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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은 1987년 현행 6공화국 헌법을 만들 때 국회 개헌특위 경제분과위원장을 맡았다. 그가 고쳤다고 해서 ‘김종인 조항’으로 불리는 헌법 제119조 2항은 이렇다.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소득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고,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멋진 말들로 이뤄진 조항이지만 기존의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필요한 범위 안에서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한다. 독과점의 폐단은 적절히 규제 조정한다”는 조항과 비교해 보면 조잡함이 드러난다.헌법 조항에선 낯선 개념 우선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이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으로 부자연스럽게 바뀌었다. 균형 있는 국민경제는 국가가 인위적으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지 내버려둬도 저절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소득분배를 유지한다’도 이것만으로는 소득을 어떻게 분배하는 것이 헌법이 추구하는 가치인지 알 수 없다. ‘안정’은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으로 이어지는지 ‘안정과 소득분배를 유지한다’로 이어지는지 헷갈리게 돼 있다. 전자라면 부자연스럽고 후자라면 뜻이 아리송하다.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한다’에서도 ‘시장의 지배의 남용’과 ‘경제력의 남용’에 구별할 만한 의미 있는 차이가 존재하는지 알 수 없다. 그보다는 ‘독과점의 폐단’이 명확하다. 신문사에서 기자가 이런 식의 글을 썼다면 데스크의 가필 없이 통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김 위원은 무엇보다 전에 없던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라는 표현을 집어넣었다. 이미 ‘균형 있는 국민경제’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중앙과 지방, 도시와 농촌의 균형을 다루고 ‘시장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 방지’가 독과점 규제를 다루고 있다. 그렇다면 ‘경제민주화’의 의미는 무엇인가. 경제민주화란 말이 일상에서 쓰이기는 한다. 그러나 헌법에서는 그렇지 않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헌법 개정 당시 경제민주화란 표현을 보고 독일처럼 사용자와 노동자 대표가 공동으로 기업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노사공동결정(Zusammenbestimmung)’체제를 도입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표명했을 정도로 그 말은 생소했다. 어느 나라 헌법에서도 사용되지 않는 말일뿐더러 국민경제의 균형발전, 독과점 규제와 구별되는 경제적 의미를 찾기 어렵다. 헌법학자들은 제119조 2항을 설명하는 데 이르면 난감해한다. 새누리당 공직후보자추천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종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학 원론’에서 “경제활동 및 영업의 자유가 보장돼도 헌법 37조 2항(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제한할 수 있다)에 근거해 필요한 경우 제한할 수 있으므로 제119조 2항은 불필요하다”고 썼다. 한마디로 사족(蛇足)이라는 얘기다. 헌법을 개정한다면 삭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국가개입 과잉 부를 위험성 김 위원은 이런 조항을 더 장황하게 만들어놓은 데다, 정의 내리기 힘든 경제민주화라는 말까지 얹어놓았다. 지금 여야가 모두 경제민주화란 말을 정강정책에 집어넣었다. 경제민주화로 경제주체들의 관계를 조화롭게 만들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과잉 해석될 소지가 크다. 독일 기본법에 ‘민주적 사회적 연방국가(ein demokratischer und sozialer Bundesstaat)’란 말이 있다. ‘사회적’이란 표현이 가진 애매모호함 때문에 독일 헌법학자들이 그 말의 의미를 제한하려 했음에도 곧잘 해석과정에서 변질돼 사회주의에 가깝게 국가의 시장개입을 옹호하는 수단으로 쓰였다. 사족에 불과한 경제민주화가 언제라도 그런 수단이 될 수 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옛날 시칠리아 섬의 도시국가였던 시라쿠사의 왕 디오니시우스의 신하 중에 다모클레스라는 사람이 있었네. 그는 왕이 권력을 누리는 것을 몹시 부러워했는데 그것을 안 왕은 그에게 왕좌를 하루 빌려주었지. 감격한 다모클레스는 왕좌에 앉았네. 눈앞에 산해진미가 가득 쌓여 있었는데 문득 머리 위를 보니 날카로운 칼이 한 가닥 머리카락에 묶인 채 늘어져 있지 않겠나. 물론 다모클레스는 새파랗게 질려버렸는데 권력의 자리가 얼마나 불안하고 고통스러운가를 나타내는 이야기일세.”(정찬의 소설 ‘다모클레스의 칼’ 중에서) ▷양승태 대법원장이 그제 신임 법관 임명식에서 “법관에게 칼이 있다면 다모클레스의 칼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 칼이 조금만 잘못되면 법관 머리 위로 떨어질 수 있으니 고도의 소명의식과 투철한 사명감으로 법관의 임무를 수행하라는 주문이다. 국가요인이나 정치 지도자들이 시대의 정곡을 찌르는 비유를 고전에서 적절하게 끄집어내 인용하면 설득력을 높일 수 있다. ▷본래 법관에게는 다모클레스의 칼이 아니라 디케 혹은 유스티티아의 칼이 있다. 그리스어 디케(dike)와 라틴어 유스티티아(justitia)는 모두 영어의 정의(justice)를 말한다. 정의의 여신상은 보통 안대로 눈을 가리고 오른손에는 칼, 왼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다. 이리저리 둘러보지 말고 저울처럼 공정하게 판결하고 칼처럼 단호하게 집행하라는 의미다. 그러나 서울 서초동 대법원 건물 로비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은 특이하게도 안대로 눈을 가리지도 않았고 오른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으나 왼손에는 법전을 들고 있다. 눈가리개를 벗고 열심히 법전을 보는 것까지는 좋은데 법전 외에 페이스북 트위터 팟캐스트 등을 보느라 바쁜 법관들도 있는 것 같다. ▷양 대법원장은 다모클레스의 칼을 언급하면서 법관의 중립성을 무시하고 개인의 정치적 소신을 거리낌 없이 피력하는 판사, 시정잡배나 사용할 만한 저속한 언어로 법관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판사들을 머릿속에 떠올렸을 듯하다. 출호이자반호이자(出乎爾者反乎爾者)라는 말이 있다. 증자(曾子)의 말이다. 너에게서 나온 것이 너에게 돌아간다는 뜻이다. 법관들이여, 두 개의 칼이 가까이 있다. 신분보장만 믿고 디케의 칼을 잘못 쓰다가는 다모클레스의 칼을 맞을 수 있음을 명심하라.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민주통합당은 국회의원 후보 선택권을 유권자에게 돌려주겠다는 취지에서 휴대전화나 스마트폰을 통해 경선 투표에 참여하는 모바일 경선을 이번 총선에 처음 도입했다. 모바일 투표는 유권자가 투표소에 가지 않고도 투표할 수 있어 편리하다. 잘만하면 돈에 의해 선거 결과가 좌우되는 조직표의 병폐를 막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모바일 선거인단 모집 과정에서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고 선거인단 등록절차까지 대신해주는 불법행위가 성행하고 있다. 모바일 선거인단의 규모에 따라 승패가 좌우되기 때문에 각 후보 진영은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모바일 선거인단 불법모집 혐의로 27일 광주에서 선거관리위원회의 조사를 받던 60대 전직 동장이 투신자살했다. 21일에는 전남 장성에서 아르바이트 고교생 5명이 모바일 선거인단 대리등록을 해주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호남 지역에서는 경쟁이 치열한 데다 농촌 특성상 모바일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이 많아 대리등록이 심하다고 한다. 모바일 투표는 청년층을 과다(過多) 대표한다. 노장년층을 가능한 한 많이 포함시켜야 하지만 노장년층을 대신해 등록해주는 것은 특정 후보 지지자의 정치적 동원을 부추기고 대리 투표로까지 이어질 우려가 있다. 농어촌의 노인들은 도시에 사는 자녀 명의의 휴대전화를 소유한 경우도 많아 주소지 확인 과정에서 불일치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국회는 정치개혁특위에서 민주당의 제안으로 모바일 투표 지원을 위한 선거법 개정을 논의했으나 새누리당이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반대해 흐지부지됐다. 민주당이 자체적으로 당내 후보 경선에서 모바일 투표를 도입하는 것은 알아서 할 일이다. 다만 이미 민주당 내에서도 “농어촌 지역은 노인 인구가 40% 이상이고 접속이 어려운 구형 휴대전화 소지자는 참여율이 저조하다”는 이의가 제기됐다. 민주당이 모바일 투표의 시행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시정해야만 민의 왜곡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첨단 기술이라고 해서 민주주의를 변질시킬 순 없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 목사와 스님이 소득세를 내지 않는 것은 법적인 면세 근거가 있어서가 아니다. 종교법인은 비(非)영리법인이라도 종교인은 돈을 버는 이상 그 소득은 원칙적으로 과세 대상이다. 다만, 교회나 절이 스스로 원천징수를 하지 않고, 세무당국이 교회나 절을 상대로 세무조사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관행적으로 면세가 되고 있을 따름이다. 국세청이 기획재정부에 종교인 과세를 위한 유권해석을 의뢰할 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검토 중’이었다. ▷신부와 수녀는 천주교 주교회의 결정으로 1994년부터 갑근세를 낸다. 독신생활을 하는 신부 수녀들의 월급은 대부분 면세점 이하여서 실제 내는 세금은 거의 없다. 중앙집권적인 천주교와 달리 개별 교회 중심인 개신교나 지역 본말사(本末寺) 중심인 불교에서는 그에 필적할 만한 조직적 움직임이 없었다. 최근 개신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목회자의 자발적 소득세 납부를 추진한다는 소식이다. NCCK에는 예수교장로회 통합 측, 기독교대한감리회 등 큰 교단이 속해 있다. ▷교회나 절이 가난하던 시절에는 누구도 종교인 면세를 문제 삼지 않았다. 교회와 절이 부유해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큰 교회 목사들 중에는 사택지원비 도서지원비 등을 빼고도 억대 연봉을 받고 그것도 모자라 자녀에게 교회를 세습해주는 이도 있다. 절에서도 신도들을 위해 49재(齋) 등 제사를 지내주고 큰 수입을 올리는 스님이 적지 않다. 회사원은 매년 몇백만 원씩 세금을 내고 아낀 생활비로 헌금도 하고 시주도 하는데 외제차를 타고 다니며 골프를 치는 성직자들이 세금 한 푼 안내는 것은 불공평하다. ▷물론 대부분의 목사나 스님은 가난하다. 작은 교회나 시골교회 목사들은 사실상 비정규직 수준인 200만 원도 안 되는 월급을 받고 생활한다. 안거(安居)를 끝내면 해제비(解制費) 얼마 받아 산천을 떠도는 선승(禪僧)에게 소득을 말한다는 게 우습다. 실제 종교인 과세를 실시해도 상당수 종교인은 면세점 이하의 소득을 얻고 있어 과세 비용에 비해 걷히는 세금은 크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그래도 조세는 형평이 중요하다. 종교인 과세는 세무당국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데 그런 공약을 내거는 ‘용감한’ 정치인은 본 적이 없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미국 법원에는 본래 사법행정을 담당하는 법원장이란 말은 없고 선임법관(senior judge)이란 말만 있었다. 1948년에서야 선임법관을 법원장(chief judge)이라고 부르며 사법행정을 맡겼다. 그래도 법원장은 대법원이 임명하는 게 아니라 판사로 임명된 날짜를 기준으로 가장 오랫동안 판사 근무를 한 사람이 자동적으로 맡으니까 사실상 선임법관이다. 선임법관이 법원장이 되기를 원하지 않으면 법원장 직위는 자동으로 그 다음 순위로 넘어간다. ▷우리나라는 대법원장이 법원장을 임명한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법원은 피라미드 구조의 행정부와는 달리 판사들의 연합체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대법원장이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판사 임용 및 재임용 등 중요한 사항은 대법관회의의 결정을 따라야 한다. 대법원에 대법관회의가 있듯이 각급 법원에는 판사회의가 있다. 판사회의가 주요 사법행정에 관해 심의하고 의결하면 법원장은 이를 존중한다. ▷판사회의는 해당 법원의 판사 전원이 참석하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전체 판사회의와는 다른 내부 판사회의라는 게 있다. 직급에 따라 배석판사회의 단독판사회의 부장판사회의로 나눠 모임을 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단독판사회의 소집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나 다름없다. 경미한 형사 민사 사건을 혼자 처리하는 단독판사는 현재 6∼14년차의 젊은 법관들이 맡고 있다. 이들이 부장판사까지 포함시켜서는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 어려울 때 단독판사회의를 열어 의견을 개진한다. ▷1993년 서울중앙지법 민사 단독판사 40여 명이 ‘사법부 개혁에 관한 건의문’을 발표하고 제3차 사법파동을 일으켰다. 이들의 요구에 따라 전체 판사회의뿐만 아니라 단독판사회의란 것도 생겼다. 2008년 신영철 당시 서울중앙지방법원장(현 대법관)의 촛불집회 관련 재판 개입을 문제 삼은 것은 재경(在京) 법원의 단독판사회의다. 서기호 판사 재임용 탈락으로 일부 재경 법원에서 단독판사회의가 소집됐다. 재임용은 10년차 단독판사만이 아니라 20년차 부장판사도 관련된 것이니까 판사회의를 연다면 전체 판사회의를 여는 게 옳다. 단독판사회의 결과로는 전체 판사들의 생각을 알 수 없다. 어느 조직에서나 젊은 사람들의 견해는 다소 급진적인 경향을 띤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창원지법 이정렬 부장판사가 대법원 법관징계위원회에서 정직 6개월의 중징계 처분을 받았다. 이 부장판사는 영화 ‘부러진 화살’의 소재가 된 김명호 전 성균관대 조교수의 교수지위확인소송에서 항소심 재판부 주심을 맡았다. 그는 영화를 본 관객으로부터 비난이 쏟아지자 2007년 당시 재판부의 합의내용을 법원 내부 게시판에 공개해 대법원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법관은 탄핵이나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지 않으면 파면되지 않으며 징계처분 없이는 정직 감봉 등 불리한 조치를 받지 않도록 헌법에 의해 신분이 보장돼 있지만 이 부장판사는 법률을 위반했다. 법원조직법은 ‘재판부 합의 내용은 공개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장 1명과 배석판사 2명으로 구성되는 합의부 재판에서 판사들의 서로 다른 의견이 법정 밖으로 흘러나갈 경우 재판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수 있다. 특정 판사가 재판 당사자에게서 공격 받을 우려도 있다. 부장판사가 판사들을 보호하기 위한 기본적 의무를 저버린 것은 중대한 잘못이다. 이 부장판사는 앞서 자신의 페이스북에 ‘가카새끼 짬뽕’ 등 대통령을 비하하는 내용의 패러디물을 올려 법관의 품위를 손상했다는 이유로 소속 법원장으로부터 서면경고를 받았다. 서면경고는 정식 징계처분에 이르는 절차는 아니다. 그러나 서면경고를 받았으면 알아서 자숙해야 할 텐데도 자숙은커녕 법까지 어겼으니 징계를 자초한 측면이 있다. 이 부장판사의 징계와 서기호 서울북부지법 판사의 재임용 탈락에 대해 일부 판사가 ‘보복성 조치’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 부장판사는 합의 공개 당시 그로 인한 불이익을 달게 받겠다고 스스로 약속했다. 누구보다 앞장서 법을 지켜야 할 법관이 법을 어긴 만큼 이 부장판사에 대한 징계는 당연하다. 서 판사의 재임용 탈락은 판사 임용 후 10년간 각각 다른 법원장들이 평가한 근무성적을 종합해 내려진 것이다. 판사들이 대법원의 정당한 권한행사에 반발하는 것은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더욱 추락시킬 수 있다. 대법원은 이들 판사의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의 막말이나 정치편향 발언을 직접 문제 삼지는 않았다. 이 부장판사에 대해서는 실정법을 위반하고 나서야 정식 징계절차에 착수했다. 서 판사는 근무성적만을 이유로 재임용에서 탈락됐다. 판사들의 SNS에서의 정제되지 않은 발언도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대법원이 조속히 법관의 SNS 사용 가이드라인을 제정해야 한다.}
나꼼수가 인기를 얻거나 비판을 받는 것은 반(反)지성주의 때문이다.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의 ‘닥치고’는 가카(각하·대통령)를 향한 말이 아니다. 그 ‘닥치고’는 프랑스의 사르트르처럼 행동하는 지성인을 흉내 내는 조국을 향한 것이고 그의 강남좌파적 기획인 ‘진보집권플랜’을 향한 것이다. 김어준은 ‘닥치고 정치’에서 조국의 ‘진보집권플랜’의 결점을 “진보적 엘리트 특유의,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공기처럼 흐르는, 우아하고 거룩한 오만”이라고 표현했다. ‘진보집권플랜’의 서문을 읽은 그의 소감인즉 ‘재수 없을 수 있겠다’였다. 그래서 그가 쓰게 된 것이 ‘진보집권플랜 B’로서의 ‘닥치고 정치’다. 반지성과 마초주의는 동전의 양면김어준의 반지성은 무식과는 다르다. 뭔가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한다. 그는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서 봤다는 피카소의 그림 ‘게르니카’의 소감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적이 있다. 그러나 게르니카는 프라도 미술관이 아니라 레이나소피아 미술관에 있다. 정말 그가 게르니카를 직접 본 것일까. 그의 반지성은 A급이 되기를 원했으나 A급이 되지 못한 B급의 콤플렉스 표현이다. 물론 A급이 보는 세상만이 전부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A급이 보지 못하는 B급들 특유의 예민한 감각을 갖고 있다. 그래서 ‘닥치고 정치’는 읽을 만하다. 그러나 예민한 감각도 거짓 위에서는 의미 없는 것이다. ‘눈 찢어진 사람이 BBK 사건의 에리카 김과 불륜관계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남긴 재산이 10조원이 넘는다’ ‘나경원은 1억 원짜리 피부과에서 피부 관리를 받았다’ 등 나꼼수가 한 희대의 특종(?)은 하나씩 거짓으로 드러나고 있다. 진중권은 나꼼수를 향해 너절리즘(너절한 저널리즘)이라는 비판을 날렸다. 입에 걸레를 문 진보이긴 하지만 독일에서 공부하고 온 진중권의 지성과 나꼼수의 반지성이 충돌하는 것은 당연하다. 나꼼수의 반지성은 실은 마초(Macho)주의와 동전의 양면관계에 있다. ‘정봉주 위로 비키니 인증샷’ 논란으로 불거진 나꼼수의 마초주의는 나꼼수의 한 일탈이 아니라 나꼼수의 본질이다. 나꼼수가 그 논란에 깨끗이 사과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모든 언행이 마초적 감성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어깨에 잔뜩 힘주고 서 있는 4명의 나꼼수 진행자의 사진을 보라. 그들이 표현하고 싶은 것은 마초의 이미지다. 그들은 어디로 보나 반듯한 조국과도 다르고 히스테리컬한 현학적 핏대 진중권과도 다르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과거 ‘딴지일보’의 김어준을 벌써 잊은 모양인데 ‘딴지일보’는 포르노적 상상력과 가학적 정치풍자의 결합이었다. 마초가 사실에 얽매이는 것은 쫀쫀한 것이다. 이것저것 재가면서 말하는 것도 그렇다. 게르니카가 프라도에 있건 레이나소피아에 있건 뭐가 중요해. 나경원이 피부과에서 실제 얼마를 냈건 1억 원까지 받는다잖아, 그냥 써. 비키니가 남성에겐 위로인 걸 어떡해. 마초에게 중요한 것은 그들의 말을 빌리면 ‘쫄지 않는 애티튜드(atttitude)’다. 지성적 애티튜드는 애당초 마초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지적 양아치 나꼼수를 다루는 법나꼼수 기획자 탁현민이 얼마 전 시위에서 선보인 삼보일퍽(fuck)도 마초적 감성의 과격한 표현이다. 삼보일퍽은 삼보 후에 한 번 절하는 대신 삼보 후에 팔뚝을 치켜들고 가운데 손가락을 세워 보이는 것이다. 그 무례함은 서양으로 말하면 누군가를 향해 결투를 신청하는 것과 다름없다. 다만 상대편이 결투에 나서지 않을 것을 뻔히 아는 비겁한 결투 신청이다. 기실 그들은 겁이 많은 지적 양아치들이다. ‘쫄지 마 씨바’를 주문처럼 외우고 있는 것은 실은 쫄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의 ‘나경원 1억원 피부과 이용설’ 조사가 끝나가자 수감 중인 정봉주 다음은 주진우 차례라고 설레발을 치고 다니는 것도 쫄고 있기 때문이다. 양아치들은 쫄게 해줘야 정신을 차린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한강 노들섬은 조선시대에는 없었다. 노들섬은 일제에 의해 한강대교가 건설된 1917년 다리 중앙에 있던 모래언덕에 둑을 쌓아 만들어졌다. 1995년 한글 명칭으로 바뀔 때까지 중지도로 불렸다. 중지도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광나루 뚝섬과 함께 한강 해수욕장으로 유명했다. 시민들은 그곳에서 여름에는 멱을 감고 겨울에는 썰매를 탔다. 1968년 한강 개발이 시작돼 백사장이 사라지고 1973년 중지도 확장 매립공사 뒤에 군인과 고위 공무원들이 즐기던 테니스 코트가 들어서면서 중지도는 시민들로부터 멀어졌다. ▷1980년 이후 중지도를 시민들에게 돌려주려는 노력이 거듭 시도됐으나 모두 흐지부지됐다. 1983년 유람선 선착장 설치, 1986년 관광호텔 건립, 1989년 공원 조성 등의 계획이 나왔으나 그곳에는 지금까지도 테니스장이 자리 잡고 있다. 2004년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 시 노들섬에 오페라하우스를 건설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세계적 건축가 장 누벨의 설계공모 당선작이 나왔으나 최종 단계에서 비용 문제로 유야무야되고 오세훈 전 시장이 우여곡절 끝에 2010년 계획을 새로 확정했다. ▷박원순 시장이 다시 이를 뒤집었다. 박 시장의 대안은 오페라하우스 대신 텃밭이다. ‘원순 씨’의 소박함이야 모르는 바 아니지만 텃밭이라는 게 꼭 면장이나 읍장이 생각하는 수준이다. 노들섬에 텃밭을 몇 개나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인구 1000만이 넘는 서울 시민을 상대로 분양한다면 몇 %나 혜택을 보게 될까. 거대 도시의 매력을 놓고 유럽에서 런던과 파리가 경쟁하듯이 동아시아에서는 서울 도쿄 베이징이 경쟁하고 있음을 잊은 모양이다. ▷조순 시장이 여의도광장에 만든 여의도공원은 너무 평이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국 톈안먼 광장보다 더 광활한 그곳에 뉴욕 센트럴파크, 런던 하이드파크만큼 멋진 공원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고건 시장은 지하철 5∼8호선을 착수하고 완공했다. 이명박 시장은 청계천을 복원했다. 희망제작소 등을 통해 기발한 아이디어를 많이 냈던 박 시장이 머리를 짜내면 오페라하우스를 능가하는 아이디어를 내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텃밭 같은 쫀쫀한 발상일랑 접고 전임 시장의 아이디어일지라도 이어가는 게 도리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독일 프랑스 등 유럽 16개국에서는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면 온라인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처벌을 받는다. 실제 프랑스 리옹대의 로베르 포리송 교수가 홀로코스트 부인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1991년 교수 자리에서 쫓겨났다. 그는 유엔 인권위원회에 부당하다고 진정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2005년 이란 방송과의 인터뷰 내용으로 또 기소돼 3개월 징역의 집행유예와 7500유로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미국의 진보지식인 놈 촘스키는 포리송에게도 표현의 자유가 인정돼야 한다며 그의 무죄를 요구하는 탄원서에 서명했다. 그러나 유럽연합(EU)은 오히려 회원국이 홀로코스트 부인 발언을 법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미국은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다. 하나의 옳은 이념은 없으며 여러 이념의 경쟁이 있을 뿐이라고 여긴다. 유럽엔 자유 평등의 가치를 절대적인 것으로 내세우며 아랍 여성의 히잡 착용을 금지하는 나라도 있지만 수정헌법 1조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미국에서는 생각하기 힘든 일이다. ▷대표적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트위터가 최근 이용자의 글 ‘트윗’을 국가에 따라 선택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트위터는 “회사가 국제적으로 성장하면서 표현의 자유에 대해 다른 기준을 가진 국가에도 진출하고 있다”며 “나치 찬양 내용을 차단하는 프랑스나 독일에서처럼 역사적 또는 문화적 이유로 특정 콘텐츠를 제한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모든 나라에 미국식 표현의 자유를 적용할 수 없다는 얘기다. ▷트위터는 이전에도 저작권 침해, 아동 포르노 등의 이유로 일부 트윗을 차단했다. 달라지는 점은 어떤 내용이 그 나라 법으로 불법인 나라에서만 차단하고 또 차단할 때 차단 메시지를 남긴다는 것이다. 그 트윗을 해외에서 보는 데는 문제가 없다. 누리꾼들은 과도한 검열이 지난해 아랍 혁명에서 보여준 트위터의 유용성을 감소시키지는 않을까 우려한다. 한국에서도 TGiF(트위터 구글 아이폰 페이스북)상의 표현의 자유를 놓고 논쟁이 치열하다. 그렇다고 허위사실로 타인을 모략하는 트윗이 있다면 무조건 방치할 수도 없다. SNS의 검열 방식에 대해 전 세계가 고민 중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한나라당에서 이상돈 비상대책위원은 4대강 사업을 논할 자격이 없다. 그는 ‘4대강 위헌위법심판 국민소송단’의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아 4대강 사업을 중단시키려는 소송을 냈으나 대법원에서 패소했다. 이 위원은 비대위에서 정치쇄신분과를 이끌고 있다. 4대강 사업은 정치쇄신분과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4대강 사업이 완공을 앞둔 이 시점까지도 ‘4대강=위장된 대운하’라고 강변하고 있다. 이 사업이 대운하 공사인지는 현장에 가보면 확인할 수 있다. “4대강 사업은 대재앙이자 기만이며 사기” “4대강은 전두환 노태우의 5·18 같은 것”이라는 그의 발언에는 한 지식인의 편향과 독선이 묻어난다. 이 위원은 “4대강 사업과 관련한 허위사실 유포에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말한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을 그제 비판하고 나섰다. 권 장관의 발언은 환경 관련 단체 모임인 ‘생명의 강 연구단’ 등이 “4대강 16개 보(洑) 가운데 12개 보에서 심각한 균열 및 누수현상이 확인됐고 이로 인해 구미보와 낙단보의 본체가 두 동강날 수 있다”고 발표한 후에 나왔다. 일부 누수 현상이 목격된 것은 사실이지만 보가 두 동강이 날 수 있다는 주장은 얼토당토않다. 이 위원이 ‘생명의 강 연구단’의 과장된 공격성은 언급하지 않고 권 장관 발언만 문제 삼는 것은 옳지 않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정부의 정책을 비판할 수 있다. 권 장관은 법률적 대응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기보다는 22조 원의 막대한 세금이 들어간 4대강 사업을 잘 마무리하기 위해 누수 현상이나 수질 악화가 없도록 꼼꼼히 점검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일부 환경단체들은 독일 등의 사례를 들어 강의 보를 없애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며 4대강 사업을 반대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유럽과 달리 계절에 따라 강수량 차이가 심한 데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집중호우 피해가 늘고 있어 인공적으로라도 수량을 관리해야 할 처지에 있다. 4대강 사업이 한꺼번에 서둘러 진행된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도 있으나 단계적으로 진행했다면 훨씬 더 많은 돈이 들었을 것이다. 정비를 끝낸 4대강이 국민에게 개방되고 있다. 4대강 사업이 실제 환경에 미친 영향을 꼼꼼히 살피되 자연에 손끝 하나 대서도 안 된다는 식의 환경근본주의 시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자연은 적절히 관리될 때 인간에게 유익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설을 앞두고 복지 폭탄 세일을 하고 있다. 정부가 만 5세 무상보육을 얘기한 게 몇 달 전인데 3, 4세 무상보육이 새로 발표됐다. 2세 미만 아동을 위한 양육수당도 소득 하위 15%에서 75% 계층으로 확대됐다. 내년부터는 양육과 보육이 사실상 거의 무료가 되는 것이다. ‘민주당=무상급식’처럼 여권은 ‘한나라당=무상보육’의 이미지를 얻기 위해 기를 쓰고 있다. 무상급식이 1인당 월 5만 원짜리라면 무상보육은 1인당 월 20만 원 정도로 거의 4배다. 민주당이 무상급식으로 선거에서 챙긴 재미를 여권이 볼지는 의문이지만 확실하게 ‘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경제맥락 잃어버린 무상보육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가 지금 여권의 복지정책을 움직이는 힘이다. 애초부터 말만 그럴듯했지 그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 가늠하기 힘들었던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가 실상은 별 게 아니라 유럽 복지선진국이 과거 도입한 것을 경제적 맥락도 따져보지 않고 따라하는 것임이 드러나고 있다. 보육 서비스는 본래 맞벌이 여성을 위한 것이다. 유럽 복지선진국에 보육 서비스가 정착된 것은 외국 노동자를 들여와 쓰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경제가 성장할 때다. 그때 여성을 위한 일자리도 당연히 늘었다. 현재 스웨덴에서 여성의 노동참가율은 남성의 노동참가율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일을 원하는 여성은 남성과 거의 같은 비율로 일자리를 갖고 있다는 얘기다. 20가구가 있다고 치자. 20명의 엄마가 아이들을 각각 보살피는 것이 아니라 2명에게 맡기면 나머지 18명은 일할 수 있다. 보육 서비스가 등장한 이유다. 그러나 그것은 18명이 일할 자리가 있을 때 얘기다. 일할 자리가 없으면 얘기가 다르다. 엄마들이 아이에게서 해방돼 일자리를 찾을 때 일자리가 없으면 고스란히 실업률 증가로 이어진다. 지금 우리나라처럼 고용 없는 저성장 시대에 무상보육의 섣부른 확대는 돈은 돈대로 쓰고 실업률만 높이는 결과를 빚을 것이다. 보육 지원비는 가정으로 가는 게 아니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 보육시설로 간다. 엄마들은 혜택을 보기 위해 직장이 있건 없건 상관없이 아이들을 보육시설로 보내려고 기를 쓸 것이다. 그러나 집에서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엄마를 놔두고 아이를 모두 나라가 맡아서 키우겠다는 것은 국가적 낭비다. 그렇게 말하면 집에 있는 엄마들은 분명 서운해할 것이다. 사실 엄마들에게 직접 돈을 주고 아이를 집에서 키울지 보육시설에 보낼지 선택하도록 하자는 주장에 일리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집에 있는 엄마들은 일을 하기 싫어서, 혹은 일을 하지 않아도 먹고살 만해서 그러는 게 아니다. 일하려고 해도 일자리가 없다. 이런 처지라면 개인에게 직접 돈을 주는 게 형평에 맞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복지는 생산 활동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세금 나눠먹기가 된다. 무상보육, 일자리 창출에 맞춰야 무상보육은 맞벌이 여성이 대다수인 상황에서 보육을 가정이 개별적으로 하기보다는 국가가 세금을 사용해 공동으로 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취지에서 등장한 것이다. 여성을 아이에게서 해방시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생긴 것이 아니다. 직장여성이 아이를 맡길 어린이집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긴 주부가 직장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복지보다 일자리가 먼저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순서가 뒤바뀌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이후 복지 강화를 외치면서 들고 나온 말이 생산적 복지다. 한나라당에서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생산적 복지라는 말을 자주 썼다. 지금 한국의 복지 현장에서 그 말은 여야 모두에서 사라졌다. 오로지 ‘닥치고 복지’만이 있을 뿐이다. 복지 포퓰리즘은 다른 게 아니라 생산 활동과의 연계 고리를 잃어버린 복지를 말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4월 총선을 앞둔 여권은 분열을 막고 선거공조를 이뤄야 하는 절박한 처지다. 그럼에도 한나라당은 쇄신 방향을 둘러싸고 친이계와 친박계가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자유선진당은 심대평 대표와 이회창 전 대표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다. 세종시 이전 문제로 한나라당과 갈라선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은 ‘국민생각’이라는 신당 창당에 나섰다. 반면에 사분오열했던 야권은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으로 크게 두 가닥의 소(小)통합을 이룬 뒤 총선에서 단일 후보를 내기 위한 선거연대 협상에 들어가기로 했다. 친노세력이지만 무소속이던 김두관 경남지사와 시민단체 출신의 박원순 서울시장도 곧 민주당에 입당해 야권연대 흐름에 합류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은 비상대책위원회가 2월 초 공천심사위원회에 공천 업무를 넘긴 뒤에는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여의도 밖으로 나가 각계각층의 사람을 만나고 당내 인사들과의 단합을 위한 접촉도 활발히 진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박 위원장이 이제나마 갈등 치유와 세력연대에 나서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한나라당 비대위가 정강에서 보수라는 표현을 삭제하겠다고 한 것은 애당초 분열주의적 발상이었다. 연대에 역행하는 자해행위나 다름없다.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노무현 정권을 심판하고 이명박 대통령을 선택한 것은 법과 질서, 민주주의 원칙이 무너지는 것을 막으려는 뜻에서였다. 이 정권이 신뢰를 잃은 것은 보수의 가치를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 데도 큰 원인이 있다. 시장경제 가치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도 타당하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로서는 국내외적으로 시장에 우호적인 환경을 만드는 것이 국부를 획득할 수 있는 길이다. 그러나 대기업 위주의 성장에만 치중하다 보니 중소기업과 중산층 및 서민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공존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고 성장의 혜택이 골고루 미칠 수 있도록 하자면 보수와 중도를 아우르는 큰 텐트가 필요하다. 친박계 및 소장파 의원들은 지난해부터 한나라당의 정책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박세일 이사장은 장기표 녹색사회민주당 대표와 손잡고 중도정당 창당을 표방한다. 친이계와 자유선진당도 양극화 시대에 국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읽고 있을 것이다. 연대의 정신은 배제가 아니라 포용이다. 열린 연대여야 성공할 수 있다. 여권과 야권 중 어느 쪽이 폭넓고 견고한 연대에 성공하느냐에 따라 선거의 승부가 갈릴 것이다.}
영화광이기도 한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게리 쿠퍼나 에바 가드너 같은 매력적인 외모의 남녀배우가 활약하던 시절의 영화를 좋아한다. 그는 “더스틴 호프먼이나 잭 니컬슨, 로버트 드 니로(같은 연기파 배우)가 미국 영화를 엉망으로 만들어버렸다”고 평했다. 메릴 스트립에 대해서는 “제발 인생의 고뇌를 한 몸에 끌어안은 듯한 그런 표정 좀 짓지 말라”고까지 썼다. 주연 여배우가 싫어 보러 가지 않은 영화로 메릴 스트립이 등장한 ‘폴링 인 러브’를 꼽을 정도다. ▷메릴 스트립이 ‘킹콩’(1976년 작)의 주연 여배우 오디션을 보러 갔을 때 디노 데 라우렌티스 감독은 이탈리아어로 “왜 저런 못생긴 애를 데려온 거야”라고 말했다가 메릴 스트립이 이탈리아어로 대꾸하자 당황했다는 얘기가 있다. 나로서는, 신이 메릴 스트립에게 니콜 키드먼의 외모를 주지 않은 것이 유감이지만 대신 그의 영화를 보면 연기에 몰입할 수 있어 좋다. ‘소피의 선택’의 유대인 학살 생존자,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로맨틱한 억척 덴마크 여인,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세련된 보그 편집장까지 그가 소화하지 못할 역할이 무엇일지 궁금할 정도다. ▷새 영화 ‘철의 여인’의 주인공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 역으로 할리우드가 고른 여배우도 메릴 스트립이었다. 그가 이 영화로 다시 골든글로브 상을 받았다. 올해 63세로 대처의 총리 사임 때 나이와 엇비슷한 메릴 스트립이 더 늙기 전에 이 역을 맡았다는 것이 관객으로서는 행운이다. 메릴 스트립은 딱딱하게 들리는 영국식 영어의 억양을 완벽하게 구사하며 대처를 연기한다. 미국 일간 시카고트리뷴의 저명한 영화평론가 마이클 필립스는 “영화가 좋은지는 모르겠으나 메릴 스트립의 대처 연기는 대단했다”고 평했다. ▷대처 총리는 고질적인 영국병을 고쳐냈다는 찬사와 사회를 양극화시켰다는 비판을 동시에 받는다. ‘철의 여인’이 이미 개봉돼 상영 중인 영국에서 이 영화는 런던 등 남부에서는 인기를 끌고 있지만 탄광 지대가 있었던 중북부에서는 별로라는 소식이다. 그러나 메릴 스트립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리어왕 식의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 한 인간으로서의 대처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민주통합당의 지도부를 구성한 한명숙 대표와 최고위원들이 검찰을 최우선 개혁 대상으로 꼽았다. 한 대표는 그제 전당대회 연설에서 “검찰의 지난 4년간의 정치적 행태와 수사를 그냥 넘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한 대표는 노무현 정부에서 국무총리 재임 시 5만 달러를 수뢰한 혐의에 대해 1심에 이어 최근 항소심에서도 무죄 선고를 받았다. 별건으로 기소된 9억 원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도 1심에서 무죄가 났다. 하지만 아직 확정판결이 난 것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을 손보겠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공당의 대표로서 적절하지 못하다. 재판에 계류 중인 형사사건의 피고인으로서 또 다른 당사자인 검찰을 압박하는 것은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 대표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검사장 직선제 도입 등을 검찰 개혁의 과제로 내걸었다. 검사장 직선제는 개헌을 해야 가능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중수부 폐지나 공수처 신설은 논의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검찰 개혁이 한풀이나 압박용으로 변질한다면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는 ‘길들이기’다. 야권에 불리한 사법처리를 모두 검찰의 정치화 탓으로만 돌려서도 안 된다. 정봉주 전 의원이 BBK 관련 허위사실 유포죄로 수감된 것은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 대표가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은 ‘정치검찰’의 수사와 기소가 잘못됐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정 전 의원의 유죄확정 판결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태도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린 통합진보당 김선동 의원은 5회째 검찰의 출석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은 김 의원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이성을 상실한 탄압”이라고 주장했지만 정상적 눈으로 볼 때 이 사건은 정치검찰이나 야당탄압과는 거리가 멀다. 이 시대에 의사당에 최루탄을 던진 것이 무슨 의사(義士)나 열사(烈士)의 구국 거사라도 된단 말인가. 검찰은 한 대표 사건을 비롯해 무죄판결이 잇따르는 데 대해 자성할 필요가 있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을 배임 혐의로 기소했지만 무죄판결이 나왔다. 수사능력이 부족한지, 애당초 정치적 의도로 수사와 기소를 무리하게 강행한 탓인지 자성할 필요가 있다. 검찰을 흔드는 바람은 권력을 잡은 쪽뿐 아니라 야권에서도 불어간다. 검찰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며 법의 집행자로 바로 설 때 외풍(外風)을 막아낼 수 있다.}
헌법이 정한 법관의 임기는 10년이다. 판사는 임기 10년이 끝날 때마다 자질과 능력을 다시 검증받아 법관에 재임용되는 절차를 밟게 돼 있다. 그러나 민주화와 함께 1987년 현행 헌법이 제정된 후 법관 재임용 절차에 따라 탈락한 법관은 지금까지 3명에 불과하다. 사법부의 법관 재임용 심사가 사실상 사문화(死文化)한 것이다. 재임용제의 본래 취지는 법관 임기 동안 신분을 보장해주면서 임기가 끝났을 때 법관의 자질과 능력을 새로 평가함으로써 신분 보장으로 발생할 수 있는 해이(解弛)를 막기 위한 제도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는 법관 재임용제를 악용해 정권의 눈 밖에 난 법관을 퇴출시킨 사례가 있었지만 1987년 민주화 이후 그런 우려는 사라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법원은 재임용 심사의 객관적 기준이 없으면 재임용 탈락자가 적법 절차 위반으로 문제 삼을 수 있다는 우려를 앞세워 그동안 엄격히 심사를 하지 않았다. 국회가 지난해 7월 법원조직법을 개정해 법관 근무성적평정과 자질평정 기준을 마련하면서 공은 사법부로 넘어갔다. 그러나 대법원은 세부규칙을 마련하는 데 늑장을 부려 연말에나 가야 재임용 절차를 밟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나치게 편향된 이념에 따른 ‘튀는 판결’이나 실력 부족으로 인한 오판(誤判)을 남발해 상급심에 올라가 대부분 파기(破棄)되는 판결을 많이 하는 법관이 있다면 재임용 심사 대상이 될 수 있다. 3심제에선 하급심의 잘못된 판결이 상급심에서 바로잡힐 수 있지만 소송 당사자들이 치르는 비용과 고통은 클 수밖에 없다. 부적격 판사가 엄연히 있는데도 법정에서 판결을 계속하게 내버려 둔다면 양질의 사법서비스를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재임용제도를 둔 헌법의 정신에도 배치된다. 법관의 신분보장을 남용해 법정 안팎에서 막말과 정치적 편향 발언으로 법관의 정치적 중립의무를 위반하거나 품위를 손상하는 판사들도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한 판사는 옛 민주노동당에 당비를 납부한 공무원의 실정법 위반이 징계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려 억지라는 비판을 받았다. 어떤 판사는 트위터 분량에도 못 미치는 72자짜리 판결 이유를 쓴 판결문으로 무성의하다는 말을 들었다. 판사들은 대부분 20대 중후반에 사법연수원에서 받은 성적순으로 임명됐다. 이들이 법관의 자질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면 정밀한 재임용 심사를 통해 걸러내야 한다.}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은 전기가 여성을 가사노동에서 해방시켜 주리라고 예견(豫見)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노동자 계급의 가정에서도 가전제품을 사용하기 시작해 여성들은 힘겨운 가사노동에서 벗어났다. 여성들이 남는 시간을 활용해 교육을 받고 직장에서 일할 기회가 늘어나면서 여권(女權)은 비약적으로 신장했다. 전기 혜택이 없는 사회는 빈곤을 탈출할 수 없다. 에너지를 풍부하게 이용할 수 있는 사회에서는 경제적 기회가 그만큼 많다. 제러미 리프킨은 저서 ‘공감의 시대’에서 21세기는 에너지 확보가 개인의 사회적 권리이자 인권이 되는 세상이라고 썼다. 우리는 전기를 물이나 공기처럼 흔하게 쓰면서 전기가 문명과 문화, 그리고 인권 향상에 이바지한 공로를 잊고 사는지도 모른다.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는 인류가 에너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느냐는 어려운 숙제를 제기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은 전체 원전 54기 중 48기의 가동을 중단했다. 나머지 원전 6기도 내년 봄까지 정기점검을 위해 가동을 중단했다가 재가동을 하려면 지방자치단체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주민과 지자체의 반발로 내년 상반기에는 일본에서 모든 원전이 정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나라마다 에너지 환경 다르다 일본은 모든 기업에 전력소비를 30% 줄이도록 강제하고 있다. 최근 일본 공장의 해외 이전 러시는 전력난(難)이 중요한 요인이다. 내년 여름 일본이 원전을 모두 없애고서도 위기를 넘기면 한국의 반핵(反核)단체들은 “일본을 보라”며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일본이 원전을 없애면 결국 CO₂를 발생시키는 화석연료 의존도를 높여야 하고 전기요금이 폭등할 것이다. 일본이 탈(脫)원전으로 가면 전기료가 50∼70%가량 오르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작년 3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집권 기민당이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회 선거에서 58년 만에 패배했다. 후쿠시마 원전 참사가 불러온 나비효과였다. 원전 의존율이 25%인 독일은 녹색당이 강세이고 전기를 프랑스와 체코에서 일부 수입해 쓰는 나라다. 메르켈 총리는 선거 패배 후 두 달 만에 2022년까지 모든 원자력발전소를 폐쇄하겠다는 탈핵 선언을 발표했다. 과연 독일의 탈핵이 실현될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반면에 독일과 국경을 맞댄 프랑스는 원전 의존율이 75%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주요 석유 석탄 수입국인 프랑스의 에너지 사정은 한국과 비슷하다. 환경주의자들이 찬미하는 신재생에너지인 풍력 태양광 발전으론 원전을 대체할 수 없다. 전력생산 단가는 kWh당 원자력이 39원, 석탄 54원, 천연가스 147원, 풍력 128원, 태양광 859원이다. 월드컵경기장만 한 용지의 원전 1기에서 생산하는 전력을 풍력으로 만들어 내자면 월드컵 경기장이 51개 필요하고, 태양광은 151개가 들어간다. 지금의 기술 수준으로 우리가 쓰고 있는 전력을 전부 태양광으로 공급하려면 거의 충청북도 면적의 땅이 필요하다. 생산단가에서 원전에 가장 근접한 석탄 발전은 체르노빌 원전보다 결코 안전하지 않다. 중국에서는 석탄 채굴과정에서 각종 재해로 매년 2000∼3000명의 광원이 사망한다. 석탄을 태울 때 나오는 CO₂와 검댕은 온실가스를 증대시키고 주민의 건강을 해친다. 일본처럼 지진과 쓰나미가 잦은 나라는 국민의 불안감이 커서 원전 건설을 계속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은 일본처럼 활발한 지진대에 있는 나라가 아니다. 후쿠시마 원전도 쓰나미 방벽을 4m만 더 높였거나 비상발전기를 지하가 아니라 높은 곳에 두어 침수되지 않게 했더라면 대형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 원전을 대체할 에너지원으로는 수소 연료전지와 핵융합발전이 가장 유력하다. 빌딩마다 수소 연료전지를 이용한 발전소를 만들면 기업들은 필요한 에너지를 스스로 생산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그런 기술의 발전소가 상업운전으로 이어지기까지에는 장구한 세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원자력 에너지가 지금으로선 현실적이고 불가피한 대안이어서 좀 더 완벽한 대안이 나올 때까지 가교(bridge) 에너지 역할을 수행할 수밖에 없다.전기는 이념 아닌 먹고사는 문제 요즘 영하의 날씨에 난방수요가 급증하면서 블랙아웃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다. 민주통합당은 원전에 반대하고 있고 진보신당은 탈핵을 부르짖지만 대안을 내놓고 말해야 한다. 민주당 소속 최문순 강원지사는 도지사 후보 시절 ‘삼척 원전’에 반대했으나 지금은 “강원도가 오죽하면 원전까지 유치하려 했겠느냐. 안전성과 환경성이 확실히 보장되고 주민 의사가 반드시 투명하게 반영돼야 한다”며 유연한 태도로 돌아섰다. 사람이 먹고사는 것과 관련된 일에 지나치게 정치 이데올로기를 들이대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전기료가 비싸지면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은 서민의 생활권이다.황호택 논설실장 hthwang@donga.com}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가 정강 정책에서 ‘보수(保守)’라는 용어를 삭제하려는 논의를 하고 있다. 비대위의 김종인 정강정책·총선공약 분과위원장은 “외국 어떤 정당의 정강 정책에도 ‘보수’가 들어간 예를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영국 보수당은 170년 넘게 ‘보수’를 정강 정도가 아니라 당명으로 사용하고 있다. 지켜야 할 가치를 지키는 보수가 문제가 아니라 ‘보수할 것을 제대로 보수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와 법치로 압축되는 헌법적 가치를 지키는 것이 지금까지 한나라당이 견지한 보수의 참뜻 아닌가. 한나라당은 이것을 버리자는 것인가. 김 비대위원은 ‘문제는 리더다’라는 책에서 “우리는 보수와 진보라는 말 자체가 불필요한 포스트 이데올로기 시대를 살고 있다”고 주장했다. 보수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이데올로기를 의미한다면 변종 공산주의 세습왕조체제인 북한과 대치하는 우리로서는 이 말을 더더구나 버려선 안 된다. 김 비대위원은 1980년 전두환 군부세력이 주도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위원과 국가보위입법회의 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해 민정당 창당 때 정강을 만드는 데 참여했다. 그는 헌법을 총칼로 짓밟은 군사정권에 협력하고, 한때는 김대중 정권에 협력하느라 ‘진정한 보수’를 추구한 적이 없다. 한나라당은 창당 이래 당헌에서 ‘중산층이 두터워지는 사회’ ‘사회 양극화가 해소되는 사회’를 추구한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이 중도 성향 유권자를 끌어들이려 한다면 공약으로 외연(外延)을 확장하면 된다. 영국 보수당은 윈스턴 처칠 내각에서 중도로 움직일 때나 마거릿 대처 내각에서 중도를 버릴 때나 모두 공약(manifesto)을 통해 그렇게 했다. 한나라당이 보수란 표현을 처음부터 쓰지 않았다면 모르되 지금에 와서 그 표현을 삭제하는 것은 얄팍한 기회주의로 비치고, 보수층의 반발과 이탈만 부르기 쉽다. 이명박 정부가 ‘중도 실용’을 지향했지만 실패한 것은 광우병 사태 같은 국정의 고비마다 보수 지지층의 기대를 저버림으로써 응원의 동력(動力)이 따르지 않았던 탓도 크다. 민주당은 지난해 민주통합당으로 야권 통합을 이루면서 강령 정책에서 ‘법치’ ‘시장경제’라는 용어를 빼려다 여론에 밀려 멈칫했다. 법치와 함께 시장경제는 독일 사회민주당(SPD)과 영국 노동당 등 서유럽 좌파 정당도 인정하고 있는 가치다. 독일 SPD는 1959년 고데스베르크 강령을 통해, 영국 노동당은 1995년 당헌 4조의 삭제를 통해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폐기했다. 한나라당은 옛 민주당 노선을 쫓아가고, 민주통합당으로 신장개업한 옛 민주당은 옛 민주노동당의 노선을 쫓아가는 듯한 양상이다. 야권 전체의 중심이 급격히 좌로 기울고 있는 만큼 한나라당이 더욱 중심을 잡고 버텨줘야 우리 사회의 균형이 유지될 수 있다. 한나라당 비대위가 추구할 쇄신은 ‘보수와 결별한 중도’라는 마이너스 쇄신이 아니라 ‘중도를 포함한 보수’라는 플러스 쇄신이 돼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의 외부영입 비상대책위원 중 한 명인 이상돈 중앙대 교수가 세칭 합리적 보수에 어울리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확실한 것 하나는 그가 뼛속까지 친박(親朴·친박근혜), 그것도 혐(嫌)MB의 친박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2007년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 올해 ‘조용한 혁명’이란 제목의 칼럼집을 냈다. 보수와 진보 작가가 각각 썼나 싶을 정도로 논조가 다르지만 바탕에 흐르는 ‘혐MB의 친박’이라는 정서는 똑같다.박근혜 따라 우파에서 중도로 그의 정치 이념은 본래 중도 아닌 우파였다. 그는 2006년 9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세미나에서 “영국은 2차 세계대전 후 노동당과 중도 보수당이 돌아가면서 40년 세월 집권하다가 나라를 완전히 들어먹을 뻔했다. 보수당이 뒤늦게 당내 우파인 마거릿 대처를 당대표로 내세워 1979년 총선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영국이 되살아난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에게 2007년 대선에서 한국의 대처는 바로 박근혜였다. 당시 ‘중도실용’ 운운한 MB는 영국의 중도 보수당처럼 의심스러운 노선의 후보였다. 그런 그가 MB처럼 말로만 중도가 아니라 정말 중도로 움직이는 박근혜의 편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서 있는 것은 그 두뇌 구조가 철저히 친박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지식인으로서 이념에 따라 친박인 것은 부끄러워할 게 없지만 친박을 위해 이념을 맞추는 것은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의 자칭 ‘정통보수’ ‘주류보수’의 눈으로 볼 때는 안병직 교수나 신지호 홍진표 등 전향한 좌파, 즉 뉴라이트 우파들조차도 미심쩍은 우파들이었다. 박세일 교수에 대해서는 선진화라는 이름의 공허한 담론을 펴고 있다고 비판했다. 2006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 오세훈은 과거 환경운동연합에 속했다는 이유만으로 보수가 아니라 진보의 트로이 목마라는 판정을 받았다. 그에게는 운동권 출신의 검사였던 원희룡도 정체불명의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MB 정권에서는 표변해 좌파들과 어깨동무하고 MB를 공격하는 데 앞장섰다. 좌파들은 그에게 감사패라도 주고 싶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는 4대강 사업의 실정법 위반 운운하며 이를 저지하기 위한 국민소송단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운동이라고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탁상머리의 법대 교수가 처음 해본 국민소송이었는데 완패했다. 그는 천안함 폭침에 대해서는 과잉무장에 따른 선체(船體)의 피로파괴 가능성을 제기했다가 그제 천안함 유족의 항의를 받고서야 경솔함을 사과했다. PD수첩 광우병 보도나 BBK 검찰 수사에 대해서도 MB를 비판했다. 그의 글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독일 방문 중에 에르하르트 독일 총리와 함께 아우토반을 달리면서 울창한 슈바르츠발트(흑림)를 보고 고속도로 건설과 산림녹화를 결심하게 됐다”는 대목이 나온다. 그가 증오하는 것은 토건 그 자체가 아니라 MB의 토건이다. 반면 그가 사랑하는 것은 박근혜뿐 아니라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이다.大義를 小利로 만든 친박의 옹졸함 그는 박근혜가 대승적으로 MB에 협조하는 것조차 반대했다. 그는 2008년 11월 30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오바마 정권에서 국무장관을 맡는 모습이 아름답다면서 박근혜 전 대표의 ‘냉랭함’을 비난하는 것은 박 전 대표를 흠집 내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라고 썼다. 자기 울타리에 갇힌 박근혜의 안목이 그를 비대위원으로 골랐다. 그는 비대위에서 정치 및 공천 개혁을 다루는 분과위원장을 맡았다. 그가 ‘MB 정부 실세 용퇴론’을 주장하고 나서 한나라당이 시끄럽다. 사실 친이계의 실세 의원들을 좋아하는 국민은 별로 없다. 그러나 같은 말이라도 그가 ‘물러나라’고 말하면 대의(大義)도 소리(小利)로 들릴 수 있다. 한나라당이 재창당 수준의 쇄신을 친박과 친이의 이전투구로 전락시키지 않으려면 누굴 몰아낼까보다 누굴 모셔올까를 먼저 생각하기 바란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한 해가 저물어간다. 굉음과 함께 달려와 잠깐 역에 머물고 다시 긴 여운을 남긴 채 휙 사라져가는 기차처럼 한 해가 간다. 희망의 한 해를 기원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제야(除夜)의 종소리를 들어야 할 시간이다. 새 달력을 걸 때는 365개의 날들이 긴 것처럼 생각됐지만 12월 마지막 주에 들어서면서 겨울 해처럼 짧게 느껴졌다. 2011년은 동유럽 공산권 붕괴가 시작된 1989년, 유럽의 절대 왕정이 잇따라 몰락한 1848년에 비견될 수 있다. 튀니지에서 분 재스민 향기의 바람은 이집트로, 리비아로 퍼져 나갔다. 그 바람은 중국에서도 민주화를 꿈꾸는 재스민 시위를 일으켰으나 안타깝게도 북한에까지 닿지는 못했다. 김정일이 올해를 넘기지 못하고 급사(急死)했다. 세계사는 한 사람의 자유로부터 모든 사람의 자유로 나아가는 진보의 기록이다. 북한은 김일성 정일 정은으로 지도자의 이름만 바뀌었을 뿐 ‘한 사람만 자유’인 시대에 머물러 있다. 새해에는 북한에도 ‘모든 사람의 자유’로 나아가는 시대가 열리기를 기원해본다. 정당의 위기다. 안철수 돌풍은 한국 정치사에 처음 보는 현상이다. 한나라당은 재창당 수준의 쇄신을 추진하고 민주당은 민주통합당으로 탈바꿈했지만 여전히 안철수 한 사람 앞에서 흔들린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스마트폰이 새로운 정치의 장을 열었다. 기성 정당과 정치인도 새로운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고 쇄신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하지만 SNS의 쏠림이 우리 사회를 어디로 끌고 갈지 몰라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올해 연간 무역규모 1조 달러를 돌파했다는 소식도 통장에 잔액이 줄고 빚만 느는 서민과 중산층에겐 남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1970년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현대판이라 할 수 있는 ‘완득이’가 소설과 영화로 인기를 얻을 정도로 힘든 삶이다. 이런 때일수록 주변의 어렵고 힘든 사람을 둘러보는 마음이 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한다. 중국집 배달원을 하면서 기부를 아끼지 않았던 고 김우수 씨가 있었다. 구세군 자선냄비에 1억 원이 넘는 수표를 익명으로 넣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삼호주얼리호 선원을 구한 아덴 만 여명작전의 성공에 온 국민이 박수를 보냈다. 죽음을 각오하고 군 작전을 도운 석해균 선장은 국민적 영웅이 됐다. 케이팝의 유럽 미국 남미 진출은 우리 것도 세계적으로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줬다. 평창은 세 번의 도전 끝에 독일 뮌헨, 프랑스 안시를 제치고 2018년 겨울올림픽을 따냈다. 궂은일도 많았고 경사도 많았다. 잊고 싶은 일일랑 세밑의 어둠에 묻어 버리자. 달력의 마지막 장을 넘기며 작은 목소리로 말해본다. 2011년이여, 안녕.}
미국에서 중고교 학생은 자유롭게 머리를 하고 학교에 다닐 수 있다. 그러나 복장에는 제한이 있다. 교내에서 교사가 지시하면 모자를 벗어야 한다. 학교가 교복을 정하면 반드시 입어야 한다. 교복이 없는 학교에서도 비속한 표현이나 술 담배 같은 광고가 들어있는 옷은 입을 수 없다. 교내에서 집회의 자유는 보장된다. 다만 집회를 학과 시간 중에 열 때는 교장이 미리 지정한 시간과 장소에서만 가능하다. 학교는 ‘합리적 의심’이 들 때는 학생의 소지품을 검사할 수 있다. 물론 학생은 불이익을 감수하고 검사를 거부할 수 있다. ▷체벌에 대해서는 주마다 규제가 다르다. 미 연방대법원 판결은 주에 관련법이 없는 경우 체벌은 잔인하고 상궤를 벗어난 것이 아닌 한 가능하다는 쪽이다. 매사추세츠 주 등 20여 개 주는 체벌을 금지하는 주법을 갖고 있지만 나머지 주는 그렇지 않다. 체벌을 금지하는 주도 학생의 규정 위반을 세분화하고 그에 따른 상세한 징계 규정을 둠으로써 체벌금지에 따른 교수의 학생지도권 약화를 보완하고 있다. ▷서울시의회가 어제 경기도와 광주시에 이어 세 번째로 학생인권조례를 채택했다. 교내에서 집회의 자유는 경기도와 광주시의 조례에는 없던 것이다. 앞으로 학교에서 학생들이 시위하는 낯선 풍경도 연출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학교 운영을 방해하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시위여서는 안 된다. 동성애 차별 금지는 옳지만 사회에서도 정리되지 않은 사안이라 배우는 학생들을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 두발을 자유로 하는 대신에 복장은 학칙으로 규제할 수 있게 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빨간색 파란색으로 머리 염색하는 것 정도는 개성으로 존중해 줄 만하다고 본다. ▷체벌금지는 학칙 위반에 대한 징계 규정이 자세하지 않고 퇴학 같은 징계가 쉽지 않은 우리 교육 현실에서는 이른 감이 있다. 소지품 검사도 ‘학생 동의’를 먼저 요구하면 폭력 예방이 어려울 수 있다. 휴대전화 허용까지 조례가 강제하는 것은 황당하다. 휴대전화가 도대체 인권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구미(歐美)에서는 많은 학교가 교내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한다. 휴대전화는 조례로 일률적으로 정할 게 아니라 학교의 자율에 맡기는 것이 좋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