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

김민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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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국제부 기자입니다. 예술가의 이야기를 따로 모아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kimmin@donga.com

취재분야

2024-11-12~2024-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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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관 속 집, 수영장, 레스토랑…‘스크린’은 그만 보고 현실로 들어가보자

    죽은 사람이 수영장 물에 떠 있는 모습의 베니스 비엔날레 설치작품 ‘컬렉터의 죽음’(2009), 사막 한복판에 프라다 매장을 세운 설치 작업 ‘프라다 마파’(2005). 회화를 벽에 걸고 조각을 세워 전시하는 미술관이 아니라, 새로운 공간에 들어서는 느낌을 만들어내는 설치 작품으로 주목받은 북유럽 예술가 듀오 ‘엘름그린 & 드라그셋’의 개인전 ‘스페이스(Spaces)’가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3일 개막했다. 지난달 29일 기자간담회를 연 마이클 엘름그린과 잉가 드라그셋은 “영화를 보면 그 속으로 들어가고 싶을 때가 있지만 화면은 2차원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며 “이번 전시에서 영화의 한 장면으로 뛰어드는 기분을 느끼도록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시는 집, 수영장, 레스토랑, 식당, 작업실 등 5개의 거대한 공간으로 구성됐다. 첫 번째 전시실에 들어서면 140㎡ 규모의 집이 등장하는데, 거실 주방 침실 화장실을 모두 갖췄다. 두 작가는 “잉마르 베리만 감독 영화 같은 분위기의 집”이라며 “집 자체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영화 ‘기생충’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집을 지나면 물이 빠진 수영장, 영상 통화 중인 여자가 앉아 있는 레스토랑, 실험실이 옆에 놓인 주방, 그리고 작가의 작업실이 이어진다. 이들 공간에서는 창밖을 쳐다보거나, VR기기를 쓰고 있는 소년, 책 위에 놓여 있는 달팽이 등 수수께끼 같은 여러 단서가 놓여 있다. 관객이 직접 돌아다니며 이들을 관찰하고 각자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길 바란다는 것이 작가의 의도다. 마지막 작가의 작업실 방에서는 거울 위 하얀 페인트를 칠하고 ‘SLOW’라는 글자가 적힌 그림이 등장한다. 두 작가는 “다음에는 용산역 주변의 바쁘게 다니는 사람들을 전부 천천히 걷도록 만드는 퍼포먼스 작품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내년 2월 23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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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이 사라진 뒤… 동식물-미생물이 만든 ‘미학의 세계’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필요했던 팬데믹을 지나며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공간은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조직해야 할까요?” 6일 광주 북구 광주비엔날레 거시기홀에서 제15회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을 맡은 니콜라 부리오가 말했다. 프랑스 출신 큐레이터로 파리 현대미술관인 ‘팔레 드 도쿄’ 초대 관장이자 ‘관계의 미학’ 등 저서로 잘 알려진 비평가인 그가 맡은 전시 ‘판소리, 모두의 울림’이 이날 언론에 공개됐다. 부리오는 “기후 변화로 인간이 살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이 줄어들고, 난민이나 국경 분쟁 등 정치, 사회적 공간도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고 짚었다. 이번 전시는 30개국에서 온 작가 72명이 이러한 동시대 공간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소개한다. ‘판소리’전은 광주 북구 광주비엔날레 전시관과 남구 양림동 일대 8곳에서 펼쳐진다.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에 꾸려진 본 전시는 △부딪침 소리(feedback effect, 1·2전시실) △겹침 소리(polyphony, 3전시실) △처음 소리(Primordial sound, 4·5전시실)로 구성됐다. 먼저 첫 번째 섹션은 수많은 구성원이 좁은 공간에 몰려 발생하는 불협화음을 다룬다. 어두운 터널 속에서 도시의 소음이 흘러나오는 에메카 오그보의 사운드 작품, 천장이 무너지려는 듯한 사무실 공간을 조성한 설치 작품(신시아 마르셀), 거대한 산업 쓰레기를 연상케 하는 조각 작품(피터 부겐후트)이 보인다. 산업화, 도시화와 환경 오염으로 낡고 비좁아진 세계를 떠올리게 한다.다음 ‘겹침 소리’에서는 동물, 식물은 물론 기계의 관점까지 다층적 세계관에 주목하는 작가들의 작업이 등장한다. 필립 자흐의 ‘부드러운 폐허’는 거미줄과 인간의 물물교환 문화에서 영감을 얻어 천을 치렁치렁 늘어뜨린 설치 작품이다. 해리슨 피어스는 풍선 모양의 실리콘이 소리에 따라 진동하며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보이는 키네틱 조각을 만들었다. 전시장 가장 깊은 곳에서 등장하는 맥스 후퍼 슈나이더의 ‘용해의 들판’은 인간이 남겨 놓은 잔재 위에 새로운 생명체가 등장하는 기이한 미래 풍경을 그린다. 관객이 흥미롭게 감상할 만한 곳은 ‘처음 소리’ 섹션이다. 넓은 공간에 대형 설치 작품들이 여유롭게 전시됐는데 이산화탄소, 바이러스, 호르몬 등 분자와 우주를 다룬 작품들을 볼 수 있다. 비앙카 봉디의 ‘길고 어두운 헤엄’은 흰 소금 사막 위에 연못과 식물, 전화기를 배치해 인간이 사라지고 소금으로 뒤덮인 자연을 상상하게 만든다.마르게리트 위모의 ‘*휘젓다’는 여러 개의 행성이 떠 있는 듯한 조명들 가운데 바위 모양의 실크 조각을 배치했다. 이 조각에 놓인 접시에는 여러 미생물로 이뤄진 생태계를 만들었다. 이렇게 인간이 만든 폐허 속에서 동물과 식물, 바이러스와 미생물, 혹은 기계의 관점에서 본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는 공상과학적인 미학이 ‘판소리’전을 관통하는 주제다. 외부 전시는 양림동의 포도나무 아트스페이스, 한부철 갤러리, 한희원 미술관, 양림쌀롱, 옛 파출소 건물, 빈집,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 양림문화샘터에서 소리 프로젝트와 관객 참여에 기반한 작가 12명의 작품을 볼 수 있다. 또 2018년부터 시작된 별도 전시인 ‘파빌리온’은 아르헨티나, 오스트리아 등 22개국과 한-아세안센터, 아메리카, CDA홀른, 광주 등 9개 기관 및 도시가 참가해 31개의 전시를 꾸렸다. 광주비엔날레는 12월 1일까지 이어진다. 광주=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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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의 다른 얼굴, 작가는 어떻게 볼까

    미간에 주름이 질 만큼 인상을 찌푸리고 촘촘한 치아를 드러낸 사람의 얼굴. 멀리서 보면 공격적이고 험악하게 보이지만, 가까이 가면 주름과 치아는 나무를 칼로 파내 만들어 낸 흔적이다. 부정적인 기운을 뿜어내는 누군가의 혐오와 폭력이 결국은 자신을 향한 것은 아닌지 떠올리게 하는 작품, 미리암 칸의 ‘나무 생명체’(Baumwesen)다. 4일 ‘소장품의 초상: 피노 컬렉션 선별작’전이 공개된 서울 강남구 송은(구 송은 아트 스페이스) 2층 전시장에서는 칸은 물론 마를렌 뒤마, 뤼크 튀망, 피터 도이그 등 주목받는 현대 미술가들의 인물화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다. ‘나무 생명체’를 비롯한 칸의 작품 7점과 도이그 작품 2점이 있는 방의 맞은편으로 들어가자 뒤마의 흐르는 듯 강렬한 초상화가 펼쳐졌다. 아이를 배어 불뚝한 배를 한 여자의 초상은 새빨간 배경으로 동물적 생명력을 뿜어냈다. 맞은편 남자의 초상은 깊고 푸른색이 냉정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작가는 각각 ‘탄생’(Birth)과 ‘이방인’(Alien)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카롤린 부르주아 피노 컬렉션 수석 큐레이터는 “인간의 다른 얼굴을 현대 미술가들은 어떻게 보는지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케어링 그룹 설립자이자 크리스티 소유주인 프랑수아 피노의 소장품이 한국을 찾은 것은 2011년 송은 아트스페이스의 ‘고통과 환희’전 이후 13년 만이다. 이번 전시는 회화는 물론 비디오, 설치, 조각, 드로잉 등 현대 미술 작품 60점을 선보인다. 베트남 출신 덴마크 작가인 얀 보의 설치 작품은 1층에서 관객을 맞았다. 베트남 전쟁 직후 유럽으로 이주한 ‘보트피플’인 작가는 청동기 시대 도끼날, 15세기 성모자상과 현대의 재료를 섞어 역사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3층에는 줄리 머레투, 루돌프 스팅겔의 추상 회화가 전시됐다. 부르주아 큐레이터는 “전시를 크게 세 가지, ‘얼굴’, ‘추상’과 ‘세계와의 관계’라는 테마로 나눠볼 수 있다”고 말했다. ‘세계와의 관계’는 기후 위기나 생태 등 인간 중심에서 벗어나 세계를 보는 시각을 말한다. 한국계 미국 작가인 아니카 이가 인공지능으로 만든 풍경, 브라질 작가 루카스 아루다가 기후 위기로 연약해진 자연을 그린 회화 등이 전시됐다. 문어의 관점에서 세상을 본 한국 작가 염지혜의 ‘AI 옥토퍼스(Octopus)’도 볼 수 있다. 송은 관계자는 “최근 송은문화재단이 피노 컬렉션에 기증해 소장품이 된 작품”이라고 밝혔다. 11월 23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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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시장 불황 속… ‘판매 보장’ 익숙한 작가들 눈에 띄어

    ‘작품 사이즈는 더 작게, 낯선 작가보다는 익숙하고 편한 작가로.’ 4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VIP 프리뷰로 공개된 글로벌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이랬다. 최근 경기 둔화의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미술 시장도 얼어붙었다. 화랑가에서는 ‘컬렉터들이 프리즈 서울만 기다리고 지갑을 열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올해 3회차를 맞은 ‘프리즈 서울’에는 32개국에서 112개 갤러리가 참여해 작년보다 규모가 약간 줄었다. 특히 전체 갤러리의 63%가 아시아권 갤러리이고 이 중 31개는 한국에서 운영하는 갤러리라는 점이 눈에 띄었다. 새롭게 참가한 갤러리는 23곳인데, 아시아 밖의 갤러리 중 불경기와 중동 전쟁으로 인해 급등한 운송료 때문에 참가를 포기한 곳이 다수 생겼다는 후문이다. 프리즈 서울 1회에는 국내 시장에서 보기 힘든 해외 미술사 거장이나 동시대 핫한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어 관람객이 대거 몰렸었다면, 올해는 실제 판매가 보장되는 익숙한 작가들이 좀 더 눈에 띄었다. 지난달 22일 기자간담회에서 패트릭 리 프리즈 서울 디렉터는 “참여 갤러리들은 시장마다 다른 취향을 고려해 출품작을 선정한다”며 “아트페어는 결국 매출과 판매 부분을 생각할 수밖에 없고 갤러리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이런 맥락에서 유럽 갤러리가 한국 작가 작품을 소개하는 모습도 자주 발견됐다. 올해 초 독일 갤러리 에스터시퍼와 전속 계약을 맺은 전현선의 작품은 갤러리를롱 부스에도 출품됐다. 갤러리를롱은 프랑스에서 1945년 시작해 호안 미로, 프랜시스 베이컨, 알베르토 자코메티 등을 소개했던 역사적 화랑이다. 갤러리를롱 관계자는 “최근 우리 갤러리는 데이비드 호크니는 물론이고 동시대 젊은 작가를 적극적으로 소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내년 파리에서 전현선의 개인전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프랑스 갤러리인 알민레시도 ‘달동네 그림’으로 국내에서 인기인 정영주 작가의 회화를 출품했다. 알민레시 관계자는 “하종현, 김창열, 이우환 등 한국 작가를 오래전부터 소개하고 있었지만 정영주 작가는 최근 함께하게 됐고 11월 영국 런던에서도 개인전을 개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스트리아 갤러리인 타데우스 로팍도 3일 이강소 작가와 전속 계약을 맺고 내년 봄 서울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다고 밝혔다. 올해로 23회째를 맞는 한국화랑협회 주최의 ‘키아프(KIAF·한국국제아트페어) 서울’에는 22개국 206개 갤러리가 참여했다. 전시 공간을 지난해보다 약 2640m²(약 800평) 넓히고 건축가 장유진과 협업해 동선과 부스 배치를 새롭게 디자인했다. 또 5, 6일에는 클래식 콘서트인 ‘키아프 프리미어 콘서트’를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개최하며 컬렉터 유치에 힘을 쓰고 있다. 황달성 한국화랑협회장은 “기업뿐 아니라 음악 애호가를 비롯해 다양한 사람들의 관심을 키아프로 끌어들이기 위해 차별화된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느껴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프리즈 서울은 코엑스 C, D홀에서 7일까지, 키아프 서울은 코엑스 A, B홀과 그랜드볼룸, 2층 더플라츠에서 8일까지 열린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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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몰랐던 마크 로스코에 대하여[김민의 영감 한 스푼]

    ‘색면 추상’ ‘추상표현주의’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 화가’. 마크 로스코(1903∼1970)를 생각할 때 흔히 떠올리는 수식어입니다. 로스코 작품에서 감동을 느낀 사람은 많지만 이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추상’ ‘색면’처럼 비평가나 미술사가가 정해준 말 뒤로 숨기도 합니다. 로스코가 세상을 떠날 때 19세, 6세의 어린 나이였지만 그 후로 지금까지 작품을 보존, 연구하며 알리는 그의 자녀 케이트와 크리스토퍼 로스코를 3일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에서 만났습니다. 케이트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작품을 지키기 위해 소송까지 치러야 했고, 크리스토퍼는 로스코의 글을 모은 책을 편집하거나 전시 큐레이팅을 담당하는 로스코 전문 연구자입니다. 두 사람에게 로스코에 대해 물었습니다.모차르트를 사랑한 화가 먼저 아버지로서 로스코의 모습이 궁금했습니다. 케이트는 “가족뿐만 아니라 친구나 젊은 작가를 대할 때도 따뜻했던 사람”이라며 “작품에 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로스코가 예순일 때 태어난 크리스토퍼는 “늦둥이의 특권을 누나보다는 더 누렸다”며 “체스와 음악을 아버지에게 배웠다”고 합니다. “아버지와 함께 늘 음악을 들었고 누가 훌륭한 작곡가인지 토론했어요. (어떤 음악을 좋아하셨나요?) 모차르트, 모차르트, 모차르트, 모차르트, 슈베르트요(웃음). 아버지는 정말 모차르트를 사랑했습니다.” “로스코는 캔버스 위에 직사각형을 그냥 던지는 게 아니라 아주 세밀하고 정확하게 관계를 설정해요. 그런 세밀함이 모차르트의 음악과 닮았죠.”(케이트) 그가 작업할 때는 모든 것을 차단하고 음악을 튼 채 완전히 그림에 몰입했다고 합니다. 케이트는 “작업실 전화벨이 오랫동안 울려도 무시하고 집중한 적도 있고, 작품이 어느 단계에 이르기 전까지는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오롯이 혼자인 상태에서 그림을 그렸다”고 했습니다.유럽을 바라보던 뉴요커 로스코의 작품에서 여러 가지를 느낄 수 있지만 제게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은 막막함입니다. 막다른 벽을 마주하고 있는 듯한 심정. 이 때문에 어떤 사람은 눈물도 흘리죠. 초기 작품에서는 불안한 도시의 모습이 초현실주의적으로 표현되기도 하는데요. 혹시 그런 불안과 막막함이 이민자로서 겪는 감정은 아니었을지 궁금했습니다. (로스코는 러시아 제국에서 태어나 10세 때 미국으로 이주했습니다.) “당시 뉴욕은 대공황으로 많은 사람이 가난을 겪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로스코는 이때 아주 붐비는 지하철이나 도시를 그렸는데, 그런 곳에선 인간성을 잃는 듯한 기분이 들잖아요. 그런 불안감이 그림에서 느껴지는 건 맞아요.”(크리스토퍼) “저는 아버지가 ‘완전한 미국인’이 되지는 못했다고 생각해요. 어떤 점에서 아버지는 항상 고향인 유럽을 바라보는 것 같았고요. 물론 뉴욕은 이민자의 도시였으니 아버지를 ‘뉴요커’라고는 할 수 있겠지만 100% 미국인이라고는 할 수 없어요.” 다만 케이트는 로스코의 작품이 말년으로 갈수록 어둡고 우울해졌다는 세간의 말은 맞지 않다고 했습니다. “로스코는 평생 인간의 조건과 감정 같은 본질적 문제를 파고들었던 작가입니다. 초기인 1940년대에 단순한 시각 언어로 관객에게 감정을 직접 전달하는 것을 고민해 글로 남기기도 했죠. 이때부터 그는 추상을 생각했습니다.”몰입 속 대면하는 삶의 질문들 로스코의 가족은 전시와 책, 강연을 통해 선입견을 걷어내고 그가 남긴 예술 세계의 풍부함을 알리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선입견 중 하나는 로스코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고 따라서 작품이 슬프다는 인식입니다. 이에 대한 생각을 묻자 크리스토퍼는 “아버지는 보는 사람들이 깊은 감정을 느끼길 바란 것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왜 여기에 있고 죽음 뒤에는 무엇이 있나. 이런 삶의 진지한 질문을 그림으로 던지려 한 듯해요. 작품이 슬픈 게 아니라 그것을 봄으로써 깊은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죠. 우리는 평소 슬픔과 불안을 억누르려 하잖아요. ‘오늘 뭐 먹지? 내일 뭐 하지?’ 같은 생각으로 그것을 피하는데, 그렇게 깊이 눌렀던 감정들을 그림 앞에서 느꼈으면 한 것이죠.” 케이트는 갤러리에 전시된 회색과 검은색이 있는 작품 ‘무제’(1969년)를 보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라고 느꼈다”며 “후기 작품들은 마지막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다른 시작이었다”고 했습니다. 크리스토퍼는 “로스코가 어떤 패턴을 생각해 내고 같은 그림을 몇백 개 그렸다는 생각이 있는데 몇 분만 그림을 직접 봐도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아버지가 남긴 그림을 보며 저는 스스로에게 묻곤 합니다. ‘이 그림에선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 했을까? 어떤 질문을 했을까? 여기선 어떻게 풀려고 했을까?’ 제가 글을 쓸 때 앉는 의자 맞은편엔 늘 아버지 그림이 있는데요. 아버지가 해결해야 했을 문제들을 바라보며, 글쓰기가 막힐 때면 고개를 들어 그림을 보고 도움을 받습니다.” 로스코가 인생의 문제를 대면하고 풀어내려 노력한 흔적들. 페이스갤러리에서 이우환의 작품과 함께 10월 26일까지 만날 수 있습니다.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은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발송됩니다. QR코드를 통해 구독 신청을 하시면 e메일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 2024-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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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세 老화가 바젤리츠가 세상을 거꾸로 그리는 이유

    거꾸로 뒤집힌 그림을 통해 오래된 가치관이 무너진 세상의 모습을 표현해온 독일 예술가 게오르크 바젤리츠의 작품이 한국을 찾았다. 3일 서울 용산구 타데우스 로팍 서울에서 개막한 전시 ‘독수리’는 작가가 거꾸로 그린 독수리 유화와 드로잉을 소개한다. 세계적인 주목을 받아온 이 작가의 뒤집힌 독수리 그림은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가 집무실에 건 것으로도 유명하다. 독수리는 독일을 상징하는 동물로 국가 문장에도 쓰이는데, 그런 독수리가 낙하하는 그림을 국가 수장이 집무실에 걸어둔 것. 한국으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독일에서는 슈뢰더 총리의 과감함과 현대미술에 대한 애정으로 해석됐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작품은 모두 86세인 작가가 최근 그린 신작이다. 슈뢰더 전 총리 집무실에 걸렸던 그림이 낙하하고 있음에도 두껍게 올린 붓 터치로 파워풀한 이미지를 뿜어냈다면, 이번 작품들은 얇게 칠한 감각적 색채 위에 흐르는 듯한 선을 그려 서정성이 더 드러난다. 바젤리츠는 독수리뿐 아니라 인물화도 뒤집힌 모습으로 그린다. 특히 인물이 거꾸로 된 모습을 앞에서 마주하면 어지러움을 느끼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물리적으로는 물론이고 정신적으로도 폐허가 된 독일과 유럽의 분위기를 담아냈다. 바젤리츠는 안젤름 키퍼와 함께 1980년대 독일을 중심으로 일어난 신표현주의 사조의 작가로 꼽힌다. 신표현주의 작가들은 개념 미술이나 팝 아트로 회화가 등한시될 무렵, ‘회화의 본질로 되돌아가자’고 주장하면서 거칠고 활력 넘치는 조형성으로 미술계가 다시 회화에 눈을 돌리게 했다. 2018년 80세 생일을 기념해 스위스 바젤 바이엘러 재단, 미국 허시혼 박물관, 프랑스 운터린덴 박물관에서 순회 회고전이 열렸고 2021∼2022년엔 프랑스 퐁피두센터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는 등 최근까지도 미술관에서 활발하게 연구·전시되고 있다. 11월 9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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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뒤집힌 독수리 그림…서정성이 더 느껴지는 신작들

    거꾸로 뒤집힌 그림을 통해 오래된 가치관이 무너진 세상의 모습을 표현해온 독일 예술가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작품이 한국을 찾았다. 3일 서울 용산구 타데우스 로팍 서울에서 개막한 전시 ‘독수리’는 작가가 거꾸로 그린 독수리 유화와 드로잉을 소개한다. 세계적인 주목을 받아온 이 작가의 뒤집힌 독수리 그림은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가 집무실에 건 것으로도 유명하다. 독수리는 독일을 상징하는 동물로 국가 문장에도 쓰이는데, 그런 독수리가 낙하하는 그림을 국가 수장이 집무실에 걸어둔 것. 한국으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독일에서는 슈뢰더 총리의 과감함과 현대미술 대한 애정으로 해석됐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작품은 모두 86세인 작가가 최근 그린 신작이다. 슈뢰더 전 총리 집무실에 걸렸던 그림이 낙하하고 있음에도 두껍게 올린 붓 터치로 파워풀한 이미지를 뿜어냈다면, 이번 작품들은 얇게 칠한 감각적 색채 위에 흐르는 듯한 선을 그려 서정성이 더 드러난다. 바젤리츠는 독수리뿐 아니라 인물화도 뒤집힌 모습으로 그린다. 특히 인물이 거꾸로 된 모습을 앞에서 마주하면 어지러움을 느끼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물리적으로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폐허가 된 독일과 유럽의 분위기를 담아냈다. 바첼리츠는 안젤름 키퍼와 함께 1980년대 독일을 중심으로 일어난 신표현주의 사조의 작가로 꼽힌다. 신표현주의 작가들은 개념 미술이나 팝 아트로 회화가 등한시될 무렵, ‘회화의 본질로 되돌아가자’고 주장하면서 거칠고 활력 넘치는 조형성으로 미술계가 다시 회화에 눈을 돌리게 했다. 2018년 80세 생일을 기념해 스위스 바젤 바이엘러 재단, 미국 허쉬혼박물관, 프랑스운터린덴 박물관에서 순회 회고전이 열렸고 2021~2022년엔 프랑스 퐁피두센터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는 등 최근까지도 미술관에서 활발하게 연구·전시되고 있다. 11월9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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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제적’ 화가, 김홍도에 꽂혀… 십장생과 신선을 비틀다

    조선시대 화가 김홍도가 불로장생을 이룬 도교 신선들의 모습을 그린 ‘군선도’. 신성한 인물을 그린 작품인 데다 국보로 지정되어 있어 보통 사람들은 그 앞에서 엄숙함을 느낀다. 그런데 스위스 출신 화가 니콜라스 파티는 이 작품 옆에 분홍빛 살을 드러낸 나체를 그린 ‘뒷모습’ 연작을 놓았다. 지난달 26일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만난 파티는 “‘군선도’에서 제가 느낀 건 ‘여유’와 ‘유머’였다”며 “진지한 분위기에서 전시되던 ‘군선도’를 다르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파티는 고미술 작품을 전시해 왔던 호암미술관에서 현대 미술가 최초 개인전 ‘더스트’를 연다. 8월 31일 개막한 전시는 전시를 위해 특별 제작한 벽화 5점을 포함해 70여 점을 선보인다.● 이방인의 눈으로 본 조선 미술 파티는 처음 전시 제안을 받았을 때 ‘미술관 소장품과 함께 작품을 선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단순히 고미술 옆에 신작을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품의 소재 역시 한국 고미술에서 일부 차용해왔다. 예를 들어 ‘군선도’와 ‘십장생도 10곡병’에서 그가 고른 건 청자, 개, 사슴, 복숭아, 학, 당나귀, 연꽃, 박쥐다. 파티는 두 마리 개를 인물의 머리카락처럼 우스꽝스럽게 좌우로 붙이거나, 사슴을 기둥처럼 쌓는다. 그는 “18세기를 몰라도 누구나 모차르트를 즐길 수 있듯 순수한 눈에 즐거움을 주는 요소를 골랐다”고 설명했다. 리움미술관의 대표 소장품인 ‘청자 동채 연화문 표형주자’는 여자의 몸처럼 표현했다. 신선이 들고 있던 호리병을 그리려다가 형태가 마음에 들어 청자를 골랐다. “청자의 곡선이 제 눈에는 몸처럼 보였어요. 손잡이에 작은 개구리가 있어 기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죠. 그림 속 여자의 머리 곡선과 청자가 어우러져서 만들어내는 리듬이 작품에서 좋아하는 부분입니다.” 그는 김홍도의 군선도에서 받은 느낌을 설명하며 재미(fun), 엉뚱함(goofiness), 기묘한(uncanny) 같은 형용사를 자주 썼다. 기괴하고 독특한 색채의 초상, 풍경을 통해 주목받은 파티는 아시아 미술 시장에서 특히 사랑받아왔다. 그의 엉뚱한 면모는 부엉이를 앞에 둔 마를레네 디트리히의 보라색 초상이나 ‘주름’, ‘곤충’ 연작 등에서도 느껴볼 수 있다.● ‘먼지로 된 환영’ 벽화는 사라진다 전시 공간 연출도 눈길을 끈다. 기둥은 모두 가벽으로 감추었고, 아치 형태의 문을 세웠다. 아치문 사이로 반대편의 그림을 보는 재미가 있다. 여기에 작가가 그린 파스텔 벽화를 배경으로 조선시대 백자나 고려시대 ‘금동 용두보당’을 전시했다. 파티는 10대 때 그라피티를 했는데, 그 덕분에 작품을 둘러싼 공간을 구성하는 데도 신경을 쓴다. 호암미술관에는 폭포, 동굴, 숲, 산과 구름 벽화를 그렸다. 이들은 전시가 끝나면 철거돼 소각된다. 아쉽지 않느냐는 말에 파티는 “많은 사람이 그 질문을 하는데 철거도 작품의 일부”라고 설명했다. “고려시대 금동 용두보당도 원래는 사찰 입구에 커다랗게 놓여 있었지만 지금 남은 건 미니어처뿐이잖아요. 게다가 금박이 입혀졌는데 지금 남은 금동 용두보당에는 그것이 다 사라졌으니 만든 사람이 보면 ‘이렇게 설치하면 안 돼’라고 할 거예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변하고 사라지죠.” 파스텔로 그린 그림들이 “쉽게 ‘공기 속 먼지’가 되어버릴 수 있기에 시적이다”라고 말한 파티의 이번 전시 제목도 ‘먼지(dust)’다. 작가가 먼지로 만든 환영들은 내년 1월 19일까지 감상할 수 있다. 용인=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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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바람이 불어오는 곳, 나무에게 물어볼까

    동물은 잘 안 쓰는 팔을 잘라내거나, 새로운 관절이나 힘줄을 만들 수는 없다. 이 때문에 같은 종의 동물은 디테일은 다르더라도 비슷한 구조를 갖는데, 나무는 같은 계통이라도 구조가 다르다. 쓸모없는 가지를 잘라내는 ‘자연 낙지’(self-pruning)를 하거나, 길고 큰 가지가 버틸 힘이 부족하다고 여기면 일종의 새로운 관절을 만들어 지지대를 만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무가 남긴 고유한 흔적은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부터 동서남북, 이를 둘러싼 환경까지 많은 단서를 남긴다. 수십 년간 5개 대륙에서 탐험단을 이끌어온 탐험가이자 자연에서 얻은 단서로 길을 찾는 자연 항법 전문가, 일명 ‘자연 속 셜록 홈스’로 불리는 저자가 그러한 흔적에서 읽을 수 있는 여러 가지 메시지를 정리했다. 우선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읽기 위해서는 나무의 뿌리를 보는 것이 좋다. 바람 부는 쪽의 뿌리는 다른 곳보다 더 크고 강하게 자라기 때문이다. 또한 줄기는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가늘어지는 경향이 있다. 그늘에서 잘 자라도록 진화한 나무는 껍질이 얇고 햇빛에 노출된 나무는 껍질이 두껍다. 거친 바람이나 추위에 노출될수록 크기는 작아진다. 높은 산을 등산할 때 고도가 높아질수록 나무의 키가 작아지는 것을 본 사람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나무가 질병이나 주변의 척박한 환경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작은 가지들이 한 곳에서 여러 개 뻗어 나온다. 주변에 새로운 나무나 건물로 그늘이 드리워지면, 광합성을 더 이상 하지 못하는 쓸모없는 가지를 잘라낸다. ‘자연 낙지’라고 하는 이 현상은 나무에 눈을 남긴다. 햇빛이 있는 남쪽에는 이러한 눈이 많이 발견되는 것도 특징이다. 나무를 읽는 법이 어떤 쓸모가 있을까. 저자는 그가 나무를 읽는 이유를 십자말풀이에 비유한다. 사람의 뇌는 십자말풀이에서 모든 칸이 비어 있을 때보다 하나둘씩 채워질 때 호기심을 더욱 느낀다고 한다. 나무를 볼 때도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 알수록 더 많은 것을 궁금해하고 찾아보게 된다” “1000번을 보더라도 단 한 번도 발견할 수 없는 것이 있지만, 한 번 발견하고 나면 다시는 놓치지 않을” 신호들을 갖고 숲으로 나가보라고 저자는 제안한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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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여성기자협회 “기자 대상 딥페이크 성범죄 즉각 수사하라”

    한국여성기자협회가 여성 기자를 대상으로 한 딥페이크 성범죄에 관해 경찰이 즉각 수사에 나서 범죄자를 신속히 검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여성기자협회는 30일 발표한 성명에서 “최근 텔레그램에 ‘기자 합성방’이라는 채팅방이 개설돼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지인 딥페이크 성범죄’를 취재해 보도하는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악질적인 딥페이크 성범죄가 이뤄지고 있다”며 “이는 여성 기자들의 인격권 침해 뿐 아니라 언론의 자유에 대한 위협”이라고 밝혔다. 협회 측은 “이를 방치할 경우 앞으로 자신과 의견을 달리하는 사안을 취재하는 모든 기자에 대한 공격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며 경찰의 수사와 함께 정부 국회 등에서 딥페이크 성범죄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이 조속히 마련돼야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딥페이크 성범죄를 막기 위한 플랫폼 사업자들의 기술적 조치도 요구했다. 협회는 “모든 기자들이 안전하게 취재하고 보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며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이며 이를 위협하는 어떠한 행위도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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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I가 상상하는 자연의 모습”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 로비에 인공지능(AI)이 만든 작품 ‘비(非)지도(Unsupervised)’를 전시해 주목을 받았던 튀르키예 예술가 레피크 아나돌의 작품이 한국을 찾았다. 아나돌은 9월 5일 개관하는 서울 종로구의 예술 공간 ‘푸투라 서울’에서 개인전 ‘대지의 메아리: 살아 있는 아카이브’를 연다. 27일 한국을 찾은 작가는 기자간담회를 열고 “AI 기술에 대한 이해를 돕고 설명하는 전시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전시는 4개 공간에 나뉘어 선보인다. 처음 전시장에 들어서면 작품의 중심이 되는 생성형 AI 모델 ‘대규모 자연 모델(LMN)’의 개발 과정과 배경을 설명하는 영상이 보인다. 아나돌과 스튜디오 직원들은 첨단 기법을 이용해 세계 여러 곳의 우림 지역을 탐험하고 데이터를 수집했는데, 그 과정을 다큐멘터리 형태로 정리한 영상이다. 이 공간의 왼쪽 작은 방으로 들어가면 세계 각지의 우림을 AI가 시뮬레이션으로 재현한 영상이 가로로 긴 화면으로 펼쳐지는 ‘살아 있는 아카이브’ 작품이 보인다. AI가 상상하는 자연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를 여러 영상으로 보여주는 형태다. 그 다음 3번째 공간에서는 AI가 생성한 산호 이미지가 천장에 나타나는 작품 ‘인공 현실: 산호’가 있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기계 환각’ 시리즈가 펼쳐지는 4번째 방이다. 층고 10m가 넘는 거대한 방을 가득 채운 스크린에서 이미지의 입자가 폭포처럼 쏟아지는 영상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방대한 데이터들이 한데 섞여 뭉쳐졌다가 부서지는 듯한 모양이다. 이는 레피크 아나돌 스튜디오(RAS) 팀원이 10여 년간 수집한 자연에 관한 데이터와 세계 박물관, 학술 기관이 소장한 자료 등 우림에 관한 빅데이터를 AI 모델이 학습하고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다만 이번 작품은 MoMA에서 선보였던 ‘비지도’가 예술 작품을 소스로 한 것과 달리, 자연과 우림을 재료로 했는데도 결과물은 유사하게 보인다. “어떤 데이터를 넣든 결과물은 같은 것처럼 보이는데 해석은 관객의 몫이냐”는 질문에 아나돌은 “이 작품은 살아 있는 기록이기 때문에 시간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며 “모네, 고흐도 특유의 스타일이 있었듯이 나는 마르지 않는 물감인 데이터를 갖고 작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12월 8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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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속 아픔 그대로 화폭에… “죽음에서 끄집어내듯 그렸다”

    2016년, 모교인 성균관대 박물관의 요청으로 26세 화가는 성균관대 창립자인 심산 김창숙의 초상을 그렸다. ‘조선 유림의 마지막 선비’라고 불렸던 심산의 초상에서 강인하고 꼿꼿한 이미지를 기대했던 관객들은 깜짝 놀랐다. 그림 속 심산은 미라처럼 바짝 마른 채 병상의 흰색 시트 더미에 파묻혀 있었다. 왼쪽에는 모자를 방패처럼 들고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 있었다. 모교 창립자의 초상을 화가는 왜 죽음 직전의 모습으로 그렸을까?● 역사 속 사람들을 끄집어 내놓다 22일 경기 파주 작업실에서 만난 서원미 작가(34)는 “처음에는 부드러운 선비의 모습을 그리려 했지만, 심산에 대해 공부하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하며 고문을 받다 앉은뱅이가 되는 등 많은 고초를 겪었음을 알게 됐다”며 “그런 인물의 삶에서 모든 것을 없애고 깨끗하고 화사한 모습으로 남기는 것이 맞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작가는 박 전 대통령이 장군 시절 심산에게 병문안을 와서 찍힌 보도 사진에서 영감을 얻었단다. 작가는 이때를 계기로 한국 근현대사의 여러 장면을 극적으로 그린 ‘블랙 커튼’ 연작을 그렸다. 화상을 입은 포로에게 붕대를 씌워주는 미군, 손을 머리 위에 올린 채 줄지어 걸어가는 전쟁 포로 등 역사 속 장면들을 그 배경을 제거해서 인물만 집중해 그렸다. 최루탄을 피해 걸어가는 사람이 쓴 비닐봉지는 좀 더 단단한 느낌으로, 또 6·25전쟁 때 폭파된 다리를 그린 다음 그 아래에서 장난감을 갖고 놀고 있는 어린아이를 그린 식이다. 서원미는 “죽음에 가까운 이미지를 하나씩 끄집어 내놓듯 그렸다”고 했는데 그 결과 작품은 역사를 단순히 기록하거나 정치적 입장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서정적이고 감각적인 분위기가 더욱 증폭된다. 6·25전쟁은 물론이고 역사 속 전쟁을 기록한 책부터, 피해자들의 증언록까지 찾아보며 그림을 그렸던 작가는 “오랜 시간이 지나 화석처럼 굳어진 유령에게서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원래 형태를 찾아가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아픔은 공평하게 다가오는 느낌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극단적 인종차별정책(아파르트헤이트)을 배경으로 폭력의 이미지를 회화에 담은 화가 마를렌 뒤마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폐허가 된 독일을 그린 안젤름 키퍼처럼 세계적 미술가들은 역사를 소재로 극적인 이미지를 끌어내고 있다. 최근에는 ‘할렘 르네상스’처럼 정체성과 권리를 적극 주장하는 예술도 각광받고 있다. 특히 역사나 정치를 소재로만 다루는 게 아니라 탁월한 시각 언어로 표현할 줄 아는 예술가가 주목받는다. 서원미는 “한국에서도 민중미술가들이 근현대사를 그렸지만, 저는 직접 체험하지 않았기에 거리감을 두고 볼 수 있었다”며 “전쟁을 비롯해 많은 과거의 일들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유령처럼 떠돌아다닌다는 감각에 집중해 작업했다”고 말했다. 특히 그가 집중하는 것은 비극적 사건을 겪는 사람의 마음이다. “혓바늘이 나면 혀로 눌러보며 통증을 더 느끼려 한다”는 작가는 “아픔은 공평하게 느끼는 감각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오빠가 길리안바레 증후군으로 6개월 동안 신체 절반이 마비돼 누워 있을 때 겪은 공포와 불안은 ‘해부학’ 연작으로 풀어냈다. 바로크 시대의 회화처럼 극적인 분위기가 특징인 이 작품들은 인스타그램이나 온라인을 통해 영국, 캐나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해외 소장가가 구매하는 등 마니아층이 생겼다. 최근에는 돈키호테에서 영감을 얻은 연작 ‘카우보이 휘슬’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블랙 커튼’ 연작을 할 때는 공부도 많이 하고 그릴 때 심적 부담도 커서 모래주머니를 차고 그림을 그리는 느낌이었다”며 “사랑하는 공주에게 편지를 쓰는 아름다운 시부터 풍차와 싸우는 초현실주의, 산초와 대화하는 선문답 등 여러 형식이 자유롭게 섞인 그림을 그려 보고자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파주=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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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현대미술관, 내달 4일 미술관 장터 개최

    국립현대미술관(MMCA)은 내달 4일 친환경 미술관 마켓 ‘MMCA 미술관 장터’를 개최한다. 이 행사는 앞서 2019년, 2023년에도 열렸고 각각 하루 1만 명이 방문하는 미술관의 대표 행사가 됐다. 올해 행사는 서울관 야외마당에서 ‘더 예술적으로 더 지속가능하게’를 주제로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 반까지 열린다. 제철 농산물과 친환경 먹거리, 각종 수공예품과 디자인 제품, 예술 관련 서적, 굿즈와 커피 등이 판매된다. 이수지 그림책 작가의 ‘북토크’, 아티스트 듀오 김치앤칩스의 작품과 연계한 라이브 공연, 노르웨이 색소폰 연주자 벤디크 이스케의 공연도 열린다. 북토크 등 일부 행사는 28일 오후 2시부터 미술관 홈페이지에서 사전 예약(무료)을 받는다. 미술관 장터가 열리는 당일은 서울관 모든 전시가 무료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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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현대미술관, ‘MMCA 미술관 장터’ 다음달 4일 개최

    국립현대미술관(MMCA)은 내달 4일 친환경 미술관 마켓 ‘MMCA 미술관 장터’를 개최한다. 이 행사는 앞서 2019년, 2023년에도 열렸고 각각 하루 1만 명이 방문하는 미술관의 대표 행사가 됐다. 올해 행사는 서울관 야외마당에서 ‘더 예술적으로 더 지속가능하게’를 주제로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 반까지 열린다. 제출 농산물과 친환경 먹거리, 각종 수공예품과 디자인 제품, 예술 관련 서적, 굿즈와 커피 등이 판매된다. 이수지 그림책 작가의 ‘북토크’, 아티스트 듀오 김치앤칩스의 작품과 연계한 라이브 공연, 노르웨이 색소폰 연주자 벤딕 이스케의 공연도 열린다. 북토크 등 일부 행사는 28일 오후 2시부터 미술관 홈페이지에서 사전예약(무료)을 받는다. 미술관 장터가 열리는 당일은 서울관 모든 전시가 무료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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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D-전광판 등으로 빚어낸 일상 속 감정

    사람이 따라가기 벅찰 정도로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요즘엔 화질이 낮은 카메라나 고장 난 텔레비전도 아날로그적 감성을 풍긴다. 발광다이오드(LED) 디스플레이를 해체하거나 저화질 전광판을 이용해 일상 속 감정을 표현한 김덕희의 신작이 14일 서울 용산구 갤러리바톤에서 공개됐다. 이번 개인전 ‘사과와 달’은 설치 작품인 움브라(2024년)와 전광판을 이용한 연작 ‘부분 일식’(2024년), 파라핀을 사용한 설치 작품 ‘밤이 밤에게’(2024년)를 선보인다. 전시의 메인 작품인 ‘움브라’는 LED 디스플레이 화면의 전구들을 하나하나 분리했다. 전구를 연결하던 전선들은 마치 머리카락처럼 늘어져 있고, 그 끝의 전구들은 별처럼 반짝인다. 작가의 일상을 담거나, 마음에 다가온 영상을 편집한 4개의 화면이 서로 섞여 들며 아련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부분 일식’은 화질이 낮아서 입자가 큰 전광판의 불빛이 아름답다고 느낀 데서 착안했다. 흑백 화면에는 밤하늘의 우주 같은 이미지가 그려져 있고, 그 사이로 일상 속 영상들이 희미하게 움직인다. 갤러리 관계자는 “뉴턴이 사과에서 달을 떠올린 것처럼 미시 세계와 거시 세계를 오가는 작품 속 메시지를 보여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9월 14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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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상엔 미술작품, 지하에선 티켓 판매… 불황에도 꾸준히 수익 내며 전시 가능”

    ‘리얼 뱅크시’전으로 지하 전시 공간의 문을 열었던 서울 종로구 복합문화공간 ‘그라운드 서울’의 지상층 갤러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라운드 서울은 22일 갤러리 개관전 ‘무브, 사운드, 이미지(move, sound, image)’를 열었다. 웨민쥔, 이강소, 이용백, 신상호, 김기라, 윌리엄 대럴 등 국내외 작가 17명의 작품 170여 점을 선보인다. ‘그라운드 서울’은 인사동 한가운데에 지하 4층, 지상 5층 총 9개 층에 전체면적 5000㎡인 대형 공간이다. 지하는 티켓을 판매하는 기획 전시로, 지상은 작품을 판매하는 갤러리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인데, 중국과 인도 현대미술 전문가로 알려진 윤재갑 큐레이터가 관장을 맡아 눈길을 끈다. 20일 만난 윤 관장은 “제가 큐레이터로서 진심으로 좋다고 여기는 작품을 소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술 시장이 침체 분위기인 가운데 인사동에 큰 갤러리 공간을 열게 된 것에 대해 윤 관장은 “경복궁과 광화문 등 상징적인 문화유산이 있으며, 국립현대미술관과 갤러리 거리로 이어지는 곳이기에 한국 문화의 원형을 보여주기에는 적합한 곳”이라고 말했다. 특히 경기가 좋지 않아 갤러리에서 그림 판매가 저조하더라도, 지하층의 기획 전시에서 티켓 판매로 수익을 보완할 계획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과거 ‘아라아트센터’로 쓰였던 그라운드 서울 건물은 전시를 위해 설계돼 작품 엘리베이터를 비롯해 여러 시설을 잘 갖추고 있습니다. 미술품은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티켓 판매 기획전은 좋은 아이템이 있으면 언제든 승산이 있어 보완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지상층의 4개 층 중 주 전시장은 2, 3층으로 1년에 4회 정도 전시를 열 예정이다. 윤 관장은 “국내외 중요한 큐레이터를 초청해 기획 전시를 만들 구상을 하고 있다”며 “4층은 젊은 작가 위주로 두 달에 한 번 정도 개인전을 개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술 작품이 오랫동안 가치를 유지하려면 결국 미술관에 소장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기준을 최대한 충족시키려 한다”고 했다. 주목하는 작가로는 이강소와 신상호를 꼽았다. 그는 “이전까지 미술 시장에서 단색화가 주목받았지만 학술적인 뒷받침이 허약했다”며 “이강소 작가의 경우 단색화로 지칭되기를 거부하며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또 신상호는 현대 도자 조각의 문을 연 작가로 평가했다. 이 밖에 윤 관장과 오랫동안 인연을 맺고 작업하는 과정을 지켜본 작가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그라운드 서울 갤러리 개관전은 12월 8일까지 열린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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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록버스터 전시와 갤러리 시너지 낼 것”

    ‘리얼 뱅크시’전으로 지하 전시 공간의 문을 열었던 서울 종로구 복합문화공간 ‘그라운드 서울’의 지상층 갤러리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라운드 서울은 22일 갤러리 개관전 ‘move, sound, image’를 열었다. 유에민쥔, 이강소, 이용백, 신상호, 김기라, 윌리암 데럴 등 국내외 작가 17명의 작품 170여 점을 선보인다. ‘그라운드 서울’은 인사동 한 가운데에 지하 4층, 지상 5층 총 9개 층에 전체면적 5000㎡인 대형 공간이다. 이곳을 지하는 티켓을 판매하는 기획 전시로, 지상은 작품을 판매하는 갤러리로 활용한다는 구상인데, 중국과 인도 현대미술 전문가로 알려진 윤재갑 큐레이터가 관장을 맡아 눈길을 끈다. 20일 만난 윤 관장은 “제가 큐레이터로서 진심으로 좋다고 여기는 작품을 소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술 시장이 침체 분위기인 가운데 인사동에 큰 갤러리 공간을 열게 된 것에 대해 윤 관장은 “경복궁과 광화문 등 상징적인 문화유산이 있으며, 국립현대미술관과 갤러리 거리로 이어지는 곳이기에 한국 문화의 원형을 보여주기에는 적합한 곳”이라고 말했다. 특히 경기가 좋지 않아 갤러리에서 그림 판매가 저조하더라도, 지하층의 기획 전시에서 티켓 판매로 수익을 보완할 계획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과거 ‘아라아트센터’로 쓰였던 그라운드 서울 건물은 전시를 위해 설계돼 작품 엘리베이터를 비롯해 여러 시설을 잘 갖추고 있습니다. 미술품은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티켓 판매 기획전은 좋은 아이템이 있으면 언제든 승산이 있어 보완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지상층의 4개 층 중 주 전시장은 2, 3층으로 1년에 4회 정도 전시를 열 예정이다. 윤 관장은 “국내외 중요한 큐레이터를 초청해 기획 전시를 만들 구상을 하고 있다”며 “4층은 젊은 작가를 위주로 두 달에 한 번 정도 개인전을 개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술 작품이 오랫동안 가치를 유지하려면 결국 미술관에 소장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기준을 최대한 충족시키려고 한다”고 했다. 또 주목하는 작가로 이강소와 신상호를 꼽았다. 그는 “이전까지 미술 시장에서 단색화가 주목받았지만, 학술적인 뒷받침이 허약했다”며 “이강소 작가의 경우 단색화로 지칭되기를 거부하며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또 신상호는 현대 도자 조각의 문을 연 작가로 평가했다. 이밖에 윤 관장과 오랫동안 인연을 맺고 작업하는 과정을 지켜본 작가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그라운드 서울 갤러리 개관전은 12월 8일까지 열린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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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란서 서방 망명’ 라술로프, 부산영화제 심사 맡아

    이란 정부의 탄압으로 최근 서방에 망명한 모하마드 라술로프 감독(사진)이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뉴 커런츠’ 심사위원장에 선임됐다. 20일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회는 아시아 영화 경쟁부문인 ‘뉴 커런츠’ 심사위원으로 라술로프 감독 등 5명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라술로프 감독은 여러 권위 있는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했지만, 이란에서는 반체제적 내용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작품이 상영 금지됐다. 그는 영화 ‘집념의 남자’로 2017년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을 받은 뒤 여권을 압수당했다. 이어 이란의 사형 제도를 다룬 영화 ‘사탄은 없다’로 2020년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했지만 이란 정부에 의해 영화제 참석을 금지당했다. 2022년에는 ‘신성한 나무의 씨앗’ 완성을 앞두고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음모를 모의했다는 이유로 징역 8년형을 선고받아 칸 영화제 기간 유럽으로 망명했다.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2024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뉴 커런츠’는 아시아 영화계 신인 감독의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장편을 소개하는 부산국제영화제의 대표적인 경쟁부문이다. 라술로프 감독과 함께 선임된 심사위원은 이명세 감독, 배우 저우둥위(중국), 카니 쿠스루티(인도), 바냐 칼루제르치치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네덜란드)이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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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용적인 대안을 찾아서”… 더 깊어진 ‘예술의 바다’

    화가 난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지는 그림 앞에 쌀 포대가 놓여 있다. 스피커에서는 시위 현장에서 부르는 듯한 노래가 흘러나온다. 정치·사회적 불안과 직결됐던 인도네시아의 쌀값 폭등 문제를 다룬 예술 그룹 타링 파디의 작품 ‘메메디 사와/허수아비’가 부산현대미술관 1층에 설치됐다. 이 작품을 마주 보는 벽면은 윤석남의 ‘여성 독립운동가 초상’ 시리즈로 가득하다. 조선시대 윤두서(1668∼1715)의 ‘자화상’을 보고 채색화를 공부한 윤석남은 여성 독립운동가 63명의 초상을 그렸다. 윤석남과 타링 파디의 작품은 시대적 배경도 국가도 다르지만,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에 항의하는 모습을 뜨겁게 그린다. 해방을 꿈꾸면서도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를 대안으로 제시한 2024 부산 비엔날레 ‘어둠에서 보기’가 17일 개막했다. 전시는 18세기 마다가스카르 연안을 오간 해적들 사이에서 형성됐던 자치 사회와 불교의 도량(度量)에서 영감을 얻었다. 정해진 틀을 벗어나 상황에 따라 누구나 리더가 될 수 있었던 해적 사회의 유연함, 공동체를 존중하는 불교의 포용성을 중심 주제로 32개국 62작가(팀)의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는 부산현대미술관, 부산근현대역사관, 한성1918, 초량재 등 4개 장소에서 펼쳐지는데, 부산현대미술관이 가장 밀도가 높다. 송천 스님의 불화인 ‘관음과 마리아―진리는 내 곁을 떠난 적이 없다’와 난파선을 연상케 하는 정유진의 ‘망망대해로’가 입구에 대규모로 설치돼 각각 불교와 해적이라는 전시 주제를 대표한다. 윤석남과 타링 파디의 작품이 마주 보듯, 서로 비교해 볼 작품이 함께 배치된 공간이 여럿 등장한다. 한국 근현대사를 다룬 신학철과 불교 및 서구 문화가 혼재된 캄보디아의 일상을 그린 티안리 추의 회화가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일본 작가 요코 데라우치와 태국 작가 프랏차야 핀통의 설치 작품도 그렇다. 한국 작가는 물론이고 유럽과 미국의 비엔날레에서 보기 힘들었던 동남아시아 작가들이 대거 조명된 것도 특징이다. 정치, 사회 문제를 적극 끌어들여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작품이 많다. 냉전 이후 제3세계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국제회의인 ‘반둥 회의’를 주제로 한 전시를 독일에서 선보인 바 있는 베라 메이, 필리프 피로트 두 예술 감독은 이번 전시에서도 식민주의와 냉전 체제의 잔재를 벗어날 대안을 모색해 간다. 두 감독은 “‘빛’을 중심으로 사고했던 유럽 계몽주의를 벗어나 깊은 어둠 속에서 포용적인 대안을 찾고자 했다”고 밝혔다. 10월 20일까지. 부산=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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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약에, 주머니 속에 집을 넣어 갈 수 있다면?

    “1997년 서도호 작가(사진)가 ‘한옥을 천으로 떠서 미국에 가져가고 싶다’고 했을 때 ‘그게 가능할까?’ 싶었어요. 그때도 지금도 서도호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작가입니다.” 아트선재에서 21년 만에 서도호의 두 번째 개인전을 선보이는 김선정 예술감독이 말했다. 김 감독은 당시 일본 시세이도 갤러리 그룹전 ‘아시아 산보’의 큐레이팅을 맡으면서 대학원생이자 젊은 작가였던 서도호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그때만 해도 의구심을 가졌던 작가의 구상은 2년 뒤 대표작 ‘서울집/L.A.집’을 비롯한 연작으로 태어났다. 김 감독은 “큐레이터는 작품을 제작하고 전시하는 실무를 맡아야 하기에 예술가의 제안에도 현실적 제약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면서 “주변에서 의심할 때도 작가가 포기하지 않고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낸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러한 서도호의 머릿속 상상들을 펼쳐낸 ‘서도호: 스페큘레이션스’가 17일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 전관에서 개막했다.● 천으로 만든 집, 그 뒤의 생각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한국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서도호는 2000년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 PS1 그룹전을 시작으로 휘트니미술관, 영국 헤이워드갤러리 등에서 활발히 조명돼 왔다. 내년에는 영국 테이트 모던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건 어릴 적부터 살았던 한옥을 비롯한 ‘집’을 천으로 제작한 설치 작품이다. 그런데 이번 개인전은 이러한 대표작은 배제했다. 가장 익숙한 데다 ‘인증사진’을 찍기에도 좋아 관객을 모을 수 있는 작품임을 감안하면 과감한 선택이다. 대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작가의 생각을 담은 기록과 스케치, 모형이 전시장을 채웠다. 덕분에 작품의 배경에 깔린 생각과 그것을 실현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서도호는 16일 기자간담회에서 “제 작품 대부분은 ‘만약에’라는 가정으로 상상의 날개를 펴는 사변적 사유로 전개된다”며 “2003년경부터 그런 아이디어를 스케치북에 시각화했고 그것들이 하나둘씩 모여 이번 전시에 선보일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전시장에서는 영국 리버풀의 두 건물 사이에 처박힌 한옥, 어린 시절 살았던 집과 정원을 화물칸에 싣고 미국을 횡단하는 트럭, 미국 대학 건물 꼭대기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가정집 등의 모형이 등장한다.● 완벽한 집은 어디에 있을까 전시장 2층에 있는 ‘스페이스1’에서는 이런 사변적 사유의 과정을 담은 ‘스페큘레이션스’ 연작을 볼 수 있다. 관객이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더그라운드(1층)의 ‘완벽한 집: 다리 프로젝트’다. 뉴욕과 서울을 오가며 살았던 작가가 2010∼2012년에 두 도시의 중간 지점에 ‘완벽한 집’을 상상하며 여러 가능성을 전문가와 협업해 상상해 보았는데, 이번엔 뉴욕 서울 런던 사이 북극에 만들어질 완벽한 집에 관한 여러 가설들을 전시했다. 북극의 척박한 기후부터 이동 수단, 국경까지 현실적인 제약을 극복할 방법을 고민한 시행착오의 과정을 볼 수 있다. 이런 어려운 과정들은 ‘완벽한 집’은 불가능하다는 체념을 극복하려는 희망과 긍정적 태도를 심어준다. 마지막 ‘스페이스2’(3층)에서는 재개발로 사라지는 공동주택단지를 느리게 기록한 영상 작품 ‘동인아파트’(2022년)와 ‘로빈 후드 가든, 울모어 스트리트, 런던 E14 0HG’(2018년)를 통해 상상의 고삐를 쥐는 현실을 조명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11월 3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4-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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