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환

정양환 기자

동아일보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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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양환 기자입니다.

ray@donga.com

취재분야

2024-10-02~2024-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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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기 좋고 풍광도 좋고… 해외영화제서 먼저 찜

    1969년 경북 포항. 흑백TV에서 정치 뉴스가 쏟아지던 시절. 허나 그곳은 한가로워 보일 정도로 잔잔하다. 조각가로 이름 날리던 준구(박용우)는 병을 얻어 삶의 의욕도 잃고 낙향한 상태. 지고지순으로 남편을 돌보던 정숙(김서형)은 우연히 마주친 애기엄마 민경(이유영)에게 남편의 누드모델이 되어주길 부탁하는데…. 손사래 치던 민경은 상이용사 동거남(주영호)과의 각박한 살림살이를 벗어나 보려 결국 준구의 집으로 향한다. 20일 개봉하는 조근현 감독의 ‘봄’은 해외영화제에서 먼저 알아본 영화다. 미국 애리조나영화제와 댈러스영화제, 이탈리아 밀라노영화제, 스페인 마드리드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받았다. 밀라노에선 김서형, 마드리드에선 이유영이 여우주연상도 수상했다. 한국영화 가운데 주연 여배우 둘 다 해외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건 처음이라 한다. 상까지 받았다는 얘길 들어서인가. 배우들의 연기는 굉장히 있어 보인다. 특히 김서형은 ‘놀랄 노’자다. 막장드라마 ‘아내의 유혹’에서 선보인 광란의 연기가 새긴 오랜 잔상을 시원하게 떨쳐낸다. 물론 확 돌변하지 않을까 기대감(?)도 내심 가졌지만, 살랑살랑 술잔을 딱 채운 듯 차분하되 흔들리는 감정을 잘금잘금 쌓아간다. 이유영도 만만치 않다. 과감한 노출이야 신인이라 그렇다 치자. 스물다섯(1989년생) 어린 처자가 어찌 그리 삶에 지친 곤궁함을 순수한 듯 무심하게 얼굴에 담는지. 대사 전달력은 아쉽지만 처연한 머리칼과 어우러진 눈빛은 여운이 길다. 여배우들에 비해 덜 주목받긴 했지만 박용우도 중심을 잘 잡았고, 주영호 역시 전형적인 역할을 깔끔하니 소화했다. 영화의 또 다른 볼거리는 풍광이다. 조 감독은 현대사의 그림자가 짙었던 전작 ‘26년’(2012년)과 달리 시대적 배경을 최대한 덜어내고 등장인물에만 집중했다. 자칫 단조로울 법했던 구성은 파르라니 펼쳐진 밭과 눈부신 황톳길, 호숫가가 포근하게 감싸 안는다. 서울대 서양화과를 나온 감독의 강점을 제대로 살린 셈. 아스라이 젖어드는 수채화처럼 억지스럽지 않게 매조지하는 극의 흐름도 ‘문예영화’로서의 미덕을 잘 살렸다. 18세 이상.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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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업하는 그들은 바로 우리 이웃”

    13일 개봉하는 영화 ‘카트’는 처음엔 기존 상업영화와는 다른 측면에서 주목받았다. 일단 2007년 이랜드 홈에버 비정규직 파업을 소재로 했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한편에선 아이돌 그룹 ‘엑소’의 도경수(디오)의 출연이 10대들에게 화제였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카트 야외상영관은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광경이 펼쳐졌다. 하지만 ‘카트’는 단순히 사회 고발이나 팬덤의 측면에서만 고려될 작품이 아니다. 영화 내내 스크린에서 마주하는 건 바로 매일 마주치는 이웃, 아니 우리 자신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부지영 감독(43)도 “이 땅에서 보편적 정서를 갖고 살아가는 동시대 사람들을 담으려 했다”고 말했다. 손님 직원 할 것 없이 누구나 돌려쓰니 모두의 손때가 묻는 대형마트의 카트처럼. ―주로 다큐멘터리가 다뤘던 파업이란 소재를 극영화로 만들었다. “육하원칙 관점에서 보자면 ‘무엇을’보다 ‘누가’를 얘기하고 싶었다. 대중은 수많은 파업을 언론매체를 통해 접한다. 하지만 그건 정보로서 사건만 다룰 뿐이다. 거기엔 다양하게 관련된 사람들이 있는데도, 그들의 사정이나 속내가 뭔지 알 수 없다. 영화에서 파업 참가자들은 대다수가 평범한 가정주부다. 우리와 똑같이 살림하고 애 키우는 엄마들이다. 그런 인물들의 속내가 무엇인지 들려주고 싶었다.” ―실제 현장보단 영화가 순하던데…. 집회에서 민중가요 대신 트로트를 부르더라. “같은 맥락에서, ‘어떻게’보다 ‘왜’에 집중하려 했다. 마트 여성 노동자들은 평소 자기 목소리도 낼 줄 모르는 캐릭터다. 그런데 어떤 상황에 처했기에 그런 선택을 했는지가 중요했다. 영화를 전·후반부로 나누면, 주로 쓴 카메라 렌즈가 달랐다. 앞쪽엔 사물을 넓게 잡는 광각렌즈를 많이 썼는데, 파업 이전에 그들이 처한 환경을 부각시켰다. 나중엔 클로즈업에 용이한 망원렌즈로 표정에 담긴 감정에 초점을 맞췄다. 트로트는 노동법도 잘 몰랐던 아줌마들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행동에 나섰음을 부각시키는 장치였다.”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자연스레 어우러졌다. “배우들의 공이 크다. 고교생 아들 태영(도경수)의 엄마 선희(염정아)부터 싱글맘(문정희), 할머니 청소원 순례(김영애), 20대 미진(천우희)까지 모두 훌륭했다. 스타들인데도 촬영이 진행될수록 무리에 녹아들더라. 염정아가 아닌 그냥 선희로 보였다. 천우희는 촬영 전엔 출연작 ‘한공주’를 못 봤다. 그냥 ‘얘, 왜 이렇게 연기 잘해’ 했는데, 작품 보고 ‘이렇게 존재감 큰 배우를 막 대했구나’ 했다, 하하. 도경수는 화려한 무대 모습과 달리 얼굴에 그늘을 드리울 줄 알더라.” ―영화를 보다 보면 누구도 비난하기가 어렵다. “맞다. 이 작품엔 악인이 없다. 파업에 반대하는 직원들도 나름 사정이 있다. 위쪽 지시로 할 수 없이 나서는 이도 있을 테고. 파업 현장에 투입된 공권력을 무표정하게 그린 것도 그래서였다. 명령을 따랐을 뿐, 스스로 이성적 판단에 따라 그러는 게 아니잖나. 파업은 사회적 문제다. 전체적인 시스템에서 해결점을 찾아야지, 개개인의 잘못으로 볼 수 없다.” ―선희와 태영처럼 처음엔 부딪치다 나중에 화합하는 관계가 많더라.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한 게 바로 소통이다. 같이 사는 가족이라고, 회사 동료라고 서로 잘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상대방을 이해하려 귀 기울이고, 그 처지를 공감할 때 비로소 진짜 유대가 형성된다. 사춘기 아들은 엄마가 파업하며 가정에 소홀한 것 같아 서운하다. 하지만 편의점 알바로 사회를 겪으며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마트 직원이 파업하면 손님은 당연히 불편해서 싫어한다. 하지만 공감대를 형성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손을 내밀어 주지 않을까. 마음과 마음을 잇는 다리가 필요하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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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혈낭자 천방지축… 그러나 한결 순해진 ‘소노 시온標 코믹물’

    장면1하얀 레이스 치마를 입은 소녀가 깡충깡충 들어온다. 그런데 집안엔 시체들이 널려 있고, 바닥은 온통 핏빛. 소녀는 미끄러지며 킬러 앞에 넘어지는데…. 사내가 위로를 건네자, 아이의 한마디. “바닥 꼴이 이게 뭐야. 다 치우고 가!”장면2 도쿄를 장악한 조직 세력은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 심상찮은 일이 벌어진단 소문에 완전무장하고 밤거리를 나선 무리들이 맞닥뜨린다. 부릅뜬 눈빛에 부드득 이를 갈던 폭력배. 갑작스레 쏟아낸 말은 힙합 리듬에 맞춘 랩 배틀? 일본 감독 소노 시온(53·사진)의 영화는 원래 불편했다. 유혈 낭자, 사지 절단은 기본. 성과 폭력을 극단으로 밀어붙여 인상부터 찌푸려졌다. ‘자살클럽’(2002년) ‘기묘한 서커스’(2005년) ‘차가운 열대어’(2010년)는 물론이고 묵직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두더지’(2011년) ‘희망의 나라’(2012년)도 그랬다. 때깔 좋고 이음새 근사하고 에너지는 넘치지만 대번에 반색하긴 머뭇거려졌다. 하지만 13일 개봉하는 ‘지옥이 뭐가 나빠’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인 ‘도쿄 트라이브’는 ‘강추’다. 여전히 잔혹은 한가득이나 ‘병맛’(병신 같은 맛이란 인터넷 용어) 코드 휘날리는 웃음이 자극을 한층 순화시켰다. 둘 다 B급 코믹 액션 활극이다. ‘지옥이…’는 126분 내내 정신없이 돌아간다. 앙칼진 딸 미츠코(니카이도 후미)를 영화에 데뷔시키려는 야쿠자 무토(구니무라 준) 패거리와 꿈만 야무진 영화감독 지망생 히라타(하세가와 히로키) 일당을 얼개로 자질구레한 사건들이 꼬리를 문다. 결국 히라타와 친구들이 무토의 제안으로 영화를 찍는데, 실제와 연기가 뒤엉키며 한판 굿이 벌어진다. 이 작품엔 언제나 ‘돌+아이’ 같던 감독의 ‘영화에 바치는 헌사’가 배였다. 걸작 하나만 찍으면 죽어도 좋다는 히라타는 그의 분신. “돈 보고 찍은 영화가 일본 영화계를 망친다”는 대사는 자기 속내일 터. 히라타가 이끄는 팀 ‘퍽 바머스(Fuck Bomers)’도 젊은 시절 꾸렸던 영화제작집단 이름이다. 야쿠자 영화의 거장인 후카사쿠 긴지 감독(1930∼2003)과 리샤오룽(1940∼1973)에 대한 오마주가 가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도쿄 트라이브’는 더 난장판이다. 가까운 미래, 도쿄의 밤거리는 공권력의 손을 떠났다. 각자 영역을 차지한 트라이브(tribe·집단 혹은 부족)들이 날을 곧추세운 상황에서, 조직 ‘부쿠로’의 메라(스즈키 료헤이)와 ‘무사시노’에 소속된 카이(영 다이스)가 운명을 건 한판 승부를 벌인다. 얘기가 뻔해 보인다고? 감독은 여지없이 뒤튼다. 대사 대부분을 힙합 음악에 맞춰 랩으로 바꿔 버린 것. 속사포 같은 랩 배틀은 왁자지껄한 액션과 궁합이 절묘하다. 질펀한 농담과 과장된 피범벅이, 힙합의 ‘앙꼬’인 디스(diss·비난)와 버무려지며 짜릿함을 선사한다. 번잡한 구성인데도 쫀쫀하고 미끈하다. 두 편이 구현한 엉망진창 세상은 감독이 품은 디스토피아적 세계관과 맞닿아 있다. 뭔가가 꼬여 버린 요즘 일본의 현실을 오라지게 까댄다. 감독은 시큼한 조소를 통해 새로운 시대의 화두를 꺼내고 싶은 것일지도.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소노 감독은 ‘두더지’부터 동일본 대지진 이후 뒤틀린 일본 사회의 정체성을 도마에 올려왔다”며 “최근엔 극단적 면모를 덜어내고 대중적 화법으로 다가서려는 전향(?)도 엿보인다”고 평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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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서울의 주막서 한국 술 한잔 마시고 싶어”

    “인생에서 가족의 유대는 뭣보다 중요한 가치를 지닙니다. 하지만 소외계층의 가정을 들여다보면 여러 외부 요인에 휩쓸리며 서로에게 상처 입히고 때론 무너지기도 하죠. 그 현실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건 어느 사회에서나 필요한 작업이 아닐까요.” 4일 서울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만난 스웨덴 영화 ‘노바디 오운즈 미’의 셸오케 안데르손 감독(65)은 친근한 동네 어르신 같은 생김새와 달리 달변가였다. 5일부터 열린 스웨덴영화제(주한스웨덴대사관·영화사 백두대간 주최)에 개막작으로 뽑혀 이날 입국한 그는 “김기덕 감독의 나라에 와 기쁘다. 조용한 주막에서 한국 술 한잔 마시고 싶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노바디…’는 1970년대 엄마가 떠난 뒤 알코올중독자가 되어 가는 아빠(미카엘 페르스브란트)와 다섯 살 된 딸의 결여된 삶을 그린 영화. 올해 스웨덴 최고의 영화제 굴드바게 어워즈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스토리에 비해 카메라의 시선은 담담했다. “원래 삶이 그렇다. 대단한 게 있을 것 같지만 일상이 쌓여 세월이 된다. 딸과 둘만 남게 된 아빠는 자식에겐 희망을 되뇌면서도 자긴 절망에 빠져든다. 딸은 그런 아빠를 안타까워도 미워도 하지만 어느새 닮아가는 걸 깨닫는다. 가족이란 알면 알수록 오묘한 관계다.” ―페르스브란트의 연기가 압권이었다. 진짜 알코올중독에 빠진 노동자 같더라. “감독 입장에서도 고맙고 놀라웠다. 무용가 출신이라 온몸으로 언어를 내뿜는다. 작은 전율 하나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어부로 살다 알코올중독에 빠진 친척이 있어 더 실감나게 표현할 수 있었다고 하더라. 배우에게 자세히 지시하기보단 맡겨두는 편이다.” ―‘노바디…’처럼 아이의 시선에서 평범한 가족을 들여다보는 작품이 많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서인지 사회적 관계에 관심이 크다. 빈곤층 가족이 겪는 고통을 그들만의 책임으로 돌려선 안 된다. 특히 그런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받는 상처는 사회가 다독여야 한다. 또 하나 어린이의 시선이 가진 장점은 균형감이다. 어떤 상황도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바라본다. 억지스럽지 않게, 있는 그대로 보여줄 때 울림은 더 크다.” ―스웨덴 하면 복지국가 이미지가 강한데…. “사회 시스템이 잘 갖춰진 건 맞지만 고통받는 이가 없을까. 현재 유럽은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바닥이다. 영화가 다룬 1970년대는 그나마 낭만적인 시절이었다. 힘들어도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며 사회의 균형을 잡아줬다. 요즘 세상은 자본의 논리만 우선시되며 극단에 치우치는 경향이 크다. 이 영화가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가치를 떠올리는 계기가 된다면 바랄 게 없겠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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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8회 이주민영화제 8∼10일 열려

    제8회 이주민영화제가 8∼10일 서울 성북구 아리랑시네미디어센터에서 열린다. 이주민방송 MWTV가 주최하는 영화제는 고려인의 이주 역사와 현실을 담은 ‘김 알렉스의 식당 안산-타슈켄트’(김정 감독)를 개막작으로 선정했다. 다양한 이주민의 실상을 다룬 ‘굿바이’(섹 알 마문 감독) ‘모래언덕의 소년’(바르스 볼드 감독) 등의 단편영화도 선보인다. 02-776-0416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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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회 런던한국영화제 6일 개막… ‘군도’등 55편 선봬

    제9회 런던한국영화제가 6일(현지 시간) 영국 런던 레스터스퀘어에서 막을 올린다. 개막작인 윤종빈 감독의 ‘군도: 민란의 시대’와 폐막작인 임권택 감독의 ‘화장’을 비롯해 한국 영화 55편을 선보인다. 스페셜 섹션으로 ‘김기덕 감독 포커스’와 ‘정우성 배우 포커스’가 마련됐다. 유럽에서 인기가 높은 김 감독의 최신작들과 최근 감독으로도 영역을 넓힌 정우성의 주요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배우 안성기 정우성 강동원 이동해 등이 현지 행사에 참석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영화진흥위원회가 지원하는 런던한국영화제는 주영한국문화원이 매년 11월 개최한다. 21일까지. 문의 주영한국문화원(www.kccuk.org.uk), 영화제 홈페이지(www.koreanfilm.co.uk).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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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심男과 활달女의 ‘썸’타기

    “아,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지난달 30일 함께 개봉한 ‘모모세 여기를 봐’와 ‘깨끗하고 연약한’은 멀지 않은 친척을 연달아 만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일본 영화다. 둘 다 달곰쌉쌀한 첫사랑을 다뤄서겠지만, 이런 기시감이 꼭 두 작품에 한정된 건 아니다. ‘10대 학원 로맨스’는 일본 대중문화에서 상당한 지분을 확보한 장르. 영화 역시 ‘러브레터’(1995년),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2004년), ‘하나미즈키’(2010년) 등 끊이질 않았다. ‘모모세…’와 ‘깨끗하고…’를 중심으로 일본 청소년 멜로물의 첫사랑 공식을 짚어봤다.○ 사랑과 우정 사이의 답답한 줄타기 ‘모모세…’의 노보루(다케우치 다로)는 평범하고 소심한 남학생. 속 터지게 만드는 이런 캐릭터는 일본 10대 로맨스물에서 빠지지 않는 존재다. 끙끙 앓다가 고백조차 흐지부지. 도대체 얘들은 신선이야 뭐야. 일본 특유의 민족성이 반영된 건가. 활달한 척하는 모모세(하야미 아카리) 역시 짝사랑 곁을 맴돌 뿐이다. ‘깨끗하고…’의 칸나(나가사와 마사미)와 하루타(고라 겐고)도 오십보백보다. 오랜 소꿉친구인데 속내는 드러낼 줄 모른다. 키스까지 해놓고 우정인지 사랑인지 헷갈려한다. “어떤 고등학생이 의리로 입 맞추냐”고 뒤통수 한 대 치고 싶다. 서로 애정을 확인하기까지 밀고 당기는 이른바 ‘썸’타는 장면은 빛을 과다 노출시켜 화면이 뽀얗다. 나중에야 감정을 터뜨리는 전개도 닮았다. 참다 참다 봇물처럼 쏟아내니 극적이긴 하다. 근데 그마저도 딱 부러지진 않는다. 노보루가 끝내 외친 한마디는 “모모세, 여기를 봐.” 뭐, 어쩌라고. 하루타가 칸나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는 겨우 “지금 간다”다. 첫사랑 여학생의 생김새도 박제 수준이다. 칸나는 ‘러브레터’의 10대 후지이(사카이 미키)의 환생인가. 긴 생머리에 쌍꺼풀 짙은 눈, 똑똑한 모범생인데 사랑 앞에선 ‘아무 것도 몰라요’ 표정. ‘모모세…’에선 조연인 간바야시(이시바시 안나)가 이렇다. 활달한 여학생은 모모세처럼 꼭 짧은 커트머리에 입을 삐죽거린다.○ 아날로그 감성을 건드리는 자전거 어김없이 등장하는 소품이 자전거다. 자전거는 첫사랑의 아날로그 감성을 대변한다. 그들이 청정 무공해 운송수단을 타던 동네는 현재 거주하는 교통지옥 대도시가 아니다. 노보루가 15년 만에, 칸나가 8년 만에 찾는 소도시 혹은 촌마을은 향취마저 변함없다. ‘첫사랑=고향=자전거’ 등식은 마음을 따끈하게 데우는 그때 그 시절을 일깨운다. 작품마다 어른이 된 주인공이 시골에 돌아가 당시를 떠올리는 액자구조를 반복하는 것도 여기에 기인한다. 종종 첫사랑 스토리는 ‘부재(不在)의 미학’으로 이어진다. ‘러브레터’ ‘세상의 중심에서…’처럼 ‘깨끗하고…’는 상실의 상처가 여진을 남긴다. 가슴속 응어리로 남았다가, 그걸 받아들여야만 다음 한 발을 내딛는다. 러브레터의 “오겐키데스카(잘 지내나요)”는 21세기에도 여전하다. 이런 작법은 일본 영화산업의 마케팅 전략이 반영된 결과다. 잘나가는 청춘스타를 출연시켜 10, 20대를 잡고 자극 없는 첫사랑 코드로 중장년층까지 끌어당긴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이런 장르는 대개 대형 방송사 자본으로 제작된다”며 “TV드라마처럼 폭넓은 연령대의 관객을 타깃으로 잡는 일본의 전형적인 청춘멜로 화법”이라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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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찬란한 우주 환상곡

    영화도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던가. 우주는, 슬펐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 ‘메멘토’(2000년)부터 배트맨 시리즈와 ‘인셉션’(2010년)까지 그는 우리를 실망시킨 적이 없다. 그리고 신작 ‘인터스텔라(Interstellar·다음 달 5일 개봉)’를 통해 다시 손을 내민다. 도시와 꿈을 떠나 이제 하늘로 가자고.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도. 언제나 감독은 한계를 몰랐다. 함께 각본을 쓴 동생 조너선은 4년이나 상대성이론을 배웠단다. 세계적 이론물리학자 킵 손이 자문을 맡았다. 그 공력을 끌어다 상상을 펼쳐낼 공간으로 지구는 비좁았다. 카메라는 태양계를 벗어나 다른 차원의 우주로 넘나든다. 때는 머지않은 미래. 지구를 덮친 환경 재앙. 세계 식량 시스템은 파탄 났다. 정부와 경제 역시 유명무실. 과학자보다 농부가 더 요긴한 세상이 됐다. 우주조종사였던 쿠퍼(매슈 매코너헤이)도 옥수수농장 일꾼 신세. 허나 불가사의한 일을 겪다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연이 닿고…. 가족의 만류에도 인류가 이주할 행성을 찾는 프로젝트에 뛰어든 쿠퍼. 브랜드 박사(앤 해서웨이) 등과 함께 토성 근처 웜홀(다른 시공간을 잇는 우주구멍)로 향한다. 상영시간 169분에 이르는 영화는 압도적이다. 거창한 액션이나 분주한 전개가 거의 없는데도 몰입하게 된다. 물론 웜홀이나 블랙홀과 연관된 과학용어는 낯설다. 이를 얼개로 마련한 시공간 개념도 녹록지 않다. 그러나 고요하되 찬란한 우주 환상곡 앞에 멍하니 이성을 놓아버린다. 뭣보다 놀런 감독 특유의 ‘묵시론적 세상에 뿌리는 희망 한 움큼’은 은하계에서도 여전하다. 세상이 등져도 자신은 고담을 놓지 않는 다크나이트처럼. 소수의 인류는 희생을 심어 미래를 싹틔운다. 하지만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든 장본인도 인간이었다. 각자 다른 곳을 바라보는 소신공양(燒身供養·자기 몸을 불태워 공양을 바침)은, 때로 덫이 되고 지뢰가 된다. 우주로 간들 인성(人性)은 변함이 없다. 그런 인류의 부족함을 상쇄시켜 주는 건 다름 아닌 사랑이다. 밋밋하다고? 원래 정답은 그 모양이다. 사람들이 뻔한 길을 두고 돌아갈 뿐. 쿠퍼의 딸(매켄지 포이)에 대한 애정, 딸의 아빠를 향한 그리움은 순수하기에 에너지가 넘친다. 수만 광년이 떨어져도 코끝에 맞닿은 숨결. 희망을 희망으로 버티는 이유는 마음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만큼 참혹한 게 또 있을까. 목숨 같은 자식을 지키려 이별을 택하고, 다시 못 볼 줄 알면서도 손을 흔든다. 인류의 생존? 온기 없는 우주에 내던져진 이에게 제아무리 대의명분을 외친들. ‘별들 사이에서(인터스텔라)’ 인간은 떠도는 부초인 것을. 그래도 떠나야 했던 건 각인처럼 잔인한 사랑 때문이었다. 이제 알겠다. 영화가 왜 이리도 슬펐는지. 예전엔 푸른 별밤이 황홀한 줄 알았다. 허나 아버지가 떠나버린 저 창공이 딸에게도 아름다울까. 우리 곁을 떠난 그들은 어디쯤 가고 있을지. 기약 없이 갔을지언정 먼지로라도 안부를 전해주면 좋으련만. 하나둘씩 별이 진다. 사금파리 세월 한 줌만 남긴 채.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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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촬영 내내 목 메어도 참 행복했소”

    30일 개봉하는 영화 ‘소리굽쇠’는 여러모로 ‘커다란’ 영화다. 규모만 따지면 제작비 3억8000만 원에 불과한 작은 영화지만 담긴 뜻이 크다. 국내에서 일본군 위안부를 다룬 첫 번째 극영화로, 추상록 감독(배우 고 추송웅 씨의 아들)과 배우 조안 김민상을 비롯한 모든 스태프가 노 개런티로 참여했다. 김원동 아시아홈엔터테인먼트 대표가 사재 3억 원을 털었으며, 수익금은 모두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해 쓰인다. 23일 영화에서 위안부 피해자인 귀임 할머니 역을 맡은 조선족 배우 이옥희 씨(56)를 서울 왕십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인터뷰 내용과 영화 소개를 그의 말투를 살려 재구성했다. 배우 이옥희라 함다. 한국 동포들은 내를 잘 모를 검다. 중국서 1978년 데뷔해 연극 공연과 TV 출연을 마이 했소. 2005년에 공적을 인정받아 ‘1급 배우’ 직함을 받았슴다. 우리(중국) 정부 국무원서 대중예술 종사자에게 내리는 거오. 주요 국가행사에 참가하고, 은퇴하면 연금도 나옴다. 조선족 동포들에겐 ‘수이러우(水肉·물고기)’란 별명으로 더 친숙함다. 40년 가찹게 연길 해왔지만, 영화 출연은 ‘소리굽쇠’가 처음임다. 솔직히 현장에서 너무 영어를 써 내 마이 힘이 들었소. 첨엔 ‘액션’ 말곤 당최 알아듣질 못했지. 게다가 영화는 표현이나 동선이 연극과 하도 달라 한참 애를 먹었소. 허나 이리 좋은 영화에 출연을 마다하겠슴까. 시나리오를 탁 보는 순간, 눈물이 멈출 새가 없었는데. ‘소리굽쇠’는 조선족 귀임 할머니와 손녀 향옥(조안)에 대한 얘기임다. 귀임은 일제강점기 방직공장에 취직시켜준단 말에 혹해 중국까지 끌려가 일본군 위안부가 됐슴다. 해방이 되고도 조국에 오질 못해 조선족으로 남았소. 애통한 생애지만서도 유일한 피붙이인 향옥이 삶의 낙이 되어줌다. 근데 할머니를 고향에 모시겠노라 한국에 간 손녀도 운명의 장난에 휘말리고 마오. 마치 하나가 울리면 공명하는 소리굽쇠처럼 기구한 삶이 이어지는 거오. 이까지만 들어봐도 왜 (돈도 안 받고) 출연했는지 알지 않겠슴까. 아직도 가슴에 피멍이 맺혔을 이들에게 우리 세대, 우리 후손들이 어찌 고개 돌릴 수가 있겠소. 그저 한 걱정이라곤 내 부족해 제대로 담지 못할까봐…. 그래도 연극하며 노년 역을 마이 했고, 조선족이니 말투는 살리겠다 싶었슴다. 다만 80대 역할이라 특수 분장을 매일 4시간씩 하는데, 그건 정말 다신 아니 하겠소. 연기하다 목이 메어도 물 한 모금 먹기도 쉽지 않고…. 그래도 촬영 내내 참으로 행복했슴다. 물론 베이징서 차로 3시간 떨어진 과거 일본군 막사로 쓰였던 민가서 찍는데 몸 고생은 말로 못 함다. 근데 한국 사람들 원래 그런지 좋은 일 하는 이들이라 그런지, 왜들 그리 친절하오. 추위에 달달 떨어도 가슴은 따뜻했소. 촬영 마지막 날이 마침 생일이었는데, 내도 까먹은 걸 한 맘으로 축하하는데 그런 정은 처음 느꼈슴다. 소리굽쇠는 그렇게 정이 뭉쳐서 만든 영화임다. 내외 동포 모두가 잊지 말아야 할 얘기요. 뭣보다 (위안부) 할머니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다면…. 글고 좀만 더 욕심내자면, 향옥처럼 한국 와서 고생한 조선족 70만 동포에게도 위로가 되길 바라오. 지금은 처지가 마이 나아졌지만, 한때 가슴에 응어리 맺혀 돌아온 이들이 적지 않슴다. 극중에 향옥이 “한국에선 짱깨, 중국에서는 가오리방쯔(高麗棒子·한국인 비하하는 호칭)”라 되뇌는 장면이 있소. 열악한 처지에도 열심히 사는 동포들, 한국이 마이 감싸주오. 내 그것 이상 바라는 게 없슴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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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실용서]세계 대도시 22곳서 만난 ‘장사의 고수’

    한국 자영업자 인구는 600만∼700만 명. 인구 대비 자영업자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2배란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시대, 생계형 창업이 80% 이상. 허나 보통 3∼4년 버티다 문 닫기 일쑤다. 서울디지털대 경영학부 겸임교수를 지냈던 저자는 유통 현장에서 30여 년을 일한 전문가. 뉴욕 런던 도쿄 상하이 등 세계의 소비 흐름을 주도하는 도시 22곳에서 발품을 팔며 ‘장사의 트렌드’를 살폈다. 하루가 다르게 유행이 바뀌는 대도시에서 오랫동안 가게를 꾸리는 이들의 장사 수완과 전략에 집중했다. 특히 시장이나 뒷골목 점포까지 일일이 찾아가 생생한 현장을 담았다. 성공 노하우를 찾아다니다 보니 책은 아무래도 선진국 위주로 초점을 맞췄다. 그나마 신흥시장 중국에도 많은 할애를 했지만 인도나 남미 같은 제3세계 현장이 없는 건 아쉽다. 게다가 저자 말마따나 그들의 비법을 그대로 따른다고 꼭 국내에서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니. 이래저래 머리 싸맬 일만 늘어나는 거 아닌가 싶긴 해도, 자신만의 길을 찾으려는 이들에게 다양한 사례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꽤나 참고할 내용이 풍부하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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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밥벌이도 못할 줄 알았는데, 이런 날이 오네요”

    “요즘 휴대전화로 주식 시세 들여다보듯 수시로 예매율만 쳐다봐요. 촬영 땐 (주연이란) 부담 없이 즐겁게 찍었는데…. 근데 막상 개봉일이 닥쳐오니 엄청 긴장됩니다.” 23일 개봉한 ‘우리는 형제입니다’(장진 감독)의 주인공 하연 역을 맡은 김성균(34)은 꽤나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소심한 스몰 A형”이라면서도 웃음에 편안함이 묻어나는가 하면, “쓸데없이 잡생각이 많다”는데 얘기는 담박하니 잘도 풀어나갔다. 30년 전 헤어졌다 목사가 된 형(조진웅)과 상봉하자마자 어머니(김영애)를 잃어버리는 예측불허 코미디에서 경상도 박수무당을 소화해서일까. 22일 만난 김성균은 매끄러운 한판 굿처럼 은근슬쩍 사람을 홀렸다. ―조진웅과 함께 처음으로 영화 주연을 맡았다. “고마움과 불안함이 교차한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응사)’ 이후 선택의 폭이 확실히 달라졌다. 어떤 위치에 올랐단 자만이 아니라 연기를 맘껏 할 수 있어 기쁘다. 악역을 하더라도 풍성하게 표현할 기회가 생겼다. 그래도 여전히 차기작 제의가 끊어지진 않을까 걱정이다.” ―동료 배우들과의 호흡은 좋았나. “김영애 선생님이야 존경하는 선배니 말할 나위가 없다. 윤진이(여일 역)랑도 맛있는 거 많이 먹었다. 진웅이 형은, 처음엔 고민 좀 됐다. 사적으로 워낙 친해 몰입이 쉽지 않을까 봐. 근데 촬영 들어가면 형은 눈빛이 확 변한다. 난 발동 걸리려면 시간이 필요한 스타일인데, 형 덕분에 쑥 빨려 들어갔다. 호쾌한 성격이라 잘 이끌어준 점도 고마웠다.” ―영화가 코미디보단 감동 코드가 더 컸다. “목사와 무당 형제니 유머 코드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가족에 대한 간절함에 치중한 흐름이다. 아쉬운 건 내 연기다. 좀 더 덜어냈어야 하는데, 왠지 지저분하게 많이 담으려고 했던 것 같다.” ―배우로서 입지가 달라졌다. “에이, 그 정도는 아니다. 응사 때 반짝했지만 한 달 지나니 똑같더라, 하하. 그래도 덕분에 생활고를 덜어 너무 감사할 뿐이다. 요즘 들어 가족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낀다. 아내도 큰 의지가 되고. 아, 아들이 다섯 살, 세 살인데 길 가는 사람한테 ‘우리 아빠 삼천포예요’ 그랬단다(삼천포는 응사에서 김성균이 맡은 배역). 괜히 쑥스럽고 고맙더라. 한때 연기를 관둘까 고민했던 적도 있다. 근데 김상호 선배가 그랬다. ‘난 내가 밥벌이도 못할 줄 알았다’고. 고생하는 많은 후배들에게 그대로 전하고 싶은 말이다. 나도 밥벌이 못할 줄 알았다고. 근데 이런 날이 오더라고.”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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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꼬고 또 꼬아도 보고 또 보고… 거부할 수 없는 막장의 유혹

    《 ‘보고 또 보고’(1998∼1999년)에서 ‘왔다! 장보리’(2014년)까지. 지난 15년은 한국 드라마 역사에서 독특한 영역을 구축한 시기다. 일명 ‘욕드(욕하며 보는 드라마)’라 불리는 저급한 통속극 ‘막장 드라마(막드)’ 얘기다. 갱도의 끝을 뜻하는 막장을 조소 가득한 수식어로 썼지만, 현재 막드는 시청률을 등에 업고 당당한 장르로 대접받는다. 개연성 제로인 드라마들이 어찌 이런 탄탄한 일국(一國)을 세웠을까. 이영미 성공회대 초빙교수 말마따나 “막드는 사라지지 않는 트로트”인가. 막드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보니 욕먹어 가면서도 죽지 않는 비결이 있었다. 인정하든 안 하든, 끝없는 진화의 노력이다. 》○ 막드 1.0 그리고 2.0 막드란 ‘극단적 여성 인물 중심’ ‘주제의식(권선징악)의 반복’ ‘가족이란 사적 영역에 집중’이라는 기존 통속극의 얼개를 최대치로 밀어붙여 욕하면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장르다. 막드의 원조는 임성한 작가의 ‘보고 또 보고’다. 일일극 역대 1위인 시청률(57.3%)에 TV연기대상까지 휩쓸었지만 겹사돈이란 설정에 과도한 우연성으로 ‘꼬고 또 꼬고’라는 놀림을 받았다. 임 작가와 라이벌 서영명 작가는 ‘인어아가씨’(2002∼2003년) ‘금쪽같은 내 새끼’(2004∼2005년) ‘하늘이시여’(2005∼2006년)를 잇달아 내놓으며 “완성도와 상관없이 폭력에 가까운 자극”(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으로 시청률 지상주의에 편승했다. 막드는 2008년 전후로 새로운 시대로 접어든다. 앞선 두 작가와 함께 ‘막드 4대 천왕’으로 꼽히는 김순옥 작가의 ‘아내의 유혹’(2008∼2009년)과 문영남 작가의 ‘조강지처 클럽’(2007∼2008년)이 ‘막드 2.0’ 시대를 열었다. 40% 안팎의 시청률을 기록한 두 작품은 막드란 용어를 정착시킨 일등공신이다. 막드 2.0은 이전 막장극보다 전개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 5, 6회를 찍을 내용을 1회 분량으로 압축시켜 눈 돌릴 틈을 주지 않았다. 내용면에선 “극단의 일상화”(김헌식 평론가)가 절정을 이뤘다. 남편은 본처가 얼굴에 점만 찍어도 몰라보며, 악행은 정신병자나 범죄자 수준으로 올라섰다. 막드 2.0은 “지상파의 식상한 드라마 제작 행태에 시청자가 염증을 느끼는”(이 교수) 출발점이기도 했다.○ 종합선물세트 막드 3.0 최근 종영한 ‘…장보리’는 또 다른 세대의 막드다. 전문가들은 막장의 기본을 지키면서도 다양한 장르의 혼종교배가 이뤄진 점을 흥행의 원동력으로 꼽았다. 3.0의 새로운 경향, ‘막장의 고품격화’(김 평론가)다. ‘…장보리’의 시청률을 따라 막드 3.0의 특징을 짚어보자(시청률 조사회사 TNmS 자료). 드라마가 15%를 넘어선 건 20회(6월 15일·15.4%)로 주인공 장보리(오연서)의 출생 비밀이 드러난 시점이다. 라이벌 연민정(이유리)이 ‘우연히’ 이 사실을 알아채고, 여느 막장처럼 악녀가 비밀을 쥠으로써 갈등은 깊어진다. 한편에선 로맨틱코미디에서 차용한 장보리와 이재화(김지훈)의 러브라인을 주기적으로 반복해 막장의 외연을 넓혔다. 20%를 넘긴 28회(7월 13일·20.4%)와 25%를 돌파한 36회(8월 10일·27%)에선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고, 누구라도 ‘대장금’을 떠올릴 법한 한복집 경연이 본격화한다. 여기에 주인공 친엄마(김혜옥)도 악당이 되는 ‘변형’과 대장금에서 주인공 이영애의 스승이던 배우 양미경을 장보리의 멘토로 세우는 이종교배가 이뤄진다. 30%마저 넘어선 40회(8월 24일·30.4%)에선 막드의 첫 번째 비책을 확실히 써먹었다. 악녀의 연기 폭발이다. 악녀가 욕먹을수록 시청률도 오르는 법. 연민정은 친엄마(황영희)와 몸싸움하고 양엄마(김혜옥)를 협박하며 갈 데까지 간다. 35.8%를 찍은 마지막 52회(10월 12일)에선 막드의 기본인 ‘권선징악’과 ‘가족의 화합’으로 돌아간다. 막드 3.0은 천인공노할 악질적 범죄까지 다루지만 가족끼리 치고받을 뿐 사회적 국가적 범주로 확대되진 않는다. 그런데 이 회엔 주목할 대목이 있다. 김 작가의 히트작 ‘아내의 유혹’을 오마주(혹은 패러디)한 ‘점만 찍은’ 민소희의 등장이다. 막장이 드디어 자기복제까지 한 셈이다. 막장은 묻는다. “그래, 욕하려면 해봐. 그렇다고 안 볼 거야?”○ 막드란 이름의 공룡 ‘…장보리’에서 보듯 막드 3.0의 경쟁력은 다변화 다각화다. ‘에덴의 동쪽’(2008∼2009년)에서 싹을 틔워 ‘제빵왕 김탁구’(2010년)를 거쳐 지난해 ‘야왕’까지 막드 3.0은 주부용 드라마라는 좁은 시장에서 벗어나 주류로 편입했다. 게다가 권상우 수애 송승헌 같은 특급스타들도 막장코드에 합류하며 ‘막장의 규모화’(정 평론가)를 이끌었다. 막드란 공룡은 언제까지 번성할까. “김순옥 임성한 작가가 건재해 당분간 흐름이 이어질 것”(김 평론가)이란 낙관과 “문화주도층이 케이블과 종편으로 넘어가며 동력을 잃었다”(정 평론가)는 비관이 엇갈린다. 이영미 교수는 막드의 생존력을 ‘뽕짝’에 빗댔다. “트로트도 한때 대중문화의 주류였죠. 이젠 밀렸지만 명맥이 끊어지진 않습니다. 가끔 대박도 나올 거고요. 하지만 시청률에 얽매여 동어 반복을 거듭하는 한 회복하긴 어렵겠죠. 막장의 자기 파괴는 이미 시작됐습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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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의 뇌 과연 믿을 만한가, 도덕심은 위기때도 유효한가

    스페인 출신 감독은 뭔가 묘한 색깔을 지녔다. 영화사에 초현실주의를 도입한 루이스 부뉴엘 감독(1900∼1983)의 나라답게 몽환적 정서도 자연스레 표현한다. 국내에도 팬이 많은 ‘그녀에게’(2002년)의 페드로 알모도바르나 ‘오픈 유어 아이즈’(1997년)의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도 마찬가지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대중에게 친숙한 주류영화 문법을 지키면서도 강렬한 색감과 독특한 설정으로 독창적인 세계를 구현한다”고 평했다. 23일 선보이는 ‘마인드스케이프’와 30일 개봉하는 ‘리턴드’는 이런 전통을 잘 이은 스페인 차세대 감독들의 작품. 마인드스케이프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연출부 출신인 호르헤 도라도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고, 리턴드는 2007년 데뷔한 마누엘 카르바요 감독의 3번째 영화다. 모두 북미지역을 배경으로 영어 대사로 촬영했다.○ 마인드스케이프(Mindscape) 제목을 번역하면 ‘마음의 경치’쯤 된다. 인간의 뇌에 저장된 기억을 보는 수사 기술이 개발돼 사건의 실마리를 찾는다는 설정. 100% 할리우드 자본 작품으로, 지난해 ‘스토커’를 찍은 박찬욱이나 ‘라스트 스탠드’의 김지운 감독처럼 감독만 미국에 건너가 찍었다. 기억수사관 존(마크 스트롱)은 아내가 자살한 아픔을 가진 중년. 어느 날 죽은 아내와 이름이 같은 재벌 딸 애나(터이사 파미가)가 곡기를 끊은 이유를 찾아달란 의뢰를 받는다. 열여섯 살 애나는 천재적 두뇌를 지녔는데 가족에게 정신병자 취급을 받는다. 존은 그의 기억을 살펴보다 충격적인 과거를 마주한다. 이 작품은 스릴러의 외피를 입고 있지만 꽤나 철학적이다. 인간의 뇌란 얼마나 믿을 만할까. 어쩌면 기억도 조작이 가능하지 않을까. 게다가 타인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건 얼마나 큰 책임이 따르는 일인지 슬며시 질문을 던진다. 마인드스케이프는 반전이 기가 막힌 영화는 아니다. 허나 미묘한 표정을 낚아채는 클로즈업과 비린내를 머금은 듯 찌릿한 색채가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뭣보다 안달루시아 언덕에서 꺾어 든 검붉은 들장미 같은 애나의 눈빛이란. 사랑을 잃고 사랑의 감정까지 잊어버린 중년 존의 메마른 말투와 근사한 앙상블을 이룬다.○ 리턴드(The Returned) 역시 제목에 많은 뜻이 담겼다. 말 그대로 ‘돌아온 사람들’. 갑작스러운 좀비바이러스에 감염됐다가 치료제를 맞고 인성을 유지한 이들을 일컫는다. 하지만 완치는 아니고 매일 주사를 맞아야만 좀비가 되지 않는다. 스페인과 캐나다 합작영화로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캐나다 배우들이 출연했다. 케이트(에밀리 햄프셔)는 리턴드 관리 병동에서 일하는 의사. 하지만 남편 알렉스(크리스 홀든리드)도 환자란 비밀은 숨긴 채 산다. 갈수록 사회적으로 리턴드 찬반 여론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만든 치료제 재고량이 얼마 남지 않았단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다. 스릴러와 ‘썸’을 타는 마인드스케이프처럼, 리턴드 역시 전형적인 좀비물과 거리를 둔다. 소재만 갖다 썼을 뿐 딱히 끔찍한 장면도 거의 없다. 영화가 좀비 자체가 아닌, 세상의 반응에 주목했기 때문. 두 영화 모두 독특한 비틀기를 통해 어떤 실체의 이면을 드러내는 데 주력한다. 리턴드는 치료제가 떨어지며 점점 바닥을 보이는 인간의 추악한 도덕심을 제대로 까발린다. 평소엔 우정 사랑 평화를 외치다가도 급할 땐 돌아서는 이들이 얼마나 많나. 감독은 이런 일련의 과정을 감정의 과잉 없이 표현한다. 그게 바로 인간이라고.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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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옛이야기처럼 흥미진진한 베스트셀러 탄생 비밀

    솔직히 이 책은 표지만 보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그간 무슨 책이 많이 팔렸나가 그리 흥미로울까. 저자 말마따나 서구 위주 이야긴데. 프랑스 파리 제5대학 공법(公法) 교수가 16세기부터 현대까지 400권의 풍부한 사례를 들어 베스트셀러를 파악했다는 설명도 거창하지만 하품 난다. 아, 근데 예상 밖으로 이 책 재밌다. 웬 헌법학자가 글을 이렇게 야무지게 쓰는지. 좋은 번역자를 만난 덕도 있겠으나, 딱딱한 소재를 꽤나 위트 있게 풀어간다.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나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 같은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과정을 들려주는 대목은 옛이야기처럼 흥미진진하다. 책의 뼈대라 할 수 있는, 베스트셀러를 바라보는 3가지 관점 역시 상당히 인상적이다. 1부에선 베스트셀러를 정의하는 기준을 살펴봄으로써 역사적으로 베스트셀러라고 불린 작품들의 실체를 조목조목 헤집는다. 2부는 다양한 마케팅과 시대상의 변화들이 어떻게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내는지에 주목한다. 마지막으로 출판이 산업화되며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주체인 독자의 취향은 어떤 식으로 영향을 주고받는지도 들여다본다. 한 가지 재밌는 건 역사적 베스트셀러 1∼15위 목록이다. 누구나 예상 가능한 ‘성서’가 톱인 가운데 ‘꾸란’(3위) ‘모르몬경’(10위) ‘영생으로 이끄는 진리’(11위·여호와의 증인 경전) 등 종교서적이 네 권이다. ‘마오쩌둥 어록’(2위)을 비롯한 정치서적도 네 권이나 된다. “사람들이 책을 읽는 데는, 이 세상에서든 저 세상에서든, 구원을 얻기 위해서 혹은 성공을 일궈내기 위해서 책을 강요당하는 것도 이유가 된다”는 저자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읽는 이에 따라 비율은 다르겠지만, 이 책이 다루는 베스트셀러는 익히 우리가 아는 것과 생소한 것들이 뒤섞여 있다. 당연히 낯익은 책들이 더 반갑긴 하지만, 딱히 모르는 책이라도 구성지게 풀어내 책장 넘기는 맛이 좋다. 뭣보다 그간 책을 고를 때 베스트셀러 목록부터 들여다봤던 습관을 반성하게 만들어줘서 고맙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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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發 스크린 ‘엘 클라시코’

    《 ‘레알 마드리드와 FC바르셀로나.’ 8일 개봉한 ‘5일의 마중’과 16일 선보일 ‘황금시대’는 중국발(發) 거함이다. 장이머우 감독-궁리 대 쉬안화 감독-탕웨이. 더 이상 말이 필요한가. 올해 칸영화제에 초청됐던 5일의 마중과 베니스영화제 폐막작인 황금시대는 11일 막을 내린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에도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둘 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이나 색깔은 다르다. 5일의 마중이 1960∼70년대 문화대혁명의 광풍에 휩쓸려 생이별한 가족의 삶을 시리도록 청량하게 담아냈다면, 황금시대는 1930∼40년대 혼란기 젊은 생을 마감한 여성 작가 샤오훙(蕭紅·1911∼1942)을 담담해서 먹먹한 눈길로 쫓아간다. 》○궁리 vs 탕웨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리오넬 메시가 100% 컨디션으로 맞붙으면 이런 형국일까. 두 배우는 중국 전·현직 챔피언의 타이틀 매치처럼 엄청난 공력을 내뿜는다. 굳이 따지자면, 황금시대의 탕웨이는 레알의 화려한 호날두를 닮았다. 꼬질꼬질한 모양새로 걸신처럼 먹어대도 스타일이 살아 있다. 어떤 장면에서 어떤 자세로 나와도 존재감이 뚜렷하다. 고통 속에서도 자신만의 문학을 짊어진 작가의 회한을 이토록 강렬하게 표현하다니. 유부녀야, 유부녀야 몇 번씩 되뇌다가도 입을 헤 벌리고 바라보게 된다. 올해 한국 나이로 쉰인 궁리는 바르샤의 메시에 가깝다. 완벽한 무게중심을 바탕으로 별 기술 쓰지도 않았는데 수비수들을 제친다. 남편 루옌스(천다오밍·陳道明)와의 헤어짐을 안으로 삭이며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아내 펑완위를 그가 아니면 누가 소화했을까. 그 세월을 살아낸 이들만 아는 깊은 맛이 우러난다. “니들이 게 맛(연기)을 알아”라며 쓰윽 찔러온다. 눈빛도 대단하지만 두 배우의 입매와 몸짓을 주목하길. 거친 풍파를 온몸으로 버텨내면서도 처연하다 못해 순진하기까지 한 입가의 변화는 가히 천의무봉(天衣無縫·선녀 옷처럼 완벽하고 자연스럽다)이다. 또한 아이를 가져 불룩한 배로 땅바닥에 너부러진 샤오훙의 양 다리, 읽지도 못하는 남편의 편지를 쥐어짜듯 들여다보는 펑완위의 어깨는 두고두고 여운이 짙다.○ 장이머우 vs 쉬안화 역시 쉽게 어느 쪽 손을 들어주기 힘들다. 알렉스 퍼거슨과 거스 히딩크 감독이 나섰는데 누구한테 돈을 걸겠나. 다만 한동안 무협물에 매진하던 장이머우 감독이 ‘색감부터 근사한’ 작품으로 돌아와 반가움이 더하다. 2010년 잔잔한 소품 ‘산사나무 아래’가 부활의 신호탄이었다면, 5일의 마중은 밤하늘을 가득 채운 유성비 같다. 5일의 마중은 섬세하고 진중한 화면도 놀랍지만, 박주영의 따봉을 외치게 만드는 건 ‘출전선수 명단’이다. 황금시대가 탕웨이란 원톱 플레이어에 기댄 반면 장 감독은 대형 스트라이커 궁리를 중심으로 천다오밍 같은 걸출한 패스마스터와 딸 단단 역을 맡은 신예 장후이원(張慧雯)이란 날렵한 측면공격수까지 포진시켰다. 역시 인사가 만사다. 중국을 대표하는 여성감독 쉬안화는 전술적 포메이션에 힘을 줬다. 페이크 다큐멘터리처럼 등장인물이 샤오훙을 이야기하는 인터뷰 방식을 썼는데, 지인에게 남은 기억이 켜켜이 짜깁기가 되며 주인공의 다양한 면모를 드러낸다. 또한 이를 시간의 흐름에 얽매이지 않고 교차 편집해 좀더 인물의 내면 자체에 몰입하도록 만든다. 다만 상영시간이 3시간이나 되니 미리 볼일을 봐두길. 자칫하면 골 장면 놓친다. 하나 더. 두 작품 모두 ‘펑펑 내리는 눈’이 근사하다. 황금시대가 온갖 상념과 잡음까지 묻어버린 푸른 눈밭이라면, 5일의 마중은 세월의 생채기가 먼지처럼 뒤엉킨 진회색 눈발이다. 그 속엔 함박눈마저 비집고 나오는 탕웨이, 설경 속에 풍경처럼 동화된 궁리가 관객들을 맞이한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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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인은 1000만 팬 믿고, 항상 새로운 길 개척해 가야”

    “1000만 한국 영화가 10편이나 쏟아질 수 있었던 건 영화인들이 전하려는 메시지와 상업영화가 결합해 관객과 소통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세계 어느 영화 시장에서도 볼 수 없던 전대미문의 일입니다.”(영화 ‘명량’의 김한민 감독) 8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선 영화계에서 쉽게 볼 수 없던 광경이 연출됐다. 한국 영화의 ‘천만클럽’ 회원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안필름마켓이 개최한 포럼 ‘천만 영화를 통해 바라본 한국영화 제작의 현실과 전망’ 참석자들이었다. 천만 영화 10편 가운데 촬영 일정이 있는 ‘왕의 남자’(2005년)와 ‘도둑들’(2012년) 관계자만 빼고 8명의 감독과 제작자가 참석했다. 진행자인 ‘실미도’(2003년)의 제작자 김형준 한맥문화대표를 포함하면 9명이다. 김 대표는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때 이후 이렇게 모인 건 처음 봤다”고 농담했다. 포럼의 열기는 뜨거웠다. 천만 영화란 대박을 내고도 안정된 제작 환경을 누릴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얘기가 많았다. ‘실미도’의 강우석 감독은 “천만 영화 찍어 돈 많이 번 줄 아는데 2, 3년 후엔 다시 적자를 보는 게 영화 시장”이라고 했다. ‘태극기 휘날리며’(2004년)의 강제규 감독도 “천만을 돌파했을 때 (빚을 갚는단) 안도감이 컸다. 하지만 ‘마이웨이’(2011년) 이후엔 더이상 영화 못한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털어놨다.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년)를 제작한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는 “투자 배급사와 극장이 너무 많은 수익을 가져가는 게 문제”라며 △대기업과 제작사의 공정한 이윤 배분 △스크린 독과점 방지 △표준계약서 문화 정착 △투명한 온·오프라인 통합전산망 구축을 과제로 꼽았다. ‘7번방의 선물’(2013년)의 김민기 화인웍스 대표는 “영화진흥위원회가 창의적인 시나리오 개발 시스템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영화계의 불안한 고용 시스템도 화제에 올랐다. 포럼을 듣던 한 여성은 “영화 현장에서 일할 때 월급으로 20만 원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해운대’(2009년)의 윤제균 감독은 “영화가 흥행해도 스태프에게 돌아가는 이득은 크지 않다. 영화 종사자 모두 안정적으로 가계를 꾸릴 수 있는 ‘직장’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한민 감독도 “천만 영화에 기뻐하기보다는 무거운 숙제와 짐을 잔뜩 짊어진 기분”이라고 했다. 중국 영화시장에 대한 기대와 우려도 나왔다. ‘괴물’(2006년)의 최용배 청어람 대표는 “중국 투자자들이 ‘괴물2’ 제작에 관심이 크다. 괴물을 리메이크하자는 제안도 한다”며 “중국은 할리우드 이상의 영향력을 갖게 될 것이므로 상호협력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원 대표는 “몇몇 감독이나 배우를 통한 활로 개척으로는 중국과 평등한 파트너 관계를 맺기 어렵다. 한국 영화계가 힘을 합쳐 시스템을 만들지 않으면 중국의 머니파워에 휘둘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 천만 영화의 저력에 대해 강우석 감독은 ‘뻔뻔함’이라고 정리했다. 그는 “흥행 자체보다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겠다는 뻔뻔한 의지가 필요하다. 영화계와 관객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요구한다. 천만 영화들은 새로운 무언가를 건드렸기 때문에 탄생했다”고 자평했다. ‘변호인(2013년)’의 최재원 위더스필름 대표는 “(내용의 질보다는) 외형 중심의 제작이 만연하고 자본의 논리가 강화된 점은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부산=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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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영화제 ‘다이빙벨 다큐’ 논란속 상영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의 적절성을 놓고 논란이 일었던 다큐멘터리영화 ‘다이빙벨’이 6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센텀시티CGV에서 상영됐다. 영화관 주변에 경찰까지 투입되며 긴장감이 감돌았지만 불상사는 없었다. 영화는 세월호 참사 당시 논란을 일으켰던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의 잠수기구 다이빙벨 투입 과정을 중심으로 세월호 구조작업의 뒷이야기를 다뤘다.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와 안해룡 다큐멘터리 감독이 공동 연출했으며 다이빙벨의 구조 실패가 정부 외압에 따른 지속적 방해 탓이란 주장을 담았다. 이 기자는 영화 상영 후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서 “정부와 언론이 자신들의 과오를 덮기 위해 숨겨 왔던 진실을 고발하려 영화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안 감독은 “많은 사람이 영화를 보고 세월호에 대한 관심을 되살릴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대표 변호에만 치중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정확한 답을 하지 않았다. 영화에도 정부 측 반론이나 당시 다이빙벨 투입 실패에 분개했던 유가족 반응 등은 담기지 않았다. 이 영화는 영화제에 초청됐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부터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부산영화제 측은 전날 “지금까지 외압에 의해 상영을 취소한 사례가 없다”며 “비판할 수 있으나 작품도 보지 않고 그런 요구를 하는 건 영화제의 정체성과 존립을 위협하는 행위”라고 밝혔다. 부산=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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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순례 감독 “특정인 비난 아닌 정의 찾기 노력”

    “이 영화에서 제보자는 이장환 박사(이경영)의 비리를 폭로하는 심민호 팀장(유연석)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윤민철 PD(박해일)처럼 세상의 거친 파도 속에서도 진실을 붙잡을 수 있는 사람은 모두가 제보자가 아닐까.” ‘황우석 사태’를 소재로 한 ‘제보자’가 개천절 연휴인 3∼5일 56만여 명을 동원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2일 개봉해 누적 관객 수는 69만2549명. 최근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에서 만난 임순례 감독은 실제 사건을 다룬 영화여서인지 “누군가를 겨냥한 비난보단 정의를 찾으려는 노력과 그 과정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라며 조심스러워했다. ―당시 사건이 안 떠오를 수가 없다. “그냥 옛일을 얘기하려 했다면 다큐멘터리를 찍었겠지. 굳이 따지자면 실제가 6, 허구가 4 정도?” ―처음엔 감독 맡기를 망설였다고 들었다. “이런 민감한 소재를 덥석 물 성격이 아니다. 하하. 어떻게 만들어도 시끄러울 텐데. 근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 당시 사실을 밝힌 이들은 진실을 알리려 큰 희생을 치렀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 영화로 인해 짊어질 짐은 그에 비하면 하찮은 것이었다. 어떤 특정 사안보다 이를 통해 함께 공감할 보편타당한 얘길 하고 싶었다.” ―이 영화가 전하려는 보편성은 무엇인가. “다양한 가치관이 공존하며 가끔 과연 무엇이 진실인지 혼탁해진다. 그렇다고 거짓이 진실 위에 군림할 순 없다. 극영화가 리얼리티를 확보하는 순간도 그런 진정성이 깔려 있을 때가 아닌가. 한국사회는 참 많은 일이 벌어진다. 어쩌면 20세기 성과주의가 임계치에 다다르며 벌어지는 현상이 아닐까 싶다. 이 작품 역시 그런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함께 고민해보자는 취지였다. 거기에 진실이 담겨 있지 않나.” ―이 박사 캐릭터는 입체적인데, 윤 PD와 심 팀장은 다소 평면적이다. “이 박사는 악인인데, 그런 흑백의 잣대로 접근하고 싶지 않았다. 내적 면모를 드러냄으로써 동전의 양면을 두루 보여주고 싶었다. 반면 나머지 둘은 이 영화의 주인공 아닌가. 관객 입장에선 기본적으로 ‘우리 편’이라고 믿고 가는 측면이 있다. 그 시선이 그들의 고민과 갈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것이라고 봐서 다소 심플하게 표현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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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욕심 버리고, 내 틀을 깬 102번째 영화… 가슴 설레긴 처음”

    “102번째 영화 ‘화장’은 지금까지 해오던 것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심정으로 찍었습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차곡차곡 쌓여온 무언가를 돌이켜보는 작업이었다고나 할까요.” 여든을 바라보는 거장의 눈빛이 어찌 그리 새근할 수 있을까. 5일 부산 해운대구 월석아트홀에서 만난 ‘한국의 대표 감독’ 임권택 감독(78)은 영화 101편을 찍었다는 사실을 잊기라도 한 것 같았다. 감독 자신도 “이렇게 관객 반응이 궁금했던 적은 처음”이라면서 “일일이 묻고 싶을 정도”라며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이날 언론에 공개한 ‘화장’은 2004년 이상문학상을 받은 김훈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투병하는 아내(김호정)에게 헌신하면서도 젊은 부하 직원(김규리)에게 흔들리는 오상무(안성기)의 내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죽음과 욕망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담았다는 평을 받으며 올해 베니스와 토론토, 밴쿠버 등 여러 국제영화제에 초청됐다. 임 감독은 “칸에서도 제의가 왔는데 당시 시간적 제약으로 완성된 편집본을 보내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그간 찍은 영화에선 언제나 ‘한국적인 것’을 담으려 노력했습니다. 어디서 상이라도 받으면 더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있을 거란 욕심도 있었죠. 나이 들어 보니 인생에서 욕심이란 끝이 없어요. 하지만 이번엔 훌훌 털어버렸습니다. 살아온 나이만큼 보이는 세상을 담담하게 담으려 했습니다. 편집도 이전과 달리 아주 젊은 전문가와 함께 공을 들였죠.” 작업은 쉽지 않았다. 임 감독은 “촬영 때 아픈 적이 없었는데, 이번엔 한 달 정도 앓아누웠다”며 “뭣보다 작가가 만든 문장의 힘을 영상으로 옮기는 게 녹록지 않았다”고 말했다. 차기작에 대해서는 “흥행도 안 되는 감독이 맘대로 찍을 수 있겠냐”며 웃어넘겼다. 이날 기자회견엔 배우 안성기 김규리 김호정 씨도 참석했다. 안 씨는 ‘취화선’(2002년) 이후 12년 만, ‘하류인생’(2004년)에 출연한 김규리 씨는 10년 만에 임 감독과 다시 작업했다. 두 사람은 “안 불러줄까 걱정이지 누구라도 영광스럽게 응할 것”이라며 “촬영이 쉽지 않지만 임 감독의 영화는 언제나 배우고 얻는 게 있다”고 말했다. 한편 시한부 아내 역을 소화한 김호정 씨는 회견 도중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그는 2001년 영화 ‘나비’로 스위스 로카르노 국제영화제 청동표범상(여우주연상)을 받았던 배우. 이후 활동이 뜸했던 이유가 건강 문제였다고 털어놓았다. 김 씨는 “오랫동안 아팠던 기억 탓에 출연을 고사하려다 운명인가 싶어 받아들였다”며 “투병 장면을 찍으며 노출이 상당했지만 영화적 완성도를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여겼다”고 말했다.부산=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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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당댁’ 탕웨이 부산국제영화제 참석… “좋은 남편 만난 지금이 내 황금시대”

    “태용과는 정말 행복합니다. 우리의 만남은 큰 행운이에요. 특히 저에게 그렇죠. 관객들까지 아끼고 성원해 주시니 저의 ‘황금시대’는 지금입니다.” 대륙의 여신은 부산에서도 여신이었다. 김태용 감독(45)과 경기 성남시 분당에 신접살림을 차려 국내 팬들에게 ‘분당댁’으로 불리는 탕웨이(35)는 2일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때부터 가장 주목받았다. 3일 오후 그가 출연한 쉬안화 감독의 ‘황금시대’ 기자회견이 열린 부산 해운대구 우동 월석아트홀엔 몇 시간 전부터 기자들이 몰렸다. “안녕하세요. 탕웨이입니다”란 한국어 인사를 건넨 그는 기자들의 다양한 질문을 여유롭게 받아넘겼다. 특히 최고 관심사인 결혼생활에 대해선 구체적 답변은 피하되 솔직한 감정을 드러냈다. 영화 속 주인공인 여성작가 샤오훙(蕭紅·1911∼1942)이 1930년대 혼란기에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31세에 폐결핵으로 요절한 것과 비교해 가며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란 말을 여러 차례 되뇌었다. 영화 ‘만추’(2010년)에서 배우와 감독으로 만난 새신랑과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하고 같은 영화인으로서도 많은 교감을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인기 있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엔 잠깐 머리를 긁적인 뒤 한국말로 “감사합니다”라며 말을 골랐다. “전 작품을 통해 스스로를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는 ‘여자아이’일 뿐이에요. 1979년생이 애라고 말해서 죄송하지만, 그저 연기를 좋아하는 배우입니다. 제게 영화는 꿈이자 신앙이죠. 영화 현장에서 일하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팬들의 사랑까지 받으니 더 바랄 게 없어요.” ‘황금시대’에선 작가 샤오훙이 “나는 정치를 모른다. 오직 글쓰기만을 바란다”고 말하는 내용이 나온다. 탕웨이도 2007년 찍은 ‘색, 계’가 정치적 소재를 다뤘다는 이유로 정부의 외압을 받았다. 그는 “배우는 좋은 작품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영화를 찍을 수 있다면 다른 어려움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쉬안화 감독은 “시나리오 작가가 처음부터 탕웨이를 염두에 뒀다. 나 역시 그의 눈빛과 움직임이 샤오훙 역에 가장 잘 어울린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고 평가했다. 올해 부산영화제는 과거 신인 여배우들이 노출 경쟁을 벌였던 레드카펫을 폐지하는 등 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다소 산만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개막작인 대만 영화 ‘군중낙원’은 매춘부를 직접적으로 다룬 성인물이었는데 청소년도 볼 수 있는 야외상영을 해 비판을 받았다.부산=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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