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아

서영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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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100세 시대를 생각합니다.

sya@donga.com

취재분야

2025-01-05~2025-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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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우고 가르치는 ‘어른 놀이터’ 갈수록 절실… “공간 확보가 당면과제”[서영아의 100세 카페]

    “아침에 일어나 맨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오늘은 뭐하지’, ‘오늘 어디 가지’….” 은퇴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현실 고백 중 하나는 ‘갈 곳’이 없다는 거다. 익숙했던 출퇴근에서 해방된 즐거움은 잠시, 여행이건 등산이건 언제까지나 이어지긴 어렵다. 건강하려면 많이 움직이라는데, 현실은 ‘집콕’ 신세. 거실 소파에 앉아(혹은 누워) TV 리모컨이나 돌리다가 ‘삼식이’ 소리 듣기 십상이다. 이처럼 ‘갈 곳’은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시니어들에게도 여전한 고민이자 노년 고독 문제와도 밀접히 연관돼 있다. 알고 보면 이 고민은 세계적 현상이기도 하다.○어른들을 위한 학교많은 나라에서 19세기 말만 해도 40세이던 평균수명이 1970년대에는 두 배로 늘었다. 숫자 나이는 많지만 여전히 젊고 건강한 중노년층이 쏟아져 나왔다. 이들이 은퇴 후 무엇을 할지는 인류의 고민이 됐다. 유럽에서 가장 앞서 고령화가 시작된 프랑스(1865년에 고령화사회, 1979년에는 고령사회에 도달)가 이들에게 공부와 소통의 장을 제공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프랑스는 1970년대에 지자체와 대학이 나서 은퇴자를 위한 대학 U3A(University of 3rd Age)를 만들었다. 인생주기를 크게 만 24세 이하의 제1기(학령기), 25∼49세의 제2기(사회활동기), 50∼74세 제3기(은퇴 후), 75세 이상의 제4기(임종기)로 구분할 때, U3A는 보다 풍요로운 제3기를 위한 대학인 셈이다. 이 물결은 1980년대 영국으로 옮겨가면서 성격이 조금 달라졌다. 학교 운영 주체가 지자체에서 시민으로 바뀐 것. 은퇴 전후의 시니어들이 자율적으로 서로를 가르치고 교류하는 지역대학 개념이다. 정부 보조 없이 회비만으로 다양한 강좌가 이뤄지고 학교 운영과 강사는 모두 자원봉사자가 맡는다. 1982년 창립된 영국 U3A 홈페이지에는 ‘더 이상 풀타임으로 일하지 않는 40대 이상이 모여 즐겁게 배우는 기회와 동기를 제공하는 국제적인 자선운동’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Learn, Laugh, Live(배우자, 웃자, 인생을 즐기자)’를 슬로건으로 현재 영국 전역의 1057개 대학에서 43만 명이 공부 중이다. 회비는 연간 20파운드(약 3만1600원)인데, 공간 임차료나 비품비로 쓰인다. 캠퍼스는 커뮤니티 시설이나 교회, 도서관, 대학 강의실을 빌려 쓰기도 하고 개인의 집이 되기도 한다. 예술, 언어, 신체활동, 토론, 게임 등 가르칠 수 있는 강사가 있고 배우고 싶은 학생이 있으면 강좌가 개설된다. 이런 개념의 U3A는 호주 캐나다 등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전수경 한국노년교육학회 총무(남서울대 교수)는 “영국의 U3A는 자기 돕기(self help·自助)의 개념이 강하다. 당초 대학(university)이 형성될 때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다”고 일깨워준다. U3A 홍보 영상은 “회원의 91%가 새 친구를 만들었고 동료들로부터 든든한 지지를 받는다고 느낀다”고 전한다. 이렇게 U3A는 시니어들이 공부를 매개로 이웃과 소통하고 고독을 치유하며 자아실현을 도모하는 장소로 자리매김했다. 영국 정부는 2018년 1월 ‘고독은 국가가 나서서 대처해야 할 사회문제’라며 내각에 고독부(Ministry for Loneliness)를 신설했다. 외로움과 고립이 건강과 행복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방치하면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이 들어간다는 설명이 따라붙었다.○“매일 놀이터 가는 기분” 한국의 인생학교한국에도 U3A의 철학을 표방한 학교가 있다. 2013년 문을 연 ‘분당 아름다운 인생학교’가 그것. 설립자이자 첫 교장을 맡았던 백만기 씨는 ‘U3A’ 대신 ‘인생학교’란 이름을 붙이고 이런 학교 100개를 세우겠다는 평생 목표를 세웠다. 분당인생학교는 현재 약 150명의 회원이 25개 강좌를 운영하는데, 월 회비 1만 원을 내면 세 강좌까지 수강할 수 있다. 하루 5, 6개씩 강좌가 빼곡히 있는데, 이 중엔 무상급식 시설 ‘안나의 집’에서 배식 봉사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백 씨는 분당인생학교가 궤도에 오르자 2020년 교장직을 후임에게 넘기고 위례에 두 번째 인생학교를 세웠다. 이곳은 지난해 10월 100세 카페에 소개한 바 있는데 그 사이 괄목할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 강좌는 당시 10개에서 21개로 늘었고 수강생은 올해 봄학기 110명에서 여름 150명, 가을 203명으로 분기마다 40∼50명씩 불어나고 있다. 은퇴를 준비하는 40대에게도 문호를 개방했다. 5060세대가 주축을 이루는데 외국어, 경제금융 공부 등 학구적 열기가 가득하다고 한다. 최근 백 씨가 짧은 동영상을 하나 보내왔다. 군 출신 분당인생학교 회원이 촬영을 배운 뒤 영화입문학 강의를 열었는데 수강생들에게 ‘나에게 인생학교란’을 인터뷰한 결과물이다. 회원들은 저마다 “인생학교 없는 노후는 상상할 수 없다”거나 “인생학교는 나의 놀이터”라고 답하며 즐거워했다. 한국석유공사 사장을 지낸 서문규 현 분당인생학교 교장은 “은퇴 후 무위도식하던 내게 시니어들과 어울리는 바람직한 삶을 배우는 장이자 놀이터”라고 답했다. 이 밖에 “아침에 일어나서 갈 곳이 있고, 좋은 도반(道伴)들과 함께 인생 후반을 풍요롭게 보낼 수 있는 곳” “내 삶을 충만하게 채워주는 곳” 등의 답변도 있었다. 역시 가장 좋은 놀이는 공부이고,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타인과의 소통인 듯하다.○ 한국에는 왜 U3A가 확산되지 못하나지난달 11일 서울글로벌센터에서 열린 추계 한국노년교육학회에서는 분당과 위례인생학교의 현황 소개에 이어 ‘한국에는 왜 U3A가 확산되지 못하는가’를 놓고 토론이 있었다. 한국의 노년교육이 대부분 관에 의해 주도되면서 강의 위주의 수준에 멈춰 있고 참여자들도 수동적이라거나, 교육의 주체이자 대상인 시니어들이 좀더 적극적인 시민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등의 의견이 나왔다. 분당과 위례에서의 성공에 대해 “그 지역이니까 가능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지역사회의 수준이 반영됐다는 얘기다. 백 씨는 좀더 시급하고도 구체적인 문제점을 지적했다. 바로 공간 문제다. “자신의 지역에도 인생학교를 만들고 싶다며 많은 분들이 찾아오는데, 공간 마련의 어려움 때문에 좌초하는 경우가 많다. 공간만 확보된다면 시니어들 스스로 가르치고 배우는 시스템을 통해 자아실현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지자체도 예산을 내줄 필요가 없으니 부담이 가벼울 것”이란 얘기다. 그에 따르면 지자체나 공공기관, 구청, 도서관 등에는 시민들이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줄 여력이 있어 보이는 곳이 적지 않다. 학령인구 감소로 남아도는 교실이나 비어가는 지방대학, 나아가 전국에 산재한 경로당 6만여 곳 중 극히 일부라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수 있다. 백 씨는 “인생학교 모델은 출범은 어렵지만 조금만 기틀이 잡히면 자립할 수 있다”며 위례인생학교를 예로 들었다. 내년 말이면 현재 이용 중인 공간(위례스토리박스) 사용기한이 끝나지만 월 회비만으로 사무실 임차료와 관리비를 감당할 수 있다는 것. 출범 2년여 만에 자립에 성공한 것이다. 그는 이처럼 공공이 지역주민의 자발적인 교육사업이 자립할 수 있도록 1∼2년 정도 인큐베이팅 공간을 제공해주는 방안도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올해 한국의 고령자는 900만 명(17.5%)을 넘어섰고 연간 100만 명씩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매년 고령자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은퇴를 바라보는 4050세대를 더하면 그 숫자는 더 커진다. 급증하는 시니어들의 삶의 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우리 사회 전체의 행복도와 성숙도에도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2-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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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이 70에 이런 일자리 다시 없죠” 경비원 장두식 씨의 좌충우돌 일과 행복[서영아의 100세 카페]

    14일 찾은 경기 고양시 백마역 인근의 한 아파트 단지. 지하 탁구장 옆에 간판 없는 작은 방이 하나 자리하고 있다. 벽에는 플래카드와 자격증, 수료증이 빼곡하고 선반에는 아코디언, 하모니카 등이 쌓여 있다. 장두식 씨(69)가 운영하는 음악연습실이다. “창고로 쓰던 공간을 얻어 연습실로 사용합니다. 시끄러우니 상가 안에는 못 들어가죠.” 오후 5시 반이 되자 60~70대 여성 4명이 모여들었다. ‘하모니카 중급’ 수업시간이다. 장 씨가 하모니카 교실 강사, 부인 한상희 씨(67)는 학생 겸 총무 역할을 한다. 시시때때로 까르르 웃음이 터지는 게 여고 교실 같다. “지난주 어디까지 했죠? 다들 연습들은 해왔나요?” 코로나 탓에 2년 넘게 문을 닫았다가 연초에 다시 연 음악연습실은 동네사랑방 분위기다. 71세 동갑내기 동네친구 3명이 하모니카를 배우는 곳에 석 달 전 인근 지역에 사는 이모 씨(64)가 찾아와 합류했다. 장 강사에 대한 회원들의 자랑과 지지가 대단하다. “여기 나오면 활력이 느껴지고 너무 재밌어요. 선생님이 모르는 게 없으세요. 저 자격증들 좀 보세요. 저희도 처음에 깜짝 놀랐다니까요.” (수강생 양모 씨) 이렇게 주 1회 정기적으로 오는 수강생이 13명. 이들이 내는 회비로 운영비를 충당한다. “나는 행복한 경비원입니다” 수업은 매주 요일이 바뀐다. 장 씨가 인근 아파트 단지에서 경비원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근무가 12시간->24시간->휴무의 3일 단위로 돌아가니 비는 시간에 맞춰 수업을 잡는다. 장 씨는 경비 3년차다. 은퇴 후 경로당이나 복지관, 요양원 등을 돌며 실버 레크리에이션 강사로 일해 왔는데 코로나19 탓에 일이 뚝 끊겼다. 고육책으로 찾은 일자리가 경비였는데 의외로 좋은 직업이라고 느꼈다. 지난 3년간 여러 아파트를 옮겨다니다 7번째인 지금의 아파트에 정착했다. 7월에는 그간의 에피소드를 엮은 책 ‘나는 행복한 경비원입니다(생각나눔)’를 펴냈다. “일할 곳이 있고, 열심히 일하면 주변의 인정도 받고, 적지 않은 보수도 받으니 너무 좋습니다. 아파트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완근(完勤)하면 대체로 180~230만 원 정도 월급을 받아요. 이 나이에 어디 가서 그런 돈을 벌겠어요. 3일에 하루는 낮에 쉬니 내가 하고 싶은 일도 충분히 할 수 있고요. 평일 내내 일만 했다면 행복하지 않았을 텐데, 일과 휴식의 조화가 이뤄지니 딱 좋아요.”공동주택관리정보시스템(K-apt)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공동주택 관리종사자는 30만 명이 넘는다. 관리사무소 인력이 10만 800여 명(33%), 경비인력이 10만 5800여명(36%), 청소 미화 인력이 9만 4000여 명(31%)이다. 우리 일상 가까운 곳에 있지만 존재감을 크게 느끼지 못했던 경비원이 최근 몇 년간 부쩍 주목을 받았다. 주민의 갑질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비원 이야기가 사회에 충격을 던졌고 고령경비원의 현실을 다룬 책들이 잇달아 출간돼 사회적 조명을 받았다. 2020년에 나온 ‘임계장 이야기’(조정진 저·후마니타스)는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줄인 말인 임계장이 상징하듯 공기업 퇴직 후 경비로 살아가는 주인공의 애환이 그려졌다. 2021년에는 ‘나는 아파트 경비원입니다(최훈 저·정미소)가 나와 60대 이후 일하고자 하지만 일할 곳이 마땅치 않은 노년의 설움을 그려냈다. 두 책이 사회고발적인 성격을 살짝 가미한 자전적인 서적이라면 장 씨는 경비원 눈높이에서 아파트 단지 주변 이야기를 정리했다. 어찌보면 경비원 지침서 비슷하다.-제목에 굳이 ‘행복한’이란 수식어를 넣은 이유가 있을까요. “두 분 책을 모두 읽어봤어요. 잘 쓰셨더라구요. 하지만 저는 그 책들은 싹 잊어버리고 제 스타일로 썼어요. 저는 긍정적인 측면을 많이 생각합니다. 경비원 일이 제게 일하는 기쁨을 주거든요. 경비 일을 하면 규칙적인 생활이 가능하고 부지런해집니다. 좋은 컨디션을 유지해야 하니 생활에 절제가 생기고 사회활동을 하니 약간의 긴장감을 통해 활력도 얻습니다. 나가서 빗자루질을 하거나 쓰레기통을 물청소하면 운동이 되고요. 손주들 용돈을 척척 주니 며느리들도 좋아하죠.”내가 옛날에 본 그 할아버지 경비원? -속칭 ‘갑질’을 느낀 적은 없는지요. “사람사는 세상인데, 이런저런 일이 있겠지요. 6군데나 옮겨다니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경비는 3개월마다 근로계약서를 갱신합니다. 주민과 트러블이 생기면 무조건 잘린다고 봐야 해요. 그래서 출근할 때는 오장육부를 빼서 집에 두고 간다고 생각해야 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가짐입니다. 일터에서는 밝고 예의바르게 처신하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합니다. 주민들과도, 동료와도 절대 속 이야기는 하지 않습니다. 생각지도 않은 문제가 생기기 쉽거든요. 주민이건 동료건 제 쪽에서 바라는 게 없으니 서운할 것도 없지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그 또한 초연달관하지는 못한 듯하다. 한밤중에 초소에서 취침하려 누웠는데 택배 온 것 없느냐며 문을 두드리는 주민에게 “없는데요”라고 대답하니 그 주민은 “왜 신경질을 내느냐”고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신경질 안 냈다”고 설명하고는 며칠간을 그 주민이 그 일로 클레임을 걸까 조마조마해 했던 기억이 있다. “젊은 시절 본 아파트 경비는 구부정하고 쭈글쭈글한 할아버지들이었는데, 제가 그 일을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다만 과거엔 60대만 되도 영락없는 노인이었지만, 요즘 경비원들은 70대 후반이라도 젊어 보여요. 실제 직전에 일하던 단지의 경우 경비 32명 중 80%가 70대였습니다.” -정년이 따로 없다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마지노선은 대략 몇세일까요. “75세 정도 아닐까요. 일부 아파트 관리규약에 그렇게 정해놓은 곳이 있었어요. 다만 요즘 경기가 안 좋아서인지 경비 자리 하나 나면 10~20명씩 지원자가 몰려옵니다. 그렇다보니 기존에 일하던 사람들은 어떻게건 그 자리에서 버티려 하고요. 장기적으로는 연령대가 조금씩 낮아질 것같습니다.”60세 이후 딴 자격증만 15개 그가 말하는 60세 이전 삶은 파란만장 좌충우돌 그 자체였다. 부친이 일찍 사망하고 어렵게 성장하면서 내세울만한 학력을 갖지 못했다. 군대에서는 맹호부대에서 군인극장 간판을 그리다 제대했고 한때 방송국 미술부에서 일하기도 했다. 학습지 영업사원으로 뛰어다닌 적도 있고 노점상을 한 시절도 있었다. 한때는 일본을 오가며 미술 오퍼상을 하다가 망하기도 했다. 환갑 때까지는 캐피탈 회사에 근무했다. “여러 직업을 전전했고 작은 성취들도 있었지만 오래 지속되지 못했지요. 그때그때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지금와서 보면 왜 그렇게 갈팡질팡 살았는지 모르겠어요. 마지막 직장에서 퇴직한 뒤로는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고 생각했고, 노인들에게 기쁨을 주는 레크리에이션 강사 일을 시작했죠. 고양시 파주시 김포시의 경로당을 오가며 하루 3타임씩 주 5일을 레크리에이션 강사로 일했다. 수입은 교통비를 충당하는 정도였지만 찾아가면 기뻐하는 어르신들의 반응이 가장 큰 보상이었다. 강사 일을 제대로 하고 싶어 노래와 아코디언, 하모니카, 마술을 배웠고 레크레이션 지도사, 실버 운동 지도사, 웃음 치료 지도사, 스피치 지도사, 요양보호사 등 새로 딴 자격증이 하나둘 쌓여 15개가 넘었다. “제가 가진 자격증 중 운전면허증 빼고는 전부 60세 넘어 딴 겁니다. 대부분 민간자격증이구요.” 그는 많은 것을 종로 3가에서 배웠다고 한다. 60세에 낙원상가에서 ‘도레미’부터 시작해 하모니카와 아코디언을 배웠고 스피치학원, 마술 동호회 등 노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을 섭렵해갔다. “정식 학원이나 학교는 아니었지만 배우는 기쁨이 있었어요.” “꿈은 치매예방연구소장, 자신감 사관학교 교장” 2017년 첫 책 ‘노래하는 인생’을 낸 뒤 매년 한권꼴로 모두 6권을 냈다. 제목만 소개하자면 ‘언제나 청춘으로 살기’ ‘요양보호사’ ‘나의 인생노트’ ‘스피치를 재미있게 잘하기 위한 이런저런 상식 이야기’ ‘나는 행복한 경비원입니다’ 등이다. 모두 같은 출판사를 통해 자비출판했는데 거의 팔리지 않았다고 머리를 긁적인다. -앞으로도 계속 낼 계획인가요? “아, 그게…. 옹색하게 살다보니 집이 좁거든요. 출간 때마다 500부씩 찍는데 안 팔린 것 전부 받아와 집에 쌓아놓다보니 좀 곤란해지네요.“ 그에게 “죄송하지만 전에 주신 그 6권, 다 읽어보지 못했다”고 하자 “괜찮아요. 저도 잘 안보는데요, 하하”하며 웃는다. 책 열심히 써서 나오면 숙제 다 한 것같이 후련하긴 한데, 책 자체는 본인도 잘 안 읽는다는 얘기였다. -책날개에 실린 저자 소개를 보면 한국치매예방연구소 소장, 자신감 사관학교 교장 등의 직함이 있는데요. 이런 단체가 있습니까?“그건 제 꿈입니다. 언젠가는 그런 학교 설립해 교장이 되겠다는 꿈이죠. 사람이란 꿈이 있어야 살지요. 제 비슷한 나이의 분들에게도 뭔가를 하는데 주저하지 말라. 일단 자신감을 갖고 시작해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어차피 시간은 흘러갑니다. 아무 것도 안해도 흘러가고, 해도 흘러가는 게 인생이에요.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까요.” 100세 시대의 교육과 직업은 얼마 전 세줄짜리 간단한 자기소개를 메일로 보내온 그가 몇시간 뒤에는 회사로 전화를 해왔다. 봉사, 경비일, 유튜브, 책 출판 등을 얘기했다. 심지어 영미의 역사와 한국의 경제발전 등 인문학에도 관심이 많다고 했다. 그간 100세카페에 소개된 유형들과 너무 달라서 망설였다. 한다는 일이 너무 많고 그 방향에도 일관성이 없다고 느껴졌다. 보통은 70세쯤 되면 어느 정도 인생의 가닥이 잡히는데 그는 탐색기에 있는 10대 20대처럼 이것저것 건드리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어찌됐건 최근 냈다는 책을 한권 보내달라고 부탁하니 두시간 만에 자신이 낸 책 총 6권을 들고 회사로 달려오셨다. 깜짝 놀란 것은 그의 밝은 분위기. 70세 나이에 눈빛이 반짝반짝했다.‘100세 인생’의 저자 린다 그래튼 런던경영대학원 교수는 100세 시대에는 직업과 교육이 송두리째 달라진다고 일찌감치 예고했다. 30년 공부하고 30년 일하고 30년 노후를 즐기는 게 20세기 식 인생 주기였다면, 100세 시대에는 한 사람이 평생 서너 가지 직업을 갖게 되고, 그 사이사이에 이를 위한 재교육(평생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득 장 씨의 60세 이후 삶의 스타일이야말로 100세 시대에 어울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그때 필요한 일을 찾아 스스로 공부하고 변화하는 모습. 불우한 환경에서 많은 실패를 맛봤지만, 그런 좌절의 경험이 노후에는 오히려 눈빛 반짝이는 생명력이 된 건 아닐까. 그는 변화의 과정마다 상처받을까봐 몸을 사리지 않았다. 좀 부족하더라도 최선을 다하고 그 열매를 주변과 나누려 했다. 하모니카 수업을 통해 동네 중 노년층의 취미활동 공간을 만들고 본인이 잘 하는 것을 이웃에게 가르쳐주며 재미나게 사는 것. 나름 좋은 인생 아닐까.인생 후반, 더 중요해지는 ‘돈 건강 행복’풍요로운 100세 인생을 맞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돈과 건강, 그리고 행복입니다. 이 모든 것은 어느 날 갑자기 갖춰지는 게 아니고 30~40대부터 차근차근 조금씩 준비해나가야 합니다. ‘100세 카페’에서는 특히 인생 2막을 잘 맞이하기 위해 미리미리 준비해야 할 돈과 건강 행복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2-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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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갑 넘기고도 자격증 줄줄… 일하는 기쁨 가르치는 ‘인생 홍반장’[서영아의 100세 카페]

    14일 경기 고양시 백마역 인근의 한 아파트 단지. 지하 탁구장 한 편에 간판 없는 작은 방이 하나 있다. 벽에는 플래카드와 자격증들이 빼곡하고 선반에는 아코디언, 하모니카 등이 쌓여 있다. 장두식 씨(69)가 운영하는 음악연습실이다. “창고로 쓰던 공간을 얻어 연습실로 사용합니다. 시끄러우니 상가 안에는 못 들어가죠.” 오후 5시 30분이 되자 60, 70대 여성 4명이 모여들었다. ‘하모니카 중급’ 수업 시간이다. 장 씨가 강사, 부인 한상희 씨(67)는 학생 겸 총무 역할을 한다. 시시때때로 까르르 웃음이 터지는 게 여고 교실 같기도, 동네 사랑방 같기도 하다. “지난주 어디까지 했죠? 다들 연습들은 해왔나요?” 연습실은 코로나19 탓에 2년간 문을 닫았다가 연초에 다시 열었다. 71세 동갑내기 동네친구 3명이 하모니카를 배우던 팀에 석 달 전 근처에 사는 이모 씨(64)가 찾아와 합류했다. 강사에 대한 수강생들의 자랑과 지지가 대단하다. “너무 재밌어요. 선생님이 모르는 게 없으세요. 저 자격증들 보세요. 저희도 처음에 깜짝 놀랐다니까요.”(수강생 양모 씨) 이렇게 주 1회씩 정기적으로 오는 수강생이 13명. 이들이 내는 회비로 운영비를 충당한다.○“나는 행복한 경비원입니다”수업은 매주 요일이 바뀐다. 장 씨가 인근 아파트 단지에서 경비원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근무가 12시간→24시간→휴무의 3일 단위로 돌아가니 비는 시간에 맞춰 수업을 잡는다. 장 씨는 경비 3년 차다. 은퇴 후 경로당이나 복지관, 요양원 등을 돌며 실버 레크리에이션 강사로 일했는데 코로나19 탓에 일이 뚝 끊겼다. 고육책으로 찾은 일자리가 경비였는데, 의외로 좋은 직업이라고 느꼈다. 지난 3년간 여러 아파트를 옮겨 다니다 7번째인 지금의 아파트에 정착했다. 7월에는 그간의 에피소드를 엮어 ‘나는 행복한 경비원입니다’(생각나눔)를 펴냈다. “일할 곳이 있고, 열심히 일하면 인정도 받고, 적지 않은 보수도 받으니 너무 좋습니다. 완근(完勤)하면 200만 원 전후로 월급을 받아요. 이 나이에 어디 가서 그런 돈을 벌겠어요. 3일에 하루는 낮에 쉬니 하고 싶은 일도 충분히 할 수 있고요.” 공동주택관리정보시스템(K-apt)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공동주택 관리 종사자는 30만 명이 넘는다. 관리사무소 인력이 10만800여 명(33%), 경비 인력이 10만5800여 명(36%), 청소 미화 인력이 9만4000여 명(31%)이다. 가까이에 있지만 존재감을 크게 느끼지 못했던 경비원이 최근 부쩍 주목을 받고 있다. 주민의 갑질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경비원 이야기가 사회에 충격을 던졌고, 고령 경비원의 현실을 다룬 책들이 잇달아 나와 조명을 받았다. 2020년 나온 ‘임계장 이야기’(조정진·후마니타스)는 공기업 퇴직 후 경비가 된 작가가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애환을 그려냈고, 2021년 ‘나는 아파트 경비원입니다’(최훈·정미소)도 일하고 싶지만 일할 곳이 마땅치 않은 노년의 설움을 다뤘다. 두 책이 사회 고발적인 성격을 살짝 가미한 자전적인 것이라면 장 씨는 경비원 눈높이에서 주변 이야기를 정리했다. 어찌 보면 경비원 지침서 비슷하다. ―제목에 굳이 ‘행복한’이란 수식어를 넣은 이유는…. “경비원 일이 제게 일하는 기쁨을 주니까요. 일을 하니 규칙적인 생활이 가능하고 부지런해집니다. 생활에 절제가 생기고 약간의 긴장감을 통해 활력을 얻습니다. 비질이나 쓰레기통 세척은 운동이 되고요. 손주들 용돈을 척척 주니 며느리들도 좋아하죠.” ―속칭 ‘갑질’을 느낀 적은 없는지요. “경비는 3개월마다 근로계약서를 갱신합니다. 용역회사로부터는 주민과 트러블이 생기면 무조건 잘린다고 교육받죠. 그래서 출근할 때는 오장육부를 집에 두고 가야 해요.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많이 배웠는데, 가장 중요한 건 제 마음가짐입니다. 일터에서는 밝고 예의 바르게 처신하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합니다. 주민들과도, 동료와도 속 이야기는 하지 않아요. 제 쪽에서 바라는 게 없으니 서운한 것도 없지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그 또한 달관하지는 못한 듯하다. 그가 쓴 책에는 주민과 있었던 약간의 트러블이라도 혹시 말이 날까 봐 걱정하는 경비원의 일상이 담겨 있다. “젊은 시절 제 기억 속 경비는 구부정한 할아버지들이었는데, 제가 그 일을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다만 과거엔 60대만 되어도 영락없는 노인이지만 요즘 경비원들은 70대 후반이라도 젊어 보여요.”○ 60세 이후 딴 자격증만 15개그가 말하는 60세 이전 삶은 파란만장 좌충우돌 자체였다. 부친이 일찍 사망하고 어렵게 성장하면서 내세울 만한 학력을 갖지 못했다. 맹호부대에서 군인극장 간판을 그리다 제대했고, 한때 방송국 미술부에서 일하기도 했다. 학습지 영업사원으로 뛰어다닌 적도 있고, 노점상을 한 시절도 있다. 한때는 일본을 오가며 미술 오퍼상을 하다가 망하기도 했다. 환갑 때까지는 캐피털 회사에 근무했다. “그때그때 열심히 살았는데, 왜 그렇게 갈팡질팡했는지 모르겠어요. 마지막 직장에서 퇴직한 뒤 봉사하는 삶을 생각했고, 노인들에게 기쁨을 주는 실버 레크리에이션 강사 일을 택했습니다.” 고양시 파주시 김포시의 경로당들을 오가며 하루 3타임씩 주 5일을 레크리에이션 강사로 일했다. 수입은 교통비를 충당하는 정도였지만 찾아가면 기뻐하는 어르신들의 반응이 가장 큰 보상이었다. 강사 일을 제대로 하고 싶어 노래와 아코디언, 하모니카, 마술을 배웠고 레크리에이션 지도사, 실버 운동지도사, 웃음치료 지도사, 스피치 지도사, 요양보호사 등 자격증이 하나둘 쌓여 어느덧 15개가 넘었다. “운전면허증 빼고는 전부 60세 이후에 딴 거예요. 대부분 민간 자격증이죠.” 이 중 많은 것을 서울 종로3가에서 배웠다고 한다. 낙원상가에서 ‘도레미’부터 시작해 하모니카와 아코디언을 배웠고 스피치학원, 마술동우회 등 노인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들을 섭렵해갔다. “정식 학원 학교는 아니었지만 배우는 기쁨이 있었어요.” 2017년 첫 책 ‘노래하는 인생’을 낸 뒤 매년 한 권꼴로 모두 6권을 펴냈다. 제목만 소개하자면 ‘언제나 청춘으로 살기’ ‘요양보호사’ ‘나의 인생노트’ ‘스피치를 재미있게 잘하기 위한 이런저런 상식 이야기’ ‘나는 행복한 경비원입니다’ 등이다. 모두 같은 출판사를 통해 자비로 출판했는데 거의 팔리지 않았다며 머리를 긁적인다. ―책날개의 저자 소개를 보면 ‘한국치매예방연구소 소장’, ‘자신감 사관학교 교장’ 등의 직함이 있던데…. “그건 제 꿈입니다. 언젠가는 그런 학교를 설립해 교장이 되고 싶다는. 사람이란 꿈이 있어야 살지요. 제 또래분들께도 뭘 새로 하는 데 주저하지 말라고, 일단 자신감 갖고 시작해보라고 말해드리고 싶어요. 어차피 시간은 흘러갑니다. 아무것도 안 해도 흘러가고, 해도 흘러가는 게 인생이에요.”○100세 시대의 직업과 교육‘100세 인생’의 저자 린다 그래턴 런던경영대학원 교수는 100세 시대에는 직업과 교육이 송두리째 달라진다고 일찌감치 예고했다. 30년 공부하고 30년 일하고 30년 노후를 즐기는 게 20세기식 인생 주기였다면, 100세 시대에는 한 사람이 평생 서너 가지 직업을 갖게 되고 그 사이사이에 이를 위한 재교육(평생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득 장 씨의 60세 이후 삶의 스타일이야말로 100세 시대에 어울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그때 필요한 일을 찾아 스스로 공부하고 변화하는 모습. 불우한 환경에서 많은 실패를 맛봤지만, 그런 좌절의 경험이 노후에는 오히려 눈빛 반짝이는 생명력이 된 건 아닐까. 그는 변화의 과정마다 상처받을까 봐 몸을 사리지 않았다. 좀 부족하더라도 최선을 다하고 그 열매를 주변과 나누려 했다. 하모니카 수업을 통해 동네 중·노년층의 취미활동 공간을 만들고 본인이 잘하는 것을 이웃에게 가르쳐주며 재미나게 사는 것. 나름대로 좋은 인생 아닐까.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2-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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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 농업 이끌 정예 청년農 육성

    농사는 미래를 짓는 일이다. 농업에서 미래를 담보할 청년들의 존재가 긴요한 이유다. 농협이 청년농부사관학교를 통해 한국의 미래 농업을 선도할 청년 농부를 육성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청년농부사관학교는 농협 자체 예산으로 운영되는 6개월 장기 귀농교육 과정이다. 2018년 1기를 시작으로 올해까지 총 8기, 46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해 갈수록 고령화되는 농촌에 젊은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농촌에서 미래 그려 나갈 청년농부 육성청년농부사관학교 입학 대상은 만 39세 이하 창농(創農)을 계획하는 청년들. 연간 2기수, 약 100명을 합숙 교육한다. 6개월간 농업 기초교육에 7주, 농가 현장에서 진행되는 인턴 8주, 창농 계획과 농기계 자격증 취득 등 비즈니스 플랜을 세우는 데 다시 8주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교육 과정은 2022년 정부가 인정하는 귀농 교육 과정 승인을 받았다. 이에 따라 올해 졸업생부터는 청년후계농 지원 사업을 신청하거나 귀농정책자금을 대출받을 때 요구되는 귀농 교육 시간 250시간을 인정받게 된다. 청년농업인 육성에 더욱 탄력을 받게 됐다.교육 과정의 특징은 필수 이론 교육뿐 아니라 농촌 현장에서 바로 필요한 작물 재배 실습이 이뤄진다는 점이다. 노지 재배는 물론이고 스마트팜 교육에 상당한 비중을 할애해 첨단 디지털 농업인을 양성한다. 청년농부 후보생들은 희망 작목별로 선도 농가에서 2개월간 현장 인턴 실습을 통해 농촌 현장의 분위기를 익히고 작목 재배 기술을 심화할 수 있다.이를 위해 농협은 홍성군농업기술센터와 영농 정착 상호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드론, 굴착기 등 농기계 위탁 교육을 통해 농기계 자격증 취득도 지원해준다. 졸업생 안정적 사후 관리로 영농 정착 지원청년농부사관학교 졸업생은 졸업 후에도 안정적인 영농 정착을 위한 사후 관리를 받을 수 있다. 우선 청년농업인과 농협 계통 사무소가 협력해 지역별 네트워크를 운영한다. 중앙회 차원의 온·오프라인 판로 지원, 정부 정책자금 지원 일대일 코칭, 융복합 농업으로 성장을 위한 브랜드와 마케팅 등 종합 컨설팅, 그리고 농식품 분야 투자설명회(IR) 참가 지원을 통해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청년농부사관학교 졸업생들이 농협 지원으로 성공적으로 정착한 사례는 하나둘이 아니다.뮤지컬 무대 디자인 기획자로 100여 편의 무대를 만들었던 조성훈 씨는 2020년 청년농부사관학교(4기)를 졸업했다. 이듬해 장성농협 조합원으로 등록한 그는 전남 장성의 1만4200㎡(약 4300평) 규모 축령농원에서 사과를 재배하는 동시에 사과주스를 생산해 판매하고 있다.농협은 조 씨에게 브랜드 개발과 로고 등 상품 디자인, 가공 공장 설계 및 운영을 종합적으로 컨설팅해 줬다. 농협 크라우드 펀딩에 참가해 자본금을 지원받고 농협몰과 하나로마트에 입점하는 데도 도움을 받았다. 조 씨의 꿈은 자신의 농장을 6차산업화하는 것이다. 사과 생산과 주스 가공을 거쳐 농가 카페를 운영하고 사과 수확 체험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농업을 지속가능한 첨단 산업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한다는 계획이다. 중소농과 청년농 위한 스마트농업 지원센터청년농들의 농촌 정착과 농업의 스마트화는 실과 바늘의 관계다. 농협은 청년농업인의 안정적인 영농 정착을 위해 지난해부터 스마트농업 전(全) 생애 주기 통합 지원 플랫폼(NH octo·농협형 스마트팜)을 구축하고 있다. 스마트팜 창업을 희망하는 농업인을 위해 전 생애 주기별 4대 맞춤형 지원을 해준다. 즉, 농사 준비 단계에서는 교육 및 컨설팅을, 농사 시작 단계에서는 시설 구축 및 금융 지원을, 판매 유통 단계에서는 판로 지원 및 홍보를, 경영 지원에서 분석 및 신기술 도입을 지원한다.이 중 농사 준비, 농사 시작 단계의 스마트농업 경작 및 기술 교육의 거점으로, 농축협 주도의 ‘스마트농업지원센터(옥토팜)’를 연차별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1월 충남 동천안 농협에 설립된 것을 시작으로 2024년까지 전국 시도 권역별로 확대한다고 한다.애그테크 투자 생태계 구축농협은 6월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스마트 목장 관리 플랫폼인 ‘NH하나로목장’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내놓았는데, 4개월 만에 전국 한우농가 3000호가 가입해 이용 중이다.목장 앱은 축산물이력제 등 공공데이터와 농협 자체 데이터를 연결해 농가가 별도의 자료 입력 없이 본인 소유의 축우 현황과 이력을 자동으로 불러올 수 있다. 특히 사료 구입 내역과 소 출하 실적 등이 자동으로 조회돼 농가 스스로 경영 진단을 할 수 있고, 사료 주문 등 부가 기능을 통해 한우 생산 효율을 높일 수 있다. 발정탐지기, 폐쇄회로(CCTV) 등 ICT 장비와도 연동이 가능해 노동력 감축 효과도 누릴 수 있다.농협은 이 밖에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부응하는 디지털 혁신으로 범(汎)농협 차원의 빅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하고 범농협 애그테크 상생혁신추천위원회를 구성해 조성 펀드를 재원으로 농협 주도형 애그테크 투자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2-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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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세 손공 수예가 첫 개인전

    손공(데마리·手毬) 수예가 박재숙 씨(92·사진)의 첫 개인전이 11∼20일 경기 하남시 ‘갤러리 보나르’에서 열린다. 박 씨가 평생 만들어온 손공 100여 점을 선보인다. 손공은 일본에서 주로 여성들의 공놀이에 사용된 전통적 장난감. 솜으로 된 심(芯)에 흰 실을 감아 공(毬)을 만들고, 그 위에 아름다운 색실을 감아 기하학 무늬를 표현해낸다(사진). 수작업이라 같은 작품이 없다. 장난감을 넘어 전통공예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박 씨는 1960년대에 일본인 전통기술 전승자를 사사한 뒤 독학으로 손공의 아름다움을 연구해왔다. 본격적으로 손공 만들기에 나선 계기는 1981년 부군이 의료사고로 입원해 12년간 투병했던 일. 이 기간 좁은 병실에서 남편을 간병하는 인고의 시간을, 그는 실과 바늘을 놓지 않으며 견뎌냈다. 난생 첫 개인전을 열게 된 기쁨을 “100살까지는 손공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표현한다.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2-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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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이 드는게 두렵지 않은’ 노후 삶의 터전은…어디서 누구와 늙어갈까[서영아의 100세 카페]

    지난달 23일자 디지털 100세 카페 ‘실버타운에 꽂힌 50대 한의사 부부’ 기사는 조회수(63만 회)도 상당했지만 비판적인 댓글이 무척 많았다. 무엇보다 주인공 부부가 말하는 실버타운과 독자들이 저마다 머릿속에 그리는 실버타운이 너무도 달랐다. 장기요양등급을 받아 입소하는 요양원과 혼동되거나 미인가 시설들과 헷갈리는 듯한 의견도 적지 않았다. 이 기회에 한국의 노인주거복지 현황을 점검하고 노후 주거의 요건에 대해 생각해보자.●실버타운에 대한 법적 규정 없어‘실버타운’이란 용어에서부터 문제가 있었다. 노인복지법에 따르면 한국의 노인주거복지시설은 △양로시설 △노인공동생활가정 △노인복지주택의 세 가지가 전부다. 양로시설은 다시 유료와 무료로 나뉜다. 법적으로 말하면 한국에 ‘실버타운’은 없는 것이다.한국에서 속칭 실버타운이라고 하면 고령자를 위한 아파트 혹은 레지던스 같은 시설을 뜻한다. 100세대 이상 규모에 각자 자기 집에서 살면서 공동식당과 피트니스센터 사우나 도서관 등 커뮤니티시설을 이용하고 의료 인력이 상주하며 주민들의 건강을 돌본다. 자립생활이 가능한 건강한 시니어(부부중 한사람이 60세 이상)들이 입주하며 모든 비용은 입주자들이 부담한다. 공동식당이 있지만 각자 집에서도 취사가 가능하다. 이런 시설은 전국에 약 40곳인데, 대부분은 노인복지주택으로, 일부는 유료 양로시설로 등록돼 있다. 엄밀히 말해 실버타운은 관련 통계를 내기 어려울 정도로 계통체계 없이 방치돼 있었다. 예컨대 명실상부한 최고급 시설인 ‘클래식 500’은 유료 양로시설로 등록돼 있다. 수원 유당마을과 경기 용인 노블카운티는 당초 유료 양로시설로 등록됐다가 노인복지주택으로 변경했다. 국내 첫 시니어타운인 유당마을이 생긴 1988년 당시 노인복지주택이란 개념이 없고, 유료 양로시설만 있었기 때문이다. 그 뒤 ‘분양형’과 ‘임대형’ 노인복지주택이 생겼지만 부실운영으로 문닫는 곳이 속출해 사회문제화하자 2015년을 기준으로 분양형이 폐지됐다. 다른 한편으로는 노인복지주택으로 인가받았지만 실제로는 아파트로 변질된 실버타운도 여럿 있다. 커지는 관리비부담을 이유로 식당이나 커뮤니티 시설 운영을 반대하는 일부 주민과 실버타운 기능을 기대하고 입주한 주민들 사이 갈등을 빚고 있다. ●실버타운과 요양원은 다르다여기에 작은 요양시설들이 너도 나도 ‘실버타운’이란 이름을 쓰고 있어 혼란을 부추긴다. 개중에는 미인가 시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실제로 보건복지부가 낸 2022년 노인복지시설 현황을 찾아보니 정원 10인 이하 작은 양로시설 이름에 ‘실버타운’이 붙은 곳이 무척 많았다. 독자들이 각자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기준으로 실버타운에 대해 정의내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참고로 흔히 요양원이라 불리는 요양시설은 ‘의료’복지시설에 속한다. 장기요양 1~2급과 3급 일부에게 입소자격이 주어지고 장기요양보험의 지원을 받는다. 거주자가 모든 비용을 내는 실버타운과는 완전히 다르다.전국노인주거복지시설협회 이지희 사무국장은 “일정 규모를 갖춘 유료 양로시설과 노인복지주택을 하나의 범주로 묶어서 시니어타운(실버타운)만의 법적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 단체는 나아가 혼란의 근원이 되는 실버타운이란 호칭 대신 ‘시니어타운’이라 부르자고 주장하고 있다.●건강 그 이후에 대비하는 美은퇴자 커뮤니티, 日 유료 양로원 사실 실버타운을 직역하면 고령자(silver) 소도시(town)로, 미국의 은퇴 커뮤니티를 가리킨 말이다. 1960~70년대 건설업자들이 기후 좋은 지역에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춘 대규모 주택단지를 건설하고 은퇴자들을 모집했다. 이런 은퇴자 커뮤니티가 2만개 넘게 생겨났다. 이중 1960년대에 아리조나에 세워진 은퇴 커뮤니티 ‘더 선 시티(인구 2만 6000명)’나 이를 본따 플로리다에 조성된 ‘더 빌리지(인구 12만 여명)’는 ‘타운’을 넘어 ‘도시’ 규모로 몸집이 커지고 있다. 이런 곳들은 중산층 정도의 자산과 현금흐름만 있으면 ‘평생 수고한 은퇴자가 백만장자처럼 여생을 즐기는 공간’이라 불린다.시니어타운은 건강할 때 입소하지만 세월이 흐른 뒤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 미국의 은퇴자 커뮤니티에는 지속적 돌봄(Continuing Care and Retirement Community: CCRC)이라는 개념이 작동 중이다. 시니어들이 건강하게 입주해 일정 수준의 헬스케어 서비스를 받으며 건강을 지키고, 건강이 악화되면 타운 내에서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노화 정도에 따라 △자립생활형 △직원이 가사를 돕는 형 △24시간 간호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형으로 주거형태를 선택할 수 있다.●빈 곳 많은 한국의 노인주거복지주택 정책미국만큼 땅이 넓지 않은 일본에서는 유료 노인홈이 발달했다. 과거에는 건강이 나빠지면 노인홈을 퇴소하고 간병이 가능한 시설로 옮기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은 개호(돌봄과 간병)가 지원되는 ‘특정시설생활개호’ 지정 시설이 늘어나고 있다.같은 노인홈에서 살면서 개호가 필요해지면 그 시설 직원에게 서비스를 받는 방식인데, 이 경우 개호 비용은 개호 보험에서 지원해준다. 입소자 입장에서는 비용 부담을 줄이고 질 높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시니어타운은 건강할 때에만 활용할 수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일부 요양시설을 갖춘 시설들(유당마을 더시그넘하우스 삼성노블카운티 시니어스타워계열)이 있지만 장기요양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비용이 많이 든다. 장기요양급여 중 시설급여는 노인의료복지시설(요양원, 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에만 한정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2019년부터 시니어타운에서도 방문요양 방문목욕 방문간호 등의 재가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장기요양 3~5등급이 여기 해당된다. 하지만 1~2등급을 받아 집중적인 요양이 필요하면 시니어타운을 나와 요양원으로 옮겨야 한다.●최초 입주연령 80세 이하로 제한하는 곳 늘어공빠TV의 문성택 씨에 따르면 최근 1년 사이 웬만한 시니어타운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고 한다. ‘삼성 노블카운티’ ‘더시그넘하우스’ 등 최고급 시니어타운들이 올해부터 최초입주 연령을 80세 이하로 제한하고 있으며 대기 기간 2년을 감안해 78세 이하까지만 대기 리스트에 올려준다는 것. 내년부터는 모든 실버타운이 이런 원칙을 도입하게 될 것 같다고 했다 (일단 들어간 뒤에는 100세가 넘더라도 다른 문제가 없다면 생활할 수 있다). 2014년 실버타운 현황을 망라한 저서 ‘실버타운 간 시어머니, 양로원 간 친정엄마’를 펴냈던 이한세 스파이어 리서치 앤 컨설팅 대표는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실버타운이 여유가 있었는데 최근 서울경기 지역은 꽉 찬 상태다. 그렇다보니 연령제한이나 인터뷰를 강화하는 등 입주 문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한다. 배경에는 고령화의 진전, 시니어 타운에 대한 인식 변화도 있지만 아파트가격 급등도 한몫한 듯하다고 그는 지적했다.“삼성 노블카운티가 문을 연 2000년대 초만 해도 서울 압구정동 30평대 아파트를 팔아야 입주보증금을 냈는데, 아파트가격이 10배 오르는 동안 입주보증금은 거의 제자리를 지켰다“는 것.서울 웬만한 지역에 아파트를 가진 고령자라면 집을 전세주기만 해도 그 돈으로 시니어타운 보증금을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지희 사무국장은 중산층을 위한 시니어타운이 늘어날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저소득층은 무료 양로시설이나 고령자 임대주택도 늘어나고 있지만 중산층은 사회적 부양(扶養)에서 소외된 감이 있다”며 “다양한 주체가 시니어타운 사업에 뛰어들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 중산층 고령자들의 요구를 충족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다만 시니어타운은 노후를 생각하는 시니어에게 여러 선택지 중 하나에 불과하다. ●한국 고령자 절반 이상, “거동 불편해져도 내 집에서 살고 싶다” 실제로 고령자들이 원하는 것은 내 집에서 늙어가는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3년마다 실시하는 ‘노인실태조사(2020년)’에 따르면 한국 노인의 79.8%는 ‘내 집’에서 살고 있다. 또 78.2%가 독거나 부부만인 노인 단독가구였다. 응답자 대다수(83.8%)는 건강할 때까지는 현재 집에서 거주하기를 원했고, 56.5%는 거동이 불편해져도 재가 서비스를 받으며 현재 집에서 계속 살기를 희망했다. 31.3%는 노인을 위한 요양시설 등을 이용하고 싶다고 했는데, 가족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에서일 것이다. 정든 집에서 최후까지 지내겠다는 바람은 다른 많은 선진국 노인들에게서도 확인된다. 정부도 사회적 부담을 고려해 시설이 아닌 가정이나 소규모 지역사회에서의 케어를 권장한다. 초고령사회 일본에서는 ‘지역포괄케어’라 해서 자신의 집에서 생활하면서 의료와 복지 서비스를 받는 방식이 확산되고 있다. 그래서 퇴직 즈음해서 고령자가 살기 좋은 형태로 대대적인 주택 리모델링을 하는 것이 유행이다. 집안에서 휠체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문턱을 없애고(배리어 프리), 욕실 바닥에 미끄럼 방지 시공을 하고 손잡이를 여기저기 다는 등. 일본 정부는 고령자주택 리모델링 비용을 개호보험에서 지원해준다.●세계적 추세는 ‘내 집에서 늙어가기(Aging in place)’살던집에서 이웃과 소소한 도움 주고 받으며 늙어가는 길을 택한 사람들도 있다. 미국 보스턴에서 태동한 ‘비컨힐 마을(Beacon Hill Village)’ 모델이 그것이다. 진짜 ‘마을’이 아니고 2000년대부터 미국 베이비부머가 만들어가는 도심 속 느슨한 공동체다. 처음에는 이곳에 사는 은퇴자 10여 명이 만나 “더 나이를 먹더라도 은퇴자 공동체나 노인전용 요양 시설에 들어가지 않고 자기 집에 머물면서 정든 친구들과 교류하며 힘닿는 데까지 살고 싶다”는 데 생각을 모았다. 늙어서 겪는 소소한 불편을 서로 돕기 위해, 이들은 비영리단체 ‘비컨힐 마을’을 만들고 사무직원을 고용했다. 과거라면 가족이 해오던 일을 이웃들을 통해 해결하자는 것. 2002년부터는 일반 회원에게 문호를 개방했다.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연회비(소득과 가입 형태에 따라 110~675달러)를 받았다. 회원들은 큰일을 할 때 필요한 일손을 찾도록 서로 돕는다. 회원과 젊은이로 구성한 자원봉사자들에게 장보기나 가정 방문, 반려 동물 돌보기, 가벼운 집안일, 간단한 수리 등을 부탁할 수 있다. 이들은 자신이 살던 집에서 이웃들과 교류하며 나이 들어가는 것을 즐긴다. 홈페이지 구석구석에는 “병원에서 퇴원해 돌아오니 모르는 사람이 내 저녁식사를 만들어 가져다줬다”거나 “60대 이웃이 공항까지 태우러 와줘 무사히 귀가했다”는 80대의 감사인사 등이 넘쳐난다.●‘나이드는 게 두렵지 않은’ 노후 삶의 터전은 노후라 해도 건강하고 활력 있는 시기는 어디서 어떻게 지내건 무리가 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도움이 필요해지는 시기가 온다. 지금은 별 부담 없는 세 끼 식사준비가 버거워질 수도 있고 간병이 필요해지는 시기도 온다. 배우자와 사별해 어느 한쪽만 남게 되는 경우 등 예기치 않은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 나 또는 배우자의 인지기능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일본 최고의 노후설계사로 꼽히는 요코테 쇼타는 저서 ‘노후의 연표(나이드는 게 두렵지 않습니다·중앙북스)’에서 노후 주거에 대해 어디에서(도시, 시골, 해외) 누구와(부부, 자녀와, 혼자) 어떤 집(주택, 아파트, 임대, 노인홈 등 돌봄시설)에서 살지 생각하고 늦기 전에 실행에 옮기라고 권한다. 그의 추천은 자녀와 살던 큰 집은 정리하고 병원 쇼핑 외출을 고려해 교통이 편리한 작은 아파트로 옮기되 자녀와 가까운 거리에서 사는 형태다. 고령이 될수록 시간이 남고 활동 폭이 적어짐에 따라 외로움과 고립감을 느끼기 쉬워진다는 점에서 이웃과 친구, 갈 만한 장소 등도 염두에 둬야 한다. 노년기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반드시 한번쯤 생각해봐야 할 화두다.인생 후반, 더 중요해지는 ‘돈 건강 행복’풍요로운 100세 인생을 맞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돈과 건강, 그리고 행복입니다. 이 모든 것은 어느 날 갑자기 갖춰지는 게 아니고 30~40대부터 차근차근 조금씩 준비해나가야 합니다. ‘100세 카페’에서는 특히 인생 2막을 잘 맞이하기 위해 미리미리 준비해야 할 돈과 건강 행복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2-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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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 시니어타운, 건강할때만 활용… 돌봄 필요할때 대비 美-日과 온도차[서영아의 100세 카페]

    지난달 23일자 디지털 100세 카페 ‘실버타운에 꽂힌 50대 한의사 부부’ 기사는 조회수(63만 회)도 상당했지만 비판적인 댓글이 무척 많았다. 무엇보다 주인공 부부가 말하는 실버타운과 독자들이 저마다 머릿속에서 그리는 실버타운이 너무 달랐다. 이참에 한국의 노인주거복지 현황을 점검하고 노후 주거의 요건에 대해 생각해 보자.○한국에는 실버타운이 없다‘실버타운’이란 용어부터 문제였다. 노인복지법에 따르면 한국의 노인주거복지시설은 △양로시설 △노인공동생활가정 △노인복지주택의 세 가지가 전부다. 양로시설은 다시 유료와 무료로 나뉜다. 법적으로 말하면 한국에 ‘실버타운’은 없는 것이다. 한국에서 속칭 실버타운이라고 하면 고령자를 위한 아파트 혹은 레지던스 같은 시설을 뜻한다. 100가구 이상 규모에 각자 자기 집에서 살며 공동식당과 피트니스센터 등 커뮤니티시설이 있고 의료 인력이 상주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자립생활이 가능한 시니어(부부 중 1명이 60세 이상)가 입주하며 모든 비용은 입주자들이 부담한다. 이런 시설은 전국에 약 40곳인데, 대부분은 노인복지주택으로, 일부는 유료 양로시설로 등록돼 있다. 실버타운은 관련 통계를 내기 어려울 정도로 계통체계 없이 방치돼 있었다. 예컨대 최고급 시설인 ‘클래식 500’은 유료 양로시설로 등록돼 있다. 경기 수원 유당마을과 용인 노블카운티는 당초 유료 양로시설로 등록했다가 노인복지주택으로 변경했다. 첫 시니어타운(유당마을)이 생긴 1988년 당시 노인복지주택이란 개념이 없고, 유료 양로시설만 있었기 때문이다. 그 뒤 ‘분양형’과 ‘임대형’ 노인복지주택이 생겼지만 부실 운영으로 문 닫는 곳이 속출해 사회문제화하자 2015년부터 분양형이 폐지됐다. 다른 한편으로는 노인복지주택으로 인가받았지만 실제로는 일반 아파트로 변질된 실버타운도 여럿 있다. 여기에 작은 요양시설들이 너도 나도 ‘실버타운’이란 이름을 쓰고 있어 혼란을 부추긴다. 개중에는 미인가 시설도 적지 않다고 한다. 독자들이 각자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기준으로 실버타운에 대해 정의 내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전국노인주거복지시설협회 이지희 사무국장은 “일정 규모를 갖춘 유료 양로시설과 노인복지주택을 하나의 범주로 묶어 시니어타운(실버타운)만의 법적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 단체는 나아가 혼란의 근원이 되는 실버타운이란 호칭 대신 ‘시니어타운’이라 부르자고 주장하고 있다.○건강 그 이후에 대비하는 美 은퇴자 커뮤니티, 日 유료 양로원실버타운을 직역하면 고령자(silver) 소도시(town)로, 미국의 은퇴 커뮤니티를 가리키는 말이다. 1960, 70년대 건설업자들이 기후 좋은 지역에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춘 대규모 주택단지를 건설하고 은퇴자들을 모집했다. 이런 은퇴자 커뮤니티가 2만 개 넘게 생겨났다. 이 중 1960년대에 애리조나에 세워진 은퇴 커뮤니티 ‘더 선 시티’(인구 2만6000명)나 이를 본떠 플로리다에 조성된 ‘더 빌리지’(인구 12만여 명)는 ‘타운’을 넘어 ‘도시’ 규모로 몸집이 커지고 있다. 이런 곳들은 중산층 정도의 자산과 현금 흐름만 있으면 ‘평생 수고한 은퇴자가 백만장자처럼 여생을 즐기는 공간’이라 불린다. 당장은 건강한 시니어들의 공동체라 해도 세월이 흐른 뒤의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 미국의 은퇴자 커뮤니티에는 지속적 돌봄(Continuing Care and Retirement Community·CCRC) 개념이 작동 중이다. 시니어들이 건강하게 입주해 일정 수준의 헬스케어 서비스를 받으며 건강을 지키고, 건강이 악화되면 타운 내에서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노화 정도에 따라 △자립생활형 △직원이 가사를 돕는 형 △24시간 간호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형으로 주거 형태를 선택할 수 있다. 미국만큼 땅이 넓지 않은 일본에서는 유료 노인홈이 발달했다. 과거에는 건강이 나빠지면 다른 시설로 옮기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은 개호(돌봄과 간병)가 지원되는 양로원이 늘어나고 있다. 같은 노인홈에 살면서 개호가 필요해지면 그 시설 직원에게 서비스를 받는 방식인데, 이 경우 개호 비용은 개호보험에서 지원해준다. 입소자 입장에서는 적은 부담으로 질 높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한국의 시니어타운은 건강할 때에만 활용할 수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일부 요양시설을 갖춘 곳(유당마을 더시그넘하우스 삼성노블카운티 시니어스타워 계열)이 있지만 장기요양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비용이 많이 든다. 장기요양급여 중 시설급여는 노인의료복지시설(요양원, 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에만 한정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2019년부터 시니어타운 거주자도 방문요양 방문간호 등 재가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장기요양 3∼5등급이 여기에 해당된다. 하지만 1, 2등급을 받아 집중적인 요양이 필요하면 시니어타운을 나와 요양원으로 옮겨야 한다.○‘내 집서 늙어가기(Aging in place)’ 세계적 추세보건복지부가 3년마다 실시하는 ‘노인실태조사’(2020년)에 따르면 한국 노인의 79.8%는 ‘내 집’에서 살고 있다. 또 78.2%가 독거나 부부만인 노인 단독가구였다. 응답자 대다수(83.8%)가 건강할 때까지는 현재 집에서 거주하기를 원했고, 56.5%는 거동이 불편해져도 재가 서비스를 받으며 현재 집에서 계속 살기를 희망했다. 31.3%는 노인을 위한 요양시설 등을 이용하고 싶다고 했는데, 가족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에서일 것이다. 정든 집에서 최후까지 지내겠다는 바람은 다른 많은 선진국 노인들에게서도 확인되는 공통된 현상이다. 일본에서는 초고령사회의 사회적 부담을 고려해 ‘지역포괄케어’라 해서 자신의 집에서 생활하며 의료와 복지 서비스를 받는 형태가 확산되고 있다. 그래서 퇴직 즈음해서 고령자가 살기 좋은 형태로 대대적인 주택 리모델링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집 안에서 휠체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문턱을 없애고(배리어 프리), 욕실 바닥에 미끄럼 방지 시공을 하고 손잡이를 여기저기 다는 등. 일본 정부는 고령자주택 리모델링 비용을 지원해준다. 미국 보스턴에서 태동한 ‘비컨힐 마을(Beacon Hill Village)’ 사람들도 살던 집에서 이웃과 소소한 도움을 주고받으며 늙어가는 길을 택했다. 은퇴자들이 모여 “더 나이를 먹더라도 자기 집에 머물면서 정든 친구들과 교류하며 힘닿는 데까지 살고 싶다”고 의견을 모으고 비영리단체 ‘비컨힐 마을’을 만들었다. 홈페이지 구석구석에는 “퇴원하고 집에 오니 모르는 사람이 내 저녁식사를 만들어 가져다줬다”거나 “60대 이웃이 공항까지 태우러 와줘 무사히 귀가했다”는 80대의 감사인사 등이 넘쳐난다.○나이 드는 게 두렵지 않은 노후 삶의 터전은노년이라 해도 건강하고 활력 있는 시기에는 걱정할 일이 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도움이 필요한 시기가 온다. 지금은 별 부담 없는 세 끼 식사 준비가 버거워질 수도, 간병이 필요해질 수도 있다. 배우자와 사별해 어느 한쪽만 남게 되는 경우, 부부 중 누군가의 인지 기능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 등 예기치 않은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 일본 최고의 노후설계사로 꼽히는 요코테 쇼타는 저서 ‘노후의 연표(나이 드는 게 두렵지 않습니다·중앙북스)’에서 노후 주거에 대해 어디에서(도시, 시골, 해외) 누구와(부부, 자녀와, 혼자) 어떤 집(주택, 아파트, 임대, 노인홈 등 돌봄시설)을 생각하고 늦기 전에 실행에 옮기라고 권한다. 그의 추천은 자녀와 살던 큰 집은 정리하고 병원 쇼핑 외출을 고려해 교통이 편리한 작은 아파트로 옮기되 자녀와 가까운 거리에서 사는 형태다. 고령이 될수록 시간이 남고 활동 폭이 좁아져 외로움과 고립감을 느끼기 쉬워진다는 점에서 이웃과 친구, 갈 만한 장소 등도 염두에 둬야 한다.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2-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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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빨리 60세가 되고 싶어요” 실버타운에 꽂힌 50대 한의사 부부 [서영아의 100세카페]

    “저희 부부는 60세가 되면 실버타운에 입주하려고 대기 타고 있습니다~.”50대쯤 되면 나이 드는 것은 달갑지 않게 마련, 하지만 올해 54세, 53세인 문성택 유영란 부부는 60세가 되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부부 중 한사람이 60세를 넘겨야 실버타운에 입주할 수 있기 때문. 지금은 ‘공부하는 아빠엄마(공빠·공마)’를 자처하며 전국의 실버타운을 탐방하고 공부한 내용을 유튜브 채널 ‘공빠TV’를 통해 세상과 공유하고 있다.사실 이 부부 얘기는 지난해 7월 디지털판 100세카페에서 살짝 소개한 바 있다. 그런데 최근 문씨로부터 첫 책을 냈다고 연락이 왔다. ‘실버타운 올가이드’(한국경제신문사)가 그것으로, 부부가 발로 뛰어 추려낸 19개 실버타운의 현황과 선택요령 등을 소개했다. 설레는 인생2막을 준비하는 문씨 부부를 16일 서울 강남구 더 시그넘하우스에서 만났다.시니어, 식사문제가 중요한 포인트공빠TV는 1년여 간 괄목할 만큼 성장해 있었다. 누적 475개의 유튜브 영상을 올렸고 구독자 9만 명이 넘는 실버타운 전문 채널로 자리잡았다. 초기 영상들이 자료사진과 웹사이트를 통해 ‘공부’한 내용을 전해주는 것이었다면 근래에는 현장을 누비며 실제 거주자와 운영자들을 인터뷰하고 시청자와도 소통하는 적극성이 돋보인다.시청자 댓글에서는 실버타운, 넓게는 노후 주거에 대한 인식변화가 피부로 느껴진다. 특히 해외에서 공빠TV를 보고 역이민을 결정했거나 준비 중인 시니어가 많다는 점도 놀라웠다.-실버타운 전도사로 자리 잡으셨네요.“실버타운에 대해 오해가 너무 많아요. ‘요양원’의 일종이라거나 ‘현대판 고려장’ 비슷한 걸로 생각하는 시니어도 계시죠. 하지만 실버타운은 그냥 집이예요. 시니어 맞춤형 커뮤니티 시설이 잘 돼 있는 좋은 아파트죠. 특히 세끼 식사가 제공된다는 게 중요합니다. 나이 들수록 매끼 무엇을 먹을지 생각하고 차려먹는 일은 고역이 됩니다. 실버타운 다녀보면 여성 시니어들이 ‘세끼 밥 안하는 것만 해도 천국’이라고 말씀하세요.”전북 익산에서 한의사로 일하는 그는 고령 환자들을 만나다보면 식사가 노후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지 통감한다고 한다. “배우자가 떠나고 혼자 된 고령자는 건강이 악화되는 게 훤히 보입니다. 이분께 제대로 된 세끼 식사만 제공되어도 확 달라지죠. 실제로 실버타운에서 마주치는 입주민들은 건강상태가 바깥세상보다 10~20년은 젊으세요.”공빠TV는 실버타운에 가야 할 사람으로 △혼자인 남성·여성 시니어 △부부 중 한 분이 아픈 시니어 △해외에서 돌아온 역(逆)이민 시니어 △아내에게 사랑받고 싶은 시니어를 든다. 반대로 실버타운에 들어가면 안되는 사람으로는 △나의 집에 대한 애착이 강한 시니어 △경제적으로 빠듯한 시니어 △공동생활이 싫은 시니어 △자기 고집이 지나치게 강한 시니어를 들었다.《월 생활비 100만원대 ‘가성비’ 실버타운》(1인 기준)실버타운장소보증금월 생활비일붕실버랜드경남의령군평생보장제(10평형)1억 5000만 원또는 월 생활비 선납제의무식 90식 기준 100만 원월명 성모의 집경북 김천시6000만 원(14.5평형)의무식 90식 기준 90만원공주 원로원충남 공주시8000만 원(15평형)의무식 90식 기준104만 원서울시니어스 고창타워전북 고창군1억7000만원(20평형)의무식 30식 기준 60만 원《월 생활비 150만원대 ‘실속형’ 실버타운》(1인 기준)미리내 실버타운경기도 안성시1억 원(21평형)의무식 90식 기준 127만원동해약천온천실버타운강원도 동해시1억3000만 원 (21평형기준)의무식 90식 기준 130만 원서울시니어스서울타워서울시 중구1억9200만 원(15평형)의무식 90식 기준 146만원동백스프링카운티자이경기도 용인시4억5000만 원(25평형) **전세가의무식 30식 기준 48만원서울시니어스 가양타워서울시 강서구3억8600만 원(21평형 기준)의무식 60식 기준 129만 원《공빠 선정 럭셔리 실버타운 탑5》(1인 기준)1위더 클래식 500서울 광진구9억 원(56평형)의무식 20식 기준 452만 원2위삼성 노블카운티경기도 용인시3억 1000만 원(30평형)90식 식비포함 169만 원3위서울시니어스분당타워경기도 성남시3억 2500만 원(25평형)의무식 60식 기준 199만 원4위더 시그넘하우스서울 강남구4억 원(22평형)의무식 60식 기준 월 180만 원5위유당마을경기도 수원시 1억 7800만 원(20평형)의무식 90식 기준 209만 원-실버타운에 대한 관심이나 이해도가 부쩍 커진 게 느껴집니다.“유튜브를 시작한 2년 전만 해도 웬만한 실버타운에는 다 공실이 있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몇 년 씩 기다리는 대기자들이 즐비합니다. 실버타운에 새로 입주하려는 연령층이 젊어지고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합니다. 롯데호텔이 최고급 실버타운을 준비 중인데 전국에 30개소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합니다. 그만큼 시장이 밝다고 보기 때문이겠죠.”그의 별명은 ‘실버타운 영업사원-> 홍보대사 ->암행어사로 바뀌고 있다. 관심을 갖고 자꾸 찾아가 알리니 실버타운의 서비스들이 업그레이드 되는 긍정적 효과도 있다. 다른 실버타운의 좋은 시설이나 서비스를 벤치마킹하게 되는 것이다. 노후 고국에서 보내려는 역이민 늘어실버타운을 논할 때는 비싸다는 점, 그리고 극소수 인원만 들어갈 수 있는 점 때문에 조심스럽다. 2020년 기준 노인복지주택 입소정원이 7925명이니 고령자 인구 850만 명 중 0.1%만 수용가능하다. 여기 더해 실버타운이라는 용어 자체가 법적 용어가 아니다보니 모호한 구석이 있다. 하지만 현재의 실버타운이 보여주는 개념이 노후 주거 형태에 대한 힌트를 많이 제공해주는 것도 사실이다. - 공빠TV에서 볼 수 있는 실버타운 거주자들의 인터뷰가 무척 다가오던데요. “저희도 인터뷰 때마다 감동하곤 합니다. 노후에 행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산 증인같은 분들을 만나니까요. 실버타운 만들고 운영하는 분들도 대단해요. 대부분 적자거든요. 한국 최초의 실버타운인 유당마을도 34년 운영기간 최근까지 적자였고 경남 의령의 일붕실버랜드 같은 곳도 어떻게 운영이 되는지 신기할 정도인데, 20여 년 간 사심없이 시니어들을 정성스레 모시더군요.”(유 씨)사실 월 100만 원 정도(1인 기준)로 주거와 식사, 편의를 누릴 수 있는 가성비 실버타운도 적지 않다. 그중 하나인 일붕실버랜드에서 23년째 생활중인 84세 강일선 할머니는 “공짜로 너무 오래 사는 것 같아 미안할 지경이지만 이곳 생활이 너무 행복하다”고 말한다. 1999년 부부가 합쳐 4500만 원 내고 종신제로 들어왔고 부군은 2년 반 전 타계했다. 이 실버타운은 현재도 1억 5000~2억 정도(방크기에 따른 차이 있음)를 일시불로 내면 돌아가실 때까지 평생을 보장해준다. 이밖에 보증금 없이 한달 생활비 약 100만 원을 2년치 정도 선불로 내고 들어올 수도 있다. 지자체 시설인 게이트볼장이나 예술촌이 바로 근처에 있어 입주민들이 이용한다. 강일선 할머니는 “요즘 작은 원룸도 월세 수십만원을 내야 하고 세끼 챙겨 먹으려면 또 수십만원이 든다. 한 달 100만 원으로 자기 집에서 하루 세끼 배불리 먹고 더운물 펑펑 쓰는 이런 생활수준 유지할 수 있겠느냐”며 “여긴 평소에 덕을 많이 쌓은 사람들이 오는 곳”이라고 자랑한다. 8개월 전 미국에서 동해약천온천 실버타운으로 이주한 88세 노부부는 아예 ‘공빠TV를 보고 한국행을 결정했다’며 고마워한다. 서부의 실버타운인 라구나우즈 빌리지에 한국인으로는 처음 입주해 22년 살다가 이곳으로 왔다. 가장 큰 42평형 집을 얻어 인테리어를 멋지게 하고 매일 온천과 골프, 바다와 산, 입에 맞는 시골밥상을 즐기고 있다. “미국에 계속 있었다면 직전 22년과 같은 시간을 보내다가 제 인생은 끝났을 겁니다. 이 8개월이 너무 새롭고 즐겁습니다.”저소득층 복지주택에도 실버타운 시스템 적극 도입요즘 정부는 경제적으로 취약한 고령자들을 위해 실버타운 개념을 벤치마킹한 고령자 복지주택을 늘리고 있다. 과거 정부의 지원을 받는 양로원들이 방 하나에 어르신 4~5명이 공동생활하는 형태를 벗어나 좁더라도 자기 주택에서 생활하면서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게 했다. 대개 1,2층은 노인복지관, 3층부터 위로는 6~8평 임대아파트로 이뤄진다.3년 전 시흥시 은계지구의 고령자복지주택에 입주한 황영옥 씨(87)는 기초노령연금과 주거급여, 국민연금을 합쳐 월수입이 딱 50만 원인데, 이 돈을 아껴서 지방에서 요양중인 아들에게 매달 부쳐준다고 한다. 그가 사는 7평 임대아파트는 보증금 2530만원에 월세 6만 1700원. 집 바로 옆 노인복지관에서 매일 점심을 먹고 무료반찬 서비스도 받다보니 본인 식비로 월 5만원 이상을 써 본 적이 없다. 여가생활은 내 집처럼 드나드는 복지관에서 포켓볼을 하기도 하고 서예나 외국어 강의를 듣기도 한다. 공빠TV의 이런 소개 영상에는 “이게 바로 자살예방 방송”이라거나 “희망이 생긴다”는 뜨거운 댓글들이 달린다.'하우스푸어'형 한국 고령자 자산, 노년 되기 전에 조정해야-노후를 위해 꼭 이사를 해야 하는 걸까요? 서구에서는 ‘살던 곳에서 늙어가기(aging in place)’ 운동도 있던데요. “나이 들어 살기에도 적합한 곳이라면 굳이 옮길 필요는 없겠죠. 하지만 한국 고령자 77%가 내집을 갖고 있고 재산의 80%가 그 집에 묶여 있습니다. 전형적인 하우스푸어죠. 노년을 앞두고 그런 상태는 정리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집에 들이는 돈을 줄이고 삶의 질을 추구하자는 거죠. 바꾸는 김에 건강(병원 공원 운동시설)과 여가활동(도서관 노인복지관 시민회관 등)에 도움 될 시설이 가까운 곳을 찾아보면 더 좋구요. 현재 사는 집이 적당하다면 안전손잡이, 화재방지장치, 미끄럼 방지장치, 비상벨 등을 손보는 게 좋겠지요.”고령자가 급증하면서 ‘자기 집에서 늙어가기’ 뿐 아니라 ‘자기 집에서 임종하기’가 권장되는 일본에서는 퇴직 무렵이면 살던 집 내부를 고령친화적으로 리모델링 하는 게 일반적이다. 휠체어로 다닐 수 있도록 배리어 프리 작업을 하거나 고령자가 넘어지기 쉬운 구조를 정리하는 등 규모가 꽤 큰 수리를 하는데, 정부나 지자체가 보조금을 지급한다. 부모-자녀 사이 행복계약서각기 딸 둘(유 씨), 아들 하나(문 씨)를 키우던 두 사람은 8년 전 새로 가정을 이뤘다. 서로의 자녀들을 양자로 입양하는 절차를 거쳐 완전한 법적 부모가 됐다. 유영란 씨는 (주)대교에서 23년간 일한 교육마케팅 전문가다. 2017년 갑작스레 찾아온 병마에 은퇴를 선언했다.“마침 사춘기인 아이들의 구심점을 어떻게 잡아야 하나 고민이 많았고, 경제교육에 착목했어요. 부부가 6개월을 고민한 끝에 ‘행복계약서’란 걸 만들어 크리스마스날 아이들에게 내밀었죠. ‘엄마아빠는 이런 식으로 살고 싶다. 너희 의견을 얘기해달라’고.”계약서에는 무상지원은 고등학교까지만 하고 대학부터는 한 학기 500만원 한도로 대출해준다거나 결혼이나 독립할 때는 본인의 저축액과 같은 액수를 5000만원 한도에서 지원한다. 대출금을 성실하게 상환하면 부모가 75세가 됐을 때 노후 생활비 외의 모든 재산을 정리해 자녀들에게 공평하게 증여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또 증여 뒤에는 증여액의 0.1%를 매달 돌려받는다는 등의 조건도 붙어 있다. 예컨대 1억 원을 줬다면 월 10만원 씩 상환받아 부모가 용돈으로 쓰겠다는 것. 이밖에도 연 3회 가족모임에 참석하고 분기마다 권장서적을 읽는 등의 조건이 추가된다. 큰 딸은 “엄마아빠 미래에 우리도 다 들어가 있고 너무 좋다”며 사인했고 작은 딸은 언니 따라 얼결에 사인했다. 그런데 철없는 아들은 “난 대출 안 받으면 안되느냐”고 물었다. “‘오오 그래. 네 의사 존중한다‘고 답해줬지요. 흐흐(문 씨).” 입시 실패 뒤 자원입대했던 아들은 제대 즈음 ‘그거 아직 유효하냐“고 물어왔고 군대에서 수능을 준비해 원하던 교대에 입학했다. 자녀들은 기숙사비나 식비, 용돈, 생활비까지 대출금 안에서 해결하며 행복계약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다만 막상 실행에 옮기고 보니 등록금까지 해결하는 것은 무리여서 등록금만은 부모가 지원해주는 것으로 했다고 한다. “아이들은 부족한 가운데 돈의 소중함을 알게 될 겁니다. 그렇게 20년간 돈 공부를 시킨 뒤 목돈을 미리 주겠다는 겁니다. 아이들도 40대면 돈이 필요할 나이이고, 투자를 해도 저희보다 잘 할 겁니다. 저로서도 75세부터 재산을 줄여나가면 세금도 줄고 홀가분해지겠지요.”-60세가 되면 들어갈 실버타운은 정하셨는지? “자꾸 마음이 변합니다. 가볼수록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는 곳들이 많아서요. 현재 두군데 정도 대기 등록을 해놨고 구두로는 10군데 쯤 예약한 것같아요. 몇 군데 시험삼아 살아본 뒤 정착하려 합니다. 저는 실버타운 들어가도 일은 계속할 생각입니다.”활기찬 노년 그 후…요양원 요양병원 공부도 시작할 참한국의 인구구조는 2030년이면 인구 30%, 2050년이면 인구 40%가 고령자인 세상을 예고하고 있다. 시니어들이 자녀세대에 짐이 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준비가 필요한 이유다. 액티브 시니어로 건강하게 사는 기간이 지나가면 다음 단계도 준비해야 한다. 공빠부부는 그래서 요양원과 요양병원에 대해서도 공부를 시작하겠다고 한다.“요양원 요양병원도 천차만별인데, 홍보나 광고는 법으로도 제한된다고 합니다. 발로 뛰어 괜찮은 곳들을 찾아내고, 좋은 곳이라면 많이 알리고 싶습니다. 실버타운처럼 관심을 받을수록 좋아지게 될 겁니다. 당장 우리 스스로의 미래를 위해 해야 할 일입니다.”인생 후반, 더 중요해지는 ‘돈 건강 행복’풍요로운 100세 인생을 맞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돈과 건강, 그리고 행복입니다. 이 모든 것은 어느 날 갑자기 갖춰지는 게 아니고 30~40대부터 차근차근 조금씩 준비해나가야 합니다. ‘100세 카페’에서는 특히 인생 2막을 잘 맞이하기 위해 미리미리 준비해야 할 돈과 건강 행복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서영아기자 sya@donga.com}

    • 2022-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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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레는 실버타운 입주… 우린 좋은 시설 찾아 알리는 암행어사[서영아의 100세 카페]

    50대쯤 되면 나이 드는 것이 달갑지 않게 마련. 하지만 올해 54세, 53세인 문성택 유영란 씨 부부는 60세가 되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부부 중 한 사람이 60세를 넘겨야 실버타운에 입주할 수 있기 때문. 지금은 ‘공부하는 아빠엄마(공빠·공마)’를 자처하며 전국의 실버타운을 탐방하고 공부한 내용을 유튜브 채널 ‘공빠TV’를 통해 세상과 공유하고 있다. 사실 이 부부 얘기는 지난해 7월 디지털판 100세 카페에서 살짝 소개한 바 있다. 그런데 최근 문 씨에게서 첫 책을 냈다고 연락이 왔다. ‘실버타운 올가이드’(한국경제신문사·사진)가 그것으로, 부부가 발로 뛰어 추려낸 19개 실버타운의 현황과 선택 요령 등을 소개했다. 설레는 인생2막을 준비하는 문 씨 부부를 16일 서울 강남구 ‘더 시그넘하우스’에서 만났다.○시니어, 식사 문제가 중요한 포인트공빠TV는 1년여간 괄목할 만큼 성장해 있었다. 누적 475개의 유튜브 영상을 올렸고 구독자 9만 명이 넘는 실버타운 전문 채널로 자리 잡았다. 초기 영상들이 자료사진과 웹사이트를 통해 ‘공부’한 내용을 전해주는 것이었다면 근래에는 현장을 누비며 실제 거주자와 운영자들을 인터뷰하고 시청자와도 소통하는 적극성이 돋보인다. 시청자 댓글에서는 실버타운, 넓게는 노후 주거에 대한 인식 변화가 피부로 느껴진다. 해외에서 공빠TV를 보고 역이민을 결정했거나 준비 중인 시니어가 많다는 점도 놀라웠다. ―실버타운 전도사로 자리를 잡으셨네요. “실버타운에 대한 오해가 너무 많아요. ‘요양원’의 일종이라거나 ‘현대판 고려장’ 비슷한 걸로 생각하는 시니어도 계시죠. 하지만 실버타운은 그냥 집이에요. 시니어 맞춤형 커뮤니티 시설이 잘 돼 있는 좋은 아파트죠. 세끼 식사가 제공된다는 게 중요합니다. 나이 들수록 매끼 무엇을 먹을지 생각하고 차려 먹는 일은 고역이 됩니다. 실버타운 다녀보면 여성 시니어들이 ‘세끼 밥 안 하는 것만 해도 천국’이라고 말씀하세요.” 전북 익산에서 한의사로 일하는 그는 “배우자가 떠나고 혼자 된 고령자는 건강이 악화되는 게 훤히 보입니다. 이분께 제대로 된 세끼 식사만 제공돼도 확 달라지죠”라고 말한다. 실제 실버타운에서 마주치는 입주민들은 건강 상태가 바깥세상보다 10∼20년은 젊어 보인다는 것. 공빠TV는 실버타운에 가야 할 사람으로 △혼자인 남성·여성 시니어 △부부 중 한 분이 아픈 시니어 △해외에서 돌아온 역이민 시니어 △아내에게 사랑받고 싶은 시니어를 든다. 반대로 실버타운에 들어가면 안 되는 사람으로는 △나의 집에 대한 애착이 강한 시니어 △경제적으로 빠듯한 시니어 △공동생활이 싫은 시니어 △자기 고집이 지나치게 강한 시니어를 들었다.―실버타운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것 같습니다. “유튜브를 시작한 2년 전만 해도 웬만한 실버타운에는 다 공실이 있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몇 년씩 기다리는 대기자가 즐비합니다. 실버타운에 새로 입주하려는 연령층이 젊어지고 있고요. 롯데호텔이 최고급 실버타운을 준비 중인데 전국에 30곳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합니다. 그만큼 시장이 밝다고 보기 때문이겠죠.” 그의 별명은 ‘실버타운 영업사원→홍보대사→암행어사’로 바뀌고 있다. 관심을 갖고 자꾸 찾아가 세상에 알리다 보니 실버타운의 서비스들이 업그레이드되는 긍정적 효과도 있다. ○ 저소득층 복지주택에도 실버타운 시스템 도입실버타운을 다룰 때 조심스러운 점은 비싸다는 점과 극소수 인원만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2020년 기준 노인복지주택 입소 정원이 7925명이니 고령자 인구 850만 명 중 0.1%만 수용 가능한 셈이다. 하지만 현재의 실버타운이 노후 주거에 대한 힌트를 제공해 주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비싸다는 선입견과 달리 월 100만 원 정도(1인 기준)로 주거와 식사, 편의를 누릴 수 있는 가성비 좋은 실버타운도 적지 않다. 그중 하나인 경남 의령 일붕실버랜드에서 23년째 생활 중인 84세 강일선 할머니는 “공짜로 너무 오래 사니 미안할 지경이지만 이곳 생활이 너무 행복하다”고 말한다. 1999년 부부가 합쳐 4500만 원 내고 종신제로 들어왔는데 부군은 2년 반 전 타계했다. 8개월 전 미국에서 동해약천온천 실버타운으로 이주한 88세 노부부는 아예 ‘공빠TV를 보고 한국행을 결정했다’며 고마워한다. 서부의 실버타운인 라구나우즈 빌리지에 한국인으로는 처음 입주해 22년 살다가 이곳으로 왔다. 42평형 집을 얻어 인테리어를 멋지게 하고 매일 온천과 골프, 바다와 산, 입에 맞는 시골밥상을 즐긴다. 요즘 정부는 경제적으로 취약한 고령자들을 위해 실버타운 개념을 벤치마킹한 고령자 복지주택을 늘리고 있다. 좁더라도 자기 주택에서 생활하며 복지혜택을 누릴 수 있게 했다. 대개 1, 2층은 복지회관, 3층부터 위로는 6∼8평 임대아파트로 이뤄진다. 3년 전 경기 시흥시 응계지구 고령자복지주택에 입주한 황영옥 씨(87)는 기초노령연금과 주거급여, 국민연금을 합쳐 월수입이 딱 50만 원인데, 이 돈이 매달 남는다고 한다. 7평 임대아파트는 보증금 2530만 원에 월세 6만1700원. 집 바로 옆 노인복지관에서 매일 무료 점심을 먹고 무료 반찬 서비스도 받다 보니 본인 식비로 월 5만 원 이상 써 본 적이 없다. 내 집처럼 드나들 수 있는 복지관에서 포켓볼도 치고 서예나 외국어 교육도 받는다. 이런 소개 영상에는 “이게 바로 자살 예방 방송”이라거나 “희망이 생긴다”는 뜨거운 댓글들이 달린다.○부모-자녀 사이 행복계약서각기 딸 둘(유 씨), 아들 하나(문 씨)를 키우던 두 사람은 8년 전 새로 가정을 이뤘다. “사춘기인 아이들의 구심점을 어떻게 잡아야 하나 고민이 많았고, 경제교육에 착목했어요. 부부가 6개월을 고민한 끝에 ‘행복계약서’란 걸 만들어 크리스마스날 아이들에게 내밀었죠. ‘엄마아빠는 이런 식으로 살고 싶다. 너희 의견을 얘기해 달라’고.” 계약서는 무상지원은 고교까지, 대학부터는 한 학기 500만 원 한도로 대출해 준다거나 결혼이나 독립할 때 본인 저축액과 같은 액수를 5000만 원 한도에서 지원한다. 대출을 성실하게 상환하면 부모가 75세가 됐을 때 대부분의 재산을 정리해 자녀들에게 공평하게 증여하겠다는 내용이 골자다. 단 증여액의 0.1%를 매달 돌려받는다는 조건이 달렸다. 예컨대 1억 원을 줬다면 월 10만 원씩 상환받아 부모 용돈으로 쓰겠다는 것. 이 밖에도 연 3회 가족모임에 참석하고 분기마다 권장 서적을 읽는 등 조건이 추가된다. 딸들은 흔쾌히 사인했으나 아들은 군대에 다녀온 뒤에야 사인했다. 자녀들은 계약서대로 충실히 잘 이행하고 있다. “아이들은 부족한 가운데 돈의 소중함을 알게 될 겁니다. 그렇게 20년간 돈 공부를 시킨 뒤 목돈을 미리 주겠다는 겁니다. 아이들도 40대면 돈이 필요할 나이이고, 투자를 해도 저보다 잘할 겁니다. 저로서도 75세부터 재산을 줄여 나가면 세금도 줄고 홀가분해지겠지요.” ―60세가 되면 들어갈 실버타운은 정하셨는지? “자꾸 마음이 변합니다. 현재 두 군데 정도 대기 등록을 해놨고 구두로는 10군데쯤 예약한 것 같아요. 몇 군데 시험 삼아 살아 본 뒤 정착하려 합니다.”○요양원 요양병원 공부도 시작할 참한국의 인구구조는 2030년이면 인구 30%, 2050년이면 인구 40%가 고령자인 세상을 예고하고 있다. 시니어들이 자녀세대에 짐이 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준비가 필요한 이유다. 액티브 시니어로 건강하게 사는 기간이 지나가면 다음 단계도 준비해야 한다. 공빠부부는 그래서 요양원과 요양병원에 대해서도 공부를 시작하겠다고 한다. “요양원 요양병원도 천차만별인데, 홍보나 광고는 법으로도 제한된다고 합니다. 발로 뛰어 괜찮은 곳들을 찾아내고, 좋은 곳이라면 많이 알리고 싶습니다.” (더 상세한 내용은 23일 오전 디지털판 100세 카페에서 확인하세요).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2-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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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 얼굴이 좀 이상해” 인생2막에 닥친 병마, 치유의 힘은 숲에…[서영아의 100세 카페]

    한국의 중년 남성들이 ‘나는 자연인이다’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산림치유지도사 박삼령(76) 씨는 나이가 들수록 ‘녹색갈증(바이오필리아)’이 커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녹색갈증은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 하버드대 교수의 이론으로, 인간 DNA에 자연과 다른 생명체에게 이끌리는 본능이 있어 그들과 연결되고자 한다는 뜻이다.그래서일까. 그는 아예 숲에서 일한다. 정확히는 숲에서 쉬고 공부하며 겸사겸사 일도 한다. 숲은 그의 일터이자 생명을 다잡는 공간, 스스로 치유되고 남들의 치유를 돕는 공간이다. “솔바람에 실려오는 피톤치트와 음이온, 호흡만 깊게 해도 온몸의 세포가 살아나고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도심에서 묻은 심신의 때를 씻어내주지요.”8년 전 숲 근처에서 살고 싶어 아예 청계산 자락으로 이사했고, 7년 전부터 숲 해설가로 일했다. ‘공기 맑고 도심보다 평균기온이 1도 정도 낮다’는 청계산 자락에서 4일 박삼령 김지수(74)씨 부부를 만났다. 숲이 주는 치유의 힘대학을 졸업한 1973년 외환은행에 입행해 정년퇴직(2004년)까지 한 우물을 팠다. 그 이듬해부터는 개방직 공무원인 전라남도투자유치단장을 맡았고 호남대 무역학과 겸임교수로도 일했다. 대부분 퇴직해 일을 손에서 놓은 친구들이 “넌 이모작을 하는구나”라며 부러워했다. 이런 일들도 슬슬 끝이 보이던 65세 무렵, 몸에 이상신호가 왔다.“여보, 당신 얼굴이 좀 이상해.” 부인 김 씨에 따르면 안색에 초록빛이 감돌았고 오른쪽 눈두덩이 부어 보였다. 대학병원에서 눈 뒤쪽 림프선에 숨어있던 작은 혹을 발견했다. 조직검사 결과는 악성 안와 림프종. 의사는 종양 위치가 나빠 수술은커녕, 방사선 치료조차 어렵다고 했다. “그래도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마침 새 표적항암치료제가 나와 임상시험 중이었는데 자리가 남아 있었어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응했는데 그게 효과가 좋았습니다.” 그렇게 항암주사를 6번 맞고 5년 넘는 관찰기간을 거쳐 2019년 완치판정을 받았다.“항암주사 맞은 뒤 2주간은 좋은 세포도 따라죽는 기간이라 무척 힘듭니다. 그 뒤 다음 주사 맞기까지 2주는 조금 살 만하죠. 이런 때 전국의 산속 요양병원과 치유센터 등을 찾아다녔습니다. 좋은 공기와 명상, 산림치유가 효과가 있고, 스트레스가 가장 해롭다는 확신이 들었지요.” 하던 일 싹 정리하고 숲 해설가 공부를 시작했다. 2014년 숲 해설가 자격증을 딴 뒤에는 다시 산림치유지도사에 도전했다. 73세, 산림치유지도사 자격증을 따다-숲 해설가와 산림치유지도사는 어떻게 다른가요. “숲 해설가는 숲 현장에서 숲의 생태를 설명하는 일을 합니다. 학력제한 없이 누구나 응시할 수 있어요. 현재 약 2만 5000명쯤 배출돼 있습니다. 산림치유지도사는 치유의 숲, 자연휴양림, 삼림욕장 등을 활용한 맞춤형 산림치유 프로그램을 개발해 현장에서 지도하는 일을 하는데, 자격요건부터 까다롭습니다. 원칙적으로 대학 관련학과(산림 의료 보건 간호 등) 학위가 있어야 하고 양성기관에서 1년 정도 공부해야 시험자격이 주어지죠. 현재 2500명쯤 있습니다.” 그는 산림치유지도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방송통신대 농식물학과에 편입해 농학사를 따고 평생교육원에서 1년간 산림치유지도사 양성과정을 수료했다. 2019년 자격증 딴 뒤 2020년 강릉 국립 자연휴양림에서 4개월, 2021년 완도 약산 해양 치유의 숲에서 4개월간 일했다. 일하는 기간 월 200만 원 가까이 급여가 나왔지만 지방살이 비용을 해결해야 하니 남는 건 없다. 완도 치유의 숲에서 일할 때는 근처에 숙박시설이 마땅치 않아 2시간 거리인 나주의 레지던스 호텔에서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했다.산림치유지도사들은 현장에서 사용할 2시간 길이 프로그램을 직접 짜고 방문객을 대상으로 강사 노릇도 한다. 예를 들면 먼저 준비운동을 한 뒤 호흡법을 가르친다. 깊은 호흡으로 몸속 독소를 내보내고 피톤치트와 음이온, 산소가 들어오도록 유도해 뇌를 맑게 해준다. 황톳길이 설치된 곳이라면 맨발걷기를 한 뒤 계곡물에 들어가 발 담그고 지압을 한다. 산으로 올라가다가 적당한 장소가 있으면 명상을 지도하기도 한다. “질병의 가장 큰 원인은 스트레스입니다. 주원인을 해소하면 면역세포인 NK세포가 활성화돼 비정상세포를 제거해주죠. 식이요법와 약용식물 발효식품에 대해 강의하기도 하고 음악과 댄스를 끼워넣기도 하죠.”대상층과 현장 상황에 맞춰 몇가지를 섞어 프로그램을 만든다. 노인들이라면 치매예방 프로그램에 집중하고 청년들이라면 땀이 뻘뻘 날 정도로 운동을 시켜주는 쪽으로 조절한다. -산림치유 체험 한두번으로도 건강증진 효과가 있는지요. “‘치료’가 아닌 ‘치유’는 즉각적인 효과가 눈에 보이지는 않지요. 하지만 그 효과가 자기 몸에 고정화되도록 7~8번 정도 반복하면 확연하게 좋아집니다. 요즘 대부분의 국립 치유의 숲에는 스트레스 측정 기계가 마련돼 있어 프로그램 참여 전과 후 수치가 달라진 것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독일에서는 호흡기 질환자가 온천에서 한달 정도 요양하는 것도 의료보험으로 커버해줄 정도로 치유 요법은 효과를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고령의 산림치유지도사, 일할 기회 아쉬워 어렵게 자격증을 얻었지만 활동기회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지원자가 늘고 경쟁이 격화됐기 때문이다. “‘제2의 인생’ 논하며 중고년을 위한 일자리창출 차원에서 만든 제도인데, 하겠다는 사람이 미어터지는 상황입니다. 주관하는 산림청이 고민이 많을 겁니다.” 규모가 큰 휴양림이나 치유의 숲은 매년 연초에 공개입찰을 통해 팀단위의 산림치유지도사 조합과 업무계약을 한다. 1급 산림치유지도사가 조합장이 돼 5명, 10명 등의 조합을 만들게 된다. 그는 올해 여러 군데에 지원했지만 모두 떨어졌다. 개인별로 뽑는 곳들도 높은 경쟁률에 일을 잡기가 쉽지 않다.그때마다 나이 때문인 것 같아 영 속이 상한다. “물론 나이 때문이라는 말을 직접 들은 적은 없어요. 그런데 다른 이유가 별로 없거든요. 저 때문에 저희 팀이 떨어진 것 같아 다른 조합원들에게도 미안할 때도 있죠.”-각자 프로그램을 구성한다면 경륜이 오히려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다만 나이든 사람이 끼면 팀 전체적으로 호흡이 맞지않을 수 있으니 애초에 피하고 싶겠지요. 꼰대기질에 팀장에게도 잔소리하면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요즘은 40-50대 여성이나 20대 지도사도 많으세요. 제가 조합장이라 해도 말 잘 듣는 젊은이를 뽑지 할아버지 꼰대를 왜 뽑겠어요. 제가 지난해부터 산림치유지도사협회 이사를 맡고 있는데, 그것도 경계의 요인이 되는 듯합니다. ‘우릴 감시하러 온 건가’하고 말이죠. 하하하.”그래도 포기하지는 않는다. 지난주에도 산정호수에 답사를 다녀왔다.“하루 빈자리를 메우는 거지만 최근 모집공고가 났어요. 16일 주민 30명이 방문한다고 합니다. 산림치유를 지도하려면 현장을 속속들이 보고 프로그램을 짜야 합니다. 얼마나 걸으면 계곡이 나오는지, 명상할 만한 공간은 어디에 있는지 미리 파악해둬야 하죠.”조금 손해보는 선택이 이득이더라그는 외환은행 시절 독일에서만 세 차례 주재원 생활을 했고 호주 현지법인 사장을 끝으로 퇴직했다. IMF 외환위기가 터진 1997년부터 1999년까지는 외환은행 독일 현지법인 사장이었다. 코메르츠방크가 2억 달러를 투자하는 등 외자유치에서 ‘독일이 가장 한국을 밀어줬다’는 기사가 나오던 무렵 그 최전선에서 일한 것. 기획재정부에서 상을 줄 테니 신청하라고 연락이 왔을 정도였다.-금융가에서도 4번이나 주재원으로 나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던데, 해외근무가 잦으면 국내 사정에 어둡게 되지 않는지요.“아이들에게 미안하죠. 5~6년 국내 근무하다가 3~4년 해외로 가는 생활이 반복됐으니 공부도 힘들고 친구관계도 끊어지고.”그래도 아들과 딸은 제 몫하는 성인으로 잘 커줬다. 부인 김지수 씨는 알고 보니 198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에 당선된 작가였다. 잦은 해외살이로 활동이 끊기다보니 어느 새 밀려난 세대가 돼 버렸다고 한다. 부인에게는 미안하지 않으냐고 묻자 그는 “대신 다른 많은 경험이 창작의 소재가 된 것 아닌가…”하며 웃는다. 김 씨가 2010년 낸 소설집 ‘누가 강으로 떠났는가(문학나무)의 표지는 호주시절 그가 찍은 사진을 사용했다.“제게 산림치유지도사는 봉사 활동입니다. 일당도 좀 받지만 내가 아는 것, 할 수 있는 것을 이웃과 나눈다는 생각이 더 강합니다. 앞으로도 여생을 봉사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제가 치매예방운동지도사 자격증도 갖고 있어요. 코로나 사정이 좀 풀리면 산림치유 중에서도 치매예방코스를 중점적으로 하고 싶습니다. 전남지역에서 주간보호센터 어르신들 대상으로 교육해본 적이 있는데 호응이 아주 좋습니다. 치매예방에 태극권을 도입하는 방법을 연구 중입니다.”“지금 이대로 충분히 행복”김지수 씨는 비슷한 연배 여성들에게 ‘남편이 숲 해설하러 다닌다’고 하면 다들 엄청 부러워한다고 말한다. 퇴직 뒤 한동안 활동적이던 남편들도 나이가 들면서 점차 집에서 TV만 보거나 자기 방에 틀어박힌 경우가 많다는 것.-부군이 아프셨을 때는 많이 힘드셨을 것 같은데요. “암 진단 받으면 남들은 운다고 하던데, 저는 갑자기 기운이 솟으면서 ‘이 남자, 무슨 일 있어도 살려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더군요. 제 딴에는 최선 다했습니다. 그때 느낀 게 본인도 힘들지만 옆에서 지켜보고 간호하는 가족의 마음을 다독여주는 프로그램도 필요하겠다는 거였어요. 덕분에 인생설계를 새로 했어요. 식단을 건강식으로 바꾸고 이사도 하고 생활패턴도 완전히 바꿨지요. 함께 등산하고 숲 여행도 많이 가고, 제 인생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습니다. 그는 2010년 마지막 소설집을 낸 뒤 10여 년 간 글을 안 썼다고 한다. 젊은 작가만 선호하고 책 내기도 힘든 세상이 서운했다. 대신 글쓰느라 못 누린 인생을 찾아보자는 쪽으로 선회해 여고동창들과 정기 여행모임을 만들도 연극 공부를 해 무대에도 섰다. 구청에서 운영하는 시니어모델 활동도 맛봤다. 그랬더니 요즘 다시 글이 쓰고 싶어져 블로그에서 독자와 소통하고 여러 문예지에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이런 그는 70대가 된 지금 인생 최고의 즐거운 나날을 구가하고 있다고 한다. “노후는 지금 이대로로 충분합니다. 너무 잘 살고 있어요. 남편은 남편대로 저는 저대로 만족합니다.”인생 후반, 더 중요해지는 ‘돈 건강 행복’풍요로운 100세 인생을 맞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돈과 건강, 그리고 행복입니다. 이 모든 것은 어느 날 갑자기 갖춰지는 게 아니고 30~40대부터 차근차근 조금씩 준비해나가야 합니다. ‘100세 카페’에서는 특히 인생 2막을 잘 맞이하기 위해 미리미리 준비해야 할 돈과 건강 행복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2-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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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항암제’ 숲에서 새 삶… “이젠 치매예방 산림치유 코스 개발[서영아의 100세 카페]

    한국의 중년 남성들이 ‘나는 자연인이다’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산림치유지도사 박삼령 씨(76)는 나이가 들수록 ‘녹색갈증(바이오필리아)’이 커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녹색갈증은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 하버드대 교수의 이론으로, 인간 DNA에 자연과 다른 생명체에게 이끌리는 본능이 있어 그들과 연결되고자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아예 숲에서 일한다. 숲은 그의 일터이자 생명을 다잡는 공간, 스스로 치유되고 남들의 치유를 돕는 공간이다. “솔바람 부는 숲에서 호흡만 깊게 해도 온몸의 세포가 살아나고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도심에서 묻은 심신의 때를 씻어내 주지요.” 숲 근처에서 살고 싶어 8년 전 아예 청계산 자락으로 이사했다는 박삼령 김지수 씨(74) 부부를 4일 만났다.○극복과 치유의 힘을 숲에서 찾다대학을 졸업한 1973년 외환은행에 입행해 정년퇴직(2004년)까지 한 우물을 팠다. 이듬해부터는 개방직 공무원인 전라남도투자유치단장을 맡았고 호남대 무역학과 겸임교수로도 일했다. 대부분 퇴직해 일을 손에서 놓은 친구들이 “넌 이모작을 하는구나”라며 부러워했다. 이런 일들도 슬슬 끝이 보이던 65세 무렵, 몸에 이상신호가 왔다. “여보, 당신 얼굴이 좀 이상해.” 부인 김 씨에 따르면 안색에 초록빛이 돌았고 오른쪽 눈두덩이 부어 보였다. 대학병원에서 눈 뒤쪽 림프샘에 숨어 있던 작은 혹을 발견했다. 안와 림프종. 조직검사 결과 악성이었다. 의사는 수술은커녕 방사선 치료조차 어렵다고 했다. “그래도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마침 새 표적항암제가 나와 임상시험 중이었는데 자리가 남아 있었어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응했는데 효과가 좋았습니다.” 그렇게 항암주사를 6번 맞고 5년 넘는 관찰기간을 거쳐 2019년 완치 판정을 받았다. “항암주사를 맞은 뒤 2주간은 좋은 세포도 따라 죽는 기간이라 무척 힘듭니다. 그 뒤 다음 주사 맞기까지 2주는 조금 살 만하죠. 이런 때 산속 요양병원과 치유센터 등을 찾아다녔습니다. 좋은 공기와 명상, 산림치유가 효과가 있고, 스트레스가 가장 해롭다는 확신이 들었지요.” 하던 일을 싹 정리하고 숲 해설가 공부를 시작해 2014년 국가자격증을 취득했고, 다시 산림치유지도사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숲 해설가와 산림치유지도사는 어떻게 다른가요. “숲 해설가는 현장에서 숲의 생태를 설명하는 일인데, 누구나 응시할 수 있어요. 약 2만5000명 배출돼 있습니다. 산림치유지도사는 치유의 숲, 자연휴양림, 삼림욕장 등을 활용한 맞춤형 프로그램을 개발해 현장에서 지도하는 일을 하는데, 자격 요건부터 까다롭습니다. 대학 관련 학과(산림 의료 보건 간호 등) 학위가 있어야 하고 양성기관에서 1년 정도 공부해야 시험 자격이 주어지죠. 현재 2500명쯤 있습니다.” 지도사들은 현장에서 사용할 2시간 길이의 프로그램을 직접 짜고 방문객을 대상으로 강사 노릇도 한다. 예를 들면 깊은 호흡으로 몸속 독소를 내보내고 피톤치드 음이온 산소 등이 들어오도록 유도해 뇌를 맑게 해준다. 황톳길 맨발 걷기를 한 뒤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지압을 한다. 적당한 장소가 있으면 명상을 지도하기도 한다. 대상층이 고령자라면 치매 예방에 비중을 주고 청년이라면 운동을 많이 시키는 식으로 프로그램을 조절한다. 그도 방송통신대 농식물학과에 편입해 농학사를 따고 평생교육원에서 1년 양성과정을 마쳤다. 2019년 자격증을 딴 뒤 2020년 강릉 국립자연휴양림에서 4개월, 2021년 완도 약산 해양 치유의 숲에서 4개월간 일했다. 월 200만 원 정도의 급여가 나왔지만 지방살이 비용을 해결해야 하니 남는 건 없다. 완도 치유의 숲에서 일할 때는 근처에 숙박시설이 마땅치 않아 2시간 거리인 나주의 레지던스 호텔에서 출퇴근했다.○ 73세, 산림치유지도사가 되다산림치유지도사로서 활동할 기회는 갈수록 줄고 있다. 지원자가 늘어 경쟁이 격화됐기 때문. “‘제2의 인생’을 논하며 중노년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만든 제도인데, 지원자가 미어터지는 상황입니다. 주관하는 산림청이 고민이 많을 겁니다.” 규모가 큰 휴양림이나 치유의 숲은 매년 연초에 공개입찰을 통해 팀 단위의 산림치유지도사 조합과 업무계약을 한다. 1급 산림치유지도사가 조합장이 돼 5명, 10명씩 조합을 만들게 된다. 그는 올해 여러 군데에 지원했지만 모두 떨어졌다. 개인별로 뽑는 곳들도 높은 경쟁률에 일을 잡기가 쉽지 않다. 그때마다 나이 때문인 것 같아 영 속이 상한다. “물론 나이 때문이라는 말을 들은 적은 없지만, 다른 이유가 별로 없거든요. 저 때문에 저희 팀이 떨어진 것 같아 다른 조합원들에게도 미안하죠.” ―이런 일은 경륜이 오히려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다만 나이든 사람이 끼면 조합의 다른 분들과 호흡이 맞지 않을 수 있으니 애초에 피하고 싶겠지요. 제가 지난해부터 산림치유지도사협회 이사를 맡고 있는데, 그것도 경계의 요인이 되는 듯합니다. 요즘은 40, 50대 여성이나 20대 지도사도 많으세요. 제가 조합장이라 해도 말 잘 듣는 젊은이를 뽑지 할아버지 꼰대를 왜 뽑겠어요. 하하하.” 그래도 포기하지는 않는다. 지난주에도 산정호수에 답사를 다녀왔다. “하루 빈자리를 메우는 거지만 최근 모집공고가 났어요. 16일 주민 30명이 방문한다고 합니다. 산림치유를 지도하려면 현장을 속속들이 보고 프로그램을 짜야 합니다. 얼마나 걸으면 계곡이 나오는지, 명상할 만한 공간은 어디에 있는지 미리 파악해 둬야 하죠.” “제게 산림치유지도사는 봉사 활동입니다. 내가 아는 것, 할 수 있는 것을 나눈다는 생각으로 임합니다. 앞으로도 봉사하면서 여생을 살고 싶습니다. 제가 치매예방운동지도사 자격증도 갖고 있어요. 코로나 상황이 나아지면 치매 예방 산림치유 코스를 중점적으로 개발하고 싶습니다. 전남지역에서 주간보호센터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교육해 본 적이 있는데 호응이 아주 좋았습니다.”○“지금 이대로 충분히 행복”그는 독일에서만 세 번 주재원 생활을 했고 호주 현지법인 사장을 끝으로 퇴직했다. 외환위기가 터진 1997년부터 1999년까지 외환은행 독일 현지법인 사장으로 있었다. 부인 김지수 씨는 알고 보니 198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에 당선된 작가였다. 잦은 해외살이로 활동이 끊기다 보니 어느 새 밀려난 세대가 돼 버렸다고 한다. 부인에게 미안하지 않으냐고 묻자 그는 “대신 다른 많은 경험이 창작의 소재가 된 것 아닌가…” 하며 웃는다. 2010년 낸 김 씨의 소설집 ‘누가 강으로 떠났는가’(문학나무)의 표지는 호주 시절 그가 찍은 사진을 사용했다. 김 씨는 ‘남편이 숲 해설 한다’고 하면 비슷한 연배 여성들이 엄청 부러워한다고 말한다. 퇴직 뒤 한동안 활동적이던 남편들도 나이가 들면서 집에서 TV만 보거나 자기 방에 틀어박혀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 ―부군이 아프셨을 때 힘들지 않았는지요. “암 진단 받으면 남들은 운다고 하던데, 저는 갑자기 기운이 솟으면서 ‘이 남자, 무슨 일이 있어도 살려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더군요. 제 딴에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덕분에 인생설계를 새로 했어요. 식단도 생활 패턴도 완전히 바꿨지요. 함께 등산하고 숲 여행도 많이 가고, 제 인생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요. 한동안 중단했던 소설 쓰기를 최근 다시 시작해 여러 문예지에 작품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이런 그는 70대인 지금 인생 최고의 즐거운 나날을 구가하고 있다고 말한다. “노후는 ‘지금 이대로’로 충분합니다. 너무 잘 살고 있어요. 남편은 남편대로 저는 저대로.”(더 상세한 내용은 9일 오전 100세카페 디지털 판에서 확인하세요)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2-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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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음보다 두려운 치매…‘몸보다 빨리 늙는’ 뇌, 노화 늦추려면[서영아의 100세 카페]

    지난달 갔던 도쿄의 유명 호텔 1층에는 작은 서점이 있었다. 장소가 장소니만큼 대중적인 책들이 놓여 있는데, 정중앙에 자리한 매대에는 ‘지혜롭게 늙어가기 위한’ 서적들이 그득했다. 제목만 훑어보면 이런 식이다. ‘재택 고독사의 추천’, ‘인생 결산서’ ‘당신의 인생을 타인과 비교하지 않아도 됩니다’, ‘씩씩하게 늙는 법’, ‘정신 차리고 보니 종착역’…. 국내에서 번역서가 나온 책도 보인다. 이중 ‘뇌수명을 늘린다-인지증(치매)이 되지 않는 18가지 방법’(文藝春秋)이란 문고판이 눈에 띄었다. 저자는 일본의 노년정신의학 전문가 아라이 헤이이(新井平伊) 박사.초고령사회 일본에서 고령자들이 죽음보다 두려워하는 질환이 바로 닌치쇼(認知症), 즉 치매다. 나이 때문에 몸이 불편해지고 각종 기능이 떨어지는 것은 감내한다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잊고 가족도 못 알아보는 상황은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다. 하지만 65세 이상 고령자만 3600여 만 명(인구의 29.1%), 이중 치매환자가 460만 명에 치매 예비군인 경도인지장애(MCI) 진단자도 400만 명인 일본에서 치매는 갈수록 흔한 질병이 되고 있다. 인구구조가 급격히 일본을 따라가는 한국도 남의 일이 아니다.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2021년 한국의 고령자는 858만 여 명(인구의 17%), 추정 치매환자는 88만 6000여 명, 유병율은 10.33%다. 유형별로는 퇴행성인 알츠하이머 치매가 76%, 혈관성 치매가 8.6%, 기타 치매가 15.4%를 차지했다. 치매를 부르는 가장 큰 요인은 슬프게도 ‘나이’다. 65~69세 구간에서 4.4%에 불과했던 유병률은 85세 이상이 되면 36.66%로 올라간다. 문제는 인간 수명이 급속도로 늘었다는 점. 예컨대 한국인 1970년생의 기대수명은 62.3세였지만 2020년에는 83.5세로 늘었다. 50년 간 신체 수명이 20년 넘게 늘어났는데 뇌 수명은 이를 쫓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아라이 박사는 ‘뇌는 몸보다 빨리 늙는다’는 현실인식에서 출발해 지금 당장 실천에 옮길 수 있는 뇌수명을 늘릴 방법 18가지 방법을 알기 쉽게 정리했다. 익히 알려진 내용도 많지만 참고할 대목도 적지 않다. 재구성해 소개한다.“어? 예전같지 않은데?” 작은 ‘변화’ 놓치지 말아야① 뇌 노화, 작은 ‘변화’에서 포착하라 뇌 노화를 늦추려면 노화를 조기에 발견하는 게 중요하다. 문제는 노안이나 백발, 혈액검사 수치로 드러나는 신체 노화와 달리 뇌의 노화는 알아채기 어렵다는 점이다. 뇌의 노화를 알아채는 키워드는 ‘변화’다. 예컨대 △이유없이 짜증이 나고 초조하다 △잠이 오지 않는다. △외출이 귀찮아진다 △취미가 즐겁지 않아졌다 △건망증이 늘었다 △똑같은 것을 몇 번이나 물어본다 △두통이나 위통 등의 증세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뇌는 치매판정을 받기 전에 두 단계를 거친다. 먼저 ‘주관적 인지기능저하(SCD)’ 단계. 검사에서는 드러나지 않지만 변화가 일어난 것을 ‘자각’하는 상태다. 다음은 인지기능 저하를 확인할 수 있는 ‘경도인지장애(MCI)’다. 건망증이 주요증상으로 일상생활에 큰 지장은 없고 치매로는 진단되지 않는 상태다. 매년 MCI 진단자의 10~15%가 알츠하이머병으로 이행한다. 각 단계에서 브레이크를 걸어주면 치매 발현을 막거나, 적어도 지연시킬 수 있다. ② 뇌 노화의 구조 4단계를 이해한다 1) 신체전체의 노화-생활습관병을 예방한다 2) 뇌혈관의 노화-생활습관병이 혈관을 변화시킨다 3) 뇌 신경세포의 노화 -‘즐거움’을 발견해 커버한다 4) 멘탈의 노화-의욕을 높여 역할을 부과한다뇌의 노화· 변화의 포인트-이유 없이 짜증이 나고 초조하다-잠이 오지 않는다-외출이 귀찮아진다-취미에 즐거움을 느끼지 않게 된다.-건망증이 늘었다 -똑같은 말을 몇 번이나 물어본다-두통 위통생활습관병(성인병)은 치매의 적이다③당뇨병은 치매 가능성을 두 배나 높인다 당뇨병은 치매에 걸릴 가능성을 두 배나 높인다. 당뇨병에 걸리면 당 대사에 필요한 인슐린 분비와 효능이 나빠진다. 뇌 신경세포도 당을 잘 흡수하지 못해 기능부전에 빠지며, 신경네트워크에 손상이 일어나기 쉽다. 또 효능이 나빠진 부분을 보완하려 인슐린이 더 많이 분비되는데 이와 함께 아밀로이드β(베타) 단백질이 뇌 신경세포에 쌓인다는 보고가 있다. 아밀로이드β는 알츠하이머 병을 일으키는 물질이다. 혈당 농도가 높은 채로 방치되면 혈관이 손상되고 혈관성 치매의 위험도 커진다. ④콜레스테롤, 중성지방을 컨트롤⑤혈압은 가급적 변동시키지 않는다⑥적정 체중은 건강의 최종지표 이상지질혈증(고지혈증)도 혈관을 손상시킨다. 혈액 중에 △‘나쁜 콜레스테롤’인 저밀도 지단백(LDL) 콜레스테롤이 많은 경우 △‘좋은 콜레스테롤’인 고밀도 지단백(HDL) 콜레스테롤이 비정상적으로 낮은 경우 △중성지방이 너무 많은 경우의 3가지가 있다. 이상지질혈증을 방치하면 전신혈관에 동맥경화를 서서히 진행시키고 심장에서 협심증이나 심근경색 심부전, 뇌에서는 뇌경색 뇌출혈 등 합병증을 일으킨다. 혈관이 약해지면 혈관성 치매에 걸리기도 쉽다. 40~60대가 고콜레스테롤 혈증을 방치하면 알츠하이머 병에도 걸리기 쉽다고 알려져 있다. 자각증상이 없는 게 특징이지만 고령이 된 뒤 관리에 들어가서는 너무 늦다. 조기발견 및 조기치료가 중요하다.치주병, 청력저하, 수면장애…서둘러 손 써야⑦ 치주병이 치매를 촉진 알츠하이머병 예방을 위해서는 구강내 케어가 극히 중요하다. 2020년 일본 규슈대 연구진은 환자의 잇몸에 있는 진지발리스(gingivalis) 균이 뇌내 아밀로이드 베타 생산에 관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 마쓰모토 치과대와 국립장수의료연구소의 최근 실험에서는 쥐의 구강 내에 진지발리스균을 투여하자 쥐의 인지기능이 현저히 저하하고 알츠하이머 병세도 악화했다고 한다. 여기에 치주병은 당뇨도 악화한다고 알려져 있다. 치주병 당뇨병 알츠하이머병의 악순환을 형성할 수도 있다.⑧ 청력저하는 사회적 고립, 치매 불러 잘 들리지 않으면 대화를 따라갈 수 없게 된다. 노화의 한 증상이기도 한 청력저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 저하로 이어져 사회적 고립, 우울병, 치매로 이어지기 쉽다. 뇌 건강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청력저하는 뇌에 주는 자극을 줄일 뿐 아니라 인간의 사회생활을 제한하고 고독감을 깊게 한다. 청력저하는 수술이나 질 좋은 보청기 등 해결책이 많은 편이니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반드시 손을 쓰도록 하자. ⑨ 질 좋은 수면은 뇌 건강에 불가결⑩ 수면 무호흡증후군은 반드시 치료 수면부족, 수면장애는 뇌 건강에 해롭다. 역학조사에서는 하루 6.5~7시간 자는 사람이 치매가 되는 확률이 가장 낮았다. 6시간 이하, 혹은 8시간 이상 수면을 취하는 경우 치매는 두 배로 늘었다. 수면장애는 잠들기 어려운 입면(入眠)곤란, 긴 시간 잤는데도 피로가 풀리지 않는 숙면곤란, 심야나 새벽이 눈에 떠버리는 새벽각성의 3가지가 있는데, 정신의학적으로는 신경병은 입면곤란, 우울병은 새벽각성이 많은 경향이 있다. 수면과 관련해 유의할 포인트는 다음과 같다. △하루 6.5~7시간 수면을 취한다. △낮 동안 각성과 밤 수면의 리듬을 조절하자 △침구나 공기조절 등 환경을 만든다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갖는다. △필요하다면 의사 처방에 따른 약 복용도 검토한다 △잠들기 전 음주는 수면을 얕게 하고 빨리 눈뜨게 한다. △수면무호흡증은 반드시 필요한 처치를 할 것. 수면무호흡증은 심장과 뇌 혈관에 큰 부담을 안겨줘 동맥경화를 촉진하고 뇌졸중 협심증 심근경색 등을 일으킬 위험을 높인다. 뇌에 산소가 일시적으로 줄어들면 아밀로이드β 단백질의 대사 이상이 일어난다는 데이터도 있다. 잘 때 기도를 넓히는 양압호흡기를 사용하는 등 손을 써야 한다.매일의 음주는 뇌에 치명적⑪음주는 뇌에 담배보다 나쁘다 뇌에 미치는 영향이란 측면에서는 술이 담배보다 더 나쁘다. 흡연은 담배에 포함된 니코틴 등 유해물질이 혈관에 상처를 주고 고혈압 등 생활습관병을 악화시키는 간접적인 피해를 주는 반면, 알코올은 직접 뇌에 영향을 준다. 여러 연구에서 술은 신경독(毒)임이 밝혀져 있다. 음주로 인한 건강피해는 1차적으로는 신경세포에, 2차적으로는 혈관을 통해 찾아온다. 알코올은 먼저 신경전달물질 아세틸콜린의 움직임을 저하시킨다. 정신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소중한 물질인 아세틸콜린 대사에 영향을 주면 기억계에 장애를 준다는 동물실험 결과가 나와 있다. 음주가 뇌에 직접적인 손상을 주고 신경세포가 손상된다는 것은 미국에서 진행된 대규모 조사에서도 밝혀졌다. 술을 마시는 60세와 마시지 않는 60세의 뇌 위축 정도를 조사하는 연구에서 1.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 2. 조금 마시는 사람 3. 많이 마셨지만 끊은 사람 4. 많이 마시고 있는 사람의 순으로 뇌의 위축이 적었다. 사실 음주는 뇌 이전에 신체수명에 현저하게 영향을 미친다. 러시아 남성의 평균수명은 2008년 62세였다. 알코올 도수 40도인 보드카를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음주습관 탓에 심근경색이나 뇌경색 등으로 일찍 사망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따라붙었다. 2018년 현재 러시아 남성 평균수명은 68세인데, 이는 2003년~2016년 사이 러시아내 알코올 소비량이 43%나 줄어들었다는 통계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술은 몰아서 많이 마시는 것보다 매일 마시는 쪽이 뇌에 끼치는 손상이 크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건망증이 걱정된다면 즉각 술을 끊어야 한다. 지금의 선택이 10년 뒤 완전히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운동은 필수! 운동하며 머리도 쓰면 일석이조⑫ 유산소운동 주 3회, 30분 이상 고령자의 운동은 근육이나 관절의 폐용성 퇴화(사용하지 않아 퇴화되는 것)를 방지하는 것이 최우선 목적이다. 숨을 멈추고 몸에 강한 부하를 한꺼번에 거는 무산소운동이 아니고 호흡하면서 천천히 하는 유산소 운동이 권장된다. 최우선으로 단련해야 하는 근육은 허벅지 앞쪽의 대퇴사두근. 가벼운 운동이라도 안하는 것보다 낫다. 산책도 좋지만 쉬엄쉬엄 걷는 것은 근육에 자극을 주기 어렵다. 기왕이면 빠르게 보폭을 넓혀 땀이 배어나올 정도의 부하를 몸 전체에 걸어주는 게 효과적이다.⑬운동하면서 머리도 쓰면 일석이조 운동하면서 동시에 머리를 쓰면 뇌의 각기 다른 장소를 동시에 움직이게 된다. 예컨대 실내에서 운동하면서 머릿속으로는 계산을 한다거나, 조깅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식이다. 옛 노래라면 당시의 추억이 떠올라 기억에 대한 자극이 될 것이다. 일본 국립장수의료연구센터가 경도인지장애 환자들을 위해 개발한 ‘코그니사이즈(cognicise)’는 인지(cognition)와 운동(exercise)를 합친 조어다. 개인 또는 여러 명이 운동하면서 계산이나 끝말잇기를 이어가는 프로그램인데, 인지기능이 떨어지는 것을 막아준다.사회성은 노인의 뇌 건강에 큰 도움⑭사회적 고립은 뇌 건강의 적 사회적 고립은 몸과 마음에 폐용성 퇴화를 일으켜 심리적으로도 고독감이 커지는 악순환을 낳는다. 사회적 고립은 특히 남성에게 문제가 되는데, 정년퇴직과 동시에 일도 인간관계도 사라져 고독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여성은 오히려 일 이외에 취미나 지역 연계 등으로 관계망이 많은 경우가 많다. 우울병도 사회적 고립과 관련된 병인데, 스트레스로 인한 뇌 해마의 위축, 뇌내 신경전달물질로 기분에 관여되는 노로아드레날린이나 세로토닌 저하에 의한다고 여겨진다. 우울증을 가진 경우 역학적으로는 치매에 1.7배 걸리기 쉽다. 청력저하와 사회적 고립과 우울증은 서로 각기 뒤섞이며 뇌의 노화를 진척시킨다.⑮ 사람을 상대로 한 게임을 즐겨라 트럼프 바둑 장기처럼 사람을 상대로 하는 게임이 뇌 노화방지에 효과적이다. 뇌를 단련하기에 적당한 게임은 △현실세계에서 남과 함께 하는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되고 △단순반복이 아니며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게임을 통해 상대방의 수(手)를 예측하고 그에 맞춰 자신의 수를 결정하려면 뇌 전두엽을 많이 써야 한다. 게임에 몰두해 머리를 쓰고 감정이 풍부해지면서 이기고 싶다는 의욕도 생겨나고 상대와 커뮤니케이션 하면서 사회성도 높일 수 있다. 한국에서 흔한 ‘고스톱이 치매방지에 효과적’이라는 통설은 딱 맞는 듯하다. 반면 컴퓨터나 스마트폰 게임, 크로스워드 퍼즐 등 뇌 트레이닝을 내세운 혼자 하는 게임은 별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같은 작업을 단순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뇌의 한정된 부분밖에 쓰지 않아 충분한 자극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타인과 커뮤니케이션 하면서 희로애락을 공유하고 마음의 접촉을 통해 즐거움을 표현하는 것, 그것이 뇌를 활성화한다.⑯ 뇌 건강에는 ‘의욕’이 중요 뇌에는 의욕과 감정, 지적 활동의 기능이 모여 있는데 의욕은 뇌 전두엽, 감정은 전두연합야, 지능은 해마가 자리한 측두엽과 두정엽이 담당한다. 의욕이 움직이면 감정과 지능도 일하게 된다. 몸에 중요한 것이 혈관이라면 머리에 중요한 것은 의욕이다. 몸과 혈관이 건강하고 의욕이 가득하면 감정과 지능이 작동해 뇌도 건강해진다. ⑰ 뇌에 특효약 같은 음식은 없다⑱ 건강기능식품에 의존하지 않는다 치매 20년 전부터 잡아내는 검사뇌수명을 늘린다는 것은 몸이 살아있는 동안 치매 발병이나 뇌의 쇠퇴로 인한 어려움을 가급적 미루는 것을 의미한다. 또 일단 치매에 걸렸더라도 더 이상의 악화를 막고 그 상황에서 가능한 대응을 해나가는 긍정적인 자세를 뜻하기도 한다. 아라이 박사는 준텐도(順天堂)대 의대를 정년퇴직한 뒤인 2019년부터 민간 클리닉으로 옮겨 회원제 치매 예방클럽을 운영 중이다. 알츠하이머 병의 주요원인으로 꼽히는 아밀로이트 β단백질을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으로 찾아낼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회원들을 모아 실제 치료와 연구를 진행한다. 그는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치매를 일으키기 20년 전부터 뇌에 쌓이기 시작한다는 점에서 50대부터는 검사를 받아보라고 권하고 있다. 매년 뇌 PET검사와 생활습관병 관리 등을 병행함으로써 치매 발병을 늦추거나 막는다는 것. 현재는 비용이 비싸지만 이같은 검사에 의료보험 적용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게 목표라고 한다. 한국도 일본도 치매 환자수는 65세부터 5년 단위로 근 두배로 늘어난다. 조기발견과 적절한 조치를 통해 각 개인의 발병을 5년 정도씩 늦출 수 있다면 단순계산으로는 그 연령층의 환자수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국립의료원 중앙치매센터 통계에 따르면 2021년 한국의 치매관리비용은 18조 7198억 6000만 원에 이르렀다. 인생 후반, 더 중요해지는 ‘돈 건강 행복’풍요로운 100세 인생을 맞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돈과 건강, 그리고 행복입니다. 이 모든 것은 어느 날 갑자기 갖춰지는 게 아니고 30~40대부터 차근차근 조금씩 준비해나가야 합니다. ‘100세 카페’에서는 특히 인생 2막을 잘 맞이하기 위해 미리미리 준비해야 할 돈과 건강 행복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2-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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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뇨-중성지방 경계하고 유산소운동-상대 있는 게임을 즐겨라[서영아의 100세 카페]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2021년 한국의 고령자는 858만여 명, 이 중 10.33%가 치매환자다. 치매를 부르는 가장 큰 요인은 슬프게도 ‘나이’다. 65∼69세 구간에서 4.4%에 불과했던 유병률은 85세 이상이 되면 36.66%로 올라간다. 문제는 인간 수명이 너무 급격히 늘었다는 점. 예컨대 1970년생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62.3세였지만 2020년에는 83.5세로 늘었다. 50년간 신체 수명이 20년 넘게 늘어났는데 뇌 수명은 이를 쫓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일본의 노년정신의학 전문가 아라이 헤이이(新井平伊) 박사가 저서 ‘뇌수명을 늘린다―인지증(치매)이 되지 않는 18가지 방법’(文藝春秋)을 통해 정리한,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뇌수명 늘리는 법을 재구성해 소개한다.》○ 생활습관병(성인병)은 뇌 혈관을 늙게 한다(1) 뇌의 작은 ‘변화’를 포착하라(2) 뇌 노화의 구조 4단계 ㉠신체 전체의 노화―생활습관병을 예방한다㉡뇌 혈관의 노화―생활습관병이 주원인㉢뇌 신경세포의 노화―‘즐거움’으로 커버㉣멘털의 노화―의욕을 높여 역할을 부과한다 뇌는 치매 판정 전에 두 가지 단계를 거친다. 먼저 ‘주관적 인지기능저하(SCD)’ 단계. 검사에서는 나타나지 않지만 변화를 ‘자각’하는 상태다. 다음 단계는 인지기능 저하를 확인할 수 있는 ‘경도인지장애(MCI)’다. 건망증이 주요 증상인데 일상생활에는 큰 지장 없고 치매에는 이르지 않은 상태다. 매년 MCI 진단자의 10∼15%가 알츠하이머병으로 이행한다. 뇌 노화를 늦추려면 조기 발견이 중요하다. 하지만 뇌의 노화는 알아채기 어렵다. 키워드는 ‘변화’다. 예컨대 △이유없이 짜증이 나고 초조하다 △잠이 오지 않는다 △외출이 귀찮아진다 △취미가 즐겁지 않아졌다 △건망증이 늘었다 △똑같은 것을 몇 번이나 물어본다 △두통이나 위통 등의 증세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3) 당뇨병은 치매 최대의 적(4)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을 컨트롤(5) 혈압은 가급적 변동시키지 않는다(6) 적정 체중은 건강의 최종지표 당뇨병은 치매에 걸릴 가능성을 두 배로 높인다. 당 대사가 나빠지면 뇌 신경세포도 기능부전에 빠지고 신경네트워크에 손상이 생긴다. 나빠진 효능을 보완하기 위해 인슐린이 더 많이 분비되는데 이때 알츠하이머병을 일으키는 물질인 아밀로이드β(베타) 단백질이 뇌 신경세포에 쌓인다. 이상지질혈증(고지혈증)은 방치하면 협심증이나 심근경색, 뇌경색 뇌출혈 등 합병증을 일으키거나 혈관성 치매에 걸리기 쉽다.○치주병, 청력 저하, 수면장애, 음주(7) 치주병이 치매를 촉진(8) 청력 저하는 사회적 고립, 치매 불러(9) 질 좋은 수면은 뇌 건강에 불가결(10) 수면 무호흡증후군은 반드시 치료(11) 음주는 담배보다 뇌에 나쁘다 알츠하이머병 예방을 위해서는 구강 내 케어가 극히 중요하다. 2020년 일본 규슈대 연구진이 치주병 환자의 잇몸에 있는 진지발리스(gingivalis) 균이 뇌내 아밀로이드β 생산에 관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치주병은 당뇨도 악화시켜 치주병 당뇨병 알츠하이머병의 악순환이 형성될 수도 있다. 노화의 한 증상이기도 한 청력 저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 저하로 이어져 사회적 고립, 우울병, 치매로 이어지기 쉽다. 청력이 떨어지면 뇌에 주는 자극도 줄어든다. 이 문제는 수술이나 보청기 등 해결책이 많은 편이니 반드시 손을 써야 한다. 역학조사에서 하루 6.5∼7시간 자는 사람이 치매가 되는 확률이 가장 낮았다. 6시간 이하, 혹은 8시간 이상 수면을 취하는 층에서 치매는 두 배로 늘었다. 수면과 관련해 유의할 포인트는 다음과 같다. △하루 6.5∼7시간 수면을 취한다 △낮의 각성과 밤의 수면, 리듬을 조절하자 △침구나 공기조절 등의 환경을 만든다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갖는다 △필요하다면 의사 처방에 따른 약 복용도 검토한다 △취침 전 음주는 수면의 질을 떨어뜨린다 △수면무호흡증은 반드시 필요한 처치를 할 것. 흡연은 담배에 포함된 유해물질이 혈관을 손상시키고 생활습관병을 악화시키는 간접적인 피해를 주는 반면, 알코올은 직접 영향을 준다. 여러 연구에서 술은 신경독(毒)임이 밝혀져 있다. 음주로 인한 건강 피해는 1차로 신경세포, 2차로는 혈관에 찾아온다. 알코올은 정신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 대사를 저하시킨다. 이 경우 기억계에도 장애를 준다는 동물실험 결과가 나와 있다.○고스톱은 치매 예방에 도움을 준다 (12) 유산소운동 주 3회, 30분 이상(13) 운동하면서 머리도 쓰면 일석이조(14) 뇌에 특효약 같은 음식은 없다(15) 건강기능식품에는 의존하지 않는다 (16) 사회적 고립은 뇌 건강의 적(17) 사람을 상대로 하는 게임을 즐겨라(18) 뇌 건강에는 ‘의욕’이 중요 고령자의 운동은 근육이나 관절의 폐용성 퇴화(사용하지 않아 퇴화되는 것)를 방지하는 것이 최우선 목적이다. 호흡하면서 천천히 하는 유산소 운동이 권장된다. 산책이라면 빠르게 보폭을 넓혀 땀이 배어나올 정도로 몸 전체에 부하를 걸어주는 게 효과적이다. 운동하면서 동시에 머리를 쓰면 뇌의 각기 다른 장소를 동시에 움직이니 뇌 건강에 좋다. 예컨대 실내에서 운동하면서 암산을 하거나, 조깅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식이다. 사회적 고립은 몸과 마음에 폐용성 퇴화를 일으켜 고독감이 커지는 악순환을 낳는다. 우울증도 사회적 고립과 관련되는데, 스트레스로 인한 뇌 해마의 위축, 기분에 관여되는 신경전달물질인 노로아드레날린이나 세로토닌 저하에 의한다고 여겨진다. 우울증이 있으면 역학적으로는 1.7배 치매에 걸리기 쉽다. 청력 저하와 사회적 고립, 우울증은 서로 영향을 주며 뇌 노화를 진척시킨다. 트럼프, 바둑, 장기처럼 사람을 상대로 하는 게임이 뇌 노화방지에 효과적이다. 즉 △현실세계에서 타인과 함께하는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되고 △단순 반복이 아니며 △즐길 수 있는 게임들은 전두엽을 많이 쓰게 하고 이기고 싶다는 의욕도 낳는다. 반면 ‘뇌 트레이닝’을 내세운 컴퓨터 게임이나 단어 퍼즐 등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단순 반복 작업은 뇌의 한정된 부분만 쓰게 하고 충분한 자극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뇌에는 의욕과 감정, 지적 활동의 기능이 모여 있는데 의욕은 뇌 전두엽, 감정은 전두연합야, 지적 활동은 해마가 자리한 측두엽과 두정엽이 담당한다. 의욕이 움직이면 감정과 지능도 일하게 된다. 몸에 중요한 것이 혈관이라면 뇌에 소중한 것은 의욕이다. 몸과 혈관이 건강하고 의욕이 가득하면 감정과 지능이 작동해 뇌도 건강해진다.○20년 전부터 치매를 잡아내는 검사알츠하이머병의 주원인으로 꼽히는 아밀로이드β는 발병 20년 전부터 뇌에 쌓이는데,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으로 찾아낼 수 있다. 한국도 일본도 치매 환자 수는 65세부터 5년 단위로 배로 늘어난다. 조기 발견과 적절한 조치를 통해 각 개인의 발병을 5년씩 늦출 수 있다면 단순계산으로는 그 연령층의 환자 수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아라이 박사는 2019년부터 민간 클리닉에서 회원제 치매 예방클럽을 운영 중인데, 매년 회원들의 뇌 PET 검사와 생활습관병 체크 등 종합검진을 통해 치매를 예방 관리한다. 현재는 비용이 비싸지만 이런 검진에 의료보험을 적용시키는 게 목표라고 한다. (※보다 상세한 내용은 25일 디지털판 100세 카페에서 확인하세요.)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2-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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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日 전통술-꽃꽂이 등 체험 풍성… 지속적 문화교류가 힘”

    한일 최대의 민간 문화교류행사인 ‘제 18회 한일축제한마당’이 2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3년 만에 대면행사로 열린다. 주제는 ‘다시 만나는 기쁨’. 지난 2년간은 코로나19 상황 탓에 일반인 입장 없이 유튜브로만 중계됐다. 한일축제한마당은 2005년 한일 국교 정상화 40주년을 기념한 ‘한일우정의 해’에 서울에서 시작된 행사다. 2009년부터 도쿄에서도 열리면서 매년 수만 명이 참여하는 한일 문화 교류의 장으로 자리매김했다.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인 2015년에는 서울에서만 9만 명이 참여할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2005년 첫 행사 당시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 부원장으로서 준비에 참여했던 추조 가즈오(中條一夫) 공보문화원장은 “2년 전 부임한 뒤 온라인 행사만 해왔는데, 이번에 ‘다시 만나는 기쁨’을 제대로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축제에서는 실무를 담당하는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올해 행사는 입장자들의 ‘체험’에 치중했습니다. 특히 일본 다도와 꽃꽂이 체험 부스는 우라센케(裏千家)와 오하라류(小原流) 등 일본 전통문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진행합니다. 이 두 행사는 입장자 수에 제한이 있어 이미 예약접수를 시작했습니다. 또 행사장에서 양국의 전통의상과 놀이문화를 체험하거나 지방자체단체나 기업 홍보 부스를 둘러볼 수도 있습니다. 양국의 전통무용과 악기, 아이돌그룹 공연 등 다채로운 무대공연도 볼거리죠.” 그는 ‘국제 사케 소믈리에’ 자격증 보유자로 한국과 일본의 전통주를 비교 체험하는 부스에서 한국 전통주 전문가와 토크쇼에 출연할 예정이다. 단순히 시음하고 즐기는 이벤트가 아니라 양국 문화의 유사성과 독자성을 체험하는 기회로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외교관으로서 술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는 이유에 대해 “벨기에에 주재할 때 와인에 밝은 유럽 분으로부터 일본 술에 대해 전문적인 질문을 받는 일이 많았다”며 “자기나라 술에 대해 제대로 설명할 수 있어야겠다고 생각해 소믈리에 자격을 땄다”고 설명한다. 정작 본인의 주량은 맥주 1병, 사케 1~2잔 정도인데, 조금만 마실 수 있기에 술의 맛과 향 등에 더 깊이 천착하게 된다고 한다. 한일축제한마당이 지난 2년간 온라인 행사를 고수해온 것에 대해 그는 ‘계속(지속)은 힘이 된다’는 말로 의미를 부여했다. “(그것이 공부건 행사건) 무언가를 ‘계속’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계속은 성장을 낳는 원동력이 되지요. 온라인 행사는 미지의 작업이었지만, 양국 관계자가 코로나 상황에서도 계속을 모색하는 자세로 도전했고, 그 덕에 2005년 시작된 축제의 바통을 올해까지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한일관계가 어려울수록 민간교류와 문화교류의 힘에 거는 기대는 커지고 있다. “한일관계를 자동차에 비유하면 역사나 정치 등 현안이 브레이크, 교류가 엑셀레이터 역할을 합니다. 코로나 상황에서 국민간 교류가 끊어지다 보니 브레이크는 잘 듣는데 엑셀이 깨진 자동차가 돼 버린 감이 있었습니다. 코로나 상황을 극복하고 엑셀을 다시 밟는 첫걸음으로 이번 축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문화교류의 핵심은 체험을 공유하고 그 즐거움과 풍요로움의 기억을 미래를 향해 쌓아나가는 것”이라며 “한일국교정상화 60주년, 축제 시작 20주년을 맞는 2025년에는 이 축제가 지금 이상으로 한일 양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이벤트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행사는 민간인으로 구성된 ‘한일축제한마당 2022 실행위원회(위원장·손경식 CJ그룹 회장)’가 주최하고 외교부, 문화체육관광부, 해외문화홍보원, 서울시, 주한일본대사관, 일본 관광청, 서울재팬클럽 등이 후원한다. 입장 무료. 자세한 프로그램은 홈페이지 참조. 글·사진 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2-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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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네아저씨의 고즈넉한 삶…모르고 죽었다면 억울할 뻔했어요”[서영아의 100세 카페]

    한국의 1세대 정치평론가로 꼽히는 유창선 박사(62)는 요즘 ‘두 번째 삶’이란 표현을 많이 쓴다. 3년 전 느닷없이 찾아온 뇌종양 수술로 죽음의 문턱을 밟았고, 8개월 사투 끝에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뒤 삶의 모든 게 바뀌었다. 지난달 29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나이 예순, 걸음마부터 다시 시작하다2019년 뇌 자기공명영상(MRI) 검사에서 연수(숨골) 부위에 꽤 오래된 종양이 발견됐다. 연수는 생명유지에 중요한 반사중추와 뇌의 신경세포들이 몰린 부위다. 의사는 종양의 위치가 나쁘다며 ‘(종양 자체는) 양성이지만 악성’이라 했다. 그냥 둔다면 어느날 길거리에서 돌연사할 가능성이 크지만, 워낙 어려운 부위라 수술이 가능한지조차 확답하지 못했다. 결국 10시간에 걸친 대수술로 종양은 깨끗이 제거됐지만 워낙 중요한 신경들을 다 건드린 상태. 엄청난 후유증이 남았다. 혈압조절이 안 돼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앉기만 해도 의식을 잃었고 혀가 마비돼 말을 할 수 없었다. 식도 괄약근이 열리지 않아 8개월 동안 튜브로 경관식을 했다. 삼키지 못한 타액이 폐로 들어가 폐렴만 세 번 앓았다. 그의 얘기를 듣다보면 사람이 자기 발로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를 실감하게 된다. “악전고투 끝에 조금씩 회복돼 스스로 걸어서 화장실에 가고 세면대에서 세수를 할 수 있게 된 날, 인간으로서 당당함을 느꼈다. 걷는 것, 먹는 것, 말하는 것. 무엇하나 당연하게 되는 건 없었다. 그게 가능하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하고 감사한 일인지.” 입원할 때는 열흘 정도면 퇴원할 줄 알았지만, 8개월(대학병원 2개월, 재활병원 6개월) 뒤에야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걷는 것부터 다시 시작하는 삶, 그에게 예순살은 그렇게 찾아왔다. ● 행복하고 싶은 본성에 정직하게 살자그는 ‘살아있음을 확인하려고’ 수술 이틀 뒤부터 중환자실 침대에 누워 휴대전화에 글을 썼다. 두 달 뒤에는 시사주간지에 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써낸 책이 퇴원 전 세상에 나온 ‘나를 위해 살기로 했다(사우)’이다. 최근에는 ‘나이 든다는 것은 생각만큼 슬프지 않다’는 부제가 붙은 인생에세이 ‘나를 찾는 시간’(새빛)을 펴냈다. -‘나를 찾는다’는 표현의 의미는. “‘행복하고 싶은’ 내 본성 앞에 정직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겁니다. 수술 뒤 만신창이 몸을 안고 투병과 재활의 시간을 거쳤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오히려 긍정의 정서가 지배하더군요. 가장 힘이 됐던 것은 나를 살리려고 애쓰던 가족이었습니다. 최후에 돌아갈 곳은 가족이구나. 내 인생 마지막은 가족과 함께 사랑하며 늙어가고 가족 안에서 죽어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까지 남은 시간 어떻게 좋은 사람으로 나이 들어갈 것인지 모색해야겠다고 말이죠.” -그간 자신의 행복은 뒷전에 두고 살아온 건가요. “운동권 문화 중에 그런 게 있었어요. 세상이 불행해 보이는데 나만 행복해선 안 될 것 같은 중압감을 젊은 시절부터 안고 살았지요. 나이 들어서도 나는 솔직히 행복한데 그렇다는 표정을 지어서는 안 될 것 같은 허위의식이랄까, 엄숙주의가 있었죠. 하지만 이제는 페이스북에도 행복하다는 표시를 합니다. ‘오늘 달리니까 너무 좋다’. ‘한강 풍경이 너무 예쁘다’…. 그게 가장 자연스럽고 내 본성에 정직하게 사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남을 행복하게 해줄 수도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세상의 중압감을 내려놓고 자신으로 돌아가니 자연스레 ‘동네아저씨’로 살아가게 됐다. 글쓰고 운동하며 가족과 교감하는 생활. 이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기쁘고 소중하다고 한다. ●진영이 갈린 세상에서 자유로운 외톨이의 길 선택 대학시절에는 학보사 기자였고 운동권 서적 출판으로 몇 개월 구치소 생활도 했다. 한때 현실정치에 발을 담그기도 했지만 스스로 정치인이 될 마음이 도무지 생기지 않았다. 그 즈음 우연히 방송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정치평론을 직업으로 하는 길로 나섰다. 제대로 평론을 하기 위해 모교인 연세대로 돌아가 박사학위를 받은 2001년, 마침 ‘노풍(盧風)’을 타고 시사프로그램 바람이 불었다. 이때부터 그는 정치평론가로서 전성기를 맞았는데, 종편이 없던 시절인데도 공중파에 하루 5~6개씩 출연했다고 한다. 다만 그는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 대해서도 비판할 것은 비판하면서 ‘노빠’들로부터 공격을 받아야 했다. 방송은 외풍에 약했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흔들렸다. 이명박 정권에서는 고정출연 프로그램들에서 줄줄이 하차 통보를 받았다. 방송이 출마자들의 대기소 같이 변해가는 것도 거북함을 넘어 모욕감을 안겨줬다. 권력이 5년을 못가는 세상에서 갈수록 명확히 진영이 갈라지자 그는 ‘내 힘으로 나를 지켜야 한다’며 스스로 고독의 길을 택했다. 어느 한 진영에 속하는 순간, 자기 진영에 대해 성찰할 수 없게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박근혜 정부 때는 3년간 동네 독서실에 들어가 인문학 공부를 하고 인문학 서적(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새빛)을 써내기도 했다. ●방송 대신 글로 쓰는 정치평론으로 전환-건강은 어떠십니까. “이제 일상생활은 대체로 정상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물론 조심조심 하면서죠. 혀의 마비가 아직 조금 남았고 근육통도 심합니다. 식도를 보톡스 치료로 열고 삼키는 훈련을 해 먹을 수도 있게 됐어요. 먹고 싶은 것을 먹는 것, 그게 인간에게 정말 중요하다는 걸 절감합니다. 다만 전 아직 여러 불편이 남아있는데 수술해준 병원에서는 상대도 해주지 않아요(웃음). 이 정도로 회복된 것도 기적이라고들 하니까요. 아직 회복되지 않은 후유증은 제가 안고 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는 여전히 ‘정치평론가’다. 방송은 사실상 은퇴했지만 신문 잡지 등 8개 매체에 고정칼럼을 쓴다. 매일아침 늦어도 9시 이전에는 집 근처 카페에 착석해 공부와 글쓰기 작업을 한다고 한다. 페이스북을 통한 소통도 부지런히 하고 있다. 그는 인터뷰 중 “끝난 줄 알았는데 끝난 게 아니었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예컨대 먹고사는 문제도 궁금했는데, 원고료 수입이 꽤 된다고 자랑한다. “제가 병원에 있을 때 큰아이가 취직했는데, 퇴원하면 매달 용돈을 주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한 1년 주더니 슬그머니 그만두더군요. ‘어? 나름 버네?’라고 생각했는지…. 다행히도 아내가 들어놓은 연금저축이 있었고 곧 국민연금도 타게 됩니다. 살림 규모를 많이 줄이고 수입 지출 열심히 계산하면서 삽니다. 둘째딸도 최근 취직이 돼 두 아이 모두 앞가림은 하게 됐으니, 이제 저희 부부만 잘 살면 됩니다.” 그는 이번에 노후 경제적 대비의 중요성을 절감했다고 말한다. “연금 하나 더 있고 없고가 큰 차이를 낳더군요. 사실 젊어서 월 10~20만원은 있으나 없으나 별 차이 없잖아요. 술값 쓰고 놀러가는 정도죠. 그런데 그게 차곡차곡 쌓이면 나이 들어 연금으로 돌아오는데, 연금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노후 삶의 질을 좌우합니다. 느닷없이 아파보니 보험에 대한 생각도 많이 달라졌어요. 제가 수술 1년 전쯤 실손보험 가입 상담을 했는데, 제 건강을 과신하며 안 들었거든요.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릅니다. 살면서 나에게 벌어지지 않을 것 같은 일에 대해서도 겸허하게 대비하는 자세는 필요한 것 같습니다.” ●상상도 못해본, 석양 속 한강다리를 달리는 기분3개월 전 우연히 트레일 런(달리기) 모임에 참석하면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다. “제가 몸을 치유하려고 엄청나게 걸었어요. 그걸 아는 지인이 같이 걷자며 모임에 불러줬는데, 10여 명이 처음엔 걷다가 ‘이제 뜁시다’하고 달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저로서는 혈압이 불규칙해 걷는 것도 조심하던 때거든요. 그런데 그분들 따라 조금 달려보니 기분이 너무 좋더라구요. 제가 달린 건 500m 정도지만 20대에서 60대까지, 그분들의 에너지가 제게 전해져오는 듯했어요. 그 뒤로 혼자서도 그 기분을 느끼기 위해 많이 달렸습니다. 사람 몸은 신기해서 뭐든 꾸준히 하면 조금씩 늡니다. 이제는 한번에 5km 정도는 달릴 수 있어요.” 요즘은 ‘달리기는 장비빨’이라며 여느 아마추어 러너들처럼 운동복이나 장비 쇼핑에 푹 빠져 있다고 한다. “아침에 눈뜨면 늘 뉴스검색부터 했는데 요즘은 러닝복 쇼핑코너를 보고 있습니다. 그런 제 모습이 좋아요. 석양이 떨어지는 한강다리를 달리며 건너는 기분이란…. 이걸 모르고 죽었다면 억울했을 겁니다.” ●“나이 들어보니 이기고 지는 게 별 차이 없더라”-갈수록 진영 대결의 세상이 되어갑니다. 분명 같은 나라에서 사는데 서로 완전히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많은 광경들을 겪고 나니 세상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게 되더군요. ‘내 젊은 시절 옳고 그름을 따지고 혁명을 논했지만 나이 들어보니 이기고 지는 게 큰 차이 없더라’는 도로시 파커의 시 ‘베테랑’의 구절이 딱 제 마음입니다. 나이 들어서까지 앞줄에 서서 매달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나의 행복, 나의 평화를 추구하는 삶을 사는 게 맞겠다는 결론에 이른 거죠,” 6월에는 현 정부에서 자리 제안을 받았지만 정중히 거절했다. 인생에서 가장 고즈넉하게 동네아저씨로 살아가는 시간을 흔들고 싶지 않았다. 정부 일을 한다는 것은 여기저기 쓰는 글에 구애받거나 비판할 자유를 잃는다는 얘기이기도 하다.●‘나이 든다는 것은 생각만큼 슬프지 않다’-수술이 없었다면 박사님의 60대는 어떻게 흘러갔을까요? “여전히 방송 출연하고 글 쓰고 살았겠죠. 이 고즈넉한 세계의 느낌을 끝내 몰랐을 수도 있고요. 투병 이후 다른 인생을 맛본 지금, 그런 생각만 해도 한숨이 나옵니다. 투병 이후 몸은 불편해졌는데 삶의 질은 오히려 좋아졌어요. 이건 내면의 정서인데, 설렘같은 게 생겼습니다. 하고 싶은 것 하며 수시로 ‘참, 좋다’는 그런 느낌이 옵니다. 평생 느껴보지 못한 충만함이 문득문득 수시로 와요. ‘와, 참 좋구나’하고. 가령 3-4년 전만 해도 내가 달리기하는 모습은 상상도 못했죠. 내가 이러고 살고 있을 줄이야.” -책 표지에 붙은 ‘나이 든다는 것은 생각만큼 슬프지 않다’의 뜻은. “전에는 60세를 넘긴 저에 대해 생각하기도 싫어했던 것같아요. 그냥 나이 60을 넘으면 인생을 정리하는 시간이라 생각했는데, 60이 넘어서도 앞날에 대한 기대 꿈 설렘을 가질 수 있다는 걸 체감하고 있어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더군요.” -60세 전후의 세대들은 고민도 생각도 많습니다. 동 세대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진부한 얘기 같기도 한데, 제2의 인생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흔히 은퇴하고 뒤로 물러서는 시기라고 하는데, 그 동안 해오던 일에서 은퇴한 것에 불과하죠. 내 인생은 그 순간부터 새로 시작됩니다. 은퇴 후 인생을 더 주도적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주 소소한 것들이라도 신명나게 기쁨을 맛보며 할 수 있는 뭔가를 찾아가는 것. 그게 필요한 나이가 우리 나이인 듯합니다. 그게 있냐 없냐에 따라 나이와 함께 늙어가느냐, 숫자는 늘어도 여전히 젊게 사느냐가 갈리지 않을까요.” ● 최후에 돌아갈 곳은 가족인터뷰하며 느낀 것은 그의 가장 든든한 원군이자 수호천사는 가족, 그 중에서도 부인이라는 점이다. 고비고비마다 부인이 등장해 현명하고 올바른 길로 가도록 도왔다. 문병 왔던 친구들조차 ‘못 살 것’이라고 봤던 남편을 꼬박 8개월간 보살피며 살려냈고 퇴원 뒤에는 제주도에서 함께 한달살기를 하며 좋은 길을 걷는 즐거움을 전수해줬다. 이런 의견에 유 박사는 흔쾌히 말한다. “남자들은 혼자 놔두면 망했을 사람이 부인 덕에 잘사는 경우가 많아요. 저희 아이들도 ‘아빠는 엄마 잘 만나서 평안하게 사는 줄 알라’고 하죠.” 2시간 가까운 인터뷰가 끝난 뒤 ‘집에는 어떻게 돌아가시느냐’고 묻자 부인이 근처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혹시 모르니 대기 중이라는 것. 역시나 이 부부, 2인3각이었구나 싶다.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2-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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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뇌종양 수술후 나를 위한 삶 시작… “동네아저씨로 사는 게 너무 행복” [서영아의 100세 카페]

    한국의 1세대 정치평론가로 꼽히는 유창선 박사(62)는 요즘 ‘두 번째 삶’이란 표현을 많이 쓴다. 3년 전 느닷없이 찾아온 뇌종양 수술로 죽음의 문턱을 밟았고, 8개월 사투 끝에 생환했다. 그 뒤 삶의 모든 게 바뀌었다. 지난달 29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나이 예순, 걸음마부터 다시 시작하다2019년 뇌 자기공명영상(MRI) 검사에서 연수(숨골) 부위에 꽤 오래된 종양이 발견됐다. 연수는 생명 유지에 중요한 반사중추와 뇌 신경세포들이 몰린 부위다. 의사는 종양의 위치가 나쁘다며 ‘(종양 자체는) 양성이지만 악성’이라 했다. 10시간에 걸친 대수술로 종양은 깨끗이 제거됐지만 엄청난 후유증이 남았다. 혈압 조절이 안 돼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앉기만 해도 의식을 잃었고 혀가 마비돼 말을 할 수 없었다. 식도 괄약근이 열리지 않아 8개월 동안 튜브로 경관식을 했다. 그의 얘기를 듣다 보면 자기 발로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를 실감하게 된다. “악전고투 끝에 조금씩 회복돼 걸어서 화장실에 가고 세면대에서 세수를 할 수 있게 된 날, 인간으로서 당당함을 느꼈다. 걷는 것, 먹는 것, 말하는 것, 무엇 하나 당연하게 되는 건 없었다. 그게 가능하다는 게 얼마나 대단하고 감사한 일인지.” 입원할 때는 열흘 정도면 퇴원할 줄 알았지만, 8개월(대학병원 2개월, 재활병원 6개월) 뒤에야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걷는 것부터 다시 시작하는 삶, 그에게 예순 살은 그렇게 찾아왔다. 그는 ‘살아있음을 확인하려고’ 수술 이틀 뒤부터 중환자실 침대에 누워 휴대전화에 글을 썼다. 두 달 뒤에는 시사주간지에 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써낸 책이 퇴원 전 세상에 나온 ‘나를 위해 살기로 했다’(사우)이다. 최근에는 ‘나이 든다는 것은 생각만큼 슬프지 않다’는 부제가 붙은 에세이집 ‘나를 찾는 시간’(새빛·사진)을 펴냈다. ―‘나를 찾는다’는 표현의 의미는…. “‘행복하고 싶은’ 내 본성 앞에 정직한 삶을 살겠다는 겁니다. 수술 뒤 만신창이 몸을 안고 투병과 재활의 시간을 거쳤습니다. 이렇게 되니 오히려 긍정의 정서가 지배하더군요. 가장 힘이 됐던 것은 나를 살리려고 애쓰던 가족이었습니다. 최후에 돌아갈 곳은 가족이구나. 인생 마지막에는 가족과 함께 사랑하며 늙어가고 가족 안에서 죽어가겠구나. 그때까지 남은 시간 어떻게 좋은 사람으로 나이 들어갈 것인지 모색해야겠다고.” ―그간 행복을 뒷전에 두고 살아온 건가요. “세상이 불행해 보이는데 나만 행복해선 안 될 것 같은 중압감을 젊은 시절부터 안고 살았죠. 나이 들어서도 나는 솔직히 행복한데 그런 표정을 지어서는 안 될 것 같은 허위의식이랄까, 엄숙주의가 있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페이스북에도 행복하다는 표시를 합니다. ‘오늘 달리니까 너무 좋다’ ‘한강 풍경이 너무 예쁘다’…. 그게 가장 자연스럽고 내 본성에 정직하게 사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중압감을 내려놓고 자신으로 돌아가니 자연스레 ‘동네아저씨’로 살아가게 됐다. 글 쓰고 운동하며 가족과 교감하는 생활. 이것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기쁘고 소중하다고 한다.○진영이 갈린 세상서 자유로운 외톨이의 길 선택 대학 시절 학보사 기자였고 운동권 서적 출판으로 몇 개월 구치소 생활도 했다. 현실 정치에 발을 담그기도 했지만 스스로 정치인이 될 마음이 도무지 생기지 않았다. 그즈음 우연히 방송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정치평론을 직업으로 하는 길로 나섰다. 마침 ‘노풍(盧風)’을 타고 시사프로그램 바람이 불면서 정치평론가로서 전성기를 맞았다. 종편도 없던 시절, 공중파에만 하루 5∼6개씩 출연했다. 다만 그는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도 비판할 것은 비판하면서 ‘노빠’들로부터 공격을 받아야 했다. 방송은 외풍에 약해 정권이 바뀌자 고정출연 프로그램에서 줄줄이 하차 통보를 받았다. 방송이 출마자들의 대기소같이 변해가는 것도 거북함을 넘어 모욕감을 안겨줬다. 갈수록 진영이 갈라지자 그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고독의 길을 택했다. 어느 한 진영에 속하는 순간, 자기 진영에 대해 성찰하는 자유를 잃는 게 두려웠다. 박근혜 정부 때는 3년 동안 동네 독서실에 들어가 인문학 공부를 하고 인문학 책을 써내기도 했다. ―건강은 어떠십니까. “이제 일상생활은 조심조심 정상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혀의 마비가 조금 남았고 근육통도 심합니다. 식도를 보톡스 치료로 열고 삼키는 훈련을 해 먹을 수도 있게 됐어요. 이 정도로 회복된 것도 기적이라고들 합니다. 남은 후유증은 제가 안고 살아가야죠.” 그는 여전히 ‘정치평론가’다. 방송은 사실상 은퇴했지만 신문 잡지 등 8개 매체에 고정칼럼을 쓴다. 매일 늦어도 오전 9시 이전에는 집 근처 카페에 착석해 공부와 글쓰기 작업을 한다. 페이스북을 통한 소통도 부지런히 하고 있다. 그는 인터뷰 중 “끝난 줄 알았는데 끝난 게 아니었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예컨대 생계 문제도 궁금했는데, 원고료 수입이 꽤 된다고 자랑한다. “제가 병원에 있을 때 큰아이가 취직했는데 퇴원하면 매달 용돈을 주겠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한 1년 주더니 슬그머니 그만 뒀네요. ‘어? 나름 버네?’라고 생각했는지…. 다행히도 아내가 들어놓은 연금저축이 있었고 곧 국민연금도 타게 됩니다. 살림 규모를 많이 줄이고 수입 지출 열심히 계산하면서 살고 있죠. 둘째딸도 최근 취직이 돼 두 아이 모두 앞가림은 하게 됐으니, 저희 부부만 잘 살면 됩니다.” 3개월 전 우연히 트레일런(달리기) 모임에 참석하면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다. “제가 몸을 치유하려고 엄청나게 걸었어요. 그걸 아는 지인이 같이 걷자며 불러줬는데, 10여 명이 처음엔 걷다가 ‘이제 뜁시다’ 하고 달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혈압이 불규칙해 걷는 것도 조심하던 때거든요. 그런데 그분들 따라 조금 달려 보니 기분이 너무 좋더라고요. 제가 달린 건 500m 정도지만 그분들의 에너지가 전해져 오는 듯했어요. 그 뒤로 혼자서도 그 기분을 느끼기 위해 많이 달렸습니다. 사람 몸은 신기해서 뭐든 꾸준히 하면 조금씩 늡니다. 이제는 한 번에 5km 정도는 달릴 수 있어요.” ‘달리기는 장비빨’이라며 운동복이나 장비 쇼핑에도 푹 빠져 있다고 한다. “아침에 눈뜨면 늘 뉴스 검색부터 했는데 요즘은 러닝복 쇼핑코너를 보고 있습니다. 그런 제 모습이 좋아요. 석양이 떨어지는 한강다리를 달리며 건너는 기분이란…. 이걸 모르고 죽었다면 억울했을 겁니다.”○후유증 남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6월 현 정부에서 자리 제안을 받았지만 정중히 거절했다. 인생에서 가장 고즈넉하게 동네아저씨로 살아가는 시간을 흔들고 싶지 않았다. 정부 일을 한다면 여기저기 쓰는 글에 구애받거나 비판할 자유를 잃는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수술이 없었다면 박사님의 60대는 어떻게 흘러갔을까요. “여전히 방송 출연하고 글 쓰고 살았겠죠. 이 고즈넉한 세계의 느낌을 끝내 몰랐을 수도 있고요. 투병 이후 다른 인생을 맛본 지금, 그런 생각만 해도 한숨이 나옵니다. 몸은 불편해졌지만 삶의 질은 오히려 좋아졌어요. 하고 싶은 것 하며 수시로 ‘참, 좋다’는 느낌이 옵니다. 평생 느껴보지 못한 충만함이 문득문득 다가와요. ‘와, 참 좋구나’ 하고. 가령 3∼4년 전만 해도 내가 달리기하는 모습은 상상도 못했죠. 내가 이러고 살고 있을 줄이야.” 그는 9월과 10월 각각 열리는 마라톤대회 5km 단축코스에 도전한다. “이 정도도 감사한 일”이라면서도 내년에는 10km 코스에 나설 것을 꿈꾼다. ―책 표지의 ‘나이 든다는 것은 생각만큼 슬프지 않다’는 뜻은…. “평소 나이 60을 넘으면 인생을 정리하는 시간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요즘 앞날에 대한 기대, 꿈, 설렘을 가질 수 있다는 걸 체감하고 있어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거죠.”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2-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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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후 최대 리스크, 황혼이혼[서영아의 100세 카페]

    지난 회 100세 카페에서 가족과 관련된 노후 복병으로 자식 리스크와 간병 리스크를 든 바 있다. 그런데 더 큰 위협요인으로 황혼이혼을 꼽는 사람이 적지 않다. 황혼이혼은 특히 남성에게 더 불리하다거나, 방심하고 있다가 ‘당하면’ 치명적이라는 지적도 들린다. 이 위기, 슬기롭게 피해갈 방법은 없을까.● 지난해 이혼 부부 10쌍 중 근 4쌍이 황혼이혼자녀를 모두 성장시킨 뒤 오랜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는 부부가 늘고 있다. 이른바 황혼이혼이다. 명확한 법적 정의는 없지만 한국의 대법원과 통계청은 결혼기간 20년 이상 부부의 이혼을 황혼이혼으로 분류한다. 1990년만 해도 전체 이혼건수의 5.1%에 불과했던 황혼이혼은 꾸준히 늘어나 지난해에는 38.7%를 차지했다(표 참조). 지난해 이혼한 부부 10쌍 중 거의 4쌍이 황혼이혼이었다는 얘기다.오랜 세월 해로한 부부가 갈라서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시대 변화도 큰 영향을 끼쳤다. 여성의 경제적 지위가 높아졌고 재산분할에서 여성 몫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혼을 자연스러운 개인의 선택으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도 한몫했다. 경제력을 가진 베이비붐 세대는 자신이 아직 젊다고 느끼는 데다 개인의 자유와 삶의 질을 중시한다. 여기에 고령화로 기대수명이 늘다 보니 “앞으로 30년을 더 참으며 살 수 없다”며 독립을 선언하는 것. 자산가들 사이에서는 다주택 중과세를 피해 결혼생활을 정리하는 노부부가 부쩍 늘었다는 얘기도 들린다.●“소중한 내 인생, 노후 30년이라도 자유롭게 살겠다”황혼이혼을 원하는 쪽은 아무래도 여성이 많다. ‘황혼이혼’이란 용어는 1990년대 중반 일본에서 유래했다. 남편이 은퇴하고 퇴직금을 받은 뒤 부인이 이혼을 요구하는 경우가 급증해 사회문제가 됐다.“남편이 집에 있다 생각하면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나요”. 이보다 앞서 1991년 일본 정신신체의학 학회지에 은퇴남편증후군(RHS·Retired Husband Syndrome)이란 용어가 등장했다. 일밖에 모르던 가부장적 남편이 은퇴 후 집에만 머물자 스트레스를 받은 늙은 아내들이 각종 질환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증세는 심한 우울증, 불안증, 불면증, 위염, 두드러기 등 다양했다. 일종의 ‘화병’이라 할 수 있는데, 전문가들은 60%의 아내들이 RHS에 시달린다고 밝혔다.이런 은퇴 남편을 일컬어 한국의 ‘삼식이(세끼 모두 집에서 먹는 남편)’처럼 일본에서는 ‘젖은 낙엽족(낙엽이 비에 젖어 잘 쓸어지지 않는 상태를 빗댄 말. 귀찮게 방해만 되는 남편을 일컬음)’, ‘나도 족(私も族·아내가 가는 곳 어디든 “나도 가겠다”며 따라나서는 남편)’ 등의 유행어가 생겨났다. 퇴직 이후의 삶에 대한 별다른 준비 없이 은퇴해 거실 소파를 장악하고 TV나 신문만 보는 남편들은 ‘대형쓰레기’라 불리기도 하고 “모름지기 가장(家長)은 건강해서 외출한 상태가 최고”라는 말이 회자됐다.여기 더해 남편이 왕년의 ‘상사’ 기질을 발휘해 집안일에 일일이 간섭하며 잔소리를 시작하면 아내들도 폭발해 앙갚음하듯이 이혼장을 내밀게 된다. 인간의 노화는 정신적 영역에서도 나타나는 법. 나이 들수록 이해도가 떨어지고 고집이 강해지며 잔소리가 심해진다.●중년 남성들이 ‘나는 자연인’에 꽂히는 이유 반대로 최근 한국에서는 남편이 먼저 황혼이혼을 요구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한다. 늦게나마 새로운 삶을 시작하겠다거나 아내의 잔소리나 생활비 등 경제적 요구가 싫어 자유를 택하겠다는 남편들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남성들 사이에 ‘나는 자연인’류의 프로그램이 인기인 이유도 집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혼전문변호사들은 이 경우 새로운 파트너가 생긴 케이스가 적지 않다는 해석을 덧붙인다.조혜정 이혼전문 변호사는 수많은 상담 속에서 황혼이혼하는 부부의 공통점을 다음 8가지로 추려냈다. △정서적 이혼상태가 상당기간 이어졌다(한집에서 살지만 대화없이 몇년) △돈 때문에 심하게 싸운 경험이 있다 △돈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내 돈을 쓰는 가족을 가차없이 공격한다) △주로 생활비를 벌던 사람이 은퇴했다 △결혼해서 생긴 가족보다 원 가족(남성은 본가, 여성은 친정)과 더 가깝다 △집안이 갈라져 있다(자녀가 부모 중 한쪽 편을 든다) △한쪽이 지배하고 복종을 강요한다 △외도 폭언 폭행 중 한가지 이상이 나타난다 등이다. 조 변호사는 이중 5가지 이상 해당된다면 이혼상담을 받아볼 필요가 있지만, 2~3가지 정도라면 남들보다 나은 상태니까 문제를 개선할 길을 찾아보라고 권한다.● 황혼이혼에서는 재산분할이 큰 이슈젊은 부부의 이혼에서 위자료나 양육권, 양육비가 쟁점이라면 황혼이혼에서는 재산분할이 가장 큰 이슈가 된다. 분할 대상은 원칙적으로 혼인 중 부부가 함께 협력해서 모은 재산이다. 여기에는 퇴직금이나 연금 등 장래 수입도 포함된다.재산분할은 결혼기간이 길수록 부부 양쪽에 비슷하게 배분되기 쉽다. 예컨대 혼인 전부터 배우자가 소유하고 있었거나 상속 또는 증여받은 ‘특유재산’은 원칙적으로 분할대상에서 제외되지만, 혼인기간이 길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직업이나 경제활동이 없던 주부라도 그 재산의 유지 및 증식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을 수 있다. 평생 외벌이로 혼자 벌어 자산을 형성했고 자신의 명의로 연금을 부었다 해도 그 기간 배우자의 내조가 있었다면 절반은 배우자의 몫이 된다. 법리가 이렇다보니, 시중에는 노후에 이혼당하기 싫은 쪽이 배우자에게 재산을 전부 넘겨놓으라는 ‘꿀팁’도 돌아다닌다. 집도 땅도 예금도 모두 배우자 이름으로 돼 있다면 배우자가 이혼을 요구하고 싶어도 자기 명의의 재산을 분할해줘야 할 판이니 이혼 방지효과가 있다는 얘기다. 황혼이혼에서는 합의이혼이 늘어나는 추세지만, 일단 소송으로 가게 되면 재산분할의 대상, 기여도에 대한 입증이 핵심 쟁점이 된다. 분할 결과에 따라 노후의 삶의 질이 결정되는 만큼, 이혼 소송에서는 피튀기는 ‘쩐의 전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대부분 남성에게 더 치명적황혼이혼은 부부 모두에게 많은 스트레스와 상처를 안겨주지만 남성에게 더 치명적이라는 게 일반적인 지적이다.첫째 부부 모두에게 경제적인 타격이 크다. 평생 모은 노후자산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연금도 절반이 될 수 있다. 한 집이 두 집으로, 모든 것을 나누다 보면 낭비도 많다. 황혼이혼을 결심하는 순간 이후 경제적 생활수준은 확 떨어질 수 있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둘째 외로운 노년을 보낼 가능성이 커진다. 평생 열심히 살아왔는데 인생 황혼기에 잃어버린 동반자의 빈자리는 크다. 만약의 일이 생겼을 때 의지할 존재가 없어진다. 시기적으로 퇴직과 겹치다보니 급격한 삶의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고 모든 것에 실패했다는 허무감과 우울감에 휩싸이기 쉽다. 점차 사회활동이 줄고 고립된 생활을 하다보면 종착역은 고독사(死)가 될 수도 있다.셋째 살림 경험이 없는 남성이라면 갑작스런 자취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건강관리에 게을러지거나 삶의 동력을 잃기 쉽고 우울증이나 자살 빈도도 높아진다.이 부분은 특히 남성이 불리한데, 이는 사별 후 남녀의 반응차이를 보면 이해하기 쉽다. 많은 조사에서 남편이 먼저 사망한 부인들은 얼마간의 상실과 우울의 시간을 거치고 나면 건강이 좋아지고 인생만족도가 높아지며 장수했지만 부인을 먼저 떠나보낸 남편들은 건강이 나빠지고 그리 오래 살지 못했다.● 황혼에 마주한 부부, 서로 존중과 배려를결혼도 이혼도 행복해지고자 하는 것이다. 불행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혼은 적극적으로 감행해야 한다. 예컨대 폭력이나 폭언, 외도가 상습적인 경우, 한쪽이 일방적으로 참으며 살아왔지만 개선의 여지가 없는 경우 과감하게 이혼에 나설 필요가 있다. 하지만 개선의 여지가 있다면 많은 리스크를 져야 하는 이혼보다는 현상유지를 위한 노력이 우선이다.고혜정 변호사는 “가장 큰 노후대책은 배우자와의 좋은 관계”라고 강조한다. “아무리 친한 친구가 많아도 내가 병으로 몸져눕게 된다면 곁에서 보살펴줄 사람은 결국 배우자입니다. 하지만 좋은 관계는 어느 날 갑자기 이뤄지지 않지요. 준비와 노력이 필요합니다.”관계는 누적되는 법이다. ‘노후의 재앙’ 황혼이혼을 피하려면 스스로 변화하고 가족, 특히 배우자와 평소에 돈독한 인간관계를 쌓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일본의 은퇴전문가 오가와 유리가 제시하는 ‘은퇴남편 관리법 15조’(그래픽 참조)는 이 시기 부부 모두에게 참고가 될 듯하다. ● 이혼은 현실-황혼이혼 사전 체크리스트그럼에도 이혼을 고려하는 경우라면 점검해볼 것이 있다. 시중에 도는 황혼이혼 사전 체크리스트를 살펴보자. 아래 질문에 ‘아니오’가 많다면 아직 준비가 덜 된 것이다. 이혼은 현실이다. 감정적으로 하는 이혼은 인생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냉정하고 신중하게 후회하지 않을 결정을 해야 한다. 황혼이혼 사전 체크리스트1. 내가 이혼을 통해 얻으려는 것이 무엇인가2. 이혼 후 살아갈 하루 일상을 구체적으로 그려보았나. 이때 후회 없이 행복할 수 있나3. 이혼 후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있나4. 이혼 후 필요한 한달 생활비가 얼마인지 계산해봤나5. 부족할 수 있는 생활비는 어떻게 마련할지 준비돼 있나6. 이혼 후 경제적으로 전보다 못해지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나 7. 주변에 도움 받을 가족이나 지인이 있나. 특히 자녀들의 이해와 지지를 받고 있나8. 협의이혼을 할지 재판이혼을 할지 판단이 섰나9. 재판이혼을 해야 한다면 승소할 확률에 대해 변호사와 상담해본 적 있나 10. 재판에서 승소하기 위해 상대의 유책 또는 사실관계를 입증할 자료를 가지고 있나11. 실제 받을 수 있는 재산분할과 위자료 액수 범위를 대략이라도 알고 있나12. 배우자 재산상황을 파악하고 있나. 배우자가 임의로 하는 재산처분을 막아 공동재산을 보전할 방안을 알고 있나13. 노령연금을 비롯, 각종 연금에 대한 분할연금 수급권에 대해 확인해봤나14. 이혼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지낼 거처는 준비됐나15. 재판을 위한 변호사 선임비용이 얼마인지 알고 이를 마련할 수 있나16 이혼이 더 나은 삶을 위한 시작임을 확신하고 있나※ 인생 후반, 더 중요해지는 ‘돈 건강 행복’풍요로운 100세 인생을 맞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돈과 건강, 그리고 행복입니다. 이 모든 것은 어느 날 갑자기 갖춰지는 게 아니고 30~40대부터 차근차근 조금씩 준비해나가야 합니다. ‘100세 카페’에서는 특히 인생 2막을 잘 맞이하기 위해 미리미리 준비해야 할 돈과 건강 행복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서영아기자 sya@donga.com}

    • 2022-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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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날 많은데 더 못 참아”… 쪼개진 재산에 마음도 쪼그라들어[서영아의 100세 카페]

    지난 회 100세 카페에서 가족과 관련된 노후 복병으로 자식 리스크와 간병 리스크를 든 바 있다. 이보다 더 큰 위협 요인으로 황혼이혼을 꼽는 사람이 적지 않다. 황혼이혼은 남성에게 더 불리하다. 방심하고 있다가 ‘당하게’ 되면 더 치명적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슬기롭게 피해 갈 방법은 없을까.○지난해 이혼 부부 10쌍 중 4쌍이 황혼이혼자녀를 모두 성장시킨 뒤 오랜 결혼 생활에 마침표를 찍는 부부가 늘고 있다. 이른바 황혼이혼이다. 명확한 법적 정의는 없지만 대법원과 통계청은 결혼 기간 20년 이상 부부의 이혼을 황혼이혼으로 분류한다. 1990년만 해도 전체 이혼 건수의 5.1%에 불과했던 황혼이혼은 꾸준히 늘어 지난해에는 38.7%나 됐다(그래픽 참조). 지난해 이혼한 부부 10쌍 중 4쌍이 황혼이혼이었다는 얘기다. 오랜 세월 해로한 부부가 갈라서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시대 변화도 큰 영향을 끼쳤다. 무엇보다 여성의 경제적 지위가 높아졌고, 재산 분할에서 여성 몫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혼을 자연스러운 개인의 선택으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도 한몫했다. 경제력을 가진 베이비붐 세대는 자신이 아직 젊다고 느끼는 데다 개인의 자유와 삶의 질을 중시한다. 여기에 고령화로 기대수명이 늘어나다 보니 “앞으로 30년을 더 참으며 살 수 없다”며 독립을 선언한다. 자산가들 사이에서는 다주택 중과세를 피해 결혼 생활을 정리하는 노부부가 부쩍 늘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소중한 내 인생, 노후 30년은 자유롭게 살겠다”황혼이혼이란 용어는 1990년대 일본에서 유래했다. 남편이 퇴직금을 받은 뒤 부인이 이혼을 요구하는 경우가 급증해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1991년 일본 정신신체의학학회지에 은퇴남편증후군(RHS·Retired Husband Syndrome)이란 용어가 등장했다. 일밖에 모르던 가부장적 남편이 은퇴 후 집에만 머물자 스트레스를 받은 늙은 아내들이 각종 질환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증세는 심한 우울증, 불안증, 불면증, 위염, 두드러기 등 다양했다. 당시 전문가들은 60%의 아내들이 RHS에 시달린다고 밝혔다. 이런 은퇴 남편을 일컬어 한국의 ‘삼식이’(세 끼 모두 집에서 먹는 남편)처럼 일본에서는 ‘젖은 낙엽족’(낙엽이 비에 젖어 잘 쓸리지 않는 상태를 빗댄 말. 귀찮게 방해만 되는 남편을 일컬음) ‘나도족(私も族·아내가 가는 곳 어디든 “나도 가겠다”며 따라나서는 남편)’ 등의 유행어가 생겨났다. 퇴직 이후 삶에 대한 별다른 준비 없이 은퇴해 거실 소파를 장악하고 TV나 신문만 보는 남편들은 ‘대형 쓰레기’라 불리기도 하고, “모름지기 가장(家長)은 건강해서 외출한 상태가 최고”라는 말이 회자(膾炙)됐다. 여기에 더해 남편이 왕년의 ‘상사’ 기질을 발휘해 집안일에 일일이 간섭하며 잔소리를 시작하면 아내들도 폭발한다.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타인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고 고집이 강해지며 잔소리도 심해지기 쉽다.○중년 남성들이 ‘나는 자연인’에 꽂히는 이유반대로 최근 한국에서는 남편이 먼저 황혼이혼을 요구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한다. 늦게나마 새로운 삶을 시작하겠다거나 아내의 잔소리나 경제적 요구가 싫어 자유를 택하겠다는 남편들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남성들 사이에 ‘나는 자연인’류의 프로그램이 인기인 이유도 집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조혜정 이혼전문 변호사는 수많은 상담을 통해 황혼이혼을 하는 부부의 공통점을 8가지로 추려냈다. △정서적 이혼 상태가 상당 기간 이어졌다(한집에서 살지만 대화 없이 몇 년을 지냈다) △돈 때문에 심하게 싸운 경험이 있다 △돈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내 돈을 쓰는 가족을 가차 없이 공격한다) △주로 생활비를 벌던 사람이 은퇴했다 △결혼해서 생긴 가족보다 원가족(남성은 본가, 여성은 친정)과 더 가깝다 △집안이 갈라져 있다(자녀가 부모 중 한쪽 편을 든다) △한쪽이 지배하고 복종을 강요한다 △외도 폭언 폭행 중 한 가지 이상이 나타난다 등이다. 조 변호사는 이 중 5가지 이상에 해당된다면 이혼 상담을 받아볼 필요가 있지만, 2∼3가지 정도라면 남들보다 나은 상태니까 문제를 개선할 길을 찾아보라고 권한다.○황혼이혼에서는 재산 분할이 큰 이슈젊은 부부의 이혼에서 위자료나 양육권, 양육비가 쟁점이라면 황혼이혼에서는 재산 분할이 가장 큰 이슈가 된다. 분할 대상은 원칙적으로 혼인 중 부부가 협력해서 모은 재산, 퇴직금이나 연금 등 장래 수입도 포함된다. 재산 분할은 결혼 기간이 길수록 양측에 비슷하게 배분되기 쉽다. 예컨대 혼인 전부터 배우자가 소유하고 있었거나 상속 또는 증여받은 ‘특유재산’은 원칙상 분할 대상에서 제외되지만, 혼인 기간이 길면 얘기는 달라진다. 직업이나 경제 활동이 없던 주부라도 그 재산의 유지 및 증식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을 수 있다. 평생 외벌이로 혼자 벌고 자신의 명의로 연금을 부었다 해도 그 기간 배우자의 내조가 있었다면 절반은 배우자 몫이 된다. 황혼이혼에서는 합의 이혼이 늘어나는 추세지만 일단 소송으로 가게 되면 재산 분할의 대상, 기여도에 대한 입증이 핵심 쟁점이 된다. 분할 결과에 따라 노후 삶의 질이 결정되는 만큼 피 튀기는 ‘쩐의 전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대부분 남성에게 더 치명적황혼이혼은 부부 모두에게 많은 스트레스와 상처를 안겨주지만 남성에게 더 치명적이라는 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첫째, 부부 모두 경제적 타격이 크다. 평생 모은 노후 자산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연금도 절반이 될 수 있다. 모든 것을 나누다 보면 낭비도 많다. 이혼 이후 경제적 생활 수준이 확 떨어질 수 있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둘째, 외로운 노년을 보낼 가능성이 커진다. 인생 황혼기에 잃어버린 동반자의 빈자리는 크다. 만약의 일이 생겼을 때 의지할 존재가 없어진다. 시기적으로 퇴직과 겹치다 보니 급격한 삶의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고, 모든 것에 실패했다는 허무감과 우울감에 휩싸이기 쉽다. 점차 사회 활동이 줄고 고립된 생활을 하다 보면 종착역은 고독사(死)가 될 수도 있다. 셋째, 살림 경험이 없는 남성이라면 갑작스러운 자취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건강관리에 게을러지거나 삶의 동력을 잃기 쉽고 우울증이나 자살 빈도도 높아진다. 이 부분은 사별 후 남녀의 반응 차이를 보면 이해하기 쉽다. 많은 조사에서 남편이 먼저 사망한 부인들은 얼마간의 상실과 우울의 시간을 거치고 나면 건강이 좋아지고 인생 만족도가 높아지며 장수했지만, 부인을 먼저 떠나보낸 남편들은 건강이 나빠지고 그리 오래 살지 못했다.○“있을 때 잘하자” 노부부, 서로 존중과 배려를결혼도, 이혼도 행복해지고자 하는 것이다. 불행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혼은 적극적으로 감행돼야 한다. 예컨대 폭력이나 폭언, 외도가 상습적인 경우 한쪽이 일방적으로 참으며 살아왔지만 개선의 여지가 없는 경우는 과감하게 이혼에 나설 필요가 있다. 하지만 개선의 여지가 있다면 많은 리스크를 져야 하는 이혼보다는 현상 유지를 위한 노력이 우선이다. 고혜정 변호사는 “가장 큰 노후 대책은 배우자와의 좋은 관계”라고 강조한다. “아무리 친한 친구가 많아도 내가 병으로 몸져눕게 된다면 곁에서 보살펴 줄 사람은 결국 배우자입니다. 하지만 좋은 관계는 어느 날 갑자기 이뤄지지 않지요. 준비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관계는 누적되는 법이다. ‘노후의 재앙’ 황혼이혼을 피하려면 스스로 변화하고 가족, 특히 배우자와 평소에 돈독한 인간관계를 쌓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일본의 은퇴 전문가 오가와 유리가 제시하는 ‘은퇴남편 관리법 15조’(그래픽 참조)는 이 시기 부부 모두에게 참고가 될 듯하다.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2-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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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령화시대, ‘이제는 부모를 버려야 한다’?[서영아의 100세 카페]

    노후의 복병, 가족 리스크에 대비하라노후를 향해 돈 건강 행복을 챙기며 열심히 달려온 5060세대 앞에 느닷없이 등장하는 복병이 있다. 독립하지 못하는 성인 자녀, 갑자기 닥쳐오는 부모의 간병, 황혼이혼 리스크가 그것들로, 모두 사랑하는 가족과 관련된다. 인생의 함정과도 같은 이 위기를 잘 극복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부모 노후 갉아먹는 자녀 리스크부모 품으로 돌아가는 성인 자녀, 이른바 ‘캥거루족’이 늘고, 고령화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6월 보고서에 따르면 만 19~49세 성인 남녀 중 29.9%가 부모와 동거 중이다. 미혼 성인자녀의 64.1%, 미취업 성인자녀의 43.6%가 캥거루였고, 40대라 해도 미혼자는 48.8%가 부모와 함께 산다. 만혼(晩婚)과 비혼(非婚) 풍조가 퍼지고 취업난과 주거비 부담이 겹치면서 자녀들이 독립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캥거루족 증가는 세계적 추세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고도경제성장에 편승해 사회적 입지를 굳히고 자산을 축적한 반면, 그 2세들은 산업이 성숙화하면서 성장이 둔화되는 시기에 사회에 진출했다. 고용과 자산축적에서 애초에 불리했던 것. 그래서 MZ세대(1980~2000년대 생)는 ‘부모보다 가난한 첫 세대’라 불린다. 캥거루들을 부르는 호칭도 국가마다 다양하다. 일본에서는 부모에게 기생하는 독신이라는 뜻의 ‘파라사이트 싱글’, 미국에서는 키덜트(Kid+Adult), 캐나다에서는 직장없이 떠돌다 집으로 돌아왔다고 ‘부메랑 키즈’, 영국에서는 부모 퇴직금을 축낸다는 의미에서 ‘키퍼스(Kids in Parent’s Pockets Eroding Retirement Savings)’, 여기에 결혼하고 일단 독립했다가 주거비와 육아의 어려움 때문에 부모 집으로 들어오는 리터루(return+kangaroo)족까지 있다.● ‘다 쓰고 죽어라’, 말은 쉽지만…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 변화에서 한국은 일본을 약 15~20년 시차를 두고 따라간다. 20년 전 일본에서 일어난 일이 오늘날 한국에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요즘 일본에서는 캥거루족의 극단적 형태인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의 고령화가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1990년대 ‘취직빙하기’에 캥거루족이 된 ‘잃어버린 세대(1975~1984년생)’가 그대로 나이를 먹으면서 향후 사회부담을 예고하고 있는 것. 그들의 부모인 7080세대가 언젠가 고령으로 사망하면 그들의 연금에 기대던 4050 자녀들은 생계가 끊기는 일마저 생긴다. 두 세대에 걸친 이런 고민을 ‘4070’ 또는 ‘5080 문제’라 부른다. 일본 정부는 숨은 히키코모리가 60여 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한국 부모들은 자녀에 대한 무분별한 지원이 문제가 된다. 많은 교육비를 투여한 것도 모자라 자녀가 결혼하면 집 팔고 대출받아 지원해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더 심각한 것은 결혼 후에도 사업자금이나 생활비, 교육비 등의 명목으로 손을 벌리는 자녀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아무리 노후 계획을 탄탄하게 세웠다 해도 무용지물이 된다. 우리 주변에는 자녀들의 등쌀에 “다 쓰고 죽겠다”며 세웠던 부모의 노후 계획이 흔들리는 슬픈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유전유효 무전무효’라거나 “(미리 재산을) 안 주면 시달려서 죽고, 찔끔찔끔 주면 졸려서 죽고, 다 주면 굶어죽는다”는 우스개마저 나돈다. 성인 자녀 입에서 “노인은 돈 쓸 일도 없지 않느냐”거나 “여유 있으면서 왜 안 도와주느냐”, “상속 미리 한다고 생각하시라”는 말이 나올 정도면 부모자식 관계는 악화될 대로 악화된 상태다. 하지만 평소 ‘자녀 리스크’에 대비할 것을 누누이 강조해온 강창희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 대표는 “노후 자산을 너무 쉽게 내어주다가는 자칫 부모와 자녀 세대가 함께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계한다. ● 경제적 자립심 키우고 금융교육 시켜줘야 자녀리스크를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은퇴전문가들의 조언을 종합해보자. 첫째 자녀에게 경제적 자립심을 갖게 해주고 금융(재테크) 교육을 시키는 것이 명문대 졸업장보다 훨씬 중요하다. 자녀가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는 얘기인데, 이게 가능하려면 부모 스스로도 자녀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 강 대표는 특히 저성장시대에는 여건에 맞게 소비를 조절하고 ‘절약’하는 능력이 절실해진다고 강조한다. 둘째 ‘연금박사’로 알려진 이영주 CFP(재무설계사)는 목돈은 가능하면 현금흐름으로 바꾸라고 조언한다. 그는 “노인의 재산을 호시탐탐 노리는 세력은 도처에 있다”며 “목돈 그 자체가 폭탄같은 위험물”이라고 말한다. 목돈을 연금이나 배당수익이 나오는 형태로 묶어놓으면 자녀건 사기꾼이건 손댈 수 없고 노인은 시간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노인대상 강의에서 자주 언급하는 두 노인의 사례가 있다. 10억 이상의 현금을 가졌던 A노인과 해마다 4000만 원 연금을 받는 B노인의 노후 비교다. 두분 모두 노환으로 10년째 요양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다. 자녀들은 극진히 모시지만 ‘긴 병에 효자는 없는’ 법. 그런데 A노인의 자녀들은 시간이 갈수록 어머니가 빨리 돌아가시기를 바라는 반면, B노인의 자녀들은 오래오래 사시기를 바라더라는 얘기다. 목돈은 주인이 오래 살수록 줄어들지만 연금은 삶을 이어가는 한 따박따박 나오니 오래 살수록 유리하다. 셋째 부모의 자산 상태와 노후 계획에 대해 자녀들에게 정확히 설명해주고 부모의 노후도 소중하다는 점을 공유해야 한다. 부모 재산의 소유권은 부모에게 있다는 점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 효도하는 자녀가 부모를 죽인다?2020년생 기준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83.5세(남성 80.5세, 여성 86.5세)지만, 건강수명(유병기간 제외 기대여명)은 66.3세에 불과하다. 인생 막바지 17.2년을 시름시름 아픈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다. 통계청 생명표를 뒤져보면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2012년 80.9세에 비해 2.6년 늘어났지만 건강수명은 0.6년 늘어나는데 그쳤다. 5060은 자녀교육에 다걸기(올인)하는 동시에 부모 봉양 부담도 짊어진 ‘낀’ 세대다. 부모세대가 80세를 넘어서면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고 보살핌이 필요해지는 경우도 생긴다. 자신의 노후 준비도 안 돼 있건만, 기나긴 간병(개호·介護 포함) 부담에 맞닥뜨리는 것이다. 독박 간병의 고통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다. 특히 노인의 정신적 퇴행을 가져오는 인지증(치매)은 간병하는 사람의 심신을 갉아먹는 재앙에 가깝다. ‘부모님은 내가 모시고 간다’. 2013년 한류스타의 아버지가 이런 유서를 남기고 부모님과 함께 세상을 뜬 사건이 일어나 세상을 놀라게 했다. 평소 극진한 효자였던 아버지는 연예인인 자녀들을 배려해 혼자 부모 간병 부담을 짊어졌고, 우울증에 걸렸을지언정 힘들다는 내색조차 비치지 없었다고 한다. 오랜 세월 부모님 밥을 떠 먹여 드릴 정도로 간병에 몸바쳐온 효자가 부모를 살해한 패륜아가 돼 버린 것이다.● 고령화 시대, ‘이제는 부모를 버려야 한다’?이 문제를 먼저 맞닥뜨린 일본에서는 노후 가장 큰 리스크로 ‘간병 파산’을 들고 있다. 돈 문제뿐 아니라 간병 탓에 직장을 포기하거나 이혼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간병퇴직’이 신조어가 됐을 정도다. 노인이 노인을 간병하는 노노(老老) 간병, 병자가 병자를 간병하는 상황을 견디다 못해 동반자살이나 간병살인도 자주 벌어졌다. 유하라 에쓰코 일본복지대 교수의 2016년 집계에 따르면 과거 18년간 일본 언론에 한 줄이라도 보도된 간병살인과 동반자살은 716건에 이르렀다. 부모 간병을 둘러싼 잔혹사는 각종 드라마와 소설의 소재가 되기도 하지만 ‘이제는 부모를 버려야 한다’(시마다 히로미·지식의 날개)라는 섬뜩한 제목의 책도 나왔다. 종교학자이자 전 대학교수인 작가는 “고령화 시대에도 과거처럼 자녀와 부모에 대한 유교적 관념에 집착하다가는 다 함께 쓰러지게 된다”고 주장한다. 책 앞머리에 소개된 2016년 일본 도네가와 강 동반자살 미수사건이 그런 예다. 직장도 그만두고 노부모를 돌보던 40대 딸이 차에 부모를 태운 채 도네가와 강에 뛰어들어 노부부는 사망하고 자신만 살아남았다. 어머니는 10여 년 전부터 치매증세였고 아버지는 질병으로 열흘 전 일터를 그만뒀다. 사건이 벌어진 날은 가족이 생활보호를 신청해 통과된 날이었다. 피로와 비관에 찌든 아버지가 ‘다 함께 죽자’고 제의했고 딸이 동의했다. 작가는 이런 유형의 사건이 흔하다보니 이 사건은 매스컴에서 제대로 다뤄지지도 않았다며 “딸이 부모를 일찌감치 버렸다면 이같은 비극은 막을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만약 직장까지 그만두고 희생을 자처한 딸이라는 ‘보호자’가 없었다면 노부부는 더 일찍, 더 많은 지역사회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고 ‘부모살해’라는 가족의 비극은 막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 내 간병, 자식에게 기대하기 어렵다노인 간병은 길게는 10년 넘게 이어질 수 있다. 간병 때문에 직장이나 결혼 등 자신의 삶을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독박간병은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기 쉽다. 데이케어 센터, 방문요양, 요양병원, 요양원, 간병인 등 동원 가능한 사회적 지원을 모두 활용할 생각을 해야 한다. 다른 가족의 관심과 도움도 최대한 이끌어내야 한다. 세월이 흘러 현재의 5060세대가 간병이 필요해진다면 어떨까. 5060세대는 대체로 형제가 여럿이어서 간병의 부담을 나눌 수 있었지만 자녀세대는 1, 2명에 불과하다. 자녀가 결혼을 해도 각자 자기 부모의 간병조차 버거울 것임을 알 수 있다. 최악의 상상이지만 70대 부모와 90대 조부모가 모두 간병이 필요한 경우, 자녀세대 각자에게 4명분의 부하가 걸릴 수도 있다. 결국 5060세대는 자녀에게 간병을 기대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간병을 필요로 하기 전, 사회에 여력이 있을 때 간병의 사회적 지원방식과 서비스 질을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노후를 살아갈 다양한 공간과 방식에 대한 연구도 동반돼야 할 것이다. 5060세대는 밑빠진 독에 물 붓듯 교육비를 쓰는 대신, 훗날 사랑하는 자녀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스스로의 간병을 준비한다는 마음자세가 필요하다. ※ 인생 후반, 더 중요해지는 ‘돈 건강 행복’풍요로운 100세 인생을 맞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돈과 건강, 그리고 행복입니다. 이 모든 것은 어느 날 갑자기 갖춰지는 게 아니고 30~40대부터 차근차근 조금씩 준비해나가야 합니다. ‘100세 카페’에서는 특히 인생 2막을 잘 맞이하기 위해 미리미리 준비해야 할 돈과 건강 행복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2-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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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후파산 낳는 자녀집착-간병희생… 자립교육-셀프간병 준비해야[서영아의 100세 카페]

    《노후를 향해 돈 건강 행복을 챙기며 열심히 달려온 5060세대 앞에 느닷없이 등장하는 복병이 있다. 독립하지 못하는 성인 자녀, 갑자기 닥쳐오는 부모의 간병, 황혼이혼 리스크가 그것들로, 모두 사랑하는 가족과 관련된다. 인생의 함정과도 같은 이 위기를 잘 극복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부모 노후 갉아먹는 자녀 리스크부모 품으로 돌아가는 성인 자녀, 이른바 ‘캥거루족’이 늘고, 고령화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6월 보고서에 따르면 만 19∼49세 성인 남녀 중 29.9%가 부모와 동거 중이다. 미혼 자녀의 64.1%, 미취업 자녀의 43.6%가 캥거루였고, 40대라 해도 미혼자는 48.8%가 부모와 함께 산다. 만혼(晩婚)과 비혼(非婚) 풍조가 퍼지고 취업난과 주거비 부담이 겹치면서 자녀들이 독립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캥거루족 증가는 세계적 추세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고도경제성장에 편승해 사회적 입지를 굳히고 자산을 축적한 반면, 그 2세들은 산업이 성숙화하면서 성장이 둔화되는 시기에 사회에 진출했다. 고용과 자산 축적에서 애초에 불리하다. 그래서 MZ세대(1980∼2000년대생)는 ‘부모보다 가난한 첫 세대’라 불린다. 국가마다 호칭도 다양하다. 일본에서는 부모에게 기생하는 독신이라는 뜻의 ‘파라사이트 싱글’, 미국에서는 ‘키덜트’(Kid+Adult), 캐나다에서는 직장 없이 떠돌다 집으로 돌아왔다고 ‘부메랑 키즈’, 영국에서는 부모 퇴직금을 축낸다는 의미에서 ‘키퍼스’, 여기에 일단 결혼하고 독립했다가 주거비와 육아 등의 이유로 돌아온 ‘리터루’(return+kangaroo)족까지 있다. 요즘 일본에서는 캥거루의 극단적 형태인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의 고령화가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1990년대 ‘취직 빙하기’에 캥거루족이 된 ‘잃어버린 세대’(1975∼1984년생)가 그대로 나이를 먹으면서 사회 부담을 예고하고 있는 것. 그들의 부모인 7080세대가 언젠가 고령으로 사망하면 그들의 연금에 기대던 4050 자녀 캥거루들은 생계가 끊기게 된다. 두 세대에 걸친 이런 고민을 ‘4070’ 또는 ‘5080문제’라 부른다. 한국 부모들은 자녀에 대한 무분별한 지원이 문제가 된다. 많은 교육비를 투여한 것도 모자라 자녀가 결혼하면 집 팔고 대출받아 지원해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더 심각한 것은 결혼 후에도 사업자금이나 생활비, 교육비 등의 명목으로 손을 벌리는 자녀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아무리 노후 계획을 탄탄하게 세웠다 해도 무용지물이 된다. 자녀들 등쌀에 부모의 노후 계획이 흔들리는 슬픈 이야기들은 도처에 넘쳐난다. ‘유전유효 무전무효’라거나 “(미리 재산을) 안 주면 시달려서 죽고, 찔끔찔끔 주면 졸려서 죽고, 다 주면 굶어죽는다”는 우스개마저 나돈다. 평소 ‘자녀 리스크’에 대비할 것을 누누이 강조해온 강창희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 대표는 “노후 자산을 너무 쉽게 내어주다가는 자칫 부모와 자녀 세대가 함께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계한다.○자녀에게 경제적 자립, 금융교육부터 자녀 리스크를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은퇴 전문가들의 조언을 종합해 보자. 첫째, 자녀에게 경제적 자립심을 갖게 해주고 금융(재테크) 교육을 하는 것이 명문대 졸업장보다 훨씬 중요하다. 자녀가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키워야 한다는 얘기인데, 그러려면 부모 스스로도 자녀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 강 대표는 특히 저성장 시대에는 여건에 맞게 소비를 조절하고 ‘절약’하는 능력이 절실해진다고 강조한다. 둘째, ‘연금박사’로 알려진 이영주 CFP(재무설계사)는 목돈은 가능하면 현금 흐름으로 바꾸라고 조언한다. 그는 “노인의 재산을 호시탐탐 노리는 세력은 도처에 있다”며 “목돈 그 자체가 폭탄 같은 위험물”이라고 말한다. 목돈을 연금이나 배당수익이 나오는 형태로 묶어놓으면 자녀건 사기꾼이건 손댈 수 없고 노인은 시간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 셋째, 부모의 자산 상태와 노후 계획에 대해 자녀들에게 정확히 설명해주고 부모의 노후도 소중하다는 점을 공유해야 한다. 부모 재산 소유권은 부모에게 있다는 점도 명확히 해둔다.○효도하는 자녀가 부모를 죽인다?2020년생 기준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83.5세(남성 80.5세, 여성 86.5세)지만, 건강수명(유병기간 제외 기대여명)은 66.3세에 불과하다. 인생 막바지 17.2년을 시름시름 아픈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다. 5060은 자녀교육에 다걸기(올인)하는 동시에 부모 봉양 부담도 짊어진 세대다. 부모세대가 80세를 넘어서면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고 보살핌이 필요해지는 경우도 생긴다. 자신의 노후 준비도 안 돼 있건만 간병(돌봄 포함) 부담에 맞닥뜨리는 것이다. 독박 간병의 고통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다. 특히 노인의 정신적 퇴행을 가져오는 인지증(치매)은 자녀의 심신을 갉아먹는 재앙에 가깝다. ‘부모님은 내가 모시고 간다.’ 2013년 한류스타의 아버지가 이런 유서를 남기고 부모님과 함께 세상을 뜬 사건이 일어나 세상을 놀라게 했다. 평소 극진한 효자였던 아버지는 연예인인 자녀들을 배려해 혼자 간병 부담을 짊어졌고, 우울증에 걸렸을지언정 힘들다는 내색조차 없었다고 한다. 오랜 세월 간병에 몸바쳐온 효자가 부모를 살해한 패륜아가 돼 버린 것이다. 고령자 간병 문제를 먼저 맞닥뜨린 일본에서는 노후의 가장 큰 리스크로 ‘간병 파산’을 들고 있다. 돈 문제뿐 아니라 간병 탓에 직장을 포기하거나 이혼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간병퇴직’이 신조어가 됐을 정도다. 노인이 노인을 간병하는 노노(老老) 간병, 병자가 병자를 간병하다가 한계에 이른 듯 간병살인이나 동반자살이 자주 벌어졌다. 유하라 에쓰코 일본복지대 교수의 2016년 집계에 따르면 과거 18년간 일본 언론에 한 줄이라도 보도된 간병살인과 동반자살은 716건에 이른다. 부모 간병을 둘러싼 잔혹사는 각종 드라마와 소설의 소재가 되기도 하지만 ‘이제는 부모를 버려야 한다’(시마다 히로미·지식의 날개)는 다소 섬뜩한 제목의 책도 나왔다. 종교학자이자 교육자인 작가는 “고령화시대에도 과거처럼 자녀와 부모에 대한 유교적 관념에 집착하다가는 다 함께 쓰러지게 된다”고 주장한다. 책 앞머리에 소개된 2016년 도네가와강 동반자살 미수사건이 그런 예다. 직장도 그만두고 10여 년간 노부모를 간병하던 40대 딸이 차에 부모를 태운 채 도네가와강에 뛰어들었다가 딸만 구조됐다. 피로와 비관에 찌든 아버지가 ‘다 함께 죽자’고 제의했고 딸이 동의했다. 작가는 이런 사건이 워낙 흔하다 보니 언론에서 제대로 다뤄지지도 않았다며 “딸이 부모를 일찌감치 버렸다면 이 같은 비극은 막을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만약 딸이라는 희생을 자처한 ‘보호자’가 없었다면 노부부는 더 일찍 지역사회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었고 ‘부모살해’라는 가족의 비극은 막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내 간병, 자식에게 기대하기 어렵다노인 간병은 길게는 10년 넘게 이어질 수 있다. 간병 때문에 직장이나 결혼 등 자신의 삶을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독박간병은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기 쉽다. 데이케어센터, 방문요양, 요양병원, 요양원, 간병인 등 동원 가능한 사회적 지원을 모두 활용할 생각을 해야 한다. 다른 가족의 관심과 도움도 최대한 이끌어내야 한다. 세월이 흘러 현재의 5060세대가 간병이 필요해진다면 어떨까. 5060세대는 형제가 대체로 여럿이어서 부담을 나눌 수 있었지만 자녀세대는 1, 2명에 불과하다. 자녀가 결혼을 해도 각자 자기 부모의 간병조차 감당하기 힘들 터. 결국 5060세대는 자녀에게 간병을 기대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간병을 필요로 하기 전, 사회에 여력이 있을 때 간병의 사회적 지원 방식과 서비스 질을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노후를 살아갈 다양한 공간과 방식에 대한 연구도 동반돼야 할 것이다. 5060세대는 마구잡이로 교육비를 쓰는 대신 훗날 사랑하는 자녀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스스로의 간병을 준비한다는 마음자세가 필요하다. 또 하나의 노후 리스크인 황혼이혼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 다루고자 한다.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2022-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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