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수

정원수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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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원수 부국장입니다.

needjung@donga.com

취재분야

2024-10-22~2024-11-21
칼럼93%
사설/칼럼7%
  • 라임과 삼지창 모자, 그리고 비밀대화방[오늘과 내일/정원수]

    잠적 100여 일 만인 24일 얼굴이 처음 공개된 라임자산운용의 전주(錢主)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46)이 썼던 모자엔 알파벳 7글자가 선명했다. VERUTUM. 낯선 브랜드여서 상호를 찾아보니 면세점 등에서 구할 수 있는 개당 8만 원 안팎의 모자라는 것을 알게 됐다. 사람들의 눈에 더 띌 텐데, 지명수배자가 잠깐 외출할 때 굳이 고가의 이 모자를 착용해야 했을까. 투자자의 돈을 빼돌려 유흥주점 등에서 흥청망청하던 김 전 회장이 호화 도피 생활을 하고 있다는 의혹에 설마 했는데, 이 모자 가격을 확인하고 의구심이 사라졌다. 모자 제조사의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브랜드 이름은 그리스 여신들이 몸에 지니고 다녔던 삼지창 모양의 무기를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부적처럼 쓰고 다니던 ‘삼지창 모자’에도 불구하고 김 전 회장의 도피 행각은 최근 중단됐다. 그와 함께 숨어있던 라임 이종필 전 부사장(42), 신한금융투자 심문섭 전 팀장(39)까지 이른바 라임 사태 3인방이 동시에 체포됐기 때문이다. 이들의 체포 과정은 첩보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했다. 무엇보다 라임 사태 전반을 6개월 이상 추적한 검찰이 아닌 경찰이 이들을 ‘일망타진’한 것부터가 반전이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수원여객 횡령 사건으로 김 전 회장의 오른팔로 불린 A 씨를 구속 수감했는데, 김 전 회장의 또 다른 측근 B 씨가 A 씨의 경찰 진술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A 씨 가족에게 접근한 것이다. 김 전 회장은 19일 B 씨와 서울 신촌의 한 음식점에서 만났고, 뒤늦게 이를 파악한 경찰은 주변 폐쇄회로(CC)TV 등을 모조리 추적해 김 전 회장이 서울 성북구로 이동한 것을 알게 됐다. 20명의 전담반을 구성한 경찰은 잠복 끝에 23일 오후 9시경 골목길에서 호출한 카카오택시를 타려던 김 전 회장을 현장에서 체포했다. 김 전 회장은 곧바로 수원의 경기남부경찰청에 호송돼 조사를 받았다. 경찰도 검거 작전이 끝난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1시간 정도 조사를 받던 김 전 회장은 갑자기 이 전 부사장 등과 함께 2주 정도 숨어 지내던 2층 단독 주택의 위치를 털어놨다. 황급히 서울 성북구로 되돌아간 경찰은 주택 안에 숨어 있던 이 전 부사장 등을 체포한 뒤 이들의 신병을 라임 사태를 수사 중인 서울남부지검에 넘겼다.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특이한 모자를 쓴 것이나 3명이 모여 있었던 것도 그렇고, 안 잡힐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 같다”고 했다. 라임은 사모펀드로 업종을 바꾼 지 3년 만에 자산 규모 5조 원이 넘는 국내 1위 헤지펀드 회사로 급성장했다. 이번에 붙잡힌 3명은 각각 라임의 전주, 설계자, 판매자로 역할을 나눈 주연급이다. 이들 외에도 서울 명동과 강남의 사채업자, 개미투자자를 울린 전문 기업사냥꾼, 연예기획사 대표 등 주연급 조연이 많다. 법조계에선 ‘1, 2년 정도 수사해야 할 정도’ ‘형사부 검사 4, 5명으로 수사할 수 없는, 예전 같으면 반부패수사부 2, 3곳이 투입될 사안’이라는 지적이 나오지만 아직 수사팀의 확대 개편 소식은 없다. 김 전 회장은 사업을 할 때 메시지 전달 과정 전체를 암호화하는 와츠앱, 텔레그램 등 보안 메신저를 통해 주요 인사들과 비밀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로비를 어마 무시하게 하는 회장님’으로 불린 김 전 회장의 로비 대상에는 분명히 정·관계 인사가 있을 것이라는 의심이 꼬리를 물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 파견 행정관을 지낸 금융감독원 팀장급 간부 외엔 아직 드러난 게 없다. 김 전 회장의 행보를 알면 알수록 평범한 월급쟁이와 소상공인의 상대적 박탈감만 커질 것이다. 수사기관은 1조6000억 원대 투자 피해의 배후를 반드시 밝혀야 한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20-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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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능의 공정성까지 도전받고 있다[오늘과 내일/정원수]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2005년 6월 시행된 200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모의평가 때였다. 수험생은 1교시부터 마지막 교시까지 OMR 답안지의 왼쪽 상단 필적 확인란 두 칸에 윤동주 시인의 ‘서시’ 한 구절을 한 글자씩 적어야 했다. 그해부터 지난해까지 수능 때마다 필적 확인란 기재는 유지되고 있다. 필적 확인란을 도입한 계기는 2004년 11, 12월 발생한 사상 초유의 수능 부정사건 때문이었다. 휴대전화를 이용한 부정행위와 대리시험 등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조직적 범행으로 314명의 성적이 무효 처리됐다. 수능 폐지 요구까지 나오자 이듬해 2월 당시 교육인적자원부는 “이 사건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겠다”면서 수능 부정을 방지하기 위한 고강도 대책을 내놨다. 핵심은 크게 두 가지였다. 우선 시험 관리 감독 강화를 위해 시험실당 응시자 수를 기존 32명에서 28명으로 줄이고, 전자기기의 반입을 금지했다. 대리시험 응시 시도를 원천 차단하기 위한 대책은 더 구체적이었다. 원서 접수 단계부터 본인 접수를 의무화하고, 기존 사진보다 큰 여권용 사진을 제출하게 했다. 1교시 시작 전에만 하던 본인 확인 절차를 3교시 전 한 차례 추가했다. 또 매 교시 감독관 2, 3명씩이 동일인 여부를 점검하게 해 수능 당일에만 수험생 1명당 감독관 9∼11명의 중복 검증을 거치게 한 것이다. 필적 확인란도 추후 필적 감정을 통해 동일인 여부를 가리려는 것이었다. 그 뒤에도 수능 부정은 매년 100건, 200건씩 불거졌지만 2004년과 같은 심각한 부정은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올 2월 국민권익위원회의 국민신문고에 수능 대리시험 공익제보가 접수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제보자는 공군 소속 병사 A 씨(20)가 부대 선임 B 씨(23)의 부탁을 받고 지난해 11월 수능에 대리 응시한 사실을 고발했다. 제보자는 국민신문고에 “대리시험은 몇 년간 최선을 다하여 수능을 준비한 인원들에 대한 모욕이자 대한민국의 수능을 기만하는 행위”라는 글을 남겼다. 서울시교육청이 1차 조사를 한 뒤 군과 경찰에 지난달 각각 수사를 의뢰하면서 베일 속 진실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A 씨는 주변에 “시험장에 폐쇄회로(CC)TV 그런 것도 없고, 생각보다 관리 감독이 허술하다”고 했다고 한다. A, B 씨의 군부대 동료들은 군 당국 조사에서 “한 명은 둥글둥글하고 살이 찐 편이고, 다른 한 명은 날카로운 인상에 마른 체형으로 생김새가 너무 다르다. 선임 사진으로 수능을 치렀는데 적발되지 않았다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서울시교육청은 해당 시험장의 정감독관 4명에 대한 1차 조사에서 특이사항이 없었다고 9일 발표했다. 2004년 수능 부정 사건을 돌이켜보자. 수능 직전 교육청 홈페이지 등에 “유언비어라 생각하지 말고 엄정히 대처해 달라”며 구체적인 제보가 접수됐지만 당시 교육당국은 이 경고를 무시했다. 법조계에선 통상적으로 하나의 범죄에는 범죄예비군 10명, 100명이 있다는 말이 있다. 대리시험은 허술한 관리 감독의 빈틈을 노렸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군 당국의 수사 자료에는 A 씨가 대리시험에 대한 대가로 1500만 원과 1억 원 등을 언급한 내용까지 있다. 철저한 수사를 통해 15년 만의 대리시험 응시가 빙산의 일각인지부터 가려야 한다. 그런 뒤에 수능 부정행위 방지 대책을 전반적으로 재정비해야 한다. 이른바 조국 사태로 스펙 위주의 수시 전형에 대한 공정성이 크게 위협받았다. 교육당국이 수능 위주인 정시 전형 비율을 늘리는 것을 대안으로 추진 중인데, 이번에는 수능의 공정성까지 도전받고 있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20-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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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시골 아파트와 세계 아동 성착취물[오늘과 내일/정원수]

    2018년 4월경 충남의 한 시골 마을 아파트에 경찰관이 들이닥쳤다. 한국 경찰청이 영국 국가범죄청(NCA), 미국 국토안보수사국(HSI) 등과의 공조 수사 끝에 아동 성 착취물을 제공한 범인의 거주지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에서 20대 청년을 체포한 경찰은 피의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동한 뒤 이 청년의 방에 있던 다크웹의 서버를 압수수색했다. 함께 살던 가족도 몰랐지만 이 청년은 자신의 방에서 2015년 6월∼2018년 3월 ‘웰컴 투 비디오’라는 이름의 다크웹 사이트를 운영했다. 검거 직전에도 8테라바이트 분량의 영상 2만 개가 저장된 서버가 작동하고 있었다고 한다. CNN이 세계 아동 성 착취물의 ‘은밀한 소굴(a covert den)’이라고 한 곳이 20년 정도 된 아파트의 조그만 방이었던 것이다. 이 청년은 전 세계 4000여 명으로부터 7300여 회에 걸쳐 37만 달러(약 4억 원)의 가상화폐를 받고 아동 성 착취물을 제공했는데, 영상물에는 생후 6개월 된 기저귀를 찬 영아도 있었다. 이 사이트엔 한글이 한 글자도 없었다. 그래서 한국 수사당국이 이곳을 처음 적발한 게 아니다. 영국 NCA가 케임브리지대 출신의 소아성애자 매슈 팔더를 조사하던 중에 한국 IP주소를 찾아냈다. 한국 경찰도 처음에는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범행으로 판단했다. 그런데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고, 친구도, 직업도 없던 이 청년이 독학으로 다크웹과 가상화폐를 연구해 세계를 상대로 하루 24시간 불법 성 착취물 영업을 한 것이다. 그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성인 음란물이 아닌 아동 성 착취물만 취급했다. 인터넷 검색으로 자신의 행위가 ‘아동 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지만 범행을 멈추지 않았다. 이 청년은 곧바로 수감됐고, 이어 구속 상태에서 재판에 넘겨졌다. 이때부터 그는 다른 사람이 된다. 다른 범죄 경력이 없던 그는 재판부에 반성문을 제출하고, 불우한 성장 과정과 가정 형편을 강조했다. 2018년 9월 1심 재판부가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해 그는 풀려났다. 지난해 5월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의 형이 너무 가볍다면서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하지만 항소심 선고 보름 전에 혼인신고서를 제출해 부양할 가족이 생긴 점 등이 피고인에게 유리한 사정으로 감안되면서 형량이 깎였다. “성 인지 감수성 측면에서는 걸림돌 판결”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피고인과 검찰 모두 상고하지 않아 그대로 형이 확정됐다. 한국 재판은 끝났지만 국제 공조 수사는 계속됐다. 미 법무부는 지난해 8월 한국 경찰청 등과 최종 수사 결과를 동시에 발표했다. 이때 한국에선 익명이던 이 청년의 실명 손정우를 미 법무부가 공소장과 함께 공개했다. 손정우는 27일 한국에선 만기 출소하지만 미국에서는 자국 피해자가 있는 만큼 미국 법에 따라 손정우를 처벌해야 한다며 범죄인 인도조약에 따른 송환을 요구하고 있다. 피해 아동의 국적은 미국과 영국, 스페인 등이었다. 미국에서는 손정우가 유포한 성 착취물을 1회 다운로드, 1회 접속한 혐의만으로도 징역 70개월이 선고됐다고 한다. 언제까지 반문명적인 범죄자에게 세계인의 눈높이에 훨씬 못 미치는 처벌을 하고도 자국민 보호만을 앞세워야 하나. 유엔 총회에서 아동 성 착취물 등에 관한 선택의정서가 채택된 것이 2000년이고, 이를 한국은 2004년 비준했다. 그 이후에도 우리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그것이 악마를 자칭한 ‘박사방’ 조주빈을 다시 불러왔다고 볼 수 있다. 이번에야말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20-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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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완치자의 첫 투병기로부터 얻은 교훈[오늘과 내일/정원수]

    “한 명의 완치자의 경험담이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약간이나마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자세하게 적어 보냅니다.” 부산에서 47번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박현 부산대 기계공학부 겸임교수(48)는 9일 동아일보에 장문의 이메일을 보냈다. 자신의 감염 사실을 실명과 함께 공개한 박 교수는 자신이 겪은 증상과 완치 과정을 자세히 적은 A4용지 8장 분량의 PDF 문서 파일을 이메일에 첨부했다. 그는 “저의 글이 의료진에게 감사를 나누고, 환자에게 용기를 주고, 사회적 불안감과 혼란 해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기사를 통해 나누어 주시면 감사하겠다”고 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라몬유대 마케팅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지난달 24, 26일 부산대에서 강의를 하기 위해 지난달 초 미국을 거쳐 고향 부산을 찾았다. 강의 사흘 전인 같은 달 21일 부산에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고, 강의가 취소됐다. 취소 당일 그는 부산대 실습실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했고, 대학 인근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런데 이틀 뒤인 23일부터 발열 증상이 나타났고, 그 다음 날 확진 판정을 받았다. 지난달 25일부터 9일 동안 음압병동에 입원했던 그는 퇴원 뒤 이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박 교수는 초기 증상에 대해 “가슴 통증은 갈수록 심해졌고, 호흡곤란도 왔다 갔다 했다”고 적었다. 이어 “처음에는 가슴을 철판이 누르는 듯한 통증에서 기왓장이 누르는 통증으로 차츰 변했고, 가슴을 칼로 찌르는 듯한 통증에서 손으로 움켜쥐는 듯한 통증으로 변했다”고 설명했다. “오늘 가장 아픈 정도가 어제 가장 아팠을 때보다 더 좋으면 되는 것이고, 최고점이 차츰 낮아지면 회복되고 있는 것이니 편하게 마음먹고 있으라”는 의료진의 조언으로 이 고통을 극복했다고 했다. 입원 당시 그는 생의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페이스북에 매일 글을 올렸다. 주 5일 헬스클럽에 다니던 그는 감염 초기에는 당혹스러워했다. “(수술 후 회복 중이던) 어머니 걱정 말고, 너만 걱정하라”는 누나의 조언에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사람이 될 것”이라며 자책하는 듯한 구절도 나온다. 하지만 입원 닷새째부터 조금씩 안정을 되찾기 시작한 그는 심장 박동 소리와 측정기의 그래프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로 여기게 된다. 페이스북 댓글에 달린 지인들의 반응에 그는 “메시지와 응원에 감사하고, 이런 것들이 내가 정신을 차리는 데 진짜 도움이 되고 있다”며 위안을 삼는다. 그 다음 날에는 “나는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싸우고 있다. 초대 없이 불쑥 찾아온 바이러스를 몸 밖으로 보내겠다”고 다짐한다. 퇴원 전날 박 교수는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병원 이송을 기다리면서 혼자 방에서 불안한 순간을 저도 겪었습니다. 혼미해지는 정신 속에 불안해하면서 살기 위해 정신을 안 놓기 위해 발버둥치던 순간을 저도 겪었습니다. 힘내세요, 가족과 친구가 함께합니다. 저도 당신과 함께합니다. 우리 같이 이겨냅시다.” 17일 0시 현재 국내의 코로나19 완치자는 1400명을 넘었지만 실명을 밝히며 증상과 완치 과정을 공개한 것은 박 교수가 유일하다. 해외에서도 차별과 오명을 피하기 위해 공개를 꺼린다고 한다. 박 교수의 투병기는 최근 홍콩과 미국 언론에도 보도돼 반향을 일으켰다. 박 교수의 투병기와 페이스북 글을 자세히 보면 환자들에게 혼자만 싸우는 게 아니라는 것을 외부 메시지를 통해 끊임없이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박 교수는 스스로 그 해법을 찾았지만 그러지 못한 환자들이 병실 밖 가족이나 지인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하지 않을까.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20-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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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다 재판의 학습효과와 출구전략[오늘과 내일/정원수]

    “검찰청사 주변에서 검사와 직원들은 타다 이용을 삼가 달라.” 지난해 11월 서울중앙지검은 타다 운영사인 VCNC의 박재욱 대표와 VCNC의 모회사 쏘카의 이재웅 대표를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뒤 이 같은 내부 지침을 내렸다. 기소 주체인 검찰이 타다를 이용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본 것이다. 약 9개월 전인 같은 해 2월 택시업계가 타다를 불법 택시 영업으로 처음 고발했을 때도 비슷한 고민이 있었다. 수사팀 검사 대부분은 “괜한 오해를 부를 수 있다”며 타다 이용을 ‘보이콧’했다. 당시 검찰 지휘부에도 이용 자제가 권고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 착수 8개월 만인 같은 해 10월 28일 검찰은 기소 결정을 내렸다. 혁신적 모빌리티 산업을 표방한 타다는 실제로는 불법 콜택시 영업이라는 것이 검찰의 시각이었다. 기소 당일 오전 서울중앙지검의 부장검사들이 기소 여부를 놓고 회의를 했는데, 만장일치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법에 저촉되거나 법률로서 보호해야 하는 다른 제반 이해관계와 충돌한다면 현행법 규정대로 판단을 하는 게 불가피하다는 논리였다. 법원에선 검찰의 결론이 뒤집혔다. 유죄가 인정됐을 경우 형량이 상대적으로 낮아 합의재판부가 아닌 단독재판부로 사건이 배당됐다. 무작위 사건 배당으로 서울중앙지법의 형사18단독 박상구 부장판사(50·사법연수원 25기)가 재판장이 됐다. 정보기술(IT) 동향 등을 연구하는 정보법학회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그는 현재 이 학회의 감사를 맡고 있다. 1996년 4월 판사와 변호사, 교수 등이 설립한 이 학회는 정보 혁명과 법 제도의 변혁을 연구하는 곳이다. 학회 홈페이지에 따르면 정보사회에서 새롭게 대두되는 제반 법률문제를 분석 진단하고, 그 해법을 선도적으로 제시하는 것을 주요 역할로 소개하고 있다. 박 부장판사는 2014년 가을 이 학회의 정기 세미나에 토론자로 참석했는데, 토론 주제가 공유경제였다. 세미나 자료를 보면 우버, 에어비앤비 등을 포함한 최신 공유경제 사례를 논의한 것으로 되어 있다. 법관들의 연구 모임인 사법정보화연구회의 간사를 지낸 적도 있다. 박 부장판사는 지난해 12월 1일 이후 결심과 선고를 제외하면 2차례 공판을 열었다. 그는 지난달 20일 불법 콜택시가 아니라 합법적 렌터카라며 박 대표 등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1심 무죄 이후 항소 여부를 논의하기 위한 공소심의위원회를 열었다. 공소심의위엔 외부위원은 없었고, 검사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스타트업계 자문 변호사와 국토교통부 관계자, 택시업계 측 전문가 등의 의견을 약 40분씩 차례대로 청취한 뒤 전원일치로 항소를 결정했다고 한다. 2심에서 판결이 달라질 수 있는데 항소를 포기한다는 것도, 국회의 법 개정 방향이 타다 금지 쪽이라면 검찰로서는 사실상 공소 유지 외에 다른 대안을 찾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만약 검찰이 기소 단계부터 외부 전문가들이 위원으로 포함된 공소심의위를 열었다면 어땠을까. 부패 범죄와 달리 미래 신생 산업의 위법 여부를 판단할 때는 검찰이 좀 늦더라도 더 폭넓게 의견을 수렴해야 하는 것 아닌가. 진짜 문제는 검찰과 법원이 4개월 간격을 두고, 정반대의 결론을 내리는 사이 정부 부처와 입법부 등 정책 결정권자가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다. 1심 재판장은 항소심과 그 이상의 재판을 예상한 듯 선고 공판을 다음과 같이 끝냈다. “택시 등 교통이동수단, 모빌리티 산업의 주체들, 플레이어 규제 당국이 함께 고민해서 건설적인 해결책을 찾는 길이 계속될 재판의 학습효과이자 출구전략이다.” 현행법 해석에 대한 유무죄 다툼을 산업 주체와 정책 결정권자들이 하루빨리 뛰어넘어야 한다. 신생 산업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상상력을 발휘해야 할 때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20-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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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명의 윤석열’, 그리고 추미애[오늘과 내일/정원수]

    “앞으로 ‘100명의 윤석열’을 누가 감당할까.” 추미애 법무부 장관 취임 직후인 지난달 두 차례 단행된 이른바 ‘검찰 대학살 인사’에 대해 전직 검찰 고위 간부는 이렇게 말했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 등 ‘살아있는 권력’ 수사를 지휘하던 윤석열 검찰총장의 참모진과 수사팀 검사를 지방으로 좌천시켜 ‘제2의 윤석열’이 100명 정도 생긴 것 아니냐는 것이다. 윤 총장 1명도 현 정부가 감당하기 버거워하는데, 윤 총장처럼 타협하지 않는 검사 여러 명을 훗날 어떤 권력이 상대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섞여 있는 탄식이었다.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은 이번 인사가 권력 수사에 대한 방해 아니냐는 비판에 “사표를 내는 분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본다”며 큰 반발이 아니라고 했다. 과연 그럴까. 좌천된 인사 중 일부는 지방으로 내려가면서 ‘위리안치(圍籬安置)’를 언급했다고 한다. 집 주변을 둘러싼 가시 울타리에 갇혀 지내야 하는 위리안치는 조선시대 당쟁으로 유배된 유학자에게 내려진 형벌 중 가장 강도가 높은 것이었다. 가혹한 처사라는 억울함에도 좌천된 검사는 왜 사표를 내지 않고, 검찰에 남아 있을까. 한 검찰 간부는 ‘윤석열 학습효과’라고 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 댓글 조작 사건 수사를 놓고 정권에 맞서다가 지방으로 좌천됐던 윤 총장은 옷을 벗지 않고 끝까지 검사로 남았다. 결국 정권 교체 뒤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영전해 적폐청산 드라이브의 최일선에 섰고, 검찰총장에도 발탁됐다. 권력에 치받다가 수모를 당하면 사표를 던지는 것으로 저항하던 선배 검사들과 달리 ‘제3의 길’을 연 것이다. 검찰개혁을 지상과제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가 ‘검사(檢事)주의자’ 윤 총장을 요직에 발탁한 것은 동료 검사들에게 가장 큰 충격이었다. 윤 총장의 원칙 수사를 이겨낼 수 있다는 정권의 자신감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검찰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윤 총장은 취임 직후 “무슨 여한이 있겠냐. 직분에 최선을 다하자”고 했다. 조국 사태 등 권력층이 민감해하는 수사를 할 때 여권이 검찰을 비판하자 윤 총장은 “그간 정치권을 편들어 오면서 일한 적이 없다”며 후배들을 다독였다고 한다. 국정농단 사건 등을 떠올리며 “검찰이 정권을 감싸고돌면 정권이 진짜 민심과 멀어질 수 있다”며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 그런데도 추 장관은 취임 이후 검찰 내부의 상실감은 무시하고, 강공 일변도로 밀어붙이고 있다. 윤 총장의 의견을 듣지 않고 검찰 인사를 단행했고, 전·현직 청와대 관계자에 대한 기소를 만류한 데 이어 공소장 공개까지 가로막았다. 21일에는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의 판단 주체를 분리하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17년 만에 장관 주재 전국 검사장회의를 소집했다. 이 자리에 불참하는 윤 총장은 “수사와 기소는 한 덩어리”라며 이미 후배 검사장들을 향해 반대 메시지를 던졌다. 선거를 앞두고 장관과 검찰이 또 한번 충돌할 수 있다. 지난달 10일 대검에서 열린 검찰 신년동우회에서 한 전직 고위 간부는 “‘유경백별우신지(柳經百別又新枝·버드나무는 백번 꺾여도 새 가지가 난다)’라는 말이 있다”며 후배 검사들을 위로했다. “진짜 검사가 되라”는 조언을 주변으로부터 받고 있는 좌천 검사들은 결기를 더 키운다고 한다. 이런 시점에 검찰 사무의 최고 책임자인 법무부 장관이 검찰을 꺾고 또 꺾기만 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냉정히 따져봐야 한다. 여당 내부에서도 “시시비비를 떠나 권력에 맞서는 것 자체에 박수 치는 것이 보통 사람의 정서임을 왜 모르는가”라며 추 장관에게 더 낮아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20-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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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대에 역행하는 靑의 검찰 직접 검증 확대[오늘과 내일/정원수]

    ‘A=내부에서 대표적으로 복지부동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도 중요 부서로 배치, B=승진을 시도하였다가 내부의 인사 라인 반대로 무산, C=정책 대응 실패에도 아무런 문책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례….’ 2016년 3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문화체육관광부 내 파벌로 인한 난맥을 점검하라”고 지시한 직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이 문체부 국·과장급 공무원들에 대해 수집한 세평(世評) 결과다.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의 1심 재판 때 그 내용이 공개됐는데, 1심 재판부는 세평의 가치를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다른 공무원에 비해 빠른 승진을 시도했다거나, 복지부동이라는 주관적인 평가에 기초하고 있고, 정책 실패라는 사유 또한 정식으로 판명된 것이 아니었다.’ 헌법상 국민 전체의 봉사자인 공무원을 벼랑 끝으로 내몰 수 있는 청와대 인사 검증 자료가 얼마나 부실하고, 편파적일 수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최근 검찰 중간 간부 인사는 청와대의 인사 검증 관행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걸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지난달 23일 단행된 검찰 중간 간부 승진 인사를 앞두고, 청와대 행정관들이 차장검사 승진 대상자에게 전화로 물었다는 질문 내용을 보면 실소가 나온다. 기존에는 차장검사는 법무부 담당이었는데, 이번에는 검찰을 잘 모르는 경찰 출신 행정관이 질문자로 나섰다. “검사 경력만 20년이 넘는데, 돈이 참 없으시다. 안타깝네요.” 20년 가까운 경력의 중견 검사에게 전화상으로 약 5분간 이 정도 수준의 질문을 한 뒤에 승진 여부를 가렸다는 것 자체는 코미디 같은 일이다.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용산 참사, 세월호 참사 사건 등에 참여한 검사에게는 “어떤 역할을 했고,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물었다. 국정 철학에 대한 이해도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부적절한 것이다. 검사에게는 사실상 모범 답안이 뻔히 보이지만 소신에 반해 답변하기가 망설여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상 검증”이라는 지적에 청와대는 “내부 확인 결과 발견하지 못했다”고만 했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질문의 수준이 아니라 청와대의 검찰 장악에 대한 과욕이다. 청와대는 관행적으로 검사장 승진 대상자에 한해 직접 인사 검증을 했는데, 이번에는 차장검사 승진 대상자까지 범위를 느닷없이 넓혔다. 법무검찰개혁위원회의 권고에 따른 것이라고 했지만 청와대가 일개 부처 개혁위의 말을 즉각 받아들인 게 석연찮다. 신속한 검증을 위해 청와대는 경찰에 하청을 줬고, 180명 이상의 검사 세평 기초 자료를 동시 수집한 경찰에선 “체감상 업무가 5배 정도 늘어난 것 같다”는 불만이 나왔다. 검사에 대한 청와대의 직접 검증이 늘면서 국세청 등 타 부처 인사 검증이 연쇄적으로 늦어졌다는 말까지 들린다. 대통령의 인사권을 부처에 위임하는 최근 추세와도 역행하는데, 청와대는 왜 그랬을까. 한 검사는 “청와대가 검찰의 중립성에 비수를 꽂은 것”이라고 표현했다. 또 다른 검사는 “검찰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려고 한 것이다. 누가 인사를 하는지 보여준 것”이라고 했다. 실무 수사 라인까지 직접 통제하겠다는 의지를 청와대가 감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4년 전 문체부 공무원의 좌천 인사처럼 최근 검찰 인사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형사사법 절차대로 진행하다 보면 훗날 검사의 세평 결과가 공개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편파’ 세평 작성을 지시한 청와대 관계자는 그때 어떤 평가를 받을까. 이참에 청와대의 직접 인사 검증 대상과 범위, 절차, 검증에 참여할 유관기관을 공개적인 법령으로 정하면 어떨까. 그 과정을 점검해서 문책하는 조항까지 넣어야 불행한 인사 퇴행의 반복을 막을 수 있다. 사회부장 정원수 needjung@donga.com}

    • 2020-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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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사 이성윤’의 거침없는 영전이 불안한 이유[오늘과 내일/정원수]

    이른바 ‘1·8 대학살’ 검찰 고위 간부 인사의 최대 수혜자는 단연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58)이다. 윤석열 검찰총장(60)의 사법연수원 23기 동기인 그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과 법무부 검찰국장에 이어 전국 최대 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모든 검사가 단 한 곳만이라도 가길 꿈꾸는 ‘빅3 요직’을 모두 거친 검사는 1998년 박순용 전 검찰총장에 이어 22년 만이다. 야당에선 “1년 이내에 세 자리를 모두 역임한 것은 71년 검찰 역사상 전무후무한 특혜 인사”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참여정부 청와대의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재직하던 2004∼2005년 그 밑에서 특별감찰반장으로 근무했다거나 문 대통령의 경희대 법대 후배라는 것 외엔 이 지검장에 대해 알려진 게 별로 없다. 검사들은 대체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만 기억하고 있거나 “알 기회가 없었다”고 답한다. 개인적으로도 인연이 없어 부득이 같이 근무했던 전·현직 검사들과 지인들에게 물었다. “저녁 자리를 하지 않고, 하루에 한 끼만 먹는 것으로 안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새벽 1, 2시까지 수사하고 늦게 귀가한 검사에게 아침 일찍 나와 공부하자고 한다. 주말에도 그렇게 하니 검사들이 좋아하겠나.” “젊었을 때 골프를 싱글까지 쳤는데, 목표를 달성한 뒤에 바로 끊었다고 하더라.” 밤늦게 술을 마시거나 또 그런 자리에서 권력층 인사를 만나 부당거래를 할 것 같은 영화 속 고정관념의 검사들과 너무 다른 모습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근본부터 검찰을 바꾸려는 문재인 정부와는 궁합이 맞을 수 있다. 하지만 서초동의 기류는 기대감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것이 현실이다. 상식 밖의 고집을 끝까지 피울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우려다. 이 지검장의 한 지인은 “자기 생각에 꽂히면 밀어붙여야 한다”고 했다. 또 다른 지인도 “좋게 말하면 원칙주의자인데, 교조적인 측면이 있다. 별명이 ‘탈레반’”이라고 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2010년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장으로 근무하면서 개미들의 무덤으로 불리는 주식워런트증권(ELW) 부당거래 혐의로 12개 증권사 대표와 초단타 매매자인 스캘퍼를 기소한 일을 꼽는다. 1, 2, 3심에서 모두 무죄가 난 배경에 이 지검장의 고집을 기억하는 검사들이 아직 있다. 이 지검장이 수사팀 검사에게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고 하거나, 윤 총장의 의견을 반대할 경우 충돌 소지가 있다. 이 지검장이 2008년 민원인에게 흉기로 직접 피습당하고, 2012년엔 후배 검사가 성추문 사건에 연루되는 바람에 한직을 떠돌아 자기 상실감이 크다는 것을 걱정하는 시각도 있다. 그 상실감을 만회하기 위해 무리수를 둘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때는 민감한 수사를 하는 일선 지검에 법률 검토를 요구하면서 시간을 끌게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법무부 검찰국장 때에는 특별사면이나 검찰 인사를 맡아 현 정부의 기조를 뒤집는 결과를 내놨다. 서울중앙지검장 취임사에서는 절제된 검찰권 행사를 강조했지만 정작 후배 검사들은 “예전에는 집요하게 수사해야 한다고 강의하더니…”라며 어리둥절해하고 있다. 대다수 검사들은 요즘 두려운 마음으로 이 지검장의 거침없는 영전을 지켜보고 있다. 요직을 맡은 검사가 권력에 굴종하거나, 그 반대로 권력을 치받은 대가를 치르는 두 장면을 주로 지켜봤기 때문이다. 권력이 검찰의 힘을 제도적으로 뺏고, 정권을 향한 수사까지 원천봉쇄하려고 하는 이때 이 지검장은 어떤 선택을 할까. 이 인사의 결말이 궁금하다.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20-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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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정에선 특혜가 인정되지 않는다[오늘과 내일/정원수]

    “법정에서 말하겠다.” “법정에서 밝혀질 것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해 11, 12월 서울중앙지검의 특별조사실에서 3차례 조사를 받으면서 가장 많이 한 말이라고 한다. 검사가 자녀의 입시 비리 등에 대한 증거를 제시해도 조 전 장관은 두 가지 답변 중 하나를 반복하면서 추가 진술을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8월 27일 조 전 장관 관련 첫 강제 수사 이후 126일 만인 지난해 마지막 날 검찰은 A4용지 56쪽 분량의 조 전 장관 공소장을 국회를 통해 공개했다. 청와대는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라고 폄하했지만 공소장을 읽어 보면 조 전 장관 혐의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특히 조 전 장관 아들이 삼수 끝에 국내 유명 대학원에 연거푸 합격하는 과정이 가장 눈길이 갔다. 조 전 장관이 문재인 정부의 초대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된 2017년 5월경 조 전 장관의 아들은 국내 대학원 시험에 한 달 간격으로 두 번 불합격한다. 입영 문제를 해결하고, 법학전문대학원 진학을 위해서는 같은 해 하반기로 예정된 2018학년도 전기 대학원 시험에는 꼭 붙어야 했다. 조 전 장관 부부는 이때부터 아들의 가짜 스펙을 수집한다. 2017년 10월 11일 조 전 장관은 대학 4년 후배인 최강욱 변호사에게 부탁해 아들의 가짜 로펌 인턴활동 확인서를 받았다. 지도변호사 이름 위에는 조 전 장관 아들이 ‘2017년 1∼10월 매주 2회 16시간 동안 변호사 업무와 법조 직역에 관해 배우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으며, 문서 정리 및 영문 번역 등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였음을 확인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가족 상속 사건을 변호할 정도로 가까웠던 최 변호사가 약 1년 뒤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조 전 장관 밑에서 근무한 게 우연이라고 볼 수 있을까. 같은 달 16일에는 조 전 장관이 재직하던 서울대 공익인권법연구센터에서 아들이 고교 시절인 2013년 7∼8월 인턴활동을 했다는 가짜 인턴활동 증명서를 발급받았다. 그 다음 달 3일엔 아들이 2015∼2017년 미국 조지워싱턴대를 다니면서 받은 장학금을 수령액보다 2만7000달러 이상 부풀리고 장학증명서까지 위조했다. 가짜 스펙 자료를 제출한 끝에 조 전 장관 아들은 2017년 10월과 11월 대학원 두 곳에 합격했다. 한 대학원 입시전형에선 온라인 접수 마감까지 가짜 경력을 기재하지 못하자 가짜 경력을 기재한 용지를 덧대는 편법을 동원했는데, 대학원은 문제 삼지 않았다. 조 전 장관의 아들은 2018년 3월 대학원 한 곳에 입학했다. 그로부터 두 달 뒤인 같은 해 5월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아 “권력적폐 청산을 생활적폐 청산으로 확대하겠다”고 선언했다. 적폐청산이 문 정부의 집권 초기 국정 100대 과제 중 제1 과제였는데, 9대 생활적폐 중 첫 번째가 하필 학사비리였다. 청와대 재직 중에 아들의 대학원 입학을 위해 학사비리를 저지른 조 전 장관이 학사비리 척결의 최선두에 섰다는 것 자체가 부조리극의 한 장면 같다. 그런데도 조 전 장관 측은 기소 직후 “상상에 기초한 정치적 기소”라고 비판했다. 검찰 사무의 최고책임자였던 조 전 장관이 검찰 사무의 핵심인 수사와 기소를 부정한 것이다. 조 전 장관의 바람대로 29일부터 ‘법정의 시간’이 온다. 조 전 장관은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포토라인 폐지 등 개정된 인권 규칙의 첫 수혜자로 특혜를 받았다. 그런데도 피해자처럼 행동한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부디 법정에서는 침묵을 깨뜨리고 가짜 스펙 수집의 자초지종을 국민들에게 설명하길 바란다. 오랜 법언대로 ‘법정에선 특혜가 인정되지 않는다’.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20-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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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정경쟁 선거 없이 선출된 권력 설 곳 없다[오늘과 내일/정원수]

    “선거는 국민주권주의와 대의민주주의를 실현하는 핵심으로서 국민이 직접 대표자를 선출하여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므로 선거에서의 공정성은 민주국가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선거에서의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는 헌법적 요청으로서, 공직선거법 제9조는 그 취지를 구체화하여 자유선거 원칙과 선거에서의 정당의 기회 균등을 위협할 수 있는 모든 공무원에 대하여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의 행사나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2016년 국회의원 총선거 당시 비박계 인사를 배제하고, 친박계 인사를 공천하기 위해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로 여론조사를 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 판결문의 일부다. 서초동에서 요즘 이 판결문이 화제라고 한다. 지난해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청와대가 김기현 전 울산시장을 낙선시키고, 송철호 울산시장을 당선시키기 위해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검찰이 수사하면서 이 판결문이 자주 거론된다고 한다. 특히 수사 지휘권자가 윤석열 검찰총장으로 같고, 수사 대상만 정반대의 정치세력이라는 점에서 더 시선을 끌고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 국정원의 댓글 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장을 맡았다가 좌천됐던 윤 총장은 공정선거에 대한 강한 소신을 갖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인 2017년 5월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발탁된 윤 총장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수감 중이던 박 전 대통령을 지난해 2월 총선 개입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 총선이 끝난 지 2년 정도 지났지만 공무원의 직무나 직위를 이용한 선거법 위반 공소시효는 10년이다. 법정에서 검찰은 “국민의 봉사자라는 대통령의 정체성을 잊고 제왕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국정원을 사금고로 전락시켰다”고 주장했고, 1, 2, 3심에서 모두 유죄 판단을 받았다. 윤 총장은 올 상반기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실이 정보 경찰을 통해 2016년 총선에 개입한 의혹을 또 수사했다. 총선 전 친박계를 위한 판세 분석 등 맞춤형 정보를 정보 경찰로부터 제공받은 청와대 관계자 등이 재판을 받고 있다. 권력이 정보 경찰을 싱크탱크처럼 활용하는 낡은 관행을 끊은 것이다. 당시 야당이 “적폐청산 수사의 연장선”이라고 검찰을 공격하자 윤 총장은 사석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선거가 제일 중요하다. 권력은 선거를 안 통할 수가 없지 않나. 야당은 할 수 없지만 여당은 은밀한 반칙행위로 권력을 연장하고 싶어 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번 수사는 현 정부에 부담을 주는 것이다. 이 정부의 손발을 묶는 것일 수 있다.” 오히려 여당에 불리한 수사라는 것이다. 그런 윤 총장이 다시 선거 수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를 겨냥한 수사라는 부담감이 있었지만 그는 지난달 울산지검에 사건을 맡겨두지 않고, 서울중앙지검으로 재배당하는 정공법을 택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 연말에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법안이 통과되고, 새 장관이 들어서면 수사팀이 전격 교체될 수 있다. 내년 총선이 궤도에 오르기 전에 수사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점도 변수다. 조국 사태 때 서초동 아스팔트 위 시위대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검찰은 선출된 권력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출된 권력의 힘은 공정경쟁을 통해 뽑혔다는 전제 위에서 나온다. 여당이 박근혜 정부처럼 국가기관을 선거에 이용했다는 의혹을 씻기 위해서라도 검찰 수사가 미진하다면, 먼저 의혹을 끝까지 밝혀 달라고 요구해야 하는 건 아닐까.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19-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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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을 위한 인사가 제1의 검찰개혁[오늘과 내일/정원수]

    “검찰 개혁의 제일이 인사 개혁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공무원 조직이 인사에 본능적으로 반응한다. 인사를 개혁하면 행동 패턴이 바뀐다.” 문재인 정부의 초대 법무부 장관인 박상기 전 장관이 지난해 11월 사석에서 검찰 인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한 얘기다. 얼마 뒤 ‘검사 인사 규정’이 대통령령으로 격상돼 제정되더니 국무회의까지 통과해 같은 해 12월 18일부터 시행 중이다. 박 전 장관은 “검사 인사를 먼저 하고 원칙을 나중에 세우는 이전 정부의 ‘선(先)인사 후(後)원칙’의 시대를 벗어난 것”이라며 의미 부여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총 21개 조항으로 구성된 이 규정의 제1조는 ‘검사 인사의 기본 원칙과 절차를 정함으로써 인사 관리의 공정성과 합리성을 기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되어 있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흔들리지 않을 인사의 대원칙을 처음 세운 것이다. 검사들도 인사의 예측 가능성이 생겼다며 환영했다. 특히 제12조의 필수보직기간을 반겼다. 일반인에게는 생소할지 모르지만 ‘공무원 임용령’에 따르면 필수보직기간은 공무원이 다른 직위로 전보되기 전까지 현 직위에서 근무해야 하는 최소 기간이다. 지방검찰청의 차장, 부장검사의 필수보직기간은 1년, 평검사는 2년이다. 요즘 검사들에게 이 규정이 다시 회자된다고 한다. 규정대로라면 서울중앙지검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수사를 지휘 중인 3차장과 반부패수사2부장은 내년 8월까지 근무 기간이 보장되어 있다. 김기현 전 울산시장에 대한 청와대 하명(下命) 수사 의혹을 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의 2차장과 공공수사2부장,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청와대 감찰 무마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동부지검의 형사6부장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직제 개편을 하면 예외적으로 필수보직기간을 보장할 필요가 없다. 검찰에서는 김오수 법무부 차관이 지난달 8일 청와대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알리지 않고, 문재인 대통령과 독대하면서 41개 직접 수사 부서의 폐지를 건의한 것을 의심하고 있다. 민감한 수사를 담당하는 차장과 부장, 평검사 인사를 앞당기기 위한 조치가 아니냐는 것. 김 차관은 “누가 그런 가짜뉴스를 퍼뜨리냐”면서 황당해했지만 검사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그 규정의 적용 대상이 아닌 검사장급 이상의 고위 간부다. 현 정권 입장에선 눈엣가시 같은 대검찰청의 수사지휘 라인 참모, 서울중앙지검장 등은 법무부 장관이 제청하면 대통령이 언제든 인사할 수 있다. 법무부에서 검사 인사를 오랫동안 담당했던 전직 검사장은 “인사 요인이 전혀 없다. 만약 내년 1월에 인사를 한다면 그건 정치적 이유”라고 했다. 6개월 전에 이미 내년 국회의원 총선거를 염두에 두고 60여 명의 고위 간부를 용퇴시키는 파격적 인사를 단행했기 때문이다. 기습적인 인사는 임기 2년이 보장된 윤 총장을 강제 퇴진시키기 어렵게 되자 그에게 불신임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만약 그런 의도라면 청와대를 향한 검찰 수사를 막기 위한 인사라는 측면에서 위법 논란이 제기될 수도 있다. 추미애 차기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첫 출근길에서 윤 총장을 향해 “헌법과 법률에 위임받은 권한을 상호 간에 존중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국민을 위한 길”이라고 했다. 추 후보자는 내년 총선 전까지 인사가 없다고 선언해야 한다. 그것이 청와대를 향한 검찰 수사에 개입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고, 이 정부의 검찰 인사 대원칙을 지키는 길이다.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19-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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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법원장은 13분의 1, 그 이상이다[오늘과 내일/정원수]

    서울 서초구 대법원청사 11층 대법원장실 옆에는 113m² 크기의 방에 원탁과 의자 13개가 놓여 있다. 매달 셋째 주 목요일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 등 전원합의체 구성원 13명이 전체회의를 여는 곳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2013년 8월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을 방송한 채널 사업자를 징계·경고한 결정에 대한 불복 소송도 이곳에서 논의됐다. 2015년 8월 11일 대법원에 접수된 사건은 올 1월 전합에 회부돼 7월까지 5차례 전합 심리가 열렸다. 마지막 회의에서는 관례대로 지난해 12월 임명된 최후임 김상환 대법관부터 대법원장까지 서열의 역순으로 투표했다. 8번째 김재형 대법관이 결정취소 의견을 밝히면서 결정취소 쪽이 6 대 2로 결정유지 의견을 압도했다. 과반에 1표가 모자랐는데, 이기택 박상옥 권순일 조희대 등 선임 대법관들이 결정유지에 힘을 보태면서 6 대 6 동률이 됐다. 김 대법원장의 마지막 선택만 남았다. 이럴 경우 전합 재판장인 대법원장은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며 최대한 시간을 끄는 게 불문율이다. 사회를 양분할 수 있는 첨예한 사건을 대법원장이 한쪽 편을 들면서 결정하면 대법원장이 여론의 직접 공격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법부 신뢰와도 직결된다. 더구나 1, 2심 하급심의 일치된 결론을 상급심이 정반대로 뒤집을 때는 더 신중해야 한다. 1, 2심은 ‘백년전쟁’이 객관성과 공정성을 상실하고, 사자(死者)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방통위의 조치가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김 대법원장은 자신이 임명 제청한 대법관 4명 등과 뜻을 같이하면서 상대적으로 젊은 대법관 쪽에 섰다. 김 대법원장이 취임한 2017년 9월부터 이달까지 2년 2개월 동안 대법원의 전합 선고 판결문 46건을 전수 입수해 분석해보니, 이른바 ‘김명수 코트’의 7 대 6 판결로는 유일하다. 김 대법원장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는 부담을 떠안고 선고한 첫 판결이기도 하다. 당초 지난달 예정되어 있던 선고는 판결문 작성이 늦어지면서 사건 접수 1563일 만인 21일 선고됐다. A4 81쪽 분량의 판결문에는 격렬했던 전합 토론의 흔적이 남아 있다. “매체별, 채널별, 프로그램 특성별로 완화된 심사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다수의견을 반대의견은 “법치행정에 반한다”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고 정면 비판했다. 여기에 다수의견의 보충의견은 “반대의견은 다수의견을 전적으로 오해하고 그 전제에서 비판한 것이어서 타당하지 않다”고 했다. 반대의견의 보충의견은 다시 “(다수의견을) 수긍할 수 있는 국민과 그렇지 않은 국민들 사이에 새로운 갈등과 분열을 촉발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김 대법원장은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대법원장이라도 전합에서는 그야말로 13분의 1에 불과하다”면서 소수의견을 직접 내겠다고 했다. 전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시국선언 등에서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며 7 대 6으로 보수 성향 판결을 주도했다. ‘김명수 코트’는 적어도 스스로 극복하려고 했던 ‘양승태 코트’를 뛰어넘어야 하는 것 아닌가. 국민들이 사분오열되어 있는데, 현대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전직 대통령 2명과 관련된 선고를 7 대 6, 그것도 대법원장이 캐스팅보터를 자처하면서까지 이 시점에 굳이 해야 했을까. ‘김명수 코트’의 구성이 내년 3월까지 바뀌지 않는데, 김 대법원장이 서둘러 선고한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판사들에게 나오고 있다. 취임 2년을 넘기면서 김 대법원장에게 13분의 1 이상의 역할을 기대하는 법원 내부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 김 대법원장이 이들의 진심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19-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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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재수 감찰 무마 사건, 봉인된 진실 해제할 때[오늘과 내일/정원수]

    “지금은 말할 단계가 아닙니다.” 청와대 특별감찰반 전직 직원 A 씨는 올해 상반기 서울동부지검에 출석해 이렇게 말하며 사실상 진술거부권을 행사했다고 한다. 당시 A 씨는 유재수 부산시 경제부시장의 청와대 감찰 무마 고발 사건을 조사받기 위해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에 처음 출석했다. 2017년 10월 당시 특감반원 A 씨는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이던 유 부시장이 업체와 유착 관계라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지난해 12월 야당이 관련 의혹을 제기하며 A 씨의 보고서가 공개됐다. 여기엔 ‘관련된 업체에 도움을 주고, 그 대가로 골프 접대 등 각종 스폰서 관계를 유지… 자신의 처에게 선물할 골프채를 사줄 것을 요구… 공항이나 국회 이용 시 업체로부터 차량과 기사를 제공받고… 자녀 유학비와 항공권 등 금품 수수’ 등이 적혀 있었다. 사실이라면 감찰만으로 부족해 보일 만큼 내용이 심각하지만 이후 처분 과정이 의혹을 키웠다. 행정부 소속 고위공직자 감찰 권한이 있는 특감반이 즉각 유 부시장 감찰에 나섰다. 특감반에서 세 차례 조사받은 유 부시장은 75일 동안 병가를 낸다. 복귀 뒤에도 금융위는 유 부시장을 추가 감찰하지 않고, 보직만 해임한다. “청와대가 품위 유지와 관련하여 문제가 있다고 통보했지만 금융위의 자체 감찰을 실시할 필요성이 높지 않았고, 중복 감찰을 금지하는 관련법을 따랐다”는 것이 금융위가 국회에서 밝힌 이유다. 금융위가 품위 위반 내용을 파악하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은 이유로는 부족한 설명이다. 더 납득이 가지 않는 건 금융위가 감독기관인 국회 정무위원회 수석전문위원으로 유 부시장을 추천한 것이다. 지난해 3월 유 부시장은 국회로 자리를 옮겼고, 같은 해 7월엔 부산시 부시장으로 이동했다. 같은 해 12월 31일 조국 당시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은 국회에 출석해 “유 부시장의 비위첩보 근거가 약하다고 보았다. 비위첩보와 관련 없는 사적인 문제가 나와 금융위에 통지했다”고만 했다. 나머지는 함구했다. 행정고시 출신인 유 부시장에 대해 “공무원처럼 일하지 않았다. 능력이 뛰어났다”고 호평하는 동료들이 있다. 하지만 특감반 보고서 작성과 감찰, 감찰 중단, ‘영전 인사’는 2006년 청와대 1부속실 행정관 등으로 근무한 유 부시장의 이력과 무관치 않다고 의심하는 시각이 많다. 문재인 정부의 권력 실세와 가깝다는 배경이 아니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특혜라는 것이다. 검찰 행보 역시 처음엔 미덥지 않았다. 검찰 고발 사건은 처음에 서울동부지검에 배당했지만 다른 지검에 재배당할지를 놓고 상당 기간 고민했다고 한다. 결국 없었던 일로 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수사 속도가 늦춰진 것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임명된 올 7월 이후 첫 검찰 인사에서는 서울동부지검의 수사지휘라인 인사에 권력층이 특히 신경을 썼다는 뒷말이 나왔다. 기존 수사팀은 A 씨를 처음 조사한 뒤 유 부시장 사건을 무혐의 처분하지 않았다. 해외 송금 유학비 명세 등을 추적하다 보면 단서가 나올 것으로 봤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올 9월경 새 수사팀은 금융정보분석원(FIU)에서 자료를 입수하고, 계좌추적 영장으로 자금 흐름을 추적했다. A 씨는 최근 다시 검찰 조사를 받았고, 이후 검찰이 금융위와 유착 업체 5, 6곳을 압수수색하면서 수사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조국 사태는 개인의 위선과 가족의 일탈 범죄라고 볼 수도 있다. 반면 유 부시장의 감찰 무마 사건은 여러 명이 연루된 공권력의 불법 남용 의혹 사건이다. 검찰 지휘부가 사명감을 갖고 1년간 베일에 싸여 있는 이 사건의 실체를 끝까지 추적해야 한다.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19-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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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회의원 검증공백 방지법이 필요하다[오늘과 내일/정원수]

    “국회의원 자녀들도 몽땅 조사해 보시지요. … 우리 국회의원들 100% 전수 조사해야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이찬열 국회 교육위원장) “교육부가 국회의원 자녀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국회에서 개인정보 공개를 동의해 주셔야만 할 수 있습니다.”(유은혜 교육부 장관 겸 국회의원) 이른바 조국 사태가 한창이던 2일 국회 교육위원회의 교육부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끼리 주고받은 말이다. 20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20대 국회의원 자녀의 대학 입학전형 조사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했다. 입시 전문가와 법조인 등 13명으로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한 뒤 그 아래 30명 이내의 조사단을 두고 최대 1년 6개월 동안 입시 비리를 파헤치겠다는 것이다. 다른 정당도 세부적인 조사 주체와 대상이 다른 유사 법안을 제출했다. 정의당은 2008년 이후 국회의원,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차관급 이상 등 전·현직 수천 명 이상을 조사할 것을 제안했다. 자유한국당은 청와대 비서관급까지 검증하는 법안을 냈다. 청년층의 반응은 싸늘하다. 대입만 왜 조사 대상이냐가 첫 문제 제기였다. 법학전문대학원의 사회지도층 부정입학 의혹을 제기해온 한 단체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입시 비리는 의학전문대학원과 법학전문대학원 입시에 걸쳐 있다. 대학원을 포함해서 발의해 주기를 요청한다”는 성명서를 냈다. 6개월도 남지 않은 국회의원 총선거 전 조사 결과가 나오기 힘든 법안을 제출한 것 자체가 생색내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2000년 인사청문회 제도 도입 이후 혹독한 검증을 거치는 장관 후보자와 달리 국회의원은 검증의 사각지대였다. 국회의원은 출마자 신분일 때 △재산 △병역 △최근 5년간 소득세,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납부 및 체납 실적 △금고 이상의 전과기록 △직업 △학력 △경력 등이 공개된다. 하지만 선거를 앞두고 특정 후보자를 검증하면 편파 시비에 휩싸일 수 있어 검증의 강도가 약할 수밖에 없다. 장관 후보자와 비교하면 기간도 짧고, 허점도 많다. 유권자는 제한된 정보만으로 투표를 하지만 국회의원은 당선만 되면 “검증이 끝났다”는 이유로 장관직에 무혈입성하고, 더 높은 선출직을 노린다. 국회의원의 검증 수준을 지금보다 훨씬 높게 끌어올려야 한다. 당장 시급한 건 요즘 젊은층이 가장 예민하고, 분노하는 자녀의 입시와 취직 관련 정보부터 검증하는 것이다. 3당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의 절차대로 자녀의 대학이나 대학원 입시와 논문, 제출 서류의 신빙성을 검증해달라는 동의서를 쓰게 하고, 교육부가 대학과 대학원의 협조를 얻어 자료를 중립기관에 제출하면 거기서 검증한 뒤 그 결과를 공개하면 된다. 자녀의 취직 정보도 같은 절차를 거치면 된다. 국회의원으로서는 동의하기 어렵겠지만 과거 세금 체납과 병역 사항이 갑자기 공개됐을 당시 정부와 국회 차원의 논의를 살펴보면 결코 과한 조치가 아니다. 반대 여론에도 “(당사자가) 사회적 처신이 곤란해지는 데서 느낄 간접적인 심리적 압박감까지 고려했다” “법적 근거는 약하거나 없어도 다 우리 사회에서 용인되고 공감을 받고 있다”며 공개 방침이 정해졌다. 부작용이 없지 않았지만 그 덕분에 사회가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다만 발의된 법안과는 달리 20대 국회의원은 조사 대상에서 뺐으면 한다. 그 대신 21대 국회의원 후보자부터 더 강화된 기준을 적용받도록 해야 법의 통과 확률을 높일 수 있을 것 같다. 공정 척도에서 좀 더 경쟁력이 있는 후보자가 다음 국회에 더 많이 입성해야 한다. 그래야만 시대적 가치에 귀를 막고, 눈을 가리는 국회를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된다는 기대감이라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19-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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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 권력에 굽실하는 경찰엔 미래가 없다[오늘과 내일/정원수]

    “같은 식구끼리 백날 152명이 한들, 1만5000명이 한들… 경찰에 대한 신뢰를 뚝 떨어뜨렸습니다.” 14일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열린 국회의 국정감사. 검찰 개혁을 놓고 딴소리를 하던 여야 의원이 한목소리로 경찰을 성토했다. 올 3월 14일 민갑룡 경찰청장이 국회에서 “경찰의 명운이 걸렸다는 자세로 임하겠다”고 약속했던 서울 강남 클럽 버닝썬과 경찰의 유착 사건 수사 때문이다. 대규모 인력을 투입해 5개월 넘게 수사하고도 경찰이 내부에 온정적이었다는 비판은 이 사건의 진실 일부분에 불과하다. 살아있는 권력 수사에 약한 경찰의 한계가 본질에 더 가깝다. 버닝썬 사건의 핵심 수사 대상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인 2017년 7월부터 1년 동안 대통령민정수석실에서 파견 근무했던 윤규근 총경(49·수감 중)이다. 경찰청 정보국에서 ‘청와대 보고용 특별보고서’ 등을 만들던 그는 노무현 정부 시절 민정수석실에 처음 발탁됐고, 그 인연으로 문 정부 때 두 번째 청와대 근무 기회까지 얻었다. 윤 총경의 구속은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현 청와대에 근무한 인사가 개인 비리로 구속된 첫 사례다. 윤 총경은 경찰이 아니라 왜 검찰에서 구속됐을까. 경찰은 버닝썬과 관련해 14곳을 압수수색했지만 하필 윤 총경에 대한 자택이나 사무실 등은 압수수색하지 못했다. 윤 총경의 재산신고 명세에서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제조업체 옛 큐브스 등 3, 4개 주식 종목 보유까지 파악했지만 올 3, 4월 큐브스의 정모 전 대표(45·수감 중)를 세 차례나 조사하면서도 둘 사이의 유착 관계는 추궁조차 못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반면 검찰은 올 6월 경찰의 수사 기록을 넘겨받고 약 한 달 뒤부터 큐브스의 경기 파주시 본사와 서울사무소, 윤 총경의 자택 등을 연이어 압수수색했고, 여기서 윤 총경이 공짜로 받은 비상장 주식에 대한 파일을 찾아냈다. 잠적했던 정 전 대표까지 체포한 검찰은 윤 총경이 공짜 주식을 정 전 대표가 2016년 경찰에 고발된 사건을 무마해주는 대가로 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한 뒤 윤 총경을 구속 수감했다. 더 납득하기 어려운 건 경찰이 올 3월 윤 총경이 임의 제출한 휴대전화에서 보안성이 높은 텔레그램 메시지 내용을 파악하고도 모른 척한 이유다. 민 청장은 버닝썬 발언을 하던 날 국회에서 “별장 동영상 속 인물이 김학의 전 차관이라는 것은 육안으로 봐도 확실하다”면서 검찰의 부실 수사 의혹을 제기했다. 윤 총경은 민 청장의 이 발언 기사 링크를 대통령민정수석실 관계자에게 보내며 “이 정도면 됐나요?”라고 물었다. 이 관계자는 “검찰과 대립하는 구도를 진작에 만들었어야 하는데”라고 답했다. 자신이 연루된 버닝썬 사건을 덮기 위해 윤 총경이 청와대까지 끌어들여 김 전 차관 사건을 키우려고 했던 정황인데, 경찰은 그냥 넘긴다. 민 청장의 국회 발언 하루 전 윤 총경은 같은 달 26일 자신과 민 청장 등이 청와대 비서관과 만나는 저녁 약속을 잡는다. 비록 약속이 취소되긴 했지만 윤 총경의 이런 위세에 경찰 수사팀이 눌렸던 것은 아닐까 짐작될 정도로 경찰 수사가 부실하다고 한다. 비대한 검찰 권한을 쪼개는 검찰 개혁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그 첫 수혜는 경찰이 받게 된다. 하지만 권력에 굽실했던 경찰이 제2, 3의 윤 총경 사건을 양산할 것 같다는 걱정이 앞선다. 검찰이 경찰 지휘부와 청와대의 윤 총경 부실 수사 관여 여부를 낱낱이 밝히되, 정치권도 검찰 개혁 이후 경찰 수사의 중립성을 보장할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19-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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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윤회 문건 사건과 ‘거꾸로’ 검찰개혁[오늘과 내일/정원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과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이 여야 충돌 끝에 국회에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직후인 올 5월 초 한 변호사단체의 임원을 만났다. 그는 전날 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실세 중진 의원과 통음했다고 했다. “검찰 개혁이 그렇게 시급한가”라는 변호사의 질문에 여당 의원은 검찰의 과거 수사 사례들을 열거하며 검찰 개혁이 꼭 필요한 이유를 설명했다고 한다. 이 의원이 가장 먼저 예로 든 검찰 수사의 실패 사례는 박근혜 정부 집권 2, 3년 차 때 벌어진 이른바 ‘정윤회 문건 사건’이었다. “그때 검찰이 제대로 수사했더라면 국정농단 사건을 막을 수 있었는데, 검찰이 정치적으로 수사했다. 정치 검사의 대표적 사례”라는 취지로 혹평했다고 한다. 조국 법무부 장관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2017년 5월 11일 조 장관이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에 임명된 당일 청와대에서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시 민정수석실과 검찰이 사건을 덮는 바람에 국정농단 사태를 막지 못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 2014, 2015년 이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할 말이 많다. 당시 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와 갈등을 빚어가면서 수사했다”며 억울해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국민의 기대에는 못 미쳤을 수는 있지만 수사팀을 비판하고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정의를 외면했을 때만 가능한 것”이라고 했다. 적어도 정의를 외면한 수사는 아니라는 반박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정윤회 문건 사건 수사팀 검사들을 정치 검사로 낙인찍어 한직으로 내몰았다. 대다수는 모멸감에 사표를 냈다. 요즘 조 장관 관련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 내부에선 다른 이유로 정윤회 문건 사건이 주목받고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8월 27일 조 장관 관련 첫 압수수색 이후 주변에 과거 검찰이 수사한 다른 사건과 함께 정윤회 문건 사건을 언급했다고 검찰 관계자가 전했다. 더 자세한 경위를 알 수는 없지만 그 이유를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집권 3년 차에 터진 여권을 향한 수사를 머뭇거리면 검찰의 존재 이유가 사라진다는 취지였을 것이다. 나중에 왜 살아 있는 권력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느냐는 비판을 받는 것은 물론 청와대에 경고를 충분히 보내지 않았다는 원망까지 검찰이 떠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사기관은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우리 역사를 보면 미 군정기의 경찰이, 권위주의 정권 때 정보기관이, 민주화 이후 검찰이 개혁 대상이 된 이유는 명확하다. 살아 있는 권력에 맹목적으로 충성하고, 사회적 약자에겐 가혹했기 때문이다. 정윤회 문건 사건과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윤 총장처럼 두려움 없이 수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검찰 개혁의 초점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일이 반복돼선 안 된다고 했던 여당은 갑자기 거꾸로 가고 있다. 윤 총장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검찰총장의 가장 중요한 자질’로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용기”라고 답했다. 취임식에서는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력은 특정 세력이 아닌 국민을 위해서 쓰여야 한다”며 국민을 24번이나 언급했다. 임명 직후엔 후배 검사들에게 “여러분들이 (권력을) 제대로 수사하면 내가 2년 임기를 못 채울지 모른다. 개의치 말라”고 했다고 한다.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윤 총장의 수사가 막힌다면 문 정부의 검찰 개혁 동력은 그대로 사라질 것이다. 이미 수사팀 내부에서는 이런 냉소가 퍼지고 있다. “검찰 개혁을 명분으로 정권을 잡고 유지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던 것 아니냐. 진정한 검찰 개혁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검찰을 바로 세우는 진짜 개혁의 방향을 고민할 때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19-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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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무장관만의 인사권은 없다[오늘과 내일/정원수]

    노무현 정부 출범 첫해인 2003년 7월경 서울 서초동의 대검찰청 8층 검찰총장 집무실. 한 대검 참모가 송광수 당시 검찰총장에게 보고를 하러 가자 송 총장이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고 한다. 강금실 당시 법무부 장관이 검찰 인사를 하면서 총장과의 상의 절차를 아예 생략했기 때문이다. 법무부가 검찰을 견제하기 위해 검찰 개혁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법의 허점을 파고든 것이다. 당시 검찰청법 34조는 ‘검사의 임명과 보직 인사는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행한다’고 되어 있었다. 검사 인사를 앞두고 관행적으로 장관이 총장과 상의하던 문화를 깨버리고, 검찰 입장에서는 상식 밖의, 법무부 입장에선 법 자구대로, 기습 인사를 단행한 것이다. 이 인사는 서초동과 과천 간 갈등으로 그치지 않았다. 여의도로 넘어가 국회의 검찰청법 개정 논의에 영향을 줬다. 이듬해 봄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둔 16대 국회의원들은 검찰 개혁을 위한 법 개정에 머리를 맞댔다. 2000년부터 국회의원 4명이 대표 발의한 4건의 개정안, 정부가 제출한 2건의 개정안 등 6건의 법률안을 놓고 난상토론 끝에 하나의 대안이 마련됐다. A4용지 17장 분량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명의의 대안을 읽어보면 이런 검찰 개혁 법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내용이 파격적이다. 무엇보다 검사의 직무상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검찰총장을 제외한 모든 검사의 직급을 일원화했다. ‘상사의 명령에 복종한다’는 검사동일체(檢事同一體) 규정을 삭제하고, 소속 상급자의 지휘·감독에 대한 검사의 이의제기권이 처음 생겼다. 인사 규정도 바뀌었다. 검찰인사위원회가 자문기구에서 심의기구로 격상됐고, 법무부 장관은 검사의 보직과 관련해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규정이 신설됐다. 관련 법안은 그해 12월 30일 오후 5시경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재석 의원 191명의 만장일치 찬성이었다. 2004년 1월 20일부터 현재까지 이 조항은 시행 중이다. 관행적인 검찰 인사 문화가 법률로 명문화되면서 인사권을 제한받게 된 장관의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마침 그날 밤 청와대에서 장차관급 인사의 송년 만찬이 있었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인사권을 총장과 나누게 된 강 장관이 법 개정에 관여한 검찰 간부를 독사가 개구리 보듯 쏘아봤다”고 기억할 정도로 장관에겐 언짢은 일이었다. ‘누구도 함부로 되돌릴 수 없는 검찰 개혁’을 완수하기 위해 9일 임명된 조국 법무부 장관은 취임사부터 ‘법무부의 검찰에 대한 적절한 인사권 행사’를 강조했다. 그 뒤에도 인사권 행사를 마치 장관만의 고유 권한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 16일에는 “(가족 관련) 수사를 일선에서 담당하는 검사들의 경우 헌법 정신과 법령을 어기지 않는 한 인사 불이익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취임식 당일 검찰 인사를 담당하는 이성윤 법무부 검찰국장은 조 장관 가족 수사의 지휘 라인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을 배제하는 제안을 했다가 윤 총장에게 거절당했다. 검찰 인사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려고 세부적인 검사인사 규정을 대통령령으로 정한 게 지난해 12월인데, 장관이 예측 가능성을 어렵게 하는 인사 발언을 자주 하니 일선 검사들이 어리둥절해하고 있다. 검사들은 조 장관 메시지를 거꾸로 읽으면서 가족 관련 수사 라인이 추후 인사로 응징될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 하지만 장관만의 검찰 인사권은 없다. 장관이 검사 인사에 앞서 총장 의견을 듣도록 한 건 수사 외압 행사를 막기 위한 조치다. 그런데도 대통령과 더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장관이 먼저 인사의 대원칙을 허물어서는 안 된다. 15년 넘게 시행돼 온 만장일치 법의 정신을 조 장관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 길에서 벗어나는 건 개혁이 아니라 퇴행이다.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19-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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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법 전공자에겐 미국식 해법을[오늘과 내일/정원수]

    ‘박사님께 삼가 졸저를 올립니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54)는 서울대 법대 교수로 재직하던 2016년 1월 14일 형사법 학계의 대선배인 정성진 전 법무부 장관(79)에게 자신의 저서인 ‘절제의 형법학’을 건넸다. 책 앞쪽 간지에 조 후보자는 이 같은 문구를 검은 펜으로 꾹꾹 눌러쓰고, 서명과 낙인을 남겼다. 지난달 2일 정 전 장관의 서울 중구 개인서재에서 이 책을 우연히 보게 됐다. 당시 차기 법무부 장관 하마평을 궁금해하던 정 전 장관에게 ‘조 교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자 “되는 게 확실합니까?”라는 답이 돌아왔다. 정 전 장관은 “한국 형사법학계 교수들은 대부분 독일에서 공부했는데, 조 교수는 미국에서 학위를 받았다. 꾸준히 논문을 내면 학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조 후보자의 미국 유학 시절인 1994년부터 인연을 이어온 정 전 장관이 후배 학자에게 닥칠 불행을 예견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일주일 뒤인 지난달 9일 문재인 대통령은 조 교수를 재임 중 두 번째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딸의 고교 시절 의학 논문 제1저자 등재 등 ‘황제스펙’을 활용한 부정입학 의혹, 가족의 수상한 사모펀드 투자, 사학재단 사기 소송 의혹 등이 잇따라 불거졌다. 조 후보자는 본인 말대로 ‘만신창이’가 됐다. 여론을 돌려세우기 위해 펀드와 재단의 기부를 약속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대한민국 최고 수사부서인 서울중앙지검의 특별수사부 검사들은 조 후보자 관련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지난달 27일부터 30곳 이상을 압수수색했다. 조 후보자는 2000년 미국식 인사청문회 제도를 국내에 도입한 후 국회의 인사청문회 전에 검찰의 강제 수사를 받은 첫 사례가 됐다. 드물긴 했지만 미국에서도 공직자 검증 도중 수사기관이 나서는 경우가 있었다. 가깝게는 지난해 9월 브렛 캐버노 당시 연방대법관 후보자가 대표적이다. 상원의 인사청문회 도중 캐버노 후보자로부터 30여 년 전 성폭행을 당할 뻔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상원은 사실 여부를 가리기 위해 미 연방수사국(FBI)에 수사를 요청했고, FBI 수사가 끝난 뒤에야 캐버노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았다. 조 후보자는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관직에 대한 미련을 접지 못했다. “나는 지금 압수수색을 당하지 않았다” “장관이 되면 가족 수사를 보고하지 말라고 하겠다” 등 가족과 달리 자신은 수사와 무관하다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정부조직법상 법무부 장관은 국가의 중추 수사기관인 검찰 사무를 관장하는 자리다.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다고, 정치세력과의 싸움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오기만으로 오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이미 수사팀 내부에서는 “검찰이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했다는 모습을 보여줄 때다” “단순한 사건을 청와대와 여당이 게이트로 키웠다”는 불만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조 후보자가 이대로 장관직에 올라, 장관은 장관의 길을 가고, 검찰은 검찰의 길을 간다면, 임기 반환점을 돌지 않은 정권과 검찰이 정면충돌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우리도 미국처럼 해야 한다. 미국법을 공부한 조 후보자가 미국식 해법을 반대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조 후보자는 또 철저한 수사를 통해서만 검증 공세를 벗어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믿고,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조 후보자의 임명을 보류해야 한다. 그렇다고 검찰을 무한정 기다릴 수 없으니 추석을 1차 시한으로 정하면 어떨까 싶다. 그 뒤에 임명 여부를 결정하면 된다. 그것이 임명 강행이라는 엄청난 모험이 가져올 후폭풍을 줄이는 길이다.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19-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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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약 ‘아파트 주민’ 대통령이 퇴임한다면[오늘과 내일/정원수]

    KTX울산(통도사)역에서 내려 자동차를 타고 30분쯤 남쪽으로 가면 경남 양산시 매곡동이 나온다. 한적한 시골 마을의 언덕에 담벼락이 유난히 높은 문재인 대통령의 사저(私邸)가 있다. 이곳은 문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거제, 성장기를 보낸 부산과는 좀 떨어져 있다. 부친 산소가 있다는 게 문 대통령과 양산의 인연이라면 인연이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청와대’ 근무를 끝낸 2008년 3월경 낯선 이곳에 자리 잡았다. 2017년 5월 대통령 취임 12일 만에 문 대통령은 첫 휴가를 여기서 보냈고, 그 뒤로도 자주 찾았다. 알려진 것만 하더라도 지난해 9월 미국 뉴욕 순방 직후, 성탄절 연휴에 사저를 찾았다. 올해는 설 연휴에 이어 지난 주말에도 머물렀다. 문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 당시 “퇴임 뒤 양산으로 귀향해 여생을 보내겠다”고 했다. 만약 그 약속이 지켜지면 불과 50∼60km 떨어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와 함께 전직 대통령 사저가 같은 광역단체에 하나 더 생기게 된다. 전직 대통령 2명이 임기 뒤 고향에 정착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경남의 자산이라고 볼 수 있다. 퇴임 대통령 사저라고 하면 적어도 여의도 정치권에선 좋은 기억이 별로 없다. 5년 단임 대통령제 아래에서 대통령 집권 4년 차 때는 대통령 퇴임 후 사저가 정치권을 늘 시끄럽게 하는 소재였다. 전직 대통령의 거처는 국가경호시설이어서 청와대가 국가정보원 등과 협의를 하지만 국회에서는 다른 전직 대통령과 비교해서 경호시설 등을 마련하는 비용을 놓고 티격태격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터를 매입하는 데 관여한 당시 경호처장은 특별검사 수사를 받고 형사 처벌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삼성동 주택을 팔고, 내곡동 사저를 짓는 과정이 순조롭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다. 소모적인 논쟁을 끝내는 방법을 미리 생각했으면 한다. 현재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 후보 상위권으로 자주 거론되는 정치인의 주택 보유 현황을 살펴봤다. 역대 대통령과 달리 단독 주택을 소유한 정치인은 거의 없다. 이낙연 국무총리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오랜 아파트 거주자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아파트를 팔아 지금은 무주택자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요즘도 경기 성남시 분당의 아파트에서 출퇴근한다. 40, 50대 이하는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진짜 아파트 세대’가 더 많다. 훗날 아파트 주민이 대통령이 된다면 퇴임 뒤 사저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경호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단독 주택과 비교해 아파트 경호는 허점이 너무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전직 대통령이 산다는 이유로 아파트 전체 동을 매입하는 건 비용 부담이 너무 크고, 매입 성사 여부도 불투명하다. 아파트로 복귀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최근 오거돈 부산시장을 만나 “퇴임 대통령 사저를 유치하는 게 어떠냐”고 하자 “부산은 너무 좁고, 땅값이 비싸다”고 답했다. 맞는 말이다. 대도시는 전직 대통령의 사저를 유치하는 데 있어 경쟁력이 크게 떨어진다. 전국의 지자체가 경쟁해서 전직 대통령 사저를 유치하면 어떨까. 반드시 고향이나 성장했던 곳이 전직 대통령의 거처일 필요는 없다. 서울 생활이 좋다면 여주나 강화도는 어떤가. 홍천이나 청주 등도 수도권 근접거리다. 과거 유학자처럼 지리산, 소백산 자락 명당에 터 잡고 인생 후반부를 보내도 좋을 것 같다. 제주도와 같은 섬이나 목포, 포항, 강릉 같은 해안가도 경쟁력이 있다. 전직 대통령이 지방에 직접 살면서 국가균형발전의 중요성을 체험하고, 현직 정치인에게 그 중요성을 설파한다면 그보다 나은 지방분권대책이 있을까 싶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19-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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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전 그물망’ 4779개로 안 된다면[오늘과 내일/정원수]

    “우리 공동체가 시설물의 안전관리에 관한 항구적인 기본법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왜 특별법으로 이름 붙이셨나요.” 성수대교가 무너진 지 만 2개월이 안 된 1994년 12월 중순 국회. 한 국회의원은 정부가 제안한 ‘시설물 관리 특별법’ 제정에 반대했다. 정부 측은 “타 법에도 미흡하지만 안전관리가 다소 있고, 그것을 통틀어서 하나의 법안으로 관리하기 위해 이름을 붙였다”며 특별법 통과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법제처의 법령 제정 기준에 따르면 당시 이 의원이 허점을 제대로 짚었다. 특별법은 기본법에 대한 예외적 사항을 규정하는 경우에만 사용하고, 그에 상응하는 기본법이 없는 경우에는 특별법이라는 이름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권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기둥은 세우지 않고, 지붕 먼저 지은 집처럼 안전 관련 첫 주요 법안은 특별법의 이름으로 허겁지겁 국회를 통과했다. 이듬해 6월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가 발생했다. 한 달 뒤 정부가 재난관리법 제정을 추진하자 국회의원이 다시 반발했다. “재난관리법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조급성, 한건주의, 외형 위주 과시행정에 대한 반성 차원의 일부인데 이것도 빨리빨리 되고 있어서 안 되겠습니다. 법안을 유보해야 합니다.” 다양한 해외 사례를 연구하자는 주장은 묻히고, 이 법안도 정부안에 가깝게 국회 문턱을 넘었다. 2004년 뒤늦게 재난관리법이 재난안전기본법이라는 이름으로 전면 개조된 것만 보더라도 완성도가 떨어진 법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법제처의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안전이라는 키워드로 시행 중인 관련 법령과 하위 법규를 검색해봤다. 법령은 213건, 행정규칙은 967건, 자치법규는 3599건 등 모두 4779건이다. 숫자로는 ‘안전 그물망’이 촘촘할 것 같지만 최근 발생한 광주 C클럽 붕괴와 서울 양천구 목동의 배수터널 사고 등 생활 속 안전사고에 무기력하기만 했다.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을까. 할 수만 있다면 ‘안전헌법’의 원포인트 개정이 최상의 시나리오다. 하위 법령을 한꺼번에 재정비할 수 있고, 안전 예산을 선택이 아닌 필수 사항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2014년 국회의장 직속의 헌법개정자문위원회는 ‘모든 인간은 위험으로부터 안전할 권리를 갖는다’는 명시적인 안전권을 헌법에 신설할 것을 제안했다. 유럽의 인권 선진국들이 머리를 맞대고 만든 유럽인권규약의 6조를 우리 헌법에도 적용할 것을 당시 개정위원들이 합의한 것이다. 정권 교체 뒤인 2018년 3월 문재인 대통령은 이 조항에다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사람을 보호해야 한다’는 내용까지 추가해 국회에 개헌안을 제출했다. 안전 헌법에 관한 국민적 합의와 여야 간 공감대는 이미 형성됐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국회만 믿고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 등 최고 법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본다. 다행히 1987년 헌법은 10조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 외에 34조6항에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는 조항을 처음 도입했다. “헌법이란 법관이 그렇다고 말하는 것”이라는 법언(法諺)이 있을 정도로 헌법 해석권은 법관의 고유 권한이다. “안전사고가 반복되는 건 기소되더라도 미온적 처벌을 받기 때문”이라는 사고 피해자 측의 비판이 언제까지 반복되어야 하는가. 현행 헌법은 불완전하지만 안전권으로 확대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지난해 대법원은 형사재판이 아닌 행정소송에서 국가재정법 등의 성인지(性認知) 예산에 착안해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판결 기준을 제시했고, 이는 하급심을, 그리고 세상을 바꾸고 있다. 안전에 대해서도 전향적인 판단을 기대한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19-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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