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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적 도전인 동시에 문학적 도전이었다.” 25일 서울 마포구의 한 서점에서 열린 신간 장편소설 ‘지금부터의 세계’(파람북) 언론간담회에서 소설가 김태연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국내 최초로 인공지능(AI)이 쓴 이번 장편소설에서 소설가가 아닌 ‘소설 감독’이라는 생소한 역할로 참여했다. 이날 그는 “AI 소설은 인간에 비하면 아직 결코 완전하지 않은 단계”라면서도 “AI가 보여준 구조적 판단과 은유는 충분히 놀라웠다”고 평가했다. 국내에서 AI가 쓴 단편소설이 발표된 적은 있지만 장편소설은 처음이다. 신간은 김태연의 기획과 연출 아래 AI 소설가 ‘비람풍(毘嵐風·불교신화에서 우주의 최초와 최후에 부는 거대한 폭풍)’이 559쪽에 걸쳐 쓴 장편소설이다. 비람풍은 김태연이 2015년 세운 AI 스타트업 ‘다품다’가 자연어 처리(NLP) 스타트업과 손잡고 개발한 AI 소설가다. 일반인이 쓰는 자연어를 컴퓨터로 분석하고, 이를 소설 작법에 특화시킨 결과물이다. 김태연은 “비람풍은 우주를 탄생시킨 ‘빅뱅’을 뜻한다. AI 장편소설의 신기원을 연다는 의미를 담아 명명했다”고 말했다. 신간은 지체장애인 아마추어 수학자와 벤처사업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등 수학에 일가견이 있는 5명이 각자에게 주어진 수학적 수수께끼들을 풀어 나가는 이야기다. 수학과 컴퓨터공학 전문가인 김태연의 커리어가 강하게 반영된 서사다. 소설 집필 과정에서는 김태연과 비람풍은 각자 역할을 분담했다. 우선 김태연이 소설의 주제와 배경, 등장인물을 정했다. 전체 서사 구조와 첫 번째 장도 그가 썼다. 이를 바탕으로 비람풍은 내용을 구체화한 뒤 소설 문장을 직접 썼다. 예컨대 김태연이 ‘이미지라는 이름의 여성 정신과 전문의가 할아버지 연락을 받고 서울 삼성동의 할아버지 집을 방문한다’는 상황을 주면 비람풍은 ‘이미지가 대학병원 주차빌딩에서 3개동이 삼각형인 삼성동 아파트까지 계속 신호를 위반하며 흰색 독일제 승용차를 힘껏 몰았다’는 문장을 만드는 식이다. 김태연은 “저작권이 이미 만료된 문학작품 등 단행본 약 1000권과 수많은 신문기사들이 비람풍의 학습재료가 됐다”고 설명했다. 비람풍이 쓴 부분을 편집하는 과정에선 사전에 예상치 못한 상황도 발생했다. 총 81개 에피소드로 구성된 소설 앞뒤로 아무 문장 없이 정육면체 도형 1개만 그려진 ‘에피소드 0’이 비람풍에 의해 삽입된 것. 비람풍 개발업체 관계자는 “비람풍은 집필에 앞서 소설 전반에 걸쳐 활용되는 폰 노이만(1903∼1957)의 ‘집합론’을 학습했다. 그에 따르면 0은 공집합(空集合)이고 현대수학의 배경에는 공집합이 있는데 비람풍이 이를 소설 구성에 반영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AI 소설가가 인간보다 월등히 뛰어난 분야는 자료 검색이다. 이 때문에 소설에 지나치게 자세한 내용이 들어가기도 했단다. 김태연은 “나조차 모르고 있는 수학 지식을 비람풍이 지나치게 길게 늘어놓아 많이 삭제해야 했다”고 했다. 기대 이상의 결과물이지만 아직 부족한 부분도 적지 않다. 특히 소설 중 운문 형식으로 이끌어 나가는 부분은 김태연이 새로 썼다. 개발과 더불어 소설 속의 작은 상황들을 AI에 입력해야 했기에 집필 기간도 거의 7년이나 걸렸다. 김태연은 “기술이 발전하면 앞으로 창의적인 작품 구상에 소질이 있는 작가들은 집필보다 구상에 더 매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인류를 구할 것 같지 않은 존재가 인류를 구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소설가 김초엽(28·사진)은 20일 동아일보와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채팅 인터뷰에서 “인간에게 잘 포착되진 않지만 세계를 구성하는 너무 중요한 요소들에 관심을 갖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청각장애가 있어 상대방의 입 모양을 보지 않으면 소통이 어려운 작가의 채팅 답변은 부드러우면서도 선명했다. 2017년 공상과학(SF) 단편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과 ‘관내분실’로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과 가작을 동시에 수상한 그는 등단 4년 만에 첫 장편소설을 최근 펴냈다. 신작 ‘지구 끝의 온실’(자이언트북스)은 공기 중 떠다니며 살아있는 존재라면 무엇이든 순식간에 죽게 만드는 물질 ‘더스트’가 지구를 뒤덮은 시대를 특수한 식물이 구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어느 날 박물관에서 ‘구원자 식물’ 전시가 열리는 장면을 상상하게 됐어요. 이 장면을 먼저 소설로 써 두고 ‘만약 수십 년 뒤 식물이 세상을 구했다면 그건 어떻게 일어난 일일까,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하고 역추적 해본 결과가 이번 작품이랍니다.” 전작들에서 다양한 SF 상상력으로 독자들을 매료시킨 그는 신작에서도 신비로운, 그러나 있을 법한 일들이 펼쳐지는 근미래로 초대한다. 더스트에 내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실험체 사냥꾼들에게 쫓기는 ‘나오미’ ‘아마라’ 자매와 살인과 약탈을 서슴지 않는 시대에 선량한 이들을 보호하려고 ‘프림 빌리지’를 세운 ‘지수’, 프림 빌리지 끄트머리에 세워진 온실에서 정체 모를 식물을 연구하는 식물학자 ‘레이첼’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김초엽은 “언젠가는 유리벽으로 막힌 어떤 공간에 한 사람이 갇혀 실험을 하고, 그 바깥의 사람들이 그 공간을 지키는 장면을 그려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품에서 더스트의 시대는 디스토피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작가의 기존 단편들에 비해선 한층 밝아진 인상을 준다. 이전 작품들이 인간의 어리석음과 한계를 드러내는 데 그쳤다면 신작은 인간 군상에서 발견되는 희망을 보여주기 때문. 리더 지수는 옳은 일과 마을을 보존하는 일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레이첼은 유능하지만 신체 대부분이 기계로 이뤄져 매번 보수를 해야 하는 처지. 결함을 안고 있는 인물들이 결국 일궈내는 ‘더 나은 세상’에서 독자들은 희망을 본다. 김초엽은 “결코 극복할 수 없는 결함을 지닌 인간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늘 관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 작품 속 디스토피아는 현재의 팬데믹 사태와도 닮아 있다. 김초엽은 “재난 자체의 양상은 서로 다르지만 재난에 대응하는 인간의 마음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내가 안전한 범위 안에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그 바깥에 있는 사람들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김초엽의 소설에는 여성이나 장애인처럼 작가 자신의 정체성이 반영된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은 향후 작품에도 꾸준히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과학도 100%의 완전한 진실이 아니라 언제나 실패와 오류의 여지를 남겨두는, 잠정적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이런 태도가 과학뿐만 아니라 우리 삶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천재지변이 일어나고 일어나지 않고는 사람이 어찌할 수 없지만 그에 대한 조치를 잘하고 못하고는 사람이 능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조선의 제4대 임금 세종(재위 1418∼1450)이 신하들에게 한 말이다. 그는 피해 예방과 구휼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큰비가 내리면 수재 발생이 우려되는 곳을 신속히 점검했다. 예컨대 여러 날에 걸쳐 비가 내릴 때는 수문을 열어 배수를 원활히 한 뒤 밤새 관원들이 현장을 순시하도록 했다. 겨울에 갑자기 날씨가 따뜻해지면 “강의 얼음이 얇아져 사람이 빠질까 염려된다”며 각 나루터에 얼음을 깨라는 지시를 내렸다. 흉년이 든 지방의 수령에게는 구휼미를 사용할 수 있는 재량권을 부여했다. 중앙정부의 허가를 받느라 백성을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되 비상시에는 현장 지휘관에게 결정권을 위임한 것. 세종의 통치 행태는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 상황에서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준다. 이 책은 조선 왕들의 성공과 실패를 복기하는 일종의 ‘기출 문제집’을 표방하고 있다. 역사 사례를 현대의 경영학 관점으로 재구성해 위기관리에 관한 통찰을 준다. 이를테면 세종이 토지 조세제도인 공법을 개혁하기에 앞서 여론조사를 실시한 사실을 미국의 품질관리 전문가 에드워즈 데밍(1900∼1993)의 ‘PDCA 사이클(계획-실행-점검-조치)’ 이론으로 설명하는 식이다. 여론조사 결과를 조세제도 개선에 반영한 세종의 정책 추진이 지속적인 업무 피드백을 통해 성과를 개선하는 PDCA 방식과 닮았다는 얘기다. 제7대 왕인 세조(재위 1455∼1468)는 외교 분야의 위기관리에서 탁월한 역량을 보였다. 그는 당시 국경지역에서 조선을 위협해 오던 여진족을 선제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에 조선에 우호적인 부족은 확실히 보상하고 위협적인 부족은 정벌에 나서는 ‘투 트랙’ 전략을 구사했다. 또 1460년 신숙주를 필두로 한 정벌에 성공한 후에도 안주하지 않았다. 지속적인 평화가 유지될 수 있도록 방어체계 확립에 만전을 기한 것. 반면 제16대 왕인 인조(재위 1623∼1649)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정보만 받아들이는 우를 범했다. 그는 외부 환경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이른바 ‘통제 환상(illusion of control)’에 빠져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다. 인조는 쇠락해 가는 명나라와 부상하는 청나라 사이에서 명의 편을 들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의 비극을 겪었다. 전쟁 후에는 피해를 복구하고 대응체계를 정비하기는커녕 누구 잘못으로 전쟁이 일어나게 됐는지를 따지는 데만 급급했다. 현실에서의 지혜를 얻기 위해 조선시대 역사를 뒤적이는 게 어떤 의미일까. 저자는 이 물음에 이렇게 답한다. “‘지나간 것을 살펴 다가오는 것을 밝힌다’는 한(漢)대 학자 동중서(董仲舒)의 말에 공감한다. 생활양식과 과학기술의 수준과 관계없이 인간이 살아가는 근본 원리는 변함이 없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코트 위에서는 딱 하나만 생각한다. ‘무조건 이긴다.’” 배구선수 김연경(33)의 의지는 한결같았다. 김 선수가 2020 도쿄 올림픽 여자 배구 경기에서 보여줬던 투지는 2017년 출간한 그의 에세이 ‘아직 끝이 아니다’(가연·사진)에 적었던 각오와 다짐 그대로였다. 올림픽이 끝난 뒤 이 책을 읽은 한 독자는 “김 선수가 중학교 시절 키가 작아 고민이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떤 각오로 당시의 난관을 헤쳐 나갔는지는 책을 통해 알게 됐다.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다시 돌아보게 했다”는 감상평을 남겼다. 올림픽에서 극적인 순간을 여러 번 연출하며 배구 팬들의 사랑을 받은 여자 배구 경기 이후 출판계에 배구 열풍이 불고 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김 선수의 에세이 판매 부수는 빠르게 역주행해 출간 4년 만에 8월 둘째 주 에세이 분야 베스트셀러 4위에 올랐다. 올림픽 개막일 전후 25일간을 비교해 보면 판매 부수가 61.7배로 늘었다. “노력으로 되지 않는 것에 집착하기보다 기본실력을 탄탄하게 해서 선수로서의 자질을 키우는 데 온 힘을 다했다” “코트 위에 있는 내 모습을 보면 누구든지 내가 어떻게 훈련을 해왔고 어떤 시간을 견뎌왔는지 알아볼 거라고 생각했다”처럼 김 선수의 덤덤하면서도 진심 어린 고백에 독자들은 깊은 감명을 받고 있다. 김성용 가연 대표는 “4년간 모두 5000권이 팔렸는데 올림픽 이후 2주 만에 1만 권 이상 나갔다”며 “올림픽 경기를 시청한 후 김 선수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독자들이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선수의 인기는 다른 배구 콘텐츠의 인기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출간된 일본 배구 만화 ‘하이큐 파이널 가이드북 배구극’(대원씨아이)은 만화 ‘하이큐’의 일반 시리즈가 아닌 번외로 나온 이 만화 시리즈 관련 가이드북임에도 출간과 동시에 교보문고 8월 둘째 주 종합 베스트셀러 13위에 올랐다. 하이큐는 고정팬층이 있지만 김 선수가 지난해 유튜브에서 이 만화를 리뷰한 영상이 회자되며 더욱 인기를 끌게 됐다. 김현정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담당은 “유튜브 영상을 본 김 선수의 팬들이 이 만화의 팬으로 새롭게 유입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배구선수 양효진(32)의 인터뷰가 담긴 ‘내일을 위한 내 일’(창비)도 출간 7개월 만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재조명되고 있다. 작가 정세랑,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등 여성 7명의 인터뷰를 정리한 책이다. 양 선수는 인터뷰에서 또래 선수들에 비해 성적을 내지 못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다른 선수들의 역량에 못 미칠 때는 그 사실을 인정해버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범주에서 최선을 다하며 그 시간을 버텼다”고 고백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탈북민, 이주민 등 디아스포라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할 뿐 이미 한국에서도 일상에서 늘 마주치는 존재들입니다. 이들과 공존을 모색해야 합니다.” 미국에서 태어나 네 살 때 한국에 와 어린 시절을 보내다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커리어를 쌓아가는 사람의 정체성은 한국인일까, 미국인일까? 서류상 국적은 미국인이지만,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한국계 미국인과는 또 다르다. “나는 어떤 한인일까”라는 물음을 품고 지낸 이는 다큐멘터리 영화 ‘헤로니모’(2019년)를 연출한 전후석 감독(37)이다. 최근 에세이 ‘당신의 수식어’(창비)를 펴낸 그는 다른 디아스포라를 만나며 키운 사유를 풍성하게 풀어 놨다. 16일 그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미국에서 로스쿨에 다닐 때 백인 일색인 학교에서 아시아계 학생들은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하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어요. 저도 3년 내내 선거에 나갔지만 매번 꼴찌만 했죠.” 그는 로스쿨에 다니던 2000년대 후반을 회상하며 말했다.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 뒤 사회 정의를 위해 일하고 싶어 로스쿨에 진학했다. 그러나 사회 이슈에 대해 발언하려 해도 백인 사회가 자신을 동등한 미국인으로 여기지 않는 한 소수 민족의 일원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느꼈다. 그런 그의 인생에 ‘헤로니모 임’(임은조·1926∼2006)이라는 존재가 나타나며 가치관은 완전히 달라졌다. 2015년 쿠바 여행에서 우연히 만난 한인의 조부. 쿠바에서 태어나 사회주의 혁명가로 살다 쿠바 한인 후손의 한국어 및 민족문화 교육에 헌신한 인물이다. 그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 ‘헤로니모’는 그렇게 탄생했다. 쿠바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면서도 한인의 정체성을 잃지 않은 헤로니모에게서 전 감독은 자신의 정체성도 선명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다. ‘디아스포라적 사유’의 시작이었다. 민족의 개념을 국경에 얽매이지 않고 상상하는 것, 그래서 누군가의 정체성은 다양할 수 있다는 걸 아는 게 그가 말하는 디아스포라적 사유다. 이를테면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한국으로 봉환하는 대신 카자흐스탄에 두는 게 한민족에게 이로울 수도 있다는 것. 그는 “세계 각국의 한인 선조들이 있던 곳에 존재해야 ‘우리’라는 범주를 한반도 너머로 넓힐 수 있다”고 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건 단순히 자신이 디아스포라여서가 아니라 자신과 다른 국적, 정체성을 가진 디아스포라를 만난 경험 덕분이라고 했다. 달리 말하면 디아스포라가 아니더라도 디아스포라적 시각을 갖출 여지는 충분하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디아스포라적 사유를 확장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조선족, 고려인, 탈북자, 이주 노동자 등을 이웃으로 두고 있으니까요.”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원한을 품고 싶지 않다고?”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그런 건 선택하는 게 아니야.” “어차피 원한은 나를 찾아와.” 고풍스러운 침대와 옷장, 방 한편에 놓인 커다란 축음기, 방을 밝히는 샹들리에와 아기자기한 벽등….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글로리 호텔을 연상시키는 이국적이면서도 안락한 풍경이었건만, 인천 중구 대불호텔 전시관에 들어선 기자의 귀에는 호텔에 떠도는 악령이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아니, 이건 마음 깊은 곳의 악의(惡意)일 뿐 악령 같은 건 없을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호텔을 찾아 놓고 왜 이런 생각을 하냐고? 이곳까지 타고 온 1호선 지하철 안에서 강화길(35)의 소설 ‘대불호텔의 유령’(문학동네)을 막 읽은 참이어서다. 지난해 제11회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한 소설가 강화길이 두번째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대불…’은 1950년대 인천항 인근의 대불호텔에 이끌리듯 모여든 네 사람이 겪는 공포스러운 경험을 다룬 이야기다. 6·25전쟁으로 부모를 잃거나 이념 갈등으로 마을 전체가 풍비박산 나버린 일 등 각자의 사연을 안고 호텔로 모여든 사람들 가운데서 악령의 소행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사망 사건과 미스터리가 이어진다. 대불호텔은 1888년 일본인 해운업자인 호리 히사타로가 인천항을 통해 조선에 입국한 선교사, 외교관 등 외국인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문을 연 3층 벽돌조의 서양식 호텔이다. 처음 호텔이 열렸을 때는 외교관들의 숙박 문의와 여행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성행했다. 그러나 1899년 경인철도가 개통되면서 여행자들이 인천에서 하루를 묵을 필요가 없어지자 경영난에 빠졌다. 1918년 한 중국인이 인수해 북경요리 전문점 ‘중화루’를 열었지만 1970년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다. 강화길은 2018년 초 현재는 전시관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이곳을 찾았다가 이번 소설의 영감을 얻었다. 평소 사람의 마음과 한국 사회 저변에 깔려 있는 악의, 원한에 대한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 이 호텔의 사연과 풍기는 분위기가 이 같은 이야기를 풀어 나가기에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강화길은 “대불호텔은 이방인에 의해 세워진 이후 주인도, 오가는 사람들도 수없이 바뀐 장소다. 침략의 형태로 근대사를 열었던 한국이 격동의 한가운데서 느꼈을 고립감을 이 호텔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도 어느새 내년이면 등단 10년째에 접어든다. 지난해 출간한 단편집 ‘화이트호스’(문학동네)에서 음산한 분위기의 소설로 눈길을 끌었던 강화길은 이번 소설로 ‘강화길식 고딕 호러의 또 한 번의 도약’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세 고딕 양식 건축물처럼 공포와 신비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의미의 고딕 소설을 그만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것. 그는 “호러 소설을 딱히 고집하지는 않는다. 독자가 읽는 데 시간 아깝다고 느껴지는 소설을 쓰고 싶지 않아서 제가 지극히 좋아하는 장르를 써낸 것 같다”고 말했다. 인천=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많이 쓰시면 언젠가 길이 보일 겁니다.” 소설가 김영하는 지난달 20일 선보인 글쓰기 강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수강 대상은 전업 작가가 아닌, 집필 경험이 별로 없는 평범한 이들. 글을 쓰고는 싶지만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 탓에 섣불리 문장을 써내려가기 어려운 이들이 펜을 들도록 하겠다는 게 강의 목표다. 최근 자신만의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일반인들이 늘면서 소설가나 에세이 작가들의 작문 강의나 글쓰기 책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에 따라 전문작가뿐 아니라 다양한 직업과 일상의 이야기를 다룬 일반인들의 에세이가 속속 출간되고 있다. 한 문학전문 출판사의 에세이 담당 편집자는 “전업 작가의 글이 아니라도 독자들이 보통 사람들의 인생과 이들의 이야기를 궁금해한다. 직접 글을 써 자신의 사연을 나누려는 욕구도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영하는 교육 콘텐츠 기업 패스트캠퍼스에서 진행 중인 온라인 강의를 통해 글쓰기를 대하는 태도부터 눈길을 끄는 스토리텔링 기법까지 구체적인 작문 팁을 알려주고 있다. 장르도 에세이와 소설을 두루 다룬다. 인기 ‘북튜버(북+유튜버)’이자 작가인 김겨울도 이 강의에 참여해 글쓰기에 대한 고민과 해법을 함께 논한다. 김영하는 “25년간 글을 쓰며 고민한 ‘독자가 읽고 싶어 하는 글을 쓰는 법’을 담았다”고 말했다. 소설가 장강명도 지난해 11월 글쓰기 책 ‘책 한번 써봅시다’(한겨레출판사)를 내놓으며 관련 강연을 유튜브에 올렸다. 이 영상에서 장강명은 “당신도 책을 쓸 수 있으니 도전하라”고 격려한다. 박연준 시인은 지난달 출간한 산문집 ‘쓰는 기분’을 소개하면서 “에세이지만 실용서로 읽힐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친절하게 썼다”고 밝혔다. 책은 시와 산문을 쓰는 작가의 마음과 더불어 평범한 사람들이 좋은 글을 쓰려면 어떤 연습을 해야 하는지를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작가들의 글쓰기 강의를 들은 일반인이 자신의 책을 낸 사례도 있다. 최훈 씨는 장강명의 유튜브 강연을 보고 올 6월 에세이 ‘나는 아파트 경비원입니다’(정미소)를 펴냈다. 그는 이 책에서 3년간 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한 온갖 경험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교열 전문가가 쓴 글쓰기 책도 주목받고 있다. 출판사에서 20년 넘게 단행본 교열 업무를 담당한 김정선 씨가 2016년 출간한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유유)는 10만 부 이상 팔려 지난달 기념 리커버판이 나왔다. 김 씨는 이 책에서 ‘∼적’ ‘∼의’ ‘것’ ‘들’과 같은 군더더기를 최대한 덜어내라는 식의 구체적인 지침을 준다. 문장 끝에 붙이는 ‘∼있다’로 인해 어색해지는 사례들도 정리했다. 독자들은 “긴 글이 아니라도 간단한 보고서를 작성할 때 당장 적용할 수 있는 실용 팁이 유용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한번 떠난 화살은 돌아오지 않는다. 따라서 발시(發矢)에 이르기까지의 동작이 부정확했다면 아무렇게나 쏘기보다는 중간에 동작을 멈추는 편이 낫다. 하지만 단지 실수가 두려워 경직될 때는 망설이지 말고 쏴라.’ 자아를 찾아 나선 양치기 청년 산티아고가 여행길에서 만난 연금술사와 신비로운 경험을 하는 이야기 ‘연금술사’로 전 세계 3억2000만 독자를 사로잡은 브라질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또 다른 지혜를 안겨주는 이야기로 돌아왔다. 이번 소설의 중심에 놓인 소재는 바로 활. 산티아고가 긴 여정 끝에 꿈과 자아를 찾았다면 이 소설 속 인물과 독자들은 활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발견하게 된다. 이야기는 궁술로 최고의 경지에 오른 이방인이 전설적인 명궁 ‘진’을 찾아오며 시작한다. 이방인은 진의 명성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겠다며 진에게 도전한다.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게 된 한 소년은 그저 평범한 목수인 줄로만 알았던 진이 화살을 쏘는 모습을 보고 단숨에 활에 매료된다. 활을 통해 마음을, 인생을 들여다보는 진과 소년의 여정이 그렇게 시작된다. 화살을 정확히 과녁에 꽂기 위해서는 화려한 궁술보다 정갈한 마음가짐이 우선이다. 소설이 궁술에 관한 지식을 전달하기보다는 마음과 정신 수련을 강조하는 건 이 때문이다. 이를테면 진에게 도전해온 이방인은 40m 떨어진 작은 체리에 화살을 관통시킬 정도로 훌륭한 사수다. 하지만 산 정상의 낭떠러지 앞에 설치된 흔들다리 한가운데서는 20m 거리에 있는 복숭아도 맞히지 못한다. 진은 이방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궁사가 언제나 전장을 택할 수는 없습니다. 화살을 정확하게 잘 쏘는 것과 영혼의 평정을 유지하고 쏘는 것은 매우 다르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저자는 오랜 기간 직접 궁술을 배우며 익힌 경험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썼다. 출판사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화살을 쏠 때마다 표적을 맞히는 것이 아니라 활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나아가서는 화살과 표적 자체가 돼야 한다는 점을 느꼈다”고 말했다. 활을 쏘며 직관적으로 익히게 된 지혜를 하나하나 기록한 결과가 이번 소설이다. 활쏘기를 사랑하는 그는 2020 도쿄 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를 딴 우리나라 양궁 대표팀 안산 선수의 기사를 자신의 트위터에 공유하며 “축하한다. 내 책이 한국에서 출판되는 대로 사인본을 보내겠다”고 쓰기도 했다. 저자의 문학세계는 1986년 떠난 스페인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순례에서 잉태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 순례가 연금술사와 ‘순례길’ 등 각 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번 소설에도 그 경험이 녹아들어 있다고 저자는 밝혔다. 한국에 연금술사가 처음 번역 출간된 지 꼭 20년이 흘렀다. 연금술사가 책장 어딘가에 먼지와 함께 꽂혀 있는 독자라면 이번 소설과 교차해 읽어보며 다시금 코엘료가 역설해 온 인생의 진리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2년간 대기업 계열사에 다니다 지난해 스타트업으로 이직한 직장인 임모 씨(28)는 올 6월 출간된 자기계발서 ‘사수가 없어도 괜찮습니다’(알에이치코리아)를 최근 샀다. 직장 상사가 일을 가르쳐주기보다 실수를 다그치는 방식으로 자신을 대한다고 생각해서다. 임 씨는 “사수가 원망스럽지만 ‘회사는 학교가 아니다’라는 책의 지적이 솔직히 뼈아팠다. 일터에서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비법을 알려준다는 문구를 보고 이 책을 덥석 집었다”고 말했다. 직장생활에서 맞닥뜨리는 다양한 난관들에 대한 해법을 책에서 찾으려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늘고 있다. 예스24에 따르면 ‘취업’ ‘이직’ ‘퇴사’를 키워드로 하는 직장생활 관련 도서의 26∼35세 구매 비율이 2017년 15.1%에서 2021년 상반기 24.9%로 크게 높아졌다. 종래에는 주로 간부급 직장인들이 현명한 리더로 거듭나기 위해 직장생활 관련 자기계발서를 찾던 것과 달라진 양상이다. 일을 막 배우기 시작한 주니어 직장인들을 겨냥한 신간 ‘사수가…’는 카카오의 콘텐츠 구독 플랫폼 ‘브런치’에 연재될 당시부터 5700여 명의 구독자를 모을 만큼 인기를 끌었다. 자기계발 커뮤니티 ‘한달어스’의 공동 창업자인 저자 이진선 씨는 과거 웹디자인 회사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일터에서 배우고 성장하는 법을 책에 담았다. 이를테면 “좋은 사수의 존재보다는 매일 조금이라도 성장하는 자신의 모습이 직장생활에 더 큰 안정감을 준다”고 조언하는 식이다. 이정민 알에이치코리아 에디터는 “인터넷에서 이른바 ‘랜선 사수’를 찾아 헤맬 정도로 업무 노하우를 적극적으로 배우고자 하는 젊은 직장인이 많다”고 말했다. 이런 바람을 타고 기존의 리더십이나 조직관리 관련 책보다는 많은 양의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법, 다른 부서원과 원활하게 소통하는 법 등 저연차 실무자들에게 도움이 될 법한 책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베스트셀러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의 저자 야마구치 슈와 일본 경쟁전략 전문가 구스노키 겐이 함께 쓴 ‘일을 잘한다는 것’(리더스북)은 올 초 출간됐지만 자기계발서 분야 베스트셀러 자리를 꾸준히 지키고 있다. 저자는 “업무역량은 기술(skill)이 아니라 감각(sense)에서 나온다”고 지적하고 넷플릭스, 어도비, 레고 등 굵직한 글로벌 기업들의 ‘일 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평범한 직장인들이 일하는 감각을 기를 수 있는 팁을 제시한다. 2019년 출간된 ‘일 잘하는 사람은 단순하게 합니다’(더퀘스트) 역시 오랜 기간 사랑받고 있는 자기계발서다. 복잡한 일들을 단순하게 해결해 높은 성과를 내는 이들의 일 처리 노하우로 직장인들의 공감을 샀다. 출간된 지 2년이 지났지만 알라딘의 직장생활 자기계발 분야에서 18위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정보기술(IT)에 대한 이해도가 중요해지면서 일반직 종사자와 전문 개발자의 협업 노하우를 다룬 ‘오늘도 개발자가 안 된다고 말했다’(디지털북스)는 자격증 시험 문제집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컴퓨터/IT 분야’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직장 생활을 일찍 그만두더라도 좋아하는 일을 하며 제2의 인생을 설계하고자 하는 MZ세대는 퇴사에 대한 조언까지 책에서 구하기도 한다. 올 4월 출간된 ‘서른살, 비트코인으로 퇴사합니다’(국일증권경제연구소)는 출간 직후 예스24의 종합 베스트셀러 20위권에 오르는 등 2030 직장인들의 높은 관심을 받았다. 퇴사를 주제로 한 에세이도 잇달아 출간되고 있다. 5월 출간된 ‘퇴사 전보다 불안하지 않습니다’(푸른향기)는 직장인이었던 부부가 나란히 퇴사한 후 떠난 세계여행을 기록한 에세이다. 직장생활과 퇴사에 대한 MZ 세대의 고민을 다루고 있다. 마흔에 은퇴한 부부가 지난달 펴낸 에세이 ‘마흔, 부부가 함께 은퇴합니다’(한겨레출판사)는 조기 은퇴를 위한 계획과 방법을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강현정 예스24 자기계발 MD는 “직장에서의 불안은 온라인 검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단편적인 답변만으로 해소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긴 시간에 걸친 저자의 경험과 통찰이 담긴 책을 독자들이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1993년부터 매년 약 2억 원 규모의 한국 문학 번역 출판 지원 사업을 해온 대산문화재단이 2일 올해 지원 대상 작품을 발표했다. 올해 재단의 지원을 받는 작품은 총 13건. 이 중 6건이 30대 이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다. 해외에 번역되는 한국 문학 작품의 작가들이 젊어지고 있다. 대산문화재단에 따르면 2016년 번역 지원작과 비교했을 때 올해 지원작 작가들의 평균 연령은 7.4세 젊어졌다. 2016년 52.7세였던 것이 45.3세로 낮아진 것. 이미 사망한 작가들은 제외한 수치다. 2016년 지원을 받았던 18건의 작품 중 30대 작가는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의 김애란(당시 36세) 한 명뿐이었다. 올해는 프랑스어와 일본어, 중국어, 베트남어로 번역되는 장편소설 ‘9번의 일’의 김혜진(38), 영어로 번역되는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의 임솔아(34)와 소설집 ‘실패한 여름휴가’의 허희정(32)이 모두 30대다. 해외 시장에서 통하는 한국 작가들이 젊어진 이유는 젊은 문인들이 세계 무대에서도 공감을 살 만한 보편적인 소재를 쓰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들이 다루는 소재가 한국적 색채가 짙은 작품들에 비해 외국 독자들에게 보편적으로 수용된다는 것. 통신회사 설치 기사로 일하는 평범한 주인공이 일터에서 자신을 잃어가는 과정을 그린 ‘9번의 일’은 노동자들의 삶의 비애를 정면으로 다뤄 세계인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평을 받으며 가장 많은 언어권의 번역 지원을 받게 됐다. 우찬제 서강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은 소설 속 시공간을 서울에 둬도, 미국 뉴욕이나 독일 베를린에 둬도 어색하지 않을 때가 많다”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중견 작가라 할지라도 대표작 위주로 해외 출판시장에 소개됐다면 지금은 비인기작, 혹은 출간된 지 오래된 작품들도 새삼 조명된다는 점이 또 다른 차이다. 한강은 소설가로 유명하지만 이번에 시집인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가 선정돼 프랑스어로 번역될 예정이다. 또 다른 지원작인 박완서의 ‘저녁의 해후’(중국어 번역), 편혜영의 ‘서쪽 숲에 갔다’(영어 번역)는 각각 출간된 지 15년, 9년이 흐른 작품들이다. 중견 작가의 오래된 작품들이 최근 들어 해외 문단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사례도 있다. 2011년 재단의 지원을 받아 영어로 번역된 하성란 소설집 ‘푸른 수염의 첫 번째 아내’(2002년)는 지난해 10월 미국 출판전문 매거진 ‘퍼블리셔스 위클리’의 올해 최고의 책 10권에 선정됐다. 장근명 대산문화재단 문화사업팀 과장은 “최근 몇 년간 한국 문학에 대한 해외 독자들의 관심이 늘면서 중견 작가들의 숨겨진 작품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한 해 100여 건의 한국 문학 번역을 지원하는 한국문학번역원도 이 같은 변화를 느끼고 있다. 번역원이 지원하는 작품 중 60% 정도는 해외 출판사가 작품을 미리 계약한 뒤 번역원에 지원을 신청하는 구조여서 해외 독자들의 관심과 선호의 변화를 더욱 기민하게 느낄 수 있다. 지원작 작가의 평균 연령은 2016년 54.8세에서 올해 51.6세로 낮아지는 추세다. 박소연 한국문학번역원 해외사업팀장은 “과거에는 순문학 위주로 번역했다면 최근에는 장르문학 등 분야도 다양해지다 보니 자연스레 작가의 연령층이 젊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사랑과 성애의 여신 비너스, 그리고 원죄 없는 성스러운 여인 성모 마리아. 연관이 없을 것 같은 두 존재가 실은 이어져 있다면? 40년간 여신의 자취를 따라 그리스 신전과 중동 발굴 터, 폼페이의 가정집 등을 현장 조사한 저자는 “인간의 다양한 사랑을 관장하는 여신은 변신을 거듭했다”고 말한다. 역사가 기록되기 전부터 여신을 원하고 상상하며 사랑해온 인간이 상반된 이미지의 두 여신을 탄생시켰다는 것. 그리스어로 아프로디테라 불리는 비너스의 전신은 아스타르테다. 잦은 전쟁으로 30세가 되면 대부분 죽음을 맞은 청동기시대에 전쟁과 열정, 난폭함, 죽음을 상징하는 여신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수메르에서는 이난나, 페니키아에서는 아스타르테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활기를 주체하지 못하는 젊은 여자로 묘사된 아스타르테는 가장 빛나는 별인 금성(venus)으로 상징되었다. 기원전 680년 신아시리아 제국의 왕 에사르하돈은 자신을 배신한 자들을 왕궁으로 불러들여 이렇게 말했다. “별 가운데 가장 밝은 별인 금성이 네놈들의 아내가 적의 품에 누워 있는 걸 눈앞에서 보게 하시길.” 저자는 아스타르테가 선박의 뱃머리에 그려졌다는 점에서 바다에서 태어난 아프로디테와 깊은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한다. 아프로디테라는 이름은 기원전 8세기경 쓰인 그리스 음유시인들의 작품에서 등장하기 시작한다. 일부 그리스인은 바다의 거품을 가리키는 그리스어 ‘아프로스’에서 아프로디테의 이름이 유래됐다고 말한다. 저자는 아스타르테의 페니키아식 이름인 ‘아스테로스’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 아프로디테의 탄생으로 여신은 성애와 욕망, 기쁨과 사랑에서 더 나아가 관계와 화합의 상징으로 거듭났다. 여성과 남성, 극작가와 철학자를 하나로 묶는 우주적 힘이 아프로디테에게 있다고 여겨졌다. 이처럼 친교를 상징하다 보니 아프로디테를 매춘부의 여신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고대 로마 초기 문인 엔니우스는 “비너스는 원래 매춘을 처음 고안한 여성이었으나 나중에 여신으로 숭배받게 됐다”는 주장을 폈다. 기독교가 서구사회를 지배하면서 아프로디테는 성적 특성만이 강조된 존재로 변질됐다. 하지만 4000년을 버틴 여신의 생명력은 끈질겼다. 저자는 “아프로디테는 동정녀 마리아의 외피를 두르고 재탄생했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지중해 국가 키프로스 중부의 파나기아 트로오디티사 수도원에는 성모 마리아가 축복을 내렸다는 허리띠가 보관돼 있다. 이 수도원의 또 다른 이름은 파나기아 아프로디티사. 애초 아프로디테에게 바쳐진 이 공간에 보관된 허리띠 역시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아프로디테의 허리띠와 흡사하다고 한다. 또 마리아의 수태고지 순간을 그린 중세 회화 작품들에는 아프로디테가 가장 아끼는 비둘기가 함께 그려져 있다. 인류가 상상한 가장 이상적인 여성상이 이토록 변화무쌍했다는 게 흥미롭다. 하지만 창녀와 성녀를 넘나드는 여신의 이미지는 남성 중심의 시각으로도 읽힌다. 여신의 역사를 통해 인간 욕망의 일대기를 훑고 싶은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여행길이 막힌 팬데믹 시대,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미술관에서 왕실 수집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면. 산티아고 순례 길을 걷거나, 파에야의 발상지 발렌시아에서 지중해를 감상할 수 있다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할 수 있지만 전문지식을 갖춘 가이드까지 동행해 ‘멋진 여행’을 다녀온 이들이 있다. 서울 중구 독립서점 ‘스페인책방’의 온라인 책모임을 통해서다. 독립서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답답한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는 이들을 위한 이색 비대면 책모임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달 9∼30일 매주 금요일 스페인책방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진행된 ‘여행 대신 여행 토크’에는 약 70명의 독자가 참여했다. 온라인 모임은 테마별로 책 저자들을 초청해 진행됐다. 예컨대 2019년 ‘사적인 가이드북 두 번째 스페인, 발렌시아’(니케)를 펴낸 구민정 여행작가와 함께 발렌시아의 이모저모를 살피는 식이다. 유럽 각지 미술관을 조명한 ‘90일 밤의 미술관’(동양북스)에서 마드리드 부분을 쓴 이진희 여행가이드와는 프라도미술관으로 떠나기도 했다. 스페인서점을 운영하는 에바(활동명) 대표는 “처음에 용산도서관 제안으로 독서동아리 회원들을 위해 모임을 기획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 원하는 독자는 누구든 유튜브를 통해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스페인 여행을 놓쳤어도 기회는 남아 있다. 서울 관악구의 독립서점 ‘살롱드북’에서는 6∼27일 매주 금요일 여행토크 ‘여행탐구생활’을 줌(Zoom)에서 진행한다. 관악구 인문학지원센터와 함께 준비한 이번 모임 주제는 ‘여행 기록법’. 여행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유명 여행작가들을 초청했다. ‘여행할 땐, 책’(수오서재)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웅진지식하우스) 등 여러 여행서를 펴낸 김남희 작가가 유럽, 동남아시아, 중남미 등을 누빈 경험을 6일 첫 모임에서 풀어놓았다. ‘출근 대신 여행’ ‘발리에선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방)를 펴낸 방태현 작가는 지속가능한 여행을 위한 여행 기록법을 13일 소개한다. 자신의 여행을 기록하고 남에게 소개하는 일이 또 다른 여행을 기약할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을 들려줄 예정이다. 3회와 4회 모임을 각각 맡은 변종모, 태원준 작가는 지난 여행 경험을 토대로 여행의 의미와 필요성을 논한다. 각 모임 작가들을 직접 선정한 강명지 살롱드북 대표는 “여행의 필요를 적당히 달래주는 정도가 아니라 여행을 그리는 독자들에게 뜻깊은 시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여행작가 경력이 최소 10년 이상인 베테랑만 모셨다”고 말했다. 여행만이 모임 주제가 되는 건 아니다. 팬데믹 이전 책모임처럼 함께 나누고 싶은 책을 정해 토론하되 색다른 경험을 가미한 모임도 있다. 제주시내 독립서점 ‘북스토어 아베끄’는 1일 ‘아무튼, 술집’(제철소)을 쓴 김혜경 작가와 함께 술을 곁들인 온라인 북 토크를 줌에서 열었다. 이름하여 ‘홈술 토크’. 참가자들이 같은 안주를 놓고 술을 마시면 서로 함께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취지로, 귤향 한과와 제주 김부각 등 제주 특산 안주 꾸러미를 독자들의 집으로 미리 보내줬다. 김 작가가 술을 마시며 시를 읽는 팟캐스트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독자들이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시를 낭독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모임을 기획한 강수희 북스토어 아베끄 대표는 “참여한 독자들이 모임이 끝난 뒤 ‘정말 재밌었다’는 메시지를 많이 보내줬다. 안주 배송 등 나름 품이 많이 든 모임이지만 독자들의 만족도가 높아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열린책들, 창립기념 ‘중단편 세트’ 창립 35주년 맞은 열린책들러 ‘붉은 수레바퀴’ 국내 첫 소개후 다양한 국가 문학책 2100여권 펴내창립기념 스무편 골라 세트 출간 “독자들 부담없도록 권당 3500원”영미권 번역 문학이 인기를 끌던 1980년대, 한 신생 출판사 대표가 모험을 시도했다. 첫 책으로 현대 러시아 문학책을 내기로 한 것. 1970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알렉산드르 솔제니친(1918∼2008)이 러시아 혁명을 그린 소설 ‘붉은 수레바퀴’는 그렇게 한국에 처음 소개됐다. 총 7권인 이 시리즈의 네 번째 책을 낼 즈음엔 출간하는 게 손해였지만 다음 권을 기다리는 소수 독자들을 위해 전체 시리즈를 완간했다. 이후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등 이탈리아, 프랑스, 그리스를 포함해 다양한 국가의 문학책을 내며 출판계의 외연을 확대해 왔다. 출판사 열린책들 이야기다. 국내외 문학을 꾸준히 소개하기 위해 애쓰는 출판사들이 있다. 해외 문학 전문 출판사로 꼽히는 열린책들은 올해 창립 35주년을 맞았다. 러시아와 동구권 문학에 심취했던 홍지웅 열린책들 대표는 1986년 출판사를 세우고 당시 독자에게 생소한 문학세계를 펼쳐 보였고, 이후 출판사는 2100여 권을 펴내며 탄탄하게 성장했다. 열린책들은 35주년을 기념해 자사의 세계 문학 시리즈에서 중단편 고전 명작 스무 편을 골라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를 출간했다. 정오와 자정을 뜻하는 ‘NOON’과 ‘MIDNIGHT’ 세트로, 각각 10권씩 구성했다. NOON 세트는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 등 서정적인 작품이 주를 이룬다. MIDNIGHT 세트에는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등 묵직하고 강렬한 작품을 모았다. 각 세트는 3만5000원으로, 한 권당 3500원이다. 홍유진 열린책들 이사는 “독자들이 해외 문학을 가깝게 접할 수 있도록 책 가격을 저렴하게 책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지에서 인기를 끈 작품을 주로 출간하다 보니 자연스레 해외 문학을 다양하게 소개하게 됐다”며 “앞으로도 많은 독자들의 선택을 받은 작품 위주로 출간하겠다”고 말했다. 현대문학은 월간지 800호 발간66년 8개월간 달려온 현대문학토지-태백산맥 등 소설 4000여편, 시 6000여편 산문 4000여편 소개주요작가 작품 71편 실은 특대호… 표지는 윤형근 미발표작으로 꾸며 1955년 1월 창간호를 낸 후 66년 8개월간 휴간 없이 달려온 문예 월간지 현대문학은 올해 8월 800호를 맞았다. 800호를 낸 문예지는 세계적으로 현대문학이 유일하다. 그동안 4000여 편의 소설과 6000여 편의 시, 4000여 편의 산문이 현대문학을 통해 소개됐다. 박경리의 ‘토지’와 조정래의 ‘태백산맥’, 김춘수의 ‘꽃’이 처음 나온 지면도 현대문학이었다. 현대문학 표지는 우리나라 대표 화가들의 작품으로 채워졌다. 창간호는 김환기의 작품이 장식했고 이중섭 천경자 장욱진의 작품도 실렸다. 800호 표지는 현대문학 표지 디자인을 자주 했던 단색화가 윤형근(1928∼2007)의 작품을 채택했다. 유족의 뜻에 따라 고인의 유작 한 편과 미발표 작품 두 편을 꼽아 꾸몄다. 512쪽의 800호 기념 특대호는 구병모 김금희 편혜영 등 소설가 35명에게 짧은 소설을, 박연준 안희연 등 시인 36명에게 시를 받아 실었다. 현대문학은 발행 부수가 한창때의 10분의 1로 줄어 수익이 나지 않지만 한국 문학을 키우는 임무를 묵묵히 해내고 있다. 장은수 출판평론가는 “열린책들은 각국의 사랑받는 작가들을 발 빠르게 국내에 소개해 왔고 현대문학은 신인 작가들의 등용문이 되는 정통 문예지를 오랜 기간 이끌어 왔다”며 “두 회사 모두 문학과 독자 사이의 훌륭한 문지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오사마 빈라덴 사살 작전(제로니모 작전)을 진행 중이던 2011년 4월.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은 미 중앙정보국(CIA)과 대테러센터(NCT)에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이 감시 중인 사람이 빈라덴일 가능성을 평가하라고 지시했다. CIA는 그가 빈라덴일 가능성을 60∼80%로, NCT는 40∼60%로 각각 분석했다. 윌리엄 맥레이븐 합동특수전사령관을 비롯한 고위 군사 전략가들이 빈라덴 사살을 위해 머리를 맞댔지만 실패 가능성을 완전히 피할 순 없었다. 대통령의 결단만이 남은 상황. 오바마는 신간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나는 가능성을 평가할 더 나은 과정들을 마련할 수 없고, 나의 판단을 도와줄 더 훌륭한 사람들을 영입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오바마가 자신의 대통령 재임 시절을 다룬 첫 회고록을 출간했다. 그는 자신이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과정과 임기 첫 2년 반 동안의 에피소드들을 솔직히 풀어냈다. 이 책을 읽으면 오바마가 임기 내내 정치적 반전이 없다는 이른바 ‘노 드라마(No drama)’ 대통령이라는 별명을 달고 다닌 이유를 알 수 있다. 표를 얻어야 하는 정치가에게 달갑지 않은 수식어이지만, 오바마는 미국의 숙적 빈라덴 사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데 주저했다. 4개월의 숙고 끝에 “결국 확률은 반반이다. 시도해 보자”는 오바마의 결단으로 작전이 성공을 거두자 미국 사회에선 통합의 분위기가 연출됐다. 이 상황에서 오바마는 행정부에 공을 돌리기에 앞서 “우리는 테러리스트를 죽여야만 하나가 될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책에는 ‘인간 오바마’의 모습도 담겼다. 여느 10대들처럼 파티를 좋아하는 청소년기를 보낸 그는 대학 진학 후 찬 음식도 마다하지 않는 검소한 삶을 살았다. 그러면서 ‘어떤 사회운동이 실패 혹은 성공하는지’와 같은 문제들에 골몰했다. “행동보다 사변을 좋아했다”는 오바마의 회고는 제로니모 작전을 앞두고 깊은 고민에 빠진 그의 행동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지난해 선희석 씨(56)는 아들 윤호 씨(26)가 운영하는 경기 오산시의 분식집을 찾았다가 무거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다. 굳게 닫힌 분식집 앞 초등학교 교문을 바라보던 아들의 그늘진 얼굴이 눈에 들어온 것. 아들은 또래보다 빨리 경제적으로 자립하겠다며 학업을 중단하고 분식집을 열었다. 그런데 분식집을 열자마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았다. 새카맣게 타들어가는 가슴을 움켜쥐고 집에 돌아온 선 씨는 ‘사랑하는 나의 아들 윤호 보렴’으로 시작하는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20년 전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뒤 아들이 줄곧 자신의 희망이었듯, 아버지인 자신도 아들에게 든든한 뒷배임을 알려주고 싶었다. “살아가는 게 지치고 힘들 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누군가에게는 힘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해 주었던 사람이 바로 너였음을 기억해주렴. 아빠도 너의 희망으로 자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마.” 선 씨가 아들에게 띄운 이 희망의 편지는 지난해 한국우편사업진흥원의 ‘대한민국 편지쓰기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주변의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는 이들을 위한 위로와 응원의 편지’를 주제로 한 지난해 공모전에는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편지들이 주로 답지했다. 공모전 수상작들은 수도권의 독립서점 3곳에서 9월 9일까지 선보이고 있다. 서울 마포구 ‘가가77페이지’와 송파구 ‘무엇보다책방’, 경기 김포시 ‘마리북스’에서 만날 수 있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김경미 씨(56)는 코로나 여파로 실직한 남편에게 편지를 썼다. 김 씨의 남편은 쉰 살이 넘어 시작한 사업에 실패한 뒤 낮에는 보험 영업, 밤에는 인천국제공항 물류센터 포장 업무로 쉴 새 없이 일했다. 그러다 지난해 코로나로 공항 이용이 급감하면서 남편은 물류센터에서 권고 사직됐다. 남편이 다 해진 작업용 장갑을 보여줬을 때, 마지막 퇴근길 지하철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왔을 때 김 씨의 마음은 무너졌다. “4월 30일 5년 넘게 한 밤일을 그만두고 운서역에 서서 인증샷을 보내주었는데, 그 사진이 말을 하더라. 더 일찍 그만두게 하고 다른 일을 찾게 해야 했는데….” 이내 김 씨는 밤낮 노동에 시달려온 남편의 어깨가 조금은 가벼워졌다며 남편을 위로한다. “당신 밤일 안 하고도 의식주 해결하는 희망을 가집시다. ‘근로자의 날’ 근로자는 아니지만 쉴 수 있는 날이었어. 정말 좋았어.” 코로나에 따른 거리 두기로 친구들과 맘 놓고 어울리지 못하는 아쉬움을 토로하는 어린이의 글도 있었다. 초등학생 이민서 양(13)은 ‘눈만 보이는 우리 반 친구들에게’라는 제목의 편지에서 “반에는 아는 친구, 모르는 친구, 친한 친구 다 있었지만 나는 모르는 친구에게 말을 걸지 못했어. 2m 이상 친구에게 접근 금지였거든. 2m가 1m, 1m가 30cm, 30cm가 0cm가 되는 그날까지!! 우리 모두 파이팅!!”이라며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다. 올해 편지쓰기 공모전은 ‘나에게 쓰는 편지’라는 주제로 9월까지 접수한다. 이관민 한국우편사업진흥원 문화기획팀 대리는 “지금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어려움을 겪는 스스로를 위한 응원과 위로가 필요한 시기”라며 “올해도 의미 있는 편지들이 많이 모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시는 기분이 전부인 장르거든요. 시를 쓸 때 느껴지는 날개를 펴며 날아오르는 기분, 설사 날개를 버려도 나일 수 있는 그 기분을 함께 느끼고 싶어 책을 썼답니다.” 최근 에세이 ‘쓰는 기분’(현암사)을 펴낸 박연준 시인(41)이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시뿐만 아니라 ‘모월모일’(문학동네) ‘소란’(난다) 등 산문집으로도 사랑받아온 박 시인이 시 쓰기를 주제로 책을 출간했다. 에세이의 외피를 입었지만 우아한 실용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는 그를 26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아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언제나 새롭고, 그래서 시적인 말을 곧잘 하잖아요. 저는 시를 쓰는 능력은 우리 모두가 갖고 태어나지만 자라면서 거세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는 신간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시 쓰는 능력을 일깨워 주기 위해 독자들을 시의 세계로 아주 천천히, 친절하게 안내한다. 1부에서는 처음 시를 접하는 사람들에게 초대장을 보내듯 시가 얼마나 친해지기 쉬운 장르인지 썼고, 2부에는 글쓰기와 삶에 대해 쓴 소소한 산문을 담았다. 3부에서는 시인으로 등단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응원의 메시지를, 마지막 4부에는 시 쓰기에 돌입할 때 궁금할 법한 내용을 질문과 답변 형식으로 정리했다. 그는 “너무 전문서처럼 써서 독자들을 오히려 시로부터 소외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그가 독자들에게 “함께 시를 쓰자”고 간곡히 요청하는 이유는 뭘까. 시 쓰기에 필요한 ‘좋은 눈’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그는 시인이지만 “시는 그 자체로 효용이 있는 장르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시를 쓰기 위해 어떤 현상을 다르게 바라보고, 느리게 생각하며, 새로운 걸 발견하는 이들이 많아지면 더 좋은 세상을 일굴 수 있다고 믿는다. “글쓰기에 마음을 쏟으면 분명 사람이 변한다고 생각해요.” 그는 시에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으로 낭독을 권했다. 그는 “시는 언제나 소리가 되고 싶어 하는 장르”라며 “시가 낭독되는 공간에서 ‘언령(言靈)’의 에너지가 느껴질 때가 많다”고 했다. 시집을 고를 때도 펼쳐놓고 소리를 내 읽다 보면 마음에 쏙 드는 시집을 고르기가 쉬워진다고 했다. 그도 여전히 때때로 좋아하는 시를 소리 내 읽으며 어느새 변화된 공간에 심취한다고 한다. 당장 오늘 밤 시 한 편을 쓰고 싶은 사람들은 무엇부터 하면 될까. 그는 무엇보다 시를 만들기 위해 애쓰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어떤 문장은 내가 만든 게 아니라 내게 도착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적인 문장을 쓰기 위해 애쓰기보다 오히려 몸과 정신을 느슨하게 풀어주는 게 시를 쓰는 데 필요한 ‘준비 운동’이지요.”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시는 기분이 전부인 장르거든요. 시를 쓸 때 느껴지는 날개를 펴며 날아오르는 기분, 설사 날개를 버려도 나일 수 있는 그 기분을 함께 느끼고 싶어 책을 썼답니다.” 최근 에세이 ‘쓰는 기분’(현암사)을 펴낸 박연준 시인(41)이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시뿐만 아니라 ‘모월모일’(문학동네) ‘소란’(난다) 등 산문집으로도 사랑받아온 박 시인이 시 쓰기를 주제로 책을 출간했다. 에세이의 외피를 입었지만 우아한 실용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는 그를 26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아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언제나 새롭고, 그래서 시적인 말을 곧잘 하잖아요. 저는 시를 쓰는 능력은 우리 모두가 갖고 태어나지만 자라면서 거세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는 신간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시 쓰는 능력을 일깨워주기 위해 독자들을 시의 세계로 아주 천천히, 친절하게 안내한다. 1부에서는 처음 시를 접하는 사람들에게 초대장을 보내듯 시가 얼마나 친해지기 쉬운 장르인지 썼고, 2부에서는 글쓰기와 삶에 대해 쓴 소소한 산문을 담았다. 3부에서는 시인으로 등단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응원의 메시지를, 마지막 4부에는 시 쓰기에 돌입할 때 궁금할 법한 내용을 질문과 답변 형식으로 정리했다. 그는 “너무 전문서처럼 써서 독자들을 오히려 시로부터 소외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그가 독자들에게 “함께 시를 쓰자”고 간곡히 요청하는 이유는 뭘까. 시 쓰기에 필요한 ‘좋은 눈’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그는 시인이지만 “시는 그 자체로 효용이 있는 장르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시를 쓰기 위해 어떤 현상을 다르게 바라보고, 느리게 생각하며, 새로운 걸 발견하는 이들이 많아지면 더 좋은 세상을 일굴 수 있다고 믿는다. “글쓰기에 마음을 쏟으면 분명 사람이 변한다고 생각해요.” 그는 시에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으로 낭독을 권했다. 그는 “시는 언제나 소리가 되고 싶어 하는 장르”라며 “시가 낭독되는 공간에서 ‘언령(言靈)’의 에너지가 느껴질 때가 많다”고 했다. 시집을 고를 때도 펼쳐놓고 소리를 내 읽다 보면 마음에 쏙 드는 시집을 고르기가 쉬워진다고 했다. 그도 여전히 때때로 좋아하는 시를 소리 내 읽으며 어느새 변화된 공간에 심취한다고 한다. 당장 오늘 밤 시 한 편을 쓰고 싶은 사람들은 무엇부터 하면 될까. 그는 무엇보다 시를 만들기 위해 애쓰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어떤 문장은 내가 만든 게 아니라 내게 도착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적인 문장을 쓰기 위해 애쓰기보다 오히려 몸과 정신을 느슨하게 풀어주는 게 시를 쓰는데 필요한 ‘준비 운동’이지요.”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요즘 대한민국 대중음악에 대한 존경심이 생겨나고 있어요. 이런 시기에 좋은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돼 즐겁습니다.”(한영애) 중견 가수 김창기, 김현철, 안치환, 한영애가 올가을 특별한 무대에 선다. 대중음악 플랫폼 사운드프렌즈 프로젝트를 통해서다. 26일 온라인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한영애 김창기 김현철은 “1980, 90년대 거장들이 과거를 되돌아보는 무대”라며 “일부 세대에만 통하는 음악이 아닌 시대를 관통하는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공연은 ‘스토리 콘서트’ 형식으로 가수들이 노래 중간에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9월 1, 2일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첫 무대를 여는 김현철의 테마는 ‘City Breeze & Love Song’. 그는 “올 6월 11집을 발매하며 내가 가장 잘하면서도 좋아하는 장르가 시티팝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김현철에 이어 9월 3, 4일 공연하는 한영애는 자신의 4집 앨범 제목인 ‘불어오라 바람아’를 주제로 정했다. 그는 “동명의 수록곡 가사를 통해 공연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며 “‘내 너를 가슴에 안고 고통의 산맥 위에서 새 바람이 될지니’라는 가사처럼 어떤 바람이 와도 여러분을 만날 수 있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9월 5일 공연하는 김창기는 ‘잊혀지는 것’이라는 주제로 1980, 90년대 청년 김창기가 만든 곡들을 무대에서 선보인다. 안치환은 ‘너를 사랑한 이유’를 주제로 올 11월 19∼21일 콘서트를 연다. 한영애와 김창기는 공연과 더불어 LP도 제작한다. 한영애는 1993년 서울 영등포구 63빌딩에서 개최한 공연을 담은 라이브 앨범 ‘我·友·聲(아·우·성)’을, 김창기는 자신의 인기곡들과 일부 미발표 곡을 수록한 앨범 ‘아직도 복잡한 마음’을 LP 음반으로 각각 선보일 예정이다. 참여 가수들은 지금의 트로트 열풍이 지나가면 시대를 뛰어넘어 위안을 줄 수 있는 명곡들을 다시 듣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스타의 부재는 다양성의 결핍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거장 내지 스타는 어느 시대에든, 어느 장르에든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죠.”(한영애) “저는 언제나 한 사람의 격정적이고 복잡한 삶들을 담아낸 노래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런 곡들은 시대와 나이를 불문하고 통한다고 생각해요.”(김창기)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미리 말해두자면, 나는 결코 난폭한 사람이 아니다. (…) 그리고 마흔두 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살인을 했다. 현재 업무 환경에 비추어보면 도리어 늦은 감이 있다. 인정하건대, 일주일 뒤 여섯 건이 추가되긴 했다.”(‘명상 살인’ 중) 잘나가는 독일의 한 변호사가 어느 날 자신의 오랜 고객인 마피아 조직원을 살해한다. 평생을 엘리트로 살아온 그가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자수가 아닌 명상. 장편소설 ‘명상 살인’(세계사)의 저자 카르스텐 두세는 남에게 폭력을 저지르고도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하며 평화를 찾는 인물을 통해 범죄자의 간사한 심리를 묘사했다. 코로나 시대, 바캉스 대신 ‘북캉스(북+바캉스)’를 떠나기로 한 독자들을 위해 올 여름휴가 기간 읽으면 좋을 서늘한 책들을 주요 서점 MD들에게 물었다. ‘명상 살인’을 추천한 박형욱 예스24 소설 MD는 “명상과 살인이라는 예상 밖의 조합으로 써낸 기발한 이야기로, 여름휴가 때 시원하게 읽기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미옥 교보문고 구매팀 소설담당 부장은 김진명의 ‘고구려’ 시리즈(이타북스)를 추천했다. 2011년 1권이 출간된 이후 올해 6월 7권으로 마무리된 이 시리즈는 고구려 역사 중 가장 극적인 시대로 손꼽히는 미천왕 을불부터 광개토대왕 때 이야기까지 다룬다. 박 부장은 “여름에는 역시 시원한 맛의 김진명 소설이다. 고구려 왕들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전해져 밋밋한 역사서가 아니라 무협지처럼 재미있고 삼국지처럼 유익하게 읽힌다”고 했다. 훌훌 책장을 넘기기만 해도 절로 시원해지는 화집(畵集)은 어떨까. 김태희 예스24 에세이·예술 MD는 그림 에세이 ‘풍덩!’(위즈덤하우스)을 추천했다. ‘완전한 휴식 속으로’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더 큰 풍덩’부터 파블로 피카소의 ‘수영하는 사람’까지 보기만 해도 시원함이 느껴지는 다양한 물 이미지가 담겨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중요한 올 여름휴가를 외로운 사람들의 이야기에 둘러싸여 보내는 것도 괜찮은 선택일 수 있다. ‘외로운 도시’(어크로스)의 저자인 영국 비평가 올리비아 랭은 1900년대 쓸쓸한 미국 뉴욕의 풍경을 담은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1942년)을 그린 에드워드 호퍼(1882∼1967)를 소개하는가 하면 익살스러운 이미지로 익숙한 앤디 워홀(1928∼1987)의 그림들에서 고독의 흔적을 짚어낸다. 김경영 알라딘 인문·사회 MD는 “전 세계 사람들이 제각기 단절된 요즘 이 책을 통해 고독의 의미를 곱씹고 확장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미리 말해두자면, 나는 결코 난폭한 사람이 아니다. (…) 그리고 마흔두 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살인을 했다. 현재 업무 환경에 비추어보면 도리어 늦은 감이 있다. 인정하건대, 일주일 뒤 여섯 건이 추가되긴 했다.”(‘명상 살인’ 중) 잘 나가는 독일의 한 변호사가 어느 날 자신의 오랜 고객인 마피아 조직원을 살해한다. 평생을 엘리트로 살아온 그가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자수가 아닌 명상. 장편소설 ‘명상 살인’(세계사)의 저자 카르스텐 두세는 남에게 폭력을 저지르고도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 하며 평화를 찾는 인물을 통해 범죄자의 간사한 심리를 묘사했다. 코로나 시대, 바캉스 대신 ‘북캉스(북+바캉스)’를 떠나기로 한 독자들을 위해 올 여름휴가 기간 읽으면 좋을 서늘한 책들을 주요 서점 MD들에게 물었다. ‘명상 살인’을 추천한 박형욱 예스24 소설 MD는 “명상과 살인이라는 예상 밖의 조합으로 써낸 기발한 이야기로, 여름휴가에 시원하게 읽기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미옥 교보문고 구매팀 소설담당 부장은 김진명의 ‘고구려’ 시리즈(이타북스)를 추천했다. 2011년 1권이 출간된 이후 올해 6월 7권으로 마무리 된 이 시리즈는 고구려 역사 중 가장 극적인 시대로 손꼽히는 미천왕 을불부터 광개토대왕 때 이야기까지 다룬다. 박 부장은 “여름에는 역시 시원한 맛의 김진명 소설이다. 고구려 왕들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전해져 밋밋한 역사서가 아니라 무협지처럼 재미있고 삼국지처럼 유익하게 읽힌다”고 했다. 훌훌 책장을 넘기기만 해도 절로 시원해지는 화집(畵集)은 어떨까. 김태희 예스24 에세이·예술 MD는 그림 에세이 ‘풍덩!’(위즈덤하우스)을 추천했다. ‘완전한 휴식 속으로’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더 큰 풍덩’부터 파블로 피카소의 ‘수영하는 사람’까지 보기만 해도 시원함이 느껴지는 다양한 물 이미지가 담겨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중요한 올 여름휴가를 외로운 사람들의 이야기에 둘러싸여 보내는 것도 괜찮은 선택일 수 있다. ‘외로운 도시’(어크로스)의 저자인 영국 비평가 올리비아 랭은 1900년대 쓸쓸한 미국 뉴욕의 풍경을 담은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1942년)을 그린 에드워드 호퍼(1882~1967)를 소개하는가 하면 익살스러운 이미지로 익숙한 앤디 워홀(1928~1987)의 그림들에서 고독의 흔적을 짚어낸다. 김경영 알라딘 인문·사회 MD는 “전 세계 사람들이 제각기 단절된 요즘 이 책을 통해 고독의 의미를 곱씹고 확장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