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영

신광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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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신광영 논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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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4-10-24~2024-11-23
칼럼100%
  • 난치병 어린이 “노래가 있어 말못할 고통도 이겨내요”

    19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건물에 딸과 아버지가 두 다리를 절뚝이며 나란히 들어섰다. 피아노 소리가 울리는 강당 앞에서 강수진 양(13)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빠, 나 목소리 괜찮아?” 강대생 씨(47)가 딸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러게 무리해서 연습하지 말라니까….” 근육이 굳어가는 근위축증에 걸린 수진이는 걸을 때마다 두 다리를 절뚝인다.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와 남동생도 그렇게 걷는다. 온몸이 마비되면서 호흡까지 어려워져 생명을 잃을 수 있는 병이지만 마땅한 치료법이 없다. 이 버거운 현실을 수진이는 노래로 버텨왔다. “눈을 감고 노래 부르는 상상을 하면 무대에서 멋진 춤을 추고 있죠. 친구들도 저를 너무 좋아해요.” 이날 수진이는 그토록 기다려 온 무대에 섰다. 백혈병이나 소아암 등 난치병 아이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이사장 유명열)이 난치병 어린이 합창단을 만들기 때문이다. 심사위원 5명을 포함해 100여 명의 청중 앞에서 수진이는 맑은 목소리로 팝송 ‘오버 더 레인보’를 열창했다. 노래로 살아갈 힘을 얻는 아이는 수진이뿐만이 아니었다. 목발을 짚고 나온 진연호 군(9)은 ‘목소리가 작아 가사 전달이 잘 안 된다’는 지적에 “노래는 못해도 화음은 잘 맞춰요”라며 쌩긋 웃었다. 뇌종양 수술 후유증으로 앞을 못 보는 한 피아니스트 지망생은 베토벤 교향곡을 선보였고 휠체어에 탄 한 어린이는 “항암치료를 잘 받아서 꼭 뮤지컬 가수가 되겠다”며 열의를 보였다. 난치병을 앓던 15세 아들을 지난달 떠나보낸 한 아버지는 객석 한 귀퉁이에서 아이들을 응원하며 박수를 쳤다. 가수 빅뱅과 세븐의 노래를 만든 작곡가 이규원 씨와 국립오페라단 성악가 김관현 씨 등 심사위원들은 “기본기가 많이 약한데 잘 따라올 수 있겠어요?”라며 날카로운 지적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자 일부 지원자는 “열심히 할 건데… 아저씨가 가르쳐 주시면 안돼요?”라며 울먹였다. 결국 지원자 대부분이 합창단에 합류했다. 이날 오디션을 통과한 ‘완전 초보’ 단원 20여 명은 앞으로 유명 뮤지션들의 ‘박칼린식’ 집중 지도를 받는다. 작곡가들이 만든 곡을 연습해 5월 말 무대에 오르고 음반도 낸다.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은 이들과 함께할 일반인 단원과 ‘재능 기부’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있다. 어린이날 공표 90주년을 맞아 합창단 공연을 기획한 재단은 난치병 어린이를 위한 ‘Make-A-Wish, 희망’ 캠페인도 다음 달 29일부터 90일간 진행할 예정이다. ‘난치병 어린이 합창단’ 참여 문의 02-3452-7474, www.wish.or.kr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11-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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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의 눈/신광영]보복에 떠는 ‘스마일 걸’의 미소는 누가 찾아줘야 할까

    50대 남성에게 5년 가까이 성폭행을 당한 박은경(가명·27) 씨가 어렵게 말문을 연 이유는 한 가지였다. 그녀는 인터뷰를 거듭 사양하다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더는 숨죽이지 않도록 도와 달라”는 부탁에 마음을 열었다. 박 씨는 6일 ‘5년의 악몽’을 털어놓으며 “아직 신고할 용기를 못 내는 분들께 힘이 됐으면 하지만 신고한다고 끝이 아니라서…”라며 말을 흐렸다. “요즘 인권 때문에 교도소에서도 아픈 사람 다 고쳐준다면서요. 그 인간 고작 몇 년 살고 건강해져서 나오면 어떡하죠.” 고액 연봉의 공기업에 다니는 박 씨가 여경으로 진로를 튼 건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다. 박 씨의 공포는 막연한 불안감이 아니다. 최근 보복범죄 현황을 보면 2006년 70건이던 게 2009년 129건으로 3년 새 84% 늘었다. 피살된 사례도 4건이나 된다. 어렵게 신고를 해도 보복의 공포가 계속되는 것이다. “신고하면 너는 물론이고 가족들도 죽인다”고 협박해 박 씨를 수백 차례 성폭행한 이경수(가명·55). 그는 구속 여부를 결정하는 판사 앞에서 “우린 사실상 주말부부였다. 부부보다 더 깊은 정을 나눴다”고 강변했지만 결국 구속됐다. 경찰조사 땐 피해자와 통화를 하게 해달라며 진술까지 거부하다 결국 허락을 얻어냈다. 그는 통화에서 “은경아, 몸이 너무 아프다. 고소 취하해 줄 거지?”라고 울면서 애원했다. 하지만 전화를 끊자마자 “내가 (징역) 살면 얼마나 살 것 같아. 나가기만 해봐”라며 안색을 바꿨다고 경찰은 전했다. 박 씨는 그에게서 해방될 수 있을까? 보복 우려가 있을 경우 가해자에 대한 보호관찰이나 접근금지 규정이 있긴 하지만 범위가 가정폭력 등에 제한돼 있다. 피해자 신변보호도 폐쇄회로(CC)TV 설치나 주변 순찰 등에 그치고 있어 효과는 크지 않다. 반면 미국은 가해자가 추적할 수 없도록 피해자의 거주를 옮겨 주고 신원도 세탁해 준다. 또 성폭력 등 강력범들은 출소 후에도 음주 등 범행을 일으킬 수 있는 행동을 통제하고 강제적 치료 명령을 내린다. 기사를 보고 연락해온 부산의 한 경찰관은 “20년 넘게 흉악범들을 겪어 봤는데 피해 여성은 아주 위험한 상태”라며 “지금처럼 설렁설렁 순찰 도는 정도로는 절대 보복을 막을 수 없다”고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학창시절 별명이 ‘스마일 걸’이었던 박 씨는 “지옥의 5년을 보내며 마음이 돌이 됐다”고 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신고할 용기를 내는 일이었다면 그녀에게 웃음을 돌려주는 건 이제 사회의 몫이다.신광영 뉴스제작팀 neo@donga.com}

    • 2011-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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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arrative report]‘50대 악마’에 5년간 성폭행 당한 20대 여성의 ‘지옥같은 삶’

    ※ 내러티브 리포트(Narrative Report)는 삶의 현장을 담는 새로운 보도 방식입니다. 기존의 기사 형식으로는 소화하기 힘든 ‘세상 속 세상’을 이야기체(Storytelling)로 풀어냅니다. 동아일보는 내러티브 리포트를 통해 독자 여러분께 더욱 깊이 있는 세상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지난달 27일 경찰서로 뛰어 들어온 한 여성이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눈물범벅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아가씨.” 형사들의 거듭된 질문에 박은경(가명·27) 씨는 “저를… 저를…죽이려 해요”라며 1시간 가까이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그녀의 휴대전화가 쉬지 않고 울렸다. 형사들의 설득에 가까스로 전화를 받았다. “어디야!” 스피커폰으로 굵은 저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4년 8개월 동안 성폭행을 당했지만 도저히 신고할 엄두를 못 냈던 그 사람, 이경수(가명·55)였다.》신고 후 일주일 만인 6일. 어렵게 인터뷰에 응한 박 씨는 우윳빛 피부에 단아한 외모였다. 대학 시절 그녀의 꿈은 스튜어디스였다. 5년 전 항공사 면접을 앞두고 찍은 이력서 사진은 이제 경찰서 조사 서류에 붙어 있었다. 담당형사는 “지금도 예쁘지만 그땐 정말 티 없이 맑은 아가씨였네”라며 혀를 찼다. 지난 5년간 그녀에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친절한 아저씨’와의 만남두 사람의 악연이 시작된 것은 2006년 여름. 박 씨는 외국인들이 많이 오는 한 지역축제에서 영어통역 봉사를 하고 있었다. 말을 타고 해변을 오가던 이 씨가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젊은 사람이 참 성실하네. 수양딸 삼고 싶어.” 박 씨는 “머리가 벗어지고 얼굴이 쭈글쭈글한 게 딱 봐도 할아버지였다”고 그의 첫인상을 떠올렸다. 그래도 동네 주민의 호의려니 생각한 박 씨는 부담 없이 마음을 열었다. 박 씨가 어학연수를 마치고 돌아와 취업 준비를 위해 통역 봉사를 하게 됐다는 걸 파악한 이 씨는 “대기업 임원 친구들을 소개해 주겠다”며 저녁 식사자리에 초대했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 이 씨는 갑자기 모텔 앞에 차를 세우고 문을 잠그더니 17cm 회칼을 꺼냈다. 성폭행을 한 뒤엔 휴대전화로 촬영한 나체 사진을 보여주며 “신고하면 네 엄마 아빠한테 사진 보내고 몰살해버리겠다”고 말했다. 단 하루의 악몽이길 바랐지만 그게 시작이었다.박 씨가 취업 준비를 위해 고향을 떠나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가 연락을 피하자 이 씨는 고시원 앞까지 찾아오기 시작했다. 박 씨는 그 와중에도 토익 점수를 만점 가까이로 올리고 회계관리사 등 7개의 자격증도 땄다. 대학을 수석 졸업한 박 씨는 고향에 있는 초봉 3500만 원의 유명 공기업에 취직했다. 하지만 이 씨는 “어렵게 들어간 회사 못 다니게 하겠다”며 박 씨를 협박해 휴일마다 자기 집으로 불러 성폭행했다. 몸부림치며 저항하면 방 안에 있는 비상탈출용 완강기 줄로 목을 조르며 “목숨으로 사랑을 맹세하라”고 강요했다. 또 “같이 죽자”며 각자 한 손씩 손수건으로 묶은 뒤 저수지로 끌고 들어가 익사 직전까지 갔다 낚시꾼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지기도 했다. 그때마다 박 씨는 “살려주면 시키는 대로 하겠다”며 애원했다. 정말 죽을 수 있겠다는 공포가 매번 신고할 용기를 꺾었다.직장 동료들은 금요일이 되면 화색이 돌았지만 박 씨는 목요일부터 두통에 시달렸다. 회사에 안 가는 공휴일, 명절도 마찬가지였다. “달력을 펼쳤는데 그달에 공휴일이 많으면 정말 죽고 싶었어요.” 평일에도 자유는 없었다. 오전 8시와 점심 식사 후 낮 12시 반, 퇴근 무렵인 오후 5시 반, 자기 전인 오후 9시 반, 휴대전화에선 알람이 울렸다. 하루 4차례 중 한 번이라도 전화를 빼먹으면 그녀의 집까지 달려와 밤새 괴롭혔기 때문이다.○ 그렇게 당하면서 왜 신고도 못 했냐고요?지옥이 시작된 지 1년쯤 되던 날, 박 씨는 단짝 친구에게서 자신처럼 성폭행을 당한 후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 친구와 함께라면 신고할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친구가 먼저 신고를 하자 경찰은 범인을 체포해 피해여성 8명을 추가로 밝혀냈다. 하지만 그들은 경찰의 진술 요청에 하나같이 “기억이 안 난다”며 거부했다. 결국 범인은 징역 2년의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 박 씨는 이 씨를 경찰에 신고해도 잠깐 잡혀 있다 다시 나와 반드시 보복할 것이란 생각에 또 용기를 접었다.이 씨는 종종 자신의 동창 모임에 박 씨를 데리고 갔다. 그러곤 “내 마누라야. 영계랑 사는 게 부럽지”라고 자랑했다. 그때마다 박 씨는 죽고 싶을 만큼 치욕을 느꼈다. 하루는 이 씨의 ‘50년 친구’라는 사람이 조용히 박 씨를 불렀다. “앞길이 창창한 처녀가 왜 이러고 사니. 내가 네 아버지라면 지금 당장 저놈을 죽여버릴 거야.” 박 씨가 눈물을 흘리며 “가족을 다 죽이겠다는데 어떻게 신고해요”라고 하자 그는 “그럼 이렇게 계속 살래? 죽을 때 죽더라도 신고해서 잠시라도 편하게 사는 게 낫잖아”라고 했다.그 사람 말처럼 박 씨도 수없이 신고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끝내 단념하게 만드는 건 ‘엄마’였다. 박 씨가 대학 1학년 때 엄마는 아버지와 이혼하고 경남의 한 소도시에서 홀로 살았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박 씨는 매달 생활비와 한약을 지어 보냈다. “대학 수석 졸업하고 좋은 데 취직한 효녀라고 주변 분들에게 그렇게 자랑을 하셨어요. 근데 제 상황을 아시면…제가 엄마한테 어떻게 그 얘기를….” 박 씨는 내내 침착하게 과거를 얘기했지만 엄마 얘기가 나오면 목이 메었다.그 효심이 박 씨에겐 아킬레스건이었다. 이 씨는 그녀가 연락을 피할 때마다 그녀의 엄마가 사는 도시로 내려가 해당 지역번호인 0××가 찍히도록 전화를 걸었다. “지금 네 엄마 집 앞인데 쇠망치로 대가리를 부숴 버리겠다”고 협박했다. 이 씨는 늘 회칼과 손잡이 부분에 붕대가 감긴 30cm 길이의 무거운 쇠망치를 가지고 다녔다. 침대 머리맡에 있던 공기총도 수시로 꺼내 겨누곤 했다. 마음을 굳게 먹었다가도 박 씨는 “제발 엄마는 건드리지 마라” 하고 사정해야 했다. 그렇게 억지로 만난 날 밤이면 박 씨는 옆에서 코를 골며 자는 그의 얼굴을 보며 손잡이 붕대가 누렇게 된 쇠망치를 수없이 들었다 놓았다.박 씨를 만나기 전 이 씨에겐 강간치상 등 6번의 전과가 있었다. 이 씨는 이혼한 전처와 그 이혼을 도와준 처남을 죽이겠다며 칼로 협박하다 2008년 7월 다시 수감됐다. 그는 교도소에 가면서 “미행 붙여놨으니 다른 남자 만날 생각하지 말고 면회와 편지를 꼬박꼬박 하지 않으면 나와서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박 씨에겐 빈말이 아니었다. 이 씨는 전처와 처남을 죽이기 위해 공기총과 청산가리를 구하러 갈 때마다 박 씨를 데리고 다녔다. “너도 반항하면 이걸로 죽는다”며 겁을 줬다. 결국 이 씨가 수감된 10개월 동안 그녀는 매달 2, 3차례 면회를 가고 매주 2통씩 편지를 써야 했다. 이 씨는 철저하고 집요했다. 교도관이 배치된 감옥 면회장에선 박 씨를 부드럽게 대했다. 그러나 그는 출소하던 날 “저번에 보니까 가방도 없이 왔던데 어디서 어떤 놈 만나고 있다가 슬쩍 와가지고 가식을 떠느냐”며 주먹을 휘둘렀다. 박 씨는 고막이 터져 두 달간 치료를 받았다.○ 자살해 버리겠다는 말에 “기다리자…”2009년 5월 출소한 이 씨는 “나를 감옥에 보낸 전처와 처남을 죽이고 나도 자살하겠다”고 버릇처럼 말했다. 당뇨로 체중이 20kg 이상 줄고 이도 대부분 빠졌지만 살인 계획에만 몰두했다. 주말에 그의 집에 가면 일주일 동안 혼자 끼적인 메모가 수십 장 쌓여 있었다. “최대한 악랄하고 결단력 있게 계획을 끝내야 한다”며 스스로 다짐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하루 종일 공기총 사격 연습을 해 손가락에 박인 굳은살과 캡슐에 담은 청산가리를 보여줬다. 박 씨는 “아무 희망도 없고 무서울 게 없는 사람이라 언제든 말을 실행으로 옮길 것 같아 신고할 엄두를 못 냈다”고 했다.신고도 못하고 직접 죽이지도 못하니 박 씨는 그가 자살하겠다고 한 ‘그날’이 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올여름까지’라던 ‘그날’은 그해 말, 이듬해 여름으로 계속 미뤄졌다. 그 무렵 이 씨는 화투에 몰두했고 박 씨에게서 도박 자금으로 4000만 원을 뜯어 갔다. 힘들게 일해 번 돈이었지만 이 씨가 화투를 치러 가 있을 땐 잠깐이나마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어 차라리 나았다. 그가 해수욕장 인근 도박장에 있는 동안 박 씨는 여행객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가족들끼리 친구들끼리 큰 소리로 웃으면서 물놀이하는 게 너무 부러웠어요. 나는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 있는데….” 도박장에서 파출소까지는 불과 150m 거리였다.이 씨가 “이번 계획은 진짜”라고 약속한 날을 하루 앞둔 지난달 27일. 박 씨는 조심스럽게 이 씨에게 말을 꺼냈다. “2월이 다 가는데 언제 정리가 되는 거야?” 하지만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 씨는 “넌 내가 죽기를 바라는 거냐”며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곤 회칼과 쇠망치를 가져왔다. 떨리는 손으로 금고 비밀번호를 눌러 공기총도 꺼냈다. 이 씨는 숫돌에 칼을 갈며 “그동안 아주 가식을 떨었구나. 오늘 너부터 죽인다.” 읊조리듯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살기가 서려 있었다.박 씨가 방을 나가려 하자 이 씨는 그녀의 머리채를 잡고 쇠망치로 머리를 내리치려 했다. 허벅지에 이미 한 대를 맞은 박 씨는 망치를 든 이 씨의 손을 잡았다. 혹시나 칼로 바꿔 잡을까 봐 20분 넘게 죽을힘을 다해 버텼다. 흉기를 내려놓은 이 씨는 “저수지로 죽으러 가자”며 집을 나섰다. 그는 대문 앞에 묶여 있던 강아지의 머리를 쇠망치로 내리쳤다. 목이 돌아간 강아지의 입에서 비명소리가 났다.저수지를 100여 m 앞두고 차 옆자리에 있던 이 씨가 담배를 사겠다며 내렸다. 앉았던 자리에는 쇠망치와 회칼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이 씨가 편의점에 들어가는 걸 본 박 씨는 핸들을 틀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택시를 잡아타고 쫓아올까 봐 신호도 무시하고 10여 분을 무작정 달렸다. 경찰서에 들어서자 박 씨는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경찰이 이 씨의 위치를 파악해 도착한 곳은 평소 그가 고스톱을 치던 민박집이었다. 담배를 물고 패를 살펴보던 이 씨는 그 자리에서 체포돼 구속됐다. 도망친 박 씨가 경찰에 신고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신고는 했지만… 경찰 신고 후 그가 없는 첫 주말. 박 씨는 친구를 만났다. 5년 만에 처음 맛보는 자유였다. 하지만 떠나지 않는 그놈 목소리. 그는 아직 곁에 있다. 이 씨가 쇠망치로 머리를 내리치는 악몽을 매일 꾸고 초인종이나 전화벨이 울리면 심장이 미친 듯 뛴다. 공포의 끈질김. 악몽 속에선 단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 박 씨는 “출소하면 어떻게든 나와 가족들을 찾아내 죽일 것”이라고 말했다.이민을 갈까 했지만 혼자 도망친다고 될 문제가 아니었다. 박 씨는 4년째 다닌 직장을 그만두고 경찰이 되기로 결심했다. “하루 종일 경찰서에 있을 수 있잖아요. 총을 소지할 수 있는 유일하게 합법적인 방법이고.” 잃어버린 5년의 세월도 엄마에게 털어놓을 생각이다. 출소에 대비해 거처를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엄마가 피눈물을 흘리시겠지만 결국 얘기하게 될 것을…. 누군가 저 같은 처지에 있다면 공포의 덫에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11-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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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상 소방관은 3년만 아파라?

    아파트 12층인 중앙119구조대 김진태 소방관(45)의 집은 오후 2시에도 깜깜했다.“햇볕이 안 들어오게 베란다 창에 블라인드를 쳤어요. 자외선을 쐬면 피부가 검어지거든요.” 김 소방관은 집에 와서도 마스크와 모자를 벗지 않았다.그는 붕대 감긴 손으로 앨범 한 권을 꺼냈다. 100km 울트라 마라톤과 철인3종 경기에 출전해 찍은 사진들이었다. 지진으로 무너진 벽돌더미에서 축 늘어진 개 한 마리와 찍은 사진도 있었다. 인명구조견 조련사로 세계 각지의 재난현장을 다닐 때 찍은 것들이다.특전사 출신인 그의 별명은 ‘울트라 진태’. 그는 사진 속에서 마라톤 결승선을 지나며 활짝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 미소를 더는 보지 못한다. “요즘은 대원들하고 식사하는 것도 제가 꺼려요.”그의 인생을 바꾼 2년 전 사건. 2008년 12월 경기 이천의 한 물류창고에 불이 났다. 대형 화재였다. 인부 6명이 숨지고 한 명이 실종된 상황. 김 소방관은 실종자를 찾아 불타는 건물을 수색했다. 그런데 갑작스레 들려온 소리. “무너진다!” 몸을 돌리는 순간 김 소방관은 건물 붕괴로 인한 열 폭풍 때문에 수십 m를 튕겨져 날아갔다.목숨은 건졌지만 온몸에 3도 화상을 입었다. 얼굴 화상이 특히 심해 지금도 피부이식 수술을 더 받아야 한다. 하지만 연 1억 원 가까이 드는 치료비를 국가가 대주는 것도 딱 올해까지. 치료 시작 후 3년이 지나면 지원이 끊긴다. 병원에 있는 동안 월급이 30% 정도 줄었고 부인은 간병 때문에 직장을 그만뒀다. 사고 며칠 뒤 부인마저 암 수술을 받았다. 치료가 3년을 넘길 텐데 어떻게 해야 하나.2007년 인명 구조작업 중 음주운전 차량에 치인 이도재 소방관(40). “이런 거 처음 보죠?” 7일 부천소방서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의족을 벗어 무릎까지만 남은 다리를 뿌드득 소리가 나도록 주물렀다. “멀쩡할 때보다 2∼3배 더 시려요.”사고 후 3년이 지났지만 완치는 아직 멀다. 이제 치료비는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오른쪽 종아리 살을 절단된 왼쪽다리에 옮겨 붙여 오른쪽 다리도 수술이 필요하다. 항생제를 자주 복용해 치아가 빠지고 신장이 약해지는 등 후유증도 심하다.소방관들의 평균수명은 한국인 남성 평균보다 20세 정도 낮은 58세. 매년 300명 이상이 다치고 6명 정도가 순직하지만 생명수당은 월 5만 원. 공무상 부상에 대한 치료 보장 기간은 소방관도 일반 공무원과 차이가 없는 3년이다. 그나마 허리디스크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소방관의 직업적 특성으로 인한 만성 질환에 대해선 별다른 지원이 없다.선진국들은 치료 기간을 일률적으로 정하지 않는다. 동국대 산업의학과 안연순 교수는 “미국은 소방관이 다치면 ‘케이스 매니저’가 치료 기간을 판단한 뒤 완치 때까지 책임진다”고 말했다.부상 소방관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게 있다. 김 소방관은 얼마 전 슈퍼에 갔다 경찰에 붙들렸다. “제가 마스크랑 모자를 눌러 쓰고 있으니까 누가 신고했나 봐요. 제복을 입고 있었는데도 참….”이 소방관도 사고 전 즐겨 가던 대중목욕탕에 가지 못한다. “여섯 살 된 아들이 하도 졸라서 한 번 갔죠. 주인이 ‘요즘 장사도 안 되는데 장애인까지 온다’고 하더라고요. 저야 그러려니 하는데 아들놈이 막 울데요.”임용된 지 5년이 안 돼 그만두는 소방관의 비율은 5명 중 1명꼴이다. 미국 소방관들의 직업 만족도가 의사나 과학자와 함께 최상위권인 것과는 대조적이다.“(이 직업을 택한 게) 왜 후회가 안 되겠습니까. 그래도 소방관이란 게 참 멋있지 않습니까. 다들 살려달라고 후퇴할 때 전진하는, 남을 위해 몸을 불사른다는 게….” 그렇게 다치고도 속없는 이 소방관이 씩 웃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11-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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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런민일보 한국판 내용 논란

    지난해 11월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직후 서울 시내 지하철 가판대에 깔린 한 신문의 1면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다. “이번 (연평도) 포격의 본질은 (남북 간) 영해와 영토의 주권 다툼이다.”(11월 29일자) 이 신문은 ‘연평도 사건의 4대 배경’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북한이 우라늄 농축시설을 공표하고 미국과의 대화를 촉구했으나 미국은 거절했다”며 연평도 도발의 책임이 미국 측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또 지난해 12월 29일 통일부가 새해 업무보고에서 “2011년은 통일에 더욱 다가서는 전진의 해”라고 밝힌 것을 ‘흡수통일의 전략적 신호’라고 해석했다. 신문 신년호는 “남한이 몰래 흡수통일을 꿈꾸고 있는 것은 세계가 알고 있었다”며 “한반도 정세가 더욱 긴장될 가능성이 높아져 동북아시아에 새로운 불안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 정부의 입장은 물론이고 국민 정서와도 사뭇 다른 논조의 이 신문은 뭘까. 바로 중국 공산당 기관지이자 대표적 일간지인 ‘런민(人民)일보’의 ‘한국판’이다.민감한 외교사안 中시각 일방 전파전 세계 86개국에 나가는 런민일보 해외판 중 신문 전체가 현지어로 발행되는 건 한국어판이 처음이다. 중국 헤이룽장(黑龍江) 성에서 발행하는 한글 신문인 ‘흑룡강신문’이 국내에 들어와 있지만 유력 중국 신문이 한국어로 번역돼 배포되는 건 ‘런민일보 한국판’이 유일하다.지난해 9월 창간돼 주간으로 나오는 이 신문은 지하철 가판대에서 700원에 판매되고 있다. 전국의 관공서와 대학, 주요 기업 등에도 배포되고 있다. 중국동포들이 자주 오가는 외국인 복지시설에는 무가지로 배포된다. 논조가 한국 정부 입장과 배치될 때가 있지만, 신문 광고는 정부 광고와 국내 기업 광고가 많다.발행 부수는 1만여 부. 런민일보 해외판이나 자매지인 환추(環球)시보에 실린 기사를 그대로 번역하다 보니 한중 간 예민한 외교 사안을 중국 쪽 시각으로 바라본 기사가 적지 않다. 중국 런민일보는 자사의 서울지국장과 평양지국장을 지낸 ‘고급 기자’ 쉬바오캉(徐寶康) 씨를 한국판 대표로 파견해 편집 방향을 조율하고 있다.런민일보 한국판 류재복 특별취재국장은 “자칫 한중관계에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가급적 중립을 지키려 하지만 중국 입장에서는 북쪽을 지지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의 외국인 노동자 복지시설인 ‘지구촌사랑나눔’에서 무가지로 신문을 받아 본 중국동포 김용철 씨는 “최근 연평도 사건이나 중국인 선원 문제가 있었는데 그동안 한국 쪽에서 보여주는 내용만 알다가 중국 쪽 시각도 볼 수 있어 균형이 잡히는 것 같다”고 말했다.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 강준영 교수는 런민일보 한국판 발행 배경에 대해 “기존에는 한중 간 경제협력이 주요 이슈였다”면서 “그러나 최근 천안함 피폭이나 연평도 도발처럼 입장차가 첨예한 사안이 잇달아 생기면서 중국의 시각을 한국에 적극 전파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전문가들은 “한중 간 현안이 계속 늘어날 것에 대비해 우리도 중국 국민을 상대로 여론전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아직 중국 현지에서 중국어로 발행되는 한국 언론은 하나도 없다. 중국 정부는 외국 신문의 중국어판 발행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11-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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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의 동아일보]싱가포르 스마트 시티를 가다 外

    싱가포르가 ‘스마트 기술’로 도시국가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 경제발전을 위해 인구를 정책적으로 늘리면서 부닥치는 교통 및 전기 문제를 첨단 정보기술(IT)로 풀려는 것. 작은 나라에서 차들이 늘어나는 바람에 심각해진 교통체증에 대비하기 위해 싱가포르는 지능형 교통망을 도입했다는데….■ 필리핀 새댁의 첫 친정 나들이고향에 딸을 두고 한국에 시집 온 필리핀 엄마. 두 살배기 아기였던 딸은 올해 열세 살. 마닐라 국제공항에서 11년 만의 기적 같은 재회. 엄마는 펑펑 울고 딸은 덤덤했다. 그리웠지만 너무 멀었던 엄마. “한국에 꼭 데려가자”며 엄마와 한국인 아빠가 필리핀까지 왔는데…. 한 필리핀 여성의 험난한 친정 방문길을 동행했다.■ 한국영화의 샛별, 송새벽지난 한 해 한국영화. 이 사람만 나오면 배꼽 잡기 바빴다. ‘방자전’에서 어눌한 변태 변학도로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배우 송새벽. 올해 첫 주연작 ‘위험한 상견례’와 블록버스터 ‘7광구’ 개봉을 앞둔 그에게 “확 변한 대접 때문에 변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물었다.■ 프로야구 각 팀 올해 희망은고생 끝에 낙이 오고(고진감래·苦盡甘來), 옛 것을 익혀 새 것을 알게 되면(온고지신·溫故知新) 얼마나 좋을까. 이를 위해 와신상담(臥薪嘗膽)하며 칠전팔기(七顚八起)를 노리는 팀들이 있다. 기대와 설렘을 안고 새 시즌을 맞는 프로야구 8개 팀의 희망을 사자성어로 풀어봤다.}

    • 2011-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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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년만에 만난 13세 필리핀 딸 ‘달콤한 기쁨’과 함께 살고파요”

    엄마는 펑펑 우는데 품에 안긴 딸은 덤덤했다. 두 살 때 엄마가 떠난 뒤 어느새 열세 살이 된 소녀는 “꿈에서 보던 엄마는 훨씬 젊었는데…”라고 중얼거렸다. 지난해 12월 26일 필리핀 마닐라국제공항 입국장. 오열하며 딸의 얼굴을 쓰다듬는 펠리타엘 푸톤 씨(39)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푸톤 씨가 한국에 시집간 뒤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친정엄마였다. 비행기로 고작 4시간 거리인데 딸은 11년이나 걸려 찾아왔다. 그동안 푸톤 씨의 아버지와 언니는 암으로, 오빠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엄마라도 살아있을 때 보고 싶다”는 사연이 어린이재단 주관에 현대자동차가 후원한 다문화가정 수기공모에 뽑혀 그 상금으로 친정 방문길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푸톤 씨가 수기공모전에 지원한 가장 큰 이유는 딸을 데려오기 위해서였다. 미혼모였던 그는 2000년 한국인 남편과 결혼하면서 딸을 친정에 맡기고 왔다. ‘달콤한 기쁨을 누리라’는 뜻으로 이름을 ‘스위티 조이’로 지었는데 딸은 10년 넘게 엄마 없이 컸다. 시집올 때만 해도 조이를 금방 데려올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남편은 공사현장을 나가고 푸톤 씨는 산모도우미로 일하며 한 달에 80만 원 남짓 벌었다. 그 돈으로 남편이 전 부인과 낳은 두 남매와 직접 낳은 두 아들을 키우는 형편이라 친정에 가는 것조차 사치였다. 조이를 데려오자는 건 남편 김상수 씨(50)의 결심 때문이었다. “그동안 제가 데려온 아이들을 친자식처럼 키워준 게 고마웠는데 나도 뭔가 보답을 해야죠.” 공항에서 차로 4시간 거리인 바탄 시의 친정집에 도착하자 난생처음 외갓집에 온 푸톤 씨의 두 아들은 마냥 신이 났다. 올해 8세, 10세인 형제는 자전거를 타고 동네구경에 나섰다. 자전거 타는 걸 도와주겠다며 조이가 어깨를 잡자 막내가 서먹한 듯 몸을 비비꼬며 딴 곳을 바라봤다. 조이가 한국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푸톤 씨도 걱정이다. 하지만 어렸을 적 다른 도시의 공장에서 일했던 친정엄마와 늘 떨어져 살았던 그는 엄마의 빈자리가 어떤 것인지 잘 안다. “어렸을 때 저도 똑같았어요. 엄마랑 떨어져서…. 조이는 저랑 똑같으면 안 돼요.” 다음 날 푸톤 씨 가족은 동사무소를 찾았다. 한국에 가려면 조이의 여권부터 만들어야 했다. 담당직원과 1시간 넘게 상담을 했건만 푸톤 씨의 얼굴이 갈수록 굳어졌다. 여권이 나오려면 부모의 동의가 필요한데 황당하게도 조이의 출생신고서에 이름이 잘못 기재돼 모녀관계를 증명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변호사를 고용해 모녀관계를 법적으로 확인받아야 하는데 수임료 수백만 원은 푸톤 씨가 엄두를 못 낼 거액이다. 그가 동사무소를 나오며 울음을 터뜨렸다. “이번에 못 데려가면 영영 기회가 안 올지도 모르는데 우리 어떡해요.” 내내 엄마에게 무뚝뚝하던 조이가 엄마의 두 손을 잡아 자기 볼에 갖다 댔다. 그날 오후 김 씨는 의기소침한 아내를 위해 바다 소풍을 제안했다. 한국에선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바다. 부부는 화로에 고기를 굽고 아이들은 바다로 뛰어들었다. 서로 물을 튀기다 싸움을 한 두 동생을 조이가 갈라놓고는 막내를 흔들어 귀에 들어간 물을 빼줬다. 엄마 아빠도 물싸움에 가세했다. 한국에서 떠나올 때 4명이었던 가족은 어느덧 5명이 되어있었다. 지난해 12월 29일 취재진의 귀국 비행기에는 남편 김 씨가 함께 탔다. 한국에 먼저 돌아온 그는 변호사 비용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푸톤 씨는 아이들과 고향에 남아 조이가 친딸임을 증명해줄 자료를 모으고 있다. 3일 통화에서 그는 또박또박 말했다. “조이와 한국에 같이 가는 소원 끝까지 포기 안 해요. 제가 엄마니까….”마닐라·바탄=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11-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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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휘발유값 많이 싸다는데… ‘무폴주유소’가 어디야?

    23일 서울 영등포구 도림동의 K주유소. 줄지어 선 차량들로 주유소 앞은 물론 주변 차로까지 붐볐다. 이날 이 주유소의 L당 휘발유 값은 1729원. 2km가량 떨어진 여의도의 또 다른 K주유소. 이날 L당 휘발유 값은 400원 이상 비싼 2135원이었다. 국제유가 급등으로 기름값이 하늘로 치솟고 있다. 이날 서울의 평균 휘발유 값은 1862원. 전국 평균은 1790원으로 2008년 8월 이후 최고치다. 도림동 K주유소의 휘발유 값은 왜 그렇게 쌀까? 이 주유소엔 정유사 상표를 뜻하는 폴 사인이 없다. 이른바 무폴 주유소. 이런 주유소는 2008년 주유소 상표 표시제가 없어지면서 급증해 전국에 563곳이 영업 중이다. 무폴 주유소는 기름을 싸게 구할 수 있다. 한 무폴 주유소 관계자는 “정유사들이 많이 팔아주는 주유소일수록 기름을 싸게 준다”며 “우리처럼 ‘박리다매’를 하면 똑같은 기름도 일반 주유소보다 싸게 받는다”고 말했다. 또 특정 정유사 기름만 써야 하는 일반 주유소와 달리 정유사별 단가를 비교한 뒤 싼 곳의 기름을 들여와 보다 싸게 팔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정유사가 가맹 주유소로 공급하는 양이 들쭉날쭉해 남는 기름은 현물시장으로 나온다”며 “그런 기름은 일반 주유소에 들어가는 것보다 싸기 때문에 그걸 가져다 팔면 가격경쟁력이 생긴다”고 말했다. 공정거래위 조사 결과 무폴 주유소가 생기면 주변 반경 1km 안에 있는 경쟁 업소들의 휘발유 가격이 L당 22원 정도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유사석유 유통 등 불법 판매로 적발되는 사례는 무폴 주유소가 일반 주유소보다 많다. 기름 유통과정을 정유사가 관리하는 일반 주유소와 달리 무폴 주유소의 품질 관리는 주인의 양심에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석유관리원 관계자는 “대부분 무폴 주유소는 품질 면에서 일반 주유소와 다를 게 없지만 유통과정에서 위험요소는 조금 더 안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감독 당국도 무폴 주유소에 대해선 보다 엄격히 단속한다. 이 때문인지 전체 주유소 가운데 무폴 주유소는 4.3%에 불과하지만, 부정행위로 적발되는 건수는 전체의 30%에 이른다. 그러나 한국주유소협회 관계자는 “무폴 주유소 중에는 일반 주유소보다 오히려 더 철저하게 관리하는 경우도 많아 옥석을 가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운전자들이 안심하고 무폴 주유소를 이용할 수 있도록 신청 업소에 한해 매달 품질 검사를 한 뒤 안전성을 입증해주는 ‘품질 보증제’를 내년부터 시행키로 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무폴 주유소 ::정유사 상표를 뜻하는 폴 사인(pole sign)이 없는 주유소. 특정 정유사 기름만 써야 하는 일반 주유소와 달리 정유사별 단가를 비교해 싼 곳의 기름을 들여와 팔 수 있다.미친기름값 때문에 ‘무폴 주유소’ 찾는다는데…▲2010년 12월23일 동아뉴스스테이션}

    • 2010-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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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의 동아일보]여야 40대 기수 나경원-이인영 대담 外

    나경원과 이인영. 올해 7월과 10월 치러진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전당대회에서 각각 여야의 최고위원으로 선출된 40대 정치인이다. ‘1960년대생, 1980년대 학번’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상이한 삶의 궤적을 거쳐 집권당과 제1야당의 지도부가 된 두 사람이 만나 ‘젊은 정치인의 역할’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 국감 재탕 질의-응답의 핑계들호통 치는 국회의원, 고개 숙인 기관장. 고성과 반성이 오가지만 1년 뒤 바뀌는 건 질의 의원뿐. 5년째 지적된 금융감독원 낙하산 인사. 매번 “조치하겠다”고 했지만 국감 끝나면 요지부동. 약속은 하루 가고, 호통은 매년 같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국감 레퍼토리, 도대체 왜? ■ 남한 노래 북한 유행의 역사지금 북한 주민은 ‘곰 세 마리’ 노래를 개사해 3대 세습을 풍자하고 있지만 1980년대에는 ‘사랑의 미로’를 개사한 선전가를 한국 노래인 줄도 모르고 따라 불렀다. 북한 체제 선전에 이용되던 한국 노래가 거꾸로 그 체제를 향해 비수 끝을 돌렸다. 한국 노래의 북한 유입사를 살펴본다. ■ 아이패드 시대 출판시장 향방은몇 년 뒤에는 책장 넘기는 소리를 듣기 어려워질까. 전자책의 발달로 촉발된 ‘출판 빅뱅’을 진단하기 위해 국내외 출판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미국의 출판 전문지 ‘퍼블리셔스위클리’ 조지 슬로윅 주니어 대표를 통해 전자책의 미래와 저작권, 1인 출판, 종이책의 생존전략 등을 들어봤다. ■ 해초 속에 빵이? 현미경 속 신세계이런 세계가 또 있을까. 봉선화 속에 새알이 숨어있고 생쥐 고환에는 풋사과가 있다. 해초가 감춰둔 베이글을 찾았다는 기쁨도 잠시 사람의 세포에 그려진 천마도도 있다.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하면 보이지 않던 새로운 세계가 나타났다. 바이오현미경사진전에서 신세계를 만나보자.}

    • 2010-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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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의 동아일보]서민과 멀어진 ‘고시 등용문’ 外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딸의 특채 파동 등으로 특채를 50%까지 늘리려던 행정고시 개편안이 무산됐다. 고시제도가 다시 한 번 ‘신분상승의 사다리’로서의 입지를 다진 셈. 과연 그럴까. 요즘 고시촌에선 ‘유전(有錢)합격, 무전(無錢)불합격’이란 말까지 나오는데…. ■ 뮤지컬배우 망치 습격사건화려한 뮤지컬 무대 뒤로 관객들은 모르는 ‘쩐의 전쟁’이 있었다. 뮤지컬 주연 배우는 밀렸던 출연료를 현금으로 주겠다는 공연 제작사 간부 말을 철석같이 믿고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공연장으로 찾아갔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건 돈봉투가 아닌 무시무시한 쇠망치였다. 대낮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황당한 ‘망치 테러’ 사건의 전말을 알아봤다. ■ 거가대교 탄생시킨 공학수조8.2km의 거가대교가 100년 만에 찾아온 슈퍼 태풍에 흔들린다. 방파제가 무너지며 해저터널로 바닷물이 들어간다. 다행히 실제 상황은 아니다. 70분의 1로 축소한 모형이다. 테니스장 4개 크기의 수조에서 혹독한 안전성 시험을 거친 끝에야 거가대교가 탄생할 수 있었다는데….}

    • 2010-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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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정한 시험’ 고시도 有錢합격 無錢탈락?

    《“더럽죠. 기분이 더럽죠.”(고시생 A 씨)“‘너는 안 된다. 장관 딸 정도 돼야 들어갈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고시생 B 씨)“‘빽’이라든지 이런 걸로 한 번에 싹 들어가 버리면 열 받죠.”(고시생 C 씨)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딸의 ‘빬춤형 특채’ 파동에 이어 연달아 터진 공무원 특채의혹…. 고시촌의 대명사인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만난 고시생들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특채 파동의 여파로 외부 전문가 특채를 50%까지 올리려던 행정고시 개편안도 철회됐다. 현행 고시제는 ‘신분 상승의 사다리’ 로서의 입지를 다시 한 번 다지게 됐다.》“엉덩이에 큰 수술 자국이 있어요. 엉덩이가 좀 아팠는데 오래 앉아 있어서 그러려니 하고 계속 공부를 했죠. 알고 보니 종기가 엉덩이 근육을 파고들었어요. 몇 달 뒤 의사가 보더니 ‘당신 참 미련하다’고 하더군요.” 오세훈 서울시장(사법시험 26회)은 30년 전 고시준비생 시절을 떠올리며 “지금은 웃으며 말하지만 그땐 참 비참했다”고 했다. 당시 오 시장의 어머니는 집에서 재봉틀을 돌려 만든 이불보를 시장에 팔아 생계를 유지했고 학비 낼 때가 되면 친척들에게 돈을 꾸러 다녔다고 했다. ‘세탁소집 둘째딸’로 알려진 추미애 의원(사시 24회)도 가난을 딛고 ‘고시 사다리’에 오른 대표적 정치인. 부모가 사기를 당해 세탁소마저 날리고 구멍가게를 열자 추 의원은 학업과 가게 일을 병행하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대학 2학년까지 사법시험 1차를 통과 못하면 장학금을 끊는다기에 배수진을 치고 공부했죠. 집 연탄보일러가 고장 나 골방에서 담요를 뒤집어쓰고 책을 보는데 어머니가 물그릇이 꽁꽁 얼어있는 걸 보고 한숨을 쉬셨어요.” 오 시장과 추 의원처럼 ‘없는 집 학생’이 고시 사다리에 올라타 한번에 인생역전을 하는 게 지금도 가능할까. 고시촌을 집중취재해 보니 사실상 어려워 보였다. 고시공부가 모두 돈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서 행정·외무고시, 사법시험 수험생 10명의 지출명세를 짚어본 결과 한 달 생활비가 120만∼170만 원 선이었다. 요즘 대부분의 고시생은 고시 선배들이 지내던 쪽방형 고시원 대신 에어컨과 세탁기가 완비된 원룸에서 지낸다. 쪽방형 고시원은 인근 달동네로 밀려올라갔다. 부동산 중개인 이충열 씨는 “공부환경도 경쟁력이라 학생들이 갈수록 쾌적한 곳을 찾는다”며 “보통 원룸은 보증금 100만 원에 월 40만 원, 풀옵션은 보증금 500만 원에 월 50만∼60만 원”이라고 말했다. 식사는 매월 식권 값만 20만 원 안팎. 영양보충을 위해 몇 번 ‘외식’을 하면 30만 원이 훌쩍 넘어간다. 책값도 기본서와 참고서를 제대로 갖추려면 한 해 200만 원이 필요하고, 강의 테이프 등 추가교재까지 사면 400만∼500만 원이 든다. 특히 시험에 떨어지면 판례나 법률이 바뀌고 출제경향도 달라져 책을 새로 사야 한다. 의식주와 책을 해결했다고 고시준비가 끝난 게 아니다. 요즘 수험생들은 매달 15만 원 정도를 내고 독서실에서 공부한다. 독서실에는 에어컨은 물론이고 공기청정기와 산소발생기까지 설치돼 있다. 외시 준비생 이병규 씨는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고시공부의 특성상 경쟁자들과 함께해야 긴장이 유지된다”고 말했다. 가장 큰 부담은 학원비. 학원은 선택사항이지만 사실상 필수다. 사시 준비생 최진경 씨는 “공부할 게 워낙 방대하고 문제가 오랫동안 축적돼 핵심을 짚어주고 출제경향을 분석해주는 전문가의 도움이 절실하다”며 “빨리 가는 지도가 학원에 있는데 누가 혼자 공부하겠느냐”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사법시험 2차 헌법과목에서 강사들이 지목한 사법부 독립 관련 판례가 100점 만점에 50점 배점으로 출제되는 등 학원의 예상문제가 적중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학원비는 종합반의 경우 1년에 보통 500만∼600만 원이 든다. 최근에는 소수 인원을 상대로 강사들이 일대일로 가르치는 2000만 원짜리 고액과정도 생겼다. 일부 수험생은 고시 합격생한테서 월 200만∼300만 원을 주고 과외를 받기도 한다. 추 의원은 “내가 공부하던 1970년 후반에는 학원이 거의 없었고 대부분 학교나 절에서 공부했다”고 말했다. 가정형편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자면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독서실 총무로 일하는 한 행시 준비생은 “남들은 24시간 풀가동하는데 저는 그중 6시간을 빼야 하니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행시 준비생은 “경제적으로 집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중산층 이상이 아니면 고시 도전은 안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고시가 서민들로부터 멀어지는 추세는 고시 합격자들의 출신 배경으로도 확인된다. 최근 10년간 판사로 임용된 사법시험 합격자들의 출신고를 분석한 결과 외국어고 등 특목고와 서울 강남지역 고교 출신이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 37%에 달했다. 민주당 오제세 장세환 김유정 의원이 정부 부처에서 입수한 자료를 토대로 최근 5년간 행정고시 합격자를 합산한 결과 특목고와 자립형사립고, 서울 강남지역 고교 출신이 48%였다. 한나라당 정두언 최고위원(행시 24회)은 15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경제력이 당락에 영향을 주는 건 불공정한 경쟁”이라며 “EBS 수능 강의처럼 고시 과목도 방송통신대에서 인터넷 강의를 제공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dongA.com 뉴스테이션 동영상}

    • 2010-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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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압박 면접? 모욕 면접!

    취업준비생 이현경 씨(가명)는 2년 전 그날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한 휴대전화 제조업체 면접장에서의 일이다. “아버지가 안 계시느냐는 질문에 ‘이혼하셨다’고 답했더니 ‘부모님이 왜 이혼을 했냐’고 묻더군요.” 생전 처음 받아본 질문에 당황한 이 씨는 “아버지가 외도 문제가 있으셔서…”라고 했다. 면접관은 다시 “언제 이혼했냐”고 물었고 이 씨는 “제가 중학교 때”라고 답했다. “중학교 때면 별로 상처 안 받았겠네. 그래도 그런 일 겪고 나면 남자 못 믿게 되지 않나? 우리 회사 남자 직원들 많은데 잘 지낼 수 있어요?” 이 씨는 주변의 남자친구들을 거론하며 “공과 사는 구분한다”고 답했지만 말끝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다시 면접관의 질문이 이어졌다. “이현경 씨. 지금 눈물 흘리려는 거 같은데…. 그것 봐, 눈물 흘리잖아. 이 상황을 이기지 못하는 거잖아요. 그래 가지고 사회생활 하겠어요?” 이 씨는 눈물을 머금고 면접장을 나왔지만 그날 일은 그에게 깊은 상처가 됐다. “이후로 면접을 네 번 더 봤는데 혹시라도 그 질문이 나올까봐 자꾸 위축이 돼요. 얘기를 잘하다가도 부모님 관련한 질문이 나오면 자꾸 말이 꼬이고….” 서울의 한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취업준비생 김영준 씨(가명)는 23일 기자에게 일기장을 보여줬다. 지난해 12월 국내 최대 규모의 인터넷 다운로드 업체에서 면접을 본 날 쓴 일기였다. “나라는 인간이 한없이 비참하다. 정말 열심히 해서 언젠가 면접관이 되면 나는 절대 그러지 않으리라.” 그날 김 씨가 만난 면접관 8명 중 4명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회사에 입사하면 누가 제일 갈굴(괴롭힐) 것 같아요?” “누가 제일 일 못하게 생겼어요?” ‘군대에서 신병을 괴롭힐 때나 나올 질문’이라는 생각에 김 씨는 기가 막혔다. 한 시간 가까이 이어진 면접. 가운데 앉아 있던 면접관이 담배를 끄며 말했다. “김영준 씨, 안 뽑을 테니 나가 보세요.” 청년백수 35만 명 시대. 기업 면접장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본보는 회원수 128만 명으로 국내 최대 규모의 인터넷 취업카페인 ‘취업 뽀개기’를 통해 설문조사를 했다. 설문에 응시한 386명 가운데 63%인 241명이 면접 도중 부당한 대우를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 중 인격적인 무시를 당했다고 답한 비율이 37%로 가장 많았고, 면접관이 성추행으로 느껴지는 언행을 하거나 성차별적인 발언을 했다고 답한 사람도 19%에 달했다. 영업직에 지원한 여성 구직자는 “영업을 하려면 술자리에서 고객의 비위를 잘 맞춰야 하는데 남자를 다룰 줄 아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여성 지원자를 일으켜 세워 모델워킹을 해보라고 시키는 사례도 있었다. 문제가 된 기업 관계자는 “우리 나름의 방식으로 압박면접을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압박면접은 지원자의 약점을 파고들어 발언의 진위를 검증하고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자질을 평가하는 방식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정보국이 첩보원을 선발하려 만든 이 방식이 미국 금융가에서 주로 쓰였다. 취업 컨설팅업체인 ‘커리어 코치’ 윤영돈 소장은 “한국 기업들도 지난 10여 년간 압박면접을 해왔다”며 “사생활 침해와 성차별 관행에 관대한 우리문화의 특수성이 녹아들다 보니 압박면접이라는 이유로 인권이 침해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압박면접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정착시켰다고 평가받는 한국얀센. 이 회사는 매년 채용 절차가 시작되기 전 면접관을 대상으로 3차례에 걸쳐 면접 교육을 진행하고 지원자를 논리적으로 압박하는 자체 매뉴얼도 개발했다. 면접관들끼리도 서로 교차 평가하는 제도를 도입해 인권 침해 소지를 최소화했다. 한국얀센 오경아 이사는 “면접관 교육을 할 때 외모나 학력, 가정사 등 직무능력과 무관한 부분은 건드리지 않도록 가이드라인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신과 전문의가 면접에 참여하기도 한다. 건국대 의대 신경정신과 하지현 교수는 “압박면접 자체가 고도의 심리적 과정이기 때문에 면접관들이 일반 면접보다 훨씬 심도 깊게 준비해야 한다”며 “압박을 통해 무엇을 검증할 지를 분명히 설계하지 않으면 압박면접이 모욕면접으로 전락하기 쉽다”고 말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송인광 인턴기자 연세대 경영학과 4년양성희 인턴기자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4년유민영 인턴기자 고려대 법학과 4년}

    • 2010-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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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의 동아일보]“남자 잘 다루나?”… 도 넘은 압박면접 外

    어렵게 1차 시험에 통과했는데…. “남자 다룰 줄 알아요?” “부모님 왜 이혼하셨어요?” “외모 때문에 고생 좀 하죠?” 면접관이 던진 질문들. 일자리 얻으러 갔다가 가슴에 비수를 맞고 돌아오는 구직자들이 늘고 있다. 미국에서 건너온 압박면접, 한국에선 ‘모욕면접’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많다. 청년백수 35만 명 시대. 면접장에선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 세계 첫 전체 ‘페이스 오프’3월 세계 최초로 안면 전체 이식 수술을 받아 화제를 모았던 스페인 남성 오스카 씨가 27일 언론에 처음 모습을 나타냈다. 비록 완벽한 얼굴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음료를 마시고 말도 할 수 있고 피부의 자극을 느끼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그는 가족과 식사를 하거나 거리를 걸어보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 벤처, 특허 팔아 200억 매출창업 후 9년 동안 적자만 냈다. 투자자들에게 빌린 돈도 못 갚았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런 기업이 많아져야 한다”고 말한다. 어째서일까. 기술 중심 강소회사를 꿈꾸며 10여 년간 융합 연구개발(R&D)에 몰두해온 한 기업의 반전 성공 스토리를 좇아가봤다.}

    • 2010-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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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자체들 낯뜨거운 ‘콩글리시 행정구호’ 많아

    부산 동구의 대표 슬로건인 ‘SingSing 동구’. 미래로 ‘씽씽 달린다’와 ‘싱싱하다’는 의미의 중의적 표현에서 나온 구호다. 기자가 내민 설문지에서 이 구호를 본 미국인 메릴린 플럼리 교수(한국외국어대 영어과)는 ‘헉’ 소리를 냈다. “‘싱싱’은 싱싱 감옥(singsing prison)을 연상시키는데요.” 미국 뉴욕 허드슨 강변에 있는 싱싱 교도소는 흉악범 집중 수용소로 악명이 높다. 플럼리 교수 옆에 있던 캐나다인 스티븐 애도런티 교수(한국외국어대 영어과)는 경북 상주의 구호 ‘Just+ 상주’를 가리키며 “‘뭐 그냥 상주. 올 필요 없어요.’ 이런 느낌인데요”라고 말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 246개 중 44%인 108곳이 영어 구호를 쓴다. 이에 대해 한국외국어대 외국인 교수와 유학생 20명을 대상으로 물어봤다. 경기 고양시 구호인 ‘Let's Go yang’에 대해선 “양고기 먹으러 가자”라는 반응이 많았다. 충남 서천군의 ‘Amenity Seocheon’에 대해선 “어메니티(amenity)가 무슨 뜻이냐”, 충남 공주시의 ‘Hi-Touch Gongju’를 보고서는 “안녕 인사하면서 손뼉 치는 거?”라는 반응이 나왔다. 애도런티 교수는 “공주는 백제 왕조의 수도였는데 왜 ‘높이 뛰는 운동’을 연상시키는 표현을 했지요? ‘Royal 공주’라고 하면 어떨까요. 외국인들은 역사에 열광합니다”라고 말했다. 뜻이 통하지 않는 조어도 많다. ‘Greenpia’(서울 도봉구), ‘Dreampia’(대구 남구) 등 단어에 유토피아(Utopia)의 ‘pia’만 붙인 사례가 대표적. 플럼리 교수는 “‘피아(pia)’는 뜻 자체가 없는 말이라 그린피아라고 하면 우스꽝스럽게 들린다”고 말했다. 울산(Ulsan for you)과 경남 김해(Gimhae for you)처럼 같은 구호를 쓰는 곳도 많다. ‘Yes’ ‘Happy’ ‘Pride’ 등의 표현은 10여 개 지자체에서 함께 쓴다. 지자체 영어 구호의 상당수는 외국인도 모르고 한국인도 몰랐다. ‘Super 평택’을 구호로 쓰고 있는 평택시는 구호를 응용해 ‘슈퍼오닝(SuperOning)’이란 지역 농산물 상표도 만들었다. ‘Super(슈퍼)’+‘Origin(오리진)’+Morning(모닝)’의 합성어란 게 평택시의 설명. 파주시는 시 구호를 지난 5년간 매년 바꿨다. ‘Upgrade PAJU’, ‘Back-to-Basics PAJU’, ‘YES, WE CAN!’에 이어 올해 구호는 ‘New More G&G PAJU’. 구호가 바뀔 때마다 홍보물도 새로 만들었다. 현수막과 플래카드 제작 의뢰를 받은 광고기획사 관계자는 “올해 제작비가 1800만 원”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게 구호에 들어간 ‘G&G’의 뜻을 묻자 “생각을 안 해봤다”고 했다. 확인 결과 ‘G&G’는 ‘Good & Great’였다. 이마저 정부시책으로 녹색성장이 강조되면서 ‘Green & Global’로 또 바뀌었다. 파주시 관계자는 “시민들이 뜻을 모르면 궁금해서라도 더 찾아보게 되지 않을까요?”라는 기가 막힌 ‘해몽’을 내놓았다. ‘콩글리시 행정’은 지자체만의 문제가 아니다. 행정안전부는 최근 ‘Walking School Bus(워킹 스쿨버스)’ 제도를 시작했다. 초등학생들이 어른들의 인솔하에 걸어서 등하교하는 제도다. 학부모 민원기 씨는 “미국과 남미에서 17년간 살았지만 교사의 설명을 듣고서야 어떤 제도인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공문에 쓸 때는 ‘Walking School Bus’와 함께 ‘보행안전도우미사업’을 병기하지만 현장에선 한글 이름이 더 어렵다며 영어를 쓴다”고 해명했다. 보건복지부의 ‘Tour Talker’(현지 노인이 관광객을 안내하는 제도), 교육과학기술부의 ‘Wee project’(학생안전통합시스템)도 이해가 어려운 정책명이다.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 김일태 교수는 “정부가 시민에게 다가서는 행정을 하겠다고 공언해 왔지만 여전히 공급자 중심의 발상을 하고 있다”며 “기업이야 상품명을 잘못 지으면 기업 자신의 손해지만 공공기관이 이름을 잘못 쓰면 시민들이 피해를 본다”고 지적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10-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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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의 동아일보]시간강사들 현실이 어떻기에 外

    한 달에 평균 40만6250원을 번다. 대학 강의의 33.8%를 담당하지만 직장에서는 국민연금, 건강보험도 적용받지 못한다. 10명 중 9명은 계약기간이 6개월 이내여서 다음 학기 강의가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 5만7000여 명으로 추산되는 대학 시간강사의 현실이다. 한 대학 시간강사가 교수 임용 탈락 등을 비관해 자살한 사건을 계기로 시간강사의 열악한 처우가 다시금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 복거일이 쓰는 6·25 ― 지평리 전투4월 1일자 춘천지구전투로 시작해 다부동전투 인천상륙작전 운산전투로 이어온 ‘복거일의 6·25의 결정적 전투’가 지평리전투로 막을 내린다. 중공군에게 밀려 서울까지 내주었던 유엔군은 지평리전투의 승리를 발판 삼아 재반격에 나섰다. ‘결정적 전투’를 통해 한층 또렷해진 6·25의 모습은 무엇보다 우리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느끼게 한다. ■ 어느 베트남댁의 ‘피보다 진한 가족사랑’열여덟 살 베트남 신부는 한국에서 인생 역전을 꿈꿨다. 하지만 남편은 일곱 식구를 남기고 세상을 등졌다. 자신과 피 한 방울 안 섞인 전처 소생 아이들 셋, 반신불수로 누워있는 시아버지…. “고향으로 가든지 재혼하라”는 권유에도 불구하고 스물네 살 킴풍 씨가 가족들 곁을 지키는 이유는? ■ 그 많은 현수막, 선거 후엔 어디로 갈까선거를 앞두고 거리마다 현수막 홍수다. 그 많은 현수막은 선거가 끝난 뒤 어디로 갈까. 폐현수막을 수거해 친환경 생활소품을 만들겠다고 나선 ‘착한 회사’가 있다. 20대 여성 5명이 만든 ‘터치포굿’이다. 이들의 손을 거치면 폐현수막이 예쁜 가방과 멋진 지갑으로 다시 태어난다. ■ 영화 ‘포화 속으로’ 주연 권상우 인터뷰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배우 권상우에게 영화 ‘포화 속으로’는 전쟁의 공포를 느낄 수 있는 값진 기회였다. 이 영화에서 학도병으로 출연한 그는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개인적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학생들이 교육적인 측면에서 이 영화를 많이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 그리스 기자들이 본 한국 축구 문제점은“북한보다 경기력이 떨어진다.” “최근 한국의 경기 중 최악이었다.” 한국의 남아공 월드컵 본선 첫 상대인 그리스의 기자들이 지난달 30일 한국과 벨라루스의 평가전을 지켜본 뒤 한 말이다. 12일 1차전이 끝난 뒤 한국 기자들이 그리스 기자들에게 되돌려줄 말이 되길 기대한다.}

    • 201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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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세 베트남 새엄마는 천사”

    《다섯 살배기 막내딸은 더는 바나나 우유를 찾지 않았다. 밤새 고깃배를 탄 남편이 아침에 돌아오면 무릎에 드러누워 바나나 우유를 사달라고 조르던 아이는 그렇게 아빠의 빈자리를 표현했다. 남편이 사고로 세상을 뜬 지 2년. 홀로 여섯 식구를 떠안게 된 베트남 아내는 그사이 한국말 실력이 훌쩍 늘었다. “하이고 마, 이 먼 데까지 어예 왔는교?” 지난달 26일 울산 울주군의 한 어촌에서 만난 쿠엔킴풍 씨(24)는 오후 10시를 넘겨 일을 마치고 귀가 중이었다. 현관에 들어서니 네 아이가 엄마를 맞았다. 고1 큰딸, 중2 둘째 딸, 초등학교 6학년 셋째 아들, 그리고 막내 딸. 이 중 킴풍 씨가 낳은 아이는 막내뿐이다. 나머지 세 남매는 남편이 이혼한 전 부인과 낳은 아이들이다.》 “미안하구나, 우리 며느리”“너 안붙잡는다, 새 출발하라”고 했지만…청소일 등으로 힘겹게 일곱식구 생계 꾸려“고마워요, 우리 엄마”고1인 저와 9살차… 처음엔 까칠하게 대했죠이젠 한국어 가르쳐드려요, 울산 사투리도 함께“사랑해요, 우리 가족”올해 처음으로 어버이날 편지-카네이션 받아이런 착한 애들 두고 고향으로 어예 가겠는교?킴풍 씨는 신발을 벗자마자 안방에 들어가 시아버지의 전기장판 온도를 체크했다. 뇌중풍(뇌졸중)으로 쓰러져 반신불수인 시아버지는 며느리가 와도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킴풍 씨가 바닥에 떨어진 과자 부스러기를 정리하고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나오자 아홉 살 차인 큰딸이 엄마를 앉히더니 어깨를 주물렀다. 2004년 한국에 올 때만 해도 킴풍 씨는 ‘인생 역전’을 꿈꿨다.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남편이 제 눈엔 참 듬직했어요. 친정이 가난하니까 돈도 부치고 남편과 오순도순 살고 싶었죠.” 하지만 열여덟 살 베트남 소녀를 기다리고 있는 건 어린 세 남매와 시부모였다. 전처가 남긴 빚까지 떠안게 된 남편은 계속되는 빚 독촉에 직장을 그만둬 기초생활수급자였다. 시어머니와 함께 뱃일을 시작한 남편은 오전 2시에 배를 타 오전 9시가 돼서야 집에 돌아왔다. 오후에는 그물 정리 등 작업 준비로 바빴고 저녁을 먹으면 곧장 잠에 빠졌다. 킴풍 씨는 “말도 서툰 데다 어머니와 얘기 나눌 시간도 없어서 어머니만 보면 늘 무서웠다”고 했다. 결혼 1년 만에 낳은 막내가 투정을 부리면 시어머니는 “네 고향 아이니까 저러지, 한국 아이들은 절대 안 그런다”며 면박을 주기도 했다. 킴풍 씨가 기댈 곳은 자신과 낳은 막내딸을 끔찍이 아끼던 남편뿐이었다. 남편은 아침에 녹초가 돼서 귀가해도 막내가 바나나 우유를 찾으면 벌떡 일어나 사오곤 했다. 하지만 순탄해져 가던 결혼 생활도 4년 만에 끝이 났다. 2008년 6월 남편과 시어머니를 따라 함께 뱃일 나간 날, 배 뒤편에 있던 남편이 파도에 휩쓸렸다. 남편은 허우적대며 4, 5차례 물 위를 오르내리더니 거품을 내며 가라앉았다. 남편을 잃은 상처를 다독일 겨를도 없이 킴풍 씨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스물두 살의 젊은 색시에겐 유혹이 많았다. 친정 식구들과 베트남 친구들은 “남편도 없이 한국에 과부로 남아있을 이유가 뭐가 있겠느냐. 고향으로 돌아오든지 다른 한국 남자와 재혼을 하라”고 권유했다. 시어머니도 “살기 힘든 거 뻔히 아는데 안 붙잡는다. 비행기 값 마련해 줄 테니 원하면 언제든지 떠나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킴풍 씨는 “아빠마저 잃게 된 세 남매가 눈에 밟혔다”고 했다. “제 딸이야 친엄마라도 있잖아요. 근데 얘들은 저 없으면 정말 아무것도 없어요. 아빠, 엄마가 있었으면 이렇게 안 살 텐데, 돈 없어서 시내도 못 나가고 친구들처럼 옷도 못 사 입고 하다못해 교복도….” 킴풍 씨는 교복 얘기를 꺼내다 눈물을 주룩 흘렸다. 올해 여상에 입학한 큰딸은 입학식 전날까지 20만 원가량 하는 교복을 사지 못했다. 킴풍 씨가 면사무소에 여러 차례 사정한 끝에 후원금을 받아 겨우 마련할 수 있었다. 어렵게 한국에 남기로 결심은 했지만 홀로 짊어진 생계의 짐은 만만치 않았다. 현재 하고 있는 모텔 청소 일은 일감이 규칙적이지 않아 한 달 벌이가 30만 원 안팎. 여기에 정부 보조금 80여만 원을 보태 110만 원으로 일곱 식구가 산다. 이 중 30만 원은 당뇨와 심장질환까지 앓고 있는 시아버지 병원비로 들어간다. 지붕에서 비가 새 방바닥이 빗물로 젖지만 600만 원이 넘는 수리비를 마련할 수 없어 장마철엔 이불을 펼치지 못한다. 시어머니 최영옥 씨(63)는 “이 힘든 생활을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걱정했는데 며느리는 늘 웃는 얼굴”이라며 “피 한 방울 안 섞였지만 솔직히 내가 낳은 자식보다 며느리가 낫다”고 말했다. 시어머니는 지난해 말 친척들을 수소문해 150만 원을 빌렸다. 그 돈으로 킴풍 씨는 막내딸과 베트남 고향에 다녀왔다. 고향에 자주 연락하라고 며느리에게 매달 국제전화카드도 사준다. 킴풍 씨가 한국말을 하면 서툴다고 무시하던 세 남매도 지금은 엄마의 전담 한국어 선생이 됐다. 과거 킴풍 씨와 눈도 잘 맞추지 않았던 초등학생 아들도 배다른 여동생이 투정을 부리면 업어서 달랜다. 학교 부설 어린이집에 다니는 여동생을 위해 등하굣길마다 동생을 챙겨 손잡고 다닌다. 한번은 아버지 사망 직후 친권자로 등록되어 있는 생모가 보상금 수령 포기 각서를 쓰기 위해 집을 찾았다. 친엄마를 향해 큰딸이 쏘아붙였다. “아줌마, 할 일 끝났으면 어서 돌아가세요. 곧 엄마 오실 텐데 아줌마랑 마주치면 기분 안 좋으실 거예요.” 자신들을 버리고 빚까지 남긴 친엄마와 그래도 곁을 지켜준 새엄마에 대한 애증이 겹친 말이었다. 지난달 8일 어버이날, 킴풍 씨는 한국 생활 6년 만에 처음으로 아이들로부터 카네이션과 편지를 받았다. “엄마 저희한테 잘해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앞으로 잘 살아봐요.” “수학 47점 맞아 왔을 때 학원 못 보내줘서 미안하다고 하셨죠. 죄송해요. 앞으론 열심히 해서 변호사 될게요. 그땐 꼭 효도할게요.” 킴풍 씨는 다 말라버린 카네이션을 주방 싱크대 벽에 테이프로 붙여 놓았다. “평소 용돈 한번 제대로 준 적이 없는데 그 비싼 꽃을 어떻게 사왔을지 짐작이 가서 차마 못 버리겠어요. 이렇게 사는데 기자님이라면 고향 가고 싶겠어요?” 후원 문의 어린이재단 1588-1940 울주=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1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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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의 눈/신광영]아동성폭행 피해 감추기가 키운 자책의 상처

    조두순에게 끔찍한 일을 당한 나영이는 최근 ‘개학 전에 전학을 가라’는 아빠의 권유에 고개를 저었다. 대신 “친구들이 나를 이해해줄 것”이라며 아빠를 설득했다. 나영이는 방학 동안에도 친구들을 자주 집에 불렀다. 헤어질 땐 어김없이 집에 바래다줬다. “혼자 다니지 마라”, “큰길로 다니라”는 조언도 많이 한다. 나영이는 4일 통화에서 “저는 더 다칠 일이 없지만 친구들은 다치면 안 되잖아요”라고 했다. 나영이도 처음에는 알려지는 게 싫었단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관심으로 자신감을 찾았다. 나영이 아버지는 “요즘은 안부전화가 오면 아이가 직접 받아 또박또박 설명한다”고 말했다. 4일 오후 5시부터 동아일보가 만드는 인터넷 방송뉴스 ‘동아 뉴스스테이션’(station.donga.com)에 방송된 탐사리포트 ‘아동성폭행, 가족이라는 지옥’을 취재하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피해아동의 신원보호였다. 가정 내 성폭행이라는 예민한 주제다 보니 보호기관 관계자는 “외부에 알려지면 아이가 또 상처를 받는다”고 강조했다. 친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수진이(가명)와는 끝내 만남이 허락되지 않아 방 한 칸을 사이에 두고 전화로 대화를 나눴다. 피해 아동들이 흉악범죄의 피해자로 위로받기보다 또 다른 ‘문제아’로 낙인찍히고, 가해자로부터 ‘2차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신원보호는 지당하다. 하지만 쉬쉬하는 것만이 능사일까. 성폭행 피해 아동들은 자책감에 시달린다. 나영이 주치의였던 신의진 강남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는 “아버지에게 성폭행당한 아이의 경우 ‘아빠가 밥을 주니까 나는 이거 해줘야 되는 거 아닌가’ 해서 저항을 못하다 뒤늦게 상황을 알게 되면 자기를 탓한다”고 말했다. 4년 동안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수진이도 그 때문에 침묵의 세월을 보냈다. 그런 아이들에게 “네가 당한 일을 감춰야 한다”는 시선은 피해자의 자존감을 더 떨어뜨려 상처를 각인시킨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신 교수는 “상처는 치료 후 공유하는 게 원칙”이라며 “무조건 숨겨주기보단 상처를 극복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8세 때 납치돼 성폭행을 당했던 미국의 제니퍼는 방송에서 당시 상황을 털어놔 19년 만에 범인을 잡았다. 피해자를 고개 숙이게 만드는 우리 사회에서 제2의 제니퍼가 나올 수 있을까. 지난해 추산된 우리나라의 성폭행 사건 신고율은 7%였다.신광영 영상뉴스팀 neo@donga.com}

    • 201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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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ou look like 권상우” 갈라파고스에도 한류가…

    갈라파고스 산크리스토발 섬 주민들이 기자에게 건넨 첫 인사말은 “You look like 권상우(당신, 권상우 닮았어요)”였다. 배우 권상우를 닮았다는 칭찬보다 갈라파고스 주민들이 그를 알고 있다는 게 더 신기했다. 알고 보니 권상우, 최지우 주연의 드라마 ‘천국의 계단’이 현지 주민들 사이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었다. 지역 방송에서 ‘천국의 계단’이 방영되는 평일 오후 6시부터 7시까지는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텔레비전을 보느라 거리가 한산했다. 스쿠버다이빙 용품 대여점을 운영하는 크리스티나 카스타뇨 씨(37)는 “매일매일 방송을 기다리는 게 힘들어 아예 DVD를 통째로 구했다”며 “어제 오후 6시부터 다 보고 나니 다음 날 오전 7시였는데 하도 슬퍼서 눈이 퉁퉁 부었다”고 말했다. 드라마 주제곡인 ‘보고 싶다’는 휴대전화 통화 연결음으로도 인기가 높았다. 한 여고생은 “권상우가 실제로 피아노를 잘 치느냐”고 묻기도 했다. DVD 대여점에 가보니 대표적 한류 드라마인 ‘겨울연가’와 ‘대장금’뿐 아니라 2007년 방영된 ‘커피 프린스’도 인기 대여품목에 들어가 있었다. 가게 주인은 “한국 드라마는 보통 예약을 하고 2, 3주를 기다려야 빌려갈 수 있다”고 했다. 중고교에 다니는 딸 셋을 키우는 이사벨 모리엔테스 씨(43)는 “에콰도르나 미국 드라마는 성적이거나 폭력적인 장면이 너무 많은데 한국 드라마는 사랑의 순수한 감정을 섬세하고 감동적으로 보여줘 아이들이 감수성을 키우는 데 참 좋다”고 말했다. 갈라파고스에 부는 한류 열풍은 드라마뿐만이 아니었다. 가정집이나 상점에 있는 가전제품도 삼성이나 LG 등 한국산이 대부분이었다. 영어를 거의 못하는 택시운전사 요세프 씨는 직접 “애니콜”을 외치며 “삼성 휴대전화는 갈라파고스에서 몇 안 되는 명품이고 젊은이들의 로망”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에 대한 관심 중에 반갑지 않은 것도 있었다. 지난해 11월 갈라파고스에 도착한 권영인 박사 일행은 주민들로부터 경계의 시선을 받아야 했다. 그보다 한 달 전, 북한 남성 3명이 갈라파고스를 찾아 주정부와 잠수함 공급 관련 협의를 한 사실이 현지 주민들에게도 알려졌기 때문이다. 수염이 덥수룩하고 행색이 지저분한 권 박사 일행 3명은 ‘북한에서 온 것 같다’는 오해를 받았다. 현지 주민들은 권 박사 일행을 볼 때마다 “남한, 북한 어디에서 왔느냐”, “한국에 전쟁 난다는 얘기가 많은데 괜찮으냐”고 묻기도 했다.갈라파고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10-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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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로스 미디어/다윈을 따라서]갈라파고스 프로젝트

    다윈의 항로를 따라 항해하는 권영인 박사(49)가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진화론의 발상지인 갈라파고스에 도착한 지난해 11월 28일. ‘장보고 주니어’호를 타고 들어온 권 박사 일행을 맞은 것은 해변의 바다사자 가족이었다. 새끼 한 마리를 갓 낳은 어미 사자는 ‘大’자로 드러누워 ‘산후조리’ 중이었다. 그때 갑자기 날개 길이 1m가 넘는 군함새 10여 마리가 20cm 크기의 새끼 바다사자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새끼를 잡아먹나 했더니 새끼가 벗어놓은 누런 태반을 먹기 위해 경합을 벌였다. 태반을 낚아채 달아나던 군함새가 또 다른 동료의 공격에 먹이를 바다로 떨어뜨렸다. 물 위에서 지켜보고 있던 펠리컨이 태반을 잽싸게 물어 삼켰다. 진화론의 바탕원리인 생물들의 치열한 경쟁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그 싸움의 와중에도 갓 태어난 바다사자는 어미의 품을 파고들며 눈도 못 뜬 채 젖을 빨았다. ○ 인간의 손을 탄 동물의 낙원 그러나 진화론의 발상지가 된 ‘생명의 원점’ 갈라파고스는 많이 변해 있었다. 175년 전 찰스 다윈이 이 땅을 밟았을 때의 감흥을 느껴보려는 권 박사의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다윈이 부리 모양의 차이를 보고 진화론을 도출했던 핀치새. 사람을 몰랐던 핀치는 권 박사가 부리를 보려고 4, 5m 앞으로만 다가가도 나무에 있다가 모두 날아가버렸다. 권 박사는 “170여 년 만에 사람을 무서워하는 잠재의식이 어떻게 유전될 수 있었을까”라며 아쉬워했다. 갈라파고스 생물들이 이제 사람의 손길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매년 10만 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찾으면서 갈라파고스의 관광수입은 본국인 에콰도르 전체 외화수입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주민들의 수입도 본토의 2, 3배가 넘다 보니 30년 전 2000명 정도이던 인구가 3만 명으로 급증했다. 사람의 발길을 따라 쥐나 염소 등 외래종이 유입되면서 진화론의 근거가 됐던 갈라파고스 고유 생물들은 터전을 잃었다. 식용으로 들여온 염소가 풀을 다 뜯어먹어 자이언트거북은 먹이가 부족해졌다. 갈라파고스란 섬 이름은 스페인어로 거북이란 뜻. 자이언트거북은 이 섬의 상징이다. 거북에게 또 다른 수난이 닥쳤다. 지구 온난화다. 지온이 29도가 넘으면 거북 알이 대부분 암컷으로 부화되기 때문에 이상고온 현상은 거북의 성비를 교란시킨다. 14종이던 거북이 최근 11종으로 줄어들 만큼 멸종 위기에 처하자 갈라파고스 국립공원은 전문센터를 만들어 그 안에서 거북을 키우고 있다. 권 박사는 “이상고온은 거북들만 힘들게 하는 게 아니라 항해를 하는 우리에게도 재앙”이라고 했다. 권 박사 일행은 배 위에서 지구 온난화의 영향을 톡톡히 실감했다. 통상 해수 온도가 26도 이하면 허리케인이 발생하지 않는다. 10월 말 수온은 보통 25도 이하로 떨어져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하지만 11월 멕시코 출항 당시 바다 온도는 30도였다. 실제로 출발 직전 풍속 265km의 허리케인 ‘릭’이 불어닥쳐 배가 떠내려갈 뻔했고, 항해 중 강풍을 만날 때마다 허리케인이 아닐까 마음을 졸여야 했다. ○ 쉴 곳 잃은 바다제비 보며 동병상련 센터 안에 갇혀있던 거북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권 박사는 “생물과의 교감을 기대하고 갈라파고스에 왔는데 배에서 만난 바다제비와의 인연만 못하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밤새 파도와 싸운 다음 날 아침이었다. 참새만 한 바다제비가 배 위에 날아들었다. 제비는 배 위를 서너 바퀴 돌며 선원들의 눈치를 보더니 갑판 난간에 내려앉아 날개에 머리를 묻고 잠이 들었다. 반경 수백 km 이내에 섬이 전혀 없고 파도가 높아 쉴 곳을 찾지 못했던 바다제비는 얼마 뒤 깨어나 아예 선실로 내려가 테이블 위에서 본격적으로 숙면에 들어갔다. 전날 밤 배 안에서 공포에 떨었던 권 박사는 잠든 바다제비를 보며 동병상련을 느꼈다. 권 박사나 바다제비나 기댈 건 자연의 자비뿐이었다. 이튿날 아침 바다제비는 권 박사 머리 위로 날아올라 세 바퀴쯤 돌더니 다시 바다로 날아갔다. 하지만 갈라파고스에서는 권 박사가 기대한 자연과의 교감을 하기란 쉽지 않았다. “길가의 벤치도 바다사자가 비워둔 자리만 사람이 앉을 수 있다”던 현지인의 설명은 현실과 달랐다. 권 박사의 배가 정박한 산크리스토발 섬의 항구는 갈라파고스 주지사의 공약에 따라 건립된 관광용 데크로 깨끗이 정돈되어 있었다. 본래 그곳에서 살던 바다사자들은 항구 주변에 방치된 난파선에 자리를 잡았다. 거리에는 각종 고기를 숯불에 놓고 드라이어로 구워 파는 노점이 즐비했다. 진화론이 탄생한 ‘생명의 땅’에서는 저녁만 되면 골목마다 고기 굽는 냄새가 났다.○ 메탄 밀집지역 발견 성과도 하지만 예기치 못한 성과도 있었다. 권 박사 팀이 갈라파고스에 도착하기 하루 전인 지난해 11월 27일. 선실에서 실험용 컴퓨터를 보던 권 박사가 ‘배를 세우라’고 다급히 소리쳤다. 바닷물 속 메탄 농도가 표시된 그래프가 위아래로 요동을 쳤기 때문이었다. “이거 장난 아닌데. 동해에서 가스 하이드레이트가 나온 곳의 두 배는 되겠어.” 갈라파고스 제도 중 하나인 산크리스토발 섬 동북쪽 해상 30마일 지점에서 메탄 밀집 해저지역을 발견한 것. 해수면에서 측정한 바닷물 속 메탄 양은 일반 해수의 70배인 L당 3.7μmol(마이크로몰). 새 에너지원인 ‘불타는 얼음’ 가스 하이드레이트가 발견된 동해의 해저 2000m 측정값은 2.5μmol이었다. 바다 밑으로 내려갈수록 메탄이 많아지는 것을 감안하면 그때의 두 배에 가까운 수치다. 권 박사는 “이렇게 높은 값을 보이는 것은 해저에 가스 하이드레이트가 있든지, 아니면 화산활동에 의한 작용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만일 이곳에서 가스 하이드레이트가 발견된다면 권 박사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소속이던 2007년 동해에서 가스 하이드레이트를 발견한 데 이어 해외에서 다시 대체 에너지를 발견하는 셈이다. 권 박사 팀은 3월 말 여수항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이번 탐사는 해상왕장보고기념사업회(이사장 김재철 동원그룹회장)가 지원했으며, 2012여수세계박람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한다는 뜻도 담고 있다. 글·사진=갈라파고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10-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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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꼬리로 기자옆구리 퉁퉁 치고 핸드볼 공만한 대변 ‘뿌지직’

    1835년 갈라파고스에 상륙한 찰스 다윈은 자신의 저서인 ‘비글호 항해기’에서 “(핀치)새 몇 마리가 있었지만 그것들은 나에 대해 거북만큼도 관심이 없었다”고 썼다. 날개를 덥석 잡아도 순순히 몸을 맡길 만큼 핀치새는 인간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그 덕에 다윈은 핀치새의 부리를 마음껏 연구할 수 있었고 섬마다 다른 부리 모양은 진화론의 핵심적 근거가 됐다. 기자가 핀치새를 처음 만난 건 섬을 돌아보기 위해 탔던 택시 안에서였다. 핀치새는 정차해 있는 택시 사이드미러에 앉더니 신기한 듯 실내를 두리번거렸다. 부리 모양을 보기 위해 얼굴을 들이대니 푸드덕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숲에서 만난 자이언트거북은 지름이 1m쯤 되는 등딱지를 뒤뚱뒤뚱 흔들며 걸었다. 다윈은 갈라파고스 방문 당시 거북의 등딱지 모양이 섬마다 다르다는 현지인의 말을 듣고 진화론에 착안했다. 나무 이파리를 먹고 사는 거북은 고개를 높이 들어야만 살아남다 보니 풀이 많은 지역의 거북보다 목 부분 등딱지가 위로 솟아있었던 것. 등딱지를 자세히 보기 위해 뒤따라가는데 거북이 갑자기 멈춰 섰다. 그리곤 꽁무니에서 걸쭉한 반죽을 한 무더기 떨어뜨리더니 부르르 떨었다. 진한 녹색 대변은 핸드볼 공만 한 크기였다. 거북은 기자가 앞쪽에 나타나자 자세를 낮추며 멈췄다. 그리곤 ‘꾸웅’ 소리를 내며 고개를 등딱지 안으로 넣었다. 갈라파고스 해변가에는 수백 마리의 바다사자가 나른한 모습으로 낮잠을 잤다. 워낙 수가 많다 보니 어미를 찾으려는 새끼들은 이곳저곳을 다니며 젖꼭지가 보일 때마다 주둥이를 들이댔다. 어미들은 ‘킁킁’ 냄새를 맡으며 자기 새끼가 아니면 거칠게 내쳤다. 육지에선 느린 바다사자들이지만 물속에서는 무척 날렵했다. 스쿠버다이빙을 하며 만난 바다사자들은 기자를 가운데 두고 지그재그로 가로지르더니 꼬리로 기자의 옆구리를 퉁퉁 쳤다. 얼마 뒤 한바탕 물고기 떼가 몰려들더니 그 사이로 길이가 1.5m쯤 되는 물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망치상어였다. 얼굴이 가로 30cm 정도의 널빤지처럼 생겼고 양끝에 눈이 달렸다. 기자는 “상어를 보면 움직이지 말라”는 말이 떠올라 숨을 죽였다.}

    • 2010-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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