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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사진)은 부활절(16일)이자 세월호 참사 3주년을 앞두고 “이 나라에 더는 무죄한 이들의 죽음이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생명을 더욱 귀중하게 여기고, 이를 최우선의 가치로 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는 메시지를 12일 발표했다. 염 추기경은 이어 제19대 대통령선거와 관련해 “국민으로부터 선택받은 새로운 지도자가 갈등과 분열을 뒤로하고, 화해와 일치를 통해 화합의 길로 나아가도록 이끌어 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그리스도교 교회력에서 부활절은 춘분 이후 첫 번째 보름달이 뜬 다음에 오는 주일(일요일)로 정해진다. 이 때문에 매년 날짜가 바뀐다. 보통 부활절이 있는 4, 5월은 격동의 현대사와 관련된 기념일이 적지 않다. 올해 부활절은 4월 16일 세월호 참사 3주년 날짜와 겹쳤다. 가톨릭과 개신교는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미사와 예배를 열 예정이다. 30년 전인 1987년에는 마침 4·19 때였다. 당시 개신교 원로였던 강원용 목사(1917∼2006)는 4·19를 앞두고 동아일보에 ‘자유(自由) 정의(正義)의 부활’이란 칼럼을 썼다. “부활 신앙은 억압 속에서 자유가, 부정 속에서 정의가, 분열 대립 전쟁 속에서 평화가, 허위와 과장된 선전 속에서 진리가, 증오와 편견 속에서 사랑이, 그리고 죽음과 무덤 속에서 부활이 승리함을 믿는 신앙이다.” 강산이 세 번 바뀐 올해 대한민국은 안팎으로 격변기를 맞고 있다. 원로의 그 목소리도 여전히 되새겨야 할 듯하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경기 양평군의 복합기독교 문화공간인 ‘더블유 스토리(W Story)’에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교회’(사진)가 건립됐다. 신앙을 통한 가정회복 운동을 전개해온 하이패밀리 대표 송길원 목사(59)는 10일 “500년 전 마르틴 루터에게서 비롯된 종교개혁 정신을 이 시대에 되새겨 보자는 의미에서 뜻있는 분들과 힘을 합쳐 기념교회를 세우게 됐다”며 “부활절인 16일 봉헌예배를 드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건축가 박민철이 설계한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교회는 연면적 2000여 m²의 3층 규모 건물이다. 흰색 외벽에는 하늘나라에서 예수가 아이들과 강강술래를 하며 뛰노는 모습을 부조로 새겼다. 교회 밖에는 천사상 8개가 합창하는 모습을 이루고 있다. 교회 안에는 12마리의 물고기가 헤엄치는 듯한 형상으로 곡선미를 살린 4.5m 높이의 십자가상을 세웠다. 송 목사는 “해가 질 무렵이면 창문을 통해 들어온 빛에 의해 마치 ‘섀도 아트’처럼 흰 콘크리트 벽면에 십자가 형상을 드리우게 된다”고 설명했다. 루터 시대의 파이프오르간을 재현해 설치하는 작업도 국내 기술로 구현됐다. 홍성훈 오르겔바우마이스터가 제작한 이 파이프오르간은 366개의 파이프로 구성됐으며 폭 3m, 높이 4.5m로 무게만 2t에 이른다. 송 목사는 “파이프오르간은 신자 개개인이 제사장이라는 루터의 만인제사장설을 뒷받침하는 표현수단으로서 평등사상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송 목사는 그동안 특정한 한 교회의 담임목사를 맡는 대신 ‘가정사역’을 내세워 비정부기구(NGO) ‘하이패밀리’를 만들어 활동해왔다. 이 교회는 송 목사의 모교인 고려신학대학원 38회 동기들이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교회’ 공동 개척을 결의하고 지원했다. 송 목사는 “종교개혁가들이 당시 발견한 세계관은 일상, 가정, 직업의 거룩함이었는데 물신주의에 무릎을 꿇은 듯한 지금의 교회 모습은 또 하나의 면죄부 판매인 셈”이라며 “삶과 신앙의 괴리를 극복하고 통일시대를 앞당기는 교회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경기 성남시 분당구 대광사(주지 월도 스님)에 17m 높이의 거대 미륵불상을 봉안한 동양 최대 규모의 단일 목조건축물인 미륵보전이 들어섰다. 10일 오전 대광사에서 열린 미륵보전 낙성식과 미륵존불 봉안 대법회에는 천태종 종정 도용 스님, 총무원장 춘광 스님을 비롯해 1만여 명이 참석했다. 미륵보전은 1층 연면적 661m²(약 200평), 높이 33m의 외형상 3층 건축물로, 내부는 통층 구조다. 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인 신응수 대목장이 도편수를 맡아 14년 만에 불사를 마쳤다. 11t 트럭 200대(총 2200t) 분량의 목재가 사용된 미륵보전은 단일 목조건물로는 동양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대들보로 사용한 목재는 수령 453년의 캐나다산 홍송(紅松)이다. 건물 1층에는 용화회상, 2층에는 미륵보전, 3층에는 도솔천궁이라는 현판이 각각 걸렸다. 신 대목장은 “국내의 금산사 미륵전과 경복궁 근정전 및 중국과 일본의 대형 목조건축물 등 유수의 대형 건축물을 참고해 이번 대작 불사를 완성했다”고 말했다. 통층 구조의 미륵보전 내부에는 미륵존불 좌상을 모셨다. 높이 17m의 좌불상은 김용섭 씨가 조성했다. 이 좌불상에는 청동 88t, 정사각형 11cm짜리 금박 15만 장이 사용됐다. 사용된 금가루만도 1.6kg에 이른다. 미륵불은 석가모니 부처가 열반에 들고 56억7000만 년 후에 나타나 중생을 구제한다고 알려진 ‘미래의 부처’로, 미륵신앙은 미륵불이 출현해 모든 고통을 소멸하고 세상을 구원한다는 염원을 담고 있다. 대광사 주지 월도 스님은 10일 “현대인의 좌절과 포기, 상대적 박탈감과 빈곤감이 더욱 깊어지는 상황에서 미래의 희망을 보여주는 미륵불을 조성하게 됐다”며 “미륵불이 국운을 융성시키고, 남북 평화통일과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거룩한 부처님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미국 대선에서도 ‘가짜 뉴스(fake news)’가 맹위를 떨쳤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치러지고 있는 국내 대선에서도 네거티브 공방이 치열해지면서 가짜 뉴스를 가려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지난달 29일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와 동아일보, 채널A 등 국내 16개 언론사가 협업해 뉴스의 진위를 가려내는 ‘SNU 팩트체크’(factcheck.snu.ac.kr)가 출범했다. ‘SNU 팩트체크’는 정치인의 발언, 정치인과 관련된 의혹 제기, 기타 주요 현안에 대한 뉴스의 진위를 검증하는 시스템이다. 참여하는 16개 언론사에 실리는 ‘팩트체크’ 기사의 검증결과를 사실부터 거짓까지 5점 척도로 점수를 매겨 계기반의 바늘로 보여 준다. 10일부터는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도 서비스된다. 지난 6개월 동안 팩트체크 시스템을 개발해 온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장(54)을 4일 연구실에서 만났다.》 ―예전부터 유언비어, 괴담이 있었다. 그런데 가짜 뉴스 문제가 갑자기 심각하게 떠오른 이유는 무엇인가. “예전의 유언비어는 그냥 떠돌아다니는 소문이었다. 그런데 가짜 뉴스는 외형상으로는 방송 뉴스나 신문 기사의 형태와 똑같아 구별이 불가능하다. 마치 프로 언론인이 쓴 것처럼 육하원칙에 맞고, 리드 문장과 헤드라인도 붙이고, 발언도 인용하고, 외신이나 과학저널 같은 소스까지 붙인다. 심지어 방송사나 신문사의 로고까지 붙여 유포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일반인뿐 아니라 전문가들이 봐도 깜빡 속을 수밖에 없다.” ―최근 한국언론재단의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76%는 가짜 뉴스 때문에 진짜 뉴스를 볼 때도 가짜로 의심한다고 답했는데…. “보이스피싱 전화에 한번 당하고 나면, 모르는 번호로 걸려 오는 전화는 무조건 겁이 난다. 이처럼 가짜 뉴스에 한번 속고 나면, 모든 뉴스가 가짜처럼 보인다. 진짜와 가짜의 구분이 흐려지면 진짜 뉴스까지 사람들에게 의심받는 것이다. 이른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이다. 이렇게 되면 사회적 신뢰가 무너지고, 민주주의의 기반이 흔들린다.” “짧은 대선 탓 네거티브 더 치열” ―가짜 뉴스는 주로 어떤 경로로 유통되는가. “페이스북, 카카오톡,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주요 통로다. 요즘 사람들은 SNS로 가까운 지인들이 보내 주는 뉴스만 주로 받아 본다. 퍼스널 네트워크를 통해 받은 뉴스는 가까운 사람에 대한 신뢰가 더해지기 때문에 더 믿게 된다. 가짜 뉴스는 100% 가짜가 아니다. 90%는 진짜를 넣고 결정적인 내용만 가짜 뉴스를 섞어 교묘하게 포장한다. 이 때문에 보낸 사람도, 받는 사람도 가짜인 줄 모르고 퍼 나르게 되는 것이다.” ―SNS를 통한 뉴스 소비의 문제는…. “필터버블(Filter Bubble) 현상이다. 사람들이 비눗방울 같은 곳에 갇혀 있는 상태를 말한다. SNS에서 1촌, 2촌을 맺은 사람들이 보내 주는 뉴스에만 의존하면 자기 세계에 갇힌다. 이번에 촛불 시위, 태극기 시위 때도 필터버블 현상이 심했다.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끼리 똘똘 뭉쳐 있는 관계가 형성되면 가짜 뉴스가 틈새를 파고들 가능성이 커진다. 집단 내부에서 믿고 싶은 것, 보고 싶은 내용의 가짜 뉴스가 맞춤형으로 제작되기 때문이다. 이런 뉴스를 접한 사람들은 점점 더 자신의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강화하게 된다.” ―필터버블로 인한 가짜 뉴스 사례는…. “태극기 시위 군중의 SNS를 통해 급속하게 퍼졌던 ‘박영수 특검이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에게 90도로 절하는 사진’, 촛불 시위 군중에게 퍼졌던 ‘반기문 전 총장의 퇴주잔 마시는 영상’ 같은 게 대표적이다. 사진 속 인물은 박영수 특검이 아니라 다른 인물이었고, 반 총장의 퇴주잔 영상은 중간 과정을 삭제해 교묘하게 편집한 것이다. 나중에 이것이 가짜 뉴스로 밝혀진다고 해도, 이미 사람들은 비웃고, 조롱하고, 부정적 정서를 잔뜩 만족시킨 다음이다. 가짜 뉴스는 진실에 관계없이 이미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 된다.” 지난해 미 대통령 선거 당시에도 페이스북에서 가장 많이 공유된 뉴스 5개 중 4개가 가짜 뉴스로 밝혀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트럼프 지지를 발표했다’(1위), ‘클린턴 후보가 이슬람국가(IS)에 무기를 판매했다’(3위)는 삽시간에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미국 대선 3개월간 가짜 뉴스 20개의 페이스북 내 공유, 반응, 댓글 수는 871만여 건으로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매체보다 더 많은 반응을 이끌어 냈다고 한다. 윤 교수는 “5월 9일 치러지는 이번 대선은 검증할 기간이 짧은 탓에 어느 때보다도 ‘아니면 말고 식’의 네거티브 공방이 치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치인의 발언을 검증하는 이유는…. “지난해 11월 1일 YTN이 ‘도널드 트럼프, 여성 대통령의 끝을 보려면 한국의 여성 대통령을 보라’는 제목의 뉴스를 보도했다. 트럼프가 연설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여성 대통령으로 뽑으면 한국에서와 같은 문제가 생긴다는 발언을 했다는 내용이다. 이 기사를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 공식석상에서 인용해 정치 외교적으로 큰 파문이 일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기사는 국내의 한 누리꾼이 ‘트럼프가 이렇게 말하면 선거에서 이기지 않을까’라고 가정하며 트럼프 연설 사진에 문구를 합성해 페이스북에 올린 가짜 뉴스였다. 가짜 뉴스가 정치인의 발언을 거치면 순식간에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아주 잘 만든 가짜 뉴스” ―정치인의 발언 중에 어떤 것을 검증하나. “예를 들면 문재인 후보가 3월 7일 채널A ‘외부자들’에 나와 ‘안보 문제와 관련해 내가 모든 후보자 중 가장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여러 여론조사 결과 중에서 문 후보가 자신에게 유리한 조사 결과만 인용하지 않았는지를 검증하는 것이다. 정치인의 말실수를 물고 늘어지는 것은 검증 대상이 아니다. 이를테면 안철수 후보의 ‘사면 검토’,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선의’, 문재인 후보의 ‘전두환 표창’ 발언 등은 맥락을 거두절미한 채 시빗거리를 만든 측면이 강하다. 오히려 정치권에서 그 발언에 대해 악의를 갖고 과도하게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하는 행위를 팩트체크 해야 한다.” ―지난 대선에 이어 이번에도 시사 정치를 다루는 팟캐스트, 유튜브, 페이스북 등 ‘1인 미디어’가 영향력을 발휘하는데…. “1인 미디어가 가져온 긍정적 가치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런 매체는 인력과 예산에 한계가 있어 눈길을 끌기 위해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방향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다. 가짜 뉴스는 특별한 것은 아니다. 팩트체크를 소홀히 한 상태에서 성급하게 결론을 내린다든가, 충분히 취재되지 않은 상태에서 보도하면 가짜 뉴스가 되는 것이다.” ―세월호가 인양된 후 외부에서 충격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잠수함 충돌설’을 제기한 자로의 다큐멘터리 ‘세월X’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는데…. “8시간이 넘는 분량인 다큐멘터리 ‘세월X’는 한 개인이 진짜 굉장히 오랜 시간 노력을 들여 방대한 자료를 모아서 만든 콘텐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개인이 혼자 할 수 있는 검증 능력엔 한계가 있다. 그런데 일부 방송이 자로의 주장을 특집 프로그램으로 다루는 것을 보고 사실 굉장히 놀랐다. 그걸 방송에 내려면 근거 자료 하나하나까지 타당성, 신뢰성에 대해 굉장히 면밀히 검증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한 것 같지가 않다. 결과적으로 ‘아주 잘 만든 가짜 뉴스’에 넘어간 측면이 크다.” 해외에서도 팩트체크 시스템 개발이 활발하다. 프랑스는 지난달 AFP, 르몽드, 프랑스텔레비지옹 등 17개 언론사가 참여하는 ‘크로스체크(CrossCheck)’를 출범시켰다. 하나의 팩트를 놓고 참여 언론사가 교차 검증하고, 취재수첩도 공유하고, AFP 출신의 에디터가 최종 데스킹을 한 뒤 공동 기사 형태로 출고한다. 미국에서는 폴리티팩트(Politifact), 워싱턴포스트의 팩트체크, 펜실베이니아대의 ‘팩트체크오아르지(FactCheck.org)’가 3대 팩트체커로 꼽힌다. ―팩트체크 시스템 개발에 참고한 해외 모델은. “프랑스의 ‘크로스체크’는 참여 언론사가 완전 협력해 교차 검증하는 이상적인 모델이다. 그러나 국내 언론계의 협력 분위기가 그 정도로 무르익지는 않았다. 펜실베이니아대는 공공정책연구소 내에 전문 팩트체커를 고용해 자체적으로 기사를 검증한다. 그러나 서울대에 팩트체커 5∼10명을 연구원으로 둔다고 해도 방대한 팩트체크를 다 수행할 수는 없다. 팩트체커는 단기간에 양성하기가 어렵다. 언론사에 입사해서 수많은 경험을 쌓으며 언론인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이 바로 능력 있는 팩트체커를 길러 내는 과정이다. 기존 언론사의 팩트체크 활동을 네트워크로 만드는 것이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팩트체크는 언론의 영역” ―각사의 팩트체크 기사를 나열하는 것만으로 큰 효과가 있을까. “독자들은 각 언론사의 팩트체크 기사를 보며 어느 언론사가 더 신중하게 팩트를 검증했는지 한눈에 비교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언론사 간의 이념적 편향성이 존재하더라도, 팩트 검증의 엄정성을 놓고 경쟁을 벌이게 될 것이다. 16개 언론사가 모범을 보인다면 자연스럽게 ‘낙수효과’가 일어나 전체 언론계에 긍정적 효과를 미칠 것이다.” ―청와대 등 정부기관에서도 팩트에 대한 해명을 내놓는 경우가 많다. 정부기관은 팩트체크에 참여할 수 있는가. “팩트체크는 언론의 영역이다. 정부기관 또는 기업은 팩트체크에 참여할 수 없다. 국가기관이 전혀 중립적이지 않다는 건 비선 실세 국정 농단 사태를 통해 확인하지 않았는가. 가짜 뉴스의 온상인 정치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정치권에서 ‘가짜 뉴스와의 싸움’에 나서겠다고 하는데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다. 팩트체크는 언론과 대학 같은 공공 영역에서 맡는 것이 맞다.” 윤 교수는 “우리 사회에 아마 오래전부터 가짜 뉴스는 굉장히 많이 돌아다녔고, 가짜 뉴스인 줄도 모르고 소비한 경우도 많았을 것”이라며 “그런데 오히려 요즘 들어 가짜 뉴스에 대한 경각심이 생기면서 가짜 뉴스를 주목하고 제대로 검증하기 시작한 것이 희망”이라는 말로 인터뷰를 맺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현역 문인 가운데 최고령으로 활동해 온 시인 황금찬(黃錦燦) 씨가 8일 오전 강원 횡성의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9세. 세계와 인간을 조망하는 낭만주의 시인으로 평가받아온 고인은 8000여 편의 시를 남긴 다작의 시인으로 통한다. 시인은 격월간지 ‘한국문인’(2003년 89월호)에 실은 가상유언장에서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 시비(詩碑)에 새겨 달라며 시 한편을 남겼다. ‘네가 떠난/ 빈 자리// 하이얀 태양이/ 말이 없고// 구름 길/ 겨울 파도 소리’ (‘빈 자리’) 강원 속초 출신인 시인은 소작농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함경북도 성진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1939년 ‘문장’에 시 추천을 의뢰했다 떨어지자 그해 가을 문학 공부를 하기 위해 일본 유학길에 나섰다. 부두 노동을 하며 번 돈으로 일본 다이도(大東) 학원을 다니던 중 시인은 1943년 ‘아시아문학발표회’ 참석차 도쿄를 방문한 춘원 이광수를 만나게 된다. 시인은 춘원에게 “우리 말이 없고 우리 글이 없는데 어떻게 글을 쓸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고 “슬픈 일이지만 남의 말과 남의 글자라도 빌려서 문학을 해야 한다. 이럴수록 희망을 가지고 우리 문학을 지켜가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조국을 사랑하는 길이다”라는 답을 얻었다. 훗날 시인은 이 일을 회상하며 “큰 위로와 격려가 됐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4년간의 일본생활을 정리하고 성진으로 돌아 온 시인은 노동운동에 뛰어들기도 했고, 625 전쟁으로 월남한 뒤에는 강릉농업학교 동성고교 등에서 국어교사로 일했다. 1948년 월간 ‘새사람’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51년 강릉에서 ‘청포도’ 동인을 결성했고 이듬해 청록파 시인 박목월(1915~1978)의 추천을 받아 ‘문예’로 등단했다. 그는 1953년 ‘문예’와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해 ‘현장’ ‘오월나무’(1969) ‘나비와 분수’(1971) ‘오후의 한강’(1973) ‘호수와 시인’(2003)을 비롯해 ‘추억은 눈을 감지 않는다’(2013)까지 모두 39권의 시집을 발표했다. 시인은 마흔 번째 시집을 엮어내는 게 소원이라며 말년까지 작품활동을 했다고 제자와 유족이 전했다. 또 ‘행복과 불행 사이’ 등 산문집 15권도 펴냈다. ‘동해안 시인’으로 불린 고인은 오랫동안 해변시인학교 교장으로 활동했다. 재작년에는 시인의 업적을 기리는 황금찬문학상이 제정됐고 그의 이름을 딴 문학관 건립도 추진 중이다. 제자와 후배 문인들이 그를 노벨문학상 후보로 추대하기 위한 위원회를 꾸리기도 했다. 젊은 시절 박목월, 박두진, 피천득 등 동료 문인과 함께 시와 문학을 이야기하고, 모든 동료를 떠나보낸 뒤에도 홀로 시집을 향한 열정을 불태웠다. 후배 문인들에게 존경 받는 선배로 지난해 백수연 행사에서 제자 등에게 2018편의 필사집을 헌정 받기도 했다. 지난 2015년 황금찬 문학상이 창설됐다. 시인은 숭의여대 추계예대 강사, 크리스천문학가협회 회장 등을 지냈으며 월탄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문화보관훈장, 한국기독교문학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유족으로 도정 도원 애경 씨 등 2남 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01호에 마련됐다. 발인은 11일. 장지는 경기도 안성 초동교회묘지. 02-2258-5940.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인공지능(AI)을 탑재한 로봇의 발전이 눈부시다. 그러나 과연 기계가 아무리 발전해도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이 책의 주인공은 미래의 로봇 ‘안드로이드 잭’이다. 그의 절체절명의 미션은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배터리를 충전할 수 없어 3주 후 소멸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했다. 잭은 엄청난 학습능력으로 직장, 돈, 종교, 섹스, 예술, 유머 등 인간 삶의 다양한 면면을 탐구하며 ‘인간이 되는 법’을 공부한다. 안드로이드가 인간처럼 보이려면 따라해야 하는 인간의 행동은 때로는 비이성적이고, 불합리하고, 예측 불가능하다. 인간처럼 보이려면 싱크대에는 반드시 그릇을 몇 개 쌓아 두어야 하고, 식재료는 곰팡이가 피기 전까지 냉장고에서 꺼내면 안 된다. 연인관계에서는 상대방의 몸에 되도록 자주 밀착해야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멀리 떨어지고 눈도 마주치지 않아야만 사람이 아니라는 의심을 받지 않는다. “직장에서는 일하는 것처럼 보이되, 일을 정말로 끝내야 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실제로 일을 끝내선 안 된다. 인간은 이 같은 전략을 ‘미루기’라고 하는데, 사람처럼 보이려면 반드시 익혀야 하는 기술이다. 그럼 일하는 시간에는 뭘 해야 하나? 인터넷으로 고양이 사진이나 다른 사람의 아기 사진, 혹은 스포츠, 게임, 성적 자극을 주는 사진처럼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들을 찾아보면 된다.” 시나리오 작가 출신의 저자가 로봇의 눈으로 본 인간 관찰기에는 유머가 넘친다. 잭이 찾아내는 인간성은 가식적인 모습, 허영에 가득 찬 모습이다. 그러나 부정하고 싶어도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나 자신의 인간성을 돌아보게 만든다. 잭은 결국 자기 이익을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살인을 하는 사람 따위는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신의 스승이자 멘토, 연인이었던 그녀를 구하기 위해 더 이상 사람이 되기를 포기하고,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살기로 결심했을 때…. 잭은 진정한 사람이 된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대한불교 조계종의 새 원로의원 7명이 선출됐다. 조계종 원로회의는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4층 대회의실에서 철웅 스님(마곡사), 설정 스님(수덕사), 법타 스님(은해사), 성타 스님(불국사), 지하 스님(쌍계사), 월주 스님(금산사), 보선 스님(대흥사)을 만장일치로 새 원로의원으로 선출했다. 이번 새 원로의원 선출은 원로의장 밀운 스님을 비롯해 부의장 원명 스님과 명선 스님 등 원로의원 9명의 임기가 만료됐기 때문이다. 원로회의 새 부의장으로는 세민 스님이 선출됐다. 원로회의는 종정 추대권과 종헌 개정안 인준권, 총무원장 인준권 등의 권한을 가진다. 원로회의 의원 자격은 승랍 45년 이상, 연령 70세 이상 원로 비구로, 중앙종회의 추천을 받아 원로회의에서 재적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선출한다. 임기는 10년이며 중임할 수 없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국내 개신교계의 대표적인 초교파 신학 사상지로서 가장 오래된 월간지인 ‘기독교사상’(사진)이 지령 700호(표지)를 맞았다. 대한기독교서회(대표 서진한)가 발행하는 이 책은 1957년 8월 창간됐으며 올해 창간 60주년을 맞았다. 4년 먼저 창간된 ‘사상계(思想界)’와 함께 1950∼1960년대 한국 지성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으며 1960년대에는 토착화신학 논쟁을 이끌었고, 1970년대 민중 신학, 1980년대에는 평화통일 논의를 주도했다. 기독교사상은 개신교 교단교파를 초월해 활동하는 에큐메니컬(교회 일치와 연합) 운동을 주도해 온 신학 사상지다. 진보 성향의 원로인 김천배 김관석 박형규 목사, 유석종 유동식 장병일 교수 등이 차례로 역대 주간을 맡았다. 1985년 전두환 정권 당시에는 산업선교에 대한 기사를 게재했다가 6개월 동안 정간을 당하기도 했다. 700호에는 ‘기독교사상과 나’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가 실렸다. 박근원 한신대 명예교수, 지명관 전 일본 도쿄여대 교수, 한완상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 5명이 이 잡지가 걸어온 길과 자신의 경험에 대해 회고하는 글이다. 발행인인 서진한 목사는 4월호 권두언에서 “700호를 이어온 기본 생각은 신앙의 과제와 사회적 과제가 분리되지 않는다는 믿음”이라며 “기독교사상은 장래에도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 남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김흥수 편집주간(67·목원대 명예교수)은 통권 700호 발행에 대해 “교회 내부 문제만을 다루지 않고 분단과 독재라는 시대적 아픔을 성경적으로 해석하고 대안을 제시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에 남북통일과 세계평화를 염원하는 법당 무량수전이 새로 들어섰다. 지난달 31일 오후 경기 파주시 군내면 JSA 안보견학관 옆에 세워진 무량수전 법당 낙성법회(사진)가 봉행됐다. 이날 법회에는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과 군종교구장 정우 스님 등 종단 주요 소임자 스님들과 1군단장 서욱 중장, 1사단장 이종화 소장 등 군부대 관계자 및 JSA 불자 장병 등 600여 명이 참석했다. 무량수전 신축 법당은 법당 82.32m²(24.9평), 종각 9m²(2.72평)의 목조 건축물로 고려시대 수덕사 대웅전과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을 참고한 전통사찰 형식으로 지어졌다. 무량수전 내부에는 아미타 삼존불을 모시고 나라를 위해 전사한 국군장병들과 세계평화를 위해 먼 타국에서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전사한 16개국 전사자의 위패가 봉안됐다. 또한 법당 옆에는 조국통일과 세계인류 평화의 발원을 담은 무게 625관(약 2400kg)의 ‘평화의 종’도 조성됐다. 자승 총무원장은 “최근 북한의 잇따른 도발로 긴장감이 감도는 판문점에서 호국영령을 추모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통일의 염원을 담은 무량수전의 낙성은 어느 때보다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내년부터 51세 이상 65세까지의 은퇴자도 조계종 스님으로 출가할 수 있게 됐다. 대한불교조계종(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30일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중앙종회 임시회를 열어 ‘은퇴출가제도’를 신설하는 ‘은퇴출가에관한특별법 제정안’을 표결로 통과시켰다. 찬성 39명, 반대 5명, 기권은 8명이었다. 이 법이 발효되는 내년 1월 1일부터 51세 이상 은퇴자도 조계종을 통해 늦깎이 출가할 수 있게 됐다. 이전까지 종단법은 출가 연령을 13∼50세로 규정하고 있었다. 은퇴출가제도는 은퇴한 뒤 수행자의 삶을 꿈꾸는 이들에게 출가의 길을 열어주기 위한 것이다. 사회 각 분야에서 15년 이상 활동 경력이 있는 51세에서 65세 사이의 현업 은퇴자가 대상이다. 은퇴 출가자는 1년 이상 행자 생활을 한 후 사미·사미니계를 받을 수 있다. 5년 이상 사미·사미니 생활을 하면 비구·비구니계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견덕·계덕을 넘어서는 법계를 받을 수 없고 선거권과 피선거권도 제한된다. 이날 종회에서는 특별법이 규정한 은퇴자 자격 요건인 ‘15년 이상 활동 경력’ 조항이 모호해 가정주부나 농부, 자영업자 등은 경력을 증명하기 어려워 출가가 힘들고 선거권 및 소임 제한에 대해 평등권에 위배된다는 비판도 나왔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한국문화관광연구원(원장 김정만)과 한국정책학회(회장 이용모) 등 7개 학회가 공동 주최하는 문화체육관광 정책 학술대회가 30일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국립중앙도서관 국제회의실에서 열린다. 이번 학술대회는 ‘국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문화체육관광 정책의 성찰과 향후 과제의 모색’을 주제로 진행된다.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비롯해 문화콘텐츠 산업 진흥, 중국의 한한령(限韓令)에 대한 대응책, 여가 시간 확보 등 현안이 되고 있는 주요 문화정책에 대한 비판과 성찰, 대안이 논의될 예정이다. 1세션에서 이윤경 한국문화관광연구원 기획조정실장은 미리 배포한 ‘문화체육관광 정책 중장기 어젠다’ 발표문에서 “그동안 문화행정이 정치권력에 의한 ‘문화의 정치화’로 정책의 공공성과 자율성이 침해됐다”며 “공급자 중심의 선별적 지원에서 일상 속 문화에 대한 수요자 중심의 지원 정책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2세션은 박소현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의 ‘블랙리스트 이후 예술정책 방향과 지원체계 고찰’, 이병민 건국대 교수의 ‘문화콘텐츠 산업 지원정책의 성찰과 향후 과제’, 정재용 KBS 기자의 ‘스포츠 선진국 도약을 위한 혁신 전략과 정책’ 발제로 구성된다. 3세션에서 한승준(서울여대) 명성준(경상대) 박치성 교수(중앙대)는 미국, 영국, 프랑스의 문화예술 지원정책에 대한 비교를 발제한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천주교 미사 중 신자들이 “또한 사제와 함께”라고 답하던 것이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로 바뀐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2017 주교회의 춘계 정기총회(20∼23일)에서 교황청 사도좌로부터 추인된 새로운 ‘로마 미사 경본’으로 12월 3일 대림절 제1주일부터 미사를 봉헌한다고 27일 밝혔다. ‘로마 미사 경본’ 한국어판은 41년 만에 바뀐다. 주교회의는 미사의 ‘입당’에 이은 ‘인사’에서 신자들이 하던 “또한 사제와 함께”를 라틴어 원문(Et cum spiritu tuo)에 가깝게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로 수정했다고 밝혔다. 성찬의 전례에서 사제가 하던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중 ‘모든 이’는 ‘많은 이’로 수정된다. 또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복된 사도들과” 사이에는 “배필이신 성 요셉과”가 추가된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대한불교조계종 전국선원수좌회(공동대표 현묵, 의정) 소속 수행승 1200명이 조계종 총무원장 선출 직선제 이행 등 종단의 쇄신을 촉구했다. 조계종은 10월 자승 총무원장의 후임을 뽑는 선거를 앞두고 있다. 조계종 중앙종회는 이달 말 임시회를 열어 총무원장 선출 제도를 논의할 예정이어서 격론이 예상된다. 수좌회는 22일 ‘청정 승가 구현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총무원장은 이제 그만 권세를 내려놓고 직선제를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수좌회는 “비구계와 비구니계를 수지한 모든 종도들이 철저한 검증과 공개토론을 통해 직선제로 총무원장을 뽑아야 산적한 적폐를 일소하고 청정 승가를 구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수좌회는 성명에서 종단 재정의 투명화를 요구하고 출가자 및 재가자 감소에 대한 종단의 책임을 물었다. 현행 총무원장 선출제는 24개 교구 본사에서 선출된 240명의 선거인단과 중앙종회 의원 81명 등 321명의 선거인단이 투표로 선출하는 간선제 방식이다. 조계종은 지난해 ‘종단 혁신과 백년대계를 위한 사부대중 100인 대중공사’를 열어 대안을 모색해 왔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영화 ‘재심’은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실화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다방에서 허드렛 일을 하던 10대 소년이 택시운전사 살인사건의 억울한 누명을 쓰고 10년간 복역하고 출소한 뒤 변호사의 도움으로 재심을 하게 되는 내용이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10대 소년의 역할을 맡은 강하늘은 엄마(김해숙)와 함께 바닷가의 한적한 마을에 살고 있다. 엄마는 아들 옥바라지를 하며 당뇨를 앓다가 시력까지 잃어버린 상태. 눈이 보이지 않는데도 생계를 위해 갯벌에서 바지락을 캔다. 아들은 엄마가 안쓰러워 집에서 갯벌까지 붙잡고 갈 수 있는 밧줄을 설치해준다. 변호사 역할을 맡은 정우는 억울한 피의자의 누명을 벗겨줌으로써 TV방송을 통해 유명해지고, 출세하고 싶어하는 인물이다. 그는 강하늘이 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 바닷가 파란 지붕 집을 찾는다. 두 사람은 허름한 창고 벽에 약촌오거리 지도를 그리고, 메모지를 붙여가며 사건을 재구성한다. (모바일 뉴스가 대세인 21세기에도 할리우드 영화도, 국내 영화도 수사 장면에는 신문지 오려붙이는 장면이 꼭 나온다.) 강하늘의 집의 실제 촬영지는 전북 익산이 아니라 충남 보령시 천북면 바닷가에 있다. 서해안 쭈꾸미 낚시배가 출항하는 항구로 유명한 오천항 인근의 한적한 해안이다. 해변의 한 구석, 군부대 밑에 홀로 떨어져 있는 파란 지붕 집이 영화를 촬영하기 딱인 곳이다. 드넓은 갯벌, 불타는 듯 떨어지는 서해안의 낙조가 영화의 비극과 희극의 주요한 배경이 된다. ‘강하늘의 집’은 이 영화를 촬영하는 스태프들이 묵었던 펜션에서 바라볼 때 가장 아름답다. 넓은 바닷가에 붉은 석양이 질 때, 한적한 해변에 외로이 떨어져 있는 파란 지붕 집은 뭔가 모를 사연과 끝없는 스토리를 담고 있을 것만 같은 풍경이다. 스태프들이 묵었던 한옥 펜션 ‘오학정’은 해송이 무성한 언덕 위에 지어진 2층 한옥이다. 충남 보령 지역에서도 가장 큰 한옥으로 손꼽히는 집이다. 주인장인 정영희 씨(72)가 10년 넘게 짓고 있는 집이기도 하다. 그는 소나무를 직접 구해 바닷가에서 말리고, 둥그렇게 대패질로 깎고, 2중으로 서까래를 올려 평생의 노력이 담긴 한옥을 지어냈다. 원래 자신이 살려고 지은 집인데 늙은 부부만 살기 뭐해서 2층을 펜션으로 내놓았다. 방 안에는 주인장의 세심한 손길이 예술작품처럼 느껴질 정도다. 중국 영화에 나올 법한 아치형 나무 침대하며, 거대한 나무뿌리를 직접 캐서 사포로 곱게 밀어 만든 식탁의 다리, 대나무로 만든 옷걸이, 손수 만든 틀에 창호지를 바른 전등 갓까지 집 안 곳곳에 주인장의 손길이 안 거친 곳이 없다. 특히 황토 벽에 기대에 앉을 손님들이 등에 뭐가 묻을까 편히 쉬지 못할 것을 염려해, 사람이 앉은 등이 닿는 곳에는 소나무를 벽에 붙여놓은 세심한 배려도 눈에 띈다. 또한 1층에는 지붕을 대나무로 꾸며 마이크를 써도 천연방음벽이 되도록 했다. 노부부는 김장철에는 서해의 바닷물에 절인 배추를 담그기도 한다. 깔끔하고 시원한 절인 배추의 맛은 입소문이 자자하다. 오학정에서 가장 좋은 추억은 한적한 바닷가에서 조개를 잡고, 갯바위 위에서 낚시를 하는 것이다. 석양에 해질 무렵에 낚시를 하고, 조개를 잡다보면 내가 영화 속 주인공이 되는 듯하다. 한옥펜션 오학정(충남 보령시 천북면 오얘미길 91-28, 017-431-0203)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국내 개신교계의 대표적인 대형 교회로 꼽히는 명성교회를 둘러싼 세습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개신교계에 따르면 서울 강동구에 있는 명성교회는 19일 저녁예배 후 공동의회를 열고, 경기 하남시에 위치한 새노래명성교회와 합병하기로 최종 결의했다. 8104명의 교인이 참석한 공동의회는 교회합병과 김하나 목사(44)에 대한 위임목사 청빙안을 통과시켰다. 김하나 목사는 명성교회 원로목사인 김삼환 목사(72)의 장남이다. 합병건은 72.1%, 김하나 목사의 명성교회 위임목사 청빙건은 74.07%의 지지를 얻어 결의됐다. 이로써 명성교회는 합병에 필요한 행정절차를 마무리했고, 이후 소속 교단인 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교단의 총회를 거치게 된다. 등록교인 수가 10만 명이 넘는 명성교회는 개신교 장로교단에서 아주 큰 교회 중 하나다. 교회를 개척한 김삼환 목사가 2015년 12월 은퇴한 후 담임목사가 공석이어서 청빙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교계 일각에서는 이번 교회 합병과 청빙 과정을 ‘변칙 세습’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명성교회가 소속된 예장 통합 총회는 2013년 제98회 총회에서 세습금지를 골자로 법을 개정한 바 있다. 교계 단체인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은 20일 성명에서 “명성교회는 새로운 후임 목사 청빙절차를 다시 시작하라”고 주장했다. 한편 김하나 목사는 19일 예배 광고시간에 “합병은 양쪽에서 합의를 해서 하는 것인데 저희 교회는 그런 면에서 전혀 준비되지 않았고 공동의회도 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실제 그가 세습을 거부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일본판 알파고’로 불리는 딥젠고와 한중일 바둑 고수들의 대진이 결정됐다. 한국기원에 따르면 20일 일본에서 열린 ‘월드바둑챔피언십’ 추첨에서 한국 대표인 박정환 9단(사진)은 22일 오전 10시 반 딥젠고와 대국을 벌인다. 이번 대회는 21∼23일 같은 시간에 두 대국씩 열린다. 대진은 21일 딥젠고와 중국 랭킹 2위인 미위팅 9단, 박 9단과 일본 6관왕인 이야마 유타 9단, 22일 박 9단과 딥젠고, 미위팅 9단과 이야마 유타 9단, 마지막 날 딥젠고와 이야마 유타 9단, 박 9단과 미위팅 9단으로 짜였다. 박 9단은 딥젠고와 2월 인터넷에서 비공개로 맞서 승리한 바 있다. 이번 대국은 제한시간 각자 3시간, 초읽기 1분 5회씩으로 정해졌다. 우승 상금은 3000만 엔(약 3억 원)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한 잔의 커피를 만드는 원두 60알은 내게 60가지 영감을 준다.”(루트비히 판 베토벤) 지난주 휴가를 얻어 찾았던 제주 서귀포 해변엔 중국인 단체관광객이 사라져 무척 한적했다. 유채꽃이 활짝 핀 외돌개 해안 근처의 전망 좋은 카페가 눈에 띄었다. 카페 이름은 ‘60beans’. 커피를 사랑했던 음악가 베토벤에게서 연유한 이름이었다. 베토벤은 가장 맛있는 커피 한 잔을 뽑을 수 있다는 원두 60알을 세어가며 커피를 마셨다고 한다. 늘 완벽한 음악세계를 추구했던 베토벤은 커피 맛에서도 완벽함을 추구했던 것이다. 카페에서 제주 여행길에 가져간 박종례 작가의 ‘드림노트’를 펼쳐 들었다. 책을 읽는 대신 유서처럼 사랑하는 사람에게 남기는 글을 내가 직접 쓰게 하는 책이다. 제주 앞바다를 보니 책의 첫 구절이 더욱 가슴에 와 닿았다. “땅의 끝에서 ‘세상의 끝’이라고 말하지 마라. 그 다음에는 더 광활한 바다가 시작된다. 내가 세상에 없음을 ‘삶의 끝’이라고 말하지 마라. 그 다음에는 ‘나 없는 세상’에서 살아갈 사랑하는 그들이 있다. 끝은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국내 바둑 랭킹 1위 박정환 9단(24·사진)이 ‘일본판 알파고’로 불리는 딥젠고와 대결한다. 박 9단은 21∼23일 일본 오사카 관서기원 총본부에서 열리는 ‘월드바둑챔피언십’에 출전한다. 이 대회에는 박 9단을 비롯해 일본 6관왕 이야마 유타 9단, 중국 랭킹 2위 미위팅 9단, 딥젠고가 풀 리그를 펼쳐 챔피언을 가린다. 세계바둑대회에 인공지능이 출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3월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 이후 1년 만에 열리는 인공지능과 인간 최강자 그룹의 대국이다. 딥젠고는 지난해 11월 조치훈 9단과의 3번기에서 1승 2패를 기록했고 국내 인터넷 대국 사이트에서 공개 실전을 통해 1316승 306패(승률 81.1%)를 거뒀다. 프로 기사들과는 615승 240패(71.9%), 아마추어 최강 그룹과는 701승 66패(91.4%)의 성적이었다. 박 9단은 딥젠고와 2월 인터넷에서 비공개로 맞서 승리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자료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게 한국기원의 전망이다. 알파고도 2015년 10월 판후이 대국에 이어 4개월 뒤 이 9단을 상대했을 때 완전히 다른 실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대진은 20일 전야제에서 결정되고, 제한시간은 각자 3시간, 초읽기는 1분 5회씩이다. 우승 상금은 3000만 엔(약 3억 원)이고, 바둑TV에서는 전 경기를 생방송할 예정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그야말로 ‘내우외환(內憂外患)’의 시대. 한국의 정치 리더십 부재를 틈타 북한은 물론 중국, 미국, 일본 등 주변국 간의 외교전쟁이 치열하다. 이달 9일 서울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연구실에서 만난 현인택 전 통일부 장관(63)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며 “향후 30년 가까이 지속될 새로운 국제정치 질서 변화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싸움”이라고 진단했다. 현 교수는 이명박(MB) 정부 때 2년 8개월간 통일부 장관을 맡았고, 이후에는 대통령통일정책특별보좌관으로 일했다. 장관 재직 시절인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이 발생하자 대북제재안을 밝힌 ‘5·24조치’를 입안했고,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막판까지 준비하기도 했다. 퇴임 후 고려대 정외과 교수로 복귀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북한의 동향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는가. “지난 10여 년 동안 3∼5월에는 북한이 항상 도발을 해 왔다. 한미 연합훈련도 있고 북한의 각종 기념일이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행정부가 바뀌거나 한국의 대선이 있는 해엔 더 심했다. 이번에도 대선을 앞두고 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동시에 할 개연성이 높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시위, 한국의 대선 구도를 교란시키기 위한 다목적 노림수가 될 것이다.” ―북한이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대처 움직임에도 더 도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북한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북한은 강하게 나가야 산다고 생각한다. 민주국가인 한국이나 미국은 선거를 통해 정권이 바뀐다. 강경하게 해야 그 와중에 틈도 생기고, 내부 노선 갈등도 생길 것이라 기대한다. 김정은 정권은 북한 주민에게 내세울 정통성은 ‘위대한 핵국가’ 건설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사드문제는 30년 장기전의 시작 현 교수는 중국의 사드 보복에 대해 “사드는 북핵 방어용 ‘미사일 1개 포대’를 배치하는 문제일 뿐”이라며 “중국이 이를 확대, 왜곡 해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사드가 자국 안보에 치명적인 위협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인가. “사드 레이더의 탐지 거리는 800∼900km에 불과해 중국 본토를 위협할 수 없다. 우리는 북핵 문제가 해결되면 언제든 사드 배치도 철수할 것이며, 중국이 우려하는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에도 들어가지 않을 방침이라고 여러 차례 밝혀 왔다. 그러나 우리는 사드가 중국의 안보를 위협한다고 하는 이유에 대한 합리적 설명을 중국으로부터 한번도 듣지 못했다.” ―그렇다면 중국이 한국을 강하게 압박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중국은 사드 문제를 국제정치의 맥락에서 생각하고 있다. 현재 국제질서는 탈냉전 이후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키는 시기다. 미국과 중국의 격돌 과정에서 남중국해에서 중국-필리핀, 베트남 등 주변 국가 간 영유권 분쟁이 일어나고, 동중국해에서 중일 간 센카쿠 열도 영유권 다툼이 벌어졌다. 중국은 한반도 사드 문제에도 미국이 배후에 있다고 본다. 중국은 제국주의적 패권외교의 차원에서 한국에 대해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현재 국제질서가 탈냉전 이후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키는 시기라고 한 이유는…. “미소 간의 양극체제가 무너지면서 지난 25년간 미국 단일체제가 이어져 왔다. 그런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최강대국으로서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반면 지난 10여 년 동안 두 자릿수 경제성장을 해온 중국이 미국에 도전함으로써 국제정치를 격랑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 싸움은 1, 2년 안에 안 끝난다. 최소 30년 이상 갈 것이다.” 트럼프 ‘햄버거 담판’보다는 ‘압박’ ―사드 배치가 미중 간의 문제라면, 중국은 왜 미국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을 못 하는가. “중국은 한국을 힘으로 누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2000년 ‘마늘파동’ 때 보여준 것이 아닌가. 17년 전처럼 압박하면 한국이 물러날 것이고, 그러면 한미 간에 균열이 생길 것이라는 생각이다. 반면 미국은 아직까진 버거운 상대다.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라 굉장히 불안해하고 있다. 벌써 미국이 북한과 거래해 온 중국 기업에 대해 ‘세컨더리 보이콧’을 시작하지 않았는가. 중국이 미국의 국채를 많이 갖고 있긴 하지만, 대미 경제의존도도 엄청나다. 미국은 중국을 제재할 수단이 훨씬 많다.” ―중국의 한국에 대한 경제적 압박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는가. “한국에 대한 중국의 경제 보복은 단기적으론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대외 이미지에 엄청난 손실을 줄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올해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자유무역’ 수호자로 자처했는데, 이런 식이면 중국이 말과 행동이 정반대인 국가라는 이미지만 굳힐 뿐이다.” ―2010년 중국이 일본과 센카쿠 열도 영토 분쟁을 할 때 희토류 수출 금지, 관광 금지, 불매운동까지 벌였는데…. “당시 일본과 중국은 양국이 정말 한발도 물러설 수 없는 ‘영토 문제’를 놓고 맞부딪친 것이다. 그러나 사드 배치는 한국에는 치명적인 안보의 문제지만, 중국에는 사실 그런 문제가 아니다. 일본은 중국과 일대일로 맞대응해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여력이 있었다. 일본은 일치된 국론 속에 단호한 대처로 1년 여 만에 이겨냈다.” ―한국의 일부 야당 정치인들이 중국에 가서 사드 배치를 다음 정권에서 철회할 것이라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는데…. “사드 배치는 한국의 안보 문제일 뿐 아니라 한중 간, 한미 간, 미중 간의 글로벌 국제정치의 변화에서 살아남는 문제다. 앞으로 사드보다 더 큰 일이 계속될 것이다. 일희일비하면 안 된다. 사드조차도 우리 국가 안보의 필요에 따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향후 더 큰 문제는 손도 못 댈 것이다. 정치인들이 국내 정치의 유불리라는 ‘우물 안 개구리식’의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현 교수는 15일 시작되는 미국의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의 한중일 3개국 방문이 미국의 한반도 정책의 향방을 결정하는 중요한 방문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전형적인 정치인 출신이 아니라 때로는 매우 저돌적이고, 때로는 순간적인 판단을 통한 정책을 펼 가능성이 있다”고 예견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으로 보는가. ‘햄버거 담판’부터 ‘선제타격’론까지 다양한 예측이 나오는데…. “햄버거 담판은 물 건너갔다고 본다. 담판은 합리적인 딜을 할 수 있는 비즈니스 파트너라는 기본적인 전제가 돼 있어야 한다. 지금 김정은은 그런 상대로 비치지 않고 있다. 선제타격도 ‘콜레터럴 대미지’(군사작전에 부수적으로 따르는 민간인의 희생) 여파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쉽게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선제타격이 아니더라도 무력시위 등 여러 가지 군사적 옵션을 선택할 수 있다. 그것 자체도 북한에는 굉장히 심리적 압박을 줄 것이다.” ―지난 8년간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이었던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는가.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는 당시 우리 정부와도 깊은 대화를 통해 만들어낸 정책이다. 당시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부 장관이 ‘우리는 같은 말(horse)을 두 번 사지 않는다’고 한 말에 ‘인내’의 뜻이 숨어 있다. 대화가 안 되더라도 인내하고, 압박하면서 북한이 스스로 핵을 포기하도록 하겠다는 전략이다.” ―오바마의 대북정책이 북한 핵 개발을 막지 못했다는 비판이 있는데…. “오랜 기간에 걸쳐 진행돼 온 북핵 문제가 100% 해결되지 못했다고 해서 오바마 행정부 탓이라고 할 수 없다. 다만 오바마는 미국의 금융위기, 재정위기 등 최악의 경제 상황을 물려받았고, 이라크전쟁 등 중동에 깊숙이 개입했던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정책에서도 빠져나오는 과제를 수행해야 했다. 지난 8년간 오바마 대통령이 북핵 문제를 최우선 순위로 전력투구하지 못했던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트럼프는 중동보다 대북정책을 우선시할 것으로 보는가. “지금의 중동 상황은 부시-오바마 행정부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이슬람국가(IS)도 상당히 약화됐고, 이란 핵협상도 파기되지 않은 상태다. 미국이 중동 문제에서 여력이 생긴 만큼,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에 대한 압박과 중국에 대해 보다 공격적으로 나설 것이다.” 돈으로 사는 ‘정치쇼’ 정상회담 포기 ―김정은 정권이 현 시점에서 김정남을 제거한 이유는 무엇인가. “김정은은 집권 후 리용호 총참모장, 고모부 장성택,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김원홍 국가보위상 등 주요 정적들을 모두 제거했다. 이제 밖에 있던 ‘목의 가시’를 제거한 것이다. 김정남이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미래의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미래의 불안정성도 남겼다. 지금은 북한 주민들이 김정남 살해에 대해 모르지만 언젠가는 알려지게 된다. 김정은이 백두혈통의 장자인 이복형을 무참하게 살해한 사실이 알려지면 정통성에 흠집이 생길 것이다.” 현 교수는 “이명박 정권 초기 남북정상회담이 거의 성사 단계까지 갔다가 무산됐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김정일 정권에서 정상회담을 먼저 원했다”며 “막판에 한두 가지만 해결하면 성사될 수 있는 중요한 순간들이 있었지만 결국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당시 김정일 정권의 목적은 단 하나였다. 정상회담을 여는 대가로 쌀, 비료, 현금, 아스팔트 피치 등을 받겠다는 것이었다. 회담 결과 북핵 문제 해결에 어느 정도 진전이 이뤄지는 조건이라면 얼마든지 지원할 수 있다. 그러나 회담을 여는 것만으로 대가를 지불해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겉으로만 남북관계가 좋아지는 듯 보이고, 아무런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적 쇼’는 수없이 경험한 것 아닌가. 왜곡된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선 이런 관행은 안 된다는 원칙을 지켰다.” 현인택은 △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대학원 박사(국제정치학)△ 고려대 정외과 교수(1995년∼)△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제35대 통일부 장관(2009∼2011년)△ 대통령통일정책특별보좌관△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원장(현)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