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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 무용수가 커다란 알 속으로 쏙 들어가자 객석에서 앳된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아이들은 “우와, 신기하다”라며 감탄하고, 엄마의 귀에 대고 “사라졌어. 어디로 간 거야?” 소곤소곤 묻곤 했다. 27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아르코꿈밭극장에서 열린 어린이 무용극 ‘시포나드, 애벌레의 꿈’의 객석 풍경이다. 3월 15일 폐관된 ‘학전’이 이름을 바꿔 아이들 관객을 다시 맞고 있는 것이다. 이제 김민기도 떠났고, 학전도 이름을 바꿨지만 “아이들을 위한 양질의 공연이 필요하다”는 고인의 뜻은 새 공간에서 이어지고 있었다. 기존 극단 사무실을 임시로 재단장한 2층 ‘예술놀이터’는 공연 시작 전, 관객 20여 명으로 붐볐다. 아이들은 색칠 놀이를 하거나 비치된 동화책을 읽었다. 다섯 살 아들과 극장을 찾은 최모 씨(36)는 “5분 기다리는 것도 힘들어하는 아이와 함께 놀면서 기다릴 라운지가 있어 좋다”고 했다. 개·보수를 마친 지하 소극장에 들어가니 기존처럼 쿰쿰한 곰팡내가 나지 않고 산뜻했다. 어린 관객을 위한 키 높이 방석도 객석 뒤편에 새로 구비됐다. 이날 공연된 ‘시포나드, 애벌레의 꿈’은 알을 깨고 나오는 애벌레처럼, 아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을 춤으로 풀어낸 작품. 무용수가 공중으로 흩뿌린 물이 조명 빛에 반사될 땐 아이와 어른 모두의 감탄사가 터졌다. 여섯 살 딸과 찾은 안모 씨(38)는 “지난주 김민기 씨에 대해 검색하다가 공연 소식을 접했다. 어른이 봐도 재밌는 공연을 아이와 볼 수 있어 행복했다”고 했다. 이번 공연은 ‘제32회 아시테지 국제여름축제’의 일환이었다. 해당 축제는 서울 공연을 마쳤고, 다음 달에 광주 등에서 지역 연계 공연을 이어 간다. 고 김민기의 유족들은 발인 후 닷새 만인 29일 장례 이후 입장을 전했다. 학전을 통해 낸 보도자료를 통해 “조의금과 조화를 사양한다고 밝혔음에도 장례 첫날 경황없는 와중에 일부 조의금이 들어왔다”며 “조의금은 돌려 드릴 수 있는 것은 돌려 드렸고, 또 돌려 드리려고 한다. 돌려 드릴 방법을 찾지 못하는 조의금은 적절한 기부처에 기부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어 “고인의 작업이 ‘시대의 기록 정도로 남았으면’ 했던 고인의 뜻에 따라 고인의 이름을 빌린 추모공연이나 추모사업을 원하지 않는다”며 “유가족은 유지를 온전히 이해하고, 왜곡되지 않도록 받들겠다. 모든 일은 학전을 통해 진행될 수 있도록 해 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무대 위 무용수가 커다란 알 속으로 쏙 들어가자 객석에서 앳된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아이들은 유리구슬 같은 목소리로 “우와, 신기하다” 감탄하고, 엄마의 귀에 대고 “사라졌어. 어디로 간 거야?” 소곤소곤 질문했다. 27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아르코꿈밭극장에서 열린 어린이 무용극 ‘시포나드, 애벌레의 꿈’에서다. 옛 ‘학전’ 소극장이었던 이곳은 올해 2월 가족뮤지컬 ‘고추장 떡볶이’ 공연 이후 약 5개월 만에 아이들의 웃음꽃으로 가득 찼다. 가수 고 김민기가 운영하다 폐관한 옛 ‘학전’의 자리에서 ‘제32회 아시테지 국제여름축제’가 개최됐다. 아시테지 국제여름축제는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아시테지 코리아)가 주최하는 국내 대표적인 어린이·청소년 공연예술 축제다. 28일까지 아르코꿈밭극장과 대학로예술극장 등 대학로 일대 극장에서 8개국 공연 11편을 선보였고 다음 달엔 광주광역시, 경기 광주 등지에서 지역 연계 공연을 이어간다. 고인은 세상을 떴지만 “아이들을 위한 양질의 공연이 필요하다”는 그의 뜻은 새 공간에서 이어졌다. 기존 극단 사무실을 임시로 재단장한 2층 ‘예술놀이터’는 공연 시작 전, 관객 20여 명으로 붐볐다. 아이들은 색연필을 들고 색칠 놀이에 푹 빠져들었고, 부모는 “이게 무슨 동물이야?” 묻거나 책장에 꽂힌 동화책을 꺼내 읽어줬다. 5살 아들과 극장을 찾은 최모 씨(36)는 “5분 기다리는 것도 힘들어하는 아이와 함께 놀면서 기다릴 라운지가 있어 좋다”며 “20대부터 대학로 소극장 공연을 즐겨 봤다. ‘학전’이 어린이 극장으로 다시 문을 열어 기쁘다”고 했다. 공연이 곧 시작된다는 안내멘트가 나오자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지하 소극장으로 향했다. 개·보수를 마친 소극장엔 더 이상 쿰쿰한 곰팡내가 나지 않았다. 기존 누수로 인해 조명 사이사이 받쳐뒀던 수많은 양동이도 전부 사라지고 없었다. 어린 관객을 위한 키 높이 방석도 객석 뒤편에 새로 구비됐다. 암전 직전, 어린이·청소년 전용 극장에 걸맞은 공지가 흘러나왔다. “어른 관객 여러분, 주위를 둘러봐주세요. 무대가 잘 보이지 않는 아이는 없나요? 어린이들이 공연을 잘 볼 수 있도록 협조 부탁드려요.” 이날 공연된 ‘시포나드, 애벌레의 꿈’은 알을 깨고 나오는 애벌레처럼, 아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을 춤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무용수가 공중으로 흩뿌린 물이 조명 빛에 반사될 땐 아이와 어른 모두의 감탄사가 터졌다. 공연 후 마련된 ‘관객과의 대화’에선 한 어린이 관객이 손을 번쩍 들고 출연진에게 “무대 위에 있을 때 기분이 어때요?” 묻기도 했다. 6살 딸과 공연을 관람한 안모 씨(38)는 “지난주 김민기 씨에 대해 검색하다가 축제 소식을 접했다. 어른이 봐도 재밌는 공연을 아이와 볼 수 있어 행복했다”고 말했다. 한편 21일 향년 73세로 별세한 고인은 학전의 뒤를 이은 아르코꿈밭극장이 청소년과 신진 뮤지션을 위한 장이 되길 바란다는 뜻을 남겼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그 뜻을 이어받아 이달 17일부터 어린이·청소년 전용 극장으로 운영 중이다. 29일 유가족은 “삼일장 내내 ‘우리 아빠 참 잘 살았네’라는 생각이 들어 눈물과 웃음이 함께 나오는 시간이었다”며 감사를 전했다. 이어 “고인은 자신의 작업이 시대의 기록 정도로 남길 바랐다. 그렇기에 고인의 이름을 빌린 추모공연, 추모사업은 원치 않는다”고 밝혔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샤이니 민호가 출연하는 연극 티켓 1장 30만 원에 팝니다.’ 28일 한 티켓 양도 플랫폼에서 이런 매도 글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룹 샤이니 출신 가수 겸 배우 최민호가 출연하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의 표를 팔겠다는 것인데, 원래 티켓값이 6만6000원인 것을 감안하면 4배 이상의 가격을 부른 것. 실제 거래 가격은 보통 2배 정도에서 형성되고 있었다. 이런 ‘웃돈’까지 형성된 것은 최민호가 이 연극을 통해 무대 연기에 처음 도전하기 때문. 좋아하는 스타를 가까운 거리에서 ‘직관’할 수 있는 기회를 잡으려고 팬들이 몰리는 것이다. 연극 ‘빵야’도 마찬가지다. 공연이 끝난 후에도 극장 주변이 북적인다. 드라마 ‘더 글로리’ ‘눈물의 여왕’으로 스타덤에 오른 배우 박성훈의 ‘퇴근길’을 기다리는 팬들이 몰린 것. ‘빵야’는 그가 7년 만에 돌아온 무대다. 다음 달 6일 개막하는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에는 배우 유승호와 손호준, 고준희가 주연으로 출연한다. 각각 19∼24년 전 데뷔한 세 사람의 첫 연극 출연으로 기대가 큰 작품이다. TV와 스크린 등에서 활동하던 배우들이 기존 팬덤을 등에 업고 무대에 데뷔하거나 복귀하는 추세가 증가하고 있다. 배우는 연기력을 직접 팬들에게 선보일 기회가 되고, 팬들은 스타의 숨결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고, 제작자들은 흥행 확률을 높일 수 있어 3박자가 맞는다. 스타의 파워는 가난한 연극계에 돈이 돌게 하고 있다. 전도연이 27년 만에 복귀하는 연극으로 화제가 됐던 ‘벚꽃동산’은 이달 7일까지 한 달간 열린 총 30회 공연에 약 4만 명의 관객이 몰려 연극으로서는 이례적인 성과를 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공연된 국내 연극 중 티켓 판매액 1위에 오른 작품은 ‘셰익스피어 인 러브’였다. 배우 김유정, 정소민의 연극 데뷔작이자 김성철, 이상이 등 호화 캐스팅으로 이목을 모았던 연극이었다. 2위는 ‘오징어게임’의 박해수가 세계적인 스타가 된 뒤 무대로 돌아온 연극 ‘파우스트’였다. 공연제작사들은 제작비가 오르면서 장기 공연 또는 전석 매진으로 수지를 맞춰야 하는 상황이 되자 스타 캐스팅이 불가피한 요소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타 장르 팬들이 유입되지 않는 이상 극장을 가득 메우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무대 데뷔작일 경우 팬덤 효과는 더 커지는 한편 배우의 출연료는 상대적으로 낮출 수 있다”면서 “배우는 연기자로서의 전문적 이미지를 강화하고 초심을 되찾는 긍정적 인상을 줄 수 있어 윈윈”이라고 했다. 한 공연계 홍보담당자는 “주최 측이 10번 홍보하는 것보다 스타가 개인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게시물 하나 올리는 것의 파급력이 훨씬 크다”고 했다. 영상 콘텐츠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자 배우들이 공연계로 돌파구를 찾는 것이라는 풀이도 있다. 한 연극 배우는 “신규 제작되는 영화, 드라마 수가 급격히 줄면서 콘텐츠 진출을 타진하던 연극 배우들은 판로가 막히고, 배우들이 설 자리마저 줄어들었다”며 “연기 공백을 채우려고 무대에 서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관객들로서는 스타를 직접 볼 기회가 많아져 좋지만 문제는 오르는 티켓값이다. 지난해 공연한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VIP석이 11만 원으로 당시 연극 티켓 최고가를 경신했는데, 다음 달 개막하는 ‘엔젤스 인 아메리카’의 VIP석은 12만 원이다. 연극 티켓 최고가가 1년 만에 9%포인트 인상된 셈이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샤이니 민호가 출연하는 연극 티켓 1장 30만 원에 팝니다.’ 28일 한 티켓 양도 플랫폼에서 이런 매도 글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룹 샤이니 출신 가수 겸 배우 최민호가 출연하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의 표를 팔겠다는 것인데, 원래 티켓값이 6만6000원인 것을 감안하면 4배 이상의 가격을 부른 것. 실제 거래 가격은 보통 2배 정도에서 형성되고 있었다. 이런 ‘웃돈’까지 형성되는 것은 최민호가 이 연극을 통해 무대 연기에 첫 도전하기 때문. 좋아하는 스타를 가까운 거리에서 ‘직관’할 수 있는 기회를 잡으려 팬들이 몰리는 것이다. 연극 ‘빵야’도 마찬가지다. 공연이 끝난 후에도 극장 주변이 북적인다. 드라마 ‘더 글로리’ ‘눈물의 여왕’으로 스타덤에 오른 배우 박성훈의 ‘퇴근길’을 기다리는 팬들이 몰린 것. ‘빵야’는 그가 7년 만에 돌아온 무대다. 다음 달 6일 개막하는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에는 배우 유승호와 손호준, 고준희가 주연으로 출연한다. 각각 19~24년 전 데뷔한 세 사람의 첫 연극 출연으로 기대가 큰 작품이다. TV와 스크린 등에서 활동하던 배우들이 기존 팬덤을 등에 업고 무대에 데뷔하거나 복귀하는 추세가 증가하고 있다. 배우는 연기력을 직접 팬들에게 선보일 기회가 되고, 팬들은 스타의 숨결을 직접 느낄 수 있고, 제작자들은 흥행 확률을 높일 수 있어 3박자가 맞는다. 스타의 파워는 가난한 연극계에 돈이 돌게 하고 있다. 전도연이 27년 만에 복귀하는 연극으로 화제가 됐던 ‘벚꽃동산’은 이달 7일까지 한 달간 열린 총 30회 공연에 관객 약 4만 명이 몰려 연극으로서 이례적 성과를 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공연된 국내 연극 중 티켓판매액 1위에 오른 작품은 ‘셰익스피어 인 러브’였다. 배우 김유정, 정소민의 연극 데뷔작이자 김성철, 이상이 등 호화 캐스팅으로 이목을 모았던 연극이었다. 2위는 ‘오징어게임’의 박해수가 세계적인 스타가 된 뒤 무대로 돌아온 연극 ‘파우스트’였다. 공연제작사들은 제작비가 오르면서 장기 공연 또는 전석 매진으로 수지를 맞춰야 하는 상황이 되자 스타 캐스팅이 불가피한 요소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타 장르 팬들이 유입되지 않는 이상 극장을 가득 메우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무대 데뷔작일 경우 팬덤 효과는 더 커지는 한편 배우의 출연료는 상대적으로 낮출 수 있다”면서 “배우는 연기자로서의 전문적 이미지를 강화하고 초심을 되찾는 긍정적 인상을 줄 수 있어 윈윈”이라고 했다. 한 공연계 홍보담당자는 “주최 측이 10번 홍보하는 것보다 스타가 개인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게시물 하나 올리는 것의 파급력이 훨씬 크다”고 했다. 영상 콘텐츠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자 배우들이 공연계로 돌파구를 찾는 것이라는 풀이도 있다. 한 연극 배우는 “신규 제작되는 영화, 드라마 수가 급격히 줄면서 콘텐츠 진출을 타진하던 연극 배우들은 판로가 막히고, 배우들이 설 자리마저 줄어들었다”며 “연기 공백을 채우려고 무대에 서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관객들로서는 스타를 직접 볼 기회가 많아져 좋지만 문제는 오르는 티켓값이다. 지난해 공연한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VIP석이 11만 원으로 당시 연극 티켓 최고가를 경신했는데, 다음 달 개막하는 ‘엔젤스 인 아메리카’의 VIP석은 12만 원이다. 연극 티켓 최고가가 1년 만에 9%p 인상된 셈이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1761년부터 260년 넘게 문을 열고 있는 한 서점이 있다. 영국 런던의 퇴락한 골목에 을씨년스럽게 버티고 있는 ‘헨리 소서런’.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 중 하나다. 저자는 이곳의 삐걱대는 책장 빼곡한 고서적을 관리하는 직원이다. “빅토리아 시대 수준의 급여”를 받으며 정체불명의 괴짜 방문객들에게 맞서면서도 이 골동품 서점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책으로 풀어냈다. 에세이지만 모험담과 오컬트를 버무린 소설을 읽는 듯하다. 저자는 흡인력 있는 전개와 문체를 갖춘 스토리텔러다. 소서런이 거액을 들여 매입했으나 지구 반 바퀴를 돌고서도 팔리지 않았던 책에 얽힌 저주를 풀어낸 대목이 그렇다. 책은 겨우 주인을 찾을 뻔했으나 타이타닉에 실려 영원히 바다로 침몰했고 제본업자는 몇 주 뒤 익사했으며, 다시 제작된 책은 독일의 공습으로 산산이 조각나는 결말을 맞는다. ‘덕후’들의 구미를 당길 깨알 같은 주석도 소소한 재미다. 저자가 희귀 서적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허물어져 가는 철교를 가로질렀던 경험에 대해선 “영국에서 희귀 도서에 관한 경력을 쌓으려면 책 수집가와 딜러들이 사랑하는, 녹슨 철교를 헤매고 다녀야 한다”고 덧붙인다. 서점 직원으로서 겪는 좌충우돌 현실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서점에 대한 독자의 환상을 부수기도 한다. ‘세월의 흐름에 흔들리는 법이 없는 곳’이란 인식을 향해 “서점은 원래 재정적으로 신뢰할 수 없기로 정평 나 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서점은 역사의 흐름 속으로 사라지는 일이 일상다반사”라고 말한다. 책을 읽는 동안 벨리코어(vellichor·중고 서점 특유의 애틋한 분위기) 내음이 물씬한 공간에 안긴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스스로 “달리 둘 데를 찾지 못한 물건”이라 느꼈던 저자가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고서점에서 “남들보다 덜 사회적이고 내면의 햇볕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성장한다. 왠지 모를 위안까지 받을 수 있는 책이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옛 ‘학전’ 소극장 앞. 고 김민기를 태운 운구차에 유가족이 탑승해 이제 장지로 떠나려 하자 누군가 ‘아침이슬’을 선창했다. 두 겹 세 겹으로 줄지어 늘어선 추모객 수십 명은 흐느끼며 큰 소리로 따라 불렀다. 잠잠했던 빗방울이 갑작스럽게 굵어졌다. 비가, 눈물이, 아니 슬픔들이 흘러내렸다. 누군가 외쳤다. “사랑합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김민기의 마지막 가는 길은 외롭지 않았다. 극장 앞 고 김광석의 노래비 앞에는 시민들이 두고 간 소주, 막걸리와 국화 꽃다발이 줄지어 있었다. 유족은 영정을 안고 옛 학전 내부를 잠시 둘러봤다. 학전 출신인 배우 설경구와 장현성은 참아보려는 듯 입술을 굳게 깨물었으나 터지는 눈물을 막지 못했다. 배우 오지혜, 방은진은 얼굴을 감싼 채 오열했다. 운구차가 떠난 뒤에도 추모객들은 한참 자리를 뜨지 못했다. 색소포니시트 이인권 씨는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서 고인의 곡 ‘아름다운 사람’을 연주했다. 울음은 다시 파도처럼 번졌다. “가족장을 하시기로 했으니 우리는 여기서 선생님 보내드리겠습니다. 마지막까지 감사합니다.” 장현성은 힘겹게 입을 뗐고, 그제야 사람들은 하나둘 발걸음을 옮겼다. ‘아침이슬’ 등 노래로 1970년대 군부 시절 ‘청년 정신’을 심어줬고, 학전에서 올린 창작 뮤지컬로 대학로의 상징이 됐던 김민기는 이렇게 흙으로 돌아갔다. 그는 앞서 위암 4기로 투병하다 73세를 일기로 21일 별세했다. 1971년 김민기가 작곡해 건네준 ‘아침이슬’을 부르며 열아홉에 데뷔했던 가수 양희은은 24일 라디오에서 김민기를 “어린 날의 우상”이라고 불렀다. “제가 부른 그분의 작품들이 떠오릅니다. 당시 같이 음악 하던 여러 선배님의 얼굴도 함께 떠오릅니다. 많은 청취자분이 김민기 선생의 명복을 빌어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했다. 앞서 김민기의 서울대 후배인 이수만 전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가 전날 빈소를 찾아 조문객의 식사비 명목으로 유족에게 5000만 원을 전달했다. 조의금을 받지 않았던 유족은 감사의 뜻을 표하면서 이도 돌려줬다고 한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 내 맘에 슬픔이 알알이 맺힐 때….”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옛 ‘학전’ 소극장 앞. 고 김민기를 태운 운구차에 유가족이 탑승해 이제 장지로 떠나려 하자 누군가 ‘아침이슬’을 선창했다. 두 겹 세 겹으로 줄지어 늘어선 추모객 수십 명은 흐느끼며 큰 소리로 따라 불렀다. 잠잠했던 빗방울이 갑작스럽게 굵어졌다. 비가, 눈물이, 아니 슬픔들이 흘러내렸다. 누군가 외쳤다. “사랑합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김민기의 마지막 가는 길은 외롭지 않았다. 극장 앞 고 김광석의 노래비 앞에는 시민들이 두고 간 소주, 막걸리와 국화꽃다발이 줄지어 있었다. 유족은 영정을 안고 옛 학전 내부를 잠시 둘러봤다. 학전 출신인 배우 설경구와 장현성은 참아보려는 듯 입술을 굳게 깨물었으나 터지는 눈물을 막지 못했다. 배우 오지혜, 방은진은 얼굴을 감싼 채 오열했다. 운구차가 떠난 뒤에도 추모객들은 한참 자리를 뜨지 못했다. 색소포니시트 이인권 씨는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서 고인의 곡 ‘아름다운 사람’을 연주했다. 울음은 다시 파도처럼 번졌다. “가족장을 하시기로 했으니 우리는 여기서 선생님 보내드리겠습니다. 마지막까지 감사합니다.” 장현성은 힘겹게 입을 뗐고, 그제야 사람들은 하나둘 발걸음을 옮겼다. ‘아침이슬’ 등 노래로 1970년대 군부 시절 ‘청년 정신’을 심어줬고, 학전에서 올린 창작 뮤지컬로 대학로의 상징이 됐던 김민기는 이렇게 흙으로 돌아갔다. 그는 앞서 위암 4기로 투병하다 73세의 일기로 21일 별세했다. 1971년 김민기가 작곡해 건네준 ‘아침이슬’을 부르며 열아홉에 데뷔했던 가수 양희은은 24일 라디오에서 김민기를 “어린 날의 우상”이라고 불렀다. “제가 부른 그분의 작품들이 떠오릅니다. 당시 같이 음악 하던 여러 선배님의 얼굴도 함께 떠릅니다. 많은 청취자분이 김민기 선생의 명복을 빌어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했다. 앞서 김민기의 서울대 후배인 이수만 전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가 전날 빈소를 찾아 조문객의 식사비 명목으로 유족에게 5000만 원을 전달했다. 조의금을 받지 않았던 유족은 감사의 뜻을 표하면서 이도 돌려줬다고 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멕시코의 초현실주의 화가 프리다 칼로의 삶을 그린 국내 창작 뮤지컬 ‘프리다’(사진)가 미국 무대에 오른다. 제작사 EMK뮤지컬컴퍼니는 ‘프리다’가 9월 6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서던캘리포니아대(USC)가 주최하는 ‘USC 비전스 앤드 보이스(Visons & Voices)’ 프로그램에 초청받았다고 23일 밝혔다. 2006년부터 열린 이 행사는 USC 교수진과 유명 예술가들이 참여해 연극, 음악, 무용 등의 공연을 펼치는 프로그램이다. 뮤지컬 ‘프리다’는 교통사고로 인한 장애를 극복한 멕시코의 초현실주의 화가 프리다 칼로(1907∼1954)의 생애를 그린 작품. 2022년 초연 당시 매회 전석 매진 기록을 세웠고, 지난해 재연에서도 흥행을 이어 갔다. 이번 미국 공연에서는 지난해 공연에 출연한 배우 김소향, 전수미, 박시인 등이 나선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노래 ‘아침이슬’의 원작자이자 대학로의 상징이었던 소극장 ‘학전’을 설립해 33년간 운영했던 가수 김민기 씨가 21일 오후 8시 20분 별세했다. 향년 73세. 22일 유가족에 따르면 위암 4기로 투병 중이던 고인은 최근 폐렴까지 겹쳐 20일 응급실에 입원했고 하루 만에 세상을 떴다. 고인의 노래는 암울한 군부 시절 저항의 상징이었다. ‘아침이슬’(1970년)을 비롯해 발표한 노래들은 민중가요로 큰 반향을 일으켰고 판매금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 고인은 1991년 소극장 ‘학전’을 열어 고 김광석 등의 무대로 인디밴드 공연 문화를 이끌었다. 1994년 초연한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관객 73만 명을 불러모으며 국내 창작 뮤지컬 바람을 일으켰다. 배우 황정민 설경구 장현성 김윤석 조승우(학전의 ‘독수리 5인방’) 등이 이곳 출신이다. 하지만 고인은 앞에 나서는 것보다 뒤에서 돕는 ‘뒷것’에 머물렀다. 고인은 마지막 가는 길에도 “나를 가지고 뭘 안 해도 된다”고 했다. 죽고 나서도 ‘뒷것’으로 남겨 달라는 얘기다. ‘아침이슬’로 청춘 울리고, ‘학전’으로 공연계 큰 발자취 남기고… “난 할 만큼 다 했다” 하늘무대로[김민기 별세]군사정권 시절 ‘상록수’ 등 발표… 저항운동 상징 되며 체포-취조 고난‘학전’ 열어 창작 뮤지컬 토대 닦아… 숱한 스타 배우 키우며 ‘뒷것’ 자처“어린이가 미래”라며 어린이극 제작… ‘학전’ 간판 내린지 나흘만에 숨져가수 김민기가 운영하다 경영난으로 폐관한 소극장 ‘학전’이 정부가 운영하는 ‘아르코꿈밭극장’으로 이름을 바꿔 새로 문을 열었던 17일. 그날은 김민기가 대학로에 있는 서울대병원에서 통원치료를 받는 날이기도 했다. 당초 개관 행사에 “불참한다”고 알려졌던 김민기도 사실 현장을 찾았다고 한다. 다만 차에서 내리지 않은 채 지나면서 ‘쓱’ 봤다고. 33년간 학전을 운영했던 그에겐 ‘달라진 학전’에 만감이 교차했을 터. 학전의 간판이 내려간 지 나흘 만에 김민기는 세상을 떴다. 그는 정부(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하는 새 극장의 운영에 대해 별다른 희망사항을 밝히지 않아 왔다. 하지만 22일 유족에 따르면 고인은 생전 혼잣말처럼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청소년과 신진 뮤지션이 ‘놀 수 있는 장’으로 마련해 주셨으면 좋겠다.” 생전 어린이·청소년극의 중요성을 깨닫고 사비를 털어가면서도 제작을 계속해 왔던 뜻이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힌 것이다.● 군부 시절, 시 같은 가사로 청춘들 마음 울려 고인은 1969년 서울대 미대 회화과에 입학한 뒤 동문 김영세와 함께 2인조 밴드 ‘도비두’를 결성하며 가요계에 들어왔다. 특히 삶을 성찰한 한 편의 시 같은 아름다운 가사는 새로운 문화에 목말라 있던 청춘들의 가슴을 뛰게 했다. ‘아침이슬’ ‘상록수’ ‘작은 연못’ ‘백구’ ‘봉우리’ 등이 탄생했다. 가수 한영애는 “중학교 때부터 김민기의 노랫말을 들으며 자랐다. 광장에서, 대학가에서, 어느 곳에서든지 김민기 노래가 늘 울려 퍼져 제게 큰 영향을 줬다”고 했다. 하지만 노래가 저항운동의 상징이 될수록 삶은 고단해졌다. 아침이슬, 상록수가 금지곡으로 지정되고 1971년 낸 솔로 1집 ‘김민기’도 판매 금지됐다. 전역 후 공장 노동자 생활을 하며 비밀리에 음악 활동을 계속했지만 군사정권은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숱하게 체포되고 취조를 받았다. 고인은 한동안 지방에서 농사를 지으며 음악과 거리를 두기도 했다. 그를 다시 세상으로 불러낸 건 학전이었다. 학전을 차리기 위해 목돈이 필요해진 그는 그간 썼던 노래를 모아 총 4장의 ‘김민기 전집’(1993년)을 발표했다. 1971년 낸 첫 음반이 판매 금지 조치된 후 처음으로 정식 발표한 음반이었다.● 스타 키우면서도 본인은 ‘뒷것’ 자처 1991년 대학로 ‘학전’의 문을 연 그는 공연계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지하철 1호선’ ‘모스키토’ 등을 만들어 국내 창작 뮤지컬의 토대를 닦은 것. ‘의형제’는 1998년 제35회 동아연극상 작품상을 수상했고, 2007년에는 ‘지하철 1호선’으로 독일 문화훈장인 ‘괴테 메달’을 받았다. 한국인으로는 서항석, 윤이상, 백남준에 이어 네 번째였다. 학전은 배우들의 ‘사관학교’로 유명했다. 스타들을 키우면서도 그는 언제나 별 뒤에 서 있는 ‘뒷것’에 머물렀다. 배우 장현성은 “졸업 후 용돈을 벌어야 해서 학전 입단 오디션을 본 게 배우 인생의 시작이었다. 학전에서 작품들을 공부하며 내적으로도 많은 성장을 이뤘다”고 했다. 고인은 수익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표준계약서도 작성했다. 배우 오지혜는 “힘없는 연극배우가 일반 극단에서 계약서 쓰고 공연한다는 건 상상도 못 하던 시절”이라고 했다. 창작 뮤지컬로 승승장구하던 그는 돌연 어린이극으로 핸들을 꺾었다. 국내 공연계에서 어린이극은 소위 ‘돈 안 되는’ 장르로 꼽히지만 “어린이들이 미래이고, 이들이 좋은 공연을 보고 자라야 한국의 미래 문화가 밝다”는 게 소신이었다. 최근 수개월은 고인에게 ‘아픈’ 시간이었다. 자식처럼 생각했던 학전이 올 3월 15일 문을 닫은 것. 오랜 경영난에 김민기의 건강까지 나빠지며 폐관을 결정했다. 학전의 폐관 전후로 높아진 대중의 관심에도 고인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건강이 악화되자 주변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기서 끝내는 게 맞다. 고맙다. 나는 할 만큼 다 했다.” 유족으로는 배우자 이미영 씨와 2남이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24일 오전 8시. 02-2072-2010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국립극장이 다음 달 28일부터 내년 6월 29일까지 새 시즌 공연을 선보인다. 신작 23편과 레퍼토리 공연 8편을 포함해 총 61편이 공연된다. 우선 장르 간 경계를 허문 신작들이 눈에 띈다. 국립무용단은 안애순 현대무용가와 협업한 ‘행+―’를 다음 달 개막작으로 선보인다. 사람의 몸으로 전해지면서 정형화된 한국 춤의 움직임을 현대무용의 시선으로 해체해 재구성한 작품이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올 11월 온라인 게임에 등장하는 음악을 작곡해 콘서트 ‘음악 오디세이: 천하제일상’에서 연주한다. 국악관현악 창작곡을 서양 오케스트라 편성으로 편곡해 선보이는 공연도 있다. 내년 6월 열리는 ‘스위치’(가제)에서다. 국립창극단은 실존 인물의 삶을 재창작한 공연들을 초연한다. 올 11월 신작 ‘이날치傳’에서는 양반집 머슴으로 태어나 최고의 명창이 된 이날치의 삶을, ‘수양’(가제)에선 세종의 위업을 계승한 수양대군의 삶을 그린다. 인기작들도 잇달아 재공연된다. 국립창극단은 올 9월 스테디셀러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를 5년 만에 다시 공연한다. 스타 연출가 고선웅과 한승석 작창가가 판소리 일곱 바탕 중 하나인 ‘변강쇠 타령’을 현대적으로 재창작한 작품이다. 궁중무용, 종교무용, 민속춤 등 11개의 전통춤을 사계절 안에 담아낸 국립무용단의 대표작 ‘향연’도 올 연말 6년 만에 돌아온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자신의 히트곡 ‘상록수’처럼 30여 년간 작은 극장을 지킨 가수 겸 소극장 학전 대표 김민기 씨가 암 투병 끝에 21일 눈을 감았다. 향년 73세.1951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대 회화과에 입학한 후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대표곡 ‘아침이슬’ ‘꽃 피우는 아이’ 등이 수록된 ‘김민기 1집’(1971년)은 고인의 데뷔음반이자 마지막 정규음반이다. 당대 20, 30대 젊은층에게 민중가요로서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나 이듬해 방송금지, 판매금지 처분을 받았다. 직접 쓴 시적인 가사는 당시 번안곡 위주이던 우리나라 포크 음악계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후 활동에도 제재가 이어졌지만 ‘상록수’ ‘공장의 불빛’ 등 노래들을 꾸준히 발표했다.1990년대에는 공연 연출가로서 인생 2막을 열었다. 고인은 1991년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훗날 대학로 공연문화의 상징이 된 소극장 학전을 개관한다. 초기에는 가수들의 콘서트장으로 활용됐다. 아이돌 문화가 급속 확산하면서 설 곳이 사라진 가수들에게 무대를 제공하며 오늘날 인디밴드 공연문화의 기틀을 만들었다. 시인과 촌장, 동물원, 유재하, 나윤선 등이 학전을 거쳐 갔고 고(故) 김광석은 1991∼1995년 매년 라이브 콘서트를 열었다. 극장 입구에는 김광석을 추모하고자 세워진 ‘김광석 노래비’가 17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고인은 1994년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초연하며 국내 창작뮤지컬 바람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독일 극작가 폴커 루트비히의 ‘1호선’을 1990년대 말 한국 상황에 맞춰 각색해 2008년까지 4000회 공연해 70만 명 이상 관람했다. 고인은 이 작품으로 윤이상, 백남준에 이어 2007년 한국인으로서는 3번째로 독일 문화훈장인 괴테 메달을 수상했다. 그밖에 뮤지컬 ‘모스키토’, ‘의형제’, 연극 ‘복서와 소년’ 등을 제작했다.고인은 척박해진 대학로에서도 추수를 내다보는 못자리로서 자리를 지켰다. 1991년 개관 당시 임대료, 설비비 등 재원을 마련하려다 매일 병원 신세를 지고, 극장으로 진 빚을 갚기 위해 22년 만에 신보(1993년)를 내는 등 악착같이 버텼다. 그러나 다른 소극장과 마찬가지로 관객 감소 등 경영상 어려움이 이어지며 학전은 올해 3월 문을 연 지 꼭 33년 만에 폐관했다. 이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주도로 이달 17일 어린이청소년 중심 공연장으로 재개관했다. 고인은 위암 투병 중에도 마지막까지 ‘지하철 1호선’을 비롯해 어린이극 ‘고추장 떡볶이’ 등 공연을 올리는 데 매진했다. 동아연극상 작품상(1999년) 한국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2018년) 호암문화재단 호암상 예술상(2020년) 등을 수상했다.학전 개관 당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고인은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온 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상록수)라는 가사처럼 생전 꼭 닮은 궤적을 남기며 이렇게 말했다. “기존 노선은 따르지 않겠습니다. 나는 그저 나일뿐입니다”. 유족으로는 아내 이미영 씨, 장남 김종화 씨, 차남 김소윤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4일 오전 8시. 02-2072-2010.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피비린내 나는 인간의 욕망과 파멸을 그린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이 잇따라 관객을 만나고 있다.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와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는 서로 다른 버전의 ‘햄릿’이,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는 ‘맥베스’가 무대에 올랐다. 세 작품의 색다른 매력을 비교 분석해 봤다. 명대사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낳은 ‘햄릿’은 셰익스피어의 비극 중 가장 유명하다. 덴마크의 왕자 햄릿이 독살된 선왕의 원수를 갚으면서 겪는 선악의 고뇌를 그렸다. 신시컴퍼니의 대학로 아트센터 공연에는 배우 전무송 이호재 손숙 박정자 등 연극계 거목들이 주·조연을 맡아 열연을 펼친다. 원작의 클래식함을 가장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희곡 ‘열하일기 만보’, ‘3월의 눈’ 등을 쓴 극작가 배삼식이 각색해 원전 텍스트의 아름다움과 한국어의 말맛을 모두 잡았다. 미쳐버린 햄릿을 향한 오필리아의 대사 “아, 이 얼마나 고귀한 정신이 파괴됐나”는 극에서 “무너졌구나. 그 고귀한 마음이, 내 사랑이, 모든 것이 무너졌구나”로 바뀌었다. 무대 소품과 조명 색채를 최소화하는 등 절제에서 비롯된 묵직한 정극을 만나볼 수 있다. 4대 비극 중 마지막에 쓰인 ‘맥베스’는 군더더기 없고 드라마틱한 작품으로 꼽힌다. 장군 맥베스가 마녀의 예언을 따라 국왕을 살해한 뒤 왕좌에 오르지만, 끝내 파멸하는 삶을 그렸다. 해오름극장의 ‘맥베스’ 공연에선 배우 황정민과 송일국, 송영창 등이 5주간 단일 캐스트로 출연해 화제가 됐다. 특히 이번 작품은 스펙터클하게 연출돼 고전 희곡은 따분하다는 선입견을 날려버린다. 강렬한 핏빛 조명, 화려하면서도 기괴한 대관식, 긴장감을 절로 자아내는 음악은 한 편의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한 경험을 제공한다. ‘1000만 배우’ 황정민의 연기는 ‘악으로 시작한 일은 악으로 끝난다’는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달한다. 그는 대사 마디마다 쉴 새 없이 바뀌는 말투와 걸음걸이, 입매 등으로 격랑처럼 몰아치는 맥베스의 내면을 고스란히 표현한다. 매끄럽게 오르내리는 목소리 톤은 원작의 운문체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레이디 맥베스는 단지 왕위 찬탈을 부추기는 인물에 그치지 않는다. 끓어오르는 욕망을 분출한 끝에 파멸로 치닫는 독립된 인물로 그려진다. 국립극단의 명동예술극장 ‘햄릿’ 공연에선 드라마 ‘일타 스캔들’ 등에 출연한 배우 이봉련이 ‘햄릿 공주’ 역으로 나온다. 대사, 캐릭터 설정에 현대적 감수성이 파격적으로 반영돼 햄릿은 왕위 계승 서열 1위의 해군 출신 공주로 등장하는 등 원작의 성차별적 요소를 없앴다. “내겐 이 무슨 흙 중의 흙이란 말인가. 인간이 즐겁지 않아. 여자도 마찬가지야”라는 원작 대사는 “인간은 얼마나 우스운가. 인간도 싫고 인간이 만들어낸 이 세상도 싫다”로 바뀌었다. 아들 햄릿의 숙부와 재혼한 왕비 거트루드에게 ‘자식을 지키고자 했던’ 어머니의 면모를 투영해 선악에 대한 판단을 흐리게 한다. 제59회 동아연극상 희곡상을 받은 정진새가 각색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피비린내 나는 인간의 욕망과 파멸을 그린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이 잇따라 관객을 만나고 있다.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와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는 서로 다른 버전의 ‘햄릿’이,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는 ‘맥베스’가 무대에 올랐다. 세 작품의 색다른 매력을 비교해봤다.명대사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낳은 ‘햄릿’은 셰익스피어의 비극 중 가장 유명하다. 덴마크의 왕자 햄릿이 독살된 선왕의 원수를 갚으면서 겪는 선과 악의 고뇌를 그렸다. 신시컴퍼니의 대학로 아트센터 공연에는 배우 전무송 이호재 손숙 박정자 등 연극계 거목들이 주·조연을 맡아 열연을 펼친다. 원작의 클래식함을 가장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희곡 ‘열하일기 만보’, ‘3월의 눈’ 등을 쓴 극작가 배삼식이 각색해 원전 텍스트의 아름다움과 한국어의 말맛을 모두 잡았다. 미쳐버린 햄릿을 향한 오필리어의 대사 “아, 이 얼마나 고귀한 정신이 파괴됐나”는 극에서 “무너졌구나. 그 고귀한 마음이, 내 사랑이, 모든 것이 무너졌구나”로 바뀌었다. 무대 소품과 조명 색채를 최소화하는 등 절제에서 비롯된 묵직한 정극을 만나볼 수 있다.4대 비극 중 마지막에 쓰인 ‘맥베스’는 군더더기 없고 드라마틱한 작품으로 꼽힌다. 장군 맥베스가 마녀의 예언을 따라 국왕을 살해한 뒤 왕좌에 오르지만, 끝내 파멸하는 삶을 그렸다. 해오름극장 공연에선 배우 황정민과 송일국, 송영창 등이 5주간 단일 캐스트로 출연해 화제가 됐다.특히 이번 공연은 스펙터클하게 연출돼 고전 희곡은 따분하다는 선입견을 날려버린다. 강렬한 핏빛 조명, 화려하면서도 기괴한 대관식, 긴장감을 절로 자아내는 음악은 한편의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한 경험을 제공한다. 1000만 배우 황정민의 연기는 ‘악으로 시작한 일은 악으로 끝난다’는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달한다. 그는 대사 마디마다 쉴 새 없이 바뀌는 말투와 걸음걸이, 입매 등으로 격랑처럼 몰아치는 맥베스의 내면을 고스란히 표현한다. 매끄럽게 오르내리는 목소리 톤은 원작의 운문체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국립극단의 명동예술극장 ‘햄릿’ 공연에선 드라마 ‘일타 스캔들’ 등에 출연한 배우 이봉련이 ‘햄릿 공주’ 역으로 나온다. 대사, 캐릭터 설정에 현대적 감수성이 파격적으로 반영돼 햄릿은 왕위계승 서열 1위의 해군 출신 공주로 등장하는 등 원작의 시대착오적 사고나 성차별적 요소를 없앴다. “내겐 이 무슨 흙 중의 흙이란 말인가. 인간이 즐겁지 않아. 여자도 마찬가지야”라는 원작 대사는 “인간은 얼마나 우스운가. 인간도 싫고 인간이 만들어낸 이 세상도 싫다”로 바뀌었다. 제59회 동아연극상 희곡상을 받은 정진새가 각색했다.공연 중인 셰익스피어의 세 작품 모두 주인공 이외 캐릭터들의 시선을 강화해 입체적 재미를 더했다. ‘맥베스’에서 레이디 맥베스는 단지 왕위 찬탈을 부추기는 인물에 그치지 않는다. 끓어오르는 욕망을 분출한 끝에 파멸로 치닫는 독립된 인물로 그려진다. 국립극단 공연에서는 아들 햄릿의 숙부와 재혼한 왕비 거트루드에게 ‘자식을 지키고자 했던’ 어머니의 면모를 투영해 선악에 대한 판단을 흐릿하게 한다. 신시컴퍼니의 ‘햄릿’에서는 이름 없는 조연까지 굵직한 원로 배우들이 연기해 그간 가려져 있던 명대사를 부각한다. 손봉숙이 연기하는 ‘배우 4’의 대사 “이 기나긴 광대놀음도 이제 끝인가”는 공연의 대미를 묵직하게 장식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과학 문명이 인류를 지배하게 된 세상, 전기가 끊기고 주민이 내몰린 마을은 적막했다. 폐타이어와 고철이 무덤처럼 쌓였다. 그러나 양자역학이 우리네 인생은 결코 예측할 수 없는 것이라 했던가, 무덤 사이로 주황색 꽃 세 송이가 돋았다. 인간도, 인공지능(AI)도 꽃의 곁에서 말한다. “산다는 건 참 귀찮은 일이야, 그래서 더 멋진 거지만.” 국립극단 신작 ‘전기 없는 마을’은 이처럼 문명의 발전 그 이후,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존재의 의미에 대해 질문한다. 데이터센터가 급증하면서 전기를 차지하려는 전쟁이 벌어진 가운데 언뜻 무관해 보이는 세 가지 이야기가 옴니버스식으로 펼쳐진다. 공연 막바지에 이르러 세 이야기는 퍼즐처럼 맞물린다. 다음 달 4일까지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다양한 과학 개념을 철학적으로 사유한 대사는 묵직한 울림을 준다. 작용과 반작용에 관한 뉴턴의 제3법칙을 접목한 대사는 ‘세상 모든 존재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메시지를 담아낸다. 그러나 인류가 자연을 착취하고 기술 문명을 맹신한 데 업보를 치를 것이라는 일차원적 비관에 그치지는 않는다. 다중우주 세계관을 연출함으로써 기계, 자연 등 비(非)인간과 인간이 서로 공감하고 연대할 가능성을 제시해 시각을 넓혔다. 시각의 확장은 무대 및 영상 디자인을 통해서도 이뤄진다. 가로로 길고 폭이 좁은 무대의 벽면에 뉴런망, 은하수 등을 형상화한 듯한 영상을 투사해 공간성을 높였다. 여기엔 프로젝션 매핑, 라이다 센서(레이저로 목표물과의 거리를 감지하는 기술) 등 최신 기술이 활용됐다. 고요한 바다, 끝없는 우주가 펼쳐진 무대는 외로움을 자극함으로써 무대 위 덩그러니 서 있는 등장인물과 관객이 심리적으로 연결되게끔 했다. 군더더기 없는 무대 세트처럼 서사 구조도 명료하게 설계됐다. 공연 시간 80분을 가득 메운 과학기술 이론, 철학적 함의를 일부 놓치더라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 순환하는 사건 구조, 등장인물 간 연쇄적 관계 등에 핵심 메시지가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이다. 해류를 타듯 자연스레 공연의 흐름을 따라간 끝엔 예측할 수 없어 고단한 우리네 삶에서 반짝이는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뮤지컬 ‘유미의 세포들’이 이르면 내년 초연을 목표로 제작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15년부터 2020년까지 네이버웹툰에서 연재된 동명 스테디셀러가 원작. 지난해 11월 열린 쇼케이스에서 주인공 유미가 아닌 세포 캐릭터에 초점을 맞춘 노래와 연기로 이야기를 풀어내 “웹툰과는 또 다른 재미를 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 연극 ‘맥베스’ 등을 만든 샘컴퍼니가 제작을 맡았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 중인 라이선스 뮤지컬 ‘4월은 너의 거짓말’은 TV 애니메이션과 영화로도 제작된 일본 동명 만화가 원작. 뮤지컬 ‘웃는 남자’ 등을 만든 EMK가 한국어 공연권을 확보해 국내 첫선을 보였다. 연극 ‘바닷마을 다이어리’ 등을 만든 공연제작사 라이브러리컴퍼니는 2019년 네이버웹툰에 연재된 미스터리 스릴러물인 ‘현혹’을 뮤지컬로 개발 중이다. 9월 서울 강남구 KT&G상상마당 대치아트홀에서 초연되는 뮤지컬 ‘선천적 얼간이들’은 ‘돌연변이 신인류’의 코믹한 일상을 그린 동명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해 화제가 됐다. 웹툰, 만화 원작을 재창작한 뮤지컬이 최근 활발히 제작되고 있다. 두꺼운 만화 팬층을 극장으로 유인하고, 다채로운 서사를 원하는 오늘날 관객 입맛에 맞추려는 전략이다. 김지원 EMK 프로듀서는 “그동안 역사적 배경, 인물에 기반한 강렬한 서사의 뮤지컬을 주로 만들었지만, 미래 세대를 관객으로 모으고자 10대 청소년의 이야기가 담긴 원작을 무대로 가져왔다”면서 “만화를 원작으로 할 경우 기존 팬들이 관객으로 유입되는 효과도 있다”고 했다. 웹툰 등은 소설 같은 텍스트 기반 원작에 비해 설정이 뚜렷해 뮤지컬화가 편하다는 점도 작용한다. 김미혜 샘컴퍼니 프로듀서는 “사건의 배경과 구성 과정 등이 이미 3차원의 형태로 형상화되어 있기에 무대와 음악을 구체적이고 직관적으로 표현하기 수월하다”고 했다. 라이브러리컴퍼니 관계자는 “각자 글을 읽고 상상한 그림이 천차만별인 소설과 달리 시각적 이미지가 이미 제시된 웹툰을 무대로 옮겨오면 관객이 ‘기대와 다르다’는 이유로 실망할 가능성이 비교적 낮다”고 했다. 최근 제작비가 급등함에 따라 일정 수준 흥행이 보장된 작품을 선호하는 기조도 영향을 미쳤다. 실제 일본 동명 만화가 원작인 뮤지컬 ‘데스노트’의 경우 원작의 인기와 ‘싱크로율’ 입소문이 더해지며 2022년 공연이 전 회차 전석 매진돼 이듬해 앙코르 공연까지 진행했다. 한 공연 연출가는 “인건비, 대관비 등 비용 부담이 커지면서 이슈를 모으기 좋은 작품들로 수지를 맞추려는 경향이 커졌다”며 “희곡 신작을 발굴하는 것보다 다른 장르의 IP를 활용하는 게 간편하고 효율적”이라고 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생각조차 못한 큰 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아직도 잘 믿기지 않습니다.”12일 막을 내린 제40회 동아국악콩쿠르에서 작곡 부문 일반부 금상을 받은 최민준 씨(24·서울대 4학년)는 이렇게 말했다. 4년 전 제36회 동아국악콩쿠르에서 은상을 수상한 최 씨는 “당시 금상 없는 은상이라 아쉬움이 컸다. 심사위원에게 ‘먹힐’ 곡이 아닌, 쓰고 싶은 곡으로 얻은 1등이기에 더욱 뜻깊다”고 했다. 그는 작곡 부문 수석 입상자에게 주어지는 전인평 국악작곡상도 받았다.동아일보사가 주최하고 서울아트센터와 서울교육대, 동아꿈나무재단 후원, 롯데그룹 협찬으로 지난달 17일부터 서울 서초구 서울교육대와 종로구 서울아트센터에서 열린 올해 동아국악콩쿠르에서는 일반부 9명, 학생부 7명의 금상 수상자를 포함해 48명의 입상자가 나왔다.민속국악사(대표 조대석)가 악기를 부상으로 주는 민속국악사상은 거문고 일반부 금상 수상자인 김민서 씨(19·서울대 2학년)와 학생부 금상 수상자인 최현수 군(16·국악고 2년), 박연진 양(18·국악고 3학년)에게 돌아갔다.심사 결과와 심사평은 다음 주 동아국악콩쿠르 홈페이지(www.donga.com/concours/classical)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본선 실황 영상은 이달 중 유튜브 동아콩쿠르 채널에서 무료로 서비스한다.부문별 수상자◇작곡 ▽일반부 △금상 최민준 △은상 유숭산(33·한예종 졸업) △동상 김다원(27·한예종 전문사 2학년)◇판소리 ▽일반부 △금상 김유진(24·한예종 졸업) △은상 김혜율(23·서울대 3학년) △동상 강나현(29·중앙대 졸업) ▽학생부 △은상 엄소연(17·전통예고 2학년) △동상 장무영(17·목포영흥고 3학년)◇가야금 ▽일반부 △금상 김민성(19·한예종 1학년) △은상 김보경(27·서울대 졸업) △동상 박소민(19·서울대 2학년) ▽학생부 △금상 윤준서(17·국악고 2학년) 이아인(16·국악고 2학년) △동상 이지수(17·국악고 3학년)◇거문고 ▽일반부 △금상 김민서 △은상 박지민(21·한양대 4학년) △동상 유선진(20·한예종 2학년) ▽학생부 △금상 최현수 박연진 △동상 강시현(17·국악고 3학년) 민주연(17·국악고 3학년)◇피리 ▽일반부 △금상 김현승(23·한예종 전문사 2학년) △은상 신희태(23·한양대 대학원) △동상 김보선(19·한예종 2학년) 박창현(19·한예종 1학년) ▽학생부 △은상 엄유찬(16·국악고 2학년) △동상 남현서(17·전통예고 3학년)◇대금 ▽일반부 △금상 이정윤(19·서울대 2학년) △은상 박준범(22·경북대 3학년) 박성빈(20·한예종 3학년) ▽학생부 △금상 허가은(17·국악고 3학년) △은상 김범진(17·국악고 3학년) △동상 백승화(17·국악고 3학년)◇해금 ▽일반부 △금상 박채린(22·한양대 대학원) △은상 유혜빈(23·서울대 4학년) △동상 전수민(21·이화여대 4학년) ▽학생부 △금상 조윤정(17·전통예고 2학년) △은상 김지아(16·전통예고 2학년) △동상 이윤아(17·국악고 3학년)◇아쟁 ▽일반부 △금상 허준민(22·서울대 2학년) △은상 김우성(22·한예종 3학년) △동상 이채은(21·서울대 3학년)◇정가 ▽일반부 △금상 노하연(20·서울대 3학년) △은상 신윤솔(21·중앙대 3학년) △동상 원혜정(22·서울대 4학년) ▽학생부 △금상 전호민(15·국악고 1학년) △은상 김민희(17·전통예고 3학년) △동상 장재희(16·국악고 2학년)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내 ‘전용 복사기’를 멋대로 사용 중인 ‘침입자’가 20여 년 뒤 함께 팬데믹 예방백신을 개발한 공로로 노벨상을 함께 받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이는 이 책 저자의 삶에서 실제로 일어난 드라마 같은 일이다. 그는 코로나19 백신을 가능케 한 메신저리보핵산(mRNA) 연구에 평생 헌신해 지난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공동 수상자인 드루 와이스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와의 우연한 만남을 제외하면, 그의 삶에 요행이나 천재성은 없었다. 그는 신간에서 온갖 시련에 맞서 치열하게 노력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1955년 헝가리 푸주한의 딸로 태어난 저자는 자신을 끈질긴 ‘쿠터토(kutat´O·헝가리어로 수색자)’에 비유한다. 단기 연구성과가 없다는 이유로 고국의 연구실에서 쫓겨난 뒤 연구를 지속하겠다는 일념으로 딸의 곰 인형에 전 재산을 넣은 채 미국으로 떠난다. 무엇이 그를 먼 이국 땅으로 떠나게 했을까. 그는 “진리를 찾는다는 행위 자체가 중요한 것”이라며 “나 역시 정확히 무엇을 찾고 있는지 모르고, 과연 찾을 수 있을지도 확실치 않으나 여전히 찾는다”고 말한다. 솔직 담백한 내용, 짧고 강단 있는 문체가 ‘타인의 인정이 아닌 배움의 기회에 가치를 둔’ 그의 인생 철학에 공감하게 만든다. DNA 연구에만 몰입하고 mRNA는 등한시했던 학계에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였던 시절과, 이를 극복하며 이뤄낸 성과에 대해 진솔하게 회고한다. 언뜻 맹목적으로도 느껴지는 ‘노력 예찬’을 꾸밈없이 담았다. 저자가 과학적 연구 방식에 대해 덧붙인 말들은 삶에 대한 은유처럼 읽히기도 한다. ‘과학적 발견은 거대한 퍼즐의 한 조각에 불과하지만, 각각의 조각은 퍼즐이 커나갈 새로운 영역을 열어준다’는 대목은 매일 묵묵히 자기 몫을 해내는 삶의 가치와 통하는 듯하다. 마지막 책장을 넘길 즈음, 저자가 실험실 벽에 걸어 놓은 격언이 더 묵직하게 다가온다. ‘실험은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 틀린 건 당신의 기대일 뿐.’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제관(祭官)들이 양발과 어깨를 맞춰 한 줄로 걸어나왔다. 타악기인 진고(晉鼓)와 영고(靈鼓), 절고(節鼓)를 울리며 신을 맞이하는 의식이 시작됐다. 깃털 달린 무구를 쥔 무용수 8명이 박자에 맞춰 절도 있게 군무를 추는 사이 대한제국 황제 역을 맡은 무용수가 등장했다. 용, 꿩, 산호 등 나라의 번영을 기리는 12가지 상징을 수놓은 검은색 십이장복을 입은 채였다. 황제는 첫 술잔을 올리며 땅과 곡식의 신에게 드리는 국가 제사인 사직대제(社稷大祭)의 거행을 알렸다. 11, 12일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초연되는 ‘사직제례악’ 연습 현장을 5일 찾았다. 사직제례악은 조선시대 국가의 안녕과 풍요를 기리던 사직대제에 사용된 음악이다. 1908년 일본의 전통문화 말살 정책으로 한동안 명맥이 끊겼다가 1988년 사직대제보존회가 제례 절차를, 2014년 국립국악원이 제례악을 각각 복원했다. 이번에는 국립국악원이 10년 만에 악기 편성과 복식, 의물을 보완해 선보이는 것. 조선시대 사직대제는 종묘대제와 더불어 왕이 직접 주관한 핵심 의례로 꼽힌다. 사극의 단골 멘트인 “종사(宗社)를 살피소서”는 왕실과 나라를 뜻하는 종묘사직(宗廟社稷)에서 비롯됐다. 사직대제보존회 관계자는 “일제강점기 이후 종묘제례악은 왕의 후손들이 보전했지만 사직대제는 국가가 자연에 지낸 제사이기에 보전할 주체가 없었다. 1922년 사직단이 공원으로 바뀐 뒤 역사에서 더 잊혀졌다”고 말했다. 2014년 사직제례악 복원이 조선 정조 대 기록을 따른 것과 달리, 이번에는 대한제국 기록을 토대로 했다. 김채원 국립국악원 학예연구관은 “제후국이 아닌 황제국으로서 갖는 위엄과 화려함을 보여주고자 했다”며 “복식에 수놓인 상징물이 왕이었을 때 9개인 것이 황제는 12개로, 면류관 구슬도 9개에서 12개로 각각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황제국으로서 예법이 기록된 대한예전에 따라 무용단의 복식은 정조 대 푸른색에서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10년 전 복원과 비교해 음악은 더 장엄하고 풍성해졌다. 올해 국립국악원 악기연구소가 국가무형유산 기능 보유자들과 약 6개월에 걸쳐 복원한 화(和), 우(竽), 관(管) 등 전통악기를 새로 투입했다. 이 중 화와 우는 국악기 중 유일하게 화음을 내는 생황 계열의 관악기로, 음악에 화려함을 더한다. 관은 단소와 유사하게 대나무 두 대를 나란히 붙여 만든 악기다. 세 악기는 성종 대 편찬된 악서인 ‘악학궤범’을 토대로 복원됐다. 제례악에 사용되는 타악기인 특종(特鐘)과 특경(特磬)도 추가로 편성됐다. 이와 함께 공연 콘텐츠로서 볼거리도 강화됐다. 2014년 복원에 비해 2배가량 늘어난 120여 명의 국악원 정악단과 무용단이 출연해 웅장함을 더했다. 무대 천장과 바닥에는 발광다이오드(LED) 스크린을 설치해 제례 절차를 소개하고, 하늘과 땅이 만나는 순간을 표현한다. 공연 연출을 맡은 이대영 중앙대 예술대학원장은 “제단과 제관을 무대 가장 앞에 배치해 제례를 온전히 보여주고, 음악에 맞는 영상을 제작해 시각적 즐거움을 확보하려 했다”고 말했다. 이건회 정악단 예술감독은 “사직대제는 삼국시대 이래 악무로서 남아 있는 극소수의 대형 제례”라며 “이번 공연을 계기로 사직제례악이 종묘제례악처럼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인정받게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사직대제(社稷大祭)란?땅과 곡식의 신에게 드리는 국가적인 제사. 사(社)는 땅의 신, 직(稷)은 곡식의 신을 의미한다. 삼국시대부터 행해졌으며 땅과 곡식의 신에게 백성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풍요를 기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작곡가 겸 음악 프로듀서 김형석(사진)이 한국어 보급을 위해 영국 옥스퍼드대에 자신이 작곡한 1400여 곡의 사용을 허락했다. 김형석은 4일(현지 시간) 옥스퍼드대 셸더니언 홀에서 특강과 미니 콘서트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K팝의 대부로부터 듣는 K팝’을 제목으로 한 특강은 조지은 옥스퍼드대 아시아·중동학부 교수와 함께 K팝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진단하는 내용으로 이뤄졌다. 17세기에 세워진 셸더니언 홀에서 강연한 아시아 대중음악인은 김형석이 처음이다. 김형석은 “세계적 명문인 옥스퍼드대를 K팝이 휘감았다는 사실이 영광스럽다”며 “언어가 중요한 인공지능 시대에 한국어가 널리 보급되고 교육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본인의 창작곡들을 옥스퍼드대 연구팀이 한국어 교육 목적으로 사용케 했다. 또한 그가 조 교수와 함께 만든 한글 학습 노래 ‘가나다송’도 이 자리에서 발표했다. 김형석은 “K팝은 다양한 문화와 언어를 포용하면서 진화하고 있다. 일부의 우려에도 K팝의 미래는 밝다”며 “앞서 K팝은 과거 디지털 음원이 등장하면서 음악 시장에 닥친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고 평가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의 흥행 뮤지컬인 ‘알라딘’이 올 11월 22일 국내 초연된다. 8일 뮤지컬 제작사 에스앤코에 따르면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에서 ‘알라딘’을 내년 6월 22일까지 7개월간 공연한다. 내년 7월부터는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공연한다. 2014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알라딘’은 브로드웨이에서만 3500회 이상 공연한 히트작이며, 11개 프로덕션이 4개 대륙에서 펼친 공연 등을 합하면 10년간 세계에서 약 2000만 명의 관객을 불러모았다. 뮤지컬 알라딘에서는 ‘A Whole New World’ 등 원작 애니메이션 속 인기 OST 5곡이 원곡자 앨런 멩컨에 의해 뮤지컬 넘버로 재탄생했다. 넘버 ‘Friend Like Me’의 경우 약 8분 길이의 스윙 재즈풍으로 편곡됐다. 원작에서 몸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지니’는 뮤지컬에선 재즈풍의 노래와 춤을 추는 쇼맨으로 그려진다. 원작에 없는 알라딘의 세 친구 카심, 오마르, 밥칵이 조력자로 등장한다. 모로코, 튀르키예, 과테말라 등 9개국에서 들여온 원단 2000여 개가 의상과 무대 제작에 사용된다.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창작진이 국내 제작에 참여해 완성도를 높인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