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대표 3자회담(16일)으로도 탈출구를 찾지 못한 대치 정국이 추석 연휴 이후에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청와대와 여야는 추석 민심 향배를 예의주시하면서 각자 유리한 해법을 찾기 위해 고심을 거듭하는 모습이다.○ 여, 정국 정상화 시도 속 카드 고심 새누리당은 묘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세제개편안과 경제 살리기 및 부동산 대책 관련 법안 등을 조속히 통과시키려면 민주당의 협조를 얻어야 하지만 마땅한 카드가 없다는 점이 고민이다. 당 고위 관계자는 21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유화책을 더 써야 하는 것인지, 계속 압박을 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스럽다”면서 “사실 여권에서 이제 더이상 내놓을 것도 없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일단 추석 이후 정기국회 의사일정 합의 등 국회 정상화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민주당의 국회 복귀를 위해 추석 이후 물밑 접촉을 재개해 절충안을 마련하겠다는 복안이다. 당 핵심 관계자는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다시 접촉을 시도할 예정”이라며 “여러 방안을 놓고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도 내심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다. 자칫 박 대통령이 ‘일방주의 정치’ ‘불통’ ‘정치력 실종’의 프레임에 갇힐 수 있다는 점에서다. 정치권 안팎에선 모든 국정의 최종 책임을 지고 있는 박 대통령이 대화와 협상, 양보의 정치를 좀 더 보여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특히 정기국회 파행이 민생법안 표류로 이어질 경우 ‘경제 살리기’라는 박 대통령의 최우선 과제가 성과를 낼 수 없다는 점이 부담이다. 경제 활성화가 가시화되지 않고 공공기관장 공백의 장기화 등으로 국정이 정상화되지 않을 경우 결국 정부 책임론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청와대의 기류는 국정 파행의 책임은 민주당에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 야, “전면 장외 투쟁? 원내외 병행 투쟁?” 민주당도 투쟁 전략을 놓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노숙 투쟁 25일째를 맞은 김 대표는 연휴 기간 의원들과 매일 간담회를 갖고 당내 의견 수렴에 열중했다. 22일에도 당내 선수(選數)별로 의원들을 만나 조언을 구하기로 했다. 민주당은 원내외 병행 투쟁을 어떻게 할지, 전면적 장외 투쟁을 할지, 아니면 장외 투쟁을 접을지를 두고 내부 논의가 한창이다. 당내에서는 장외 투쟁 수위를 더욱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 3자회담 이후 대두하고 있다. 그러나 장외 투쟁을 언제까지 할 것이며 그 동력을 어디서 이끌어 낼지가 문제다. 일단 김 대표 측은 “대표는 의회주의자”라며 “국회를 버리는 일은 없다”고 밝히고 있다. 당 일각에서도 박 대통령과 ‘절연’을 선언하고 원내에서 예산안, 세법개정안 등을 놓고 치열하게 여당과 맞붙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정감사와 대정부질문 등을 활용해 박근혜 정부 7개월의 ‘실패’를 집중 공략하자는 전략인 것이다. 23일에는 의원총회도 열린다. 추석 민심을 점검하고 향후 투쟁 방향과 수위를 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열쇠는 김 대표가 쥐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하지만 당내 강경 목소리가 여전하고 국가정보원 개혁이라는 민주당의 핵심 현안을 없었던 일로 치부하고 회군하기는 어렵다는 관측도 만만치 않다. ○ 추석 민심 썰렁 MBC가 20일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전국 성인 남녀 1000명 대상 집전화와 휴대전화 임의번호걸기 방식·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는 66.0%로 11일 조사 때에 비해 6.7% 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3자회담 후 민주당의 장외투쟁에 대해서도 ‘중단해야 한다’는 응답(66.7%)이 ‘지속해야 한다’는 답변(23.0%)보다 3배 가까이 많았다. 한편 혼외아들 의혹에 휩싸인 채동욱 검찰총장과 관련해선 진상조사를 위해 ‘감찰에 적극 응해야 한다’가 67.6%로 ‘감찰에 응할 필요가 없다’(25.1%)를 크게 앞질렀다. 채 총장 사건이 고위공직자의 도덕성 문제라는 의견(48.0%)이 검찰 흔들기라는 응답(39.2%)보다 많았다. 고성호·민동용·윤완준 기자 sungho@donga.com}
“민주주의의 밤은 더 길어질 것 같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16일 오후 국회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3자회담 결과를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민주주의의 밤’이라는 말에 청와대와 여당이 얼마나 동의할지는 모르지만 ‘꼬인 정국의 밤’은 오래갈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그만큼 주요 현안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과 김 대표의 견해차가 생각보다 넓고 깊다는 점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이날 의총에서 “1시간 반 중 상당 시간을 박 대통령의 사과에 대한 공방을 벌였다”면서 “그러나 (박 대통령은) ‘추석을 앞두고 여야가 합심해서 민생을 위한 정치에 매진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만을 1시간 반 동안 관통했다고 보면 된다”고 밝혔다. 실제 김 대표는 지난해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의혹 사건과 10·4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채동욱 검찰총장 사퇴의 배후 책임 등을 주장하며 회담 내내 박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고 박 대통령도 자신의 논리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회담 후 공개된 발언 내용을 놓고 여야의 평가도 상반됐다. 향후 청와대와 민주당이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김 대표는 “민주주의의 회복을 기대하는 것은 무망(無望)하다”며 “저는 옷 갈아입고 천막으로 가겠다”고 결론지었다. 추석 연휴에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의 천막당사는 유지되고 김 대표의 노숙투쟁도 계속된다는 뜻이었다. 연휴가 지난 23일이면 지난달 1일부터 시작한 민주당의 장외투쟁은 2005년 12월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였을 때 사학법 개정안에 반대하며 벌인 장외투쟁 일수인 53일을 넘어선다. 민주당은 일단 추석 연휴에 지역 민심을 듣고 23일 오전 10시 국회에서 다시 의총을 열어 앞으로 어떻게 대처할지 논의하기로 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평행선만 그은 회담 결과와 채 총장 사퇴 사태를 거치며 민심이 동요하면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도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정기국회 운영에 부담을 갖게 될 정부 여당의 태도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정기국회 파행은 장기화될 것이라는 게 대다수 의원들의 인식이다. 의총 직후 열린 긴급최고위원회의에서는 “전면적인 장외투쟁을 하자”, “국정감사를 보이콧하자” 등 격앙된 의견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전병헌 원내대표는 “대통령의 불통의 정도가 실망과 무망을 넘어 절망적 수준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는 게 그나마 성과”라고 꼬집었다. 청와대는 “대통령이 진정성 있게 야당의 모든 질문에 성실하게 답하고 오해를 풀기 위해 노력했다”며 민주당이 장외투쟁을 계속하기로 결정한 데 대해서는 “국회를 보이콧한 것은 아니니 좀 더 지켜보자”는 반응이었다. 청와대는 회담 결과에 대해 “국민이 판단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한 관계자는 “대통령이 국정원 개혁에 대해 더이상 민간이나 관에 출입하지 않겠다는 정도로 의지를 밝혔고 검찰총장 건에 대해서도 진실이 규명돼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고 하면 사표를 수리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야당의 의견을 다 수용했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국회를 찾아가 야당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줬다는 것과 대통령은 민생에 전념하고 싶어 한다는 점을 국민들에게 전한 것이 소득”이라며 “어차피 3자회담을 하지 않아도 정국 경색은 풀리기 어려웠기 때문에 더 나빠질 것은 없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민주당이 해묵은 정쟁거리를 쏟아 내며 어렵게 성사된 회담을 망쳤다고 성토했다. 유일호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국민이 잘 먹고 잘살도록 무엇을 해야 할지 진심을 담은 제안을 했어야 한다”며 “제1야당의 역할을 망각한 민주당은 사과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김 대표가 박 대통령의 발언을 여과 없이 그대로 공개한 것에 대해 한 초선의원은 “어 다르고 아 다른데 저렇게 그대로 소개하면 온건파라도 장외로 나가라고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당 핵심관계자는 “지금 국회로 들어오지 않으면 민주당 지지도가 한 자리로 떨어질 수 있다”며 “김 대표의 리더십도 흔들릴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민주당 김관영 대변인은 “제1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은 박 대통령에게 민주당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그 인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우쳐 주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민동용·동정민 기자 mindy@donga.com}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15일 채동욱 검찰총장 사퇴와 관련해 “박근혜 정부가 눈엣가시처럼 여긴 검찰총장을 유신시대에도 없던 방식으로 몰아냈다”며 “16일 국회에서 열리는 대통령과 여야 대표 간 3자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이 문제에 대해 분명하게 답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서울시청 앞 광장 천막당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회담에선 국가정보원 등 국가 권력기관의 정치 개입의 폐해가 주요 의제가 돼야 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김 대표가 당내 일각의 3자회담 거부 주장에도 불구하고 응하기로 한 것은 민주당의 생각을 적극 개진하고 박 대통령에게 직접 채 총장 문제를 따져 묻겠다는 뜻으로 분석된다. 김 대표는 이어 “채 총장 사태를 보면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검사는 유죄고, 국정원은 무죄로 하는 것”이라며 “박근혜 정부의 오만과 배타, 증오의 바벨탑은 정의와 양심의 저항으로 무너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또 3자회담 전 과정을 TV 생방송 또는 녹화방송으로 중계하자고 제안했다. 김관영 수석대변인은 “12일 청와대가 3자회담을 제안하면서 ‘국민들에게 회담 내용을 투명하게 모두 알리겠다’고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정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기자들과 만나 “이번 사안을 의도적 프레임으로 몰아가서 청와대에 책임을 묻고 이런저런 의혹을 제기하는 등 본질과 다른 방향으로 가서 국론을 분열시키고 공직사회를 흔드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다. 채 총장으로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3자회담 전 과정을 보도해야 한다는 민주당의 요구에 대해서도 “각 측이 회담 내용을 조율 없이, 제한 없이 다 공개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본다”며 거부했다. 3자회담은 예정대로 열리게 됐지만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과 함께 막판 쟁점으로 급부상한 채 총장 사퇴 사건에 대한 생각이 근본적으로 달라 3자회담이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국 경색이 오히려 심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3자회담에는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과 새누리당 여상규, 민주당 노웅래 대표비서실장 등 3명이 배석한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16일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황우여, 민주당 김한길 대표 간 ‘국회 3자회담’은 통상적인 회담이라기보다는 치열한 토론의 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 김 대표는 3자회담을 하루 앞둔 15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천막당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채동욱 검찰총장의 사퇴 배후에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검찰총장 사퇴가) 목표하는 바는 분명하다.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을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한 검사는 유죄이고 반대로 국정원은 무죄라는 것”이라며 “국정원의 국기문란은 박 대통령이 직접 관여한 바가 없다고 했지만 이번 검찰총장 사퇴라는 반(反)법치주의적 행태는 대통령 재가없이 있기 어렵다”고 박 대통령을 직공했다. 이어 김 대표는 “국정원의 대선 개입 사건과 경찰의 축소 수사가 은밀한 공작이었다면 검찰총장 몰아내기는 국정원 사건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피하기 위한 공개적이고 비겁한 국기문란”이라고 비난했다. 김 대표는 기자회견 내내 “권력의 음습한 공포정치” “국정원 대선 개입 진상 규명을 방해하려는 긴급조치” “용기 있는 검사, 영혼을 가진 공무원은 십자가를 져야 하는 공포와 야만의 시대” 등 강도가 센 표현을 구사했다. 그러나 3자회담에는 응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당내 일각에선 국정원의 대선 개입 사건을 수사하면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을 기소한 채 총장이 물러남으로써 진상 규명이 어려워졌고, 그런 만큼 회담을 할 필요성이 사라졌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그러나 김 대표는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과 함께 또 다른 정치 개입 사건인 채 총장 사안을 묶어 박 대통령 면전에서 직접 묻고 따지는 것이 얻는 것이 많다고 판단했다는 후문이다. 한 당직자는 “여야 경색 국면이 쉽게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 3자회담을 거부했을 때 추석 ‘밥상머리 여론’이 민주당에 호의적이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크게 좌우한 것 같다”고 말했다. 민주당 지지자들이야 ‘회담 거부’에 거부감이 덜할 테지만 일반 국민은 민주당이 민생을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할 것이란 점을 고려했다는 얘기다. 당에서 실시한 긴급 여론조사에서 채 총장의 사퇴에 대해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 내지는 ‘청와대의 외압이 작용했다’는 응답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김 대표가) 박 대통령을 만나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는 점도 감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 핵심 관계자는 “양자회담도 아닌 3자회담이다. 2대(박 대통령과 황 대표) 1(김 대표)의 대결인데,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 그래서 핵심은 결과가 아닌 대화의 내용과 질”이라며 “그러나 채 총장의 돌연 사퇴로 들끓고 있는 민심과 국정원 개혁의 필요성을 가감 없이 거론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가 기자회견 전 비공개 최고위원회의, 중진 의원 오찬 간담회 등을 통해 다각도로 의견을 수렴한 것을 두고서도 회담 보이콧론을 진정시키고 자신의 구상을 설득하기 위한 조치라는 해석이 나온다. 박 대통령도 채 총장의 사퇴 논란에 대해서 피하지 않겠다는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이 주제를 피할 필요가 없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설명하면 된다”며 “청와대는 채 총장을 사퇴시킬 의사가 없었으며 이 사안은 고위공직자의 윤리의 문제로 진상 규명이 우선돼야 한다는 뜻을 밝힐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정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이 기자들에게 “공직자는 국민 신뢰를 받아야 하고 비리가 있어서는 안 되고, 기강이 확립되어야 한다는 건 대통령이 일관되게 강조해 온 내용”이라고 말한 것과 맥이 닿아 있다. 다만 청와대 일각에서는 채 총장 사안으로 회담의 분위기가 악화될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추석 연휴 전 대통령의 제안으로 정치권이 화합의 모습을 보이는 것을 기대했지만 거꾸로 야당의 공세가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의 다른 관계자는 “진실은 간명하기 때문에 채 총장 건이 회담의 돌발 변수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 같다”며 “회담이 끝나자마자 야당이 국회로 돌아올 것 같지는 않지만 진솔하게 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박 대통령과 김 대표가 사안마다 팽팽한 평행선을 달리면서 3자회담 뒤에도 한동안 경색국면이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민동용·동정민·황승택 기자 mindy@donga.com}
13일 민주당이 청와대가 제안한 대통령과 여야 대표 간 3자회담을 수용했다. “입장을 유보한다”고 한 지 하루 만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12일 오후 2시 청와대가 3자회담을 제안하기에 앞서 이뤄진 새누리당과 민주당 원내대표단 조찬회동에서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는 “회담이 이뤄지려면 국가정보원 개혁 등 의제가 사전에 조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전 원내대표는 “청와대에 우리의 뜻을 확실히 전달해 달라”고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낮 12시경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은 전 원내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곧 우리의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이어 오후 2시 이정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생방송으로 진행된 브리핑에서 3자회담을 제안하면서 의제와 관련해서는 “국정 전반”이라고 말했다. 이에 민주당은 “이건 통보다. 의제에 대한 진의가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며 들들 끓었다. 노웅래 대표비서실장, 민병두 전략홍보본부장은 곧 김기춘 실장과 이정현 수석을 상대로 구체적인 의제에 대한 확인 작업을 벌였지만 “의제는 지시받은 바 없다”는 취지의 말만 들어야 했다. 새누리당 최 원내대표에게도 추궁했지만 “대통령이 결정할 사안이지 않으냐”란 식의 답변만 돌아왔다고 한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 상황에서 덜컥 ‘수용한다’고 할 수 있겠나”라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지도부 내에서는 “그래도 수용 입장을 밝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대두됐다. 야당이 의제를 내세워 시간을 끌 경우 여론의 역풍이 불 수 있다는 우려였다. 한편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의 천막당사 철수 여부는 회담 결과를 보고 판단할 것으로 알려졌다. 민병두 본부장은 13일 기자들과 만나 회담에 임하는 김 대표의 자세에 대해 “배수진을 쳤다”고 했다. 국회 정상화 여부는 순전히 회담 결과에 달려 있다는 얘기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민주당이 청와대가 제안한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대표 간 ‘국회 3자회담’을 13일 수용했다. 이로써 박 대통령, 새누리당 황우여, 민주당 김한길 대표 간 3자회담이 16일 국회에서 열리게 됐다. 김 대표는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천막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청와대가 제안한 3자회담에 응하겠다”고 밝혔다. 회담 의제와 관련해 김 대표는 △국가정보원의 선거 개입과 정치 개입에 대한 확고한 청산의지와 결단을 통한 민주주의의 회복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현재 상황에 대한 박 대통령의 사과 △국가정보기관의 정치 개입 악습에 대한 사법적 응징과 인적·제도적 청산 문제를 제시했다. 김 대표는 “박 대통령이 국가정보기관의 신세를 얼마나 졌는지는 논의의 중심이 아니다. 당시 그가 지시했으므로 사과하라는 것이 아니다”라며 박 대통령에 대한 사과 요구가 대선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데 있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민주당의 회담 수용에 대해 이정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회담 의제와 관련해 청와대 관계자는 “모든 의제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것”이라며 “(민주당) 대표가 오셔서 지금까지 주장한 말씀을 하시면 된다”고 말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박근혜 대통령이 12일 추석 연휴 전에 국회에서 여야 대표와 회동을 하자고 제안했다. 민주당은 제안 형식과 의제를 문제 삼으며 공식적으로는 ‘입장 유보’라고 밝혔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원칙적으로 수용하되 의제 등은 계속 조율하자’는 방침이고 이르면 13일 그 결과를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와 민주당 모두 추석 전에 한 달 넘게 끌어온 정국 경색을 풀어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이루고 있는 만큼 3자회동의 성사 가능성은 높아졌다. 다만 의제 등을 놓고 당분간 기 싸움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16일 회동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정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브리핑에서 “3자회동을 통해 국정 전반 문제 등을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대화에 임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어 “국정 전반에 관해 여야가 (논의)하고 싶은 모든 문제와 현안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해 국민과 정치권의 의구심을 털고 나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국 경색을 불러온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의혹사건과 관련해서도 논의하겠다는 뜻을 밝힌 셈이다. 박 대통령은 이전 정권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대선 개입 논란으로 이어진 데 대해 안타깝다는 뜻을 밝히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의 3자회동 제안은 △기존에 고수했던 5자회동 형식을 철회한 점 △청와대로 초청하는 기존 관행을 깨고 국회를 직접 방문하겠다고 밝힌 점 △껄끄러운 이슈인 국정원 개혁에 대해 논의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점 등에서 일정 부분 양보한 것이라는 평가가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예전 영수회담처럼 야당과 주고받기 식으로 ‘딜(거래)’을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대통령 본인의 생각을 진정성 있게 설명하고 야당의 의견을 듣는 게 회담의 주목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의 회동 추진 및 발표 과정이 매끄럽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민주당은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이 전병헌 원내대표에게 회담 일정과 형식을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제안 사실을 발표했다”며 “예의가 아니다”라며 반발했다. 민주당 김관영 수석대변인은 “청와대의 일방적인 발표에서 제안의 진정성을 확인하기 어렵다”면서도 “청와대의 제안에 대해 정확한 의도, 논의될 의제들을 추가로 확인한 뒤 당의 공식 의견을 정리하겠다”고 말했다.동정민·민동용 기자 ditto@donga.com}
청와대 실무진은 야당과의 회담 제안 시점을 해외 순방 성과의 여운이 남아 있는 12일보다는 13일이나 16일이 적당하다는 의견을 대통령에게 올렸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12일 오전 전격적으로 3자회담을 야당에 공식 제안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만나는 것을 국민이 원하고 있는 이상 추석 전에 빨리 만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회담 제안에만 서두르다 보니 민주당과 충분한 조율을 거치지 않고 발표해 야당의 반발을 사는 미숙함도 보였다.○ 순방 기간에 결심 바꾼 대통령 박 대통령은 지난달 6일 여야 대표 및 원내대표가 참석하는 5자회담을 제안한 이후 회담 형태를 고수해 왔다.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과 관련해 민주당에 줄 것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회담 때 얼굴만 붉힐 수 있다는 우려도 컸다. 4일 해외 순방 출발 전만 해도 이런 생각에 변함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순방 기간 내내 회담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여러 통로로 대통령에게 전달됐다. 가장 적극적인 건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였다. 정기국회에서 성과를 내야 하는 총책인 최 원내대표는 직간접적으로 회담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여러 차례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청와대 정무라인에서도 순방 기간 동안 복귀 후 회담 제안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며 다양한 형태와 의제를 시나리오 형태로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순방 외교에서 성과를 얻은 만큼 귀국 후 야당을 보듬어야 한다”는 언론 보도들도 대통령의 결심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순방 후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최종 결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정무라인의 제안 중에는 관행대로 5부 요인을 청와대로 초청해 해외 순방 성과를 보고한 뒤 3자회담을 하는 안도 포함돼 있었으나 대통령은 국회를 직접 찾아가는 방안을 선택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대선 때 ‘국회를 자주 찾아가겠다’고 한 공약을 잊지 않고 있다”며 “앞으로도 해외 순방 보고를 국회에서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민주당이 회담을 거부하더라도 예정대로 국회를 방문해 국회의장단에 순방 성과를 보고할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의 결심에는 정기국회 때 예산안과 민생법안 처리를 위해 야당의 협조가 불가피한 점, 여당 내에서조차 박 대통령의 소극적인 태도에 대한 지적이 나오는 점 등이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만나더라도 산 넘어 산 회담 성사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어떤 의제가 논의될지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민주당은 박 대통령에게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사과와 진실 규명 △관련 책임자 처벌 △국회 주도 국정원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민주당은 “국정원 개혁에 대한 민주주의 회복 방안이 회담의 주의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민주당에 선물 보따리를 풀어놓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정현 홍보수석은 회담을 제안하며 “(회담 내용을)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야당 지도부와의 회담만 끝나면 제기됐던 ‘빅딜설’, 즉 야당과 서로 주고받기를 할 거라는 의구심을 차단하겠다는 것”이라며 “그래서 양자가 아닌 3자회담을 제안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지금까지 야당이 요구한 것 중에는 들어줄 수 있을 만한 게 없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전 정권 일에 대해서 사과를 하거나 국면 전환용으로 에둘러 유감을 표명할 의사도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국정원 개혁의 의지와 방향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은 회담에서 야당 지도부가 합리적인 요구를 하면 적극 수용하겠다는 생각”이라며 “국회가 결정할 몫인 특위 구성까지 확답은 못하더라도 국정원이 개혁안을 내놓으면 국회에서 잘 논의해 달라는 정도의 언급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새누리당도 민주당의 원내복귀 명분 마련을 위해 국회 내 국정원 개혁 특위 구성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민주당의 고민 민주당은 청와대 제안을 받고 원칙적으로는 수용하지만 진의 파악을 먼저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김기춘 비서실장의 회담 제안을 받고 박 대통령이 국정원 개혁 문제를 의제로 여기고 있는지를 물었으나 “윗분의 지시를 받은 것만 말한다. 의제는 지시받은 바 없다”는 취지의 답변을 들은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조찬회동에서 최경환 원내대표에게 양자회담이 원칙이고 의제에 국정원 개혁이 포함돼야 한다는 뜻을 전달했는데 김 비서실장은 일방적으로 자신들의 제안만 통보해 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도부 내에서 “대통령이 국회까지 오겠다는데 거부할 명분은 없지 않으냐”는 의견이 나오면서 내부에서 밤늦게까지 밀고 당기기를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핵심 관계자는 “청와대의 무례함과 불통은 지적해야 하지만 우리가 회담을 계속 튕긴다는 이미지를 줄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고민의 뜻을 밝혔다.동정민·고성호·윤완준 기자 ditto@donga.com}
전두환 전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와 함께 미납 추징금 1672억 원을 모두 내겠다고 장남 재국 씨를 통해 10일 밝혔다. 이로써 김영삼 정부 때인 1995년 11월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고 1997년 법원이 전 전 대통령에 대해 군사반란 및 내란 혐의로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 원을 확정한 ‘12·12 및 5·18 사건’은 비로소 끝을 바라보게 됐다. 특히 지난 16년간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를 거치며 흐지부지됐던 추징금 미납액 환수 문제가 해결의 전기를 맞게 된 셈이다. 재국 씨는 이날 오후 3시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해 대국민 사과를 한 뒤 자진 납부 계획을 발표했다. 재국 씨는 90도로 허리를 숙인 뒤 “그간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데 대해 가족 모두를 대표해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며 “부친은 당국의 조치에 최대한 협조하라는 말씀을 진작 하셨고 저희도 그 뜻에 부응하고자 했지만 현실적인 난관에 부딪혀 해결이 늦어진 데 대해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말을 끝내고는 다시 카메라를 향해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이날 전 전 대통령 일가는 이미 검찰에 압류된 900억 원 상당의 재산 외에 약 800억 원 상당의 재산을 추징금으로 자진 납부하겠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이미 압류한 재산과 자진 납부 재산을 합쳐 총 1703억 원의 재산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재국 씨는 자신의 명의로 돼 있는 서초동 시공사 사옥 3필지와 경기 연천군 허브빌리지 48필지(33필지는 압류), 미술품 등을, 차남 재용 씨는 서초동 시공사 사옥 1필지를 자진 납부하겠다고 밝혔다. 삼남 재만 씨와 딸 효선 씨 역시 서울 용산구 한남동과 경기 안양시 관양동에 보유한 부동산을 자진 납부 대상에 포함시켰고, 사돈 이희상 동아원 회장은 275억 원 상당의 금융자산을 자진 납부하겠다고 밝혔다. 재국 씨는 “부모님이 현재 살고 계신 연희동 사저도 추징금으로 납부할 것”이라며 “다만 부모님께서 반평생 거주했던 사저에서 여생을 보내실 수 있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검찰은 한국자산관리공사와 함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확보한 재산에 대한 공매 등 환수 절차에 착수할 계획이다. 검찰은 또 추징금 환수 과정에서 드러난 탈세, 해외 비자금 은닉 등의 의혹에 대해서는 계속 수사할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하되 전 전 대통령 일가의 자진 납부 결정 등을 정상참작 사유로 감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 전 대통령이 이날 계획만 발표했을 뿐 아직 완납 절차가 남아 있고, 또 해외 은닉 자산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만큼 검찰 수사를 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1980년 5·18민주화운동 유혈진압 때 ‘발포 지시자’가 누구인지 실체를 밝히지 못했고, 언론통폐합에 대한 책임 소재도 묻지 못했기 때문에 전 전 대통령 본인의 사과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여전하다. 추징금을 완납하더라도 진정한 ‘5공 청산’이 이뤄졌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것이다.민동용·유성열 기자 mindy@donga.com}
1988년 11월 23일 오전 9시 32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 응접실. 퇴임한 지 1년이 채 안 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생중계되는 TV 카메라 앞에서 침통한 표정으로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을 읽어 내려갔다. 믿었던 동지 노태우 대통령은 여소야대 정국에서 야당의 ‘5공 청산’ 요구를 거부하지 못했고 전 전 대통령은 이날 강원도 백담사로 은둔의 길을 떠났다. 이순자 여사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12·12쿠데타 당시 전 전 대통령 측으로부터 하극상을 당했던 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은 1993년 7월 전 전 대통령 등을 내란혐의로 고소·고발했다. 그러나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로 이듬해 10월 ‘공소권 없음’이라고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심판대에 제대로 오르지도 못한 첫 번째 심판이었다. 1995년 10월 노태우 전 대통령이 수천억 원대 비자금을 갖고 있다고 당시 박계동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폭로하면서 두 번째 심판이 다가왔다. 이를 계기로 김영삼 대통령이 ‘역사 바로 세우기’를 내세우며 5·18특별법 제정을 공식화했고 검찰은 다시 전 전 대통령을 향해 수사의 칼날을 겨눴다. 1995년 12월 2일 오전 9시, 이번에는 전 전 대통령이 연희동 자택 응접실이 아닌, 집 앞 골목에서 ‘대국민 담화’를 읽었다. 이른바 ‘골목성명’이었다. 7년 전의 초췌한 표정은 간데없이 성난 얼굴이었다. 그는 “검찰의 태도는 진상 규명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다분히 현 정국의 정치적 필요에 따른 것이라고 보아 저는 검찰의 소환 요구 및 여타의 어떠한 조치에도 협조하지 않을 생각입니다”라고 밝히고는 고향 경남 합천으로 떠나 버렸다. 하지만 이튿날 합천까지 내려온 검찰 수사관들에 의해 전 전 대통령은 서울로 송환됐다. 그리고 1997년 4월 그는 군사반란 및 내란죄 혐의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두 번째 심판의 결과였다. 그해 12월 22일 그는 사면됐다. 하지만 그가 재임 기간 거둔 정치자금 중 사적(私的) 용도로 챙겨 뒀다고 법원이 판단한 2205억 원의 추징이 문제였다. 1997년 법원이 추징금을 확정하면서 확보한 전 전 대통령의 재산은 약 239억 원. 이후 16년 동안 추가로 추징한 돈도 290억 원 남짓에 불과했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민주당은 추징시효를 연장하고 불법 재산과 거기서 유래한 재산을 별도 절차 없이 가족 등에게서 추징할 수 있도록 하는 ‘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 개정안’, 일명 ‘전두환 추징법’을 5월 발의했다. 6월 초 전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 씨가 조세회피처인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소유하고 있다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의 폭로가 나오면서 ‘전두환 추징법’ 처리에 불이 붙었다. 전 전 대통령은 대통령 단임 약속을 지켰고 헌정 사상 처음으로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뤘다는 점 등을 공적으로 내세워 왔다. 하지만 국민은 그가 권력을 쥐는 과정에서의 군사쿠데타 및 5·18 민주화운동 유혈 진압, 5공 기간 자유와 언론을 탄압한 기억을 잊지 않았다. 특히 5·18 민주화운동 중 계엄군의 총격 등으로 민간인 165명(정부 공식 통계)이 사망했지만 누가 최초 발포 명령을 했는지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1995년 검찰의 수사 결과엔 1980년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발포명령 하달 과정에 연루된 정황이 두루뭉술하게 나타나 있을 뿐이다. 5공의 업보를 심판하고 역사적 과오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와 시대적 요구가 퇴임 후 25년이 지나 불법취득 재산에 대한 추징금 납부 선언을 이끌어냈다. 나머지 부분의 5공 청산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셈이다.민동용·신광영 기자 mindy@donga.com}
민주당이 대공수사권 폐지 등을 담은 국가정보원 개혁안을 마련해 이를 당론화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민주당 ‘국정원법개혁추진위원회’는 대공수사권을 비롯해 전체 수사권 폐지, 국내정보 파트 분리, 국회 통제권 강화 등 세 가지 방안을 골자로 한 국정원 개혁안 성안 작업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9일 “조만간 최고위원회의를 거쳐 추석 연휴 전 당론으로 공식 발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정원이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를 적발하는 등 대북 관련 수사의 중요성이 높아진 시점이어서 민주당의 국정원 개혁안이 공식 발표될 경우 정치권, 법조계 등에서 “명분을 갖추지 못했고, 시기도 적절치 않다”는 비판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 내에서도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울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민주당 국정원법개혁추진위원회 간사인 문병호 의원은 9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대공수사권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다. 검찰과 경찰에 대공수사 기구를 만들면 된다”고 말했다. 문 의원은 또 “국정원의 대공수사 전문성을 가진 요원은 새로운 기구로 옮겨가면 된다”고 말했다. 대공수사의 담당 기관을 바꾸자는 얘기다. 문 의원은 국정원에서 대공수사권을 폐지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국정원이 정보와 수사권을 다 가지고 있다 보니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사건을 조작한다든지 잘못된 방향으로 권력이 남용될 가능성이 끊이지 않아 왔다”며 “권한을 분산시키고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병헌 원내대표도 최근 사견임을 전제로 “대공(수사) 파트도 없애는 방향으로 갈 생각”이라며 “검찰에 별도 조직을 만들면 된다”고 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이석기 의원 사건으로 국내 종북(從北) 세력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지는 옳지 않다고 강조하고 있다.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는 “대공수사권을 폐지하자는 민주당의 주장은 국정원을 개혁하는 게 아니라 국정원을 무력화시키자는 것”이라며 “대공수사권을 폐지한다면 결국 누구에게 도움이 될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린 바른사회시민회의 정치팀장은 “이석기 사태를 보고도 국정원의 핵심 기능을 폐지하자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고 비판했다. 민동용·황승택 기자 mindy@donga.com}
내란음모 등의 혐의로 구속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국회의원은 헌법이 규정한 질서를 인정하고 있을 것이라는 상식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는 점에서 일회성으로 치부할 사안이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대한민국 체제를 부정하는 세력이 공직에 발 딛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을 논의해야 할 때라는 목소리도 높다. 전문가들은 먼저 총선이나 지방선거에서 지역구 후보자에 비해 비례대표 후보자의 신상에 대한 정보 공개가 상대적으로 제한돼 있는 점을 제도적으로 손질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유권자가 이 의원 같은 비례대표 후보자를 사전에 최대한 알아볼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새누리당 정희수 의원은 지난해 8월 비례대표 후보자에 대한 정보 공개 확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법안은 선거관리위원회가 유권자에게 배포하는 선거공보물에 각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자 명단만 넣지 말고 지역구 후보자와 마찬가지로 △등록재산 △최근 5년간 세금 납부·체납 증명 △병역 △학력 △전과 기록 증명을 모두 넣자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현행법은 비례대표 후보자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선관위 인터넷 홈페이지에만 선거일 20일 전 게재하도록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이 의원처럼 과거 헌정질서와 체제를 부정해서 사법적 처벌을 받은 인사에 대해서는 복권을 신중히 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더 나아가 1972년 일명 ‘극단주의자 훈령’을 제정해 반(反)국가 극단주의자들의 공직 임용을 제한했던 독일처럼 ‘반국가 이적행위자’에 대해서는 공직 임용을 배제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 “비례대표 후보 ‘과거’ 꼼꼼히 공개해 깜깜이 투표 막아야”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사건의 재발을 막으려면 먼저 이 의원이 국회에 입성할 수 있게 된 요인을 분석해 비슷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된 견해다.○ 누가 이석기 ‘의원’을 만들었나 거시적으로 보면 이 의원 사건의 단초는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의 권위주의적 폭압 통치에서 찾을 수 있다. 이에 맞서는 반정부·민주화운동 세력은 곧 진보라는 등식이 성립됐고, 이로 인해 북한을 맹목적으로 찬양하는 ‘종북(從北)’마저 진보라는 범주로 받아들이고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는 토양이 조성됐다. 김형준 명지대 교양학부 교수(정치학)는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진보세력에 대한 맹목적인 관대함이 있었다”며 “북한체제를 지향하는 ‘종북진보’, 민주화 세력의 ‘민주진보’, 생활 속 진보를 실현하는 ‘민생진보’를 동일하게 취급했다”고 분석했다. 가까이로는 지난해 4월 총선을 앞두고 이뤄진 민주당(당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야권연대를 들 수 있다. 선거 승리나 정권 획득을 위해 정당이 다른 정당과 연합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긴 어렵다. 그러나 지난해 이뤄진 야권연대는 오로지 ‘선거 승리’만을 위해 이념, 정체성의 차이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연합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는 “(이 의원 사건의) 반쪽의 책임은 민주당에 있다”며 “야권연대라는 이름 아래 무차별적으로 연대했다”고 강조했다. ‘종북주의’를 이유로 2008년 민주노동당을 탈당한 진보신당(현 정의당에 포함돼 있음)의 일부 세력이 근본적 문제점이 해소되지 않았음에도 총선을 앞둔 2011년 말 다시 통합진보당으로 합친 일도 정치공학에만 집중한 근시안적 통합이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체제 부정 인사 복권 함부로 못 하도록 2002년 민혁당 사건으로 도피하다 체포된 이석기 의원의 당시 공소장에는 그가 “김일성은 민족을 자주독립 국가 건설로 이끈 절세의 애국자”라는 발언을 했다고 돼 있다. 그러나 그는 2003년 3월 항소심에서 2년 6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은 지 5개월 만에 광복절 특사로 가석방됐다. 2005년 8월 다시 광복절 특사로 복권됐다. 그 덕분에 그는 피선거권을 회복했고, 지난해 총선 때 통진당의 비례대표 후보 2번으로 당당하게 국회에 입성했다. 이를 근거로 전문가들은 이 의원처럼 대한민국 헌정질서와 체제를 인정하지 않은 혐의로 사법적 처벌을 받은 인사에 대해서는 선출직 공직에 입후보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사자의 선거권이나 피선거권에 대한 자격 제한을 풀어 주는 사면·복권을 막자는 것이다. 성낙인 서울대 법대 교수(헌법)는 “외국의 입법례를 보면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서는 사면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다”며 “국가의 존립과 안전을 해치는 범죄 행위를 저지른 자에 대해서는 사면·복권을 제한하는 방안을 사회공익적 차원에서 검토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전우현 한양대 법학과 교수도 “범죄 경중에 따라 국가의 변란을 목적으로 하는 범죄에 대해서는 사면권이 제한되어야 한다”며 “관련법을 개정하지 않더라도 대통령이 (이와 같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서는) 사면권을 자제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주장했다. 유동열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 선임연구관은 더 나아가 헌정 질서와 체제를 부정한 자에 대해서는 공직 임용을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1972년 일명 ‘극단주의자 훈령’을 제정한 독일은 1990년 통일 전까지 반국가 극단주의 경력자 3000여 명의 공직 임용을 거부했다”고 설명했다.○ 유권자의 적극적 정치 참여 의식 있어야 정당이 선정한 후보자를 뽑는 유권자도 이번 사건에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유권자라면 최소한 현존 체제를 옹호하지 않는 후보자가 누구인지 꼼꼼히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용철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는 “유권자들은 지역과 국민의 대표자로서 어떤 사람이 국회의원이 돼야 하는지 깊이 있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희민 서울대 사회교육과 교수(정치학)도 “우리나라 유권자는 정치에 관심이 많다고들 하지만 후보자 정보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려고 하지는 않는다”고 꼬집었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이 의원 사건은 하나의 사회적 통증이라고 본다”며 “앞으로 유권자들이 투표할 때 이런 정당은, 이런 후보는 안 되겠다고 되새기는 자정 작용이 생길 수 있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번 이 의원 사건을 계기로 유권자가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때 국가 정체성, 헌법 질서 등을 한 번 더 생각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얘기다.민동용·황승택 기자 mindy@donga.com}
무소속 안철수 의원은 8일 “지금 현재 국민 정서로 본다면 국회의원의 절반은 국민의 뜻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 의원은 이날 오후 경기 수원 라마다호텔에서 열린 ‘경기도민과 함께 하는 100분 동행토크’에서 “현재 여론조사를 보면 양당은 50% 정도 지지를 받고 있고, 생기지도 않은 ‘안철수 신당’과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 국민이 50% 정도 점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절반의 정치 지분이 국민의 정치 변화에 대한 열망을 반영한다”며 독자 세력화 추진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과 이정희 대표는 4일 내란음모 혐의를 부인하기 위해 또 다른 황당 발언들을 남겼다. 5·12 RO(혁명조직) 비밀 회합에서는 ‘미국 놈’, ‘미 제국주의’라며 미국을 비난한 것으로 체포동의안에 기술된 이 의원은 이날은 미 일간지 기사에 의존해 통진당이 탄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체포동의안 처리를 앞두고 진행된 본회의 신상발언에서 “뉴욕타임스(NYT)도 저에 대한 내란음모죄 수사를 유신시대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한 탄압과 비교해 보도했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이 언급한 것은 지난달 29일자 NYT 기사였다. 그러나 기사 원문은 “국가정보원이 이 의원 및 당직자들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철권을 휘두르며 통치하던 유신시대를 떠오르게 한다고 통진당은 밝혔다”고 돼 있다. NYT가 통진당의 주장을 소개한 대목이다. NYT는 ‘유신’을 설명하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많은 정치적 반대자들이 내란 등의 혐의로 고문을 당하거나 정당한 재판 없이 사형당했다고 설명했다. 그런가 하면 이 대표는 체포동의안 표결에 앞서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5·12 회합에서 나왔던 ‘총기 탈취, 시설 파괴’ 등의 발언은 모두 “농담이었다”고 주장해 누리꾼 등의 거센 비난을 들었다. 이 의원은 “(5·12 회합) 녹취록에는 한 개 분반에서 한두 사람이 총기 탈취나 시설 파괴 등을 말했지만 실제로 이 말은 농담으로 한 말인데 발표자가 마치 진담인 것처럼 발표했다”고 주장했다. “다른 6개 분반 110여 명은 총기 탈취나 시설 파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농담처럼 말하거나 누군가 말해도 웃어넘겼다”고도 했다. 그러나 체포동의안의 내용은 심각한 수준이다. RO 조직원인 이상호 경기진보연대 고문(구속)은 당시 회합에서 “총은 준비해야 되는 게 아니냐? 이런 의견이 나왔다. 어떻게 총을 만들 거냐? 부산에 가면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항일의 시기에도 만들어 썼는데 우리가 손재주가 있고 결의가 있고 거기에 재주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가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라는 문제를 가지고 얘기를 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비밀 회합이 아닌 정당 공식 행사였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5월 10일 RO 모임과 12일 회합에 아이들이 참석한 사실을 새로 제시하며 “아이들을 데리고 무시무시한 지하조직 모임에 참가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그러나 체포동의안을 들여다보면 이 의원은 5월 10일 회합에서 “아이는 안고 오지 마시라고, 전쟁터에 아이를 데리고 가는 사람은 없지”라고 강조했다. 또 “소집령이 떨어지면 정말 바람처럼 순식간에 오라. 당내 전쟁기풍을 준비하는 데 대한 현실 문제라는 것을 똑똑히 기억하라”고 다그쳤다.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앞뒤 안 맞는 두 이 씨의 언동은 그들이 ‘진보를 가장한 꼴통’ 즉 ‘진꼴’임을 보여준다”고 쏘아붙였다.민동용·고성호 기자 mindy@donga.com}
4일 오후 4시 25분 강창희 국회의장이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체포동의안 투표 결과를 발표하자 이 의원은 통진당 의원들과 함께 본회장을 빠져나왔다. 이 의원은 국회 로비에 있던 기자들에게 “한국의 민주주의 시계가 멈췄다. 정치가 실종되고 국가정보원의 정치가 시작됐다”고 말한 뒤 질문엔 대답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 통진당 의원들은 투표 전 잇따라 발언대에 나서 체포동의안 통과를 막아달라고 호소하면서 국정원을 비난했다. 1980년대 주사파 학생운동권이었던 하태경 의원이 투표 전 의사진행발언에서 통진당을 향해 “이 의원을 감싸며 자폭하겠다는 건 국회에 영원한 흠집을 남기는 일이다. 아끼는 당원들과 같이 쓰레기통에 묻힐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이 의원을 감옥으로 보내고 다시 태어나라”고 촉구했다. 이에 자리에 앉아 있던 통진당 의원들이 하 의원을 향해 “그만하고 내려와”라고 고함을 질렀다. 뒤이어 나온 통진당 오병윤 의원은 발언을 끝내고 돌아가는 하 의원을 향해 “하태경 의원”이라며 불렀고, 하 의원이 돌아보지 않자 “말 들으세요. 예의가 없네요”라고 쏘아붙였다. 오 의원은 “전라도 광주에서 태어나 자랐다는 이유 하나로 수십 년간 빨갱이 소리를 들으며 살았다”면서 “기회만 되면 종북(從北)이라고 떠드는 행태는 없어져야 한다”고 했다. 오 의원 발언 도중 새누리당 김태흠 의원이 “궤변 늘어놓지 마”라고 고함치자 오 의원이 “김태흠 의원, 좀 심하시더라고요”라고 받아쳤다. 오 의원이 체포동의안 표결과 관련해 “법리 적용이 맞는지 살펴서 잘 처리해 달라”고 하자 한 새누리당 의원은 “걱정하지 마. 잘 처리해 줄게”라고 받았다. 이석기 의원이 신상발언을 할 때는 여당쪽 의석에서 “자리로 들어와”라는 말이 나왔고, 발언이 끝나고 자리로 돌아가려 하자 “도망가지 말라고”라는 고함도 들렸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이 의원을 ‘피의자’로 불렀다. 김 의원은 황교안 법무부 장관에게 질의를 하러 나와 “나는 이석기 피의자를 대한민국 국회의원으로 인정한 적 없다. 그 흔한 악수도 한 번 한 적 없다. 왜냐하면 그는 대한민국의 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본회의가 열리기에 앞서 오전 이 의원을 제외한 통진당 의원 5명은 민주당 의원총회가 열리는 본관 제3회의장 앞에서 참석하러 오는 민주당 의원들을 향해 인사를 하며 체포동의안 처리에 반대해 줄 것을 호소했다. 이상규 의원은 민주당 박남춘 의원이 다가오자 “남춘이 형! 파이팅”, “선배님! 잘 봐 주십쇼”라고 외치기도 했다. 3군사령관 출신의 민주당 백군기 의원은 통진당 의원들이 ‘국정원 녹취록에 대한 입장 발표문’을 건네자 쳐다보지도 않고 회의장으로 들어갔다. 경찰은 일찍부터 국회 주변에서 삼엄한 경계를 폈다. 오전 11시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통진당 집회가 예정돼 있고, 여기에 통진당원 수백 명이 참석한다는 첩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국회 주변에 38개 중대 2600명을 배치하고 경찰 버스 수십 대를 동원해 국회 외벽을 에워쌌다. 국회 정문 앞 큰길 건너편에는 살수차까지 동원했다.민동용·권오혁 기자 mindy@donga.com}
내란음모 등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4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새누리당은 3일 “4일 오후 2시 본회의를 열자”고 민주당에 제안했다. 최경환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서 “민주당이 협조할 것으로 기대하지만 협조가 안 된다면 (새누리당이) 혼자 해야 하는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도 시간을 끌 필요는 없다는 분위기다. 당 핵심 관계자는 “4일 오전 의원총회를 열어 체포동의안 처리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고, 반대하자는 의원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국회는 체포동의안 처리 때 통진당의 물리력 동원에 대비해 검문검색을 강화하는 한편 경찰에 국회 본관과 주변에 병력 배치를 요청했다. ○ 새누리, “석기시대 문 열어준 문재인 책임져야” 민주당은 당초 체포동의안 처리에 앞서 정보위, 법사위 개최를 요구했지만 새누리당이 “법사위는 열자”고 하자 법사위 개최 요구는 거둬들였다. 노무현 정부 때 이석기 의원이 2번이나 특별사면(가석방과 복권)을 받았고, 당시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문재인 의원이었다는 점에 대해 새누리당이 법사위에서 공세를 펼 것으로 본 것이다. 실제로 새누리당은 문 의원을 맹공했다. 권성동 의원은 원내대책회의에서 “법무부 지침에 따르면 형기의 80% 정도를 복역해야 가석방 대상이 되는데, 이 의원은 2년 6개월이 확정된 상태에서 80%(2년)를 채우지 않고 1년 3개월만 복역하고 가석방됐다”며 문 의원의 해명을 요구했다. 새누리당은 전날 국회 본회의에서 문 의원이 ‘정기회기 결정 안건’에 대해 기권표를 행사한 것도 문제 삼았다. 홍지만 원내대변인은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 동맹 파괴를 외치던 사람을 사면해 준 문 의원이 표결에 기권까지 했다”며 “문 의원은 국회의원직을 사퇴하라”고 주장했다. 홍문종 사무총장도 의원총회에서 “우리 시대가 ‘석기시대’가 된 것에 대해 노무현 정권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 의원은 발끈했다. 그는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번 사건도, 또 이번 사건에 대한 반응도 한 30년 전 옛날로 돌아간 것 같다”며 “변호사 시절 주사파 사건 변론도 했는데 그것도 다 책임지라고 할지 모르겠다”고 불쾌해했다. 새누리당 내부에서는 성명서 발표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전날 의총에서 원내지도부가 신속한 수사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려 하자 이재오 의원이 “정치권은 일단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만류했다. 정몽준 의원까지 나서 “언론보도만 보고 성급하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 국정원 수사 발표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자 김태흠 원내대변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게 지금 뭐하는 거냐. 통진당 의원들과 국정을 논한 것에 대해 부끄러워해야 한다”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결국 새누리당 의원들은 시간에 쫓겨 성명서를 채택하지 못한 채 본회의장으로 향했다.○ 민주당에서도 이석기 사퇴 요구 나와 민주당은 한층 단호한 어조로 통진당과 선을 그었다. 김한길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헌정파괴 세력과는 단호히 절연하겠다”며 “민주당은 대한민국을 조국으로 생각하지 않는 무리를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전략홍보본부장인 민병두 의원은 라디오에서 “고립된 친북주의자들의 피해망상과 영웅심이 결합돼 이질적이고 광신교적 분위기를 만들어낸 것은 용납될 수 없다”며 “이 의원은 의원직을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국회 본관 앞에서 ‘체포동의안 처리 반대’를 주장하며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는 통진당 이정희 대표를 격려 방문해 비난을 받았다. 온라인에서는 “같은 종북이냐” 등의 비난이 쏟아졌다. 정 의원은 트위터에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고 매몰차게 모른 척 지나가라고? 에이∼ 그건 아니다. 통진당에 동의하진 않지만 그래도 ‘고생한다’고 위로했다”고 적었다. 민동용·고성호 기자 mindy@donga.com}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폭력을 동원한 체제 전복을 도모하면서도 선거를 통해 2017년까지 정권을 장악하는 합법·비합법 병행 방식의 집권플랜을 세웠음이 2일 국회에 제출된 체포동의요구서를 통해 드러났다. 체포동의요구서에 따르면 이 의원은 지난해 8월 경기 광주시 곤지암에서 열린 ‘진실승리 선거대책본부 해단식’에서 “2014년 광역(지방선거), 2016년 총선에서 제1 진보 야당을 구성하고 2017년이야말로 진보집권의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올리자는 전략적 방향을 세운 바 있다”고 말했다. 내년 6월 지방선거와 2016년 20대 총선을 통해 제1야당의 위상을 확보한 뒤 2017년 대선에서 승리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의원이 선거를 통한 권력 장악을 상정한 것은 ‘RO(Revolutionary Organization·혁명조직)’ 회합에서 “물질적, 기술적 총” “전쟁” 등 폭력, 전쟁을 강조한 것과는 다른 접근법이다. 한 방에 뒤집어엎는 식의 기동전만으로는 체제를 전복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 의원이 5월 12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서 열린 RO 회합에서 조직원들에게 대한민국 국회를 ‘혁명 투쟁의 교두보’ ‘계급투쟁의 최전선’으로 규정하면서 통진당 당권을 장악해 정치적 합법 공간을 확보한 것을 “혁명의 진출”이라고 평가한 것과도 같은 맥락으로 분석된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교양학부)는 “정당의 비례대표 경선이 100%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 모바일투표처럼 민의를 왜곡할 수 있는 제도를 막지 못한다면 제2, 제3의 이석기는 언제든지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체포동의요구서는 또 “피의자 이석기를 비롯한 지하조직 RO의 핵심 조직원 상당수는 반국가단체 ‘민혁당’ 출신으로, ‘남한 사회주의 혁명’을 목적으로 조직을 결성하고 그 목적 실현을 위해 조직원들을 사회단체,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정당, 국회 등 다양한 분야에 침투시켜 각자의 위치를 ‘초소’로 삼아 ‘혁명’을 준비해 왔다”고 적시했다. 이 의원은 통진당 분당(分黨)의 원인이 된 비례대표 경선 부정 사태에 대해서는 “혁명과 반혁명 세력의 치열한 전쟁”으로 규정했다. 이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이날 오후 국회 본회의에 보고됐다. 국회법상 본회의 보고 후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에 처리하도록 규정돼 있으며 빠르면 3일 표결 처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혐의는 내란음모라는데 단 한 건의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사상 검증, 마녀사냥”이라고 반발했다.민동용·황승택 기자 mindy@donga.com}
정기국회 첫날인 2일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은 새누리당과 민주당 의원들에게 A4용지 세 쪽짜리 서한을 돌렸다. 그는 “국가정보원이 제게 내란음모라는 어마어마한 딱지를 붙여 마녀사냥식 여론재판으로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며 “저에 대한 체포동의안 처리를 거둬 달라”고 호소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나서자는 저의 진심이 ‘총’이라는 단어 하나로 전체 취지와 맥락은 간데없고 ‘내란음모’로 낙인찍혀 버렸다”며 “앞뒤 말을 가위질해 선정적 단어만 골라 여론몰이를 하는 것이야말로 왜곡, 날조가 아니냐”고도 했다. 그런데 이 같은 발언은 며칠 전 발언과 배치된다. 이 의원은 5월 12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한 종교시설에서 열린 ‘RO(혁명조직)’ 회합 녹취록이 보도되자 “총기 운운한 적이 없다”(8월 30일 기자회견)고 부인했다. “물질적, 기술적 총을 언제 준비하느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 자루 권총 사상이다” 등 여러 차례 총기와 관련한 녹취록 발언은 조작된 것이란 주장이었다. 그런데 해명을 하려다 그만 “총 발언은 있었다”고 시인해버린 것이다. 이 의원은 이날 정기국회 개회식에 들어가기 전 본회의장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북한에 다녀온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이 2005년 3월, 2007년 3월 두 차례 북한을 방북했다”는 동아일보 보도내용을 반박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그러나 통진당 홍성규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이 의원이 ‘북한을 다녀오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맥락상 언론에 호도되고 있는 밀입북과 관련한 것이다. 이 의원은 금강산 관광은 몇 차례 다녀왔다”며 엉뚱한 해명을 내놨다. 정치권에선 “이 의원과 통진당이 해명에 급급하다 자꾸 자살골을 넣고 있다”는 평이 나온다. 한편 통진당 이정희 대표는 국회 본관 앞에서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이 대표는 “중세 마녀사냥을 중단하라”며 “체포동의안을 처리하는 것은 한국전쟁 피바람 속에 자행된 즉결 처분과 같다”고 주장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체포동의요구서에서 눈에 띄는 것은 사회주의 혁명 달성을 위해 폭력적 수단뿐만 아니라 선거를 통한 합법적 방식을 활용한 정권 장악 프로그램도 구체적으로 세워놓았다는 점이다. 이 의원은 자신이 이끄는 RO(Revolutionary Organization) 조직을 통해 이 같은 ‘장밋빛’ 집권 전략을 그려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의원은 총선과 대선 승리를 통해 ‘한반도의 지배 질서’를 무너뜨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낙후된 사회가 아닌 발전한 사회에서는 체제를 한 방에 뒤집어엎는 ‘기동전’ 대신 정치에 참여해 ‘진지전’을 펼쳐야 한다는 이탈리아 사회주의 이론가 안토니오 그람시의 이론을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석기의 ‘집권 플랜’ 내용은 2일 국회에 제출된 이 의원의 체포동의요구서에 따르면 그는 지난해 8월 RO 회합에서 조직원들에게 “2014년 광역(지방선거), 2016년 총선에서 제1 진보 야당을 구성하고 2017년에 진보 집권 시대의 새로운 서막을 올리자는 전략적 방향을 세운 바 있다”고 말했다. 내년 6월 지방선거와 2016년 총선을 통해 민주당을 넘어서는 제1야당의 위치를 확보한 뒤 2017년 대선에서 승리하겠다는 ‘집권 계획표’를 제시한 것이다. 이 의원은 또 지난해 4·11총선 결과와 관련해 “(의석수) 13석 돌파로 제3세력으로서 기존 양당 구도를 무너뜨릴 수 있는 새로운 진보군을 형성했다”고 자평했다. 이어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는 혁명적 낙관주의와 전투적 기상으로 정권 교체를 반드시 이뤄 내자”고 덧붙이기도 했다. ‘가는 길 험난해도…’라는 말은 1990년대 중후반 북한이 ‘고난의 행군’을 내세웠을 때 수십만 명의 아사(餓死)자가 발생하자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제시한 구호다. 정치권에서는 “종북세력의 허황된 망상”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지만 “조직을 가동하고 선거를 통해 국회의원이 된 점 등을 무겁게 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안당국은 RO가 집권플랜의 토대 위에 무장투쟁도 병행하는 구체적 실천 방안을 준비해 왔다고 보고 있다. 체포동의요구서에서 공안당국은 이 의원을 지하조직 RO의 수괴로 지칭한 뒤 조직원들에게 국헌을 문란케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킬 것을 선동, 음모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RO의 강령에 나온 ‘남한사회 변혁운동’은 합법, 비합법, 폭력, 비폭력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한 ‘남한 사회주의 혁명 투쟁’을 의미하며, 강령 실현을 위해 총책인 이 의원의 지휘 아래 조직원들은 사회단체, 지자체, 공공단체, 정당, 국회 등에 침투해 ‘혁명의 결정적 시기’를 기다려 왔다”고 밝혔다.○ 남한은 ‘식민지’-북한은 ‘강성대국’ 체포동의요구서에서는 이 의원이 남한 사회를 북한이 규정하는 것처럼 ‘미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 여러 군데서 드러난다. 그는 “미국은 남측의 양당 체계를 바탕으로 분할통치 전략을 유지해 왔다”고 했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양당 체제를 미국의 한국에 대한 통치 전략으로 본 것이다. 그는 “현 정세는 미 제국주의에 의한 낡은 지배 질서가 몰락 붕괴하는 격동기”라며 “조선반도는 미 제국주의 지배 질서의 가장 약한 고리이며 제국을 무너뜨리는 세계 혁명의 중심 무대가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반면 이 의원은 북한에 대해선 ‘강성대국’ ‘핵 보유 강국’이라며 우호적 시각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2012년 12월 12일 띄웠던 광명성 3호로 표현되는 위성의 3호는 우주과학의 역사를 보면 엄청난 일”이라며 “미 국방정보국(DIA)이라든가 다양한 (미국의) 공식 의견을 보면 (북한이) 핵 보유 강국이 되었다는 것이고 북은 미국의 위협 세력이라는 것. 이것은 팩트다. 객관적인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 이석기 퇴로 차단 공안당국은 이 의원에게 기존의 혐의(내란음모, 국가보안법 위반) 외에 ‘내란선동’ 혐의를 추가했다. “강연만 했고 내란을 모의한 적은 없다”는 이 의원의 해명으로도 법망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퇴로를 차단하는 조치로 풀이된다. 내란음모 혐의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2명 이상이 내란을 일으킬 목적으로 ‘의견 교환’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 의원이 모임을 소집하지 않았고 참석자들과 논의를 한 것이 아니라 강연만 했다면 법적으로 내란음모 혐의를 적용하기 어렵게 된다. 그러나 내란선동은 적용 범위가 좀 더 넓다. 녹취록에는 이 의원이 직접 “전쟁 준비” 등을 언급한 것으로 나와 있다.최창봉·민동용 기자 ceric@donga.com}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통진당이 1일 ‘프락치를 활용한 국가정보원의 정당 사찰’을 주장하면서 역공에 나섰다. 통진당 이상규 의원은 국회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어 “국정원이 수원에서 활동하는 (통진당) 당원을 거액으로 매수해 수개월에서 최대 수년간 (통진당을) 사찰했다”며 “이번 사건은 내란음모가 아닌 국정원의 정당 사찰, 프락치 공작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본인의 자백은 아니지만 저희가 확인한 바로는 이 당원은 가족 전체가 해외로 나가 평생 살 수 있는 거액을 받았다”며 “이 당원이 도박 빚으로 곤경에 처했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의) 매수가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에 따르면 이 조력자는 40대 중후반 남성으로 수도권 사립대를 졸업하고 민주노동당 초기부터 수도권에서 당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경기도에서 민노당 후보로 출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남성은 국정원의 통진당 내사가 시작된 2010년 말 이전부터 경기동부연합 지하조직 RO(혁명조직)의 내부 비밀회합 등 다양한 정보를 국정원에 전달했고, 일부 모임의 동영상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동영상들은 내란음모 등의 혐의를 입증하는 데 유력한 증거로 활용될 수 있어 주목된다. 통진당의 매수설 제기에 대해 국정원 관계자는 “대꾸할 가치조차 없는 주장”이라며 “(통진당 주류인) 경기동부연합은 (내부) 사정이 복잡하다. 조직에 대한 불만도 있고 회의감도 있고…”라고 말했다. 통진당의 내부 문제 때문에 조력자가 자발적으로 나섰다는 설명이다. 통진당은 역공을 통해 ‘정국 반전’을 기대하고 있지만 정치권에서는 “오히려 통진당이 5월 12일 비공개 회합 녹취록이 사실임을 자인(自認)하는 모양새가 돼버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진당의 주장을 뒤집어 보면 국정원이 통진당 내부의 정보원으로부터 내부 사정을 있는 그대로 ‘보고’받았고, 5·12회합 녹취록도 사실이라는 논리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1980년대 학생운동권 출신으로 통진당 등의 종북(從北) 성향을 비판해온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이 의원의 기자회견 뒤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통진당 스스로 내부 고발자가 있음을 확인했다. 녹취록의 신빙성이 오히려 높아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달 28일 국정원이 이석기 의원의 개인사무실, 집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작한 이후 통진당의 대응은 오락가락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동아일보가 첫 압수수색 다음 날인 29일 “이석기 의원 등이 비공개 회합을 열고 통신 철도 유류저장고 등 국가 기간시설을 파괴하려는 계획을 세운 혐의가 있다”고 보도하자 이 의원은 국회에서 “사실이 아니다. 철저한 모략극이고 날조”라고 주장했다. 당시 이 의원은 5·12회합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30일 5·12회합 녹취록이 언론에 공개되자 같은 날 오전 김재연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전혀 사실이 아니다. (그런) 모임이 없었다”며 모임 자체를 부인했다. 그러나 몇 시간 뒤 홍성규 대변인은 모임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 의원을 초빙한 정세 강연으로 당원 행사였다”고 해명했다. 당이 5·12회합을 ‘당원 행사’라고 주장하자 김 의원은 1일 보도전문채널에 나와 “지하조직 RO 비밀회합은 없었고 당연히 가지도 않았으며, 당원 행사 강연 모임은 갔다”며 이틀 전과 다르게 말했다. 통진당의 ‘정당 사찰’이라는 주장에 대해 법조계 등에서는 “수긍하기 어렵다”는 견해가 많다. 검찰 출신 고영주 법무법인 ‘케이씨엘’ 대표변호사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국가안보를 위해(危害)하는 사범에 대한 조사와 수사는 국정원의 당연한 업무”라며 “안보 위해 사범 수사에서 정당은 치외법권 지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