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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하와이대에서 열린 미래학 워크숍에 3주간 참여했다. 3일 하와이에서의 마지막 날은 와이키키 해변의 모아나 서프라이더 호텔에서 거리 쪽으로 난 로비 발코니의 흔들의자에 앉아 보냈다. 로비 안쪽으로부터는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고, 호텔은 측면에서 중앙으로 접근하도록 되어 있어 드나드는 사람은 모두 내 앞으로 지나다녔다. 책을 읽다가 사람 구경을 하다가 졸다가 그렇게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이틀 전 워크숍 졸업 만찬 때 존 스위니 카피올라니대 교수의 얘기로는 그의 부모님이 1970년대 이곳에 왔을 때 와이키키 해변에 핑크색 로열 하와이언 호텔과 흰색 모아나 서프라이더 호텔 2개만 있었다고 한다. 와이키키의 모든 호텔은 외부인에게 개방돼 있다. 하지만 개방성에는 차이가 있어 로열 하와이언 호텔은 외부인이 지나다니기에 불편하다. 이후 지어진 셰러턴 와이키키, 힐턴 하와이언 등도 이 호텔을 모방해 외부인이 지나다니기에 불편하게 만들어 놓았다. 모아나 서프라이더 호텔만이 거리의 활기를 그대로 호텔로 끌어들여 해변으로 전달하는 진정한 개방적 구조를 갖고 있다. 이 호텔에선 투숙객도 아닌 사람이 로비 발코니의 몇 안 되는 흔들의자 중 하나를 차지하고 반나절을 앉아 있어도 누구 하나 눈치를 주지 않았다. 10달러(팁 포함 12달러)면 와인도 한잔 시켜 먹을 수 있다. 로비에서 재즈음악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는 지나다니는 여성들에게 장난스러운 추파를 보내고 등 뒤의 층계를 오르는 투숙객들에게는 얼굴을 돌려 어디서 왔느냐고 일일이 물어보기를 잊지 않는다. 와이키키의 옛 모습이 아직도 남아 있는 곳이다. 사람 구경하기엔 여기보다 좋은 곳은 없을 듯하다. 어느 나라에서나 초혼 연령이 높아지는지 나이가 들어 보이는 신혼부부도 꽤 많고 은퇴한 연령의 노부부, 젊은 남녀 서퍼, ‘맘마미아’처럼 자기들끼리만 놀러온 듯한 중년 여성 그룹 등 다양하다. 무엇보다 눈길을 끈 것은 서양인만큼이나 많은 아시아인 관광객이 드나든다는 점이다. 관광객만 아시아인이 많은 게 아니다. 하와이 주민도 아시아계가 38.6%로, 백인 24.7%보다 많다. 백인에 흑인과 히스패닉을 다 합쳐야 아시아계와 비슷해진다. 혼혈도 23.6%나 된다. 하와이는 인종적으로 문화적으로 서양인과 아시아인 중 누가 주류라고 말하기 어려운 곳이다. 어디서나 아시아계가 넘쳐난다. 정계나 재계도 아시아계의 힘이 크다. 상점이나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다. 동서양의 상이한 요소들이 창의적으로 섞이고 있다. 일본 벤또에서 유래한 도시락에는 모든 음식이 담겨져 상점에서 팔린다. 한국의 갈비(LA 갈비)는 식당에서 스테이크나 로코모코(하와이식 햄버거스테이크 덮밥)와 나란히 메뉴판을 차지하고 있다. 아시아계 여성들은 서양 여성들만큼이나 활동적이다. 자기 키보다 큰 서핑보드를 들고 나와 깊은 바다로 홀로 헤엄쳐 가는 젊은 여성들과 해변에서 트라이애슬론 수영 연습을 하는 중년 여성들도 드물지 않다. 프랑스에서 특파원으로 있으면서 백인과 북아프리카계 간의 갈등을 지켜봤다. 북아프리카계는 자긍심을 갖지 못하고 그 열패감을 폭력으로 표출했다. 미국도 동부와 남부에서는 백인과 소수인종 간의 갈등이 여전히 크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캐나다 밴쿠버 등 북미 대륙의 서부로나 와야 그 간격은 줄어들기 시작한다. 바다 건너 하와이에 와서야 융합 비슷한 것이 눈에 보인다. 금세기는 무엇보다도 중국 때문에 아시아의 시대가 될 것이다. 더 많은 서양인들이, 중앙아시아인들이, 아프리카인들이 중국이나 그 주변국가인 한국과 일본으로 몰려올 것이다. 우리도 한편으로 누구에게도 주눅들지 않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누구도 깔보지 않으면서 자신을 열 준비가 돼 있는가. 미래를 연구하는 하와이 체류의 마지막 날을 보내면서 이런 질문을 던져보지 않을 수 없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종교개혁에 참여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루터 칼뱅 츠빙글리 등 남성들의 이야기(history)로 넘쳐나는 16세기 종교개혁사의 기록에서 거의 무시되고 망각된 여성들의 이야기(herstory)를 발굴했다. 종교개혁 때까지만 해도 그리스도교의 전통에 성직자의 아내라는 것은 없었다. 사도 바울 이래 가톨릭 교부와 신부들은 모두 독신이었다. 수녀에서 루터의 아내가 된 카타리나 폰 보라는 성직자의 아내이자 자녀들의 어머니라는 전에 없던 새로운 상을 세웠다. 브란덴부르크 선거후의 아내인 엘리자베스 폰 브란덴부르크와 브라운슈바이크 귀족의 아내인 엘리자베스 폰 브라운슈바이크, 모녀관계인 두 여성은 남편에게 복종하지 않은 아내들이었다. 그들은 개인적인 큰 희생을 치르면서 종교개혁을 받아들였으며 각자의 영향력을 행사해 자신들의 영토인 브란덴부르크와 브라운슈바이크에서 신앙의 합법화를 이뤄냈다. 칼뱅의 도시인 제네바 여성 마리 당티에르는 최초의 페미니스트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칼뱅은 처음으로 여성들의 설교를 인정한 사람이긴 하지만 그런 칼뱅도 마리가 선술집과 길거리에서 공개적인 설교를 하는 데는 분노했다. 그러나 마리는 이에 굴하지 않고 교회 내의 여성 차별적 태도와 싸우고 여성 해방을 위한 성서적 기초를 쌓았다. 이탈리아의 올림피아 풀비아 모라타는 페라라 궁전의 교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고전학자로 교육받았고 나중에 종교개혁의 이념에 공감한 성서적 인문주의자였다. 그녀는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연애결혼을 택했고 탁월한 능력으로 남성들에게만 열려 있는 학문의 장에 들어섰다. 오늘날 하이델베르크에 그녀를 기념하는 ‘올림피아 모라타 프로그램’이 있다. 종교개혁이 20세기와 같은 의미의 페미니즘의 길을 연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부르주아 가정의 현모양처라는 상을 수립하는 데 기여함으로써 여성들을 더 옥죄기도 했다. 그러나 수세기에 걸친 장기적 시각에서 보면 종교개혁은 그 주된 이념인 ‘만인사제주의’가 그 안에 여성을 포함시키는 것으로 해석됨으로써 오늘날 여성 해방의 길을 여는 단초를 제공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복원된 숭례문이 그리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신응수 대목장 등 우리 시대 최고의 고수들이 지었으니 솜씨가 모자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 새것이어서 그럴까. 그런 점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숭례문 성곽이 한쪽은 길고 한쪽은 짧아 균형감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직각 삼각형 모양의, 성벽이라고도 할 수 없는 성벽의 흔적이 대칭적으로 받쳐주던 옛 숭례문이 미학적으로는 훨씬 나았다는 생각이 든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옛 한양 도성의 정문이 좌우로 날개를 펼치듯 성곽을 거느릴 때 모습을 상상하며 복원을 추진한 모양이다. 복원된 숭례문에서 남산 쪽으로 난 성곽은 길고 대한상공회의소 쪽으로 난 성곽은 짧다. 당초 숭례문 복원계획에는 대한상공회의소 쪽 도로에 차량통행이 가능한 아치 형태의 성곽을 만들어 대한상공회의소 앞까지 연장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균형은 맞았겠지만 서울이라는 초현대적 도시가 직면한 긴박한 도로 사정은 그런 ‘꿈’을 허용하지 않는다. 대한상공회의소와 올리버 타워 구간에 서울 성곽이 일부 복원돼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옆 길에도 판석이 2m 폭으로 쭉 깔려 있는 곳이 있는데 그곳도 옛 성곽이 서 있던 자리다. 숭례문과 대한상공회의소 사이의 도로에도 페인트로 성곽길이 있던 위치가 표시돼 있다. 제주 올레길처럼 서울 성곽길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성곽을 몽땅 복원해 현대 서울을 꽁꽁 둘러싸겠다는 것이 아니라면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굳이 숭례문에까지 그 성곽을 실물로 복원하는 것이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어느 건축가가 예전에 쓴 책을 보니 “옛 도성 사람들이 모두 들락거렸던 이 문 주위를 이제는 자동차들만 돌아다닌다”는 불만을 늘어놓았다. 숭례문이 남대문으로 불리던 시절엔 이 문 주위로 빙 둘러 로터리가 있었다. 차량만 씽씽 돌아가는 도로에 둘러싸여 외로운 섬이 돼 풀풀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던 남대문이 처량해 보였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2005년 로터리의 남쪽 부분을 막고 숭례문 광장을 만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2008년 바로 이 광장을 통해 숭례문에 접근한 부랑자가 숭례문에 불을 질렀다. 예나 지금이나 숭례문은 걸어가서 보는 사람보다 차를 타고 가면서 보는 사람이 훨씬 많다. 숭례문이 국보 1호라고 하지만 그 1호가 문화재적 가치로 따져 1호는 아니다. 부석사 무량수전처럼 코앞에서 본다고 해서 감동이 전해오는 그런 건물은 아니라는 얘기다. 로터리가 있던 시절 차를 타고 빙 둘러가면서 파노라마식으로 볼 때 느껴지는 감동이 더 컸다. 그것은 조선시대 사람들은 볼 수 없었던 시각(視角)에서 얻어진 것이다. 지금은 숭례문 광장과 성벽 때문에 차를 타고 가며 숭례문을 볼 수 있는 각도가 제한돼 있어 그 위용을 느끼기 어렵다. 간혹 남산의 주한 독일문화원에 가느라 숭례문 앞을 지나간다. 광화문 부근이 사무실인데도 버스나 택시를 광화문에서 타지 않고 숭례문까지 걸어 가 남산 바로 아래서 탄다. 예전 같으면 로터리를 통해 바로 이어질 수 있는 길이 서울역으로 해서 돌아가도록 돼 있는 데다 그 우회길이 차가 막힐 때가 많아 차라리 걸어가는 게 낫기 때문이다. 가깝던 남산이 지금은 아주 멀리 느껴진다. 사라진 로터리가 이곳 도로 사정을 이렇게 어렵게 만들었다. 문화재 복원은 문화재 전문가들에게만 맡겨둬서는 안 된다. 문화재, 특히 시설 문화재는 도시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얻는다. 이런 가치를 알아보는 눈은 도시 디자인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훨씬 밝다. 숭례문은 문의 기능을 잃어버린 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용적 기능을 상실한 랜드마크로서 더 아름다울 수 있다. 문 구실을 할 수 없는 것을 억지로 문 구실을 하게 만들겠다는 어설픈 발상, 성곽의 문이니 성곽까지 복원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숭례문을 불편하고 어색하게 만든 측면이 없지 않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1979년 MBC 대학가요제. ‘내가’란 곡이 대상을 차지한 가요제다. 이 가요제에서 은상을 받은 전남대생이 있었다. 그가 2년 뒤 ‘임을 위한 행진곡’을 작곡한 김종률 씨다. 가사는 소설가 황석영이 백기완의 시에서 따와 지었다. 황석영은 1981년 광주항쟁 1주년을 기념해 김 씨 등과 함께 시민군 윤상원을 주제로 한 노래극을 만들고 그 대미를 장식하는 곡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지었다. 황석영이 광주 자기 집에서 두꺼운 커튼으로 방음을 해가며 가정용 녹음기로 녹음했고 이후 전국 대학가로 퍼졌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로 시작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은 부르다 보면 오른팔이 저절로 올라간다. 1980년대 이후 대학가 집회는 이 곡으로 시작해 이 곡으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광주항쟁 이후 투쟁을 고취하는 노래들이 많이 만들어졌는데 ‘임을 위한 행진곡’은 그 초입에 만들어진 노래다. 그것은 1970년대 김민기의 ‘아침이슬’이라든가 ‘늙은 군인의 노래’가 운동과는 전혀 상관없이 만들어졌으나 저항 가요가 된 것과는 다르다. ▷국가보훈처는 박근혜 대통령 취임 후 처음 맞는 올해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참석자 제창 순서에 넣지 않고 합창단이 부르도록 할 계획이다. 보수층 일부에서 익숙하지도, 그 내용에 동의하지도 않는 데모가를 부르는 데 불편함을 느끼고 있음을 의식한 때문으로 보인다. 5·18 기념 단체들은 이 곡을 제창하지 않으면 행사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반발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아침이슬’만 한 보편성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이 곡은 여전히 운동권의 부정적 측면인 배타성을 강화하는 데 쓰이고 있다. 통합진보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은 당 행사에서 애국가 제창 대신 이 곡을 불렀다. 통진당도 그 전례를 따르다가 여론의 포화를 맞고서야 태도를 바꿨다. 그렇다고는 하나 부르지 말자는 것도 옹색하다. 보훈처가 4800만 원을 주고 기념곡을 공모한들 그런 곡을 누가 진정성을 갖고 부르겠는가. 그래도 한 곡을 고르자면 역시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우리 옛 그림을 보다 보면 조선시대는 그래도 손에 잡힐 듯하다. 겸재의 그림, 추사의 글씨는 친근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고려시대로 가면 강한 이질감이 든다. 특히 고려 불화가 그렇다. 조선시대와는 달리 종교적 외양이 압도하는 것도 그렇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선과 색이 너무 감각적이어서 모순된 결합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고려 불화 수월관음도의 관음보살은 얼굴은 남성이지만 신체의 선과 옷은 대단히 여성적이다. 미술사학자 강우방 교수는 최근 낸 ‘수월관음의 탄생’이란 저서에서 수월관음을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에 비교했다. 서양에서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서 미켈란젤로의 조각과 라파엘로의 그림에 등장하는 성모는 중세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워진다. 그 성모는 나중에 비너스로 바뀌어 부르주아 가정에 걸린다. 성모가 숨겨진 비너스이듯이 수월관음을 통해 표현된 것도 실은 여성이다. ▷해외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우리 문화재가 많지만 그중에서 유독 국내에서 보기 힘든 것이 고려 불화다. 고려 불화는 전 세계적으로 160점 정도가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이 가장 많이 갖고 있는데 고려말 왜구가 약탈해간 것이 많다. 국내 소장품은 주로 해외에서 여러 경로를 통해 사들인 것으로 지금도 15점 안팎에 불과하다. 국공립박물관에는 한 점도 없다. 이런 희귀성 때문에 고려 불화는 발견될 때마다 큰 주목을 받는다. ▷고려 불화의 최고 전문가인 정우택 동국대 교수가 최근 일본 후쿠오카 현 조텐(承天)사에서 고려 불화 수월관음도 1점을 발견했다는 소식이다(4월 30일자 본보 A1면). 대부분의 수월관음도에서 관음은 비스듬히 옆으로 반가좌를 튼 자세를 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관음이 정면을 향해 앉은 채 오른 무릎에 오른팔을 올리고 왼손으로 바닥을 짚는 윤왕좌(輪王坐) 자세를 취하고 있다. 아름다우면서도 위엄이 넘치는 모습이다. 윤왕좌 자세의 수월관음도는 처음이라고 한다. 이런 귀중한 유산을 일본에 두고, 그것도 허락해줄 때만 간신히 봐야 한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난 TV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지 않는다. 노래 한 곡 들려주는데 웬 사설이 그리 긴 지 짜증이 나서 볼 수가 없다. 악동뮤지션을 처음 본 것은 TV가 아니라 극장에서다. 영화 상영 전 나오는 광고 중 하나가 내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올아이피(AII IP)라며 노래하는 KT 광고였다. KT에 미안한 말이지만 올아이피가 뭔지는 아직도 모른다. 어쨌든 두꺼운 안경을 쓴 어리숙해 보이는 남자아이와 예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자신감은 넘치는 여자아이에게 빠져들었다. “쟤네들 뭐야?” 옆자리의 동석자에게 물었다. “요새 오디션에서 뜨는 애들이래.” 유튜브에서 처음 그들의 ‘다리 꼬지마’라는 노래를 찾아 듣고 곧 매료됐다. 악동뮤지션은 오빠 이찬혁(17)과 동생 이수현(14)으로 구성된 남매 듀오다. 2008년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몽골로 가기 전에 피아노 학원을 다닌 것 말고는 특별한 음악교육을 받지 않았다. 목사나 전도사도 아니면서 선교활동을 하는 개신교 신자들을 그냥 듣기 좋으라고 부르는 말이 선교사다. 선교사 부부는 몽골에서 아이들에게 나름대로 빡빡한 홈스쿨링을 시키다 아이들이 흥미를 잃자 사실상 방치했다. 아이들은 놀다가 그것도 지겨우면 오빠는 기타를 잡고 여동생은 피아노를 치며 함께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거기서 이들의 노래가 탄생했다. 아이들은 내버려두면 스스로 배운다고 말한 루소가 들었다면 기뻐했을 일이다. 대형 연예기획사 소속의 걸그룹 보이그룹이 대세인 요즘 TV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기적의 아이들’이 탄생한 셈이다. 과거 TV 오디션 프로그램은 주로 남의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을 뽑았다. 그것은 사실상 ‘노래방 배틀(battle)의 TV 버전’이었다. 최근 TV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악동뮤지션 같은 싱어송라이터가 자작곡을 불러 승자가 되는 것은 좋은 변화다. 박근혜 대통령은 창조경제를 말한다. 쉽게 창의적 경제라든가 ‘Creative Economy’라고 하면 될 일이다. 천지창조에나 쓸 법한 거창한 말을 갖다 쓰니까 창의성을 어떻게 키울 것이냐는 본론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창조가 무엇이냐는 서론에서만 맴돌고 있는 것이다. 연예산업을 창의적으로 만들고 싶다면 악동뮤지션처럼 자신의 곡으로 자신의 감성을 노래하는 젊은이들이 더 많이 나올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세계에 한류의 물결을 몰고 온 케이팝과 아이돌 그룹이 다 그게 그것 같다는 얘기가 나온 지 꽤 됐다. 기획사 연습생을 거쳐 기획사 대표가 던져준 곡만 불러서는 한계가 있다. 악동뮤지션을 처음 알아본 사람은 TV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이었던 JYP의 박진영도, YG의 양현석도, SM의 보아(이수만 대리인)도 아니다. 프로튜어먼트라는 아마추어 기획사다. 악동뮤지션이 몽골의 자기 방에서 찍어 보낸 화면을 보고 금방 알아봤다. 악동뮤지션은 이곳에 초청돼 2만 원짜리 스티로폼으로 둘러싼 조악한 녹음실에서 최초의 곡 ‘갤럭시’를 녹음했다. 정보기술(IT)산업에만 인큐베이터가 있는 게 아니다. 인큐베이터 기획사가 신인 발굴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는 구조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악동뮤지션은 이제 대형 기획사가 탐내는 인물이 됐다. 대형 기획사는 득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17세와 14세는 아직 어린 나이다. 이들이 그 나이에 순전히 노래의 힘만으로 불러일으킨 청중의 열광을 보면 한국의 비틀스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비틀스는 10대 후반에 만나 20대 초반 첫 히트곡을 낼 때까지 영국 리버풀과 독일 하노버의 클럽에서 수년간 연주하며 곡을 만들고 다듬었다. 그 곡들은 지금 들어도 좋다. 악동뮤지션에게도 음악과 인생의 경험을 좀더 쌓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세상이 그들을 그냥 놔둘지 모르겠지만.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국가정보원 직원들의 대선 개입 의혹을 수사해온 경찰은 ‘국정원 직원들이 선거에 개입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국정원 직원 김모 씨와 이모 씨가 국정원법상 정치 관여 금지 규정을 위반한 혐의는 인정해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공무원으로서 국정원법은 위반했지만 이들이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글이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는 어려워 공직선거법은 적용할 수 없었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경찰은 수사과정에서 민주통합당이 고소한 여직원 김 씨 외에 또 다른 직원 이 씨가 함께 활동한 사실을 밝혀냈다. 글 게시가 김 씨 개인의 일탈행위가 아닐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경찰은 두 직원의 상관인 국정원 심리정보국장은 출석요구에 불응해 조사하지 못하고 기소중지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들의 행위를 국정원 차원의 조직적 대선 개입으로 보기에는 지금까지 드러난 내용이 너무 빈약하다. 국정원 직원들이 글을 올렸다는 인터넷 사이트에는 하루에도 수천 건의 잡다한 글이 올라온다. 문제의 직원들이 4개월간 간간이 올린 100여 개의 글이 특별히 누리꾼의 눈길을 끌었다고 볼 수 없다. 심리정보국은 종북 여론의 확산을 차단하는 일도 맡고 있다. 두 직원이 인터넷에서 종북 여론 확산을 차단하는 심리전을 전개하다 국정원 직원의 한계를 잊고 정치 관련 글을 올렸다고 볼 여지도 있다. 이제 공은 검찰로 넘어갔다. 검찰은 어제 경찰이 ‘국정원 댓글’ 사건을 송치함에 따라 특별수사팀을 꾸렸다. 검찰에는 이미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이른바 ‘지시 사항’과 관련해 시민단체 등이 국정원을 정치 개입 혐의로 고발한 사건, 반대로 국정원이 비밀인 ‘지시 사항’을 누출한 전직 직원들을 고발한 사건 등 국정원 관련 사건만 10여 건이 계류돼 있다. 채동욱 씨를 새 수장으로 맞은 검찰은 이 모든 사건을 철저하고 신속하게 수사해 소모적인 논란을 끝내야 할 것이다. 남재준 신임 국정원장도 수사에 적극 협조해 국정원 쇄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종북 좌파의 사이버 선전 선동에 대처하는 것과 특정 정권 홍보를 혼동하는 국정원이 돼서는 안 된다. 또 원장 지시 같은 비밀사항이 정치권에 통째로 흘러가는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기강도 다잡아야 할 것이다.}
7급 공무원의 초봉은 2500만 원 내외다. 그래도 안정된 직장이라서 7급 공무원의 인기는 나날이 올라가고 있다. 주원 최강희 등 인기 남녀 배우가 주연한 ‘7급 공무원’이라는 TV 드라마가 만들어졌을 정도다. 올해 7급 중앙공무원 시험 경쟁률은 113.1 대 1이었다. 2007년 5만 명대이던 응시자 수가 지난해 6만 명대에 들어서더니 올해는 7만 명대로 올라섰다. ▷7급 공무원 인기는 올라가고 변호사 대우는 떨어지면서 올해는 변호사를 7급으로 채용하려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까지 나오고 있다. 부산시가 최근 7급 변호사 채용 공고를 냈다. 실제 변호사 7급 공채는 부산시가 처음이다. 경찰도 지난달 로스쿨 출신 변호사를 초급 간부인 경위(경찰서 반장급·행정부 7급 대우)로 채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발표했다. 과거 사법시험 합격자는 경위보다 두 계급 높은 경정(경찰서 과장급·5급) 채용이 관행이었다. ▷지난해 국민권익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인천시 등에서 변호사를 6급으로 뽑았는데 7급 채용은 1년 만에 변호사 대우가 한 계단 더 낮아졌다는 뜻이다. 예전에 6급은 주사로, 7급은 주사보로 불렸다. 과거에는 집안 제사 때 쓰는 지방(紙榜)에 6급까지는 ‘학생(벼슬이 없다는 뜻)’이라고 쓰지만 5급은 ‘사무관’으로 썼다. 그만큼 5급과 6급의 차이는 크다. 고시에 합격해 공무원이 되면 처음부터 5급 대우를 받는다. 5급에서 6급으로 내려앉을 때 충격이 적지 않았는데 다시 7급이라니 변호사들의 자괴감이 클 만도 하다. ▷변호사에 대한 대우가 내려가는 것은 로스쿨생들이 대거 변호사 시장에 배출된 탓이다. 로스쿨생들은 지난해 처음으로 6급 채용 공고가 나자 이를 비난하고 보이콧 움직임까지 보였다. 그러나 정작 국가인권위 6급 공채에는 2명 채용에 56명이 지원했다. 부산시의 채용공고에도 로스쿨생들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로스쿨생들의 인터넷 카페에서는 ‘신상 털기’를 통해 지원자들의 사진과 실명을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부산시는 1명을 채용할 계획이다. 과연 몇 명의 변호사가 지원할지 벌써 궁금해진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고대 비석에 새겨진 글, 즉 비문(碑文)은 고대인들이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보내는 편지다. 비문을 해독한다는 것은 글은 있었으나 책으로 기록을 남기지 않은 시대의 사람들 얘기를 듣는 것과 다름없다. 하지만 이들과 통신하는 데는 버퍼링(buffering)도 발생한다. 비문은 긴 세월을 거치면서 자연 풍화되거나 탁본을 뜨는 과정에서 훼손돼 보이지 않거나 애매모호해진 글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날조와 왜곡의 여지가 생긴다. ▷고구려 장수왕이 414년에 세운 광개토왕릉비의 비문 중에 ‘倭以辛卯年來渡海破白殘○○○羅以爲臣民’이라는 부분이 있다. 일본인들은 남연서(南淵書)라는 위조 고서를 만들어 능비사본전문이라는 것을 끼워 넣고 ○○○를 ‘脅降新’으로 못 박았다. 그럴 경우 ‘왜가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 백제를 치고 신라를 힘으로 굴복시켜 신민으로 삼았다’는 뜻이 된다. 일본 학자들은 세 글자를 불명확하게 놔두는 지금도 역시 그런 식으로 해석해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삼는다. ▷우리나라 학자들은 도해(渡海)의 주어를 왜가 아니라 문장 밖의 고구려로 본 뒤 ‘왜가 신묘년에 도래하자 (고구려가) 바다를 건너와 백제를 치고 신라를 구원해 신민으로 삼았다’고 해석한다. 광개토왕릉비의 비문은 보기 드문 명문인데 왜가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왔다면 ‘倭以辛卯年來渡海…’는 來가 빠진 ‘倭以辛卯年渡海…’가 돼야 옳은 문장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광개토왕릉비가 있는 중국 지린(吉林) 성 지안(集安) 현에서 또 다른 고구려비가 발견됐다. 중국 측 공식 연구서는 광개토왕이 세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고구려비라고 주장했다. 장수왕이 427년에 세웠음을 뜻하는 정묘(丁卯)라는 글자를 판독했다는 내부 반박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중국 측 공식 연구서를 작성한 학자들은 그런 글자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안 고구려비가 중국 왕조와의 밀접한 영향 관계에서 나온 것임을 강조했다. 일본인들의 광개토왕릉비문 날조를 경험한 우리로서는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편입하려는 중국이 혹시 고구려비를 왜곡할지 모른다는 걱정을 떨쳐 버릴 수 없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서울 중구(中區)가 덕수궁 대한문 앞 쌍용차 불법 농성천막을 철거한 뒤 하루 만인 5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페이스북에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눈물이 마르지 않은 그곳에 꽃이 피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야 하지 않을까요”라는 글을 올렸다. 중구가 천막을 철거한 자리에 화단을 만들고 꽃을 심은 것을 비꼰 것이다. 자신도 책임이 있는 일을 남의 일처럼 논평한 것이 우선 듣기에 거북하다. 농성장 철거가 잘못된 것이라면 서울시장은 이를 시정할 수 있다. 현행 도로법상 도로(인도 포함) 관리 권한은 시장이 국토교통부에서 위임받아 다시 구청장에게 재위임하는 것으로 돼 있다. 시장은 구청장의 명령이나 지시가 법령을 위반했거나 현저히 부당해 공익을 해친다고 판단하면 위임을 철회하거나 시정을 명할 수 있다. 그러나 박 시장은 농성천막이 설치된 이래 줄곧 뒤에서 철거 반대만 해왔다. 중구를 지지하자니 농성자들로부터 욕을 먹을 것이고, 중구에 반대하자니 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비난을 걱정했을 것이다. 시장으로서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중구의 철거에도 불구하고 농성자들이 다시 대한문 화단 앞을 점거했다. 서울시장도, 국토교통부 장관도, 대통령도 모른 체하는 사이 최창식 중구청장만이 법치를 위해 고군분투(孤軍奮鬪)하는 판이다. 계고장도 몇 차례 보냈고, 강제 철거도 이번만이 아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도루묵이 됐다. 대한문 앞의 농성천막이 도로법을 위반한 불법 시설물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서울 시민이 대한문 앞을 오가는 것이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농성천막 철거를 원할 만큼 속이 좁지는 않다. 하필 소중한 문화재이자 외국인도 많이 찾는 도심의 관광명소를 농성장으로 삼은 행태가 불만인 것이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대한문 옆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인 지 1년이 다 돼 간다. 서울시장도 출퇴근길에 그 모습을 매일 보았을 것이다. 아이디어가 많다는 박 시장은 구경만 할 게 아니라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했어야 한다.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국회의사당 앞에는 농성을 위한 공간이 있다. 서울시가 어느 정도 유동인구와 상징성이 있고 다른 사람에게 불편도 주지 않을 공간을 마련해보면 어떨까. 박 시장의 말대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것은 사실이지만 법과 질서를 지키는 사람은 더 아름답다.}
1989년 부산 동의대 시위 진압 과정에서 숨진 경찰관과 전투경찰 7명에 대해 1인당 1억여 원의 정부 특별보상금이 지급됐다. 사건 발생 24년 만이다.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시위 학생들은 2004년 민주화 운동가로 인정받아 보상금을 받았다. 그러나 폭력 시위 현장에서 법질서를 지키려다 희생된 경찰의 유가족들은 그로부터 9년의 세월이 더 지나서야 보상금을 받았다. 이번 보상금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한나라당 전여옥 이인기 전 의원 등이 발의한 ‘동의대 사건 등 희생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에 따른 것이다. 본보는 당시 일련의 보도를 통해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순직 경찰은 돈으로는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목숨을 바친 이들이다. 1억여 원의, 그것도 때늦은 금전적 보상이 그들이 바친 목숨의 가치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이제라도 보상이 이뤄진 것을 다행이라 여기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보상금 지급으로 순직 경찰의 명예가 온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다. 동의대 사건은 이 학교 도서관에서 시위하던 학생들이 화염병을 던지고, 화재가 발생해 진압하던 경찰과 전경 7명이 불에 타 죽거나 불을 피하려다 추락해 죽은 사건이다. 시위 학생들은 경찰관 5명을 납치해 학교 도서관에 감금하고 연행 학생 9명과의 교환을 요구하며 경찰과 대치하다 화염병을 던졌다. 김대중 정부는 1999년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이하 민주화 보상위원회)를 설치해 동의대 사건 시위대 46명을 민주화 운동가로 만들었고 노무현 정부는 2004년 국민 세금으로 보상까지 해줬다. 1970년대 유럽과 일본의 극좌파식 폭력을 행사한 학생들이 민주화 유공자라면 순직 경찰관은 민주화 유공자 탄압에 앞장선 사람들이 된다. 순직 경찰 유족은 그래서 민주화 보상위원회 결정의 재심을 요구하고 있다. 이 위원회의 설치 근거가 된 법률에 재심 규정이 없는 것은 위헌이라는 소송을 내겠다는 것이다. 2005년 이들이 낸 비슷한 성격의 헌법소원이 각하된 적이 있어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동의대 사건 등 희생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은 금전적 보상만이 아니라 명예회복 조치도 강구하도록 하고 있다. 정부는 위령탑 건립을 비롯해 순직 경찰관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유족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방법을 더 찾아봐야 한다.}
검찰은 그제 건설업자 윤모 씨에게 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경찰의 출국 금지 신청을 기각했다. 김 전 차관이 범죄 혐의가 있는 피의자라기보다는 단순 참고인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유다. 출국 금지도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므로 신중해야 한다. 그러나 검찰의 이번 기각은 정치권 공세에 밀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을 신속히 출국 금지한 것과 형평이 맞지 않는다. 원 전 국정원장은 참여연대 등에 의해 대선 개입 의혹으로 검찰에 고소되기는 했지만 수사가 시작되기 전에 출국 금지 조치를 당했다. 반면 검찰 출신인 김 전 차관에 대해서는 경찰이 수사상 필요하다고 판단해 출국 금지를 신청했는데도 검찰이 기각해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경찰도 수사가 지지부진한 데 대해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성접대 의혹 관련 동영상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분석 결과는 판단 불가로 나왔다. 설혹 동영상 속 인물이 누구인지 확인된다 하더라도 동영상이 몰래 촬영된 것이라면 증거로 가치가 없다. 성접대를 했다는 여성 중 일부의 진술은 오락가락한다. 이 사건 수사는 처음부터 검경 사이의 신경전 속에 진행되고 있다. 경찰의 수사 착수 전에 소문이 무성했고 그 여파로 김 전 차관이 연루 의혹을 받자 옷을 벗었다. 윤 씨는 다른 사건으로 3차례 검찰에서 조사를 받았으나 매번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검찰 고위 관계자들이 외압(外壓)을 행사했을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수사하고 있다. 권력형 비리를 수사하는 것은 좋으나 검경이 신경전을 벌이다 사건의 실체 규명을 못하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윤 씨가 괜히 고위 관료를 비롯한 사회지도층 인사들을 별장에 초대해 접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과거 검찰 고위층은 윤 씨 같은 건설업자를 스폰서로 둔 사례가 있었다. 윤 씨도 그런 스폰서였는지 한 점 의혹 없이 규명해야 한다. 검찰은 필요 이상으로 경찰 수사를 견제해서는 안 된다. 경찰도 의혹 부풀리기 수사가 아니라 의혹을 해소하는 수사를 해야 한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김재연 의원을 왜 국회 자격심사를 통해 제명해야 하는가. 간단히 말해서 두 의원에게는 국민의 위임이 없기 때문이다. 의원 자격심사를 독일에서는 위임심사라고도 한다. 의원은 선거를 통해 국민으로부터 주권의 일부를 위임받는다. 그 위임이 있는지 심사한다고 해서 위임심사다. 이석기 김재연 의원은 지역구에서 선출된 의원이 아니라 정당의 비례대표 의원이다. 이 경우 위임은 유권자에서 정당으로, 정당에서 의원으로 두 단계의 위임 절차를 거친다. 첫 단계의 위임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다음 단계의 위임이 없었다면 전체적으로는 위임이 성립하지 않는다. 두 의원은 국민이 자기 손으로 직접 뽑지 않았다. 국민은 지난해 4·11총선을 통해 통진당에 6명의 비례대표 의원을 뽑을 수 있는 권한을 위임했을 뿐이다. 그러나 통진당은 국민이 부여한 ‘신성한’ 위임을 배신했다. 국민들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국회는 어떤 식으로든 이 분노에 답해야 하며 그것이 자격심사를 통한 제명이다.이석기에겐 국민 위임이 없다통진당의 비례대표 경선 과정의 부정은 검찰 수사 이전에 먼저 통진당 내부에서 의혹이 제기됐다. 통진당은 자체 진상 조사를 벌여 스스로 총체적 부정선거라고 규정했다. 물론 이석기 김재연 의원이 속한 당권파는 진상조사 결과를 수용하길 거부했고 결국 당은 분열됐다. 이후 검찰 수사에서 통진당 부정 경선 관련자 462명이 무더기로 기소됐다. 이석기 김재연 의원은 기소되지 않았다. 그러나 기소된 사람들 중에는 두 의원에 대한 부정투표 관련자들도 포함돼 있다. 두 의원이 기소되지 않았다고 해서 부정투표가 지우개로 지우듯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두 의원이 기소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자격심사를 할 근거가 사라졌다고 말하는 것은 ‘위임’의 뜻이 뭔지도 모르는 어리석은 주장이다. 국회 자격심사는 두 의원에 대한 사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통진당에 부여한 위임을 배신한 데 대한 정치적 책임을 묻는 것이다.미국 영국 프랑스 등에는 비례대표가 없다. 이 나라들은 지역구 의원만을 뽑기 때문에 어느 정당의 후보가 당내에서 어떤 과정을 통해 후보가 됐는지는 원칙적으로 묻지 않는다. 그 후보는 지역구 의원으로 선출될 때 스스로 정당성을 얻는다. 그러나 독일이나 우리나라처럼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국가는 사정이 다르다. 국민은 의원에게만이 아니라 정당에도 투표를 한다. 국민으로서는 자신들의 위임이 제대로 행사되는지 정당 내부에 어느 정도 간섭할 권한이 있다. 그래서 독일 헌법은 “정당의 내부 질서가 민주적 기본 원칙에 적합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 헌법도 독일과 비슷하게 “정당은 그 목적, 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자격심사는 비례대표제의 전제비례대표제의 유지와 확대는 정당의 민주성이 확보된 위에서만 가능하다. 정당이 민주적으로 운영되지 않을 때 두 가지 방식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다. 하나는 정당 자체에 대한 위임 가능성을 박탈하는 것이다. 위헌정당 해산이 그것이다. 그러나 민주적으로 운영되지 않는 정당이라 할지라도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정도가 아닌 한 그 정당을 해산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 다른 하나는 정당이 아니라 개별 의원을 상대로 한 국회의 자격심사다. 이것마저 작동하지 않는다면 비례대표제, 나아가 민주주의의 존립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 2004년 총선에서 통진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이 국회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비례대표제 덕분이었다. 우리는 지난 총선에서 비례대표제가 민주주의를 존중하지 않는 세력에 의해 어떻게 악용되는지 목도했다. 국회가 비례대표제를 유지하고 확대할 의사가 있다면 이석기 김재연 의원을 제명하는 단호함부터 보여야 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광복군 장교이자 ‘사상계’를 창간한 정치인 장준하 씨(1918∼1975)가 둔기에 맞아 숨진 뒤 추락했다는 유골 감식 결과가 나왔다. 장 씨가 죽은 지 38년 만이다. 현재까지 검찰 기록에 장 씨는 1975년 8월 17일 경기 포천시 약사봉 등산 도중 실족사한 것으로 돼 있다. 지난해 8월 고인의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유골이 사진으로 처음 공개됐을 때 머리뼈 함몰 부위가 일반인의 눈에도 확연했다. 국내 부검의(剖檢醫) 1세대에 속하는 이정빈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는 유골 감식 결과 고인의 머리뼈 함몰은 외부 가격(加擊)에 의한 것이라는 소견을 밝혔다. 감식을 의뢰한 장준하 암살의혹규명 국민대책위원회는 공적 기관이 아니지만 감식 결과는 신뢰성이 높아 보인다. 그의 죽음에는 애초부터 많은 의문이 제기됐다. 그는 박정희 당시 대통령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로 유신정권에 맞서 개헌서명 운동을 시작하기 3일 전에 사망했다. 본보는 당시 사회면 머리기사로 고인이 왜 70도 경사의 벼랑을 장비 없이 내려오려 했는지, 등산 코스를 따라가다가 왜 하필 절벽을 택해 혼자 내려오려 했는지 등의 다양한 의문을 제기했다. 본보의 자매회사인 동아방송도 진상규명을 위해 비밀 취재까지 시도했으나 1주일 만에 중앙정보부의 압력으로 취재가 중단됐고 이후 사건은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민주당이 유골 감식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이 사건 관련 증인 채택을 요구했을 때 본보는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당시는 대선 2개월 전으로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제 대선도 끝나고 타살로 볼 만한 증거가 나온 만큼 정부 차원에서 재확인하고, 타살이라면 누가 장 씨를 죽였는지 규명해야 한다. 이 사건은 살인범이 밝혀지더라도 공소시효가 끝나 처벌할 수 없다. 그러나 고인은 독재정권에 항거한 민주화 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국회는 역사의 교훈으로 남기기 위해서라도 특별법 제정 등 재조사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고인의 사망에는 당시 중앙정보부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있다. 그런 사실이 밝혀지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타격을 입을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2007년 대선 경선을 앞두고 고인의 부인 김희숙 씨를 만나 사과의 뜻을 전한 바 있다. 지난해 대선에서는 유신 통치 전반의 잘못에 대해 사과했다. 사과의 진정성을 보이기 위해서라도 박 대통령은 사인 규명에 적극 협조해야 할 것이다.}
정부의 고위 관료가 성 접대를 받고 그 장면이 찍힌 동영상으로 협박까지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청와대는 인사검증 과정에서 이러한 의혹을 듣고 조사했으나 사실무근이라고 결론내렸다. 그러나 직접 동영상을 보고 그 인물임을 확인했다는 사람이 여럿 있어 의혹은 가시지 않고 있다. 청와대가 인사검증 과정에서 당사자에게 한번 문의해보고 검증을 끝냈다면 안이한 일 처리다. 청와대의 인사검증 기능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정황은 이뿐이 아니다. 그제 전격 사퇴한 황철주 중소기업청장은 인사 발표에 임박해서야 청와대로부터 고위 공직자는 보유한 주식을 매각하거나 백지신탁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사퇴 이유가 다른 것도 아니고 법령에 관한 것이다. 황 씨는 공직 재임 중에만 신탁했다가 퇴임 후에 되찾을 수 있는 것으로 잘못 알아들었다고 한다. 청와대가 황 씨에게 인사검증 동의서를 받는 과정에서 제대로 설명도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경찰은 오래전부터 고위 관료가 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을 내사했다고 한다. 이 관료를 접대한 건설업자가 여성 사업가와 성관계를 맺을 때 찍은 동영상을 보관하고 있다가 이 여성이 빚 독촉을 하자 이 동영상으로 협박한 혐의로 경찰에 고소된 사건이 발단이다. 이 여성은 건설업자가 빚을 갚지 않자 해결사를 동원해 건설업자의 차를 뺏어온 적이 있는데 차 트렁크 안에서 발견한 CD 7장에 고위 관료 등이 등장하는 동영상들이 들어 있었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름을 거론하면 알 만한 인사들이 강원도 남한강변의 호화로운 별장에서 카메라가 돌아가는 줄도 모르고 허리띠를 푼 채 술접대와 성접대를 받았다는 얘기다. 이 사건은 단순한 섹스 스캔들이 아니다. 고위 관료가 관청에 민원이 많은 건설업자에게 성접대를 받았다면 사생활이 아니라 공직자 뇌물수수로 봐야 한다. 동영상의 존재를 처음으로 밝힌 여성은 경찰이 동영상 제출을 요구하자 폐기해 버렸다고 주장해 진술의 신빙성에 의심 가는 점이 없지 않다. 그러나 건설업자의 조카가 건설업자의 부탁으로 동영상을 컴퓨터 파일로 만들어 따로 보관한 것이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경찰이 수사할 의지만 있으면 의혹을 푸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동영상만 확보하면 된다. 이 사건은 새 정부 들어 터진 첫 고위 공직자 비리 의혹이다. 얼마나 투명하게 처리하는지 국민은 지켜보고 있다. 억울하게 모함을 당한 것이라면 고위 관료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도 서둘러 진실을 밝혀야 한다.}
지난달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선거에서 당선돼 취임한 나승철 회장은 변호사 경력이 겨우 5년차로 30대 중반(36세)인 데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총각이다. ―나 회장의 당선을 두고 젊은 변호사들의 반란이라는 평가가 나왔다.“청년 변호사들이 많이 지지해 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한 설명이 안 된다. 선거 운동 때 어느 모임에 갔더니 아버지뻘은 돼 보이는 변호사가 날 보더니 ‘승철아’라고 소리치며 반가이 맞아 줬다. ‘혹시 내가 잘 기억하지 못하는 집안의 먼 어르신인가’ 착각했을 정도다. 얘기를 나눠 보니 30년 선배 되는 변호사였다. 젊은 변호사만이 아니라 나이든 변호사들도 실제로 일하는 회장을 원하고 있다. 그동안 변호사단체장을 변호사 이력의 마지막을 장식할 명예직쯤으로 여기는 풍토가 있었다. 나의 당선에는 이런 풍토로는 더는 안 된다는 질책도 들어 있다고 본다.” ―변호사들이 요새 정말 힘든가.“사무실 월세도 못내는 변호사가 많다. 물론 대형 로펌의 매출은 해마다 늘고 있으니 변호사 업계 전체가 불황이라고 하면 수긍하지 않는 국민도 많을 것이다. 사실 문제는 불황이 아니라 양극화다. 돈 잘 버는 변호사가 있는가 하면 사무실에 연탄난로를 때는 변호사도 있다. 배고픈 변호사는 굶주린 사자보다 무섭다는 말이 있다. 법을 아는 사람이 ‘이것 한 건만 하면 월세는 해결되는데…’라고 생각하고 눈 딱 감고 위법 행위를 저지르면 그 폐해는 심각하다. 의사는 잘못하면 그 의사를 믿은 환자 혼자만 피해를 보지만 소송은 상대편이 있어서 변호사가 잘못하면 무고한 상대방까지 피해를 볼 수 있다.”―변호사는 공인(公人)인가 상인(商人)인가.“요새 변호사들이 어느 때보다 공인과 상인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 공인이라면 질 것이 뻔한 소송은 오히려 말려야 하지만 상인으로서는 의뢰인이 소송을 간절히 원한다면 원하는 대로 해 주는 게 최선의 서비스다. 변호사를 보는 사회의 시각도 마찬가지다. 언론에서 대형 로펌이 대기업 변호만 한다고 비판하면서도 원스톱(one stop)으로 법률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있다고 칭찬하기도 한다. 굳이 택하라면 변호사는 상인이라기보다는 공인에 가깝다. 그러나 변호사에게 공인의 자세를 지키라고 요구하려면 이들을 무한 경쟁으로 몰아넣어서는 안 된다. 공공 영역의 무한 경쟁은 바람직하지 않다.”―변호사 수가 너무 많은가.“우리나라에서 적정한 변호사의 수를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한꺼번에 갑자기 많이 늘어나는 건 분명히 문제다. 한 해 변호사 자격을 얻는 사람이 1000명 정도씩 늘다가 지난해 로스쿨 졸업생이 더해져 2500명이 쏟아져 나왔다. 10년 가까이 한 해 1000명씩 늘면서 법률시장이 겨우 적응하고 있었는데 2500명이나 쏟아지니 소화가 안 되는 거다. 앞으로 한동안은 매년 2000명 안팎의 변호사가 배출된다. 수요는 정해져 있는데 공급이 갑자기 느니까 변호사 처우가 급속히 나빠지는 것이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변호사단체는 그동안 무얼 했나. 그런 실망감이 나이는 적어도 실제로 일할 수 있는 나 같은 회장을 뽑은 이유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에 비판적인 것 같다.“미국인이 쓴 ‘왜 학벌은 세습되는가’란 책을 공감하며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에 저소득층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입학사정관제가 사례로 나오는데 로스쿨 전형 과정이 딱 그런 것이다. 사시를 존치시켜 로스쿨에 갈 돈도, 로스쿨에 갈 만한 ‘스펙’도 없는 사람들도 법조인이 될 수 있는 문을 열어 놓아야 한다. 지난해 로스쿨 졸업생의 변호사시험 합격률은 정부 발표로는 입학정원 대비 75%라지만 응시자 대비는 88%다. 운전면허 따는 것보다 더 쉬운 경쟁에 커트라인이 43점이다. 10문제 중 5문제도 못 푼 사람이 변호사 자격을 얻은 것이다. 이래서 로스쿨이 현대판 음서제라는 말이 나온다.”―지난해 처음으로 로스쿨 출신 검사가 나왔는데 그중 한 명이 검사실에서 피의자를 성추행하는 희대의 사건이 터졌다. 로스쿨 제도의 윤리 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데….“성추행하면 안 된다, 뇌물을 받으면 안 된다는 것이 꼭 가르쳐서 알 일인가. 그 정도는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누구나 다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을 걸러 내는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게 진짜 문제다. 사법연수원만 해도 교수들이 2년간 연수생을 관찰하고 걸러 내는 시스템이 작동한다. 그런데 로스쿨 출신 검사를 뽑을 때는 5일간 면접한 게 전부다.”―지난해 로스쿨 출신을 바로 검사로 임용하는 걸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법원은 올해부터 법조일원화에 따라 변호사 경력자 중에서 판사를 뽑는다. 3년, 5년, 궁극적으로는 10년 변호사 경력자만이 판사를 할 수 있다. 검찰만 지금 순혈주의를 고집하며 자기네가 뽑아 키우겠다고 고집하고 있다. 변호사로 몇 년 일해 보면 업계에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거의 정확한 평가가 나온다. 검찰도 법조일원화를 받아들여야 한다.”1977년생인 나 회장은 고려대 법대를 나와 2003년 사시에 합격해 2006년 사법연수원(35회)을 졸업했다. 군법무관으로 군 생활을 마친 후 2009년 변호사를 시작했다. 2011년 변호사 경력 3년차에 서울변호사회 회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26표 차로 아깝게 낙선해 그때부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어떤 변호사가 되고 싶었나.“민주화 이후에는 정치권력으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것 못지않게 자본권력으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것이 중요해졌다. 과거 장하성 교수와 소액주주 운동을 같이 하던 김주영 변호사에 대해 듣게 됐다. 김 변호사가 역할 모델이 됐고 김 변호사가 대표로 있는 한누리 법무법인에 지원해 채용됐다. 증권회사 펀드에 가입해 본 국민이 많을 것이다. 사실 증권회사 펀드의 불완전 판매가 10건 중 5건은 되지만 실제 소송에서 인정되는 것은 1건밖에 되지 않는다. 증권회사를 변호하는 대형로펌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변호사들이 큰 회사를 변호하는 게 돈이 된다고 다 그쪽으로 몰려가면 투자자와 서민은 누가 보호할 것인가.” ―요새 젊은 사람들 장가 시집 늦게 간다고 하지만 36세 총각은 늦은 것 같다. 서울변호사회장이 만약 신혼 장가를 간다면 그것도 화제가 되겠다.“친구 중 3분의 2가량은 결혼을 했으니까 결혼이 늦은 편이다. 변호사회장 직에 있으면서 장가가면 욕 들어 먹을 것 같아서 한다면 비밀리에 해야 할 것 같다.”▼ 2018년 개업변호사… 2만명 넘어설 것 ▼■한 해 배출 법조인 2000명 시대사법시험은 박정희 대통령 집권 초인 1963년부터 시작됐다. 그 전에는 고등고시 사법과가 있었다. 고등고시 사법과와 초창기 사법시험은 그야말로 ‘좁은 문’. 합격자가 적을 때는 10명대, 많아야 50명대였다. 사시 합격자가 한 해 처음 100명을 넘어선 것은 1978년. 그 때까지만 해도 변호사 업계는 판검사를 하다 개업한 전관 변호사들이 주류였다.1982년부터 사시 합격자 300명 시대, 2001년부터는 1000명 시대가 열리며 변호사업계의 판도도 바뀌기 시작했다. 사법연수원을 수료하자마자 개업하는 변호사들이 급증했기 때문. 올해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선거에 판검사 경력이 없는 지방변호사회 출신의 위철환 회장이 당선되고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에 변호사 경력 5년차의 30대인 나승철 회장이 당선된 것도 이런 변화의 결과다.2009년 3년 과정의 로스쿨이 설립되고 지난해부터 로스쿨 졸업생이 나오기 시작했다. 로스쿨 정원은 2000명으로 유지된다. 변호사시험 합격률 75%를 적용하면 매년 1500명이 변호사 시장(검사 등 일부 공직 임용자 포함)에 나오게 된다. 지난해에는 사시에 합격한 뒤 사법연수원을 나온 1000명, 로스쿨 졸업생 중 변호사시험 합격자 1500명 등 약 2500명이 동시에 쏟아져 나왔다. 이 기록은 앞으로도 깨지기 어려울 것이다.사법시험은 2010년부터 매년 합격자 수가 줄고 있고 2018년에는 폐지된다. 그래도 로스쿨 졸업생과 합치면, 사법연수원 졸업생이 끊어지는 2021년까지는 매년 평균 2000여 명이 법조 시장에 나온다.전체 개업 변호사는 1961년 500명에 근접한 이래 1981년 1000명을 넘어섰다. 걸린 시간은 20년. 그러나 1000명에서 2000명이 되는 데는 10년, 2000명에서 4000명이 되는 데는 7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2002년에는 5000명, 2010년에는 1만 명 시대에 진입했다. 지난해 말 현재 개업 변호사는 1만2513명이고 2018년에는 2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과 미국 등에서는 세무사 변리사 회계사 등의 업무도 모두 변호사가 하기 때문에 변호사가 상대적으로 많다. 그래서 우리나라와 비교가 어렵다. 일본과는 비교가 가능하다.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 변호사 1명당 국민 수는 3500명 정도. 일본은 변호사 1명당 국민 수가 4000명인데도 벌써 많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법률이나 판결은 정의에 합치해야 한다. 미국에서 연방대법관을 뜻하는 ‘Justice’는 정의를 뜻하는 말과 같다. 독일어로 법률을 ‘Recht’라고 한다. 이 단어는 정의라는 말도 된다. 그렇다면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 법률과 판결을 따라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법률과 같은 효력을 지닌 유신 시절의 긴급조치가 줄줄이 위헌 판정을 받고, 그 긴급조치에 의거한 대법원 판결이 뒤집히는 것을 우리는 눈앞에서 보고 있다. 쉽게 ‘악법도 법이다’ ‘나쁜 최종심도 최종심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시대다. ▷노회찬 진보정의당 국회의원이 그제 대법원에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유죄가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노 의원은 2005년 옛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가 8년 전에 만든 도청 녹취록을 인용해 삼성그룹으로부터 ‘떡값’을 받은 전현직 고위 검사 7명의 명단을 인터넷에 올렸다. 수사기관은 도청 기록은 그 내용이 사실과 부합하더라도 다른 증거가 없는 한 진실하다고 보지 않는다. 이에 따라 떡값을 받았다고 알려진 검사들에 대한 수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사실을 보도한 MBC 이상호 기자(1월 15일 해고), 월간조선 김연광 편집장(현 국회의장 비서실장) 등 언론인과 노 의원이 기소돼 처벌을 받았다. ▷노 의원은 공익을 위한 폭로였으므로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고 항변한다. 그가 진보 진영 내에서 종북주의를 비판하고 상식의 목소리를 내 온 정치인이라는 평가도 있어 호응하는 목소리도 높다. 그러나 공익을 위해서는 도청도 상관없다고 한다면 기자들은 정상적인 취재보다는 ‘도청 취재’의 유혹에 빠질 가능성이 크고, 정부와 기업은 도청과의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한다. 누군가 일방적으로 흘린 말이 그대로 보도되면 상대편이 억울한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그래서 통신비밀보호법은 도청을 금지하고 도청된 내용을 폭로하는 것 또한 금지한다. 대법원도 중대한 공적(公的) 관심 사항이 아닌 한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 신중한 입장이다. ▷노 의원의 의원직 상실로 4월로 다가온 재·보궐선거 판이 커지게 됐다. 새누리당 이재균 의원(부산 영도)도 같은 날 대법원에서 선거사무장의 100만 원 벌금형이 확정돼 의원직을 상실했다. 새누리당 김근태(충남 청양-부여) 심학봉(경북 구미갑), 무소속 김형태 의원(경북 포항 남-울릉)도 항소심에서 당선 무효형을 받고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재·보선에 안철수 전 대선후보의 출마 가능성도 거론된다. 새누리당 김무성 전 원내대표는 부산 영도 재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노 의원의 지역구인 서울 노원병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첫 수도권 대결이어서 흥미로운 한판 승부가 될 듯하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최근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로부터 들은 얘기다.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월급과는 별도로 100만 원을 매달 현금으로 받는다. 배석판사들은 80만 원씩을 받는다. 명목상으로는 재판과 관련해 쓰는 돈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렇게 쓰지 않는다. 그 부장판사의 말인즉 판사가 재판과 관련해 돈 쓸 데가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점심값은 합의부 앞으로 따로 나오니까 점심값과도 상관없다. 판사가 부인 몰래 자기 용돈처럼 쓸 수 있는 유일한 돈이다.특정업무경비의 진실 이 돈이 대법관이나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되면 400만 원 정도로 확 오른다. 대법원이나 헌재에서는 특정업무경비라고 부르는 돈이다. 대법관과 헌재 재판관도 이 돈을 부장판사의 100만 원같이 자기 용돈처럼 쓴다. 세금도 떼지 않는 400만 원이니까 어엿한 가정의 한 달 가처분소득에 해당할 만큼 큰돈이다. 그래서 좀 나눠 써야 하는 게 아니냐는 무언의 압력이 있다. 대법관이나 헌재 재판관은 설과 추석이 다가오면 얼마씩을 연구관들에게 격려금으로 나눠주는 것이 관행이다. 한 번에 50만 원 정도라고 하는데 액수가 많아지면 평판이 좋아지고 적어지면 나빠진다. 대법관들은 나눠서 작은 지방법원 시찰도 다닌다. 대법관이 법원을 방문하면 법원장이 식사를 대접하고 술도 한잔 먹는다. 대법관과 연구관들, 법원장과 부장판사들이 모두 모여 먹고 마시면 금액이 꽤 나온다. 법원장도 법원 살림을 빠듯하게 꾸려가다 보니 이런 비용도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다. 소수이기는 하지만 몇몇 대법관은 서울로 돌아가서 식사비에 얼마간의 돈을 더 보태 돌려보내 준다. 법원장을 해본 이들은 그런 대법관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다고 한다. 그 돈도 특정업무경비에서 나가는 돈일 것이다. 결혼할 때 부인이 열쇠 몇 개 챙겨 오거나 물려받은 재산이 많은 대법관이나 헌재 재판관이라면 400만 원 정도는 주변이나 아랫사람들을 위해 호기 있게 다 쓸 수 있을 것이다.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자는 일을 빡빡하게 시키면서도 그런 점에서 인색하지 않았나 싶다. ‘딸깍발이 판사’로 불린 어느 전 대법관은 대법관 취임 시 신고재산이 7000만 원에 불과할 정도로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연구관들에게 매달 20만, 30만 원씩 나눠줘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다. 그것은 예외적인 경우다. 대다수는 액수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자기 돈처럼 생각하고 쓴다. 조직과 남을 위해 쓰면 가점(加點)이 되겠지만 그러지 않는다고 해서 감점(減點)할 것인지는 의문이다. 특정업무경비에 굳이 유용이란 말을 쓰자면 그 돈은 유용이 예정된 돈이다. 연구관들에게 많이 나눠준다고 해서 유용이 아닌 것이 아니다. 앞의 부장판사도 연구관 시절 대법관들을 모시면서 그런 돈을 받았는데 밀린 외상 술값을 갚는 등 전부 용돈으로 썼다고 한다. 인사청문회에서 국회의원들은 누구도 지킬 수 없는 기준을 이 후보자에게 들이댔다. 이 후보자가 공금을 횡령한 것이라면 거의 모든 법관이 공금을 횡령하고 있는 셈이 된다.솔직하지 못한 청문회 이 후보자도 다소 비굴하게 대응했다. 특정업무경비를 유용한 게 있으면 사퇴하겠다는 말은 의원들의 추궁에 마지못해 한 말이라 하더라도 해서는 안 되는 말이다. 차라리 유용을 시인해 헌재소장이 되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 돈의 실상을 당당하게 밝히는 용기를 보였어야 한다. 헌법적 가치를 수호하는 기관의 수장이 되겠다는 사람이라면 그런 정도의 용기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온 김혜영 헌재 사무관은 의원들의 압박에도 특정업무경비 사용명세를 공개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가 가장 솔직한 사람이었는지 모른다. 보나마나 사용명세는 가짜일 것이다. 영수증이 딸려 있어도 가짜가 많은데 영수증도 딸리지 않은 게 진짜일 리 없다. 실체도 없는 사용명세를 놓고 싸우는 꼴까지는 차마 국민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이명박 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비롯한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임기 말 특별사면을 강행했다. 사면 대상에는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 박희태 전 국회의장, 김효재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 등 이 대통령의 측근들이 포함됐다. 판결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이뤄진 초고속 사면이어서 사면권 남용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박정규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등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들과 서청원 전 친박연대 대표를 끼워 넣음으로써 민주통합당과 박 당선인을 무마하려는 ‘물 타기’ 사면이다. 사면권은 행정권이 사법권의 효력을 정지시키는 권력분립 원칙에 대한 중대한 예외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가능한 한 자제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민주화 이후에도 역대 대통령이 모두 사면권을 남용한 오류를 남겼다. 이 대통령은 취임 때 “임기 중 권력형 비리와 친인척 비리는 사면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국 그 전철을 피해가지 못했다. 최 전 위원장은 이 대통령 임기 전인 2006년과 2007년에 받은 6억 원에 대해서만 유죄가 인정됐기 때문에 ‘임기 중 비리’가 아니라는 설명은 구차하다. 그 돈은 2007년 한나라당 경선 과정 여론조사에 쓰였다고 최 전 위원장이 해명했지 않은가. 사면 대상자 55명 중 한 명이 이 대통령의 사돈 집안인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장남 조현준 사장이다. 그는 사돈 집안이어서 친인척이 아니라는 해명도 옹색하다. 용산 참사 관련 철거민 5명을 사회갈등 해소 차원에서 사면한 것은 엄정한 법질서 수호라는 중요한 가치를 해칠 우려가 있다. 이번에 사면 받은 사람들의 폭력과 방화로 공무집행 중인 경찰관 1명이 사망했다. 박 당선인 측 윤창중 조윤선 대변인은 “이번 특사 강행은 국민 여론을 무시한 것”이라고 강력 비판했다. 박 당선인 자신은 5년 후 이런 부끄러운 사면을 하지 말기 바란다. 역대 대통령이 모두 모진 사람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욕을 듣는 선택을 한 것은 친인척이나 측근들이 임기 중 비리에 연루됐기 때문이다. 박 당선인은 자기 주변부터 철저히 관리해 ‘셀프 사면’을 할 소지 자체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사면 제도를 다시 보완할 필요도 있다. 이번 사면은 2007년 12월 사면법 개정으로 설치한 사면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친 첫 사면임에도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을 막지 못했다. 사면심사위원들이 회의에서 어떤 발언을 했는지 5년간 공개되지 않는다고 한다. 대통령의 뜻을 통과시키는 거수기 사면심사위가 되기 쉽다. 사면심사위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높이고 최소한 형기의 3분의 1 혹은 절반 정도는 채워야 사면이 가능하도록 특별사면의 조건을 강화해야 한다.}
평소 즐겨 읽는 책 중의 하나가 국적은 대만이었지만 일본에서 태어나 활동한 역사가 진순신의 ‘중국의 역사’다. 진순신은 이 방대한 책의 끝 부분인 청나라 시대를 서술하면서 이렇게 쓰고 있다. “명나라까지 중국의 역사는 정사(正史)인 이십오사(二十五史)를 좌우에 놓고 붓을 들었다. 그러나 여기서부터는 정사에 의지할 수 없다.” 중국에서는 사마천의 사기 이래 25개 정사가 모두 후대 왕조가 전대 왕조의 역사를 쓰는 역대수사(易代修史)를 관례로 삼았다. 청나라가 멸망했지만 아직 청사는 쓰여지지 못했다. ▷전대의 역사는 후대의 전성기에 쓴다는 성세수사(盛世修史)라는 말도 있다. 누구나 인정하는 청사가 없는 것은 청 멸망 이후의 중국이 확고한 전성기를 맞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화민국 최초의 대총통이 된 위안스카이(袁世凱)는 1928년 청사고(淸史稿)를 편찬했으나 국민당 정부의 장제스(蔣介石)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대만으로 쫓겨 간 장제스는 1959년 청사고를 수정해 새로운 청사를 내놓았으나 중국 본토의 공산당 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1965년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 주도로 청사편집위원회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 역시 문화혁명으로 중단되고 2002년에 와서야 청사를 편찬하는 청사공정(淸史工程)이 시작됐다. 동북(東北)공정도 이해부터 시작됐는데 청사공정의 일부로서의 변경지역 역사 정리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추측해 볼 수 있다. 청사공정의 결과인 청사는 본래 계획대로라면 지난해 말까지 나왔어야 하는데 아직 소식이 없다. ▷우리나라도 최초의 정사인 삼국사기는 고려 중기 김부식이 썼고 고려사는 조선 문종 때 와서 완성됐다. 이후 일제에 의해 조선이 강점되면서 조선사를 정리할 여유를 갖지 못한 채 대한민국이 건국됐다. 대한민국 시대에는 국사편찬위원회가 1973년 시작해 2003년 조선사까지 한국사 전체를 52권으로 정리했다. 앞서 1969년에는 한국독립운동사를 5권으로 정리했다. 그런데 최근 국사편찬위가 대한민국의 역사를 정리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국편위가 대한민국사(가제·전 10권)를 쓴다면 그것은 하나의 정사가 될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정사를 대한민국 시대에 쓴다는 것은 동아시아의 전통 사관에서 보면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후대가 전대의 역사를 쓴다는 것은 시대로부터 떨어져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객관성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역사를 보는 올바른 관점 하나를 국가가 제시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다. 그런 사고방식 자체가 전제 왕조시대의 산물로 민주주의 사회에서, 특히 당대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 받아들이기 어렵다. 현대에는 복수의 역사, 즉 역사들이 있는 것이지 단수의 올바른 역사는 없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