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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은 이 꿈(북한의 사상을 확산시키는 것)을 이루기 위한 재정적 지원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자신이 운영하는 웹사이트에 60여 건의 북한 찬양 자료를 올린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대한항공 기장 김모 씨(44)는 해당 사이트에 이런 내용이 담긴 글을 올렸다. 김 씨에게 항공사 기장이란 직업은 북한 사상을 남한에 안정적으로 전파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던 셈이다. 김 씨는 해외 곳곳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직업적 특성도 최대한 활용했다. 》김 씨가 자신의 사이트를 통해 볼 수 있도록 링크해 놓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노작’ ‘빨치산의 아들’ 등의 자료는 북한 당국이 발행한 일종의 원서로 국내에 있는 일반인은 입수가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김 씨가 링크해 놓은 북한 원전(原典) 웹사이트 주소는 국내 인터넷에서는 접근이 차단돼 있어 해외에서만 볼 수 있다. 수사당국도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이들 사이트에 접근이 가능하다. 경찰 관계자는 “국외선 기장인 김 씨가 해외 곳곳을 다니며 인터넷 보안이 취약한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북한 원전 주소를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안정적 직업이 종북 활동에 유리”경찰은 김 씨뿐 아니라 교수나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이 종북 활동에 가담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안정적 직업이 북한 찬양 활동에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북한 매체나 출판물에 있는 체제 찬양 문건을 찾아다닐 정도로 생계 부담으로부터 자유롭고 자신의 전문성을 활용해 해당 자료에 접근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자신의 사상에 대한 확신이 커 극단적 행동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이적표현물 게재 혐의를 받는 종북주의자들을 조사하다 보면 전문직 종사자일수록 북한 사상이나 이념에 대해 나름의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충분히 연구하고 내린 결론’이란 생각에 사로잡혀 남의 말을 듣지 않는 ‘확신범’이 많다”고 말했다.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등 이른바 좌파 성향 단체 회원들이 그동안 학습해온 북한 추종적 사상을 구체적 행동으로 옮기는 경우도 많다. 경찰이 2008년부터 올해까지 집계한 안보사범 현황을 보면 전체 360명 중 교사가 31명으로 단일 직종으로는 직업 운동가(138명) 다음으로 많다. 이들은 모두 전교조 소속 교사들이다.교사들의 종북 행위는 개인적 불법 행위에 그치지 않고 학생들의 국가관과 안보관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엄격히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는 “전교조 소속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언론의 자유’에 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며 “학창 시절에 그런 교육을 받고 자란 학생들이 대학에 가면 종북사상에 빠지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 대남 선전용 웹사이트 늘려경찰은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통신환경의 발달로 이적 표현물을 찾고 게재하는 게 수월해지면서 다양한 형태의 종북 활동이 등장할 것으로 보고 단속의 고삐를 조이고 있다. 경찰이 2008년부터 최근까지 폐쇄한 국내외 친북 사이트는 257개다. 삭제한 문건도 15만여 건에 이른다.하지만 경찰이 사이트를 폐쇄해도 유사 사이트가 생겨 친북 게시물이 계속 유통되는 실정이다. 또 경찰이 발견한 친북 게시물 중 상당수가 외국계 서버를 통해 올라오기 때문에 게시자 추적도 쉽지 않다. 혐의 확인을 위해 게시자의 e메일 송수신 명세 등을 확인하려 해도 외국계 e메일 계정을 사용하는 등의 방법으로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고 있다. 특히 북한 당국은 이런 추세를 이용해 종북 게시물이 보다 널리 확산되도록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찬양 글 등을 담은 대남 선전용 사이트를 잇달아 개설하고 있다. 이 때문에 경찰은 친북 사이트 색출을 위해 장비와 인력을 대대적으로 보강할 방침이다.경찰 관계자는 “예전에는 친북 세력이 오프라인에서 조직을 만들고 활동해 눈에 쉽게 띄었지만 요즘엔 온라인으로 무대를 옮겼다”며 “인터넷을 통해 방대한 자료를 손쉽게 교류하고 활동 내용도 더 은밀해졌기 때문에 파급력이 훨씬 커졌다”고 우려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 찬양고무죄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선동·동조하는 범죄행위. 국가보안법 7조에 규정돼 있으며, 법 위반 시 7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게 된다. }
입대 장병들의 개인정보를 관리하는 병무청 직원과 여객기 조종사, 공군장교 변호사 교수 의사 교사 등 사회 각계 인사 70여 명이 웹사이트에서 종북(從北)활동을 하다 공안당국에 적발됐다. 경찰청 보안국은 19일 북한 매체나 출판물에서 북한을 찬양하는 글을 수집해 인터넷에 올려온 이들을 적발해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종북 사이트인 사이버민족방위사령부와 유사 홈페이지, 개인 웹사이트 등에 이적 표현물을 무더기로 게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이번에 적발된 종북 활동자 가운데는 공군장교, 변호사, 의사, 철도청 과장, 교육청 공무원, 대형 건설사 직원 등 각계각층의 인사가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경찰 조사 결과 지방의 한 병무청 징병검사과 8급 직원 김모 씨(38)는 2009년 12월부터 최근까지 ‘장군님은 세기를 향도하신다’ 등 북한 찬양 동영상 17건을 유튜브에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앞서 13일 김 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해 북한 관련 서적과 컴퓨터 등을 확보했으며 이를 분석한 뒤 김 씨를 소환조사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주적인 북한을 신봉하는 사람이 징병검사 업무를 통해 장병들의 신상정보 등을 파악해 유출한다면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20년 비행경력의 대한항공 기장 김모 씨(44)는 자신이 개설한 홈페이지 ‘자유에너지개발자그룹(www.sicntoy.com)’에 ‘두 개의 전쟁 전략’ ‘빨갱이가 되기 위한 전제조건’ 등 이적 표현물 60여 건을 올린 혐의(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 규정 등 위반)를 받고 있다. 김 씨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노작’ ‘빨치산의 아들’ 등 북한 당국이 발행한 출판물을 직접 볼 수 있는 사이트 주소를 대량으로 입수하기도 했다. 김 씨는 ‘우리민족끼리(www.uriminzokkiri.com)’ 등 북한 선전 사이트에서 해당 원전이 들어 있는 웹사이트 주소를 자신의 홈페이지에 링크해 누리꾼이 600여 건의 북한 원전을 볼 수 있도록 했다. 경찰 관계자는 “그동안 북한 원전 한두 건의 일부 내용이 친북 사이트 게시판에 올라온 적은 있지만 600여 건에 이르는 북한 원전을 통째로 확보해 게시한 경우는 극히 이례적”이라고 설명했다. 경찰 조사 결과 김 씨는 자신의 홈페이지를 표면상으로는 완전한 과학 관련 사이트로 위장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종북 게시물이 추가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김 씨의 사이트를 폐쇄했다. 항공기 기장은 현행법상 기내에서 승객들을 구금하는 등 사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돼 있어 김 씨가 승객들을 태운 채 북한으로 넘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찰은 밝혔다. 이에 따라 경찰은 김 씨에 대해 출국 및 운항금지 조치를 했다. 경찰은 18일 김 씨의 자택도 압수수색했다. 이번에 적발된 종북 활동자의 가장 큰 특징은 직군이 매우 다양해졌다는 점이다. 최근 3년간 검거한 인터넷 안보사범도 전체 360명 가운데 교사가 31명, 군인 7명, 공기업 직원 5명, 교수가 2명이었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 중 상당수는 종북 사이트인 사이버민족방위사령부 회원으로 활동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2007년 개설된 이 사이트는 회원 수가 한때 7000명을 넘었다. 최근 법정에서 “김정일 장군 만세”를 외쳐 구속된 건설업체 직원 황모 씨는 이 사이트 운영자로 활동하며 ‘사령관’이란 호칭으로 불렸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흔히 ‘문둥이’라는 속칭으로 불려온 한센병 환자들은 한때 2세를 갖는 게 허락되지 않았다. 살갗에서 진물이 흐르고 손발이 굳는 부모의 천형을 후대에 물려준다는 편견 때문이었다. 1950년대 초 한센병은 유전되지 않고 완치가 가능하다는 게 널리 알려진 뒤에도 정부는 30년 가까이 그 편견을 버리지 않았다. ○ 한센인 부부들의 처참한 투쟁한센인 김모 씨(75·여)는 50여 년 전 한 간호사가 했던 말이 아직 생생하다고 했다. “이제 봤으니 됐지요?” 간호사는 김 씨 배에서 막 나온 아기를 들어올려 그에게 보여주며 그렇게 말했다. 인공유산으로 예정보다 2개월 일찍 나온 사내아이였다. 김 씨는 “숨을 쉬어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아기를 간호사가 비닐봉지에 담아 옆방으로 가져갔다”고 말했다. 한센인들 사이에선 그렇게 아기의 생명을 빼앗기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수용소 안에서 환자끼리 결혼은 가능하지만 남자는 불임수술을 받게 했다. 여자는 임신하면 강제로 낙태를 시켰다.경북 안동시에 있는 한센인 시설에서 살았던 박모 씨(66·여)도 18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당시의 끔찍했던 기억을 증언했다. 1964년 여름, 임신 8개월이었던 박 씨는 배가 불러오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 붕대로 배를 동여매고 다니다 결국 직원들에게 발각됐다. 태아를 없애지 않으면 밥을 안 주고 시설에서도 쫓아낸다는 얘기에 박 씨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다. 시설을 나가면 사회의 저주스러운 냉대는 차치하고라도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게 문제였다. 박 씨는 결국 울산의 한 불법시술업체를 찾아 조산제를 먹고 이튿날 출산했다. 박 씨는 “애가 용케 살아서 나왔는데 시술업체에서 ‘우리가 처리할 순 없고 알아서 버리고 오라’고 해 근처 갈대밭에 가 아기를 버렸다”며 울먹였다. 일부 여성 한센인들은 몰래 아기를 낳기도 했다. 하지만 낙태보다 더 쓰라린 이별을 강요당해야 했다. 강모 씨(68·여)는 1972년 초 첫 아기를 강제 낙태당한 뒤 몰래 둘째를 임신했다. 시설 측 눈을 피해 인근 시장에서 출산했지만 아기를 몇 시간도 옆에 두지 못하고 보육원에 보냈다. 강 씨는 며칠 뒤 출산 사실이 알려지는 바람에 임신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하는 수술을 받았다. ○ 국가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강제 낙태와 정관수술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한센인 207명은 18일 과거 한센인 정착촌에서 벌어진 피해를 배상하라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냈다. 소송을 대리한 한센인권변호인단은 “강제 정관수술 피해자 190명에게 각 3000만 원, 낙태 피해자 17명에게 각 5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촉구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비리 검사를 감싸거나 사회의 주목을 끌 만한 사건을 가로채가는 등 검찰의 부당한 수사지휘 관행에 대해 경찰이 정면으로 거부 의사를 밝혔다. 경찰은 13일 총리실에 제출한 형사소송법(형소법) 시행령 초안에서 검사가 그동안 무제한적으로 행사했던 수사지휘권의 실태를 조목조목 열거하며 앞으로는 따르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에 따라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 2라운드’가 첨예한 갈등 양상으로 비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 “송치 전 기소·불기소, 경찰이 판단” 동아일보가 14일 입수한 경찰 측 시행령 초안은 ‘검사가 수사지휘를 할 때는 사건에 대한 법률 적용이나 조사 사항의 법적 판단에 대해 구체적으로 해야 하고 사법경찰관의 기소·불기소 등 송치의견에 대해서는 지휘할 수 없다’고 적시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6월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경찰에 수사 개시·진행권이 부여됐기 때문에 수사 진행과정에서 생기는 구체적 사안에 대해서만 검사가 지휘를 해야 하고 피의자가 기소할 만큼 혐의가 뚜렷한지도 경찰이 독립적으로 판단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이 기존 방식대로 경찰 수사 전반을 지휘하며 ‘기소 또는 불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넘기라’고 하면 따르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어 경찰은 검사가 수사지휘를 할 수 있는 경우를 △경찰이 수사 중인 사건에 관한 진정이나 이의제기가 검사에게 접수된 경우 △종결 사건을 다시 수사할 경우 △검사에게 체포영장이나 압수수색영장 등 허가서 신청을 한 때 등으로 한정했다. 경찰 관계자는 “그동안 검사의 수사지휘가 검찰청법상 명령·복종 규정과 맞물려 무제한적으로 행사돼 온 점을 개선하기 위해 구체적 기준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그동안 언론의 주목을 끌 만한 중요 사건에 대해 검찰이 일방적으로 수사중단 명령을 내린 뒤 사건을 가로채가고, 유치장 감찰을 나와 법적 근거도 없이 경찰 업무 전반에 대한 감사를 한다며 불만을 제기해왔다. 한 일선 경찰관은 “검사가 수시로 경찰관을 불러 자신들이 수사하는 피의자를 대신 가두라고 하거나 벌금 미납자를 대신 잡아오라고 하는 등 수사지휘와 무관한 잡일을 경찰에 맡기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견제하겠다” 또 경찰은 검찰이 동료 검사나 전관인사들의 비리를 덮는 데 수사지휘권을 남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대상자가 전현직 검사이거나 검찰청 소속 공무원일 경우 검사는 수사지휘를 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반면에 법무부는 ‘공무원 범죄의 경우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해 수사 초기부터 검사가 지휘하도록 한다’는 내용을 시행령 초안에 담아 향후 논의과정에서 격론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검사의 수사지휘에 이견이 있을 경우 고검에 서면으로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는 조항도 명문화됐다. 경찰 측 시행령 초안에 따르면 이의신청을 접수한 고검 검사장은 5일 이내에 해당 수사지휘의 적법성 여부를 판단해 결과를 통보해야 하며 이의신청이 인정될 경우 해당 검사는 수사지휘를 바꾸거나 철회해야 한다. 법무부가 10일 시행령 초안을 통해 경찰 내사의 범위를 탐문과 정보 수집으로 축소한 것을 의식한 듯 경찰은 그동안 관례상으로 통용돼왔던 내사의 범위를 분명히 했다. 경찰은 ‘수사지휘의 시기’에 관한 조항을 만들어 ‘검사는 사법경찰관이 범죄 혐의를 인식하고 범죄인지서를 작성하거나 시스템상 입건하여 수사를 개시한 이후에 수사지휘를 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기존 관행대로 피의자 입건 전 단계는 모두 내사에 해당돼 검사의 수사지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울러 경찰은 법조계와 학계 인사가 참여하는 검경협의회를 구성해 수사지휘 문제로 두 기관이 충돌할 경우 중재를 맡기는 방안도 초안에 담았다. 이에 대해 검찰은 “법과 원칙에 따라 시행령을 만들겠다”며 즉각적인 대응을 자제했다. 그러나 경찰 측 시행령 초안이 외부에 알려져 두 기관이 감정싸움을 하는 것처럼 비치는 것에 대해선 유감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법무부가 시행령 초안을 국무총리실에 제출하면 검찰이 검토의견서를 낸 뒤 경찰 등과 협의해 안을 확정하기로 돼 있었다”며 “경찰이 스스로 시행령 초안까지 만들고 검찰 비리를 수사하는 기관으로 행세하려 하는 것은 신뢰를 저버린 행위”라고 지적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
경찰이 검경 관계를 ‘상명하복(上命下服)’에서 ‘수평적 상호협력’ 관계로 바꾸는 내용을 담은 형사소송법 대통령령 초안을 13일 국무총리실에 제출했다. 법무부가 10일 경찰의 내사 범위를 축소하는 시행령 초안을 마련한 데 대해 경찰이 대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두 기관이 각각 총리실에 낸 초안은 국회가 6월 형소법을 개정하면서 검경이 올해 안에 세부 내용을 협의해 대통령령으로 제정하기로 한 것에 대한 후속조치다. 경찰이 마련한 대통령령 초안은 개정 형소법이 경찰의 수사 개시권을 보장하는 만큼 경찰의 수사 주체성을 구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법무부가 경찰의 내사 범위를 대폭 축소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형소법) 시행령 초안을 마련하자 경찰도 맞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경찰은 조만간 총리실에 제출할 경찰 측 시행령 초안에 검사의 부당한 지휘에 대해 상급기관에 이의신청을 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을 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검경이 형사소송법 개정에 이어 수사권 조정 문제를 담은 시행령을 놓고 2라운드에 돌입한 것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12일 “지금도 경찰 규정상 검사 등 상급자가 부당한 수사지휘를 할 경우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게 돼 있지만 실제 그런 사례는 없었다”며 “시행령 논의 과정에서 검사의 지휘에 대해 고등검찰청 등에 이의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구체적인 이의제기 절차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경찰은 검찰이 참고인 조사나 계좌추적 등 현재 내사로 간주되는 조치들을 수사로 보고 지휘 대상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시행령 초안에 담은 것과 관련해 ‘검사의 수사지휘를 배제한다’고 명문화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경찰이 이처럼 강공대응에 나선 것은 법무부가 낸 시행령 초안이 국회의 형소법 개정 취지와 검경의 합의 정신에 어긋나 협상 과정에서 대폭 수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경찰청은 이날 법무부의 시행령 초안에 대해 “경찰과 협의가 없었고 두 기관이 견제와 균형을 통해 투명한 수사를 하라는 국민적 기대에도 미치지 못해 대통령령 제정 논의의 기본 틀로 삼기에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특히 경찰은 법무부가 경찰 내사의 범위를 탐문이나 정보수집 등으로 한정한 것에 대해 형소법 개정 과정에서 양 기관의 수장이 합의한 약속을 깨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이귀남 법무부 장관이 국회에서 경찰의 내사는 검찰의 수사지휘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여러 차례 발언했고, 당시 내사는 입건 전에 이뤄지는 전반적인 첩보수집 활동을 뜻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검경은 관행상 피의자 입건을 기준으로 이전 과정은 내사, 이후 과정은 수사로 구분해 왔다. 참고인 조사나 압수수색영장을 통한 계좌추적 등은 피의자를 특정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이기 때문에 모두 내사로 분류했다. 하지만 이번 법무부 초안은 이런 조치들을 내사가 아닌 수사로 간주해 검사의 지휘를 받도록 하고 있다. 경찰의 한 간부는 “경찰은 소문만 확인하고 이후부터는 사사건건 검사의 지휘를 받으라는 것이냐. 경찰이 검찰의 정보수집원이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검찰은 시행령 초안에서 경찰의 내사 범위를 주변인 탐문과 정보수집으로 제한한 것은 현행 법무부령인 사법경찰관리 집무규칙에 따른 것이라는 의견이다. 집무규칙에는 ‘범죄에 관한 기사, 신고, 풍설이 있을 때 진상을 내사한 후 범죄 혐의가 있다고 인정되면 즉시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고 돼 있다. 지금까지는 관행적으로 입건 이전 과정만 내사로 봤지만 이 규칙에 따르면 내사는 ‘신고나 소문을 토대로 실제 범죄 혐의가 있는지 알아보는 초동수사’에 불과한 것이어서 이를 명확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또 시행령은 내사를 통해 혐의가 잡히면 경찰은 곧바로 범죄자를 피의자로 입건하도록 했다. 그러나 보완수사가 필요할 경우엔 예외적으로 수사 개시 단계를 따로 둬서 입건 전에도 계좌추적과 압수수색, 참고인 조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대법원이 2001년 “입건 여부와 관계없이 실질적으로 범죄에 대한 조사를 했다면 수사로 봐야 한다”는 취지로 판결함에 따라 내사와 수사의 구분을 명확히 하겠다는 것이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초반부터 네거티브 전으로 흐르면서 무소속 박원순 후보의 대북관이 선거 쟁점으로 부상했다. 한나라당이 박 후보가 10일 관훈클럽 토론에서 천안함 사건에 대해 “이 정부 들어 북한을 자극해 억울한 장병들이 수장됐다”고 발언한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차명진 의원은 11일 국회 정치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북한의 도발에 면죄부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그런 말을 함부로 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차 의원은 “박 후보는 대한민국 체제 전복을 행동강령으로 삼는 자들을 옹호하고 함께 행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기현 대변인은 논평에서 “모든 책임을 우리 정부로 돌리는 북한의 행태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라며 “천안함 희생 장병들의 고귀한 죽음을 욕되게 한 박 후보는 즉각 유가족 앞에 사죄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민주당과 박 후보 측은 한나라당 공세를 ‘구시대적 색깔론’이라고 반박했다. 천안함 희생 장병들의 유족들은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고 문규석 원사의 어머니 유의자 씨는 “친구한테 전화가 와서 박 후보자의 발언 내용을 들었는데 그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며 “아직 아들 휴대전화 번호도 못 지우고 있고, 한 번 불러보고 싶어도 못 부르는 아들인데 정치인들은 너무 쉽게 천안함 얘기를 꺼내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유족은 북한의 입장을 두둔하는 듯한 박 후보자의 주장에 대해 “마음에 깊은 상처를 주는 경솔한 발언이었다”고 비판했다. 고 나현민 상병의 아버지 나재봉 씨는 “박 후보의 얘기가 북한의 주장과 뭐가 다르냐. 무고한 젊은이 수십 명의 목숨을 빼앗아 가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울시장 후보로 나올 정도의 지도자라면 최소한 희생자 가족들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고 심영빈 중사의 아버지 심대일 씨도 “자세한 내용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말을 그리 함부로 할 수가 있느냐”며 “유족에게 정식으로 사과하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이승헌 기자 ddr@donga.com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조현오 경찰청장이 10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사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경찰청장의 장관급 격상은 당장은 어려워도 결국 시간문제일 것”이라고 밝혔다. 조 청장은 이날 “경찰 창설 초기에는 간부들이 대부분 일제 경찰 출신으로 정통성이 부족해 격이 낮았지만 그 후 50여 년이 흐르면서 경찰관 출신도 바뀌고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도 커졌기 때문에 그에 맞는 조정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조 청장은 “경찰수장이 차관급 보수를 받는다는 것은 일선 경찰관들의 사기 문제와 관련이 있다”며 “미국은 경찰관 월급이 일반 공무원보다 2배 정도 많은데 우리는 보수나 연금 혜택 등에서 일반 공무원보다 열악하다”고 강조했다. 경찰청장 직급이 장관급으로 격상되면 부하 직원들의 직급도 한 단계씩 올라가 열악한 처우문제도 함께 해결할 수 있다는 게 조 청장의 주장이다. 한편 조 청장은 최근 재수사를 하고 있는 광주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전국 장애인 시설과 학교에 대해 전수조사를 하고 성폭행 등 인권침해 혐의가 있으면 적극 개입하겠다고 밝혔다. 조 청장은 “학교 운영이나 국고지원금 관리 등에 문제가 있는지 철저히 조사한 뒤 관련부처가 합당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협조할 것”이라고 설명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취지는 그게 아니었는데…. 대단히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경찰청 국정감사에서 조현오 경찰청장은 민주당 이윤석 의원의 질의에 쩔쩔매며 제대로 답변을 못했다. 이 의원은 이날 경찰청이 지구대나 파출소 근무자 중 부적격자를 가려내는 과정에서 동료 간에 평가를 하도록 한 것에 큰 문제가 있다며 조 청장을 추궁했다. 이 의원은 “동료 간에 의심하고 점수를 매겨서 낙인찍는 제도 아니냐”고 목청을 높였다. 경찰청은 지난달 15일 업무 태도나 개인 신상에 문제가 있는 ‘관심직원’의 73%가 지구대나 파출소에 집중 배치돼 경찰 이미지 추락 등 부작용이 우려되니 부적격자를 가려내도록 지시했다. 파출소는 시민과 밀착돼 있는 ‘모세혈관’ 같은 경찰 조직이기 때문에 청렴성 유지를 위해 ‘문제 경찰관’을 솎아내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부적격자 색출 방법이다. 다음 달부터 분기별로 실시하는 동료평가에서 최하 점수를 받은 직원을 인사위원회에 회부해 다른 경찰서로 내보낸다는 것. 3개월마다 한 번씩 동료들끼리 퇴출 대상을 정하는 셈이다. 근무 인원이 2, 3명에 불과한 소규모 파출소에서는 서로를 물어뜯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경찰관들은 “동료 살생부를 만들어야 하느냐”며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조 청장은 잘못을 시인했지만 한 달도 못 돼 폐기할 제도를 제대로 검토도 하지 않고 시행하려 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조 청장은 9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관련 보고를 받으면서 담당자에게 ‘내가 보고서를 읽어볼 필요가 있겠느냐’고 묻자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해 세부 내용까지 챙겨 보진 않았다”고 말했다. 결재할 서류가 하루에만 수십 건인데 참모들이 귀띔을 하지 않는 한 일일이 챙겨볼 수는 없지 않느냐는 해명이었다. 공무원의 동료평가는 노무현 정부 때 상급자의 인사 전횡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됐다가 인기투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을 받고 폐지됐다. 동료 평가를 부활할 경우 이런 논란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꼴찌 경찰관’을 전출시키는 민감한 인사 제도인데도 조 청장은 참모들 말만 듣고 추진한 것이다. 이 제도가 예정대로 시행된다면 동료평가에서 꼴찌를 했다는 이유로 이 부서 저 부서로 쫓겨 다니는 경찰관도 적잖이 생길 것이다. 조 청장은 조직의 장이 결재하는 서류가 수만 명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열악한 조건에서 국민의 안전을 위해 땀 흘리는 일선 경찰관의 사기를 꺾는 게 경찰총수가 해야 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신광영 사회부 neo@donga.com}
교장 등 교직원들이 청각장애 원생을 성폭행한 광주 인화학교 사건에 대해 경찰이 최근 재수사한 결과1996년과 1997년에도 교사 2명이 원생을 성추행한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 그러나 성폭력에 대한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은 불가능하다. 경찰은 9일 이 학교 교사 A 씨와 B 씨가 각각 1996년과 1997년에 당시 12, 13세였던 여학생 2명을 학교 뒷산 등지에 데려가 강제로 키스를 하고 옷 속에 손을 넣어 가슴을 만지는 등 성추행했다고 밝혔다. 이 두 교사는 이번 경찰 조사에서 혐의를 부인하다 이날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 거짓반응이 나오자 결국 범행을 자백했다. 2000∼2005년 이 학교에서 벌어진 이른바 ‘도가니 사건’이 2005년 불거질 당시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교직원은 교장 김모 씨와 행정실장 등 6명이었다. 이 중 4명은 재판에 넘겨졌지만 나머지 2명은 공소시효가 끝나 처벌받지 않았다. A 씨와 B 씨 역시 법 개정 이전의 공소시효 7년이 지나 처벌이 불가능하다. 개정법의 공소시효는 10년이다. 경찰은 두 교사를 관할 교육청에 통보해 징계 등 행정조치를 받게 할 방침이다. 한편 경찰은 김 교장이 2005년 사건 당시 상급생들을 동원해 자신을 지목한 피해자를 폭행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진위를 파악 중이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차로의 양끝에는 주차나 정차를 금지하는 노란색 실선이나 점선이 그려져 있다. 노란색 실선은 주·정차 금지, 점선은 주차 금지를 의미한다. 이 노면 표시가 내년부터 달라진다. 경찰에 따르면 현재 도로 양끝에 그어져 있는 노란색 실선은 탄력적 주·정차 허용, 점선은 탄력적 주차 허용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당 표시의 뜻을 바꾸기로 했다. 경찰은 그 대신 주·정차를 전면 금지하는 곳에는 노란색 두 줄 실선 표시를 하기로 했다. 도로 양끝에 노란색 두 줄 실선이 있으면 무조건 주·정차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 경찰은 새 표시 방식을 다음 달 10일부터 서울 강남구 일원본동 등 전국 18개 장소에서 시범 실시하고 내년에 전면 확대할 방침이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경찰이 최근 ‘도가니 사건’을 계기로 여성 경찰관들로만 구성된 성폭력 전담팀을 만들기로 했다. 또 피해자를 신속히 보호하기 위해 어린이 위주로 시행해온 위급 상황 시 위치추적 프로그램을 19세 미만 장애인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경찰청은 7일 이런 내용을 담은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 보호 대책’을 발표했다. 경찰은 우선 전국 경찰서 2∼4곳을 하나의 권역으로 묶어 여경 4명으로 구성된 성폭력 전담조사팀을 만들 계획이다. 이 전담팀은 24시간 운영돼 성폭력 피해 신고가 들어오면 언제든 조사한다. 경찰청 관계자는 “전담팀 소속 여경들을 대상으로 아동·장애인 전문 조사기법을 교육해 장애인들이 제대로 의사소통을 못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다음 달부터 지방청별로 1개 권역씩 이 제도를 시범운영한 뒤 내년에 전체 경찰서로 확대할 계획이다. 경찰은 현재 초등학생만 제공받고 있는 피해자 위치추적 시스템 ‘원터치 SOS’ 서비스를 19세 미만 장애인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서비스는 어린이나 장애인이 경찰에 서비스 신청을 하면 신청인의 신상정보를 위치추적 시스템에 등록했다가 신고가 들어오는 즉시 해당 위치를 파악해 출동하는 것이다. 경찰은 전국 장애인 교육기관 155곳에 종사하는 8600여 명의 성범죄 경력을 조회해 관련 전과자가 나올 경우 이달 안에 퇴출시키기로 했다. 또 24일부터 3주간을 실종 장애인 수색기간으로 정해 성폭력 등 각종 범죄에 취약한 지적장애인들을 찾아낼 방침이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고시원방 문손잡이에서 ‘털컥’ 소리가 난 것은 오전 4시쯤이었다. “이 시간에 누구지? 문을 안 잠갔나?” 침대에 걸터앉아 TV를 보던 임유경(가명·17) 양은 귀를 곤두세웠다. 그 순간 문이 열리며 낯선 남성이 얼굴을 내밀었다. 갈색 머리칼을 짧고 각이 지게 자른 서양인이었다. 얼굴이 불그스름한 게 술을 마신 듯했다. 그는 임 양과 눈이 마주치자 이내 고개를 숙이며 방문을 닫았다. 술 취한 이웃 입주자들이 자기 방을 못 찾고 헤매는 건 종종 있는 일이었다. 문 잠그는 걸 잠시 미루고 임 양은 평소 즐겨 보던 그 토크쇼에 다시 빠져들었다. 그리고 1분 뒤 문이 다시 열렸다. 청바지에 파란 셔츠를 입은 방금 전 그 남자였다. 그는 방으로 들어와 문을 잠갔다. 》○ 새벽에 들이닥친 갈색머리 남자사건이 일어난 지난달 24일 새벽, 임 양이 사는 경기 동두천시 J고시원 입주자들은 “별다른 비명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했다. 고시원 총무는 “원룸형 고시텔이라 방음이 잘된다”고 했다. 그날 일로 임 양은 동두천의 한 종합병원에 입원했다. 의사는 “정신과 치료와 심리적 안정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5일 본인 동의를 받고 병실에서 만난 임 양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날 일을 얘기할 땐 입가가 부르르 떨렸다.갈색머리의 남자는 동두천에 있는 미2사단 소속 K 이병(21)이었다. 그는 고시원과 같은 건물에 있는 모텔에서 동료 병사 3명과 음란 비디오를 보다 혼자 방을 나섰다. 그는 건물을 배회하다 4층에 있는 고시원을 발견했다. 입구 신발장에는 여성용 뾰족구두가 몇 켤레 있었다. 그는 고시원방을 하나하나 열어봤다. 모두 문이 잠겨 있었지만 맨 안쪽에 있던 임 양의 방은 문이 열렸다.K 이병은 눈을 동그랗게 뜬 임 양의 뺨을 후려쳤다. 임 양이 베개와 리모컨을 던지자 K 이병은 책상에 있던 가위를 집어 들었다. 그는 “Don't move(움직이지 마)”라고 말하며 가위를 벌려 임 양의 얼굴에 갖다댔다. 가위에 손가락을 베여 피범벅이 된 손으로 임 양은 그를 계속 밀쳤다. K 이병은 냉장고 옆에 있던 과도를 잡아 그녀의 목에 들이댔다. “처음엔 술에 취해 그러는 줄 알았는데 술 냄새가 안 났어요. 저를 노려보는 눈의 초점도 뚜렷했어요.” K 이병은 끝내 임 양을 성폭행했다.K 이병은 임 양의 방에서 4시간 동안 머물며 변태적 행위까지 했다. 혐오감에 치를 떨고 있는 임 양에게 K 이병이 말을 걸어왔다. “영어로 혼자 중얼거리더니 ‘I'm sorry(미안하다)’라고 했어요.” K 이병은 임 양의 손에 난 상처에도 밴드를 찾아 붙여줬다. 그러곤 가위를 자기 목에 대고 나를 죽여 달라”며 횡설수설했다. 임 양이 “My father, my father(우리 아빠)”라고 말하면서 “여기로 온다”는 손짓을 하자 그제야 K 이병은 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그는 방을 나가기 전 임 양의 지갑에서 1000원권 지폐 5장을 빼갔다.○ 한국 검찰, 이례적 신속 구속임 양은 대학 진학을 꿈꾸는 검정고시생이었다. 어렸을 적 부모가 이혼한 뒤 친척집에서 살다 지난해 혼자 동두천에 방을 얻어 시험 준비를 해왔다. 임 양의 아버지는 공사장에서 일하며 번 돈으로 외동딸에게 생활비를 대주고 있다. 사건이 나던 날, 임 양은 오후 10시 학원 수업을 마치고 고시원방에서 몇 시간 더 책을 봤다. 공부를 끝내고 기분 전환을 위해 잠시 TV를 보다 변을 당한 것이었다. 임 양은 “안 그래도 ‘문을 잠가야지’ 하고 생각하던 찰나에 놈이 들이닥쳤다”며 “검정고시 붙으면 등록금 내야 한다고 무리해서 일 나가시던 아버지 마음을 아프게 해드려 죄송하다”고 말했다.K 이병은 범행 후 부대로 무사히 돌아갔다. 현행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에 따라 미군은 강력범죄를 저지르더라도 현장에서 붙잡지 못할 경우 우리 경찰이 구속할 수 없다. K 이병은 불구속 상태로 받은 경찰 조사에서 현장에 남긴 정액 등 물증을 앞에 두고도 “성관계를 맺은 거 같은데 만취 상태여서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K 이병은 미군 측이 우리 정부의 범죄인 인도요청에 응해 6일 한국 검찰에 구속됐다. 사건 후 K 이병이 구속 기소되기까지 걸린 기간은 12일. 이에 앞서 서울 마포 등에서 일어난 다른 미군 성폭행 사건 때 모두 16일이 걸린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으로 신속한 조치였다. 검찰 관계자는 “사안이 중대하고 미군도 적극적으로 협조해 지체 없이 진행했다”고 밝혔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등 정권 실세들에게 금품과 향응을 제공했다고 폭로한 이국철 SLS그룹 회장(사진)이 신 전 차관에게 제공한 법인카드가 모두 3장이라고 밝혔다. 이 회장은 3장 중 1장은 신 전 차관이 다른 정부 기관에 넘겨줘 이 기관의 직원들이 서로 돌려가며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이 회장은 4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신 전 차관에게는 2005년경부터 국내 계열사 명의의 법인카드를 줬고 1, 2년 간격으로 해외 지사 명의의 법인카드를 2장 제공했다”며 “신 전 차관이 이 법인카드를 ‘다른 정부 기관에 빌려줘 돌려쓰게 했다’고 말해 그렇게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해당 기관이 어디인지 알고 있지만 지금은 밝힐 단계가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 회장은 신 전 차관이 3장의 법인카드로 결제한 액수에 대해선 “가장 최근인 2008년 6월에 제공한 법인카드는 1억 원가량 썼지만 그전에 준 카드 2장은 얼마나 썼는지 내용을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3일 검찰에 출석해 신 전 차관에게 제공한 마지막 법인카드의 전표를 제출했다. 그러나 그는 다른 해외 법인카드 사용 명세는 아직 검찰에 제출하지 않았다. 이 회장은 “해당 카드 사용 명세를 보면 상당히 민감한 내용을 알 수 있어 검찰의 수사의지를 보고 나서 자료 제출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3일 “일본 출장 때 SLS 일본 법인장과 술자리를 가진 것은 맞지만 계산은 대한항공 관계자가 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당시 박 전 차관에게 향응을 제공했던 우리 측 법인장이 해당 영수증과 관련 기록을 갖고 있지만 최근 갑자기 연락이 끊겼다”고 말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이국철 SLS그룹 회장(사진)이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등 정권 실세들에게 금품과 향응을 제공했다는 의혹의 진위가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는 3일 이 회장을 소환해 정권 실세들의 금품수수 의혹과 검찰의 SLS그룹 기획수사 논란 등 이 회장이 제기한 주장을 집중 검증할 계획이다. 이 회장은 검찰 출석에 앞서 2일 신 전 차관이 사용했다는 법인카드 명세를 일부 공개했다. 그러나 신 전 차관의 자필 사인이 담겨 있는 영수증은 공개하지 않아 명세의 진위는 판가름하기 어렵다. 이 회장은 이날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SLS그룹 서울지사 사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2008년 6월부터 2009년 11월까지 매달 최대 1000만 원까지 모두 1억 원가량을 자신이 준 법인카드로 결제했다”고 주장했다. 이 회장이 공개한 엑셀 파일 형식의 A4용지 5장짜리 문서에는 ‘롯데쇼핑 본점 1100달러’, ‘신세계백화점 1284달러’ 등의 형식으로 카드 사용 장소와 금액이 날짜별로 정리돼 있었다. 결제 금액은 건당 몇만 원부터 최대 수백만 원까지 다양했다. 총 사용 금액은 1억 원가량이었다. 하지만 이날 이 회장이 공개한 카드 사용 명세에는 카드 사용자를 알 수 있는 서명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 회장은 “신 전 차관이 직접 서명한 카드 전표는 검찰이 수사를 통해 찾아야 한다”며 “여권을 제시해야 하는 면세점 명세만 확인해도 누가 사용했는지 나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이날 제시된 명세표는 해당 카드사의 직인이 찍힌 공식문서가 아니어서 법정에서 증거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문서에 나오는 업소 중 일부를 찾아가 확인한 결과 신 전 차관이 결제했다는 기록은 나오지 않았다. 이 회장은 또 “지난해 4월경 SLS그룹 워크아웃 사건을 탄원하기 위해 대구지역 언론사 출신 사업가 이모 씨를 회사 직원으로 고용했다”며 “이 씨가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던 권재진 법무부 장관을 만나 상황 설명을 했고 권 장관도 ‘충분히 알았다’고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권 장관 측은 “이 씨라는 사람을 만난 적도 없고 전혀 알지도 못한다”고 일축했다. 한편 이 회장이 지난달 22일 기자회견에서 “일본 출장 중이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에게 현지 법인장을 통해 500만 원 상당의 향응을 제공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박 전 차관은 지난달 30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SLS그룹 간부와 만난 건 사실이지만 계산은 다른 지인이 했다”고 밝혔다. 박 전 차관은 22일에는 “일정이 바빠 술자리 자체가 없었다”고 해명한 바 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2일 오전 1시 영화가 시작된 서울 용산의 한 ‘도가니’ 상영관은 객석이 3분의 2쯤 차 있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으∼ 안돼”, “제발 그만” 같은 탄식이 객석에서 들려왔다. 교장에게 성폭행을 당하면서도 저항하지 못했던 아이들을 대신해 그렇게라도 말해주고 싶은 듯했다. 가해자 전원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돼 청각장애인들이 울부짖는 장면에선 객석에서 욕설까지 나왔다. 이 영화의 원작인 소설 ‘도가니’를 쓴 작가 공지영 씨는 “판결 장면을 묘사한 한 인턴기자의 기사가 소설의 모티브가 됐다”고 말했다. 2009년 책이 나와 40만 부가 팔렸고 영화까지 돌풍을 일으키면서 경찰은 재수사를, 정부는 진상 규명을 다짐했다. 분노로 가득 찬 여론을 의식한 조치였다. 하지만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정부는 뭘 하다 뒷북을 치느냐”는 여론의 질책은 피할 수 없었다. 영화관을 나서면서 ‘그 질책은 사회부 기자인 내가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은 못 해도 가슴으로, 몸으로 울부짖었던 그들의 절규를 나는 왜 듣지 못했던 것일까.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다는 ‘기자의 초심(初心)’을 잊은 건 아니었을까. ‘도가니 사건’을 다룬 당시 동아일보 기사를 찾아봤다. 고작 3건뿐이었다. 그마저도 공지영 씨를 인터뷰한 내용 등이 전부였다. 사건의 전말을 다루거나 피해자들의 호소를 다룬 기사는 없었다. 다른 언론도 비슷했다. 한 신문사 광주 주재기자가 몇 차례 적극적으로 다뤘을 뿐이었다. 언론은 피해자와 그 주변의 애타는 호소를 외면했다. 진실 규명과 가해자 처벌을 요구하는 장애인단체의 오랜 투쟁은 딱하지만 별 도리가 없는 일로 치부됐다. 당시 사건을 맡았던 임은정 검사는 2007년 3월 공판 당일 작성한 일기에서 “법정을 가득 채운 농아들은 수화로 이 세상을 향해 소리 없이 울부짖는다. 그 분노에 그 절망에 터럭 하나하나가 올올이 곤두선 느낌이다”라고 적었다. 공지영 씨는 피해자들을 만난 뒤 “잘 읽히는 소설을 써서 그들의 한을 풀어주겠다”고 다짐했다. 기자를 포함한 언론은 직무유기라는 죄를 지었다. 소설가와 영화감독이 교육계와 법조계가 한통속이 돼 숨기려 한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오랜 시간 열정을 쏟는 동안 언론은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그런 언론이라면 피해자들을 가뒀던 ‘도가니’의 일부가 될 수밖에 없다. 당시 항소심 재판장이었던 이한주 판사는 최근 “내 판결로 약자가 큰 고통을 받아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했다. 약자의 아픔이 우리 사회의 아픔이라는 것을 왜 잊고 있었는지, 이젠 기자와 언론이 반성문을 쓸 차례다.신광영 사회부 기자 neo@donga.com}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등 현 정권 실세에 대한 이국철 SLS그룹 회장의 금품 제공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 심재돈)는 10월 3일 오전 10시 이 회장을 다시 불러 조사할 것으로 30일 알려졌다. 이 회장도 이날 서울 강남구 신사동 SLS그룹 서울사무소에서 기자들과 만나 10월 3일 검찰에 다시 출두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자료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23일 이 회장을 처음 불러 조사했지만 당시 그는 “신 전 차관이 사용하고 서명했다”고 주장한 SLS그룹 법인카드 전표 등을 검찰에 제출하지 않아 전표가 있는지를 두고 논란이 벌어진 바 있다. 당시 이 회장은 참고인 신분이었지만 3일 다시 검찰에 나오면 피고소인 신분 조사도 받게 된다. 검찰이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등 3명이 “이 회장이 금품을 건넸다고 악의적으로 공격해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고소한 사건을 특수3부에 배당해 수사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 회장이 다시 검찰에 나와 자신의 주장대로 카드 전표 등 폭로 관련 자료들을 제출하면 이 회장의 진술과 관련 자료들이 부합하는지 등을 검토해 이 회장 폭로 내용의 진위를 가리게 된다. 또 검찰은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국무차장 재직 당시 일본 출장을 갔을 때 SLS그룹 현지 법인장으로부터 500만 원 상당의 식사와 술 접대를 받았다는 이 회장의 주장도 따져볼 계획이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이들이 없었다면 여리고 말 못하는 아이들은 여전히 눈물로 학교를 다녀야 했을 것이다. 도저히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여전히 ‘선생님’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을 것이다. 음침하고 추악한 사건을 용감하게 세상에 드러낸 사람들. 조규남(48·당시 인화학교 학생 어머니), 전응섭 씨(49·인화원 교사), 김용목 인화학교 성폭력대책위 대표(49·목사). 그들의 용기와 노력이 있었기에 가장 소외받고 약한 이들의 아픔이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다.2005년 6월 중순 조 씨는 광주 인화학교에 다니는 딸(당시 13세)에게서 귀를 의심케 하는 말을 들었다. 학교 안에 ‘또래 친구인 A 양이 행정실장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는 것. 조 씨는 처음에는 학생들 장난으로 치부했지만 너무 진지하고 간곡한 딸의 말에 사실 확인을 해보기로 했다. 확인 결과 학생들의 말은 모두 같았다.조 씨는 직접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인화학교 기숙사인 인화원에서 A 양을 빼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A 양의 할머니와 기숙사 보육교사이자 청각장애인인 전응섭 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교직원들에게 성폭행을 당한 A 양은 모든 사람을 두려워했고 처음에는 신고는 물론이고 상담 자체를 기피했다. 하지만 조 씨는 A 양의 손을 굳게 잡고 “죄를 지은 자들이 반드시 처벌받게 하겠다”고 약속해 승낙을 얻었다. 조 씨와 A 양은 같은 달 22일 학교 밖에서 전 교사를 만나 광주 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를 찾아 신고했다. 추악한 사건이 외부에 처음 드러난 것이다.신고 이후 충격적인 교직원들의 장애아동 성폭행 사건에 광주지역 전체가 들끓었다. ▼ “가해교사-재단 뉘우침 없어… 피해학생 보면 가슴 미어져” ▼같은 해 7월에는 광주지역 시민사회단체 26곳이 참여한 ‘인화학교 성폭력대책위원회’가 결성돼 공동 대응에 나섰다. 김용목 대표는 “조 씨와 전 교사의 용기 있는 행동이 없었다면 진실이 영원히 묻혔을 것”이라고 말했다.결국 조 씨 등의 용기 있는 행동으로 인화학교 김모 교장(2009년 9월 사망), 행정실장 김모 씨(63), 교사 전모 씨 등 6명은 청각·지체장애 학생 9명을 성폭행한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았다. 이들에 대한 최종 형량은 실형 2명, 집행유예 2명, 공소시효 소멸에 따른 공소기각과 불기소 2명 등이었다. 판결이 나오자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난이 들끓었다. 사건에 연루된 교사 1명은 학교로 복직까지 했다.김 대표는 “가해자들의 공소시효는 지났지만 양심의 시효는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며 “가해 교사나 재단 측은 아직도 뉘우치지 않고 ‘뒤늦게 왜 이러느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조 씨를 도운 전 교사의 고통도 컸다. 한솥밥을 먹던 가해 교직원들과 재판정에서 얼굴을 맞대야 하는 힘겨운 상황이 지속된 것. 인화학교는 결국 전 교사를 2006년 해직했고 전 교사는 성폭행 사건 외에 자신의 복직 소송도 진행해야 했다. 복직 소송에서 이긴 그는 현재 인화근로시설 지도교사로 일하고 있다. 전 교사는 동아일보의 인터뷰 요청을 끝내 고사했다.1960년 설립된 인화학교는 성폭력 사건 발생 직전 장애우 78명이 생활했지만 현재는 22명만 있다. A 양 등 당시 인화학교 재학생 18명은 사건 신고 후 가해 교직원 처벌을 요구하다 학교에서 쫓겨나 다른 시설로 흩어졌다. 또 당시 양심선언을 한 인화학교 교사 15명 가운데 11명도 교직을 떠났다.이 사건을 세상에 알리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조 씨는 지난달 광주 모 방송국에서 열린 청각장애인 후원행사에서 오랜만에 A 양을 만났다. 조 씨는 “A 양에게 약속한 가해교사 처벌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 정말 미안했는데 오랜만에 만난 A 양이 해맑게 웃어 가슴이 더욱 미어졌다”며 눈시울을 붉혔다.한편 영화 ‘도가니’의 소재가 된 광주 인화학교 원생 성폭력 사건에 대해 경찰이 전격 재수사에 착수했다.경찰청은 28일 “본청 지능범죄수사팀 요원 5명 등 15명으로 특별수사팀을 구성해 관련 의혹을 모두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우선 인화학교 행정실장 김 씨 등 사법 처리를 받은 4명과 가해자로 지목됐지만 처벌을 받지 않은 교직원 6명의 혐의를 다시 수사해 여죄를 캐기로 했다. 또 경찰은 인화학교 원생들 사이에서도 성폭행이 있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피해 사례를 추가로 찾고 있다.경찰은 교내 성폭행이 5년 넘게 드러나지 않았고 사건이 불거진 후에도 학교 측이 피해자들에게 합의를 종용하는 등 사건을 축소한 의혹이 있어 당시 조사 경찰관과 학교 측의 유착 여부, 교육청 등 관계 당국의 감독 소홀 문제도 파헤칠 계획이다. 교육과학기술부도 기숙사가 설치된 전국 41개 특수학교를 대상으로 다음 달 장애 학생 생활실태를 점검할 방침이다.한편 이 사건의 항소심 재판을 맡았던 이한주 서울고법 부장판사(55·사법시험 25회)는 28일 사건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위로의 뜻을 밝혔다. 이 부장판사는 “법률적 판단의 정당성을 떠나 이 판결로 소수 약자가 큰 고통을 받은 점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가슴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광주고법과 광주지검은 보도자료를 내고 “영화에서 가해자를 감싼 것으로 그려진 것 등 실제와 다른 내용이 많다”고 밝혔다.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인화학교 ::사회복지법인 ‘우석’이 1960년 광주 광산구에 세운 청각장애 특수학교. 한때 학생 수가 100명을 넘었을 정도로 광주 최대의 장애인 교육시설로 손꼽혔다. 2000년부터 5년간 이 학교에서 발생한 성폭력을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 ‘도가니’가 최근 흥행하면서 가해자들이 가벼운 처벌을 받을 수 있었던 사법 시스템에 대한 질타가 쏟아지고 있다. ▲동영상=아동 성폭력 고발...영화 ‘도가니’}
28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서울복지병원 장례식장. 중국집 배달원으로 일하며 70만 원 남짓한 월급을 쪼개 다섯 어린이를 도와 온 ‘철가방 천사’ 김우수 씨는 영정에서도 헬멧을 쓴 채 활짝 웃고 있었다. 그 영정 앞에 단발머리의 한 여고생이 고개를 숙인 채 좁은 어깨를 들썩이며 훌쩍이고 있었다. 김 씨에게서 2006년부터 최근까지 매달 2만∼3만 원씩 후원을 받아온 신윤희(가명·16) 양이었다.어렸을 적 부모를 잃고 할머니와 살아온 신 양은 얼마 되지 않는 돈이지만 김 씨의 관심 덕에 세상을 원망하지 않았다고 했다. 신 양은 어렵게 세 자매를 키우는 할머니를 위해 은행원이 돼 돈을 벌고 싶었다. 그 꿈을 위해 올해 상고에 진학했다.이날 아침 김 씨의 소식을 접한 신 양은 그동안 미뤄왔던 편지를 한 통 썼다. “저를 돕기 위해서 아저씨는 이렇게 애쓰셨는데 저는 그것도 모르고 매일 투정만 부리며 살았네요. 저도 이젠 아저씨를 본받아 남을 열심히 도우며 살게요.” 신 양은 “제대로 보답도 못해 보고 허망하게 떠나시는데 마지막까지 웃고 계셔서 가슴이 너무 아프다”며 멍하니 영정을 바라봤다. ○ 천사의 사랑을 받았던 아이들김 씨가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어린이재단을 통해 후원해 왔던 이정욱(가명·16) 군. 이 군의 어머니 김모 씨(45)도 이날 김 씨의 소식을 듣고 말을 잇지 못한 채 흐느꼈다. “저와 남편도 고아로 자라서 그게 얼마나 아프고 외로운지 잘 알아요. 그런 분이 우리 아이를 도와주셨다니….”이 군의 아버지는 건설현장에서 몸을 다쳐 일을 하지 못하는 상황. 어머니 김 씨가 식당 주방일을 하며 받는 돈에 정부 보조금을 합쳐 한 달 80여만 원이 생활비의 전부였다. 여기에 김 씨가 보내주는 돈은 이들에게 큰 액수였다. 김 씨는 “4년 넘게 이름도 없이 꼬박꼬박 후원해 주던 사람이 자신도 형편이 어려운 고아 출신이었다는 사실에 놀랐다”며 “그분이 보내 준 후원금으로 정욱이가 평소 못 보던 참고서를 살 수 있게 돼 성적도 많이 올랐다”고 했다.충북 제천시의 중학생 김민지(가명·14) 양에게도 김 씨는 ‘키다리 아저씨’였다. 김 양도 지난해 6월까지 월드비전을 통해 김 씨로부터 매달 2만∼3만 원을 후원받았다. 김 씨는 2009년 6월 김 씨에게 보낸 편지에서 “후원자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저를 응원해 주시는 투명인간 같아요”라고 쓰기도 했다.당시 김 양의 집은 어머니 홀로 식당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다 늦둥이 남동생이 생기면서 어머니마저 일을 그만둔 상황이었다. 김 씨의 후원금은 김 양 가족에게 작지만 따뜻한 희망이었다. 김 씨는 매달 보내는 후원금 외에 추석이나 크리스마스, 설날은 물론이고 김 양의 생일에도 매번 2만∼3만 원을 보냈다. 김 양은 28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아저씨 바람대로 나중에 커서 꼭 남을 도울 수 있는 넉넉한 사람이 되겠다”고 말했다. 김 양의 어머니는 “지방에 사는 탓에 빈소에 찾아뵙지 못해 송구스럽다”며 “김 씨의 격려 덕분에 딸이 성격도 밝아지고 적극적으로 변했다. 고마운 마음이 꼭 전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후원 아동과 찍은 사진이 유일한 재산김 씨가 살던 서울 강남구 논현동 4.95m²(약 1.5평)짜리 고시원 방은 28일 기자가 찾았을 때 한낮인데도 전등 스위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어두웠다. 방에 남아 있는 김 씨의 구형 휴대전화에는 일하던 중국집 직원과 사장, 고시원 총무 전화번호 외에는 아무것도 저장돼 있지 않았다. 김 씨가 세상과 교류한 흔적은 김 씨가 후원했던 아동들의 증명사진이 들어 있는 액자뿐이었다. 액자에는 아이들의 이름과 생년월일이 함께 적혀 있었다. 방에 남아 있는 김 씨의 통장에는 20일 어린이재단 앞으로 후원금 3만 원을 송금한 기록이 있었다. 김 씨의 마지막 기부였다.김 씨가 일하던 강남구 일원동 중국집 이금단 사장(45)은 “김 씨가 생전에 결혼할 만한 여성을 만난 적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자신이 고아로 컸던 기억 때문인지 쉽사리 결혼을 결심하지 못했다”며 “결혼해서 자식을 낳는 대신에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자식처럼 생각하고 도우며 자신의 상처를 씻어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사고가 나던 날 김 씨가 오토바이 시동을 걸며 여러 아파트 단지를 들러 그릇을 한꺼번에 수거해 오겠다고 했는데 그걸 말리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김 씨는 3년 전 폐 수술을 받은 뒤 형편이 더 어려워져 2010년 6월 어린이재단을 통해 후원하던 신 양 외에 다른 아동들에 대한 후원은 중단해야 했다. 신 양이 부모 없이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는 점 때문에 김 씨가 끝까지 후원을 이어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빈소를 찾은 어린이재단 후원회장 최불암 씨(71)는 “남몰래 아이들을 도와 온 김 씨의 선행은 우리에게 놀라움과 부끄러움을 줬다. 진실은 아무리 숨겨도 언젠가는 알려지기 마련인데 그게 죽음을 통해 밝혀졌다는 게 씁쓸하다”고 말했다.한 중년 남성은 조문 뒤 빈소 구석에 앉아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고 한참을 울었다. 그는 “돈을 허튼 데 쓰고 살았다. 고인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했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행원에서 시작해 19년 만에 은행장까지 오른 한 남자의 인생이 결국 투신자살로 끝을 맺었다. 최근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돼 영업정지 처분을 받고 검찰의 비리 수사 대상에 오른 제일2상호저축은행 정구행 은행장(50)이 23일 정오경 서울 종로구 창신동 제일2상호저축은행 본점 옥상에서 뛰어내린 것. 이 저축은행은 이날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신입행원에서 은행장까지 대전상고와 한남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정 행장은 25년 전인 1986년 제일저축은행 장충동 본점 영업부 행원으로 입사했다. 2002년에는 자회사인 제이원저축은행(현 제일2저축은행)으로 자리를 옮겨 남대문, 테헤란로 지점장을 지낸 뒤 2005년 12월 대표에 올랐다. 제이원저축은행은 제일상호신용금고(현 제일저축은행)가 1999년 인수한 일은상호신용금고가 모태로, 정 행장 취임 후인 2006년 제일2저축은행으로 이름을 바꿨다. 주변에서는 정 행장이 특유의 넉살과 유머로 영업 관련부서를 두루 거치며 영업통으로 실력을 인정받았고 입사 동기 중 승진이 가장 빨랐다고 전했다. 특히 대주주인 유동천 회장의 신임이 두터워 정 행장은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지 19년 만인 2005년 은행장까지 올랐다. ○ “죗값은 제가 받겠다”며 투신 정 행장은 이날 검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는 도중 건물 6층 옥상에서 뛰어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정 행장은 투신 직전 건물 3층의 박모 이사 방에 들러 “지갑 속에 뭔가 적어뒀으니 보라”고 말한 뒤 옥상에 올라간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검찰은 2층을 압수수색 중이었다. 3층 행장실에 있던 정 행장 양복 상의에서는 “현재 매각 관련 실사를 3곳에서 하는 상태다. 실사가 정상으로 이뤄져도 영업정지 후 자력 회생한 전례가 없다 보니 기관별 협의가 제시간 안에 끝나기 어렵다고 판단된다. 저희도 후순위채 5000만 원 초과 예금 고객이 있다. 관계 기관의 협조와 관심을 부탁드린다. 죗값은 제가 받겠다”고 자필로 쓴 편지가 발견됐다. 정 행장은 투신 직전 박 이사와의 통화에서 “매각 절차를 잘 부탁한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이날 검찰이 압수수색을 벌인 제일2저축은행은 18일 금융위원회로부터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돼 6개월간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7개 저축은행 가운데 하나다. 정 행장이 투신자살한 23일 오전 검찰은 제일2저축은행 외에도 토마토저축은행과 프라임저축은행 등 최근 영업정지된 저축은행 7곳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불법대출과 대주주의 비리 등 저축은행의 비리를 밝히기 위해서였다.○ 잇단 악재에 심리적 압박 느낀 듯 업계에서는 정 행장이 불법대출 등 비리에 깊숙이 관여했을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계열사 여·수신은 보통 모회사 결정을 따르는 데다 정 행장은 아직 전무급이라 중요 의사결정에 발언권이 그다지 세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제일저축은행 관계자는 “정 행장은 검찰 소환 대상에서도 제외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5월부터 제일저축은행의 뱅크런(대량 예금인출)이 제일2저축은행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예금이 계속 빠져나가고 제일저축은행이 제일2저축은행의 매각을 추진한 데 따른 스트레스는 심했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제일2저축은행의 한 임원은 “정 행장은 육군 학사장교 출신으로 강직한 성품이었다”며 “최근 영업정지와 이날 압수수색 등 악재가 겹쳤고 25년간 관리해온 단골 고객들에게 피해를 끼친 것에 견딜 수 없는 심리적 압박을 받은 것 같다”고 전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김철중 기자 tnf@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