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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8일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여러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의혹 사건에 대해 특별검사제를 도입하자고 한 배경에는 여러 메시지가 깔려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한길 대표의 특검 제안에 이르기까지 당 안팎의 상황은 민주당에 녹록지 않았다. 민주당 지도부는 대선개입 의혹 사건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국정원 개혁특별위원회의 국회 설치 등의 요구와 한 묶음으로 특검을 검토해 왔다. 그러나 이 요구들을 일괄 타결짓기 위한 새누리당과의 물밑 논의는 신통치 않았고,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특검을 먼저 제안해 곤혹스러워졌다. 전날 김기식 의원을 비롯한 초선의원 20여 명이 특검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당내 중진 사이에서도 “지도부가 너무 온건해 새누리당에 끌려다닌다”는 불만이 높아졌다. 여기에 대선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국정원 여직원의 변호사 비용을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7452부대’가 대납해준 일이 밝혀지는 등 대선개입 의혹을 짙게 하는 사례들이 늘어나자 검찰 수사만으로는 진상 규명에 한계가 있다는 공감대가 퍼져 갔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이 2007년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유출 의혹 사건으로 고발한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과 권영세 주중국 대사가 서면조사만을 받기로 하거나 받은 사실이 밝혀지자 김한길 대표는 특검 제안 결심을 굳혔다. 최원식 전략기획위원장은 “김무성 의원 서면조사 건이 특검 제안에 불을 댕겼다”고 말했다. 특검 제안으로 대선개입 사건을 둘러싼 당내의 강경대응 주장은 일단 수그러들었다. 김기식 의원은 “특검에 대한 당내 혼선이 정리됐다”고 했다. 자칫 ‘지도부 흔들기’로도 비칠 수 있는 당내 불만의 목소리도 낮아졌다. 당 밖으로는 안 의원의 특검 제안을 김 대표가 받아들이는 모양새를 취함으로써 안 의원과의 ‘신(新)야권연대’를 위한 첫 단추를 잘 끼웠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때문에 12일 열리는 시민사회, 종교계, 정의당, 그리고 안 의원과의 ‘연석회의’를 앞두고 있는 민주당으로서는 어쨌든 특검 제안을 할 수밖에 없지 않았느냐는 얘기도 나온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연석회의의 성공은 김한길 지도부에 중요한 일일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에 대해서는 특검 카드가 국정원 개혁특위 수용 요구에 힘을 실어주는 지렛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특검과 예산안 및 법안 처리를 연계해 새누리당을 압박하면서 특위를 받아낼 수 있지 않겠느냐는 해석이다. 그러나 당내 일각에서는 특검 요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조경태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에게 정쟁 이미지만 심어줄 수 있다”며 반대했다. 조 최고위원은 통화에서 “특검 도입 요구는 재·보선 참패라는 국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행동”이라며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에 특검을 요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민주당이 정기국회의 남은 일정을 모두 보이콧할 확률은 낮아 보인다. 김 대표가 특검을 제안하면서 어떤 조건이나 시한을 못 박지 않은 것도 특검에만 다걸기 하지는 않겠다는 의지로 읽힌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8일 민주당이 특검을 요구하고 국회 일정을 잠정 중단한 것을 ‘문재인 일병 구하기와 신야권연대를 위한 당리당략’으로 규정하며 “이성을 찾으라”고 요구했다. 김태흠 원내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민주당이 의사일정을 보이콧하고 대검찰청을 항의 방문한 것은 친노 세력인 강경파의 요구로 문재인 일병을 구하고 사초(2007년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실종을 덮으려는 불순한 의도다. 국민과 법은 안중에도 없는 막가파식 행태다”라고 비판했다. 특히 “새누리당에 통보도 없이 국회 일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은 어느 나라에서도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무례의 극치”라고 말했다. 홍지만 원내대변인도 “민주당이 보이콧 결정에 대해 문자메시지를 달랑 하나 보내온 것은 막무가내식 처사”라면서 “문 의원의 검찰 출석에 따른 풍파를 물타기 하기 위한 얕은 꼼수로는 전대미문의 사초 실종, 사초 폐기가 덮어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특히 새누리당은 민주당의 특검 주장을 무소속 안철수 의원과의 새로운 야권연대를 위한 정략적 움직임으로 규정했다.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는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이미 재판이 진행 중이거나 수사 중인 사안은 특검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일축한 뒤 “특검 주장은 연석회의라는 신야권연대를 위한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민현주 대변인도 브리핑에서 “민주당의 느닷없는 특검 주장은 부적절한 야권연대를 위한 신호탄이며 정쟁에 이용하려는 불순한 의도”라고 비판했다.민동용 mindy@donga.com·황승택·고성호 기자}
박원순 서울시장(사진)이 7일 “차기 대선에 나갈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대선 출마 여부를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한 뒤 “재선이 되면 서울시정에 전념하겠다. (재선에 도전해) 지는 한이 있더라도 원칙적으로 서울시정을 잘 돌봐 시장으로서 시민들에게 지지를 얻는 데 전념하는 게 제게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서울이 대한민국의 수도여서 그런 언급(대선 출마)이 나오는 것은 이해한다”며 “어찌 보면 그런 생각들이 서울시장들의 진로를 망쳐 왔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민주당의 잠재적 대선 주자인 박 시장이 대선 불출마 의사를 분명하게 밝힌 것은 처음이다. 박 시장은 이날 대선 출마와 관련한 질문만 5번을 받았고 그때마다 “나가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박 시장은 “재선도 마음대로 되겠느냐”며 대선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는 취지로 반문하기도 했다. 그는 “민주당의 서울시장 후보 경선 룰에 솔직히 자신이 없다. 하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는 것처럼 기존 정치적 질서를 존중한다”고 하기도 했다. 그러나 민주당 내에서는 박 시장의 언급과 관련해 ‘대선 불출마 확정’으로 보는 것은 성급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당 관계자는 “‘서울시장 재선을 대선의 징검다리로 보고 있다’는 새누리당 측의 집요한 공세를 차단하기 위한 장치일 수 있다”며 “4년 뒤의 일을 어떻게 예단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한편 박 시장은 “차기 대통령(후보)으로 거론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민주당이 영입한다면 적극적으로 밀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선 후보가 되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는 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많이 부족한 국제사회에서의 리더십을 확실히 보여주시고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인 분”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서울시 관계자는 “예의를 갖춘 원론적 답변”이라고 말했다. 또 박 시장은 민주당 당적을 유지할 것임을 거듭 밝혔다. 독자세력화를 추진하고 있는 무소속 안철수 의원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정당을 달리한다고 하더라도 더 큰 차원에서 협력(연대)하는 방안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종훈 taylor55@donga.com·민동용 기자}
헌정 사상 초유의 정당해산 심판 청구로 존폐 위기에 몰린 통합진보당은 6일 규탄결의대회와 장외투쟁을 잇따라 벌이며 정부 여당에 대한 투쟁 수위를 높였다.○ 삭발에 단식까지… 통진당 김선동 김미희 김재연 오병윤 이상규 의원은 오전 11시 20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당원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삭발하고 무기한 단식 투쟁에 돌입했다. 소속 의원 6명 가운데 구속 수감돼 있는 이석기 의원만 제외됐다. 이들은 결의문에서 “통진당 해산 청구는 국가정보원과 군까지 동원한 총체적 부정선거를 뒤엎으려는 치졸한 사기극”이라며 “지난해 대선에서 (대선후보였던) 이정희 대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친일파 다카키 마사오임을 전 국민 앞에서 폭로한 데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저열한 복수극”이라고 주장했다. 비슷한 시간 이 대표는 서울 중구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한국진보연대 등과 공동기자회견을 열어 “박근혜 정부는 유신 부활을 기도하며 독재정권으로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통진당은 이날도 서울 시내 곳곳에서 시민들에게 정부 비판 유인물을 배포했다. 저녁에는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이틀째 촛불집회를 벌였다. 통진당의 종북주의를 비판해 온 진보 진영 인사들도 정부의 통진당 해산 심판 청구를 비판했다.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는 성명서를 내고 “통진당의 정치적 행위에 대해 많이 지적해 왔지만 강령 등이 정당해산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노회찬 전 정의당 공동대표도 라디오에 나와 “비례대표 부정선거, 최루탄 투척 등이 정당해산 사유가 된다면 ‘차떼기’(2002년 불법 대선자금 수수)를 한 새누리당은 10번 이상 해산당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내년 7월 재·보선 최대 규모 될 수도 헌법재판소법은 정당해산 심판 사건 접수 후 180일 안에 결론을 내도록 하고 있다. 강제 규정은 아니지만 법조계에서는 정치 사회적으로 파장이 큰 만큼 180일을 넘기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내년 6월 지방선거 직전인 5월 초 결론지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민주당 관계자는 “종북 논란이 지방선거 화두가 될 수 있다”며 “(정당해산 심판 청구 결정이 나온) 국무회의 상정과 처리 과정이 충분한 여론 수렴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것은 의도가 있다”고 말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전체회의에서도 여야는 헌법재판소법 규정(180일)을 놓고 신경전을 벌였다. 새누리당은 종북세력 척결과 사회 안정을 위해 규정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반면 민주당은 통진당 이석기 의원에 대한 재판(내란음모 혐의)이 마무리된 뒤 헌재 결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내년 지방선거 전에 해산 결정을 받아 ‘종북세력 진입 조력 민주당 책임론’을 이슈화하려는 새누리당과 선거 이후 결정을 원하는 민주당의 이해가 엇갈리는 대목이다. 정당해산이 결정될 경우 소속 의원의 신분에 대해서는 명확한 규정이 없지만 비례대표뿐만 아니라 지역구 의원 4명도 자격을 상실해 이들 의원의 지역구가 재·보선에 포함될 수 있다는 분석이 법조계 등에서는 나온다. 10월 말 현재 지역구 의원으로 1심과 2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은 의원은 각각 1명과 9명. 민주당 한 의원은 “진행 중인 사건(10건)이 모두 당선무효가 확정되고 통진당 지역구 의원 지역(4곳)에 지방선거에 나서는 현역 의원의 지역구까지 포함될 경우 7·30 재·보선 규모는 사상 최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금까지 역대 최대 재·보선은 2002년 8·8 재·보선 때의 13곳이었다. 정부가 함께 신청한 가처분 소송 결과도 주목된다. 가처분은 사안의 긴급성을 고려해 빨리 결정 날 개연성이 있다. 가처분이 인용되면 정당으로서의 활동이 정지되기 때문에 통진당은 의원총회도 열 수 없게 된다. 법무부는 가처분 대상에 11월 15일 수령 예정인 정부보조금 수령 행위도 포함시켰다.○ 북, “야당 해산 위한 모략전”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제2의 유신독재의 칼부림’이라는 제목의 보도를 통해 “통진당 등 야당과 범민련 남측본부 등 합법적 단체들에게 ‘종북세력’ 감투를 씌워 탄압하거나 강제해산하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통진당과의 직접적 관련성은 부정하면서도 남한 내 종북세력의 약화를 막기 위해 유신독재가 민주화 운동을 탄압한다는 식으로 포장해 우회적인 언급을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길진균 leon@donga.com·민동용·이정은 기자}
통합진보당 사태에 민주당은 대응 방향을 고심하고 있다. 통진당을 감쌀 수도, 거리를 둘 수도 없는 난처한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통진당도 당의 목적과 활동에 대해 국민 앞에 분명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면서도 “정부도 국무회의 상정이나 처리 과정에서 조급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정당 해산은 보편적 가치인 사상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양비론을 편 것이다. 종북 논란에 휩싸이지 않으면서도 정부의 조치에 정치적 노림수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당내에서는 이번 사태가 국가정보원 등의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을 덮어버릴 뿐만 아니라 내년 지방선거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박지원 의원은 라디오에 나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본격적인 공안정국으로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은 정의당, 무소속 안철수 의원과의 ‘신(新)야권연대’에 시동을 걸었다. 민주당 김 대표, 정의당 심상정 원내대표, 무소속 안 의원은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동양사태,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머리를 맞댔다. 이에 앞서 김 대표는 최고위에서도 안 의원이 4일 주장한 국가기관 선거개입 사건에 대한 특별검사 도입 제안에 대해 “문제의식이 민주당과 대체로 일치한다”고 화답했다. 특검 도입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생각은 같다”며 안 의원에게 러브콜을 보낸 것이다. 민주당과 정의당에 이어 안 의원 측은 12일로 예정된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진상규명 등을 위한 시민사회·종교계 연석회의’에 참석하겠다고 밝혔다. 연석회의는 국정원 개혁을 목표로 전국의 시민단체와 사회원로, 야권이 참여하는 기구로, 민주당 김 대표가 제안한 것이다. 통진당만 빼고 나머지 야권이 하나로 뭉치는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다. 민동용 mindy@donga.com·길진균 기자}
법무부는 6일 국무회의 의결 뒤 가진 브리핑에서 통합진보당 전체가 종북(從北) 정당으로 분석됐기 때문에 정당해산 심판 청구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강조했다. 강령을 통해 나타난 정당의 목적과 이석기 의원이 조직한 혁명조직 ‘RO(Revolutionary Organization)’ 등의 활동을 볼 때 대한민국 헌법이 추구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심각히 위배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민주적 선거-의회 제도 부정 법무부가 정당해산 심판 청구를 하면서 든 근거는 △국민주권주의 및 시장경제질서 위배 △평화통일 원칙과 영토 조항 위배 △민주적 선거제도와 의회제도 부정 등 크게 세 가지다. 법무부는 통진당이 국민을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민중)’으로 나눠 상호 대립하는 구조로 파악하고 국민의 주권과 사유재산권을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 것으로 봤다. 북한이 주장하는 연방제 통일 방안, 주한미군 철수, 평화협정 체결 등을 그대로 수용하고 북한의 핵무기 보유와 장거리 미사일 발사까지 옹호한 것은 대한민국 체제를 파괴하려는 북한의 시도를 그대로 용인한 것으로 판단했다. RO가 국가 주요 시설 타격을 논의한 혐의 역시 헌법이 규정한 평화통일 원칙을 위배했다는 설명이다. 특히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두 축인 선거와 의회제도를 통진당이 부정하고 있다고 분석한 것이 결정적인 근거가 됐다. 법무부 관계자는 “통진당은 대한민국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하고 국회를 혁명의 교두보, 선거를 투쟁으로 인식했다”며 “비례대표 부정경선, 국회 본회의장 최루탄 투척, 중앙위원회 집단폭력 사건 등이 바로 그 증거”라고 말했다. 법무부는 정당 해산의 근거로 통진당의 최고 이념인 이른바 ‘진보적 민주주의’를 들었다. 통진당이 표방하는 ‘진보적 민주주의’가 김일성이 1945년 10월 강연을 통해 밝힌 ‘진보적 민주주의’와 사실상 동일하다는 게 법무부의 분석이다. 북한의 진보적 민주주의는 건국이념이자 대남 혁명전략이다. 법무부는 통진당이 이를 최고 이념으로 삼은 것 역시 북한의 지령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통진당 외곽 지원조직인 진보정책연구원, CNP그룹, 사회동향연구소 등에도 종북성향 인사들이 포진해 있는 데다 이 의원이 비례대표 경선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1위에 당선되는 등 추종세력들이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당내에 학생·청소년특별위원회를 두고 한국대학생연합과 연계 활동을 벌이는 등 ‘차세대 종북세력’이 양성될 우려도 높다고 판단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종북 인사들을 개별적으로 처벌하거나 국회의 제명, 자격심사만으로는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과거 일심회·왕재산 간첩단 사건과 비례대표 부정경선, 국회 본회의장 최루탄 투척 사건 등을 통해서 볼 때 통진당이 북한의 이념을 따르고 의회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할 증거는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통진당 측은 이념과 강령이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정당과 큰 차이가 없고 북한의 지령을 받았다는 정부의 주장은 근거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경기동부연합 등 NL계열 세력 키워 통진당은 경기동부연합 중심의 주사파 민족해방(NL) 계열이 당을 장악하고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통진당의 모태는 2000년 1월 진보 진영과 노동계 주도로 창당한 민주노동당이다. 경기동부연합 등 NL 계열은 2001년경 민노당에 합류해 서서히 세를 키워 가다 2006년 2월 당권을 장악했다. 이 과정에서 NL 계열은 지구당 선거 때마다 휘하 당원들을 대거 해당 지구로 이사시킨 뒤 투표에 참여토록 해 NL 계열 후보자를 당선시켰다는 의혹을 받았다. 그해 민노당 당직자들이 포함된 간첩사건인 일심회 사건이 터졌다. 이들 당직자는 당원명부 등 각종 정보를 북한에 넘겨줬다. 비당권파인 심상정 노회찬 등 민중민주(PD) 계열은 명백히 해당 행위를 한 일심회 사건 관련자들의 징계를 주장했지만 당권파인 NL에 밀려 무산됐다. 결국 심상정 노회찬 등 PD 계열은 2008년 2월 탈당해 3월 진보신당을 창당했다. 19대 총선을 앞둔 2011년 12월 NL 당권파의 민노당은 유시민 천호선 중심의 국민참여당, 심상정 노회찬 등 진보신당 탈당파와 함께 야권 통합의 기치 아래 다시 뭉쳐 통합진보당을 창당했다. 그러나 지난해 4·11총선을 전후해 서울 관악을 야권 후보단일화 여론조작 논란과 통진당 비례대표 경선 부정 논란이 잇따르면서 통진당 분열의 싹이 텄다. 특히 NL 계열이 주도해 대리투표를 하면서 당내에서 무명이던 이 의원이 비례대표 경선 1위를 차지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갈등은 더욱 커졌다. 결국 지난해 9월 국민참여당계, 진보신당 탈당파, 그리고 민노당계 인천연합이 다시 통진당을 탈당해 지금의 정의당을 만들었고 통진당 지도부는 통합 전처럼 경기동부연합과 광주 전남 출신 NL계가 장악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통진당 당원은 10만4692명이며 이 중 39.6%인 4만1444명이 당비를 냈다.유성열 ryu@donga.com·민동용 기자}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폐기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정상회담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 민주당 의원에게 소환을 통보했다. 문 의원 측도 소환에 응하겠다는 뜻을 밝힘에 따라 5, 6일 무렵 문 의원에 대한 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부장 김광수)는 2일 문 의원에게 이번 주에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에 나와 조사를 받으라고 통보했다고 4일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최대한 일찍 나와 달라는 뜻을 문 의원 측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문 의원은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내일(5일)이든 모레(6일)든 가급적 빠르게 소환에 응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문 의원은 지난달 10일 “검찰은 짜 맞추기식 수사의 들러리로 죄 없는 실무자들을 소환하지 말고 나를 소환하라”며 검찰 수사를 비판했었다. 검찰은 문 의원을 상대로 회의록이 왜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되지 않았는지, 노 전 대통령의 회의록 삭제 지시가 있었는지는 물론 삭제 사실을 사전에 알고 있었는지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검찰은 문 의원이 정상회담 회의록 작성과 삭제 시점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정상회담 실무를 주도한 데다 회의록의 작성과 보관, 이관 등의 과정을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문 의원 측 관계자는 “이미 노무현 정부 인사 수십 명을 소환해 조사를 다 마치고 결과를 낸 상황에서 문 의원을 소환하겠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저의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문 의원 소환 조사를 마지막으로 회의록 폐기 의혹 수사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검찰 안팎에서는 13일로 인사청문회가 예정돼 있는 김진태 검찰총장 후보자가 취임하기 전 수사 결과가 발표될 개연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앞서 검찰은 대통령기록관에 보관 중인 대통령기록물 755만 건을 압수수색한 결과 회의록이 대통령기록관에 이관되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은 또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봉하마을로 가져간 ‘봉하 이지원(e知園·청와대 문서관리시스템)’에서 수정본(최종본) 형태의 회의록 1부를 발견했고, 1차 완성본은 삭제된 흔적을 발견해 이를 복구한 바 있다. 이후 검찰은 정상회담에 배석해 회의록 작성을 책임졌던 조명균 전 대통령안보정책비서관, ‘봉하 이지원’ 구축을 맡았던 김경수 전 대통령연설기획비서관, 초대 대통령기록관장을 지낸 임상경 전 대통령기록관리비서관, 김만복 전 국가정보원장 등 노무현 정부 인사 30여 명을 잇달아 소환 조사했다. 특히 조 전 비서관은 검찰 조사에서 “회의록 수정본을 이지원에 등록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저질러 대통령기록관에 이관되지 않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검찰은 조 전 비서관의 진술이 신빙성이 낮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검찰은 실수로 회의록이 삭제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고의적으로 회의록을 삭제했을 개연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유성열 ryu@donga.com·민동용 기자}
10·30 재·보궐선거 이후 야권의 잠재적 대선후보들은 내년 6월 지방선거를 향해 신발끈을 죄고 있다. 지방선거에서 뚜렷한 성적을 거둘 경우 차기 야권 대선주자로서의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소속 광역단체장인 박원순 서울시장, 송영길 인천시장,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재선(再選) 성공에 공을 들이고 있다. 박 시장은 무상보육과 기초연금 재정 문제로 중앙정부와 각을 세우고 있다. 새누리당이 국정감사 내내 ‘박원순 때리기’에 열중한 데 대한 대응 성격도 있다. 박 시장은 2일에는 종합편성채널 채널A에 출연해 사실상 국가보안법 폐지에 반대하기도 했다. 폭넓은 중도층을 겨냥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송 시장과 안 지사 역시 재선 성공을 전제로 대선을 위한 구체적인 플랜을 가동시킬 태세다. 송 시장은 1일 자신의 시정 노하우를 담은 책 ‘룰(RULE)을 지배하라’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행정 전문가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해서인 듯 중앙 정치인에게는 초청장도 보내지 않았다. 안 지사는 조만간 국회 출입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재선 플랜을 직접 설명할 계획이다. 같은 당 문재인 의원은 지방선거 때 친노(친노무현)계 인사들을 대거 당선시킨다는 복안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문 의원으로서는 지방선거를 통해 지지 세력을 복원하고 확산시켜야 차기에도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것. 손학규 전 대표는 이미 지방선거 때 민주당을 중심으로 무소속 안철수 의원 등과 야권 통합을 이뤄내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손 전 대표 측은 지방선거 때 경기도지사 경험 등을 바탕으로 수도권에서 야권 승리를 이끌어 낼 경우 대선 본선 경쟁력을 입증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것으로 보고 있다. 4일로 대표 취임 6개월을 맞은 김한길 대표는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는 절박감이 있다. 5·4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김 대표의 임기는 ‘공식적으로는’ 2년. 그러나 10·30 재·보선 패배 등 6개월 성적표가 신통치 않다.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 사건과 민생 현안을 동시에 잘 처리해 지방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기반 조성에 주력하겠다는 방침이다. 야권 인사 중 물밑에서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사람은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다. 하반기 정국이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논란과 국가기관의 불법 대선개입 의혹 사건으로 요동치면서 존재감이 약해졌다는 평가를 들었지만, 재·보선에서 민주당이 패하면서 도약할 기회를 잡았다는 분석이다. 내년 지방선거 때는 독자세력화를 통한 눈에 띄는 성적을 거두는 것이 곧 대선으로 가는 길이라고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 의원은 4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연내 신당 창당에 대해 “진전되는 대로 따로 말씀드리겠다”며 말을 아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늦어도 내년 1월까지는 신당의 첫 단계인 창당준비위원회를 띄워야 지방선거를 제대로 준비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새누리당 황우여,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최근 수차례 비공개 회동을 하고 국가정보원 등의 대선 개입 의혹으로 촉발된 여야 대치 정국의 해소를 위한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야 원내 지도부가 각각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등의 선거 개입 의혹과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의혹 등을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이는 가운데 여야 대표가 직접 물밑 접촉에 나선 것으로 향후 꽉 막힌 여야 관계에 돌파구가 마련될지 주목된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3일 본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여야 대표가 매주 한 차례꼴로 비공개로 만나고 있다”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서유럽 순방 후 9일 국내로 돌아온 뒤 협상 결과에 진전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여당은 국정감사가 끝난 뒤 정기국회에서 법안과 예산을 국회에서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다급한 상황이고, 야당은 이번 재·보궐선거 참패 이후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야 하는 형편”이라면서 “여야 대표가 공개적으로 만나는 방안도 추진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여야 대표는 6월 18일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조찬 회동을 한 바 있다. 여야 대표는 물밑 접촉에서 국정원이 조만간 국회에 제출할 자체 개혁안의 논의를 위한 ‘국정원 개혁 특별위원회’ 설치 문제 등을 집중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은 국회에 별도의 국정원 개혁 특위를 구성하자고 주장하고 있고, 새누리당은 국정원 관련 상임위인 국회 정보위에서 논의하면 된다고 반대하고 있다. 여당 핵심 당직자는 “민주당 김 대표가 회동에서 특위 구성을 가장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면서 “새누리당 황 대표도 가급적 야당의 요구를 수용하는 방안으로 고려하고 있으며 원내 지도부를 설득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 당직자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권으로서는 선거 대비 차원에서 긴장 관계를 더는 조성하지 않고 국민 눈높이에 맞추는 정치를 할 수밖에 없다”면서 “국회 선진화법(국회법 개정안)에 따라 야당 도움 없이는 예산과 법안을 처리할 수 없는 여당 원내 지도부로서는 민주당의 특위 신설 주장을 받아 줘야 하는 수세 국면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도 국정원 특위 구성과 관련해 일정 부분 새누리당에 양보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야당 핵심 당직자는 이날 통화에서 “새누리당은 (8월에 실시한)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 규명에 관한 국정조사특위가 정쟁으로 흘렀다며 국정원 개혁 특위 구성을 반대하고 있다”면서 “민주당은 특위 위원의 경우 새누리당에서 양해(동의)하는 사람으로 구성하겠다고 제안해 놓은 상태”라고 말했다.朴대통령 18일 국회서 시정연설 한편 여야는 국회 운영위원회의 대통령비서실과 국가안보실, 대통령경호실에 대한 국정감사를 박 대통령의 서유럽 순방 일정을 고려해 5일에서 14일로 연기했다. 박 대통령은 18일 국회를 찾아 내년도 예산안과 기금운영계획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한다.고성호 sungho@donga.com·민동용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6월 27∼30일)을 앞두고 비상근무를 하던 주중 한국대사관의 군사외교관이 음주운전 교통사고를 낸 뒤 소환 조치됐다고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민주당 김현 의원이 3일 밝혔다. 김 의원에게 제출한 국방정보본부의 ‘주중 국방무관 보좌관 비위혐의 의혹내용 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주중 대사관의 군사외교관 한 명이 6월 24일 오후 3시간 동안 술을 마시고 자신의 승용차로 귀가하다 도로 경계석과 충돌했다. 당시는 박 대통령의 방중을 준비하는 비상근무 기간이었다. 이 군사외교관은 대통령 전용기 이착륙 관련 수속 업무 등을 맡고 있었다. 이 외교관은 사후 보고를 하지 않았으며, 사고 사실을 전해 들은 다른 군사외교관의 보고로 국방정보본부가 감찰조사를 실시한 뒤 소환 및 보직해임 조치를 내렸다. 국방정보본부는 이를 김관진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감찰보고서에는 ‘VIP(대통령) 전용기 담당 임무를 맡고 있었는데 음주운전을 했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행동으로 만약 언론에 보도됐다면 윤창중 대변인 수준으로 방중 효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일’이라고 적혀 있다고 김현 의원은 전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이명박 정부에서 법제처장을 지낸 이석연 변호사(59·사진)가 이명박 전 대통령을 강한 톤으로 비판했다. 다음 주 출간될 책 ‘페어플레이 아직, 늦지 않았다’(미래를 소유한 사람들)에서다. 이 전 처장은 이 전 대통령에 대해 “법치 의식이 상대적으로 희박했다”며 “일의 추진력이나 성과 위주로 실적에 치중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적법 절차에 대한 의식이 약했다”고 평가했다. 이명박(MB)정부에 대해서도 “목적 달성에 대한 집념, 추진력과 의욕이 왕성해 절차적 정의나 과정에 대해서는 거추장스럽게 생각하고 외면하는 경향이 있었다”며 “그래서 여러 문제가 생겼다. 심지어 ‘내곡동 사저 사건’이 터져 망신을 당했다”고 했다. 이어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 논란을 불렀던 ‘미네르바 사건’에 대해 “아마추어가 경제 정책을 논평한 것에 대해 구속까지 했다. 기소하지 않았어야 했다”며 “손대서는 안 될 사건에 손을 대서 검찰도, MB 정부도 망신당한 사건”이라고 비판했다. 이 전 처장은 박근혜 정부에 대해 “반대 진영 후보를 지지했던 48%에 대해 배려를 해야 한다”며 “종전과 같이 ‘올 오어 너싱(전부 아니면 전무)’이나 승자가 모든 것을 독점하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박 대통령의 인사 방식에 대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인사로 귀결된다”며 “국민이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라는 차원에서 볼 때 ‘이건 아니다’는 의견이 상당히 많다. 적어도 국민의 감동을 불러일으키려면 바른 소리, 쓴소리를 하는 사람들을 임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전 처장은 1990년대 시민운동을 함께했던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해 “시민운동을 할 때 시민운동의 순수성을 주장하면서 제게 ‘시민운동을 상업적으로 이용한다’고 비판했다. 정치 참여를 매도했다”며 “서울시장이 되기 위해서였나”라고 따져 물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국정감사 마지막 날인 1일 여야는 국감 이후 정국 주도권을 쥐기 위한 기싸움에 들어갔다.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정기국회 본게임이 눈앞에 와 있다”며 “민생과 경제살리기에 매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군 사이버사령부와 국가보훈처 등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해서는 “사법부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새누리당은 다음 주초 당정협의를 열어 부동산 등 경제 활성화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그러면서도 대선 개입 의혹에 강하게 맞불을 지폈다. 김태흠 원내대변인은 “민주당 문재인 후보 측은 지난해 대선 직전 12월 7일 전공노의 표를 얻기 위해 정책 협약을 맺었고 소속 공무원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해 무차별적인 불법 선거운동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정원 등 일부 공무원의 대선 개입 의혹은 비판하면서 전공노 문제에 침묵하는 것은 이율배반적 행태”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기관의 불법 대선 개입 이슈를 지속적으로 끌고 가면서도 결산·예산 정기국회를 지탱해 나갈 민생 현안을 찾기 위해 고심 중이다. 정부의 세법 개정안, 기초연금 수정안 등을 반대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김한길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산층과 서민의 민생경제 안정화”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대표 브랜드로 ‘무상 보육’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2011년 무상 급식과 같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민주당은 황찬현 감사원장(11, 12일), 김진태 검찰총장 후보자(13일) 인사청문회, 곧장 이어지는 대정부질문을 통해 국정원 등의 대선 개입 의혹을 추궁하기로 했다. 이 때문에 국감 이후 ‘정기국회 2라운드’에서도 여야가 격돌하는 ‘국감 연장전’이 벌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편 국감NGO모니터단은 이번 국감의 성적을 ‘C학점’이라고 평가했다. 기초연금이나 동양사태 등에 대한 적절한 지적도 있었지만 정쟁이 심했다는 이유에서다. 모니터단 측은 국감을 빛낸 초선 의원으로 새누리당 김종태 김진태 윤재옥, 민주당 김기식 박완주 최동익 의원을 꼽았다. 최창봉 ceric@donga.com·민동용 기자}
박근혜 대통령, 정홍원 국무총리 등이 한목소리로 민생·경제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고 있는 가운데 국회에 계류돼 있는 부동산 시장 활성화 법안의 처리 시점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부 법안은 연내 통과될 가능성이 높지만 일부 법안은 여야의 견해차가 커 진통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여야는 일단 11월 초 국감이 끝난 뒤 진행될 법안심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특히 민생·경제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목표로 하고 있는 여당은 더 적극적이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지금 부동산 시장은 한겨울인데 아직까지 한여름 옷을 입고 있어 감기몸살로 얼어 죽게 생겼다”며 “11월 초부터 주택 관련 입법을 담당하는 상임위별로 당정협의를 열고 하루빨리 관련 법안들을 통과시킬 생각”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의혹에 당력을 집중하는 동시에 민생법안 처리에도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투 트랙’ 전략을 갖고 있다. ‘싸움’만 하지 않고 ‘민생’도 챙긴다는 점을 강조하겠다는 것. 다만 민주당은 법안의 실효성을 꼼꼼히 따져 처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정부와 여당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하려고 하는 핵심 법안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를 비롯해 분양가 상한제 탄력 운용, 취득세 영구 인하, 리모델링 수직 증축 등이다. 이 가운데 취득세 영구 인하와 리모델링 수직 증축 법안은 민주당도 찬성하는 입장이어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민주당은 취득세 영구 인하로 줄어드는 지방세수를 100% 보전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을 전제로 동의한다는 ‘조건부 찬성론’이다. 하지만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에 대해서 민주당은 ‘부자 감세’라며 반대하고 있다. 분양가 상한제 탄력 적용도 “서민들의 전월세난이 가중되고 있는데 건설업계의 숙원사업을 들어주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그 대신 민주당은 서민들의 전월세난을 완화하기 위해 전월세 상한제 도입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세입자가 희망하면 1회에 한해 계약을 연장할 수 있는 계약갱신청구권을 허용하되 집주인과 세입자가 전월세 계약을 갱신할 때 인상률을 5%로 제한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 제도가 구체화할 경우 오히려 전월세 가격 폭등과 같은 부작용이 나올 수 있다는 게 정부와 여당의 시각이다. 이처럼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와 전월세 상한제는 여야가 서로 반대하고 있어 연내 처리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와 전월세 상한제를 일괄 타결하는 ‘빅딜’론도 나오고 있다. 부동산 침체로 서민·중산층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여야가 부동산 관련 핵심 법안 처리에 손을 놓을 경우 ‘책임론’까지 불거질 수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부동산 관련 법안의 연내 통과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우세하다.길진균 leon@donga.com·민동용 기자}
친일파 중용, 반민특위 활동 방해, 사사오입(四捨五入) 개헌, 3·15 부정선거, 4·19 시위대에 대한 발포…. 초대 대통령 우남(雩南) 이승만에 대한 한국 사회의 평가는 이 같은 그의 과오에 집중돼온 경향이 짙다. 특히 3·15 부정선거와 뒤를 잇는 4·19혁명을 거치면서 이 전 대통령은 반민주적 독재자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한국 근현대사에 끼친 긍정적인 면도 제대로 조명돼야 한다는 움직임도 조금씩 활발해지고 있다. 그중에는 그를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과 같은 반열에 드는 국부(國父)로 숭앙하려는 시도도 있다. 최근 발간된 3부작 ‘초대 대통령 이승만’(청미디어·사진)은 그를 객관적으로 재평가하려는 시도의 하나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책의 저자는 KBS 김정수 프로듀서. 그가 제작한 KBS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대한민국을 움직인 사람들-초대 대통령 이승만’(5부작)을 글로 풀어낸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당초 2011년 광복절에 맞춰 방영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같은 해 8월 초 민족문제연구소를 비롯한 90여 개 시민단체가 ‘친일독재찬양방송저지 비상대책위원회’를 조직해 KBS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였다. 그들의 주장은 “공영방송이 친일파의 아버지이자 독재자인 인물을 미화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KBS는 결국 이 다큐멘터리의 광복절 방영을 포기했고 같은 해 9월 말 애초 5부작을 3부작 다큐멘터리로 줄여서 방영했다. 1부 ‘개화와 독립’, 2부 ‘건국과 분단’, 3부 ‘6·25와 4·19’로 구성된 이 책은 왕족 출신이면서도 공화정을 주장해 고종 폐위운동에 나섰던 우남에서부터, 조봉암 진보당 당수를 사형시키는 철저한 반공주의자 우남, 그리고 4·19 때 부상당한 시위대를 보며 울먹이다 끝내 하야하는 우남까지를 차분히 그렸다. 3부작으로 줄면서 빠졌던 내용도 책에는 포함시켰다. 김 프로듀서는 “격동의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살면서 그가 행했던 수많은 선택이 우리나라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알아보고 싶었다”며 “그는 역사가 존재하는 한 아무리 지우려고 해도 지울 수 없는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5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정동제일교회에서 출판기념 예배가 열릴 예정이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10·30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다음 날인 31일 새누리당은 ‘겸손 모드’를 취했다. 집권여당이 재·보선에서 연승한 것은 김영삼 정부 초인 1993년 이후 20년 만인 만큼 승리를 자축할 만도 하지만 민생 등을 강조하며 조심스러운 자세를 보인 것이다. 이날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는 ‘겸허’ ‘겸손’ ‘민생’ 등의 단어가 쏟아져 나왔다. 황우여 대표는 이날 본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오늘은 (지방선거 등) 이것저것 얘기하지 않고 재·보선에 초점을 맞춰 ‘민생’의 중요성을 얘기하기로 했다”면서 “여당도 (승리했지만) 민심에 대해 겸허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 대표는 “이번에 표출된 민심은 여당도 삐끗하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라며 “대선 당시 약속한 지방 공약을 세심하게 챙기면서 조용히 지방선거를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다른 핵심 당직자도 통화에서 “우리에게 이번 승리가 독(毒)이 될 수 있다”면서 “공약을 지키지 못하면 지방선거에서 공약으로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계했다. 경기 화성갑에서 당선된 서청원 의원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당내 역할과 관련해 “좀 시간이 필요하다. 여러 생각을 많이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향후 자신의 역할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심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당내에선 7선 의원이자 친박 원로인 서 의원에 대해 차기당권설 또는 국회의장설 등이 거론되고 있다. 반면 민주당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는 “겸허하게 선거 결과를 수용하자”, “선거에서 교훈을 얻자”면서도 “너무 기죽지는 말자”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한 참석자는 전했다. 당초 두 선거구 모두 새누리당의 텃밭이어서 기대를 하지 않았던 만큼 화성갑에서 득표율 33.5%포인트 차의 ‘참패’를 당한 것에 너무 충격을 받지는 말자는 얘기였다고 한다. 한 고위 당직자는 “선거 전 자체 여론조사 결과 40%포인트가량 지는 것으로 나왔는데 예상대로 나왔다”며 애써 자위하기도 했다. 당 지도부는 대정부 투쟁 방향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자칫 구체적인 투쟁 방식이 없다면 ‘선거 패배로 민주당이 무기력해졌다’는 소리를 들을 우려가 크기 때문에 김한길 대표는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에는 재·보선 패배 원인 분석을 지시했다. 그러나 5·4 전당대회에서 “(선거에서) 이기는 정당”을 만들겠다고 공언한 김 대표로서는 첫 선거 패배가 적지 않은 부담이다. 화성갑에 손학규 전 대표를 공천하지 못한 당 지도부에 대한 비판론도 나온다. 당내에선 ‘정쟁보다는 민생’을 내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어가는 분위기다. 한편 새누리당 최경환,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 등 여야 원내지도부는 선거 당일 만찬 회동을 갖고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의혹 등 주요 현안과 국정감사 이후 예산안 및 법안 처리 등을 놓고 의견을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구체적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고 한다. 전 원내대표는 통화에서 “아직 무르익은 건 없다”며 “서로 입장에 대해 간만 본 거다. 뭔가 합의를 하기에는 좀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고성호 sungho@donga.com·민동용 기자}
민주당은 30일 재·보궐선거 결과에 대해 애써 무게를 두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한 핵심 당직자는 “지역 특성이나 후보 인지도 차이를 고려해야 하는 만큼 이번 선거를 정국 상황에 대한 평가로 단정지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김관영 수석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더 낮은 자세로 국민의 뜻을 받들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보궐선거는 정부여당의 ‘중간 심판대’ 성격이고, 단 두 곳에서 치러졌지만 모두 패한데다 수도권인 경기 화성갑에서도 선전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지도부에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대여투쟁에 일정 부분 차질이 빚어지고 김한길 대표의 입지도 다소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중진 의원은 “‘초미니 선거’든 뭐든 진 것은 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 재선 의원은 “화성갑 오일용 후보는 친노(친노무현)그룹과 가까운 정세균 전 대표의 직계여서 친노계의 대대적인 반격이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손학규 전 대표의 화성갑 출마에 공력을 더 기울였어야 했다는 얘기들이 있다”고 전했다. 민주당은 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의 당선이 향후 여권 내 역학구도와 여야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한 핵심 관계자는 “서 전 대표는 정치를 오래 했고 정치를 아는 분 아니냐. ‘청와대의 거수기’로 불리는 여당에 변화가 생길 것으로 기대한다”며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의 ‘사적(私的) 정치’를 견제할 수 있을지도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서 전 대표가 경색된 여야관계를 푸는 데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한 중진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나 홀로 국정운영’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도권의 한 재선 의원은 “새누리당에 박근혜 대통령의 ‘좌청룡(서청원) 우백호(김무성)’ 진용이 짜여졌다”고 말했다. 시너지 효과를 낼지, 자중지란을 일으킬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민동용 mindy@donga.com·황승택 기자}
민주당이 ‘문재인 딜레마’ 해법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문재인 의원이 ‘대선 불공정’ 성명을 발표하는 등 전면에 나서면서 여당에 반격의 구실을 주게 된 것에 대해 불만이 많지만 그렇다고 내부갈등으로 전선을 흩뜨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고민은 정동영 상임고문(사진)의 발언을 통해서도 엿보인다. 정 고문은 25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헌법질서를 흔든 이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는 데 있어 다시 문 의원이 중심에 서는 것은 진실 규명보다는 정쟁 쪽으로 흐르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정 고문은 “민주주의에 위기가 왔다고 보고 문 의원이 입장을 밝힌 것으로 이해한다”면서도 “문 의원이 직접 나서기보다 당이 전면에 나서 ‘박근혜 정권 대 민주당’, ‘박근혜 정권 대 김한길 대표의 지도부’, 이런 구도가 만들어져야 사건의 본질에 다가가는 데 현명하다”고 강조했다. 정 고문이 공개적으로 문 의원에게 자제를 촉구한 것은 문 의원 성명이 나오자 여당이 대선불복론으로 역공을 가하면서 민주당이 내세우고 있는 ‘헌법 불복’ 명분을 덮을 수 있다는 당내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재선 의원도 “문 의원의 본심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보지만 대선의 당사자가 직접 나서면 사안의 본질이 흐려진다”고 지적했다. 여야는 이날도 거친 공방을 이어갔다.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는 국정감사 상황점검회의에서 “대선 불복 유혹은 악마가 야당에 내미는 손길이란 것을 명심해야 한다”며 “민주당이 시계를 작년 대선 때로 되돌려 정치 공세에 골몰하며 국감이 실종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는 “국내에서 생성되는 트윗 중 0.02%에 불과한 정도로 대선의 판도가 바뀌었다고 정치 공세를 하는 분들에 대해 (국민들은) 허탈해하고 있다”고 민주당을 비판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국가기관의 조직적 대선개입은 명백한 헌법 불복 행위이고 이를 비호·은폐하는 행위도 헌법 불복”이라며 “새누리당이 헌법을 지키려는 국민의 엄중한 명령을 대선 불복이라는 억지 논리로 모면하려 한다면 스스로 헌법 불복 세력임을 자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정부와 기업, 국회는 매년 가을 서로 뒤엉켜 한바탕 홍역을 치른다. 연례행사인 국정감사가 열리는 것이다. 잘 살펴보면 국감은 행정부뿐만 아니라 정부 정책과 연관이 있는 기업 학교 언론 등 대한민국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 최근에는 국회와 기업 간 긴장도가 더 강해 보인다. 그런 팽팽함이 25일 고스란히 드러났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민주당 김동철 의원은 이날 이희범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신청했다. 이 회장이 전날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경총 포럼 인사말에서 “올해 국정감사는 역대 최악의 기업 감사”라며 국회를 건드린 탓이 크다. 이 회장은 “그동안 경총과 언론, 수많은 전문가가 수차례 기업인 증인 소환의 문제점을 지적했는데도 올해 국정감사에 역대 가장 많은 기업인이 증인으로 소환됐다”고 지적했다. 경총에 따르면 24일까지 201명의 기업인이 올해 국감 증인으로 채택됐다. 2011년에는 61명, 지난해에는 145명의 기업인이 국감장에 섰다. 그러나 김 의원은 “STX 계열사에 회장으로 가서 로비스트 역할을 했던 사람이, 지금 STX그룹 문제로 국부가 얼마나 유출됐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는데 무슨 자격으로 국민의 대표인 국회를 비난하나”라며 이 회장을 정조준했다. 결국 이 회장은 증인으로 채택되지는 않았다. 점잖아 보이는 국감의 수면 아래에서 ‘불러내려는 자’와 ‘막아보려는 자’, ‘들추려는 자’와 ‘감추려는 자’의 밀고 당기기가 치열하다. 종반으로 내달리는 올해 국감의 속살을 들여다봤다. ▼ 한국지사장 국감 출석에 獨본사 “범죄라도 저질렀냐” ▼불러내기 vs 가로막기 “회장님 출석 여부에 우리 목숨이 달렸습니다. 어떻게든 막아야죠.” 지난주 국회 의원회관 복도에서 만난 대기업 A사 대관(對官) 업무 담당자의 표정은 비장했다. 대관 업무란 기업에서 입법 행정 사법기관과 소통창구 역할을 하는 일을 말한다. 국감이 열리지 않을 때 대관 업무 담당은 국회에서 기업과 관련된 법률이나 정책이 만들어지는지 잘 살펴 기업 의견을 전달하는 일을 주로 한다. 그러나 국감 시기에는 소속 기업의 총수(오너)나 최고경영자(CEO)가 증인으로 채택돼 곤욕을 치르지 않도록 하는 일이 최우선이다. 대기업 대관 팀의 운명은 매년 국감을 어떻게 치르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이 국정감사 증인 명단에서 제외된 과정도 흥미진진하다. 당초 산업통상자원위원회는 15일 유통업계 강자인 롯데그룹의 골목상권 침해, 협력사 대리점 가맹점 상대 불공정행위, 일감 몰아주기를 문제 삼아 신 회장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그러나 20일 롯데그룹이 민주당과 공정한 갑을(甲乙) 관계를 위한 상생협력기구를 만들기로 합의하자 기류가 급변했다. 국회 안팎에서는 상생협력기구 구성 합의가 롯데그룹의 ‘회장님 구하기’ 차원이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돌았다. 롯데그룹이 성의를 보여 민주당의 체면을 높여준 만큼 최악의 경우 신 회장이 증인으로 출석하더라도 큰 수모를 당하지 않으리라는 얘기도 돌았다. 결과는 예측을 벗어나지 않았다. 국회 보좌진이나 대관 업무 담당자들 사이에서는 최근 신세계그룹 대관 팀이 동정의 대상이다. 롯데그룹이 자신의 회장을 막판 뒤집기로 구해낸 반면 신세계는 애써 증인 명단에서 빼냈던 정용진 부회장을 다시 증언대에 세울 수밖에 없게 됐다. 정 부회장보다 실무를 잘 안다며 의원들을 설득해 대신 내세운 이마트 대표이사가 산자위 국감에서 부실 답변 논란을 빚자 성난 여야 의원들이 정 부회장을 증인으로 다시 채택해 버렸다. 대관 팀 실무자의 1차 임무는 어느 의원이 자신의 회사 누구를 국감 증인 명단에 올리려는지 알아내는 것이다. 만약 오너를 직접 부르겠다고 고집하면 말 그대로 ‘회사가 뒤집어진다’. 대기업 B사는 오너나 오너 가족이 출석 의무가 없는 참고인 명단에조차 오르도록 하면 안 된다는 게 불문율임이 널리 알려져 있다.빼내기 vs ‘보상’하기 올해 국감에서는 경제민주화라는 커다란 이슈 속에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롯데 등 재계 서열 상위 10위권 그룹은 국회 대관 팀을 풀가동하며 정보 수집에 열을 올렸다. 증인 채택을 무마하기 위해 그룹 차원에서 전방위적인 로비를 벌인다. 의원과 학연 지연 혈연관계가 조금이라도 있는 최고위층 인맥들도 ‘회장님 지키기’에 총동원됐다. 의원들은 “국감을 앞두고 기업 회장이나 CEO를 증인에서 빼달라는 로비에 수도 없이 시달린다”고 귀띔한다. 넣고 빼기의 줄다리기 끝에 200여 명의 숫자가 나온 셈이다. 의원들이 기업인들을 불러내려는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다른 속셈’이 작용할 때도 있다. 증인 명단에 오른 오너 및 회장을 빼거나 아니면 적어도 이들이 아닌 실무 총책임자가 대신 국감장에 나서게 하려면 의원실과 ‘거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은밀한 거래’는 확인이 쉽지 않다. 대기업 C사 대관 업무 담당자는 “오너나 회장에서 부사장 등으로 한 단계 낮추는 단가가 수천만 원이라는 얘기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대기업 D사 관계자는 “증인의 격을 낮춘다기보다는 아예 오너나 CEO를 증인 명단에서 삭제하는 데 집중한다”고 말했다. 의원 측이나 기업 관계자 모두 예전처럼 사전 협상 단계에서 “(회장이나 CEO를) 증인에서 빼주면 얼마를 주겠다”는 식의 일처리는 상상하기 어렵게 됐다고 주장한다. 여의도 호텔 로비에서 심야에 만나 돈이 든 쇼핑백을 건네는 일은 옛일이 됐다는 것이다. 야당 보좌관 E 씨는 “기업들이 섣불리 ‘얼마면 되겠느냐’고 했다가 상대 의원실에서 ‘돈으로 구워삶아 증인 채택을 막으려 했다’고 공개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뻔한데 그렇게 하겠느냐”고 했다. 수사 대상에 오를 수도 있어 위험하다는 설명이다. 대기업 F사 대관 팀 실무자도 “선배들은 10여 년 전에는 그런 거래가 가능했다고 하는데 국회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드러나는 직접적인 거래는 없지만 시간이 지난 뒤 적절한 보상을 하는 방식은 여전히 쓰이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한 재선 의원 보좌관 G 씨는 “약속을 하지는 않지만 대기업들은 해당 의원 후원금 계좌로 합법적인 정치자금을 보내 사례를 하기도 한다고 들었다”며 “액수는 2000만∼3000만 원을 직원이나 지인 명의로 6, 7명씩 500만 원 이하로 나눠 넣는다고 한다”고 했다. 최근에는 사회공헌예산을 책정하는 대기업이 사내 사회공헌팀을 통해 해당 의원의 지역구에서 집 고쳐주기, 작은 도서관 지어주기 등의 공익사업을 벌이거나 각종 지역행사를 후원하는 방식으로도 후사(厚謝)를 한다고 알려졌다. 의원과 가까운 친인척의 복지재단 등에 기부금을 내는 새로운 방식이 활용된다는 소문도 나돈다. 최근 여러 대기업이 대관 팀을 확대하는 이유도 오너나 회장을 증인 명단에서 삭제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는 국회 분위기와 관련이 깊다. 국감 직전에 거래를 통해 손을 쓰기가 어렵기 때문에 인원을 늘려 평소 관계를 돈독히 해둘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증인 채택에 적극적인 야당 의원들의 눈치를 보긴 하지만, 여대야소 국회이다 보니 대부분 상임위에서 수가 많은 여당이 찬성해주지 않으면 증인 채택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간파한 대관 팀에서는 여당 의원들을 집중 공략하는 경우가 많다. 상임위원장실의 야당 보좌관 H 씨는 “기업 대관 팀 실무자가 ‘여당이 반대하면 그만인데 무엇 하러 야당에 매달리느냐’고 내 앞에서 이야기하는 걸 보고 좀 기가 찼다”고 말했다. 여당 중진 의원은 “재벌 총수가 국감에 출석하면 여론의 주목도가 훨씬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야당은 필요 이상의 기업인 출석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며 “경제위기 상황 속에서 경영활동 위축을 가져올 수 있는 야당의 과도한 기업인 출석 요청에 그대로 응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라고 했다. 외국계 기업 본사는 한국 지사장의 국감 출석에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15일 정무위 공정거래위원회 국감에는 국내 자동차시장의 불공정행위 관련 심문을 위한 증인으로 수입자동차업체인 BMW코리아 김효준 사장과 브리타 제거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사장이 수입차 업체 사장으로는 처음 출석했다. 김 사장은 “국감 출석을 요구받았다고 독일 본사에 보고하자 본사 임원이 깜짝 놀라 ‘범죄라도 저질렀느냐’고 되물어왔다. 위법 사실이 없다고 답하자 그럼 대체 거길 왜 가야 하냐며 당혹스러워하더라”고 전했다. 면박주기 vs 실소하기 “불완전 PC를 팔았단 말이에요, 불완전 PC를!” 동양그룹 사태가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던 18일 국회 정무위원회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 중진 I 의원은 이렇게 호통을 쳤다. ‘금융당국 책임론’에 직원들 모두 죄인처럼 고개를 떨어뜨렸지만 I 의원에 호통에 사무실 곳곳에서는 “쿡쿡” 하는 웃음이 터졌다. 동양그룹 계열사가 발행한 CP(기업어음)를 PC(개인용 컴퓨터)로 잘못 지칭한 것이다. 5분이 지나도록 CP를 PC로 말하던 I 의원은 보좌관과 옆자리 의원의 지적에 질의 후반부에야 CP라고 정정했다. 말실수를 정정한 뒤에도 해당 의원은 동양 사태의 내막과 동떨어진 질문으로 피감기관 증인들을 침묵에 빠뜨렸다. 금감원 관계자는 “그 자리에서야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있지만 엉뚱한 질문을 하거나 호통치는 의원들 대하기가 가장 수월하다”고 말했다. ▼ “현장서 호통쳐야 맛이 나지” 화상회의 원격국감 무산 ▼같은 ‘식구’였던 의원이 충분한 내용 파악 없이 국감에 참여해 직원들의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기획재정부 국감에서는 차관을 지낸 두 의원에게 시선이 집중됐다. 새누리당의 김광림 류성걸 의원이 주인공이다. 김광림 의원은 2003년 재정경제부 차관을, 류성걸 의원은 2010년에 기재부 제2차관을 지냈다. 기재부의 한 과장급 공무원은 “한 의원은 정책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대안까지 제시해줘 직원들 사이에서 평가가 좋았다”며 “반면 다른 의원은 같은 차관 출신인데도 이전 직장 직원을 상대로 하는 국감을 호통과 고함으로 모두 채워 원성을 샀다”고 말했다. 1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재부 국정감사 현장. 세종청사에서의 첫 국감이 열리자마자 증인 채택 문제를 두고 여야 의원들의 고성이 오갔다. “총수 일가를 국감 증인으로 채택하자는 데 반대한 것은 재벌과의 유착을 보여준 것 아닙니까?”(김현미 민주당 의원) “동료 의원한테 그렇게 모욕적인 발언을 할 수 있습니까? 사과하십시오.”(이한성 새누리당 의원)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국감 선서를 한 뒤 자리에 앉자마자 시작된 여야 간 설전은 이후 40여 분 이어졌다. 국감이 정치적 논쟁의 장으로 변질될 것이라는 점은 이달 초 화상회의 시스템을 이용한 ‘원격국감’이 무산될 때부터 예견됐다. 당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세종시까지 이동하는 시간과 경비, 현장 공무원이 의전에 과도하게 신경 써야 하는 문제 등을 고려해 시범적으로 기재부 국감을 화상회의로 진행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협의 과정에서 일부 의원이 강하게 반대했다. 여러 논리를 댔지만 현장에서 고함지르고 호통을 치고 해야 ‘국감 하는 맛’이 난다는 뜻도 깔려 있었다는 관측이다. 기재부 공무원들은 의원 간 고성 경쟁에도 무덤덤해했다. 고개를 숙인 채 잠시 눈을 붙이는 간부급 공무원들도 눈에 띄었다. 현 부총리도 지루한지 앞에 놓인 탁자만 손가락으로 연방 두들겼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의원들도 질문을 한 뒤 답변을 충실하게 들어야 오해했던 부분도 풀릴 텐데 TV 생중계 화면에 누가 더 오래 나오나 경쟁하듯 좀처럼 답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피감기관을 비합리적으로 윽박지르는 행태는 다른 부처나 공기업 국감에서도 쉽게 볼 수 있었다. 17일 열린 한국수력원자력 국감 현장에서는 지난달 취임한 조석 사장을 두고 한 의원이 조 사장이 취임하기 전 일어났던 한수원의 비리를 지적하며 “책임지라” “사표 낼 각오가 돼 있느냐”고 추궁했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야당의 한 의원은 보도자료와 국감장에서 종합편성채널 가운데 채널A의 경우 9월과 10월 첫 주의 편성표를 분석한 결과 제작건수 13건 중 시사·보도 프로그램이 11건에 달해 전체의 84%에 달한다고 질의했다. 이에 대해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은 “보도 프로그램 비중은 프로그램 꼭지 수로 계산하는 게 아니라 전체 방송 시간으로 계산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이 의원은 프로그램 편성 비중의 계산법을 착각해 잘못된 수치를 인용한 것이었지만 정정하지 않았고 몇몇 언론은 잘못된 자료를 그대로 인용해 기사에 싣기도 했다.들춰내기 vs 덮기 14일 미래창조과학부는 조직 출범 후 첫 국감을 맞았다.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 의원들이 미래부에 요구한 자료는 무려 6500건. 자료 1건당 A4 용지 한 장씩만 치더라도 300쪽(A4 용지 1장당 소설 2쪽 가정)짜리 소설 40여 권에 해당하는 방대한 양이다. 이를 준비한 미래부의 자료담당 직원들은 10월 들어 하루도 쉬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래부의 한 관계자는 “대부분은 정말 필요할 것 같지 않은 자료들”이라며 “국감 자료 만드느라 기존 업무는 거의 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특히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이동통신사들의 경영전략이 고스란히 담긴 기업 내부 자료를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는 난감할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밤을 새워 가며 준비한 자료들이 90% 넘게 국감장에서 쓰이지도 않고 사장된다는 점이다. 새누리당 초선 의원실 보좌관 J 씨는 “솔직히 국감은 의원과 보좌진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무대다. 더 기억에 남는 질의, 새로운 자료를 받기 위해 올인(다걸기)하는 거다”라고 말했다. 무리한 자료 요구를 할 수밖에 없는 까닭에 대한 해명이었다. 방대한 자료에 질린 일부 보좌관은 예산정책처 등에 아예 질의자료를 부탁해 받은 그대로 질의서를 만들기도 하고, 어떤 보좌관은 감사원 감사 결과를 뒤져서 이미 지적된 사안을 그대로 질의로 만들어 피감기관을 추궁하는 데 쓰기도 한다. 물론 자료의 광산을 헤집고 파헤쳐 귀중한 원석을 찾아내는 의원과 보좌진도 있다. 새누리당 재선 의원실 보좌관 K 씨는 “보통 10건의 제보가 들어오면 한두 건이 근거가 있는 정보”라며 “그럴듯한 제보라도 정부 부처가 끝까지 숨기고 자료를 제공하지 않으면 확인할 수 없는 만큼 하나의 제보를 국감장의 질의로 만들어내기까지는 몇 개월이 걸린다”고 말했다. ‘확실한 제보’는 간간이 찾아오는 행운일 뿐이기 때문에 의원과 보좌진은 국감을 준비하며 수천∼수만 장의 자료와 문서, 기사 등에 파묻혀 지낸다. 민주당 보좌관 L 씨는 “해당 부처의 감사원 감사 결과부터 지난 국감 기사, 1년에 10만 건이 넘게 생산되는 정부 부처의 문서수발 대장, 정부 부처에서 보내오는 기본 국감자료 등을 검토하려면 적어도 1, 2주간은 새벽이 돼야 퇴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료의 압박에 눌린 공무원 가운데 부실한 답변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있다. 새누리당 이한구 의원실은 국감이 시작되기 전인 이달 초 기재부로부터 받은 답변 자료에서 희한한 내용을 발견했다. 이 의원실의 질의는 ‘기업 규제가 증가하는데 어떻게 일자리 창출이 되는지?’였다. 그에 대해 기재부 모 과장은 ‘기업 규제가 증가하면 기업들의 일자리 창출이 어려워진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달랑 한 줄짜리 답변을 붙였다. 이 의원실의 보좌관은 “기재부 과장이면 엘리트인데 전혀 그런 사람답지 않은 답변이지요. ‘이 사람이 많이 귀찮았나?’ ‘우리와 친한 척하려는 건가?’ 아무튼 황당했어요.”부실 준비 vs 부실 국감 정권 첫해의 국감은 여당 의원들에게 곤혹스럽다. 삼권분립이라는 헌법 원칙에 입각해 하는 국회의 정부 감사지만 청와대의 눈치도 보여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준비를 소홀히 하는 일도 적지 않다. 국회 정무위 소속 새누리당 의원 보좌관 M 씨는 금융사건과 관련해 ‘한 건’을 할 수 있는 자료를 찾아냈지만 “그냥 넘어가자”는 의원의 말에 자료는 책상 서랍 깊은 쪽에 처박아 놓았다.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의 같은 당 의원 N 씨는 국감에 앞서 “피감기관과 정부 쪽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드는 상황을 만들지 말고 정책 대안 위주의 자료를 만들라”고 지침을 내렸다. 같은 당 영남지역 O 의원도 보좌진에게 너무 공격적인 자료를 찾지 말라고 당부했다. 행정고시 출신인 이 의원은 자신의 고시 선후배가 여전히 정부 고위 관계자이기 때문에 이들과 껄끄러운 사이가 될까 봐 우려한 것이다. 새누리당 고위 당직자인 P 의원은 “어떻게 여당의 핵심 당직자가 정부를 세게 비판할 수 있겠느냐”며 스스로 행정부 감사의 꼬리를 내려버리기도 했다. 보건복지위 소속 새누리당 Q 의원은 국민연금과 관련된 정부 부처에 야당 의원들뿐만 아니라 여당 의원들이 요구한 자료 일체를 자신에게 보고하라는 뜬금없는 지시를 내려 빈축을 사기도 했다. 국민연금과 연계한 정부의 기초연금안이 공약 파기 논란에 휩싸이자 정부를 옹호하기 위한 답변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것이 공무원들의 생각이다. 이 소식이 국회에 퍼지자 복지위 소속 같은 당 의원들조차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해마다 반복되는 질의도 부실 준비가 낳은 문제다. 국정감사NGO모니터단은 23일까지 모든 상임위의 국정감사를 모니터한 결과 중간성적으로 C학점을 매겼다고 밝혔다. 전국 27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하여 국감을 모니터하는 국정감사NGO모니터단은 올해 국정감사가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등에 매몰돼 민생, 일자리, 소상공인 정책, 사법 및 검찰 개혁 등의 문제가 제대로 거론되지 않았다고 총평했다. 모니터단은 올해 국감의 특징으로, 한낮에는 파행을 빚으며 허송세월을 하다가 늦게 국감이 시작되어 심야까지 진행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지적했다. 모니터단의 집계 결과 올해 심야 국감은 14차례 있었다. 교육부 한 간부는 “국감이 늦게 끝나니 서로 많이 지친다. 요즘은 신사적으로 많이 지키는데 특히 피감기관 앞에서 자기들끼리 별거 아닌 거 가지고 장시간 싸우는 것은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모니터단은 해마다 반복되는 중복질의를 막으려면 지난해 시정처리 요구 사안에 대한 철저한 이행 여부 점검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국감은 그야말로 정부의 국정운영에 대한 한 해 성적표를 매기는 행위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는 기본이다. 국정 전반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정부의 잘잘못을 가려 이듬해 더 나은 점수를 받도록 하는 게 국감의 본래 취지이지만 박근혜 정부의 첫해 국감도 예년과 별반 달라진 게 없이 종반으로 치닫고 있다.길진균·권오혁·김창덕·송충현 기자 leon@donga.com}
“총 뽑지 마! 움직이면 쏜다!… 야, 우리 같이 살자.” 1979년 10월 26일 오후 7시 40분경, 서울 종로구 궁정동 안가 경호관(원) 대기실. 박선호 중앙정보부 의전과장(45)이 권총을 뽑아 들고 일어나며 외쳤다. 박 과장이 겨눈 사람은 정인형 대통령경호실 경호처장(48)과 안재송 경호부처장(43)이었다. 박 과장과 정 처장은 해병간부후보생 16기생으로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고, 안 부처장은 역시 해병간부후보생 24기로 두 사람의 후배였다. 속사 권총의 대가로 꼽히던 안 부처장이 정 처장의 눈을 잠시 바라보곤 총을 꺼내려고 상체를 돌리는 순간 박 과장은 방아쇠를 당겼다. 탁자에 엎어지듯 쓰러지는 안 부처장을 보고 정 처장이 총을 꺼내 박 과장을 향해 일어나 다가가려는 순간 박 과장은 뒷걸음질을 치며 총을 발사했다. 비슷한 시각 안가의 주방에서는 경호관 김용섭(32)과 경호실 특수차량계장 김용태(47)가 중앙정보부 직원들의 총에 맞아 절명했다. 10·26 당일 대통령경호실은 차지철 경호실장과 이 4인의 경호관 등 모두 5명을 현장에서 잃었다. 이듬해 5월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을 비롯해 김 부장의 명령을 받은 박 과장 및 중정 직원 4인은 모두 형장에서 숨을 거뒀다. 이들의 이름은 훗날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재조명되기도 했고 박 과장은 ‘참군인’이라는 칭호를 얻기도 했다. 그러나 안가 바닥에서 스러져간 이 4인의 경호관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호전애혈(好戰愛血) 1954년 임관한 정 처장은 16기 졸업앨범에 좌우명으로 ‘호전애혈(好戰愛血)’이라고 썼다. 글자 그대로 풀면 ‘전투를 좋아하고 피를 사랑한다’는 뜻이니, 싸우는 데 물러서지 않으며 피 흘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로 새기면 될 듯하다. 그의 이 말은 7년 뒤 현실이 됐다. 1961년 5월 16일 새벽 정 처장은 해병 제1여단 1대대 5중대장으로 서울시경을 점령하라는 명령을 받고 서울로 향했다. 군사정변의 맨 선두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듬해인 1962년 5월 16일 동아일보가 주최한 ‘혁명부대 중견지휘관 좌담회’에 참석해 1년 전 그날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이제 전투가 벌어지는구나. 어떤 일이 있어도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 이미 죽음을 각오한 이상 아무것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5·16 당일 오전 4시 15분 그는 자신의 부대가 맡은 시경 점령을 완수했다. 그리고 그는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경호관으로 발탁됐다. 1971년 대통령경호실 경호처장으로 승진한 그에 대한 박 전 대통령의 총애는 대단했다. 박 전 대통령은 경호실 인력을 많이 교체했지만 유독 정 처장만은 8년간 그 자리를 지키도록 했다. 그와 함께 경호실에 있던 사람들은 그를 “우직하고 충성심이 강하며, 명령에 복종하고 책임감이 투철하며 대단히 강인한 심신을 갖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한번은 훈련 중에 갈비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당했다. 그때 마침 박 전 대통령이 외부 행사가 있어 경호를 해야 했다. 주변에서는 말렸지만 그는 압박붕대로 가슴을 동여매고 경호 업무를 끝마쳤다. 부하 직원들은 혀를 내두르면서도 그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박선호 과장은 군 검찰에서 “안재송이가 총을 뽑지 않았더라면 정인형도 뽑지 않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본인도 그들을 죽이지 않았을 것입니다”라고 진술했다. 그러나 대통령을 보호하는 일을 업으로 삼은 정 처장으로서는 아무리 친한 친구였을지라도 동기생 박 과장의 말을 듣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해병간부후보생 16기생들은 정 처장에 대해 말을 아꼈다. 한 16기생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는 “동기끼리 그랬는데(서로 총을 겨누고 죽였는데) 이야기하기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고 노기 띤 음성으로 말했다. 다른 16기생은 “(정인형도, 박선호도) 상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한 군인 중의 군인이다”라며 “누구도 반역자가 될 수 없다”고 했다.0.7초의 사수(射手) “임자, 전국에서 총을 제일 잘 쏘는 사람이 누구야?” 1965년 1월 초 박 전 대통령이 박종규 경호실장에게 물었다. ‘피스톨 박’이라 불리던 박 실장이 답했다. “해병장교 안재송이 제일입니다.” 안 부처장은 그 전해인 1964년 10월 일본 도쿄 올림픽 사격 자유권총 부문에서 9위를 차지했다. 한국 국가대표 사격선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세계대회에서 10위 안에 드는 쾌거였다. 박 실장이 안 부처장을 추천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그를 청와대로 불러 독일제 ‘골더’ 45구경 사격용 권총을 하사했다. 그 권총은 그 전해 9월 독일(서독)을 방문했던 박 전 대통령이 당시 하인리히 뤼프케 대통령에게서 선물 받은 것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대통령경호실 사격 교관으로 발탁됐다. 물론 국가대표도 겸하는 직이었다. 1960년대 안 부처장과 함께 사격 국가대표를 했던 고민준 씨(80)는 안 부처장을 “훌륭한 분”으로 기억한다. 당시 아시아경기 사격 종목 중에는 38구경 실탄사격 종목이 있었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도통 실탄을 구할 수가 없었다. 발을 동동 구르고 있으면 안 부처장이 미8군에서 조금씩 얻어다 모은 실탄 100발을 가져다줬다. 그중에서 30발로 연습을 하고 나머지 70발은 대회에서 썼다. 1988, 1992년 올림픽 사격 국가대표 감독을 지낸 배병기 씨(77)도 안 부처장과 비슷한 시기에 국가대표를 지냈다. 배 전 감독은 “안 부처장이 미남에 영어도 잘하고 매너도 깔끔해서 교관을 하다가 수행경호관으로 발탁됐다”며 “그가 숨졌을 때 경호실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침통했다”고 기억했다. 안 부처장은 가슴에 찬 총을 꺼내 25m 앞의 박카스 병을 맞히는 데 0.7초밖에 걸리지 않았던 특등사수였다. 김운용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은 안 부처장의 죽음을 두고 “그렇게 빠른 명사수가 총도 뽑지 못하고 숨졌다”며 애석해했다고 한다.국립묘지 안장도 못한 4인 김용섭 김용태 경호관의 유족은 국가보훈처를 통해 생존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김용섭 경호관의 유족은 본보의 취재를 거절했고, 김용태 경호관의 유족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 4인의 경호관은 숨진 직후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못했다. 대통령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다. 정 처장의 유족은 당연히 국립묘지에 묻히는 줄 알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발인 이틀 전에야 불가함을 통보받고는 황망히 충남 연기군 선산에 묘를 마련해야 했다. 너무 급하다 보니 석물을 만들 여유조차 없었다. 이후 전두환 정권 때까지 이들의 명예회복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없었다. 5공화국 정부 실세들은 유신정권과의 차별화에 역점을 뒀기에 박 전 대통령을 경호했던 이들의 주변 또한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식이 없었던 안 부처장은 화장돼 납골당에 모셔졌고, 두 김 경호관은 각각 공원묘지에 묻힌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은 1988년 노태우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야 겨우 양지로 나올 수 있었다. 마치 박근혜 대통령이 5공 정부가 끝난 뒤에야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바깥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과 비슷하다. 당시 보훈처는 소관위원회를 열어 이 4인의 예우를 비로소 순직으로 처리했다. 그때부터 이들의 유족은 순직군경배우자연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10·26 34주년이 되는 지금도 이들의 연고나 유족의 행방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 시절 경호실에 근무했던 사람들의 모임인 ‘청호회’에서도 이들은 잊혀진 사람들이었다. 현 대통령경호실에서는 10·26 이후 이들의 묘소에 매년 꽃을 보낸다고 했다. 그것 말고는 별다른 조처는 하지 않고 있었다. 취재 중에 접한 정 처장의 해병 동기생은 이렇게 말했다. “그 당시 누가 잘못했겠는가.” 잊혀진 4인의 경호관은 유신이라는 시대가 낳은 우리의 이웃에 다름 아닐 뿐이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민주당 문재인 의원이 23일 지난 대선의 불공정성을 지적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론을 직접 거론한 것은 야권 일각에서 거론돼온 대선 불복 가능성을 증폭시켰다는 점에서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정세균 전 대표, 설훈 의원 등 중진 인사들이 지난 대선을 “관권 부정선거”라며 ‘대선 결과 불복성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당의 대선후보로서 박 대통령을 상대했던 문 의원이 ‘대선 불공정’을 주장함에 따라 여야는 물러설 수 없는 전면전을 벌일 가능성이 커졌다. 문 의원은 e메일 성명에서 “투표에 국가기관이 개입한 것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 “군사독재 시절 이후 찾아보기 어려웠던 군의 선거 개입은 경악스럽다” 등 시종 격렬하게 박 대통령의 책임을 추궁했다. 성명을 낸 직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 참석하면서도 기자들에게 “지난 대선이 불공정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며 거듭 불공정성을 강조했다. 그는 “왜 자꾸 대선 불복을 말하면서 국민과 야당의 입을 막으려는지 모르겠다. 김한길 대표도 ‘선거 다시 하자는 것 아니다’라고 분명히 밝히지 않았나”라며 새누리당의 ‘대선 불복’ 주장을 정면 비판하기도 했다. 문 의원이 대선 불공정성과 박 대통령 책임론을 동시에 거론한 것은 최근 잇따르고 있는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 의혹에 이어 검찰 수사팀에 외압이 가해졌다는 축소·은폐 논란이 더해진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계속 침묵하고 새누리당은 대선 불복 논란으로 몰고 가려는 듯한 상황에서 “더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은 박 대통령뿐”이라는 판단하에 불복과는 선을 긋고 불공정에 방점을 찍어 박 대통령을 직접 압박하겠다는 전략으로 분석된다. 문 의원 측 관계자는 “국정원 댓글 사건은 이전 정부에서 한 걸로 칠 수 있지만 은폐 축소는 현 정부의 일”이라며 “정치 지도자라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서해 북방한계선·NLL 회의록)의 국가기록원 미(未)이관에 따른 ‘사초(史草) 폐기’ 논란으로 정치적 타격을 입었던 문 의원이 돌파구를 찾으려 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NLL 회의록 정국에서 문 의원의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했던 김영환 의원은 이날 “문 의원의 언급은 시의적절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지난 대선의 직접 당사자가 뛰어들면서 여당의 ‘대선 불복’ 프레임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됐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호남 지역의 한 중진 의원은 “문 의원은 더이상 대선후보가 아니다. 당의 일원이라면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거나 당론에 의견을 보태는 형식을 취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청와대는 불쾌해했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대선 불복으로 비쳐 오히려 민주당에 부담만 줄 것이다. 패자가 선거 불공정성을 얘기하는 몰염치한 경우가 어디 있느냐”고 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문 의원의 발언이 정치권에 던질 파장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사태 추이를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문 의원이 전면에 나서면서 공을 넘겨받은 박 대통령이 침묵을 깨고 입장을 내놓을지도 주목된다. 민동용·황승택 기자 mindy@donga.com}
교육부가 고교 한국사 교과서 8종 모두에 대해 수정·보완 권고를 내리면서 교과서를 둘러싼 공방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교학사를 제외한 7종 교과서 집필진과 민주당이 교육부의 수정 권고 조치를 비판하면서 소송을 검토하고 있어 후폭풍이 거셀 조짐을 보인다. 논란의 단초가 된 교학사 측은 교육부의 수정·보완 권고안에 따라 교과서를 고쳐 11월 1일까지 교육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교학사 관계자는 “즉각 이승구 교학사 부회장을 팀장으로 하는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수정 작업에 착수했다. 출판사와 저자 모두 교육부의 수정 권고를 존중하고 있어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사정이 복잡한 것은 나머지 7종 교과서다. 7종 교과서 집필진은 공동으로 행정소송을 포함해 교육부의 조치에 맞서는 대응책을 논의하고 있다. 이들은 내용상 오류나 오탈자 등에 대해서는 자체적으로 수정하되 교육부의 수정 권고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데 의견을 함께 하고 있다. 교육부가 11월 1일까지 수정 대조표를 제출하라고 한 조치도 따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23일 또는 24일에 구체적인 대응방안을 내놓을 방침이다. 7종 교과서 집필자 모임인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자 협의회’의 한 회원은 “우리는 9월에 이미 교육부의 수정 권고안이 나오면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런데도 교육부가 무리하게 권고를 강행한 것은 문제를 악화시키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이 같은 집필진의 대응과는 별도로 해당 출판사들은 교육부의 수정 권고를 무시할 수 없는 처지다. 이런 구도 때문에 2008년 금성출판사의 고교 근현대사 교과서처럼 집필진과 출판사, 교육부 간 소송전으로 사태가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시 금성출판사가 교육과학기술부의 수정 권고에 따라 교과서를 수정하자 집필진은 출판사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에 대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 소송은 대법원에서 이미 원고(금성 집필진) 패소 판결이 내려졌다. 이에 따라 집필진이 교육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낼 가능성이 더 높다. 7종 교과서 집필진들은 교육부가 당초 사실관계만 수정하겠다고 한 것과 달리 사관 부분까지 건드렸다며 절차상 하자가 있다는 점을 문제 삼을 것으로 보인다. 2008년 동일한 소송에서 법원은 1심에서 교육부의 손을 들어줬지만 2심에서는 교육부의 조치에 절차상 하자가 있다며 파기환송을 한 상황이다. 여기에 여야의 정치 공세까지 더해지면 최악의 경우 내년 1학기에 일선 학교에 교과서가 순조롭게 배포되지 못할 가능성까지 우려된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교육부가 교학사 교과서 이외의 교과서까지 수정 지시를 내린 것을 비판하며 서남수 교육부 장관의 자진 사퇴를 촉구했다. 이들은 “그동안 검정에 합격해 사용하던 7종 교과서까지 물귀신 작전으로 수정 지시를 내리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수정 명령하겠다고 협박까지 하는 교육부 장관은 이 모든 혼란에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교학사 교과서는 무늬만 교과서지 교과서로서 가치가 없어 검정 합격을 취소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덧붙였다. 이날 열린 서울시교육청 국정감사에서도 야당 위원들은 긴급현안질의를 앞세워 교과서 문제를 제기했고 여당 위원들은 국감 일정과 무관한 사안이라며 설전을 벌였다.김희균·민동용 기자 for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