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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공사를 몰아주는 대가로 공사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은 서울대 등 국립대 교직원과 공무원들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공사업체는 뒷돈을 주는 대신 자재 단가를 시중가보다 부풀려 납품했으며 이렇게 부풀려진 가격은 등록금과 세금으로 충당됐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9일 창호시설업체인 C사 대표 장모 씨(51·여)로부터 200만∼3000만 원의 금품을 받고 학교 공사를 따게 해준 혐의(뇌물수수)로 서울대 시설과장 최모 씨(54) 등 국립대 6곳 교직원 17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 조사결과 창호업체 대표 장 씨는 전 서울대 시설과장 오모 씨(60)를 영업이사로 고용한 뒤 오 씨를 통해 최 씨 등 국립대 시설과장들에게 뒷돈을 건넨 것으로 드러났다. 장 씨는 2009년 5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교직원들에게 수시로 골프와 술 접대를 했고 교직원들의 회식비도 대신 내왔다. 경찰은 “장 씨가 납품한 제품은 시중가보다 20∼30%가량 부풀려진 것”이라며 “로비를 받은 교직원들은 이 사실을 알면서도 눈감아줬다”고 말했다. 경찰은 또 각급 학교에 창호공사를 할 수 있게 해주는 대가로 장 씨로부터 200만∼15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교육과학기술부와 지방 교육청 시설직공무원 17명도 불구속 입건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경기 부천시에 사는 김모 씨(51)는 5일 오후 만취상태에서 담배를 피우다 주민 박모 씨(37·여)에게서 항의를 받았다. 김 씨가 박 씨의 초등학생 딸(8)을 향해 담배 연기를 내뿜었기 때문. 박 씨가 “왜 어린아이를 괴롭히냐”고 따지자 김 씨는 박 씨 머리채를 낚아채 10여 차례 흔들며 욕설을 퍼부었다. 김 씨는 오래전부터 동네의 골칫덩이였다. 술을 마시면 인사불성으로 동네 식당을 누비며 공짜 식사를 하고 이를 제지하면 상을 뒤엎는 등 행패를 부렸다. 김 씨는 이튿날 주민의 신고로 경찰에 구속됐다. 김 씨처럼 술을 마신 뒤 행패를 부리는 상습 취객에 대한 처벌이 강화됐다. 경찰청은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음주 후 상습적으로 행패를 부리는 주취폭력범을 집중 단속해 571명을 검거했고 이 중 85.5%인 488명을 구속했다고 8일 밝혔다. 주취폭력범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율도 올해 1∼4월까지는 85.7%였다가 5월 이후 98.7%로 올랐다. 경찰은 주취 폭력범이 경찰관의 공무를 방해할 뿐 아니라 주변에 있는 일반 시민에게도 심각한 피해를 끼치고 있다고 보고 지난해 말부터 전담 수사팀을 꾸려 집중 단속해왔다. 주취 폭력범죄는 폭력행위가 73%로 가장 많았고 협박이 9.3%로 뒤를 이었다. 연령별로는 40대 이상 중년층이 75%로 대다수를 차지했고, 상습주취폭력범의 60%는 전과 11범 이상이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도시재개발 업자와 철거민 사이의 보상 협상은 일종의 제로섬 게임이다. 한쪽의 이익은 다른 쪽의 손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로 손해 보지 않으려고 버티면서 사업이 지지부진해지면 양쪽이 공멸하는 ‘치킨 게임’으로 바뀐다. 시공업체는 공사비가 갈수록 불어나고 철거민 역시 장사를 못하거나 제때 다른 곳으로 옮기지 못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8일로 공사착공 예정일을 넘긴 지 100일이 되는 서울 중구 명동3구역 재개발 협상이 바로 그런 사례다. ○ “더 내놔”↔“못 준다” 100일째 줄다리기 명동3구역 재개발은 도심을 쾌적하게 바꾸자는 취지의 사업으로 서울 중구청이 지난해 4월 시행인가를 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올해 4월 철거를 끝내고 5월 착공에 들어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구역 내에서 장사를 해온 상가 세입자들이 이전을 거부한 채 철거에 반발하면서 착공은 여전히 기약이 없다. 착공이 미뤄지면서 재개발사업 시행사인 명동도시환경개발(명동개발)은 이자만 한 달에 11억4000만 원씩 모두 34억2000만 원을 물었다. 사업 장래성을 보고 돈을 빌리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 형태의 고금리 대출을 받았기 때문이다. 시공사인 대우건설도 준비한 공사 장비와 인력을 놀리고 있다. 일을 못한 100일간 하루에 1000만 원씩 약 10억 원의 손해가 났다. 건물 철거를 맡은 창신개발은 제대로 철거를 하지도 못하고 용역직원 인건비로 약 1억2000만 원을 썼다. 공사 지연에 따라 개발 사업자 측은 45억 원을 날린 셈이다. 상가 세입자들도 손해는 마찬가지다. 명동 3구역 내에 있는 점포 102곳 중 아직 가게를 빼지 않고 버티는 점포 11곳의 평균 월수입은 700만∼1300만 원 선. 가게 문을 닫은 것은 아니지만 흉물스러운 주변 환경에 손님도 거의 없어 사실상 파리를 날리고 있다. 가게 한 곳당 월평균 수입을 1000만 원으로 잡을 경우 최근 석 달간 3억3000만 원의 손해를 본 셈이다. ○ 왜 ‘제로섬 게임’ 벌이나 개발 사업자와 세입자 상인 모두 손해지만 해법을 못 찾는 이유는 뭘까. 재개발 시행사는 법에 규정된 액수보다 더 많이 보상할 의향이 있지만 세입자들의 터무니없는 요구엔 응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서울시 조례에 따르면 재개발 지역 상가 세입자는 4개월간 영업 손실액과 이전비용을 보상받는다. 시행사인 명동개발은 구청이 정한 감정평가기관 두 곳에서 산정한 보상액보다 20∼40% 많은 400만∼1600만 원을 보상했다. 명동개발 관계자는 “남은 세입자 대부분은 상가 주인과 임대차 계약이 끝나 가게에 남아 있을 권리가 없다”며 “다른 곳에서 지금 수준의 가게를 열 정도의 보상금을 요구해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입자들은 현재의 상권을 만들기 위해 권리금 등 5000만∼1억 원을 투자했는데 10∼20%밖에 안 되는 보상금만 받고 쫓겨나면 살길이 막막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입주 당시 투자했던 권리금은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아 돌려받을 길이 없다. 배재훈 명동3구역 상가대책위원장은 “20년 가까이 명동에서 장사를 해왔는데 갑자기 1000만 원 남짓 주면서 다른 데로 가라고 하면 어디서 장사를 하느냐”며 “주거 세입자들 수준으로 생계가 보장되지 않는 한 물러설 수 없다”고 말했다. 재개발 지역의 주거 세입자는 휴업 보상비만 받는 상가 세입자와 달리, 개발 이후 재정착을 위해 임대아파트 입주자격을 얻고 개발 기간에는 임시수용시설에서 지낼 수 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강한 인턴기자 부산대 법학과 }
재개발로 인한 갈등비용의 심각성을 미리 경험한 선진국들은 개발사업자와 주민 간 갈등 예방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역 주민의 80%만 재개발에 동의하면 나머지 20%는 집행 과정에서 설득하는 우리와 달리 일본과 유럽 여러 나라는 100%에 가까운 주민들이 동의해야 사업을 추진한다. 일본 도쿄 도심의 롯폰기힐스 재개발이 대표적 사례다. 당시 시행사는 땅주인과 세입자를 설득하기 위해 5000번 이상 해당 지역 주민을 만났다. 1988년 재개발조합이 설립된 이후 14년에 걸쳐 보상협상을 했고 2002년 사업계획을 세운 뒤 실제 공사는 3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영국과 미국은 양측의 이익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앵커테넌트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앵커테넌트란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등 재개발 후 생길 건물에 입주할 ‘거물 임차인’을 말한다. 이들이 새 건물에 입주하도록 정부가 각종 편의를 제공하는 대가로 개발업체는 주민들에게 호의적인 협상을 하는 것이다.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남진 교수는 “우리나라는 재개발로 인한 갈등 비용이 워낙 커 차라리 그중 일부를 갈등 예방에 쓰는 게 훨씬 경제적”이라며 “주민들과 원만히 협상을 이뤄내는 사업자에 대해선 용적률을 높여주는 등 서로 ‘윈윈’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중재해야 한다”고 말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남한 범죄자들이 돈을 벌기 위해 북한 해커들과 결탁한 이번 사건은 온라인에서 ‘피아(彼我) 구분’이 급속히 허물어지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북한과 연계한 온라인 범죄가 늘어날 경우 국가 전반의 사이버 안보에 큰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다. 실제로 북한은 최근 두 차례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공격과 농협 해킹을 통해 큰 혼란을 일으켰다. ○ 국가 영재 모아 해커로 키우는 북한주범 정모 씨(43)가 국내 주요 온라인 게임을 해킹하는 오토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중국에서 북한 컴퓨터 전문가들을 끌어들인 이유는 단지 국내 수사기관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북한 해커들의 뛰어난 실력도 요인 중 하나였다.경찰 조사 결과 사건에 가담한 김혁, 김이철 등 북한 컴퓨터 전문가 30여 명은 모두 김일성종합대와 김책공업대 등을 나왔으며 북한이 국가적으로 양성한 ‘정보기술(IT) 전사’였다. 북한은 중학생 영재들을 선발해 2년간 강도 높은 컴퓨터 교육을 한 뒤 바로 김일성대나 김책공대 컴퓨터 관련 학과에 입학시킨다. 대학에서도 특출한 실력을 보일 경우 2년 만에 졸업할 수 있게 해 우수 학생들은 고교와 대학 과정을 4년 만에 마칠 수 있다. 이번에 적발된 북한 해커 대부분은 4년 만에 이 과정을 마친 최우수 영재였다.경찰 관계자는 “북한 해커들은 오토프로그램을 기존 ‘그래픽’ 방식이나 ‘메모리’ 방식보다 훨씬 고도의 실력이 필요한 ‘패킷분석’ 방식으로 제작했다”며 “북한이 정책적으로 컴퓨터 영재를 양성해 사이버 범죄에 활용해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외화벌이 도구로 전락한 북한 엘리트실제로 이 해커들은 북한 ‘조선능라도무역총회사’ 산하인 ‘능라도정보센터’와 북한 내각 직속의 IT연구기관인 ‘조선콤퓨터센터(KCC)’에 근무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가운데 조선능라도무역총회사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치자금을 관리하는 소위 ‘39호실’ 산하기관인 것으로 정보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특히 이 회사 사장인 박규홍은 ‘39호실’ 부부장, 평양시 부시장,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을 겸직하고 있는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확인됐다.경찰은 북한 해커들이 오토프로그램 개발 대가로 남측에서 받은 돈의 상당액을 북한 당국에 상납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북한 해커들이 개발한 프로그램이 시중에 팔리는 가격은 복제품 한 개에 2만 원. 해커의 몫은 이 중 55%였다. 경찰 관계자는 “북한 해커들이 매달 500달러씩 북한 당국에 의무적으로 송금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며 “외화벌이를 하는 북한의 IT전문가가 1만 명 수준인 것을 감안하며 매달 500만 달러(약 50억 원)가 북한 당국으로 들어가는 셈”이라고 말했다.○ 사이버테러 위한 사전 작업 의혹도문제는 북한 해커의 해킹이 외화벌이에 그치지 않고 남한의 국가 기간망을 노리는 기술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경찰 조사 결과 북한 해커들은 오토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 국내 게임 이용자의 PC와 게임 서버를 연결하는 서버 포트가 계속 열려 있도록 해놓았다. 북한 측 관리자가 언제든 디도스 등 악성코드를 게임 이용자의 컴퓨터에 삽입해 ‘좀비 PC’로 활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정 씨 일당은 북한 해커들이 국내 서버를 확보해 달라고 요구하자 실제로 마련해 준 것으로 밝혀졌다. 국내 서버가 북한 해커의 수중에 넘어가면 북한의 대남(對南) 사이버테러에 적극 활용될 수 있다.한국인터넷진흥원 관계자는 “북한 해커들이 온라인 게임의 패킷 정보를 해킹했다는 것은 국내 게임 이용자의 통신 내용을 다 엿볼 수 있는 기술 수준에 도달했다는 뜻”이라며 “해킹한 정보를 활용해 국가기관의 정보를 빼내는 등 2차 해킹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지적했다.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장도 “앞으로는 오프라인 고정간첩보다 온라인에서 원격으로 기밀을 수집하고 전산망을 교란하는 사이버 간첩활동이 급증할 것”이라며 “유명 포털사이트나 게임사, 금융사 등 주요 기업의 온라인 보안을 국가안보 차원에서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3일 서울 남태령 육군수도방위사령부(수방사) 정훈참모실 탁자에는 앨범 15권이 쌓여 있었다. 최근 산사태로 폐허가 된 서울 방배동 전원마을의 한 주민이 복구 작업을 해준 수방사 장병들에게 보낸 선물이었다. 앨범 위엔 “몸을 던져 죽어가는 사람을 구하고 맨손으로 흙을 퍼내던 그 마음에 절망을 이깁니다”라고 쓰인 편지가 놓여 있었다. 보낸 이는 홍순만, 받는 이는 최대림 중위였다. 선물이 도착한 지 이틀이 됐지만 앨범은 아직 주인에게 전달되지 않고 있었다. 서울 서초동 우면산의 흙더미가 전원마을을 덮친 지난달 27일, 홍순만 씨(59)는 넋이 나간 눈길로 옆집을 바라봤다. 구조를 위해 투입된 수방사 장병들이 한 시신을 앞에 두고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고작 생후 18개월 된 유아였다. 한 장병이 국방색 판초우의로 싼 그 시신을 두 손에 들고 방을 나섰다. 전원주택이 많은 비교적 부유한 동네지만 산사태 피해는 홍 씨처럼 저지대 지하에 사는 서민들에게 집중돼 모두 7명이 숨졌다. 심장병을 앓고 있는 95세 노모를 모시고 부인과 함께 사는 방 두 칸짜리 홍 씨의 집도 토사에 휩쓸렸다. 대피하느라 심장약을 챙기지 못한 홍 씨의 노모는 몇 시간 뒤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법률사무소에서 일하며 한 달에 150만 원 남짓 버는 홍 씨는 앞이 까마득했다. 망연자실한 표정의 홍 씨에게 진흙을 뒤집어쓴 한 군인이 말을 붙여왔다. “할아버지, 걱정 마세요. 저희가 다 해드릴게요.” 집 근처 부대인 수방사 공병단 중대장 최대림 중위(25)였다. 최 중위 등 장병 10여 명은 홍 씨 집 문을 뜯어내고 토사와 세간 살림을 밖으로 들어냈다. 홍 씨는 뭉개진 가구와 TV를 보며 마음이 아팠지만 그를 위로한 건 장병들의 땀방울이었다. 온몸이 진흙범벅이 된 한 장병은 집 이곳저곳을 누비며 “할아버지, 저 토목공학과 나왔어요. 집 예쁘게 고쳐드릴게요”라며 분위기를 돋웠다. 홍 씨는 본래의 쾌활한 성격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는 수중에 있던 3만 원으로 알사탕을 구해와 장병들 입에 한 알씩 넣어주며 “마음 같아선 업어주고 싶은데 내가 힘이 없어”라고 했다. 환갑도 안 된 나이에 머리가 하얗게 센 홍 씨를 장병들은 ‘알사탕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최 중위는 “할아버지는 그 와중에도 요구르트 같은 간식을 손에 쥐여 주셔야 직성이 풀리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복구 작업이 계속되면서 홍 씨와 최 중위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홍 씨가 안 보일 때면 최 중위는 ‘할아버지 식사는 챙기셨어요?’, ‘곧 복구되니까 기운내세요’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최 중위는 “부자동네인데 못사는 분들만 피해를 떠안게 된 것 같아서 마음이 많이 쓰였다”고 말했다. 산사태 일주일째인 2일, 전원마을 주민들은 복구를 마친 수방사 장병과 자원봉사자들을 위해 환송회를 열었다. 늘 작업현장에 있던 홍 씨가 그날따라 보이지 않았다. 환송회 후 장병들이 철수하고 나서야 홍 씨는 두 손에 큰 비닐봉투를 든 채 마을로 달려왔다. 집에서 건진 현금 30만 원으로 문방구 8곳을 돌며 앨범 15권을 사서 오는 길이었다. “구청직원들은 얼굴만 비치고 사라지는데 아들 같은 군인들은 몸을 던져 도와주니 너무 비교가 됐어요. 어떻게든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은데 좋은 건 못 주고 군 생활 추억 잘 담아가라는 뜻에서 앨범을 골랐어요.” 홍 씨는 최 중위를 애타게 찾아 헤매다 현장에 있던 수방사 정훈공보참모인 전병규 대령에게 “꼭 좀 전해달라”며 비닐봉투를 건넸다. 그렇게 수방사까지 온 앨범 선물은 아직 전 대령의 책상에 그대로 놓여 있다. 최 중위는 “할아버지 형편이 어떤지 아는데 차마 선물을 받기가 어려웠다”며 “할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 한 장 간직하는 걸로 충분하다”고 말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강한 인턴기자 부산대 법학과 4학년 김태원 인턴기자 한국외대 프랑스어과 4학년 }
“간만에 얻은 휴가라 오랜만에 친구들과 딱 한잔했는데….”전남지방경찰청 1기동대 소속 임모 경사는 2일 새벽 동료 경찰관 앞에서 고개를 떨궜다. 이날 0시경 임 경사는 술자리를 마치고 귀가 중이었다. 평소 주량보다 적게 마셨다고 생각한 임 경사는 호기롭게 운전대를 잡았다. 무사히 운전을 해 집에서 불과 1km 남짓 거리인 광주 서구 광천사거리에 멈춰 섰다. 신호에 따라 좌회전을 하던 임 경사는 갑자기 옆구리에 강한 충격을 느꼈다. 로체 승용차가 정지 신호를 무시하고 직진하다 교차로를 가로지르던 임 경사의 차를 들이받은 것.임 경사는 별다른 부상을 입진 않았지만 상황은 그때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로체 운전자에게서 술 냄새가 나는 것을 감지해 음주 측정을 한 결과 혈중 알코올농도가 면허 취소(0.1% 이상) 수준인 0.149%가 나왔다. 가해자와 피해자 중 한쪽의 음주사실이 드러나면 형평성 차원에서 상대편도 음주 측정을 하는 관행에 따라 경찰은 임 경사에게도 음주측정기를 들이댔다. 결과는 0.080%. 면허 정지(0.05% 이상)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결국 음주 차량과의 사고 때문에 음주 사실이 들통 난 것이다. 경찰은 “시민을 계도해야 할 경찰관의 음주 운전은 엄히 다스릴 사안”이라며 “중징계하겠다”고 밝혔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지난달 27일 경기 포천시 신북면 금동리 펜션에 있던 70대 부부 등 3명의 목숨을 앗아간 것은 수십 그루의 잣나무였다. 산사태로 흙모래와 뒤섞여 내려오던 아름드리 잣나무들이 펜션을 덮쳐 안에 있던 투숙객들이 건물 잔해에 깔려 숨진 것이다.사고를 목격한 금동리 이장 김모 씨(61)는 “거대한 잣나무 수십 그루가 펜션을 덮치자마자 건물이 폭삭 주저앉았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펜션 뒤편의 남청산 자락은 1970년대 녹화사업 때 심은 잣나무가 전체 나무의 9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산사태로 16명이 희생된 서울 서초구 우면산 지역에도 잣나무 숲이 있다. 전원주택 8채가 매몰되고 2명이 숨진 방배동 임광아파트 건너편 산사태 현장에는 잣나무가 무더기로 쓰러져 있었다.잣나무는 소나무와 참나무 등 다른 나무에 비해 뿌리의 깊이가 상대적으로 얕다. 이 때문에 산사태에 취약한 잣나무가 많아 피해가 더 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명박 대통령도 2일 국무회의에서 잣나무가 산사태의 원인 중 하나라는 보고를 받은 뒤 “산림을 보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라”고 지시했다.잣나무는 소나무와 같은 침엽수로 뿌리가 깊은 심근성(深根性) 수종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소나무와 비교했을 때 집중호우에 버티는 힘이 크게 떨어진다. 소나무는 상체에 군살이 적고 하체가 튼튼한 반면에 잣나무는 튼실한 상체에 비해 하체가 부실한 편이다. 땅 위에 있는 나무 몸통(Top)의 무게를 뿌리(Root) 부분의 무게로 나눈 값인 TR비율은 잣나무가 소나무보다 30∼50% 높다. 즉, 전체 나무에서 뿌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소나무가 잣나무보다 1.3배에서 1.5배 크다는 것. 잣나무는 줄기를 지탱하는 뿌리의 힘이 소나무에 비해 약하다.순천대 산림자원학과 박인협 교수는 “비옥한 곳에서 자라는 잣나무와 달리 소나무는 척박한 곳에서도 뿌리를 잘 내리는데 땅이 척박할수록 양분을 얻기 위해 뿌리를 더 깊숙이 뻗고 잔가지도 많아진다”며 “토양을 얽매는 힘에 있어서 통상 소나무가 잣나무보다 강하다”고 말했다.▼ 우면산 산사태 현장에도 잣나무 숲길 ▼또 소나무 아래에는 다양한 관목과 잡풀이 많이 자라지만 잣나무는 이파리가 햇빛을 가리는 경우가 많아 나무 밑에 다른 식물이 잘 자라지 않는다. 국립산림과학원 박병배 연구원은 “비가 오면 나무 밑에 있는 잡목이 빗물의 속도를 줄여주는 역할을 하는데 잣나무는 밑에 잡목이 적어 물에 쉽게 휩쓸린다”고 설명했다.서울대 산림공학과 윤여창 교수는 “잣나무는 열매가 열려 상업적 이득이 있고 한번 심으면 비교적 잘 자라 목재를 얻기도 쉬워 녹화사업 때 전국적으로 많이 심었다”며 “인공조림이 많아지면 산사태 등 자연재해에는 더 취약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하지만 산림 전문가들은 산사태의 탓을 전적으로 잣나무에 돌리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한다. 뿌리가 깊이 내려가는 소나무나 참나무만 심는다고 반드시 산사태 예방 효과가 커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소나무와 잣나무 등 심근성 수종은 뿌리를 깊게 박는 일명 ‘말뚝 효과’가 있는 반면 뿌리가 얕은 천근성(淺根性) 나무의 경우 뿌리는 얕아도 사방으로 넓게 퍼지는 ‘그물망 효과’가 있다. 여러 종의 나무를 적절히 섞어 심어야 토양을 밑에서 붙잡고 옆에서 지탱해주는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국립산림과학원 구교상 박사는 “잣나무를 심은 것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수종 간의 균형을 고려하지 않고 특정 나무만 집중적으로 심는 게 문제”라며 “소나무 같은 침엽수는 뿌리는 깊어도 송진처럼 불씨를 키우는 물질이 있어 산불에는 매우 취약하다”고 말했다.우리나라 산의 토질 특성상 어떤 나무를 심어도 산사태 예방이 쉽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이수곤 교수는 “우리나라 산은 대부분 흙의 점성이 약하고 흙에 자갈과 바위가 많이 섞여 있어 나무가 뿌리를 깊이 내리는 데 한계가 있다”며 “산사태는 수종뿐 아니라 강수량 경사도 토질 등 여러 변수가 있기 때문에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정부는 2일 국무회의에서 추가적인 산사태 방지 대책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김해진 특임 차관은 펜션 붕괴로 3명이 사망한 포천시 산사태 사고를 거론하며 “산사태 발생지역을 직접 둘러보니 잣나무가 많아 앞으로도 산사태가 우려된다.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보고했다. 그러면서 “녹화사업을 하면서 유실수를 심자고 해서 잣나무를 심었는데 요즘은 잣을 따는 사람도 많지 않아 쓸모없는 나무가 돼버렸다”고 덧붙였다.이 대통령은 “과거에는 산림녹화를 위해 나무를 심기만 했는데 이제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수종관리가 필요하다”며 “강원도에 특히 잣나무가 많은데 이제는 외국처럼 간벌(나무의 밀도나 구성을 조절하기 위해 나무를 베어내는 작업)을 계획적으로 해야 한다. 농림수산식품부와 산림청이 과학적으로 대응하라”고 지시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
9일 경남 밀양시 상동명 양지마을에서 발생한 산사태는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많다.이번 산사태는 2007년 마을 뒤편 신곡산 정상 부근에 만든 임도(林道) 바로 밑에 있는 지반이 유실되면서 시작됐다. 지반 유실은 관리 당국이 산에 길을 낸 뒤 산사태 대비를 소홀히 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12일 이 지역에 현장 탐방을 나온 서울시립대 이수곤 교수(사진)는 임도 바로 밑 부분이 폭탄을 맞은 듯 깊게 팬 부분을 가리키며 “이번 참사는 도로 시공을 잘못해 생긴 명백한 ‘인재’”라고 강조했다. 그는 국제학회 공동 산사태 기술위원회 한국대표로 산사태 문제의 권위자다.이 교수에 따르면 전체 380m 임도 구간 중 이번에 지반이 유실된 5곳은 시멘트 포장 대신 자갈만 깔았다. 산을 깎아 만든 길에 콘크리트를 덮지 않고 자갈만 깔 경우 폭우가 내리면 빗물이 모두 임도 아래로 흡수돼 땅 밑에 있는 흙의 점성을 약화시킨다는 것. 이런 상태에서 폭우가 계속되면 지반 유실로 이어져 산사태가 발생하기 쉽다는 지적이다. 도로 공사를 주관한 밀양시청은 산사태 방지를 위해 약 70cm 두께의 석축을 설치했지만 빗물로 약해진 지반을 지탱하기는 역부족이었다.이 교수는 “임도와 절개지 사이의 배수로를 잘 갖춰놓았더라면 빗물이 여러 곳으로 분산돼 산사태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밀양시는 임도 일부 구간을 비포장도로로 만든 이유에 대해 “일반 도로의 경우 100m당 수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지만 임도는 1km에 1억 원을 약간 넘는 정도의 예산만 주어진다”며 “공사비를 아껴야 하다 보니 경사지 등 포장이 필수적인 곳이 아닌 평지는 자갈 포장만 했다”고 말했다. 밀양시는 사고 발생의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소방방재청에 연구용역을 의뢰한 상태다.밀양=신광영 기자 neo@donga.com}
눈을 뜨자 눈 안으로 흙탕물이 밀려들어왔다. 코로 숨을 들이마시니 이번엔 진흙이 빨려 들어왔다. ‘살려 달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입안은 흙으로 가득 차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나뭇가지 위에 누운 듯 등은 따끔거렸고 다리는 묵직한 뭔가에 깔려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조영애(가명·31·여) 씨는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마치 무덤 속 같았다”고 말했다.○ 그날9일 낮 12시 경남 밀양시 상동면 양지마을. 조 씨는 이곳 시댁에서 제사상에 올릴 전을 부치고 있었다. 이날은 조 씨 시아버지의 제사를 위해 온 가족이 모인 날. 시어머니는 마루에서 마늘을 다듬고 있었다. 마루 옆 안방에는 큰조카 진욱(가명·15)이가 조 씨의 딸 은영(가명·3)이를 업고 TV를 보고 있었다. 제법 말을 하기 시작한 은영이는 “오빠, 오빠” 하며 까르르 웃어댔다. 현관 난간에 쪼그리고 앉은 작은조카 영욱(가명·12)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지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점심을 앞둔 시골집의 평화로운 풍경. 전과 산적의 진한 냄새가 온 집안을 휘감고 있었다. 다만 그날따라 유달리 굵은 장대비가 쏟아졌다. 안방에 있던 은영이가 조 씨에게 무언가를 말했지만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들리지 않았다. 그때였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스르륵… 스르륵…” 나무 마루에서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소리가 들려오는 부엌을 향해 고개를 돌렸는데 이미 그곳엔 부엌이 없었다. 그 대신 거대한 흙더미가 벽을 부수며 들어오고 있었다. 주변의 모든 게 순식간에 암흑으로 변했다.○ 임도(林道)-재난의 시작조 씨의 시댁은 해발 560m의 신곡산 자락에 있다. 앞으로는 낙동강으로 이어지는 개천이 흐르고 시댁 주변에는 외지인들이 지어 놓은 전원주택이 여러 채 들어서 있다. 마을 주민들은 이곳이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인 살기 좋은 곳이라고 입을 모았다. 주민 이갑순 씨(64·여)는 “60여 년을 살고 있지만 이런 동네가 없다”며 “평생 홍수네 뭐네 그런 사고 한 번 없이 평온하게 살았다”고 말했다.그런 곳에 밀양시가 2007년 이 마을 뒷산인 신곡산 자락에 380m의 임도를 깔았다. 시는 당시 “산불이 나면 소방차가 그곳까지 올라가 불을 끌 수 있고 목재도 차에 실어 편하게 나를 수 있다”며 주민들을 설득했다. 주민 김병로 씨(73)는 “없던 길을 내주겠다고 하니까 그땐 다들 좋은 일인 줄 알았다”며 “그때 그 공사로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아무도 몰랐다”고 말했다. 사고 당일 이 마을에는 시간당 40mm의 폭우가 쏟아졌다. 길을 내느라 깎은 산자락에선 시뻘건 토사가 군데군데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살려주세요”영욱 군은 마당이 파일 듯 내리는 빗줄기를 신기한 듯 바라봤다. 그러고는 들고 있던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의 전송 버튼을 누르는 순간 등 뒤에서 ‘쩍’ 하는 굉음이 들렸다. 집이 두 동강 나는 소리였다. 그 사이로 흙탕물과 함께 산더미 같은 흙이 쏟아져 들어왔다.뒤돌아 도망가려는 순간 흙더미에 휩싸인 영욱의 몸이 하늘로 붕 떠올랐다. 작은 소년의 몸은 흙과 물에 휩쓸려 개천 쪽으로 100m가량 떠내려갔다. 그는 “살려 주세요”라고 사력을 다해 소리를 질렀지만 소용없었다. 개천으로 휩쓸려가던 영욱은 빠지기 직전 다리가 바위에 끼여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다른 가족은 대부분 참변을 피할 수 없었다. 조 씨의 시어머니는 집이 있던 자리에서 200여 m 떨어진 마을 정자 주변까지 휩쓸려가다가 나무 기둥에 깔려 숨을 거뒀다. 안방에서 세 살배기 사촌 여동생을 업고 있던 진욱도 인근 개천에서 혼자 숨진 채 발견됐다. ○ 엄마의 사투조 씨도 화를 피하지 못했다. 그는 흙더미에 매몰된 채 집에서 150m가량 떨어진 길목까지 떠내려가다 멈췄다. 그 안에서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한기에 몸서리치던 조 씨는 의식이 아득해지는 걸 느꼈다. “눈을 감고 있으면 이대로 잠들겠구나. 이대로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힘겹게 눈을 뜨자 차가운 진흙이 눈으로 스며들었다. 송곳으로 눈을 찌르는 듯했다. 참다못해 눈을 감으면 다시 졸음이 몰려왔다. 그는 눈을 뜬 채 또다시 진흙과 맞섰다. “그렇게 죽을 순 없었어요. 우리 딸 살려야 하잖아요. 애가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죽어요. 나는 이대로 죽어도 되는데 우리 딸은….” 몸을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없었던 그가 딸을 위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잠들지 않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다시 빗줄기가 거세지며 흙더미는 점차 무게를 더해갔다. 빗물을 머금은 흙더미는 숨을 쉬기 어려울 만큼 가슴을 짓눌렀다. ‘이젠 정말 죽는구나.’그 순간 두 다리를 덮고 있던 진흙 더미가 물살에 휩쓸려갔다. 흙 밖으로 노출된 두 다리를 조 씨는 사력을 다해 흔들었다. 그녀가 보내는 마지막 SOS. 어디선가 희미하게 사람 소리가 들렸다. 구조대원들이 1m 가까이 쌓인 진흙과 자갈을 걷어내자 새카맣게 흙으로 뒤덮인 조 씨의 얼굴이 드러났다. 산사태가 난 지 2시간 40여 분 만이었다. 현장에 있던 한 소방관은 “빗물로 얼굴을 씻겼는데 눈가에 피가 흥건했다”며 “환자를 응급차로 옮기려고 하는데 대원들을 뿌리치더니 어디선가 깨진 안경을 주워다 쓰고는 ‘우리 아이, 우리 아이’ 하며 기어 다녔다”고 말했다. 조 씨는 응급차로 옮겨지자마자 정신을 잃었다. 10여분 뒤 딸 은영이는 엄마가 구조된 곳으로부터 불과 1m 떨어진 곳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안타까운 모정사고 사흘째인 12일 양지마을 마을회관 앞에는 조 씨가 딸을 태우고 왔던 승용차가 찌그러진 채 뒤집혀 있었다. 사고 당일 공장 근무를 나가 참사를 피했던 조 씨의 남편 박모 씨(38)는 숨진 가족들을 화장해 납골당에 안치하고 오는 길이었다. 뒷산에 있던 산소에서 아버지의 유해를 수습해 어머니와 같은 곳에 모셨다. 10여 년간 홀로 살아오신 어머니가 이제는 그토록 그리던 아버지와 함께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박 씨는 동네 곳곳을 돌며 가족들의 유품을 찾아다녔다. 집은 형체가 사라지고 냉장고와 장롱 등 세간은 온 동네에 흩어져 있었다. 그는 너덜너덜해진 노트 한 권을 집어 들더니 유심히 내용을 살폈다. 쭈글쭈글해진 종이에는 어머니가 연필로 한 자씩 눌러쓴 글씨가 흙탕물에 번져 있었다. 박 씨는 “어머니가 손녀인 은영이가 유치원에 가면 직접 한글을 가르쳐주고 싶다면서 얼마 전부터 한글을 배우셨다”며 눈시울을 붉혔다.흔적도 없이 사라진 집터 아래엔 휠체어를 탄 한 여인이 있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조 씨였다. 눈의 흰자는 아직 핏빛이었고 손톱은 모두 피멍이 들어 있었다. 그는 산사태로 속살을 훤히 드러낸 산자락을 멍하니 올려다보며 말했다.“암흑 같은 흙더미 안에서 엄마를 애타게 찾았을 텐데…. 그렇게 가까이 있는 줄 알았더라면 제가 더 죽을힘을 냈을 텐데….”밀양=신광영 기자 neo@donga.com@@@유하늘 대학생 인턴기자 연세대 신방과 3학년@@@}
운전면허증 갱신 기한이 지났는데도 갱신을 하지 않으면 최대 20만 원까지 과태료를 물게 된다. 경찰청은 이런 내용을 담은 ‘도로교통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일부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고 10일 밝혔다. 이 개정안은 내년 6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면허증 갱신을 제때 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는데 갱신 기간 만료일로부터 1년 이내는 2만 원, 1년 이후부턴 1개월이 지날 때마다 2만 원씩 늘어 최대 20만 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 현재도 면허증 갱신 기한을 초과한 기간이 1년 이내일 경우 개정안과 같이 과태료 2만 원을 부과하고 있다. 하지만 갱신 미필 기간이 1년을 경과할 경우 110일간 면허를 정지하고 그마저 지나면 면허 취소 처분을 내린다. 경찰청 관계자는 “면허증 갱신 기한을 놓쳤다는 이유로 면허를 정지하거나 취소하는 건 지나치다는 지적에 따라 처벌을 과태료로 전환하되 면허 갱신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과태료 상한선을 높였다”고 설명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8일 서울의 한 운전면허전문학원. ‘운전면허 간소화로 수강료 대폭 인하’, ‘3일 속성 면허취득 OK’라고 적힌 현수막이 정문 앞에 걸려 있었다. 학원 접수창구는 여름방학을 맞아 운전면허를 따러 온 대학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상담을 마치고 나온 대학생 박모 씨(22)는 “면허시험을 간소화한 것은 서민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것 아니었냐. 교육시간이 줄어서 학원비가 내릴 줄 알았는데 오히려 부담이 커졌다”며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지난달 10일 운전면허 취득 간소화 대책이 시행되면서 운전학원에서 받아야 할 의무교육 시간이 3분의 1로 단축됐지만 시간당 수강료는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간소화 시행 한 달을 맞아 서울 운전면허 학원 15곳을 조사한 결과 수강료는 평균 43만7000원으로 시간당 수강료는 오히려 1.8배나 올랐다. 경찰청이 지난해 8월 공개한 서울지역 운전면허학원 평균 수강료(76만9000원)에 비해 총액은 33만2000원 줄었지만 교육시간이 25시간에서 8시간으로 준 것을 감안하면 시간당 수강료는 3만 원에서 5만4000원으로 오른 것이다.A운전학원의 이모 원장(50)은 “수업시간이 줄어도 기름값, 차량 정비 비용, 강사 월급 등 고정비용은 줄지 않았다”며 “교육내용이 바뀐 건 아니지만 시간당 수강료를 올릴 수밖에 없다”고 항변했다.문제는 8시간 교육만 받고서는 시험에 합격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지난달 운전면허시험 합격 현황을 보면 기능시험은 평가항목이 11개에서 2개로 줄면서 합격률이 68%에서 93%로 올랐지만 기능시험 합격자들의 도로주행 합격률은 91%에서 71%로 줄었다. 연습이 충분치 않은 수험생들이 주행시험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다.이 때문에 학원들은 8시간 기본교육 프로그램 외에 ‘향상반’, ‘숙달반’이란 이름으로 16시간이나 22시간짜리 장기 교육과정을 개설하고 있다. 이 과정을 수강하면 수강료가 최소 60만 원에서 많게는 90만 원까지 올라간다.수강생 하모 씨(20·여)는 “친구들이 (도로주행에서) 많이 떨어져 20시간짜리(78만 원)를 끊었다”며 “지난해 시험 본 사람들보다 오히려 돈이 더 들어 속상하다”고 말했다.특히 예전엔 한 번 수강료를 내면 합격할 때까지 추가 비용이 없었지만 지금은 불합격한 수강생들이 추가 교육을 원할 경우에는 시간당 4만1000∼4만5000원을 추가로 받고 있다. 일부 학원은 8시간 기본 교육과정을 운영하면서 상대적으로 합격이 쉬운 장내기능교육은 6시간이나 배정하고 도로주행은 2시간만 가르치고 있다. 까다로운 도로주행 교육을 추가로 수강하도록 유도하는 상술이다. 경기도 B운전면허학원의 안내책자는 ‘8시간짜리 일반반은 면허를 빨리 딸 수 있지만 합격률이 낮다. 16시간짜리 향상반은 충분히 교육을 받을 수 있어 합격률이 높다’고 소개하며 장기 과정에 등록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운전학원 강사 유모 씨는 “교육을 부실하게 받은 불합격자가 재수강을 하게 되면 돈이 되는 새 교육생의 정원을 갉아먹게 돼 수익성이 떨어진다”며 “처음부터 수강료가 비싼 장기 과정을 등록하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경찰은 내년 3월부터 도로주행시험 노선을 현행 2, 3개에서 10개 이상으로 늘리고 합격 요건도 강화할 방침이어서 수강생들의 교육시간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경찰 관계자는 “학원 간의 수강료 담합 등 불법행위가 있는지 단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김재홍 기자 nov@donga.com@@@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영창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이영만입니다.”지난해 4월 입대해 의경 복무 1년 3개월 동안 소위 ‘영창(유치장)’을 세 번이나 다녀온 경남지방경찰청 기동3중대 이영만 일경(21). 이 일경은 6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에서 열린 전·의경 생활문화 개선보고대회에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평범한 대학생이었던 이 일경은 의경이 된 뒤 ‘문제 대원’으로 변해갔다. “고참이 후임을 때리는 게 당연한 분위기였고 신입대원 때문에 제가 대신 맞는 일이 반복되니까 어느 순간 저도 손이 나가더라고요.”결국 이 일경은 첫 부대에 배치된 지 100일도 안 된 지난해 8월 후임 이경들을 폭행해 유치장에 갔다. 이 일로 그는 새 부대로 전출됐지만 그곳에서도 동기들과 함께 후임대원에게 ‘머리 박기’를 시켰다가 적발됐다. 경고를 받는 데 그친 다른 동기들과 달리 ‘전과’가 있는 이 일경은 올 1월 보름간 유치장 생활을 했다. 이후에도 부대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그는 후임대원들을 시켜 선임병에게 반말을 하도록 하는 장난을 치고 훈련 중 동료에게 욕설을 했다는 이유로 또다시 후임대원들의 소원수리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 두 번째 유치장 생활을 마친 지 한 달도 안 돼 이 일경은 또다시 갇혔다.가는 곳마다 사고를 치는 이른바 ‘폭탄’인 그를 받아줄 부대는 없었다. 여기저기서 퇴짜를 맞다 올 3월 지금 근무하는 기동3중대에 배치됐다. 3중대도 최근 3년간 부대 사고율 1위를 기록한 만만치 않은 ‘문제 부대’.하지만 이 일경의 인생은 이곳에 처음 배치 받은 날부터 바뀌기 시작했다.100여 명의 대원이 부대 연병장에 두 줄로 늘어서서 이 일경을 맞이한 것.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 명씩 악수를 하던 이 일경에게 이 부대 심형태 중대장은 “나도 의경 출신이라 네 마음 잘 안다. 여긴 외인구단 같은 곳이니까 과거는 다 잊자”고 말했다. 부대원들의 따뜻한 대우에 이 일경은 입대 전 평범한 청년의 모습을 되찾아갔다. 그는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니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며 “세 번째 영창 갈 때 어머니가 통화 중 많이 우셨는데 더는 불효하지 말자는 생각도 자주 했다”고 말했다. 요즘 이 일경은 대학시절 밴드 경험을 살려 부대 내 밴드 ‘수신호’와 사물놀이 동아리 ‘어처구니’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지금 부대에 온 지 4개월쯤 됐는데 중대원들이 매달 투표로 뽑는 ‘우수대원’에 벌써 2차례 선정됐다.6일 경찰청에서 열린 보고대회에서 이 일경은 “유치장 생활을 자주 하다 보니 ‘동료들이 모두 나를 미워한다. 나는 혼자다’라는 생각만 들었다”며 “나를 고자질한 동료들, 색안경을 끼고 보는 대원들에게 항상 분노를 느꼈고 그것이 사고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도 가끔 욱할 때가 있지만 그때마다 처음 부대(기동3중대)에 오던 날 대원들과 악수할 때 느낀 온기를 떠올린다”며 “그럼 금방 화가 사라진다”고 말했다.경남대 경찰행정학과 출신인 그는 “경찰이 되려고 의경에 지원했는데 벌써 빨간 줄이 세 개”라며 “‘내가 경찰이 될 자격이 있나’ 하는 자괴감도 들었지만 경찰의 꿈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는 발표 말미에 뒷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며 담담히 읽어 내려갔다.“경남청 6기동대 서○○, 5기동대 민○○, 1기동대 엄○○. 그동안 고통을 줘서 정말 미안하다. 지금이라도 술 한잔하면서 제대로 용서를 빌고 싶구나.”신광영 기자 neo@donga.com}
김준규 검찰총장이 사표를 제출한 4일 경찰은 서울 강남지역 경찰관들에 대한 대대적인 물갈이에 나섰다. 소위 ‘물 좋은 근무지’에 오래 있어서 생기는 비리를 차단하겠다는 것. 경찰은 2003년과 2009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이번과 유사한 ‘대량 전출’ 카드를 꺼냈지만 큰 효과는 보지 못했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경찰의 수사 주체성을 인정받은 만큼 투명한 수사로 보답하겠다”며 “강남 수서 서초 등 (강남권) 3개 경찰서 형사들이 5∼7년 이상 누적해서 근무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조 청장은 “최근 강남서의 한 형사가 보내온 e메일을 보고 인적쇄신의 필요성을 더욱 실감했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해당 e메일은 “고참 형사들의 영향력 때문에 신입 직원들이 사건 수사를 제대로 하기 어렵다”는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감찰 결과 강남서 형사과 A 경사와 서초서 경제팀 직원 2명이 사건 청탁을 받고 200만∼300만 원어치의 접대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조 청장은 또 이날 오후 강남서 형사들을 만나 “한 형사에게 e메일을 받고 열흘 만에 심각한 비리 3건을 적발했다. 건드리면 썩어 문드러진 데가 나오는데 어떻게 방치하겠느냐”며 인사 조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경찰청은 인적쇄신 전담팀을 꾸리고 이달 말 인사부터 강남권 3개 경찰서에서 5∼7년 이상 근무한 형사를 다른 지역으로 보내기로 했다. 이 경우 각 경찰서 형사 중 20∼40%가 전보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강남지역 경찰서를 대상으로 한 이번 조치가 과거처럼 반짝 전시행정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높다. 경찰은 1998년 강남권 경찰서 장기근무자 1000여 명을 다른 경찰서로 전출시켰지만 비리는 근절되지 않았다. 2003년에는 경찰관 230여 명을 전보시킨 뒤에도 법조 브로커 김모 씨가 강남지역 경찰관들과 뒷거래를 한 사실이 밝혀졌다. 2009년에도 안마방 업주들과의 유착 고리를 끊겠다며 460여 명을 비강남권으로 보냈지만 인사 당일 전출 대상에서 제외된 강남서의 한 직원이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에 체포되기도 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
경찰이 쉬워진 기능시험으로 인한 운전능력 저하를 보완하기 위해 도로주행시험을 현재보다 강화하기로 했다. 현행 주행시험은 출제 노선이 2∼4개여서 응시자들이 노선 특성을 미리 숙지해 시험을 치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앞으로는 주행 노선을 10개 이상으로 늘리고 무작위로 출제해 미리 공부해오는 폐단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의 새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은 이르면 내년 3월부터 적용된다. 경찰청은 “면허시험 간소화는 암기위주 기능시험은 줄이고 실질적인 주행 능력을 향상시키자는 것”이라며 “기능시험은 쉬워졌지만 주행시험이 강화돼 실력 없는 운전자가 양산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실제로 1·2종 면허의 경우 지난달 11일부터 기능 시험 간소화가 시행되면서 68%가량이던 기능시험 합격률은 93%로 오른 반면 도로주행시험 합격률은 종전 78% 수준에서 65%로 떨어졌다. 경찰은 또 기능시험 간소화로 연습운전면허 취득이 쉬워진 만큼 연습면허 취소 요건도 강화해 신호위반이나 중앙선 침범 등 교통법규 위반으로 3번만 적발돼도 면허를 취소하기로 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김학준)는 주가조작으로 12억 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로 서울의 한 사립대 이모 교수(44)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이 씨가 주가조작으로 챙긴 금액을 모두 추징하기로 했다. 이 교수는 2009년 9월∼지난해 10월 자신과 아내, 친구 등 8명 명의로 된 증권계좌 45개를 이용해 상장 주식 11개의 주가를 조작한 뒤 매매해 12억2000만 원의 부당이득을 얻은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자신의 돈뿐 아니라 지인들로부터 건네받은 돈까지 이용해 범행을 저지르고, 증권사로부터 경고까지 받았음에도 주가조작을 감행해 엄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자신의 연구실 컴퓨터 3대에 주식거래 프로그램을 설치한 뒤 강의가 없는 시간을 활용해 주가 조작을 했다. 이 교수는 주식시장이 개장하자마자 전날 직전가로 수십만 주의 주식을 사들인 뒤 곧바로 5∼70원 비싼 가격에 매수 주문을 하는 수법으로 주가를 끌어올렸다. 또 주식시장이 끝날 무렵에는 직전보다 5원 비싼 가격에 사들여 자신이 보유한 주식이 고가를 유지한 상태로 장이 마감되도록 유도했다. 그리고는 다음 날 아침 개장과 동시에 전날 사들였던 주식 전부를 종가보다 높은 가격에 팔겠다고 주문한 뒤 그 가격으로 주식을 약간 사들여 투자자들이 해당 주식에 대한 시장의 수요가 높다고 착각하게 만들었다. 이 교수는 이 같은 수법으로 시세를 조종해 해당 주식의 가격을 이틀 만에 21.2% 끌어올리고 20여 일 만에 2억여 원을 벌기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씨는 주가조작 과정에서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아내와 두 아들은 물론이고 대학원 제자의 딸 명의까지 빌려 차명 증권계좌를 만든 것으로 밝혀졌다. 이 교수는 이렇게 번 부당이득 중 상당액을 모교와 재직 중인 대학에 장학금과 발전기금으로 기부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고액 대학 등록금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대학들이 유명 연예인들에게 입학은 물론이고 4년 장학금까지 주면서 유치에 나서 논란이 되고 있다. 연예인의 대학 입학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이들이 수업 등 학교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도 일반 학생에 비해 지나친 특혜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 기여 예상 장학금?아이돌 그룹 ‘비스트’ 멤버 6명 중 4명은 지난해 전남 나주에 있는 동신대에 4년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멤버인 용준형과 장현승은 수시모집 특기자 전형, 윤두준과 이기광은 정시모집을 통해 각각 실용음악학과와 방송연예학과에 합격했다. 이들은 입학과 동시에 384만 원인 등록금을 4년간 전액 면제받는 혜택을 받았다. 학교 측은 “비스트가 학교 명예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특별장학금을 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탤런트 서우와 댄스그룹 ‘포미닛’의 멤버 김현아도 올해 건국대 예술학부(영화전공) ‘연예특기자 전형’에 장학생으로 합격했다. 이들이 받은 ‘연예우수자 장학금’은 첫 학기 등록금(450만 원)을 전액 지원한 뒤 이후 한 학기에 15학점 이상 수강하고 학점도 3.0 이상 받는 등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4년간 전액 장학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올해 신설된 성신여대 미디어영상연기학과에는 ‘카라’의 구하라가 실기우수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실기우수 장학금은 1년간 등록금의 70%를 깎아준다. 이 학과에서 실기우수 장학금을 받는 학생은 구하라가 유일하다.학교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공로 장학금을 받는 연예인들도 있다. 대진대에 다니는 ‘2AM’의 임슬옹과 정진운, 청운대에 재학 중인 ‘샤이니’의 온유와 종현 등은 학교 책자나 포스터 모델로 활동하면서 등록금의 전액 또는 일부를 지원받고 있다.건국대 경영학과 4학년 박모 씨는 “일반 학생은 4.5 만점에 4.2는 넘어야 등록금을 일부 깎아주는 성적장학금을 기대할 수 있는데 고소득자인 연예인들이 학교 행사 몇 번 나오고 장학금을 타는 건 너무 불공평한 처사”라고 말했다.○ 캠퍼스에선 ‘유령 학생’문제는 연예인 학생들이 장학금 등 각종 혜택을 받으면서도 학교생활에는 소홀하다는 사실이다. 비스트의 경우 학교가 나주에 있다 보니 인근 지역에 일정이 있을 때나 한 번씩 들르는 정도다. 비스트 소속사 관계자는 “스케줄이 너무 빡빡해 학교를 거의 못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 측은 “(비스트 멤버들이) 전공은 서울에서 교수들을 만나 개인 레슨을 받지만 교양수업엔 거의 들어오지 못해 학점이 3.0(4.5 만점)을 못 넘는다”고 전했다.구하라도 소속 그룹이 한류 스타로 급부상하면서 일본 등 해외 공연이 많아져 학사일정을 따라가기 어려운 형편이다. 구하라의 담당 교수는 “구하라가 수업에 얼마나 들어왔는지, 시험을 어떻게 치렀는지에 대해선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서울의 한 대학에 다니는 ‘SG워너비’의 한 멤버는 “하루 종일 스케줄이 있으면 (학교에) 당연히 못 가고, 가끔 스케줄이 없는 날도 그날 새벽까지 녹화하고 온 경우가 많아 그냥 쓰러져 잔다”고 말했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입학을 했더라도 규정에 걸려 제적을 당하거나 자퇴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경희대의 경우 남자 아이돌 스타 최모 씨, 여배우 한모, 김모 씨 등이 세 학기 연속 학사경고를 받아 제적당했고, 한 아이돌 밴드의 보컬 이모 씨 등 10여 명은 스스로 학교를 그만뒀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각 대학이 연예인 유치에 적극적인 이유는 대학은 연예인의 인기를 이용해 인지도를 높이고, 연예인은 큰 부담 없이 대학졸업장을 받을 수 있어 서로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특히 연예 관련 학과를 신설하거나 지명도가 낮은 대학들은 사활을 걸고 인기 연예인 유치에 나서고 있다. 건국대 관계자는 “장학금이란 유인책이 없으면 유명 연예인을 끌어올 수 없어 (장학금이란) 일종의 투자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대학 입학을 놓고 학교 측과 연예기획사가 일종의 거래를 하고 있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연예 관련 학과에 강의를 나가는 한 문화평론가는 “학교로부터 특정 연예인을 데려와 달라는 부탁을 자주 받는다”며 “그럴 경우 ‘전액 장학금은 물론이고 출석 편의를 최대한 봐주고 성적도 졸업이 가능하도록 해주겠다’는 조건을 내건다”고 말했다.연예기획사가 소속 연예인들의 입학을 제안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기획사 관계자는 “요즘은 학벌도 상품성과 직결되기 때문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며 “대학에 적을 걸어두면 남자의 경우 군 입대 문제도 해결되기 때문에 학생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 대학 졸업 후 사이버대로 옮기는 사례도 많다”고 말했다.동국대와 중앙대 등 연극영화 관련 학과의 역사가 오래된 대학들은 연예인이란 이유로 특별 장학금을 지급하지는 않고 있다. ‘쥬얼리’의 조하랑, 배우 전지현(이상 동국대), 이윤지, 류덕환(이상 중앙대) 등은 일반 학생들과 동일한 조건으로 경쟁해 성적장학금을 받았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직후 경찰이 서울광장을 경찰버스로 완전히 둘러싸 시민 통행을 원천봉쇄한 것은 행동의 자유를 침해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왔다. 헌재는 30일 참여연대 간사인 민모 씨 등 9명이 경찰청장을 상대로 낸 헌법소원심판 청구사건에서 이같이 결정했다. 재판관 의견은 7(위헌) 대 2(합헌)였다. 헌재는 “경찰이 이 사건 후에도 서울광장을 경찰버스로 둘러싼 적이 있었던 점을 비춰볼 때 향후 같은 유형의 행위가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며 “서울광장 원천봉쇄에 대한 헌법적 해명이 긴요한 사항에 해당한다”며 이 사건 심사의 필요성을 밝혔다. 이어 “불법 폭력 집회나 시위 발생 가능성이 있더라도 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필요 최소한의 범위에서 이뤄져야 했다”며 “서울광장의 개별적 집회는 물론이고 통행조차 금지한 경찰의 조치는 전면적이고 극단적 조치로 과잉금지원칙을 위배했다”고 판단했다. 민 씨 등은 노 전 대통령 서거 직후 경찰이 서울광장 전체를 전경버스로 에워싸 통행하지 못하게 하고 노제가 치러진 2009년 5월 29일 하루 외에는 광장 출입과 통행 일체를 제지하고 2009년 6월 3일 노 전 대통령 추모행사를 하면서 서울광장을 가로질러 가려고 했으나 제지당하자 “헌법상 거주·이전의 자유와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경찰은 “헌재 결정 취지를 존중한다”는 입장이다. 2009년처럼 시위대 주변을 차벽으로 완전 봉쇄하는 집회 통제 방침은 ‘합법 촉진 불법 필벌’이란 대원칙에 부합하지 않아 현재는 폐기처분한 상태라는 것이 경찰 측의 설명이다. 그러나 경찰은 전경버스를 줄지어 차벽을 만드는 기존 방식 대신 최근 개발한 폭 8m의 차벽차와 방패 차량을 시위현장에 배치한다는 방침이어서 서울광장을 비롯한 주요 시위 집회 공간에 대한 경찰의 봉쇄와 차단 정도를 둘러싸고 논란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장관석 기자 jks@donga.com@@@신광영 기자 neo@donga.com@@@}
김준규 검찰총장이 30일 이명박 대통령에게 사퇴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김 총장은 이날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4회 세계검찰총장회의 개회식에서 축사를 하기 위해 참석한 이 대통령을 만나 “(검경 수사권 조정)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후배들의 사퇴를 막기 위해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총장이 물러날 일이 아니다. 임기를 끝까지 지켜달라”며 사퇴를 만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총장이 이 대통령에게 공식적으로 사의를 밝힌 만큼 4일 자리에서 물러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대검찰청 검사장들의 사표를 반려하고 검사들의 격앙된 분위기를 수습할 수 있는 길은 김 총장의 사퇴뿐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김 총장도 이날 오후 입장자료를 통해 “합의가 깨지거나 약속이 안 지켜지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혀 사퇴 결심을 내비쳤다.이날 국회 본회의에선 경찰의 수사개시권을 명시하되 모든 수사에 대해 검찰 지휘를 받도록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의결됐다. 여야 의원들의 찬반토론 끝에 표결에 부쳐진 형소법 개정안은 재석 의원 200명 중 찬성 174명, 반대 10명, 기권 16명으로 가결됐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이 법은 정부 공포를 거쳐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된다.여야는 지난달 20일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에서 청와대가 중재해 만든 검경 합의안을 토대로 형사소송법 196조 1항을 ‘사법경찰관은 모든 수사에 관해 검사의 지휘를 받는다’로 바꾸는 개정안에 만장일치로 합의했다. 또 ‘검찰의 지휘에 관한 구체적 사항은 법무부령으로 정한다’는 196조 3항도 확정했다. 그러나 이후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민주당과 경찰의 반발을 수용해 ‘검찰의 지휘에 관한 구체적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수정 의결했다. 본회의는 이 수정안을 통과시켰다.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檢 줄사표에 싸늘한 정치권… 압도적 가결에 숨죽인 검찰 ▼표결에 앞서 검찰 출신인 박민식 의원은 “관계부처 장관들, 검찰, 경찰 수장까지 20여 일간 격론을 거쳐 서명한 합의안을 사개특위가 만장일치로 처리했는데 법사위가 바꿨다”며 “형소법 개정안을 부결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과 함께 박선영 최병국 김동성 이범관 최경희 조순형 이용희 이영애 심대평 의원이 반대표를 던졌다. 그러나 법안에 찬성한 의원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검찰 간부들이 사표를 내는 등 집단행동을 하는 것에 대한 불편한 심기가 고스란히 묻어난 셈이다. 압도적인 표차로 개정안이 통과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선 지검 검사들은 일제히 “안타깝고 허탈하다”며 탄식을 쏟아냈다. 당초 검사들의 집단사표 제출 등 강한 반발이 예상됐던 것과 달리 검찰은 좌절감과 실망감에 휩싸인 채 숨을 죽였다. 한 수도권 지검 소속 검사는 “국회가 개정된 형소법 조항 자체의 부작용에 대해선 따지지 않고 ‘검찰 견제’라는 명분만 내세워 통과시켰다”며 “실망감이 너무 커 오히려 다들 말문을 닫고 있다”고 전했다.이에 앞서 이귀남 법무부 장관은 30일 오전 10시 서울시내 모처에서 김홍일 대검 중앙수사부장 등 대검 검사장 4명과 긴급히 만나 수사권 조정안과 관련한 아들의 사퇴를 만류했다. 김 총장이 사실상 사의를 내비친 데다 대검 검사장들도 모두 사표를 제출해 또 한 번의 검란(檢亂)이 일어나는 상황을 막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장관은 이 자리에서 “장관으로서 누구보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면서도 “대검 간부들의 사의 표명은 국민과 검찰 구성원을 불안하게 할 수 있으므로 더는 거론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대검도 오전 9시부터 30분간 연구관(평검사) 이상이 모두 참여하는 확대간부회의를 열어 사태 진화에 나섰다. 박용석 대검 차장은 “이번 사태에 동요하지 말고 현업에 집중하라”고 당부했다. 이날 오전 검찰 내부 게시판인 ‘이프로스’에는 공주지청 검사 2명이 “검사동일체 원칙에 따라 평검사들도 사표를 제출해야 하지 않겠나”라는 글을 올렸지만 파문이 확산되자 글을 삭제하기도 했다. 반면 경찰은 “소중한 결실을 얻었다”며 반색하고 있다. 경찰은 명실상부한 수사주체로 인정받은 만큼 수사권 문제 전담 조직을 확대 개편하는 등 본격적인 수사구조 개혁에 착수했다. 경찰청은 이날 그동안 수사권 조정 협상 과정에서 핵심 실무를 해왔던 수사구조개혁팀을 수사구조개혁전략기획단으로 한 단계 격상할 방침이다. 총경급이던 기존 팀장 계급을 경무관급으로 올려 단장을 맡게 하고 연구·기획 분야와 협의·조정 분야로 업무를 나눠 총경급 중간 관리자를 두기로 했다.▼ 몸낮춘 법무부 “국민에 심려끼쳐 대단히 송구” ▼검사 수사지휘권에 대한 구체적인 사안을 대통령령으로 규정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법무부와 검찰은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반면 경찰은 “아직 대통령령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남았지만 지루한 싸움은 일단락됐다”며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개정안 통과 소식이 전해지자 법무부와 검찰 내부에선 “아쉽고 안타깝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그러나 외부 시선을 의식한 탓인지 집단 사표제출 등 격앙된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법무부는 입장자료를 통해 “수사지휘 문제와 관련해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에 대해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전날 검찰 고위 간부들과 중간 간부들의 집단사표 사태로 파문이 확산된 것을 감안하면 몸을 낮췄다고 볼 수 있다. 김영진 법무부 대변인은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는 정부 차원에서 어렵게 합의를 이뤄 낸 사안인데 당초의 합의 취지가 구현되지 못한 점은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앞으로 대통령령 제정 과정에서 당초의 합의 정신이 충실히 반영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대검찰청도 “국가기관을 대표하는 사람의 합의가 안 지켜진다면 우리 사회의 어떤 합의가 이행될 수 있을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는 내용의 공식 입장을 내놓았지만 압도적인 표 차로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통과된 탓인지 집단 사표 같은 실력행사는 없었다.조현오 경찰청장은 이날 경찰청 간부들과 가진 회의에서 “수사 주체가 된 것을 권한이 늘었다고 본다면 큰 착각이며 오히려 짊어져야 할 책임이 늘어난 것”이라며 “예전처럼 ‘검찰 가면 더 많이 (수사)해 줄 것’이라는 식의 태도는 절대 용납될 수 없다”고 말했다. 조 청장은 이 자리에서 “수사권 법제화(수사개시권 명문화)는 검찰과 싸워 쟁취하는 게 아니라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것”이라며 “국회 본회의 투표에서 반대표를 던진 10명의 뜻이 국민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강도 높은 개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