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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꾸미 낚싯배 출항지로 유명한 충남 보령의 오천항 인근 한적한 바닷가에는 갈매못 성지가 있다. 1866년 병인박해 당시 프랑스 선교사인 다블뤼 주교, 오메트로 신부, 위앵 신부 등 5명의 천주교도인이 순교한 곳이다. 당시 대원군은 고종이 국혼을 앞두고 있어 한양에서 250리 떨어진 바닷가에서 처형하라는 명을 내렸다고 한다. 지난 주말 갈매못 순교 기념성당에 들렀다가 스테인드글라스(사진)에 비친 햇빛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붉은 핏방울이 방울져 내리는 모양의 유리 조각이 반짝이는데,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핏방울 하면 슬프거나 끔찍한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데 정반대였다. 최근 서울 돈화문 음악당에서 관람했던 음악극 ‘적로(赤露)’를 보고 난 느낌도 비슷했다. 이 작품의 실제 모델이었던 대금산조의 명인 박종기는 말년에 폐병을 앓았다고 한다. 어느 날 연주 도중 그의 대금에서는 붉은 방울이 떨어져 내렸다고 한다. 그가 토해낸 핏방울이었다. 연주를 마친 후 그는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핏방울은 늘 인간이 유한한 존재임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때로는 영원한 예술과 아름다움을 표현하기도 한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KBS 문제는 이제 KBS인들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넘었습니다. 공영방송의 진정한 주인인 국민이 직접 나설 때입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새노조)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이인호 KBS 이사장(사진)이 15일 임시이사회에서 자신과 고대영 사장의 퇴진이 방송의 독립성을 저해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 이사장은 이날 ‘KBS는 국민의 방송으로 바로 서야 합니다’란 제목의 입장문에서 “KBS가 사원 5000명, 연간 예산 1조5000억 원의 엄청난 인적, 물적 잠재력을 가진 조직임에도 방송인들 스스로가 자부할 만한 수준과 품격의 방송을 창출해 내지 못하는 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했다. 또 “KBS가 거대한 공룡처럼 스스로 몸도 가누지 못하게 된 지는 오래된 일”이라며 “이는 방송사가 정치권력의 부당한 간섭을 막아내지 못하고 방송노조 스스로가 정치권력화함으로써 방송인으로서의 본분을 망각하기 시작한 데 가장 큰 원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적폐청산’이라는 포괄적 구호 아래 국가권력을 무소불위로 동원하는 위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도 새노조는 방송장악 계획을 실천에 옮기려는 새 정권의 홍위병 노릇을 자처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국회가 나서 방송법을 서둘러 개정할 것과 정부가 KBS 사장·이사장·이사들을 범죄인으로 모는 행위를 중단시켜 달라고 촉구했다. 그는 “여야의 나눠 먹기식 이사 추천 방식과 일부 노조의 외부세력과의 연대 때문에 방송이 정치도구화하는 것을 막기가 어려웠다”며 “국회 청문회를 거쳐 임명되는 KBS 사장의 임기 보장은 방송의 자유와 독립성을 지켜내는 마지막 법적 보루”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사용) 내역이 나와 있는 업무추진비를 세밀 감사하겠다며 무려 7인의 감사 요원을 4주간이나 투입하고, 접촉한 인사들의 실명과 상담 내용을 밝히라고 요구하고 있다”며 “권력을 동원한 이런 식의 정신적 압박과 모욕, 감사 대상 액수의 몇 배의 비용이 감사요원의 봉급과 활동비로 지출되는 혈세 낭비야말로 청산돼야 할 적폐가 아닌가”라고 물었다. 이 이사장은 끝으로 “양대 공영방송의 사장이 임기 전에 강제로 물러난다는 것은 방송 독립의 종언일 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핵심인 법치의 무력화, 언론과 양심의 자유의 종식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해 시청자와 국민들이 관심을 가져 달라”고 밝혔다. 하지만 여권 추천 이사인 권태선 이사는 이 이사장의 입장문에 대해 “겉으로 드러난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 것을 회복하자는 노조의 주장이 어떻게 언론의 자유 침해인가”라고 반박했다. 한편 강규형 이사(명지대 교수)는 이날 “KBS 노조가 매일 이사직 사퇴를 요구하며 학교에서 시위를 벌여 한때 사의를 표명하는 등 어려움이 적지 않다”며 “하지만 부당한 요구에 맞서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전승훈 raphy@donga.com·조윤경 기자 ▼ [전문] KBS 파업 관련 이인호 이사장 입장문 ▼‘KBS는 국민의 방송으로 바로 서야 합니다’ KBS가 국민의 방송으로 제 역할을 다하도록 지원하고 독려하며 국민 앞에 책임을 져야 하는 KBS 이사장으로서 무엇보다도 먼저 시청자-국민 여러분들께 대단히 죄송하다는 사과의 말씀부터 드립니다. KBS 방송이 여러분들의 기대에 크게 못 미치고 있으며 국민들 사이에서 공영방송의 앞날에 대해 심각한 우려가 일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책임을 통감하면서도 사퇴하지 않고 대신 온갖 불법적이고 굴욕적인 폭압과 회유 앞에서도 자리를 지켜온 것은 임기 도중 사퇴는 KBS가 직면하고 있는 복잡하고 심각한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이 나라 대표 공영방송 지킴이로 위임 받은 책임의 방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두 달 넘게 계속되고 있는 방송 파행은 KBS 노조가 지난 대선 이후부터 고대영 사장 퇴출과 그를 선임하고 지원한 이사장과 이사진의 사퇴를 요구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하지만 보다 큰 그림으로 본다면 KBS가 사원 5,000명, 연간예산 1조 5,000억원의 엄청난 인적 물적 잠재력을 가진 조직임에도 불구하고 시청자-국민이 기대하고 방송인들 스스로가 자부할 만한 수준과 품격의 방송을 창출해 내지 못하고 있었다는 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우리 방송문화의 견인차였던 KBS가 거대한 공룡처럼 스스로의 몸도 가누기 어렵게 된지는 훨씬 오래된 일입니다. 모두에게 불행한 그러한 사태의 연원에 대한 설명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방송사가 정치권력의 부당한 간섭을 막아내지 못하고 권력을 견제한다는 명분 아래 방송노조 스스로가 정치권력화 함으로써 방송인들이 방송인으로서의 본문을 망각하기 시작한 데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KBS와 함께 공영방송의 양대 축이었던 MBC 김장겸 사장이 11월 13일, 임기 2년 반을 앞두고 강제퇴출 당한 것이 가장 비근한 사례입니다. 언론은 국가권력을 구성하는 3부(입법, 사법, 행정) 밖에서 작동하는 제 4부라는 말이 있습니다. 언론, 그 중에서도 특히 방송은 권력의 속성을 강하게 지니고 있기 때문에 방송의 독립, 곧 정치적 중립과 공정성은 방송인 누구나가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하는 가치라는 말입니다. 자유언론의 대표적 표상인 방송이 정치적으로 또는 도덕적으로 오염되면 인체의 피가 오염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사회가 위험한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그 때문에 현행 방송법도 정당정치에 연루될 가능성이 있는 인사는 방송사의 최고의결 기구인 이사회의 구성에서 배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여야 나눠먹기 식의 이사 추천방식과 일부 노조의 민노총 같은 외부세력과의 연대 때문에 방송이 정치도구화 되는 것을 막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서 국회 청문회를 거쳐 임명되는 KBS 사장의 임기 보장은 방송의 자유와 독립성을 지켜내는 데 필요한 마지막 법적 보루인 것입니다. 모든 권력은 견제와 감시를 받지 않으면 반드시 부패한다는 것이 인류 사회의 보편적 역사적 체험에서 얻어낸 상식이며 문재인 정부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우리의 과거 정권들도 모두 방송장악을 시도했고 사장이나 이사장을 임기 중 퇴출시킨 사례가 많습니다. 그래도 그 때는 방송 노조가 정치권력의 부당한 행사에 맞서는 모양새라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정부가 ‘적폐청산’이라는 포괄적 구호 아래 옛 공산당의 ‘정적 숙청’을 상기시킬 정도로 국가권력을 무소불위로 동원하는 위협적인 모습을 보이는 데도 민노총의 산하기구인 ‘언론노조 KBS 본부’ 일명 새노조는 방송장악 계획을 실천에 옮기려는 새 정권의 홍위병 노릇을 자처하는 상황입니다. 언론은 거대 사건뿐 아니라 각종 권력의 뒷모습까지 냉정하고 비판적으로 조명함으로써 국민의 권익과 민주주의를 지켜내야 하는 사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국가기간방송이 국가권력과 한편에 선다면 결코 완전무결할 수는 없는 새 정권이 잘못된 길을 갈 때 진실되고 공정하며 신속한 보도와 균형 있는 논평으로 국민을 일깨움으로써 나라를 바로잡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켜낼 힘이 어디에서 나올지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KBS의 진정한 주인인 시청자들의 불만과 우려가 큰 만큼 KBS 방송인들의 고충도 큽니다. 가속화하는 방송통신 관련 기술변화와 상승하는 제작비용 앞에서 파당정치에 볼모 잡힌 KBS 수신료는 38년째 2,500원에 묶여있고 방송 광고시장 규모는 위축되니 공영방송인 KBS조차도 시청자들의 생각과 취향을 선도하기 보다는 대중적 인기에 영합해서 시청률을 높여야 하는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정치의 영향으로 2년이 멀다 하고 자주 바뀌는 사장과 집행부가 강력한 노조와 노동법 앞에서 경영합리화를 하는 데는 심한 한계가 있습니다. 반면에 사원들은 집행부가 바뀔 때마다 새 임원진과 강성 노조의 눈치를 번갈아 가며 살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능력과 소신껏 방송제작에만 몰두하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꿈으로 가득 차고 탁월한 능력을 지닌 젊은 사원들 조차도 점점 더 냉소와 기회주의 풍토에 젖어 들게 되는 것이 KBS의 현실입니다. 현 KBS 사태는 그간 사원들 사이에서 누적되었던 불만과 불안, 의기소침 등이 민노총 산하기구인 새노조 집행부의 정치적 의도와 맞물리면서 고대영 사장 퇴출과 사장 선임과 해임권을 갖고 있는 이사장과 이사진 사퇴요구로 폭발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장에 대한 사원들의 불신임률이 높다 하더라도 이런 복합적인 문제들이 사장과 이사진 퇴출로 해결될 것이라고 볼 근거는 없습니다. 사장이 노조나 정부의 압력으로 임기 전에 밀려나는, 방송의 자율과 독립성에 직접적으로 저해가 되는 나쁜 선례가 또 하나 추가될 뿐일 것입니다… KBS 문제는 이제 KBS인들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넘었습니다. 공영방송의 진정한 주인인 국민이 직접 나설 때입니다. 국민을 대표해서 입법권을 갖고 계신 국회의원들께 호소합니다. 방송법 개정을 서둘러 주십시오. 전문가적 능력뿐 아니라 도덕적 품격이나 지도자적 안목에서 사원들뿐 아니라 시청자-국민 전반의 신뢰와 지지를 받는 이사진과 사장이 정치권의 개입 없이 선출될 수 있게 선거인단 규모를 확대 개편하고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선출된 사람들의 임기를 보장하는 것이 관건일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에 호소합니다. KBS 사장과 이사장 그리고 일부 이사들을 강제 퇴진시키기 위해 그들 주변을 괴롭히거나 그들을 범죄자로 엮으려 하는 비열한 행위를 즉각 중단시켜 주십시오. 만약에 그것이 정부가 직접 연루된 일이 아님을 증명하려면 이사장 포함 8인의 이사들이 정해진 범위 내에서 카드로 집행하여 이미 내역이 나와 있는 업무추진비를 세밀 감사하겠다고 무려 7인의 감사요원을 4주간이나 투입하고 접촉한 인사들의 실명과 상담내용을 밝히라는 부당한 요구까지 하게 된 경위를 소상히 밝혀주십시오. 법 집행의 엄격성에도 공익성과 형평성이 보장되어야 하는데 권력을 동원한 이런 식의 정신적 압박과 모욕 그리고 감사대상 액수의 몇 배의 비용이 감사요원의 봉급과 활동비로 지출되는 혈세낭비야말로 청산되어야 할 적폐가 아닌가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사원 여러분께 호소합니다. KBS에 대한 여러분의 충정과 현재의 고충을 십분 이해합니다. 하지만 빨리 파업을 풀고 일자리로 돌아 오십시오. 국민이 KBS를 보는 눈은 지금 곱지 않습니다. 고액의 연봉에 버금가는 수준의 일을 해내지 못하고 있는데 KBS가 없어진다고 걱정할 것이 있느냐는 소리가 들립니다. 어려움 속에서라도 우리 모두가 국민의 눈과 귀와 입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가를 반성해야 합니다. 국가적 불상사가 발생했을 때 정확하고 신속하며 사려 깊은 보도를 통해 재난의 폐해를 최소화하고 빠른 회복과 치유를 위해 국민을 격려하고 결속시키기 보다는 부정확하고 선정적인 방송으로 오히려 피해를 확산시키고 사회적 분열을 조장한 면은 없지 않았는지 생각해 봅시다. 우리말 지킴이어야 할 공영방송이 우리말을 정확하고 아름답게 쓰지 못하고 불필요하게 외래어나 비속어를 유포시킴으로써 “KBS가 우리말 파괴에 앞장서느냐”는 국내외 시청자들의 불평을 샀을 때 그 비판이 근거 없다고 대응할 자신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 봅시다. 설사 사장이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사장퇴출이라는 빈대잡기를 하다가 방송의 독립, 더 나아가서 언론의 자유, 양심의 자유라는 초가삼간을 태워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깊이 생각해 봅시다. 파업을 계속할 경우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온 국민, 아니 전 세계인들이 입게 될 손해와 봉급삭감으로 여러분들의 가족이 겪을 고충도 생각합시다. 정치권력의 개입을 전면 차단하는 쪽으로 방송법을 개정한 후에 사장을 교체한다고 큰일 날 일은 없습니다. 고대영 사장께 부탁합니다. 노조의 사장퇴진 요구가 아무리 부당하다 하더라도 사원들과 대화와 상호배려의 끈을 놓아서는 안됩니다. 특히 사원들이 고사장 지지파와 반대파로 나뉘어 자기들끼리 서로 반목하게 되는 후유증을 앓지 않도록 각별히 노력해 주기를 바랍니다. KBS의 진정한 주인인 국민 여러분께 호소합니다. 양대 공영방송의 사장이 임기 전에 강제로 물러난다는 것은 방송 독립의 종언일 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핵심인 법치의 무력화와 언론의 자유, 양심의 자유의 종식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방송 문제에 대해 끊임없는 관심을 가져주시기를 간곡히 부탁 드립니다. 방송의 주인인 국민 모두가 관심을 갖고 챙기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대한민국의 대표방송인 KBS가 머지않아 특정세력의 정치도구로 전락하거나 아예 사라지는 것을 막기 어려울 것입니다. KBS가 새롭게 힘을 내도록 여러분이 도와주십시오. KBS는 국민의 방송으로 바로서야 합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KBS 이사장 이인호 2017년 11월 15일}
‘스리, 투, 원!’ 카운트다운과 함께 스키점프대를 출발한 스키어의 불빛이 청계천 폭포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간다. 평창 겨울올림픽 마스코트인 수호랑과 반다비가 횃불을 들고 성화를 봉송하고, 봅슬레이를 타고, 피겨스케이팅을 한다. 요즘 서울 청계천의 밤은 평창 겨울올림픽 주요 종목을 표현한 예쁜 등불을 사진에 담으려는 관람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19일까지 펼쳐지는 ‘2017 서울빛초롱축제’의 박재호 총감독(57)은 “올해 청계천 등축제의 주제는 평창 겨울올림픽”이라며 “서울 한복판에서부터 평창의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질 정도”라고 말했다. 특히 올해에는 청계천에 전통 한지등과 함께 최첨단 발광다이오드(LED)등불이 등장했다. 수호랑과 반다비가 알파인스키, 프리스타일스키, 아이스하키, 쇼트트랙, 피겨스케이팅, 스키점프, 휠체어 컬링, 루지, 봅슬레이 등 12개 종목의 경기를 하는 모습을 LED등으로 표현한 것이다. 박 감독은 “철사골조에 휘어지는 LED등을 붙여 무척 밝고 컬러풀한 색상을 자유자재로 표현한 최첨단 등불”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청계천 빛초롱축제가 끝나면 이 등은 강원 평창, 정선, 강릉 등 올림픽이 치러지는 도시의 경기장 앞으로 옮겨져 전시될 것”이라며 “눈이 많이 올 경우 전통 한지등은 찢어질 위험이 있는데 LED등은 어떤 날씨에도 끄덕없이 밝게 비출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감독은 올해 9회를 맞은 ‘서울빛초롱축제’ 중 8번을 연출했고, 2016년부터 ‘정조대왕 능행차행렬’을 총감독하는 등 길거리 축제 분야에서는 손꼽히는 전문 연출가다. 그는 “매년 11월에 열리는 청계천 등축제는 연인원 250만∼300만 명이 관람하는 서울의 대표적 축제”라며 “그중 외국인이 70만 명 넘게 관람하기 때문에 서울에서 평창 겨울올림픽을 홍보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라고 말했다. 그는 “예쁜 등과 함께 찍은 사진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면 전 세계에 평창 겨울올림픽을 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고교 동창회에 몇십 년 만에 가보면 공부 잘했던 친구들은 그저 그렇게 월급쟁이나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반면 말썽쟁이 친구들 중 몇몇은 사업으로 돈을 벌었다고 술값을 도맡아 내기도 한다. 그러나 은퇴를 하고 나면? 젊은 시절에 수재소리를 들었든 못 들었든, 미인이었든 아니든, 일류 기업에 근무했든 아니든 은퇴 후 모습은 대개 비슷하다. 작가는 “사회적으로 ‘끝난 사람’이 되고 나니 다 똑같았다. 일렬횡대다”라고 말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대형은행에 입사해 한동안 승승장구하다 임원 진급에 실패해 자회사로 좌천된 이후 정년을 맞이한 인물이다. 회사는 젊은 직원을 엘리트라고 한껏 띄우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바닥으로 내동댕이치는 냉혹한 곳이다. 그에게 정년퇴직은 ‘생전에 치르는 장례식’과 다름없다. 그는 은퇴 후 모두가 똑같아질 것을 알았다면 자신이 왜 도쿄대 법학부에 들어가려고 열심히 공부하고, 은행에서 출세하려고 아등바등 몸부림을 쳤던가 후회한다. 어느 선승의 말처럼 “떨어진 벚꽃, 남아 있는 벚꽃도 다 지는 벚꽃”인 세상이다. 그는 취미로 도자기를 굽는다든가, 수제 메밀국수를 만드는 일 따위로 허전함을 충족시킬 수 없었다. 끊임없이 일을 찾아 나선다. 삼시세끼 밥을 챙겨줘야 하는 아내의 따가운 시선, 문화센터에서 만난 여성과의 어설픈 로맨스, 대학원 공부, 젊은 벤처사업가의 뜻밖의 제안까지 좌충우돌하는 그의 삶은 너무도 현실적이다. 일본에서는 50대 이상의 독자들로부터 “나 자신이 벌거벗겨진 기분이 들 정도로 무섭고 리얼하다”는 평을 받았다. 일본에서 2015년 출간돼 15만 부 이상이 팔린 장기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았다. 이 소설은 ‘품격 있는 쇠퇴’란 무엇인가 고민하게 한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60대가 넘어 복싱 심판으로 일하는 친구를 부러워한다. 그 친구는 자신보다 학벌도, 직장도 좋지 못했지만 40대 중반부터 취미로 즐기던 복싱 심판 자격증을 땄던 것이다. 이 책이 은퇴가 한참 남은 젊은 직장인이 읽어도 좋은 이유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송중기 송혜교 커플의 결혼식은 철저한 비공개로 치러졌다. 하루 전에 불의의 사고로 숨진 배우 김주혁에 대한 애도 분위기 속에서 하객들에 대한 포토라인 행사도 없앴다. 그런데 결혼식에 참석했던 한 인사는 “하늘에 드론 2, 3대가 날아다니는 순간 주최 측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고 전했다. 이 드론은 중국의 인터넷매체가 띄운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웨이보에는 드론을 통해 불법 촬영된 결혼식 장면이 생중계됐다. 신라호텔 등 서울시내 다중이용시설은 A급 비행금지 구역으로 드론 비행이 명백한 불법이다. 요즘 세계적으로도 ‘드론 파파라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2014년 팝가수 리애나의 저택과 배우 앤 해서웨이의 비공개 결혼식이 드론에 찍혀 대중에게 알려졌다. 가수 마일리 사이러스는 자택 위를 날고 있는 드론을 찍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사생활 침해를 호소하기도 했다. 영국의 다이애나 비는 죽을 때까지 파파라치 차량에 쫓겼다. 요즘엔 하늘에서 매의 눈으로 쫓아오는 드론까지 신경 써야 할 판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대금 산조 창시자 박종기와 김계선의 삶과 음악이 극으로 되살아난다. 서울돈화문국악당(예술감독 김정승)은 자체 제작 브랜드 공연 ‘적로―이슬의 노래’를 11월 3∼24일 공연한다. 음악극 ‘적로’는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대금 명인 박종기(1879∼1941)와 김계선(1891∼1943) 두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한다. 박종기는 대금 산조의 창시자로, 진도아리랑을 창작했다. 김계선은 조선정악전습소 회원으로, 이왕직아악부의 간판스타였다. 그는 궁중의 악사 신분으로 민요, 무기반주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활동했다. 배삼식 작가는 두 명인의 삶에 상상력을 덧붙이고, 가상 인물인 기생 산월을 더했다. 최우정 작곡가는 전통음악과 스윙재즈 등 당시 유행하던 대중음악까지 다양한 장르를 선보인다. 배경은 1941년 초가을 경성. 젓대(대금) 연주로 명성이 자자하던 두 사람 앞에 십수 년 전 불현듯 사라져버린 산월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진다. 세 사람은 술잔과 음악을 주고받으며, 옛 시절과 인연들을 반추한다. 배삼식 작가는 “‘적로’는 방울져 떨어지는 이슬(滴露), 악기를 통해 흘러나온 입김에 의한 물방울(笛露), 예술가의 혼이 서린 악기 끝의 핏방울(赤露)의 의미를 갖고 있다”며 “‘한 소리’를 찾아 평생을 떠돈 사람들, 필멸의 소리로 불멸을 붙잡으려 헤매며 한 생을 지나갔던 이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박종기 선생님은 항상 술에 취해서 녹음실에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요. 순간에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음악을 붙드는데 얼마나 멋쩍고 불편했겠어요. 적로는 빼어난 예술가의 업적을 기리는 작품이라기보다는 ‘삶의 덧없음’을 마주하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적로’는 돈화문국악당이 개관 1주년을 기념해 내놓는 브랜드 공연이다. 돈화문국악당은 마이크나 스피커를 사용하지 않고 자연음향을 들을 수 있다. 주인공 박종기와 기생 산월은 소리꾼과 가객(정가) 출신 배우인 안이호와 하윤주가 연기한다. 김계선 역에는 신예 정윤형이 발탁됐다. 박종기 명인의 고손자 박명규(대금)를 비롯해 한림(아쟁), 김준수(타악), 이승훈(클라리넷), 황경은(건반)이 연주한다. 전석 2만 원. 02-3210-7001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24일 공개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여론집중도조사위원회(위원장 유세경) 조사에 따르면 종이신문, TV, 라디오, 인터넷 등 전체 뉴스 매체를 합산한 ‘2016년 여론영향력 점유율’ 조사에서 네이버가 20.8%로 1위, 다음이 9.3%로 3위로 나타났다. 하지만 포털 사이트들은 콘텐츠를 제공받아 진열하고 배치하는 유통사업자이기 때문에 기존 언론사와 동일한 차원에서 점유율 수치를 영향력으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평가다. 그럼에도 포털들이 광고시장을 지배하면서 선정적인 저널리즘을 부추기는 현상에 대한 우려도 심각하다. 홍문기 한세대 미디어광고학과 교수는 21일 한국언론학회 정기학술대회에서 “포털 사업자가 언론사의 기사나 방송 콘텐츠를 제공받아 유통하는 역할을 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사와 같은 광고 시장에서 수익사업을 하며 경쟁을 하는 것이 경업(競業) 금지 의무 위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뉴스 콘텐츠를 직접 생산하지 않는 포털을 제외하면 기존 언론사 중에서 매체 합산 여론영향력 1위는 KBS 계열(16.2%)이고 2위는 동아미디어그룹(7.1%)으로 나타났다. 동아미디어그룹의 여론영향력 점유율은 신방 겸영 언론사 중 1위이며 지상파 방송인 MBC, SBS보다도 앞선 것으로 조사됐다. 뉴스이용창구 기준 매체 합산 여론영향력 점유율은 2014년과 비교할 때 변화의 폭이 컸다. 동아미디어그룹은 6.2%에서 7.1%로 0.9%포인트 상승했다. KBS 계열은 18.8%에서 16.2%로 2.6%포인트, 조선일보 계열도 9.0%에서 6.9%로 2.1%포인트 하락했다. MBC 계열은 7.2%에서 6.7%, SBS 계열도 6.5%에서 4.7%로 각각 떨어졌다. 중앙일보 계열은 4.2%에서 4.6%로 올랐다. 이 위원회는 신문, TV, 라디오, 인터넷 등 네 가지 매체 중 어떤 매체가 전체적인 공론을 만드는 데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조사해 3년에 한 번씩 공식 보고서를 발표해 왔다. 매체합산 여론 영향력을 산정할 때는 한국언론재단의 ‘언론수용자 의식조사’를 통해 이용자들이 생각하는 각 매체의 영향력을 토대로 ‘여론 영향력 가중치’를 산정한다. 종이신문보다 TV와 인터넷뉴스 부문에 3∼5배 더 큰 가중치가 주어진다. 위원회는 2010년부터 제1, 2기가 각각 3년씩 활동한 데 이어 제3기가 2016년부터 활동 중이다.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요즘 사람들은 하나의 미디어만 소비하지 않기 때문에 여론 영향력을 파악할 때는 신문열독률, TV시청률 같은 지표보다는 여러 매체를 아우르는 매체 합산 여론영향력 점유율이 매우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25일 발표한 입장 자료에서 “3기 위원회는 2018년 12월에 공식 보고서를 공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문체부의 한 관계자는 “공식 보고서는 아니지만 이번 조사 결과의 팩트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동아미디어그룹이 2016년 매체합산 여론영향력 점유율에서 신방겸영 언론사 중 조선일보, 중앙일보 계열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동아미디어그룹은 또 지상파 방송인 MBC와 SBS 계열보다도 여론영향력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여론집중도조사위원회’가 종이신문, TV, 라디오, 인터넷 등 전체 뉴스 매체를 합산한 ‘2016년 뉴스이용창구 기준 여론영향력 점유율’ 조사 결과 동아미디어그룹은 전체 4위를 차지했다. 포털 사이트(네이버, 다음)를 제외하면 KBS에 이어 전체 2위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 따르면 동아미디어그룹은 동아일보, 채널A, 동아닷컴 등을 포함한 매체합산 여론영향력 점유율이 7.1%로 신방겸영 언론사 중에서는 가장 높았다. 조선일보와 TV조선, 조선닷컴을 소유한 조선일보 계열의 여론영향력은 6.9%로 5위를 차지했다. 조선일보 계열은 2014년 9.0%를 기록했으나 2년 만에 2.1%포인트 하락했다. 매일경제 계열은 5.0%로 7위, 중앙일보 계열은 4.6%로 10위에 머물렀다. 지상파 방송인 KBS계열은 16.2%로 전체 2위를 차지했고, MBC계열은 6.7%로 6위, SBS계열은 4.7%로 9위를 차지했다. 윤영철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는 21일 일본 도쿄 게이오대에서 열린 게이오-연세 미디어앤커뮤니케이션 학술대회에서 이 같은 내용의 문체부 여론집중도조사위원회 ‘2016년도 매체합산 여론영향력 점유율’을 발표했다. 윤 교수는 이날 ‘신뢰할 수 있는 저널리즘을 위한 새 알고리즘 개발’을 주제로 한국 미디어 시장의 변화를 분석했다. 윤 교수는 세미나에서 “동아일보의 경우 종이신문과 케이블TV, 웹사이트 등 다양한 출구로 유통되는데 이를 모두 합치면 ‘매체합산 여론영향력’ 통계가 나온다”고 설명했다. 그는 “많은 연구들이 조선일보가 영향력 면에서 넘버 원 신문이라고 하지만, 신문 케이블TV 인터넷 등 뉴스의 모든 유통경로를 전수조사할 경우 동아일보의 영향력 점유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윤 교수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동아미디어그룹 여론영향력이 높게 나온 것은 채널A의 여론영향력이 TV조선, JTBC 등 다른 종편 채널보다 높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매체합산 여론영향력을 계산할 때는 TV 보도프로의 영향력(시청률, 보도시간 등 기준)에 더 높은 가중치를 둔다는 설명이다. 한편 2016년 여론영향력 점유율 1위는 포털사이트 네이버(20.8%)가 차지했다. 네이버는 2015년 여론영향력 점유율 18.1%로 KBS를 제치고 1위에 등극한 이후로 점유율 격차를 더 늘렸다. 다음도 9.3%로 전체 3위를 차지했다. 윤 교수는 도쿄 학술대회에서 “네이버가 여론영향력 1위를 바탕으로 광고시장에서도 7000여 개의 신문(인터넷 포함)과 지상파방송 3사를 더한 것보다 큰 비율을 먹어치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포털에서 뉴스 유통이 늘어나면서 눈길을 끌기 위한 엔터테인먼트나 센세이셔널 뉴스, 편파적인 뉴스가 양산돼 퀄리티 저널리즘을 저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윤 교수는 “포털 사이트는 뉴스기업이 아니라 정보기술(IT) 회사라고 주장하지만 여론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현실”이라며 “흥미나 상업주의가 아닌 공공의 이익에 기반을 둔 고품질 저널리즘을 위한 새로운 알고리즘 개발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여론집중도조사위원회는 2010년 출범한 정부 위원회로 매년 여론영향력 점유율을 조사해 3년에 한 번씩 공식 보고서를 낸다. 윤 교수는 2013년부터 3년간 제2대 여론집중도 조사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도쿄=장원재 특파원}
두 달 전이었다. 지인이 추천해 준 ‘만보기 앱’을 계기로 걷기를 시작했다. 이 앱은 단순한 걸음 수를 측정해 주는 것이 아니었다. 친구와 일대일 대결을 펼칠 수 있고, 전체 사용자 중에 내가 랭킹 몇 %에 들어가는지 알려주는 앱이었다. 처음엔 별 관심 없었는데, 열심히 걷는 사람들의 랭킹을 보니 은근히 자극을 받았다. 새벽부터 개를 산책시키고, 출퇴근할 때 두 정거장 먼저 내려 청계천을 걷고, 점심시간에 또 걷고…. 아내와 친구, 직장 동료와 일대일 대결을 펼치다 보니 어느 날은 퇴근길에 한강 다리를 걸어서 건넌 적도 있다. 요즘엔 하루 2만 보 이상 걸으며 도시의 새로움을 발견하는 재미가 크다. 베스트셀러인 한동일의 ‘라틴어 수업’에는 ‘습관’이란 뜻의 ‘하비투스(habitus)’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하비투스란 원래 ‘수도사들이 입은 옷’을 지칭했다고 한다. 수도사들이 매일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일(기도와 노동, 식사)을 하기에 습관이란 뜻이 파생된 것이다. 처음엔 게임처럼 시작했지만, 두 달 이상 걷기가 몸에 배니 이제 ‘행복한 중독’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서도소리 박정욱 명창(사진)이 20일 오후 7시 한국전통문화관 가례헌 개관 15주년 기념 국악콘서트 ‘10월의 풍류’ 공연을 갖는다. 박 명창을 비롯해 임영미, 강정민, 이민경, 강정화, 김완아 씨 등 국악인들이 수심가, 회심곡, 평안도아리랑 등을 부른다. 2003년 서울 중구 신당동에 개관한 가례헌은 한국의 전통문화를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지난 14년간 매주 진행된 국악콘서트는 총 500회가 넘는다. 가례헌에서는 박 명창의 스승인 서도소리 인간문화재 김정연(1913∼1987)의 유품도 볼 수 있다. 김정연은 평양 권번의 마지막 기생(기명 금홍)으로 알려져 있다. 호랑이발톱으로 만든 노리개와 은장도 옥장도 호박장도에 비녀와 귀걸이까지 120여 점이 전시돼 있다. 박 명창은 1987년 김정연이 작고한 뒤 배뱅이굿으로 유명한 명창 이은관(1917∼2014)을 사사했다. 박 명창은 “이번 공연은 대중가요와 전통음악을 편안하게 접하는 기회의 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02-2232-5749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백진현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59)가 2일 한국인 최초로 독일 함부르크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의 제8대 소장에 선출됐다. 2009년부터 ITLOS 재판관을 맡아온 백 교수는 2020년까지 3년간 재판소장의 임무를 맡게 됐다. 유엔해양법협약에 따라 1996년 설립된 국제해양법재판소는 국제사법재판소(ICJ), 국제형사재판소(ICC)와 더불어 세계 3대 국제재판소로 꼽힌다. ITLOS는 해양경계획정, 어업 문제, 해양자원 개발 등의 분쟁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독일에서 잠시 귀국한 백 소장을 11일 서울대 국제대학원 연구실에서 만났다. 》 ―소장 당선을 축하한다. “개인적으로 영광이지만 막중한 책임을 맡게 돼 부담이 크다. 북핵으로 인한 한반도 안보위기가 심각한 상황이다. 국제기구에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축하보다 걱정하는 말을 더 많이 한다.” ―2일 소장 선거는 어떻게 치러졌나. “21명의 재판관이 교황 선출 방식으로 뽑는다. 재판관들은 각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후보자 이름을 종이에 적어 투표한다. 수년 전부터 선거운동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그러지 않았다.” ―한국인 최초로 소장으로 선출됐는데, 아시아에서는 몇 번째인가. “세 번째다. 2대가 인도인이었고 6대가 일본인 소장이었다. 보통 5개 대륙별 그룹이 돌아가면서 소장을 맡는다. 전전 소장이 일본인이었기 때문에 사실 아시아 순서가 오려면 10여 년 기다려야 했다. 아주 예외적으로 다른 지역을 건너뛰고 제가 선출됐다.” 백 소장은 2009년 박춘호 재판관의 별세에 따른 보궐선거에 당선돼 재판관 직무를 시작했고, 2014년 9년 임기(2023년 10월까지)의 재판관으로 재선됐다.“동수일 경우 소장이 캐스팅보트” ―소장의 역할은 무엇인가. “재판관 21명의 일원으로 재판을 공정하게 이끌어야 한다. 재판은 단심제이며 보통 3년이 걸린다. 21명 전원일치 판결이 가장 무게가 있지만, 가능하면 다수가 동의하는 판결을 이끌어내도록 소장이 노력한다.” ―소장의 특권은 없나. “의결할 때 재판관 한 명이 참석하지 못할 경우 10 대 10 동수 판결이 나기도 한다. 이때 소장이 캐스팅보트 권한을 갖는다. 소장은 표를 두 장까지 행사할 수 있는 셈이다. 지난해 ICJ에서는 이런 일이 두 번이나 있었다. 니카라과-콜롬비아 해양분쟁에서도 그랬고, 태평양의 섬나라 마셜제도가 미국 영국 인도 파키스탄 등 핵보유국에 대해 ‘핵군축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고 제소한 재판에서 10 대 10 동수 판결이 나왔다. 그런데 두 번 모두 프랑스인 소장이 캐스팅보트로 결론을 냈다.” ―한국의 독도 문제가 국제해양법재판소에서 제소될 가능성은…. “소장으로서 말하기 힘든 부분이다. 한국 정부는 어떤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제가 선출되니까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한국인이 소장이 돼 일본이 우려한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제가 소장이 됐다고 해서 특정 국가에 유리하고 불리한 일은 있을 수 없다. 재판관에 취임할 때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판결한다는 선서를 했는데, 소장이 된 이상 더욱 회원국 모두에 공정한 재판을 진행해야 한다.” 국제해양법재판소는 유엔해양법협약에 따라 1996년 독일 함부르크에 설립됐다. 지난해 20주년을 맞았으며 현재 168개 회원국이 소속돼 있다. 그러나 북한은 회원국이 아니다. ―북한은 유엔에 가입했는데 왜 회원국이 아닌가. “ICJ는 유엔에 가입하면 동시에 회원국이 된다. 그러나 국제해양법재판소는 유엔해양법협약을 조인한 당사국만 회원국이 될 수 있다.” ―북한이 태평양 상공에서 수소폭탄 실험을 할 수도 있다고 위협했는데…. “대기권 핵실험은 방사능 낙진 때문에 환경과 생태계, 인간의 생명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재앙이다. 이미 1963년에 미소 간에 육지와 해상에서의 대기권 핵실험을 금지했다. 프랑스가 1970년대 초까지 남태평양의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에서 대기권 핵실험을 해 호주와 뉴질랜드가 프랑스를 ICJ에 제소한 유명한 사건이 있었다. 북한의 태평양 상공 핵실험은 유엔헌장, 유엔해양법, 국제환경법 등 여러 조항을 명백히 위배할 소지가 크다.” ―북한이 일본 배타적경제수역(EEZ)에 미사일을 쏘고, 괌을 포위사격하겠다는 위협도 했다. 공해상에 미사일을 쏘는 것은 괜찮은가.“북 ‘군사경계수역’은 불법” “유엔해양법 301조에 ‘해양은 평화적으로 이용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북한이 ‘공해의 자유’를 내세우지만, 미사일을 쏘는 것은 모든 국가가 누려야 할 공해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침해하는 행위다. 특히 EEZ는 연안국에 자원의 탐사나 이용의 배타적인 권리를 허용하지만, 다른 나라에도 항해나 비행의 자유를 보장하는 구역이다. 그런데 수역에 미사일을 쏘아대는 것은 연안국의 주권적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1977년 동해에서 영해의 기선으로부터 50마일(약 80km) 내에 외국의 비행기와 배의 행동을 금지한다는 ‘군사경계수역’을 일방적으로 선포했다. 국제법에서 인정받는가. “내가 1985년 세계해양법 연차총회에서 발표한 논문 주제가 바로 북한의 ‘군사경계수역’이었다. 전시(戰時)도 아닌 평시에 다른 나라의 항해와 비행의 자유를 제약하는 엄청난 크기의 수역을 선포하는 것은 국제법상 근거도 없고, 선례도 없다.” ―북한 리용호 외무상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선전포고’를 했으니 미국의 공격기를 영공이 아니어도 임의로 쏘아 떨어뜨리겠다고 했는데…. “양국 간의 말싸움 과정에서 나온 말만 갖고 국제법적으로 판단하긴 어렵다. 두려운 것은 바로 이러한 위험한 발언이 오해와 오판을 낳고, 우발적인 충돌로 이어지는 것이다.” 1990년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백 소장은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법학석사,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각각 취득하고, 1997년부터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제재판소에서 해양 분쟁이 가장 많은 이유는 무엇인가. “해양은 지구의 70%를 차지하고 있고, 전 세계 물동량 교역의 98% 이상이 해상운송을 통해서 이뤄진다. 바다는 특정 국가에 소속돼 있지 않기 때문에 국제법만 통용되는 공간이다. 특히 21세기 들어 북극해를 비롯해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는 심해자원 개발이 가능해졌다. 또한 해양은 ‘지구의 냉장고’로 불릴 정도로 생태계 보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국가 관할권을 넘어서는 해저의 생물학적 다양성, 유전자원을 어떻게 보전하고 이용할 것인가에 대한 수많은 분쟁들이 생겨나고 있다.” ―미국이 북한 핵 문제에 올인하는 사이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북핵이 핫이슈이지만 남중국해 분쟁은 여전히 굉장히 복잡하고 심각한 문제다. 강의할 때 종종 이런 이야기를 한다. 남중국해 문제가 얼마나 복잡한가 하면 ‘독도가 100개쯤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 분쟁은 단순히 중국과 베트남, 중국과 필리핀 간의 문제가 아니다. 베트남과 필리핀,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등 6개의 분쟁 당사국이 서로 치고받고 있는 상황이다. 다자적인 접근이 필요하고, 충돌 방지를 위한 신뢰 구축 조치도 필요하다.” “차세대 국제법 전문가 키워야” ―해양 분쟁은 ICJ, ITLOS, 상설중재재판소(PCA) 등에 각각 제소할 수 있다. 어떤 차이가 있나. “1969년의 북해대륙붕사건 이후 40년 가까이 국제사법재판소가 다룬 사건의 절반 이상이 해양 분쟁이었다. 그래서 1996년 해양 분쟁을 전담하는 국제해양법재판소가 생긴 것이다. 분쟁 당사국이 선호하는 재판소에 제소할 수 있다. 지난해 20주년을 맞은 국제해양법재판소는 출범 후 가장 많은 해양 분쟁 재판을 맡아왔다.” ―국제재판소의 판결의 제재 수단이 명확하지 않다고 비판하는데…. “국제재판소의 판결은 엄격한 구속력을 갖는다. 재판의 당사국들은 국제재판소의 판결을 수락하고, 이행해야 할 법적인 의무가 있다. 그러나 국내법처럼 경찰이나 집달관이 없기 때문에 강제로 집행할 방법은 없는 게 사실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결의문을 채택하고, 제재를 할 수도 있지만 안 지키면 할 수 없다. 그러나 대부분 판결을 지키는 것이 관행이다. 2주 전에 우리 재판소에서 가나와 코트디부아르 간의 해양경계 재판 판결을 내렸다. 양국 간의 분쟁수역에 가나 국내총생산(GDP)의 10%에 해당하는 엄청난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었다. 판결이 끝나자마자 양국 장관들이 ‘성실히 이행하겠다’는 공동성명을 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고, 지역평화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것이다.” 백 소장은 “한국은 최근 조선, 해운에서 큰 위기를 겪고 있지만 세계에서 손꼽히는 해양강국”이라며 “특히 심해저 광물자원 개발 분야에서는 굉장히 앞서가는 선행 투자국”이라고 말했다. 그는 “강대국이 힘을 겨루는 해양 환경에서 한국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국제법 분야에 보다 많은 젊은이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이 된 계기는…. “1996년 국제해양법재판소가 출범하기 전에 준비위원회가 있었다. 1990년부터 우리 정부 대표로 준비위원회에 참가해 오면서 나도 언젠가는 재판관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선임이었던 박춘호 재판관이 임기 중 병환으로 돌아가셔서 보궐선거를 치르게 됐는데, 우리나라 후보로 제가 지명돼 선출됐다.” ―국제법 전문가를 양성하려면…. “대학 시절 국제법 국비유학생 제도 덕분에 미국 컬럼비아대 석사, 영국 케임브리지대 박사까지 공부할 수 있었다. 국제법을 공부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영어와 프랑스어도 잘해야 하고, 법률과 함께 각국의 역사와 문화도 함께 연구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엔 로스쿨 제도가 들어선 이후 젊은이들이 점점 더 국제법을 기피하고 있다. 다들 국내법을 공부해서 판검사 되고, 로펌 변호사가 되는 목표만 세운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이사를 갈 수 없는 이상 지정학적 위치는 숙명이다. 통상국가인 한국에서 국제법 전문가를 키우는 것은 미래가 걸린 일이다. 소명의식을 가진 소수라도 계속 키울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문인 이광수의 문학적 업적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가 언론인이자 논객으로 활동했던 사실은 별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남선, 홍명희도 언론인으로 큰 발자취를 남겼지만 문인으로만 알려져 있는 것도 비슷합니다.” 한국 언론사 연구의 권위자인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78)가 춘원 이광수(春園 李光洙·1892∼1950)의 언론인으로서의 활동을 실증적으로 조명한 책을 펴냈다. ‘언론인 춘원 이광수’에서 정 교수는 일본 경찰의 비밀 기록과 신문 잡지를 조사하고, 춘원의 글을 찾아내 그의 언론 활동을 추적했다. 정 교수는 책에서 “이광수는 기행문과 회고록으로 자신의 행적을 기록하거나 스스로를 소설의 모델로 삼기도 했다”며 “그의 삶 자체가 일반 대중에게 관심과 논란의 대상이었고 소설보다 더 흥미로운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광수는 양친을 여의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평생 병마와 싸웠다. 그러나 정 교수는 “춘원은 일본 유학을 경험하고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 러시아령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독립운동가들을 직접 만났다”라며 “공간적으로도 그만큼 넓은 견문을 갖추었던 사람은 흔치 않았다”고 했다. 춘원은 1919년 도쿄 유학생 독립선언문을 작성한 뒤에는 상하이로 망명해 임시정부와 긴밀한 관계였던 ‘독립신문’을 발행하면서 창간사를 통해 5가지 사명을 밝혔다. 일각에서는 독립신문의 개방적인 사실보도 원칙에 대해 적에게 비밀이 누설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춘원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적의 눈을 가리우기 위하야 동포의 눈을 가리우는 어리석음을 배우지(學) 아니하리라. 또 동포를 격려할 필요를 아노라. 그러나 사실을 과장하거나 한갓 허장성세의 논설로 동포를 속이는 죄를 짓지 아니하리라. 허위나 과장이나 논(論)을 위한 논, 문(文)을 위한 문은 아등의 결코 취하지 아니할 바라.” 춘원은 귀국 후에는 동아일보 편집국장 두 차례, 조선일보 부사장 겸 편집국장으로 재직했다. 동아일보 재직 시절에는 아산 현충사 유적 보존 운동을 벌이면서 역사소설 ‘이순신’을 직접 써서 연재했고, 농촌 계몽과 한글 보급을 위한 브나로드 운동을 할 때는 신문 캠페인 소설 ‘흙’을 연재했다. 정 교수는 “춘원의 문학 활동은 언론인으로서의 활동과도 깊이 연관돼 있었다”고 했다. 정 교수는 “춘원은 일본 유학 시절부터 늘 우리말과 한글의 우수성을 예찬해 왔다”며 춘원이 러시아에서 발행된 ‘대한인정교보’에서 일할 당시에 한글 가로쓰기와 풀어쓰기, 한글 필기체를 제안했던 희귀 자료도 발굴해 소개했다. 그는 “친일 논란에도 불구하고 춘원은 근대문학의 씨앗을 뿌린 개척자이자 끊임없는 논쟁의 중심에 섰던 논객으로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취임 100일을 맞은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사진)은 26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와 관련해 “이명박 정부 블랙리스트까지 발견돼 진상조사위 조직 확대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도 장관은 이날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법무부로부터 검사를 파견받아서 진상조사위에서 함께 일하고 있다”며 “청와대와 국가정보원에서 발견한 추가 문건이 검찰에 가 있어 파견 검사를 통해 협조를 요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도 장관은 진상조사위가 형사적 문제를 발견했을 때 형사고발 조치를 할 계획이냐는 질문에 대해 “검사를 파견받은 건 그런 부분까지 포함한 것”이라고 답했다. 도 장관은 이명박 정부의 유인촌 전 문체부 장관 시절 문인으로서 겪었던 정치적 간섭과 지원 배제 경험을 털어놨다. 그는 유인촌 장관 때 작가회의 사무총장으로 일하면서 정부로부터 “(회원들이) 불법 집회나 시위에 참여했다가 발각되면 지원금을 모두 반납하겠다는 서약서를 쓸 것을 종용받았다”고 말했다. 도 장관은 “당시 이게 말이 되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많은 사람 중 누가 시위에 참여했는지 알 수 없고 불법 시위인지도 알 수가 없는데 발견되면 지원금 받은 걸 다 반납하겠다는 각서를 쓰라 하니 너무 기가 막혔다”고 말했다. 이는 이명박 정부 당시 이른바 ‘MB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부인한 유 전 장관의 발언에 대한 반론이다. 유 전 장관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문체부 장관으로) 있을 때 문화예술계를 겨냥한 그런 리스트는 없었다”면서 “요새 세상(정권)이 바뀌니까 그러겠구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도 장관은 현재 시급한 현안으로 평창 겨울올림픽 안전 문제를 꼽았다. 도 장관은 “해외에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의 말폭탄을 보며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가는 것 아닌가라는 우려가 큰 것도 사실이다. 해외에서 바라보는 불안 요소를 해소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적극 대처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프랑스 체육부 장관은 평창 올림픽 불참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이후 문체부 노태강 2차관이 프랑스 장관을 직접 만나 안전성에 대해 설명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독일에서도 연이어 불참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안전성 문제가 불거졌다. 도 장관은 “프랑스 오스트리아, 독일뿐 아니라 올림픽 참가 국가의 한국 공관에서도 담당 장관을 직접 만나 안전하게 올림픽을 치를 수 있다는 점을 설득하기로 결정했다”며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도 직접 나서 북한의 올림픽 출전을 적극적으로 권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취임 100일을 맞은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26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와 관련해 “이명박 정부 블랙리스트까지 발견돼 진상조사위 조직확대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도 장관은 이날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법무부로부터 검사를 파견받아서 진상조사위에서 함께 일하고 있다”며 “청와대와 국가정보원에서 발견한 추가 문건이 검찰에 가 있어 파견 검사를 통해 협조를 요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도 장관은 진상조사위가 형사적 문제를 발견했을 때 형사고발 조치를 할 계획이냐는 질문에 대해 “검사를 파견받은 건 그런 부분까지 포함한 것”이라고 답했다. 도 장관은 이명박 정부의 유인촌 전 문체부 장관 시절 문인으로서 겪었던 정치적 간섭과 지원 배제 경험을 털어놨다. 그는 유인촌 장관 때 작가회의 사무총장으로 일하면서 정부로부터 “(회원들이) 불법 집회나 시위에 참여했다가 발각되면 지원금을 모두 반납하겠다는 서약서를 쓸 것을 종용받았다”고 말했다. 도 장관은 “당시 이게 말이 되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많은 사람 중 누가 시위에 참여했는지 알 수 없고 불법 시위인지도 알 수가 없는데 발견되면 지원금 받은 걸 다 반납하겠다는 각서를 쓰라 하니 너무 기가 막혔다”고 말했다. 이는 이명박 정부 당시 이른바 ‘MB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부인한 유 전 장관의 발언에 대한 반론이다. 유 전 장관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문체부 장관으로) 있을 때 문화예술계를 겨냥한 그런 리스트는 없었다”면서 “요새 세상(정권)이 바뀌니까 그러겠구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도 장관은 현재 시급한 현안으로 평창동계올림픽 안전 문제를 꼽았다. 도 장관은 “해외에선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의 말폭탄을 보며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가는 것 아닌가라는 우려가 큰 것도 사실이다. 해외에서 바라보는 불안요소를 해소할 수 있도록 정부차원에서 적극 대처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앞서 프랑스 체육부 장관은 안전성을 이유로 평창올림픽 불참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이후 문체부 노태강 2차관이 프랑스 장관을 직접 만나 안전성에 대해 설명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독일에서도 연이어 불참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안전성 문제가 불거졌다. 도 장관은 “프랑스, 오스트리아, 독일 뿐 아니라 올림픽 참가 국가의 한국 공관에서도 담당 장관을 직접 만나 안전 올림픽을 치를 수 있다는 점을 설득하기로 결정했다”며 “토마스 바흐 IOC위원장도 직접 나서 북한의 올림픽 출전을 적극적으로 권유하고 있다”고 말했다.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군사도시’ 강원 원주가 춤바람으로 들썩이고 있다. 대형 전광판 카메라에 잡힌 관람객들은 몸을 흔들며 춤을 췄고, 사람들은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였다. 브라질 리우 카니발만큼 흥겹다면 과장일까. 24일 폐막한 원주다이내믹댄싱카니발에는 매일 1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몰렸다. 이 카니발에 참가한 일본, 필리핀, 러시아 등 해외 팀은 모두 자비로 비행기표를 사서 30∼50명 단위로 찾아 왔다. 또한 국내에서도 동네 벨리댄스팀부터 노인정, 학교 응원단, 군부대 팀까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총상금 1억8000만 원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관객 심사위원의 점수가 전광판에 공개될 때마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 탄성이 흘러나왔다. 참가자만 152개 팀 1만2000여 명. 6일간 50여만 명의 관객이 몰렸다. 지역 경제에 끼친 효과는 350억 원가량으로 추산됐다. 먹거리 장터에 품바타령, 유명 연예인 초청…. 요즘 난립하는 수많은 지방축제는 대부분 비슷하다. 그러나 원주 댄싱카니발은 관(官)이 아니라 ‘춤추고 싶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열정으로 한국 어디에도 없는 새로운 축제를 만들어냈다.원주=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지난달 31일 강원 춘천 강원대병원 어린이병원 1층 로비. 오랜 병원 생활에 지친 아이들과 부모들이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설화의 뒷이야기를 재해석한 뮤지컬 ‘연이와 야생소년’ 공연을 보며 환한 미소와 박수를 보냈다. 이 작품은 평강공주가 가장 사랑하는 애장품 거울을 훔친 시녀 연이가 숲속에서 야생소년을 만나 진정한 사랑에 눈을 뜨는 이야기다. 공연이 진행되자 로비에는 어린이 환자와 보호자, 의료진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로비 의자에서 관람하던 이수하 양(11)은 “오랫동안 병원 생활을 하다 보니 공연이 있을 때마다 종종 와서 보는 편인데 클래식 연주회가 아닌 연극 공연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강원대병원학교 빈명신 교사는 “병원 로비에서 펼쳐지는 공연은 누구나 지나가면서 보기에도 부담스럽지 않다”며 “병원의 자체 예산으로는 할 수 없는 ‘신나는 예술여행’ 공연으로 환자 어린이들이 정서적으로 큰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문화 인프라 시설이 부족한 소외지역을 위한 문화복지사업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추진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복권위원회가 함께하는 ‘복권기금 문화나눔’ 사업은 400여 개 예술단체가 농어촌 산간지역이나 도시의 복지시설, 군부대, 교정시설 등 문화 소외 지역에 직접 찾아가 공연을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이 사업은 2004년부터 사회적 경제적 지리적 소외 지역에서도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시작됐다. 병원에서 생활하는 어린이들을 위한 ‘신나는 예술여행’뿐 아니라 지방의 문예회관에 공연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방방곡곡 문화공감’, 일상생활에서 문화예술 활동이 가능하도록 동아리 활동을 지원하는 ‘생활문화 공동체 만들기’ 등 지금까지 4500여 회 프로그램이 진행돼 왔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MBC 드라마 ‘병원선’처럼 낙도를 돌아다니며 문화공연을 펼치는 예술공연팀도 생겨나고 있다. 복권기금 문화나눔을 통해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평생 처음으로 경험했다는 주병윤 씨(경북 구미시)는 “마을에서 종종 잔치를 하는데, 평생 처음 경험하는 즐거운 잔치였다”고 말했다. 경기 광명시 하얀문화의집에서 열린 아트마켓에 참여한 주민 정혜경 씨는 “늘 서울의 문화시설을 부러워했는데, 동네에서 수준 높은 예술작품과 공연을 접하게 되니 뿌듯하다”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옛날에 나라를 대표하는 악기엔 나라 이름을 붙였어요. 중국엔 당금(당나라 금)이 있듯이 가야금은 가야제국 시절부터 우리 민족과 애환을 같이해 온 악기죠.” 30일 오후 3시 경기 의정부 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는 한국이 가야금의 종주국임을 알리는 ‘천사금(1004琴)의 어울림’ 공연이 펼쳐진다. 너른 잔디밭에서 펼쳐지는 공연에는 4세부터 77세 어르신까지 전국에서 온 1004명의 가야금 연주자가 하모니를 펼친다. 이 행사를 주최하는 건 국가무형문화재 제23호(가야금 산조 및 병창) 보유자인 이화여대 한국음악과 문재숙 교수(64)다. 그가 이 공연을 마련한 것은 가야금을 자국의 문화재로 지정한 중국이 2013년에 854명이 출연하는 대규모 가야금 공연을 해 기네스북에 올리고,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까지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2013년에 제가 중국 연변대에서 열리는 세미나를 갔는데 가야금 하는 조선족 제자들이 한 명도 안 보이는 거예요. 다들 어디 갔냐고 물었더니 가야금 기네스북에 올리는 공연 연습을 갔다고 하더라고요. 중국이 벌써 1000명 이상이 함께 추는 장구춤 상모춤을 기네스북에 올렸는데, 가야금까지 중국의 악기로 뺏기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 교수는 “중국은 ‘조선족의 문화는 곧 중국의 문화’라는 논리로 한국의 대표적인 민속문화를 하나씩 빼앗아가고 있다”며 “4년 전 한국을 대표하는 악기인 가야금까지 뺏기겠다 싶어 청와대에 민원을 넣어 대책 마련을 호소했는데도 정부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고 말했다. 현재 공연에 참가하는 가야금 연주자 신청자는 1300여 명에 이른다. 이들이 함께 연주할 가야금 곡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다. 문 교수는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개발로 한반도 정세가 위기인 상황에서 우리 민족이 함께 연주해 온 가야금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가야금을 연주할 것”이라고 말했다. 행사에는 문 교수의 두 딸인 가야금 연주자 이슬기 씨와 미스코리아 출신 배우 이하늬 씨도 함께 참여한다. 특히 이하늬 씨는 무대에서 가야금을 연주하는 것은 물론이고 국악계의 아이돌 김준수와 함께 행사 진행도 맡는다. 문 교수는 “배우인 하늬는 드라마 속에서도 한국무용이나 가야금 등 우리 문화를 잘 알리고 있어 늘 기특하게 생각한다”며 “이번 프로젝트에서도 자신을 맘껏 활용해 달라고 해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02-582-4470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2018 평창 겨울올림픽을 앞두고 역대 최대 규모의 ‘2017 원주 다이내믹 댄싱카니발’이 20∼24일 원일로, 따뚜경기장, 문막 등 원주시내 7곳의 특설무대에서 펼쳐진다. 국내외 152개 팀 1만2000여 명이 참가하는 댄싱카니발과 프리댄싱페스타 이외에도 축제기간에 요일별 테마를 주제로 한 다양한 공연이 펼쳐진다. 19일 전야제는 나비 퍼포먼스로 평창 겨울올림픽 성공 개최를 기원하며, 20일 개막식에서는 1000여 명의 시민합창단과 가수 양희은 씨가 콜라보 공연을 선보인다. 21일부터는 향토사단인 육군 제36보병사단의 군악축제, 청소년오케스트라와 꿈의오케스트라, 6090청춘합창단 공연, 댄싱카니발 경연 ‘스페셜 베스트 15’와 ‘파이널 베스트 15’에 선정된 30개 팀, 프리댄싱페스타 우수 팀의 공연 등이 진행된다. 수상 팀에는 총 1억8000만 원의 상금이 수여된다. 033-763-9401∼2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2018 평창겨울올림픽을 앞두고 역대 최대규모의 ‘2017 원주 다이내믹 댄싱카니발’이 20~24일 원일로, 따뚜경기장, 문막 등 원주시내 7곳의 특설무대에서 펼쳐진다. 축제 기간 동안 국내외 152개팀 1만2000여명이 댄싱카니발 경연을 펼치고, 신설된 프리댄싱페스타에 2000여명이 참가해 총상금 1억8000만원의 주인공을 가린다. 또한 축제기간동안 요일별 테마를 주제한 다양한 공연도 펼쳐진다. 19일 전야제는 나비 퍼포먼스로 평창동계올림픽 성공 개최를 기원한다. 20일 개막식에는 1000여명의 시민합창단과 가수 양희은 씨가 콜라보 공연을 선보인다. 21일부터는 향토사단인 육군 제36보병사단의 군악축제, 청소년오케스트라와 꿈의오케스트라, 6090청춘합창단 공연, 댄싱카니발 경연 ‘스페셜 베스트 15’와 ‘파이널 베스트 15’에 선정된 30개 팀, 프리댄싱페스타 우수 팀의 공연 등이 진행된다. 2011년 처음 시작된 원주 다이내믹 댄싱카니발은 지난해 문화관광 유망축제로 선정된 지 불과 1년 만에 우수축제로 격상되는 등 빠른 성장으로 국내외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해외 팀은 2012년 1개팀이었던 것이 2014년 3개국 12개팀, 지난해 8개국 42개팀에서 올해 13개국 45개팀 1600명으로 큰 폭으로 늘어 명실상부한 세계적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올해는 아시아 거리 축제를 대표하는 5개국이 퍼레이드 네트워크 협의체를 발족한다. 일본 요사코이 소란 마츠리에서 활동하는 ‘수가 재즈댄스 스튜디오’는 댄싱카니발 1회부터 올해까지 7년 연속 참가하고 있으며 필리핀 세부 시눌룩 페스티벌 힙합 부문에서 3년 연속 대상을 차지한 ‘돈 주앙’과 일본 삿포요사코이 페스티벌 대상팀인 ‘히라기시텐진’도 3년째 참가한다.댄싱카니발 프린지 축제는도 볼만하다. 올해는 187개팀 1500여명의 공연단이 문화의 거리, 자유시장 시계탑 앞 등 곳곳에서 350여 차례에 걸쳐 각종 공연을 펼친다. 마임, 마술, 퓨전국악, 탭댄스, 아카펠라 등의 분야는 전국에서 약 140개 공연 팀이 몰려들어 엄격한 심사과정을 거쳐 25개팀을 선별했다. 또한 지역 동아리들이 참여하는 통키타, 색소폰, 무용, 버스킹 등의 공연도 마련됐다. 어린이와 함께 참여하는 가족 관람객을 위해 ‘체험 존’이 확대 개편됐다. 따뚜 공연장 1층 복도 및 연습실, 야외 소공연장 등에서 ‘환경’을 주제로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어린이 타악놀이극 ‘드림스케치’, 상상놀이터 ‘비밀의 마을’, 문화예술교육 체험 ‘잃어버린 환경을 찾아서’가 진행된다.원주문화재단 관계자는 “지난해 6일의 축제 기간 원주시민을 비롯 댄싱카니발 참가자, 관람객 등 47만 명이 축제를 즐겼고 경제효과도 339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며 “올해는 축제 기간과 공간이 더욱 늘어나 더 큰 문화·경제적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 한다”고 말했다. 033-763-9401~2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 “무릎 꿇은 장애아 어머니들을 보고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20년 전 우리가 당한 고통으로 충분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똑같은 현실이라니 너무나 참담합니다.” 13일 서울 강남구 일원로 밀알학교에서 만난 홍정길 밀알복지재단 이사장(75)에게 최근 서울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장애아 학부모들이 무릎을 꿇은 영상을 봤느냐고 했더니 이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던 그는 2, 3분간 말을 잇지 못했다. “그날 특수학교 설립 토론회가 열리는 줄 알았다면 현장에 쫓아갔을 겁니다. 그런데 몰랐어요…. 미안합니다.” 올해로 개교 20년을 맞은 밀알학교는 발달장애 아동을 위한 유치부, 초·중·고등부, 전공과정에 현재 206명이 다니고 있는 특수학교다. 그러나 1997년 설립 당시 아파트 값 하락을 우려한 주민들의 반대 시위와 소송으로 큰 고통을 겪어야 했다. 개신교계의 원로목사(남서울은혜교회)인 홍 이사장에게서 당시 이야기를 들었다. 》 “내 아이를 먼저 데려가 달라”―특수학교를 짓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1990년대 초 교회의 한 신자 가정을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밑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는데 ‘아, 목사님, 신경 쓰지 마세요’라고 해요. 예배가 끝나고 집을 둘러보다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식을 지하에 가둬서 키우고 있었습니다. 당시엔 유전자(DNA)에 문제가 있다고 알려지면 다른 자녀들까지 혼사길 망친다고 장애아를 밖으로 데려나가지 않았어요.” 홍 목사는 이후 “똑같은 영혼인데 우리와 다르게 보인다고 해서 어떻게 가둬서 키우는가. 하나님 앞에 범죄”라며 장애아들을 교회로 데리고 오도록 했다. “어느 날 한 장애인 엄마가 기도회에서 울면서 ‘제가 죽기 1년 전에 제 아이를 제발 먼저 데려가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세상에 부모가 자식을 먼저 죽여 달라고 하는 기도는 처음 들었어요. 1975년부터 몸담았던 서울 반포 남서울교회 담임목사직을 포기하고, 장애인 특수학교를 짓는 일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1992년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인근 1만500여 m² 규모의 초등학교 터를 매입했다. 그는 당시 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와 밀알복지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던 평생지기 손봉호 박사에게 특수학교 운영을 맡겼다. 그러나 특수학교를 짓는다는 소식에 주변 아파트 벽에 반대 플래카드가 빼곡히 들어차기 시작했다. 공사장에 굴착기나 기중기 같은 건설장비가 들어오면 바로 주민 수백 명이 몰려와 몸으로 막았다. “주민들과 대화하며 별 수모를 다 겪었습니다. 발길로 걷어차이고, 멱살을 잡히고…. 당시 손 박사가 ‘장애인은 우리가 사랑하고, 보호해야 할 대상’이라고 설득했더니 주민들이 ‘당신 집안이나 대대로 장애인이 많이 나오길 바란다’라고 퍼붓더군요.” 당시 특수학교 건립 허가는 구의 권한이었다. 강남구청장은 홍 목사에게 “장애인 학교가 들어오면 아파트 값이 떨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며 “집값 하락분을 목사님이 보상해 준다는 각서를 써주면 건립을 허가해 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어찌나 어이가 없고 화가 나던지. 제가 대놓고 말했어요. ‘대한민국 지자체 1번지로 꼽히는 강남구청장이 이따위 소리를 하는 대한민국은 참 불행한 나라’라고 말이죠. 그런데 돌이켜보면 제가 이런 역제안을 했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집값 하락분은 제가 보상해줄 테니, 만일 집값이 오를 경우엔 상승분의 10%만 나를 주면 안 되겠습니까.’ 그랬으면 제가 ‘떼부자’가 됐을 거예요.” “특수학교 개교에도 집값 상승률 최고” 밀알학교는 1994년 법이 개정돼 허가권이 구에서 서울시교육청으로 바뀌어 학교 설립 허가가 났다. 그러나 주민들의 반대는 계속됐다. 주민들은 105억 원에 이르는 피해보상 소송을 제기했다. “한겨울에 중년의 여성들이 밍크코트를 입고 와서 학교를 점령했어요. 세상에 밍크코트 입고 데모하는 사람은 처음 봤죠. 이분들이 공사 차량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고, 밀치고 하다가 밍크코트 단추가 떨어진 것까지 전부 보상 요구 액수에 포함했습니다. 당시 주민대표 소송 대리인이 고승덕 변호사예요. 나중에 그가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나왔을 때 참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법원은 1996년 2월 밀알학교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전국의 장애인 시설은 주민들의 반대로 신규 허가는 물론이고 증개축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밀알학교가 승소하자 그동안 보류됐던 250여 개 장애인 시설 문제가 모두 풀렸다. “힘들었지만 우리가 고통을 당한 결과 장애인들을 묶고 있던 사슬을 풀어 버렸다고 생각하니까 기뻤어요. 이후엔 그런 문제가 없어졌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도 장애인 부모들이 무릎을 꿇어야 하는 것은 21세기 우리의 초라한 자화상입니다.” ―학교가 들어선 이후 실제로 집값이 떨어졌습니까. “당시 30평대 아파트가 2억 원대였는데 지금은 11억∼12억 원 합니다. 일원동은 강남 전체 지역 중에서도 집값 상승률이 가장 높았던 곳입니다.” ―당시 주민들이 반대했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입니까. “얘기를 들어보니 주민들이 학교가 아니라 ‘장애인 수용소’를 짓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더군요. 일단 매일 아침부터 장애인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게 싫다는 거예요. 또 발달장애아는 한번 감정이 폭발하면 셀프컨트롤이 안 된다는데, 갑자기 동네로 들어와서 우리 애들에게 해코지하면 어떡하느냐고 억지소리도 늘어놓았습니다.” ―장애아들이 실제로 동네 아이들을 위협하는 일이 있었습니까. “개교 후 그런 사고는 단 한 건도 없습니다. 이제 주민들도 자폐아들이 위험하다고 했던 말들이 모두 공포감이고 선입견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죠. 당시 반대하던 주민 중에 밀알학교 체육관에서 예배를 보는 우리 교회 신자가 된 분들도 많아요.” 밀알학교는 2001년에 카페, 빵집, 미술관, 음악홀 등 주민 편의시설을 갖춘 ‘밀알아트센터’를 개관했다. 특히 중국의 유명 도예가 주러겅(朱樂耕)의 세라믹 작품으로 만든 벽화와 음향판으로 시공된 세라믹팔레스홀은 뛰어난 음향으로 베를린필하모닉 스트링퀸텟, 바이올리니스트 길 샤함 등 세계적인 연주자들도 자주 찾는다.“사람들은 누구나 잠재적 장애인” “대부분의 특수학교엔 장애아, 교사, 학부모만 출입해요. 경기도의 한 특수학교 학부모가 학교 주변에서 사람들과 마주치면 ‘쳇’이나 ‘쯧’ 하는 소리가 들린대요. 그럴 때마다 ‘나는 장애인 자식을 둔 천형받은 인생이구나’ 하는 자괴감에 빠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밀알학교는 그렇지 않아서 부럽대요. 학교에 교회 신자와 일반 주민이 수시로 들락거려 장애인 부모라는 것이 드러나지 않아서 좋다면서 울어버리더군요.” ―장애아를 일반학교에 보내는 경우도 있는데 특수학교가 필요한 이유는…. “사실은 일반학교에 특수학급을 만드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러나 장애학생들이 비장애학생과 섞여서 수업하다 보면 학업을 따라가지 못해 놀림감이 되는 경우가 많아요. 부모들은 자기 아이가 정상이라고 생각해서 될 수 있으면 일반학교에 보냅니다. 그러다가 아이가 멸시받을 대로 다 받고, 버려진 다음에 특수학교로 옵니다. 그렇게 대인공포증이 생긴 다음에 특수학교로 오면 해줄 수 있는 게 거의 없어요.”“세상에서 가장 슬픈 졸업식 안 돼야” ―우리나라 사람들이 장애학교를 기피시설로 생각하는 이유는…. “서양에서 장애인을 보호하는 것은 하나의 공통된 언어입니다.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마음속에 장애인을 용납하지 않는 뿌리 깊은 관념이 있어요. 아마도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며 조선시대부터 몸이 온전하지 못하면 불효자식이라고 멸시해온 탓도 클 겁니다. 우리는 모두 잠재적 장애인입니다. 의식 개혁이 국민운동으로 펼쳐지지 않으면 많은 세월이 걸릴 것입니다.” 홍 목사는 “특수학교 졸업식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졸업식’이 된다”며 “장성한 아이가 졸업을 하면 집에서 부모가 24시간 감당해야 하는데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그는 유치부부터 고교까지 13년 교육과정 졸업 후 장애인 직업훈련을 위한 2년 과정의 전공과를 만들었다. 도자기 제작, 구슬 공예도 가르쳤지만 2년간 학교생활이 연장됐을 뿐 사회에서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결국 그가 세계 곳곳을 돌아다닌 끝에 찾아낸 것이 미국의 ‘굿윌스토어’. 기증받은 물건을 장애인들이 간단히 수선해서 파는 가게다. “사람들은 장애인들이 만든 물건을 한 번은 사줍니다. 그러나 장애인이 만든 물건이나 액세서리를 실제로 사용하진 않아요. ‘재수 없다’고 생각하는 게 현실입니다. 그런데 ‘굿윌스토어’는 장애인이 만든 것이 아니고 기증받은 헌옷이나 물건을 수선해서 파는 가게입니다. 밀알복지재단 내에 4개의 굿윌스토어에서 현재 130여 명의 장애인이 일하면서 최저임금을 받고 있습니다. 130만∼140만 원 정도의 첫 월급을 받고 얼마나 좋아하던지, 아이들은 물론이고 온 가족이 울더군요.” 홍 목사는 “13년간의 정규교육, 2년간의 전공과정에도 자폐아들은 자기 세계에만 갇혀 있었는데, 1년간 돈을 벌면서 15년간의 교육 기간보다 더 큰 변화가 생기는 걸 보고 장애인도 직업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장애인 ‘그룹홈’을 만드는 일에 매달리고 있다. “‘죽기 1년 전 자식을 죽여 달라’는 장애인 부모의 기도가 평생 마음에 걸려 있습니다. 부모가 죽어도 장애인들끼리 함께 살 수 있도록 그룹홈을 7개 만들었습니다. 월∼금요일에 장애인 4명과 봉사자 1명이 함께 사는 집입니다. 주말에는 집으로 부모를 만나러 갑니다. 서울 집값이 너무 비싸 정말 어렵긴 하지만, 제가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입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