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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의 시대에는 내 마음을 자각하고, 타인과 만물과 공유하고, 연결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집니다. 불교의 선수행과 명상이 현대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를 치유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미국의 선(禪) 스승으로 꼽히는 노먼 피셔(71) ‘에브리데이 젠’ 공동체 설립자는 8일 오전 서울 조계사 앞 템플스테이정보센터에서 방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그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선 수행의 의미에 대한 질문에 “우리가 미래 기술에 대해 생각할 때 인간에 대한 성찰이 빠져 있다”며 “기술의 진보가 인간의 가치를 강화하는 긍정적인 방향에 부합한다면 잘 습득하고, 역행한다면 저항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진일보한 컴퓨터에서는 우리 의식의 모든 것을 내려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 몸이 다했을 때는 의식을 로봇에 이식하고, 또 다른 몸을 받아서 살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 삶이 가능하다면 죽음이란 것도 없고, 인간도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가 인간으로 남아 있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 돌아갈 길이 필요합니다. 그 길은 침묵과 사랑입니다.” 피셔는 1995∼2000년 미국 불교의 발원지로 꼽히는 샌프란시스코 선 센터의 주지를 지냈으며 2000년에는 ‘에브리데이 선’ 공동체를 설립해 선 수행을 지도하고 있다. 특히 그는 비즈니스, 법률, 테크놀로지, 호스피스 프로젝트 등 현대사회의 다양한 영역에 선불교를 적용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 왔다. “선을 수행할 때 내 안에 있는 삶의 에너지, 생명의 힘에 대한 자각 능력이 커집니다. 다른 사람, 만물과도 이해하고 공유하고 연결시키는 능력이 커집니다. 구글에서는 창의적인 발견은 늘 개인의 역량이 아니라 팀 활동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명상 프로그램을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피셔는 선 수행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 “청년 시절 히피 문화에 큰 영향을 받았다”며 “부모님 세대의 문화를 더 이상 따를 수 없고 우리 스스로가 뭔가 새로운 가치를 발견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선 수행에서 자연스럽게 답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는 “평생 선불교를 수행해 온 사람으로서 아시아 국가에 올 때마다 ‘내가 집에 왔구나’ 하는 느낌을 받는다”고 덧붙였다. 피셔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에 대한 질문에 “사람이 먼저”라고 대답했다. 그는 “인간만이 우선이 아니라, 다른 동물들도, 식물도, 공기와 물도, 산도 모두 퍼스트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를 둘러싼 한국 사회의 갈등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도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비슷한 일을 겪고 있고, 일각에서는 대통령 탄핵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사회적 혼란이 있을 때 사람들은 부정적 감정이 격화된다. 격렬한 감정이 서로에게 반응하고 확대 재생산된다. 이럴 때일수록 침묵 속에 분별심(Sanity)을 찾고 차분한 정신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피셔는 8∼21일 서울과 부산, 전남 해남에서 총 6차례 강연과 법회, 수행 등에 참석할 예정이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불교는 ‘뺄셈의 종교’입니다. 사찰 음식에서도 육류나 생선, 제철음식이 아닌 귀한 것, 자극적인 조미료 등을 뺍니다. 음식에서부터 욕심을 내려놓는 수행을 하는 것이죠.” ‘당신은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불광출판)를 펴낸 사찰음식 전문가 선재 스님과 일본의 사찰음식인 ‘쇼진(精進)요리’의 대가인 후지이 마리(藤井まり·70) 씨가 지난주 한일 사찰요리 비교 시연회를 가졌다. 선재 스님은 강연을 시작하며 2014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세계슬로푸드대회에서 한 일본인 참가자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히로시마에서 원폭이 터졌을 때 살아남은 사람은 전통적인 장을 먹었던 사람들이라고 들었다”며 “선재 스님께서 일본을 좀 도와달라”고 했던 말을 소개했다. “현대 일본에서 만들어지는 미소 된장은 유전자 조작 콩에 발효 과정 없이 만들어지는 것이라 천연 항암 효과가 없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지금 전통 장독대를 지키는 사람들이 한국의 스님들이라는 말을 듣고 도움을 요청한 것이지요.” 일본 가마쿠라에서 ‘쇼진요리’ 교실인 선미회(禪味會)를 이끌고 있는 후지이 씨는 남편인 고(故) 후지이 소테쓰 스님의 뒤를 이어 일본 사찰요리의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는 인물. 그는 “2000년대 초반 한국에 와서 선재 스님이 담근 한국 사찰의 수십 년 된 장맛을 본 이후로 사찰요리를 배우기 위해 한국을 자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선재 스님은 “한국의 사찰요리가 일본으로 본격적으로 건너가게 된 계기는 임진왜란”이라며 “서산대사, 사명대사가 이끌던 승병들의 활약을 보고 일본인들이 육식을 하지 않는 한국의 스님들이 어떻게 그런 기운과 지혜가 나는지 사찰에서 먹는 약초와 채소, 장을 배워 일본으로 가져갔다”고 말했다. 선재 스님은 “한국 사찰음식에 대한 연구는 일본에서 더 활발하다”며 “한국의 산초와 제피의 임상실험 결과 항암 효과가 탁월하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충북 제천의 산초, 경북 포항, 울산의 제피는 일본에서 전량 수입해 간다”고 말했다. “산초와 제피를 음식에 넣으면 살균 작용도 하고, 면역력도 키워주고, 중풍 예방에도 좋습니다. 그래서 추어탕에 넣어서 먹는 거죠.” 선재 스님은 사찰음식의 기본 원리를 불교 경전인 ‘유마경’에 나온 “일체 중생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라는 말에서 찾았다. “TV 드라마에서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는 말이 나온 적이 있죠? 자연 속 모든 생명과 내가 한 몸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스님들은 육식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채소도 함부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불가에서는 콩나물도 뿌리까지, 배추도 꽁지까지 함부로 버리지 않고 일물전체(一物全體)를 다 먹습니다. 제철음식이 아닐 경우 인공적인 방법이나 첨가물로 키울 수밖에 없기 때문에 청정한 생명이 아니라 피합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피레네 산맥과 알프스 산맥을 자전거를 타고 넘는 거친 숨소리. 지난달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는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사진)이었다. 희귀암으로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20대 청년 윤혁이 ‘투르 드 프랑스’ 3500km 풀코스를 완주한 실화를 찍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죽음을 앞둔 청년의 도전도 대단했지만, 더 눈길을 끈 것은 그 꿈을 돕기 위해 나선 사람들이었다. 함께 자전거를 달려준 휴학생, 자전거 수리점을 하는 선배, 두 달간 휴가를 낸 의사, 저예산 영화감독…. 영화는 아름다운 장면만 나오지 않는다. 좋은 뜻으로 생업까지 포기하고 도와주러 나섰던 팀 동료들끼리 싸우고 상처 입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엔딩 장면에서 윤혁은 병상에서 죽음을 앞두고 영화 편집본을 보며 눈물을 흘린다. “내겐 암세포가 꿈을 실현할 기회였다”며 도와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과연 평생 한 번이라도 다른 이의 간절한 꿈을 이루도록 도와줄 수 있을까? 영화가 끝난 후 떠오른 고민이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15세 소녀의 도움이 저를 어둠 속에서 구해줬습니다. 신(神)은 제게 밥의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우간다 출신의 리치먼드 완데라 목사(35)는 지난주 한국을 방문해 국제어린이양육기구 한국컴패션의 후원자들에게 특별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는 컴패션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성장해 자립한 것을 기념하는 ‘아주 특별한 졸업식’에 우간다, 페루, 필리핀에서 온 청년들과 함께 참여해 감동스러운 연설을 했다. 완데라 목사는 “우간다는 내전과 유혈 사태로 수많은 아이가 아버지를 잃는 바람에 전 국민의 70%가 30세 미만으로 평균 연령이 낮다”고 소개했다. 그도 8세 때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아버지가 살해당하는 비극을 겪어야 했다. 홀어머니와 6명의 형제와 함께 우간다의 나구루 빈민가에서 굶주림과 질병에 허덕이던 그에게 15세 소녀가 일대일 결연으로 보내준 후원은 한 줄기 빛이었다. 컴패션은 6·25전쟁 이후 쓰레기처럼 나뒹구는 전쟁고아들의 시신을 목격한 미국인 에버렛 스완슨 목사가 창립한 단체. 긴급구호가 아니라 후원자와 일대일로 결연해 아이가 성장할 때까지 장기적인 양육지원 프로그램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은 2003년 수혜국이 아닌 지원국으로 변신했다. 그는 “후원자 덕분에 컴패션 어린이센터에서 교육을 받고, 학용품도 지원받았고 미국 컴패션 리더십 프로그램을 통해 신학교육을 받아 목사가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우간다 수도 캄팔라 컴패션 어린이센터에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어린이들을 양육하고, 개발도상국 리더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과 설교 활동을 하고 있다. 완데라 목사는 “매년 전 세계에서 2만5000명의 어린이가 예방 가능한 원인들로 죽어가고 있다”며 “전쟁과 가난으로 고통 받는 어린이들을 대신해 한국 후원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2017년의 시작은 대혼란이다. 탄핵과 조기 대선 정국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가 없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한중일 간 외교 갈등에도 속수무책이다. 우리 시대의 대표적 지성으로 꼽히는 이어령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83)은 10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연구실에서 기자와 만나 “2016∼2017년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문명사적으로도 대전환기”라고 진단했다. 국경 없는 글로벌 사회로 나아가던 지구촌 문명에 갑자기 곳곳에서 높은 벽이 등장하는 퇴행 현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1990년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냈던 이 이사장은 2006년 ‘디지로그’를 통해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통합을 역설했고, 2008년 리먼 사태 당시에는 금융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생명자본주의’ 운동을 제안했다. 수년 전 건강 문제로 외부 활동을 끊은 채 ‘한국인 이야기’ 집필에 몰두해 왔던 그는 지난해 3월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 이후 은퇴를 번복했다. 그는 최근 인공지능(AI)이 불러올 미래 문명에 대한 연구와 강연 등 다시 활발한 활동에 나섰다. 그는 “4차 산업혁명은 1차, 2차, 3차처럼 순차적으로 오는 물결이나 파도가 아니다”라며 “순식간에 튀어나와 모든 것을 한꺼번에 쓸어버리는 쓰나미 같은 혁명”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문학과 첨단 기술을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과 통찰력으로 전 세계가 처한 위기와 한국이 나아갈 길에 대한 거침없는 발언을 2시간 넘게 쏟아냈다. 올해의 화두는 ‘벽을 넘어서’ ―현재 우리 앞에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올해의 키워드가 뭐라고 생각하시는가. “내가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전 세계에 보냈던 메시지인 ‘벽을 넘어서’가 올해 다시 화두다. 당시에는 동서 냉전과 남북 분단의 장벽을 비롯해 빈부, 세대, 남녀 간 젠더의 벽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이후 수십 년간 실제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유럽이 통합하고, 글로벌 시대가 열렸다. 그런데 갑자기 지난해부터 높고 두꺼운 벽들이 다시 출현했다. 영국의 브렉시트, 미국의 ‘트럼프 월(Wall)’이 대표적이다. 전 세계적으로 대륙과 해양 세력 간의 갈등이 재연되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아베 신조 등 포퓰리즘을 등에 업은 강력한 내셔널리즘이 대두하고 있고, 중국도 사드 배치를 이유로 한류에 대해 다시 만리장성을 쌓고 있다.” 이 이사장은 우리 사회 내부에도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광화문에 촛불과 태극기 시위로 둘로 나뉜 높은 장벽이 생기고 있다”며 “올해 보혁(保革) 간 ‘방휼지쟁(蚌鷸之爭)’의 벽을 어떻게 해소하느냐가 가장 큰 관건”이라고 말했다. ‘방휼지쟁’은 조개와 도요새가 다투다가 함께 어부에게 잡혔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 제3자만 이롭게 하는 싸움을 뜻한다. 그는 “우리에겐 함께 풀지 않으면 민족 생존이 불가능한 더 큰 분단의 벽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온 세상에 새로운 벽이 쌓여 가는 시대, 벽을 넘기 위한 방법은 뭔가. “만리장성과 로마 가도(街道)를 만드는 공법은 똑같다. 만리장성을 옆으로 눕히면 평탄한 로마 가도가 되고, 로마 가도도 세우면 높은 장벽이 된다. 절벽에 부딪힌 인류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것은 AI와 4차 산업혁명이다. 산업화가 육체의 확산이었다면, AI는 뇌의 확산이다. 지난해 알파고가 왜 한국에서 바둑을 두었을까. 바둑의 종주국인 중국과, 바둑을 전 세계에 전파한 일본을 제치고 말이다. 알파고가 보여 준 것은 바둑 대결이 아니다. 미래 문명에 대한 선언이었다. 대륙과 해양 세력의 문명이 교차해 온 한반도에서, 그것도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서 이 사건이 열린 것은 의미심장하다.” ―알파고가 인간 최고의 바둑 고수를 꺾은 것에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 AI에 대한 공포심도 컸는데…. “나는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에서 거꾸로 인간의 뇌에서 희망을 봤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꺾는 데 소비한 전력은 25만 kW였던 반면, 이세돌의 뇌가 소비한 에너지는 겨우 20W에 불과했다. 앞으로의 관건은 어떻게 인간의 뇌처럼 적은 에너지로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AI를 만드는가 하는 싸움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모든 물건이 AI 컴퓨터와 연결된다는 사물인터넷(IoT)에 대한 구상도 엉터리가 된다.” 이 이사장은 “전 세계 모든 사물이 인터넷을 통해 AI와 연결돼 범용인공지능(AGI)이 생겨났을 때 엄청난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난다고 한다”며 “인간의 뇌 수준의 에너지 효율성을 갖춘 AI 컴퓨터를 개발하면 원자력발전소 100만 기를 대체하는 효과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알파고 25만 kW 대 이세돌 20W ―알파고 이후 세계 각국의 인공지능 경쟁은…. “한국에서는 지난해 3월 알파고와의 바둑 대결 이후 ‘AI 위협설’로 호들갑을 떨다가 금세 관심이 시들해졌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는 포스트 알파고 1년 만에 엄청난 대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알파고가 화상 인식, 음성 인식, 문자 인식을 통해 스스로 바둑을 배운 ‘딥러닝’(심화학습) 기술은 바둑뿐 아니라 의료 기기, 복지, 법률, 안전, 엔터테인먼트 등 전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딥러닝’을 개발한 캐나다 3인방 중의 한 명인 세계적인 AI 권위자 앤드루 응은 현재 중국 바이두로 자리를 옮겼다. 중국은 최근 ‘AI 굴기(굴起)’를 공식 선언했다.” ―미국 정부가 AI의 대두로 47%의 직업이 사라지고 빈부 격차는 더 심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는데…. “AI 위협설은 영국 옥스퍼드대의 마이클 오즈번 교수의 연구 결과를 차용한 것이다. 그러나 막상 오즈번 교수는 사라지는 직업 이상으로 새로운 직업이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차가 실용화되면 80대 할머니도 양로원을 나와 근육질의 젊은 남자들의 전유물이던 대형트럭을 운전하는 직업을 갖게 될 수도 있다.” ―한국의 AI에 대한 준비는…. “우리는 1990년대에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기술(IT)은 앞서가자’는 슬로건을 내세워 눈부신 약진을 했다. 그런데 현재 AI 분야에서는 세계 10위권에도 못 든다. 일본은 물론이고 중국한테도 뒤지고 있다. 구한말 산업화에 늦어서 패권주의 국가의 식민지로 전락했던 역사를 되풀이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앞에선 진보, 보수가 따로 없다. 타이타닉호가 침몰하는데 1등칸, 3등칸 손님이 따로 있나. 카지노에서 돈을 땄든, 잃었든 무슨 차이가 있나.”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트럼프의 이민 제한 정책 이후 딥러닝을 개발한 캐나다 토론토대 연구소에는 수많은 AI 전문가가 모여들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가 아닌 캐나다 변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면 우리도 사람만 있으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인도 태생인 구글의 최고경영자(CEO) 순다르 피차이가 방한해서 젊은이들에게 ‘실패하라’는 말을 했다. 악담 같은 말이 약이 된다. 늙은이는 쓰러진 자리가 무덤이 되지만, 젊은이들에게는 넘어진 자리가 바로 성공의 출발점이다.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오늘은 어둡다. 내일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희망을 잃지 않는 젊은이들에겐 모레, 글피가 반드시 있다.” 이 이사장은 인터뷰 동안 현실 정치와 관련된 질문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내가 아니더라도, 수많은 사람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내가 살아갈 날이 얼마 안 남았는데, 내가 하지 않으면 아무도 할 수 없는 말을 하고 싶다”고 했다. 문체부 초심으로 돌아가야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최순실 국정 농단, 블랙리스트 논란 등으로 만신창이가 됐다. 초대 문화부 장관으로서 현 사태를 바라보는 소회는…. “문체부가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해 주고 싶다. 내가 초대 문화부 장관으로 취임했을 때 세 가지 이야기를 했다. 첫째, 문화의 불을 지필 수 있는 ‘아궁이의 부지깽이’가 되라는 거였다. 둘째는 누구나 목을 축일 수 있도록 ‘우물가의 두레박’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의 인프라 구축에 관한 이야기다. 마지막은 ‘바위의 이끼’ 역할이다. 메마르고 단단한 바위 같은 사회를 부수려 하기보다는 생명의 이끼로 덮어야 한다는 것이다. 글라이더는 혼자 날 수 없다. 처음엔 견인차가 끌어 주다가 날게 되면 줄을 풀어 줘야 한다. 아니면 다시 떨어진다. 문화에 불을 붙여, 물을 축이게 하고, 생명의 이끼로 덮어 스스로 날 수 있게 됐는데도 정부가 계속 줄을 잡고 끌고 다니면 문화는 생명을 잃는다.” ―88 서울 올림픽 때 ‘굴렁쇠 소년’의 아이디어로 전 세계인에게 감동을 줬다. 평창 겨울올림픽이 전달했으면 하는 메시지는…. “강원도와 평창이 어떤 곳인지는 꼭 알려주었으면 한다. 송강 정철이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했을 때 임금에게 상소문을 올렸다. ‘이곳은 산간 지역이라 낮은 짧고, 밤은 길고, 여름은 짧고, 겨울은 길다. 어떤 곡식도 자라지 않아 가난하니 부디 세금을 면해 달라’는 내용이다. 그렇게 열악한 자연환경이 현대에는 겨울 스포츠의 천혜 조건이 된 것이다. 평창처럼 가난했던 지역이 올림픽 개최지로 변신한 역사를 알려 전 세계 비슷한 처지의 지역에 희망을 던져 줬으면 한다.” 이 이사장은 “평창 올림픽 준비가 늦어져 여러 가지 말이 많은 것도 사실”이라며 “그러나 한국인은 원래 닥쳐야 한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잘한다. 정치적인 문제를 잘 극복하고 단합한다면 틀림없이 잘 치러 낼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평생의 친구이던 민음사 박맹호 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소회는…. “박 회장을 문상하면서 어리석은 자는 사후에 ‘돈’을 남기지만 슬기로운 자는 ‘사람’을 남긴다는 말을 생각했다. 박 회장은 출판을 통해 저자와 독자들 같은 많은 사람을 남겼다. 또한 그보다 더 귀한 ‘일’을 남기고 갔다. 책을 쓰고 읽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꿔 가는 바로 그 일 말이다. 신기술의 개발은 과학자의 몫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사회에 적용하고 실행할 것인가는 인문학자의 역할이다.” 이어령은△서울대 국문학과△이화여대 교수△문학사상사 주간△1990∼91년 초대 문화부 장관△1988년 서울 올림픽 개·폐회식 총괄기획△2002년 한일월드컵조직위원회 공동의장△새천년준비위원회 위원장△저서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축소지향의 일본인’, ‘디지로그’,‘생명이 자본이다’, ‘지성에서 영성으로’ 등.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대한불교조계종 기본선원 조실 설악무산(오현) 스님은 10일 발표한 동안거 해제법어를 통해 정치인들에게 “먼저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며 “자기 허물을 먼저 볼 줄 아는 공명정대(公明正大)한 사람이 이번에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설악무산 스님은 “우리는 매일같이 각종 매체에 크고 작은 사건들이 보도되고 있는 것을 보는데 그것이 다 살아 있는 무진법문(無盡法門)”이라며 “고위공직자, 대통령, 국회의원, 대기업회장 그리고 온갖 잡범들을 형무소에 보내는 것은 검사 판사가 아니다. 그들 행위의 그림자가 붙들어 쇠고랑을 채우는 자승자박(自繩自縛)”이라고 지적했다. 설악무산 스님은 조기대선이 예상되는 현실에 대해 “대통령이 되겠다고 떠들어대는 정치인들의 추태가 점입가경”이라며 “자기의 허물은 감추고 남의 허물은 들춰내는 것이 마치 선거 때마다 남발하는 공약 같다고 한다. 자고나면 남을 헐뜯으며 깎아내리는 종잡을 수 없는 유언비어가 나라를 어지럽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스님은 “중생들은 남의 삶, 남의 죽음, 남의 허물을 다 보면서 정작 자기의 삶, 자기의 죽음, 자기의 허물은 못본다”며 “그래서 국민적 존경을 받던 인물도 청문회에 나가면 생매장을 당하는 꼴을 우리는 많이 봐 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자기 허물을 보았더라면 아무리 높은 자리를 줘도 무서워서 사양했을 것인데, 자기 허물을 못 보는 이유는 다 삼독(三毒)의 불길에 대한 집착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설악무산 스님은 “삼독의 불길을 잡은 사람은 자기 허물을 보는 사람이고, 자기 허물을 보는 사람은 공명정대(公明正大)한 사람이고, 이번에 공명정대한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설악무산 스님은 “사실상 지금 세계는 삼독의 불바다”라며 “모름지기 수행승은 삼독의 불길을 잡는 소방관이 되어야 그림자가 부끄럽지 않다. 우리 모두는 그림자가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한다”며 수행승들을 독려하며 해제법어를 마쳤다. 설악무산 스님은 1959년 출가해 직지사에서 성준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았으며 1968년 범어사에서 석암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계림사, 해운사, 봉정사, 신흥사 주지 및 제8·11대 중앙종회 의원을 역임, 지난 4월 조계종 최고 품계인 ‘대종사(大宗師)’ 법계(法階)를 받았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서울 청계천은 포세권이다. 세종로 사거리에 포켓스톱도 많고, 청계천변에서는 포켓몬들이 잘 잡힌다. 청계천에는 물가에서 잉어가 튀어나오고 올챙이, 참새, 벌레 등 갖가지 몬스터들이 득시글댄다. 요즘엔 헬스클럽을 가는 대신 스마트폰을 들고 걸어서 퇴근하기도 한다. 청계천에서 세운상가, 장충단공원까지 걸으며 평생 한 번도 안 가봤던 도심의 골목길과 유적지, 조각품을 발견하는 즐거움도 쏠쏠하다. 추운 겨울인데도 청계천을 걷게 된 계기는 초등학생 아들 때문이었다. 포켓몬 체육관에서 힘센 몬스터들에게 늘 짓밟혀 슬퍼했던 아들은, 퇴근길에 아빠가 멋진 몬스터를 많이 잡아오면 환호성을 질러댔다. 내 어린 시절엔 아버지가 사오시던 호떡을 기다렸는데…. 돈 벌어다 주기에도 바쁜 아빠는 이제 할 일이 하나 더 늘었다. 어느 날 밤 청계천에서 포켓몬을 잡기에 여념이 없던 내 앞에 갑자기 길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순간 저 고양이가 처음보는 '희귀 몬스터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스마트폰을 들이댔다. 본능적으로 몬스터볼을 던져 고양이를 잡으려하는 내 자신을 보며 입맛이 쩍 다셔졌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전 세계가 직면한 문제에 대처하기에는 한 종교의 목소리만으론 부족합니다. 여러 종교가 함께 목소리를 내면 더 강력한 목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로마교황청 종립대학인 안젤리쿰대학의 신학대학장인 스테판 주릭 신부(67)는 6일 서울 종로구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에서 자승 총무원장을 예방한 자리에서 가톨릭과 불교 간 교류 방안을 논의했다. 주릭 신부를 비롯해 안젤리쿰대학 석좌교수인 미켈 푸스 신부(69)와 이재숙 교수(63)는 7일 조계종 종립대학인 동국대와 학술교류 업무협약(MOU)을 맺을 예정이다. 자승 총무원장은 “오랜 노력 끝에 111년 역사의 동국대와 795년 역사의 안젤리쿰대학이 역사적인 자매결연을 하게 됐다”며 “앞으로 종교 간에 많은 이해를 하고 교류의 폭을 넓혀갔으면 한다”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푸스 신부는 “종교 간에 생기는 오해는 무지에서 기인한다”며 “종교 비교연구에 관심을 두게 됐고 연구를 하면 할수록 자신의 종교에 대한 이해도 깊어진다”고 강조했다. 안젤리쿰대학은 1222년 도미니칸회 신부들이 건립한 교황청 종립대학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도미니크 피르 신부 등 가톨릭 지도자들을 배출해온 명문이다. 안젤리쿰대학 측 신부와 교수진은 8, 9일 동국대 경주캠퍼스와 해인사, 불국사, 석굴암 등을 방문해 템플스테이 등을 체험할 예정이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사진)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제22대 대표회장에 재선출됐다. 이 목사는 2015년과 2016년에 이어 2017년에도 세 번째 한기총 대표회장직을 수행하게 됐다. 한기총은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연합회관에서 정기총회를 열어 단독 출마한 이 목사를 기립박수로 추대했다. 한기총 선거관리위원회 규정 제8조 단일후보일 때는 박수로 추대할 수 있다는 규정에 근거했다. 이번 한기총 선거에는 김노아 목사(대한예수교장로회 성서총회)가 입후보했으나, 한기총 선관위는 ‘원로목사 및 은퇴 목사는 피선거권이 없다’는 규정에 따라 김 목사를 후보에서 제외했다. 이 목사는 “소수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겠다”며 “올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의 연합과 개혁을 위해 전심전력하고, 기독교가 사회에 선한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일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연세대 신학과를 졸업한 이 목사는 미국 템플대에서 종교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한세대 교수와 미국 워싱턴순복음제일교회·로스앤젤레스 나성순복음교회 담임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회장 등을 지냈다. 현재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와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여의도 총회장을 맡고 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이후 대북 강경정책을 취할까 심하게 우려됩니다. 미국의 개신교 대표자들이 트럼프 대통령 측에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했습니다.” 미국 최대 개신교 단체인 미국교회협의회(NCCUSA)의 제임스 윙클러 회장 겸 총무(59·사진)가 23일 중구 정동의 한 식당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그는 마크 리퍼트 전 주한 미국대사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관계자들을 만나 한반도 평화 문제와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18일 5박 6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한했다. 윙클러 총무는 19일 리퍼트 전 대사와 만났다. 리퍼트 전 대사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쿠바와 관계를 개선하고, 이란과 핵협상을 타결했던 것처럼 북한과 평화조약을 맺지 못한 것이 가장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고 윙클러 총무가 전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에 대해 “취임 연설이 온통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라는 말로 채워져 있었는데, 미국인만이 우월하다는 생각은 만민이 하나님 앞에 평등하다는 복음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역대 대통령들의 취임사에는 ‘감사하다’는 말이 꼭 들어갔는데,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사에는 감사하다는 말이 없어 아쉬웠다”고 말했다. 윙클러 총무는 4월 미국 개신교회를 대표해 미국 의회와 행정부에 할 법률과 정책 제안을 준비 중이다. 그는 “트럼프 정부에 대북 선제공격은 안 되며, 사드 배치를 철회하고 한반도 평화조약을 체결할 것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라며 “내년 초 미국교회협의회 대표단이 북한과 남한을 방문하고 평화의 사절단 역할을 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미국교회협의회는 에큐메니컬(교회 일치와 연합) 노선을 표방하는 미국 내 38개 교단 3500만 명의 교인들이 속해 있다. 교회협은 마틴 루서 킹 목사를 도와 1960년대 인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이후 베트남 전쟁 및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에 반대하고 한국의 민주화운동 등을 지원하는 연대활동을 벌여 왔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백인우월주의, 인종차별주의 정책을 계속 펴 나간다면 곧 미국 시민들의 저항에 부닥칠 것”이라고 말했다.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2018년 2월 9일 강원 평창에서 겨울올림픽이 개막한다. 불과 1년여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평창을 바라보는 시선은 불안하기만 하다.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의 여파로 올림픽 공식 스폰서에 나서는 기업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마저 구속되면서 평창 겨울올림픽은 당분간 주무부처 장관 없이 준비해야 할 처지에 몰렸다. 가장 초미의 관심사는 전 세계인의 눈과 귀가 집중될 개폐막식. 논버벌 퍼포먼스 ‘난타’ 제작자로 유명한 송승환 씨(61)가 2015년 7월 총감독에 임명돼 꾸준히 준비해 왔지만 정작 개폐막식 총연출 감독 선정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뮤지컬 음악감독 박칼린 씨가 맡았다가 3개월 만에 사퇴했고,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이 추천한 패션디자이너 정구호 씨도 7개월 만에 중도 사퇴했다. 최순실 게이트 광풍이 불던 지난해 12월 초. 넉 달간 공석이었던 개폐막식 총연출 감독에 연출가 양정웅 씨(49·서울예대 공연학부 교수)가 최종 낙점됐다. 평창 올림픽의 성공에 대한 국제적 우려가 커지자 송 총감독을 도울 ‘구원투수’로 긴급 투입된 것이다. 이달 19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일민미술관 카페에서 만난 양 감독은 “총연출 감독에 임명된 뒤 첫 언론 인터뷰”라고 말했다. 그는 “스포일러 금지 규정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할 수 없다”면서도 개폐막식의 주요 콘셉트와 연출 방향에 대해 성심껏 답해줬다. “문체부 장관 구속, 위기를 기회로” ―지난해 12월 개폐막식 총연출을 제안받았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 “송승환 총감독으로부터 직접 전화를 받았다. 늘 꿈꾸던 무대였지만 막상 제안을 받으니 놀랍고 당황스러웠다. 뒤늦게 뛰어들었다가 욕만 먹을 가능성도 크고, 개인적으로 올해 영화감독으로 데뷔할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 이틀 깊이 고민하다가 수락했다.” ―겨울올림픽 개폐막식 연출을 수락한 이유는…. “1992년도에 프랑스 알베르빌 겨울올림픽 개막식을 TV로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당시 31세에 불과했던 안무가인 필리프 드쿠플레가 총연출을 맡았다. 그의 작품을 보고 올림픽 개막식 같은 메가 이벤트도 예술 작품이 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나도 저런 연출을 해보고 싶다는 꿈을 늘 꿔왔는데, 갑자기 기회가 다가왔다.” ―조윤선 문체부 장관이 구속됐다. 주무부처 장관 부재로 체육행정이 올스톱 됐는데, 개폐막식 준비에 차질이 없겠는가. “오히려 자유로운 창의성이 보장돼 감사한 상황이 아닐까. 지금은 전문가들로 구성된 준비팀에서 소신껏 오직 개막식만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다. 정권이나 비선실세의 간섭에서는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12월 총연출을 맡은 이후 외부 압력을 전혀 못 느끼고 있다.” 1997년 극단 ‘여행자’를 창단했던 양 감독은 국내 연극계에서 의상·음악·무대미술이 결합된 감각적인 미장센과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데 가장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한여름 밤의 꿈’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 등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한국적 미학으로 풀어낸 작품으로 해외로부터 많은 초청을 받았다. 그의 대표작인 ‘한여름 밤의 꿈’은 2006년과 2012년 한국 연극 최초로 영국 런던 바비컨 센터와 글로브 극장으로부터 각각 초청받았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12년 런던 올림픽,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까지 개폐막식은 늘 수많은 화제를 낳았다. 어떤 올림픽을 롤모델로 하는가. “베이징부터 시작해 런던, 소치를 거치면서 대규모 볼거리와 최첨단 기술 경쟁이 확대돼 왔다. 많은 분이 우리에게도 그런 것을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브라질 리우는 적은 예산으로도 메시지에 집중하고, 휴머니티가 넘치는 개폐막식을 보여줬다. 우리도 현실에 맞는 규모와 독창적인 내용의 평창만의 폐막식을 준비하고 있다.” ―영국 영화감독 대니 보일이 연출한 2012년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선 산업혁명의 태동과 세계대전 같은 역사적 흐름 및 대중문화까지 접목해 세대를 초월한 감동을 주었다. 평창이 세계인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우리나라는 분단국가인 데다 비무장지대(DMZ)에서 멀지 않은 강원도에서 열리는 올림픽이라는 점에서 전체 개폐막식의 주제를 ‘평화’로 잡았다. 대한민국 분단의 현대사뿐만 아니라 21세기에도 전 세계에서 계속되는 테러와 전쟁, 난민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메시지를 담을 것이다. 그러나 올림픽이라는 행사는 특정한 정치와 종교로부터 초월한 인류 화합을 추구하도록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권고하고 있다. 정치적, 종교적 문제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상징적이고, 예술적으로 표현해 글로벌 시민들에게 보편적 공감을 얻도록 하겠다.” 양 감독에 따르면 개폐막식은 ‘평화’라는 전체 주제 아래 개막식은 ‘하나 된 열정(Passion Connected)’, 폐막식은 ‘조화와 융합, 넥스트 웨이브(Next wave)’라는 주제로 치러진다. ‘하나 된 열정’은 정보기술(IT)의 발달에 따라 젊은이들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대해 서로 기뻐하고, 아파하고, 공감하는 열정이 하나로 연결돼 평화를 염원한다는 설명이다. ‘넥스트 웨이브’는 전통과 현대를 조화하고, 융합해서 만들어내는 새로운 물결이자 새로운 바람이라고 소개했다. 양 감독은 “넥스트 웨이브에는 당연히 한류(Korean wave)도 포함된다. 그러나 우리의 문화가 케이팝만이 전부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자랑보다는 글로벌한 소통 중요” ―장이머우 감독이 연출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은 나침반 종이 화약 인쇄술 등 중국의 문명을 자랑했다. 소치 올림픽도 강력한 러시아를 꿈꾸는 블라디미르 푸틴의 ‘차르 대관식’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평창도 ‘국뽕’(과도한 애국주의) 이벤트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물론 우리도 전 세계에 자랑할 만한 고유의 문화가 많다. 1988년 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 때는 한국 전통적 이미지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 집중해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그러나 21세기 패러다임에서는 소통과 연결이 중요하다. 평창 올림픽 개막식은 우리 것에 대한 일방적인 자랑보다는 글로벌한 소통과 연결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한류 스타와 케이팝은 어느 정도 활용되는가.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에서는 과도하게 아이돌 가수 출연이 많았다는 지적이 있는데…. “한류 스타와 케이팝은 폐막식에서 주로 나올 것이다. 폐막식은 치열하게 경쟁을 펼쳤던 선수들에게 ‘그동안 수고했다’는 의미로 치러지는 즐거운 축하마당이다. 케이팝은 전 세계 음악시장을 바꾼 우리만의 어마어마한 자산이다. 그러나 케이팝이 한국 문화의 전부는 아니다.” ―평창 올림픽 개폐막식의 전체적인 연출 방향은….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에 빗댈 수 있는 ‘한겨울 밤의 꿈’ 같은 무대를 상상하고 있다. 뮤지컬처럼 전체의 내러티브 스토리가 있고, 어른들이 보는 한 편의 겨울동화 같은 이야기다. 그러나 ‘겨울왕국’ 같은 디즈니류 판타지는 아니다. 동화적 상상력이 살아 있는 무대라는 뜻이다.” ―도깨비는 안 나오나. “구체적으로 도깨비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상상력이 가미될 것이다.” ―평창 겨울올림픽 개폐막식의 또 다른 고민은 적은 예산이다. 브라질 리우 올림픽의 개폐막식 총예산은 630억 원이었다. 실제 공연 예산은 베이징 올림픽의 약 20분의 1 수준에 불과했는데도 잘 치러냈다는 평가를 들었다. “평창 겨울올림픽 개폐막식 예산(533억 원)은 리우보다 적다. 리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어두운 빈민가 이야기를 자신 있게 드러내놓고 재밌게 표현했다는 점이었다. 휴머니티와 아날로그가 살아 있는 새롭고 놀라운 접근이었다. 그러나 리우 올림픽 개막식에도 자세히 살펴보면 3차원(3D) 인터랙션 기술, 키네틱 아트 등 최첨단 기술이 녹아 있다. 우리도 저비용 고효율 테크놀로지를 찾아내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내겠다.” “리우 올림픽보다 개막식 예산 적어” ―개폐막식이 열리는 평창 올림픽 개폐막식장이 올해 9월에 완공될 예정이다. 현장에 가봤을 때 느낌은…. “오각형으로 지어진 평창 올림픽 개폐막식장은 경기장이 아니라 오로지 개폐막식 행사만을 위해 지어졌다. 매머드한 주경기장에 비하면 아늑한 공연장 같은 느낌이 강하다. 뮤지컬적인, 연극적인 효과를 좀 더 다양하게 연출할 수 있다. 현장에서는 3만5000명이 관람하는 그라운드 행사이지만 TV 화면을 통해 전 세계로 중계되는 쇼 무대이기도 하다. 시청자들의 눈에 다가서는 영상적인 측면도 많이 고려하고 있다.” ―대회가 끝난 후 개폐막식장은 어떻게 사용되나. “부분적으로 해체된 후 올림픽기념관과 전시관으로 사용된다고 들었다.” ―성화 점화 방식에 대한 아이디어는…. “현재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놓고 기술 검토를 하고 있다. 최신 기술을 사용해 깜짝 놀랄 만한 이벤트를 준비하고 싶지만 신기술은 늘 위험이 따른다. 2월의 겨울철 날씨와 바람까지 감안해 테스트를 꼼꼼히 할 예정이다.” ―송승환 총감독과 양정웅 총연출의 역할 구분은…. “뮤지컬을 제작할 때 프로듀서와 연출가의 차이다. 송 총감독은 500억 원이 넘는 예산 집행을 총괄하고, 중요한 콘셉트와 스케줄을 정한다. 총연출은 실제로 보이는 개폐막식의 세세한 부분까지 구현해 내는 역할을 맡는다.” ―전임 연출가였던 정구호 씨의 아이디어는 어떻게 활용되나. 송 총감독의 ‘난타’는 포함되지 않는가. “사임한 전임 감독의 아이디어는 사용할 수 없다. 개폐막식에 ‘난타’의 구성 요소도 들어가지 않는다. 다만 일반적인 타악은 우리 고유의 음악인 만큼 빠질 수 없다.” ―1988년 올림픽이나 2002년 월드컵에 비해 이번 제작팀은 젊은 편 아닌가. 국제적인 대형 이벤트에 대한 경험 부족을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게 따지면 언제나 이미 경험했던 사람들만 다해야 한다. 프랑스는 불과 31세의 안무가에게 알베르빌 겨울올림픽 개막식 연출을 맡겼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기 마련이다. 60, 70대가 돼서야 첫 경험을 할 수 있는 사회는 비극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올해는 1517년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다. 한국의 개신교는 올해 가장 큰 목표를 ‘교회개혁’으로 내걸었다. 부패한 가톨릭을 비판했던 개신교가 500년이 지난 지금 초심을 잃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인 이영훈 목사는 최근 “성직자도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며 스스로의 개혁을 촉구했다. 공교롭게도 올해 사순절(四旬節)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은 3·1절과 겹친다. 또한 부활절(4월 16일)은 세월호 참사 3주기와 겹친다.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는 기간에 교회의 사회적 역할을 되돌아볼 기회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올해 부활절 주제를 ‘예수는 여기 계시지 않다’로 채택했다. 김영주 NCCK 총무는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 후 무덤에 있지 않고 갈릴리에 먼저 가 계신다는 마태복음의 구절을 인용하며 “오늘날 한국 교회는 고난의 현장에 함께하지 않고 예수의 빈 무덤만 붙들고 있는 모습”이라고 꼬집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목회자이자 시인인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사진)가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아 평전시집 ‘다시, 별 헤는 밤’(샘터사)을 펴냈다. 소 목사는 시인의 발자취를 찾아 관련 서적을 연구해 왔고 중국 룽징(龍井), 일본 릿쿄대와 도시샤대, 후쿠오카 감옥 등을 방문했다. 그는 시인의 6촌 동생인 가수 윤형주와 함께 윤 시인의 벌거벗겨진 무덤에 뗏장을 다시 입히기도 했다. 소 목사는 “윤동주는 민족의 아픔과 저항정신을 시로 표현하고, 자신을 민족의 제단에 바친 예언자적 시인이요, 제사장적 시인”이라고 소개했다. 특히 그는 시인의 시에 담긴 저항정신의 원천을 개신교 신앙과 가치에서 찾았다. “신앙의 순결에 목숨을 걸었던, 때 묻지 않았던 용정의 개신교는 윤동주의 시에 감춰진 영성과 나라사랑하는 정신의 원천이다.” 시 해설을 쓴 강희근 경상대 국문과 명예교수는 “지금까지 윤동주 평전은 많이 나왔지만 윤동주의 내면으로 들어가 그가 못다 한 고백을 끄집어내고 오늘의 우리와 재회하게 하는 평전시를 쓰는 시도는 처음”이라고 평가했다.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요즘 집에서 아들과 함께 즐겨 보는 TV 프로그램은 EBS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다. 1인 가구가 대세인 요즘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이 많다. 주인이 출근하거나 집을 비운 사이에 개들은 집 안에서 온갖 말썽을 부려 놓기 일쑤다. 휴지를 물어뜯어 집 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고, 손님에게 짖거나 물고, 밥상 위 음식을 탐하기도 한다. 그런데 따뜻한 카리스마 넘치는 훈련사가 오면 신기하게도 문제가 해결된다. 그는 개 주인이 반려견을 혼내거나 때리는 장면을 녹화한 화면을 보면서 고개를 가로젓거나, 심지어 눈물까지 흘린다. 그 대신 주인에게 개가 원하는 소통법, 꾸짖음 대신 칭찬과 보상으로 훈련시키는 법을 가르쳐 준다. 이 프로의 제목엔 이런 뒷말이 생략돼 있는 것 같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다만 나쁜 주인이 있을 뿐이다.’ 이 말은 또 이렇게 변주될 수 있지 않을까. ‘세상에 나쁜 아이는 없다. 다만 나쁜 부모, 제 욕심만 강요하는 부모, 어리석은 부모만 있을 뿐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조계종 총무원장으로서 임기가 열 달가량 남았습니다. 종헌이 정한 바에 따라 소임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자승 총무원장(사진)이 10일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회관에서 신년기자회견을 열고 3선 도전 의사가 없음을 못 박았다. 2009년 10월 33대 총무원장으로 선출된 데 이어 2013년 10월 34대 총무원장에 재선된 자승 스님은 올해 10월 임기를 마무리한다. 그러나 지난해 조계종 내부에서는 자승 원장이 종헌을 고쳐 3선을 시도할 것이라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자승 원장은 이날 “한 잔 물을 마실 때도 그 근원을 생각한다는 ‘음수사원(飮水思源)’의 마음으로, 신심과 공심과 원력으로 살아왔다”며 “한 사람의 종도로서 종헌이 정한 규정을 따를 것이니 정치적 의도를 가진 온갖 추측들은 오늘 이후로 멈춰 달라”고 말했다. 그는 설문조사를 통해 종단 구성원 다수가 원하는 것으로 확인된 총무원장 직선제와 관련해서는 “지난해 11월 중앙종회에 직선제 안건이 상정돼 많은 논의를 했지만, 더 많은 이해와 설득이 필요하다”며 “현재 직선제 특위에서 새 안이 마련되면 3월 중앙종회에 상정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했다. 자승 원장은 최근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추진이 무산된 데 대해 “환경과 문화에 대한 국가의 관리가 이원화돼 있어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국립공원과 불교문화재 등 국가유산의 통합적인 관리를 위한 새로운 정부 기구의 개편 방안을 이번 대선 과정에서 제안하고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올해 상반기 중 위례신도시 불교문화유산보존센터를 착공해 불교 문화재에 대한 과학적인 보수와 관리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자승 원장은 최근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에 대해 “지금 우리가 직면한 국가적 위기는 소수 세력이 정치·경제적으로 서로 결탁해 특권을 누리며 헌법 정신을 무력화했기 때문”이라며 “조계종은 특권과 차별 없는 공정한 세상을 만들어 나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국가 위난의 상황 속에서 국민들이 촛불민심을 통해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연꽃을 피워내는 ‘화중생련(火中生蓮)’의 감동을 보여주고 있다”며 “이런 국민 염원을 바탕으로 특권과 차별이 없는 공정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말했다. 자승 원장은 이어 “다문화 다종교 사회의 평화와 화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생활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하는 법률이 필요하다”며 “차별받고 있는 소외된 이웃의 손을 잡고 ‘차별금지법’의 국회 입법을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올해 골든글로브상은 뮤지컬 영화 ‘라라랜드’가 휩쓸었다. 골든글로브 역사상 가장 많은 7개 부문을 수상했다. 며칠 전 영화관에서 라라랜드를 혼자 보면서 가슴 한구석이 따뜻해지면서도 텅 빈 것 같은 모순된 감정에 젖었다. 내가 꿈꾸던 꿈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는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을까? 마누라가 들으면 큰일 날 소리겠지만, 잃어버린 꿈과 사랑을 돌아보게 만드는 영화였다. 라라랜드는 1950∼60년대 뮤지컬 영화의 매력을 마법처럼 되살렸다. 그러나 주인공들의 고민은 요즘 밀레니얼 세대의 그것에 더 가깝다. 예전 영화 속 커플들은 어떤 어려움과 희생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사랑을 쟁취하고야 말았던 것과 달리, 라라랜드의 남녀 주인공은 사랑에 빠졌지만 꿈도 포기할 수 없다. 이들의 꿈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안정적인 직장이 아니다. 밀레니얼 세대에겐 진정한 ‘자아실현’이 중요하다. 부모 세대였다면 사랑을 위해 남자는 월급쟁이가 돼야 하고, 여자는 커리어를 포기했을 것이다. 평생을 지지고 볶고 살다가 어느덧 남자도, 여자도 꿈을 잃어버린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라라랜드의 두 주인공은 먼저 서로의 진정한 꿈을 이루길 응원한다. 그러면서 사랑도 쿨하게 떠나보낸다. 요즘 결혼하지 않고 사는 1인 가구, ‘혼밥 혼술’ 남녀가 괜히 많아지는 게 아니다. 아름다운 음악, 화려한 군무와 탭댄스가 눈요깃거리지만 내 가슴에 남은 것은 남자 주인공의 말이다.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배우 오디션을 보지만 번번이 실패하는 여자친구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위기는 인생이 내게 던지는 펀치야. 코너에 몰리더라도 펀치를 절대 피하지 않아야 해. 내가 위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마지막에 카운터펀치 한 방을 날릴 수 있기 때문이야.” 삶의 펀치에 두들겨 맞아도, 절망에 빠져도, 다리에 힘이 풀릴 것 같아도 결국 쓰러지지 않는 것은 자존감 때문이다. ‘이 한 방에 쓰러질 내가 아니다’라는 자신에 대한 사랑이다. 베스트셀러 ‘자존감 수업’의 저자인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윤홍균은 “자존감은 집과 같은 것이다. 마음을 공격하는 수많은 비난과 비교, 열악한 외부 상황은 일종의 악천후다. 아무리 현실이 고돼도 집이 안락하면 견딜 수 있다”고 말한다. 새해 동아일보 문화부가 연재하고 있는 ‘희망바라기’ 시리즈의 주인공들도 마찬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올해 데뷔 20년을 맞은 발레리나 김지영은 “무릎 수술 등 숱한 시련을 겪다 보니 남들과 다른 공감 능력이 생기는 것 같다”며 현역 최고령 무용수의 역사를 써나가고 있다. 몽골에서 기타 하나로 외로움을 달랬던 남매 가수 ‘악동뮤지션’은 “별(희망)은 눈에 안 보일 뿐이지, 사라지지 않아”라고 노래한다. 올해 대한민국도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펀치를 맞으며 시작했다. 대통령이 탄핵 소추로 업무가 정지된 사이에 미국과 중국, 일본의 ‘스트롱맨’들의 외교적 위협이 거세다. 경제는 1997년 외환위기 때보다 3배 어려운 ‘퍼펙트 스톰’에 휩싸일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문화계도 새해 벽두부터 출판계 유통회사 부도, 블랙리스트 파문으로 만신창이 상태다. 그럼에도 희망을 말하고 싶다. 쏟아지는 펀치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선다면, 우리에게도 개혁의 기회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1997년 외환위기 때 민주화와 경제개혁을 이뤄서 지난 20∼30년을 버텨 왔듯이, 올해의 총체적 위기에서도 대한민국이 새롭게 거듭나는 ‘반격의 한 방’을 준비할 것으로 기대한다. 전승훈 문화부 차장 raphy@donga.com}
국내 개신교 주요 7개 교단이 중심이 된 가칭 ‘한국교회총연합회’(한교총)가 9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정동제일교회에서 감사예배를 올리고 정식으로 출범했다. 한교총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과 예장 합동, 예장 대신,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 기독교대한성결교회(기성),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기하성), 기독교한국침례회(기침) 등 7개 주요 교단을 비롯해 기독교한국루터회, 대한예수교복음교회 등 총 15개 교단 교단장이 함께하기로 했다. 이 교단들은 교세 면에서 한국 교회의 95% 이상을 차지해 한국 개신교 최대 연합기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교총은 이날 창립선언문에서 한교총의 출범은 한국교회연합(한교연)이 갈라져 나오기 이전의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로 복귀하는 것임을 명시했다. 한기총과 한교연은 본래 한 기관이었으나 2011년 대표회장직을 둘러싼 금권 선거 논란이 일며 둘로 쪼개졌다. 분열 후 두 단체는 각각 보수 개신교계를 대변하는 역할을 맡아 왔으며 이에 통합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됐다. 그러나 한교총이 출범하더라도 개신교 통합을 위한 기구로서 역할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올해 출가 70주년을 맞은 쌍계총림 방장 고산 스님(사진)의 ‘돈황본 육조단경 강의’가 출간됐다. 고산문화재단(이사장 영담 스님)과 쌍계총림은 고산 스님의 법문을 경전별로 엮어 ‘쌍계총림신서’를 펴낸다. 쌍계총림 쌍계사 주지 원정 스님은 5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부처님 가르침을 널리 알리는 전법과 생사해탈을 위한 경문, 돈오법 수행을 널리 알리기 위해 고산문화재단과 함께 ‘쌍계총림신서’를 발간한다”고 말했다. ‘쌍계총림신서’는 고산 스님이 1948년 출가 후 제방의 강원에서 논강한 경전과 율장, 선어록 강의와 법회에서 한 법문 등을 집대성한 출판물이다. 원정 스님은 “고산 스님의 경전 강의는 수행자로서 실천과 강백으로서 강의, 학자로서 연구에 매진해 온 평생 실천수행의 결과물”이라고 전했다. 6일 발간된 ‘돈황본 육조단경 강의’는 육조 혜능 스님의 가르침을 담은 내용이다. 고산 스님이 20여 년 전 스님들 공부모임인 ‘명심회’ 스님들에게 했던 20회 분량의 강의를 엮은 것이다. 고산 스님의 ‘육조단경 강의’는 돈황본을 저본으로 하고 대승사본, 덕이본, 흥성사본, 종보본 등 다른 본을 비교해 빠지거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고 해석했다. 고산 스님의 강의는 동서양을 넘나드는 불교 일화와 근현대 스님들의 일화 등이 풍부하게 들어 있는 점이 특징이다. 고산 스님은 ‘육조단경’을 강의하면서 “혜능선사는 법과 부처님이 둘이 아니고 하나이며, 중생과 부처님이 일체라고 하셨다. 또 도를 닦는 이나 속인이나 둘이 아니라 하나라고 선언하셨다”며 “껍데기만 보지 말고 알맹이를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산문화재단 이사장 영담 스님은 “조계종 수행 가풍을 선양하기 위해 ‘육조단경’으로 쌍계총림신서 발간을 시작했다”며 “계율정신으로 돌아가자는 취지에서 ‘범망경’을 음력 3월 쌍계사 보살계 법회에 맞춰 발간하고, 조계종 소의경전인 ‘금강경’을 풀이한 ‘금강경오가해’를 차례로 펴낼 것”이라고 했다. 또 내년에는 ‘법화경’ ‘능엄경’ ‘대승기신론’ ‘유마경’을 계획하고 있다. 범패와 어산 의식에 관한 책도 발간할 예정이다. 고산 스님은 조계사와 은해사, 쌍계사 주지를 역임했고 1998년에는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냈다. 2013년 쌍계총림 초대 방장으로 추대됐다.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입니다. 2019년은 3·1운동 100주년입니다. 한국 교회가 종교개혁의 해를 맞아 좀 더 정신 차리고, 사회개혁에 더욱 시선을 돌리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교단의 이성희 총회장(68)은 5일 열린 간담회에서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이 총회장은 “엄밀히 말하면 올해는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500주년 되는 해”라며 “그보다 앞서 한 세기 전에 얀 후스가 있었고, 장 칼뱅이 이어가는 등 종교개혁은 마르틴 루터 혼자서 이룬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루터의 종교개혁이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원리적 측면에 집중했다면 칼뱅의 종교개혁은 사회개혁, 사회운동적 측면이 강했다”고 했다. 칼뱅의 신학 노선을 따르는 장로교회가 사회개혁에 보다 더 중점을 둬야 한다는 말도 이어졌다. 올해 종교개혁 500주년을 계기로 일어나는 한국 개신교회의 개혁 노력이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2019년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1919년 3·1운동 당시만 해도 개신교는 독립운동을 이끌며 민족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당시 20만 신자들이 3·1운동을 주도했지요. 민족대표 33인 중 개신교인이 많았고 지방에선 교회들이 독립운동의 거점이었습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개신교가 변화하고 개혁된 모습으로 민족의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 총회장은 또 “한국 경제가 압축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노동현장의 문제 등이 발생했듯 한국 교회도 성장하면서 주위를 살피지 못했다”며 “오늘날 한국 사회가 교회를 외면하는 것은 교회가 사회를 외면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역설적이지만 교회가 ‘성장 신드롬’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성장할 수 있다”며 외형적 성장보다는 내면적 성숙을 이루는 교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신교의 오랜 과제로 꼽히는 교회 통합에 대한 의견도 나왔다. “현재 개신교 23개 교단이 참여하는 ‘한국교회총연합회(한교총)’ 출범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기득권을 내려놓고 하나로 되기 위한 개혁정신이 그 어느 시기보다 필요합니다.” 한교총은 9일 서울 정동제일교회에서 출범을 위한 예배를 가질 예정이다. 이 총회장은 1985년부터 3년간 미국 남캘리포니아 동신교회 담임목사를 지냈으며 1990년부터 종로 연동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시무하고 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진단검사 의학의 개척자이자 헌혈 운동의 선구자인 고 김기홍 전 한양대 의대 교수의 일생을 그린 전기 ‘의당 김기홍’(더숲)이 출간됐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 후 국립중앙의료원 창설에 기여했고, 수도의과대(고려대 의대 전신) 병리학 교수를 지냈다. 그는 국내에선 낯설던 진단검사 의학(환자의 가검물을 통해 병의 원인을 찾는 것)을 독립된 분야로 발전시켰다. 그는 또 1968년 한국헌혈협회를 창설해 당시 돈을 받고 피를 파는 매혈 문화를 단시간에 헌혈 문화로 바꿔 놓는 데 기여했다. 1972∼86년 한양대 의대 재직 시 의료 서비스 개념을 도입하기도 했다. 이런 공로로 그는 1986년 대한민국학술원 정회원에 추대됐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