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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송평인 논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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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4~2024-11-23
칼럼94%
사설/칼럼3%
문학/출판3%
  • [횡설수설/송평인]경솔한 교과서

    미국 국무부는 한 나라의 국민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그 나라의 교과서를 연구하는 직원을 두고 있다. 교과서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 나라 구성원들의 인식틀을 형성한다. 종교의 권위가 지배하던 과거 사서삼경(四書三經)이나 성경, 꾸란의 역할을 오늘날 세속 국가에서는 학교의 교과서가 수행한다. 어린 학생들은 선생님을 통해 교과서에서 배우는 내용은 의심할 바 없는 사실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교과서를 책 중에서 가장 신중하게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공식 문자로 채택한 적이 없는데도 우리나라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 다섯 종류에 그런 것처럼 허위 사실이 실려 있다. 찌아찌아족이 부족 언어를 표기할 문자가 없어 한글을 배우고 활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공식 문자로까지 채택하지는 않았다. 인도네시아는 지방어 중 고유 문자가 있는 자바어 등을 제외하고는 로마자 이외의 언어 표기를 허용하지 않는다. 언론이 한글의 우수성을 강조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과장해 보도한 것을 확인 절차 없이 실었다가 오류를 범했다. ▷한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는 안철수 대선후보가 “군대에 입대해 내무반에 들어가고 나서야 가족들에게 연락하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는 내용의 만화가 들어 있다. 안 후보는 2009년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입대일 새벽까지 바이러스 백신 개발에 몰두하다 가족들에게 얘기도 못하고 군대에 간 것처럼 오해를 살 만한 말을 했다. 안 후보의 부인 김미경 교수가 한 인터뷰에서 “(안 후보를 군대 가는) 기차에 태워 보내고 혼자 돌아오는데 무지 섭섭했다”고 말해 그 내용을 부인했다. 이 교과서로 배운 유권자들은 잘못된 인식으로 안 후보에 대해 호감을 가질 수 있다. ▷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가 국정에서 검인정 체제로 바뀌면서 우리 시대의 살아 있는 인물이나 사건을 많이 등장시키고 있다. 친근한 소재로 학생들의 흥미를 끌어 학습효과를 높이려 한 점은 좋지만 오류를 범하거나 정치적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 국사 교과서에서는 현대사 비중을 높였다가 현대사 서술을 둘러싸고 보수와 진보 진영 간의 다툼이 벌어져 비중을 다시 줄이기로 했다. 교과서가 지금 살고 있는 시대를 다룰 때는 사실 여부를 철저히 확인하고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2-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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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앞뒤 모르고 스웨덴 따라하기

    옷을 입을 때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면 나머지 단추도 줄줄이 어긋나는 법이다. 지난해 무상 급식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더니 이제는 무상 보육의 단추도 어긋나고 있다. 서구 선진국의 보육과 급식 정책은 아동수당 지급을 전제로 한다. 우리나라가 아동수당 같은 큰 틀을 정하지 않고 표심을 앞세워 임시변통적으로 정책을 수립하다 보니 그 모양이 자꾸 이상해지는 것이다. 서구에서 아동 수당은 출산 장려를 위해 생겼다. 아이가 태어나서 성년이 될 때까지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일정액을 지급한다. 이 돈이 학교에 다니는 학생에게는 학용품비나 급식비가 되는 셈이다. 서구 선진국에 대체로 학교 급식이 아예 없거나 있어도 무상이 아닌 것은 아동수당이 지급되기 때문이다. 복지 원칙에 어긋난 양육보조금 스웨덴은 특별한 경우다. 스웨덴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호황기에 노동력 부족으로 여성을 대거 근로현장에 끌어들였다. 영국 프랑스 독일도 마찬가지이지만 이들 나라는 힘든 일에는 외국 노동자를 썼다. 그러나 외국인에 배타적인 스웨덴은 자국 여성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했다. 스웨덴의 여성 취업률이 영국 프랑스 독일에 비해서도 훨씬 높은 이유다. 스웨덴에서는 일할 의지가 있는 여성은 거의 모두 일한다고 보면 된다. 이런 스웨덴이니까 무상 급식이 도입됐다. 우리나라는 많은 주부들이 집에 있는데 무상 급식이라니 앞뒤가 안 맞는다. 보육 서비스는 출산 장려가 아니라 여성의 경제활동 장려, 즉 맞벌이 여성 지원을 위한 제도다. 보육 서비스에 대해서는 모든 여성이 똑같은 권리를 갖는 것이 아니라 직장을 가진 여성이 우선권을 가진다. 문제는 전업 주부다. 이들이 보육시설을 이용하지 못할 경우 대신 양육보조금을 지원해야 하는가. 원칙적으로 아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서구 국가와 달리 직장 여성보다 전업 주부가 훨씬 많다. 전업 주부들이 직장 여성 우선의 서비스에 반발하자 정부가 굴복해 양육보조금을 만들었다. 서구에서 보육은 0∼2세와 2세 이후가 큰 차이가 있다. 0∼2세는 집에서 키우는 것이 원칙이다. 2세까지는 엄마와 같이 있는 것이 아이에게 좋다는 이유에서다. 이 기간에도 국가는 아동수당 외의 지원은 하지 않는다. 엄마가 아기를 키우려면 다니던 직장에서 휴가를 내야 하는데 줄어든 수입은 어떻게 보충할 것인가. 스웨덴에서는 개인 절반, 기업 절반으로 미리 직장에서 기금을 적립했다가 월급의 80% 정도를 2년간 지급한다. 이런 방식도 대부분 여성이 직장에 다닐 때 가능하므로 우리와는 동떨어진 얘기다. 일자리 없는 아동복지는 낭비다 정부가 얼마 전 0∼5세 전면 무상 보육과 양육보조금 지급에서 0∼2세를 보류하자 정치권에서 일제히 반발했다. 새누리당의 박근혜 대선후보는 “0∼5세까지 보육시설 이용과 양육보조금 지원 둘 중 하나를 선택해 전 계층에 지원해야 한다는 것은 새누리당의 약속”이라며 “반드시 지키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의 안철수 후보도 같은 약속을 했다. 그러나 양육보조금은 경제활동을 장려하기는커녕 일하려는 여성도 주저앉히는 지원인 만큼 없애는 것이 옳다. 그 대신 서구처럼 아동수당을 주는 방향으로 가되 실정에 맞게 소득 상위층을 제외하는 것이 방법이다. 가장 큰 문제는 아동 복지가 일과 결합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스웨덴에서 무상 급식과 보육이 있고 나서 여성들이 취업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여성들이 취업을 하면서 이들이 시간 대신 세금을 내는 대가로 무상 급식과 보육이 확대됐다. 이 관계가 우리나라에서는 뒤집혔다. 우리나라는 자녀의 학원비라도 벌어볼까 해서 일하고 싶어 하는 여성이 수두룩하다. 그러나 여성을 위한 일자리는 고사하고 남성 가장을 위한 일자리도 모자라는 형편이다. 대선후보들이 아동 복지를 늘려주고 싶으면 먼저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2-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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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정치인의 눈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올해 3월 세 번째 집권을 한 뒤 군중집회에서 눈물을 보였다. 정보기관 출신의 냉정함에 야성미를 뽐내온 그가 눈물을 흘린 것에 대해 “그런 남자도 우냐”는 반응이 나왔다. 2008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 경선에 나선 힐러리 클린턴 장관은 강행군인 선거 일정 속에 “머리 손질은 누가 도와주냐”는 질문을 받자 “쉽지 않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힐러리 캠프는 미국판 철의 여인이 그토록 바라던 인간적 면모를 보여줬다고 반겼다. 정치인이 우는 것은 아기가 관심을 받기 위해 우는 것과 비슷하다는 분석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눈물 정치’의 덕을 본 적이 있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시절 3위에 머물고 당 소속 의원이 이탈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문성근의 지지 연설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렸는데 그 모습이 TV 광고로 제작돼 그의 인간성을 부각시키는 데 도움을 줬다. 박근혜 후보는 2004년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이 핵과 ‘차떼기당’ 역풍에 시달릴 때 천막당사 출범 소감을 밝히는 눈물의 TV 연설로 예상외 선전을 이끌었다. ▷정치인의 눈물도 흔해지면 식상한 법이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는 한 달 사이 두 번이나 울었다. 지난달 21일 쌍용차 해고 근로자 가족들을 만나 사연을 듣고 울 때만 해도 ‘감성적인 후보’라는 느낌을 줬는데 최근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보면서 눈물을 훔쳤다는 소식에는 차라리 ‘감상적인 후보’라는 인상이 든다. 남자도 나이가 들면 여성호르몬이 나와 쉽게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중년 남성이라면 굳이 정치인이 아니더라도 남이 보는 데서 TV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울지 않을까 조심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2010년 천안함 영결식장에서 추모 연설 도중 북받치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차가운 바다에 부하를 수장한 국군 통수권자로서의 참담한 심정을 나타내는 것이었는데도 위엄을 보이지 못했다는 일각의 비판을 받았다. 힐러리 장관은 눈물 덕분에 지지율을 일시 만회했지만 “대통령에 오를 만큼 강하지 않다”는 인상을 줘 결국 패했다. 존 베이너 미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회고하다 자주 울어 울보라는 별명을 얻었다. 정치인의 눈물이 꼭 득이 된다고 할 수 없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2-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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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대선 임박해 ‘투표시간 헌소’로 헌재 시험하는 민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이 그제 대선을 71일 남겨두고 투표시간을 오전 6시∼오후 6시로 정한 공직선거법 조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냈다. 민변은 이 조항이 투표일에도 일하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투표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과 같이 헌재가 최대한 신속히 처리한 사건도 결정까지 63일 걸렸다. 헌재가 민변의 헌소를 서둘러 진행해 설혹 인용 결정을 내린다고 해도 국회에서 선거법을 개정하고 선거의 실무준비를 하자면 올해 안에는 힘들다. 민변의 헌소가 정치 공세로 보이는 이유다. 민주통합당은 지난달 4일 여론 수렴도 없이 투표시간을 오후 9시까지 늘리는 선거법 개정안을 제출했으나 새누리당의 반대로 상임위 통과가 무산됐다. 헌재에서 투표시간을 연장하는 취지의 결정이 나더라도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법 개정이 지체될 수밖에 없다. 젊은층의 투표율이 노장층에 비해 저조한 것이 사실이다. 젊은층의 지지가 높은 야권은 노장층은 오전에 투표하고 젊은 세대는 오후에 투표하는 습관이 있기 때문에 투표시간 마감을 연장하면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정략적으로만 접근할 문제는 아니다. 일본이 1998년 투표시간 마감을 오후 6시에서 오후 8시로 2시간 연장해 투표율 상승효과를 거뒀지만 투표일이 평일 근무일이어서 한국과는 사정이 다르다. 미국과 영국의 투표시간이 오후 9시나 10시까지로 늦게 끝나는 것도 일본처럼 평일에 투표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투표일을 임시 공휴일로 정해 일요일을 이용해 투표하는 프랑스와 독일보다도 더 큰 편의를 국민에게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투표시간을 연장해도 투표율 상승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 투표시간 연장은 인적 물적 비용의 증가나 투표관리의 효율도 함께 고려해서 판단해야 한다. 투표시간 연장이 투표율을 높이는 유일한 대안도 아니다. 투표에 참여하는 젊은이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거나 비정규직 근로자에게 투표할 시간을 주는 고용주에게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방법도 있다. 젊은층의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투표시간 연장이 꼭 필요하다면 충분한 시일을 두고 과학적 실태 조사를 벌인 뒤에 추진하는 것이 옳다.}

    • 2012-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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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시인과 정치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방송극에 나온 이후 청소년 사이에서 널리 애송되기 시작한 안도현의 시다. 안 시인은 일상의 작고 하찮은 것에서 소재를 찾아 감동을 주는 시를 썼다. 그가 얼마 전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 캠프의 공동 선대위원장을 맡더니 4·11총선에서 민주당 비례대표 의원이 된 도종환 시인과 함께 문 후보의 멘토단을 조직하는 데 앞장섰다. 두 시인이 포함된 멘토단 37명 중 31명이 시인 소설가 평론가 등 문학계 인사다. ▷안 시인은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이다. ‘접시꽃 당신’의 도 시인 역시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으로 전교조 충북지부장을 지냈다. ‘고양이 학교’라는 아동 판타지 소설을 쓰기도 한 김진경 시인은 전교조 초대 정책실장 출신으로 노무현 정부에서 교육문화비서관을 지냈다. 원로뻘의 신경림과 정희성 시인은 둘 다 민주당 경선과정에서는 김두관 후보를 지지했다가 이번에는 문 후보의 멘토로 이름을 올렸다. 그 밖에 일반인에게는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은 시인 13명이 더 있다. ▷미국 정치는 선거 때 할리우드 스타들의 도움을 받는다. 얼마 전 영화배우이자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공화당 밋 롬니 후보의 유세장에서 빈 의자를 세워놓고 민주당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을 신랄히 비판해 화제가 됐다. 할리우드는 사실 공화당보다 민주당 성향이 강하다. 가수 레이디 가가,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배우 조지 클루니 등이 민주당을 지지한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연예인은 유명하니까 정치가 그 이름을 빌리려 한다. 그러나 문인의 인지도는 몇몇 베스트셀러 작가를 제외하고는 초라하다. 시인들이 보잘것없는 인지도를 이용해 특정 후보의 지지를 유도하는 모습은 시인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시인이 정치에 참여하고 싶으면 시로써 하는 것이 좋다. 물론 시인이 시로써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할 때, 즉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을 때 시인은 정치에 뛰어들거나 정치적 행동을 할 수 있다. 유신 시절의 저항 시인 김지하가 그랬다. 그런 시절은 지났다. 시인에게 혁명가는 몰라도 현실 정치인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 국회의원이 된 도종환 시인에게 ‘근조(謹弔)’라는 리본이 달린 화분을 보낸 사람의 생각도 아마 그럴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2-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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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새누리당 영입 過慾 볼썽사납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 캠프가 선대위에 외부 인사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불협화음이 생기고 있다. 박 후보는 지난달 28일 대구·경북 선대위 출범식에서 국민적 인기가 높은 런던 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 김재범 선수에게 직접 공동 선대위원장 임명장을 전달했다가 사흘 뒤 취소했다. 김 선수는 친분이 있는 경북도당 청년위원장이 ‘식사나 하러 오라’고 해 갔다가 현장에서 제의를 받고 즉석에서 자리를 맡았다고 한다. 김 선수는 그의 새누리당행을 비난하는 악성 댓글에 시달리다 결국 스스로 물러났다. 김 선수의 정치적 의지를 충분히 따져보지 않고 인기만 탐낸 새누리당의 과욕(過慾)이 빚은 망신살이다. 새누리당은 또 국민행복추진위원회에 지난달 28일 연극배우 손숙, 김성녀 씨와 시인 김용택 씨를 영입했다고 발표했다가 당일 저녁 명단에서 삭제하는 소동을 벌였다. 김대중(DJ) 정부에서 환경부 장관을 지낸 손숙 씨는 “새누리당과는 정치적 성향이 다른데 내가 어떻게 박 후보 캠프에 이름을 올릴 수 있겠느냐”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새누리당 국민대통합위원장 자리에 거론된 박정희 시대의 저항시인 김지하 씨는 공개적으로 거부 의사를 밝혔다. 정치할 뜻도 없는 김 시인이 선거용 소모품으로 쓰이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박 후보,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정책이 큰 틀에서 서로 수렴하면서 세 후보 모두 외연(外延)을 확대할 수 있는 인물 영입 경쟁에 애쓰는 모습이다. 박 후보가 2030세대와 중도층에 호소력 있는 인물 영입에 사활을 거는 사정을 모르지는 않지만 너무 조급하다는 인상을 주면 오히려 마이너스 효과를 낼 수 있다. 시대가 바뀌었는데 새누리당의 인물 영입 방식은 과거 그대로인 것 같다. 삼고초려(三顧草廬)의 공을 들여도 쉽지 않은 인물을 언론에 이름부터 띄워놓고 당사자의 반응을 보자는 식이다. 유력 후보가 불러주면 앞다퉈 달려올 정도의 사람이라면 영입 가치도 없다. 새누리당은 친노(親盧) 중심의 민주당에서 홀대를 받은 한광옥 김경재 등 옛 DJ계 인사들의 영입도 타진하고 있다. 오랜 세월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DJ계 인사의 영입이 새누리당에 화해와 통합의 의미를 줄 수는 있겠지만 그들을 따라 DJ 지지자들의 마음이 얼마나 옮겨올지는 미지수다. 이미지 쇄신을 위한 ‘묻지 마’ 영입은 핵심 지지층의 이반(離反)을 불러올 수도 있다.}

    • 2012-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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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민주당, 유신헌법이 어디 있다고 철폐 주장하나

    정청래 의원 등 민주통합당 소속 의원 20명과 최근 통합진보당을 탈당한 무소속 강동원 의원이 유신헌법 철폐 결의안을 발의했다. 결의안은 유신헌법이 내용과 형식에서 무효임을 천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겨냥한 정치 공세의 의미가 짙은 결의안이다. 민주당이 당론으로 지지할지는 미지수이지만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과거사를 반성했다면 그 잘못을 인정한 유신헌법 철폐안에 앞장서야 한다”고 압박했다. 유신헌법은 1980년 제5공화국 헌법의 출현과 함께 사라졌고 5공화국 헌법은 1987년 현행 헌법이 만들어지면서 사라졌다.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유신헌법이 도대체 어디에 있다고 철폐하겠다느니 마느니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과거 헌법의 철폐는 그에 기초한 법률관계를 흔들어 놓아 불필요한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 헌법의 제정과 폐지는 궁극적으로 국민투표로 이뤄진다. 내용이야 어찌됐든 국민투표를 거쳐 제정된 유신헌법을 국회 표결만으로 폐기한다는 것도 법률체계상 맞지 않는다. 또 민주당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유신시절 사망한 장준하 씨의 사인(死因) 관련 증인 채택을 요구하고 있다. 장 씨의 죽음에 대해서는 1993년 김영삼 정부의 ‘장준하 선생 사인 규명 진상조사위원회’와 2003년 노무현 정부의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재조사를 벌였으나 실족사(失足死)라는 최초 수사의 결론을 뒤집지 못했다. 이번에 이장(移葬)을 계기로 함몰 흔적이 있는 유골이 새로 공개됐으나 검시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사인 재규명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다. 대선이 코앞인데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의 국정감사는 적절치 못하다. 박 후보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참배와 안철수 후보의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 참배에 대해 다수 국민이 지지를 보냈다.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국립현충원에 들르면서도 박 전 대통령 묘역에 가지 않았고 뒤늦은 참배에 대해서도 여러 모로 저울질을 하고 있다. 국민은 박정희의 과(過)만큼이나 공(功)도 잘 알고 있다. 문 후보가 통합의 지도자가 되려면 유신헌법 철폐안 같은 발상을 비판하고 장준하 사건 의혹 규명을 대선 이후로 넘기자는 제안을 할 수 있어야 한다.}

    • 2012-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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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대선 캠프에 몰려드는 교수들의 본업과 副業

    소액주주 운동으로 유명한 장하성 고려대 교수는 무소속 안철수 후보 캠프로 갔다. 그는 안 후보 캠프에서 경제민주화 정책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는다. 일간지에 고정 칼럼을 쓰는 송호근 서울대 교수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와달라는 제의를 받고 고민하는 모양이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캠프에도 북한 전문가 고유환 동국대 교수 등이 새로 가담했다. 각 캠프에서 공식 직함을 가진 교수가 수십 명에 이르고 물밑에서 도와주는 교수까지 합치면 캠프별로 100∼300명에 이른다. 작은 대학교를 하나 만들어도 될 만한 인원이다. 대선후보들은 교수의 전문성을 활용하기보다는 이름이 널리 알려진 교수를 영입해 후보의 이미지를 높이려고 한다. 박 후보 캠프의 이상돈 중앙대 교수는 전공이 국제환경법이라고 하지만 환경과는 동떨어진 정치쇄신특위 위원으로 일한다. 캠프에 몸담지는 않았지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이심전심 야권을 돕는 조국 서울대 교수는 전공(형법)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종횡무진이다. 정치권 주변에서 얼씬거리는 교수들의 행태를 보면 폴리페서(polifessor·politics+professor)란 말은 너무 점잖고 폴리티션(politician·정치인) 교수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릴 정도다. 교수가 정치를 겸업하면 본업인 연구와 강의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 교수가 학기 중에 갑자기 캠프에 뛰어들면 학생들이 최대의 피해자다. 개인지도가 중요한 대학원생은 교수 때문에 논문 작성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교수의 현실정치 참여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정치가 정책 경쟁이 되려면 전문가의 정치 참여가 활발해야 한다. 교수는 중요한 전문가 그룹 중 하나다. 하지만 현실 경험이 부족한 교수의 섣부른 정치 참여는 부작용을 낳기 쉽다. 노무현 정부의 경제참모였던 이정우 경북대 교수는 경제학의 비주류 중에서도 비주류인 헨리 조지의 토지 공개념을 들고나와 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흔들었다. 그는 이번에 다시 문재인 캠프에 참여했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교수를 선호해 정권 초기 청와대 비서진을 교수 중심으로 꾸렸다가 촛불시위에 호되게 당하고 나서 모두 교체했다. 교수들은 지지 후보가 당선되면 정권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겠지만 떨어져도 학교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본업보다 부업(副業)에 열심인 이들이 밤늦게까지 연구실의 불을 밝히는 교수들의 의욕을 꺾지 말아야 할 것이다.[바로잡습니다]‘대선 캠프에 몰려드는 교수들의 본업과 副業’ 제하의 사설 중 “이정우 경북대 교수는 경제학의 비주류 중에서도 비주류인 헨리 조지의 토지 전면 국유화 주장을 들고 나와”라는 대목에서 “헨리 조지의 토지 전면 국유화 주장”이라는 표현을 “헨리 조지의 토지 공개념”으로 바로잡습니다. 이 교수는 “토지 공개념은 토지의 전면 국유화가 아니라 거래세를 인하하고 보유세를 인상하자는 것이 핵심 주장”이라고 알려왔습니다.}

    • 2012-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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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흩어진 안철수 멘토들

    책사(策士)는 예로부터 자기를 써주는 사람을 찾아다니는 법이다. 맹자는 추나라 사람이지만 위나라에서 혜왕의 멘토 역할을 하다가 그 아들 양왕이 도무지 임금답지 못하자 제나라로 떠나 거기서 선왕의 멘토 역할을 했다. 그 전에 공자도 마찬가지였다. 공자는 노나라 사람이지만 제나라로 가서 자리를 구했다. 그러나 결국 뜻을 이루진 못하고 돌아와 제자를 키우는 데 여생을 바쳤다. 노자의 눈에는 이런 공맹의 무리가 자리에 연연하는 해바라기 지식인으로 비치기도 했다. ▷한나라당 이회창의 책사였던 윤여준이 민주통합당 문재인의 캠프로 갔다. 새누리당 박근혜 캠프의 김종인은 현 민주당의 한 전신인 새천년민주당에서 부대표까지 지냈다.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후 구조조정을 지휘했던 이헌재는 신자유주의에 비판적인 무소속 안철수 후보 캠프에 가 있다. 대선후보들이 지지 유권자의 확장을 위해서라면 반대 진영의 인물을 끌어오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정체성 없는 ‘묻지마 영입’으로 정당정치를 훼손한다는 비판과 함께 이종교배로 극단의 정치를 완화한다는 긍정의 목소리도 나온다. ▷윤여준과 김종인은 지난해 안철수에게 정치적 조언을 해주다가 사이가 틀어져 떨어져 나갔다. 윤여준은 한 인터뷰에서 박근혜 쪽에서 자신을 찾지 않는 데 서운함을 토로한 적이 있다. 그는 얼마 후 진보 원로 백낙청의 계간지 ‘창작과 비평’에 보수 측 인사로는 보기 드물게 대담자로 등장하더니 이번에 문재인 캠프로 갔다. 김종인은 이번 대선을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의 구도로 본다고 말한 적이 있다. 얼마 후 박근혜에게 갔다. 안철수의 새 멘토 자리는 이헌재가 차지했지만 자리가 탄탄하지는 않은 듯하다. ▷올해 윤여준의 나이 73세, 김종인은 72세, 이헌재는 68세다. 요새는 70세는 돼야 노인이라니까 그 기준으로 보면 윤여준과 김종인은 노인뻘이고 이헌재도 곧 노인이 된다. 기자 출신의 윤여준은 전두환 정부에서부터 청와대 비서관 근무를 했다. 경제학자 출신의 김종인은 전두환의 집권당인 민정당의 창당 국회의원이었다. 이헌재는 박정희 정권에서 잘나가던 재무부 관리였다. 높은 자리를 다 해본 이들이 또 무슨 욕심이 있어서 저러는가 흘겨보는 눈길도 있지만 그들의 경륜이 후보의 안정감과 균형감을 높이고 있는 점도 있을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2-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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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박근혜의 아버지 비판은 윤리적인가

    5·16, 유신, 인혁당 재판이 헌정가치를 훼손했다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의 사과는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불효(不孝)인가 아닌가. 프랑스 바칼로레아 철학 시험처럼 난해해 보이는 이 질문은 사실 중요한 윤리적 의미를 담고 있다. 대학 시절 읽은 소학(小學)에서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대목이 있다. 아버지가 잘못했을 때 자식의 처신, 임금이 잘못했을 때 신하의 처신, 스승이 잘못했을 때 제자의 처신을 다룬 대목이다. 아버지가 잘못했을 때 자식은 그 잘못을 감추는 일은 있어도 고치겠다고 나설 수는 없다. 그러나 임금이 잘못했을 때 신하는 임금의 얼굴색이 변해도 잘못을 지적해야 한다. 스승이 잘못했을 때는? 그런 경우는 없다. 스승에게 지적할 잘못이 있으면 이미 스승이 아니다. 소학이 답할 수 없는 윤리적 난제 박근혜가 박정희재단의 이사장 정도로 살아가려고 한다면 아버지의 잘못이 있더라도 불가피했다고 옹호하는 것이 효(孝)다. 자식으로서 아버지를 비판할 수 없지만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사람으로 대통령이었던 아버지를 비판할 수 있는가. 소학은 부자(父子)의 윤리와 군신(君臣)의 윤리는 다르다고 했지만 부자가 곧 군신인 경우의 윤리는 답하지 않았다. 일본 에도(江戶) 시대 유학은 치자(治者)의 윤리와 피치자(被治者)의 윤리를 구별해 그 해답을 추구했다. 46인의 사무라이가 억울하게 죽은 주군의 원수를 갚았다. 이들을 처형해야 하는가가 논란이 됐다. 사무라이의 복수는 의롭다고 하겠지만 그 의로움은 그들 무리에서나 한정되는 얘기다. 막부는 그들을 처형했다. 사무라이의 의리는 사적으로 옳지만 공적으로 옳지 않다. 일본 유학은 개인 윤리와 정치 윤리의 연속성을 끊음으로써 공(公)을 사(私)로부터 분리시키고 근대화를 준비했다는 것이 일본 정치학자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의 주장이다. 조선 효종 사후의 예송(禮訟)은 그 함의를 끝까지 밀고 나갔다면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을지 모른다는 게 사회학자인 경희대 김상준 교수의 생각이다. 송시열과 허목은 죽은 소현세자의 동생인 효종을 인조의 맏아들로 볼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갖고 논쟁을 벌였다. 나중에 논쟁에 끼어든 윤휴는 효종은 임금이기 때문에 맏아들이라고 함으로써 가례(家禮)로부터 왕례(王禮)의 독자성을 주장했다. 치자의 윤리가 피치자의 윤리로부터 분리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왕(王)도 신(臣)도 똑같은 인륜에 지배된다는 노론의 이념이 지배한 조선 후기 사회는 그 논리를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했다. 자식이 아버지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개인 윤리에서는 불효다. 그러나 통치자는 아버지라도 잘못이 있으면 바로잡는 게 도리다. 동생이 형을 꾸짖는 것은 집에서는 예의가 아니지만 그 동생이 대통령이라면 주저없이 해야 한다. 그것을 못해서 노건평 씨와 이상득 씨가 감옥에 갔다. 박씨 집안의 장녀로서가 아니라 정치인으로서 박근혜의 아버지 비판은 따라서 윤리적이다. 박근혜가 아버지의 명예회복에 사로잡혀 있는 한 효녀는 될지언정 통치자는 될 수 없다. 박정희 역시 자기 시대의 제약 속에 살았던 사람이다. 유신은 헌정(憲政)을 유린한 독재였고 인혁당 사형선고는 그 시대의 가장 암울한 순간이었다. 아버지라도 넘어서는 게 정치의 윤리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개념을 사용해 정신적 부친 살해가 문명의 발전을 이끌었다고 했다. 황금시대가 과거에 있었다고 보는 사회에서 오이디푸스는 있어서는 안되는 인간이다. 그러나 미래가 과거보다 나을 것으로 보는 사회는 정신적 부친 살해를 감행한다. 박정희라면 개인의 윤리와 구별된 정치의 도리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는 저승에서 딸에 대한 애정을 이렇게 표현할지 모른다. “내가 죽도록 사랑한 이 나라를 네가 발전시키고 싶다면 네가 먼저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고.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2-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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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고무 인간의 탈옥

    1997년 1월 20일 부산교도소. 감방 화장실 환풍구의 쇠창살 2개가 뜯겨 있고 죄수 신창원이 사라졌다. 탈옥 준비는 치밀했다. 교도소 작업장에서 쇠톱 2개를 신발 밑창 고무에 홈을 내 숨긴 뒤 감방으로 들여왔다. 창살 절단 작업은 소음을 숨기기 위해 음악 방송이 나오는 오후 6∼8시에 했다. 작업이 끝나면 껌으로 절단 부위를 붙여놓아 교도관들을 속였다. 가로 33cm, 세로 30cm 크기의 환풍구를 빠져나가기 위해 80kg이던 체중을 60kg으로 줄였다. ▷탈옥에는 예상을 뛰어넘는 수(手)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높았던 미국 TV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에서 천재 건축가 마이클은 형 링컨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형을 선고받자 탈옥시킬 계획을 세운다. 그는 교도소 설계도를 온몸에 문신으로 새긴 뒤 일부러 은행을 털고 감옥에 간다. 그들은 화장실 변기를 뜯어내고 하수구를 통해 탈옥한다. 영화 ‘쇼생크 탈출’도 탈옥 얘기다. 주인공 앤디의 감방에는 1940년대 할리우드 섹시스타 리타 헤이워스의 핀업 사진이 붙어 있다. 앤디의 탈옥 소식에 교도소장이 감방을 찾아 핀업 사진을 뜯어내자 앤디가 탈옥을 하기 위해 뚫은 구멍이 나타났다. ▷1970년대 홍콩에는 ‘고무 인간’으로 불리던 도둑 쉐용선이 있었다. 창문 하나 없는 특별감방에 수감된 그는 꾀병을 부려 의무실로 실려 간 뒤 의사를 묶고 너비 20cm도 안 되는 작은 창문 앞에 섰다. 그의 곧았던 허리가 구부러졌다. 이어 툭 하는 소리가 나고 어깨가 탈골된 것처럼 축 처졌다가 가슴 앞으로 접혔다. 가슴과 머리가 차례로 안쪽으로 구부러졌다. 고무 인간의 몸이 절반으로 줄어 창문으로 빠져나갔다. ▷17일 대구 동부경찰서에서 전과 25범 최모 씨가 경찰관이 조는 틈을 타 가로 45cm, 세로 16cm의 직사각형 배식구를 통해 유치장을 탈출했다. 세로가 성인의 손바닥 길이보다도 3∼4cm 짧은 곳으로 성인의 머리가 빠져나갔다. 범인이 키 165cm, 몸무게 52kg으로 왜소한 체구라고 하지만 믿기지 않는다. 최 씨는 베개에 이불을 덮어놓아 잠을 자고 있는 것으로 경찰이 착각하게 만들었는데, 이 수법은 영화 ‘알카트라스 탈출’에서 배운 모양이다. 경찰서 유치장 배식구만이 아니라 가정집 보안용 창살도 고무 인간의 사이즈에 맞춰 줄여야 할 판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2-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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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의자놀이’의 거짓말

    소설가 공지영의 최근작 ‘의자놀이’는 ‘첫 르포르타주’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그는 2004년 사형수들을 인터뷰해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쓰고, 2009년 한 청각장애학교의 성폭행 사건을 추적해 ‘도가니’를 쓴 이후 첫 르포르타주로 쌍용자동차 해직 노동자들의 사연을 다룬 ‘의자놀이’를 썼다. ‘우리들의…’가 실화에서 영감을 얻어 쓴 소설이라면 ‘도가니’는 실화를 바탕으로 쓴 팩션(faction)이고, ‘의자놀이’는 실화 자체를 지향하는 르포르타주다. ▷르포르타주의 생명은 현장이다. 르포르타주를 쓰기 위해서는 작가가 현장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공지영은 쌍용차 사태의 가장 치열한 현장이었다고 할 수 있는 2009년 77일간의 파업에 없었다. 파업을 하는 측과 막는 측의 격심한 폭력 대립을 촉발한 원인에 대해서는 양측의 견해가 엇갈린다. 현장에 대한 기억이 있다면 어느 한편의 주장에 휩쓸리는 것을 막아줄 텐데 불행하게도 공지영에게는 그런 기억이 없다. 그런데도 그는 일방적으로 한편의 말만 전달하고 다른 편의 말은 아예 듣지 않았다. 그것은 르포르타주가 추구하는 정신이 아니다. ▷책 표지에는 ‘77일간의 뜨거운 파업의 순간부터 22번째 죽음까지, 작가적 양심으로 써내려간 공지영이 쓴’이라는 광고문구가 있다. 쌍용차 사태를 직접 보지 못한 공지영은 대신 죽은 22명의 사연을 파헤치는 르포르타주를 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도 않았다. 22명 중 자살자는 12명으로 줄어든다. 자살자 중에서는 무급휴직자 부부 한 쌍과 정리해고자 한 명, 희망퇴직자 두 명 정도의 사연만 비교적 소상히 나온다. 죽음은 그 하나하나가 귀중한 것인데 나머지 죽음은 숫자로만 거론됐다. 쌍용차 사태와 무관한 죽음까지 포함시킨 그 숫자가 크게 과장됐기 때문일 것이다. ▷공지영은 르포르타주를 쓰기로 결심한 지난해 쌍용차의 새 소유주가 인도 마힌드라사라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런 그가 복잡한 회계법인의 감사보고서까지 분석하면서 쌍용차의 자산 가치를 일부러 낮게 평가해 정리해고 인원을 늘리고 헐값 매각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 논란은 금융감독위원회 등의 조사로 이미 문제없음으로 결론이 난 것이다. ‘의자놀이’는 르포르타주가 아니라 정치적 팸플릿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2-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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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최헌의 ‘트로트 고고’

    내가 중학생이 되던 무렵인 1976년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와 최헌의 ‘오동잎’이 히트를 쳤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라디오로만 들을 수 있었고 TV에서는 최헌만 봤다. 내 기억 속에 조용필을 처음 본 것은 1979년 이후다. 조용필이 대마초 파동에 휘말려 TV에 나올 수 없었던 4년간은 최헌의 독무대나 다름없었다. 1979년 조용필이 ‘창밖의 여자’를 들고 나온 이후 1980년대를 휩쓸기 전까지 남자가수 중에는 그가 최고였다. ▷TV만 틀면 나오던 최헌의 노래가 지겨워지던 1977년 어느날, 하굣길 버스에서 산울림의 ‘아니 벌써’가 흘러나왔다. 처음 듣는 그 노래가 너무 좋아서 끝까지 다 듣느라 집 앞에 내리지 못했다. 사실 ‘아니 벌써’는 새로운 게 아니라 새롭게 들렸다고 하는 편이 정확하다. 이미 1975년 신중현과 엽전들의 ‘미인’ 같은 곡이 히트를 쳤지만 금세 금지곡이 된 그 곡을 듣지 못했다. 최헌 류의 곡을 트로트 고고라고 부른다. 음악평론가 신현준은 ‘한국팝의 고고학 1970’이란 책에서 “1970년대 중반 신중현과 송창식을 좋아하고 1970년대 후반 산울림과 활주로를 좋아한 사람들에게 이런 곡들은 ‘혐오의 대상’ 이상이 아닐 것이다”고 쓰고 있다. ▷최헌은 사실 그룹사운드 보컬 출신이다. 키보이스와 함께 1970년대 초의 대표적 그룹인 히식스에서, 조용필이 이 땅의 넘버원 기타리스트로 꼽은 김홍탁과 함께 활동했다. 음악평론가 강헌에 따르면 히식스는 보컬을 보강하기 위해 보컬과 세컨드 기타를 함께할 수 있는 멤버를 오디션하게 됐다. 리더인 김홍탁은 5명을 후보에 올려놓았다가 최종적으로 2명을 추렸는데 한 명이 최헌이고 또 한 명이 조용필이었다. 조용필은 비음이어서 허스키 보이스인 최헌이 뽑혔다. ▷유신은 가요에도 영향을 미쳤다. 남진과 나훈아는 1972년 가요 정화(淨化)운동에서 트로트가 왜색으로 몰리면서 TV에서 밀려났다. 그 빈자리를 송창식 등 세시봉 가수들의 포크송이 차지했다. 그룹사운드들은 장발 미니스커트 등 퇴폐풍조 단속에도 불구하고 호텔 고고클럽에서 명맥을 유지했으나 1975년 대마초 단속으로 궤멸됐다. 최헌은 살아남아 솔로로 전향해 성공을 거뒀다. 음악적 평가야 어떠하든 그가 별세한 지금 그 천부의 매력적인 목소리가 새삼 그리워진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2-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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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내곡동 사저 특검 與·野·靑 3자의 동상이몽

    국회에서 의결해 정부로 이송한 ‘내곡동 사저 특별검사법’은 특검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과거에 제정된 특검법들은 특검 후보자 추천을 청와대나 국회가 아닌 대한변호사협회나 대법원장이 하도록 했다. 이번 특검법은 국회 선출도 아니고, 민주통합당이 후보자 2명을 전부 추천하게 돼 있다. 민주당은 이명박 대통령 내곡동 사저 의혹 사건의 고발인이다. 고발인이 추천한 특검 후보 중에서 피조사자가 무조건 한 명을 골라야 하니 공정한 수사를 받을 권리를 침해당했다는 불만이 나올 만하다. 이런 법률이 국회를 통과한 데는 새누리당의 책임이 크다. 새누리당이 대선 승리를 위해 이명박 대통령과 차별화를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특검의 정치적 중립성까지 훼손하면서 대통령을 야당의 먹잇감으로 던져줬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법사위 소속 새누리당 의원 6명이 반대했지만 기권한 새누리당 의원 2명 때문에 통과됐다. 본회의에서도 재석 의원 238명 중 146명이 찬성해 통과됐다. 새누리당 지도부가 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든 말든 알아서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면 무책임하다. 역대 9차례 특검법 중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유일하다. 당시 측근비리 특검법에 대한 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정국을 마비시켰다. 이번 특검법의 대상은 이 대통령과 가족이 관련된 사건이다. 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수사 회피라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검찰은 올해 6월 이 대통령의 아들 시형 씨와 김인종 전 대통령경호처장 등 관련자 7명 전원을 불기소 처분해 ‘봐주기 수사’라는 논란이 일었다. 이 대통령은 떳떳하다면 가혹한 검증도 받아들여야 한다. 피조사자가 입맛대로 특검을 고를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당이 추천하는 특검을 대범하게 수용하는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 특검이 무리한 기소를 하면 법원이 최종적으로 퇴짜를 놓을 것이다. 다만 특정 정당이 특검 후보 추천을 독식하는 선례를 남기는 것은 우려스럽다. 이 대통령이 특검법을 수용할 경우 민주당도 중립적이고 균형 잡힌 인사를 특검으로 추천해야 한다. 특검이 불공정한 수사를 벌인다면 국민의 비난은 민주당에 쏠릴 것이다. 민주당이 내곡동 사저 의혹을 선거 쟁점으로 삼아봐야 이 대통령과 사실상 결별한 새누리당에 타격을 주기도 어렵다. 여야청(與野靑) 모두 동상이몽(同床異夢)에서 깨어나 국민의 의혹 해소를 위해 노력하기 바란다.}

    • 2012-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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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안철수의 정치 머신은?

    정치에는 머신이 필요하다. 정치에 웬 머신이냐고 할지 모르겠으나 영미권 정치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개념이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란 책에 이 용어를 그대로 가져다 쓴다. 우리가 정치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하는 것이라고 말할 때 조직에 해당하는 말이 머신이다.결국 민주당과의 단일화로 가나 안철수는 베버식으로 말하자면 카리스마적 지도자 유형이다. 대중의 강력한 추종을 받는 지도자는 대개 카리스마적 지도자다. 박근혜도 이런 지도자 유형에 속한다. 신의 은총이란 뜻의 카리스마는 대체 그 사람이 어떻게 그런 추종을 얻는지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사용된다. 안철수는 홀연히 혜성처럼 떠올랐다. 청춘콘서트나 무릎팍도사만으로 그가 부상한 이유를 다 설명하기 어렵다. 현재 민주당이 겪는 곤경은 문재인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 등 어느 후보도 박근혜나 안철수에 필적하는 카리스마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데서 비롯된다. 카리스마적 지도자라 할지라도 혼자 정치를 할 수는 없다. 그의 뜻을 실현시킬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 이런 조직은 통상 정당을 의미한다. 그러나 안철수가 정당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머신이라는 말이 여기서는 더 적합한 것 같다. 안철수는 아직도 대선 출마 여부를 밝히고 있지 않지만 대체로 그의 출마에 우호적인 쪽으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민주당의 후보 경선은 지지부진을 면치 못하고 당 안팎의 야권에서는 안철수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언론도 그의 출마를 기정사실화하면서 출마 이후의 상황으로 점차 관심을 돌리는 분위기다. 안철수에 대한 우려는 정치경험이 전무하다는 데 있다. 본인은 나쁜 경험은 없을수록 좋다는 쪽이니까 이런 우려는 안 하는지 모르겠다. 그런 그도 대선이 100여 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용할 수 있는 머신에 대해서는 걱정할 것이다. 그저 한번 나와보는 대선이 아니라 당선을 목표로 나오는 대선이라면 출마 선언은 그 머신에 대한 구상이 확실히 서고 난 다음이어야 할 것이다. 머신이란 말은 수공업적 명사(名士) 정당 체계로부터 기계공업적 대중 정당 체계로 넘어가면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지금 안철수는 장인이 도제 몇 명 데리고 일하듯이 ‘원시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출마를 선언하면 도와주겠다는 사람은 줄을 서겠지만 공장 기계처럼 일사불란하게 작동하는 머신을 조직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그가 4·11총선 전 신당 창당을 구상했다가 접었을 때 이런 생각은 포기한 것 같다. 그로서는 민주당의 머신을 이용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다. 그는 책 ‘안철수의 생각’을 통해 자신과 민주당의 정책유사성이 90% 이상 된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가 지금까지도 출마를 선언하지 않았다는 것은 민주당의 머신을 이용하겠다는 것으로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민주당에서 결정된 대선후보와의 단일화를 의미한다. 단일화의 방식만이 향후의 정치적 동력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과감한 인물이라야 운명을 잡는다 대선은 인물 이전에 판을 봐야 한다. 인물을 볼 때는 최선의 인물만 찾게 되지만 판을 볼 때는 최선과 차선의 인물이 동시에 눈에 들어온다. 가령 박근혜가 최선이라고 보는 사람은 박근혜가 패했을 때 문재인이 차선일지 안철수가 차선일지도 봐야 한다. 친노세력에 끌려다니는 문재인보다는 안철수가 유연하다고 보는 사람도 있겠고 정치 경험이 전무한 안철수보다는 문재인이 안정적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겠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운명의 신은 여신이다. 만약 당신이 그 여자를 손아귀에 넣고자 한다면 그녀를 과감히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키아벨리는 운명을 잡으려면 신중하기보다 과감해야 한다는 뜻에서 이런 비유를 사용했다. 안철수도 이제 신중하기보다 과감해져야 할 때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2-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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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조선족과 옌볜자치주

    중국어로 양고기 꼬치를 의미하는 양러우촨(羊肉串)은 중국 북방 거주민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다. 요즘 국내 거주 조선족들이 늘면서 거리의 음식점 간판에서 심심찮게 눈에 띄는 글자가 됐다. 우리말로 읽으려 할 때는 串자가 문제다. 串자는 일본만 해도 꼬치구이란 뜻의 구시야키(串燒) 등으로 많이 쓰이지만 우리말에서는 잘 쓰지 않는 한자다. 串의 한글 발음은 관, 곶, 찬 등으로 다양한데 꼬치를 의미할 때는 찬으로 발음한다. 羊肉串은 양육관이나 양육곶이 아니라 양육찬으로 읽어야 한다. ▷중국에 거주하는 동포는 재미동포나 재일동포와는 달리 재중동포보다는 조선족으로 부르는 것이 익숙하다. 러시아와 그 주변국에 거주하는 동포를 고려인(카레이스키)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조선족과 고려인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이전인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때 간도나 연해주로 이주한 한국인의 후손이 대부분이다. 냉전 시대에 한국이 중국이나 옛 소련과 단절하고 살았기 때문에 그곳 동포들이 낯설어서 조선족 고려인으로 불러왔지만 앞으로는 재중동포 재러시아동포로 바꿔가야 한다. ▷조선족은 지린(吉林) 헤이룽장(黑龍江) 랴오닝(遼寧) 등 중국 동북 3성에 주로 거주한다. 그중에서도 지린 성에 가장 많이 산다. 지린 성에는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가 있다. 중국 전체의 소수민족을 위한 5개 자치구와 30개 자치주 가운데 하나로 동북 3성에서 유일하다. 동북 3성은 과거 만주족이 많이 살던 곳으로 만주족자치주 같은 것은 없다. 옌볜자치주 일대는 옛 고구려 선조들이 말을 타고 호령하던 기상이 서린 곳이다. 한민족의 정신적 고향인 백두산(중국명 창바이 산)도 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자취도 많이 남아 있다. ▷중국 정부가 옌볜조선족자치주를 지정한 지 어제로 60년이 됐다. 자치주 주민 가운데 조선족 비율은 1953년의 70.5%에서 2010년 36.7%로 크게 감소했다. 한족의 비율이 절반을 넘어 조선족자치주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한국 기업의 ‘차이나 러시’가 이뤄지면서 조선족이 대거 고용돼 중국 전역으로 흩어졌고 ‘코리안 드림’을 찾아 한국에 온 조선족이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선족 디아스포라가 자치주 해체로 이어지지 않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2-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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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새누리당의 유신觀

    전태일의 분신은 박정희 정권이 유신을 선포하기 2년 전인 1970년에 일어났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화해와 통합 행보 차원에서 전태일 재단을 방문하려다 유족들의 거부와 쌍용차 노동자들의 저지로 발걸음을 돌렸다. 유신은 단순히 과거사가 아닌 모양이다. 작가 공지영은 최근작 ‘의자놀이’에서 자살한 쌍용차 노동자들 얘기를 시작하기 전에 그 서막처럼 전태일의 죽음을 거론한다. 김종인 새누리당 국민행복특별위원장은 박 후보가 쌍용차 노동자들도 만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은 “내가 찾아가고 손 내밀면 화해와 통합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오만한 독재자의 발상”이라며 “화해를 하려면 먼저 무엇이 다른지 그 거리를 좁혀야 한다”고 말했다. ▷유신은 박정희의 장기집권욕의 결과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박정희 자신은 북한으로부터의 안보 위기를 들어 유신을 했다. 후대에 유신을 경제적으로 설명하려는 사람들 중에서 옹호하는 측은 1, 2차 경제개발에 이은 중화학공업 육성을 위한 정치력 집중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반면 비판하는 측에서는 경제 위기를 폭력적인 노동 탄압을 통해 해결하려는 시도라고 분석한다. ▷박근혜 캠프 선거대책위원장이었던 홍사덕 전 의원은 유신에 대해 “수출 100억 달러 달성을 목표로 중화학공업을 육성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옹호했다. 그는 앞서 5·16에 대해서는 “태조의 조선 건국은 정몽주에게 물으면 역성혁명이지만 세종에게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며 “쿠데타와 혁명은 큰 차이가 없는 말”이라고 했다.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은 홍 전 의원의 유신 옹호 발언을 “국민을 무슨 행복한 돼지로 보느냐”고 비판했다. 그러나 5·16을 군사혁명이라고 하면서 유신을 비판하기 어렵고, 또 유신을 비판하면서 5·16은 쿠데타가 아니라고 하기 힘들다. 박 후보의 고민도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정신분석학자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야말로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봤다. 자식이 아버지를 넘어서지 않으면 자식은 아버지의 세계에 머물고 만다. 아버지를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가족의 윤리다. 치자(治者)가 되려는 사람이 가족의 윤리에 사로잡혀서는 곤란하다. 박 후보가 5·16과 유신을 자식의 눈으로 바라보는 데서 벗어날 때 국민이 눈에 들어오고 국민통합의 길도 새로 보일 것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2-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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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인터넷 글, 實名 강제 없어도 책임은 못 피한다

    헌법재판소가 ‘인터넷 실명제(實名制)’에 대해 재판관 8명의 전원 일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인터넷 실명제 시행 이후 불법정보 게시가 눈에 띄게 감소했다는 증거를 찾아볼 수 없는 반면, 국내 인터넷 이용자들이 실명제 적용을 받지 않는 해외 사이트로 도피해 국내 사업자들이 역차별 받는 등의 부작용이 많다는 것이 위헌 결정 이유다. 2007년 7월 노무현 정부가 도입한 인터넷 실명제는 인터넷에 글이나 동영상을 올리기 전 본인 여부를 확인하지만 가명으로도 글을 쓸 수 있어 다른 이용자들은 실명을 볼 수 없는 낮은 단계의 실명제다. 익명의 언어폭력이 판치는 사이버 공간에서 최소한의 피해자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도입됐다. 실명제는 대체로 여론의 환영을 받았지만 이후 실명제 적용을 받지 않는 모바일 게시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새로운 통신수단이 대거 등장해 도입 효과가 반감됐다. 네이버 다음 등 국내 포털 사이트에 글을 올리던 누리꾼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해외 기반의 트위터 등 SNS로 몰려갔다. 주민등록번호가 없어 본인 인증을 할 수 없는 외국인들은 국내 사이트에 게시물을 올리기가 불가능했다. 본인 인증을 위해 사이트에 제공한 개인 정보가 대량으로 유출돼 이용자들이 피해를 보는 사건도 잇따랐다. 헌법재판소는 인터넷을 실명제 도입 이전 익명의 세계로 돌려보냈다. 실명제 도입은 악성 댓글에 시달리던 유명 연예인 최진실 씨의 자살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헌재 결정이 인터넷을 이용해 인격 살인에 해당할 정도의 댓글을 달고 허위사실을 퍼뜨리는 행위를 부추기지는 않을까 걱정스럽다. 다만 누리꾼들이 명심해야 할 것은 실명제가 없어진다고 해서 인터넷상의 익명 불법 게시물이 책임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명예훼손이나 모욕, 흑색선전은 사이버상이든 아니든 형사처벌의 대상이다. 검찰과 경찰의 사이버 수사능력이 5년 전에 비하면 크게 개선돼 익명의 글이라도 대부분 인터넷주소(IP)로 추적할 수 있다. 개인은 어느 정도 보호를 받을 수 있겠지만 국가나 공인을 향한 근거 없는 비판은 미네르바 사건 무죄 판결에서 보듯 처벌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올해 말 대선을 앞두고 인터넷과 SNS에서 대선 후보에 대한 흑색선전이 기승을 부릴 것이다. 인터넷과 SNS의 익명성을 보장하면서 어떻게 공론(公論) 형성 과정의 왜곡을 막을 수 있을지가 우리 사회에 주어진 숙제다.}

    • 2012-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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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곽노현 판결 지연, 이것이 법치인가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에 대한 대법원 확정 판결이 이달에도 내려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곽 교육감은 공직선거법상 후보자 매수 혐의로 4월 17일 항소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선거범에 대한 확정 판결은 항소심 선고일로부터 3개월 이내에 이뤄져야 하므로 7월 17일이 곽 교육감의 상고심 법정 시한이었다. 하지만 이달 대법원 소부(小部) 마지막 선고일인 23일 재판 목록에 곽 교육감 사건은 들어 있지 않다. 항소심 판결 직후 법정 시한 준수를 당부했던 교원단체총연합회는 19일 대법원의 조속한 판결을 재차 촉구했다. 법원은 검찰이 구속기소한 곽 교육감을 1심에서 벌금 3000만 원을 선고하고 풀어 줘 업무에 복귀시켰다. 항소심에서는 징역형을 선고하고도 법정구속을 하지 않아 교육감 직을 유지하게 했다. 대법원은 확정 판결의 법정 시한을 어겨 곽 교육감의 비정상적 업무수행을 연장시켰다. 곽 교육감은 1, 2심 유죄 판결을 받고서도 자중하기는커녕 ‘대못박기’ 코드 인사를 하고 독선적 정책을 강행해 교육 현장에 혼선을 부르고 있다. 국회는 대법관 4명의 임기가 끝난 지난달 10일까지 신임 대법관 임명동의 절차에 착수하지 않는 늑장을 부렸다. 대법관 공석 사태를 20일 넘게 끌면서 곽 교육감 사건을 맡은 대법원2부는 대법관 정족수 부족으로 재판을 열 수 없었다. 곽 교육감 지지단체는 사후매수죄에 대해 헌법소원을 내고 대법원 판결을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로 미루라고 요구하고 있다. 대법원은 수도 교육 현장의 혼선이 계속되지 않도록 곽 교육감에 대한 사법적 결론을 신속하게 내려야 한다.}

    • 2012-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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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법원, 法經 유착도 정치사회 분위기 편승도 말라

    서울서부지법 형사12부는 그룹 계열사의 돈으로 위장 계열사를 지원해 회사에 수천억 원의 손해를 입힌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게 징역 4년과 벌금 51억 원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법원은 불구속 기소된 피고인에 대해서는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하더라도 법정 구속은 사실심이 끝나는 2심 판결까지 미루는 경우가 많다. 김 회장에게 집행유예 없는 실형 4년을 선고하고 1심에서 법정 구속한 것은 재벌총수에 대한 과거의 판결에 비해 상대적으로 엄중해 보인다. 그동안 재벌총수가 기소된 사건은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이라는 선고가 공식처럼 되다시피 했다. 집행유예를 위해서는 선고형이 징역 3년 이하여야 한다. 실제로 2003년 최태원 SK그룹 회장, 2006년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2008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등이 모두 1심이나 2심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이번 판결을 내린 서경환 부장판사는 “2009년 도입한 양형기준에 따라 기업총수의 경영 공백 우려나 경제발전 기여 공로 등은 집행유예를 위한 참작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법원은 올해 2월 횡령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에 대한 1심에서 이 양형 기준을 처음 적용해 집행유예 없는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했다. 과거 대기업 총수에 대한 사법적 잣대는 엄정하기는커녕 구부러지기 일쑤였다. 법원은 검찰이 구속 기소를 해도 보석으로 석방하거나, 1심과 2심에서 연거푸 형을 깎아줘 징역형을 선고하고도 집행유예로 풀어줬다. 재벌총수들은 칭병(稱病)을 하며 환자복 차림에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나와 형량 감경(減輕)을 위한 분위기를 잡았다. 이 과정에서 법원과 전관예우로 연결된 로펌과 변호사들이 사건을 맡아 막대한 수임료를 챙겼다. 법경(法經) 유착에 따른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였다. 정치권에선 경제범죄의 법정 최소형을 높여 법관이 재량으로 형을 줄여주더라도 아예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없게 만드는 방법으로 재벌총수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러나 경제범죄를 재벌총수만 저지르는 것도 아니고 피고인에 따라서는 불가피하게 집행유예를 선고해야 할 경우도 없지 않을 텐데 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법원의 봐주기 판결만큼이나 정치적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해 내리는 판결도 바람직하지 않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도 김 회장과 비슷한 혐의로 기소돼 있다. 대기업들이 너무 위축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당당하게 준법 경영에 나서 기업의 체질을 선진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 2012-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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