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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치러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선거에서 위철환 경기중앙변호사회 회장(55)이 당선됐다. 판검사 출신이 아니라 사법연수원 졸업과 동시에 개업한, 그것도 지방변호사회 출신 변호사가 회장이 된 것은 변협 창립 이래 처음이다. 위 신임 회장은 중동고 야간부를 거쳐 서울교대를 졸업한 뒤 성균관대 법대 야간부를 나온 입지전적 인물이다. 위 회장이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직선제 덕분이다. 지금까지 변협 회장 선거는 간선제로 실시돼 대의원 수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서울변호사회가 추천한 후보가 당선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번 선거 결과는 사법연수원이나 로스쿨 졸업 직후 개업하는 변호사가 2000년대 후반 이후 대량으로 쏟아져 나와 판검사 출신 변호사들을 누르고 변호사 업계의 주류를 형성했음을 보여준다. ‘마이너’ 변협 회장의 등장은 변협의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위 회장은 “그동안 서울대 출신 전관 변호사들이 주로 회장을 맡아 변호사들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보통 변호사의 시대를 열겠다”고 밝혔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변협은 인권과 법치주의를 지키는 역할을 했으나 민주화 이후에는 시대에 맞는 의제를 설정하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 있다. 위 회장의 등장으로 계층적, 인종적, 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법률서비스 차별도 완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올해 사법연수원과 로스쿨 졸업자가 나오면 전체 변호사 수는 1만5000명을 넘어서고 2015년엔 2만 명도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1970년대만 해도 한 해에 몇십 명이던 사시 합격자가 1980년대 중반부터 300명을 넘어섰고 2002년부터 1000명 시대로 접어들었다. 지난해부터는 로스쿨 졸업생도 1500명씩 쏟아져 나오고 있다. 변호사가 행정부 주무관에 지원하고 금융회사의 일반 사원으로 취업하는 시대다. 젊은 변호사들은 사무실 유지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서인지 위 신임 회장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변호사 법률담당관제도를 도입하고, 기업의 사내 변호사를 확대하는 한편 법무사 세무사 변리사 등 유사직역의 폐지를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다. 그러나 변협은 국민 세금으로 늘리거나 기업에 부담을 주는 일자리에만 눈독을 들여서는 안 된다. 법조일원화 계획에 따르면 앞으로 판검사는 변호사 경력자 중에서 임명된다. 변협이 변호사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이익단체로만 기능한다면 역풍(逆風)이 커질 수 있다. 변호사들은 사무실의 문턱을 낮추고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는 속에서 살길을 찾아야 한다.}
한때 ‘원초적 본능’처럼 정신분석을 소재로 한 영화가 인기가 있었다. 오스트리아 심리학자 지크문트 프로이트가 개발한 정신분석은 일반 정신과 의사들이 사용하는 치료 방법은 아니다. 정신분석은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최면을 걸지도 않는다. 그 대신 대화로 치료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런 대화에서 환자들이 보이는 최초의 반응은 ‘저항(resistance)’이다. 정신적 질환은 환자의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에서 비롯되고 환자는 그것을 드러내는 것을 꺼린다. 꺼리지 않았다면 병이 생길 이유도 없다.신경증 환자와 닮은 민주당 야권에서 대선 패배 원인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다. 민주통합당은 진정한 원인을 직시하려 하지 않고 자꾸 다른 이유를 둘러댄다. 그 모습이 꼭 분석에 저항하는 신경증 환자 같다. 민주당이 진 것은 단일화에만 매달렸기 때문도 아니고, 공약이 차별성을 보이지 못해서도 아니고, 이정희 때문도 아니다. 단일화도 완벽하지 않았고 공약도 여권에 선점당한 측면이 없지 않고 이정희도 문제였다. 그러나 정치를 ‘가능한 것의 기술(技術)’이라고 할 때 야권은 이번 대선에서 할 수 있는 최대치를 했다. 그럼에도 패배한 것은 친노 중심의 야권을 국민이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륜 스님이 얼마 전 ‘안철수로 단일화했더라면’이란 가정을 던졌을 때 민주당이 보인 신경질적인 반응을 떠올려 보자. 분석에 저항하는 환자는 분석가가 질환의 진짜 원인에 접근할수록 짜증을 내는 법이다. 법륜 스님의 가정은 진부하다 못해 부질없다. 그렇다고 억지는 아니다. 전문가는 안 하는지 모르겠지만 일반인은 누구나 해 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발상이다. 이상한 것은 오히려 그런 것에 비정상적으로 히스테리컬한 반응을 보이는 쪽이다. 바로 그런 데서 질환의 증후를 읽어내는 것이 정신분석의 한 방법이다. 안철수 현상이란 1970, 80년대 대학가의 용어로 말하자면 운동권식 정치 대신에 학생대중적 정치를 원한 것이다. 당시의 학생대중은 야권 성향이 강하지만 그렇다고 운동권에 늘 동조한 것은 아니었다. 대중이란 말 그대로 잡다한 것이다. 그중에는 머리로만 운동을 하다가 평생 부채의식을 갖고 사는 사람도 있지만 극단으로 흐르는 운동권에 신념을 갖고 동조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중간에서 고뇌하던 회색인(灰色人)이란 유형도 있었고 졸업한 뒤 뒤늦게 정치와 사회에 눈을 뜬 사람도 있다. 그들도 서울의 봄, 6·29 같은 항쟁에서는 대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안철수 자신이 학생대중이었고 그런 사람으로서는 처음 야권의 열광을 끌어냈다. 안철수의 정치 참여를 친노 진영이 반기는 척하면서도 ‘네까짓 게 무슨’이라는 내심을 끝내 숨기지 못했다. 결국 문재인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지만 ‘안철수는 없다’고 노골적으로 무시하는가 하면, 과거 모든 학생을 운동권과 비운동권으로 나눠 비운동권을 입신양명 도서관파로 비하하고, 단일화 국면에서는 형님-아우라는 모멸적인 관계 설정으로 애송이 취급하며 주저앉히기를 시도했다. 이 모든 것이 실은 안철수의 돌연한 부상이 친노 운동권 정치인들에게 야권의 주도권을 잃을 수도 있다는 트라우마(trauma·상처가 된 경험)로 작용했음을 보여준다.친노의 트라우마 ‘안철수 현상’ 안철수는 깡통인가. 깡통은 심한 표현이고 처음에는 신선했으나 나중에는 답답해졌다는 정도로 말해 두면 크게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안철수란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안철수로 표현된 야권 재구성에 대한 요구를 민주당이 직시하지 않는 한 대선 패배의 진정한 원인 분석에 도달할 수 없다. 원인은 억압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더 깊이 잠복할 뿐이다. 분석을 당하는 측에게 요구되는 것은 솔직함이다. 저항이 크면 분석은 힘들어지고 치료는 실패로 돌아갈 수 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기독교와 이슬람 문화권에서 뱀은 사악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에덴 동산에서 이브가 금단(禁斷)의 열매인 선악과를 따 먹도록 유혹한 것이 뱀이다. 그때 저주를 받아서 뱀은 기어다니게 됐다고 성경에 나온다. 그리스 신화에서 메두사의 머리카락은 뱀이다. 메두사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몰래 정을 통하다 아테네 여신에게 들켜 저주를 받아 흉측한 모습으로 변했다. 유교 문화권에서도 뱀은 환영받지 않았다. 용두사미(龍頭蛇尾)란 말에서 보듯 용을 숭상하고 뱀을 천시했다. 우리나라의 전통 민화를 보더라도 뱀을 그린 그림은 거의 없다. 까치를 잡아먹으려고 둥지에 접근하는 못된 구렁이 얘기는 있다. 그러나 그걸 그림으로 그려서 걸어두고 싶었던 사람은 별로 없었나 보다. ▷뱀의 이미지는 북방문화권에서는 대체로 좋지 않다. 그러나 남방문화권에서는 그렇지 않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유적이나 멕시코의 마야 유적지를 가보면 거대한 돌난간에 뱀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동아시아인이라면 그게 용이 아니라 뱀이라는데 우선 놀랄 것이다. 이곳에서 뱀은 신(神)으로까지 추앙을 받는다.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만 하더라도 석가모니의 광배(光背)는 본래 코브라의 머리 형상에 기원을 두고 있다. 코브라가 똬리를 튼 위에 석가모니가 앉아 있고 그 뒤에서 석가모니가 비를 맞지 않도록 코브라가 머리를 들고 지키고 있는 조각이 남방불교에는 많다. ▷불교가 북방, 즉 중국 한국 일본으로 전해지면서 조각도 변했다. 부처가 앉은 곳 아래 뱀이 똬리를 튼 곳은 연꽃이 받치는 형상으로 변했고 광배에도 뱀의 머리 형상 대신 연꽃이나 당초 무늬를 넣었다. 중국에는 뱀은 없어도 용은 많다. 용은 그 원형이 뱀이다. 사실 인도문화권의 코브라의 변형이라는 설이 있다. 북방문화권 사람들이 뱀을 싫어하니까 뱀을 몸통으로 하되 상상으로 치장한 용으로 대체했다는 것이다. 더운 남쪽 지방에는 뱀이 많다. 뱀을 거부할 수 없다면 그것과 친해지는 게 살아가는 방법이다. 북방은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북방 문화에 남방적인 요소가 들어가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십이지(十二支)에 뱀이 열두 동물 중 하나로 들어있다. 십이지는 중국 상나라(은나라) 말기 갑골문자에 처음 등장한다. 유교문화가 정착되기 전의 일이다. 성경에서 유대인을 이집트에서 끌어낸 모세의 지팡이는 던지면 뱀으로 변하기도 했다. 그리스 신화에서 헤르메스의 지팡이에 두 마리의 뱀이 감싸고 있다. 우리나라 고구려 벽화 사신도의 현무는 뱀이 거북과 뒤엉켜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뱀은 북방문화권의 억압 속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올해는 뱀의 해다. 글로벌 문화 시대에 뱀은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좋은 상징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한국에 콩글리시가 있듯이 프랑스에는 프렝글리시가, 독일에는 뎅글리시가 있다. 독일에서는 휴대전화를 독일식 영어로 핸디(Handy)라고 한다. 영어권 어디에서도 쓰지 않는 말이다. 휴대전화는 영국에서는 모바일폰이라고 하고 미국에서는 셀룰러폰이라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전철을 트람웨(Tramway)라고 하는데 정작 영어권에서는 그냥 트램이라고 하지 트램웨이라 하지 않는다. ▷영어에도 없는 영어식 표현을 만들어내는 데는 일본인이 선수다. 사실 콩글리시의 상당수는 일본에서 온 것이다. 봉급생활자를 뜻하는 샐러리맨은 1930년대부터 쓰인 일본식 영어(和製英語)다. 영어로 굳이 표현한다면 ‘salaried man’이라고 해야 한다. 영어권에서는 이런 표현도 잘 안 쓰고 화이트칼라 워커(white-collar worker)라고 한다. 스페시피케이션(specification)을 스펙으로 줄여 부르는 것도 일본식이다. 다만 이 말을 제품 명세서가 아니라 취업에 필요한 자격조건이란 뜻으로 사용하는 것은 한국식 변형이다. ▷영국 BBC가 최근 콩글리시를 영어의 진화라는 관점에서 소개하면서 스킨십(skinship)을 예로 들었다. 스킨십도 실은 일본에서 먼저 사용된 말이다. 1953년 세계보건기구(WHO) 세미나에서 한 미국 학자가 엄마와 아이 사이의 피부접촉을 통한 소통이란 의미로 사용한 것이 일본에 전해져 사용됐다는 게 일본대백과사전의 설명이다. 영어권에서는 터치십(touchship)이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영어 위키피디아는 스킨십을 일본식 영어로 분류한다. 한국에서는 이 말이 엄마와 아이보다는 연인 사이의 남녀 관계에 더 자주 쓰인다. ▷BBC는 영어의 진화가 인터넷에서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영문 웹페이지에 비영어권 누리꾼이 글을 대거 올리면서 그들의 언어권에서 사용하는 영어 방언들이 급속히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콩글리시와 인도권의 힝글리시를 예로 들었다. 힝글리시에서는 처남 매부 사이 등 결혼으로 맺어진 남자형제를 ‘brother-in-law’ 대신 ‘co-brother’라고 표현한다. 이 같은 현상이 영어를 풍성하게 만든다며 타락이 아니라 진화로 봐준 것은 환영할 만하다. 다만 콩글리시는 일본식 영어를 따라 쓰는 일이 많으니 뒷맛이 개운치 않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18대 대선에서 2030세대는 3명 중 2명이 문재인 후보를, 3명 중 1명이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다. 반면 50대 이상은 3명 중 2명이 박 후보를, 3명 중 1명이 문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젊어서 사회주의자가 아니면 심장이 없고 나이 들어서도 사회주의자이면 머리가 없다는 오래된 말이 있을 만큼 이상할 것도 없는 현상이다. 그런데도 모든 것을 세대 간 이해관계의 차이로 몰아가 세대 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2012년의 50대는 2002년에는 40대였다. 당시 이회창 후보를 47.9%, 노무현 후보를 48.1% 지지해 거의 차이가 없었다. 그런 세대가 이번에 박근혜 후보에게 62.5%, 문재인 후보에게 37.4%의 표를 던졌다. 사실 50대와 20대의 이해관계가 거꾸로 가는 것은 아니다. 50대의 자녀는 주로 20대로 자녀들의 대학 등록금 걱정, 졸업 후 취직 걱정을 함께 할 수밖에 없다. 복지의 필요성을 젊은이들 못지않게 절감하는 것은 60대 이상 노년층이다. 앞날이 창창한 것도 아닌데 이들 중 다수가 이번 대선에서 더 많고 더 빠른 복지 대신에 점진적인 복지를 택했다. 눈앞의 사사로운 이익보다 나라의 곳간과 장래를 걱정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것을 높이 평가하지는 못할망정 일부 젊은이들이 노년층을 비판하거나 폄훼하는 글을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쏟아내고 있어 안타깝다. 노인들 때문에 젊은이들을 위한 공약이 다 날아갔으니 상응하는 노인 복지를 몽땅 폐지하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버스와 지하철에서 자리 양보하지 않기’ 등 되바라진 의견까지 나왔다. 젊은 세대의 성숙하고도 분별있는 대응이 아쉽다. 2030세대의 진보 후보 지지율은 10년 전에 비해 6%포인트 이상 올랐다. 그럼에도 이들 세대의 보수 후보 지지율은 2002년 34.5%, 2012년 33%로 큰 차이가 없다. 어느 세대나 보수가 있고 진보가 있다. 10년 전 50대 이상의 진보 지지층이 35%에 가까웠다. 이번에 50대 이상에서 보수 지지층이 늘어난 것은 나이가 들어 보수화한 탓이라기보다는 진보 진영이 이들 세대를 실망시켰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일부 경박한 지식인들이 젊은 세대의 분노를 부추기는 행태는 걱정스럽다. 이번 투표 결과를 놓고 “열심히 일해서 세금 내는 40대 이하 세대의 운명을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둔 50대 이상 세대가 결정하는 정치구조는 엄청난 갈등을 야기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사실과 맞지 않는 저질 선동에 불과하다.}
올해는 프랑스 사상가 장 자크 루소 탄생 300주년이다. 루소 하면 ‘사회계약론’으로 유명하다. 사회계약론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 하나를 꼽으라면 ‘일반의지(la volont´e g´en´erale)’다. 선거란 루소 식으로 말하자면 한 사회의 일반의지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일반의지는 쉬운 말로 ‘국민의 뜻’이다. 어제 끝난 대선에서 드러난 한국의 일반의지, 즉 우리나라 국민의 뜻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국민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박근혜 당선인은 이것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도 일반의지가 눈에 보이듯이 구체적으로 잡히지 않는다. 그것이 어려운 점이다. 승자독식에 대한 반감 루소가 말하는 일반의지는 당선인 혹은 당선인의 공약에 대한 지지와 일치하지 않는다. 영국 정치철학자 존 로크에게 다수의 지지는 곧 국민의 뜻이다. 이것이 다수의 지배를 뜻하는 것이고 영미식 민주주의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다수의 지배를 받아들이자면 승자독식(the winner takes all)의 문화에 대한 수긍이 있어야 한다. 우리 정치 제도도 기본적으로는 승자독식이다. 그러나 그 저류에는 독재 정권에서만이 아니라 민주화 이후에도 승자독식에 강한 반감이 그치지 않았다. 국회에서 툭하면 벌어지는 날치기 논란이 그 대표적인 증거다. 루소에게 있어서 정치는 국민 중 일부의 의지를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명실공히 국민의 의지를 실천하는 것이다. 국민 중 다수라 할지라도 루소에게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전체의지(la volont´e de tous)와 일반의지를 구별한다. 전체의지는 개인들의 의지의 단순한 총합이다. 예를 들어 복지 확대에 대해 찬반을 물었을 때 찬성 60%, 반대 40%라고 하면 서로 상쇄하고 남은 20%가 전체의지다. 결국 다수결인데 이는 일반의지가 아니다. 그렇다고 의견 차이를 없애기 위해 타협안에 타협안을 거듭해서 의도한 것과는 다른 엉뚱한 결과를 낳는 합의를 끌어내는 것도 전체의지에 불과하다. 합의의 극단적 형태로 북한이나 중국의 인민대표회의에서 보는 만장일치도 물론 루소의 일반의지와는 상관이 없다. 루소가 말하는 일반의지는 다수결도 합의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다양한 의지가 상호간 차이를 내포한 채 그대로 드러남으로써 성립한다. 복지 확대를 원하는 사람도 국가 재정을 걱정한다. 국가 재정을 걱정하는 사람도 복지 확대를 원한다. 사사로운 개인이 아니라 공동의 이익을 생각하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서로 다른 두 요소가 상충하고 있음을 느낀다. 상충하는 정도도 개인마다 차이가 크다. 정당 등의 결사체는 오히려 그 너머에 있는 개인들의 다양한 차이를 은폐한다. 일반의지는 이 모든 개인적 차이를 다 고려한 것이다. 그래서 일반의지는 단순한 통계 수치로 주어질 수 없고 직관적으로 발견할 수밖에 없다. 지지자가 아니라 국민을 보라 선거일의 당락 결정과 득표율은 일반의지를 드러내는 실마리일 뿐이다. 그 전체 모습은 박 당선인이 그려봐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기의 공약만이 아니라 아깝게 낙선한 후보의 공약도 꼼꼼히 읽어야 한다.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공약이 만들어진 과정을 찬찬히 복기해서 각각의 진정성을 검토해야 한다. 공약에 대한 국민들의 희망 강도도 따져봐야 한다. 모든 것은 결국 그의 통찰력으로 읽어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국회와 별도로 직접 투표로 대통령을 뽑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이고 우리 헌법은 그 대통령을 초당파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300명의 구성원으로 나뉜 국회에서는 의원 각자가 지지자의 의견을 따르면 전체로서는 일반의지를 형성하는 데 기여하지만 1명뿐인 대통령은 지지자가 아니라 국민을 봐야 일반의지를 실천할 수 있다. 국민을 통합하는 대통령은 바로 이런 대통령을 말하는 것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6000년 전 고대 이집트의 한 무덤에 이런 말이 적혀 있다고 한다. “요새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고 참을 줄 모른다.” 기원전 8세기경 고대 그리스의 헤시오드는 “나는 어릴 때 어른을 공경하라고 배웠는데 요새 젊은이들은 어른에 대한 존경심이 너무 없다”고 불평했다. 세대 갈등은 역사만큼이나 오래됐다. 버릇없는 젊은이들의 반대편에는 “왕년에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며 자기 경험만을 내세우고 성가시게 간섭하는 꼰대 어른들도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요새 동네 실내수영장을 다녀보면 아침 시간에 노인들이 많다. 고령화 사회라는 말이 실감나는 풍경이다. ‘걷기 레인’이라는 것도 생겼다. 수영을 위한 레인이 아니고 물속에서 걸어 다니기 위한 레인이다. 이 레인에서는 수영하는 젊은이가 걷고 있는 노인에게 수영에 방해가 된다고 항의할 수 없다. 노인들이 운동을 마치고는 샤워실 한쪽의 온탕에 몸을 담그고 담소를 나눈다. 요즘은 대선 얘기가 많다. 귀동냥해 보면 “안철수같이 경험 없는 것들에게 어떻게 나라를 맡기겠냐” “이정희의 코리아연방은 북한의 고려연방제나 다름없다” 등 보수적인 의견들이 많다. ▷선거가 점점 더 세대별 대결 양상을 띠고 있다. 최근 정동영 민주통합당 고문은 트위터에 “이번에 하는 청춘투표가 인생투표야. 인생이 통째로 걸렸어…. 꼰대들 ‘늙은 투표’에 인생 맡기지 말라”는 한겨레 신문의 대담 내용을 리트윗 했다. 젊은이들에게 투표를 독려한 것까지는 좋은데 ‘늙은’이란 말로 노인들을 모두 꼰대로 만들어 버렸다. 대한노인회가 민주당 당사를 항의 방문하는 등 비판이 잇따랐다. 정 고문의 노인 비하 발언이 2004년 총선 때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그때 크게 혼이 나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이다. ▷나의 어머니는 70대다. 많이 배우지는 못했어도 투표만큼은 안 하면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빠지지 않고 한다. 누구를 찍을 것이냐고 물어보면 절대 대답하는 법이 없다. 비밀투표의 원칙은 기자가 누구보다 더 잘 알 터인데 뭘 그런 걸 물어보느냐고 오히려 핀잔을 준다. 신문도, TV뉴스도 잘 보지 않지만 사람 보는 눈이 절대 허술하지 않다. 정 고문도 내년이면 환갑이다. 괜히 남의 어르신들 함부로 꼰대라고 부르지 말고 자신이나 꼰대가 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할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부릴 역(役)이란 한자는 예로부터 좋은 의미로 잘 쓰이지 않았다. 부역(賦役) 군역(軍役) 등 백성을 괴롭히는 말에 쓰였다. 맹자는 정치를 하는 대인(大人)과 농업 등에 종사하는 소인(小人)을 구별했다. 대인은 노심(勞心) 즉 마음을 쓰고, 소인은 노력(勞力) 즉 힘을 쓴다고 했다. 그러면서 노심자는 사람을 부리고(役人) 노력자는 사람에게 부림을 당한다(役於人)고 했다. 노역(勞役)은 굳이 ‘강제’라는 수식어를 달지 않아도 말 자체에 강제의 의미가 들어 있다. ▷근대식 교도소는 노역장(workhouse)에서 출발했다. 1555년 영국 런던 브라이드웰(Bridewell)에 노역장이 처음 설립됐다. 거지 부랑자 등을 모아 사회로부터 격리하면서 노역을 통해 근면성을 익히고 직업교육을 받게 해 노동시장에 진출시킨다는 취지였다. 브라이드웰은 워낙 유명해서 나중에 그 말 자체가 교도소를 의미하게 됐다. 징역(懲役)은 노역에 처한다는 말이다. 징역이나 금고형을 선고받으면 똑같이 교도소에 수감되지만 금고는 노역을 하지 않는다. 금고형은 드물고 징역형이 대부분이다. 교도소가 본래 노역을 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벌금형은 징역 금고 등 자유형과 구별되는 재산형이다. 그러나 6개월 이하의 단기로 가둬두는 것은 격리의 효과도 별로 없는 데다 죄질이 더 나쁜 사람들에게 오염될 우려가 있어 오늘날 벌금형이 많이 선고된다. 제1심 형사사건 중 서류만으로 심리해 재산형만 선고하는 약식명령 사건이 85%가 넘고 나머지 공판 사건 중에서도 25% 정도가 벌금형을 받는다. 그러나 벌금형은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에게 미치는 효과가 다르다. 부자에게는 벌금 액수가 푼돈에 불과해 형벌로서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지만 돈이 없는 사람은 구치소 노역장에 자발적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벌금 미납 노역장 유치처분 집행 건수는 2008년 2757건, 2009년 2819건, 2010년 2918건, 지난해 3221건으로 매년 늘었다. 경제 상황이 더 나빠진 올해에는 상반기에만 2503건이 집행될 정도로 늘었다. 하루 노역은 대개 5만 원으로 친다. 벌금 50만 원이면 노역장 유치 10일 이런 식이다. 일당 5만 원도 벌 자리가 없어 자유를 반납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혹시나 하고 기대했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말춤을 볼 수 없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9일 워싱턴 국립건축박물관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인 워싱턴 자선공연’에서 가수 싸이의 공연을 지켜봤으나 말춤을 추지는 않았다. 싸이가 2004년 신해철이 이끄는 록밴드 ‘넥스트’의 래퍼로 출연해 부른 “미군과 그 가족들을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이자”는 반미(反美) 랩이 미국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싸이는 공연에 앞서 “8년 전 일을 깊이 후회하고 있다”는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백악관은 싸이를 자선 공연 행사에 초청하지 말아야 한다는 청원을 물리치고 예정대로 싸이를 초청했다.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는 싸이의 반미 노래를 보도하면서도 “당시 반미주의적 시대 분위기 속에서 이 노래가 탄생했다”며 시대 상황을 곁들였다. 백악관과 미국 언론의 차분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랩 가사를 읽은 미국인들은 싸이와 어울려 말춤을 추고 싶은 생각이 가셨을지도 모른다. 싸이는 2002년 효순 미선 양 사건과 관련해 미군 장갑차 모형을 부수는 퍼포먼스를 벌이는 반미 시위에도 출연했다. 언제부터인가 남보다 ‘정치적 의식’이 있는 것처럼 보이려고 반미 성향을 내세우는 대중 연예인이 종종 있었다. 서강대 철학과 출신의 가수 신해철이 대표적인 경우다. 미국 버클리음대에 유학한 싸이도 그런 사람들과 자주 어울린 것이 사실이다. “미군과 그 가족들을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이자”는 가사는 미국인이 아닌 우리가 들어도 섬뜩하다. 그런 가사는 부르는 사람은 물론이고 듣는 사람의 마음까지 황폐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싸이의 노래를 우리만 들었다면 그가 과거 시류에 휩쓸려 부른 반미 랩이 지금 와서 이렇게까지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우리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어 세계적 반향을 일으켰다. 우리 노래는 이제 우리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세계가 지켜보는 한국이 됐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시골 장터에서 창을 하는 사람과 방송에 나가 노래 부르는 사람이 같을 수는 없다. 대중을 상대하는 사람에게는 무대에서 지켜야 할 예절과 금기가 있다. 한국에서만 듣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과 세계가 함께 듣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같을 수 없다. 일본과 중국을 혐오하면서 일본과 중국에서 한류 스타가 되겠다는 연예인은 어리석다. 반미도 마찬가지다. 미국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미국을 장난치듯 저주하는 것은 경망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싸이의 사죄를 교훈 삼아 한류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우물 안에 머물렀던 우리의 자의식을 고양(高揚)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이른바 야권 원로 모임이라는 ‘희망 2013 승리 2012 원탁회의’의 좌장격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안철수 전 후보 측의 차기 정부 지분을 보장하라고 민주통합당 측에 훈수를 뒀다. 대선에서 문재인 민주당 후보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게 패할 것 같다는 위기감에서 안 전 후보 측을 끌어들이려고 노골적인 자리 나눠먹기를 제안한 것이다. 원탁회의는 그제 성명을 통해 “선거 승리 이후의 첫걸음부터 민주당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더 폭넓은 세력과 공동보조를 취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돼야 한다”고 밝혔다. 백 씨는 어제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원탁회의에서 지분 나누기를 권유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어서 인수위 얘기를 하지 않고 ‘승리 이후의 첫걸음부터’라는 표현을 썼다”며 “까놓고 얘기하면 인수위를 어떻게 운영하느냐, 이게 사실은 가장 중요하다”고 속내를 ‘까놓았다’. 인수위에서 차기 정부를 세팅할 때부터 안 전 후보 측 인사들을 동참시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실은 차기 정부에서 나눠줄 자리를 안 전 후보 측에 확실하게 보장해 막바지 대선 운동에 끌어들이라는 주문이다. 안 전 후보 측은 문 후보 지지 수준을 놓고 안 전 후보와 캠프 사이에 온도차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안 캠프 실장급 상당수는 집권할 경우를 염두에 두어서인지 문 후보를 적극 도와야 한다는 입장이다. 새 정치를 표방한 안 후보가 ‘권력 배분’ 희망을 갖고 있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 만약 안 전 후보 측에서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원탁회의가 안 전 후보 측이 노골적으로 요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짐작해 먼저 자리 나눠먹기를 제안하라고 민주당 측에 주문한 것이라면 후안무치한 훈수가 아닐 수 없다. 천안함 폭침도, 서해 북방한계선(NLL)도 인정하지 않는 원탁회의가 천안함 폭침과 NLL을 모두 인정하는 안 전 후보와, 둘 다에 모호한 입장을 취하는 민주당의 ‘묻지 마 연대’를 중재하는 것 자체가 주제 넘는 일이다. 백 씨의 ‘2013년 체제론’은 4·11총선에서 민주당의 패배로 절반이 무너졌다. ‘2013년 체제론’은 대선에서도 민주당이 패배하면 완전한 실패로 돌아간다. 그럴 소지가 커지니까 백 씨는 새로운 시대에 대한 국민의 열망 같은 고상한 말은 다 집어던지고 ‘까놓고’ 나눠먹을 자리를 거론하고 있다. 적나라한 권력욕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1964년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린든 존슨은 공화당 후보 배리 골드워터가 베트남전에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몰아붙였다. ‘데이지 걸(Daisy Girl)’이라는 악명높은 네거티브 선거광고가 만들어졌다. 풀밭에서 꽃잎을 세던 어린 여자아이가 아홉을 셀 때 한 남자의 목소리가 미사일 발사 카운트다운을 시작한다. 하늘을 나는 무언가가 아이의 눈에 보이고 친구들 얼굴이 화면을 가득 메우더니 갑자기 깜깜해지면서 버섯구름이 피어오른다. 이 광고는 과장이 심하다는 비판 때문에 딱 한번 방송되고 그쳤지만 존슨의 압도적 승리에 보탬이 됐다. ▷1963년 박정희가 군복을 벗고 대선 후보로 나왔을 때 야당 후보 윤보선은 거물 간첩 황태성과의 관련성을 거론하며 박정희의 사상을 문제 삼았다. 박정희의 형 박상희가 좌익으로 1946년 대구 폭동에 가담했다 죽었는데 박상희와 동지였던 북한 무역성 부상(副相) 황태성이 김일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직접 박정희를 접촉해 보겠다며 내려왔다가 붙잡혔다. 그러나 박정희가 5·16 군사정변 후 집권 초기부터 좌익 의혹을 불식시키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윤보선의 네거티브 전략은 잘 먹히지 않았다. ▷네거티브 선거운동이 다시 극성이다. 민주당이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와 그 친가 및 외가 5촌까지의 재산이 1조3000억 원, 정수장학회와 영남학원 재산까지 더해 4조 원이라고 주장했다. 박 후보의 신고 재산은 21억 원이다. 재산은 형제 간에도 잘 알 수 없는 법인데 4촌도 아니고 5촌까지 합하는 셈법은 황당하다. 진위와 상관없이 상대 후보를 흠집 내려는 의도가 느껴진다. 조금 더 나가면 흑색선전으로 발전할 수 있다. ▷작년 서울시장 보궐 선거 때 박원순 후보를 지지하는 측은 나경원 후보가 1억 원대의 피부 미용을 받은 양 흑색선전을 해서 재미를 봤다. 일단 주장이 제기되고 나면 사실이 아니더라도 ‘사실 아님’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명해도 단순히 믿어버리는 사람들이 있고, ‘좀 과장이야 있겠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하는 식으로 ‘반쯤은 믿는’ 국민도 적지 않다. 상대 후보의 결점을 부각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있지도 않는 허물을 만들어내는 것은 국민을 향한 사기다. 자신의 장점을 부각하는 선거운동이 정치개혁의 첫걸음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2004년 서울 종로구 평창동의 한 빌라를 2억9800만 원에 구입하고도 시가표준액인 1억6000만 원에 구입한 것처럼 신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거래가격을 실제보다 낮춰 작성하는 다운계약서가 법으로 금지된 것은 2006년부터다. 문 후보가 빌라를 구입한 시점에서 아파트는 기준시가, 연립주택은 시가표준액에 맞춰 실거래가보다 낮게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우리는 관행에 따른 다운계약서 작성이 공직 취임의 결격사유라고 보지 않는다. 다만 민주당은 정부나 여당이 지명한 주요 공직자에 대한 인사청문 때마다 도덕성을 재는 잣대의 하나로 다운계약서 작성을 문제 삼았다. 민주당은 올 7월 김병화 대법관 후보의 다운계약서 작성 등을 따져 인사청문에서 탈락시켰다. 김 후보자의 다운계약서 작성도 관행이던 시절에 이루어진 것이다. 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인사청문회에서 “김 후보자가 관행이라고 말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질타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지금 문 후보를 변호하기에 바쁘다. 이에 앞서 야권 단일화를 앞두고 안철수 전 후보의 2001년 다운계약서 작성이 논란이 됐을 때는 “당혹스럽다”는 짤막한 논평을 내는 데 그쳤다.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잣대가 다르다면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문 후보 측의 “등기 업무를 대행한 법무사 사무소가 당시 관행에 따라 처리한 것” “다운계약서는 일반적으로 매도자의 요구에 따라 작성되는 것으로 문 후보는 매수자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별문제가 없다”는 식의 해명은 구차하게 들린다. 다운계약서는 양도차익을 줄여 매도자가 내야 할 양도세를 줄여주지만 매수자에게도 취득세와 등록세를 절감시켜 준다. 문 후보도 실제 다운계약서로 수백만 원의 세금을 덜 냈다. 문 후보는 2003년부터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과 비서실장으로 근무했다. 주택 실거래가 신고제는 2006년에야 시작됐지만 노무현 정부 초반부터 실거래가 신고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경제부처의 발표가 여러 차례 있었다. 문 후보는 이런 정책 방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출호이자반호이자(出乎爾者反乎爾者)라는 말이 있다. 너에게서 나온 것이 바로 너에게 돌아간다는 뜻이다. 민주당은 스스로 지키지 못할 기준이라면 남에게 함부로 적용할 일이 아니다.}
먼저 알아차린 독자도 있겠지만 이 글은 장 자크 루소의 책 ‘루소, 장 자크를 심판하다’의 형식을 빌렸다. 가상의 루소가 현실의 장 자크 루소를 심판하듯 가상의 철수가 현실의 안철수를 심판한다.‘단일화는 헤게모니 싸움’ 인식 부족―안은 사퇴하면서 영혼을 팔지 않았다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겼다.철수: 괴테의 희곡에서 파우스트 박사는 인생 최고의 향락을 맛보기 위해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파는 계약을 맺는다. 안이 앞으로 어떤 경우에도 영혼을 팔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생길 만큼 어렵게 물리쳤다는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은 무엇일까. 안은 정치로 가는 다리를 건넜고 그 다리를 불살랐다.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넌 안에게 그 유혹은 단일화의 약속을 깨고 끝까지 가서 국민 지지의 결말을 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안이 아니라 문이 양보할 수도 있었을까.철수: 문이 양보하는 순간 민주통합당은 대통령이 나눠줄 수 있는 1만 개의 자리만 놓치는 게 아니라 당이 무너질 위기에 처한다. 민주당은 국회에서 제1당은 아니지만 127석을 지닌 강력한 제2당이다. 그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대선 패배가 분명한 3자 대결도 각오했을 것이다. 3자 대결이 되면 그 책임은 어차피 안이 뒤집어쓰게 돼 있다. 안만이 양보냐 아니냐의 선택지(選擇肢)를 갖고 있었다. 안이 지게 되어 있는 치킨 게임이었다.―안은 단일화에 응하지 말았어야 했나.철수: 단일화에 응한 것이 실수가 아니라 단일화를 한다고 시한까지 못 박아 약속함으로써 퇴로를 없앤 것이 실수다. 안은 정치개혁이 단일화의 상위 개념이라고 했는데 이 약속 때문에 단일화를 위해 정치개혁을 포기하는 모순에 빠졌다. 약속에 충실했으나 약속을 맺은 이유가 더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에 대비하지 않았다.―아름다운 단일화는 환상이었나.철수: 단일화 협상은 클로즈업이 아니라 롱샷으로 보면 야권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헤게모니 싸움이었다. 즉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로 보는 세력과, 역사에서 공과(功過)를 다 배우겠다는 자세로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노무현의 묘역을 모두 찾을 수 있는 세력과의 싸움이었다. 친노와 원탁회의로서는 대권을 놓치더라도 물러날 수 없는 싸움이었으나 안의 머릿속에는 헤게모니 싸움이라는 인식 자체가 부족했다. ―안은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진심(眞心)이라고 생각한다. 선의가 강력한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국민과 증명하려 한다”고 말했다. 안의 진심 정치는 통하지 않은 것인가.철수: 진심 정치는 근대 정치의 틀에 도전하는 야심찬 탈(脫)근대적 기획이었다. 국민을 상대로 한 진심 정치는 안의 지지도에서 보듯 어느 정도 통하는 듯했다. 그러나 안이 단일화 협상에서 처음으로 추상적 국민이 아닌 구체적 정치세력과 마주했을 때 진심은 무용지물이었다. 안이 문과 친노세력에게 배신감을 느꼈다는 데서 작가 카프카의 말이 생각난다. 선은 악을 모르지만 악은 선을 안다. 앞으로 신당 창당의 正道 걸어야―안이라는 태풍은 소멸하는가.철수: 소멸은 아니고 약화된 저기압으로 대선 때까지 간다. 문이 대선에서 패하면 그 저기압은 다시 커질 수 있다. 안은 대선 때까지 문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기도, 지지하지 않기도 곤란한 딜레마에 빠졌다. 이번 대선이 안에게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이긴 했지만 하늘은 무소속 후보의 성공이라는 요행을 허용치 않았다. 안이 정치인으로 계속 남는다면 길고 힘들더라도 신당 창당의 정도를 걸어라. ‘국민이 원하면’이란 애매모호한 말 대신 자신의 판단을 말하라. 소통도 중요하지만 옳다고 여기는 일은 설사 그것이 국민들에게 인기가 없을 때도 밀고나가는 뚝심을 보여라. 강의식 말투를 버리고 순발력 있는 언어를 배워라. 그것이 안철수 2.0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김광준 서울고검 검사가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수감된 19일 밤 한상대 검찰총장은 기자들에게 e메일로 사과문을 돌렸다. 국민 앞에 머리를 조아려도 모자랄 판에 e메일 사과문은 성의가 부족하게 느껴진다. 이 사건은 미꾸라지 한 마리가 방죽물 전체를 흐린 개인 비리로만 볼 수 없다. 검사가 내사나 수사를 미끼로 9억 원이 넘는 큰돈을 받는 동안 검찰이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면 감찰 기능의 완전한 실패를 의미한다. 한 총장은 조직 어딘가에 김 검사 같은 사람이 또 없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검찰의 부패는 과거 검찰이 권력에 예속됐던 권위주의 시절의 검찰 견제 세력이 사라지면서 심화하기 시작했다. 독점적 수사지휘권, 영장청구권, 기소권을 행사하는 권력기관을 견제하고 감독할 외부 기관이 없다 보니 검찰은 자정 노력을 게을리하고 무사안일에 빠져들었다. 최근 수년간 잇따라 터진 ‘스폰서 검사’ ‘그랜저 검사’ ‘벤츠 여검사’ 사건과 이번 김 검사 사건이 다 그 연장선상에 있다. 검찰이 특임검사를 임명해 경찰 수사를 막은 것은 검사가 경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고 경찰에 의해 구속되는 사태를 방치할 수 없다는 검찰의 특권의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특임검사가 검찰과 경찰의 관계를 의사와 간호사에 빗대 간호사협회의 반발을 산 것도 그 오만함의 일단(一端)을 보여준다. 검찰은 비리가 터질 때마다 검찰총장 임기제 도입, 검사윤리강령 제정, 특임검사와 감찰본부 신설 같은 제도 개혁을 했지만 별로 나아진 것이 없어 보인다. 2010년 ‘스폰서 검사’ 사건이 터지고 나서 신설된 감찰본부도 유명무실했다. 한 총장은 사과문에서 “내부 감찰 시스템을 점검해 전면적이고 강력한 감찰 체제를 구축할 것”이라고 다짐했지만 제도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검사들의 의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검찰 안팎에서 검찰이 진짜 위기라는 목소리가 높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여야 모두 검찰개혁을 내걸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특별감찰관제와 상설특검제의 도입을 들고 나왔다. 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대검 중수부 폐지와 고위공직자부패수사처 설치에 의견을 같이한다. 검찰 구성원들조차 상당수 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한다. 검찰 스스로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특단의 쇄신책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광범 특별검사는 이명박 대통령의 사저 용지 매입을 담당한 청와대 경호처가 이 대통령의 아들 시형 씨가 부담해야 할 매입비용의 일부를 떠안아 국가에 9억7000만 원의 손해를 끼쳤다며 배임 혐의를 적용했다. 앞서 검찰이 관련자 전원을 무혐의 처분한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특검은 김인종 전 대통령경호처장 등 경호처 직원 3명의 배임행위로 이득을 얻은 이 대통령 가족에 대해서는 배임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다. 남을 위해 배임을 한 사람은 기소되고, 이득을 본 사람은 기소되지 않은 것은 일반인의 상식에 비추어 형평에 맞지 않는다. 특검은 시형 씨와 김윤옥 여사의 배임 혐의에 대해 용지 분배와 가격 결정 과정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혐의 없다’고 결정했다. 이 대통령에 대해서는 혐의 유무를 판단하지 않고 바로 ‘공소권 없음’ 결론을 내렸다. 대통령은 헌법상 재임 중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제외하고는 형사 소추를 당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수사기관의 수사도 받지 않는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친 후에는 관련 부분에 대해 수사를 받거나 기소될 수도 있다. 특검은 실소유자인 이 대통령 부부가 아들의 명의를 빌려 사저 용지를 산 명의신탁이 아니라 소유자가 시형 씨이지만 그 매입대금을 이 대통령 부부가 대신 낸 증여세 탈루라고 판단했다. 증여세 탈루는 증여 가액이 25억 원 이상이라야 국세청이 형사 고발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은 형사처벌까지 가지 않게 된다. 타인의 명의를 빌려서 부동산을 소유하는 명의신탁은 형사처벌을 받고 과징금이 부과된다. 부동산실명제법 위반을 피하기 위한 청와대의 법적 대응이 성공했다고 볼 수도 있다. 특검은 청와대 경호처 시설관리부장이 거래계약서를 변조한 사실도 새롭게 밝혀냈다. 경호처가 대통령 일가가 이득을 얻도록 땅을 계약하는 것을 대통령 부부가 알았는지 몰랐는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경호실의 ‘과잉 충성’이었다고 하더라도 깔끔하지 않았다. 더욱이 명의신탁이든 세금 탈루든 그런 의혹을 받을 수 있는 일을 장삼이사(張三李四)가 아니라 대통령 가족이 했다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다. 이 대통령 사저 의혹이 특검까지 간 데는 검찰의 잘못이 크다. 검찰은 청와대 직원을 배임으로 처벌하면 이득이 이 대통령 가족에게 돌아간다는 뜻이 된다는 납득할 수 없는 논리를 들어 관련자 전원을 불기소했다. 검찰이 법대로 청와대 직원들을 기소했다면 특검이 불필요했을 것이다. 검찰은 청와대 눈치를 보다가 수사를 그르치고 국민 신뢰를 잃었다. 깊은 자성(自省)이 따라야 할 것이다.}
민주통합당이 대선 투표시간 연장을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러면서 거론하는 것이 “일본이 1998년 투표 마감시간을 2시간 연장한 후 투표율이 10%가량 올랐다”는 주장이다. 이건 사실이 아니다. 일본에서 투표시간 연장 이후 처음 실시된 2000년 중의원 총선의 투표율은 62.49%. 직전인 1996년 총선의 59.65%보다 2.84%포인트 올랐을 뿐이다. 그나마 2003년 총선에서 투표율이 다시 59.86%로 떨어져 투표율 상승 효과는 사라졌다. 자살과 사망 구별 안한 공지영 물론 2005년과 2009년 총선의 투표율은 각각 67.51%, 69.28%로 크게 올랐다. 그러나 투표시간 연장의 효과가 7년 혹은 11년이 지나 나타났다고 보는 것은 누가 봐도 우습다. 이 경우 투표율 상승은 여야 간에 접전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2005년 총선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우정민영화 법안 부결에 분노해 중의원을 해산하면서 격렬한 쟁점이 형성된 선거였다. 2009년 총선에서는 현 집권여당인 민주당이 1955년 이래 11개월을 제외하고 줄곧 여당이었던 자민당을 무너뜨렸다. 작가 공지영의 최근작 ‘의자놀이’는 쌍용차 해고사태를 다룬 자칭 르포다. 그러나 르포라는 말이 무색하게 자살자의 수라는 기본적 사실조차 틀린다. 쌍용차 해고자 측에 따르면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 중 22명이 사망했고 그중 자살자는 12명이다. 그러나 작가는 “똑같은 원인으로 스물두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40쪽)”라고 썼다. 148쪽에서는 더 심각한 혼동도 눈에 띈다. 작가는 “22명의 자살자까지 아무도 유서가 없다”고 하다가 바로 그 다음 문단에서 해고자 심리치료를 해온 정혜신 씨의 말을 인용해 “자살자는 12명”이라고 썼다. 모든 사망자를 자살자로 본 작가의 혼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지난해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가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주세요”라는 쪽지를 남기고 죽었다고 한 신문이 보도했다. 이 보도가 기정사실화하는 가운데 최 씨가 다니던 대학의 교수였던 소설가 김영하 씨가 ‘최 씨는 아사(餓死)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최 씨의 사인은 영양실조가 아니라 갑상샘기능항진증과 그 합병증으로 인한 발작이었다”며 “최 씨는 재능 있는 작가였으며 어리석고 무책임하게 자존심 하나만으로 버티다 간 무능한 작가가 아니었다”고 썼다. 그러나 최 씨의 죽음을 ‘아사’로 키우고 싶어 한 누리꾼들의 비난이 빗발쳤고 결국 소설가는 인터넷 절필(絶筆)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경찰 조사결과 최 씨의 쪽지에 ‘남는 밥’이란 표현은 없었다. 사실 아닌 말, 대가 치르게 해야 어제 끝난 미국 대선 과정에서 ‘팩트 체커(fact checker·사실 확인 전문가)’가 큰 주목을 받았다. 이들의 일은 후보가 사실을 말하는지 검증하는 것이다. 밋 롬니 공화당 후보는 TV토론에서 “공영방송 PBS의 빅버드(어린이 방송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의 주인공 캐릭터)를 좋아하지만 PBS를 계속 지원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후보는 광고에서 “롬니가 빅버드를 죽여 세금을 부자에게 돌려주려 한다”라고 비난했다가 역풍을 맞았다. 인기가 높은 세서미 스트리트는 정부 지원금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이 팩트 체커에 의해 드러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대선후보와 캠프에서 성명과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곧 후보자 간 TV 토론도 진행될 것이다. 팩트 체크는 언론과 전문가들이 주로 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유권자들이 사실을 말하지 않는 후보를 벌주는 분위기가 있어야 한다. 누구나 최선을 다해도 틀릴 수 있다. 문제는 틀린 것을 알고도 바로잡지 않는다는 데 있다. 사실 여부를 놓고 장난치는 것을 좌시하지 않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미국에서 2004년 대선을 앞두고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화씨 9/11’이 나왔다.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이 시작한 이라크전쟁을 신랄히 비판한 이 영화는 거짓과 왜곡이 많다는 지적도 받았지만 큰 인기를 얻어 다큐멘터리 영화 사상 최고 수익을 올리고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까지 받았다. 올해 대선을 앞두고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재집권을 막기 위해 보수 진영에서 ‘2016년: 오바마의 미국’을 만들었다. 역시 꽤 인기를 얻어 다큐멘터리 영화 부문 역대 4위를 기록했다. ▷국내에서는 2007년 대선을 5개월 앞두고 1980년 5·18 광주를 그린 영화 ‘화려한 휴가’가 나왔다. 당시 열린우리당 대선 예비주자들이 줄줄이 봤다. 나중에 여권 대선후보가 된 정동영 씨도 이 영화를 보고 눈물을 펑펑 흘렸다는 보도가 있었다. ‘화려한 휴가’는 전두환 정권을 겨냥한 것이어서 당시 한나라당의 이명박 박근혜 대선 예비주자를 직접 겨냥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대선 구도를 ‘민주 대 반민주’로 몰아가려던 열린우리당의 입맛에 딱 맞아떨어졌다. ▷올 대선을 코앞에 둔 이달 하순 ‘남영동 1985’와 ‘26년’이 개봉된다.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인 ‘남영동 1985’는 지금은 고인이 된 김근태 전 의원에 대한 전두환 정권의 고문 사건을 다뤘다. 인기 여배우 한혜진이 출연하는 ‘26년’은 1980년 광주 가해자에 대한 피해자의 복수를 그렸다. 박정희 정권을 연상시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에게 불리할 수 있다. 박 후보에게 유리한 영화도 제작되고 있다. 한은정 감우성이 주연한 ‘퍼스트레이디-그녀에게’로 육영수 여사를 다뤘다. 제작사 측 목표대로 대선 전에 개봉될지는 확실하지 않다. ▷무어 감독은 ‘화씨 9/11’을 만든 후 “부시가 대통령 직에서 제거되는 것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남영동 1985’를 만든 정지영 감독도 그 노골성을 본뜬 듯이 “이 영화가 올 대선에 영향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화씨 9/11’에도 불구하고 부시 대통령은 민주당 존 케리 후보를 눌렀다. ‘화려한 휴가’가 상영된 뒤였음에도 이명박 후보는 정동영 후보를 거의 더블스코어 차이로 이겼다. 이런 영화가 같은 편이 뭉치는 데는 몰라도 표 확장에는 별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일까.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대법원이 인도네시아에서 일하면서 북한 공작원과 접촉해 김정일 생일축하 e메일을 보낸 김모 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국가보안법 찬양고무 혐의 부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 1심은 김 씨의 범죄사실을 모두 인정했으나 항소심은 “김정일 생일축하 메일을 작성한 것은 단순히 의례적인 행위”라며 “국가의 존립 안전을 위협한다고 할 수 없다”고 찬양고무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김 씨가 장기간 북한 공작원과 접촉해 온 사정을 고려하면 김정일 생일축하 메일도 적극적 찬양고무로 해석할 수 있다며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이번 판결은 찬양고무죄를 지나치게 제한적으로 적용하거나 가볍게 처벌하는 하급심 판결에 경종을 울린 의미가 있다. 노무현 정권 당시 국회 다수당인 열린우리당의 국보법 폐지 시도가 좌절된 이후 국보법 폐지론자들이 사문화(死文化)를 목표로 집중 비판하는 것이 ‘찬양고무죄’ 조항이다. 노골적인 종북세력 인물들만 김일성 일가 찬가를 부르는 게 아니다. 국내 종북 웹사이트에서는 현역 장병, 부동산 중개업자, 항공사 기장 등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까지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글을 올렸다. 이들은 법정에서도 “위대한 김정일 장군님 만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를 외치며 찬양고무죄를 조롱했다. 찬양고무죄는 1990년 헌법재판소의 한정합헌 결정을 받고 이듬해 국보법 개정 때 “국가의 존립 안전을 위태롭게 하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줄 명백한 위험이 있는 자”로 제한됐다. 이후에도 헌법소원이 꾸준히 제기됐으나 헌재는 줄곧 합헌 결정을 내렸다.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고 북한 주민의 인권을 유린하는 공포정치 체제가 존재하는 동안은 광화문 사거리에서 김일성 만세를 부르는 행위가 표현의 자유일 수 없다. 그동안 법원 판결 중에는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행위에 대해 위험성을 낮게 평가해 무죄를 선고하거나 우리 사회의 개방성을 알리고 남북교류와 협력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로 집행유예 등의 선처를 한 경우가 있었다. 자유민주주의의 기반을 파괴하려는 세력에 선전 선동의 자유를 무제한으로 허용할 수는 없다.}
김광진 민주통합당 의원이 올해 1월 “새해 소원이 뭔가요”라고 묻는 질문에 이명박 대통령의 급사(急死)를 원한다는 뜻의 ‘명박 급사’라고 한 트위터 글을 리트윗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이런 표현은 대통령과 관련된 문제이기 이전에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는 “동의해서 알티(리트윗)한 건 아니지 않다는 확신을 저는 가지고 있다”는 이중부정(二重否定)으로 강한 동의를 드러냈다. 비꼬인 심성의 소유자라고 볼 수밖에 없다. 문제의 표현은 그가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 한 것이다. 그러나 잘못된 버릇은 의원이 되고 나서도 반복됐다. 그는 22일 6·25전쟁 영웅인 백선엽 장군을 ‘민족 반역자’라고 불렀다. 김 의원의 나이가 31세로 6·25전쟁을 알기에는 너무 어리다고 해서 봐줄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백 장군은 김 의원보다 어린 26세 때 국방경비대에 들어가 북한의 남침으로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인 나라를 구했다. 백 장군이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그 세계가 전부라고 알고 살았던 청년기에 일본군 장교로 근무한 행적만 겨냥해 민족 반역자라고 부른 김 의원의 사고방식은 치졸하다. 좌파 역사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 전남동부지부 사무국장 출신답다. 민주당 의원들의 막말은 이번뿐이 아니다. 이종걸 최고위원은 올해 8월 트위터에서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를 ‘그년’이라고 칭했다. 논란이 커지자 그는 “그년은 ‘그녀는’의 줄임말” “그년은 ‘그녀는’의 오타”라고 말을 바꾸면서 유치한 변명을 늘어놓다가 “표현이 약했다. 더 세게 했어야 했다”며 확 돌아서 양식 있는 국민의 분노를 키웠다. 임수경 의원도 6월 “근본도, 개념도 없는 탈북자 ××들이 굴러 와서 대한민국 국회의원에게 개겨” 같은 막말을 퍼부었다. 얼마 전에는 문재인 민주당 대선후보 측 제윤경 공동선대위원장이 이 대통령을 향해 ‘도둑놈’ ‘기생충’ ‘사이코패스’라고 표현한 사실이 드러났다. 민주당은 김 의원을 청년 비례대표로 공천해 국회로 보내줬다. 민주당이 만든 막말 의원이므로 민주당이 책임져야 한다. 김 의원은 “30세 일반 청년이 의원이 되기 전에 한 일인데, 그 정도 풍자도 용납되지 못하는 그런 나라냐”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대응했다. 문재인 후보의 청년특보실장이던 김 의원은 파문이 확산되자 자리에서 급히 물러났으나 어물쩍 넘어갈 일이 아니다. 문 후보가 4·11총선 당시 ‘나꼼수’ 김용민의 막말 파문을 기억한다면 앞장서서 김 의원의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
영세중립국 스위스의 제네바에는 19세기부터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국제전기통신연합(ITU) 같은 최초의 정부간 기구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레만 호에서 흘러나가는 론 강을 중심으로 우안에 주로 국제기구가 밀집해 있다. 유엔의 전신인 국제연맹의 본부가 있던 ‘팔레 데 나시옹’에 유엔의 유럽본부가 들어서 있고, 사방으로 약 500m 거리에 국제노동기구(ILO), 세계무역기구(WTO),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가 있다. 자동차로 약 5분 거리에 세계보건기구(WHO), ICRC, ITU 등이 있다. 영어가 공용어처럼 통용되고 일상생활에서부터 문화 간 교류가 활발해 외교관들이 선호하는 근무지다. ▷유럽의 수도라고 불리는 벨기에 브뤼셀에는 유럽연합(EU) 본부, 유럽이사회, 유럽의회 건물이 빼곡히 들어선 EU 구역이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본부도 브뤼셀에 있다. 영국과 유럽 대륙을 잇는 초고속 열차도 런던∼프랑스 파리만이 아니라 런던∼브뤼셀, 브뤼셀∼파리, 파리∼런던을 삼각으로 달린다. 관광객들은 여전히 그랑 팔라스를 중심으로 하는 구(舊)시가지를 주로 찾는다. 그러나 브뤼셀은 현대식 EU 구역이 없었다면 안락하지만 정체된 도시라는 느낌을 줬을 것이다. ▷만약 우주로 가는 열차의 지구 정거장을 설치한다면 그곳은 미국 뉴욕이나 파리 혹은 런던이 돼야 할 것이다. 뉴욕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최고의 도시로 부상한 것은 유엔과 그 산하기구들이 줄줄이 그곳에 자리 잡은 것과 관련이 있다. 파리에도 유네스코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누구나 들으면 단번에 알 수 있는 큰 국제기구들이 있다. 런던에도 국제해사기구(IMO) 등이 있다. 반면 독일의 베를린이나 본에는 딱히 들 만한 것이 없다. ▷우리나라가 인천 송도에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을 유치했다. GCF는 사무국 직원만 500여명으로 아시아 국가가 유치한 최대 규모의 글로벌 국제기구다. 필리핀 마닐라에 있는 아시아개발은행(ADB) 본부의 직원 수가 2000여 명이지만 ADB는 아시아 지역 기구다. 스위스나 벨기에는 유럽에서 프랑스와 독일에 낀 소국이다. 우리나라가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작은 나라이긴 하지만 국제기구 유치에는 오히려 유리할 수도 있어 국제적 활력에서는 가장 앞서는 나라가 될 수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