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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이용구 법무부차관 택시기사 폭행 사건 축소 수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지난해 폭행 사건 발생 당시 서울서초경찰서 수사지휘 라인이었던 전 형사팀장 K 경감을 31일 피고발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이동언)는 지난해 11월 K 경감이 당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후보로 거론되던 변호사 신분의 이 차관을 반의사 불벌죄인 형법상 일반폭행 혐의만 적용해 불입건 내사종결한 경위 등을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112신고를 받은 파출소에서 이 차관을 피해자의 처벌 불원 의사와 관계없이 처벌할 수 있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운전자 폭행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는 취지의 보고를 올렸는데도 이를 적용하지 않은 배경 등을 의심하고 있다. 검찰은 담당수사관인 J 경사를 최근 두 차례 불러 조사했으며, 곧 형사과장 L 경정도 조사할 예정이다. 검찰은 서초경찰서 보고라인에서 이 차관에 대한 무혐의 종결을 전후해 법조계 인사와 통화한 7000여건의 통화내역을 정밀 분석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서초경찰서 보고라인 일부 간부들이 휴대전화 데이터를 삭제한 것이 석연치 않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이 차관에게 특가법상 운전자 폭행 혐의를 적용해 곧 기소할 방침이다. 폭행 사건 발생 6개월 만인 지난달 30일 오전 8시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에 출석한 이 차관은 19시간 넘게 조사를 받고 그 다음날인 31일 새벽 3시 20분경 귀가했다. 경찰은 이 차관이 지난해 택시기사에게 폭행 장면이 담긴 블랙박스 영상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한 혐의(증거인멸 교사)뿐 아니라 수사 과정에서 제3자를 통해 외압을 행사했는지 등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경찰은 지난해 서초경찰서 관계자들은 이 차관을 조사할 당시 “변호사인 줄로만 알았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서초경찰서 생활안전과 직원을 통해 서울경찰청 실무자까지 이 차관이 공수처장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이라는 정보가 전달됐다는 사실이 최근 드러났다. 이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지난달 31일 “경찰청에 보고된 것은 없는 걸로 알고 있다”고 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22일 검찰 조사를 받은 뒤 사의를 표명한 이용구 법무부 차관이 30일 택시기사 폭행 사건 관련 ‘증거인멸 교사’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이 차관의 증거인멸 교사 의혹 등이 불거져 경찰 진상조사단이 구성된 지 약 4개월 만이다. 서울경찰청 진상조사단은 “30일 오전 이 차관을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로 불러 밤늦게까지 조사했다”고 밝혔다. 이 차관은 지난해 11월 6일 서울 서초구 자택 인근에 도착한 택시 안에서 술에 취해 잠든 자신을 깨우던 택시기사 S 씨의 멱살을 잡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틀 뒤 이 차관은 S 씨와 만나 폭행 증거가 담긴 택시 내부 블랙박스 영상을 삭제해줄 것을 요구했다. 올 1월 시민단체는 이 차관을 증거인멸 교사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했고,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경찰청이 수사를 해 왔다. 이 차관은 증거인멸 교사 혐의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관련 의혹을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조만간 검찰에 송치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경찰과 별도로 검찰은 이 차관의 운전자 폭행 혐의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이동언)는 22일 이 차관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했으며, 이 차관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운전자 폭행 혐의를 적용해 기소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이소연 always99@donga.com·황성호 기자}
“미담은커녕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많이 없어서 얼마나 미안한지 몰라요.” 피치 못할 사정으로 부모 등의 빚을 물려받고선 법적으로 어떻게 대처할지 몰라 고통받는 아이들. 세상엔 그런 아이들을 위해 조용히 애쓰는 이들도 있다.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도 그렇다. 지난해 7월부터 관련 미성년자들을 위해 무료 법률 지원을 해왔다. 하지만 센터장을 맡고 있는 이상훈 변호사는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하정이(가명·8)만 해도 할아버님 뵐 낯이 없습니다. 현행 민법에 미성년 상속인에 대한 보호 장치가 없어 방법이 없어요. 이제 남은 건 개인 파산뿐이거든요…. 딸이 떠나고 손녀를 어떻게든 잘 키우시려 하셨는데, 너무 크게 낙담하셨어요.” 하정이는 2019년 갑작스레 엄마가 세상을 떠난 뒤 카드 빚 5000여만 원을 물려받았다. 외할아버지(69)는 손녀를 책임지려 법정 후견인이 됐지만, 빚을 막아주진 못했다. 부채를 인지한 때부터 3개월 안에 했어야 할 상속 포기를 신청하지 않아서다. 그런 법이 있는지도 몰랐던 할아버지는 뒤늦게 센터를 찾았지만 시기를 놓쳐버렸다. 여덟 살의 어린 손녀가 ‘신용불량자’가 된다는 걸 안 순간, 할아버지는 마음의 문이 닫혀버렸다. 거동이 불편한데도 직접 생경한 서류를 챙겨들고 법원을 찾아다녔던 그였다. 불쌍한 손녀를 보듬어 줄 것이라 믿었던 법에 배신당한 심정이었다. “전화를 드려도 안 받으시고, 집으로 찾아봬도 만나주질 않으시네요. 그 심정 알죠. 벽에 탁 가로막힌 기분이실 거예요. 하정이를 지켜줬어야 할 법이 오히려 외면해버렸으니까요. 어른들 잘못으로 아이 앞길을 망친 기분입니다.” 이 변호사는 조만간 하정이네 집에 또 찾아갈 계획이다. 센터 측은 “소속 변호사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문제로 외근을 나간다. 빚을 물려받고 자포자기하는 아이와 보호자를 설득하려면 만나서 얘기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이달 10일 국회에선 뒤늦게나마 미성년자가 재산보다 큰 빚은 물려받지 않도록 하는 법률개정안이 발의됐다. 이 법이 통과되면 빚을 물려받은 아이들이 빚쟁이로 전락해 성인이 돼도 괴롭힘을 당하는 일은 사라진다. 당하는 이들도 도와주는 이들도 마음이 아픈 이 굴레를 이젠 정부와 국회가 나서서 벗겨줘야 한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그룹홈(공동양육시설)에 온 아이에겐 여러 사정이 있기 마련입니다. 빚 대물림 같은 부담도 그중 하나죠. 여기 온 아이라면 그런 위험도 함께 껴안아야죠. 그게 어른들의 책임 아닐까요.” 서울에서 그룹홈을 운영하는 김영화 씨(58)는 지난달 15일 규영이(가명·12)의 엄마가 됐다. 3월 22일 법정후견인을 신청해 정식 보호자 자격을 얻었다. 규영이를 괴롭히는 빚의 사슬을 끊어주기 위해. 규영이는 지난해 12월 29일 혼자가 됐다. 아빠가 갑작스러운 뇌경색으로 세상을 떠난 뒤였다. 다섯 살 때 떠난 엄마는 연락이 끊긴 지 오래. 규영이는 올해 3월 5일 김 씨의 그룹홈에 합류했다. 겨우 안식처를 얻었지만 규영이는 빚의 망령에 쫓기고 있었다. 아빠 빈소에서도 빚 독촉을 했던 채권자는 규영이의 초등학교까지 찾아왔다. 초등학교 6학년에게 “1200만 원을 내 놓으라”고 다그쳤다. 결국 보다 못한 김 씨가 나섰다.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의 도움을 받아 법정후견인부터 맡았다. 후견인이 되면 빚 조사부터 상속포기 신청까지 대신 할 수 있다. 센터도 법적 절차를 무료로 대리하기로 했다. 이상훈 센터장은 “기댈 곳 없는 아이들은 어른들이 먼저 손을 내밀어야 수렁에서 건져낼 수 있다”고 말했다. 후견인 자처해 빚 독촉 막고, ‘빚 대물림’ 차단 무료 법률지원도 “무작정 쏘아붙이는데 정말 놀랐어요. 하물며 그 어린 것이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혼자서 아무 대꾸도 못 했을 걸 떠올리면 마음이 아립니다.” 서울의 한 공동육아시설(그룹홈) 시설장인 김영화 씨(58)는 3월 11일 전화 한 통을 받고 손이 덜덜 떨렸다. “규영이(가명) 아비한테 돈 빌려준 사람이다. 아빠가 죽었으니 애가 갚아야 한다. 어떻게든 받아내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규영이가 그룹홈에 온 지 딱 1주일 만이었다.○ “어른은 아이의 불행을 외면해선 안 돼”김 씨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규영이를 다독이며 그간 있었던 일을 전해 들었다. 그 ‘아저씨’는 지난해 12월 아빠의 장례식장에도 나타나 대뜸 빚을 갚으라고 했단다. 며칠 전엔 학교까지 찾아와선 협박했다. 규영이는 그때마다 영문도 모른 채 당하기만 했다. “여기 온 지 겨우 일주일 된 애 연락처를 어떻게 알았을까요. 알아보니 규영이를 잠깐 보호했던 먼 친척을 괴롭혔던 모양이에요. 그걸 생각하니까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맡아줄 이도 없이 홀로 남겨진 아이가 아버지 재산이 얼마인지, 빚이 얼마인지 뭘 알겠어요. 어른이 나서야 할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아이 입장은 무시한 채 어디든 들이닥치는 채권자를 막으려면 다른 방법이 없었다. 김 씨는 큰 고민 없이 진짜 보호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관련법을 알아본 뒤 3월 22일 곧장 규영이의 법정후견인을 신청했다. 그리고 지난달 15일 법원으로부터 인용 결정을 받았다. 김 씨에 따르면 그룹홈에는 그 아저씨가 보낸 소장도 날아왔다. 원금 1200만 원에 다 갚을 때까지의 연이자 12%도 지불하라는 독촉이었다. 하지만 든든한 지킴이가 생긴 규영이는 이제 더 걱정할 게 없다. 김 씨는 규영이가 아빠의 재산보다 더 많은 빚을 물려받지 않도록 한정승인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당장은 빚 독촉장이 종이 쪼가리에 불과할 수 있어요. 하지만 누군가 지켜주지 않으면 규영이는 성인이 된 뒤에도 빚의 굴레에서 시달릴 수 있습니다. 이제 제가 ‘엄마’가 돼주기로 한 이상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사실 규영이는 처음 그룹홈에 왔을 때 거의 말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있다. 최근 하굣길에 규영이는 마중 나온 김 씨의 손을 잡고 조용히 속삭였다. “기도했어요, 저에게 더 많은 용기를 달라고.”○ 주택상담사가 빚 독촉장 발견해 도와일곱 살 유민이(가명)는 아직 미성년인 형과 누나가 있다. 삼남매는 지난해 뜻도 제대로 모르는 ‘빚’의 수렁에 빠질 뻔했다. 그들을 구한 건 한 구청 직원의 세심한 눈 덕분이었다. 지난해 6월 유민이 아빠는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대부업체로부터 빌린 약 1500만 원이 남아 있었다. 엄마는 삼남매와 함께 살고 있긴 하지만 이혼한 상태라 법적 책임이 없었다. 빚은 아이들에게 대물림됐다. 법정대리인인 엄마가 해결하면 될 문제였지만 안타깝게도 정신이 온전치 않았다. 경계성 지적장애를 지닌 엄마는 법원 서류가 날아와도 그저 방구석에 쌓아만 뒀다.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꼼짝없이 신용불량자가 될 처지였다. 다행히 지난해 8월 삼남매의 반지하방을 찾은 윤정선 상담사(48)가 이 서류를 발견했다. 구청 주거복지센터에서 일하는 그는 임대주택 상담차 방문한 것으로 이쪽 분야에 밝지 못했다. 자신이 책임질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윤 상담사는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엄마에게 이게 무슨 서류냐고 물었더니 고개만 가로저었어요. 읽어봤더니 이대로 두면 아이들한테 큰일 나겠구나 싶었죠. 당장 법률지원단체에 요청해 관련 서류들을 준비해줬어요. 근데 엄마는 ‘너무 어렵다. 그만두겠다’는 거예요. 그때마다 같이 가자고, 내가 다 도와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잡아끌었어요.” 현재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는 유민이 삼남매를 위해 무료로 법적절차를 돕고 있다. 윤 상담사는 “담당 업무는 아니지만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본 적 없다. 이런 아이들을 우리가 돕지 않으면 누가 나서겠느냐”고 했다. 센터 측은 “지난해 7월부터 이런 어려움에 놓인 아동 24명을 도와왔다. 하지만 여전히 애들한테 미안할 뿐이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돕지는 못할망정 어려움에 빠뜨려서야 되겠느냐”고 답했다. 이소연 always99@donga.com·조응형 기자}
“할머니, 이거 봐요. 여기 내 이름이 있네. 이게 뭐야?”지난해 1월 8일. 서울에 사는 우진이 앞으로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법원 직인이 찍힌 서류라 조심스레 열어 보다 할머니 정모 씨는 까무러치는 줄 알았다. 세상을 떠난 외할머니의 빚을 우진이가 갚아야 한다는 내용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영문도 모르는 우진이는 천진한 얼굴로 고개만 갸웃거렸다.○ 친모가 어린 자식에게 빚 떠넘겨서류상 우진이가 갚을 돈은 2300만 원. 폐지 주워 생계를 잇는 기초생활수급자인 정 씨로선 엄두가 안 났다. 하지만 할머니는 어떻게든 손자가 뒤집어쓴 굴레를 벗겨주고 싶었다. 박카스 한 박스 사들고 알음알음 찾아간 법무사. 사정 끝에 최소비용 50만 원만 받고 일을 맡아주기로 했다.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그 금액도 정 씨에겐 감당이 쉽진 않았다. 정 씨는 “우진이를 위해 새벽 4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해 모은 쌈짓돈을 다 털었다”고 했다. 지난해 2월 상속포기를 신청한 뒤에도 난관은 이어졌다. 법률상 상속을 포기하려면 친권자가 나서야 했다. 우진이를 떠난 뒤 10년 넘게 연락 없는 엄마 송모 씨의 인감증명서와 동의서가 필요했다. 법원은 “해당 서류가 없으면 절차를 밟을 수 없다”고 못 박았다. 할머니는 애가 탔다. 아무리 수소문해도 송 씨 행방을 알 길 없었다. 우진이 손을 부여잡고 서류상 주소지인 충북 청주에도 찾아가봤다. 집주인은 “한 달 전쯤 이사 갔다”며 고개를 저었다. 다행히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가 정 씨를 도왔다. 우진이의 딱한 사정을 알고 송 씨의 친권을 일시 정지하는 법적 절차를 밟아줬다. 길고 긴 상속포기 소송은 13개월 만인 올해 2월 25일 마무리됐다. 이제 우진이는 빚에서 해방됐다. 하지만 할머니는 마음의 빚이 남았다. 공동 채무자였던 형 백주환(가명·22) 씨에게 우진이 몫의 빚까지 넘어갔단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빚이란 게 무섭습디다. 불쌍한 우리 애 살리려 급한 불을 끈 건데, 그렇게 달라붙어 옮겨갈 줄 누가 알았겠어? 얼굴도 모르지만 우진이랑 형제라는데. 그쪽 생각하면 두 발 뻗고 잘 수가 없네요. 자꾸 죄스러워서 눈물만 쏟아져.”○ 있는지 몰랐던 동생 빚 떠안은 청년 “아버지, 이것 좀 보세요. 이게 뭐예요?” 3월 10일 주환 씨는 창백한 표정으로 아버지 백모 씨(48)에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아버지는 다르지만 친모인 송 씨가 낳은 남동생 우진이가 상속을 포기했다는 법원 서류였다. 그 바람에 주환 씨 역시 존재도 몰랐던 외할머니의 빚을 모두 떠안았다는 내용이었다. 주환 씨는 지금껏 동생이 있는 줄도 몰랐다. 그 엄마란 사람 역시 세 살 때 사라진 뒤 생사도 몰랐다. 다만 주환 씨 몸엔 엄마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 송 씨가 담뱃불로 자기 자식의 다리를 지진 자국이다. 백 씨는 그제야 가슴을 쳤다. “실수했구나 싶었어요. 사실 지난해 1월 제가 법원 통지를 받았거든요. 애 엄마가 상속을 포기해 빚이 넘겨졌단 거였죠. 근데…, 차마 주환이한테 말을 꺼내지 못했어요. 애를 워낙 학대해 엄마 얘기만 꺼내도 낯빛부터 변하는데. 어떻게든 혼자 조용히 해결해 보려 했던 건데. 이 지경이 될 줄 어찌 알았겠어요.” 주환 씨는 억장이 무너졌다. 남보다 못한 엄마, 더구나 본 적도 없는 외할머니. 그 빚을 왜 내가 갚아야 한단 말인가. 그나마 아직 실낱같은 가능성은 남아 있다. 우진이와 달리 주환 씨는 성인이라 ‘특별한정승인’ 소송을 해볼 수 있다. 특별한정승인이란 상속인이 빚을 인지한 시점부터 3개월 안에 신청하면 재산을 넘는 부채는 상속받지 않도록 구제해 주는 것이다. 대한법률구조공단 측은 “빚을 몰랐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쉽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가능성은 50%는 된다고 본다”고 했다.‘빚의 사슬’… 사촌까지 상속포기 신청해야 면책 美-英선 상속집행자가 알아서 정리입법조사처 “친족 빚 확인 어려워 현실에 맞게 법개정 서둘러야”“물려받은 빚을 포기하시려면 자녀와 배우자뿐 아니라 형제자매, 사촌까지 모두 함께 법원에 상속 포기 신청을 하셔야 합니다.”최근 한 법률 상담 사이트에 한 상속 전문 변호사가 띄운 안내 글의 일부다. 이 문장만 봐도 ‘빚의 대물림’이란 사슬이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 엿볼 수 있다. 현행 민법은 1순위인 자녀와 배우자를 시작으로 사촌 등 총 4순위에 걸쳐 상속인을 규정하고 있다.반면 미국과 영국 등은 미성년뿐 아니라 성인도 원칙적으로 빚을 물려받지 않는다. 개인이 생전에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 재산을 처분할 집행자를 선임해두면 그가 알아서 재산 가운데 빚을 정리한다. 만약 유언을 남기지 않고 갑작스레 숨지더라도 사망신고 뒤 법원이 집행인을 지정해 재산에서 빚을 처분해준다. 주환 씨나 우진이처럼 얼굴도 모르는 가족의 빚을 덜컥 떠안을 가능성이 없다.국회입법조사처의 김성호 조사관은 “친족에게 빚이 자동으로 대물림되는 현행 민법에선 망자의 빚을 조사하고 처분할 의무를 개인이 짊어져야 한다. 반면 미국은 그 책임을 법원이 지정한 집행자가 진다”며 “현대사회에선 먼 친족이라면 빚이 있는지조차 확인이 어렵다. 현실에 맞춰 법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역시 지난해 11월 가족공동체가 해체된 현대사회에서 현행 상속제도가 가진 문제점을 짚었다.가정법원 판사 출신인 배인구 변호사는 “생전에 재산과 부채를 처분하는 방안을 마련해놓는 ‘유언제도’를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미국은 시민의 95%가 유언을 남겨 재산은 물론이고 부채까지 처분할 방안을 미리 마련한다”고 말했다. 이런 문화가 정착되면 행정비용도 줄고 상속인이 뒤늦게 빚을 떠안을 위험 부담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설명이다. 이소연 always99@donga.com·조응형·김수현 기자}
“우진이(가명) 엄마는 백일도 안 된 애를 버리고 떠났어. 그런 애한테 있는지도 몰랐던 외할머니 빚을 갚으라니….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나요?”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새끼. 하지만 그들은 ‘가족’이란 족쇄로 빚만 떠안겼다. 우진이는 올해 초등학교 5학년이다. 키도 할머니 정모 씨(77)만큼 자라 듬직하다. 리어카를 끌고 폐지를 줍는 할머니. 묵묵히 따라나서 할머니를 돕는 맑고 착한 아이다. 지난해 우진이는 하마터면 큰일을 치를 뻔했다. 열한 살짜리가 자칫 신용불량자가 될 처지에 놓였다. 외할머니인 강모 씨가 2019년 6월 숨지며 빚만 잔뜩 남긴 탓이었다. 우진이를 버린 생모 송모 씨(41)는 기별도 없이 자기만 상속을 포기해버려 빚이 자식들에게 넘어왔다. 가족의 인연은 이미 끊어졌다. 하지만 빚의 악연은 질기게 들러붙었다. 채권자는 우진이를 ‘공동 채무자’로 설정해 4600만 원을 갚으라고 독촉했다. 우진이와 할머니는 그때 알았다. 함께 빚을 짊어진 형제가 있다는 걸. 엄마라 부른 적도 없는 이가 낳은 ‘형’이 있다는 걸. “1년 소송해서 겨우 빚 상속을 피했어. 어린 것을 빚쟁이로 만들 수야 없잖아. 그런데 뭔 놈의 법이 그렇답니까. 그 빚이 고스란히 형한테 갔대. 거기는 또 뭔 죄를 졌다고. 우리 잘못도 아닌데 괜히 걱정되고 미안합디다.” 국내 민법은 ‘당연 승계주의’ 원칙을 갖고 있다. 누군가 사망하면 재산이나 빚이 혈연을 타고 대물림된다. 본 적 없는 엄마건, 존재도 몰랐던 형제건 상관없다. 서류상 가족이면 빚은 기어코 따라붙는다. 배인구 변호사는 “가족의 해체가 흔해진 21세기에 친족이란 멍에로 빚을 물려받는 현행 민법이 바람직한지 고민해야 할 때”라고 했다.“본 적 없는 외할머니, 떠나버린 엄마… 내가 왜 그 빚을?”“할머니, 이거 봐요. 여기 내 이름이 있네. 이게 뭐야?”지난해 1월 8일. 서울에 사는 우진이 앞으로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법원 직인이 찍힌 서류라 조심스레 열어 보다 할머니 정모 씨는 까무러치는 줄 알았다. 세상을 떠난 외할머니의 빚을 우진이가 갚아야 한다는 내용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영문도 모르는 우진이는 천진한 얼굴로 고개만 갸웃거렸다.○ 친모가 어린 자식에게 빚 떠넘겨서류상 우진이가 갚을 돈은 2300만 원. 폐지 주워 생계를 잇는 기초생활수급자인 정 씨로선 엄두가 안 났다. 하지만 할머니는 어떻게든 손자가 뒤집어쓴 굴레를 벗겨주고 싶었다. 박카스 한 박스 사들고 알음알음 찾아간 법무사. 사정 끝에 최소비용 50만 원만 받고 일을 맡아주기로 했다.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그 금액도 정 씨에겐 감당이 쉽진 않았다. 정 씨는 “우진이를 위해 새벽 4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해 모은 쌈짓돈을 다 털었다”고 했다. 지난해 2월 상속포기를 신청한 뒤에도 난관은 이어졌다. 법률상 상속을 포기하려면 친권자가 나서야 했다. 우진이를 떠난 뒤 10년 넘게 연락 없는 엄마 송모 씨의 인감증명서와 동의서가 필요했다. 법원은 “해당 서류가 없으면 절차를 밟을 수 없다”고 못 박았다. 할머니는 애가 탔다. 아무리 수소문해도 송 씨 행방을 알 길 없었다. 우진이 손을 부여잡고 서류상 주소지인 충북 청주에도 찾아가봤다. 집주인은 “한 달 전쯤 이사 갔다”며 고개를 저었다. 다행히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가 정 씨를 도왔다. 우진이의 딱한 사정을 알고 송 씨의 친권을 일시 정지하는 법적 절차를 밟아줬다. 길고 긴 상속포기 소송은 13개월 만인 올해 2월 25일 마무리됐다. 이제 우진이는 빚에서 해방됐다. 하지만 할머니는 마음의 빚이 남았다. 공동 채무자였던 형 백주환(가명·22) 씨에게 우진이 몫의 빚까지 넘어갔단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빚이란 게 무섭습디다. 불쌍한 우리 애 살리려 급한 불을 끈 건데, 그렇게 달라붙어 옮겨갈 줄 누가 알았겠어? 얼굴도 모르지만 우진이랑 형제라는데. 그쪽 생각하면 두 발 뻗고 잘 수가 없네요. 자꾸 죄스러워서 눈물만 쏟아져.”○ 있는지 몰랐던 동생 빚 떠안은 청년 “아버지, 이것 좀 보세요. 이게 뭐예요?” 3월 10일 주환 씨는 창백한 표정으로 아버지 백모 씨(48)에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아버지는 다르지만 친모인 송 씨가 낳은 남동생 우진이가 상속을 포기했다는 법원 서류였다. 그 바람에 주환 씨 역시 존재도 몰랐던 외할머니의 빚을 모두 떠안았다는 내용이었다. 주환 씨는 지금껏 동생이 있는 줄도 몰랐다. 그 엄마란 사람 역시 세 살 때 사라진 뒤 생사도 몰랐다. 다만 주환 씨 몸엔 엄마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 송 씨가 담뱃불로 자기 자식의 다리를 지진 자국이다. 백 씨는 그제야 가슴을 쳤다. “실수했구나 싶었어요. 사실 지난해 1월 제가 법원 통지를 받았거든요. 애 엄마가 상속을 포기해 빚이 넘겨졌단 거였죠. 근데…, 차마 주환이한테 말을 꺼내지 못했어요. 애를 워낙 학대해 엄마 얘기만 꺼내도 낯빛부터 변하는데. 어떻게든 혼자 조용히 해결해 보려 했던 건데. 이 지경이 될 줄 어찌 알았겠어요.” 주환 씨는 억장이 무너졌다. 남보다 못한 엄마, 더구나 본 적도 없는 외할머니. 그 빚을 왜 내가 갚아야 한단 말인가. 그나마 아직 실낱같은 가능성은 남아 있다. 우진이와 달리 주환 씨는 성인이라 ‘특별한정승인’ 소송을 해볼 수 있다. 특별한정승인이란 상속인이 빚을 인지한 시점부터 3개월 안에 신청하면 재산을 넘는 부채는 상속받지 않도록 구제해 주는 것이다. 대한법률구조공단 측은 “빚을 몰랐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쉽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가능성은 50%는 된다고 본다”고 했다.‘빚의 사슬’… 사촌까지 상속포기 신청해야 면책 美-英선 상속집행자가 알아서 정리입법조사처 “친족 빚 확인 어려워 현실에 맞게 법개정 서둘러야”“물려받은 빚을 포기하시려면 자녀와 배우자뿐 아니라 형제자매, 사촌까지 모두 함께 법원에 상속 포기 신청을 하셔야 합니다.”최근 한 법률 상담 사이트에 한 상속 전문 변호사가 띄운 안내 글의 일부다. 이 문장만 봐도 ‘빚의 대물림’이란 사슬이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 엿볼 수 있다. 현행 민법은 1순위인 자녀와 배우자를 시작으로 사촌 등 총 4순위에 걸쳐 상속인을 규정하고 있다.반면 미국과 영국 등은 미성년뿐 아니라 성인도 원칙적으로 빚을 물려받지 않는다. 개인이 생전에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 재산을 처분할 집행자를 선임해두면 그가 알아서 재산 가운데 빚을 정리한다. 만약 유언을 남기지 않고 갑작스레 숨지더라도 사망신고 뒤 법원이 집행인을 지정해 재산에서 빚을 처분해준다. 주환 씨나 우진이처럼 얼굴도 모르는 가족의 빚을 덜컥 떠안을 가능성이 없다.국회입법조사처의 김성호 조사관은 “친족에게 빚이 자동으로 대물림되는 현행 민법에선 망자의 빚을 조사하고 처분할 의무를 개인이 짊어져야 한다. 반면 미국은 그 책임을 법원이 지정한 집행자가 진다”며 “현대사회에선 먼 친족이라면 빚이 있는지조차 확인이 어렵다. 현실에 맞춰 법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역시 지난해 11월 가족공동체가 해체된 현대사회에서 현행 상속제도가 가진 문제점을 짚었다.가정법원 판사 출신인 배인구 변호사는 “생전에 재산과 부채를 처분하는 방안을 마련해놓는 ‘유언제도’를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미국은 시민의 95%가 유언을 남겨 재산은 물론이고 부채까지 처분할 방안을 미리 마련한다”고 말했다. 이런 문화가 정착되면 행정비용도 줄고 상속인이 뒤늦게 빚을 떠안을 위험 부담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설명이다. 이소연 always99@donga.com·조응형·김수현 기자}
여덟 살 하정이(가명)는 아빠 엄마가 없다. 하지만 아이는 갚아야 할 빚이 5000만 원을 넘는다. 빚이 뭔지도 모른 채. 서울 금천구에 사는 하정이는 2019년 자신을 홀로 키우던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장애로 거동조차 불편한 하정이의 외할아버지(69)는 손녀딸을 돌보려 곧장 법정 후견인 자격을 취득했다. 모진 세상, 가여운 손녀. 어떻게든 하정이를 지켜주고 싶었던 할아버지는 그해 겨울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 들었다. 하정이에게 ‘물려받은’ 빚이 있다고 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엄마가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려 썼던 것. 매달 100여만 원씩 이자까지 더해지며 금액은 점점 불어났다. “세상에 그런 법이 있는지 어찌 알았겠어요. 기초생활수급자에 몸까지 불편한 마당에. 딸 명의로 독촉장이 쏟아져도 그저 내가 책임지면 되겠거니 했지요…. 이제 초등학교 입학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것한테 빚이 웬 말입니까.” 하정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이제 ‘개인파산’뿐이다. 기한 안에 상속을 포기하는 법적인 절차를 밟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파산 신청이 받아들여져 빚을 갚을 책임을 면해도 5년 동안 신용불량이란 꼬리표가 달린다. 한국 사회에서 빚의 대물림에 고통받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대법원이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미성년자 78명이 파산을 신청했다. 올해도 3월까지 빚더미에 깔린 아이 2명이 파산 신청서를 냈다. 법의 허점이 하정이 같은 어린이를 파산으로 내몬다는 지적도 있다. 국내 민법은 ‘미성년자가 빚을 물려받으면 친권자나 후견인이 인지한 시점부터 3개월 안에 상속포기 등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반면 프랑스나 독일은 별다른 절차를 밟지 않더라도 미성년자는 재산보다 큰 빚은 물려받지 않도록 법이 보호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도 지난해 11월 “법정대리인이 상속포기 및 한정승인 신청을 하지 않으면 미성년에겐 개인파산만 남는다. 신용불량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라는 제안은 해결책이라 할 수 없다”며 법 개정을 촉구했다. 늦게나마 국회에선 10일 미성년자가 상속 재산보다 큰 빚은 물려받지 않게 하는 법률개정안이 발의됐다. 이상훈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장은 “파산을 신청한 미성년자는 전체 빚더미 아동 중에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며 “아이에게 빚까지 대물림하는 단순 승계주의를 고수하는 현행법은 개정이 매우 시급하다”고 말했다.석달 지나면 빚 상속포기 못해… 法 모르는 아이들 보호장치 없어 “아빠가 세상을 떠난 뒤 엄마부터 위로했던 아이예요. 엄마를 지켜주겠다면서. 그런데 1억 원 넘는 빚을 물려받았단 걸 알고 절망했어요. 지난달 결국 ‘엄마, 나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해’라고 하더군요.” 지난달 20일 오후 3시경 대한법률구조공단 대구 지부. 공단 소속 정경원 변호사 사무실로 전화가 걸려왔다. 정 변호사가 담당하는 유철이(가명·18)의 개인파산 재판 담당 판사였다. 유철이는 별세한 아버지의 빚과 관련해 제때 상속포기 신청을 하지 못해 빚을 떠안았다. 판사는 “우리가 이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정말 개인파산뿐이냐”며 안타까워했다. 정 변호사는 한참 동안 한숨을 내쉬다 답했다. “…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판사도 변호사도 속상한 재판판사가 사적 감정까지 내비친 속내를 정 변호사가 모를 리 없다. 정 변호사는 “지난해 11월 11일 유철이의 파산 신청서를 접수시킬 때까지 수백 번 고민하고 다른 방법이 없는지 찾아봤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그 길밖에 없었다. 유철이는 지난해 4월 20일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심근경색이었다. 조그만 회사를 운영하던 아버지는 기울어진 사업을 되살리려 밤낮으로 애쓰다 변을 당했다. 가장을 잃은 집안은 난파선처럼 파도에 휘몰려 다녔다. 같은 해 9월 8일. 숨진 남편에게 빚이 있다는 걸 알고 있던 유철이의 어머니 도모 씨(52)가 정 변호사를 찾았다. 현행 민법은 부채를 지닌 이가 숨지면 직계비속·존속, 형제자매, 4촌 이내 방계혈족까지 대물림하도록 돼 있다. 이혼 상태였던 어머니 대신 유철이가 아버지 빚 1억3600만 원을 물려받았다. 문제는 대응이 너무 늦었다는 점이었다. 빚을 포기하거나 빚을 제외한 재산만 물려받으려면, 상속 사실을 안 지 3개월 안에 상속 포기나 한정승인 신청을 해야 한다. 민법 1020조는 ‘미성년 상속인은 친권자 또는 후견인이 상속이 개시된 것을 안 날부터 3개월 안에 상속 포기나 한정승인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도 씨가 정 변호사를 찾아온 건 이미 5개월이나 지난 뒤였다. “법은 아이가 몰랐다는 사실을 배려해주지 않아요. 친권자인 어머니가 빚이 자녀에게 대물림됐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상속 포기 신청을 할 수 없는 시점이었죠. 아이는 자기 뜻과 무관하게 빚을 떠안을 수밖에 없습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어머니와 함께 사는 고교생이 무슨 수로 1억 원이 한참 넘는 돈을 갚을 수 있겠어요. 빨리 파산신청을 해주는 수밖에요.” 사회생활도 해보지 못한 청소년을 ‘신용불량자’로 만드는 재판. 관계자들은 모두가 마음이 아렸다. 담당판사가 정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온 것도 이 때문이었다. 지난달 28일 담당판사는 법원 공보관을 통해 이런 뜻을 전해왔다. “개인파산이 받아들여져 면책까지 된다 해도 한국신용정보원에 파산 정보가 통보됩니다. 5년간 금융거래도 할 수 없습니다. 이제 곧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할 청년에게 그런 제약은 엄청난 굴레가 될 게 뻔했습니다. 자꾸만 마음이 쓰였습니다.”○ “법 몰라 자식을 수렁에 빠뜨려”“남편이 죽기 전부터 삶은 ‘지옥’이었어요. 제 명의로도 돈을 빌려 빚이 수천만 원까지 불어났거든요. 방법이 없어서 이혼까지 했던 거였는데. 저 힘든 건 괜찮아요. 하지만 자식까지 빚의 수렁에 빠뜨리게 될 줄이야….” 엄마는 유철이에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정 변호사가 “개인파산 외엔 방법이 없다”고 했을 때 그대로 까무러치기도 했다. 빚도 이혼도 모두 자기 잘못 같았다. 2018년 빚에 시달리다 남편과 헤어진 도 씨는 지금도 빚에 허덕인다. 매달 내야 하는 원금과 이자가 70만 원이 넘는다. 월세방 얻을 여력이 안 돼 친정 식구들 집을 전전하기도 했다. 새벽 3시 우유배달을 하고, 아침이면 식당에서 주방 일을 했다. 몸이 부서질 듯했지만, 아이만은 건사하고 싶었다. 하지만 남편의 빚이 유철이에게 대물림됐다는 소식에 세상이 무너졌다. 제대로 먹지 못해 한 달 만에 체중이 7kg 가까이 빠졌다. 병원에서는 우울증 진단을 내려 치료약까지 먹어야 했다. “평생 가정주부로만 살아서 그런 법을 어떻게 알았겠어요. 누가 알려주기라도 했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상속 포기든 뭐든 했겠죠.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빚을 갚을 방법을 찾으려고 변호사를 찾아간 건데, 애가 개인파산을 해야 한다니 청천벽력이었어요. 유철이한테 너무 미안해요. 엄마가 몰라서 이 지경을 만들다니.” 도 씨는 지난해 11월 유철이의 개인 파산을 신청하며 대리인 자격으로 ‘지급 불능 경위서’를 작성했다. 꾹꾹 눌러 쓴 경위서에는 아들을 향한 마음의 빚이 가득했다. ‘아들은 (개인 파산 소식을 듣고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학비를 걱정하며 어떻게든 국립대학에 가겠다고 합니다. 엄마인 저로서는 아이들에게 아빠의 부재가 제일 마음이 아픕니다. 그런데 경제적으로도 너무 힘들게 하는 것 같아 너무 미안합니다.’○ 빚에 치여 꿈마저 쪼그라든 아이올해 고3 수험생이 된 유철이는 겉으로는 의젓하고 담담했다고 한다. 지난해 말 도 씨가 “유철아, 엄마가 법을 몰라서 네가 개인파산을 하게 됐다”고 전하자 오히려 엄마를 위로했다고 한다. “대뜸 ‘괜찮다’고 했어요. 자긴 그냥 집 근처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면 된다고. 그럼 집세도 안 들고 학비도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 받겠다고요. 군대도 좀 일찍 갔다 오면 낫지 않겠냐고도 했어요. 다만 엄마 혼자 두는 게 제일 걱정이라면서요.” 다행히 성실한 유철이는 무난히 국립대에 갈 성적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유철이가 꿈을 ‘국립대’로 잡은 건 사정이 있다. 유철이는 파산면책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즉시 복권이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신용정보원에 기록이 5년 동안 등재된다. 이럴 경우 학자금 대출이 제한되며, 전월세 보증금 대출도 어렵다. 서울에 있는 대학 진학을 스스로 꿈에서 지워버린 것이다. “그 덤덤하던 애가 지난달 20일 결국 울음을 터뜨렸어요. 아빠 돌아가신 지 1주기를 맞아 성묘를 갔었는데, 갑자기 ‘엄마,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하더군요. 부모가 자식을 지켜줘야 하는데, 오히려 궁지로 내몬 게 아닌지. 너무 괴롭고 미안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죽고 싶단 생각만 들어요. 우리 유철이 어떻게 살려야 할까요.” 유철이의 방에는 키 작은 장롱 하나가 있다. 유철이가 어릴 때부터 써오던 것이다. 장롱 한구석에는 유철이가 어린 시절 삐뚤삐뚤 쓴 낙서가 새겨져 있다. 정 변호사는 “빚의 대물림이 아직 세상에 나가보지도 못한 아이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을 낙인을 새기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한탄했다.이소연 always99@donga.com·조응형 기자}
“고등학교 3학년인 저는 고1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꾸준히 생활비를 보태 왔습니다. 언니는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교를 다닙니다. 만약 파산면책결정이 난다면 우리는 아마 지금처럼 열심히, 아니 더 열심히 살 것입니다.” 올해 스무 살이 된 조민영(가명) 씨는 열여덟 살이던 2019년 ‘채무증대 및 지급불능 경위서’를 쓰던 때를 아직 잊지 못한다. 이름조차 낯설었던 이 서류는 개인이 법원에 파산과 면책을 신청할 때 제출해야 하는 일종의 진술서다. 성실하게 살았지만 불운에 의해 빚을 떠안았고, 형편상 갚기가 어렵다는 걸 명확하게 드러내는 게 ‘작성 요령’이다. 민영 씨가 이런 경위서를 써야 했던 건 어머니가 2016년 간경화로 세상을 떠나며 남긴 빚 때문이었다. 아버지와 이혼한 어머니는 이미 집을 떠나 안 보고 산 지가 오래됐다. 하지만 2000년부터 2011년까지 발생한 카드 빚과 대부업체 대출은 원금 약 1500만 원에 이자 약 3500만 원이 더해져 5000만 원으로 불어나 있었다. “도저히 갚을 여력이 없어 법률구조공단에 자문해 경위서를 썼어요. 기억나던 시절부터 살아온 삶을 줄줄 쓰다 보니까 너무 착잡했어요. 제가 봐도 답이 안 보이더라고요. 다른 또래 친구들은 이런 삶을 안 살 것 같은데….”○ 미성년자에게 더 불리한 현행법민영 씨는 이 빚을 피할 방법이 없었을까. 민법은 빚을 포함한 모든 재산을 상속받지 않는 ‘상속포기’나 물려받은 재산의 범위에서만 빚을 갚는 ‘한정승인’을 인정하고 있다. 다만 고인 사망 뒤 3개월 안에 법원에 신청해야 효력이 있다. 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신 시점은 2016년이었고, 남긴 빚의 존재를 알게 된 건 2019년이었다. 게다가 당시 민영 씨가 성인이 아니었던 점이 불합리하게 작용했다. 민법은 ‘특별한정승인’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상속인 본인이 빚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을 경우 그 사실을 알게 된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신청하면 한정승인을 인정해준다. 하지만 민영 씨는 빚을 물려받을 당시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이 적용을 받지 못했다. 법정대리인인 아버지가 빚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초생활수급자였던 아버지는 부인의 빚이 두 딸에게 상속됐다는 내용의 체납 고지서를 여러 차례 받았다. 민영 씨는 “아버지는 어찌할 바를 몰라서 그냥 집에다 쌓아만 뒀다고 한다”며 “상속포기나 한정승인 같은 게 있는 줄도 모르셨다”고 토로했다. 심지어 어머니가 남긴 빚이 있고 이를 갚아야 한다는 것도 언니의 통장이 전부 압류되면서부터였다. 황당한 심정으로 법률구조공단을 찾아갔지만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이미 상속포기 등의 신청 기한을 한참 넘겼습니다. 개인 파산 말고는 방법이 없어요.” 결국 민영 씨는 고3이던 2019년 10월 개인 파산을 신청했다. 어른이 되기도 전에 신용불량자가 돼 버렸다. “늘 어려웠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조금은 나아지겠지 하는 기대가 있었어요. ‘어른이 되면 열심히 벌어서 지금처럼은 살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도 했고요. 그런데 갑자기 몰랐던 빚더미에 깔려 버린 거죠.”○ “엄마 구하러 오던 구급대원 되는 게 꿈”민영 씨의 꿈은 119구급대원이다. 현재 응급구조학과 2학년에 다니며 소방공무원 채용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고3 때 파산 결정을 받은 민영 씨는 앞으로도 3년 동안 신용불량자로 살아야 한다. 면책됐기 때문에 소방공무원이 되는 데 걸림돌은 없지만 여전히 대출도 신용카드 발급도 할 수 없다. 그런 민영 씨가 구급대원이 되려 하는 건 빚을 남긴 엄마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어린 시절 엄마는 간경화로 많이 아프셨다. 한 달에도 여러 차례 구급차를 불러야 했다고 한다. 민영 씨는 “그럴 때마다 5분도 안 돼 달려와 주는 구급대원들을 보며 감명받았다”며 “1초라도 빨리 사람을 살리러 달려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2년 전 경위서에 ‘어려운 형편이지만 좌절하지 않겠다’고 썼어요. 희망까지 내려놓고 싶지 않았거든요. 2년 전 아버지도 뇌졸중으로 쓰러져 힘들지만 아르바이트로 한 달에 50만 원 정도씩 가계에 보태고 있어요. 장학금으로 학비도 마련하고 있고요. 신용불량자다 보니 학자금 대출이 안 되거든요. 아이들이 부모의 빚에 짓눌리는 일이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어요. 사회에 나가 보지도 못하고 파산하는 기분은, 겪어 보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거예요.” 獨-佛은 민법으로 미성년 빚 대물림 방지佛, 미성년자 별도 보호장치‘재산<빚’ 경우 물려받지 않게 규정獨, 성인 된 시점 재산만큼만 상환 빚더미에 깔린 아이들이 해외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개인파산을 신청할 필요조차 없다. 일단 영국과 미국 등은 빚이 자연적으로 유족에게 승계되지 않는다. 한국처럼 ‘당연 승계주의’ 원칙을 갖고 있는 나라는 독일과 프랑스다. 누군가 사망하면 재산이나 빚이 자녀와 조손, 형제·자매 등에게 대물림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독일과 프랑스 민법은 미성년자가 자신의 뜻과 무관하게 빚더미에 앉지 않도록 법으로 보호 장치를 마련해뒀다. 프랑스는 법 제정 때부터 미성년자에 한해 물려받은 재산보다 빚이 더 클 경우 빚을 물려받지 않도록 만들었다. 독일은 미성년자가 빚을 물려받아도 성인이 된 시점에 가진 재산만큼 갚으면 된다. 1998년 개정된 독일 민법은 “상속된 빚에 대한 책임은 미성년자가 성인이 되는 시점에 가진 재산으로 한정된다”고 새로이 규정했다. 하지만 국내 민법은 미성년 상속인을 위한 보호 장치가 없다. 아이의 친권자 등 법정대리인이 부채를 인지한 시점부터 3개월 안에 상속포기 신청 등을 하지 않으면 빚을 물려받은 것으로 본다. 지난해 11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미성년일 때 빚을 상속받은 아이들이 성인이 된 뒤 “우리 의지와 무관하게 빚을 물려받는 건 부당하다”는 취지로 낸 소송을 기각했다. 당시 “현행 민법에는 이들을 보호할 만한 법 조항이 없다”고 판시했다. 다만 입법의 필요성도 함께 제기했다. 반대 의견은 물론이고 다수 의견까지 만장일치로 “채무를 상속한 사람이 미성년인 경우 여전히 보호의 사각지대가 남아있다. 당연승계주의를 취하는 다른 국가들은 미성년 상속인을 보호하기 위한 특별한 규정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송기헌 의원이 10일 대표 발의한 민법 일부 개정 법률안에는 이런 문제점을 고치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송 의원 등은 “현행법은 미성년 상속인이 상속채무를 부담하고 성년이 돼도 구제받을 수 없는 가혹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친권자 또는 후견인이 승인을 했더라도 미성년자는 한정 승인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적시했다 김성호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도 “대법원이 입법 필요성을 제기한 만큼 하루빨리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말했다.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어머니를 간병하는 60대 아버지에게 욕설을 내뱉고 수차례 폭행한 국제변호사 A 씨(39)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서울서부지법 형사1단독(부장판사 이내주)은 “상습존속폭행 및 특수상해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A 씨에게 12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고 15일 밝혔다. 재판부는 “A 씨는 아버지를 7차례에 걸쳐 상습적으로 폭행하는 등 죄질이 좋지 않다”면서도 “우울증과 정동장애 등 정신질환을 앓고 있고 A 씨가 이 사건을 계기로 전문병원에서 집중치료를 받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점 등을 참작했다”며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A 씨는 지난해 11월부터 올 2월까지 아버지(69)에게 욕설을 내뱉고 7차례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A 씨는 어머니를 간병하고 있거나 자신에게 밥상을 차려준 아버지에게 욕설을 하고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마포구의 한 병원까지 찾아가 폭행한 적도 있다. 하지만 A 씨 아버지는 법원에 아들을 선처해달라고 수차례 요청했다고 한다. 재판부는 “A 씨 아버지는 ‘아들을 나무라고 가르치려고만 했지, 생각을 들어주고 이해하고 사랑으로 감싸주는 것은 못했다’며 여러 차례 탄원해왔다”고 밝혔다. A 씨는 지난해 8월경 마포구의 한 도로에서 운전하다가 시비가 붙어 자신의 차로 40대 남성을 들이받아 상처를 입히기도 했다. 2015년과 2016년엔 폭행과 재물손괴 혐의로 벌금형의 약식명령을 받은 전력도 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정인이 소식에 온몸이 아렸습니다. 위탁모(베이비시터)로 지낼 때 제게 와줬던 송현이(가명)가 정인이처럼 양모 학대로 세상을 떠났거든요. (그 충격으로) 10년간 위탁모 활동을 안 했는데 정인이는 저를 다시 움직이게 했습니다.” 울산에 사는 김정의 씨(59)는 3월 8일 울산가정위탁지원센터에 학대 피해를 입은 위기아동을 보호하는 위탁가정이 되겠다는 신청서를 냈다. 2003년부터 홀트아동복지회에서 위탁모로 아동 120여 명을 돌봤지만 김 씨는 2011년 활동을 관뒀다. 당시 위탁모로 보호했던 송현이가 입양 뒤 생후 28개월 때 양모 학대로 숨졌기 때문이었다.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몸부림쳤던 그는 더 이상 아이를 돌볼 여력이 없었다. 그랬던 그가 10년 만에 다시 용기를 냈다. 정인이 때문이었다. 2개월 동안 울산과 서울을 오가며 20시간 교육 과정을 마쳤다. 안방에 아이가 머물 침대도 마련했다. 김 씨는 요즘 매일 기도한다. 아이들의 상처를 감당할 힘을 달라고. “환갑을 앞두고 늙은 엄마가 될 준비를 하고 있네요. 정인이와 송현이 같은 학대 아동을 위해 힘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할게요. 눈을 맞추며 사랑한다고, 너희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해줄 거예요.” 14일 서울남부지법에선 정인이 양모와 양부의 선고 공판이 열린다. 지난해 10월 13일 정인이가 세상을 떠난 지 7개월 만이다. 그동안 세상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는 몰라도, 김 씨처럼 정인이를 가슴에 품고 학대 아동들에게 손을 내미는 우리의 ‘엄마’들이 늘어나고 있다. 아동권리보장원에 따르면 올해 3월 8일부터 모집을 시작한 ‘위기아동 가정보호’에 10일 기준 632가구가 신청서를 냈다. 지난해 1년 동안 위탁가정 지원이 467가구였던 걸 감안하면 “놀라울 정도로 폭발적”(아동권리보장원 관계자)이란 반응이 허투루 나오는 게 아니다. 해당 프로그램은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온 즉시 가해자로부터 분리하는 일명 ‘정인이법’(개정 아동학대범죄처벌 특례법)이 3월부터 시행되며 시작됐다. 학대당한 0∼2세 아동을 가정에서 일대일로 돌보는 방식이라 자격 요건이 무척 까다롭다. 교원 자격증이 있거나 3년 이상 위탁가정으로 아이를 돌본 경력이 있어야 한다. 기존 위탁가정은 5시간만 교육을 받지만, 위기아동 위탁가정은 20시간을 이수해야 한다. 전북 전주에 사는 최미진 씨(38)도 1월 전북가정위탁지원센터에 신청 서류를 냈다. 만류하던 남편은 “우리 아이들만 잘 키운다고 되는 게 아니다. 함께 살아갈 아이들도 보호받고 자라야 우리 아이들도 사랑하며 어울릴 수 있다”고 설득했다. 결국 남편도 고개를 끄덕였다. 최 씨는 현재 위탁가정 교육 이수를 마치고 소득 및 가정 방문 조사를 앞두고 있다. “아이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주고 싶어요. 학대 기억을 지우고 평생을 버텨낼 힘을 얻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어른인 제가 아이들을 위해, 정인이를 위해 할 일이라고 믿습니다.” 덧없이 떠난 정인이를 위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네 아이의 엄마인 김지선 씨(37)는 사비를 들여 전단 2만 부 이상을 찍었다. 앞면엔 정인이 양부모를 엄벌해 달라는 내용을, 뒷면에는 아동학대 피해 신고 요령을 상세히 담았다. 전국에서 뜻을 같이하는 엄마들에게도 보내 “한 사람만 움직여선 효과가 없다”는 의지를 실천하고 있다. 김 씨는 “길거리에 다 버려질지언정 누군가 딱 1장이라도 읽은 뒤 아동학대 신고를 한다면 그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21개월 된 아이를 둔 엄마 이혜리 씨(30)는 오늘도 어김없이 펜을 들고 있다. 그는 “정인이 양부모를 엄벌하자”는 진정서를 매일 2통씩 서울남부지법에 보냈다. 지금까지 130통이 넘는다. 이 씨는 “출퇴근길에 진정서 문구를 정리하는 게 일상이 됐다”고 말했다. 서울남부지법에는 지금까지 매일 엄마들이 보낸 진정서가 수백 통씩 도착하고 있다.조응형 yesbro@donga.com·이소연 기자}
‘성희롱은 거부 의사를 표현하지 않은 사람의 책임이 크다’ 등 성희롱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여성보다 남성이 더 심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특히 남성은 60대 이상 다음으로 10대가 잘못된 인식을 가진 것으로 드러나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6월부터 12월까지 국민 1만212명을 대상으로 성희롱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를 벌인 결과, 모든 연령에서 여성보다 남성이 성희롱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가진 비율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6일 밝혔다. 해당 조사는 인권위가 ‘행복한 일 연구소’에 의뢰해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를 대상으로 했다. 이번 조사는 ‘성희롱 피해는 과장되는 경향이 있다’ ‘성희롱은 거부 의사를 표현하지 않은 사람의 책임이 크다’ 등 잘못된 인식을 담은 4개 문항을 6점 척도로 측정했다. 그 결과 남성은 평균 2.80점으로 여성 평균인 2.04점보다 유의미하게 높았다. 평균값은 높을수록 인식이 잘못됐다는 걸 뜻한다. 남성은 60대 이상 남성(3.10점)이 이런 오해와 편견이 큰 걸로 나타났는데, 10대 남성도 3.07점으로 두 번째로 높아 심각성을 드러냈다. 인권위 측은 “성희롱 피해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피해자의 고통에 대한 이해 부족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우려했다. 성 고정관념도 남성이 여성보다 더 견고했다. ‘경제적으로 가족을 부양해야 할 책임은 남성이 여성보다 크다’ ‘여성은 직장에서 외모에 신경을 써야 한다’ 등에서 남성(3.5점)이 여성(2.58점)보다 점수가 높았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성희롱은 거부 의사를 표현하지 않은 사람의 책임이 크다’ 등 성희롱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여성보다 남성이 더 심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특히 남성은 60대 이상 다음으로 10대가 잘못된 인식을 가진 것으로 드러나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6월부터 12월까지 국민 1만212명을 대상으로 성희롱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를 벌인 결과, 모든 연령에서 여성보다 남성이 성희롱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가진 비율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6일 밝혔다. 해당 조사는 인권위가 ’행복한 일 연구소‘에 의뢰해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대상으로 했다. 이번 조사는 ‘성희롱 피해는 과장되는 경향이 있다’ ‘성희롱은 거부 의사를 표현하지 않은 사람의 책임이 크다’ 등 잘못된 인식을 담은 4개 문항을 6점 척도로 측정했다. 그 결과 남성은 평균 2,80점으로 여성 평균 2.04점보다 유의미하게 높았다. 평균값은 높을수록 인식이 잘못됐다는 걸 뜻한다. 남성은 60대 이상 남성(3.10점)이 이런 오해와 편견이 큰 걸로 나타났는데, 10대 남성도 3.07점도 2번째로 높아 심각성을 드러냈다. 인권위 측은 “성희롱 피해에 대한 잘못된 인식 은 피해자의 고통에 대한 이해 부족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우려했다. 성 고정관념도 남성이 여성보다 더 견고했다. ‘경제적으로 가족을 부양해야 할 책임은 남성이 여성보다 크다’ ‘여성은 직장에서 외모에 신경을 써야 한다’ 등에서 남성(3.5점)이 여성(2.58점)보다 점수가 높았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배달의민족’을 창업한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45·사진)이 어린이날을 맞아 저소득층 학생 1만 명에게 노트북을 선물했다.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는 4일 김 의장과 온라인 화상회의를 갖고 ‘교육 불평등 해소를 위한 노트북 1만 대 전달식’을 열었다. 김 의장은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노트북은 꼭 필요한 학습도구”라며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고성능 노트북 1만 대뿐 아니라 MS오피스·한컴오피스 등 소프트웨어 사용권도 함께 선물했다. 지원 규모는 약 150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희망브리지 측은 지난달 28일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협조를 받아 저소득 아동·청소년에게 노트북을 지원하기로 했다. 노트북은 이날부터 두 달 동안 전국 학생 1만 명에게 순차적으로 지급된다. 학교에서 노트북을 나눠줄 경우 학생의 신분 등이 노출될 우려가 있어 노트북 제조업체가 직접 가정에 방문해 건네주기로 했다. 김 의장은 2월 앞으로 재산의 절반인 5000억 원을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3월 12일에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노트북은 옛날로 치면 참고서와 같아 학생들에게 무척 중요하다. 희망브리지와 저소득층 학생 1만 명에게 노트북을 지원하겠다”는 뜻을 미리 밝혔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앞이 캄캄했죠. 청소년복지시설에서 나오며 받은 거라곤 50만 원이 다였거든요. 물론 쉼터에서 어렵게 마련해 주신 거라 감사했지만…, 지금도 하루하루 버티는 게 버겁네요.” 지난해 5월 한 청소년복지시설에서 퇴소한 김모 씨(24)는 사는 게 고달프다. 김 씨는 불우한 가정형편 탓에 중학교 2학년부터 청소년 쉼터에서 살았다. 하지만 현행법상 부모의 사망이나 경제적 빈곤 등으로 시설에 머무는 아동·청소년은 최장 만 24세가 되면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김 씨는 스무 살 때부터 대학 진학도 포기하고 일했지만, 시설에서 나온 뒤 월세방 하나 구하기도 벅찼다. 문제는 청소년복지시설의 ‘보호종료아동’은 퇴소 때 정부 지원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이다. 처지가 비슷한 아동복지시설 보호종료아동은 지역별로 500만∼1000만 원의 자립지원금을 받는다. 퇴소 뒤 3년 동안 매달 30만 원씩 자립수당도 주어진다. 여성가족부는 올해부터 청소년복지시설 퇴소 아동·청소년 등에게 매달 30만 원씩 자립수당을 지원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자립에 보탬이 될 지원금 등 안전망은 없는 실정이다.여성가족부 측은 “보호법과 관계부처가 달라 청소년 쉼터 보호종료아동을 제대로 지원이 되지 않은 측면이 있다. 장기적으로 지원할 안전망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보호종료아동들 “먹고살 걱정뿐… 꿈? 그게 뭔가요” 보호막 없는 보호종료아동“365일 내내 일했어요. 친구도 안 만나고 악착같이 모은 게 2500만 원쯤 됩니다. 월세가 너무 부담스러워 원룸 전세를 알아보는데 그 정도론 턱없이 부족하네요.”김모 씨(24)는 청소년보호시설을 떠난 뒤 1년 동안 단 하루도 쉬질 않았다. 평일엔 국립 연구소에서 연구 보조를, 주말에는 경기도 한 한의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월 230만 원 안팎으로 수입이 생기면 월세와 교통·생활비 등 진짜 필요한 돈만 쓰고 모두 적금을 부었다. 김 씨는 “전세보증금은 단칸방이라도 최소 5000만 원이 넘어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하는데 기운이 쫙 빠졌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해마다 ‘청소년 쉼터’라 불리는 청소년보호시설에서 퇴소하는 이들은 2500명 정도 된다. 하지만 세상과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보호종료아동들은 기댈 곳이 없다. 엇비슷한 처지의 아동복지시설 보호종료아동들이 아동복지법에 따라 경제적 지원을 받는 것과 달리 아무런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룹홈(공동양육시설)이나 위탁가정 등 아동복지시설을 퇴소한 이들은 자립정착금과 자립수당 외에도 ‘디딤씨앗통장’에 쌓인 돈도 주어진다. 하지만 청소년복지시설은 이마저도 해당되지 않는다. 아동복지시설은 아동복지법의 적용을 받지만, 청소년보호시설은 청소년복지지원법에 따라 지원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동복지시설은 부모의 사망이나 아동학대 등 긴급한 이유로 기존 가정에서 분리된 아동·청소년들이 머문다. 청소년복지시설은 일시 보호부터 중장기 보호까지 다양한 아동들이 머무는데, 부모가 있어도 경제적 빈곤이나 방임 등을 이유로 양육할 여력이 없을 때 이곳에서 지낸다. 아동복지시설에 빈자리가 없어 청소년보호시설에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원이 없다 보니 청소년 쉼터를 나온 이들은 꿈마저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2019년 12월 경기에 있는 한 청소년보호시설을 퇴소한 현진 씨(24)는 대학에 합격했지만 결국 자퇴서를 제출했다. 현 씨의 부모는 지적장애 2급으로 지원해줄 여력이 없었다. 누구도 도와주지 않은 그는 공부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 “나름 전교에서 상위권에 들 정도로 열의가 있었어요. 힘들게 4년제 대학에 합격했지만 다닐 수가 없었어요. 책값만 해도 한 학기에 20만∼30만 원씩 들어가던데, 저로선 감당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꿈을 잃어버린 현 씨는 이제 사는 게 막막하다. 청소년보호시설을 나온 뒤 물류센터와 건설현장을 전전하며 생활비 마련에 급급하다. 현 씨는 “이젠 누군가를 만나는 일조차 두렵다”며 “당장 돈 떨어지면 어떻게 먹고살까 걱정밖에 머릿속에 없다”고 한숨지었다. 김승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경기아동옹호센터 소장은 “부모 등 누군가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하는 청소년보호시설 보호종료아동에게 자립을 위한 어떤 지원책도 없이 사회로 내보내는 건 너무나 가혹한 처사다. 청소년 쉼터의 보호종료아동들을 위한 자립 안전망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청소년복지시설 지원을 담당하는 여성가족부 측은 “사실 청소년복지시설을 퇴소하는 아이들도 원 가정 지원을 받을 수 없는 건 마찬가지인 상황”이라며 “여성가족부도 지원 필요성을 인지해 올해부터 청소년복지시설 퇴소자를 위한 자립수당을 지원하고 있고, 장기적으로 자립정착금 등 지원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전했다.초록우산어린이재단 공동기획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경찰이 ‘불가리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억제 효과’ 논란을 일으킨 남양유업을 30일 압수수색했다.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이날 오전 9시 30분경부터 오후 4시까지 허위·과장 광고를 한 혐의(식품 등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위반)로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와 세종연구소 등 6곳을 압수수색했다”고 밝혔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달 15일 남양유업을 식품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로 세종경찰서에 고발했지만, 경찰은 남양유업 본사가 위치한 서울경찰청에 사건을 배당했다. 경찰은 관련 서류 등 압수품을 확보했다고 한다. 지난달 13일 남양유업 항바이러스면역연구소는 한국의학과학연구원 주최 심포지엄에서 “불가리스 항바이러스 실험 결과, 코로나19 바이러스를 77.8% 줄이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해당 연구는 임상시험이나 동물시험을 거치지 않았는데도 코로나19 억제 효과가 있다는 듯이 발표해 큰 비난을 받았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경찰이 ‘불가리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억제 효과’ 논란을 일으킨 남양유업을 31일 압수수색했다.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이날 오전 9시 30분경부터 오후 2시까지 허위·과장 광고를 한 혐의(식품 등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위반)로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와 세종연구소 등 6곳을 압수수색했다”고 밝혔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지난달 15일 남양유업을 식품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로 세종경찰서에 고발했지만, 경찰은 남양유업 본사가 위치한 서울경찰청에 사건을 배당했다. 경찰은 관련 서류 등 압수품을 확보했다고 한다. 지난달 13일 남양유업 항바이러스면역연구소는 한국의학과학연구원 주최 심포지엄에서 “불가리스 항바이러스 실험 결과, 코로나19 바이러스를 77.8% 저감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해당 연구는 임상시험이나 동물시험을 거치지 않았는데도 코로나19 억제 효과가 있다는 듯이 발표해 큰 비난을 받았다. 경찰은 현재 남양유업이 연구 등에 개입한 정도를 파악하고 있다. 식약처는 긴급 현장 조사를 벌여 남양유업이 해당 심포지엄의 임차료를 지급한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27일 선종한 정진석 추기경이 안구 기증 서약을 지키고 떠난 사실이 알려진 뒤 추기경을 뒤따라 “장기기증을 신청하겠다”며 관심을 보이는 시민들이 잇따르고 있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KODA)은 “28일 오후 5시 기준으로 18명이 모바일 장기기증 희망등록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정 추기경이 2006년 장기기증 서약을 했던 천주교 한마음한몸운동본부에는 이날 “나도 장기기증을 신청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느냐”는 문의 전화가 이어졌다고 한다. 본부를 직접 방문해 기증 절차를 꼼꼼히 확인하고 간 시민도 있었다. 2009년 2월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땐 각막 기증이 알려지며 장기기증 희망자가 큰 폭으로 늘어난 바 있다. KODA에 따르면 당시 장기기증 희망자는 2008년 8만1167명에서 2009년 23만1350명으로 3배 가까이로 늘어났다. KODA 관계자는 “김 추기경의 영향력은 3년간 지속돼 2011년까지 20만 명 넘는 사람들이 장기기증 희망 서약에 나섰다”며 “정 추기경의 선행도 장기기증 활성화로 이어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서울성모병원은 28일 “정 추기경께서 사후 기증하신 안구는 생전에 앓던 지병으로 이식에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안구질환 연구에 쓰일 예정”이라며 “고인의 숭고한 뜻에 따라 의학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IT(정보기술) 기기를 마련할 형편이 안 돼 교육 기회를 얻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유튜브 크리에이터 김성회 씨(43·사진)가 국제아동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에 교육용 IT기기와 3300만 원을 기부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김 씨가 소외된 위기 아동을 위해 교육용 IT 기기 기부를 시작으로 4회에 걸쳐 3300만 원을 후원했다”고 27일 밝혔다. 게임 개발자인 김 씨는 유튜브 채널 ‘김성회의 G식백과’를 운영하고 있다. 김 씨는 26일 기부식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온라인 수업이 늘어났지만 IT 기기가 없어 소외되는 아이들이 있다”며 “이 아이가 자라 IT 업계를 선도할 개발자가 되는 즐거운 상상을 하며 기부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최근 유명 유튜버들의 기부 행렬이 잇따르고 있다. 책 리뷰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김새해 씨(40·여)는 1월 저소득 아동의 식사 지원을 위해 1000만 원을 기부했으며 3월엔 IT 기기 리뷰 유튜버 황용섭 씨(30)도 1000만 원을 기부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최근 한국사회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가상화폐’가 국내 기부문화에도 도입되기 시작했다. 기부단체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침체된 나눔의 분위기가 가상화폐를 계기로 나아지길 기대하고 있다. 다만 시세가 수시로 변하는 가상화폐의 가격변동성을 줄이려면 관련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따르면 가상화폐 거래소 ‘지닥’을 운영하는 피어테크는 23일 1억 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모금회에 기부했다. 모금회는 이날 피어테크 측이 가상화폐 지갑주소로 비트코인을 보내주자 곧장 거래소를 통해 환전을 마쳤다. 모금회 관계자는 “가상화폐 기부가 새로운 기부 방식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자산 안정성과 법률 등을 검토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기부단체들에는 “가상화폐로 기부가 가능하냐”는 개인 기부자들의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모금회에 비트코인을 기부한 피어테크 관계자는 “가상화폐 거래가 활성화되며 지난해 2분기 흑자로 전환했다”며 “가상화폐 투자 사업으로 번 수익을 사회에 환원하고자 가상화폐 기부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국내 가상화폐 기부는 2017년 12월에 시작됐다.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베스트’가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에 포항지진 이재민 성금으로 1000만 원 상당의 가상화폐 퀀텀을 기부하면서다. 당시 희망브리지 측은 전례가 없다 보니 기부를 받는 방식에서부터 현금화 시점까지 내부적으로 많은 논의를 거쳤다고 한다. 희망브리지 관계자는 “역시 가장 큰 고민거리는 가격변동성이다”라며 “기부금에 손실을 끼쳐서도 안 되고, 지나치게 시세차익을 남겨 공공성을 훼손해도 안 된다. 이 때문에 희망브리지는 지갑주소로 보내온 가상화폐를 즉각 환전한다는 원칙을 세웠다”고 설명했다. 하루만 지나도 시세가 크게 요동치는 가상화폐의 가격변동성은 앞으로 기부단체들이 고민해야 할 가장 큰 숙제다. 장애인의 날이었던 20일 가상화폐 거래소 ‘코빗’이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에 59이더리움을 기부하겠다고 밝혔을 때, 병원 측은 가상화폐를 환전해 현금으로 약 1억6000만 원을 기부받기로 결정했다. 병원 관계자는 “내부 회의에서 결국 손실을 방지하려면 현금 기부가 낫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해외에서는 가상화폐 기부문화가 2013년부터 보편화됐다. 영국 세이브더칠드런은 2013년 가상화폐 거래소에 개설된 지갑주소를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현재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13가지 가상화폐로 기부를 받고 있다. 이 밖에 미국 그린피스와 유니세프 등도 자체적으로 블록체인 기술 기반 가상화폐 기부 플랫폼을 마련했다. 기부 즉시 현금화해 손실을 최소화하는 원칙도 해외 기부단체에서 먼저 세웠다. 전문가들은 블록체인 기술이 가진 특성이 기부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은 거래 내역을 분산시켜 기록하고 관리해 기부자가 직접 거래 내역을 추적해 살펴볼 수 있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하면 기부금 사용처를 투명하게 볼 수 있고, 여러 기관이 거래 기록과 관리 권한을 분산해 신뢰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기부단체를 사칭한 사기 피해를 경계해야 한다는 당부도 있었다. 김 교수는 “미국 등 해외에선 기부단체인 척 가상화폐 지갑주소를 올리고 수익을 빼돌리는 사기범죄가 발생하고 있다”며 “기부단체들이 유니세프처럼 자신의 홈페이지에 기부 플랫폼을 직접 마련하는 게 안전하다”고 조언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유채연 기자}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의 실소유주로 알려진 이모 전 빗썸코리아·빗썸홀딩스 이사회 의장(45)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다.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이 전 의장을 23일 서울중앙지검에 기소 의견으로 불구속 송치했다”고 25일 밝혔다. 이 전 의장은 2018년 10월 가상화폐 ‘BXA토큰’을 “빗썸거래소에 상장한다”는 취지로 홍보해 투자자들에게 수백억 원 판매했지만 실제 상장은 이뤄지지 않아 피해를 입힌 혐의를 받고 있다. BXA토큰은 빗썸의 최대주주인 김병건 BK그룹 회장이 2018년 10월 ‘BTHMB홀딩스’를 설립하고 발행한 가상화폐다. 2019년 2월 비트맥스(BitMax) 등 해외 거래 사이트에서 발행된 BXA토큰은 일명 ‘빗썸 코인’이라 불리며 개당 150∼300원대에 총 300억 원가량 판매됐다. 하지만 BXA토큰은 거래소 상장이 무산됐고, 빗썸과 BTHMB홀딩스의 매각 및 인수 역시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BXA토큰은 4원대에 거래되고 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