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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 탄핵 소추로 직무정지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판사 출신이지만 검사 인맥으로 보수 정부에 들어왔다. 대검 중앙수사부장 출신인 안대희 대법관 밑에서 재판연구관을 한 인연으로 박근혜 정부에서 국민권익위 부위원장을 지냈고 윤석열 대통령의 충암고 후배라는 인연으로 장관이 됐다. 이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경찰제도개선자문위원회를 만들어 경찰국 신설을 추진했다. 위원장인 황정근 변호사와 함께 경찰국 신설에 총대를 멘 검사 출신 정승윤 부산대 로스쿨 교수는 국민권익위 부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지금은 경찰제도발전위원회가 자문위를 대체해 경찰대 폐지 등을 추진하고 있다. 그 위원장도 검사 출신인 박인환 전 건국대 법대 교수다. ▷윤 대통령은 어제 경찰 국가수사본부장에 정순신 변호사를 임명했다. 경찰 수사의 최고위 자리에 검사 출신을 임명한 것이다. 정 변호사는 윤 대통령이 대검 중수 2과장을 할 때 대검 부대변인을 지냈고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을 할 때 인권감독관으로 같이 근무했다. 문재인 정부 때 검경 수사권 조정 과정에서 경찰 수사지휘권을 포기하는 대신 직접 수사권을 계속 갖겠다고 한 것은 당시 검찰총장이던 윤 대통령이다. 그러나 이제 국수본부장에 측근 검사 출신을 임명함으로써 수사지휘권을 넘어선 깨알 같은 수사 지시가 가능해진 셈이다. ▷윤 정부는 경찰국을 신설해 경찰 인사권과 징계권을 확보하더니 국가수사본부장에 검사 출신을 임명함으로써 경찰 장악의 마침표를 찍었다. 법무부 장관도 검찰총장도 대통령의 측근, 복귀할 가능성이 높은 행안부 장관도 국수본부장도 대통령의 측근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관할 범위가 남아 있긴 하지만 공수처가 무기력한 수사력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대통령 자신은 법으로 정해진 특별감찰관을 아예 임명할 생각도 않고 있으니 대한민국의 모든 수사는 대통령 측근들이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사는 그 위력을 잘 알면 알수록 더 두려운 것일까. 검찰의 경찰 수사지휘권은 법적으로 사라졌다. 더불어민주당 정권의 ‘검수완박’법으로 줄어든 검찰 직접 수사 영역을 대통령령을 통해 확대하긴 했으나 그런 확대에는 한계가 있다. 물론 검찰이 영장청구권을 독점하는 한 영장 청구가 필요한 정도의 중요 수사를 경찰이 검찰 눈을 피해 하기는 어렵다. 그렇다 하더라도 검찰이 직접 수사하지도 못하고 지휘하지도 못하는 큰 공백이 생긴 것은 오랫동안 검찰을 통해 모든 수사를 장악했던 정권에는 공포일 수도 있겠다. 그렇게 보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경찰을 장악하려고 하는 정권의 노력이 이해되지 않는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은행은 공공재인가. 공공성을 엄밀히 적용하면 경제 행위는 가족 단위를 벗어나는 순간 다 공공성을 지닌다. 그래서 공공성을 지닌다고 다 공공재라고 하지 않는다. 그 공급이 시장 메커니즘에 의존하지 않는 것을 특별히 공공재라고 한다. 군대 경찰 사법 등의 서비스는 국가에 의해 제공되니 공공재다. 우리나라는 전기와 가스마저도 공기업이 제공하지만 은행은 공기업조차도 아니다. 은행은 오래되고 강력한 사적(私的) 기원을 갖고 있다. 사채업이 은행의 원형이다. 자본주의의 발상지인 영국에서 은행이 민간 소유인 것은 물론이고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마저 민간 소유다. 미국도 연방정부가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을 임명하긴 하지만 Fed를 구성하는 12개 연방준비은행은 민간 소유다. 우리나라 한국은행만 무자본 특수법인으로 별종인데 민간 소유가 아니어서 독립성이 부족하다. 은행이 과점 체제라는 말은 과연 그런지도 의문이고 언급한 취지가 현실적이지도 않다. 외환위기 이후 은행의 경쟁력을 위해 대형화가 필요하다면서 합병을 유도해 과거보다 더한 과점 상태를 만든 것은 정부다. 우리나라는 NH농협은행을 포함해 전국적 대형 은행이 5개다. 우리나라와 규모가 비슷한 영국 프랑스 독일도 전국적 대형 은행은 그 정도뿐이다. 그래도 일단 과점이라고 해두자. 대형 은행은 설립 자본이 커 과점을 깨려면 산업자본의 금융계 진입이 필요한데 이를 막고 있는 것도 정부다. ‘은행 돈잔치’에 과점을 들먹이는 건 현 구조 내에서 바로잡아야 할 행태의 문제를 구조의 문제로 치환하고 언제 가능할지도 모르는 구조의 변화를 추구하는 격이다. 지난해 은행이 예대마진으로 떼돈을 번 건 과점 탓이라기보다는 정부 탓이다. 대출금리는 대개 변동금리이기 때문에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면 은행은 대출금리를 즉각 올린다. 반면 예금금리는 정기예금의 경우 1년 단위로 금리가 조정되는 고정금리다. 대출금리는 빠르게 올라가는 데 비해 예금금리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금리인상기에는 예대마진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정부는 지난해 7월부터 은행에 예대마진을 공시토록 의무화했다. 대출금리를 올렸으나 예금금리를 올리지 않아 큰 예대마진을 취하는 은행을 압박하기 위함이다. 그런 차에 레고랜드 파동으로 회사채가 소화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은행이 부실대출이 발생할 것에 대비해 예금금리를 높여 수신을 늘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돈이 은행으로만 몰려 제2금융권이 감당할 수도 없는 예금이자를 제시하며 수신 경쟁에 나섰다. 정부는 다시 은행에 예금금리를 낮추라고 압박했다. 그 뒤 회사채 사태가 가라앉으면서 은행은 예금금리를 다시 높일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되고 다시 예대마진이 벌어졌다. 그러지 않아도 벌어지던 예대마진을 더 벌어지게 한 것은 오락가락한 정부다. 정부는 이제 낮춰진 예금금리에 맞춰 대출금리를 내리도록 압박하고 있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예금금리도 대출금리도 다 올라야 정상이다. 그런데 어쩌다 낮춰진 예금금리에 맞춰 예대마진을 핑계로 대출금리를 낮추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시중에 유통되는 통화량이 줄지 않고 중앙은행이 기껏 기준금리를 올린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검사 출신이다. 1960년대 자본주의를 혐오해 은행가들을 납치하고 살해하던 극좌파들이나 쓸 법한 ‘은행의 약탈적 행위’ 같은 표현이 검사 출신의 입에서 나와 놀랐다. 검사 출신이 와서 금감원 퇴직자들이 각종 금융회사 임원이나 감사로 가는 전관예우 관행이나 뿌리뽑나 했더니 과거에는 개입하면서도 멋쩍어하던 대형 은행장 인사를 아예 노골적으로 하는 신(新)관치까지 선보이고 있다. 한국이 세계 7대 경제대국임에도 해외에서 큰 프로젝트를 할 때 자국 은행이 없어 외국은행 좋은 일만 시키고 있다. 고작 담보대출이나 하며 ‘땅 짚고 헤엄치기’식으로 수익을 올린 은행의 돈잔치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번 돈이 있으면 은행 경쟁력을 개선하는 데 써야 한다. 그러나 금감원장이 과격한 말로 은행을 금리인상의 고통을 끼치는 장본인처럼 몰아가서는 대출금리를 낮추라는 빗발치는 요구로 물가 잡기가 실패할 수 있다. 금감원장은 금융적으로 무엇이 더 중요한지 구별하고 그 비중에 맞게 시비를 가려도 가려야 할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의원내각제에서는 정부와 여당이 일체가 된다. 정부 내각은 여당의 일부다. 여당의 실세들이 장관이 된다. 다만 여기서의 일체는 실은 구조적으로 불안한 일체다. 주요 정책을 둘러싸고 총리와 장관들 사이에 이견이 발생했으나 그것이 해소되지 않으면 장관들은 사퇴로 항의를 표시한다. 여러 장관의 동시 사퇴는 때에 따라서는 내각을 붕괴시키고 총리의 교체를 가져온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당정은 총리를 중심으로 빈틈없이 단합할 것이 요구된다. 대통령제에서는 정부와 여당 사이에 칸막이가 있다. 대통령은 여당에 의지하지 않고 정부를 구성한다. 여당의 실세 몇몇이 정부의 정책에 반대한다고 해서 정부의 존립이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당정의 빈틈없는 단합은 요구되지 않는다. 다만 정부의 성공이 선거의 승패와 긴밀히 연결되기 때문에 정부와 여당은 협조할 강한 동기가 부여돼 있다. 대통령이 대통령제에 고유한 당정의 독립성을 훼손하고 정당 민주주의를 후퇴시킨다는 비난을 받더라도 리스크를 감수하고 당무에 개입하겠다고 하면 막을 방법은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무 개입을 하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식언(食言)으로 만들면서 대통령실을 내세워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특정 당 대표 후보를 비토했다. 3김 이후로 청와대 시절에도 본 적 없는 대통령을 용산 시대에 보고 있다. 대통령실은 김기현 의원과 ‘윤핵관’이 윤심(尹心) 타령을 할 때는 잠자코 있다가 안철수 의원이 윤안(尹安)연대를 거론하자 윤심을 당 대표 선거에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나왔다. 공정함은 고사하고 공정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명백한 불공정이다. 윤심 후보를 뽑기 위해 대놓고 당무에 개입하고 있으면서 당 대표 후보가 윤심에 기대려 한다고 해서 문제 삼는 건 논리적으로도 앞뒤가 안 맞는다. 그냥 까라니까 까는 수준이다. 대통령제가 당정 분리의 토대 위에 서 있다고 하지만 당 대표는 대통령과 화합해야 한다. 대통령실이 누군가를 ‘국정 운영의 적’이라고 부른다면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무시한 이준석 같은 이들이나 대상이 돼야지 대통령에 대한 존중을 계속 표시하는 이들까지 적으로 취급해서는 그렇지 않아도 극우화하는 옹색한 정권이 더 옹색해질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은 윤안연대는 대통령과 당 대표 후보는 같은 격(格)이 아니기 때문에 잘못됐다고도 한다. 대통령제에서 대통령과 당 대표는 같은 격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상하(上下)관계도 아니다. 둘의 차이는 격이 아니라 서 있는 위치의 차이다.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의 오너가 아니다. 그는 바지사장일 뿐이다. 바지사장이 과거의 3김들처럼 오너 행세하며 당에 존중 이상의 복종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실은 당원들끼리 윤핵관이라는 표현을 쓰는 건 옳지 않다며 안 의원을 비난했다. 그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있는 걸 있는 대로 말하는 것일 뿐이다. 대선에서 윤석열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 중에서는 윤핵관을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윤핵관만 정권의 성공을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들도 정권의 성공을 바라며 윤핵관을 비판하고 있다. 대선에서 윤석열을 찍고 싶지 않았지만 차마 이재명이 당선되는 꼴을 볼 수 없어서 윤석열을 찍은 유권자들이 없었으면 윤석열 정권은 태어날 수 없었다. 그 세력을 온전히 안철수가 대표하느냐 마느냐는 부차적인 문제다. 중요한 것은 대선 과정에서 보수세력과 중도세력의 연대를 파괴하려고 한 것이 이준석이었고 지금은 윤핵관이고 대통령실이라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소인배이고 그들의 의도는 실제로는 충정일지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간신배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안 의원이 국민의힘 대표를 잘할까. 여러 가지 이유로 의문이 든다. 그러나 이유는 다르지만 똑같은 의문이 김기현 의원에게도 들고 이미 사퇴한 권성동 의원과 나경원 전 의원에게도 든다. 다 그만그만한 인물들이다. 지금 국민의힘에 깃발을 높이 들고 ‘나를 따르라’고 할 수 있는 독보적 지도자는 없다. 결국 그만그만한 인물들의 연대로 당을 꾸려 가야 할 형편이다. 하지만 이런 형편은 발상을 달리해보면 친이(親李) 친박(親朴) 공천이 빚은 파동의 악몽에 시달렸던 보수 정당에는 공천 민주화를 통해 한걸음 전진할 수 있는 모처럼의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무속인 천공이 다시 세간의 관심이다. 지난해 1월 대선 과정에서 김건희 여사가 한 유튜브 매체와 주고받은 청와대 이전 관련 사담(私談)이 공개됐을 때 그가 등장했다. 대통령 관저가 육군참모총장 공관으로 정해졌다가 외교부 장관 공관으로 바뀌었는데 거기도 개입했다는 의혹이 지난해 12월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에 의해 제기됐다. 이번에는 그의 보좌관 출신으로 문재인 정부에서 국방부 대변인을 지낸 부승찬 씨가 ‘권력과 안보’라는 책을 내면서 같은 의혹을 제기했다. ▷지난해 4월 1일 미사일전략사령부 개편식에서의 일이라고 한다. 남영신 당시 육군총장에게서 “인수위 고위 관계자와 천공이 총장 공관을 둘러보고 갔다는 보고를 공관장 부사관에게 받았다”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반신반의해서 “천공이 눈에 띄는 모습인데 가능한 일이냐”고 반문하기까지 했으나 “부사관이 무슨 의도로 허위보고를 하겠느냐”는 답을 들었고, 며칠 후 전화해 “언론에 알려도 되느냐”고 물었을 땐 “현역인 부사관에 대해서만 비밀을 지켜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한다. ▷김 전 의원은 대통령실에 의해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고발돼 조사를 받고 있다. 부 씨가 왜 그때 실명의 전언이 등장하는 구체적 얘기를 하지 않고 책을 내기 하루 전에야 그 얘기를 하는 것일까. 대통령실은 이번에는 부 씨만이 아니라 보도한 기자들까지 고발했다. 중요한 건 전언보다는 물증인데 부 씨가 남 전 총장으로부터 얘기를 들은 문재인 정부 때 왜 물증까지 확보해 두지 않고 지금에 와서 전언으로만 주장하는 것일까. 여러 의문이 든다. ▷한 번 불거진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채 다시 불거지면서 반복되는 건 소모적이다. 대선 때부터 이어진 ‘무속 정권’ 의혹이 국정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이번에 확실히 정리해 두는 게 중요하다. 남 전 총장이 우선 부 씨의 주장을 확인해 줘야 한다. 총장까지 지낸 사람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뒤에 숨는 건 비겁하다. 남 전 총장이 자발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국회 국방위원회가 증인으로 소환해서라도 확인해야 한다. ▷대통령실은 수사까지 갈 것도 없다. 천공이 다녀갔다는 날의 공관이나 주변의 폐쇄회로(CC)TV 기록을 공개함으로써 간단히 사실 여부를 확인해줄 수 있다. 그래서 거짓임이 확인된다면 청담동 술자리류의 가짜 뉴스가 판치지 못하도록 하는 강력한 경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수사를 핑계로 CCTV 기록 공개를 거부한다면 오히려 대통령이 의심을 살 수 있다. 가짜 뉴스를 발본색원하는 계기가 되든 대통령의 실상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계기가 되든 분명한 결과가 나와야지 흐지부지돼서는 안 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동의보감에 따르면 남자의 결혼 적령기는 16세, 여자는 14세이다. 조선시대만 해도 조혼(早婚)이 성행하고 대가족으로 모여 살았기 때문에 조혼한 부모가 낳은 아이를 기준으로 보면 인생 육십일 때 조부모뿐만 아니라 증조부모까지 함께 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사람에 따라서는 80, 90세 이상 사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경우 고조부모하고도 같이 살았다는 얘기다. 그래서 넉넉잡아 기억에 남아 있을 수 있는 고조부모까지 제사를 지냈다. 그것이 4대 봉사(奉祀)다. ▷한국국학진흥원은 1일 ‘제례문화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라는 자료를 내고 조선시대에 4대 봉사가 원칙으로 명시된 적이 없다고 밝혔다. 1484년 성종 때 편찬된 법전인 경국대전에 따르면 “6품 이상의 관료는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3대까지 제사를 지내고, 7품 이하는 2대까지, 벼슬이 없는 평민은 부모 제사만을 지낸다”고만 명시돼 있다. 다만 이후로 ‘주자가례’를 신봉하는 주자학이 득세하면서 고조부모까지 제사를 지내는 4대 봉사가 양반집을 중심으로 확산됐다. ▷평민이 4대 봉사를 지키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그러나 조선 후기로 올수록 신분 질서가 무너지고 결정적으로 구한말 갑오경장에 의해 양반과 평민의 구분이 없어지자 양반의 평민화가 이뤄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평민의 양반화가 이뤄져 모두가 4대 봉사를 원칙으로 삼게 됐다. 실제 지키건 안 지키건 그랬다는 말이다. 가난한 집에 시도때도 없이 돌아오는 제삿날을 간소화한 것은 뜻밖에도 일제였다. 일제는 가정의례준칙을 둬 2대 봉사를 강제했다. ▷유교의 본산인 성균관은 광복 후 4대 봉사의 원칙을 재확인했다. 물론 그것을 엄격히 따를 수 있는 일반 가정은 얼마 되지 않았다. 많은 가정이 조부모까지만 제사를 지내거나 나중에는 그것도 어려워 부모 제사만 지내게 됐다. 성균관도 결국은 타협해 명절이나 부모 제사 때 4대까지 한꺼번에 모시는 간략한 방안을 제시했다. 그런데 이번에 국학진흥원에서 4대 봉사의 원칙 자체를 부정하고 나온 것이다. ▷국학진흥원은 “조혼 습속이 사라진 오늘날 고조부모 제사상을 차리는 건 시대착오적”이라고 강조했다. 과거에는 조혼 때문에 3대나 4대가 함께 살았지만 지금은 고령화(高齡化)로 3대가 공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수명 100세 시대가 되면 4대가 공존하는 것도 드물지 않아질 것이다. 그때의 예법은 또 어떨 것인가. 제사란 살아 있을 때 생활을 같이 하거나 따로 살아도 왕래하면서 쌓인 친밀감을 토대로 한다. 봉사는 몇 대가 맞느냐를 따지기보다는 기억에 남아 있는 조상을 추모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민주주의는 다수(plurality)가 아니라 과반(majority)의 지배다. 대통령부터 과반 득표자여야 한다. 이를 위해 미국 같은 연방제 국가가 아닌 이상 프랑스처럼 결선 투표를 하는 수밖에 없다. 만약 딱 한 가지만 개헌을 한다면 의원내각제냐 대통령 중임제냐의 선택이 아니라 대통령 결선 투표 도입부터 해야 한다. 대통령 중임제도 그 위에서라면 더 쉽게 논의할 수 있다. 그 다음으로 필요한 개혁은 의회에서 과반 지배의 확립이다. 의회에서는 정당 의석수 과반과 정당 지지율 과반이 괴리될 수 있어 그것이 문제다. 미국과 영국같이 양당제의 전통이 긴 국가에서는 100% 소선거구제에 대한 의문이 별로 나오지 않는다. 의석수의 과반이 대체로 지지율의 과반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지 않다. 이 괴리를 없애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100% 비례대표제의 실시다. 지역구를 아예 없애고 정당 지지만 밝혀서 그 지지율대로 의석을 나눠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나라는 극히 드물다. 정치는 어느 정당이 하느냐 못지않게 어느 정당의 누가 하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와 독일은 양당제가 아닌 국가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두 가지 방식을 보여준다. 프랑스는 대선과 마찬가지로 총선에서도 결선 투표를 실시한다. 다만 1, 2위 후보만 결선에 나서는 것은 아니고 일정한 득표율을 넘는 모든 후보가 결선 투표에 나서는 완화된 방식을 취한다. 결선 투표를 통해 당선된 사람은 지역구에서는 과반 지배를 관철했는지 모르지만 그들이 다 모였을 때 국가 전체로는 어느 정당이 과반이 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엄격한 결선 투표의 필요성이 대선보다 덜하다. 다만 대체로는 완화된 결선 투표로도 의석수에 상응하게 지지율을 모아주는 효과가 있다. 독일은 100% 비례대표제에 현실적으로 가장 근접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실시한다. 지역구별 소선거구제로 당선자를 뽑는 투표와 함께 정당 지지를 표시하는 투표를 한 다음에 당선자 수가 지지율에 미치지 못하는 정당에는 지지율에 비례하는 의석수만큼 의석을 나눠주는 것이다. 이 제도는 어느 정당의 당선자 수가 지지율에 따른 의석수를 넘어서는 만큼 의원 수가 늘어날 수 있어야 가능하다. 의석수를 가변적으로 늘릴 수만 있다면 의석수와 지지율의 괴리를 줄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대선 결선 투표와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과반의 지배를 위해 정치의 양극화를 지양하고 협력을 모색하게 하는 제도다. 특히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대선 결선 투표와 달리 개헌 없이도 도입할 수 있다. 다만 지난 총선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실패한 것은 의석수를 늘릴 방법을 마련해 놓지 않고 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당선자 수가 지지율에 따른 의석수를 넘는 정당은 위성정당을 창당할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정치 개혁에 중대선거구제를 위한 자리는 없다. 일본이 선진국 중에서는 유일하게 중대선거구제를 실시해 오다가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의 조합으로 바꿨다. 우리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전진하지는 못할망정 일본마저 버린 중대선거구제로 퇴행해서야 되겠는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당장 제대로 실시하기 어렵다면 일단 이전의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돌아가야 한다.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의석수와 지지율의 괴리를 좁히는 데 기여하는 바가 크지 못하지만 제3, 제4 정당에는 의미가 있다.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돌아가되 총선 때마다 지역구 의석을 10석씩이라도 줄여서 비례대표 의석을 100석까지 늘려야 한다. 사라지는 지역구 후보들의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에 이것도 쉽지는 않다. 하지만 한꺼번에 하지 않고 조금씩 하면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충분한 수의 비례대표 의석을 마련하는 것이 제대로 된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가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다만 우리는 정당 공천에 대한 불신이 크다. 특히 비례대표 공천에 대한 불신이 크다.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는 권역별로 비례대표를 뽑되 지지 정당의 후보들 중 누구를 선호하는지 투표한다. 비례대표 당선의 우선순위를 유권자 투표로 정하면 중대선거구제와 비슷해진다. 발상을 전환해 비례대표를 중대선거구제식으로 뽑는다면 사라지는 지역구의 후보를 출마시켜 기회를 주는 것과 동시에 공천에 대한 불신도 어느 정도 불식시킬 수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선거에 나선 김영훈 후보와 안병희 후보는 선거 1주일을 앞두고 불법 설문조사를 했느니 마느니 고소고발전을 벌였다. 양측은 이미 2년 전 변협 회장 선거 투표 당시의 폭행 사건까지 끌어들여 고소와 맞고소를 주고받은 상황이었다. 변협의 선거 규칙은 까다롭다. 그렇게 꽁꽁 묶어놓아 돈이 안 드는 선거를 만든 측면이 있다. 다만 변호사가 고소고발의 전문가다 보니 까다로운 선거 규칙을 역이용해 상대 후보를 고소고발하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한다. ▷김 후보가 16일 3909표(38.5%)를 얻어 3774표(37.2%)를 얻은 안 후보를 누르고 내달부터 임기가 시작되는 신임 회장으로 뽑혔다. 1.3%포인트의 표 차는 선거가 치열했음을 보여준다. 선거의 가장 큰 쟁점은 사설 법률플랫폼 로톡이었다. 현 집행부 노선을 계승한 김 후보는 로톡에 비판적인 반면 안 후보는 로톡에 개방적이다. 다만 김 후보는 협회 차원의 법률플랫폼이라는 대안을 제시하고 나왔다. ▷변협은 법무법인 세종의 설립자인 신영무 변호사를 끝으로 명망가 위주의 회장 시대에 작별을 고했다. 2013년 임기를 시작한 위철환 회장부터는 지방변호사회에서 조직 기반을 다져온 회장들이 당선됐다. 2021년 임기를 시작한 현 이종엽 회장에 이르러서는 이미 지방변호사회를 숫자로 장악한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변협에도 영향을 미쳐 당선을 좌우했다. 그러나 로톡을 둘러싼 찬반 논란은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 간에도 분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체로 업계에서 기반을 잡은 변호사는 로톡에 반대하고 기반을 잡지 못한 변호사는 찬성하는 쪽이다. ▷변협은 공익단체와 영리단체의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다. 그러나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한 해 1700명씩 쏟아져 들어오면서 업계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이것은 다른 말로 생계를 유지하기도 힘든 변호사가 점점 늘고 있음을 뜻한다. 변협 회장도 이들의 요구에 부응할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변협의 영리단체적 성격이 강화되고 있다. ▷변협은 인권이 위협받을 때는 인권의 수호자가 되고 헌법이 위협받을 때는 헌법의 수호자가 돼야 한다. 정당한 영리 추구가 인권과 헌법의 수호와 상치되는 건 아니지만 변협의 영리단체적 성격이 강화되고 변협 회장 선거가 회원의 영리만 앞세운 선거가 되면 인권과 헌법의 수호에 필요한 권위가 사라질 수 있다. 회장 선거가 치열한 것까지야 뭐라 하겠는가. 다만 한편으로는 경직된 선거 규칙을 완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상호 비방을 자제해 변협이 법 기술자들의 모임이 아니라 법 수호자들의 모임임을 보여줬으면 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여행 중 여인숙에 딸린 식당에서 식사하는 것이야 오래됐지만 집에 거주하면서 식당에 가서 식사하는 건 서양에서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지난해 개봉 영화 ‘딜리셔스: 프렌치 레스토랑의 시작’은 18세기 프랑스 귀족의 저택에서 일하던 요리사가 돼지가 먹는 감자로 디저트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귀족에 의해 부당한 멸시를 받고 쫓겨나는 일로 시작된다. 돈을 받고 음식을 판다는 생각을 못 해온 요리사가 프랑스 혁명기의 평민을 상대로 식당의 개념을 발견해 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이후 2가지 종류의 식당이 발전했다. 하나는 레스토랑이고 다른 하나는 캉틴(cantine)이다. 레스토랑은 음식을 제 가격을 받고 파는 곳인데 반해 캉틴은 무료로 주거나 제 가격보다 훨씬 싸게 판다는 차이가 있다. 캉틴은 수도원에 기원을 두고 있는데 19세기 중엽 이후 집산주의가 확산되면서 학교와 공장으로 번져갔다. 우리나라의 학생식당이나 구내식당은 학교나 기업의 보조를 받아 값싸게 먹을 수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캉틴에 속한다. ▷학생식당과 구내식당이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더니 이번에는 고물가로 다시 어려움에 처했다. 서울대 기숙사 학생식당을 운영하는 생활협동조합은 봄 학기부터 아침 식사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 식자재 가격 상승에 전기료 인상까지 겹치면서 식대를 웬만큼 올려서는 운영이 어렵기 때문이다. 광주테크노파크 구내식당은 지난해 2월 문을 닫은 후 1년 동안 12차례 입찰을 시도했지만 유찰됐다. 입찰가를 낮출 대로 낮춰도 응하는 사람이 없다. ▷NHN 페이코가 ‘페이코 모바일 식권 서비스’를 이용하는 기업 직원의 지난해 3분기 결제데이터를 권역별로 분석한 결과 서울 종로구의 평균 밥값이 비교적 싼 편인데도 8500원이다. 백반 가격이 대개 그 정도다. 가장 비싼 삼성역 인근은 1만5000원이고, 강남역 인근은 1만2000원이다. 가장 싼 구로구가 7000원이다. 그나마 학생식당의 밥값은 평균 5000원 정도이고 구내식당의 밥값은 병원이 6000원 정도다. ▷5000원도 많은 학생들에겐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그래서 아침에 한해 ‘1000원 학식’을 제공하는 대학들이 꽤 있다. 학생이 1000원, 농식품부가 1000원, 나머지는 학교가 부담한다. 아침에 긴 줄을 선다고 한다. 그러나 중요한 건 점심이다. 수업시간에 맞춰 집에서 이른 점심을 먹고 나오거나 바로 돌아가 뒤늦은 점심을 먹는 학생도 적지 않다. 그나마 5000원짜리 점심마저 그 가격으론 운영이 어려워 없어질 판이다. 학생도 학교도 학생식당도 어렵다. 정부가 더 많은 지원을 노력해야 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의원내각제 국가에서는 여야 모두 당의 리더가 있고 그들은 총리이거나 야당 지도자다. 대통령제 국가는 약간 다르다. 미국에는 중앙당이 없고 당 대표가 없다. 당의 리더는 여당의 경우 대통령이고 야당은 의회 원내(院內)대표다. 프랑스에는 중앙당이 있고 당 대표가 있다. 그러나 여당 대표는 대통령이다. 야당 대표는 대개 의회 원내대표를 겸한다. 우리나라는 프랑스처럼 중앙당이 있고 당 대표가 있지만 여당 대표는 대통령이 아니고 야당 대표는 국회 원내대표를 겸하지 않는다. 당 대표가 여당의 경우 대통령으로 국정을 이끌거나, 야당의 경우 원내에서 국정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지 않으면서 공천에만 몰두하는 나라는 의정 체제가 비교적 잘 알려진 나라 중에서는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당에서 당 대표는 대통령과 원내대표 사이에 낀 과잉의 존재다. 당 대표가 자신이 과잉이라는 주제 파악도 못하고 대통령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여길 때 여당은 늘 위기를 맞았다. 더불어민주당보다는 국민의힘 쪽에서 그런 일이 많았다. 박근혜 정권에서 김무성이 그랬고 윤석열 정권에서 이준석이 그랬다. 유승민은 원내대표 때부터 그런 전력을 보여줬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유승민의 태도가 당 대표라는 자리의 성격을 잘못 이해한 데서 온 것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윤핵관’의 당 대표 장악 시도가 정당화되는 것은 전혀 아니다. 당 대표는 본래 원외(院外)에서 중앙당을 대표하는 자리다. 원외의 당이 의미를 갖는 것은 당이 진성(眞性)당원을 중심으로 구성되고 그들이 내는 당비에 의해 당이 운영될 때다. 국민의힘 책임당원은 가짜 진성당원이다. 이들이 내는 당비는 고작 월 1000원이다. 당비는 다 모아도 정당 운영비의 1%밖에 기여하지 못한다. 정당 운영비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건 국가보조금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당에서 가짜 진성당원 중심으로 대표를 뽑고 그 대표가 공천을 좌우하는 방식이 민주주의를 밑바닥에서부터 위협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당 대표 선거를 앞두고 선거 룰을 개정해 이번 선거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그 자체가 반칙인 데다 개정된 룰은 일반 유권자의 의사를 30% 반영해온 데서 당원들의 의사를 100% 반영하는 쪽으로 퇴행했다. 반칙과 퇴행을 해서라도 당 대표 자리를 장악하겠다는 것이다. 대통령실이 출산율 제고를 위한 의견 표명일 뿐인 것을 트집 잡아 벌인 나경원에 대한 공격은 느닷없었다. 대통령의 참모들과 윤핵관은 대강 친윤(親尹)인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다. 확실한 자기들의 사람을 꽂아 위로부터의 일사불란한 공천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한국 정치의 개혁은 누구를 당 대표로 뽑느냐에 달려 있지 않고 당 대표라는 자리를 없애는 데 달려 있다. 당 대표는 지역구를 좌우하는 중앙당, 플랫폼 정당을 거부하는 폐쇄적 당원, 위로부터의 공천 같은 시대착오적 개념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자리다. 물론 현실적으로 당장 당 대표를 없애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국민의힘의 전진은 이런 시대착오적 개념을 떨쳐낼 당 대표를 뽑을 수 있느냐에 달렸다. 민주당은 당 대표란 자리에 붙어 있는 시대착오적 개념에 또 하나의 시대착오적 개념을 더했다. 사법처리 방탄이다. 검찰의 수사가 여전히 변죽만 울릴 뿐 정곡을 찌르지 못한다고 여기지만 이재명도 드러난 혐의를 믿을 만하게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이재명을 민주당 당선이 확실한 지역구에 출마시켜 불체포특권이 있는 국회의원을 만들더니 그것으로도 모자라 당 대표로 만들고 국회를 끊임없이 열어 이중 삼중의 방벽을 치고 있다. 자신의 사법처리를 막는 데 바쁜 사람이 현 국정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야 할 야당 대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 우리나라 양대 정당은 한 번도 진성당원 중심의 정당이었던 적이 없지만 더 이상 진성당원 중심의 정당이 모범도 아니다. 오늘날의 정당은 원외에서는 당원만이 아닌 일반 유권자와 두루 소통하면서 원내에서 입법 활동을 통해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 이것을 정당의 원내화라고 한다. 우리나라 정당이 원내화의 추세로부터 동떨어져 유독 후진적임을 보여주는 것이 독립된 당 대표라는 자리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경찰관은 휴무일 또는 근무시간 외에 2시간 이내로 복귀하기 어려운 지역으로 여행할 때는 소속 경찰기관 장에게 신고해야 한다는 조항이 경찰공무원 복무규정에 들어 있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이태원 참사 당일 밤 충북 제천에서 월악산 등반을 한 뒤 머물렀다는 캠핑장이 어딘지는 모른다. 다만 네이버 길찾기로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가장 가까운 그 지역 캠핑장을 찍어 봐도 자동차로 평일 오후 1시 기준 2시간 20분이 걸리는 것으로 나온다. ▷이 규정이 경찰 내에 더 이상 상급자가 없는 경찰청장에게 적용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규정의 취지로 봐서 경찰청장은 쉴 때도 비상 상황에 대비해 2시간 이내 복귀 지역에 있으려 노력해야 한다. 윤 청장은 자신의 관할 범위는 전국이므로 자신이 근무 지역을 벗어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청장이 업무를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는 것이야 누가 뭐라 하겠는가. 등산한다고 먼 곳까지 갔으니 말이 나오는 것이다. ▷윤 청장은 캠핑장에서 지인들과 음주를 하다 참사 발생 시점으로부터 45분이 지난 밤 11시경 참사 사실도 모른 채 잠이 들었고 이후 경찰청 상황실의 전화를 2차례나 놓친 뒤 다음 날 0시 14분에야 참사 사실을 알았다. 그는 그제 국회 이태원 참사 진상조사에서 음주를 추궁하는 의원에게 “청장도 주말 저녁이면 음주할 수 있다”고 답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요점은 음주를 했느냐 안 했느냐가 아니라 어느 정도나 마셨냐는 것이다. ▷국가공무원 복무규칙에는 공무원은 근무시간이 아닌 때도 항상 소재 파악이 가능하도록 연락체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돼 있다. 이 규정은 경찰청 상황실이 청장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다는 정도로는 부족하고 연락을 받으면 응답 가능한 상태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음주로 깊이 잠든 탓에 상식적으로 적절한 시간 범위 내에서 응답하지 못했다. 그 자체로 징계감인데도 그는 아직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지도 않았다. ▷미국 국립알코올남용중독연구소(NIAAA)에 따르면 미국 성인 남자를 기준으로 표준 음주 2잔 이내가 적절한 양이다. 표준 음주 1잔은 맥주로는 340cc로 캔 맥주 1개에 해당하고 양주로는 43cc로 21도 소주 1잔을 약간 넘는다. 2잔 초과는 과음이다. 과음 상태로라도 제때 응답을 했으면 모르겠으나 응답도 못 했으면서 음주할 권리 운운하는 걸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은 답답하다. 참사 사실을 먼저 안 대통령이 경찰청장을 찾았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으나 경찰청장은 쉬든 자든 대통령의 전화에 늘 즉시 응답 가능한 상태로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군대에서는 하계훈련과 동계훈련을 기본으로 한다. 혹서기와 혹한기에 대비한 훈련이다. 병사 1년 차 때는 고참을 따라다니며 배운다. 병사 2년 차 때는 신참을 데리고 다니며 가르친다. 이것이 한 사이클인데 이 사이클을 도는 데는 2년이 걸린다. 신병 교육을 받고 실제 군복무에 투입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을 고려하면 26개월 정도가 필요하다. 육군을 기준으로 2002년까지는 의무 복무 기간이 26개월이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24개월로 줄었다. 다시 이명박 정부 때인 2012년 21개월로 단축되고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 18개월, 즉 1년 6개월까지 내려왔다. 1년 6개월은 제대로 복무해도 한 사이클을 돌기에 부족하다. 문재인 정부 때 연대급 이상 기동 훈련이 중지되면서 그나마 그런 훈련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기동 훈련은 부대의 단위가 커질수록 의미가 있다. 대대급 기동 훈련 10번 하는 것보다는 연대급 기동 훈련 1번 하는 것이 낫고, 연대급 기동 훈련 10번 하는 것보다는 사단급 기동 훈련 1번 하는 것이 낫다. 나는 1980년대 군 복무를 하면서 육군 보병 대대 소속으로 근접항공지원(CAS) 요청 훈련을 받은 적이 있다. 근접 전투 상황에서 적이 있는 곳을 정찰하고 공군 조종사에게 폭격을 위한 좌표를 찍어 알려주는 훈련이다. 좌표를 잘못 찍어주거나 조종사가 잘못 알아들으면 적 쪽이 아니라 우리 쪽이 폭탄을 맞는다. 연락은 육군 내 통신망을 사용하지 않고 직접 공군 조종사와 하는 것이어서 상호 교신이 가능한 장비와 프로토콜에 대한 숙지가 필요하다. 그것도 연습을 해봐야 제대로 할 수 있다. 그 훈련을 통해 보병들끼리 움직이는 기동 훈련도 쉽지 않은데 제병(諸兵)협동훈련이나 육해공 합동훈련, 나아가 한미 연합훈련은 그 조율이 얼마나 복잡하고 연습은 또 얼마나 필요할지 대략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문 정부에서는 그런 훈련을 하지 않거나 지휘소 훈련(CPX)으로 대체했다. 훈련은 본래 CPX를 한 뒤 실제 병력이 참여하는 본훈련을 한다. 실제 해보면 CPX대로 되지 않는다. CPX만 한 것은 훈련하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 군이 그제 북한군 드론에 철저히 농락당했다. KA-1 경공격기 한 대는 드론 대응을 위해 이륙하다 땅에 처박혔다. 전투기나 헬기가 드론을 탐지했으면 즉시 실사격을 해야 하는데 사람도 아닌 기계를 놓고 경고사격을 하고 경고방송을 했다. 사격 능력은 100여 발을 쏘고도 한 발도 맞히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드론 4대가 다른 1대를 위해 스스로의 위치를 노출하면서 교란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것도 빨리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정보 분석이 늦었다. 드론이 서울 상공까지 진입했다. 사린 가스라도 뿌렸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아찔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군 드론이 5시간 우리 영공을 휘젓고 다니는 동안 보고만 받았을 뿐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지 않았다. 비상사태에 대한 감이 떨어진다. 군을 질책할 법도 한데 이번에는 5시간 동안 뻔히 보면서 뭘 했느냐고 하지는 않았다. 다만 엉뚱하게 드론 부대 창설을 앞당기겠다고 했다. 드론을 탐지하고 격추할 레이더와 대공포가 아니라 드론 부대 창설을 언급했다. 엉뚱함의 정도가 전날 북한군 드론 침공에 대한 대응에는 실패해 놓고 우리 군도 바로 드론을 북한 영공에 침투시켰다고 발표한 합참과 비슷하다. 군대를 오합지졸로 만든 장본인은 문 전 대통령이지만 그 탓을 해봐야 지금 소용이 없다. 윤 대통령은 문 정부에서 북한 드론에 대한 대응 훈련이 전무했다고 비판했다. 그럼 그는 취임 이후 군에 대응 훈련을 시켰는데도 이 모양이란 말인가. 이제는 모든 책임을 윤 대통령이 질 수밖에 없다. 이 정부는 내년에 F-35 추가 도입 예산을 확보했다고 자랑했지만 그런 것으로 안보가 보장되지 않는다. 훈련도 안 하면서 첨단 무기 도입만 그럭저럭 한 것이 문 정부다. 현실의 군대는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처럼 좋은 무기를 획득했다고 당연히 전투력이 좋아지는 게 아니다. 첨단 미사일을 쐈는데 거꾸로 날아가고 군용기를 띄웠는데 이륙하자마자 땅에 처박히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잃어버린 5년을 만회할 혹독한 훈련을 통해 군의 대비태세를 되찾는 것이 시급하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는 14일 “다른 검사로 코로나 양성 반응이 나왔지만 증상이 없는 사람들은 PCR 검사가 의무가 아니어서 무증상 감염자의 정확한 통계를 낼 수 없다”며 “오늘부터 무증상 감염자 통계를 내지 않는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가 중국 당국의 통계를 바탕으로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주 중국은 하루 평균 2650명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했다. 이는 지지난주의 하루 평균보다 88%가 감소한 수치다. ▷중국 정부가 무증상자까지도 PCR 검사를 의무화했던 제로 코로나 정책의 완화를 발표한 것은 7일이다. 존스홉킨스대학 집계에 따르면 중국은 국민의 92.6%가 최소한 1회 이상의 백신 접종을 받았다. 그러나 그 백신은 중국산 백신으로 세계보건기구(WHO)가 권장하는 mRNA 방식의 화이자나 모더나 백신이 아니어서 감염예방률이 크게 떨어진다. 이 상태에서의 방역 완화는 장기적으로는 몰라도 단기적으로 확진자의 급속한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블룸버그 등의 보도에 따르면 외부로 유출된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의 회의록 자료에 20일 하루 코로나 확진자가 3700만 명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12월에만 중국 인구의 18%에 이르는 2억4800만 명이 확진됐으며 베이징과 쓰촨성의 경우는 절반 이상이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그러나 중국 보건당국의 공식 집계에 20일 확진자는 고작 3049명이었다. ▷3700만 명 대 3049명은 차이가 너무 커서 둘 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중국 정부의 교묘한 집계 때문에 감염 실태를 숫자로 확인하기는 계속 어려울 듯하다. 다만 방역 완화 이후 베이징 등 대도시의 화장장이 24시간 돌아가고 그 앞에 늘어선 영구차의 긴 줄이 줄지 않는다는 목격담에서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가 늘었으며 확진자는 그보다 훨씬 더 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중국 내 약국에서 감기약이 동났다는 보도에 이어 중국인들이 일본 등 이웃나라까지 가서 감기약을 구매하고 있다는 보도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다. ▷존스홉킨스대학 집계에 따르면 인구 10만 명당 코로나 사망자 비율은 중국이 1.18명으로 압도적으로 적다. 주요 20개국 중에서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적은 일본이 43.24명이다. 한국은 61.92명으로 5번째로 적다. 코로나가 다 끝나지 않아 이 수치는 아직 잠정적이다. 게다가 중국 같은 나라가 보고한 통계는 신뢰하기 어려워 예년보다 늘어난 초과사망자의 숫자를 구해 수정해야 한다. 중국이 그때도 1등일지는 이제 장담하기 어려워졌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어느 프랑스 정치가는 각료직을 제안받았을 때 차관이 책임지는 조건이라야만 맡겠다고 했다. 프랑스에서는 왕이 아니라 장관이 책임진다. 장관이 책임지지 않는다면 끝내는 돌고 돌아 문지기가 책임지는 사태에 이른다. 이런 책임전가는 아리스토파네스에게 맞는 재료다.” 덴마크 철학자 키르케고르가 한 말이다. 키르케고르는 1813년에 태어나 1855년에 죽었다. 그의 생몰(生沒)연도로 보아 여기서의 왕은 제1제정(1804∼1824년)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나 제2제정기(1852∼1870년)의 나폴레옹 3세가 아니라 1830∼1848년, 이른바 7월 왕정기의 루이 필리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루이 필리프는 ‘프랑스의 왕’이 아니라 ‘프랑스인의 왕’으로 불렸다. 전체 인구의 0.8%만이 선거권을 가진 상황이긴 했지만 그는 신에 의해, 다시 말해 성직자의 축성(祝聖)에 의해 왕이 된 것이 아니라 프랑스인에 의해 선출된 왕이어서 그렇게 불렸다. 당시는 입헌군주제였다. 왕이 있었지만 정부는 유권자에게 책임을 져야 했다. 그 책임을 장관이 졌다. 여기서의 책임의 의미는 내각책임제의 책임과 같다. 법적인 잘못을 저질러서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혹은 정책적 실패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다. 내각책임제는 영어로 the parliamentary cabinet system이라고 한다. 의원내각제가 더 정확한 번역어이지만 우리는 내각책임제라는 말을 오히려 더 많이 쓴다. 내각책임제라는 말은 정치적 혹은 정책적 실패의 책임을 누가 어떻게 져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담긴 번역어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제(the presidential system)도 대통령책임제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통령은 내각과 달리 임기가 보장돼 있다. 내각은 다수당과 유권자 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언제든지 물러나야 하지만 대통령은 그렇지 않다. 대통령은 책임질 방법이 없다. 그래서 책임지는 것이 장관이다. 키르케고르가 말한 어느 프랑스 정치가가 누구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차관이 책임지는 조건으로 장관을 맡겠다는 말은 장관을 하지 않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장관이 차관이나 그 밑의 공무원들과 다른 것은 책임을 지기 때문이다. 대통령제에서 장관이 책임져야 하는데도 책임지지 않을 경우 그 책임을 묻는 제도가 의회의 해임 건의권이다. 대통령은 이 건의를 받아들여야 할 의무가 없다. 그래서 건의일 뿐이다. 다만 국민이 공분하는 일이 발생했는데도 담당 장관이 책임을 지지 않으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고 결국 돌고 돌아 끝내는 문지기가 책임지는 사태에 이른다. 이태원 참사의 경우에도 장관도 책임지지 않고 차관도 책임지지 않고 경찰청장도 책임지지 않고 서울경찰청장도 책임지지 않으니 결국 일종의 문지기인 일선의 경찰서장과 소방서장이 책임지는 사태에 이르렀다. 아리스토파네스는 고대 그리스의 희극(comedy) 작가다. 고대 그리스는 흔히 비극(tragedy)의 시대라고 보기 때문에 이 희극 작가는 특별하다. 아리스토파네스는 ‘구름’이란 작품을 통해 소크라테스를 조롱했다. 우리는 플라톤 덕분에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과 달랐다고 옳게 평가하고 있지만 당대의 그에게는 소크라테스 역시 말장난으로 먹고사는 소피스트 중 하나였을 뿐이다. 말장난, 좋게 말하면 수사법을 가르치는 대가로 먹고사는 게 소피스트들이었다. 여기서의 수사법은 주로 법정에서의 다툼에서 이기기 위한 기술이었다. 소피스트들에게 진상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상대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중요했다. 아리스토파네스가 조롱한 소피스트들은 오늘날로 치면 법률가들이다. 법률가들은 본능적으로 책임을 전가한다. 처음에는 예방 불능론을 들먹이더니 돌연 일선 책임론을 들고나왔다. 경찰이 대통령실로 향한 시위대를 막는 데 힘을 쓰다가 이태원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닐까, 경찰국이 신설돼 경찰이 민생보다 권력의 눈 밖에 나지 않는 데에 더 신경 쓴 것은 아닐까 하는 의혹은 자연스러운 것인데도 이 정권의 누구도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법은 일선의 책임은 무한하고 고위층으로 갈수록 책임을 묻기 어렵게 돼 있다. 이런 책임 전가야말로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에 딱 맞는 재료가 아닐까.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유튜브에서 쇼츠(shorts)라고 하는 짧은 동영상이 유행이다. 인스타그램의 짧은 동영상은 릴스(reels)라고 불린다. 그러나 약 15초 길이의 짧은 동영상은 틱톡이 원조다. 어른들은 젊은이들이 영상만 보려 하고 글을 읽으려 하지 않는다고 한숨을 쉬고 있지만 정작 젊은이들은 동영상도 긴 것은 참지 못하고 짧은 것을 선호한다. ▷틱톡은 인스타그램이 사진 중심일 때 유튜브처럼 동영상을 중심에 뒀다. 똑같이 동영상을 중심으로 해도 틱톡에서는 기존 유튜브에서 볼 수 없는, 챌린지라고 불리는 따라하기 현상이 종종 일어난다. 동영상이 짧고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기능을 앱 속에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틱톡을 세계 최초의 헥토콘(기업가치 1000억 달러 이상) 스타트업으로 만들었다. ▷다만 틱톡의 인기를 짧은 동영상이라는 형식에만 돌릴 수 없다. 틱톡에는 자극적인 콘텐츠가 많다. 어쩌면 형식이 내용을 규정한다고도 볼 수 있다. 짧기 때문에 자극적이지 않으면 관심을 끌 수가 없다. 최근에도 틱톡에서 약 700만 명의 팔로어를 가진 사람이 그랜드캐니언 협곡 아래로 골프 샷을 하면서 골프채까지 날려 보내는 영상을 올렸다가 당국의 조사를 받고 처벌됐다는 뉴스 보도가 있었다. ▷미국 인디애나주 법무부는 7일 틱톡을 운영하는 중국 바이트댄스를 상대로 틱톡의 콘텐츠들이 어린이와 청소년의 중독을 야기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감기약으로 치킨 튀기기, 유리조각 먹기, 아기 던지기 같은 영상이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좋은 영향을 줄 리가 없다. 펜실베이니아주의 한 10세 소녀는 지난해 12월 틱톡의 기절 동영상을 따라 챌린지하다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고 끝내 숨졌다. ▷미국의 더 큰 우려는 중국 정부가 미국 틱톡 사용자의 정보를 빼갈 수 있다는 데 있다. 조 바이든 정부의 크리스토퍼 레이 연방수사국(FBI) 국장은 지난달 미 하원 국토안보위원회에 “중국 정부가 수백만 틱톡 사용자의 개인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재작년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틱톡 다운로드 금지 행정명령은 법원에 의해 일단 제동이 걸렸다. 그러자 주정부가 독자적으로 나서고 아예 연방의회에서 법으로 규제할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틱톡을 둘러싸고 2차전이 벌어지는 모양새다. ▷미중 갈등의 불똥이 화웨이에 이어 틱톡으로 본격적으로 튀고 있다. 위챗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시진핑 디스카운트라고 할 만하다. 중국이 정치적으로 더 민주적이 돼도 부족할 판에 오히려 마오쩌둥의 1인 독재 시대로 회귀하고 있으니 그런 정부에 예속된 기업은 끊임없이 불신을 받을 수밖에 없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비행기가 전쟁에 처음 이용된 용도는 전투기가 아니라 폭격기로서다. 간단히 말해서 폭탄을 싣고 가서 폭탄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자체가 가공(可恐)할 만한 것이어서 제2차 세계대전까지만 해도 폭격기에는 적수가 없다고 여겼다. 일본 도쿄 대공습, 독일 드레스덴 폭격이 모두 폭격기에 의한 것이다. 원폭을 투하한 미국의 B-29 폭격기가 일본의 항복을 끌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B-29는 한국전쟁까지 널리 활용됐다. B-29가 한국전쟁 중 옛 소련의 전투기 미그-15에 공격을 당하자 1952년 미국이 B-29의 느린 속도를 개선해 개발한 것이 B-52다. ‘하늘을 나는 요새’라는 별명을 지닌 B-52는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국 폭격기의 중추를 이루고 있으며 저공으로 더 빨리, 더 오래 비행하는 ‘죽음의 백조’ B-1B가 이를 보완하고 있다. 소련은 B-29에 맞서 ‘곰’이라는 별명을 지닌 Tu-95를 개발했는데 이 역시 오늘날까지도 러시아의 전략자산으로 꼽힌다. ▷폭격기의 개발이 한동안 주춤해진 것은 레이더와 요격 미사일의 발전 때문이다. 스텔스 기술이 개발돼 그 장애를 뛰어넘게 해줬다. 스텔스 기술은 공격기에 처음 적용됐다. 2003년 이라크전에서 이라크의 방공망을 초토화시킨 F-117 나이트호크가 미국의 초기 스텔스기다. 스텔스 기술은 다음에 F-22 랩터와 그 보급 버전인 F-35 시리즈 등 전투기에 적용됐다. 그리고 다시 폭격기에 적용됐으니 그 첫 세대가 B-2 스피릿(Spirit)이고 이를 대체할 차세대가 2일 공개된 B-21 레이더(Raider)다.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에 맞서 각각 T-50 PAK FA, J-20이라는 스텔스 전투기를 개발했지만 그 성능은 여전히 의문스럽다. 이런 두 나라가 미국에 근접하지도 못한 분야가 있으니 바로 스텔스 폭격기다. B-21은 조종사 없이도 스스로 항로를 변경해 폭격이 가능하다고 한다. 러시아와 중국이 5세대 군용기인 스텔스기도 따라잡지 못하는 사이 미국은 벌써 6세대 군용기인 디지털 스텔스기로 나가고 있다. ▷미국은 내년에 B-21 초도비행을 한 뒤 2026년부터 100대를 실전 배치할 계획이다. 일찍 모습을 공개한 이유는 북한을 비롯해 러시아와 중국이 겁 좀 먹으라는 것이다. B-21이 F-22의 호위를 받아 하늘을 난다면 레이더상에서 B-21은 골프공 크기 정도로, F-22 전투기는 작은 구슬 크기 정도로 인식된다. 새들이 몇 마리 날아가나 보다 착각하는 사이 한 국가, 한 도시를 초토화시킬 폭탄이 뿌려지게 된다. ‘폭격기 무적(無敵)론’이 다시 나올 만하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지난달 30일 별세한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이 해외 언론에 첫 주목을 받을 당시의 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는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로 실각한 자오쯔양 공산당 총서기의 뒤를 이어 덩샤오핑이 그 자리에 앉힌 사람이다. 자오쯔양은 후야오방 전 총서기와 함께 정치에도 개혁이 필요하다는 쪽이었으나 덩샤오핑과 장쩌민은 정치와 경제를 분리하고 경제에서의 개혁만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한편이었다. ▷장쩌민은 덩샤오핑이 은퇴한 직후인 1993년 중국 국가주석에 올랐다. 그는 10년을 집권한 뒤 덩샤오핑이 정한 후진타오에게 물려주고 떠났다. 후진타오도 10년을 집권한 뒤 장쩌민이 정한 시진핑에게 물려주고 떠났다. 시진핑은 10년을 집권하고도 물러나지 않는다. 차기 지도자도 정해지지 않았다.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처럼 죽을 때까지 권력을 쥐겠다는 것이다. 현대 중국이라는 오페라가 1막 마오쩌둥, 2막 덩샤오핑, 3막 시진핑으로 구성된다면 장쩌민과 후진타오의 집권기는 2막과 3막 사이의 긴 간주 정도로 격하될 모양새다. ▷장쩌민에게는 총리로 주룽지가 있었고 후진타오에게는 원자바오, 시진핑에게는 리커창이 있었다. 경제전문가로서 으뜸은 주 총리다. 장쩌민-주룽지 2인조의 최대 업적은 덩샤오핑의 노선을 이어받아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성사시킨 것이다. 톈안먼 학살의 음습한 구름을 뚫고 중국의 공장 불빛이 세계를 향해 반짝거리기 시작한 것은 장쩌민 집권기라고 할 수 있다. ▷장쩌민은 마오쩌둥이나 덩샤오핑과 달리 서방 언론에 과감한 노출을 택한 첫 중국 지도자이지만 덩샤오핑이 1979년 처음 미국을 방문했을 때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찍은 사진만큼도 인상적인 사진을 남기지는 못했다. 그러나 후진타오나 시진핑에 비하면 훨씬 친근해 보이는 모습으로 언론에 등장했다. 1996년 필리핀 방문 중 피델 라모스 대통령과 함께 엘비스 프레슬리의 ‘러브 미 텐더’를 부르는 모습 등이 그런 예다. 그러나 그 뒤에는 티베트와 파룬궁에 대해 잔혹한 탄압도 불사하는 차가운 면이 숨겨져 있다. ▷중국에서 시진핑식 코로나 봉쇄에 반대하는 백지(白紙) 시위가 상하이에서 시작돼 전국으로 퍼지고 있다. 이 시위에 장쩌민이 소환되고 있다. 장쩌민은 톈안먼 사태 당시 상하이 당서기로 있으면서 베이징과 같은 유혈사태 없이 상하이의 시위를 해산시켰다.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을 영어로 외면서까지 시위대를 설득했다고 한다. 톈안먼 시위가 후야오방의 죽음을 추모하면서 커졌듯이 백지 시위도 시진핑보다는 장쩌민 시대가 나았다는 추모의 분위기 속에서 확산되고 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역사의 상공에 올라보자. 자잘한 물결은 사라지고 큰 줄기만 보일 정도로 높이 올라보자. 이승만 대통령은 유라시아 대륙이 공산주의로 다 붉게 물들어갈 때 대륙의 오른쪽 끝단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세계 최빈국 중 하나에서 산업화에 성공함으로써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이겼다. 민주화 이후의 대통령들은 뭘 했던가. 1993년 북한의 핵확산방지조약(NPT) 탈퇴는 김영삼 대통령 취임 한 달 만에 일어났다. 북한이 그동안 숨어서 해오던 핵 개발을 노골적으로 하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로부터 약 30년이 지난 지금 북한은 한국과 일본을 넘어 미국 본토에 가 닿을 수 있는 핵탄두와 그 운반체의 개발에 성공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등 6명의 대통령은 모두 북한의 위협 앞에서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헌법적 책무를 다 하는 데 실패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4년 미국 빌 클린턴 행정부가 영변 원자로에 대한 폭격을 계획했을 때 그에 반대함으로써 북핵에 대한 가장 중요한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 그 자신 나중에 북폭(北爆)에 반대한 사실을 후회하는 회고를 지나가듯 한 바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햇볕 정책으로 소련 공산권 붕괴 이후 경제적 곤궁에 처한 북한 세습정권을 살려냈다. 그 과정에서 퍼준 돈은 북한이 핵 개발을 지속하는 데 쓰였다. 지금 돌아보면 당치도 않는 노벨평화상을 그가 받은 대가로 국민이 얻게 된 것은 북한의 핵 위협이다. 북한은 김대중 집권기를 통해 곤궁에서 벗어난 뒤 노무현 집권 후반기인 2006년 제1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은 중국이 북한을 제어해 주리라는 헛된 기대에 매달려 9년 세월을 허비했다. 김정은이 핵무기 포기 의사가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동분서주한 문재인 대통령은 비단 북한이 보기에만 앙천대소(仰天大笑)하는 삶은 소대가리였을까. 한반도가 처한 위기는 옛 서독이 동독에 배치된 소련의 SS-20 미사일에 대응해 미국의 퍼싱-2 미사일을 배치하던 때의 위기와도 다르다. 우리는 당시 독일이나 지금의 유럽과 달리 유엔 안보리와 NPT 체제에서 특혜를 누리는 핵보유국인 옛 소련이나 러시아가 아니라 NPT에서 탈퇴한 북한에 발사버튼이 있는 핵 위협에 노출돼 있다. NPT 체제 밖에서 이스라엘은 중동 이슬람 국가들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핵무기를 개발하고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필사적으로 저지하고 있다. 적대국가인 인도와 파키스탄은 한쪽이 핵무기를 개발하자 다른 한쪽도 개발함으로써 상호 균형을 이뤘다. 한국만 북한의 핵위협 앞에서 존립을 미국에 맡겨 놓고 있다. 시간을 되돌려 1994년으로 돌아간다면 북한 영변 원자로를 폭격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폭격이 무위(無爲)로 돌아간 후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대화나 제재였으나 통하지 않았다. 대화는 사기였고 제재는 뒷문이 열려 있었다. 이제 와서 몰랐다는 듯이 말하면 안 된다.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 따라서 북한이 언젠가는 핵무기를 보유할 때를 상정한 대비책을 준비했어야 한다.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 민주화 이후 모든 문민(文民) 정부의 어리석음이다. 북한 핵미사일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은 아직 증명되지 않았지만 시간문제일 뿐이다. 한국과 미국의 이해를 분리시키는 진짜 핵무력 완성을 위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유엔 안보리와 NPT 체제가 우리를 지켜줄 수 없다면 이제라도 스스로 국가와 민간을 아우르는, 또 공개와 비밀을 아우르는 생존 프로젝트를 추진해야 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생존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미국은 비상상황으로 양해할 수밖에 없고 중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막지 못한 걸 후회할 것이다. 생존 프로젝트의 추진 자체가 미국과 중국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지렛대가 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가장 중요한 임무가 무엇인지 기억하기 위해 집무실에 서울 지도를 걸어두고 집무실이 있는 용산구에 핵폭탄이 떨어졌을 때의 모습을 매일 상상해 볼 필요가 있다. 용산구를 비롯해 인접 몇 개 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서울 전체가 방사능 낙진의 피해를 입는다. 대통령이라면, 설마 쏘겠냐는 폭탄 돌리기나 하지 말고 이 공포 자체를 끝내기 위해 부심(腐心)해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23일 열린 카타르 월드컵 독일-일본전. 독일 수비수 안토니오 뤼디거가 일본 공격수 아사노 다쿠마와 경합을 벌이며 볼을 향해 전력 질주하는 아사노 앞에 끼어들어 겅중겅중 뛰면서 골라인까지 막아서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어머니가 아프리카 시에라리온 출신인 뤼디거의 키는 190cm로 아사노보다 17cm나 크다. 아사노가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자신의 타조걸음을 못 쫓아온다고 조롱한 것인데 자칫 특정한 신체적 조건을 조롱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는 장면이었다. ▷독일 축구 국가대표 선수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뛰었던 디트마어 하만 씨는 그날 독일축구연맹 트위터에 이 장면에 대해 재미있어 하는 글들이 올라온 걸 보고 “수치스럽다”며 분노를 토했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상대를 깔보는 행동은 있어서는 안 된다. 오늘 밤 누구라도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뤼디거만이 아니다. 프로 정신에 흠결이 있다. 그렇게 하는 건 오만이다”는 글을 올렸다. ▷정작 일본인의 반응은 그리 격렬하지 않다. 일본어로 된 유튜브를 보면 “뤼디거는 원래 뛰는 방식이 저렇다” 혹은 “빨리 달리다가 속도를 줄이려면 저렇게 하는 수밖에 없다”고 아는 체하는 댓글이 적지 않게 달려 있고 그런 댓글에 대체로 가장 많은 ‘좋아요’ 반응이 달려 있다. 자신들이 조롱받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특이한 심리라고밖에 할 수 없다. ▷뤼디거는 그 자신이 과잉이다 싶을 정도로 인종차별 피해를 호소해온 선수다. 그는 이번 시즌부터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지만 첼시에서 뛰던 2019년 12월 토트넘 홋스퍼와의 경기에서 손흥민과 몸을 부딪친 적이 있다. 손흥민은 일어서면서 그의 복부를 발바닥으로 가격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퇴장 판정을 받았다. 그때 토트넘 팬들이 항의해 관중석에서 원숭이 울음소리를 내는 등 인종차별적 행위를 했다고 뤼디거가 주장했다. 당시 손흥민을 비판하는 데 앞장선 것이 손흥민의 활약상을 질시해온 일부 일본 축구팬들이다. 그러나 프리미어리그의 자체 조사 결과 원숭이 울음소리는 없었고 캔 던지기 같은 것이 조금 있었을 뿐으로 밝혀졌다. ▷뤼디거가 아사노를 조롱하는 듯한 장면을 연출한 것이 후반 19분경이다. 그러나 후반 38분경 바로 그 아사노가 뤼디거가 보는 앞에서 골키퍼와 골포스트 사이의 좁은 틈을 뚫고 지나가는 면도날 같은 슛으로 독일을 2 대 1로 격파하는 역전골을 만들었다. 독일은 경기에서만 진 것이 아니다. 매너에서도 졌다. 하만 씨가 지적했듯이 뤼디거만이 아니라 독일의 축구팬들은 그것을 더 통렬히 반성해야 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카타르 축구 월드컵을 앞두고 방탄소년단(BTS) 멤버 정국의 뉴스가 많이 나왔지만 흘려들어서인지 개막식에 BTS가 초청받은 줄 알았지 정국만 간 줄은 몰랐다. 21일 개막식을 보고서야 정국이 혼자 간 사실을 알았다. 막상 보고 나니 BTS가 다 있을 필요도 없었겠다 싶었다. 정국은 혼자서도 마이클 잭슨을 떠올리게 하는 존재감으로 메인무대를 가득 채웠다. ▷그러고 보니 BTS는 스타(Star)가 아니라 스타들(Stars)이다. 멤버 각각이 하나의 별이다. 비틀스에 폴 매카트니와 존 레넌 등의 별이 있듯이, 롤링스톤스에 믹 재거와 키스 리처즈 등의 별이 있듯이 그렇다. 별들이 한데 몰려 있어서 팬이 아닌 일반인은 각각의 별을 구별해 보지 못할 뿐이다. 팬들은 각각의 별이 가진 개성과 능력을 안다. 그래서 그들은 BTS의 팬일 뿐 아니라 각각 진 슈가 제이홉 RM 지민 뷔 정국의 팬이기도 하다. ▷막내 정국은 BTS의 메인보컬로서 곡의 첫 부분을 도맡아 부를 정도로 노래를 잘한다. 게다가 리드댄서이기도 하다. 날렵한 몸매에 숨겨진 강인한 근육을 바탕으로 정석대로 추는 춤이어서 동작 하나하나가 힘 있고 깔끔한 데다 안무의 포인트를 살리는 능력이 뛰어나 임팩트를 넣어야 할 때 정확히 넣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이 다 월드클래스이기 때문에 마이클 잭슨처럼 무대를 압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유럽을 기준으로 보면 그리스로부터 동쪽은 근동(Near East)이거나 중동(Middle East)이거나 극동(Far East)이거나 다 동양이다. 일본 한국 중국 등 극동에서는 올림픽이나 월드컵이 열린 게 여러 차례이지만 근동이나 중동에서는 올림픽이 열린 적이 없고 월드컵도 이번이 처음이다. 이 역사적인 대회의 개막식 메인무대에 카타르 자국 가수와 함께 주인공으로 선 사람은 서양인이 아니라 동양인이었고 그 동양인은 한국인이었다. ▷BTS는 과거의 한류와 다르다. 과거의 한류는 한국에서 유행한 뒤 중국 일본 등 인접국으로 퍼져 나가고 다시 중동 등 아시아와 서양에서 인기를 얻는 순으로 전파됐다. BTS는 그렇지 않다. BTS는 한국에서 인기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인기를 얻은 뒤 마침내 팝의 본고장인 미국에 깃발을 꽂고 그 뒤에 오히려 한국으로 역류해 기성세대에게까지도 널리 알려졌다. BTS는 에드워드 사이드 식 오리엔탈리즘의 한계를 뛰어넘은 현상이다. 정국은 한국인이어서도 아니고 동양인이어서도 아니고 세계인이 사랑하는 가수여서 노래하고 춤췄다. 그것이 감격스러웠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윤석열 대통령은 이태원 압사 사고 발생을 경찰청장이나 서울청장보다 훨씬 먼저 알았다. 그러나 대통령이 경찰청장이나 서울청장을 찾아 전화했다는 얘기는 없다. 관련 부처에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고 했다는 상투적인 발표가 있었을 뿐이다. 어쩌면 대통령이라도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을지 모른다. 용산서장은 걸어서 10분이면 갈 수 있는 길을 굳이 차를 타고 가겠다고 고집하면서 1시간 넘게 허비했다. 분노가 치밀지만 그가 10분 만에 도착했다고 해도 별로 달라질 건 없어 보인다. 소방관들도 현장에 접근하는 데 애를 먹었으며 현장에 들어가서도 사망자를 빼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이번 사고도 사고가 터진 후의 대처보다 사고 우려 신고가 들어왔을 때의 대처가 중요했다. 윤 대통령이 “경찰은 왜 4시간 동안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나”고 격앙한 것도 그 점을 지적한 것이다. 하지만 현장은 이선(二線)에서 일선(一線)을 문책하는 일만 해온 검사 출신의 대통령이 상상한 것처럼 단순했을 것 같지 않다. 사고 발생 전까지 11건의 112 신고가 접수됐다. 경찰은 4건에 대해 출동하는 조치를 취했고 나머지는 전화 상담 후 종결했다. 유사한 신고들에 대해 4건만 출동했다는 걸 문제 삼기보다는 1건이라도 제대로 확인을 했는지가 중요하다. 이미 사고 당일 배치된 정도의 경찰력으로는 인파를 뚫고 신고 내용을 확인하러 가는 일조차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보이는 곳이 다 인파이다 보니 인파에 대한 감각이 무디어졌을 수 있다. 결국 이 사고는 선제적인 예방 조치가 결정적인 변수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골목길 일방통행이나 지하철의 무정차 통과와 같은 간단한 조치만으로도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용산서 정보과에서 사전에 어떤 내용의 보고를 올렸으며 상부에서 어떻게 처리했는지가 수사의 핵심이 돼야 한다. 그럼에도 이번 사고는 단지 범죄 혐의 차원에서만 인과관계를 따질 수준을 넘어서는 참사다. 무려 158명이 죽었다. 부상자도 198명이다. 수사를 넘어서는 진상조사가 필요하다. 윤 대통령 부부는 사고 직후 한남동 관저로 들어갔다. 그동안 윤 대통령이 서초동 자택에서 용산 대통령실로 출퇴근하면서 서초·용산경찰서 직원들이 초과 근무에 시달렸고 용산서 직원들은 앞으로도 한동안은 초과 근무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 이전으로 서울에서 가장 조용한 경찰서 중 하나였던 용산서가 가장 바쁜 경찰서 중 하나가 됐다. 대통령이 드나들 때 경계를 해야 하고 시위대도 막아야 한다. 용산서장이 올 1월 부임할 때의 임무 목록에는 없던 일이다. 그는 사고가 터진 날도 시위대에 대응하느라 하루 종일 바빴다. 이태원을 관할에 둔 탓에 현 정부가 강조하는 마약 수사에도 관심을 둬야 했다. 현 정부의 첫 총경급 인사는 8월에 있었다. 경찰국을 신설해 총경급까지 검토해 인사를 한 것은 민주화 이후 이 정부가 처음이다. 올 1월 부임했으나 7개월도 안 돼 보직이 바뀐 총경급이 적지 않았다. 대통령 자택을 관할하는 서초서장도 그중 하나다. 그러나 용산서장은 경무관 진급 1순위인 종로서장이 맡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됐는데도 그대로 뒀다. 개인이나 조직이 업무가 과중해지면 평소 제대로 하던 일도 못한다. 창의적으로 사고를 예방하는 일은 더욱더 못한다. 용산서에 임무가 늘어난 만큼 인력 보강이나 조직 강화가 이뤄졌는지, 용산서장의 유임이 용산서가 맡게 된 막중한 임무를 고려한 인사인지에 대한 진상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그것은 검사가 다루는 형법적 인과관계에는 들어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이상으로 중요한 인과관계다. 대통령이라면 그런 인과관계까지 보고 정무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대통령실 이전은 국가적 대사(大事)다. 대사란 아무리 신중히 결정해도 예상하지 못한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고, 예상했더라도 충분히 대처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음을 뜻한다. 베이징의 하늘을 나는 나비의 날갯짓에 뉴욕에서 발생한 폭풍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다만 국정이란 건 늘 자원은 한정되고 임무는 막대해서 여유가 없는 것이므로 불요불급한 일에 함부로 손대서는 안 되고, 필요한 일도 하루아침에 뚝딱 결정해서는 안 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