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민

하정민 기자

동아일보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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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하정민 기자입니다.

dew@donga.com

취재분야

2024-10-24~2024-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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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이슈/하정민]중-러의 위협에 입지 강화된 차이잉원과 젤렌스키

    2018년 11월 대만 집권 민진당은 22명의 지방자치단체장을 뽑는 선거에서 고작 6석을 얻으며 참패했다. 15석을 얻은 야당 국민당은 기세등등했다. 2020년 1월 대선을 불과 1년 2개월 남겨둔 터라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의 재선은 어렵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그가 민진당 대표에서 물러나는 승부수를 던졌는데도 지지율은 바닥을 기었다. 수세에 몰린 차이 총통은 정작 역대 최다 득표를 얻으며 재선에 성공했다. 승리의 일등공신은 역설적으로 중국이었다. 홍콩 당국이 홍콩 범죄자를 중국 본토로 송환할 수 있는 ‘범죄인 인도법(송환법)’을 도입하려 하자 2019년 6월부터 홍콩에서는 거센 반중 시위가 일어났다. 모진 탄압을 받는 시위대를 보며 대만에서는 ‘홍콩의 내일은 대만’이란 공포가 커졌다. 그 두려움이 반중을 내세운 차이 총통에 대한 지지로 이어진 것이다. 당시 대만 언론은 중국이 그가 미국 코넬대와 영국 런던정경대에서 받은 법학 석·박사 학위가 가짜라는 등의 거짓 정보를 퍼뜨리며 뒤에서 낙선을 부추겼다고 보도했다. 눈엣가시인 그를 몰아내려고 저열한 네거티브 공세를 벌이다 된통 역풍을 맞았다. 그의 재집권 후 중국은 군사 경제 외교 등에서 전방위적 위협을 가하고 있다. 이로 인해 올해 11월로 예정된 대만 지방선거에서도 민진당의 낙승이 예상된다는 평이 나온다. 같은 일이 2022년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졌다. 행정 경험이 전무한 희극인 출신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2019년 집권 후 경제난, 방역 실패, 탈세 의혹 등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2020년 1월 올렉시 혼차루크 당시 총리까지 “대통령의 경제 개념이 유치하다”고 노골적인 뒷말을 했다. 직접 발탁한 총리가 이렇게 평했으니 국정 장악력은 안 봐도 비디오다. 이랬던 그는 러시아의 침공을 계기로 국민 영웅을 넘어 자유세계의 지도자 반열에 올랐다. 지난해 12월 30%대였던 지지율은 침공 직후인 지난달 26, 27일 조사에서 91%로 치솟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암살 위협과 미국의 대피 권유에도 “조국을 지키겠다”며 결연한 항전 의지를 보여 세계를 사로잡았다. “젤렌스키 정권은 약물에 중독된 신(新)나치주의자들”이라는 푸틴 대통령의 흑색선전 또한 그를 더 돋보이게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유대계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조부와 친척들이 유대인 대학살로 숨진 가족사도 수차례 밝혔다. 나치라면 누구보다 치를 떨 그가 신나치 수괴라니 이런 어불성설이 있을까.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군과 친러 반군이 2014년부터 교전 중인 동부 돈바스에서도 “나치주의자 정부군이 러시아계 주민을 대상으로 인종학살을 자행해 시신이 넘쳐난다”는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거듭했다. 러시아계 주민 보호라는 침공 명분을 만들기 위해 억지를 부린다는 걸 세상이 안다. 둘을 상대한 중국과 러시아는 같은 오판을 했다. 가만히 내버려두면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서서히 고사시킬 수 있는데도 벼랑 끝으로 몰아붙이기만 하니 상대방 또한 죽기를 각오하고 덤벼드는 것이다. 집권 초 젤렌스키 대통령은 돈바스 내전에서 잡은 러시아계 포로를 반군의 정부군 포로와 교환하는 등 러시아와 대화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또한 적극 추진하지 않았다. 첫 집권 때의 차이 총통 역시 아예 ‘대만 독립’을 주창한 민진당 출신의 첫 총통 천수이볜(陳水扁)에 비해 온건한 대중 정책을 폈다. 이랬던 둘을 굳이 자극하고 들쑤셔 각각 반러, 반중 투사로 만들었다. 양국의 행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여론 또한 싸늘하다.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어느 편도 들지 않던 중립국 스웨덴 핀란드 또한 나토 가입을 거론하며 서방으로 완연히 기울고 있다. 전 세계를 조공국 취급하는 중국의 폭주로 미국 퓨리서치센터가 지난해 세계 17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70%가 “중국이 싫다”고 했다. 이런 현실에 귀 기울이지 않고 ‘서방이 우리를 악마화했다’는 타령만 거듭하면 곳곳에서 제2, 제3의 젤렌스키와 차이잉원이 나타날 것이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 2022-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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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이슈/하정민]‘초콜릿 왕’과 ‘국민의 종’

    러시아의 침공 위협으로 전운이 감도는 우크라이나가 전현직 최고권력자의 정쟁으로도 시끄럽다. 2019년 5월 퇴임 후 반역 혐의로 기소됐고 이웃 폴란드에서 사실상 망명 생활을 했던 페트로 포로셴코 전 대통령은 17일 전격 귀국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현 대통령과의 일전을 선언했다. 그는 지지자 앞에서 “젤렌스키가 납세자의 돈을 훔쳐 영국과 이탈리아에 호화 주택을 보유했다. 위기에 빠진 조국을 구하러 왔다”고 주장했다. 포로셴코는 젊은 시절 제과회사 로셴을 창업한 후 자동차, 조선, 방송 등으로 사업을 확장해 조(兆) 단위 부자가 됐고 ‘초콜릿 왕’으로 불렸다.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한 직후 치러진 2014년 3월 대선에서 그는 “성공한 기업가의 경험을 살려 국정을 운영하겠다”고 호언해 낙승했다. 그러나 고질적인 경제난은 나아지지 않았고 2019년 대선에서 정치 경험이 전무한 코미디언 출신의 젤렌스키에게 패했다. 젤렌스키는 평범한 역사 교사가 각종 난관을 뚫고 대통령이 된다는 내용의 드라마 ‘국민의 종’에서 주연을 맡아 선풍적인 인기를 끈 후 여세를 몰아 진짜 대통령까지 올랐다. 그는 취임 후 포로셴코가 집권 당시 친러 세력이 장악한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분리주의자의 자금줄인 불법적인 석탄 판매에 관여했다며 기소했다. 포로셴코의 자산도 동결했다. 둘의 갈등 한복판에 젤렌스키와 마찬가지로 유대계인 금융 재벌 이호르 콜로모이스키가 있다. 포로셴코는 집권 중 콜로모이스키가 소유했지만 경영난에 처한 프리바트 은행을 국유화했다. 콜로모이스키는 “회생 가능성이 있는데도 정부가 재산을 강탈했다”고 주장한다. 포로셴코는 “콜로모이스키가 보복을 위해 젤렌스키를 후원하고 대통령에 앉혔다”고 맞선다. ‘국민의 종’이 콜로모이스키 소유의 방송국에서 방영됐고, 젤렌스키 내각에도 그의 측근이 대거 포진한 탓이다. 둘 중 누구 말이 맞건 양측 모두 부패와 실정(失政) 비판에선 떳떳하지 못하다. 포로셴코와 젤렌스키는 각각 세계 주요 인사의 역외 탈세를 폭로한 ‘파나마 페이퍼스’와 ‘판도라 페이퍼스’ 문건에 이름을 올렸다. 서로를 죽일 듯 으르렁대지만 조세회피처에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회사를 설립해 거액을 은닉한 행위는 약속이나 한 듯 같았다. 둘 중 누구 하나 경제를 살려내지도 못했고 크림반도를 넘어 우크라이나 전체를 손에 넣으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위협을 막아내지도 못했다. 자신은 깨끗한데 상대방의 얼굴에만 똥이 묻었다고 주장하는 둘이 다투는 동안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나라 전체가 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포로셴코의 귀국 당일 젤렌스키가 서방, 러시아와의 다자 협상안이 아니라 참모들과 포로셴코 대응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걸린 상황에서 안보보다 정적 대응을 우선한 셈이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또한 전현직 지도자의 화합을 주문한 것을 알려졌다. 러시아와 싸우기도 바빠 죽겠는데 집안싸움은 나중에 하라는 경고인 셈이다. 1991년 옛 소련에서 독립한 후 우크라이나는 제대로 된 지도자를 가져본 적이 없다. 친러파 대통령 레오니트 쿠치마와 빅토르 야누코비치는 국민의 뜻에 반한 일방적 친러 정책을 펴다 각각 반정부 시위 오렌지혁명과 유로마이단으로 중도 퇴진했다. 친서방파 빅토르 유셴코와 포로셴코 또한 동부 지역을 장악하지 못한 채 사실상 반쪽짜리 대통령으로 지냈다. 또 친서방 행보로 푸틴의 불안감을 더 자극해 현재의 위기에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심지어 친러파 지도자의 대부분은 러시아어가 모어(母語)이며 우크라이나어조차 잘 구사하지 못했다. ‘땋은 머리’로 유명하며 오렌지혁명을 주도해 친서방파의 기수로 불렸던 율리야 티모셴코 전 총리 또한 “30대 때 정계에 입문하기 전까지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해본 적이 없다”고 했을 정도다. 곳곳에 드리운 러시아의 입김이 이토록 강력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는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까. 전현직 대통령의 대립이 치열해질수록 주권 수호가 어려워질 것이란 점은 분명해 보인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 2022-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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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이슈/하정민]‘레드 타이드’보다 더 붉은 ‘핑크 타이드’

    2004년 우루과이 대선에서 좌파연합 후보인 의사 출신의 타바레 바스케스가 승리했다. 건국 후 첫 좌파 대통령이 탄생하자 당시 이를 취재하던 미국 뉴욕타임스의 래리 로터 기자가 ‘핑크 타이드(Pink Tide)’란 용어를 처음 썼다. 좌파지만 바스케스의 정책과 성향이 극단적이지 않으며 강렬한 빨간색이 상징인 동구권 사회주의보다 온건한 분홍빛 사회주의가 나타날 것이란 의미에서였다. 이후 중남미 곳곳에서 좌파 정권이 집권하자 ‘온건 사회주의의 유행’을 뜻하는 핑크 타이드란 용어 역시 널리 퍼졌다. 핑크 타이드를 가능케 한 핵심은 선심성 복지 정책이다. 베네수엘라(원유) 브라질(철광석) 칠레(구리) 등 주요국은 모두 풍부한 지하자원을 보유했다. 2000년대 중국 경제의 급성장으로 세계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자 이들은 자원 수출로 번 돈을 무상 의료, 무상 교육, 저가주택 공급에 쏟아부었다. 음식과 생필품 가격도 인위적으로 낮게 책정했다. 국민들 또한 열광했다. 2010년대 들어 원자재 가격이 하락했지만 핵심 지지층인 저소득층의 반발을 우려해 호황 때 설계된 공공 지출과 복지를 줄이지 않았다. 좌파 지도자의 부정부패 또한 우파에 버금갔다. 물가가 치솟고 나라 재정이 파탄나자 민심이 돌아섰다. 2015년 아르헨티나, 2018년 칠레와 브라질 대선에서 모두 우파 후보가 당선됐다. 이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ABC(아르헨티나·브라질·칠레)’ 3개국에서 모두 우파 정권이 들어선 것이다. 이렇게 잠시 주춤하는 듯했던 핑크 타이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다시 힘을 얻고 있다. 전대미문의 전염병 대유행으로 취약계층이 큰 피해를 입자 복지 확대 구호가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6월 페루, 11월 온두라스, 이달 19일 칠레 대선에서 속속 좌파 후보가 승리한 것이 그 증거다.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세 사람은 모두 강경 진보정책을 주창하고 있다. 문제는 돈이다. 셋 중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가브리엘 보리치 칠레 대통령 당선인은 내년 3월 취임하면 환경을 파괴하는 광업 개발을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광업이 국가총생산(GDP)의 10%임을 간과했을 뿐 아니라 환경 파괴가 전혀 없는 광업 개발은 애초부터 형용모순에 가깝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다. 학자금 대출 탕감, 민영 연금의 공영화 등 그의 공약은 하나같이 천문학적 재원을 필요로 한다. 약자를 지원하자는 취지는 좋으나 국가 경제의 근간인 광업을 사실상 포기한다면 이에 필요한 돈을 어디서 조달할까. 각각 내년 5월과 10월 대선을 치르는 콜롬비아와 브라질에서도 좌파 후보의 당선이 유력하다. 특히 중남미 최대 경제대국 브라질에선 집권 중 부패로 퇴임 후 감옥신세까지 졌던 ‘좌파 거두’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이 높다. 그는 재직 시 ‘보우사 파밀리아’(빈민층 현금 지급) ‘포미 제루’(기아 제로) 등의 무상 복지에 예산의 약 75%를 투입한 인물이다. 이런 상황을 보노라면 이제 핑크 타이드가 ‘원조’를 넘어 더 붉어진 느낌마저 든다. 사회주의 종주국을 자처하는 옛 소련은 사유재산을 죄악시했다. 모두가 잘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며 집단농장 같은 실험을 벌였지만 결과는 처참했고 소련 또한 무너졌다. 옛 소련을 추종했던 동유럽 각국 또한 시장경제를 받아들이고 유럽연합(EU)에 가입하거나 가입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레드 타이드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는데도 유독 중남미에서만 핑크 타이드가 맹위를 떨치는 현상 뒤에는 각국 군사독재 정권의 오랜 민주화 탄압 역사 등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재원 마련 방안과 원자재 대체 산업을 키우려는 노력 없는 무상 복지 또한 일종의 신기루에 불과하다. 보조금의 단맛에 길들여진 국민 역시 갈수록 구조조정을 비롯한 허리띠 졸라매기를 거부할 것이 뻔하다. 똑같이 무능한 좌우파가 번갈아 가며 집권하다 양극화, 부패, 정치 불신 등만 심화하는 모습이 중남미만의 일도 아닌 듯하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 2021-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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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이슈/하정민]트럼프보다 무서운 ‘인플레’

    2011년 12월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은 공화당원이자 사모펀드 칼라일그룹의 임원을 지낸 제롬 파월을 신임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이사로 지명했다. 현직 대통령이 당적이 다른 인물을 연준 이사로 발탁한 것은 1988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민주당원 존 라웨어 이사를 선택한 지 23년 만이어서 큰 관심을 모았다. 당적, 경제학 전공자가 아닌 법조인 출신이란 이유로 당내 일각의 반대도 있었으나 오바마는 파월이 정치적 이념을 앞세우지 않는 데다 실용주의적이고 온건한 성향이라는 점을 높이 샀다. 다음 해 5월 임기를 시작한 파월은 미국의 기준금리를 결정하기 위해 1년에 8차례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늘 다수 의견에 따르는 투표를 하며 연준에 무난히 녹아들었다. 본인의 자산 또한 최대 5500만 달러(약 660억 원)로 추정되는 부자지만 ‘일정 수준의 금융 규제는 꼭 필요하다’는 태도도 견지했다. 2017년 11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연임이 예상되던 재닛 옐런 당시 의장을 교체하고 당적이 같은 파월을 연준의 새 수장으로 낙점했다. 그가 똑똑하고 헌신적이며 연준에 필요한 모든 지도력을 갖췄다고도 추켜세웠다. 그러나 파월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금리를 확확 낮추지 않자 곧 본색을 드러냈다. 연준이 금리를 높게 유지해 미국 경제가 로켓처럼 상승하지 않는다며 파월을 ‘배신자’ ‘멍청이’ ‘무능하다’고 깎아내렸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파월 중 누가 미국에 더 적(敵)인지 모르겠다”는 막말까지 일삼았다. 빌린 돈으로 건물과 땅을 사들여 재벌이 된 트럼프는 고금리를 단순히 재선 가도의 방해물을 넘어 일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여겼다. 급기야 법이 보장하는 연준 의장의 4년 임기를 지켜주지 않겠다며 파월을 쫓아낼 방안을 찾아내라고 참모진을 들볶았다. 해고가 어렵다는 것을 알자 의장에서 이사로 강등시키겠다고 위협했다. 이런 작태를 보다 못한 전직 연준 의장 4명은 “연준의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하라”고 언론 기고문까지 냈다. 파월 또한 진중하고 품위 있게 맞섰다. 반드시 자신의 임기를 마칠 것이며 행정부 압력에 의해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또 실제 그렇게 했다. 민주당 진보파의 교체 요구에도 불구하고 조 바이든 대통령 역시 지난달 22일 파월의 연임을 확정했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정확히 반반으로 나뉜 상원에서 민주당원 후보자보다 그의 인준이 쉬울 것이란 현실적 계산도 있었겠지만 의장 파월의 처신이 흠잡을 데 없었다는 점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연임을 확정한 그의 앞에는 트럼프보다 훨씬 무섭고 다루기 어려운 상대가 기다리고 있다. 바로 인플레이션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을 위해 풀린 막대한 유동성 등의 여파로 휘발유값, 집값, 식료품값 등이 연일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통화 긴축이 불가피하나 공급망 교란,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등으로 무작정 금리를 올리는 것도 쉽지 않다. 게다가 바이든 행정부는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을 풀어 인프라에 투자하고 기후변화 대책 등을 마련하겠다고 야단이다. 당적이 다른 자신을 신임해 준 바이든이 역점 사업을 적극 추진할수록 인플레 위험이 커져 물가 안정이 존립 근거인 중앙은행 수장으로서 현직 대통령과 맞서야 하는 셈이다. 재선이 다가오면 바이든 또한 트럼프처럼 막무가내로 금리 인하를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오일쇼크 후폭풍이 한창이던 1979년 연준 수장에 취임한 폴 볼커 당시 의장은 고물가와 경기 둔화라는 이중고 속에서 과감히 물가 잡기를 택했다. “인플레라는 용(龍)을 잡겠다”고 선언한 볼커는 취임 때 11%대였던 기준 금리를 19세기 남북전쟁 이후 최고치인 20%대까지 끌어올렸다. 유례없는 고금리에 산업계 반발이 엄청났고 백악관도 우려를 표했지만 눈 깜짝하지 않았다. 그의 소신과 뚝심이 1990년대 미국 경제의 장기 호황으로 이어졌으며 역대 최고의 연준 의장으로 불릴 만하다는 호평이 아직도 나온다. 과연 파월은 볼커처럼 인플레 위험을 관리하면서 경기 회복 불씨도 꺼뜨리지 않을 수 있을까. 그의 진정한 시험대는 지금부터인 것 같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 2021-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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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이슈/하정민]‘준비된 국무장관’의 부진

    미국 국무장관은 대통령, 부통령, 하원의장에 이은 권력 서열 4위 직책이다. 외교 수장을 이 정도로 높이 대우하는 나라가 많지 않다는 점을 감안할 때 미국이라는 패권국에서 차지하는 외교정책의 비중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동맹과 적을 가리지 않고 골고루 척을 졌고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장관 또한 본업보다 상원의원 출마 저울질 같은 ‘자기 정치’를 우선시한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특히 폼페이오는 아들 데려오기, 개 산책, 음식 배달 같은 사적 업무에도 경호원 등을 투입해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이에 토니 블링컨 현 장관이 올해 1월 취임했을 때 미국 안팎의 기대는 그야말로 높았다. 그는 부친과 숙부가 모두 대사를 지낸 외교관 가문에서 태어났다. 빌 클린턴 행정부의 크리스토퍼 워런 장관 이후 28년 만에 국무부 부장관을 거쳐 부처 수장에 오른 내부 인사 출신이어서 부처 사정에도 밝다. 유창한 프랑스어, 온화한 태도와 언행도 겸비했다. 무엇보다 조 바이든 대통령으로부터 ‘나의 또 다른 자아(alter ego)’로 불릴 정도로 주군의 신뢰가 두터워 ‘준비된 국무장관’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10개월이 흐른 지금은 어떨까. ‘개인’ 블링컨의 처신에는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장관’ 블링컨의 업무 능력에 후한 점수를 주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뉴스위크 등이 ‘취임 첫해 레임덕’까지 거론할 정도로 지지율이 떨어진 바이든 행정부의 난맥상이 주로 대외 문제에서 비롯된 탓이다. 아프가니스탄 철군 과정에서 벌어진 혼란, 오커스(AUKUS·미국 영국 호주 안보협의체) 창설 및 이에 따른 잠수함 계약 파기에 대한 프랑스의 반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미중 대면 정상회담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는 보도, 중국과 러시아만 도와주는 꼴이라며 동맹이 반발하는데도 굳이 추진하고 있는 ‘핵무기 선제 불사용(No first use)’ 원칙 등 일일이 나열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다. 동맹을 규합하는 능력은 트럼프 행정부 때보다 나아졌으나 이 역시 바이든 행정부에 동조해서라기보다 전 세계 모든 나라를 조공국 취급하며 폭주하는 중국이 싫어서 미국 편을 든 것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로 국내 정치에 대한 과도한 함몰과 이에 따른 외교 경시를 꼽는다. 바이든 행정부는 워싱턴 기성정치에 신물이 나 트럼프라는 이단아를 찍은 백인 노동계층을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며 국방비를 줄이고 그 돈으로 인프라 투자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소위 ‘중산층 외교’를 표방했지만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대표적 예가 아프간 철군이다. 그냥 내버려두면 영원히 끝나지 않을 전쟁을 끝내겠다는 의도는 온데간데없고 서투르고 어설픈 준비로 당초 기대했던 비용 감축 효과를 얻지도 못한 채 미국의 지도력 부재만 보여준 꼴이 됐다. 대통령,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의 잘못도 있겠으나 주무 장관 블링컨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다. 벌써부터 보수 진영 일각에서는 블링컨의 사퇴를 거론한다. 폭스뉴스의 리즈 피크 외교안보 칼럼니스트는 “대통령에게 제대로 된 조언을 할 수 없다면 사임하라. 중국의 도전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국무장관의 약하고 무기력한 지도력을 감당할 수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블링컨의 현주소는 한국을 포함한 미국의 동맹에도 상당한 고민을 안긴다. 기업인에다 워싱턴 정치 경력이 전무한 대통령, 4선 하원의원 출신의 정치인 국무장관이 있었던 트럼프 행정부 시절과 달리 상원의원 36년과 부통령 8년을 외교 전문가로 지냈다고 자처하는 대통령, 외교관 중 외교관으로 불렸던 장관이 등장해도 미국의 외교정책이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다는 점은 그 어떤 대통령과 국무장관이 나온다 해도 미국 우선주의와 동맹 경시 노선이 이어질 것임을 시사한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블링컨은 상원 인준 당시 전체 100표 중 78표를 얻었다. 전임자 폼페이오보다 21표나 더 얻은 것은 트럼프 행정부 시절 무너진 미국 외교를 재건하라는 미국 사회의 기대가 그만큼 높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가 장관직을 얼마나 더 수행할지는 알 수 없으나 인준 때의 기대에 부응하려면 환골탈태 수준의 전략 변경과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 같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 2021-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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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이슈/하정민]차이잉원과 시진핑의 매력자본

    영국 사회학자 캐서린 하킴은 2011년 아름다움이 곧 경쟁력이라는 ‘매력 자본(erotic capital)’ 개념을 주창해 반향을 일으켰다. 훌륭한 외모를 넘어 유머 감각, 상대를 편안하게 하는 기술, 긍정적 태도, 활력 등의 집합체에 가깝다. 강압이나 이해관계가 아니라 후천적 노력으로 연마한 매력을 통해 상대방의 호감을 이끌어낸다는 뜻이다. 금방이라도 침공할 듯 거세게 압박하는 중국 앞에서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이 보여준 행보와 언사는 국가 지도자가 지녀야 할 매력 자본의 교과서처럼 보인다. 그는 5일 미 외교매체 포린어페어스 기고를 통해 현 양안 갈등을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대결로 규정했다. 대만의 존립은 민주주의가 권위주의보다 우위에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며, 권위주의 세력이 국제질서를 바꾸려는 것에 대항하는 대만의 노력을 ‘선(善)을 위한 힘(a force for good)’으로 평했다. 10일 건국 110주년 연설에서는 대만이 더 이상 ‘고아’가 아니며 가치를 공유하는 파트너와 함께 국제사회에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거에는 중국을 의식해 각국이 대만과 연을 끊었지만 이제 미국 일본 호주 유럽연합(EU) 등에서 대만이 환영받고 있으며 많은 민주주의 국가가 대만을 위해 일어섰다고 했다. 그의 기고와 연설은 어렵지 않은 말인데도 진솔하고 울림이 있다. 품격 있는 지도자라면 갖춰야 할 태도 즉 대의명분과 원칙에 충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국내 선거 때도 늘 ‘민주주의는 단지 한 번의 선거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이라고 강조해왔다. 2016년 첫 집권 때만 해도 차이는 집권 민진당이 배출한 첫 번째 총통 천수이볜(陳水扁)에 비해 대중국 노선이 온건하다는 평을 들었다. 천은 중국 공산당이나 공산당에 패해 대만에 온 후 수십 년간 철권통치를 한 국민당이나 대만인을 핍박한 것은 마찬가지였다며 대만 독립을 주창했다. 차이는 현실을 인정하고 중국과 잘 지내야 한다는 쪽이었다. 이런 그를 아시아를 넘어 자유세계의 대표 지도자 겸 반중 투사로 만들어준 건 역설적으로 중국이다. 그냥 내버려두면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서서히 종속시킬 수 있는데도 가만히 있는 대만을 당장이라도 집어삼킬 기세로 몰아붙이니 자구책을 마련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미 코넬대와 영국 런던정경대(LSE)를 졸업한 차이는 서구 매체에 유려한 영어로 ‘대만이 무너지면 세계 민주주의가 몰락한다’고 호소했다. 중국은 허구한 날 대만해협에 전투기와 함대를 보냈고 ‘피’를 운운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7월 공산당 100주년 기념식에서 “우리를 얕보고 억압하고 노예로 만들려는 외부 세력은 14억 인민이 피와 살로 쌓은 강철 장성에 머리를 박아 피를 흘릴 것”이라고 했다. 둘 중 누구에게 매력을 느낄지, 진짜 다른 나라를 얕보고 억압한 세력이 어떤 쪽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소셜미디어 등의 발달로 국제 정세에서도 여론전이 중요해진 상황에서 차이의 매력 자본은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7일 토니 애벗 전 호주 총리, 알랭 리샤르 전 프랑스 국방장관이 이끄는 프랑스 의회대표단은 각각 타이베이에서 차이와 만나 모두 대만을 ‘국가’(country)로 칭했다. 특히 현직 때도 대만을 방문한 적 없던 애벗은 전 세계 민주 국가가 중국에 맞서 대만을 도와야 한다며 “대만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지지한다”고 했다. 발언 하나하나가 중국이 발끈할 내용들로 채워졌다. 미국 여론도 호의적이다. 1994년부터 매년 미 외교정책에 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싱크탱크 시카고카운슬에 따르면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미군을 동원해야 한다’는 미국인의 비율이 올해 가장 높은 52%를 기록했다. 미국의 중동 최대 맹방 이스라엘(53%)과 별 차이가 없다. 미국은 최근 미 해병대와 특수부대가 대만에서 대만군 훈련을 도왔다는 사실도 시인했다. 문명국이라면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기반한 통치를 해야 하고, 지도자는 품위 있는 언어를 써야 하며, 일단 외교 원칙을 정했으면 그 원칙을 공유하는 우군을 도처에 만들어야 해당 국가와 그 지도자 모두 존속할 수 있음을 차이가 보여준다.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 2021-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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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이슈/하정민]진영논리 거부해 ‘상원의 왕’ 된 맨친

    “미국의 부족주의가 위험한 수준이다. 타협이 없으면 민주주의는 살아남지 못한다.” 미국의 집권 민주당에서 가장 오른쪽에 있다고 평가받는 조 맨친 상원의원(웨스트버지니아)이 2월 진보매체 뉴리퍼블릭 인터뷰에서 정치 양극화를 우려하며 한 말이다. 2010년 상원에 입성한 그는 오바마케어 등 당시 버락 오바마 행정부 정책에 반대표를 던졌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후에는 당 동료가 반대한 반(反)이민, 반낙태, 보수대법관 임명 등에 찬성했다. 부양안, 최저임금 인상, 선거구제 개편 등 조 바이든 현 행정부의 주요 정책 또한 반대하고 있다. 당과 사사건건 엇박자를 내는 이유는 지역구 사정 때문이다. 쇠락한 공업지대(러스트벨트)인 웨스트버지니아는 2018년 기준 중위소득이 4만4097달러(약 5071만 원)로 미국 50개 주 중 가장 낮다. 180만 인구의 대부분은 ‘힐빌리’ ‘레드넥’으로 불리는 백인 저학력 저소득층이다. 주요 도시 헌팅턴은 마약 문제가 심각해 ‘미국의 마약 수도’로 불린다. 인구가 각각 약 4000만 명, 2000만 명이고 미국을 넘어 전 세계의 인재와 자원을 빨아들이는 민주당 텃밭 캘리포니아나 뉴욕주와 다른 시공간에 있다. 그가 공화당 지지세가 강한 이곳에서 민주당 간판을 달고 1982년부터 주의회 의원, 주지사를 거쳐 연방 상원까지 입성한 것이 놀라울 정도다. 1월 출범한 상원이 민주당 50석, 공화당 50석으로 이뤄진 것은 그의 몸값을 극대화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특정 법안을 통과시키려면 민주당에서 한 명의 이탈자도 없어야 하고 당연직 상원의장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또한 캐스팅보터로 가세해야 한다. 맨친이 반대표를 던지면 무위로 돌아간다. 가디언이 ‘백악관에 있는 사람은 바이든이지만 대통령직을 운영하는 이는 맨친’, 뉴리퍼블릭이 그를 ‘상원의 왕’이라고 평한 이유다. 그는 단순히 의원직 연장만을 위해 독자 노선을 걷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현재 시간당 7.25달러인 연방 최저임금을 15달러로 인상하겠다는 바이든 행정부 정책은 산업 기반이 취약한 지역의 경제를 고사시킬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는 민주당 정권만의 탓이 아니라며 “설사 공화당이 집권해도 웨스트버지니아에는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사실 아칸소, 켄터키, 미시시피 등 인구가 적고 낙후된 어떤 주를 대입해도 통하는 말이다. 그는 현재 바이든 행정부가 사활을 걸고 있는 3조5000억 달러(약 4025조 원)의 부양안 통과 또한 재정적자 증가, 인플레 위험 증대 등을 이유로 반대한다. 12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경제 위기에 직면한 미국인을 돕기 위해 이미 5조4000억 달러를 투입했다. 이미 지출된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새 부양안이 주장하는 사회안전망 확충의 정확한 목표가 어디인지를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진보진영은 이번 부양안이 대공황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준 ‘뉴딜’ 이후 가장 중요한 법안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돈이 기후변화, 이민 및 건강보험 개혁 등 찬반양론이 많은 정책에 쓰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 때문에 우려를 표하는 이가 적지 않다. 맨친의 말대로 코로나19에 따른 급한 불을 어지간히 껐는데도 바이든 행정부가 거듭 민주당표 정책에만 막대한 돈을 쏟아부으려 하는 것에 의구심을 보내는 미국인이 많다는 뜻이다. 1일 초당파 단체 노레이블스가 유권자 97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60%는 “새 부양안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먼저”라며 ‘통과’보다는 ‘전략적 중단’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훗날 통과가 된다고 해도 우선은 어디에 어떻게 쓰일지부터 제대로 설명해 달라는 뜻이다. 몇몇 민주당 의원의 행보는 맨친을 돋보이게 한다. 셰러드 브라운 상원의원(오하이오)은 상장사의 자사주 매입에 2%의 세금을 부과하는 법을 추진하고 있다. 자사주 매입이 주가 상승에 도움을 준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주가 상승에 반하는 정책을 도입하면 미국 금융과 경제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 뻔한데도 세금으로 부양안 재원부터 마련하겠다는 생각에 앞뒤 안 재고 뛰어든다는 평이 나온다. 세계 곳곳에서 대중영합주의를 앞세운 정치인이 기승을 부리는 요즘 ‘공화당 첩자’란 일각의 비판에도 진영논리 대신 소신과 원칙을 중시하는 맨친에게 눈길이 간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 2021-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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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이슈/하정민]‘버락 앙투아네트’의 교훈

    미국 뉴욕타임스(NYT)의 진보 성향 칼럼니스트 모린 다우드는 14일 ‘보라, 버락 앙투아네트’란 도발적 글을 게재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호되게 비판했다. 그간 도널드 트럼프, 조지 W 부시 등 공화당 출신 최고 권력자를 주로 질타한 이력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다우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이 심각한 와중에 매사추세츠주 최고급 휴양지 마서스비니어드섬에서 배우 조지 클루니, 가수 비욘세 등을 대동하고 마스크 없이 60세 생일 파티를 즐긴 오바마를 프랑스 대혁명 당시 단두대에서 숙청된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빗댔다. 전직 대통령이 전염병 대유행 와중에 방역 규정까지 어기고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호화 파티를 즐긴 행태는 빵을 요구한 군중에게 ‘케이크를 주라’고 했다는 설이 제기된 앙투아네트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다우드는 코로나19와 기후변화가 심각한데 왜 오바마가 가수와 듀엣으로 노래를 부르고 부(富)와 인맥을 과시하는 일까지 지켜봐야 하느냐며 프랑스어로 졸부를 뜻하는 ‘누보리치’의 전형적 행태라고 일갈했다. 폭스뉴스가 아닌 NYT 칼럼니스트가 ‘팩트 폭력’을 가한 사실은 오바마의 소탈하고 인간적인 매력과 별개로 그의 집권 8년에 대한 미 사회 전반의 실망이 상당함을 보여준다. ‘담대한 희망’을 외치며 초선 상원의원에서 백악관 주인으로 직행한 오바마의 등장 당시 많은 이가 환호했다. 말 잘하고 글 잘 쓰고 외모도 호감형인 신언서판(身言書判)의 결정체에다 흙수저 성공 신화까지 갖췄다. 존재하지 않는 대량살상무기를 이유로 이라크전쟁을 일으키고 금융위기까지 잉태한 부시의 과오를 그가 치유해줄 것이란 기대가 컸다. 현실은 달랐다. 국내에서는 오바마케어 논란으로 야당 공화당과의 대립이 심해져 걸핏하면 연방정부가 문을 닫았고 금융위기 수습 과정에서 양극화도 심화했다. 나라 밖에서는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창궐했고 현직 리비아 주재 미국 대사가 무장폭도에게 피살됐다. 중동을 포기하더라도 중국의 급부상만은 견제하겠다는 ‘피벗 투 아시아’ 정책을 폈지만 폭주하는 중국을 제어하지 못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합병 또한 막아내지 못했다. 대내외 정책 모두 실패한 채 트럼프란 이단아의 집권 문만 열어줬다는 비판이 컸다. 이는 오바마가 집권 중 현직 대통령의 신임 투표 성격이 강한 두 차례의 중간선거에서 모두 패해 국정운영 동력을 잃은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패배의 최대 원인으로 꼽히는 사안이 바로 오바마케어다. 세계 최강대국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사회적 약자에게 가혹하고 과도하게 비싼 미국의 의료체계를 뜯어고치겠다는 취지 자체는 좋았다. 그러나 자유주의와 개인주의 전통이 강한 많은 미국인에겐 나의 세금을 불법 이민자 등 지원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낭비하는 악덕 제도로 비쳤다. 선의(善意)만으로는 복잡다단한 현실을 돌파하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까지 설득시킬 수 없는 것이다. 오바마의 집권 말기 여론조사에서 그를 한 단어로 정의하라는 말에 ‘좋음(good)’과 ‘무능(incompetence)’이 비슷하게 나온 것 또한 대통령 오바마의 ‘성품’과 ‘능력’에 대한 평가가 각각 어땠는지 보여준다. 아프가니스탄 철군이란 판도라의 상자를 연 ‘오바마의 부통령’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또한 비슷한 처지에 놓였다. 이대로 놔두면 결코 끝나지 않을 전쟁을 누군가는 끝내야 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해도 어떻게 끝을 내느냐는 ‘과정’을 경시해 상상할 수 없는 후폭풍을 초래했다. 아프간 철군으로 여론 지지를 확보해 내년 중간선거 승리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은 빗나가고 오히려 중간선거 패배의 그림자가 벌써부터 어른거린다. 상원 100석을 공화당과 정확히 50 대 50으로 나눠 가지는 바람에 대규모 경기부양안 등 주요 입법이 사사건건 가로막혀 답답한 현실은 이해하나 준비 안 된 철군이야말로 국정운영의 최대 걸림돌일 수 있음을 정말 몰랐을까. 최고권력자의 최대 덕목은 ‘인간적 매력’이 아니라 ‘유능함’이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 2021-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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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경제, 팬데믹 이전 규모 회복…델타 변이 재확산 등 변수

    미국 경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충격에서 벗어나 팬데믹 이전 규모를 회복했다. 빠른 백신 보급과 정부의 재정 지출 등에 힘입어 역대 다른 경제위기들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빠른 회복을 한 것이라고 미국 언론들은 분석하고 있다. 다만 앞으로 델타 변이 바이러스의 재확산 등 변수도 여전히 많다. 미 상무부는 29일 2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연율 기준 6.5%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1분기 때 6.3%에 이어 두 분기 연속 6%대 고성장이다. 다만 월가의 기대치인 8%대에는 못 미쳤다. 2분기 성장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소비 지출이다. 백신 접종으로 소비자들의 상품 구매와 여행 욕구가 살아나면서 소비는 연율 기준 11.8% 증가했다. 기업 투자 역시 8%(연율) 늘어나 경제 성장에 힘을 보탰다. 다만 공급망 교란과 노동력 부족으로 기업 등이 생산에 차질을 빚은 것이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했다. 고성장이 이어지면서 팬데믹으로 GDP가 급격히 쪼그라들었던 미국은 사실상 1년 만에 위기를 훌훌 털고 코로나19 사태 이전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다. 미국의 분기별 성장률은 팬데믹이 시작된 작년 1분기 연율 기준 ―5.0%로 밀리더니 그해 2분기에는 ―31.4%로 곤두박질쳤다. 하지만 바이러스가 잠잠했던 3분기에 33.4%로 빠르게 회복했고 백신이 보급된 4분기부터는 5% 안팎의 견조한 성장세를 이어갔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경제가 백신 공급과 정부 지원금 등에 힘입어 가장 저점이었을 때 이후 1년 만에 팬데믹의 수렁에서 벗어났다”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경기침체가 끝난 2009년 이후 GDP가 완전히 회복하는 데 2년이 걸렸다”고 분석했다. 다만 델타 변이 등의 확산이 이런 성장세에 찬물을 끼얹을 우려도 적지 않다. 미 보건당국은 이번 주 백신 접종자들도 실내에서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물론 미국 경제가 작년 봄처럼 완전 봉쇄되는 수준으로 진행되진 않겠지만 사람들이 외식이나 여행을 다시 꺼리게 되면 어느 정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하정민기자 dew@donga.com}

    • 2021-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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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이슈/하정민]1776 vs 1619

    4일 245주년 독립기념일, 20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취임 6개월을 맞은 미국에서 역사 논쟁이 치열하다. 진보 진영은 미국의 시원(始原)을 독립선언문이 공표된 1776년이 아니라 흑인 노예가 미 버지니아주에 처음 도착한 1619년으로 보고 이들이 미 역사에 크게 기여했음을 인정하라고 주장한다. 특히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등 일련의 건국 영웅을 일컫는 ‘건국의 아버지’ 대부분이 노예를 부렸다며 이들의 재평가 또한 불가피하다고 본다. 보수 진영은 노예제가 당시 미국에만 존재한 제도도 아닌데 시대적 상황과 맥락을 도외시한 채 공이 큰 인물에 대한 흠집 내기가 과하다며 역사 왜곡이라고 맞선다. 이 논란의 배경에 미국의 인종차별이 개개인의 잘잘못이 아닌 인종차별을 용인하고 부추기는 구조적이고 제도화된 체제의 결과로 나타난다는 ‘비판적 인종이론(CRT·critical race theory)’이 있다. 1970년대 일부 흑인 법학자는 로스쿨에서 “미 사회를 강타했던 1960년대 흑인 민권운동이 많은 주목을 받았음에도 실질적 성과를 낳지 못한 것은 백인에게만 유리한 법과 사회제도 때문이다. 이를 완전히 바꿔야 인종 불평등이 해소된다”며 CRT를 주창했다. 인종차별 타파를 위해 현재의 미 정치경제 체제를 일정 부분 무너뜨리는 일까지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 주장의 대담성과 과격성으로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했던 CRT는 2017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집권, 2019년 미 노예제 400년 역사를 재조명하자는 뉴욕타임스(NYT)의 탐사보도 프로젝트 ‘1619’, 지난해 5월 백인 경관의 잔혹 행위로 숨진 비무장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태 등을 거치며 미 사회의 뇌관으로 부상했다. 특히 대선을 통해 백악관 주인이 바뀌면서 전현직 최고권력자의 정쟁 도구로 변모하는 양상이 뚜렷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이념으로 점철된 1619 건국년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 올바른 역사 교육을 주도하라”며 ‘1776 위원회’란 자문기구를 만들었다. 행정명령을 통해 미성년자에 대한 CRT의 학내 교육도 금지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집권 직후 이 명령을 폐지했다. 그러자 텍사스, 아칸소 등 보수 성향이 강한 몇몇 주는 주법으로 CRT 교육을 금지하겠다며 맞서고 있다. ‘바이든의 입’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9일 “대통령은 미 역사에 많은 어두운 순간이 있고 오늘날에도 체계적인 인종차별이 존재하므로 아이들이 이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학내 CRT 교육에 찬성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틀 후 트럼프 전 대통령은 텍사스에서 열린 보수집회에 참석해 “사회주의자, 마르크스주의자, 비판적 인종이론가를 물리치겠다”고 선언했다. 양측 모두 지지층 결집을 위해 내년 중간선거, 2024년 대선 등에서 주요 의제로 삼을 뜻을 분명히 해 앞으로도 상당 기간 CRT가 미 사회의 뇌관으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커졌다. CRT 찬반 진영의 대립 또한 심각한 수준이다. 보수 진영은 모든 백인을 잠재적 인종주의자로 묘사하고 인종차별의 과오가 없는 현 세대 백인에게 불필요한 죄의식을 강요한다고 반발한다. 미국이 그토록 인종차별의 모순과 폐해로 가득한 나라라면 어떻게 세계 최강대국이 될 수 있었겠으며 흑인보다 먼저 미국에 도착한 아메리칸 원주민의 공로는 어떤 식으로 인정해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진보 진영은 자산, 급여, 교육 수준, 평균수명 등 인간 삶의 거의 모든 면에서 인종차별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이를 시정하지 않으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맞선다. 양측 주장은 모두 나름의 논리, 타당성, 취약점을 지닌다. 문제는 이미 역사 논쟁을 넘어 정치 대립으로 번진 이 사안이 교실로 파고들어 어린 학생들까지 피해를 입고 있다는 데 있다. 최근 워싱턴포스트(WP)는 수도 워싱턴 인근의 부촌 버지니아주 라우든카운티의 학부모들이 공청회에서 CRT 교육을 두고 거세게 대립해 일부 학부모가 체포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전했다. “CRT는 새로운 트럼프” “미국에 살면서 미국을 무너뜨리겠다고 주장하려면 미국을 떠나라”는 양측의 중간 지점에 타협과 화해의 자리는 보이지 않는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 2021-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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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이슈/하정민]하이에크를 읽던 청년은 왜 반중투사가 됐나

    “국가가 지옥이 된 것은 나라를 천국으로 만들려고 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경제학의 거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1944년 명저 ‘노예의 길’에서 국가 주도 계획경제의 실상을 고발했다. 나치 독일을 피해 오스트리아에서 영국으로 망명한 하이에크는 경쟁, 책임, 노력을 거부하는 대중이 원하는 것을 쉽게 얻으려 할 때 전체주의가 나타나며 경제적 자유를 잃으면 정치적 자유 또한 사라진다고 일갈했다. 독학으로 깨친 영어로 이 책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열심히 읽은 홍콩 사업가가 있다. 그는 1947년 중국 광둥성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2년 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으로 집안이 몰락했다. 부친은 홍콩으로 도피했고 부잣집 사모님이던 모친은 사상 개조 명목으로 강제 노역을 했다. 본인 또한 12세 때 더 나은 삶을 위해 낚싯배로 홍콩에 밀입국했다. 아동 인권이란 개념조차 없던 시절 단돈 8달러의 월급을 받으며 섬유 공장에서 소처럼 일했다. 1981년 의류업체 지오다노를 창업해 포브스 기준 12억 달러(약 1조3560억 원)의 재산을 모았다. 바로 홍콩 반중 언론 핑궈일보의 사주 지미 라이(黎智英)다. 어려서부터 공산화의 실상을 목격한 라이가 본격적인 반중 노선을 걸은 시점은 1989년. 그는 중국이 탱크를 동원해 베이징 톈안먼 광장의 민주화 시위대를 진압하자 큰 충격을 받았다. 유혈 진압을 주도한 리펑 당시 중국 총리를 ‘아이큐가 0인 거북이 알의 아들’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지오다노 티셔츠에 ‘우리는 분노했다’는 문구를 새겨 중국을 규탄하는 홍콩 시위대에 나눠줬다. 격분한 중국이 본토의 지오다노 매장을 폐쇄했지만 굴하지 않았다. 라이는 1990년 주간지 넥스트미디어, 1995년 일간지 핑궈일보를 설립해 중국을 비판하는 기사를 빠짐없이 실었다. 2014년 우산혁명, 2019년 송환법 반대 시위, 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 반대 시위 등 홍콩의 주요 민주화 시위도 주도했다. 홍콩의 주요 반중 정당과 단체 또한 사실상 그의 후원금으로 운영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급기야 지난해 말 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이후 보석과 재수감을 반복했고 최근 보석이 불허돼 아직 감옥에 있다. 사주 구속과 자산 동결이란 이중고를 겪고 있는 핑궈일보 또한 26일자 신문을 마지막으로 폐간할 처지다. 그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중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거짓말을 했고 홍콩을 세계로부터 고립시켰다. 문제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법이 없는 중국 공산당의 본질”이라고 질타했다. 중국이 자신을 ‘세기의 매국노’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첩자’라고 혹평하지만 공산당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아야 정치적, 경제적, 도덕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신념을 버리지 않겠다고 강조한다. 이런 그에게 가해지는 신변 위협은 상상 이상이다. 자택 앞 나무에서 사제 폭탄이 터졌고 정체불명의 남성들이 화염병도 던졌다. 살해 협박도 심심찮게 받았다. 74세의 적지 않은 나이, 가족의 안위, 홍콩 민주화에 기여한 공로 등을 생각하면 그가 질끈 눈을 감거나 서구로 망명해도 뭐라 할 사람이 많지 않다. 그런데도 “사주인 내가 도망치면 직원들이 어떻게 위험을 무릅쓰고 올바른 보도를 할 수 있겠느냐”며 핑궈일보와 운명을 같이하겠다고 강조한다. 언론 자유, 취재 현장에서 위험에 노출된 언론인의 보호를 추구하는 미국 비영리단체 국제언론인보호위원회(CPJ) 또한 21일 라이를 올해 언론자유상 수상자로 선정하며 “그에게 직접 상을 수여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허름한 옷차림, 짧게 깎은 머리로 일관하는 라이의 외양은 조(兆) 단위 부자에 어울리지 않지만 그에게도 호사스러운 취미가 있다. 그는 추상주의와 중국 화풍을 접목한 중국계 미국인 화가 월리스 팅(1929∼2010)의 애호가다. 팅이 남긴 4000점 중 1000점이 그의 소유다. 이런 그가 서구 대부호처럼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건립하고 유유자적한 노년을 보낼 수 있을까. 홍콩의 현재를 보면 그런 날은 쉽게 오지 않을 듯하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 2021-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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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이슈/하정민]네타냐후는 왜 최장수 총리가 됐나

    1976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프랑스 파리로 향하던 에어프랑스 항공기가 중간 기착지인 그리스 아테네에서 납치됐다.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 독일 적군파 소속인 테러범들은 비행기를 우간다 엔테베 공항에 강제 착륙시킨 후 동료들을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이스라엘은 최정예 대테러 특수부대 ‘사예레트 마트칼’ 대원들을 약 4000km 떨어진 우간다로 급파했다.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엔테베 공항에 도착한 이스라엘 군인들은 전광석화 같은 작전으로 100여 명인 인질 대부분을 구출하고 테러범 7명 전원을 사살했다. 이스라엘 군인은 단 1명이 희생됐다. 작전을 지휘한 30세 장교 요나탄 네타냐후다. 형과 마찬가지로 사예레트 마트칼에서 복무한 경험이 있는 세 살 아래 동생 베냐민은 비탄에 빠졌다. 형제는 사이가 좋았다. 사망 3년 전에도 요나탄은 동생에게 “나라 없는 떠돌이 유대인이 되느니 계속 싸우겠어. 타협은 종말을 재촉할 뿐이야”란 편지를 보냈다. 형이 죽었을 때 미국에서 생활하던 베냐민은 귀국 후 형의 이름을 딴 테러 연구소를 운영하고 관련 책을 여럿 집필했다. “형의 죽음으로 세계관이 달라진 게 아니라 기존 세계관이 더 확고해졌다”며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와의 전쟁을 선언했다. 45년이 흐른 지금 베냐민은 이스라엘 최장수 총리가 됐다. 공언했던 대로 15년 2개월이 넘는 집권 기간 내내 노골적인 반아랍 정책을 펴고 있다. 그는 인구 950만 명의 20%를 차지하는 아랍계 국민과 정당 지도자를 ‘테러 지지세력’ ‘유대의 적’으로 칭했다. 2018년에는 아예 ‘유대민족국가법’을 제정해 이스라엘을 유대인만의 조국으로 규정했다. 아랍계를 2등 시민으로 만든 이 법을 두고 과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악명 높은 흑백차별 정책 ‘아파르트헤이트’의 21세기 버전이라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형의 이미지 역시 영리하게 이용했다. 그는 요나탄의 순직 40주년인 2016년 우간다를 찾아 자신 또한 테러와 싸우는 투사임을 자처했다. 이후에도 정치적 위기를 맞을 때마다 모로코, 수단 등 아프리카 이슬람국가를 찾아 외교관계 수립을 시도했다. 테러는 척결하되 이슬람국과의 협력은 강화한다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다. 총선을 앞둔 지난해 2월에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우려에 개의치 않고 우간다를 또 찾아 대사관 개설을 논의했다. 안보 문제를 제외하면 네타냐후는 공과 논란이 상당한 정치인이다. 그는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사에 “유리한 기사를 써주면 경쟁사의 발행부수를 줄여주겠다”고 접근하고, 해외 사업가들에게 최고급 샴페인과 시가를 선물로 받고 면세 혜택을 줬다는 의혹 등으로 2019년 현직 총리 최초로 기소됐다. 재판은 아직도 진행 중이며 실각하면 면책특권이 사라져 곧바로 감옥에 갈 수 있다. 심심찮게 총리공관 직원에 대한 갑질 의혹에 휩싸인 그의 부인 역시 관저 공금 유용 논란으로 별도 수사를 받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이 부부가 미국을 방문할 때마다 더러운 빨래를 잔뜩 가져와 미국이 제공하는 고급 세탁 서비스를 즐긴다는 좀스럽기 그지없는 폭로까지 터졌다. 설사 네타냐후의 지지자라 해도 그를 흠결 없는 정치인으로 여기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이스라엘 국민은 1948년 건국 후 무려 20.7%에 달하는 긴 시간을 그의 손에 맡겼을까. ‘나와 가족의 피로 조국을 지켰다’는 그의 주장이 허언만은 아님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막대한 비용 등을 우려한 내부 반발이 많았지만 2011년 그가 도입한 저고도 미사일 방어망 ‘아이언돔’은 이달 10∼20일 벌어진 하마스와의 교전에서 그 위력을 과시했다. 냉혹하고 비정한 국제 정세 또한 네타냐후 같은 강경 우파 정치인이 득세할 토양을 마련해주고 있다. 이번 하마스와의 교전 초기 독일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방어권을 지지했다. 스웨덴 국제평화연구소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한국, 그리스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독일 무기를 많이 수입하는 나라다.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 피해자가 가해자의 무기를 사들이고 그 가해자의 지지를 얻어 팔레스타인을 탄압하는 상황이야말로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는 비정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 네타냐후가 상당 부분 정치적 의도에서 팔레스타인과의 긴장을 고조시킨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스라엘이 15년째 그를 택한 이유 또한 여기에 있을 것이다. 네타냐후가 실각해도 언제든 제2, 제3의 네타냐후가 등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 2021-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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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이슈/하정민]일대일로 빚 폭탄이 ‘혜민의 떡’이라는 中

    파키스탄은 전 세계에서 으뜸가는 친중 국가다. 양국은 ‘공동의 적’ 인도를 견제하기 위해 파키스탄이 독립한 1947년 이후 내내 밀월 관계를 유지했다. 파키스탄은 중국산 무기의 최대 구입국이다. 중국 국영 제약사 시노팜이 개발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도 가장 먼저 받았다. 퓨리서치센터, 유고브 등 서구 유명 여론조사 회사의 조사에서 ‘중국을 좋아한다’는 응답자가 가장 많은 나라로도 꼽힌다. 이런 파키스탄의 반중 정서가 심상치 않다. 21일 남서부 발루치스탄주에서 눙룽(農融) 파키스탄 주재 중국대사가 머물던 호텔에서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해 최소 4명이 숨졌다. 지난해에는 중국이 지분을 소유한 최대 도시 카라치 증권거래소에서 테러가 발생해 6명이 사망했다. 2018년에도 역시 카라치 중국영사관에서 테러가 발생해 7명이 숨졌다. 당시 발루치스탄 무장단체 발루치스탄해방군(BLA)은 “중국이 우리를 약탈해 테러를 자행했다. 당장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CPEC) 사업을 중단하라”고 외쳤다. 발루치스탄 남부에는 중국의 21세기 육해상 실크로드 사업 ‘일대일로(一帶一路)’의 요충지인 과다르항이 있다. 중국은 2001년 파키스탄과 과다르항 개발 계약을 맺었다. 2015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파키스탄을 찾아 도로, 철도, 송유관 등을 건설해 신장위구르와 과다르항을 연결하는 CPEC 사업을 공식화했다. 중국이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수입한 원유를 과다르를 거쳐 중국 본토로 곧바로 옮겨 오겠다는 속내였다. CPEC를 포함한 일대일로는 중국이 저개발국에 차관을 빌려준 후 그 돈으로 도로 항만 통신 인프라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문제는 공사 주체가 중국이라는 데 있다. 중국 건설사가 중국 노동자와 자재를 쓰고 새로 생긴 일자리 대부분이 중국에 돌아간다. 공사 대금은 해당 국가가 중국에 진 빚으로 고스란히 쌓인다. 고질적인 경제난으로 1988년부터 2019년까지 무려 12차례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은 파키스탄 국민 입장에서 곱게 보일 리 없다. 일대일로에 참여한 세계 130여 개국 모두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비슷한 처지에 몰렸다. 대규모 공사를 진행해봤자 국내 경제를 살리기는커녕 중국 배만 불려주는데 공사를 접자니 이미 중국에서 빌린 돈의 원금과 이자까지 눈덩이처럼 불어나 포기조차 쉽지 않다. 일대일로에 참여했지만 당초 기대했던 경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스리랑카는 2017년 남부의 전략요충지 함반토타 항구의 운영권을 99년간 중국에 넘겼다. 사실상의 영토 할양이다. 2014년 고속도로 건설을 위해 중국으로부터 국가 부채의 23%인 10억 달러(약 1조1500억 원)를 빌린 동유럽 몬테네그로는 7월까지 이 돈을 갚아야 한다. 코로나19 여파 등으로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14%를 기록한 터라 갚을 길이 막막하다.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몬테네그로 역시 스리랑카와 비슷한 길을 밟을 것이며 중국이 몬테네그로 서부 해안에 군사 기지를 건설해 서유럽을 정면으로 노릴 수 있다고 점쳤다. 사태의 1차 원인은 저개발국 권위주의 통치자에게 있다. 서구 선진국 차관과 달리 민주화 인권 반부패 등 까다로운 조건이 없는 중국 돈을 쉽게 보고 덥석 받은 결과다. 그러나 연 8%대의 고도성장이 끝난 후 남아도는 과잉설비를 처리하기 위해 저개발국을 이용했으면서 덕 본 것은 없다는 투로 일관한 중국 역시 대국의 풍모를 보여주진 못했다. 일대일로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때마다 전 세계 공동 발전이란 취지를 왜곡하고 시기하는 미국과 서방세계의 농간이란 판에 박힌 주장을 폈기 때문이다. 중국의 진짜 속내는 “일대일로는 채무 함정이 아닌 ‘혜민(惠民)의 떡’”이라는 22일 왕원빈(汪文斌) 외교부 대변인의 발언에서 잘 드러난다. 엄연히 주권을 가진 타국 국민을 중국이 은혜를 베풀고 떡을 나눠줄 ‘시혜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 중국 아니면 먹고살 길이 막막하니 불만을 제기하지 말라는 식이다. 이 오만한 발언에서도 중국은 세계의 중심이며 전 세계 다른 나라는 모두 조공국에 불과하다는 중국의 지독한 중화주의가 엿보인다.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 2021-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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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이슈/하정민]현대판 술탄은 왜 중앙은행장을 갈아치우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집권한 2003년 터키 리라는 주요 화폐 중 미 달러 대비 가치가 가장 낮았다. 고질적인 고물가와 불평등 등 낙후된 경제구조 탓이 컸다. 한때 1달러가 170만 리라에 달해 사실상 휴지조각이 되자 에르도안 정권은 2년 후 리라 가치를 100만분의 1로 낮춘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했다. 화폐개혁 후 잠시 안정을 찾는 듯했지만 경제난, 에르도안의 철권통치 등에 실망한 해외 투자자가 등을 돌렸고 리라는 다시 하락을 거듭했다. 현재도 달러당 8리라가 넘는다. 터키 중앙은행은 리라가 급락할 때마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방어에 나섰다. 급한 불은 껐지만 근본 대책은 될 수 없었다. 터키를 포함해 브라질 아르헨티나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신흥국발 금융위기의 진앙으로 꼽히는 나라는 빈약한 산업기반과 정정불안으로 포퓰리즘이 창궐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진짜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정치란 뜻이다. 에르도안은 집권 중 6명의 중앙은행 수장을 임명했다. 각각 2006년과 2011년 자리에 앉힌 두르무스 일마즈 총재, 에르뎀 바스지 총재는 5년 임기를 지켜줬다. 이후 무라트 제팅카야(3년 3개월), 무라트 우이살(16개월), 나지 아그발(4개월) 총재로 갈수록 임기가 짧아졌다. 모두 에르도안의 명을 거역한 채 금리를 올리거나 올리려다 내쳐졌다. 20일 취임한 사하프 카브지오글루 총재의 임기 역시 에르도안만 안다. 길거리에서 사탕과 생수를 팔면서 자란 에르도안은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다. 본인은 전기를 통해 마르마라대의 전신인 악사라이 경제상업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고 주장하나 터키 매체들은 입학한 적이 없다고 반박한다. 학력 논란은 차치하고 경제학을 공부한 적이 없는데도 근거 없이 “고금리가 성장을 해친다. 만악의 근원”이라며 금리인상에 질색한다. 금리를 올리면 시중 통화량이 줄어 물가가 내리고 통화 가치가 오른다는 현대 경제학의 정설 따윈 안중에도 없다. 권력자가 좌우하는 통화정책과 금융체계를 신뢰할 수 없으니 해외 자본이 떠나고 리라 가치만 더 떨어지는 악순환이 나타난다. 집권 초 잠시 시장경제와 세계화를 강조하는 듯 보였던 에르도안은 2011년 3선 총리가 된 후부터 노골적인 종신집권을 시도했다. 4선을 금지한 집권당 당규로 추가 집권이 어려워지자 법을 바꿔 대통령에 올랐고 여성의 강제 히잡 착용, 주류판매 규제, 사형제 부활 등 이슬람 원리주의 정책을 강화해 ‘현대판 술탄’이란 별명을 얻었다. 노골적인 반대파 탄압, 수조 원대로 추정되는 에르도안 일가의 비리 의혹, “양성 평등은 자연 이치에 어긋난다” 등 각종 막말에도 상당수 국민은 “오스만튀르크의 영광을 부활시키겠다”는 에르도안을 지지한다. 터키 국민은 왜 독재를 묵인할까. 1453년 동로마를 멸망시킨 후 500여 년간 중동, 중부유럽, 북아프리카에 걸친 제국을 건설했던 오스만은 1차 세계대전 때 독일 편에 섰다가 영토 대부분을 잃고 왕정도 붕괴됐다. 초대 대통령 케말 파샤는 정교분리, 히잡 금지, 여성 참정권, 라틴알파벳 사용 등 세속주의가 핵심인 근대화 정책을 펴 혼란을 수습했고 여전히 국부로 추앙받고 있다. 문제는 세속주의로 양극화가 심해졌다는 데 있다. 자본가, 대도시 엘리트, 유럽에 가까운 북서부는 근대화 혜택을 누렸지만 저소득층과 남동부 주민은 소외됐다. 기층민 출신인 에르도안 또한 이 점을 노려 생필품인 빵과 차(茶)값을 낮추고 자동차와 고급 가전제품 세율을 높였다. 또 낙후된 남동부에 댐 도로 등 각종 인프라를 건설하고 인류 전체의 문화유산인 아야소피아 성당을 이슬람 사원으로 바꾸는 등 핵심 지지층인 저소득층과 보수 유권자의 입맛에 맞는 정책으로만 일관하고 있다. 터키는 인구 8300만 명의 68%가 15∼64세인 젊은 나라다. 동서양이 교차하는 지정학적 이점, 넓은 국토, 풍부한 자원, 오스만의 찬란한 문화유산 등도 보유했다. 그런데도 각각 12%를 넘나드는 고물가와 고실업, 인구의 2.3%가 하루 수입 5.5달러 미만의 절대 빈곤에 시달리는 불평등이 심각해 세계적 강대국으로 발돋움할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에르도안은 중앙은행장을 포함한 무능한 경제 관료가 자신의 뜻을 제대로 받들지 못해서라고 주장할지 모르나 터키 경제의 최대 불안 요인은 누가 봐도 에르도안 그 자신이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 2021-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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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이든의 진보 청구서 AOC[글로벌 이슈/하정민]

    세계 최고 권력자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중간이름이 ‘로비네트’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미 언론이 그를 이름 약자인 ‘JRB’로 부르지도 않는다. 대문자 이니셜로 불리는 정치인은 전무후무한 4선 대통령인 프랭클린 델라노 루스벨트(FDR), 젊은 대통령의 기수로 꼽히는 존 피츠제럴드 케네디(JFK) 정도다. 미 전역의 도로 다리 공항 등에 ‘FDR’ ‘JFK’ 이름이 붙은 것은 미 사회에서 차지하는 둘의 위상을 보여준다. 이를 감안할 때 미 언론이 집권 민주당의 푸에르토리코계 신예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뉴욕)을 이름 약자 ‘AOC’로 부른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19년 1월 워싱턴 중앙정계에 입성한 32세 재선 의원이 유명 대통령에 맞먹는 급으로 대우받는다고 볼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 AOC의 힘은 소셜미디어에서 나온다. 트위터 추종자만 1260만 명에 인스타그램(890만 명), 페이스북(176만 명)까지 더하면 몰고 다니는 사람만 2326만 명. 1월 출범한 117대 미 하원의원 435명 중 이 정도의 인지도와 유명세를 보유한 사람은 없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에서 18∼24세 유권자로부터 65%의 높은 지지를 얻은 것도 AOC 같은 젊은 진보 성향 의원의 바이든 지지에 기인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자금 동원, 의제 설정 능력도 뛰어나다. 지난달 ‘사막의 땅’ 텍사스에 유례없는 한파가 몰아쳐 주 전체가 마비됐다. 불과 4일 만에 소셜미디어를 통해 470만 달러를 모았고 현지로 날아가 생필품을 나눠줬다. 보수 텃밭인 텍사스가 지역구인 공화당 중진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이 멕시코 휴양지 칸쿤 여행을 다녀온 것과 대조적이었다. ‘바이든 행정부도 주정부도 못한 일을 AOC 혼자 했다’는 호평이 나왔다. 백악관을 향해서도 부쩍 날을 세운다. 최근 바이든 행정부가 멕시코 국경지대에 13∼17세 불법이민 청소년 700명을 수용할 캠프를 재개관하자 그는 “어떤 행정부와 정당에서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며 즉각 폐쇄를 주문했다. 대선 때는 열악한 시설과 인권 침해로 비판받은 불법이민자 캠프를 없앤다더니 집권 후 돌변했다는 힐난이다. 공화당은 물론이고 민주당 내 일각에서도 반대해 의회 통과 여부가 불투명한 최저임금 인상안은 “무제한 토론에 따른 의사진행 방해(필리버스터)라도 해서 반드시 관철시키겠다”고 벼른다. 본인의 멘토인 ‘진보 대부’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당초 하마평과 달리 바이든 행정부의 노동장관 등에 기용되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한다. 당내 보수 성향 의원에 대한 비판 수위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공격할 때 못지않다. 낙태를 반대하고 총기 소유를 지지하는 조 맨친 상원의원(웨스트버지니아)이 최근 원주민 출신 데브 할런드 내무장관 지명자, 인도계 니라 탠든 백악관 예산관리국장의 진보 성향을 문제 삼아 인준에 반대할 뜻을 밝히자 70대 백인 남성 맨친이 유색인종 여성에게만 가혹한 잣대를 들이댄다며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냐는 취지로 비판했다. 그의 보폭이 넓어질수록 머리가 아픈 쪽은 백악관이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상원 100석을 꼭 50 대 50으로 나눠 가진 상황이라 당내 갈등이 커질수록 가뜩이나 더딘 내각 인준이 더 늦어지고 경기부양안 같은 핵심 정책의 통과도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1일 진보 노장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위헌 논란이 있고 실현 가능성도 낮은 부유세 법안을 발의하며 AOC 하나로도 버거운 백악관에 또 부담을 안겼다. 애초부터 반(反)트럼프 외에 공통점이 없는 양측이 잘 지내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허상에 가깝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들 진보파가 막후 타협, 주고받기 등 현실정치 문법을 거부한 채 ‘모 아니면 도’를 외친다는 점도 44년간 상원의원과 부통령을 지내며 워싱턴 정계에서 잔뼈가 굵은 새 대통령을 곤혹스럽게 한다. 미얀마 이란 중국 등 대외 문제가 산적하고 여전히 보수 유권자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상대하는 일도 힘에 부치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진정한 시험대는 나라 밖도, 상대편도 아닌 집 앞마당에 있는 듯하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 2021-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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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세대 버핏’의 시대[글로벌 이슈/하정민]

    1976년 스리랑카에서 태어났다. 내전을 피해 6세 때 캐나다로 이민을 왔지만 부친은 실직 후 술만 마셨다. 가정부인 모친이 생계를 책임졌고 변변한 침대가 없어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잤다. 대학 졸업 후 미국 실리콘밸리로 이주했다. AOL, 페이스북 등 주요 정보기술(IT) 업체에서 일했고 IT 스타트업 전문 벤처캐피털을 차려 최소 10억 달러(약 1조1000억 원)를 벌었다. 현 연인은 이탈리아 제약업체 상속녀 겸 모델이다. ‘흙수저 성공신화’ 그 자체인 억만장자 벤처투자자 차마스 팔리하피티야 소셜캐피털 창업자의 일대기다. 미 자산운용사 리톨츠 매니지먼트의 조시 브라운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팔리하피티야가 차세대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창업자다. 그에게 버핏의 아우라가 있다”고 극찬했다. 업무용 메신저 슬랙 등에 선제적으로 투자해 성공을 거둔 팔리하피티야의 안목이 맥도널드, 질레트 등 ‘주식회사 미국’을 상징하는 전통주에 장기 투자해 한때 세계 최고 부호에도 올랐던 버핏 못지않다는 의미다. 팔리하피티야 또한 포천 인터뷰에서 “소셜캐피털을 내 세대의 버크셔해서웨이로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팔리하피티야는 직관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표현을 쓰며 어떤 사안에도 지나칠 만큼 자신만만하게 답한다. 그는 최근 테슬라, 아마존 등 대형 기술주가 고평가됐다는 일각의 지적에 “음악이 나올 때는 춤을 춰야 한다”고 했다. 복잡한 숫자와 난해한 용어 대신 간단히 대세를 따르라고 권유했다. 또 쉴 새 없이 트윗을 날리며 자신의 주장을 설파한다. 젊은층이 좋아할 만한 말을 쏙쏙 골라 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그는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를 지지하는 이유로 “기후변화와 맞서 싸우는 사람이 가장 많은 보상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세대 및 계층전쟁 양상으로 번진 게임스톱 사태 때도 개인투자자 편에 섰다. 개인투자자의 성지(聖地)로 불리는 온라인 게시판 ‘레딧’에 올라온 모든 글을 읽어본 후 주식을 샀다며 “위험한 파생상품을 거래해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야기한 월가 대형 금융사에는 막대한 구제금융이 투입됐지만 실직한 개인과 돈을 잃은 개인투자자는 아무도 구제해 주지 않았다”는 변을 곁들였다. 때로 일종의 음모론을 제기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2017년 스탠퍼드대 강연에서 “150명의 남자가 이 세상을 움직인다. IT 기업가가 아닌 이들이 연줄과 흑막으로 모든 것을 좌우한다. 정치인 또한 이 150명의 꼭두각시일 뿐”이란 과격한 주장을 폈다. 특히 미 보수진영의 큰손으로 에너지기업 코흐인더스트리를 운영하는 코흐 형제가 대표적이라며 “이런 상업적 동물과 맞서려면 여러분도 돈을 벌되, 그들보다 나은 방식으로 돈을 벌라”고 독려했다. ‘F’자 비속어가 난무하는 연설이었지만 청중은 환호했다. 인기만큼 적도 많다. 유명 투자자 카슨 블록은 그를 ‘가짜 대중영합주의자’라고 혹평했다. 실제 팔리하피티야가 투자한 많은 회사는 우회 상장을 통한 차익 실현이 목적인 기업인수목적회사(SPAC) 형태다. 개인투자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SPAC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양극화에 분노한 젊은층의 입맛에 맞는 말만 골라 한다는 의미다. 팔리하피티야보다 46년 먼저 태어난 버핏은 어떨까. 하원의원 부친을 둔 금수저로 세계적 부호까지 됐지만 고향인 미 중부 네브래스카의 65만 달러짜리 집에 계속 살고 있다. 코카콜라와 햄버거를 즐겨 먹고 후줄근한 옷을 걸친다. 2004년 타계한 첫 부인과 현 부인 모두 일반인이다. 유행을 좇는 기술주 투자 대신 장기투자와 복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새 사상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옛 생각을 떨치는 게 더 어렵다” 같은 투자 격언인지 인생 조언인지 모를 선문답 표현을 애용한다. 이를 감안할 때 월가 일각의 평가, 본인의 바람과 관계없이 팔리하피티야와 버핏의 공통점은 ‘부자’란 사실 하나뿐일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점은 그가 미국식 자본주의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산증인이며, 앞으로도 상당 기간 월가를 뒤흔드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많은 이가 그의 논평을 구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 2021-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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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濠 중견국 동맹으로 급변하는 亞太정세 한목소리 대응을”[파워인터뷰]

    《“아시아태평양에서 한국과 호주만큼 많은 공통점을 가진 나라도 없습니다. 중견국인 두 나라가 협력해 국제사회의 다자주의 질서를 만드는 일을 주도해야 합니다.” 지난달 11일 부임한 캐서린 레이퍼 신임 주한 호주대사(51)가 한국 언론 중 처음으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강대국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지금 ‘중견국 동맹(middle-power alliance)’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며 “인간의 삶에서 친구가 필요하듯 국가도 더 많은 동맹과 우방을 필요로 한다. 두 나라는 서로 믿을 수 있는 든든한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미중 갈등,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등으로 국제 정세가 전환점을 맞은 지금 양국이 협력해서 대처하자는 취지로 풀이된다.》 비상주 북한 겸임대사인 레이퍼 대사는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를 위한 한국과 미국의 대화 노력을 지지한다”며 “북핵은 아시아태평양 안보에도 심각한 위협인 만큼 호주 역시 CVID가 이뤄지도록 여러 동맹과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해 보고 싶다고도 했다. 레이퍼 대사는 시드니대 법학 학사, 모내시대 외교통상학 석사로 1994년 외교부에 입부한 27년 경력의 직업 외교관이다. 주대만 호주대표부 대표, 유럽 및 중남미국 국장, 외교부 내 코로나19 대응총괄팀장을 역임했고 한국에서 처음 ‘대사’ 직함을 달았다. 그의 전임자 17명은 모두 남성이다. 외조부가 6·25전쟁 참전용사인 레이퍼 대사는 “1961년 수교관계를 맺은 양국이 수교 60주년을 맞은 올해 참전용사의 손녀인 내가 최초의 여성 대사로 부임해 영광”이라면서도 “여성 대사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날이 오면 더 좋겠다”고 했다. 인터뷰는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 주한 호주대사관에서 이뤄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과 호주의 협력이 왜 중요한가. “양국은 모두 민주주의, 시장경제, 인권, 법치, 언론 자유 등의 가치를 중시한다. 또 아시아태평양에서 중견국 지위에 맞는 공공외교를 추진하고 그에 맞는 역할도 수행해 왔다. 그 예가 2013년부터 외교안보 분야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양국 외교 및 국방장관이 격년제로 만나는 ‘2+2’ 회의 개최다. 역시 같은 해부터 양국과 멕시코 터키 인도네시아 등 5개국이 참여한 ‘믹타(MIKTA)’ 협의체도 출범시켰다. 호주는 이달 중 한국으로부터 믹타 의장국 지위도 넘겨받는다. 무엇보다 강대국이 즐비한 아시아태평양의 급변하는 국제 정세, 역내의 급격한 군사 현대화 움직임 등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중견국 동맹이 절실하다.” ―현실적으로 중견국 외교가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도 있다. “최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6월 영국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한국, 호주, 인도 등 3개국을 초청했다. 강대국 역시 중견국과 다자주의 질서의 필요성을 인정한 것이라고 본다. 또 최근 많은 나라가 외세의 정치적, 경제적 강압에 직면하고 있다. 자국 정치를 위해 타국에 경제 압박을 가하는 국가가 늘고 있다는 의미다. 이럴 때일수록 휘둘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국제사회에서의 발언권을 확대하며 스스로를 대변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주권과 국익을 수호할 수 있다. 중견국이 힘을 합치면 외세 강압에 영향을 받지 않고도 번영을 구가할 수 있고 원칙에 입각한 국제 질서를 수호할 수 있다. 서로 책임을 나누어서 지고 공동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호주 또한 ‘자유롭고 열린 태평양’ 개념을 중시한다. 왜 중요한가. “아시아태평양 주요국이 누리는 번영, 즉 민주주의와 경제 성장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었던 근간이기 때문이다. 역내를 자유 법치 시장경제 등 공통 가치를 중시하는 장(場)으로 규정하고 관련국이 국제 질서와 규범에 근거한 협력을 추진하려면 자유롭고, 열려 있으며, ‘포괄적(inclusive)이고 회복력 있는(resilient)’ 태평양이어야만 한다. 2014년 발효된 한국과 호주의 자유무역협정(FTA), 지난해 11월 체결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같은 경제 협력 체계 또한 이 바탕 위에서 만들어졌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호주 또한 미국과 안보 동맹을 맺고 있으면서 중국과 경제적으로 밀착했다. 지난해부터 코로나19 책임론 공방, 미국 호주 일본 인도 4개국 협의체 ‘쿼드’, 호주산 상품에 대한 중국의 관세 부과 등으로 호주와 중국의 갈등이 불거졌는데…. “호주가 내리는 모든 결정의 기준점은 우리가 수호하는 가치와 국익에 달려 있다. 우리가 옳다고 믿는 것을 경제적 압박 때문에 못 하는 일은 없다. 모든 나라가 비슷할 것이다. 더 많은 국가가 이에 근거한 결정을 내릴 때 세계적으로도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비상주 북한 겸임대사도 맡고 있다. “북한의 CVID를 위한 한국과 미국의 대화 노력을 지지한다. 호주는 제재와 압박을 통해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전략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도 한국은 더 많은 동맹을 필요로 한다. 이 과정에서 호주가 믿을 수 있는 파트너가 될 것이다. 몇몇 직원이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한 경험을 들려줬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 나도 방문하고 싶다.” ―한국과 호주의 경제협력을 어떻게 강화해야 할까. “FTA 발효 후 한국은 호주에 자동차와 전자제품 등을, 호주는 한국에 천연자원과 농산물 등을 수출해 왔다. 부임 후 한국 상점에 호주산 와인이 즐비한 것을 보고 반가웠다. 이처럼 양국이 강점을 지닌 분야가 다른 데다 최근 친환경 산업의 중요성이 커진 만큼 양국은 특히 ‘수소경제’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호주는 수소 생산의 원료인 갈탄, 액화천연가스(LNG) 등 각종 신재생에너지가 풍부하고 한국은 자동차 산업의 선진국이어서 양국이 협력하면 신재생에너지, 수소차 등 미래 산업을 선도할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제약 및 생명과학산업이 각광받고 있는데 이 분야의 선진국인 한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싶다.” ―양국의 경제 협력 정도에 비해 문화 교류는 조금 부족하다는 시각도 있다. “호주에도 한국 드라마와 가요 팬이 많다. 친구가 ‘한국 대사로 가면 이 드라마를 꼭 봐야 한다’며 ‘사랑의 불시착’을 소개했다. 배우들의 호연이 인상적이었고 한반도 정세를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을 줬다. 수교 60주년을 맞아 호주의 6·25전쟁 참전 등 양국 공통의 역사를 기릴 수 있는 전시회, 서울시립미술관과의 호주 현대미술전 공동 주최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추진하고 있다. 조만간 수교 60주년 기념 로고도 공개한다. 개인적으로는 한국 구석구석을 방문하고 많은 한국 요리를 직접 만들어 보고 싶다.” ―2014년 4월 토니 애벗 전 총리의 방한을 마지막으로 7년째 양국 지도자의 공식 방문이 이뤄지지 못했다. “최초의 여성 총리인 줄리아 길라드 전 총리가 집권 첫해인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 연속 한국을 방문했을 정도로 양국 지도자의 교류가 활발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애벗 전 총리의 방한 7개월 후 G20 참석차 호주를 찾았지만 공식 답방은 아니었기에 이번에는 한국 대통령이 호주를 방문할 차례다. 코로나19가 빨리 끝나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중 호주에 오실 수 있기를 기대한다.” ―부임 직전 코로나19 대응 업무를 담당했다고 들었다. “각국이 방역을 위해 무엇을 하고, 하지 않는지, 어떻게 해야 경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지 등의 정보를 수집하고 간추렸다. 이를 통해 한국과 호주가 방역 정책에서도 유사한 점이 많음을 알았다. 양국 모두 전국 단위의 전면 봉쇄를 실시하지 않았는데도 감염자 수는 전 세계적으로 낮은 수준이었다. 피해가 많은 일부 지역에 국한된 봉쇄, 입국자에 대한 2주 자가 격리 의무화, 재택근무 장려, 방역 동참의 중요성을 적극 홍보한 결과라고 본다.” ―1남 1녀를 둔 워킹맘이다. “역시 공무원인 남편이 미국, 네덜란드, 스위스, 대만 등에서 근무할 때마다 내 부임지로 따라와 양육과 가사를 도왔다. ‘워킹맘’ 표현이 일상화했듯 더 많은 남성이 ‘워킹파더’임을 자각하고 행동할 때 양성평등을 실현하고 미래 세대에 역할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상사 머리스 페인 외교·여성장관, 린다 레이놀즈 국방장관 등 스콧 모리슨 현 내각의 주요 각료가 모두 여성이다. 각국의 여성 지도자가 늘어나는 것 역시 당연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미약하지만 최초의 여성 주한 호주대사인 나 또한 누군가의 역할 모델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궁극적으로는 여성 대사가 더 이상 화제가 아닌 시대가 와야 하지 않을까.”캐서린 레이퍼 주한 호주대사△ 1970년 호주 시드니 출생, 시드니대 법학 학사, 모내시대 외교통상학 석사, 호주국립대 법률실무학 석사△ 1994년 외교부 입부△ 2010∼2012년 주미국 호주대사관 통상공사△ 2014∼2017년 주대만 호주대표부 대표△ 2018∼2020년 유럽 및 중남미국 국장△ 2020년 외교부 코로나19 대응총괄팀장△ 2021년 1월 11일∼현재 주한 호주대사(비상주 북한 겸임대사)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2021-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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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젊은 미국의 그늘, 제론토크라시[글로벌 이슈/하정민]

    미국은 젊은 나라다. 중앙정보국(CIA) 월드팩트북 기준 3억3000만 인구의 중위연령이 38.1세로 주요국 중 가장 젊은 축에 속한다. 일본(47.3세), 독일(47.1세), 이탈리아(44.4세), 캐나다(42.2세), 한국(41.8세), 프랑스(41.4세) 등과 비교하면 미국의 젊음이 더 두드러진다. 그러나 정치 분야의 고령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3일 개원한 117대 의회에서 상원의 평균연령은 64세, 하원은 58세다. 1981년 시작한 97대 의회에서 이 수치는 각각 53세와 49세였다. 불과 40년 만에 의회가 10년 늙은 셈이다. 양당 지도부는 어떨까. 권력서열 3위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등은 모조리 70, 80대다. 20일에는 미 역사상 최고령인 79세 대통령까지 취임한다. 노년층이 사회 전반을 장악해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는 정치체제를 뜻하는 ‘제론토크라시(gerontocracy)’란 용어가 최근 미 언론지상을 장식하는 이유다. 뉴리퍼블릭 같은 진보성향 매체는 아예 “미국이 노년 페티시에 빠졌다”는 신랄한 비평까지 내놨다. 제론토크라시가 미국만의 일은 아니다. 고령화와 평균수명 연장이 낳은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문제는 젊은 세대에게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전수하고 고령자 권익을 보호하며 노인 빈곤을 해결하는 일 같은 긍정적 의미의 ‘어르신 정치(senior politics)’가 사라지고 극소수 기득권 고령자의 의제만 과하게 대표되는 모습이 나타난다는 데 있다. 오래전 계층이동의 사다리에 올라타 ‘용’이 된 장노년층이 젊은 가재, 붕어, 개구리가 승천할 사다리를 치우는 데 직간접으로 일조하거나 방관하고 있다는 의미다. 미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창궐하던 지난해 5월 퓨리서치센터 조사에 따르면 미국 내 Z세대(1997∼2012년 출생자)의 절반이 “코로나19로 실직하거나 급여가 줄었다”고 했다. 밀레니얼세대(1981∼1996년생)의 40%도 가세했다. 베이비붐세대(1946∼1964년생)의 25%와 대조적이다. 그런데도 이후 유명 장년 정치인 중 청년실업 대책을 내놓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2일 매코널 대표와 펠로시 의장의 자택에는 ‘내 돈 내놔라’ ‘2000달러’ 같은 낙서와 가짜 돼지 피가 등장했다. 상원 다수당인 공화당이 지난해 12월 29일 코로나19 현금지급액을 당초 양당이 합의한 600달러에서 2000달러로 늘리려는 시도를 저지하자 일부 시민이 양당 1인자의 집에 몰려간 탓이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각각 재산이 최대 2500만 달러, 5800만 달러로 추정되는 의회 내 대표적인 자산가다. 의회 입성 시기도 각각 1985년과 1987년으로 비슷하다. 정치인 집을 훼손한 일은 비판받아 마땅하나 미 사회 전반에 ‘당적에 관계없이 30, 40년간 중앙정계에서 호의호식한 당신들이 전대미문의 전염병으로 고통받는 서민의 심정을 어찌 알겠느냐’는 분노가 흐르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노인 중심의 권력구조는 그 특성상 세대 갈등 및 양극화 심화, 국가경쟁력 약화 등으로 이어질 때가 많다. 미국에서도 2019년 기준 밀레니얼세대 인구가 7212만 명으로 베이비부머(6956만 명)보다 약 260만 명 많지만 경제 권력은 여전히 베이비붐세대가 쥐고 있다. 현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대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평균연령은 58세로 2006년보다 14세 높아졌다. 20년 전 미 전체 노동인구의 15%를 차지했던 55세 이상 근로자의 비율도 30%로 증가했다. 서유럽 선진국 중 국가부채, 청년실업률 등이 가장 높은 이탈리아, 한때 미국과 함께 세계를 호령했던 옛 소련의 몰락 또한 각각 2000년대, 1980년대 연이어 고령 지도자가 집권한 여파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2015년 44세에 최고권력자에 오른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당시 남녀 동수 내각을 출범시킨 후 이유를 묻는 취재진에게 “지금은 2015년이니까”라고 일갈했다. 6년이 흐른 지금 세상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늙은 사회를 바꾸는 일보다 시급한 과제는 없다고 외친 트뤼도의 일성은 아직 유효하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 2021-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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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욕시장 선거전이 1년 전부터 후끈한 까닭[글로벌 이슈/하정민]

    올해 9월 맥스 로즈 미국 뉴욕주 하원의원이 같은 민주당 소속의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을 ‘역사상 최악의 시장’으로 규정한 15초짜리 광고를 선보였다. 시장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과 경제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동안 외식업계는 고사하고 코로나19 피해 또한 커졌다며 역대 시장 109명 중 가장 무능하다고 혹평했다. 정치광고의 천국 미국에서조차 동료 당원을 이 정도로 세게 비판한 사례는 드물어 화제를 모았다. 2014년 1월 취임한 더블라지오 시장은 835만 시민을 보유한 미 최대 도시의 재선 수장임에도 내내 존재감이 약하다는 평을 받았다. 최근 방귀와 검은 땀 논란으로 이미지를 구겼지만 1994∼2001년 시장을 지낸 루돌프 줄리아니는 악명 높은 뉴욕의 강력범죄를 척결했다. 후임자인 억만장자 3선 시장 마이클 블룸버그는 폐철로와 폐공장을 각각 새 랜드마크인 하이라인파크와 첼시마켓으로 바꾸는 친환경 재개발 등으로 찬사를 받았다. 블룸버그가 올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것도, 줄리아니가 2000년 대선 당시 공화당 대선후보군에 올랐던 것도 시장 재직 시 치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더블라지오의 대표 정책은 ‘교육 평등’이다. 취임 첫해부터 영어와 수학 시험으로만 선발하던 스타이브슨트, 브루클린텍 등 시내 8개 특수공립고 입시를 중학교 성적과 출석 등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블룸버그 전 시장이 늘렸던 미국판 자율형사립고 차터스쿨에 대한 지원도 대부분 없앴다. 특수고와 차터스쿨의 백인 및 아시아계 비율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겉으로 인종 다양성을 내세웠지만 첫 선거 때 흑인(96%)과 라틴계(82%)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된 점을 의식해 이들 입맛에 맞는 정책을 내놨다는 비판이 거셌다. 공부 잘하는 학생에 대한 역차별이며 교육의 하향평준화만 야기할 뿐이란 지적 속에 입시 개편안을 철회했지만 그의 좌표가 어디에 있는지 잘 보여준다. 또한 그는 공립학교의 전면 무상급식을 도입하고 사회 약자에게 교통권과 각종 지원금을 지원하는 정책을 폈다. 취지는 좋았지만 재정난이 심각해졌다. 코로나19까지 덮친 올해 9월에는 주정부에 50억 달러의 구제금융까지 신청해야 했다. 시민단체 CAGW 또한 방만한 재정 운용 등을 질타하며 그를 역사상 최악 시장이라고 비판했다. 더 큰 문제는 시의 핵심 산업인 금융계의 탈(脫)뉴욕 기류다. 최근 대형 사모펀드 블랙스톤과 엘리엇, 얼라이언스 자산운용 등은 세금과 각종 비용이 싼 플로리다와 테네시 등으로 이전할 계획을 밝혔다. 특히 재무장관만 4명을 배출한 ‘월가 간판’ 골드만삭스 또한 핵심 부서인 자산운용 사업부의 플로리다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 골드만이 뉴욕을 떠나면 세수, 일자리 등에 타격이 불가피한데도 금융허브 위상 강화를 위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최근 지역방송 NY1이 조사한 그의 직무수행 지지율은 49%로 첫 선거(73%)와 두 번째 선거(67%)의 득표율보다 훨씬 낮다. 떨어진 인기를 반영하듯 내년 11월 시장 선거를 1년 앞두고도 벌써부터 30여 명의 후보가 출마 의사를 밝히거나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현직 시장이 프리미엄을 누리기는커녕 최약체에 가깝다는 현실이 경쟁자의 잇따른 출마를 부추긴 것이다. 특히 올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기본소득을 주창해 큰 주목을 받은 대만계 기업가 앤드루 양은 정식 출마 선언을 안 했는데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등록 유권자의 약 70%가 민주당원인 뉴욕에서는 실제 선거가 아닌 내년 6월 민주당 후보경선이 사실상의 본선으로 꼽힌다. 즉 당내 경선만 통과할 수 있으면 업무수행 능력이 출중하지 않아도 시장으로 뽑힐 수 있다는 뜻도 된다. 흑인 부인과 결혼한 더블라지오 시장 또한 결과적으로는 전체 유권자의 54%에 달하는 라틴계와 흑인 유권자의 몰표로 재선에 성공했다는 평이 적지 않다. 아직 그가 3선 도전 여부를 밝히지 않고 있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정파 이념과 인종 배경에 기인한 승리가 한두 번은 가능할지 모르나 결국 유권자 또한 등 따뜻하고 배부르게 해주는 후보를 좋아한다는 사실 말이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 2020-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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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 국방장관 전성시대와 하이브리드 전쟁[글로벌 이슈/하정민]

    “전투 임무에 여성을 쓰려고 해병대를 만든 게 아니다. 체력 기준을 낮출 여유가 없다.” 2013년 제임스 에이머스 당시 미국 해병대사령관이 여성에게 전투병과 보직을 전면 개방하려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을 공개 비판하며 한 말이다. 상당수 남성 군인 또한 전쟁 현실을 도외시한다며 불만을 표했다. 찬반양론이 거셌지만 오바마 행정부는 이 장벽을 허물었다. 7년이 흐른 지금 미국은 최초의 여성 국방수장 탄생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인사 결과야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지만 미셸 플러노이 전 국방차관, 태미 더크워스 상원의원, 털시 개버드 하원의원 등 조 바이든 행정부의 초대 국방장관 하마평에 오르는 후보가 다 여성이다. 최강대국의 안보를 책임지는 미 국방부는 군인과 민간인 합계 직원만 286만 명, 연 예산이 7215억 달러(약 800조 원)에 달하는 공룡 부서다. 1947년 설립 후 28명의 남성 장관만 거쳐 갔고 여성 차관조차 드물었던 보수적인 곳에 성별이 다른 최고책임자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주요국과 비교하면 미국에서 여성 국방장관 논의가 이제야 이뤄진다는 점이 이례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인도는 1975년 여성 국방수장을 배출했고 캐나다(1993년), 프랑스(2002년), 일본(2007년), 독일(2013년), 이탈리아(2014년), 호주(2015년) 등과 비교해도 늦다. 2020년 11월 현재 기준으로도 독일 프랑스 스페인 호주 인도 덴마크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의 국방수장이 모두 여성이다. 특히 독일 프랑스 스페인은 현 장관의 전임자 또한 여성이었다. 이들의 절대 다수는 군 복무 경험이 없고 장관이 되기 전 의사, 법조인, 관료 등 아예 다른 직업을 가졌다. 그런데도 왜 각국에서 속속 여성 국방장관이 탄생할까. 물론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가 가장 큰 요인이겠으나 이에 못지않게 주목해야 할 사안이 하이브리드 전쟁(Hybrid Warfare)의 일상화다. 해킹, 가짜뉴스, 거짓정보 등이 기존 무기 못지않은 파괴력을 지니고 정규군과 비정규군, 군인과 민간인, 전시와 평상시의 구분이 사라진 현대전의 양상을 일컫는 용어다. 재래식 무기와 해킹 등 전통 전쟁에서 잘 쓰이지 않았던 행위를 더해 적을 공격한다는 의미에서 복합 전쟁, 비(非)대칭 전쟁으로도 불린다. 대표적 예가 올해 9월 27일 시작돼 이달 10일 끝난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의 전쟁이다. 양측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국 병사가 희생되는 장면을 여과 없이 공개하며 자국민의 전투 의지를 자극하고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으려 애썼다. 또한 두 나라 모두 드론을 주요 무기로 썼다. 인구와 군사력에서 앞서는 데다 성능이 우수한 터키제 드론을 앞세운 아제르바이잔은 공중에서 아르메니아 탱크와 보병 전투차량을 무참히 분쇄했다. 손쓸 틈 없이 당한 아르메니아는 실효 지배하던 땅의 상당 부분을 넘겨줘야 했다. 즉, 21세기 전쟁의 성패는 양측 군인 간의 지상 총력전이 아닌 사이버 여론전, 드론 등 최첨단 정보기술(IT)이 좌지우지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군인을 양성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기존의 교육 및 훈련 방식으로는 현대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으며 완전히 새로운 사고와 발상의 대전환을 이뤄내야 한다는 절박함이 사격 훈련 한번 해보지 않은 여성 국방수장의 탄생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의미다. 여러 이해관계자의 미묘한 심리 분석, 국제공조 구축, 민간인과의 협력 강화 등 여성이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가 늘어났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문화인류학계의 명저인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 역시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대 미 국방부가 대(對)일본 심리전을 위해 요청한 자료를 바탕으로 탄생했다. 널리 알려진 대로 베네딕트는 평생 일본을 단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지만 자살특공대 가미카제 등 서구 관점에서 이해하기 힘든 일본인의 정서를 현미경처럼 낱낱이 해부해 미국의 승리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는 평을 얻고 있다. 여성 특유의 꼼꼼함과 세밀함이 전쟁 승리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보여주는 사례이자, 여성 국방장관 전성시대를 이미 70여 년 전 예고한 신호가 아니었을까.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 2020-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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