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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규 전 검찰총장이 총장 재임 중이던 올해 초 검찰의 기소로 재판을 받고 있던 이국철 SLS그룹 회장을 만난 사실이 밝혀졌다. 김 전 총장은 “이 회장이 억울해한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1심 재판이 끝난 뒤 만났다”며 “검찰 수사로 SLS그룹이 무너졌다는 소문도 있어 총장으로서 상황 판단을 하기 위해 만난 것”이라고 변명했으나 부적절한 처신이었다. 이 둘 사이에 다리를 놓은 문환철 대영로직스 대표는 이 회장으로부터 SLS 구명 로비자금으로 7억8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최근 구속됐다. 김 전 총장은 “문 씨와는 고검장 시절부터 친지의 소개로 만나 안부인사 정도 하고 지내는 사이”라고 밝혔다. 문 씨가 SLS그룹의 로비스트인 줄 몰랐다는 주장이지만 검찰총장이 상급심이 남아 있는 재판의 피고인을 만난 것은 의혹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이전까지 몰랐던 기업인을 고검장 시절부터 알고 지냈다는 점도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김 전 총장은 “이 회장이 억울함을 호소한 사연에 증거가 없어 범죄 정보로는 가치가 없다고 판단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언론이) 마치 이상한 뒷거래를 한 것처럼 검찰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전 총장이 이 회장을 위해 어떤 조치를 해줬는지에 관계없이 이 회장을 만난 사실부터 문제다. 검사는 자신이 취급하는 사건의 피의자 피해자 등 사건 관계인과 정당한 이유 없이 사적으로 접촉해서는 안 된다고 검사 윤리강령에 나와 있다. 검찰의 정점(頂點)에 있는 검찰총장은 사실상 모든 수사를 지휘할 수 있다. 그렇다면 모든 검사의 사건 관계인이 검찰총장에게도 사건 관계인이 될 수 있는 만큼 처신에 더욱 유의했어야 했다. 이국철 구명 로비에 개입된 전현직 검찰 고위간부가 4, 5명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 회장은 검찰이 압수한 비망록에 ‘검찰의 최고 간부님과 한식 겸 퓨전 양식 메뉴로 식사했는데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적었다. ‘최고 간부님’은 물론 김 전 총장을 뜻한다. 이 회장은 ‘문 씨가 검찰 간부들에게 전달해야 한다고 해서 돈을 줬다’고 썼다. 검찰은 김 전 총장을 포함해 거론되는 사람을 철저히 조사해 로비자금이 어디로 갔는지 규명해야 한다.}
한국처럼 콘서트(concert)란 말이 음악회라는 본래 의미를 벗어나 많이 쓰이는 나라도 없을 듯하다. ‘과학 콘서트’가 있는가 하면 ‘철학 콘서트’도 있고 ‘경제학 콘서트’, ‘논리학 콘서트’, ‘회계학 콘서트’도 있다. 모두 책 제목이다. 안철수 서울대 교수를 잠재적 대권 후보로 만든 ‘청춘 콘서트’라는 토크 콘서트도 있고, TV 개그 프로그램 ‘개그 콘서트’도 있다. 책을 주제로 얘기를 나누는 ‘북 콘서트’도 있다. ▷음악회와는 상관없는 콘서트란 말을 유행시킨 것은 2001년 ‘과학 콘서트’를 쓴 정재승 KAIST 교수다. 정 교수는 이 책을 4개의 장 대신에 4개의 악장으로 나누고 각각 비바체 몰토(vivace molto·매우 빠르고 경쾌하게) 안단테(Andante·느리게) 등의 연주 지시어를 제목으로 달았다. 현대 과학이론을 음악 감상하듯 편안히 읽도록 풀어 쓴 책이다. ‘과학 콘서트’가 베스트셀러가 된 이후 출판계에서 너도나도 책에 콘서트라는 제목을 붙이면서 이 단어는 2000년대의 유행어가 됐다. ▷토크 콘서트는 음악이 아니라 말로 하는 콘서트다. 미국에는 토크 쇼는 있어도 토크 콘서트는 없다. 토크 쇼와 토크 콘서트의 차이를 ‘개그 콘서트’의 ‘애정남’에게 물어본다면 “돈만 밝히면 토크 쇼”라고 말할지 모른다. 자칭 토크 콘서트의 원조라는 연예인 김제동이 2009년 시작한 ‘노브레이크’는 입장료가 7만 원이 넘는다. 토크 쇼라고 부르는 게 마땅하다. 안철수 교수는 올해 5∼9월 전국을 돌며 청년들을 상대로 예정된 강연을 나 홀로 강연보다는 대화 형식으로 진행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골의사’ 박경철 씨와 함께 청춘 콘서트를 진행했다. 이런 것이 진짜 토크 콘서트다. ▷‘나는 꼼수다’부터 한나라당의 ‘드림 토크’까지 토크 콘서트가 유행이다. 청와대도 가담했다. 14일 법륜 스님을 초청해 청와대 직원과 그 자녀들이 관람하는 토크 콘서트를 진행한다. 법륜 스님이 한나라당을 비판한 안 교수의 멘토라는 이유로 논란이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보수나 진보로 간단히 분류할 수 없는 인물이다. 청와대는 열린 태도로 경청할 필요가 있다. 내친김에 할 수 있다면 안 교수까지 초청해보는 것은 어떨까.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한나라당의 재구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보수의 재구성이다. 한나라당을 보수와 같이 놓지 말라. 서구 역사에서 정당은 시민사회에서 태어난 것이지만 한국의 정당은 그렇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엄밀히 말하면 우파 시민세력에 무임승차한 정당”이라는 전여옥 의원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 한나라당만이 아니라 민주당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민세력은 이 정당들이 만들어준 우리에 갇혀 사는 집토끼에 불과했다. 그러나 올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기점으로 변화가 일어났다. 박원순과 참여연대로 대표되는 좌파 시민세력이 민주당과 손을 잡고 정치권 진입에 성공했다. 시민세력이 중심이 되는 정당의 재구성이 시작된 것이다.한나라당의 변화만으로는 부족하다 보수의 위기는 진보의 재구성에 상응하는 변신을 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보수의 재구성도 당 밖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지금 한나라당의 문제는 쇄신을 요구받은 쪽만 아니라 쇄신을 추구한 쪽도 매력이 없다는 점이다. 남경필 원희룡 같은 쇄신파는 각각 4선, 3선의 의원임에도 불구하고 처신은 늘 초선처럼 하는 정치적 난쟁이들이다. 유승민은 한 번은 이회창, 한 번은 박근혜의 측근으로 두 차례나 대통령 만들기에 실패한 전력이 있는, 신뢰할 수 없는 킹메이커다. 한나라당 내부의 찻잔 속 폭풍은 그들만의 리그에서의 권력투쟁에 불과하다. 한나라당 밖에서 시작되는 움직임만이 진정한 보수의 재구성에 기여할 것이다. 이런 움직임이 없지는 않다. 보수 시민세력을 자처하는 박세일이 신당 창당을 모색하고 있다. 박원순 모델과는 다른 것이지만 시민세력에 기반을 둔 정당을 추구한다는 점은 비슷하다. 자칫 박세일 신당이 보수의 분열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시도해볼 가치가 있다. 지금 보수에 필요한 것은 자진해서 카오스(chaos·혼돈)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고 그 속에서 무엇인가 새롭고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나도록 지켜보는 것이다. 박근혜가 먼저 자기만이 보수의 대권주자가 돼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내가 대권경쟁의 장(場)에서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상상해볼 필요가 있다. 보수 진영에서는 진보 진영만큼 인물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박근혜가 사라진 장에서 예상치 못한 인물들이 진가를 발휘할 수도 있다. 이 시대는 근엄함보다 발랄함을 좋아한다. 20여 년 전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는 회색 정장을 착용한 정치인들 사이에서 청바지를 입고 돌아다니며 미국식 어휘를 구사해 신선함을 줬다. 영국 보수당이 블레어를 벤치마킹해 만들어낸 것이 30대 젊은 당수 데이비드 캐머런이었다. 특히 지금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시대는 순발력과 촌철살인의 말솜씨를 필요로 한다. 보수에서도 시대를 따라잡는 발랄한 지도자들이 나와야 한다.좌파 베끼기에 그쳐선 성공 못해 전 세계적 맥락에서 신자유주의의 퇴조는 보수의 타협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지방선거 이후 복지 확대가 불가피한 대세처럼 보인다. 어차피 재구성은 상대편의 정책을 어느 정도 베끼는 것이다. 영국 노동당의 블레어는 대처리즘의 시장주의를 수용해 ‘제3의 길’을 만들었고 보수당의 캐머런은 국립의료체제(NHS)를 적극 지지하는 ‘온정적 보수주의’를 만들었다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든 박세일이든 이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러나 베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보수에는 지켜야 할 보수의 가치가 있다. 같은 돈을 들인다면 복지보다는 고용이다. 복지란 정부 돈을 민간부문으로 이전하는 것이다. 공공부문의 일자리 창출도 역시 정부 돈을 민간부문으로 이전하는 것이다. 일자리는 복지와 달리 개인의 자긍심을 높여준다. 그렇다면 단순한 복지의 확대보다는 공공부문의 일자리 창출이 효과적이다. 블레어조차도 이미 20여 년 전에 ‘복지에서 고용(Welfare to Work)으로’의 구호를 내걸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서울북부지법 서기호 판사는 그제 자신의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가카의 빅엿까지 먹게(각하를 엿 먹인다는 뜻)”라는 글을 올려 이명박 대통령을 조롱했다. 그는 인터넷 매체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뼛속까지 친미인 대통령이…나라 살림을 팔아먹은”이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 최은배 인천지법 부장판사를 지지했다. 최 부장판사와 이정렬 창원지법 부장판사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발언을 신중히 하라는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의 권고에도 아랑곳없이 각기 라디오에 출연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비판하는 정치 편향 발언을 이어 갔다. SNS가 공사(公私)의 경계선에 있는 매체이기는 해도 법관의 신분을 가진 사람이 공개적으로 대통령을 조롱한 것은 법관 품위를 훼손하는 일이다. 판사가 라디오와 인터넷 매체에 출연해 정치 발언을 하는 것은 법관윤리강령 제7조 정치적 중립 조항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김하늘 인천지법 부장판사가 최근 법원 내부 게시판에 한미 FTA의 사법주권 침해를 연구하기 위한 태스크포스(FT)를 구성하자고 제안하자 판사 170여 명이 동조해 청원서를 낼 계획이다. 세계무역기구(WTO)와 국제사법재판소 등 많은 국제중재기관이 사법권을 행사한다. 국제 분쟁에서 어느 한 국가가 사법주권을 행사하면 오히려 공정하지 않을 수 있다. 한미 FTA가 사법주권 침해라는 의견은 국제법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판사들은 업무시간에 재판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 벅차 집에까지 서류를 가져가 일을 한다고 한다. SNS를 비롯한 각종 매체에 정치적 견해를 발표하는 일부 판사는 시간이 남아도는가. 서 판사는 지난해 72자짜리 판결 이유를 쓰고 변호사가 제출한 서류를 갖다 붙인 무성의한 판결문으로 비난받은 적이 있다. 일본에서 우리 법원 내 진보성향 법관 모임인 우리법연구회와 비슷한 ‘청년법률가협회(청법협)’ 소속 판사들의 튀는 판결이 1960년대에 이어졌다. 이들의 편향성을 우려한 한 지방재판소장이 청법협 판사에게 재판 관련 의견을 보냈다가 논란이 돼 주의 처분을 받았다. 이용훈 전임 대법원장 시절에 신영철 대법관이 경고를 받은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일본 최고재판소는 청법협 판사에게도 같은 징계 처분을 내리고 청법협 판사들을 주요 재판에서 배제함으로써 사법의 정치화를 극복했다. 우리 법원에 ‘정치 판사’들이 들끓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가장 시급한 과제가 무엇인지 깊이 헤아려 봐야 한다.}
검찰은 변호사로부터 벤츠 승용차와 샤넬 핸드백을 선물로 받은 이모 여검사(36)를 어제 체포해 조사에 들어갔다. 이 검사는 부장판사 출신 최모 변호사(49)와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사건 해결을 청탁받고 그 대가로 선물을 받은 의혹을 사고 있다. 검찰이 이 검사와 최 변호사가 관련된 진정서를 접수한 것은 올 7월이다. 검찰은 진정서가 접수된 이후 4개월 동안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언론에 사건이 보도되자 부랴부랴 수사에 나섰다. 늑장 수사에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사정당국은 내부 비리일수록 더 엄정하게 수사해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이 사정당국을 신뢰하고 그 결과에 승복할 수 있다. 이 검사는 진정서 조사가 유야무야되는 사이 사표를 제출해 수리됐다. 비위공직자 의원면직 제한규정(대통령령)에는 공직자의 비위를 내사 중인 때에는 사표를 내더라도 수리하지 않고 현직에서 징계 절차를 거쳐 물러나도록 하고 있다. 검사가 징계를 받고 나가면 변호사 개업이 제한된다. 검찰은 결국 이 검사가 문제없이 변호사 개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셈이다. 검찰은 지금 경찰과 수사권 조정 갈등을 빚고 있다. ‘법의 수호자’여야 할 검찰이 스스로 법치를 허무는 모습을 보여서야 어떻게 모든 수사의 지휘권을 갖겠다고 나설 수 있겠는가. 경찰이 검찰 관련 사건만은 반드시 경찰이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사태를 검찰은 깊이 반성해야 한다. 이 검사는 2007년 검사로 임용되기 전 부산지역 법률구조공단 변호사로 근무할 때 최 변호사를 만나 사귀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의 공직 진출이 늘면서 공직사회에서 남녀가 만나는 기회가 늘었다. 남녀관계가 개입된 검사 관련 청탁 의혹 사건은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유형이다. 남녀가 사귀는 거야 자유지만 그 관계가 공직 사회를 어지럽히지 않도록 윤리 규정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스폰서 검사’ ‘그랜저 검사’ ‘벤츠 검사’다 해서 검찰의 도덕성이 요새처럼 빈번하게 도마에 오르는 경우가 과거에 없었다. 검찰은 지난해 ‘스폰서 검사’ 사건 이후 검사 비리를 다루기 위해 감찰본부를 만들고 특임검사를 도입했다. 검찰은 감찰본부를 통해 이 검사의 비리를 걸러내지 못했고 결국 수사를 특임검사에게 맡겼다. 엄정한 수사만이 불신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동아일보가 일제강점기인 1933년 펴낸 문자보급 교재 ‘한글공부’ ‘신철자편람’ ‘일용계수법’이 문화재로 인정받았다. 문화재청은 1일 동아일보 신문박물관에 소장된 이들 교재와 조선일보가 1934년 발간한 ‘문자보급 교재’ 등을 문화재로 등록하기로 했다. 문화재청은 “언론사의 문자보급운동은 우리나라 독립에 크게 기여하고 민족정신을 함양했다”며 “이들 교재는 언론사가 국민 계몽에 기여한 구체적 증거물이므로 문화재로 등록해 연구 관리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결정했다. “어찌하면 우리는 하루 밧비 이 무식의 디옥에서 벗어날가. 어찌하면 이 글장님의 눈을 한시 밧비 띄어볼가… 방방곡곡에 문맹(文盲) 타파의 횃불을 놉히 들가 합니다.” 문맹률이 90%에 육박하던 1928년 3월 16일 동아일보가 문맹퇴치운동인 ‘글장님 없애기 운동’을 시작하며 실은 기사다. 전국에 포스터를 내걸고 30여 명의 명사를 초청해 강연회를 열 계획이었지만 일제가 행사 사흘 전에 금지령을 내리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동아일보는 이에 굴하지 않고 1931년부터 19세기 러시아 지식인들의 농민계몽 운동에서 착안한 ‘브나로드운동’을 주도하며 문맹 퇴치와 한글 보급에 힘을 쏟았다. 일제의 탄압으로 중단될 때까지 4년간 학생들을 주축으로 5751명의 ‘계몽대원’을 전국에 보내 9만7598명에게 한글을 가르쳤고, ‘한글공부’ 등 210만 부의 한글 교재를 만들어 배부했다. 민족어의 위기를 민족의 위기로 인식하고 우리말 우리글을 보존하기 위한 ‘문화독립 운동’의 횃불을 높이 든 것이다. 1920년 ‘문화주의’를 사시(社是)로 내걸고 출범한 동아일보는 창간 열흘 만인 그해 4월 11일부터 사흘에 걸쳐 ‘조선인의 교육 용어를 일본어로 강제함을 폐지하라’는 사설을 1면에 게재했다. 그 후 일제가 여러 차례 ‘조선교육령’을 통해 조선어 말살을 시도할 때마다 정면으로 맞서 저항했다. 일제는 1940년 8월 10일 동아일보를 강제 폐간할 때까지 20년 동안 무기정간 4회, 판매금지 63회, 압수 489회, 기사 삭제 2434회 등 혹독한 탄압을 가했다. 일제강점기 동아일보가 이민족 지배하의 엄혹한 여건에서 ‘민족주의 민주주의 문화주의’라는 사시를 실천한 노력을 인정하지 않고 당시의 지면과 논조를 일방적으로 왜곡 비판하는 일부의 시각은 편협하다. 동아일보가 일제하에서 폐간될 때까지 일관되게 추구한 것은 민중계몽과 민족의식 고취였다.}
김하늘 인천지법 부장판사가 법원의 내부 게시판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사법 주권을 침해한다’며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조항 등이 타당한지 연구할 사법부 내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하라’는 글을 올렸다. 법관 170여 명이 김 판사에게 동조했다. 이에 앞서 자신의 페이스북에 ‘뼛속까지 친미인 대통령이… 나라살림을 팔아먹은’ 등 정치적 발언을 올렸던 진보 성향 우리법연구회 소속의 최은태 인천지법 부장판사와 이정렬 창원지법 부장판사는 어제 라디오에까지 나와 한미 FTA를 비판했다. 법관의 본분을 잊고 국회를 경시하는 태도다. 입법권과 조약비준권은 국회에 있다. 조약은 법률과 동일한 효력을 지닌다. 판사의 임무는 국회가 제정한 법률을 해석해 판결에 적용하는 일이다. 법관이 법률이나 조약의 내용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월권(越權)이다. 재판권을 우리 법원에 주느냐 마느냐도 국회가 결정할 문제다. 조약은 두 나라 사이의 문제다. 한미 FTA로 분쟁이 일어날 경우 우리 법원 또는 미국 법원이 관할하면 공정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제3의 국제중재기관에 맡긴다. 어느 나라에서도 ISD 조항이 사법 주권을 침해한다고 법관들이 반발한 적이 없다. 설혹 ISD 조항과 관련한 위헌 문제가 제기되어도 이를 판단할 권한은 헌법재판소에 있다. 조약은 법률과 달리 국회가 수정권을 갖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조약 체결을 주도한 주체는 국민이 직접 선출한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이다. 입법부 의원과 행정부 수반은 국민에 의해 선출되는 데 비해 법관은 선출되지 않고 임명된다. 임명직 법관이 국민이 선출한 국회와 대통령의 결정을 존중하지 않은 것은 오만한 태도다. 전국 법원장들은 어제 회의를 열고 일부 판사의 FTA 관련 의견 표명에 우려를 표시했다. 앞서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가 분별력 있는 신중한 발언을 요구했고 양승태 대법원장도 몇 차례에 걸쳐 자제를 당부했으나 일부 판사는 페이스북이나 내부 게시판을 넘어 라디오에까지 출연해 기존 주장을 반복하는 등 도발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법부가 어쩌다가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탄식이 나올 지경이다. 우리법연구회가 한미 FTA 공격에 분위기를 잡으면 법관의 본분을 잊은 판사들이 동조하고 있다. 이제 한가하게 우려 표명이나 하고 있을 단계는 지났다. 단호한 대처로 사법부를 정상화하는 것이 양 대법원장에게 맡겨진 시대적 소명이다.}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는 어제 판사들이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사용할 때 분별력 있고 신중한 자세를 견지할 것을 권고했다. 윤리위는 최근 법원 내 사조직인 우리법연구회 소속 등 일부 판사들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비판하는 글을 잇달아 올려 논란이 확산되자 이같이 권고하고 판사의 SNS 사용 기준을 마련하기로 했다. 판사도 한미 FTA에 대해 찬반 의견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개인 의견을 외부로 표현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판사는 공무원의 일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킬 의무를 지닌다. 법관이라는 자리는 이해가 엇갈리는 당사자들 사이에서 객관적 결정을 내려야 하는 직업이다. 정치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찬반 논란이 있는 사안에 대해 노골적으로 한쪽 편에 선 판사가 중립적인 재판을 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법관이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놓이거나 향후 공정한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를 일으키지 않도록 신중하게 처신해야 한다는 윤리위의 권고에는 이런 뜻이 담겨있다. 판사에게도 사적(私的) 자유가 있다. 판사도 가족 혹은 친구들과 만나 정치적 견해를 주고받을 수 있다. 그러나 SNS는 친밀한 사람들끼리 소통의 수단으로 출발하지만 원하는 사람 누구나 접속해 그 의견을 볼 수 있어 불특정 다수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SNS는 사적 영역으로만 볼 수 없는 측면이 있으므로 SNS 내에서 공무원의 사적 자유는 제한될 수 있다. 판사가 이런 구속이 싫으면 법복을 벗으면 그만이다. 독일은 직업 공무원의 SNS 사용을 근무 훈령을 통해 금지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일부 주는 법관의 SNS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존 로버츠 미국 연방대법원장은 올해 6월 연방 법관이나 재판연구관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사용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한국은 SNS에서 첨단을 달리는 나라 중 하나다. 윤리위는 첨단 기술 국가다운 선례를 만든다는 자세로 법관의 SNS 사용 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다. 최은배 인천지법 부장판사가 사용한 ‘뼛속까지 친미(親美)인 대통령’ ‘나라 살림을 팔아먹은’ 등의 표현은 정치적 발언 여부를 떠나 법관의 품위에 어울리지 않는다. 법관은 어떤 형식으로든 자신의 의견을 드러낼 때 품위를 유지해야 한다. 사법부는 법관들이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고 품위를 되찾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경찰이 국무총리실의 검찰 경찰 수사권과 관련한 대통령령 입법예고안에 반발해 수사직 해제원을 제출하는 집단행동을 하고 있다. 검경수사권의 범위를 법무부령으로 정하던 것을 올 6월 형사소송법을 개정해 검찰만이 아니라 경찰 의견도 반영해야 한다는 뜻에서 대통령령으로 바꾸었다. 이에 따라 검찰과 경찰은 회의를 거듭하며 합의를 시도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총리실이 강제조정안을 마련했다. 총리실 입법예고안에 따르면 검찰은 경찰의 독자적 내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관여할 수 없지만 사후 통제 권한을 갖는다. 종전에는 경찰이 자체 내사 종결한 사건은 검찰에 보고할 의무가 없었지만 앞으로는 분기별로 보고해야 한다. 경찰은 내사 사건에 검찰이 관여할 근거를 준 것이라고 불만이다. 항의 표시로 수사직에서 보직을 변경해달라고 요청한 경찰이 1만5000명을 넘었다. 전체 수사 경찰 3명 중 2명에 해당한다. 다음 달 인사철까지 이런 움직임이 계속 이어진다면 치안공백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국민은 끝을 모르는 검경의 신경전에 지쳤다. 6월 검경수사권 관련 시행령을 법무부령이 아니라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한 형소법 개정안에 반발해 김준규 당시 검찰총장이 사퇴해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 이번에 경찰이 못 받겠다고 버티는 검찰의 내사 사후 통제도 알고 보면 검찰이 그동안 매달 경찰 유치장을 돌며 기록을 보면서 관리하던 것을 분기별로 보고받는 것으로 종전과 실질적으로 큰 차이가 난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검사나 검찰 관계자의 비리를 경찰이 장기간 내사할 경우 분기별로 보고하도록 한다면 그 수사가 공정하게 이뤄지겠냐는 의심도 든다. 검찰이 스스로에게 엄격하지 못해 이런 의심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 검사의 수사지휘권이란 원칙을 인정하지만 검찰 비리에 관해서는 경찰이 독립적으로 내사를 진행할 수 있는 길이 보장돼야 한다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입법예고는 법령안의 내용을 입법에 앞서 예고함으로써 입법에 참여할 기회를 주는 제도다. 이해관계인은 20일 내에 예고된 법령안에 대해 서면으로 의견을 제출할 수 있다. 중요한 사항에 대한 의견 제출이 있을 때는 그 처리 결과를 국무회의 상정 때 첨부해야 한다. 일선 경찰이 불만을 갖고 있다면 이런 경로를 밟아 의견을 밝히는 것이 바른 순서다.}
인천지법의 최모 부장판사는 국회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통과시킨 직후 페이스북에 “뼛속까지 친미(親美)인 대통령과 통상관료들이 서민과 나라 살림을 팔아먹은 2011년 11월 22일, 난 이날을 잊지 않겠다”는 글을 올렸다가 물의를 빚자 삭제했다. 그는 한미 FTA에 들어 있는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가 우리나라의 사법주권을 침해한다고 문제 삼았다. ‘서민과 나라 살림을 팔아먹었다’는 표현은 민주당 정동영 최고위원의 을사늑약 발언을 연상시킨다. 최 부장판사의 과격한 글은 법관의 정치적 중립의무 위반에 해당한다고 볼 만한 여지가 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e메일과는 달리 원하면 누구나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사적인 공간이라고 하기 어렵다. 술집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웅성거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독일과 같은 나라들은 공직자에게 SNS 사용 자체를 금하고 있다. 최 부장판사가 태어나던 때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몇백 달러에 불과했으나 지금 2만 달러 이상으로 커졌다. 자유로운 국제무역과 튼튼한 국가안보에 힘입은 바 크다. FTA처럼 국회 비준을 받는 조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지닌 것으로 체결 당사국이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진다. 최 부장판사의 견해대로라면 조약을 맺는 모든 나라가 조약에 구속돼 주권을 침해당한다는 이상한 결론에 도달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FTA를 맺은 칠레와 유럽연합(EU)에도 사법주권을 침해당했다는 말인가. 한-칠레, 한-EU FTA 때는 조용하다가 한미 FTA만 문제 삼는 것은 편향된 반미(反美) 의식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최 부장판사는 이른바 진보성향의 ‘우리법연구회’ 회장이다. 그의 글에 동료 판사들을 비롯한 13명이 ‘좋아요’라고 공감을 표시했다. 이 중에는 우리법연구회 회원으로 2004년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무죄판결을 내렸던 법관도 들어 있다. 사법부 내에 판사들의 이념서클이 존재하다 보면 판사와 판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부를 수 있다. 우리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의 튀는 판결과 편향된 글을 언제까지 두고 보아야 하는가. 이용훈 전 대법원장은 2005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법원에 우리법연구회 같은 단체가 있어선 안 된다”고 답변해 놓고는 정작 취임 뒤에는 “해체시킬 법적 근거가 없다”며 묵인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소명의식을 갖고 우리법연구회 해체에 나서야 한다.}
중국에서는 포르노를 춘궁도(春宮圖) 혹은 춘궁화(春宮畵)라고 부른다. 춘궁은 태자가 거처하던 곳이다. 춘궁도는 황실에서 태자에게 성을 가르치기 위해 제작됐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춘화라고 부른다. 춘궁도나 춘화는 성행위나 성기를 묘사한 그림이다. 성행위와 상관없이 알몸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그림은 동북아시아의 전통 회화에 없다. 누드는 서양에서 온 것이다. 미술사학자 케네스 클라크는 “오페라가 17세기 이탈리아에서 창안된 예술 형식이듯 누드는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인이 창안한 예술 형식”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에 유학하고 온 일본 근대회화의 아버지 구로다 세이키(黑田淸輝)는 1895년 벌거벗은 여자가 거울을 마주하고 머리를 손질하는 모습을 그린 ‘아침 화장’이란 작품을 출품했다. 이 그림은 공공장소에 전시된 일본 최초의 누드화였다. 당시 일본인들은 우키요에(浮世繪)에서 춘화를 많이 봤음에도 불구하고 이 누드화를 둘러싸고 격렬한 논란을 벌였다. 춘화는 비밀리에 숨어서 보던 것인데 누드화라는 이름으로 공개적으로 전시되니 당혹했던 것이다. ▷스타급의 중국 반체제 예술가 아이웨이웨이가 음란 사진 유포 혐의로 중국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아이웨이웨이 자신과 여성 4명이 나체로 의자에 앉거나 서 있는 모습을 찍은 ‘일호팔내도(一虎八내圖·한 마리 호랑이와 여덟개 젖꼭지)’ 사진이 문제가 됐다. 70명의 중국 누리꾼은 ‘정부는 들어라. 누드가 색정(色情)은 아니다’라는 제목을 달아 자신들의 누드사진을 잇따라 올리며 중국 당국에 항의했다. 한 홍콩인은 “아이 씨의 누드사진에서 어떤 음란성도 느낄 수 없다”고 아이웨이웨이를 옹호했다. ▷19세기 중반 에두아르 마네가 그린 ‘올랭피아’와 ‘풀밭위의 점심’은 프랑스 파리 예술계에 일대 소동을 몰고 왔다. 지금 보면 왜 그런 소동이 있었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인간의 인식은 많이 변했다. 여성의 성기를 적나라하게 그린 구스타브 쿠르베의 ‘세상의 근원’은 1866년에 이미 그런 그림이 그려졌다는 사실보다도 1995년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당당하게 내 걸려 일반 관객이 볼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누드와 포르노의 경계는 계속 변한다. 오늘날 더 빨리 변하고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트위터(twitter)는 영어로 재잘거린다는 뜻이다. 트위터에 들어가면 하늘색 바탕에 한 마리 새가 보인다. 새가 지저귀듯이 재잘거리는 곳이 트위터다. 채팅(chatting)의 채트도 생각나는 대로 수다를 떤다는 뜻이다. 재잘거리는 진보는 넘쳐나는데 재잘거리는 보수는 별로 없다. 재잘거려라. 보수. 세상이 변했다. 근엄한 말만 하고 있다가는 망할지 모른다.생각보다 직감이 중요한 전자매체 마셜 매클루언은 ‘미디어(매체)는 메시지다’라고 말했다. 그는 매체를 구전(口傳), 글과 인쇄매체, 전자매체로 구별한다. 입에서 입으로 소식을 전하던 시대에는 메시지는 기억하기 쉬운 운문에 적합해야 한다. 운문은 시인의 것이고, 시인은 운문으로 그 사회의 기억을 전해주는 사람이었다. 글이 발명되고 메시지는 산문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운문은 기억을 위한 것이지만 산문은 성찰을 위한 것이다. 메시지는 체계적으로 정리되고 전달됐다. 전자매체의 등장으로 다시 상황은 변했다. 메시지는 즉각 전송되고 즉각 응답을 원한다. 인쇄매체에서는 성찰이 먼저이고 반응은 나중이지만 전자매체에서는 반응이 먼저고 성찰은 나중이다. 생각보다 직감이 중요해졌다. 구전 시대에서 문자 시대로 넘어갈 때 반발이 있었다. 플라톤은 당시의 뉴미디어인 문자가 살아있는 정신의 직접적 교류에 방해가 된다고 봤다. 소크라테스는 말로 진리를 깨우치게 했을 뿐 스스로는 어떤 글도 남기지 않았다. 인터넷 시대에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생각을 정리한 후에 글을 쓰는 데 익숙한 작가에게 말부터 하고 본다는 것이 도무지 쉽지 않다. 인쇄매체를 호령하던 1급 작가가 전자매체에 대한 부적응을 겪고 있는 사이에 변화에 재빨리 적응한 이외수 같은 작가가 트위터의 스타로 부상했다.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가 뜬 것은 참을 수 없이 가볍게 재잘거리기 때문이다. 거짓도 진실인 것처럼. 아니 거짓이든 진실이든 뭔 상관이냐는 태도로, 쫄지 않고. BBK 사건의 에리카 김이 ‘눈 찢어진 사람’과 불륜 관계였다고 말할 때도 쫄지 않고. 어차피 ‘꼼수’인데. 미국소 먹으면 광우병 걸리고 천안함은 스스로 좌초하거나 미군이 쏜 어뢰에 맞은 거다. 사실이든 아니든 뭘 어차피 ‘꼼수’인데. 재잘거리기 위해서는 정신 자세를 바꿔야 한다. 근엄함, 혹은 그 반대의 한 쌍인 열등감 같은 것은 집어던져라. 김어준이 잘 재잘거리는 것은 스스로 삐끼요, 딴지요, 꼼수로 자리매김하기 때문이다. 그는 조국의 ‘진보집권플랜’에 흐르는 ‘진보적 엘리트 특유의,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공기처럼 흐르는, 우아하고 거룩한 오만이 재수 없을 수 있겠다’ 싶어 ‘닥치고 정치’를 냈다고 말했다. 생각해보고 나서 정리해서 말하겠다는 것이야말로 인쇄시대적 사고다. 재잘거리기 위해서는 말이 앞뒤가 맞는지 따지는 것을 일단 접어둬라. 먼저 반응을 띄우고 느낌을 말하고 그러고 나서 따져보는 것이 순서다. 또 재잘거리기 위해서는 꼼수라도, 꼰대라도 말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진보는 꼼수라고 자처하는데 보수에는 꼰대로 보이지 않으려고 기를 쓰는 사람들만 있어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말하고 나서 생각한다 인쇄매체 시대의 논객들이 주춤하는 사이 재빨리 새로운 전자매체 시대에 적응한 논객들이 공론장을 잠식해가고 있다.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은 중심을 지향하고 비록 시청취자 편지나 독자 투고 같은 피드백이 있기는 하지만 중심으로부터 모든 메시지를 발사한다. 여기서는 글쓰기 말하기 하나하나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시대의 논객은 네트워크로 생산되고 분배되는 정보에 익숙하다. 스스로를 유일한 발신자로 생각하지 않고 여러 혹은 많은 발신자 중의 하나로 여긴다. 그렇다고 진실한 발신의 의무가 약화되는 것은 아니지만 당위로서나 그렇고 사실은 그렇지 않다. 재잘거릴 수 있는 것은 이런 구조 속에서다. 좋든 나쁘든 시대가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내년 선거철을 앞두고 정치서적 출간 붐이 일고 있다. 교보문고에는 ‘닥치고 정치’(김어준) ‘나는 꼼수다 뒷담화’(김용민) ‘조국 현상을 말하다’(김용민) ‘운명’(문재인) ‘진보집권 플랜’(조국 오연호) 등이 정치사회 베스트셀러 코너의 상위권을 차지했다. 모두 야권 진영의 책으로 등장인물이 비슷하다. ‘나는 꼼수다’로 뜬 김어준은 ‘닥치고 정치’에서 문재인을 치켜세우고 그 문재인은 ‘운명’을 썼다. 김용민 역시 ‘나꼼수’의 일원으로 뒷담화를 늘어놓고 조국 현상을 얘기한다. 조국 현상은 ‘진보집권 플랜’에서 시작됐다. ▷보수우파 진영에서 내놓은 책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의 ‘보수, 비탈에 서다’, 나성린 의원과 최홍재 시대정신 이사의 ‘대한민국을 부탁해’는 출간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진열대에서 찾을 수 없다. 전원책 변호사의 ‘자유의 적들’만이 간신히 눈에 띈다. 신(新)매체인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이어 구(舊)매체인 출판까지 이른바 진보좌파가 주도권을 쥐었다. 인터뷰 형식을 빌리거나 구어체로 쉽게 쓰는 전략이 독자들에게 먹혀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프랑스도 선거철이 되면 출판계가 북적거린다. 6개월 앞으로 다가온 내년 대선을 앞두고 사회당 후보가 된 프랑수아 올랑드는 ‘생존자’와 ‘프랑스의 꿈’을 펴냈다. 2007년 대선에서 당내 라이벌 니콜라 사르코지 현 대통령에게 진 도미니크 드빌팽 전 총리는 ‘우리들의 오래된 나라’라는 책으로 우파 독자를 유혹하며 독자 출마를 모색하고 있다. 공산당 등 군소정당의 대선 후보들도 책으로 출사표를 냈다. ▷한국의 유력한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들이 글로는 조용하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자서전 비슷한 책을 낸 적이 있지만 차기 대선을 앞두고 유권자들이 궁금해하는 중요 이슈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언론 인터뷰에서도 감질나는 ‘단답(短答)’이 대부분이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곧 정치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듯한 행보를 이어가는데도 정작 본인의 정치비전을 알 수 있는 책이 하나도 없고 인터뷰도 안 한다. 두 사람이야말로 신비주의를 벗고 출판 정치에 좀 나와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폴리시크(polichic)는 ‘정치적으로 매력적인(politically chic)’을 줄인 말이다. ‘88만 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 씨는 요새 젊은이들은 ‘간지’가 나지 않으면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간지(感じ)는 ‘느낌’을 뜻하는 일본말로 간지가 난다고 하면 영어의 시크처럼 멋있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법륜 스님이 그제 한나라당 초선 모임에서 ‘안철수 현상’을 설명하면서 “요새 젊은이들은 이념적 성향이 없다”고 말했다. 이념 과잉의 386세대와 달리 2030세대엔 매력이 먼저고 그 뒤를 이념이 따라가는 모양이다. ▷조국 서울대 교수는 형법학자로서는 별로지만 폴리시크하다. 인터넷방송 ‘나는 꼼수다’의 김어준 씨는 조 교수에 대해 “키도 크고 잘생기고 목소리도 좋고 학벌도 좋고 생각도 올바르고 내용도 있고 품위도 있고, 이만한 자산을 패키지로 가진 진보인사가 없었다”고 표현했다. 물론 외모가 전부는 아니다. 진보 쪽의 여배우 김여진 씨는 미모가 출중한 것도, 연기가 뛰어난 것도 아니지만 폴리시크하다.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사회 참여에도 진정성이 느껴진다. ▷폴리시크한 것으로 요새 가장 뜬 사람은 김어준 씨다. 조 교수에게는 사르트르, 김여진 씨에게는 수전 서랜던의 흉내 같은 게 엿보이지만 김 씨는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내고 있다. 가령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미술관에서 봤다는 피카소의 ‘게르니카’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다가 그 그림은 레이나소피아미술관에 있다는 지적이 나와도 창피해하기는커녕 오히려 지적한 사람에게 부수적인 걸 따지는 지식인 근성이라고 면박을 준다. 그는 조 교수의 한계를 모범생적인, 지식인적인 스타일이라고 비판한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불분명하지만 거침이 없어 반응이 뜨겁다. ▷한나라당 원희룡 남경필 의원 등은 ‘쇄신’을 표방한 소장파임에도 폴리시크하지 못하다. 홍준표 대표가 젊은이들과 소통하겠다며 만든 자리에서 한 발언을 문제 삼아 비판하는 데나 열심일 뿐 그들 스스로는 홍 대표만큼도 매력을 보여주지 못한다. 보수 쪽에서 박세일 서울대 교수는 지적으로 뛰어나지만 젊은이들에게 호소력은 별로다. 그럼 젊은 보수논객 변희재 씨는 폴리시크한가. 미국에서는 러시 림보 같은 보수파 라디오 진행자의 인기가 높다. 정치판이 재밌어지려면 보수 쪽에서도 폴리시크한 사람들이 나와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조선왕조실록에 동성애 관계의 궁녀들끼리 애정의 표시로 붕(朋)이라는 문자를 몰래 몸에 새겼다는 기록이 나오지만 한국사회에서 문신이 성행한 적은 없다. 3세기 중국 삼국지 위지동이전에는 일본에 대해 ‘남자개경면문신(男子皆경面文身)’이라는 기술이 나온다. ‘남자는 모두 얼굴 문신(경面文身)을 한다’는 의미다. 한국은 중국에서 온 문신이란 말을 그대로 사용하지만 일본에서는 이레즈미(刺靑)라고 해서 그들의 고유한 한자어를 쓴다. ‘이레즈미’란 제목을 가진 유명 소설과 영화도 있다. ▷한국에서 문신은 최근까지도 조직폭력배나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형성되기 시작한 조폭들이 일본 야쿠자의 영향을 받아 문신을 하기 시작했다. 중국 수호지를 보면 양산박에 문신을 한 호걸들이 있다. 그들의 의리에 감명받은 일본 야쿠자가 문신을 새기기 시작했다는 얘기가 있다. 오늘날 문신은 한국 조폭, 일본 야쿠자, 중국계 방(幇) 등 동아시아권 폭력조직에 공통된 현상이다. 가문의 문장처럼 폭력배들은 문신을 새김으로써 조직에 소속감을 드러낸다. 문신을 새길 때의 고통을 참고, 지워지지 않는 각인을 몸에 지님으로써 각오를 표시하는 것이다. ▷문신에는 보는 것만으로도 쭈뼛하게 만드는 기능이 있다. 고대 사회의 전사들은 적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무서운 얼굴 문신을 했다. 오늘날 조폭이 하는 문신에도 무서운 용이나 호랑이 그림이 압도적으로 많다. 상반신이나 전신에 걸쳐 사인펜으로 그린 것처럼 선명하고, 진하다 못해 검푸른빛이 감도는 문신은 보는 사람이 위화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문신을 하는 것은 자유지만 다른 사람의 기분도 배려해야 한다. 목욕탕에서 문신한 남자를 만나면 갑자기 분위기가 싸늘해지고 목욕할 마음이 사라진다. ▷울산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용 문신을 하고 공중목욕탕을 드나든 조폭 2명에게 경범죄처벌법을 적용해 범칙금 5만 원을 통보했다. 최근 조현오 경찰청장이 조폭 단속을 강화하라는 지시를 내린 이후 나온 조치다. 일본의 공중목욕탕이나 헬스클럽에는 ‘문신한 사람 입장 금지’ 팻말을 내건 곳이 많다. 문신한 사람이 그런 곳에 들어가면 형법상 주거침입죄로 처벌되고 주인의 퇴장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퇴거불응죄로 처벌된다. 조폭이 어둠의 세계의 징표를 함부로 내놓고 다니지 못하도록 엄격한 규제가 필요하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서울시장 선거운동 때 박원순 시장이 서울 안국동 선거캠프 앞에서 멘토단과 함께 찍은 사진이 일간지에 일제히 실렸다. 박 시장의 양옆에는 소설가 공지영 씨와 여배우 김여진 씨가 팔짱을 끼고 섰고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박재동 화백의 모습이 보였다. 박 시장은 앞서 조국 서울대 교수와 함께 남산 둘레길을 걷는 모습이 사진에 찍히기도 했다. 트위터에서 그를 지지한 문화예술인을 보면 소설가 이외수, 가수 이효리, 개그맨 김제동 씨 등 각 분야의 다양한 인기인이 망라돼 있다. 물론 박 시장의 알파와 오메가였던 안철수 서울대 교수를 빼놓을 수 없다. 문화적 좌파에 밀리는 우파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 옆에는 어떤 문화예술인이, 어떤 멘토로 불릴 만한 사람들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나 후보 곁에서 봤던 유명인은 박근혜 홍준표 등 정치인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이런 것도 따지고 보면 박 시장과 나 후보의 승패를 가른 원인이다. 스타란 그가 하는 것을 따라하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다. 공지영 씨의 소설 ‘도가니’를 감동적으로 읽거나 김제동의 예능을 좋아하고 이효리의 댄스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들의 정치적 선택을 따라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게다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생기기 전과는 달리 지금은 그 스타들이 신문 방송 등 매체를 통하지 않고 직접 트위터에서 의사를 표현할 수 있게 됐다. 스타의 선택을 직접 들을 수 있게 되면서 이들의 영향력은 더 커졌다. 물론 반드시 SNS를 통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안 교수는 SNS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가 박 후보를 지지한다는 것이 신문과 방송을 통해 전달되는 것만으로 선거 판세를 들었다 놓았다 했다. 한나라당도 스타 문화예술인을 영입해 SNS에서의 역량을 강화한다고 한다. SNS라는 것이 자발성을 기반으로 하는데 영입은 개념이 없는 말이다. 다음 달 5일부터는 앵커우먼 출신의 김은혜 전 청와대 대변인과 개그우먼 조혜련 씨가 안 교수와 시골의사 박경철 씨의 ‘청춘콘서트’와 유사한 ‘드림토크’를 시작한다고 한다. 이것도 흉내내는 것 같아서 자연스럽지는 못하다. 사실 대체로 어느 나라에서나 문화적 우파가 문화적 좌파의 영향력을 따라가지 못한다. 프랑스에서는 과거 좌파 지식인 사르트르가 우상으로 추앙받은 반면 우파 지식인 레몽 아롱은 홀대를 받았다. 사르트르는 스탈린 체제를 찬양했고 아롱은 비판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공산주의가 붕괴될 때까지도 아롱과 함께 옳기 보다는 사르트르와 함께 실수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사실 문화계 자체가 정치나 경제와 같은 분야에 비해 좌측에 서 있어서 그런지 모른다.문화적 주도권 싸움은 장기전 우리라고 다르지 않다.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8·24 주민투표를 거쳐 최근 10·26 재·보궐선거까지 관통한 전면적 무상급식이라는 이슈만 보더라도 단계적 무상급식 쪽의 논리가 훨씬 정치하고 책임감이 있었지만 “아이들 밥먹이는 문제인데 인색하다”는 주장에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세 번이나 밀리고 말았다. 정치라는 게 문화적 주도권만으로 이기고 지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일방적으로 밀려서는 안되는 게 그 주도권 싸움이다. 그건 임기응변적으로 스타 문화예술인에게 눈독을 들이는 것만으로 해답이 안 나온다. 어떤 문화예술인을 스타로 만드는 것은 따지고보면 독자요 시청자다. 특히 젊은 독자요 시청자다. 그런 독자와 시청자를 사로잡을 수 있을 때 SNS에서 어느 스타 문화예술인이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신호를 보내올 것이다. 한나라당은 자기 조직에 눈을 돌려볼 필요가 있다. 한나라당이 진정한 대학생 하부조직이나 갖고 있는지 의문이다. 유럽의 정당들은 휴가철에는 청소년 정치캠프를 운영하며 젊은 세대들에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람시의 말처럼 문화적 주도권 싸움은 더디지만 길게 보고 가야 하는 장기전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전 세계 동시’ 시대다. 영화에서 전 세계 동시 개봉이 일반화한 가운데 출판에서도 전 세계 동시 출간이 늘고 있다. 어제 시사주간 ‘타임’의 전 편집장 월터 아이작슨이 쓴 스티브 잡스의 공인 전기 ‘스티브 잡스’가 전 세계 20여 개국에서 동시에 출간됐다.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등 서유럽과 북유럽권 언어를 비롯해 한국 일본 중국 등 아시아권 언어 외에 카탈루냐어로도 번역됐다. 외국에서 막 나온 책을 번역서로 시차 없이 읽는 것은 우리에게는 흔치 않은 경험이다. ▷조앤 롤링의 ‘해리 포터’ 시리즈는 6권 ‘혼혈 왕자’와 7권(최종권) ‘죽음의 성물’이 영어권 국가(영국 미국 캐나다 호주) 외에 영어 사용 가능 국가에서도 동시 출간됐지만 한국의 경우 이를 번역한 책은 몇 개월 간격을 두고 나왔다. 이번 ‘스티브 잡스’의 동시 번역 출간은 미국 현지 출판사가 전략적으로 전 세계 동시 출간 기준을 제시하고 마무리되는 원고부터 미리미리 각국 출판사에 넘겨 번역할 시간을 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내년 4월에는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시장과 정의’(가제)가 미국과 한국에서 원서와 번역서로 동시 출간될 예정이다. 이에 앞서 지난해 지하 갱도에 갇혔다가 69일 만에 구조된 칠레 광원 33인의 얘기를 담은 책 ‘The 33’은 올 2월 한국을 비롯한 4개국에서 동시 출간됐다. 폭로 전문사이트 위키리크스를 다룬 책 ‘위키리크스’도 올 초 11개국에서 일제히 선보였다. 그러나 이번처럼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모은 책이 출간과 동시에 번역돼 나온 것은 처음이다. ▷전 세계 동시 시대를 처음 연 것은 영화다. 영화 제작의 디지털화로 전 세계 동시 개봉이 가능해졌다. 1995년 전적으로 컴퓨터그래픽 기술만을 사용해 만들어진 영화는 ‘토이 스토리’다. 위성을 통해 디지털 신호를 전송한 최초의 국제 동시 개봉 영화는 2000년 영국 런던, 벨기에 브뤼셀, 프랑스 파리, 일본 도쿄에서 상영된 ‘토이 스토리 2’였다. 바로 이 토이 스토리를 만든 사람이 잡스다. 내년에 나올 ‘아이패드 3’는 처음으로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출시될 것이라고 한다. 잡스에게 디지털은 동시성의 다른 표현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법원이 내년 총선의 낙선운동 대상자로 한나라당 국회의원 19명의 명단을 트위터에 올린 회사원에게 벌금 100만 원을 선고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선거에 미치는 파급력은 과거 유권자를 버스로 동원하던 것보다 훨씬 강하다. 따라서 불법 선거운동에 이용될 소지도 크다. 선거법 위반은 민주주의 파괴행위이므로 온·오프라인 구분 없이 엄격히 다스려야 한다. 선거관리위원회와 검찰이 10·26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SNS를 통한 불법 선거운동을 적극 단속하기로 했다. 그러나 먼저 가이드라인을 충분히 알릴 필요가 있다. 선관위는 지난해 6·2지방선거에서 많은 팔로어를 거느린 유명 인사들이 투표 당일 인증샷을 요구해 선거에 영향을 미쳤는데도 방치했다. 인증샷은 투표소 입구나 근처에서 찍으면 괜찮지만 기표한 투표지를 촬영해 누구를 지지했는지 알 수 있게 하면 선거법 위반이다. 인증샷을 올린 유권자에게 경품을 제공하는 것은 매수 행위가 될 수 있다. SNS는 본래 친밀한 사이의 의사소통 수단으로 출발했다. SNS에서 친구에게 얘기하듯 별 생각 없이 어느 후보자를 비난한 것이 불특정 다수에게 전달돼 부지불식간에 흑색선전이나 인신비방이 될 수도 있다. 외국도 SNS를 이용한 선거법 위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로데리크 에겔러 독일 연방선관위원장은 2009년 “출구조사 결과가 투표 완료 전에 트위터를 통해 유출된다면 선거의 법적 효력을 묻는 소송까지 가는 재앙이 초래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 선거에선 방송사와 여론조사기관이 시간대별로 출구조사를 해 투표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수치를 파악한다. 이런 투표 추세가 트위터 등을 통해 유출되면 선거 결과도 좌우할 수 있다. 물론 국민이 SNS를 통해 정치적 의견을 활발하게 교환하는 것은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선관위와 검찰은 SNS가 열어놓은 자유로운 의사소통의 기회를 축소하지 않는 범위에서 SNS 공간의 선거법 위반을 면밀히 감시해야 한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2007년 시비 끝에 아들을 때린 북창동 술집 종업원들을 심야에 인적이 드문 청계산으로 끌고 갔다. 조직폭력배를 대동한 그는 아들을 때렸다고 나선 조모 씨를 쇠파이프로 한 차례 때린 뒤 발로 마구 폭행했다. 나머지 종업원도 말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맞았다. 김 회장의 아들이 “조 씨가 나를 때린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하자 그들은 다시 북창동으로 향했다. 술집에 들어간 김 회장은 술집 사장의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 폭행 당사자 윤모 씨가 불려왔고 김 회장이 윤 씨를 때리려 하자 아들이 말리더니 대신 자기가 맞은 만큼 때렸다. ▷SK그룹 가문의 최철원 전 M&M 대표는 지난해 회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던 유모 씨를 사무실로 불렀다. 임원 중 한 사람이 그의 무릎을 꿇리자 최 전 대표가 들어왔다. 최 전 대표는 “엎드려라, 한 대에 100만 원이다”라며 야구 방망이로 유 씨를 내리쳤다. 유 씨가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임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구타는 계속됐다. 10대를 맞은 유 씨가 안 맞으려고 몸부림을 치자 그는 지금부터 한 대에 300만 원이라며 3대를 더 때렸다. 이어 그는 유 씨를 일으켜 세워 뺨을 때리고 두루마리 휴지를 입안에 물리고 얼굴을 가격했다. ▷섬유유연제 생산업체 피죤의 이은욱 전 사장은 지난달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다 조폭에게 폭행을 당했다. 이 전 사장은 올 2월 피죤 사장에 취임했으나 4개월 만에 피죤의 창업자인 이윤재 회장에 의해 해임돼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경찰 수사 결과 3억 원을 주고 광주 무등산파 조폭을 동원한 이 회장의 청부 폭행으로 밝혀졌다. ▷이 회장은 경찰의 출두 통보를 받은 직후 병원에 입원해 환자복을 입고 조사를 받더니 결국 구속되지 않았다. 법원은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에 대해 “범죄 혐의가 인정되나 이 회장이 피해자와 합의하고 증거 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다. 김승연 회장과 최철원 전 대표는 모두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법원이 회장님들의 ‘사적 보복 폭행’에 이렇게 관대하다면 ‘有錢無罪(유전무죄)’와 뭐가 다른가. 송 평 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한국에는 곳곳에 기묘한 일본 부재(不在) 현상이 남아 있다. 한국 최고 국립대인 서울대가 국내의 모든 학과를 망라한 최대 규모의 종합대이면서도 일본학과가 없었다는 것도 그런 현상 중 하나다. 뿌리 깊은 반일 감정에다 ‘일본은 어느 나라보다 우리가 잘 안다’ 혹은 ‘일본은 학문적으로 연구할 게 없는 나라’ 같은 근거 없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 서울대가 어제 1946년 개교 이후 ‘65년의 금기’를 깨고 아시아언어문명학부를 신설해 일본학 전공과정을 두기로 했다. ▷지일파인 지명관 전 한림대 석좌교수는 1973년 일본 유학을 떠났다. 그는 일본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가보니 알고 있던 일본과 달라서 놀랐다고 한다. 사실 한국이 일본을 잘 모른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한국의 많은 지식인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지만 일본을 배운다기보다는 일본을 통해 서구의 문화를 배우는 데 치중했다. 광복 이후 1970년대까지는 일본으로 많이 건너가지도 않았지만 간다고 해도 한국 관련 자료를 찾는 수준이었다. 1980년을 전후해서야 일본 자체를 공부하러 가기 시작했다. 한국에는 아직도 50년 전, 100년 전 일본 문서를 해독할 인력이 거의 없다. ▷서울대는 일본 최고 국립대인 도쿄(東京)대가 한국 관련 전공학과를 개설하지 않는 이상 일본학과를 만들지 않는다는 상호주의를 고수해왔다. 2001년 당시 서울대 이기준 총장과 도쿄대 하스미 시게히코(蓮實重彦) 총장이 각각 일본과 한국 전공학과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도쿄대는 교양학부와 인문사회계연구과 한국조선문화연구전공의 한국어 및 한국학 강사진을 크게 늘렸고 서울대는 일본연구소와 언어학과 내 일본어고급과정을 신설했다. ▷바야흐로 한국 중국 일본의 동북아 시대를 맞았다. 중국이 주요 2개국(G2)의 하나로 부상하면서 그동안 가깝고도 먼 관계를 유지해온 3국은 긴밀한 협력을 모색할 수밖에 없고 서로에 대해 더 잘 알아야 하는 단계에 왔다. 중국 최고 명문 베이징(北京)대가 2009년 한국어과를 독립학과로 승격시켰다. 이번에 서울대가 일본학 전공과정을 두기로 결정했다. 도쿄대의 한국어 및 한국학 강사진은 이미 15명 정도로 1개 학과 수준이다. 교과서 왜곡 문제, 영유권 분쟁 등 3국간에 현안이 있지만 따질 것은 따지고 진전시킬 것은 진전시키는 게 올바른 방향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