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네타냐후, 전쟁 멈추지 않는 이유는‘가자 전쟁’이 개전 1년을 넘겼다. 막대한 인명 피해 속에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강경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가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전쟁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네타냐후는 이스라엘과 자신을 구분하지 않는다. ‘짐은 곧 국가’로 여기는 단계에 이르렀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75)를 다룬 다큐멘터리 ‘비비(네타냐후 총리의 애칭) 파일’을 만든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알렉시스 블룸 감독이 최근 프랑스24 방송에 한 말이다. 지난달 캐나다 토론토 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된 이 영화는 네타냐후 총리가 프랑스 절대 왕정을 대표하는 ‘태양왕’ 루이 14세 못지않은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역대 최장수 이스라엘 총리다. 1996년 6월∼1999년 7월 첫 집권, 2009년 3월∼2021년 6월 두 번째 집권, 2022년 12월부터 세 번째 집권 중이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후 76년간 네타냐후 한 사람이 17년 1개월간 총리를 지낸 것이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의 창립 편집자인 데이비드 호로비츠는 “네타냐후 총리의 오랜 집권으로 많은 이스라엘 젊은이들은 네타냐후의 동의어가 ‘총리’라고 여긴다”고 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오랜 집권 기간 동안 수많은 논란에 휩싸였다. 반대파 및 팔레스타인에 대한 가혹한 탄압은 물론 두 번째 집권 중인 2019년 11월 비리, 배임, 뇌물수수 혐의로 ‘이스라엘 역사상 최초로 형사 기소된 현직 총리’라는 오명도 얻었다. 그의 부인 사라(66), 아들 야이르(33) 등도 부적절한 처신으로 구설에 올랐다. 지난해 10월 7일에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으로 약 1200명이 숨지고 전쟁까지 발발했다. 1년을 넘긴 이 전쟁으로 인명과 재산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났지만 그는 여전히 총리직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네타냐후 총리는 레바논의 친(親)이란 무장단체 헤즈볼라에 대한 공격에도 나섰다. 한때 크게 떨어졌던 지지율은 다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여러 논란에도 네타냐후 총리의 입지는 왜 굳건한 걸까. 국제사회의 거듭된 만류에도 그가 폭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아가 네타냐후 총리는 어떤 성장 배경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팔레스타인 테러범에 형 잃고 ‘극우’ 성향 강해져네타냐후 총리는 1949년 ‘시온주의(유대인의 국가 건설을 위한 운동)’ 활동가 겸 역사학자 벤지온 네타냐후의 3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벤지온은 세 아들에게 “이스라엘이 주권 국가가 되려면 강한 군대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세 살 위 형 요나탄을 무척 따랐다. 그가 이스라엘군의 최정예 대테러 특수부대 ‘사예레트 마트칼’에 입대한 것도 먼저 이 부대에 입대했던 형의 영향이 컸다. 1976년 7월 ‘정치인 네타냐후’의 행보를 결정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프랑스 파리로 향하던 에어프랑스 항공기가 중간 기착지인 그리스 아테네에서 납치됐다.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 독일 적군파 소속인 테러범은 비행기를 아프리카 우간다의 엔테베 공항에 강제 착륙시킨 후 이스라엘 감옥에 수감된 동료들을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이스라엘은 인질 구출을 위해 ‘사예레트 마트칼’ 대원들을 우간다로 급파했다. 이들은 테러범 7명 전원을 사살했고 인질 대부분을 구출했다. 하지만 작전 중 1명의 이스라엘 군인이 숨졌다. 바로 작전을 지휘했던 당시 30세의 젊은 장교 요나탄이었다. 네타냐후 총리는 형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다. 팔레스타인은 ‘절대 화해할 수 없는 적’이라는 생각도 확고해졌다. 당시 하버드대 박사과정 학생이었던 그는 학업을 중단했고, 형의 이름을 딴 테러 연구소를 운영하고 관련 책을 여러 권 집필했다. 이때부터 미국 언론과도 활발히 접촉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10대 시절을 보냈고, 매사추세츠공대(MIT)를 졸업했고, 하버드대 대학원에도 다녔던 그는 유창한 영어로 미국 언론에 자신의 생각을 알렸다. 1978년 6월 네타냐후 총리가 미국 보스턴의 공영방송국 WGBH의 TV 토론회에 참석해 “미국은 팔레스타인의 자결권을 지지하면 안 된다”고 강조하는 모습은 아직도 회자된다. 당시 네타냐후 총리는 팔레스타인 국가 설립은 ‘미사여구’에 불과하며 “그들의 진짜 의도는 자신들의 국가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강경한 안보관을 바탕으로 그는 총리가 됐고, 총리직을 유지했다. 그는 “요르단강 서안(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의 유대인 정착촌(이스라엘 국민들에게 다양한 혜택을 주며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에 거주하게 만드는 정책)을 확대하겠다” “하마스를 붕괴시키겠다” 등 강경한 안보 공약을 내내 앞세웠다. 또 이를 바탕으로 적잖은 성과를 냈다. 많은 이스라엘 국민들이 “네타냐후가 이스라엘을 강하게 만들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이유다.● ‘최장수 총리’의 ‘안보 성과 내기’ 욕심 하마스와의 전쟁이 발발한 뒤에도 ‘안보는 네타냐후’란 인식은 이어지고 있다. 물론 전쟁 초기에는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막지 못했다”는 비판이 컸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올 7월 31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하마스 정치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를 암살하고, 지난달부터 레바논의 친이란 무장단체 헤즈볼라에 대한 강도 높은 공격에 나서면서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지지율이 빠르게 반등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이스라엘군이 보인 성과는 상당하다. 지난달 27일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를 암살했고, 3일에는 나스랄라의 사촌 겸 후계자인 하솀 사피엣딘도 살해했다. 나스랄라 암살 이틀 뒤인 지난달 29일 이스라엘 채널12가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3%가 “네타냐후 총리가 전쟁에 잘 대처하고 있다”고 답했다. 75세라는 고령에, 지난해 심장병 응급 수술까지 받아 언제 퇴임해도 이상하지 않은 네타냐후 총리는 이 기세를 몰아 ‘하마스와 헤즈볼라를 무력화시킨 총리’, ‘주적 이란에 승리한 총리’로 남겠다는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이스라엘 매체 하아레츠에 따르면 네타냐후 총리는 하마스와의 전쟁 1주년을 맞아 최근 열린 내각 회의에서 이스라엘이 현 전쟁을 부르는 명칭 ‘철의 검(Swords of Iron)’을 히브리어로 ‘굳게 서서’라는 뜻의 ‘코메미유트(Komemiyut) 전쟁’으로 바꾸자고 주장했다. 코메미유트 전쟁은 1948년 건국 당시 독립전쟁을 가리키는 말로 이스라엘 사회에서 특별한 상징성을 지닌다. 이번 전쟁에서의 승리를 건국에 비유한 셈이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은 “하마스와 헤즈볼라를 무력화시킨다면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특별한 총리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며 “네타냐후 총리는 정치적, 개인적 차원에서 모두 큰 성과를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또 “하마스와 헤즈볼라 무력화, 나아가 이란의 영향력 확장 전략을 저지할 수 있는 기회인 만큼 전쟁을 멈추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바이든 레임덕도 폭주 원인 네타냐후 총리가 강경 행보를 계속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배경으로는 올 7월 21일 미국 민주당의 대선 후보직에서 사퇴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사실상 ‘레임덕(권력 누수)’ 상태라는 점이 꼽힌다. 국제사회에서 이스라엘을 제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국가인 미국의 목소리도 통하지 않는 상황이라는 것.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도 “바이든 대통령은 레임덕 상태”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달 미국 측에 헤즈볼라와의 휴전을 지지한다는 식으로 밝혔지만, 유엔 총회가 열리는 기간에 나스랄라 암살을 감행했다. 미국이 휴전을 선호하고, 확전을 우려한다고 강조하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강경 정책을 유지한 것이다. 다음 달 5일 미국 대선에서 당선된 새 대통령이 네타냐후 총리의 확전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먼저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 겸 부통령과 네타냐후 총리의 관계는 그리 좋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올 7월 네타냐후 총리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해리스 후보는 네타냐후 총리의 의회 연설에 불참했다. 당시 CNN은 “해리스 후보의 불참은 바이든 행정부와 네타냐후 총리 간의 긴장된 관계를 보여 준다”고 분석했다. 해리스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외교 경험이 부족해 네타냐후 총리를 쉽게 제어하기 힘들 가능성이 높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네타냐후 총리가 오랜 기간 총리로 재임했고 다양한 미국 대통령과 협상하면서 미 정치인들보다 ‘워싱턴 게임(미 정치권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끌고 가는 전략)’에 더 능숙하다고 평가했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 겸 전 대통령이 재집권한다면 네타냐후 총리의 강경 기조에는 더 큰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후보는 집권 1기 네타냐후 총리와 내내 친밀한 관계였다. 이란 핵합의 탈퇴, 주이스라엘 미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 이스라엘과 아랍권 국가의 외교관계 정상화 지원 등 철저히 친이스라엘 행보를 보였다. 또 트럼프 후보의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는 유대계이며 맏딸 이방카는 쿠슈너와 결혼하며 유대교로 개종했다. 트럼프 후보는 7일 이스라엘의 이란 핵 시설 공격에 대한 질문에 “이스라엘은 (이란을) 공격할 자격이 있다”고 밝히는 등 이스라엘의 강경 대응을 지지해 왔다.● 감옥행 피하려 집권 연장 매진안보적 이유뿐 아니라 네타냐후 총리는 개인적인 이유로도 전쟁을 지속하는 게 유리한 상황이다. 그는 현재 뇌물수수, 사기, 배임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그는 2013년 말∼2014년 봄 친분이 두터운 이스라엘 부호 아르논 밀한의 미국 비자 연장을 위해 존 케리 당시 미 국무장관과 세 차례 통화를 가졌다. 그리고 밀한은 미국 비자 연장에 성공했다. 그 대가로 네타냐후 총리는 밀한에게서 20만 달러 상당의 샴페인·시가·보석 등을 받았다. 2014년에는 이스라엘 최대 일간지 ‘예디오트 아하로노트’ 소유주 아르논 모제스와의 막후 거래를 통해 자신에게 유리한 기사를 싣는 대가로 경쟁지 ‘이스라엘하욤’의 판매 부수를 제한하려는 시도를 했다. 또 2012∼2017년 대형 통신사 베제크에 5억 달러의 규제 완화 혜택을 주는 대가로 베제크 소유 언론사에 정적을 비판하는 기사를 게재하라고 요구했다. 이와 관련된 재판은 2020년 5월 시작됐지만 지난해 10월 하마스와의 전쟁이 발발한 후 사실상 중단됐다. 올 12월 2일 이후 재개된다지만 언제 1심 판결이 나올지조차 알 수 없다. 그가 전쟁을 지속하는 핵심 이유 중 하나는 재판을 최대한 지연하고 구속을 피하려는 의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법 리스크’에 노출돼 있는 네타냐후 총리는 2022년 12월 세 번째 집권 후 아예 ‘사법부 무력화’를 시도했다.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라도 국회 과반(61석)의 동의가 있으면 뒤집을 수 있고, 대법관 추천위원회의 인사 또한 대거 친정부 인사로 채우는 내용의 법안을 마련한 것. 재판에서 최종 유죄가 나올 것에 대비해 미리 ‘셀프 방탄용’ 입법을 했다는 비판이 거셌다. 전국적 반대 시위가 벌어졌지만 법안은 지난해 7월 의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올 1월 대법원이 “민주주의 국가인 이스라엘의 기본을 심각하게 훼손한다”며 파기 결정을 내리면서 법안은 무효화됐다. 이스라엘 전문가들은 네타냐후 총리가 결국엔 검찰과 협상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검찰과의 협상에서 우위를 확보하고, 여론의 도움도 받기 위해 최대한 안보 성과를 만들어내려 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프랑스24에 따르면 일부 전문가들은 하마스와의 전쟁을 성공적으로 끝낸 네타냐후 총리가 정계 은퇴를 약속하는 대가로 징역형을 피하는 거래를 시도할 것으로 보고 있다.네타냐후 총리의 가족 또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부인 사라 여사는 공금으로 사치를 부리다 벌금형을 받았다. 그는 총리 관저 요리사가 있는데도 2010∼2014년 예루살렘의 한 식당에서 연회 음식 35만 셰켈(약 1억2450만 원)어치를 부당하게 주문한 혐의로 2018년 기소됐다. 관저 직원들을 함부로 대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두 사람의 아들인 야이르도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하마스와의 전쟁이 시작된 뒤 해외에 거주하는 많은 이스라엘 젊은이들이 조국을 지키기 위해 귀국했다. 하지만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 거주하는 야이르는 현지에서 여전히 호화 생활을 즐기고 있다. 데일리메일 등에 따르면 그는 현재 월세가 5000달러인 마이애미의 고급 아파트에 살고 있다. 데일리메일은 야이르는 자신을 ‘이스라엘의 해리 왕자’라고 표현했을 만큼 응석이 심한 인물이라고 지적했다. 텔아비브대 중동학 박사인 성일광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교수는 “전쟁 중인 상태에서도 이스라엘에선 네타냐후 총리의 개인 비리와 가족 문제가 계속 부각되고 있다”며 “하마스, 헤즈볼라와의 전쟁이 마무리되면 네타냐후 총리의 개인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asap@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김윤진 기자 kyj@donga.com}
지난해 10월 7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전쟁이 발발한 후 줄곧 이견을 노출했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9일 통화를 갖고 최근 확대되고 있는 중동 분쟁 해결 방안을 논의했다. 두 정상의 통화는 올 8월 21일 이후 49일 만에 이뤄졌다. 미 백악관은 약 30분의 통화에 대해 “직접적이고 매우 생산적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달 1일 이스라엘을 공격한 이란에 대한 이스라엘의 보복 수위와 방법 등에 관한 언급이 없어 통화의 성과가 불분명하다는 평가가 많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이란에 반드시 보복하겠다며 “(보복 수위가) 치명적이고 정확하며 놀라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 등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통화에서 이스라엘이 레바논의 친(親)이란 무장단체 헤즈볼라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외교 협상이 필요하다는 뜻을 강조했다. 또 두 정상이 직접 또는 양국 안보팀을 통해 긴밀한 연락을 유지하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 총리실은 이날 두 정상 간 통화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그 대신 네타냐후 총리가 최근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 겸 전 대통령과 통화했다는 내용을 공개했다. 다음 달 5일 치러지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바이든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 겸 부통령을 견제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네타냐후 총리는 대통령 재임 중 주이스라엘 미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과 이란 핵합의 탈퇴 등 ‘친이스라엘 정책’을 구사한 트럼프 후보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트럼프 후보는 네타냐후 총리와의 통화에서 이스라엘의 헤즈볼라 공격을 “축하한다”고 했다. 미 국무부는 이례적으로 이스라엘의 레바논 지상전에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매슈 밀러 국무부 대변인은 “이스라엘이 레바논에서 시작된 ‘제한적 지상전’을 ‘본격적 지상전’으로 바꾸고 ‘점령’으로 바꾸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강경 대응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미 정치매체 액시오스는 네타냐후 총리가 10일 안보 내각을 소집한다고 보도했다. ‘중대한 군사 행동은 안보내각 표결을 거쳐야 한다’는 이스라엘 법에 따라 이날 회의를 통해 구체적인 이란 보복 방안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란 군사시설 공습, 고위급 인사 암살 등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맞서 이란은 휴전을 위한 외교전에 나섰다. 이날 중동 순방을 시작한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교장관은 ‘시아파 종주국’ 이란과 전통적으로 긴장 관계인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만났다. 아라그치 장관은 이어 카타르도 방문할 예정이다. 카타르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을 비롯해 다양한 중동 분쟁 관련 중재와 협상을 주도해 왔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지난해 10월 7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전쟁이 발발한 후 줄곧 이견을 노출했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9일 통화를 갖고 최근 확대되고 있는 중동 분쟁 해결 방안을 논의했다. 두 정상의 통화는 올 8월 21일 이후 49일 만에 이뤄졌다. 미 백악관은 약 30분의 통화에 대해 “직접적이고 매우 생산적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달 1일 이스라엘을 공격한 이란에 대한 이스라엘의 보복 수위와 방법 등에 관한 언급이 없어 통화의 성과가 불분명하다는 평가가 많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이란에 반드시 보복하겠다며 “(보복 수위가) 치명적이고 정확하며 놀라울 것”이라고 강조했다.타임스오브이스라엘 등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통화에서 이스라엘이 레바논의 친(親)이란 무장단체 헤즈볼라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외교 협상이 필요하다는 뜻을 강조했다. 또 두 정상이 직접 또는 양국 안보팀을 통해 긴밀한 연락을 유지하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 총리실은 이날 두 정상 간 통화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네타냐후 총리가 최근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 겸 전 대통령과 통화했다는 내용을 공개했다. 다음달 5일 치러지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바이든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 겸 부통령을 견제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네타냐후 총리는 대통령 재임 중 주이스라엘 미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과 이란 핵합의 탈퇴 등 ‘친이스라엘 정책’을 구사한 트럼프 후보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트럼프 후보는 네타냐후 총리와의 통화에서 이스라엘의 헤즈볼라 공격을 “축하한다”고 했다.미 국무부는 이례적으로 이스라엘의 레바논 지상전에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매슈 밀러 국무부 대변인은 “이스라엘이 레바논에서 시작된 ‘제한적 지상전’을 ‘본격적 지상전’으로 바꾸고 ‘점령’으로 바꾸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예아니너 헤니스-플라스하르트 레바논 주재 유엔 특별조정관도 미국과 프랑스가 주도한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의 3주간 휴전 제한을 두고 “여전히 유효하고 의미가 있다”며 휴전을 촉구했다.하지만 이스라엘은 강경 대응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미 정치매체 액시오스는 네타냐후 총리가 10일 안보 내각을 소집한다고 보도했다. ‘중대한 군사 행동은 안보내각 표결을 거쳐야 한다’는 이스라엘 법에 따라 이날 회의를 통해 구체적인 이란 보복 방안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란 군사시설 공습, 고위급 인사 암살 등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갈란트 장관도 군사정보국 산하 9900부대를 찾은 자리에서 “이란이 (우리 보복을 받으면)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며 보복이 이뤄질 것임을 내비쳤다.이에 맞서 이란은 휴전을 위한 외교전에 나섰다. 이날 중동 순방을 시작한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교장관은 ‘시아파 종주국’ 이란과 전통적으로 긴장 관계인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 무함마드 빈살만 알 사우드 왕세자와 만났다. 아락치 장관은 이어 카타르도 방문할 예정이다. 카타르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을 비롯해 다양한 중동 분쟁 관련 중재와 협상을 주도해왔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레바논의 친(親)이란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2인자인 나임 카셈 사무차장이 8일(현지 시간) “나비 베리 레바논 의회 의장이 ‘휴전’이라는 명목으로 이끄는 정치 활동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전쟁이 발발한 뒤 줄곧 ‘하마스와의 전쟁 중단’을 이스라엘과의 교전 중단 조건으로 내걸었던 헤즈볼라가 처음 이를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 무선호출기(삐삐) 동시 폭발 테러, 레바논 전역에 대한 공습, 지상군 투입 등 최근 3주간 이스라엘의 대규모 공격으로 코너에 몰린 헤즈볼라가 사실상 이스라엘에 굴복한 모양새란 평가가 나온다. 이미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전 수장 하산 나스랄라, 차기 수장 하솀 사피엣딘 등 주요 지휘관들이 대부분 사망한 상태다. 또 미사일과 로켓 발사대, 침투용 땅굴, 무기고 등 군사시설도 대거 파괴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하마스와 헤즈볼라 무력화’를 강조하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강경 일변도 정책을 고수할 뜻을 분명히 했다. 미 정치매체 액시오스는 네타냐후 총리가 9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통화를 갖고 1일 이스라엘 본토를 미사일로 타격한 이란에 대한 보복 수위를 논의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 “헤즈볼라, 이스라엘 ‘힘’에 굴복” 8일 CNN에 따르면 카셈 사무차장은 비공개 장소에서 녹화된 영상 연설을 통해 “(이스라엘과의) 휴전이 성사되고 외교의 장이 열리면 다른 세부 사항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은 이 발언을 두고 카셈 사무차장이 지난해 10월 전쟁 발발 후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편에 서겠다”고 했지만 이제 그 연결고리를 끊었다고 평가했다. 무선호출기 테러, 헤즈볼라 고위 인사 암살 등에 나선 이스라엘이 확실한 우위를 점했다는 의미다. 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도 “최근 1년간 전 세계가 요구한 휴전에 동의하지 않던 헤즈볼라가 갑자기 말을 바꿔 휴전을 원한다”며 “헤즈볼라의 입장이 불리해졌음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이스라엘 채널12 방송은 미국과 아랍 주요국이 중동의 휴전을 위해 헤즈볼라, 하마스를 지원하는 이란과 비밀 회담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은 이란과의 휴전 조건으로 “이스라엘 국경과 가까운 레바논 남부가 근거지인 헤즈볼라를 레바논 리타니강 북쪽으로 이동시키고, 국경 일대에 있는 헤즈볼라의 주요 군사 기지를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헤즈볼라의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력을 사실상 제거하는 조치로 이란이나 헤즈볼라가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이란 분석이 나온다.● 네타냐후, 강경 노선 고수 이스라엘은 강경 일변도의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당초 9일 미국 워싱턴에서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과 회담하기로 했던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의 방미 일정이 8일 전격 취소된 것은 네타냐후 총리의 반대 때문이라고 타임스오브이스라엘 등이 보도했다. ‘온건파’로 분류되는 갈란트 장관은 하마스에 붙잡힌 인질 귀환 등을 위해 조속한 휴전 등을 강조하며 네타냐후 총리와 줄곧 대립해 왔다. 네타냐후 총리가 이란에 대한 보복을 미국과 합의하기 전 갈란트 장관이 미국을 방문해 다른 목소리를 낼까 우려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남부에 지상군을 속속 추가 배치하는 등 지상전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레바논에 배치된 이스라엘군은 최소 2만 명으로 추산된다. 또 네타냐후 총리는 8일 연설에서 “헤즈볼라의 새 수장 하솀 사피엣딘이 3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숨졌다”고 밝혔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버튼을 누르면 수 분 안에 사망에 이르러 ‘죽음의 캡슐’(사진)로 불리는 조력사망기기 ‘사르코’를 운영하는 스위스 단체가 강한 반대에 부딪히며 기기 사용 중단을 선언했다. 6일 AP통신에 따르면 사르코의 판매와 운영을 맡고 있는 조력사망 옹호단체 ‘라스트 리조트’는 이날 “신규 신청자 모집을 중단한다”며 “현재까지 대기 명단에 올라 있는 371명의 조력자살 절차도 당분간 진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올 7월에 처음 공개된 사르코는 출시 기자회견에서 “단돈 18스위스프랑(약 2만8000원)을 내면 영원한 잠을 잘 수 있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사람 한 명이 누울 정도의 크기로, 뚜껑을 닫고 버튼을 누르면 질소가 뿜어져 나와 약 5분 안에 질식사한다. 기기 한 대당 가격은 1만5000스위스프랑이며, 개발에 60만 스위스프랑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사용된 건 지난달 23일이 처음이다. 면역 질환을 앓던 64세 미국인 여성이 스위스 메리스하우젠의 숲속에서 사르코를 이용해 목숨을 끊었다. 스위스는 조력자살에 전향적인 국가지만, 이 여성의 소식이 전해지면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스위스 정부는 “의료적 효용이 없다”며 사르코의 의료기기 승인 신청을 반려했고, 샤프하우젠 등 일부 지역은 아예 사용을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조력자살에 찬성하는 단체들도 “남용 위험이 크다”며 사르코 허용에 반대했다. 하지만 라스트 리조트는 사르코를 사용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했고, 스위스 경찰은 즉각 수사에 착수했다. 또 이 회사의 대표인 플로리안 빌레트는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빌레트는 미국인 여성이 숨질 당시 현장에서 이를 지켜봐 자살을 조장하고 방조한 혐의를 받고 있다. 스위스는 1942년부터 ‘조력자살’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불치병을 앓는 사람만 대상이 되고 의사와 2차례 상담하며 숙려기간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스위스 매체 SWI에 따르면 사르코는 50세 이상이 정신건강 진단서만 있으면 사용 신청이 가능해 스위스의 조력자살 제도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레바논의 친(親)이란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2인자인 나임 카셈 사무차장이 8일(현지 시간) “나비 베리 레바논 의회 의장이 ‘휴전’이라는 명목으로 이끄는 정치 활동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전쟁이 발발한 뒤 줄곧 ‘하마스와의 전쟁 중단’을 이스라엘과의 교전 중단 조건으로 내걸었던 헤즈볼라가 처음 이를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 무선호출기(삐삐) 동시 폭발 테러, 레바논 전역에 대한 공습, 지상군 투입 등 최근 3주간 이스라엘의 대규모 공격으로 코너에 몰린 헤즈볼라가 사실상 이스라엘에 굴복한 모양새란 평가가 나온다. 이미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전 수장 하산 나스랄라, 차기 수장 하솀 사피엣딘 등 주요 지휘관들이 대부분 사망한 상태다. 또 미사일과 로켓 발사대, 침투용 땅굴, 무기고 등 군사시설도 대거 파괴된 것으로 알려졌다.하지만 ‘하마스와 헤즈볼라 무력화’를 강조하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강경 일변도 정책을 고수할 뜻을 분명히 했다. 미 정치매체 액시오스는 네타냐후 총리가 9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통화를 갖고 1일 이스라엘 본토를 미사일로 타격한 이란에 대한 보복 수위를 논의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한 보복에 돌입하면 중동 정세는 더욱 격랑에 휩싸일 가능성이 크다.● “헤즈볼라, 이스라엘 ‘힘’에 굴복”8일 CNN에 따르면 카셈 사무차장은 비공개 장소에서 녹화된 영상 연설에서 “(이스라엘과의) 휴전이 성사되고 외교의 장이 열리면 다른 세부 사항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은 이 발언을 두고 카셈 사무차장이 지난해 10월 전쟁 발발 후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편에 서겠다”고 했지만 이제 그 연결고리를 끊었다고 평가했다. 무선호출기 테러, 헤즈볼라 고위 인사 암살 등에 나선 이스라엘이 확실한 우위를 점했다는 의미다.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도 “최근 1년간 전 세계가 요구한 휴전에 동의하지 않던 헤즈볼라가 갑자기 말을 바꿔 휴전을 원한다”며 “헤즈볼라의 입장이 불리해졌음을 보여 준다”고 평했다. 이스라엘 채널12 방송은 미국과 아랍 주요국이 중동의 휴전을 위해 헤즈볼라, 하마스를 지원하는 이란과 비밀 회담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은 이란과의 휴전 조건으로 “이스라엘 국경과 가까운 레바논 남부가 근거지인 헤즈볼라를 레바논 리타니강 북쪽으로 이동시키고, 국경 일대에 있는 헤즈볼라의 주요 군사 기지를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헤즈볼라의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력을 사실상 제거하는 조치로 이란이나 헤즈볼라가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이란 분석이 나온다.● 네타냐후, 강경 노선 고수 이스라엘은 강경일변도의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당초 9일 미국 워싱턴에서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과 회담하기로 했던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의 방미 일정이 8일 전격 취소된 것은 네타냐후 총리의 반대 때문이라고 타임스오브이스라엘 등이 보도했다. ‘온건파’로 분류되는 갈란트 장관은 하마스에 붙잡힌 인질 귀환 등을 위해 조속한 휴전 등을 강조하며 네타냐후 총리와 줄곧 대립해 왔다. 네타냐후 총리가 이란에 대한 보복을 미국과 합의하기 전 갈란트 장관이 미국을 방문해 다른 목소리를 낼까 우려했다는 해석이 나온다.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남부에 지상군을 속속 추가 배치하는 등 지상전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레바논에 배치된 이스라엘군은 최소 2만 명으로 추산된다. 또 네타냐후 총리는 8일 연설에서 “헤즈볼라의 새 수장 하솀 사피엣딘이 3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숨졌다”고 밝혔다.이스라엘군이 무인기(드론)와 저격수 등을 이용해 피란길에 오른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무차별 공격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하마스 공격을 위해 6일부터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북부 자발리야를 다시 포위 중인 이스라엘군이 자신들의 대피 명령에 따라 인도주의 구역으로 가던 피란민에게 발포했다는 것이다. 자발리야 주민 이타프 하마드 씨는 CNN에 “이스라엘군이 움직이는 건 모두 다 쏜다”며 “6일 숨진 조카의 시신을 수습하고 싶지만 외출은커녕 창문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버튼을 누르면 수 분 안에 사망에 이르러 ‘죽음의 캡슐’로 불리는 조력사망기기 ‘사르코’를 운영하는 스위스 단체가 강한 반대에 부딪히며 기기 사용 중단을 선언했다. 6일 AP통신에 따르면 사르코의 판매와 운영을 맡고 있는 조력사망 옹호단체 ‘라스트 리조트’는 이날 “신규 신청자 모집을 중단한다”며 “현재까지 대기 명단에 올라 있는 371명의 조력자살 절차도 당분간 진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올 7월에 처음 공개된 사르코는 출시 기자회견에서 “단돈 18스위스프랑(약 2만8000원)을 내면 영원한 잠을 잘 수 있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사람 한 명이 누울 정도의 크기로, 뚜껑을 닫고 버튼을 누르면 질소가 뿜어져 나와 약 5분 안에 질식사한다. 기기 한 대당 가격은 1만5000스위스프랑이며, 개발에 60만 스위스프랑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사용된 건 지난달 23일이 처음이다. 면역 질환을 앓던 64세 미국인 여성이 스위스 메리스하우젠의 숲속에서 사르코를 이용해 목숨을 끊었다.스위스는 조력자살에 전향적인 국가지만, 이 여성의 소식이 전해지면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스위스 정부는 “의료적 효용이 없다”며 사르코의 의료기기 승인 신청을 반려했고, 샤프하우젠 등 일부 지역은 아예 사용을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조력자살에 찬성하는 단체들도 “남용 위험이 크다”며 사르코 허용에 반대했다.하지만 라스트 리조트는 사르코를 사용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했고, 스위스 경찰은 즉각 수사에 착수했다. 또 이 회사의 대표인 플로리안 빌레트는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빌레트는 미국인 여성이 숨질 당시 현장에서 이를 지켜봐 자살을 조장하고 방조한 혐의를 받고 있다.스위스는 1942년부터 ‘조력자살’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불치병을 앓는 사람만 대상이 되고 의사와 2차례 상담하며 숙려기간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스위스 매체 SWI에 따르면 사르코는 50세 이상이 정신건강 진단서만 있으면 사용 신청이 가능해 스위스의 조력자살 제도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최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북부에서 지상전 공세를 강화한 이스라엘이 무인기(드론)와 저격수 등을 이용해 피난길에 오른 민간인들을 공격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일부 가자 주민들은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포위 소탕 작전을 펴면서 여성과 어린이 등 피란민에게도 마구잡이로 총격을 가하는 전쟁범죄을 일으키고 있다고 주장했다.미국 CNN 방송은 8일(현지 시간) 현지 주민들을 인용해 “가자 북부 자발리아의 한 도로에서 이스라엘군의 대피 명령에 따라 인도주의 구역으로 가던 피란민들이 대낮에 참변을 당했다”고 전했다. CNN에 따르면 주민 모하마드 술탄 씨가 촬영한 영상에선 하늘에서 드론 소리가 난 뒤 총알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도 들렸다. 해당 공격으로 9세 여아 1명 등 3명이 총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이스라엘군은 6일부터 자발리아를 완전히 포위했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 재건을 막기 위해 지상군을 투입했다”고 밝혔다. 카타르 알자지자 방송은 9일 다시 추가 병력이 투입돼 공격이 더 거세졌다며 “공습 또한 쉴새 없이 이뤄져 사상자 집계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자발리아 주민 이타프 하마드 씨는 CNN에 “이스라엘군이 움직이는 건 모두 다 쏜다”며 “6일 숨진 조카의 시신을 수습하러 가고 싶지만 외출은커녕 창문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해당 지역은 지난해 10월 가자 전쟁 발발 직후부터 지상군이 투입돼 폐허나 다름없지만, 아직 하마스대원들이 5000여 명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 BBC방송은 “이스라엘이 주민 수십만 명을 몰아낸 뒤 하마스를 말살하는 극단적인 작전을 펼친다는 의혹이 있다”고 전했다.이는 실제로 지오라 에일란드 전 이스라엘 총리실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달 4일 제안한 작전이다. 비인도적인 전쟁범죄라는 비난이 일었다. 하지만 이스라엘 공영방송 칸에 따르면 베냐민 네탸냐후 총리는 지난달 22일 이스라엘 의회 외교안보위원회와 만난 자리에서 “에엘린드의 계획이 합리적이라고 본다”며 “다른 옵션들과 함께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11월 미국 대선 승패를 가를 경합주 조지아주에서 한국계 유권자들이 경제 문제를 이유로 민주당에서 등을 돌리는 양상이 보인다고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가 7일(현지 시간) 조명했다. 2020년 대선 때 조지아주에서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재검표까지 가는 소동 끝에 트럼프 후보에 1만1000여 표 차(0.25%포인트)로 신승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 겸 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 겸 전 대통령이 오차범위 안 초접전을 벌이고 있어 판세를 점치기 어려운 지역이다. 조지아주는 주도(州都) 애틀랜타를 중심으로 한국계 유권자 수가 가파르게 늘어났다. 한국계 비중이 높은 애틀랜타 외곽 귀넷 카운티는 이른바 ‘공화당 텃밭’이었으나, 한국계 유입이 급격히 늘어난 이후 2016, 2020년 대선은 민주당 대선 후보가 앞섰다. 이 때문에 한국계가 이번 대선 승자를 가를 주요 변수로 주목받고 있다. 폴리티코는 “한국계가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와 맞물려 격화한 증오 범죄에 시달린 결과 혐오를 조장한 트럼프 후보 대신 바이든 대통령을 선택하는 등 친(親)민주당 성향을 보였다”며 “하지만 이번 선거를 앞두고 고물가와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로 민주당 지지가 약화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하지만 해리스 캠프는 한국계 이탈 조짐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폴리티코는 지적했다. 예를 들어 조지아주에서 방영되는 해리스 캠프 측 광고는 주로 트럼프 후보의 인종 차별 발언에 대한 내용이다. 유권자의 관심사와 어긋나는 이슈를 선거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뜻이다. 폴리티코는 “조지아에서 만난 한인 대다수는 해리스의 경제 정책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한편 미국 내 무슬림 인구가 가장 많은 동시에 이번 대선 경합주로 꼽히는 미시간주에서도 바이든 행정부의 이스라엘 지원에 대한 반발로 해리스 후보가 표심을 잃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뉴욕타임스(NYT)는 “미시간주 아랍계 유권자 20여명을 인터뷰한 결과 단 2명만 해리스 후보를 뽑겠다고 답했다”며 “해리스 후보에 대한 지지를 찾아보기 힘든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NYT에 따르면 제3당인 질 스타인 녹색당 대선 후보를 지지하거나 투표를 거부하겠다는 의견이 많았으나 일부는 “차라리 고립주의 노선을 강조하는 트럼프 후보를 뽑겠다”고 밝혔다.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었다면 푸틴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있을 것이다.”카멀라 해리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겸 부통령이 7일 CBS방송의 대표 시사 프로그램 ‘60분’에 출연해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 겸 전 대통령의 친(親)러시아 노선을 비판했다. 그간 트럼프 후보는 재집권하면 서둘러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시키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날 CBS는 트럼프 후보와의 별도 단독 인터뷰도 내보낼 계획이었지만 트럼프 측이 거부해 해리스 후보만 인터뷰에 응했다.해리스 후보는 이날 다음 달 5일 대선에서 승리하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우크라이나 전쟁을 어떻게 다룰지를 질문받자 “트럼프는 취임 첫날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한다. 그건 (우크라이나의) ‘항복’에 관한 것”이라고 답했다. 푸틴 대통령과 가까운 트럼프 후보가 대선에서 이기면 러시아가 현재 점령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영토를 갖는 등 러시아에 유리한 쪽으로 전쟁이 종결될 것이란 의미다.해리스 후보는 “우크라이나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발언권을 가져야 한다”며 우크라이나의 참여 없이 전쟁 종식을 위해 푸틴 대통령과 양자 회담을 갖지 않겠다고 했다. 다만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노력을 지원하겠느냐는 질문에는 “그 시점에 도달하면 처리할 것”이라며 즉답을 피했다.그는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신규 불법 이민자 수가 4배 늘었다는 지적에는 “출범 후 첫 법안으로 국경강화법을 의회에 제출했지만 트럼프가 법안을 폐지시키기 위해 의회 내 측근들에게 이를 저지하라고 시켰다”며 트럼프 후보와 공화당에 책임을 돌렸다.자신의 주요 경제 공약인 중산층 대상 주택 보조금, 아동수당 확대 등을 위한 재원은 부자 증세를 통해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자신은 “자본주의자”라고 강조했다. 자신을 ‘해리스 동지’라고 비꼬며 공산주의자로 몰아가는 트럼프 후보에 대한 반박을 풀이된다.해리스 후보는 이날 ‘글록’ 권총을 소유하고 있고 사격장에서 쏴본 적도 있다며 총기 소지의 자유를 지지하는 중도층 표심을 공략했다. 그는 최근 ‘총기 규제’ 대신 ‘총기 폭력으로부터 안전할 자유’라는 표현도 쓰고 있다.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7일(현지 시간) 1년을 맞은 ‘가자 전쟁’이 중동 전역으로 확전되는 양상을 띠며 다음 달 미국 대선 판도를 흔드는 ‘옥토버 서프라이즈(October surprise·10월의 이변)’가 될 수 있다고 영국 BBC가 전망했다. 중동 전쟁이 확대되며 이번 대선 결과를 좌우할 수 있는 변수로 부상했다는 뜻이다. 이스라엘이 최근 레바논으로 전선을 확대하고 인명 피해가 늘어나면서 이스라엘과 유럽 국가 간 갈등도 고조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5일 “외교적 해법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공급 중단 필요성을 주장하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곧바로 “부끄러운 줄 알라”며 반박했다. 한편 이스라엘은 7일 헤즈볼라와의 지상전이 벌어지고 있는 레바논 남부에 군대를 추가 투입하는 등 지상전 강도를 높이고 있다. 헤즈볼라와 하마스도 같은 날 이스라엘 갈릴리와 텔아비브 등으로 각각 35발과 5발의 로켓을 쐈다. 헤즈볼라의 차기 수장 하솀 사피엣딘은 3일 진행된 이스라엘의 공습 뒤 여전히 연락이 끊긴 상태다. 다만, 한때 연락이 끊겨 사망설이 제기됐던 에스마일 가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은 ‘건강한 상태’라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네타냐후, 미 대선 개입 의도 있어” 6일 공개된 CBS 시사프로그램 ‘60분’ 예고편에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겸 부통령은 사회자로부터 ‘미국은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영향력이 없느냐’ ‘이스라엘이 우방은 맞냐’ 등 압박성 질문을 연이어 받았다. 해리스 후보는 1일 이란이 이스라엘에 대규모 탄도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이스라엘이 방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미국의 의무”라면서도 “이스라엘에 인도주의 지원과 전쟁 종식을 위한 압박을 가하는 걸 멈추지 않겠다”는 원론적 답변만 내놓았다. 미 의회 전문 매체 더힐은 “민주당에선 네타냐후 총리가 해리스 후보의 패배를 바라며 ‘선거 개입’에 나섰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고 전했다. 민주당이 이 같은 우려를 표하는 건 네타냐후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 겸 전 대통령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이 같은 우려가 제기되자 조 바이든 대통령은 4일 백악관 브리핑에서 “나보다 이스라엘을 더 많이 도운 행정부는 없다. 하나도, 하나도, 하나도 없다”고 강조했다.● 프랑스 “무기 공급 중단”에 네타냐후 반발 프랑스 일간 르몽드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은 5일 앵테르 라디오에 출연해 “지금 최선의 선택은 정치적 해법으로 돌아가는 것과 (이스라엘의) 전쟁 수행에 필요한 무기 공급 중단”이라고 말했다. 프랑스는 그간 이스라엘에 공격 무기는 공급하지 않고, 군 관련 장비만 공급했는데 이 역시 중단을 고려하겠단 뜻으로 풀이된다. 네타냐후 총리는 즉각 “마크롱 대통령과 다른 서방 지도자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수출 금지를 요구하는 부끄러운 짓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음 날 마크롱 대통령은 네타냐후 총리와 통화를 하는 등 갈등 진화에 나섰지만 무기 공급 중단 주장을 철회하지는 않았다. 이스라엘은 사실상 레바논과의 국경인 ‘블루라인’ 인근에 주둔하는 유엔평화유지군 소속 아일랜드군에 철수를 요구하며 아일랜드와도 신경전을 벌였다. 마이클 히긴스 아일랜드 대통령은 5일 성명에서 “이스라엘이 유엔의 권한 아래에 있는 군대에 철수하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이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며 거부했다.이지윤 기자 asap@donga.com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의 삶을 다룬 드라마의 고증을 맡아 달라고 연락을 받았을 때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드디어 이런 시대가 왔구나. 이제야 일제강점기 역사가 관심을 받는구나’ 싶어서 감동, 사명감, 책임감 등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올해 4월부터 지난달 27일까지 일본 공영 NHK에서 방영된 드라마 ‘호랑이에게 날개’ 고증을 맡은 재일교포 3세 최성희 오사카산업대 국제학과 교수(47·사진)가 1일 동아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호랑이에게 날개’는 1930∼1960년대 1세대 여성 법조인의 일대기를 다뤘다. 특히 주인공인 ‘1932학번 6인방’에는 조선에서 온 유학생 최향숙이 포함됐다. 이 외 간토대지진 당시의 조선인 학살, 재일교포 차별 등도 다뤘고 조선인 단역도 등장했다. 흔히 ‘아사도라(아침 드라마)’로 불리는 NHK 아침 드라마는 63년 전통을 자랑한다. 이 드라마 또한 최종화 시청률이 18.7%를 기록했을 만큼 큰 사랑을 받았다. 이런 아사도라에서 조선인 주인공이 등장한 것 또한 처음이어서 큰 화제를 모았다. 최 교수는 “향숙을 포함한 재일 조선인의 굴곡진 인생은 역사적 사실과 어긋나지 않는다. 그래서 향숙이 일제에 협력한 인물로 그려지면 안 된다는 신념을 갖고 고증에 참여했다”고 강조했다. 역사 수정주의 세력, 우익 등이 목소리를 내는 상황에서 제작진이 큰 용기를 내 이 드라마를 제작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어 “드라마가 방영된 뒤 재일교포에 대한 일본 사회의 이해도가 높아졌다. 큰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일제강점기를 연구하는 최 교수는 한국을 자주 찾는다. 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변인에게 “한일 우호의 씨앗을 뿌리는 게 학자로서의 소명”이라고 강조한다. 실제 혐한 성향의 부모 밑에서 자랐다는 한 일본인 대학생은 2018년 자신의 ‘한국 근현대사’ 강의를 듣고 모르는 사실을 많이 알게 됐다며 종강일에 펑펑 울었다고 했다. “내 인생을 바꾼 강의”라는 말도 남겼다고 했다. 최 교수는 2020년 나라현에 방문해 1920, 30년대 일본 여자고등사범학교의 조선인 유학생들이 일본 장학사업가에게 보낸 편지를 연구했다. 이들은 대부분 조선으로 돌아와 교사가 됐고 후학 양성에 매진했다. 그는 “편지를 읽으며 100년 전 조선 여성이 ‘우리도 역사에 기록해 달라’는 부탁을 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최 교수를 포함해 한국을 연구하는 일본의 젊은 연구자들은 활발한 강연 및 소셜미디어 활동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은 일본인과 소통하려 하고 있다. 다만 아직도 일본의 주요 대학 내 한국 관련 교수 및 연구자 양성이 미비하다며 향후 양국이 협력해 더 많은 연구자를 키워야 한다고 주문했다. 1977년 홋카이도섬 삿포로에서 태어난 최 교수는 도쿄여대 사학과를 나와 ‘일본 내 한국 근대사 연구의 산실’로 꼽히는 히토쓰바시대로 진학했다. 이곳에서 동아일보 브나로드 운동(1931∼1934년) 연구로 석사, 1920, 30년대 일제강점기 중등교육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의 삶을 다룬 드라마의 고증을 맡아 달라고 연락을 받았을 때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드디어 이런 시대가 왔구나. 이렇게 겨우 일제강점기 역사가 관심을 받는구나’란 말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감동과 사명감을 느꼈습니다.”올해 4월부터 지난달 27일까지 일본 NHK에서 방영된 드라마 ‘호랑이에게 날개’ 고증을 담당했던 재일교포 3세 최성희 오사카산업대 국제학과 교수(47)는 1일 동아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63년 전통의 NHK 아침드라마(아사도라·평일 오전 7시 30~45분 방영) 코너에서 방영된 ‘호랑이에게 날개’는 1930~1960년대 일본 1세대 법조인 여성들의 일대기를 다뤘다. 지난달 27일 방영된 최종화 시청률이 18.7%를 기록했을 만큼 큰 사랑을 받았다. 드라마 주인공인 ‘1932학번 6인방’ 중에는 조선에서 온 유학생 최향숙이 포함돼 있었다. 또 조선인 단역들도 등장하고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재일교포 차별 등의 상황도 다뤘다.최 교수는 “향숙과 조선인들이 일본에서 경험하는 어려움을 정확하게 드라마 내용에 담아낼 수 있도록 제작진에게 조언했다”며 “향숙의 굴곡진 인생을 잘 드러내면서 동시에 일제에 협력했던 인물로 그려지면 안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작업했다”고 말했다. 이어 “역사 수정주의 세력과 우익들이 목소리를 내는 상황에서 제작진이 큰 용기를 내 제작한 드라마”라고 덧붙였다.대중매체에서 과거사를 다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 교수는 “역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침묵하지 않아야 미래의 불행을 하나라도 줄인다”고 강조했다.일제강점기를 연구하는 최 교수는 한국을 자주 찾는다. 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한일 우호의 씨앗을 뿌리는 게 학자로서의 소명”이라고 강조한다. 강연, 소셜미디어 활동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그의 노력은 의미 있는 성과로 나타나기도 했다. 혐한 부모 밑에서 자란 사범대생은 2018년 최 교수의 ‘한국 근현대사’ 강의를 듣고는 종강 날 “인생이 바뀌었다”며 펑펑 울었다.2020년 연구차 방문한 나라현에서는 특별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1920, 30년대 일본 여자고등사범학교의 조선인 유학생들이 일본 장학사업가에게 보낸 편지를 연구한 것. 이들은 대부분 조선으로 돌아와 교사가 됐다. 최 교수는 “편지를 읽다 보니 100년 전 조선 여성들로부터 ‘우리를 역사에 남겨 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만 같았다”고 말했다.최근 일본에서는 1세대 한국 근대사 연구자들의 바통을 이어받아 최 교수 같은 30, 40대 연구자들이 연구, 대중서 출판 등의 성과를 내고 있다. 최 교수는 “소수의 연구자가 활발히 활동해 대중의 관심에도 부응할 수준이 되었지만, 여전히 주요 대학 내 교수직이나 연구 과정은 미비한 실정”이라며 한일 양국이 협력해 근현대사 연구자 양성에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일본에서 나고 자랐지만 여전히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그를 한국인 교수로 본다. 최 교수는 “다행히 ‘호랑이에게 날개’가 방영된 뒤 재일교포에 대한 일본 사회의 이해도가 높아졌다”며 “제게 큰 보람을 줬고, 날개를 달아준 드라마였다”고 말했다.최 교수는 도쿄여대 사학과를 나와 ‘일본 내 한국 근대사 연구의 산실’로 꼽히는 히토쓰바시대에 진학해 동아일보 브나로드 운동(1931~1934년) 연구로 석사 학위를, 1920, 30년대 일제강점기 중등교육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호랑이에게 날개’에는 ‘고증 3인조’가 있었다. 최 교수, 연출을 맡은 안도 다이스케(安藤大佑·41) 프로듀서, 그리고 히토쓰바시대 대학원생 최예린 씨다.안도 프로듀서는 도쿄외대 조선어과를 나왔다. 서울대 언어학과 교환학생도 했다. 2005년 씨네21 인터뷰에 따르면 고등학생 때 영화 ‘쉬리(2000년)’와 ‘공동경비구역 JSA(1999년)’를 보며 한국어를 배워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그의 지인들이 입을 모아 “최 교수가 적격”이라고 추천해 연이 닿았다. 무려 방영 1년여 전인 지난해 7월의 일이다. 최 교수는 제작진이 역사 고증에 시간과 노력을 아낌없이 쏟아붓는 모습을 보며 믿음이 갔다고 했다.최 교수는 “기획안을 처음 봤을 때, 도쿄에서 법대에 다니는 친오빠(윤철)의 권유로 향숙 또한 유학을 결심했다는 설정에 놀랐다. 당시에 그렇게 일본 유학을 떠난 여성이 많다”고 했다.연극과 뮤지컬을 좋아하는 최 교수는 배우 이토 사이리(伊藤沙莉·30)가 주인공 ‘토라코’ 역할을 맡은 점도 눈여겨봤다. 2023년 일본에서 연극으로 각색된 영화 ‘기생충’에서 딸 기정 역할(연극에서 카네다 미키)로 무대에 오른 이토를 객석에서 지켜보며 “연기를 참 잘하는 배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윤철이 향숙에게 보낸 편지, 방화범으로 몰린 조선인 김현수의 편지 등은 안도 프로듀서가 초안을 쓴 뒤 최 씨와 최 교수가 1930년대 어문법에 맞춰 수정하는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관련 기사: ‘100년 전 조선인 학살’ 정면으로 담은 NHK 드라마 화제향숙처럼 일본에서 법률을 공부한 조선인 여성이 있었을까. 주인공 토라코의 모델이 된 일본 첫 여성 법조인 미부치 요시코 판사의 메이지대 1년 선배 중에도 있다. 부산여자경찰서장을 지낸 독립운동가 이양전 경감이다.다만 향숙과 이양전 경감은 다른 삶을 살았다. 향숙은 일본 경찰에 사상범이라는 의심을 받아 쫓기다 결국 귀국했다. 경성에서 법률 공부를 이어가다 사랑에 빠진 일본인 판사와 결혼했다. 그러나 양가 집안에 절연당하고 만다. 부부는 해방 후 일본으로 향했다. 향숙은 ‘시오미 쿄코’로 살아가며 외동딸 카오루를 키운다. 남편의 동료가 된 토라코와 우연히 재회하지만 “최향숙을 잊어달라”며 모질게 대했다.향숙의 행적을 두고 친일 행위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최 교수는 “재일교포 다수는 정체성을 숨길 수밖에 없는 사정을 안고 살아왔다. 한국에서는 한국인인 점을 숨길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외국인이라고 차별받고, 핏줄을 따지는 특유의 문화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는 점을 생각해 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각기 다른 인생의 고통을 안은 6인방은 친구들에게 개인사를 털어놓고 지지를 받으며 역경을 헤쳐간다. 그러나 향숙은 좀처럼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최 교수는 “오히려 리얼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지금도 재일교포가 자신의 배경에 대해 주변과 이야기하기 쉽지 않은 분위기라고 한다.향숙 부부는 대학생이 된 딸 카오루에게 향숙이 조선인임을 고백한다. 카오루가 “자신이 태어난 나라가, 핏줄이 창피해서 그랬냐”고 화를 내자 부부는 “아니다. 네가 괴로운 경험을 하지 않길 바래서 그랬다”고 말한다. 그러나 카오루는 어머니가 ‘가해자’ 쪽에 섰다며 마음의 문을 닫는다.얼마 뒤 카오루는 남자친구가 핏줄을 문제 삼아 이별을 통보한 사건을 계기로 어머니를 이해하게 된다. 카오루는 향숙의 친오빠 윤철을 찾아 도쿄로 모셔 온다. 덕분에 남매는 20여 년 만에 재회했다.향숙은 ‘최향숙’을 되찾기로 결심하고 남은 인생을 조선인 원폭 피해자를 변호하며 산다. 최 교수는 “정체성을 되찾아 자신의 삶을 살고, 카오루에게도 용기를 주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본다”고 했다.드라마에 등장하는 조선인은 향숙뿐만이 아니다. 주인공 토라코의 운명을 바꾼 닭꼬치를 쥐여준 암시장 상인도 조선인이다.최 교수도 몰랐던 ‘깜짝 등장’이었다. 드라마 오프닝 속 ‘김민수’ 이름을 보며 “설마 오사카 재일교포 극단 ‘달오름’의 김민수 대표인가, 뭐로 나오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로 김 대표가 출연해 재일교포 말씨로 일본어를 하자 최 교수는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토라코는 변호사가 됐지만 결국 포기했고, 남편까지 전쟁으로 잃어 완전히 낙심한 상태였다. 그러다 암시장에서 산 닭꼬치를 싸고있던 신문에 적힌 일본 헌법 14조를 읽고 희망을 되찾아 털고 일어난다. 드라마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1946년 공표된 일본 헌법 14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아래에 평등하여 인종, 신조, 성별, 사회적 신분, 가문에 따라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관계에서 차별받지 아니한다”는 내용이다.정작 김 대표가 연기한 상인은 헌법 14조에서 제외됐다고 한다. 재일교포는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따라 외국인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이 장면을 재일교포 역사의 비극성을 드러낸 명장면으로 꼽았다.조선인을 주인공으로 한 아사도라도 탄생할 수 있을까.“그런 기대도 하고 있습니다. 다만 일본에서 한국과 조선 이야기를 다루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한국 시청자들께서 부족함이나 위화감을 느끼신 부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시작이니 호의적으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리의 역사를 다룬 드라마가 일본에서 사랑받는 날을 몹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이스라엘과 이란의 석유 시설 공격을 논의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 시간) 이틀 전 이란의 탄도미사일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이 보복 차원에서 산유국 이란의 석유 시설을 공습하는 방안을 이스라엘 측과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발언으로 같은 날 미 뉴욕 상업거래소의 11월 인도분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도 5% 넘게 올라 한 달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유가 오름세가 심상치 않다. CNBC 등에 따르면 일부 원유 전문가들은 이스라엘과 이란의 교전이 장기화하면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까지 급등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앤드루 베일리 영국중앙은행(BOE) 총재 또한 중동 긴장 고조로 1970년대식 ‘오일쇼크’(석유 파동)가 발발할 가능성을 경고했다.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또한 이 여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신정일치 국가 이란의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는 4일 수도 테헤란에서 지난달 27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숨진 레바논의 친(親)이란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전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의 장례식을 주재했다. 이슬람 휴일인 금요일에 열린 이날 행사에서 하메네이는 사흘 전 이스라엘 공습이 나스랄라 사망에 대한 “최소한의 처벌”이었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필요하면 이스라엘을 다시 공격할 것”이라고 했다. 하메네이의 금요 예배 집전은 2020년 1월 미국에 암살된 가셈 솔레이마니 전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의 장례식 이후 4년 9개월 만이다.● “유가 200弗-오일쇼크” 우려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 백악관에서 취재진에게 ‘이스라엘이 이란의 석유 시설을 타격하는 것을 지지하느냐’는 질문을 받자 “논의하고 있다(in discussion)”고 답했다. 또 ‘(이란에 대한)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을 허용하느냐’는 질문에는 “이스라엘에 ‘허가’ 하는 게 아니라 ‘조언’ 하고 있다”며 보복을 막기 어렵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 발언이 알려진 후 WTI, 영국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브렌트유 가격은 각각 전일 대비 5.15%, 5.03%씩 오른 73.71달러, 77.62달러에 마감했다. 두 가격 모두 한 달 최고치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주요 회원국인 이란은 전 세계 일일 생산량의 약 4%인 하루 최대 40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한다. 특히 이란과 오만 사이의 호르무즈해협은 전 세계 원유의 주요 수송 통로로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상당량 또한 이 해협을 거친다. 이런 상황에서 이란이 이스라엘의 보복에 ‘맞보복’ 하기 위해 이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할 경우 전 세계 원유 유통 또한 큰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스웨덴 은행 ‘SEB’의 비야르네 쉴드롭 수석 상품분석가는 CNBC에 출연해 “이스라엘이 이란의 석유 시설을 공격하면 원유 가격이 배럴당 200달러까지 급등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베일리 총재 또한 “상황이 정말 나빠지면 원유 가격 상승을 막는 데 한계가 있다”며 오일쇼크를 우려했다.● 이, 헤즈볼라 새 수장 사피엣딘 암살 시도 이런 전망이 나오는 이유는 이스라엘과 이란의 교전이 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3일 헤즈볼라의 새 지도자로 유력한 하솀 사피엣딘을 겨냥한 공습을 단행했다. 사피엣딘은 나스랄라의 사촌이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사피엣딘이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 다히예의 지하 벙커에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이후 약 24km 떨어진 곳의 건물이 흔들릴 만큼의 대규모 공습을 단행했다. 사피엣딘의 생사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같은 날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인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사령관 자히 야세르 압드 알라제크 우피 또한 공습으로 암살했다. 그는 이틀 전 이스라엘 최대 도시 텔아비브에서 팔레스타인 남성 2명이 총기와 흉기를 휘둘러 시민 7명을 숨지게 한 테러의 배후로 꼽힌다. 헤즈볼라 또한 3일 “레바논 남부에서 이스라엘군 17명을 사살했다”고 맞섰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이스라엘과 이란의 석유 시설 공격을 논의하고 있다.”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 시간) 이틀 전 이란의 탄도미사일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이 보복 차원에서 산유국 이란의 석유 시설을 공습하는 방안을 이스라엘 측과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발언으로 같은 날 미 뉴욕 상업거래소의 11월 인도분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도 5% 넘게 올라 한 달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유가 오름세가 심상치 않다.CNBC 등에 따르면 일부 원유 전문가들은 이스라엘과 이란의 교전이 장기화하면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까지 급등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앤드루 베일리 영국중앙은행(BOE) 총재 또한 중동 긴장 고조로 1970년대식 ‘오일쇼크’(석유 파동)가 발발할 가능성을 경고했다.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또한 이 여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신정일치 국가 이란의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는 4일 수도 테헤란에서 지난달 27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숨진 레바논의 친(親)이란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전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의 장례식을 주재했다. 이슬람 휴일인 금요일에 열린 이날 행사에서 하메네이는 사흘 전 이스라엘 공습이 나스랄라 사망에 대한 “최소한의 처벌”이었다고 주장했다.특히 그는 “필요하면 이스라엘을 다시 공격할 것”이라고 했다. 하메네이의 금요 예배 집전은 2020년 1월 미국에 암살된 가셈 솔레이마니 전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의 장례식 이후 4년 9개월 만이다.● “유가 200弗-오일쇼크” 우려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 백악관에서 취재진에게 ‘이스라엘이 이란의 석유 시설을 타격하는 것을 지지하느냐’는 질문을 받자 “논의하고 있다(in discussion)”고 답했다. 또 ‘(이란에 대한)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을 허용하느냐’는 질문에는 “이스라엘에 ‘허가’ 하는 게 아니라 ‘조언’ 하고 있다”며 보복을 막기 어렵다는 뜻을 내비쳤다.이 발언이 알려진 후 WTI, 영국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브렌트유 가격은 각각 전일 대비 5.15%, 5.03%씩 오른 73.71달러, 77.62달러에 마감했다. 두 가격 모두 한 달 최고치다.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주요 회원국인 이란은 전 세계 일일 생산량의 약 4%인 하루 최대 40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한다. 특히 이란과 오만 사이의 호르무즈해협은 전 세계 원유의 주요 수송 통로로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상당량 또한 이 해협을 거친다.이런 상황에서 이란이 이스라엘의 보복에 ‘맞보복’ 하기 위해 이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할 경우 전 세계 원유 유통 또한 큰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스웨덴 은행 ‘SEB’의 비야르네 쉴드롭 수석 상품분석가는 CNBC에 출연해 “이스라엘이 이란의 석유 시설을 공격하면 원유 가격이 배럴당 200달러까지 급등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베일리 총재 또한 “상황이 정말 나빠지면 원유 가격 상승을 막는 데 한계가 있다”며 오일쇼크를 우려했다.● 이, 헤즈볼라 새 수장 사피엣딘 암살 시도이런 전망이 나오는 이유는 이스라엘과 이란의 교전이 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3일 헤즈볼라의 새 지도자로 유력한 하솀 사피엣딘을 겨냥한 공습을 단행했다. 사피엣딘은 나스랄라의 사촌이다.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사피엣딘이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 다히예의 지하 벙커에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이후 약 24km 떨어진 곳의 건물이 흔들릴 만큼의 대규모 공습을 단행했다. 사피엣딘의 생사는 확인되지 않았다.이스라엘은 같은 날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인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사령관 자히 야세르 압드 알라제크 우피 또한 공습으로 암살했다. 그는 이틀 전 이스라엘 최대 도시 텔아비브에서 팔레스타인 남성 2명이 총기와 흉기를 휘둘러 시민 7명을 숨지게 한 테러의 배후로 꼽힌다. 헤즈볼라 또한 3일 “레바논 남부에서 이스라엘군 17명을 사살했다”고 맞섰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이란이 1일(현지 시간) 이스라엘 본토의 군사기지 3곳에 극초음속미사일 ‘파타-1’을 포함해 180∼200여 발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진실의 약속(True Promise) 2’ 작전을 단행했다. 올 4월 미사일과 무인기(드론)로 이스라엘 본토를 공습한 ‘진실의 약속 1’ 작전을 감행한 지 6개월 만이다. 신정일치 국가인 이란의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는 2일 수도 테헤란에서 “미국과 몇몇 유럽 국가는 중동에서 나가라”고 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란에 “대가를 치를 것”이라며 보복을 예고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미군에 “이스라엘 방어를 지원하라”고 명령해 중동에 전운이 고조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2일 우리 국민의 철수를 위해 현지에 “군 수송기를 즉각 투입하라”고 지시했다.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주도한 이란 혁명수비대는 성명을 통해 이번 공격을 지난달 27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숨진 레바논의 친(親)이란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수장 하산 나스랄라와 혁명수비대 작전부사령관 아바스 닐포루샨, 올 7월 31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숨진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정치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의 죽음에 대한 보복이라고 규정했다. 이들은 모두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사망했다. 이번 공격을 놓고 혁명수비대는 “미사일의 90%가 목표물에 성공적으로 명중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스라엘 측은 대부분 요격됐다고 맞섰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이번 공격으로 이스라엘 최대 도시 텔아비브 등에서 최소 4명이 부상당했고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요르단강 서안에선 1명이 숨졌다. 양측의 전면전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 금융 및 원자재 시장도 요동쳤다. 2일 뉴욕상업거래소의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장중 한때 전일 대비 3.5% 오르는 등 급등 출발했다. 1일에도 장중 한때 5% 올랐다가 2.44% 상승 마감했다. 다만 2일 뉴욕 증시의 주요 지수는 소폭 하락 출발했다.‘저항의 축’ 붕괴위기에 이란 나서… 이스라엘 내부 “석유시설 보복”이란, 이스라엘에 미사일 200발 발사강경파, 하메네이 설득해 공격… 이스라엘, 다층 방어망으로 요격이란 “추가보복 안하면 공격 종료”… 이스라엘 “핵시설 등 파괴” 별러“이란이 강하게 보이는 방법은 이스라엘 직접 공격뿐이다.” 1일(현지 시간) 이스라엘 본토에 180∼200여 발의 탄도미사일로 직접 공격을 가한 배후에 신정일치 국가인 이란의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를 설득한 이란 내 강경파가 있다고 뉴욕타임스(NYT), 영국 더타임스 등이 분석했다. 이들은 지난달 27일 레바논의 친(親)이란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가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숨졌을 때부터 ‘강경 대응’을 주장했다. 경제난 해결과 서방과의 ‘핵 협상’ 재개 등을 강조하는 유화파가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반대했지만 하메네이가 최종적으로 강경파의 주장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강경파들은 최근 이스라엘의 맹공으로 중동 내 친이란, 반(反)이스라엘·반미국 무장세력을 의미하는 ‘저항의 축’에서 핵심 격인 헤즈볼라가 무력화되고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또 저항의 축 결집과 유지를 위해선 직접적이면서도 강경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이스라엘은 단거리미사일 방어체계 ‘아이언돔’, 중거리미사일 방어체계 ‘다윗의 돌팔매’, 탄도미사일 방어체계 ‘애로’로 구성된 ‘다층 방공망’을 가동해 이란이 발사한 미사일 대부분을 요격했다. 중동에 배치된 미군 구축함 2척도 12기의 요격미사일을 발사해 이스라엘 방어를 도왔고, 영국도 이 작전에 동참했다. 다만 이란의 미사일이 이스라엘 서부 헤르츨리야의 글릴로트 기지 인근에 최소 2발이 떨어졌다. 이곳은 모사드 본부로부터 1km밖에 떨어지지 않았다고 CNN은 전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란에 “대가를 치를 것”이라며 보복을 예고했다. 양측 모두 ‘강 대 강’ 전략을 고수하면서 중동의 전운이 고조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강경파, 하메네이 자택서 “이 공격” 주장 NYT 등에 따르면 나스랄라 사망 다음 날인 지난달 28일 이란 수도 테헤란의 하메네이 자택에서는 강경파와 유화파의 격론이 벌어졌다. 사이드 잘릴리 전 외교차관, ‘정부 위의 정부’로 불리는 이란 혁명수비대 수뇌부 등 강경파는 “이스라엘 즉각 공격”을 주장했다. 마수드 페제슈키안 대통령 등 온건파는 공격의 효과, 경제난 등을 우려해 반대했다. 온건파는 “네타냐후 총리가 광범위한 전쟁을 유발하기 위해 파놓은 함정에 말려드는 꼴”이라고 우려했다. 격렬한 토론이 오가는 과정에서 일부 온건파조차 “나스랄라와 같은 장소에서 숨진 아바스 닐포루샨 혁명수비대 작전부사령관 사망에 대응을 하지 않은 건 잘못”이라고 주장하자 결국 하메네이의 마음도 돌아섰다는 것이다. 하메네이는 4일 테헤란에서 예배도 직접 주관하기로 했다고 NYT는 전했다. 금요일인 이날은 이슬람의 안식일이다. 하메네이는 국가 안보에 관한 특별한 상황에서만 금요 예배를 집도한다. 다만 아바스 아라그치 외교차관은 소셜미디어 X에 “이스라엘이 추가 보복을 자초하지 않는다면 이란의 보복도 종료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공격이 ‘제한적 보복’이며 확전 의사는 없다는 점을 전달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스라엘 “이란 석유시설 등 보복” 하지만 이스라엘은 강경 대응을 분명히 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우리를 공격하면 누구라도 공격할 것”이라고 밝혔다. 온건파로 꼽히는 나프탈리 베네트 전 총리도 X에 “이란의 핵 프로그램과 에너지 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지금 행동해야 한다”며 강경 대응을 주문했다. 미 정치매체 액시오스도 이스라엘이 이란 석유 시설 공격, 주요 인사 표적 암살 등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지난달 30일 레바논 남부에 지상군을 투입한 이스라엘군은 현지에서 작전을 강화하고 있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 등에 따르면 2일 레바논 남부 오다이시 일대에서 이스라엘군과 헤즈볼라의 교전이 벌어져 최소 2명의 이스라엘군이 숨졌다. 이날 예멘의 친이란 무장단체 후티 반군도 이스라엘에 ‘쿠드스5’ 로켓을 발사하며 이란을 지원했다고 알자지라가 전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이란이 대량의 탄도미사일로 이스라엘을 공격한 1일(현지 시간) 중동에서 전쟁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며 국제 유가가 크게 올랐다. 유가는 2일에도 큰 폭의 오름세를 이어갔다. 안전자산인 금값도 1일 한때 사상 최고 수준까지 상승했다. 반면 증시와 가상화폐 시장은 크게 주저앉았다. 이날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1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이란의 미사일 발사 소식에 장중 한때 5.5% 이상 치솟았다. 이란의 공격이 끝난 뒤에야 전장 대비 1.66달러(2.44%) 오른 배럴당 69.83달러에 장을 마쳤다. ICE 선물거래소의 12월 인도분 브렌트유 역시 장중 한때 5%까지 상승했다가 전장 대비 1.86달러(2.59%) 상승한 73.56달러에 마감했다.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한 보복을 천명한 가운데 전문가들은 이란의 석유 인프라가 공격당할 경우 국제 유가가 더 오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 경제 매체 CNBC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가입국 중 세 번째로 생산 규모가 큰 이란이 갈등 당사자가 되면서 글로벌 원유 공급량의 최대 4%가 위험에 처하게 됐다”며 “공격을 받거나 더 큰 제재를 받으면 가격이 다시 배럴당 100달러로 치솟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WTI 가격은 2일에도 3% 이상 급등 출발했다. 중동 정세의 긴장 고조로 당분간 유가가 계속 상승 압력을 받을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안전자산에 수요가 몰리면서 금값은 크게 상승했다. 1일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금 선물 12월물은 온스당 0.9% 오른 2690.3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금 현물은 장중 사상 최고치인 2685.42달러를 기록했다. 반면 2일 시장에서는 소폭 하락했다. 국제 유가, 금값과 달리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커지면서 주식시장과 비트코인은 하락세를 보였다. 1일 뉴욕 증시의 주요 지수는 모두 하락 마감했다. 2일 주요 지수 또한 소폭 하락 출발했다. 비트코인은 1일 시장에서 한때 전날보다 5% 가까이 급락해 6만1000달러 선이 무너졌다.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이란이 이스라엘 본토에 180∼200여 발의 탄도미사일을 쏜 1일 이스라엘 최대 도시 텔아비브에서는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인 요르단강 서안지구 내 헤브론 출신의 팔레스타인 남성 2명이 총격 및 흉기 테러를 자행했다. 이로 인해 최소 7명이 숨지고 16명이 다쳤다. 일부 부상자는 중태에 빠져 사망자가 더 늘어날 수 있다. 두 남성이 레바논의 친(親)이란 무장단체 헤즈볼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하마스 등과 연루됐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실제 헤즈볼라는 2일 텔레그램 계정에 테러 당시 상황으로 추정되는 영상을 공유하며 “순교 작전 장면”이란 글을 올렸다. BBC, 타임스오브이스라엘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7시경 텔아비브 남부 야파의 한 경전철역 부근에서 아흐마드 하이마니(25), 무함마드 마스크(19)가 각각 소총과 흉기를 든 채 시민을 무차별 공격했다. 두 사람은 전철 안에서 총을 쏜 뒤 열차에서 내려 계속 공격을 가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두 사람이 승강장을 성큼성큼 걸어가다가 울타리 너머 도로로 총을 겨누거나, 거리에 쓰러진 피해자의 모습 등이 담긴 영상이 확산되고 있다. 마스크는 현장에서 사살됐고 하이마니는 중상을 입었다. 이 사건이 발생한 지 약 40분 뒤에는 이란이 이스라엘 군사 기지 3곳에 탄도미사일을 발사해 이스라엘 전역에 공습 경보가 울려 퍼졌다. 외신들은 “시민들이 방공호로 대피하는 동안 경찰들이 현장을 수습했다”고 전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두 남성은 테러 도중 아랍어로 ‘신은 위대하다’는 뜻인 “알라후 아크바르”를 외쳤다. 일간 하아레츠는 경찰 관계자를 인용해 두 사람이 범행 전 야파 인근의 이슬람 사원(모스크)에서 나오는 모습이 보안 카메라에 포착됐다고 전했다. 이에 군경이 해당 모스크를 조사하고 범행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검거했다고 덧붙였다. 야파 인구의 약 3분의 1은 아랍계로 알려졌다. 이스라엘의 극우 정치인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팔레스타인 탄압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은 “테러와 해당 모스크가 관련이 있다면 사원을 폐쇄하고 철거해야 한다”고 했다. 베잘렐 스모트리히 재무장관도 “두 범인의 가족을 가자지구로 추방하고, 그들의 집을 파괴하라”고 했다. 실제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공격을 이어갔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1일 밤∼2일 새벽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 일대에서 대규모 공습 및 지상전을 벌여 최소 51명이 숨지고 82명이 다쳤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이란이 대량의 탄도미사일로 이스라엘을 공격한 1일(현지 시간) 중동에서 전쟁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며 국제 유가가 크게 올랐다. 유가는 2일에도 큰 폭 오름세를 이어갔다. 안전자산인 금값도 사상 최고 수준으로 상승했다. 반면 증시와 가상화폐 시장은 큰 폭으로 주저앉았다.이날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이란의 미사일 발사 소식에 장 중 한때 5.5% 이상 치솟았다. 이란의 공격이 끝난 뒤에야 전장 대비 1.66달러(2.44%) 오른 배럴당 69.83달러에 장을 마쳤다. ICE 선물거래소의 12월 인도분 브렌트유 역시 장 중 한때 5%까지 상승했다가 전장 대비 1.86달러(2.59%) 상승한 73.56달러에 마감했다.이스라엘이 이란에 대한 보복을 천명한 가운데 전문가들은 이란의 석유 인프라가 공격당할 경우 국제 유가가 더 오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 경제매체 CNBC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가입국 중 세 번째로 생산 규모가 큰 이란이 갈등 당사자가 되면서 글로벌 원유 공급량의 최대 4%가 위험에 처하게 됐다”며 “공격을 받거나 더 큰 제재를 받으면 가격이 다시 배럴당 100달러로 치솟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WTI 가격은 2일 시장에서도 3% 이상 급등 출발했다. 중동 정세의 긴장 고조로 당분간 유가가 계속 상승 압력을 받을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안전자산에 수요가 몰리면서 금값은 크게 상승했다. 1일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금 선물 12월물은 온스당 0.9% 오른 2690.3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금 현물은 장중 사상 최고치인 2685.42달러를 기록했다.국제 유가와 금값과 달리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커지면서 주식시장과 비트코인은 하락세를 보였다. 1일 뉴욕 증시의 주요 지수는 모두 하락 마감했다. 2일 주요 지수 또한 모두 하락 출발했다. 비트코인은 1일 시장에서 한때 전날보다 5% 가까이 급락해 6만1000달러 선이 무너졌다.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레바논은 중동에서 보기 드문 다종교 국가다. 1970년대 중반까지 중동의 금융, 교육, 문화 중심지였던 수도 베이루트는 한때 ‘중동의 파리’로 불릴 만큼 개방성이 높은 도시였다. 또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에 유럽과 중동 문화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건축물로 유명해지면서 관광 산업도 발달했다. 하지만 1975∼1990년 내전이 발발하고 인접국의 패권 다툼에도 휩쓸리며 ‘중동의 화약고’로 전락했다. 최근에는 친(親)이란 무장단체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의 충돌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 종교는 레바논 사회의 주요 갈등 원인이다. 미국 국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약 530만 명인 레바논 국민의 종교 비율은 이슬람 시아파 32.2%, 수니파 31.2%, 기독교 30.5% 등이다. 기독교의 경우 마론파, 그리스 정교, 개신교 등으로 나뉘어 있다. 레바논은 종교 갈등을 방지하기 위해 1943년 건국 때부터 종파별로 의회 의석을 배분했다. 대통령(기독교), 총리(수니파), 국회의장(시아파) 등 주요 직책을 나눠 갖는 독특한 정치 체제를 채택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탄압을 피하려는 팔레스타인 난민이 대거 레바논으로 유입되면서 아슬아슬한 균형이 깨지기 시작했다. 15년간의 내전 또한 기독교도 민병대와 팔레스타인 난민의 갈등이 주요 원인이었다.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에 맞서 헤즈볼라가 출범하면서 상황은 더 악화됐다. 헤즈볼라는 ‘시아파 맹주’ 이란의 전폭적 지원 속에서 급성장했고 이스라엘과 계속 충돌했다. 2006년 ‘34일 전쟁’ 때는 공항, 통신 시설, 물류 인프라 등이 대거 파괴됐다. 경제 역시 파탄 일로를 걸었다. 레바논파운드화 가치가 급락하고 실업률이 치솟았고, 2020년 8월 발생한 베이루트 항구 폭발 사고로 그해 경제가 ―21.4% 역성장했다. 정치권도 친헤즈볼라와 반(反)헤즈볼라 세력으로 쪼개졌다. 2022년 10월 임기가 종료된 친헤즈볼라 성향 미셸 아운 전 대통령의 후임자는 2년째 선출하지 못하고 있다. 국립레바논대 사회학 박사인 이경수 한국외국어대 중동연구소 전임연구원은 “레바논 사람들은 장기간의 정치 불안과 경제난으로 지쳐 있고, 계속되는 이스라엘의 공습에 대한 두려움으로 패닉에 빠진 상황”이라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asa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