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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은 장수들에게 “명령은 문(文)으로 하고 통제는 무(武)로 하라”고 했다. ‘문무겸비’ 군사교육이 우리나라 환경에 맞게 가장 효율적으로 적용된 사례가 학생군사교육단, 즉 ROTC(Reserve Officers′ Training Corps)가 아닐까 한다. ROTC로 선발되면 대학 3, 4학년 때 군사학 교육과 훈련을 받은 뒤 졸업 후 소위로 임관한다. ROTC가 어제 창설 60주년을 맞았다. ▷ROTC의 원조는 전쟁을 자주 치른 미국이다. 직업 군인은 아니지만 ‘평시 교육, 전시 장교’ 필요성을 절감하고 창안한 것이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ROTC 훈련을 받은 초급 장교 15만 명이 참전해 전공을 세웠다. 6·25전쟁 때도 ROTC 출신 장교 1만8000여 명이 무장 소집에 응해 한국 땅을 밟았다. 잘 알려지지 않은 한미 동맹의 연결고리였던 셈이다. ▷1960년대 초반 우리 군은 역량 있는 장교가 턱없이 부족해서 골치를 앓았다. 그나마 있는 초급 장교들 중에는 한글로 쓰인 야전교범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수두룩했다. 이런 배경 아래 1961년 6월 1일 탄생한 ROTC는 그동안 22만여 명의 장교를 배출하며 군의 중추적 역할을 해왔다. 지난해엔 임관 소위의 73%, 전방 경계 소위의 70%를 차지했다. 여군 장교도 2210명이나 나왔다. ▷ROTC는 3무(無), 1존(存), 3례(禮)를 핵심 가치로 삼는다. 3무는 ‘학연, 지연, 정치와 종파 초월’, 1존은 ‘오직 기수만 존재’, 3례는 ‘선배에게 존경, 후배에게 사랑, 동기에게 우정’을 의미한다. 자부심과 결속력이 강해 스스로 ‘알오티시안(ROTCian)’이라 부르기도 한다. 합참의장을 2명 배출했다. 남영신 대장은 첫 ROTC 출신 육군참모총장이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구자용 LS네트워크 회장,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 등 많은 기업인들도 ROTC에서 문무 리더십을 익혔다. ▷대한민국ROTC중앙회는 어제 기념식에서 “100년을 향해 힘차게 도약하자”고 했다. 그러나 회원들은 요즘 걱정이 많다. 갈수록 지원자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경쟁률이 6 대 1 수준까지 오를 정도였지만 지난해는 2.23 대 1로 떨어졌다. 이유는 복무 기간과 복지 문제 등이다. 병사 복무 기간이 18개월까지 줄었지만 ROTC 장교는 28개월로 변함이 없어 취업 걱정 등으로 우수 자원들이 지원을 회피하고 있다는 것. 일선 병사들과 동고동락해야 할 초급 장교들의 자질이 떨어지면 전체 군사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복무 기간을 갑자기 줄이면 장교 수급 문제가 발생한다. 복무 기간의 합리적 조정, 미 대학과의 ROTC 교환 프로그램 확대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정용관 논설위원 yongari@donga.com}
이팔청춘, 과년(瓜年)이란 말도 있지만 16세는 아슬아슬한 경계선 위의 나이다. 정신적, 지적, 육체적으로 성숙해진 어른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당사자인 16세들에겐 ‘경계의 나이’란 표현 자체부터 딱 꼰대적 발상이란 거부감이 들겠지만…. 16세가 정치적 논쟁의 중심에 섰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정당 가입 연령을 18세에서 16세로 낮추는 내용의 정치관계법 개정 의견을 낸 것이다. ▷정당 가입 연령을 낮추자는 논의는 최근 몇 년 사이 스웨덴 핀란드 오스트리아 등 유럽 국가들의 이른바 유스퀘이크(youthquake) 추세와 맞물려 있다. 유스퀘이크는 ‘젊음(youth)’과 ‘지진(earthquake)’의 합성어. 젊은이들의 행동과 영향력에서 발생하는 중대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변화를 말한다. 이는 20대 의원, 30대 총리 등의 출현으로 이어졌고 우리나라도 10대부터 자연스럽게 정치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는 주장이 분출된 것이다. ▷최근 부패스캔들 위증 의혹으로 곤경에 처하긴 했지만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35)는 전 세계 현직 국가수반 중 최연소다. 중도우파 국민당 당원으로 정당 활동을 시작했다는 그는 “17세 때 정치를 하기로 결정했다. 아이디어와 비전을 공유하고 구현하는 것이 즐거웠다”고 했다. 쿠르츠 총리에 앞서 최연소 총리 기록을 갖고 있었던 핀란드 산나 마린 총리(36)도 스무 살 무렵부터 사회민주당에서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핀란드에선 15세 이상부터는 정당의 청년 조직에 가입할 수 있으며 부모 동의가 있으면 13세에도 가입이 가능하다고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등은 대부분 당원 가입 연령이 선거 연령보다 낮다. ▷우리나라는 만 18세가 넘어야 정당에 가입할 수 있다고 법률에 규정돼 있다. ‘16세 정당인’에 대한 반대론자들은 “방향은 맞지만 시기상조다” “청소년을 선동하는 홍위병법이 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특정 이념을 가진 교사들에 의해 학교가 정치판이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21대 총선 결과 40대 이하 청년 의원 비율은 4.3%에 불과했다. 국제의원연맹 자료에 따르면 121개국 중 118위로 최하위권이다. 20, 30대는 물론 요즘은 10대들까지 기성세대가 장악하고 있는 정치판에 숨 막힌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치열한 토론이 필요하다. 정당 역사가 깊은 유럽 국가들과 정치 토양이 다르긴 하다. 선진 사례 연구와 함께 합리적인 토론 프로그램 개발 등이 모색돼야 한다. 16세면 고등학교 1학년인데 무슨 정당 활동을 하느냐는 건 시대착오적 생각이 아닐까 싶다.정용관 논설위원 yongari@donga.com}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끝나면 여권에서 개헌 논의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고 한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말이 민감한 파장을 낳고 있다. “국민의힘 후보가 이기면”이라고 했지만, 승패를 떠나 차기 권력 향방과 직결된 개헌 이슈는 시기의 문제일 뿐 언제든 터질 수 있는 휴화산이다. 사실 내년 대선을 앞둔 정치 지형은 여권 핵심부가 개헌 가능성을 타진할 만한 여건으로 가고 있다. 여야, 현재와 미래 권력의 복잡한 역학관계가 그렇다는 얘기다. 4월 7일 서울·부산시장 선거 결과에 따라 여권 경선구도는 요동칠 것이다. 현재 권력이 믿을 수 있는 미래 권력 창출이 불확실한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 ‘퇴임 후 안전’이 최우선 관심사일 수밖에 없는 현직 대통령이 내심 개헌에 관심을 가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뚜렷한 대권주자가 안 보이는 야권 상황도 개헌의 또 다른 여건이다. 어쩌면 서울과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범야권이 패배할 경우 개헌 동력이 더 살아날지도 모른다. 대선에서 이길 가능성이 없다면 차라리 책임총리제든 내각제든 개헌을 하자는 의원들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범여권 180석에 야당 일부가 동참하면 재적 3분의 2인 200석 확보가 불가능한 건 아니다. 현재 지지율 1위의 이재명 경기도지사 지지층과 의원들의 거센 반발이 변수가 될 수 있다. 정치공학 차원으로 살펴본 개헌 시나리오가 다수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돌이켜보면 박근혜 탄핵은 개헌의 기회이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구시대를 마감하고 새 시대의 주춧돌을 놓은 징검다리 대통령으로 역사에 족적을 남길 수도 있었지만 물 건너가고 말았다. 여권발 개헌이 본격화하면 국민의힘 지지층이 “청와대로 향하는 울산시장 및 원전 의혹 수사를 덮으려는 술수”라며 반발하고 나설 공산도 크다. 지난 총선 때 개헌 저지선은 확보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린 야당으로선 입법부와 사법부를 장악한 여권이 좌파 요소가 가미된 개헌을 통해 장기집권 그림을 그린다는 의심을 할 법도 하다. 그렇다고 해도 현재의 기형적 5년 단임제를 언제까지 끌고 갈 것이냐 하는 본질적인 문제는 남는다. 이 지점이 딜레마다. 대통령제를 발명한 미국은 지난 대선에서 보듯 헌정 위기를 맞다가도 ‘사법부 우위’와 ‘입법부 견제’ 시스템으로 자정 기능을 발휘해 왔다. 0.1%라도 더 얻으면 사실상 현대판 ‘임기제 군주’ 노릇을 하는 우리나라와는 근본적으로 사정이 다르다. 무엇보다 능력이 검증되지도 않은 채 폭발적인 진영 에너지의 힘으로 당선됐다가 퇴임할 무렵 정치적 단두대에 올라가는 일이 반복된다. 이번에 선출될 대통령이라고 다를 리 없다. 이젠 ‘대통령에 의한, 대통령을 위한, 대통령의 나라’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철인(哲人) 대통령은 없다. 내각제든 분권형 대통령제든 집단지성이 작동하고 이를 투명하게 감시할 수 있는 새로운 권력 시스템으로 전환하지 않는 한 대한민국은 3류, 4류 정치의 늪에 빠져 허우적댈 것이다. 내년 대선과 2024년 총선을 새로운 권력구조로 넘어가는 과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22대 국회부터 국회에서 선출한 총리와 장관이 내각을 책임지고, 국민 평가를 받는 방향의 개헌을 고민해야 한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 같은 지도자가 우리나라라고 없을 리 없다. 헌정사를 보면 역대 개헌은 유력 정파 간 막후 담합의 산물이었다. 청와대는 두 전직 대통령 사면을 추진하고, 국회는 여야 동수의 투명한 주체를 세워 모든 협상 과정을 공개하며 개헌을 추진한다면 국민 공감을 끌어낼 수 있다. 정용관 논설위원 yongari@donga.com}
“서울시 공동 운영에 합의하는 방식으로 야권 단일화를 해야 한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판세가 갈수록 혼미해지자 국민의힘 경선 후보들이 ‘연립 지방정부’ ‘공동 지방정부’ 구상을 언급하고 나섰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등 제3지대 후보와의 단일화가 지지층을 결속시키는 ‘윈윈 효과’를 내려면 승자독식이 아니라 승자와 패자가 서울시 지방권력을 분담하는 데 합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선 국면에선 후보 단일화를 전제로 한 공동정부 구상이 종종 있긴 했다. 1997년 김대중-김종필의 ‘DJP연합’은 정권 창출을 이뤄냈다는 점에서는 성공 사례다. 물론 양측이 정치적 담판을 벌인 것일 뿐 법적으로 담보된 공동정부가 아니기 때문에 중도에 깨지긴 했지만…. 2002년 대선 때는 공동정부를 염두에 두고 노무현-정몽준 단일화가 성사됐다가 선거일을 하루 앞두고 파국을 맞기도 했다. “공동정부라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정몽준)는 것이다. ▷광역시도 차원에선 2014년 당시 남경필 경기지사가 연정 실험에 나선 전례가 있다. 부지사 같은 자리만 준 게 아니라 인사 정책 예산 등의 권한을 민주당 측과 상당 부분 공유했다. 남 지사로선 당시 경기도의회 다수당이었던 민주당의 협조 없이 도정을 운영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판단과 더불어 ‘연정 실험’을 자신의 정치 브랜드로 만들어보겠다는 계산도 작용했다는 평가다. 3년가량 이어진 경기도 연정 실험은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막을 내렸다. ▷‘범야권 연립 지방정부’를 처음 언급한 건 지난해 12월 안 후보였다. 국민의힘에 입당하진 않겠지만 ‘같이 간다’는 시그널을 명확히 하고, 자신을 범야권을 대표하는 후보로 자리매김하려는 의도였다. 당선을 전제로, 3석의 소수 정당만으로는 민주당이 시의회와 구청을 장악한 서울시 운영은커녕 정무직 자리도 채우기 힘들다는 현실적 한계까지 고려했을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누가 단일후보를 시켜 줬느냐”고 일갈한 데는 이런 이유가 있었다. ▷약 2개월이 흘러 국민의힘 오세훈 나경원 후보가 공동정부 구상에 긍정 반응을 보이고 나선 데는 여러 가지 생각이 작용했을 것이다. 현 정권에 비판적인 중도 보수층의 ‘무조건 단일화’ 압박 여론을 감안할 때 공동정부 메시지를 명확히 발신하는 게 다음 달 4일 당내 경선은 물론 제3지대 후보와의 범야권 후보 단일화 경선에도 도움이 될 것이란 판단으로 보인다. 분명한 건 이번에 나온 공동정부 구상이 보선 이후 내년 3월 대통령선거를 겨냥한 범야권 통합 플랫폼과 연결이 돼 있다는 점이다. 범야권의 연정 논의가 정치적 의미를 갖는 정치실험으로 이어질지, 각 후보들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다 그대로 소멸할지 지켜볼 일이다.정용관 논설위원 yongari@donga.com}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화법은 독특하다. 얼핏 듣기에 헷갈릴 때도 많지만 정교한 계산과 복선이 깔려 있다. 지난해 총선 때 “가능성 1%”라며 안개화법을 구사하다 선대위원장 제의를 수락한 게 단적인 예다. 총선 패배 후엔 “나는 자연인”이라며 눙치다 비대위원장 자리에 올랐다. 김 위원장이 차기 대선구도와 관련해 ‘별의 순간’이란 말을 꺼내 논란이다. 최근 인터뷰에서 ”고 한 반면 4월 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에 대해선 “2011년에 별의 순간을 놓쳤다”고 잘라 말한 것이다. ▷김 위원장이 대권 기회를 별의 순간이라 표현한 게 처음은 아니다. 2007년에도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두고 “별의 순간을 포착하지 못하면 역사의 흐름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다”며 똑같은 말을 했다. 당시 범여권의 대안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던 정 전 총장을 위해 자락을 깐 것이었다. 그러나 정 전 총장은 ‘정치한다’ ‘안 한다’ 사이에서 이리저리 재다가 불출마를 선언했다. ▷김 위원장과 안 대표는 2011년 첫 만남부터 ‘정치 궁합’이 잘 맞지 않았던 듯하다. 비례대표로만 4선 의원 경력이던 김 위원장은 “정치를 하고 싶으면 국회에 들어가서 제대로 배우라”고 조언했지만 정치권에 발을 디뎌본 적도 없는 안 대표가 이를 일축한 게 첫 단추가 잘못 꼬인 발단으로 알려져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저서 ‘영원한 권력은 없다’에서 “내가 ‘안철수의 정치 멘토’라고 언론이 줄곧 호들갑을 떨었다”며 안 대표와의 정치 인연을 부정하기도 했다. ▷윤 총장의 지지율에 대해 김 위원장은 “(정권에 반대하는) 에너지가 붙어 있다”고 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여권 후보로 나올 수 있다”는 말도 했다. 한편으론 띄워주고 한편으론 견제구를 날리면서 윤 총장의 향후 행보를 다 예측하고 관리할 수 있다는 투다. 높은 정치적 상상력을 과시하려는 의도로 읽히지만 여야를 수시로 넘나든 김 위원장의 정치 행보와 맥이 닿는 발상 같기도 하다. ▷김 위원장은 조부인 가인 김병로 선생의 비서로 정치 활동을 시작하며 일찌감치 권력세계의 진면목을 접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마치 제왕학에 통달한 듯 특정인을 도마에 올려놓고 별의 순간 운운하는 것은 듣기 거북하다. 한때 대권후보로 밀었던 정운찬 사례처럼 공허한 정치 레토릭이다. 김 위원장은 “보궐선거가 끝나면 자연인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지금 이 순간, 김 위원장이 해야 할 일은 중도층이 왜 아직도 국민의힘에 눈길을 주지 않느냐에 대한 해법을 찾는 것이다. 정용관 논설위원 yongari@donga.com}
한·중 사드 갈등을 일찌감치 예감한 ‘싸드’,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을 다룬 ‘미중전쟁’ 등 한반도 운명에 천착해 온 소설로 화제를 모아 온 소설가 김진명. 그는 북미정상회담과 이후 한반도 상황을 어떻게 전망하고 있을까. -보수층 일각에서는 남북, 북미대화 국면을 북한의 위장된 평화 공세라고 평가 절하한다. “김정은이 쇼를 한다면 금방 탄로 나 더 큰 위험에 빠질 텐데 그런 쇼를 할 이유가 없다. 과거 학습효과 때문에 믿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김 작가는 “미국이 달러를 유지하는 힘은 군사력인데, 북한은 지금까지 미국이 군사력을 키울 명분을 제공해온 ‘필요악’ 구실을 해왔다. 이번 대화 국면에서 미국에 대한 북한의 역할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떤 전략이 있을 수 있을까. “핵 포기 이후 북한 경제를 한미일 경제동맹에 편입하는 것이 북한의 체제 안전은 물론 미국의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에게 설득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북핵 폐기와 함께 북미가 관세동맹을 맺어 북한에서 생산한 물건을 관세 없이 미국에 수출토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북한은 미국에 수출해서 번 돈으로 미국 제조업체가 만들어내는 기계, 플랜트, 슈퍼컴퓨터 등을 사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은 대중 무역적자를 줄일 수 있고, 미국 제조업 수출도 늘리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북한은 미국의 생산설비를 들여와 국가기간시설을 구축해 빠른 시간 내에 경제를 크게 일으켜 세울 수 있다” 김 작가는 남북미 경제공동체를 기본으로 하되, 일본을 끌어들여 안전판을 더욱 확실하게 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몇몇 일본 우익 정치인의 망발을 이유로 한미일 안보와 경제프레임이 흔들리면 우리나라 전체가 위험해진다. 정서적 문제를 동맹과 결부시키는 것은 나라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다. 주한미군과 한미일 동맹은 우리 국익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안전판이다.”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집에 늦게 들어가면 마누라가 ‘이제 오셨수’ 하는 것 같은 생각도 문득 들고요. 사진 보며 이야기도 합니다. 사진도 다 그대로 두고 있으니까요.” 원로 방송인 송해(본명 송복희·91) 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지난달 31일 오후, 얼마 전 아내 석옥이 씨(83)를 먼저 떠나보낸 송 씨의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인근 사무실을 찾았다. ‘원로 연예인 상록회’라는 문패가 달린 문을 열고 들어가자 15평 남짓한 내부는 은퇴한 연예인 등으로 북적였다. “에이 뭘 여기까지…” 하며 반갑게 맞아준 그는 잠시 주위를 살피더니 아래층 식당으로 기자의 손을 이끌었다. 따뜻했다. ―상을 치른 지 얼마 안 됐는데 불쑥 찾아와서…. 잘 모셨는지요? “사람이 당하고 접해 봐야 아는 건데, 난 살다가 한쪽이 먼저 가고 하는 걸 많이 봐 왔어요. 부부가 만났다가 꼭 같이 갈 수가 없으니까. 그런데 바깥양반이 먼저 가야 해. 아내가 먼저 가면 그 다음 날부터 초라해지는 거 같아요. 집사람이 대구가 고향이에요. 장인도 그쪽에 모셨고. 그래서 그쪽으로…. 날씨도 아주 봄날 같았어. 다 치르고 서울로 올라오는데 대전쯤 오니까 눈이 날리고, 아주 춥고 그렇더라고.” ―집에 가면 적적하실 것 같습니다. “딸들도 다 이웃에 살고요. 와서 위로해주고 그래요. 또 오늘 점심 때 월례회를 했는데 사람들이 모여서 위로해주고. 평소보다 많은 30명이 나왔어요. 사람이 힘이지 뭐. 한 멤버가 ‘슬픈 일 당한 분도 있으니 점심을 내겠다’고 해서 잘 얻어먹고 왔어요. ‘파이팅’도 하고….(웃음)” ―생전에 행복하게 해주셨나요? 장례 치를 때 ‘여보 미안해’ 하시던 모습이…. “우스갯소리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가 송해 마누라다 하는 이야기도 있었어요. 나이 들었는데 집 안에만 있어서 밥 다 챙겨주고 해야 할 필요 없잖아? 매일 돌아다니니. 돈도 벌어다 주고…. 그런데 우리 계통 사람들이 지방 출장이 많아요. 같이 뭘 할 여유 없이 살았죠. 잘해준 건 생각 안 나지. 못해 준 것만 생각나지. 우리 계통은 안사람들이라는 게 기다림에 지쳐요. ‘같이 여행 가자’ 이런 말 못한 게 아픔이에요.” ―집에서는 좀 많이 안아 주셨나요? “집에 가면 우리 희극 하는 사람들은 말이 없어요. 홀쭉이와 뚱뚱이, 구봉서, 배삼룡 등도 집에 가면 말이 없었어요. 나 같은 경우도 말을 안 했어. 그러니 마누라도 조용하지. 술 때문에 많이 미안하지. 세상에 다 알려진 거지만, 내가 봐도 술이 좀 과했어요. 내가 먹은 걸 호수에 넣는다면 얼마나 될까 생각도 들어요. 희극 하는 사람들이 술을 가까이하는 이유가 있어요. 오민석 단국대 교수가 ‘나는 딴따라다’라는 책을 써줬는데, 사실 (연예인) 경시 풍조가 좀 강했잖아요. 우리가 식당이나 술집 같은 데서 한잔씩 하다가 시끄럽게 되면 ‘아, 딴따라들이구나’ 하는 주변인들의 시선 같은 게 있었어요. 요즘은 안 그렇지만….”―2015년 TV 프로그램 ‘나를 돌아봐’에서 63년 만의 결혼식으로 화제가 됐었죠? 그 전에도 스타였는데, 면사포 씌워줄 기회가 있었을 것도 한데요? “잔치는 사람이 많아야 좋잖아요. 그런데 나는 (1951년 1·4 후퇴 때) 혼자 넘어와서 친척이 없으니 오히려 쓸쓸할 것 같아. 그래서 안 한 것도 있지. 우리 세대가 불행한 세대예요. 정변을 다 겪었잖아. 북에 계신 부모님께 죄가 되는 것 같기도 했고요. 물론 난 해주고 싶었지요. 그리고 제가 3남매를 뒀는데, 아들놈을 일찍 잃었잖아. 결혼식 한다고 하면 마누라가 아들 생각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그냥 덮자 한 거지. 미안하게 된 거지요.” ―이번에 아들 생각이 더 났을 것 같습니다.(그는 외아들을 1974년 오토바이 사고로 잃었다.) “나하고 마누라랑 애기(아들)하고 같이 찍은 사진이 있어요. 이번에 장례식 하면서 아내한테 넣어줄까 하고 가져갔다가 다시 가져왔어요. 보고 싶을 때 혼자 꺼내 보려고…. 잊는다고 지워지는 건 아니에요. 가슴에 묻는다고 하잖아. 저는 차례도 못 지내다가 이젠 살아계신다고 할 수 없으니 십수 년 전부터 차례를 모시고 있어요. 그때 아들 밥그릇하고 잔도 놓아줍니다.” ―생계가 어려운 은퇴 연예인들이 돌아가시면 장례를 치러주기도 하신다고요? “사무실 갖고 있으면 정말 어려운 사람들 많이 와요. 회원뿐 아니라 먹고살기 힘든 연예인 초상나면 그냥 해주다시피 했어요. 그래서 그런 이야기가 나온 것 같아요. 어쩌다 보면 살다가 어려워지니까. 시신 하나 손댈 사람도 없을 때 우리가 한 경우가 많아요. 묘 관리도 해줬죠.” 그는 발인 다음 날인 지난달 23일 강원 태백에서, 지난달 30일에는 광주에서 전국노래자랑 녹화를 찍었다. ―언제까지 방송하실 생각이세요. “나는 아직 그럴때(그만 둘 때)가 아닌 것 같아요. 시름시름해도 방송하면 쌩쌩해집니다. 책임감인 것 같아요. 우리는 정년이 없는 거고 갈 때까지 가자, 그래서 ‘난 여러분의 평생친구다’라고 하는 것이죠. 요즘 건강프로그램 많잖아. 거기 양의사, 한의사들이 다 있는데, 싱거운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 사람들이 나한테 와서 입 벌리면서 ‘아 해보세요’라고 하기도 해요. 그러고서는 ‘아이고 선생님 120년, 150년은 사실 거예요’라고 해서 그러려니 합니다. 매사 마음먹기에 달렸어요.” ―술은 좀 줄이시는 게…. “그거까지 줄여가며 심심할 필요가 있나요? (웃음) 양적으로는 아무래도 줄더라고요. 또 언짢은 분이 없나 하고 나 자신이 자꾸 주변을 살피게 됩니다. 조만간 2만 원짜리 닭도리탕(닭볶음탕)에 소주 한 잔 합시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 지난해 2월 2일자 동아일보 1면 톱 제목이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사진)의 대선 불출마 선언을 중의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1년이 지났다. 그 사이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한반도 외교안보 위기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동아일보 지령 3만 호를 맞아 반 전 총장을 만나봤다.》낮 기온까지 영하 10도 아래를 맴돌던 24일 오후 칼바람을 맞으며 연세대의 아펜젤러관에 들어섰다. 1924년에 건립된 고풍스러운 석조 건물 2층 복도 끝 연세대 글로벌사회공헌원 명예원장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해 7월부터 명예원장 겸 석좌교수로 출근하는 곳이다. 5평가량의 아담한 크기였다. 소박했다. 김숙 전 유엔대사, 김봉현 전 호주대사 등이 사무실을 오갔다. 동아일보 지령 3만 호를 계기로 인터뷰가 이뤄진 만큼 먼저 동아일보와의 인연 얘기로 환담이 오갔다. “사무총장 마치고 귀국하고 나서 국내 신문 인터뷰는 처음이다. 3만 호 대단한데, 손기정 일장기 말소 사건 등이 아니었으면 벌써 3만 호를 넘었을 거다. 민족정기를 대변하는 신문이었다. 어릴 때부터 신문은 많이 읽었다. 동아일보가 4면 나오던 시절부터…. 김성환 화백의 고바우 시사만평을 참 많이 봤다. 신세진 일도 있다. 1999년 터키에 큰 지진이 났을 때 한국이 고작 8만 달러를 낸다고 해서 망신살이 뻗친 적 있었다. 6·25전쟁 참전국이고 한국을 참 좋아하는 나라인데…. 동아일보가 ‘구호 모금 운동’ 사고(社告)를 내고 적극적으로 나서줬다. 언론이 국가 위상을 높이는 외교 역할을 한 것이다.” 요즘 근황도 궁금했다. “한국에 들어온 건 1년이 좀 넘었지만 미 하버드대 연구생활 마치고 영구 귀국한 건 7월 5일이다. 6개월 정도 지난 건데, 외국 도시를 27번 다녀왔더라. 거의 유엔 사무총장 첫해만큼 다닌 듯하다. 국내 강연도 대학 경제단체 사회단체 등 40여 군데 했다. 젊은 학생들을 만나려고 노력했다.” 그는 이날도 인터뷰에 앞서 계룡대를 방문해 육해공군 최고 지휘관을 비롯한 군 간부 등 700여 명을 대상으로 ‘한반도 정세와 우리의 자세’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왔다고 했다. 자연스레 안보 이슈로 대화가 넘어갔다. ―지난해 말에도 합참 간부들을 대상으로 비공개 강연을 했다고 하던데…. 어떤 메시지를 담았나. “당연히 한미 동맹의 중요성, 한반도 위기 상황을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7월 G20 정상회의 기간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의 회담 때) ‘6·25전쟁 이후 최고의 위기다’란 말을 했는데 사실 내가 먼저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다. 한미 동맹이 왜 중요한지는 이스라엘의 예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22개 아랍 국가로 둘러싸여 있다. 이 중 평화조약을 맺고 있는 나라는 이집트와 요르단뿐이다. 이들도 이스라엘이 좋아서라기보다는 미국과의 외교관계 등으로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맺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사실상 적국으로 둘러싸인 것이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이 버티는 건 ‘미-이스라엘 방위조약’ 때문이다. 그만큼 미국과의 동맹 효과가 큰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한미 동맹 재조정 문제가 오랜 이슈 아닌가. “1948년 건국 뒤 이스라엘도 한국 못지않게 정권 잡기 경쟁이 심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미-이스라엘 동맹을 조정하자는 이야기는 안 했다. 오히려 미국 내 유대인 로비단체 등을 이용해 미국을 더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움직이려 했다. 그러다 보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다”란 선언까지 한 것 아니냐. 우리가 교훈으로 삼아야 할 부분이다. 한국은 5년마다 (정권이 바뀌면) ‘전작권 조정 문제’를 포함해 한미 동맹 조정 이야기가 나온다.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이다. 군은 안보에선 무게중심을 잡아야 한다. 얼마 전 미 해군 잠수함이 부산에 기항하겠다고 했는데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는 (한국 정부의) 우려 때문에 기항을 포기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런 식의 정치적인 판단은 하지 말아야 한다. 군이 미중, 미북, 남북 관계 등을 알아야 하지만 너무 정치적인 건 신경 쓰지 말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미중 역학관계에 따라 흔들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들어서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며 글로벌 리더십에서 후퇴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반면 중국은 도광양회(韜光養晦·재주를 감추고 때를 기다림) 자세에서 벗어나 ‘차이나 드림’을 외치며 2050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국가가 되겠다는 식으로 바뀌는 상황이다. 종합적으로 미국과 중국의 모습을 보면서 ‘신냉전 시대의 도래’ 같은 생각도 든다. 중국이 자세를 숙여가며 아시아적인 태도로 나오진 않을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 동맹 관계의 재조정 이야기가 나오고 전작권 환수 이야기가 나오는 건….”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이 후퇴하고 미중이 충돌이라도 하면…. “질량불변의 법칙은 국제정치에서도 통용된다. 한 군데서 누군가가 빠지면 그 공백을 또 다른 누군가가 채우는 것이다. 그래도 전 세계 어디에서든 갑작스러운 어떤 사태가 났을 때 군사력을 즉각 투사(투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나라는 현재 미국뿐이다. 총 11대의 항공모함을 운용하며 유사 사태가 발생했을 때 하루 만에 대응하는 게 목표다. 현재 중국과 러시아는 지니지 못한 능력이다. 다만 앞으로 중국은 이런 글로벌 투사 능력을 갖추려고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과 중국이 정면충돌할까? 남중국해 같은 지역에서 약간의 충돌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두 나라 모두 워낙 큰 나라고, 국제적인 책임도 잘 알고 있어서 심각하게 충돌하진 않을 것이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인도 태평양 구상’에 일본 호주도 찬성의 뜻을 밝혔다. 우리 정부는 중국 눈치도 봐야 하고…. 미국은 한미일 군사동맹을 바라는 것 아닌가. “한미일 안보협력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동맹은 미국과의 동맹이다. 미일 동맹도 있다. 한미일이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니 경우에 따라 협력하는 건 가능하다. 하지만 동맹체제가 되어 버리면 ‘중국을 상대로 한 것이다’란 인식이 나오고 우리가 난처해질 수 있다. 우리는 중국과도 좋은 관계를 맺고 협력해야 한다. 미국이냐 중국이냐 하는 양자택일 접근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미 동맹은 중국도 그냥 인정하는 것이다. 미군의 주둔 자체도 중국은 인정한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중국 베이징대 연설에서 중국을 큰 봉우리에 비유하며 중국몽을 함께하겠다고 해서 논란이 됐는데, 방중을 너무 서두른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중국에서 천천히 하길 바라는데 조금 서두른 것 같다. 외교에서 조급증을 보이면 한 수 접히고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의 정치외교가 감성적인 면이 많다. 흔한 말로 먼저 화내면 지는 거다. 냉철하게 할 땐 냉철하게 해야 하는데 우리는 국익이 당리당략에 흔들릴 때가 있다. 그래서 국민이 혼란스러워한다. 특히 젊은층이 그렇게 된다. 이런 점에서 걱정이 많다.” ―북한 얘기로 들어가 보자. 평화 올림픽이냐 평양 올림픽이냐 논란도 많은데, 북한의 진짜 의도가 뭘까. “스포츠가 안정, 화해에 기여하는 것도 크지만 좀 의연해야 한다. 북한의 의도를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북한은 유엔 회원국 중 최악의 ‘규범 파괴자(Norm Breaker)’다. 지금까지 10개의 유엔 안보리 제재를 받은 나라가 없다. (대북 석유 정제품 제재를 강화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유엔 안보리의 제재결의안 2397호는 미국과 중국 관계를 고려할 때 (나올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제재다. 물론 미국은 이 정도로는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올해 말 통상 기록 등이 반 토막도 더 날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제재의 고통을 느끼기 시작한 것일 수도 있다. 또 제재의 고삐를 늦추기 위해 혹은 남남 갈등과 한미 갈등을 위해 ‘미소 작전’을 썼을 가능성이 있다.”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석은 잇단 도발 이후 예정된 수순이었다는 분석도 많다. “북한이 올 것이란 생각은 했었다. 지난해 9월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윤리위원장이 됐지만 그 전부터 내정은 돼 있었다. 지난해 9월 페루에서 “북한이 참여하길 바란다”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했는데, 북한 장웅 IOC 위원이 “스포츠는 정치와 다르다”는 식의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했다. 그리고 평양으로 장웅이 돌아갔다. 내 추측에는 장웅이 (너무 일찍 패를 꺼내 보였기 때문에) 북한 지도부의 심기를 건드려 평양으로 소환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북한이 계속 뜸을 들이다 1월 1일 참가 결정을 발표했다. 북한으로서는 제재가 심해지니 ‘죽겠다. 가봐야겠다’ 식의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의 한국 방문으로 한국이 들썩했다. 북한의 선전전에 말려드는 것 같기도 하고…. “언론이 현송월 방문이 무슨 국가에 어마어마한 일이 난 것처럼 다루는 게 유감이었다. 어떤 방송은 10시간씩 관련 내용을 방영했다. 이건 ‘국민의 알 권리’ 박탈이나 다름없다. 평창 올림픽은 전 세계가 참석하는 행사다. 남북한만의 행사가 아닌 것이다. 다른 나라도 다 자기 나라 선수들을 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북한만 주목하면 어떻겠나. 차분하게 만인의 축제가 되게 해야 한다. 다만 한반도기 논란은 대회 기간 내내 태극기가 휘날리고, 애국가가 나올 것이다. 그러니 대의를 위해선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하는 것도 동의할 수 있다고 본다.” ―‘포스트 평창’을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북한이 평창을 체제 선전에 이용만 하고 다시 도발할 수도 있지 않나.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인 이산가족 상봉 등 인도적인 문제는 확실히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건 북한이 거절할 명분이 없다. 군사당국 회담도 당연히 해야 한다. 좋은 디딤돌(stepping stone)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 비핵화 등을 진행해야 한다. 이건 지난한 과정이 될 것이다. 북한이 도발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나 핵무기 시험을 하는 순간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간다. 미국 강경론자들의 입장을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 유엔 제재는 비핵화에 진전이 있기 전에는 안 풀 것이다.” ―위안부 문제 합의를 둘러싸고 한일 관계도 경색돼 있다. 10억 엔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위안부 합의도 매끄럽지 않았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발표한 것도 매끄럽지 않았다. 10억 엔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서도 말이 많은데 계속 협의를 해야 한다. 외교 업무를 하다 보면 상대방에게 화가 나서 ‘죽어도 안 만난다’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 대부분 다 해결 방법이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평창에 온다. 트럼프 다루는 걸 보면 전략적인 것 같기도 하고 약은 것 같기도 하고…. “아베는 우익적인 사고방식이 강하지만 어디가 중요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동맹에 문제 있다는 이야기도 없다. 현명하다고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일본 방문 때 골프를 치면서 골프 이야기만 했다.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도 트럼프 대통령을 만날 때 어마어마하게 스터디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준비했다는 이야기가 다 (미국 쪽에) 들어가게 했다. 시 주석은 아마 트럼프 대통령을 스스로 ‘핸들(다룰)할 수 있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통상 우리 대통령들은 미국 대통령을 만나면 ‘북핵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기자는 반 전 총장의 불출마 선언 전날인 지난해 1월 31일 몇몇 일간지 정치부장들과 함께 반 전 총장과 비공개 만찬을 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그는 주로 청와대 수석, 외교통상부 장관, 사무총장 시절 에피소드를 얘기했다. 왜 대선에 나왔는지, 어떻게 레이스를 펼칠 것인지에 대한 얘기는 거의 없었다. 소주를 서너 잔 마시기도 했었다. 인터뷰 말미에 “그때 불출마 마음을 굳힌 상태에서 기자들을 만났던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 얘긴 하고 싶지 않은데…. 난 솔직히 권력욕이 있는 사람도 아니고, 유엔 사무총장도 12월 31일까지 고지식하게 다 마무리하고 들어왔다. 그런데 들어와서 보니까 상황이 너무 복잡하고 끝까지 간다는 게 참 어려웠다. 도착할 때부터 생수 에비앙 논란은 정말 좀….” 정용관 이슈앤피플팀장 yongari@donga.com·정리=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스페인 헌법재판소가 8일(현지시간) 카탈루냐 자치의회의 독립공화국 선포는 무효라고 결정했다. AP통신에 따르면 헌재는 카탈루냐가 스페인으로부터 분리 독립을 선언한 것은 자치지방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는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시했다. 앞서 스페인 정부는 카탈루냐 자치의회가 지난달 27일 전체 회의 표결을 통해 독립공화국을 선포한 직후 헌재에 카탈루냐 독립 선포안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출했고, 헌재는 이를 받아들였다. 스페인 검찰은 카탈루냐의 분리 독립을 주도한 수뇌부 8명과 2명의 시민단체 대표를 구속한 바 있다. 이에 카탈루냐 주요 지역에서는 이들 정치인의 석방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고, 바르셀로나 도심 광장에 모인 수천 명의 시민들은 카탈루냐 정치인 수사를 규탄하는 집회를 가졌다. 이번 헌재의 결정에 따라 자치정부는 해산되고 다음달 21일 선거를 통해 새로운 정부가 구성될 예정이다.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는 의회에 출석해 “선거가 새로운 공존의 정치시대를 열어 규칙이 존중되고 경제가 회복되면 좋겠다”고 밝혔다.김수연기자 sykim@donga.com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어제는 고희를 딱 한 해 앞둔 제헌절이었다. 제헌절 당일인 17일 오후 청와대 여민1관 소회의실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한 문재인 대통령은 비교적 여유로워 보였다. 회의 시작 전 예의 커피를 타기 위해 다른 수석비서관들과 마찬가지로 줄을 섰다가 이를 눈치챈 조현옥 인사수석비서관이 황급히 자리를 내줘 좌중에 웃음이 터지는 ‘소탈한’ 모습은 이제 뉴스거리도 안 된다. 자신의 옆자리가 비어 있는 걸 보고 “공석이 있네요”라고 했고, 임종석 비서실장이 뒤늦게 착석하자 “이 자리에 못 앉는 분들이 많아요”라며 농을 던지는 모습도 자연스러웠다. 대수보회의를 눈여겨본 건 청와대발 제헌절 메시지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꼭 개헌에 대해 문 대통령이 무슨 말을 내놓을지가 궁금해서만은 아니었다. 예순아홉 돌을 맞은 제헌절이지만 올해는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의미가 아주 특별하다. 문재인 정부는 헌법재판소의 전직 대통령 탄핵 심판 결정을 바탕으로 탄생한 권력 아닌가. 헌법적 절차에 따라 한 정권이 무너지고 새 정부가 들어선, 세계사에서 유례가 없는 일대 사건이었다. 브라질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도 탄핵을 당했지만 의회의 결정이었고, 대통령제하에서 헌재에 의한 탄핵 결정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다시 말해 문재인 정부의 정통성은 ‘헌법’ 그 자체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허나, 아무런 제헌절 메시지도 나오지 않았다. 모두발언 내내 최저임금 인상 결정에 따른 노사 협력을 당부하고 부정부패 척결과 방산비리 근절을 강조했을 뿐 제헌절 얘기는 일언반구 없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이미 개헌에 대한 의지를 충분히 밝혔다”며 “개헌 추진은 대통령이 아닌 국회의 몫”이라고 했다. 또 국회의장 주관하에 개헌토론회가 열리는 마당에 굳이 대통령이 개헌 메시지를 내놓을 필요가 있느냐는 설명이었다. 물론 청와대로선 개헌은 그리 마뜩지 않은 이슈일 수 있다. 자칫 임기 초 국정동력을 떨어뜨리는 블랙홀이 될 수도 있다. 과거 대통령들도 임기 초반 개헌 드라이브를 건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 필자가 기대했던 청와대발 제헌절 메시지는 따로 있었다. 개헌 이슈와 별개로 ‘헌법 준수 의무’에 대한 새 정부의 겸허한 태도와 의지 말이다. “새 정부는 헌법의 최고 규범성을 거듭 되새기고 늘 겸허한 자세와 두려운 마음으로 헌법을 준수해 나갈 의지를 갖고 있습니다.” 새 정부가 촛불혁명에 의해 탄생했느냐, 헌법적 질서와 절차에 의해 탄생했느냐는 동전의 앞뒷면으로 같은 얘기일 수도 있지만 나라를 어떻게 운영해갈 것이냐는 인식 면에선 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본다. 이는 국정운영의 도덕적 지향성과 절차적 정당성 간의 끊임없는 논란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권력을 만들고 쟁취하는 데는 ‘화려한 거품’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사람이 모이고 세를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권력을 잡은 뒤에는 거품을 걷어내고 ‘제도권력’을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한 방법론이 필요하다. 도덕적 권위를 앞세워 국민 다수의 지지만 바라보고 국정을 운영할 수는 없다. 때론 국민 다수의 지지에 역행해서 결단을 내리고 책임을 지는 순간도 올 것이다. 벌써 두 달이 훌쩍 지났다. 절차를 생략하더라도 빨리 성과를 내고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아직 4년 10개월이나 남았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은 소탈한 언행이나 제스처에만 있지 않다. 결국 국정운영 능력, 즉 콘텐츠다. 현재까지는 자꾸 부분의 문제를 전체로 치환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전체 구조 안에서 부분을 볼 것이냐, 부분의 문제를 전체로 볼 것이냐는 천양지차다. 제헌절에 드는 이런저런 생각이다.정용관 정치부장 yongari@donga.com}
“신의 한 수였지.”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임명 직후 여권 신주류의 한 인사가 웃으며 한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5월 9일 친문(친문재인) 진영의 핵심인 노영민 전 의원에게 “고생한 것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에 함께 들어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전했다. 노 전 의원은 유력한 비서실장 후보였다. 문 대통령이 노 전 의원을 직접 만났다는 얘기도 있고 ‘양비(양정철 전 비서관)’를 통해 자신의 뜻을 전했다는 얘기도 있다. 아무튼 문 대통령의 뜻을 확인한 노 전 의원은 대선 승리에 대한 기쁨과 권력의 중심에서 비켜나는 데 대한 아쉬움이 겹쳐 다른 친문 인사들과 만나 통음을 했다는 후문이다. 문 대통령은 이렇게 대선 기간 자신을 괴롭혔던 ‘친문 패권’ 프레임과 절연하고 임 비서실장을 중심으로 한 젊은 청와대 구상을 실현에 옮기기 시작했다. 첫 열흘은 순항하는 듯했다. 인사 파동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요즘 청와대 시스템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부쩍 커지고 있다. 비서실장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세간의 지적도 들린다. 물론 정권 초창기인 데다 정권 창출에 기여한 여러 그룹이 대통령에게 다양한 루트로 인사 추천을 하는 상황에서 비서실장의 역할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정책실장과 국가안보실장까지 3실장 체제하에서 연하의 비서실장 위치가 애매할 수도 있다. 어쩌면 임 비서실장 자체가 여전히 청와대 안팎의 친문 그룹과 ‘묘한’ 긴장 상태에 놓여 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비서실장은 선임 실장으로 청와대의 명실공히 2인자다.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제를 발명한 미국에서도 대통령의 성패가 어떻게 비서실장에 의해 좌우됐는지에 천착한 연구들이 많다. 그중 최근에 나온 책이 ‘더 게이트키퍼(The Gatekeepers)’다. 비서실장의 단순 영어식 표현은 ‘Chief of Staff’, 즉 참모들의 장(長)이지만 ‘대통령의 게이트키퍼’라는 게 더 익숙한 언론 표현이다. 수문장 등으로 번역되는데 그보다는 말 그대로 ‘게이트키핑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더 들어맞을 것 같다. 진짜 정보와 가짜 정보를 가려내고 정보의 우선순위를 잘 따져 대통령이 옳은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최종적으로 보좌하는 자리라는 것이다. ‘내가 아는 나’와 ‘남이 보는 나’는 다르다.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늘 제3자적 관점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간극을 메우기는 누구도 쉽지 않다.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고 대통령의 판단이 틀릴 수도 있음을 깨우칠 조언자가 필요하다. 실제 이 책은 몇 가지 교훈을 담고 있다. 대표적인 성공 케이스로 거론되는 로널드 레이건 1기 정부의 제임스 베이커는 무엇보다 워싱턴 정가를 꿰뚫고 있었던 데다 업무 처리가 완벽했다는 평가다. 특히 ‘입법전략그룹’을 가동해 대규모 감세 등 집권 초 각종 입법을 성공적으로 추진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리언 패네타는 대통령에게 진실을 말하는 악역을 도맡았다. 요컨대 의회를 전략적으로 다룰 능력, 대통령에게 사실을 가감 없이 보고하고 때론 ‘노(NO)’를 할 수 있는 정직함, 모든 것은 내가 책임진다는 자세 등이 비서실장의 덕목이라는 얘기다. 한 전직 비서실장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비서실장은 사심 없이 누구를 되게 하는 역할이 아니라 안 되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대통령을 대신해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조용히 보이지 않게…. 그래야 각 수석이 존중을 해주고 권위가 생긴다.” 쉽지 않은 일이다. 비서실장은 단순히 ‘그림자 비서’여서는 안 된다. 임 비서실장 인선이 ‘신의 한 수’였음을 입증하는 건 그 자신의 몫이다.정용관 정치부장 yongari@donga.com}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때 맨 앞줄에서 주위 사람과 손을 맞잡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열창하던 당시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모습이 눈길을 끈 적이 있다. ‘임을…’의 제창 논란을 떠나 평소 느끼던 법관의 근엄한 이미지와는 다소 달랐기 때문이다. 다음 날 김 권한대행은 문 대통령에 의해 헌재소장으로 내정됐고 7, 8일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다. 흥미로운 건 김 후보자가 다른 사건도 아닌 5·18민주화운동 당시 ‘사형’ 판결로 뒤늦게 도마에 올랐다는 점이다. 요약하면 사연은 이렇다. 버스 운전사였던 34세의 배모 씨는 1980년 5월 20일 오후 9시경 광주 동구 노동청 부근 내리막길에서 시민군을 태우고 이동하다 경찰 저지선을 들이받아 경찰관 4명을 숨지게 했다. 육군계엄보통군법회의에 넘겨진 배 씨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사형 판결을 내린 1심 재판관이 군 법무관으로 복무한 지 10개월쯤 된 27세의 김 후보자였다. 판결은 이듬해 3월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32개월 복역 후 사형 집행이 면제돼 출소한 배 씨는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된 뒤 재심을 청구해 1998년 무죄 판결을 받았다.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했고, 그렇게 잊혀졌던 사건이 국회에서 잠시나마 공론화된 건 2012년이었다. 당시 야당 몫(민주통합당) 헌법재판관으로 지명된 김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사과 용의를 묻는 청문위원들의 거듭된 질의에 “사과보다도 오히려 큰 짐을 지고 있다”는 말로 비켜갔다. 이 문제가 김 후보자의 헌재소장 내정을 계기로 5년 만에 다시 불거진 것이다. 그런데 김 후보자를 둘러싼 여야의 전선(戰線)이 묘하다. 5·18 판결 문제라면 응당 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나 호남에 기반을 둔 국민의당 쪽에서 목소리를 높여야 할 것 같은데 아예 논평이나 성명을 내지 않거나 “이해할 만하다”는 반응이다. 광주 5·18 단체들도 “중대 사안이 아니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반면 ‘임을…’의 제창에 반대했던 자유한국당이 김 후보자의 5·18 판결 문제를 파헤치는 형국이다. 김 후보자가 호남 출신으로 애초 민주당 몫으로 추천됐던 인물이라는 점,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때 유일하게 반대 표결을 한 점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임은 물론이다. 헌재의 수장으로서 그의 정치 성향이나 이념 성향은 본질적인 검증 대상이지만 논외로 치자. 궁금한 건 젊은 시절의 김 후보자가 군 재판관으로서 엄혹한 시절 사형 판결을 내릴 당시의 심정, 또 판결 당사자가 18년 만에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사실을 접했을 때의 심정이다. 5년 전 청문회 때 김 후보자는 군 재판관으로 참여하게 된 데 대해 “피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광주 사람으로서 광주항쟁에 참여해야 할 입장이었는데 재판을 맡게 됐다. 아주 복잡한 입장이었다” 등등의 소회를 피력한 바 있다. 판결 당시 ‘양심의 갈등’을 느꼈다는 것이다. 그랬을 거라 믿는다. 다만 김 후보자가 어느 정도 마음의 짐을 갖고 있었는지는 가늠하기 힘들다. 김 후보자는 “사건을 확실하게 검토해서 제 마음의 결단을 정하겠다”고도 했었지만, 배 씨의 딸 증언에 따르면 그 이후 배 씨 가족은 사과의 마음을 전달받지 못한 것 같다. 배 씨는 “최루탄 연기 때문에 앞이 안 보였을 뿐 고의로 사람을 친 게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판사님은 아무 말도 안 하시더군요”라고 했다. 김 후보자는 어제 청문회 서면답변을 통해 “재판을 마친 뒤 원죄(原罪)와도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고 했다. 통진당 당원의 권리까지 고심했던 그가 37년 전의 침묵에 대해 뭐라고 입을 열지 궁금하다.정용관 정치부장 yongari@donga.com}
‘공유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이란 경제학 개념이 있다. 쉽게 예를 들면 여러 목동이 공동으로 쓰는 목초지에 소를 방목한다고 가정할 경우 목동 하나하나의 관점에서 보면 소를 한 마리라도 더 방목할수록 자신에겐 이득이 되지만, 모든 목동이 이런 식으로 행동을 하게 되면 결국 그 목초지는 황폐화하고 모두가 큰 피해를 입는 결과가 된다는 논리다. 이는 단순히 특정 단위의 지역 경제나 생태 환경의 문제만은 아니다. 딱 ‘정부 예산’을 떠올리면 엄청난 정치 사회 문제와 직결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어떤 이는 이렇게 가다간 목초지 전체가 황폐화하거나 정부 예산이 거덜 날 수 있다는 이성적 판단을 할 수도 있지만 ‘나 홀로’ 행위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 다른 이도 같은 판단을 하고 행동할 것이라는 믿음이 전제되지 않는 한 자신만 손해를 입고 바보가 되는 길을 선택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공유의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는 수십 년간 경제학의 오랜 화두였고, 제3의 사례와 대안을 제시해 공동체의 협동 문화와 관행, 제도로 ‘공유의 비극’을 넘어설 수 있음을 입증한 이가 몇 해 전 타계한 여성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엘리너 오스트롬(1933∼2012)이다. 공유의 비극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중견 정치학자의 설명을 들으며 ‘권력의 공유’를 자연스레 떠올렸다. 5·9대선은 ‘권력의 사유(私有)’ 문제에서 비롯됐기에 정치부 기자의 관점에선 어떻게 권력을 제도적으로 공유하되 국가 전체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느냐에 생각이 미친 것이다. 대통령은 헌법이 정한 선출된 권력기관이라는 점에서 특정 인물이기에 앞서 제도이자 공공재의 성격이 있다. 공유(共有)의 대상인 것이다. 이는 대통령이란 제도를 지구상에서 처음 창안한 미국의 건국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고 필자는 이해한다. 국가 최고 지도자를 ‘회의 주재자’라는 의미의 프레지던트(president)로 명명한 것이나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우상시되던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이 군주와 같은 대우를 마다하고 임기 두 번만 채우고 물러난 건 미국의 헌법 정신에 가장 부합한 영웅적 행위였다. 물론 요즘 미국 대통령제도도 퇴색하고 있다는 우려가 높지만, 이런 연원을 따져볼 때 우리나라에서 프레지던트를 ‘크게 다스리고 또 다스린다’는 의미의 대통령(大統領)으로 표현하는 건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많다. 용어 논란은 차치하고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어떻게 최고의 권력기관인 대통령을 조화롭게 공유할 것이냐다. 대통령수석비서관을 지낸 한 인사가 사석에서 “청와대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나와 보니 청와대 담장이 그렇게 높아 보일 수 없더라”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청와대 담장은 대통령을 에워싼 권력의 상징이다. 그러나 이는 소수 권력 주변 사람들의 얘기다. 오늘 역사적 대통령 보궐선거를 치르는 유권자들의 마음은 복잡한 것 같다. 일찌감치 투표를 마쳤거나 찍을 후보를 결정했다면 마음이 편하겠지만, 후보를 결정하지 못한 이들도 적지 않을 듯하다. 누가 될지, 내가 선택한 후보가 당선될지가 가장 큰 관심일 것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국민 각자가 말 그대로 ‘주권재민’ 의식을 갖는 것, 대통령은 최고의 공복(公僕)이자 심부름꾼이라는 점 말이다. 그러면 청와대 담장도 그리 높아 보이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권력 사유의 비극’으로 치러지는 이번 대선, 우리 국민(We the people)은 대통령을 공유하고 함께 견제한다는 생각으로 투표에 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정용관 정치부장 yongari@donga.com}
꼭 5개월 전인 지난해 11월 24일,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 파문의 주인공인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과 오찬을 함께 한 적이 있다. 당시 필자는 송 전 장관에게 여러 차례 인터뷰를 요청한 상태였다. 송 전 장관은 “정치 이슈화하는 걸 원치 않는다”는 취지로 인터뷰를 거절했지만 자연스럽게 만남이 이뤄졌다. 메모를 토대로 대화 내용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면 회고록 논란이 터졌을 때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처럼 대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치 지도자는 상황이 주어지면 돌파를 해야 하는데, 기억이 안 난다고 상황을 피한 것 아니냐. ‘2007년 당시 상황에선 기권하는 게 옳다고 판단했고, 북한과도 깊은 대화가 오갈 수 있는 여건이었다. 새누리당(자유한국당의 전신) 당신들은 북한과 물밑 대화를 할 채널도 없지 않느냐’라고 정정당당하게 말했어야지. 어떻게 중대한 기억의 착오라고 할 수 있나.” 노 전 대통령이라면 다르게 대응했을 것이다? 사실 송 전 장관은 노 전 대통령의 ‘외교 황태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5년 외교부 차관보로 북핵 ‘9·19 공동성명’을 이끌어낸 그는 이듬해 장관급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으로, 또 유엔 사무총장으로 가게 된 반기문 전 장관(외시 3회)의 후임으로 숱한 선배들을 제치고 여섯 기수나 건너뛰어 장관에 발탁됐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이들에 따르면 보통 외교관과 달리 ‘배짱(guts)’이 있던 송 전 장관을 노 전 대통령은 각별히 아꼈다. 이런 기류를 잘 알던 당시 청와대 386 참모들 일각에선 “송 전 장관은 외교관으로 공직을 마감하기는 아까운 인물”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송 전 장관은 노무현 정부 임기 말 서서히 외교안보 라인의 파워게임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 교섭 단계에서부터 철저히 배제됐고, 당시 이재정 통일부 장관과 김만복 국가정보원장 등으로 무게추가 옮겨간 것이다. 정상회담 동행을 주장했다가 이 전 장관으로부터 “한미 정상회담 할 때 통일부 장관도 가냐”는 면박을 받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노 전 대통령의 인정을 받으며 외교 수장까지 지낸 송 전 장관이 노무현 정부를 계승하겠다는 문 후보와 민감한 대선 국면에서 각을 세우고 있는 작금의 상황은 아이러니다. 문 후보가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을 앞두고 북쪽에 의견을 물어보라고 했는지, 우리 정부의 기권 방침을 통보했는지, 그저 동향을 파악했는지 등을 둘러싼 진실게임은 논외로 치자. 송 전 장관도 자신의 관점에서 본 회고록이니 100% 완벽하다고 장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송 전 장관이 문 후보 측의 해명이 회고록과 내용상 차이가 없다며 “‘꽃과 나무가 서 있다’, 이걸 여기 ‘화목이 서 있다’고 말한 것과 똑같다”고 표현한 게 오히려 진실에 가까울 수도 있다. 다만 유력 대선 주자인 문 후보와 참모들이 한솥밥을 먹던 퇴직 외교관을 상대로 “비열한 새로운 색깔론, 북풍 공작이다” “반 전 총장 대통령 만들기 활동을 했었다. 국민의당에 가 있는 손학규 전 대표와 굉장히 가까운 관계다” 운운하며 ‘정치적 의도’를 제기하고 검찰 고발 조치까지 한 건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송 전 장관은 사석에서 반 전 총장에 대해 “재단을 만들어서 국제 분쟁 조정 같은 명예로운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에베레스트 정상까지 가는 루트가 있듯이 유엔 사무총장이 되는 건 닦여진 길이 있다. 하지만 대선은 다르다”고 했었다. 손 전 대표와 가까운 건 맞지만 회고록 파문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에겐 오히려 불리한 이슈로 자리하고 있다. 문 후보가 이런 반응을 내놨다면 어땠을까. “회고록 다 읽어봤는데, 기억에 다소 차이가 있는 부분도 있지만 남북관계를 풀어가는 데 시사점이 많았다. 집권하면 잘 참고하겠다.”정용관 정치부장 yongari@donga.com}
“정치인에 의한 공학적 연대, 하지 않겠다. 탄핵 반대 세력에 면죄부 주는 연대, 하지 않겠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는 4일 대전 한밭체육관에서 열린 대전·충남·충북·세종 경선 수락연설에서 “특정인을 반대하기 위한 연대, 하지 않겠다. 오직 국민에 의한 연대만이 진정한 승리의 길”이라고 자강(自强)론을 거듭 강조했다. 반문(반문재인) 연대는 물론 바른정당 등 다른 정당 후보와의 인위적인 단일화 없이 국민에 의한 심리적 단일화를 실현하겠다는 전략이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측의 ‘적폐연대’ 비판에 대해서는 기자들과 만나 “허깨비를 만들어서 그 허깨비를 비판하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안 전 대표의 자강론이 대선 본선에서도 먹힐지는 보수 진영의 표심을 어느 정도 흡수할 것이냐에 달렸다는 분석이다.○ 安, “국민에 의한 결선투표 해 달라” 안 전 대표의 자강론에는 지난해 4·13총선 당시 야권 통합과 연대 압박을 극복하고 ‘마이웨이’를 고수해 3당 체제를 만든 자신감이 깔려 있다. ‘알파고’처럼 똑똑한 국민들이 인위적인 정치공학적 연대 논의에 동의해 주지 않을 것이란 판단을 하고 있다는 게 참모들의 전언이다. 안 전 대표는 올 1월 초부터 일대일 구도 만들기에 주력했다. 그는 “‘문재인 대 안철수’의 구도가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대선에서 이길 자신이 있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책임이 있는 보수 진영은 대선 후보를 내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최근에도 안 전 대표는 문 전 대표를 향해 ‘무능력한 상속자’ 프레임을 씌우며 총공세를 펴고 있지만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에 대해선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보수 진영의 표심까지 겨냥한 일종의 ‘무시 전략’인 셈이다. 그는 “국민의 힘으로 결선투표를 할 때가 됐다”고 했다. 정치권에서는 안 전 대표의 ‘마이웨이’ 전략이 성공하려면 향후 안 전 대표의 지지율과 ‘문재인 공포증’ 확산이 관건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보수층이 문 전 대표의 대항마인 자신에게 표를 몰아주는 사실상의 결선투표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안 전 대표 측 관계자는 “5자 구도가 되더라도 보수 진영 후보 지지율이 10% 이내라면 사실상 양자 구도에 가깝다”고 했다. 이어 “그간 호남에서 ‘될 사람을 찍어주자’는 정서가 강해 문 전 대표의 지지율이 높았지만 이제는 호남 민심이 안 전 대표에게로 쏠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중도 하차와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경선 탈락으로 무주공산이 된 충청 민심이 안 전 대표에게 상당수 흡수될 것이라는 기대도 깔려 있다.○ 연대론·유약 이미지 극복이 과제 하지만 보수 진영의 표심을 예측하긴 쉽지 않다. 문 전 대표와 안 전 대표의 사실상 1 대 1 구도를 만들어 줄 수도 있고, 단일화 여부에 따라 홍 지사 쪽으로 지지가 분산될 수도 있다. 애매한 상황이 이어질 경우 안 전 대표 측의 계산은 복잡해진다. 안 전 대표는 ‘철수 정치’라는 외부 비판과 유약한 이미지를 넘어야 하는 과제가 있다. 이를 위해 안 전 대표도 지난해 창당 과정에서 ‘강(强)철수’ 이미지를 부각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그는 이날도 “2012년, 제가 완주하지 못해 실망하신 국민들이 계시다는 거 잘 안다. 하지만 저 안철수, 2012년보다 백만 배, 천만 배 강해졌다”며 ‘강철수’ 이미지를 부각했다. 이번 대선 경선에서 안 전 대표는 저음의 굵은 목소리로 연설을 하는 등 강한 인상을 심기 위해 스타일도 바꿨다. 안 전 대표 측 관계자는 “지난해 총선에서 야권 통합 요구에도 응하지 않은 점, 당내 연대론과 선을 긋고 자강론을 유지한 점이 최근 ‘뚝심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안 전 대표의 측근들이 떠난다는 지적도 극복해야 할 숙제다. 지난해 4·13총선 공신인 같은 당 이태규 의원은 물론이고 보수 성향의 이상돈 의원도 국민캠프에 합류하지 않고 있다. 경선에서 안 전 대표에게 무릎을 꿇은 손학규 전 대표는 물론 당내 비안(비안철수)계 의원들을 끌어안는 모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안 전 대표는 5일 오전 첫 대선 후보 일정으로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해 김대중 김영삼 박정희 이승만 등 전직 대통령 묘지를 참배한 뒤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대전=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39.7%…. 유력 대선 주자의 지지율이 아니다. 동아일보가 창간 97주년(4월 1일)을 맞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5·9 대선의 시대정신을 물었더니 ‘정권교체를 통한 적폐 청산’이라고 밝힌 응답자의 비율이다. 그중 눈에 확 띄는 건 30대다. 무려 55.9%가 대선 시대정신으로 국민통합도, 미래비전도 아닌 정권교체를 택해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았다. 진보 응답자의 61.9%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들이 3일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문재인 전 대표의 확고부동한 지지층이었음은 물론이다. 문 전 대표는 원내 5당 유력 후보 중 64세로 가장 나이가 많다. 동네 아저씨 같은 인상이지만 ‘꼰대’ 같은 이미지도 풍긴다. 4차 산업혁명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3D 프린터’를 ‘삼디 프린터’라고 말해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념적 좌표는 ‘진보’이지만 일상적 삶에서의 사고방식은 ‘보수적’이라는 게 주변 인사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그런 문 전 대표에게 젊은층이 50% 이상의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는 이유는 뭘까? 문 전 대표와 20, 30대를 잇는 단 하나의 키워드를 고르라면 ‘분노’라고 답하고 싶다. 앞날이 보이지 않는 세상, 확 뒤집어지길 바라는…. 탄핵 국면을 거치며 ‘정권교체의 아이콘’으로 성공적 자리매김을 한 문 전 대표의 당내 경선 승리는 출발부터 예고됐던 게임이었다. 경선 룰 논란을 떠나 기울어진 경선 운동장이었다. 이 와중에 외곽에서나마 문 전 대표를 나름대로 위협한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관전자들의 이목을 끄는 데 성공했다. 돌이켜 보면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을 제치고 2위를 유지한 안 지사는 ‘아마추어 주자’였다고 할 수 있다. 경제 교육 복지 등 각 분야에 대한 구체적인 현안을 충분히 이해하거나 미리 공약화하지 못한 측면이 있는 건 사실이나 준비가 덜 된 부적격자였다는 의미는 아니다. 치밀한 준비도 큰 세력도 없이 대선 판에 뛰어들었기에 진영과 패권 논리에 갇힌 기존 여의도식 언어가 아닌 상식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고, 지지층의 충성도와 결집력이 약해 그대로 표로 연결되지는 못했지만 의미 있는 확장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었던 건 오히려 아마추어였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문 전 대표의 본선 전략 중 하나는 손안의 모래처럼 빠져나가는 안 지사 지지층의 마음을 어떻게 잡을 수 있느냐와 관련이 있다. 이 대목에서 2주 전 안 지사가 문 전 대표를 겨냥해 “타인을 얼마나 질겁하게 만들고 정떨어지게 하는지 아는가”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 게 떠오른다. 대선주자가 “질렸다”는 표현이 담긴 글을 새벽 2시에 올린 데는 분명 무슨 곡절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최근 의문이 풀렸다. 전날 밤 MBC TV토론 녹화 직후 카메라가 돌고 있지 않은 공간에서 문 전 대표가 안 지사에게 “대체 왜 그리 네거티브 공세를 펼치느냐. 캠프 단속 잘하라”는 취지의 질책성 항의를 했고, 이에 안 지사도 발끈했다는 것이다. 충청도에서 “질렸다”고 할 때는 더 이상 보고 싶지도 않고 말을 섞고 싶지도 않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최종 경선 결과 발표 후 눈시울을 붉힌 안 지사는 “졌지만 이긴 선거”라며 애써 자위했다고 한다. 한 치의 변수도 만들지 않기 위해 경선 승리에 다걸기를 한 문 전 대표로선 안 지사의 ‘정치적 승복’ ‘감정적 승복’을 이끌어내는 게 당면 과제가 아닐까 싶다. 이는 단순히 골육상쟁, ‘노무현의 상주’와 ‘노무현의 상속자’의 문제는 아니다. 정권교체를 넘어, 이분법적 진리관을 넘어 협치의 길을 모색해 보자는 안 지사의 가치와 관련된 문제다. 문 전 대표는 안 지사를 온전히 품을 수 있을까. 안 지사는 문 전 대표의 ‘좌희정’이 될 수 있을까.정용관 정치부장 yongari@donga.com}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목격자인 15세 소년이 살인범으로 몰려 10년 감옥살이를 한 뒤 한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무죄 판결을 받는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 ‘재심(再審)’을 보다가 얼핏 ‘박근혜 대통령이 이 영화를 접하면 어떤 느낌이 들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비교대상이 될 수 없는 상상이지만, 자신도 그 소년의 처지와 별반 다를 게 없다며 감정이입을 했을까. 며칠 전 이 영화를 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박정희 정권 시절 최악의 사법살인으로 기록되는 ‘2차 인혁당(인민혁명당)’ 사건을 떠올린 모양이다. 인혁당 사건 피해자를 만난 그는 “재심을 해서 무죄가 되고, 그렇게 문제가 해결돼 손해배상도 받겠지만 이게 돈으로 보상되는 게 아니지 않으냐”고 위로했다. ‘정치적 사형’ 위기에 내몰린 박 대통령으로선 작금의 상황이 대(代)를 거쳐 반복되는 역사의 아이러니이자 전율을 느끼게 하는 운명의 장난으로 여겨질 듯도 하다. 박 대통령은 단 한 번의 헌재 심판으로 정치의 단두대에 오를 수밖에 없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대리인단은 “8인 또는 7인 재판관이 (심리를 넘어) 평의·선고까지 하면 재심 사유다. 헌재 구성을 게을리 해 재심 사유에 해당하는 사태가 되면 이 재판에 관여한 법조인은 모두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27일 탄핵심판 최후변론에선 탄핵안을 일괄 표결한 국회의 의결 절차 잘못을 들어 인용도 기각도 아닌 각하 결정을 역설한 변호인도 있었다. 하나, ‘절차’에 대한 뒤늦은 문제 제기가 헌재 최종 판단에 얼마나 먹힐지 의문이다. 사실 역사적인 대통령 탄핵 심판을 데드라인을 정해 놓고 한다는 것부터 논란이 많았다. 하지만 대통령 측은 논리적이고 전략적인 대응보다는 불어나는 태극기 숫자에 기대 감정이 앞서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우를 범했다. 한 원로 헌법학자는 “탄핵제도에 대한 헌법과 법률의 미비점이나 흠결 등이 분명히 있긴 있었는데, 그 문제를 제기하려면 처음부터 했어야지…”라고 했다. 탄핵심판 진행 과정 자체가 순탄치 않아서인지 쫙 갈라진 광장의 목소리가 더욱 크게 들린다. 마치 탄핵이 인용되면, 또는 기각되면 어느 쪽이든 무시무시한 짓을 저지를 것 같은 기세다. 헌재 결정은 그 자체가 상황 종료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승복을 언급하면 무슨 큰 정치적 결단이나 양보를 하는 것처럼 비치게 된 후진적 상황을 선진국에선 어떤 눈으로 지켜보고 있을지 걱정이다. 헌재의 결정은 보호받아야 하지만 절차상 논란의 빌미를 제공한 점에선 책임에서 자유롭다 할 수 없다. 이제 탄핵열차는 종착역을 향해 가고 있다. 탄핵열차엔 박 대통령 혼자 올라탄 게 아니다. 대한민국이, 국민 모두가 함께 탄 열차다. 마침내 탄핵열차가 3월 어느 날 목적지에 도착해 멈춰 서면 우리 앞엔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굳이 끝까지 가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길도 있다. 이미 지난 일 같긴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이 탄핵 결정이 나오기 전 박 대통령이 “더 이상의 국론 분열은 원치 않고 탄핵이 설사 기각된다 해도 통치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무조건 하야’ 선언 같은 정치적 해법을 내놓길 바랐던 건 그 때문이었다. 끝내 촛불 에너지와 태극기 에너지가 부딪쳐 국내외 안보 경제적으로 엄중한 시기에 내전(內戰)으로 치닫는 걸까. 양쪽의 합리적 세력을 중심으로 엄청난 국가 에너지로 승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몇 달을 끌어온 탄핵정국, 그저 대권 다툼의 전주곡으로 끝나서야 되겠는가. 종착역이 다가올수록 탄핵열차에서 내리기가 점점 두려워진다.정용관 정치부장 yongari@donga.com}
설 연휴 기간 접한 날것 그대로의 민심은 두렵기도 하고 섬뜩하기도 했다. 탄핵 인용? 박근혜 대통령의 숨은 결사대를 자처한 어떤 이는 “해방전후사를 읽어봐라. 우익의 본질은 테러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탄핵 기각? 주말 촛불집회에 빠짐없이 참여한다는 다른 이는 “청와대 담장이 무너질 것”이라며 박 대통령에게 수의를 입혀 감방에 보내야 한다고 했다. 쫙 갈라진 양 극단의 주장에 “헌재 판단에 맡기고, 어떤 결과가 나오든 그대로 승복하는 게 법치의 기본”이라는 목소리는 설 자리가 없었다. “탄핵이 인용돼도 걱정, 기각돼도 걱정”이라는 한탄이 흘러나왔다. 답답한 나머지 몇 가지 정치적 상상을 해봤다. 예컨대 헌재가 탄핵을 기각하고 기각 결정과 동시에 박 대통령은 하야 선언을 하고 물러나는 시나리오는 어떨까. 특검이 박 대통령의 뇌물죄 혐의 입증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현재까지 드러난 수사 상황만 놓고 보면 여의치 않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지시 의혹만 입증돼도 탄핵 사유는 충분하다는 목소리도 크지만 반론도 있다. 다만, 탄핵이 기각되더라도 박 대통령이 국정을 정상적으로 수행할 국민 통합 능력과 신뢰를 심각하게 상실했다는 여론이 우세하니 지난해 3차 대국민 담화에서 임기 단축을 언급했던 대로 자진 사퇴를 선언하고 조용히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물론 작금의 상황이 그렇게 간단한 방식으로 정리될 거였으면 이 지경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국민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지내도록 그것만 생각하고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것만이 생의 목표”라고 밝힌 박 대통령의 최근 보수 성향 인터넷TV 발언을 보면 탄핵을 반드시 기각시켜 임기를 재개하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읽힌다. 박 대통령은 ‘검찰이나 언론이 과잉된 게 있어서 혹시 탄핵이 기각되면 바로잡혀야 되겠느냐’는 물음에 “네. 국민이 좀 건전하게 나가야 되겠다 하는 쪽으로 힘을 모아서 좀 더 발전한 나라로 만들어가지 않겠느냐”라고 답하기도 했다. 탄핵 결정 후폭풍은 피할 길이 없을 것 같다. 헌재가 탄핵 인용을 결정하면 정치권은 조기 대선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벌써부터 공동정부나 연정, 결선투표제 도입, 후보 단일화 등의 시나리오가 난무하지만 대부분 누가 권력을 잡느냐의 정치공학일 뿐 갈가리 찢긴 나라를 치유하고 통합하겠다는 진정성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해서, 이런 상상도 해봤다. 국무총리를 러닝메이트로 함께 뽑는 것이다. 현행 헌법상 총리는 국무위원 제청권 등 권한을 갖고 있지만 제대로 행사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이 언제든 총리를 해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총리에게 ‘맨데이트’(선거에 의해 주어지는 권한)를 부여해 제왕적 대통령도 견제하고 통합의 계기도 만들자는 얘기다. 다자 구도로 대선이 치러질 경우 여소야대 정국하에서 새 대통령의 미래, 대한민국의 미래는 암울하다. 보궐선거일 경우 인수위원회 기간도 없이 즉각 임기가 개시된다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물론 현행 헌법 체계에선 정치적으로 총리 후보자를 러닝메이트로 발표할 수는 있어도 그 지위가 법적으로 보장되는 건 아니다. 다만, 각 대선 후보가 동등하게 러닝메이트 지명을 통한 연정이나 공동정부를 약속하고 대선 후 즉각적으로 국회 동의를 해주기로 서로 국민 앞에 약속하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김황식 전 총리는 아예 대선 전 개헌을 통해 ‘선출직 국무총리’를 제도화하자고 주장한다). 또 이를 바탕으로 연정을 실시하고 새 정부 임기 초반 자연스럽게 개헌을 추진하면 한 시대를 매듭짓고 미래로 나아가는 동력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헌법을 뛰어넘는 발상일지 모르나 파괴적인 상상력이 필요한 때인 건 분명하다.정용관 정치부장 yongari@donga.com}
언제 투표가 실시될지도 모르는 ‘2017 대선의 해’를 맞았다. 모든 게 불확실하다. 현재로선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인용할 것이라는 의견이 다수다. 하지만 누군들 100% 단정할 수 있겠는가. 헌재가 특검 수사 종료 후 이정미 재판관 임기 마무리 전인 3월 초순 탄핵심판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관측과 함께 5월 초 대선설이 나오지만 유력한 시나리오일 뿐이다. 탄핵이 인용된다 해도 끝은 아니다. 박 대통령의 직접 뇌물죄 적용을 목표로 하고 있는 특검 수사 결과에 따라 형사처벌하라는 목소리가 분출할 가능성도 높다. 대선을 코앞에 둔 각 정파는 수의를 입은 박 대통령의 모습이 TV를 통해 생중계되는 게 대선에 유리할지 불리할지 주판알을 튕기려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새누리당이나 중간지대로 나간 비박(비박근혜) 진영까지도…. 박 대통령은 1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삼성 합병 뇌물 수사에 대해 “완전히 엮은 것”이라며 전면 부인했지만, 상황을 여기까지 몰고 온 건 자업자득이다. 여기서 지겹더라도 ‘최순실’이란 이름 석 자를 다시 한 번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최 씨와의 관계에 대해 박 대통령이 “지인(知人)일 뿐”이라고 했다는 뉴스를 듣는 순간, 미국 인기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한 대사가 떠올랐다. ‘속삭임의 대가’라는 별명처럼 권모술수에 능해 국왕의회의 의원까지 오른 내시 바리스가 난쟁이 악동 티리온 라니스터에게 알 듯 모를 듯한 수수께끼를 던지며 “권력은 어디에서 오는가”라고 묻는다. 우물쭈물하는 그에게 바리스가 답을 말한다. “권력은 사람들이 그것이 있다고 믿는 곳에 있다.” 박 대통령만 빼고 김기춘이든 안종범이든 정호성이든, 다들 그렇게 믿었던 거다. 새해 첫날 TV에 비친 박 대통령의 표정은 예상외로 밝았다. 각종 의혹에 “어이가 없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법리적으로’ 하나하나 따져 탄핵 심판에 대응하겠다고 마음을 정리한 듯했다. 그러나 한 전직 장관은 “법은 정치를 이기지 못한다”는 말로 작금의 상황을 분석했다. 고도의 정치적, 법률적 판단을 해야 하는 탄핵 결정이 언제 나올지, 또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헌재에 맡기면 된다. 문제는 정치다. 어떻게 하면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고 ‘질서 없는 조기 대선’을 ‘질서 있는 조기 대선’으로 전환해 새로운 국가 리더십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대목에서 개헌 문제를 언급하고 싶다. 30년 묵은 1987년 체제의 극복을 위한 개헌 필요성을 부인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필자도 같은 생각이다. 촛불 에너지를 7공화국 체제로의 전환으로 승화시키자는 목소리에도 공감한다. 문제는 시기와 절차다. 조기 대선 전 개헌은 과연 물리적으로 가능한가. 한 원로 정치학자는 “몇 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학 입시와 취업을 동시에 하자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유했다. 차라리 차기 대통령이 개헌을 반드시 이행할 수 있는 법적 담보 장치를 마련하는 게 현실적이다. 단 1%만 이겨도 100% 승자독식을 하는 권력 구조가 문제라면 장차 개헌에 앞서 연정(聯政)을 통해 국가적 차원에서의 분권과 통합의 계기를 마련하는 건 어떤가? 또 하나. 올 상반기 조기 대선을 전제로 역산하면 지금쯤 각 당의 후보가 이미 정해졌거나 한창 경선에 돌입했어야 하는 시점이다. 하지만 각 언론사가 여론조사를 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후보가 난무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이는 고스란히 유력 주자들에 대한 검증 소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준비가 덜 돼 있는 대선 주자들은 거취를 서둘러 정리해 주는 게 유권자들의 선택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정용관 정치부장 yongari@donga.com}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청와대 참모진에게 지시한 내용을 담은 고 김영한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의 비망록이 공개돼 논란이 일고 있다. 10일 TV조선에 따르면 김 전 수석은 비망록에 월별 일정과 날짜별로 매일 해야 할 일, 수석회의 내용을 꼼꼼히 기록했고, 이 중엔 김 전 비서실장에 관한 내용이 많았다고 한다. 김 전 비서실장은 2014년 7월 5일 김 전 수석에게 ‘박지원 항소심 공소 유지 대책 수립’, ‘박사모 등 시민단체 통해 고발’을 지시했다고 TV조선은 보도했다. 그해 7월 17일 김 전 수석의 비망록에 ‘만만회 고발’이라고 기록됐다. 실제 나흘 뒤인 7월 21일 새마을포럼 등 시민단체는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박근혜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 등으로 고발했다. 새마을포럼은 2012년 대선 후보 시절 박 대통령을 지지했던 단체다. 박 위원장은 그해 6월 라디오 방송과 일간지 등과의 인터뷰에서 “언론과 국민, 정치권에서 지금 인사는 비선 라인이 하고 있다는 의혹을 가지고 있다”며 ‘만만회’를 언급했다. ‘만만회’는 박 대통령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 정윤회 씨 이름에서 마지막 글자를 따서 만든 것이다. 또 김 전 비서실장은 “5·16에 대한 평가는 공통된 인식이 있어야 한다. 애국심을 가진 군인의 구국의 일념이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당시 우리나라가 북한보다 가난했고, 안보 위기 상황이었다. 역사적 평가에 맡길 일이긴 하지만 현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은 알아둬야 한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문화 예술계 좌파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사이비 예술가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등의 지시사항도 비망록에 적혀 있다고 TV조선은 전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풍자해 논란이 된 홍성담 씨에 대해 ‘홍성담 배제 노력, 제재 조치 강구’라고 적었다. 그러나 김 전 비서실장은 비망록 내용에 대해 “사실무근이다”라고 부인했다. 더불어민주당 윤관석 수석대변인은 “만약 비망록 내용이 사실이라면 박근혜 대통령이 겹겹이 차단된 폐쇄적 환경 속에 있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유근형 기자 noe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