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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의 실소유주로 알려진 이모 전 빗썸코리아·빗썸홀딩스 이사회 의장(45)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다.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이 전 의장을 23일 서울중앙지검에 기소 의견으로 불구속 송치했다”고 25일 밝혔다. 이 전 의장은 2018년 10월 가상화폐 ‘BXA토큰’을 “빗썸거래소에 상장한다”는 취지로 홍보해 투자자들에게 수백억 원 판매했지만 실제 상장은 이뤄지지 않아 피해를 입힌 혐의를 받고 있다. BXA토큰은 빗썸의 최대주주인 김병건 BK그룹 회장이 2018년 10월 ‘BTHMB홀딩스’를 설립하고 발행한 가상화폐다. 2019년 2월 비트맥스(BitMax) 등 해외 거래 사이트에서 발행된 BXA토큰은 일명 ‘빗썸 코인’이라 불리며 개당 150∼300원대에 총 300억 원가량 판매됐다. 하지만 BXA토큰은 거래소 상장이 무산됐고, 빗썸과 BTHMB홀딩스의 매각 및 인수 역시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BXA토큰은 4원대에 거래되고 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결과가 좋게 나오건 나쁘게 나오건 국제사법재판소(ICJ)로 갑니다. 꼭 갑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93)는 2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부장판사 민성철)의 선고 공판이 진행되던 도중 법정을 박차고 나와 이같이 말했다. 이 할머니는 기자들에게 “국제사법재판소까지 간다. 저는 이 말밖에 할 말이 없다”며 울먹였다. 그러면서 “저만 위해서 (소송)하는 것 아니다. 피해자들 똑같이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날 법원은 이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각하 결정했다. 정의기억연대 등 5개 단체로 구성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단체 네트워크는 성명을 내고 “피해자의 재판받을 권리를 제한했을 뿐 아니라 인권 중심으로 변화해 가는 국제법 흐름을 무시한 판결이다.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각 단체는 재판부가 “피해자들은 2015년 이뤄진 한일 합의에 따라 현금을 지급받는 등 권리를 구제받을 또 다른 수단이 있다”고 판단한 것에 크게 반발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정부는 한일 합의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여러 차례 발표했고, 헌법재판소도 피해 회복을 위한 법적 조치가 아니라고 판단했다”며 “일부 피해자들이 지원을 받았다고 해서 한일 합의가 수많은 피해자들 의사에 어긋나지 않은 것처럼 판단한 것은 재판부의 억측”이라고 지적했다.고도예 yea@donga.com·이소연 기자}
“일단 예약은 4명으로 해놓고, 당일 2∼3명 더 이용하는 건 상관없어요.” 경기 가평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A 씨는 18일 오후 2시경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6명 이상도 예약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 조치가 전국 숙박시설에도 적용되고 있지만, 오히려 A 씨는 “문자메시지로 숙박인원을 확인할 때에만 저희 쪽에 ‘4명’이라고 답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모르는 일이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제주 서귀포시의 한 숙박시설은 전화로 예약을 문의하자 “직계가족이 아니더라도 6명 이상 한 방을 잡아주겠다”며 대놓고 호객행위를 하기도 했다.○ “절대 안 걸린다”…고삐 풀린 방역 의식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에 따르면 15일부터 나흘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600명을 넘어섰다. 1주간 평균 확진자가 629명일 정도로 확산세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 하지만 봄철 나들이객이 몰리는 관광지와 공항 등에선 최소 1m 이상 거리를 띄우는 기본 방역수칙마저 지켜지지 않았다. 여행객들은 물론 관광지 인근 숙박시설조차 5인 이상 사적 모임을 금지하는 수칙을 위반하고 있다. 이 때문에 봄철 ‘방역 의식’이 집단적으로 느슨해졌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일부 숙박시설에서는 업주가 먼저 여행객에게 “절대 걸릴 일 없다”며 단체 예약을 받아내기도 했다. 군 입대를 앞두고 친구 6명과 가평의 한 펜션을 빌려 여행을 다녀온 박모 씨(20)는 “오히려 펜션 사장이 먼저 ‘SNS에 후기만 안 올리면 된다. 현금 결제하면 걸릴 일 없다’고 예약을 안내해줬다”고 말했다. 펜션 내부엔 방문한 이들의 연락처를 적어두는 출입명부조차 없었다고 한다. 이는 감염병예방법 위반에 해당한다.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방역수칙을 위반한 업주에게는 최대 300만 원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방역당국 관계자는 “예약 인원을 속이는 등 방역수칙을 위반했다가 뒤늦게 확진자가 나올 경우 역학조사 등 감염경로 파악에 애를 먹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1m 거리두기 안 지키고 줄 서 제주 여행객 등 나들이 인파가 몰린 공항은 주말 내내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17일 오후 2시 40분경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 국내선 3층 출발장. 입구 두 곳을 합쳐 200명 넘는 인파가 다닥다닥 붙은 채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적어도 1m 이상 거리를 두라는 방역수칙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특히 공항 2층 외부에 마련된 흡연실에선 16명이 서로 한 발자국 떨어져 마주 보며 담배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실내 흡연실을 이용할 때에도 2m 거리를 두고 접촉을 최대한 피해야 한다는 방역수칙은 인파가 몰리자 무용지물이 됐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봄철 나들이 특별방역대책’을 세워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30일까지 전국 주요 자연공원과 휴양림, 수목원, 놀이공원 등 집중점검에 나섰다. 중대본은 “봄철 나들이 여행은 가까운 곳으로, 단체여행보단 가족끼리 소규모로 가급적 당일 개인 차량을 이용해 다녀오는 걸 권장한다”고 밝혔다.유채연 ycy@donga.com·이기욱·이소연 기자}
“여긴 이제 봄이야. 벚꽃이 활짝 피었어. …거기에도 봄이 왔어? 할 수 있는 건 기도뿐이었어. 좋은 곳으로 가. 기억하고 있어.” 김호진 군(19)은 4일 밤 노트를 꺼내 새로운 랩 가사를 작사했다. 7년째 차가운 바다에 머물며 아직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형과 누나들을 떠올렸다. 이젠 ‘좋은 곳으로 가’라는 염원을 담아서. 16일이면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지 벌써 7년이 된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야외 추모식조차 쉽지 않은 상황. 여전히 그들을 기억하는 많은 시민들은 ‘랜선 추모’에 동참하고 나섰다. 소셜미디어 등에 직접 써내려간 글이나 노래, 영상 등을 올리며 아픔과 공감을 드러내고 있다. 김 군은 참사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할 수 있는 게 기도뿐’이란 가사는 그때의 슬픔을 솔직하게 담은 표현이었다. 그날 이후 김 군에게 4월의 봄은 안타깝고 간절한 계절로 남아 버렸다. “어느덧 제 나이가 그때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과 비슷해졌어요. 저에게 해마다 봄이 왔듯 차디찬 바다에 있는 희생자에게도 하루빨리 봄이 찾아왔으면 하는 심정을 담았어요.” 김 군은 친한 형이 만들어준 비트에 랩을 실어 추모 곡을 완성했다. 이 노래는 4·16안산시민연대가 주최하는 ‘4·16 청소년 창작경연대회’에 출품되기도 했다. 경기 안산온마음센터가 주최한 ‘랜선 합창단’ 프로젝트도 시작 2주 만에 개인 218명과 단체 24곳이 참여했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 7주년을 맞아 시민단체 4·16합창단이 만든 추모곡 ‘너’를 부르는 영상을 녹화해 보내주는 프로젝트였다. 특히 서울 계성초등학교 6학년 4반 학생 30명은 노래와 함께 “매순간 사랑했어”라는 노랫말을 수어로 표현한 영상을 보내왔다. 이 노랫말은 세월호 참사 유족들이 희생자에게 전하는 메시지였다. 학생들이 보낸 영상 화면에는 교실 칠판에 손수 그린 노란 리본과 ‘우리 노래가 하늘에 닿기를’이란 메시지가 함께 담겨 있었다. 4·16재단이 운영하는 ‘세월호 참사 온라인 기억관’에도 랜선 추모 열기가 식지 않고 있다. 15일 기준 4만4000명이 넘는 시민들이 메시지를 남겼다. “봄꽃 같은 너희들을 기억할게. 그곳에선 아프지 않기를.” 아이들을 잊지 않고 찾아온 마음이 켜켜이 쌓이고 있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에도 ‘#세월호’ ‘#세월호 추모’란 해시태그와 함께 노란색 리본들이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다. 유족들은 7년의 세월이 흘러도 아이들을 잊지 않는 이들에게 감사해했다. 희생자 진윤희 양의 어머니 김순길 씨는 15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우리의 기억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 믿는다”고 전했다. “저희가 바라는 건 (참사가) 아프다고 기억에서 지우는 게 아니에요. 같은 아픔을 반복하는 일이 없도록 모두가 기억하는 거예요. 그렇게 아이들과 세월호를 기억해 주시는 분들이 우리나라를 안전하게 바꿔나가는 데 큰 역할을 할 거라고 믿습니다.”박종민 blick@donga.com·이소연 기자}
독일 베를린에 이어 독일 국립박물관에도 평화의 소녀상이 전시된다. 재독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에 따르면 독일 드레스덴 국립박물관 산하 민속박물관에서 이달 16일부터 열리는 전쟁범죄와 인종폭력 주제의 전시회에서 소녀상이 전시된다. 유럽의 국립박물관에서 전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독일 공공장소에서는 수도 베를린에 이어 두 번째다. 전시장 밖에는 한국에서 공수된 청동 재질의 평화의 소녀상이, 전시장 내부에는 이동식 소녀상이 각각 설치된다. 일본군에 위안부로 끌려갔을 당시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소녀상은 박물관에 약 1년간 설치될 예정이다. 전시회에서는 1991년 8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의 만행을 폭로하는 공개 증언 영상도 상영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93)는 14일 오전 10시경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을 찾아가 ‘일본군 위안부 관련 법적 분쟁의 국제사법재판소(ICJ) 회부 제안 서한’을 전달했다. 표지에 수신인으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의 이름을 적었다. ‘일본군 위안부 ICJ 회부 추진위원회’ 대표를 맡고 있는 이 할머니는 이 서한에서 “1월 8일 서울지방법원은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인정한 판결을 내렸지만 일본은 국제법 위반이라 주장하고 있다”며 “ICJ에 위안부 관련 법적 분쟁을 회부해 국제법에 따른 구속력 있는 판결을 구하자”고 촉구했다. 서한을 전달받은 서기관은 도쿄 외무성에 서한을 전달하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할머니는 이후 기자회견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이 스가 총리를 이해시켜 ICJ에서 문제를 확실히 밝히자고 말했으면 한다”고 했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 이소연 기자}
10일 오후 9시 반경 서울 지하철2호선 강남역 인근 한 건물 지하의 A업소. “수백 명이 모여 춤을 추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경찰과 구청 관계자 등이 현장에 출동했을 당시, 이 업소는 그야말로 북새통이었다고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4차 대유행’ 초기 양상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100평 남짓한 지하에서 200명이 넘는 인원이 술을 마시며 춤을 추고 있었다. 해당 업소는 구청에 일반음식점과 살사댄스 교습소로 등록돼있다. 때문에 현장에 있던 시민들은 “무슨 근거로 단속 하느냐” “(춤) 배우러 왔는데 뭔 죄냐”며 항의하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업소 자체가 불법영업인데다 면적당 제한인원을 넘어 감염병예방법 위반이다. 학원이라 쳐도 취식 금지 방역수칙을 어긴 것”이라며 “손님들 모두 과태료 처분을 피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확진자 다시 느는데 유흥시설 북적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에 따르면 7~11일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2178명에 이른다. 닷새 동안 계속해서 400명을 넘어서고 있는 상황. 하지만 시민 수백 명이 적발된 A업소처럼 방역에 역행하는 사례들은 계속 나오고 있다. 해당 업소는 영업 공간 가운데 일부만 일반음식점으로 신고하고 지하 1, 2층 전체를 클럽 형식으로 무허가 운영한 곳이었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업주 A 씨를 식품위생법 및 감염병예방법 위반 등 혐의로 체포하고, 직원과 손님 등 200여 명에게는 감염병예방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당시 업소를 방문해 QR코드 인증을 한 208명 가운데 현재 199명의 신원을 현재 확인한 상태다. 유흥시설 집단감염은 전국적으로 심각한 상황이다. 부산에서는 10, 11일 한 유흥업소 발(發) 확진자가 23명이나 발생했다. 시 관계자는 “현재 부산의 유흥시설 관련 확진자만 이용자 83명과 종사자 68명을 포함 372명”이라며 “12일부터 3주 동안 유흥시설 영업을 전면 금지하는 조치를 내렸다”고 전했다. 전국에서 집단감염이 이어지며 9~11일 코로나19의 전체 신규 확진자는 3일 연속 600명대를 기록했다. 일반적으로 일요일에는 코로나19 검사가 줄어 확진자 수도 감소하는 걸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일요일에 확진자가 600명을 넘어선 건 1월 10일(657명) 이후 13주 만이다.● 학교와 학원에서도 집단감염서울과 경기에선 교육기관에서 집단감염이 잇따랐다. 서울시에 따르면 양천구에 있는 B학원에선 7일 수강생 1명이 확진 판정을 받은 뒤 원장 1명과 수강생 5명, 가족과 지인 4명 등 10명이 추가로 확진됐다. 특히 10일 확진된 수강생 5명은 양천구에 있는 같은 초등학교 학생들로 드러났다. 양천구 관계자는 “해당 학원 수강생과 종사자 등 232명을 대상으로 검체 조사를 실시하고, 해당 초교에서도 추가 접촉자가 있는지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기 성남에서는 한 초등학교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경기도에 따르면 성남시 분당구의 C초교에서 지금까지 교사와 학생 등 9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9일 이 학교 1학년 교사가 확진된 뒤 같은 반 학생 27명 가운데 7명이 10일 추가로 감염됐다. 게다가 확진 학생과 교내 축구교실에서 접촉한 다른 반 학생 1명도 확진돼 교내 감염으로 번질 우려까지 낳고 있다. 방역당국 관계자는 “해당 초교 수업은 모두 원격수업으로 전환한 뒤 학생 및 교직원 1283명에 대한 전수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이경진 기자 lkj@donga.com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서울에는 노원구 백사마을 말고도 여러 달동네들이 남아있다. 서대문구 개미마을과 성북구 정릉골, 서초구 성뒤마을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모두 변화를 앞두고 있다. 서대문구는 1월 개미마을의 재개발을 검토하는 첫발을 뗐다. 마을 재생·정비사업의 수익성과 방향성을 전면 재검토하는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인왕산 자락의 개미마을은 백사마을처럼 1960, 70년대 도심 철거로 살 곳을 잃은 이들이 몰려든 달동네였다. 서대문구 관계자는 “마을 주택의 99%가 무허가 건물이다. 주민들은 여전히 도시가스도 없는 열악한 주거 환경에 처해 있다”며 “연구용역 진행 뒤 재정비사업의 방향성과 주거 환경 개선 방안을 검토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소설 ‘토지’를 쓴 고 박경리 작가가 거주했던 정릉골 달동네도 2003년 개발제한구역 해제 뒤 17년 만에 탈바꿈할 준비를 시작했다. 정릉골구역조합은 지난해 3월 건축 심의를 통과한 이후 성북구에 사업시행계획인가를 신청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성뒤마을은 1960, 70년대 강남 개발에 밀려난 주민들이 모여 살던 판자촌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10월 지분적립형 1호 주택을 짓기로 잠정 결정했다. 지분적립형 주택이란 분양가의 20∼25%를 먼저 낸 뒤 나머지 지분가를 20∼30년간 분납해 주택을 취득하는 방식. 2월 9일 주택건설사업계획 승인이 났고,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토지 보상 작업에 착수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어느새 여기도 봄이 내려앉고 있었다.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를 봄이. 쨍한 햇빛에 눈이 부신 날. 하지만 그곳은 화사한 날씨는 도통 어울리지 않았다. 누군가 마주 걸어오면 피해가기도 힘든 좁은 골목. 서로를 버텨주듯 다닥다닥 벽을 맞댄 집들이 왠지 세월에 지쳐 보였다. 군데군데 박힌 붉은 페인트의 동그라미들과 ‘위험’ ‘접근금지’란 큼직한 글씨들. 얼핏 대문 틈으로 보이는 찢어진 우산살마저 한참 등이 굽었다. 사람들이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 부르는 이곳. 노원구 중계본동 불암산 자락에 있는 ‘백사마을’은 그렇게 봄 아지랑이조차 먼지에 흩날려 지워졌다. 백사마을은 곧 사라질 운명이다. 서울시는 지난달 2일 2025년까지 이 일대에 대규모 주거단지를 조성하겠다는 재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약 18만7000m²의 땅에 공동주택 1953가구와 임대주택 484가구를 짓는다고 한다. 2009년 주택재개발 정비사업구역으로 지정된 지 12년 만에 들려온 소식이다. 하지만 그동안 백사마을의 삶이 멈춰 있었던 건 아니다. 거미줄처럼 이어진 골목 한구석에 쌓인 회색빛 연탄재. 어젯밤 누군가는 그 온기에 기대 또 하룻밤을 지냈으리라. 한때 1713가구 가까이 살았다던 이 마을엔 여전히 203가구가 남아 있다.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떠밀리듯 왔지만 이젠 고향이 되어 버린’ 백사마을 주민들을 만나봤다.○ 시절에 밀려 만들어진 달동네 꽃은 어디서 피어도 꽃이다. 철커덩 문이 열리자 마주한 수선화들. “좀 너절너절해도 사는 건 괜찮다”는 최선진 씨(88) 집 마당은 수줍은 미소만큼 꽃들이 만발했다. 할머니가 이곳에 정착한 건 서른 즈음이었던 1960년대. 50여 년 동안 겪은 풍파를 다 얘기하려면 몇 밤은 새워야 할 터. “하나하나 손수 심은 꽃들”이라며 바라보는 눈빛엔 자긍심과 쓸쓸함이 함께 묻어났다. “재개발이 된다, 된다 하더니만 이젠 진짜 나가려나 봐.” 샛노란 수선화 꽃잎이 살짝 바람에 떨리는 듯했다. “그때 동대문 막살이집촌에 살다가 불이 나는 바람에 집을 잃었지. 판자촌이니 순식간에 재가 됐어. 다른 이웃들과 80여 명이 여기로 흘러들었어. 나랑 남편도 4남매를 데리고 왔는데 천막 하나 내준 게 고작이었어.” 최 씨는 여기서 악착같이 4남매를 키워냈다. 마을 뒤쪽 불암산 자락에 있는 밭에서 배를 사서는 동대문시장까지 가서 과일 보따리 장사를 했다. 함께 이 집에 창호지를 발랐던 남편은 40여 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는 “그래도 함께 지은 집만큼은 그대로 남은 거지. 지금도 셋째 딸이랑 여기서 잘 살고 있네”라고 했다. 김상윤 씨(83)가 백사마을에 들어온 것도 최 씨와 엇비슷한 그즈음이었다. 셈 빠른 할아버지는 “1967년 11월 3일”이라며 허리를 쫙 폈다. 용산에서 철거민으로 살던 그는 그해 집을 잃었고 살 곳을 찾아 여기로 왔다. “집 잃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은 다 여기로 밀어 넣었어. 살고 싶어서 온 데가 아니란 말이지. 시절에 떠밀려서 온 거야. 그렇게 이 마을에서 맨 처음 터를 닦았는데 결국 가장 마지막에 나가는 사람이 됐네.” 할아버지의 기억은 정확했다. 백사마을은 일명 ‘이주정착지’였다. 1967년 서울에 불어닥친 도심 개발. 용산과 영등포, 청계천 등지에 몰려 살던 빈민들은 갑작스레 거처를 빼앗긴 뒤 노원구 중계본동 산104번지에 내몰렸다. 백사마을은 그 번지수에서 딴 이름이었다. 엉성한 작명만큼이나 당시 그곳 사정은 열악했다. 개발보상금은 꿈도 못 꿨다. 한 가구당 8평 남짓 땅과 시멘트블록 200장, 텐트 1동이 지원받은 전부였다. 전기는커녕 연탄을 땔 아궁이도 없었다. ○ 그래도 삶은 계속 된다 그렇게 하나둘씩 이뤄진 마을. 뒤늦게 들어온 이들도 저마다 사정은 애달팠다. 1983년 이곳에 터를 잡은 나춘환 씨(84)는 ‘자개장롱’ 하나만 이고지고 백사마을에 왔다. 번듯한 제지회사를 운영하다 ‘8·3 사채동결조치’에 부도를 맞고 모든 걸 잃은 그도 이곳만이 살길이었다. “어떻게든 그놈의 농 하나는 건지고 싶었어. 없는 살림에 그 큰 장롱 들어갈 집을 찾으니 구할 수가 있나. 마을 언덕을 얼마나 올라 다녔는지 몰라. 꼭대기까지 와서야 그나마 장롱 들어갈 집을 찾았지.” 그의 집 안방엔 여전히 그 자개장롱이 버티고 섰다. 40년이 넘게 흘렀는데 휜 곳 하나 없다. 나 씨 역시 그렇게 꼿꼿하게 이곳에서 처자식을 건사했다. “애들한테 당당하게 말했어. ‘결혼할 상대 있으면 언제든 여기 데려와 집을 보여주라’고.” 할아버지는 지난한 삶의 무게를 숨기지도 피하지도 않았다. “내 손때가 안 묻은 구석이 없지. 어찌 애착이 가지 않겠어.” 나 씨와 동갑내기인 탁윤균 씨(84)에겐 백사마을이 또 다른 기회의 땅이었다. 경북 성주에서 온 탁 씨는 1971년 당시 거금 14만 원을 주고 땅 32평을 샀다. 그는 자기 손으로 땅을 파고 합판을 잘라 작은 부엌 하나 딸린 단칸방을 넓혀나갔다. 이후 직접 굴착기를 몰고 만든 지하공간에 양말 공장을 차렸다. 함께 내려가 본 공장 지하실. 이젠 퀴퀴한 냄새만이 가득한 그곳엔 “한때 미싱이 20대도 넘게 돌아갔다”고 한다. 저쪽 구석에 놓인 망가진 미싱 한 대가 탁 씨의 과거를 뒷받침했다. 할아버지에게 공장은 꿈이자 자랑거리였다. 공장을 세울 때만 해도 무허가였지만 구청은 그에게 ‘무허가 건물 확인서’를 발급해줬다. 토지 소유주가 아니더라도 오랫동안 살아온 주민들에게 권리를 인정해주는 문서라고 한다. 탁 씨에게 확인서는 자신의 인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는 증서이기도 하다. 저마다의 사정을 안고 모여든 백사마을이었지만 이웃은 서로를 보듬으며 삶을 이어갔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시끌벅적 사람 냄새가 가득했다. 백사마을 6통 통장을 지냈던 김상윤 씨는 “우리 통에만 80가구가 모여 살았어. 비슷한 시기에 들어와 나이대도 엇비슷해 잘 어울렸지”라고 떠올렸다. “없는 살림이었지만 1년에 몇 번씩 동네 사람끼리 관광버스 빌려 여기저기 놀러 다녔어. 힘들어도 함께 즐겁게 재밌게 살았어. 아직도 남은 사람들끼린 그때 얘기를 해. 이젠 많이들 마을을 떠났거나 세상을 등졌지만.” 짹짹. 청량한 울음소리. 이웃이 떠난 김 씨네 집 처마엔 올해 제비가 둥지를 틀었다. 할아버지는 커다란 대못 2개를 구해 둥지 아래에 나무판자를 고정시켜 뒀다. “지들도 살아야지. 무너지지 말라고 받쳐뒀어.”○ 내년 봄 우린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밀려들어 닦았던 마지막 터전. 그곳마저 잃는 게 두렵진 않을까. 다행스럽게도 아직 남은 백사마을 사람들은 재개발 뒤에도 계속 이곳에 머물 수 있다. 서울시와 노원구, 서울주택도시공사(SH)는 2017년 10월부터 33번의 회의를 거쳐 ‘보존 재개발 원칙’을 세웠다. 낡은 저층 주거지를 개발하되 백사마을의 특성과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는 방식으로 개발하겠다고 한다. 원주민들이 재개발에 떠밀려 가지 않도록 주거권도 보장하기로 했다. 시 관계자는 “1960년대부터 자생적으로 형성된 마을의 역사를 보전하고 원주민들에게 경제적으로 부담이 가능한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왠지 할아버지 할머니는 마음 한쪽이 쓸쓸하다. 내쫓길 걱정은 안 하지만 그들이 세우고 닦은 ‘백사마을’은 이게 마지막인 게 아닐까. 왠지 자꾸만 작별의 시간이 다가오는 기분이다. “요즘 매일 이 텅 빈 공장을 찾아와. 동네 한 바퀴 돌아본 뒤에 사무실에 들어와서 커피 마시고 TV도 보고…. 하루도 빠짐없이 와. 괜히 아쉬워서 그런가. 재개발 끝나면, 그래 끝나면 다시 돌아와야지.”(탁윤균 씨) “나랑 마누라랑 둘 다 여든다섯이야. 재개발이 한 사오 년은 걸리겠지? 그럼 아흔 살이 되는 거네. 우리가 그때까지 살아있을까. 올해 떠나면 이젠 마지막인 거지. 그간 자식들이 모시겠다고 해도 한사코 뿌리쳤는데, 이젠 거기 가서 살아야지. 지금이라도 털고 일어날 수 있지만…. 하루가 아쉬워서, 이렇게 남아 있네.”(나춘환 씨) 취재가 끝나고 백사마을을 떠날 무렵. 이 마을에서 53년 동안 살아온 윤석분 씨(83)는 작은 부탁을 해왔다. 이제 곧 떠날 마을. 사진 좀 찍어 줄 수 있느냐고. “4통에 살던 주민들 다 떠났어. 나랑 요기 앞집, 동생네만 남아있지. 나중에라도 여기 모습 좀 간직하고 싶은데, 여기저기 다 담아줄 수 있을까.” 찰칵찰칵. 어딘가로 흩어져 보이지 않던 봄 아지랑이 냄새가 코끝을 스쳐간다. 할머니의 수줍은 옅은 미소를 따라. 내년 봄, 제비들은 어느 처마 밑에서 둥지를 틀까.김수현 newsoo@donga.com·이소연 기자}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3기 신도시 경기 광명·시흥지구 관련 내부 정보를 처음으로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는 LH 현직 직원이 ‘원정 투기’ 의혹에 휩싸였던 LH 전북지역본부에서 10년 이상 근무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실이 LH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해당 현직 직원 A 씨는 LH 광명시흥사업본부에 근무한 2017년 1월∼2020년 2월을 제외하면 전북지역본부에서 대부분을 근무했다. 2013년 2월부터 4년 동안 해당 본부에서 주로 개발 관련 보상 업무를 담당하는 3급 직원으로 일했으며, 지난해에도 전북지역본부로 돌아와 같은 업무를 담당했다. 부동산 투기 의혹에 연루된 LH 전·현직 직원 가운데 전북지역본부 근무 경력이 있는 이들은 10명이 넘는다. 경찰은 A 씨가 업무상 관계자들을 접촉하는 과정에서 함께 구속영장이 청구된 B 씨와도 친분을 쌓은 것으로 보고 있다. 2009년부터 전주 지역에서 법무사로 일해 온 B 씨는 A 씨가 유출한 정보를 활용해 광명시 노온사동의 토지를 매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한 부동산 관계자는 “법무사들은 개발사업에 필요한 소유권 이전이나 공탁 등의 업무를 대행하는 경우가 많아 LH와 업무 연관성이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LH의 부동산 투기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경찰은 최근 LH 전직 직원의 납품비리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에 착수했다.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아파트 건설현장에 납품하는 한 업체에 계약을 몰아주고 뇌물을 받은 혐의(뇌물 공여 및 수수)로 전직 LH 간부와 해당 업체 관계자 2명을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해당 간부는 LH 간부로 재직할 때부터 시작해 2015년 퇴직한 뒤에도 이 업체로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모두 1억 원대의 뇌물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8일 오전부터 해당 간부의 집과 LH 본사 등 6곳을 압수수색했다. 2015년 LH 전북지역본부에서 일하며 내부 정보를 이용해 택지개발 예정지에 부인의 이름으로 부동산을 매입한 혐의(부패방지법 위반)를 받는 LH 직원은 8일 경찰에 구속 수감됐다. LH 부동산 투기 의혹과 관련해 LH 현직 직원이 구속된 것은 처음이다.권기범 kaki@donga.com·김태성·이소연 기자}
서울 노원구에서 스토킹하던 여성의 집에 침입해 어머니와 여동생 등 세 모녀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태현(25)이 여성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전과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미성년자에게 성적인 음성메시지를 수차례 보내 벌금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중앙지법은 지난달 10일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통신매체 이용 음란) 혐의로 김태현에게 벌금 2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내렸다. 자신의 신음소리를 휴대전화로 녹음한 뒤 여고생에게 수차례 파일을 전송한 혐의다. 당시 김태현에게 약식명령 결정문이 담긴 우편물이 송달됐으나 7일 이내 정식 재판을 청구하지 않아 지난달 30일 벌금형이 그대로 확정됐다. 약식명령은 피고인이 법정에 출석하는 공판 절차 없이 서면 심리만으로 벌금이나 과료 등의 처분을 내리는 재판 절차다. 김태현은 지난해에도 성범죄로 벌금형에 처해졌다. 2019년 11월 서울 강남구의 한 건물 여성 화장실에 들어가 몰래 훔쳐본 혐의(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로 약식 재판에 넘겨져 지난해 4월 24일 2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2015년 9월에는 모욕죄로 벌금 30만 원의 약식명령이 내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김태현의 휴대전화를 디지털 포렌식한 결과 다수의 음란사이트에 반복해 접속한 기록도 나온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경찰청은 6일 김태현이 수감된 서울 도봉경찰서 유치장에 과학수사대 소속 프로파일러 4명을 투입해 면담을 진행했다. 경찰 관계자는 “범행 동기와 성장 배경 등에 대한 분석을 진행 중”이라며 “필요하면 사이코패스 검사도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9일 오전 8시경 김태현을 검찰로 송치하는 과정에서 얼굴을 가리지 않는 방식으로 실물을 공개할 예정이다.김수현 newsoo@donga.com·박상준·이소연 기자}
서울 노원구에서 스토킹하던 여성의 집에 침입해 어머니 등 세 모녀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는 25세 남성 김태현(사진)이었다. 김태현은 피해자 집에 가기 전 휴대전화로 ‘급소’를 검색했으며 범행 뒤 갈아입을 옷도 미리 준비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경찰청은 “5일 오후 3시부터 특정강력범죄 피의자의 신상공개심의위원회를 개최해 논의한 끝에 피의자 김태현의 신상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3명의 피해자를 모두 살해하는 중대한 결과를 초래했고, 충분한 증거가 확보됐다”며 “잔인한 범죄로 사회 불안을 야기했고,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사안임을 고려했다”고 공개 배경을 설명했다.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김태현은 지난달 23일 오후 8시 반경 퀵서비스 배달기사로 위장해 피해자 A 씨(25)의 자택을 침입하기 전에 자신의 휴대전화로 ‘급소’를 검색했다. 경찰은 김태현이 범행 전 급소 위치를 파악하고 흉기를 미리 준비한 점 등을 미뤄볼 때 의도적으로 살인을 계획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목숨을 잃은 세 모녀의 시신을 부검한 결과, 피해자들은 모두 경동맥이 지나가는 목 부근에 치명상을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 김태현은 범행 이후 피해자 집에 머물며 자신의 휴대전화에 남아 있는 모바일 메신저 메시지 등을 모두 삭제하고 초기화를 시도했지만, 경찰이 디지털포렌식을 통해 검색 기록을 찾아냈다. 김태현은 세 모녀의 집에 침입하면서 갈아입을 옷도 미리 준비해갔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에 따르면 김태현은 범행을 저지른 뒤 피해자의 피가 묻은 옷을 벗고 가방에 넣어갔던 옷으로 갈아입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범행 뒤 흉기로 목과 팔 등을 자해했지만 의식을 잃지는 않았다”며 “출혈로 몸에 수분이 떨어지자 냉장고에서 물과 우유 등을 닥치는 대로 꺼내 마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김태현은 지난해 12월 한 온라인게임 이용자들의 대면모임에서 A 씨를 처음 만난 이후 줄곧 스토킹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태현은 당시 모임에서 말다툼을 벌여 A 씨는 물론 참석자들 모두 그의 전화 등을 차단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A 씨가 모바일 메신저에 올린 택배상자가 노출된 사진을 보고 주소를 알아낸 뒤 집으로 계속해서 찾아왔다. A 씨는 지인에게 “집에 갈 때마다 돌아서 간다. 1층에서 다가오는 검은 패딩”이라며 두려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현재 구속 수감 중인 김태현은 이르면 8일 검찰로 송치될 예정이다. 경찰은 김태현을 이송하는 과정에서 얼굴을 가리지 않는 방식으로 실물을 공개할 방침이다. 살인 혐의로 피의자 신상을 공개한 건 지난해 8월 경기 용인에서 전 애인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 유기해 징역 35년을 선고받은 유동수 이후 8개월 만이다.김수현 newsoo@donga.com·유채연·이소연 기자}
‘소유냐 공유냐, 그것이 문제다.’ 동아일보와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한규섭 연구팀이 만든 ‘정치·사회 성향 조사’에서 진보 4번째인 대학원생 이진명 씨(26)는 ‘주택 공유론자’다. 결과 값은 정 가운데가 중도라면, 보수와 진보는 각각 1~50까지 나뉘고 성향이 강해질수록 숫자가 작아진다. 서울의 한 고시원에서 월세 30만 원을 내고 살아가는 진명에게 집은 ‘감히 오르지 못할 사다리’다. “내가 그 사다리를 오를 수 없다면 차라리 사다리를 엎어버리자”는 게 그의 주장. 진명은 “청년뿐 아니라 중산층에게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해 주거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수에서 47번째인 은희성 씨(34)는 ‘주택 소유론자’다. 2015년 결혼 당시 전세냐 자가냐를 오랫동안 고민하다 결국 자가를 선택했다. 언젠가 태어날 아이에게 안정적인 보금자리를 선물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출을 할 수 있는 한 받아 마련한 서울 동대문구의 20평대 아파트 집값은 최근 3배 가까이 올랐다. 전세를 선택했던 또래 친구들과 갈수록 격차가 벌어지는 현실을 보며 ‘소유론’은 더 확고해졌다. 희성은 “아무리 규제해도 내 집을 갖고 싶다는 사람 마음까지 막을 순 없다”고 믿는다. 부동산 공유파 VS.소유파. 세계관 최강자들이 16일 오후 6시 반경 서울 성북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진명=저는 아무리 노력해도 서울에서 내 집을 못 살 것 같아요. 부모님이 집값을 보태줄 수도 없는 형편이에요. 지금 당장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수 없으니까, 그게 너무 힘드니까 차라리 사다리를 엎어버리자는 거예요. ▽희성=심정은 이해해요. 하지만 소유에 대한 욕망은 인간의 본성이에요. 아무리 규제해도 본성까지 막을 수는 없어요. 차라리 서울의 낙후 지역을 재개발해서 민간 건설사가 아파트를 대량으로 공급해주면 어떨까요. ▽진명=당장의 분양가가 10억 원대일 텐데 제가 무슨 수로 살 수 있을까요. 재건축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는 청년들은 부모 잘 만난 금수저들뿐이에요. ▽희성=그렇다고 임대주택 공급을 확대하면 오히려 빈부격차만 커질 거예요. 당장 돈이 없어서 신혼희망주택에 들어간 또래 친구들을 보면 ‘그때 집 살 걸’ 후회하고 있어요. 잘 생각해보세요. 그 정책을 만든 사람들이 과연 공유주택에 살까요? 자기들은 다 대출받아 집 사놓고, 그렇게 재산을 수억 원씩 불려놓고 왜 청년들한테만 공유주택에 살라는 건가요. ▽진명=우리 사회가 주택을 자산으로 보기 때문에 빈부격차가 더 커진다고 봐요. 임대주택 공급이 확대되면 확대될수록 더 이상 집을 살 필요가 없는 사회로 나아가지 않을까요. 그렇게 되면 자산으로서의 집도 가치를 잃을 거라고 봐요. ▽희성=글쎄요. 현실적으로 저 같은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집을 사요. 저는 아내와 미래의 아이에게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고 싶어 대출까지 받아 집을 샀어요. 결혼한 지 5년 만에 딸아이가 태어났는데, 집 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아이가 여기저기 떠돌지 않고 한 곳에서 추억을 쌓을 수 있으니까요. 끝내 이견을 좁히진 못했다.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하지만 2시간이 넘는 대화를 마친 뒤 희성은 진명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취업을 할 수 있을까,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을까, 아이를 낳고 살아갈 수 있을까 전전긍긍 고민하던 20대의 자신을 꼭 닮은 진명에게 희성은 이런 말을 남겼다.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가요. 집값은 오르는데 대출은 막혀 있지, 취업은 점점 더 어려워지지…. 길이 다 막혔는데 이제 와서 집을 사라고 하는 게 오히려 더 허무맹랑한 소리로 들리겠죠. 제가 진명 씨 입장이었어도 차라리 사다리가 엎어지길 바랄 것 같아요.”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김윤이 기자 yunik@donga.com ※ 동아닷컴 이용자들은 위의 링크를 클릭하여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슈에 대한 본인의 성향을 측정해 볼 수 있습니다.네이버·다음 이용자들은 URL을 복사하여 검색창에 붙여넣기 하시면 됩니다.}
“청년들의 일상을 보장하기 위해 임대주택을 늘려야 해요. 최소한의 안전망이 되어줄 수 있거든요.” - 강지은 씨 (가명·25) “집은 청년에게 경제 자산을 불릴 몇 안 되는 기회예요. 임대주택보다 대출을 풀어야 합니다.” - 박용화 씨 (32) 지난해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정치·사회적 성향이 다른 시민이 만나는 ‘극과 극이 만나다’ 시즌1을 진행했다. 올해 극과 극 시즌2를 앞두고 2021년 창간기획으로 ‘극과 극―청년과 청년이 만나다’를 선보인다. 1회 주제는 부동산이다. 청년들이 가장 치열하게 엇갈리는 이슈 중 하나인 ‘청년임대주택 확대 정책’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첫 무대에 오른 청년들은 서울의 한 청년임대주택에 거주하는 지은 씨와 경기 성남시 분당에 17평형 아파트를 가진 용화 씨. 동아일보와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한규섭 교수팀이 개발한 ‘정치·사회 성향조사’에서 진보·보수로 갈린 그들은 집에 대한 개념부터 부동산정책의 방향성까지 팽팽히 맞섰다. 진보 성향 청년 5명과 보수적 청년 5명을 선정해 이들이 가진 부동산에 대한 인식도 분석해 봤다. 놀랍게도 집이 있든 없든 진보건 보수건, 부동산은 청년들에게 ‘절망’과 ‘불신’의 대상이었다. 정치·사회 성향조사에서 진보에서 4번째가 나온 이진명 씨(26)는 “내 집 마련을 꿈꾸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집값이 너무 올라버리니까 저 높은 사다리를 올라갈 엄두가 안 나요. 내가 못 오를 사다리라면 차라리 엎어졌으면 좋겠어요.” 지난달 터진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부동산 투기 의혹 사태는 청년들 가슴에 더욱 불을 질렀다. 지은 씨는 “믿어왔던 가치관이 흔들렸다”고 했고, 용화 씨는 “공공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고 했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박탈감을 넘어선 청년들의 분노는 한국사회의 정치 지형을 바꿀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앞으로 어떤 부동산정책이 나오길 바라느냐고요? 그냥 제발 아무것도 안 했으면 좋겠어요.”(은희성 씨·34)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동아닷컴 이용자들은 위의 링크를 클릭하여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슈에 대한 본인의 성향을 측정해 볼 수 있습니다.네이버·다음 이용자들은 URL을 복사하여 검색창에 붙여넣기 하시면 됩니다.}
“정말 화가 났어요. 정말 그건 ‘공공의 배신’이잖아요. 최소한 그들은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청년과 청년이 만나다’를 진행하는 동안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부동산 투기 의혹 사태가 터진 건 정말 우연이었다. 청년들은 부동산 얘기를 꺼낼 때마다 진보와 보수를 가릴 것 없이 LH를 언급했다. ‘박탈감’ ‘무력감’ ‘배신’ ‘분노’…. 청년 10명의 입에선 서러운 악다구니가 쏟아졌다. “LH사태를 보면서 그간 믿어왔던 가치관이 흔들리는 기분이 들었어요.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착실하게 돈을 모아 집을 마련한 부모님을 보며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반칙이나 편법, 요령 없이 살아도 성실한 게 최고의 덕목이라 여겼죠. 그런데 LH를 보세요. 자기들끼리 내부 정보를 이용해 투기한 정황이 쏟아지니…. 머리로는 그들이 틀렸다고 되뇌어보지만, 자꾸만 가슴 한쪽에서 ‘내가 잘못 산 건가’란 의심이 들기 시작했어요.”(빈수진 씨·25) 어떤 청년은 그럴 줄 알았다고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LH가 마련한 청년임대주택에서 거주하는 정예진 씨(23)는 담담하되 차갑게 “놀랍지도 않다”고 얘기했다. “아마 익숙해져서 그런 거 같아요. 이미 수년 전부터 사회생활하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와서인지 화도 나지 않았어요. 공공이 나서서 집값, 땅값 띄우는데 저 같은 청년이 뭘 어쩌겠어요. 앞으로도 저 같은 청년들은 절대 내 집을 마련하지 못하겠구나. 그냥 ‘확인사살’ 당한 것뿐인걸요.” 실망을 넘어 현실에 대한 비아냥거림도 들려왔다. 지난해 12월 울산에 20평형대 아파트 한 채를 매입한 강모 씨(22·여)는 “처음엔 공공기관 직원들마저 자기 배 불리기에 바빴다는 사실에 배신감을 느꼈다”면서 “그런데 결국 나만 잘사는 삶이 성공한 삶이란 진실을 가르쳐 준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강 씨는 “그들보다 내가 먼저 정보를 알았으면 어땠을까. 잔인하고 이기적인 생각일 수 있지만, 내 가족 중에 LH 직원이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더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전문가들은 LH사태의 파장이 청년들에게 미친 여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클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심층 인터뷰 텍스트를 분석한 서용석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는 “청년세대는 공공이 날 배신했다고 느낄 뿐 아니라 그간 자신이 믿어왔던 가치에 배신당했다고 인식했다”고 진단했다. “청년들의 대화에선 조직적인 투기를 보며 성실하게 노력해봤자 반칙을 이길 수 없다는 무력감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주류가 될 청년세대가 성실의 가치를 의심하고 반문하는 건 한국 사회의 크나큰 위기예요. 성실의 가치가 아무런 힘을 지니지 못하는 ‘성실의 무력화’가 LH사태로 한국 사회가 잃은 가장 큰 손실입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 동아닷컴 이용자들은 위의 링크를 클릭하여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슈에 대한 본인의 성향을 측정해 볼 수 있습니다.네이버·다음 이용자들은 URL을 복사하여 검색창에 붙여넣기 하시면 됩니다.}
“임대주택 보증금 5000만 원과 6억7000만 원짜리 17평형 아파트. 그것만 따져도 6억 원 넘게 차이 나네요.” 동아일보와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한규섭 연구팀이 만든 ‘정치·사회 성향 조사’에서 진보에서 4번째로 나온 강지은 씨(가명·25)와 보수에서 30번째를 기록한 박용화 씨(32). 결과 값은 정 가운데가 중도라면, 보수와 진보는 각각 1∼50까지 나뉘고 성향이 강해질수록 숫자가 작아진다. 두 청년은 집 얘기를 나누다가 흠칫 놀랐다. 생물학적으로 일곱 살 차. 한참 선배긴 하지만 같은 청년들인데. 성향보다 더 멀어 보이는 자산의 차이가 서로에게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지은은 청년임대주택에 산다. 보증금 5000만 원 말곤 자산이랄 것도 없다. 반면 용화는 2018년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은) 3억5000만 원을 대출받아 경기 성남시 분당에 4억 원짜리 집을 마련했다. 1995년 지은 낡은 아파트라 주위에선 반대했지만 현재 집값은 실거래가로 6억7000만 원이다. 손에 현금을 쥔 건 아니지만 2년 만에 2억7000만 원을 번 셈이다. 그들의 격차는 어디서 시작됐을까. 청년들은 지난달 21일 서울 용산구 한 카페에서 만나자마자 서로 다르다는 걸 알아봤다. 지은에게 집은 ‘생존을 위한 공간’이다. 하지만 용화는 그보다 ‘자산을 불릴 투자처’란 인식이 강했다. 대화는 초반부터 날이 섰고 서로를 납득하지 못했다. ○ “임대주택은 안전망” vs “빈부격차 더 키워” ▽지은=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수도권 청년임대주택 10곳에 지원서를 냈어요. 9곳 떨어지고 딱 한 군데 붙었어요. 취업만큼 어렵더라고요. 하도 떨어지니 버려진 느낌마저 들었어요. 운 좋게 입주했지만 당장 살 곳 없는 친구들이 더 많아요. 청년임대주택 공급을 지금보다 훨씬 늘려야 해요. ▽용화=아뇨. 전 청년 대상 공공임대를 확대하면 굉장히 나쁜 결과를 낳을 것 같아요. 제가 2018년 처음 집 살 때 가진 돈이 5000만 원뿐이었어요. 부모님도 말렸어요. 집 사려면 3억, 4억 원 대출받아야 하는데, 너무 무리라고요. 그렇지만 전 확신이 있었어요. 집값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아요. 저는 집을 사는 경험을 통해 좋은 자산을 건전하게 모으는 프로세스(과정)를 익혔어요. ▽지은=제가 놓치고 있는 경험인 건 맞아요. 그 지적에는 동의하지만 한편으로는 용기가 생기지 않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못 보는 것 아닌가요. 제가 용화 씨였다면 과연 그때 내 집을 살 수 있었을까요. 혹시 실례가 아니라면, 용화 씨는 연봉이 어느 정도 되시나요. ▽용화=5000만∼6000만 원 수준으로 받고 있어요. ▽지은=용화 씨는 연봉이 높아서 이자를 갚아나갈 능력이 있겠지만요. 저는 인턴 월급 150만 원 받아요. 정규직 전환이 돼도 연봉 3000만 원 받으면 많이 받는 거죠. 도전할 근간조차 없는 청년들을 위해 중간 사다리로 임대주택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용화=집을 살 때 소득이 미치는 영향력은 한 줌 재밖에 안 된다고 봐요. 집값 상승률이 임금 상승률보다 훨씬 높은데, 무슨 수로 월급 모아 따라가요. 저는 월급의 절반을 전부 주식에 투자해요. 지난해 2배 넘는 수익을 봤어요. 근로소득 말고 자산을 불릴 방법을 찾아야 해요. ▽지은=태어날 때부터 환경의 차이가 있잖아요. 서울과 지역의 차이도 크다고 봐요. 저는 고향이 대전인데 그쪽만 해도 분위기가 달라요. 집이 자산을 불릴 투자처라고 생각도 못 해봤어요. 지역뿐 아니라 부모의 조건 등 환경의 격차가 커요. 아예 자산을 불릴 방법이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청년들도 있단 거예요. 이들에게는 안전망이 필요해요. ○ “청년에게 ‘내 집’ 꿈을 빼앗지 말아야” 2시간 가까이 이어진 평행선. 청년들은 쉽사리 좁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의 한마디. “이제 우리 세대는 집 마련할 기회조차 뺏겼나 봐요.” 청년들은 어느새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용화=그런 청년들에게도 뭐가 도움이 될지 생각해야 해요. 임대주택은 임시적인 안전망일 순 있어요. 지금 청년세대는 집을 마련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잖아요. 그런 미봉책에 예산을 쓰기보단, 차라리 그 돈 아껴서 ‘이 정도까지 해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대출 규제를 완화해주면 좋겠어요. 청년들이 전부 자산가가 될 ‘기회’를 달라는 거죠. ▽지은=솔직히 임대주택에서 안정을 얻었지만 여기서 안주할까 봐 걱정되긴 해요. 임대주택만 전전할 순 없잖아요. 저도 언젠간 집을 마련하고 싶은데, 지금은 대출 규제가 너무 엄격해요. 아직 출발조차 하지 못한 청년들에게까지 장벽을 둬버렸어요. 점점 더 ‘기회’가 없어지는 것 같아요. ▽용화=동의해요. 사회 초년생 대상 장기저리 대출정책이 있긴 해요. 하지만 신혼부부나 저소득층만 대상이에요. 이건 공정하지 않아요. 소득 기준으로 제한을 걸면 오히려 성실한 일개미 청년들이 낙담하게 돼요. ▽지은=아직 주택을 가져보지 못했지만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면 좋겠어요. 성실하게 일하며 빚을 갚아나갈 능력이 있는 청년들은 집을 가질 수 있어야죠. ▽용화=대출규제 완화뿐 아니라 교육도 해법이 될 수 있어요. 지금은 초중고교 12년을 다니며 제대로 된 경제교육을 받지 못해요. 자산을 어떻게 불려 나갈지, 대출을 어디서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요. ▽지은=맞아요. 국영수만 냅다 파는 게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되나요. 학교는 삶을 가르쳐주는 공간이어야죠. 스무 살 처음 독립할 때 당장 서울 월세가 얼마인지도 몰랐어요. 기댈 곳은 없고 사회에 버려졌다는 생각마저 들더라고요. ▽용화=교육만큼은 공공의 역할을 믿어요. 사회가 모든 청년에게 집을 줄 순 없어요. 하지만 어떻게 내 집을 마련하고 자산가가 될 수 있는지 배울 수는 있어요. 더군다나 공교육은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접근할 기회잖아요. ▽지은=청년임대주택에 지원하면서 앞으로 정보 격차가 자산 격차를 결정지을 수 있겠단 생각을 처음 했어요. 이 제도를 몰랐다면 더 비싼 월세를 내고 살았을 거예요. ▽용화=시간과 예산을 할애해서 청년을 자산가로 키워낼 교육 제도를 마련해야 해요. 결국 진보든 보수든 청년들이 원하는 건 ‘안정적인 경제력’ 아닌가요. 지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전 인터뷰 당시 용화만 썼던 ‘기회’라는 단어는 일대일 대화에선 용화가 10차례, 지은이 6차례씩 사용한 공통의 단어가 됐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 이들은 청년세대가 집 살 기회를 박탈당했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대화 전문을 분석한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모든 청년에게 자산가가 될 기회를 줘야 한다는 한 청년의 말은 진보와 보수를 떠나 모든 기성세대가 되새겨야 할 말”이라고 했다. 이제 그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자가 아파트와 임대주택. 하지만 매일 쓸고 닦으며 일상을 꾸려나가는 소중한 장소인 건 누구에게나 같다. 안심하고 내일을 꿈꿀 수 있는 거처. 집은 청년들을 보듬어줄 공간이어야 한다. 그들을 내쫓는 벽이 아닌.이소연 always99@donga.com·이지윤·김윤이 기자 ※ 동아닷컴 이용자들은 위의 링크를 클릭하여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슈에 대한 본인의 성향을 측정해 볼 수 있습니다.네이버·다음 이용자들은 URL을 복사하여 검색창에 붙여넣기 하시면 됩니다.}
#1. 대학생 정예진 씨(23·여)는 지난해 12월 수도권에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청년임대주택에 입주했다.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30만 원. 부산에 사는 부모님 역시 ‘월세살이’라 손 벌릴 여유가 없다. 정 씨는 여기서 계약 기간 6년을 꽉 채울 예정이다. 문제는 6년 뒤다. 정 씨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넥스트 플랜’이 떠오르질 않는다”며 한숨지었다. #2. 미국 유학생인 강모 씨(22·여)는 지난해 11월 울산에서 20평대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분양가 1억8000만 원은 직접 주식으로 벌어들인 수익으로 마련했다. 물론 종잣돈 5000만 원은 부모님이 줬다. 하지만 그걸 4배 가까이 불린 건 강 씨다. 준공이 1년 정도 남은 아파트는 현재 분양가보다 7000만 원 오른 것으로 평가받는다.○ 생존의 공간 vs 투자의 대상 “서른 살까지 빠듯하게 모아봤자 1억 원 아니겠어요. 요즘 서울 평균 아파트 값이 10억 원이라는데 부모 도움 없이 내 힘으로 대출 받으면 9억 원을 받아야 하는 거네요. 60년 상환을 해야 하나…. 죽기 직전까지 집값만 갚으란 소리네.”(박모 씨·26) 청년들에게 ‘집’은 참 힘겨운 존재다. ‘청년과 청년이 만나다’에서 만난 청년 10명은 진보와 보수를 가릴 것 없이 주택에 대한 고민이 컸다. 하지만 집을 대하는 자세는 청년마다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집을 사는 곳으로 보느냐 투자처로 보느냐에 따라 부동산정책을 대하는 자세도 달라졌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집을 살 곳이라고 인식한 청년들에게 집은 ‘기본권’이란 인식이 강했다. 공공임대주택 확대 정책 등으로 주택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반면 집을 ‘투자처’로 바라보는 청년들은 부동산정책이 투자 규제 완화 쪽으로 나가야 한다고 봤다. 요즘 직장인 박용화 씨(32)의 최대 관심사는 ‘기승전 주식’이다. 박 씨는 “2018년에 내 집 마련을 준비하면서 주식시장에 월급의 절반가량을 붓고 있다”며 “적금으로는 부족하다. 이제는 공격적인 투자로 자산을 불리지 않으면 집값의 오름세를 따라잡을 수 없다”고 했다. 정 교수는 “집을 기본권으로 인식하는 청년들은 부동산 시장에서 보다 큰 정부를 원했고, 집을 투자처로 인식하는 청년들은 ‘투자 공부’ 등 스스로 해법을 찾으려 한다”고 분석했다.○ “우린 모두 부동산정책의 피해자” “집값요? 신이 재림해도 해결 못 할걸요.” 조모 씨(30)는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다 지난해 고향 강원도로 돌아왔다. 도저히 서울에서 자가를 마련하기 어렵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전세로 살며 내 집 마련을 준비 중이다. 하지만 지방도 요즘엔 녹록지 않아 답답함은 여전하다. 청년 10명의 인터뷰 텍스트에서 드러난 특징은 다른 대목에서 발견됐다. 집에 대한 인식의 차이, 진보와 보수의 격차가 아니라 오히려 그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부동산정책에 대한 실망과 시장에 외면당했다는 피해의식이 공통적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오죽하면 청년 10명이 공통적으로 한 말은 “내 집 마련만 생각하면, 답이 없다”였다. 청년임대주택에 거주하는 정예진 씨마저 “공공주택이 지금 당장 필요하긴 하지만, 여기에 발을 묶이는 기분이 들지 더 나은 미래를 꿈꾸게 해주지는 않는다”고 털어놨다. 전문가들은 청년 세대가 스스로를 부동산정책의 ‘공동 피해자’로 인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청년들은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을 말할 때 ‘실패’라는 단어를 공통으로 사용했다”며 “집값이 안정화될 거라는 기대는 애초에 접었고 정책 입안자인 86세대에게 요구하거나 주문하지 않는다. 어차피 말해봤자 듣지 않을 거라는 불신이 팽배하다”고 우려했다. “왜 하필 우리 세대에 와서 이러는 걸까요. 우리가 무슨 잘못을 한 걸까요.” 울산에 자기 집을 가진 강 씨조차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는 건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청년들의 눈에 기성세대는 이미 부동산으로 자산 증식을 실컷 누렸으면서, 자신들 세대에게선 그 기회조차 빼앗고 있다는 분노가 배어 있었다. 장 교수는 이에 대해 “이미 부동산 막차를 놓쳐버렸다는 박탈감은 청년의 일생을 따라다닐 후유증을 남겼다”며 “적어도 부동산정책을 논할 때 청년 세대는 더 이상 극과 극이 아닐 수 있다. 같은 아픔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극과 극은 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이소연 always99@donga.com·이기욱 기자 ※ 동아닷컴 이용자들은 위의 링크를 클릭하여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슈에 대한 본인의 성향을 측정해 볼 수 있습니다.네이버·다음 이용자들은 URL을 복사하여 검색창에 붙여넣기 하시면 됩니다.}
동남아시아에서 약 21만 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필로폰 6.3㎏을 밀수해 국내로 유통한 마약판매조직원 등 20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동남아시아에서 필로폰 6.3㎏을 밀수해 국내로 반입해 판매한 총책 A 씨를 지난달 26일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송환하고 이달 5일 구속 송치했다”고 11일 밝혔다. 경찰은 A 씨의 지시를 받고 필로폰을 국내로 운반한 공범 B 씨 등 조직원 11명과 투약자 등 총 20명도 검거했다. 경찰에 따르면 A 씨는 해외에 도피하며 마약을 국내에 유통한 ‘공급 총책’이다. 지난해 3월부터 8개월간 4명의 조직원과 함께 다섯 차례에 걸쳐 210억 원 상당의 필로폰 6.3㎏을 밀수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는 21만 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A 씨 등은 경찰의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인터넷 사이트에 구인광고를 올리고 운반책을 모집해 마약을 국내로 유통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관계자는 “필로폰을 개 구충제로 속인 뒤 이를 들고 입국하면 수수료를 주겠다고 하고 항공권과 숙소를 제공하는 식으로 운반책을 모집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지난해 3월부터 국내에 유통된 필로폰 2㎏의 행방을 역추적하며 포위망을 좁혔다. 마약 구매자를 통해 판매책을 특정하고, 판매책을 잡아들여 유통책 B 씨 등 공범을 파악하는 식이다. 결국 경찰은 지난해 4월 B 씨를 검거하며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그가 밀반입하려던 4.3㎏ 상당의 필로폰 전량을 압수하고, 총책 A 씨의 신원을 파악했다. 당시 경찰이 압수한 필로폰은 14만 명가량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현지 수사기관과 협조해 도피 중인 공범도 검거에 나설 방침”이라고 밝혔다.이소연기자 always99@donga.com}
한 피자 프랜차이즈 회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매출이 떨어졌다는 이유를 들어 할인 행사를 진행하면서 비용을 100% 가맹점주에게 떠넘기고, 항의하는 점주에게 폭언을 해 논란이 일고 있다.●2년 간 할인 행사 비용 가맹점주에 100% 떠넘기기 의혹 10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공정거래위원회는 피자 프랜차이즈 A 사의 가맹사업법 위반 의혹에 대한 신고를 접수해 조사에 착수했다. A 사는 2018년 10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총 6차례 할인 행사를 진행하면서 적게는 1500원에서 많게는 1만 원에 이르는 비용을 점주들에게 전부 부담하도록 했다. 가맹사업법은 프랜차이즈 본사가 가맹점주에게 비용을 부담하도록 강요하는 것을 불공정 거래 행위로 정해 금지하고 있다. A 사는 2018년 10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는 피자나 샐러드, 닭다리 등을 주문하면 1500원에서 3500원을 할인해 주는 행사를 지속적으로 진행했다. 이때 A 사는 가맹점에 할인 행사와 관련해 지원금을 주지 않는 등 사실상 가맹점이 비용을 부담하도록 했다. A 사는 사전 논의 없이 행사 시작 일주일 전 쯤 가맹점에 행사 진행 사실 등을 통보했다. A 사는 지난해 11월 중순부터는 “미디엄 피자를 두 판 주문하는 고객에게 1만 원을 할인해주는 행사를 시작한다”면서 할인 액수를 큰 폭으로 늘렸다. 당시 A 사는 점주들에게 보낸 공문에서 “총체적으로 힘든 시기에 고객들 소비에도 금전적 부담이 많을 것이라 판단된다”며 “대폭 할인율을 적용해 소비 심리에 부응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행사가 진행되던 지난해 12월 한 가맹점주는 A 사 대표에게 항의 이메일을 보냈다. 가맹점주가 피자 2판 가격에서 할인 비용, 식재료비와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수수료를 제외하면 사실상 남는 돈이 없다는 것이었다. 가맹점주는 동아일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본래 미디엄 피자 2판 가격은 3만4000 원이다. 여기서 할인 비용 1만 원에 식재료비 1만여 원, 배달 앱 수수료 3500원, 주문중개 수수료 1100원 등을 제외하면 공과금과 인건비, 가게 월세를 내기도 빠듯하다”고 토로했다. A 사 가맹점주들은 “할인 행사를 통해 본사는 이득을 보고 가맹점은 손해를 짊어지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한 가맹점주는 “점주는 피자 도우 한 판을 팔 때마다 본사에 일정 금액을 ‘로열티’로 지급해야 한다”며 “본사가 1+1 행사를 진행해 피자 판매량이 늘어나면 로열티를 더 받고, 점주는 할인비를 감당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A 사는 지난해 12월 말 가맹점주들에게 대표 명의로 된 공문을 보내 “극심한 매출 부진을 극복하고자 진행했던 프로모션”이라며 “프로모션 중 판매된 미디엄 피자에 대해 (일부 금액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고 알렸다. 하지만 가맹점주는 올 1월 공정위에 A 사를 신고했다. 가맹점주는 “같은 일이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신고한 것”이라며 “지금도 A 사는 또 다시 할인 프로모션을 진행하면서 가맹점주에게 비용 100%를 떠넘기고 있다”고 했다. ● 항의하는 가맹점주에 본사 직원이 폭언 욕설 A사 직원이 항의 이메일을 보낸 가맹점주를 상대로 욕설과 폭언을 한 사실도 확인됐다. 동아일보가 입수한 4분 30초 분량의 통화녹음에서 부장 B 씨는 점주에게 “죽여버리겠다”는 등의 폭언과 욕설을 퍼부었다. 부장 B 씨는 항의하는 점주에게 심한 욕설을 반복하며 “니네 프랜차이즈 대접 받고 들어왔니?” “니네 얼마주고 들어왔니” “”내가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줄 알아? 니네 같은 XX들 다 물을 멕이면서 여기까지 온거야“ 등의 폭언을 했다. 송성현 법무법인 한누리 변호사는 ”가맹점 사업자에게 부당하게 비용 부담을 강요하는 행위는 가맹사업법 12조의 불공정 거래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된다“고 했다. 정종열 전국 가맹점주협의회 자문위원장은 ”본사가 가맹점주들과 판촉 행사 계획, 비용 분담 등을 사전에 논의하고, 가맹점에 할인에 따른 손해를 보전해주는 지원금을 주는 게 일반적“이라며 ”가맹점주에게 할인 비용을 떠넘기는 건 공정위의 가맹사업법 개정안 취지에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공정위가 지난해 9월 입법예고한 가맹사업법 개정안에는 프랜차이즈 본사가 점주들의 동의를 받지 않고 판촉 행사를 벌이는 것 자체를 금지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갑질 논란에 대해 A 사 관계자는 ”미디엄 피자 할인 행사에 대한 반발이 있었던 뒤로 일부 가맹점에 한 판당 1000원 남짓한 금액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A 사 관계자는 ”(할인 행사로) 메뉴 하나를 더 팔게 되면 결국 매장도 이익을 보게 된다. 그동안은 가맹점들의 클레임(항의)도 없었다“고 해명했다. 가맹점주에게 전화로 폭언을 했던 B 씨는 ”(갑질) 의도로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라며 ”당시 근무 시간이 아닌 오후 8~10시에 점주로부터 여러 차례 전화가 걸려 와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상황이었다“고 해명했다.고도예기자 yea@donga.com·이소연기자 always99@donga.com}
“차로가 폐쇄된 줄 정말 몰랐습니다. 회의 시간이 다 돼서요, 한 번만 유턴하면 안 될까요.” 8일 오전 10시경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 여느 때처럼 출근길에 오른 50대 운전자 A 씨는 사직로에서 시청 방향으로 핸들을 꺾어 세종대로로 진입한 순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시청 방면으로 연결된 광화문광장 서쪽 세종대로가 광장 재구조화 공사로 폐쇄되며 길이 막힌 상황. 오도 가도 못한 채 도로 한가운데 멈춰선 A 씨는 결국 차량을 돌려 불법 유턴을 시도했다. 교통경찰이 부랴부랴 A 씨 차량 앞에 다가가 “여기로 나오시면 어떡하냐”고 막아 세웠지만 방법이 없었다. A 씨 차량 앞뒤로 길게 늘어선 차량들은 연신 경적을 울리고 있었다. 서울시가 광장 서쪽 세종대로를 폐쇄한 이후 평일 첫 출근길에 오른 시민들은 도심 곳곳에서 혼란을 겪었다. 앞서 서울시는 6일 0시부터 광화문광장 서쪽 도로를 폐쇄하고 동쪽 세종대로에서 양방향 통행이 이뤄지도록 교통체계를 개편했다. 공사가 진행되는 세종대로 전 구간 평균 통행속도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사직로 등 광장 일대는 오전 출근길 내내 정체가 이어졌다. 실제 이날 오전 사직로에서 광화문광장 방향으로 가는 차량의 평균 속도는 지난주에 비해 13%가량 감소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공사가 시작되기 전인 1일 오전(7∼9시) 시속 21.3km였던 평균 속도는 8일 18.6km로 줄었다. 사직로 일대 도로에 차량 정체가 극심해지면서 자하문로 일대를 지나는 차량들도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이날 동아일보 취재팀과 동행한 김태완 중앙대 도시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차량 통행량보다 도로 용량이 줄어들면서 발생한 정체”라고 진단했다. 서울시는 서측 차로를 폐쇄하면서 우회전 차로 2개를 1개로 줄였다. 김 교수는 “교통신호 체계 개선과 우회로 등 차량 분산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인근 우회로로 차량이 몰리며 골목길에도 혼잡이 가중됐다. 오후 7시경 세종로공원 앞 도로에는 차량 접촉 사고가 발생했다. 현장에 나온 보험사 관계자는 “갑자기 차량이 몰리며 서로 먼저 가려다 사고가 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고로 일대 도로는 5분가량 차량 정체가 극심했다. 한 교통경찰은 현장점검에 나온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과 만나 “세종로 교차로에서 우회전 차량과 좌회전 차량이 마주치며 충돌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우려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통연구원은 “기존에는 세종대로 중앙에 놓인 광화문광장이 분리대 역할을 하며 좌회전 차량과 우회전 차량을 분산시켜 주는 효과를 냈다”며 “도로가 동쪽으로 집중되면서 세종로 교차로에서 좌회전, 유턴, 우회전 차량이 몰려 차량 간 충돌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충고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7∼9개로 줄면서 유턴할 때 여유 공간이 줄어든 건 사실”이라며 “교통 신호 개선 등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이소연 always99@donga.com·강승현·이지윤 기자}
“차로가 폐쇄된 줄 정말 몰랐습니다. 회의 시간이 다 돼서요, 한 번만 유턴하면 안 될까요…” 8일 오전 10시경 서울 종로구 사직로 정부서울청사 앞. 여느 때처럼 출근길에 오른 50대 운전자 A 씨는 사직로에서 시청 방향으로 핸들을 꺾어 세종대로로 진입한 순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기존에 시청 방면으로 연결된 광장 서쪽 세종대로가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공사로 폐쇄되며 길이 막힌 상황. 오도 가도 못한 채 도로 한가운데 멈춰선 A 씨는 결국 차량을 돌려 불법 유턴을 시도했다. 교통경찰이 부랴부랴 A 씨 차량 앞에 다가가 “여기로 나오시면 어떡하냐”고 막아 세웠지만 방법이 없었다. A 씨 차량 앞뒤로 길게 늘어선 차량들은 연신 경적을 울리고 있었다. 서울시가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공사에 착수하며 광장 서쪽 세종대로를 폐쇄한 이후 첫 출근 길에 오른 시민들은 도심 곳곳에서 혼란을 겪었다. 앞서 서울시는 6일 0시부터 광화문광장 서쪽 도로를 폐쇄하고 동쪽 세종대로에서 양방향 통행이 이뤄지도록 교통체계를 개편했다. 공사가 진행되는 세종대로 전 구간 평균 통행속도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사직로 등 광장 일대는 오전 출근길 내내 교통정체가 이어졌다. 실제 이날 오전 사직로에서 광화문광장 방향으로 가는 차량의 평균 속도는 지난주에 비해 13%가량 감소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재구조화 공사가 시작되기 전인 1일 오전(7~9시) 21.3㎞였던 이 구간 평균 속도가 8일에는 18.6㎞로 줄었다. 사직로 일대 도로에 차량 정체가 극심해지면서 인근 자하문로 일대를 지나는 차량들도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시에 따르면 이날 경복궁역에서 자하문로로 향하는 차량의 통행속도도 지난주에 비해 7%가량 준 18.6㎞였다. 이날 오전 동아일보 취재팀과 세종대로 일대를 동행한 김태완 중앙대 도시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차량 통행량보다 도로 용량이 줄어들며 발생한 정체”라고 진단했다. 실제 서울시는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공사로 서측차로를 폐쇄하면서 우회전 차로 2개를 1개로 줄였다. 김 교수는 “당분간은 교통 정체 현상이 지속될 수 있다. 교통신호 체계 개선과 우회로 등 차량 분산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광화문광장 재구조화로 동쪽 교차로에 차량이 집중되면서 차량 충돌이 발생하는 문제가 빚어질 수 있단 우려 섞인 지적도 나왔다. 한 교통경찰은 현장점검에 나온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과 만나 “세종로 삼거리에서 우회전 차량과 좌회전 차량이 마주치며 충돌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우려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통연구원은 “기존에는 세종대로 중앙에 놓인 광화문광장이 분리대 역할을 하며 좌회전 차량과 우회전 차량을 분산시켜주는 효과를 냈다”면서 “하지만 도로가 동쪽 방향으로만 집중되면서 세종로 교차로에서 좌회전·유턴·우회전 차량이 몰려 차량 간 충돌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충고했다. 시 교통운영과 관계자는 이에 대해 “9~11개 차로로 이어진 기존 세종대로가 재구조화 공사로 7~9개 차로로 줄면서 유턴할 때 여유 공간이 줄어든 건 사실”이라며 “교통 신호 개선 등 대안을 마련해 해결 방안을 고민해보겠다”는 밝혔다. 서 권한대행도 “광화문 인근 도로 구조가 바뀌다보니 운전자를 포함한 시민 불편이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 교차로, 신호등 운영방식을 개선해 시민 불편을 줄이겠다”고 말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