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가 검찰에 출두한 것은 법원이 발부한 체포동의요구서가 국회에 접수된 지 3시간이 약간 지나서다. 박 원내대표는 검찰 출두 1시간 반 전에야 출두하겠다고 검찰에 전격 통보했다. 그동안 세 차례나 검찰의 소환 통보에 불응하며 버티다 체포동의요구서가 접수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출두했다. 여론의 압박을 피하고 법무부가 국회에 제출한 체포동의안을 무력화하려는 의도가 없지 않았을 것이다. 박 원내대표의 계산대로 검찰은 그를 체포해 조사할 필요가 없어져 체포영장을 철회했고 체포동의안도 백지화됐다. 검찰은 박 원내대표를 한두 차례 더 소환할 방침이라고 밝혔으나 박 원내대표가 응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박 원대대표는 ‘기소할 테면 기소하라. 법원에서 판단을 구하겠다’는 태세다. 범죄 혐의를 부인하는 피의자를 검찰이 단 한번 조사하는 것만으로 구속영장 신청 또는 기소할 만큼 증거를 확보하기는 어렵다. 박 원내대표가 결백을 자신한다면 검찰의 추가 소환에 불응할 이유가 없다. 검찰은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의 경우 자진 출두해 검찰 조사를 받았음에도 혐의가 중하다고 보고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비록 정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되기는 했지만 부결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았다. 박 원내대표는 저축은행들로부터 수사와 관련해 8000만 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박 원내대표에 대해서도 구속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다면 구속영장 신청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야당 원내대표에게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법 집행이야말로 법치의 실천이다. 민주당은 박 원내대표가 검찰에 출두한 직후 8월 4일부터 임시국회를 소집하자는 요구서를 국회에 냈다. 의석수로 보면 민주당은 단독으로 임시국회를 소집할 수 있다. 그러나 7월 임시국회에 이어 하루도 쉬지 않고 임시국회를 여는 것은 박 원내대표의 구속을 막기 위한 방탄(防彈)국회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며칠이라도 휴회기를 둬 박 원내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될 경우 그 발부 여부를 바로 법원이 판단하게 하는 것이 옳다. 박 원내대표의 체포영장에 기재된 범죄 혐의에 대한 판단은 최종적으로 사법부에서 가릴 수밖에 없다. 검찰이 유죄판결을 받아내는 데 실패한다면 대선을 앞두고 ‘야당 탄압’이라는 비판에 몰릴 것이다. 검찰은 진실과 증거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우리 말의 한(恨)은 외국어로 쉽게 번역되지 않는다. 독일어로 직업을 뜻하는 ‘Beruf’도 그런 말이다. 프랑스 사회과학 잡지에서 독일어 Beruf를 프랑스어 ‘Travail’로 번역하면 의미가 안 통한다는 지적을 본 적이 있다. Beruf는 직업을 하나님의 부름에 응하는 것으로 보는 개신교 전통에서 나온 말이다. 가톨릭 국가 프랑스에는 그런 직업관이 없다. 노동시간은 되도록 줄이고 휴가에서 삶의 보람을 찾자는 것이 프랑스인들의 생각이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유명한 ‘직업으로서의 정치’란 책을 썼다. 여기서의 직업이 바로 Beruf다. 최근엔 ‘소명으로서의 정치’로 번역한 책도 나왔다. 직업으로 번역하든 소명으로 번역하든 뭔가 부족하다. Beruf는 글자 수에 제한받지 않는다면 ‘소명으로서의 직업’이 정확하다. 큰 의사는 나라를 고친다 직업을 소명으로 보는 관점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어쩌다 보니 자기 직업을 갖는 것이지 ‘내가 아니면 누가 하겠느냐’는 생각으로 직업을 택하지는 않는다. 안철수가 살아온 길은 달랐다. 안철수는 의대에 진학했으나 돈 잘 버는 임상의의 길을 버리고 연구의의 길을 택했다. 의사에서 컴퓨터 바이러스 전문가로 변신한 것은 꼭 필요하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던 백신 프로그램을 새벽마다 일어나 개발한 결과다. 그가 경영에 뛰어든 것은 안철수연구소를 공적기업으로 만들어 그 운영 부담에서 벗어나려는 시도가 각계의 인식 부족으로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중국의 쑨원(孫文)은 ‘소의치병(小醫治病), 중의치인(中醫治人), 대의치국(大醫治國)’이라고 했다. 작은 의사는 병을 고치고, 중간 의사는 사회를 고치고, 큰 의사는 나라를 고친다는 뜻이다. 안철수가 정치의 길에 들어선다면 그것도 정치를 소명으로 느낄 때다. 그가 책 ‘안철수의 생각’에서 밝힌 정책 단상은 나이브한 게 많아 100가지도 더 시비를 붙고 싶을 정도다. 그럼에도 그가 여론조사에 나타나는 국민의 지지 속에서 정치적 소명의 유무를 확인하려는 신중함을 보이는 데는 공감한다. 동양 유교사상에도 명(命)이란 개념이 있다. 공자는 지천명(知天命) 외천명(畏天命)을 말했다. 천명이 실제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은 아닐 테고, 인내천(人乃天)이니 백성(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일 게다. 내가 보는 안철수는 출마 의도를 숨기고 효과를 극대화하는 출마시기만 저울질할 사람이 아니다. 10년도 전에 동아일보에 초청돼 강연을 한 안철수를 보고 단번에 매료됐다. 그 반듯한 모습과 바른 생각에 ‘젊은 퇴계가 살아 있다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라고도 생각해봤다. 올 3월 서울대 강연에는 휴가를 내고 찾아갔다. 청춘콘서트를 들어보지 않은 나로서는 가슴에 와닿는 말이 많아 학생들처럼 받아 적기에 바빴다. ‘당신도 틀릴 수 있다’ 얼마 전 운동을 나갔다가 개천 돌 사이에 잉어가 걸려 파닥거리는 모습을 봤다. 불쌍해서 깊은 물로 보내주려고 꼬리를 잡으려 하니 도무지 잡히지 않았다. 답답해하던 행인 하나가 내려와 잉어의 대가리 부분을 두 손으로 안아 쥐니까 잉어가 가만히 있어 옮길 수 있었다. 정치에도 정치의 격물(格物)이 있다. 방법을 모르면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된다. 안철수가 정치의 격물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불의 성질도 모르면서 불장난한다는 격한 반응까지 있다. 일단은 안철수는 학습능력이 뛰어나고 실수를 통해서도 배우는 현명한 사람이니까 빠른 시간에 정치의 격물을 배울 것이라 믿고 싶다. 출마하려면 이제 최대한 빨리 하라. 안철수는 소통을 강조하면서 ‘내가 틀릴 수 있다(I may be wrong)’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높이 평가했다. 우리에게도 대선 전까지 ‘당신이 틀릴 수 있다(You may be wrong)’고 말할 기회를 충분히 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대선이 4개월 3주밖에 안 남았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저축은행들로부터 1억 원이 넘는 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가 19일 검찰의 1차 소환 통보에 이어 어제 2차 통보에도 불응했다. 국회의원에게 회기 중 불체포특권은 있지만 검찰 수사를 거부할 특권은 없다. 19대 국회 들어 의원들이 과거 수사 회피 수단으로 이용한 불체포특권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한데도 그는 법(法) 위에 있는지 움쩍도 하지 않는다. 민주당은 어제 의원총회를 열고 대검 중수부 폐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검찰총장 국회출석 의무화를 규정한 검찰개혁 법안을 제출했다. 민주당 검찰개혁 법안의 대략적인 내용은 오래전에 다 알려진 것이다. 하필 박 원내대표의 소환일자에 맞춰 이를 제출한 것은 그를 엄호하기 위한 포석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이 입법권을 동원해 검찰의 정당한 수사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야당 탄압”이라는 민주당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검찰은 저축은행 비리와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을 구속했고, 이 대통령을 15년간 보좌한 김희중 전 대통령제1부속실장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 오문철 전 보해저축은행 대표로부터 박 원내대표에게 돈을 줬다는 진술을 받아낸 이상 그를 조사할 수밖에 없다. 조사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직무유기다. 검찰은 박 원내대표가 2차 소환까지 불응한 만큼 체포영장이나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것이 정도다. 현재 열리고 있는 국회는 다음 달 3일로 끝난다. 국회가 연이어 임시국회를 연다면 그 이유를 무엇이라고 하든 박 원내대표를 지키기 위한 방탄(防彈)국회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새누리당은 정두언 의원의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킨 이후 강한 역풍(逆風)을 맞았다. 민주당이 박 원내대표 체포를 막기 위해 방탄국회를 열거나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킨다면 여론의 질타를 각오해야 한다. 박 원내대표의 행보는 정 의원보다도 비겁하다. 국회 본회의에서 체포동의안이 부결되긴 했지만 정 의원은 “배달 사고”라고 혐의를 부인하면서도 검찰에 나가 조사를 받았다. 박 원내대표가 국회에 방어막을 치고 버틸수록 국민의 의혹은 커질 것이다. 결백하다면 지금이라도 스스로 검찰에 나가 조사를 받고 법정투쟁을 벌여 재판에서 무죄를 받으면 될 것 아닌가.}
새누리당 박근혜 의원은 13일 정두언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의원총회에서 회의장 구석에 앉아 미동도 하지 않고 회의를 지켜봤다. 지도부가 정리한 의총의 결론은 ‘박심(朴心)’ 그대로였다. 정 의원에게 영장실질심사를 받는 것 이상의 가시적 조치를 요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출당(黜黨) 조치를 취하기로 한 것도, 체포동의안 부결에 책임지고 물러나겠다는 이한구 원내대표의 사퇴 보류도 대체로 박 의원의 뜻과 같았다. 박 의원을 뺀 새누리당 의원 148명이 정 의원 체포동의안 처리 때와 이후 보인 모습은 우왕좌왕(右往左往) 그 자체였다. 체포동의안에 반대한 새누리당 의원 중 일부는 11일 정 의원 체포동의안을 처리하기 직전에 가진 의총에서 박 의원의 대선후보 캠프 공보단장인 윤상현 의원이 반대 발언을 하자 부결이 박 의원의 뜻인 줄 오해하고 동조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박심에 따라 춤추는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 현상이다. 박 의원이 정 의원 문제에 대해 언급한 것은 13일 의총 직전 ‘복도 발언’이 처음이고 유일하다. 박 의원은 “정 의원은 평소 쇄신을 강조해온 분이니까 평소 신념답게 당당하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의총에서는 사태 수습 방안에 대해 여러 의견이 나왔지만 이후 최고위원회의를 거쳐 내려진 결론은 박 의원이 복도에서 말한 취지 그대로였다. 박 의원은 이 원내대표의 거취와 관련해 정 의원 체포동의안이 부결되고 이 원내대표가 사퇴 의사를 밝힌 11일 밤 이미 “이 원내대표가 사퇴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당내에서는 사퇴 번복은 모양새가 좋지 않고 명분도 없다는 이유로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통합당의 전략적 투표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국민의 불신을 초래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원내대표는 7월 임시국회가 끝날 때까지 조건부 복귀로 결론이 났다. 지금 새누리당은 ‘박근혜당’이라고까지 불릴 정도로 박 의원 한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 최근 결론이 난 대선후보 경선 룰도 비박(非朴) 주자들이 완전국민경선제 도입을 끈질기게 요구했음에도 박 의원의 뜻을 따라 현행대로 유지됐다. 파이낸셜타임스지 칼럼니스트인 팀 하퍼드는 저서 ‘어댑트’에서 “오늘날 사회는 아무리 똑똑하고 지혜롭고 용기 있는 리더라도 혼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 않다”고 했다. 지도자 말 한마디에 당 전체의 의견이 왔다 갔다 하는 정당이 걱정스럽다. 당내 민주주의도 못하는 정당이 국가 전체의 민주주의는 제대로 할 수 있겠는지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박 의원이 새누리당의 대선 예비 후보로서 압도적 지지를 받는다고 해도 당에서 한 사람 목소리만 들려서는 안 된다. 다양한 목소리가 들리고 그 소리들이 공명(共鳴)해야 울림이 커질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이 솔로몬저축은행 등으로부터 7억여 원의 불법자금을 받은 혐의로 어제 영장 실질심사를 받았다. 이 전 의원은 법원에서 저축은행 피해자들에게 넥타이를 잡히는 봉변을 당했다. 정권 초부터 이 전 의원이 정계를 은퇴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지만 이 전 의원과 이 대통령은 듣지 않았다. 형제 스스로 정권 말기의 불행을 자초한 것이다. 이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은 2007년 대선 직전 이 전 의원과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의 만남을 주선했다. 정 의원은 이 전 의원이 돈을 받는 자리에 동석해 영장에 공범으로 적시됐다. 이 전 의원이 받은 3억 원은 대선자금이었을 것이라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구속 수감 중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도 건설 시행업체 파이시티로부터 받은 8억 원 중 일부를 2007년 대선 때 여론조사나 정세 분석 목적으로 썼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대통령은 대선이 끝난 뒤 선거비용으로 327억 원을 사용했다고 신고했다. 그러나 어떤 후보도 법정선거비용 한도액을 넘어서 대선을 치렀다고 신고하지는 않는다. 불법 대선자금은 대선 후보들의 아킬레스건이다. 이 대통령은 2009년 신년사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불법 대선자금과 절연하고 탄생한 정권”이라고 큰소리쳤다. 하지만 대통령 자신이 모른다고 불법 자금이 없었다고 믿는다면 오산이다. 과거처럼 재벌들에게 돈을 거둬 나눠주지는 않았을지 모르지만 측근들이 보고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받아 선거비용으로 쓴 돈이 있었을 것이다. 캠프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받은 돈일수록 투명하게 쓰이지도 않고 집권 후 부패와 비리의 싹이 된다. 검찰은 또 다른 불법 대선자금이 있었는지도 수사해야 한다. 대선 주자들은 이 전 의원을 보며 앞으로 5년 뒤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대선 후보 캠프는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돈에 쪼들리기 마련이고, 기업은 유력 후보에게 ‘보험’을 들고 싶어 한다. 후보가 모르게, 혹은 모른 척 묵인하는 가운데 은밀한 거래가 이뤄지기 쉽다. 대선 주자들이 역대 정권의 잘못된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선거캠프를 차리는 지금부터 주변을 관리해야 한다. 그래야 5년 뒤의 비극을 막을 수 있다.}
정부가 4·11총선 과정에서 금품을 주고 조직을 동원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무소속 박주선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4일 국회에 제출했다. 여야는 19대 국회 개원을 전후해 불체포특권 포기, 연금 폐지, 겸직 금지 등 쇄신안을 앞다퉈 내놓으며 ‘밥값 하는 국회’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여야는 쇄신 경쟁이 쇼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도 박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처리해야 옳다. 과거 정치권은 정부가 체포동의안을 제출하면 회기 중일 때는 표결 처리를 계속 연기하고 회기 중이 아닐 때는 방탄 국회를 여는 방법으로 제 식구를 보호했다. 18대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통과된 것은 학교 공금 81억 원을 횡령한 강성종 민주당 의원 딱 한 건이었다. 김선동 통합진보당 의원은 본회의장에서 회의 시간에 최루탄을 터뜨리는 폭거를 저지르고, 검찰의 8차례 소환에 불응했는데도 체포되지 않았다. 박 의원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3차례 구속 기소됐으나 법원에서 모두 무죄판결을 받은 삼종삼금(三縱三擒)의 억울한 전력이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억울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불법으로 공천 경선 선거인단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전 동장(洞長)이 투신자살을 하고 평범한 가정주부가 구속돼 옥고를 치렀다. 검찰은 박 의원에게 징역 1년을 구형했으나 법원은 죄질이 나쁘다고 보고 징역 2년을 선고했다. 박 의원은 판결 당시 법정에 나왔지만 불체포특권 덕분에 법정 구속되지 않았다. 법원은 직접 체포동의요구서를 작성해 정부를 통해 국회에 제출했다. 이 정도라면 국회가 체포동의안을 통과시켜 주는 것이 사리에 맞다.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는 “(체포동의안을) 1심 재판부에서 보냈는데 박 의원이 항소를 한 상황이라 1심 재판부가 보내면 무효라는 말이 있었다”고 말했다. 법적으로는 난센스 같은 발언이다. 과거 같은 민주당 소속이었던 박 의원을 감싸면서 가능한 한 체포동의안 처리를 연기시켜 보려는 의도 같다. 박 의원이 체포된다고 해서 국회 운영에 지장을 초래할 사정은 보이지 않는다. 불체포특권은 본래 권위주의 정권의 부당한 체포로부터 의원을 보호하기 위해 등장했다. 그러나 민주화가 이뤄진 이후로는 정부가 이를 남용할 여지가 거의 없어지고 오히려 정부에 대한 의회의 상대적 우위로 이 특권이 남용돼 범법 의원의 과(過)보호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박 의원 체포동의안 처리는 19대 국회 특권 내려놓기의 시험대다.}
국회의원 자격심사를 독일에서는 위임심사(Mandatpr¨ufung)라고 한다. 의원은 선거를 통해 국민으로부터 주권의 일부를 위임받는다. 그 위임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심사한다고 해서 위임심사다. 자격심사라는 말보다 대의민주주의 이념을 훨씬 잘 담고 있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김재연 비례대표 의원에 대한 자격심사는 이들에게 국민의 위임이 있는지, 그래서 의원 자격이 있는지 심사하는 것이다. 비례대표는 정당이 스스로 결정한다. 그러나 두 의원의 경우 이들을 비례대표로 정했던 바로 그 정당이 위임의 부당성을 문제삼고 있다. 이보다 더 똑떨어지는 자격심사의 대상이 어디 있겠는가. 3권 중 자율성 가장 큰 국회의 책무 헌법의 의원 자격심사 규정은 1948년 제헌 과정에서 제1단계 헌법초안에는 없었으나 유진오 초안에 들어가 제헌헌법으로 확정되고 현행 헌법까지 이어지고 있다. 유진오가 이 규정을 넣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다만 1967년 12월 14일자 동아일보에 당시의 신민당 당수 유진오가 “의원 자격심사는 그 기준을 법률로 제한하고 있지 않으므로 선거부정에 대한 (자격 유무) 판단도 가능하다”고 밝힌 기사가 나온다. 그해 6·8총선은 3선 개헌을 염두에 둔 민주공화당의 무리수로 인해 1960년 3·15 정·부통령 선거 이래 최악이라고 할 정도로 선거 부정이 심했다. 유진오는 국회의 자격심사로 부정 당선 의원을 제명하는 절차를 놓고 공화당 당수 김종필과 대립했다. 유진오의 생각은 분명하다. 박정희 정권 치하의 검찰과 법원을 믿을 수도 없었지만 검찰 수사와 법원 판결을 기다리자면 자격 없는 의원들로 국회 임기가 다 지나가버릴 수 있으니 사법 처벌과는 별개로 국회에서 자격심사를 진행하자는 것이었다. 정종섭 서울대 헌법학 교수에 따르면 법원의 재판에 의해서는 의원직을 상실하지 않지만 국회의 자격심사로는 의원직을 상실할 수 있다. 사법적 확정과 자격심사는 별개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대부분의 선진국 의회가 독립된 심사권을 갖고 있다. 의원 자격심사와 징계는 국회의 자율성을 규정한 헌법 조항에 근거를 두고 있다. 국회는 분립된 삼권(三權)의 상호 견제 속에서 상대적으로 자율성이 크다. 대통령과 법관은 흠결이 생길 때 자진사퇴하지 않으면 국회의 탄핵소추를 받는다. 그러나 국회는 해산도 탄핵도 당하지 않는다. 그 대신 국회는 스스로 자격심사나 징계를 통해 구성원(의원)의 흠결을 제거해야 한다. 자격심사나 징계에 대해서는 처분을 받은 의원이 법원에 제소할 수도 없다. 그래서 그 남용을 막기 위해 제명은 재적의원 3분의 2 찬성이라는 최고로 강화된 다수결을 택하고 있다. 이것이 의원 자격심사의 헌법적 구조다.통진당, 당 존립 위한 선택 선행해야 이석기 김재연 의원에 대한 통진당의 최종 제명·출당 여부가 아직 안갯속이다. 통진당 의원총회에서 구당권파(이석기 지지파)와 신당권파 사이에 캐스팅보트를 쥔 김제남 의원의 입장이 분명치 않다. 국회가 두 의원의 자격을 심사하기 위해서는 통진당의 제명·출당 결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민주통합당은 통진당의 결정이 없으면 자격심사를 할 수 없다는 소극적 자세다. 새누리당 의석수만으로는 자격상실을 이끌어낼 수 없다. 이 의원은 3일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반대집회에서 한 농민에게 멱살을 잡혀 쫓겨나는 곤욕을 치렀다. 집회 참가자들 사이에서 “북으로 가라” “한국 사람이 아니다” “당장 나가라”는 고함이 터져 나왔다. 통진당은 민심을 바로 읽어야 한다. 통진당이 경선 부정에 연루된 비례대표 의원과 후보 의원의 제명·출당에 실패한다면 앞으로는 정당의 존립 자체가 논란의 초점이 될 수 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오늘 개원하는 국회에서 다룰 민간인 불법사찰 국정조사의 범위를 놓고 여야가 맞서고 있다. 새누리당은 불법사찰을 이명박 정부뿐 아니라 노무현 김대중 정부 때 것까지 포함시켜 조사하되 청와대는 조사 대상에서 제외하자고 주장한다. 반면 민주통합당은 청와대는 당연히 포함돼야 하며 조사 대상 시기는 이명박 정부에 국한해야 한다고 맞선다. 양쪽 다 자기들에게 유리한 대로 국정조사를 진행하자는 심산이다. 검찰의 두 차례 불법사찰 수사가 국민의 불신을 받고 국조(國調)로 직행한 것은 누가 봐도 의혹의 냄새가 나는 청와대의 개입 여부를 검찰이 눙치고 넘어갔기 때문이다. 검찰이 확보한 ‘공직윤리지원관실 업무추진 지휘체계’라는 문건에 대통령과 대통령실장이 사찰 내용을 보고받았음을 시사하는 문구가 들어 있다. 불법사찰 증거인멸 과정에 대통령민정수석실이 개입해 입막음용 돈까지 줬다는 폭로와 관봉(官封)이라고 찍힌 돈까지 나왔다. 청와대는 최우선적으로 조사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 이명박 정부에서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한 일을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는 총리실 조사심의관실이 똑같이 했다. 박영선 민주당 의원이 올해 4월 현 정부의 사찰문건이라고 폭로한 2619건 가운데 80% 이상은 노 정부 때 작성된 것이다. 불법사찰과 증거인멸 의혹을 폭로한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은 노 정부에서는 조사심의관실 소속으로 똑같은 사찰 업무를 수행했다. 사법적 처벌을 위한 공소시효는 다했을지라도 국조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노무현 김대중 정부 때의 사찰도 포함시키는 것은 당연하다. 민주당에는 이해찬 대표가 친노세력을, 박지원 원내대표가 DJ세력을 대표하고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과거사를 정리한다며 유신과 광복 전후, 일제강점기는 물론이고 100년도 더 지난 구한말 동학혁명까지 들춰냈다. 이에 비하면 두 정부 때의 사찰은 과거사라고 부를 수도 없다. 김대중 정부 때의 도청으로 국가정보원장 2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음에도 국가기관에 의한 불법사찰이 계속됐다는 데 경악을 금할 수 없다. 공무원도 아닌 재계나 종교계의 민간인이 사찰의 대상이 됐다. 사생활의 비밀은 적법한 수사에 의하지 않고는 침해할 수 없는 국민의 기본권이다. 삼권분립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데 사법부 수장이나 유력 국회의원이 정보 수집의 대상이 됐다. 여야는 정략을 떠나 불법사찰을 완전히 단절하는 계기로 삼겠다는 각오로 이번 국조에 임해야 한다.}
이슬람 원리주의를 정초한 이론가인 사이이드 꾸틉이 1966년 이집트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가말 압델 나세르 대통령 암살 음모에 가담했다는 죄명(罪名)이었다. 나세르로 대표되는 아랍 민족주의와 꾸틉으로 대표되는 이슬람 급진주의의 대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꾸틉의 뒤를 이어 파키스탄에서는 마울라나 마우두디, 이란에서는 루홀라 호메이니가 등장했다. 이 세 사람이 이슬람의 종교적 비전을 대중 정치운동의 기반으로 만든 주역이다. ▷꾸틉은 1950년 무슬림형제단에 가입했다. 1952년 나세르가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왕정을 종식시켰을 때 무슬림형제단은 이를 ‘이집트 민중의 아들들에 의한 정권 장악’으로 환영했다. 꾸틉 그 자신 나세르의 혁명위원회에 참여했다. 그러나 나세르는 곧 무슬림형제단의 대중적 인기가 자신의 집권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고 1954년 무슬림형제단의 활동을 금지했다. 두 집단의 기나긴 대립이 시작됐다. 이집트가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던 1928년 창립된 무슬림형제단의 이념은 낡은 것으로 드러났다. 무슬림형제단은 새로운 정치상황에 부응할 이념을 만들어내야 했다. 꾸틉이 그 중심인물이었다. ▷지난해 ‘아랍의 봄’ 민주화 시위로 나세르 이래 계속된 군사정권이 무너진 이후 처음 실시된 이집트 대통령선거에서 무슬림형제단 출신의 무함마드 무르시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1966년 꾸틉의 처형, 즉 아랍민족주의에 당한 이슬람 급진주의의 패배를 뒤집는 사건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무슬림형제단은 지난해 반정부 시위가 진행 중일 때에는 정치에 간섭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이를 번복하고 올해 3월 총선에 참여해 다수당이 됐다. 총선 직후에는 대선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다시 이를 뒤집고 대선에서 후보를 내놓아 승리했다. ▷이집트 군부의 거부가 만만치 않다. 군부는 지난주 무슬림형제단과 급진 이슬람세력인 살라피가 60% 이상을 장악한 의회를 해산하고 대통령의 군 통수권 등을 박탈하는 임시헌법을 발효시켰다. 앞으로 무르시 대통령과 군부의 갈등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무르시 대통령이 정치 경제 사회에 시대착오적인 종교적 제약을 가할 수도 있고, 군부가 철권으로 민주적 절차를 방해할 수도 있다. 양극단을 제어할 열쇠는 이집트 국민이 쥐고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민노총은 올해 5월 발간한 조합원 대상의 학습자료에서 김정은 북한 세습정권 체제에 대해 “(김정일의) 아들이어서가 아니라 가장 훌륭한 지도자를 후계자로 내세운 것”이라며 “그런 문제(세습)로만 후계를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체제를 비난하는 사람들의 시각”이라고 주장했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은 “애국가는 국가가 아니다”라며 당 행사 때 애국가 제창을 검토하는 통진당 비상대책위원회를 비판했다. 통진당의 최대주주인 민노총엔 범주사파 경기동부연합과 가까운 세력이 40%가량이나 되고 이 의원은 통진당 내 경기동부연합의 수뇌다. 민노총 내 주사파들이 내부적으로 북한 세습을 정당화하는 교육을 하는 동안 이 의원은 대중의 이목을 끄는 지위를 활용해 대한민국 정체성에 대한 금기를 깨는 시도를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는 발언이 문제 되자 “애국가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라고 변명했지만 애국가를 불편해하는 마음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스탈린은 수령 절대주의를 실현했지만 수령을 세습하는 일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북의 수령 세습은 세계의 극좌파 이론가들에게서조차 조롱당한다. 수령 세습, 그것도 3대째 이어지는 세습은 세계에 유일무이하게 북한에서만 벌어지고 있다. 민노총의 학습자료는 북한 주민들마저 내심으로 비웃을 북한 정권의 선전 논리를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애국가는 엄연한 우리나라 국가다. 애국가는 국기인 태극기와 달리 관련 법률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국가로 불렸고 2010년 대통령령으로 제정된 ‘국민의례 규정’에서도 국가로 명기됐다. 이 의원의 애국가 시비는 대한민국을 어떻게든 부정하고 싶은 주사파의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통진당은 올해 1월 창당대회에서 애국가 대신 운동권 노래인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민주통합당은 이 의원의 발언에 대해 “국회의원은 국민의 눈높이에서 생각하고 실천해야 한다”며 비판했다. 이 의원은 비례대표 경선 부정과 선거비용 부풀리기에 이어 자신이 운영한 여론조사업체의 후보 단일화 여론 조작으로 민주당으로부터 고발을 당했다. 민주당은 이 의원에게 자진 사퇴나 요구하는 책임회피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대한민국 체제를 흔드는 행위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아울러 통진당이 종북주의를 청산하지 않는 한 ‘연대 불가’라고 선을 확실하게 그어야 대선에서 수권 자격이 있는 야당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흔히 사상의 자유만큼 소중한 자유는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은 그보다 더 소중한 자유가 있다. 거주 이전의 자유다. 자유가 없는 곳에서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이 할 수 있는 마지막 행동은 그곳을 떠나는 것이다. 이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가르쳐준 것은 뜻밖에도 위르겐 몰트만이라는 독일 개신교 신학자였다. 동독 주민의 ‘떠나겠다’와 ‘남겠다’2010년 프랑스 특파원 시절 파리 7구의 미국인 교회에 초청된 몰트만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독일 신학의 마지막 거장으로 꼽히는 몰트만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사상의 자유 이전에 거주 이전의 자유가 있었다. 거주 이전의 자유는 사상의 자유가 없는 곳에서 그 사상을 지키는 긴급피난(緊急避難)적 성격을 갖고 태어났다.독일에서 종교개혁으로 가톨릭의 보편적 통치가 무너지고 개신교로 개종한 제후가 등장해 황제와 갈등을 빚었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종교는 황제가 아니라 제후가 결정한다는 화의가 성립했다. 그러나 여전히 종교는 신민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제후가 결정하는 것이었다. 대신 신민에게 주어진 것이 자신의 종교가 허용되는 지역으로 이주하는 권리였다. 이것이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종교화의다. 신민이 제후의 종교를 따르지 않아도 되는 신앙의 자유, 오늘날 표현으로 사상의 자유는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을 통해서 비로소 확립됐다. 영국 청교도가 국교회의 지배를 거부하고 신대륙으로 떠나 미국 건국의 아버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프랑스의 위그노 교도가 가톨릭 군주의 압제를 피해 프로이센 등으로 집단 망명할 수 있었던 것도 최소한 거주 이전의 자유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거주 이전의 자유는 종교 개혁 시대만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소중한 권리다. 나는 2009년 10월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을 취재하기 위해 옛 동독 도시 라이프치히에 있었다. 동독을 무너뜨린 월요 시위가 시작된 곳이 바로 라이프치히다. 20년 전의 시위 장면이 도심 건물 벽면을 스크린 삼아 저녁 내내 반복해서 영상으로 비췄다. 시위대가 ‘우리는 떠나고 싶다(Wir wollen raus)’고 외치는 모습이 보였다. 당초 시위대가 원한 것은 동독을 떠나는 소극적인 것이었다. 딱딱한 표현을 빌리자면 거주 이전의 자유였다. 이미 많은 동독 주민이 자유화의 바람으로 통제가 느슨해진 체코로, 폴란드로, 헝가리로 떠나 그곳 외국대사관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영상 속 구호는 어느 사이 ‘우리는 남아 있겠다(Wir bleiben hier)’로 바뀌었다. 동독의 진정한 위기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동독에서 내보내주기만 해달라던 사람들이 생각을 바꿔 남겠다고 했을 때 단순히 출국 완화 조치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사태가 다가왔다. 동독 공산당 독재가 무너졌다.탈북자는 떠날 권리 거부된 사람거주 이전의 자유는 한반도의 북쪽에서 현재진행형으로 요구되는 권리다. 살던 곳을 떠날 자유는 그 밖의 모든 자유가 거부된 인간에게 남겨져야 할 마지막 자유다. 탈북자란 다름아닌 이 자유마저 거부된 사람들을 말한다. 그것이 거부되자 목숨을 걸고 탈출을 감행한 이들이다. 누가 이들의 탈출을, 또 이들의 탈출을 돕는 행위를 변절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사상의 자유는 본래 ‘내심(內心)의 자유’나 ‘침묵할 자유’처럼 비겁한 자유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사상의 자유는 사상을 표현하고 그 사상에 따라 살 자유를 말한다. 그것이 거부될 때는 떠나겠다는 자세다. 종북이 내심이나 침묵에 머무르는 한 아무도 위험시하지 않는다. 그것은 표현이나 행동으로 나타나니까 위험한 것이다. 진정한 사상의 자유를 추구하는 종북주의자라면 비겁하게 숨지 말고 자기의 사상을 드러내던가, 그게 용납되지 않으면 그 사상을 따라 살 수 있는 곳으로 떠나면 된다. 우리 사회는 북한과 달리 거주 이전의 자유를 보장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검찰이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에 대한 재수사 결과를 어제 발표했지만 여전히 미덥지 못하다. 검찰은 박영준 총리실 국무차장-이영호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인규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이 불법사찰의 비선(秘線)이라고 설명했다. 최초 수사에서는 이렇게 중요한 사실을 놓쳤다가 폭로가 있고 나서야 비로소 밝혀내는 검찰의 수사 의지가 의심스럽다. 검찰은 재수사에서도 박 전 차장과 이 전 비서관 이상의 윗선을 규명하지 못했다. 이 전 비서관의 공식 보고라인인 당시 사회정책수석과 대통령실장만 조사하고 권재진 민정수석비서관(현 법무부 장관)은 서면진술서만 받고 끝냈다. 당사자들의 진술만으로 불법사찰 내용이 청와대나 다른 실력자에게 보고되지 않았다고 결론지었다. 제대로 된 수사라고 할 수 없다. 한상대 검찰총장은 임명될 때부터 임기 말 대통령 지키기 인사라는 비판이 나왔다. 권 장관은 한 총장의 직속 상관이다. 검찰이 의도적으로 ‘윗선 자르기’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올 만하다. 여권은 특검을 검토하고 있고 야권은 국정조사(國政調査)와 청문회를 하겠다고 벼른다. 이 역시 검찰이 자초한 것이다. 검찰은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 등의 입막음용으로 류충열 전 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이 준 5000만 원과 이상휘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준 3400만 원의 출처에 대한 의혹도 풀지 못했다. 이들이 기소될 죄도 저지르지 않았는데 거액을 자기 돈으로 내놓고 입막음을 시도할 이유가 없다. 돈을 준 사람의 진술에만 의존한 검찰은 무능한 것인가, 수사 의지가 없는 것인가. 검찰은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조사한 500건 중 박 전 차장이 사기업의 청탁을 받고 공직감찰 기능을 개인 이익을 위해 이용한 3건에 대해서만 기소했다. 사법부의 수장인 이용훈 당시 대법원장이나 공직자가 아닌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 대한 동향 파악은 월권(越權)이다. 종교인 연예인 기업인 정치인에 대한 사찰 내용 중에는 단순한 동향 파악을 넘어선 것이 있었으나 처벌하지 못했다. 현행법으로 도청과 불법 계좌추적은 처벌할 수 있지만 사찰은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 한 처벌하기 어렵다. ‘불법 사찰 방지법’ 제정이 필요한 이유다. 국가기관에 의한 불법 사찰, 도청, 불법 계좌추적 등은 국민기본권을 보장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용납될 수 없다. 사생활의 비밀은 적법한 수사에 의하지 않고는 침해할 수 없는 국민의 기본권이다. 민간인 사찰 같은 범죄를 엄하게 다뤄야 이른바 국가범죄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이 도박 파문을 계기로 전근대적 종단 운영체계를 고쳐 사찰의 재정 관리를 출가 승려가 아니라 재가(在家) 신도에게 맡긴다. 도박 폭로의 원인이 된 선거 시비를 없애기 위해 주지 등 소임(所任) 승려의 선출제도를 정비하고 승려가 준수할 청규(淸規)를 현대 사회에 맞게 제정할 계획이다.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어제 밝힌 종단 쇄신 계획은 출발에 불과하다. 약속한 대로 제도를 만들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조계종의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1994년 종단 개혁 이래 가장 높았다. 일부 승려의 일탈이 있었지만 대부분 승려는 수행에 정진하며 깨어 있었다. 형안(炯眼)의 선승들이 들고 일어났고 원로 스님들도 물러나 있지만은 않았다. 이에 자승 스님도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응답했으나 불자는 물론이고 국민이 보기엔 미흡하다. 종단 지도부는 기대에 걸맞은 개혁을 이뤄내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자승 스님은 2001년 강남 룸살롱 출입에 대해 “10여 년 전 있었던 부적절한 일에 대해서는 향후 종단의 종헌종법 절차에 따라 종도들이 납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규명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술자리 후 잠자리까지 있었다는 일각의 의혹에 대해 “그런 잘못은 결코 없었다”고 부인했다. 자승 스님이 본인 입으로 룸살롱 출입은 부적절한 일이었다고 고백한 것도,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성관계 의혹을 부인한 것도 처음이다. 다시는 의혹이 일지 않도록 이번 기회에 사건의 진상이 철저히 규명돼야 한다. 쇄신책에는 불교계의 고질적인 정치권 유착에 대한 자성(自省)은 포함되지 않았다. 자승 스님과 봉은사 전 주지 명진 스님은 이명박 정권에서 정치권 여야의 대리인인 것처럼 갈등을 빚었다. 총무원의 권력을 쥔 측이나, 밖으로 도는 측이나 모두 10여 년 전 그 룸살롱에 함께 있었다는 것이 외부에 비친 조계종의 부끄러운 초상이다. ‘닭 벼슬만 못한 게 중 벼슬’이라는 절집의 오랜 격언을 잊지 말아야 한다. 5일 조계종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가 개최한 사부대중 모임에서 한 불자는 “2010년 불교계가 템플스테이 예산 삭감에 반발해 정부 및 여당 관계자 출입금지 푯말을 세우고 지난해 예산을 재배정하자 푯말을 치우는 모습을 보면서 슬픈 생각이 들었다”고 비판했다. 정부 예산을 따오는 일이 종단의 중대사가 되고 정권은 그런 예산으로 종단을 길들이는 일이 앞으로는 없어야 한다. 종교는 종교의 길을 가고, 정치는 정치의 길을 가야 한다.}
이해찬 민주통합당 대표 후보가 박근혜 의원이 통합진보당 이석기 김재연 의원의 제명 필요성을 언급한 것에 대해 “국가관을 이유로 의원을 제명한 적이 있느냐”며 “아주 악질적인 매카시즘(공산주의 마녀사냥)”이라고 비난했다. 민주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30일 여론이 나빠지자 “두 의원이 자진사퇴하지 않으면 자격심사를 통해 의원직을 박탈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말한 것과 상충된다. 이 후보의 발언을 계기로 김한길 대표 후보도 ‘색깔론’ ‘공안정국’ 운운하고 나섰다. 이석기 김재연 두 의원은 과거 종북(從北) 활동을 한 적이 있지만 사법적 처벌을 받았고 사면 복권된 이상 국회가 전력(前歷)만으로 의원 자격을 박탈하는 제명을 추진할 수는 없다. 19대 의원들 중에 종북주의 의혹을 받고 있는 사람이 사실 두 의원만은 아니다. 민주사회에서 사상이나 정치적 성향만으로 아무나 처벌할 수는 없다. 두 사람이 유독 제명 대상으로 거론되는 것은 종북주의 국가관 때문이 아니라 반(反)민주적 선거조작이라는 부정행위를 통해 의원 배지를 달았기 때문이다. 두 의원의 선거조작 행위가 수사와 재판을 통해 최종 확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명 절차에 이의를 제기하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국회의 정치적 결정이 꼭 대법원 판결로 사건이 확정되기까지 기다릴 이유는 없다. 이 후보는 두 의원의 제명이 통진당에 표를 던진 유권자의 지지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두 의원의 투표 조작은 그들을 비례대표로 뽑은 통진당 스스로 밝혀낸 것이다. 통진당은 두 의원의 제명을 추진하고 있다. 이 정도면 국회는 제명 절차에 착수할 충분한 근거를 확보한 것으로 볼 만하다. 헌법 제64조에 따른 의원 제명은 어떤 행위가 대상이 되는지 제한을 두지 않는다. 의원 제명은 국회의 전적인 자율에 속한다. 의원이 되기 전 행위는 어떤 것도 문제 삼을 수 없다는 주장은 헌법이 국회에 부여한 자율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두 사람은 의원이 되는 과정의 반민주성 때문에 제명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국회가 형식논리에 구애되지 않고 자율성을 충분히 발휘해 판단할 일이다. 이석기 김재연 두 사람이 이름모를 보통 서민으로 살아간다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든 그 생각만으로는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은 헌법을 준수하겠다는 선서를 한다. 헌법의 근본이념인 자유민주주의 체제, 그리고 인권 보호를 지키겠다는 약속이다. 북한의 3대 세습이나 주민의 인권 유린, 핵무기 개발과 남(南)을 향한 도발은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위협이며 헌법적 가치를 부인하는 것이다. 북의 체제와 도발을 감싸거나 편드는 발언과 행보는 헌법의 테두리를 벗어난다. 의원의 국가관을 검증하는 것은 이해찬 후보의 주장처럼 매카시즘이 아니라 유권자의 권리이자 의무다.이석기 김재연 임수경의 非상식 뻗치기 이런 관점에서 통진당의 두 의원과 민주당 임수경 의원이 최근에 한 발언은 헌법의 기본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볼 소지가 다분하다. 이석기 의원은 북한의 대남혁명전략전술에 따라 결성된 민족민주혁명당의 경기남부위원장을 지냈으면서도 과거 활동을 반성한 적이 없다.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북한 인권과 3대 세습, 북핵 문제에 대한 생각을 밝혀달라는 질문에 ‘색깔론’ 운운하며 답변을 회피했다. 종북 논란에 대해서는 “종북보다 종미(從美)가 더 큰 문제”라고 되받았다. 대한민국은 미국 등 자유민주국가들과 가치관을 공유해 번영의 기적을 이뤄냈다. 그 덕에 재(財)테크를 해 부자로 사는 사람이 미국보다 주민을 굶겨 죽이는 북한을 따르는 종북이 더 낫다고 강변하는 게 과연 정상인가. 김재연 의원은 방송 출연에서 ‘연평도 포격처럼 북한이 공격해도 우리가 참아야 하느냐’는 질문에 “맞불을 놓으면서 전쟁을 일으켜선 안 된다”고 답했다. 그는 “북한 체제를 인정하지 말고 거부하자는 것은 전쟁하자는 얘기”라는 말도 했다. 김 의원의 발언은 우리가 주권과 영토를 스스로 지키는 자주국가임을 포기하자는 얘기나 다름없다. 북한을 의식해 그런 말을 한 것이라면 ‘나는 종북주의자’라고 자백한 셈이다. 임수경 의원은 탈북자와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을 ‘변절자’라고 비하했다. 김일성 김정일의 폭압에 견디다 못해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북한을 탈출한 사람과 북한인권운동가가 변절자라면 김일성주의에 대한 지조를 지키는 것이 옳다는 얘기 아닌가. 임 의원은 1989년 자신의 불법 방북을 ‘통일운동이자 민주화운동의 일환’이라고 주장하면서 2000년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에 명예회복 신청을 했으니 민주주의가 물구나무를 서야 할 판이다. 반인륜 독재자 김일성을 아버지라 부른 것도 민주화운동이었단 말인가.}
임수경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의원이 한 탈북자 출신 대학생과 시비가 붙어 “근본도, 개념도 없는 탈북자 ××들이 굴러 와서 대한민국 국회의원에게 개겨?” “너 하태경(새누리당 의원) 하고 북한 인권인지 뭔지 하는 이상한 짓을 하고 있다지. 그 변절자 ××, 내 손으로 죽여 버릴 거야” 등 험한 말을 내뱉었다. 임 의원은 파장이 커지자 사과했다. 그러나 탈북자들과 북한 인권 운동을 두루 칭해 변절이나 이상한 짓으로 여기는 그의 사고방식이 해명된 것은 아니다. 그가 여전히 주사파의 이념에 사로잡혀 있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든다.임 의원은 1989년 6월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대표 자격으로 참가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3년 5개월을 복역했다. 그는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 비례대표 후보로 선정됐을 당시부터 민주당 내에서조차 “임종석 전 사무총장의 아바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임 전 사무총장은 1989년 주사파가 장악한 전대협의 의장으로 임 의원의 방북을 기획, 실행했다. 임 의원이 방북 당시 다녔던 한국외국어대 용인캠퍼스는 통합진보당 주사파의 산실(産室)로 이석기 의원 등 경기동부연합의 주력이 졸업했다. 임 의원과 17대 의원을 지낸 임 전 사무총장은 김대중 대통령 집권 당시인 1999년 복권됐지만 둘 다 공개적으로 전향을 선언한 적이 없다. 임 의원은 운동권에서는 ‘통일의 꽃’으로 칭송받았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방북은 동유럽에서 공산주의가 무너져가던 시기에 북한 체제를 연명시키는 데 이용됐다. 그도 1990년대 북한 주민이 숱하게 굶어죽고 탈북 행렬이 줄을 잇는 북한 체제의 실상을 듣고 보았을 것이다. 목숨을 걸고 자유를 찾아온 탈북자들과, 북한의 실상을 보고 북한 인권 운동가로 돌아선 전향자들을 비하한 것은 주사파의 본색을 부지불식간에 드러낸 것이 아닐까.정치권 내 주사파 종북세력을 통진당만의 문제로 국한하는 것은 협소한 시각이다. 김경재 전 민주당 의원은 2010년 “민주당에 주사파 세력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북한 지하당 ‘왕재산’을 조직하고 활동을 주도한 혐의로 민주당 출신 국회의장의 보좌관이 구속됐다. 하태경 의원은 ‘왕재산’ 사건 이후 “과거에 주사파 386들이 정치권에 진출할 때 민주노동당(통진당의 전신)에 많이 들어갔지만 민주당에도 적지 않게 들어갔다”고 말한 적이 있다. 차제에 민주당 내 주사파 종북세력의 실체를 검증할 필요가 있다.}
아내로부터 “날 생각하면 무지개색 중에 무슨 색이 떠올라”라는 문자가 왔다. ‘바빠 죽겠는데 웬 뜬금없는 질문이야’라고 속으로 불평하며 별 생각없이 “빨강”이라는 답신을 보냈다. 잠시 뒤 싸한 분위기 감도는 문자가 도착했다. “한번 더 기회 줄테니 다시 생각해봐.” 아내의 질문은 요새 기혼여성들이 남편들에게 유행처럼 물어보는 것이다. 빨강은 그저 마누라, 주황은 애인 같은, 노랑은 동생 같은, 초록은 친구 같은, 파랑은 편안한, 남색은 지적인, 보라는 섹시한 마누라를 의미한단다. ▷통합진보당 김재연 비례대표 당선자가 19대 국회에 입성하면서 보라색 미니스커트를 입었다. 하얀 블라우스에 검은 재킷뿐이었다면 그저 그랬을 텐데 검은 재킷과 보라색 미니스커트의 세련된 매치가 눈길을 끌었다. 이정희 전 통진당 대표라면 절대 그렇게 입지 못했을 것이다. 87학번인 이 전 대표는 ‘진보의 붉은 장미’로 불리긴 하지만 어딘지 1980년대 운동권 여학생 출신의 칙칙함이 남아있다. 99학번인 김 의원에게는 그런 게 없다. 과연 신세대 메트로폴리탄 주사파라고나 할까. ▷보라색은 통진당의 상징색이다. 그래서 김 의원이 보라색 미니스커트를 입었을 것이다. 본래 진보의 상징색은 빨강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붉은 악마’ 응원 열기에 빨강이 전국을 휩쓸었다. 그때 한국 사회의 빨강에 대한 금기가 깨졌다느니 어쩌니 했다. 그래도 그해 대선에 출마한 노무현 후보와 열린우리당은 감히 빨강을 쓰지 못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노랑이었고 지금 민주통합당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과거 민주노동당의 상징색은 주황이었다. 빨강을 써야 할 정당들은 빨강을 쓰지 못하는데 세상이 바뀌어 보수인 새누리당이 빨강을 상징색으로 쓴다. ▷빨강은 열정 정열을 나타낸다. 그런데 기혼여성들이 남편들로부터 닮았다는 소리를 가장 듣기 싫어하는 색이 빨강이다. ‘빨강은 그저 마누라’라나. 어쩌다 빨강이 이렇게 됐는지 모르지만 새누리당이 빨강을 쓸 정도니 빨강이 진부해진 것은 틀림없다.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부산대 강연에서 색깔론을 비판했다. 그러나 요새 빨갱이는 빨강을 쓰지 않는다. 빨강과 파랑이 섞인 보라나, 빨강과 노랑이 섞인 주황을 쓴다. 안 교수도 보라나 주황 속에 숨겨진 빨강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19대 국회 임기가 시작된 어제 날짜로 통합진보당의 이석기 김재연 두 비례대표 당선자가 국회의원이 됐다. 통진당이 밟고 있는 제명 절차가 끝나도 이들은 당원 자격만 잃을 뿐, 의원 신분은 유지된다. 당내 경선 부정행위에 대한 수사와 재판 결과는 지켜봐야 알겠지만 공직선거법의 관련 규정 미비로 당선무효형의 처벌을 이끌어내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국회법의 징계규정도 의원이 되기 전의 활동은 징계할 수 없다. 남은 방법은 국회의원 재적 3분의 2 이상 찬성에 의한 제명이다. 박지원 민주통합당 비대위원장은 어제 국회의 자격심사와 뒤이은 제명 절차에는 상당한 시일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이석기 김재연 의원의 자진 사퇴를 촉구했다. 버티기로 작정한 두 의원에게 자진 사퇴 촉구 정도로 압박이 될지 의문이다. 자진 사퇴하지 않으면 제명 절차를 밟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고 행동에 옮겨야 한다.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이해찬 의원은 “국가 기밀을 악용할 우려가 있는 의원들(통진당 주사파)을 안보 등과 직결된 사안을 다루는 주요 상임위에 배정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문제가 된 의원들도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국방위와 외교통상통일위 배정을 희망하지 않고 있다. 그렇더라도 근본적인 문제는 남아 있다. 민주당은 4·11총선을 앞두고 통진당과 연대하면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내걸었다. 범야권 공동정책 합의문의 ‘대한민국을 변화시킬 20개 약속’ 중에 ‘국가보안법 폐지 등을 포함해 인권을 탄압하는 반민주악법을 개폐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민주당은 이 약속을 앞으로도 유지할 것인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 김종빈 전 검찰총장은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노무현 대통령 때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국보법 폐지가 안 되니까 검찰의 국보법 적용을 무력화하려 했다”고 말했다. 김 전 총장은 2006년 강정구 전 동국대 교수를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려다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불구속 지휘를 내리자 반발해 사퇴했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쌓여온 것이 오늘날 통진당 사태로 결실을 맺게 됐다”는 그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서구의 극좌파 정당들은 소련과 동구권 공산주의 붕괴 이후 비빌 언덕이 없어졌지만 국내 주사파 종북 세력은 북한 호전 집단의 엄호를 받고 있다. 북한이 남한 국가체제의 전복을 시도할 수 있는 현실적인 힘으로 존재하는 한 국보법이 필요하다. 민주당이 수권(受權) 자격이 있는 정당임을 인정받으려면 주사파 의원들의 활동을 제한하고 특히 선거 부정에 연루된 사람들은 국회에서 축출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나아가 국가보안법 폐지 정책합의를 이제라도 철회하기 바란다.}
불교의 선(禪)을 일본에서는 젠, 중국에서 찬이라고 발음한다. 그런데 서양에는 젠은 있어도 선이나 찬은 없다. 대학시절 동양철학 교재를 아직도 갖고 있다. 영어로 된 이 책의 불교 편에 선불교를 소개하는 장이 있는데 Zen과 Zazen이라는 말이 나온다. Zen과 Zazen은 선과 좌선(坐禪)을 일본 발음으로 표기한 것이다. Seon(선)이나 Chamseon(참선)은 없다.한국 선의 세계화 아득하기만 지난해 여름 프랑스에 들렀다가 일본 불교 조동종(曹洞宗) 선사 데시마루 다이센(弟子丸泰仙·1914∼1982)의 전기가 나왔기에 샀다. 유럽 서점의 불교서적 코너는 대개 티베트 불교의 책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선불교 책이 모처럼 코너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어 반가웠다. 데시마루는 젠을 유럽에 확산시키는 데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그의 최초의 전기가 프랑스인 제자들에 의해 ‘Sensei(‘선생’의 일본 발음)’라는 제목으로 나온 것이다. 데시마루는 은사 사와키 고도(澤木興道)의 유언을 받들어 프랑스로 건너갔다. 은사는 1965년 입적하면서 “인도에서 불교가 죽자 달마가 불교를 가지고 동쪽으로 왔다. 일본의 불교가 죽었으니 너는 서쪽으로 가서 그곳에서 법을 전하라”는 말을 남겼다. 데시마루가 1967년 파리 북역에 첫발을 디뎠을 때 나이 53세. 프랑스어는 전혀 할 줄 몰랐고 영어만 아주 조금 할 줄 알았다. 무일푼의 그가 가진 것은 가사 한 벌과 은사의 노트 한 권, 그리고 좌선용 방석뿐이었다. 선사 데시마루가 파리의 거리에서, 남프랑스 해변에서 직접 보여준 묵조선(默照禪)의 수행법은 프랑스인의 눈길과 마음을 끌었다. 앙드레 말로나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같은 지성인이 데시마루와 교류했고 안무가 모리스 베자르는 자신의 무용단에 그의 좌선 수업을 받도록 했다. 일본 불교학자 스즈키 다이세쓰 데이타로(鈴木大拙貞太郞)가 영어로 쓴 선불교 서적들이 20세기 전반부터 서양에 널리 읽힌 덕도 봤을 것이다. 한국 조계종의 현대적 출발은 1947년 성철 스님 등이 중심이 된 봉암사 결사에서 비롯된다. 봉암사 결사와 이후 1950년대의 불교 정화운동은 일제강점기에 조동종 등 일본 불교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대처(帶妻·처를 둠) 관행을 몰아내고 독신 전통을 되살렸다는 데 의미가 있다. 조계종은 동아시아 선불교 중에서 전통에 가장 충실하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세계 속에서는 조계종이 아니라 조동종이 선불교를 대표한다. 세계 불교 중에서 선불교의 비중도 큰 것이 아니지만 그마저도 일본 젠이 대표하는 것이다. 물론 한국에도 숭산 스님(1927∼2004) 같은, 시대를 뛰어넘는 글로벌 선사가 있었다. 그는 일본에서 교포를 상대로 포교를 하다가 뜻한 바 있어 1972년 혈혈단신 미국으로 건너가 세탁소 수리공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곳 대학생들에게 조계종의 간화선(看話禪)을 전파했다. 하버드대 출신의 현각 등이 다 그의 제자들이다. 우리들끼리 독신 전통이 대처 전통보다 훌륭하다느니, 조계종의 간화선이 조동종의 묵조선보다 뛰어나다느니 아무리 떠들어 봐야 밖에서는 알아주지 않는다. 한국 선에 일본 젠을 뛰어넘는 우수성이 정말 있다면 그것을 서양의 지식인과 예술가들에게 증명해 보여야 한다. 그래야 한국 선의 세계화, 불교의 한류화가 가능하다. 그래야 제이팝을 능가하는 케이팝처럼 젠 스타일을 능가하는 선 스타일이 나올 수 있다. 절집 내부 알량한 권력 넘어서라 부처님 오신 날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조계종이 시끄럽다. 절집의 관심이 밖보다는 너무 안으로만 향한 것도 갈등의 먼 원인 중 하나다. 데시마루는 일본 불교가 타락했다고 진단한 뒤, 유럽에서 출발해 미국을 거쳐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 일본 불교를 개혁하겠다는 큰 뜻을 품고 유럽으로 떠났다. 절집 내부의 알량한 권력을 갖고 다투기보다는 세계를 향해 이런 결기를 펼쳐 보이는 스님들이 많아질 때 절집도 변할 것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서울시가 여름철을 전후해 사무실 내에서 간소한 복장 착용을 권하는 ‘쿨비즈 운동’을 추진하면서 특히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6∼8월 석 달을 ‘슈퍼 쿨비즈’ 기간으로 정해 민원부서 외에서는 반바지와 샌들 착용을 허용한다. 시는 다음 달 5일 환경의 날을 맞아 서울역사 RTO홀에서 ‘서울이 먼저 옷을 벗다’를 주제로 쿨비즈 패션쇼도 연다. 이 행사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직접 모델로 참가한다. ▷쿨비즈니 슈퍼 쿨비즈니 하는 말은 다 일본에서 온 것이다. 2005년 당시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환경장관에게 ‘여름철 복장 간소화에 의한 냉방 절약’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면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고이케 장관은 이후 사무실 냉방 온도를 28도 이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재킷과 넥타이를 착용하지 말고 일하자는 운동을 벌였다. 환경성은 이 운동에 이름을 붙여주기 위해 공모를 통해 쿨비즈를 선정했다. 쿨(cool)은 차갑다 또는 멋있다는 뜻이고 비즈(biz)는 비즈니스의 준말이다. ▷일본 환경성은 지난해 동일본 대지진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여파로 사상 최악의 전력난이 예상되자 기존의 쿨비즈를 더욱 철저히 한 슈퍼 쿨비즈 운동을 시작했다. 그 전해까지만 해도 노타이나 노재킷까지만 허용됐으나 폴로셔츠와 청바지까지 추가됐다. 구두 대신 운동화도 인정하고 사무실에서만 신는 조건으로 샌들도 허용했다. 지방자치단체 가운데서는 반바지에 샌들 차림으로 출근을 허용하는 파격적인 시도 생겼다. ▷서울시 방침은 ‘원전(原電) 하나 줄이기’ 운동 차원에서 나온 것이다. 2014년까지 에너지 절약과 태양광 발전을 유도해 시 전체로 ‘영광 5호기’ 발전량만큼의 전기 사용을 줄이겠다는 것이 박 시장의 목표다. 한국 정부는 쿨비즈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아서 그렇지 1996년부터 노타이 노재킷을 권장했다. 그러나 쿨비즈는 몰라도 슈퍼 쿨비즈는 정도가 심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박 시장이 다리의 시커먼 체모(體毛)를 드러내고 반바지와 샌들 차림으로 출근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프랑스에서는 최근 프랑수아 올랑드 신임 대통령의 내각에 주택장관으로 입각한 세실 뒤플로 녹색당 대표가 청바지 차림으로 국무회의에 참석했다고 언론이 떠들썩했다. 공무원 복장의 편의와 예의 사이에 타협점이 있을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가 17일 ‘법관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사용할 때 유의할 사항’이라는 권고 의견을 제시했다. 지난해 11월 공직자윤리위는 페이스북 등에서 법관의 품위에 어울리지 않는 표현으로 정치적 편향 발언을 한 법관들이 법관윤리강령을 위반한 것인지에 대한 검토를 요청받고 판단을 보류했다. 그 대신 SNS의 신중한 사용을 권고하고 법관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사용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작업을 벌였다. 이 가이드라인은 사회적 정치적 쟁점에 대해 법관이 SNS에서 의견 표명을 하는 경우 자기절제와 균형적인 사고로 품위를 유지하고, 법관이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서지 말고, 공정한 재판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처신하라는 내용을 담았다. 공직자윤리위의 권고는 대법원장에게 법관윤리강령의 구체적 적용에 대해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법원은 지난해에는 가이드라인이 없어 물의를 빚은 법관들이 법관윤리강령을 위반한 것인지 판단하지 않았다. 이제 가이드라인이 정해진 만큼 지키지 않는 법관은 필요하다면 징계 절차에 회부해야 할 것이다. 판사들의 SNS에서 ‘가카새끼 짬뽕’이나 ‘가카의 빅엿’처럼 중고교생의 품위에도 맞지 않는 표현이 사라질지 지켜볼 일이다. 공직자윤리위의 권고는 상당히 완곡하다. 존 로버츠 미국 연방대법원장이 지난해 ‘연방 법관이나 재판연구관은 SNS를 사용하지 않기 바란다’고 한 발언의 수준에 못 미친다. 공직자윤리위가 강조했듯이 SNS는 그 특성을 잘 이해하고 사용법을 숙지하지 않으면 사용자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엄정한 정치적 중립을 요구받는 법관은 SNS 사용을 신중히 하는 데서 나아가 SNS 사용 자체를 자제함이 옳다. 공직자윤리위의 권고는 SNS를 친밀한 사람들끼리의 의사소통 수단으로만 볼 수 없다는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 페이스북은 싸이월드와는 달리 친구관계를 맺지 않더라도 누구나 접속해서 볼 수 있는 개방성이 성공의 비결이다. 트위터는 리트윗이란 기능을 통해 자신이 팔로잉(following)하지 않는 사람의 의견도 볼 수 있는 구조다. 소설가 이외수나 공지영, 조국 서울대 교수, 그리고 김제동 등 일부 연예인은 트위터에서 수십만 명의 팔로어를 거느리면서 웬만한 언론 못지않은 영향력을 갖고 있다. 그만큼 메시지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할 것이다. 법관의 SNS 가이드라인 제정은 미디어의 발전과 그에 필요한 규제의 불일치를 메우는 변화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