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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송평인 논설위원입니다.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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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4~2024-11-23
칼럼94%
사설/칼럼3%
문학/출판3%
  • [횡설수설/송평인]입양아 펠르랭 장관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부끄럽게도 고아 수출국 1위다. 연도별 통계로는 몇 해 전부터 중국 인도 등 인구대국에 선두자리를 내주긴 했지만 인구 비율로 보면 여전히 세계 1위다. 6·25전쟁 이후 지금까지 공식 비공식적으로 20만 명 이상의 고아가 해외에 입양된 것으로 추정된다. 1950년대는 입양아의 대부분이 전쟁고아였으나 이후 주로 미혼모의 자녀가 입양됐다. ▷한국 아이들의 해외 입양 누적 통계를 보면 미국으로의 입양이 가장 많다. 그 다음이 유럽이다. 유럽 개별 국가로는 프랑스가 가장 많다. 해외 한인 입양아 중 프랑스에서 최초의 장관급 각료가 나왔다. 플뢰르 펠르랭 중소기업·혁신·디지털경제 담당 장관이다. 한국명 김종숙. 생후 6개월 만에 프랑스로 보내졌다. 국립행정학교(ENA)를 나와 최상위 졸업생들이 들어가는 감사원에서 일했다. 그는 버려진 아이라는 사실을 알고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중요한 일은 우연히 일어난다’는 깨달음으로 극복했다. ▷유럽은 아시아계에 미국보다 훨씬 배타적인 곳이다. 미국처럼 아시아계 이민자 가족의 2, 3세가 성공하는 경우는 드물다. 차라리 외모는 동양인이지만 사고방식은 유럽인이나 다름없는 입양아들이 정관계에 진입하기가 더 용이하다. 2009년 독일에서 베트남 입양아 출신의 필리프 뢰슬러가 보건장관으로 입각해 화제가 됐다. 그는 독일 최초의 비(非)유럽계 각료였다. 프랑스에서는 2007년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취임 후 라시다 다티 법무장관이 북아프리카 출신으로는 최초로 입각했다. 아시아계는 이번에 한국계 장관이 처음이다. ▷성공한 입양인의 그늘에 훨씬 더 많은 입양인들의 실패가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에서 스웨덴으로 입양된 한국 여아 수잔은 남동생으로부터 “이 중국 애와는 같이 살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자란다. 펠르랭 장관은 “나는 째진 눈을 갖고 있지만 능력이 있다”고 말하는 당찬 여성이다. 프랑스 언론은 ‘가시가 있는 장미’라고 표현했다. 그의 성공은 이를 악물고 산 결과인지 모른다. 유럽의 한인 입양아 중에는 부적응으로 사회의 낙오자가 되는 이들이 적지 않고 목숨까지 끊는 일도 있다. 펠르랭 장관처럼 성공하지 않아도 된다. 낯선 땅에서 그저 평범하게 살아주는 것만도 미안하고 고마울 뿐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2-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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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理判事判

    ‘이판(理判)’과 ‘사판(事判)’은 불교 화엄경에 나오는 말이다. 화엄경은 세계를 이(理)와 사(事)의 두 차원으로 나눠 설명한다. 이판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판단이며, 사판은 눈에 보이는 세계에 대한 판단이다. 서양철학의 본질과 현상, 유교 성리학의 이기(理氣)와 비슷한 개념쌍이라고 볼 수 있다. 화엄경은 ‘이와 사가 둘이 아니다’라고 가르치면서 원융(圓融)의 세계관을 펼쳐 보인다. ▷‘이판사판’이 합성어로 막다른 궁지에 몰린다는 뜻이 된 것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다. 억불숭유(抑佛崇儒)정책에 따라 천민으로 전락한 승려들이 살아갈 길은 깊은 산속으로 은둔하거나 관가에서 필요로 하는 잡역에 종사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산속에서 수행을 이어간 승려를 이판승, 종이를 만들어 공급하거나 산성을 축조해 지킴으로써 연명한 승려를 사판승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판승이든 사판승이든 당시 승려가 된다는 것은 인생의 끝장을 의미했으므로 이판사판이란 말이 생겼다. ▷조계종에서 쫓겨난 한 전직 승려가 조계사 전 주지 토진 스님 등 승려 8명의 도박 동영상을 폭로한 데 이어 ‘에라 이판사판이다’는 식으로 현 총무원장 자승 스님과 봉은사 전 주지 명진 스님 등이 2001년 서울 강남의 최고급 룸살롱인 ‘신밧드’를 드나들었다고 폭로했다. 신밧드 사건은 불교계에서는 이미 10년 전부터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명진 스님 스스로도 인정했다. 다만 술자리 후 여종업원들과 잠자리가 있었는지는 확인된 것이 없다. 그러나 스님들이 룸살롱에서 승복을 입은 채 여종업원들과 17년산 발렌타인 위스키 3병을 비웠다는 당시 목격자의 증언만으로도 외부인들에게는 충격이다. ▷오늘날 이판승하면 선방에서 수행하는 수도승, 사판승하면 절 살림을 맡는 주지 등 행정승을 말한다. 겉으로는 이판승을 사판승보다 더 높이 받들어 모시는 것 같으면서도 실속은 사판승이 챙기는 절이 많다. 승려 도박 장면이 몰래 촬영돼 누출된 것도 백양사 주지 자리를 둘러싼 파벌 싸움이 원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판승 사판승의 길이 본래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뛰어난 이판승만이 뛰어난 사판승이 될 수 있다. 수행의 내공 없이 절 살림만 하는 승려들이 신도들의 시줏돈이 귀한 줄 모르고 도박판을 벌이고 룸살롱을 드나든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2-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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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야권의 광우병 촛불시위 再演 시도 한심하다

    지난 주말 서울광장의 ‘광우병 소 수입 중단 촛불집회’에는 1000여 명이 모였다. 4년 전인 2008년 이맘때 평일에도 평균 1만여 명이 촛불을 들고 광화문 일대 거리를 메우던 것에 비하면 한산할 정도다. 이번에는 주말 1000여 명, 평일 100여 명 정도만 참석했다. 교복을 입은 촛불 소녀도, 유모차를 앞세우고 나온 주부도 보이지 않았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을 바에는 청산가리를 먹겠다는 연예인도 없었다. 4년 전 광우병 사태를 주동했던 이들은 미국산 쇠고기 먹으면 다 죽을 것처럼 선동했지만 시간이 지나 보니 사실이 아님을 깨닫는 ‘학습효과’가 생긴 것이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공간에서도 4년 전처럼 일방적인 주장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트위터 검색 순위를 보면 광우병에 대한 정부 대응을 비판한 글과 광우병 선동에 놀아나서는 안 된다는 글이 엇비슷하게 나왔다. 소비자들도 큰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롯데마트는 광우병 발생 소식이 전해진 직후 미국산 쇠고기 판매를 중단했다가 이달 12일부터 재개했다. 지난달 25일 미국에서 광우병 발생 소식이 전해지자 문성근 당시 민주통합당 대표권한대행은 광우병 촛불시위를 재연(再演)해 총선 패배 이후 수세 국면을 반전할 기회로 삼으려 했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 겸 비상대책위원장이 4일 선출된 이후 내놓은 일성도 광우병 촛불시위 참가 독려였다. 북한도 광우병 촛불을 다시 지피려 안간힘을 썼다. 북한의 대남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대외용 라디오 방송인 평양방송 등은 2일 서울광장에서 4년 만의 광우병 촛불집회가 시작된 이후 일제히 반정부 촛불투쟁 선동에 나섰다. 그러나 ‘어게인(again) 2008년’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지난 주말 촛불집회는 미국 광우병 민관합동 현지조사단이 11일 귀국해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다”고 공식 발표한 뒤 처음으로 열린 것인데도 미지근했다. 정부도 ‘값싼 쇠고기를 제공하겠다’며 의욕이 앞섰던 2008년보다 신중한 대응을 했다. 이 역시 학습효과라고 할 것이다. 국민과 정부 모두 4년 전 경험에서 배운 바가 있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4년 전 촛불시위를 주도한 사람들 중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공개적으로 사과한 사람이 아직 한 명도 없다는 점이다.}

    • 2012-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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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승려의 일탈

    조계종의 국회 격인 중앙종회의 의원이자 조계사 주지인 토진 스님이 5일 갑자기 사표를 냈다. ‘조계종 1번지’로 불리는 조계사는 조계종 총무원 직할 교구의 본사다. 그 전날 ‘불교닷컴’이라는 불교계 인터넷 언론은 토진 스님을 포함한 승려 8명이 지난달 23일 전남 장성의 백양사관광호텔에서 억대 도박판을 벌인 사실을 폭로했다. 현장을 몰래 찍은 동영상에는 이들이 한 방에 둘러앉아 담배를 피우며 도박을 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밤늦게 술과 안주도 배달돼 왔다. 이들이 도박을 한 날은 입적한 백양사 전 방장 지종 스님의 49재 전날이었다. ▷지난해 조계종이 내건 화두는 ‘자정과 쇄신’이었다. 불교계가 정치권력에 흔들리지 않는 자존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불교 내부의 자정과 쇄신이 선행돼야 한다며 으뜸 과제로 불교 본연의 모습을 확립하는 수행(修行) 결사를 꼽았다. 그러나 등잔 밑이 어두웠던가. 조계종 총무원 코앞에 위치한 조계사의 주지와 부주지가 동시에 도박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다. 파장이 컸는지 이번 사건으로 총무원 부·실장 6명이 책임을 지고 사표를 제출했다. ▷불교계 일각에서는 도박 그 자체보다 비밀리에 호텔 방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13시간에 걸쳐 도박판을 촬영한 과정을 더 문제 삼고 있다. 동영상을 검찰에 제공하고 도박 혐의로 고발한 성호 스님은 전부터 조계사 측과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분명 세력 다툼을 하는 과정에서 폭로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지만 거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일이다. 억대 도박은 승속을 떠나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부도덕한 일이다. 더구나 일반인보다 막중한 도덕성이 요구되는 스님들로서는 어떤 연유로 잘못이 드러났든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야호선(野狐禪)’은 진실되게 참선도 하지 않으면서 깨달은 듯 남을 속이는 사람을 여우에 비유해 이르는 말이다. 조계종이 선, 그중에서도 간화선을 위주로 하다 보니 스님이 득도(得道)한 것인지 아닌지 외부에서 알기 어렵다. 스스로 득도했다고 주장하면서 무애(無애)의 경지에 들어간 듯 식육(食肉) 음주(飮酒) 도박 등을 거리낌 없이 하는 승려들이 존재한다. 계(戒) 율(律) 선(禪)은 같이 가는 것이다. 계와 율을 지키지 않는 선은 선이라고 할 수 없다.송 평 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2-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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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올랑드의 동거녀 영부인

    지난해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의 부인 다니엘 미테랑이 타계했다. 정치적으로 남편보다 더 열성적인 활동가였던 그는 귀빈 접견 등의 대통령 부인 역할은 했지만 엘리제궁에 들어가지 않고 자택에 남아 자기 활동을 계속했다. 미테랑 대통령은 엘리제궁의 주인이 되기 전 숨겨놓은 애인과의 사이에 딸이 있었다. 미테랑 대통령은 다니엘의 암묵적 동의 아래 애인과 딸을 계속 만났다. 다니엘은 끝까지 부부 생활을 깨지 않았지만 마지막 휴식처로는 남편 옆자리가 아니라 친정 가족들이 안치된 묘지를 선택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취임한 지 6개월째인 2007년 10월 세실리아 여사는 남편과 이혼을 선언하고 대통령 부인 자리를 떠났다. 그는 2005년 한 이벤트 기획자와 사랑에 빠져 남편 곁을 떠났다가 대통령에 도전한 사르코지의 간곡한 부탁으로 다시 가정으로 돌아왔으나 대통령 부인 자리는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며 옛 남자에게 돌아갔다. 홀아비가 된 사르코지에게 야심적인 모델 겸 가수 출신 카를라 브루니가 접근해 대통령 부인 자리를 차지했다. 사르코지는 재임 중 이혼과 재혼을 한 프랑스의 첫 대통령이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당선자에겐 부인이 없고 동거녀 발레리 트리르바일레가 있다. 트리르바일레는 주간 ‘파리 마치’ 기자이면서 TV 채널 ‘디렉트 위트(Direct 8)’의 정치대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일부에서는 차갑고 도도한 인상을 가진 그가 상층 부르주아지 출신이라고 오해하기도 하지만 실은 지체부자유자인 부친과 시립스케이트장 요금 수납원인 모친을 둔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다. 그는 2005년 취재를 위해 올랑드를 만났다가 동거에 들어갔다. 당시 올랑드는 30년 가까이 동거한 세골렌 루아얄 2007년 사회당 대선후보와 별거 상태였다. ▷동거 관계가 흔한 프랑스이지만 대통령의 동거녀는 처음이다. 그는 자신의 위치가 정식 아내가 아니어서 독립적인 만큼 하던 일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트리르바일레라는 성을 준 두 번째 남편과의 사이에 낳은 세 아이를 키우고 있는 그는 “국가의 돈으로 살고 싶지 않다”며 “대통령 부인은 두 번째 역할”이라고 규정했다. 프랑스 대통령 부인의 모습이 사람마다 변화무쌍하다. 그가 동거녀 영부인이라는 새 조합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궁금하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2-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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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송평인]하회탈 황우여의 참월(僭越)

    자기 직분(職分)의 한계를 넘어선 행위를 참월이라고 부른다. 논어 팔일(八佾)편에 공자가 노나라의 실력자 계씨(季氏)를 탓하여 이르기를 “팔일무(八佾舞)를 추게 하다니, 이것을 용서한다면 용서하지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느냐”고 말한 대목이 있다. 팔일무는 천자(天子)를 위해 64명이 8명씩 8열로 추는 춤으로서 제후(諸侯)는 6열, 대부(大夫)는 4열, 사(士)는 2열로 추도록 돼 있다. 계씨가 일개 대부의 신분으로 천자의 팔일무를 추게 했으니 공자가 참월이라고 분개한 것이다. 국회, 돌아올 수 없는 다리 건너다 공자는 법(法)이 아니라 예(禮)의 위반을 말했다. 현대 정치에서도 법에 명확한 금지는 없어도 각 기관이 지켜야 할 직분의 내적 한계가 있다. 황우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통과를 주도한 국회법은 여야가 다투는 쟁점 입법의 의결정족수를 5분의 3으로 높인 것으로 원칙적으로 해서는 안 되고, 한다면 헌법 개정으로나 해야 할 일을 국회 입법으로 해버린 현대판 참월에 해당한다. 헌법은 “국회는 헌법과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는 일반정족수를 정해놓고 강화된 특별정족수는 헌법에, 완화된 특별정족수는 법률로 정하고 있다. 개정 국회법에 따르면 소수당이 반대하는 쟁점법안은 상임위 법사위 본회의에서 각 단계마다 재적의원 5분의 3의 찬성을 얻어야 통과한다. 헌법만이 강화된 특별정족수를 규정한 정신을 훼손한 것이다. 이것은 현 국회의 차기 이후 모든 국회에 대한 참월이기도 하다. 비단 문을 닫는 현 국회가 차기 이후 국회의 의사 진행 규칙을 정했다는 점에서, 즉 남의 일을 자기가 했다는 점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현 국회는 일반정족수로 재적의원 5분의 3을 의결했지만 차기 이후의 국회가 일반정족수로 돌아오려면 상임위 법사위 본회의에서 각각 5분의 3으로 의결해야 한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어떤 정당도 혼자 국회 의석의 5분의 3을 차지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힘들다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국회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버렸다. 재적의원 5분의 3은 60%를 의미한다. 60이 50을 대신하는 것은 민주주의 일반 원칙에 대한 참월이다. 물론 가장 이상적인 것은 100, 즉 만장일치 합의다. 그러나 50에서 100으로 갈수록 합의에 드는 비용이 증가한다. 50은 정당성의 요건을 맞추면서도 비용을 최소화하는 숫자다. 그러나 비용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민주주의 정치에서 과반은 항구적인 과반이 아니라 잠정적인 과반이다. 현재의 다수당은 미래의 소수당이 되고 현재의 소수당은 미래의 다수당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현재의 과반에 승복하는 것이다. 물론 소수자 보호가 특별히 필요한 경우 비용 증가를 감수하고서라도 합의 수준을 높일 수 있다. 그런 예외는 헌법만이 정하고 있다.세계의 웃음거리가 될 개정 국회법 조장(助長)이란 말은 춘추시대 어리석은 송나라 사람이 묘목이 자라지 않는 것을 걱정해서 그것을 뽑아 올리고는 ‘내가 묘목을 도와서 자라게 했다’고 말한 데서 유래한다. 성장을 도와주려고 했는데 결국 묘목을 말라죽게 해 웃음거리가 된 것이다. 몸싸움을 방지하고 대화의 정치를 조장한다는 취지로 개정된 새 국회법이 어느 다수당도 혼자서 결정적 입법을 하지 못할 국회를 만들었다.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의 정당은 의회에서 과반을 차지해 독자 입법권을 얻기 위해 기를 쓴다. 우리나라에서는 총선에서 한 정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진다. 한국만이 처하게 될 이 독특한 정치적 상황을 만들어낸 장본인이 현 국회 다수당의 원내수장인 황 대표다. 이런 입법을 주도해 놓고도 하회탈 웃음을 짓는 그를 보면서 역사 앞에 죄를 짓는지도 모르는 결정을 참으로 태연히 해치운다는 인상을 갖지 않을 수 없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2-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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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李 대통령, ‘정권의 부패’ 직접 쓸어내야

    대통령 측근들의 비리가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면서 국민이 분노를 넘어 허탈감을 느끼고 있다. 검찰은 어제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박 전 차관은 파이시티로부터 인허가 청탁과 함께 수억 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파이시티로부터 7억여 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이미 구속 수감됐다. 박 전 차관과 최 전 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다. 이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은 검찰에 소환되지는 않았지만 구속된 보좌관의 뇌물 비리 때문에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 검찰과 이 의원의 신경전이 어떤 결말을 지을지 비상한 관심을 모은다. 공기업 임직원들은 대통령이 강조한 ‘공공기관 선진화’를 비웃듯이 뭉칫돈을 챙겼다. 그중에서도 원자력발전소를 거느린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납품 비리는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보더라도 원전은 부품 하나만 잘못 작동돼도 국가적 재앙을 몰고 올 수 있다. 돈을 먹을 데가 따로 있지, 어떻게 원전 부품을 납품 받으면서 줄줄이 뒷돈을 챙겼단 말인가. 검찰은 한수원 비리에 김종신 사장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하고 있다. 김 사장은 노무현 정권 말기에 임명됐지만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현 정권 실세의 도움으로 5년 가까이 장수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수원을 감독하는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과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도대체 무얼 하고 있었는가. 감사원도 손을 놓고 있었단 말인가. 공기업 사장을 선거 공신이나 연줄로 앉히다 보니 부패가 더 깊어진 것은 아닌지 깊은 자성이 필요하다. 이 대통령은 청와대 안에 정보와 사정 기능을 두고 있으면서도 공공 부문의 기둥이 썩는 줄을 그리도 몰랐단 말인가. 국민은 참을 수 없는 울분을 느낀다. 이 대통령은 “우리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했지만 정말 그렇게 자신할 만큼 순진했던 것인지, 그렇게 말하면 국민이 믿어주고 아무 탈이 없을 것으로 판단한 것인지 궁금하다. 드러난 부패만 보더라도 이 정권을 만들어준 국민을 배신했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더니, 지금 보수는 힘을 하나로 합치지도 못하면서 이 정권은 부패로 물들고 있다. 이 길로 계속 간다면 정권을 내줄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은 종북(從北)세력까지 ‘정권 심판’ 기치를 들고 공동정권 창출 운운하고 나서는 토양이 바로 부패임을 모른단 말인가. 이 대통령은 정권 부패를 스스로 다 쓸어내야 한다. 집권 기간에 생긴 부패를 스스로 단죄함으로써 새로운 시작을 열어야 한다.}

    • 2012-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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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조현오 ‘노무현 차명계좌’ 거래 말고 실체 밝혀라

    조현오 경찰청장은 동아일보 및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 발언은 나름의 근거를 갖고 한 얘기인 이상 고소가 취하되지 않아 검찰 조사로 이어진다면 경찰 조직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 얘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 청장은 노 전 대통령 차명계좌 발언으로 유족에 의해 사자(死者)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했다. 그는 서울지방경찰청장으로 재임하던 2010년 3월 “노 전 대통령이 차명계좌가 발견돼 자살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해 8월 국회 경찰청장 인사청문회에서 이 발언이 문제되자 “더 이상 제가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대답을 거부한 이후 줄곧 함구했다. 조 청장의 발언은 유족이 고소를 취하하면 자신도 얘기를 하지 않겠다며 고소 취하를 종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경찰 총수가 애초에 그런 발언을 하지 않았다면 몰라도 지금 와서 유족을 압박하며 거래하는 행태를 드러내는 것은 비겁해 보인다. 검찰은 유족의 고소 이후 1년 9개월이 지나도록 조 청장을 조사하지 않았다. 그가 곧 경찰청장 자리에서 물러나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가는 만큼 검찰은 퇴임 후에라도 조사에 나서야 한다. 노 전 대통령 유족 역시 조 청장에 대한 고소가 단순히 결백을 강조하기 위한 정치적인 제스처가 아니었다면 진실 규명을 위해 고소를 취하하지 말고 검찰 조사에 협조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여기서 조 청장과 타협해 대충 접고 넘어가면 뒤가 구린 것처럼 비치고 어떤 식으로든 다시 문제가 될 수 있다. 노 전 대통령 딸 정연 씨의 미국 아파트 구입자금과 관련한 의혹은 올 2월 다시 제기돼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노 전 대통령 차명계좌의 진실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쪽은 조 청장이나 경찰이 아니라 검찰일 것이다. 박연차 게이트 의혹 수사를 지휘했던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은 조 청장의 발언에 대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고 언급해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자살 이후 공소권이 없다는 이유로 수사기록을 덮어 버렸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고소 고발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진실을 영원히 묻어둘 수는 없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정치적 공방의 소재가 될 바에야 이번에 확실히 진실을 밝히고 넘어가는 것이 옳다.}

    • 2012-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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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전교조, ‘시국선언 유죄 확정’ 이젠 승복하라

    대법원 전원재판부는 2009년 6월과 7월 시국선언문의 형식으로 이명박 정부를 비판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소속 교사들에 대해 유죄를 확정했다. 대법원은 “전교조의 시국선언은 2009년 5월부터 시작된 일련의 시국선언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반(反)이명박 전선의 구축’이라는 뚜렷한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이 사건은 1심에서 유무죄 판결이 엇갈려 혼선을 빚었다. 2010년 5월 항소심에서 첫 유죄판결을 받은 교사들이 상고한 뒤 대법원이 2년 가까이 끌어오다 이번에 최종 판결을 내렸다. 전교조는 2009년 당시 교사 1만6000여 명의 서명을 받아 ‘6월 민주항쟁의 소중한 가치가 더 이상 짓밟혀서는 안 된다’는 제목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이 선언문은 ‘과거 군사정권을 떠올리게 하는 공권력의 남용으로 민주주의의 보루인 언론 집회 표현 결사의 자유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며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민주주의의 위기는 이명박 정권의 독선적 정국 운영에서 비롯됐다’는 내용을 담았다. 초중고교 교사는 국공립학교의 경우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 의무를 지켜야 한다. 사립학교의 교원도 사립학교법에 따라 공무원에 준하는 신분 보장을 받는 대신 정치적 중립 의무를 지닌다. 이에 따라 교사들은 대학교수들과 달리 정당 가입과 선거운동이 금지돼 있다. 대법원은 교사의 정치적인 중립이 교육 현장뿐 아니라 현장 밖에서도 지켜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아직 독자적인 세계관이나 정치관이 형성돼 있지 않은 미성년자를 교육하는 교사들은 교육 현장 밖에서의 활동도 잠재적인 교육 과정으로 생각하고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교사에게도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있지만 공무원과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선언한 헌법 정신에 비춰 그 자유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지지 또는 반대 의사를 집단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명백한 정치활동으로 볼 수 있다. 전교조도 이제는 대법원 판결에 승복해야 한다. 시도교육청은 시국선언에 참여한 교사들에 대해 징계 절차에 착수해야 한다. 김상곤 경기도교육감 등 일부 좌파 교육감들은 그동안 시국선언 교사를 징계하라는 교육과학기술부의 요구를 거부하고 징계 처분을 미뤄왔다.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계속 징계를 미룬다면 직무 유기에 해당한다.}

    • 2012-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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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독재자의 연설

    나치 독일의 히틀러는 탁월한 연설가였다. 그는 문서 작성이라면 질색하는 타입이었지만 딱 하나 예외가 있었다. 연설문이다. 이언 커쇼의 책 ‘히틀러’에는 ‘히틀러는 직접 원고를 썼는데 한번 썼다 하면 며칠을 밤늦게까지 방에 틀어박혀서 몰두했다. 3명의 비서가 히틀러가 불러주는 내용을 바로 타자기로 쳤고 히틀러는 그 내용을 다시 꼼꼼히 손질했다’고 나와 있다. 히틀러는 강력한 충격을 줄 만한 제스처를 찾기 위해 사전에 자신의 제스처를 사진으로 찍어 연구했다.▷소련의 스탈린은 훌륭한 연설가가 아니었다. 말주변이 없어서 연설할 때는 미리 쓴 원고를 자꾸 쳐다보면서 읽는 ‘책 읽기’ 연설을 했다. 연설의 내용도 진부했다. 박진감 넘치는 히틀러의 연설과는 대조적이었다. 그는 외모에도 자신이 없어 사진 찍는 쪽보다 초상을 그리는 쪽을 더 좋아했다. 사진도 대개 조작된 것이다. 그의 사진이나 초상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경직돼 보이는 이유다. 독재라고 해도 독일의 서방적 전통과 소련의 동방적 전통에는 차이가 크다.▷북한 김정은은 15일 김일성 100주년 생일 기념 열병식에서 처음으로 공개 군중 연설을 했다. 김정은의 역할모델은 아버지 김정일보다 할아버지 김일성이다. 김정일이 했던 공개 연설은 1992년 인민군 열병식에서 “영웅적 조선인민국 장병들에게 영광 있으라”라고 말한 것이 알려진 전부다. ‘은둔형 예술가’ 기질의 김정일은 연설을 잘하지 못할 바에야 아예 하지 않는다는 주의였는지 모른다. 반면에 김일성은 광복 직후 평양에서의 귀국 연설을 시작으로 해방 정국에서 수시로 연설을 했고 말년까지도 신년사를 직접 낭독했다.▷김정은은 연설에서 김일성의 목소리를 닮은 중저음을 흉내 내려 애쓴 흔적이 역력했다. 연설 마지막에 ‘앞으로’라고 외치며 오른쪽 검지로 내리긋는 제스처도 김일성이 자주 사용한 것이다. 연설하면서 몸을 좌우로 흔드는 것도 긴장해서가 아니라 김일성을 흉내 낸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그러나 목소리와 제스처만 비슷했지 김일성의 카리스마는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스탈린식의 ‘책 읽기’ 연설에 가까웠다. 흰색 망토를 휘날리는 백마부대를 등장시킨 것은 김일성 시대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적통의 손자가 물려받았다는 무대효과를 내려는 의도였던 것 같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2-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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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송평인]마초와 비키니

    4·11총선 직전 나꼼수 멤버가 서울시청 앞에서 벌인 ‘조(남성 성기를 뜻하는 단어에서 받침 ㅈ을 뺀 것) 퍼포먼스’와 낸시랭이라는 여성 행위예술가의 도심 비키니 투표 독려 행위는 다른 날 다른 곳에서 벌어진 퍼포먼스이지만 암수나사처럼 하나로 결합되는 장면이다.남성 관음증 부추기는 나꼼수 나꼼수가 허위사실 유포죄로 감방에 간 정봉주를 위해 지지자 여성들에게 비키니 사진 응원을 촉구한 일이 없었다면 그 두 장면을 하나로 엮는 자유연상(free association)은 불가능했다. 외신에서 간혹 보는 모피 반대 누드 시위야 벗는 명분이라도 있지만 투표 독려에 왜 비키니인지는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나 비키니를 입고, ‘앙’이라고 쓴 깜찍한 팻말을 들고, 다른 일도 아니고 투표를 독려하는 정치시민 낸시랭을 봤을 때 성욕 불만족의 정봉주가 원했던 것이 저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번쩍 들 수밖에 없었다. 그 인기를 보면 나꼼수는 정치의 아이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꽃미남’ 얼굴과 식스팩 복근을 한 자기만족적인 나르시시스트 케이팝 아이돌과는 달리 나꼼수는 전통적인 마초들이다. 이 마초들은 비키니를 원한다. 또 다른 정치 스타인 안철수 서울대 교수처럼 앵그리버드로 돼지 인형을 때리는 놀이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는 부류다. 언젠가 영화 잡지에서 본 글이 생각난다. 1960, 70년대 포르노 영화를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분석한 글로, 포르노가 성(性) 해방의 결과로 태어났지만 주로 남성을 관객으로 상정해서 만들어진다는 점을 비판한 내용이었다. 여성의 시선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포르노는 거의 없고 남성의 관음증(觀淫症)을 충족시키는 포르노가 대다수라는 것이다. 나꼼수의 ‘정봉주 비키니 응원’ 촉구에 부응해 옷을 벗는 여성들은 물론 스스로의 결정으로 벗는 것이다. 그런 자발적인 노출은 성 해방의 이벤트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포르노에서처럼 남성의 관음증만 충족하는 반(反)페미니즘이 구조화돼 있다. 성에 관한 한 모든 남녀는 어느 한편의 당사자다. 나 역시 한 남성이라 중립적일 수 없다. 묘한 것은 여성단체와 나꼼수에 환호했던 여성들의 반응이다. 강용석 의원의 여성 아나운서 비하 발언에 격렬하게 반응했던 이들이 ‘정봉주를 위한 비키니’에 대해서는 잠시 들고일어나는가 했더니 흉내만 내고 흐지부지 주저앉고 말았다. 경쟁하듯 벗기기에 열중하는 사회에서 그 정도는 재미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마초가 가학성을 띠면 폭력이 되고 더 이상 재미로 봐줄 수 없다. 김용민이 쏟아낸 외설 막말을 여기서 다시 떠올리는 것은 그 자체가 기분 나빠 그만두겠다. 그가 부활절 예배에 참석하고 안수기도를 받는 장면 앞에서는 외설과 경건의 세계를 거리낌 없이 넘나드는 이중성에 섬뜩함마저 느껴졌다.나꼼수에 약한 여성단체와 정치인 여성단체의 반응은 김용민에 대해서도 미지근했다. 여성단체연합 등이 비판 성명을 내긴 했지만 분노로 끓어올랐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한국에서 여성운동은 정치적 당파성(黨派性)과 성적 당파성이 충돌할 때 대부분 정치적 당파성을 앞세워 왔다. 그것이 정치적 진보파의 숨겨진 성적 파시즘에 관대한 여성운동의 한 단면이다. 그리고 한국 여성운동의 선두세대에 김용민을 서울 노원갑 후보로 결정한 한명숙 민주통합당 전 대표가 있다. 민주당 지도부는 나꼼수를 선거 운동에 모시기 바빴다. 대권 후보로 꼽히는 문재인 후보는 김용민 외설 논란이 한창인 유세 막판에 나꼼수를 부산에 초빙했다. 이해찬 고문은 김용민의 후보 사퇴를 촉구했다가 김용민과 나꼼수가 강공으로 나오자 자신의 주장을 부인했다. 해괴한 일탈을 꾸짖기는커녕 그 비정상적 인기에 빌붙어 보려고 필사적이었던 정치인들의 모습이 안타까웠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2-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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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민주당, 진정 나꼼수에 업혀 집권하려는가

    여성 및 노인 비하 발언과 교회 모독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민주통합당 김용민 후보가 어제 부활절을 맞아 서울 노원갑 지역구의 한 교회를 찾아 예배했다. 앞뒤가 안 맞는 모습이다. 그는 스스로 ‘음담패설을 일삼는 목사 아들 김용민’이라고 소개하면서 기독교를 막말로 조롱하는 데 앞장섰다. 그는 교회로 향하기 전 목사인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안수 기도를 받았다. 노인 비하 발언이 알려진 뒤 지역구의 한 노인정을 찾아 큰절을 올리며 용서를 구했다. 그러나 그의 뉘우침은 말뿐이지,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목사인 아버지를 끌어들여 회개의 퍼포먼스를 하는 모습을 보면 언제 다시 낄낄 웃으며 막말을 쏟아내려고 저러나 싶다. ‘부인하고만 ×치라는 법이 있나’ ‘미사일 날려 자유의 여신상 ××에 꽂히도록’ 같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서슴없이 한 그가 실은 신학교를 나와 집사라는 직분까지 갖고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팟캐스트 ‘나꼼수’에서 그의 주특기는 ‘씨×’ ‘×같다’ 같은 욕설을 시도 때도 없이 내뱉으며 찬송가와 목사의 축도를 패러디해 기독교와 기독교인인 이명박 대통령에게 저주를 퍼붓는 것이다. 뒤틀린 정신의 소유자다. 민주당 한명숙 대표는 나꼼수의 눈치를 보느라 김 후보의 막말에 대한 사과를 미루다 어제야 대변인을 통해 했다. 이해찬 상임고문과 이용득 최고위원이 김 후보의 사퇴를 요구하고 김 후보 때문에 수도권에서 최대 10석이 날아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어정쩡하게 굴복한 모양새다. 김 후보에게 사퇴를 권고했지만 김 후보가 출마를 강행하겠다고 해 어쩔 수 없다는 변명을 곁들였다. 민주당은 후보자 등록 후라서 후보자를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당에서 제명해서라도 사과의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 나꼼수에 대한 세습 형태의 묻지 마 공천이나 하고, 그들 눈치나 보는 정당의 집권 자격에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김어준 씨 등 나꼼수 진행자들은 김 후보의 막말 논란에도 “끝까지 간다”고 큰소리친다. 막말이 본질인 나꼼수가 막말 때문에 김 후보의 사퇴에 동의하면 스스로를 부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나꼼수의 행태보다 이들에게 업혀 집권을 해보겠다는 민주당의 태도가 더 실망스럽다. 문재인 민주당 상임고문은 김 후보 논란의 와중에도 5일 부산에서 나꼼수와 만나 방송을 녹음했다. 결국 민주당은 한편으로는 종북(從北)세력, 다른 한편으로는 나꼼수의 도구가 되려는가.}

    • 2012-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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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악수의 정치학

    악수하는 손의 통증은 정치인의 직업병이다. 정치인은 그만큼 악수를 많이 하는 직업이다. 선거철에는 특히 그렇다. 최근 박근혜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장은 유세 현장에 오른손에 붕대를 감거나 파스를 붙인 채 나타난다. 많은 유권자와 악수를 하는 바람에 손이 붓고 통증이 온 것이다. 2004년 총선 때도 그랬고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때도 그랬다. 누구나 악수를 많이 하면 손의 뼈를 지탱하는 인대가 늘어나고 염증이 생기기 쉽다. 손이 약한 여성들은 더 그렇다. ▷악수는 원초적인 인사법이다. 선사시대 때 무기를 손에 쥐고 있지 않다는 것을 상대방에게 보여주기 위해 유래했다. 지금도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인들은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손을 들어 손바닥을 활짝 펴는 인사를 나눈다고 한다. 악수는 이러한 기원 때문에 무기를 드는 오른손으로 하고, 장갑을 벗고 맨손으로 하는 게 예의로 정착됐다. 박 위원장은 요즘 주로 왼손을 이용해 유권자의 손을 살짝 쥐는 정도로 악수하고 있다. 오른손에 붕대를 감지 않았더라면 결례가 되는 악수법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민주화 운동 시기에 힘줘 악수한 습관이 배어 대통령 때도 악력(握力)이 셌다. 반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손이 약해 청와대에서 손님을 접견할 때 비서들이 대통령 손을 가볍게 잡아달라고 주문했다. 악수할 때 너무 힘을 줘서 손을 꽉 쥐는 ‘파워 레인저’ 악수도 좋지 않지만 죽은 물고기를 만지듯 힘없이 슬쩍 잡는 ‘죽은 물고기’ 악수도 무성의하게 느껴진다. 악수할 때 악력보다 중요한 것은 시선이다. 앞 사람과 악수를 나누면서 시선은 이미 그 다음 사람에게 가 있는 것만큼 무례한 예법(禮法)도 없다. 박 위원장은 최근 정치 신인들에게 “눈은 악수하는 동안 마주하도록 하고 급하더라도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말라”고 조언했다. ▷역사상 선거 유세에 악수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186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에이브러햄 링컨 후보에게 패한 민주당의 스티븐 더글러스 후보라고 전해진다. 그 이전의 정치인들은 유세 때 신체 접촉 전략을 사용하지 않았다. 박 위원장으로서는 대중과 접촉시 필수적인 스킨십을 최대한 활용할 수 없으니 답답할 것이다. 그러나 붕대를 감은 손이 동정론을 유발하는 효과도 있을 듯하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2-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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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교회의 선거 중립’ 鄭추기경 메시지 음미해야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정진석 추기경이 부활절 메시지에서 4·11총선과 관련해 “교회는 공동체의 심각한 분열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 대해 공개적으로 지지하거나 거부하는 일은 삼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정 추기경의 메시지는 먼저 천주교회를 향한 것이다. 강우일 제주교구장이 이끄는 천주교 주교회의는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살리기, 제주 해군기지 건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했다. 신부가 특정 정당을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발언으로 강론 시간을 채워 신자들이 눈살을 찌푸리는 성당도 드물지 않았다. 지난해 8·24 전면 무상급식 찬반 서울시 주민투표와 10·26 서울시장 선거 때 서울 강남권 일부 대형교회에서 설교 시간에 한나라당 지지를 역설한 목사들이 있었다. 이 대통령 비판과 야당 지지 발언을 설교에 담는 진보 성향 목사도 적지 않다. 불교에도 개신교인 대통령에 대한 반감을 깔고 신도들에게 야권 후보 지지를 호소하는 스님들이 있는가 하면 여야를 떠나 개인적 인연으로 누구를 찍으라고 말하는 스님들도 있다. 총선을 사흘 앞둔 8일은 부활절로 기독교의 축일이다. 국회의원 후보자들이 대거 개신교 교회나 천주교 성당을 찾아 한 표를 호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전례를 보면 일부 목사나 신부는 ‘어느 후보가 인사차 왔다’는 식으로 언급하거나 그 후보를 일으켜 세워 인사를 시키는 식으로 도와준다. 박근혜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장과 정세균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지난달 28일 조계종 진제 스님 종정 추대 법회에 나란히 참석했다. 정치인들이 교회 성당 절의 행사를 챙기는 것은 순수한 신앙과는 거리가 먼 행위로 신도들의 눈에 좋게 비치지 않는다. 종교단체를 일반 이익단체처럼 접근해서는 안 된다. 정치인이 종교를 이용할 생각을 말아야 종교인도 정치와 거리를 둘 수 있다. 신도들도 일부 성직자의 정견(政見)에 흔들리지 말고 정 추기경의 메시지처럼 “냉정하고 이성적인 판단으로 우리나라의 미래와 행복에 가장 바람직한 선택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하고” 투표에 임해야 한다. 헌법은 정교(政敎) 분리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국가가 종교에 대해 중립적 태도를 취해야 하듯이 종교도 정당과 정치인에 대해 중립적 태도를 취하는 것이 옳다. 종교의 특정 정당 또는 정치인 지지 행위가 공동체에 심각한 분열을 일으켜 화합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정 추기경의 우려는 음미할 가치가 있다.}

    • 2012-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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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총선 안철수 마케팅

    고 김근태 전 민주당 상임고문의 부인으로 이번 총선에서 서울 도봉갑에 출마한 인재근 후보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게서 받았다는 당선 기원 메시지를 공개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측근 송호창 후보(경기 의왕-과천)도 안 원장의 메시지를 내놓았다. 두 사람 모두 민주통합당 후보다. 인 후보 측이 공개한 것은 안 원장의 인용 허락을 받았다고는 하나 김 전 고문 빈소를 찾아 준 데 대한 감사전화를 할 때 주고받은 대화 내용이다. 송 후보 측이 공개한 것은 언제 어느 맥락에서 말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인물평이다. 모두 딱 떨어지는 당선 기원으로 보기에는 미흡한 구석이 있다. ▷안 원장은 민주당으로부터 비례대표 1번을 제의받고 거절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는 27일 서울대 강연에서 보수와 진보 진영의 상호보완성을 강조하면서 “양쪽이 모두 개혁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앞으로는 몰라도) 지금 당장은 정치에 개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총선을 눈앞에 두고 특정 정당의 개별 후보에 대한 지지로 비치는 행동을 하는 것은 며칠 전 한 말과 다르다.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5%도 안 되는 지지도를 보였던 박원순 후보는 안 원장의 지지를 받자마자 단번에 50% 안팎으로 올라서 당선됐다. 지역구에서 인지도가 떨어지는 인 후보와 송 후보 측이 노리는 것은 ‘안철수 효과’를 이용한 선거 마케팅이라고 할 수 있다. 안 원장은 각종 여론조사의 대선 양자 대결 구도에서 1위를 달리는 것으로 나온다. 그의 말 한마디가 부동층 유권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후보들로서는 ‘안철수 효과’의 유혹에 끌릴 수밖에 없다. ▷안 원장은 기성 정치권 바깥에서 정치에 개입할지 말지 계속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정당에 자극을 주어 정치발전을 이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두 후보에 대해서는 지지로 해석될 수 있는 자신의 메시지를 홍보물에 사용하도록 허용했다. 안 원장이 꼭 당선시켜야 할 후보들이 있다고 판단했으면 그들이 속한 정당을 지지하든가 아니면 그들을 규합해 신당을 만드는 것이 정도다. 기존 정당의 한두 후보를 선택적으로 골라 지지하는 것은 유력한 대선 후보로 오르내리는 사람으로서 적절한 정치행위라고 보기 어렵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2-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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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대한민국의 ‘세계 지향성’ 옳았음을 보여준 金墉

    한국계 미국인 김용(金墉) 다트머스대 총장이 23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나란히 백악관 기자회견장에 섰다. 미국이 사실상 결정권을 쥔 세계은행 차기 총재 후보로 김 총장을 지명한 것이다. 그는 미국 재무장관을 지낸 로런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지낸 존 케리 상원의원, 공개적으로 출마 의사를 밝힌 제프리 색스 컬럼비아대 교수, 수전 라이스 유엔 주재 미국대사 등 쟁쟁한 경쟁자를 제쳤다. 2006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이어 한국계 세계은행 총재를 배출하는 것에 우리 국민은 큰 자부심을 느낀다. 유엔이 세계를 대표하는 국제기구라면 세계은행은 국제통화기금(IMF)과 함께 세계 경제를 움직인다. 유엔 사무총장에는 어느 한 강대국 출신을 고를 수 없으니 주로 약소국 출신이 임명됐다. 반면에 세계은행과 IMF 총재직은 70년에 가까운 역사에서 백인의 전유물이었다. 김 총장의 지명은 한국계를 넘어 아시아인의 쾌거로 평가받을 만하다. 김 총장은 서울에서 출생해 5세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한국계 부인 사이에 두 아들을 두고 있고 부부가 유창하게 한국어를 구사한다. 사실상 한국인이나 다름없는 그가 세계은행 총재에 오르는 것은 당(唐)나라 시절 서역까지 진출한 고선지 장군이나 인도를 다녀와 왕오천축국전을 쓴 혜초 대사가 이뤘던 성취와 크게 다를 바 없다. 김 총장은 부단한 도전정신과 노력으로 한국사의 주인공에 머물지 않고 세계사의 당당한 주역이 될 기회를 잡았다. 한국은 광복 이후 북한과 달리 개방의 길을 걸었다. 3대 세습의 북한이 현대사의 오지(奧地) 국가로 전락한 반면에 한국은 세계 최빈국에서 세계 10위권 경제규모를 지닌 국가로 도약했다. 김 총장은 질병 퇴치 등에 오래 종사한 의료 전문가다. 세계은행의 주요 업무는 개발도상국에 대한 지원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김 총장을 지명하면서 “(경제 전문가가 아니라) 개도국 전문가가 세계은행을 이끌어야 할 때”라고 말한 것은 개도국 한국의 유례없는 성공과 무관치 않다고 본다. 세계의 국경이 속속 사라지는 시대에 김 총장의 지명을 보며 아직도 우리에게 개방을 두려워하는 폐쇄성은 없는지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외국인과 당당하게 대화하고 외국으로 나가 세계에 도전하는 젊은이가 지금보다 더 많아야 한다. 냉전시기 미국과 소련의 체제 경쟁 속에서 한국에 자유세계의 광대한 시장이 주어진 것은 천운이었다. 국민은 피땀과 눈물로 자유 개방 정부를 지켜냈다. 그때나 지금이나 문을 열면 망한다고 말하는, 구한말 쇄국파 같은 겁쟁이 정치세력이 있다. 국민의 바른 선택이 중요하다.}

    • 2012-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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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송평인]마르크스와 코카콜라의 아이들

    진보 진영에서 백낙청 씨는 ‘2013년 체제’라는 원대한 목표를 내걸었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거기에 경제학적 실탄을 제공했으며 조국 서울대 교수는 지성적 외모, 작가 공지영은 여성적 섬세함을 바탕으로 트위터를 장악했다. 백낙청을 빼고 장하준, 조국, 공지영은 1963년생이거나 1982년 학번이다. 마르크스주의를 배워 운동을 한 세대이자 나이키 신발로 상징되는 자본주의 소비문화를 처음 접한 세대다.조국과 공지영의 인기와 이면 나는 대학 신입생 때 이화여대 축제에 갔다가 이대생들이 잘생긴 조국 얘기를 해서 그가 누군지 처음 알았다. 나중에 대학원에서 ‘국가론’ 수업을 듣다가 어찌어찌해서 소비에트 법 이론에 대해 쓴 그의 석사학위 논문까지 읽게 됐다. 법치를 부르주아적 개념으로 몰아세우고 법은 국가의 도구여야지 정책 입안자에 대한 제한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론을 다룬 논문이었다. 그가 형법 교수가 됐다는 얘기를 듣고는 미국에서 영미 형법을 공부한 사람이 유럽 대륙법계, 특히 독일법계의 한국 형법을 가르칠 수 있는지 고개가 갸우뚱했다. 그가 쓴 ‘형사법의 성(性)편향’이란 책을 얼마 전 우연히 봤다. 몇 쪽을 넘기기도 전에 혼인 외(婚姻外) 성교를 독일어 ‘aussererehelicher Beischlaf’라고 쓴 표현이 눈에 띄었다. ‘ausserehelicher Beischlaf’로 써야 옳다. 그 뒤에 개정판이 나와 수정됐는지는 모르겠으나 학술서적의 실수로는 사소하다고 할 수 없다. 공지영은 386세대의 경험을 소설화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그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고등어’처럼 자신이 몸을 던져 체험으로 건져 올린 소설을 쓸 때 잘 쓴다. 그러나 ‘수도원 기행’ 같은 책은 ‘영성(靈性)’을 파는 상업적 의도만 보여 작가의 진정성이 의심스러웠다. 다른 책 아무리 잘 써도 이런 책 하나가 있다는 것은 작가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 그의 ‘도가니’는 사실에 기반을 둔 소설인 팩션(faction)으로는 보기 드문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팩션과 팩트(fact)는 다르다. 그는 ‘도가니’의 성공 때문에 작가가 팩트를 다루는 저널리스트일 수 없음을 종종 잊는다. 그는 “일본행 비행기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이 잘됐다는 아줌마들이 일등석으로 가는 걸 보고 열나고 토할 것 같았다”는 트윗을 올렸다가 한일 항공편에 일등석이 없다는 게 확인되자 지우기도 했다. 장하준은 ‘사다리 걷어차기’ 등 일련의 저작을 통해 진보 진영 내에서 한미 FTA 동조의 기류를 반대론으로 바꿔놓았다. 그는 신자유주의 비판을 넘어 자유무역 자체를 비판한다. 그의 주장인즉 ‘1970년대 한미 FTA를 했으면 삼성전자 현대차는 없었고 한국이 지금 세계 경제 10위국인데 앞으로 한미 FTA 때문에 순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장하준의 새로운 종속이론 그가 보호무역론을 옹호한 독일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리스트를 거론할 때면 1990년대 초 대학원 때 마르크스 가치론을 가르친 작고한 정운영 교수가 생각난다. 정 교수도 리스트를 자주 얘기했다. 그때로부터 20여 년이 지났지만 한국은 자유무역을 확대하며 계속 성장했다. 1970, 80년대는 교역을 하면 할수록 더 가난해진다는 종속이론이 유행이었으나 슬그머니 사라졌다. 장하준의 현란한 역사적 논증에 감탄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 현란함 속을 들여다보면 골자는 새로운 종속이론이다. 흥미로운 것은 세 사람 모두 1960, 70년대 국민 대다수가 가난하던 시절 남달리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는 점이다. 프랑스 영화감독 장뤼크 고다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1980년대의 그들은 ‘마르크스와 코카콜라의 아이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오십을 바라보는 중년의 나이에 누구보다 진보 지성계의 선봉에 서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2-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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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나트륨의 역습

    성경에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말이 나온다.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될 두 가지로 빛과 소금을 든 것이다. 과학적으로도 틀린 말은 아니다. 소금은 원소기호로 염화나트륨(NaCl)이다. 나트륨은 칼륨과 함께 세포의 삼투압을 조절하는, 신체에 없어서는 안 될 미네랄이다. 몸속에는 ‘나트륨-칼륨 펌프’가 쉼 없이 작동하며 세포의 신진대사를 일으킨다. 나트륨이 세포로 들어오면 칼륨이 밀려나고, 칼륨이 들어오면 나트륨이 밀려나는 순환 과정을 통해 유해물질이 든 오래된 물과 영양소가 든 신선한 물이 교환된다. ▷나트륨은 칼륨과는 달리 자연 상태의 먹을거리에는 극히 적은 양만 들어있다. 그래서 포유동물은 나트륨 부족에 시달리기 쉽다. 채식동물은 더위 등 스트레스를 겪으면 나트륨 욕구를 채우기 위해 짠맛을 찾는다. 간혹 비무장지대(DMZ)의 야생 사슴이 콘크리트 벽을 핥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콘크리트 벽에 묻은 소금기를 섭취하기 위한 행동이다. 포유동물 가운데 인간만이 제염 기술을 개발했다. 소금은 큰 이익이 됐고 국가의 최초 전매사업도 제염이었다. 로마 시대 병사들은 국가로부터 급료를 소금(salar)으로 받기도 했는데 오늘날 급료를 뜻하는 영어 ‘salary’, 프랑스어 ‘salaire’의 어원이 됐다. ▷소금의 공급 부족 현상이 해결되자 나트륨의 역습이 시작됐다. 나트륨은 수분을 빼앗는 성질이 있다. 생선을 저장할 때 소금을 뿌려두면 생선에서 수분이 빠져나와 오래 둬도 상하지 않는다. 빙판길에 소금을 뿌리는 이유도 소금이 눈의 수분을 빼앗아 어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몸속 세포가 건강하려면 충분한 수분을 유지해야 한다. 칼륨에 비해 나트륨이 많으면 수분이 상실된다. 세포가 수분을 빼앗기면 혈관이 좁아져 혈압을 높이고 당뇨 신장질환 백내장 피부노화를 일으킨다. ▷그동안 건강의 최대 적으로 지방과 설탕이 꼽혔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건강을 해치는 주범으로 지방이나 설탕보다 소금을 더 주목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2020년까지 하루 나트륨 섭취 20%(소금 2.5g) 줄이기 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우리 국민이 주로 먹는 김치찌개류 면류에 소금이 많아서인지 한국은 세계 주요국 중 나트륨 섭취량이 가장 많다. 소금이야말로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2-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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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반대 단골’ 일부 종교인의 제주 해군기지 반대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반대 시위대에 종교인이 많다. 평일에는 50명 정도가 시위를 벌이는데 그중 20여 명이 종교인이다. 7일 구럼비 바위 발파 작업이 시작된 후 경찰에 연행된 68명 중 종교인이 12명이다. 11일에는 신부와 목사 등 성직자 2명에 대해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지난 3년간 해군기지 반대 시위에서 성직자가 구속된 것은 처음이다. 문정현 신부는 해군기지 반대 투쟁을 독려하기 위해 작년 7월 강정마을로 거처를 옮겼다. 그 전까지는 미 공군기지 소음 피해를 감시한다며 전북 군산에 살았다. 평택 미군기지 반대 투쟁에도 앞장섰다. 강정마을 시위대 속엔 개신교 기독교장로회 측 목사들과 불교 조계종 화쟁위원회 스님들도 있지만 천주교 신부와 수녀들이 상대적으로 많다. 주교회의 의장이자 제주교구장인 강우일 주교가 해군기지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 주교는 2008년 주교회의 의장에 취임한 후 4대강 사업 반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해군기지 건설 반대 등을 천주교 사회교리로 내세웠다. 천주교는 주교 중심체제로 최종 집행권은 각 교구의 주교가 갖고 있고, 주교회의 결정을 모든 교구가 따르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강 주교와 주교회의 산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인 이용훈 주교다. 이 주교가 교구장인 수원교구는 지난달 해군을 ‘해적’으로 표현한 만화를 성당에 배포했다. 3일 이 만화를 본 중학생이 성당 신부에게 이의를 제기했다가 폭행을 당했다며 부모가 신부를 고소하는 사건도 생겼다. 종교적 신념은 세속적 신념과는 달리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위험하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정치와 종교를 되도록 분리하려는 이유다. 해군기지 건설은 안보와 환경 보호 가치의 이익 교량(較量)과 같은 세속적 관점에서 따져야 할 사안이다. “돌멩이 하나, 꽃 한 송이 건드리는 것도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훼손하는 것”이라든가 “무기를 들고는 사랑을 실천할 수 없다”는 식의 접근으로는 현실의 복잡한 실타래를 풀 수 없다. 물론 종교가 타협할 수 없는 분야도 있다. 인권이 그렇다. 과거 군사정권에서 종교인들은 인권 보호를 위해 누구보다 노력했다. 오늘날 종교인이 관심을 가져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는 강정마을의 구럼비 바위가 아니라 중국에서 사지(死地)로 송환되고 있는 탈북자의 인권일 터다. 강정마을에서 시위를 벌이는 종교인들은 탈북자 문제엔 눈감고 있다.}

    • 2012-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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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제돌이’를 바다로 돌려보내 죽으면 어떡할 건가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동물원 돌고래 쇼에 출연하는 돌고래 한 마리를 제주도로 돌려보내기로 했다. 제돌이란 이름의 돌고래는 3년 전 서울동물원이 구입했으나 제주 연안에서 불법 포획된 것으로 드러났다. 박 시장은 “제돌이를 한라산이 있고 구럼비 바위가 있는 제주도에서 마음껏 헤엄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제돌이를 고향 바다로 돌려보내는 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구럼비 바위’라는 박 시장의 표현을 뜯어보면 돌고래의 귀향에 정치적 의도를 덧칠한 것 같아 안타깝다. 구럼비 바위는 해군기지가 건설되는 강정마을뿐 아니라 제주 해안 전체에 산재한다. 제돌이가 속한 남방큰돌고래는 제주 연안을 따라 헤엄치기 때문에 강정마을 앞바다도 지나가지만 그곳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제주의 상징으로 한라산과 나란히 구럼비 바위를 언급한 것은 균형감을 현저히 잃은 발언이다. 제돌이를 제주 바다로 돌려보내는 것은 기술적으로도 만만치 않다. 3년 가까이 동물원에서 지낸 제돌이가 야성을 회복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관측이 있다. 포획된 지 3년 지난 돌고래의 자연방사는 성공사례가 보고된 적이 없다. 군집(群集)생활을 하는 돌고래의 속성상 혼자 살기 어렵고 돌고래 무리에 합류하더라도 다른 돌고래로부터 공격받을 가능성이 있다. 제돌이가 죽거나 상처를 입는다면 풀어주지 않은 것만 못한 결과가 빚어질 수 있다. 남방큰돌고래는 세계적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종은 아니다. 한반도에서는 제주 연안에 110여 마리가 살고 있다. 제돌이 한 마리가 바다로 돌아간다고 해서 종족 보전을 위해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박 시장이 9억 원의 예산을 들여 불법 포획 상태를 원상회복함으로써 남방큰돌고래 보호에 기여하려는 노력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천성산 꼬리치레도롱뇽 보호도 좋고 4대강 유역의 단양 쑥부쟁이 군락지 보전도 필요하다. 그러나 환경 사랑 속에 인간 사랑이 들어 있지 않으면 바람직한 환경운동이라고 하기 어렵다. 돌고래가 푸른 바다에서 느낄 자유를 찬양하는 박 시장, 도롱뇽의 살려달라는 울부짖음을 들었다는 지율 스님, 그리고 쑥부쟁이 군락지의 훼손을 우려한 환경단체들도 중국에서 북송 위기에 처한 탈북자를 살리려는 활동에 힘을 보태야 한다.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에 몰려간 시위대도 탈북자 인권에 관심을 표시할 때 비로소 바른 인식을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2012-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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