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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해양대기청(NOAA) 소속 생태계 모니터링 연구자 자격으로 5개월간 남극에서 생활한 젊은 생물학자가 생태 관찰기를 풀어낸 에세이다. 저자는 남극 대륙 리빙스턴섬 시레프곶에 첫발을 내디뎠던 순간을 회고하며 “내가 가는 이 길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어린 시절 미국, 스페인, 멕시코, 칠레, 아르헨티나, 남아프리카공화국, 이집트를 옮겨 다니며 산 저자는 어디서든 ‘외국인’으로 여겨졌다. 눈 덮인 남극 대륙에서 턱끈펭귄, 전투펭귄, 남극물개와 첫 대면을 했을 때도 그는 익숙한 ‘낯섦’의 거리감을 마주했다. 하지만 저자는 얼마 안 돼 탐험과 연구 대상이던 남극이 더 이상 펭귄이나 물개의 터가 아닌 자신이 사는 ‘세상’ 그 자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관찰 대상에 불과했던 펭귄과 교감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는 위치 추적기를 부착한 펭귄 중 두 마리가 시레프곶에서 80km쯤 떨어진 킹조지섬을 빙 돌아서 이동 중이며, 또 다른 두 마리는 대서양으로 곧장 나아가 150km 넘게 이동한 사실을 파악하곤 “아이를 처음 대학에 보낸 부모들과 비슷한 심정”이었다고 고백한다. 또 펭귄의 식생활 표본을 얻기 위해 펭귄 식도에 호스를 밀어 넣어 모든 걸 게워 내게 만든 뒤 정든 펭귄을 학대했단 생각에 괴로워한다. 세밀한 관찰기를 따라가다 보면 눈앞에 남극 풍경과 수많은 펭귄 떼의 모습이 펼쳐지는 듯하다. 기후변화가 남극 생태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는 저자의 삶을 통해 인간이 저지른 환경 파괴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한 여자아이가 벤치에 앉아 투덜댄다. “마음에 드는 옷인데 찢어져 버렸네.” 그러다 맞은편 잔디밭에 앉은 까마귀를 보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까마귀는 따분해 보여. 모두 똑같이 까만색이라.” 까마귀는 여자아이를 비웃으며 말한다. “그게 뭐 어때서.” 깜깜한 밤엔 모두가 새까맣게 보일 뿐이고, 어둠 속 사방에 울려 퍼지는 자신의 노랫소리가 아름답기 때문에 상관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거북이라면 따분할지도 모르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거북이 역시 “그게 뭐 어때서”라고 되묻는다. 자신은 급하게 해야 할 일이 없기 때문에 느린 것이 상관없다고 한다. 되레 느긋한 기분이 주는 좋은 감정에 대해 자랑한다. 그러면서 거북이는 “해가 들지 않는 땅속에 사는 두더지가 가엽다”고 말한다. 동물들은 릴레이 식으로 누군가를 불쌍하고 가엽다 말하지만, 지목받은 이들은 하나같이 이를 부정하며 자신의 존재를 당당하게 인정한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당찬 동물들을 통해 자신감과 자존감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장애 예술인들의 꿈과 염원이었던 전용 공연장이 만들어졌다. 장애인들은 극장을 찾기 전 극장 편의시설 여부부터 검색한다. 늦게나마 불편함이 없어진 문화 예술 공간이 생겨났다는 점에서 기쁘다.”(김형희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이사장) 국내 첫 장애예술 공연장인 ‘모두예술극장’이 24일 개관한다. 서울 서대문구 구세군빌딩 아트홀 1∼3층을 장애예술인 전용 공연장으로 전면 개·보수한 모두예술극장은 가변형 공연장이다. 250석 규모의 극장은 객석 구조 및 무대 등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고, 좌석별로 점자 좌석번호가 마련돼 있다. 무대와 일반 객석 사이에는 휠체어 전용석도 있다. 공연별 자막, 음성 해설 지원도 가능하다. 공연장과 연습실 등 주요 시설의 각 층 바닥은 높낮이 차이를 없앴다. 가파르지 않은 경사로를 설치해 장애인들이 수월하게 이동하도록 했다. 공연장 내 설치된 핸드레일 길이는 300m에 달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장애인의 창작 활동과 편안한 관람을 위해 80억 원을 들여 모두예술극장을 지었다. 오세형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공연장추진단 TF 단장은 “무장애 시설을 목표로 한 극장 내 다양한 공간을 마련했고, 접근성 매니저 직원이 상주한다”며 “도움이 필요한 장애인이 사전 예약을 하면 인근 충정로역 등 도착 지점으로 나가 안내한다”고 말했다. 분장실과 연습실, 라운지에는 장애인 화장실, 샤워 시설, 탈의실이 마련돼 있다. 1층 분장실에서 2층 무대로 연결되는 별도 엘리베이터가 있어 장애인 배우들이 이동하는 데 제약이 없다. 개관을 닷새 앞둔 19일, 모두예술극장에선 2022년 국제 입센상을 수상한 호주 지적장애인 예술극단 백투더시어터의 연극 ‘사냥꾼의 먹이가 된 그림자’의 연습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사냥꾼…’에는 세라 메인워링, 스콧 프라이스, 사이먼 래허티까지 배우 3명이 출연해 장애인 인권 및 젠더 문제를 비롯해 인공지능(AI)이 보편화된 세상에서 인간을 압도할 AI 앞에서 모든 인간은 지적장애자가 될 수 있다는 경고를 다룬다. 무대 전면과 양옆에 설치된 3개의 스크린에서 영어와 한글 자막이 흘러나와 청각장애인도 관람할 수 있다. 개관 전 시범운영 차원에서 19일부터 선보인 이 공연은 22일까지 무료로 공연됐다. 모두예술극장의 개관 프로그램은 내년 3월까지 짜여 있다. 무용, 연극, 다원예술 등 다양한 장르의 국내외 작품 총 9개를 선보인다. 다음 달 15일부터 19일까지 극단 ‘북새통’의 연극 ‘똑,똑,똑’이 공연된다. 발달 장애아동과 청소년을 위해 제작한 감각 친화 공연이다. 다음 달 24∼26일에는 한국과 프랑스가 공동 창작한 다원예술작품인 ‘제자리’가 무대에 오른다. 시각 장애인들이 경험하는 세계를 주제로 한 다원 예술 ‘어둠 속에, 풍경’도 12월 15, 16일 공연된다. 12월 22∼25일에는 뮤지컬 ‘푸른 나무의 숲’, 내년 3월 1∼3일에는 프랑스 장애 예술인 극단 ‘카탈리즈’의 연극 ‘걸리버, 마지막 여행’이 관객과 만난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수집품을 가져와서 친구들에게 보여주세요!” 로렌스는 선생님이 내준 과제 때문에 속상하다. 특별한 수집품이 없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와 아빠에게 고민을 털어놓자 아빠는 로렌스를 데리고 숲으로 나선다. 갑자기 폭풍우가 내리치고 로렌스는 있는 힘껏 아빠를 따라 달렸지만 길을 잃고 만다. 결국 숲속 빈터에 홀로 남는다. 높게 솟은 나무를 발견한 로렌스는 먼저 인사를 건넨다. 그러자 나뭇가지가 흔들리더니 작은 단풍잎이 나풀나풀 떨어진다. 얼마 안 돼 아빠와 재회한 로렌스는 울창한 숲에서 떡갈나무, 자작나무 등 다양한 나뭇잎을 주워 모은다. 다음 날, 로렌스는 친구들에게 숲에 다녀온 이야기를 들려주며 나뭇잎을 선물로 나눠준다. 로렌스는 자신만의 특별한 수집품을 갖게 된 과정을 통해 어려움 속에서도 자기의 길을 찾는 방법에 대해 깨닫게 된다. 따뜻한 색감의 삽화가 가을 숲의 화려한 풍경과 로렌스의 감정 변화를 섬세하게 담아냈다. 삽화는 올해 콜더컷상 대상을 받은 그림책 작가 더그 살라티가 그렸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올해 8월 ‘2023 대한민국 공공디자인대상’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경사형 엘리베이터’는 경사도 50도 이상의 급경사 지대에 설치돼 노인, 장애인 등 교통약자와 주민의 보행 환경을 크게 개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깔끔하고 독특한 외관 디자인 역시 도시 경관을 잘 살려 호평을 받고 있다. 공공성과 아름다움을 함께 살린 공공디자인의 저변 확대를 위한 ‘공공디자인 페스티벌 2023’이 20일부터 29일까지 부산을 비롯해 전국 165곳에서 열린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주관한다. 장동광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장은 “공공디자인의 확산과 발전을 위해 서울을 벗어나 부산에서 축제를 개최한다”며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측면도 있다”고 밝혔다. 장 원장은 “우리 사회의 크고 작은 과제를 해결해 온 공공디자인의 다양한 사례들을 공유할 예정”이라며 “일상에서 공공디자인을 경험하고, 공공디자인의 가치를 되새겨 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올해 2회를 맞은 페스티벌의 개막식과 주제 전시는 부산 수영구 ‘F1963’에서 진행된다. F1963은 1963년부터 2008년까지 고려제강 와이어 생산 공장으로 사용되다 2016년 부산비엔날레 전시장으로 활용되며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 주제 전시 ‘모두를 위한 디자인: 우리가 꿈꾸는 보통의 일상’은 집과 동네, 학교, 일터, 쇼핑몰, 대중교통 등 일상 공간을 6개 섹션으로 나눠 각 공간에서 접할 수 있는 공공디자인을 선보인다. 지하철 환승 안내 유도선, 시각장애인용 점자가 표기된 컵라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어린이보호구역 내 횡단보도와 맞닿은 보도에 설치하는 삼각뿔 형태의 교통시설물 ‘옐로 카펫’이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부산시민공원, 국립해양박물관 등 부산 공공디자인 특구 40곳에서 다양한 전시와 공연 등 부대 행사를 연다. 부산을 비롯해 전국 165곳의 공공디자인 거점 지역에선 전시와 토론회, 학술대회, 체험행사가 열린다. 점자 패널과 한글 양각 패널, 촉각 테이블에서 손끝으로 25점의 전시물 모형을 느낄 수 있는 인천 국립세계문자박물관,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이 편하게 이동할 수 있게 문턱, 단차를 최소화해 바닥을 설계한 국립해양박물관이 이번 페스티벌의 대표적인 공공디자인 거점지다.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 RTO에선 21일 한국공공디자인학회 학술대회가, 28일 한국건축가협회 학술대회가 각각 열린다. 공공디자인 공모전 시상식은 27일 서울 성동구 언더스탠드에비뉴에서 진행될 예정이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차들로 꽉 막힌 도로 한가운데서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린다. 구급차에는 생명이 위독한 환자가 분초를 다투며 병원을 향하고 있다. 운전자들은 환자를 이송하는 구급차를 위해 길을 터주며 도로 위 ‘모세의 기적’을 연출한다. 누군가를 위해 양보한 1초가 생명을 살릴 1초가 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을 갖고 말이다. 이를 악용하다 적발된 연예인들이 최근 비판의 대상이 됐다. 그룹 god 출신 가수 김태우는 2018년 3월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에서 사설 구급차를 타고 서울 성동구 행사장까지 이동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됐다. 김태우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약식기소돼 벌금 500만 원이 확정됐다. 김태우는 “변명의 여지 없이 제 잘못임을 인정하며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공식 사과했다. 당시 김태우 소속사 측이 사설 구급차 기사에게 지불한 금액은 30만 원이었다. 이전에도 사설 구급차를 이용하다 적발된 연예인들은 심심찮게 있었다. 2021년 10월 유명 포크그룹 가수는 충북 청주에서 경기 남양주 공연장까지 구급차를 타고 이동해 구설에 올랐다. 2013년에는 개그우먼 강유미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구급차 내부 인증샷과 함께 “부산 공연에 늦어 구급차라는걸 처음 타고 이동하는 중…. 살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일…”이라는 글을 올려 비판을 받았다. 2018년 울산의 한 사설 구급차 업체가 모 연예인을 공항, 행사장으로 데려다줬다가 처벌을 받기도 했다. 구급차는 어쩌다 연예인들의 ‘총알택시’가 됐을까. 행사 한 건당 적게는 수백만 원, 많게는 수천만 원을 받는 유명 연예인들에게 시간은 곧 돈이다. 그들이 구급차를 악용해 교통 체증을 뚫으려는 이유다. 3년 전 방송인 김구라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 한 공연 기획 에이전시 관계자가 밝힌 연예인의 건당 행사비는 트로트 가수 송가인이 3500만 원, 임영웅 영탁 김호중 장민호 2000만 원, 걸그룹 마마무는 5000만 원 선이었다. 이들 정도의 인기가 있는 연예인들이라면 당시 비슷한 가격대의 행사비가 책정됐을 테고, 3년이 지난 지금은 더 올랐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 보니 일부 소속사들은 수익을 위해 이동거리와 시간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스케줄을 잡기 일쑤다. ‘걸리지만 않는다면’이란 안일함에 구급차에 탑승한 연예인과, 수익에 눈멀어 불법 영업을 자행한 사설 구급차 업체로 인해 사설 구급차 이용 논란은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연예계 단골 뉴스가 되고 말았다. 유명인에 대한 뉴스란 늘 그렇듯, 파급력이 크다. 관련 기사에 “앞으론 사설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를 들으면 ‘연예인이 불법 이용하는 게 아닐까’란 의심부터 들것 같다”, “(길을) 양보한 사람을 바보로 만들었다”는 댓글이 심심찮게 보인다. 구급차를 탄 연예인들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 벌금 500만 원 무게의 범법 행위 그 이상이란 사실을 알고 있을까. 그들은 사람의 목숨이 달린 사회적 합의에 균열을 일으켰다. 이들에게 지급하는 고가 행사비를 책정하는 기준은 ‘대중의 인기’다. 자신들의 몸값을 올려준 대중의 목숨을 볼모로 더 이상 기만 행위를 벌여선 안 된다. 김정은 문화부 차장 kimje@donga.com}
티네는 리디아의 단짝 친구지만, 거침없는 성격 탓에 때론 리디아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리디아가 엄마랑 놀이공원에 간다는 말을 들은 티네가 리디아의 엄마를 찾아가 “저도 같이 가면 안 되나요?”라고 대뜸 조르는 식이다. 엄마와 단둘이 놀이공원에 가고 싶었던 리디아는 티네와 함께해야 하는 상황이 불편하다. 리디아는 이웃 집 할아버지를 만나러 간다. 할아버지는 리디아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평소 리디아가 타고 싶어 하던 말 ‘한니발’을 끌고 온다. “꼬마 아가씨, 넌 할 수 있어”라고 격려하며 리디아가 한니발을 안전하게 탈 수 있도록 이끈다. 한니발 타기에 성공한 리디아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마음이 생긴다. 곧장 엄마를 찾아가 솔직한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티네에게도 사실대로 말하겠다고 다짐한다. 속내를 말하지 못하는 성격 탓에 친구에게 휘둘리곤 하는 리디아가 싫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 과정을 통해 관계의 균형을 위해선 때론 적절한 거절도 필요하단 사실을 깨닫게 한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부모가 되고 아이를 키우면서 ‘인생 2회차’를 산다는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동요 가사를 수십 년 만에 떠올리며 열창하고, 일상생활에서 별생각 없이 쓰던 한글의 창제 원리를 새삼 분석하며 아이에게 글자를 가르칠 때 등 말이다. 그럴 때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유아 시절로 돌아가 한동안 잊고 있었던 것들을 다시금 반복 학습하는 느낌을 받는다. 시대를 불문하고 사랑받는 고전의 힘은 아이들의 세계에서도 유효하다. 한때 아이가 매일 밤 잠들기 전 단골로 찾던 책은 다름 아닌 ‘이솝 이야기’ 시리즈와 ‘안데르센 동화’였다. 어른이 된 이 시점에 다시 접한 동화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1805∼1875)의 작품과 이솝 이야기는 그 나름의 교훈을 통해 다양한 생각을 곱씹어볼 수 있는 매력이 상당하다. 명작이란 수식어가 괜히 붙는 게 아니다 싶다. 그중 대표적인 작품이 안데르센의 ‘미운 오리 새끼’다. 다들 알다시피 오리 무리에 섞여 너무 다른 모습에 구박과 미움을 받던 오리가 알고 보니 아름다운 백조였다는 내용이다. 이 동화가 새삼 남다르게 다가왔던 건 안데르센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녹아든 작품이란 점이었다. 덴마크 오덴세에서 가난한 구두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난 안데르센의 원래 꿈은 연극배우였다. 가난한 가정 환경 탓에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그는 부정확한 발음 등을 이유로 배우로서 성공하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라틴어 학교에 들어가 문학을 배운 뒤 작가라는 새로운 꿈을 꾸며 동화와 소설을 내놓지만 문장 곳곳에 있는 잘못된 문법과 오타 등으로 기성 문학계로부터 인정받지 못한다. 활동 초창기 문학계에서 배척당하는 자신의 모습을 빗대 쓴 작품이 바로 ‘미운 오리 새끼’였다. 안데르센은 ‘미운 오리 새끼’뿐 아니라 가난하고 불행했던 자신의 어머니를 모델로 한 ‘성냥팔이 소녀’, 이루지 못한 자신의 사랑을 모티브로 한 ‘인어공주’ 등 다양한 명작을 낳았다. 안데르센은 세상을 떠나고 없지만 이 작품들은 수백 년간 전 세계 어린이들이 즐겨 읽는 명작 동화로 남았다. 문법의 오류나 오타가 작품이 지닌 메시지의 힘을 꺾진 못했다. 누구나 삶에서 ‘미운 오리 새끼’가 돼 본 경험이 한 번쯤은 있지 않은가. 더 나은 직장을 찾아 이직했지만 새 조직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기존 직원들의 텃세로 눈물 지어본 직장인도 있을 테고, 다소 ‘튄다’는 이유로 주변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가오는 명절에 ‘취업은 하긴 할 거니’ ‘결혼은 언제 하니’ 같은 친척들의 ‘오지랖 발언’에 상처받는 이도 있을 것이다. ‘미운 오리 새끼’를 다시 읽으며 난감한 상황이 닥쳐도 남의 시선으로 규정된 ‘미운 오리 새끼’ 단계에서 주저앉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란 듯이 털고 일어나 백조의 날갯짓을 할 수 있도록 말이다. 불혹의 나이에도 아이들을 위한 동화에서 삶을 배운다. 김정은 문화부 차장 kimje@donga.com}
학교에 가는 첫날. 인도계 호주인인 ‘짐달라마시커미시카다’는 자신의 긴 이름이 좀 짧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스쿨버스에서 처음 만난 친구 엘리가 “넌 이름이 뭐야?”라고 물으며 친근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아이는 이름을 말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남들과 달리 너무 긴 이름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하굣길에 엘리가 또다시 아이에게 다가온다. “이따 공원으로 스케이트보드 타러 올래? 짐 이라고 했지?” “응, 내 이름은 짐이야.” 아이는 진심으로 자신의 이름이 ‘짐’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이름을 바꿔도 되는지 물어보지만, 엄마는 이름에 담긴 소중한 의미를 들려주며 멋진 이름을 친구들도 부를 수 있게 용기를 내라고 응원한다. 과연 짐은 친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려줄 수 있을까. 친구들과 다른 출생 배경을 가진 아이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주인공의 긴 이름에 담아 풀어낸다. 다른 문화와 사람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법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멤버 슈가(30·사진)가 이달 22일부터 사회복무요원으로 병역 의무를 이행한다. 팀에서 지난해 12월 입대한 맏형 진, 올 4월 입대한 제이홉에 이어 세 번째다. 소속사 빅히트뮤직은 17일 팬 커뮤니티 위버스에 “슈가가 다가오는 22일을 기점으로 병역 의무를 이행하게 된다”고 공지했다. 슈가는 다른 멤버들과 달리 지난해 사회복무요원 판정을 받았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엄마 아빠의 몸에는 시계 태엽이 달린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밤에 자려고 누울 때도 늘 아이에게 “빨리빨리”라고 말하며 빠른 속도를 재촉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방학 때마다 시골 할머니 집에 간다. “천천히 먹어야 음식마다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반대로 아이에게 늘 “천천히”를 강조한다. 그 덕분에 아이는 시골에서 사계절 숲의 각기 다른 풍경을 즐기고 잠들기 전엔 하늘의 별을 감상한다. 방학이 끝나고 집에 돌아온 아이는 다시 엄마 아빠의 재촉 속에 일상을 보낸다. 그러던 중 아이는 할아버지의 조언을 떠올린다. “누구나 마음속에 시계가 하나 있단다. 때로는 빨리 가고, 때로는 천천히 움직이지. 네게 맞는 리듬을 찾는다면, 빨리 가든 천천히 가든 다 좋은 거야.” 할아버지의 말에 따라 아이는 누군가가 정해 준 속도가 아닌 주체적인 삶의 리듬과 속도를 찾아간다. 지금 ‘속도 강박’에 사로잡힌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은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조금 시끄러워지더라도 추진력을 갖고 주어진 일을 해내는 사람이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13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물밑에서 윤 대통령에게 문화예술 정책에 조언을 해왔다”며 이같이 밝혔다. 조언자 그룹에서 물밑 활동하던 그는 7월 대통령문화체육특별보좌관으로 전진 배치된 때부터 문화예술 정책 전반을 이끌 장관 후보군으로 거론돼 왔다. 유 장관 후보자는 이명박 정부 시절 초대 문체부 장관으로 2008년 2월부터 약 3년간 재임한 바 있다. 장관 재임 당시 국립예술단체의 재단법인화 등 과정에서 진보 성향의 예술계 인사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문체부 장관을 오래 지낸 유 후보자를 다시 문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것은 유 특보의 경험과 추진력을 바탕으로 기존 박보균 장관의 미흡했던 국정홍보 등 업무 추진 과정에서 노출된 허점을 다잡고, 문화예술계 정책에 대한 국정과제 이행 속도를 가속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유 후보자는 특보 취임 후 대통령에게 여러 조언을 하며 대통령의 깊은 신뢰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도 일각의 “올드하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유 후보자의 추진력과 소신을 높이 평가하며 장관으로 발탁했다는 게 여권의 평가다. 한 여권 인사는 윤 대통령과 유 후보자에 대해 “특보직 위촉 이후 (윤 대통령에게 문화예술 정책 관련 조언을 하며) 더욱 남다른 ‘케미’를 형성한 걸로 안다”고 전했다.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은 이날 브리핑을 갖고 “문화예술 현장에 대한 이해와 식견뿐만 아니라 과거 장관직을 수행할 만큼 정책 역량도 갖췄다”며 “최근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K컬처의 한 단계 높은 도약과 또 글로벌 확산을 이끌 적임자”라며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유 후보자는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 문체부 장관, 예술의전당 이사장 등을 맡으며 문화행정인으로도 10여 년간 활동했다. 국민의힘 지도부도 집권 2년 차를 맞아 문체부의 적극적 국정과제 이행을 위해 유 후보자를 윤 대통령에게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 후보자와 김 실장의 인연도 조명된다. 유 후보자가 이명박 정부 초대 문체부 장관으로 재직했을 때 문체부 2차관이 김 실장이었다. 여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유 후보자를 처음 특보로 위촉할 때 김 실장의 추천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유 후보자는 1990년 이명박 전 대통령을 모델로 한 TV 드라마 ‘야망의 세월’에서 주인공을 맡은 것을 계기로 이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유 후보자의 형은 ‘조선왕조 500년 임진왜란’ 등 드라마를 만든 고 유길촌 전 MBC PD다. 동생은 유경촌 천주교 서울대교구 보좌주교이다. 유인촌 후보자 △전북 완주(72) △중앙대 연극영화학 △MBC 공채 탤런트 6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대통령문화체육특보 △예술의전당 이사장이상헌 기자 dapaper@donga.com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드니의 반려견인 왕왕이는 늘 심심하다. 드니가 한글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함께 노는 시간이 줄었다. 드니가 책을 볼 때면 왕왕이는 드니의 간식을 몰래 먹곤 했다. 반전이 일어났다. 드니보다 왕왕이가 먼저 한글을 뗀 것. 글씨를 읽게 되자 책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된 왕왕이는 드니의 책은 물론이고 아빠 엄마의 책까지 읽기 시작한다. 그런 왕왕이를 본 드니는 노트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너 책 읽을 줄 알지?’라고 써 보인다. 비밀이 들켜 당황한 왕왕이를 안아주며 드니는 “왕왕, 이건 우리만의 비밀이야”라고 다독인다. 비밀을 공유한 드니와 왕왕이는 집 근처 도서관에 들러 다양한 책을 읽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제 나는 하루 종일 심심하지 않아. 내 옆엔 항상 책이 있거든.” 어깨 너머로 배운 한글로 독서를 즐기게 된 왕왕이와 드니의 우정을 보며, 읽을수록 재미있는 책처럼 마음 역시 서로 나눌수록 돈독해진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수채화로 그린 그림도 맑고 따뜻하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복근무복을 보고 ‘유명 브랜드 옷 같다’ ‘색동 오방색 무늬가 예쁘다’ ‘사고 싶은데 어디서 구매할 수 있냐’란 이야기를 많이 해요. 고급스러운 디자인에 실용성까지 갖춘 근무복이라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죠.”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 교통센터 지하 1층 한국문화재재단 여행자센터에서 근무하는 한수아 씨(35)의 말이다. 한국문화재재단 여행자센터에 근무하는 직원 8명은 올 3월부터 한복 근무복을 입고 일하고 있다. 근무복 디자인 및 제작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주관하는 한복근무복 개발 및 도입지원 사업을 통해 선발된 한복 디자이너 정혜진 송화바이정 대표(41)가 도맡았다. 정 씨는 “근무자들이 일하기 편하도록 구김이 없고, 세탁을 해도 옷감의 변형이 없는 폴리에스터 원단을 활용해 만들었다”며 “실용성을 가미하되 한복의 라인 등 고유의 느낌을 살릴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정 씨는 한국문화재재단 여행자센터 외에도 한복근무복 개발 사업을 통해 광주민속역사박물관, 경기 여주세종문화관광재단, 전북 군산컨트리클럽 직원들의 근무복을 제작했다. 문체부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2020년부터 진행한 한복근무복 개발 사업은 매년 경력 5년 이상의 중진급 한복 디자이너 5인을 공모해 1인당 2250만 원씩 지원한다. 올해까지 총 22명의 디자이너가 선정됐다. 매년 선정된 디자이너들은 그해 1인당 75종 이상의 한복근무복 디자인을 개발한다. 이들이 개발한 한복근무복은 서울 종로구 한복마름방 내 쇼룸에서 상설 전시 중이다. 지난해부터 국내 최대 규모의 한복박람회 한복상점에서도 소개됐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은 한복근무복 도입을 희망하는 기관 및 기업을 대상으로 상시 디자인 컨설팅 상담도 진행하고 있다. 문의 전화는 02-398-1635. 현재까지 이 사업을 통해 국립한글박물관, 세종학당재단, 주터키한국문화원, 주영한국문화원 등 총 30개 기관에서 한복근무복을 도입했다. 민간 기업 중 처음으로 한복근무복 개발 사업을 통해 올 4월부터 한복근무복을 도입한 군산컨트리클럽의 박정훈 팀장(42)은 “근무복 디자인이 현대복 같으면서도 한복 느낌이 세련되게 난다”며 “레스토랑 등 식음료 서비스 파트의 종사자들의 경우 편의성을 위해 옷고름을 없앤 디자인의 옷을 도입하는 등 근무 파트별 성격에 맞춰 근무복을 제작해 직원들의 만족도가 크다”고 말했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정부가 중국인의 국내 관광 활성화를 위해 올해 말까지 한시적으로 중국인 단체관광객 전자비자 발급 수수료(1만8000원 상당)를 면제한다. 면세쇼핑 환급도 간소화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4일 열린 제20차 비상경제장관회의 겸 수출투자대책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의 ‘중국인 방한 관광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올해 중국인 관광객 수 200만 명 달성을 목표로 삼았다. 정부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이후 6년여 만에 중국의 한국 단체관광이 전면 허용된 만큼 공항 이·착륙 운항시간 확대를 통해 한중 간 항공편을 늘리기로 했다. 현재 입항 신청 중인 중국발 크루즈선의 접안 부두도 신속히 배정해 빠르게 입항하게 할 계획이다. 중국인 관광객의 한국 내 소비를 늘리기 위해 중국인이 많이 쓰는 위챗페이, 알리페이 등 모바일페이 가맹점 25만 개를 추가 확대한다. 문체부는 “한국을 찾은 중국인의 1인당 지출 경비는 전체 외국인의 평균보다 38%가량 높다”며 “중국인 단체관광은 관광 수출 진작을 위한 핵심으로 꼽힌다”고 했다. 10월부터는 부가세를 즉시 환급해 줄 예정이다. 주요 관광지에 있는 화장품 가게와 약국 등 200개 업체를 추가해 부가세를 환급해 주도록 지원한다. 2024년부터는 사후면세점에서 환급이 가능한 최소 기준금액을 현재 3만 원에서 1만5000원으로 내린다. 즉시환급 금액 한도도 1회 50만 원에서 70만 원으로 늘린다. 이 외에도 정부는 29일부터 다음 달 6일까지 이어지는 중국 국경절 연휴를 겨냥해 베이징(13일), 상하이(15∼17일) 현지에서 ‘K관광 로드쇼’를 연다. 이 행사는 내년에 중국 내 5개 도시로 확대할 예정이다. 중국 3대 온라인 여행 플랫폼인 씨트립, 취날, 퉁청과도 협력한다. 씨트립과 함께 16일 상하이 로드쇼에서 호텔과 항공권을 현장 생중계로 판매하고, 15일부터 한 달간 취날, 퉁청에서 ‘한국여행의 달’ 프로모션도 진행한다. 한편 100인 이상의 대규모 관광과 수학여행 시 해당국에 주재하는 공관과 한국관광공사의 전담 담당자를 지정해 비자 신청과 국내 관광 전반에 대한 컨설팅을 지원한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영화 ‘비공식작전’ 부진은 속상하고 가슴 아팠지만,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겠다. 기대가 컸지만, 현실은 달랐다. 연기 인생의 오답노트에 쓰고 더 좋은 작품을 받아들이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겠다.” 올해 데뷔 20년을 맞은 영화배우 하정우(45)가 팬데믹 이후 얼어붙은 여름 극장가 상황을 절감하며 털어놓은 고백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주연을 맡은 영화 ‘비공식작전’은 지난달 2일 개봉해 105만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다. 모로코와 이탈리아 현지 촬영이 70%에 달해 200억 원 이상의 제작비를 들인 대작이었기에 손익분기점(약 600만 명)도 높았다. 하정우는 한국 영화 최초로 시리즈 연속 천만 관객을 돌파한 ‘신과 함께: 죄와 벌’(2017년), ‘신과 함께: 인과 연’(2018년)의 주연을 비롯해 다수 영화에서 성공한 ‘흥행 보증수표’와 같은 배우다. 그런 그도 팬데믹 후 달라진 관객들의 온도에 맥을 못 췄다. 극장가에서 여름 시즌(7, 8월)은 대표적인 성수기로 꼽힌다. 그래서인지 엔데믹 후 첫 여름을 맞아 지난달 ‘밀수’를 시작으로 쌍천만 흥행 기록(‘신과 함께’ 시리즈)을 세운 김용화 감독의 5년 만의 신작 ‘더 문’을 비롯해 ‘비공식작전’ ‘콘크리트 유토피아’ 등 대작 한국 영화가 연달아 개봉했다. 영화계는 대작 영화의 잇단 개봉이 극장가에 활기를 불러일으킬 것이라 기대했지만, 4편 중 손익분기점을 넘긴 작품은 ‘밀수’가 유일하다. 제작비 280억 원이 든 김용화 감독의 ‘더 문’은 손익분기점이 600만 명이었지만, 관객은 51만 명에 그치며 흥행에 참패했다. 제작비 100억 원 미만의 중소형 영화들 사정도 비슷하다. 올해 개봉한 영화 중 손익분기점을 넘은 중소형 작품은 공포 영화 ‘옥수역 귀신’ 단 1편뿐이었다. 그나마 저예산 영화여서 손익분기점(20만 명)을 넘길 수 있었다. 영화계에선 한국 영화의 부진을 놓고 여러 분석을 내놓지만, 가장 주목할 만한 대목은 팬데믹 기간 넷플릭스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 익숙해진 관객들의 눈높이가 높아졌단 점이다. OTT 한 달 구독료에 맞먹는 영화 관람료를 지불하고 극장을 찾을 땐 ‘극장에서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인지가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됐다. 팬데믹 때 영화 제작 및 개봉이 연기되면서 스타 배우, 유명 감독, 스태프 등 대다수가 OTT로 넘어갔다. 그렇다 보니 스타가 출연하고 탄탄한 스토리에 화려한 연출을 자랑하는 OTT 작품이 많다. 더 이상 관객들이 영화에만 출연하는 ‘영화배우’를 보러 극장을 찾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다. 개봉작 대다수가 극장에서 내려오면 OTT에서 볼 수 있다. 그렇다 보니 일부 관객 사이에선 ‘정말 끌리는 영화가 아니면 기다렸다가 OTT에서 보겠다’는 말도 나온다. 결국 한국 영화 부활의 필수조건은 ‘양질의 콘텐츠’를 내놓는 것이다. 뻔한 전개와 한물간 신파, 자기복제가 의심되는 연기에 대한 대중의 평가 잣대는 엄격해졌다. 내년 여름 극장가에선 ‘한국 영화의 저력을 맛봤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으면 좋겠다. 베테랑 배우들의 ‘연기 인생의 오답노트’가 다시 펼쳐지지 않길 기대해본다.김정은 문화부 차장 kimje@donga.com}
해마다 여름이면 아이는 할머니 집에서 일곱 밤을 자고 온다. 자전거도 타고, 물놀이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할머니 집에선 낮잠시간에 늘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창문을 열면 창밖은 축제가 한창인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광장으로 변해 있거나 유명 화가들의 작품이 풍경으로 펼쳐진다.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등 다양한 명작이 창문 밖 풍경으로 등장한다. 일주일 뒤 집에 가야 하는 아이는 못내 아쉽다. 서운한 마음을 달래며 손으로 눈을 가렸다가 창문을 열 듯 손을 내렸다. 그러자 아이 앞에 놀라운 풍경이 펼쳐졌다. “별이 빛나는 밤(빈센트 반 고흐 작)이 되었어요!” 창틀을 액자 삼아 펼쳐지는 풍경 덕분에 어렵게만 느껴지던 명화를 보다 쉽게 느낄 수 있게 한다. 화가들이 눈에 담았던 풍경이 명화가 됐듯, 마음의 창문을 열고 내다보면 일상 풍경 역시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준다. 따뜻한 느낌의 그림은 마음을 풍성하게 만든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청와대 전시회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어울림의 무대, 그리고 미술로 장애인들이 비장애인과 당당히 예술성으로 경쟁하는 무대가 될 겁니다.”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1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2023 장애인 문화예술축제 에이플러스 페스티벌’ 개막식에서 이같이 밝히며 “국민 품으로 들어간 청와대는 장애인들의 문화예술의 전당이 됐다”고 말했다.15일까지 청와대에서 진행되는 ‘에이플러스 페스티벌’은 장애인 무용가들이 선보이는 공연을 비롯해 시각장애인으로 구성된 한빛예술단 오케스트라 공연, 장애예술인 특별전시 ‘국민 속으로 어울림 속으로’ 등을 선보인다. 축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고 한국장애인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가 주최, 2023 장애인문화예술축제조직위원회가 주관한다.청와대에서 장애예술인 행사를 개최하는 것은 지난해 8월 ‘제1회 장애예술인특별전’, 올해 4월 장애예술인 오케스트라 춘추관 특별공연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배은주 조직위원장은 “두 번째 춘추관 특별전을 통해 장애예술이 또 한번 국민들과 만나 비로소 빛나는 예술이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방귀희 회장 역시 “장애인문화예술축제가 청와대에서 개최되는 날이 온 것이 감격스럽다. 장애예술인들의 위상이 그만큼 향상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바람이는 아이의 상상 속 친구다. 아이가 어디를 가든 항상 함께였다. 바람이는 늘 자신 없어 하는 아이에게 같은 조언을 건넨다. “아직은” “아직은 그렇지!” 쉬는 시간 밖으로 달려 나가는 반 친구들을 바라보며 아이는 말한다. “나는 친구들이랑 어울려 놀기엔 너무 느려.” 바람이가 속삭인다. “아직은!” 아이가 학교에 가기 싫은 날에도 바람이는 아이를 데리고 학교에 간다. 어떤 날은 아이와 바람이가 서로 학교에 먼저 도착하려고 앞다퉈 달린다. 아이는 날이 갈수록 바람이 덕분에 힘도 더 세지고, 달리기 속도도 더 빨라지며 모든 일에 자신감이 생긴다. 반 친구들과 축구 경기를 할 때 제일 먼저 선수로 뽑히기도 한다. 바람이가 건넨 말 “아직”이 아이에게 뭐든지 해낼 수 있게 도와주는 마법을 부린 것. 긍정적 사고와 마음가짐이 삶에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한다. 아이들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속도에 맞춰 자신감을 키울 수 있다는 격려를 전한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대한민국 그림책상’을 신설한다고 22일 밝혔다. 대상 2편(픽션, 논픽션), 특별상 5편, 신인상 1편 등 총 8편을 선정한다. 상금은 총 1억 원이다. 출품 대상은 지난해 1월 1일부터 올해 6월 30일까지 발행돼 유통 중인 국내 창작 그림책이다. 출품을 희망하는 출판사와 저작권자는 다음 달 20일까지 대한민국 그림책상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하면 된다. 수상작은 11월 말 발표한다. 수상작은 해외 마케팅 및 수출 지원을 받는다. 문체부는 “출판 수출 통합 플랫폼과 영문 웹진 ‘케이북 트렌드’를 통해 해외 마케팅을 지원하고 해외 저작권 시장 참가 등으로 수상작을 해외에 적극 소개하겠다”고 밝혔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