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쌩한 바람에 머리털도 얼 지경이지만 스크린은 다시 달궈지고 있다. ‘명량’ ‘해적: 바다로 간 산적’ 등 한국 영화 대작 4편이 맞붙었던 여름마냥, 열흘 남짓 남은 올해 또 다른 기대작들이 몰려온다. 17일 먼저 개봉한 ‘국제시장’(CJ엔터테인먼트), 24일 선보이는 ‘상의원’(쇼박스)과 ‘기술자들’(롯데엔터테인먼트)이 주인공. 외화 ‘호빗: 다섯 군대 전투’와 다큐멘터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만만찮은 가운데 국내 극영화 3편의 운명은 어떻게 흘러갈까. ▽정양환=일단 ‘국제시장’은 개봉 첫날 20만 명을 넘으며 산뜻하게 출발했네. 때깔이 좋았어. 기자 시사에서도 많이들 울더라. ▽구가인=140억 원(순제작비) 어디 썼나 했더니 돈 바른 티가 잔뜩. 윤제균 감독 작품 가운데 가장 몰입도가 높았다는. 벌써부터 천만이 거론되는 정도이니. ▽정=명량처럼 군더더기가 없어 좋아. 덕수(황정민) 이야기에 집중해 깔끔했어. 신파이긴 해도 짜임새가 좋아 통한다고 봐. ▽구=1950년대부터 80년대까지 크게 4개 에피소드가 등장해. 흥남 철수와 파독 광부, 베트남전쟁, 이산가족찾기. 흐름이 매끄러웠어. 다만 감독은 일부러 정치는 뺐다는데, 그것도 일종의 정치적 선택 아닌가. ▽정=맞는 말인데, 감독의 자유지 뭐. 그걸 “영리하다”고 하건 “여우같다”로 보건 그것 역시 관객의 몫이고. 부산 출신인 내가 보기엔 제목과 달리 저잣거리의 애환이 별로 다뤄지지 않아 아쉬웠어. ▽구=황정민 노인 분장도 걸려. 70대가 아니라 80, 90대로 보였어. 요즘 어르신들 얼마나 피부가 좋은데. 컴퓨터그래픽으로 처리한 20대가 차라리 나았어. ▽정=조연들의 연기는 플러스 점수. 라미란 김슬기는 정말 맛깔스럽더라. 진짜 든든한 고모랑 철딱서니 없는 동생 같더군. ▽구=입양 여동생(초이 스텔라 김)도 빼면 섭섭하지. 리얼리티 짱. 이래도 안 울래 싶더라니까. ▽정=‘상의원’은 다소 산만했어. 돌석(한석규)과 공진(고수)을 비롯해 여러 명이 이리저리 얽혀 집중력을 흩뜨렸어. ▽구=그래도 이야기 자체는 매력적이야. 조선 왕실의 의복과 재물을 담당하는 상의원(尙衣院)이란 배경도 신선했고. 근데 기대가 컸던 탓일까. 왠지…. ▽정=처음 20분은 몰입하면서 봤어. 이원석 감독의 전작 ‘남자사용설명서’ 같은 재기발랄함도 엿보이고. 근데 갈수록 우왕좌왕하는 기분이었어. ▽구=결정적으로 한복이 별로. 천재 디자이너 공진이 만든 옷의 매력이 당최 뭔지 모르겠어. 몇몇 한복은 어디서 그냥 대여한 느낌? 보는 내내 돌석의 연기가 안타깝더라는. 너무 좋은데 극이랑 잘 안 붙어. ▽정=한석규는 이젠 사극 장인이시니. ▽구=한복보다는 음악이 와 닿더라. ‘광해, 왕이 된 남자’ ‘도가니’로 유명한 영화음악감독 모그의 진가가 발휘됐어. ▽정=상의원에서 한석규가 중심을 잡아줬다면, ‘기술자들’은 조사장(김영철)이 딱 버텨주더구먼. 자꾸만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영화 ‘달콤한 인생’ 대사)가 떠오르긴 했어도. ▽구=그냥 이 영화는 ‘김우빈 종합선물세트’였어. 손발이 오그라들거나 식상한 장면인데도 그가 하면 고개를 끄덕이게 돼. 딴 사람이면 욕했을 거야. ▽정=차진 윤기가 돌긴 하더라. 특히 맨발에 로퍼를 신은 장면은 여러 번 보여주던데. ‘발목 남신’ 탄생이여. ▽구=‘도둑들’ ‘범죄의 재구성’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어. ▽정=거기에 비하면, 그냥 단출하지만 정갈한 소반이지. 하지만 간접광고는 좀 지적해야겠어. 마트 커피숍에 캔커피 소주까지…. 다 배급사의 계열회사 상품인 건 거슬려. ▽구=정리해봅시다. 여름과 비슷한 판도가 되지 않을까. 국제시장 보고 뜨겁게 울고, 페이스메이커 기술자들로 열기 식히는 흐름이 될 것 같아. ▽정=거의 동의. ‘원 톱’일지 ‘쌍끌이’일지가 관건일 듯. 정양환 ray@donga.com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공진은 천재라기보다는 남들과 다른 사람입니다.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싶어 하죠. 누구나 그렇게 살진 않지만 한 번쯤 꿈꾸는 삶이 아닐까요.” 24일 개봉하는 영화 ‘상의원’에서 천재 디자이너 공진으로 나오는 고수(36)는 아직도 배역에서 헤어나지 못한 듯 보였다. 대화를 나누다 뚝 끊긴 채 허공을 응시하는 게 작품에서처럼 테이블 위로 뛰어 올라가면 어쩌나 싶기도 했다. 평소 반듯한 이미지완 달라 보인다 했더니 “얽매이는 거 싫어한다. 물론 법은 잘 지켜야 한다”며 웃었다. ―사극은 첫 도전이었다. “정말 좋아하는 장르인데 이제야 하게 됐다. 원래 맛있는 건 아껴뒀다가 나중에 먹지 않나. ‘상의원’은 퓨전 사극인데 연기를 하면서 나중에 정통사극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다만 이번엔 천민이었으니 나중엔 왕을 해보고 싶다. 천민 신분으로 궁에 들어가니 매번 조아리고 분위기에 압도되더라.” ―조선의 천재 디자이너도 주눅이 드나. “물론 예의와 법도를 중시하는 돌석(한석규)과 달리 공진은 제 뜻대로 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세상이 그를 품지 못하니 안타까움이 왜 없겠나. 게다가 신분의 속박 때문에 왕비(박신혜)를 향한 연정조차 숨겨야 하는 처지 아닌가. 마지막에 공진이 세상을 떠난 뒤 눈 오는 장면이 있다. 별 생각 없이 촬영장에 놀러갔다가 그 공백이 주는 울림에 펑펑 울었다. 지금도 그때 흐르던 헨델의 아리아 ‘울게 하소서’를 들으면 울컥해진다.” ―역할에 흠뻑 빠지는 체질인가 보다. “연기는 잘하고 못하고가 없는 것 같다. 각자의 방식이 있는데 캐릭터에 몰입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예전엔 배우가 너무 멀고 높아 보였는데, 이젠 열심히 하다 보면 뭔가 이루지 않을까 싶다. 공진은 겉보기엔 천재지만 돌석과 마찬가지로 바느질로 손이 엉망이 된 인물이다. 노력이 중요하다.” ―영화에서도 왕비에게 ‘꿈을 꿀 수 있어 좋았다’고 말한다. “그게 공진의 옷과 왕비를 향한 사랑이 아니었을까. 그는 사람들이 자신이 만든 옷을 입고 기뻐하길 바라는 인물이다. 왕비 역시 자신의 맘을 받아 달란 게 아니라, 공진의 옷을 입고 더욱 아름다워져서 왕(유연석)과 행복하길 기원한다. 뒤에서 누군가의 행복을 빌 수 있는 꿈을 꾼다는 건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행운이 아니다.” ―본인도 그런 배우인가.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디자이너가 옷을 짓듯 우리가 힘껏 만든 영화에 관객이 공감하는 것만큼 고마운 일은 없다. ‘상의원’은 아름다운 의상을 쫙 펼쳤다가 애절한 사랑으로 폭 감싸 안는 영화다. 그 안엔 지금의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인생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올해 스크린은 뜨거웠다. 연초 ‘변호인’과 ‘겨울왕국’이 1000만 관객을 돌파했고, 여름엔 ‘명량’이 1700만 이상을 동원해 세월호 사고 이후 이어진 극장가 침체를 깨고 역대 최고 흥행 기록을 세웠다. 약 220편의 한국영화가 개봉했으며, 총 1000편 이상의 영화가 관객을 만났다. 지난해보다 한국영화는 40편 가까이, 전체적으로는 100∼200편 많은 수치다. 본보 영화담당 기자 둘이 ‘우리끼리 어워드’를 통해 뜨거웠던 올 한 해 영화계를 정리했다. 여느 시상식처럼 작품성이나 연기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한다고 주장)하는 대신 가장 주관적인 잣대로 깨알같이 빛났던 캐릭터와 심쿵(심장이 쿵) 장면을 선정했다. △오 마이 캡틴 상=좋은 리더를 갈구하는 한 해였다. ‘명량’의 충무공(최민식)이 주목받은 이유다. 그러나 장군의 소통 기술이 21세기 조직에도 맞을까. ‘캡틴 아메리카: 윈터솔져’의 캡틴(크리스 에번스), ‘퓨리’의 워대디(브래드 피트) 등 여러 할리우드 리더가 후보에 올랐지만 단연 돋보인 건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의 시저였다. “유인원은 유인원을 죽이지 않는다” “인간의 땅은 거기, 유인원의 땅은 여기” 대사만 봐도 올해의 대장은 시저다. △등 근육 상=액션이건 에로건 남자 배우의 노출이 빛났다. 식스팩에서 등 근육 경쟁으로 옮겨간 게 특징. ‘신의 한 수’와 ‘마담 뺑덕’에서 몸을 던진 정우성, ‘인간중독’의 송승헌, 24일 개봉하는 ‘상의원’의 유연석도 훌륭했지만 가장 화제를 모은 등 근육은 ‘역린’의 정조(현빈)였다(곤룡포가 시스루였다면 관객이 늘었을지도). 허나 수상자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알란 할배(로베르트 구스타프손)다. 낑낑대며 요양원을 탈출하는 어르신의 굽은 등을 어찌 모른 척할 수 있나. △천상 서울사람 상=사투리와 외국어가 스크린에서도 경쟁력이 되는 세상이지만, 어설픈 발음으로 ‘서울사람’ 정체성을 강조하는 배우도 있다. ‘타짜-신의 손’ 최승현(탑)은 시골 청년보단 유학 다녀온 서울사람 같았다. 반대로 미국 입양아 출신으로 나오는 ‘우는 남자’ 장동건은 자꾸 영어 욕을 해대도 숨길 수 없는 서울사람이었다. 그래도 수상자는 ‘군도: 민란의 시대’의 강동원이다. 전라도 양반임에도 ‘포준어(?) 따라하는 경상도 입양아’로 헷갈리게 할 만큼 ‘서울 사랑’이 컸다. △백팔가면 상=유해진, 오달수 등 1세대 신스틸러(주연 못지않게 주목받은 조연)들이 대작 한두 편에 출연하는 반면 라미란, 배성우, 김원해 등은 서너 달이 멀다 하고 스크린에 얼굴을 내밀며 차세대 신스틸러로서 입지를 다졌다. 그러나 이들도 이경영을 따라잡진 못했다. 이경영은 ‘무명인’ ‘백프로’ ‘관능의 법칙’ ‘군도: 민란의 시대’ ‘해적: 바다로 간 산적’ ‘타짜: 신의 한 수’ ‘제보자’ ‘패션왕’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나왔다. 이 정도면 ‘올해의 이경영 상’을 따로 둬도 되지 않을까. △베스트 과외수업=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부러워하는 한국인의 교육열은 영화 흥행의 변수다. 사극 ‘명량’ ‘역린’은 한국사 학습용, ‘겨울왕국’은 영어 교재로 활용됐다. 이 중 베스트는 ‘인터스텔라’. 세계적인 물리학자 킵 손이 자문에 응한 영화는 영미권에선 흥행이 저조했지만 국내에서는 재관람 열풍이 불며 1000만 고지를 앞두고 있다. △‘민증 까봐’ 상=세월에 도전하는 배우가 많았다. ‘두근두근 내 인생’ 송혜교야 여고생이라 해도 그러려니. ‘수상한 그녀’ 심은경은 그 안에 나문희 있다고 치자. ‘나의 독재자’ 설경구와 ‘국제시장’ 오달수의 20대 ‘회춘’은 좀 그랬다. 그러나 정말 경찰이 신분증을 요구할 대상은 ‘군도’ 돌무치(하정우). 36세의 몸으로 ‘뻔뻔스레’ 열여덟 청소년 행세를 해 가산점을 받았다. △베스트 드레서=영화가 패션을 주목했다. 성적보다 ‘간지’가 중요한 10대 이야기 ‘패션왕’이나 조선시대 디자이너를 그린 ‘상의원’도 있다. ‘아트버스터’ 별칭을 얻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엘사 드레스를 유행시킨 ‘겨울왕국’도 주인공 의상이 화제가 됐다. 그러나 수상자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조병만, 강계열 노부부다. 눈싸움 할 때도 커플룩(그것도 한복)을 고수하는 이들은 진정한 패셔니스타! △맛있는 ‘병맛’ 상=‘병맛’(B급 취향)은 이제 비주류가 아니다. ‘가디언스 오브 갤럭시’처럼 할리우드도 병맛을 좋아한다. 단연 빛났던 병맛은 ‘족구왕’이다. 웃음뿐 아니라 울림도 있다. “남들이 싫어한다고 좋아하는 걸 숨기고 사는 것도 바보 같다고 생각해.” 다 족구하자. △끝내주는 한마디=영화는 말을 남긴다.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나이다”(‘명량’) “국가란 국민입니다”(‘변호인’) “렛잇고∼”(‘겨울왕국’)처럼 국민 유행어도 있지만 “저는 잘못한 게 없는데요”(‘한공주’) “생활비 벌러 나와요. 반찬값 아니고”(‘카트’)처럼 가슴을 먹먹하게 한 대사도 있었다. 하지만 수상의 영예는 ‘해적’ 속 유해진의 애드리브에 돌아갔다. “음파∼ 음파∼!” 기억하자, “음파음파 하면 살고 파음파음 하면 죽는다.”구가인 comedy9@donga.com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마이 프레셔스∼.” ‘반지의 제왕’ 3부작과 ‘호빗’ 3부작은 여기서 승부가 갈린 게 아닐까. ‘볼매(볼수록 매력 있는)’ 골룸이 없으니. 2001년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로 출발한 피터 잭슨 감독의 ‘중간계(원작자 J R R 톨킨이 창조한 가상세계) 6부작’이 끝에 다다랐다. 17일 ‘호빗: 다섯 군대 전투’의 개봉으로 13년에 걸친 작업이 드디어 매조지 된다. ‘해리포터’와 함께 21세기 판타지 영화의 새로운 영토를 개척한 시리즈의 피날레를 목도할 기회를 놓치면 두고두고 아쉬울 터. 하지만 국내에선 3편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2003년) 같은 열기가 재현될지는 의문이다. 물론 호빗 3편 역시 대장정의 마무리답게 화끈한 전투가 펼쳐진다. 간달프(이언 매켈런)와 레골라스(올랜도 블룸)도 여전히 매력 있다. 근데 미적지근한 기분이 드는 이유는 뭘까. 해외 흥행 성적에선 호빗과 반지 시리즈의 차이가 크지 않다. 반지 3편은 모두 30억 달러(약 3조2600억 원)가 넘는 수익을 올렸고, ‘호빗: 뜻밖의 여정’(2012년)과 ‘…스마우그의 폐해’(2013년) 역시 각각 10억 달러 안팎의 수익으로 20억 달러가량을 벌어들였다. 하지만 국내 극장가에선 온도차가 컸다. 반지 시리즈는 1편 387만 명, 2편 ‘…두 개의 탑’ 518만 명, 3편이 596만 명을 끌어모았다. 허나 호빗은 1편이 281만 명, 2편이 228만 명에 그쳤다. 반지는 시리즈가 나올수록 관객이 늘었으나, 호빗은 줄어드는 형세다. 이는 호빗의 태생적 한계에 기인한다. 호빗은 반지의 제왕보다 앞선 시기를 다루는 ‘프리퀄’이다. 뒷얘기를 다 아는 상황인지라 몰입도가 떨어진다. 국내에선 특히 프리퀄이 인기가 없는 편이다. 원작 소설도 반지의 제왕보다 박진감이 떨어진다. 반지의 제왕은 절대반지를 중심으로 선과 악이 제대로 맞붙는 깔끔한 구조인 데 비해, 호빗은 인간과 난쟁이, 요정, 오크 등 여러 족속의 이해관계가 산만하게 얽히며 느슨하다. 반지에선 주인공 프로도(일라이자 우드)가 확실히 얘기를 끌고 가지만, 호빗은 주인공인 프로도 삼촌 빌보(마틴 프리먼)의 존재감이 깃털처럼 날린다. 물론 ‘…다섯 군대 전투’는 그 자체로도 볼거리가 많다. 호빗 1편부터 HFR(초고속프레임·기존 영화의 2배인 초당 48프레임) 기술로 찍어 영상이 매끄럽고 선명하다. 3차원(3D) 아이맥스 버전으로 영화를 보노라면, 장대한 풍경 아래 펼쳐지는 호쾌한 전쟁의 긴장감에 흠뻑 빠져든다. 반지 3편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11개 부문을 싹쓸이하고 1, 2편 역시 6개의 상을 거머쥔 저력은 호빗에서도 여전히 빛을 발한다. 하지만 영화 호빗은 스토리 얼개가 헐겁다. 2편 엔딩에서 큰 기대를 걸게 했던 ‘최강 드래건’ 스마우그가 3부 초반에 어이없이 죽어버린다. 근사한 캐릭터 가운데 하나인 난쟁이 왕자 ‘참나무 방패’ 소린(리처드 아미티지)의 번뇌는 일면적이다. 반지의 제왕이나 호빗이나 전투는 치열한데, 딱 그 수준이란 점도 아쉽다. 관객은 10여 년 전 눈높이에 머물러 있질 않으니까. 어쩌면 그들이 아니라 우리가 변한 걸지도. 이제 긴 여정을 마친 잭슨 감독도 다른 모습을 보여줄 때가 됐나 보다. 먼 길 걸어온 그에게 석별의 건배를.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아무도 내 말 들어주지 않아요. 저는 어떻게 해요….” 경남의 바닷가 마을. 베트남에서 시집온 투이(닌영란응옥)는 자상한 시아버지(명계남)와 치매 걸린 시어머니(김미경)를 모시고 산다. 그러던 어느 날, 마실 나간 남편이 오토바이 운전 도중 추락사했다는 비보가 들려온다. 투이는 자전거도 못 타는 남편이 오토바이를 몰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여기저기 도움을 청해보는데 어쩐 일인지 경찰과 마을사람들은 냉담하기만 하다. ‘안녕, 투이’(감독 김재한)는 한국에서 베트남 배우가 주연을 맡은 첫 번째 극영화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입소문을 탄 이 영화는 하와이국제영화제와 두바이국제영화제 등 여러 곳에 초청돼 호평을 받았다. 홍상수 감독도 “농촌사회의 문제점인 국제결혼이란 소재를 꾸미지 않고 잘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작품이 설득력을 지니게 된 데는 여 배우의 힘이 크다. 배우 및 가수 출신으로 현지 오디션을 통해 투이 역에 낙점됐는데, 한국말은 더듬거리고(원래 그렇잖나) 베트남어는 생경해 대사 소화력은 가늠이 안 된다. 하지만 특유의 처연함이 가득한 눈빛만으로 스크린이 꽉 찬다. 한국에서 베트남 여성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딱 저런 표정으로 어깨가 처져 있겠구나 싶다. 도시와는 또 다른, 시골의 ‘이면’을 적확하게 짚어낸 점도 매력적이다. 2008년 문학수첩작가상을 받았던 주영선 작가의 소설 ‘아웃’이 떠오른다. 촌은 언제나 정감 넘치는 곳으로 그려지지만 농촌(혹은 어촌)은 진입 장벽이 높은 ‘갇힌 사회’인 경우가 많다. 투이뿐만 아니라 전근 온 경찰 상호(차승호)도 이 벽에 부딪힐 정도니까. 투이의 설움은 소수의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18세 이상 관람.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세월호 참사 등으로 어느 해보다 다사다난했던 2014년 갑오년이 저물고 있다. 경제상황도 녹록하지 않았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기업과 공공기관 등은 각 분야에서 이견이 없을 정도로 눈에 띄는 제품 서비스 콘텐츠 등을 내놓았다. 동아일보가 각계 전문가 및 업계에 자문해 올해 각 분야의 ‘최고 중의 최고(Best of best)’를 선정해 시리즈로 다룬다. 》중국 현지 언론의 뜨거운 관심 속에 영화 ‘명량’이 12일부터 중국 전역 3000여 개 극장에서 개봉했다. 올 한 해 한국영화계와 콘텐츠업계의 지형도를 바꿔놓은 ‘명량’이 한류 열풍이 뜨거운 중국에서 어떤 성적을 올릴지 벌써부터 귀추가 주목된다. 이에 앞서 8월 15일 미국과 캐나다에서 개봉한 명량은 12월 6일까지 약 259만 달러(약 28억5000만 원)를 벌어 이전까지 북미 지역에서 가장 많은 흥행수익을 올렸던 한국영화인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4년·238만 달러)을 넘어섰다. 한국 시장 석권에 이어 해외에서 또 한 번 신기록 수립을 노리고 있는 ‘명량’을 동아일보가 선정한 ‘2014 베스트 오브 베스트’에 올리는 데 이견은 없었다. 7월 30일 개봉돼 문화를 넘어 한국사회 전반에 이순신 신드롬을 일으키며 최고의 히트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최종 집계가 나오지 않은 가운데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명량은 약 1761만 명이 관람했다. 개봉 첫날 68만 명이 몰리고 역대 하루 최대 관객 수인 125만 명(8월 3일)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한 명량은 개봉 18일 만에 기존 역대 1위였던 2009년 미국영화 ‘아바타’(1362만 명)를 가뿐히 넘어섰다. 명량이 지금까지 올린 매출액은 1357억1905만 원. 3차원(3D) 영화인 아바타(1284억 원)를 넘어선 역대 1위다. 투자배급사인 CJ E&M이 분배받은 수익만 약 556억 원에 이를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사회는 왜 이토록 명량에 열광했을까. 명량은 개봉 전부터 흥행이 예상되긴 했다. 영화 성수기에 제작비 180억 원을 들인 대작에 대한 관심은 남달랐다. 이순신 장군(1545∼1598)은 안티가 없는 영원한 국민 영웅이다. 하지만 조선 선조 30년(1597년) 울돌목에서 벌어진 명량대첩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역사적 사실이라 흥미가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한 이도 적지 않았다. 2014년을 ‘명량의 해’로 만든 것이 오롯이 영화의 힘만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편장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장은 “세월호 사고와 윤 일병 사건 등 사회적 이슈가 영향을 미쳤다”며 “위로가 필요한 대중에게 이순신이란 슈퍼히어로의 등장은 무척이나 반가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명량 속 이순신 장군이 민주적인 21세기형 리더는 아니다”며 “지속적인 경제위기와 사회적 혼란으로 국민이 절대적인 리더십을 열망하게 됐다”고 진단했다. 여기에 국내 천만 영화의 단골 주제인 민족주의적 색채가 농후한 ‘애국심 마케팅’도 한몫했다. 또 40, 50대가 역사교육을 목적으로 자녀를 동반하거나 부모님을 모시고 관람하며 명량의 흥행을 도왔다. 멀티플렉스 CGV에 따르면 명량의 경우 40대 관객의 비율이 32%로 기존 영화의 주 관객층인 20대(29%)와 30대(29%)보다 높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일본 추리만화 ‘소년탐정 김전일’엔 꼭 이런 대사가 나온다. “범인은 이 안에 있습니다!” 트릭을 풀어낸 탐정이 좌중을 향해 던지는 선전포고. 캬, 멋지지 아니한가. 근데 평소 무심코 지나쳤지만 그 말을 듣는 이들은 어떤 기분일까. 죄가 있건 없건 심장이 벌렁거릴 터. 상황은 다를지언정 범죄현장에서 이런 일은 다반사로 일어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흔히 접하는 신문을 보라. 때론 넘겨짚고 때론 으름장을 놓으며 여러 방식으로 죄를 자백하게 만들려 애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인 저자는 이 지점에 주목했다. 현 법체계 아래 이뤄지는 피의자 신문은 과연 적절한 선을 지키고 있는가. 결론부터 보자면, 저자가 보기엔 상당히 문제점이 많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 형사사법제도는 ‘대립 당사자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이는 “공정한 판단자인 법원과 배심원 앞에서 검찰과 피의자 및 피고인이 ‘대등한 당사자’로서 공방을 벌여 진실을 밝히는 형사소송 구조”다. 죄를 가리기 전엔 누구나 똑같은 권리를 가지고 평등하게 법 앞에 선다는 뜻이리라. 한데 문제는 이보다 앞서 벌어지는 경찰 수사가 공정성과 중립성을 해치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경찰로선 억울할 수 있겠으나 기본적인 지향점이 기소에 맞춰지는 한 피의자는 약자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제안은 바로 ‘전자 녹화’다. 피의자 신문 과정을 모두 영상으로 촬영하면 인권침해가 사라질 수밖에 없단 얘기다. 실제로 미국에선 여러 주가 활용하고 있는데 효과는 긍정적이다. 피의자도 보호할뿐더러 신문이 진술과 자백 확보에 치중하지 않고 ‘객관적 정보’를 얻는 방향으로 바뀌어 사건 해결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다소 어렵긴 하지만 저자가 주장하는 바는 명확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최상위로 고려해야할 대상은 인권이며 공권력의 효율성을 위해 이를 해치는 일이 벌어져선 안 된다. 최근 미국은 ‘퍼거슨 시 사태’로 촉발된 경찰의 과잉수사와 인종차별 논란으로 시끄럽다. 오죽하면 신문 과정을 녹화하잔 얘기까지 나오겠는가. 허나 한국 사법체계 역시 뭐 하나 낫다고 말할 처지가 아니다 보니 되레 입맛이 쓰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얼마 전 영화 ‘국제시장’ 시사회 날. 극장을 나서며 울컥한 맘을 추스르는데 연신 전화벨이 울렸다. 평소에도 감상평을 묻는 이들이야 있었지만, 경쟁사들까지 이리 무더기로 묻는 건 처음. 헌데 옆 여기자 휴대전화는 감감무소식. 이유를 물어봤더니 깔깔 웃는다. “딱, 40대 남성이시잖아요!” 17일 개봉하는 ‘국제시장’은 40대 이상 중장년층이 봐달라고 대놓고 소리치는 영화다. 이는 극장을 찾는 데 가장 인색한 관객도 끌 수 있단 자신감의 발로이며, ‘천만 영화’를 노린 포석이다. 벌써부터 입소문이 심상치 않은 ‘국제시장’은 천만클럽에 입성할 수 있을까. 》 ○ Yes, 더할 나위 없다 1950년 흥남부두에서 피란 배에 오른 덕수(황정민)네 가족. 아버지(정진영)와 헤어졌지만 부산 남포동 국제시장에 먼저 터를 잡은 고모(라미란)의 도움으로 생계를 꾸려나간다. 남동생 승규(이현)가 서울대에 합격해 목돈이 필요해지자 덕수는 ×알친구 달구(오달수)와 독일로 광부 일을 하러 떠난다. 그곳에서 간호사로 파견 나온 영자(김윤진)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잠깐 스토리만 들어봐도 찌릿 감이 온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게 아니었던 것이 아니었다”라는 변사의 목소리가 들릴 것 같다. 일흔이 넘은 덕수의 회상 속에 그려지는 그의 젊은 시절은 한국 현대사와 맞닿아 있다. 6·25전쟁부터 1960, 70년대 ‘파독광부’와 월남 파병, 1983년 KBS 이산가족 찾기까지…. 누구나 ‘붓 잡으면 책 열 권은 쓴다’던 애절한 시대가 켜켜이 쌓이며 목이 멘다. 2009년 영화 ‘해운대’로 이미 천만클럽(1145만 명)에 가입한 윤제균 감독은 식상할 법했던 이야기 가닥을 쫄깃하게 비벼냈다. 덕수와 영자가 실제 양친 존함임을 밝히며 눈시울을 붉혔던 윤 감독이 온 힘을 들이부은 기운이 불끈불끈 느껴진다. 황정민은 극에 생명력을 활활 불어넣었다. 젊은 20대부터 스웨덴 특수분장팀까지 동원해 만들었다는 70대 노인까지 ‘잔 근육도’ 자연스러웠다. 오달수 역시 모처럼 몸에 맞는 옷을 입은 듯했고, ‘월드스타’ 김윤진은 사투리는 어색했으나 제몫을 했다.○ No, 이건 아쉽네 매끈하게 잘 빠진 건 부인하기 힘들다. 제작비(180억 원)만큼 흥행 스코어도 엔간히 올릴 터. 하지만 모두가 만족할 영화인지는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한국 현대사를 다루면서 ‘정치’는 빠뜨렸다. 영화 초반에 나비가 펄럭이며 시장 전경을 보여주는 대목에서 국제시장은 한국판 ‘포레스트 검프’(1994년)가 되겠노라 선언한다. 하지만 약점까지도 닮았다는 게 문제. 검프만큼 역사를 뒤죽박죽 희화화하진 않았지만, 동전의 한쪽 면만 바라보는 순진한 시각은 아쉽다. 월남전 당시 한국이 베트남을 돕는 입장처럼 묘사하는 대목은 두고두고 논란이 될 수 있다. 물론 이는 감독의 선택이다. 또 다른 방식으로 반대편만 부각하는 작품도 즐비한 판에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건’ 죄가 아니다. 하지만 영화 홍보글귀처럼 “굳세게 살아온 우리들의 이야기”라기엔 왠지 ‘우리들만의’ 이야기에 갇혀버린 건 아닌지. “진짜 재밌다”고 강추는 하는데, “훌륭하다”고 하기엔 머뭇거려지는 이유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얼마 전 영화 '국제시장' 시사회 날. 극장을 나서며 울컥한 맘 추스르는데 연신 전화벨이 울렸다. 평소에도 감상평을 묻는 이들이야 있었지만, 경쟁사들까지 이리 무더기로 묻는 건 처음. 헌데 옆 여기자 휴대전화는 감감무소식. 이유를 물어봤더니 깔깔 웃는다. "딱, 40대 남성이시잖아요!" 17일 개봉하는 '국제시장'은 40대 이상 중장년층이 봐달라고 대놓고 소리치는 영화다. 이는 극장 찾는데 가장 인색한 관객도 끌 수 있단 자신감의 발로이며, '천만 영화'를 노린 포석이다. 벌써부터 입소문이 심상치 않은 '국제시장'은 천만클럽에 입성할 수 있을까. ●Yes, 더할 나위 없다 1950년 흥남부두에서 피난 배에 오른 덕수(황정민)네 가족. 아버지(정진영)와 헤어졌지만 부산 남포동 국제시장에 먼저 터 잡은 고모(라미란)의 도움으로 생계를 꾸려나간다. 남동생 승규(이현)가 서울대에 합격해 목돈이 필요해지자 덕수는 X알친구 달구(오달수)와 독일로 광부 일을 하러 떠난다. 그곳에서 간호사로 파견 나온 영자(김윤진)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잠깐 스토리만 들어봐도 찌릿 감이 온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게 아니었던 것이 아니었다"라는 변사의 목소리가 들릴 것 같다. 일흔이 넘은 덕수의 회상 속에 그려지는 그의 젊은 시절은 한국 현대사와 맞닿아있다. 6·25전쟁부터 1960~70년대 파독광부와 월남파병, 1983년 KBS 이산가족 찾기까지…. 누구나 '붓 잡으면 책 열권은 쓴다'던 애절한 시대가 켜켜이 쌓이며 목을 메인다. 2009년 영화 '해운대'로 이미 천만클럽(1145만 명)에 가입한 윤제균 감독은 식상할 법 했던 이야기 가닥을 쫄깃하게 비벼냈다. 덕수와 영자가 실제 양친 존함임을 밝히며 눈시울을 붉혔던 윤 감독이 온 힘을 들이부은 기운이 불끈불끈 느껴진다. 황정민은 극에 활활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젊은 20대부터 스웨덴 특수 분장팀까지 동원해 만들었단 70대 노인까지 '잔 근육까지도' 자연스러웠다. 오달수 역시 모처럼 몸에 맞는 옷을 입은 듯했고, '월드스타' 김윤진은 사투리는 어색했으나 제몫을 했다. ● No, 이건 아쉽네 매끈하게 잘 빠진 건 부인하기 힘들다. 제작비(180억 원)만큼 흥행 스코어도 엔간히 올릴 터. 하지만 모두가 만족할 영화인지는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한국 현대사를 다루면서 '정치'는 빠뜨렸다. 영화 초반에 나비가 펄럭이며 시장 전경을 보여주는 대목에서 국제시장은 한국판 '포레스트 검프'(1994년)가 되겠노라 선언한다. 하지만 약점까지도 닮았다는 게 문제. 검프만큼 역사를 뒤죽박죽 희화화하진 않았지만, 동전의 한쪽 면만 바라보는 순진한 시각은 아쉽다. 월남전 당시 한국이 베트남을 돕는 입장처럼 묘사하는 대목은 두고두고 논란이 될 수 있다. 물론 이는 감독의 선택이다. 또 다른 방식으로 반대편만 부각하는 작품도 즐비한 판에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건' 죄가 아니다. 하지만 영화 홍보글귀처럼 "굳세게 살아온 우리들의 이야기"라기엔 왠지 '우리들만의' 이야기에 갇혀버린 건 아닌지. "진짜 재밌다"고 강추는 하는데, "훌륭하다"기엔 머뭇거려지는 이유다.정양환기자 ray@donga.com}
“국악은 듣는 이의 정신을 치유하는 깊은 울림을 지녔습니다. 유럽에서 손꼽히는 음악축제에서 관객들을 사로잡은 최고의 인기 음악이기도 합니다.” 폴란드 바르샤바 주폴란드한국문화원(원장 김현준)에서 만난 크로스컬처 바르샤바 페스티벌의 마리아 포미아노프스카 예술총감독. 그는 내년에 열리는 11회 페스티벌에서 국악을 조명하는 특별프로그램 ‘포커스 온 코리아’를 개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매년 9월 관객 1만∼2만 명이 몰리는 폴란드 최대 음악축제인 바르샤바 페스티벌에서 남미나 아프리카 대륙 섹션을 연 적은 있지만 한 국가에만 초점을 맞추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 동·중부 유럽에서 권위 있는 음악축제가 국악에 매료된 이유는 뭘까. “2012년 안숙선 명창을 초청했을 때 공연장을 찾은 2000여 명이 숨소리도 내지 않고 흥부가에 빠졌습니다. 올해 바르샤바를 찾은 창작국악듀오 ‘숨’은 설문조사에서 ‘2014 최고의 공연팀’에 뽑혔고요. 포커스 온 코리아는 더 많은 국악공연을 보고 싶어 하는 관객들의 요구를 받아들인 겁니다.” 크라쿠프국립음악원 교수인 그는 폴란드 전통음악과 국악이 공유하는 부분이 많다고 했다. 12세기부터 이어진 민속춤곡 마주르카 리듬은 국악에 쓰이는 3박자와 닮았다. 한국 전통음계가 5도화음인 것처럼 폴란드도 5음계로 이뤄진 펜타토닉 스케일을 주로 쓴다. 포미아노프스카 감독은 “잦은 외세 침략에 고통 받은 역사를 지닌 탓인지 두 나라 국민의 정서가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1996년 첫 방한 때 판소리를 듣고 전율했던 충격을 잊지 못한다”는 포미아노프스카 감독은 아쟁과 해금을 연주하는 국악 애호가. 이날 인터뷰 장소에도 분홍색 개량한복을 입고 나왔다. 올 10월 전주세계소리축제에 참석했다가 사 입었다고 했다. “세계 민속음악의 흐름을 알 수 있는 ‘국제월드뮤직페어’에서는 3, 4년 전부터 한국의 국악에 대해 ‘이렇게 대단한 음악이 있었느냐’며 관심을 보여요. 이런 수준 높은 전통음악을 보유했다는 걸 한국인들은 자랑스러워해야 합니다. 내년 페스티벌 무대에 서는 국악연주가 ‘노름마치’와 ‘거문고팩토리’의 공연이 벌써부터 기대되네요.”바르샤바=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중국 만화가 리 선생은 골동품 시장에 마실 나갔다 우연히 그림 하나를 소개받는다. 1894년 일본인이 청일전쟁을 다룬 이 그림에서 리는 전황을 바라보는 일본인의 시각에 흥미를 느낀다. 좀 더 연구해 볼 목적으로 골동품 업자와 상의하던 중, 당시 일본 종군기자들이 찍은 희귀한 사진이 있단 사실을 알게 되고…. 리는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얻어 본격적으로 사진들을 분석하기 시작한다. 2012년 국내에도 출간된 만화 ‘중국인 이야기’를 그린 저자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 고교 졸업 직후 오랜 세월 군에 몸담으며 1979년 중국-베트남 전쟁에도 참전했다. 이후 신문사 디자이너 등으로 일하다 만화 창작에 뛰어들었다. ‘중국인 이야기’는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축제에서 대상 후보에 오르며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자신의 경험을 담은 ‘내 가족의 역사’는 솔직히 매우 흥미로운 얘긴 아니다. 그림도 깔끔한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어 확 눈길을 끌진 않는다. 하지만 왠지 모를 긴장감 속에 묵직한 울림이 있는데, 이는 한국도 무관하지 않은 아픈 역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만화 속에서 상당히 많은 면을 할애한 청일전쟁 사진들은 지금은 잊혀져 가는, 허나 결코 잊어선 안 되는 과거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뭣보다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이 아픔이나 분노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 이는 한국 중국은 물론이고 일본도 마찬가지다. 이를 되새겨 보는 작업들은 진정으로 공존하는 세계를 만들기 위함이 아닐까. 이를 저자는 묵묵한 필치로 풀어내는데, 다소 국수적 입장이 배어나는 대목도 있어 살짝 아쉽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인간은 짐승이다. 솔직히 인간을 다른 동물보다 더 높은 위치에 올려놓을 아무런 근거가 없다.”(스티븐 로클리 미국 하버드대 의대 교수) 과연 그럴까. 미국 영화 ‘혼스’와 일본 영화 ‘갈증’을 보면 인간이 짐승보다 훨씬 못할지도 모른단 생각이 든다. 둘 다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어느 날 갑자기 주인공 머리에서 ‘뿔’이 자라는 혼스, 역시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딸을 찾아 나선 아버지를 다룬 갈증. 두 영화는 진실에 다가갈수록 사랑하는 사람들의 ‘실체’를 마주하는 가혹한 운명을 그렸다는 공통분모를 지녔다. 모두 18세 이상 관람가.○ 혼스, 사랑이란 이름의 무게 “죽을 때까지 사랑할게.”(이그·대니얼 래드클리프) “내가 죽을 때까지만 사랑해줘.”(메린·주노 템플) 영화 서막을 여는 대사는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어릴 때부터 서로만 바라본 커플 이그와 메린. 하지만 메린이 시체로 발견되며 정말 ‘죽음’이 그들의 사랑을 파고든다. 사건 전날 메린과 다툰 뒤 만취했던 이그는 용의자로 지목되고, 억울해하던 이그는 어느 날 아침 머리에서 뿔이 나기 시작한다. 모두가 악마라 비난한 남자가 진짜 악마처럼 뿔이 솟는 혼스는 얼핏 황당무계하다. 게다가 뿔이 생긴 뒤 사람들은 뭔가에 홀린 듯 그에게 감춰뒀던 흑심을 털어놓는다. 심지어 아버지와 어머니조차. 그들의 속내를 알게 되며 고통에 몸부림치는 이그. 조금씩 드러나는 무거운 진실을 그는 감당할 수 있을까. 이 작품의 묘미는 의외성이다. 농담 같은 설정인데 무겁고, 사랑 얘긴데 잔혹하다. 더 뜻밖인 건 주연을 맡은 래드클리프다. ‘해리 포터’ 잔상 탓인지 꽤 많은 후속작을 찍었는데도 이미지가 흐릿했는데, 혼스에서 제대로 ‘포텐’(포텐셜·가능성)이 터졌다. 어쩌면 아역배우 출신의 연기자가 대단한 배우로 발돋움하는 순간을 목격하는 기회일지도.○ 갈증, 본능이란 위선의 그늘 전직 형사 아키카주(야쿠쇼 고지)는 전처인 기리코(구로사와 아스카)로부터 실종된 딸 가나코(고마쓰 나나)를 찾아 달란 부탁을 받는다. 착하고 예쁜 모범생 딸인지라 별걱정 없이 주위 사람들을 만나는데, 그들의 입을 통해 드러나는 딸의 실체는 충격을 넘어서 두렵기까지 하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2006년) ‘고백’(2010년)을 연출한 나카시마 데쓰야 감독의 세계관은 원래가 스산했다. 화면 구성이나 편집은 세련됐지만, 인간에 대한 시선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말종’이라 불러도 좋을 캐릭터가 쏟아지는데, 갈증 역시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 강력한 이야기를 완벽한 전율로 끌어올리는 건 아키카주와 가나코의 힘이다. ‘쉘 위 댄스’(1996년), ‘실락원’ ‘우나기’(이상 1997년)로 국내에도 친숙한 일본의 ‘국민배우’ 야쿠쇼야 믿고 보는 연기자니 패스. 고마쓰는 갈증이 데뷔작인데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낸다. 신인 배우가 천사와 악마를 이리도 매끄럽게 넘나들다니, 물건 하나 나왔다 싶다. 여기에 오다기리 조와 쓰마부키 사토시, 나카타니 미키의 출연은 보너스. 이런 좋은 배우들을 데리고 감독이 완성한 현대사회는 말 그대로 약육강식의 정글이다. 여기엔 규칙이란 게 없다. 강자의 놀음에 약자는 휩쓸릴 뿐. 그 속에서 아버지, 그리고 가족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그 끔찍한 갈림길에다 감독은 관객들을 내동댕이친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영국 영화 ‘꾸뻬 씨의 행복여행’은 달콤한 작품이다. 영국식 유머로 버무린 근사한 디저트를 앞에 둔 기분이 든다. 원작은 프랑스 정신과의사인 프랑수아 를로르가 쓴 동명소설. 자신이 행복의 실체를 찾아 세계를 떠돈 실제 경험을 소설로 풀어냈다. 지난해 국내에서도 4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다. 이 작품의 특징은 주인공이 체험하며 깨달은 행복에 관한 잠언이 곳곳에 등장한다는 점. 원작에선 모두 23개인데 영화엔 16개가 나온다. 국내 관객들은 꾸뻬(영화에선 런던 사는 헥터·사이먼 페그)가 전하는 어떤 메시지가 가장 가슴에 와 닿았을까. 10대부터 60대까지 평범한 우리네 이웃들에게 의견을 구해봤다. 》 △‘많은 이는 행복이 미래에 있다고 생각한다’(김모 양·17·S고 학생) “얼마 전에 시험이 끝났다. 언제나 시험만 끝나면 즐거울 것 같지만 후련하긴 해도 특별한 일은 없었다.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시험을 치러야 하는 건지. 선생님들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지만 지금이 불행하면 무슨 소용일까. 공부건 뭐건 진심으로 즐겨야 행복해지는 걸 텐데. 어른들에게 우리 학생들의 ‘현재’는 어때 보이는지 궁금하다.” △‘행복은 있는 그대로 사랑받는 것’(설모 씨·26·여·취업준비생) “친구들을 보면 어떻게든 자기 자신과 멀어지는 게 목표처럼 보일 때가 많다. 취업을 위해 스펙을 쌓는 게 그렇다. 영어건 인턴이건 경쟁자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 약점을 메우는 작업이다. 본인만의 장점은 잃고 천편일률적인 사람이 되어간다고나 할까. 남들에게 평가받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더 중요한 일이건만. 헥터가 아프리카에서 갱단에 붙잡힌 뒤 깨달은 것처럼, 부족해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봐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행복은 일종의 부수적 효과다’(김모 씨·36·영상업체 종사) “행복은 쫓는다고 잡을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내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결국 행복도 좌우된다. 근데 사는 게 바빠서 형이상학적으로 생각할 겨를이 없긴 하다.” △‘행복이란 온전히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김윤섭 씨·41·S사 과장)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상가에 갈 일이 많다. 근데 요즘엔 비슷한 또래의 부고도 적지 않다. 허망하고 서글프다. 애들 생각하면 나도 문제없어야 하는데, 운동할 시간은 없고…. 한때 로또에 매달리기도 했는데 그것도 아니다 싶었다. 행복이란 게 별 게 아니다. 그저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함께 밥 먹으면 그게 최고. 행복도 건강하게 살아있어야 느끼는 거다.” △‘남과 비교하면 행복한 기분을 망친다’(유점열 씨·53·여·주부) “돌이켜보면 살면서 스스로를 주변과 많이도 비교했다. 남편의 월급봉투, 아이의 성적, 옆집 자동차까지…. 주위에서 가진 것들이 왜 그렇게 부러웠는지. 그럴 때마다 나 자신이 초라해졌는데 참 어리석은 짓이었다. 영화에서 헥터가 남들이 가진 지위나 돈을 부러워하지 않고 씩 웃는 걸 보았을 때 느끼는 게 많았다. 행복은 내 안에 있다. 지금이라도 그걸 깨달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고구마 스튜!(최모 씨·67·퇴직 교사) “영화는 안 봤지만, 이게 딱 맘에 든다. 못 먹어봤거든. 나이 들면 안정만 바란다고 착각하는데 다 거짓말이다. 새로운 게 좋고, 도전하는 게 행복하다. 기회를 안 줘서 문제지. 할 수만 있다면 마누라도 자식 놈들도 싹 바꾸고 싶다. 근데 스튜는 수프나 국 같은 건가?”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대금이 슬프게 곡을 하니 베이스가 둥실 따라 울다 다독인다. 기타가 처연하게 가슴을 두드리자 해금이 끊어질 듯 아스라이 매만진다. 잦아들던 곡조가 순식간에 뒤바뀌며 장구와 드럼이 숨 가쁘게 얽히고설키자 객석에선 저도 모르게 찬탄이 터지고…. 한 곡이 채 매조지되지도 않았는데 박수가 터져 나오는 순간. 재즈인지 국악인지, 아니 국악도 재즈도 아닌 리듬과 선율이 관객과 뒤엉켰다. 1일(현지 시간) 독일 베를린 포츠담 광장에 있는 템포드롬 공연장. 이날부터 일주일 동안 한국의 재즈로 유럽의 밤공기를 적실 ‘재즈코리아 페스티벌 2014’는 350석 규모의 콘서트홀에서 뜨겁되 산뜻하게 문을 열었다. 문화체육관광부 지원을 받아 주독일한국문화원(원장 윤종석)이 개최하는 이 축제는 재즈 팬들이 많은 독일 7개 도시와 폴란드 바르샤바에 한국의 떠오르는 신진 재즈뮤지션을 소개하는 자리. 지난해 말 독일에서 개최해 큰 호응을 받은 데 힘입어 더욱 알찬 무대로 2회째 무대를 선보이게 됐다. 유석철 트리오와 이주미 콰르텟 등 7개 재즈밴드가 현지 뮤지션과 협력해 26회의 공연을 펼친다. 첫날 무대를 압도한 재즈 공연 팀은 ‘모자이크코리아’. 아시아 최고 재즈 축제로 평가받는 ‘자라섬 국제 재즈페스티벌’을 이끄는 인재진 총감독이 꾸린 프로젝트 그룹으로 거문고 연주자 허윤정을 포함한 국악인 5명과 정통 재즈뮤지션 4명으로 구성됐다. 문체부 산하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마련한 벨기에 헝가리 순회공연을 마치고 베를린에 합류해 이번 개막무대를 장식했다. 인 감독은 “재즈와 국악은 즉흥적 연주를 기반으로 한다는 공통점을 지녔다”며 “동해안 별신굿을 재즈에 접목시킨 연주에 유럽 현지 반응이 엄청나다”고 전했다. 현지 외국인이 반 이상 차지한 객석의 반응은 임 감독의 말 그대로였다. 독일 남성 한스 에딩거 씨는 장구와 아쟁을 또박또박 발음하며 “처음 보는 악기 연주였지만 마스터피스(걸작)를 마주한 기분”이라며 “한국 전통음악과 재즈의 마리아주(결합)가 이렇게 근사할 줄 몰랐다”고 놀라워했다. 영국인 여대생 엘레나 씨는 “음계가 너무 독특해 재즈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가슴이 쿵쾅거리는 리듬감에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다”고 말했다. 독일 북부의 주요 라디오채널인 ‘도이칠란트 라디오’가 관계자들을 스튜디오에 초대하는 등 언론도 관심을 보였다. 페스티벌 기획에 참여한 재즈 평론가 나빌 아타시 박사는 “변방이라 여겼던 한국의 신진 아티스트들이 지난해 수준 높은 실력을 선보여 올해 더욱 관심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이날 무대를 찾은 독일 유명 재즈레이블 ‘액트’의 지기 로크 대표도 “미국과 다른 독특함으로 무장한 한국 재즈는 큰 경쟁력을 지녔다”고 평했다. 문화원은 이 페스티벌을 연례행사로 정착시키고 국내에 유럽 현지 실력파 뮤지션들을 소개하는 자리도 검토하고 있다. 현지 음반사와 협력해 앨범 제작도 한다. 지난해 축제에 참여한 색소포니스트 김지석의 앨범이 이달 독일에서 발매된다. 윤종석 원장은 “올해로 9회를 맞은 주영국 한국문화원의 ‘런던한국영화제’처럼 독일에선 재즈라는 무기로 한국 문화를 알리는 장을 다지겠다”고 말했다.베를린=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인터스텔라는 올여름 ‘명량’에 이어 국내 13번째로 ‘천만 영화 클럽’(관객 1000만 명 이상)에 가입할 수 있을까. 22일 기준 개봉 17일을 맞은 인터스텔라는 누적 관객 637만 명을 돌파하며 흥행 독주 체제를 굳히고 있다. 인기 시리즈 ‘헝거게임: 모킹제이’와 브래드 피트 주연의 ‘퓨리’ 같은 할리우드 대작이 20일 개봉했는데도 예매율은 여전히 큰 격차를 보인다. 현재 66.2%로 개봉 첫 주 88∼90%에 이르던 기세는 다소 꺾였으나 ‘헝거게임…’(12.4%)과 ‘퓨리’(8.7%)보다 최소 5배 이상 높다. 》 일단 인터스텔라는 국내에 선보인 놀런 감독 작품 가운데 가장 많은 관객이 찾을 것으로 보인다. 이전까지는 배트맨 3부작 가운데 마지막 편인 ‘다크 나이트 라이즈’(2012년)가 약 639만 명,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출연한 ‘인셉션’(2010년)이 약 590만 명으로 최고였다. 워너브러더스의 한국 개봉작의 역대 흥행 1∼3위도 모두 놀런 감독이 차지하게 됐다. 인터스텔라가 유독 한국과 중국에서 높은 인기를 누린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미국 현지에선 박스오피스 1위에 한 번도 오르지 못하고 ‘덤 앤 더머2’에도 밀리지만 양국에선 반응이 뜨겁다 못해 활활 타오른다. 12일 개봉한 중국에선 첫 주에만 4200만 달러(약 467억 원)를 벌어들여 인터스텔라 제작비의 약 4분의 1을 건졌다. 전문가들은 한중에서의 성공 요인으로 △우주와 천문학에 대한 높은 관심과 △호접몽(胡蝶夢)이 떠오르는 동양적 서사를 꼽았다. 올해 유인우주선 발사 10주년을 맞은 중국은 최근 시진핑 국가주석이 “양탄일성(兩彈一星·인공위성과 원자·수소폭탄)과 유인우주선 개발 정신”을 여러 차례 강조해 관심이 크다. 국내에선 캠핑 붐을 타고 별자리 관측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최근 수십만 원이 넘는 천체망원경이 불티나게 팔리며 국내 한 포털사이트의 아마추어 천문 동호회는 회원이 3만5000명을 넘어섰다. 서양인보다 동양인에게 편안한 이야기 구조도 힘을 발휘했다. 이 작품은 다소 어려운 과학 이론이 바탕이지만 웜홀과 블랙홀을 통해 시공간이 이어지는 설정이 윤회나 노장사상과 왠지 모르게 닮았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최첨단 우주 개념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순환적 세계관에 익숙한 동양인들은 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허나 현재로선 인터스텔라가 천만클럽에 들지는 의견이 분분한 상태. 영화 비수기인 11월에 개봉한 데다 연말엔 ‘빅매치’(27일 개봉)와 ‘국제시장’(다음 달 17일 개봉) ‘상의원’ 등 한국 영화 기대작이 즐비하다. 홍보대행사 ‘올댓시네마’의 김태주 실장은 “천만이란 수치가 욕심나긴 해도 현재 추이론 ‘800만+α’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가입 가능성을 높게 점치는 분위기도 상당하다. 일단 국내에서 천만 영화 수치라고 부르는 ‘재관람률’이 높다. 현재 3.8%로 명량(4.8%)보단 떨어지지만 ‘변호인’(3.4%) ‘겨울왕국’(3.95%)과 엇비슷하다. 초반엔 20대가 몰렸고 최근엔 40대 이상 관객이 많은 것도 천만클럽 스타일. 명량 때 역사공부 차원에서 자녀와 함께 극장을 찾은 40대 이상이 많았듯 과학 교육을 목적으로 한 가족 관객이 크게 늘고 있는 점도 긍정적 요인이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바보들이 돌아왔다. 딱 20년 전 영화 ‘덤 앤 더머’(1994년)는 제대로 쇼킹했다. 멍청하기보단 정신병자 같았던 로이드(짐 캐리)와 해리(제프 대니얼스)의 만행(?)은 당시 둘을 덜떨어진 남성을 뜻하는 일반명사로 만들었다. 그 속편 ‘덤 앤 더머 2’가 27일 개봉한다. 한국 나이로 대니얼스는 예순, 캐리는 쉰셋. 여전히 유쾌하게 모자라고 추레하고 저질이다. 강산이 두 번 바뀐 뒤에도 돌아올 수 있었던 미국 바보들의 저력은 뭘까. 국내 영화계를 주름잡았던 한국 바보들과 비교해 보았다.○ 美 ‘성기 발랄’ vs 韓 ‘성적 거세’ 해리 한 번 속이려 식물인간 행세를 한 로이드는 20년 만에 “서프라이즈(놀랐지)”를 외치며 병상에서 일어난다. 해리는 로이드의 거기에 달린 소변 관을 마구 잡아당기며 화장실 유머로 포문을 연다. 성적 호기심 가득했던 두 바보는 2편에서도 러닝타임 109분 내내 불끈거린다. 성에 무지하지만 그래서 더 적나라한 미국 바보들에 비하면 한국 바보들은 갓난애 수준이다. ‘웰컴 투 동막골’(2005년)의 여일(강혜정)이나 ‘맨발의 기봉이’(2006년)에서 기봉(신현준)은 반려동물의 안타까운 ‘중성화수술’이라도 받은 듯 그쪽으론 관심도 없다. ‘바보’(2008년)의 승룡(차태현)은 지호(하지원)를 향한 큰 사랑을 품고, ‘7번방의 선물’(2012년) 용구(류승룡)는 딸까지 낳았는데도 별로 다르지 않다. 지능과 욕망은 별개임에도 한국의 바보들을 왜 거세 상태일까. 김봉석 영화평론가는 “좋게 보면 순수의 상징, 나쁘게 보면 무능의 대상으로 사회와 떼어놓고 보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동네마다 있던 바보 ‘형아’들이 어느 순간 격리돼 사라진 것처럼, 사회가 그들에게 그런 자유를 부여하지 않는단 뜻이다. ‘바보는 순박해야 한다’는 강박에 가까운 사회적 통념이 영화에도 반영된 셈이다. 옛날이 더 자유분방했다. 1982년 임권택 감독의 ‘안개마을’에 나온 깨철(안성기)은 전형적인 동네 바보지만 마을 아낙들의 성적 불만을 해소해주는 엄청난 활약을 했다. 새로 부임한 여교사를 보며 안광을 번득일 만큼 욕정에 솔직했다.○ 韓 ‘체제 순응’ vs 美 ‘일탈·전복’ 한국 바보들은 반항할 줄 모른다. 기봉이나 용구는 괴롭히고 때려도 다 받아준다. 이들이 속이 깊어서란 뉘앙스를 비치지만, ‘사회적 약자’의 지위를 고착화하는 건 변함없다. 반면 해리와 로이드는 오히려 가해자다. 20년 전 그들에게 죽은 새를 샀던 이웃집 소년 빌리(브레이디 블룸)는 속편에서도 깜짝 출연해 괴롭힘을 당한다. ‘덤 앤 더머’들이 보기엔 타인과 세상이 멍청한 거다. 서구문화는 주류를 조소하고 까발리는 코미디 정서에 충실하다. 바보를 체제 부적응이 아닌 자의적 거부의 시각에서 바라본다. 두 바보가 내로라하는 과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무참히 비웃는 장면도 그런 맥락이다. 김 평론가는 “영국을 대표하는 바보 ‘미스터 빈’처럼 기존의 권력에 맞서고 풍자하는 배수구의 역할을 담당했다”고 분석했다. 로이드와 해리는 여전히 까불까불하지만 반항기는 묽어졌다. 전작에서 흥청망청 돈 쓰고 미녀들 가득한 버스에 올라탔던 젊은이들은 이제 지나가던 여성 넘어뜨리기 정도에 만족하는 아저씨(혹은 할아버지)가 됐다. 1990년대 바보조차 성공하던 호황기와 금융위기를 직격탄으로 맞고 루저의 정서가 지배하는 시대는 다를 수밖에 없지 않나. 덤 앤 더머는 이를 ‘웃프게’ 드러낸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내가 정말…. 죄를 지은 건가요?” 20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액트 오브 킬링’은 적나라해서 난감한 영화다. 미국인인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40)이 연출한 이 작품은 1965년경 인도네시아 학살을 자행한 당사자들이 주인공. 그들이 공적을 자랑할 마음에 흔쾌히 당시를 재연하는 충격적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지난해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 관객상을 비롯해 세계 70여 개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 국내엔 다소 낯선 인도네시아 현대사를 소병국 한국외국어대 말레이·인도네시아어과 교수의 도움을 얻어 짚어봤다.― 영화에 나오는 대로 당시 100만 명이나 학살당한 것이 사실인가. 그렇다. 학계의 공식 통계는 50만 명 안팎. 대략 확인된 수치가 그럴 뿐, 정황상 훨씬 많다. ‘공산주의 척결’을 내세웠으나 일반 양민도 마구잡이로 사살했다. 이 비극은 1965년 ‘9·30사태’가 발단이었다. 당시 군부와 대척하던 공산세력이 군부 장성 6명을 살해하고 정변을 일으킨 것. 훗날 대통령에 오르는 수하르토가 중심이 된 군부가 이를 응징하며 피의 참극이 벌어졌다. 영화에 등장하는 ‘패러밀리터리(paramilitary·불법무장단체)’의 학살 주도도 사실이다. 군부가 조직폭력배 같던 이들에게 민방위군 권한을 부여해 전위대로 이용했다. 주인공인 안와르 콩고와 밀접한 ‘판차실라 청년단’도 대표적 패러밀리터리다. ―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시도조차 없었던 것으로 나온다. 있긴 했지만 극소수였다. 수하르토 전 대통령은 1998년까지 30년 넘게 철권 통치했다. 집권 내내 과거의 치부를 ‘국가를 위한 정당방위’로 윤색해 선전했다. 학살주도 세력이 줄곧 나라를 지배해 희생자 유가족들은 침묵해야 했다. 특수한 종교적 상황도 작용했다. 인도네시아는 인구 2억5000여만 명이 대부분 종교를 가지고 있다. “사람과 짐승을 구분하는 척도는 신앙”이라고 말할 정도다. 종교와 대척점에 선 공산사상에 대한 혐오가 광범위한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까닭이다. 그런데 이는 고유한 민족성보다는 제도의 영향이 컸다. 1965년 정부는 6개 종교만 공인하고 이를 장려하는 법률을 만들었다. 정치가 국민 사상을 인위적으로 개조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한 종교적 신념은 ‘반(反)공산당’ 정서를 정당화하는 무기가 됐다. ― 그렇다 해도 학살 당사자들이 너무 당당하다. 죄라는 의식조차 없었을 것이다. 지금껏 사회적으로 영웅 대접을 받는다. 영화에선 공영방송 토크쇼에 나가 “인도적으로 잘 죽였다”며 서로 격려하는 장면까지 나온다. 수하르토 전 대통령은 끝내 물러났지만, 군부 중심 집권층은 다져놓은 세력이 탄탄해 여전히 기세등등하다. 판차실라 청년단은 지금도 300만 명의 조직원을 거느리고 있다. 앞으로는 달라질지 모른다. 올해 7월 서민 개혁파인 조코 위도도가 수하르토의 사위인 수비안토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인도네시아의 오바마’라 불리는 그가 어떤 개혁정책을 펼치느냐에 따라 희생자 복권의 길이 열릴 수 있다. 영화에서 학살 당시를 재연하다 자책감이 든 행동대장 안와르는 후반부에 “내가 죄를 지은 것이냐”며 고통스럽게 구역질한다. 올바른 진상 규명은 그 어떤 처벌보다 묵직한 힘을 지닌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어둠이란 참 오묘한 존재다. 흔히 밤경치가 근사하다고들 하지만, 막상 칠흑같이 검은 밤을 맞닥뜨리면 그만큼 두려운 게 없다. 인류의 진화라는 것도 불(혹은 빛)을 발견해 어둠과 맞설 무기를 획득하며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그만큼 미지의 영역이었던 밤을 정복하는 일은 인간의 숙명과 직결된 역사라 볼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의 환경 전문 작가인 저자가 볼 때, 너무 정도가 지나쳤던 ‘밤의 추방’은 결국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지구를 생채기내고 있다. 낮이 가면 밤이 오는 게 순리일진대, 이를 억지로 몰아내며 잃은 게 너무 많다. “어떤 면에서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고 또 다른 면에서는 이제야 알기 시작했지만, 밤의 자연스러운 어둠은 우리의 건강은 물론이고 자연계의 건강에도 늘 소중한 요소이기에 어둠이 사라지면 모든 생명이 고통을 받는다.” ‘잃어버린…’의 애절한(?) 여행은 바로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밤을 말살한 빛 공해는 지금 어느 지경까지 와 있는가. 도대체 밤이 사라지면 뭐가 나쁘다는 건가. 이런 궁금증을 해소하려 저자는 가장 밤낮이 구분 안 가는 곳부터 완전히 어둠이 지배하는 세계까지 차례차례 가보기로 했다. 다만 미국인답게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어둠에 집중한다’는 취지에서 여정은 북미와 서유럽에 집중했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존 보틀이란 천문학자의 척도를 따라가는 것. 이 학자는 어두운 밤하늘을 1∼9등급으로 구분했다. 대도시의 불야성을 9라고 하면, 인위적 불빛 없이 ‘은하수가 쏟아져 내리는’ 수준은 1이라는 식이다. 책은 9에 해당하는 곳부터 반대로 짚어가는 방식으로 구성했다. 차례에서 챕터 순서가 9에서 1로 거꾸로 된 건 그 때문이다. 그런데 이 양반, 글 풀어내는 솜씨가 보통 아니다. 아니 내공이 요즘 말로 ‘만렙(게임에서 최고 레벨에 오른 경지)’이다. 밤과 관련해 이렇게 재미난 이야기들이 많았나 싶어 책장을 넘길수록 입이 쩍 벌어진다. 딱히 여행서나 과학책, 역사나 철학책이라고도 규정할 수 없게 온갖 장르를 넘나들며 별빛 찬란한 밤의 교향곡을 완성했다. 예를 들어, 9, 8등급 장에선 휘황찬란한 카지노의 도시인 미국 라스베이거스와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같은 대도시를 찾았다. 그런데 라스베이거스에선 빛 공해로 인한 피해와 그 속에서 별빛을 찾는 사람들에 대해 얘기하더니, 런던에 넘어가선 지금도 남아있는 가스등을 통해 근대 조명의 역사를 되짚는다. 그리고 훌쩍 파리로 향하더니 도시의 불빛이 문화와 조우하는 가치에 대해 설명한다. 다음 장에선 또 분위기가 다르다. 도심을 벗어나 주택거주지역을 돌며 야간조명의 효용성에 대해 거론한다. 사실 대다수 사회에선 ‘안전과 치안’을 명목으로 밤을 밝히는 작업에 박차를 가해왔다. 그런데 실제 연구에 따르면 가로등과 범죄율은 별 상관관계가 없으며, 오히려 지나친 불빛이 시력마비와 은폐 공간 증가를 야기해 문제를 키웠다. 이 때문에 최근 서구사회는 오히려 밤 불빛을 줄이는 작업에 나선 곳이 적지 않았다. 그리고 뒤로 갈수록 인공의 빛이 사라진 땅에 우주가 내려준 황홀한 빛의 향연이 펼쳐지는 광경을 근사하게 그려낸다. 물론 이미 21세기도 10여 년이 지난 지금, 밤을 다시 ‘깜깜하게’ 되돌리기란 요원한 일이다. 밤을 낮 삼아 일하는 수많은 ‘미생’들에겐 저녁이 있는 삶조차도 버거운 꿈이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밤하늘에 빛나는 별은 동화책에서나 배우는 세상이 될지 모른다. “수많은 빛을 들고 다니느라 어둠 또한 꽃피고 노래함을 알지 못한다면” 그게 올바른 삶이라 할 수 있을까.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밤의 가치를 고민해봐야 할 때가 됐다. 밤은 아직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영화 ‘퓨리’는 전쟁이 지닌 끔찍함과 흉측함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이로 인해 인간의 내면 또한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도 알 수 있죠.” 쉰 넘은 아저씨가 어찌 이리 태(態)가 나는지. 13일 서울 여의도 한 호텔에서 영화 ‘퓨리’ 기자회견에 나선 브래드 피트(51)는 아들 또래의 로건 러먼(22)과 함께 서도 밀리지 않았다. 물론 2011년과 지난해에 이어 세 번째 방한해 옆집 아저씨처럼 친숙해지긴 했지만. 퓨리에서 드러낸 상체를 보면 ‘델마와 루이스’(1991년) 시절 ‘간고등어’ 근육도 여전했다. 20일 개봉하는 영화는 피트의 말마따나 꽤나 참혹한 작품이다. 때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 워 대디(war daddy·전쟁 아빠)라 불리는 콜리어 부사관(브래드 피트)은 독일 전선에서 ‘퓨리(fury·분노)’란 별명이 붙은 미국 탱크를 이끄는 지휘관. 보이드 스완(샤이아 러버프)을 비롯해 개성 넘치는 부하들과 생사를 넘나든 그에게 입대한 지 8주 된 햇병아리 신병 노먼 앨리슨(로건 러먼)이 배치된다. 곧장 전장에 투입된 앨리슨이 정체성 혼란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퓨리는 사단 전체의 명운이 걸린 전투에 나서게 되는데…. “워 대디는 많은 걸 짊어진 존재입니다. 그가 실수하면 소대가 몰살당하죠. 하루는 줄곧 싸우고 죽이다가 다음엔 웃고 떠들며 함께 밥 먹는 게 전쟁이잖아요. 부하들을 옥죄고 풀어주는 걸 잘해야 하다 보니, 책임감과 스트레스도 엄청납니다. 파탄 난 가정을 이끄는 가장과 흡사한 위치랄까. (아이 여섯을 둔) 아버지로서의 경험이 연기에 도움이 됐어요.” 영화는 실전을 방불케 하는 전투신도 볼만하지만, 부대원의 미묘한 감정을 따라가는 데도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특히 미국 병사라고 해서 정의롭지만은 않다는 걸 여러 대목에서 부각시켜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와 결을 달리한다. 하지만 전쟁터라기엔 지나치게 굼뜬 흐름이나 첨부터 대충 결말이 짐작되는 단선적 구조는 상당히 아쉽다. 어느 작품에서나 강한 인상을 남기는 피트의 존재감은 이 영화의 가장 강력한 무기. “너희 모두 살려서 고향에 보내는 게 내 일이야”라고 외치는 콜리어는 어느 순간 가족을 등 뒤로 숨기고 철컥 장총을 뽑아든 서부영화의 존 웨인과 겹쳐 보인다. 피트는 “지난 20여 년간 많은 훌륭한 영화인들과 함께 작업한 게 성공의 원동력이었다”며 “영화를 사랑했던 한 시골 청년이 영화를 통해 세상과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이젠 내가 받은 것을 영화 안팎으로 돌려줄 때가 됐다”라고 했다. 피트와 함께 온 러먼은 2011년 영화 ‘삼총사 3D’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뒤 두 번째 방한이다. 그는 “퓨리를 통해 좋은 배우들이 카메라 바깥에서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깨달았다”며 “특히 근면 성실한 피트가 인상적이었다. 연기하며 상대를 얼마나 잘 때릴 수 있는지도 배웠다”고 농담했다. 소주와 불고기, 김치볶음밥을 사랑한다는 그는 “오기 전에 꼭 가보고 싶은 식당도 미리 알아봤다”며 기대를 드러냈다. “최근에 한국에서 흥행한 영화 ‘명량’의 전투 장면이 대단하다고 들었어요. 우리 영화와 닮은 점도 있을 것 같은데 꼭 보고 싶습니다. 박찬욱, 봉준호 감독의 영화도 좋아합니다. 한국 영화는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작품을 많이 배출해 관객으로서 기대가 큽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영화 '퓨리'는 전쟁이 지닌 끔찍함과 흉측함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이로 인해 인간의 내면 또한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도 알 수 있죠."쉰 넘은 아저씨가 어찌 이리 태(態)가 나는지. 13일 서울 여의도 한 호텔에서 영화 '퓨리' 기자회견에 나선 브래드 피트(51)는 조카 뻘 나이의 로건 레먼(22)과 함께 서도 밀리지 않았다. 물론 2011년과 지난해에 이어 세 번째 방한해 옆집 아저씨마냥 친숙해지긴 했지만. 퓨리에서 드러낸 상체를 보면 '델마와 루이스'(1991년) 시절 간고등어 근육도 여전했다.20일 개봉하는 영화는 피트의 말마따나 꽤나 참혹한 작품이다. 때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 워 대디(war daddy·전쟁 아빠)라 불리는 콜리어 부사관(브래드 피트)은 독일 전선에서 '퓨리(fury·분노)'란 별명이 붙은 미국 탱크를 이끄는 지휘관. 보이드 스완(샤이아 라포브)을 비롯해 개성 넘치는 부하들과 생사를 넘나든 그에게 입대한지 8주 된 햇병아리 신병 노먼 앨리슨(로건 레먼)이 배치된다. 곧장 전장에 투입된 앨리슨이 정체성 혼란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퓨리는 사단 전체의 명운이 걸린 전투에 나서게 되는데…."워 대디는 많은 걸 짊어진 존재입니다. 그가 실수하면 소대가 몰살당하죠. 하루는 줄곧 싸우고 죽이다가 다음엔 웃고 떠들며 함께 밥 먹는 게 전쟁이잖아요. 부하들을 옥죄고 풀어주는 걸 잘 해야하다보니, 책임감과 스트레스도 엄청납니다. 파탄 난 가정을 이끄는 가장과 흡사한 위치랄까. (아이 여섯을 둔) 아버지로서의 경험이 연기에 도움이 됐어요."영화는 실전을 방불케 하는 전투신도 볼만하지만, 부대원의 미묘한 감정을 따라가는데도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특히 미국 병사라고 해서 정의롭지만은 않다는 걸 여러 대목에서 부각시켜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와 결을 달리 한다. 하지만 전쟁터라기엔 지나치게 굼뜬 흐름이나 첨부터 대충 결말이 짐작되는 단선적 구조는 상당히 아쉽다.어느 작품에서나 강한 인상을 남기는 피트의 존재감은 이 영화의 가장 강력한 무기. "너희 모두 살려서 고향에 보내는 게 내 일이야"라고 외치는 콜리어는 어느 순간 가족을 등 뒤로 몰고 철컥 장총을 뽑아든 서부영화의 존 웨인과 겹쳐 보인다. 피트는 "지난 20여 년간 많은 훌륭한 영화인들과 함께 작업한 게 성공의 원동력이었다"며 "영화를 사랑했던 한 시골 청년이 영화를 통해 세상과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이젠 내가 받은 것을 영화 안팎으로 돌려줄 때가 됐다"라고 했다.피트와 함께 방한한 레먼은 2011년 영화 '삼총사 3D'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뒤 두 번째 방한이다. 그는 "퓨리를 통해 좋은 배우들이 카메라 바깥에서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깨달았다"며 "특히 근면 성실한 피트가 인상적이었다. 연기하며 상대를 얼마나 잘 때릴 수 있는지도 배웠다"고 농담했다. 소주와 불고기, 김치볶음밥을 사랑한다는 그는 "오기 전에 꼭 가보고 싶은 식당도 미리 알아봤다"며 기대를 드러냈다."최근에 한국에서 흥행한 영화 '명량'의 전투 장면이 대단하다고 들었어요. 우리 영화와 닮은 점도 있을 것 같은데 꼭 보고 싶습니다. 박찬욱, 봉준호 감독의 영화도 좋아합니다. 한국영화는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작품을 많이 배출해 관객으로서 기대가 큽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