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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가 주요 격전지인 북동부 하르키우주 보우찬스크에서 특수부대를 투입한 ‘백병전’을 벌인 끝에 러시아군이 올 5월부터 점거해 온 골재 공장 단지를 탈환했다고 24일 밝혔다. 같은 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바실리 네벤자 주유엔 러시아 대사는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특별회의에서 충돌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 등에 따르면 이날 탈환한 공장단지는 그간 러시아군의 하르키우주 내 거점으로 쓰였던 요충지다. 러시아군은 콘크리트 건물 30여 개와 철제 구조물로 구성된 이 공장단지가 방어에 용이하다는 점을 감안해 거점으로 활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측은 탈환한 공장단지에 국기 등을 내건 사진도 공개하며 여론전에 나섰다. AP통신은 전력 열세에도 우크라이나가 끝까지 러시아에 맞서겠다는 점을 서방에 보여 주며 추가 지원을 요청하려는 의도로 풀이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유엔 회의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미 국제규범을 너무 많이 깨서 스스로 멈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비판했다. 러시아가 스스로 평화를 강구할 리 만무하니 국제사회가 평화를 강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러시아에 무기를 지원하는 북한과 이란을 러시아의 ‘공범’으로 지목하며 “북한과 이란 무기를 이용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인을 죽일 권리가 없다”고 비난했다. CNN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25일 유엔총회 일반토의에서도 서방의 추가 무기 지원 등을 호소하는 연설을 하기로 했다. 26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수개월 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등이 포함된 승리 계획도 공개하기로 했다. 같은 곳에 있던 네벤자 대사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발언을 듣지 않고 휴대전화를 꺼내 보는 등 딴청을 부렸다. 그는 이달 안보리 의장국 겸 나토 회원국인 동유럽 슬로베니아가 원래 일정에 없던 회의를 추가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공연 무대(concert stage)’를 제공했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겸 전 대통령은 이날 주요 경합주인 조지아주 서배너 유세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출구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수차례 “대선에서 승리하면 대통령 취임 전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고 밝혀 왔다. 이날 트럼프 후보는 나치 독일 독재자 히틀러, 프랑스 나폴레옹 황제 또한 러시아를 이기지 못했다며 “그들(러시아)이 이기면 어쩔 건가”라고 반문했다. 또 젤렌스키 대통령이 미국에 올 때마다 대규모 지원을 받아간다며 “위대한 세일즈맨”이라고 조롱했다. 한편 24일 CNN은 내년 1월 임기가 만료되는 바이든 행정부가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해 책정해 둔 자금을 소진하기 위해 며칠 안에 수십억 달러의 대규모 무기 지원 계획을 발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르면 25일 3억7500만 달러(약 5063억 원) 지원을 발표하고 순차적으로 액수를 늘릴 것으로 내다봤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우크라이나가 주요 격전지인 북동부 하르키우주 보우찬스크에서 특수부대를 투입한 ‘백병전’을 벌인 끝에 러시아군이 올 5월부터 점거해 온 골재 공장 단지를 탈환했다고 24일 밝혔다. 같은 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바실리 네벤자 주유엔 러시아 대사는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특별회의에서 충돌했다.우크라이나 국방부 등에 따르면 이날 탈환한 공장단지는 그간 러시아군의 하르키우주 내 거점으로 쓰였던 요충지다. 러시아군은 콘크리트 건물 30여 개와 철제 구조물로 구성된 이 공장단지가 방어에 용이하다는 점을 감안해 거점으로 활용했던 것으로 보인다.우크라이나 측은 탈환한 공장단지에 국기 등을 내건 사진도 공개하며 여론전에 나섰다. AP통신은 전력 열세에도 우크라이나가 끝까지 러시아에 맞서겠다는 점을 서방에 보여 주며 추가 지원을 요청하려는 의도로 풀이했다.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유엔 회의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미 국제규범을 너무 많이 깨서 스스로 멈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비판했다. 러시아가 스스로 평화를 강구할 리 만무하니 국제사회가 평화를 강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러시아에 무기를 지원하는 북한과 이란을 러시아의 ‘공범’으로 지목하며 “북한과 이란 무기를 이용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인을 죽일 권리가 없다”고 비난했다.CNN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25일 유엔총회 일반토의에서도 서방의 추가 무기 지원 등을 호소하는 연설을 하기로 했다. 26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수개월 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등이 포함된 승리 계획도 공개하기로 했다.같은 곳에 있던 네벤자 대사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발언을 듣지 않고 휴대전화를 꺼내 보는 등 딴청을 부렸다. 그는 이달 안보리 의장국 겸 나토 회원국인 동유럽 슬로베니아가 원래 일정에 없던 회의를 추가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공연 무대(concert stage)’를 제공했다”고 비판했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겸 전 대통령은 이날 주요 경합주인 조지아주 서배너 유세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출구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수 차례 “대선에서 승리하면 대통령 취임 전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고 밝혀왔다. 이날 트럼프 후보는 나치 독일 독재자 히틀러, 프랑스 나폴레옹 황제 또한 러시아를 이기지 못했다며 “그들(러시아)이 이기면 어쩔 건가”라고 반문했다. 또 젤렌스키 대통령이 미국에 올 때마다 대규모 지원을 받아간다며 “위대한 세일즈맨”이라고 조롱했다.한편 24일 CNN은 내년 1월 임기가 만료되는 바이든 행정부가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해 책정해 둔 자금을 소진하기 위해 며칠 안에 수십억 달러의 대규모 무기 지원 계획을 발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르면 25일 3억7500만 달러(약 5063억 원) 지원을 발표하고 순차적으로 액수를 늘릴 것으로 내다봤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미국 캘리포니아주(州)가 미 최대 석유화학 기업인 엑손모빌을 상대로 “플라스틱 재활용에 대한 거짓말로 소비자를 속였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주 정부가 플라스틱 환경 공해를 이유로 글로벌 석유화학 기업을 제소한 건 처음이다. 롭 본타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은 23일 샌프란시스코 카운티 고등법원에 엑손모빌을 제소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엑손모빌은 ‘재활용의 신화’를 지속해 왔다”며 “환경과 대중을 위협하는 사기적 관행을 종식시키겠다”고 밝혔다. 법무부에 따르면 일회용 플라스틱 소재인 ‘폴리머’의 세계 최대 생산업체인 엑손모빌은 캘리포니아주 공해방지법과 허위광고 금지법 등을 위반한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본타 장관은 엑손모빌의 허위 홍보가 소비자에게 일회용 플라스틱 구매를 유도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성명에서 “엑손모빌은 플라스틱 재활용이 폐기물과 오염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고 대중을 반세기 동안 속여 왔지만,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며 “환경과 건강을 위협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익을 늘리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밝혔다. 약 2년 전 관련 조사에 착수한 캘리포니아주 법무부에 따르면 엑손모빌이 ‘환경적으로 처리’했다고 주장하는 플라스틱 폐기물 중 실제 재활용되는 비중은 8%에 불과하다. 법무부는 또 엑손모빌이 ‘고도(advanced) 재활용’을 통해 모든 플라스틱을 재활용할 수 있다고 홍보해 대중을 속였다고 보고 있다. 고도 재활용이란 플라스틱을 가열해 녹이는 열분해 공정을 거치는 방식으로 환경에 유해하다는 논란이 제기돼 왔다. 환경단체 ‘비욘드 플라스틱’의 주디스 엥크 대표는 “플라스틱 재활용을 둘러싼 오래된 거짓말과 관련해 플라스틱 산업계에 제기된 가장 중대한 소송”이라며 환영했다. 시민단체 ‘플라스틱추적기’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미 전역에서 제기된 플라스틱 관련 환경 소송은 62건에 이른다. 반면 엑손모빌의 로런 카이트 대변인은 “당국도 재활용 시스템의 비효율성을 수십 년간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았다”며 “우리를 비난하고 고소하는 대신에 플라스틱 매립을 막기 위한 협력에 나섰어야 했다”라고 반박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번 소송에 대해 “정치 성향과 상관없이 고른 지지를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론조사기관 ‘진보를 위한 데이터’와 기후통합연구센터(CCI)가 지난달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약 70%가 “플라스틱 산업과 관련해 주 정부가 석유기업에 법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답했다. 민주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환경 이슈에 덜 민감한 공화당 지지층도 약 54%가 여기에 동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최근 보고서에서 향후 4년간 휘발유 소비가 줄어드는 대신에 플라스틱 생산을 포함한 석유화학 분야가 세계 석유 수요를 끌어올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유엔 플라스틱 협약 협상위원회는 11월 부산에서 플라스틱 오염 방지를 위한 국제협약 초안을 마련할 예정이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이번 대선이 마지막 도전이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내가 ‘언더도그(underdog·이길 확률이 낮은 선수)’이다.”(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 11월 5일 미국 대선이 약 40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 겸 전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 겸 부통령이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발언을 잇달아 내놓았다. 초박빙 대결인 이번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이른바 ‘집토끼’(지지층)를 굳건히 하는 게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정치매체 액시오스는 CBS의 간판 시사 프로그램인 ‘60분’이 두 후보와 개별적으로 인터뷰를 진행한 뒤 다음 달 7일 연달아 방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해리스 후보가 트럼프 후보 측에 ‘2차 TV토론’을 제안했지만 트럼프 후보는 거부한 상태다.● 트럼프 “마지막” vs 해리스 “언더도그” 호소 트럼프 후보는 22일 플로리다주 사저 마러라고리조트에서 싱클레어방송그룹의 시사 프로그램 ‘풀메저’와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진행자가 ‘이번에 패하면 2028년 대선에 다시 출마하느냐’고 묻자 “아니다”라고 반복해서 대답했다. 또 낙선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며 “우리가 성공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미 헌법은 대통령의 3선을 금한다. 연임(連任)과 중임(重任) 모두 가능하나 임기 4년의 대통령직은 최대 2번까지만 수행할 수 있다. 이미 4년간 대통령직을 수행한 트럼프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 이기면 2028년 출마는 불가능하다. 반면 패할 경우 2028년 대선 출마는 가능하지만 4년 후 82세인 나이를 고려할 때 쉽지 않은 선택이다. 트럼프 후보의 발언을 두고 이번 대선이 사실상 마지막 집권 기회임을 강조해 지지층 결집을 노렸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해리스 후보는 같은 날 뉴욕에서 열린 모금 행사에 참석해 낙관론을 경계했다. 그는 “대선은 오차 범위 내 대결이며 우리는 언더도그로 뛰고 있다”고 했다.● 여론조사선 해리스 근소 우세 22일 공개된 두 여론조사에서는 해리스 후보가 우세했다. CBS와 여론조사회사 입소스가 전국 유권자 3129명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에서 해리스 후보의 지지율은 52%로 트럼프 후보(48%)를 앞섰다. 대선 결과를 좌우할 펜실베이니아, 조지아, 노스캐롤라이나, 미시간, 애리조나, 위스콘신, 네바다주 등 7개 경합주의 지지율 역시 해리스 후보가 51%로 트럼프 후보(49%)보다 높았다. NBC가 역시 전국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조사에서도 해리스 후보의 지지율이 49%로 트럼프 후보(44%)보다 높았다. 반면 뉴욕타임스(NYT)와 시에나대가 조지아, 애리조나, 노스캐롤라이나주 등 3개 경합주를 대상으로 조사해 23일 공개한 결과에 따르면 트럼프 후보의 지지율이 각 주에서 2∼5%포인트 높았다. 누가 대선에서 승리하건 빨리 승자가 결정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020년 대선 때도 재검표를 실시했던 조지아주는 이번 대선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모든 표를 ‘수(手)개표’하기로 했다.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주 등 다른 경합주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우편투표 용지 집계 절차를 늦추기로 했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4년 6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내리며 ‘긴축 사이클 종료’의 신호탄을 쐈지만 각국 중앙은행들은 서로 다른 행보를 보이며 각자도생의 길에 나섰다. 연준이 ‘빅컷’(기준금리 0.5%포인트 인하)을 단행한 직후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산유국들이 잇달아 금리를 내렸지만 영국에 이어 일본과 중국 등은 기준금리를 묶어 뒀다. 일단 ‘숨 고르기’를 하며 시장을 엿보는 모습이다. 20일 중국 중앙은행 런민(人民)은행은 기준금리 역할을 하는 1년 만기 대출우대금리(LPR)를 3.35%, 5년 만기는 3.85%로 고수한다고 밝혔다. 올 7월 1년 만기와 5년 만기 LPR을 각각 0.1%포인트씩 낮췄지만 8, 9월 두 달 연속 동결했다. 연준의 금리 인하로 중국도 기준금리를 내릴 것이란 시장의 예측을 비켜 간 결과다. 로이터통신이 조사한 전문가 39명 가운데 27명은 중국이 이달 LPR을 인하할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의 예상 밖 동결을 두고 시장에서는 당장의 경기 부양보다는 금융권 추가 부실을 방지하고, 위안화 가치 하락에 따른 해외 자본의 이탈 가능성 또한 막으려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같은 날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도 기준금리를 0.25%로 동결했다. 일본은 3월 2007년 이후 17년 만에 처음 금리를 올렸고, 넉 달 후인 7월에는 금리를 0∼0.1%에서 0.25%로 인상했다. 그 후 8월 초 엔화가 강세를 보이고 주가가 급락하는 등 금융 시장이 요동친 데다, 일본 기업의 수출 경쟁력이 타격받을 것이란 우려가 고조되자 상황을 지켜본 뒤 추가 인상 여부를 결정하기로 한 것으로 해석된다. 우에다 가즈오(植田和男) 일본은행 총재는 “현재도 실질금리가 매우 낮은 수준”이라며 “일본은행의 전망이 실현된다면 그에 따라 정책금리를 계속 인상하고 통화 완화 정도를 조정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당초 시장에선 미국의 금리 인하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금리 인하 속도전이 이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 금융권 부실 등 각국 중앙은행들이 각기 다른 짐을 짊어지고 있는 만큼 선택도 엇갈리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를 두고 “2년 전 세계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에 맞서서 공격적으로 함께 금리를 올렸던 때에 비해 이번 인하 사이클에선 동조화가 덜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편 빅컷 훈풍이 이어지며 20일에도 아시아 주요국 주식시장은 상승했다. 일본 닛케이종합주가지수는 1.53% 상승 마감했다. 홍콩 항셍지수(1.36%), 대만 자취안지수(0.53%) 등도 올랐다.중동 산유국 내리고 中-日-英 동결, 韓은 머뭇… ‘금리 디커플링’[美 금리 빅컷 이후] 각국 중앙은행 ‘각자도생’中, 경기부진에도 금리 안내려… 자본 유출-부동산 위기 감안日, 7월 인상후 후폭풍에 동결… 美보다 먼저내린 英 ‘속도조절’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빅컷’(기준금리 0.5%포인트 인하)을 계기로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본격적인 ‘각자도생’에 나섰다. 곧바로 연준을 따라 금리 인하 대열에 합류한 국가들이 있는가 하면, 물가 상승세가 완전히 잡히지 않아 속도 조절을 택하거나, 한국과 같이 경기 부진에도 불구하고 부채 등에 발목이 잡혀 딜레마에 빠진 경우도 있다. ● 바로 따라간 산유국, 속도 조절 나선 영국-유럽일부 신흥국과 주요 중동 산유국들은 연준을 따라 곧장 금리를 내렸다. 연준의 피벗을 예상한 인도네시아는 18일 연준의 금리 인하 발표 직전 3년 7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6%로 0.25%포인트 내렸다. 미국 달러화에 자국 통화 가치를 연동한 고정환율제(달러 페그)를 채택한 주요 중동 산유국들도 줄줄이 금리를 내렸다. 카타르와 사우디아라비아는 각각 0.55%포인트, 0.50%포인트 내렸고 아랍에미리트(UAE)도 4.90%로 0.50%포인트 인하했다.반면 미국보다 앞서 피벗을 단행했지만 최근 들어 속도 조절에 들어간 이들도 있다. 8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린 영국은행(BOE)은 19일(현지 시간) 기준금리를 연 5%로 유지하기로 했다. 앤드루 베일리 영국은행(BOE) 총재는 금리 동결 이후 “인플레이션을 낮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너무 빨리 또는 너무 많이 인하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6월과 9월 0.25%포인트씩 금리를 인하한 유럽중앙은행(ECB)의 정책위원 클라스 노트 네덜란드 중앙은행 총재는 통화정책을 계속 완화할 여지가 있지만 인플레이션이 예상대로 둔화된다는 전제로서만 그렇다고 말한 바 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인플레이션 둔화로 물가 목표치가 가시권으로 들어오고, 경제 성장세도 약화되면서 금리 인하는 현재 전 세계적인 흐름이 됐다”라면서 “그럼에도 중앙은행들은 너무 빠르게 완화했다가 물가 재반등 등의 역풍을 맞을 수 있어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7월 금리 인상 이후 급격한 엔고를 경험한 일본도 20일 금리를 동결했다. 추가 금리 인상 시기와 관련해서도 시장 동요를 우려한 듯 말을 아꼈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올해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두고 “구체적인 타임라인을 갖고 예단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 경제가 연착륙할지, 더 어려워질지를 신중하게 판단할 것”이라고 전했다. 향후 미 연준의 금리 인하 행보를 면밀히 주시하며 대응하겠다는 뜻이다. ● “경기 둔화 생각하면 내려야 하는데” 발목 잡힌 중국-한국연준의 빅컷에도 불구하고 국내 경제 상황에 발목이 잡혀 보폭을 맞추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의 금리 동결 결정을 두고 “중국은 경제 활동이 전반적으로 약화되면서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서 저성장,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속 경기 침체) 상황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추가 완화의 필요성이 강조돼 왔다”며 “그럼에도 중국 중앙은행이 동요하지 않은 것은 놀라운 결정”이라고 보도했다. 중국이 경기 부진에도 불구하고 뜻밖의 동결을 선택한 것은 위안화 가치 하락과 금융권 부실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만약 중국이 기준금리를 낮춰 미중의 금리 차가 다시 벌어질 경우 자본이 빠져나가 위안화가 다시 급락할 것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또 계속되는 부동산 시장 불황으로 지방정부가 많은 부채를 떠안은 상황에서, 추가 금리 인하에 따른 금융 시스템 위기 가능성도 부담이다. 이와 유사하게 한국도 가계부채와 불붙은 부동산 시장 상황 때문에 손이 묶인 상태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빅컷 이후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 압박 수위를 높여가고 있으나 한은은 침묵하고 있다. 가계대출 급증세는 아직 뚜렷하게 꺾이진 않고 있는 가운데 10월 11일 금융통화위원회 전까지 둔화세가 나타날지 여부가 관건이다.신아형 기자 abro@donga.com베이징=김철중 특파원 tnf@donga.com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일본 엔화의 강세는 일본과 여러 품목에서 경쟁하는 한국 주요 기업의 수출에는 긍정적인 효과를 미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일본보다 높아지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이어진 ‘슈퍼 엔저’는 한국 수출기업을 옥죄는 요소로 작용했다. 일본이 한국의 최대 수출 경쟁국이라는 점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우리나라와 주요국의 제조업 수출경합도는 일본이 0.647로 1위였다. 미국(0.643), 중국(0.581), 독일(0.578)보다 높았다. 이 수치가 1에 가까울수록 두 나라의 수출 구조가 유사해 경쟁이 치열하다는 점을 의미한다. 향후 엔 강세가 이어질 경우 많은 수혜를 누릴 것으로 예상되는 한국의 산업 분야 역시 양국의 경쟁이 치열한 자동차, 전자제품 등 제조업 분야로 꼽힌다. 다만 일각에서는 엔 가치 변동이 과거보다는 한국 수출에 적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세계 시장에서 양국이 경쟁하는 제품군이 줄어들면서 한일 수출경합도는 2011년 0.475에서 2021년 0.458로 하락했다. 환율에 따른 가격경쟁력 변화의 영향력이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이 세계 시장에서 확고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고성능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산업은 최근의 엔 강세에 크게 타격받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다른 나라가 넘볼 수 없는 확고한 경쟁력을 보유했기 때문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정형곤 선임연구위원은 “일본과 미국이 이 분야의 많은 품목에서 여전히 세계 시장 점유율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며 단기간에 대체가 불가능한 제품이 많다고 말했다. 진짜 한국이 신경 써야 할 상대는 일본이 아니라 대만, 중국 등 다른 경쟁국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경협이 지난달 공개한 ‘동아시아 4개국(한국·일본·중국·대만) 수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자동차와 전자기기의 수출액은 각각 중국과 대만에 추월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대만의 전자기기 수출은 2013년보다 80.7% 늘었다. 같은 기간 한국은 26.4% 증가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중국의 자동차 수출액은 228.8% 급증했지만 한국은 26.2% 늘어났을 뿐이다. 한경협은 최근 10년간 한국과 중국이 특히 반도체, 자동차, 기계산업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대 교수는 기축 통화인 ‘엔’을 보유한 일본과 달리 한국은 비(非)기축통화국이라는 점을 거론했다. 방향성 예측이 어렵고 특정국 정부와 기업이 좌지우지하기 어려운 환율 변동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진정한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의미다. 그는 “정부는 핵심 산업의 연구개발(R&D) 투자 지원 강화, 보조금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고 기업 또한 전반적인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주문했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반짝 변화일까. 엔저 추세가 완전히 바뀌는 걸까. 미국 달러, 유럽연합(EU) 유로와 함께 ‘세계 3대 기축 통화’로 꼽히는 일본 엔화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올 7월만 해도 엔화 가치는 달러 대비 160엔을 돌파해 1990년 이후 34년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엔 약세). 이후 일본 정부가 대규모 외환시장 개입을 단행하고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엔화 가치는 8월 들어 140엔대에 안착했다. 이달 16일에는 139엔대까지 떨어져 2023년 7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엔 강세). 엔화는 7월 이후 채 두 달도 안 돼 약 13% 떨어졌다. 18일 연준이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내리는 이른바 ‘빅컷(big cut)’을 단행하고, 추가 인하 가능성까지 시사하면서 중장기적으로 ‘강(强)달러’ 기조가 약화되고 엔 가치가 상승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일본의 오랜 저금리로 세계 외환시장에서 잊혀지는 듯했던 ‘엔 강세’라는 용어가 다시 등장한 것이다. 다만 일본 금융당국은 최근의 엔-달러 환율 하락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눈치다. 30년 만의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탈출을 염원하는 일본은 최근의 임금 인상, 물가 상승을 내심 경기 회복의 신호로 해석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엔 가치가 오르면 일본의 수출 경쟁력이 꺾이고 외국인 관광객 유입이 위축돼 겨우 살아난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장기 집권했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내내 추진했던 아베노믹스, 즉 돈 풀기에 의한 경기부양 정책은 막을 내리고 있지만 엔저에 의존해 온 일본 경제가 체질 개선이라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일각에서는 오랫동안 엔저의 달콤한 맛에 취해 생산성이 갈수록 뒷걸음치는 딜레마에 빠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이 됐다고 진단한다.● 美 금리 인하가 엔 상승 이끌어“엔화 하락 추세는 2024년에 끝날 것이다.” 지난해 12월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올해 세계 경제를 전망하면서 ‘핵심 주제(Top pick)’로 엔 강세(엔-달러 환율 하락)를 점쳤다. “일본은행(BOJ·일본 중앙은행)이 세계에서 마지막으로 마이너스 금리 체제에서 벗어나고, 다른 경쟁국들이 금리를 낮추면서 엔화 가치가 강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런 전망대로 일본 당국은 올해 들어 두 차례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가장 큰 목적은 ‘슈퍼 엔저’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였다. 엔저에 따른 물가 상승이 ‘디플레이션 탈출’을 넘어 과열이 걱정되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일본은행은 올 3월 단기 정책금리를 연 ―0.1%에서 0∼0.1%로 올렸다. 마이너스 금리에서 벗어난 건 2007년 2월 이후 17년 만이었다. 7월에는 0.25% 정도로 재차 인상했다. 금리를 올렸지만 엔저에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기대는 어긋났다. 올 1월 달러당 140엔대에서 시작된 엔-달러 환율은 7월 10일 161.69엔까지 올랐다. 일본이 마이너스 금리를 종료한 건 분명 중대한 조치였지만 엔화 상승 속도는 느렸다. 당시 미 기준금리는 5.25∼5.50%였다. 일본의 금리 인상에도 미국과의 기준금리 격차가 5%포인트에 달하니 엔 상승이 일어나기 어려웠다. 일본의 금리 인상은 ‘정책 방향을 전환했다’는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던진 수준에 불과했던 것이다. 금리 인상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당국은 4, 5월에 걸쳐 9조7885억 엔(약 91조 원) 규모의 달러를 팔아 엔화를 매수하는 외환 개입에 나섰다. 그래도 엔-달러 환율의 오름세는 꺾이지 않았다. 이랬던 흐름이 하반기 들어 바뀌기 시작했다. 그 진원지는 일본이 아닌 미국이었다. 연준의 금리 인하를 시사하는 각종 발언과 지표들이 나오자 미일 금리 격차가 좁혀질 것이라는 전망이 커졌다. 일본 당국 또한 6월 말부터 7월 말까지 5조5348억 엔(약 51조 원) 규모의 개입을 단행했다. 4, 5월의 첫 개입은 효과가 크지 않았지만 미 금리인하 전망이 가시화한 상황에서 단행된 6,7월 외환시장 개입이 거듭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외환시장의 가장 강력한 플레이어는 당국’이라는 오랜 명제가 확인된 순간이었다. 당시 개입을 진두지휘한 간다 마사토(神田真人) 내각관방 참여(전 재무성 재무관)는 아사히신문에 “시장에서는 달러당 180엔, 200엔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기 때문에 가만히 놔뒀으면 지금쯤 200엔을 가볍게 돌파했을 것이라는 얘기도 있었다”며 엔 약세 추세를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1992년 영국 파운드화 폭락 사태 같은 상황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컸다고 회고했다. 당시 미 거물 투자자 조지 소로스의 퀀텀펀드가 100억 달러를 동원해 파운드화를 투매하면서 파운드화 가치가 폭락했고 영국 금융시장이 뿌리째 흔들렸다. ● 엔화 환율 하락, 자국 수출기업엔 악재 다만 일본 정부가 현재의 엔 강세를 마냥 반기는 것만은 아니다. 당국이 과도한 엔저에 잠시 제동을 건 이유는 환율 상승에 따른 수입 물가 상승이 소비자물가 오름세로 이어져 서민 경제를 어렵게 만들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엔저가 오랫동안 일본 경제 운용의 기본 토대였고 앞으로도 상당 기간 그럴 가능성이 크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즉 환율을 높여 수출을 늘리고 외국인 투자와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전략이다. 2012년 말 아베 전 총리가 두 번째로 집권한 후 강하게 드라이브를 건 ‘아베노믹스’의 핵심은 금융 완화였다. 2012년 79.81엔이었던 엔-달러 환율은 10여 년에 걸쳐 2배 넘게 올랐다. 도요타 등 간판 수출기업 실적은 크게 개선됐다. 한국, 중국 등에서 외국인 관광객 유입도 급증했다. 올 상반기(1∼6월) 일본 내 외국인 소비액은 3조9070억 엔(약 37조 원)으로 일본 반도체 및 전자부품 수출액(2조8395억 엔)을 웃돌았다. 중국 등에서 들어오는 부동산 투자 자본도 늘었다. 이는 일본 경제가 환율에 의존하는 구조가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당장 원-엔 환율이 올 7월 100엔당 860원대에서 최근 950원대로 오르자, 한국인들의 일본 여행 경비 부담이 커졌다. 올 상반기 일본의 외국인 관광객 수 1위인 한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줄어들면 내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엔고에 따른 외국인 관광객 감소 우려로 일본의 대표 백화점인 미쓰코시이세탄의 주가는 최근 2개월 새 30% 넘게 하락했다. 일본 시가총액 1위 겸 최대 수출기업인 도요타 주가 또한 같은 기간 20% 이상 내렸다. 엔화 환율이 낮아지면 그만큼 일본 기업의 수출 가격이 높아져 기업으로서는 악재가 될 수 있다. 블룸버그저팬은 엔-달러 환율이 1엔씩 내릴 때마다 일본 기업의 경상이익이 0.4∼0.6%가량 감소한다고 분석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금융위기 전 한때 110엔대였던 위기가 발생한 후 엔-달러 환율은 80엔대까지 떨어졌다. 이 같은 엔 강세로 일본의 주요 산업은 큰 타격을 입었다. LG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2008∼2011년 일본 운수업종 기업들의 수익성은 전 세계 평균 대비 6.4% 하락했다. 화학(―4.3%), 전기전자(―2.6%)가 뒤를 이었다. 자산운용사 픽텟저팬의 마쓰모토 히로시(松元浩) 시니어펠로는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달러당 130엔 중반까지 엔화 가치가 오르면 기업 실적 감소 우려가 본격적으로 반영돼 일본 주식은 다시 부상할 기회를 잡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만 일본 수입업체들은 엔 강세를 반긴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과 엔저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던 이들은 엔 강세로 수입 가격 부담이 줄어드는 것을 선호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 또한 쌀을 제외한 주요 식료품, 각종 공업 원자재를 수입에 의존한다. 올 5월 메이지 야스다 종합연구소는 엔-달러 환율이 170엔까지 오르면 일본 수입 물가는 13.5% 치솟고, 물가를 반영한 실질 임금은 마이너스 상태를 이어갈 것으로 봤다.● “당분간 엔 강세” 전망 우세 세계 금융시장에서는 엔화 환율이 당분간 하락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블룸버그는 엔 가치가 달러는 물론이고 호주 호주달러, 스위스 프랑, 중국 위안화 등 각국 주요 통화에 대해서도 상승세를 이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각국 헤지펀드들이 ‘엔 강세’에 베팅하고 있다고도 전했다. 이는 일본이 워낙 오랫동안 세계 주요국 중 가장 낮은 기준금리를 유지하면서 엔 약세가 장기화했기에 이에 따른 반등 여지도 그만큼 크다는 분석과 무관하지 않다. 리처드 프라눌로비치 웨스트팩은행 외환 전략 책임자는 블룸버그에 “엔-달러 환율이 향후 1∼3개월간 달러당 137∼138엔대로 떨어질 수 있다”며 추가 엔 강세를 점쳤다. 금융시장 일각의 전망대로 올해 안에 일본은행이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설 경우 엔-달러 환율의 하락 폭이 더 커질 수도 있다. 연준이 연내 0.5%포인트의 추가 금리 인하를 예고한 것 또한 엔 강세 전망에 힘을 더한다. 미국이 계속 기준금리를 내리는 상황에서 강달러 흐름이 지속되기 어렵다는 뜻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 같은 엔 강세로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공포가 재연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엔 캐리 트레이드는 제로(0)금리 수준의 일본에서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 금리가 높은 미국 등의 자산에 투자하는 것을 뜻한다. 미국과 일본의 기준금리 격차가 좁혀지면 이런 투자의 매력이 낮아져 기존 투자를 거두려는 물량이 쏟아질 수 있다. 지난달 5일 일본 닛케이지수를 포함한 아시아 주요국 증시가 폭락한 이른바 ‘블랙먼데이’의 주요 원인 또한 일본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 미국 경기 침체 전망에 따른 달러 약세 전망이 야기한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우려 때문이었다. 다만 일본 당국이 어떤 식으로든 외환시장에 개입할 수 있고, 금융시장 전반에도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가능성이 널리 알려진 만큼 시장의 충격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18일(현지 시간)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하하는 ‘빅컷’을 단행하자 민주당은 ‘반가운 소식’이라고 밝혔고, 공화당은 ‘연준이 정치적 행동을 했다’고 비난했다. 양측이 엇갈린 반응을 보인 건 이번 금리 인하가 미 대선의 최대 이슈 중 하나인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이 끝났다는 신호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 겸 부통령은 이날 성명을 통해 “높은 물가를 견뎌낸 미국인들에게 반가운 소식”이라면서도 “중산층과 노동자 가정에는 여전히 물가가 너무 높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밝혔다. 또 물가와의 싸움을 이어 가겠다고 강조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X’에 “중요한 순간에 도달했다”며 “물가상승률과 금리는 내려가지만 경제는 여전히 튼튼하다”고 밝혔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 겸 전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0.5%포인트 인하는) 그만큼 경제가 나쁘다는 뜻이거나, 연준이 정치적 행동을 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과거 대통령 재임 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을 직접 임명했던 트럼프 후보는 이번 대선을 앞두고 파월 의장이 “민주당을 도우려 한다”고 비난해 왔다. 또 연준이 대선 전에 금리를 내리면 안 된다고 주장해 왔다. 트럼프 후보의 경제고문인 스티븐 무어도 워싱턴포스트(WP)에 “왜 하필 지금이냐”고 반문했다. 다만 파월 의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연준은 언제나 국민을 위해 일하고 그 외에 어떤 것도 고려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번 금리 인하 발표가 여당인 민주당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1972년 이후 금리가 인하된 해에 치러진 6차례의 대선 중 여당 후보가 이긴 사례는 1996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재선 때뿐이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친(親)이란, 반(反)이스라엘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근거지인 레바논 전역과 인근 시리아에서 17일(현지 시간) ‘무선호출기(삐삐)’ 수천 개가 동시다발로 폭발했다. 이로 인해 최소 12명이 숨지고 2800여 명이 다쳤다고 CNN 등이 전했다. 약 300명의 부상자가 중태여서 사망자가 늘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은 이번 사태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지만 헤즈볼라와 레바논 정부는 “이스라엘의 소행”이라고 지목했다. 미 정치매체 액시오스 또한 “폭발 몇 분 전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에게 전화해 ‘곧 작전 수행 예정’을 알렸다”고 보도했다. 미 일각에서는 헤즈볼라와의 전면전을 준비하던 이스라엘이 사전 공작 차원에서 무선호출기에 폭발물을 심었다가 이것이 들킬 위기에 몰리자 터뜨렸다는 가설도 제기한다.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에 대한 대규모 보복을 천명해 양측의 전면전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17일 오후 3시 30분경부터 1시간가량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 티레와 시돈, 동부 베까, 서부 헤르멜 등은 물론이고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도 무선호출기 폭발이 발생했다. 대부분의 부상자는 헤즈볼라 조직원이며 모즈타바 아마니 주레바논 이란대사도 부상을 입었다. 시리아에서도 최소 14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헤즈볼라는 올 2월 이스라엘의 위치 추적, 도청, 해킹 등을 우려해 구성원에게 “휴대전화 사용을 중단하고 무선호출기 등을 쓰라”고 지시했다. 헤즈볼라는 지난해 10월 7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전쟁 발발 뒤 하마스를 지지하며 이스라엘과 무력 충돌을 벌여 왔다. 헤즈볼라가 ‘사이버 강국’ 이스라엘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구시대 유물인 ‘무선호출기’를 썼지만 이로 인한 공격으로 대규모 피해를 입은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졌다. 뉴욕타임스(NYT)와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헤즈볼라는 올 들어 수천 개의 무선호출기를 대만 통신기업 ‘골드아폴로’로부터 구입했다. 레바논 소식통은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유통’이 아닌 ‘생산’ 단계에서 폭발물을 심었다”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무선호출기 유통 과정 중 폭발물과 악성 코드가 삽입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번 사태로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전면전 가능성이 커졌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간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와 대립했지만 “하마스와의 전쟁이 끝나기 전에는 헤즈볼라와의 확전까지는 바라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대규모 도발로 이 같은 전제가 흔들리고 있다. 한편 로이터통신은 헤즈볼라가 무선호출기 폭발 사고 발생 다음 날인 18일 국경 너머 이스라엘 포병 진지에 로켓을 쐈다고 보도했다.삐삐 진동에 버튼 누르자 동시다발 ‘펑’… “모사드가 폭탄 심어”[레바논 ‘삐삐’ 동시폭발 테러]레바논 곳곳 폭탄테러 아비규환… 손 잘리고 눈 다친 부상자 속출헤즈볼라, 대만업체에 삐삐 주문… 대만업체 “헝가리 기업이 만들어”17일 오후 3시 반경(현지 시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한 식료품 가게에서 과일을 고르던 남성이 돌연 ‘펑’ 하는 강한 폭발음과 함께 고꾸라졌다. 놀란 주변 사람들은 혼비백산해 달아났다. 폭발물이 들어 있던 남성의 가방에선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날 1시간가량 수천 개의 무선호출기(삐삐)가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하며 레바논은 사실상 아비규환이 됐다. 한 목격자는 CNN에 “부상자들이 도로에 흩어져 누워 있었다. ‘좀비 도시’ 같았다”고 전했다. 도로에는 선혈이 낭자했고, 손 등 신체 일부가 사라지거나 엉덩이와 다리에 구멍이 뚫린 부상자도 목격됐다. 환자들이 몰려들면서 일부 병원은 병상 부족으로 주차장에 매트리스를 펼치고 응급 치료를 했다. 눈을 다친 환자가 많지만 안과 의사가 매우 부족하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이스라엘과의 전쟁, 오랜 내전, 경제난으로 의료 인프라가 낙후된 레바논 상황을 고려할 때 많은 환자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진동 일으켜 버튼 누를 때 폭발” “폭발 직전 무선호출기가 수 초간 신호음을 내도록 만드는 프로그램이 설치됐다.” 이번 무선호출기 폭발에 대한 AP통신의 원인 분석이다. 아직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배터리 옆에 28∼56g의 폭발물과 이를 원격으로 터뜨릴 수 있는 스위치가 내장돼 폭발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번에 폭발한 무선호출기는 대부분 대만 통신기업인 골드아폴로의 ‘AR924’ 모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무선호출기는 오류로 진동이 발생할 때 사용자가 진동을 멈추기 위해 버튼을 누르며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고 AP통신이 전했다. BBC는 분쟁과 테러가 빈번한 레바논에서도 이번 사태의 규모와 성격은 유례없는 일이라며 레바논 전체가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고 전했다. 곳곳의 병원에서는 몰려드는 환자에 비해 의사가 부족해 약사, 치과의사, 수의사 등도 치료에 동원됐다. 휴대전화도 터질지 모른다는 공포도 커지고 있다. 헤즈볼라가 정확히 언제, 몇 개의 무선호출기를 주문했는지 등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NYT는 3000개, 로이터통신은 5000개를 구매했다고 전했다. 또 골드아폴로 측은 18일 “이 기기의 생산 및 판매는 헝가리 회사인 ‘BAC’가 맡았다”며 대만 내 제조설을 부인했다. AP통신은 이 회사가 유령회사(a shell company)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NYT는 폭발의 크기와 강도로 미루어 배터리만 폭발한 게 아니라 호출기의 다른 부품 또한 폭발했을 가능성도 있음을 제기했다. 배터리에 사용된 건전지는 일반 ‘AAA’ 건전지라고 레바논 당국이 밝혔다.● 폭발물 설치 방법에 대한 진단은 엇갈려 폭발물의 삽입 시기와 방법에 대한 진단은 엇갈린다. 레바논 고위 관계자는 로이터통신에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유통’이 아닌 무선호출기 ‘생산 단계’에서 기기를 개조해 폭발물질이 들어 있는 부품을 심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어떤 감지 장비로도 이 폭발물을 탐지하기가 매우 어려웠다”고도 했다. 미국 보안회사 에라타시큐리티의 로버트 그레이엄 최고경영자(CEO)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제조업체에서 호출기를 배송하는 도중에 가로채서 악성 코드와 함께 폭발물을 내부에 심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데이비드 케네디 전 미 국가안보국(NSA) 정보 분석가는 CNN에 이스라엘이 헤즈볼라 내부에 침투해 일부 조직원의 배반을 유도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원격 해킹으로 호출기를 과열시켜 배터리 폭발을 일으켰다고 보기에는 너무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대형 폭발이 일어났다는 것. 그는 “헤즈볼라 내부의 (일부) 요원들이 작전의 핵심 목표였을 것”이라고 했다.● 헤즈볼라-이스라엘 전면전 우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을 배후로 지목하며 보복을 다짐했다. 또 지난해 10월 발발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전쟁에 대한 ‘동시 보복’도 강조했다. 헤즈볼라를 지원해온 이란의 나세르 카나니 외교부 대변인도 “이번 폭발은 시오니스트 단체(이스라엘)와 그 용병 요원들의 복잡한 작전의 연속”이라고 밝혔다. 영국 BBC는 “계속되는 긴장에도 지금까지 양측이 적대 행위를 억제했지만 헤즈볼라가 이미 폭발에 대응하겠다고 위협하면서 상황이 통제 불능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가 생겼다”고 분석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물러서지 않을 뜻을 밝혔다. 이스라엘 총리실은 17일 “(헤즈볼라와의 충돌로 대피해 있는) 북부 주민을 안전하게 귀환시키는 것 또한 전쟁 목표”라며 헤즈볼라와의 전쟁이 확대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17일(현지 시간) 레바논 전역에서 발생한 무선호출기 폭발 사고의 배후로 지목되는 이스라엘은 이번 사건에 대해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그동안 다양한 사이버 기술, 자폭 무인기(드론), 원격 조종 기관총 등을 동원해 ‘주적’ 이란과 헤즈볼라, 하마스 같은 친(親)이란·반(反)이스라엘 성향 무장단체에 정교한 공격을 감행한 역사를 갖고 있다. 이스라엘의 위치 추적과 도청 등을 피하기 위해 무선호출기를 적극 사용해 온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을 이미 선언했다. AP통신과 뉴욕타임스(NYT) 등 주요 외신들도 이스라엘이 배후일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이번처럼 휴대용 통신기기를 활용한 이스라엘의 표적 암살은 1996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술자’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하마스 최고의 폭탄 제조자로 꼽혔던 야히아 아야시는 통화를 하던 중 휴대전화가 폭발하며 즉사했다. 이스라엘에 포섭된 팔레스타인인이 아야시에게 폭발물이 장착된 모토로라 휴대전화를 건넸고, 이 전화기가 무선 신호를 받아 터진 것. 하마스 군사 조직인 알카삼 여단의 창설자이며 한때 차기 지도자로 여겨졌던 모하메드 데이프는 이 사건을 계기로 암살을 피하기 위해 20년 가까이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데이프는 결국 7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남부 공습으로 사망했다. 이스라엘의 암살 역사를 다룬 책 ‘라이즈 앤드 킬 퍼스트’에 따르면 정보기관의 해커들이 개인 휴대전화에 악성 코드를 심어 과열로 인한 폭발을 일으킨 사례도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이스라엘은 1972년에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간부 마흐무드 함샤리를 암살하기 위해 자택 유선 전화기에 폭탄을 설치하기도 했다. 당시 ‘뮌헨 올림픽’에 출전하는 이스라엘 선수단 11명이 팔레스타인 테러조직 ‘검은 9월단’에 살해당하자 복수에 나선 것. 함샤리는 전화를 받으려다 폭탄이 터지며 중상을 입었고 한 달 만에 사망했다. 이 외에도 이스라엘의 국내·해외 정보기관인 신베트와 모사드는 이란과 무장단체 주요 관계자들을 적극적으로 암살해 왔다. 2020년에는 이란의 핵무기 개발 계획을 이끌던 과학자 모센 파흐리자데가 테헤란 외곽에서 승용차를 타고 이동하다 무인 기관총에 숨졌다. 이란 당국은 현장에서 발견된 트럭에 설치된 기관총이 위성통신으로 원격 발사됐다고 밝혔다. 모사드는 그를 암살하려고 1993년부터 27년간 치밀하게 준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BBC방송은 “과거 이스라엘은 정보원들을 동원해 무장단체 지도자들의 모든 동선을 면밀히 파악해 정확한 시점에 암살을 수행했다”라며 개인 차량에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추적기를 부착한 뒤 드론으로 공격하는 방법도 주요 수단으로 동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 7월에는 헤즈볼라 최고 사령관인 푸아드 슈크르가 베이루트에서 공습으로, 2008년엔 헤즈볼라의 군사 지도자 이마드 무그니예가 다마스쿠스에서 자동차 폭탄 폭발로 숨졌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유럽연합(EU)이 2019년 미국 플랫폼기업 구글에 부과한 14억9000만 유로(약 2조2000억 원)의 반독점 과징금이 18일(현지 시간) EU 법원에서 취소됐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EU 법원은 “과거 EU 집행위원회가 구글에 과징금을 물리는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다”며 과징금 부과 처분을 취소했다. 앞서 2019년 EU 집행위는 구글이 2006~2016년 광고 플랫폼 ‘애드센스’를 통해 온라인 광고 시장에서 시장 지배적 위치를 남용해 경쟁 업체를 방해했다는 혐의로 과징금을 물렸다. 당시 문제가 된 것은 구글이 제3의 웹사이트에서 구글 검색 결과 옆에 붙인 광고다. 집행위는 구글이 이들 웹사이트와 계약하면서 경쟁사의 광고를 배치하지 못하도록 독점 조항을 넣으면서 광고주의 선택권이 제한됐고 소비자에게 더 높은 가격이 전가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구글은 이에 불복해 소송을 냈다. AP통신은 해당 결정이 “빅테크 규제 강화의 시대를 여는 서막”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에 법원은 “집행위가 남용이라고 본 계약 조항의 지속성을 평가하면서 모든 관련 상황을 고려하지 못했다”며 과징금을 취소했다. 법원의 판단근거는 크게 세 가지다. EU 집행위가 문제 삼았던 구글의 계약 조항이 혁신을 저해했는지, 검색 광고 시장에서 구글의 지배적인 위치를 유지·강화하는 데 도움이 됐는지, 그리고 소비자에게 피해를 입혔는지를 입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구글은 승소 결정이 난 뒤 “법원이 (집행위) 결정의 오류를 인정하고 과징금을 취소해 기쁘다”고 밝혔다. EU가 과징금 부과를 결정하기 전인 2016년에 이미 관련 광고 서비스를 변경했다고도 밝혔다. EU 집행위는 “판결을 면밀히 검토해 다음 조처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은 법리적인 부분에 한해 EU 최고법원인 유럽사법재판소(ECJ)에 항소할 수 있다.이번에 해소된 과징금은 EU 집행위가 지난 10년간 구글에 부과한 총 약 80억 유로 규모의 반독점 처벌 세 건 중 하나다. 앞서 2017년엔 구글의 쇼핑 비교검색 기능과 관련해 24억2000만 유로(약 3조6000억 원)를, 이듬해에는 구글이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운영체계(OS)로 시장 지배력을 남용했다며 43억4000만 유로(약 5조8000억 원)를 부과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겸 전 대통령에 대한 두 번째 암살 시도 뒤 다시 한 번 경호 능력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 미 비밀경호국에 대해 조 바이든 대통령이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16일(현지 시간) BBC 등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워싱턴 백악관에서 취재진과 만나 “비밀경호국은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며 “나는 의회가 비밀경호국의 필요에 부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비밀경호국에 대한 인력이나 예산 지원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비밀경호국은 전날 오후 트럼프 후보가 소유한 플로리다주 웨스트팜 비치의 골프장 덤불에서 AK-47 유형 소총으로 무장한 채 골프를 치던 트럼프 후보에게 총격을 가하려던 라이언 웨슬리 루스(58)를 발견해 사격했다. 루스는 현장에서 자동차로 도주했고 인근 고속도로에서 수사당국에 체포됐다. 트럼프 후보가 7월 13일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진행된 야외 유세 중 총기 피습을 당했던 것처럼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상황은 막았지만, 비밀경호국의 역량과 경호 방식에 대한 비판은 미국에서 계속 제기되고 있다. 특히 비밀경호국의 트럼프 후보에 대한 경호 수준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또 경호 절차를 다시 한 번 검토해 봐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클로디아 테니 뉴욕주 하원의원(공화당)은 자신의 ‘X’에 “이런 일이 또 일어났다는 건 무슨 말로도 해명이 안 된다”고 밝혔다. 로 칸나 캘리포니아주 하원의원(민주당)도 X에 “60일 동안 전직 대통령에 대한 2번의 암살 시도가 벌어졌다는 건 용납될 수 없다”고 밝혔다.트럼프 후보에 대한 경호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트럼프 후보는 대선에 나선 상태이기 때문에 다른 전직 대통령보다 더 높은 수준의 경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비밀경호국 요원 출신인 베리 도나디오는 BBC에 “(전직 대통령에 대한 경호 방식에 대해) 우리는 이제 다시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한편, 로널드 로 비밀경호국 국장 대행은 이번 사건에 대한 조사를 위해 플로리다주에 당분간 계속 머무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카멀라 해리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겸 부통령이 10일(현지 시간) TV토론 뒤 실시된 첫 전국 여론조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 겸 전 대통령과의 격차를 소폭 벌린 것으로 나타났다. 해리스 후보의 TV토론 판정승이 트럼프 후보의 지지층에 균열을 일으키진 못했지만 지지 후보가 없던 부동층 공략엔 일정 부분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7개 경합주에선 여전히 트럼프 후보가 우세하다는 관측도 있어 어느 쪽도 낙관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한 번의 TV토론은 트럼프 후보의 거부로 사실상 성사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후보는 “앞선 2번의 토론에서 모두 이겼기 때문에 다른 토론은 필요 없다”고 말했다. 해리스 후보는 12일 경합주인 노스캐롤라이나 유세에서 “한 차례 더 토론을 갖는 건 유권자들에 대한 의무”라며 상대를 압박했다.● 상승세 탄 해리스, 토론 뒤 지지율 증가11, 12일 로이터통신과 여론조사회사 입소스가 전국 등록 유권자 14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늘 선거가 치러진다면 누구를 뽑겠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 47%는 해리스 후보를, 42%는 트럼프 후보를 선택했다. 이는 지난달 21∼28일 동일 조사에서 해리스 후보가 45%의 지지율을 얻으며 트럼프 후보(41%)를 4%포인트 차로 앞섰던 것과 비교해 미세하게나마 격차가 벌어진 것이다. 지난달 조사에선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등 제3 후보를 뽑겠다는 응답이 9%였으나, 케네디가 후보에서 사퇴한 뒤인 이번 조사에선 해당 응답이 3%로 줄어들었다. 이번 조사 결과는 10일 밤 실시된 TV토론에서 해리스 후보가 선전한 영향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해리스 캠프는 제3 후보나 무응답 등을 선택했던 부동층이 지난달 14%에서 이달 11%로 줄며 해리스 후보 지지율이 2%포인트 상승한 것을 고무적으로 보고 있다. 이날 조사에선 TV토론을 시청한 유권자의 절반 이상(53%)이 해리스 후보를 토론의 승자로 꼽기도 했다. 트럼프 후보가 잘했다는 응답은 24%에 그쳤다. 여론조사업체 모닝컨설트가 1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해리스 후보가 50% 대 45%로 트럼프 후보를 앞섰다. 다만 통계전문가 네이트 실버는 같은 날 “이번 결과에 지나치게 무게를 둬선 안 된다”며 “여전히 트럼프가 핵심 경합주를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트럼프 캠프도 11일 자체 실시한 7개 경합주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하며 “트럼프가 48% 대 46%로 앞섰다”며 “해리스의 지지율은 제자리걸음”이라고 주장했다.● 경합주 유세 재개… 트럼프 “3차 토론 없다”TV토론 다음 날 뉴욕 9·11테러 추모식에서 악수를 나누는 장면을 연출했던 두 후보는 12일 각자 경합주 유세를 재개하고 상대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멕시코 국경과 가까운 서부 애리조나주 투손을 찾은 트럼프 후보는 “우린 토론에서 기념비적 승리를 거뒀다”고 주장했다. 또 해리스 후보를 “거짓말쟁이”라며 “어떤 계획이나 정책, 세부 내용도 제시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TV토론에서 논란을 일으켰던 아이티 이민자들이 반려동물을 ‘훔친다’는 허위 주장도 반복했다. 다만 토론 때처럼 “잡아먹는다”란 표현은 쓰지 않았다. 트럼프 후보는 이날 세 번째 TV토론을 거부하겠다는 입장도 드러냈다.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서 “카멀라는 (부통령) 4년 동안 했어야 할 일에나 집중해야 한다”며 “3차 토론은 없다”고 못 박았다. 트럼프 후보에게 우호적인 보수성향 폭스뉴스가 내달 추가 TV토론 주관을 제안했지만 더 이상의 TV토론은 자신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해리스 후보는 TV토론 승리에도 낙관론을 경계할 것을 당부했다. 그는 동부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 유세에서 “우린 여전히 약자(underdog)”라며 “끝까지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한다”고 독려했다. 트럼프 후보에 대해선 “헌법을 파괴하겠다는 사람을 또다시 대통령에 앉힐 순 없다”고 비난했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11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남부의 ‘그라운드제로’. 미국 역사상 최악의 참사로 꼽히는 ‘9·11테러’의 현장인 이곳에서 열린 23주기 추모식에 조 바이든 대통령,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 겸 부통령,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 겸 전 대통령이 총출동했다.트럼프 후보와 해리스 후보는 전날 밤 거친 공방과 비난이 오갔던 105분간의 첫 TV토론을 마친 뒤 인사도 없이 헤어졌다.그러나 이날 두 사람은 행사 전 웃으며 악수했다. 트럼프 후보는 해리스 후보에게 “토론을 즐겼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바이든 대통령과도 악수했다. AP통신 등은 11월 5일 대선을 앞두고 두 후보의 공방이 격화하고 있지만 국가적 추모 행사 때는 진영 논리를 제쳐 두는 모습을 보였다고 평했다. 해리스 후보도 성명에서 “9·11테러 뒤 미국은 단결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증오와 차별을 극복하고 나라를 위해 싸우려는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이날 추모식은 테러 당시 비행기가 추락했던 워싱턴 국방부 청사(펜타곤), 펜실베이니아주 섕크스빌에서도 열렸다. 바이든 대통령과 해리스 후보는 뉴욕 추모식 참석 뒤 곧바로 섕크스빌을 찾았다. 펜실베이니아주는 이번 대선의 최대 경합주로 꼽힌다.바이든 대통령은 섕크스빌의 소방서를 방문했을 때 트럼프 후보 지지자에게 ‘트럼프 2024’라는 문구가 쓰인 붉은색 모자를 건네받아 쓰기도 했다. 트럼프 대선 캠프는 이 모습을 담은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공유하며 “해리스가 어제 토론을 망쳐서 바이든이 트럼프 모자를 썼다” “(우리를) 지지해줘서 고맙다, 조!”라고 썼다. 일부 트럼프 후보의 지지층은 6월 27일 TV토론 참패 직후 민주당 내 반발로 사실상 강제로 대선 후보직을 사퇴한 바이든 대통령이 민주당과 해리스 후보에 간접적으로 불만을 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논란이 일자 앤드루 베이츠 백악관 수석 부대변인은 “바이든 대통령은 초당적 단결이 다시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취지로 자신의 모자를 선물했다”며 이에 상대방이 “그러려면 당신도 이걸 써야 한다”며 ‘트럼프 모자’를 건네 바이든 대통령이 잠시 착용했다고 설명했다.한편 미 비밀경호국은 내년 1월 6일 워싱턴DC 연방의회가 이번 대선결과를 인증하는 절차를 대통령 취임식 수준의 국가 특별안보 행사로 지정했다고 이날 발표했다. 앞서 2021년 트럼프 후보 지지자들이 전년도 대선 결과에 불복하며 벌였던 ‘1·6 의사당 난입사태’가 재발하지 못하도록 경호와 보안 수준을 끌어올린 것이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카멀라 해리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겸 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 겸 전 대통령의 10일(현지 시간) 첫 TV토론을 두고 주요 언론, 보수 논객, 무당파 유권자, 트럼프 후보의 지지자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까지 2021년 부통령 취임 뒤 각종 말실수로 언론과의 접촉에 소극적이었던 해리스 후보가 “예상 밖 선전을 했다”고 진단했다. 다만 역대급 초박빙 접전인 이번 대선에서 판세를 좌우할 ‘결정적 한 방’은 없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해리스 후보 또한 자신이 토론에서 이겼다면서도 “(11월 5일 대선일까지) 남은 56일간 할 일이 많다”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반면 트럼프 후보는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역대 최고의 토론이었다”고 자신의 승리를 주장했다. ● 트럼프 측근-머스크 “해리스가 잘했다”폴리티코는 “해리스는 트럼프의 짜증을 유도했다. 해리스가 ‘미끼’를 던지면 트럼프는 계속 물었다”고 진단했다. 해리스 후보의 공격에 말려든 트럼프 후보가 불법 이민, 고물가 등 자신에게 유리한 분야에 대해 토론할 때도 공세를 펼치는 대신 방어에 급급했다는 의미다. NYT는 “트럼프가 (해리스의 공격에만) 반응했다”고 평했다. 영국 BBC 또한 트럼프가 해리스 후보의 공격에 효과적으로 ‘반격(punch)’하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트럼프 후보의 일부 측근은 CNN에 “그가 여러 번 평정심을 잃은 것에 대해 좌절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트럼프 후보가 핵심 메시지에 집중하지 못하는 바람에 해리스 후보의 부적절한 답변들이 가려졌다고 불만을 표했다. 트럼프 후보의 승리 시 입각설까지 도는 머스크 CEO 또한 ‘X’에 “해리스가 기대치를 뛰어넘었다”고 썼다. 친(親)공화당 성향 매체 폭스뉴스 분석가인 브릿 흄은 “거의 해리스의 승리였다”고 진단했다. 또 다른 보수 논객 에릭 에릭슨 역시 “트럼프가 졌다”며 “사회자에 대한 불만을 표한다고 해서 토론 결과가 바뀌지는 않는다”고 꼬집었다. 공화당 소속인 크리스 크리스티 전 뉴저지 주지사는 “토론을 준비한 사람을 해고해야 한다”며 트럼프 대선 캠프가 토론 준비에 소홀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아직 지지 후보를 확정하지 않은 경합주 유권자 25명 중 23명이 토론 후 “해리스가 더 잘했다”고 평가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후보에게 기울어 있던 한 40대 유권자는 “트럼프는 너무 많은 기회를 놓쳤다”고 했다.● “결정타는 없었다”… 지지율도 초접전 다만 NYT는 이번 TV토론에서 초접전인 대선의 역학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꿀 ‘결정타’는 없어 보였다”고 분석했다. 폴리티코 역시 “트럼프는 여전히 공화당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고 백악관에 재입성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진단했다. 민주당의 선거전략가 마리아 카르도나 또한 폭스뉴스에 “토론 시작 전 두 후보는 오차범위 내에서 경쟁하고 있었고, 토론 후에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11일 선거 분석 사이트 리얼클리어폴리틱스(RCP)에 따르면 해리스 후보와 트럼프 후보는 대선 승자를 결정하는 538명의 선거인단 중 각각 208명과 219명을 확보했다. 또 최대 경합주로 꼽히는 펜실베이니아주에서는 두 후보의 지지율이 각각 47.6%로 동률이다. 다만 대선 승자를 점치는 도박 시장에서는 해리스 후보의 승리 확률이 높아졌다고 블룸버그가 보도했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미국, 영국 등이 러시아의 파상 공세로 최근 주요 격전지에서 밀리고 있는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우크라이나가 서방이 지원한 장거리 미사일로 러시아 본토를 타격하는 것을 허용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과 프랑스가 공동 개발한 공대지(空對地) 미사일 ‘스톰섀도(Storm Shadow)’, 미국의 지대지(地對地) 미사일 ‘에이태큼스(ATACMS)’ 등의 사용 제한이 해제되면 전황 열세인 우크라이나군에 적잖은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서방은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공 뒤 우크라이나를 꾸준히 지원하면서도 확전과 외교 분쟁 등을 이유로 자국 무기가 러시아 본토를 공격하는 데 사용되는 것을 꺼렸다. 우크라이나군이 방어 목적으로만 자국산 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원했던 것이다.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미사일을 지원할 때 최신형 대신 사거리가 상대적으로 짧은 구형 모델을 넘겨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최근 우크라이나군의 열세가 뚜렷해지고 11월 5일 미국 대선에서 우크라이나 지원에 부정적인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 겸 전 대통령이 재집권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우크라이나군의 러시아 본토에 대한 공격에도 서방 무기 사용을 허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얻고 있다.● 바이든 “우크라, 美무기로 러 공격 허용 협의 중”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0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우크라이나가 미국이 지원한 장거리 무기로 러시아 본토를 공격하는 것을 허용할 것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당장 그것을 다루고 있다”고 답했다. 영국 런던을 방문 중인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역시 비슷한 질문을 받고 “우크라이나의 요청이 있으면 들여다볼 것”이라고 답했다. 텔레그래프, 더타임스 등은 11일 블링컨 장관과 데이비드 래미 영국 외교장관의 회동, 13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바이든 대통령과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의 회동 때 관련 논의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두 나라가 영국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장거리 미사일 스톰섀도의 사거리 제한 해제를 논의할 것으로 봤다. 영국은 지난해 5월 서방 주요국 중 최초로 스톰섀도를 지원했다. 다만 최대 사거리가 560km에 이르는 최신형 대신 약 250km인 구형을 보냈다. 미국도 올 4월 사거리 300km의 에이태큼스를 우크라이나에 전달했지만 이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장소를 제한적으로 허용했다. 이에 우크라이나는 “각종 제한을 해제해 달라. 러시아 본토 깊숙한 곳의 군사 시설을 직접 공격해야 전쟁을 종료시킬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이 와중에 최근 이란이 러시아에 수백 기의 탄도미사일을 제공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는 등 러시아군이 전력을 강화하자 서방의 태도 또한 바뀐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10일 러시아를 지원하는 이란에 대한 제재를 예고했다.● 우크라 벌떼 드론, 모스크바 타격… 첫 민간인 사망우크라이나는 10일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일대 곳곳에 최소 144대 이상의 무인기(드론)를 발사했다. 특히 모스크바 교외 라멘스코예의 고층 아파트가 집중 공격을 받아 최소 1명이 숨지고 8명이 부상당했다. 전쟁 발발 후 모스크바 일대에서 러시아 민간인이 우크라이나의 공격으로 사망한 첫 사례다. 모스크바를 향한 우크라이나의 ‘벌떼’ 드론 공격은 러시아 민간인에게 전쟁의 공포를 체험토록 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압박하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가디언은 “대부분의 러시아인은 남부 국경지대에서 벌어지는 이번 전쟁을 자신과 상관없는 일로 여겼다”며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로 싸움을 옮겨 러시아 국민이 더 이상 전쟁을 외면할 수 없게 됐다”고 전했다. 다만 11일 러시아군은 남부 쿠르스크주 수미 일대를 점령한 우크라이나군에 반격을 시도해 “10개 마을을 되찾았다”고 밝혔다. 지난달 6일부터 수미 일대로 진격한 우크라이나는 쿠르스크주 내 100여 개의 마을을 점령했다.김보라 기자 purple@donga.com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카멀라 해리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겸 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 겸 전 대통령의 10일(현지 시간) 첫 TV토론을 두고 주요 언론, 보수 논객, 무당파 유권자, 트럼프 후보의 지지자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까지 2021년 부통령 취임 뒤 각종 말실수로 언론과의 접촉에 소극적이었던 해리스 후보가 “예상 밖 선전을 했다”고 진단했다. 다만 역대급 초박빙 접전인 이번 대선에서 판세를 좌우할 ‘결정적 한 방’은 없었다는 분석도 나온다.해리스 후보 또한 자신이 토론에서 이겼다면서도 “(11월 5일 대선일까지) 남은 56일간 할 일이 많다”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반면 트럼프 후보는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역대 최고의 토론이었다”고 자신의 승리를 주장했다. 특히 토론을 진행한 두 명의 ABC 앵커가 자신에게 비우호적이었다며 자신이 두 사람과 해리스 후보를 합한 “3 대 1의 대결을 벌였다”고 밝혔다.● 트럼프 측근-머스크 “해리스가 잘했다”폴리티코는 “해리스는 트럼프의 짜증을 유도했다. 해리스가 ‘미끼’를 던지면 트럼프는 계속 물었다”고 진단했다. 해리스 후보의 공격에 말려든 트럼프 후보가 불법 이민, 고물가 등 자신에게 유리한 분야에 대해 토론할 때도 공세를 펼치는 대신 방어에 급급했다는 의미다. NYT는 “트럼프가 (해리스의 공격에만) 반응했다”고 평했다. 영국 BBC 또한 트럼프가 해리스 후보의 공격에 효과적으로 ‘반격(punch)’하지 못했다고 진단했다.트럼프 후보의 일부 측근은 CNN에 “그가 여러 번 평정심을 잃은 것에 대해 좌절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트럼프 후보가 핵심 메시지에 집중하지 못하는 바람에 해리스 후보의 부적절한 답변들이 가려졌다고 불만을 표했다. 트럼프 후보의 승리 시 입각설까지 도는 머스크 CEO 또한 ‘X’에 “해리스가 기대치를 뛰어넘었다”고 썼다.친(親)공화당 성향매체 폭스뉴스 분석가인 브릿 흄은 “거의 해리스의 승리였다”고 진단했다. 또 다른 보수 논객 에릭 에릭슨 역시 “트럼프가 졌다”고 했다. 공화당 소속인 크리스 크리스티 전 뉴저지 주지사는 “토론을 준비한 사람을 해고해야 한다”며 트럼프 대선 캠프가 토론 준비에 소홀했다고 지적했다.워싱턴포스트(WP)는 아직 지지 후보를 확정하지 않은 무당파 유권자 25명 중 23명이 토론 후 “해리스가 더 잘했다”고 평가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후보에게 기울어 있던 한 40대 유권자는“트럼프는 너무 많은 기회를 놓쳤다”고 했다. ● “결정타는 없었다”… 지지율도 초접전다만 NYT는 이번 TV토론이 초접전인 이번 대선의 역학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꿀 ‘결정타’는 없어 보였다”라고 분석했다. 폴리티코 역시 “트럼프는 여전히 공화당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고 백악관에 재입성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진단했다. 민주당의 선거전략가 마리아 카르도나 또한 폭스뉴스에 “토론 시작 전 두 후보는 오차범위 내에서 경쟁하고 있었고, 토론 후에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11일 선거 분석 사이트 리얼클리어폴리틱스(RCP)에 따르면 해리스 후보와 트럼프 후보는 대선 승자를 결정하는 538명의 선거인단 중 각각 208명과 219명을 확보했다. 또 최대 경합주로 꼽히는 펜실베이니아주에서는 두 후보의 지지율이 각각 47.6%로 동률이다. 다만 대선 승자를 점치는 도박 시장에서는 해리스 후보의 승리 확률이 높아졌다고 블룸버그가 보도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미국 ABC방송이 10일(현지 시간) 주관하는 미 대선 TV토론은 지난달 말까지도 성사 여부가 불투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 겸 전 대통령 측이 “ABC가 민주당에 우호적”이라며 토론 주관을 거부하다 지난달 말에야 참여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ABC는 트럼프 후보가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때부터 ‘앙숙’으로 꼽혔던 CNN이나 NBC방송만큼 악연의 역사가 길진 않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수 성향인 폭스뉴스를 제외한 기성 언론을 늘 비난해 왔던 트럼프가 올해 들어 ABC를 CNN을 대신할 샌드백으로 삼고 있다”고 할 정도로 최근 사이가 나빠졌다. 특히 트럼프 후보는 ABC의 ‘불편한 질문들’에 불만이 크다. 3월 ABC 간판 앵커인 조지 스테파노풀로스가 낸시 메이스 공화당 하원의원에게 “강간 혐의로 기소된 트럼프를 왜 지지하느냐”고 묻자 명예훼손 혐의로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달 31일엔 ABC 기자가 전미흑인언론인협회(NABJ) 초청 토론회에서 트럼프 후보의 인종 차별적 언행을 나열했다. 이에 트럼프 후보는 “인사도 없이 처음부터 끔찍한 질문을 쏟아냈다”고 비난했다. 트럼프 후보는 토론 합의 뒤에도 ABC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4일 폭스뉴스 주관 행사에선 “ABC의 공정성은 최악”이라며 “(TV토론을 통해) 그들이 얼마나 못됐고, 불공정한지 많은 이들이 지켜볼 것”이라고 힐난했다. 최근 기부자들에게 보낸 서한에선 ABC가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 겸 부통령에게만 사전에 질문지를 줄 것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는 설령 이번 토론 성과가 나쁘더라도 진행자와 방송사의 공정성에 책임을 돌리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이번 TV토론의 진행자들에 대해선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데이비드 뮤어 앵커는 트럼프 후보가 2017년 백악관 입성 뒤 처음으로 단독 인터뷰를 했다. 영국 더타임스는 “트럼프는 적어도 뮤어에겐 우호적일 것”이라고 전했다. 린지 데이비스 앵커도 4년 전 트럼프 후보와 바이든 대통령의 3차 대선 토론을 공동 진행한 인연이 있다. 한편 해리스 캠프는 9일 과거 트럼프 행정부에서 일했으나 ‘반(反)트럼프’로 돌아선 인물들의 영상을 활용한 새 TV 광고를 공개했다. 광고에는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이 2021년 ‘1·6 의사당 난입’ 사태 이후 “헌법 위에 군림하려는 사람은 결코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담겼다. 마크 밀리 전 합참의장은 “우린 독재자 지망생에게 충성을 맹세하지 않는다”고 했으며,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은 “트럼프가 신경 쓰는 유일한 이는 (국민이 아닌) 자기 자신”이라고 비판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11월 5일 치러지는 미국 대선은 50개 주와 수도 워싱턴에 인구 비례로 배분된 선거인단 538명 중 과반(270명)을 얻는 후보가 승자가 된다. 역사상 두 후보가 269명씩의 선거인단을 나눠 가진 적은 없다. 다만 이번 대선은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가 워낙 초박빙 승부를 펼쳐 이들이 선거인단을 반반씩 가져갈지 모른다는 전망이 일각에서 제기된다.51개 지역 중 49곳은 단 한 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해당 주의 선거인단을 모두 차지하는 ‘순수 승자 독식제’다. 그러나 선거인단이 5명인 중부 네브래스카주와 4명인 북동부 메인주는 우선 이곳에서 다득표한 후보자가 2명을 얻는다. 각각 남은 3명과 2명은 주내 하원 선거구별로 이긴 후보가 1명씩 차지한다.네브래스카주는 공화당 지지세가 강하다. 다만 최대 도시이며 네브래스카대가 있는 오마하를 포함한 2선거구엔 진보색이 강한 젊은층, 고학력자, 비(非)백인 유권자가 많다. 2020년 대선에서도 민주당의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이곳의 선거인단 1명을 차지했다. 메인주는 반대다. 민주당 지지세가 강하나 캐나다와 국경을 맞댄 2선거구엔 백인 노동자 계층이 많다. 4년 전 대선 때 트럼프 후보가 이겼다.만일 해리스 후보가 네브래스카주에서 선거인단 1명, 트럼프 후보가 메인주에서 1명을 각각 확보하면 ‘269 대 269’라는 초유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정치매체 액시오스는 이 시나리오를 두고 “미국 전체가 ‘퍼펙트 스톰’(초대형 복합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선거인단으로 승자를 가리지 못하면 ‘수정헌법 12조’에 따라 내년 1월 출범할 119대 의회에서 대통령과 부통령을 선출한다. 대통령은 하원, 부통령은 상원이 결정한다. 현재 상원 다수당은 민주당, 하원 다수당은 공화당이지만 대선과 같은 날 치러지는 상하원 선거에서는 공화당이 양원 모두 장악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트럼프 후보에게 유리한 대목이다.주요 경합주인 조지아주에서는 대선 승리 인증 여부를 둘러싼 양당의 대립도 빚어졌다. 최근조지아주 선거관리위원회는 각 카운티 선관위에 선거 결과 인증을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규칙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반발하고 있는 민주당은 관련 법안을 무효화하기 위한 소송을 준비하겠다며 맞서고 있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제네바 협약’ 75주년을 맞아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와 주한 스위스대사관이 ‘디지털 딜레마-민간인 중심’ 전시를 공동 개최했다. 지난달 30일부터 11월 16일까지 약 석 달 반 동안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이뤄지는 이번 전시는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두 개의 전쟁’이 장기화하는 시점에 “디지털화된 전쟁터에서 민간인은 얼마나 안전할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웹사이트에서도 관람이 가능하다.제네바 협약은 각종 전쟁에서 민간인, 부상병, 포로 등 비(非)전투원을 보호하고 군인들의 인도적 처우 또한 보장하기 위해 1949년 만들어진 국제 조약이다. 이번 전시는 무인기(드론), 인공지능(AI) 등이 총동원된 21세기 전쟁터를 현실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제네바 협약이 아직도 유효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몰입형 멀티미디어 전시를 통해 디지털 기술이 위기에 처한 민간인과 인도주의 단체의 활동에 미치는 영향도 다룬다. 첨단 기술이 때로는 구호 활동을 돕지만, 반대로 전쟁을 더 복잡하게 만들기도 하는 이중적 현실도 담고 있다.ICRC,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인 스위스가 각국의 민간인 보호를 위해 곳곳의 혁신 기업 등과 벌인 협력 활동 또한 소개한다. 다그마 슈미트 타르타글리 주한스위스대사는 “무력 분쟁에서의 민간인 및 인도주의 기구 인력 보호는 스위스를 포함한 모든 나라의 최우선 과제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밀라 함마미 ICRC 한국사무소 대표 또한 분쟁 격화, 살상 관련 기술의 발달이 민간인에게 미치는 엄청난 피해를 더 이상 간과할 수 없으며 각국이 합심해서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