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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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임수 논설위원입니다.

imsoo@donga.com

취재분야

2024-10-24~2024-11-23
칼럼97%
사설/칼럼3%
  • [광화문에서/정임수]거대 야당의 ‘재정 포퓰리즘’… 쌀값도, 교통비도 나라 부담

    과잉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도록 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15일 더불어민주당의 단독 처리로 국회 상임위 소위원회를 통과했다. 여당이 ‘날치기’라고 반발하지만 민주당은 27일 본회의 처리로 일정까지 못 박았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쌀값이 심각하다”며 대응을 주문한 지 하루 만에 벌어진 일이다. 현재도 쌀 초과 생산분이 생기면 정부가 일부를 매입할 수 있지만, 민주당은 무조건 전량을 사들이도록 강제하자는 것이다. 45년 만에 최대로 폭락한 쌀값에 들끓는 농심을 헤아릴 방안이 필요하지만 정부 강매식 방법이 근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쌀 소비가 급감해 매년 산지 쌀값이 하락하고 남는 쌀을 정부가 사주느라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고 있다. 지난해 수확한 쌀 37만 t을 매입하는 데 7900억 원이 들었고 이를 2년간 보관하는 데 8400억 원 이상이 소요된다. 민주당 법안이 통과되면 매년 쌀 매입과 보관에 조(兆) 단위 세금이 들어갈 수 있다. 중장기적으로 수급 구조를 바꾸는 근본 대책 없이 쌀값을 세금으로 떠받치겠다고 하니 농가의 표를 의식한 선심성 법안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대중교통법 개정안’도 논란이 되는 건 마찬가지다. 8월부터 연말까지 5개월간 낸 버스·지하철 요금의 절반을 돌려주겠다는 이른바 ‘반값 교통비 지원법’이다. 정부 여당이 국민의 교통비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소득공제 확대 카드를 꺼내들자 민주당이 이렇게 판을 키웠다. 문제는 천문학적 비용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해당 기간 국민이 낼 버스·지하철 요금은 5조3478억 원이며, 이 중 절반을 환급하면 2조6739억 원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교통비 지원에 편승해 버스·지하철 수요가 늘면 재정 부담이 최소 3조3000억 원에서 최대 4조6000억 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국민 개개인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월평균 3만3000원에 그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 같은 이유로 정부도 반대하지만 민주당은 2조 원 정도면 감당할 수 있다며 강행할 태세다. 두 법안을 포함해 민주당이 정기국회 처리를 공언한 ‘22대 민생법안’ 가운데 막대한 비용에 비해 효과가 불분명하거나 인위적으로 가격을 통제하는 반시장적 정책이 적지 않다. 은행의 이자율 산정 방식과 근거를 공개하도록 한 ‘은행법 개정안’(금리 폭리 방지법)도 그렇다. 서민의 이자 부담을 낮춰주겠다는 취지지만 강제적인 금리 인하는 저신용·저소득 취약계층을 불법 사채시장으로 내모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국민 세금으로 갚아야 하는 ‘적자성 국가채무’가 내년에 사상 처음 700조 원을 웃돌 것이라고 한다. 민주당이 집권 5년간 현금 퍼주기 정책을 남발하며 국가채무를 415조 원이나 늘린 영향이 크다. 전월세 대란을 불러온 임대차법이나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없앤 최저임금 인상처럼 선의를 내세웠지만 오히려 서민의 삶을 고통스럽게 한 역설적 정책도 지난 정권에서 수차례 경험했다. 그랬던 민주당이 민생을 앞세워 부작용이 우려되는 법안을 또 밀어붙인다면 ‘재정 포퓰리즘’에 기댄 거대 야당의 입법 독주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 2022-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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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정임수]증권범죄 솜방망이 처벌에 기업사냥꾼은 또 ‘먹튀’

    코스닥 상장사인 쎄미시스코 주가가 폭등한 건 지난해 6월부터다. 에디슨모터스가 쌍용자동차 인수자금을 마련하는 창구로 쓰겠다며 이 회사를 사들이면서다. 6000원대를 오가던 주가는 작년 11월 장중 8만2400원까지 치솟았다. 회사 이름도 에디슨EV로 바꿨다. 지난해 초부터 이 회사 지분 38%를 매수한 투자조합 6곳은 주가가 급등하자 지분을 대거 처분했다. 이들 조합은 지분을 쪼개서 매입하는 수법으로 1년간 주식을 팔지 못하도록 한 보호예수 규제와 공시 의무를 모두 피해갔다. 대주주 조합들의 ‘먹튀’ 의혹을 조사한 금융당국과 최근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기업사냥꾼으로 악명 높은 이모 씨가 일련의 과정을 주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씨 일당이 투자조합을 만든 뒤 쌍용차 인수를 주가 조작의 먹잇감으로 삼아 거액의 부당이득을 챙겼다는 것이다. 회계사 출신인 이 씨는 과거에도 무자본으로 기업을 인수한 뒤 허위 공시로 주가를 띄우고 먹튀한 전력이 있다. 시세 조종, 미공개 정보 이용 등 불공정거래 사건에 연루된 것만 최소 7건이라고 한다. 하지만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을 빼고 확정된 처벌은 800만 원 벌금형에 그친다. 더군다나 이 씨는 다른 코스닥 기업의 배임, 부정 거래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도중에 이번 쌍용차 먹튀를 저질렀다. 불공정거래 혐의자에 대한 법적 판단이 나오기 전에 주식 거래 등을 차단하는 장치가 있었다면 이 씨의 기업사냥을 막을 수 있었다는 뜻이다. 미국, 영국, 홍콩 등 선진국은 자본시장 범죄에 대해 형사처벌 외에도 금융당국이 강도 높은 행정제재를 가한다. 금융당국 제재만으로 불공정거래를 한 사람의 금융 거래를 막고 상장사 취업 등을 제한한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부당이득을 전액 몰수할 수 있고 과징금 성격의 민사 제재금도 별도로 부과한다. 지난해 SEC가 부과한 제재금과 환수한 부당이득은 38억5200만 달러(약 5조2000억 원)다. 형사처벌 수위도 높아 72조 원대 다단계 금융사기를 저지른 버나드 메이도프는 150년형을 선고받았다. 이와 달리 한국은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 불공정거래 혐의가 적발돼 법원 판결을 받기까지 평균 2년 이상 걸리는 데다 실형 대신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비중이 40%에 이른다. 부당이득도 대부분 수중에 그대로 남아 몇 년 징역형을 살다가 빼돌린 돈으로 호의호식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불공정거래로 얻은 부당이득에 최대 2배의 과징금을 물리도록 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고, 금융당국의 행정제재를 도입하는 방안도 이제야 추진되고 있다. 이 씨 일당이 먹튀하는 동안 에디슨EV 추격 매수에 나섰던 개미들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쌍용차 인수 무산 이후 에디슨EV는 3월 말부터 주식 거래가 정지됐다. 소액주주 10만여 명이 7000억 원대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산된다. 갈수록 진화하는 자본시장 범죄를 적시에 엄벌하지 못하는 한 투자자들의 불신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부당이득을 모두 몰수하고 투자자 피해를 구제할 제도 등이 동반돼야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 2022-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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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금리에 서민 등골 휘는데 은행 노조 “1억 연봉 적다”[광화문에서/정임수]

    은행 노조들이 속한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이 다음 달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올해 임금·단체협상에서 임금 6.1% 인상 등을 요구하다 결렬되자 19일 조합원 찬반투표를 거쳐 다음 달 16일 모든 은행 업무를 중단하는 총파업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이 계획대로라면 2016년 성과연봉제 도입에 반발해 총파업을 벌인 지 6년 만이 된다. 금융노조는 올해 물가 상승률이 6%를 넘는 데다 은행들이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둔 만큼 사측이 제시한 1.4% 임금 인상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치솟는 물가에 실질임금 감소를 걱정하는 근로자가 많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노조가 요구하는 6.1% 인상은 올해 공무원 임금 인상률(1.4%)은 물론이고 상반기 100인 이상 사업체의 노사 협약 임금 인상률(5.3%)을 크게 웃돈다. 지난해 평균 연봉 1억 원을 넘어선 은행원들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과도한 임금 인상을 요구한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다. 은행들의 역대급 실적이 각고의 노력 끝에 이뤄낸 것인지도 의문이다. 올 상반기 4대 은행이 벌어들인 이자 수익은 15조3300억 원이 넘는다. 작년 상반기보다 21% 급증한 사상 최대 규모다. 특별히 영업을 잘했다기보다는 가계대출이 급증한 가운데 대출 금리가 가파르게 오른 영향이 크다. 지난해 하반기 금융당국이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빚투(빚내서 투자)를 막기 위해 가계대출 총량 규제에 나서자 은행들은 시장금리보다 더 빠르게 대출 금리를 올렸다. 여기에다 한국은행이 고물가에 대응해 기준금리를 잇달아 인상하면서 대출 이자 수익은 더 커졌다. 제조업이나 수출 기업들처럼 위험을 감수하고 비용 절감 등을 통해 실적을 높인 게 아니라 손쉬운 이자 장사로 ‘땅 짚고 헤엄치기’식 영업을 한 결과인 셈이다. 금융노조는 임금 인상과 더불어 1시간 단축된 영업시간을 유지하고 주 36시간(4.5일) 근무도 요구하고 있다. 코로나19 방역 조치로 은행 지점들의 영업시간은 오전 9시 반∼오후 3시 반으로 1시간 줄어든 뒤 여전히 그대로다. 올 4월 사회적 거리 두기가 전면 해제된 뒤 식당 영업시간과 지하철 운행시간 등 대부분이 원상 복구됐지만 은행만 예외다. 노조가 임단협 과정에서 ‘방역 지침이 해제되면 교섭을 통해서만 영업시간 단축을 조정할 수 있다’는 조항을 못 박은 탓이다. 디지털·비대면 금융거래에 익숙지 않은 고령층 등 취약계층의 불편을 외면한 처사라는 비판이 나온다. 일하는 시간은 줄이면서 임금은 대폭 올려달라니 공감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은행들이 고금리 호황을 누리는 동안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와 서민들은 급증하는 이자 부담에 허리가 휘고 있다. 은행권 가계대출 평균 금리는 6월 현재 연 4.23%로 1년 새 1.31%포인트 뛰었다. 당분간 한은이 기준금리를 계속 올릴 예정이어서 빚을 늘려온 서민들의 고통은 쉽게 가시지 않을 듯하다. 고물가·고금리·저성장의 복합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때에 은행 노조의 ‘임금 인상 파업’은 집단 이기주의로 비칠 뿐이다. 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 2022-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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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발 초긴축 태풍… 경험하지 못한 복합위기[광화문에서/정임수]

    지난주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한꺼번에 0.75%포인트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을 28년 만에 단행했다. 이어 다음 달 또 한 차례 자이언트 스텝 가능성을 내비쳤다. 연말까지 기준금리를 현재의 2배인 연 3.4%로 올릴 뜻도 시사했다. 고강도 긴축으로 경기 침체가 우려되는데도 예상보다 강력하고 장기화하는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기 위해 금리 인상에 액셀을 밟겠다는 것이다. 연준의 인상 조치로 미국 금리 상단(1.75%)은 한국 기준금리와 같아졌고, 다음 달엔 금리 역전마저 우려된다. 이렇게 되면 한국에 투자한 외국인 자금이 미국으로 유턴하면서 금융 불안을 증폭시킬 수 있다. 이미 외국인은 올 들어 18조 원이 넘는 국내 주식을 팔아치웠다. 자본 유출로 가뜩이나 1300원에 육박한 원-달러 환율이 더 올라 수입물가를 끌어올리고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는 악순환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이런 파급 구조를 감안하면 다음 달 한국은행이 사상 처음 ‘빅 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벌써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국내 국고채 3년물 금리는 11년 만에 최고로 치솟았고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 고정금리는 13년 만에 7%를 넘어섰다. 주택담보대출 최고 금리가 연내 10%를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실질소득은 줄고 물가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금리가 뛰면 서민 고통은 커질 수밖에 없다. 가계부채는 3월 말 1859조 원으로 세계 주요국 중 유일하게 국내총생산(GDP)을 넘었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빚투(빚내서 투자)족에게 이자 부담은 공포가 되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7%로 오르면 서울에서 중형 아파트를 대출로 사들인 근로자는 월소득의 70%를 빚 갚는 데 써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금리를 올린다고 치솟는 물가를 잡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지금의 고물가는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와 글로벌 공급망 차질 등 외부 요인이 크기 때문이다. 오히려 급격한 금리 인상이 소비와 투자 위축을 불러와 경기를 냉각시킬 방아쇠가 될 수 있다. 자산시장 거품을 꺼뜨려 금융 부실과 집값 폭락 등 예상치 못한 후폭풍을 몰고 올 수도 있다. 이미 기초체력이 약한 신흥국의 위기는 현실화하고 있다. 스리랑카, 파키스탄 등은 국가부도 직전에 몰려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살인적 인플레와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유동성 압박 등으로 디폴트(채무 불이행)에 몰리는 신흥국이 늘고 있다. 2010년 재정 위기를 겪었던 스페인,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도 심상치 않다. 윤석열 정부가 현 상황을 복합위기로 진단하고 ‘경제 위기 태풍’이 몰려올 것으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럴수록 정책당국은 세제 지원, 공급망 관리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물가 안정에 주력해야 한다. 인플레 기대 심리를 자극할 선심성 정책은 피해야 한다. 취약계층의 부담을 덜고 가계부채 연착륙을 유도할 방파제도 필요하다. 여야도 소모적 정쟁을 멈추고 위기 극복에 힘을 보태야 한다. 복합위기를 헤쳐가려면 정부는 물론이고 정치권, 기업, 국민 모두가 긴축 고통을 분담하는 헌신이 필요하다. 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 2022-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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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원전 덤터기 한전 적자, 정공법으로 풀어야 [광화문에서/정임수]

    문재인 정부 5년간 한국전력 주주들은 피눈물을 흘렸다. 문 정부 출범 직전 4만5800원이던 한전 주가는 30일 2만3300원으로 반 토막 났다. 매년 수조 원씩 이익을 내던 초우량 기업이 만성 적자 기업으로 전락한 탓이다. 한전은 국제유가가 하락한 2020년을 빼고 2018년부터 줄곧 적자를 냈다. 지난해 사상 최대인 5조8600억 원의 영업손실을 내더니 올해는 1분기(1∼3월) 만에 이를 뛰어넘는 7조7900억 원 적자다. 한전은 회사채를 찍어 자금난을 메우고 있는데, 벌써 올해 발행액이 15조 원으로 작년 연간 규모(12조 원)를 넘어섰다. 증권가에선 한전 부채비율이 올해 말 300%대로 치솟고 4년 뒤 완전 자본잠식에 빠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예견된 실적 부진’ ‘멀리 볼 때가 아니다’ 같은 암울한 제목의 보고서가 쏟아진 배경이다. 한전이 이 지경이 된 것은 문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 원자재값 급등으로 전력 구입비가 치솟았는데도 전기요금을 거의 올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전은 탈원전 정책에 따라 발전단가가 싼 원전 대신 유가 변동에 취약한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비중을 높였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석유, LNG 등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한전이 발전사에서 사오는 전력도매가격은 181원으로 1년 새 136% 폭등했다. 반면 가정, 공장 등에 판매하는 전기 단가는 110원으로 1년 전과 비슷하다. 전기를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가 된 것이다. 문 정부는 유가가 뛰면 전기료도 오르는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하고도 여론과 선거를 의식해 인상을 미루더니 ‘대선 이후 인상’으로 차기 정부에 공을 넘겼다. 김종갑 전 한전 사장이 “콩값(연료비)이 오를 때 두부값(전기료)을 올리지 않았더니 두부값이 콩값보다 싸졌다”고 지적한 상황이다. 이 같은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는 한전이 전기를 외상으로 사서 공급하도록 규칙을 바꾼 데 이어 발전사에서 사들이는 전력도매가격에 상한선을 두기로 했다. 도매가격을 묶어 한전의 비용 부담을 낮춰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한전의 손실을 민간 사업자를 포함한 발전사들에 떠넘기는 반시장적 편법이라는 지적이 많다. 한전과 발전사의 동반 부실도 우려된다. 이대로 가다간 한전의 올해 적자가 3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한전의 눈덩이 적자는 한전만의 문제가 아니다. 공기업 적자가 쌓이면 국민 세금으로 메울 수밖에 없고, 전력 인프라 투자가 위축되면 국민 삶에도 타격을 준다. 2008년에도 한전이 사상 첫 적자를 내자 6600억 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됐고 이어 6년간 전기료를 42%나 올려야 했다. 이보다 비참한 상황을 맞지 않도록 연료비 상승에 맞춰 전기요금을 정상화하는 게 정공법이다. 전기료 인상은 가뜩이나 불안한 물가를 자극하고 기업 경쟁력에도 부담을 줄 수 있지만 이는 인상 후 세금 감면이나 바우처 지급 등을 통해 소비자 부담을 덜어주는 해외 사례를 참고하면 된다. 전기료 산정 때 ‘원가주의 원칙’을 고려하고, 요금을 결정하는 전기위원회도 독립기구로 만들겠다는 새 정부의 방침이 한전 회생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 2022-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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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정임수]‘3高 위기’ 대처하려면 돈 풀기 공약 걸러내야

    지난해 국회가 법 개정을 통해 늘린 재정 부담이 향후 5년간 73조 원이 넘는다고 한다. 연평균 14조7000억 원에 육박하는 규모다. 지난해 가결된 법률 시행으로 올해부터 2026년까지 재정 지출이 38조 원 이상 늘어나고, 정부 세수는 34조 원 넘게 감소하는 탓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법률 153건을 분석해 이 같은 비용을 추산했다. 이 중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손실보상 등 불가피한 법안도 있지만 영아수당 신설, 출산 부모 200만 원 지급 같은 현금성 지원이 적지 않다. 한번 만들면 줄이기 힘든 복지 정책들이다. 거대 여당이 문재인 정부 막판까지 대선을 겨냥해 나라살림은 아랑곳하지 않고 ‘선심성 입법’을 강행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나랏돈을 써야 할 곳은 늘어나는데 세수는 줄어 재정 건전성은 더 악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그러잖아도 문 정부 들어 나랏빚은 눈덩이처럼 불었다. 확정 국가채무에 공무원과 군인에게 지급할 연금까지 더한 국가부채는 현 정부 들어 763조 원 넘게 급증해 지난해 2196조 원에 이른다. 5년 내내 초대형 적자 예산을 편성한 데다 공무원을 13만 명 가까이 늘리면서 나랏빚이 사상 처음 2000조 원을 넘어선 것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도 2020년(43.8%) 역대 정부가 사수해온 40%를 처음 넘겼고 지난해 47.0%로 치솟았다. 최악의 나라곳간을 넘겨받는 윤석열 정부는 재정 건전성 회복에 주력해야 하지만 그런 의지가 잘 보이지 않는다. 대선 당시 표를 얻기 위해 내놨던 ‘현금 퍼주기’ 공약들은 대부분 국정과제에 담겼다. 자영업자 지원을 위한 30조 원대 추가경정예산을 비롯해 부모급여 100만 원, 병사 월급 200만 원, 기초연금 40만 원 인상 등이 대표적이다. 단계적 추진이라는 꼬리표를 달았지만 매년 수조에서 수십조 원이 들어가는 정책들이다. 국정과제를 모두 이행하려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추산으로도 5년간 209조 원이 필요하다. 당초 추정한 266조 원보다 줄었지만 부동산세 법인세 인하 등 감세 정책을 펼치면서 이만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겠다는 건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의 ‘3고(高)’ 복합위기에 대처해야 한다. 국내 소비자물가(4월 4.8%)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3년 6개월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22년 만에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밟았다. 이는 금융위기와 코로나19 사태로 10년 넘게 지속된 저금리 시대가 끝났다는 뜻이다. 정부와 한국은행의 긴밀한 ‘긴축 공조’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상황이다. 이런데도 공약 완수를 위해 209조 원을 쏟아붓겠다는 것은 인플레이션 위기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될 수 있다. 새 정부가 선심성 돈 풀기 공약들을 손절하지 않고 그대로 추진한다면 문 정부와 마찬가지로 나랏빚을 늘려 미래 세대에 짐을 떠넘긴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은 막 올린 ‘긴축의 시대’에 맞춰 한국 경제가 연착륙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할 때다. 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 2022-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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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정임수]주담대 금리 7% 눈앞 ‘긴축 허리띠’ 졸라매야

    최근 시중은행들이 앞다퉈 대출 빗장을 풀었다. 전세대출 한도를 전셋값의 80%로 올리는 한편 1인당 5000만 원으로 묶었던 마이너스통장 한도를 높였다. 은행마다 ‘억대 마통’이 부활했고 일반 신용대출 한도도 최고 3억 원까지 늘었다. 일부 연소득 제한 규정을 제외하고, 대출 문턱은 지난해 가계대출 총량 규제를 시행하기 이전으로 되돌아갔다. 올 들어 금리 인상과 자산시장 부진이 겹치면서 대출 수요가 줄어들자 은행들이 대출 영업을 강화하고 나선 것이다. 여기에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인 대출 규제 완화 기조도 한몫하고 있다. 윤 당선인은 지역과 집값에 따라 20∼70%인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70%로 단일화하고 실수요자에겐 80%까지 높여주겠다고 약속했다. 대선 이후 기다렸다는 듯 은행들이 대출 완화에 속도를 낸 배경이다. 그동안 집값 상승과 자산 거품을 우려한 금융당국의 전방위 대출 규제에 실수요자들이 적잖은 고통을 받아왔다. 대출이 막혀 내 집 마련 기회를 박탈당하고 은행에서 밀려나 제2금융권을 전전하는 대출 난민이 쏟아졌다. 기업과 서민의 돈줄을 옭아맨 대출 규제를 손보는 건 그런 측면에서 불가피하다. 하지만 규제 완화 움직임이 가계 빚 증가세를 다시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지난해 말 가계와 기업이 짊어진 민간부채는 4540조 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2.2배를 넘어섰다. 가계부채(1862조 원)는 1년 새 7.8% 늘어 2000조 원 돌파를 눈앞에 뒀고, 자영업 대출(909조 원)은 연내 1000조 원을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 특히 2030세대의 가계 빚 468조 원 가운데 3분의 1인 150조 원은 다중채무자가 진 악성부채로 평가된다. 청년들이 대출 완화를 “다시 빚내서 집 사라”는 신호로 받아들일 경우 이를 더 키울 소지가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도 국회에 제출한 서면답변에서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LTV 조정은 실수요자 보호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면서도 “미시적 대출 완화 정책이 확대돼 가계부채 증가 속도에 영향을 주면 물가안정, 금융안정 등에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지난해 8월부터 지난주까지 4차례 단행된 한은 기준금리 인상으로 가계의 이자 부담은 13조 원 이상 늘었다. 미국의 긴축 속도에 맞춰 한은이 연말까지 3, 4차례 금리를 더 올릴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미 6%대 중반으로 치솟은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최고 연 7%대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금리가 더 오르면 경제 전반에 미치는 충격파가 작지 않을 것이다. 새 정부는 이에 대비해 경제정책의 틀을 정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부실 폭탄이 터지기 전에 가계부채 연착륙을 유도하면서 취약계층이 빚의 악순환에 빠지지 않도록 관리에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 대출 완화의 속도를 조절하고 실수요 대출을 풀더라도 부채 위기관리와 상충하지 않는 균형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 아울러 한쪽에선 금리를 올려 돈줄을 조이는데 한쪽에선 50조 원 추가경정예산 등으로 돈 풀기 신호를 보내는 엇박자를 피해야 할 것이다. 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 2022-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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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정임수]지역균형 볼모 된 국책은행 지방 이전

    3·9대선 이후 국책은행 직원들이 좌불안석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추진하는 KDB산업은행의 부산 이전 때문이다. 윤 당선인은 대선 공약이던 산은 본점의 부산 이전을 두고 지난주 “약속했으니 그대로 지키겠다. 지방에 대형 은행이 자리 잡는 게 지역 균형발전에 필수적”이라고 했다. 산은 노조는 반대 시위에 들어갔고 한국수출입은행, IBK기업은행, 예금보험공사 등 서울에 본점을 둔 다른 금융공공기관도 이전 논의가 확산될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산은을 비롯한 국책은행의 지방 이전은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이슈다. 앞서 2020년 총선 때는 여당이, 지난해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땐 야당이 나섰다. 수도권에 집중된 인프라를 분산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취지에서다. 금융권의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해 지방 도시의 젊은층 이탈과 고령화를 막겠다는 기대도 담겨 있다. 비슷한 명분하에 공공기관 153개가 혁신도시 10곳으로 이전했지만 그 효과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당초 목표한 계획인구를 달성한 곳은 2개뿐이다. 지난해 6월 말 현재 가족과 함께 동반 이주한 공공기관 직원은 기혼자 기준 53.7%에 그친다. 균형발전을 위해 조성된 혁신도시가 여전히 주말이면 텅 빈 도시가 되고 있다. 부산 남구 문현동 일대는 2009년 국제금융혁신도시로 지정됐다. 현재 이곳 부산국제금융센터(BIFC)엔 한국거래소,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주택금융공사, 한국예탁결제원 등 금융기관 본사가 입주해 있다. 산은이 부산으로 간다면 BIFC가 유력하다. 하지만 국제금융센터 이름이 무색하게 외국계는 물론이고 국내 민간 금융사를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부산의 금융 위상은 금융기관 이전이 마무리된 2015년보다 떨어졌다. 세계 126개 도시의 금융 경쟁력을 평가하는 국제금융센터지수에서 부산은 2015년 3월 24위에서 올해 3월 30위로 하락했다. 그나마 70위까지 추락했다가 만회한 결과다. 국책은행과 금융공기업 상당수가 지방 혁신도시로 이전하지 않고 서울에 남겨진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금융산업은 인적, 물적 인프라를 한곳에 모으는 집적 효과가 중요하다. 세계 각국이 금융기관을 한데 모아 금융허브 육성에 매달리는 이유다. 국책은행이 지원하고 거래하는 기업을 비롯해 외국계 투자자, 금융사 대부분이 서울에 몰려 있다. 각종 현안을 조율해야 하는 금융당국과 국회도 서울에 있다. 대형 국책은행 하나 옮겨간다고 금융 비즈니스 생태계가 조성되고 지역경제에 돈이 도는 일이 일어나긴 쉽지 않다. 국민 노후자금 935조 원을 굴리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2016년 전북 전주로 이전했지만 금융사 1곳도 따라가지 않은 사실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운용 인력 100여 명이 줄퇴사하고 해외 큰손들이 국민연금을 패싱하는 부작용이 더 크다. 글로벌 금융허브들과 경쟁하려면 관련 인프라를 한곳에 집중해도 힘겨운 판에 정부는 되레 분산하기에 바쁘다. 18년 전 수립한 ‘동북아 금융허브’ 구상이 아직도 계획에 그치는 이유다. “나눠 먹기식 지방 이전이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국책은행 직원들의 주장이 그래서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 2022-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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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0만 몰린 청년희망적금 ‘희망 고문’ 더는 없어야[광화문에서/정임수]

    정부의 엉터리 수요 예측과 가입 자격 논란 등으로 잡음이 이어졌던 ‘청년희망적금’이 4일 신청을 마무리했다. 2주간 290만 명이 가입해 흥행 돌풍이다. 당초 올해 예산 456억 원 내에서 선착순 38만 명이 대상이었다. 하지만 첫날부터 은행 애플리케이션이 먹통 될 정도로 인기를 끌자 부랴부랴 정부는 신청한 청년이 모두 가입하도록 방침을 바꿨다. 가입자가 폭증해 정부 예산도 수천억 원대로 늘게 됐다. 청년층의 자산 형성을 돕기 위해 마련된 이 적금은 은행 기본금리에 정부가 주는 장려금과 비과세 혜택이 더해져 연 최고 10%대 이자를 받을 수 있다. 파격적 금리에도 납입 한도(월 50만 원)가 적어 만기 2년을 채우면 최대 111만 원을 이자로 챙겨 간다. 이 때문에 생색내기용 상품이라는 지적도 나왔지만 막상 출시되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청년들이 이자 111만 원에 열광한 것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빚투(빚내서 투자)를 마다하지 않는 N포세대의 척박한 현실을 보여준다. 특히 2030세대가 기회의 사다리로 삼았던 주식과 코인 시장이 올 들어 급락하자 손실 위험 없이 높은 이자를 주는 희망적금에 거는 기대가 커졌다. 대통령과 국회까지 나서서 예산 증액과 대상 확대 등을 주문했지만 가입 사각지대에 놓인 청년들의 불만을 달래기엔 역부족이다. 희망적금은 지난해 총급여 3600만 원 이하인 만 19∼34세가 가입할 수 있다. 소득이 없는 취업준비생이나 소득 증빙이 힘든 알바생, 프리랜서는 형편이 어려워도 가입이 안 된다. 자산은 고려 기준이 아니라 연봉이 적은 금수저는 가입해도 월급 270만 원 넘는 흙수저는 탈락이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인까지 가입 기회를 줘 청와대 국민청원이 제기됐다. 불공정 논란이 꼬리를 무는 이유다. 유력 대선 후보들도 청년희망적금 확대 버전인 청년 공약을 앞다퉈 내놨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5년간 5000만 원을 모을 수 있는 ‘청년기본적금’을 제시했다. 청년이 매달 65만 원씩 5년간 납입하면 연 10%대 우대금리에 정부 장려금을 합쳐 1100만 원을 얹어주는 식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10년간 목돈 1억 원을 만들 수 있는 ‘청년도약계좌’를 약속했다. 가입자가 매달 70만 원 한도 내에서 저축하면 정부가 소득에 따라 월 10만∼40만 원씩을 보태는 구조다. 열심히 저축하는 청년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적금은 연 100만 원(청년기본소득), 월 50만 원(청년도약보장금)씩 쥐여주는 현금 퍼주기 정책과 다르다. 청년들의 일할 의욕을 높이고 자산을 불릴 디딤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한 살이 많아, 1만 원을 더 벌어 탈락하는 이들 사이에선 형평성 논란이 불가피하다. 7월 이후 희망적금 재개를 검토 중인 금융당국이나 버전2를 준비하는 차기 정부가 보완해야 할 대목이다. 무엇보다 청년의 자산 형성을 돕는 근본 해법은 일자리다. 청년이 바라는 주 40시간 이상 풀타임 일자리는 최근 4년간 209만 개 사라졌다. 차기 정부는 청년들이 자립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와 능력을 펼칠 공정한 기회를 주는 정책으로 승부해야 한다. 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 2022-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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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기업 채용 반 토막, ‘일자리 정부’의 역설[광화문에서/정임수]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취임 사흘 뒤 헬기를 타고 인천국제공항공사를 깜짝 방문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다. 당시 인천공항공사 사장은 즉각 “공사 소속 비정규직 1만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보고했다. 2020년 들어 정부 주도로 이를 밀어붙이자 기존 정규직 직원과 청년들의 집단 반발이 이어졌다. 취업준비생 커뮤니티엔 “채용 문이 더 좁아지는 것 아니냐”는 글이 쏟아졌다. 역차별을 성토한 청년들의 괜한 걱정이 아니었다. 2019년 149명이던 인천공항공사의 정규직 신규 채용은 지난해 70명으로 반 토막 났다. 인천공항공사만이 아니다. 주요 공기업 35곳의 정규직 신규 채용은 최근 2년 새 47% 급감했다. 2019년엔 1만1238명을 뽑았는데 2020년 7631명, 지난해 5917명으로 뚝뚝 떨어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경영 상황이 악화된 영향도 크지만 ‘비정규직 제로’ 정책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아 사실상 채용을 중단한 한국마사회, 강원랜드를 제외하곤 비정규직 제로에 앞장서온 공기업에서 채용 부진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4616명을 자회사 정규직으로 전환한 한국철도공사의 신규 채용은 2019년 3964명에서 지난해 1426명으로 64%나 줄었다. 비정규직 5662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한국전력의 채용도 41% 감소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무더기로, 무리하게 전환하다 보니 조직이 비대해지고 인건비 부담이 늘면서 신규 인력을 뽑을 여력이 줄어든 것이다. 공기업 일자리만 사라진 게 아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지난달 발표를 보면, 국내 제조업 일자리는 최근 5년 새 18만 명가량 줄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전체 임직원 수를 합친 것과 맞먹는 규모다. 같은 기간 미국(49만 명), 일본(34만 명), 독일(25만 명) 등에서 제조업 취업자가 늘어난 것과 딴판이다. 자동차·조선업 구조조정이 직접적 원인이지만 문 정부가 밀어붙인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일률적인 주52시간제, 기업규제 3법 등으로 기업들의 손발이 묶인 것과 무관할 수 없다. 이것이 취임과 동시에 청와대에 일자리 상황판까지 걸어 놓고 ‘일자리 정부’를 자처한 문 정부의 현주소다. 이런데도 대통령일자리수석은 최근 “(코로나19 이전 고용을 100으로 봤을 때) 지금 102%를 달성했다”고 자화자찬했다. 천문학적 일자리 예산으로 ‘관제 알바’를 늘려 고용통계는 분칠했을지 몰라도 사상 최대로 급증한 ‘구직단념자’는 막지 못했다. 일자리가 없어 구직을 포기하고 실업자 집계에도 잡히지 않는 사람이 지난해 63만 명에 육박한다. 고용 참사의 민낯은 정부 주도 일자리 정책의 폐해를 잘 보여준다. 공식 선거운동에 돌입한 대선 후보들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지점이다. 하지만 유력 대선 주자들은 구체적 로드맵도 없이 ‘300만 개 일자리 창출’, ‘100만 디지털 인재 양성’ 같은 지르기식 공약을 내놓고 있다. 기업 족쇄를 푸는 규제 혁파와 고용 유연화를 위한 노동개혁은 나 몰라라 하고 노동계 표 계산에만 매달린다면 제대로 된 일자리는 요원하다.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 2022-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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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정임수]개미투자자 울리는 新코리아 디스카운트

    연초부터 LG에너지솔루션이 국내 자본시장을 뜨겁게 달궜다. 국내외 기관들이 수요예측에서 무려 1경 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주문을 써냈다. 개인투자자 442만 명이 참여한 공모주 청약에선 사상 최대인 114조 원의 증거금이 들어왔다. 청약 전부터 온라인 카페에선 “설 전 재난지원금을 받는 것이니 꼭 해야 한다”는 글이 이어졌다. 국내 1위, 세계 2위 전기차 배터리 업체 상장에 ‘개미’투자자들이 열광한 것이다. 돈 벌 기회를 찾아 개미들이 증시로 몰리지만 이들을 위협하는 지뢰는 도처에 있다. 증시를 뒤흔드는 인플레이션 공포, 긴축 움직임만은 아니다. 대주주에 유리한 ‘쪼개기 상장’, 경영진의 ‘주식 먹튀’ 등이 잇따르고 있어서다. LG에너지솔루션은 LG화학에서 배터리 사업을 떼어내 만든 기업이다. 알짜 사업이 빠져나가면서 LG화학 주가는 지난해 초 100만 원대에서 현재 67만 원대로 추락했고 LG화학에 투자한 개미들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기존 회사의 유망 사업을 분할해 자회사를 설립한 뒤 동시 상장하는 이런 방식(물적분할)은 해외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모기업 대주주는 지배력을 유지하면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지만 소액주주들은 주가 하락의 피해를 고스란히 받기 때문이다. LG화학처럼 배터리 사업을 떼어낸 SK이노베이션과 물적분할을 예고한 CJ ENM, NHN 등도 소액주주의 공분을 사고 있다. 카카오 핵심 계열사인 카카오페이는 상장 한 달 만인 작년 12월 류영준 대표를 포함한 임원 8명이 스톡옵션으로 받은 주식을 대거 처분해 870억 원이 넘는 차익을 올렸다. 그것도 8명이 한꺼번에, 코스피200지수 편입 호재에 맞춰 시간외 거래로 주식을 팔았다. 투자자들은 작전 세력의 ‘먹튀’를 방불케 하는 경영진의 부도덕한 행위에 분노했다. 카카오페이 주가는 고점 대비 거의 반 토막 났고 계열사 주가도 하락했다. 경영진의 스톡옵션 행사가 위법은 아니지만 파장을 무시한 채 차익 챙기기에 급급해 소액주주에게 피해를 끼친 것이다. 또 지난주 코스닥 상장사 신라젠의 상장 폐지가 결정됐다. 다음 달 최종 확정이 남아 있지만 소액주주 17만여 명은 2년째 주식 거래가 중단돼 고통받고 있다. 신라젠은 상장 전 발생한 경영진의 횡령·배임으로 주식 거래가 정지됐는데, 투자자들은 상장 과정에서 이를 걸러내지 못한 것에 항의하고 있다. 오스템임플란트도 회삿돈 2215억 원을 빼돌린 횡령 사건으로 신라젠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오스템 사태는 기업의 엉터리 내부통제 시스템과 회계법인의 허술한 감사, 금융당국의 뒷북 감시가 맞물린 결과다. 한국 기업의 주가가 비슷한 외국 상장사에 비해 저평가받는 것을 ‘코리아 디스카운트’라고 한다. 그동안 북핵 문제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와 대기업 지배구조 문제가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여기에 최근 자본시장의 후진성과 경영진의 모럴 해저드가 더해지는 분위기다. 투자는 개인의 판단과 책임하에 하는 것이지만, 그 바탕엔 투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시장질서가 확립돼야 한다. 기울어진 운동장과 시장의 불투명성으로 개미투자자만 억울한 피해를 당하는 일이 계속된다면 한국 자본시장의 ‘레벨업’은 요원하다. 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 2022-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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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정임수]또 등장한 ‘오천피’ 공약, 불확실성 제거가 정치 역할

    “열 받는다, 울고 싶다.” 요즘 주식 관련 유튜브나 인터넷 카페를 보면 이런 우울한 말들이 넘쳐난다. 지난해 7월 3,305로 사상 최고가를 찍었던 코스피가 3,000 선에 안착하지 못하고 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코스피 상승률은 주요 20개국(G20) 증시 가운데 19위로 꼴찌 수준이다. 2020년 1위에서 곤두박질쳤다. 이 같은 성적에 문재인 대통령은 입을 닫았다. 1년 전 신년사에서 “가장 높은 주가 상승률을 기록했다. 한국 경제의 미래 전망이 밝다”고 자랑한 것과 딴판이다. 대통령이 외면하는 사이 여야 대선 후보들이 한국 증시를 끌어올리겠다며 앞다퉈 공약을 내놓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3일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새해 증시 개장식에도 나란히 참석했다. 대선 후보가 증시 개장식을 찾은 건 처음이다. 이 후보의 공약은 ‘코스피 5,000 달성’으로 요약된다. 이를 위해 주가 조작을 엄벌하고 불법 이익을 환수해 시장의 신뢰도를 높이겠다고 약속했다. 윤 후보는 ‘선진 주식시장’을 만들겠다며 맞불을 놨다. 증권거래세를 완전히 폐지하고 대주주 등 내부자의 무제한 지분 매도를 제한하겠다고 공약했다. 두 사람 모두 1000만 명 넘는 ‘개미 투자자’의 표심을 잡기 위해 개인에게 불리한 제도를 손봐 시장을 띄우겠다고 나선 것이다. 막상 증권가에서는 이들의 공약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지 않다. 대선 때마다 주식 투자자를 겨냥한 후보들의 구애와 주가 달성 공약이 반복된 탓이다. 2007년 대선 때 한나라당 후보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우증권 본사를 방문해 “내년 주가가 3,000을 돌파할 수 있다. 임기 5년 내에 제대로 되면 5,000까지 가는 게 정상”이라고 자신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2012년 대선 후보 시절 “돈이 돌아야 경제가 산다”며 “5년 내 코스피 3,000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삼천피’(코스피 3,000) 시대를 연 건 지난해 1월이다. 2,000에서 3,000이 되는 데 13년 5개월이 걸렸다. 주식시장은 실물경제의 거울이다. 지난해 한국 증시가 용두사미로 끝난 건 국내 주력 업종인 반도체의 업황 둔화 우려, 인플레이션 위기, 글로벌 공급망 마비, 미국의 긴축 움직임에 따른 외국인 자금 이탈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린 결과다. 새해에도 이런 불안 요인이 계속되면서 경제 불확실성은 더 커지고 있다. 미국이 올해 본격적인 금리 인상에 나서면 금융시장에 어떤 파장이 미칠지 가늠하기 힘들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삼천피를 지키는 것조차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런데도 여야 대선 주자들은 경제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위기를 극복할 비전과 해법을 내놓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인플레이션 위기를 가중시킬 ‘돈 풀기’ 선심 공약이나 ‘오천피’(코스피 5,000) 같은 사탕발림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주가는 경제의 결과이지 목표가 될 수 없다. 삼천피를 사천피, 오천피로 끌어올리려면 경제 기초체력을 탄탄히 하고 기업의 족쇄를 걷어내는 게 먼저가 돼야 한다. 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 2022-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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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정임수]나랏빚으로 판돈 키우는 대선 포퓰리즘 경쟁

    25조→50조→100조 원. 여야 대선후보 캠프가 내세운 ‘코로나19 피해 지원금’이 도박판 판돈처럼 ‘묻고 더블로’ 불어난 건 순식간이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25조 원의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꺼내들자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소상공인·자영업자 50조 원 지원으로 맞불을 놨다. 지난주엔 김종인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이 느닷없이 “집권하면 100조 원을 투입하겠다”고 판을 키웠다. 그러자 이 후보는 임시국회에서 추가경정예산(추경)을 처리해 “당장 100조 원을 지원하자”고 한발 더 나갔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생계를 위협받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지원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위중증 환자 급증에 정부가 ‘특단의 조치’까지 언급하는 상황에서 현실적인 보상 없이 자영업의 희생을 더는 강요하기 힘들다. 하지만 피해 실태에 대한 정확한 파악 없이, 무엇보다 뚜렷한 재원 조달 방안도 없이 100조 원을 얘기하는 건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자영업자 표심을 노린 정치적 계산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100조 원은 사상 최대인 내년도 예산(607조 원)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엄청난 액수다. 내년 국방 예산(54조 원)의 2배, 보건·복지·고용 예산(217조 원)의 절반에 이른다. 5000만 국민이 1인당 200만 원씩을 부담해야 마련할 수 있다. 야당은 각 부처 예산을 5∼10% 줄이고 이게 모자라면 국채를 발행하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쥐어짜도 씀씀이가 정해진 부처 예산을 그만큼 줄이는 건 쉽지 않다. ‘예산통’이자 경제부총리를 지낸 김동연 새로운물결 대선후보는 “재정의 1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집행 대상이 결정된 예산을 삭감하면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국민이 생길 수도 있다. 여당은 추경을 요구하지만 내년 초슈퍼 예산이 열흘 전 국회를 통과해 잉크도 채 마르지 않았다. 내년 예산이 1원도 집행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추경이냐는 비판이 나온다. 여기에다 윤 후보 측도 집권당 후보가 대통령과 정부를 설득하면 추경 협의에 나서겠다고 한다. 그동안 여권의 ‘추경 중독’을 비판하더니 이제는 이에 편승하는 모양새다. 100조 원 지원을 실행하려면 남은 선택지는 수십조 원의 국채를 발행해 나랏빚을 늘리는 방법밖에 없다. 2017년 660조 원이던 나랏빚이 5년 만인 내년에 사상 처음 1000조 원을 돌파해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이 된다. 향후 5년간 국가채무 증가 속도가 35개 선진국 중 가장 빠를 거라는 국제통화기금(IMF) 전망도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나랏빚을 판돈 삼은 정치권의 돈 풀기 경쟁에 공감할 국민이 얼마나 될까. 여야가 진심으로 자영업자를 걱정한다면 국회가 통과시켜 10월 첫발을 뗀 소상공인지원법부터 손봐야 한다. 보상액을 현실화하고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가 많았지만 국회는 내년 예산에 고작 2조2000억 원을 반영했다. 이래놓고 100조 원을 지원하겠다는 건 정치적 수사(修辭)로 자영업자를 희망 고문하는 일이다. 국민들은 아니면 말고 식의 선심성 공약 대신 실현 가능한 대책을 원한다. 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 2021-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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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정임수]카드 수수료·통신비까지 정부가 정해주는 나라

    통신비 인하는 선거철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공약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2017년 대선 공약으로 기본료 폐지, 한중일 로밍요금 폐지 등을 담은 통신비 절감 7대 정책을 내놨다. 기본료 폐지가 위헌 논란에 휘말리자 그 대신 보편요금제 도입을 추진했다. 정부가 사실상 적정 요금을 정해주겠다는 것인데,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반발에 부딪혀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번 대선에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먼저 통신비 인하 공약을 꺼내 들었다. ‘휴대폰 안심 데이터’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기본 데이터를 모두 소진한 뒤에도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와 전자결제 서비스 등을 전 국민이 공짜로 쓸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내년 전기통신사업법을 개정하겠다고도 했다. 벌써부터 통신업계에선 “이럴 거면 공기업이던 통신사를 왜 민영화했느냐”는 얘기가 나온다. 금융권에서도 요즘 “이럴 거면 한국카드공사를 만드는 게 차라리 낫겠다”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통신요금과 더불어 지난 20여 년간 선거 때마다 등장한 카드 수수료 인하를 두고서다. 통신비와 다른 게 있다면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는 정부가 적정 수수료를 정하도록 일찌감치 여신전문금융업법에 못 박았다는 점이다. 정부는 3년마다 카드사의 적격비용(원가)을 계산해 가맹점 수수료를 결정한다. 카드사들이 관리비나 마케팅 비용을 아껴 가며 허리띠를 졸라매면 이것이 원가에 반영돼 3년 뒤 수수료 인하로 이어지는 구조다. 원포인트 개편과 3년마다 돌아오는 수수료 재산정으로 카드 수수료율은 2007년 이후 13차례나 인하됐다. 이로 인해 2007년 4.5%였던 카드 수수료율은 현재 최대 2.3%로 반 토막 났다. 또 전체 신용카드 가맹점(294만8000개)의 96%는 우대 수수료(0.8∼1.6%)를 내고 있다. 연매출 3억 원이 안 되는 영세가맹점 223만 곳은 세액공제까지 더하면 카드 수수료로 낸 금액보다 더 많은 돈을 돌려받는 실정이다. 이르면 이달 말 수수료 재산정 발표를 앞둔 당정은 이번에도 추가 인하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생계를 위협받는 자영업자를 위한다는 취지에서다. 방역 과정에서 자영업의 희생과 양보가 컸던 만큼 이들에 대한 보상과 지원은 필요하다. 하지만 카드 수수료 인하로 가맹점에 돌아가는 혜택은 한 달에 몇만 원에 불과하다. 카드사 팔 비틀기로 자영업자의 어려움이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정부가 카드 수수료 상한선을 규제하는 국가는 있지만 모든 가맹점의 수수료를 직접 정해주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민간 통신사의 요금제를 정부가 결정한 사례도 찾아보기 힘들다.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정부가 가격에 직접 개입하는 정책들은 반드시 부작용을 낳기 마련이다. 서민 주거 안정을 명분으로 임대료 인상 폭을 5% 이내로 제한한 임대차법이 전·월세 대란을 불러온 게 대표적이다. 반복된 카드 수수료 인하로 소비자들이 누리던 카드 포인트, 서비스 혜택도 사라졌다.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통신비, 카드 수수료 인하 외에도 또 어떤 반시장적 공약이 등장할지 걱정이다.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 2021-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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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정임수]음식점총량제가 불 지핀 큰 정부 vs 작은 정부

    지난주부터 ‘음식점 총량제’를 놓고 정치권이 시끄럽다. 첫 민생 행보에 나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음식점 허가 총량제를 운영해볼까 하는 생각이 있다”고 언급하면서다. 그는 지난달 27일 서울 관악구의 전통시장을 찾아 “하도 식당을 열었다 망하고 해서 개미지옥 같다”며 “200만∼300만 원 받고 팔 수 있게 할 수 있다”고 했다. 개인택시처럼 음식점 개·폐업 때도 면허를 사고팔게 하면서 전체 음식점 수를 정부가 관리하겠다는 뜻이다. 국민 밥벌이까지 허가를 받아야 하느냐는 비판이 쏟아지자 이 후보는 하루 만에 “국가정책으로 도입해서 공약화하고 시행하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면서도 “고민해볼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당장 대선 공약에 포함되지는 않겠지만 필요하다면 추후 도입 가능한 옵션이라는 여지를 남겨둔 셈이다. 이 후보의 지적처럼 국내 자영업자 비중이 해외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높고 음식업을 비롯한 자영업 전반이 과당 경쟁에 시달리는 게 사실이다. 무작정 자영업에 뛰어들었다가 창업과 폐업을 반복하며 도태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자영업 과잉은 한국 경제의 그늘로 꼽히며 오래전부터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거론돼 왔다. 하지만 고용시장에서 밀려난 구직자나 노후 준비 없이 은퇴한 베이비부머들이 마땅한 선택지가 없어 자영업으로 내몰리는 근본 원인은 외면한 채 음식점 숫자만 통제하겠다는 건 문제가 있어 보인다. 정부의 허가 아래 안전하게 영업하는 환경에선 자영업 스스로 경쟁력을 높이거나 혁신할 기회마저 사라질 수 있다. 자영업 진입을 줄일 근본 해결책은 총량 규제가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는 일임을 이 후보도 알고 있다. 이 후보는 그런데도 “선량한 국가에 의한 선량한 규제는 필요하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선의를 앞세운 정책들이 반드시 선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 사례들을 우리는 수차례 봐왔다. 현 정부에서도 서민 주거 안정을 내세운 임대차 3법이 전세 난민을 쏟아냈고, 최저임금 1만 원을 앞세운 소득주도성장이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없앴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음식점 총량제를 두고 야당 대선 주자들도 일제히 공세에 나섰다. “불필요한 간섭과 통제는 시장 질서를 왜곡하고 경제를 망가뜨릴 뿐이다”(윤석열 전 검찰총장) “영업의 자유를 침해하는 반헌법적 발상이다”(홍준표 의원) “정부의 역할은 막무가내로 규제하고 억압하는 게 아니다”(원희룡 전 제주지사). 한 사안을 놓고 여당 후보는 “국가공동체를 책임지는 공직자의 책임”이라고 했지만 야당 측은 간섭과 억압이라고 본 것이다. 이 후보는 앞서 경기도지사 퇴임 때도 “5000만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나라의 대표 일꾼이 되고자 한다”고 했다. 이번 총량제 이슈뿐 아니라 향후 대선 레이스에서도 ‘내 삶을 책임지는 정부를 원하는가’, ‘내 삶을 간섭하지 않는 정부를 원하는가’는 대선 후보와 공약들을 가늠할 주요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누가 표심을 잡기 위해 선심성 포퓰리즘 공약을 내놓는지, 뜬구름 잡는 정책을 쏟아내는지 가려내는 건 이제 유권자의 몫이다.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 2021-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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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정임수]집값 올려놓고 대출 조이면 전세·대출난민 어디로 가나

    3호 인터넷은행 토스뱅크는 지난주 출범하자마자 대출 영업을 중단할 처지에 놓였다. 금융당국이 올해 신용대출 총량(5000억 원)을 정해줬는데, 출범 나흘 만에 60%를 소진한 것이다. 시중은행 가계대출도 연말로 갈수록 ‘셧다운’(전면 중단)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주요 은행의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은 7일 현재 4.97%로, 금융당국이 제시한 목표치(5∼6%)의 턱밑까지 차올랐다. 이미 목표치를 넘겼거나 한도에 육박한 은행들이 잇달아 대출을 제한하면서 ‘대출난민’이 속출하고 있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계대출이 한국 경제의 최대 리스크로 부상한 만큼 정부가 선제적인 관리에 나서는 건 당연하다. 1800조 원을 돌파한 가계부채는 미국의 긴축 움직임, 국내 기준금리 인상, 글로벌 금융 불안 등과 맞물려 더는 방치할 수 없는 위험이 됐다. 대출을 억제해 집값 상승 등 자산시장 거품을 잡아보겠다는 정부의 계산도 깔려 있다. 하지만 지금의 총량 규제 방식은 대출 수요자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는 ‘묻지 마’식 돈줄 조이기라는 지적이 많다.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한 대출자들이 찾는 저축은행, 상호금융, 카드사 등 제2금융권도 당국의 압박에 대출 축소에 나섰다. 대부업체도 법정 최고금리 인하로 대출을 조이고 있다. 여기서도 돈을 구하지 못한 취약계층은 고금리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대출 총량은 잡힐지 몰라도 대출의 질은 더 악화되는 셈이다. 당국이 올해 5∼6%, 내년 4%로 정한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가 무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2년 이후 대출 증가율이 6%를 밑돌았던 적은 2004, 2012, 2018, 2019년 네 번뿐이다. 여전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가 한창인데 전 금융권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로 대출을 틀어막는 게 올바른 해법인지도 의문이다. 생활고에 시달리며 대출에 의존했던 자영업자와 서민들은 궁지에 몰리고 있다. 가계빚 급증의 주된 원인은 저금리와 집값 급등이다. 주택 공급은 외면한 채 징벌적 수준의 세금을 물리는 규제 일변도의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부추긴 책임은 정부에 있다. 정부의 정책 실패로 집값과 전셋값이 치솟고 이에 비례해 대출 총량이 늘어나는 구조가 만들어졌는데, 그 책임을 대출자들에게 떠넘긴다는 원성이 쏟아지는 이유다. 인터넷 카페 등에는 “정부가 집값은 안 잡고 ‘대출 사다리’마저 걷어차느냐” “집값 급등으로 ‘벼락거지’ 만들더니 전세대출마저 막혀 월세로 나앉게 생겼다”는 불만이 잇따르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달 중순 전세대출 규제를 포함한 가계부채 추가 대책을 발표한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이 잡히지 않는 한 대출 수요는 줄어들기 힘들다. 집값 안정을 위해서는 대출 규제뿐 아니라 재건축·재개발 활성화와 양도소득세 한시적 인하를 통한 공급 확대 등 입체적인 정책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무차별적인 대출 총량 관리보다는 주거비 부담이 급증한 무주택자와 긴급 생활자금이 필요한 서민, 자영업자 등을 배려하는 정교한 ‘핀셋 대책’을 내놔야 할 것이다.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 2021-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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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정임수]‘유동성 파티’ 끝내자는데 선거 앞둔 재정중독 여전

    통화당국과 금융당국이 코로나 팬데믹 이후 이어진 ‘유동성 파티’의 흥을 깨는 악역을 자처하고 나섰다. 한국은행은 지난주 기준금리를 0.7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지난해 5월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내린 이후 15개월 만이다. 통상 미국 일본 유럽 등 주요국이 먼저 금리를 조정하면 뒤따라가곤 했는데 이번엔 이례적으로 앞장섰다. 그만큼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과 위험 수위에 도달한 가계 빚, 가중되는 인플레이션 압력 등을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현 정부가 출범한 2017년 2분기(4∼6월) 1387조 원이던 가계부채는 4년 만에 30% 급증해 1805조 원을 넘어섰다. 이 중 절반 이상이 집값 급등에 따라 늘어난 주택담보대출이다.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KB국민은행 기준)는 2017년 5월 6억708만 원에서 이달 11억7734만 원으로 94% 뛰었다. 금융당국도 금융권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며 가계 빚 잡기에 나섰다. 그 결과 일부 은행이 주택담보·전세대출을 일시 중단하고 시중은행이 일제히 신용대출 한도를 연소득 이내로 제한하는 등 대출 중단 도미노가 확산되고 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가계부채 관리에 가능한 모든 정책역량을 동원하겠다”며 더 강한 규제를 예고했다. 과잉 유동성이 낳은 자산시장 거품 등 부작용은 선제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집값 급등과 이에 따른 빚 급증은 정부의 부동산 실정(失政) 탓이 큰데 이를 잡겠다고 금리를 인상하고 대출을 억제하는 건 서민들의 고통으로 이어진다는 비판이 많다. 소상공인들과 중소기업계가 “취약계층의 고통이 장기화되고 있다”며 “추가 금리 인상에 신중해달라”고 호소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가을 이사철을 앞두고 자금 조달에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한 실수요자들의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대출 한도 축소 조치를 철회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한은과 금융당국은 돈줄 조이기로 합을 맞추고 있는데 재정을 책임진 정부는 여전히 돈 풀기를 고수하며 불협화음을 내고 있는 것도 문제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금리 인상으로 어려움이 커질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건 재정의 당연한 역할이다. 그렇다고 재정 형편은 무시한 채 나랏빚을 끌어다가 소비 여력이 충분한 이들에게까지 무차별 현금 살포에 나서는 건 무책임하다. 정부는 당장 추석 전에 국민 88%를 대상으로 재난지원금 11조 원을 푼다. 내년엔 604조 원 넘는 초슈퍼 예산도 편성한다. 여기엔 청년층을 위한 월세 및 교통비 지원부터 반값 등록금 확대, 장병들의 사회 복귀 준비금까지 20조 원 규모의 현금 지원성 사업이 담겼다. 정부가 2030세대 표심을 잡기 위해 선심성 현금 살포에 나섰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의 돈 풀기 압박은 더 커질 수 있다. 과잉 유동성을 줄여야 할 때 정부의 무차별 돈 풀기가 계속되면 자산 거품과 물가를 잡기 위한 통화·금융당국의 노력은 물거품이 될 수 있다. 표심을 겨냥한 ‘재정 포퓰리즘’에 제동을 걸어야 할 때다. 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 2021-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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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정임수]현실성도, 디테일도 없는 與 대선주자 부동산 공약

    ‘반값 아파트’의 원조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다. 그는 1992년 통일국민당 대선 후보로 나서 경부고속도로 2층 건설과 함께 반값 아파트 공급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당시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논란을 빚었던 반값 아파트는 이제 선거철마다 등장하는 30년 묵은 단골 메뉴가 됐다. 이번에도 여당 대선주자들이 파격적인 부동산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부동산 문제는 유권자들이 가장 관심을 두는 현안일 뿐 아니라 지난 재·보궐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그렇다면 지금과 다른 방향의 공약을 내놓는 게 상식이지만 여당 주자들은 오히려 반(反)시장적 기조를 강화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정부미(米)처럼 정부가 주택을 사들였다 팔았다 하면서 집값을 조절하겠다는 주택관리매입공사 설립이나 일정 규모 이상의 택지를 소유할 수 없도록 하는 토지공개념 3법이 대표적이다. 최근 발표된 주택공급 공약도 다르지 않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기본주택 100만 채를 포함해 임기 내 주택 250만 채를 공급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역세권 등 좋은 위치에 무주택자들이 건설원가 수준의 저렴한 임대료로 30년 이상 살 수 있는 공공주택을 짓는 게 기본주택이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을 이전하고 그 자리에 3만 채 규모의 스마트시티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50년 모기지와 20∼30년 장기전세 등으로 청년·신혼부부와 40대 무주택자를 위한 아파트도 짓겠다고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공공임대 100만 채와 반값 이하 공공분양 아파트 30만 채 공급을 약속했다. 여권 주자 모두 엄청난 규모의 주택 공급을 강조하면서 공공 부문의 역할은 현 정부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강화한 셈이다. 하지만 공약 실현을 위한 막대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부지는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대해선 입을 닫고 있다. 이재명표 기본주택은 이 지사 말대로 채당 건설비를 3억 원으로만 잡아도 300조 원이 든다. 임기 내 250만 채 공급도 허황된 계획이라는 평가가 많다. 노태우 정부도 분당 일산 평촌 등 1기 수도권 신도시를 지어 집값을 안정시켰지만 대선 공약인 200만 채 공급은 채우지 못했다. 서울공항을 활용한다는 구상도 군사·안보 문제가 얽혀 있어 쉽지 않다. 2000년대 초반부터 수도권 가용택지 확보를 위해 공항 이전 방안이 꾸준히 거론됐지만 국방부 반대와 이전 비용 등의 문제로 번번이 무산됐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 8·4대책에서 발표한 13만 채 공급조차 1년째 헛돌고 있는 게 현실이다. 태릉골프장과 정부과천청사 개발은 지자체와 주민 반발에 제동이 걸렸고 민간을 배제한 공공재건축은 목표치의 고작 3%만 진전됐다. 공공 개입 강도를 더 높인 올 2·4공급대책은 첫걸음도 떼지 못했다. 여당 대선주자들이 이런 현실을 외면한 채 현 정부가 고집한 ‘공공 만능주의’ 정책을 답습한다면 주택시장 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제 아무리 파격적인 주택공급 방안이라도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면 국민을 기만하는 공약(空約)일 뿐이다. 누가 뜬구름 잡는 대책을 내놓는지 가려내는 건 이제 유권자의 몫이다.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 2021-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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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정임수]2030 청년들이 바라는 건 현금 살포 통장이 아니다

    지난해 7월 집권 후반기 역점 사업으로 ‘한국판 뉴딜’을 꺼내들었던 문재인 대통령이 1년 만에 ‘2.0 버전’을 내놨다. 2025년까지 220조 원을 들여 일자리 250만 개를 만드는 게 큰 틀이다. 1.0 버전보다 사업비는 60조 원, 일자리 목표는 60만 개가 늘었다. 정부가 주요 정책을 손질하고 보완하는 건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1.0 버전의 구체적인 성과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게다가 현 정권의 임기가 10개월도 안 남은 시점에 사업 규모를 더 늘린 4년짜리 정책을 남발하는 건 적절치 않아 보인다. 문 대통령은 지난주 2.0 계획을 발표하면서 “우리의 선택이 옳았다. 한국판 뉴딜은 대한민국 대전환의 문을 열었다. 국민들도 일상 속에서 한국판 뉴딜을 체감하기 시작했다”고 자평했다. 한국판 뉴딜의 실체가 무엇인지, 1년간의 성과가 어땠는지 아는 국민이 몇이나 될지 의문이다. 대통령은 “한국판 뉴딜은 대한민국 미래 전략”이라고 했지만 정작 중요한 220조 원의 재원 조달 계획은 없다. 1.0 버전 때도 2025년까지 20조7000억 원의 민간 투자를 유치하겠다고 했지만 기업의 투자 소식은 여전히 들리지 않는다. 세금과 나랏빚에 의존하는 ‘재정 블랙홀’이 될 게 뻔한데도 정부는 대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2.0 버전의 세부 계획을 보면 기존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 두 축에 ‘휴먼 뉴딜’을 새로 집어넣었다. 이름은 거창하지만, 휴먼 뉴딜에는 1.0에 있던 고용·사회 안전망 확충 사업들을 포장만 바꿔 끼워넣었다. 더불어 19∼34세 청년들에게 8조 원의 예산을 투입하는 청년 정책이 추가됐다. 구체적으로 연 소득 2200만 원 이하인 청년이 매달 10만 원 저축하면 정부가 최대 30만 원을 추가로 주는 통장이 도입된다. 연봉 3600만 원 이하 청년에게 이자를 최대 4%포인트 더 주는 적금, 군 장병이 저축하면 정부가 3분의 1을 더 얹어주는 적금도 생긴다. 청년 전용 보증부월세대출, 학자금대출 확대 등도 포함됐다. 20, 30대의 자산을 세금으로 불려주는 현금 지원용 대책이 대거 담긴 것이다. 내 집 마련의 꿈을 잃고 취업난에 힘들어하는 청년층의 불만을 수십, 수백만 원을 안겨주는 일회성 지원으로 달래려는 건 기만이다. 청년들은 이 돈도 나중에 자기 세대가 갚아야 할 빚임을 알고 있다. 이런 현금 살포 정책은 정부가 선의를 내세워도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현 정권에 등 돌린 청년층의 환심을 사려는 의도가 있다는 오해를 사기 십상이다. 표심을 얻기 위해 여당이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도 모자라 이번엔 휴먼 뉴딜 명목으로 청년들에게 현금을 뿌린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청년들이 원하는 건 푼돈을 얹어주는 적금 통장이 아니라 꼬박꼬박 월급을 주는 질 좋은 일자리다. 손에 잡히는 규제 완화를 통해 기업들이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게 정부가 할 일이다. 부동산 실정(失政)을 바로잡아 집값을 안정시키고,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유연한 노동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진짜 청년들을 위하는 길이다.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 2021-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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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정임수]깜깜이·기습 상폐에 난장판 된 코인판

    최근 가상화폐 거래소의 ‘잡(雜)코인’ 퇴출이 줄을 잇고 있다. 거래대금 1, 2위 거래소들이 이달 들어 상장 폐지했거나 예정인 코인만 약 40개.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을 받고 거래 규모도 꽤 되는 한 거래소는 하루 새 무려 145개 코인을 상장 폐지했다. 거래소들이 코인 구조조정에 나선 건 3개월 후면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에 따른 신고 의무화 제도가 시행되기 때문이다. 9월 24일까지 은행에서 고객의 실명계좌를 발급받는 등 신고 요건을 갖추지 못하면 영업을 할 수 없다. 주요 거래소들이 신고 과정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부실 코인을 선제적으로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불량 코인 퇴출은 시장의 건전성을 높이고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정화 작업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투자자 피해가 적잖게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거래소 대부분이 상폐 기준이나 이유를 제대로 밝히지 않아 투자자들은 ‘깜깜이 상폐’에 노출돼 있다. 늦은 밤 기습적으로 상폐나 투자 유의 종목 지정을 알리는 곳도 수두룩하다. 심지어 상폐 예정 시간을 불과 3시간 앞두고 돌연 계획을 철회한 곳도 있다. 은행 실명 계좌를 발급받지 못했지만 거래 규모 3위인 코인빗은 코인 8개의 상폐를 공지했다가 23일 일정 연기를 알렸다. 상폐 결정 때도, 연기 때도 뚜렷한 사유는 밝히지 않았다. 상폐가 결정된 코인 시세가 급락하는 것과 더불어 급등하는 기현상도 속출하고 있다. 이른바 ‘상폐빔’이다. 작전 세력이 상폐 직전에 인위적으로 시세를 올리는 경우가 있는데 단기 차익을 노린 투자자들까지 불나방처럼 가세하면서 가격이 치솟는 것이다. 투자자들은 “거래소들이 수수료 수입을 올리기 위해 마구잡이로 코인을 상장시켜 놓고 이제 와서 일방적으로 거래를 중단시킨다”며 원성을 쏟아내고 있다. 실제로 미국 일본 등 해외 거래소에는 많게는 50여 개, 적게는 5개 코인만 상장된 것과 달리 국내 거래소엔 180개 안팎의 코인이 상장돼 있다. 전문가들도 문제가 되는 코인들을 애초부터 상장시키지 말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거래소들은 지금도 구체적인 상장 기준과 절차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금융당국도 ‘주먹구구식 상장’부터 ‘무더기 상폐’에 손놓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거래소가 자체 발행한 코인을 취급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의 특금법 시행령 개정안이 마련됐지만 여전히 상장이나 공시 관련 규정은 빠져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도 최근 국회에서 “(당국이) 상장 폐지, 거래 정지까지 어떻게 할 수 없어 안타깝다”고만 했다. 글로벌 가상화폐 시가총액은 5월 12일 역대 최고점인 2880조 원에서 현재 1570조 원으로 쪼그라들었다. 1300조 원 이상이 사라진 셈이다. 각국의 코인 규제와 단속도 강화되고 있다. 시장이 출렁일수록 투자 광풍이 거셌던 국내 시장에서 부작용이 더 커질 수 있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주식시장처럼 코인 상장 및 상폐 규정을 제도화해 혼란을 줄여야 한다. 코인 가격 급락을 저가 매수의 기회로 삼는 불나방 같은 투자자에게 경고도 계속 줘야 한다. 그래야 코인시장이 건전한 자정 작용을 거쳐 연착륙할 수 있다. 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 2021-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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