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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청와대에서 열릴 예정이던 ‘제2차 규제혁신 점검회의’가 회의 시작 3시간 전에 전격 취소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규제개혁 부진에 격분하며 “답답하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예정된 회의를 당일 취소한 것은 지난해 5월 대통령 취임 후 처음이었다. 부처들은 이를 경고로 받아들이고 저마다 규제 완화 후속 조치에 나서고 있다. 대통령 제스처가 일단 ‘충격 요법’으로는 성공한 셈이다. 그런데 이게 능사일까. 관료들이 문제가 무엇인지 몰라서 해결 못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차량 공유 서비스 관련 규제만 봐도 그렇다. 한국은 한때 차량 공유 서비스 유망 국가로 관심을 받았었다. 신용카드 보급률이 워낙 높고 서울이 인구 1000만 명에 육박하는 ‘메가시티’로 꼽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력적인 인프라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인 투자처가 되지 못하고 있다. 선제 투자의 귀재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중국 디디추싱, 동남아 그랩, 인도 올라캡스 등 각국 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에 잇따라 투자했지만 유독 한국 업체는 빼놓았다. 카카오택시 등을 운영하는 카카오모빌리티에 대한 투자를 검토했지만 결국 접었다. 왜일까. 최근 카풀 서비스 스타트업 ‘풀러스’가 직원 70%를 감원하고 대표이사가 물러난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초반엔 택시 운전사들이 반발해 출퇴근시간대(오전 5∼11시, 오후 5시∼오전 2시)에만 운영했다. 그러다 지난해 말 운영시간을 확대했더니 이번에는 운수업 면허권을 쥔 서울시가 풀러스를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자가용을 유상 운송용으로 불법 알선한다’는 요지였다. 27만여 명에 이르는 택시 운전기사들이 투표권을 행사하다 보니 이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택시업계와 규제 완화를 위한 토론을 하자고 했지만 택시업계가 불참해 토론이 무산됐고 그 사이 풀러스는 재정난을 겪었다. 스타트업 업계는 “검은 카르텔 앞에 젊은 혁신가들의 꿈이 무너졌다”고 안타까워했다. ‘표(票)퓰리즘’이나 ‘검은 카르텔’ 앞에서 좌절하는 건 차량 공유 스타트업뿐만이 아니다. 첨단 기술을 농업에 접목하는 스마트팜은 대기업들이 기술을 확보하고서도 농민 반대로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은행은 대기업의 사금고화를 우려해 은산분리를 외치는 시민단체 등을 의식해 덩치를 못 키우고 있다. 바이오·헬스케어 스타트업도 의료계 기득권과 충돌해 원격의료조차 도입하지 못한 채 지지부진하다. 대통령 취임 후 1년 동안 적폐 청산 드라이브를 걸어 과거 정책을 부정하는데, 나중에 짊어질 책임 등을 우려해 소신 있게 나설 관료들이 있을 리 만무하다. 정치권도 매한가지다. 일자리 창출력이 높은 서비스 산업의 불합리한 규제를 없애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안은 여야 반대에 막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2012년 정부안이 제출된 뒤 7년째 계류 상태에 빠져 있다. 현재 취업자 수나 수출, 소비, 설비 등 각종 지표가 암울하기만 하다. 전문가들은 올해 3% 성장은 사실상 물 건너간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은 밥그릇 지키는 이익집단에, 진영 논리에 빠진 여야에 대통령이 ‘정치적인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시점이다.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혁신은 결국 리스크 테이킹(risk-taking)이고 ‘뭔가 새로운 것을 해보자’는 분위기가 중요한데 지금 기업들이 너무 위축돼 있어 혁신하기 쉽지 않은 분위기”라고 진단했다. 규제완화는 ‘친(親)기업, 친시장’을 원칙으로 하지만, 정부는 겉으로만 혁신성장을 외치면서 시장에는 시그널을 거꾸로 주고 있는 게 아닌지 되짚어 볼 일이다. 김유영 산업1부 차장 abc@donga.com}
‘자기만의 방’을 가지는 건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가질 법한 로망이다. 임원은 돼야 개인 사무실이나 연구실이 생기는 법. 하지만 갓 들어온 신입에게도 개인 공간을 주는 회사가 있다. 기업용 소프트회사인 티맥스소프트다. 이곳은 1997년 설립 후 20년 넘게 ‘연구원 1인 1실’ 원칙을 지키고 있다. 연구실에 들어서면 각종 수식이나 프로그램 명령어가 빽빽하게 적힌 유리로 된 칠판이 있다. 하지만 이를 제외하고는 간이침대, 덤벨, 세계지도, 조립장난감 등 연구실별로 각양각색이다. 회사는 집도 내어준다. 연구원들은 주상복합이나 중대형 아파트를 함께 쓴다. 희망자에게 모두 집을 제공해 회사 총무팀은 전세 계약 맺기에 바쁘다. 몰입할 수 있는 환경 덕분인지 올해 신입 연구원 150명 중 100명은 서울대와 KAIST 출신일 정도로 인재들이 몰렸다. 경기 성남시 분당신도시에 있는 15층짜리 사옥은 회사라기보다 공대 캠퍼스 같은 분위기다. 창업자인 박대연 티맥스소프트 회장(62)도 사내에서 ‘교수님’으로 불린다. 평일은 물론이고 주말에도 오전 7시 반부터 오후 10시 반까지 일하는 그는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와 오라클, IBM 등에 맞서 토종 소프트웨어 개발에 매달리고 있다. 티맥스소프트는 현재 연매출 1000억 원 규모로 외국산이 장악했던 웹애플리케이션서버(WAS) 시장에서 10년째 1위를 달리고 있다. 최근 티맥스소프트 사옥에서 박 회장을 만났다.○ 야간 상고 다니면서 운수회사 사환 그는 전남 담양의 부농 집안에서 태어났다. 빚보증을 잘못 선 아버지 때문에 가세가 기울었다. 초등학교만 졸업한 뒤 야간 중학교를 다니면서 운수회사 사환으로 일했다. 하지만 공부를 해야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에 공부에서 손을 놓지 않았다. 광주상고 야간부에 진학한 그는 성적이 좋아서 한일은행 특채로 입사해 생활비를 벌 수 있었다. “은행 본점 전산실에서 낸 공고가 미래를 바꿔 놓았죠. 당시까지만 해도 컴퓨터를 제대로 만져보지도 못했는데 컴퓨팅 기초지식부터 메인프레임 시스템 실무까지 하나하나 배워나갔죠.” 그 사이 막내 동생까지 대학을 졸업시켰다. ‘인생 과업’을 마친 그에게 또 하나의 의욕이 솟구쳤다. 이제는 공부를 마음껏 하고 싶었다. 결국 1988년, 32세에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은행 퇴직금 1300만 원만 달랑 들고 미 오리건대 컴퓨터학과에 입학했다. 매월 100달러 이상 쓰면 안 됐기에 최대한 빨리 졸업해야 했다. 복통으로 응급실에 실려가 수술 후 며칠간 입원해야 했지만 수술 직후 바로 퇴원해 수업을 들은 적도 있었다. ‘독하게’ 공부한 덕에 3년 만에 전 과목 A학점으로 학·석사과정을 끝냈다. 바로 남캘리포니아대 박사과정을 밟아 최우수 졸업논문상을 받으며 박사가 됐고 한국외국어대 제어계측학과 조교수로 임용됐다. 하지만 뭔가 허전했다. “은행에 근무했을 때나 미국에서 공부했을 때 IBM처럼 외국 기업들이나 만들 수 있던 핵심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싶다는 꿈을 버릴 수 없었어요. 교수가 되고 바로 창업에 나섰죠.”○ 토종 소프트웨어 개발하겠다는 꿈 외환위기 직후였지만 1997년 박 회장은 티맥스소프트를 설립했다. 그러다 KAIST 교수 모집 공고를 접했다. 전문적으로 연구할 수 있을 거란 기대로 지원서를 냈다. “상고 출신인 데다 마흔 살이 넘은 저를 기막히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던 학과장님 표정이 잊혀지지 않아요. 다행히 최우수 논문을 쓰고 단기 졸업했다는 사실을 설명해 임용될 수 있었지요. 감사한 기회였죠.” 그는 학교가 있는 대전과 회사가 있는 분당을 오가면서 미들웨어(OS와 응용프로그램을 연결하는 프로그램) 개발에 집중했다. 외국산에 대항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이 목표였다. 2003년 웹 환경에서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WAS인 ‘제우스’를 내놓았다. 외국산보다 비용을 40% 이상 낮추면서도 비슷한 성능을 구현했다. 하지만 녹록지 않았다. “처음에는 국산이란 이유로 제품 설명 기회조차 거절당했죠. 교수라도 소용없었어요. 그러던 중 국방부 제품성능시험에 참여할 기회를 얻게 됐고 기술력을 인정받았어요. 당시 실적을 바탕으로 국내 금융회사나 공공기관에 납품하기 시작했죠.” 제우스는 글로벌 시장조사업체인 가트너가 우수 제품을 엄선하는 ‘매직 쿼더런트 모델’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창업 후 10년 뒤인 2007년 결국 교수직을 관뒀다. 그는 “창업은 인생을 건 싸움”이라며 “처절하고 절박해야 기업을 할 수 있는데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창업까지 하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에게는 외국산을 밀어낸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는 찬사가 붙었다. 하지만 다시 부침을 겪었다. 연구보다는 마케팅과 세일즈에 힘을 실어 무리한 확장을 한 게 화근이었다. 결국 2010년 6월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갔다. 직원 2100명 중 1500여 명을 내보내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일부 사업부는 삼성SDS에 매각했다. “이참에 회사 전체를 매각하려고도 했었죠. 막 은퇴를 결심하려던 시점에 예상치 못한 곳에서 좋은 신호가 감지됐어요. 농협이나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티맥스 살리기 운동 비슷한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어요.” 2011년 미들웨어 부문에서 흑자가 났다. 제우스 판매량은 오히려 전년 대비 30% 늘었다.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2012년부터는 본격적으로 기술 개발에 매달리기로 했다.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그는 최고기술경영자(CTO) 역할에 충실했다. 그 덕분에 8개 분기 연속 흑자를 거두고 3년 예정이었던 워크아웃을 1년 앞당겨 조기 졸업했다. ○ 직원들과 논문 심사에 가까운 맞짱 토론 현재 박 회장은 일주일 내내 오전 7시 반부터 오후 10시 반까지 꼬박 일한다. 평일은 물론이고 주말이나 연휴도 예외는 아니다. 밥은 주로 구내식당에서 해결한다. 결혼도 안 했다. 영화 본 지는 35년 된 것 같다고 했다. 매월 200km 정도 달리는 게 유일한 취미다. 매년 마라톤대회에 출전해 3시간38분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회사에서 박 회장 모습은 교수에 가깝다. 강의에 나서기도 하지만 매일 같이 하루 6팀의 기술 시연 발표를 듣고 ‘맞짱 토론’을 한다. 박 회장과 실장, 팀장 등 5, 6명이 참석한다. 회사 프레젠테이션이라기보다는 논문 심사에 가깝다. 독특한 토론 철칙도 있다. 연구원은 칠판에 쓸 수도 없다. 자료도 가져올 수 없다. 말로만 설명해야 한다. 모두 자신의 지식으로 숙지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일주일에 30팀이 하니 1년이면 1500팀이 발표하죠. 연구원이 현재 700여 명이니까 연구원 1명당 연간 두 차례 정도 발표합니다. 신입도 예외는 아니에요. 소프트웨어는 한 치의 오류라도 발생하면 전체가 무너질 수 있는데, 직급 상관없이 의견을 나눠야 오류를 줄일 수 있죠.” ‘연구원 1인 1실’을 고수하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다. 연구원들의 자존심을 살리고 이들이 대접받는 느낌을 받게 하기 위해서다. 최대한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이를 방지하는 게 낫다는 판단도 깔려 있다. 티맥스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에도 기꺼이 응한다. 직원들을 제자로 여기는 그는 이들이 자퇴(퇴사)해도 안 잡는다. 바로 사표를 수리한다. 이렇게 해서 티맥스 출신 직원이 창업한 기업이 블록체인 스타트업 등 10여 개에 이른다. 지난해 매출액은 약 1000억 원. 2014년 800억 원, 2015년 904억 원, 2016년 993억 원 등 해마다 늘고 있다. 올해는 1200억 원이 목표다. 전체 인력 70% 이상이 기술 인력으로 연매출의 20% 이상을 연구개발(R&D)에 쓰고 있다. 제우스도 삼성전자, 신한카드, SK텔레콤, 인천공항 등에 공급되고 있다. 국내 시장 점유율이 43.7%(2017년)로 오라클(28.4%)과 IBM(21.3%)을 압도적으로 앞서고 있다. ○ “소프트웨어에 인생 걸었다” 묘비명 남기고파 박 회장은 또 다른 목표가 있다. 소프트웨어 중 가장 난도가 높은 것으로 꼽히는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DBMS)을 개발하는 것. 이는 데이터베이스를 안정적으로 관리해 주는 시스템이다. 국내에서 티맥스 점유율은 아직 4% 선이고 여전히 오라클이 선두인 점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이 과점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무모한 도전’을 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벤처란 누구도 하기 어려운 일을 하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당장 돈 벌기 쉬운 애플리케이션이나 게임 등을 개발하는 건 다른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기술이 앞설수록 과점 기업만 남게 되는데, 거꾸로 우리가 그 시장에 들어간다고 생각해 보세요. 엄청난 기회가 되는 거죠. 소프트웨어 원천기술 개발에 계속 매달려 온 만큼 그게 바로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년 이후 기업공개(IPO)도 계획하고 있다. 기술 개발에 투자 여력을 높이고 자신처럼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학생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고 싶다는 계획도 세웠다. 일명 ‘티맥스 공과대학’이다. “저는 죽을 때까지 교수라는 직업을 유지하는 걸 보람으로 여기고 싶어요. 학교를 세우려면 돈도 많이 필요하겠지만 저는 가족이 없잖아요. 하하하.” 묘비명으로 ‘소프트웨어에 인생을 걸었다’를 남기고 싶다는 그는 직원들과의 맞짱 토론 회의에 들어가야 한다며 자리를 떴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최근 편지 배달이 급감하고 소포가 늘어나는데 우체국 집배(集配) 시스템은 아직도 ‘편지 패러다임’에 갇혀 있습니다. 소포 배달을 편리하게 하고 집배원 안전을 위해 전기차로 전면 바꿀 겁니다.” 강성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장(53)은 최근 서울 광화문우체국 집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취임 이후 매주 전국 각지의 우체국을 방문해 집배원 오토바이를 타면서 현장 파악에 나서고 있다. ‘우문현답’, 즉 ‘우체국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생각에서다. “최근 혹한기에 오토바이를 탔는데 입안이 얼얼하더군요. 오토바이 안전사고도 종종 발생하기도 하고요. 무엇보다도 편지량은 급감하고 소포 택배가 급증하는데 오토바이에 크고 작은 소포택배를 한꺼번에 싣는 것도 무리죠.” 강 본부장이 오토바이의 대안으로 꺼내든 건 ‘꼬마 전기차’다. 오토바이는 기동성이 높아 좁은 골목길을 다니기에는 좋지만 우편물을 35kg만 실을 수 있다. 편지 시대에는 문제없었지만 소포 택배가 더 많은 최근에는 집배원들의 힘이 부친다는 것. 오토바이가 넘어지는 등 사고가 잦은 점도 문제다. 반면 초소형 전기차는 총 200kg을 실을 수 있고, 차량 내부에서 냉난방 시스템을 가동할 수 있어서 너무 덥거나 추운 날씨에 대비할 수 있다. 전기차는 대당 592만 원으로 오토바이(261만 원)보다 비싸다. 하지만 오토바이는 3년마다 교체해야 하는 특성상 연간 189만 원이 들지만 전기차(8년 사용)는 연간 151만 원이 든다는 점에서 경제성도 좋다는 설명이다. 그는 “상반기(1∼6월) 50대를 시작으로 올해 1000여 대를 도입한 뒤 2020년까지 총 1만여 대를 보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집배원 오토바이가 1만5000여 대 다니는 점을 감안하면 오토바이의 3분의 2가 전기차로 교체되는 셈이다. 강 본부장은 “오토바이 외에도 편지 패러다임에 갇힌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했다. 우체국 접수창구 높이가 성인 허리 높이로 어르신이 소포 택배를 들어올리기 힘든 게 대표적이다. 집배원 작업복 주머니도 최근까지는 편지 정도만 넣을 수 있는 정도로 작았고 우편물을 분류하는 팔레트(트럭이나 컨테이너 등에 옮길 때 사용하는 용기) 역시 편지를 실어 나르는 데 맞춰 제작되어 우편물 분류 작업에 손이 많이 간다는 것. 그는 “소포 택배 시대에 맞게 불편함을 순차적으로 개선해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춰 첨단 기술을 접목한 집배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도 그의 중요한 임무다. 우선 부산 아파트 단지에 우체국 무인(無人)접수 창구, 일명 ‘택배방’을 개설할 계획이다. “소포 택배를 저울에 얹으면 무게 등이 라벨로 인쇄되고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방식이죠. 주민들이 가까이에서 우체국을 이용할 수 있고, 집배원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죠.” 중장기적으로는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로 물류량을 예측하고 사물인터넷(IoT)을 활용, 바코드를 통해서 배송 상황을 추적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3, 4년 내에 ‘배달로봇’ 도입도 염두에 두고 있다. 배달로봇이 탑재된 초소형 전기차가 집배원을 따라다니면서 함께 배달하는 방식이다. 도서 산간 지역에 드론을 띄워 우편물을 배달하는 드론 배송도 본격 추진한다. 지난해 말 전남 고흥 득량도와 강원 영월에서 시범적으로 드론 배송을 하는 데에 성공했다. 강 본부장은 “금융 사업 부문(우체국 금융)에서도 현재 인터넷은행인 K뱅크에 투자한 것을 넘어서서 핀테크 분야에서 ‘메기(다른 경쟁자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새 경쟁자)’가 되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로보어드바이저와 블록체인 등 금융 신기술을 도입해 차세대 금융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계산이다. 그는 우편사업이 7년째 만성적자를 나타내고 있지만, 우체국 금융 혁신으로 적자를 메우겠다는 전략이다. 강 본부장은 “궁극적으로는 손익 0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우체국이 민간 물류 회사와 과도하게 경쟁하는 것을 지양하고 적정 수준의 이익만 취할 예정입니다. 물류 산업에서 혁신적인 기술을 선보이면서도 도서 산간 지역에서 촘촘한 배달망을 통해 국민 옆에 바로 우체국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고 싶어요.”김유영 abc@donga.com·신동진 기자}
[명사] 어떤 문제의 해결을 위해 입력된 자료를 토대로 원하는 출력을 유도하는 규칙의 집합.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온 알고리즘의 정의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이나 썼던 이 단어가 최근 1, 2년 사이 우리 삶에 훅 들어왔다. 뉴스 소비도 그중 하나다. 우리가 하루에 최소 열 번쯤은 들여다보는 네이버는 올해 2월부터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이 뉴스를 추천해 주고 있다. 로그인해서 스마트폰을 보면 화면 하단에 추천 뉴스 8개 정도가 올라와 있다. 이는 알고리즘이 관심사별 사용자그룹을 시시각각 생성해 이들이 많이 읽은 뉴스를 뽑고 개인 뉴스 소비 패턴도 스스로 학습해 추천해 주는 뉴스다. 최근 기사 배치 조작 등으로 공정성 논란을 키워 온 네이버는 이런 알고리즘 편집을 내년부터 본격 확대해 궁극적으로는 직원의 편집 비중을 0%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그렇다면 알고리즘으로 추천되는 뉴스는 공정할까. 일단 알고리즘조차 편향성을 띨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지난해 AI 알고리즘이 100여 개국 6000여 명을 대상으로 얼굴 대칭, 피부, 주름 등을 기준으로 미인을 선발한 대회가 열렸다. 결과는? 수상자 44명 중 43명이 백인이었다. 이는 AI가 백인 사진을 주로 학습한 데서 빚어진 결과였다. 알고리즘의 인종 차별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러시아 정부는 페이스북을 통해 미국 대선에 조직적으로 개입했다. 페이스북에 가짜 계정을 운영하며 인종, 총기, 이민 등 논쟁적 이슈에 대해 정치성향을 띤 광고를 집행한 것. 페이스북은 알고리즘을 이용해 나이 지역 인종 등에 따라 광고주가 원하는 이용자에게 광고를 띄우는데, 이는 1억2600만여 명의 미국인에게 도달했다. 이런 여론 조작이 민주주의 위협 수단이 되기도 한다. 미국 심리학자인 로버트 엡스타인은 검색 엔진 순위 조작으로 표심(票心)을 조작할 수 있음을 밝혀냈다. 미국과 인도에서 4556명의 부동층 유권자를 대상으로 순위 조작 실험을 한 결과 20% 이상이 영향을 받았다. 그는 “단일 검색 엔진이 지배적인 국가일수록 더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네이버 검색점유율이 74.7%인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은 부분이다. 이런 맥락에서 알고리즘이 포털의 공정성 논란에 방패가 될 수 없다. 더욱이 맞춤형 뉴스를 접할수록 이용자 스스로 편협한 시각에 갇히는 필터 버블(Filter Bubble)도 생길 수 있다. 다양한 의견을 접해야 할 민주주의 사회에서 ‘보고 싶은 뉴스, 듣고 싶은 뉴스’만 접하는 확증편향이 강화될 수 있다는 얘기다. 국민 절반 이상이 포털을 언론으로 인식하는 시대에 포털 스스로 언론으로 기능하려 할 때에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는 이유다. 알고리즘의 부작용은 서막일지도 모른다. 알고리즘이 음악, 여행지, 식당, 쇼핑 등 우리 일상과 직결되는 영역에 암암리에 활약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블랙박스로도 불리는 알고리즘은 머신러닝 등으로 고도화될수록 인간이 이해 불가한 결과를 내놓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알고리즘도 인간이 만드는 것인 만큼 그 폐해를 줄이기 위해 고민에 나설 때다. 유럽연합(EU)은 내년에 일반개인정보보호규정(GDPR)을 법제화하면서 시민이 알고리즘에 대해 설명을 요구할 권리를 명시하기로 했다. 알고리즘에 어떤 가치가 우선 적용되어야 하는지 충분한 논의를 이제라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알고리즘은 우리를 차별하고 우리의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다.김유영 산업부 차장 abc@donga.com}
“해외에선 가능해도 국내에선 불가능해 핀테크 기업의 발목을 잡는 규제가 한국에 적지 않습니다. 국내에서도 중국 텐센트나 미국 페이팔 같은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의 스타트업)이 나오려면 규제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야 합니다.” 정부가 혁신성장을 내걸고 핀테크 분야에 ‘규제 샌드박스’를 우선 도입하기로 하고 내년 중 가칭 금융혁신지원특별법을 제정키로 한 가운데 이승건 한국핀테크산업협회장(35·사진)은 최근 기자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치과 의사 출신인 그는 2013년 창업해 간편송금 서비스인 ‘토스’를 내놓았고 토스는 현재 누적 다운로드 수 1100만 명, 월 거래액 9000억 원을 돌파했다. 이런 점을 인정받아 최근에는 글로벌 컨설팅회사인 KPMG가 선정한 세계 100대 핀테크 기업에 국내 기업으로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현재 200여 개의 회원사를 두고 있는 핀테크협회를 이끄는 이 회장은 최근 국무조정실과 기획재정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금융위원회 등에 핀테크 산업 제도 개선 방안을 전달했다. 그가 규제 완화를 강조하고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국내 규제 수준에 맞춰서 핀테크 서비스를 개발하면 해외에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수 시장이 작은 특성상 국내 핀테크 기업이 성장하려면 해외 진출이 불가피한데, 규제로 발목이 잡혀 있다면 해외 진출 비용이 엄청 높아지는 거죠.” 그는 대표적인 규제로 핀테크 기업들이 증권사 펀드나 은행 대출 상품 등 여러 회사의 상품을 추천만 할 수 있지 직접 판매할 수 없게 한 ‘일사 전속주의’를 들었다. 현재 여신전문금융업법상으로 신용카드와 대출 상품 등의 모집인은 1개 금융회사 제품만 취급할 수 있다. 중국 텐센트가 스마트폰 앱 하나로 단돈 1원이라도 펀드 투자 등 자산 관리를 할 수 있게 한 것과 대조적인 셈이다. 그는 “금융상품 모집인이 고객 쟁탈전을 벌이거나 개인 정보를 부당하게 유통할 수 있다는 점 등을 우려하지만, 일정 수준의 보안 요건을 갖춘 핀테크 기업에는 다양한 상품의 비교 추천 서비스 개발 등의 가능성을 열어줘 금융소비자의 이익을 증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행법상으로 로보어드바이저 상품이 금지된 점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는 “해외에선 금융업체들이 앞다퉈 로보어드바이저 상품을 출시하고 있지만, 국내 핀테크 기업들은 서비스 출시조차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은 불완전 판매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고객과 직접 만나지 않고 온라인으로 계약하는 비(非)대면 투자 일임은 금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현재 핀테크 기업들은 은행과 증권사 영업망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 그는 “본인 인증과 계약 체결, 계약서 송부 등 모바일 환경에 맞게 지점 방문이 필요 없는 식의 비대면 거래가 활성화될 수 있게 규제 정비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자신이 창업했을 당시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핀테크 기업을 육성하려면 무엇보다도 규제 철학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돈 1000원을 송금하려해도 상대 계좌번호를 알아야 하고 공인인증서 로그인을 하고, 계좌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보안카드 번호를 다시 입력하는 등 복잡한 단계를 거쳐야 했죠. 당시 상대방 전화번호만 알아도 몇 초 만에 간편하게 송금할 수 있는 앱을 출시하고도 불법으로 내몰릴 위기에 처했었습니다.” 이는 금융당국이 인허가를 하거나 명시한 대로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포지티브’ 방식을 택한 상황에서 이 회장이 고안한 서비스는 규정에 명시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금융당국의 유권 해석으로 2015년 말 관련 서비스를 정식으로 내놓을 수 있었다. 이 밖에 그는 금융 데이터를 고객이 동의할 경우 개방해 일정 수준의 보안 요건을 갖춘 핀테크 업체가 활용할 수 있게 하고 금융회사의 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도 적극적으로 공개되어 금융 플랫폼 생태계가 활발하게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금융법 체계를 선진국처럼 네거티브(포괄주의) 방식으로 조속히 바꾸지 않으면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는 핀테크 기술을 기존 법의 테두리에서 다루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김유영 기자 abc@donga.com}
최근 국내 대기업의 한 홍보 임원은 광고 집행 내역을 살펴보다 고개를 갸웃했다고 한다. 페이스북에 광고를 집행했는데, 인보이스(계약서)는 낯선 곳에서 날아왔다. 주소는 아일랜드 더블린 그랜드캐널광장 4번지. 바로 페이스북 아일랜드 법인이었다. 국내 기업이 국내 소비자를 대상으로 광고를 집행했는데 정작 광고 매출을 올리는 곳은 페이스북 아일랜드 법인이었다. 아일랜드 법인세(12.5%)는 한국의 절반 정도. 페이스북이 법인세를 아일랜드에 내는지, 또 다른 국가에 내는지 확인된 바 없다. 확실한 건 이 실적이 대한민국 국세청에 신고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임원은 “국내 기업이라면 당연히 납부할 세금을 해외로 빼돌리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페이스북만 그런 게 아니다. 구글과 애플 등 다국적 테크기업들은 지식재산권(IP)에 대한 로열티 형태로 수익을 조세회피처(tax haven) 등 제3국에 이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컨대 아일랜드에서 거둔 수익을 로열티를 원천 징수하지 않는 네덜란드 법인에 보내고, 이를 다시 법인세가 없는 버뮤다 본사의 자회사로 아일랜드에 세운 페이퍼컴퍼니에 보내는 ‘더블 아이리시 위드 어 더치 샌드위치(double Irish with a Dutch sandwich)’ 수법으로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다. 경제학자인 게이브리얼 저크먼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구글은 모(母)회사인 알파벳 상장(2004년) 직전인 2003년 법인세가 0%인 버뮤다에 아일랜드 지주사를 만드는 등 세금 회피 작업을 진행했다”며 “구글 등 다국적 기업들이 이전한 세금은 미국 무상 식료지원(푸드스탬프) 예산과 맞먹는다”고 일침했다. 유럽연합(EU)도 다국적 기업의 역외(域外) 조세 회피로 회원국이 연 600억 유로(약 77조 원)의 손실을 본다고 추산한다. 이런 행태가 새삼 거론되는 건 이해진 네이버 창업주가 최근 국감에서 “구글은 어마어마한 돈을 번다. 하지만 세금을 안 낸다”고 말하면서부터다. 구글코리아는 “한국 법을 준수한다”고 반박했고 한성숙 네이버 대표가 “(그렇다면) 국내 매출액과 세금 납부액을 공개하라”고 맞받아쳤다. 하지만 구글은 묵묵무답이다. 물론 네이버가 구글을 겨냥하고 나선 것은 PC 온라인 광고를 독식했던 네이버가 모바일 동영상 광고에서 구글에 위협받는 현재 상황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올해 9월 구글 유튜브의 시간 점유율은 72.8%로 네이버 TV(2.7%)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구글의 동영상 광고 판매가 급증하지만, 이 역시 국내에 신고되지 않고 있다는 게 네이버의 의심이다. 세금 우회에 철퇴를 가하려는 각국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영국과 호주는 다국적 기업이 자국에서 번 돈을 다른 국가로 우회하면 세금(각각 25%, 40%)을 부과하기로 했다. 아일랜드도 더블 아이리시 수법을 2020년까지 폐지하기로 했다. 한국은 이제 시작이다. 따지고 보면 구글이 국내법을 준수한다는 말이 틀리진 않았다. 현행법상 다국적 테크기업들은 본(本)서버를 외국에 두고 있어 과세 당국도 세금을 부과할 명목이 없다. 대체로 캐시서버(인터넷망 중간에 설치된 임시 저장 공간)를 한국에 두는 방법으로 국내에 서비스한다. 하지만 법의 허점이 있다면 고쳐야 한다.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서버 위치를 사업장으로 보고 과세 근거로 삼는 낡은 개념을 버리고 국내에 캐시서버를 두면 이를 고정사업장 범주에 포함시키는 등 사업의 본질적 요소를 감안해 국내 기업과 조세형평성을 맞춰야 한다”고 말한다. “정보의 필요성에는 국경이 없다”(구글의 10가지 진실 중 8번째)지만, 납세의 의무까지 국경을 초월해서는 안 될 것이다. 김유영 산업부 차장 abc@donga.com}
‘한국 경제가 위기라고요? 한국 경제 괜찮습니다.’ 최근 청와대 홈페이지에 이런 문구가 큼지막하게 걸렸다. 외환위기 20년을 앞두고 한국 경제에 대한 경고음이 잇따르자 이를 의식해 올린 것으로 보인다. 이달 13일에는 김현철 대통령경제보좌관과 홍장표 대통령경제수석이 갑자기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우리 경제 기초는 튼튼하고 굳건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과연 그럴까. 실물 경제를 이끄는 기업인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청와대는 코스피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9월 수출이 61년 만에 최고액이라는 점을 들어 위기설을 일축했다. 하지만 이는 반도체 슈퍼 호황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누리는 데 따른 측면이 크다. 반도체 실적을 걷어내면 비슷한 맥락의 통계치가 나올지 자신할 수 없다. 자동차 산업은 국내외 매출 부진과 강성 노조 등에 시달린 지 오래고, 조선 해운 철강 건설 석유화학 등 주력 산업 구조조정은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물론 1997년 외환위기 때처럼 대기업들이 어음을 막지 못해 한꺼번에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 경제가 괜찮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2017년의 기업인들이 무서워하는 것은 바로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박힌, 혁신을 가로막는 장벽이다. 기업가정신은 날로 위축되고 있고 반(反)기업 정서가 이제는 정부 관료를 통해 표출되기도 한다. 규제는 ‘규제 전봇대’(이명박 정부)와 ‘손톱 밑 가시’(박근혜 정부) 등 정권 따라 이름만 바뀌었지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못했으며, S급 인재들은 국내 기업보다 글로벌 기업을 선호해 인재 유출로 혁신이 더뎌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한국 경제가 외환위기 때처럼 독감에 걸린 게 아니라 만성질환의 허약 체질인 노인병에 걸렸다”고 진단한다. 이런 우려는 통계로도 나타난다. 외환위기를 호되게 겪은 한국 경제는 4대 부문 개혁에 힘입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잘 넘겼지만 문제는 그 이후다. 한국은행이 펴낸 ‘성장잠재력 하락요인 분석: 생산 효율성을 중심으로’라는 보고서를 보면 2011년부터 2015년 한국의 생산효율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3개국 중 29위로 거의 꼴찌였다. 발빠른 의사 결정과 튼튼한 제조업으로 글로벌 금융위기를 버텼지만, 이후에는 주력 산업 성장이 더뎠고 제조업 위주의 산업 구조가 바뀌었는데도 성장동력을 찾지 못한 영향이 크다. 청와대는 이번에 한국 경제가 튼튼하다고 강조하면서 실업자(8월 기준)가 100만 명을 돌파하고 청년실업률이 9.4%로 외환위기 직후였던 1999년 이후 가장 나빴다는 점은 쏙 빼놓았다. 취업이 힘든 사람들은 자영업으로 몰려 자영업자가 OECD 회원국 중 4번째로 많지만 이들의 20%는 연간 1000만 원도 못 벌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문재인 정부는 가계소득을 늘려 경제를 성장시키겠다는 소득 주도 성장을 내걸었지만 가계소득은 최저임금을 시간당 1만 원으로 올리고 통신·교통비를 1만∼2만 원 깎아준다고 해서 획기적으로 늘지 않는다. 결국은 일자리가 많이 나와야 한다. 요새 혁신을 이끄는 글로벌 기업들의 움직임은 꽤나 위협적이다. 단적인 예로 중국 알리바바는 해외 연구개발(R&D) 허브를 만들어 인공지능과 양자컴퓨팅 등에 투자한다고 밝혔는데, 3년간 투자액이 150억 달러(약 17조 원)에 이른다. 미국 아마존은 첨단 기술로 일자리를 없앤다는 우려를 비웃기나 하듯 직원 5만 명을 한꺼번에 채용하겠다고 선언했다. 한국 경제가 괜찮다고 공언하려면 국내에서도 거침없이 사업을 벌이는 기업들이 나와야 한다. 노인병에 걸린 기업들을 외면한 경제 진단은 안이할 수밖에 없다. 김유영 산업부 차장 abc@donga.com}
“5G(5세대) 통신이 오고 있다. 준비하느냐, 죽느냐(5G is coming, Ready or not).” 14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모스콘센터에서 열린 북미 통신전시회인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아메리카’ 전시장. 글로벌 통신업체인 에릭손 부스에는 이런 문구가 붙어 있었다. 셰익스피어 희곡인 햄릿의 ‘사느냐 죽느냐(To be or not to be)’ 대사를 패러디한 것으로 차세대 이동통신 기술인 5G의 주도권을 잡지 못하면 기술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절박감을 표현했다. 5G는 8분 걸리던 초고화질 영화 한 편(18GB) 내려받기를 8초 만에 끝낼 수 있는 초고속 서비스가 가능한 차세대 통신 기술.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하고(초저지연), 한꺼번에 많은 기기를 연결할 수 있다. 에릭손은 이날 부스에서 5G를 활용한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 자율주행차 기술 등을 시연해 관람객들의 관심을 이끌었다. 12일부터 이날까지 사흘간 ‘테크 엘리먼트(The Tech Element·기술의 요소)’라는 주제로 열린 MWC 아메리카에는 글로벌 이동통신사와 통신장비업체, 정보기술(IT) 업체 등 1000여 곳이 참여했고 2만1000여 명이 참관했다. 이번 전시회의 화두는 단연 5G였다. 글로벌 이동통신사 경영진들은 기조연설 등을 통해 5G의 중요성을 하나같이 강조했다. 버라이즌의 무선 부문 대표인 로넌 던은 “과거 인쇄기나 증기기관차, 전기의 발명이 전 세계 경제 성장을 이끌었듯이 이제는 5G가 바로 그 역할을 맡을 것”이라며 “5G는 새로운 산업을 창출해 전 세계적으로 220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라지브 수리 노키아 최고경영자(CEO)는 “헬스 에너지 교통 통신 제조 등 5개 부문에서 산업의 황금기(golden age)로 접어들어 산업 생산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AT&T의 비즈니스 부문 대표인 새디어스 아로요는 “현재 거론되는 무인자동차, 스마트시티, 빅데이터 사업 등은 5G가 본격적으로 상용화된 뒤 돌아보면 빙산의 일각처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세계이동통신사업자협회(GSMA)는 2025년까지 북미 통신망의 절반이 5G로 전환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5G를 기반으로 한 미래를 한발 앞서서 보여준 곳은 일본의 소프트뱅크였다. 소프트뱅크는 일본 3위의 이통사인 동시에 미국 4위 이통사인 스프린트의 최대 주주. 이날 ‘더 많은 것을 연결한다(Connecting More Things)’를 기치로 자회사와 투자사들의 부스들을 한데 모아 차세대 기술 혁명을 이끌기 위한 사업 전략을 보여줬다. 소프트뱅크의 로봇 자회사인 소프트뱅크로보틱스가 개발한 감정로봇인 ‘페퍼’는 관람객들 앞에서 춤을 추고 셀카를 찍으며 발길을 붙잡았다. 페퍼는 기쁨 놀람 슬픔 등의 감정을 인지하고, 목소리 떨림과 눈 맞춤, 얼굴 표정 인지로 사람의 감정을 읽어내는 로봇. 이런 페퍼 바로 앞에서 네 발 달린 로봇인 ‘빅독(BigDog)’이 달려드는 모습은 단연 압권이었다. 빅독은 소프트뱅크가 올해 7월 구글 모기업인 알파벳으로부터 인수한 로봇기업인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로봇으로,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뛰어나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역량이 페퍼에 합쳐질 경우 발걸음을 떼서 걷지는 못하는 페퍼의 한계가 극복될 것으로 보인다. 소프트뱅크 관계자는 “페퍼는 현재 일본에서 일반 소매점과 금융회사 등을 중심으로 5000대 이상 팔려 실제 비즈니스 현장에서 활용되고 있다”며 “앞으로 AI 시스템인 왓슨을 탑재해 학습 능력과 데이터 연산 능력을 발전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30년 안에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싱귤래리티’(특이점)의 시대가 올 것으로 확신하고 이에 대한 투자를 공격적으로 집행하고 있다. 실제로 소프트뱅크 부스에는 소프트뱅크가 지난해 인수한 영국 반도체 기업 ARM의 부스가 함께 있었다. ARM은 모바일 기기의 두뇌 역할을 하는 반도체 설계도를 퀄컴과 삼성전자, 애플 등에 빌려주고 돈을 버는 회사로, IoT, 자율주행, 머신러닝 등 연결성이 강조되는 특이점 시대에서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중국 기업의 활약도 눈에 띄었다. 중국 이동통신사들과 통신장비업체들은 미국 통신기업과 별도로 ‘미-중 혁신 투자 서밋’을 갖고 마이크로프로세서와 드론, 자율주행자동차 등의 부문에서 양국의 투자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중국은 롱텀에볼루션(LTE)은 한발 늦었지만 5G에서는 선도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5G에 200조 원 이상의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상태다.샌프란시스코=김유영 기자 abc@donga.com}
“지금은 플랫폼으로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때입니다.” 황창규 KT 회장(사진)이 14일(현지 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북미 통신산업전시회인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아메리카’를 둘러본 뒤 기자들과 만나 KT의 글로벌 전략을 밝혔다. 황 회장은 “KT가 올해 1월 인공지능(AI) TV인 ‘기가지니’를 선보인 데 이어 다음 달 기가지니의 영어 버전을 출시해 이를 해외에 수출하겠다”며 “특히 AI 기술은 글로벌 기업과의 협업으로 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AI 글로벌 협력의 대표 사례로 KT가 AI 음성인식 업체인 ‘사운드하운드’에 500만 달러(약 56억 원)를 투자한 점을 들었다. 이곳은 자동 대화인식과 자연어 이해 등 핵심 기술을 보유해 말하는 사람의 의도까지 파악해 음성인식의 정확도를 높인다. 그는 “영어로 구동되는 기가지니가 나오면 이를 AI 셋톱박스와 AI 스피커 등에 붙여 산업용 솔루션으로 팔겠다”고 강조했다. 콜센터와 호텔, 스마트홈 등에서 AI 음성인식 기술을 활용해 고객사의 생산성과 편의를 높일 수 있다는 뜻이다. 황 회장은 “KT의 에너지 통합관리 플랫폼인 ‘마이크로 에너지 그리드’도 해외 수출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AI 기술과 머신러닝(기계학습) 등으로 에너지 소비 행태를 빅데이터 분석해 에너지 사용량을 예측, 제어하고 에너지를 절감하는 것. 그는 “국내에서 병원과 공장, 빌딩 등 1만1000여 곳이 이를 도입해 KT는 올해 3000억 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며 “미국과 핀란드 등에서 실증을 거쳐 해외 수출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미국 어도비도 방문해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 콘텐츠 협업도 논의했다. 인터넷TV(IPTV) 등 미디어 사업부문을 강화하면서 콘텐츠 생태계를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황 회장은 14일(현지 시간) 미국 보스턴에서 KT가 130가구를 대상으로 시범 실시하는 기가와이어(구리선만으로 1Gbps의 인터넷 속도를 구현하는 기술) 협약을 맺는다. 황 회장은 “광케이블을 따로 깔지 않고 기존 전화선만으로 인터넷 속도를 10배로 높일 수 있는 기술로, 미국 인터넷 속도가 대체로 느린 점을 감안하면 미국 전역이 기가와이어 시장이 될 수 있다”고 자신했다. 한편 황 회장은 통신비 인하를 위한 사회적 협의 기구 출범과 보편요금제 도입 등과 관련해 “유구무언”이라고 말했다. 그는 “(해외에) 나와 보면 투자할 곳이 이렇게 많은데 아쉽다”며 “투자를 해놓고 과실을 따야 할 때 그렇게 하지 못하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정부 주도의 통신비 인하를 에둘러 비판했다. 또 “한국이 좋은 통신 인프라를 지닌 만큼 요금과 기술 차별화로 혁신하겠다”고 덧붙였다. 샌프란시스코=김유영 기자 abc@donga.com}
“SK텔레콤의 사업 포트폴리오는 아마존과 비슷하지만, 아마존이 무섭게 성장하는 것을 보면 위기감을 느낀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이 12일(현지 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북미 지역의 통신사업 전시회인 ‘모바일월드콩그레스 아메리카’에 참석해 현지 주요 기업과 잇달아 만난 뒤 기자들에게 이같이 말했다. 그는 “1위 사업자라고 해서 안전한 게 아니다. 토이저러스·레고(장난감), HP(프린터) 등은 한때 잘나갔다가 순식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고객의 시간을 점유(customer-holding time)하지 못하면 자칫 생태계 자체가 없어져버릴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구글·애플과 같은 운영체제(OS)가 없고, e커머스, 클라우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인공지능스피커 등의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SK텔레콤과 아마존은 공통점이 있다”면서도 “기술 역량은 별개의 문제”라고 말했다. 아마존은 영업이익을 낮추면서까지 벌어들인 돈을 연구개발(R&D)에 쏟아붓고 있다. 고객의 데이터를 끌어모은 뒤 이를 기반으로 고객보다도 고객을 더 잘 이해한다. 이를 바탕으로 고객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e커머스 역량이 엄청 뛰어나다는 것이다. 박 사장은 “앞으로 모든 역량은 e커머스로 집결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한때 매각설이 나왔던 SK플래닛의 오픈마켓인 11번가에 대해서도 “e커머스는 미래 사업이다. 11번가는 아직 60점으로, 훨씬 잘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매각 계획이 없음을 재확인했다. 그는 “SK텔레콤은 통신기업이라기보다 기술기업이 되어야 한다. 이동통신매출(MNO) 위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얹어서 더 많은 이익을 주고자 한다. 앞으로도 전체 매출 중 MNO의 비중은 줄이겠다”고 말했다. 그 대신 “어딘가에 묻혀 있는 데이터들을 캐내서 활용해 금맥을 만드는 방법으로 비즈니스모델을 가속화해야 한다”며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나비효과처럼 동떨어져 보이는 일에서 상관관계를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또 “AI 등 기계에 일을 시키는 시대일수록 콘텐츠가 중요하다. 고객의 시간을 더 많이 점유하기 위해 마음먹고 콘텐츠에도 역량을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앞으로 독창적이고 독립적인 콘텐츠가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7월 SM엔터테인먼트와의 지분 교차 투자는 이종 산업과의 협업의 시작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통신비 인하와 관련해서는 “선택약정 할인 등 국민의 통신비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취지에는 뜻을 같이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편요금제 등 다른 제도는 시장의 원리에 따라야 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통신비 2만 원대에 음성 200분과 롱텀에볼루션(LTE) 1GB 데이터를 주는 보편요금제는 정부가 사실상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라는 점을 우회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샌프란시스코=김유영 기자 abc@donga.com}
SK텔레콤이 세계 3위 이동통신사인 인도의 ‘바르티에어텔’에 인공지능(AI) 네트워크 솔루션을 수출한다. SK텔레콤은 13일(현지 시간) 북미 지역의 통신전시회인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아메리카’가 열린 미국 샌프란시스코 모스콘센터에서 박정호 SK텔레콤 사장과 수닐 바르티 미탈 바르티에어텔 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이런 내용의 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미탈 회장은 MWC를 주최하는 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GSMA) 이사회 의장도 겸하고 있다. 이번 협약은 올해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 2017’의 GSMA 이사회에서 박 사장과 미탈 회장이 차세대 네트워크를 논의하면서 물꼬가 터졌다. 바르티에어텔은 인도에 2억8000만 명 등 20개국에서 3억8000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한 세계 3위(가입자 수 기준) 이동통신사업자이다. 인도 통신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롱텀에볼루션(LTE)으로의 전환을 서두르고 있는 상태다. SK텔레콤은 이번 협약에 따라 네트워크 구축부터 운용에 이르기까지의 컨설팅과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국내 이동통신사 중 네트워크 구축부터 운용까지의 솔루션을 수출한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특히 SK텔레콤은 AI를 결합해 통신 트래픽을 최적화하고 장애가 발생하면 스스로 발견해 복구시키는 고품질의 통신 솔루션을 제공할 예정이다. 또 향후 5세대(5G)와 사물인터넷(IoT), 네트워크 가상화(NFV) 등을 접목한 기술도 단계적으로 이전한다. SK텔레콤 관계자는 “그동안 이동통신업계에서는 에릭슨 노키아 등 통신장비 제조사가 장비를 팔면서 네트워크 솔루션 서비스를 별도의 비용을 받고 제공하는 게 관행이었지만, SK텔레콤은 자사의 네트워크 관리 경험을 살려 서비스 자체를 바르티에어텔에 수출하는 것”이라고 의의를 설명했다. 계약 규모는 최소 5000만 달러(약 570억 원)로 알려졌다. SK텔레콤은 2012년부터 해외 11개 통신사에 네트워크 설계 등의 컨설팅을 수출했으며 당시 규모는 건당 300만 달러 안팎이었다. 이번 프로젝트에는 SK텔레콤과 SK㈜ C&C는 물론 국내 중소장비 회사 6, 7곳도 참여한다.샌프란시스코=김유영 기자 abc@donga.com}
박정호 SK텔레콤 사장과 황창규 KT 회장이 12일부터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이동통신 박람회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아메리카 2017’에 참석해 5G와 인공지능(AI) 핵심 기술 알리기에 나선다. MWC 아메리카는 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GSMA)에서 주관하는 세계 최대 모바일박람회 MWC의 북미 지역판으로, 미국에서 열리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첫해 주제는 ‘더 테크 엘리먼트(The Tech Element·기술 요소)’로 5G, AI, 가상현실(VR) 등 미래 통신 기술이 부각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기업으로는 삼성전자, KT 등 2곳이 부스를 마련한다. KT는 GSMA 전시관에 AT&T, 델, 마스터카드 등 글로벌 기업들과 함께 참가한다. 기가 와이어, KT-MEG(인공지능 기반 전력관리 플랫폼) 등 혁신 기술과 스키점프 VR 등 다양한 5G 기술을 홍보할 계획이다. SK텔레콤은 별도 부스 전시 없이 박정호 사장이 MWC 현장을 직접 방문해 국내외 기술 동향을 살펴본다. 국내 대표 통신사 2곳의 최고경영자(CEO)들이 MWC 전시장 밖에서 벌이는 경쟁도 뜨거울 것으로 보인다. 박 사장과 황 회장은 MWC 개막 하루 전 열리는 GSMA 이사회에 참석해 글로벌 통신업계 현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올 6월 말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아직 표준이 정해지지 않은 5G 평가 잣대로 한국에 유리한 고주파수 대역을 포함시킨 만큼 국내 업체들의 5G 기술 홍보에 호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박 사장은 이번 출장에서 해외 디지털 지도 서비스 회사 및 이동통신업체 최고경영진과 만나 자율주행, AI 등의 기술 협력을 모색한다. SK텔레콤은 T맵 빅데이터 분석 알고리즘, 5G V2X(차량사물통신), 초정밀 위치측위 등 핵심 보유 기술을 바탕으로 5월 세계 최대 그래픽처리장치(GPU) 기업 엔비디아와 자율주행차 공동 개발 협약을 맺기도 했다. SK텔레콤은 이달 안에 영국 런던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혁신 기술을 가진 해외 벤처와 스타트업을 발굴하는 ‘글로벌 모바일 오피스(GMO)’를 설립하는 등 해외 기술 공조를 강화할 방침이다. 박 사장은 평소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다양한 파트너와의 장벽 없는 협력이 중요하다”며 ‘뉴 정보통신기술(ICT)’ 생태계 구축을 강조해왔다. 황 회장 역시 미국 서부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글로벌 ICT 기업들을 찾아 AI, VR 등 4차 산업혁명 핵심 기술들을 점검한다. 이후 동부로 넘어가 보스턴 기가 와이어 개통식, 뉴욕 브로드밴드 위원회에 참석한다. 특히 브로드밴드 위원회에서는 로밍 데이터로 감염병 오염국가를 방문한 사람을 미리 파악하는 KT의 ‘빅데이터 활용 감염병 확산 방지’ 전략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호소할 계획이다.샌프란시스코=김유영 기자 abc@donga.com}
“동료 닭들과 사이가 어땠나요?” 미국 포틀랜드의 한 레스토랑. 한 커플이 닭요리를 주문하며 종업원에게 묻는다. 처음엔 닭의 품종과 사육지역을 물어보더니 유기농 인증 여부, 닭이 먹은 음식, 사육장 크기 등을 꼬치꼬치 캐묻는다. 종업원은 닭의 계보와 사육 이력을 줄줄 읊어줬지만 그래도 만족하지 못한 이들. 급기야는 닭들의 친밀도와 스트레스 수준까지 물어본다. 종업원이 머뭇거리자 이들은 ‘닭들이 어떻게 자랐는지 직접 확인하고 오겠다’며 농장을 찾아가고야 만다. ‘힙스터의 성지’로 통하는 포틀랜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미국드라마 ‘포틀랜디아’의 한 장면이다. 음식에 유난 떠는 힙스터를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과장해서 그렸다. 미국은 공장식 축산의 대표 국가로도 꼽히지만 최근엔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음식에 신경 쓰는(food-conscious) 소비자들이 급증하면서 이들에게 부응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대표적인 곳이 아마존이 최근 인수한 유기농 슈퍼마켓인 ‘홀푸드’다. 이곳은 고기를 납품하는 농장주들에게 밀집 사육을 금지하고 항생제, 성장촉진제 등을 쓰지 못하게 한다. 매장에선 가축의 방목 여부, 가축 이동의 자유도 등 100여 개의 기준을 따져 동물복지 등급을 5개로 자체적으로 매겨서 판다. 판매대에는 축산업자의 얼굴과 농장 사진 등이 함께 있다. 소비자들은 정부의 일률적인 유기농 인증 마크에 기대지 않고, 자신이 먹을 고기가 어떤 환경에서 사육됐는지 등을 살핀다. 시중 가격보다 20% 정도 비싸도 기꺼이 구입한다. 축산 시스템 관리 수준을 넘어서 기술적 혁신을 도입하려는 사례도 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클린미트(청정고기) 운동에 동참하기로 하고 고기 스타트업인 멤피스미트에 거액을 투자했다. 이곳은 동물의 자기복제 세포를 배양해 단백질로 이뤄진 인공 고기를 만든다. 게이츠는 식물 단백질로 스테이크를 만들거나 콩 성분으로 쇠고기 버거를 만드는 기업에도 투자한 바 있다. 스스로 생태적 축산을 실천하는 기업가도 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는 채식을 원칙으로 하지만 불가피하게 육식해야 할 때에는 자신의 뒷마당에서 직접 도축한 고기만 먹는다. 국내에서도 살충제 계란 파동을 계기로 음식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높다. 한국의 1인당 육류 소비는 1970년 5.2kg에서 2010년 41.1kg으로 8배로 폭증했다. 같은 기간 인구는 1.5배로 늘었을 뿐이다. 좁은 땅에서 ‘싸게 많이’ 생산하기 위해 밀집 사육이 불가피해진 이유다. 실제로 닭들의 사육환경은 썩 유쾌하지 않다. A4용지 한 장도 안 되는 공간에 닭들을 가둬 키우다 보니 닭똥에서 암모니아 가스가 나와 호흡기 질환에 걸리거나 벼룩 빈대 진드기 등으로 살충제를 쓸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가 발전한 만큼 음식에 대한 감수성도 높아져야 하지만 그 속도가 더뎠다고 지적한다. “당신이 먹는 것이 바로 당신이다(You are what you eat)”라는 말이 있다. 그간 먹은 음식들이 바로 당신의 몸을 만든다는 뜻이다. 싸고 많은 식재료를 생산하는 공장식 축산에 익숙해지면 결국 자신이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무조건 싸면서 좋은 음식이란 없다. 이제라도 음식과 식재료, 동물복지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소비자의 의식이 올라가면 기업들도 그에 맞게 대응할 것이다. 농장에 있는 닭들의 안녕(安寧)을 묻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김유영 산업부 차장 abc@donga.com}
“4차 산업혁명과 같은 초(超)연결시대에 통신은 물과 공기 같다. 통신시장이 포화된 상태에서 통신사들이 통신비로 수익을 만드는 구조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 통신비 인하를 둘러싸고 이동통신사들에 대한 압박이 전방위로 높아지는 가운데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8일 본보 기자와 만나 통신비 인하의 필요성을 작심하듯 쏟아냈다. 이달 11일 취임 한 달을 맞는 유 장관이 언론과 단독으로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 장관은 9월부터 선택 약정 할인율 인상(20%→25%)을 예정대로 실시할 방침임을 재차 강조하면서 “선택 약정 할인은 신규 가입자뿐 아니라 기존 가입자도 함께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통신사들과의 갈등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9일 이동통신 3사는 선택 약정 할인율 인상안에 부정적인 입장을 담은 의견서를 각각 제출했다. 의견서에는 정책의 법적 근거가 부족하고 협의 등의 절차가 잘 지켜지지 않은 점, 미래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을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유 장관은 “통신비 인하로 이통사 수익이 당장은 줄더라도 새로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각오로, 정부 정책에 협조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4차 산업혁명은 누가 주도권을 쥐는지가 중요한 싸움이다. 5세대(5G)를 바탕으로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자율주행 드론 빅데이터 등을 활용한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이 나올 텐데, 기업과 정부가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정부가 국가적인 인프라를 지원하는 대신 통신사는 미래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이는 통신사가 전화요금이나 기존 망의 데이터 매출로 수익을 거두는 것보다 신규 서비스 개발에 역점을 둬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5G는 기존 4G보다 20배 빠른 속도 등이 특징인 차세대 통신 기술로, 한국은 내년 2월 평창겨울올림픽 때 시범 적용한다. 통신장비업체인 에릭슨엘지는 5G 도입으로 이동통신사들이 신규 서비스 등으로 2026년까지 1조2330억 달러(약 1400조 원)의 매출이 늘 것으로 봤다. 유 장관은 과기정통부를 과학기술 컨트롤타워로 만들고 4차 산업혁명을 이끌기 위한 구상도 함께 밝혔다. 우선 ‘4차 산업혁명위원회’를 가능한 한 빨리 출범시킬 예정이다. 그는 “당초 민관학 각 10명씩 약 30명으로 꾸릴 예정이었지만 민간 비중을 높여 현장 의견을 많이 수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과기정통부가 연 20조 원에 육박하는 연구개발(R&D) 예산을 관할하는 것과 관련해 “기존에 관행적으로 해왔던 연구를 재검토해서 R&D 예산을 효율적으로 쓰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기존 연구를 △그간 해온 방식대로 계속할지 △수정해서 계속할지 △중단할지 등 어떻게 할지를 따지는, 가칭 ‘우짤래 프로젝트’를 해볼 계획이다. 9일 달탐사 프로젝트를 2018년에서 2020년으로 늦춘 것을 시작으로 현실적으로 수행이 힘든 과제 등을 재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과제 성공률이 97%, 98% 등 지나치게 높은 게 비현실적이다. 기초연구의 성공률은 통상 20% 정도지만, 일단 시작된 과제는 발의자가 실패의 두려움 때문에 그대로 끌고 가려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그는 “중단 과제의 책임자는 면책해서 실패의 책임을 묻지 않되 실패한 연구 산출물을 공유하는 등 세금을 잘 쓰는 방안을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유 장관은 ‘소프트웨어(SW) 강국’을 만들기 위해 공공 SW 시장 개선에도 역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필요하면 감사원이 개입할 수도 있다”고 밝혀 공공 SW 시장에 대한 감사 가능성을 시사했다. “10여 년 전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장(2006∼2008년) 시절 SW 강국을 만든다 했는데, 바뀐 것이 없다. 개발자들은 강도 높게 일하고 저가 발주가 이어지고 있다.” 그는 “국내 SW 시장이 ‘아직도 왜’ 개선되지 않았는지 살펴본다는 뜻에서 ‘아직도 왜’라는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현황 분석을 한 뒤 개선안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김유영 abc@donga.com·신동진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대표 공약으로 꼽히는 통신비 인하를 위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가 잇달아 통신 3사를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다. 통신비 인하의 주무부처인 과기정통부 유영민 장관은 8일 본보 기자와 만나 “통신사들이 통신비로 돈 버는 시대는 끝났다”며 “포화 상태에 이른 통신시장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개발로 미래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공정거래위원회도 9일 국내 이동통신 3사의 요금제 담합 의혹과 관련해 조사에 착수했다. 공정위는 이날 통신사 3곳에 조사관들을 파견해 현장 조사를 벌였다. 참여연대는 올해 5월 “통신 3사가 데이터 요금제를 담합한 의혹이 있다”며 공정위에 신고한 바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역시 이날 통신 3사가 약정할인 기간이 끝나는 가입자에게 요금약정 할인 제도를 제대로 고지하고 있는지 25일까지 실태점검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은 이날 “통신시장의 투명성을 강화해 가계통신비 부담을 줄여 나가겠다”고 밝혔다. 통신업계는 정부의 이런 움직임을 9월부터 과기정통부가 추진 중인 ‘선택약정요금 할인율 25% 상향’을 위한 전방위 압박카드로 받아들이고 있다. 통신사들은 할인율 상향이 법적 근거가 없다며 행정소송을 검토하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김유영 abc@donga.com·신수정 기자}
요즘 서울 도심에선 ‘재벌 곳간 열어서 지금 당장 시급 만원’, ‘노동 소득이 늘어야 자영업자의 내일이 열립니다’라는 구호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 결정을 앞두고 민주노총이 내건 현수막에 쓰인 내용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공약에서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올리겠다고 약속한 가운데 노동계는 당장 시행하라며 압박하고 있다. 사용자 측이 내건 최저임금은 전년보다 2.4% 오른 6525원이다. 1만 원이 되면 인상률은 54.6%로 껑충 뛴다.노동계의 요구대로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올리면 최저 수준의 생활은 보장될까. 이 궁금증을 해결하려면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의 사례를 참조할만 하다. 시애틀은 시간당 최저임금을 2015년 9.47달러에서 11달러로, 2016년 11달러에서 13달러로 잇달아 올렸다. 워싱턴주립대는 그 효과를 분석해 최근 발표했는데, 결과는 예상과 정반대였다. 저임금 근로자(시간당 19달러 미만)의 월 소득이 125달러(6.6%)로 줄어든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시간당 임금은 3.1% 늘었지만, 근로시간이 9.4% 감소한 게 직격탄이 됐다.아파트 경비원에게 2007년부터 최저임금을 적용한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노동경제학 권위자인 남성일 서강대 교수는 수도권 132개 아파트 단지에서 일하는 경비원들의 임금과 근로시간 등을 추적했다. 그 결과 2007년 경비원 임금은 10.9% 늘었지만, 고용은 3.5~4.1%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인건비 부담을 피해 경비원을 줄이고 폐쇄회로(CC)TV 등을 설치한 데에 따른 것이다. 남아 있는 경비원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고령자가 대부분이지만 업무는 늘어나서 만성 피로에 시달리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최저임금이 빈곤문제의 해결수단으로서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이 무조건 보호할 대상도 아니라는 연구도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노동패널을 이용해 최저임금과 빈곤정책에 대해 연구한 결과 최저임금을 받으면서도 빈곤층이 아닌 경우가 전체의 69.5%나 됐다.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 비율이 높아지는 등 맞벌이 가구가 증가하면서 ‘저임금 근로자가 곧 저소득층’이라는 등식이 깨진 것이다. 남편이 전일제 근로자로 일하고, 아내가 시간제로 소득을 보완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나타난 결과다. 현실이 이런 데도 빈곤문제 해결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최저임금 정책을 쓴다는 건 적절하지 않다. 윤희숙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최저임금제는 취약 계층을 지원하는 빈곤 해결 수단으로 인식되어 왔지만, 노동 시장과 가구 구조의 변화가 고려되지 못했다”고 지적할 정도다. 다시 민주노총의 현수막을 들여다보자. 최저임금 근로자의 98.2%가 중소기업에서 일한다. 최저임금을 주는 사용자 중 대기업은 극히 일부고, 최저임금 인상분 대부분을 영세 사업자들이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자영업자의 과당 경쟁 등으로 ‘가난한 사장님’들도 많은 게 현실이다. 당장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올리는 일보다는, 빈곤 위험에 처한 가구의 저임금 근로자들을 솎아내서 이들에게 근로소득에 대한 세금혜택을 확대하는 등 가구당 소득까지 감안해 빈곤층을 보호하는 게 더 효율적일 수 있다. 급변하는 산업 환경에서 기업들이 질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도록 기업 환경 개선에 나서는 일도 시급해보인다. 이런 현실을 무시한 채 ‘최저임금을 당장 1만 원으로 올려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선동일 수 있다. 김유영 경제부 차장 abc@donga.com}
최근 중국 대도시의 한 식당에서 밥값을 내려다 당황한 적이 있다. 계산대엔 ‘No Cash’란 문구가 붙어 있었다. 한국에서는 현금만 받는 식당은 봤어도 현금을 거부하는 식당은 없는데…. 알고 보니 이 식당은 모바일 결제만 가능하다고 했다. 다행히 동행한 중국인 친구가 스마트폰을 꺼내 우리의 카카오톡과 같은 모바일 메신저인 위챗에 있는 QR코드를 계산대에 대고 결제를 마쳤다. 친구는 “요새 지갑 없이는 다녀도 위챗 없이는 못 다닌다”고 말했다. 중국에서는 쇼핑과 공과금 납부, 택시 호출 등은 물론이고 대출이나 펀드 투자도 위챗으로 가능하다. 위챗에 충전한 돈으로 증권사 펀드를 골라 바로 투자할 수 있다. 단 1위안만으로도 가능해 인기가 높다. 인터넷 쇼핑몰의 상품평처럼 병원 의사에 대한 리뷰 등을 확인하고 병원 예약을 할 수도 있다. 위챗 사용자는 9억 명에 이르고 위챗을 운영하는 중국의 텐센트는 시가총액 세계 10위의 기업으로 급성장했다. 위챗의 성장엔 중국 정부의 규제 완화가 한몫했다. 2010년 비(非)금융회사의 온라인 결제 허용을 시작으로 은행이 독점했던 대출업 진입 규제 완화(2012년), 비금융회사의 펀드 판매 허용(2013년), 비금융회사의 무점포 온라인은행 허용(2014년) 등이 잇따랐다. 그 덕분에 중국은 지난해 4444억 달러(약 500조 원)의 핀테크 거래액을 올려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핀테크 강국이 됐다. 위챗의 경제적 파급력도 크다. 중국 정보통신학회에 따르면 위챗으로 직간접적으로 창출된 일자리는 지난해 1881만 개에 이른다. 전년보다 7.7% 늘어난 수준이다. 위챗 이야기는 일자리에 사활을 걸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 시사점을 준다. 문 정부는 일자리위원회 설치를 1호 업무 지시로 내린 뒤 일자리 상황판을 만들고 일자리 100일 플랜을 수립하는 등 다양한 일자리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2%가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무엇보다 일자리 숫자에 집착하는 모습은 아쉽다. 이런 식이라면 극단적으로 말해 농업이 효과적일 수 있다. 농업의 취업유발계수(31.2명·10억 원을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취업 인원)가 산술적으로 가장 높다. 농업의 특성상 노동집약적인 구조를 띠고 있어서다. 새 정부가 애써야 할 건 일자리 수보다는 변화하는 환경에 맞춘 혁신적인 일자리 창출이어야 한다. 그런 일자리는 갑자기 생겨나지 않는다. 규제 완화 등을 통해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활발한 국내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국내에서도 위챗까지는 아니지만 규제 완화가 큰 성공을 낳은 사례가 있다. 바로 화장품 업계다. 2012년 정부는 화장품 제조 시 허용 원료만 쓰도록 하는 포지티브 규제에서 금지 원료를 제외한 모든 원료를 원칙적으로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로 바꿨다. 이후 화장품 산업은 성장을 거듭하면서 ‘화장품 한류’가 생겨났다. 법 개정 이전 1조 원을 밑돌던 화장품 수출액은 지난해 5조 원에 육박할 정도가 됐다. 일자리 창출의 초점을 산업 경쟁력 강화에 맞춘다면 이런 사례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자동화가 가속화되고 국내 기업이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전체 일자리 수가 줄어드는 걸 바꾸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새로운 산업을 일구고 전체 ‘일자리 파이’를 키워야 한다. 세금을 투입해 일자리를 인위적으로 만들고 기존 파이 나누기에만 머물러선 한계가 있다. 보다 긴 안목에서 일자리 대책을 추진하길 당부한다.김유영 경제부 차장 abc@donga.com}
“기옥 씨는 고무장갑을 낀 채 청소도구함을 세워놓고 하루 업무를 시작했다. … 세제의 양과 종류, 쓰임은 모두 (인천국제공항)공사 내 시설환경 팀에서 정해줬다. 하지만 기옥 씨에게 월급을 주는 곳은 용역회사였다. 그래서 기옥 씨는 용역회사 쪽 사정과 공사의 상황을 둘 다 잘 몰랐다. 그리고 그건 회사가 바라는 바이기도 했다.” 김애란 작가의 단편소설 ‘하루의 축’은 인천공항 청소부인 기옥 씨의 우울한 하루를 담담하게 그려낸다. 전 세계 사람들의 배설물을 치우는 그는 승객들에게 ‘있어도 없는 사람처럼 여기는’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공항에서 꼭 필요한 일을 하지만 공사에 직접 고용되어 있지는 않다. 이런 기옥 씨가 현실에서는 공사 소속의 정규직으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달 12일 인천공항을 전격 방문해 ‘비정규직 제로(0) 시대’를 천명했고, 공사가 연내 비정규직 1만 명을 모두 정규직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의(善意)로 시작한 정책이 선의가 아닌 경우가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게 업무의 연속성이 있고 2년 이상 일한 비정규직 근로자는 정규직으로 전환하게 한 기간제법이다. 이는 오히려 수많은 비정규직을 양산했다. 지속 고용이 부담스러운 기업들은 근로자를 2년만 쓰고 내보낸 뒤 다른 직원을 채용하는 ‘직원 돌려 막기’를 했다. 간접고용의 직접고용 전환도 다르지 않다. 인천공항공사는 신규 채용을 줄이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문제는 다른 공공기관이나 민간기업이다. 인천공항공사는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1조 원에 육박해 직접고용 전환 부담이 비교적 덜할 것이다. 하지만 전체 298곳의 공공기관 중 37.2%(111곳·2015년 말 기준)가 적자를 내는 게 현실이다. 간접고용을 직접고용으로 전환하는 대신에 신규 채용 여력은 오히려 지금보다 더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벌써 나온다. 형편이 어려운 중소·벤처기업은 물론이고 민간은 사정이 더할 것이다. 문 대통령은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하기 전에 기관의 생산성 문제도 함께 따져봤어야 했다. 실제로 인천공항공사 초봉은 최고 수준이다. 공공기관경영정보 공개시스템에 공시된 공공기관 35곳의 신입사원 초봉 중 인천공항공사가 4215만5000원으로 가장 높다. 초봉이 비교적 많은 데다 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해마다 임금이 가파르게 올라가는 현 체제를 손보지 않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만 외친다면 어느 기관이건 이는 결국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은 더 이상 대선 후보가 아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선언이 달콤하게 들리지만 누군가에겐 독약이 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0년간 심화됐던 고질적 문제다. 그동안 공공기관의 정규직 임금이 어떻게 책정됐는지, 이들의 생산성이 임금에 합당한지, 왜 간접고용이 확산됐는지, 공공기관 방만 경영의 여지는 없는지 등을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순차적으로 추진해도 늦지 않다. 간접고용의 직접고용 전환을 위해 정규직과 노조의 양보가 필요함은 물론이다. 네덜란드는 1982년 노사정 대타협을 통해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 구조를 만들어냈다. 새 정부도 정책 왜곡을 최소화하면서도 노사정이 함께 힘을 모아 좋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큰 그림을 내놓길 기대한다. 이는 우리 사회에 ‘행복한 기옥 씨’가 더 많아질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김유영 경제부 차장 abc@donga.com}
국내 최고의 경제계 리더 양성 프로그램인 동아경제리더스아카데미(DELA) 5기의 글로벌 과정 수료식이 28일 중국 선전(深(수,천)) 장강경영대학원(CKGSB)의 선전캠퍼스에서 열렸다. CKGSB 교수진이 참석한 가운데 이날 열린 수료식에서 국내 금융사 및 기업 임원들로 구성된 DELA 원우들이 수료증을 받았다. 원우들은 27일부터 중국 경제의 현주소와 미래, 중국 기업의 성장 전략 등에 대한 CKGSB 교수진의 강연과 토론에 참여했다. 또 중국 정·재계, 금융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CKGSB 동문들과 교류하고 중국 최대 인터넷 기업인 텐센트 등 아시아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선전의 기업 현장도 방문했다. 샹빙 CKGSB 총장은 “중국 상하이가 계획경제 체제하에서 성장했다면 선전은 기업가정신을 바탕으로 젊은이와 인재가 몰려들어 혁신이 이뤄진 도시”라며 “선전의 독자적인 성공 모델이 확산된다면 중국 경제가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윈 알리바바그룹 창립자 등 중국의 스타 기업인들이 졸업한 CKGSB는 홍콩의 거부 리카싱 청쿵그룹 회장이 중국을 이끌 최고경영자(CEO)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한 경영대학원이다.선전=김유영 기자 abc@donga.com}
대통령선거가 보름 앞으로 다가오면서 대선 후보들의 공약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경제 분야 공약은 ‘일자리 공약 싸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년 일자리, 중소기업 취업, 비정규직 등의 키워드가 홍수를 이룬다. 하지만 공약 면면을 들여다보면 과연 ‘진짜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가장 많이 언급되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공공 일자리 81만 개 창출 공약.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부문의 공무원 일자리 17만4000개를 만들고, 사회서비스 공공기관과 민간수탁 부문에서 34만 개, 공공 부문 간접고용의 직접고용 전환과 근로시간 단축으로 30만 개를 창출하겠다는 게 골자다. 문제는 역시 재원이다. 전문가들은 공무원 평균 급여와 4대보험료 같은 간접비 등을 감안하면 연간 40조∼50조 원이 투입될 걸로 추산하고 있다. 단순 비교하자면 4년간 총 22조 원의 예산이 들어간 4대강 공사보다도 ‘고비용 정책’일 수 있다. 4대강 공사는 일회성인 데에 반해 공공 부문 채용의 상당 부분은 ‘지속 고용’을 전제로 한다. 공공 부문 일자리가 대체로 좋은 일자리(decent job)임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현재의 실업난이 과연 공공 일자리가 부족해서일까. 그보다는 상용직 절반에도 못 미치는(45.5%) 비상용직의 저임금, 혹은 대기업의 절반을 간신히 넘어서는(62.9%) 중소기업 저임금 등 ‘임금과 처우의 양극화’가 아닐까. 이를 간과한다면 좋은 일자리의 재원 부담을 나쁜 일자리에 종사하는 상당수의 민간이 떠안아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물론 대중소기업 임금 격차 해소를 내건 공약이 없지는 않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직원을 새로 채용하는 중소기업에 직원 1인당 최대 1200만 원씩 2년간 지원하겠다고 했다. 문 후보는 중소기업이 직원 3명을 채용하면 1명의 임금을 보전하는 ‘2+1 공약’을 내놓았다. 중소기업 인력난과 청년 실업을 해결하겠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이 역시 중소기업에서 저임금이 왜 고착화됐는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보인다. 대만의 아수스나 중국의 화웨이는 부품 공급 하청업체로 출발해 글로벌 기업이 됐지만 한국이었다면 가능했을까. 한국에선 여전히 대기업의 원가 하락 압력으로 중소기업이 납품가를 낮게 책정하고 이를 중소기업 직원들의 저임금으로 감당해내는 게 현실이다. 중소기업이 다른 경쟁업체에 부품을 공급할라치면 거래 중단 압박을 받거나 중소기업의 기술을 대기업이 가져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불공정 관행을 엄중하게 다스리지 않고 중소기업 임금을 보전하는 것은 일회성에 그칠 수 있다. 오히려 지원 기간이 끝난 후의 일자리와 임금의 보전을 약속할 수 없어 한시적인 중소기업 일자리를 대거 양산할 수 있다. 굳이 5년 안에 마무리 짓지 않아도 된다. 2, 3%대 성장이 고착화되는 이 저성장 시대에서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같은 단기적인 처방책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현실로 인정해야 한다. 경제엔 공짜가 없다. 오히려 단기 성과를 앞세우다 보면 풍선 효과처럼 예기치 않은 곳에서 누군가가 그 부담을 짊어지는 경우가 생겨난다. 수치를 앞세워 유권자를 현혹하는 공약보다도 나쁜 일자리를 ‘덜 나쁜 일자리’로 바꾸고 산업 체질을 튼튼하게 하는 공약이 우리에게 절실하다. 앞으로 남은 보름은 이를 감별하는 기간이 될 것이다.김유영 경제부 차장 ab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