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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호야, 잘 가라. 가더라도 아빠는 용서하지 말고 가라.” 9일 오후 1시경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 올해 4월 경기 평택항에서 화물컨테이너 적재 작업을 하다 목숨을 잃은 이선호 씨(23)의 아버지 이재훈 씨(60)는 흐느끼며 아들을 목 놓아 불렀다. 유족과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가 봉행한 49재에서 아버지는 바닥에 주저앉아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 유족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고인의 장례는 아직 치르지 못하고 있다. 이 씨는 “오늘 아들의 영혼을 떠나보냈다”며 “육신은 보내지 못하는 아비의 찢어지는 마음을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겠나”라며 오열했다. 대학 등록금을 벌려고 아르바이트하다 숨진 이 씨처럼 청년들이 산업현장에서 목숨을 잃는 사고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의 외주업체 직원 김모 씨(당시 19세)와 2018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김용균 씨(당시 24세) 등 희생자가 나올 때마다 당시에만 주목받을 뿐 본질적인 개선책은 나오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더불어민주당 장철민 의원실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구의역 사고가 발생했던 2016년부터 올해 3월까지 만 18∼29세 청년 근로자는 모두 249명이 업무 도중 사고로 숨을 거뒀다. 이들이 목숨을 잃은 원인은 첫 번째가 ‘끼임’이었고 두 번째가 ‘떨어짐’이었다고 한다. 이런 청년들은 대부분 숙련도가 떨어지는 근로자인 경우가 많다. 민주당 윤준병 의원실이 고용노동부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18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국내에서 산재사고 사망자는 모두 2486명이다. 사망자 10명 가운데 6명꼴로 근속 기간이 6개월 미만인 미숙련 노동자들이었다. 산업현장에서 일하는 20대 청년들은 젊다는 이유로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되는 경우가 잦다고 하소연했다. 건설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했던 선모 씨(24)는 지난해 여름 한 현장에서 느닷없이 “신호수로 일하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선 씨는 “신호수는 건설현장을 통제하는 중요한 역할인데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한 채 투입됐다. 일이 익숙하지 않아 오가는 건설장비에 부딪혀 온몸에 멍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20대 근로자 A 씨도 “젊다는 이유로 ‘잡부’처럼 이리저리 투입돼 보조 업무를 떠맡는 일이 태반”이라고 말했다. 부산에 사는 근로자 이모 씨(29)는 “청년 근로자에게 기존 업무 외 추가 업무를 시키는 ‘악습’이 아직도 현장에 남아 있다”며 분개했다. 이선호 씨 역시 사고 당시 평소 본인의 업무가 아닌 컨테이너 청소를 하다가 사고를 당했다. 고인의 49재에 참석한 친구 이철우 씨(23)는 “현장에 가면 청년 근로자에게는 하루는 페인트칠, 다음 날은 철제 나르기 등 매번 다른 일을 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2018년 경기 가평의 한 건설현장에서 아들 권지웅 씨(당시 28세)를 잃은 어머니 심인호 씨(54)는 “이선호 씨 뉴스를 보는 순간 아들이 떠올라 한참을 울었다”며 “다시는 젊은 아이들이 헛되이 숨지는 일이 없도록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권 씨는 당시 보조로 일하다 화재가 발생하자 현장에 익숙한 다른 직원과 달리 탈출구를 찾지 못해 숨을 거뒀다.김수현 newsoo@donga.com·이기욱·이윤태 기자}
요양병원을 운영하면서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부당 요양급여를 받은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전 검찰총장 장모 최모 씨(75)에 대해 검찰이 징역 3년을 구형했다. 서울중앙지검은 31일 의정부지법 형사합의13부(부장판사 정성균) 심리로 열린 최 씨에 대한 결심 공판에서 “최 씨가 병원 운영에 관여한 것이 명백하다. 다른 동업자들이 요양급여를 부정수급하는 것을 적극 저지하지도 않았다”며 구형 이유를 밝혔다. 이에 대해 최 씨는 법정에서 “병원을 개설할 때 돈을 꿔줬고, 이 돈을 받기 위해 병원에 관심을 뒀을 뿐 운영에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최 씨의 변호인도 “과거 고양지청 검사들이 면밀히 살펴 최 씨를 무혐의로 판단했던 건”이라며 “서울중앙지검은 새로운 증거가 없는데도 기소했다. 억울하지 않게 처분해 달라”고 강조했다. 최 씨는 2013년 동업자 3명과 함께 의료재단을 만든 뒤 경기 파주시에 한 요양병원을 설립했다. 이 병원은 건강보험공단에서 요양급여를 받을 수 있는 의료법상 의료기관에 해당하지 않았지만 2013년부터 2년간 22억9000여만 원을 타냈다. 동업자 3명은 2017년 유죄를 확정받았으며 최 씨는 2014년 이사장직에서 물러나면서 경영진으로부터 “병원 운영에 관한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책임면제각서’를 받았다는 이유로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고도예 yea@donga.com / 김수현 기자}
“코인이 뭔지도 모르고 그냥 3배로 불려 준다기에….” 중국 국적인 식당종업원 김모 씨(49)는 2월 초 단골 미용실 원장의 권유로 7500만 원을 A사에 투자했다. 10년 전부터 한국에서 일하며 모은 전 재산이었다. 원장은 처음엔 “600만 원을 넣으면 1년 안에 원금의 3배를 벌 수 있다”고 했다. 초기엔 실제로 10만 원 상당의 ‘코인’이 차곡차곡 되돌아왔다. 코인이 뭔지는 몰라도 돈이 불어나는 재미에 김 씨는 예금과 전세금, 남편의 월급까지 투자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A사는 돌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계좌의 입·출금을 막고 “돈을 돌려 달라”고 해도 외면했다. 김 씨는 “중국에 있는 아들이 결혼할 때 보내주려고 모은 돈”이라며 “몸무게가 10kg이나 빠졌다. 남편은 이혼을 요구한다”며 울먹였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유사수신 등 혐의로 A사 관련자 14명을 입건했다”고 최근 밝혔다. A사는 ‘코인에 투자하면 원금 이상 불려준다’며 다단계 방식으로 투자자를 모았다. 관련된 추산 피해자만 6만 명이 넘고 피해 규모도 3조8500억 원에 이른다. 2018년 이후 발생한 가상화폐 관련 범죄 피해액의 2배를 웃돈다. 가상화폐 관련 범죄가 기승을 부리며 서민들의 쌈짓돈까지 빼앗고 있다. 국민의힘 김용판 의원실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 62건이던 가상자산 범죄 단속 건수는 지난해 333건으로 2년 만에 5배 가까이 늘었다. A사와 같은 수법의 범죄는 곳곳에서 벌어진다. 2월 말 가정주부 B 씨도 “코인에 투자하면 8개월이면 원금의 250%를 벌 수 있다”는 지인의 말에 현혹돼 한 업체에 5000만 원을 넣었다. 해당 업체 역시 처음엔 수익금을 꼬박꼬박 주다가 3개월 정도 뒤부터 의심스러운 낌새를 보였다고 한다. 추가 투자를 막고 매달 주겠다던 수익금도 주지 않았다. 결국 B 씨는 5월 이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 현재 그에게 남은 것은 휴지조각에 불과한 100만 원 상당의 가상화폐뿐이다. 5월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해당 업체로부터 투자한 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의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가상화폐 관련 범죄가 계속해서 늘어나자 경찰은 적극 대응에 나서고 있다. 김용판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경찰은 최근 경기 남부와 부산 등 주요 시도 경찰청에 ‘금융범죄전담수사팀’ 신설을 추진하기로 했다. 경찰 측은 제출한 자료에서 “경찰청 내 가상자산 수사를 지원하며 자료 분석 등을 전담할 인력을 확보할 예정”이라며 “2022년에 사이버범죄 전문수사관 75명 증원을 목표로 하는 관련 안을 행정안전부에 제출해 현재 정부에서 심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거액의 수익을 약속하며 가상화폐에 투자를 종용하는 유사수신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며 “거래소를 통하는 일반적인 가상화폐 거래 방법에서 벗어나 터무니없는 수익을 장담하는 권유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박종민 blick@donga.com·김수현 기자}
“코인이 뭔지도 모르고 그냥 3배로 불려 준다기에….” 중국 국적인 식당종업원 김모 씨(49)는 2월 초 단골 미용실 원장의 권유로 7500만 원을 A사에 투자했다. 10년 전부터 한국에서 일하며 모은 전 재산이었다. 원장은 처음엔 “600만 원을 넣으면 1년 안에 원금의 3배를 벌 수 있다”고 했다. 초기엔 실제로 10만 원 상당의 ‘코인’이 차곡차곡 되돌아왔다. 코인이 뭔지는 몰라도 돈이 불어나는 재미에 김 씨는 예금과 전세금, 남편의 월급까지 투자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A사는 돌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계좌의 입·출금을 막고 “돈을 돌려 달라”고 해도 외면했다. 김 씨는 “중국에 있는 아들이 결혼할 때 보내주려고 모은 돈”이라며 “몸무게가 10kg이나 빠졌다. 남편은 이혼을 요구한다”며 울먹였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유사수신 등 혐의로 A사 관련자 14명을 입건했다”이라고 최근 밝혔다. A 사는 ‘코인에 투자하면 원금 이상 불려준다’며 다단계 방식으로 투자자를 모았다. 관련된 추산 피해자만 6만 명이 넘고 피해규모도 3조8500억 원에 이른다. 2018년 이후 발생한 가상화폐 관련 범죄 피해액의 2배를 웃돈다. 가상화폐 관련 범죄가 기승을 부리며 일반 서민들의 쌈짓돈까지 빼앗고 있다. 국민의힘 김용판 의원실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 62건이던 가상자산 범죄 단속건수는 지난해 333건으로 2년 만에 5배 가까이 늘었다. A사와 같은 수법의 범죄는 곳곳에서 벌어진다. 2월 말 가정주부 B 씨도 “코인에 투자하면 8개월이면 원금의 250%를 벌 수 있다”는 지인에 현혹돼 한 업체에 5000만 원을 넣었다. 해당 업체 역시 처음엔 수익금을 꼬박꼬박 주다가 3개월 정도 뒤부터 의심스러운 낌새를 보였다고 한다. 추가 투자를 막고 매달 주겠다던 수익금도 주지 않았다. 결국 B 씨는 5월 이후 한 푼의 돈도 돌려받지 못했다. 현재 그에게 남은 것은 휴지조각에 불과한 100만 원 상당의 가상화폐 뿐이다. 5월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해당 업체로부터 C 회사로부터 투자한 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의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가상화폐 관련 범죄가 계속해서 늘어나자 경찰은 적극 대응에 나서고 있다. 김용판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경찰은 최근 경기남부와 부산 등 주요 시·도 경찰청에 ‘금융범죄전담수사팀’ 신설을 추진하기로 했다. 경찰 측은 제출한 자료에서 “경찰청 내 가상자산 수사를 지원하며 자료 분석 등을 전담할 인력을 확보할 예정”이라며 “2022년에 사이버범죄 전문수사관 75명 증원을 목표로 하는 관련 안을 행정안전부에 제출해 현재 정부에서 심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거액의 수익을 약속하며 가상화폐에 투자를 종용하는 유사수신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며 “거래소를 통하는 일반적인 가상화폐 거래 방법에서 벗어나 터무니없는 수익을 장담하는 권유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남양주=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그때 마당에 나갔다가 기절할 뻔했어요. 닭을 8마리나 죽여 놓았더라고. 나머지 애들도 상처투성이고. 사람까지 공격했다는데, 어디 무서워서 살겠어요.” 경기 남양주시 진건읍에서 목장을 운영하는 서모 씨(74)는 지난해 10월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 아직도 몸이 떨린다. 아침에 모이를 주려고 마당에 나갔더니 닭 11마리 가운데 8마리가 참혹하게 물어뜯겨 있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폐쇄회로(CC)TV 영상을 돌려 봤더니, 범인은 시커먼 대형견이었다. 오전 3시경 마당에 넘어와 닭장을 몸으로 들이받아 구멍을 낸 뒤 닭들을 공격했다. 서 씨는 “사람들이 버린 유기견들이 야생에 살며 거친 들개가 된 거 같다”고 말했다. 서 씨를 포함해 이곳 주민들은 평소에도 이런 들개들이 골칫거리였다. 목줄도 없이 으르렁거리면 성인도 두려워 피할 수밖에 없다. 그러던 와중에 22일 결국 진건읍을 방문했던 50대 여성이 개에게 물려 목숨을 잃는 참변까지 벌어졌다. 사고가 난 지역은 서 씨의 목장에서 1.7km 거리로,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최근 도시 외곽이나 농가 등에선 이런 들개들이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심각한 문제다. 몇몇 지역에 국한되지도 않는다. 25일 충북 청주시 오송읍에서는 올 2월 거리를 배회하며 가축을 공격하던 들개 3마리가 또다시 출몰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인천 연수구 관계자도 “유기견들이 문학산 인근 민가에서 기르는 닭들을 습격했다는 민원이 올해만 두세 차례 들어왔다”고 전했다. 소방청에 따르면 지난해 유기견 출몰 신고만 4만4078건에 이른다. 경기도로 한정해도 약 1만 건(2019년 기준)의 관련 신고가 접수됐다. 국립공원공단 측도 “북한산국립공원에서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유기견 289마리를 포획했다”며 “포획한 유기견 외에 아직 공원에 살고 있는 유기견이 더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유기견들이 야생에서 지내며 흉포해지는 만큼 우연히 마주쳤을 땐 자극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괜히 내쫓으려고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 오히려 자극을 받은 개들이 더 흥분한다. 이민균 중앙119구조본부 인명구조견센터 훈련관은 “개를 마주보며 천천히 뒷걸음칠 치며 피하는 게 가장 좋다”며 “혹시 개가 다가와 냄새를 맡으려 하면 격하게 반응하지 말고 가만히 서 있는 게 차라리 낫다”라고 조언했다. 어린아이들은 개들의 공격 대상이 되기 쉬운 만큼 절대적인 주의가 필요하다. 이 훈련관은 “개들은 본능적으로 아이들을 자기보다 낮은 서열로 인식하는 성향이 있다. 아이가 다가가거나 소리를 지르지 않도록 보호자가 잘 통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남양주=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그때 마당에 나갔다가 기절할 뻔했어요. 닭을 8마리나 죽여 놓았더라고. 나머지 애들도 상처투성이고. 사람까지 공격했다는데, 어디 무서워서 살겠어요.” 경기 남양주시 진건읍에서 목장을 운영하는 서모 씨(74)는 지난달 10월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 아직도 몸이 떨린다. 아침에 모이를 주려고 마당에 나갔더니 닭 11마리 가운데 8마리가 참혹하게 물어 뜯겨있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폐쇄회로(CC)TV 영상을 돌려봤더니, 범인은 시커먼 대형견이었다. 새벽 3시경 마당에 넘어와 닭장을 몸으로 들이받아 구멍을 낸 뒤 닭들을 공격했다. 서 씨는 “사람들이 버린 유기견들이 야생에 살며 거친 들개가 된 거 같다”고 말했다. 서 씨를 포함해 이곳 주민들은 평소에도 이런 들개들이 골칫거리였다. 목줄도 없이 으르렁거리면 성인도 두려워 피할 수밖에 없다. 그러던 와중에 22일 결국 진건읍을 방문했던 50대 여성이 개에 물려 목숨을 잃는 참변까지 벌어졌다. 사고가 난 지역은 서 씨의 목장에서 1.7km 거리로,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맞닿아 있었다. 최근 도시 외곽이나 농가 등에선 이런 들개들이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심각한 문제다. 몇몇 지역에 국한되지도 않는다. 25일 충북 청주시 오송읍에서는 지난해 가을부터 거리를 배회하며 가축을 공격하던 들개 3마리가 또 다시 출몰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인천 연수구 관계자도 “유기견들이 문학산 인근 민가에서 기르는 닭들을 습격했다는 민원이 올해만 두세 차례 들어왔다”고 전했다. 소방청에 따르면 지난해 유기견 출몰 신고만 4만4078건에 이른다. 경기도로 한정해도 약 1만 건(2019년 기준)의 관련 신고가 접수됐다. 국립공원공단 측도 “북한산국립공원에서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유기견 289마리를 포획했다”며 “포획한 유기견 외에 아직 공원에 살고 있는 유기견이 더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유기견들이 야생에서 지내며 흉포해지는 만큼 우연히 마주쳤을 땐 자극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괜히 내쫓으려고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 오히려 자극을 받은 개들이 더 흥분한다. 이민균 중앙119구조본부 인명구조견센터 훈련관은 “개를 마주보며 천천히 뒷걸음칠 치며 피하는 게 가장 좋다”며 “혹시 개가 다가와 냄새를 맡으려 하면 격하게 반응하지 말고 가만히 서 있는 게 차라리 낫다”라고 조언했다. 어린아이들은 개들의 공격 대상이 되기 쉬운 만큼 절대적인 주의가 필요하다. 이 훈련관은 “개들은 본능적으로 아이들을 자기보다 낮은 서열로 인식하는 성향이 있다. 아이가 다가가거나 소리를 지르지 않도록 보호자가 잘 통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남양주=김수현기자 newsoo@donga.com}
“개는 말을 못 하지만 진짜 주인이 맞으면 분명히 행동이 다를 겁니다.” 26일 오후 경기 남양주시의 한 불법 개 사육장에서는 특별한 현장 검증이 이뤄졌다. 사육장을 운영하는 A 씨와 개 한 마리를 대질시키는 자리였다. 경찰은 물론 경찰견훈련센터와 국립과학수사대 관계자, 민간 전문가 등이 참여해 상황을 지켜봤다. 이 개는 22일 인근 야산에서 50대 여성을 공격해 숨지게 만든 대형견이다. 풍산개와 사모예드가 섞인 혈통으로 몸무게는 30kg가량 된다. 해당 사육장은 사고 현장에서 약 20m 떨어져 있어, A 씨가 키우던 개가 아니냐는 의혹이 줄곧 일었다. 하지만 A 씨는 사건 발생 초기부터 “내가 키우던 개가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이에 경찰이 개가 A 씨를 만났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살펴보기로 한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A 씨가 해당 개에게 먹이를 주거나 직접 목줄을 끄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봤다”고 전했다. 한 개훈련 전문가는 “개는 세 살 아기처럼 유대관계를 맺은 사람에 대한 친밀감을 숨기기 어려워 유대관계가 있었다면 충분히 관계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날 현장 상황을 찍어 개의 반응을 집중 분석하는 한편, 인근 폐쇄회로(CC)TV 영상 등을 확보해 수사를 이어가기로 했다.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할머니, 이거 봐요. 여기 내 이름이 있네. 이게 뭐야?”지난해 1월 8일. 서울에 사는 우진이 앞으로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법원 직인이 찍힌 서류라 조심스레 열어 보다 할머니 정모 씨는 까무러치는 줄 알았다. 세상을 떠난 외할머니의 빚을 우진이가 갚아야 한다는 내용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영문도 모르는 우진이는 천진한 얼굴로 고개만 갸웃거렸다.○ 친모가 어린 자식에게 빚 떠넘겨서류상 우진이가 갚을 돈은 2300만 원. 폐지 주워 생계를 잇는 기초생활수급자인 정 씨로선 엄두가 안 났다. 하지만 할머니는 어떻게든 손자가 뒤집어쓴 굴레를 벗겨주고 싶었다. 박카스 한 박스 사들고 알음알음 찾아간 법무사. 사정 끝에 최소비용 50만 원만 받고 일을 맡아주기로 했다.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그 금액도 정 씨에겐 감당이 쉽진 않았다. 정 씨는 “우진이를 위해 새벽 4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해 모은 쌈짓돈을 다 털었다”고 했다. 지난해 2월 상속포기를 신청한 뒤에도 난관은 이어졌다. 법률상 상속을 포기하려면 친권자가 나서야 했다. 우진이를 떠난 뒤 10년 넘게 연락 없는 엄마 송모 씨의 인감증명서와 동의서가 필요했다. 법원은 “해당 서류가 없으면 절차를 밟을 수 없다”고 못 박았다. 할머니는 애가 탔다. 아무리 수소문해도 송 씨 행방을 알 길 없었다. 우진이 손을 부여잡고 서류상 주소지인 충북 청주에도 찾아가봤다. 집주인은 “한 달 전쯤 이사 갔다”며 고개를 저었다. 다행히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가 정 씨를 도왔다. 우진이의 딱한 사정을 알고 송 씨의 친권을 일시 정지하는 법적 절차를 밟아줬다. 길고 긴 상속포기 소송은 13개월 만인 올해 2월 25일 마무리됐다. 이제 우진이는 빚에서 해방됐다. 하지만 할머니는 마음의 빚이 남았다. 공동 채무자였던 형 백주환(가명·22) 씨에게 우진이 몫의 빚까지 넘어갔단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빚이란 게 무섭습디다. 불쌍한 우리 애 살리려 급한 불을 끈 건데, 그렇게 달라붙어 옮겨갈 줄 누가 알았겠어? 얼굴도 모르지만 우진이랑 형제라는데. 그쪽 생각하면 두 발 뻗고 잘 수가 없네요. 자꾸 죄스러워서 눈물만 쏟아져.”○ 있는지 몰랐던 동생 빚 떠안은 청년 “아버지, 이것 좀 보세요. 이게 뭐예요?” 3월 10일 주환 씨는 창백한 표정으로 아버지 백모 씨(48)에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아버지는 다르지만 친모인 송 씨가 낳은 남동생 우진이가 상속을 포기했다는 법원 서류였다. 그 바람에 주환 씨 역시 존재도 몰랐던 외할머니의 빚을 모두 떠안았다는 내용이었다. 주환 씨는 지금껏 동생이 있는 줄도 몰랐다. 그 엄마란 사람 역시 세 살 때 사라진 뒤 생사도 몰랐다. 다만 주환 씨 몸엔 엄마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 송 씨가 담뱃불로 자기 자식의 다리를 지진 자국이다. 백 씨는 그제야 가슴을 쳤다. “실수했구나 싶었어요. 사실 지난해 1월 제가 법원 통지를 받았거든요. 애 엄마가 상속을 포기해 빚이 넘겨졌단 거였죠. 근데…, 차마 주환이한테 말을 꺼내지 못했어요. 애를 워낙 학대해 엄마 얘기만 꺼내도 낯빛부터 변하는데. 어떻게든 혼자 조용히 해결해 보려 했던 건데. 이 지경이 될 줄 어찌 알았겠어요.” 주환 씨는 억장이 무너졌다. 남보다 못한 엄마, 더구나 본 적도 없는 외할머니. 그 빚을 왜 내가 갚아야 한단 말인가. 그나마 아직 실낱같은 가능성은 남아 있다. 우진이와 달리 주환 씨는 성인이라 ‘특별한정승인’ 소송을 해볼 수 있다. 특별한정승인이란 상속인이 빚을 인지한 시점부터 3개월 안에 신청하면 재산을 넘는 부채는 상속받지 않도록 구제해 주는 것이다. 대한법률구조공단 측은 “빚을 몰랐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쉽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가능성은 50%는 된다고 본다”고 했다.‘빚의 사슬’… 사촌까지 상속포기 신청해야 면책 美-英선 상속집행자가 알아서 정리입법조사처 “친족 빚 확인 어려워 현실에 맞게 법개정 서둘러야”“물려받은 빚을 포기하시려면 자녀와 배우자뿐 아니라 형제자매, 사촌까지 모두 함께 법원에 상속 포기 신청을 하셔야 합니다.”최근 한 법률 상담 사이트에 한 상속 전문 변호사가 띄운 안내 글의 일부다. 이 문장만 봐도 ‘빚의 대물림’이란 사슬이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 엿볼 수 있다. 현행 민법은 1순위인 자녀와 배우자를 시작으로 사촌 등 총 4순위에 걸쳐 상속인을 규정하고 있다.반면 미국과 영국 등은 미성년뿐 아니라 성인도 원칙적으로 빚을 물려받지 않는다. 개인이 생전에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 재산을 처분할 집행자를 선임해두면 그가 알아서 재산 가운데 빚을 정리한다. 만약 유언을 남기지 않고 갑작스레 숨지더라도 사망신고 뒤 법원이 집행인을 지정해 재산에서 빚을 처분해준다. 주환 씨나 우진이처럼 얼굴도 모르는 가족의 빚을 덜컥 떠안을 가능성이 없다.국회입법조사처의 김성호 조사관은 “친족에게 빚이 자동으로 대물림되는 현행 민법에선 망자의 빚을 조사하고 처분할 의무를 개인이 짊어져야 한다. 반면 미국은 그 책임을 법원이 지정한 집행자가 진다”며 “현대사회에선 먼 친족이라면 빚이 있는지조차 확인이 어렵다. 현실에 맞춰 법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역시 지난해 11월 가족공동체가 해체된 현대사회에서 현행 상속제도가 가진 문제점을 짚었다.가정법원 판사 출신인 배인구 변호사는 “생전에 재산과 부채를 처분하는 방안을 마련해놓는 ‘유언제도’를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미국은 시민의 95%가 유언을 남겨 재산은 물론이고 부채까지 처분할 방안을 미리 마련한다”고 말했다. 이런 문화가 정착되면 행정비용도 줄고 상속인이 뒤늦게 빚을 떠안을 위험 부담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설명이다. 이소연 always99@donga.com·조응형·김수현 기자}
“승객한테 맞아서 합의금을 받은 적이 있었어요. 그때부터 이거 돈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지난해 11월 서울 노원구에서 한 택시기사가 술에 취한 승객과 시비가 붙었다는 112신고가 접수됐다. 사건을 조사한 경찰들은 택시의 블랙박스 영상에 묘한 장면을 확인했다. 택시기사는 승객이 잠든 걸 확인한 뒤 택시를 세워두고 근처 편의점에 가는 모습이었다. 편의점에선 즉석 죽과 고추참치 등을 구입했다고 한다. 수상한 낌새를 눈치 챈 경찰은 계좌 거래 내용과 택시 운행 기록 등을 토대로 피해자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증거를 바탕으로 추궁했더니 그제야 택시기사는 “내가 토사물처럼 꾸며 놓고 돈을 받아내려 했다”고 털어놨다. 서울 노원경찰서는 “60대 택시기사 A 씨를 공갈 혐의로 구속 수감했다”고 25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 씨는 2019년 2월부터 승객이 차에서 구토하고 자신을 폭행한 것처럼 속여 22명에게서 약 1290만 원을 갈취한 혐의다. A 씨는 주로 유흥가를 돌며 만취 승객을 태운 뒤 범행을 저질러왔다. 부서진 안경을 준비해 “얼굴을 때리는 바람에 부서졌다”고 속이기도 했다. 때로 블랙박스 확인을 요구하면 “그냥 달아둔 거라 녹화되지 않는다”고 핑계를 댔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처음엔 A 씨가 극구 부인했지만 블랙박스 영상 등을 보여주자 혐의를 인정했다”고 전했다.김수현기자 newsoo@donga.com}
포니정재단이 고려대와 협약식을 맺고 매년 3억6000만 원씩 5년 동안 최대 18억 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고려대는 “24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본관에서 ‘한국학 장학·연구기금 기부 협약식’을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에는 정진택 총장과 김철수 포니정재단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 포니정재단은 고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을 기리며 2005년 11월 설립된 비영리 공익재단이다. 김 이사장은 “한국학이 활발히 연구되고 학문의 깊이가 더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 총장은 “정 명예회장의 도전정신과 인재 중시 철학을 이어받아 한국학 분야에서 우수 연구자를 육성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화답했다.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경기 남양주시의 한 야산에서 50대 여성이 목줄이 끊어진 대형견에 물려 사망했다. 개 주인이 누군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경기 남양주북부경찰서는 “22일 오후 3시 25분경 경기 남양주시 진건읍의 한 야산에서 A 씨(58)가 개에 물려서 사망해 현재 견주를 추적 중”이라고 23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 씨는 이날 지인의 공장을 방문해 “잠시 산책하겠다”며 공장 앞 야산으로 나갔다. 하지만 A 씨는 30분도 되지 않아 목 뒤에 큰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며 기어서 내려왔다. A 씨를 발견한 공장 직원은 즉시 119에 신고했다. 경찰은 인근에서 입과 털 주변에 피를 묻힌 채 목줄도 없이 배회하는 대형견을 발견했고, 공장 폐쇄회로(CC)TV를 통해 개가 A 씨를 무는 장면을 확인한 후 개를 포획했다. A 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사망했다. A 씨가 물린 곳과 불과 20m 떨어진 위치에서는 불법 개 사육장이 발견됐다. 사육장 안에는 20여 마리의 개들이 철창 안에 가둬져 있었으며 일부 소형견들은 철창 밖에 목줄이 묶인 채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사육장 주인 B 씨에게 A 씨를 공격한 대형견을 보여줬지만 B 씨는 “처음 보는 개”라며 “사육장은 분양 목적으로 지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건 당시 B 씨는 사육장에 없었다고 한다. A 씨를 공격한 개는 풍산개와 사모예드를 합친 잡종견으로, 몸길이 150cm에 무게는 30kg가량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 개가 사육장에 있던 개들과 견종이 다르고, 목 주변이 장기간 목줄로 바짝 조여져 있어 일부 조직이 괴사한 점 등으로 볼 때 다른 견주가 오래전 유기한 개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해당 견주가 파악되면 과실치사 혐의로 수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불이 난 집에 할머니 혼자 사는데…. 거동도 불편하신데 어떡해요.” 22일 오후 1시경 경기 고양시 중산동의 한 아파트 화재 현장. “6층에서 불이 났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일산소방서 119구조대 이창준 소방교(40)는 연기로 가득한 아파트 안으로 향했다. 6층 현관문을 열었을 때 집 안은 불길과 연기로 한 치 앞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할머니가 혼자 사신다”는 주민들의 말이 이 소방교의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방 한 칸은 전부 불에 타버려 재만 남은 상황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바로 옆 안방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침대 위에 쓰러져 있는 80대 A 씨가 눈에 들어왔다. 이 소방교는 산소마스크를 씌울 겨를도 없이 이불로 A 씨를 감싸고 동료 대원 6명과 함께 1층까지 내달렸다. 현재 A 씨는 몸 전체에서 40%가량 중화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불이 난 집에 할머니 혼자 사는데… 거동도 불편하신데 어떡해요.” 22일 오후 12시 59분경 경기 고양시 중산동의 “아파트 6층에 불이 났다”는 신고 전화가 울렸다. 불이 난 아파트 밖에서는 대피한 주민들이 불길을 바라보며 애만 태우고 있었다. 현장에 출동한 일산소방서 119구조대 1팀 이창준 소방교(40)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6층에서 시작된 불길에서 나온 검은 연기는 바람을 타고 11층짜리 건물 꼭대기인 옥상까지 집어삼키고 있었다. 불길이 시작된 6층 현관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서자 검붉은 불길과 연기가 뒤섞여 한 치 앞을 볼 수 없었다. 방 한 칸은 전부 불에 타버려 재만 남은 상황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바로 옆 안방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침대 위에 쓰러져 있는 80대 할머니 A 씨가 눈에 들어왔다. 이 소방교는 곧바로 주변 동료들을 불러 모았다. 산소마스크를 씌울 겨를도 없이 이불로 할머니를 감싸고 대원 6명과 함께 1층까지 내달렸다. 이 소방교는 “어떻게든 불길 속에서 어르신을 살려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의식을 잃고 쓰러진 채 구조된 A 씨는 현재 몸 전체의 40% 가량 중화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소방당국은 지휘차 등 장비 30대와 인력 70명을 화재 현장에 투입해 오후 1시 13분 완전히 불을 껐다. 당시 아파트 옥상으로 대피했던 주민 2명도 연기를 마시고 구조됐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당국은 구조된 할머니가 혼자 살던 집에서 불길이 시작된 것으로 보고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낡아빠져서 고물처럼 보이지? 그래도 요놈의 모터들이 대한민국 공장의 심장이야. 크고 작은 전국 공장에서 쓰임새가 요긴하지. 이거 고치러 오는 거 보면 경기가 어떤지도 다 알아. 요즘? 정말 다들 너무 힘든가 보다 싶지.” 17일 아침부터 추적추적 뿌린 비는 점심 무렵에도 그칠 줄 몰랐다. 다들 우산을 펴들고 걸음을 옮겼지만 뿌연 습기에 살갗은 더욱 끈적거렸다. 서울 중구 황학동 67번지 기계골목에 있는 ‘개원기계’ 간판도 짙은 물기를 머금어 왠지 곰삭아 보였다. 바닥에 튕기며 바짓가랑이를 축축하게 적시는 빗방울. 하지만 개원기계 대표 박종상 씨(76)는 괘념치 않는 듯했다. 쨍 하니 불꽃 튀는 용접 소리가 멈춘 작업장 바깥에 앉아 하염없이 거리를 바라봤다. “옛날 같으면 이 시간에 수리를 맡기는 모터들이 1t 트럭에 가득 실려 들어왔는데….” 박 씨는 괜스레 입맛만 쩝쩝 다셨다. “여기서 일한 지 30년이 넘었어. 한창 때는 모터를 하루 30, 40개는 가뿐하게 고쳤지. 주위에서 ‘달인’이라 치켜세우기도 했지, 허허. 근데 요샌 정말 손님이 없네. 하루 2, 3개 들어오는 게 고작이야. 작년에 공장이란 공장은 다 망했다더니 진짜 그런가 봐. 왕십리 쪽 형님 동생 하던 공장 사장들도 요샌 코빼기도 보이질 않아.” ‘도깨비시장’ ‘만물시장’ ‘풍물시장’ ‘중고시장’…. 부르는 이름은 달라도 황학동이 어떤 곳인지 누구나 다 안다. 6·25전쟁 직후 161번지 일대에 피란민들이 모여들며 형성된 황학시장은 1960년대 공작기계 상인들이 운집해 종합시장으로 전성기를 맞았다. “돈만 내면 중고 탱크도 구할 수 있다”는 말도 이 무렵부터 나왔다. 70년 가까이 서울은 물론이고 전국에서 발길이 끊이지 않은 황학시장은 그간 세월만큼 부침을 겪었다. 1990년대 용산전자상가에 전자 메카의 명성을 빼앗기고 2000년대 청계천 복원과 재개발 등에도 휘청거렸다. 외환위기와 대형마트 증가, 온라인 거래도 타격이 컸다. 그리고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전대미문의 광풍이었다. 해외관광객은 자취를 감췄고, 폐업 가게에서 쏟아진 물건들만 쌓여 갔다. 수십 년을 이어오던 점포들도 셔터를 내렸다. “전쟁도 이겼는데 그깟 염병(染病) 하나도 안 무서워”라는 한 노부(老夫)의 웃음엔 왠지 모르게 그늘이 끼었다. 이 지겨운 비가 멈추길 기다리는 황학시장으로 나가봤다.○거리는 의구(依舊)한데 손님은 간 데 없고“영원까진 아니라도 오랫동안 흥하자는 뜻에서 ‘영흥(永興)’이라 지었지. 가게를 낸 게 1965년 5월경이었으니 만으로 쳐도 딱 56년 됐네.” 기계골목에서 터줏대감으로 불리는 ‘영흥사’의 김수돈 대표(80)는 자주 굵은 손마디를 만지작거렸다. 그는 지금도 처음 황학시장에 자리 잡았을 당시가 눈에 선하다. 청계천 일대는 모래사장이었고 넝마장수와 고물상만 가득했다. 20대 젊은 시절. 없는 돈을 모아 차린 철물상 앞에 서면 굶어도 배고픈 줄 몰랐다. 김 대표는 하루도 빠짐없이 오전 5시마다 직접 고물상들을 뒤졌다. 그렇게 찾은 기계들을 고쳐 판 손은 은퇴한 지 한참인데도 찐한 기름 냄새가 진득이 밴 듯했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여긴 밤늦게도 불이 꺼질 줄 몰랐어. 중고 모터 같은 건 의류 공장부터 두부 공장까지 안 쓰이는 데가 없거든. 골목마다 용접과 납땜 소리에 귀가 멍멍해질 정도였지. 근데 IMF(외환위기)가 직격탄이었어. 그때부터 힘이 빠지더니 코로나19는 정말…. 나야 살 만큼 살았고, 벌 만큼 벌었지만 젊은 사람들이 걱정이야.” 을씨년스러운 건 기계골목만이 아니었다. 인근 골동품골목도 사정은 비슷했다. 공장 관계자들이 주로 오가던 기계골목과 달리 젊은이는 물론이고 외국인들도 많이 찾던 거리지만 이젠 거의 발길이 끊겼다고 한다. 한 골동품가게 사장은 “수익 기대는 이미 접었다. 그냥 갈 곳 잃은 물건들 버리긴 아까우니 맡아 주고 있다는 심정으로 버티고 있다”고 푸념했다. 늘어선 가게를 채운 골동품들은 없는 게 없었다. “일제강점기에 쓰던 것”이라는 그릇부터 우리네 할머니 손때가 묻은 듯한 돌절구, 어느 부잣집 거실을 장식했을 법한 축음기까지. 아버지의 대를 이어 중고 레코드가게 ‘돌레코드’를 운영하고 있는 김성종 씨(66)는 “여기엔 모든 세대의 세월이 다 농축돼 있다”고 했다. “생각해봐요. 다들 황학시장에 올 때 뭘 기대하고 오겠어요. 빠릿빠릿한 신품 보러 오는 게 아니잖아요. 70대 어르신은 남인수 앨범, 60대들은 쎄시봉, 50대는 조용필 것 찾아서 오는 거예요. 30, 40대는 이문세 서태지 레코드를 찾죠. 다 자기만의 청춘을 만나러 오는 겁니다.” 그런 김 씨에 따르면 ‘황학시장의 쇠락’은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다. 2000년대 초반 사라진 ‘삼일시민아파트’가 상징적이라고 한다. 1969년 청계천 인근에 세워졌던 시민아파트는 지금으로 치면 잘나가는 주상복합아파트였다. 24개동에 1200가구가 넘고 1·2층은 상가, 3∼7층이 아파트였다. 지금은 주민센터와 공원, 대형아파트 등이 들어서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때부터 서서히 기우는 느낌이 있었어요. 함께하던 삶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고나 할까. 그래도 최근 몇 년은 다시 반짝했지. 한류 바람이 불면서 외국인 관광객이 꽤나 왔거든. 외국 방송에서 촬영을 온 적도 있어. 근데 웬걸. 코로나19로 그 많던 외국인이 싹 사라졌어. 언젠간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기대도 해보지만, 그게 언제쯤일지 누가 알겠어요.”○사갔던 물건, 폐업해서 되팔고 싶다 호소“1982년부터 여기서 일했지. 그땐 주방골목이라 부를 정도는 아니었어. 가게가 겨우 10곳이 될까 말까 했거든. 지금은 정말 없는 게 없지. 가격만 맞으면 뭐든 구할 수 있으니까.” 커다란 철제 싱크대부터 대형 냉장고, 자그마한 국자부터 가스레인지까지. 황학시장 ‘중심가’인 마장로를 따라 늘어선 주방용품 가게는 400여 곳. 지금도 하루 종일 물건을 치우고 닦는 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창성알뜰중고주방’ 직원인 이흥수 씨(63)도 마찬가지다. 흔쾌히 인터뷰에 응하면서도 눈과 손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젊은 시절부터 사장과 함께 가게를 지켜온 그는 말 한마디에도 자부심이 그득했다. 이 씨는 “서울에서 밥장사 하려면 황학시장은 꼭 한 번 와야 하는 곳”이라며 “지방 곳곳, 제주에서도 물건 떼러 오곤 했다”고 했다. 하지만 주방골목 상인들의 속내도 여간 타들어가는 게 아니다. 요즘 주변 상인들끼리 ‘코로나’란 단어는 거의 금기어에 가까울 정도다. 42년 동안 영업해 온 ‘코끼리냉면기계’의 김구환 사장(66)도 대뜸 고개부터 가로저었다. “가게 매출이 예년보다 40% 가까이 줄어들었어. 하지만 우리가 문제가 아니야. 요새 제일 많이 받는 전화가 뭔지 알아? 우리 가게에서 기계를 사갔던 사장들한테서 오는 거야. 도저히 장사가 안 돼 폐업할 건데 다시 좀 기계를 사주면 안 되겠느냐고. 일주일에 서너 번씩은 비슷한 읍소 전화가 오는데 그때마다 너무 안타까워.” 그나마 버티는 업소들도 반응이 예년 같지 않다고 한다. 원래 5월이면 냉면 대목이 시작되는 시즌이다. 행여 기계가 고장 나면 ‘수리할 동안 쓸 대체 기계를 보내 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하지만 요즘 수리를 신청하는 가게들은 ‘어차피 손님도 없다. 그냥 고장 난 김에 며칠 쉬기로 했다’고 한단다. 김 사장은 “한창 장사 잘될 때는 가게 앞에 차들이 엉켜 매일 주차 문제로 싸웠는데, 이젠 그런 풍경을 보기 힘들어졌다”고 전했다.○길고 긴 비도 언젠간 그칠 테니까코로나 1년 동안 황학시장은 풍경이 많이 바뀌었다. 오가는 사람은 줄고, 상인들 얼굴엔 주름만 깊어졌다. 휑해진 경기를 버티다 못해 문을 닫은 곳도 적지 않다. 하지만 상인들은 절망하지 않았다. 눈빛엔 황학시장이 이렇게 쓰러지지 않는다는 당당함도 엿보였다. 이곳에서 20년 넘게 꽈배기를 튀겼다는 한 할머니는 “원래 삶이란 게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게 아니겠느냐”며 “버티면 좋은 날이 꼭 오는 게 세상 이치”라며 기자 손에 꽈배기를 쥐여줬다. ‘할아버지손칼국수’를 운영하는 강민철 씨(39)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1970년대 후반 할아버지가 리어카를 끌고 시작한 장사는 1980년대 후반 가게 터를 잡은 뒤 아버지에 이어 손자인 자신이 대를 잇고 있다. 일곱 살 때부터 할아버지 손을 잡고 황학시장을 드나들었던 강 씨에게 이곳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인생이 담겨 있다. “어린 시절 기억에 이 골목은 언제나 ‘소리’로 가득했어요. 철물 자르는 프레스, 덜덜 돌아가는 중고 세탁기, 손님 붙잡고 흥정하는 상인들의 목청…. 아이라면 혼이 쏙 빠질 법도 하지만 그게 좋았거든요. 근데 어른이 돼서 오랜만에 할아버지 가게를 왔다가 깜짝 놀랐죠. 내가 알던 황학시장이 아닌 거예요. 뭔가 확 쪼그라든 느낌이랄까. 그때였어요. ‘내가 꼭 할아버지가 일군 터전을 살려 내겠다’고 다짐했죠.” 물론 이미 기울어진 시장 분위기를 강 씨 혼자 살리긴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그럴수록 더 힘을 냈다. “할아버지한테 물려받은 홍두깨 빼고는” 모두 바꿨단다. 육수와 반죽도 신기술을 도입하고 다진 양념까지 요즘 입맛에 맞춰 업그레이드했다. 몇 년 동안 고생했더니 이젠 단골도 꽤나 늘었다. “당연히 코로나19로 힘들죠.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했더니 조금씩 손님들이 다시 돌아왔어요. 이전 매출도 거의 회복했거든요. 코로나19 역시 언젠간 끝나지 않겠어요? 이 위기를 이겨내면 우리 시장도 다시 생기를 찾을 겁니다.” 오후 무렵, 황학시장은 여전히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그래도 빗줄기는 몰라볼 만큼 가늘어졌다. 그래서일까. 텅 빈 것 같던 골목골목에 두세 명씩 시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2년 전 카페 창업 때 처음 황학시장에 왔다는 김근미 씨(33). 남동생과 스튜디오 창업에 필요한 물품을 둘러보러 다시 이곳을 찾아왔다고 한다. “아무리 인터넷을 뒤져도 직접 보는 것 하곤 다르거든요. 괜히 황학동이겠어요. 특히 업소를 장식할 소품들은 여기만큼 빈티지하면서도 합리적인 가격인 곳을 찾기 힘들어요. 코로나19로 상황이 안 좋긴 하지만 조만간 다시 찾는 사람들이 많아질 겁니다. 저도 새로운 출발을 위해 평소 좋아하던 샹송 중고 LP 2장을 스스로에게 선물했어요. 왠지 여기서 이렇게 기운 받고 가면 우리 창업도 성공하겠죠?”김수현 newsoo@donga.com·김태성 기자}
택시를 몰고 가는 60대 택시기사에게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한 20대 남성 승객이 구속 수감됐다. 해당 남성은 피해자와 처음 보는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 분당경찰서는 “14일 오후 9시 50분경 성남시 분당구의 한 도로에서 택시기사를 살해한 혐의로 A 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됐다”고 16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 씨는 피해자인 기사가 운전하는 택시 뒷좌석에 앉아 있다가 뒤에서 흉기를 휘둘렀다. 기사가 상처를 입고 정신을 잃자 오르막길로 주행하던 택시는 뒤로 밀리다가 가로수를 들이받고 멈춰 선 것으로 전해졌다. 사고 뒤 A 씨는 차 뒷문을 열고 밖으로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현장에 도착한 견인차 기사가 범행을 알아채고 문을 걷어차는 등 하차를 방해해 차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이후 시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A 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택시기사는 급히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을 거뒀다.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범행 동기를 대지 못하고 횡설수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A 씨가 5, 6년 전부터 정신 치료를 받았다는 걸 파악하고 정확한 병명을 확인하고 있다.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길거리에서 같은 동네 주민에게 “1000원을 빌려 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하자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만든 30대 남성이 붙잡혔다. 해당 남성은 피해자를 “처음 보는 사람”이라고 경찰에 진술했다. 서울 강동경찰서는 “4일 오후 7시경 강동구 천호동에서 행인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A 씨(39)를 검거했다”고 5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 씨는 자신의 집 근처인 천호동 주택가에서 길을 가던 B 씨(64)에게 “1000원을 빌려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B 씨가 이를 거부하자 갑자기 흉기를 꺼내 여러 차례 찌른 혐의를 받고 있다. 정신 병력이 있는 A 씨는 다소 흥분 상태로 집에서 나올 때부터 흉기를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범행을 저지른 뒤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직접 112로 전화해 “흉기로 사람을 찔렀다”고 자수했다. 출동한 경찰은 A 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하고, B 씨를 급히 병원으로 옮겼으나 결국 숨을 거뒀다.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숨진 B 씨를 처음 본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경찰은 두 사람의 집이 50m 정도 떨어져 있어, 구면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정신 병력과 관련해서 추가적으로 살펴보고 있으며, 5일 오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라고 전했다.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길거리에서 같은 동네 주민에게 “1000원을 빌려 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하자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만든 30대 남성이 붙잡혔다. 해당 남성은 피해자를 “처음 보는 사람”이라고 경찰에 진술했다. 서울 강동경찰서는 “4일 오후 7시경 강동구 천호동에서 행인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A 씨(39)를 검거했다”고 5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 씨는 자신의 집 근처인 천호동 주택가에서 길을 가던 B 씨(64)에게 “1000원을 빌려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B 씨가 이를 거부하자 갑자기 흉기를 꺼내 여러 차례 찌른 혐의를 받고 있다. 정신 병력이 있는 A 씨는 다소 흥분 상태로 집에서 나올 때부터 흉기를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범행을 저지른 뒤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직접 112로 전화해 “흉기로 사람을 찔렀다”고 자수했다. 출동한 경찰은 A 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하고, B 씨를 급히 병원으로 옮겼으나 결국 숨을 거뒀다.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숨진 B 씨를 처음 본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경찰은 두 사람의 집이 50m 정도 떨어져 있어, 구면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정신 병력과 관련해서 추가적으로 살펴보고 있으며, 5일 오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라고 전했다.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남편한테 선물을 받는 순간 떠올랐어요. ‘반짝반짝한 거랑 꾸미는 거 좋아하는 사람, 그게 나인데’란 생각이요. 진짜 날 찾은 기분이었어요.” 경기 김포에 사는 한태은 씨(41)는 어린이날을 앞두고 남편에게 ‘깜짝 선물’을 받았다. 해마다 어린이날이면 자녀들만 챙겨줬는데, 아이들 선물과 함께 평소 한 씨가 갖고 싶었던 고가의 게임기를 사왔다. 한 씨는 “어릴 때 부모님께 받은 예쁜 구두 한 켤레가 떠올랐다”며 “어른이 된 뒤 많은 걸 포기하고 살았는데, 뭔가 보상 받은 기분”이라며 기뻐했다. 5월 5일은 아이들을 위한 어린이날이지만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색다른 선물로 자신을 챙기고 추억도 만끽하는 ‘어른이날’로 즐기는 성인들이 늘고 있다. 특히 1인가구나 아이를 갖지 않는 부부가 많아지면서 ‘어른을 위한 어린이날 선물’ 수요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완구전문매장 토이저러스에 따르면 올해 5월 ‘키덜트’(어린이를 뜻하는 kid와 adult(어른)의 합성어)를 위한 상품 매출이 지난해보다 45.8% 늘었다. 롯데마트의 김경근 토이팀장도 “키덜트 상품의 매출은 몇 년 전부터 계속해서 성장하는 추세”라며 “특히 5월에 어른을 위한 선물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고 전했다. 어린이날에 자기 자신에게 선물을 주는 어른이들도 적지 않다. 자영업자인 김모 씨(40)는 “오랫동안 5월 5일이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미키마우스 캐릭터 상품을 스스로에게 선물했다”며 “어른이 된 뒤 날 챙길 사람은 누구도 아닌 자신이란 생각에 기념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경남 양산에 사는 직장인 강모 씨(24)도 “어린이날을 앞두고 어린 시절부터 좋아하던 애니메이션 DVD 전편을 샀다”며 “어린 시절의 나에게 어른이 된 내가 주는 선물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어른이날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장기화 등으로 세상살이에 지친 성인들이 어린이날만이라도 잠깐 짐을 벗고 동심을 되찾고픈 속내가 녹아 있다고 분석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최근 자책과 우울로 심적인 고통을 호소하는 성인들이 늘고 있는데 작은 선물로 스스로를 위로하는 건 마음의 긍정적인 신호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음식 장사 하면서 야박해지지 말자.” 서울 중구 장충동에서 원조 족발 음식점으로 유명한 ‘뚱뚱이할머니 족발’의 창업자 전숙열 할머니(93)가 지난달 12일 노환으로 별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평북 곽산 출신인 고인은 6·25 전쟁 때인 1953년 남편과 함께 만주를 거쳐 부산에 정착했다. 이후 고인은 실향민촌이던 ‘장충동 56번지’로 이주했다.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두 줄로 다닥다닥 집들이 붙어 있던 동네에서 고인은 버려진 미군 군복을 주워 직접 꿰매 팔면서 사업 밑천을 다졌다고 한다. 이름을 밝히는 것을 꺼려해 서로 별명을 부르던 실향민들 사이에서 고인은 ‘뚱뚱이’로 불렸다. 1957년 고인은 장충동에 ‘뚱뚱이할머니 족발’의 시초인 식당 ‘평안도’를 개업했다. 원래부터 고인의 식당에 족발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안주거리를 늘려 달라”는 단골들의 부탁에 저렴하지만 든든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고민하다가 족발을 선택했다. 어린시절 어머니가 만들어주셨던 북한식 된장 족발의 추억을 바탕으로 만들었지만, 고인은 된장 대신 간장으로 맛을 냈다. 고인은 세 번이나 가게를 옮기면서도 장충동을 지켰다. 세 번째로 가게를 열며 고인은 이른 새벽부터 장사를 준비하며 아침을 거르는 동대문 상인들을 위해 ‘24시간 영업’을 시작했다. 고인의 며느리이자 2대 사장인 김명숙 씨(67)는 “어린 딸의 손을 잡고 머리에 족발과 소금을 이고 새벽 배달을 나섰다”라며 “그때마다 어머니는 우리를 기다리며 식당 한 편에서 쪽잠을 주무셨다”라고 말했다. 고인의 족발은 1963년 장충체육관 재개장으로 레슬링과 권투 등을 보러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리면서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다. 1987년 전후 하나둘씩 생긴 족발 가게들이 10여 곳을 넘어가면서 자연스레 ‘장충동 족발거리’가 형성됐다. 몇몇 가게는 고인이 직접 찾아가 육수 만드는 법도 알려줬다고 한다. 현재 3대째 장사를 이어가고 있는 음식점은 지금도 전 할머니 때처럼 오전 4시부터 야채를 다듬고 육수를 준비한다. “63년 가게를 하는 동안 조림물(육수)의 역사도 63년”이라며 고인은 족발에 대한 자부심이 컸다. 김 씨는 “어머니의 뜻을 이어 받아 앞으로도 좋은 품질을 지키는 가게가 되겠다”라고 했다.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서울 노원구에서 스토킹하던 여성의 아파트에 침입해 어머니와 여동생 등 세 모녀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태현(25)이 피해자를 협박해 휴대전화 잠금을 푼 뒤 자신과 관련된 증거를 지우려고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북부지검 형사2부(부장검사 임종필)는 살인과 경범죄처벌법 위반(지속적 괴롭힘), 절도, 특수주거침입,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정보통신망침해 등) 혐의로 김태현을 27일 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최근 김태현과 피해자들이 소유한 휴대전화 등 전자기기 16대에 대한 디지털포렌식을 진행한 결과, 피해자 A 씨(25)의 휴대전화 및 태블릿PC에서 1월에 피해자가 김태현에게 보낸 “다시는 찾아오지 마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추가로 찾아냈다. 또 김태현이 2월 A 씨에게 “후회할 짓은 말라고 했는데 안타깝다. 잘 살아봐”라며 욕설이 섞인 메시지를 보낸 것도 발견했다. 검찰 관계자는 “김태현이 해당 메시지를 보낸 다음날 A 씨가 전화번호를 바꿔 연락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A 씨에 대한 반감이 극대화돼 살인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태현은 사건 당일 피해자를 위협해 휴대전화 잠금 패턴을 알아낸 뒤, 범행 다음날엔 A 씨의 소셜미디어 등에 접속해 자신과 연관된 대화나 친구목록 등을 삭제하기도 했다. 김태현은 검찰의 통합심리분석 등을 거친 결과 ‘양극단적인 대인관계 패턴’을 보이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집착과 통제, 폭발 행동을 반복하며 상대가 뭔가를 거절하면 크게 분노하는 성향이라고 한다. 다만 반사회적 성향은 강하나 사이코패스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이다.김수현기자 new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