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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엘라 브래버먼(43)은 속도위반을 한 검찰총장이었다. 지난해 6월 과속 통지서가 그에게 날아들었다. 그는 영국 보리스 존슨 전 총리가 2년 전 발탁한 인도계 여성 검찰 수장이었다. 과속으로 걸린 영국인에겐 두 가지 길이 있다. 단체 안전운전교육을 받거나, 벌점 3점과 함께 범칙금을 내야 한다. 벌점이 12점까지 누적되면 운전이 금지된다. 브래버먼은 안전교육을 받기로 했다.석 달 뒤 브래버먼은 새로 출범한 리즈 트러스 내각의 내무장관에 임명됐다. 치안과 이민정책을 총괄하는 중책이었다. 그는 보수당 내 강경 보수의 아이콘이었다. 엄정한 법집행을 강조하고 불법 이민자를 르완다로 사실상 추방하는 새 이민정책에 앞장섰다.브래버먼은 장관에 취임하자 비서실에 안전운전교육을 강사에게 일대일로 받을 수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했다. 통상 20여 명이 모이는 단체 교육에 갔다간 정체가 탄로 날 게 뻔했다. 하지만 직원들은 갓 취임한 장관의 요청을 거부했다. 그러면서 장관이 사적인 문제 해결에 공무원을 동원하면 장관은 물론이고 해당 공무원도 처벌받는다는 윤리담당 부서의 판단을 제시했다.브래버먼은 멈추지 않았다. ‘어공(어쩌다 공무원)’인 장관 보좌관을 시켜 안전교육 담당업체에 일대일 교육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 업체 측은 온라인 수강도 가능하지만 ‘집체 교육’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고 했다. 보좌관은 화면에 얼굴이 보이지 않게 하거나 가명이라도 쓰게 해 달라고 했지만 이 역시 거부됐다. 과속 운전자들이 서로 얼굴을 드러냄으로써 수치심을 느끼는 것도 경각심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과속 딱지’ 해결이 난관에 부닥친 가운데 브래버먼에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이민정책 관련 기밀을 개인 이메일로 보수당 의원에게 보낸 사실이 들통난 것이다. 기밀 유출 논란이 일자 그는 트러스 내각이 44일 만에 무너지기 하루 전 장관에서 사퇴했다. 흠집이 나긴 했지만 브래버먼은 여전히 보수당 내 유력 주자였다. 뒤이어 집권한 리시 수낵 총리는 사퇴한 지 6일 된 그를 다시 내무장관에 기용했다. 장관실로 돌아온 브래버먼은 넉 달 넘게 끌어온 과속 문제를 마침내 매듭지었다. 안전교육을 포기하고 ‘벌점+범칙금’을 택했다. 이때만 해도 6개월 뒤 찾아올 ‘과속 스캔들’을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수낵 총리는 21일 일본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폐막 기자회견에서 미간을 찌푸리며 기자들에게 물었다. “G7 회담에 대한 질문은 없나요?” 외교 성과를 알려야 할 이날 회견에서 영국 기자들은 온통 브래버먼 장관 거취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다. 그날 영국에선 브래버먼이 과속 사실을 숨기려 장관 지위를 이용해 공무원들에게 부당한 요구를 한 의혹이 폭로됐다. ‘장관이 사적 목적을 위해 공적인 지위를 이용하거나 그렇게 보일 만한 행동을 해선 안 된다’는 장관 윤리강령(Ministerial code) 위반이므로 진상조사를 해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게 일었다.게다가 영국은 교통 법규를 어긴 고위층에게 예외를 허용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최근 찰스 3세 국왕 대관식을 집전한 영국 국교회 최고위 성직자인 캔터베리 대주교는 시속 32㎞ 구간을 40㎞로 달리다 과속으로 적발됐는데 범칙금 납부를 미루다 최근 85만원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수낵 총리 역시 운전하는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가 안전벨트 미착용으로 15만원 범칙금을 낸 적이 있다.한 실세 장관의 ‘과속 딱지’로 시작된 파문은 이제 어느덧 수낵 총리를 국정운영의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었다. 그가 진상조사를 지시해야 할지를 두고 노동당과 보수당은 찬반으로 팽팽히 맞섰다. 국민은 당에 투표하고, 다수당 대표가 총리가 되는 영국에선 당내 입지가 탄탄한 핵심 참모가 총리에게 등을 돌리면 정권이 흔들린 사례가 많다. 수낵 본인이 당사자였다. ‘파티 게이트’로 위태롭던 존슨 내각이 무너진 것은 수낵이 재무장관직을 내던진 게 결정타였다. 트러스 내각 붕괴 땐 브래버먼의 내무장관 사퇴가 시발탄이었다. 브래버먼은 수낵의 주요 공약인 ‘불법 이민자 제한’을 밀어붙일 핵심 참모이자 당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거물이었다.수낵은 브래버먼을 내치지 못했다. 24일 총리실 홈페이지에는 그가 브래버먼 장관에게 쓴 편지가 공개됐다. “당신의 해명 등을 검토한 결과 더 이상의 조사는 필요하지 않다는 윤리고문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장관 윤리강령에 위반될 정도는 아니라는 게 나의 결정”이라고 했다. 앞서 내무부도 브래버먼이 수낵에게 관련 경위를 상세히 적은, 반성문 같은 편지를 공개했다.수낵 총리의 면죄부 결정에 “나약하고 비겁하다”는 비판이 나오긴 했지만 이상하게도 논란은 잦아들고 있다. 수낵의 결정은 정치적 이해득실을 고려한 것일 테지만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를 국민에게 공개하는 건 흥미로운 대목이다. 의혹 당사자가 구체적으로 해명하고 인사권자가 결정하는 과정을 투명하게 드러내면 최소한 책임 소재가 분명해져 추후 정치적으로 평가하고 심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생길 때면 소모적인 정쟁 끝에 기어이 수사와 재판으로 가는 우리와는 조금 다른 문제 해결 방식이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중국이 (압박을 통해) 변화할 것이라거나 약화될 것으로 보는 건 위험한 발상이다. 중국에 대한 무분별한 적대적인 태도가 지속되면 미중 간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수도 있다.” 100세 생일(27일)을 맞은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사진)은 26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나 중국을 적으로 규정하고 양보를 강요한다는 면에서 대중(對中) 정책이 다르지 않다”며 이렇게 지적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중국을 적으로 보지 않느냐’는 질문에 “중국이 가진 영향력을 볼 때 잠재적인 적국”이라면서도 “미중 리더들이 대화를 통한 해결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소 냉전이 한창이던 1970년대 미소 간 긴장 완화를 위해 데탕트 정책을 주도했다. 미중 군사 충돌의 ‘트리거(방아쇠)’가 될 수 있는 대만 문제에 대해선 “공해상 자유의 원칙 등을 통해 해결해야지 중국을 위협하거나 시진핑 주석을 향해 (예를 들어) ‘10개 부문에 진전을 보이면 보상을 하겠다’는 식의 외교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중국에 대해 “중국 문화를 전 세계에 퍼뜨리길 원하진 않는 것 같다. 중국은 (세계가 아닌) 아시아의 지배 세력이 되길 원하고 있다”며 “일본이 이에 대응해 대량살상무기를 자체 개발할 것이며, 이런 상황까지는 짧게는 3년, 길게는 7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해선 “바이든 행정부가 많은 것을 해냈다. 유럽 동맹국들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을 막아낸 것은 중요한 승리”라고 호평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시켜야 한다는 제안은 전쟁을 야기할 수 있는 엄청난 실수였던 게 맞지만 지금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필요한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종전 조건으로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제외하고 점령 중인 모든 우크라이나의 영토를 돌려줘야 한다고 했다. 한편 지난달 23일 부임한 셰펑 신임 주미 중국대사는 26일 키신저 전 장관의 자택을 방문해 100세 생일을 축하하는 중국 정부의 메시지를 전달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인도 중부의 한 지자체 식품담당 공무원인 라제시 비슈와스는 이달 21일 지역 내 저수지에서 셀카를 찍다가 휴대전화를 물에 빠뜨렸다. 삼성전자 스마트폰으로 알려진 그의 전화기는 인도에서 10만 루피(약 160만 원)에 거래되는 고가품이었다. 저수지 수심은 4.6m에 달했다. 비슈와스는 곧바로 잠수부들을 수소문해 저수지에 투입했다. 하지만 휴대전화를 찾는 데 실패하자 30마력짜리 디젤 펌프 2개를 동원해 저수지 물을 빼기 시작했다. 이 물 빼기 작업은 3일 동안 이어졌다. 저수지 담당 공무원이 신고를 받고 현장에 도착해서야 중단됐다. 영국 BBC와 현지 매체에 따르면 물 수위는 1.8m 수준으로 낮아져 있었다. 그사이 흘러가 버린 물은 약 210만 L. 약 6㎢의 농지에 관개용수를 댈 수 있는 엄청난 양이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인도에서 공무원 권한 남용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야당인 인도국민당(BJP)은 “주민들이 여름 폭염에 대비하려면 저수지 급수에 의존해야 하는데 공무원이 관개용수로 사용될 수 있는 물을 빼버렸다”고 비판했다. 비슈와스는 “휴대전화에 민감한 정부 자료가 있어 되찾아야 했다. 담당 공무원에게서 물을 빼내도 된다는 구두 허가를 받았다”고 해명했지만 지역당국은 그를 정직 처분한 뒤 조사에 착수했다. 비슈와스는 휴대전화를 찾는 데는 결국 성공했다. 하지만 3일 넘게 물에 잠긴 탓에 작동은 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인도는 가뭄에 시달리는 지역이 많아 일부 주민들이 밧줄을 타고 우물 안으로 내려가 물을 길어야 할 정도로 고질적인 물 부족 국가다. 게다가 올 4월 일부 지역의 기온이 44도를 넘어설 정도로 때 이른 폭염도 심각한 상태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목요일(4월 13일) 오후 9시 50분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 외곽에 사는 앤드루 레스터(84)는 초인종 소리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날 밤 오기로 한 손님은 없었다. 부인이 요양원에 간 뒤 혼자 살아온 그에겐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의 집 현관문은 미국식 주택이 그렇듯 안쪽 문과 바깥문이 겹겹이 있는 이중 구조였다. 레스터는 안쪽 문을 열었다. 바깥문 유리창 너머로 낯선 흑인이 보였다. 레스터는 손에 쥔 리볼버 권총을 들어 올렸다. 그가 방아쇠를 당기기까지 몇 초간 둘 사이에 대화는 없었다. 총알은 유리창을 뚫고 나가 흑인의 이마를 스치듯 맞혔다. 레스터는 쓰러져 있는 그의 팔에 한 발을 더 쐈다. “당장 여기서 꺼져.” 몇 분 뒤 인근 주민 잭 도벨은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911에 신고했다. 911 요원은 “탈주범일 수 있으니 집에 있으라”고 했지만 창문 밖을 본 도벨은 나가볼 수밖에 없었다. 흑인 소년이 피를 흘리며 기도하듯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랠프 얄(16)이었다. 부모 심부름으로 친구 집에 놀러 간 쌍둥이 동생들을 데리러 나선 길이었다. 주소지 ‘115번 테라스(115th Terrace)’를 찾다가 한 블록 옆인 ‘115번 스트리트(115th Street)’로 가고 말았다. 유리창을 뚫고 나온 총알은 백인 노인이 사는 집 초인종을 잘못 누른 대가였다.#. 토요일(15일) 오후 9시 55분 여대생 케일린 길리스(20)는 친구 3명과 차를 타고 뉴욕주 교외의 울창한 숲길을 지나고 있었다. 고교 동창 파티에 가는 길이었다. 외진 곳이라 인터넷 신호가 불안정해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은 먹통이었다. 길섶에 ‘사유지’ 간판이 있었지만 가로등이라곤 없는 밤길이어서 잘 보이지 않았다. 한 친구가 “길을 잘못 든 것 같다”고 했다. 그때였다. 엽총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총탄이 차 유리창을 관통했다. 운전하던 친구는 황급히 차를 돌려 가속페달을 밟았다. 911에 신고하기 위해 통신 신호가 잡히는 곳까지 8km를 내달렸다. 위치를 파악하려 멈춰 섰을 때 조수석에 있던 길리스는 피를 흘리며 숨져 있었다. 총을 쏜 60대 남성은 16만 ㎡의 거대한 사유지를 소유한 건설업자였다. 그는 경찰에 “무단침입자를 쫓아낸 것”이라고 했다.#. 화요일(18일) 0시 15분 텍사스주 오스틴의 고교 치어리더인 헤더 로스(18)는 나흘 뒤 치어리딩 대회를 앞두고 친구들과 연습을 하고 돌아가던 길이었다. 슈퍼마켓 주차장에 차를 대고 음료를 사서 친구들이 탄 차를 찾아가다가 실수로 같은 차종의 다른 차에 타고 말았다. 로스는 낯선 남성이 타 있는 걸 보고는 재빨리 내려 친구들 차로 옮겨 탔다. 로스는 방금 전 잘못 탔던 차에서 20대 남성이 내려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사과를 하려고 차창을 내리는데 남자가 열린 창틈으로 총을 쏘기 시작했다. 로스가 한 발을 맞았고 옆에 있던 친구는 등과 다리에 맞아 치명상을 입었다. 미국의 총기 사고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일상의 흔한 실수가 연이어 총격 사건으로 번지자 미국인들도 충격에 빠졌다. ‘치어리더 사건’ 몇 시간 뒤 노스캐롤라이나에선 공놀이를 하다 다른 집 마당으로 공이 굴러가자 부모와 함께 주우러 간 6세 여아를 향해 집주인이 총을 쐈다. 부모 둘 다 중상을 입었다. 어떻게 이런 일로 사람에게 총을 쏘는 것일까. 미국에는 ‘캐슬 독트린(Castle Doctrine)’이란 관습법이 있다. 집은 주인의 성(城)이며, 성 안에 침입자가 있으면 무력으로 스스로를 보호할 권리가 있다고 본다. 이 관습법에 따르면 무력이 반드시 최후의 방어수단일 필요는 없다. 생명에 위협을 느낄 정도로 ‘합리적인 두려움’이 들었다면 정당방위로 인정된다. 이 같은 자위권을 집뿐 아니라 차량 등 개인 소유 공간으로 확장한 것이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Stand Your Ground·당신의 사유지에서 물러서지 말라)’ 법이다. ‘초인종 사건’이 발생한 미주리주 등 30여 개 주가 이 법을 두고 있다. ‘내 공간에선 쏴도 된다’는 인식이 싹틀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는 것이다. 흑인 소년을 쐈던 레스터는 “당시 죽을 만큼 무서웠다”고 주장하고 있어 이 법의 보호를 받게 될 수도 있다. 미국의 총기 옹호론자들은 총은 총으로만 막을 수 있다는 ‘공포의 균형’을 강조한다. 하지만 누구나 총을 쏠 수 있다는 공포는 과도한 불안감을 부르고, 이는 과잉 대응으로 이어지며, 급기야 과잉 대응의 희생양이 될까 봐 더 불안해지는 악순환을 낳는다. 초인종을 잘못 누르거나 운전 중 길을 잘못 드는 사소한 실수에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미국의 현주소는 총기로 꽁꽁 무장한 국가의 구멍을 여실히 보여준다. 신광영 국제부 차장 neo@donga.com}
#. 목요일(4월 13일) 오후 9시 50분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 외곽에 사는 앤드루 레스터(84)는 초인종 소리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날 밤 오기로 한 손님은 없었다. 부인이 요양원에 간 뒤 혼자 살아온 그에겐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의 집 현관문은 미국식 주택이 그렇듯 안쪽 문과 바깥문이 겹겹이 있는 이중 구조였다. 레스터는 안쪽 문을 열었다. 바깥문 유리창 너머로 낯선 흑인이 보였다. 레스터는 손에 쥔 리볼버 권총을 들어 올렸다. 그가 방아쇠를 당기기까지 몇 초간 둘 사이에 대화는 없었다. 총알은 유리창을 뚫고 나가 흑인의 이마를 스치듯 맞혔다. 레스터는 쓰러져 있는 그의 팔에 한 발을 더 쐈다. “당장 여기서 꺼져.” 몇 분 뒤 인근 주민 잭 도벨은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911에 신고했다. 911 요원은 “탈주범일 수 있으니 집에 있으라”고 했지만 창문 밖을 본 도벨은 나가볼 수밖에 없었다. 흑인 소년이 피를 흘리며 기도하듯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랠프 얄(16)이었다. 부모 심부름으로 친구 집에 놀러 간 쌍둥이 동생들을 데리러 나선 길이었다. 주소지 ‘115번 테라스(115th Terrace)’를 찾다가 한 블록 옆인 ‘115번 스트리트(115th Street)’로 가고 말았다. 유리창을 뚫고 나온 총알은 백인 노인이 사는 집 초인종을 잘못 누른 대가였다.#. 토요일(15일) 오후 9시 55분 여대생 케일린 길리스(20)는 친구 3명과 차를 타고 뉴욕주 교외의 울창한 숲길을 지나고 있었다. 고교 동창 파티에 가는 길이었다. 외진 곳이라 인터넷 신호가 불안정해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은 먹통이었다. 길섶에 ‘사유지’ 간판이 있었지만 가로등이라곤 없는 밤길이어서 잘 보이지 않았다. 한 친구가 “길을 잘못 든 것 같다”고 했다. 그때였다. 엽총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총탄이 차 유리창을 관통했다. 운전하던 친구는 황급히 차를 돌려 가속페달을 밟았다. 911에 신고하기 위해 통신 신호가 잡히는 곳까지 8km를 내달렸다. 위치를 파악하려 멈춰 섰을 때 조수석에 있던 길리스는 피를 흘리며 숨져 있었다. 총을 쏜 60대 남성은 16만 ㎡의 거대한 사유지를 소유한 건설업자였다. 그는 경찰에 “무단침입자를 쫓아낸 것”이라고 했다.#. 화요일(18일) 0시 15분 텍사스주 오스틴의 고교 치어리더인 헤더 로스(18)는 나흘 뒤 치어리딩 대회를 앞두고 친구들과 연습을 하고 돌아가던 길이었다. 슈퍼마켓 주차장에 차를 대고 음료를 사서 친구들이 탄 차를 찾아가다가 실수로 같은 차종의 다른 차에 타고 말았다. 로스는 낯선 남성이 타 있는 걸 보고는 재빨리 내려 친구들 차로 옮겨 탔다. 로스는 방금 전 잘못 탔던 차에서 20대 남성이 내려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사과를 하려고 차창을 내리는데 남자는 열린 창틈으로 총을 쏘기 시작했다. 로스가 한 발을 맞았고 옆에 있던 친구는 등과 다리에 맞아 치명상을 입었다. 미국의 총기 사고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일상의 흔한 실수가 연이어 총격 사건으로 번지자 미국인들도 충격에 빠졌다. ‘치어리더 사건’ 몇 시간 뒤 노스캐롤라이나에선 공놀이를 하다 다른 집 마당으로 공이 굴러가자 부모와 함께 주우러 간 6세 여아를 향해 집주인이 총을 쐈다. 부모 둘 다 중상을 입었다. 어떻게 이런 일로 사람에게 총을 쏘는 것일까. 미국에는 ‘캐슬 독트린(Castle Doctrine)’이란 관습법이 있다. 집은 주인의 성(城)이며, 성 안에 침입자가 있으면 무력으로 스스로를 보호할 권리가 있다고 본다. 이 관습법에 따르면 무력이 반드시 최후의 방어수단일 필요는 없다. 생명에 위협을 느낄 정도로 ‘합리적인 두려움’이 들었다면 정당방위로 인정된다. 이 같은 자위권을 집뿐 아니라 차량 등 개인 소유 공간으로 확장한 것이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Stand Your Ground·당신의 사유지에서 물러서지 말라)’ 법이다. ‘초인종 사건’이 발생한 미주리주 등 30여 개 주가 이 법을 두고 있다. ‘내 공간에선 쏴도 된다’는 인식이 싹틀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는 것이다. 흑인 소년을 쐈던 레스터는 “당시 죽을 만큼 무서웠다”고 주장하고 있어 이 법의 보호를 받게 될 수도 있다. 미국의 총기 옹호론자들은 총은 총으로만 막을 수 있다는 ‘공포의 균형’을 강조한다. 하지만 누구나 총을 쏠 수 있다는 공포는 과도한 불안감을 부르고, 이는 과잉 대응으로 이어지며, 급기야 과잉 대응의 희생양이 될까 봐 더 불안해지는 악순환을 낳는다. 초인종을 잘못 누르거나 운전 중 길을 잘못 드는 사소한 실수에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미국의 현주소는 총기로 꽁꽁 무장한 국가의 구멍을 여실히 보여준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제가 총에 맞았어요.” 13일 밤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의 주택에 사는 제임스 린치(42)가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우려는 순간 어디선가 가냘픈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소 조용한 동네여서 밤에 소리가 들리는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창문 밖을 내다보니 누군가 땅에 쓰러진 채 이웃집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집 밖으로 나온 린치는 마당과 울타리를 지나 이웃집 앞으로 향했다. 린치는 눈앞의 광경에 깜짝 놀랐다. 그곳엔 피투성이가 된 흑인 소년(16)이 쓰러져 있었다. 머리와 팔에 총을 맞은 상태였다. 소년의 손목에선 아직 맥박이 뛰고 있었다. 린치는 소년의 손을 잡으며 이름을 물었다. 소년은 뭔가 말하려 했으나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소년은 조금 전 부모 심부름으로 집을 나섰다가 변을 당했다. 부모는 소년에게 주소가 ‘115번 테라스’인 집으로 가서 열한 살 쌍둥이 동생들을 데려오라고 했다. 소년은 어둑한 골목에서 그곳을 찾다가 주소를 잘못 보고 ‘115번 스트리트’ 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초인종을 잘못 누른 대가는 참혹했다. 집주인인 앤드루 레스터는 84세의 백인 남성이었다. 그는 집 앞에 있는 흑인 소년을 향해 총을 쐈다. 그의 32구경 권총에서 발사된 총알은 유리문을 뚫고 소년의 머리에 맞았다. 레스터는 쓰러진 소년에게 다가가 팔에 또다시 총을 쏜 것으로 조사됐다. 린치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레스터를 곧바로 체포했다. 하지만 24시간 동안 구금됐다가 주법에 따른 ‘기소 전 구금 가능 시간’이 지나 풀려났다. 이에 주민 수백 명이 레스터 집 앞으로 몰려와 항의 시위를 하는 등 거센 비판이 일었다. 결국 경찰은 17일 중범죄 혐의로 레스터를 기소했다. 소년의 이름은 랠프 얄(사진)이다. 부모는 라이베이라 이민자이고, 학교에서 비디오 게임과 운동을 잘하는 것으로 유명한 소년이다. 얄은 심각한 뇌손상을 입긴 했지만 응급 수술을 받아 생명에 지장이 없는 상태다. 경찰은 “얄이 레스터의 집 문턱을 넘지 않았고, 총격이 이뤄지기 전 어떠한 말도 오간 흔적이 없다”며 “이번 사건이 인종 관련 동기로 발생했는지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제가 총에 맞았어요.” 13일(현지 시간) 밤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의 주택에 사는 제임스 린치(42)가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우려는 순간 어디선가 가냘픈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소 조용한 동네여서 밤에 소리가 들리는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창문 밖을 내다보니 누군가 땅에 쓰러진 채 이웃집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집 밖으로 나온 린치는 마당과 울타리를 지나 이웃집 앞으로 향했다. 린치는 눈앞의 광경에 깜짝 놀랐다. 그곳엔 피투성이가 된 한 흑인 소년(16)이 쓰러져있었다. 머리와 팔에 총을 맞은 상태였다. 소년의 손목에선 아직 맥박이 뛰고 있었다. 린치는 소년의 손을 잡으며 이름을 물었다. 소년은 뭔가 말하려 했으나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소년은 조금 전 부모 심부름으로 집 밖을 나섰다가 변을 당했다. 부모는 소년에게 주소가 ‘115번 테라스’인 집으로 가서 11살짜리 쌍둥이 동생들을 데려 오라고 했다. 소년은 어둑한 골목에서 그 곳을 찾다가 주소를 잘못 보고 ‘115번 스트리트’ 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초인종을 잘못 누른 대가는 참혹했다. 집주인인 앤드류 레스터는 84세의 백인 남성이었다. 그는 집 앞에 있는 흑인 소년을 향해 총을 쐈다. 그의 32구경 권총에서 발사된 총알은 유리문을 뚫고 소년의 머리에 맞았다. 레스터는 쓰러진 소년에게 다가가 팔에 또 다시 쏜 것으로 조사됐다. 린치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레스터를 곧바로 체포했다. 하지만 24시간 동안 구금됐다가 주법에 따른 ‘기소 전 구금 가능 시간’이 지나 풀려났다. 이에 주민 수백 명이 레스터 집 앞으로 몰려와 항의 시위를 하는 등 거센 비판이 일었다. 결국 경찰은 17일 중범죄 혐의로 레스터를 기소했다. 소년의 이름은 랠프 얄이다. 라이베이라 이민자 부모를 두고 있고, 학교에서 비디오 게임과 운동을 잘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얄은 심각한 뇌손상을 입긴 했지만 응급 수술을 받아 생명에 지장이 없는 상태다. 경찰은 “얄이 레스터의 집 문턱을 넘지 않았고, 총격이 이뤄지기 전 어떠한 말도 오간 흔적이 없다”며 “이번 사건이 인종 관련 동기로 발생했는지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영화 ‘블랙 스완’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내털리 포트먼(42)은 이스라엘에서 태어나 3세 때 미국으로 이주한 유대인이다. 포트먼은 2018년 유대인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제네시스 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스라엘이 전 세계 유대인 중 빼어난 업적을 세운 한 명을 골라 매년 수여하는 상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루스 긴즈버그 대법관 등이 받았었고 상금도 100만 달러나 된다. 하지만 포트먼은 그해 4월 시상식에 불참하며 이렇게 밝혔다.“이스라엘은 정확히 70년 전 홀로코스트 난민들의 피난처로 세워졌다. 하지만 오늘날 (이스라엘의) 잔혹 행위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고 이는 유대인의 가치와 어긋난다. 나는 이스라엘을 아끼기 때문에 폭력, 불평등, 권력 남용에 저항하려 한다.” 당시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에워싼 ‘분리장벽’ 앞에서 시위하던 팔레스타인인들을 실탄으로 진압해 37명이 숨지는 일이 있었는데 이를 꼬집은 것이다. 포트먼의 수상 거부는 필자에겐 미국 내 유대인과 이스라엘 유대인 간 차이에 주목하게 한 사건이었다. 유대인 하면 나치 대학살의 피해자란 이미지가 강했는데 어느덧 팔레스타인은 물론, 종교적·인종적 소수자들을 억압하는 가해자로 변해버린 이스라엘을 보며 괴리감을 느껴오던 차에 유대인들 내에서도 간극이 크다는 걸 일깨워줬다. 미국의 유대인은 약 600만 명이다. 이스라엘 내 유대인 700만 명(전체 인구 970만 명)과 맞먹는 규모다. 두 집단의 차이는 도널드 트럼프(공화당)와 조 바이든(민주당)이 맞붙은 2020년 대선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미국 여론조사기관인 퓨리서치센터 조사 결과 미국 내 유대인의 75%가 바이든을 지지했다. 트럼프 지지는 22%에 그쳤다. 비슷한 시기 이스라엘에서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는 정반대였다. 이스라엘 국민의 63%는 트럼프를 지지했고, 바이든 지지는 고작 19%였다. 트럼프가 2018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있던 미 대사관을 팔레스타인과 분쟁 지역인 예루살렘으로 전격 이전해 이스라엘 편을 들어줬을 때도 미국 유대인들은 “국제법 위반이고, 아랍을 자극해 반유대주의 증오범죄를 부추길 것”이라며 반대했다. 2021년 5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로켓포 공격에 이스라엘이 대대적인 보복을 해 팔레스타인 주민 300여 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진 적이 있다. 당시 미국에선 이스라엘의 과도한 보복을 규탄하는 여론이 거셌다.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를 본 뜬 ‘팔레스타인인들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운동이 확산되자 미국 내 유대인들이 대거 동참했다. 이에 이스라엘 극우파들은 “미국에 살면서 테러 위협도 안 받고, 군 복무도 안 하면서 한가한 소리를 한다”고 비아냥댔다. 홀로코스트를 겪으며 유대인들은 고난을 반복해선 안 된다는 ‘네버 어게인(Never Again)’ 정서를 공유했다. 하지만 1948년 이스라엘 독립 이후 서로 다른 환경에 적응하며 이 강력한 공감대는 완전히 다르게 발현됐다. 미국에 정착한 유대인들이 소수자의 정체성을 간직하며 인권 평등 같은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는 집단으로 진화했다면, 아랍 국가들 틈에서 영토를 확보하려 전쟁을 불사했던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민족 중심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이 짙어졌다. 이스라엘에서도 1993년 팔레스타인과 상호 존재를 인정하는 ‘오슬로 협정’을 맺는 등 평화 노력이 있었지만 협정을 주도한 총리가 극우세력에 암살당하고 강평파가 집권한 이후 우경화가 이어져 왔다. 유대인들 간의 이런 차이에도 미국과 이스라엘 정부는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극우인 베냐민 네탸나후 정권이 최근 ‘사법부 무력화’ 작업을 강행하자 양국 간에도 균열이 커지고 있다. 바이든이 “매우 우려스럽다. 그들은 이 길로 계속 나아갈 수는 없다”고 하자 네타냐후는 “우리는 외국의 압박에 흔들리지 않는 주권국가”라며 맞서고 있다. 의원내각제인 이스라엘은 정부와 의회가 사실상 한 몸이어서 법안이나 정책의 위헌 여부를 심사하는 사법부가 견제 기능을 맡아 왔다. 초정통파 유대교의 기득권이 여전히 공고하고 아랍과의 잦은 충돌로 극우 정당이 언제든 득세할 수 있는 이스라엘에서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데 사법부의 역할이 컸다는 평가가 많다. 지난해 말 집권 직후부터 아랍을 도발하는 극우 행보를 펴온 네타냐후 정권이 사법부의 힘을 빼겠다는 것은 이스라엘 정착촌 확대 등 팔레스타인을 향한 적대 정책을 밀어붙이고 자국 내 민주세력을 위축시키려는 포석으로 볼 수 있다. 요즘 이스라엘에선 5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반정부 시위에 나와 ‘민주주의 수호’를 외친다. 삼권분립을 흔드는 네타냐후의 개악 시도를 어떻게든 저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유대인과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이제 모처럼 한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신광영 국제부 차장 neo@donga.com}
영화 ‘블랙 스완’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내털리 포트먼(42)은 이스라엘에서 태어나 3세 때 미국으로 이주한 유대인이다. 포트먼은 2018년 유대인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제네시스 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스라엘이 전 세계 유대인 중 빼어난 업적을 세운 한 명을 골라 매년 수여하는 상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루스 긴즈버그 대법관 등이 받았었고 상금도 100만 달러나 된다. 하지만 포트먼은 그해 4월 시상식에 불참하며 이렇게 밝혔다.“이스라엘은 정확히 70년 전 홀로코스트 난민들의 피난처로 세워졌다. 하지만 오늘날 (이스라엘의) 잔혹 행위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고 이는 유대인의 가치와 어긋난다. 나는 이스라엘을 아끼기 때문에 폭력, 불평등, 권력 남용에 저항하려 한다.” 당시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에워싼 ‘분리장벽’ 앞에서 시위하던 팔레스타인인들을 실탄으로 진압해 37명이 숨지는 일이 있었는데 이를 꼬집은 것이다. 포트먼의 수상 거부는 필자에겐 미국 내 유대인과 이스라엘 유대인 간 차이에 주목하게 한 사건이었다. 유대인 하면 나치 대학살의 피해자란 이미지가 강했는데 어느덧 팔레스타인은 물론, 종교적·인종적 소수자들을 억압하는 가해자로 변해버린 이스라엘을 보며 괴리감을 느껴오던 차에 유대인들 내에서도 간극이 크다는 걸 일깨워줬다. 미국의 유대인은 약 600만 명이다. 이스라엘 내 유대인 700만 명(전체 인구 970만 명)과 맞먹는 규모다. 두 집단의 차이는 도널드 트럼프(공화당)와 조 바이든(민주당)이 맞붙은 2020년 대선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미국 여론조사기관인 퓨리서치센터 조사 결과 미국 내 유대인의 75%가 바이든을 지지했다. 트럼프 지지는 22%에 그쳤다. 비슷한 시기 이스라엘에서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는 정반대였다. 이스라엘 국민의 63%는 트럼프를 지지했고, 바이든 지지는 고작 19%였다. 트럼프가 2018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있던 미 대사관을 팔레스타인과 분쟁 지역인 예루살렘으로 전격 이전해 이스라엘 편을 들어줬을 때도 미국 유대인들은 “국제법 위반이고, 아랍을 자극해 반유대주의 증오범죄를 부추길 것”이라며 반대했다. 2021년 5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로켓포 공격에 이스라엘이 대대적인 보복을 해 팔레스타인 주민 300여 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진 적이 있다. 당시 미국에선 이스라엘의 과도한 보복을 규탄하는 여론이 거셌다.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를 본 뜬 ‘팔레스타인인들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운동이 확산되자 미국 내 유대인들이 대거 동참했다. 이에 이스라엘 극우파들은 “미국에 살면서 테러 위협도 안 받고, 군 복무도 안 하면서 한가한 소리를 한다”고 비아냥댔다. 홀로코스트를 겪으며 유대인들은 고난을 반복해선 안 된다는 ‘네버 어게인(Never Again)’ 정서를 공유했다. 하지만 1948년 이스라엘 독립 이후 서로 다른 환경에 적응하며 이 강력한 공감대는 완전히 다르게 발현됐다. 미국에 정착한 유대인들이 소수자의 정체성을 간직하며 인권 평등 같은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는 집단으로 진화했다면, 아랍 국가들 틈에서 영토를 확보하려 전쟁을 불사했던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민족 중심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이 짙어졌다. 이스라엘에서도 1993년 팔레스타인과 상호 존재를 인정하는 ‘오슬로 협정’을 맺는 등 평화 노력이 있었지만 협정을 주도한 총리가 극우세력에 암살당하고 강평파가 집권한 이후 우경화가 이어져 왔다. 유대인들 간의 이런 차이에도 미국과 이스라엘 정부는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극우인 베냐민 네탸나후 정권이 최근 ‘사법부 무력화’ 작업을 강행하자 양국 간에도 균열이 커지고 있다. 바이든이 “매우 우려스럽다. 그들은 이 길로 계속 나아갈 수는 없다”고 하자 네타냐후는 “우리는 외국의 압박에 흔들리지 않는 주권국가”라며 맞서고 있다. 의원내각제인 이스라엘은 정부와 의회가 사실상 한 몸이어서 법안이나 정책의 위헌 여부를 심사하는 사법부가 견제 기능을 맡아 왔다. 초정통파 유대교의 기득권이 여전히 공고하고 아랍과의 잦은 충돌로 극우 정당이 언제든 득세할 수 있는 이스라엘에서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데 사법부의 역할이 컸다는 평가가 많다. 지난해 말 집권 직후부터 아랍을 도발하는 극우 행보를 펴온 네타냐후 정권이 사법부의 힘을 빼겠다는 것은 이스라엘 정착촌 확대 등 팔레스타인을 향한 적대 정책을 밀어붙이고 자국 내 민주세력을 위축시키려는 포석으로 볼 수 있다. 요즘 이스라엘에선 5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반정부 시위에 나와 ‘민주주의 수호’를 외친다. 삼권분립을 흔드는 네타냐후의 개악 시도를 어떻게든 저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유대인과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이제 모처럼 한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19일 열리는 2023 서울마라톤 겸 제93회 동아마라톤에서 국제 엘리트 부문 우승자와 2, 3위 선수들은 트로피에 더해 그리스 아테네에서 최근 공수된 특별한 메달을 목에 걸게 된다.이 중 금메달은 마라톤 기원 2500주년을 기념해 그리스육상연맹이 2010년 특별 제작한 메달이다. 주한 그리스대사관은 6·25전쟁 정전 70주년인 올해 열리는 서울마라톤 겸 동아마라톤에 아테네마라톤 메달을 기증하는 등 적극 동참하기로 했다. 서울마라톤과 아테네마라톤은 보스턴마라톤과 함께 2019년 세계육상연맹(WA)이 선정한 세계육상 문화유산에 올랐다. 에카테리니 루파스 주한 그리스대사는 15일 서울 중구 그리스대사관에서 진행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마라톤의 정신은 인내와 끈기, 요즘 말로 하면 꺾이지 않는 마음인데 한국의 역사는 그런 마라톤 정신을 잘 보여준다. 한국을 대표하는 서울마라톤 겸 동아마라톤에 그리스가 함께할 수 있어서 뜻깊게 생각한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그리스에서 온 특별 메달은 어떤 메달인가. “마라톤 역사가 시작된 지 2500주년을 기념해 만든 메달이다. 메달 앞면에 한 병사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기원전 490년 페르시아와의 전쟁에 참전했던 그리스 병사가 승전 소식을 알리기 위해 마라톤(지역명)에서 아테네까지 약 40㎞를 달려와 승리를 알린 뒤 쓰러져 숨을 거둔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것이다. 그것이 마라톤의 유래다. 메달에는 바로 그 병사의 모습을 형상화해 담았다. 2010년 제작돼 그리스육상연맹이 컬렉션용으로 간직해 왔다. 일제강점기이던 1931년 시작돼 90년 넘게 이어져온 한국의 대표적인 마라톤에 이 메달이 수여되는 것은 그리스에도 큰 의미가 있다.” ―마라톤은 스포츠의 차원을 넘어서는 행위인 것 같다. “마라톤에는 2500여 년 전 그리스 병사가 그랬듯 자신의 사명과 책임을 포기하지 않고 완수하겠다는 의지가 깃들어 있다. 서울이나 아테네, 보스턴 등 유서 깊은 국제마라톤 대회를 통해 그런 메시지가 유유히 이어져 왔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은 역사 자체가 마라톤이다. 일제강점기, 6·25전쟁, 한강의 기적을 지나 지금의 최첨단 기술 강국이 되기까지 무수한 시련을 이겨내고 끈질긴 집념을 보여준 나라는 유례를 찾기 힘들다. 제가 2021년 12월 한국에 부임했는데 한국을 알아갈수록 많이 놀라게 된다. ―한국과 그리스에 뜻깊은 해이기도 하다. “두 나라에는 공통점이 많다. 그리스도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이고, 산이 많다. 그리스 역시 오스만튀르크(현 튀르키예)로부터 오랜 세월 식민지배를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는 3년 넘는 내전의 아픔도 겪었다. 6·25전쟁 때 그리스에서 약 5000명의 군인이 한국을 위해 참전한 것은 민주주의라는 공동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인식과 함께 동병상련의 마음도 있었다. 올해 한국은 정전 70주년, 그리스는 3월 25일이 202번째 독립기념일이다. 이번 서울마라톤은 양국의 우애를 다지는 중요한 무대가 될 것이다.” ―마라톤은 그런 점에서 축제이기도 한 것 같다. “마라톤은 본질적으로 많은 것들을 포용한다. 풀코스, 하프코스, 10㎞ 중 각자 상황에 맞게 달리면 된다. 선수이든 아니든, 연령과 성별, 장애 유무에 관계없이 누구나 각자의 목표를 향해 달린다. 빨리 뛰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완주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차이를 포용하는 게 바로 마라톤이다. 그것이 아테네 민주주의가 지향했던 목표이고, 한국이 여러 난관을 이겨내며 지켜온 가치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마라톤은 두 민주주의 국가가 ‘가치의 연대’를 확인하는 장이 될 수 있다. ―한국에서 걷기나 달리기를 즐기는 편인가. “저는 한국의 가을을 사랑한다. 봄에 벚꽃도 좋지만 가을 단풍은 정말 아름답다. 서울에선 덕수궁이나 종묘, 남산을 자주 다니고 안동 하회마을의 한옥, 여수의 밤바다도 좋아한다. 외교관으로서 유럽의 수많은 도시를 다녀봤지만 서울은 빌딩숲 사이로 고풍스러운 공간을 잘 보존해놓은 것 같다. 도심을 걷다 보면 아담한 가게들도 많고 도시가 다양한 건축적 리듬을 갖도록 세심하게 설계됐다는 인상을 받는다. 서울마라톤의 코스는 서울 한복판을 가로지르고 있어 이런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며 달릴 수 있는 게 큰 매력인 것 같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올 1월 28일 열린 호주오픈 여자 테니스 결승전 승자는 벨라루스의 아리나 사발렌카 선수(25)였다. 그의 첫 메이저대회 우승이다. 사발렌카의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TV 중계방송 화면에는 그의 이름만 뜰 뿐, 이름 옆에 있어야 할 국가 표시가 없었다. ‘국기 표출 및 국가 연주 금지’는 국제테니스연맹이 러시아와 벨라루스 선수들에게 출전을 허용하며 내건 조건이었다. 사발렌카는 결승전에 앞서 이런 인터뷰를 했다. “우리는 그냥 운동선수일 뿐이에요. (전쟁을 멈추기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하겠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우리가 왜 정치와 연관돼야 하는 거죠.” 또 다른 메이저 대회인 지난해 7월 영국 윔블던 대회에 그는 출전하지 못했다. 주최 측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며 러시아와 동맹국 벨라루스 선수의 출전을 금지했다. “우리가 윔블던 출전을 금지당한 이후 바뀐 게 있나요? 아무것도 없어요. 러시아는 여전히 전쟁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 상황이 슬픈 거예요.” 사발렌카가 호주오픈에서 우승하기 5일 전, 우크라이나 남자 피겨스케이트 선수의 비보가 전해졌다. 드미트로 샤르파르(25)가 우크라이나 동부 격전지인 바흐무트에서 러시아군과 교전 중 전사했다. 샤르파르는 우크라이나 챔피언십에서 은메달을 딴 유망주였다. 우크라이나 육상 선수 볼로디미르 안드로슈크(22)도 며칠 뒤 바흐무트에서 전사했다. 국가대표인 두 선수는 입대 의무가 없지만 자원입대를 택했다. 전쟁 이후 참전하거나 폭격 등으로 사망한 우크라이나의 국가대표급 선수와 코치는 220명에 달한다. 경기장과 체육관 수십 곳도 폭격에 무너졌다. 동갑내기인 사발렌카와 샤르파르는 세계무대에 서기 위해 각자의 훈련장에서 땀흘려 온 정상급 선수들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한 사람을 출전이 금지된 선수로, 다른 한 사람을 출전이 불가능한 선수로 갈라놓았다. 내년 7월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세계 스포츠계는 두 개로 갈라져 있다. 당장 이번 봄부터 올림픽 예선이 치러지는데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러시아·벨라루스 선수들의 출전을 허용하기로 했다. 그러자 우크라이나가 “대회를 보이콧하겠다”며 강하게 반발했고 한국과 미국 등 34개국이 우크라이나 편에 섰다. 눈에 띄는 것은 러시아의 침공을 비판해 온 유엔인권이사회(UNHCR)가 러시아·벨라루스 선수들의 올림픽 출전을 옹호하고 나선 점이다. “운동선수가 어느 나라 여권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차별받아선 안 된다. 전쟁으로 인권이 노골적으로 무시될 때 인종·성별·국적에 따른 차별을 배격한다는 더 큰 의미의 인권 규범이 존중돼야 한다.” 선수의 재능과 땀에 대한 보상이 출신 국가에 따라 달라져선 안 된다는 논리는 일리가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선수들 역시 그들의 여권 때문에 살해당했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판단이 쉽지 않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복싱 금메달리스트인 우크라이나의 올렉산드르 우식은 “러시아 선수들이 따낸 메달은 피, 죽음, 눈물의 메달이 될 것”이라고 했다. IOC는 이런 반발을 고려해 중립국 선수 자격으로만 출전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긴 했다. 하지만 형식적 제약에 그칠 수밖에 없다. 사발렌카 선수는 호주오픈 우승 직후 “(고국) 사람들이 나를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국기 표시가 없어도) 모두가 내가 벨라루스 선수라는 것을 안다. 그럼 된 거다”라고 했다. 우리가 그동안 여러 올림픽에서 봐왔듯 ‘ROC(러시아 올림픽위원회)’ 표식을 달고 나오는 선수들이 러시아 선수임을 누구나 알아볼 것이다. 러시아는 자국 선수들이 세계 최대 스포츠 무대에서 선보이는 활약상을 이용해 내부 결속을 다지고 전 세계를 상대로 정치 선전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는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을 치른 직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점령했고, 지난해 2월 베이징 겨울올림픽 폐회식 4일 뒤 보란 듯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러시아의 대외 정책에서 올림픽 정신은 설 자리가 없었다. 독일 나치가 1936년 전 세계의 반대 여론에도 베를린 올림픽을 개최하며 국력을 정비해 3년 뒤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것과 다르지 않다. 파리 올림픽에 출전할 우크라이나 선수들은 선수이기 이전에 전쟁 생존자이기도 하다. 이들에게 가해국 선수들과 마주해야 하는 아픔을 느끼게 해선 안 된다. 물론 전쟁을 일으킨 국가의 잘못 때문에 그 나라 국가대표 선수들이 4년간 기다려온 기회를 빼앗기는 것은 여전히 안타까운 대목이다. 선수들이 흘린 땀의 가치를 증발시킨다는 점에서도 전쟁의 야만성은 드러난다. 신광영 국제부 차장 neo@donga.com}
올레나 쉐겔 한국외국어대 우크라이나어학과 교수는 러시아가 고국을 침공한 지난해 2월 말 이후 1년 넘게 우크라이나에 있는 가족, 지인들과 연락하며 마음 졸이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촌동생의 남편, 육촌동생은 현재 최전선에서 러시아군과 싸우고 있다. 이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는데 며칠째 답이 없으면 가슴이 내려앉는다. 쉐겔 교수는 14일 경기도의 자택 인근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우크라이나 군인들과 주민들의 ‘지난 1년’을 담담히 전해줬다. 우크라이나 군인들은 연락이 닿을 때마다 보내 달라는 물건이 많다고 한다. 특히 한국산 내복과 양말이 인기가 많다. 따뜻하면서도 땀이 안 차서 좋다는 것이다. 쉐겔 교수는 “재질이 좋아서 3, 4일씩 행군해도 발이 괜찮다고 한다. 군 보급품도 있지만 땀이 잘 차서 오래 행군하면 양말이 피부랑 붙어 벗을 때 많이 아프다고 한다”고 전했다. 한 번에 수십 벌씩 보내는데 육촌동생의 소대원들이 고맙다면서 내복 입은 단체사진을 보내주기도 했다. 보통 같은 동네 출신들로 부대가 꾸려지기 때문에 쉐겔 교수도 어렸을 적 봤던 동생들이었다. 그런데 며칠 뒤 이모한테서 연락이 왔다. 이모는 “소대원들이 전투에서 많이 죽었다. 그래도 네가 보내준 내복을 입고 따뜻하게 갔다”며 울었다. 전장으로 물품을 보내는 방법은 험난하다. 주변국인 폴란드나 체코로 보내면 지인이나 봉사자들이 공항에서 넘겨받아 우크라이나로 배달하는 식이다. 쉐겔 교수가 1년간 물품을 구해서 보내는 데 쓴 2000만 원에서 절반이 수화물 비용이었다. 전장이 아니더라도 우크라인들의 일상 자체가 전쟁이다. 쉐겔 교수는 “외삼촌 부부가 격전지인 헤르손 근처 농장에서 일하시는데 몇백 m 근처에서 미사일이 종종 터진다고 한다”면서 “삼촌도 처음엔 놀라다가 요즘엔 ‘오늘도 왔네’ 하며 무덤덤해졌다”고 전했다. ‘지하실로 내려가 봤자지. 집 무너지면 지하실에서 죽는 거지’ 한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오랫동안 러시아의 침략과 지배를 받았다. 러시아는 이 고통의 역사가 알려지지 않도록 철저히 통제했다. 쉐겔 교수는 “이번 전쟁도 러시아가 100년 넘게 반복해온 행동 패턴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그렇기에 지금 우크라이나인들은 하나의 강력한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에 무너지면 정말 끝’이라는 생각 말이다. “이번에 러시아에 굴복하면 다시 일어설 수 없다는 두려움, 결연함, 절박감이 우리를 버티게 하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우크라이나가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전쟁이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러시아군이 훈련이 잘 안 돼 있고 무기도 구식이라는 얘기가 많은데 직접 전장에서 싸우는 동생들 얘기를 들어보면 꼭 그렇진 않은 것 같아요. 최전선의 러시아 군인들은 최신 무기에 훈련도 잘 돼 있다고 해요. 무엇보다 우크라이나군을 몰살시키겠다는 살기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죽일 때도 최대한 잔인하게 죽이고….” 올레나 쉐겔 한국외국어대 우크라이나어학과 교수는 러시아가 고국을 침공한 지난해 2월 말 이후 1년 넘게 우크라이나에 있는 가족, 지인들과 연락하며 마음 졸이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의 부모는 인근 국가로 피난을 갔지만 많은 친척들이 아직 고향에 남아있다. 사촌동생의 남편들, 육촌 남동생은 현재 최전선에서 러시아군과 싸우고 있다. 이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는데 며칠 째 답이 없으면 가슴이 내려앉는다.“한 번은 육촌동생이 계속 답장이 없다가 십자가 모양의 특수부호 하나만 딸랑 보내온 거예요. 전사한 줄 알고 너무 걱정했는데 동생이 휴대전화를 잠깐 볼 수 있었던 틈에 ‘오케이’란 뜻으로 보낸 거였어요.” 쉐겔 교수는 2월 14일 경기도의 자택 인근에서 기자와 만나 우크라이나 군인들과 주민들의 ‘지난 1년’을 담담히 전해줬다. ―전장에 있는 친척들의 안전은 어떤가.“육촌동생이 소대장인데 지금 부상을 당해서 잠시 집에 와있다. 벌써 4번째 부상이다. 지난번 3번째 부상 땐 복부가 크게 다쳐 배변주머니를 달아야 했는데 조금 나아지자마자 바로 복귀했더라. 이모는 동생이 외아들이라 걱정이 많다. 동생은 말한다. ‘내가 복귀 안 하면 나대신 누군가가 소대장을 맡을 텐데 경험 부족한 사람이 가면 소대원들 100% 죽는다고. 전투 경험이 많은 내가 가야 살아남은 확률이 조금이라도 높다’고.” ―군인들은 어떤 얘기를 많이 해오나.“연락 닿을 때마다 보내달라는 물건들이 많다. ‘바주카포 하나 보내달라’고 농담도 하고(웃음). 추운데 있다보니 내복, 양말 같은 게 중요한데 한국 내복이 우크라이나 군인들에게 인기가 많다. 따뜻하면서도 땀이 안 차서 좋다고 한다. 한국산 등산용 양말도 반응이 좋다. 재질이 좋아서 3, 4일씩 행군해도 발이 괜찮다고 한다. 군 보급품도 있지만 땀이 잘 차서 오래 행군하면 양말이 피부랑 눌러 붙어 벗을 때 많이 아프다고 한다. ―‘K내복’이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다.“수십 벌 씩 보내는데 육촌동생의 소대원들이 고맙다면서 내복 입은 단체 사진을 보내줬다. 보통 같은 동네 출신들로 부대가 꾸려지기 때문에 저도 어렸을 적 봤던 동생들이었다. 어느덧 커서 다 아저씨가 돼 있었다. 근데 며칠 뒤 이모한테 연락이 왔다. 소대원들이 전투에서 많이 죽었다고 했다. 이모는 ‘그래도 네가 보내준 내복을 입고 따뜻하게 갔다’며 울었다.” ―보내준 내복 며칠 입어보지도 못하고….“얼마나 힘들지 아니까 힘닿는 데까지 물품을 보내고 있다. 지혈대나 진통제는 물론이고, 의외로 감기약과 치질약을 정말 필요로 한다. 군인들이 참호에서 1년 내내 있다보니 늘 감기를 달고 산다. 전쟁 중에 감기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닐 것 같지만 일상을 지배하는 고통이라고 한다. 근데 한국 감기약이 또 그렇게 약효가 좋다고 한다. 유럽에서 들어오는 구호 약품은 1주일 먹어도 나을까 말까인데 한국 감기약은 하루치만 먹어도 바로 나아진다고 한다. 치질약도 처음엔 얘기를 못 꺼내다가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털어놓더라. 화장실도 없이 늘 긴장되는 환경이다 보니 치질이 많을 수밖에 없고, 말 못할 고통이라고 한다.” ―우크라이나로 물품은 어떻게 보내나.“그게 늘 어렵다. 바로 보낼 방법은 없고 주변국인 폴란드나 체코로 보내면 지인이나 자원봉사자들이 공항에서 넘겨받아 우크라이나로 배달하는 식이다. 일반 소포는 너무 비싸서 한국에서 폴란드로 들어가는 분들을 수소문해 물품을 전달해달라고 부탁한다. 20만 원 정도 드는 수화물 비용은 제가 부담한다. 1년 간 물품을 구해서 보내는데 2000만 원 정도 들었는데 절반이 수화물 비용이다. 돈도 돈이지만 물품을 가져다줄 봉사자를 구해 현지 지인들과 공항에서 만나게 연결해주는 작업이 쉽지 않다.” ―주민들도 폭격과 정전으로 많이 힘들 것 같다.“키이우에 있는 지인 중에 60대인 교육 공무원이 있다. 이 분이 아파트 14층에 사는데 얼마 전 연락이 닿았을 때 ‘한 달 넘게 집 밖을 안 나가고 있다’고 했다. 전기가 안 들어와 엘리베이터가 거의 작동을 안 하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여러 번 대피 사이렌이 울리지만 매번 14층을 걸어 내려갔다 올라오기가 힘들어 그냥 집에 있는다고 한다. 전기와 수도도 끊겨 늘 춥고 깜깜한데 그보다 힘든 건 화장실 문제다. 물을 못 내리니까. 나는 한국에서 너무 편하게 있구나 하는 생각에 죄책감이 든다.” ―전장이 아니더라도 일상 자체 전쟁인 것 같다. “외삼촌 부부가 격전지인 헤르손 근처 농장에서 일하시는데 몇 백 미터 근처에서 미사일이 종종 터진다고 한다. 삼촌도 처음엔 놀라다가 요즘엔 ‘오늘도 왔네’ 이러신다고 한다. 계속 놀랄 수는 없기 때문에 자기보호 기제가 작동하는 것 같다. 외삼촌은 대피 사이렌이 울려도 무덤덤하다. ‘지하실로 내려가 봤자지. 집 무너지면 지하실에서 죽는 거지’ 이러신다.” ―러시아군과 맞닥뜨리는 경우도 있지 않나.“지난 성탄절에 집회를 하는데 한국으로 피난 온 젊은 우크라이나인 여성이 저한테 다가오더니 살며시 손을 내밀었다. 열손가락 손톱이 다 빠져서 새로 조금씩 올라오고 있었다. 그 분이 말했다. ‘그 짐승들이 나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봐봐.’ 그 분은 고향인 동부에서 남부로 이동하던 중 러시아군에 붙잡혔다고 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 점령지역 쪽을 지날 땐 잡힐 것에 대비해 휴대전화를 모두 초기화 한다. 러시아군이 민간인을 잡으면 휴대전화부터 빼앗아 남편이나 남자 형제, 남자친구가 우크라이나 군인인지 확인한다고 한다.” ―그 여성의 휴대전화에 뭔가가 있었던 것인가.“당시 이 분은 러시아 점령지를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괜찮을 줄 알고 미처 휴대전화를 초기화 하지 못한 상태였다. 근데 남자친구가 징집된 상황이어서 군복 입은 사진과 ‘살아 돌아올게’ 같은 대화 내용이 남아 있었다. 러시아 군인들은 이 여성의 두 손목에 우크라이나 국기색인 파란색과 노란색으로 된 꽃 문신이 있는 것을 보고 ‘네가 우크라이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다시는 들지 않게 해주겠다’면서 손톱을 모조리 뽑았다고 한다.” ―이 전쟁을 보는 러시아인들의 생각을 접한 적이 있나. “제 우크라이나인 친구가 이런 얘기를 했다. 절친한 러시아인 친구가 있는데 평소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비판적 성향이 강해서 전쟁이 난 뒤에도 잘 지내보려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우크라이나 상황을 안타까워하면서도 ‘그러게 왜 너희는 푸틴한테 까불었어?’라고 말해 너무 실망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가 원인 제공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침공을 정당화하는 시각이다. 우리는 엄연히 독립적인 주권국가인데 계속 러시아 눈치를 살펴야 한다는 것인가. 최근 러시아에서 군 징집이 이뤄지면서 반대 여론이 나오긴 하지만 징집에 반대할 뿐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거 같다.” ―우크라이나인들에게 러시아는 어떤 나라인가.“우리는 오랫동안 러시아의 침략과 지배를 받았다. 러시아는 이 고통의 역사가 알려지지 않도록 철저히 통제했다. 저는 역사를 전공했기 때문에 러시아가 저지른 일들을 상세히 알지만 소련 체제에서 자란 저희 엄마만 해도 잘 모른다. 심지어 1930년대에 스탈린이 우크라이나를 집단농장화 하기 위해 자행한 ‘홀로도모르(대기근)’ 사태로 수백만 명이 굶어죽었는데 엄마는 이 마저 잘 모르셨다. 제가 너무 답답해서 외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따져 물었다. 할머니는 몸소 겪어봐서 잘 아실 텐데 왜 엄마한테 얘길 안 해주셨냐고. 할머니는 ‘네 엄마와 우리 가족을 보호하려고 그랬다’고 하셨다. 아이가 학교에서 말 잘 못했다간 아이도 다치고 온 가족이 KGB(소련 정보기관)에 끌려갔을 거라고. 이번 전쟁도 러시아가 100년 넘게 반복해온 행동 패턴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소련 때는 부모가 자식에게도 말 못할 정도로 다들 숨죽였다면, 이젠 러시아의 악행이 눈에 그대로 보이게 됐다.” ―우크라이나인들은 버티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지금 우크라이나인들은 하나의 강력한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 ‘이번에 무너지면 정말 끝’이라는 생각이다. 우리는 그동안 숱하게 러시아에 짓밟히고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해왔는데 이번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라는 민족의 DNA를 말살하려는 것 아닌가, 영원한 속국으로 만들려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이번에 러시아에 굴복하면 다시 일어설 수 없다는 두려움, 결연함, 절박감이 우리를 버티게 하는 것 같다. 우리가 이 전쟁을 이길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단지 푸틴 한 명이 죽는다고 끝나는 전쟁이 아니다. 그가 죽어도 10, 20년 뒤 ‘제2의 푸틴’ 또 나올 것이다. 우크라이나를 점령 대상으로 보는 푸틴식의 사고방식이 다시는 설 자리가 없도록 만드는 게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우크라이나가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전쟁이다.” 올레나 쉐겔△우크라이나 키이우 출생△2003년 키이우국립대 한국학 전공(학, 석사)△2008년 서울대 국문과 한국현대문학 박사 수료△2010년 우크라이나 국립과학원 우크라이나학 박사 수료△2009년~ 한국외국어대 우크라이나어학과 교수△한-우크라이나 정상회담 등 주요 외교행사 통역신광영 기자 neo@donga.com}
“당신의 업무 중 인공지능(AI)이 대신 해줬으면 하는 게 있다면 어떤 건가요?”(AI) “매주 국회에서 의원들과 하는 총리 질의응답을 저 대신 해줬으면 좋겠네요.”(리시 수낵 영국 총리) “제가 노트에 뭔가를 쓸 때 관련된 그림을 그려주거나 시를 써주면 좋을 거 같아요.”(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15일(현지 시간) AI 챗봇이 수낵 총리와 게이츠 창업자에게 던진 질문에 두 사람은 이렇게 답했다. 이날 수낵 총리와 게이츠 창업자는 영국의 명문 이공계 대학인 임피리얼 칼리지 런던에서 ‘친환경 기술’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주관한 행사에 참석해 AI와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는 수낵 총리와 게이츠 창업자가 나란히 앉은 상태에서 AI의 질문이 적힌 종이 보드를 한 사람이 집어 들면 다른 사람이 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AI는 두 사람의 과거 연설, 인터뷰 등 발언 내용을 학습한 뒤 자연어 처리 알고리즘을 통해 질문을 만들어냈다. 수낵 총리와 게이츠 창업자는 AI의 도발적인 질문에 잠시 웃음을 짓다가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답변을 이어갔다. “당신은 향후 10년 사이 기술이 국제 경제와 고용 시장에 어떤 영향을 줄 것으로 보나요?”(AI) “이런 질문을 생성해 낸 것과 같은 (AI) 기술이 우리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게이츠 창업자) “영국 총리로서 ‘포스트 브렉시트’ 시대에 경제 성장을 위한 비전은 무엇입니까?”(AI) “AI나 로봇 같은 신기술에 투자해야 하고, 중소 상공인을 위한 생태계를 만들어야 합니다.”(수낵 총리) AI는 두 사람에게 사회 초년생으로 돌아간다면 스스로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은지 묻기도 했다. 게이츠 창업자는 “젊었을 때 주말이나 휴가 없이 회사에 매몰돼 살다 보니 일을 대하는 시야가 좁았던 것 같다. 회사가 커질수록 넓은 시야와 장기적 관점을 갖는 게 중요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수낵 총리는 “이민 가정에서 태어나 계속 공부와 일만 하면서 다음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살았는데 ‘지금 이 순간’을 좀 더 느끼며 살았으면 한다”고 답했다. AI의 질문으로 진행된 이 인터뷰 영상은 18일 영국 총리실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됐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사건이 난 서부영화 세트장은 미국 뉴멕시코주 사막지대에 지은 19세기 양식의 작은 목조 교회였다. 그 안에서 한 발의 총성이 울렸을 때 밖에 있던 스태프들은 각본대로 촬영이 시작된 줄 알았다. 몇 초 뒤 시나리오 작가가 교회에서 뛰쳐나왔다. “911 불러, 911!” 세트장 안에는 주연 배우 앨릭 볼드윈(64)이 얼어붙은 채 서 있었다. 그가 방금 전 리허설했던 장면은 대본에 이렇게 나와 있었다. ‘무법자(볼드윈)는 포위해 오는 보안관과 맞서기 위해 교회 의자에 앉아 총을 쏘기로 결심한다.’ 영화는 농장주를 우발적으로 살해한 10대 손자가 교수형을 면하도록 분투하는 백발의 무법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리허설이 시작되자 볼드윈은 어깨의 권총 지갑에서 45구경 구형 리볼버를 꺼냈다. 총은 가슴을 지나 카메라 렌즈 쪽으로 향했고, 곧 총성이 울렸다.세트장에 두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총알은 촬영감독 할리나 허친스(42)의 몸을 관통해 뒤에 있던 조엘 수자 감독(48)의 어깨에 박혔다. 극 중에서 살인을 저지른 손자를 지키려 했던 볼드윈은 현실에서 제작진에 실탄을 쏜 배우가 되어 있었다. 10세 아들을 둔 엄마인 허친스는 숨졌고, 수자 감독은 중상을 입었다.사건 1년 3개월 만인 지난달 31일 볼드원은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됐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강력한 총기 규제를 주장해 와 전미총기협회(NRA)에서 눈엣가시로 여기던 인물이었다. 볼드윈이 세트장에서 집어든 권총은 소품담당자, 무기관리자, 조감독의 손을 거쳤다. 무기관리자는 소품담당자가 가져온 탄환이 공포탄이 맞는지 확인해 총에 장전하고, 조감독은 쏴도 안전한지 다시 점검해 배우에게 건네는 역할을 한다. 당시 조감독은 볼드윈에게 총을 주면서 “콜드건(공포탄이 든 총)”이라고 말했지만 방아쇠 앞에 실탄이 꽂힌 상태였다. 무기 관리를 맡았던 24세 여성은 이번 영화가 자신의 두 번째 작품이었다. 그는 할리우드에서 유명한 소품총 공급업자의 딸이었다. 이 초보 무기관리자는 첫 작품 때도 촬영장에서 예고 없이 총을 발사해 스태프들을 놀라게 했다. 주연 배우였던 니컬러스 케이지가 “당신 때문에 고막이 터질 뻔했다”며 화를 냈다고 한다. 한 스태프는 “그가 장전된 권총을 겨드랑이에 꽂고 촬영장을 누볐는데 총구가 사람들을 향해 있었다”고 했다. 조감독 역시 다른 영화 촬영장에서 총기 사고를 내 해고된 적이 있었다. 25년 경력자인 그는 제작사의 요구에 맞춰 일정을 관리하는 데 능했지만 안전 수칙이나 절차를 건너뛰곤 했다는 게 동료들의 전언이다. 이 사건으로 볼드윈까지 재판에 넘겨지자 미국 영화계가 크게 술렁이고 있다. 영화·TV 종사자 노조는 성명을 내 “허친스의 죽음은 예방할 수 있었던 비극이지만 배우가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다. 배우는 무기 전문가가 아니다”라고 했다. 한 유명 액션배우도 가세했다. “우리는 제이슨 본이 아닙니다. 배우는 캐릭터에 몰입하는 예술가일 뿐 촬영장 안전요원이 아닙니다.” 하지만 검찰은 볼드윈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봤다. 배우는 총기의 최종 사용자로서 안전 확인 의무가 있고, 사람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지는 말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검찰 공소장에는 볼드윈이 촬영 전 총기 안전 훈련에 참여하지 않았고, 이후 안전 교육 때도 가족과 통화하는 등 집중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사건 5일 전 촬영장에서 2차례 총기 사고가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소품담당자가 발밑에 총을 겨누다가 총이 발사됐고, 몇 시간 뒤 스턴트맨이 또다시 실수로 소총을 쐈다고 한다. 영화 제작자이기도 했던 볼드윈은 참사를 예고하는 이런 신호를 흘려보냈다. 비용 절감을 위해 안전을 희생시켜 온 제작 관행을 고발하는 목소리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터져 나오고 있다. 신출내기를 싼값에 무기관리자로 고용해 다른 일까지 맡기는 일이 적지 않다. 게다가 명문화된 총기 관리 규정도 없어 촬영장에서 어깨너머로 배울 뿐이다. 스태프들은 안전사고가 나도 제작사로부터 불이익을 당하거나 향후 고용이 안 될까 봐 나서기를 꺼린다. 할리우드 촬영장은 안전에 있어 ‘무정부 상태’에 가깝다는 말까지 나온다. 2021년 10월 미국 서부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일상 속 위험을 과소평가하며 안전을 뒤로 미루다 보면 그 어떤 서부영화보다 참혹한 실화가 펼쳐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볼드윈이 든 총에 어쩌다 실탄이 장전됐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어쩌면 차곡차곡 누적돼 온 부실 그 자체가 실탄이었다. 신광영 국제부 차장 neo@donga.com}
사건이 난 서부영화 세트장은 미국 뉴멕시코주 사막지대에 지은 19세기 양식의 작은 목조 교회였다. 그 안에서 한 발의 총성이 울렸을 때 밖에 있던 스태프들은 각본대로 촬영이 시작된 줄 알았다. 몇 초 뒤 시나리오 작가가 교회에서 뛰쳐나왔다. “911 불러, 911!” 세트장 안에는 주연 배우 알렉 볼드윈(64)이 얼어붙은 채 서있었다. 그가 방금 전 리허설 했던 장면은 대본에 이렇게 나와 있었다. ‘무법자(볼드윈)는 포위해오는 보안관과 맞서기 위해 교회 의자에 앉아 총을 쏘기로 결심한다.’ 영화는 농장주를 우발적으로 살해한 10대 손자가 교수형을 면하도록 분투하는 백발의 무법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리허설이 시작되자 볼드윈은 어깨의 권총 지갑에서 45구경 구형 리볼버를 꺼냈다. 총은 가슴을 지나 카메라 렌즈 쪽으로 향했고, 곧 총성이 울렸다. 세트장에 두 사람이 쓰러져있었다. 총알은 촬영감독 할리나 허친스(42)의 몸을 관통해 뒤에 있던 조엘 수자 감독(48)의 어깨에 박혔다. 극중에서 살인을 저지른 손자를 지키려했던 볼드윈은 현실에서 제작진에 실탄을 쏜 배우가 되어 있었다. 10살 아들을 둔 엄마인 허친스는 숨졌고, 수자 감독은 중상을 입었다. 사건 1년 3개월 만인 지난달 31일 볼드원은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됐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강력한 총기규제를 주장해와 전미총기협회(NRA)에서 눈엣가시로 여기던 인물이었다. 볼드윈이 세트장에서 집어든 권총은 소품담당자, 무기관리자, 조감독의 손을 거쳤다. 무기관리자는 소품담당자가 가져온 탄환이 공포탄이 맞는지 확인해 총에 장전하고, 조감독은 쏴도 안전한지 다시 점검해 배우에게 건네는 역할을 한다. 당시 조감독은 볼드윈에게 총을 주면서 “콜드건(공포탄이 든 총)”이라고 말했지만 방아쇠 앞에 실탄이 꽂힌 상태였다. 무기관리를 맡았던 24세 여성은 이번 영화가 자신의 두 번째 작품이었다. 그는 할리우드에서 유명한 소품총 공급업자의 딸이었다. 이 초보 무기관리자는 첫 작품 때도 촬영장에서 예고 없이 총을 발사해 스태프들을 놀라게 했다. 주연 배우였던 니콜라스 케이지가 “당신 때문에 고막이 터질 뻔 했다”며 화를 냈다고 한다. 한 스태프는 “그가 장전된 권총을 겨드랑이에 꽂고 촬영장을 누볐는데 총구가 사람들을 향해있었다”고 했다. 조감독 역시 다른 영화 촬영장에서 총기 사고를 내 해고된 적이 있었다. 25년 경력자인 그는 제작사의 요구에 맞춰 일정을 관리하는데 능했지만 안전 수칙이나 절차를 건너뛰곤 했다는 게 동료들의 전언이다. 이 사건으로 볼드윈까지 재판에 넘겨지자 미국 영화계가 크게 술렁이고 있다. 영화·TV 종사자 노조는 성명을 내 “허친스의 죽음은 예방할 수 있었던 비극이지만 배우가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다. 배우는 무기 전문가가 아니다”라고 했다. 한 유명 액션배우도 가세했다. “우리는 제이슨 본이 아닙니다. 배우는 캐릭터에 몰입하는 예술가일 뿐 촬영장 안전요원이 아닙니다.” 하지만 검찰은 볼드윈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봤다. 배우는 총기의 최종 사용자로서 안전 확인 의무가 있고, 사람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지는 말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검찰 공소장에는 볼드윈이 촬영 전 총기 안전 훈련에 참여하지 않았고, 이후 안전 교육 때도 가족과 통화하는 등 집중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사건 5일 전 촬영장에서 2차례 총기사고가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소품담당자가 발밑에 총을 겨누다가 총이 발사됐고, 몇 시간 뒤 스턴트맨이 또 다시 실수로 소총을 쐈다고 한다. 영화 제작자이기도 했던 볼드윈은 참사를 예고하는 이런 신호를 흘려보냈다. 비용 절감을 위해 안전을 희생시켜온 제작 관행을 고발하는 목소리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터져 나오고 있다. 신출내기를 싼 값에 무기관리자로 고용해 다른 일까지 맡기는 일이 적지 않다. 게다가 명문화된 총기 관리 규정도 없어 촬영장에서 어깨 너머로 배울 뿐이다. 스태프들은 안전사고가 나도 제작사로부터 불이익을 당하거나 향후 고용이 안 될까봐 나서기를 꺼린다. 할리우드 촬영장은 안전에 있어 ‘무정부 상태’에 가깝다는 말까지 나온다. 2021년 10월 미 서부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일상 속 위험을 과소평가하며 안전을 뒤로 미루다 보면 그 어떤 서부영화보다 참혹한 실화가 펼쳐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볼드윈이 든 총에 어쩌다 실탄이 장전됐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어쩌면 차곡차곡 누적돼온 부실 그 자체가 실탄이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2017년 4월 5일 밤 미국 뉴저지의 단독주택 현관에 80대 중국인 남성이 구부정하게 섰다. 이 노인은 이틀 전 중국 공작원에게 이끌려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이곳까지 왔다. 중국 공안은 뇌물수수 혐의를 받다가 미국 뉴저지로 숨어든 그의 아들을 쫓고 있었다. “아들을 만나서 계속 귀국을 안 하면 가족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받을지 전하라.” 노인은 아들을 유인하기 위한 ‘인간 미끼’였다. 공안은 아들의 거처를 몰라 인근 친척 집에 노인을 내려줬다. 친척들은 중국에서 투병 중인 삼촌이 불쑥 와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연락을 받고 온 아들은 아버지를 차에 태워 30분 거리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요원의 차량이 조용히 뒤따랐다. 집 앞에는 아들의 신고로 미국 연방수사국(FBI) 차량이 와있었다. ‘목표물’과 대면접촉에 실패한 공작원들은 2단계 작전에 돌입했다. 다음 ‘미끼’는 캘리포니아에 사는 딸이었다. 요원들은 스탠퍼드대를 졸업하고 결혼해 살던 딸의 집과 직장에 찾아가 아버지를 비난하는 동영상을 촬영하라고 강요했다. 집요한 스토킹에 시달리던 딸은 시키는 대로 영상을 찍어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공유해야 했다. 전방위 압박에도 목표물이 귀국을 거부하자 요원들은 그의 뉴저지 집에 찾아가 메모를 붙였다. ‘중국으로 돌아와 10년 징역을 살면 가족들은 무사할 것이다.’ 중국의 이 같은 비밀경찰 행각은 미 법무부가 2020년 10월 중국 측 요원 6명을 기소하며 법원에 낸 공소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중국은 해외 도주 범죄자들을 잡는다는 명분으로 ‘여우 사냥(Fox Hunt)’이라 불리는 초국가적 법 집행을 해왔다. 중국 본토와 해외 정보망이 총동원되는데 세계 각지에 포진한 비밀경찰서가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고 미 정보당국과 국제인권단체들은 보고 있다. ‘여우 사냥’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4년 부패 척결을 선포하며 본격화됐다. 미국 등 대부분의 서방 국가들과 범죄인 인도 조약을 맺지 않은 중국은 해외에서 중국인을 합법적으로 잡아올 방법이 별로 없다. 송환 대상 중에는 뇌물·횡령뿐 아니라 중국공산당을 비판하거나 인권운동을 해온 인사가 많아 외교 마찰 소지도 크다. 중국 비밀경찰은 회유 협박 납치 등 탈법적 수단으로 반체제 인사를 ‘사냥’하는 게 주 임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중국의 유명 풍자만화가와 민주화운동가가 2015년 탄압을 피해 태국으로 탈출해 유엔 난민으로 인정받았음에도 현지의 중국 비밀경찰에 체포돼 송환됐다. 지난해 12월 국제인권단체 ‘세이프가드 디펜더스’는 중국이 53개국에 비밀경찰서 102곳을 두고 있고, 한국에도 1곳이 있다고 밝혔다. 해당 장소로 의심받는 서울 한강변 중식당의 대표는 “한국에서 사망하거나 다친 중국인 10명의 귀국을 지원했을 뿐”이라고 했다. 이들 기관의 대외 명칭은 ‘해외 110 서비스 스테이션’. 110은 한국의 112와 같은 중국 공안 신고번호다. 2019년 5월 중국 관영언론은 저장성 경찰이 스페인 마드리드의 ‘서비스 스테이션’을 통해 6건의 범죄 관련자들을 체포하고, 용의자 2명이 자수하도록 설득했다고 보도했다. 요원들은 중국인 수배자를 잡아 저장성의 가족과 영상 통화를 하게 했다. 중국의 해외 공작 거점은 식당이나 편의점, 복덕방 등 일상적인 외양을 한 경우가 많다. 영화 ‘극한직업’에 나오는 ’수원왕갈비통닭’처럼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공안이 현지로 출국할 때도 경찰 신분을 밝히고 관광비자로 들어간다. 잘 보이는 곳에 숨는 게 전략이다. 전 FBI 중국 분석관 폴 무어는 중국의 공작 스타일을 ‘1000개의 모래알’이란 표현으로 설명했다. “어떤 해변의 모래가 공작 대상이라면 다른 국가들은 특수요원을 잠수함에 태워 보내 은밀히 모래를 담아오거나 인공위성 적외선 탐지장치 등을 이용해 모래 성분을 분석할 것이다. 중국은 다르다. 중국 시민 1000명에게 그 해변으로 하루 소풍을 다녀오게 한 뒤 옷을 털게 해 1000개의 모래알을 수집할 것이다.” 일종의 ‘인해전술’로 많은 사람에게 제한된 임무를 부여해 전체 그림을 그려낸다는 것이다. 중국 비밀경찰의 정체를 밝히려면 해외 각지에 정교하고 촘촘히 연결된 네트워크를 파악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해외로 간 범죄자는 하늘에 떠 있는 연과 같다.” 상하이 공안의 한 간부는 중국 관영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목표물이 세계 어디에 있든 중국에 남은 가족을 볼모로 잡고 있어 연에 달린 줄을 잡아당기듯 중국으로 끌어올 수 있다는 말이다. 중국은 2021년 4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약 23만 명이 형사처벌 절차를 밟기 위해 자발적으로 귀국했다고 밝혔다. 신광영 국제부 차장 neo@donga.com}
2017년 4월 5일 밤 미국 뉴저지의 단독주택 현관에 80대 중국인 남성이 구부정하게 섰다. 이 노인은 이틀 전 중국 공작원에 이끌려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이곳까지 왔다. 중국 공안은 뇌물수수 혐의를 받다가 미국 뉴저지로 숨어든 그의 아들을 쫓고 있었다. “아들을 만나서 계속 귀국을 안 하면 가족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받을지 전하라.” 노인은 아들을 유인하기 위한 ‘인간 미끼’였다. 공안은 아들의 거처를 몰라 인근 친척 집에 노인을 내려줬다. 현관문을 연 친척들은 중국에서 투병 중인 삼촌이 불쑥 와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연락을 받고 온 아들은 아버지를 차에 태워 30분 거리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요원의 차량이 조용히 뒤따랐다. 집 앞에는 아들의 신고로 미국 연방수사국(FBI) 차량이 와있었다. ‘목표물’과 대면접촉에 실패한 공작원들은 2단계 작전에 돌입했다. 다음 ‘미끼’는 캘리포니아에 사는 딸이었다. 요원들은 스탠포드대를 졸업하고 결혼해 살던 딸의 집과 직장에 찾아가 아버지를 비난하는 동영상을 촬영하라고 강요했다. 집요한 스토킹에 시달리던 딸은 시키는 대로 영상을 찍어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공유해야 했다. 전방위 압박에도 목표물이 귀국을 거부하자 요원들은 그의 뉴저지 집에 찾아가 메모를 붙였다. ‘중국으로 돌아와 10년 징역을 살면 가족들은 무사할 것이다.’ 중국의 이 같은 비밀경찰 행각은 미 법무부가 2020년 10월 중국 측 요원 6명을 기소하며 법원에 낸 공소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중국은 해외 도주 범죄자들을 잡는다는 명분으로 ‘여우 사냥(Fox Hunt)‘이라 불리는 초국가적 법집행을 해왔다. 중국 본토와 해외 정보망이 총동원되는데 세계 각지에 포진한 비밀경찰서가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고 미 정보당국과 국제인권단체들은 보고 있다.‘여우 사냥’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2014년 부패척결을 선포하며 본격화됐다. 미국 등 대부분의 서방국가들과 범죄인 인도조약을 맺지 않은 중국은 해외에서 중국인을 합법적으로 잡아올 방법이 별로 없다. 송환 대상 중에는 뇌물·횡령 뿐 아니라 중국공산당을 비판하거나 인권운동을 해온 인사가 많아 외교 마찰 소지도 크다. 중국 비밀경찰은 회유 협박 납치 등 탈법적 수단으로 반체제 인사를 ‘사냥’하는 게 주 임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중국의 유명 풍자만화가와 민주화 운동가가 2015년 탄압을 피해 태국으로 탈출해 유엔 난민으로 인정받았음에도 현지의 중국 비밀경찰에 체포돼 송환됐다.지난달 국제인권단체 ‘세이프가드 디펜더스’는 중국이 53개국에 비밀경찰서 102곳을 두고 있고, 한국에도 1곳이 있다고 밝혔다. 해당 장소로 의심받는 서울 한강변의 중식당 대표는 “한국에서 사망하거나 다친 중국인 10명의 귀국을 지원했을 뿐”이라고 했다. 이들 기관의 대외 명칭은 ‘해외 110 서비스 스테이션’. 110은 한국의 112와 같은 중국 공안 신고번호다. 2019년 5월 중국의 관영언론은 저장성 경찰이 스페인 마드리드의 ‘서비스 스테이션’을 통해 6건의 범죄 관련자들을 체포하고, 용의자 2명이 자수하도록 설득했다고 보도했다. 마드리드 요원들은 중국인 수배자를 데려와 앉힌 뒤 저장성에 있는 공안요원과 영상통화를 하게 했는데 영상 속 요원 옆에 그의 가족이 있었다. 중국의 해외공작 거점은 식당이나 편의점, 복덕방 등 일상적인 외양을 한 경우가 많다. 영화 ‘극한직업’에 나오는 수원왕갈비통닭처럼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공안이 현지로 출국할 때도 경찰 신분을 밝히고 관광비자로 들어간다. 잘 보이는 곳에 숨는 게 전략이다. 전 FBI 중국 분석관 폴 무어는 중국의 공작 스타일을 ‘1000개의 모래알’이란 표현으로 설명했다. “어떤 해변의 모래가 공작 대상이라면 다른 국가들은 특수요원을 잠수함에 태워 보내 은밀히 모래를 담아오거나 인공위성 적외선 탐지장치 등을 이용해 모래 성분을 분석하려 할 것이다. 중국은 다르다. 1000명의 중국 시민들을 그 해변으로 하루 소풍을 다녀오게 한 뒤 옷을 털게 해 1000개의 모래알을 수집할 것이다.” 일종의 ‘인해전술’로 많은 사람에게 제한된 임무를 부여해 전체 그림을 그려낸다는 것이다. 중국 비밀경찰의 정체를 밝히려면 해외 각지에 정교하고 촘촘히 연결된 네트워크를 파악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해외로 간 범죄자는 하늘에 떠있는 연과 같다.” 상하이 공안의 한 간부는 중국 관영언론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목표물이 세계 어디에 있든 중국에 남은 가족을 볼모로 잡고 있어 연에 달린 줄을 잡아당기듯 중국으로 끌어올 수 있다는 말이다. 중국은 2021년 4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약 23만 명이 형사처벌 절차를 밟기 위해 자발적으로 귀국했다고 밝혔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당신이 미야무라 상병입니까?”6·25전쟁 휴전 직후인 1953년 8월 20일 중공군 트럭에서 내린 히로시 미야무라 상병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키가 178cm인 미야무라는 45kg도 안 되는 야윈 몸을 일으켜 세웠다. 포로교환이 진행되던 비무장지대(DMZ)의 흙길을 가로질러 온 한 백인 장교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장교의 군복에 박힌 성조기(미국 국기)를 보자마자 미야무라는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2년 반 전인 1951년 4월 24일 밤, 서서히 커져오던 중국군의 꽹과리 소리를 미야무라는 잊지 못했다. 미 육군 소속으로 6·25전쟁에 참전한 그는 서울 근교의 전초기지를 지키고 있었다. 그날 밤 1000여 명의 중공군 부대는 바로 옆 분대를 초토화시킨 뒤 그의 분대를 포위해 오고 있었다. 분대장이던 미야무라는 전멸을 피하기 위해 분대원 15명을 모두 후퇴시켰다. 그러곤 혼자 남아 중공군을 향해 기관총을 쐈다. 총알이 바닥나자 총검을 들고 적진에 뛰어들었다.며칠 뒤 의식을 회복했을 때 미야무라는 중공군의 포로가 되어 있었다. 쓰러진 적군이 던진 수류탄에 맞아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28개월간 포로로 잡혀 있다 미국으로 귀환한 그는 한미 양국에서 최고무공훈장을 받았다. 훈장에는 ‘총알이 떨어지기 전까지 50명이 넘는 중공군을 사살했다’고 쓰여 있다.미야무라처럼 6·25전쟁에 참전한 일본계 미국인은 5600여 명에 달했다. 이 중 255명이 전사했다. 이들은 1900년대 초 미국으로 이주한 일본인들의 자손이었다. 1941년 12월 일본이 진주만 미 해군기지를 공격했을 때 미야무라는 열여섯 살이었다. 진주만 공습으로 일본이 미국의 적국이 되면서 미국 내 일본인들은 시련을 맞았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행정명령 9066호에 따라 일본계 이민자 12만여 명은 미 서부의 강제수용소에 갇혔다.미야무라는 열차에 실려 수용소로 보내지는 이웃들을 보며 입대를 결심했다. 미국을 위해 싸우는 충성스러운 미국인임을 증명하는 것은 당시 일본계 청년들이 공유한 생존 본능이었다. 이들은 미국에선 일본과 내통하는 스파이로 의심받고, 일본에선 조국의 배신자로 낙인찍혀 있었다. 일본계 중심으로 구성된 미 육군 100보병대대와 442연대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유럽으로 파병돼 나치 독일군에 맞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두 부대는 미 육군 역사상 가장 많은 무공훈장을 받았다. 1942년부터 3년간 운영된 일본인 강제수용소는 미국 각지에 흩어져 살던 일본인들이 ‘일본계 미국인’으로 새롭게 각성하며 연대하는 계기가 됐다. 미국 내 중국 이민자들 역시 ‘중국계 미국인’이란 정체성을 정립하게 된 분수령이 있다. 1982년 ‘빈센트 친 사건’이다. 당시 27세였던 빈센트는 결혼식을 앞두고 미국 디트로이트의 술집에서 파티를 하다 백인 남성들에게 살해됐다. 자동차공장 근로자였던 이들은 “너 같은 놈들 때문에 우리가 일자리를 잃었다”며 야구방망이로 빈센트의 머리를 집중 가격했다. 명백한 인종 증오 범죄였지만 주범은 집행유예 3년, 공범은 3000달러 벌금형에 그쳤다.재미 한인들은 1992년 로스앤젤레스(LA) 폭동을 기점으로 ‘한국계 미국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미 정부의 외면 속에 목숨과도 같은 상점들이 불타고 한인들이 죽어가자 각자도생해 온 교포들은 단결된 목소리의 필요성을 절감했다.일본인 강제수용소가 생긴 지 80년, 빈센트 사건 40주년, LA 폭동 30주년인 올해는 미국에서 아시안 증오 범죄가 극에 달한 한 해였다. 수많은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총에 맞거나 칼에 찔렸고, 지하철을 기다리다 뒤에서 떠밀려 선로로 떨어졌다.미국 사회에 조용히 순응해 온 아시안들은 ‘모범적 소수인종’인 동시에 ‘보이지 않는 이민자’로 비쳐왔다. 이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이 코로나19 이후 중국인을 분노의 표적으로 삼자 아시안들은 만만한 희생양이 됐다. 공교롭게도 증오 범죄의 잠재적 피해자라는 공통분모는 한국계, 중국계, 일본계 미국인들을 ‘아시아계 미국인’으로 결집시키고 있다. 지난해 발효된 아시안 증오범죄 방지법은 중국계·일본계 의원들이 공동 발의했고, 앤디 김 등 한국계 하원의원 4명이 동참해 만들어졌다.6·25전쟁에서 돌아온 미야무라는 지난달 29일 97세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모국의 식민통치 피해국에 와서 피를 흘렸던 것은 미국 내 이방인으로서 존재가치를 증명하려는, 미국을 향한 투쟁에 가까웠다. 당시 그가 느꼈을 불안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공포를 요즘 미국 내 아시안들은 여전히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신광영 국제부 차장 neo@donga.com}
“당신이 미야무라 상병입니까?”6·25전쟁 휴전 직후인 1953년 8월 20일 중공군 트럭에서 내린 히로시 미야무라 상병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키가 178cm인 미야무라는 45kg도 안 되는 야윈 몸을 일으켜 세웠다. 포로교환이 진행되던 비무장지대(DMZ)의 흙길을 가로질러 온 한 백인 장교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장교의 군복에 박힌 성조기(미국 국기)를 보자마자 미야무라는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2년 반 전인 1951년 4월 24일 밤, 서서히 커져오던 중국군의 꽹과리 소리를 미야무라는 잊지 못했다. 미 육군 소속으로 6·25전쟁에 참전한 그는 서울 근교의 전초기지를 지키고 있었다. 그날 밤 1000여 명의 중공군 부대는 바로 옆 분대를 초토화시킨 뒤 그의 분대를 포위해 오고 있었다. 분대장이던 미야무라는 전멸을 피하기 위해 분대원 15명을 모두 후퇴시켰다. 그러곤 혼자 남아 중공군을 향해 기관총을 쐈다. 총알이 바닥나자 총검을 들고 적진에 뛰어들었다.며칠 뒤 의식을 회복했을 때 미야무라는 중공군의 포로가 되어 있었다. 쓰러진 적군이 던진 수류탄에 맞아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28개월간 포로로 잡혀 있다 미국으로 귀환한 그는 한미 양국에서 최고무공훈장을 받았다. 훈장에는 ‘총알이 떨어지기 전까지 50명이 넘는 중공군을 사살했다’고 쓰여 있다.미야무라처럼 6·25전쟁에 참전한 일본계 미국인은 5600여 명에 달했다. 이 중 255명이 전사했다. 이들은 1900년대 초 미국으로 이주한 일본인들의 자손이었다. 1941년 12월 일본이 진주만 미 해군기지를 공격했을 때 미야무라는 열여섯 살이었다. 진주만 공습으로 일본이 미국의 적국이 되면서 미국 내 일본인들은 시련을 맞았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행정명령 9066호에 따라 일본계 이민자 12만여 명은 미 서부의 강제수용소에 갇혔다.미야무라는 열차에 실려 수용소로 보내지는 이웃들을 보며 입대를 결심했다. 미국을 위해 싸우는 충성스러운 미국인임을 증명하는 것은 당시 일본계 청년들이 공유한 생존 본능이었다. 이들은 미국에선 일본과 내통하는 스파이로 의심받고, 일본에선 조국의 배신자로 낙인찍혀 있었다. 일본계 중심으로 구성된 미 육군 100보병대대와 442연대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유럽으로 파병돼 나치 독일군에 맞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두 부대는 미 육군 역사상 가장 많은 무공훈장을 받았다. 1942년부터 3년간 운영된 일본인 강제수용소는 미국 각지에 흩어져 살던 일본인들이 ‘일본계 미국인’으로 새롭게 각성하며 연대하는 계기가 됐다. 미국 내 중국 이민자들 역시 ‘중국계 미국인’이란 정체성을 정립하게 된 분수령이 있다. 1982년 ‘빈센트 친 사건’이다. 당시 27세였던 빈센트는 결혼식을 앞두고 미국 디트로이트의 술집에서 파티를 하다 백인 남성들에게 살해됐다. 자동차공장 근로자였던 이들은 “너 같은 놈들 때문에 우리가 일자리를 잃었다”며 야구방망이로 빈센트의 머리를 집중 가격했다. 명백한 인종 증오 범죄였지만 주범은 집행유예 3년, 공범은 3000달러 벌금형에 그쳤다.재미 한인들은 1992년 로스앤젤레스(LA) 폭동을 기점으로 ‘한국계 미국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미 정부의 외면 속에 목숨과도 같은 상점들이 불타고 한인들이 죽어가자 각자도생해 온 교포들은 단결된 목소리의 필요성을 절감했다.일본인 강제수용소가 생긴 지 80년, 빈센트 사건 40주년, LA 폭동 30주년인 올해는 미국에서 아시안 증오 범죄가 극에 달한 한 해였다. 수많은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총에 맞거나 칼에 찔렸고, 지하철을 기다리다 뒤에서 떠밀려 선로로 떨어졌다.미국 사회에 조용히 순응해 온 아시안들은 ‘모범적 소수인종’인 동시에 ‘보이지 않는 이민자’로 비쳐왔다. 이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이 코로나19 이후 중국인을 분노의 표적으로 삼자 아시안들은 만만한 희생양이 됐다. 공교롭게도 증오 범죄의 잠재적 피해자라는 공통분모는 한국계, 중국계, 일본계 미국인들을 ‘아시아계 미국인’으로 결집시키고 있다. 지난해 발효된 아시안 증오범죄 방지법은 중국계·일본계 의원들이 공동 발의했고, 앤디 김 등 한국계 하원의원 4명이 동참해 만들어졌다.6·25전쟁에서 돌아온 미야무라는 지난달 29일 97세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모국의 식민통치 피해국에 와서 피를 흘렸던 것은 미국 내 이방인으로서 존재가치를 증명하려는, 미국을 향한 투쟁에 가까웠다. 당시 그가 느꼈을 불안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공포를 요즘 미국 내 아시안들은 여전히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