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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22가 일종의 지뢰. 흑 A로 끼워 대마를 살리는 수를 없애는 것이다. 무심코 24의 곳에 받다가 흑 대마가 황천길로 간다. 커제 9단은 정확한 형세 판단 끝에 흑 23으로 대마를 살렸다. 백 24로 좌하 귀 흑이 죽은 것도 크지만 흑이 선수를 잡아 25, 27을 선점하면 유리하다는 것이다. 우세의 크기는 줄었지만 확실함은 더 커졌다. 백 34가 마지막으로 깔아놓은 지뢰. 백이 그냥 우변 말을 살리려고 하면 참고 1도처럼 흑의 철벽방어에 가로막힌다. 그러나 백 34가 있으면 다르다. 만약 흑이 손을 빼면 참고 2도 백 1, 3이 좋은 수순으로 패가 난다. 커제 9단은 흑 35로 가일수해 백이 묻어놓은 지뢰를 피했다.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김지석 9단은 백 12로 바짝 압박하며 흑 대마 공격에 나섰다. 하지만 흑이 15로 호구하자 그리 수습이 어려울 것 같지는 않다. 김 9단도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는다. 백 16이 흑의 눈 모양을 파괴하는 강수. 자세는 사납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다. 백 16 대신 대마 공격을 멈추고 참고 1도 백 1, 3으로 흑 3점을 잡는 것으로 타협하려 해도 흑 4, 6으로 상변에 침투하면 잡기가 쉽지 않다. 흑 19는 백이 A로 흑을 잡으면 사석 작전을 펼쳐 대마 삶에 도움을 주겠다는 뜻. 백은 이를 피해 20의 저공비행으로 대마 사냥 다걸기에 나섰다. 흑 21에 참고 2도 백 1, 3으로 잡으러 가면 흑 6으로 끼우는 묘수가 준비돼 있다.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흑이 상변 백 말을 꿀꺽 삼키자 승부의 향방은 단순해졌다. 하변 흑 대마를 잡으면 백 승, 못 잡으면 흑 승이다. 백 102에서 백의 살기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모양이니 행마니 필요 없고 오직 흑의 눈 모양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흑 103은 필수. 이를 소홀히 하면 참고 1도처럼 흑 대마가 끊긴다. 흑 109는 좀처럼 생각하기 힘든 수로 커제 9단의 실력을 보여준다. 보통 참고 2도 흑 1에 두기 쉬운데 백 2가 아프다. 백 ‘가’가 선수여서 흑의 행마가 어려워지는 것. 흑 109는 백이 110으로 안형을 없앨 때 흑 111로 힘차게 밀어 좌변에 터전을 마련하겠다는 뜻이다. 이 정도면 흑을 잡기는 힘들지 않을까. 하지만 김지석 9단의 생각은 달랐다.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하변 백 대마는 살았다. 하지만 흑도 ●로 막아 공격의 효과를 톡톡히 뽑았다. 백이 좀 분발해야 한다. 백은 당장 우변 백에 가일수를 해 살려야 한다. 하지만 그 순간 허술하기 짝이 없는 중앙 백이 곤경에 빠진다. 가장 쉬운 진행은 참고도처럼 둬 우변과 중앙 백을 연결시키는 것인데 흑은 중앙을 두텁게 막아두고 10으로 달려 상변 백을 위협하게 된다. 이 그림 역시 흑이 좋다. 김지석 9단은 우변 백부터 살리는 것은 미래가 없다고 보고, 과감하게 중앙 백을 보강하는 노선을 택했다. 백 94까지 중앙에 시원하게 고속도로가 뚫렸다. 백은 은근히 하변에서 흘러나온 흑 대마를 노리고 있다. 흑이 하변 대마를 보강하면 백도 우변 말을 살리려고 하는데, 커제 9단이 “무슨 소리”라며 흑 95로 우변을 잡아버렸다. 그렇다면 백이 하변 흑을 잡으러 가는 ‘피의 복수’가 불가피하다.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커제 9단은 흑 71로 젖히며 백 대마 포획을 선언했다. 이렇게 되면 대형 난투극이 불가피하다. 백 76은 수를 늘리면서 흑의 생각을 다시 한 번 떠보는 수. 이때 커제 9단의 마음이 바뀌었다. 더 이상 백 대마를 잡으러 가다가는 외려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음이 울린 것. 예를 들면 참고도 같은 진행이다. 백을 잡으려면 흑 1을 둬야 하는데 백 2가 참으로 묘한 수. 흑은 3으로 둘 수밖에 없는데 백 4의 급소를 찌를 때 흑이 난감해진다. 무난하게 수상전을 하면 백이 한 수 빠르다. 백 2로 젖혀놓은 것이 단단히 한몫한다. 흑은 77로 대마를 포기했다. 그 대신 백이 대마를 살릴 때 우변 백을 봉쇄하겠다는 것이고, 이 정도로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백은 82로 살았고 흑은 83을 얻었다. 백은 하변 대마를 살렸지만 우변 백도 살려야 하고 중앙 백도 탈출해야 한다. 흑이 일단 우세를 잡았다.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산수화가인 홍성모 작가가 강원 정선군 정암사 수마노탑의 국보(332호) 승격을 기념해 전시회를 갖는다. ‘수마노탑 국보 332호 승격 기념전’은 11일부터 16일까지 서울 인사아트센터에서, 12월18일~내년 1월 31일 정암사 문수전에서 열린다. 홍 작가는 “수마노탑을 보는 순간 꼭 한 번 그려보고 싶었다”며 “탑을 중심으로 열두 달의 풍경 변화를 2021년 신축년 칼렌다처럼 화폭에 담았다”고 말했다. 정암사는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가 창건(645년)하고 입적까지 한 절이다. 또 정암사는 자장율사가 당나라에 유학을 갔다 돌아오며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들여와 모신 사찰 중 한 곳이다. 수마노탑은 기단부터 상륜부까지 완전한 모습을 갖추고 있는 국내 유일의 모전석탑으로 분황사 모전석탑의 전통을 잘 계승하고 있는 고려시대 탑이다. 전북 부안 출신인 홍 작가는 현재 강원도 영월군예술창작스튜디오에서 머물며 영월의 문화재 및 동강, 서강, 영월 10경사계를 화폭에 담고 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백 ◎에 흑 59가 김지석 9단의 예상을 벗어난 수. 김 9단이 몰랐다기보다는 커제 9단이 이렇게 강하게 두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평화롭던 국면이 순식간에 사투의 지옥도로 변했다. 백 60은 절대수이고, 커제 9단은 흑 61로 젖혀 백 대마를 잡으려고 한다. 이 백 대마는 안에서는 두 집이 안 나고, 밖으로 탈출할 수도 없다. 그러면 죽었다는 얘기냐 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 흑은 이 대마를 꿀꺽 삼킬 수는 있으나 소화를 시키려면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그 과정에서 실수를 하면 대마를 안 잡는 것보다 못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흑 67까지 백이 완벽히 갇혔는데 김지석 9단은 70까지 두어놓고 “진짜 잡으러 올래”라고 묻는다. 참고도처럼 흑 1로 뒷맛을 없앨 때 백이 살아가면 타협이다. 하지만 커제 9단이 애써 사지로 몰아넣은 백을 쉽게 풀어주려고 할까.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흑이 하변에서 자리를 잡았지만 주변 백이 두터워 아직 허약한 모습. 적극적인 기풍의 김지석 9단은 백 48로 즉각 공격에 나섰다. 백 54까지는 고수들의 내공을 엿볼 수 있는 행마. 흑 55가 중국 랭킹 1위 커제 9단의 번뜩이는 감각을 보여주는 수. 평범하게 참고 1도 흑 1, 3으로 연결하는 수와 비교하면 흑 ‘가’(실전 55)와 백 ‘나’의 교환이 이득임을 알 수 있다. 백 58은 김 9단이 벼르던 강수. 참고 2도 흑 1로 두면 백 2, 4로 우하 백 말을 확실히 살리면서 하변 흑의 근거를 빼았는다. 참고 2도가 안 된다면 흑은 A로 막는 정도일까. 그러나 여기서 김 9단이 미처 예측하지 못한 커제 9단의 강력한 반격이 등장했다.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신진서 9단과 커제 9단이 결승에서 만난 올해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는 커제 9단의 우승으로 끝났다. 신진서 9단은 이른바 ‘마우스 미스’로 1국을 허망하게 진 데 이어 2국에서도 중반까지 제법 앞서나가다가 막판 반 집 역전패를 당해 아쉬움을 남겼다. 백 ◎의 붙임에 바로 흑 A로 젖히면 패가 나는데, 흑은 팻감이 전무하다. 그래서 흑 37로 한발 물러선 것인데 대신 백 38의 젖힘이 힘차다. 백 42까지 씩씩하게 밖으로 진출할 수 있게 됐다. 흑 43으론 참고도 흑 1로 끊는 강수를 떠올릴 법하다. 하지만 백은 12까지 안에서 쉽게 살아버린다. 더구나 흑 귀는 당장은 아니라도 가일수가 필요한 모양이어서 흑이 얻은 것이 없다. 커제 9단은 흑 43으로 두텁게 호구하고 45로 하변에 선착해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좌변을 내줬지만 백 하변 진영을 깰 수 있다는 것이다.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우하 모양에서 백 28이 당연하면서도 유일한 수. 흑이 참고 1도 1로 뻗는 수를 겁낼 필요가 없다. 백 2, 4로 두면 ‘가’와 ‘나’가 맞보기다. 물론 축이 유리해야 한다. 간단한 수순인데 의외로 이걸 모르는 아마추어들이 많다. 백 30은 뒷맛을 만들겠다는 뜻. 백이 그냥 34로 두면 흑이 백 두 점을 축으로 잡아 깔끔하게 모양을 정리할 수 있다. 흑 35로 잡은 수로는 A로 호구해 중앙을 두텁게 하는 것도 좋다. 커제 9단은 귀에서 끝내기를 당하는 게 싫었던 것 같다. 우하 공방이 끝나자 김지석 9단은 백 36으로 우변 수습에 나섰다. 참고 2도 흑 1이면 패가 나는데 백 ‘다’의 절대 팻감이 있어 흑으로선 둘 수 없는 진행이다.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백 ◎는 김지석 9단의 적극적 기풍을 보여주는 수. 흑 17로 씌워갈 때 백 18의 3·3 침입은 응수타진. 백 ◎를 의식해 참고 1도 흑 1로 물러서는 것은 백 4까지를 선수로 당하는 것이 기분 나쁘다. 더구나 우변 백 한 점은 ‘가’로 붙여 타개하는 수단이 남아있다. 흑 19가 최고로 버티는 수. 백 20의 붙임은 알파고가 처음 선보인 수로 지금은 널리 애용되는 수법이다. 흑 23으로는 참고 2도 흑 1, 3으로 두면 가장 쉽다. 하지만 백 6까지 하변 백 세력이 커져 흑의 반면 운영이 어려워진다. 커제 9단은 흑 27까지 최강의 수순을 밟고 있다. 얼핏 보면 백이 끊겨 곤란한 것 같지만 이런 상황에서 꼭 기억해둬야 할 수법이 있다.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중국 랭킹 1위인 커제 9단은 세계대회 단골 우승 후보. 김지석 9단이 1회전에서 커제 9단을 만났다. 변화무쌍한 전투형인 김 9단은 커제 9단과의 역대 전적에서 7승 6패로 앞서고 있다. 신진서 9단이 3승 8패로 뒤지고 있는 것에 비하면 준수한 성적이다. 인공지능 등장 이후 포석 이론은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대표적인 것이 실전 흑 7로 붙여 백 8로 세워주는 것이다. 예전에는 8로 선 자세가 두텁다고 해서 흑 7을 기피했으나 요즘은 거리낌 없이 두고 있다. 흑 7을 두지 않으면 백이 참고 1도처럼 둔다. 참고 1도 백 2도 과거에는 흑을 튼튼하게 해준다고 해서 기피하던 수다. 백 16이 김 9단의 전투 기풍을 보여주는 수. 평범하게 둔다면 참고 2도도 있다.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드디어 기다리던 대결이 열린다. 2∼4일 열리는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결승 3번기에서 신진서 9단(20)과 커제 9단(23)이 맞붙는다. 한국 랭킹 1위인 신진서 9단과 중국 랭킹 1위인 커제 9단의 대결은 한국 바둑계 입장에선 2010년대 중국에 내줬던 주도권을 다시 찾아올 수 있는 기회다. 신 9단이 상대 전적에서 3승 8패로 뒤져 있지만 올해 57승 5패로 90% 이상의 승률을 올리며 절정의 기량을 보이고 있다. 이 대국에선 초반부터 밀린 이동훈 9단이 79로 하변을 지키며 버틴 상황에서 참고도 백 1(실전 80)이 흑의 약점을 정확히 찌른 급소. 백 3점을 내준 대신 백 25까지 봉쇄에 성공한 뒤 27을 선점하자 백의 우세가 확고해졌다(17의 곳은 흑 이음). 41·47·61·67=5, 44·58·64·69=18, 103=96. 190수 끝 흑 불계승.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올해는 한국전쟁 70주년으로 우리는 양국(한미)이 함께 겪었던 고난의 역사와 많은 남성과 여성의 희생을 영원히 기억해야 합니다.” 세계적 그룹 BTS가 한미 우호의 상징인 ‘밴플리트 상’을 받을 때 리더 RM(본명 김남준)이 밝힌 수상 소감이다. 제임스 밴플리트는 1950년 6·25전쟁 때 참전한 미8군사령관으로, 이 상은 미국 비영리단체 코리아소사이어티가 1995년부터 한미관계 증진에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에 수여한다. 이 평범한 소감에 중국 관영신문인 환추시보가 “‘양국이 겪었던 고난의 역사’라는 수상 소감에 중국 누리꾼들이 분노하고 있다”고 비난성 기사를 실으면서 논란이 일었다. 환추시보는 이후 ‘BTS는 중국 팬 필요 없다’는 한국 누리꾼 반응까지 기사화하면서 비난을 멈추질 않았다. 최근 무역과 동맹 문제로 미중 갈등이 심각해지자 중국은 최근 자국 내 이념적 단합을 위해 6·25전쟁을 들고나왔다. 6·25전쟁은 미국과 중국이 맞붙은 유일한 전쟁이며, 중국은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대항해 북한을 도움) 전쟁으로 부른다. 이런 상황에서 BTS의 발언같이 한미동맹을 강조하는 발언은 ‘싹부터 잘라야 할’ 것으로 여긴 것 같다. 중국은 최근 6·25전쟁을 ‘제국주의 침탈에 대항한 정의의 전쟁’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상대를 잘못 고른 건 분명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보도에서 “한국의 K팝 거인에게 싸움을 건 중국이 패배했다. 이길 수 없는 상대를 골랐다”고 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두꺼운 팬층을 가진 글로벌 아이돌에게 중국이 낡은 이념의 폭격을 가한다면 중국의 이미지만 나빠진다는 WP의 기사 내용에 100% 공감한다. 이는 BTS가 그동안 쌓아온 탄탄한 실력과 인기가 바탕이 됐음은 물론이다. BTS 발언 논란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인 소국(小國) 대한민국이 걸어가야 할 길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2500년 전 중국 춘추시대 강대국은 진(晉)나라와 초(楚)나라였다. 기존의 강국인 진과 떠오르는 강국 초는 11번이나 전쟁을 벌일 정도로 앙숙이었다. 두 나라 사이에 끼어있던 정(鄭)나라는 늘 양쪽으로 얻어터지기 쉬운 신세였다. 하지만 정나라의 재상 정자산(鄭子産·미상∼기원전 522) 때는 달랐다. 사서에 많은 일화가 있지만 요약하자면 두 강대국에 할 말 다하면서도 무시당하지도, 억울한 불이익을 받지도 않았다. 공자가 ‘옛 사람의 유풍을 이어받아 백성을 사랑했다’고 극찬했던 명재상 자산의 외교적 성공은 ‘종진화초(從晉和楚)’라는 확고한 원칙과 내치의 성공에 따른 국력의 증가 덕이었다. 종진화초가 둘 다 친하게 지내자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진나라를 따르지만 초나라와도 화친한다는 것으로 선후를 분명히 했다. 정나라가 중원 국가이자 같은 문화권인 진나라와 동맹을 맺자 초나라가 정나라를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또 진나라에도 동맹을 근거로 합리적 요구를 해서 진나라가 양보했던 일화가 여러 번 등장한다.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가 최근 “반중(反中) 군사동맹에 동참해 중국이 보복하면 미국이 우리를 보호해줄 수 있겠나”라는 내용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문 특보의 큰 뜻은 모르겠지만 외교 문외한이 볼 때는 문 특보보다 2500년 전 자산의 원칙이 훨씬 더 외교답게 보인다. 6·25전쟁에 대한 중국의 태도는 적어도 역사와 군사 문제에선 중국과 대한민국이 함께할 수 없다는 점을 확실히 보여줬다. 문 특보의 말대로 대한민국이 정나라처럼 ‘존재적 딜레마’를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보복을 우려만 하고 있어야 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서정보 문화부장 suhchoi@donga.com}
백은 중앙을 완벽히 틀어막기 전에 먼저 62부터 하변 정리에 나섰다. 여기서 포인트는 백 70을 선수할 수 있다는 것. 백 70으로 허술하던 백 하변이 단단해졌다. 흑 71로는 A에 이어 한 집이라도 이득을 보고 싶지만 백에게 71의 곳을 단수당하면 어차피 나중에 가일수해야 한다. 백 72도 기분 좋은 선수. 흑이 막은 것과 비교할 때 그 차이가 크다. 이어 백 76으로 중앙을 막자 백 승리가 결정됐다. 큰 차이는 아니지만 흑이 덤을 낼 수 없는 형세다. 흑 87이 마지막 함정. 참고도 백 1로 덥석 잡았다간 변고가 생긴다. 흑 2가 교묘한 수. 백이 3으로 끝까지 버티면 흑 10까지 하변 백이 몰살한다. 타오신란 8단이 마지막 흑의 노림을 백 88로 비켜간 뒤 90으로 중앙을 지키자 이동훈 9단이 돌을 거뒀다. 헤아려보니 중앙 백 집은 30집이 훌쩍 넘는다.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28일 열린 2020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16강전에서 한국 선수 7명 중 신진서 9단 혼자만 승리를 거뒀다. 8강 중 나머지 6명은 커제 9단 등 중국 기사이고 일본은 이치리키 료 8단이 올랐다. 흑 ⊙가 맥점인 것은 분명하지만 핵심을 비껴간 수였다. 지금 상황에서 흑은 중앙 백 집을 견제했어야 했다. 참고도를 보자. 흑 ⊙처럼 멋 부릴 게 아니라 참고도 흑 1, 3을 아낌없이 선수한 뒤 5, 7로 파고들어야 했다. 이랬으면 승부의 향방을 알 수 없었다. 흑 61까지 바꿔치기가 이뤄졌다. 흑은 우변 백 다섯 점을 잡았지만 선수를 잡은 백이 중앙 집을 깔끔하게 정리하면 흑의 손해다. 무엇보다 변화의 여지가 줄어든 것이 백에겐 만족스럽다. 흑으로선 우변에 집착하다 순식간에 역전의 기회를 놓친 셈이다.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전보에서 백이 방심하는 바람에 형세가 많이 좁혀졌지만 백 ◎로 지켜 아직은 백이 유리하다. 흑 37, 39로 수를 줄여도 백 40으로 막는 수가 좋아 수상전은 백 승이다. 흑 41, 43은 치열한 승부수. 백의 후퇴를 종용하고 있다. 참고도 백 1로 이어 물러서면 흑 2로 하변 집을 최대한 크게 짓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백 7로 뚫으면 백이 여전히 앞선 형세다. 백 44로 반발해 큰 변화가 일어났다. 흑 45로 뚫어 서로 상대방의 집을 부수는 양상이다. 백은 굳이 실전처럼 두지 말고 참고도처럼 두는 게 더 쉽게 국면을 정리하는 길이었다. 실전은 변화의 여지가 많아져 계가하기가 복잡해졌다. 이때 흑 47의 맥점이 등장했다. 좌변 백 집을 지우기 위한 맥점인 것은 분명한데 과연 지금 그곳이 초점이었을까.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흑은 23, 25로 중앙 뒷맛을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흑 25는 선뜻 떠올리기 힘든 끼움. 평범하게 참고 1도 흑 1로 끊는 것이 자체로는 나쁘지 않지만 만족스럽지 않기에 살짝 비틀어 간 것이다. 하지만 백 30, 32로 수상전에서 흑이 역시 잡혔다. 참고 1도와 별반 차이가 없다. 더이상 싸울 곳이 없어진 흑은 일단 33으로 하변 집을 차지하며 장기전으로 태세를 전환했다. 이때 백 34가 안이했다. 참고 2도 백 1이었으면 승부가 더 빨리 끝났을 것이다. 형세를 낙관한 타오신란 8단이 평범한 수를 택하면서 차이가 갑자기 좁혀졌다. 백이 36을 차지해 아직 앞서 있지만 이젠 흑이 따라잡을 수 있는 거리다.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흑 ○의 격렬한 붙임에 백은 어떻게 응수해야 할까. 정답은 실전처럼 손을 빼는 것이다. 흑 ○에 응수하는 것 자체로 백이 걸려든다. 백은 상변 집이 크기 때문에 하변 흑 세력 일부만 지우면 된다. 백 8, 10은 멋진 연타. 참고 1도 흑 1로 받으면 백은 안에서 알뜰하게 살아버린다. 실전 흑 11은 백에게 참고 1도와 같은 리듬을 주지 않겠다는 궁여지책. 하지만 백은 역시 흑 11을 무시하고 백 14로 어깨를 짚으며 달아났다. 흑이 백을 포위하려면 실전 15, 17로 둔 뒤 참고 2도 흑 7로 두는 것인데, 이 역시 백이 간단하게 살아간다. 결국 백을 22까지 탈출시켜줄 수밖에 없었는데, 아까 백에게 외면당한 흑 ○와 11이 뭔가 역할을 해야 한다.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백 94로 평범하게 한 칸 뛰는 것은 느슨해 보인다. 하지만 흑 95로 백 석 점을 잡을 때 백 96으로 붙이는 수를 내다본 호수. 백 96을 당하면 백 104까지는 외길 수순. 흑은 꼼짝없이 끌려갈 수밖에 없다. 백은 석 점을 버린 대가로 기분 좋게 외곽을 봉쇄해 확실하게 우위를 잡았다. 더구나 선수를 뽑아 달려간 백 106은 백 세력을 넓히면서 하변 흑 세력을 줄이는 천하의 명당이다. 이제 중앙전이 시작됐는데, 다음 흑의 한 수가 어렵다. 참고도 흑 1을 선수하고 3으로 두는 것이 평범한 발상인데, 이 정도로는 흑이 역전을 바라보긴 어렵다. 이동훈 9단은 마지막 시간을 짜내 숙고한 끝에 흑 107로 붙이는 수를 들고 나왔다. 누구도 상상 못 했던 기발한 수인데, 이게 과연 무슨 뜻일까. 백은 어떻게 응수를 해야 할까. 103=96.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