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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예정보다 짧은 3시간여 만에 끝났다. 결과도 단출했다. 핵전쟁 위험을 줄이기 위한 ‘전략적 안정 대화’를 조만간 시작한다는 세 문단짜리 공동성명과 본국으로 소환했던 양측 대사를 임지로 복귀시키기로 했다는 합의가 전부였다. 사이버 해킹과 인권 문제를 놓고선 바이든의 비판과 경고에 푸틴은 정면으로 부인하고 반격했다. 기자회견도 따로 했다. 그간 바이든 외교에 후한 평가를 해오던 미국의 조야는 ‘빈손 외교’라며 박한 점수를 주고 있다. 바이든은 “시간이 얘기해줄 것”이라고 했지만, 독재자에게 정당성과 승리를 안겨줬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그래서 이번 회담은 바이든의 몸짓과 말투를 둘러싼 해프닝으로만 기억될지도 모른다. 회담 오프닝 사진촬영 때 바이든은 ‘푸틴을 신뢰할 수 있느냐’는 기자 질문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제스처를 놓고 백악관은 부랴부랴 푸틴을 믿는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부인했다. 회담 후 기자회견 말미엔 ‘푸틴이 행동을 바꾸리라고 왜 그렇게 자신하느냐’고 묻는 기자를 향해 “대체, 내가 언제 자신한다고 했어”라고 언성을 높였다가 나중에 사과했다. 푸틴은 야릇한 냉소를 띤 채 협박과 회유의 현란한 언사로 상대를 위압하기로 악명 높다. 그와의 만남은 회피하고 싶지만 도전하고도 싶은 위험한 유혹이다. 바이든은 푸틴이 만난 다섯 번째 미국 대통령이다. 이전 대통령들은 푸틴을 만난 뒤 한결같이 낭패감을 토로했다. 예측불가 협상의 달인이라는 전임 도널드 트럼프도 단단히 곤욕을 치렀다. 3년 전 푸틴과 만난 트럼프는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에 대해 “푸틴은 러시아가 한 게 아니라고 했다. 러시아가 그럴 이유가 없다”고 말해 미국인들을 경악시켰다. 미국 정보기관의 판단을 무시하고 오히려 푸틴을 두둔했으니 ‘반역행위’라고 낙인찍힐 만했다. 평생 사과라곤 모르던 트럼프도 ‘부정어(n‘t)를 빠뜨린 실수’였다고 해명했다. 그러니 바이든에겐 푸틴에 대한 어떤 공감이나 호의 표시도 금기였다. 오히려 푸틴은 과거 자신을 ‘살인자’라고 부른 바이든을 향해 “경험 많고 균형 잡힌 상대”라고 평가했지만, 그것조차 바이든으로선 손사래를 쳐야 할 처지였다. 트럼프와는 무조건 달라야 하는 바이든 외교의 치명적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지금은 힘이 빠졌다지만 러시아는 여전히 최다 핵무기를 보유한 핵강국이자 세계질서를 교란하는 도전세력이다. 그럼에도 바이든의 최대 목표인 중국 견제를 위해선 적절히 관리해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푸틴을 만난 것도 중-러 연대를 흔들어 보려는 차원이었다. 하지만 인권과 민주주의를 내세운 ‘가치외교’는 야당 인사를 독살하는 야만정권과의 거래를 용인하지 않는다. 백악관은 회담 나흘 만에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를 예고했다. 인권과 안보를 분리한다면 트럼프와 다를 게 뭐냐는 비판에 서둘러 내놓은 조치다. 지금까지 바이든 외교는 순조로웠다. 트럼프가 무시했던 동맹의 강화, 다자주의 협력, 보편적 가치를 강조했고 국제사회의 환영을 받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미국 외교는 늘 가치와 이익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왔다. 그래서 ‘자유주의의 외투를 걸친 현실주의’라는 비아냥거림도 받았다. 바이든은 트럼프가 좌충우돌 달려간 국익 우선의 길을 우아하게 걸으려 한다. 세계는, 특히 중국과 북한은, 바이든 외교가 어떤 진면모를 보여줄지 주시하고 있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5·21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문재인 정부의 대(對)중국 외교 기조가 바뀌었다는 평가가 있다. 공동성명에서 대만 문제에다 남중국해, 쿼드(Quad·미국 일본 인도 호주 4개국 협의체)까지 거론한 것을 두고 친중(親中)에서 반중(反中)으로 노선을 변경했다고도 한다. 과연 그럴까. 그 텍스트를 짚어보고 4월의 미일 정상회담 결과와도 비교해봤다. 한미, 미일 회담 결과는 각각 공동성명(joint statement)과 부속 설명서(fact sheet)로 나왔다. 한미 성명은 영문 기준으로 2641단어, A4 용지로 8장가량이다. 4년 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첫 회담 때 나온 성명(1578단어)보다 훨씬 길다. 거기에 비슷한 분량(2428단어)의 설명서까지 추가됐다. 미일 공동성명(2117단어)과 설명서(1271단어)보다도 길기는 하지만, 그 전개 방식이나 흐름에선 별 차이가 없다. 설명서 형식은 거의 판박이다. 미일 성명에는 ‘중국’이 다섯 차례 적시됐다. ‘국제적 규범 질서에 부합하지 않는 중국의 행동’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불법적 영유권 주장과 활동’이라고 중국을 직접 겨냥했다. 나아가 대만 문제는 물론 ‘홍콩과 신장위구르의 인권 상황에 대한 심각한 우려’도 표명했다. 반면 한미 성명에는 ‘중국’이라는 단어가 없다. 대만 문제가 포함된 것은 분명한 메시지겠지만 ‘대만해협에서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게 전부다. ‘홍콩과 신장위구르’ 문제는 빠졌다. 남중국해 부분도 미일 성명보다 한결 완화된 원칙적 표현이 담겼다. 중국을 간접 겨냥한 대목에서도 한미 성명은 미국의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전략을 언급했지만 그것은 ‘한국의 신(新)남방정책과 연계하기 위해 협력한다’는 내용으로 담았다. 쿼드 역시 한국이 그간 표방해온 개방성 투명성 포용성의 다자주의 원칙과 함께 엮어놓았다. 코로나19 기원 논란과 관련해선 ‘투명하고 독립적인 평가와 분석’을 명시했지만, 미일 성명에 있는 ‘(중국의) 간섭과 부당한 영향력 배제’라는 표현은 빠졌다. 또 한 가지, 한미 성명에는 구체적 액수까지 명시된 국제적 기여 또는 투자 약정이 곳곳에 담겨 있다. 한국은 코로나19 백신 지원 프로젝트인 코백스AMC에 ‘상당한 증액’을 약속했다. 글로벌보건안보구상(GHSA)에 ‘5년간 2억 달러’를 기여하고, 미국이 난민 문제로 골치를 앓는 중미 3개국에 ‘4년간 2.2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 미일 사이엔 차세대 이동통신망(5G, 6G) 연구개발에 미국이 25억 달러, 일본이 2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한 게 유일한 금액 약정이다. 한국도 여기에 10억 달러를 약속했다. 물론 외교에서 문서는 일부일 뿐이다. 나아가 눈에 띈 몇 가지 단서로 전반을 평가해서도 안 된다. 다만 “중국 입장에선 한국을 높이 평가할 것”이라는 외교부 차관의 말도, “조 바이든 대통령이 원래 상대방을 띄워놓고 뒤로 빼간다”는 야당 원내대표의 말도 공동성명을 뜯어보면 과히 틀리지 않다. 그런 발언이 적절했는지는 논외로 치더라도 말이다. 아울러 미국의 은근한 압력에 문재인 정부의 외교노선이 미국 쪽으로 얼마간 옮겨간 것은 맞아 보인다. 그것은 전임자와 달리 동맹과 함께 가는 바이든 대통령을 상대로 한 주고받기 외교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런 변침(變針)이 이제야 제정신을 차린 인식의 돌변이라거나 그 반대로 역풍을 걱정할 노선 변경이라는 해석은 무리가 아닐까 싶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지난달 말 워싱턴포스트의 단독 보도를 통해 처음으로 그 윤곽을 드러냈다. 백악관 대변인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 내용을 확인해 줬고,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이 잇달아 북핵의 외교적 해결을 강조하고 나섰다. 당국자들이 한결같이 “계속 조율 중”이라며 함구했던 내용인데, 공식 발표가 아닌 언론 누설로 일부가 공개됐다. 이것도 바이든식 간접접근 전략 아닐까 싶다. 새 정책이 나오면 뭐든 핑계 삼아 도발을 벼르던 북한도 미국의 거듭된 접촉 제안에 일단 “잘 접수했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미국의 설명 먼저 들어보는 게 순서일 텐데 만날지 말지부터 따져보겠다는 태도가 고약하지만, 그간의 무반응에 비하면 그나마 긍정적 신호로 읽힌다. 미국 당국자들은 ‘눈금 매기듯 정밀하게(calibrated) 자로 재듯 신중하게(measured) 음정 맞추듯 조절된(modulated)’ 실용적 접근법이라고 강조한다. 특히 트럼프 시절의 ‘빅딜 아니면 노딜’식 일괄 타결과도, 오바마 시절의 ‘불량배와는 상종 못해’식 전략적 인내와도 다르다고 한다. 언론을 통해선 싱가포르 합의도, 단계적 해법도 수용할 수 있다는 얘기까지 흘려보낸다. 아무리 정교한 접근법이라도 그 성패는 북한이 얼마나 호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만큼 상대의 주먹 쥔 손가락부터 하나씩 펴겠다는 신중한 태도지만, 교착상태를 타개할 뚜렷한 유인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니 오바마식 전략적 인내와 다를 바 없는 ‘전략적 관리’ 아니겠느냐는 얘기도 벌써 나온다. 북한은 지금 도발을 통한 위기 조성과 극적인 협상 전환이라는 상투적 전술의 재가동 시기만 저울질하는 듯 공격적 자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외교적 접근 이면에는 억지와 제재 방안이 정교하게 준비돼 있음을 북한도 알고 있다. 특히 전방위 대북 압박엔 결국 중국도 손들 수밖에 없을 것임을 4년 전의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배운 바 있다. 북한이 살 길은 결국 대화에 응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존과는 다른 협상을 해야 한다. 바이든식 접근법이 트럼프와 다른 가장 분명한 차이는 톱다운 담판이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바이든은 북-미 정상회담을 “불량배에게 정당성만 부여한 TV용 쇼”라고 비판했다. 실무협상부터 차근차근 밟아가며 성과가 나오기 전까지 정상회담은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대화가 시작돼도 북한 협상팀은 으레 그랬듯 모든 걸 정상 간 담판으로 넘기자고 고집할 공산이 크다. 신하 된 자는 외교를 할 수 없다는 전근대적 인신무외교(人臣無外交) 규범이 여전히 작동하는 북한 체제이기 때문이다. 그간 북한 협상대표에게 재량권이라곤 손톱만큼도 없었다. “비핵화 얘기를 꺼내면 그들은 ‘위원장 동지가 올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만 했다. 김정은 외엔 비핵화라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앤드루 김) “그들은 무수한 기회를 잡는 대신 장애물 찾기에 몰두하며 2년을 낭비했다.”(스티븐 비건) 김정은 앞에선 오금도 못 펴는 협상대표로는 어떤 대화도 시간 끌기에 그칠 것이다. 김정은이 진정 의지가 있다면 여동생 김여정을 협상대표로 보내는 것이 그나마 남은 유일한 방법이다. 김여정에게 대미·대남 업무를 맡겼다지만 지금 그의 역할이라곤 온갖 험한 막말을 쏟아내는 것뿐이다. 적어도 김정은과 대화가 가능한 김여정이 나온다면 미국도 걸맞은 카운터파트를 곧바로 물색할 것이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남북 두 정상이 나란히 산책을 하다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눈 판문점 도보다리 대화. 새소리 바람소리만 깔린 35분의 롱테이크 영상에 전 세계의 시선이 쏠렸다. 입 모양을 읽는 구화판독 전문가의 분석 결과 두 사람의 대화에서 ‘핵무기’ ‘미국’ ‘트럼프’ 같은 단어들이 포착됐다. 그로부터 한 달여 뒤 열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주로 미국을 어떻게 상대할지 묻고 문재인 대통령이 의견을 내놓은 것으로 추정됐다. ▷3년 전 북한 최고 지도자로선 처음으로 남쪽 땅을 밟은 김정은에게 판문점 회담은 북-미 정상회담으로 가는 징검다리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회담을 목전에 두고 전격 취소를 통보해 무산 직전에 갔을 때 김정은이 부랴부랴 문 대통령을 찾은 곳도 판문점이었다. 이듬해 하노이 북-미 담판이 결렬된 뒤 남북미 3자 정상의 깜짝 회동도 벌어졌지만, 판문점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분단과 대결을 상징하는 예전 모습 그대로다. 한반도 평화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 우여곡절의 이벤트만 몇 개 더해졌을 뿐이다. ▷‘양 정상은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8000만 우리 겨레와 전 세계에 엄숙히 천명했다.’ 두 정상이 낭독한 판문점선언의 흥분과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5개월 뒤 평양 정상회담에선 남북 간 실질적 종전(終戰)을 이뤘다는 평가까지 나왔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미 대화의 장기 교착은 남북관계의 진전을 허용하지 않았다. 남북 간 ‘전면적 획기적 진전’은 금세 ‘단계적 돌발적 후퇴’로 바뀌었다. ▷특히 북한은 판문점선언을 남북관계를 대결로 전환하는 핑곗거리로 이용했다. 지난해 6월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행위의 중지’를 담은 내용을 들이밀며 판문점선언의 성과물인 개성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시켜 버렸다. 3개월 뒤엔 서해상에서 우리 국민을 무참하게 살해하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판문점선언도 7·4, 6·15, 10·4 같은 과거의 숱한 남북 합의문처럼 어느덧 휴지조각이나 다름없게 됐다. ▷한반도의 주인은 남북이라지만 미국의 의지 없이는 어느 것도 풀리지 않는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의 새 대북정책 공개를 앞두고 남북 모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요즘이다. 그간 북한의 온갖 욕설을 들은 문 대통령이다. 트럼프 시절 대북접근을 두고 “변죽만 울렸다”고 했다가 발끈한 트럼프로부터 험담까지 들었다. 중매자로선 술 석 잔과 뺨 석 대 사이에서 아쉬움의 표현도 쉽지 않은 예민한 시기인 건 분명하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지난주 워싱턴 미일 정상회담에서 단연 눈에 띄는 장면은 조 바이든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총리의 20분짜리 햄버거 오찬 회동이었다. 미국 측이 ‘코로나 예방 차원에서 곤란하다’고 했는데도 일본 측이 일대일 면담을 고집해 성사된 일정이라고 한다. 백악관이 공개한 사진에는 마스크를 쓴 두 정상이 기다란 테이블 위에 햄버거를 앞에 두고 멀찍이 앉아 있다. 바이든은 의료용 마스크 위에 검은 마스크까지 썼다. 준비한 햄버거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스가는 “그 정도로 대화에 열중했다. 단번에 마음을 터놓았다”고 강조했다. 이 회동을 두고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는 트위터를 통해 “만찬을 거부당한 햄버거 회담”이라며 ‘조공외교’라고 비판했다. 쩔쩔매는 스가의 모습이 “가련했다”고도 했다. 민주당 출신 하토야마는 미군기지 이전 문제로 갈등을 빚다 9개월 만에 물러난 단명 총리. 과거사에 대한 소신 발언으로 한국에선 박수를 받지만 일본 정계에선 ‘외계인’ ‘ET’라는 별명으로 통한다. 일본 언론도 그다지 주목하지 않은 뉴스인데도 유독 눈길이 가는 이유는 뭘까. 미국 새 행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한발 먼저 정상회담을 열고 친밀함을 과시하는 일본, 나아가 늘 일본을 먼저 배려하는 미국을 바라보면서 불편한 심사를 갖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깟 게 뭐라고!’ 하면서도 ‘또 일본에 밀렸네. 정부는 뭐 했지?’ 하는 생각이 스치는 것이다. 단순히 선망과 질시라고 말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이다. 그런 심정적 요동은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해양 방류를 일방적으로 결정한 직후라서 더욱 그랬을 수 있다. 미국에선 오염수 방류 결정이 나오자마자 국무장관까지 나서 “투명한 노력을 해준 일본 정부에 고마움을 표시한다”는 트윗을 날렸고, 방한한 기후변화특사는 한국 측의 중재 요청에도 “미국이 끼어드는 게 적절치 않다”고 선을 그었으니 말이다. 미일 밀월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작금의 밀착은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려는 양국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미국은 슈퍼파워 지위를 위협하는 중국을 철저히 견제하겠다는, 그리고 일본은 그런 미국에 편승해 묶여 있던 안보 족쇄를 벗어버리겠다는 것이다. 일본은 올림픽 개최와 코로나 백신 확보 등 미국의 지원이 절실한 터라 중국의 격한 반발과 국내의 우려 목소리에도 대만 문제까지 건드렸다. 내달 하순에 열릴 한미 정상회담도 여러모로 미일 회담과 비교될 것이다. 각종 의제에서, 특히 중국에 대한 톤의 차이는 두드러질 것이다. 물론 한국과 일본의 처지가 같을 수는 없다. 반도와 섬이라는 지정학적, 그리고 역사적 경험의 차이가 분명해서 한미일 3각 동맹이란 이름으로 한데 묶기 곤란한 지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간 중국의 횡포에 맞서 저항력을 키운 일본과 달리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한국은 더욱 조심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국제정치는 냉혹한 힘의 논리가 지배한다. 한국과 일본은 미국과 힘의 차이, 특히 군사력 격차가 큰 비대칭 동맹을 맺고 있다. 그렇다고 일방적 시혜의 관계는 아니다. 동맹은 상호 공유하는 이익을 바탕으로 유지된다. 주판알을 튕기는 계산이 없을 수 없다. 우리가 목도하는 외교는 흔히 국가적 위신의 문제로 나타나지만, 그 이면에는 힘의 질서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이냐는 생존의 문제가 있다. 다소 모양 빠지는 자리라도 만들어 자신의 처지를 이해시키고 공감대를 넓히려는 노력을 쉽게 폄하할 수는 없는 일이다. 스가의 햄버거 외교를 우리가 그저 웃고 넘길 수만은 없는 이유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지난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첫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에 ‘상응하는 대응’ 방침을 밝혔다. 언론 카메라에는 바이든이 미리 적어온 메모가 포착됐다. 최고령 대통령으로서 잦았던 말실수를 염려한 ‘커닝페이퍼’라는 얘기도 나왔지만, 그보다는 참모진과 논의한 대응의 선을 정확하게 지키겠다는 의사 표시일 것이다. 바이든 외교안보팀은 대북정책 재검토와 관련해 “마지막 단계”라는 답변 외엔 말을 아끼고 있다. 행정부 곳곳에서 언론 플레이가 난무하고 대통령마저 불쑥불쑥 트윗을 날리던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는 전혀 다른, 조금은 답답할 만큼 모범생 같은 외교를 보여주고 있다. 바이든이 약속한 ‘모범의 힘’은 우선 단단한 내부 입단속과 한목소리로 나타나는 듯하다. 사실 바이든 외교팀은 모범생 일색이다. 대부분 아이비리그 출신 엘리트이자 쟁쟁한 이력을 지닌 베테랑들이다. ‘말은 부드럽게, 대신 큰 몽둥이를 들고(Speak softly, but carry a big stick)’라는 외교의 기본을 충실히 따른다. 바이든의 외교 중시는 30년 넘게 직업외교관으로 일한 윌리엄 번스 전 국무부 부장관을 중앙정보국(CIA) 국장에 발탁한 것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외교관 출신 CIA 국장은 처음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최대 외교 성과로 꼽히는 이란핵합의(JCPOA)의 산파 역할을 했던 번스는 자신의 책 ‘막후교섭(The Back Channel)’에서 진정한 외교는 ‘조용한 힘(quiet power)’이라고 정의한다. “동맹을 돌보고, 상대를 압박하고, 분란을 잠재우고, 장기적 투자를 하는 눈에 띄지 않는(invisible) 작업”이라는 것이다. 그는 트럼프의 대북 외교에 대해서도 냉정한 평가를 내린다. “트럼프 대통령이 오래된 교범을 던져버리고 김정은과 직접 관여한 것은 옳았다. 한데 유감스럽게도 그의 충동과 무능, 독재자 관용, 쇼 집착은 진짜 외교를 밀어내버렸다. 그 사이 북한은 핵을 키우고 미사일을 정교화하고 외교적 고립을 탈피하면서 우리 동맹들을 갈라놨다.” 조만간 윤곽을 드러낼 바이든표 대북정책은 이전과 분명히 다를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일찍이 대북정책으로 ‘최대의 압박과 관여(Maximum Pressure & Engagement)’를 내걸었다. 하지만 “햄버거 협상부터 전투용 망치까지”라던 얘기대로 북한의 태도에 따른 즉흥적 대응이 전부였다. ‘분노와 화염’ 같은 거친 말폭탄으로 시작했지만 최대 압박은 실종됐고 ‘세기의 쇼’라던 정상 간 직거래의 환상은 여지없이 깨졌다.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최대 압박과 관여’라는 기조는 유지될 수 있다.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가 관건이기에. 다만 트럼프 방식과는 달리 진짜 압박과 관여가 치밀한 매뉴얼 아래 진행될 것이다. 북한은 늘 그랬듯 협박과 도발로 미국을 자극하고 있다. 그런 습관적 도발 행적을 돌아보면, 종국엔 스스로 걸어 나오게 될 협상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정작 괴로운 처지는 한국이다. 운전자를 자부해온 터에 동맹과 동족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해보려 하지만 북한은 원색적 비난을 퍼붓고 있다. 김정은에게 한국은 미국으로 가는 징검다리였을 뿐, 그마저 용도 폐기한 것처럼 보인다. 한미는 ‘완전히 조율된 대북전략’에 기초한 공조를 약속했다. 한국의 자율적 외교 공간은 필요하다. 그러자면 동맹의 신뢰부터 얻어야 한다. 서두르고 보채기만 하다간 조수석에조차 앉을 수 없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조 바이든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두고 동맹을 강탈한다고 비판했는데, 본인이 대통령 돼선 트럼프 때 해놓은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익을 편취하는 그런 모습 아닌가.”(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 한미 간 방위비분담금 협상 결과를 두고 ‘편취(속여 빼앗음)’라고 폄훼하는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의 말본새와 인식수준이 저열하기 짝이 없지만 미국 정권교체 이후 새 행정부의 대외정책 행보에 대한 관전평으론 과히 틀리지 않아 보인다. 이제 갓 출범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정책 재검토에 정신이 없기도 하겠지만, 요즘 바이든 외교안보팀은 트럼프 시절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가 남기고 간 유산을 고스란히 챙기거나 트럼프가 없었다면 못 거뒀을 과실들을 하나씩 따먹고 있는 형국이다. 물론 바이든 행정부는 그런 유의 지적이 나올 때마다 펄쩍 뛴다지만. 백악관이 최근 공개한 국가안보정책(NSS) 중간지침서는 세계 안보환경을 평가하면서 이렇게 말문을 연다. “우리는 세계가 75년 전, 30년 전, 나아가 4년 전 그때로 쉽게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여겨선 안 된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후 슈퍼파워로 부상하고, 냉전 종식과 함께 일극(一極)으로 우뚝 섰던 영광의 시기에 대한 짙은 향수와 함께 적어도 트럼프 이전으로라도 돌아가야 한다는 희망을 담았다. 바이든 외교는 트럼프 시절과의 단절, ‘새로운 길(new course)’을 강조한다. 바이든은 취임 직후 트럼프가 탈퇴했던 파리기후협약과 세계보건기구(WHO)에 재가입하면서 미국의 국제사회 복귀, 동맹과 외교의 복원을 선언했다. 바이든이 표방하는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는 민주주의와 인권 같은 보편 가치를 내세우며 동맹과 다자협력을 중시하는 미국의 전통적 노선이다. ‘힘의 과시’뿐 아니라 ‘모범의 힘’으로 세계를 이끄는 리더가 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정책비전 곳곳에선 트럼프식 힘의 논리가 짙게 묻어난다. NSS 지침은 “전 세계 ‘힘의 분포’가 바뀌고 있다”며 현실주의 학파의 세력균형론을 동원해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의 위협을 설파한다. 선거 때 내건 ‘중산층을 위한 외교정책’을 정교화하고, 외교정책과 국내정책 간 전통적 구분마저 허물며 두 영역의 결합을 공식화했다. 바이든은 이미 백악관 국내정책위원회 책임자로 노련한 외교안보통을 기용하기도 했다. 앞으로 무역협상에서 미국 중산층의 이익을 우선시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동맹의 비용분담 원칙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은 지금 제 코가 석 자인 형편이다. 지난 대선이 남긴 후유증, 특히 미국 사회를 반 토막으로 가른 분열의 정치를 어떻게든 치유하지 않고선 어떤 대외정책도 힘을 발휘하기 힘들다. ‘미국이 호구냐’며 백인 중산층 유권자를 파고든 트럼프식 포퓰리즘 논리를 바이든도 마냥 외면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바이든 행정부는 지금 국민을 향한 ‘국내용 외교’에 분투하고 있다. ‘국내정치는 국경에서 멈춰야 한다(Politics stops at water‘s edge)’는 초당적 외교 금언은 무색해진 지 오래다. 그에게 급한 것은 국민을 상대로 한 직접 설득이다. 국익이 우선이고 중산층을 중시한다는. 그러면서도 대외적으론 ‘겸손과 자신감’을 앞세우고 미국의 소프트파워(문화·가치)를 무기로 매력 공세를 펴고 있다. 하드파워(군사·경제)를 바탕으로 원색적인 힘자랑을 하던 트럼프와는 분명 다른 모습이지만 국익 극대화라는 외교의 기본이 달라질 리는 없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1968년 1월 23일 동해에서 북한에 나포된 미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는 평양 대동강변에 전시돼 있다.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1866년 조선군과의 충돌 끝에 불타 침몰한 그 장소다. 북한은 그 격침을 주도한 영웅이 바로 김일성의 증조부였다고 선전한다. 원산에 있던 큰 함정이 어떻게 옮겨졌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다. 은밀하게 남·서해를 거쳐 해상으로 운송했거나 분해해서 육로로 수송했을 테지만 둘 다 만만치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습격한 1·21사태 이틀 뒤 발생한 푸에블로호 사건은 냉전시대 미국에 최악의 굴욕 사건이었다. 억류 승조원 83명(사망 유해 1구 포함) 석방을 위한 11개월의 밀고 당기는 비밀협상 끝에 미 육군 소장이 서명한 사과문은 이랬다. “영해에 침입해 엄중한 정탐행위를 한 데 대해 전적인 책임을 지고 엄숙히 사죄하며 앞으로 다시는….” 미국은 서명 전부터 ‘오로지 승조원 구출을 위해서였다’며 그 내용을 전면 부인하는 성명을 냈지만, 사과문은 북한의 선전 자료로 충분했다. ▷승조원들은 온갖 고문에 시달리면서도 곳곳에 저항의 흔적을 남겼다. 단체사진에는 가운뎃손가락만 편 채 등장해 은근히 반항과 모욕의 뜻을 표시했고, 자백서에는 나이·군번을 허위로 적고 ‘김일성을 찬양한다’며 ‘pee on(오줌 누기)’처럼 들리는 ‘paean(찬가)’이란 단어를 썼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린 것은 잠깐의 환영 이후 당국 조사와 의회 청문회, 그리고 고문 후유증이었다. 이들에게 전쟁포로 훈장이 수여된 것도 20여 년이 지난 1990년이었다. ▷푸에블로호는 미 해군 함정 리스트에 남아 있는 현역함이다. ‘아무도 적진에 남겨두지 않는다(No one left behind)’는 미군 원칙에 따라 언젠가는 되찾아 공식 퇴역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 때문인지 푸에블로호는 북-미 관계의 부침에 따라 외교적 거래 또는 반환 촉구의 대상으로 떠오르곤 했다. 2000년대 초 북한의 반환 제의를 놓고 논의가 오갔지만 2차 북핵 위기로 무산됐고, 미 의회에선 때마다 반환을 요구하는 결의안이 나오고 있다. ▷워싱턴 연방법원이 최근 북한에 푸에블로호 승조원과 가족, 유족 등 171명에게 23억 달러(약 2조5800억 원)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역대 미 법원이 명령한 북한 배상액 중 가장 큰 액수다. 이미 5억 달러 배상 판결을 받아낸 오토 웜비어 사망 사건처럼 앞으로 미국과 해외의 북한 자산을 압류해 배상액을 확보하려는 움직임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가뜩이나 돌파구가 안 보이는 북-미 간 장기 교착 상태에는 악재가 또 하나 늘었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아프리카 공주, 트러블메이커, 불굴의 전사…. 15일 최초의 아프리카 출신, 최초의 여성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으로 추대된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67)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들이다. 그런 요란한 수식어답게 그는 국제무대에서 한마디로 평하기 어려운, 팔색조처럼 복잡 미묘한 인물로 통한다. 지난해 WTO 선거전 도중 그의 미국 시민권 획득 사실이 밝혀져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고 일부 국가의 표심마저 헷갈리게 만든 게 대표적인 사례다. ▷“나이지리아는 1960년대 말 비아프라 내전으로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삶이 나아졌을 때 내가 가진 것을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주자는 생각을 갖게 됐죠.” 2010년 세계은행 집행이사였던 오콘조이웨알라는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개발경제 전문가가 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나이지리아의 작은 마을 통치자인 오비(왕)의 딸로 태어난 그는 독립과 내전의 혼란 속에서 하루 한 끼도 먹기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미국 유학은 화려한 이력의 시작이었다. 하버드대 우등 졸업, 매사추세츠공대(MIT) 석·박사를 거쳐 세계은행에서 20여 년간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 ‘넘버 2’ 자리인 집행이사까지 올랐다. 나이지리아 정부의 부름을 받아 두 차례에 걸쳐 재무장관을 지냈고 잠시 외교장관을 맡기도 했다. 당시 그는 부정부패에 맞서 비타협적인 투사 기질을 보여줬고, 그때 얻은 별명이 ‘오콘조-와할라’였다. 와할라는 현지어로 골칫거리(trouble)를 뜻한다. ▷그는 공교롭게도 한국인과 두 차례나 경쟁했다. 2012년 세계은행 총재 자리를 두고 한국계 미국인 김용 다트머스대 총장과 치열한 경쟁을 펼쳤지만 고배를 마셨다.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과 최종 결선까지 간 이번 WTO 선거에선 지난해 10월 회원국 다수의 지지를 받아 일찌감치 총장 자리를 예약했지만 3개월 넘게 기다려야 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공개 반대하면서 컨센서스(전체 합의) 방식의 추대 절차가 멈춰 섰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의 친중(親中) 성향을 문제 삼았다고 하지만, 그가 민주당 측과 가깝다는 정치적 이유도 크게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아프리카 소년병 이야기를 다룬 소설(‘Beasts of No Nation’) 저자인 그의 큰아들은 조 바이든 행정부의 교통장관이 된 피트 부티지지의 하버드대 룸메이트이기도 했다. 한국은 미국의 정권교체가 마무리될 때까지 침묵하다 이달 초 후보 사퇴를 발표했다. 미국에 불가분의 동맹 관계를 보여줬는지는 모르지만 그간 쏟아진 국제사회의 눈총이 한국 외교에 많은 의문표를 던졌음을 부인하긴 어렵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북한 노동당 39호실은 김씨 일가의 통치자금, 이른바 ‘궁정경제’를 관리하는 기관이다. 1970년대부터 각종 알짜 기업과 광산, 농어업에서 벌어들인 외화 수입을 관리했고, 위조 달러와 마약 밀매까지 불법 외화벌이는 물론 사치품 조달에 손을 대면서 미국의 대북제재 리스트 상단에 올라 있다. 그 금고지기 역할은 오랫동안 김정일의 중고교 동기동창인 전일춘에게 맡겨졌다. 전일춘은 김정일 김정은 2대에 걸친 39호실장으로서 권력자의 최측근이었다. ▷그런 전일춘의 사위인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대사대리가 재작년 9월 망명해 한국에 살고 있다고 한다. 망명 시점은 조성길 전 이탈리아 주재 대사대리가 한국으로 탈출하고 두 달 뒤다. 당시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래 유엔 대북제재에 따른 북한 노동자들의 12월 송환 시한을 앞둔 시기였다. 쿠웨이트 대사관은 파견 노동자 관리는 물론 무기 수출과도 관련된 중동의 거점공관이다. 국제사회와 북한당국 양쪽에서 오는 압박은 외화벌이를 책임진 고위 외교관의 탈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북한 외교관은 대부분 당 간부 자녀가 차지한다. 외교관 선발부터 친가 6촌, 외가 4촌, 처가 4촌까지 성분이 좋은 핵심 계층에 속해야 한다. 더욱이 해외에 나갈 땐 수많은 서면보증과 면접, 심사 등 엄격한 검증 절차를 거친다. 그래서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국민의힘 국회의원)도 장인이 숙청되면서 해외 발령을 포기했다가 1994년 강성산 총리의 사위 탈북 사건으로 간부 자녀들의 해외 파견이 전면 보류되는 바람에 ‘천운’을 얻었다고 한다. ▷북한 외교관의 잇단 탈북은 독재체제가 핵심부 언저리부터 무너지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몇 년 전까지도 20만 명이 넘던 해외 일꾼들이 대북제재로 대폭 줄어들면서 이제 해외엔 소수 외교관과 무역일꾼만 남아 있다. 외국 생활을 통해 북한의 참혹한 실상을 절실하게 느낀 외교관들이다. 무엇보다 자녀들이 귀국 후 닥칠 현실은 상상하기조차 싫을 것이다. 류 전 대사대리도, 태 전 공사도 자식의 장래 문제를 탈북의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김정은도 어려서 스위스에서 살았다지만 그건 경호원의 엄호 속에 한정된 경험만 하던, 잠시의 바깥바람이었을 뿐이다. 그러니 한때는 외국물 먹은 젊은 지도자에게 기대를 걸었던 이들마저 집권 10년 차가 되도록 나빠지기만 하는 현실에서 탈출을 결심하는 것이리라. 김정은도 외부인들에겐 “내 아이들까지 평생 핵을 짊어지고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고 한다. 자식의 미래를 걱정한다는 이 말에 내부 엘리트층이 먼저 코웃음 치고 있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과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가 주고받은 편지는 2000여 통에 이른다. 고립주의를 고수하며 개입을 주저하던 루스벨트가 결국 영국에 대한 원조와 참전을 결정한 데는 처칠의 집요한 편지외교가 톡톡히 한몫했다. 처칠의 편지는 대부분 루스벨트를 구슬리고 애원하는 일방적 구애였지만 결정적 순간엔 “미국이 원조하지 않으면 영국은 독일에 항복하게 될 것”이라는 은근한 협박도 마다하지 않았다. ▷밥 우드워드의 신작 ‘격노(Rage)’ 출간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주고받은 27통의 서신이 일부 공개됐다. 김정은의 편지는 손이 오그라드는 표현이 가득하다. “우리가 나눈 매 순간순간이 소중한 추억이다. 특별한 우정이 마법의 힘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재차 만남을 요청했다. 트럼프도 화답했다. 둘의 사진이 실린 신문 1면을 동봉하고 이틀 뒤 회동 사진 22장을 또 보내며 “우리의 독특한 우정을 담았다”고 썼다. ▷김정은은 ‘밀당(밀고 당기기)’도 적절히 구사했다. 작년 판문점 회동 이후 한미 군사훈련이 완전히 중단되지 않은 것에는 불쾌한 심정을 드러냈다. “나는 분명히 기분이 상했고 이 감정을 숨기고 싶지 않다.” 그러면서도 “이런 솔직한 생각을 주고받을 수 있는 우정이 자랑스럽고 영광스럽다”며 트럼프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았다. 우드워드는 이를 ‘실망한 애인의 어조’라고 묘사했다. ▷트럼프는 며칠 전 트위터에서 “존 볼턴(전 국가안보보좌관)은 내가 그걸 정말 연애편지로 여겼다고 한다는데, 그건 비꼬는 것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볼턴의 회고록에 따르면, 트럼프는 그 편지에 정말 반색했다. 편지를 보자마자 “김정은을 백악관으로 초청해야겠다”고 말해 측근들을 기겁하게 하는가 하면 “나에 대해 뭐라고 썼는지 들어봐라”며 자랑스레 읽기도 했다. 볼턴이 “쥐똥만 한 나라 독재자의 편지”라고 해도 소용없었다. 그러니 참모들은 그 편지가 트럼프의 어디를 긁어줘야 하는지 정확히 아는 파블로프식 전문가의 솜씨라며 혀만 찰 수밖에 없었다. ▷김여정은 두 달 전 이례적인 담화를 냈다. 김정은의 허락을 받았다며 “미국 독립절 기념행사 DVD를 꼭 얻으려 한다”고 했다. 끊긴 정상 간 소통을 복원해 보자는 기대였을 것이고, 그 사이 은밀한 편지가 오갔는지도 모를 일이다. 트럼프는 “나는 상대가 거칠고 비열할수록 잘 지낸다”며 독재자를 잘 다룬다고 자랑했다고 한다. 하지만 김정은과의 기이한 브로맨스는 틀어지면 엄청난 위험을 낳을 수 있다. 연애의 끝이 결별을 넘어 원수지간이 되듯.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북한에서 50년 가까이 방송원으로 일해 ‘노력영웅’ 칭호까지 받은 리춘희 아나운서. 재작년 5월 북-중 정상회담 소식을 전하면서 거듭 실수를 했다. “감사의 뜻을 표하시…하셨습니다.” 평소 엄숙한 모습과 달리 안경을 쓴 채 머리까지 숙이고 원고를 읽으면서 더듬거리는가 하면 같은 문장을 다시 읽기도 했다. 최고지도자의 동정을 속보로 전하면서 벌어진, 북한 최고의 ‘1호 방송원’으로선 유례없는 굴욕의 순간이었다. ▷조선중앙TV가 엊그제 밤새 태풍 마이삭이 지나는 길목 곳곳에 방송원들을 파견해 현장 영상을 실시간에 가깝게 보여주는 재난방송을 했다. 생방송이란 거의 없는 북한에선 이례적인 보도였다. 방송원이 비바람에 몸이 흔들리며 생생한 상황을 전하는 모습을 30분가량의 시차를 두고 내보냈다. 북한은 지난주 태풍 바비가 북상할 때도 새벽까지 특보를 내보냈다. 지난해 태풍 링링 때는 정규방송 시간에 특별 편성을 하는 것이었지만 올해는 심야까지 방송시간을 연장해 사실상 24시간 특보체제를 가동한 것이다. ▷김정은 시대 들어, 특히 여동생 김여정이 당 선전선동부 실세로 부상한 2014년부터 북한 방송에도 변화의 바람이 두드러졌다. 나이 지긋한 아나운서가 이른바 혁명적 억양과 발성으로 보도문을 읽던 과거와 달리 아나운서의 나이는 젊어졌고 말투도 나긋나긋해졌다. 현장감도 가미하고 입담까지 선보인다. 자막과 그래픽도 한결 세련되게 바뀌었다. 그 내용에서도 당 주력사업의 부진을 비판하는가 하면, 평양시민용 대내방송에선 길거리 젊은이들의 옷차림을 단속하는 장면을 담은 ‘현장고발’도 나온다고 한다. ▷북한의 재난특보는 어린 시절 외국 문물을 경험한 스위스 유학파 남매가 만들어낸 작은 변화일 것이다. 보다 친근하고 신속한 보도로 주민의 안위를 염려하는 ‘애민(愛民)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는 의도도 깔려 있다. 하지만 세상과 문을 닫은 채 자폐적 독재체제를 이어가는 북한으로선 첨단기술로 전 세계를 실시간 연결하는 방송의 진화 속도를 수십 년 뒤처진 채로 겨우 흉내 내는 수준일 뿐이다. ▷생방송, 특히 생중계는 장비 등 기술적 뒷받침도 필요하지만 예측불허의 현장 상황 탓에 늘 사고와 실수가 있게 마련이다. 모든 것을 사전 녹화하고 검열과 재검토를 거쳐 편집해 내보내는 북한 방송체제에서 생방송은 불가능하다. 더욱이 당과 수령을 대변하는 선전선동 수단으로서 북한 방송의 본질이 바뀌지 않는 한 변화도 딱 거기까지다. 아버지 김정일도 최은희 신상옥 부부까지 납치하며 영화의 혁신을 이뤄냈다지만 그때뿐이었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1945년 7월 포츠담 정상회담의 막바지.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게 다가가 넌지시 “비범한 파괴력을 지닌 무기를 개발했다”고 말했다. 원자폭탄의 존재를 처음 알린 것인데, 스탈린은 무심한 듯 대꾸했다. “기쁜 소식이군요. 잘 사용하기 바랍니다.” 질문도 없었다. 둘의 대화를 지켜본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는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스탈린이 깨닫지 못한 게 틀림없다고 믿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스탈린은 미국이 언제 그 사실을 털어놓을지 기다리고 있었다. ▷트루먼이 두 달 전 프랭클린 루스벨트 사망 때까지 부통령으로 있으면서도 까맣게 몰랐던 극비 프로젝트를 스탈린은 이미 오래전부터 훤히 알고 있었다. 미국 곳곳에 심어놓은 스파이망 덕분이었다. 그리고 4년 뒤 소련은 보란 듯이 핵실험에 성공해 미국의 절대무기 독점을 무너뜨렸다. 아무리 극비에 부친 최첨단 기술이라도 영원한 독점은 불가능하다. 결국엔 시간의 문제이고, 그 격차를 지키거나 좁히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있을 뿐이다. 자체 개발하거나 사는 게 아니라면, 특히 판매는커녕 접근조차 거부당한다면 추격자가 선택하는 방법은 해커나 스파이를 이용한 도용과 절취일 것이다. ▷전방위로 격화되던 미중 경쟁은 이제 극한적 외교 충돌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은 휴스턴 주재 중국총영사관 폐쇄를 전격 통보했고, 중국도 맞대응 조치를 경고했다. 미국은 휴스턴 총영사관을 ‘연구 도둑질의 진원지’ ‘거대한 스파이 소굴’이라고 지목했다. 일찍이 “그 나라 유학생은 다 스파이”라고 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다. 1억 명에 달하는 중국 공산당원의 입국 금지까지 검토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다분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반중(反中) 정서를 자극하려는 정치적 동기가 깔려 있다는 의심을 사지만, 중국의 거침없는 대외 공작활동이 그 빌미가 됐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손자병법’은 용간(用間), 즉 간첩·밀정의 활용을 승리의 요체라며 거기에 돈을 아끼지 말라고 했다. 포섭과 매수, 역이용, 심리전, 침투라는 5대 첩보활동 유형도 제시했다. 중국의 대외전략이 첩보활동을 넘어 회유와 협박, 여론조작을 통해 비밀스럽게 영향력을 확대하는 이른바 ‘샤프(날카로운) 파워’에 비유되는 것도 2500년 된 손자병법식 대응과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기술전쟁의 시대에 외교와 첩보의 경계는 갈수록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지만, 부국강병을 넘어 세계 패권을 노리는 중국엔 그 경계가 아예 없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를 중국인들도 새삼 되돌아볼 때가 됐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비굴한 유화정책의 상징인 뮌헨회담에 견줘 ‘제2의 뮌헨’이라 불리는 얄타회담. 동서 냉전의 모든 문제는 얄타에서 싹 텄다는 게 역사가들의 평가였다. 하지만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건강이 괜찮았더라면, 그리고 두 달 뒤 세상을 뜨지 않았더라면 얄타에 대한 역사적 평가도 크게 달라졌을지 모른다. 이렇듯 자유세계 지도자의 건강도 역사에 수많은 의문표를 남길진대, 독재체제 지도자의 건강은 역사를 송두리째 바꾸곤 했다. ▷딱 2년 전 오늘, 김정은이 판문점 북측 판문각을 나와 군사분계선을 거쳐 남측 평화의집까지 걸은 거리는 불과 200m 남짓이었다. 그만큼 걷고도 김정은의 얼굴은 의장대 사열을 하는 동안 벌겋게 변해 있었고, 방명록에 서명할 때는 숨이 가쁜 듯 어깨까지 들썩였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보다리 독대를 마치고 돌아올 땐 땀이 흥건할 정도였다. 그의 거친 숨소리를 가까이서 들은 우리 당국자들이 “김정은 상태가 큰일이네…”라고 탄식한 것도 벌써 그때였다. ▷그해 9월 평양 정상회담 땐 김정은 건강이 막간 화제로 등장했다. 백두산 케이블카 안에서 김정은은 숨을 고르며 문 대통령에게 “하나도 숨차 안 하신다”고 하자 문 대통령은 “뭐 아직 이 정도는…”이라고 했다. 이에 부인 리설주는 “정말 얄미우시네요”라고 웃으며 박수를 치기까지 했다. 거기엔 김정은의 무절제에 대한 은근한 타박이 담겨 있었다. 앞서 리설주는 남측 특사단과 만나서는 김정은이 금연을 권해도 듣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은이 공식석상에서 모습을 감춘 지 보름이다. 중태설부터 식물인간설, 사망설까지 온갖 소문이 난무하지만 북한에선 감감무소식이다. 그간 수없이 핵·미사일 도발을 했지만 이만큼 관심을 끌었을까 싶다. 김정은이 멀쩡하다면 이 상황을 한껏 즐기고 있을지 모른다. 정작 김정은의 건강을 걱정해주는 것은 오히려 주변국 몫이 됐다. 우리 정부는 “특이 동향이 없다”고 되풀이하고, 미국 대통령은 “보도가 부정확하고 옛 문서를 (근거로) 썼다더라”며 가짜뉴스로 치부하는 듯한 발언까지 했다. ▷재작년 판문점선언은 북-미 싱가포르선언, 남북 평양공동선언으로 이어졌지만 작년 2월 북-미 하노이 협상 결렬로 모든 것은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간 상태다. 남북 간엔 7·4공동선언부터 남북기본합의서, 6·15공동선언, 10·4정상선언 등 수많은 합의가 있었지만 주역이 바뀌어 대화가 다시 시작되면 늘 참고자료일 뿐 휴지 조각이나 다름없게 된 게 현실이었다. 판문점선언은 지금 한쪽 서명자의 행방조차 묘연한 상황에서 2주년을 맞았다. 그 수명은 얼마나 될까.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8일 0시를 기해 인구 1100만의 중국 도시 우한에 대한 봉쇄가 해제됐다. 코로나19의 진원지로 봉쇄령이 내려진 지 76일 만이다. 우한 도심엔 ‘해방’을 자축하는 화려한 네온사인이 밝혀졌고, 고속도로 요금소에서 줄지어 기다리던 차량들이 속속 빠져나갔다. 기차역과 공항 대합실도 인산인해를 이뤘다. 우한에서 일하거나 일시 방문했다가 발이 묶인 외지인만 수백만 명이었다. 이날 하루 우한을 벗어난 사람이 최소 10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전격적 봉쇄 조치가 단행된 1월 23일 이래 우한은 유령도시가 됐다. 대중교통이 끊기고 가게나 업체도 일제히 문 닫으면서 거리는 텅 비었다. 주민들은 집과 거주지역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이런 조치를 어긴 사람들은 구타당하고 끌려가 구금됐다. 사회주의 통제 국가가 아니고선 불가능했을 가혹한 조치였지만 효과는 뚜렷했다. 매일 수천 명에 달하던 확진자는 감소하기 시작했고 공식적인 신규 감염자 0명이 되면서 역병을 물리친 ‘영웅도시’가 됐다. ▷하지만 감옥 생활에서 벗어난 기쁨을 만끽할 시간은 길지 않을 듯하다. 조만간 오열과 통곡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우한의 코로나19 확진자는 5만여 명, 사망자는 2500여 명으로 중국 전체 희생자의 77%에 달한다. 그간 당국은 모든 장례식을 금지하고 묘지도 폐쇄했다. 코로나19든 다른 질병이든 사망하면 즉시 화장해 유골도 가족들에게 전달하지 않았다. 지난달 말에야 유골을 찾아가도록 했지만 장례의식을 치르는 것은 아직 금지돼 있다. 이제 장례식이 허용되면 살아남은 자들은 그간 억눌렀던 큰 슬픔을 토해낼 것이다. ▷우한은 거대한 바이러스 배양지이자 퇴치 실험실이었다. 이제 봉인됐던 실험실이 열리면서 우한 엑소더스(대탈출)는 코로나19의 2차 발흥을 촉발할 수 있다는 경계심을 높이고 있다. 최근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885명 중 68%인 601명이 무증상자였고, 그중 절반 가까운 279명이 우한이 중심인 후베이성에서 나왔다. 공식 데이터에는 포함되지 않는 이들 무증상자는 비록 전염력은 약하지만 ‘침묵의 운반자’가 되어 언제든 다시 외부 세계에 바이러스를 퍼뜨릴 수 있다. ▷우한 봉쇄는 어느덧 서방의 도시들마저 따라 하는 방역의 모델이 됐다. 하지만 전 세계를 강타한 변종 바이러스의 진원지라는 오명은 ‘우한 폐렴’이란 닉네임과 함께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특히나 인간의 치명적 바이러스 감염은 대개 불결한 야생동물 사냥과 도살, 생식에서 비롯됐듯 이번 코로나19 발원도 중국인의 기괴한 식문화가 유력한 용의자였다. 우한은 무엇보다 원시적 야만의 불명예 딱지부터 벗어야 한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김정은은 그를 ‘지능 낮은 멍청이’라 불렀는데, 난 그걸 훨씬 순화해서 ‘지능 낮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게 화낼 일인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작년 5월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을 두고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바이든이 김정은을 ‘폭군’으로 칭한 뒤 북한 매체로부터 “품격 없는 속물이 푼수 없이 날뛴다”는 공격을 받자 고소하다는 듯 끼어든 것이다. 진작 바이든에게 ‘졸린 조(Sleepy Joe)’란 딱지를 붙인 트럼프에겐 ‘북한 대 바이든’ 공방도 그저 정치적 호재일 뿐이다. ▷민주당 경선 초반 치욕스러운 패배로 몰락하는 듯했던 바이든이 3일 슈퍼 화요일 경선의 14개 주 가운데 10곳에서 승리하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을 제치고 가장 많은 대의원 수를 확보했다. 피트 부티지지 같은 젊은 온건파 후보가 하차하면서 바이든을 지지한 데 따른 ‘중도 결집’ 효과였다. 억만장자 마이클 블룸버그도 경선을 포기하며 바이든 지지를 선언했고, 미국 증시도 가파른 상승세를 보여 흔들렸던 대세론도 다시 살아나는 모양새다. ▷바이든은 7선 상원의원에 부통령을 지낸 ‘평생 정치인’이다. 트럼프보다 4세나 많은 78세의 고령인 데다 별다른 카리스마도, 79세 샌더스의 정책적 참신성도 보이지 않는 그에겐 ‘졸린 조’란 닉네임은 치명적이다. 그의 올드한 이미지는 잊을 만하면 터지는 말실수로, 주책없는 노인네 행실로 더욱 굳어졌다. 특히 과도한 신체 접촉을 둘러싼 논란으로 ‘섬뜩한 조(Creepy Joe)’란 악명까지 얻었고, 자신은 ‘촉각의 정치인(tactile politician)’ 즉 다정다감한 사람일 뿐이라는 군색한 해명을 내놨다. ▷그런 변명이 다소나마 통한 것은 그의 지극한 가족 사랑 덕분일 것이다. 그는 갓 서른이던 1972년 상원의원에 당선된 직후 교통사고로 아내와 딸을 잃고 의원직까지 포기하려 했다. 분노와 절망감에 빠져 일부러 싸움질을 찾아 밤거리를 배회하곤 했다고 한다. 결국 두 아들을 집에서 보살피기 위해 매일 지역구에서 워싱턴까지 편도 90분이 걸리는 열차 통근을 의원 재직 내내 이어왔다. ▷바이든은 일단 ‘민주적 사회주의’를 내건 당내 급진파 샌더스를 넘어야 한다. 그 승부는 결국 트럼프를 꺾을 본선 경쟁력을 보여주느냐에 달렸다. 트럼프는 어제 블룸버그를 ‘꼬맹이 마이크(Mini Mike)’라고 놀리며 그의 바이든 지지 효과는 없을 것이라고 했고, 샌더스의 급진파 경쟁자인 엘리자베스 워런을 ‘역대 최고의 방해 입후보자’라 칭하며 은근히 사퇴를 부추겼다. 샌더스보다는 바이든이 부담스럽다는 얘기일 것이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항공의 역사는 하늘을 날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됐고, 기술혁명이 대개 그랬듯 첫 사용자는 군(軍)이기 십상이다. 18세기 말 나폴레옹도 항공의 시작인 유인풍선, 즉 기구(氣球)가 나오자마자 군사적 활용에 관심을 가졌다. 이후 비행선, 비행기로 발전하면서 항공기는 처음엔 정찰용으로 이후 폭격용으로 이용됐다. 현대전에서, 특히 핵시대에 무엇보다 중요해진 전력이 24시간 전천후 감시와 실시간 경보를 가능케 하는 조기경보·감시능력이지만, 한국군의 가장 큰 취약점이다. 한국군의 감시능력은 휴전선 중심의 단거리 전술정찰 수준.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보는 만큼 그 능력을 높일 수단이 바로 고고도 전략정찰기다. ▷미국 전략정찰기 U-2는 냉전시기를 상징하는 항공기다. 냉전 초 공군이 아닌 중앙정보국(CIA)이 개발해 냉전 종식과 함께 생산이 종료됐고, 아직까지 현역으로 활동하는 대표적 장수기종이다. 1960년 미소 정상회담을 취소시킨 U-2 격추 사건과 쿠바 미사일 위기 때 활약상은 냉전사에 굵직하게 기록됐다. 최근 북한의 도발 징후에도 U-2는 최신 정찰기들과 함께 한반도 상공에 나타났다. U-2는 가늘고 긴 경량의 동체에다 극단적으로 긴 날개를 단 탓에 특히 이착륙이 매우 어렵다. 조종사는 우주복 같은 특수복을 입은 채 비좁은 공간에서 장시간 비행해야 하는 극한직업이다. ▷노후한 U-2를 대체하기 위해 무인기(UAV)로 개발된 것이 고고도 무인정찰기 RQ-4 글로벌호크다. 20km 상공에서 레이더와 전자탐지장비로 지상 30cm 크기의 물체까지 식별할 수 있다. 작전반경은 3000km로 30시간 이상 운용이 가능해 인공위성에 버금가는 역할을 한다. 특정 표적과 이동 표적에 대한 정밀 감시가 가능해 북한의 주요 기지와 전력 이동을 추적하는 데 필수적이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도입을 추진했으나 미국의 판매 거절로, 이후엔 레이더장비의 성능 미달로 지연되는 등 10여 년의 우여곡절 끝에 이번에 들어오게 됐다. ▷군은 글로벌호크 도입과 관련한 행사는 물론 인도 날짜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어제 스텔스 전투기 F-35A 전력화 행사도 비공개로 열었다. 그러니 당장 “아무리 민감한 시기라지만 북한 눈치를 너무 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두 무기체계 모두 고도의 보안성을 요구하는 국가급 전략무기인 만큼 요란한 홍보 대상으로 삼지 않겠다는 군의 설명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북한의 잇단 도발 협박에 가뜩이나 국민적 안보 불안이 큰 터에 그런 우려를 조금이나마 씻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날려버리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세상을 경험할수록, 더 많이 깨달을수록, 나는 그 노인이 얼마나 현명했는지 새삼 인정하게 됐다.”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회고록에 나오는 대목이다. 여기서 ‘그 노인’은 1953년 6·25 정전협정에 반대하며 반공포로 석방 같은 예측불허의 행동으로 미국이 넌더리 내게 만들었던 이승만 대통령을 가리킨다. 닉슨은 부통령 시절에 만난 이승만이 자신에게 해준 조언들을 가슴 깊이 새겨뒀다. ▷이후 대통령이 된 닉슨은 이런 불확실성 조장 전략을 소련과 북베트남을 상대로 십분 활용했다. 특히 1973년 하노이 폭격 이후 포로들이 석방되자 일기에 이렇게 썼다. “북베트남인들은 정말로 내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절대로, 반드시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당시 닉슨의 과제는 최대한 체면을 살리며 베트남에서 빠져나오는 것이었다. 즉, 휴전 협상을 하면서도 북폭을 확대해 굴욕적 철군이 아님을 보여주려는 고육책이었다. ▷닉슨의 전략은 북한의 잇단 도발로 한반도 전쟁 위기설이 돌던 재작년 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대북 대응책으로 부활했다. 니키 헤일리 전 주유엔 미국대사는 최근 발간한 회고록에서 트럼프가 초강력 대북제재 결의를 위해 유엔 회원국들을 이렇게 압박하라고 했다고 썼다. “그들에게 (군사공격을 포함한)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고 전하라. 그들이 나를 미쳤다고 생각하게 하라.” 또 북한 김정은에 대해선 “미치광이를 다루는 위험에 대해서라면 문제는 그쪽이지 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미치광이 전략은 세상사에 흔한 책략이지만 국가 경영 전략 차원에서 주목한 것은 니콜로 마키아벨리였다. 그는 “때론 미친 척하는 것은 매우 현명한 일이다”고 썼다. 마키아벨리가 흠모한 이탈리아 전제군주 체사레 보르자의 자질은 대담함, 자신감과 함께 뛰어난 속임수에 있었다. 이상적 군주는 초인적 의지력과 교활함, 무자비함을 겸비해야 한다고 믿었던, 그래서 누구보다 ‘선의의 무능력자’를 경멸했던 마키아벨리다운 현실정치론이 아닐 수 없다. ▷닉슨과 트럼프의 미치광이 전략 배경에는 미국의 고립주의적 퇴각이라는 흐름이 있다. 베트남 수렁에서 빠져나가며 지역 안보는 각국이 해결하라는 ‘닉슨 독트린’이나 더는 세계의 경찰이길 거부하며 방위비 분담을 요구하는 ‘미국 우선주의’는 결국 초강대국도 이젠 힘에 부친다고 실토하기를 주저하는 역설적 으름장이다. 여기엔 두 사람의 독특한 성향도 한몫했다. 홀로 있기를 좋아했고 알코올의존증과 우울증에 시달렸던 닉슨이고, 변덕과 기행으로 진짜 미친 건지 그런 척하는 건지 헷갈리게 하는 트럼프이니.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키 180cm가량의 당당한 체격에 아버지와 꼭 닮은 용모, 그래서 아버지는 늘 ‘장군감’이라며 자랑했다. 그러니 주변에선 그가 둘째 부인의 아들임에도 아버지를 이을 후계자가 될 것이라 했고, 친모도 그를 위해 적장자와의 권력투쟁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한번 권력에서 밀려나면 끝도 없는 추락뿐…. 김정일의 이복동생이자 김정은의 삼촌인 김평일 체코 주재 북한대사(65)가 겪은 삶이다. 그는 1981년 유고슬라비아 대사관 무관보로 사실상 추방된 이래 헝가리 불가리아 핀란드 폴란드 등 해외를 전전하고 있다. ▷김평일은 어려서부터 주변의 기대를 받았다. 당 고위 간부 자제들이 다니는 남산중 재학 시절 각종 스포츠에도 만능이어서 인기가 많았고, 온화한 성격에 사람을 끄는 매력도 있었다고 탈북 관료들은 전한다. 김일성종합대를 다니다 인민군 상좌로 입대했고 엘리트 군인 코스인 김일성군사종합대에 진학했다. 자연스레 그를 아끼는 간부들이 생겼고, 김일성도 평소 “당은 정일이에게, 군은 평일이에게 맡길까 한다”고 했다고 한다. ▷이런 이복동생이 김정일에겐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이미 후계자로 등극하고도 열세 살 아래 동생에 대한 질투심과 열등감에서 자유롭지 않았으리라. 특히 일부 군 원로마저 김평일을 싸고도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었다. 김평일 친구들이 술김에 “김평일 만세”를 부른 사건을 계기로 김정일은 ‘곁가지 청소’에 들어갔다. 김평일의 동기생 등 주변 인물들은 모조리 수용소로 끌려갔고, 우연히 김평일을 만나거나 함께 사진 찍은 사람까지 처벌당했다. ▷김평일의 해외 생활은 사실상 유배(流配), 그것도 중죄인을 울타리 안에 가두는 위리안치(圍籬安置) 못지않은 격리조치였다. 대사관 직원들마저 그를 철저히 외면했다. 직원들로서도 대사와 얼굴만 마주쳐도 공연한 오해를 살 수 있고 그 어떤 사소한 접촉도 일일이 보고해야 해서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외교 행사로 파티라도 열리면 아무도 김평일 근처에 가고 싶어 하지 않아 그 주위에는 늘 1m의 공백이 생겼다고 한다. ▷평생 ‘불귀의 객’ 신세를 면치 못할 것 같던 김평일이 조만간 귀국길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고 국가정보원이 4일 밝혔다. 그의 귀국이 귀양살이 해제는 아닐 것이다.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이 재작년 암살당한 뒤 다음 표적 아니냐는 얘기가 돌았던 김평일이다. 차라리 곁에 두고 감시하겠다는 의도가 아니라면 정통성 강화를 위한 화합의 리더십 선전용일 수도 있다. 김평일은 귀국해서도 ‘투명인간’으로 지낼 수밖에 없다. 김정은 뒤편에 병풍 같은 소품으로 깜짝 등장할지도 모르지만.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거대 소셜미디어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4월 미국 상원 청문회에 꼬박 이틀이나 불려나왔다. 늘 입던 회색 티셔츠 대신 양복에 넥타이를 맨 차림이었다. 페이스북이 대선 때 러시아발(發) 가짜뉴스와 댓글부대의 놀이터가 되고, 페이스북 사용자 정보가 고스란히 도널드 트럼프 후보 진영에 넘어가 선거운동에 이용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저커버그는 하루아침에 ‘공공의 적’이 됐다. 의회도 그 문제를 집중 추궁하겠다고 잔뜩 벼르며 그를 청문회 증인으로 출석시킨 것이다. ▷하지만 정작 쩔쩔맨 것은 의원들이었다. 한 칼럼니스트는 청문회장의 저커버그를 ‘조부모 댁을 방문해 열심히 와이파이 켜는 법을 가르쳐주는 예의바른 10대 소년’이었다고 묘사했다. 평소 시답잖은 질문이다 싶으면 차갑게 무시하며 적대감까지 드러내던 저커버그였지만 컨설턴트와 변호사, 이미지 전문가로 구성된 최고의 준비팀과 몇 주에 걸친 철저한 예행연습 끝에 곰살궂은 젊은이로 변신한 것이다. 더욱이 워드프로세서도 제대로 못 다루는 의원들이 “내 아이들이 인스타그램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같은 한심한 얘기를 쏟아내는 모습과 극명한 대조를 보이면서 저커버그는 일단 큰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긴급뉴스: 저커버그와 페이스북이 방금 트럼프의 재선을 지지했다.’ 지난주부터 페이스북에는 이런 내용의 광고가 널리 퍼지고 있다. 민주당 유력 대선주자인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의 선거운동본부가 내보낸 광고다. 이 광고는 “아마 여러분은 충격을 받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사실이 아니다(미안)”라며 페이스북의 콘텐츠 감시대책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가짜뉴스임을 밝혔다. 그러면서 “저커버그가 트럼프에게 페이스북에서 거짓말을 할 자유로운 권한을 줬다”고 강력 비판했다. 가짜뉴스를 앞세운 고의적 허위 광고로 저커버그에게 ‘한 방’ 먹인 것이다. ▷페이스북은 최근 정치인들의 포스트는 설령 회사의 콘텐츠 규정을 위반했더라도 팩트체크를 하거나 삭제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인의 발언엔 간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워런 측은 이런 방침이 결국 가짜뉴스를 남발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위해 꽃길을 깔아준 것 아니냐고 힐난한다. 사실 이런 논쟁도 진짜 무서운 가짜뉴스, 즉 매우 교묘해서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조차 어려운 날조뉴스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는 문제로 들어가면 그저 장난 같은 고민일 수 있다. 정당한 정치 발언과 고의적 속임수를 구별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은 문제다. 총선을 6개월 앞둔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