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평범하지만 판타스틱하고 경쾌하지만 아주 무시무시한 이야기!” 배우 황석정(51)은 한창 연습 중인 자신의 차기작 연극 ‘빛나는 버러지’를 이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29일 서울 종로구 드림아트센터에서 개막하는 ‘빛나는 버러지’는 영국 출신 극작가 필립 리들리가 쓴 3인극으로 지난해 낭독공연에 이어 올해 초연을 앞두고 있다. 7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섬뜩한 이야기를 마치 자전거 타고 산책하듯, 마트에서 쇼핑하듯 산뜻하게 풀어낸 수작”이라며 “어디서도 볼 수 없던 이야기라 보는 관객들도 숨통이 확 트이는 기분일것”이라고 했다. 2015년 영국 런던의 소호극장에서 초연된 ‘빛나는 버러지’는 주거 문제라는 외피에 담긴 인간의 욕망을 주제로 한 희곡이다. 영국 런던에 거주하는 무주택자 부부 질(송인성 최미소)과 올리(배윤범 오정택)에게 시청공무원 미스 디(황석정 정다희)가 나타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황석정이 연기하는 미스 디는 ‘꿈의 집 창조를 통한 사회재생’이라는 슬로건을 반복적으로 설파하는 시청 공무원. 시종일관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풍기는 미스 디는 질과 올리 부부에게 ‘공짜 집’ 계약서를 내민다.“미스 디는 극중에서 다 큰 어른한테도 ‘어린이 여러분’이라 불러요. 가난으로 나약해진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는 말이죠. 아무리 노력해도 더 올라설 수 없는 계단이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구원자가 나타나 손 잡아주길 바라잖아요. 미스 디는 무주택자 부부에게 구원자처럼 접근한 겁니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자본주의 사회의 오랜 격언처럼 부부가 살게 된 공짜 집에도 대가는 따랐다. 입주 후부터 부부에게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날 집에 노숙자가 침입하게 되고, 놀란 부부는 그를 우발적으로 살해한다. 근데 노숙자들이 하나씩 죽어나갈수록 부부는 집 내부의 인테리어나 주변 환경이 좋아진다는 걸 깨닫게 된다. 살인할수록 풍요해지는 이상한 집에서 부부는 어느 새 공포감과 죄책감을 잊게 된다. 마침내 부부는 효율적 살인까지 계획하게 된다.“질과 올리도 처음엔 두려웠겠지만 점점 당연한 일이 됩니다. 나중엔 더 좋은 걸 얻기 위해 수많은 희생을 합리화하죠. 작품에선 살인으로 표현되지만 현실은 어떨까요. 우리가 더 좋은 걸 갖기 위해 하는 일들이 다른 사람의 희망을 뺏고 있진 않을까요.”‘빛나는 버러지’의 미스 디처럼 황석정은 주로 강렬하고 범상치 않은 캐릭터를 연기해왔다. 현란한 말투와 몸짓을 구사하는 짝퉁 핸드백 판매업자(KBS 미니시리즈 ‘비밀’), 후배들에게 엄격하기로 악명 높은 재무부장(tvN 드라마 ‘미생’) 등 그는 연기하는 캐릭터마다 강한 인상을 남겼다.“데뷔 초엔 평범한 연기는 아예 하지도 못했어요. 사랑을 많이 못 받고 자라 그런지 ‘아름답다’ ‘사랑한다’ 같은 말도 대학 졸업할 때까지 스스로 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연기를 하면 그런 말을 잘 구사해야 하잖아요. 그게 너무 괴로운 거예요. 그래서 감정 연기를 주로 해야 하는 사람보다는 신이나 동물 같은 특이한 역을 주로 맡았죠.” 표현할 줄 몰랐던 그는 연기를 하면서 비로소 표현이 주는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연기 경력이 쌓일수록 처음엔 그토록 어려웠던 평펌한 인물 연기도 몸에밴듯 편해졌다. “꾸준히 연기를 해왔던 것이 그나마 저를 인간적인 사람으로 만들었어요. 제겐 연기가 타인과 교감할 수 있는 통로가 됐죠.” 드라마, 영화 등 주로 매체 연기자로 활동하는 그는 원래 대학로에서 시작한 무대 배우다. 하지만 개성이 강한 외모와 직설적인 말투와 성격… 대학로 연극판에서 그에게 주어지는 배역은 많지 않았다고 한다.“예전 여배우들 맡는 역은 주로 사랑스럽고 청초했잖아요. 전 ‘너같이 생긴 X이 어떻게 무대에 올라가냐’는 소리도 들었어요.(웃음) 제게 주어지는 배역이 많지 않았어요. 주로 남자 역을 많이 맡아서 그런지 남자배우인줄 아는 사람도 많았죠. 그땐 연극을 충분히 즐기지 못했어요.” 최근 그는 대학로로 돌아와 다시 무대 맛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엔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연극 ‘일리아드’ ‘천변카바레’ 등 1인극만 3편을 연달아 올렸다. “예전엔 무대 서는 게 부담스럽고 스트레스 받고 신경 쓰이고 그랬는데 지금은? 너무 자유롭고 즐거워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이제 제겐 무대가 놀이터입니다.” 내년 1월 8일까지, 전석 5만5000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은 매년 18만여 명이 찾는다. 800km가 넘는 길의 끝에는 예수의 제자 성 야고보의 유해가 안치된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성당이 있다. 순례자들은 그곳에서 구원을 얻을 거라 생각한다. 산티아고의 반대 방향인 극동 시베리아로 순례를 떠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무엇을 원하는 사람일까.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27일까지 공연되는 연극 ‘극동 시베리아 순례길’은 시베리아를 향해 걷는 순례자 ‘그’(전선우)를 관찰하는 오호츠크 해상의 기후탐사선 소속 연구원 AA(이은정)와 BB(정슬기)의 대화로 이루어진다. 정진새 연출가가 희곡을 썼다. 시대적 배경은 ‘2020년 그 이후 언젠가’. 가상과 실재가 뒤섞여 순례도 온라인으로 하는 시대에 오프라인 시베리아 순례에 오른 그가 등장하며 극이 시작된다. 극은 촘촘한 기승전결을 갖춘 서사라기보단 두 연구원의 대화에 작가의 생각이 여기저기 담기는 형식이다.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지켜보는 사람들의 대화로 구성된 2인극이라는 점에서 극작가 사뮈엘 베케트가 쓴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와 닮았다. ‘극동…’은 팬데믹과 기후위기를 겪은 인류의 혼란을 담았다. 재난 속에서 세계는 점멸하게 돼 있다. 이를 은유하는 연극적 장치로 장내는 50회 이상 암전된다. 시베리아에 가까워질수록 순례자의 정체가 서서히 드러난다. 혼란과 상실, 고립의 끝에서 순례자는 어떤 선택을 할까. 정 연출가는 “휴머니즘의 재확인,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극을 마무리하고 싶진 않았다.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묻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석 3만5000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예수의 제자 성 야고보의 유해가 발견됐다고 알려진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은 매년 18만 명이 찾는다. 800km가 넘는 길을 걸으면 순례의 끝,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성당에 도착한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신을 만나 구원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산티아고의 반대방향, 극동 시베리아로 순례를 떠나는 사람이 있다. 그는 무엇을 원하고 믿는 사람일까. 천국과 구원이 아닌 그 반대의 것을 염원하는 건 아닐까. 2~27일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공연되는 연극 ‘극동 시베리아 순례길’은 거꾸로 향하는 순례자에 관한 이야기다. 극동 시베리아로 순례를 떠난 ‘그’(전선우)와 ‘그’를 관찰하는 두 사람이 등장한다. 극은 주로 오호츠크 해상의 기후탐사선에 타고 있는 기후연구원 AA(이은정)와 BB(정슬기)가 ‘그’의 발자취를 좇으며 대화를 나눈 방식으로 진행된다. 배경은 2020년으로부터 얼마가 지난 그 이후다. 인공지능(AI), 멀티버스 등의 기술이 고도화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미래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마구 뒤섞여 있다. 마치 게임 속 캐릭터처럼 순례도 온라인으로 한다. 다들 온라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선택하는 와중에 홀로 극동 시베리아로 ‘직접’ 순례를 떠나는 ‘그’가 등장한 것이다. 두 사람은 ‘그’의 행방을 두고 온갖 의견, 추측, 생각을 쏟아낸다.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는 대부분 ‘그’에게서 출발한 이야기지만 반드시 ‘그’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실존을 추구하는 AA와 가상을 받아들인 BB가 크고 작은 주제에 관해 논쟁을 벌인다. 실존과 가상이 뒤섞인 미래의 세계를 다루고 있는지라 극은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나 혼란 그 자체다. 기승전결을 갖춘 촘촘한 서사를 구축하기 보다는 작가의 여러 생각이 두 사람의 대화에 심긴 방식이다. 하지만 극동 시베리아로 향하는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진 않는다. 극이 진행될수록 관객들은 순례의 끝에서 ‘그’가 맞게 될 어떤 결말을 상상하게 된다. 희곡을 쓰고 연출한 정진새는 “팬데믹 이후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뒤섞인 혼란의 시대를 기록하는 차원으로 쓴 작품”이라고 했다. 작품은 아일랜드 출신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가 쓴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원형을 닮았다. 미지의 누군가를 기다리는(혹은 지켜보는) 사람들의 대화로 이루어진 2인극이라는 점에서다. ‘고도를 기다리며’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황폐화된 세계에서 난민처럼 버려진 이들의 상실을 그렸다면 ‘극동 시베리아 순례길’은 팬데믹과 기후위기 같은 전 지구적 재난을 겪는 인류의 혼란을 담았다. 재난 속에서 세계는 점멸하게 돼있다. 이를 은유하기 위한 연극적 장치로 90분가량의 연극에서 암전은 50회 이상 이뤄진다. 정 연출은 “암전은 점점 흐릿해지고 희미해져가는 세상, 모호하고 어렴풋하며 선명하지 않은 세계를 증언하려는 장치”라고 설명했다. 극동 시베리아에 가까워질수록 ‘그’의 정체는 점점 드러난다. 혼란과 상실, 고립의 상황에서 ‘그’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정 연출은 “휴머니즘의 긍정이나 재확인,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극을 마무리하고 싶진 않았다”며 “이렇게 되어버린 지구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이후의 세계’에 대한 질문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전석 3만5000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보이그룹 NCT127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콘서트를 하던 중 관객 30여 명이 실신해 공연이 중단됐다. 자카르타에서 4일(현지 시간) 열린 ‘네오 시티: 자카르타―더 링크’에서 NCT127은 ‘파라다이스’를 부르며 멤버들이 무대 여러 곳에서 공을 나눠줬다. 스탠딩석 관객들이 공을 받으려고 무대 쪽으로 한꺼번에 몰리면서 펜스가 무너졌다. 이 과정에서 30여 명이 실신했다. 부상자는 없었다. 팬들이 몰려들자 리더 태용은 다른 멤버들에게 노래를 중단하라고 했고 멤버들은 앞쪽으로 몰려든 관객에게 물러나 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NCT127은 6곡가량을 남긴 오후 9시 20분경 공연을 중단했다. 현지 공연 업체 다이안드라글로벌 에듀테인먼트는 “스탠딩 구역에서 혼란이 빚어져 안전을 위해 공연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1만 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공연장에서 열린 이날 공연의 티켓은 8000장가량 팔렸다. 이튿날인 5일(현지 시간) 같은 곳에서 열린 두 번째 공연은 사고 없이 끝났다. 첫 번째 공연보다 많은 경찰과 의료진이 대기했다. 6일 SM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이틀간 열린 콘서트에는 1만5000명이 참석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1. 2005년 서울 대학로 뮤지컬에서 단역으로 데뷔한 A 씨. 3년 전만 해도 한 해 대학로 공연을 4, 5개가량 한 베테랑 배우였다. 팬데믹이 한창이던 지난해 촬영하고 올 초 방송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리즈에 조연으로 출연하며 인지도도 높아졌다. 하지만 요즘 대학로에선 그를 보기 힘들다. A 씨 소속사는 “공연은 연습까지 포함해 최소 두 달가량 걸리는 데 비해 출연료는 적어서 작품을 하기가 꺼려진다”고 했다. #2. 10일 시작하는 연극의 제작 프로듀서 정모 씨(39)는 개막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3일 현재까지 무대 설치를 할 목수를 구하지 못했다. 기존 일당(15만 원)보다 많은 20만 원을 제안해도 소용없었다. 정 씨는 “다른 업종으로 간 기술 스태프가 돌아오지 않는다. 팬데믹 때 일자리를 잃은 트라우마 때문에 공연 일은 못 하겠다고 말한다”고 했다. 엔데믹으로 접어들며 관객들이 다시 공연장을 찾고 있지만 대학로는 팬데믹 후유증을 심각하게 앓고 있다. 코로나19가 확산되던 시기에 공연이 열리지 않아 대학로를 떠난 배우와 기술 스태프가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배우들은 팬데믹 기간 호황을 누린 OTT, 웹 콘텐츠 업계로 이동했고 조명, 오디오, 무대설치를 담당한 기술 스태프는 건설업, 배달업 등으로 빠져나갔다.○ 배우 기근에 출연료 껑충 팬데믹 여파로 공연이 열리지 못하자 배우들은 비슷한 시기 급성장한 OTT 콘텐츠로 대거 이동했다. 대학로 간판스타였던 전미도, 박해수 같은 배우들이 영상 콘텐츠에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린 것도 이때부터다. 요즘 공연계에선 주연급 배우를 찾기가 쉽지 않다. OTT에 출연한 배우들이 돌아오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인지도가 오른 만큼 출연료도 덩달아 2∼3배가량 올라 제작비 부담이 커졌다. 20년 경력의 공연 제작사 대표 B 씨는 “OTT 출연으로 얼굴이 알려진 후에 팬데믹 이전보다 출연료를 3배 넘게 부르는 배우도 있다”고 했다. 대학로에서 활동하다가 지난해 처음 OTT 시리즈에 출연하면서 최근 기획사에 들어간 37년 차 배우 C 씨는 “대학로 무대에 서고 싶지만 소속사에서 좋아하지 않아 예전만큼 공연하긴 어렵다”고 했다. 배우 구인난이 심화되자 대학로 연극 및 중소형 뮤지컬에도 같은 배역에 배우 여러 명이 동시에 출연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소수 주연급 배우가 비슷한 시기 여러 공연에 출연하면서 작품당 출연 회차를 줄여달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한 배역에 3명을 발탁하거나 4명을 배치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현재 공연 중인 뮤지컬 ‘인간의 법정’에서 주인공인 로봇 법 전문 변호사 호윤표 역은 배우 3명이, 주인을 살해한 혐의로 법정에 서는 안드로이드 아오 역은 4명이 각각 연기한다. 대형 뮤지컬도 사정은 비슷하다. 뮤지컬 ‘삼총사’는 무려 배우 5명이 주인공 달타냥 역을 맡았다. 한 배역에 여러 배우가 출연하는 경우는 이전에도 종종 있었지만 팬데믹을 거치며 크게 늘어났다. 김용제 한국프로듀서협회장은 “배우가 한 작품에 집중할 수 없으니 공연의 질이 보장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 “기초예술 고사 막아야” 팬데믹으로 일자리를 잃은 기술 스태프 사이에서는 감염병이 확산되면 또 실업자가 된다는 인식이 강하다. 조명 스태프로 일하다가 현재 대기업 공장에서 일하는 이재호 씨(47)는 “조명 담당 인력의 절반 정도는 팬데믹 이후 공연계를 완전히 떠났다고 보면 된다. 언제 또 코로나19가 심해질지 모르는데 가족 생각을 하면 공연계로 돌아오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숙련자가 아니라 지인 위주로 스태프를 꾸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공연 제작자 D 씨는 “급하게 충원한 무경력자가 스태프로 일하는 경우가 많아 안전사고가 날까 걱정된다”고 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최근 2년간 운영한 무대인력 지원 사업(678억 원)은 올해 말 끝난다. 임정혁 한국소극장협회 이사장은 “지원 연장을 요구했지만 아직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초예술인 공연계가 무너지면 전체 예술계에 큰 타격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원종원 순천향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공연은 배우와 스태프 등에겐 업(業)의 뿌리이자 대중문화콘텐츠의 기초로, 인력 유출이 가속화되면 예술계의 뿌리가 뽑히는 것과 같다”며 “기초예술 분야에서도 수익이 창출돼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할 수 있게 정부와 민간이 신속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이문수 인턴기자 고려대 사학과 4학년}
# 2005년 대학로 뮤지컬의 단역으로 데뷔한 A. 3년 전만 해도 한 해에 대학로 공연에만 4~5건씩 섰던 베테랑 무대 배우였다. 올초 방송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시리즈에 비중 있는 조연으로 출연하면서 인지도는 높아졌지만 요즘은 대학로 무대에서 찾기 힘들다고 한다. A에게 소속사까지 생기면서 향후 공연 계획도 대폭 축소됐다. 소속사 측은 “연극, 뮤지컬은 연습과 공연까지 최소 한두 달을 쏟아야 하는데 상대적으로 출연료는 적어서 꺼려지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 개막을 일주일 가량 앞둔 한 연극의 제작PD 정모 씨(39)는 아직까지 무대 설치를 담당할 목수인력을 구하지 못했다. 기존 일당(15만 원)보다 많은 20만 원을 제안해도 소용없었다. 정 씨는 “공연이 없던 팬데믹 기간 기술자들이 건설이나 배달업으로 대거 이동했다”며 “팬데믹 때 일자리를 잃었던 트라우마 때문에 대학로서 더는 일 못하겠다는 게 요즘 기술자들 분위기”라고 전했다. 방역 방침이 완화되면서 관객들은 다시 공연장을 찾고 있지만 대학로는 여전히 팬데믹 후유증을 앓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이 한창이던 3년간 공연이 열리지 않으면서 대학로를 떠났던 배우와 기술 인력들이 돌아오지 않고 있어서다. 팬데믹 기간 배우들은 비대면 호황를 누렸던 OTT, 웹 콘텐츠 업계로 다수 이동했고 조명, 오디오, 무대설치 등을 담당한 기술자들은 건설업, 배달업 등 공연과 무관한 업종으로 빠져나갔다.OTT로 간 배우들…배우 부족해 트리플·쿼드러플 캐스팅 난무 팬데믹 여파로 대학로서 공연이 열리지 않게 되자 배우들은 비슷한 시기 급성장한 OTT콘텐츠로 대거 이동했다. 대학로 간판 스타로 불렸던 전미도, 박해수 등의 배우들이 영상 콘텐츠에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이 때문에 요즘 대학로 공연계에선 주연급 배우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OTT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인지도를 얻어 돌아오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그만큼 출연료가 2~3배가량 올라 제작사 입장에선 부담이 커졌다. 대학로에서 20년 넘게 연극을 제작해온 B씨는 “OTT 출연으로 얼굴이 알려져 팬데믹 이전보다 출연료가 2~3배 높아진 배우도 있다”고 했다. 재작년 처음 OTT시리즈에 출연하면서 최근 소속사에 들어가게 된 37년차 배우 C는 “여전히 대학로에서 연극 무대에 서고 싶지만 소속사에서 좋아하지 않으니 예전만큼 할 수 없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주연급 배우 부족난이 심화되면서 요즘 대학로 공연에는 같은 배역에 여러 명의 배우를 동시에 출연시키는 경우가 많아졌다. 소수의 주연급 배우들이 여러 공연의 출연 제의를 받으면서, 제작사 측에 적은 공연회차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한 배역이 2명을 캐스팅하는 더블은 기본이고 트리플(3명), 쿼드러플(4명) 캐스팅이 대세다. 9월 개막한 뮤지컬 ‘인간의 법정’의 주인공 호윤표는 3명, 아오는 4명이 연기한다. 뮤지컬 ‘삼총사’는 무려 5명의 배우가 주인공 달타냥을 맡고 있다. 김용제 한국프로듀서협회 회장은 “요즘 공연계에선 한 명의 배우가 동시에 서너 개의 공연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배우가 한 작품에 집중할 수 없으니 공연의 질이 예전만큼 보장되긴 힘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했다. “팬데믹 오면 또 실업자 신세” 돌아오지 않는 기술자들 조명, 오디오, 무대설치 등 기술인력 유출도 심각한 수준이다. 2~3배 넘게 인건비를 올려도 스태프를 구하기 힘들다. 팬데믹 여파로 장기간 실업을 겪은 기술자들 사이에는 언젠가 코로나가 창궐하면 다시 실업자 신세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퍼져있다. 조명 기술자로 일하다 현재 대기업 공장에서 일하는 이재호 씨(47)는 “대학로 조명 인력의 절반 정도는 팬데믹 이후 공연계를 아예 떠났다고 보면 된다”며 “언제 다시 코로나가 심해질지도 모르는데 가족들 생계를 생각하면 공연업계로 돌아오는 것이 꺼려지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떠나간 기술자들을 붙잡기 위해 팬데믹 이전에는 15만 원 선이었던 일당은 20~30만 원까지 올랐지만 인력난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그 결과 숙련 기술자가 아닌 지인 위주로 급하게 기술 스태프를 꾸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연극 제작자 C씨는 “급하게 충원한 무경력자들이 무대 스태프로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다 안전사고라도 날까 걱정된다”고 했다. 지난해부터 2년간 문화체육관광부가 운영했던 무대인력, 극장 대관료 지원사업도 올해 말 종료된다. 코로나 추경으로 일시적으로 편성된 예산이었기 때문. 임정혁 한국소극장협회이사장은 “인건비를 2배 넘게 올려도 상황에서 사람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무대인력 지원사업은 어떤 정책보다 직접 체감지수가 높았다. 지원을 연장해달라고 담당 부처에 요청했지만 확답은 받지 못했다”고 했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이문수 인턴기자(고려대 사학과 4학년)}
연극사에서 가장 유명한 장애인 캐릭터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리처드 3세’의 리처드 3세다. 기형적 신체에서 비롯된 열등감을 권력욕으로 채우려는 한 인간의 악행과 파멸을 다룬 이 고전은 많은 장르로 변주돼 왔다.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17∼20일 국내 초연되는 연극 ‘틴에이지 딕’은 리처드 3세를 뇌성마비 고교생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틴에이지 딕’을 쓴 극작가 마이크 루는 희곡 서문에 “주인공 리처드 글로스터와 그의 친구 바버라 벅 버킹엄 역엔 장애인 배우를 캐스팅해야 한다”고 적었다. 장애인이 표현할 수 있는 생생한 감정만이 작품을 완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번 공연에서 뇌성마비 장애인 리처드와 벅 역에 각각 뇌병변 장애인 배우 하지성(31), 조우리(39)가 발탁됐다. 하지성은 장애인 극단 애인의 창단 공연 ‘고도를 기다리며’(2010년)로 데뷔했다. 장애운동가 출신 조우리는 배우, 작가, 연출가로 활동해왔다.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리처드는 스스로를 장애인이라 여기기보단 ‘다른’ 몸이라고 생각하는 인물이에요. 괴롭힘을 당하지 않기 위해 강해져야겠다고 결심하죠. 학생회장이 되겠다는 리처드의 욕망은 거기에서 시작됩니다.”(하지성) 작품의 배경은 미국의 한 고등학교. 리처드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지만 마냥 참진 않는다. 분노에 사로잡힌 리처드는 학생회장이 되기 위해 음모를 꾸민다. 심지어 자신의 장애까지 이용한다. “리처드는 가장 친한 친구인 벅을 이용하고 배신까지 하죠. 리처드가 끌어내리려는 학생회장 에디(김연수)를 좋아하는 벅에게 ‘휠체어에 앉은 네가 어떻게 사랑을 할 수 있느냐’는 말까지 합니다.”(조우리) 많은 작품에서 장애인은 주로 고통을 감내하는 인물 혹은 선행의 수혜자로 그려졌다. 하지만 ‘틴에이지 딕’은 장애인을 욕구와 욕망을 가진 인물로 내세워 장애에 대한 사회의 선입견을 신랄하게 꼬집는다. “‘내가 영웅이 아니란 걸 벌써 알고 있었잖아. 휠체어를 타고 들어올 때부터’란 리처드의 대사가 있어요. 리처드는 평범한 욕구마저도 허용되지 않아 뒤틀린 악인이 돼버린 인물이에요.”(하지성) 배우는 희곡의 대사와 지문을 신체로 표현해야 한다. 하지만 장애를 가진 두 사람은 몸을 사용하는 데 자유롭지 않다. 조우리는 “목 밑으로는 못 움직이니까 표정과 대사만으로 감정을 표현해야 하기에 전달력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크다”고 했다. 하지성도 “다른 배우들과 논의하며 디테일한 감정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극 후반 정상을 향해 달려가던 리처드는 예상치 못한 혼란과 선택의 순간에 맞닥뜨린다. 소중한 걸 모두 잃을 수 있는 상황에서 리처드는 어떤 선택을 할까. “욕망과 우정, 사랑 앞에 선 리처드와 함께 관객들은 ‘진짜 소중한 건 무엇일까’란 고민에 빠지게 될 거예요.”(조우리) 3만∼4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연극사(史)적으로 가장 유명한 장애인 캐릭터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리처드 3세’의 주인공 리처드 3세다. 기형적 신체에서 비롯된 열등감을 권력욕으로 채우려는 한 인간의 악행과 파멸을 다룬 해당 고전은 오랫동안 많은 장르의 작품들로 변주돼왔다. 17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초연되는 연극 ‘틴에이지 딕’도 리처드 3세에서 출발했다. ‘틴에이지 딕’의 작가는 중국계 미국인 마이크 루. 그는 희곡 서문에 “주인공 리처드 글로스터와 그의 친구 바바라 벅 버킹엄 역에는 장애인 배우를 캐스팅해야 한다”고 적었다. 장애인만이 표현할 수 있는 생생한 연기가 이 희곡을 완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국내 초연에는 뇌성마비 장애인 리처드와 벅 역에 각각 뇌병변 장애인 배우 하지성(31), 조우리(39)가 발탁됐다. 하지성은 장애인 극단 ‘애인’의 창단 공연 ‘고도를 기다리며’(2010년)를 시작으로 ‘인정투쟁’ ‘천만 개의 도시’ 등에 출연한 배우다. 장애운동가 출신 조우리는 2015년부턴 배우, 작가, 연출가 등으로 활동하는 예술가다.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리처드는 스스로를 장애인이라 생각하기보단 그저 ‘다른’ 몸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죠. 살아남기 위해 강해져야 겠다고 결심해요. 학생회장이 되겠다는 리처드의 욕망은 거기에서 시작됩니다.”(하지성) ‘틴에이지 딕’은 현대 미국의 한 고등학교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리처드는 장애 때문에 또래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지만 마냥 참지만은 않는다. 복수를 위해 학생회장을 꿈꾸지만 고난을 견딘 약자가 성공한다는 식의 미담 서사는 아니다. 분노에 휩싸인 리처드는 학생회장이 되기 위해 음모를 꾸미는데 심지어 자신의 장애까지 이용한다. “리처드는 목적 달성을 위해 가장 친한 친구인 벅을 이용하고 배신까지 하죠. 자신의 경쟁자를 좋아하는 벅에게 ‘휠체어에 앉은 네가 어떻게 걔랑 사랑을 할 수 있냐’는 식의 차별 발언도 하게 돼요.”(조우리) 많은 작품에서 장애인은 고통을 감내하는 인물 혹은 선행의 수혜자로만 그려졌다. 하지만 ‘틴에이지 딕’은 장애인을 평범한 욕구와 욕망을 가진 인물로 내세워 장애에 대한 사회 인식과 선입견을 신랄하게 꼬집는다. “‘내가 영웅이 아니란 걸 벌써 알고 있었잖아, 휠체어를 타고 들어올 때부터’란 리처드의 대사가 있어요. 사람은 누구나 성공하고 싶고 사랑하고 싶잖아요. 리처드는 평범한 욕구마저도 품지 못해 결국 뒤틀린 악인이 되버린 거죠.”(하지성) 배우는 대사와 지문을 신체로 표현해야 한다. 하지만 장애를 가진 두 사람은 몸을 사용하는 것이 자유롭지 않다. 조우리는 “목 밑으로는 못 움직이니까 표정과 대사만으로 감정을 표현해야 하기에 전달력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크다”고 했다. 하지성도 “다른 배우들과 소통하면서 디테일한 감정의 리처드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극 후반, 정상을 향해 달려가던 리처드는 예상치 못한 혼란과 선택의 순간에 맞닥뜨린다. 소중한 것을 모두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리처드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최후의 순간 욕망과 우정, 사랑 앞에 선 리처드에게서 관객은 ‘진짜 소중한 건 무엇일까’란 고민에 빠지게 될 겁니다.”(조우리) 20일까지, 3만~4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어느 한 예술대학의 교실. 극작과 교수(이주영) A와 대학원생(정새별) B의 일대일 수업이 시작된다. 운동권 대학생을 거쳐 국회의원 보좌관을 지낸 A는 정치적 폭력과 억압에 맞서는 글을 쓰다 교수가 됐다. 유년기에 성폭력 피해를 입은 B는 “(트라우마를 쏟아낼) 쓰레기통이 필요해서” 작가를 꿈꾸게 됐다고 고백한다.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공연 중인 연극 ‘클래스’는 중년과 청년, 교수와 학생인 두 사람의 위계질서가 더욱 선명해지는 ‘교실’에서 벌이는 치열한 논쟁을 다룬 2인극이다. 교수는 정치적 억압과 국가 폭력이라는 거악에 맞서 동료들과 ‘원팀’을 이뤄 직접 싸운 세대다. 반면 대학원생은 급격한 경제 위기를 겪으며 집단보다는 개인을 중시하는 풍조에서 자랐다.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두 인물은 예술과 현실, 폭력과 위계, 세대 갈등 같은 다양한 주제에 관해 각자 주장을 피력하며 첨예하게 맞선다. 연극은 대학원생이 교수와의 일대일 수업에서 ‘고독한 케이크방’이라는 희곡을 완성한다는 내용의 큰 줄기를 따라간다. 대학원생은 유년 시절 성폭력을 당한 경험을 소재로 희곡을 창작하려고 하지만 교수는 “120분간 작가의 자기 연민을 보여줄 필요는 없다”고 일갈한다. 논쟁을 거듭하는 도중 묻혀 있던 또 다른 이야기, 교수의 스승인 원로 교수와 대학원생의 룸메이트 사이에서 벌어졌던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온다. 작품에 등장하는 일련의 사건에는 공통점이 있다. ‘위계의 폭력’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 사건들은 서서히 정체를 드러내고 극은 절정을 향해 달려간다. 예술대학 강의실을 구현한 무대에선 논쟁의 내용이 어떤가에 따라 교수와 대학원생이 앉은 구도와 시점이 달라진다. 두 사람은 마주 볼 때도 있고 대각선으로 멀찍이 떨어져 앉기도 한다. 대화의 주제가 무엇이냐, 누가 대화의 주도권을 가지느냐에 따라 배우들의 위치를 달리한 섬세한 공간 연출이 눈에 띈다. ‘클래스’의 작가 진주는 “세대, 성별, 가치관 등 각자의 기준으로 부딪치는 갈등 속에서 어떻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지 질문한다”고 설명했다. 11월 12일까지. 전석 3만5000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어느 예술대학의 교실. 극작과 교수(이주영)와 대학원생(정새별)의 일대일 수업이 시작된다. 운동권 대학생을 거쳐 국회의원 보좌관을 지냈던 A는 정치적 폭력과 억압에 맞서는 글을 쓰다 교수가 됐다. 유년기 성폭력 피해를 입었던 B는 “쓰레기통이 필요해서” 작가를 꿈꾸게 됐다.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개막한 연극 ‘클래스’는 중년과 청년, 교수와 학생인 두 사람이 위계의 질서가 더욱 선명해지는 ‘교실’에서 벌이는 논쟁을 다룬 치열한 2인극이다. 교수는 정치적 억압과 국가 폭력이라는 거악(巨惡)에 맞서 동료들과 ‘원팀’을 이뤄 직접 싸운 세대, 대학원생은 급격한 경제 위기를 겪으며 집단보단 개인을 중시하는 풍조에서 자란 세대다.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두 인물은 예술과 현실, 폭력과 위계, 세대갈등 같은 다양한 주제에 관해 각자 주장을 피력하며 첨예하게 맞선다. 연극은 대학원생이 교수와의 일대일 수업에서 ‘고독한 케이크방’이라는 희곡을 완성한다는 내용의 큰 줄기를 따라간다. 대학원생은 유년시절 성폭력 경험을 소재로 희곡을 창작하려고 하지만, 교수는 “120분간 작가의 자기연민을 보여줄 필요는 없다”고 일갈한다. 논쟁을 거듭하는 도중 묻혀있던 또 다른 이야기, 교수의 스승인 원로교수와 대학원생의 룸메이트 사이에 벌어졌던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온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일련의 사건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위계의 폭력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 사건들은 서서히 정체를 드러내고 극은 절정을 향해 달려간다. 예술대학 강의실을 구현한 무대에선 논쟁의 내용이 어떤가에 따라 교수와 대학원생이 앉은 구도와 시점이 달라진다. 두 사람은 마주볼 때도 있으며 대각선으로 멀찍이 떨어져 앉기도 한다. 대화의 주제가 무엇이냐, 누가 대화의 주도권을 가지느냐에 따라 배우들의 위치를 달리한 섬세한 공간 연출이 눈에 띈다. ‘클래스’의 작가 진주는 두산아트센터가 40세 이하 젊은 예술가들을 발굴해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DAC 아티스트’ 프로그램의 지난해 공모에서 9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정됐다. 진주는 ‘클래스’에 대해 “세대, 성별, 가치관 등 각자의 기준으로 부딪히는 갈등 속에서 어떻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지 질문한다”고 했다. 소외된 존재를 주인공 삼아 사회성 짙은 작품을 써왔던 그의 전작으로는 6·25전쟁 당시 양민학살 사건의 여성 피해자가 주인공인 ‘배소고지 이야기: 기억의 연못’(2019년), 다문화 이주여성의 자살 사건을 모티프로 한 연극 ‘ANAK’ 등이 있다. 다음달 12일까지, 전석 3만5000원. 이지훈기자 easyhoon@donga.com}
“친척과 결혼하지 마십시오!” 고대 로마 시대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예수 그리스도를 따랐던 사도들은 근친혼을 금지하는 규범을 설파했다. 이 규범은 훗날 중세 교회의 유구한 전통으로 이어진다. 저자에 따르면 신의 가르침을 앞세운 교회의 진짜 목적은 혈연 간 유대를 약화시켜 친족보다 교회를 우선순위에 두려던 것이었다고 한다. 기독교의 결혼 규범은 ‘의도치 않게’ 서구 현대문명의 문화적 기원이 된다. 고대로부터 이어져온 혈연중심 사회를 해체하고 핵가족주의, 나아가 개인주의를 뿌리내리게 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탄생한 개인을 ‘위어드(WEIRD)’라 명명한다. 서구에서(Western) 교육수준이 높고(Educated) 산업화됐으며(Industrialized) 부유하고(Rich) 민주적인(Democratic) 집단을 의미하는 단어다. 위어드의 탄생은 친족사회가 아닌 국가의 번영을 가져왔다. 핵가족을 기반으로 개인주의를 공고하게 하는 도시화 및 상업화가 더욱 가속화됐기 때문이다. 위어드의 개인주의적 성향은 근대 이후 만들어진 법과 제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집단보다는 개인의 권리와 의무 보호에 초점을 맞추게 된 것이다. 이처럼 법, 제도, 문화적으로 집단의 예속을 넘어선 개개인은 자신의 역량과 의지에 따라 무한히 확장하고 팽창할 수 있게 됐다. 저자는 심리학적으로 위어드와 비(非)위어드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비위어드는 집단 규범을 어길 때 사회적 체면이 손상되는 수치심을 느끼는 반면에 위어드는 스스로 세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때 죄책감을 느낀다는 것. 수치심을 느낀 인간은 회피나 순응 같은 수동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죄책감을 느낀 인간은 자신의 행동을 바꿔 상황을 바꾸려 한다. 위어드가 주류인 사회가 개선을 통한 발전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진화생물학자인 저자는 심리학, 인류학, 경제학, 역사학을 망라하는 지식과 수백 건의 실험, 설문조사를 주장의 근거로 제시한다. 참고 문헌 기록만 150쪽에 달할 정도다. ‘역사의 종말’ 저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추천사에 “다양한 학문과 풍부한 데이터를 망라해 친족 기반 사회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과정을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설명해낸 걸작”이라고 썼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약간의 빛도 허용되지 않는 완전한 어둠.’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의 블랙박스형 극장 ‘U+스테이지’에서 22일 개막한 영국 이머시브 시어터 그룹 다크필드의 3부작 공연 ‘코마’ ‘고스트쉽’ ‘플라이트’의 출발선은 어둠이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사방의 빛이 차단된 컨테이너로 입장한 관객이 각자의 위치에서 헤드폰을 착용하면 공연은 시작된다. 아무 형상도 보이지 않는 완벽한 암실에서 관객은 낯설고도 새로운 세계로 서서히 빠져든다. 무대와 좌석을 모두 걷어낸 공연장엔 컨테이너 3개가 놓여 있다. 컨테이너는 공연을 선보이는 무대이자 객석이다. U+스테이지는 무대와 객석을 해체할 수 있어 이런 공간 연출이 가능하다. 3부작 모두 관객의 직접 체험을 통해 완성되는 관객 참여형 공연이다. 관객을 몰입하게 해 ‘이머시브 공연’으로 불린다. 최대 30명이 동시에 참여할 수 있고, 러닝타임은 각각 30분 정도다. 3부작은 별개 공연으로, 관객은 원하는 공연만 선택할 수 있다. 첫 공연인 ‘코마’는 철제 침대로 가득 찬 흰 병실, ‘고스트쉽’은 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의자로 채워진 회의실, ‘플라이트’는 비행기 내부 공간에서 진행된다. 인간의 감각 기관 가운데 60% 이상을 차지하는 시각이 완전히 차단된 채 관객은 헤드폰을 통해 들려오는 360도 입체음향에 집중한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입체감 있게 전달된다. 관객은 소리와 향기, 진동만으로 낯선 세계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된다. 음향과 여러 특수효과는 감각을 자극하고 낯선 세계를 상상하게 만든다. ‘코마’에선 코마 상태인 환자를 둘러싼 의료진의 대화를 통해 마치 관객이 코마 상태에 빠진 듯한 경험을, ‘고스트쉽’에선 영혼이 말을 걸어오는 체험을 한다. ‘플라이트’에선 비행기를 타고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과정을 겪는다. 영국에서 온 다크필드는 극작가 겸 소설가 글렌 니스와 음향디자이너 데이비드 로젠버그가 2016년 결성했다. 이듬해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고스트쉽’을 처음 선보인 그들은 2018년 ‘플라이트’, 2019년 ‘코마’를 발표해 명성을 얻었다. 영국 호주 뉴질랜드 중국 미국 캐나다 멕시코 대만 등의 관객 30만 명이 다크필드의 공연을 관람했다. 국내에서는 LG아트센터 서울 공연에 앞서 우란문화재단에서 2020년 ‘더블’, 지난해 ‘플라이트’를 선보였다. 다음 달 19일까지, 전석 3만3000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약간의 빛도 허용되지 않는 완전한 어둠’22일 개막한 영국 이머시브 씨어터 그룹 다크필드의 3부작 ‘코마’ ‘고스트쉽’ ‘플라이트’의 출발선은 ‘어둠’이다. 관객은 직원 안내에 따라 사방의 빛이 차단된 컨테이너로 입장하고 각자의 위치에서 헤드폰을 착용하면 공연은 시작된다. 아무 형상도 보이지 않는 완벽한 암실에서 관객은 낯설고도 새로운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다크필드 3부작은 최근 개관한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의 블랙박스 극장 U+스테이지에서 열리고 있는 공연이다. 공연장에 입장한 관객은 무대와 좌석을 모두 걷어낸 자리 놓인 컨테이너 3개를 볼 수 있다. 무대와 좌석 해체가 가능한 블랙박스 공연장이어서 가능한 공간 연출이다. 독특한 형식의 이 공연은 관객들이 무대 위 배우의 연기를 수동적으로 감상하지 않는다. 마치 놀이기구에 탑승한 것처럼 관객의 직접 체험을 통해 완성되는 관객 참여형 공연이다. 최대 30명의 관객이 동시 참여할 수 있는 이 공연의 러닝타임은 각각 30분 정도. 3부작은 이어지지 않는 별개의 공연이며 관객은 원하는 공연만 선택해 볼 수 있다.인간의 감각 기관 가운데 6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시각이 원천 차단되면 관객은 헤드폰을 통해 360도 입체음향에 집중하게 된다. 약간의 빛도 허용되지 않는 완전한 암흑 속에서 관객은 소리와 향기, 진동만으로 완전히 다른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3부작 중 첫 공연인 ‘코마’는 철체 침대로 가득 찬 흰 병실, ‘고스트쉽’은 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의자로 채워진 회의실, ‘플라이트’는 비행기 내부 공간에서 진행된다. 헤드폰으로 들려오는 음향과 여러 특수효과는 관객의 감각을 자극하고 낯선 세계를 상상하게 만든다. ‘코마’에선 코마 상태에 빠지는 듯한 경험을, ‘고스트쉽’에선 영혼이 말을 걸어오는 체험을, ‘플라이트’에선 비행기를 타고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과정을 겪는다. 다크필드 3부작은 관객이 몰입해 참여하는 것이 특징인 ‘이머시브 공연’이다. 영국에서 온 다크필드는 극작가 겸 소설가 글렌 니스와 음향디자이너 데이비드 로젠버그가 2016년 결성했다. 이듬해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고스트쉽’을 처음 선보인 그들은 2018년 ‘플라이트’, 2019년 ‘코마’를 발표해 명성을 얻었다. 그간 영국, 호주, 뉴질랜드, 중국, 미국, 캐나다, 멕시코, 대만 등의 전 세계 관객 30만 명이 다크필드의 공연을 관람했으며 국내에서는 이번 LG아트센터 서울 공연에 앞서 우란문화재단에서 2020년 ‘더블’, 지난해 ‘플라이트’를 선보였다. 다음달 19일까지, 전석 3만3000 원.이지훈기자 easyhoon@donga.com}
《뮤지컬 ‘영웅’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스위니 토드’….올겨울 수년간 관객들의 사랑을 꾸준히 받아 온 스테디셀러 대극장용 뮤지컬들이 대거 개막한다.최근 3년간 팬데믹으로 주춤했던 공연 시장이 다시 활기를 찾자 대작 뮤지컬들이잇달아 관객을 만날 준비를 마친 것이다.》○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회복한 공연계 실제로 공연계는 빠른 속도로 팬데믹 후유증을 회복하고 있다. 25일 공연예술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올 상반기(1∼6월) 공연예술계 티켓 판매액은 2316억 원으로 2019년 하반기 1928억 원보다 20%가량 늘었다. 하반기 공연 시장은 통상적으로 상반기보다 1.3∼1.5배가량 많은 티켓이 판매된다는 점에서 올해 공연계 티켓 판매액은 5300억∼55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지난해 2343억 원의 두 배 이상이다. 공연계가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회복할 수 있었던 일등 공신은 각 공연 제작사들이 이미 견고한 팬덤을 확보한 스테디셀러를 공연함으로써 안정적 수익을 창출한 측면이 크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올 상반기 많은 제작사들이 팬데믹 기간 발생한 손해를 보전하고 향후 신작 발굴 자원을 쌓고자 각 사가 보유한 스테디셀러 위주로 공연을 올렸다”고 전했다. 실제로 올 상반기 전 장르 티켓예매순위 상위 10개 작품 중 14만 명 관객을 동원한 ‘하데스타운’을 제외한 나머지 작품은 ‘지킬 앤 하이드’ ‘데스노트’ ‘라이온 킹 인터내셔널 투어’ ‘레베카’ ‘프랑켄슈타인’ ‘웃는 남자’ ‘아이다’ ‘마타하리’ 등 전부 스테디셀러였다. 스테디셀러의 활약 이면엔 팬데믹 기간 줄어든 공연 수익으로 각 제작사들이 신작 뮤지컬을 제작할 여력이 부족하다는 측면도 있다. 보통 뮤지컬 기획·제작에 드는 기간은 3∼4년인데 최근 3년간 공연계는 코로나 여파로 수익이 반 토막 났다. 자금 사정이 탄탄한 일부 제작사만이 신작을 위한 투자를 할 수 있었던 셈이다. 실제로 올 하반기 초연되는 뮤지컬 ‘웨스트사이드스토리’ ‘이프덴’은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자회사 쇼노트가, ‘물랑루즈’는 CJ ENM이 제작한다.○ 하반기 라인업도 스테디셀러… 도전보단 ‘안전’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하반기 라인업 역시 스테디셀러 작품 위주다. 다음 달 10일 7년 만에 재공연되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가 대표적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7일 전부터 십자가 처형까지 다루는 ‘지저스…’는 1980년 국내 초연됐다. 올해 여덟 번째 시즌을 맞아 이번 공연에선 무대와 의상을 전면 개편한다. 1979년 미국 브로드웨이 초연 뮤지컬 ‘스위니 토드’도 12월 1일 개막한다. 19세기 빅토리아 여왕 시대 영국 런던에서 이발사 벤저민 바커(강필석 신성록 이규형)가 터핀 판사(김대종 박인배)에 의해 누명을 쓰고 15년간의 옥살이를 마친 후 치밀한 복수를 펼치는 스릴러 뮤지컬로, 6일 프리뷰 티켓 오픈 당시 5분 만에 전석 매진됐다.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출연했던 초연 배우 전미도가 6년 만에 러빗 부인 역으로 복귀한다. 12월 21일 개막하는 ‘영웅’도 올해 9번째 시즌을 맞는다. 안중근 역의 초연 배우 정성화가 출연하는 영화 ‘영웅’도 비슷한 시기 개봉한다. 300∼500석 규모의 중소극장이 포진된 대학로 상황도 비슷하다. 대학로의 주요 중소극장에서 공연되는 작품 중 티켓 판매 순위권에 오른 ‘사의 찬미’ ‘랭보’ ‘빨래’ ‘여신님이 보고 계셔’ 등도 역시 대표적인 스테디셀러 뮤지컬이다. 한편 김용제 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 회장은 “팬데믹 손해 보전을 위해 관객이 확보된 스테디셀러 위주로 공연하는 것이 제작사로선 합리적인 판단이지만 흥행 뮤지컬로 자원을 축적해 신작을 올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뮤지컬 ‘영웅’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스위니토드’…. 오랜 기간 많은 관객을 동원해온 스테디셀러 뮤지컬들이 올 겨울 대거 개막한다. 최근 3년간 팬데믹으로 주춤했던 공연시장이 다시 활기를 찾자, 다수의 관객을 동원해야 하는 대극장 뮤지컬들이 잇달아 관객을 만날 준비를 마친 것이다.공연계는 빠른 속도로 팬데믹 후유증을 회복하고 있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에 따르면 올 상반기 공연예술계 티켓판매액은 2314억 원으로 팬데믹 직전(2019년 하반기)의 1928억 원보다 높은 수치다. 하반기 공연시장은 통상 상반기의 1.3~1.5배까지 많은 티켓 판매가 발생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뮤지컬 티켓 판매액은 5300~55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2343억 원)보다 두 배 이상이다. 상반기에도 스테디셀러 중심의 대극장 뮤지컬이 다수 공연됐다. 올 상반기 전 장르 티켓예매순위 상위 10개 작품 중 14만 명 관객을 동원한 ‘하데스타운’을 제외하곤 스테디셀러 작품이었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데스노트’ ‘라이온 킹 인터내셔널 투어’ ‘레베카’ ‘프랑켄슈타인’ ‘웃는 남자’ ‘아이다’ ‘마타하리’가 차례로 순위에 들었다. 다시 돌아온 관객을 사로잡기 위해 하반기에도 뮤지컬계는 어느 때보다 화려한 라인업을 준비 중이다. 2015년을 마지막으로 공연되지 않다가 다음달 10일 개막하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가 대표적이다. 팀 라이스 작사, 앤드루 로이드 웨버 작곡의 이 작품은 ‘록 오페라’로도 불리는 명작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7일 전부터 십자가 처형까지 다루고 있다. 국내에선 1980년 초연된 이후 7차례 공연됐다. 7년 만의 이번 공연 때는 무대와 의상을 전면 개편한다.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1979년 초연된 스릴러 뮤지컬 ‘스위니토드’도 12월 1일 개막한다. 19세기 빅토리아 여왕 시대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이발사 벤자민바커(강필석 신성록 이규형)가 터핀판사(김대종 박인배)에 의해 누명을 쓰고 15년간의 억울한 옥살이를 마친 후 치밀한 복수를 펼치는 내용. 견고한 팬덤을 보유한 이 작품은 6일 프리뷰 티켓 오픈 당시 5분 만에 전석 매진됐다. tvN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등 여러 드라마에 출연했던 배우 전미도가 러빗부인 역으로 복귀한다. 올해 9연을 맞는 뮤지컬 ‘영웅’도 12월 21일 개막한다. 안중근 역의 배우 정성화가 같은 배역으로 출연하는 영화 ‘영웅’도 비슷한 시기 개봉한다. 올 하반기 개막하는 대극장 뮤지컬들은 오랜 기간 공연되온 작품들이라 뮤지컬 팬들 사이에선 ‘이미 본 작품 일색’이라는 점은 한계로 지목된다. 공연제작사에선 수익이 불투명한 신작을 올리기보단 팬덤을 보유한 스테디셀러 뮤지컬을 공연함으로써, 팬데믹 기간 손해를 보전하고 향후 신작 발굴 자금을 쌓자는 차원이라는 입장이다. 300~500석 규모의 중소극장이 포진된 대학로도 비슷한 상황이다. 대학로의 주요 중소극장에서 공연되는 작품 중 티켓 판매 순위권에 오른 ‘랭보’ ‘빨래’ ‘여신님이 보고 계셔’ ‘사의 찬미’ 등도 역시 대표적인 스테디셀러 뮤지컬이다. 팬데믹 기간 공연 수익이 줄어든 상황에서 신작을 발굴할 자원이 부족했을 거란 분석이 나온다. 보통 뮤지컬 기획·제작에 드는 기간은 3~4년인데, 최근 3년간 공연계는 코로나 여파로 수익이 반토막 났다. 자금 사정이 탄탄한 일부 대형 공연제작사에서만 신작을 위한 투자를 할 수 있었던 셈이다. 올 하반기 초연을 앞둔 신작 뮤지컬 ‘웨스트사이드스토리’ ‘이프덴’은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자회사인 쇼노트가, ‘물랑루즈’는 CJ ENM이 제작한다. 김용제 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 회장은 “팬데믹 손해를 보전하기 위해 리스크가 없는 스테디셀러 뮤지컬 위주로 무대에 올리는 게 제작사로선 합리적”이라며 “기존의 흥행 뮤지컬로 자금 순환을 해서 신작을 올릴 수 있는 기반을 다시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서울 종로구 대학로 나온씨어터에서 28일 초연되는 연극 ‘오슬로에서 온 남자’는 8세에 노르웨이로 입양됐던 고 채성욱 씨의 실제 사연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채 씨는 33년 만에 한국에 와 4년간 친부모를 찾아 나섰지만, 결국 만나지 못했다. 우울증과 알코올의존증에 빠졌던 그는 2018년 고시원에서 홀로 죽음을 맞는다. 연극은 ‘사리아에서 있었던 일’ ‘해방촌에서’ ‘노량진―흔적’ ‘오슬로에서 온 남자’ ‘의정부 부대찌개’ 등 5개의 이야기로 구성된다. 해외 입양아, 다문화가족, 성소수자 등 ‘경계에 선 사람’을 주인공으로 세운다. 작품에서 배우 강애심(59)은 1인 2역을 맡았다.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17일 만난 그는 “서로 다른 이야기 같지만 연극을 보고 나면 같은 출발지점에서 시작한 이야기란 걸 알게 된다. 처음엔 저도 이게 무슨 내용인가 싶었는데 연습할 때 5개 이야기가 한 코에 꿰어진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강애심은 ‘오슬로…’에선 친부모를 찾아 한국에 왔다가 고독사한 남성의 어머니, ‘노량진…’에선 두 동생과 살아가는 큰누나를 연기한다. “대한민국엔 무수한 역사가 있잖아요. 동족상잔의 비극 그 이후에 나라가 개발되는 과정에서 벌어졌던 많은 사건과 인물이 작품에 등장해요. 연극을 통해 역사 속 풍경을 간접 체험할 수 있을 거예요.” 연극 ‘더 넥스트’(1986년)로 데뷔한 그는 주로 대학로에서 활동한 ‘무대 배우’다. 연극 ‘귀천’으로 1994년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받았고 첫 주연을 맡은 1인극 ‘다윈의 거북이’(2009년)를 통해 대한민국 연극대상 연기상을 수상했다. 2018년 OCN ‘보이스2’를 시작으로 tvN ‘멜로가 체질’, KBS ‘동백꽃 필 무렵’ 등 드라마에도 출연하고 있다. “데뷔한 지 30년이 넘었는데도 연극은 하면 할수록 참 어려워요. 비슷한 역할 같아도 매번 결이 다르니까요. 그래도 배우 일은 정말 좋아했어요. 덕분에 여기까지 왔죠. 연극이 운명처럼 절 찾아온 것 같아요.” 11월 13일까지. 전석 3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8살 때 노르웨이로 입양된 뒤 33년 만에 친부모를 찾겠다며 한국을 찾은 남성이 있었다. 4년 넘게 서울과 경남 진해를 오가며 친부모를 찾아 헤맸다. 사진 찍기가 취미였던 남자는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만나는 사람, 풍경 이모저모를 프레임에 담았다고 한다. 아무리 찾고 기다려도 친부모가 나타나지 않자 그는 이내 우울증과 알코올의존증을 앓다 2018년 1월 고시원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했다. 노르웨이 국적의 고(故) 채성욱 씨(당시 45세)의 사연에서 출발한 연극 ‘오슬로에서 온 남자’가 28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나온씨어터에서 초연된다. 박상현 작·연출의 연극은 ‘사리아에서 있었던 일’ ‘해방촌에서’ ‘노량진-흔적’ ‘오슬로에서 온 남자’ ‘의정부 부대찌개’ 등 총 5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로 구성된다. 각각은 독립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옴니버스 식 연작은 아니다. 해외 입양아, 다문화가족, 성소수자 등 공통적으로 우리 사회 변두리의 경계선에 선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배우 강애심(59)은 ‘오슬로에서 온 남자’와 ‘노량진-흔적’에 다(多)역으로 출연한다. ‘오슬로…’에선 친부모를 찾아 한국에 왔다가 고독사한 욘 크리스텐센의 어머니, ‘노량진…’에선 두 동생과 살아가는 큰 누나를 맡았다. 17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대한민국엔 정말 무수한 역사들이 있잖아요. 동족상잔의 비극 그 이후에 나라가 개발되는 과정에서 벌어졌던 많은 사건과 인물이 작품에 등장해요. 연극을 통해 역사 속 풍경들을 간접체험을 한다고 할까. 우리가 살아온 역사의 정서, 향수를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오슬로에서 온 남자’에서 강애심은 고독사한 남성의 어머니였을지 모르는 많은 여성을 연기한다. ‘오슬로에서 온 남자’는 친부모를 찾으러 한국을 찾은 노르웨이 국적의 남성이 사망한 후, 지인들이 그의 발자취를 기리는 연극을 만드는 데에서 출발하는 이야기다. 친부모를 찾아 한국에 왔지만 결국 부모를 만나지 못하고 사망한 남성, 그가 살아있었다면 이런 부모를 만나지 않았을까. 극중 연출, 작가, 배우로 분한 배우들은 죽은 남자가 미처 못 만나고 떠난 부모를 상상하며 이야기를 그려낸다. “아이를 버리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엄마, 우연히 자식을 잃어버리고 한 많은 세월을 살아온 엄마, 생활고에 시달려서 아이를 입양 보낼 수밖에 없었던 엄마…. 입양아의 엄마였을지 모르는 여러 군상의 여인을 연기합니다. 욘의 엄마가 계신다면 이런 마음을 품고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상상하면서요.” 또 다른 이야기 ‘노량진…’에서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겨둔 땅 문제로 노량진에 다시 모이는 삼남매의 맏언니가 된다. 미군부대와 해방촌이 있었던 곳을 배경으로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을 다시 만나고 새로운 사건이 터지면서, 60~70년대 전후 한국사회의 한 단면이 펼쳐진다. “완전히 서로 다른 이야기 같지만 연극을 다 보고 나시면 이게 모두 같은 맥락에서 출발한 이야기란 걸 알게 되실거예요. 저도 처음에 극본을 받았을 때 ‘이게 무슨 내용이야’ 싶었거든요. 연습하면서 모든 이야기가 한 코에 꿰어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연극 ‘연변엄마’(2011년)에서 인연을 맺은 박상현 연출과는 두 번째 작품이다. 그때도 강애심은 엄마를 연기했다. ‘연변엄마’는 중국 연변에 살던 여성이 한국에 와서 딸을 찾는 로드무비. 그가 연기했던 ‘조선족 여성’ 역시 ‘경계에 선 사람’이었다. 그는 “온갖 고생을 넘어 겨우 찾은 딸이 지독한 불행을 겪는 모습을 보게 되는 엄마를 연기했다”며 “아주 많이 슬펐고 처참한 이야기였다”고 했다. 1986년 연극 ‘더 넥스트’로 데뷔한 그는 주로 대학로에서 활동한 ‘무대 배우’다. 1990년 연극 ‘칠산리’를 통해 존재감을 알리기 시작한 그는 1994년 연극 ‘귀천’으로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받았다. 2009년엔 첫 주연을 맡았던 1인극 ‘다윈의 거북이’를 통해 대한민국 연극대상 연기상을 거머쥐었다. 2018년 OCN드라마 ‘보이스2’를 시작으로 tvN ‘멜로가 체질’, KBS ‘동백꽃 필 무렵’ 등에 출연하면서 얼굴을 알리고 있다. “엄마, 할머니, 동물 연기는 참 많이 했는데 키가 작고 왜소한 체구라서 그런가 아직 멜로 연기를 거의 못 해봤습니다. 춘향전에서 방자와 썸 타는 향단이 정도? 나이든 커플의 로맨스 연기는 어떨지 궁금합니다.” 11월 13일까지, 전석 3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실존하지 않는 판타지 세상에 온 느낌이에요.” 배우 최여진(39)은 현재 공연 중인 논버벌 퍼포먼스 ‘푸에르자 부르타 웨이라 인 서울’에 참여한 기분을 이렇게 표현했다. 최여진은 스페셜 게스트로 2018년 이 공연에 처음 출연한 뒤 2019년에 이어 올해도 참가했다. 공연 제목은 ‘잔혹한 힘’을 뜻하는 스페인어 푸에르자 부르타(푸에르사 브루타)와 잉카제국이 있던 남미 안데스 원주민 말로 ‘신의 바람’을 뜻하는 웨이라(와이라)가 합쳐진 말. 무대와 객석이 따로 없는 공연은 사방에서 튀어나온 배우들이 온갖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관객들과 호흡한다. 최근 공연장인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 FB씨어터의 대기실에서 만난 최여진은 “사방이 무대로 변하며 보는 사람과 보여주는 사람이 나뉘지 않는 공연”이라며 “몽환적 세계에서 열광과 감동을 함께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첫 장면부터 몸에 와이어를 달고 등장해 공중을 헤집으며 관객과 가깝게 접촉해요. 이전 공연부터 계속 이걸 하고 싶었는데 ‘다친다’며 위험하다고 안 시켜줬어요. 이번엔 제가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주겠다고 해서 맡을 수 있었어요.(웃음)” 이 공연의 대표 퍼포먼스로 꼽히는 ‘마일라’ ‘글로바’에 출연했던 최여진은 이번 시즌에 새로 추가된 ‘라그루아’에도 등장한다. 공중에 매달린 커다란 수조를 유영하는 ‘마일라’는 그가 “가장 사랑하는 장면”. ‘글로바’는 천장의 투명 터널 안에서 와이어를 타고 오르내리며 연기한다. 카니발에서 영감을 얻은 ‘라그루아’는 와이어에 매달려 공중에서 원을 그린다. “이 공연을 제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세요? 스태프가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나와서 연습할 정도예요. 한국 프로덕션 대표님이 ‘푸에르자 부르타는 최여진 말고는 할 사람이 없다’고 했답니다.” 팬데믹 여파로 2019년 이후 3년 만에 열린 이 공연은 12월 26일까지 이어진다. 최여진은 매주 금요일 오후 4시와 토요일 오후 6시 공연에 출연한다. 전석 12만1000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실존하지 않는 판타지 세상에 온 느낌” 지난달 29일 개막한 넌버벌 퍼포먼스 공연 ‘푸에르자 부르타 웨이라 인 서울’(이하 푸에르자 부르타)에 대해 배우 최여진(39)은 이렇게 말했다. 스페인어로 ‘잔혹한 힘’을 의미하는 푸에르자 부르타(Fuerza Bruta)와 잉카 제국을 원주민 언어로 ‘신의 바람’을 뜻하는 웨이라(Wayra)를 합친 말로 제목을 딴 이 공연은 이름처럼 마치 광란의 고대 축제 같다. 2018년부터 푸에르자 부르타에 스페셜게스트로 출연해온 최여진이 이번 시즌에도 관객과 만난다. 최근 인터뷰에서 그는 “하늘과 바닥, 온 사방이 무대로 변하고 보는 사람과 (퍼포먼스) 하는 사람이 나뉘지 않는 공연”이라며 “하나의 몽환적 세계에서 열광과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푸에르자 부르타엔 무대와 객석이 따로 없다. 전석이 스탠딩석인 객석은 등급에 따른 구분도 없다. 관객들이 선 곳은 시시각각 객석과 무대로 바뀐다. 사방에서 튀어나온 배우들은 온갖 환상적인 퍼포먼스로 관객들과 몸으로 호흡한다. 최여진은 공연 첫 장면에서부터 몸에 와이어를 달고 공중을 헤집으며 관객과 가깝게 접촉한다. “이전부터 계속 하고 싶었는데 스태프들이 위험하다고 다칠까봐 안 시켜줬던 장면이에요. 이번에는 제가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주겠다고 바로 첫 장면 하고 싶다고 했죠. 그렇게 하게 됐어요.(웃음)” 그는 지난 시즌에 이어 ‘마일라’ ‘글로바’에 출연하고 이번에 새로 추가된 ‘라그루아’에도 등장한다. 공중에 매달린 커다란 수조를 유영하는 ‘마일라’는 최여진이 가장 사랑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글로바’는 공연장 천장의 투명 터널 사이로 그가 와이어를 타고 내려와 무중력 상태로 관객과 만난다. 마치 우주를 연상시키는 장면이 연출된다. ‘라그루아’는 카니발에서 영감을 얻은 장면으로 와이어에 매달린 배우가 공중에서 맘껏 원을 그린다. “제가 이 공연을 얼마나 사랑하느냐면요, 스태프들이 부르지 않아도 나와서 연습하고 그럴 정도예요. 한국 프로덕션 대표님이 ‘푸에르자 부르타는 최여진 꺼다. 최여진 말고는 할 사람이 없다’고 하셨어요.(웃음)” 모델 출신인 그는 175cm의 큰 키에 탄탄한 라인을 지녀 공연자로서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기에 최상의 조건을 지녔다.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서 스포츠 댄서, 축구선수로 변신하며 탁월한 운동신경을 보여왔다. “이번엔 특히 축구하면서 다져진 근육이 큰 도움이 됐어요. 운동신경이 타고난 건 절대 아니고 센스가 좋은 편이라 빨리 배우긴 해요. 승부욕이 강해서 남들보다 잘 하려고 배로 노력하는 스타일이기도 합니다.” 팬데믹 여파로 3년 만에 열린 푸에르자 부르타는 12월 26일까지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 FB씨어터에서 공연된다. 최여진은 매주 금요일 오후 4시, 토요일 오후 6시 공연에 출연한다. “공연 끝에 관객들께 항상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 매일 보고 듣는 장면인데도 막 눈물이 날 정도로 좋고 너무 재미있는 공연입니다.” 전석 12만 1000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판소리 다섯마당의 수궁가에서 따온 ‘범 내려온다’로 전 세계적 히트를 친 밴드 이날치가 3년 만에 신곡을 가지고 돌아왔다. 29, 30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열리는 공연 ‘물 밑’에서 공개할 예정이다. 최근 일부 무대에서 공개한 ‘히히하하’를 포함해 미발표곡 ‘태초의 행성’ ‘흉흉한 소문’ ‘빙빙빙’ 등 11개의 신곡을 부르고 연주한다. ‘물 밑’ 공연에서 선보일 곡들은 각각 별개로 존재하지만 중심엔 하나의 스토리가 있다. 생명의 근원지 물 밑을 찾아가는 천문학자의 여정이 담긴 것. 토끼 간을 찾으러 뭍으로 나온 별주부 이야기에서 모티프를 따온 1집과 달리 ‘물 밑’ 공연에서 공개할 예정인 신곡들은 판소리 다섯마당과는 완전히 무관한 내용이다. 19일 기자간담회에서 리더 장영규(베이스)는 “이날치 음악에서 판소리 비중이 꽤 크기에 다섯마당의 다른 작품을 활용할까 고민했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이야기로 음악을 만드는 게 이날치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이라고 결론 내렸다”고 말했다. 공연은 이날치 곡들에 박정희 연출이 구상한 천문학자 이야기를 덧대는 방식으로 구성한다. 노래와 노래 사이는 아니리(판소리에서 자유로운 장단으로 사설을 엮는 기법)로 채운다. 거대하고 깊은 공간감을 살리기 위해 34m 깊이의 후(後)무대를 모두 사용한다. 이날치는 이번 공연 곡들로 내년 상반기 2집을 발매한다.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리드미컬한 베이스와 중독성 있는 후렴구가 장점인 기존의 ‘이날치 스타일’을 살리되 몽환적 느낌을 주는 록 음악에 전자음을 더했다. 보컬 창법도 바뀌었다. 소리꾼 4명이 화음을 내기 위해 판소리 기교를 버리기도 하고 가성과 속삭임 같은, 판소리엔 없는 창법도 구사한다. 지난달 영국, 벨기에, 네덜란드, 헝가리 등 첫 유럽투어를 마친 이날치. ‘희한하게 익숙하고 아름답게 낯선’(BBC 라디오) ‘목소리들이 음과 음 사이를 미끄러지듯 오간다’(영국 출신 유명 프로듀서 브라이언 이노) 같은 상찬이 쏟아졌다. 멤버 이나래(보컬)는 “우리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보다는 이날치 안에서 각자의 음악을 자유롭게 고민하는 밴드가 되고 싶다”고 했다. 3만∼7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