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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치러진 튀르키예(터키) 대선이 박빙 승부 끝에 결선 투표로 이어지면서 28일 투표일까지 ‘혼란의 2주’가 될 것으로 보인다. 1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과 2위 6개 야당 단일후보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공화인민당(CHP) 대표 모두 결선 투표에서 최종 승리를 장담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할 3위 시난 오안 승리당 대표는 양측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형국이다. 선거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금융시장의 변동성 또한 증폭되고 있다. 러시아와 미국까지 자신들과 노선이 비슷한 에르도안 대통령,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를 사실상 각각 지지하고 있어 결선 투표는 ‘세계적인 정치 이벤트’가 될 전망이다. ● 몸값 높아진 ‘킹메이커’ 오난오안 대표는 15일 현지 방송에 출연해 조만간 결선 투표에서 누구를 지지할지 밝히겠다며 “(나의 결정이) 결선 투표의 승자를 가를 것으로 확신한다”고 자신했다. 그는 “정치 의제에 대한 만남과 토론은 자연스럽다”면서 두 후보와 직접 만나 자신의 조건을 협상하는 방안도 배제하지 않았다. 1차 투표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49.5%,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는 44.9%를 얻었다. 양측 격차가 4.6%포인트에 불과해 5.2%를 얻은 오안 대표의 ‘몸값’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오안 대표는 강력한 반(反)난민, 반쿠르드족 성향이어서 이들에게 온정적인 클르츠다로을루 대표에게 비판적이다. 동시에 에르도안 대통령이 ‘정교분리’의 건국 이념을 위배하고 ‘신정일치’ 노선을 걷는 것 또한 비판하고 있다. 그는 15일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난민을 원래 국가로 돌려보내야 한다. 클르츠다로을루 대표가 친쿠르드 정당과 갈라서겠다고 동의할 때만 그를 지지할 것”이라고 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에게는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세속주의 원칙을 지키라”고 촉구했다.다만 오안 대표의 지지층은 에르도안 대통령에 좀 더 가깝다. 1차 투표와 같은 날 치러진 총선에서도 집권 정의개발당이 전체 600석 중 과반이 넘는 322석을 확보한 상태다. 이런 현실을 감안할 때 그가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자신의 요구 조건을 계속 압박한 후 최종 지지를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20년을 집권하며 미디어를 통제해왔기 때문에 결선 투표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실제 에르도안 정권은 앞서 야권의 주요 선거 수단인 소셜미디어를 통제하고 야당 인사 12명의 계정까지 차단했다. ● 금융시장 요동…미-러도 촉각 금융시장도 불확실성에 요동치고 있다. 15일 이스탄불 증권거래소는 개장 전 지수가 6.4% 급락하자 약 35분간 거래 중단을 위한 ‘서킷 브레이커’를 발동했다. 이날 정규장은 전거래일 대비 6.1% 하락했다. 리라 가치 또한 하락세를 거듭했다. 같은 날 리라 가치는 미 달러 대비 19.7리라까지 떨어져 2개월 최저치를 기록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집권 기반인 서민층의 환심을 사기 위해 물가 안정 대신 성장을 우선하고 있다. 전 세계적인 금리 인상 기조에 역행하며 중앙은행에 금리 인하를 압박해 리라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진영과 러시아는 튀르키예 대선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에르도안 정권은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친러 노선을 고수한 반면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는 친서방 노선이다. 미 CNN은 ‘스트롱맨’ 에르도안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민주주의 확산’을 중시하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타격을 입을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은 내정 간섭으로 비칠 우려에 “나는 그저 이기는 사람이 이기기를 바란다”며 말을 아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대통령실) 대변인 또한 “어떤 상황에서도 러시아와 터키의 협력이 지속될 것”이라고 했다.카이로=강성휘 특파원 yolo@donga.com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
세계 1위 경제대국인 미국은 정부 부채의 한도를 의회가 승인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미국은 정부가 벌어들이는 돈보다 지출이 많은 만성적인 재정적자 국가다. 탄탄한 국가 신용과 대표적 기축통화인 달러화를 기반으로 엄청난 규모의 국채를 발행하지만 추후 국채를 갚지 못하거나 이자 지급을 못 하면 ‘국가부도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정부가 과도한 빚을 내지 않도록 의회가 국가부채 상한선을 통제하도록 한 것이다. 미 의회는 조 바이든 정부 취임 첫해인 2021년 12월 협상을 통해 국가부채 한도를 2조5000억 달러(약 3340조 원) 늘린 31조4000억 달러(약 4경1878조 원)로 책정했다. 그러나 올 1월 다시 부채 한도에 도달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시급성이 떨어지는 지출은 뒤로 미루는 등 특별 조치를 통해 일부 통제에 나섰지만 이마저 한계에 봉착한 상태다. 이에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의회 지도부에 부채 한도를 올리지 않으면 다음 달 1일로 미연방 정부가 ‘디폴트 사태’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와 의회 간 부채 한도 상향 협상은 난항을 겪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9일(현지 시간) 공화당 소속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 등 의회 지도부와 1시간가량 만났지만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12일로 예정됐던 바이든 대통령과 의회 지도부 간 2차 회동도 15일 이후로 연기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부채 한도를 조건 없이 올려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공화당은 “부채 한도 상향 조건으로 정부가 지출을 삭감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백악관은 디폴트 우려가 커지자 지출 삭감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선회했지만 세부 내용을 놓고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소식통을 인용해 “백악관이 부채 한도 상향과 관련해 2년 동안 지출 수준을 제한하겠다고 제안했지만 공화당이 백악관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10일 연설에서 “부채 한도를 상향하지 못하면 미 경제뿐 아니라 세계 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 “공화당이 하원을 장악하고 부채 한도 상향에 반대하면서 경제를 인질로 잡고 있다”고 주장했다.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
한국 정치의 수준은 왜 나아지지 않을까? 대통령, 국회의원 선거를 각각 두 번씩 취재하며 가졌던 의문입니다. 닫힌 섬과 같은 여의도만 보고선 해답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시야를 넓혀 세계 각국의 정치 현실을 살펴보고 한국 정치와 신랄하게 비교하겠습니다. 때로는 ‘우리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는 위로를, 때로는 우리 정치의 품격을 높일 해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언젠간 K팝, K드라마, K푸드처럼 K정치도 호평받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최근 일본에서는 여성 정치인 대상 성범죄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올해 1월 거리 연설을 하고 있던 모델 출신 여성 정치인에게 사진을 찍자며 접근해 껴안으며 입을 맞춘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지난해 6월에는 이노세 나오키 전 도쿄도지사가 유세 중 같은 당 여성 후보의 어깨, 가슴을 만지는 영상이 온라인에 퍼지며 성추행 논란에 휩싸였습니다.여성 정치인 대상 범죄가 늘어나자 올해 2월에는 ‘여성의원 학대 상담센터’가 개설됐습니다. 센터가 진행한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 도쿄도의원은 “남성 유권자와 악수할 때 팔과 겨드랑이까지 손이 올라오는 일이 다반사였다”며 “밤에 술 취한 사람에게 강제로 안겼던 적도 여러 번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오죽하면 일본 내각부는 지난해 4월 실제 있었던 성적 괴롭힘 사례 1324건을 바탕으로 정치인 학대 방지 드라마를 제작해 유튜브에 공개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여성 정치인은 ‘여자는 젊고 예쁘면 정치인이 될 수 있다’는 모욕을 듣고, 남자친구가 있냐는 SNS 메시지를 수시로 받고 있습니다.● K정치에는 문소리도 김희애도 없다지난달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퀸메이커’는 비영어권 TV 부문 1위를 차지하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극 중 문소리 배우는 서울시장 선거에 뛰어든 인권변호사 오경숙 역할을, 김희애 배우는 오 변호사의 서울시장 선거를 진두지휘하는 ‘퀸메이커’ 황도희 배역을 연기합니다. 여성이 정치의 주역으로 등장해 현실 세계의 암투를 극복하는 모습이 펼쳐집니다. K정치의 현실은 드라마와는 다릅니다. 지난해 대선에서 여성 유력 후보는 없었습니다. 국민의힘은 여성 후보가 단 한 명도 출마하지 않았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후보,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출마했지만 선거에서의 존재감은 미약했습니다. 우리나라 21대 국회의원 당선자 300명 중 여성은 57명으로 19%입니다. 21대 국회에서 역대 최다 여성 당선자가 나왔음에도 지난달 기준 세계 평균인 26.8%보다 낮습니다. 국제의회연맹(IPU)이 193개국 중앙의회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을 집계해 순위를 매긴 자료를 보면 한국은 2018년 기준으로 전 세계 120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전통적으로 여성 후보에게 인색한 지방 권력으로 가면 상황은 더 열악합니다. 지난해 지방선거를 통해 당선된 17명의 광역단체장 중 여성은 한 명도 없었고, 기초단체장은 전체 226명 중 7명에 그쳤습니다. 여성 할당제가 적용된 비례대표를 제외하면 광역지역구의원 14.8%, 기초지역구의원은 25%만이 여성입니다. 국회의 경우 4~9급 보좌진 3명 중 1명은 여성입니다. 가장 높은 자리인 4급 보좌관은 7~8명 중 1명만이 여성입니다. 대신 9급 비서관 10명 중 6명이 여성입니다. 하급일수록 여성 보좌진의 비율이 높고, 위로 올라갈수록 낮아지는 피라미드 구조가 여전합니다. ● 학연‧지연‧혈연…네트워크 소외되는 여성들정치는 어느 분야보다도 연줄과 조직력이 중요한 영역입니다. ‘공천이 생명’인 정치인으로서는 숙명과도 같은 일이죠. 여성 정치인을 가로막는 장벽도 여기서 발생합니다. 여성 정치인 대부분은 연줄의 크기와 강도가 약합니다. 지역구에서의 조직 동원 능력도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편이죠. 그렇기에 주로 대중적인 인지도에 의존해 정치적 경력을 쌓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국민의힘에서 인지도가 높은 한 여성의원과 식사를 하면서 이 주제를 두고 대화를 나눴습니다. 해당 의원은 이런 설명을 내놨습니다. “여성 의원들은 남성 의원보다 상대적으로 학연, 지연, 혈연에 기대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선거 때 자신을 도와준 이들의 조직적 도움이나 대중적 인지도가 유일한 정치적 자산이다. 결국 이 두 집단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하는데, 그러려면 크고 작은 선거에 계속 출마해야 한다. 준비도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잦은 출마를 하다 보면 실수를 하거나 한계를 드러내게 된다.”미 워싱턴포스트는 한국의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분석한 기사에서 “(한국은) 일반적으로 높은 인지도와 강력한 지원 네트워크를 가진 후보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는 여성 후보자에게 도전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여성 보좌진의 경우도 한국 사회 특유의 학연, 지연에 따른 네트워크 형성 과정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입니다. 국회에는 학벌, 지역, 나이 등으로 이뤄진 크고 작은 모임이 정말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국회 특성상 승진, 선거 캠프 파견, 외부 기관 취업 등 이동이 잦기 때문에 나를 끌어줄 수 있는 사람과의 우호적 관계는 필수입니다.사적 모임은 대부분 남성 보좌진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만나 정보를 교류하고, 네트워크를 쌓습니다. 남성 중심 술자리 문화에서 여성 보좌진은 소외되는 편입니다. 여성 보좌진의 경우 결혼과 출산, 육아가 발목을 잡는 경우도 있습니다.물론 여성 정치인 개개인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민주당 일부 여성 의원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비서 성추행 사건 당시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으로 규정했습니다. 최근 박 전 시장을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다큐멘터리가 제작됐지만 2차 가해의 문제를 짚는 민주당 여성 의원은 없습니다.‘젠더 문제’에 대한 정체성과 소신은 없어도 외모를 앞세워 소위 ‘얼굴마담’을 자처하는 의원은 심심찮게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과 유사한 캐릭터의 후배 여성 정치인을 잠재적 경쟁자로 생각해 음해하고 싹을 자르곤 하죠. 지금 고위직에 있는 한 여성 정치인은 자신과 비교될까봐 여성 보좌진에게 화장을 진하게 하거나 화려한 옷을 입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하지만 정치 현장에서 여성 정치인이 겪는 일을 취재해보면 단순히 개인의 문제만을 탓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미투운동을 거치면서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여의도 정치권에서 여성 보좌진, 당직자를 상대로 한 성범죄는 꾸준히 일어났습니다. 한 여성 대변인은 회식 자리에서 남성 고위 당직자에게 “분 냄새가 좋으니 가까이 와서 앉으라”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여성 보좌진은 “영감(의원)이 자꾸 저녁 늦은 시간에 따로 술자리로 불러내 고민”이라고 토로했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여성할당제, 여성가족부 폐지 등 반페미니즘 관련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사회를 이끌 리더라면 할당에 기대는 게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능력을 인정 받아야 한다는 지적은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성이 남성 정치인보다 차별적 대우를 받거나 불공정 경쟁에 놓이는 현실도 함께 논의해야 공평한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193개 유엔 회원국 여성 수반은 13개국뿐중국을 제치고 전 세계 인구 1위 국가로 등극한 인도는 전통적으로 가부장적 사회 질서를 바탕으로 여성의 성역할을 제한해온 나라입니다. 올해 3월 인도 유력 영자 일간지인 인디언 익스프레스(Indian Express)가 분석한 인도 여성 정치의 현실은 K정치와 묘하게 닮았습니다. 2021년 10월 기준 인도에서 전체 국회의원 중 여성은 10.5%입니다. 인도 주와 연방 자치령 전체에서 여성 장관은 3명뿐입니다. 내무부, 재무부, 국방부, 인사부 장관에는 한 번도 여성 장관이 임명된 적이 없습니다. 여성은 사회복지, 문화, 여성 및 아동 청소년과 같은 소위 ‘부드러운’ 부처에 써야 한다는 일반적인 인식이 있다고 합니다. 인도 여성 정치인은 제한된 네트워크 속에서 불평등한 기회에 놓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 어려운 근무 조건도 정치 참여를 주저하게 하는 요인입니다. 온라인상의 폭력과 괴롭힘으로 인해 정치적 발언을 하기 어려운 여건도 있다고 합니다.전 세계적으로도 올해 3월 기준으로 193개 유엔 회원국 중 여성이 정부 수반으로 있는 국가는 13개국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59개국만이 여성 지도자를 배출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일각에서는 정치에 도전하는 여성의 절대적 숫자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에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교육 수준이 비슷하고 공직을 맡은 경험도 유사한 남성과 여성에게 ‘선출직에 도전할 의사가 있냐’고 물어보면 남성의 긍정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결과가 성별에 따른 도전 정신의 차이를 의미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박지현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당의 대선 패배 이후 비대위원장이 되면서 온갖 음해에 시달렸습니다. “정치 욕심에 눈이 멀었다” “당에 의전 차량을 요구했다” “벌써 공천을 노린다” 등등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풍문으로 떠돌았습니다. 26세 여성의 벼락출세를 시기하는 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박 전 위원장을 공격하고 나섰습니다.박 전 위원장은 지난해 7월 자신의 SNS에 “민주당 동작갑 권리당원이라고 밝힌 한 남성 유튜버가 제가 사는 집이라며, 어떤 주택 앞에 서서 1시간가량 저를 비난하는 공개 스트리밍 방송을 했다”고 토로했습니다. 대학생 시절 디지털 성착취물 N번방의 제작‧유포자를 추적했던 박 전 위원장은 정치권 입문 후 오히려 사이버공격과 협박의 피해자가 됐습니다. 대선에서 2030 여성을 결집시켰던 박 전 위원장은 지금 정치권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여성 정치인에 대한 차별이 계속되는 한 남성보다 정치 참여가 낮을 수 밖에 없습니다. 여성 정치인의 능력이나 도전 정신을 탓하기에 앞서 능력 있는 여성이 도전하고 성장할 수 있는 정치 환경을 고민할 때입니다. 이것이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꺼낸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보다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사진)이 20여 년 전 성추행 사건에 대한 민사소송에서 패소해 500만 달러(약 66억 원)를 배상하게 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성추문 입막음’ 사건으로 올해 3월 미 전·현직 대통령 중 최초로 기소된 데 이어 다른 민사재판에서 성추행으로 배상 평결까지 받은 것이다. 미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현재까지 12명이 넘는 여성들이 트럼프 전 대통령을 성추행 등 혐의로 고소했는데 법원에서 책임이 인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내년 미 대선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리턴 매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되고 있다.● 배심원단 “성추행 사실로 인정돼” 뉴욕남부연방지법 배심원단은 9일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해 성추행과 명예훼손을 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만장일치로 평결했다. 배심원단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성추행과 폭행에 202만 달러, 명예훼손에 298만 달러 등 총 500만 달러를 엘리자베스 진 캐럴에게 배상하라고 명령했다. NYT 등에 따르면 패션잡지 칼럼니스트 캐럴은 1995년 말 또는 1996년 초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여자친구 선물을 고를 수 있게 도와달라면서 뉴욕 맨해튼 버그도프 굿맨 백화점의 속옷 매장으로 데려간 뒤 탈의실에서 성폭행했다고 주장했다. 캐럴은 사건 발생 후 20여 년이 지난 2019년에 회고록과 언론을 통해 이를 폭로했다. 이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그 여성은) 내 스타일이 아니다”라며 범행을 부인하자 캐럴은 지난해 11월 성폭행 및 명예훼손 등 피해를 입었다며 민사소송을 냈다. 남성 6명, 여성 3명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성폭행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성추행은 사실로 인정된다고 평결했다. 또 지난해 10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성폭행을 부인하며 자신이 만든 소셜미디어인 트루스소셜에 ‘완전한 사기극’ ‘거짓말’ 등 표현을 사용해 캐럴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결론 내렸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캐럴 측은 관련 증거로 캐럴이 당시 트럼프와 만난 직후 대화를 나눈 2명의 증언, 속옷 매장 위치에 대한 캐럴의 설명이 실제와 부합한다고 확인해준 백화점 직원의 증언 등을 제시했다. 1987년 한 행사장에서 두 사람이 함께 찍힌 흑백 사진도 배심원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 트럼프는 사진 속 캐럴이 자신의 두 번째 부인이라고 진술한 적이 있는데 ‘(캐럴이) 내 스타일이 아니다’라던 트럼프가 약 7년간 결혼 관계를 유지했던 전 부인과 캐럴을 혼동할 정도라면 트럼프의 해명에 신빙성이 없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평결 직후 트루스소셜에 “나는 이 여성이 누군지 전혀 모른다. 역사상 가장 큰 마녀사냥의 연속”이라고 주장하며 항소 입장을 밝혔다. 캐럴은 성명을 통해 “마침내 세상이 진실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바이든 지지율 답보, 트럼프 연이은 악재 내년 대선에서 리턴 매치가 유력한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나란히 악재를 겪고 있다. 7일 워싱턴포스트(WP)와 ABC방송 공동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업무 수행 지지율은 36%에 그쳤다. 올 2월 같은 조사에서 42%를 기록했는데 이보다 6%포인트 하락해 역대 최저치를 경신했다. 바이든과 트럼프가 맞붙는다면 누구를 택하겠느냐는 질문에는 응답자 44%가 트럼프를 꼽았다. 바이든은 38%에 그쳤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성추행 의혹까지 사실로 인정되면서 대선 행보에 난관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백악관 공보국장을 지낸 얼리사 페라 그리핀도 트위터에 “트럼프는 이 나라에서 가장 높은 공직을 맡을 자격이 없다. 공화당원은 그에게서 떨어질 도덕적 용기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다만 잇따른 악재로 공화당 지지층이 결집하면서 당내 경선에 미치는 영향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모닝컨설트가 5∼7일 공화당 예비 유권자 357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트럼프는 60% 지지를 받아 19%에 그친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를 크게 앞섰다.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
“처음엔 잘못 본 줄 알았어요.” 지난달 20일 오후 11시 반경 충남 금산군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 밤늦게 차를 운전해 귀가하던 회사원 이관범 씨(52)는 주차장에 진입하다 차를 세웠다. 주차장 입구 쪽에 세워진 1t 트럭에서 불길이 치솟으면서 주차장 천장으로 번지고 있었던 것. 설상가상으로 트럭 맞은편에는 전기차 충전기가 있었다. 서둘러 불길을 잡지 않으면 주차장 전체로 불이 번질 것으로 보였다. 이 씨는 문득 자신의 승합차 트렁크에 차량용 소화기가 있다는 걸 떠올렸다. 119에 신고한 후 곧바로 소화기를 꺼내 분사를 시작했다. 내심 ‘소화기 한 대로 불이 잡힐까’ 싶었지만 약 1분 만에 불길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현장에 출동한 금산소방서 관계자는 “차량 화재 골든타임은 불이 난 후 5분이다. 이 씨의 차량용 소화기 덕분에 큰 사고를 막았다”며 감사를 표했다.● “화재 초기 소화기는 소방차 한 대 위력” 소방청에 따르면 지난해 차량 화재로 인한 사상자는 219명, 재산 피해는 약 641억 원에 달했다. 최근 5년 중 가장 피해가 컸다. 소방청 관계자는 “등록 차량이 늘면서 노후 차량과 전기차 등 신형 모빌리티가 동시에 증가한 탓”이라고 했다. 차량 화재는 초기 대응에 실패할 경우 대형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9월 7명의 사망자를 낸 대전 유성구 현대프리미엄아울렛 화재는 지하주차장에서 시동을 켠 채 정차해 있던 1t 화물차의 배기구가 과열돼 불이 붙으며 시작됐다. 지난해 12월 발생한 경기 과천시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 역시 5t 폐기물 운반용 집게 트럭에서 시작된 불이 터널로 번지며 5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소방당국은 화재 초기 진압에 가장 중요한 것이 차량용 소화기라고 지적한다. 한국소방산업기술원의 실험에 따르면 차량 엔진룸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3∼5분 만에 엔진룸 내부 전체로 불길이 번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분이 지나자 엔진룸을 넘어 운전석으로까지 불길이 확산됐다. 한 시간가량 지나면 차량은 전소돼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가 됐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차량용 소화기가 있으면 소방차 현장 도착 전 조기 진화에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 차량용 소화기를 ‘차 안의 최종 보험’이라고 부르는 이유”라고 했다. 소방청에 따르면 7인승 이상 차량에 비치되는 차량용 소화기는 평균 무게 0.7kg, 높이 24cm가량이다. 용량은 일반 분말 소화기(무게 3.3kg, 높이 38cm)의 20%에 불과하지만 진화 능력은 일반 소화기의 3분의 1 이상이다. 소방청 관계자는 “최근 나오는 소화기는 소형화·첨단화돼 초기 진화 때 소방차 한 대 이상의 위력을 발휘한다”며 “차량 화재뿐 아니라 일반 건물 화재 상황에서도 약 100㎡ 면적(약 30평)까지 진화가 가능하다”고 했다. 차량용 소화기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분말형 또는 스프레이형을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최근에는 소화기와 탈출용 망치 등으로 구성된 차량용 화재안전키트도 판매되고 있다.● “차량용 소화기 설치 전 차종으로 확대해야” 차량용 소화기의 효과는 이미 다양한 현장에서 입증됐다. 지난해 10월 충남 아산시의 한 도로에서 불이 붙은 트럭을 보고 지나가던 덤프트럭 차주가 자신의 차량용 소화기를 꺼내 진압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덤프트럭 차주의 활약으로 소방차 현장 도착 전 불길이 모두 잡혔고, 화재 차량에 실린 2억 원 상당의 건설 기계도 무사했다. 지난해 5월에는 경남 창원의 완암터널 입구에서 침대 매트리스를 싣고 운행하던 트럭에서 불이 발생했는데, 운전자가 지나가던 탱크로리 운전자로부터 차량용 소화기를 구해 화재를 초기에 진화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차량용 소화기 설치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법에 따르면 7인승 이상 차량은 지금도 차량용 소화기를 의무 설치해야 한다. 실제로 해당 차종은 이미 신차 출고 때 차량용 소화기가 설치된 채로 운전자에게 인도된다. 그럼에도 매년 1만5000대 이상이 정기검사 때 소화기를 설치하지 않았거나, 유통기한이 지난 소화기를 설치했거나, 설치 방법이 기준과 다르다는 이유로 시정권고를 받고 있다. 일부 운전자는 과태료 등 처벌조항이 없다는 이유로 시정권고를 무시하기도 한다. 또 내년 12월부터 차량용 소화기 의무 설치 대상이 5인승 이상 차량으로 확대되는데 여전히 상당수 국민이 이 사실을 모르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차량용 소화기 의무 설치 대상이 바뀐다는 점에 대한 홍보를 강화하면서 동시에 설치하지 않을 경우 처벌 규정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재 자동차 정기검사 때 시정권고로 돼 있는 규정을 강화해 의무 설치 대상이 규정을 어겼을 경우 검사에서 통과시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5인승 차량까지 설치 의무가 확대되는 건 다행이지만 여전히 화재 발생 가능성이 높은 2인승 스포츠카 등은 의무 설치 대상이 아니다”라면서 “대국민 홍보를 강화하는 동시에 중장기적으로 의무 설치 대상을 전 차량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기차, ‘배터리 열폭주’로 진화 10배 힘들어 이동식 침수조 전국 44개뿐설치에 15분 걸려 진화 어려움소방硏, 상방향 방사장치 개발“배터리 불길 16분 만에 잡혀” 최근 전기차 화재 발생이 늘면서 이를 효과적으로 진화하기 위한 소방 당국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소방청에 따르면 2017년 1건이던 전기차 화재는 2020년 11건, 2021년 24건, 2022년 44건 등으로 매년 증가 추세다. 그런데 소방관 사이에선 “전기차 화재 진화에는 일반 차량 10배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온다. 바로 ‘열 폭주 현상’ 때문이다. 내연기관 자동차와 달리 전기차에는 고전압 배터리팩이 장착돼 있다. 불이 붙으면 이 배터리팩에 사용되는 리튬이온배터리에서 열이 치솟으며 열 폭주 현상이 발생한다. 배터리 온도가 1000도까지 오르고,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산소와 가연성 가스가 발생한다. 그러다 보니 물을 뿌려도 불이 되살아나고 공기 공급을 차단하는 질식 소화도 큰 효과를 못 낸다. 최근 소방청은 전기차 화재가 발생할 경우 이동식 침수조를 활용하고 있다. 차량을 수조에 통째로 넣어 하부의 배터리팩을 냉각시키는 방식이다. 그런데 예산 등의 문제로 현재 전국 소방서에 구비된 이동식 침수조는 44개뿐이다. 또 현장에 이동식 수조를 설치하고 물을 채우는 데 10∼15분이 걸려 화재 진화의 골든타임을 놓치기 쉽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차량 아래로 바퀴가 달린 분사장치를 밀어 넣는 방식이 국내외에서 주목받고 있다. 국립소방연구원도 최근 전기차 전용 ‘상방향 방사장치’를 개발하고, 전기차 배터리 30개에 불을 붙이는 방식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불이 나자마자 열 폭주가 시작됐고, 8분 만에 배터리 전체가 불꽃에 휩싸였다. 이때 미리 배터리 밑에 넣어둔 상방향 방사장치를 가동해 물을 뿜었더니 약 16분 만에 불길이 잡혔다. 소방연구원 관계자는 “기존 전기차 화재 시 진화하는 데 7, 8시간까지도 걸렸다. 상방향 방사장치의 효과가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다만 상방향 방사장치 역시 한계가 없는 건 아니다. 장치의 부피가 커지면 기존 소방차에 싣기 어려울 수 있다. 소방연구원 관계자는 “올 3월 전국 소방서에 상방향 방사장치 안내서를 배포해 각 서 차원에서 현장 상황에 맞게 준비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공동 기획: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경찰청 소방청 한국교통안전공단 손해보험협회 한국도로공사 도로교통공단 한국교통연구원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교통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독자 여러분의 제보와 의견을 e메일(lifedriving@donga.com)로 받습니다. 특별취재팀▽ 팀장 유근형 사회부 차장 noel@donga.com▽ 한재희(산업1부) 이축복(산업2부) 신아형(경제부) 윤다빈(국제부) 송유근 전혜진(사회부) 기자 특별취재팀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한재희 기자 hee@donga.com이축복 기자 bless@donga.com신아형 기자 abro@donga.com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 송유근 기자 big@donga.com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향한 ‘봄철 대반격’을 예고한 가운데 우크라이나와 인접한 러시아 서부와 남서부에서 1∼3일 사흘 연속 우크라이나 측의 ‘사보타주’(파괴 공작)로 추정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달 29일에도 2014년 러시아가 강제 합병한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 내 석유 저장시설이 무인기(드론) 공격을 받아 불탔다. 러시아도 경계를 강화하는 등 양측의 군사적 긴장 또한 고조되고 있다.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은 3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노린 드론이 이날 오전 2시경 크렘린궁을 공격해 2번의 폭발이 있었지만 푸틴 대통령은 무사하다고 전했다. ● 지난달 말부터 거듭된 러 대상 공격 타스통신 등에 따르면 3일 크림반도와 인접한 러시아 남서부 크라스노다르주 타만반도 내 석유 저장시설에서 의문의 화재가 발생했다. 이 화재로 최소 1200㎡가 불탔으나 인명 피해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9일에도 크림반도 내 세바스토폴의 석유 저장시설에서 무인기 공격으로 인한 대규모 폭발이 일어났다. 2일에는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접한 러시아 서부 브랸스크주의 한 철로에서 미확인 폭파 장치가 터지면서 석유와 목재를 운반 중이던 화물열차 기관차 1대, 철도 차량 20량이 탈선했다. 1일에도 브랸스크주에서 폭발에 따른 탈선 사고가 발생해 열차 차량 7량이 탈선하고 기관차가 불에 탔다. 연이은 공격 배후에 우크라이나가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대반격을 앞두고 러시아군의 군수 물자 및 연료 보급을 방해하기 위해 석유 시설과 철도를 집중 공격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우크라이나의 반격이 임박했다는 징후가 잇따라 포착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 우크라이나 의회는 2일 계엄령과 총동원령을 연장하는 대통령령을 승인했다. 내무부 또한 최다 4만 명으로 구성된 8개 여단을 신규 편성했다고 밝혔다. 모두 자원자로 구성됐고 신병, 경찰관, 과거 러시아군과 싸운 경험이 있는 참전 용사 등이 참여했다. ● 러, 전승절 행사 취소하며 경계 강화 러시아 또한 경계를 강화했다. 러시아는 제2차 세계대전 승리를 기념하는 9일 전승절을 맞아 전국에서 대대적인 열병식을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최근 속속 행사를 취소하고 있다. 2일 가디언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약 644km 떨어진 러시아 남부 사라토프주는 “안전 우려로 전승절 열병식을 진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앞서 크림반도, 벨고로트, 쿠르스크, 보로네시, 오룔, 프스코프주 등도 행사를 취소했다. 다만 큰 의미를 지닌 전승절 행사를 취소한 것은 러시아 스스로 군사적 취약성을 시인한 셈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날 AP통신은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포탄,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하이마스) 등 3억 달러(약 3900억 원) 규모의 우크라이나 추가 무기 지원 방안을 곧 발표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도 “우크라이나가 봄에 수행하길 원하는 공격 작전과 관련해 우크라이나가 요청한 거의 100%를 (미국이) 제공했다”고 밝혔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같은 날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중국의 평화협상 주재 노력에 관한 질문에 “우크라이나 영토 주권 및 독립에 대한 인식이 시작”이라며 모든 평화 협정은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점령지를 러시아 영토로 보는 등 중국이 러시아에 유리하게 휴전하는 것을 공개적으로 반박한 것이다. 서방과 러시아는 지난해 9월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유럽에 공급하는 ‘노르트스트림’ 가스관 폭파 배후를 두고도 대립 중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공격 배후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3일 영국 BBC는 최근 제작된 TV 다큐멘터리를 인용해 폭발 당시 인근에 러시아 해군 선박이 있었다고 보도했다.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향한 ‘봄철 대반격’을 예고한 가운데 우크라이나와 인접한 러시아 서부와 남서부에서 1~3일 사흘 연속 우크라이나 측의 ‘사보타주’(파괴 공작)로 추정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달 29일에도 2014년 러시아가 강제 합병한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 내 석유저장 시설이 무인기(드론) 공격을 받아 불탔다. 러시아도 경계를 강화하는 등 양측의 군사적 긴장 또한 고조되고 있다.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은 3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노린 드론이 이날 오전 2시경 크렘린궁을 공격해 2번의 폭발이 있었지만 푸틴 대통령은 무사하다고 전했다.지난달 말부터 거듭된 러 대상 공격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 등에 따르면 3일 크림반도와 인접한 러시아 남서부 크라스노다르주 타만반도 내 석유 저장시설에서 의문의 화재가 발생했다. 이 화재로 최소 1200㎡가 불탔으나 인명 피해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9일에도 크림반도 내 세바스토폴의 석유 저장시설에서 무인기 공격으로 인한 대규모 폭발이 일어났다. 2일에는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접한 러시아 서부 브랸스크주의 한 철로에서 미확인 폭파 장치가 터지면서 석유와 목재를 운반 중이던 화물열차 기관차 1대, 철도 차량 20량이 탈선했다. 1일에도 브랸스크주에서 폭발에 따른 탈선 사고가 발생해 열차 차량 7량이 탈선하고 기관차가 불에 탔다. 연이은 공격 배후에 우크라이나가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대반격을 앞두고 러시아군의 군수 물자 및 연료 보급을 방해하기 위해 석유 시설과 철도를 집중 공격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우크라이나의 반격이 임박했다는 징후가 잇따라 포착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 우크라이나 의회는 2일 계엄령과 총동원령을 연장하는 대통령령을 승인했다. 내무부 또한 최다 4만 명으로 구성된 8개 여단을 신규 편성했다고 밝혔다. 모두 자원자로 구성됐고 신병, 경찰관, 과거 러시아군과 싸운 경험이 있는 참전 용사 등이 참여했다. 러, 전승절 행사 취소하며 경계 강화 러시아 또한 경계를 강화했다. 러시아는 제2차 세계대전 승리를 기념하는 9일 전승절을 맞아 전국에서 대대적인 열병식을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최근 속속 행사를 취소하고 있다. 2일 가디언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약 644㎞ 떨어진 러시아 남부 사라토프주는 “안전 우려로 전승절 열병식을 진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앞서 크림반도, 벨고로트, 쿠르스크, 보로네시, 오룔, 프스코프주 등도 행사를 취소했다. 다만 큰 의미를 지닌 전승절 행사를 취소한 것은 러시아 스스로 군사적 취약성을 시인한 셈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날 AP통신은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포탄,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하이마스) 등 3억 달러(약 3900억 원) 규모의 우크라이나 추가 무기 지원 방안을 곧 발표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도 “우크라이나가 봄에 수행하길 원하는 공격 작전과 관련해 우크라이나가 요청한 거의 100%를 (미국이) 제공했다”고 밝혔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같은 날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중국의 평화협상 주재 노력에 관한 질문에 “우크라이나 영토 주권 및 독립에 대한 인식이 시작”이라며 모든 평화 협정은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점령지를 러시아 영토로 보는 등 중국이 러시아에 유리하게 휴전하는 것을 공개적으로 반박한 것이다. 서방과 러시아는 지난해 9월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유럽에 공급하는 ‘노르트스트림’ 가스관 폭파 배후를 두고도 대립 중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공격 배후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3일 영국 BBC는 최근 제작된 TV 다큐멘터리를 인용해 폭발 당시 인근에 러시아 해군 선박이 있었다고 보도했다.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AI, 인간 일자리 1400만개 위협인공지능(AI)으로 과연 얼마나 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것인가. 최근 세계경제포럼(WEF)은 무려 1400만 개가 없어질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세계 일자리의 2%다. 은행 창구 직원, 데이터 입력원 등이 대표적이다. 미국 할리우드 작가들까지 “AI 대본이 판칠 것”이라며 파업에 나섰다. 》인공지능(AI) 같은 혁신기술을 활용하는 기업이 늘면서 앞으로 5년간 세계에서 일자리 1400만 개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급속도로 발전하는 AI 기술이 노동시장에 큰 변화를 가져오면서 특정 직군에서 대량 실직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1일(현지 시간)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미래 직업 보고서 2023’에 따르면 2027년까지 일자리 8300만 개가 사라지고 6900만 개가 창출될 것으로 추정된다. 순감 일자리 1400만 개는 전 세계 일자리의 약 2%에 해당한다. 이번 보고서는 WEF가 세계 45개국 803개 기업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작성했다. 보고서는 일자리 감소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직군으로 은행원과 티켓 판매원, 데이터 입력 사무원 같은 기록 관리 및 행정직을 꼽았다. 해당 분야에서 5년간 일자리 2600만 개가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데이터 입력 사무직은 일자리 800만 개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으며 은행 창구 직원 및 관련 사무직도 10년 이내 약 40% 줄 것으로 예측됐다. 조사 대상 기업의 75% 이상은 ‘향후 5년 이내 AI, 빅데이터, 클라우드 컴퓨팅을 채택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이에 따라 AI 기술을 구현하고 관리할 개발자 및 과학자, 데이터 분석가 그리고 기계학습 및 사이버 보안 전문가 고용은 30%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실제로 많은 일자리가 AI로 대체되고 있다. 아르빈드 크리슈나 IBM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블룸버그통신 인터뷰에서 “5년간 업무 지원 부서 직원 2만6000명 중 30%를 AI로 대체하거나 자동화하겠다”며 “고용확인서 발급 및 부서 인사이동 같은 일상 업무는 자동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미 할리우드 작가들은 AI가 일감을 잠식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청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이날 미 언론에 따르면 영화 텔레비전 및 엔터테인먼트 작가 1만1500명이 소속된 미국작가조합(WGA)은 “AI를 사용해 작가의 이전 작품을 새로운 대본으로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며 “AI가 쓴 대본 초안을 재가공하라는 요청도 받지 않기를 바란다”고 주장했다. WGA 측은 할리우드 주요 제작사로 구성된 영화·TV제작자연맹(AMPTP)과 새 협약이 체결되지 않아 파업에 나섰다고 밝혔다. WGA 파업은 2007∼2008년 ‘100일 파업’ 이후 15년 만의 파업으로 심야 TV 토크쇼가 가장 먼저 타격을 입고 낮 시간대 TV 연속극에 여파가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
인공지능(AI) 같은 혁신기술을 활용하는 기업이 늘면서 앞으로 5년간 세계에서 일자리 1400만 개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급속도로 발전하는 AI 기술이 노동시장에 큰 변화를 가져오면서 특정 직군에서 대량 실직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1일(현지 시간)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미래 직업 보고서 2023’에 따르면 2027년까지 일자리 8300만 개가 사라지고 6900만 개가 창출될 것으로 추정된다. 순감 일자리 1400만 개는 전 세계 일자리 약 2%에 해당한다. 이번 보고서는 WEF가 세계 45개국 803개 기업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작성됐다. 보고서는 일자리 감소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직군으로 은행원과 티켓 판매원, 데이터 입력 사무원 같은 기록 관리 및 행정직을 꼽았다. 해당 분야에서 5년간 2600만 개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데이터 입력 사무직은 일자리 800만 개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으며 은행 창구직원 및 관련 사무직도 10년 이내 약 40% 줄 것으로 예측됐다. 조사 대상 기업 75% 이상은 ‘향후 5년 이내 AI, 빅데이터, 클라우드 컴퓨팅을 채택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이에 따라 AI 기술을 구현하고 관리할 개발자 및 과학자, 데이터 분석가 그리고 기계학습 및 사이버 보안 전문가 고용은 30%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실제로 많은 일자리가 AI로 대체되고 있다. 아르빈드 크리슈나 IBM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블룸버그통신 인터뷰에서 “5년간 업무 지원 부서 직원 2만6000명 중 30%를 AI로 대체하거나 자동화하겠다”며 “고용확인서 발급 및 부서 인사 이동 같은 일상 업무는 자동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미 할리우드 작가들은 일감을 AI가 잠식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청하며 파업을 예고했다. 이날 미 언론에 따르면 영화 텔레비전 및 엔터테인먼트 작가 1만1500명이 소속된 미국작가조합(WGA)은 “AI를 사용해 작가의 이전 작품을 새로운 대본으로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며 “AI가 쓴 대본 초안을 재가공하라는 요청도 받지 않기를 바란다”고 주장했다. WGA 측은 할리우드 주요 제작사로 구성된 영화·TV제작자연맹(AMPTP)과 새 협약이 체결되지 않으면 2일 파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WGA가 파업하면 2007~2008년 ‘100일 파업’ 이후 15년 만의 파업으로 심야 TV 토크쇼가 가장 먼저 타격을 입고 낮 시간대 TV 연속극에 여파가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30일(현지 시간) 트위터에 “한미동맹은 공동의 국경선이 아니라 공통의 신념에서 탄생했다”며 “그것은 민주주의, 자유, 안보(democracy, liberty, security)이고 무엇보다 자유(freedom)”라는 글을 올렸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빈 방문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르자 한미동맹의 의미를 재차 강조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한미 정상회담 등 윤 대통령의 방미 기간 장면을 담은 1분 42분짜리 동영상을 트위터에 올렸다. 바이든 대통령은 자신의 음성으로 내레이션한 동영상에서 “오늘 우리는 강철 같은 동맹과 우리의 공통된 미래 비전, 그리고 한국과 미국을 하나로 묶어주는 깊은 우정을 축하한다”며 “한국과 미국의 동맹은 지난 70년간 더 강해졌고 더 유능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사이의 협력은 모든 측면에서 서로에 대한 헌신이 더 깊어졌다”며 “한미 양국이 민주주의 가치로 뭉치고 세계적 과제에 함께 대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해당 영상에는 두 정상 간의 친교 행사를 비롯해 한미 정상회담 장면들이 두루 담겼다. 바이든 대통령이 26일 백악관에서 열린 윤 대통령 국빈 방문 환영식에서 “우리의 미래는 상상을 넘어서는 기회와 끝없는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다”며 “지금까지 자랑스럽게 한국에서 복무하고 있는 우리 부대의 말처럼 ‘함께 가자(We go together)’”고 말한 내용도 담겼다.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
“전남 순천시 별량면 구룡리 일대 국도 2호선은 교통 위반 및 사고 발생이 잦다. 감속 등 교통안전 표지판이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게 문제다.” 인공지능(AI) 교통사고 예측 시스템인 ‘T-세이퍼’가 과거 주행 데이터를 분석해 내놓은 ‘4월 교통사고 위험 분석 보고서’ 내용이다. T-세이퍼는 해당 지역의 교통사고 데이터, 교통시설 정보, 보행 데이터 등을 결합해 사고 요인을 약 40가지로 분류한 뒤 대안까지 제시해 준다. 한국교통안전공단과 KAIST가 함께 개발한 T-세이퍼는 최근 5년간 사업용 자동차 약 7000대에 부착돼 있던 디지털 운행 기록장치(DTG) 데이터 2억 건을 AI로 분석해 지역별 사고 위험도를 예측하고 있다. T-세이퍼의 예측은 얼마나 정확할까. 기자는 한국교통안전공단과 익산지방국토관리청의 순천 국도 2호선 현장점검에 동행했다. 그런데 점검에선 T-세이퍼가 지적한 문제들이 현장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먼저 감속이 필요해 보이는 교차로와 건널목 등 곳곳에 안전 표지판이 부족했다. 차량 정지선이 횡단보도와 2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급정지도 자주 발생했다. 교차로도 십자가 모양이 아니라 X자형이어서 운전자들이 혼란을 겪을 가능성이 커 보였다. 교통공단 관계자는 “T-세이퍼가 순천 일대 도로의 문제점을 비교적 정확하게 잡아냈다”며 “예전에는 도로 현장점검에 최소 3명이 필요했지만 이제 T-세이퍼가 미리 준 데이터를 기반으로 1명이 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지난해 8월 도입된 T-세이퍼는 실제로 교통사고를 줄이는 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난해 T-세이퍼가 도입된 국도 17호선(전남 여수∼순천)의 교통사고 발생 건수는 15%가량 줄었다. 노시웅 전남경찰청 경위는 “지자체에선 교통 업무 담당자가 자주 바뀌는데 T-세이퍼가 단기간에 교통 업무 이해도를 높이는 조력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통공단은 T-세이퍼를 약 10억 원에 해외로 수출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T-세이퍼 개발에 참여한 여화수 KAIST 건설및환경공학과 교수는 “의료비, 차량 복구비, 교통사고 처리비 등 사고 해결 비용이 해외의 경우 건당 약 39억 원 든다는 분석이 있다”며 “T-세이퍼의 사고 예방 기능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매우 클 것”이라고 말했다. T-세이퍼가 지금보다 더 충실한 역할을 하기 위해선 지방자치단체들의 투자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컨대 T-세이퍼가 ‘도로 폭이 좁아 유턴 시 사고 위험이 크다’고 지적할 경우 지자체가 예산을 들여 민간 땅을 매입한 후 도로 폭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장구중 국토교통부 교통안전정책과장은 “AI가 아무리 정확하게 사고를 예측해도 지자체 등의 투자 없이는 한계가 분명하다”며 “진정한 교통안전 강국으로 가기 위해선 보다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동 기획: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경찰청 소방청 한국교통안전공단 손해보험협회 한국도로공사 도로교통공단 한국교통연구원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교통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독자 여러분의 제보와 의견을 e메일(lifedriving@donga.com)로 받습니다.특별취재팀▽ 팀장 유근형 사회부 차장 noel@donga.com▽ 한재희(산업1부) 이축복(산업2부) 신아형(경제부) 윤다빈(국제부) 송유근 전혜진(사회부) 기자 특별취재팀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한재희 기자 hee@donga.com이축복 기자 bless@donga.com신아형 기자 abro@donga.com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 송유근 기자 big@donga.com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전북 남원시 산동면 대기리에 사는 김광태 씨(51)는 3년 전 어머니를 교통사고로 잃었다. 김 씨는 “어머니가 장을 보고 귀가하면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시속 80km로 달려오는 차량에 치였다”며 “마을에 가로등이 부족해 해가 지면 칠흑같이 어두워진다. 밤에는 목숨을 걸고 횡단보도를 건너야 했다”고 말했다. 더구나 이 마을은 가운데 직선 도로가 관통해 빠르게 달리는 차량이 많다. 또 마을 주민 상당수가 노인이다 보니 반응 속도가 늦어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마을은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보행자가 중상을 입거나 사망한 사고가 3건이나 발생해 한국교통안전공단의 사고다발지점으로 분류됐다.● 스마트 횡단보도 도입 후 속도 14% 줄어하지만 지난해 12월 스마트 인공지능(AI) 횡단보도가 설치되면서 마을 풍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보행자가 스마트 횡단보도에 진입하면 폐쇄회로(CC)TV가 인지하고 조명이 켜져 횡단보도를 환하게 밝힌다. 운전자가 횡단보도 400m 전에도 보행자를 눈으로 인식할 수 있을 정도다. 운전자를 향해선 초록색 경고등이 켜진다. 경고등은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완전히 통과한 후에야 꺼진다. 일반인보다 걸음걸이가 느린 노인들도 안심하고 횡단보도를 건널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스마트 횡단보도는 보행자 안전 수준을 크게 높였다. 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이 지역에 스마트 횡단보도를 도입한 후 차량 평균 주행 속도가 5.4% 줄었다. 횡단보도 전 1km에서 보행자를 인식하고 횡단보도 앞에서 차량이 정지할 때까지의 평균 속도는 14.1%나 감소했다. 유장홍 대기리 이장(72)은 “25t 대형 트럭이 인근 채석장을 드나들어 사고 위험이 컸는데 스마트 횡단보도 설치 후 트럭들이 서행하는 등 효과가 크다”며 “주민들도 마음 놓고 길을 건널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스마트 횡단보도는 AI 기술로 보행자의 움직임을 정교하게 포착한다. 이미 약 20만 장의 사진을 통해 차량과 사람의 움직임을 학습했다. 횡단보도에 공을 굴리거나 물건을 던지면 경고등이 켜지지 않는다. 사람이 없음에도 경고등이 켜져 운전자에게 불편을 주지 않게 한 것이다. 또 AI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정밀하게 보행자를 인식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마을주민보호구간’ 법제화 필요성도일각에선 국도와 지방도가 통과하는 마을을 ‘마을주민보호구간’으로 법제화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처럼 첨단기술을 활용해 각종 안전장치를 의무화하는 구역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이는 도로변 지방 마을이 도심보다 더 많은 교통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경찰청과 현대해상 교통기후환경연구소 등에 따르면 도로변 마을의 자동차 평균 주행 속도는 시속 72.3km로 제한속도(시속 60km)보다 높다. 이 때문에 2021년 교통사고 사망자(2916명)의 36.8%(1073명)가 국도와 지방도에서 발생했다. 국도의 경우 차량이 속도를 많이 내기 때문에 교통사고 발생 시 치사율이 7.4%로 전체 평균(2.8%)의 2.6배나 된다. 마을주민보호구간이 법제화되면 해당 지역 교통사고 감소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2015년부터 마을주민보호구간 시범사업을 진행한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이 제도를 시행한 지역의 교통사고 건수는 평균 24.3%, 사망자 수는 50.1% 감소했다. 임재경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보호구간을 설정한 후 민원이 제기된다는 이유로 다시 해제하는 걸 막기 위해선 법제화를 통해 구속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제도 개선과 운전자의 인식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상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첨단 기술이 도입되더라도 부주의한 운전이 이어지면 큰 효과를 내기 어렵다”며 “안전교육을 강화해 운전자가 자연스럽게 보행자의 안전을 먼저 살피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동 기획: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경찰청 소방청 한국교통안전공단 손해보험협회 한국도로공사 도로교통공단 한국교통연구원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교통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독자 여러분의 제보와 의견을 e메일(lifedriving@donga.com)로 받습니다. 특별취재팀▽ 팀장 유근형 사회부 차장 noel@donga.com▽ 한재희(산업1부) 이축복(산업2부) 신아형(경제부) 윤다빈(국제부) 송유근 전혜진(사회부) 기자 특별취재팀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한재희 기자 hee@donga.com이축복 기자 bless@donga.com신아형 기자 abro@donga.com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 송유근 기자 big@donga.com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여러분이 나에게 나이가 들었다고 한다면 ‘나는 노련하다’는 답을 돌려드리겠다. 여러분이 나더러 늙었다고 한다면 이에 대해서도 역시 ‘나는 현명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최근 재선 출마를 선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기자단 연례 만찬에서 고령을 문제 삼아온 언론을 향해 이 같은 농담을 던지며 맞대응 의지를 드러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워싱턴 힐턴호텔에서 열린 만찬 행사에서 “여러분이 나더러 ‘한물갔다(over the hill)’고 하지만 돈 레몬은 ‘저 남자는 지금 전성기야(in his prime)’라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CNN의 스타 앵커였던 돈 레몬은 “여자의 전성기는 20∼30대, 잘해야 40대”라는 등의 성차별 발언으로 물의를 빚고 지난달 24일 CNN에서 퇴출됐다. 미국에서는 대통령이 백악관 기자단 연례 만찬에서 언론인을 상대로 농담을 하는 관례가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한미 정상회담 후 가진 윤석열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도 고령에 대한 우려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농담조로 “나이와 관련해 심지어 내가 몇 살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며 “숫자를 말할 수도 없다. 인식하고 있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2020년 대선 조작 의혹 보도로 명예훼손 소송을 당해 7억8000만 달러(약 1조 원)의 합의금을 물어주게 된 보수 성향의 폭스뉴스에서 최근 해고된 간판 앵커 터커 칼슨도 농담의 주요 표적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여러분은 내가 루퍼트 머독(폭스뉴스 회장)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나를 해리 스타일스(영국의 가수 겸 배우)처럼 보이게 만들어 주는 사람을 내가 어떻게 싫어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폭스뉴스를 이끄는 머독 회장이 1931년생으로 1942년생인 자신보다도 아홉 살이 많다는 점을 거론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나는 미국에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했고, 경제를 변혁했으며, 중간선거에서 역사적 승리를 일으켰다. 하지만 나의 할 일은 끝나지 않았다. 정작 끝난 건 터커 칼슨”이라고 말했다.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30일(현지 시간) 트위터에 “한미동맹은 공동의 국경선이 아니라 공통의 신념에서 탄생했다”며 “그것은 민주주의, 자유, 안보(democracy, liberty, security)이고 무엇보다 자유(freedom)”라는 글을 올렸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빈 방문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르자 한미동맹의 의미를 재차 강조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한미 정상회담 등 윤 대통령의 방미 기간 장면을 담은 1분 42분짜리 동영상을 트위터에 올렸다. 바이든 대통령은 자신의 음성으로 내래이션한 동영상에서 “오늘 우리는 강철 같은 동맹과 우리의 공통된 미래 비전, 그리고 한국과 미국을 하나로 묶어주는 깊은 우정을 축하한다”며 “한국과 미국의 동맹은 지난 70년간 더 강해졌고 더 유능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사이의 협력은 모든 측면에서 서로에 대한 헌신이 더 깊어졌다”며 “한미 양국이 민주주의 가치로 뭉치고 세계적 과제에 함께 대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해당 영상에는 두 정상 간의 친교 행사를 비롯해 한미 정상회담 장면들이 두루 담겼다. 바이든 대통령이 26일 백악관에서 열린 윤 대통령 국빈 방문 환영식에서 “우리의 미래는 상상을 넘어서는 기회와 끝없는 가능성으로 가득차 있다”며 “지금까지 자랑스럽게 한국에서 복무하고 있는 우리 부대의 말처럼 ‘함께 가자(We go together)’”고 말한 내용도 담겼다. 카멀라 해리스 미 부통령도 이날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이번 주 윤 대통령과 나는 기후변화의 영향을 파악하는 위성망 확장을 논의하려고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의 고다드 우주비행센터를 방문했다”며 당시 현장 사진을 첨부했다. 이어 “우리의 동맹국들과 파트너들과 함께 우리는 기후 위기의 긴급성을 대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
할리우드 영화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사진)이 자신의 히트작 ‘E.T.’(1982년)를 2002년 재개봉할 때 컴퓨터그래픽(CG)으로 영화 속 경찰관이 든 총을 삭제한 것을 후회한다면서 “옛 문화유산을 오늘날 잣대로 검열하는 데 반대한다”고 말했다. 27일(현지 시간)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스필버그 감독은 최근 미 시사매체 타임 인터뷰에서 “모든 영화는 그 영화를 만들 때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세상이 어땠는지, 이 이야기를 내놓았을 때 사람들은 무엇을 느꼈는지 알려주는 이정표”라며 “정말로 내 영화에서 총을 들어낸 것을 후회하고 있다”고 밝혔다. 원래 E.T.에는 미 연방수사국(FBI) 요원이 총기를 들고 어린이들을 쫓는 장면이 있는데 재개봉할 때는 CG로 총을 지우고 대신 무전기를 들게 했다. “비무장 상태 아이에게 총을 겨누는 건 너무하다”는 이유에서였다.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
한국 정치의 수준은 왜 나아지지 않을까? 대통령, 국회의원 선거를 각각 두 번씩 취재하며 가졌던 의문입니다. 닫힌 섬과 같은 여의도만 보고선 해답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시야를 넓혀 세계 각국의 정치 현실을 살펴보고 한국 정치와 신랄하게 비교하겠습니다. 때로는 ‘우리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는 위로를, 때로는 우리 정치의 품격을 높일 해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언젠간 K팝, K드라마, K푸드처럼 K정치도 호평받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요즘 국제 뉴스에서 화제의 인물은 단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입니다. 그는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고, 시민사회와 노동계가 여러 차례 총파업에 나섰음에도 연금 수령 시기를 2년 늦추는 연금 개혁법을 지난달 통과시켰습니다. 이 과정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거침이 없었습니다. ‘여소야대(與小野大)’ 의회에서 야당이 강하게 반대하자 헌법 조항을 활용해 의회 표결을 생략한 채 입법을 밀어붙였습니다. 그는 광장에서 냄비를 두드리며 항의하는 시위대를 직접 찾아가 “분노는 표출돼야 하지만 냄비를 두드리는 것이 프랑스를 전진하게 할 수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프랑스 언론과의 생방송 인터뷰에서는 한술 더 떠서 “연금 개혁으로 떨어진 지지율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며 “단기적인 여론조사 결과와 국가의 이익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후자를 택하겠다”고 했습니다.마크롱 대통령은 제3지대 정치인입니다. 좌파 성향의 사회당 정부에서 장관직을 역임했지만 규제 완화를 주장하는 등 중도주의를 표방했습니다. 스스로를 좌파도 우파도 아닌 자유주의자로 규정하면서 청년과 함께 사회운동단체 ‘앙 마르슈’를 이끌고 정치 세력화에 성공했습니다. 마크롱 대통령은 좌우 한쪽 진영이 아닌 중도파 유권자의 지지를 정치적 기반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이념‧지역‧조직을 떠나 국가적 의제에 자신의 정치적 승부수를 걸 때가 많습니다. 그는 연금 개혁법을 공포한 지 3일만인 17일(현지 시각) 대국민 연설을 통해 노동, 경찰, 의료 개혁에 나서겠다고 선언한 상태입니다. 마크롱은 제3지대 정치의 장단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프랑스는 연금 개혁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 실패로 국가적으로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은 20%대입니다. 지금도 냄비와 프라이팬을 들고 시민들이 전국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몸에 좋은 약은 쓴 법이죠. 연금 개혁으로 프랑스는 2030년 135억유로(약 2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던 연금 적자를 크게 줄일 수 있게 됐습니다. 그가 집권 초 추진한 노동 개혁의 성과로 9년 전에 비해 실업률은 3%포인트 줄고, 고용률은 3.7%포인트 올라갔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여야 모두 싫다”… 제3지대 기반 열리나지난해 3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맞붙은 대선은 민주화 이래 최악의 대선이자 역대급 네거티브 선거로 꼽힙니다. 두 후보 모두 60%가 넘는 비호감도를 기록하면서 다수의 청년과 중도층 유권자는 지지할 후보를 찾지 못해 방황했습니다. 오죽하면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한국 대선을 한 달 앞둔 시점에서 “선거가 추문과 말다툼, 모욕으로 얼룩지고 있다”면서 “다가오는 대선은 ‘비호감 선거’라고 불릴 만큼 역대 최악에 도달한 상태”라고 꼬집었을까요. 총선을 약 1년 앞둔 지금은 상황이 더 나빠진 것 같습니다. ‘친윤(친윤석열) 사당화’의 길로 거침없이 나아가고 있는 국민의힘은 지도부의 연이은 설화와 전광훈 목사를 둘러싼 내홍으로 비판받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의혹에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까지 떠안고 있는 상태입니다. 거대 양당에 대한 시선이 고울 리 없습니다. 한국갤럽이 18~20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오차범위 95% 신뢰수준에서 ±3.1%p, 이하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무당층은 31%로 집계됐습니다. 이는 국민의힘과 민주당 지지율 각각 32%와 맞먹는 수치입니다. 유권자의 열망이 커지면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은 움직이는 법입니다. 최근 금태섭 전 의원이 ‘수도권 중심 30석 정당’을 내세우면서 새로운 세력을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정치권의 ‘킹메이커’로 꼽히는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조력 의사를 밝히면서 불씨를 지피고 있습니다.●벚꽃처럼 사라진 제3지대 추억거대 양당에 실망한 유권자를 흡수하기 위해 그간 수많은 제3정당이 탄생했습니다.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통일국민당, ‘3김(金)’ 중 한 사람인 김종필 총재의 자유민주연합,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로 인기가 높았던 정몽준 의원의 국민통합21 등 사회적 명성이 높은 인물들이 제3지대에서 대선에 출마하거나 정당을 만들었습니다.가장 최근에는 V3 백신을 무료 배포해 국민적 인기를 얻었던 안철수 대표의 국민의당이 있었습니다. 국민의당은 2016년 총선 비례대표 투표에서 2위를 차지하고, 호남 지역을 휩쓰는 돌풍을 일으키면서 38석으로 원내 3당의 지위를 차지합니다. 20대 국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123석, 새누리당 122석으로 어느 정당도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고, 국민의당은 법안 처리 결정권을 쥐게 됐습니다. 그 효과는 곧장 나타났습니다. 양당 협상이 아닌 3당 협상이 진행되자 국회 상임위원장 배분을 결정하는 원구성 협상이 빨라졌습니다. 추가경정예산안(추경) 편성에서도 국민의당 주도로 합의안이 만들어졌습니다. 거대 양당이 대립하며 교착 상태에 빠져들 때 합리적 중재자가 등장하면서 타협의 정치가 이뤄진 것입니다. 당시 국민의당의 위세는 대단했습니다. 추경 심사를 앞두고는 국민의당 정책위의장을 맡았던 김성식 의원 사무실에는 ‘콧대 높은’ 기획재정부 고위 공무원들이 줄기차게 드나들며 읍소 작전을 벌였습니다.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이 동의하지 않으면 추경 통과가 불가능했기 때문이죠. 국민의당은 안철수 대표 측근, 호남 출신, 정책전문가 그룹 등 다양한 세력이 한 집에 모여 있는 구조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당내에서도 이견 조율이 쉽지 않았습니다. 토론이 많아지면서 의원총회는 길어지기 일쑤였습니다. 출입기자들도 쟁점이 있을 때마다 의원 한명 한명의 표결 성향을 분석하는 수작업을 했습니다. 지도부가 당론을 정하면 의원들은 거수기 역할을 하는 기존 거대 양당에서 경험하지 못한 문화였죠. 국민의당에 있다가 국민의힘으로 당적을 옮긴 한 전직 의원은 “국민의당은 작은 당이라 내 의견이 쉽게 반영됐고, 당장 변화를 이끌 수 있었다”며 “국민의힘에서는 뭘 하려고 해도 기존의 시스템이 있다 보니 바꾸기가 쉽지 않았다”고 회상했습니다. 하지만 국민의당은 점차 당내 정쟁에만 매몰됐고, 정치적 이합집산을 반복하면서 기성 양당과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2017년 대선에서는 안철수 후보가 한 때 지지율 1위를 기록하는 등 돌풍을 일으켰으나 ‘MB 아바타’ ‘갑철수’ 논란 등 아마추어 선거 운동과 거대 양당의 물량 공세 앞에 힘을 쓰지 못하고 3위로 추락했습니다. 대선 패배 후 당이 혼란에 빠지자 국회 내 중재자 역할도 사라졌습니다. 결국 20대 국회는 역대 최악의 법안 처리율을 기록하면서 또다시 ‘최악의 국회’라는 오명을 들은 막을 내렸습니다. 정치적 지향점을 잃어버린 국민의당은 둘로 쪼개지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극한의 진영 대립에 신물이 난 유권자들이 정치 교체를 원해 어렵게 다당제 구도를 만들어줬지만 처참한 실패로 끝난 것이죠. ●200년간 제3정당 실패한 美… 한국은 더 악조건이지만미국 정치는 여러모로 K정치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양당제의 전통이 굳건하지만 국민이 꼭 양당제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지난해 9월 미 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민주‧공화 양당이 형편없이 일해서 제3의 정당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56%에 달했습니다. 지난해 말 미국에서는 민주당, 공화당 일부 인사를 중심으로 ‘전진당’(Forward Party)이라는 중도 정당이 만들어졌습니다. 전진당은 자신들의 정치적 지향점에 대해 ‘좌파도 우파도 아닌 앞으로’(Not left. Not right. Forward)라고 소개했습니다. 전진당은 일부 사회운동 단체들과의 통합으로 당세를 늘리고 있지만 정치적 반향은 크지 않습니다. 당장 내년 11월 열리는 대선에 후보도 내지 못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다른 제3정당인 자유당, 녹색당도 비슷한 형편입니다. 200여년의 미국 정치 역사에서 200여개의 제3정당이 만들어졌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미국 언론들은 승자독식 선거 제도, 소선거구제, 선거자금 모금의 불리함 등이 제3정당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이는 K정치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조건입니다. 여기에 한국은 양당의 지역적 기반이 미국보다도 확고한 편입니다. 언론 환경도 녹록지 않습니다. 국회에 출입하는 기자들은 국민의힘과 민주당으로 각각 흩어져 있어 제3정당은 유력 대선주자가 있는 게 아니면 웬만해서는 눈길을 주지 않습니다.이처럼 제3정당이 성공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당장 다음 총선에서 제3정당의 성공 가능성을 묻는다면 매우 낮다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제3정당 등장 소식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내가 잘하기보다는 상대가 못해서 반사이익을 얻는 걸 당연시하는 거대 양당을 심판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김현아 (전) 의원은 어떻게 돼가고 있냐”, “박순자 (전) 의원 수사는 어떻게 돼갑니까. 관심이 없으신가 보다”라고 되물었습니다.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와 관련해 두 전직 국민의힘 의원을 언급하면서 물타기와 ‘프레임 전쟁’에 나선 것이죠.윤석열 대통령은 또 어떻습니까. 윤 대통령은 정권 출범 직후 논문표절·음주운전 등으로 논란을 빚은 박순애 전 교육부 장관에 대해 “전 정권 인사 중에 그렇게 훌륭한 사람을 봤나”라고 했습니다. 지난해 12월 북한의 무인기가 서울 상공을 휘젓고 다니자 “수년간 군의 대비 태세가 부족했다”고 또 한 번 지난 정부 탓을 했습니다. 두 거대 양당은 선거제도 개편을 내팽개치면서 새로운 정치 세력의 등장을 온몸으로 막고 있습니다. 하지만 거대 양당이 이른바 ‘똥볼 경쟁’을 할수록 유권자의 정치 교체 요구는 들끓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열기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폭발할지도 모릅니다. 우리 국민은 정치 입문 1년도 안 된 윤석열 검사를 대통령으로 뽑을 정도로 역동적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
만 80세에 재선 도전을 선언한 역대 최고령 미국 대통령인 조 바이든 대통령보다 더 나이든 국가 수반이 있을까. 있다. 42년째 집권 중인 폴 비야 카메룬 대통령(90세)이다. 최연소 국가 정상은 가브리엘 보리치 칠레 대통령(37세)이다. 이는 25일(현지시간) 미국 조사전문기관 퓨리서치센터가 유엔 187개 회원국 지도자 나이를 조사한 결과다. 유엔 전체 회원국(193개국) 가운데 정확한 지도자 나이 정보가 없는 6개국(아프가니스탄 부르키나파소 이라크 말리 소말리아 바누아투)은 제외했다. 이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세계에서 9번째로 나이가 많은 지도자였다. 187개국 지도자평균 나이는 62세였다. 1960년 12월 18일생인 윤석열 대통령도 만 62세다. 연령대별로 보면 세계 지도자 35%는 60대였고 50대 22%, 40대와 70대 각각 18%를 차지했다. 80대는 5%였다. 187개국 가운데 여성 지도자가 이끄는 나라는 13개국으로 평균 나이는 57세였다. 남성 지도자 평균 연령(62세)보다 5세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퓨리서치센터는 국제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 분류를 기준으로 ‘자유롭지 않은 국가’ 지도자 평균 나이(69세)가 ‘자유로운 국가’ 지도자 평균 연령(58세)보다 많았다고 밝혔다.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사진)이 25일(현지 시간) 3분 분량의 동영상을 공개하며 내년 대통령 재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이 출마 선언 영상은 26일 윤석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하루 앞두고 공개됐다. 현재 민주당에 바이든 대통령의 뚜렷한 경쟁자가 없긴 하지만, 81세로 이미 역대 최고령 대통령인 그의 나이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영상은 2020년 대선 결과가 확정된 직후인 2021년 1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의사당을 습격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영상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 내 첫 임기 동안의 임무였다”며 전임자인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 캠페인을 벌이면서 이것이 완성되지 못한 점을 재선 도전의 이유로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러면서 “미국의 정신을 회복하기 위한 전쟁은 아직 진행 중”이라고 강조했다. 또 “공화당의 공약은 자유에 대한 위협이다. 여성의 의료를 제한하고 사회보장을 축소하는 (공화당에) 맞서 싸우겠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19일 발표된 입소스 여론조사에서 39%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22일 미 NBC뉴스 여론조사에서는 민주당 지지자 51%를 포함한 미국인의 70%가 “바이든이 출마해선 안 된다”고 답했다. 해당 응답자 중 69%는 ‘나이에 대한 우려’를 그 이유로 들었다. 야후뉴스와 여론조사업체 유고브가 14∼17일 미국 유권자 153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 전 대통령과 맞대결을 펼칠 경우 바이든 대통령이 46%의 지지를 받아 트럼프 전 대통령(42%)을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내년 대선에서도 바이든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함께 나선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캠프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줄리 차베스 로드리게스 백악관 선임고문을 지명할 것으로 알려졌다.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
윤석열 대통령 국빈 방미를 계기로 한국과 미국이 우주 탐사 공동의향서를 체결한다. 70주년을 맞은 한미 동맹을 우주 동맹으로까지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 24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은 미 백악관과 미국항공우주국(NASA·나사) 관계자들을 인용해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팸 멀로이 나사 부국장이 25일 메릴랜드주 나사 고더드 우주비행센터에서 우주 탐사 및 과학 분야 협력 공동의향서에 서명한다고 보도했다. 한미 양국은 공동의향서 체결을 통해 우주 통신 및 우주 항해, 달 연구 분야 공조를 강화하고 우주 연구 분야 협력에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한국판 나사’로 불리는 우주항공청이 향후 신설되면 나사 전문가 노하우를 배우는 등 협력체계가 구축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윤 대통령은 협약식 이후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함께 고더드 우주비행센터를 방문해 양국 우주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나사 한인 과학자들과 간담회를 열 예정이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나사의 기후변화 대응 노력을 직접 살펴보고 기후변화 대처에 우주가 얼마나 중요한지 브리핑 받을 예정이라고 나사 측은 밝혔다. 한국은 미국과의 우주 분야 협력에 공을 들이고 있다. 2021년 5월 한국은 미국 주도로 영국 일본 호주 캐나다 등이 달을 탐사하고 인류 정착 기지를 건설하며 그 너머 우주 탐사도 도모하는 ‘아르테미스 협정’에 10번째 참여국으로 이름을 올렸다. 또 북한이 군사정찰위성 1호기를 계획된 시일 내에 발사하겠다고 선언한 가운데 이를 억제하기 위한 한미 공조도 강화될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해 12월 한국 공군 우주작전대대 출범에 이어 미국은 북한 탄도미사일 조기 탐지 및 대응 역량 강화를 위해 주한미군 우주군 부대를 창설했다.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
미국 실리콘밸리 빅테크(거대 정보기술기업) 거부들이 잇따라 핵융합 분야에 투자하고 나섰다. 핵융합은 환경오염을 줄이면서도 무제한 발전이 가능해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꿈의 에너지원’으로 불린다. 아직은 불확실성이 있지만 최근 기술 발전으로 상용화에 한 발짝 다가섰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23일(현지 시간)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인공지능(AI) 챗봇 ‘챗GPT’ 개발사 오픈AI의 공동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인 샘 올트먼은 핵융합 스타트업 헬리온에너지에 3억7500만 달러(약 5000억 원)를 투자했다. 헬리온에너지는 ‘자기관성 핵융합’ 기술을 사용해 내년까지 전기를 생산한다는 목표다. 올트먼은 헬리온에 단순 투자를 넘어 AI 활용 방안을 검토하는 등 기술 개발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데이비드 커틀리 헬리온 CEO는 “올트먼은 직접 조사하고 실험에 참여한다. 우리 직원들은 챗GPT로 작업 속도를 높이는 방안도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 페이팔 공동창업자 피터 티엘,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창업자 빌 게이츠, 세일즈포스 창업자 겸 CEO 마크 베니오프 등도 핵융합 기술 투자에 열을 열리고 있다. 이들은 핵융합로 건설이 몇 년 안에 현실화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베니오프는 “핵융합은 엄청난 꿈이며 성배이자 신화”라며 “작동만 할 수 있게 (핵융합로를) 만들면 그 이후부턴 한계가 없다”고 했다. 미 핵융합산업협회의 조사 결과 핵융합 분야에 50억 달러(약 6조7000억 원)가 넘는 민간자금이 투자됐으며, 이 중 7개사는 최소 2억 달러(약 2660억 원)의 자금을 조달받았다. 피치북에 따르면 이 중 75% 이상이 2021년 이후 집중됐다. 이처럼 핵융합이 실리콘밸리 거부들의 주목을 받은 것은 지난해 12월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가 핵융합 실험에서 투입된 에너지보다 더 큰 에너지를 생산하는 ‘순에너지 확보’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핵융합 에너지는 두 개의 가벼운 원자핵이 합쳐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데, 탄소 배출이 없고 무한 생성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꿈의 에너지원’이지만 70년간 아무도 완성형 기술을 내놓지 못하면서 실현 불가능한 영역으로 여겨져 왔지만 최근 기술 개발에 속도가 붙고 있다.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