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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준 높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날 수 있는 제6회 ‘DMZ국제다큐영화제’가 다음 달 17∼24일 경기 고양시 메가박스 킨텍스 등에서 열린다. ‘평화·생명·소통의 DMZ’를 내세운 올해 영화제는 세계 30개국에서 출품한 다큐멘터리 111편을 선보인다. 개막작은 이일하 감독의 ‘울보 권투부’다. 일본 도쿄의 조선학교 복싱 부원들을 담은 이 영화는 현실의 차별을 딛고 꿈을 향해 청춘을 불사르는 학생들의 뜨거운 펀치가 묵직하게 심장을 때린다. 이 작품을 비롯해 ‘유예기간’(김경묵 감독) ‘폭풍의 아이들, 1권’(라브 디아즈 감독) ‘니가 필요해’(김수목 감독) 등 9편은 영화제가 제작을 지원했다. 총 상금 2200만 원이 걸린 국제경쟁부문엔 ‘그리고 우리에겐 오늘이 없다’ ‘어렴풋이 섬광이’를 포함해 12편이 올라있다. 한국작품으로는 유일하게 원태웅 감독의 ‘아들의 시간’이 이 부문에서 경쟁을 벌인다. ‘마스터즈: 마크 칼린 회고전’ ‘아시아의 시선’과 같은 비경쟁부문 섹션도 볼만하다. 문의 www.dmzdocs.com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이번 작품은 개인적인 연기 욕심은 내려놓고 찍었어요. 그 대신 모두가 온몸으로 고생하며 빚어낸 동지애를 관객들이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손예진) “어깨에 힘을 쫙 빼고 신나게 촬영했습니다. 주인공 한두 명이 이끌기보단 모두의 ‘합’이 어우러진 게 강점이었죠.”(김남길) 또 다른 승자는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었다.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올여름 한국 블록버스터 대전에서 최약체로 꼽혔으나, 재밌고 유쾌하단 입소문을 타며 관객을 모았다. 난공불락 같던 ‘명량’을 22일 박스오피스 1위에서 끌어내리더니 25일엔 누적 관객 600만 명을 돌파했다. 격전을 치른 탓일까. 주인공 손예진과 김남길은 왠지 동원훈련 온 ‘예비군’ 같았다. 외모야 끝내주게 멋지지만, 치열한 시간 뒤 이젠 좀 느슨하고 껄렁해진 분위기랄까. 꽤나 진지한 손예진이 액션연기 소감을 혹한기 훈련 고생담처럼 털어놓는 ‘술자리 복학생’이라면, 유쾌한 김남길은 앞으로의 사회생활에 대한 고민이 엿보이는 ‘졸업반 복학생’ 같았다. ―화려한 액션신이 큰 분량을 차지하는 영화다. ▽손=찍는 내내 다신 액션영화 안 할 거라 수백 번 다짐했다. 이전에도 한두 번 와이어를 타보긴 했지만 아무나 하는 게 아니더라.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근데 끝나니 묘한 희열이 몰려왔다. 아, 이 맛에 하나 보다 싶은? ▽김=에이, 괜한 엄살이다. 잘만 하더구먼. 개인적으로 액션을 사랑한다. 액션감독이 드라마 ‘선덕여왕’을 같이 해 호흡도 좋았다. ‘해적…’에선 창을 다루는 장면에 애착이 컸다. 액션 하나도 이전 작품과 다른,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려 애썼다. ―어드벤처 코믹물을 찍은 소감은…. ▽김=진지한 역을 주로 했는데, 이런 ‘허당’이 원래 성격에 맞다. 제대하고 처음 찍은 드라마 ‘상어’는 힘이 들어가 억지스러웠다. 나 자신에게 실망이 컸다. 이번엔 다 내려놓고 편하게 연기했다. 연기 잘하는 선배가 많아 자연스레 녹아드는 데 중점을 뒀다. ▽손=여성 해적 두목이란 역이 맘에 들었다. 한국영화에선 볼 수 없었던 캐릭터 아닌가. 이런 대작은 도전할 기회가 많지 않다. 도전도 안 해보고 스스로 연기 폭을 제한하긴 싫었다. ―고생한 만큼 결과에도 만족하나. ▽손=지금까지 100% 만족한 작품은 하나도 없다. 매번 아쉽고 반성한다. 하지만 해적은 온 가족이 유쾌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것저것 욕심내면 배가 산으로 갔을 것이다. 우린 최소한 산에서 바다로 간 영화 아닌가. ▽김=한국영화 대작이 쏟아져 비교가 많이 됐다. 우리가 최약체로 꼽혔던 것도 안다. 하지만 부담 없이 맘 편하게 볼 수 있단 매력을 지녔다. 이경영 선배와도 얘기했지만 경쟁심보단 다 같이 관객을 위해 풍성하고 행복한 여름 식탁을 차렸다는 동료의식을 느낀다. ―상어에 이어 두 번째 호흡을 맞췄다. ▽손=그만 봐야지, 지겹다.(웃음) 우리가 편했던 만큼 관객들도 편안하게 봐줬기를 바란다. ▽김=손예진이란 좋은 배우와 연기하는 건 행복하고 고마운 경험이었다. 좋은 작품에서 또 만나고 싶다. 이렇게 말하면 많이 미안해하겠지? ―흥행할 거란 자신감이 있었나. ▽김=현장 분위기가 좋았다. 왠지 모를 믿음이 있었다. 다 함께 버무려낸 왁자지껄함이 화면에 그대로 전해졌다. 속편이 나왔으면 좋겠단 기대도 크다. ▽손=언제나 작품이 나오고 나면 걱정이 많은 편이다. 다만, 이번엔 누군가 혼자 이끌기보단 다 함께 이만큼 끌고 왔다는 뿌듯함이 있다. 흥행이야 관객과 하늘이 정해주는 거니까.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이번 작품은 개인적 연기 욕심은 내려놓고 찍었어요. 대신 모두가 온몸으로 고생하며 빚어낸 동지애를 관객들이 좋게 봐주신 거 같아요."(손예진) "어깨에 힘을 짝 빼고 신나게 촬영했습니다. 주인공 한두 명이 이끌기보단 모두의 '합'이 어우러진 게 강점이었죠."(김남길) 또 다른 승자는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었다.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올 여름 한국 블록버스터 대전에서 최약체로 꼽혔으나, 재밌고 유쾌하단 입소문을 타며 관객을 모았다. 난공불락 같던 '명량'을 22일 박스오피스 1위에서 끌어내리더니 25일엔 누적 관객 수 600만 명을 돌파했다. 격전을 치른 탓일까. 주인공 손예진과 김남길은 왠지 동원훈련 온 '예비군' 같았다. 외모야 끝내주게 멋지지만, 치열한 시간 뒤 이젠 좀 느슨하고 껄렁해진 분위기랄까. 꽤나 진지한 손예진이 액션연기 소감을 혹한기 훈련 고생담마냥 털어놓는 '술자리 복학생'이라면, 유쾌한 김남길은 앞으로의 사회생활에 대한 고민이 엿보이는 '졸업반 복학생' 같았다. - 화려한 액션신이 큰 분량을 차지하는 영화다. ▽손=찍는 내내 다신 액션영화 안 할 거라 수백 번 다짐했다. 이전에도 한두 번 와이어 타보긴 했지만, 아무나 하는 게 아니더라.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근데 끝나니 묘한 희열이 몰려왔다. 아, 이 맛에 하나보다 싶은? ▽김=에이, 괜한 엄살이다. 잘만 하더구먼. 개인적으로 액션을 사랑한다. 액션감독이 드라마 '선덕여왕'을 같이 해 호흡도 좋았다. '해적…'에선 창을 다루는 장면에 애착이 컸다. 액션 하나도 이전 작품과 다른,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려 애썼다. - 어드벤처 코믹물을 찍은 소감은. ▽김=진지한 역을 주로 했는데, 이런 '허당'이 원래 성격에 맞다. 제대하고 처음 찍은 드라마 '상어'는 힘이 들어가 억지스러웠다. 자신에게 실망이 컸다. 이번엔 다 내려놓고 편하게 연기했다. 연기 잘하는 선배가 많아 자연스레 녹아드는데 중점을 뒀다. ▽손=여성 해적 두목이란 역이 맘에 들었다. 한국영화에선 볼 수 없던 캐릭터 아닌가. 이런 대작은 도전할 기회가 많지 않다. 도전도 안 해보고 스스로 연기 폭을 제한하긴 싫었다. - 고생한 만큼 결과에도 만족하나. ▽손=지금까지 100% 만족한 작품은 하나도 없다. 매번 아쉽고 반성한다. 하지만 해적은 온 가족이 유쾌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것저것 욕심내면 배가 산으로 갔을 것이다. 우린 최소한 산에서 바다로 간 영화 아닌가. ▽김=한국영화 대작이 쏟아져 비교가 많이 됐다. 우리가 최약체로 꼽혔던 것도 안다. 하지만 부담 없이 맘 편하게 볼 수 있단 매력을 지녔다. 이경영 선배와도 얘기했지만, 경쟁심보단 다 같이 관객을 위해 풍성하고 행복한 여름 식탁을 차렸다는 동료의식을 느낀다. - 상어에 이어 두 번째 호흡을 맞췄다. ▽손=그만 봐야지, 지겹다.(웃음) 우리가 편했던 만큼 관객들도 편안하게 봐줬기를 바란다. ▽김=손예진이란 좋은 배우와 연기하는 건 행복하고 고마운 경험이었다. 좋은 작품에서 또 만나고 싶다. 이렇게 말하면 많이 미안해하겠지? -흥행할 거란 자신감이 있었나. ▽김=현장 분위기가 좋았다. 왠지 모를 믿음이 있었다. 다 함께 버무려낸 왁자지껄함이 화면에 그대로 전해졌다. 속편이 나왔으면 좋겠단 기대도 크다. ▽손=언제나 작품이 나오고 나면 걱정이 많은 편이다. 다만 이번엔 누군가 혼자 이끌기보단 다 함께 이만큼 끌고 왔다는 뿌듯함이 있다. 흥행이야 관객과 하늘이 정해주는 거니까.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최근 개봉한 영화 ‘터키’는 미국 추수감사절 비운(?)의 동물인 칠면조가 주인공인 애니메이션이다. 추수감사절마다 식탁에 오르는 전통을 깨려 칠면조들이 미국 정부가 개발한 타임머신을 타고 개척시대로 돌아간다는 내용. 여기서 달걀처럼 매끈하게 생긴 타임머신은 과거와 미래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시간여행은 이젠 영화나 소설에서 너무 익숙해 식상함을 줄 정도다. 최근 극장가에 걸렸던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나 ‘엣지 오브 투모로우’도 같은 소재를 다뤘다. 국내 역시 지난해 tvN 드라마 ‘나인’을 비롯해 여러 작품에 시간여행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시간여행은 언젠가 실현 가능한 얘길까. ‘과학동아’를 펴내는 동아사이언스 팀과 과학 전문 출판사 ‘사이언스북스’의 도움말로 시간여행을 분석해봤다. 우선 용어 정리부터. 요즘 시간여행과 관련해 ‘타임 슬립(Slip)’이란 표현이 유행이다. 타임머신이 인간이 발명한 기계를 이용하는 거라면, 타임 슬립은 초능력이건 뭐건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미끄러지듯 시공간을 이동한단 뜻이다. 타임 슬립은 과학에서 출발한 개념은 아니다. 1994년 일본 작가 무라카미 류가 소설 ‘5분 후의 세계’에서 쓰며 대중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여행에는 얼마만 한 힘이 필요할까. 다양한 과학적 가설이 있는데, 공통적으로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들 것으로 본다. 음의 중력이니 팬텀에너지니 너무 복잡한 개념은 접어두자. 태양에너지보다 훨씬 큰, 뭐를 상상하건 그보단 큰 힘이 필요하다. 이런 힘이 마련돼도 시간여행은 미래로만 할 수 있을 거라는 의견이 그동안 과학계에선 우세했다. 짐 알칼릴리 영국 서리대 물리학과 교수는 저서 ‘블랙홀 교실’에서 “상대적으로 절대불변의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빛보다 빠른 속도’를 지닌 비행선이 있다면 미래로 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1968년 영화 ‘혹성탈출’에서 우주로 떠났던 인간 주인공이 유인원이 지배하는 미래의 지구로 돌아온 것도 이에 근거한 설정이다. 상당수 과학자와 철학자는 ‘조부모 역설’을 근거로 과거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다고 봤다. 조부모 역설이란 과거로 가면 자신의 조부모도 죽일 수 있단 가정. 끔찍한 상상이지만 이렇게 되면 본인이 태어날 수 없으니, 살인을 저지를 행위의 주체가 없다. 1985년 영화 ‘백 투 더 퓨처’에서 처녀 시절 어머니가 아버지가 아닌 주인공에게 관심을 갖자 존재가 사라질 위기에 빠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최근엔 이 역설 또한 극복할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이미 자신이 태어나는 결과가 ‘정해졌기’ 때문에 어떻게 해도 조부모를 죽이는 데 실패한단 주장이다. 한마디로 터미네이터가 아무리 용을 써도 존 코너의 탄생은 막을 수 없단 얘기다. 또 ‘다중우주론’을 바탕으로 역설을 부정하기도 한다. 다차원 속에 수많은 평행 우주가 함께 존재해 한 우주에서 조부모가 죽더라도 다른 우주는 그대로 유지된다고 본다. 한 가지 더. 타임머신을 발명해도 영화 ‘명량’의 조선 수군에게 최신예 전투함을 보낼 순 없다. 복잡한 과학적 설명을 제외하고 결론만 얘기하면 과거로 가는 시간여행 장치를 발명하기 이전으로는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사이언스북스의 노의성 편집장은 “현대 물리학에선 이론적으로 시간여행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며 “다만 과학적 검증이 부족한 상태에서 기본적 인과율에 어긋나는 문화적 설정은 몽상에 가깝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바다안개가 자욱한 망망대해에 홀로 뜬 배 ‘전진호’는 사회의 축소판일 수도 있습니다. 삶이 선택이 아닌 상황에 따라 흘러가는 절박함이 곳곳에서 묻어나죠. 거기서 우리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직면할 수 있지 않을까요.” 13일 개봉한 영화 ‘해무’에서 주인공인 ‘철주’ 역을 맡은 김윤석은 살짝 엄한 학교 선배 같았다. 간간이 농도 던지지만, 헐렁하게 대했다간 금세 꾸중이 날아올 것 같은. ‘돈 잘 버느냐’가 아니라 ‘제대로 살고 있나’를 물을 듯한 그에겐 거친 바다를 헤치고 온 선장의 ‘짠내’가 진득하게 묻어났다. ―영화가 밀도 있고 무겁다. “원했던 대로 작품이 나왔다. 사람의 심장을 꿰뚫는 이야기가 묵직하게 울린다. 해무는 소화불량을 유발하는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청량음료마냥 탁 쏘는 맛은 없다. 하지만 그 시원함은 잠시일 뿐, 결국 다시 목이 타지 않나. 해무는 삼키기 쉽지 않지만 여운이 오래갈 것이다.” ―잔인한 장면은 없는데 이상하게 섬뜩했다. “그게 바로 삶이기 때문이다. 궁지에 몰린 선원들의 행동이 멀리서 보면 극단적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게 그들의 죄일까. 전진호엔 어떤 악당도 없다. 시대가 죄인이고 상황이 악인이다. 극중인물들의 선택에 공감하건 아니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 바다안개를 닮은 여백이야말로 영화가 전하려는 메시지다. 실제로 사운드나 상황으로 분위기를 만들 뿐, 직접적인 잔인한 묘사는 화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심오한 연극 한 편을 본 기분이 들었다. “원래 연우무대의 연극이 원작이라 그런 면이 없지 않다. 출연진도 대부분 연극배우 출신이고. 그래서인지 박유천을 포함해 모든 배우의 호흡이 아주 좋았다. 연기하는 입장에선 갑판이 무대처럼 나무 바닥이라 느끼는 질감도 비슷했다. 발소리도 저벅저벅 울렸고. 바다에서 촬영하니 카메라 들이대는 구경꾼이 없어 몰입도가 끝내줬다.” ―어떻게 이 영화를 선택했나. 그간 맡은 역할이 대체로 평범하지 않다. “원작에 대한 신뢰감이 높았다. 심성보 감독과 봉준호 제작자도 영화 ‘살인의 추억’을 통해 연극을 영화화해본 경험이 있다(심 감독은 봉 감독의 ‘살인의 추억’ 각본에 참여했다). 극단적 역할만 선호하는 건 아닌데…. 그보단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는지, 현실이 제대로 투영되는지에 주목한다. 가벼운 코미디라도 삶에 대한 고찰이 어설프지 않게 담겨야 한다. 진실한 이야기가 중심을 잡아야 캐릭터도 입체적으로 살아난다.” ―심성보, 봉준호 감독과 궁합은 어땠나. “심 감독은 겉만 보면 섬세하고 연약하다. 하지만 내적으로 강하고 지독하다. 끝까지 밀어붙이는 치밀함을 지녔다. 봉 감독은 별로 좋은 제작자가 아니었다. 돈 아낄 생각은 안 하고, 계속 현장에 와서 배우들 술값 대느라 바빴다. ‘설국열차’ 해외 프로모션으로 바빴을 텐데, 참 고마웠다.” ―성수기 오락영화 시즌에 너무 심각한 영화란 평도 있다. “그런 고정관념은 버릴 때가 됐다. 2008년 ‘추격자’는 2월 비성수기에 당시엔 기피 장르였던 스릴러로 500만 명을 넘겼다. 오히려 이런 시기일수록 의미 있는 작품을 보는 게 가치 있지 않나. 먼 훗날 내 영화 인생에서 해무는 가장 자랑스러운 필모그래피 중 하나로 남을 것이다. 볼수록 새로운 뭔가를 깨친다. 그 감흥을 관객들과 나누고 싶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원스’의 존 카니 감독이 ‘비긴 어게인’으로 돌아왔다. 세계 영화와 음악 팬을 사로잡았던 원스는 2007년 국내 개봉해 저예산 영화 최초로 관객 20만 명을 넘겼고, 사운드트랙 앨범은 9만 장 이상 팔렸다. 당시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주인공들의 내한공연도 엄청난 화제였다.13일 개봉한 비긴 어게인은 감독이 미국 할리우드로 건너가 찍은 음악영화. 상처 입은 이들의 사랑을 얘기하고, 아름다운 선율이 귀를 사로잡는 건 원스 때와 비슷하다. 원스를 감명 깊게 보고 들었던 영화 기자와 음악 기자가 비긴 어게인을 함께 봤다. 》 ○ 영화는 이렇다 원스는 제작비가 15만 달러(약 1억5000만 원)였다. 쓸쓸한 아일랜드 더블린의 거리 연주자를 담는 데 캠코더 2대밖에 쓰질 못했다. 물론 작품은 애절하고 근사했지만, 감독으로선 인프라에 대한 목마름이 컸을 게 분명하다. 그랬던 그가 미국 할리우드의 넉넉한 자본으로 찍은 영화가 비긴 어게인이다. 출연진만 봐도 상전벽해다. 키라 나이틀리와 마크 러펄로, ‘마룬5’의 보컬 애덤 러바인까지 나온다. 영상의 화려함이나 세련됨은 말할 것도 없다. 제작비가 공개되진 않았지만 원스의 수백 배가 들었을 터. 그 덕분인지 할리우드 취향 때문인지 모르나 영화는 전체적으로 밝다. 댄(마크 러펄로)은 뉴욕에서 한땐 잘나갔지만 지금은 퇴물 취급받는 음반 프로듀서. 아내와 별거했고 딸과도 소원하며, 자기 회사에서 쫓겨났다. 그레타(키라 나이틀리) 역시 상황은 별로다. 음악적 성공을 거둔 남자친구(애덤 러바인)를 따라 영국에서 왔지만, 그의 외도를 눈치 채고 친구 집에 얹혀산다. 그런 그들이 우연히 마주치며 앨범을 만들려 의기투합한다. 영화는 로맨틱 분위기가 짙다. 전작에서 봤던 애한을 기대했던 팬은 실망이 클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작품 자체만 본다면 꽤나 짜임새가 쫀쫀하다. 나이틀리가 노래하는 모습도 은근 매력적이고, 러바인도 연기가 된다. “음악을 만나면 인생의 시시함도 사라진다”는 댄의 대사처럼 이 영화가 관객에게 얼마나 마법을 부릴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댄과 그레타가 추억 어린 옛 노래를 이어폰으로 함께 나누며 뉴욕의 밤거리를 헤매는 장면은 뭉클함을 넘어서는 뭔가가 있다. 이젠 할리우드 시스템에서 영화를 찍긴 해도, 음악과 영상을 맛깔스럽게 버무리는 카니 감독의 능력은 여전히 살아있다. 원스만큼의 절절함은 아닐지라도.○ 음악은 이렇다 눈 감고 보면 비긴 어게인은 원스의 무릎쯤 온다. 원스의 서걱대는 포크 음악이 주는 특별한 감흥을, 매끈하게 다듬어진 비긴 어게인의 팝이 따라가는 데 숨이 찬다. 나이틀리가 통기타 한 대 치며 부르는 ‘어 스텝 유 캔트 테이크 백’에 러펄로가 머릿속으로 여러 악기의 선율과 리듬을 입히는 장면처럼 비긴 어게인의 음악은 빈 공간을 채우는 편곡에 집착한다. 멜로디와 가사의 힘으로 촌스럽게 밀어붙인 원스가 오랜만에 먹는 집 밥이라면 비긴 어게인은 프랜차이즈 전문점 죽 같다. 러바인은 배역 자체로 영화의 이야기를 짊어진다. 나이틀리의 목소리는 하이틴 팝 가수 같다. 비긴 어게인의 음악이 곤죽은 아니다. 러바인이 부른 ‘로스트 스타스’는 백미다. 마룬5가 만들 수 없는 곡을 마룬5가 마룬5 스타일로 부르는 이 노래는 영화가 아니라면 존재할 수 없었을 거다. 뛰어난 기술이 노래의 감정선을 증폭할 수 있음을 워터파크 미끄럼틀 같은 러바인의 팔세토(가성)가 증명한다. 음악감독은 미국 록 밴드 ‘뉴 래디컬스’ 출신 작곡가 그레그 알렉산더다. 그가 친한 미국, 영국 작곡가 4명과 대부분의 노래를 만들었다. 원스의 음악은 영화의 주연이자 실제 가수인 글렌 한사드, 마르케타 이르글로바의 솜씨였다. 원스에 나온 ‘폴링 슬롤리’ ‘이프 유 원트 미’ ‘웬 유어 마인즈 메이드 업’ ‘라이스’의 압도적인 혼성 듀엣도 비긴 어게인에는 없다. 이르글로바가 주도하는 ‘이프 유 원트 미’ ‘더 힐’이 1980년대 단조 가요처럼 한국 감성에 붙은 것도 국내에서 원스를 본 관객 둘 중 하나가 사운드트랙 앨범을 사는 데 기여했다. 비긴 어게인은 나쁘지 않은 노래 모음집, 딱 거기까지다. 스토리와 영상, ‘로스트 스타스’를 걷어낸다면.정양환 ray@donga.com·임희윤 기자}
《 “제대한 지 5일 된 상고머리 복학생이 캠퍼스에서 족구를 한다.” “나부대대한 숫총각 백수가 신체를 바꿔치기해 온갖 여성을 유혹한다.” 이 무슨 ‘족구하는’ 소린가 싶겠지만 당당히 출사표를 던진 영화 2편의 스토리라인이다. 7일 소(少)개봉한 ‘숫호구’와 21일 뒤이을 ‘족구왕’은 겉만 보자면 생뚱맞고 지질한 C급 영화다. A급은커녕 요즘 대세인 B급 마이너 영화에 끼기도 힘들다. 허나 성수기 대작의 장벽을 헤치고 몇 군데 상영하지도 않는 영화들을 찾은 관객이라면 성배를 찾은 인디애나 존스의 감흥을 만끽할지도 모르겠다. 이미 각종 영화제에서 한국 독립영화의 유쾌한 반란으로 입소문을 탔던 두 영화의 ‘쭈쭈바’ 같은 청춘 백서를 들춰보자. 》○ 서툴고 투박해도 진정성은 넘실댄다 최근 ‘명량’이 한국 영화 흥행사를 새로 쓰고 있듯 숫호구도 범접하기 힘든 기록을 세운 작품으로 남을 공산이 크다. ‘극장에 걸린 가장 제작비가 적게 든 장편영화’로. “단돈 100만 원으로” 영화에 뛰어든 백승기 감독은 촬영, 편집을 끝낸 뒤 통장에 30만 원을 남겼다. 일단 출연료가 제로였다. 주인공은 본인이 맡았고 나머지 배역은 지인이거나 꼬드기거나. 영화 속 부모도 진짜 아버지 어머니가 나오셨다. 섭외비나 운영비도 안 들었다. 감독이 8세 때부터 산 인천의 동네 서점과 노래방 등이 “누구네 집 아들내미가 영화 찍는다”며 공짜로 장소를 내줬다. 식당 아주머니들은 힘내라며 밥값을 받지 않았다. 촬영장비는 DSLR 카메라로 버텼다. 이러다 보니 때깔은 당연히 후지다. 연기도 어색하고, 편집은 조악하다. 내용은 더 구리다. 서른 살이 되도록 연애도 취직도 못해 본 주인공 원준은 안타까운 외모와 스펙 0%의 ‘숫총각+호구’. 성경험은커녕 여자들에게 맞고 다닌다. 그런데 웬 생명공학 박사가 섹시매력 충만한 ‘아바타’를 개발했다며 실험 대상으로 원준을 유혹한다. 숫호구는 개연성도 설득력도 떨어지지만 웃기고 슬프다. 뭘 해도 나아질 게 없는 청춘일지언정 진심과 사랑은 소중할 터. 하지만 그 사랑을 위해 모든 것, 심지어 자신의 존재조차 부정해야 한다면 그건 올바른 선택일까. 특히 처연하기까지 한 영화의 끝자락은 울림이 크다. 감독의 호기로운 반문이 스크린을 꽉 채운다. “허술하면, 어색하면 왜 안 되지?”○ 천만 영화 안 부러운 쌈빡한 웃음(그리고 눈물) 족구왕은 지난해 ‘1999, 면회’로 호평을 받았던 독립영화사 광화문시네마의 두 번째 작품. 제작비는 약 1억 원으로 숫호구에 비하면 블록버스터지만 마케팅 비용까지 200억 원 가까이 드는 요즘 대작들과 견주자면 ‘12 대 330척’ 싸움 저리 가라다. 누리꾼 사이에서 한국판 ‘소림축구’로 불리는 영화는 여학생들이 딱 싫어하는 ‘족구하는 복학생’을 소재로 삼았다. 제대 직후 식품영양학과에 복학한 만섭(안재홍)은 학점 2.1에 토익 시험은 본 적도 없다. 취직 준비는 안 하고 족구에 빠져 산다. 남들 혀 차는 소리만 듣던 그가 캠퍼스 퀸인 안나(황승언)에게 첫눈에 반하고, 그 옆엔 잘생긴 전직 국가대표 축구선수가 있었으니…. 족구왕은 잘 빠진 영화다. 스토리에 최적화된 캐릭터들이 돋보이고 흐름도 군더더기가 없다. 코미디 상업영화 공식을 지키면서도 통통 튀는 신선함이 살아있다. 특히 안재홍의 연기가 놀랍다. 진짜 군대 물이 덜 빠진 복학생을 마주한 기분이다. 여주인공 역시 연기가 욕설만큼 차지다. 하지만 이 코미디를 살리는 진짜 힘은 ‘암울한 젊음의 현실’이다. 전역한 지 얼마나 됐다고 공무원시험 준비하라 구박당하고, 등록금 대출이자에 알바를 몇 탕씩 뛰는데도 독촉 전화에 시달려야 하는. 그런데 연애는커녕 좋아하는 족구조차 맘대로 할 수 없다. “남들이 싫어한다고 자기가 좋아하는 걸 숨기고 사는 것도 바보 같다고 생각해요”란 한마디는 서글픈 청춘의 지친 어깨를 감싸는 위로다. 제작진은 “평소 독립영화는 1만 명이 목표지만 이번엔 10만 명 관람을 노려보겠다”며 호기로운 공약을 내걸었다. 천만 영화의 승승장구도 반갑지만 갖은 독립영화들이 수십만 명씩 들 날은 언제일지. 두 영화, 모두 그럴 자격이 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제대한지 5일 된 상고머리 복학생이 캠퍼스에서 족구를 한다." "나부대대한 숫총각 백수가 신체를 바꿔치기해 온갖 여성을 유혹한다." 이 무슨 '족구하는' 소린가 싶겠지만, 당당히 출사표를 던진 영화 2편의 스토리라인이다. 7일 소(少)개봉한 '숫호구'와 21일 뒤이을 '족구왕'은 겉만 보자면 생뚱맞고 지질한 C급영화다. A급은커녕 요즘 대세인 B급 마이너 영화에 끼기도 힘들다. 허나 성수기 대작의 장벽을 헤치고 몇 군데 상영하지도 않는 영화들을 찾은 관객이라면, 성배를 찾은 인디애나존스의 감흥을 만끽할지도 모르겠다. 이미 각종 영화제에서 한국독립영화의 유쾌한 반란으로 입소문을 탔던 두 영화의 '쭈쭈바' 같은 청춘 백서를 들쳐보자. ● 서툴고 투박해도 진정성은 넘실댄다. 최근 '명량'이 한국영화 흥행사를 새로 쓰고 있듯, 숫호구도 범접하기 힘든 기록을 세운 작품으로 남을 공산이 크다. '극장에 걸린 가장 제작비가 적게 든 장편영화'로. "단돈 100만 원으로" 영화에 뛰어든 백승기 감독은 촬영 편집을 끝낸 뒤 통장에 30만 원을 남겼다. 일단 출연료가 제로였다. 주인공은 본인이 맡았고, 나머지 배역은 지인이거나 꼬드기거나. 영화 속 부모도 진짜 아버지 어머니가 나오셨다. 섭외비나 운영비도 안 들었다. 감독이 8살 때부터 산 인천의 동네 서점과 노래방 등이 "누구네 집 아들내미가 영화 찍는다"며 공짜로 장소를 내줬다. 식당 아주머니들은 힘내라며 밥값을 받지 않았다. 촬영장비는 DSLR 카메라로 버텼다. 이러다보니 때깔은 당연히 후지다. 연기도 어색하고, 편집은 조악하다. 내용은 더 구리다. 서른 살이 되도록 연애도 취직도 못해 본 주인공 원준은 안타까운 외모와 스펙 0%의 '숫총각+호구'. 성경험은커녕 여자들에게 맞고 다닌다. 그런데 웬 생명공학박사가 섹시매력 충만한 '아바타'를 개발했다며 실험대상으로 원준을 유혹한다. 숫호구는 개연성도 설득력도 떨어지지만 웃기고 슬프다. 뭘 해도 나아질 게 없는 청춘일지언정 진심과 사랑은 소중할 터. 하지만 그 사랑을 위해 모든 것, 심지어 자신의 존재조차 부정해야 한다면 그건 올바른 선택일까. 특히 처연하기까지 한 영화의 끝자락은 울림이 크다. 감독의 호기로운 반문이 스크린을 꽉 채운다. "허술하면, 어색하면 왜 안 되지?"●천만 영화 안 부러운 쌈빡한 웃음(그리고 눈물) 족구왕은 지난해 '1999, 면회'로 호평 받았던 독립영화사 광화문시네마의 두 번째 작품. 제작비는 약 1억원으로 숫호구에 비하면 블록버스터지만, 마케팅비용까지 200억 원 가까이 드는 요즘 대작들과 견주자면 '12 대 330척' 싸움 저리 가라다. 누리꾼 사이에서 한국판 '소림축구'로 불리는 영화는 여학생들이 딱 싫어하는 '족구하는 복학생'을 소재로 삼았다. 제대 직후 식품영양학과에 복학한 만섭(안재홍)은 학점 2.1에 토익은 본 적도 없다. 취직 준비는 안 하고 족구에 빠져 산다. 남들 혀 차는 소리만 듣던 그가 캠퍼스 퀸인 안나(황승언)에게 첫눈에 반하고, 그 옆엔 잘생긴 전직 국가대표 축구선수가 있었으니…. 족구왕은 잘 빠진 영화다. 스토리에 최적화된 캐릭터들이 돋보이고 흐름도 군더더기가 없다. 코미디 상업영화 공식을 지키면서도 통통 튀는 신선함이 살아있다. 특히 안재홍의 연기가 놀랍다. 진짜 군대 물이 덜 빠진 복학생을 마주한 기분이다. 여주인공 역시 연기가 욕설만큼 차지다. 하지만 이 코미디를 살리는 진짜 힘은 '암울한 젊음의 현실'이다. 전역한지 얼마나 됐다고 공무원시험 준비하라 구박당하고, 등록금 대출이자에 알바를 몇 탕씩 뛰는데도 독촉전화에 시달려야 하는. 그런데 연애는커녕 좋아하는 족구조차 맘대로 할 수 없다. "남들이 싫어한다고 자기가 좋아하는 걸 숨기고 사는 것도 바보 같다고 생각해요"란 한마디는 서글픈 청춘의 지친 어깨를 감싸는 위로다. 제작진은 "평소 독립영화는 1만 명이 목표지만, 이번엔 10만 명 관람을 노려보겠다"며 호기로운 공약을 내걸었다. 천만 영화의 승승장구도 반갑지만, 갖은 독립영화들이 수십만 명씩 들 날은 언제일지. 두 영화, 모두 그럴 자격이 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영화 ‘명량’이 개봉 12일째인 10일 오전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역대 최단 기간 1000만 돌파 영화였던 ‘괴물’(21일)보다 9일이나 빠르다. 인기의 중심에는 이순신이 있다. 빅데이터 분석업체인 스토리닷에 따르면 개봉 일부터 8일까지 트위터와 블로그에서 언급된 영화 ‘명량’ 관련 키워드 중 이순신 언급량(버즈량)은 약 4만 건에 달한다. 주인공인 배우 최민식(약 9700건)의 4배 이상이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명량’은 오래전부터 형성돼 있던 이순신 팬덤의 욕구를 제대로 풀어준 영화”라고 평가했다. ○ 보수 진보를 아우르는 ‘안티’ 없는 이순신 ‘충’과 ‘의’를 강조하는 이순신은 민족주의, 넓게는 보수의 정서와 닿아 있는 인물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는 이순신 장군을 성웅(聖雄)으로 추앙했고 1968년 서울 세종로에 이순신 동상을 세웠다. 이 때문에 이순신은 1980년대 이후 진보 진영에서 한동안 외면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영화 ‘명량’은 ‘충’과 ‘의’를 달리 해석하며 약점을 극복했다.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임금이 있다”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을 좇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같은 이순신의 대사는 진보 진영에서도 매력적으로 받아들일 요소다. 여야 정치인 모두 ‘명량’ 열풍에 동참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7일 ‘명량’을 봤고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도 13일 관람할 예정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전병헌 전 원내대표도 최근 트위터에 ‘명량’ 관람 후기를 올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델로 한 ‘변호인’(2013년·1137만 명)이나 혁명이 부각된 ‘레미제라블’(2012년·591만 명)처럼 진보 진영이 흥행을 주도한 영화와는 확연히 다른 양상이다. ○ 지금 한국은 ‘이기는 리더십’을 원한다 영화와 드라마 속 이순신은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유현목 감독의 ‘성웅 이순신’(1962년) 등 3편의 이순신 영화가 나왔던 1960, 70년대엔 국난 극복의 상징이자 완전무결한 영웅이었다. 전두환 정권 시절의 드라마 ‘조선왕조 오백년-임진왜란’에선 엄격하고 강한 군인으로 그려졌다. 반면 ‘명량’의 이순신은 강인한 리더십으로 부각되고 있다. 일각에선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사회의 리더십 갈구에 대한 방증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명량대첩은 12척의 배로 133척을 무찌른, 가장 열악한 상황에서 드라마틱한 승리를 이뤄낸 해전으로 꼽힌다. 이처럼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는 리더십’이 결정적인 흥행 요인이라는 것. 김선영 대중문화평론가는 “계속된 불황과 잇따른 대형 사고로 패배감, 무력감에 젖은 한국 사회에 오랜만에 대중이 선망할 만한 승리의 사례를 보여줬다”고 평가했다.구가인 comedy9@donga.com·정양환 기자 손가인 인턴기자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 }
‘세상에서 삼십이 년을 살고 끝마치노라/명은 어찌 이다지도 짧은데/뜻은 어찌 이다지도 길단 말인가…천수만세에/누가 이 들판 지나가려나/손가락질하고 서성대며/반드시 서글퍼하는 자가 있을 것이다.’(조선 중기 문신 홍언충·1473∼1508의 시 ‘자만’에서) 자만시(自挽詩)란 어찌 보면 참 생뚱맞은 문학작품이다. 쉽게 말해 자신이 죽었다 생각하고 이를 애도하는 내용인데, 살짝 궁상맞다. 살다가 때 되면 떠나는 거지, 뭘 그리 직접 챙기고 앉았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인 저자에 따르면 선인들의 뜻은 그리 얕지 않은 모양이다. 단순히 죽음을 기린다기보단 삶의 끝이란 가정 아래 평생을 복기하는 게 중요하다. ‘오호 통재라’가 아니라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초점이 맞춰지는 셈이다. 저자가 7년여 동안 모은 자만시는 모두 139명이 지은 228수. 조선 초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다양한 문인들의 상념과 회한이 가득하다. 일제에 조국을 빼앗기며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니 한만 남는다’고 절규했던 선비 하동규(1873∼1943)의 비감이나 신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던 16세기 중인 시인 최기남(1586∼?)의 고독도 절절하다 못해 처연하다. 이 책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전해지는 울림이 상당하다. 그만큼 자만시는 죽음이란 거대한 장벽 앞에서 낱낱이 드러나는 인간적 속내가 오롯하기 때문일 터. 하지만 두꺼운 책을 읽는 내내 곡소리를 듣는 기분이 썩 유쾌하진 않다. 옛사람들이 지닌 고고한 정신세계를 받아들이기가 벅찬 감도 없지 않다. 솔직히 겁도 나고. 그래도 하나는 알 것 같다. 삶이 행복해야 죽음도 행복하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영화 ‘명량’이 흥행 광풍을 일으키면서 이순신 장군과 명량대첩(鳴梁大捷)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불이 붙었다.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인터넷 댓글을 보면 영화 관람 후 난중일기나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를 읽고 싶단 의견이 많다. 정유재란의 판도를 뒤바꿔놓았던 명량대첩은 어떤 전투였을까. 조선 선조 30년(1597년) 음력 9월 16일 울돌목에서 벌어진 실제 상황을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전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 교수)과 윤인수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 학예연구사의 도움을 얻어 짚어봤다. 두 학자 모두 개봉 직후 영화를 관람했다.○ 거북선과 장검은 영화적 상상력 노 소장과 윤 학예사는 “이순신 장군을 되새기는 감동스러운 영화”라며 “역사적 오류도 있으나 수긍할 만한 수준”이라고 총평했다. 하지만 몇몇 짚을 대목이 없진 않다. 두 사람 모두 전쟁 직전 손실된 ‘거북선’을 첫손에 꼽았다. 명량에서 거북선은 건조되질 않았다. 앞서 조선 수군의 유일한 패전인 칠천량해전 뒤 남은 게 없었다. 다만 충무공의 조카 이분(1566∼1619)이 쓴 행록(行錄)에 “장군이 전선을 구선(龜船)처럼 꾸며 군세를 도우라 명했다”고 나온다. 거북선을 무서워한 왜적을 기만하는 전술이었다. 장군이 친히 ‘장검’(보물 제326호)으로 적을 베던 모습도 사실과 다르다. 올해 제작 7주갑(周甲·420주년)을 맞는 장검 두 자루는 길이가 약 2m. 이석재 경인미술관장은 “칼날에 격검흔(擊劍痕·검이 부딪친 흔적)이 없는 의장용”이라고 설명했다. 공은 길이가 90∼100cm인 쌍룡검(雙龍劒)을 썼던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에서 손에 땀을 쥐게 하던 백병전은 대장선에선 벌어지질 않았다. 거제현령으로 선봉에 섰던 안위(安衛·이승준 연기) 장군 배만 “왜적들이 의부(蟻附·개미떼처럼 달라붙음)해” 몸싸움이 벌어졌다.○ 충무공의 수준 높은 심리전 돋보여 사실 명량대첩은 겉만 보면 다소 ‘밋밋하게’ 진행됐다. 1592년 한산대첩의 학익진(鶴翼陣) 같은 화려함은 없었다. 하지만 충무공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심리전에도 달통한 리더였다. 먼저 13척으로 전투에 나서 적이 가벼이 여기도록 만들었다. 함대 수는 공이 장계를 올릴 땐 12척이었으나 전쟁 직전 1척을 더 모았다는 게 학계의 일반적 시각이다. 방심한 왜군은 울돌목의 좁은 지형과 낯선 조류도 개의치 않고 전장에 뛰어들었다. 이때 또 다른 심리전술을 가동하는데, 영화처럼 일자진(一字陣)을 펼친 뒤 그 후방에 고깃배 수백 척을 띄웠다. 2011년 노 소장이 발굴한 의병장 오익창(吳益昌·1557∼1635)의 ‘사호집(沙湖集)’엔 “적이 대규모 전선으로 오인하도록 위장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조류와 위장에 당황한 왜군은 좁은 길목 탓에 조선 수군과 엇비슷한 숫자만 앞에 섰다. 마주선 배는 거의 13 대 13인 셈. 이때 조선의 우월한 화포가 위력을 발휘했다. 무른 삼나무로 만든 왜군의 배는 포의 반동을 버틸 수 없어 대포를 실을 수 없었다. 조선 판옥선은 두껍고 단단한 소나무 재질이라 원거리 화포 장착에 걸맞았다. 이렇게 한 줄 한 줄 포격으로 때려 부수니 왜적은 수적 우위를 써먹지 못했다. ‘충파(沖破·배와 배를 부딪쳐 부숨)’도 이 같은 배의 장점을 극대화한 것이다. 왜선은 안 그래도 무른 목재인 데다 해협을 건너기에 유리하도록 바닥이 뾰족한 첨저선(尖底船)이었다. 조선 판옥선은 평상시엔 세곡을 나르는 조운선(漕運船)으로 쓰던 평저선(平底船·바닥이 평평한 배)이었다. 단단한 데다 넓적하니 충돌에 강했다. 다만 명량 때 충파 전술을 썼는지는 분명치 않다. 사료는 이 해전에서 적선 31척이 침몰했다고 전한다. 영화처럼 330척이 전투에 나섰다면 겨우 10%를 잃고 퇴각하는 게 어색하다. 전남 해남군에 있는 ‘명량대첩비’(보물 제503호)에도 330척으로 나오나, 학계에선 운용할 수 있던 총량일 뿐 실제 전투엔 133척이 참전했다고 본다. 그래도 100척 넘게 남았는데 꽁무니를 뺀 건 역시 ‘이순신’이란 이름 석자가 지닌 힘이었다. 충무공은 적들의 이런 심리까지 내다봤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충무공이 한강 괴물과 파란 외계종족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조선 1597년 정유재란 때 명량대첩을 다룬 영화 ‘명량’이 개봉 6일째인 4일 관객 500만 명이 넘는 신기록을 세우며 흥행 광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전까지 500만 명 돌파 기록은 ‘괴물’과 ‘도둑들’ ‘설국열차’ ‘관상’ ‘아이언맨3’가 공동으로 세운 개봉 10일째. 명량이 무려 4일이나 앞선다. 이미 초대박 기준인 ‘1000만 클럽(관객 1000만 명 돌파)’ 가입은 시간문제고, 역대 관객 수 1, 2위인 ‘아바타’(1362만 명), ‘괴물’(1302만 명)과 비교하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명량의 인기는 사실 어느 정도 예견됐다. 총 제작비 180억 원을 넘는 호쾌한 전쟁액션 대작인 데다, 극장가에 관객이 많이 몰려 ‘블록버스터 시즌’이라 불리는 7월 말∼8월 초에 선보였기 때문이다. 조계종 총무원장인 자승스님과 한민구 국방부 장관, 최윤희 합참의장 등 각계 명사들이 연이어 시사회를 찾은 것도 호재로 작용했다. 특히 황기철 해군참모총장은 영화를 보고 눈시울을 붉혀 화제가 됐다. 막상 뚜껑을 여니 반응은 예상보다 더욱 거셌다. 지난달 30일 첫날부터 68만 명이 몰리며 개봉일 최대 관객(이전 55만 명)을 기록하더니, 평일 최대 관객(1일·86만 명), 최단 기간 100만 명 달성(개봉 2일째), 하루 최대 관객(3일·125만 명), 좌석점유율(3일·87.6%) 등 거의 모든 기록을 갈아엎었다. 특히 국내 시장에서 하루 관객이 100만 명을 넘은 건 처음이다. 제작사인 CJ E&M의 한응수 홍보과장은 “내부 전망은 물론이고 기대치까지 훌쩍 뛰어넘어 놀라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명량의 1000만 클럽 가입은 언제쯤 가능할까. 지금까지 누적 관객 1000만 명을 넘어선 영화는 아바타(1위), 괴물(2위) 등 모두 11편. 그간 1000만 돌파는 평균 개봉 한 달 안팎에 이뤄졌으나, 지금 기세라면 명량은 훨씬 빠를 가능성이 크다. 영화계에선 이번 주 평일 관객 동원이 관건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1000만 클럽 가입은 작품성이나 입소문 이상의 플러스알파가 필요하다. 개봉 열흘 만에 500만 명을 달성했던 영화 가운데 ‘설국열차’ ‘관상’ ‘아이언맨3’는 모두 1000만 문턱인 900만 명(역대 12∼14위)대에서 주저앉았다. 게다가 지난달 23일 개봉해 2일까지 447만 명이 넘은 ‘군도: 민란의 시대’가 아직 선전하고 있고, 또 다른 대작영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6일 개봉)과 ‘해무’(13일)가 경쟁에 뛰어드는 것도 변수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충무공이 한강 괴물과 파란 외계종족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조선 1597년 정유재란 때 명량대첩을 다룬 영화 '명량'이 개봉 6일 째인 4일 관객 수 500만 명이 넘는 신기록을 세우며 흥행 광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전까지 500만 명 돌파 기록은 '괴물'과 '도둑들' '설국열차' '관상' '아이언맨3'가 공동으로 세운 개봉 10일째. 명량이 무려 4일이나 앞선다. 이미 초대박 기준인 '천만클럽(관객 수 1000만 명 돌파)' 가입은 시간문제고, 역대 관객 수 1,2위인 '아바타'(1362만) '괴물'(1302만)과 비교하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명량의 인기는 사실 어느 정도 예견돼왔다. 총 제작비 180억 원을 넘는 호쾌한 전쟁액션대작인데다, 극장가에 관객들이 많이 몰려 '블록버스터 시즌'이라 불리는 7월 말~8월 초에 선보였기 때문이다. 조계종 총무원장인 자승스님과 한민구 국방부장관, 최윤희 합참의장 등 각계 명사들이 연이어 시사회를 찾은 것도 호재로 작용했다. 특히 황기철 해군 참모총장은 영화를 보고 눈시울을 붉혀 화제가 됐다. 막상 뚜껑을 여니 반응은 예상보다 더욱 거셌다. 지난달 30일 첫날부터 68만 명이 몰리며 개봉일 최대 관객(이전 55만 명)을 기록하더니, 평일 최대 관객(1일·86만 명), 최단 기간 100만 명 달성(개봉 2일째), 1일 최대 관객(3일·125만 명), 좌석점유율(3일·87.6%) 등 거의 모든 기록을 갈아엎었다. 특히 국내 시장에서 하루 관객이 100만 명을 넘은 건 처음이다. 제작사인 CJ E&M의 한응수 홍보과장은 "내부 전망은 물론 기대치까지 훌쩍 뛰어넘어 놀라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명량의 천만클럽 가입은 언제쯤 가능할까. 지금까지 누적 관객 수 1000만 명을 넘어선 영화는 아바타(1위) 괴물(2위) 등 모두 11편. 그간 1000만 돌파는 평균 개봉 1달 안팎에 이뤄졌으나, 지금 기세라면 명량은 훨씬 빠를 가능성이 크다. 영화계에선 이번 주 평일 관객 동원이 관건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천만클럽 가입은 작품성이나 입소문 이상의 플러스알파가 필요하다. 개봉 10일 만에 500만 명을 달성했던 영화 가운데 '설국열차' '관상' '아이언맨3'는 모두 천만 문턱인 900만 명(역대 12~14위)대에서 주저앉았다. 게다가 지난달 23일 개봉해 2일까지 447만 명이 넘은 '군도: 민란의 시대'가 아직 선전하고 있고, 또 다른 대작영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6일 개봉)과 '해무'(13일)가 경쟁에 뛰어드는 것도 변수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스크린대전 마지막 주자가 드디어 바다안개(海霧)를 헤치고 모습을 드러냈다. 다음 달 13일 개봉하는 ‘해무’는 앞선 ‘군도: 민란의 시대’ ‘명량’ ‘해적: 바다로 간 산적’에 비해 스케일이 크진 않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이 기획 제작을 맡은 데다 ‘살인의 추억’(2003년) 각본을 쓴 심성보 감독의 첫 장편으로 제작 초기부터 이목을 끌었다. 때는 1998년 외환위기 직후. 고깃배 전진호의 선장 철주(김윤석)는 폐선 위기에 몰린 배를 구하려 밀항에 가담한다. 철주를 비롯한 여섯 명의 선원은 어렵사리 조선족 수십 명을 배에 태우지만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해무처럼 예기치 못한 사건에 휘말린다. 정양환 구가인 기자 역시 뿌연 안개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데…. 》▽구가인 기자=아, 느낌 있어. 칙칙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은근 좋았어. ▽정양환 기자=괜찮은 영화란 점은 반박할 수 없네. 근데 왠지 엄지를 추켜올리긴 망설여져. 너무 기대가 컸나. 영 께적지근하네. ▽구=뭘 바랐는데? 왁자지껄하진 않아도 이야기를 쫄깃쫄깃하게 끌고 가. 당시 한국 사회를 빼다 박은 전진호란 무대의 출렁거림이 스크린을 넘실대잖아. ▽정=짜임새가 탄탄하긴 했어. 2001년 실제 벌어졌던 ‘제7태창호 사건’을 소재로 한 원작 연극도 극찬을 받았지. 근데 너무 착착 들어맞아가는 흐름이 거슬렸어. 차림표 읽은 뒤 코스 요리 먹는 기분? 뒤로 갈수록 대충 짐작이 되더라는. ▽구=어허, 심리 스릴러의 묘미를 모르시네. 찌릿한 긴장감 자체를 즐겨야지. 마무리가 살짝 느슨하긴 했지만, 그걸 배우들의 연기가 잘 기름칠해서 넘어가던걸. ▽정=정말이지 김윤석의 스크린 장악력은 알고 봐도 놀랍던데. 전라도 사투리가 어색한 대목도 있던데, 그걸 연기로 덮고도 남더라. ▽구=잘한단 말로는 설명이 부족한 듯. 특히 마지막에 화면을 가득 채우는 힘이란. 문성근 김상호 유승목 이희준도 하나 같이 이름값 했어. 동식이(박유천) 연기도 기대 이상. 엄청나게 노력한 게 보여서, 아이돌 연기에 대한 선입견이 미안할 정도. ▽정=박유천 본인에게도 이 작품은 중요한 전환점이 되겠더라. 홍매(한예리)도 빼놓으면 섭섭하지. ‘코리아’(2012년) 북한말, ‘군도…’ 전라도 사투리, 이번엔 조선족. 연기는 둘째 치고 언어적 감각이 탁월한 배우 같아. ▽구=동식과 홍매의 로맨스는 좀 거추장스럽지 않았어? 그 와중에 정사신이 꼭 있어야 하나. ▽정=두 사람의 애정이 사건을 얽히게 만드는 뼈대잖아. 섹스 자체가 중요하진 않지만, 둘을 단단히 잇는 연결고리가 형성되는 거지. 굉장히 슬픈 장면이던걸. 하지만 좀 뻔해. ▽구=연극적인 분위기 때문 아닐까. 그걸 선호하는 관객도 많아. 오히려 ‘봉테일(봉준호 감독 별명)’ 식 디테일한 유머가 드문 게 아쉬웠어. 청소년 관람불가답게 잔인한 측면도 있고. ▽정=그건 칭찬해야지. 감독 본연의 색깔을 찾으려 노력했단 소리잖아. 하지만 뭐랄까. 제목이 해무인데 해무가 빠진 느낌은 들어. 찐득찐득한 바다의 소금기를 좀 더 살렸으면 어땠을까. ▽구=4편 모두 링에 올랐으니 순위나 매겨볼까. 오로지 취향 문제지만 ‘군도…’ ‘해무’가 가장 맘에 드네. ‘명량’은 때깔이 좋고. ▽정=신에겐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사옵니다. ▽구=또 그러신다. 하긴 승자는 누구도 모르는 건가. 바다안개처럼. ▽정=물레방아처럼, 도적 떼처럼. 울돌목처럼.▼영화평론가 한 줄 평과 별점▼(★ 다섯 개 만점)강유정 연기, 시나리오, 촬영 모두 극한! 관객의 공감이 관건 ★★★김봉석 지독하게 바닥까지 파고든다. 어둡고 참담하지만, 나태하지않다. ★★★★정지욱 상업영화 옷을 입기엔 부담이 큰 예술영화. 손익분기점은 어찌 넘기려나. ★★★이해리(스포츠동아 기자) 비극과 욕망 그리고 광기의 살육전 ★★★정양환 ray@donga.com·구가인 기자 }
조선 개국을 앞둔 시기, 명 황제가 하사한 국새를 고래가 삼켜버린다. 국새를 잃어버린 조정은 혼란에 빠지고, 고래 사냥을 위해 해적은 물론이고 산적까지 바다로 몰려든다. 다음 달 6일 개봉하는 ‘해적’은 국새를 찾기 위해 해적과 산적, 개국세력이 얽혀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린 오락 영화다. ‘댄싱퀸’의 이석훈 감독과 드라마 ‘추노’의 천성일 작가가 뭉친 ‘해적’의 승부처는 웃음. 김남길이 오합지졸 산적을 이끄는 두목 장사정 역을, 손예진이 바다를 호령하는 해적단의 여두목 여월 역을 맡았다. ‘한국판 캐리비안의 해적’을 꿈꾸는 이 영화에 대한 정양환, 구가인 기자의 반응은 ‘명량’에 이어 이번에도 갈렸다. ▽정=애들 손잡고 가서 보기 딱이야. 올여름 스크린 대첩을 벌이는 4편 중에서 유일한 12세 관람가인데 이는 분명 강점이지. ▽구=애들 수준 무시하는 거 아니유? 너무 웃기려다 보니 개연성이 많이 떨어지던데. ▽정=웃자고 만든 영화에 정색하고 달려들지 마셔. 생각 없이 보기 딱 좋은 영화잖아. 보다가 자주 낄낄거렸어. ▽구=이야기 욕심이 너무 커. 그냥 국새만 찾으면 될 텐데, 이성계 정도전까지 나오고 역사 뒤틀기까지 시도하니 산만해. 심지어 영화 막바지 장사정 여월의 로맨스는 황당했어. 왜 꼭 남녀 주인공은 사랑해야 하는 것인가! ▽정=김남길 손예진이 나왔는데 야릇한 감정신도 안 보여주면 얼마나 아쉽냐. 게다가 조연진도 빵빵하니 이야기가 다채로울 수밖에. 유해진 이경영 오달수 김태우 박철민 신정근 김원해… 에고, 숨차. f(x) 설리도 나와! ▽구=그래, 유해진은 정말 빵 터졌어. 예상 가능한 유머 코드인데도 웃긴단 말이지. ▽정=굵직한 조연들이 많은데 배우의 매력을 다 살리진 못한 듯. 특히 오달수 아저씨가 아쉬웠어. 그 양반 나와서 안 웃기기도 힘든데. ▽구=어디서 본 듯한 설정, 어디서 본 듯한 장면이 많아. ▽정=우위썬(오우삼) 감독 오마주 같은 장면도 보이더라. 의상은 ‘캐리비안의 해적’을 의식한 것 같아. 여말선초가 아무리 화려한 시대였대도 출연진이 너무 서양 해적 같아서 불편했어. ▽구=근데 김남길은 조니 뎁 닮은 거 같지 않아? ▽정=뜬금없이 외모 칭찬은. 하여간 잘생기면 너그럽더라. 오히려 손예진이 역시나 싶더구먼. 첫 사극에 첫 액션영환데 어색하지 않았어. 해적 여두목도 은근히 잘 어울리던데. 키라 나이틀리 생각도 나고. ▽구=외모 따지는 게 누군지 모르겠네. 무슨 해적이 그렇게 메이크업과 헤어가 자주 바뀌나. 두목은 코디도 있는 건가? 부하들은 짐승 같은데 혼자만 말갛다니! 또 다른 주인공인 고래는 어땠어? 제작비(130억 원) 상당 부분을 고래님 컴퓨터그래픽(CG)에 투자했단 소문이 돌았는데. ▽정=기대보단 ‘눈빛 연기’가 꽝이더라(웃음). 고래는 둘째 치고 거대한 물레방아 바퀴나 폭발 신은 살짝 닭살 돋았어. ‘명량’ 해상 전투를 봐서 그런가. 영 성에 안 차. ▽구=액션 장면은 그만하면 합격점. 그럭저럭 속도감도 있고. 칼싸움도 하고 화살도 쏘고, 포도 팡팡 터지고. ▽정=액션만큼은 ‘군도: 민란의 시대’나 ‘명량’보다 약한 듯. 그래도 하나는 확실해. ‘해적’은 무더운 여름날 아이 데리고 가족끼리 극장 가서 시원하게 웃다 나오기엔 충분하지 않을까.▼영화평론가 한 줄 평과 별점▼ (★ 다섯 개 만점)김봉석 코미디에 집착하면서 인물과 이야기의 일관성을 잃었다 ★★윤성은 유해진의 어깨에 많은 무게가 실린 오락영화 ★★★정지욱 우왕좌왕 떼로 몰려다니며 애타게 노력했건만 정신만 쏙 빼 놓았 을 뿐 ★★☆이해리(스포츠동아 기자) 계산과 이성을 내려놓으면 꽤 흥미 있는 오락 영화 ★★★☆구가인 comedy9@donga.com·정양환 기자 }
미국 감독 스탠리 큐브릭(1928∼1999)은 20세기 영화 팬을 자처하는 이들에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1964년)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년) ‘시계태엽 오렌지’(1971년) ‘샤이닝’(1980년) ‘풀 메탈 자켓’(1987년) 그리고 유작 ‘아이즈 와이드 셧’(1999년)까지. 그가 만든 영화는 모두(물론 초기 범작도 일부 있지만) 찬사와 논란의 중심에 섰다. 하지만 의외로 그의 인물 됨됨이에 대해선 그다지 알려진 게 없다. 기획부터 시나리오, 심지어 홍보 문구까지 일일이 체크하는 완벽주의자. 미국의 공고한 영화계 시스템과 자본의 간섭에서 거의 유일하게 벗어나 자유롭게 영화를 찍었던 독불장군(?)이란 점을 빼면, 그냥 수염 텁수룩하고 고집 세 보이는 할아버지 얼굴만 떠오른다. 그런 이에게 이 책은 이미지만 기억되는 한 거장 감독과의 거리를 좁혀주는 좋은 매개체가 되리라. 물론 이 책을 읽는다고 그에 대한 시각이 크게 바뀔 것 같진 않다. 영화 한 편을 만들기 위해 그가 들이는 공을 엿보노라면, 오히려 정말 ‘영화에 미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든다. 프로급 체스 실력을 가진 감독이 호적수인 기자와 장소를 옮겨가면서 새벽까지 자웅을 겨루는 대목은 매사에 열정적인 그의 성격도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단순히 정열만 넘치는 게 아니라, 자기 영화의 모든 부분에 대해 해박해지려 노력하는 그의 진지한 태도는 경외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국내에 큐브릭 감독을 집중적으로 소개한 첫 번째 책이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다만 1959년부터 1987년까지 여러 기자가 인터뷰한 기사를 모아 놓은 거라 한계가 분명하다. ‘풀 메탈 자켓’이 개봉되던 시점 이후의 삶을 가늠할 수 없단 점도 아쉽다. 그러나 그의 영화가 난해한 이유에 대해 “나 역시 쉬운 대답을 갖고 있지 않아서”라고 말하는 위대한 영화 철학자를 만나는 건 더 없이 반갑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하정우 “고개 까딱이는 도치, 윤감독의 평소 모습” ▼단순히 분노하는 백성이 아닌 주체적으로 성장하는 민초 그려“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는 흥겹게 즐기는 오락영화입니다. 어떤 작품이든 아쉬움은 남지만, 윤종빈 감독이나 저나 한 발 더 나아갔다고 확신합니다.” 소문대로였다. 23일 개봉한 ‘군도…’에서 주인공 도치(혹은 돌무치)를 맡은 배우 하정우(36)는 달변가로 알려져 있다. 15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나 보니 점잖으면서도 유쾌함이 물씬했다. 차 한 잔이 아니라 술 석 잔을 마셔도 들을 얘기가 있을 듯한 분위기는 그의 엄청난 ‘무기’다. 그런 하정우가 무지렁이 백정 역이라…. 얼핏 잘 이어지질 않지만, 그는 극 중에서 이를 매끄럽게 체화했다. “핵심은 ‘성장’이었습니다. 물정 모르던 백정이 가족을 잃고 도적의 무리에 합류해 복수를 꿈꿔요. 하지만 태생적 한계는 여전하죠. 거기서 오는 불균형이 웃음도 유발하고요. 그 미묘한 줄타기 속에서 도치는 뭔가를 깨달아 갑니다. 단지 억압에 분노하는 백성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성장하는 민초의 과정을 담은 거죠.” 묵직할 줄 알았던 민란에 B급 유머를 입힌 것도 의도된 것이란다. 윤 감독과 “무조건 재밌는 작품으로 만들자”며 의기투합했다. ‘용서받지 못한 자’(2005년)부터 ‘비스티 보이즈’(2008년)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2011년)까지 세 작품을 함께했던 두 사람은 대학 선후배로 ‘눈빛만 봐도’ 아는 사이. 군도 역시 구상 초기부터 함께 논의했다. “영화에서 틱 장애처럼 고개를 까딱거리는 버릇이 나와요. 그거 윤 감독 따라 한 겁니다. 본인도 재미있다고 웃던데요? 하하, (윤 감독은) 정직하고 바른 사람입니다. 함께 영화를 만들고 함께 커 왔다는 동지 같은 믿음도 있죠. 군도 역시 베스트를 뽑았어요. ‘범죄와의 전쟁…’보다도 더 만족스러워요.” 지난해 ‘롤러코스터’를 통해 감독으로도 데뷔한 하정우는 중국 작가 위화의 소설이 원작인 ‘허삼관 매혈기’를 촬영하고 있다. 이번엔 감독에 주연까지 맡았다. 화가로서도 주목받은 그는 내년 2월 개인전을 준비 중이다. “가만히 있질 못하는 성격이에요. 뭔가를 경험하고픈 욕구가 큽니다. 항상 모자란 걸 채우고 싶다고나 할까. 물론 쉬기도 합니다. 전남 순천에서 촬영하다 근처 편백나무 숲에서 꼭 산책을 해요. 휴식도 노력이 필요하거든요.” ▼ 강동원 “풀어헤친 긴머리가 그렇게 멋있었나요” ▼군도가 맞서는 ‘악의 축’ 조윤役… 서자 출신 상처 많은 삶에 공감4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강동원(33)과의 인터뷰 장소는 여기자들로 북적거렸다. 언뜻 ‘부흥회장’ 분위기도 났다. 농담 삼아 ‘안구 정화’ 하러 왔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삼삼오오 진행된 그룹 인터뷰에서 여기자들은 강동원이 말할 때마다 일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23일 개봉한 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는 그의 복귀작. 그사이 공익근무를 마쳤고 휴식기를 가졌다. 그는 “오랜만의 촬영이라 긴장해선지 촬영 내내 뒷목이 뻣뻣했다”면서도 “좋은 선배들과 작업할 수 있어 정말 행복했다”고 했다. 영화에서 강동원이 맡은 역은 세도가 조윤. 도치(하정우)를 비롯해 ‘군도’가 맞서는 영화 속 ‘악의 축’이다. 그는 조윤에 대해 “서자로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한 상처가 있다. 악역이지만 공감 가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출연을 결심한 데는 윤종빈 감독에 대한 믿음이 컸다. “시나리오 작업 전에 만났어요. 보면 ‘감’이 오는 사람이 있는데 감독님이 그랬죠. 악역인데 괜찮겠냐고 하셨을 때 그 자리에서 하겠다고 했죠.” 강동원은 ‘군도’의 ‘때깔’을 위해 스스로를 꽤 괴롭혔다. 칼 쓰는 장면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다섯 달가량 검술을 배우고 4kg 정도 살을 뺐다. “저도 체중에 따라 이미지가 꽤 달라져요. 평소 68∼69kg 정도인데 ‘샤프’해 보이려고 살을 많이 뺐죠. 64kg이 마지노선이에요. 더 빼면 불쌍해 보이거든요.” 영화 속에서 상투가 잘려 긴 머리를 풀어헤치는 모습은 시사회 때부터 화제였다. 이 작품의 ‘숨은 여주인공은 강동원’이라는 농담도 돌았다. “그 장면은 제작진도 무척 좋아하셨어요. 감독님은 다음 작품에서 계속 머리 풀고 한번 찍자고 하시더군요.” ‘군도’ 이후에는 9월 개봉하는 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에서 송혜교와 연기 호흡을 맞췄다. 데뷔 초 꿈을 ‘지구 정복’이라고 말했던 그는 앞으로 세계시장 진출을 고려해 외국어 공부도 하고 있다. 영어는 의사소통이 가능한 정도, 중국어와 일본어도 도전할 예정이라고. 연애는 안 하나? 늘 해온 공식 답변은 “있어도 없고 없어도 없다”. 그러나 여성 팬들을 위해 ‘공공재’로 남을 생각은 없냐는 질문에는 단호했다. “어머니 들으시면 얼마나 서운해하시겠어요. 연애하며 살아야죠. 저도 사람인데….”정양환 기자 ray@donga.com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최종병기 활’의 김한민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최민식 류승룡이 주연한 영화 ‘명량’(30일 개봉)은 줄거리만 놓고 보면 단순한 작품이다. 조선 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 때 이순신 장군(최민식)이 전남 진도 앞바다 울돌목에서 일본 수군을 대파한 ‘명량대첩’에 오롯이 초점을 맞췄다. 해상전투신만 1시간이 넘는 대작 전쟁영화를 관객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군도’를 본 뒤 대체로 의견이 일치했던 정양환 기자와 구가인 기자는 ‘명량’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구=아, 관전평 하기 너무 조심스러워. 영 충무공을 디스하는(깎아내리는) 것 같아 부담스럽네. ▽정=작품이 잘 나왔잖아. 기대했던 만큼 스펙터클이 화면을 꽉꽉 채워주던걸. ▽구=음, 난 기대치도 딱히 높지는…. 경쟁작에 하정우 강동원(군도), 김남길(해적), 박유천(해무)이 쏟아지는데 최민식 류승룡 아저씨한테 크게 맘이 가진 않았어. ▽정=뭔 소리야. 좌중을 압도하는 두 양반 눈빛이 가슴을 후벼 파잖아. 류승룡의 스모키 화장이 좀 과하긴 했지만. ▽구=연기 잘하는 배우들인 건 인정. 그 큰 스크린에 얼굴이 정면 클로즈업되는데도 흡인력이 상당했어. 하지만 영화적인 측면에서 매력 있는 캐릭터는 아님. ▽정=네, 이놈! 감히 장군을 욕보이려 드느냐. 나라 위해 초개같이 한 몸을 던지는 공의 충정을…. ▽구=남자들은 꼭 이러더라. 또 영웅본색 보고 성냥 입에 물었네. 다양한 갈등을 보여주는 입체적 인물 묘사는 아니었단 얘기죠. 위대한 리더인 건 틀림없으나, 21세기 관점에서 보면 부하들과의 소통도 부족하고. ▽정=그게 이 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이긴 하지. 온 국민이 존경하는 ‘안티 없는’ 위인이니 함부로 덧칠하기 어려웠을 거야. 그래도 죽은 부하 원혼에게 “내 술 한 잔 받으시게” 하던 장면은 잊혀지질 않아. 아, 저 비장감은 최민식 아니면 누구도 안 되겠구나 했어. ▽구=그 묵직함이 관객에겐 불편할 수 있어. 2시간 내내 어깨를 짓누르잖아. 팝콘 씹거나 음료수 빨았다간 혼날 것 같은 느낌? ▽정=그 넘치는 박력이 얼마나 근사해. 150인조 오케스트라가 들려주는 배경음악에 가슴이 쿵쾅거리잖아. ▽구=스피커 찢어지겠더라. 뒤에 나오는 전쟁신은 좋았어. 1시간이 넘는데도 지루한 줄 몰랐으니까. ▽정=그 정도가 아니야. 감히 한국영화 사상 최고의 전쟁신이라 부르리다. 노 젓는 나무배 싸움을 속도감 넘치는 공중전처럼 만들어낸 제작진에 경배를! ▽구=오히려 이 전투에서 민초를 제대로 살린 게 미덕이라고 봐. 배 밑에서 노를 저으며 핏빛으로 물들어가는 백성들의 손바닥은 찌릿찌릿했어. 다만 시종일관 어디서 애국가가 들리는 분위기는 좀…. ▽정=월드컵 본선 진출 마지막 티켓 놓고 일본과 맞닥뜨린 기분은 들더라. ▽구=이순신이란 거대한 태양에 가려 다른 별은 보이지 않는 것도 아쉬웠어. 특히 류승룡이 맡은 구루지마는 이순신에 비해 매력이 떨어져. 우리 편이라고 이순신만 너무 편애한 것 같아. ▽정=어쩔 수 없지. 류현진이 마운드에 섰는데 상대 타자 홈런 나오길 기다리나. 다들 적절하게 선을 지켰다고 봐. ▽구=돌직구만 던져대니 다음 공이 뻔히 보이는 것도 약점. 하긴 명량대첩 결말을 세상이 다 아는데 반전이 있을 수 있나. ▽정=그렇기에 정답은 정공법이 아닐까. 곁눈질하지 않고 그냥 직진하잖아.▼영화평론가 한 줄 평과 별점▼ (★ 다섯 개 만점)강유정 굴욕의 미학, 치욕의 카타르시스 ★★★☆김봉석 긴장감이 끊길 새 없이 뚝심 있게 밀어붙인다 ★★★★정지욱 해상전투신은 백미. 그 이상, 이하도 없었다 ★★★☆이해리(스포츠동아 기자) 압도적 최민식과 느슨한 류승룡의 불균형 ★★★정양환 ray@donga.com·구가인 기자 }
'최종병기 활'의 김한민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최민식 류승룡이 주연한 영화 명량(30일 개봉)은 줄거리만 놓고 보면 단순한 작품이다. 조선 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 때 이순신 장군(최민식)이 전남 진도 앞바다 울돌목에서 일본 수군을 대파한 '명량대첩'에 올곧이 초점을 맞췄다. 해상 전투신만 1시간이 넘는 대작 전쟁영화를 관객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군도'를 본 뒤 대체로 의견이 일치했던 정양환 기자와 구가인 기자는 '명량'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구=아, 관전평하기 너무 조심스러워. 영 충무공을 디스하는(깎아내리는) 것 같아 부담스럽네.▽정=작품이 잘 나왔잖아. 기대했던 만큼 스펙터클이 화면을 꽉꽉 채워주던 걸.▽구=음, 난 기대치도 딱히 높지는…. 경쟁작에 하정우 강동원(군도) 김남길(해적) 박유천(해무)이 쏟아지는데, 최민식 류승룡 아저씨한테 크게 맘이 가진 않았어.▽정=뭔 소리야. 좌중을 압도하는 두 양반 눈빛이 가슴을 후벼 파잖아. 류승룡의 스모키 화장이 좀 과하긴 했지만.▽구=연기 잘하는 배우들인 건 인정. 그 큰 스크린에 얼굴이 정면 클로즈업되는데도 흡인력이 상당했어. 하지만 영화적인 측면에서 매력 있는 캐릭터는 아님.▽정=네, 이놈! 감히 장군을 욕보이려 드느냐. 나라 위해 초개같이 한 몸을 던지는 공의 충정을….▽구=남자들은 꼭 이러더라. 또 영웅본색 보고 성냥 입에 물었네. 다양한 갈등을 보여주는 입체적 인물 묘사는 아니었단 얘기죠. 위대한 리더인 건 틀림없으나, 21세기 관점에서 보면 부하들과 소통도 부족하고.▽정=그게 이 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이긴 하지. 온 국민이 존경하는 '안티 없는' 위인이니 함부로 덧칠하기 어려웠을 거야. 그래도 죽은 부하 원혼에게 "내 술 한 잔 받으시게"하던 장면은 잊혀지질 않아. 아, 저 비장감은 최민식 아니면 누구도 안 되겠구나 했어.▽구=그 묵직함이 관객에겐 불편할 수 있어. 2시간 내내 어깨를 짓누르잖아. 팝콘 씹거나 음료수 빨았다간 혼날 것 같은 느낌?▽정=그 넘치는 박력이 얼마나 근사해. 150인조 오케스트라가 들려주는 배경음악에 가슴이 쿵쾅거리잖아.▽구=스피커 찢어지겠더라. 뒤에 나오는 전쟁신은 좋았어. 1시간이 넘는데도 지루한 줄 몰랐으니까.▽정=그 정도가 아니야. 감히 한국영화 사상 최고의 전쟁신이라 부르리다. 노 젓는 나무배 싸움을 속도감 넘치는 공중전마냥 만들어낸 제작진에 경배를!▽구=오히려 이 전투에서 민초를 제대로 살린 게 미덕이라고 봐. 배 밑에서 노를 저으며 핏빛으로 물들어가는 백성들의 손바닥은 찌릿찌릿했어. 다만 시종일관 어디서 애국가가 들리는 분위기는 좀….▽정=월드컵 본선진출 마지막 티켓 놓고 일본과 맞닥뜨린 기분은 들더라.▽구=이순신이란 거대한 태양에 가려 다른 별은 보이지 않는 것도 아쉬웠어. 특히 류승룡이 맡은 구루지마는 이순신에 비해 매력이 떨어져. 우리 편이라고 이순신만 너무 편애한 것 같아.▽정=어쩔 수 없지. 류현진이 마운드에 섰는데 상대타자 홈런 나오길 기다리나. 다들 적절하게 선을 지켰다고 봐.▽구=돌직구만 던져대니 다음 공이 뻔히 보이는 것도 약점. 하긴 명량대첩 결말을 세상이 다 아는데 반전이 있을 수 있나.▽정=그렇기에 정답은 정공법이 아닐까. 곁눈질하지 않고 그냥 직진하잖아.구가인기자 comedy9@donga.com정양환기자 ray@donga.com}
“어? ‘만수르’가 아니네.” KBS2 ‘개그콘서트’에서 13일 새롭게 선보였던 코너 ‘만수르’가 한 주 만인 20일 ‘억수르’로 변경했다. 만수르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축구클럽 맨체스터 시티의 갑부 구단주인 셰이크 만수르 빈 자이드 알나하얀(44)을 소재로 만든 개그 코너. 개그맨 송중근(사진)이 만수르 역을 맡아 첫 방송부터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방영 뒤 제작진은 예기치 않은 방문(?)을 받았다. 한국석유공사 관계자가 찾아와 국제석유투자회사(IPIC) 사장이자 아랍에미리트 부총리의 실명을 쓰는 건 외교적 결례란 의견을 전달한 것. 개콘 측은 “만수르는 어떤 반응도 없었지만 공사가 사전에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며 “제목이 큰 이슈는 아니어서 ‘엄청나게 웃기고 싶다’는 뜻에서 경상도 사투리와 섞은 ‘억수르’로 바꿨다”도 설명했다. 만수르는 아랍에미리트 대통령의 동생으로 개인 재산만 28조 원. 아부다비 왕가인 집안 전체 자산은 1000조 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누리꾼들은 “모든 걸 가진 남잔데 좀 희화화한들 대순가” “공무원들 또 지레 겁먹었네” “아내 역은 누가 맡나” 같은 댓글을 남겼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