가 질문도 하며 열심히 들었다고 NHK는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6일 아키히토(明仁) 일왕을 예방한 뒤 도쿄 모토아카사카(元赤坂)의 영빈관에서 미일 정상회담을 갖는다. 이어 아베 총리와 함께 북한에 의한 납치 피해자 가족을 면담한 뒤 공동 기자회견, 아베 총리 주최의 만찬 등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7일 오전 한국으로 출발한다. 일본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일 기간 중 테러 등 불미스러운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2만1000명을 투입해 철통같은 경계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그 어느 때보다 강고한 미일 연대를 국내외에 피력한다는 전략이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래 양 정상 사이 소통은 정상회담만 이번까지 합해 5번, 전화회담은 알려진 것만 16회에 이른다.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일은 5일부터 2박 3일. 하지만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트럼프맞이’ 일정은 그 이틀 전부터 시작됐다. 아베 총리는 3일 거의 전부를 할애해 트럼프가의 선발대로 온 이방카를 접대했다. 3일 오전 8시 20분에는 ‘국제여성회의 2017’ 행사에 이방카와 함께 등단해 개도국 여성기업가 지원기금에 57억 엔을 출연하겠다고 밝혔다. 오후 1시에는 도심에서 1시간 반 거리인 가나가와현의 골프장에 가 있었다. 5일로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과의 골프전에 대비해 몸을 풀기 위해서다. 지지율 급락에 북핵 위협 등으로 취미인 골프를 봉인한 지 근 반년 만이다. 오후 6시 22분엔 다시 도쿄 도심의 일본료칸 입구에서 이방카를 기다렸다. 정확히 13분 뒤 이방카가 도착하자 보도진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는 안으로 에스코트했다. 이날은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카를 위해 돼지고기를 뺀 특별 메뉴가 준비됐다. 식사 중엔 아악 공연이 동원됐고 식사 후에는 이방카에게 며칠 지난 생일 꽃다발을 안겨줬다. 일본의 ‘오모테나시(접대)’에 감동한 이방카는 “잊을 수 없는 밤”이라며 기뻐했다. 직급으로는 대통령 보좌관에 불과한 이방카가 이처럼 공주 대접을 받은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영향력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아베 총리가 뉴욕에서 당선 8일 된 트럼프를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이방카 인맥 덕이었다. 당시 회담 자리를 지킨 이방카는 아버지에게 “그는 똑똑하고 사람도 좋아 보인다”며 가까이 지내라 했다고 알려진다. 그간 일본 언론은 아베가 트럼프의 국제정치 교사 역할을 하는 인상의 기사를 여러 번 내보냈다. 평소에는 이런 보도를 자제하던 아사히신문도 3일 1면에 “알았다, 신조가 그렇게 말한다면…”이란 제하에 두 정상의 밀월을 지적하는 기사를 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16회에 걸친 전화통화에서 아베 총리에게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을 만날지 여부,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의 베이징 발언에 대한 의견 등 측근에게도 묻지 않는 것을 상담한다는 미 정부 고관의 발언이 소개됐다. 일본 내에서는 ‘미국 제일주의’를 주창하던 트럼프 대통령이 아시아 지역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공을 아베 총리에게 돌리는 여론마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시아-태평양’ 대신 ‘인도-태평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도 아베 총리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관측이다. 상황이 이런지라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시점에 맞추기라도 하듯 나온 한국 정부의 ‘미중 균형외교론’에 대해서는 우려가 앞선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2일 한국이 중국과 합의한 ‘3NO 원칙’(사드 추가 배치, 미국 미사일방어체계 편입, 한미일 군사동맹화 부정)에 대해 “한국이 주권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 본다”는 극단적인 표현으로 견제했다. 이에 답이라도 하듯 문재인 대통령은 3일 싱가포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미일 협력과 북핵 공조가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나아가는 것에는 반대한다”며 다시금 ‘미국 중국과의 균형외교’를 강조했다. 아베의 트럼프 일가 환대가 혹자에겐 과공(過恭)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지극정성으로 몸을 낮추는 국익 우선주의를 우리도 곱씹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아베 총리는 9월 미 뉴욕에서 가진 정상회담에서 트럼프에게 “아시아 순방 시 제일 먼저 일본으로 오라”고 부탁해 그 자리에서 승낙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지금도 “대통령과 순방 초입에 만나 이런저런 상의를 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하고 있다. 5일 만난 두 정상이 골프를 함께하고 와규(和牛) 철판구이 만찬을 즐기며 무슨 화제를 안주로 삼았을지 우려스럽다. 서영아 도쿄 특파원 sya@donga.com}
취임 후 첫 아시아 순방 길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일 첫 방문국인 일본에 도착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대북 대응과 무역 문제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두 정상이 통산 다섯 번째 만남, 두 번째 골프 회동을 통해 친밀감을 과시하면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동아시아 정책에 일본의 영향력이 과도하게 커지고 북핵 문제 등에서 한국의 외교적 공간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아베 총리는 이날 오전 도착한 트럼프 대통령을 사이타마(埼玉)현 가스미가세키(霞が關)골프장으로 초대해 9홀 라운드를 가졌다. 클럽하우스에서 통역만을 동석시킨 뒤 미국산 쇠고기 햄버거로 점심식사를 마친 두 정상은 오후 1시경부터 일본 최고의 프로 골퍼인 마쓰야마 히데키(松山英樹) 선수와 라운드를 했다. 여성을 정회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아 남녀 차별 논란을 일으켰던 곳인 데다 세계 랭킹 4위 선수를 동원했다는 점에서 남성 위주의 황제 골프라는 비난이 일본에서도 나오고 있다. 아베 총리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구호를 본떠 ‘도널드 & 신조: 동맹을 더욱 위대하게(Donald and Shinzo: Make Alliance Even Greater)’라고 적힌 흰색 모자를 선물하고 함께 서명하는 이벤트를 가지는 등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사기 위해 총력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경기 도중 두 정상은 함께 그린을 걸어가며 대화를 나눠 미일 관계는 물론이고 다음 순방지인 한국 중국 등과 관련한 의제도 사전에 논의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두 정상은 6일 정상회담 이후 아베 정권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내세운 ‘자유롭고 열린 인도 태평양 전략’을 공동 외교전략으로 표명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이 일본이 가리키는 방향대로 나아가게 되는 셈이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국과 일본의 친밀도가 높아지면 두 나라가 주도하는 중국 견제 목적의 전략이 강화될 수 있다”며 “이 경우 중국과도 잘 지내야 하는 한국으로서는 외교적 셈법이 복잡해질 수 있고, 미중 사이의 균형외교에 대한 부담도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베 총리는 정상회담에서 일본의 방위력 증강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를 얻어내는 한편 가급적 경제 분야로 화제가 옮아가지 않도록 한다는 전략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 이세형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 시간) 취임 이후 첫 아시아 순방길에 올랐다. 첫날 하와이에 들러 미군 태평양사령부 등을 둘러본 트럼프 대통령은 5일 일본 방문을 시작으로 14일까지 한국 중국 베트남 필리핀 순으로 방문한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방문의 첫 번째 목표는 북한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결의 강화”라고 2일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5일 오전 일본에 입국한 뒤 사이타마(埼玉)현 가스미가세키 골프장으로 이동한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프로골퍼 마쓰야마 히데키(松山英樹)와 라운딩을 한다. 프로선수 수준인 68타를 기록했던 트럼프 대통령에 비해 아베 총리는 90타 내외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찬은 골프장에서, 만찬은 도쿄의 와규(和牛·일본 고급 쇠고기) 철판구이 전문점에서 아베 총리와 함께 한다. 6일 오전에는 아키히토(明仁) 일왕 부부를 예방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예전부터 “일본에 간다면 덴노(天皇)를 꼭 만나고 싶다”고 말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아베 총리와 점심식사를 마친 뒤 오후에는 영빈관에서 미일 정상회담을 한다. 7일 오전 일본을 출발해 이날 오전 한국에서는 경기 평택 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스’를 가장 먼저 찾는다. 이어 청와대로 자리를 옮겨 문재인 대통령과 단독, 확대 정상회담 및 공동 기자회견을 갖는다. 이와 별도로 두 정상은 청와대 경내를 산책한다. 8일에는 미 대통령으로는 24년 만에 국회에서 연설한다. 백악관은 “아시아 순방에서 유일한 의회 연설”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8일에는 중국 베이징으로 이동해 10일까지 머물며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한다. 시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이 도착하자마자 청나라 건륭제가 사용하던 쯔진청(紫禁城) 서재 싼시탕(三希堂)으로 가 함께 차를 마신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강경 발언을 쏟아내기 전에 ‘마음을 가라앉히라는 의미’로 차를 건네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주성하 zsh75@donga.com·한상준 기자 / 도쿄=서영아 특파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가 조성 중인 여성기금에 5000만 달러(약 558억 원)를 출연하겠다고 밝혔다. 3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이날 도쿄에서 열린 ‘국제여성회의(WAW) 2017’에서 이방카가 설립에 관여한 여성기업가 지원기금으로 5000만 달러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의 이런 행보에서는 2일 일본을 방문한 이방카를 적극 지지함으로써 미일 우호 무드를 고조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그러나 이 같은 ‘친(親)여성’ 코스프레는 여성이 피해자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선 사과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것과 대조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방카는 아시아 5개국을 순방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일본만 방문하며 일본 정부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있다. 이날 밤 아베 총리는 직접 일본식 료칸(旅館)에서 이방카에게 만찬을 대접했다. 전날 저녁 이방카는 윌리엄 해거티 주일 미대사와 만찬을 한 뒤 인스타그램에 일본식 코스 요리인 가이세키(懷石) 요리를 먹었다는 글을 사진과 함께 올렸다. 이처럼 일본 정부가 이방카에게 정성을 기울이는 것은 그가 미일관계에 큰 도움이 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아베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직후 회담을 할 수 있게 해준 공로자로 이방카 인맥을 들고 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한국에 앞서 일본을 찾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일 일정(5∼7일) 윤곽이 드러났다. 2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5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사이타마(埼玉)현의 가스미가세키 골프장에서 골프를 친 뒤 도쿄의 와규(和牛) 철판구이 전문점에서 만찬을 함께한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스테이크를 좋아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위한 메뉴”라고 전했다. 비공식 만찬을 통한 외국 정상과의 ‘친밀 외교’는 아베 총리가 자주 사용하는 방식이다. 2014년 4월 버락 오바마 당시 미 대통령 방일 때는 오바마가 스시(초밥)를 좋아한다는 점에 착안해 도쿄 긴자(銀座)의 미슐랭 별 셋 스시점에서 만찬을 함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6일 아키히토(明仁) 일왕 부부를 예방한 뒤 영빈관에서 아베 총리와 미일 정상회담을 갖는다. 이어 일본인 납북 피해자 가족 면담, 미일 공동 기자회견, 아베 총리가 주최하는 공식 만찬에 참석한 뒤 다음 날인 7일 서울로 출발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방일 기간 아베 총리와 4차례 함께 식사할 계획이다. 일본은 트럼프 대통령 방문 기간 ‘철통 경비’ 태세를 유지할 계획이다. 경시청은 이 기간을 2020년 도쿄 올림픽으로 이어지는 초대형 경비의 첫 무대로 규정하고 엄중 경계에 들어갔다. 최근 20년간 최대 규모인 1만여 명이 경비업무에 동원된다. 일본 경찰은 차량 돌진형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일부 도로의 통행을 차단하기로 했다. 드론을 이용한 테러 공격에 대비해 ‘무인항공기 대처부대(IDT)’도 배치한다. 폭발물 설치를 막기 위해 주요 역에서 사물함 사용이 금지됐고 쓰레기통도 철거됐다. 미 대통령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장녀 이방카 백악관 선임고문을 위한 여성 경호부대도 신설됐다. 이방카는 아버지의 방일 사흘 전인 2일 일본에 입국한 뒤 3일 ‘국제여성회의(WAW) 2017’에서 기조 연설을 하고 아베 총리와 만찬을 함께한다. 하지만 세제 개편안에 주력하라는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한국과 중국 순방에는 동행하지 않는다.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1일 오후 중의원과 참의원 본회의에서 열린 총리지명 선거에서 압도적 1위를 차지해 제98대 총리로 선출됐다. NHK 등에 따르면 이날 중의원 본회의에서 치러진 총리지명 선거에서는 총 투표수 465표 가운데 아베 총리가 312표를 얻어 입헌민주당의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대표(60표), 희망의당 와타나베 슈(渡邊周) 전 방위상(51표) 등을 제치고 총리로 지명됐다. 참의원 본회의에서 실시된 총리지명 선거에서도 총 투표수 239표 가운데 141표로 과반을 획득했다. 아베 총리는 이어 야마구치 나쓰오(山口那津男) 공명당 대표와 협의를 거쳐 현 각료 전원을 재기용하는 형태로 아베 4차 내각을 꾸리기로 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이날 내각명부를 발표하며 “정책 지속성 등을 위해 모든 각료를 재기용했다”고 설명하고 “다만 일부 담당업무를 조정해 노다 세이코(野田聖子) 총무대신 겸 내각부 특명담당대신에게 남녀 공동 참여 업무를 추가로 맡겼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는 이어 고쿄(皇居·일왕이 사는 곳)에서 아키히토(明仁) 일왕으로부터 총리 임명장을 받은 뒤 새 내각을 발족했다. 새 내각은 2006년 6월, 2012년 12월, 2014년 12월에 이어 ‘제4차 아베 내각’이 된다. 1일 현재까지 아베 총리의 총리 재임일수는 1차 내각을 포함해서 2138일을 기록해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전 총리(2798일)와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전 총리(2616일)에 이어 3위가 됐다. 내년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해 정권을 이어갈 경우 최장수 총리 기록도 갈아 치울 수 있게 된다. 자민당은 3월 총재 임기를 ‘연속 2기 6년’에서 ‘3기 9년’으로 연장하도록 당 규정을 개정한 바 있다. 안정적인 정권 기반을 바탕으로 아베 총리의 정치적 숙원인 ‘전쟁 가능한 국가’로의 개헌 작업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민당 총재 직속 헌법개정추진본부장에 자신의 출신 파벌 회장인 호소다 히로유키(細田博之) 전 총무회장을 선임할 계획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개헌을 본격화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됐다. 또 자민당 행정개혁추진본부장엔 측근 인사인 아마리 아키라(甘利明) 전 경제재정·재생상을 내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아베 총리가 앞으로 개헌과 ‘아베노믹스’ 추진에 한층 힘을 쏟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날 밤 기자회견을 통해 “2020년까지 3년간을 생산성 혁명과 인간만들기 혁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겠다”며 “국민 신임을 바탕으로 강력한 경제정책을 전개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헌법 개정에 대해서는 “우선 스케줄은 아니다”라면서도 “(이번 선거에서 내세운) 공약에 기초한 구체적 조문안에 대한 자민당의 안을 국회 헌법심사회에 제안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또 “개헌에 대해서는 여야에 관계없이 폭넓은 합의를 형성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지난달 31일 한중이 관계 개선 방침을 공동으로 발표한 이후 한국 정부가 중국 정부에 ‘평창 올림픽 때까지 도발을 중단해 달라는 메시지를 북한에 전해 달라’고 요청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1일 베이징에서 특파원 간담회를 열고 “전날 중국을 방문한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한국 측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이 쿵쉬안유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 겸 한반도사무특별대표(중국 측 6자회담 수석대표)에게 이 같은 메시지를 ‘북한과 접촉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전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전했다. 한국 정부가 평창 올림픽 때까지 북한의 도발을 막는 데 우선순위를 두고 있으며 “북한이 상황을 악화시키는 일이 없도록 한중이 상황 관리를 해 나가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 당국자는 “남북 대화 통로가 끊겨 있어 중국을 통해 하겠다는 것”이라면서도 중국 측이 북한에 언제 어떤 식으로 메시지를 전하겠다고 한국 측에 답했는지는 전하지 않았다. 미국 정부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불거진 한중 갈등이 완화된 것을 환영했다.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은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과 중국이 긴밀한 관계를 갖게 된 것을 환영한다”며 “북한 위협과 역내 및 세계적 불안정에 좋은 일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워트 대변인은 “사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며 “(사드는) 한미 동맹의 결정에 따른 것으로 공격을 위한 게 아니라 방어 메커니즘”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인식 변화를 묻는 질문에 “중국은 북한을 ‘가시(thorn)’로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일본도 일단 환영했지만 한중 관계 개선의 조건처럼 내걸린 3개 항에 대해서는 경계심을 감추지 않았다. 아사히신문은 1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직전의 합의에서 중국의 전략적 의도가 엿보인다”며 “중국이 미국 일본으로부터 대북 강경노선을 압박받는 가운데 북한과의 대화에 적극적인 문재인 정권과 힘을 합해 대응하려 할 것”이라는 외무성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신문은 또 중한 관계 개선은 중일 관계에도 영향을 줘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를 앞당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중이 교류 정상화에 합의함에 따라 중국인의 한국 단체관광은 평창 올림픽과 춘제(春節·중국의 설)가 있는 내년 2월 본격 재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씨트립’, ‘투뉴’ 등 중국 대형 여행사들은 춘제에 맞춰 한국 관광 상품 판매를 재개할 것으로 알려졌다.베이징=윤완준 zeitung@donga.com / 도쿄=서영아 / 뉴욕=박용 특파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둘러싸고 갈등을 벌이던 한국과 중국이 지난달 31일 관계 복원에 합의하면서 한 고비를 넘겼다. 그간 된서리를 맞아온 관련 업계에선 훈풍이 불 것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비슷한 상황이 벌어져 같은 경험을 되풀이할 우려는 없을까. 2010년과 2012년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문제로 중국으로부터 경제 보복을 당한 일본의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일본은 이후 중국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한편으로 철저한 ‘중국 리스크’ 관리에 들어갔다. 2012년 센카쿠 분쟁으로 중국 내 판매가 절반으로 곤두박질쳤던 일본 자동차 회사들은 이듬해 중국 판매 시장을 완전히 회복했다. 외견상으로는 중국과의 갈등이 가라앉은 덕이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일본 자동차 업계는 성난 시위대의 손에 자사 매장이 불타고 불매운동이 벌어지는 심각한 상황에서도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냉정한 정세 분석을 진행했다. “혹 우리는 외교 문제를 차가 팔리지 않는 핑계로 삼고 있지 않은가”, “우린 정말 중국 소비자가 사고 싶은 차를 만들어 온 걸까”…. 이와 동시에 중국 내 홍보 활동을 꾸준히 이어갔다. 도요타자동차는 폭력시위 두 달 뒤인 11월에 열린 광저우(廣州) 모터쇼에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차를 출품했고 닛산도 최대 전시면적을 확보했다. 이들은 “앞으로도 중국에서 제대로 비즈니스를 할 것이다”(도요다 아키오 사장), “중국을 대체할 시장은 없다”(카를로스 곤 닛산 사장)며 여전히 중국을 중시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사실 일본차의 중국 내 판매 둔화는 센카쿠 분쟁 이전에 시작됐다. 점유율이 2008년 30.5%로 정점을 찍은 뒤 계속 떨어져 2012년에는 20% 내외로 줄었다. 업계는 중국 판매분에 구형 모델이 많고 고객 우대 정책은 적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후 혼다는 중국 시장 맞춤형 상품을 대거 출시해 2013년 10월 판매량을 전년 동기 대비 3.1배로 늘렸다. 일본 산업계는 향후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더라도 치명적 타격을 입지 않도록 대안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기업들은 중국 외에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지역에 거점을 하나 더 만든다는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에 돌입했다. 일본의 대중 직접투자는 2012년 73억8000만 달러(현재 환율로 약 8조4600억 원)에서 2015년 32억1000만 달러로 절반 이하로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아세안 주요 4개국에 대한 직접투자는 64억 달러에서 두 배에 가까운 116억 달러로 늘었다. 이보다 앞서 2010년 제1차 센카쿠 갈등 당시 일본은 중국의 희토류 수출 금지 조치에 사흘 만에 손들어야 했다. 뼈아픈 실패 경험을 살려 방지책을 찾아 나갔다. 우선 희토류 수입원을 인도 베트남 카자흐스탄 등으로 다변화했다. 현지 정부와 손잡고 희토류 개발에 나서기도 했다. 둘째, 2012년 미국 유럽연합(EU)과 함께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해 2년 뒤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셋째, 희토류가 필요 없는 전자제품 개발에 나섰다. 정부는 기술개발 자금을 지원했다. 산케이신문 중국 특파원을 지낸 노구치 도슈(野口東秀) 다쿠쇼쿠(拓殖)대 객원교수는 “중국에서 한국 기업의 고전은 사드 탓으로만 보면 안 된다”며 “날로 발전하는 중국 기술력도 한국 기업이 설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야마구치(山口)에 뿌리를 둔 정치 명문가 출신이다. 조부는 중의원 의원을 지낸 아베 간(安倍寬)이고 외조부는 1957∼1960년 총리를 지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외종조부는 1964∼1972년 총리를 지낸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다. 또 청일전쟁의 도화선이 됐던 1894년 경복궁 기습 점령의 주역 오시마 요시마사(大島義昌·1850∼1926)가 고조부이고 아버지는 ‘정계의 황태자’라 불린 외무대신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다. 아베 총리는 태생부터 정치이념까지 메이지(明治) 유신의 발상지 조슈(長州·현재의 야마구치)와 떼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조슈 출신들은 메이지 유신은 물론이고 침략전쟁으로 치달은 일본의 근현대사에서 핵심적 역할을 맡아 왔다. 야마구치가 배출한 총리만 해도 초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에서 아베까지, 8명에 이른다(표 참조). 아베 총리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메이지 유신의 정신적 지도자로 추앙받는 요시다 쇼인(吉田松陰·1830∼1859). 막부 타도 활동으로 29세에 처형당한 그는 1857년 야마구치현 하기(萩)에 쇼카손주쿠(松下村塾)를 열고 불과 1년여 만에 90여 명의 제자를 배출했다.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晋作) 등 일부 제자들은 20대에 생을 마감했지만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 등은 살아남아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근대화를 이끌었다. 아베 총리와 부친의 이름에 공통되게 들어간 ‘신(晋)’은 다카스기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졌다. 요시다 쇼인은 정한론(征韓論)의 주창자로 근대 일본우익 사상의 창시자라 할 수 있다. 그가 감옥에서 쓴 유수록(幽囚錄)은 정한론과 대동아공영론 등을 주창해 일본의 제국주의 팽창에 큰 영향을 끼쳤다. 홋카이도 개척과 오키나와 영토화, 조선의 식민지화, 만주 대만 필리핀의 영유 등 일본이 밖으로 뻗어나갈 것을 주장했다. 메이지 유신의 귀결이 제국주의와 침략전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아베 총리 뒤에는 일본 최대 우익단체 ‘일본회의’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아베 총리는 5월 3일 자신의 ‘2020년 새 헌법 시행’ 구상을 밝힐 때도 일본회의 관련 행사에 동영상 메시지를 보내 “개헌을 위해서는 여러분의 활동이 불가결하다”고 도움을 호소했다. 3만8000여 명의 회원과 전국 지부를 거느린 일본회의는 물밑에서 개헌론을 이끄는 역할을 하고 있다. 모태는 좌익에 반발해 학원 정상화 운동을 펼치던 우파 종교단체 소속 학생들로 1997년에 결성됐다. 수십 년간 ‘풀뿌리 운동’을 지속한 끝에 지금은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에 소속된 국회의원만 280명이나 되는 단체로 성장했다. 각료 상당수가 일본회의 소속인 아베 내각에 대해 ‘일본회의 내각’이라는 말도 나온다. 일본회의는 개헌을 위한 1000만 명 서명운동을 전개하며 개헌 드라이브를 뒷받침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본회의의 최종 목표가 일왕을 중심으로 국가신도주의를 표방한 ‘메이지 헌법’의 복원이라고 보고 있다.도쿄=서영아 sya@donga.com·장원재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