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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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순덕 대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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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4~2024-11-23
칼럼100%
  • [김순덕 칼럼]요즘 대한민국에 빨갱이가 어디 있느냐고?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다. 북한이 민노총 간부에게 청와대 등 주요 통치기관들 전기를 끊을 준비를 하라는 지령문을 내려 보냈다는 국가정보원 발표. 화성·평택지역 군사기지, 화력발전소, LNG저장시설 등의 자료를 수집해 유사시에 대비하라는 내용도 있다고 했다. 정의당을 장악해 국회에 진출할 필요성을 강조했다는 북한 지령까지 보니, 생각난다. 꼭 10년 전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된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이석기 사건이다. 이석기는 2013년 5월 130여 명이 모인 비밀 회합에서 통신·유류·철도 등 국가기간시설을 조직적으로 파괴하자는 발언 등으로 2015년 대법원에서 내란선동 및 국가보안법 유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당국은 북한과의 연결고리를 알아내진 못했다. 그러나 그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밝혀진 진실이 어디 한둘이던가. 다만 이상한 점은 있다. 이석기는 1999년 북한 지령을 받은 지하정당 민혁당 사건으로 실형을 살고 있었으나 두 차례 특별사면으로 비례대표가 될 수 있었다. 두 번 다 노무현 정권 문재인 민정수석 때다. 문 전 대통령은 2012년 총선 때 ‘종북좌파’는 사악한 말이라며, “연대는 필요하다”며, 통진당과 민주당의 야권연대 필요성을 유독 강조했다. 물론 문 전 대통령이 그보다 더 감싼 건 북한이다. 암만 무도한 김정은이라도 아킬레스건은 있다. 인권 문제다. 그래서 북한 주민 앞에선 자상한 아버지로 보이고 싶어 자신과 부인 리설주를 반반씩 닮은 딸 주애에게 240만 원이나 되는 디올 패딩을 입혀 미사일 발사장까지 데리고 다닌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장 시절 문재인은 유엔인권위원회에 북한인권결의안이 올라오자 “북한의 의견을 물어보자”고 했다.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의 저서 ‘빙하는 움직인다’에 나오는 내용이다. 당연히 북한은 “남측 태도를 주시할 것”이라고 협박조로 나왔다. 결론은 북한을 위한 ‘기권’이었다. 비서실장으로서 초안을 만들었다는 2007년 10·4 선언문도 지금 보면 기이하다.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식일 뿐 핵 폐기 같은 단어는 없다. 북핵 용인, 주한미군 철수에 이용되기 딱 맞는 내용임에도 그는 2011년에 낸 책 ‘운명’에다 ‘어디 가서 만세삼창이라도 하고 싶었다’고 썼다. 그러니까 전임 대통령 탄핵 사태에 떠밀려 2017년 사악하지 않은 종북좌파 대통령이 뽑혔던 셈이다. 우리 헌법 66조 2항은 ‘대통령은 국가의 독립 영토의 보전, 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고 국가안보 책임을 명시하고 있다. 민생도 중요하나 국가의 존립은 더 중요하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2012년 대통령감으로 뜰 때 “요즘 세상에 간첩이 어디 있습니까”가 아니라 “빨갱이가 어디 있습니까” 했다지만 북한이 존재하는 한, 아니 인류가 있는 한 스파이는 언제나 있다. 재임 중 문 전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비핵화 의지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며 미국에 고철덩어리나 다름없는 영변 핵시설과 미국의 제재 완화 교환을 끈덕지게 요구했다. 북한에 편파적 중재를 함으로써 한미동맹이 거의 와해될 만큼 상처를 입었다고 ‘북핵 30년의 허상과 진실’을 쓴 이용준 전 북핵 담당대사가 말할 정도다. 그래서 궁금한 것이다. 대체 왜 그랬는지. 하느님이 보우하사 북-미 회담이 깨져 한국은 국가의 계속성을 지킬 수 있었다. 정권교체도 했다. 그러나 2018년 9·19 남북군사합의로 사실상 무장해제가 돼버린 바람에 우리 군은 작년 말 북한 무인기가 서울 상공을 한 바퀴 휘젓고 돌아가도 격추에 실패하는 상황이 됐다. 2020년 국정원 대공수사권을 폐지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이 민주당 단독으로 통과돼 내년부터는 국정원이 눈 뜨고도 간첩을 못 잡게 된다. 북한 김정은이 남한 겨냥 전술핵무기에 탑재할 전술핵탄두를 공개한 28일, 동아일보 1면엔 대통령 방미 때 국가안보실 잘못으로 블랙핑크 공연을 날릴 뻔했다는 기사가 났다. 북한이 또 미사일을 날리는 것보다는 낫지만 참 한가하고 한심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새해 첫날 용산 대통령실 지하벙커인 국가위기관리센터를 찾아 “안보 상황이 매우 엄중하다”고 했다. 최고의 외교안보 분야 전문가보다 초등학교 동창을 국가안보실장으로 앉히고, 민간인을 대통령 전용기에 태워도 문책 한번 못 하는 기강이니 대통령 주변부터 엄중함을 실감하지 못하는 것이다.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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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 대통령의 5792자 발언이 설득에 실패한 이유

    정치는 말(言)이다. 윤석열 대통령을 대통령감으로 전 국민에게 각인시킨 것도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 한마디였다. 국정원 댓글 수사와 관련해 2013년 10월 국감에서 나온 불후의 명언이다.일제 강제동원 해법에 대해서도 이 정도 발언은 나올 줄 알았다. 윤 대통령이 진정 고뇌 끝에 내린 결단이었다면 말이다. 아니었다(기억에 남는 발언이라면 ‘미로에 갇힌 대통령’ 정도?) . 대통령은 21일 국무회의 자리에서 읽은 5792자 분량의 원고는 국무위원 교육용이라면 몰라도 국민 설득용으로는 형식과 내용 모두 실망스러웠다. ● 일본신문 인터뷰보단 친절했어야나는 지난번 ‘도발’에서 정부의 제3자 변제 방식이 현재로선 최선이라고 썼던 사람이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피해자들에게, 그리고 국민에게도 좀 더 마음을 썼으면 좋겠다고 썼다. 하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한일 정상회담 뒤에도 비판 여론이 꺼지지 않자 대통령이 직접 설명에 나선 건 좋다. 방일 전에 했더라면 좋았겠지만, 늦더라도 일단 나섰으면 국민 기대치보다 한발은 더 나갔어야 했다. 적어도 일본인을 대상으로 했던 일본 요미우리신문 인터뷰보다는 자국민에게 친절했어야 마땅했다는 얘기다. 정석은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것이다. 대통령은 하지 않았다. ‘날리면’ 파문 이후 도어 스태핑도 없애고 신년 기자회견도 달랑 모 조간신문 한 곳과 했던 윤 대통령이 한국인 기자들한테 껄끄러운 질문 던질 멍석을 깔아줄 리 없다(자국 기자를 피하는 건 자국민의 ‘알 권리’를 외면하는 것과 같다는 걸 모르는지 안타깝다).● 국무회의 의장석에 앉아 대국민 담화?질문은 받기 싫고, 할 말은 많은 윤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건 담화문밖에 없을 터. 국어사전에 따르면 ‘공적인 자리에 있는 사람이 어떤 문제에 대한 견해나 태도를 밝히기 위해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글’이 바로 담화문이다. 21일 윤 대통령이 국무회의 모두발언 중간에 “국민 여러분, 이제는 일본을 당당하고 자신있게 대해야 합니다”라고 국민을 호명한 부분이 담화문임을 입증한다. 그럼에도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것이 “(담화문 아닌) 대(對)국민 담화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양심에 찔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말이 난무하는 나라라 해도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할 적엔, 공적 인물이 국민(을 대신하는 카메라) 앞에 바른 자세로 서서 담화문을 읽는 게 원칙이다. 1965년 한일협정 당시 세 차례나 담화문을 발표했던 박정희 대통령도 그렇게 했다. 사진 자료를 뒤져보니, 대통령이 앉은 자리에서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한 예는 제5공화국 독재자 전두환 정도다. 4·13 호헌 조치 같은 담화문을 국무회의 아닌 대통령 집무실에 홀로 앉아 거만하게 읽었다. 이번처럼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의장 자리에 앉아 모두발언 형식으로 ‘대국민 담화 수준’을 읽는 경우는 처음 봤다. ● 박정희만큼의 공감 능력도 없다니 국민을 존중하는 태도가 안 보이는 ‘대국민 담화 수준’이란 형식은 사소한 문제라고 쳐주자. 국민을 설득하려는 대통령이라면 무엇보다 국민의 감정을 이해해 보려는 노력이라도 해봤어야 한다. 그것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수십 번 읽었다는 ‘설득의 심리학’ 같은 책에 나오는 소리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원고에 국민의 정서를 배려하는 대목은 없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러지 않았다. 1964년 3월 24일 서울에서 5000여명의 대학생들이 한일수교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자 26일 내놓은 특별담화문에서 “민주주의 국가인 이 나라에서 더욱이나 국가장래를 위한 우국충정의 일념에 불타는 젊은 학생들이 한일문제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시위에 나선 그 심정은 나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고 했다. 그다음에야 “그러나…”하고 설명을 하는 식이다.윤 대통령 연설에는 “출구가 없는 미로에 갇힌 기분” “저 역시 눈앞의 정치적 이익을 위한 편한 길을 선택해 역대 최악의 한일관계를 방치하는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는 등 대통령 자신의 기분과 입장만 나온다. 국민의 상처받은 자존심에 대해선 관심도 없는 것 같다. 피해자에 대해서도 “정부는 피해자와 유족의 아픔이 치유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한 줄 뿐이다. 그리고는 ‘이것도 몰라?’ 식으로 전임 문재인 정부의 실책을 고발하고 각종 역사적 사실과 경제·안보적 기대효과를 복잡한 숫자와 함께 마구, 욱여넣듯 나열했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5792자를 썼다고 해도 이런 접근으론 (지지층 아닌) 다수 국민의 마음을 얻기 어렵다. 원고를 이 따위로 써온 참모는 경질당해 마땅하지만…그럴 수도 없다. 대통령의 빨간 펜이 이런 내용을 낳았다는데 누가 감히 무슨 말을 하겠나.● “갈등 있어도 만나야” 한다며 왜 국내선 그리 못하나전임 정부가 망친 한일관계를 복원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외치(外治)는 옳다. “때로 이견이 생기더라도 한일 양국은 자주 만나 소통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고 협력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말씀도 너무나 옳다. 밖에다 대고는 그렇게 말했던 대통령이 안에선 그리 못할 때, 우리는 ‘위선적’이라고 한다. 취임 일 년이 다가오도록 윤 대통령은 야당과 회동 한번 한 적 없지 않은가.대통령이 지적한 대로 “우리 사회에는 배타적 민족주의 반일을 외치면서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세력이 엄연히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강제동원 문제를 풀고 한발 나아가려면 야당의 도움은 필요하다. 방일 뒤 윤 대통령은 야당과 만나 한일회담 결과를 설명할 수도 있었고,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만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하지 않았다. 그러고도 일본 야당이 우리 야당을 만나 설득해준다고 할 때 윤 대통령은 부끄러웠다는 말은 너무했다. 대통령은 왜 남의 나라 사람도 만난다는 우리 야당을 만날 생각도 안하는가. 그러고 보니 윤 대통령이 일본 정치인들이나 언론에 보여준 환한 웃음을 우리 정치인(친윤 빼고)과 언론에 보여준 적 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직 검찰 DNA를 벗지 못해선지 대통령은, 야당은 물론이고 심지어 국민도 (아직 잡아들이지 않은) 피의자처럼 다루는 경향이 있다. 이번 길고도 지루한 23분간의 ‘대국민 담화 수준’을 들으면서 나는 마주치기 싫은 꼰대한테 딱 붙잡혀 되게 깨지는 기분이었다.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3-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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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이재명은 ‘죽창가’ 외칠 자격 없다

    마침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때를 만났다. 사법리스크와 대표직 사퇴 요구에 시달리던 그가 일제 징용 ‘제3자 변제’ 방안 발표에서 살길을 찾은 모양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한일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15일 이재명은 “윤석열 정권이 일본의 사죄와 반성은 뒷전으로 둔 채 조공보따리부터 챙기고 있다”며 “하나부터 열까지 굴욕”이라고 시퍼런 비수를 던졌다. 정부 배상안 발표에 흔쾌히 박수 치는 국민은 많지 않다. 그러나 언제까지 과거사에 매달려 일본과 원수처럼 살아야 하느냐는 지적도 작지 않다. 미쓰비시중공업 강제동원 피해자인 고 정상화 씨의 아들 정사형 씨도 “일본을 용서하긴 힘들지만 우리 세대에서 매듭짓고 다음 장으로 넘어갈 때”라고 했다. 피해자 측 임재성 변호사에 따르면 피해자 15명 중 정 씨를 비롯한 4명의 유족이 정부안에 동의했다고 한다. 진작 이런 해결책을 내놓았어야 하는 게 정치다. 대통령은 특정 정파 아닌 나라 전체를 위하라고 국민이 뼈 빠지게 일해 세금 바치는 거다. 그럼에도 과거 대통령들은 너무 쉽게 반일 감정을 자극해 지지율만 반짝 올리고 국익은 외면했다. 2018년 말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이 나오자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이듬해 3·1절 있지도 않은 친일 청산을 말했다. 8월엔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겠다”며 ‘관제 민족주의’에 불을 질렀다. 덕분에 지지율이 45%에서 48%로 올랐지만(갤럽)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대(對)일본 수입액 역시 늘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도 흔들렸다. ‘1민족 2국가연합’이라는 남쪽 대통령의 꿈을 국민은 정권교체로 단호히 심판했다. 반일 감정으로 잠깐 재미 봤던 민주당이 이번 같은 폭발성 보따리를 놓칠 리 없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이재명은 일본에 사죄와 반성을 요구할 자격이 없다. 이유는 첫째, 사법리스크 방탄을 위한 사욕이 너무나 분명해서다. 그는 작년 10월에도 한미일 연합훈련에 대해 “일본의 군사이익을 지켜주는 극단적 친일 행위”(7일), “일본군의 한반도 침투? 욱일기가 다시 한반도에 걸리는 날? 그런 일이 실제로 생길 수 있다”(10일)며 정부를 공격했다. 그 덕에 10월 1주 32%였던 민주당 지지율이 2주엔 38%로 뛰어오른 것도 사실이다(갤럽). 문제는 이때가 국정감사 기간이었다는 점이다. 성남FC 후원금 의혹, 백현동 용도 변경 의혹 자료와 증언이 쏟아지고 말 잘하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 정부처럼 캐비닛 뒤져 만든 수사가 아니다”라고 기삿거리를 쏟아냈다. 이재명은 죽창가로 자신의 의혹을 덮어야만 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세균 전 국무총리도 “북한은 사실상 세계 4∼5위의 핵 무력국이어서 한미일 안보협력도 불가피하다”는 마당이다. 당 대표가 ‘죽창가2’나 부르냐는 비판이 나오면서 일주일 만에 민주당 지지율은 33%로 내려앉았다. 이재명이 나서면 안 되는 두 번째 이유는 우리 역사에 무식하기 때문이다. 그는 2017년에 낸 책 ‘이재명은 합니다’에서 “동학혁명 당시 조선의 위정자들은 거세게 일기 시작한 동학혁명의 불길을 끄기 위해 일본군을 끌어들였다”고 적었다(210쪽). 틀렸다. 조선 왕조가 지원병을 요청한 나라는 세계열강에 뜯기고 있던 청나라였다. 청나라가 군대를 파견하자 일본도 톈진조약 3조(청일 어느 한쪽이 파병할 경우 우선 상대방 국가에 알린다)에 따라 군대를 보냈던 거다.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면서 중화세계는 무너졌다.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아는 리더는 차라리 낫다. 그러나 이재명처럼 자신이 뭘 모르는지도 모르고, 말도 안 되는 주장이나 하면서, 절대 물러서지도 않는 리더는 나라와 국민에 재앙이 될 수 있다. 세 번째는 그로 인해 다섯 분이나 극단적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자신과 연루돼 귀한 목숨을 스스로 내려놓았는데도 이재명은 “모른다”며 춤까지 추었다. 남의 생명과 감정을 중히 여기지 못하는 사람이 남의 나라에, 감히, 사죄와 반성을 요구할 순 없다. 고 김대중 대통령은 야권 대부분이 반대했던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에 대해 ‘국가의 이익을 위해, 안보와 경제를 생각해 일본을 우방으로 끌어들여야만 했다’고 2010년에 낸 자서전에서 밝혔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미국과 세계는 야당의 거센 저항에도 한일협정을 이끌어낸 박정희 정권을 신뢰하기 시작했다”고도 했다(1권 170쪽). 민주당은 냉철히 판단하기 바란다. 이재명과 더불어 과거에 처박힐 건지, 이젠 털어내고 국민과 함께 갈 것인지.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3-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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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 더 이상 과거사에 매여 살 순 없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한(恨)서린 경험은 들을 때마다 아프고 죄스럽다. 국민학교 때 반장이었던 양금덕 할머니(94)는 중학교에 보내준다는 일본인 교장 말에 속아 일본에 건너가 미쓰비시 중공업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에서 일했다. 월급은커녕 사과도 못 받은 것이 원통해 1990년대부터 일본서 소송을 냈지만 줄줄이 패소했다. 내 나라에선 다르겠지 싶어 할머니는 우리 사법부에 소송을 냈을 것이다. 2012년 대법원 김능환 대법관이 ‘건국하는 심정으로’ 일본기업에 손해배상 의무가 있다는 판결을 내렸고 2018년 10월 대법원은 이를 확정했다. 그러나 이 판결은 한일관계뿐 아니라 국가 미래를 흔들 수도 있는 원폭이었다. 여기서 판결자체를 따지진 않겠다(끝도 없다). 다만 분명한 건, 전임 문재인 정부는 그 여파를 방치했으나 윤석열 정부는 해결책을 모색했다는 사실이다. ● “외교와 안보책임은 대통령에 있다” 대통령은 분명 고뇌했을 것이다. “대통령으로서 수행해야 할 외교와 안보, 국방, 이 모든 정책의 책임은 내게 있다”고 참모진에게 말했다고 한다(그걸 왜 국민에게 직접 말하지 않았을까요). 정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일본 피고기업들 대신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겠다는 발표에 흔쾌히 박수칠 국민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현재로선 이 방안이 최선이라고 본다. 바쁜 독자를 위해 계속 이어질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현실적으로 다른 방책이 없다. 전쟁 빼고② 문재인 전 대통령도 2022년 “한일협력”을 말했다③ 독일도 식민 지배를 배상하진 않았다 ④ 과거에 매달리다 우리는 샌프란시스코조약에 참여하지 못했다 ⑤ 손배소송 돕는 일본단체들은 공산당에 뿌리를 두고 있다⑥ 이제 한일관계-한미일 공조는 굳건해질 것이다⑦ 김건희 여사가 피해자들을 만나보면 어떨까● 일본 총리와 일왕 지금까지 53번 사과피해자들이 요구하는 건 일본 정부와 피고기업의 직접 사과와 배상이다. 그러나 상대는 일본(기업)이고 국내에 있지 않다. 그쪽에선 ‘죽어도 못한다’는데 모가지라도 끌고 와 강제 실현할 방법은…없다. 그래서 전임 문재인 정권은 무책임하게 외면했던 거다. 일본 정부의 사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2015년 한일 정부가 어렵게 매듭지은 위안부 피해자 합의 당시 외상(外相)이었다.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중략)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합니다”라고 일본 정부를 대표해 밝혔다. 그랬던 그에게 또 사과하라는 건 온당한가. 서울시립대 이창위 교수가 작년 말 쓴 책 ‘토착왜구와 죽창부대의 사이에서’에 따르면 1983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부터 2018년 아키히토 일왕까지 일본 총리와 일왕은 53번이나 한국에 사과를 했다.역대 우리 정부는 강제징용 문제 역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종결됐다는 입장이었다. ‘피징용 한국인의 미수금’과 ‘피징용자의 손해보상’도 포함된 건 물론이다. 하지만 ‘빨갱이’의 기원이 일본 제국주의라는 문 전 대통령에게는 공산주의자보다 일본이 더 증오스러웠던 모양이다. 취임하자마자 위안부 합의를 뒤집었던 그는 대법원 폭탄 판결이 나오고, 일본이 무역보복으로 맞서자 2019년 8월 “남북 경제협력으로 평화경제가 실현되면 우리는 단숨에 일본의 우위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 ● 문재인도 “한일협력은 미래 위한 책무”그 여파로 한미일 공조가 깨져 우리 안보가 위태롭든 말든 ‘신한반도체제’만 성립되면 문파좌파는 행복했을 거다. 그러나 북조선에서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이라는 욕이나 퍼부을 뿐 호응이 없자 문 전 대통령은 2022년 3.1절 기념사에서 다늦게 일본에 손을 내밀었다. “한일양국의 협력은 미래세대를 위한 현세대의 책무”라고.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의 송혜교는 이럴 때를 위해 이런 대사를 남긴 바 있다. “그 입을 찢어버려야 하나.” 죽어도 일본 기업들로부터 돈을 받아내겠다면 무리수가 있긴 하다. 양금덕 할머니와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등은 작년 말 대법원 앞에서 미쓰비시 국내자산을 압류 매각하는 판결을 촉구하며 시위성 회견을 벌이기도 했다. 그래서 1인당 2억원에 달하는 정신적 위자료를 속히 받게 해달라는 거다. 만일 ‘김명수 대법원’이 그런 국제법에 반(反)하는 결론을 또 내놓는다면…한일간 전쟁까진 아니어도 외교파탄은 불 보듯 뻔하다. 그럼 어떠냐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 1995년 김영삼 대통령은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호기롭게 외쳤다. 그러나 2년 후 외환 위기가 닥치자 일본에 도움을 요청했다 거절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꼭 보복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일본과의 경제안보협력도 중요하지만 이제 우리도 살만큼 살게 된 나라다. 언제까지 치사하게 일본에 돈 내놓으라고 외쳐야 하는가. 강제징용 피해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더는 서럽지 않도록 우리 정부가, 당시 혜택 받았던 기업들이 나서면 좋겠다고 나는 생각해 왔다. 그리하여 마침내 X팔림을 느끼고 깊이 반성한 일본과 차원 높은 교류협력을 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고. ● 독일도 식민 지배를 배상하진 않았다물론 우리가 당했던 혹독한 일본 식민 지배는 TV드라마만 봐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근대화에 앞섰다는 이유로 비(非)백인으로선 유일하게 식민제국을 경영했던 일본은 ‘동아시아의 영국’을 자처했다. 아시아에서 문명화를 하겠다며 잘난척했던 그들의 가장 만만한 희생자가 우리나라였다.독일과 함께 2차 세계대전에서 처절하게 패한 일본은 그래서 과거사에 대한 사과에서도 독일과 종종 비교된다. 1970년 12월 7일 빌리 브란트 독일 총리는 폴란드 바르샤바를 방문해 유태인 희생 추모비 앞에 무릎을 꿇었다. 1990년대 들어 나치 독일에 강제 동원된 외국인 희생자들의 문제가 불거지자 독일 의회는 2000년 ‘기억·책임·미래재단’을 설립 법을 통과시켜 정부와 기업 부담으로 100여개 국가166만 명의 피해자에게 43억7000만 유로를 지급했다. 그러나 이것이 독일 식민 지배에 대한 책임은 아니라는 점은 중요하다. 나치 만행에 대한 법적 책임도 아니고 정치적, 도덕적 책임이라는 것을 독일은 유독 강조했다. 식민 지배에 대한 책임을 인정한 사례는 찾기 어렵다(이탈리아가 2009년 리비아 식민 지배를 사과하고 배상 명목으로 투자를 합의한 정도랄까). 2차 대전 종전 당시 독일과 일본 등 패전국은 물론이고 미국 영국 등 승전국조차 식민지를 가진 나라였기 때문이다. ● 미국은 과거 아닌 미래를 중시했다아시아·태평양 전쟁을 종결지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은 전후 국제질서를 결정한 다국간 합의다. 이 조약 14조엔 전쟁 배상에 대한 내용은 있어도 식민지 지배 책임을 묻는 조항은 없다. 조약 체결 당시 식민주의가 문제라는 인식은 찾기 어렵다는 분석이다(이석우 인하대 로스쿨 교수 2022년 논문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체결과 식민지 문제 인식’). 일본이 치러야 할 전쟁 배상 조항도 매우 관대하다. 일본은 배상을 지불할 자원이 없다고 미국이 시사해 놔서 일본과 교전한 48개 연합국 중 구미 열강을 포함한 45개국은 대일 배상을 포기했다. 때는 1951년, 중국대륙이 공산화되면서 미국의 동맹으로서 일본의 전략적 가치가 중시된 까닭이다. 결국 청구권 포기 없이 1960년까지 일본에 배상을 받아낸 나라는 미얀마 필리핀 인도네시아 베트남 4곳에 불과했다. 우리나라는 이 조약을 맺는 회담에 참여도 못했다. 1950년 5월 초안을 만들 때까지는 참가 및 서명국에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 1951년 5월 미국에 보낸 답신서에서 ‘임시정부가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부터 일본과 교전상태에 있었으므로 연합국 자격이 있고, 재일 한국인은 연합국 국민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며 대마도와 맥아더 라인까지 요구하는 등 과하고 불합리한 주장을 했다. 미국은 공산침략에 맞서는 자유세계의 최전선이라는 한국의 현재적 가치를 중시했지만 한국은 임정의 독립투쟁 등 과거의 가치만 강조한 것이다(정병준 이화여대 교수 2020년 논문 ‘한국의 샌프란시스코평화회담 참가문제와 배제과정’). 결론은 한국 배제였다. 과거에 스토커처럼 집착하는 과오를 언제까지 되풀이할 순 없지 않은가. ● 식민 지배 받았던 대만은 청구권 포기그나마 다행이라면 일본이 전후배상 및 청구권 지불을 자신들의 부당한 침략과 지배에 대한 참회와 반성의 인식 없이 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다는 거다. 오히려 일본은 은혜를 베푸는 차원에서 경제협력이나 원조를 제공해왔다(이원덕 국민대 교수 2007년 논문 ‘일본의 전후처리 외교연구’). 가난했고, 원조자금이 아쉬웠던 우리나라는 유상 2억 달러, 무상 3억 달러의 경제협력을 받기로 하고 1965년 한일기본조약 및 제반 협정을 맺었다. 기본조약 전문에 과거사 청산에 대한 내용은 일체 없다. 샌프란시스코조약을 바탕으로 한 1965년 체제의 한계다. 그러나 14년 간 끈질긴 외교전쟁을 이겨냈고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종자돈이 됐다고 이 교수는 평가한다. 경제발전 가치가 우선시됐기에 피해자 구제에 소홀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우리와 유이(唯二)하게 일본 식민 지배를 받았던 중화민국은 그런 돈을 받지 않았다. 1952년 일화강화조약 때 ‘일본국민에 대한 관대와 선의의 표징으로’ 배상 청구권을 포기했다(다만 1974년 대만 출신 일본군이 인도네시아에서 전쟁이 끝났는지도 모르고 “나는 일본병이다” 외치는 사건이 일어났다. 덕분에 대만 출신 일본군과 유족에게 위로금 200만 엔(약 3000만 원)을 지급하는 법률이 1987년 제정됐다). 대만보다 통 크고 싶었던 중국도 1972년 일본과 수교하며 배상 포기를 선언했다. ● 피해자돕기 일본 측 단체, 공산당과 연관 그래서 다시 한번 강조하는 바다. 대체 우리는 언제까지 과거에 매달려야 하는 것이냐고. 언제까지 우리의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에 그 돈 내놓으라고 외쳐야 하느냐고. 이제는 우리가 우리 피해자들을 지원하면 안 되느냐고. 특히 일본서 반드시 돈을 받아내야 한다고 징용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일본 측 단체들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2018년 결성된 단체들은 ‘일본의 한국병합은 제국주의적 침략행위로 원천무효’라는 천사 같은 소리를 하는 세력과 가깝다. 주로 일본 공산당계, 구 일본사회당계에 뿌리를 둔다는 지적이 있다. 북한과 연계됐던 이들이 1965년 한일협정도 쌍수들고 반대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한일조약은 본질적으로 한일 군사동맹이어서 남북분열을 고정시켜 (북한 주도) 통일을 방해한다는 거다. 정말 믿고 싶진 않지만 죽창가를 부르던 과거 집권세력을 연상시키지 않는가. ● 김건희 여사가 피해자들을 찾아보면 어떤가 우리 정부가 일제 강제동원 해법을 발표한지 1시간 쯤 지난 미국시간 5일 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환영 성명을 발표했다. 그만큼 한일관계 개선과 그에 따른 한미일 공조 회복이 긴요했다는 의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신냉전구도가 공고해지면서 향후 한반도와 대만해협 위기는 한미일 군사공조와 경제안보협력 없이는 헤쳐나갈 수 없을지 모른다. 나라의 명운이 걸린 결단을 내린 대통령이다. 이제는 피해자들에게, 그리고 국민에게도 좀더 마음을 썼으면 좋겠다. 7일 국무회의에서 “한일간의 미래지향적 협력은 세계 전체의 자유 평화 번영을 지켜줄 것이 분명하다”고 했지만 그런 간접화법으론 국민 가슴에 와닿을 수 없다. 한일협정 체결 뒤 박정희 대통령은 담화를 발표했었다. “한일협정의 결과가 굴욕적이니 저자세니…비난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정치인이나 경제인이나…개인의 사리사욕을 앞세우는 일이 있다면, 이번에 체결된 협정은 치욕적인 제2의 을사조약이 된다”고 박 대통령은 둥둥 심장을 두드리는 북소리처럼 국민의 심장을 뛰게 했다(물론 반대시위가 격렬했고 대통령은 욕을 먹었다. 그러나 결과는 오늘의 한국이 증명한다). 윤미향 같은 피해자 대변인격에게 마냥 맡겨둘 순 없다. 이번엔 대통령이 혹은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피해자들을 직접 찾아보면 어떨까. 그래서 손을 잡고, 눈을 맞추며, 이런 발표를 할 수밖에 없었음을 설명하면서 이해를 구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준다면 설령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받지 못해 가슴치던 피해자들이 그간의 한을 조금은 풀 수 있을 듯하다. 국민도 모처럼 대통령(부인)과 통하는 느낌을 가지는 건 물론이고.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3-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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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검찰 특권공화국’에서 독립운동 할 수 있을까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첫 3·1절 기념사는 쉽고 명확했다. “104년 전 3·1 만세운동은 국민이 주인인 나라, 자유로운 민주국가를 세우기 위한 독립운동이었다”고 했다. 목숨 걸고 만세 불렀던 우리 선조들이 염원한 나라는 왕조의 부활 아닌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이었다. 이토록 당연한 연설이 반가운 이유는 지난 5년간 죽창 들고 외치는 대통령 기념사가 난무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 연설대로 “우리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연대 협력해 세계 공동의 번영에 기여해야 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럼에도 이미 독립한 내 나라에서 살고 있는 지금, 막강한 특권의 검찰이 주인인 신분제 국가에서 사는 듯한 불안이 엄습하고 있다. 검찰 출신으로 2월 24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 하루 만에 취소된 정순신 변호사 사건 여파다. 물론 윤 대통령은 정순신 아들 학폭 문제에 놀랐는지 학폭 근절 대책을 지시했다. 그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다. 국민이 검폭(검찰 폭력)에 데인 상처는 훨씬 깊다. 18년을 기다린 송혜교의 학폭 복수극 ‘더 글로리’ 파트2 방영이 코앞이어서일 수도 있다. 8부까지 순식간에 본 시청자들이 전부 송혜교가 돼 시퍼런 칼날을 갈고 있는 판에 대통령이 ‘연진이 아빠’를 수사본부장에 임명한 꼴이어서다. 윤 정부 인사라인은 검찰 출신 공직자 후보를 일반 국민과 다른 기준으로 검증했다. 그것부터 국민이 주인인 나라, 양반·상민 구분 없는 세상을 염원했던 3·1정신에 어긋난 일이었다. 아니라고? 앞으로 인사 검증을 더 잘하면 된다고? 고위공직자 인사 추천과 검증을 하는 대통령실 인사라인이 모조리 검찰 출신 인사 또는 전직 검사다. 전직 검사 한동훈 장관의 법무부에 설치된 인사정보관리단에도 검사 출신이 그득하다. 그들은 상명하복에 능한 데다 하늘을 찌르는 엘리트 의식에 ‘제 식구 감싸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종족이다.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을 업신여기던 일본인 같다고나 할까. 이런 검찰 출신들이 대통령 주변에 포진하고 있다. 좌우 불문 언론이 아무리 지적해도 대통령조차 문제라고 여기지 않으니 시정이 될 리 없다. 검찰 출신 정순신이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 때 아들 학폭 송사 벌인 걸 인사 검증 팀에서 몰랐다면 무능이다. 이보다는 정순신이 검찰 출신이어서 검증 팀에서 눈감아줬다 국민 분노가 커지자 “몰랐다”고 했을 공산이 크다. 아니면 지나간 일이어서 그게 무슨 문제냐며 넘겼을 개연성이 크다. 과거 정권을 만들고 보위하던 오만(傲慢) 교만(驕慢) 거만(倨慢)한 검찰에서 대통령까지 나오자 국민이 우습게 보였던 모양이다. 정순신이 국가수사본부장 공모를 철회한다면서 “수사의 최종 목표는 유죄 판결”이라는 발언을 남긴 것도 소름 돋는 일이다. 수사 목표가 진실 규명이 아니라는 수사본부장에게 경찰 수사 지휘를 맡기려 했다니, 잘못하면 생사람이 범인 될 뻔했다. 그의 아들이 학교에서 말했다는 검사의 모습은 더 무섭다. “검사라는 직업은 다 뇌물 받고 하는 직업” “아빠는 아는 사람이 많은데 아는 사람 많으면 다 좋은 일이 일어난다” “판사랑 친하면 재판에서 무조건 승소한다”고 자랑했다고 한다. 다행히도 우리나라에는 검사보다 훌륭한 판사가 있어 아들은 전학을 갔지만 그런 검사의 아들딸들이 ‘아빠 찬스’로 특권을 대물림하는 신분사회가 굳어질까 나는 겁난다. 국민이 검폭에 받은 충격은 너무나 큰데도 대통령실에서도, 법무부에서도 책임진다는 사람 하나 없다. 윤 대통령은 대선 때 “여러분이 만약 기소를 당해 법정에서 상당히 법률적으로 숙련된 검사를 만나 몇 년 재판받고 결국 대법원 가서 무죄를 받았다고 해도 여러분 인생이 절단난다”는 말을 했었다. 내 나라에서 이런 검사를 만나 내 인생이 절단나도 어쩔 수 없다면, 엄혹한 일제강점기와 뭐가 다르다는 건지 모르겠다. 일제 때는 죽을 각오로 독립운동을 하면 일본이 망해서 물러날 것이라는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인사 검증 기능에 구멍이 있다”고 인정하고 책임질 사람이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이 바른 말이고 “정순신 아들이 임명됐단 말이냐” 하는 사람이 간신이다.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들은 ‘책임정치’를 하는 나라들이다. 그 나라들과 연대 협력하기 위해서라도 책임질 검찰 출신들은 책임을 져야만 한다.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3-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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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이재명은 뱀 같은 가스라이팅을 멈추라

    2022년 미국 미리엄 웹스터 사전이 뽑은 ‘올해의 단어’가 가스라이팅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을 가스라이팅했다(선거사기라는 가짜뉴스를 퍼뜨렸다)”는 식으로 정치, 미디어에서 주로 쓰이면서 검색량이 전년도에 비해 17배나 폭증해서다. 가스라이팅이란 말이 1938년 초연된 연극 ‘가스등’(1944년 영화로도 나왔다)에서 나왔다는 건 많이 알려져 있다. 본래 의미는 ‘오랜 심리적 조작으로 피해자의 판단력을 잃게 함으로써 가해자한테 의존하게 만드는 행위’지만 요즘 미국 정치판에선 사적 이익을 위한 거짓말, 대(對)국민 사기를 심플하게 가스라이팅이라고 한다. 오죽하면 트럼프가 쏟아낸 가짜뉴스를 모아 ‘가스라이팅 아메리카’라는 책까지 나왔겠나. ● 트럼프와 이재명은 닮은 꼴 희생양?“법치를 빙자한, 법치의 탈을 쓴 사법사냥이 일상이 돼 가고 있는 폭력의 시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자신의 체포동의안 국회 본회의 표결을 앞둔 23일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윤석열 정부를 비난했다. 사법사냥의 희생물은 즉 이재명 자신이라는 소리다. 그는 “대선에서 제가 부족했기 때문에 패배했고 그로 인해 제 개인이 치러야 할 수모와 수난은 제 몫”이라고 했다. 2022년 대선에 졌다는 이유만으로 대통령의 정적이 돼서는 없는 죄를 뒤집어썼다고 굳게 믿는 모양이다.트럼프도 그런 소리를 했다. 작년 미국 중간선거 때도 공화당 후보 지지 연설에서 “나는 두 번 대선에 출마해서 모두 다 이겼다”며 “2020년에는 2016년보다 수백만 표를 더 얻었다”고 미국을 가스라이팅했다. 그 선동적 발언에 자극받은 트럼프 지지자들이 2021년 1월 6일 미 의사당에 난입해 미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유린한 사건이 1·6 미 의회 폭동사태다. 작년 11월 미 법무부가 이를 조사할 특검을 임명하자 트럼프는 “매우 불공정하고 정치적 수사”라며 자신이 희생양이라고 주장했다. 꼭 이재명처럼. ● 민주당 제보자 “대장동 몸통은 이재명” 하지만 이재명이 잘못 알고 있는 게 있다. 윤석열 정부가 이재명의 범죄(혐의)를 잡아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재명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사적 이익을 위해, 정적 제거를 위해, 권력 강화를 위해 남용한다”며 윤 대통령을 공격했지만 그의 죄를 처음 폭로한 쪽은 이재명과 같은 민주당 안에 있었다. 대선 경선 때 이낙연 캠프다. 2021년 8월 말 대장동 비리 의혹을 첫 보도한 박종명 경기경제신문 기자는 대선 직전인 2022년 3월 8일 페이스북에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의 핵심 관계자가 제보를 해줬기에 사실 확인을 거쳐 기사를 썼다”는 글을 올렸다(이재명 성남시장의 전횡으로 엄청난 손해를 본 대장동 원주민들이 이낙연 선거 캠프에 문건을 들고 와 읍소하더라고 최근 중앙일보에도 소개됐다). 박종명은 모두가 궁금해하는 ‘대장동 몸통’까지 페이스북에 적어놨다. “이재명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정된 후 ‘대장동 몸통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라고 국민에게 호도한다…분명히 밝히지만 대장동 특혜 의혹은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같은 당 핵심 후보 측에서 ‘이재명 후보가 몸통’이라고 제보한 것”이라고. ● “의원선거 떨어지면 생명 끝장, 끽”무죄 추정 원칙에 따라 이재명의 죄가 ‘없다’고 치자. 그렇다면 왜 그는 오종종하게 대선 패배 후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에 나섰던가. 5월 23일 지역구 유세 중 이재명이 제 손으로 제 목 치는 시늉까지 해가며 “이번에 이재명 지면 정치생명 끝장난다. 진짜요. 끽” 했던 영상이 엄연히 존재한다. 의원 불체포특권 없이는 성남시장 시절 자행한 범죄(혐의)에 대해 보호받지 못하는 걸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일 터다. 그러면서도 바로 전날인 5월 22일 그는 충북 청주 지원 유세에서 “불체포특권을 제한해야 한다. 100% 동의할 뿐만 아니라 제가 주장하던 것이다. 10년 넘도록 먼지 털듯이 탈탈 털린 이재명 같은 깨끗한 정치인에게는 전혀 필요한 것이 아니다”라고 목청을 높였다. 당시 국민의힘에선 의원 불체포특권이 ‘범죄특권’으로 악용되지 않게 제한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지금껏 통과되지 않았다). 금배지를 달고나서도 불안한지 이재명은 2022년 8월 굳이 당 대표로 나섰다. 그리곤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경찰이 적법하게 권한을 행사한다면 (불체포특권 포기도) 당연히 수용하겠지만 경찰복을 입고 강도행각을 벌인다면 판단은 다를 수 있다”고 요설을 펼쳤다. 23일엔 불체포특권 포기도, 대표직 사퇴도 생각 없다고 딴소리를 했다. 하긴 이재명의 말 뒤집기가 어디 한두 번이던가. ● 가스라이팅에 넘어가는 사람들은 또 뭔가더욱 놀라운 건 이재명의 가스라이팅, 즉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을 토하는 데 똑똑한 의원들도, 극성맞은 개딸들도 잘도 넘어간다는 것이다. 대선 때 이재명은 “존경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라고 말하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아는데 전혀 아니다”고 스스로 밝혔던 적도 있다. 정치인으로서 가장 중하게 여겨야 할 신뢰 자본은 약에 쓰려고 해도 못찾을 정치인이 이재명일성 싶다. 그가 27일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키기 위해 비명계 의원들까지 면담하며 “공천은 걱정하지 마시라”고 은근한듯 표 단속을 했단다. 음하하, 아직도 이재명의 약속을 믿는 의원들이 계셨다는 거다. 의원들이야 공천이 포도청이어서 이재명한테 목맬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른바 진보임을 자부하는 개딸을 비롯해 민주당 지지층은 대체 왜 이재명한테 빠진 건지 나는 궁금했다. ‘정치지식 무지, 오인;오답의 특성을 중심으로’라는 유재성 계명대 교수의 2021년 논문에서 단초를 발견했다. 대통령 임기 같은 정치지식에 관해 틀린 답을 한 사람들(오답자)은 특이한 속성을 지녔다는 거다. ‘모른다’고 답한 사람들이 중도적 성향을 보이는 것과 다른 성향이었다. ● 민주당이 이재명 개인정당이냐자신 있게 틀린 답을 말한 오답자들은 정답을 답한 사람들(정답자)처럼 정치에 관심도 많고 투표 참여율도 높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정치적 태도와 행태에서 오답자들은 민주당을 선호했고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에 투표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깊은 침묵…). 그 오답자들이 지금도 이재명을 지지한다고 추정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그래서 우리나라가 잘 되려면, 정확한 정보를 잘 갖춘 시민(교육/정신)이 중요하다고 학교 다닐 때 마르고 닳도록 배웠다. 그래서 이재명에게 당부하고 싶다. 정녕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다면, 23일 국민 앞에 쏟아냈던 궤변을 판사 앞에서 당당히 반복함으로써 구속영장 기각을 받아내주기 바란다. 그리고 재판에서도 무죄를 입증해야 할 것이다. 그럴 자신 없다면, 제발 그 세치 혓바닥 대(對)국민 가스라이팅을 멈추시라. 설령 성남시장 때 시정농단을 하지 않았다 해도, 민주당은 이재명 사당(私黨)이 아니다. 의원들 시간과 에너지를 당 대표 멋대로 징발해 개인 방어에 쓴다는 건 혈세 도둑질이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3-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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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당정일체 잘(못)하면 문 정권처럼 된다

    지난주 이 자리에 ‘노무현은 “당정분리 재검토” 작심토로 했었다’고 썼다가 목매달 뻔했다. 댓글 수위가 북한 김여정의 “삶은 소대가리…”저리가라였다. 그래도 친윤 쪽에선 반색을 한 모양이다. 윤핵관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은 13일 “당정이 하나 돼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며 “정당정치의 책임정치가 무엇인지 논쟁으로 승화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내가 도발한 의도가 바로 그거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3월 10일 대통령 당선 바로 다음 날 “대통령이 된 저는 모든 공무원을 지휘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당의 사무와 정치에 관여할 수 없다”고 분명히 밝혔다. 그래놓곤 집권당 당 대표 선출에 노골적으로 관여하는 모습을 여러 번 들켰다.정치인에게는 설명의 의무가 있다. 정 관여하려면 들키지 말든가, 자기 말을 뒤집으려면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그래서 차라리 당헌당규를 개정해 대통령이 당당하고 투명하게 당 대표를 겸임하는 게 낫다는 게 내 주장이었다. ● 누구를 위한 당정분리인가당정분리가 옳은지, 당정일체가 옳은지는 당정의 입장에선 각각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민의 편에서 보면 답이 나온다. 작년 4월 22일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 중재안 여야 합의 사건을 기억하시는가.윤 대통령 당선인 시절이었다. 윤핵관 권성동 국힘 원내대표가 박병석 국회의장이 제안한 중재안을 민주당 원내대표와 덜컥 받아버린 거다. 검찰 직접 수사를 기존 6대 범죄(경제·부패·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수사에서 경제·부패 수사만 남기고 박탈하되, 중대범죄수사청이 설치되면 완전 폐지한다는 내용이었다. 국힘 의원들도 박수로 추인해 버렸다. 윤 당선인은 “검수완박은 부패완판(부패가 완전히 판을 친다)”이라며 검찰총장직을 박차고 나온 사람이다. 다수 국민은 “검찰총장으로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일, 대통령이 돼 하겠다”는 기개에 환호했고, 문재인 정권의 내로남불이 지긋지긋해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문 대통령 퇴임 직전 민주당이 급살 맞게 밀어붙인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대로 갈 경우, 6대 범죄는 경찰로 넘어가 수사되는 게 아니라 그냥 증발한다는 분석이 쏟아지면서 국민 분노가 날로 타오르는 것이었다.● 국민의 편에 서면 답이 나온다그러자 당선인 반응도 달라졌다. “여야 합의를 존중한다”(22일)→ “일련의 과정을 국민이 우려하는 모습과 함께 잘 듣고 지켜보고 있다”(24일)를 거쳐 25일 “헌법가치 수호가 정답”으로 급선회한 거다. 결국 국힘은 ‘법안 전면 재검토’를 선언했다.26일 당선인 대변인이 강조했다. “당선인은 원내대표로부터 상황을 보고받은 것이지 어떠한 개입이나 주문을 한 것은 아니라는 말씀을 다시 드린다.” 여기서 윤핵관의 위험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권성동은 대통령의 관심이나 국민 이익보다는, 자기 이해관계(과거 검찰 조사받은 경험 등)를 먼저 따져 합의안을 받았다. 국힘도 윤핵관이니 당선인과 교감했겠지… 하고 이를 추인했다. 당선인은 내 사람이니 잘 했겠지… 싶어 대충 들었을지 모른다. 심지어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은 “국민투표가 필요하다” 식의 엉뚱한 소리까지 던졌다. 윤핵관이라는 무능한 간신배가 존재하는 한, 이런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다….당선인이 국민의 편에 섬으로써 상황은 종결이 됐다. 이것이 당정일체다. 퍽 거칠고도 의미심장한 윤석열 당정관계의 전조이자 예고편이었던 거다. 그러나 묻고 싶다. 국민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어도 대통령은 당에 관여하면 안 된단 말인가. ● 당정일체가 꼭 옳은 것도 아니다당정일체가 반드시 정답이라고도 할 수 없다. 군소리 없이 당정일체만 하다 정권을 잃은 문재인 정권을 떠올리면 안다. 2019년 11월 문 대통령은 “부동산 문제는 우리 정부에서는 자신 있다고 장담하고 싶다”고 큰소리쳤다. 2020년엔 21대 국회 개원 연설에선 “‘임대차 3법‘을 비롯해 정부의 부동산 대책들을 국회가 입법으로 뒷받침해 주지 않는다면 정부의 대책은 언제나 반쪽짜리 대책이 되고 만다”고 협박했다. 거대 여당이 “아니되옵니다” 한번 없이 악법까지 통과시켜준 결과, 문 대통령은 매일 신났겠으나 문 정권은 망했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의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의 이슈’ 연구를 보면, 투표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이슈가 부동산정책 실패였다.문 정권에서 부동산 정책을 건설교통부도, 민주당도 아닌 청와대가 주도한 것도 비정상이다. 정당법 2조는 ‘정당이라 함은 국민의 이익을 위하여 책임 있는 정치적 주장이나 정책을 추진하고…’로 나와 있다. 민주당이 과연 부동산 정책을 만들고 추진하기나 했는지 알 수 없다. 대체 대통령 보좌에 불과한 청와대비서실에 왜 정책실장까지 두고 내각을 지휘했는지부터 기형적이었다. 결국 ‘국민의 대표’인 집권당 의원들이 대통령 견제와 균형의 역할을 못했기에 문 정권은 실패했던 것이다. ● 이낙연 당 대표, 통합 메시지 냈다가 사과 문 정권 초대 총리였던 이낙연 당 대표가 제 목소리를 낸 적은 있다. 2020년 1월 총리직을 떠나 4월 의원, 8월 당 대표가 된 다음이다.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가 됐으니 국민을 내 편, 네 편으로 갈라 자기편만 보며 정치했던 민주당과 차별성을 보일 필요가 있었다. 2021년 1월 1일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말했다. “적절한 시기에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 문 정권 아킬레스건인 ‘통합’의 메시지를 날린 것이다.결과는 지지율 반 토막이었다. 신중하기 짝이 없는 이낙연이 청와대와 사전교감 없이 대통령 권한인 사면에 관해 공개 발언을 했을 리 없다. 그럼에도 당정 반응은 싸늘했다. 그해 5월 광주에서 이낙연은 “국민의 뜻과 촛불정신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다. 아픈 성찰을 계속했고 많이 깨우쳤다”며 사과해야만 했다. 친문 지지자들은 이재명에게 옮겨갔다는 분석이다(그러나 중도 및 보수는 완전 떠나갔다). 대선 과정에서 민주당 후보 이재명은 그 당을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지금은 ‘이재명의 볼모’로 만들고 있다). 그럼 뭐하나. 민주당도 싫지만 이재명은 더 싫다는 유권자가 많은데. 갤럽 대선 사후 조사에 따르면 윤석열에게 투표한 이유는 첫째가 정권교체(39%), 둘째가 상대 후보가 싫어서(17%)다. 결과는 이재명 대선 패배였다.● 대통령만 기쁘게 하다간 망한다당정일체로 대통령만 기쁘게 하다간 정권이 망한다. 문재인 정권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당정분리가 옳다는 것도 아니다. 당정분리도 잘만하면 당 대표가 대통령을 딛고 차기 대통령이 될 수 있다. 그게 정권 재창출이다. 하지만 여당 속 야당같이 당 대표가 대통령을 들이받아야만 차기 대통령이 되는 것도 아니다. 이낙연처럼 실패한 경우도 있다(어쩌면 윤석열처럼 제대로 저항하지 않아 실패했는지도 모르지만). 윤 대통령이 가장 두려워(혹은 불안해)하는 것도 바로 이것일 터다. 차기 대통령을 노리는 당 대표가 탄생해 나를 들이받지 않을까 하는 것! 그러나 앞에 구구절절 썼듯, 국민한테 이익만 된다면, 당 대표는 대통령과 당정일체가 되는 게 옳다. 당 대표가 자기 정치 하겠다고 대통령과 각을 세우면, 국민이 용서치 않는다. 공천을 놓고도 마찬가지다. 깜도 되지 않는 인물을 대통령 사람이라고, 당 대표 사람이라고 밀어붙이면, 국민은 반드시 총선에서 표로 심판한다. ● 당 대표가 “아니다” 해야 할 때가 있다 단, 정책이든 인사든 대통령의 방향이 틀릴 경우 당 대표는 “아니다” 말해야만 한다. 그것이 당정분리이고, 견제와 균형이다. 그러려면 주 1회는 정기적으로 회동할 필요가 있다. 윤 대통령도 알았으면 한다.겉으론 당정분리가 원칙이라며 정기적 회동도 없이 기싸움 공천싸움 권력다툼에나 골몰하면, 그러고도 무능한 윤핵관과 대통령실을 통해 말펀치만 날린다면, 2024년 총선은 끝이다.2027년 윤 정권도 망하고, 다음 정권은 좌파 세력에 바로 넘어간다. 검찰 체질, 국힘 웰빙당 DNA 못 버리고 그렇게 죄를 지어서 무슨 낯으로 국민을 또 볼 텐가.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3-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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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우리에겐 젤렌스키보다 위대한 대통령 이승만이 있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침략당한 지 24일이면 1년이다. 반만년 유구한 역사를 간직하고도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해 러시아 독일 폴란드 같은 주변 강대국에 시달린 나라가 우크라이나다. 1991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간신히 독립했는데 파시즘 철학자 이반 일린에 심취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는 없다”며 침공했다. “중국은 대국, 우리는 소국”이라던 전임 대통령을 둔 우리로선 남의 일 같지 않다. 1년 전 대선 TV토론에서 “초보 정치인이 대통령 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공언하고 러시아를 자극하는 바람에 충돌했다”던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틀렸다. 그가 가볍게 봤던 코미디언 출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2022년 미국 타임지와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로부터 ‘올해의 인물’로 뽑혀 세계의 추앙을 받고 있다. 나토의 동진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면서 들고나온 명분일 뿐이다. 북한이 1950년 6월 25일 우리나라로 쳐들어오면서 남한이 침략했다고 주장한 것과 같다. 이 전쟁의 핵심은 러시아라는 제국주의적 강대국이 가만있는 주권국가를 선전포고도 없이 쳐들어간 침략 행위다(정재원 국민대 교수 2022년 논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의 본질’). 젤렌스키 대통령의 부인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는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6·25전쟁 후 한국이 빠르게 경제성장을 이룬 경험을 나누고 싶다”고 했다. 이 기사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우리에게는 젤렌스키보다 위대한 대통령 이승만이 있어 한미동맹을 맺었고, 그래서 휴전 후 빠른 성장이 가능했다고. 이승만 대통령의 위대한 점은 공산주의의 실상을 누구보다 먼저 꿰뚫어 봤다는 점이다. 미 하원은 2일 수백만 명이 기근 테러로 굶어 죽은 우크라이나, 수천만 명이 아사(餓死)한 중국 대약진운동, 소련 볼셰비키 혁명, 350만 명이 굶주린 북한의 참상을 전하며 ‘사회주의 공포’ 규탄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미 하원이 이제야 알아챈 사회주의(공산주의)의 본질을 진작 알았다. 소련군은 북조선에 1946년 2월 북조선인민위원회라는 단독 정부를 세웠고 따라서 1946년 6월 남한만이라도 민주주의 정부를 세워야 한다고 ‘정읍 발언’을 했던 거다. 전쟁이 소모전으로 맴돌면서 한국식 휴전으로 끝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휴전 소리만 들어도 소스라칠지 모른다. 6·25 당시 이승만 대통령도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1월 말 워싱턴포스트가 전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의 전략에 따르면 미국은 어느 한쪽의 완승이란 가능하지 않다고 보고, 한국식 휴전을 고려하는 것 같다. 약소국이란 원치 않아도 강대국 의사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 슬픈 운명이다. 그래서 힘을 길러야 하고, 힘이 없으면 강한 동맹이라도 붙들어 매야 한다. 미국은 2014년 러시아가 점령한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가 군사적으로 되찾는 것은 핵전쟁 위험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본다. 6·25전쟁 때 미국이 제3차 세계대전으로 번질까 봐 미군의 북진을 반대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를 되찾는 것을 목표로 하되, 지금으로선 우크라이나의 안전 보장은 나토 아닌 유럽연합 가입에서 멈추는 듯하다. 이런 식이면 우리의 이승만 대통령은 결코 휴전을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당시 미국은 북한군을 38선 이북으로 격퇴시키고 ‘제한전쟁’을 끝내는 것이 중요했지만 우리로선 미군이 철수할 경우 어떻게 살아남느냐에 필사적이었다. 미국이 유럽의 나토 같은 방위조약을 한국과 맺어주지 않으면 생존이 위태롭다는 것을 이승만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휴전에 결사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과의 방위조약 없이 남겨진다면 한국의 공산화는 시간문제라고 믿었다. 1952년 3월 21일 이승만이 미국 트루먼 대통령에게 “만일 미국이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해 주지 않으면 한국인들은 싸우다 죽을 것”이라고 쓴 편지는 눈물날 정도다. 마침내 1953년 10월 1일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쟁취한 뒤 이승만은 담화를 발표했다. “이제 우리 후손들이 앞으로 누대에 걸쳐 이 조약으로 말미암아 갖가지 혜택을 누리게 될 것이다.” 한미동맹이 안보를 튼튼히 해줌으로써 우리는 경제 발전에 매진해 오늘의 번영을 누리게 됐다. 북한 김일성부터 김정은까지 미군 철수를 주장했던 것도, 전임 문재인 정권이 기를 쓰고 종전선언을 추진했던 것도 미군 철수를 노려서였다. 좌파가 작정하고 폄훼했던 위대한 이승만 대통령을 이제 재평가할 때가 됐다. 올해가 한미 상호방위조약 70주년이다.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3-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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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 노무현은 “당정분리 재검토” 작심토로 했었다

    새로운 팩트를 알게 되면 생각과 주장도 달라져야 한다. 나는 ‘당정 분리’가 민주적 원칙 또는 상식이고 따라서 대통령이 당 대표까지 좌지우지하는 것은 반(反)민주인줄 알았다. 그래서 작년 9월 ‘차라리 대통령이 여당 Chong Jae 겸임하시라’고 칼럼도 썼다. ▶[김순덕 칼럼]차라리 대통령이 여당 Chong Jae 겸임하시라참여정부 출범 때 당정분리를 최초로 도입한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2007년 “당정분리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작심 발언했다는 걸 난 최근에야 알았다(이런…). 그렇다면 당정분리 명분으로 대통령의 당 총재 겸임을 금지한 것도 재검토해야하는 게 아닌가 싶어 급히 정당개혁과 민주주의 관련 자료를 뒤졌다. ● 바쁘신 분들을 위해 요약하면…결론은 역설적이고 착잡하다. 바쁜 분들을 위해 전체 흐름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당정분리 실패를 공개 인정했다. ②문재인 전 대통령도 2017년 1월 “참여정부가 잘못한 부분 중 하나가 당정분리”라며 취임 후 당정일체를 실천했다.③열린우리당의 이른바 정당개혁은 한국 정당개혁의 원형이 됐다. 그러나 정당기능과 역할을 축소시키고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반면 세계화 정보화 시대의 네트워크 정당모델이라는 논문도 있다. ④‘정당 민주화’가 포퓰리스트를 등장시켰다는 실증적 해외연구는 지금 우리 현실에서도 목도된다. 도널드 트럼프 같은 포퓰리스트는 강한 정당의 ‘걸러내기’ 기능이 작동됐다면 통과될 수 없는 대통령이다. ⑤대통령제+우리 식 양당제에선 정부여당의 실패가 정권교체를 보장한다. 야당은 똘똘 뭉쳐 정부여당 발목을 잡는데 대통령이 당정분리를 고수하는 건 온당한가.● 노무현 “당정분리는 책임 없는 정치”2002년 대선 후보 때부터 당정분리를 주장한 사람이 노무현이다. 그는 2002년 12월 26일 대통령 당선자로서 “당정분리가 나오게 된 계기가 대통령이 당 총재로서 당을 지배함으로써 빚어지는 하향식 문화를 막자는 것”이라며 “당정분리는 당직임명권과 공천권을 확실하게 배제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개념은 계속 바뀐다. 당 운영에 간섭 않기, 정책은 협의하기, 나중엔 그것도 않기…마침내 2007년 6월 8일 원광대 명예박사학위 수여식 특강에선 이렇게 발언했다. ‘한국식 민주주의’, 말하자면 후진적 제도 몇 개를 개혁해야 됩니다. 박정희 정권 초기에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말이 있었지요….(중략) 한 마디로 5년 단임제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민주주의 선진국 아니다는 증명이고요. ‘X팔린다’는 이런 뜻입니다.당정 분리, 저도 받아들였고 또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만, 그동안 그랬어야 할 이유가 있어서 당정 분리를 채택을 했습니다. 앞으로는 당정 분리도 재검토해 봐야 합니다. 책임 안 지는 거 보셨죠? 대통령 따로 당 따로, 대통령이 책임집니까, 당이 책임집니까? 당이 대통령 흔들어 놓고 대통령 박살내 놓고 당이 심판받으러 가는데…같은 겁니까, 다른 겁니까? 어떻게 심판해야 하지요? 책임 없는 정치가 돼 버리는 것이지요.● 문재인은 사실상 당정일체 운영 정치의 중심은 정당입니다. 개인이 아니고요. 대통령 개인이 아니고요. 대통령의 정권은 당으로부터 탄생한 것입니다. 당정분리라는 것도 재검토 해 볼 필요가 있다, 이제는. 지난번까지는 부득이했지만 이제는 넘어설 때가 된 거 아니냐. 왜냐하면 당을 지배하는 제왕적 권리는, 이제 권력의 부작용은 많이 해소됐다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노무현 스스로 정치개혁 하겠다며 도입한 당정분리였다. 이게 후진적 제도라고 자백하다니…아무리 말을 함부로 했던 대통령이라 해도 막말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 ‘노무현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전 대통령도 인정했다. 2017년 1월 31일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참여정부가 잘못한 부분 중에 하나가 당정분리”라며 이렇게 말했다.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것은 제왕적 (당)총재가 돼서 공천도, 재정도, 인사도 좌지우지하는 제왕적 행태에서 벗어나야 되는 것이지 당정간 거리를 두는 당정분리는 정당책임정치라는 점에서 우리 현실에 맞지 않다”고. 심지어 2017년 3월 마지막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TV토론회에선 “당정일체로 ‘민주당 정부’를 구성하겠다”고 공언을 했다. ● 정당 실패해도 제왕적 대통령 잘 나갔다실제로 문재인은 집권 후 그렇게 했다. 청와대 대변인 출신 민주당 의원 고민정이 7일 방송에서 여당 당 대표 경선 과정을 언급하며 “문 전 대통령은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헹. 인간 기억력을 우습게 보는 꾀꼬리 같은 소리다. 당 전체가 거의 친문이어서 누가 돼도 친문 당 대표인데 대통령이 뭐 하러 경선에 관여하겠나. 2020년 총선 공천도 그렇다. 고민정 자체가 당정일체의 증거다. 그럼 아나운서 말고 다른 경력도 없는 고민정이 무슨 수로 지역구 공천을 땄겠는가. 2020년 총선 당시 ‘문재인 청와대’ 출신 출마자 무려 30명(민주당 28명+열린민주당 2명) 중 19명이 국회 입성했다.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많은 호위무사를 국회로 보낸 이가 문재인이었던 거다.개혁의 화신 노무현이 2003년 11월 창당한 열린우리당은 이후 모든 정당의 개혁 모델이 됐다. 그러나 2004년 총선에서만 반짝 성공했을 뿐. 그 뒤로 재보궐선거와 지방선거에서 연전연패했고 2007년부터 소속 의원들이 줄줄이 탈당하면서 2008년 총선을 치르기도 전 자멸했다. 제왕적 대통령은 지금까지 이어지는데도. ● 집권당이 국정파트너가 아니면? 열린당은 대통령에게 당정관계 복원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대통령이 당직이나 공천에 관여하지 않는 건 좋다. 하지만 노무현은 2003년 3월 대북송금특검법안에 거부권 행사 않겠다, 4월 이라크 파병, 2005년 6월 야당과의 대연정을 불쑥불쑥 발표했다. 여당과는 한마디 협의도 없이. 대통령이 집권당을 국정운영의 파트너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의미라는 게 강원택 서울대 교수 지적이다. 여당 의원이 고무도장에 불과하면 국민이 왜 비싼 세비를 세금으로 바쳐야 한단 말인가? 국가 통치자로서 노무현은 국민을 직접 상대했다. 정당을 기반으로 선거를 통해 집권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책투입을 위한 정당의 역할은 최소화하는 역효과를 낳았다는 분석이다(최장집 ‘어떤 민주주의인가’).노무현이 열린당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정당개혁과 정치개혁은 이후 정당들에 의식적 무의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고 이는 일종의 원형이 됐다는 연구결과는 의미심장하다(김인균 2020년 ‘3김의 퇴장과 정치개혁 담론, 그리고 정당개혁’) 의정논총에 실린 이 논문은 “이 사례를 통해 현재 한국의 정당이 겪고 있는 여러 문제점들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노무현이 불러온, 그래서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가장 큰 문제는 노사모, 지못미, 개딸 같은 팬덤 정치다. 당정분리론이 산업사회에서 이어진 전통적 혹은 시대착오적 대중정당모델을 약화시켰다는 지적인데, 요즘 시대에는 딱 맞는 ‘의원-유권자네트워크정당’모델로 보는 시각도 있다(채진원 2014년 논문 ‘노무현의 당정분리론과 비판에 대한 이론적 논의’).● 독재자 걸러낼 문지기가 정당이여야 바로 이 때문에 포퓰리스트 정치인이 등장했다면 어쩔 것인가. 세계적 베스트셀러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2019년 ‘도발’ 첫회에서 소개한 그 책)는 정당이, 정당 지도자가 포퓰리스트의 등장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라마다 정당 민주화,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명분으로 대선후보 경선 선거인단을 확대 개방했더니 도널드 트럼프 같은 선동적, 잠재적 독재자에게 홀랑 넘어가더라는 거다. 사회가 분열되고, 극단화 양극화되고,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것은 그 다음이다. 우리나라도 그랬다. 선거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도 유독 ‘촛불혁명’을 강조했다. ‘우리 이니’ 빽을 믿고 언론, 사법부, 검찰, 안보의 근간을 무너뜨렸다. 5년 단임제였기에 현명한 다수 국민이 문 정권을 교체할 수 있었지만 4년 중임제라면 체제가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는 ‘책임 정당’이라는 책의 결론과도 일치한다. ‘민주주의로부터 민주주의 구하기’라는 부제대로 강하고 위계적인 정당이 민주주의에는 필수라는 역설적 결론이다. 국가 차원의 민주주의를 위해 정당 내에서 반드시 민주주의를 해야 할 것까진 없다는 연구결과는…섬뜩하다. 관객에게 최고의 발레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면 발레리나의 발은 처참할 필요가 있는 것처럼. ● “대통령이 여당 수장해야 정당이 바로 선다”왜 우리는 협치를 못 하느냐고 언론은 참 쉽게 썼다. 정치권도 이유가 있다. 학자들에 따르면 우리처럼 대통령제+기율 강한 양당제인 정치문화가 최악이란다. 이대로라면 내년 총선까지 민주당은 ‘정부여당의 실패가 곧 정권교체’로 믿고 죽자고 반대만 할 공산이 크다. 문제는 여당이다. 이에 당정분리로 대응할지 당정이 연대해 대응할지 국민의힘도, 대통령도, 보는 국민도 복잡하다. 아니 나라가 잘못될까 걱정이다. 용산이 저 난리인 것도 그 때문일 터다(그래서 분탕질 잘했다는 건 절대 아니다). 여소야대 노태우 정부 시절 정무장관을 지낸 이종찬 전 국정원장은 “대통령이 여당 대표로 나서 야권과 협치하라”고 진작 말했다(작년 9월 시사저널). 당정분리라는 명분 아래 대통령이 여당에서 분리됐는데 대통령이 여당 수장 역할을 해야 정당이 정당 구실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론 삼권분립 원칙도 있지만 현실정치에선 혼란을 야기한다며 정치학자들이 좀더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 당무개입, 하려면 당당하고 투명하게 물론 윤 대통령은 당무개입 않겠다고 수없이 공언했다. 그러고도 가만있지 않았음을 국민도 안다. 정말 선의였다고 치자. 그렇다면 당당하게, 그리고 투명하게 하는 게 낫다. 헌법 제7조 2항은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명시돼 있다. 이 헌법 아래 2001년까지 김대중 대통령은 새천년민주당 총재를 지냈다. 이 헌법 아래서 대통령 김영삼(YS) 신한국당 총재도 1995년 총선 때 원희룡 남경필 홍준표 김문수 이재오 김무성 등 ‘새 피’를 수혈해 눈부신 승리를 이끌어 냈다. YS는 친YS만 공천하는 속 좁은 대통령이 아니었던 것이다. 만일 이번 대표 경선에서 어떤 후보가 당헌 7조 변경을 공약할 경우(대통령의 당직 겸임 금지 조항을 겸임 조항으로), 다음번엔 ‘대통령 겸임 당 대표’가 나올 수도 있다. 혹시 아는가. 윤 대통령이 야당 대표와 동급으로 마주 앉아 제대로 협치할지.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3-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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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 아니, 대통령실이 기자들을 고발했다고?

    엄마들의 로망은 딸과 친구 같은 엄마가 되는 거다. 딸들은 그렇지 않다. 친구 많은 그들은 성모마리아 같은 엄마를 원하지, 엄마와 친구처럼 놀기를 원치 않는다. 내 딸도 그랬다. 설을 끼고 딸과 휴가를 갔는데(그래서 도발을 2주 제꼈답니다^^;) 갑자기 “엄마는 왜 늘 ‘아니’ 하고 말을 시작해?” 하는 것이었다.“아니, 내가 언제?”… 했다가 나도 놀랐다. 열두 살 때도 내게 테러를 감행해 날 충격에 빠뜨리더니 이번엔 한국인에게 ‘아니’로 말을 시작하는 부정적 버릇이 있다는 충격 발언으로 에미를 단박에 아다다로 만들었다.그러고 보니 옛날 코미디언 임희춘이 “아니, 그게 아니구요” 했던 게 생각난다. 아니 나는 부정적으로 말한 것도 아니었다. 사전에는 ‘아니’에 부정이나 반대의 뜻도 있지만 문장과 문장 사이에 쓰여 강조의 의미로 쓰이는 어법도 나와 있다. 아니 사실은, 아니 근데, 아니 내 말은, 아니 그게, 아니 있잖아…영어로 말하면 By the way! 아니, 라는 말을 안 하려니 그 담부터는 입을 뗄 수가 없는 것이었다. 내 돈 쓰고 내 딸 모시고 힘들게 돌아와선 나보다 더한 사람도 있다는 걸 발견하곤 만세를 불렀다. 국방부 전 대변인 부승찬이다. ● ‘아니’는 나만의 말버릇이 아니었다부승찬은 작년 4월 1일 미사일전략사령부 개편식 행사 때 남영신 당시 육군총장이 화장실까지 쫓아와 이른바 도사라는 천공이 대통령직인수위 고위관계자와 함께 한남동 육군총장 공관과 국방부 영내에 있는 육군 서울사무소를 방문했다는 말을 했다고 ‘권력과 안보-문재인 정부 국방비사와 천공 의혹’에다 썼다가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로부터 고소를 당한 사람이다.그는 3일 KBS 1라디오 ‘주진우 라이브’에 나와 21분 55초간 방송하면서 무려 열아홉 번 ‘아니’를 말했다. 주진우와 주거니 받거니 한 것으로 치면, 우하하 줄잡아 1분에 한번 아니를 말한 거다. 그러니까 아니 아니 하는 건 나 혼자가 아니었다!미리 밝혀두자면 이건 흉이 아니다. 글로 써놓고 보니 눈에 띄는 것이지 귀로 들으면 별로 어색하지도 않다(이번 기회에 각자의 언어습관을 점검해 보시어요. 참고로 대통령은 에, 에 하는 버릇이 있답니다). 천공의 관저 결정 개입설을 옳겨 썼다가 나까지 고소당할까 봐 분명히 밝히는데 이 글의 주제는 천공이 아니라 ‘아니’라는 부사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바다(후덜덜)!● 아니 공관장이 총장한테 허위보고 하겠냐고방송을 시작한 주진우가 “대통령실에서 고발했더라고요, 바로. 어떻게 보셨어요?” 묻자 부승찬은 “아니①, 저는 김종대 전 의원과는 달랐죠”라고 곧장 ‘아니’를 발사했다. 본인도 의식 못 했을 거다. 그리고는 “그러다 보니까 저는 지금 고발당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죠”하고 이어갔다.주진우가 “남영신 육군참모총장한테 들었다는 거죠?” 묻자 부승찬은 “공관장이 자기 즉 남영신 총장한테 보고했다”고 답했다.◆부승찬: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십시오.” 아니②, 용모를 보십시오. 흰 수염에 도포 자락 날리면 그게 말이 됩니까?◇주진우: “말이 됩니까?” 그러는데 총장이 뭐래요?◆부승찬: 아니③, 그러면 무슨 뭐 공관장이 허위 보고하겠냐고 총장한테.● ‘아니’만 들어도 전체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전체 말고 부승찬의 ‘아니’가 나오는 부분만 들어도 맥락을 알 수 있다는 건 중요하다. 아니가 들어간 부분은 화자가 강조하고픈 대목이어서다. 부승찬이 아니 하는 부분은 기실 그가 의식하지 않고도 절로 터져 나오는 감탄사다. 그 부분만 발췌 소개한다.◆부승찬: 네, 핵심 인물 천공이 왔다. 저는요. 고발을 안 당할 자신 있는 게 뭐냐 하면 거기 뭐 경호처나 이런 사람들 저는 1도 관심 없어요. 이 사람들은 당연히 가야죠. 아니④, 의무잖아요. ◇주진우: 네, 네. 알아볼 수도 있죠.◆부승찬: 아니⑤, 그건 당연한 거고 그건 1도 관심 없어요. 저는 민간인 천공이 핵심이고 나머지 분들 뭐 일면식도 없다. 제가 일면식 있다고 얘기를 했습니까? ◇주진우: 만약에 (CCTV) 공개했는데 천공이 안 나오거나 천공하고 관련이 없다면 책임을 지셔야죠.◆부승찬: 아니⑥, 뭐 책임은 지는데 저도 기록… 그래서 기록이 중요한 겁니다.◇주진우: 그래서 기록하셨어요?◆부승찬: 아니⑦, 그래서 그때 당시 기록이었고 저장 날짜도 작년 4월이 마지막 저장이었고. 그러니까 이제 저는 그 기록을 가지고 아니⑧, 국방부의 어떤 군사 비밀을 제외한 내용들을 기록하고 있는데 여기서 천공 기록이 있는데 이걸 빼고 갈 수는 없잖아요. 그것도 모양새가 이상하죠. ◇주진우: 알겠습니다. 경호처에서는 사실무근이라고 하고 있고요. 그런데 당시 CCTV를 빨리 공개하면 될 일인데 어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왜 그런데 부승찬 대변인을 고발하는 것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언론사 두 곳은 어떤 이유로 고발됐을까요?◆부승찬: 아니⑨, 사실은 언론사 한쪽은 뉴스토마토죠. ◇주진우: 그러면 이 사실관계는 어떻게 밝혀야 됩니까?◆부승찬: 아니⑩, 그러니까 이게 제가… 결국은 이제 총장님의 큰 결단이 저는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보이고요. 그게 가장 우선시되고 그다음에 CCTV나 이런 것들을 공개하기 위해서는 현행법들을 넘어서야 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겁니다. ◇주진우: 아무튼 참모총장께서 대변인하고만 얘기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리고 대변인도 그 얘기를 듣고 혼자서 가슴을 끓이고 그러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부승찬: 아니⑪, 저는 그거는 명확히 말씀드리지만 지켰습니다. ◇주진우: 알겠습니다. 분명히 또 하기는 했을 텐데 이렇게 또 관저나 그리고 청사를 이렇게 기록하는 기록물들 있을 텐데. 카니발 승용차가 2대가 왔고 어디에 누가 탔고 그런 얘기까지 구체적으로 나왔어요?◆부승찬: 아니요(이것은 부사가 아니어서 세지 않았다). 제가 들은 거는… 아니⑫, 그거는 뉴스토마토에서.◇주진우: 알겠습니다. 민주당에서는 “천공 국회 청문회로 부르겠다.” 이런 얘기를 지금 하고 있습니다. 해법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부승찬: 아니⑬, 그거는 어찌 됐든 지금 양분된 그런 국가적 분열 상태를 천공이라는 인물 하나로 해서 이렇게 되는 거는 정말 안타깝기 때문에 어찌 됐든 이거는 밝혀야 된다. ◆부승찬: 그렇기 때문에 그때 당시에 안 갔다는 뭐 육군공관 CCTV… 아니⑭, 지금은 안 되겠지만 그때 당시는… ◇주진우: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국방위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는데 천공 의혹에 대해서 “김용현 경호처장한테 물어봤더니 아니라고 하더라. 폰이랑 CCTV 공개하겠다.” 이런 얘기를 했는데 폰과 CCTV 공개할 것 같습니까?◆부승찬: 아니요(이것도 세지 않음). 전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주진우: 안 할 것 같아요? ◆부승찬: 네. 아니⑮, CCTV에 대해서는 명확히 공개가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을 거고요.◇주진우: 대통령과 관련됐기 때문에?◆부승찬: 아니⑯,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대통령경호법과 개인정보보호법과 그다음에 군사시설보호법에 따라서 이 법을 뛰어넘어야죠.◇주진우: 그러면 그냥 하는 말입니까, 이거?◆부승찬: 아니⑰, 저는 그거는 그냥 하는 말이라고 봐요.◇주진우: 그래요?◆부승찬: 네. 아니⑱, 본인들이 밝히는 건 중요한 게 아니에요. 본인이 무슨 CCTV를 밝혀요. 제가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핵심 관계자인 천공을 데려다 놓고 하면 돼요. ◇주진우: 아, 대통령경호법 이런 거 다 필요 없이 천공만 조사해 보면 된다?◆부승찬: 아니⑲, 당사자는 안 나서고 왜 대통령실에서 실드를 쳐주냐 이거지.● 아니 왜 천공은 조사 안하느냐고?부승찬은 왜 천공을 직접 조사하지 않느냐고 했다. 조사는 아니지만 취재한 사람 있다. 신동아 기자 출신 프리랜서 기자 조성식이 작년 10월 24일 천공 측 정법시대 법무팀장에게 질의서를 보낸 거다. ‘조성식의 통찰’이 소개한 법무팀장의 마지막 답변은 “스승님이 답변하시지 않을 것 같으니 편하게 보도하시라”였다. 딱 부러지게 부인하지 않은 것이다. 이 정도면 천공의 육참총장 공관 방문을 사실상 시인한 것으로 봐야 옳다. 심지어 즐기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조성식은 작년 11월 하순 정보공개 포털을 이용해 옛 한남동 육참총장 공관(현 대통령 비서실장 공관)과 외교부 장관 공관(현 대통령 관저) 및 육군 서울사무소의 출입자 명부와 CCTV 영상에 대한 정보공개를 국방부에 청구했다. 12월 11일 정보공개 요청에 대한 결정통지서가 날아왔는데 날짜를 가리고 알려드리면 다음과 같은 답변이 왔다.육참총장 공관을 관리하는 국방부 근무지원단은 2022. *.**. ~ *.**. 국방부 청사 내 육군서울사무소/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 외교부 장관 공관의 출입기록 및 CCTV 영상은 개인정보 보호법, 국방 정보공개 운영 훈령, 국방보안업무훈령에 따라 공개가 제한됨을 안내 드립니다.즉 공개 못 한다는 얘기다.● 아니 영상을 쥐고 있는 건 정부 아닌가대통령실은 3일 “중대한 의혹을 제기하려면 최소한 천공의 동선이 직‧간접적으로 확인되거나 관저 출입을 목격한 증인이나 영상 등 객관적 근거라도 있어야 한다”면서 부승찬과 기자들을 고발했다.아니 영상을 쥐고 있는 건 정부인데 기자들한테 객관적 근거를 대라는 건 공정한가. 단언컨대 대통령 손바닥의 임금 왕(王)자부터 시작해 허연 머리 휘날리는 도사님 좋아할 ‘궁민’은 많지 않다. 정권의 비선실세라는 소리가 나오지 못하게 단속도 못 하면서 대통령실이 잘하는 건 기자들 고발뿐이다. 대통령실 만세다. 국정농단 의혹으로 번지는 사태를 막고 싶은가. 그러려면 천공을 잡으시라. 언론을 잡지 마시고.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3-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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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정당 국고보조금으로 바치는 혈세가 아깝다

    집권당이지만 국민의힘 당 대표 선출엔 관심 끊을 작정이었다. 대통령만 바라보는 ‘해바라기당’이어서 죽다 살아난 정당이 다시 대통령당 되겠다고 당헌까지 바꿨다. 민심을 받든다며 국민 여론조사 30% 반영하던 경선 룰을 당원 선거인단 투표 100%로 갈아 치운 건 일반 국민은 상관 말라는 경고나 다름없다. 그럴 바엔 정당 운영도 당비 100%로 할 것이지 왜 피 같은 세금으로 보조금을 받아먹나 싶던 차에 눈이 번쩍 뜨이는 후보를 발견했다. 정당 국고보조금 폐지를 약속한 조경태 의원이다. 5선 의원인 그는 “후진적 한국 정치가 계속되는 이유 중 가장 고질적 문제점 중 하나가 정당 국고보조금”이라며 당비보다 많으면서도 통제받지 않는 국고보조금이 정당 자생력을 잃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당심 1위 나경원, 한때 민심 1위를 달리던 유승민이 ‘윤따’(윤석열 대통령의 따돌림) 끝에 불출마를 선언한 뒤 윤심과 윤힘(윤 대통령에게 힘) 후보가 양강을 다투는 가운데 신핵관, 심지어 대통령 부인 팬클럽 회장 출신까지 뛰는 판이다. 이 속에서 대통령 팔지 않는 후보가 당원들한테 인기 없을 게 뻔한 공약을 들고나왔으니 강심장이 아닐 수 없다. 안다. 정당 국고보조금제는 헌법 사안이다. 헌법 8조 ③항에서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정당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보조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그러나 이 제도가 1980년 전두환 신군부 세력이 헌법을 만들 때 도입된 것임을 알고도 고수할 자신이 있는지 의문이다. 정당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보다 용이하게 하기 위해 신설됐다는 논문까지 봤다면 ‘민주 정당’으로서 면이 안 서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정치자금 부패에 빠지지 않기 위해 국고보조금이 필수라는 정당인이 있다면, 중학교 사회 교과서를 봐주기 바란다. 정당은 정치적 견해를 같이하는 사람들이 정치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만든 단체라고 정의돼 있다. 사회의 다양한 요구를 반영해 정책을 만들고, 국가기관의 정책을 지지하거나 비판하며 정책을 제시하는 것이 정당 역할이다. 그런 정당이 재정의 상당 부분을 국고보조금에 의지하면, 더 이상 시민의 다양한 요구를 들으려 애쓸 필요가 없어진다. 국가와 카르텔을 형성한 ‘카르텔 정당’이 되는 거다. 기득권 정당들이 민심에 따라 정책 경쟁을 하는 대신 여당은 윤심에만 신경 쓰고, 야당은 당 대표 방탄에만 골몰하는 것도 결국 돈 때문이다. 그들은 ‘살인마 정권’이 퍼주기 시작한 돈뭉치 속에 안존할 수 있어 좋겠지만 국민으로선 지지하지도 않는 정당에 강제 기부금을 바치는 꼴이다. 돈에 눈멀어 정당이 유지되는 추태도 벌어진다. 국민의당 비례의원을 지낸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2018년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대표가 바른정당과 합친 것도, 뜻이 다른 의원들이 서로 “네가 나가라”며 당에 붙어 있던 것도 돈 때문이었다며 선거보조금 타먹는 구태정당의 극치를 봤다고 회고록에 썼다. 민주주의에는 당연히 비용이 든다. 그러나 지금 우리 정당처럼 민심을 외면하고, 당내 다른 목소리는 내부 총질이라며 압박하고, 주군에게만 충성하는 정당들이 혈세에 의존하는 건 민주주의에 대한 모독이다. 심지어 경상보조금 외에 선거가 있는 해엔 선거 전에 선거보조금, 선거 후엔 선거비용 보전금까지 이중 지급된다. 2022년 그렇게 부자 정당들에 퍼준 세금이 무려 1420억 원, 최근 정부가 취약 계층에 예비비로 긴급 지원한 난방비 1000억 원보다 많았다. 독일 콘라트 아데나워 재단이 2021년 발간한 ‘민주주의를 형성하는 정당’에 따르면, 유럽 정당들도 국고보조금을 받지만 선거 결과에 따라 선거비용 보전을 받는 정도가 일반적이다. 특히 독일은 국고 지원이 당 자체 수입을 절대 넘지 못하게 규정해 놨고 국고지원 총액도 제한한다. 초당적 감시와 통제를 하는 건 물론이다. 우리처럼 2001년부터 2020년까지 1조2570억 원의 보조금을 받고도 감사 받은 적 없고, 홈페이지 공개도 않는 정당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한국은 양대 진영 정당이 국가의 재정 지원으로 최대의 혜택을 누리고, 대안적 정당의 부상이 저지될 수 있게 했다”는 대목을 보면 낯이 뜨거워질 정도다. 윤 대통령은 시민단체의 국고보조금 지원 체계를 재정비하겠다며 “국민의 혈세가 그들만의 이권 카르텔에 쓰인다면 국민 여러분께서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일갈한 바 있다. 카르텔 정당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만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선거법 위반으로 유죄가 확정될 경우 대선 비용 보조금 434억 원을 토해내야 할 것이다.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3-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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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이재명은 그들의 도구인가, 아니면 ‘도끼’인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어제 대장동 비리 의혹 관련 검찰 출석 요구에 응한다고 밝혔다. 다만 “많은 현안이 있는 상황에서 주중엔 일을 해야겠으니 (소환 날짜) 27일이 아닌 28일(토요일) 출석하겠다”고 했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민생 문제에 몰두하는 선공후사(先公後私) 야당 대표로 알 판이다. 실제로는 입만 열면 주로 이재명 자신의 방탄이다. 12일 새해 기자회견 모두발언에서도 “정치권 모두의 힘을 모아 민생과 미래 개척에 집중해야 될 때”라면서 “이를 위해 야당 말살 책동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기자들 질문 11개 중 첫 번째와 마지막 질문까지 6개가 이재명의 ‘사법 리스크’였다. 회견 제목은 ‘국민의 오늘을 지키고 나라의 내일을 바꾸겠습니다’지만 실상은 ‘이재명의 오늘을 지키려 나라의 내일도 바꾸겠다’는 선사후공(先私後公) 정당 선언이 된 꼴이다. 이재명이 현재 민주당 대표가 아니라면 어떨지 상상해 보시라. 민주당도, 나라도 이렇게 제자리 맴맴은 아닐 것이다. 대통령 직무수행 부정 평가가 57%나 되는데도 민주당 지지율이 30%대 초반(1월 둘째 주 갤럽 여론조사)에 머물 리도 없다. 요컨대 이재명이 당 대표로 있는 한, 다수 국민은 민주당을 대안 세력으로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민주당이 지자체장 시절 비리 의혹이 덕지덕지한 이재명에게 ‘접수’당해 꼼짝 못 하는지 납득할 수가 없다. 이재명은 민주당 홈페이지에 “계파도 학벌도 지연도 없이 정치를 시작했기에 오직 국민을 믿고 의지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고 자기소개를 했다. “그렇게 성남시장으로, 경기도지사로, 대선 후보로,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으로 국민이 저를 삶을 바꿀 도구로 써주셨다”고 썼다. 사실관계가 틀렸다. 2010년 그가 민주당 후보로 성남시장에 당선된 데는 이재명의 성남시민모임 활동과 김미희 민주노동당 시장 후보와의 단일화가 아니면 불가능했다. 2013년 9월 성남시의원 정용한은 시의회에서 “이재명 시장이 김미희 (통진당) 의원을 인수위원장에 앉히고 인수위원회에 종북 세력인 경기동부연합 출신들을 대거 영입했다”고 발언했다. ‘공동 정부’ 약속 때문이다. 시장 시절 이재명이 경기동부연합과 통진당 세력에 넘긴 행정 권한이나 이권 사업 등을 보면, 성남시는 민주당의 당적을 가진 이재명을 통해 엉뚱한 세력에 접수됐고 이재명은 그들의 도구가 아니었나 싶다. 검찰이 이재명과 ‘정치적 공동체’라고 규정한 전대협 출신 정진상은 성남시민모임에서 만난 사이다. 2010년 성남시장 선거 때부터 이재명을 도운 이재명의 측근 김용은 한총련 정책위 지도위원을 지낸 운동권 핵심이었다. 김용이 이석기의 경기동부연합, 간첩단 일심회와 왕재산 사건의 활동가 등과 연관된 종북라인 관리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재명이 이 모든 걸 알고도 그들의 도구가 됐는지는 알 수 없다. 물론 영악한 이재명은 도구에 머물지 않았다. 소년공 출신 인권변호사로서 ‘변방 장수’가 됐다는, 기득권에 맞서는 이미지와 사이다 발언으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낙마 이후 마땅한 대선 주자가 없는 민주당 접수에 성공했다. 그가 2020년 7월 16일 대법원에서 공직선거법 무죄 취지 파기환송 선고를 받은 이틀 후 ‘자주통일충북동지회’는 북한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 산하 문화교류국에 “이재명 지사가 민주·진보·개혁 세력 대선 후보로 광범위한 대중 조직이 결집되도록 본사에서 적극적 조치를 취해 달라”는 통신문을 보냈다. 이 단체 일부는 2021년 간첩죄로 구속돼 재판 중이다. 당시 북측은 “이재명이 대선 후보로 나서자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회신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자체장 시절 이재명이 왜 그리 대북사업에 열성이었는지 의문이다. 변호사비 대납 의혹을 받는 쌍방울의 대북송금 의혹, 쌍방울 사내이사 출신이 회장이던 아태평화교류협회가 ‘이재명 대북 코인’이라며 팔았다는 가상화폐 의혹은 그래서 예사롭지 않다. 어제 이재명은 “검찰이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위해 편파적으로 권력을 남용한다”고 주장했다. 턱도 없다. 자신의 사적 이익을 위해 당 대표 권력을 남용하는 사람이 이재명이다.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은 “(이재명이) 여의도와 국가 정치에 국정의 에너지와 공간을 잡아먹어 당의 리스크를 넘어서 국가의 리스크가 되고 있다”고 했다. 이재명이 계속 대표 자리에 앉아 권력을 남용하면 그는 민주당을, 우리나라를 까부수는 도끼가 될 수도 있다.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3-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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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우리 민족끼리’ 통전술에 속아 나라가 넘어갈 판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초한전(超限戰)을 중공만 하고 있겠느냐는 점이다. 공산독재정권 중에서도 가장 악랄한 북한 김정은 정권이 중공에서 배운 초한전을 우리에게 펼치고 있는지 주시할 때다.’작년 말 중국의 해외 비밀경찰서를 놓고 쓴 ‘도발’을 이렇게 마무리하면서(악마는 싸우지 않고 이긴다. 중국 비밀경찰서처럼) 나는 생각했다. 중국공산당 통일전선부에서 자유세계를 대상으로 펼치는 공작이 이제야 드러났다. 그럼 북한 통전부는 ‘자기네 밥’ 같은 남한을 놓고 놀고만 있겠나? 아니나 다를까. 전임 문재인 정권 때는 꼭꼭 숨어있던 사건들이 마구 쏟아져 나온다. 북한의 지령을 받고 ‘민중자주통일전위’를 만든 경남 창원의 부부 반정부단체 활동가, 북한 공작원과 접선 뒤 진보정당과 농민단체 등을 포섭해 ‘ㅎㄱㅎ’(조국통일 한길을 수행하는 한길회)을 조직한 진보정당 전직 간부 등이 국가정보원 수사를 받고 있다는 보도다.● 문재인 복심도 간첩 사건의 실체 인정이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북한 인사와 접촉한 뒤 정치인 보좌관 시절 북한에 난수표(암호문) 보고를 했던 정치권 인사도 내사를 받고 있다는 기사다. 북한 드론이 대통령실 상공을 뚫기에 앞서 북한 지령은 이미 국회를 뚫었다는 의미다.더불어민주당 의원 윤건영의 반응이 놀랍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렸던 그는 12일 “최근에 보도된 간첩 사건은 최소한 문재인 정부 이전부터 들여다보고 수사해 왔던 사건들”이라고 했다. 좌파가 흔히 주장하는 ‘간첩 조작’이 아니라 실체가 있음을 인정한 셈이다. 그러면서도 윤건영은 왜 이 시점에 윤석열 정부가 요란하게 수사하는지, 정치적 이용을 하는 게 아닌지를 되레 의심했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문 정권 때는 대체 어떤 정치적 의도가 있기에 간첩이 활개 치는 걸 보고만 있었단 말인가.● 체제전복을 위한 정치투쟁, 간첩이 하는 일탈북자 출신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13일 그간 우리가 알아왔던 간첩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발언을 했다. 김정은 시대 간첩의 기본 사명은 단순한 정보수집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 전복이라는 거다. 김정은 집권 이후 대남 공작부서를 확대 개편해 공작 영역도 경쟁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며 체제전복을 위한 정치투쟁, 조직 설립, 합법 및 비합법 투쟁을 주로 한다고 말했다.“민노총이 총파업투쟁을 벌일 때마다 반미 등 정치구호를 외치고 일부 세월호 단체가 지원금으로 북한 김정은 찬양교육을 벌인 것도 우연이라고 볼 수 있느냐.” 태영호 의원이 던진 의문은 의미심장하다. “이런 단체들은 문 정권 5년간 진보정당을 넘어 국회, 청와대까지 활동 무대를 넓혀왔다”고도 했다.2018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문재인은 대통령 시절 북한 김정은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보증인처럼 거듭 확인했다. 개뿔이었다! 김정은이 2022년 핵무기 개발은 자위용 아닌 선제타격용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듯, ‘남조선혁명을 통한 전조선혁명’이라는 김정은 왕조의 최종목표는 변한 적 없다.● 문 정권에 손 내민 김정은의 통일전선전술이 무서운 의도를 감추기 위해 세계의 공산주의자들이 즐겨 쓰는 방법이 통일전선전술이다. 주적을 타도하는 데 자파세력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할 때 필요한 동조세력을 획득하고, 그들과 잠정적 동맹체를 형성해 투쟁하는 전술 말이다. 핵심은 기만술이다.그러고 보면 2018년 신년사에서 김정은이 ‘우리 민족끼리’를 수차 언급하며 문 정권에 대화 제스처를 보인 것부터가 통전술이었다. 반색한 문재인은 김정은의 수석 대변인이라도 되는 양 미국과의 회담을 주선했다. 9·19 남북군사합의로 대한민국을 무장해제하듯 김정은 집단의 요구도 들어줬다.2020년 4월 총선에서 대북 유화적 민주당이 대승한 뒤 북한은 제도권과 직접 교감하는 합법적 방법을 통해 지속가능하고 견고한 상층부 통일전선을 구축할 것이라고 유성옥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은 밝혔다(2020년 논문 ‘북한 대남통일전략의 추진구도와 전개양상’). 그 결과가 이번 수사를 통해, 태영호의 발언을 통해 나타난 꼴이다.● “민주당은 조선로동당 1중대냐, 2중대냐”간첩 잡는 국정원 대공수사권은 문 정권 때 통과된 법에 따라 2024년부터는 경찰로 완전히 넘어간다. 해외조직이 없는 경찰에서 북한 공작원과의 해외접촉 같은 수사는 하기 어렵다는 것을 익히 알고 만든 법이 아닐 수 없다. 당연히 대공수사권은 국정원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민주당은 결사반대다. 그래서 태영호가 따져 물었던 거다. “도대체 간첩이 활개 치도록 내버려 두려는 민주당은 조선로동당의 1중대냐 2중대냐”고.우리 신문 단독 보도에 따르면 북한 지령을 받은 간첩단 활동과 규모가 알려진 것보다 심각했다. “한마디로 나라가 넘어갈 뻔했다”는 거다. 윤석열 정부의 출범에는 ‘우리 민족끼리’ 같은 통전술에 넘어가는 문 정권을 용납할 수 없다는 다수 국민의 분노와 각성이 기여했다.윤 대통령이 작년 10월 “자유민주주의에 공감하면 진보든 좌파든 협치할 수 있지만 북한을 따르는 주사파는 진보도 좌파도 아니다”라며 “적대적 반국가 세력과는 협치가 불가능하다”고 말한 나흘 뒤 문 전 대통령은 “책을 추천하는 마음이 무겁다”면서도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콕 찍어 추천했다. “32년 전 ‘빨치산의 딸’을 기억하며 읽는 기분이 좋았다”고도 했다. 이러다…개헌으로 대통령 중임제가 되면 문재인 대선 후보를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 민족끼리에 또 넘어가면 나라가 넘어갈 수도 있고.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3-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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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왜 관료개혁은 말하지 않나

    구멍가게만한 기업도 사람이 바뀌면 달라진다. 심기일전(心機一轉·어떤 동기가 있어 이제까지 가졌던 마음가짐을 버리고 완전히 달라짐). 이걸 하라고 연말이면 사기업이든 공기업이든 인사를 하고, 5년마다 나라에선 대통령을 새로 뽑는다.윤석열 정부 출범 여덟 달이 지났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부터 따지면 열 달. 사람으로 치면 없던 아이도 낳았을 기간이다. 성과는… 아직 모른다.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청문회와 북한 무인기 침투, 그리고 대응을 보면,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공직사회는 1도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취임 석 달도 안 된 경찰청장이 만취?윤희근 경찰청장은 이태원 참사 청문회에서 “주말 저녁이면 저도 음주할 수 있다”고 했다. 경찰총수도 휴무일 술 마실 권리가 있다는 인권선언! 하지만 경찰청장 된 지 3년쯤 됐으면 모른다. 임명된 지 석 달도 안 된 초대 경찰청장이 주말이라고 지방에서 만취 상태로 잠든다? 그것도 MZ세대에는 크리스마스보다 더 핫한 핼러윈데이에?취임 다음날 윤희근은 대통령부인 김건희 여사의 허위경력 의혹과 이준석 국민의힘 성접대 의혹 등을 수사해온 강일구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장을 서울 성동경찰서장으로 옮기는 등 정권이 원하는 총경 전보인사를 단행한 경찰 총수였다. 위에는 빠릿빠릿하되 국민에게는 그렇지 못한 것이 못난 관료의 특징이다. ‘공무원은 근무시간이 아닌 때에도 항상 소재파악이 가능하도록 연락체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국가공무원 복무규칙이 있다. 경찰 총수부터 이 복무규정을 어겼다. 한마디로 공직기강이 빠진 거다. 그러니 112신고가 빗발치는데도 류미진 당시 서울청 상황관리관이 “112상황실 아닌 자기 방에 머무는 게 관행”이라고 했던 거다. 현장 책임자인 이임재 전 용산서장은 “구급대를 지원해 달라”는 무전을 듣고도 “흘러가는 무전 정도로 생각했다”고 하는 거다.기사 없으면 꼼짝 못하는 정부혁신 주무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대통령 총애를 받는 장관은 이렇게 행동해도 된다’를 보여주는 연구 모델이다. 대통령 앞에서는 어떻게 말하는지 몰라도 국민 앞에선 가장 싸가지 없이 말하는 장관이라고 단언한다(유시민도 장관 때는 그러지 않았다).작년 11월 8일 국회 예결위에서 이상민은 “최종 컨트롤타워는… 재난 구조라는 면에서는 제가 맞다”고 했다. 그러고도 작년 말 국조에서 이태원 참사 당일 첫 보고를 받은 뒤 85분이 지나서야 현장에 도착했다는 지적에 “이미 골든타임이 지난 시간”이라는 억장 무너지는 소리를 했다. 늦게 간 이유는 더 황당하다. 일산에 사는 운전기사가 자신의 강남 자택까지 와서 이태원 현장에 태워가길 기다렸기 때문이란다(정부혁신을 맡은 책임자로서 참 비혁신적 언행이다).참사 현장에 있던 유해진 소방관은 청문회에서 “너무 외로웠다. 통제가 안 돼서 소방관이 정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고 했다. 소방청장이 경찰에 도움을 ‘요청’해도 안 오면 그만이다. 중앙사고대책본부는 명령할 수 있다. 행안부 장관이 설치하면 된다. 그걸 이상민은 하지 않았다. “재난은 종료됐고 중대본은 촌각을 다투는 문제가 아니다”라는 이유다. 이런 주무장관에 대해 경찰 특수본은 조사 한번 하지 않고 수사를 끝낼 모양이다.용산 대통령실 상공만 중요한가? 국민 보호는?관료들의 무책임한 대응이 의도적일 수도 있다. 정치적으로 징글징글하게 이용된 ‘세월호’로 인해 이번에도 휘둘릴 수 없다는 경계심도 작용했다고 본다. 그러나 관료들의 자세에 문제가 있다면 심각하다. 인사권자에만 잘 보이면 그만, 국민에게는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는 자세 말이다.작년 12월 26일 우리 영공을 침범한 북한 무인기 침투 사태를 보자. 당초 용산 대통령실 상공 침투를 부인하던 군 당국이 뒤늦게 이 사실을 확인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대통령실 보호는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용산 이북 지역, 나머지 국민은 보호받지 못해도 괜찮다는 말인가? 이태원 희생자들처럼?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이 “군의 비정상을 바로잡겠다”고 나섰다. 문재인 정권 때 ‘청와대’처럼 건물인지, 참모인지 내각 머리 꼭대기에 서서 정책방향을 발표하는 것도 황당하지만 출범한 지 여덟 달이 되도록 뭘 했기에 여태 전임 정권 탓만 하는지 믿음이 안 간다.공직자 감찰조사로 관료개혁 되겠나윤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노동, 교육, 연금 3대 개혁을 강조하며 “기득권 유지와 지대 추구에 매몰된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고 했다. 평생 관료로 살아온 윤 대통령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알 것이다. 기득권 유지에 목맨 집단으로 관료보다 더한 집단이 또 있는지 말이다. 3대 개혁을 반대하는 게 아니다. 먼저 관료가 달라져야 국민이 믿고 따른다는 얘기다.24인의 국가 원로·학자들이 고뇌에 찬 토론을 모아 최근에 낸 책 ‘한국의 새 길을 찾다’에서 강조한 것도 공공개혁이다. “국가·사회적 창조와 혁신에는 우선순위가 있다”며 “제일 먼저 손대야 할 부분은 공공부문”이라고 못 박았다. 정치는 흉물이 됐고, 관료는 잘못된 정치에 굴종해 권력을 누리기만 하며 책임은 지지 않는 풍토가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동아일보가 정부 부처 차관급 이상 고위공직자 103명 중 현 정부에서 임명된 96명을 분석한 결과 관료 출신이 절반인 48명이었다. 노동, 연금, 교육개혁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관료개혁은 필요하다. 3대 개혁은 국민의 협조가 절실하고 시간도 걸리겠지만 관료개혁은 윤 대통령이 결심만 하면 당장이라도 할 수 있다.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3-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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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문재명 세력’은 민주주의 말할 자격 없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음악 한 소절이 머릿속을 맴도는 날이 있다. 국민교육헌장이 문득 떠오른 날도 그랬다. 1968년 반포됐고 20년 전인 2003년 공식 폐지됐지만 그 시절 국민학교 다닌 사람은 안다. 얼마나 혼나면서 외웠는지. 그리고 암기의 중요성도. 내용을 다시 보니 알겠다. 틀린 말이 없다. 물론 국가주의적이라고 비판도 받았을 터다. 그러나 삼신할머니 랜덤으로 태어났어도 우리가 다른 나라 아닌 대한민국에 태어난 데는 이유가 없을 리 없다. 나는 축구에 관심 없지만 영국서 뛰는 손흥민까지 포함해 우리 축구팀의 월드컵 16강 진출이 2022년 가장 자랑스러운 일 중 하나였다. 우리가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건 맞는 말이었던 거다. 내겐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전임 문재인 정권에는 못내 못마땅한 듯하다. 특히 2021년 제주4·3사건 희생자 추도사를 보면, 문 전 대통령의 정체성을 알 수가 없다. “완전한 독립을 꿈꾸며 분단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당시 국가권력은 제주도민에게 ‘빨갱이’ ‘폭동’ ‘반란’의 이름을 뒤집어씌워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했다. 아무리 제주에 두 개의 역사가 흐르고 국가 폭력은 단죄해야 마땅하대도, 4·3의 본질은 남로당 반란이다. 그 과정에서 선량한 도민 다수가 무고하게 희생된 사건이다. 제주 출신 소설가로 4·3을 겪었던 현길언은 ‘정치권력과 역사 왜곡’에서 “4·3은 남로당이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방해할 목적으로 일으킨 반란”이라고 썼다. 그런데도 문재인은 “좋은 나라를 꿈꿨던 제주도의 4·3”이란다. 김일성의 북한이 좋은 나라이고 대한민국은 완전한 독립국가가 아니라는 건가. 그가 2일 경남 양산을 찾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어렵게 이룬 민주주의가 절대 후퇴해서는 안 된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고 했다. 기이한 일이다. 설마 남로당 박헌영의 ‘진보적 민주주의’는 아니겠지만 어떤 민주주의를 말하는 건지 궁금해 2018년 개정한 고교 한국사 교육과정을 찾아봤다. ‘일제 식민지 지배와 민족운동의 전개’ 단원 학습요소에 ‘다양한 민족운동의 전개’가 있다. 무장투쟁, 의열투쟁, 실력양성운동과 함께 사회주의운동이 들어가 있다. 성취기준 해설에는 노선별 독립운동을 구체적 사례를 통해 확인하고 사회주의가 민족운동의 한 흐름을 형성하는 과정을 이해하도록 명시돼 있다. 특이하지 않은가. 왜 굳이 노선별 독립운동을 알아야 하는 건지. 조선의용대, 광복군, 신국가 건설 구상도 광복을 위한 노력의 학습요소로 적혀 있었다. 이 교육과정에 따라 만들어진 금성출판사 자습서엔 김원봉의 조선의용대 병력이 광복군에 편입됐다거나 옌안에서 사회주의자들이 조선독립동맹을, 여운형을 중심으로 조선에서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이 조선건국동맹을 결성했음이 노란 형광펜으로 강조돼 있다. 2022년 개정 교육과정 동일 단원 성취기준에는 ‘국내외 민족운동 흐름을 이해하고 독립국가 수립을 위해 공동의 노력을 추구하였음을 분석한다’고 돼 있는 것과 매우 대조적이다. 2019년 현충일 추념사에서 문재인은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광복군에) 편입돼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 역량을 집결했다”고 연설했다. 금성출판사 자습서로 공부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해 훈장까지 받은 김원봉에 대해 “마음속으로나마 최고 독립유공자 훈장을 달아드리고 싶다”고 했던 반면, 2020년 7월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6·25 영웅 백선엽 예비역 대장의 홈페이지 정보란에는 친일 반민족 행위자라는 문구를 명시하게 했던 대통령이었다. 우리는 그런 나라를 꿈꾸고, 그런 역사전쟁을 하고, 그런 정체성을 지녔던 대통령을 두었던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이 2018년 내놓았던 개헌안에서, 아이들 교과서 속의 ‘자유민주주의’에서 왜 굳이 ‘자유’를 빼려 했는지 이해되지 않는가. 11개월 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40년, 50년 전에 한물간 사회혁명 이념에 도취돼 깨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계속 세력을 이어가며 이권세력을 구축하고 대한민국의 고위 공직과 이권을 다 나눠 먹었다”고 집권세력을 직격했고, 당선됐다. 그 ‘문재명 세력’이 감히 민주주의를 입에 올리며 지금 윤석열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3-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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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임인년 ‘미스터 션샤인’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30여 년 전 나를 뽑아준 편집국장 댁에 몇몇 선배들과 세배를 갔을 때다. 여기자는 한해 한두 명쯤 뽑히던 그 추운 시절(지금은 거의 절반이다), 국장이 “기자는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를 보는 기자와 안 보는 기자로 나눌 수 있다”고 했다. 그때부터 그걸 들여다보기 시작해 연말이면 이 잡지가 내놓는 새해 세계전망을 들여다보는 게 나만의 연말행사가 됐다(작년 말 이코노미스트는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을 예측했다).1년 전 ‘50억 벌어 교수직도 던진 최성락 투자법’이라는 책으로 대박 낸 최성락 전 동양미래대 교수도 젊은 날 비슷한 경험을 한 모양이다. ‘100년 전 영국 언론은 조선을 어떻게 봤을까?: ‘이코노미스트’가 본 본 근대조선’이라는 제목에 꽂혀 그의 책을 샀다. 서문을 보니 대학 때 고품격 영어잡지를 봐야 영어실력이 는다는 영업사원에 홀려 보기 시작했다고 했다.100년 전 조선의 모습을 보기 위해 그가 굳이 일본 국립도서관까지 찾아 이코노미스트를 뒤진 건 1843년 창간된 이 잡지가 객관적 시각으로 사건을 보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중국과 일본엔 방관자가 사물을 냉정히 바르게 본다(傍觀者淸)는 격언도 있다던가. 청일전쟁 러일전쟁 예견했던 이코노미스트안타깝게도 약소국 조선이 단독으로 다뤄진 기사는 없다. 중일 러일 등 강대국 관계의 대상으로 언급될 뿐이다. 제목이 Korean War인 1894년 9월 24일 기사도 청일전쟁을 다룬 내용이다. “일본군을 목격한 사람들은 장비와 조직의 정밀함을 언급했으며 함대의 상태도 최상인 점에 주목했다”며 일본의 승리를 전망했다(조선에선 죄 청나라 승리를 믿었다).대한제국 황제 고종이 광무개혁을 시작했던 1898년 1월 8일 기사는 슬프기 짝이 없다. “러시아는 조선에 대해 절대적인 영향력과 완전한 통제력을 갖고 있다”는 거다. 1899년 말부터 ‘극동지역에서의 소문’이라는 제목으로 5년 후의 러일전쟁을 예견한 것도 놀랍다. 1902년 1월 30일 영일동맹을 맺은 뒤엔 “영일동맹은 영국과 일본에 큰 이익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2월 15일).1910년 한일병합 기사가 단신 수준이라는 사실은 허망하다. “러일전쟁으로 조선을 손에 넣은 뒤, 일본은 조선에 자신들의 사법과 행정 체제를 밀어붙였다. 이제 일본은 명목상으로도, 실제적으로도 대륙의 권력자가 됐다.”(1910년 8월 27일) 국제정세에 눈감고 권력다툼에 골몰했던 나라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일본 식민사관에 따르면 조선은 당쟁 때문에 망한 나라였다. ‘100년 전 영국 언론은…’에 따르면 조선 황실은 국제정세에 무지해 망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하고도 삼국간섭으로 랴오둥 반도를 청에 반납했어야 했던 일본이다. 120년 전 임인년(壬寅年) 일본이 당시 세계 최강국 영국과 맺은 영일동맹은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견제하기 위해 대등한 입장에서 체결한 세계적 사건이었다. 이코노미스트가 진작부터 러일전쟁을 예고했듯 국제정세에 밝은 사람은 이 동맹이 일본의 승리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내다볼 수 있었음에도 고종실록엔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다.그 무렵 고종실록에 영국이 언급되는 건 딱 하나, “광무 6년 양력 1월 30일(공교롭게도 영일동맹을 맺은 바로 그 날이다) 이재각을 특명대사로 임명하여 영국 황제의 대관식에 참가하게 하다”는 것뿐이었다.차라리 호남 선비 황현이 낫다. 그가 쓴 ‘매천야록’ 1902년 1월엔 “시찰사 파원(派員) 붙이들을 소환하도록 하고, 음직(蔭職;과거를 거치지 않고 조상의 공덕에 의해 맡은 벼슬)으로 차함(借啣;실제 근무하지 않고 벼슬 이름만 가지던 일)한 자들을 관보에 게재하지 말도록 하였다. 이 때에 영국과 일본이 협조하여 동맹을 맺고 우리나라의 내정을 관리할 것이라는 유언비어가 떠돌아 조정의 의론이 흉흉하였으므로 이러한 조칙을 발표하기에 이른 것이다”라는 대목이 있다. 유언비어일지언정 지식인은 영일동맹을 들어봤다는 얘기다. 매천야록에는 이 같은 집권층의 무능과 부정부패, 권력다툼에 대한 비판이 끝없이 이어진다.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라를 말아먹은 것은 조선의 못난 집권층이었던 거다. 미스터 션샤인과 애기씨의 불꽃같은 사랑 나라가 망했다고 조선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키지는 않을까, 이코노미스트는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고 봤다. “지난 몇 년 간 이뤄진 가혹한 일제의 가혹한 군국주의 통치는 원래부터 거친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이 은자의 나라(Hermit Kingdom) 국민에게서 반항할 만한 기질과 여력을 모두 빼앗아 버렸다.”(1910년 8월 27일)이 대목을 보는 순간 나는 2018년 방송된 김은숙 극본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떠올렸다. 국가보훈처가 얼마 전 드라마 속 유진 초이 역의 실존 인물인 황기환 선생을 2023년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유진 초이가 극중 남장 스나이퍼이자 의병인 애기씨 고애신과 불꽃사랑을 한 것이 1902년부터 1907년까지 일제의 가혹한 군국주의 통치기였다.물론 드라마이고 고증에 문제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저물어가는 조선에 그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저 아무개다. 그 아무개들 모두의 이름이, 의병(義兵)이다. 원컨대 조선이 훗날까지 살아남아 유구히 흐른다면, 역사에 그 이름 한 줄이면 된다”는 포스터 문구는 아직도 가슴을 친다. 의병은 있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다, 지금도? 한중일 문명비평서 ‘풍수화’(風水火)에서 김용운은 “한국의 원형에 귀족의 책무,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는 반면 일본 원형에는 의병이 없다”고 썼다. 달리 말하면 일본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있다는 의미다. 일본이 아시아에서 제일 먼저 근대화를 시작하고, 120년 전 영일동맹을 맺고(일본은 늘 최강대국과 동맹을 맺어 국익을 꾀하는 나라다), 국제정세 변화를 귀신같이 감지해 나라를 키우고 지켜온 데는 이 영향도 적지 않다고 본다.지금 우리나라는 어떤가. 국제정세에 무지한 채 한물간 이념에 매달려 죽어라고 근대화를 막던 위정척사파의 후예, 86운동권 정권은 2022년 임인년 대선에서 마침내 국민심판을 받았다. 그러고도 거대야당이랍시고 국회권력을 움켜쥐고는 당 대표 방탄에 골몰하며 국정발목이나 잡는 의원들 몰골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찾을 수 없다. 새로 출범한 윤석열 정부 역시 슬프게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보여주지 못했다. 능력주의 인사라지만 마치 실력 있고 깨끗한 인물은 존재할 수 없다는 양 고관들은 여전히 당당하다. 이러다 ‘아빠 찬스’를 타고 나야 성공할 수 있는 신분사회로 굳어질까 겁난다. 앞으로 4년 반, 윤 대통령이 국민 눈높이에 맞는 인사만 해준대도 나라 분위기는 달라진다. “한국에도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존재한다!” 외칠 수 있게 되고, 우리는 ‘깔딱 고개’를 넘어 품격사회로 진화할 것이다. 120년 전 임인년처럼 또 미스터 션샤인이 달려와 “귀하는 조선을 지키시오. 난 귀하를 지킬 터이니…” 해주길 고대할 순 없지 않은가.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2-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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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악마는 싸우지 않고 이긴다. 중국 비밀경찰서처럼.

    맛없는 짜장면은 없다. 불어터진 짜장면은 좀 문제가 있지만(그건 면의 문제이지 짜장면의 죄는 아니라고 본다) 짜장면은 냄새만 맡아도 먹고 싶어지는 국민적 최애 외식메뉴다. 죄 없는 짜장면을 죄스럽게 만든 서울 송파구 한 중국음식점의 정체가 마침내 드러날 모양이다. 이 중국집이 중국의 ‘해외 비밀경찰서’가 아닌지, 방첩당국이 조사에 착수했다는 최근 보도다. 동작 참 늦다. 스페인의 인권단체 세이프가드 디펜더스가 ‘중국 공안당국이 해외 54개국 110곳에 비밀경찰서를 운영 중’이라고 폭로한 게 9월과 이달 초였다. 한국 건은 9월 보고서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민주국가에 다 설치돼 있을 정도면 우리 공안당국도 진작 확인했어야 했다. ● 미국과 유럽선 발각됐는데 중국은 부인 물론 주한 중국대사관 관계자는 부인한다. “한국뿐 아니라 해외에 별도로 설치한 비밀경찰서는 없다”는 거다. 믿기 어렵다. 네덜란드는 10월 26일 암스테르담과 로테르담에 불법 중국 해외경찰서가 있다고 발표했다. 미국 FBI국장은 11월 미 상원 국토안보위원회에 출석해 “우리는 중국 비밀경찰서 존재를 알고 있다”고 발언했다. 남의 나라에서 중국 공안이 경찰권을 행사하는 건 주권침해다. 중국인 상점이나 식당처럼 위장해놓고 중국에 반체제적, 비애국적 중국인들을 강제 송환시키는 등 불법행위를 한다. 애들이 교육을 못 받게 되는 등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협박하는 식의 ‘북한식 수법’으로 5개 대륙에서 23만여 명을 중국에 돌려보냈다. 그러자면 자국민 감시를 해야 한다. ‘중국특색의 감시’가 이 땅에서 벌어졌을 수도 있다는 게 무섭고 불쾌하다. 중국인만 대상으로 하는 것도 아니다. 비밀경찰서는 중국공산당(중공) 통일전선공작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남의 나라에 붉은 영향을 미치려 든다. 2020년 초 총선을 앞두고 “나는 개인이오”라는 기이한 문구가 일으켰던 ‘차이나 게이트 의혹’을 기억하시는지? ● 비밀과 기만은 중국공산당의 철칙 당시 나는 미국 의회 산하 미중 경제안보검토위원회가 2018년 발표한 ‘중국의 해외 통일전선 공작’ 보고서를 도발에 소개하며 우리나라만 빼놓을 리 없다고 지적했다. 친중(親中) 문재인 정권은 내 글을 무시했고 실상은 밝혀지지 않았다. 당연하다. 공산당 철칙이 비밀과 기만 아니던가. 중공 해외통전 공작과 맞물려 진행되고 있는 것이 초한전(超限戰)이다. 한자를 빼고 쓰면 초패왕 항우와 한나라 시조 유방의 전쟁을 다룬 초한전쟁(우리에겐 고우영이나 이문열의 楚漢志로 유명한)과 헷갈릴 듯한데, 그건 아니다. 중공이 2000년대 이래 군사안보와 대외전략 추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신전략 개념이다. 초한전이란 중국특색의 대전략 수행방법론을 의미한다(이지용 계명대 교수 2021년 논문 ‘중국의 초한전 전략과 실제; 해외통전 전개 사례를 중심으로’). 1999년 당시 인민해방군 공군대령이었던 차오량, 왕샹수이가 쓴 ‘초한전; 세계화시대 전쟁과 전법 상정’에서 나왔다. 미국서 출판돼 나온 책의 부제는 더 무시무시하다. ‘Unrestricted warfare; China‘s Master Plan to Destroy America’. ● 손자+마오쩌둥+IT+악마성 = 초한전중공은 일단 아시아 지역패권을 잡고, 이를 기반으로 집권 100주년인 2049년까지는 세계 패권을 장악한다는 대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아시아에선 혹시 몰라도 중국이 제 실력으로(하드파워든, 소프트파워든) 미국을 꺾고 세계정복을 할 수 없다는 건 중공도 익히 아는 모양이다. 그래서 짜낸 전략이 초한전이다. 기실, 전쟁의 궁극적 목적이 뭔가. 적국을 굴복시켜 아국의 의지를 따르도록 강제하는 것 아닌가. 그 수단이 반드시 무력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무조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상대를 무너뜨리기만 하는 되는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문화, 미디어, 사이버 공간 가릴 것 없다. 전시와 평시, 법과 규칙, 양심이든 뭐든 따질 것도 없다. 전쟁과 비전쟁의 경계를 뛰어넘는 신개념 전쟁이 바로 ‘초한전’의 핵심이다. 이렇게 개념만 바꾸면 전쟁은 갑자기 너무 쉬워진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절차적 정당성을 최대한 악용하는 것이야말로 초한전의 극강 마력이다. 투자자문사 설립, 기업 인수합병, 컨설팅업체에 퇴직 관료 군인 영입 정도는 박수 받으며 한다. 그러면서 스리슬쩍 로비와 뇌물로 적국 정치인을 부패시키고 정책 바꿔놓기, 기술 탈취와 저가 상품 공세로 경제교란 시키기, 협박과 선전선동 가짜뉴스로 혼란에 빠뜨리기, 마약이나 범죄조직 침투시켜 뒷골목까지 피폐하게 만들기, 짱깨스러운 친중 인사 동원해 반중 행태 검열하기…중국 공안의 비밀스러운 활약 역시 초한전의 일환이 아닐 수 없다. ● 이미 중국은 세계와 초한전 벌이는 중손자병법은 싸우지 않고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을 최상으로 본다. 여기에 모택동의 인민전쟁론은 물론 21세기 최첨단 정보 테크놀러지와 중국특색의 비밀과 기만의 악마성까지 교합해 적들을 스스로, 내부로부터 무너지게 만드는 ‘초한전’이 중국의 신개념 전쟁이면…중국은 이미 전 세계를 대상으로 전쟁 중이라고 봐야 한다. 2023년 혹은 시진핑 3기 집권기에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것인가 아닌가를 걱정할 때가 아니다. 국내의 중국집 한두 곳이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10여년부터 ‘가리봉동 왕중왕’으로 유명했던 그 중국집 운영자 A 씨는 숱한 한중관련단체장 역할을 하면서 2020년 말 여의도 국회의사당 코앞에 지점을 내고 정치인들과 친교까지 다졌다. 지자체장들이 경쟁적으로 나선 중국 지방과의 자매결연은 물론 대학마다 설치된 공자학교도 초한전과 무관치 않다. 전임 문재인 정권이 국민적 심판을 받은 데는 중국과 공동운명체를 자처하며 초한전을 방치한 친중 행각도 작용했다고 본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초한전을 중공만 하고 있겠느냐는 점이다. 공산독재정권 중에서도 가장 악랄한 북한 김정은 정권이 중공에서 배운 초한전을 우리에게 펼치고 있는지 주시할 때다. 북한에서 날아왔던 드론은 물론이고!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2-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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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칸막이 친 대통령실, 청와대와 뭐가 다른가

    지난 주말, 120년 만에 열린 대한제국의 마지막 연회를 보았다. 1902년 임인년은 고종 황제 등극 40년과 망륙(望六·51세)의 겹경사 해였다. 그해 음력 11월 사흘간 경운궁에서 거행됐던 임인진연(壬寅進宴)을 국립국악원이 ‘임인진연의궤’ 기록대로 재현해 눈이 호강한 공연이었다. 하지만 요즘 유행하는 회·빙·환(회귀·빙의·환생)의 시점으로 보면 좀 민망하다. 1897년 고종 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해 위엄을 떨쳤다고는 하나 3년 뒤 그러니까 1905년이면 을사늑약으로 일본에 외교권을 뺏길 위기 상황이었다. 드라마처럼 고종이 환생해 잔칫상을 받았다면 “40년 다스림에 억조의 백성이 즐거우니” 같은 치사와 “장하신 태평성대 무엇으로 보답하리” 같은 가무악 가사가 죄스럽지 않았을지 온몸이 오글거렸다. 당시 유라시아에서 대영제국과 러시아제국이 벌인 그레이트 게임은 오늘날 미국과 중국의 21세기 그레이트 게임으로 바뀌어 전개되고 있다. 그때도, 지금도 한반도는 지정학적 요충지다. 그러나 고종은 개혁은커녕 전제군주가 통치제도의 상위에 있다며 군주권만 틀어쥐었고, 지배층은 권력 다툼에 골몰하고 있었다. 황현이 쓴 ‘매천야록’에는 사람 볼 줄 모르고 아첨 좋아하는 군주와 양반들의 무능과 부패에 대한 비판이 슬프게 이어진다. 1900년 기록 중에는 “러시아와 일본 두 나라가 한국을 나누어 갖는다는 말이 있었는데 신문사 사장 남궁억이 이러한 사실을 (황성)신문에 실어 알렸다. (의정부 참정) 조병식이 민심을 놀라게 한 것이라 하여 구속시킬 것을 상주하였다”는 대목도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권력층이 비판적 언론을 싫어하는 건 매한가지인 모양이다. 국권을 빼앗겼던 대한제국과 지금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비교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제왕적 권력의 상징인 청와대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겠다” “수시로 언론과 소통하겠다”며 용산 집무실 이전을 강행했던 윤석열 대통령이다. 그래 놓고 15일 국정과제 점검회의나 20일 청년 200명과의 간담회처럼 ‘엄선된 국민’하고만 소통하며 흡족해했다는 뒷말엔 임인진연이 묘하게 겹쳐 보였다. 권력의 속성일까. ‘제왕적 대통령’이 되지 않기 위해 “청와대 참모는 대통령과 장관의 소통을 보좌하도록 내각 중심으로 운영하겠다”고 했고, 문재인 정권의 ‘청와대 정부’가 “부처 위에 군림하며 권력만 독점한다”며 수석·보좌관회의가 국무회의보다 주목받는 일은 없을 것이라던 윤 대통령의 발언이 엄연히 기록돼 있다. 그러나 윤 정부의 수석비서관회의 기사와 국무회의 기사를 동아일보 검색 시스템으로 찾아보면 수석비서관회의 기사가 좀 더 많다. ‘대통령실’과 ‘윤석열’을 키워드로 넣으면 5배는 더 많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1%포인트 인하로는 사실상 법인세 인하에 따른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고 했다’는 동아일보 17일자 기사를 보면 ‘대통령실’이 부처 위는 아닐지 몰라도 여당 위에 군림하는 건 분명하다. 윤 대통령이 제2부속실을 없애고 대통령 부인은 내조에만 전념토록 하겠다고 약속한 기록은 1년도 지나지 않았다. 김건희 여사는 베트남 국가주석에게 비자 문제 해결을 요청하고, 20일 간담회에선 대통령과 나란히 앉아 “환경은 인류가 지켜내야 할 가장 소중한 가치”라고 발언하는 등 활동 반경을 넓히는 모습이다. 당무에 개입하지 않는다던 윤 대통령이 “당원 투표 비율 100%” 당 대표 경선 룰에 관여하고, 윤핵관 먼저 관저에 초청하는 ‘관저 정치’를 하는 것은 전제적 군주를 연상케 한다. 그리하여 21세기 그레이트 게임에서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할 수 있다면 유감이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지지층만이 모인 임인진연 같은 행사에나 참석해 “장하신 태평성대 무엇으로 보답하리” 같은 소리만 듣는다면, 윤 대통령은 현실을 제대로 보고 국운을 개척하기 어렵다. 정녕 청년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했다면 차라리 윤 대통령이 퀵서비스 배달 현장이라도 찾아가 생생한 소리를 들었어야 했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던 윤 대통령이다.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았다지만 ‘날리면 파문’ 이후 1층 프레스센터 앞에 칸막이를 친 용산, 참모들로 인의 장막을 친 대통령실에서 윤 대통령은 벌써 군주적 대통령으로 변한 듯하다. 대통령이 진정 민심을 알고 싶다면, 매일 악플까지 챙기며 국민과 만나는 기자들과 까칠한 신년회견을 갖는 게 백번 낫다.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2-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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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이태원 국정조사’는 해야 한다, 제.대.로.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시작도 전에 파열음이 요란하다. 더불어민주당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일요일인 11일 처리함으로써 국민의힘에 ‘합의 파기’ 명분을 안겨준 거다. 민주당, 정의당, 기본소득당 등 야3당 국정조사 특별위원들은 13일 국민의힘을 빼고라도 국조를 진행하겠다는 듯 “오늘 중으로 국정조사 복귀 의사표명을 하지 않을 시 국정조사 일정과 증인 채택에 대한 모든 권한을 야3당에 위임한 것으로 이해하고, 내일부터 본격적인 국정조사에 들어가겠다”고 최후통첩을 날렸다. ‘안전한 국민, 일 잘하는 정부’라고 홈페이지에 써놓은 이상민을 감쌀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선(先) 진상조사 후(後)문책’ 방침을 수없이 밝혔다. 충암고 후배라고 싸고도는 모습이 질투가 날 만큼 곱지 않지만, 비판이 나올수록 버티는 게 우리 대통령의 청개구리 스타일인 걸 어쩌랴.● 여야 모두 국정조사 의지는 있나 그렇다면 야당 전략도 달라야 했다. 이상민을 국조 청문회 증인으로 세워놓고 조목조목 죄상을 밝혀내 대통령이 장관을 당장 자르지 않을 수 없게끔 해야 한다는 얘기다. 민주당 국조특위 위원들에게 이상민의 법적 책임을 밝혀낼 능력이 눈곱만큼이라도 있다면 말이다. 국힘이 국조 파투를 은근히 바라는 듯한 모습도 곱지 않긴 마찬가지다. 울고 싶은데 뺨 맞은 듯 국조특위 위원 7명은 11일 전원 사퇴 의사를 밝혔다. 국조 보이콧 선언을 하고 싶어 죽겠지만 새해예산안이 통과될 때까진 일단 참는 눈치가 역력했다. 야당의 국조 공세가 정치쇼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날벼락 같은 재난으로 생때 같은 젊은 목숨을 잃었으면, 그 발생과 대응과정에서 행정부 잘못이 없는지 공론화하는 것이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할 일이다. 여당은 야당에서 정치쇼로 몰고 가지 못하도록 제어하며 행정부의 잘못을 따져야 마땅하다. 대통령과 행정부만 싸고돈다면 그게 ‘용궁’ 시녀이지 어디 집권당인가. ● 이태원 수사하는 건가, 덮는 건가 월드컵 거리응원에서 보듯, 우리 국민의 안전의식과 치안능력은 남부럽지 않다고 믿는다. 이상민 역시 행안부 홈피 장관 인사말에다 “행정안전부는…(중략) 국민안전을 책임지는 국정운영의 중추부처”라고 자랑해 놨다. 행안부가 제 할일을 잘했다면…(이번엔 말줄임표) 이태원 참사는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이상민은 참사 다음날 “경찰이나 소방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지금 파악을 하고 있고요”라는, 역사에 남을 발언을 했다. 집권당은 이런 무식하고 무책임한 안전주무장관의 책임을 물어 대통령에게 해임건의를 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해임건의안 거부를 건의했다. “장관 하나 지키지 못하느냐”는 대통령 진노에 뒤늦게 아차 했는지 몰라도(어쩌면 관저에 불려가지 못할까 우려해서인지도) 국민은 배신당한 기분이다. 그렇다고 경찰청 특별수사본부가 수사를 잘 하는지도 의심스럽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오늘(13일)로 45일째. 참사 당일 밤 어슬렁거리며 뒤늦게 현장에 도착했던 현장책임자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에 대한 구속영장조차 기각된 상황이다. 윤 대통령이 경찰 잘못을 떠먹이듯 찍어줬음에도 못 잡아낸 걸 보면, 능력부족인지 의지박약인지 제 식구 봐주기인지 경찰에 경찰 수사를 맡긴다는 것부터 우습기 그지없다. 그 수준으로 이상민 같은 윗선 수사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검찰 출신이 대통령돼도 믿을 사람 하나 없는 나라인 거다. ● 선진국에선 즉각 의회 내 진상조사위 구성아직 우리에게는 아물지 않은 세월호의 아픔이 남아있다. 무슨 특별조사 소리만 나오면 경기(驚氣)가 일어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에선 국가적 재난이 발생하면 정당 간 합의에 의해 즉각 의회 내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한다. 세월호 3년 후에 펴낸 ‘세월호가 묻고 사회과학이 답하다’라는 논문집에서 이재열 서울대 교수가 밝힌 내용이다. 세월호의 경우 90일간 국정조사 말고도 국가기관 조사만 8년간 아홉 차례나 했지만 진상규명에 실패했다는 지적도 물론 있다. 하지만 맞아 죽을 각오로 쓴다면(그리고 강원택 교수의 논문 한 대목을 굳이 인용하면) 세월호 사건의 본질은 대형 해상 재난 사고였다. 선장부터 청해진해운, 해경과 규제기관까지 각 단계마다 ‘경계’를 넘자 시스템의 여러 다른 문제와 결합해 침몰로 이어졌다고 봐야 한다. 책임은, 진실은 오직 한가지라고 규명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실패로부터 배우기 위해선 조사위원회에 외부 전문가를 참여시켜 철저한 진상규명을 하는 ‘외재화’가 중요하다고 이재열 교수는 강조했다. 야당의 ‘비난의 정치화’를 막으면서 국힘이 해야 할 일이 바로 이런 것이다. 그리고 진상규명 보고서를 토대로 시스템을 바꾸는 정책적 처방을 이끌어낸다면 우리사회는 좀더 나아질 수 있다. ● ‘세월호 정치화’…정부실패 감추려던 靑 책임이었다 ‘왜 세월호 참사는 극단적으로 정치화 되었는가’를 쓴 박종희 교수는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의 수세적 태도가 광우병 사태의 재현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공격적 야당, ‘외부세력’의 정치적 선동도 없지 않았지만 세월호 참사의 ‘극단적 정치화’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참사대응 과정에서 정부 실패를 감추려 했던 청와대와 행정부에 있다는 거다. 아프게 돌이켜 보면, 사고 당일 책임 논란을 불러온 ‘대통령의 7시간’ 동안 비선실세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은 검색 절차 없이 청와대를 방문해 ‘문고리 3인방’과 회의를 했고 대통령의 중앙대책본부 방문을 결정한 것으로 2018년 3월 박영수 특검 수사 결과 드러났다. 결국 당당하지 못한 이유 때문에 대통령은 진상 규명을 원치 않았고, 여당도 제도권 정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소극적이었다는 게 ‘사회적 이유와 정치 갈등’을 쓴 강원택 교수의 지적이다.세월호를 되돌아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다시 대형 참사의 아픔을 겪지 않으려면 이번 국정조사에선 ‘당파적 정치화’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민주당도, 국민의힘도, 그리고 대통령실도 국민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2-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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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민주 對독재의 2022년, 민주주의가 이기고 있다

    작년 이맘때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誌)는 2022년 세계전망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승리를 예측했다. 12월 첫 주 갤럽 여론조사에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지지율이 각각 36% 동률이었다. 이 잡지는 “윤석열이 현 정부의 부진한 백신 보급률에 대한 대중적 불만의 혜택을 받으면서 청와대의 자리를 빼앗을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나는 2022년이 민주주의와 독재의 대결이라면 ‘윤석열의 민주주의’가 승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민주주의와 독재정치의 대결은 2022년의 10대 트렌드 중 이코노미스트가 첫손에 꼽은 것이었다. 물론 예로 든 것은 한국의 대선 아닌 미국과 중국의 대결이다. 집권당의 무덤이라는 중간선거를 앞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종신 집권을 코앞에 둔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을 놓고 보면, 그때만 해도 미국이 훨씬 불안했다. ‘서방이 쇠망(衰亡)한다’고 믿는 시진핑은 10월 당대회에서 “21세기 중엽까지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으로 만들겠다”며 사실상 미국을 꺾고 패권국가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6주도 안 돼 ‘제로 코로나’ 정책에 반대하는 백지 시위가 곳곳에서 벌어졌다. 반체제 운동으로 번질까 두려워진 중국은 마침내 ‘위드 코로나’로 돌아서고 말았다. 독재가 슬픈 점은 근본적 개혁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최고지도자 주변이 옛 소련처럼 충성파뿐이기 때문이다. 2023년 전망은 중국이 이미 정점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중국경제가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희망찬 전망은 사라졌다. 민주화될 것 같지도 않다. 최근 이코노미스트는 백지 시위를 벌인 청년이 다음 날 공안에 잡혀가 며칠째 소식도 없다는 기사를 전했다. 2017년 12월 방중한 자리에서 “양국은 함께 번영해야 할 운명공동체”라고 했던 문재인 당시 대통령에게 새삼 소름이 돋는다. 반면 11월 미 중간선거에선 민주당이 뜻밖에 선전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포퓰리즘과 ‘미친 팬덤’에 흔들리지 않음으로써 경제보다 민주주의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 거다. 이는 우리의 민주당에 주는 시사점이 작지 않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법적 문제도 한둘이 아닌 상태다. 이재명 말고는 대안이 없다고 믿는 개딸들과 일부 의원들이 제발 꿈에서 깨주기를 바라는 바다. 미 백악관이 ‘민주주의와 독재의 지구적 투쟁의 중심’이라고 규정한 우크라이나의 선전(善戰)도 민주주의에 희망을 준다. 한반도 반대편에 있는 우크라이나는 우리 대선에서도 이슈였다. 이재명은 TV토론회에서 “6개월 된 초보 정치인이 대통령이 돼 러시아를 자극하는 바람에 결국 충돌했다”고 주장해 외교적 물의를 빚기도 했다. 윤석열 후보가 “말로만 하는 종전선언은 평화를 보장하지 못한다”며 “한미동맹과 국제사회와의 협력이 절실하다”는 입장을 밝혔던 것도 기억에 생생하다. 2023년 세계의 이목은 우크라이나에 집중될 것이다. 교착상태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지만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이 승리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확신했다. 천연가스를 무기화함으로써 서유럽 민주국가 연대를 깨뜨리려는 푸틴의 시도는 실패했다. 우크라이나가 유럽에서 가장 크고 전투로 가장 강하게 단련된 군대를 보유한 서구지향적 국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은 고맙기까지 하다. 유라시아대륙 서쪽 끝 크리미아반도는 한반도와 묘하게 닮았다. 170년 전 러시아는 크리미아 전쟁에서 패배하자 동방의 부동항을 겨냥해 한반도 진출을 노렸다. 영국은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막기 위해 조선 개방을 추진했고 1885년엔 거문도를 불법 점령했는데도 조선은 점령당한 줄도 몰랐던 우물 안 개구리였다. 120년 전 일본은 ‘해가 지지 않는 제국’ 영국과 영일동맹을 맺었고, 영국의 지원을 받아 러일전쟁에서 승리해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어 버렸다. 윤 대통령은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할 만큼 국제무대 주역이 됐다. 문 정권은 위기 때 카리스마적 지도자인 양 선출돼 언론자유와 독립적 사법제도를 무너뜨렸고, 선거제도를 바꿔 20년 집권을 시도했다. 이코노미스트가 소개했던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 즉 독재로 가는 공식이다. 윤 대통령이 지금 무너진 자유민주주의를 바로잡는 길을 가고 있다고 믿고 싶다. 단, 그 일 또한 민주적으로 해야 한다. 그래야 아시아에서 유행하는 자본주의독재, 일당독재, 정실민주주의, 또는 검찰독재 소리를 듣지 않는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2-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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